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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7

Bollnow 2024. 3. 25. 13:54

에필로그

 

1

시베리아. 광막한 대하(大河) 기슭에 러시아 행정 중심지의 하나인 도시가 서 있다. 거기에는 요새가 있고, 요새 안에는 감옥이 있다. 2급 유형수 로지온 로마느이치 라스콜니코프는 이미 9개월이나 그 감옥에 갇혀 있다. 그의 범행일로부터 거의 1년 반이라는 세월이 흘렀던 것이다.

그의 사건 심리는 큰 곤란 없이 진척되었다. 범인은 사태를 뒤얽거나 자기의 이익을 위해 조건을 완화시키거나 사실을 왜곡하거나 하는 일 없이, 지극히 사소한 점까지도 잊지 않고 단호하고도 정확 명료하게 진술을 고집했다. 그는 살인의 전 과정을 하나도 빠짐없이 상세히 진술함으로써, 피살된 노파의 수중에서 발견된 저당물(금속판을 댄 나뭇조각)의 비밀을 해명해주었다. 그리고 피살된 노파의 손에서 열쇠를 빼앗은 장면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그 열쇠의 모양을 설명한 다음, 트렁크의 겉모습과 그 내용물까지도 설명했다. 그리고 그 안에 있었던 몇몇 물건에 대해서는 그 품목까지 일일이 열거했을 정도다. 그는 또한 리자베타 살해에 관한 수수께끼도 풀어주었다. 코흐가 와서 문을 두드린 일이며, 그 뒤에 대학생이 찾아왔던 일,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은 대화의 내용까지 죄다 이야기했다. 그리고 범인인 그가 층계를 뒤어 내려가다가 미콜카와 미치카가가 서로 외치는 소리를 듣고 빈방에 숨었던 일이며, 그 후에 집으로 돌아갔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끝으로 보즈네센스키 거리의 어느 들 안 대문 밑에 돌이 있음을 명시했다. 그 돌 밑에서는 장물과 지갑이 발견되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사건은 명백해진 것이다. 예심판사와 재판관은 지갑과 물건을 쓰지도 않고 돌 밑에 감추어두었다는 사실에 특히 놀랐으나, 그보다도 더욱 놀란것은, 그가 자기 손으로 훔친 금품의 명목을 기억하지 못할뿐더러 그 가짓수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그가 한 번도 지갑을 열어보지 않고 속에 돈이 얼마나 들었는지도 몰랐다는 사실은 특히 있을 수 없는 일같이 생각되었다(지갑 속에는 지폐로 317루블과 20 코페이카짜리 은전 세 닢이 들어있었다. 오랫동안 돌 밑에 깔려 있었기 때문에 위쪽의 고액권 지폐 두서너 장은 몹시 상해 있었다). 피고는 다른 모든 것을 자진해서 정직하게 자백하면서도 왜 이 한 가지에 대해서만 거짓말을 할까? 이 점을 규명하는 데 사람들은 오랫동안 고심했다. 결국 몇몇 인사들은(특히 심리학자들 몇몇은) 그가 정말로 지갑을 열어보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그냥 돌 밑에 감추어버릴 수도 있는 일이라고 시인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범죄 그 자체는 일시적인 정신착란, 즉 무슨 이득을 위한 앞으로의 목적이나 타산 같은 것이 없는, 살인강도의 병적인 편집광에서 생긴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마침 거기에는 오늘날 가끔 어떠한 종류의 범인에게 적용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일시적 정신착란이라는 최신 유행 이론이 알맞게 적용되었다. 게다가 라스콜니코프의 고질적인 우울증 증상이 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의사 조시모프며, 예전의 학우들이며, 하숙집 주인이며, 하녀 등에 의해서 정확히 증언되었다. 이러한 모든 사정은 라스콜니코프가 흔히 있는 살인범이나 강도나 도둑들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무언가 좀 색다른 유형에 속한다고 결론짓는 데 도움이 되었다. 다만 이 의견을 주장한 사람들이 가장 유감스럽게 생각한 것은 범인 자신이 거의 자기변호를 하려 들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약탈을 하게 했는가, 라는 궁극적인 질문을 받았을 때 그는 명료하고도 거칠 정도의 정확한 어조로, 일체의 원인은 자기의 추악한 정신 상태와 가난과 무력한 처지에 있었다고 대답하고, 노파를 죽이면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적어도 3천 루블이란 돈을 밑천 삼아 출세의 첫걸음을 굳건히 내디뎌보려 했다고 말했다. 그가 살인을 결심했던 것은 소심하고도 경솔한 자기의 성격 때문이며, 거기에 궁핍과 불행으로 초조해진 성격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그럼 자수를 결심하게 된 동기는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서, 그는 솔직히 진심으로부터의 회오라고 대답했다. 이 모든 것을 그는 난폭할 만큼 거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러나 판결은 사람들이 그 죄목으로 미루어 추측했던 것보다 훨씬 관대했다. 아마도 범인이 추호도 자기변호를 하려 들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범인 자신이 되도록 자기 죄를 무겁게 하려는 희망을 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 사건이 지니는 기괴하고 특수한 성격들이 모두 고려되었다. 범죄 수행 전에 범인이 병적인 비참한 심적 상태에 있었다는 점은 조금도 의심을 받지 않았다. 그가 장물을 이용하지 않은 것은 한편으로 회오의 정이 싹트게 되었기 때문이고, 또 한편으로는 범행 당시의 정신 능력이 충분히 건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정되었다. 우발적으로 리자베타를 죽인 것도 오히려 이 가정을 뒷받침하는 예증으로서 도움이 되었다. 두 사람이나 살인한 범인이 그 시간에 방문이 열려 있는 것조차 잊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기소침한 광신자 니콜라이가 허위 자백을 하는 바람에 사건이 몸시 뒤엉킨 데다 진범인 자신에 대해서는 명백한 증거는 고사하고 거의 혐의조차 받고 있지 않았는데도(포르피리는 끝까지 약속을 지켰다) 바로 그런 시기에 자수를 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피고의 운명을 덜어주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 밖에도 피고를 몹시 유리하게 만드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다. 전에 대학생이었던 라주미힌이 어디서 듣고 왔는지, 피고 라스콜니코프가 대학 재학 시절에 궁색한 호주머니를 털어서 가난한 폐병 환자인 어느 학우를 도와주고 거의 반년 동안이나 돌봐주었다는 사실을 제시한 것이다. 그 학우가 죽자 그는 뒤에 남은 그 학우의 노쇠한 아버지를 돌봐주었고(그 학우는 열세 살 때부터 제힘으로 살림을 도맡으며 아버지를 부양해왔다), 나중에는 그 노인을 입원까지 시켰으며, 그 노인이 세상을 떠났을 때는 장례도 치러주었다는 것이다. 이 모든 사실은 라스콜니코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상당히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그전 하숙집 안주인이며 라스콜니코프의 죽은 약혼녀의 어머니인 자르니츠이나 미망인도, 그들이 아직 파치 길목에 살았을 당시 밤중에 불이 났을 때 이미 불길에 싸인 한 집에서 라스콜니코프가 두 어린아이를 구출해냈고 그 때문에 화상까지 입은 일이 있음을 증언했다. 이 사실은 면밀히 조사되었고, 많은 증인들에 의해서 충분히 증명되었다. 결국 한마디로 말해서, 범인이 자주 한 점과 그 밖의 몇 가지 정상을 참작해서 2급 징역 선고를 내리고 형기도 겨우 8년으로 결정되었다.

재판 초기부터 라스콜니코프의 어머니는 병을 앓기 시작했다. 그래서 두냐와 라주미힌은 재판 기간 동안 그녀를 페테르부르크에서 딴 곳으로 옮기려고 했다. 라주미힌은 재판의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아는 동시에 가능한 자주 두냐와 만날 수 있도록 페테르부르크에서 가까운 어느 철도 연변의 도시를 택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병은 이상한 신경성의 일종이었는데, 완전히 그렇다고는 할 수 없어도 어느 정도는 정신착란의 징후까지 수반했다. 두냐가 오빠와 마지막 면회를 하고 돌아와 보니, 어머니는 벌써 완전히 병이 나서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날 밤 그녀는 라주미힌하고 상의하여 어머니가 오빠 이야기를 묻는 경우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를 결정하고, 라스콜니코프는 장래 돈과 명예를 얻게 될 어떤 사적인 임무를 띠고 러시아의 먼 국경 지방으로 떠났다는 이야기를 미리 궁리해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그때든 그 이후든 간에 그 일에 대해서는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도 아들의 갑작스런 출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나 꾸며놓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면서, 로쟈가 자기한테 작별 인사를 하러 왔을 때의 일을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녀 혼자만이 지극히 중대한 여러 가지 비밀을 알고 있다는 것과, 로쟈에겐 몹시 강력한 적들이 많으므로 피신할 필요가 있다는 것 등을 넌지시 암시했다. 아들의 장래 출세에 관해서는 몇 가지 불리한 사정만 해소되면 틀림없이 눈부신 성공을 거두리라고 그녀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라주미힌에게 자기 아들은 앞으로 국가적인 인물이 될 것이며, 그것은 그의 논문과 빛나는 문학적 재능이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논문을 그녀는 끊임없이 되풀이해서 읽었다. 때로는 소리를 내어 낭독까지 할 정도여서 그야말로 밤에도 껴안고 잘 지경이었다. 그러나 현재 로쟈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점에 대해서 그녀는, 모두가 이야기를 꺼리는 것이 분명하고 또 그것만으로도 의심을 품기에 충분했는데도 거기에 대해서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마침내 그들은 몇 가지 점에 관한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의 이상한 침묵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이를테면 전에 시골에 있을 적에는 사랑하는 로쟈의 편지가 한시바삐 오기를 바라는 희망과 기대만으로 살던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에게서 편지가 오지 않는 것을 조금도 불평하지 않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아무리 하여도 설명할 길이 없었으므로, 두냐의 가슴은 더욱 불안해질 뿐이었다. 두냐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까지 떠올랐다. 어쩌면 어머니는 아들의 운명에 무언가 무서운 것을 예감했기 때문에, 그보다 더 무서운 일을 듣게 되지나 않을까 우려해 이것저것 자세히 캐묻기를 꺼리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두냐는 어머니가 건전한 정신 상태에 있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하기는 두어 번쯤 어머니 쪽에서, 지금 로쟈가 어디 있는지를 대답하지 않을 수 없도록 이야기를 유도해간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대답이 부득이 불만스럽고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을 때면, 그녀는 갑자기 침울하고 슬픈 얼굴이 되면서 입을 다물어버리고 그 상태가 무척 오랫동안 죽 계속되곤 했다. 나중엔 두냐도 거짓말을 하거나 말을 꾸며대는 일이 수월치 않음을 깨닫고, 몇 가지 점에서는 아예 침묵을 지키는 게 상책이라는 최후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가엾은 어머니가 무언가 무서운 것을 의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갈수록 점점 더 명백해졌다. 그러는 동안 두냐는 마지막 운명적인 날이 닥쳐오기 전날 밤, 즉 그녀와 스비드리가일로프의 그 일막극이 있었던 그날 밤에 자신이 헛소리하는 것을 어머니가 들었다던 오빠의 말을 상기했다. 어머니는 그때 무슨 말을 들으신 게 아닐까? 이따금 몇 날 몇 주일이나 침울한 침묵과 무언의 눈물이 계속된 뒤에 병자는 갑자기 히스테릭하게 활기를 디며, 큰 소리로 아들의 일이며 자기의 희망과 장래의 일 등을 거의 숨도 돌리지 않고 지껄여대기도 했다. 그녀의 상상은 때로 지극히 괴이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그녈르 위로하면서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그녀 자신도 어쩌면 두 사람이 단지 자기를 위로해 주려고 맞장구를 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자기 얘기를 계속했다.

범인이 자수한 지 다섯 달 뒤에 판결이 내렸다. 라주미힌은 면회가 허가되는 대로 자주 감옥으로 찾아가서 그를 만났다. 소냐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침내 이별할 때가 다가왔다. 두냐는 오빠에게 이 이별이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맹세했다. 라주미힌도 그렇게 말했다. 젊은 피에 불타는 라주미힌의 열정적인 머리에는 앞으로 3,4년 동안 되도록 장래의 기반이 될만큼이나마 돈을 모아가지고, 모든 점에서 토지가 비옥하고 일손과 인재와 자본이 부족한 시베리아 지방으로 이주하려는 계획이 굳게 아로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로쟈가 이송되는 도시에다 같이 자리를 잡고, 거기서....모두가 함께 새 생활을 시작하자는 것이었다. 헤어질 때는 모두 울었다. 라스콜니코프는 마지막 며칠 동안 줄곧 깊은 생각에 잠겨, 어머니 일을 꼬치꼬치 깨물으며 어머니 걱정만 했다. 두냐가 근심하던 것과 똑같이 그도 어머니에 대해서 근심하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의 증상에 대한 상세한 보고를 듣고는 한층 더 우울해졌다. 소냐하고는 왜 그런지 유달리 말이 적었다. 소냐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남겨준 돈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마음의 준비를 마치고, 이제 그가 끼여갈 죄수 일행을 뒤따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그 일에 대해서는 그녀도 라스콜니코프도 아직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으나,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것은 두 사람 다 알고 있었다. 이윽고 마지막 이별을 고할 때 동생과 라주미힌이 출옥 후의 행복한 미래에 관해 열심히 맹세하자, 그는 야릇한 미소로 답하며 어머니의 병적 상태는 머지않아 불행으로 끝나리라고 예언했다. 그와 소냐는 드디어 출발했다.

두 달 뒤에 두네치카는 라주미힌과 결혼했다. 결혼식은 슬프고도 조용했다. 초대받은 손님들 중에는 포르피리 페트로비치와 조시모프도 끼어 있었다. 최근 라주미힌의 얼굴에는 언제나 굳은 결심의 빛이 어려 있었다. 두냐는 그가 반드시 자기의 모든 계획을 실현할 것이라고 무조건 믿었고, 또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에게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에게서는 강철 같은 의지가 엿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는 동안에도 그는 학업을 마치기 위해서 다시 강의를 들으러 대학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들 두 사람은 끊임없이 미래의 계획을 세워 나갔고, 5년 후에는 반드시 시베리아로 이주하기로 굳게 결심하고 있었다. 그때까지는 거기에 가 있는 소냐에게 희망을 걸기로 하고......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라주미힌과 결혼한 딸을 기쁜 마음으로 축복해주었다. 그러나 그 결혼식을 마치자 그녀는 어째선지 더욱 침울해지고 더욱 근심스러워진 것 같았다. 라주미힌은 조금이라도 장모를 기쁘게 해주려고, 폐병을 앓던 대학생과 그의 늙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며, 작년에 로쟈가 두 어린아이의 목숨을 건지느라고 화상을 입었을뿐더러 병까지 앓았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러한 보고는 그렇잖아도 머리가 좀 이상해진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를 환희의 절정으로 몰아넣고 말았다. 그녀는 노상 이야기만 했고, 한 길에서까지도 이 이야기를 끄집어냈다(물론 그 옆에는 언제나 두냐가 붙어 있었지만). 그녀는 합승마차 안에서도, 가게에서도 아무나 닥치는 대로 붙들고 자기 아들 이야기, 그의 논문 이야기, 그가 학우를 도와준 이야기, 화재 때 부상을 입은 이야기 등으로 화제를 끌고 갔다. 두네치카는 어떻게 어머니를 말려야 할지 모를 지경이었다. 이러한 병적인 흥분 상태가 위험하다는 것 말고도, 거기에는 또 하나의 위협이 있었다. 즉 누군가가 언젠가의 재판 사건에서 나온 라스콜니코프 성을 상기하고 그 말을 끄집어낼지도 모른다는 위협이었다. 풀헤리야 알렉산드로브나는 불 속에서 아들이 구해낸 어린아이의 어머니가 사는 주소까지 알아내서는 꼭 한 번 그집을 방문하겠다고 조르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의 불안은 극도로 심해졌다. 그녀는 걸핏하면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자주 앓아누워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어느 날 아침, 그녀는 별안간 자기 계산으로는 로쟈가 이제 곧 돌어올 것이다, 그 애는 자기가 헤어질 때 아홉 달 후엔 꼭 돌아오겠다고 말했고 자기는 그걸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집 안을 깨끗이 치우면서 아들을 맞을 준비를 시작하고, 로쟈의 것으로 정한 방(즉 자기 자신의 방)을 장식하는 가 하면, 가구를 닦고 커튼을 빨아 갈아 달기도 했다. 두냐는 마음이 아팠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오빠를 맞기 위해 방을 치우는 일을 거들기까지 했다. 끊임없는 환상과 기쁨에 넘친 꿈과 눈물 속에서 불안한 하루가 지나자, 그날 밤부터 그녀는 다시 앓기 시작하여 이튿날 아침엔 벌써 열이 높아져서 헛소리만 하게 되었다. 열병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하여 두주일 후에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헛소리를 하는 가운데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로 미루어 볼 때, 그녀는 옆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아들의 무서운 운명을 훨씬 더 의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시베리아 생활이 시작된 초기부터 페테르부르크와는 연락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나, 라스콜니코프는 오랫도안 어머니의 죽음을 모르고 있었다. 편지 연락은 소냐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녀는 매달 어김없이 페테르부르크의 라주미힌 앞으로 편지를 보냈고, 자기도 페테르부르크에서 답장을 받았다. 처음에 소냐의 편지는 두냐와 라주미힌에게 어쩐지 시들하고 못마당하게 여겨졌으나, 나중에는 그들 두 사람도 그보다 더 잘 쓸 수는 없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결국 그녀의 편지로 불행한 오빠의 운명에 관해서 더없이 충실하고 정확한 관념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소냐의 편지는 지극히 평범한 그날그날의 일상행활과 라스콜니코프의 유형 생활 전반에 걸친, 아주 간결하고도 명료한 기술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거기에는 그녀 자신의 희망의 표시나, 미래에 대한 상상이나, 그녀 자신의 감정 묘사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의 정신 상태라든가 그의 내면생활을 설명하는 대신에, 그저 사실의 나열이 있을 뿐이었다. 즉 그가 한 말이며, 그의 건강 상태에 간한 상세한 보고며, 어느 날 면회 때 그가 무엇을 원했고 또 무엇을 부탁했으며 어떤 일을 위힘했다느니 하는 것들이었다.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소상하게 적혀 있었으므로, 나중에는 불행한 오빠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면서 명확하고도 정확히 눈앞에 그려졌다. 거기에는 틀림이 있을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 정확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냐와 그 남편은 이 보고에서, 특히 처음에는 그다지 기쁨을 느낄 수가 없었다. 소냐는 번번이 그가 언제나 침울하며 말수가 적다고 알려왔다. 페테르부르크에서 편지가 올때마다 소냐가 여러 가지 소식을 알려주어도 그는 거의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어쩌다가 어머니 소식을 묻기도 했으나, 이제는 거의 진상을 눈치채고 있으리라 생각하고 마침내 소냐가 어머니의 별세를 알렸는데, 놀랍게도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별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지 않았다. 적어도 겉보기에는 그렇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자기 자신 속에 깊숙이 틀어박힌 채 모든 사람과의 교제를 끊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래도 자기의 새 생활에 대해서는 지극히 솔직하고 단순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전해왔다. 그는 자기 처지를 충분히 이해하고, 가까운 장래에 아무런 좋은 변화도 기대하지 않거니와, 아무런 경솔한 희망도 품지 않고(그의 처지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그전하고는 무엇 하나 닮지도 않은 새 환경에 둘러싸인 채 거의 아무 일에도 놀라는 기색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냐는 그의 건강은 만족할 만하다고 보고했다. 그는 노역에도 나가곤 했는데 별로 그것을 피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자진해서 열심히 일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음식에 대해서도 거의 무관심했으나, 그 음식은 일요일과 축일을 제외하고는 말할 수 없이 지독했으므로, 그도 결국은 자진해서 그녀 곧 소냐한테서 돈을 얼마간 받아가지고 매일 차를 마시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모든 것에 대해서는 근심하지 말아달라, 오히려 그것은 자기를 불쾌하게 만들 뿐이라고 그녀에게 당부했다고 한다. 그녀는 또 감옥 내의 거처는 다른 죄수들과 함께 쓰는 공동 감방이라고 알려왔다. 그녀는 감옥 내부를 본 적이 없으나, 좁고 더럽고 건강에 해로운 곳이라고 단언했다. 그는 담요를 깔고 판자 침상에서 자지만, 그 이외에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그가 이토록 조잡하고 궁색한 생활을 감수하고 있는 것은 결코 미리부터 생각한 어떤 계획이나 의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자기 운명에 대한 외면적인 무관심과 부주의 때문이었다. 소냐는 또 솔직히 다음과 같이 쓰고 있었다. 그는 처음 얼마 동안 그녀가 면회를 하러 가도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그녀에게 짜증을 내며 말도 하지 않고 무뚝뚝한 태도로 대했었으나, 나중에는 그 면회가 그에겐 습관이라기보다 요구처럼 되어버려서 요즘은 혹시 그녀가 병이라도 나서 이삼 찾아가지 못하면 무척 그리워하게끔 되었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축일마다 감옥 정문 옆이나 위병소에서 면회를 하는데 그가 4,5분 동안 그곳으로 불려 나왔다. 평일에는 그녀 자신의 일터로 찾아가고, 때로는 작업장, 때로는 벽돌 공장, 때로는 이르트이쉬 강변의 오두막집 같은 데서 만났다. 자기 자신에 대해 소냐는 시내에서 몇 사람 안면이 생기고 후원자까지 생겼으며, 자기는 양재 일을 하고 있는데 그곳엔 양재사라곤 거의 없기 때문에 여러 집에서 소중히 떠받드는 존재가 되었다고 알려왔다. 다만 그녀 덕택에 라스콜니코프가 장관의 보호를 받아 노역도 경감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끝으로 (두냐는 최근에 그녀에게서 받은 편지 몇 통에서 일종의 특별한 동요와 불안을 느끼기까지 했으나) 그가 모든 사람을 피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자신도 며칠씩이나 입을 다물고 있고 안색도 몹시 나빠져간다는 소식이 왔다. 그리고 마지막 편지에서, 소냐는 그가 중병에 걸려 감옥 병원에 누워 있다고 알려 왔다.

 

 

2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건강을 해친 것은 감옥 생활의 공포도, 노역도, 음식도, 빡빡 깎은 머리도, 누더기 같은 죄수복도 아니었다. 아아! 그에게 그 정도의 고생과 고초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노역을 기뻐할 정도였다. 육체적인 노동으로 녹초가 되면 적어도 몇 시간은 편히 잘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에게 음식 따위가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바퀴가 둥둥 뜩 멀건 수프도 그에겐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전 학생 시절에는 그조차 얻지 못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죄수복은 따뜻해서 그의 생활양식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는 족쇄조차 몸에서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그렇다면 빡빡 깎은 머리나 표지가 붙은 재킷이 부끄럽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러나 누구에 대해서? 소냐에 대해서? 소냐는 오히려 그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녀에게 수치를 느낄 건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럼 대체 뭐냐? 그는 소냐 앞에서까지 수치를 느꼈고 그 때문에 모욕에 찬 난폭한 태도로 그녀를 괴롭혔다. 그러나 그가 부끄러워한 것은 빡빡 깎은 머리도, 족쇄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자부심이 너무나 심한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병이 든 것도 상처 입은 자부심 때문이었다. 아아, 만약에 그가 스스로 자기 죄를 인정할 수만 있었다면 그는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면 그는 수치도, 굴욕도 모든 것을 감수해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준엄하게 자기 자신을 판단해보았으나, 냉혹하도록 무자비한 그의 양심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단순한 실패 말고는 자기의 과거에서 이렇다 할 무서운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가 부끄러워 한 것은 다름 아니라 자기, 즉 라스콜니코프가 맹목적인 운명의 판결에 의해서 이토록 어이없이 애매하고 우열하게 절망적으로 파멸해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자기 자신을 안정시키려면 그 판결의 '무의미함'과 타협하여 그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현재에 있어서는 대상도 없고 목적도 없는 불안, 미래에 있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끊임없는 희생, 이것이 이 세상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는 전부였다. 앞으로 8년이 지나도, 그는 겨우 서른 두 살밖에 안 된다. 다시 새로운 생활을 시작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대체 거기에 무슨 뜻이 있겠는가! 무엇 때문에 살아야 하는가? 무엇을 목표로 삼는단 말인가? 무엇을 향해서 나가야 하는가? 다만 존재하기 위해서 살아야 한단 말인가? 그러나 그는 이미 전붙 몇천 번이나 사상을 위해서, 희망을 위해서, 심지어는 공상을 위해서까지도 자기의 존재를 기꺼이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지 않았던가. 단순한 존재 그 자체는 그에게 어느 때나 대수로울 것이 못 되었다. 그는 언제나 그 이상의 것을 원했다. 아마도 그는 단지 자기의 욕구의 힘만으로, 그 당시 남들보다 더 많은 것이 허용된 인간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설혹 운명이 그에게 회오를 보내준다면, 심장을 부수고 꿈을 내쫓는 타는 듯한 회오, 그 무서운 고통을 견딜 수 없어 목매어 죽을 밧줄과 깊은 낭떠러지만을 생각나게 하는 그 회오를 운명이 보내준다면! 오오, 그는 그것을 기뻐했을지도 모른다! 고통과 눈물, 그 역시 생활이 아니냐 말이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 회오도 찾아내지 못했다.

적어도 그는 자기 자신의 우열함에 대해서, 그를 감옥으로까지 이끌어온 자기 자신의 추억하고도 우열한 행위에 대해서 그전에 느꼈던 것처럼 지금도 울분을 느낄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미 감옥에 있으면서 자유의 몸이 된 그는 자기 과거의 행위를 다시 한번 되씹고 음미해보았으나, 전에 운명적인 순간에 느꼈던 것처럼 그렇게까지 추악하고 우열하다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대체 어떤 점에서'하고 그는 생각했다. '대체 어떤 점에서 나의 사상이, 천지개벽 이래 이 세상에 득실거리며 서로 부딪치고 있는 다른 사상이나 이론에 비해서 우열하단 말이냐? 완전히 독립된, 평범한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넓은 관점에서 사태를 관찰하기만 한다면, 그때는 물론 나의 사상도 결코 그렇게까지는....기괴하게 보이지 않을 것이다. 오오, 5 코페이카의 값어치도 없는 부정주의자와 현인들이여, 왜 너희들은 그런 어중간한 곳에서 머물고 있는가!'

'그런데 어째서 그들의 눈에는 나의 행위가 그토록 추악하게 보이는 걸까?'하고 그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그것이 나쁜 짓이기 때문일까? 그러나 나쁜 짓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의 양심은 어디까지나 평온하기만 하다. 물론 형법상 범죄는 저질렀다. 물론 법의 조문은 유린되고 유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법의 조문에 따라 내 목을 자르면 된다....그러면 되는 거야! 물론 그렇게 되면, 권력을 계승하지 않고 스스로 그것을 탈취한 수많은 인류의 은인들도 그 첫걸음에서 의당 처벌되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자기의 걸음을 버티어 나갔다. 그러기에 그들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끝까지 버티지를 못했다. 그러고 보면 나는 그 첫걸음을 자신에게 허용할 권리가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한 가지 점에서 그는 자기의 범죄를 인정했다. 끝까지 견디어 내지 못하고 자수했다는 그 한 가지 점에서만.

그는 또 이런 상념 때문에 고민했다. 왜 자기는 그때 자살하지 않았던가? 왜 그때 강 위에 섰으면서도 자수의 길을 택했던가? 과연 살려는 이 욕망 속에는 그토록 강한 힘이 숨어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을 정복하기가 그렇게도 힘들었을까? 죽음을 두려워하던 스비드리가일로프조차 그것은 정복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런 문제를 자기 자신에게 던지며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강가에 서 있을 때 자기 자신 속에, 그리고 자기의 신념 속에 깊은 허위를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또 그 예감이야말로 그의 생애에 있어서의 미래의 전환, 미래의 부활, 미래의 새로운 인생관의 전조였는지도 모른다는 것을 그는 미처 깨닫지 못했다.

그는 오히려 거기서 막연한 본능의 힘만을 인정했다. 그는 그것을 떼어버릴 수도 없거니와 그것을 밟고 넘어갈 힘도 없었다(무력함과 나약함 때문에). 그리고 그는 옥중의 자기 동료들을 보고 그들 역시 모두가 인생을 사랑하고 또 존중하고 있다는 데 놀랐다. 그에게는 그들이 자유로울 빼보다 옥중에 갇혀 있는 편이 훨씬 더 인생을 사랑하고, 그 가치를 인정하며, 존중하고 있는 것같이 느껴졌다. 그들 가운데 어떤 죄수, 예를 들면 부랑자 같은 자들이라고 가혹한 고통이나 고문을 겪지 않았으랴! 그런데도 한줄기 햇살이나 울창한 살림, 어딘지 모르는 깊은 숲 속에서 어쩌다 3년 전에 발견한 얼음같이 찬 옹달샘 같은 것이 그들에게는 어떤 뜻을 지녔던가? 그 부랑자는 마치 연인과의 밀회라도 기다리듯이 그 샘물을 만나기를 동경하고, 샘물을 둘러싼 파란 풀과 수풀 속에서 지저귀는 새들을 꿈에서까지 보았다. 이렇게 관찰을 하면 할수록 그는 더욱더 해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실례에 부딪쳤다.

그는 감옥 안에서 자기를 둘러싸고 있는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아예 이해해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는 마치 눈을 내리깔고 생활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그런 것을 보면 혐오를 느끼게 되고 화가 났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차츰 여러 가지 일들이 그를 놀라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그전 같으면 생각지도 않던 것을 저도 모르게 깨닫기 시작했다. 뭣보다 그를 놀라게 한 것은 그와 다른 모든 죄수들 사이에 놓여 있는 그 무서운, 뛰어넘을 수 없는 심연이었다. 그와 그들은 마치 완전히 다른 인종 같았다. 그와 그들은 서로 불신과 적의에 찬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불화의 일반적인 원인을 알고 또 이해도 했으나, 원인은 실제로 이토록 뿌리 깊고 강력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감옥에는 유형 온 폴란드인 정치범도 있었다. 그들은 다른 죄수들을 다만 무식한 노예처럼 생각하며 덮어놓고 멸시했다. 그러나 라스콜니코프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그는 이들 무교육자들이 많은 점에서 오히려 그들 폴란드인보다 훨씬 현명하다는 것을 똑똑히 깨달았다. 감옥에는 또한 이들 무교육자들을 극단적으로 멸시하는 러시아 사람들도 있었는데, 장교 출신 한 명과 신학생 두 명이었다. 라스콜니코프는 그들의 오류도 명백히 인정했다. 그런데도 모두 라스콜니코프를 좋아하지 않고 피하려 들었다.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그를 미워하기까지 했다. 왜 그럴까? 그는 그것을 몰랐다. 모두 그를 경멸하고 조소하며, 그보다 훨씬 죄가 무거운 죄인들이 그의 범죄를 비웃었다.

"너는 양반이 아니냐 말이야!" 그들은 말했다.

"도끼를 가지고 다녔다니 말도 안 되지. 그런 건 양반이 할 짓이 못 돼."

대재기(大齋期) 둘째 주일에 그가 감방 죄수들과 함께 재계하는 차례가 왔다. 그는 교회에 가서 다른 사람들과 같이 기도를 올렸다. 무엇이 원인이었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으나 싸움이 벌어졌다. 모두가 미친 듯이 격분하며 한꺼번에 그에게 달려들었다.

"이 불신자 놈아! 너는 하느님을 안 믿지!"하고 그들은 외쳤다.

"너 같은 놈은 때려죽여야 해."

그는 한 번도 하느님이나 신앙 문제를 그들하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그를 무신론자로 규정하고 죽이려 했다. 그는 침묵을 지킨 채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한 죄수는 정말 미친 듯이 그에게 달려들려 했다. 라스콜니코프는 침착하게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얼굴 근육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때마침 간수가 그와 살인자 사이에 뛰어들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피를 보지 않고는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는 또 하나 납득 안 가는 문제가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왜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소냐를 좋아하게 되었느냐는 것이다. 그녀는 별로 그들의 비위를 맞추려 하지도 않았고, 또 그들도 어쩌다 간혹 그녀를 볼 뿐이었다. 그녀가 그를 만나러 잠깐씩 찾아오곤 할 때 작업장에서 가끔 보는 정도였다. 그런데도 모두가 그녀를 알았다. 그녀가 그의 뒤를 쫓아왔다는 것도, 그녀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소냐는 그들에게 돈을 준 일도 없거니와 별로 돌봐준 일도 없었다. 다만 크리스마스 때 한 번 죄수 전원에게 피로그와 둥근 빵을 선사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과 소냐 사이에는 차츰 일종의 가까운 관계가 이루어져 갔다. 그녀는 그들을 대신해서 가족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주기도 하고, 그것을 우편으로 부쳐주기도 했다. 이 도시로 찾아오는 그들의 가족은 그들 자신의 지시에 따라 그들에게 가져온 물품이나 돈까지도 소냐에게 맡겨두고 갔다. 그들의 아내와 애인들도 그녀를 알고 있어서 그녀한테 찾아오곤 했다. 그녀가 라스콜니코프를 찾아 작업장에 나타나거나 노역에 가는 죄수 일행과 길에서 만났을 때는, 모두 모자를 벗고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소피야 세묘노브나, 당신은 우리의 어머니입니다. 착하고 인자하신 어머니란 말이오!" 이들 난폭한, 낙인찍힌 죄수들이 이 조그맣고 여윈 여인에게 이렇게 말을 건네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녀는 방긋 웃으며 답례를 했다. 그들은 모두 그녀의 웃는 얼굴을 좋아했다. 그들은 그녀의 걷는 모습까지 좋아했다. 모두 그녀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려고 일부러 뒤돌아보고는 그녀를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녀의 몸집이 그렇게 작은 것까지 칭찬했으며, 나중에는 무엇을 칭찬해야 좋을지 모를 지경이었다. 개중에는 병을 치료받으려고 그녀를 찾아가는 사람까지 있었다.

그는 대재기가 끝날 무렵과 부활제 주간까지 죽 병원에 누워서 보냈다. 차츰 회복기에 들어서자 그는 아직 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던 때의 꿈을 상기했다. 그는 병중에 이런 꿈을 꾸었다. 아시아 대륙에서 유럽을 향해 오는, 지금까지 듣도 보도 못한 어떤 가공할 만한 전염병 때문에 전 세계가 희생될 운명에 직면했다. 극히 소수의 선택된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인류는 죄다 멸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인체에 파고 드는 현미경적 존재인 일종의 새로운 선모충이 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생물은 지능과 의지가 부여된 정령이었다. 그래서 그것에 걸린 사람들은 이내 귀신에 홀린 듯이 미쳐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인간은 여태껏 이것에 전염된 환자들만큼 자기 자신을 확고부동한 진리를 파악한 현인처럼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들만큼 자기 판단이나 학술상의 결론, 도덕적인 확신과 신앙 등을 움직일 수 없는 진리인 양 생각한 사람은 전무후무했다. 마을이란 마을, 도시란 도시, 그리고 국민이란 국민이 차례차례 그것에 전염되어 미쳐버렸다. 모두가 불안한 마음에 사로잡혀 서로 이해하려 하지는 않고 저마다 자기 한 사람만이 진리를 파악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서, 남을 보고는 번민하고 자기 가슴을 두드리고 손을 비비면서 울어댔다. 그리고 누구를 어떻게 재판해야 할지도 모르고, 무엇을 악으로 삼고 무엇을 선으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의견 일치를 보지 못했다. 또 누구를 유죄로 하고, 누구를 무죄로 할 것인지도 몰랐다. 사람들은 아무 까닭도 없는 증오에 사로잡혀서 서로 죽이고 또 죽였다. 서로 대항하기 위해서 대군(大軍)이 조직되었으나, 그 군대는 벌써 행군 도중에 별안간 자기들끼리 싸움을 시작해서 대열은 무너지고, 병사들은 서로 덤벼들어 찌르고 자르고 물어뜯고 잡아먹었다. 도시마다 온종일 경종을 울려서 사람을 소집했으나 누가 뭣 때문에 불렀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고 모두 불안에 휩싸여 있을 뿐이었다. 일상적인 일들은 모두 내던져버렸다. 저마다 제멋대로 의견과 수정안을 내세우지만 일치를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밭농사도 중지되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 한 무리씩 모여서 무슨 결의를 하고 다시는 분열하지 않기로 맹세했다. 그러나 그 혀끝도 채 마르기 전에 방금 자기네들이 예정했던 것과는 전혀 닮지도 않은 다른 짓들을 하기 시작해서, 서로 상대방을 비난하고 주먹다짐을 하고 칼부림을 시작했다. 화재가 일어나고, 기근이 시작되었다. 모든 사람, 모든 것이 멸망해갔다. 질병은 기세를 뻗쳐 점점 더 멀리 만연되어갔다. 세상에서 이 재액을 모면한 사람은 불과 몇 명밖에 없었다. 그것은 새로운 종족과 새로운 생활을 창조하며 이 지상을 갱신하고 정화할 사명을 띤, 선택된 순결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리고 어디서도 그러한 자를 본 사람은 없었고, 그들의 말이나 음성을 들은 사람도 없었다.

라스콜니코프는 이 무의미한 악몽의 기억이 그토록 서글프고 그토록 괴롭게 메아리치는 것이 괴로웠고, 이 열에 들뜬 꿈의 인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것이 괴로웠다. 그것은 이미 부활제가 지나고 두 주일째였다. 따뜻하고 밝은 봄 날씨가 계속되었다. 감옥 병원에서도 창문이 열렸다(창살이 달린 것으로, 그 밑에는 보초가 거닐고 있었다). 소냐는 그가 입원한 동안 두 번밖에 문명을 하지 못했다. 그때마다 허가를 얻어야 했는데, 그것이 수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주, 특히 저녁녘에 병원 뜰로 와서는 병실 창문 밑에 서 있곤 했다. 또 때로는 멀리서라도 잠시 병실 창문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오기도 했다. 어느 날 저녁 무렵에 이미 거의 완쾌 단계에 있는 라스콜니코프는 곤히 잠들어 있었다. 이윽고 그는 눈을 뜨고 무심코 창가로 다가갔다가 문득 멀리 병원 문 옆에서 소냐를 발견했다. 그녀는 거기 서서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이 순간 무엇인가가 그의 심장을 푹 찌르는 것 같았다. 그는 흠칫 몸을 떨고 황급히 창가에서 물러났다. 다음날 소냐는 오지 않았다. 그다음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불안 속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했다. 마침내 그는 퇴원했다. 감옥으로 돌아가서 동료 죄수한테 들으니, 소피야 세묘노브나는 병이 나서 집에 누운 채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몹시 걱정이 되어 그녀의 병세를 알아보려고 사람을 보냈다. 이윽고 그는 그녀의 병이 위험하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다. 소냐는 소냐대로 그가 그토록 자기를 그리워하고 걱정하고 있음을 알고는 연필로 쓴 쪽지를 보내왔다. 이제 몸이 퍽 좋아지고 병도 가벼운 감기이므로, 곧 작업장으로 만나러 가겠노라고 알려왔다. 이 편지를 읽었을 때 그의 심장은 아프도록 세차게 고동쳤다.

다시금 맑게 갠 포근한 날이었다. 이른 아침 6시경에 그는 강변에 있는 작업장으로 나갔다. 그곳 헛간에는 석고를 굽는 가마가 걸려있어서, 거기서 구운 돌을 빻는 일이었다. 모두 세 사람의 죄수가 그리로 갔다. 죄수 가운데 한 사람은 간수를 따라 무슨 연장을 가지러 요새로 갔고, 또 한 사람은 장작을 모아서 가마 속에 쌓아 올리기 시작했다. 라스콜니코프는 헛간을 나와 강기슭으로 걸어가서 헛간 옆에 쌓여 있는 통나무에 걸터앉아 황량하고 넓은 강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높은 강기슭이나 주위의 경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멀리 강 건너 언덕에서 노랫소리가 아련히 들려왔다. 햇빛이 퍼붓는 그 끝없는 초원 위에 유목민의 천막들이 간신히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점점이 얼룩져 있었다. 거기에는 자유가 있었다. 그리고 이곳 사람들하고는 조금도 닮지 않은 별개의 인간들이 생활하고 있었다. 거기서는 시간조차 걸음을 멈추고, 흡사 아브라함과 그의 가축 시대가 아직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라스콜니코프는 앉아서 움직일 생각도 않고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상념은 환상가 깊은 명상으로 옮겨갔다.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으나, 까닭 모를 우수가 그를 흥분시키고 괴롭혔다.

별안간 그의 곁에 소냐가 나타났다. 그녀는 발소리를 죽여가며 다가와서 그와 나란히 앉았다. 이른 아침이라 아직 아침 냉기가 풀리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초라하고 낡은 외투를 걸치고, 녹색 수건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그 얼굴엔 아직 병색이 남아 있어 여위고 창백하고 핼쑥했다. 그녀는 정답게 기쁜 얼굴로 방긋 웃어 보였으나, 언제나처럼 머뭇거리며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언제나 머뭇거리며 손을 내미는 버릇이 있었다. 어떤 때는 뿌리치지나 않을까 두려워하는 듯이 아예 손을 내밀지 않는 수도 있었다. 언제나 그는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고, 왜 그런지 못마땅한 태도로 그녀를 맞았다. 간혹 그녀가 옆에 있는 동안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그녀는 혼자 마음만 졸이다가 깊은 슬픔에 잠겨 돌아갔다. 그러나 지금은 두 사람의 손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흘긋 그녀를 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내리깔았다. 그들은 단둘뿐이었다. 아무도 그들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간수는 이때 딴 쪽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는지 그 자신도 알 수 없었으나, 갑자기 무언가가 그를 휘어잡고 그녀의 발밑에 내던진 것 같았다. 그는 울면서 그녀의 무릎을 껴안았다. 처음 한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마치 죽은 사람처럼 새파랗게 질리고 말았다. 그녀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전율에 떨며 그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녀는 곧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녀의 눈에는 끝없는 행복이 반짝였다. 그녀는 이해했다. 그가 자기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 끝없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이제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마침내 이 순간이 다가오고 만 것이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하고 싶었으나 할 수가 없었다. 두 사람 다 눈에는 눈물이 맺혀 있었다. 두 사람 다 파리하게 야위어 있었으나, 그 병들이 지친 창백한 얼굴에는 새로운 미래로의 서광, 새 생활에 대한 완전한 부활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 그들을 부활시킨 것은 사랑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마음은 또 한 사람의 마음을 위해서 영원한 삶의 원천이 된 것이다.

그들은 참고 기다리기로 결심했다. 그들에게는 아직도 7년이란 세월이 남아있었다. 그때까지는 얼마나 참기 힘든 고통과 얼마나 한없는 행복이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그러나 그는 부활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갱생한 자기의 온 존재로서 그것을 완전히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아니, 그녀는 오로지 그의 생활을 자기 것으로 믿으며 살아온 여자가 아니었던가!

그날 저녁 이미 감방문도 닫혔을 무렵, 라스콜니코프는 판자 침상 위에 누워서 그녀를 생각하고 있었다. 이날은 그때까지 그의 적이 었던 죄수들까지도 벌써 다른 눈으로 그를 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그는 자진해서 그들에게 말을 건넸을 정도였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상냥하게 대답해주었다. 그는 지금 그것을 상기했다. 그러나 그것은 의당 그렇게 되게 마련이었다. 지금 모든 것이 일변해서는 안 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그는 그녀를 생각했다. 그는 자기가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히고 얼마나 그녀 마음을 아프게 했는가 상기했다. 그녀의 창백하게 여윈 조그만 얼굴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생각을 떠올려도 거의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그는 지금 얼마나 크고 깊은 사랑으로 그녀의 모든 고통을 보상해야 하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모든, 모든 과거의 고통이 지금 무어란 말인가! 이제는 모든 것이, 자기의 범죄와 선고와 유형조차도 이 돌발적인 감격에 휩쓸려서 어쩐지 외면적인 괴상한 일처럼, 마치 자기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듯 느껴졌다. 그러나 그는 이날 밤 무슨 일이든 오랫동안 곰곰이 생각하거나 생각을 집중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 지금의 그로서는 무슨 일이든 그것을 의식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다만 느꼈을 뿐이다. 변증법 대신에 생활이 온 것이다. 따라서 의식 속에서 무언가 전혀 다른 것이 형성되어야만 했다.

그의 베개 밑에는 복음서가 놓여 있었다. 그는 기계적으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 책은 그녀의 것이었다. 전에 그에게 나사로의 부활을 읽어준 바로 그 책이었다. 그는 유형 생활이 시작될 때 그녀가 종교 이야기로 자기를 괴롭히고 복음서 이야기를 꺼내면서 책을 읽도록 강요하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적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는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뿐더러 복음서를 권해본 일조차 없었다. 그래서 그는 병에 걸리기 얼마 전에 자진해서 그녀에게 복음서를 갖다 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그녀는 아무 말도 없이 그에게 책을 가져왔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는 그것을 펼쳐보지도 않았던 것이다.

지금도 그는 그것을 펼치지는 않았다. 문득 한 가지 상념이 그의 머리를 스쳤다. '이제 와서 그녀의 신념이 나의 신념이 아니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적어도 그녀의 감정, 그녀의 갈망은......'

그녀도 역시 이날은 하루 종일 흥분 상태에 있었으나 밤에는 다시 병이 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행복했다. 그녀는 너무나 행복해서 오히려 자기 행복에 겁이 날 지경이었다. 7, 겨우 7! 이 행복스런 초기에, 그리고 어쩌다 어느 순간마다 그들은 이 7년을 7일 맞잡이로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는 이 새로운 생활이 거저 얻어지지 않으며, 그것을 사들이려면 아직도 많은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안 되고, 또 그것을 보상하려면 앞으로 더욱 위대한 헌신적 행위를 쌓아야 한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미 새로운 이야기, 하나의 인간이 점차로 소행 되어 가고 그가 점차로 갱생되어가는 이야기,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옮겨가면서 여태까지 전혀 미지의 세계였던 새로운 현실을 알게 되는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이야기의 주제가 되기에 충분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이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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