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연
실연
양순석
1
한 여자가 내 집으로 들어왔다.
늦여름이었다.
나는 미닫이문을 활짝 열어젖힌 마루 끝에 앉아 바깥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 여자가 내 집에 들어서기 전까지도 여름내 나는 마루 끝에 나앉아 그렇게 바깥을 내다보았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한다면 내가 보고 있었던 것은 바깥이 아니라 바깥으로 향하는 문이었다.
마루에 앉았노라면 곧장 바라다보이는 것이 폭 좁은 마당을 사이에 둔 잿빛 담장일 뿐이었다. 바깥으로 향하는 통로인 녹색 철대문은 마루로부터 정면에서 오른쪽으로 시선이 비끼는 곳에 있었다.
유난히 무덥고 습한 여름내 나는 마루에 나와 살다시피하며 망연히 녹색 철대문을 바라보곤 했다. 마루에서 마른 빨래를 개키거나 다림질을 하면서도 내 시선은 순간순간 일감을 빠져나와 녹색 철대문 쪽으로 향하곤 했다. 일거리 없이 우두커니 앉았을 때에는 아예 대문과 대각선을 이루는 마루의 벽에 기대어 앉아 맹렬히 대문 쪽을 바라다보곤 했다.
드나드는 이 없던 대문간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은 인근 부동산 소개소에 문간방 하나를 내놓은 다음부터였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여름내 마루에 나와 앉아 기다린 누군가는 단순한 세입자로서의 그 누군가는 분명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너무 오래 기다렸다.
비워둔 방은 집의 오른쪽에 내달린, 대문과 곧바로 마주 보이는 방이었다. 대문 쪽을 향해 남향으로 커다란 창이 나 있는 방이었다. 아주 작은 방이었다. 세를 놓기 위해 그 방의 세간을 다 치우고 나니 저절로 아, 정말 작구나 하는 말이 입밖으로 새어나오며 누구더러 들어와 살라기엔 너무 작지 않을까 망설여지기도 했다.
아주 오래된 대추나무가 그 방의 창 앞에 서 있었다. 창 위로 훌쩍 솟은 대추나무는 마치 수호신처럼 그 작은 방 앞에 버티고 서서 햇빛도 그늘도 바람도 저 먼저 맞은 후에 창호지를 두드려 가만히 방안에 들여놔주곤 했다. 그래서 혼자 있기 딱 좋은 그 방에 누우면 방안은 우물 속처럼 아늑하다가 때로는 바닷속처럼 무한정 넓게 느껴지기도 했다. 여름날에 창을 열고 누웠으면 높다란 대추나무가 낮은 천장을 뚫고 치솟아오른 듯해서 공간의 협소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작지만 특별한 내면을 가진 그 방의 주인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러나 내놓으려면 그 방밖에 없었다. 지나치게 작긴 해도 간이부엌이 딸려 있는 방이었고 본채 마루와는 여닫이문을 통해 격리되어 있어서 그 문만 폐쇄시키면 세입자에게 독립성마저 부여해줄 수 있었다.
여름내 그 방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리한 장마 탓이었다. 여름 장마가 며칠씩이고 이어지는 나날, 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처마에서 수직으로 급하게 쏟아져 내려 마당에 기다랗게 골을 파놓는 빗발 굵은 장마비를 바라보았다. 때로 처마 밑의 팬 땅엔 실개천이 흐르듯 빗물이 넘쳤다. 하늘이 온통 컴컴해지도록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도 나는 기다렸다. 비를 피해 찾아들 방의 주인을.
마당 한 귀퉁이에 흙을 파고 깊숙이 묻어두었던 구근에서 싹이 트고 줄기가 뻗어나가더니 올 유월 피를 토하듯 한 붉은 칸나가 피어났다. 내 나이 마흔이 넘도록 그처럼 완벽한 붉은빛은 처음 보았고 나는 전율했다. 땅속에서 겨울을 견디고 피어난 꽃이었다. 죽음을 뚫고 솟아난 순결한 생명의 빛깔이 있다면 바로 그 빛일 거라는 느낌이었다.
그 직후였을 것이다. 특별한 내면을 지닌 방을 내놓고 누군가를, 무언가를 기다리기 시작한 것이. 땅을 뚫고 솟아오른 선혈 한 점이 오래도록 닫아걸었던 문의 빗장을 푼 것일까.
간간이 늙수그레한 부동산 소개소의 남자가 사람을 달고 와서 방을 보고 가기도 했지만 그중에 방의 주인은 없었다. 그들은 방을 볼 줄 모르는 사람들이거나 그쪽서 원하더라도 내 보기에 방의 임자 같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지리한 장마가 걷히고 집 안에 볕이 들기 시작할 때 나는 빈방의 눅눅한 창호지를 뜯어내고 풀을 쑤어 새 한지를 발랐다. 그 방은 창호지만 새로 발라도 단박에 새 방이 될 만큼 방에 비하여 유난히 창이 큰 방이었다. 한지를 새로 바른 창문틈을 볕 잘드는 담장 귀퉁이에 세워두고 분무기로 골고루 물을 뿌려주다가 장난삼아 입안 가득 물을 머금어 푸하 내뱉어보았는데 그만 미끈한 격자 한 칸에 구멍이 뻥 뚫리고 말았다. 그 부문만 도려내고 땜질을 하자니 속이 상해 견딜 수가 없었다. 담장가에 막 피어나기 시작한 코스모스 꽃잎을 따다가 망친 격자 한 칸에 오종종 붙여보았다. 팽팽하게 당겨 붙은 순백의 창호지에 연분홍의 꽃잎이 수줍은 듯 다시 피어났다.
새 창문을 달고 나는 방에 반듯이 누워 보았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아늑한 설렘이 일었다. 그 방은 흉한 상처가 아물고 이제 처음 돋아나기 시작한 연분홍의 새살과도 같은 순결한 빛을 담고 있었다.
지친 여름의 오후에 그 여자가 내 집으로 들어섰다.
늘 그랬듯이 마루에 앉았다가 대문을 밀고 들어서는 그녀를 보았다.
그녀를 보는 순간 방의 주인이 찾아왔음을 나는 알았다.
스물다섯 남짓, 곧바로 그녀의 내부에 감춰진 무엇인가가 오래 기다려온 내게 간절히 전해졌다.
그녀는 마루에 걸터앉아 손바닥에 꼭 쥐고 있던 손수건을 펼쳐서 이마와 콧등의 땀을 찍어낸 후 마루 안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휘휘 옮아다니는 그 눈빛이 허공을 맴도는 듯 어디에도 가닿지 않았다.
“방을 좀 볼 수 있을까요?”
펼쳤던 손수건을 다시 차곡차곡 접으며 그녀가 말했다. 마당을 빙 돌아 그녀를 방으로 데려갔다. 그녀는 방문 앞에 선 채 그 작은 방을 보고 또 보았다.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그녀에게서 망설임이 읽혀졌다.
“너무 작지요?”
“그런 게 아니고 창문이 너무 커서요. 너무 밝아요.”
그녀는 낭패스러운 얼굴로 여전히 방에 들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 대신 내가 방으로 들어섰다.
“그렇지 않아요. 이 창문은 창호지를 바른 창이라 맨유리창하고는 달라요. 밝아도 되바라지게 밝지 않고 오히려 아늑해요. 내가 이 방에서 살아봐서 잘 알아요. 그렇지만 정 밝은 게 싫으면 쓰던 커튼이 많으니까 하나 달아드릴 수도 있어요.”
그제서야 그녀는 문지방을 넘어 방으로 들어섰다. 오래 비어 있던 창 넓은 방이 그녀를 가만히 받아주었다.
그녀는 다음날 바로 이사를 왔다. 어디서부터 달려왔는지 흙먼지가 뽀얗게 앉은 용달차 한 대에 단출한 짐을 싣고 내 집으로 왔다. 아무도 도와주는 이 없는 이사였다. 용달차 기사가 짐덩어리들을 마당에 휙휙 내려놓고 떠나자 그녀는 별 서두르는 기색도 없이 하나씩 방으로 들여갔다. 끌고온 짐에 아무런 애착도 없어 보였다.
불현듯 그녀를 받아들인 나 자신이 두려워졌다. 그녀를 보는 순간 그녀를 붙잡아둬야만 할 것 같은, 여름내 기다려온 누군가가 바로 그녀인 것만 같은 직감에 사로잡혀버린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방에 들 수 있는 사람에 대한 선택권을 쥐고서 과연 내가 고르려 했던 사람이 바로 그녀였을까.
"혼자 사는 여자면 좋겠어요."
부동산 소개소에 말해놓고서 그들이 데려왔던 몇몇의 혼자인 여자들을 나는 은근히 물리쳤다. 그들은 내가 기다린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그녀를 보는 순간 섬광처럼 깨달음이 왔다. 내가 기다린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에게 내포되어있는 그것이라는.
2
그가 떠나갔다.
그날, 안 보는 사이 좀 마른 듯한 그는 흰 셔츠 왼편 주머니 위에 끝을 V자로 도려낸 검은 리본을 달고 나타나서 말했다.
"오늘 저녁 비행기야."
귀에 그의 말이 날아와 박힐 때 내 눈은 집요히 그의 가슴께에 매달린 검은 리본을 향해 있었다. 그것은 그의 언어보다 먼저 내게 던져져 그가 내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났음을 시위하고 있었다. 주말이면 우리가 만나곤 하던 길모퉁이에 위치한 찻집에서였다. 이미 예견했던 순간이었지만 그가 그 말을 했을 때 탁자 하나를 사이에 둔 그와의 거리가 비현실적으로 아득히 물러나고 있었다. 우리는 찻집에 마주앉아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전에도 그 찻집에서 우리는 별로 말을 나눈 적이 없었다. 그곳은 우리의 만남을 위해 이용된 장소일 뿐 그 이상의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나기가 무섭게 그곳을 떠나곤 했다. 만나기 무섭게 나가서 우리가 향했던 곳은 예성장이었다. 그 찻집은 예성장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을 뿐이었다. 그도 나도 그저 ‘거기’라고만 말했을 뿐 그 찻집의 이름조차 알려고 하지 않았다. 거기는 우리가 예성장에 함께 들어가기 위해 잠시 거쳐야 하는 장소였을 뿐이다.
그러나 말없이 앉아 서로를 기다리던 짧은 시간의 그 장소에는 어쩌면 우리의 모든 것이 농축되어 있지 않았을까. 서로를 향해 온몸의 세포를 활짝 열어놓았던 그 짧은 시간.
그가 검은 리본을 달고 나타나 자신이 타고 아주 떠나갈 비행기의 출발 시각을 말한 직후부터 참 오래 우리는 거기에 앉아있었다.
언제나 함께해왔던 익숙한 시간과 익숙한 장소에서 일순 그 모든 것이 낯설어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어떤 몸짓과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 그 모든 게 너무도 막막하고 낯설기만 했다. 유행가 가사처럼 사랑이 끝나고 나니 세상도 끝나는가 보았다.
긴 침묵이 흘렀지만 어쩌면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나갔을 뿐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시간에 대한 감각을 잃고 있었으므로 모든 것이 시간의 그물을 빠져나와 마구 뒤엉키며 또 해체되어 갔다. 의식의 흐름마저 뚝 끊긴 기이한 상태에 빠져든 나는 나를 그 지경에 이르게 한 그를 앞에 두고도 그를 의식할 수 없었다.
내게 세상을 끝나게 한 사람이, 그리고 이 기괴한 시간에서 나를 구해줄 유일한 사람이 바로 내 앞에 앉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나를 구해달라고, 제발 이 혼돈을 평정해달라고 말해보지 못했다. 그는 내게 이미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나가자."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우리는 찻집의 계단을 내려갔다. 그가 좁고 컴컴한 나무계단을 앞장서 한 발짝씩 내디딜 때마다 전에는 들리지 않던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내 귀에 들려왔다. 그 소리와 함께 익숙한 그의 체취가 내 코끝으로 언뜻언뜻 스쳤다. 그가 내게서 떠날 것이라는 사실이 비로소 현실에 실려 서서히 나를 공략하려는가 보았다. 계단을 다 내려와서 바깥으로 나왔을 때 놀랍게도 그는 예성장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고 있었다. 성큼성큼 걷던 그가 멈춰서 뒤돌아볼 때까지 나는 찻집 앞 길모퉁이에 그대로 붙박여 있었다. 내 시선이 다시 그의 왼편 가슴 검은 리본에 날아가 꽂혔다. 그는 왜 검은 리본을 달고 나타났을까. 우리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었던 지나간 시간들에 조종을 고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는 반쯤 뒤돌아선 채 나를 보았고 나는 그의 가슴에 달린 검은 리본을 보았다. 어쩌면 그는 내 시선을 피하기 위해 검은 리본을 달고 나타난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그때까지도 나는 전혀 그의 표정을 읽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 시선으로부터 놓여나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몇 발짝 거리에는 이제 그 무엇도 남아있지 않았다. 성마르게 보채는 그의 그림자가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그림자를 따라가서 내 몸을 맡겼다. 그의 입김은 불을 뿜어내듯 뜨겁고 몸짓은 그 어느 때보다 필사적이었지만 내 몸은 가슴께에서부터 결빙이 시작되어 전신으로 서늘한 기운이 퍼져나갔다.
"너, 우니?"
그가 내 눈을 핥으며 말했다.
"울지 마, 바보야."
옷을 차근차근 다 찾아 입고 나서야 비로소 그를 볼 수 있었다. 침대에 널브러진 그를. 땀으로 머리칼이 뒤엉킨 그의 얼굴은 천진한 어린아이의 그것처럼 해맑아 보였다. 우리가 함께했던 숱한 시간의 짐을 내려놓은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보자 이제 더이상 그 무엇도 그와 함께 나눌 수 없게 되리라는 죽음과도 같은 상실감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눈을 감고 누워 있는 그에게 그의 셔츠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 리본 왜 달았어요?"
그가 눈을 뜨고 바라보더니 입술을 일그러뜨리고 웃음지었다.
"오늘, 현충일이잖아."
"그랬었구나."
나는 백을 메고 일어섰다. 그가 당황한 표정으로 벗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너 왜 그래?"
"먼저 가려구."
"왜?"
"왜냐구? 세상이 끝났는데 좀 달라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를 두고 예성장을 빠져나왔다. 예성장에서 우리가 늘 만나던 그 찻집에 이르도록 인적이라고는 없이 적요로운 길에 뙤약볕이 눈부셨다.
그에게 버림받은 나는 당찮게 그를 떼어내는 다급한 심정으로 방향 없이 차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자꾸 도망갔다. 그 순간엔 그저 그에게 다시 붙들리고 싶지만 않을 뿐이었다. 차에 몸을 맡기고 달리다가 모르는 곳에 내려 꽃을 샀다. 안개, 마거리트, 스타티스, 장미, 한 다발씩 사 안은 것이 한 아름이나 되었다. 미친 듯이 꽃을 사서 짓누르듯이 안으니 서늘한 가슴이 조금 진정되었다. 가슴 가득 꽃을 안고 걷는데 빗발이 날리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들었던 라디오 뉴스의 일기예보가 떠올랐다. 예년보다 이른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예년보다 이르고 긴 장마일 거라고 했다. 빗방울이 후둑후둑 여린 꽃잎에 떨어졌다. 꽃을 안고 뛰었다. 뭉텅 안고 뛰는 동안 꽃송이가 하나 둘 길바닥으로 빠져나갔다. 포장도 하지 않고 끌어안은 꽃들 중에서 가지가 굵은 장미 송이들이 제 힘껏 빠져나갔다. 꽃다발이 훌쭉해지도록 비에 젖어 빗속을 뛰다가 길거리의 일식식당으로 들어갔다. 스탠드에 앉아 뜨거운 국물을 주문했다. 따스하고 환한 불빛 아래에서 정갈한 흰 모자의 남자가 장국을 내주며 말했다.
"국립묘지에 가시나 봅니다?"
기이하게도 꽃다발 중에서 붉은색 장미만 고스란히 빠져 있었다.
"현충일이라 국립묘지 가시는 손님이 아침부터 몇 분 계시네요. 지금은 비가 쏟아져서 어디 가시겠습니까."
그가 김이 오르는 뜨거운 물수건을 나무접시에 담아 내오며 덧붙인 말이었다.
국립묘지가 있는 동네까지 와 있음을 그제서야 깨달았다.
죽은 자에게 꽃을 바칠 수 있는 여자가 된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만 같았다.
3
대추나무에 열매가 영글기 시작했다.
연록색의 열매들이 가지 끝에 매달리면서 대추나무는 집 마당의 주인으로 우뚝 그 아름다움이 빛났다. 담장을 껑충 뛰어넘도록 키가 크고 가지가 무성하지만 그런 까닭에 곧잘 잊혀진 채로 있다가 가을이면 자신의 존재를 높고 강하게 드러내는 나무였다. 짙은 녹색의 우거진 잎 사이사이로 은은히 반짝이는 진주 알갱이 같은 연록색의 열매들이 살짝살짝 드러날 때쯤이면 그것의 아름다움은 집 안팎의 천박하기 이를 데 없는 것들을 일시에 압도하였고 그 아름다움에 힘을 보태어 하루하루 폭발하듯 열매를 키워나갔다.
나는 그녀가 창의 커튼을 걷고 그녀의 창 앞에 우뚝 선 그 아름다운 나무를 보아주길 그녀의 창 앞에서 간절히 기다렸다.
내 집에 온 그날부터 그녀의 넓은 창엔 두터운 커튼이 드리워졌다. 그녀의 요청으로 내가 달아준 것이었다. 그녀는 그날부터 마치 장막 저편에서 아직 준비가 덜 끝난 배우처럼 그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녘 신문이나 우유를 집으러 대문간으로 나가다 으레 엿보게 되는 장막 틈새의 흐린 불빛. 때로 숨죽인 흐느낌마저 엿듣게 될 때면 나는 나 자신이 그녀를 고통 속에 몰아넣은 것만 같아져서 그 자리에 멈춰 참회의 눈물을 함께 흘려야 했다. 내가 그 고통을 불러들인 것이다. 내가 원한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고통이었다. 누군가 내 집에 들어와 살기를 원했을 때부터 줄곧 내 마음 저 깊은 곳에서는 고통받는 영혼을 갈구하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대추열매가 자줏빛으로 영글었을 때 나는 의식을 치르듯 장막에 가리워진 그녀의 창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한참 후에 커튼 한 귀퉁이가 세모꼴로 접히며 그녀의 얼굴이 나타났다. 문을 열어보라고 손짓을 보내자 암갈색 커튼을 망토처럼 뒤집어쓰며 창호지 창 바깥의 유리창까지 열고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마당 가득 넘실대는 가을 햇살에 드러난 그녀의 얼굴이 흡사 종잇장 같았다. 눈이 시린 듯 손으로 차양을 만들어 하늘을 쳐다보는 그녀의 가는 목에 푸릇푸릇 핏줄이 도드라졌다. 어깨를 덮는 굵은 웨이브의 검은 머리채가 그녀의 목선과 함께 출렁거렸다.
“왜 그러세요?”
창밖에 선 나를 내려다보며 그녀가 물었다. 핏발 선 충혈된 눈이 애처로웠다.
“바쁘지 않으면 오늘 나 좀 도와줄래요?”
“무슨?”
“오늘 대추나무 좀 털려구.”
“대추나무가 어딨어요?”
그녀가 대문 밖의 먼 데를 바라보며 물었다.
“여기잖아요.”
내가 그녀 앞의 나무 기둥을 손으로 짚어 보이며 말하자 그녀는 신기한 듯 손을 내밀어 대추나무 기둥을 쓰다듬었다.
“아, 대추나무 처음 봐요.”
그녀는 창밖으로 상체를 내밀어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러느라 종잇장 같던 얼굴에 핏기가 돌았다.
“나와서 봐요. 얼마나 대추가 많이 열렸다구. 작년엔 시원찮더니 올핸 엄청 따겠어.”
그녀는 숱 많은 굵은 웨이브의 머리칼을 손수건으로 동여매고 나왔다. 나는 플라스틱 바구니 세 개를 마당에 내다 놓고 사다리를 타고 대추나무로 올라갔다. 올라간 내게 그녀가 장대를 건네주었다. 장대로 가지를 흔들기 시작했다. 후두둑후두둑 대추 알이 마당으로 떨어져내렸다. 그녀는 장막 속에 숨어있던 사람답지 않게 날렵하게 몸을 움직이며 마당에 떨어진 대추를 주워 바구니에 담았다. 우리는 오후내 대추 수확에 바빴다. 그녀가 나무에 올라가 가지를 흔들 때마다 나뭇잎이 서로 부딪히면서 우르르 바람소리를 냈고 그 사이로 그녀의 웃음소리가 묻어나다가 뒤이어 탐스런 대추 열매가 후두둑 쏟아졌다. 나는 나무 아래에 있다가 우르르 나뭇잎이 흔들리기 시작하면 얼른 열매가 떨어져 내리기 전에 그녀의 웃음소리를 들을까 나무 위로 귀를 기울였다. 나무에서 내려올 때 그녀의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녀와 나는 마루에 앉아 첫물 대추를 먹었다. 다디달았다. 그녀는 쉬지 않고 대추를 깨물어 먹으며 말했다.
“이렇게 맛있는 거 처음 먹어봐요.”
“원래 대추를 보고도 먹지 않으면 늙는다는 옛말이 있잖아. 그만큼 몸에 좋다는 뜻이겠지.”
“그래요?”
그녀는 그녀 앞에 놓였던 수북한 대추를 거의 다 먹어 치웠다. 마치 허기진 여자처럼 아귀아귀, 그러나 참 맛있게 그것을 먹었다. 그동안 그녀의 방에 딸린 간이부엌에서 취사의 흔적을 느낄 수 없었던 나는 무서운 기세로 대추를 먹어 치우는 그녀를 보자 기이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루에 잔뜩 있으니까 언제든 갖다 먹어요.”
“그래도 돼요?”
“그럼 우리가 같이 거둔 건데.”
그녀의 눈이 반짝 빛났다. 어느새 흰자위에 퍼져 있던 핏기가 깨끗이 씻겨진 맑은 눈이었다.
그날 이후 그녀의 작은 부엌에 향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그녀의 창은 여전히 닫힌 채였지만 그녀의 작은 부엌은 이제 개방되었다. 나는 마당을 빙 돌아 그녀의 부엌으로 가서 쪽문을 열곤 했다. 사람 하나 몸을 돌리기도 여의찮은 협소한 공간이었다.
그녀는 움푹 꺼진 그곳에서 휴대용 버너를 피워놓고 무언가를 만들어 땀까지 흘리며 선 채로 먹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던 내 눈길과 마주치면 비행을 들킨 듯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먹을 것에 탐닉하고 있는 그녀를 보노라면 왠지 울컥 슬픔이 치받치곤 했다. 그녀 안에 깃들인 거역할 수 없는 생명력이, 고통을 타고 넘는 그 식탐이 가여웠다.
“그날 대추를 먹은 다음부터 왜 이렇게 식욕이 치솟는지 모르겠어요. 그 전에는 물도 잘 못 마실 정도로 식욕이 통 없었거든요. 요새는 먹는 생각만 해요.”
입안의 것을 씹느라 볼을 오물거리는 그녀의 표정이 내 눈엔 처연해 보였다.
“홀몸이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제 몸의 변화도 아직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걸까. 탐욕스레 입으로 가져가려던 젓가락을 맥없이 부엌 바닥에 떨어뜨렸다.
4
그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늘 혼자였어요.
외갓집에서 자랐지요. 기억은 늘 다섯 살 때쯤으로 올라가요. 학교에 들어가기 훨씬 전이었으니까 다섯 살쯤 되었을 거예요. 외갓집은 천변에 있었어요. 나무로 지은 이층 집이었어요. 다섯 살 때의 저는 그 집의 이층에 늘 혼자 있었어요. 그 이층 방에 주로 누워 있었어요.
아팠었냐구요? 아뇨, 아프지 않았어요. 엎드려 누워서 방바닥에 귀를 대면 아래층의 소리가 잘 들렸거든요. 이모들과 삼촌들이 여럿 있었어요. 학교에 다니거나 일하러 다니는 그들은 아래층에서 늘 소란스러웠어요. 웃고 떠들고 악을 쓰고 싸우면서 그렇게 조용할 날이 없었어요. 저는 그 소리가 참 좋았어요. 그 소리를 듣느라 누워서 아래쪽을 향해 귀를 대고 있었어요. 그들이 웃으면 엎드려서 같이 웃고 그들이 소리를 지르면 저는 무서워서 엎드린 몸을 오그라뜨리곤 했어요.
그렇게 늘 혼자였어요. 다섯 살의 저는 외갓집의 이층 방에서 늘 오후 네 시를 맞곤 했어요. 어떻게 시간까지 정확히 기억하냐구요? 아래층에서는 오후 네 시면 꼭 라디오를 켜놨거든요. 이모나 삼촌들이 즐겨 듣던 음악 프로였을 거예요. 라디오에서 네시를 알리는 시보가 울리면 곧이어 그 음악, 아마 그 프로의 시그널뮤직이었겠죠. 그 음악이 흘러나오곤 했어요. 매일매일 어김없이 그 음악을 들었어요. 다섯 살의 저를 변함없이 잊지 않고 찾아주는 건 그 음악뿐이었죠. 친구 같았어요. 아주 경쾌한 멜로디였어요. 지금도 따라서 흥얼거릴 수 있다구요. 들어보실래요?
들어 보신 것 같다구요? 그렇죠? 언젠가 우연히 라디오 음악 프로에서 그 음악이 흘러나오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진행자의 멘트를 놓쳐서 제목을 외워두진 못했지만 어린 날 제 귀를 맴돌던 그 음악이 실재하는 음악이었다는 사실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어요. 아마 사람들이 즐겨 듣는 올드팝의 한 소절쯤 될 거예요. 반주에 휘파람까지 섞인 그 경쾌한 가락이 어린 제게는 참 슬프게 들리곤 했어요. 글쎄, 말해놓고 보니까 슬펐다는 표현은 좀 맞지 않네요. 어린애가 슬픔이 뭔지나 알았겠어요. 그저 뭐랄까, 그 음악은 오후 네 시면 내가 세상에서 혼자 어둑한 이층 방에 누워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반복해서 새겨주는 그런 시그널뮤직 같은 거였겠죠.
그 음악이 흘러나올 때면 아래층의 이모와 삼촌들은 모처럼 조용해지곤 했어요. 음악에 귀를 기울이느라 그랬겠죠. 누웠던 제가 모처럼 몸을 일으키는 시간이기도 했어요. 오후 네시면 저는 시보와 함께 그 시그널뮤직만 듣고 나서 몸을 일으켜 낮은 창밖을 내다보곤 했어요. 앉아서도 턱이 닿는 낮은 창이었어요. 늘 하천과 둑방이 보였어요. 하천은 반짝거렸고 둑방은 한없이 길었어요. 창에 턱을 괴고서 길고 긴 둑방의 끝을 보려고 눈을 비볐을 거예요. 아마도.
네? 이층이 아니었을 거라구요? 다락방이었을 거라구요? 옛날엔 집집마다 다락이 있었다구요? 계단이 있었는 걸요.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방처럼 쓰이는 다락도 흔했다구요? 나무계단, 맞아요.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아, 생각해보니까 정말 그럴 것 같네요. 확실하다구요? 그때의 난 너무 어렸으니까요, 몸이 아주 작았으니까 내 몸을 기준으로 다 생각했을 테죠. 몇 개의 나무계단을 올라서 좁은 다락방, 그때는 참 높다란 곳의 드넓은 방이었었는데, 맞아요. 가만 생각해보니까 그 말씀이 틀림없는 것 같네요. 왜 여지껏 그런 생각을 못 했을까요. 그러니까 다섯 살의 저는 늘 외갓집 다락방에 혼자 있었던 거겠네요.
엄마, 아버지요?
그건 정말 기억에 없어요. 그보다 더 전의 일이니까요. 딱 한 가지 기억이 있긴 해요. 반복해서 들었던 음악도 아니고 딱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어요. 외갓집 식구들은 제게 이런 기억이 남아있는 줄 아무도 몰라요. 그래서 저는 그것이 혹 꿈속의 한 장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엄마하고 아버지가 싸운 것 같아요. 엄마와 아버지는 방 양쪽 끝에서 대각선으로 마주 보고 있었어요. 엄마의 손에 가위가 들려 있었어요. 칼이 아니었냐구요? 아니요, 이번엔 틀림없어요. 가위를 활짝 벌려서 그 가운데를 잡고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두 개의 칼처럼 말이에요. 가위를 움켜쥔 엄마의 손에서 피가 철철 흐르고 있었어요. 아버지는 흰 러닝셔츠 같은 걸 입고 있었는데 다 찢겨 있었어요. 저요? 잘 모르겠어요. 그 방에 있었는지, 그러니까 현장에서 그걸 보았는지 창문을 통해 보았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그들이 정말 제 엄마 아버지였는지 그것도 확인하진 못해요. 제 기억으로.
엄마 아버지 얘기요? 해주지 않았어요. 아무도. 묻지도 않았구요. 제 기억 속에 있는 충격적인 장면이 현실이었다면 어린아이가 자기 엄마 아버지에 대해서 그 기억을 계속하고 싶었겠어요. 지우고만 싶었겠죠.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았지만 실은 듣고 싶지 않은 게 먼저였어요. 그 기억이 확인될까 무서웠던 거죠. 외갓집 식구들은 하나같이 제 엄마 아버지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처음부터 엄마 아버지 없는 아이로 자랐어요. 자연스럽게 아무도 없는 혼자인 아이로 컸어요.
그 사람을 만났어요.
고등학교 때였어요. 그때 제겐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어요. 늘 붙어다니는 친구였죠. 친구의 부모님은 좋은 분들이셨어요. 제게 잘 대해주셨죠. 딸처럼 대해주셨어요. 어느 날 친구네 집에서 친구에게 말로만 듣던 친구의 오빠를 보았어요. 휴가를 나온 군인이었어요. 머리가 짧은 친구의 오빠는 휴가기간 동안 캡을 눌러쓰고 우리 학교 테니스코트에 와서 테니스를 치곤 했어요. 친구와 나는 벤치에 앉아 친구의 오빠가 테니스 치는 것을 구경하다가 셋이서 함께 무얼 먹으러 가기도 했어요. 벤치에 앉은 내 눈에 공을 쫓아 뛰어다니는 친구 오빠의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였어요. 한 인간을 향해 처음 품어보는 감정이었어요.
그 사람이었어요. 그러나 그 감정은 제 안에 가둬두고 숨겼어요. 그러고 싶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간 다음 우연히 길에서 그와 부딪혔어요. 그 사람도 복학한 대학생이었죠. 장난처럼 축제 파트너를 못 구했다며 파트너가 되어 달라더군요. 왠지 슬펐어요. 그 사람이 저를 장난처럼 대해서 그랬나 봐요. 그 사람은 처음부터 제게 장난 같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절대적인 존재였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이끄는 대로 했어요.
그 사람과 있으면 내가 참 밝아졌어요. 어둡고 혼자였던 그 다락방에서 그 사람이 비추는 빛을 따라 눈이 시리게 이끌려나오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친구의 오빠였고 우리의 사이가 진전되는 것은 왠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었어요. 그래서 점점 비밀스럽게 만나곤 했어요. 비밀스럽지만 어둡지 않았어요.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해하신다구요?
그 사람만 생각하면 곁에 없어도 제 온 마음에 가득 차올랐어요. 그가 죽는다 해도 두렵지 않을 만큼 그의 전 존재가 제 안에 들어와 있었어요. 일체감 같은 것이었겠죠. 그토록 오래 혼자였던 제가 말이에요. 저 자신의 존재를 누구에게든 감사드리고 싶었어요.
친구의 집에서 알게 되었죠. 친구가 먼저 알았어요. 친구가 그러더군요. 배신당한 기분이라고. 제 행위는 떳떳지 못한 것으로 비춰지고 그때부터 그 사람과 저는 공공연한 사이가 되었지만 아무도 우리에게 우호적이진 않았어요. 우리가 아니라 저에게 말이에요.
제게 닥친 그 위기를 극복할 힘이 제겐 없었어요. 그 위기는 오히려 저를 마구 뒤흔들기 시작했어요. 두렵고 불안했어요. 지극히 자연스럽게 내 삶이려니 살아왔던 혼자만의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가는 건 정말 싫었어요.
물론 그때까지도 외갓집 그늘에서 살고 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제게 사랑을 주지 않았어요. 아니, 제가 그걸 거부했죠. 그들은 이런 저를 측은해하다가 나중엔 방치했죠. 제가 자초한 거예요. 왜냐구요? 왜 사랑을 거부했냐구요? 그들이 제게 주는 것 가운데 무엇이 과연 진짜 사랑인지 혼란스러웠거든요.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고 저 혼자 받아들이고 저 혼자 판단해야 하는 그런 세계에 저는 내던져진 채였었으니까요.
아까처럼 알기 쉽게 얘기해 보라구요? 저도 이 부분은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정말 겁이 나네요. 한 번도 얘기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냥 쉽게 편안하게 말하라구요? 저도 그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외삼촌이 많다고 말씀드렸죠. 유난히 제게 친절한 삼촌이 있었어요. 제게 노래도 가르쳐주고 데리고 다니며 영화 구경도 시켜주는 삼촌이었죠. 제 공부를 봐주는 유일한 삼촌이었어요.
어느 날 문제를 많이 틀렸다고 삼촌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했어요. 어렸어요.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어요. 그때는 그저 무섭고 싫었지만 크면서 점점 그 기억이 저를 잡아먹을 듯 괴롭히기 시작했어요. 버려진 몸이라는 기분은 그 기억의 시간으로부터 멀어질수록 더 심해졌어요. 한 여자로 온전히 살아갈 수 없다는 의식이 제 삶을 지배해버렸어요. 왜 그러세요? 우시는 거예요? 아…… 제가 괜히 말했나 봐요. 남까지 괴롭혀야 하다니요.
계속할까요?
그 사람과 나 사이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잊고 있던 그 일이 다시 저를 괴롭히기 시작하는 거예요. 정말 두려웠어요. 어찌해 볼 수 없는 제 본질에 대한 두려움 말이에요.
차라리 그 사람에게 저를 던져버리고 싶었어요. 부나비가 불에 뛰어들 듯 제가 짊어진 것들과 함께 투신하고 싶었어요.
남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자신의 본질에 대해 두려울 것이 없는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하지만 저 자신이 우리의 사랑을 파행으로 몰아갔어요. 지레 희망을 분질러버렸던 거지요.
저는 그렇게 그 사람의 손쉬운 여자가 되었고 그 사람은 이런 제게 탐닉했지만 그건 정말이지 제가 꿈꾸던 사랑이 아니었어요. 우리는 서로에게 집착하면 할수록 점점 서로에게서 멀어지는 이상한 사랑에 빠져든 거예요.
그 사람은 어땠냐구요?
그 사람은 저의 어둠, 저의 그늘이 좋다고 했어요. 늘 조금 충혈된 제 눈을 아름답다 했어요. 그런 눈을 가진 여자는 저밖에 없다고 말했어요.
왜 저를 구해주지 못했냐구요? 그는 강한 인간이 아니었어요. 그는 우리가 처한 순간순간을 감당하지 못하고 힘들어했어요. 특히 그의 어머니 반대가 극심했어요. 이기적인 사람이라구요? 그렇지 않아요. 그 사람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거라고 믿어요. 어쩌면 제 어둠이 그 사람의 빛마저 덮치지나 않았나 저는 그게 괴로워요. 그를 놔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러지를 못했어요. 그럴수록 더욱더 집착했어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중독이라구요? 그럴까요? 아니오, 전 사랑이라고 믿어요. 우리의 사랑이 그렇게 끝났다고 해서 우리의 처음마저 부정할 순 없어요.
그 사람은 저의 전부였어요. 오직 혼자였던 제가 저 아닌 누군가에게 그토록 저 자신 전부를 바칠 수 있었다니요. 생각해보면 그것만으로도 저는 그에게 감사해야죠. 사랑의 형태가 변질되었다고 해서 그 사람에 대한 제 사랑이 흔들린 건 아니었어요. 더 치열해졌을 뿐이었어요. 소유할 수 없음을 예감하면서 그것에 대한 앙갚음으로 더 집착한 것인지도 몰라요. 제 생애 한 번뿐인 기회를 저 자신이 잘 지켜내지 못한 데 대한 고통이 너무 컸어요. 그리고 어떤 기회가 와도 제 몫이 그뿐일 거라는 절망이 너무나 깊었어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구요? 그런 말씀 제 귀에 들리지 않아요. 몇 살이냐구요? 스물일곱이에요. 스물일곱에 버림받은 거예요. 어땠는지 아세요? 오랫동안 연락을 끊었던 그 사람이 만나자더군요. 저는 반쯤은 이미 버림받은 상태였어요. 나갔죠. 그 사람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나왔더군요. 끝이라는 걸 알았어요. 그러면서도 자꾸 그 검은 리본의 의미를 혼자 추측했어요. 그는 오래 전부터 그의 어머니가 바라던 대로 멀리 떠난다고 했어요. 이미 예견했던 수순이었어요. 그렇게 그 사람은 떠났어요.
나중에 알았죠. 그 사람 떠나기 전 그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그러니까 그 사람이 달고 있던 그 검은 리본은 그 사람이 차마 내게 말 못한 어머니의 죽음이었던 거지요.
저는요, 그 사람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라, 세상에 버림받은 거예요.
그 사람 떠나고 저의 모든 것도 끝났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직장이 있던 시골 마을은 밤이면 개구리떼 울음소리가 극성스러웠어요. 온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는 저를 향해 개구리떼만이 죽어라 울어댔어요. 밤마다 개구리떼는 죽지 않는 저를 벼랑 끝으로 내몰았어요.
직장도 버리고 그곳을 떠나 이리로 온 거예요. 네? 모르겠어요. 그냥 저도 모르게 발길 닿는 대로 왔나봐요. 죽음이요? 그렇게 보였어요?
그런데 이제 어떡하죠? 제 몸에 뭐가 있다구요?
참 이상하네요. 사랑의 행위를 증오한 순간에 생명이 싹트다니요. 내내 죽음만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달고 온 그 검은 리본 때문이었어요. 증오와 죽음뿐이던 몸에 생명이 자리를 잡다니요. 언제였냐구요?
유월이었어요.
5
유월이었다구?
유월이었다. 내 집 뜰에 핏빛의 칸나가 피어나던 때였다. 다른 집에 앞서 내 집에도 딱 한 송이만 이르게 피어났는데 그 빛깔이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빨아들일 듯 고혹적이었다.
겨우내 땅속에서 추위와 어둠을 견디다가 밖으로 터져나온 순결한 빛에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 생명력의 파장이 내가 지른 빗장 앞에 와서 멈췄고 생애 처음으로 나는 내 안의 그것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그토록 견고하던 것이 스르르 풀려나가니 이제야 살 것 같았다.
기억을 봉합하듯 묶어서 쌓아두었던 묵은 짐들을 끌어내고 그것들이 들어앉아 있던 방을 치웠다. 비워진 그 작은 방에 누군가를 받아들이기로 마음이 정해지는 동안 그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기다림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유월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병원에 갔다. 초음파 검사를 통해 그녀의 자궁에 안전하게 착상된 태아를 확인했다. 병리학적 확인은 우리의 삶을 관통하는 빛과도 같은 예감의 뒤늦은 확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내가 오래 기다려온 대상이라는 확신과 함께 붙잡아둬야만 할 것 같았던, 그녀 안에 감춰진 그것.
그녀 안에서 들끓던 그것들은 이제 하나의 구근처럼 생명의 싹으로 뭉쳐졌고 비로소 그녀를 빠져나와 저 혼자 분열을 시작할 것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몸 속에 완벽하게 자리를 잡은 생명을 확인하고 나서 그녀가 맨 먼저 한 일은 야만적이기조차 해보였던 식욕을 잘라낸 일이었다. 그녀는 다시 먹지 않았고 움푹 꺼진 부엌은 폐허가 되었다. 먹다 남긴 음식과 음식재료들이 썩어가면서 집 안팎의 쥐들을 부엌으로 불러들였다. 낡은 집이라 그렇지 않아도 집안 구석구석에 쥐들의 통로가 마련되어 있었다. 밤이면 그것들을 노리는 도둑고양이들까지 들끓는 동네였다.
그녀의 부엌은 이제 쥐들의 소굴이 되어갔다. 인적의 행방을 쥐들이 먼저 알아차렸다.
야행하는 쥐들에게 밤새 시달린 그녀가 핏발 선 눈으로 내게 통고했다.
“나가겠어요.”
어디로?
“방을 내놓고 나가겠다구요.”
너는 갈 곳이 없어. 갈 곳 없는 곳으로 나가겠다구?
“위약금은 물어드리겠어요.”
“안 돼.”
“당신이 뭔데 나를 감시하고 지배하려는 거죠.”
그녀는 마치 쥐떼들에게 온몸을 갉히우고 눈빛만 붉게 살아 있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다. 공격의 자세로 한껏 목소리를 높였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서 어스름한 다락방에 홀로 엎드린 어린 계집아이의 외로움에 짓눌린 공포를 보았다.
“널 감시하고 지배하려 하지 않았어, 결코.”
너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네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어떻게 말해줄까. 네 앞에 놓인, 너를 구해줄 시간을 좀 훔쳐올 수만 있다면 네게 보여주련만.
“그럼 뭐죠? 난 당신에게 나의 모든 걸 다 털어놓았어요. 당신이 유도한 거예요. 이제 당신은 날 구경할 건가요?”
그녀의 핏발 선 눈에서 눈물이 터져나왔다. 봇물이 터진 듯했다. 커튼 뒤에서 숨죽여 흐느끼며 쌓아두었던 둑이 무너졌다. 마루에 주저앉아 꺼억꺼억 울고 또 울었다. 스물일곱 그녀 생애를 통틀어 처음 소리내어 울어보는 울음이리라. 나중엔 다리를 뻗고 마루에 퍼질러앉아 발버둥을 치며 어린아이처럼 울었다. 엄마에게 떼를 쓰는 다섯 살 전의 어린 계집아이였다. 내 뼈 마디마디에 그녀의 눈물이 배어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눈물이 내 눈을 통해 다시 흘러내렸다.
그날 밤,
나는 담장을 기어 다니는 도둑고양이를 안아다 그녀의 부엌에 넣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