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 거울
사각 거울
김지현
작은 지지대가 달린 사각거울은 오늘도 시어미 발앞에 세워져 있다. 그녀는 고양이 울음 같은 소리로 흥얼거리며 파우더 통을 열고 분첩을 꺼냈다. 거울을 향한 굽은 등은 먹이를 뜯는 맹수의 뒷모습처럼 굼지럭거린다. 주홍빛을 발하며 금세 달아오를 것 같은 뽀얀 알전구처럼, 그녀의 얼굴은 분가루로 하얗게 변해가고 흐린 눈은 점차 또렷해진다. 얼굴에 분첩을 두드리던 그녀가 별안간 다리를 브이자로 벌린 뒤 그 사이로 거울을 끌어당겼다.
거울로 잠시 치마 속을 비추더니, 분첩 든 손을 음부 가까이 가져간다. 딸아이 정화가 거울에 비친 시어머니의 치마 속을 보고 신기한 듯 환하게 웃는다.
"어머니, 무슨 짓이에요."
문지방 근처에 서 있던 나는 시어머니의 음란한 짓에 놀라 비명과 같은 소리를 내지르고 말았다. 그녀는 허벅지까지 올라간 치마를 재빨리 내리고 몸을 돌려 나를 노려본다. 그녀의 맹렬한 시선을 맞받아, 나도 석고상 같은 그녀의 얼굴을 쏘아본다. 정화는 내팽개쳤던 인형을 다시 집어 들고 슬금슬금 방구석으로 가 쪼그리고 앉는다.
며칠 전에도 시어머니는 사각거울 앞에 앉아 치마를 걷어붙이고 음부 가까이 손을 갖다 대었다. 그때 나는 시어머니를 책망하는 대신, 그녀의 그곳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딸아이를 몰아붙였다. "무슨 짓이야, 너" 나는 방구석에 세워둔 방 빗자루를 거꾸로 들고 아이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몸을 웅크리고 매를 피하던 아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울음보를 터트렸을때, 나는 아이의 무릎에 맺힌 피를 보았다. 사다리가 위로 길게 뻗은 장난감 불자동차가 아이의 무릎에 상처를 낸 것이다.
사각거울에 손을 댄 순간, 시어머니의 억센 손이 내 머리채를 휘어잡는다. 그 바람에 나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으며 발로 휴지통을 걷어찼다. 엎어진 휴지통에서 머리카락 뭉치와 화장을 지운 휴지, 덜 마른 사과 껍질이 쉬지근한 냄새를 풍기며 튀어 나왔다. 그리고 얼마 전 사라진 파운데이션 통도 굴러 나와 내 발치에 놓인다. 평소 정신을 흐리게 놓아버리고 말도 우물우물 뱉어내는 그녀이지만, 내가 사각거울에 손을 댈 때면 상황은 달라진다. 맹수처럼 번쩍이는 눈을 굴리고 단단한 주먹을 마구 휘두르며 내게 달려들면, 나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무토막처럼 온몸에 힘을 주어 그녀의 폭력을 고스란히 받아낸다. 딸아이는 겁먹은 눈초리로 나와 시어머니를 번갈아 보며 무릎에 앉은 딱지를 뜯기 시작한다. 상처에 자꾸 손을 대는 버릇으로 불자동차에 찢긴 무릎은 좀처럼 아물지 않는다. 방바닥에 퍼더버리고 앉은 나는 아이를 야단칠 여력이 없다. 대신 분가루를 덕지덕지 바른 시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며 주먹을 꼭 쥔다. 손에 땀이 차 오른다. 단물 빠진 껌처럼 질기고 뻣뻣해 보이는 그녀의 얼굴을 노려보며, 발치에 놓인 파운데이션 통을 집기 위해 팔을 뻗는다. 그때 그녀의 손톱이 느닷없이 날아와 내팔뚝에 박힌다. 나는 사과껍질에 손을 짚고 미끄러져 다시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는다. 순간 서랍장과 화장대가 내 쪽으로 쏠리 듯해 나는 눈을 꾹 감고 입술을 깨문다. 가까스로 눈을 뜨고 손톱이 할퀸 자리를 본다. 붉은 줄 네 개가 선명히 그어졌고, 그 줄을 따라 살갗이 보풀처럼 일어나 있다, 그녀는 웅크리고 앉아 파운데이션 통을 볼에 대고 비비며 흐흥흐흥, 흐느끼듯 콧소리를 낸다. 나는 그 틈을 타 그녀의 품에 들어간 사각거울을 독수리처럼 낚아챈다. 입으로 썩은 감 냄새를 풍기며 거친 숨을 몰아쉬던 그녀가 내게 파운데이션 통을 던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것은 내 새끼발톱을 찍고 달아났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고 온몸에 식은땀이 솟았다. 나는 사각거울을 껴안고 자리에 주저앉아 눈가에 맺힌 눈물을 훔친다.
새끼발톱은 퍼렇게 죽어 있었다. 발톱 뿌리께에서 시작된 고통이 핏줄을 타고 몸 여기 저기를 쑤셔대기 시작했다. 몸에 열이 오르고 이마와 콧잔등에 땀이 맺힌다. 온 신경이 칼끝처럼 날카로워져, 몸에 깃털이 스쳐도 지독한 아픔을 느낄 것같다. 고작 새끼발톱 하나가 죽은 것이지만, 온몸이 저리고 아프다. 사각거울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은 언제나 내 몸에 상처를 남기고 끝났다. 치매를 앓고 있는 시어머니는 온전한 정신을 잃은 대신 자신을 보호할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된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품에서 사각거울을 지키고 그 앞에서 화장을 하기 위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주먹을 휘둘렀다. 내 몸 곳곳에 먹물처럼 돋은 멍이 푸른색에서 누르스름한 색이 될 때까지. 나는 그녀의 옷가지 전부를 서랍장에서 꺼내 방망이로 두들겨 빨고 또 빨았다. 계속되는 방망이질에 견디지 못해 해어진 옷들은 방 걸레로 썼다. 시어머니에게서 뺏은 거울은 지금 내 발치에 세워져 있다. 그녀는 서랍장에 등을 대고 앉아 있다. 그녀의 노기어린 시선이 거울에 비친 내 다리에 꽂혀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는 분명 내게서 사각거울을 뺏어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을 것이다. 흔들대는 정화의 한쪽 다리도 거울에 비친다. 아이는 여전히 무릎상처에 손을 대고 있다. 붉은 인주가 더께로 묻은 시어머니의 쫄글쪼글한 입술, 나는 거울 속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며 아랫입술을 꾹 깨문다. 립스틱은 또 어디다 버리고 붉은 인주로 입술화장을 했을까. 나는 거울에 머문 시선을 서둘러 거두어 버린다. 그리고 내 새끼발톱을 보았다. 살에서 조금 들떠 있는 발톱은 내몸에서 빠져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그것은 이미 내 몸의 것이 아니었고, 자꾸만 손으로 떼어 내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살에 헐렁하게 붙어있는 새끼발톱을 살며시 젖혀본다. 금세 눈앞이 검어지고 입에 침이 돌았다. 새끼발톱 주변에 피가 고이고, 그것을 감싸고 있는 피부도 서서히 죽어간다. 아직 발톱의 끝은 살에 단단히 붙어 있는 것이다. 나는 흰 반창고를 손길이 만큼 잘라 새끼발톱을 중심으로 단단히 감았다. 반창고의 압박으로 새끼발가락이 두근거린다.
사각거울은 생전에 소품기사였던 남편이 어느 드라마 세트장에서 집어 온 거였다. 화려한 금장식 테를 두른 정사각형 거울은 가로, 세로 삼십 센티미터 남짓한 탁상용 거울로, 뒤에 달린 지지대의 끝에 볼이 박혀 있어 기울기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었다. 남편이 죽은 뒤, 그의 유품 상자 안에 넣으려던 사각거울을 시어머니가 거두었다. 그녀는 아들의 영정을 어루만지듯 거울 표면을 옷소매로 정성껏 닦은 뒤, 거울 속에 숨은 무언가를 불러내는 마법사처럼 한참동안 그것을 들여다보곤 하였다. 처음에는 아들의 유품을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이라 생각했으나,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심각하게 노려보는 그녀의 모습이 자주 목격되자, 나는 차츰 불안해졌다. 동네 가게에 나갔다가 사흘 만에 순경 손에 이끌려 집에 돌아온 후로 그녀는 입과 귀를 굳게 닫아버렸다. 그리고 온종일 사각거울을 끌어안고는 눈썹과 입술에 색을 칠하고 얼굴을 가부키 배우처럼 하얗게 만들며 헤프게 웃어댔다. 육십이 채되지 않은 그녀에게 치매는 이른 것이었다.
시어머니가 병적으로 화장을 하기 시작하면서, 사각거울은 그녀 곁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늘 그녀의 발치에 세워져 있는 거울은 곰팡이가 핀 벽지, 뜨거운 냄비에 눌어붙은 장판, 손잡이가 떨어져 나간 낮은 서랍장, 그리고 불량인형처럼 화장한 시어머니의 얼굴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인형의 머리를 땋고 옷을 갈아입히는 딸 정화의 모습도, 거울은 놓치지 않았다. 하지만 사각거울을 다리 사이로 자주 띄면서부터, 나는 그녀의 거울을 뺏기 시작했다. 마치 현미경으로 미세한 생물을 관찰하듯 그녀는 거울에 치마 속 깊은 곳을 비추며, 분첩 든 손을 쉼 없이 치마 속에 넣었다 뺐다 했다. 그런 동작은 영락없이 자위행위처럼 보이기 일쑤였다. 게다가 정화마저 시어머니 곁에 바짝 다가앉아 거울에 비친 그녀의 치마 속을 진지하게 쳐다보며 거품 같은 웃음을 터트릴 때면, 나는 온몸에 전기가 오른 듯 소름이 돋았다.
아랫다리를 세워 거울에 바짝 갖다 댄다. 덕분에 방안 풍경의 반이 사라지고, 거친 숨으로 들썩거리는 시어머니의 몸과 인주 묻은 그녀의 입술도 사라졌다. 나는 팔을 뻗어 화장대 서랍을 열고 다리전용 크림을 꺼냈다. 어서 다리에 크림을 바르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만져야 했다. 광고 촬영장까지 집에서 두시간, 오후 네 시까지 가기에는 너무 빠둣했다. 다리에 크림마사지를 하는 동안 어쩔 수 없이 눈은 사각거울로 간다. 내 다리 밑으로, 때가 낀 양말을 신은 정화의 발과 미처 휴지통을 쓸어 담지 못한 머리카락 뭉치가 보인다. 아이의 더러운 발은 시종 꼼지락거린다. 아침 일찍 청소한 방은 오후가 되면 발에 검은 먼지가 묻어났다. 집 주변에 부유하는 온갖 먼지들이 집으로 빨려 들어 온 듯, 방을 닦은 걸레의 때를 뺄 때면 세제를 풀어야 했다.
남편이 죽고, 부엌과 세면장을 겸하고 여기에 큰방 하나가 딸린 이곳 단칸집으로 이사했다. 당장 생계 걱정이 앞서 집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집 앞으로 차가 쉴 새 없이 달리고, 지붕위로 하루에 수차례씩 비행기가 날아가는 곳이었다. 가끔, 지나가는 아이들이 돌을 던져 창유리를 깨거나 집 안으로 비비탄을 쏴 찬장 유리에 금을 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가장 곤욕스러운 순간은, 열려 있는 문으로 잡상인들이나 길을 찾는 낮선 사람이 기척도 없이 성큼 들어설 때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부엌칼에 손을 배거나 얼굴이 노랗게 쪼그라들어 들고 있던 물건을 떨어트렸다.
때문에 길이 녹아 흐를 듯한 더위에도, 시어머니가 풍기는 화장품 냄새가 아무리 역해도, 창과 문을 꼭꼭 닫아걸고 살았다. 하지만 어딘가로 꾸준히 날아드는 먼지는 집 안 곳곳을 더럽혔다. “먼지가 끊임없이 날린다는 것은 집이 낡았다는 증거야, 고향 외양간 지붕이 열흘 밤낮 뿌연 먼지를 날리더니 기어코 풀썩 주저앉아 버리더라구.” 가슴 모델만을 전문으로 하는 여자가 어느 날 내게 웃으며 지껄인 말이다. 먼지가 잔뜩 묻은 걸레를 보거나, 아이의 발바닥과 시어머니가 입고 있는 스웨터 목주변이 검게 더렵혀진 모습을 볼 때, 나는 지붕이 내려앉고 벽이 허물어지는 상상에 섬뜩해지곤 했다. 그러나 사각거울만은 방에서 유일하게 먼지를 타지 않았다. 거울 앞에서 살다시피 하는 시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녀는 거울에 입김을 불고 옷소매로 그것을 말끔히 닦은 뒤에야 얼굴에 분을 바르고 눈썹을 그렸다. 거울이 깔끔한 대신 그녀의 옷소매는 늘 더러웠다.
거울의 기울기를 좀 더 크게 하자, 곰팡이가 소설책 크기만큼 슬어있는 천장과 갱지처럼 누렇고 푸석푸석한 내 얼굴이 보였다. 아무리 다리 모델만을 전문으로 해도, 촬영장 사람들은 내 얼굴과 몸매를 유심히 뜯어보곤 했다. 나는 시어머니가 내게 던진 파운데이션 통과 그녀가 쓰던 파우더 통을 거울 앞으로 가져왔다. 파운데이션을 손등에 덜어 볼과 턱에 찍어 바른다. 파운데이션 통을 휴지통에 버린 사람은 정화일 터였다. 딸아이는 가끔 화장품을 휴지통에 버리거나 서랍장 속, 혹은 장난감 바구니 안에 숨겨 놓곤 하였다. 그리고는 내게 엄마, 백 원만, 하듯이 손을 내밀고 새 화장품을 요구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고, 아이는 “할머니가 화장품 다 썼대” 하며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했다. 사라졌던 화장품이 휴지통 속에서 처음 발견되었던 날, 나는 시어머니를 의심했고 그녀 품안에 있는 화장품을 몽땅 뺏으며 앞으로 다시는 화장품을 사드리지 않겠다고 협박했다. 그때 정화가 소꿉장난 바구니를 내 앞에 쏟았고, 장난감 솥과 밥그릇들 사이로 립스틱 여섯 개가 또르르 굴러 나왔다. “니가 그런 거야?” 아이는 말없이 휴지통을 뒤집어엎었다. 그 날 발견된 파우더 말고도 눈썹 펜슬과 아이섀도가 휴지통에서 튀어나왔다. 아이는 울고 있는 시어머니 곁으로 쪼르르 달려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나를 째려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아이에게 느낀 감정은 화장품을 숨긴 사실에 대한 놀라움이 아니었다. 숨구멍을 막아 버릴 듯한 배신감이었다. ‘그래, 피는 못 속이겠지.’ 나는 속으로 그렇게 되뇌며 정화에게 매를 들었다. 별안간, 눈곱이 잔뜩 끼고 시종 진득한 콧물이 흐르는 아이의 더러운 얼굴이 눈에 들어차자, 매질을 하는 손에 힘이 빠졌다. 나는 매질을 멈추고 세숫대야에 차가운 물을 한가득 받아 아이의 얼굴이 빨갛게 될 때까지 씻기고 또 씻겼다.
거울을 약간 옆으로 틀어 정화를 비추어 본다. 방벽에 기대앉은 아이는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며 한 손으로 품안에 든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다. 나머지 손은 아직까지 무릎 상처를 만지작거린다. 아이가 흥얼대는 노래 제목이 무엇일까, 반달? 꽃밭에서? 초록바다? 어릴 적 내가 부른 동요를 다섯 살짜리 아이가 부를까. 리듬이 귀에 익숙하지만 도무지 노래 제목이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정화가 거울에 비치지 않도록 기울기를 달리한 뒤, 파우더 통을 열었다. 짐작대로 통은 비어있다. 시어머니는 어제 사온 파우더를 하루만에 다 쓴 것이다. 몸을 틀어 시어머니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인주 묻은 입술을 비쭉거리며 사각거울에 비친 나의 옆모습을 노려본다. 근육이 움직였는가, 새끼발가락이 욱신거리고 예리한 아픔이 젖꼭지를 콕콕 쪼아댄다. 오늘 따라 그녀의 얼굴이 유난히 창백하다고 생각했다. 방바닥 곳곳이 하얗게 반짝이는 것이 분가루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알아챈다. 갈수록 그녀가 화장품을 비워내는 속도는 빨라진다.
모델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눈에 달려드는 것이, 사각거울에 비친 시어머니의 화장한 얼굴이었다. 분가루 날리는 허연 얼굴과 눈썹머리 쪽과 눈썹 산이 심하게 꺾인, 무언가에 잔뜩 화난 듯한 시커먼 눈썹. 그리고 입술 선을 벗어나 무성의하게 칠한 붉은 입술. 금방이라도 내 얼굴을 물어뜯을 듯, 사각거울 속의 얼굴은 괴괴망측한 것이었다. “자꾸 이렇게 화장하시면 얼굴 망가져요, 어머니.” 사각거울을 품에 안은 그녀를 어렵게 세면장으로 인도해 겨우겨우 얼굴을 씻겨 놓으면, 화장중독으로 검푸르죽죽한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다. 노쇠한 피부는 색조 화장을 이겨내지 못했다. 피부 각질은 먼지처럼 일어났고 얼굴 주름은 구겨진 종이 모양으로 파였다.
일주일에 한번, 나는 시어머니의 얼굴 화장을 지워드린 뒤 커다란 대야에 온수를 받는다. 그녀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녀가 치매에 걸리고 얼마 있지 않아, 그녀의 몸을 씻기기 위해 옷을 벗기다 팽팽한 신경전을 벌인 후로, 목욕은 그녀 혼자 했다. 내 손으로 그녀의 웃옷을 처음 벗겼던 날 옷에서 분가루가 날렸다. 설마 몸 전체에 분첩을 두드리는 건 아니겠지. 고개를 좌로 틀고 그녀의 웃옷을 탁탁 털고 있는데, 딸 정화가 문지방께로 걸어나왔다.
“엄마는 모르지? 할머니 치마 속에 새가 살고 있어.”
나는 정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아이는 짓궂게 웃으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새? 나는 아이의 말을 금세 잊어버렸고 시어머니의 옷을 마저 벗기기 위해 그녀의 치마를 움켜쥐었다. “싫어 이년 싫어” 초점을 잃고 흔들리던 그녀의 눈은 단박에 날카로워졌다. 그녀의 작고 단단한 주먹이 내 등을 세게 후려치자, 눈물이 핑 돌았다.
“엄마가 할머니 새를 훔치려고 하니까 그렇지.”
나는 홧김에, 문지방에 서서 종알거리는 아이의 엉덩이를 세게 때렸다.
“혼자 씻으세요”
나는 방문을 소리 나게 탁 닫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우는 아이를 달래며, 나는 방문을 빠끔히 열어 수증기 속에 묻힌 그녀의 벗은 등을 보았다.
“할머니 치마 속에 사는 하얀 새는 되게 커, 할머니가 나만 보여주는 거라고 했어.”
그때 정화는 옷소매로 코를 훔치며 내게 새침하게 말했다.
시어머니의 치마 속에 사는 새를 상상해본다. 작은 부리에 머리와 눈이 크고 몸은 지렁이처럼 가늘고 긴 새. 언젠가 정화의 동화책에서 보았던 그것의 날개는 시든 꽃잎모양이었다. 새는 오염된 대기와 척박한 땅에서 자라 지렁이처럼 가는 몸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거울에 비친 시어머니의 치마에는 홍색 과꽃 무늬가 프린트되어 있다. 치마 군데군데에 화장품 얼룩과 검은 때가 묻어 있어, 과꽃은 시들고 더러워 보인다.
“이년! 내 거울 내놔!”
시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내 머리채를 거머쥘 듯 엉덩이를 들썩이며 몸을 떨었다. 시어머니 얼굴에서 분가루가 떨어지고, 방바닥에 뿌옇게 먼지가 쌓인다. ‘화장품 값이 얼마나 비싼데’ 나는 들고 있던 파우더 통을 방밖으로 거칠게 던져버렸다.
“엄마, 나 피나.”
정화의 무릎에서 흐른 피는 정강이를 타고 바닥으로 점점이 떨어졌다. 내가 아이에게 다가앉는 사이, 시어머니는 재빨리 사각거울을 품에 안았다. 아이의 손가락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을 보고, 나는 아이의 뺨을 갈겼다.
“딱지 뜯지 말라고 했잖아! 몇 번을 말해야 돼!”
아이는 울지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쳐들고 나를 째려볼 뿐이다. 밤늦게까지 고양이처럼 울던 아이는 이제, 목에 힘을 주고 나와 시어머니를 번갈아 가며 빤히 쳐다볼 뿐, 결코 울지 않는다. 나는 아이의 뺨을 치기 위해 또다시 손을 번쩍 들었다가 멈칫한다. 새삼, 아이의 눈매가 시어머니와 많이 닮았다는 깨달음이 내 손목을 꺾은 것이다.
화장대 위의 로션 병이 파르르 떨기 시작했다. 인근 공항에서 비행기가 날아오고 있었다. 몸 속의 장기들이 웅웅 울린다. 품에서 사각거울을 놓친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른다. 정화는 방금 무릎에 붙인 반창고 끝을 살금살금 손톱으로 일으키고 있다. 지붕 위를 밟고 지나가는 비행기 엔진 소리에 시어머니가 방바닥을 치는 소리가 섞인다. 누군가가 바늘로 새끼발톱 끝을 찌르는 듯했다. 발톱 뿌리에서 시작된 고통이 발을, 다리를, 심장을 움켜쥔다. 나는 시어머니에게로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소리 지르는 입을 가슴으로 꾹 막아 버렸다. 나는 팔에 힘을 주었다. 그녀가 나를 밀치며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내리쳤다. 팔에 더욱 힘을 주자, 그녀의 엉덩이가 바닥에서 들렸다.
비행기가 지나가고 그녀를 품에서 놓아주었다. 나는 방바닥에 누워있는 사각거울을 들여다본다. 토마토가 터진 듯, 가슴에 붉은 인주 자국이 뭉개져 있었다.
광고 촬영장은 한산했다. 오후의 촬영장은 다리나 가슴, 손만을 찍는, 소위 부분 모델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하이힐을 신은 늘씬한 모델들 서너 명이 떼 지어 지나갔다. “러시아 출신 모델들이라고 하던데, 쟤들 한번 촬영에 백만 원이 넘는대.” 가슴 모델을 하는 여자는 전면 거울 앞에 바짝 다가서서 벗은 가슴을 마사지하고 있었다. 그녀와 내가 촬영이 끝나고 받는 모델료는 이십만 원이 채 되지 않았다. 우리는 부분 모델이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가슴 모델료가 나보다 삼만원 더 많았다. 모델들 대부분은 젖꼭지까지 내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편의 장례를 치른 후 한 달이 지나고, 나는 어느 모델회사 담당자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그는 방송국 일을 하며 내 남편을 알게 되었다고, 전에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했다.
“첫인상이 너무 좋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이… 많이 상하셨군요. 몸매는… 치마를 한번 걷어 보시죠.”
그의 끈끈한 시선이 다리를 여러 차례 더듬은 뒤 나는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 새로 나온 스타킹 광고였다. 뜨거운 조명 탓으로 등에 땀이 줄줄 흘러내려도, 카메라 앞에 노출된 다리만은 냉동 포장된 고기처럼 신선하고 보기 좋은 색을 띠었다. 조명의 뜨거움을 잊기 위해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김없이 남편이 떠오르곤 하였다.
남편은 방송국에서 자주 소품을 들고 왔다. 숟가락, 빨래집게, 수건, 칫솔, 벽시계, 그리고 사각거울까지. “아예 냉장고를 들고 오지 그랬수.” 나의 가벼운 질책에 남편은, 이거 사비 털어 장만한 거라구, 하며 허허 웃곤 했다. 그는 가져온 소품을 들고 이것저것 설명하기가 바빴다.
“어머니, 이 숟가락은 탤런트 최진실이 먹던 거예요.”
남편은 소품용 숟가락으로 밥을 뜨며, 그 여자가 이렇게 밥을 먹어요, 하고는 카메라 앞에서 연기하듯 숟가락을 빨았다.
“어머니 앞에 놓인 국그릇이오, 그거는…”
시어머니는 밥상에 숟가락을 세차게 내려놓으며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냈으나, 남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해죽거리며 숟가락을 맛있게 빨았다. 그는 모처럼 쉬는 날이면 담배를 꼬나 물고 문지방에 걸터앉아 집안 구석구석에 놓여 있는 자잘한 생필품에 이야기를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 집 칫솔은 달동네 분위기야, 칫솔모가 굵고 적당히 누웠지, 게다가 색이 너무 오래된 느낌이거든. 저 벽시계는 마을회관에 걸어 놓으면 딱 좋겠군. 숫자도 크고 분침이 돌아가는 소리도 너무 커. 우리 결혼할 때 장만한 저 전화기 말이야, 신호음이 울릴 때 불이 번쩍번쩍 하잖아. 이태리 가구가 즐비한 안방 탁자나 훌륭한 장식이 가득한 호텔 프런트 위에 놓으면 제격일 것 같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자신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볼 때마다, 나는 남편의 저 태도는 어느 장소 어디에 어울릴까, 하고 생각했다. 나는 종종, 방송국 소품실에 처박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남편의 꿈을 꾸곤 했다. 소품으로서 가치를 잃은 그는 거미줄을 두르고 먼지에 묻혀 있다가 어느 날, 어딘가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반으로 쩍 갈라지는 꿈. 남편이 소품실에서 사각거울을 들고 왔던 날도, 그는 소품용 거울 자랑에 흠뻑 빠져 있었다.
“요술 거울 들어보셨죠? 소원하는 모든 것을 전부 보여주는 그런 거울 있잖아요. 이게 그래요, 어머니. 탤런트 사미자가…”
“그만두지 못해”
그때 시어머니가 남편의 뒷말을 무참히 끊어 버렸다.
“내일 있던 곳에 도로 가져다 놓거라, 앞으로 이런 거 들고 오면 밖에 내다 버릴 테니.”
시어머니의 태도는 단호했다. 당장에라도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거울을 뺏어 밖으로 던져버릴 기세였다. 사각거울을 다시 방송국에 가져다 놓겠다고 시어머니와 약속한 날 밤, 그는 제작실에서 호출을 받고 급하게 나갔다. 내일 아침 촬영에 개구리 소품이 필요하다는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고 했다. 그날 밤길을 날쌔게 달려나가던 그의 뒷모습,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는 철로 옆 개울에서 밤새도록 개구리를 잡다가 철로에 다리가 끼어, 달려오는 기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집에서 신고 온 스타킹을 벗는다. 대뜸, 새끼발가락을 꽁꽁 감고 있는 반창고에 피가 배어 있는 게 눈에 들어온다. 오늘, 신발까지 벗어야 한다면 큰 낭패일 것이다. 성질이 급한 촬영감독은 즉시 다른 모델을 원할 것이다. 시어머니가 다 써버린 화장품을 사야하고 월세도 내야했다. 아이들 돌 장난에 깨진 부엌 유리창도 새것으로 교체해야 했다. 나는 핸드백에서 새 반창고를 꺼낸다. 가슴 모델을 하는 여자는 촬영기사의 부름을 받고 수건으로 가슴을 가리며 촬영 장소로 달려 나갔다. 여자가 벗어 놓고 간 브래지어의 와이어 부분이 까맣게 때가 끼어 있었다. 여자는 가슴을 크게 해주는 깔때기 모양의 기계나 가슴부위에만 쓰는 쑥뜸 기계 등을 광고했다. 함몰 유두였던 가슴이 이렇게 예쁜 가슴을 갖게 되었죠, ○○성형외과. 광고 문구 위로 여자의 가슴이 실려 있는 사진을, 언젠가 그녀의 지갑 속에서 본 적이 있다. “이게 내 첫 데뷔 사진이야.” 여자는 내게 사진을 자랑하며 자신만만했다.
나는 다리를 마사지하기 시작했다. 날씬한 다리, 쭉 뻗은 다리, 만지고 싶은 다리. 나의 벗은 다리는 주로 이런 광고 문구를 딛고 섰다. 스타킹, 다이어트, 성형외과, 심지어 야한 사진들만 가득한 어느 맥주 광고 달력에도 내 다리는 실렸다. 금가루를 바르거나구멍이 숭숭 뚫린 그물 스타킹을 신기도 했고, 그냥 맨다리로 사진을 찍을 때도 있었다. 카메라 앞에 서는 횟수가 더해갈수록 나의 치마는 위로위로 올라갔고, 이제는 아예 속옷만 입고 촬영해도 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한다. 여러 시간 동안, 사방에 세워진 조명 아래 다리만을 길게 내놓은 채 위태로운 자세로 서서 촬영을 하고 나면 온몸이 저려 꿈쩍도 할 수 없었다.
광고 사진 속의 나의 다리는 유리로 만들어 놓은 듯 번쩍이고 매끈했으나, 얼굴과 몸은 내가 아닌 타인의 것이었다. 내 다리를 훔쳐간 모델의 얼굴 표정처럼, 탈의실 전면 거울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입을 조금 벌리고 눈에 힘을 주어 본다. 촬영감독이 원하는 도발적이고 반항아 같은 이미지, 그런 표정 속에는 고혹적인 꽃이 숨어 있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몸을 씻기기 위해 처음 그녀의 치마를 벗기려고 했을 때 나를 바라보던 그녀의 맹렬한 시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한, 어떻게 보면 다소 도발적이기도 했던 그녀의 시선에서 나는 분노나 원망 따위의 감정만을 읽을 수 있었다.
육십년 대 한국 영화의 갑작스런 붐이 세상을 들썩일 때, 시아버지는 영화판을 전전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던졌다. 촬영장소를 섭외하고 영화에 필요한 소품을 챙기고, 배우들의 잔심부름까지 도맡았다. 어느 날 영화감독이 그에게 던져준 수동식 카메라는 그의 생활 태도를 많이 바꾸어 놓았다. “사각 테두리 안에 예쁜 여자 배우, 할머니, 거지 등 온갖 것들이 미추를 가리지 않고 들어오면 말이여, 세상 모든 게 의미 있고 아름답더라 이 말이여.” 결혼 전 남편은 내게 종종 시아버지의 말투를 흉내내어 말하곤 했다. 텔레비전, 옷걸이, 빨랫줄에 걸린 하얀 빨래들과 자고 먹고 싸는 식구들의 모습까지, 시아버지는 전부 카메라 안에 담았다. 그리고 현상한 사진은 스케치북에 일렬로 정성스레 붙였다고 했다.
“아버지의 스케치북을 본 적이 있어요. 한 줄로 쭉 붙어 있던 사진은 여배우 사진이었죠. 상대배우에게 뺨을 맞고 우는 사진들. 그때 빗물에 젖은 듯한 그녀의 비옷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어요. 뺨을 맞고 우는 그녀의 얼굴에 보석이 구르는 듯했어요. 어느 시장판에서 구한 비옷이었다지만, 사진 속의 그것은 정말 고급해 보였구요.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는 아무리 싸구려 비옷을 입어도, 또 거짓말과 도둑질을 일삼아도 모든 게 용서될 것 같았어요.”
아버지의 사진 스케치북이 남편에게 영화나 방송을 향한 꿈을 품게 했다고, 남편은 다소 긴장된 음성으로 덧붙여 말했다. 시아버지는 영화 촬영장에서도 사진기 셔터를 열고 그것의 버튼을 열심히 눌러댔고, 결국 사진기 때문에 영화판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예민한 영화감독의 귀에 사진 찍는 소리는 쥐가 벽을 갉아대는 소리쯤으로 들렸을 것이다. 사진 찍기에 빠져 있던 시아버지 때문에 생계는 시어머니가 책임져야 했다. 도배장이였던 그녀의 다리와 어깨는 수시로 쥐가 내렸고 딱딱하게 굳었다. 벽지에 풀을 바르다 잘못된 손놀림에 풀이 눈으로 튀어, 한동안 실명의 위기 속에 살았던 적도 있었다고 했다. 그때의 흔적으로 그녀의 왼쪽 눈은 언제나 핏발이 서 있다.
“형편이 이렇게까지 어렵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집에 불이 나서 이 지경이 됐지 뭐냐.”
신혼여행을 다녀왔을 때 시어머니가 내게 한탄처럼 말했다. 집에 불을 낸 것은 시아버지였다고 했다. 그리고 사진 찍기에 미쳐 있던 그가 집에 불을 내고 휘적휘적 밖으로 걸어나간 날이, 그의 제삿날이 되었다. 그날 이후로 그는 영원히 실종된 것이다.
시어머니는, 카메라가 많은 곳은 사람 혼을 빼고 거짓 꿈만 잔뜩 불어넣는 곳이라고, 남편에게 다른 직장을 가지라고 틈만 나면 조르고 또 졸랐다. 남편이 일 때문에 이틀 넘게 집에 돌아오지 않으면 그녀는, 전화해 봐라, 어디로 촬영 갔다니, 이번에 돌아오면 내가 그 녀석 다리를 분질러서라도 소품 일 못하게 할 것이니께, 하며 좌불안석하였다. 남편이 사고로 죽었을 때 그녀는, 그가 카메라에 홀린 것이라고, 시아버지가 아들을 데려갔다고 믿었다.
어느새 시어머니의 눈에는 남편을 꾸짖던 엄한 눈빛도, 삶을 억척스럽게 꾸리며 다져진 강인한 눈빛도 사라져 버렸고, 나는 그 흐린 눈을 바라보며 나날이 증오심만 키워간다. 시어머니의 붉은 입술이, 석고상 같은 얼굴이, 썩은 나뭇가지 같은 눈썹이 순식간에 내게 달려들어 내 심장을 물어뜯어 놓을 것만 같기 때문이다. 딸 아이 말로 그녀의 치마 속에 새가 산다고 했다, 몸이 날렵하게 생긴 하얀 새 그녀는 또 어떤 미친 짓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나는 주먹을 단단히 쥐고 명치께를 때린다. 탕탕 속을 울리는 소리가 앞의 전면 거울에 부딪친 듯, 거울 표면이 여리게 떨린다. 공동의 공간에 울리는 소리처럼, 속에서 튀어나오는 소리는 텅 비어 있다.
“갈비 광고가 있다네, TV 쇼핑 광고. 고기 먹어본 지 오래됐는데 배 터지게 먹겠다.”
가슴 모델을 하는 여자가 호들갑을 떨며 탈의실로 들어왔다. 그때 촬영 기사 하나가 나를 부르러 들어왔다. 그가 빤히 보고 있었지만 여자는 맨 가슴을 드러내놓고 태연히 머리를 빗고 있다. 나는 치마를 벗으며 새끼발가락을 보았다. 반창고는 깔끔하게 감겨있었다.
“오늘의 콘셉트는 좀 위험한데… 그래도 할거죠?”
그가 내게 은색 하이힐을 건네며 말했다.
“십 분 뒤에 옥상으로 올라오세요.”
옥상? 그가 나간 뒤 가슴 모델 여자가 입 모양으로 물어왔다. 나는 말 없이 핸드백을 열고 버릇처럼 립스틱을 찾았다. 휴대용 휴지와 다리 마사지 크림, 흰색 반창고, 그리고 작은 동전 지갑이 전부였다. 아무것도 바르지 못한 입술은 바짝 마르고 허연 껍질이 일어났다. 여자는 가슴이 깊이 파인 브이넥 니트를 입고 서둘러 갈비 광고 촬영 장소로 향했다. 그녀가 나가고, 탈의실 화장대 위에 립스틱과 파우더 등 화장품 몇 가지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여자의 것이었다. “화장품이 자꾸 없어져, 이 립스틱도 벌써 네 번째라구, 여기 탈의실에 도둑년이 사는가봐.” 언젠가 여자가 나를 힐끔거리며 했던 말이다. 나는 그녀의 립스틱을 집어 뚜껑을 열었다. 입술이 짙은 와인색이 되자 인상이 또렷해 보인다. 눈을 크게 뜨고 다리에 힘을 준다. 나는 핸드백 속에 립스틱을 넣고 잠깐 머뭇거리다 재빨리 파우더도 넣어 버린다.
“옥상 난간 위에 올라가서 다리를 조금 벌리고 서야 하는데. 거 있잖아요, 슈퍼맨이나 원더우먼 포즈… 할 수 있죠?”
촬영감독은 그래픽으로 처리할 수도 있지만 현장감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한차례 바람이 불고 조명을 갓 모양으로 싸고 있던 알루미늄 합판이 심하게 흔들렸다.
“요즘 수금이 안돼서 말이지, 이렇게 불경기니 어떻게 사진을 찍으란 말이야.”
그는 말끝에 투정부리듯 덧붙였다. 감독의 잠바에 달린 모자는 못 살겠다는 듯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걸치고 있던 웃옷을 벗으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남방 밑으로 길다란 실 하나가 장딴지를 간질인다. 실의 끝을 야무지게 끊어 놓고 보니 스타킹 옆 솔기가 조금 터져 있었다. 은빛 반짝이가 섞여 있는 스타킹은 라스베이거스 쇼걸들이 신는 것과 흡사하다. 비싸 보였다. 스타킹이 두꺼워 다행이라 생각했지만, 솔기가 전부 터져 버리면? 혹 새끼발가락에서 피가 새어 나와 스타킹을 적시는 건 아닌지, 소품을 망가트리면 오늘 수당에서 그만큼이 빠져나간다. 하이힐이 발을 너무 조이고 있다.
폭이 삼십 센티미터 남짓인 옥상 난간을 넘어 아래를 바라보았다. 이십층 높이에서 보이는 도로는 납작 붓으로 그은 선 같다. 그 위로 차들이 불을 밝히고 지나갔다. 남방을 헤집고 부는 바람 때문에, 나의 상체는 기형아처럼 부풀었다. 뿌유스름한 대기에 붉은빛이 돌고 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당당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배랑 다리에 힘을 팍 주고 허리 똑바로 펴고”
두 명의 스태프가 나를 부축해 옥상 난간 위로 올렸다. 순간 선뜩, 조명 불빛이 눈을 찔러와 휘뚝거리자 모여 있던 사람들 모두 짧은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내게 달려오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시선을 멀리 던지고 다리에 힘을 주어 꼿꼿이 섰다. 아무런 안전장치 없이 옥상 난간 위로 오르는 사람은 죽으려는 사람, 아니면 정신병자. 입가로 웃음이 번진다. 연한 다홍빛을 띠고 있던 상점들의 간판 불빛은 서서히 붉어지고, 반딧불처럼 반짝이던 빌딩 불빛은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이제 곧 사람들은 따뜻한 저녁이 준비되어 있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춤을 추고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으로 모여들 것이다. 빌딩 앞을 지나던 사람들 몇몇이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나를 올려다본다. 맞은편 빌딩 창에서 하얀 와이셔츠를 입은 사내가 넥타이를 풀고 음란한 태도를 취하며 내게 손짓한다. 나는 모른 척, 정면을 똑바로 쳐다보고 다리에 힘을 주었다. 바람은 끊임없이 다리를 휘감는다. 얼음이 된 다리가 부서지는 상상을 해 본다. 새끼발톱에서부터 금이 가기 시작해 쩍 갈라지는 상상. 어딘가에서 날아온 광고 전단지가 위로 위로 날아오르고 있다. 줄 달린 인형이 춤을 추듯이, 할랑할랑 위로 올랐다.
그것은 내 발치까지 올라왔다가 다시 아래로 내려가고 또 위로 오르다, 끝없이 아래로 추락했다. 새 그 순간 시어머니 치마 속에 산다는 새가 떠올랐다. 그녀의 치마를 걷으면 새가 날아갈까. 돌연, 한쪽 다리에 과도한 힘이 들어가고 저리다. 새끼발톱에서부터 시작된 아픔이 핏줄을 타고 심장으로 전달된 듯하다. 맥박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펄럭이는 남방 좀 잡고 있어요 좋아요, 조금만 참읍시다!”
이번 광고 사진에는 내 다리만이 실린다고, 촬영감독이 내게 격려하듯 말했다. 나의 몸은 지워지겠지만, 대신 다른 모델의 몸이 나를 대신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통증이 느껴지는 다리에 더욱 힘을 주고 이를 꼭 문다. 내 주변에 모여있는 모든 이들의 눈이 내게로, 내 다리로 집중되어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좋다. 사람들은 멋있는 다리를 뽑아내기 위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나는 그들에게 최고가 된다. 먼지 날리는 방, 시어머니의 화장, 나날이 모질어져 가는 딸아이의 성격, 이 모든 것은 필름 감기듯 빠르게 스쳐가고 나는 옥상 난간 위에 새처럼 사뿐히 서 있는 것이다. 도시에 나타난 슈퍼맨처럼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서서 감독이 좋아하는 도발적인 미소, 반항아 같은 미소를 지어본다.
촬영은 세 시간 만에 끝났다. 나는 촬영기사가 준 돈 봉투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흰 봉투 속에는 수표 한 장과 만 원짜리 열 장이 들어 있었다. 감독이 돈을 더 넣은 것이다. 시종 떨리는 다리 때문에 도저히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나는 세면대 위에 걸터앉아 손가락에 침을 묻혀 봉투 속의 돈을 다시 세어보고는 핸드백 속에 넣었다. 가슴 모델 여자의 립스틱과 파우더가 잠깐 손에 잡힌다. 핸드백을 한쪽에 챙겨놓고, 나는 가져온 풀을 꺼내 화장실 거울 앞에 놓았다. 스타킹을 조심스레 벗었다.
스타킹 끝이 새끼발가락에 붙어, 천천히 발가락에서 떼어내야 했다. 죽은 발톱은 얌전히 제자리에 있으나 그 주변에는 피가 고여 있다. 붉은 피와 퍼런 발톱, 그 색의 대조가 눈을 피곤하게 한다. 나는 새 반창고로 새끼발가락을 감아놓고, 벗어 놓은 스타킹을 집어들었다. 그때였다. 심하게 구역질을 해대는 소리가 화장실 어느 칸에서 흘러나왔다. 변기 물이 내려가고 다시 구토 소리가 화장실을 울렸다. 그리고 조용하다. 나는 토악질 소리에 멈칫대다, 서둘러 풀 뚜껑을 열고 스타킹의 터진 솔기 부위에 풀칠을 한다. 이렇게 해 놓으면 솔기는 더 이상 터지지 않을 것이다.
풀칠이 끝나고, 스타킹 끝에 묻은 핏자국을 지우기 위해 수도꼭지를 틀었을 때였다. 무언가를 잔뜩 변기 속에 쏟아 버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또다시 심한 구역질 소리가 이어졌다. 나는 물이 뚝뚝 떨어지는 스타킹을 꼭 움켜쥐고 빠끔히 열린 화장실 문을 밀었다. 순간 나의 기척에 놀란 여자가 입가를 훔치며 나를 돌아보았다. 가슴 모델 여자, 그녀였다. 여자의 가슴께에 묻어 있는 얼룩은 갈비 양념인 듯했다. 미처 닦아내지 못한 것이 뺨에도 묻어 있었다.
“먹은 걸 다 토해 냈어. 속상해 죽겠네.”
여자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옷소매로 닦으며 울먹였다. 나는 눈물 고인 그녀의 눈에서 시어머니의 눈을 보았다. 달걀흰자처럼 풀어진 시어머니의 눈, 핏발이 가시덤불처럼 일어나 있는 그녀의 눈. 나는 다리에 맥이 풀려 자리에 주저앉아 버린다. 잠시 잊고 있었던 새끼발톱의 통증이 눈앞을 어질어질하게 한다.
저녁 여덟 시, 나는 늦은 저녁을 준비한다. 몽둥이처럼 생긴 살색 소시지의 비닐을 벗기고 달걀을 풀었다. 소시지를 도마에 올려놓으니 마치 사람의 팔뚝처럼 보인다. 정화는 달걀옷을 입은 소시지 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아이는 남편의 식성을 많이 닮았다. 아무리 새로운 반찬을 잔뜩 올려놓아도 그의 젓가락은 소시지만을 찾았다. “다른 반찬도 먹어야지” 소시지를 집는 아이의 젓가락을 뺏어 본 적도 있지만 소용없었다. 이런 아이의 식성을 싫어하면서도, 나는 늘 소시지에 달걀 물을 입혀 정성스레 튀겨낸다.
시어머니는 사각거울 앞에서 가슴 모델 여자의 화장품으로 화장을 하고 있다. 정화는 텔레비전 앞에 바짝 붙어 앉아 있다. 세제를 풀어놓은 대야에 정화의 양말과 시어머니의 양말이 시커먼 발바닥을 보이고 있다. 그 밑에 방을 훔친 걸레가 있을 것이다. 나는 돌아오자마자 방 청소를 했고, 잠겨 있는 방안 창문에 뿌연 비닐을 덧대었다. 창틈을 비집고 들어온 바람으로 비닐은 배를 불룩 내밀었다. 불투명한 비닐 때문인지, 마치 창고 속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었다. 밖의 온도에 민감한 고기나 야채류를 저장해 놓은 창고.
소시지를 썰기 시작했다. 칼에 묻은 김치 국물이 소시지 표면에 그대로 스며든다. 정화가 텔레비전 볼륨을 높인다. “어제 새벽 강동구 ××동 육교 밑에서 육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노인의 변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밤 기온이 급격히 내려가는 바람에 노인은 동사한 것으로 추정….” 나는 썰기를 멈추고 텔레비전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용의자로 지목된 박씨는 노인의 아들로, 극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다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이어 채널 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육점의 고기 써는 기계처럼, 나는 소시지를 최대한 얇게 썰기 시작했다. 소시지가 매번 칼날에 붙어 잘 떨어지지 않는다.
뚝배기에 담은 김치찌개는 여전히 끓고 있었다. 얇게 썬 소시지는 몸을 푸들푸들 떨며 한껏 쪼그라들었다. 찌개 냄새와 분가루 냄새가 섞여, 순간 밥맛이 싹 가신다. 나는 시어머니의 석고상 같은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녀 옆으로 사각거울이 누워있었다. 거울은 형광등 불빛을 되쏘고 있다. 방에서 유일하게 말끔하고 번쩍이는 물건이다. 그녀의 볼에서 날리는 분가루가 밥상 위로 고스란히 떨어지는 듯했다. 나는 겨우겨우 숟가락을 든다. 그때, 달걀옷을 입은 소시지를 입으로 가져가는 정화를 보고, 들었던 숟가락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나는 아이의 입술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칠해 줬어.”
정화의 와인 빛 입술이 오물거렸다. 시어머니 입술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이의 입술을 노려보았다. 아이는 내가 화가 났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입으로 가져갈 다음 반찬을 눈으로 고르고 있다. 밥을 먹고 보자고 다짐하며 묵묵히 숟가락을 들었으나 점점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상 아래 숨어 있는 아이의 다리를 거칠게 빼냈다. 상이 흔들리고 콩나물을 무쳐놓은 그릇이 조금 밀려나갔다. 무릎에서 반창고가 떨어져 나간 지 오래된 듯 보였다. 피가 까맣게 엉겨 붙어 있는 무릎을 보니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 나는 정화에게서 숟가락을 뺏었다. 아이의 얼굴이 조그맣게 얼어붙는다.
“내가 상처에 손대지 말라고 했잖아”
아이는 내 눈을 쳐다볼 뿐 조용하다. 그의 작은 얼굴에 입술은 붉은 등을 가진 딱정벌레 같다. 아이는 나의 시선을 무시하고 손으로 소시지를 집어 들었다. 나는 아이의 뺨을 갈겼다. “너 왜 그래” 나는 아이의 등을, 옆구리를, 엉덩이를 사정없이 때렸다. “너 대체 왜 그래, 왜 그러는 거니?” 시어머니도 정화도 모두, 남편이 일하던 방송국 소품실에 던져진 꼭두각시 인형, 아니 납량특집 드라마를 위해 제작된 괴물 같다. 지난날 꾸었던 악몽이 되살아난다. 방송국 소품으로 전락한 그가 맞이한 최후. 나는 몸을 떨었다.
구역질이 치밀었다. 숨이 멎고 눈앞이 캄캄했다. 나는 매질을 멈출 수 없었다. 아이는 몸에 빳빳하게 힘을 주고 있었다. 나는 엉엉, 울기 위해 입을 벌렸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고 마른 소리만 꺽꺽, 튀어나왔다. 그때 나의 매질에 반항하던 아이의 발이 상 다리를 건드렸다. 그 순간 상이 엎어지고, 뚝배기가 사각거울 위로 떨어졌다. 거울이 깨졌다. 시어머니 치마에 뚝배기에서 튀어 오른 주황색 찌개국물과 김치, 그리고 온갖 반찬들이 뒤범벅되어 있었다.
느닷없이 시어머니가 내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내 손에서 벗어난 아이는 방구석으로 도망가 몸을 움츠렸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시어머니와 나의 몸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이년, 내 거울 물어내! 나쁜 년 내 거울 물어내!”
머리가죽이 벗겨질 듯했다. 시어머니의 손 힘은 갈수록 세졌다. 나는 입에서 소용돌이처럼 맴도는 비명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순간, 저녁을 준비하며 들었던 뉴스 내용이 떠오른다. 생활고에 시달린 박씨, 그가 노모를 업어다 아무도 없는 육교 밑에 버린다. 현대판 고려장, 노모를 버리고 도망가는 얼굴은 그가 아닌 나인가. 몸에 열이 오르고 다리와 팔에 바짝 힘을 주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머리를 잡힌 채 그녀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땀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은 화장이 심하게 번져 부패한 쓰레기 같다. 오늘 촬영장 화장실에서 보았던 가슴 모델 여자의 얼굴이 시어머니의 얼굴 위로 떠오른다. 여자가 꾸역꾸역 삼킨 갈비는 토사물이 되어 입으로 다시 넘어오고, 그것은 턱과 목을 타고 흘러내려 옷 속으로 파고들었다. 여자의 자신만만한 가슴은 토사물에 젖어 역겨운 냄새를 풍겼다. 치밀어 오르는 구역질 때문에 내 비명 소리는 중간중간 끊어진다. 정화는 수정처럼 차게 빛나는 눈으로, 시어머니와 내가 동물처럼 뒤엉켜 서로를 할퀴고 물어뜯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보고 있을 터였다.
날카로운 이로 먹잇감을 물고 그것이 죽을 때까지 절대 입에서 놓지 않는 상어처럼, 싸움은 어느 한쪽이 고통스럽게 무릎을 꿇어야 끝날 것이다. 아이의 시선에 내 힘이 한풀 꺾인 사이, 시어머니의 무릎이 새끼발가락을 쿡 찍어누른다. 별안간 정신이 혼미해지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나는 숨을 거칠게 몰아 쉬며 있는 힘껏 그녀를 밀쳤다. 그녀는 방바닥에 엉덩이를 찧고 널브러졌다. 양말에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있다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치마가 훌러덩 뒤집어져 있고 오래된 나무토막 같은 허벅지가 드러났고 그 허벅지 안쪽에 살이, 붉은색, 분홍색, 흰색의 살이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로 엉겨있었다. 심하게 화상 입은 자리. 크고 무거운 무언가에 짓이겨진 듯한 살은 전체적으로 불그스름했다. 그것은 트럭에 깔려 분홍색 속살과 붉은 내장을 보이는, 몸이 터져 버린 쥐새끼처럼 보였다.
“삼일 출장 도배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말이다, 니 시아버지가 방안에 도사처럼 앉아 카메라 렌즈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지 않겠냐. 카메라 렌즈에 눈을 박고 방안 이곳저곳을 미친 듯이 휘 둘러보더라. 민식이 말로는 나 없는 사이 아부지가 방안에 틀어박혀 물만 먹고 카메라만 만졌다고 하길래, 나는 서둘러 그 양반 밥상을 차렸제. 상을 들고 방에 들어서니 아니 글쎄 그 양반이 벽지를 쭉쭉 찢어내고 있지 않겠냐. 내가 놀라 그 양반 팔 다리를 잡고 말렸는데, 힘이 어찌나 센지 내가 나동그라져 벽에 머리를 박았다. 한참을 까무러쳐 있다가 깨보니 방에 불길이 넘실대는데, 니 시아버지라는 사람이 말이다… 그 불길을 카메라로 찍고 있지 않겠냐… 밖에서는 동네 사람들이 난리 났다고 아우성치고… 내가 그 양반에게 겨우 말을 꺼냈제, 살려달라고. 근데 말이다, 그 양반이 슬슬 뒷걸음치더니 방을 나가버렸제. 그리고 이날 이때까장 연락이 없다. 그렇게 미쳐서 나간 지 한 이십년 됐는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날, 시어머니는 내 손을 잡고 말했다. 그녀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했던 말이 왜 이제야 떠올랐을까.
“동네 아저씨가 그 불구덩이 속에서 어머니를 가까스로 업고 나왔지. 어머니 치마에 불이 붙었어. 그때 나는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줄로만 알았다구.”
그때 남편의 눈에 가득 고여오던 눈물을 보았고, 나도 조금 울었다.
화상을 입은 그녀의 살은 사람의 살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 불그레한 상처가 다소 하얗고 번쩍이는 것은 분가루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다리 사이에 사각거울을 끌어다 놓고 분첩 든 손을 치마 속에 집어넣어 상처에 분가루를 입힌 것이었다. 딸아이가 말한 새가 저것이었을까. 상처는 허벅지에 배추 잎사귀 모양으로 퍼져있고 또 허벅지 안쪽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져, 마치 음부에서 빠져나온 날렵한 비행기 모양을 하고 있었다.
뽀얀 분가루를 입은 상처는, 날기 위해 막 날개를 뻗은 새처럼 보였다. 분가루로 흉터를 가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시어머니 다리 밑으로 흑백사진 한 장이 떨어져 있다. 분명 그녀와 몸싸움을 할 때 그녀의 치마 속에서 떨어진 것일 터였다. 사진은, 화단에서 한복을 차려 입고 곱게 웃고 있는 시어머니였다. 아마도 시아버지가 찍어 주었을 것이다. 흑백사진 위로 김치 국물이 점점이 떨어져 있다. 사진 속의 인물처럼 돌아가기 위해 입술을 칠하고 눈썹을 검게 만들고 허벅지 흉터에 분가루를 바른 것일까. 시어머니는 태엽 풀린 인형처럼 맥없이 앉아있었다. 땀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은 화장이 번져, 마치 비 맞은 광대처럼 우스꽝스럽고도 슬퍼 보였다.
시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얼굴로 깨진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이 깨졌구나.” 그녀의 입에서 우물우물 튀어나온 소리는 분명 그랬다. 치매를 앓기 전의 목소리, 졸지에 아들을 잃고 화장터에 맥없이 앉아 내게 이런저런 위로의 말을 해주던 그때의 목소리. 이 순간 그녀의 정신은 온전하게 돌아온 듯했고, 나의 얼굴은 점점 뻘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그녀에게 어서 다가가 깨진 거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하려 했지만, 온몸에 쥐가 내린 듯 전혀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다리를 가리기 위해 치마를 연신 아래로 잡아당기지만, 자꾸만 헛손질이었다. 치마 내리기를 포기한 그녀가 깨진 거울 쪽으로 손을 대려 하자,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정화가 재빨리 달려 나와 그녀의 손을 잡는다.
“할머니, 다쳐 무지 아플 거란 말이야.”
마치 피카소의 추상화처럼, 깨진 거울은 방안의 모든 것을 잘게 조각 내 놓았다. 오늘 옥상 난간 위에 올라 내려다본 도로, 자동차, 사람들, 작은 상점들이 떠오른다. 중심을 못 잡아 잠시 아찔했을 때, 순식간에 세상의 모든 풍경은 조각났다. 그때, 위로 춤을 추듯 날아오르던 광고 전단지. 순간 그 위에 몸을 싣고 싶은 충동으로 나의 다리는 움칠거렸다.
정화 무릎의 딱지는 또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무릎에서 실같이 흐른 피는 이미 멈춰 굳어 있었다. 매번 딱지가 억지로 뜯겨나가는 무릎에는 곧 흉터가 생길 것이다. 아이의 무릎에 평생 남아 있을, 지독하게 질긴 흉터. 나는 그제야 내 새끼발톱이 심하게 따끔거린다는 것을 깨닫는다. 발톱이 빠졌을까. 나는 양말을 벗는다. 새끼발톱은 납빛으로 죽어있고 그 주변에 피가 가득하다. 죽은 발톱은 살에 박힌 듯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