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나선형 계단
밤의 나선형 계단
전경린
어둑한 현관 우편함 아래에는 밟힌 광고 전단들이 흩어져 있다. 자전거가 세 대나 세워져 있어서 우편함 속에 간신히 손을 집어넣고 휘젓듯이 우편물을 꺼낸다. 그 과정에 불안하게 서있던 자전거의 핸들이 획 돌아가 손잡이가 여자애의 관자놀이를 친다. 여자애는 우편물을 쥔 한쪽 손을 앞으로 내뻗은 채 두 눈을 질끈 감는다. 가끔 아무 이유도 없이 이런 식의 따귀를 맞을 때가 있다. 통증이 지나가자 여자애는 눈을 뜨고 다른 사람들처럼 광고 전달들을 바닥에 흘려 버린다. 남은 우편물은 아파트 관리비와 의료보험비 가스비 청구서들이다. 아파트 관리비와 사스비는 독촉장도 함께 왔다. 아파트 관리비는 2개월 동안 밀리면 정문 앞 게시판에 공고하고 3개월까지 밀리면 전기와 수도를 끊는다고 한다. 여자애는 청구서들을 들고 더러운 계단을 오른다.
3층에는 오늘도 빨간색 코르덴 원피스를 입고 손에는 비닐백을 든 아이가 커다란 여자 슬리퍼에 발을 걸고 서 있다. 비닐백 속에는 분홍색 피부가 드러난 발가벗은 바비 인형과 그녀의 드레스들과 플라스틱 트렁크 그리고 올이 풀렸을 스타킹이 들어 있다. 늦겨울 공기에 드러난 발가락이 까치밥 열매처럼 붉다. 이 시간에 계집아이의 엄마는 늘 낮잠을 자기라도 하는 걸까. 그 애는 여자애가 학교에서 돌아올 쯤에 늘 문 앞에 서 있다. 어디로 가고 싶은 것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이곳엔 위에도 아래에도 계단들뿐이다. 그 아이도 고양이 메메처럼 계단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겨우 네 살 정도이니 당연하다.
'안녕 빨간 원피스.'
여자애가 인사를 해도 아직 세상의 빛을 본 적 없는 것 같은 조그맣고 여린 애는 깊은 물 속의 생선 같은 눈으로 말끄러미 보기만 한다. 아이는 오늘도 계단을 내려가지 못할 것이다. 이 아파트는 너무 낡았고 5층이 마지막 층이니 엘리베이터가 없다. 계단 바닥은 무수한 발자국들이 실어 온 흙먼지가 켜켜이 덮혀 바탕색을 분간할 수 없고 문들의 손잡이 근처와 발이 닿는 아래 부분은 거뭇한 때로 얼룩이 져 있다. 그리고 벽에는 중국집 치킨집 열쇠 수리 집 막힌 데 뚫는 집 맛사지 집 특수 영양 집 등등의 전화번호 스티커가 덕지덕지 붙었다. 그리고 계단 벽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마구 비벼 댄 신발 자국들이 나있다. 어쩌면 많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이 열리지 않는 문 때문에 계단 벽을 찼거나 한쪽 다리를 벽에 올리고 짜증스럽게 비벼 댄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 층에는 옥상으로 올라가는 철제 사다리가 놓여 있고 그 사다리를 타고 오른 사람 몸 하나가 드나들 만한 둥근 구멍이 천장에 나 있다. 여자애는 그 철제 사다리 곁에서 스웨터의 목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감추었던 목걸이 열쇠를 꺼낸다.
여자애는 플라스틱 우유병들을 담은 비닐 봉투가 우유병 몇 개를 도로 개어 낸 채 쓰러져 있고 신발들이 뒤집어진 채 나뒹구는 어수선한 현관을 들어서면서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다. 식탁 위엔 엎지르진 우유 속에 씨리얼이 엉켜 붙어 있고 우유를 마신 컵 두 개와 아침에 먹다 남기고 간 씨리얼 그릇이 바짝 마르는 중이다. 등받이에 먼지가 낀 식탁 의자들은 한쪽으로 불편하게 몰린 채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여자애는 의자들을 떼내어 간격을 맞추어 제자리에 놓는다. 안방에서 의자들을 떼내어 간격을 맞추어 제자리에 놓는다. 안방에서 메메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늘어지게 하고 첫 음을 떼는 듯 뒷발을 절름거리며 태만하게 걸어나온다. 메메는 여자애의 벌리고 선 다리 사이를 몇 번이나 지나며 복숭아뼈 부분에 제 단단한 머리와 귀를 힘껏 스친다. 그리고 가스렌지 대 아래에 놓인 밥그릇 앞으로 가서 그릇과 여자애의 얼굴을 번갈아 훔쳐보며 탐욕스럽게 운다. 나오옹 이냐오옹 다시 물을 빼내 불어난 멸치 몇 마리가 올려진 밥은 그대로 굳어 있다. 사사는 기름이 가득한 참치 캔만을 먹는다. 여자애는 모르는 척한다. 이젠 고양이에게 줄 참치 통조림은 더 이상 없다. 여자애가 걸음을 옮겨 딛자 메메는 야생 짐승처럼 꼬리를 꼿꼿하게 치켜세우고 발톱을 드러내더니 순식간에 여자애의 발등에 이빨을 박는다. 여자애는 가느다란 비명을 지른다. 참치가 떨어진 일주일여 사이에 메메는 점점 사나워진다. 메메는 이제 여자애와 약간 거리를 두고 선 채 얼굴을 올려다보며 원망스럽게 운다. 메메의 입이 벌어질 때마다 커다란 두 눈이 사악하게 치켜 올라가고 흰 이빨이 박힌 새빨간 입 안이 활짝 드러난다. 고양이의 입안을 들여다보던 여자애의 두 눈에 의심과 두려움이 짙게 어린다.
거실 구석에는 아직도 선풍기가 있다. 여름이 지난 지 여섯 달이나 지나 지금은 2월이다. 겨울에 선풍기 살과 파란 날개를 보는 것은 을씨년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선풍기 살과 세 개의 날개가 가슴속에 차가운 바람을 불러일으킨다. 전에는 계절이 바뀌면 아빠나 엄마 중에는 선풍기를 비닐 커버로 뒤집어씌워 창고에 정리해 넣었다. 그러나 지금 엄마와 아빠는 모든 것을 방치하고 있다.
'은행 잔고가 바닥났어.'
엄마는 한 달 전에 그렇게 중얼거렸다. 작년에 아빠가 회사에서 해고되었다. 아빠는 퇴직금으로 조그만 찻집을 시작했는데 아빠뿐 아니라 엄마까지도 밤낮없이 매달리는데도 형편없는 모양이다. 빛까지 얻었다는데... 지난 달에는 아빠가 엄마 모르게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받아 쓴 사실이 탄로나 두 사람은 근 일주일 동안 마주치기만 하면 언성을 높여 싸웠다. 제대로 다 받아 내지도 못한 퇴직금으로는 가게를 차리기에 부족하자 아빠는 은행 빚을 내어 가게 자금에 넣었고 일부는 자기 주머니에 넣어 다니며 그 동안 진 술빚도 청산하고 이런 저런 밀린 돈도 갚으며 써버린 모양이었다. 빌린 돈을 어느 정도 해결해 주지 않으면 집이 넘어가게 되니 집을 팔아서 갚던지 가게를 넘기던지 해야 한다고 엄마가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며칠 뒤 엄마는 외박을 했다. 아빠는 그기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요즘 두 사람은 서로 전혀 모르는 사람들처럼 군다. 여자애는 우편함에서 빼낸 청구서들을 서류 바구니 속에 넣는다. 거기엔 다른 청구서들도 쌓여 있다. 동생의 유치원 회비 봉투에는 2학기 교통비와 점심값 종일반 회비와 유치원 회비 총 22만 원이라고 계산된 노란색 쪽지가 독촉을 의미하며 따로 붙어 있다.
어제는 가게가 쉬는 일요일이었고 엄마는 좀 울었다. 꼭 빚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친구들과 낚시를 가버렸고 여자애와 동생은 아무 곳에도 가지 않고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엄마는 10시에 일어나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아무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엄마는 이번엔 삐삐를 쳤다. 전화를 기다리다가 엄마는 무료해서 비디오를 틀었다. 엄마는 지난해부터 책도 읽지 않고 텔레비전 뉴스도 보지 않고 신문도 읽지 않는다. 다만 어쩌다 틈이 나면 늘 똑같은 영화 한 편을 반복해서 본다.
영화 속에는 뚱뚱한 여자가 마술쇼를 한다. 공기 속 어딘가에서 비스킷을 꺼내고 귀 뒤에서 계란을 꺼내며 녹색 나뭇가지에 주전자로 물을 부어 커다랗고 화려한 꽃을 피운다. 여자애는 처음 영화 속의 여자를 언 듯 보았을 때 혼란스러웠다. 엄마와 아빠와 온천에 목욕하러 갔다가 돌아올 때 가끔 들러 저녁을 먹었던 길가의 오리 구이집에서 서빙을 하던 여자였기 때문이다. 뚱뚱하고 살결이 지나치게 희고 단정하게 뒤로 틀어 올린 머리와 둥글고 가느다란 눈썹과 아이 같은 동그란 눈. 뚱뚱한 여자는 유황 오리 고기를 가위로 잘라 주고 술이나 음료수를 가져다 주고 마지막엔 커피와 민트 사탕을 주었다. 그 여자를 본 지도 일 년이나 되었다. 엄마는 온천 목욕을 유난히 좋아해서 한 달에 두어 번씩은 꼭 갔었는데 어느 사이 일 년이나 가지 못한 채 시간이 흐른 것이었다.
화면 속에는 뚱뚱한 여자가 새하얀 원피스를 입고 다시 사막 카페로 돌아왔다. 더욱 화려한 본격 마술쇼가 펼쳐지고 서른일곱 대의 트럭이 카페 마당에 들어찬다. 카페 주인 여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활짝 열린 꽃잎처럼 관대해진 얼굴에는 잔잔한 미소가 흐른다. 미소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의 무게를 머리에 이고도 꿈결처럼 가볍게 걷는 법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리고 거센 모래 바람이 공중에 가득히 날리는 어느 날 늙은 화가가 꽃다발을 들고 마당을 가로질러 와 뚱뚱한 여자에게 청혼을 한다. 영화 속의 사람들 모두가 독한 꿈에 취한 것만 같다. 삶은 그저 도취이며 마술이라는 건가. 두려운 것은 한 존재가 사라진 빈 자리 하나의 세월이 흩어진 빈 자국 마술이 끝난 뒤의 황량한 침묵뿐 마술이 있는 동안은 아무도 슬퍼하지 않다.
비디오를 보는 도중에 엄마는 두 번 더 삐삐를 쳤지만 전화는 한번도 오지 않았다. 엄마는 갑자기 비디오를 끄고 방에 들어갔다. 엄마는 그 후 하루 종일 방안에 틀여 박혀 있었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지만 피자 배달원이 왔을 때 지갑을 들고 나온 엄마의 눈과 코끝이 붉은 것을 여자애는 보았다. 엄마는 아주 커다란 치즈 크리스트 피자를 받아 상자째로 여자애에게 내밀었고 여자에와 어린 남동생은 하루 종일 피자와 콜라만 먹었다. 나중에 동생은 배가 아프다고 칭얼댔다. 여자애는 속임수로 엄마의 샛노란 비타민제를 배 아픈 데 먹는 약이라고 먹었다. 동생은 이내 설사를 했고 그 뒤에는 완전히 나았다고 말했다.
집 바깥에 엄마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여자애는 지난 해 겨울에 그 사실을 눈치챘다. 그 날은 눈이 내려싸. 엄마는 전화를 받았고 화장을 정성스럽게 한 후 거실과 식탁 사이를 오가며 초조하게 시계를 보다가 홀연히 나갔다. 유난히 검게 칠한 엄마의 검은 보라빛 입술이 인상적이었다. 엄마는 꼭 30만에 다시 돌아왔다. 돌아온 엄마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여자에는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보라색 립스틱이 다 어디로 갔어.'
엄마의 머리카락은 헝클어져 지푸라기가 묻었고 짙은 눈화장은 여전한데 입술 화장은 완전히 사라져 얼굴이 환자처럼 창백했다. 엄마는 천천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엄마의 두툼한 조끼의 어깨에서 마른 풀잎이 하나 떨어졌다. 거울에 비친 엄마의 얼굴이 왈칵 달아올랐다.
'엄마 눈을 먹고 왔단다.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눈을 받아먹었지. 그리고 눈을 주먹만 하게 뭉쳐서 먹었고 나뭇가지에 내린 눈 위에 입술을 파묻고 먹었어. 그랬더니 눈이 엄마 입술을 다 지워 버린 거야.'
여자애는 열두 살이다. 그때 여자애는 어렴풋이 알아챘다. 엄마가 그 잠깐 사이에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을. 그는 엄마를 사랑하는 남자라는 것을... 밤이 되도록 아빠는 돌아오지 않았고 엄마는 방에서 나오지 않고 이불을 코끝까지 덮어쓰고 계속 잤다. 은행 돈을 해결하지 못한 채 한사코 잠을 자는 엄마는 어떤 꿈을 꾸는 것일까 영화 속의 뚱뚱한 여자처럼 잠자는 동안 엄마도 마술을 배우고 있을까 지루한 녹색의 나뭇가지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종이꽃을 활짝활짝 피우는 마술사가 되어 이 현실을 잊은 채 지나가 버리고 싶을까 엄마가 삐삐를 쳤는데도 전화는 하루 종일 오지 않았다. 여자애는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 속 어딘가에 엄마의 종이꽃이 있을 것만 같았다. 아무 소용도 없고 향기도 없는 속임수에 불과하다 해도 엄마는 그것에 의지해 장애물 경주 같은 생을 가로질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엄마의 방 침대 머리에는 그림 액자가 두 개 걸려 있다. 한 개는 흰 석고상과 빨간 고무장갑이 있는 그림이다. 단지 그뿐이다. 엄마는 왜 그 그림을 액자에 넣었을까 그리고 다른 한 장은 바닷가 풍경이다. 커다란 고래가 바다에 떠있고 그 속에 줄무늬 셔츠를 입고 수염을 기른 남자가 팔을 괴고 옆으로 누워 자고 있다. 고래 뒤에는 다섯 개의 돛을 단 배가 빠르게 지나가고 있고 해변에는 두 개의 이층집이 있다. 이층집 곁에는 실버들 나무 몇 그루와 물렁하게 감은 털실 뭉치같이 둥글고 부숭부숭한 잎이 달린 나무들이 있다. 그 그림 속의 남자는 틀림없이 아빠 같다. 아빠는 집을 비우고 나가 고래 뱃속에서 옆으로 누워 편안하게 잠이 든 것이다. 그리고 흰 석고상의 여인은 유난히 창백한 얼굴을 가진 엄마 같다. 그리고 빨간 고무장갑... 엄마는 고무 장갑 끼는 것을 싫어한다. 고무 장갑을 끼어야 하느너 삶을 모욕으로 느낀다. 그렇게 질기게 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났다고 말한 사람이다. 엄마는 가게에서 설거지를 하면서도 고무 장갑을 끼지 않는다. 손에 습진이 생겼는데도 말이다. 엄마는 고무장갑처럼 질겨질 바에는 지루한 녹색의 나뭇가지에 주전자의 물을 부어 종이꽃을 만들어 낼 사람이다.
여자애는 식탁 위를 치운다. 두 개의 잔과 씨리얼이 말라붙은 그릇을 싱크대 속에 담그고 행주로 우유 자국이 눌러 붙은 테이블을 닦는다. 그리고 빗자루로 마루를 쓴다. 찬장 위에 진열장 위에 가느다란 여자의 모습인 흑단 장식물들 위에 진열장 위에 가느다란 여자의 모습인 흑단 장식물들 위에 마른 먼지가 덮여 있다. 여자애는 먼지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먼지를 닦아 내는 행위를 이해할 수도 없다. 아무리 닦는다 해도 끊임없이 쌓이고 무한히 계속해서 쌓일 먼지의 힘을 생각하면 여자애는 일찌감치 절망적인 기분이 된다. 어른들은 먼지를 혐오하고 먼지를 털고 닦아 내고 떠도는 먼지가 없어야 안심한다. 여자애도 언젠가는 먼지를 털어 내는 법을 배우고 그것에 몰두하게 되겠지만 아직은 먼지에 대해 무관심하다. 여자애는 그저 바닥을 쓸고 닦는 정도일 뿐인 청소를 한다. 베란다 화분들에게 물도 준다. 붉은 꽃이 피는 장미꽃 화분 베고니아 화분 파키라 화분 선인장 화분들 조그만 난화분들 그리고 탑처럼 쟁여져 있는 텅 빈 화분들... 나무와 꽃들에게 물을 주면 보그르르 한숨 소리를 내며 스며든다. 그런 때면 이상하게도 그것들이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기분이 든다. 엄마가 저희를 찾아 주기를 기다리며 조금씩 죽어간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엄마는 화초가 잘 되는 사람이라고 한다. 엄마의 것이 되면 어떤 까다로운 식물도 죽지 않고 꽃을 피운다. 그래서 잘 아는 사람들은 죽어 가는 화분을 엄마에게 맡기거나 선물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다. 지난 몇 달 사이에 화분들이 줄지어 죽어 나갔다. 하긴 그건 엄마 탓이 아니다. 엄마의 신비한 힘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화분과 엄마 사이에 무언가 가 끼어들어 화분들이 엄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지가 너무 오래된 탓이다.
화분에 물 주기와 생수 떠오기는 이제 여자애의 몫이 되었다. 현관의 신발 정리는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의 일이다. 신발이 함부로 뒤엉켜 있어도 다른 사람이 정돈해 버리면 그 애는 몹시 화를 내며 장난감을 내던진다. 동생은 요즘 눈물에 대해 연구중이다. 기쁨의 눈물 슬픔의 눈물 사랑의 눈물 이별의 눈물 분노의 눈물 다짐의 눈물... 그 애는 사람이 기뼈도 눈물을 흘린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저는 누군가에게 얻어맞았을 때만 우는데 세상에 그렇게도 다양한 눈물이 있다니 말이다. 그 애의 이름은 명이다. 명은 딸기 우유와 딸기 아이스크림을 좋아하고 비디오광이며 로봇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리고 우리가 우주 속에 떠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는 채로 지구에는 수많은 나라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는 채로 내가 물구나무를 서서 지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것을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면서 언제나 지구를 지켜야 하고 우주의 평화를 위해 우주선을 만드는 박사가 될 거라고 말한다. 명은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알려고 늘 생각을 많이 하는 아이다. 이를테면 멀리 있는 것들은 자신의 손으로 무엇이든 다 덮을 수가 있는데 가까이 가면 왜 자신의 손이 그렇게도 작은지 하는 문제들에 골몰한다. 명에게 세상은 아직 신비 그 자체이다. 그러나 얼굴이 희고 키가 크고 잘생긴 남자 애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명도 이기적이고 까다롭고 겁쟁이이고 치사한 아이이다. 여자애는 차라리 작고 착하고 성실하고 과묵한 남자 친구를 사귀고 싶다. 그리고 장래에는 아빠보다 키는 좀더 작더라도 세 배는 더 잘생기고 세 배는 친절하고 돈도 잘 버는 남자와 결혼할 것이다.
엄마가 가게에 나가게 되면서 왔던 파출부는 이제 오지 않는다. 2주 저부터다. 엄마는 아침 10시경에 가게에 나가고 6시경에 아이들에게 저녁밥을 해먹이려고 온다. 그리고 8시30분경에 다시 가게로 나가 새벽1시쯤에 집에 돌아온다. 아빠는 12시경에 나가지만 엄마와 함께 집에 들어오지 않는 겨우가 많다. 특히 요즘은...
현관문 긁적이는 소리가 나고 명이 돌아온다. 언젠가 엄마와 명을 데리러 유치원에 간 적이 있었다. 유치원 수업이 끝나면 명은 2층의 조그만 방에서 나머지 오후 시간 동안 갇혀있다. 우리가 갔을 때 보모는 거울 앞에서 냉정해 보이는 작은 입술을 새로 칠하고 있었고 아이들 다섯은 상자 같은 방에서 담요를 덮고 아주 작은 베개를 베고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명이는 그 구석에서 숨을 죽이고 겨우 다섯 개의 블록으로 살금살금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고아원 아이처럼 양말을 벗고 있어서 발바닥이 까맸다. 여자애는 그제야 그동안 왜 명의 발바닥이 양말 바닥보다 더 더러웠는지 알게 되었다. 유치원의 2층 놀이방은 불결했다.
집 안으로 들어서는 명은 이제 겨우 자유의 몸이 되었다는 듯 통통 뛰며 신나 한다. 마치 어른들이 아홉 시 뉴스를 보며 세상을 염려하듯이 먼저 텔레비전 만화 채널을 틀어 만화의 주인공들이 지구를 잘 지키고 있는지 살핀다. 만화 프로그램이 끝나면 로봇들과 칼을 꺼내 거실에 주르르 세워 전열을 정비한 다음 씨리얼을 우유에 부어 허기진 배를 채운다. 배가 불러지면 그 다음 하는 일은 현관 정돈이다. 신들을 바로 세우고 허리에 양쪽 손을 올리고 돌아설 때면 명은 이 집을 위해 자신이 현실적으로 이바지한 것을 느끼며 몹시 흐뭇해 한다. 그 애는 칼을 바지춤에 다섯 개도 꽂을 수 있고 로봇끼리 싸움을 시킬 수 있고 하루 종일 정말 하루 종일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끊임없이 떠들어 댈 수 있으며 만화에서 본 대로 흉내를 잘 낸다. 유치원 명의 별명은 깡통이다. 교사들은 자주 벌을 세우고 아이들은 아무도 명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명은 이 세상에서 왜 엄마만 자신을 좋아하는지 자주 묻곤 한다. 그 애도 엄마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그 애에게 엄마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마음씨가 곱고 하루빨리 자라서 보호해 주어야 할 세상에서 살아가기엔 가혹하도록 가냘프고 신비한 존재이다.
아직 어스름인데 벌써 어디선가 고등어 굽는 냄새가 난다. 미역국 끓이는 냄새도 나고 밥 끓는 냄새도 난다. 엄마가 올 시간이다. 이 시간에 가게는 가장 붐비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엄마는 몸을 빼고 나와 저녁을 짓는다. 엄마는 적어도 한 끼쯤은 자신이 식사 준비를 해주고 두 아이의 밥 먹는 모습을 지켜 보는 것을 의무라고 생각한다.
바람이 휙 불어 들어오고 곧바로 엄마가 들어서자 집 안에 엄마의 냄새가 왈칵 채워진다. 화장한 얼굴에서 나는 분과 검은 보라색 립스틱 냄새 계란색 원피스에서 나는 따뜻한 옷 냄새 엄마의 무릎에서 나는 고소한 빵 냄새 엄마의 입에서 나오는 달큰한 한숨의 냄새. 손에서 나는 담배 냄새와 술과 김치 냄새... 모자간에는 언제나 찡한 상봉이 이루어진다. 여자애는 그 곁에 약간 결핍된 얼굴로 엉거주춤 서있다. 엄마는 명을 끌어 안아 올리고 이마와 입술과 두 뺨에 입을 맞춘다. 명은 또 생각하나 보다. 왜 이 세상에서 엄마만 이토록이나 나를 사랑할까 여기엔 기쁨의 눈물 같은 그런 비밀이 반드시 있을거야. 명도 엄마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유치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들기 시작한다. 엄마는 늘 그렇듯이 몹시 지친 모습이다. 그리고 반찬도 사오지 않았다. 사람이 지치면 차에서 내려 반찬을 사러 슈퍼마켓에 가는 일조차 힘겨워지는 모양이다. 여자애는 음식을 제대로 먹고 싶어서 노력을 한다.
'엄마 나 물 뜨러 갈 건데 반찬을 사올까.'
'어제 먹었던 찌개가 남아 있지 않니.'
엄마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다.
'시었어.'
'그래.'
엄마는 찌개를 맛본다. 그리고 낙담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는 밥을 안치고 그리고 당장 침대로 가서 쉬고만 싶었나 보다.
'무얼 해먹지... 미역국 끓일까.'
엄마도 올라오다가 미역국 냄새를 맡은 걸까.
'아니 난 배추 넣은 된장국이 먹고 싶어.'
'나도 배추 넣은 된장국이 먹고 싶어. 그리고 구운 생선을 먹고 싶어.'
명도 팔팔 뛰며 떠든다.
여자애와 명을 쳐다보던 엄마의 시선이 어느 순간 툭 끊어지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장님 같은 어둔 눈빛이 된다.
'그건 오래 걸려... 하긴 제대로 된 밥을 차려 먹은 지가 오래됐구나. 그래 그러자 . 얼간이 배추를 사와. 그리고 고등어 한 마리와 시금치도 사오고 어묵과 계란도 사와. 그리고... 그래 됐어.'
엄마는 지갑 속에서 지폐를 한 장 꺼내 준다.
'메메가 아무것도 먹지 않아요. 참치를 줄 때까지 굶을 건가봐.'
여자애가 변명이라도 하듯이 기어들어가는 음성으로 말한다.
'이젠 정말 더 이상은 고양이에게 참치를 사먹일 수 없어. 메메를 아파트 지하실 창문 속에다 버리거라. 많이 컸으니까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거야. 그곳에서 다른 고양이 무리를 만나 결혼할 수도 있고 함께 쓰레기통 속의 비닐 봉투들을 뜯어 먹이를 찾을 수도 있고 쥐를 잡아 먹을 수도 있지. 물가가 아주 많이 올랐어. 돈이 점점 종이가 되고 있단다. 가게에 들어갔다가 나올 때면 지갑 속의 돈이 녹고 있는 것만 같아. 가게 안의 공기 속에 보이지 않는 손이 떠다니고 있어서 지갑속의 돈을 감쪽같이 꺼내 가는 것 같기도 하지. 어리둥절해. 가게엔 정말 가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이제 미용실에도 가지 않고 머리 자르는 기계로 자기 머리를 스스로 자르고 있어. 그리고 뉴스에서는 매일매일 자살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잇달아 전해 주지. 인심도 흉흉해졌단다. 집에 오는데 약국 앞에서 웬 노파가 여태까지 5000원에 산 신경통 약을 6800원이나 달라고 한다며 약국에서 장사를 하지 않고 손님에게 비럭질을 한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어.'
여자애는 지폐와 주스통 두 개를 들고 나간다. 신을 신다가 고개를 들어 보니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아 우두커니 여자애를 보고 있다. 눈이 마주쳐도 엄마는 표정의 변화가 없다. 엄마는 천천히 담배를 물고 일회용 라이터로 불을 붙인다. 엄마는 아직 젊고 아름답다.
전에 그런 저녁들이 있었다. 다른 집보다 빨리 밥이 끓고 엄마는 손으로 시금치나물을 주물러 무치면서 어린 여자애에게 간을 보게 하고 엄마가 저녁 준비를 할 동안 여자애는 식탁에 앉아 일일 시험지를 하고 반찬을 만드는 틈틈이 엄마가 여자애가 쓴 시험지 답이 옳은지 점검하며 자주 미소 짓던 길고 평화롭고 다정한 저녁... 그땐 세상이 잘 닫힌 원처럼 안전하고 포근했고 아무도 지치지 않았다. 아빠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7시에는 어김없이 집에 와 저녁을 먹었다. 그때 엄마는 하루 종일 여자애와 함께 집에 있었다. 함께 놀이터를 가고 시장에 가서 반찬거리를 사오고 김치를 담고 미싱을 돌려 시장에서 떠온 초록색 체크 무늬 천으로 조그만 원피스와 냉장고 덮개를 만들고 여자애에게 가나다라를 가르쳤다. 덕에데 여자애는 네 살 때부터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일요일에는 아빠가 처음으로 샀던 소형차를 타고 야외로 소풍을 다녔다. 마지막으로 갔던 소풍은 언제나 여자애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들은 숲으로 들어가 덤불 위에 떨어진 맑은 홍시를 주워 먹었고 꼬챙이를 하나씩 들고 밤송이를 까 알밤들을 주머니 가득 채워 왔었다. 공중에는 하루 종일 잠자리떼가 낮게 날고 있었다. 갈대와 샛노란 들국화 꽃을 꺾어 세 개의 꽃다발을 만들었고 붉은 까치밥 열매도 땄다. 못 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을 먹을 때 못 가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렸고 물이 많은 배를 깎아 먹을 때는 찬송가가 울려나왔다. 그리고 그들이 자리를 접고 일어날 때 예배를 마친 시골 사람들이 성경책을 가슴에 안고 좁다란 산길을 걸어가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엄마는 명을 가져 배가 불렀다. 그들은 덜 마른 수채화처럼 선명하게 노랗고 붉은 산길에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흰 갈대와 산 국화꽃 속에 숨어 있던 검은 염소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여자애는 피처럼 새빨간 단풍잎 하나를 주워 왔었다. 그 뒤 명이 태어났다. 그리고 몇 년 뒤에 아빠는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자주 싸웠다. 엄마의 이마에서 단풍잎처럼 붉은 핏방울이 흘러내린 적도 있었다. 이젠 모든 것이 바뀌어 버렸다.
온 집안에 고등어 익은 냄새가 가득하다. 전에는 생선 냄새가 싫었는데 오늘은 향긋하게까지 느껴진다. 엄마가 여자애와 명에게 밥 먹으러 나오라고 부르며 생선을 식탁 위에 올리고 몸을 돌릴 때였다. 메메가 의자를 타고 올라가 어느 사이 식탁 위의 생선을 향해 달려들었다. 아마도 생선은 너무 뜨거웠을 것이다. 메메는 뒤로 물러서려 했던 것 같은데 오히려 다리를 국그릇에 빠뜨렸고 흥분한 나머지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낸 채 네 개의 다리를 휘저어 생선 토막 하나를 냉장고 문 쪽으로 날려 버렸고 반찬이 담긴 접시들을 바닥으로 내팽개쳐 버렸다.
'악.'
엄마가 비명을 지른다. 엄마는 눈을 감고 그 무엇도 아닌 천장을 향해 마구잡이로 비명을 질러 댄다. 비명 지르기를 끝낸 엄마는 팔을 뻗어 소파 위에 앉아 눈치를 보고 있는 메메를 가리켰다. 베란다에 놓인 메메의 모래 변기 통에서 지린내가 스며들었다.
'저걸 전에 주워 왔던 그 자리에 도로 갖다 버려.'
엄마는 더 이상 베란다의 지린내와 방바닥에 지그럭거리는 모래 가루와 침대 시트를 물어뜯어 레이스를 망가뜨린 이빨과 가죽 소파에 보풀이 일도록 긁어 댄 발톱들에 대해서 설명하지 않는다. 엄마가 너무 단호했기 때문에 여자애는 전처럼 버틸 수가 없다. 여자애는 지난 여름 저녁에 생수를 뜨러 갔다가 자동차에 다리를 친 새끼 고양이를 주워 왔다. 배와 등과 꼬리가 온통 흰색 털인데 두 눈가에만 커다란 이태리 제 선글라스를 낀 듯 까만 반점이 동그랗게 찍힌 다치지 않았다면 결코 여자 애의 손에 몸을 맡겼을 리가 없는 앙증 맞고 쌀쌀한 고양이였다.
여자애는 야위었지만 뼈대가 여물어 묵직해진 고양이를 안고 계단을 내려간다. 메메는 가끔 그랬듯이 산책을 나가는 줄로 아는지 아옹거리며 즐거워한다. 여자애는 아파트 현관을 나서자 망설임 없이 좁다란 화단으로 들어가 지하실의 작은 창문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여자애는 언젠가 그 앞에서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놀다가 숨어 들어가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지하실의 창문 안쪽엔 원래는 촘촘한 철망이 대어져 있었지만 이제는 흔적만 나아 있을 뿐 철망 가운데가 휑하게 뜷려 있고 유리도 깨어졌다.
'잘 가. 이제 자랐으니 결혼도 하고 예쁜 새끼도 낳아야 해. 그리고 거리의 다른 고양이들처럼 사냥도 해야 해.'
여자애는 품에서 고양이를 떼어 낸다. 메메는 위기를 느끼는지 밥톱으로 여자애의 스웨터를 한 올 한 올 쥐고 있었다. 고양이를 떼어 내자 스웨터의 실 한 올이 발톱에 감겨 휙 삐어져 나온다. 여자애는 고양이를 지하실의 창문 안으로 밀어 넣는다. 메메는 고개를 뒤로 빼며 저항을 하다가 문득 가볍게 밀려 안쪽으로 떨어졌다. 여자애가 두 눈을 바짝 붙이고 지하실 안쪽을 들여다보니 메메 역시 돌아서서 여자애를 마주본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암흑 속에 두 개의 눈동자만 푸른 광채를 내었다. 여자애는 가슴속 어딘가가 베이는 듯한 공포를 느낀다.
'안녕...'
여자애는 두려움과 죄책감을 속으로 다스리며 두 개의 낯선 광채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설거지를 끝낸 엄마는 청소를 시작한다. 여자애가 정리하느라 했지만 명이 와서 어질러놓기 때문에 물건들이 뒤죽박죽이다. 명의 장난감들이 말썽이다. 연필을 대지도 않은 여러 장의 일일 시험지도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명이 벗어 던진 양말 짝들에는 모래가루가 묻어 있다. 전화기도 뒤집어져 있고 잡동사니를 담아 둔 바구니도 넘어져 물건들이 다 쏟아졌다.
'대체 누구보고 치우라고 이렇게 뒤집어 놓니 이젠 파출부도 오지 않는데 우리 파출부도 쓸 수 없는데 왜 이렇게 집을 어지르니 난 집 치울 기운이 없다. 난 죽을 거같이 피곤해. 지금 또 가게엘 가야 한단 말이야. 사람에게 시달리는 일이 얼마나 힘든 건지 너희들이 아닌 술 취한 인간들이 얼마나 지겨운지 똑같애. 교수고 시인이고 운동가고 늙은이고 젊은이고 여자고 남자고 간에 인간이란 게 술에 취하면 똑같아진다구. 허리가 휘고 입에서 단내가 나고 손이 붓도록 일을 해서 번돈은 고작 월세 주고 술값 주고 은행 이자 주면 남는 게 없어. 게다가 너희들 아빠라는 사람은 나 모르게 집을 잡아 빚까지 얻어 쓰고... 아 지겨워 지겨워 지겨워 죽겠구나.'
엄마가 새된 소리를 지르면 숙제를 하려던 여자애는 바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엄마를 분주히 돕는다. 엄마가 지겹다고 소리 지르면 여자애는 고통을 느낀다.
엄마는 언젠가 그렇게 말했었다. 아니다 아니다 하면서 이렇게 계속할 수는 없어. 이 지겨움을 모두 과거로 만들어 버릴거야. 언제까지나 이런 현재가 계속되는 건 믿을 수 없어. 그래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지.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을 테니...'
'내가 이 집을 떠나야지...' 여자애는 엄마의 다음 말도 알고 있다. '이건 모두 과거야.' 다른 엄마들도 그럴까 엄마는 집을 떠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여긴다. 엄마에겐 자신이 태어난 해와 달의 숫자인 635이라는 비밀 번호를 가진 커다란 검정색 트렁크가 하나 있다. 겨우 한달 전 깊은 밤중에 엄마는 트렁크를 들고 나가 현관 앞에 놓았다. 여자애는 꿈속에선 듯 그 모습을 보았다. 일어서서 엄마를 붙잡고 싶었지만 여자애는 아무것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서 눈물만 흘렸다. 눈물이 귓속으로 들어가고 목을 타고 흘렀다. 꼭 차갑고 깊숙한 무덤 속에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다른 아이들은 무어라고 말하면서 떠나는 엄마를 붙잡을까 엄마들이 떠날 때 아이의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걸까. 술 취하고 난폭한 아버지들 끝나지 않을 가난한 음식 냄새도 없는 어둡고 텅 빈 저녁들 무엇인가를 집어 던지게 되는 삶의 균열 겨울 하늘의 샛별 같은 떨림 잠이 들려고 할 때 흘러내리는 눈물 어둡고 낯선 길을 혼자서 걷는 꿈들... 현관문 열리는 소리는 오래도록 나지 않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거의 날이 밝을 무렵에 아빠가 돌아왔다.
'아이들을 잘 부탁해. 나는 떠나. 미안해. 모든 것을 네게 다 맡겨서. 가더라도 네게 인사하고 가는 게 도리인 서 같아 기다렸어. 자리가 잡히면 명을 데리러 올게.'
엄마는 신문을 읽듯 한결같은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몸의 움직임이 느껴지고 현관 타일 바닥을 딛고 신발 신는 기척이 들렸다.
'이리 줘.'
엄마가 낮게 소리를 쳤다. 아빠가 트렁크를 뺏은 것 같았다.
'바보같이 굴지 마. 이야기 좀 해.'
아빠의 음성은 야비하게 느껴진다. 자신의 약한 모습을 숨기면서 강해 보이려는 남자의 음성이다. 비겁하고 억지스럽고 그리고 간절하다.
'내가 할 이야긴 다 했어. 공연히 이러는 게 아니야. 진심이야 난 가야 해. 붙잡아 달라고 너를 기다린 거 아니야.'
'넌 절대로 못 가.'
아빠는 일 층까지 들리도록 커다랗게 외친다.
'나는 가.'
엄마는 여전히 억눌린 음성이다.
'어디로 간다는 거니.'
'아무 곳이나. 네 그림자가 내게 드리워지지 않는 곳.'
'좋아 갈 때에 가더라도 일단은 들어와. 나도 이야기할 게 있어.'
아빠가 엄마를 달래려는 듯 음성을 낮춘다. 두 사람은 조용하게 이야기하고 어투도 점점 부드러워진다. 그들은 사실은 싸우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다.
'그 남자 이혼한대 아니면 근처에 집이라도 얻어 준다는 거야.'
'그건 상관없는 문제야. 그게 아무것도 아니란 건 알지 않니 너의 낚시 같은 것뿐이야. 난 다르게 살고 싶어. 너무 오랫동안 난 졸고 있었어.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 상황에 이르러서야 난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어. 나도 노력하고 싶어. 그러나 이곳에서 너와 함께는 아니야. 너와 함께 이런 삶을 더 끌어가다가는 만신창이가 될 거 같아. 너는 낚시로 나는 일종의 히스테리로... 우린 돌이킬 수 없이 타락하게 돼.'
'너를 붙들지 않을게. 하지만 다음에 가. 말하자면 가게를 넘기거나 집을 판 뒤에 돈이 좀 만들어지면... 그래야 나도 널 보낼 수가 있어.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게 무섭지 않니.'
한참 뒤에야 엄마가 말했다.
'처음 가게를 열고 몇 달 동안 넌 생활비를 한푼도 넣어 주지 않았어. 회사에서 월급을 받지 못하던 달들이 이어진 뒤인데다 온갖 부스러기 돈까지 다 긁어모아 가게에 넣은 뒤여서 정말 생활비가 한 푼도 없을 때였지. 우리가 어렵다 해도 설마 생활비조차 한 푼 없으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엄마도 오빠도 여동생도... 꼭 한 사람 아버지가 돈을 보내주었던 날이 떠올라. 20만 원이었어. 돈이 생기자 아침에 일찍 나가 돈을 찾은 뒤 애들이 먹고 싶어 했던 떡국을 사 와서 멸치 국물을 우려 내 끓여 주었어. 그리고 명의 손을 잡고 가 오랜만에 비디오를 빌려다가 틀어 주었어. 그리고 아파트 현관에 며칠 전부터 붙어 있던 광고지를 오래 쳐다본 뒤에 아이 옷을 사기 위해 버스를 타고 갔어. 12월 초순이었는데 한겨울이 닥친 것처럼 추운 날이었어. 부도 상품을 처리한다는 자폭 세일전에서 아이들 내의를 한 벌씩 샀고 양말을 두 켤레 샀으며 생애 처음으로 내가 입을 내의도 한 벌 샀어. 자라고 나서는 내의를 입은 적이 없었는데 아직 본격적인 추위가 오기도 전에 내 몸은 오한에 떨고 있었거든. 인생에서 가장 추운 겨울이 닥칠 것 같았어. 쌓인 옷 중에서 순모 80%에다 안을 누빈 재고품이지만 두툼하고 가벼운 아이의 외투를 발견했는데 물건 파는 여자의 옷에 붙은 가격표를 보더니 그 옷은 다른 옷과 달리 공장도가가 비싸기 때문에 가격이 다르다고 했어. 값을 깎아 보려 했으나 여자와는 흥정이 되지 않았어. 도대체 70%라는 세일 선이 정해져 있는 이상 흥정을 한다는 일 자체가 실은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짓이잖아. 나는 여자의 거절을 듣고 일단 떠났다가 다시 그 자리로 가서 아무도 몰래 옷에 붙은 가격표를 떼어 버렸어. 그리고 다른 남자 판매원과 흥정을 했지. 그 남자는 4,000원 더 작은 가격을 불렀고 나는 거기서 2,000원을 떠 뺐어. 값이 싼 아이 바지를 하나 더 사서 돌아오다가 이번엔 7만면 고개돌파 사은잔치를 한다는 백화점에 들렀어. 물건을 30만원 이상 사면 이불 세트를 주고 20만 원은 곰솥을 주며 10만 원 고객에게는 그릇 세트를 준다고 현수막에 쓰여 있었어. 난 배가 많이 고팠어. 아침에 떡국을 먹은 뒤로 이미 오후 4시였어. 백화점에서는 매장마다 방송을 요란하게 하고 있었어. 하루에 세 번 한다는 반W가 세일 시간이었던 거야. 검은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남자가 10분 동안만 신제품 스킨과 로션 에센스가 각 4,000원씩 세트에 12,000원이라고 소리를 질러 댔어. 화장품이 떨어진 지 일주일째였기에 가까이 가보았어. 샘플을 발라 왔는데 스킨은 이미 샘플조차 없었거든. 나는 화장품을 쥔 채 망설이다가 10분이 되기 직전에 돈을 꺼냈어. 리필투웨이 케익이 3,000원 립스틱이 3,000원 아이라인은 2,000원 에나멜은 200원이었어. 그 곁엔 유명 브랜드 신발이 12,000원 균일가로 판매되고 있었고 그 곁에는 9,800원 균일가로 판매되는 백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남방셔츠도 만 원 균일가로 팔리고 있었어. 어디에나 물건들이 함부로 재여 있고 사람들이 겹겹으로 들러 쌓고 있었어. 그런데 화장품은 10분이 지난 뒤에도 여전히 앞으로 10분 동안 스킨과 로션과 에센스를 각 4000원 드린다라고 소리 지르고 있었어. 싱거워진 나는 무료 시식 팝콘을 주워 먹었어. 레몬 버터에 튀긴 팝콘이 가장 구미에 맞다고 생각했지. 팝콘 한 통에 9,000원 15,000원 20,000원이라고 쓰여 있었어. 비현실적인 가격이라는 느낌이었어. 어떤 맛을 드릴까요. 판매원이 먹기만 하고 서 있는 나에게 심술궂게 물었어. 나는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본 뒤에 애초부터 살 마음 따윈 전혀 없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돌아섰어. 그리고 그 맞은편으로 가 어묵 꼬치를 한 개 먹고 국물을 두 컵이나 마셨어. 그곳에선 계산하는 여자와 손님이 커다란 소리로 싸우고 있었어. 손님은 만 원을 냈다고 얼굴이 빨개져서 악을 쓰고 계산대의 여자는 천 원을 받았다고 소리 지르고 있었어. 서로 뻔한 수작을 한다고 손가락질을 하고 욕설을 퍼부었어. 피자 코너 패스트 푸드 코너 손국수 코너 각종 김밥 코너 죽 코너 볶음밥 비빔밥 코너들이 있고 유난히 환한 빵가게가 있었는데 어디에나 자리가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붐볐어. 나는 그때 3개월 만에 백화점을 온 길이었어. 식품부로 가서 노란 바구니를 든 뒤에 그 속에 100그램에 300원 하는 시금치를 300그램 담았고 4개에 1,000원을 한다는 단감을 8개 담았으며 데워 먹는 호빵과 돼지고기 600g을 담았어. 그리고 신속하게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가는 백화점 버스를 탔지. 운이 좋아 이내 자리를 잡고 앉을 수 있었어. 그날 내 마음은 너무나 가난했어. 만약 가난하다면 평생 동안 계속 가난하다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생각할 것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았어. 돈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 같았어. 단지 필요한 것을 충족시키고 필요하지 않은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 거야. 그러자 막연히 두려워했던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어. 물론 알아. 정말 가난한 사람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하지. 그래 내 가난은 아직 실재가 아니야. 내가 가난하다는 게 믿어지지도 않았으니까. 그냥 우울한 정도지. 가난이란 우울조차도 복잡하거나 모호하지 않고 명백해. 돈만 있으면 해결되니까.'
엄마와 아빠의 말이 끊겼다. 누군가 냉장고 문을 열었고 곧이어 물을 따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또 침묵이 이어지다가 엄마가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없이 떠나는 게 무섭지 않느냐고 물었지 전엔 그게 두려웠어. 여자도 남자도 모두 그것에 매여 있지. 하지만 난 이제 돈이 없는 게 걱정되지 않아. 돈이 있는 사람이 살아가는 것처럼 돈이 없는 사람도 평생 동안 살아가. 단지 생각하는 가난과 잠시 느끼는 가난은 정말로 가난한 것과는 다르다는 거 알아. 하지만 난 달라졌어. 수중에 돈이 한푼도 없어도 삶은 계속돼. 두려운 건 가난이 아니라 두려움 자체에 매여 자신을 묶는 거야.'
'인생은 동화가 아니야. 너는 이상하게도 어려움을 겪으면 더 비현실적으로 되어 버리는구나.'
'그런지도 몰라. 어려움을 경험하는 게 나쁘지만은 않게 느껴져. 그렇지만 문제는 내가 원하는 것이어야 해. 난 더 이상 너와의 삶을 원하지 않아.'
'알아 알고 있어. 알아...'
아빠는 피곤한 음성으로 안다고 몇 번이나 되풀이했다.
엄마 아빠가 실랑이를 벌일 동안 어느 사이 날이 환하게 밝아 버렸고 여자애는 엄마의 나지막하고 길게 계속되는 음성을 들으며 마음이 편해져서 잠에 빠져 버렸다. 잠은 산만큼 크고 깊었다. 마치 벌레가 달콤한 냄새가 나는 카스테라를 팜먹는 듯 따스하고 뭉클한 잠...
엄마는 욕조에 물을 받아 주고 거실 바닥에 명과 여자애의 속옷을 펴놓고 집을 떠난다. 여자애는 힘겨워하면서 명을 달래 몸에 비누칠을 해주고 머리를 잠겨 주고 잘 헹구어 준다. 명은 하얗고 깨끗하게 변한다. 목욕을 하고 난 후 명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내며 소리를 질러 댄다. 금세 울 것 같은 얼굴이다.
'언어 전달을 써야 해.'
'오늘은 뭐니 내가 써줄게.'
명은 생각한다. 그만 잊어버린 모양이다.
'생각해 봐. 네가 기억만 해내면 이내 쓸 수 있으니 걱정마.'
여자애는 침대 속에 명을 누이고 계속 생각해 보라고 격려한다. 그러나 명은 이내 잠들어 버린다. 명은 내일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언어 전달장을 선생님한테 드리게 되겠지. 선생님은 버려진 아이를 보는 눈으로 내려다볼 것이고 아이들은 잠시 잠시 놀릴 것이다. 그리고 명은 아무 영문도 모르는 채 파도에 밀려 멀리멀리 떠가는 쪽배같이 외로운 감정에 사로잡히겠지. 여자애는 하다가 만 수학 숙제를 한다. 시간은 이미 11시이다. 요즘은 책 읽을 시간도 없다. 여자애는 책 읽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세상에서 길을 잃어 빛 하나 없는 어둠 속에 있을 때, 그때 구절들이 수많은 반딧불처럼 되돌아와 여자애의 길을 밝혀 줄 거라고 엄마가 말했기 때문이다. 또 책은 세상에 더 힘겨운 고통과 더 환한 기쁨과 더 김은 의미와 더 귀한 가치가 있으니 쉽게 절망하지 말라고 용기를 주고 언제나 새로워질 힘을 준다고 한다. 아무래도 엄마는 가족을 버리고 가버릴 것 같다. 어쩐지 그런 생각이 든다. 오래전의 여름, 여자애에게 그 말을 하던 날 엄마는 이미 떠나려고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어른들은 모르지만 아이들이 생각하는 건 대부분 이루어진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하는 예언처럼.
불 끄기 전에 잠든 동생의 얼굴을 본다. 이상하게도 꼭 감긴 눈가에 눈물이 고여 있다. 여자에는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쳐준다. 그리고 내일은 좀더 일찍 일어나서 언어 전달 내용을 다시 물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며 형광등 불을 끈다. 방안이 깜깜해지자 벽지의 야광 그림들이 연두색 빛을 낸다. 우주선을 탄 토끼, 초원의 기린, 나뭇가지의 새, 강가의 코끼리, 북극의 곰, 사과나무 아래에서 책을 읽는 소녀 그림들이 반복된다.
눈을 감자 여자애의 눈 밑에도 축축한 눈물이 느껴진다. 여자애가 아무리 착해도 소용없이,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이 엄마는 결과 떠나 버린다. 엄마에겐 태어난 해와 달인 비밀번호 635인 트렁크가 있다. 언제나 여자애의 가슴을 죄이는 불길한 트렁크... 여자애는 불현듯 자리에서 튕겨 일어났다. 그리고 엄마의 방으로 가 불을 켠다. 불빛이 이마를 찌르고 머릿속으로 파고드는 듯했다. 여자애는 비틀거리며 장롱 곁의 좁은 틈에 숨어 있는 검정색 트렁크를 붙들었다. 트렁크는 무거웠다.
여행용 화장품 세트, 여행용 세안제 세트, 칫솔, 새하얀 수건 아래로 속옷이 든 작은 비닐주머니, 그리고 스타킹과 양말들, 꽉꽉 눌린 옷가지들... 트렁크 속은 이제 막 짐을 싸둔 것만 같다. 엄마는 밤에 일기를 쓰듯이 매일 매일 트렁크를 새롭게 싸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렁크 포켓 속에는 여자애와 남동생의 사진들이 들어 있다. 명이 소파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앉아 두 팔을 휘젓는 돌 무렵의 사진, 퍼머머리를 한 여자애가 레이스 원피스를 입고 햇살을 향해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찍은 세 살 때의 사진. 유원지의 작은 동물원에 갔을 때, 조랑말 우리 앞에서 찍은 세 살 무렵의 남동생과 아홉 살 때의 여자애 사진. 일 년 전 여름에 외가의 돌담 앞에 쪼그리고 앉아 찍은 사진. 여자애는 활짝 웃고 있고 명은 장난감 선글라스를 끼고 손가락으로 V자를 그리고 있다. 여자애와 명, 함께 찍은 사진 두장과 따로 찍힌 사진 네 장씩이다.
계단은 너무 어둡다. 눈도 없는 아주 깊은 물의 고기들, 물의 무게에 눌려 납작해진 물고기들이 헤엄칠 것 같은 어둠이다. 여태 한번도 다닌 적이 없고 어디로 연결되었는지 알 수 없는 낯선 통로 같다. 여자애는 바퀴 달린 트렁크를 끌며 어둠속에 계단을 더듬더듬 내려간다. 안대로 눈을 가린 것 같다. 한없이 내려가도 계단은 끝날 것 같지 않다. 몇 층인지 모를 계단 참에 내려섰을 때, 여자애는 계단 모서리에서 흔들리는 두 개의 초록빛 광채를 발견하고 몸이 굳어 버린다. 초록빛은 여자애를 올려다보며 계단을 올라온다. 여자애는 목구멍 속에서 아무도 들을 수 없는 비명을 길게 지른다. 그것은 메메다. 여자애가 놀라 만큼 메메의 눈 역시 버려진 공포에 질려 더욱 새파랗다. 메메는 여자애의 다리 사이를 발작적으로 맴돌며 온몸을 비벼 댄다. 안아 올려 달라는, 쓰다듬고 사랑해 달라는 하소연이다. 계단 위에서 소리내어 우는 것이 안전하지 못한짓이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저리 가-."
여자애는 고양이에게 낮게 소리치고 트렁크를 끌며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나 고양이는 트렁크와 여자애의 발길에 채이며 여자애와 동시에 같은 계단을 밟는다. 고양이 때문에 발이 꼬여 휘청 앞으로 기울어진다. 그 바람에 트렁크가 왈칵 앞으로 몰려 손아귀에서 떨어져 나가 둔탁한 울림을 내며 뒹군다.
"저리 가-."
여자애는 억제된 음성으로 소리치며 발로 고양이의 배를 차버린다. 고양이는 낮게 비명만 지를 뿐 물러서지 않고 여자애를 따른다. 여자애는 현관 밖으로 나와 환한 외등 아래를 지날 때 발을 구르며 고양이에게 외친다.
"저리 가-. 저리 가-."
고양이는 세워진 차 밑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다. 여자애는 커다란 트렁크를 끌고 태연하게 걷는다. 하늘엔 노란 광채를 내는 싱그러운 반달이 머리 위로 지나가고 있다. 금속적인 노란빛도 아니고 계란 같은 노란색도 아니다. 명랑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반쯤 열린 노란 창문 같다. 아파트 뒷문을 빠져나갈 때 경비실의 경비원이 작은 창문에 두 개의 눈을 대고 여자애를 잠시 관찰했다. 여자애는 등을 곧게 펴고 무심하게 지나간다. 길을 건너면 곧 바로 호수가 있는 공원이다. 소나무 숲에 한가운데서 여자애가 멈칫 섰다. 바로 앞벤치에 한 남자가 앉아 있다. 무릎 곁에는 서류 가방이 놓여 있고, 벤치 곁엔 아주 낳은 자전거가 목 꺾인 닭처럼 핸들이 휙 돌아간 채 세워져 있다. 양복을 이은 남자는 꼼짝도 않고 호수를 향해 앉아 있다. 오수 속엔 맞은편 고층 모텔과 쇼핑몰의 휘황한 불빛들이 깊게 빠져 물의 흔들림에 따라 불고 푸르게 일렁거린다. 위험성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여자애는 남자의 곁을 지난다. 벚나무 숲길에서 여자애는 또 걸음을 멈춘다. 이번엔 호수로의 가로등 아래에 새하얀 파카를 입은 여자와 청색 점퍼를 입은 남자가 끌어 안고 입을 맞추고 있다. 남자의 손이 여자의 파카 속 어딘가를 다급하게 더듬는다. 여자애는 뒷걸음질을 쳐 몸을 숨기려 하는데, 언제 따라 붙었는지. 고양이가 발길에 채여 예리한 비명을 지른다.
여자가 소스라치며 남자의 몸에서 빠져나온다. 긴 머리카락이 머리채를 휘어 잡힌 것처럼 함부로 헝클어진 여자와 어리둥절한 남자가 여자애를 힐긋 쳐다본다. 여자애는 어쩌지 못한 채 커다란 트렁크를 쥐고 서있다. 여자는 머리를 더듬더니, 몸을 숙이고 손으로 땅바닥을 더듬는다. 머리핀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남자도 몸을 구부리고 눈으로 땅바닥을 훑는다. 머리핀은 찾을 수 없는 모양이다. 여자는 갑자기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않을 것처럼 쌀쌀하게 걸어간다. 남자가 뒤따라가 붙잡아 세운다. 여자가 뭐라고 화를 내며 남자의 손을 뿌리치고 돌아선다. 남자가 뒤에서 여자의 등을 끌어안는다. 여자가 등에 벌레라도 붙인 듯 바둥거린다. 남자는 여자를 끌어안은 채 곁의 벤치에 앉는다. 남자의 무릎 위에 여자가 앉혀진 꼴이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풀고 일어서더니 팔을 커다랗게 휘둘러 앉아 있는 남자의 따귀를 때린다. 그리고 여자는 다시는 그 남자를 만나지 않을 듯이 찬 바람을 일으키며 걸어간다. 남자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여자애는 마치 자신이 남자의 따귀를 때린 것같이 미안하다. 여자애는 호수가 길로 내려가 트렁크를 끌며 간다. 고양이도 여자애의 발길에 자꾸만 채이며 걷는다.
"저리 가-."
여자애는 벤치에 앉은 두 남자가 다 듣도록 커다란 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고양이는 계속 여자애를 따라 걷는다. 여자애는 소나무 숲속의 남자와 따귀를 맞고 앉아 있는 남자의 반대편에 이를 때까지 묵묵히 걷는다. 도중에 호수의 난간에 양쪽팔을 끼우고 앉은 채로 잠들어 버린 소년을 보았지만 그냥 지나간다. 여자애는 호수 안에 지어진 물 위의 휴게소로 들어가는 긴 다리 가운데서 멈추어 선다. 언젠가 엄마와 아빠와 남동생과 물고기 떼에게 과자를 던져 주었던 장소이다. 휴게소는 깜깜하다. 여자애는 다리 위에 우두커니 앉아 시간을 보낸다. 새하얀 파카를 입은 여자는 완전히 사라졌고, 따귀를 맞은 남자도 동그란 호수길 저편의 어둠 속으로 사라진다. 여자애 곁을 빙빙 돌던 고양이가 눈치를 보며 여자애의 무릎 위에 기어올라 사타구니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발톱이 가시처럼 허벅지를 찌르고, 발바닥에 묻은 흙이 여자애의 바지를 함부로 더럽힌다. 고양이의 배는 따뜻하고 살집은 없지만 꽤 묵직하다. 네 개의 다리가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지린내가 희미하게 올라온다. 여자애가 가만히 있자 고양이는 여자애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탐욕스럽게 운다. 입을 커다랗게 벌리며 원망스럽게 운다. 배를 너무 주려서 고통스러운 것 같다. 울 때마다 커다란 눈이 사납게 당겨 올라가고 흰 이빨이 가지런히 박힌 새빨간 입 안이 활짝 드러난다. 여자애는 사방을 둘러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이 고양이가 낯설다. 고양이는 발톱까지 활짝 드러낸 채 바로 코앞에서 여자애를 노려보며 운다. 여자애는 트렁크를 636에 맞추어 연다. 그리고 위에 얹힌 여행용 화장품 세트와 세안용훔 세트를 물고기에게 과자를 던져 줄 때처럼 호수 속으로 휙휙 던진다. 그리고 악력이 가득한 손아귀로 고양이의 뒷목을 쥐고 들어 올려 트렁크 속에 내던지고 순식간에 뚜껑을 닫아 힘껏 누르며 잠근 번호를 마구 돌린다. 번호는 869에서 멈추고 트렁크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온다. 여자애는 가방을 난간 위로 힘겹게 들어 올려 단번에 아래로 떨어뜨려 버린다.
여자애는 깊은 밤중에 잠에서 깨었다. 무서운 꿈을 꾼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을 때 여자애는 아빠의 음성을 들었다.
'그 남자 이혼한다든.'
아빠의 음성은 극도로 고요하다. 화난 것도 아니고 비웃는 것도 아니고 폭력적이지도 않다.
'또 그렇게 말하는구나. 그 남자 만나지 않아. 난 단지... 내 나름대로는 생을 위해 노력하려는 거야.'
'끔찍해. 나도 이렇게 살려고 한 건 아니었어. 이 모든 게 거짓말 같아. 너에게 부도덕하다는 말을 하진 않을 거야. 나의 무능 이런 현실 역시 부도덕한 거니까.'
'나도 너와 함께 잘하려고 노력했었어. 그래서 뒤늦게 명까지 낳았고. 하지만 더 이상은 불가능해.'
'알아. 네 말뜻 알아. 너에게 화나지 않아. 너의 생에 이렇게도 긴긴 그림자를 던지는 나 자신이 더 싫으니까.'
'꼭 그런 뜻이 아니야. 너에게 화나지 않아. 너의 생애 이렇게도 긴긴 그림자를 던지는 나 자신이 더 싫으니까.'
'꼭 그런 뜻이 아니야. 차라리 근본적인 거야. 많은 것을 잃고 난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갈 용기가 생겨 나는 그런 거 겨울에 들판과 숲의 길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아무래도 좋아 네 뜻대로 해. 최소한 넌 눅눅한 뒷방에서 곰팡이 피는 삶이 아니라 햇빛과 바람을 향해 걸어가는 삶을 선택할 권리는 있어. 너를 잡지 않을게. 어쩌면 나도 다시 노력할 수 있을 거 같아. 도시에서 배회하는 생활을 버리고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을 수도 있겠지. 나쁘지 않아. 나가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지만 너와 함께 밤바람을 쏘이면서 숨을 좀 쉬고 싶어. 산책을 하고 해가 뜬 뒤에 가도 그다지 늦지 않을 거야.'
곧 두 사람이 신발을 신는 부스럭거림이 들리고 조용히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힌다. 여자애는 오늘 밤 아빠의 음성은 낯설다고 느낀다. 고요하고 부드럽다. 무섭도록 부드럽다.
여자애는 화장실에 갔다 와서 다시 눕는다. 밤의 공원에 혼자 앉아 있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자전거와 서류 가방도. 그리고 머리채가 휘어 잡힌 것처럼 헝클어진 여자와 따귀를 맞은 남자 난간에 양쪽 팔을 끼우고 앉은 채 잠든 어린 소년... 난간 위에 끌어 올려진 트렁크는 첨벙 소리를 내며 호수 속에 빠졌다. 물 속에 잠긴 고양이. 여자애는 다시 잠이 든다. 잠결에 메메의 울음소리가 가냘프게 들려 온다.
여자애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늦은 아침이었다. 첫째 수업이 이미 끝난 시간 남향 거실에는 햇살이 깊숙이 비쳐 들어 한낮처럼 밝았다. 소파와 거실 바닥에는 가장자리가 시들은 꽃들이 열다섯 송이나 넘게 흩어져 있다. 분홍과 흰색의 장미꽃들과 자주색 소국과 커다란 꽃잎을 가진 노란 꽃과 흰 꽃이었다. 밤 산책을 할 때면 엄마와 아빠는 거리의 꽃가게를 지나다가 버려진 꽃다발이나 화환들 속에서 한두 송이씩 꽃을 뽑아오느 버릇이 있었다. 현관에는 가까운 곳에 나갈 때 신던 엄마의 운동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다. 아빠의 방에는 명과 아빠가 꼭 끌어안고 잠들어 있다. 여자애는 엄마의 방문 앞에서 숨을 멈추고 선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문을 열고 안을 엿본다. 파란색 커튼이 쳐져 새벽처럼 서늘하고 엷은 그늘이 드리운 엄마의 침대는 잘 정돈된 채 텅 비어 있다. 잠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여자애는 자신이 트렁크 속에 닫혀 물 속에 빠진 고양이처럼 아득해진다. 어디선가 메메의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 침대 아래인 것 같다. 침대 아래 그 아래의 아래 엄마가 사라진 까마득히 깊은 낭떠러지 아래...
여자애는 꽁꽁 언 얼음장같이 커다랗고 무겁고 무감각하게 느껴지는 발을 떠걱떠걱 움직여 침착하게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가방을 매고 천천히 학교로 간다. 담임 선생님은 무서운 남자 선생님이다. 여자애는 학교로 가는 동안 잠시 고민을 한다. 그리고 이제 막 둘째 수업을 시작한 교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곧장 선생님께 말한다.
'B 시에 있는 선생님은 여자애의 얼굴을 유심히 본다. 여자애는 선생님의 눈을 태연하게 마주 본다. 전혀 무섭지 않다. 선생님은 지난밤 여자애의 꿈속에 나타났다. 꿈속에서 여자애는 당번이어서 새벽에 학교를 갔다. 교정은 아직 텅 비어 있었다. 신발을 들고 목조 계단을 올라갈 때 여자애는 계단을 딛고 내려오는 선생님을 보았다. 곱슬머리에 얼굴이 유난히 검붉은 선생님은 검은 여자 한복을 입고 있었다. 선생님은 무엇엔가 끌려가는 환영처럼 공허하게 여자애를 스쳐 내려갔다. 여자애는 무서워서 온몸이 저릿하게 떨었다. 선생님이 왜 여자 옷을 입고 있을까 선생님이 왜 이 시간에 교실에서 나올까. 여자애는 공처럼 튀어나가려는 공포를 가슴속에다 꼭꼭 누르며 입을 꼭 다물고 묵묵히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했다. 커다란 주전자에 물을 가득 떠놓고 빨간색 플라스틱 컵도 씻었으며 교탁과 칠판도 닦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이 하나 둘 나타났다. 아이들로 교실이 가득 차자 새 분필통을 든 선생님이 태연하게 들어오셨다. 선생님은 늘 입는 감색 줄무늬 양복을 입었고 아이들의 인사에 답례하고 난 뒤 출석을 부르고 펴소처럼 수업을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여자애는 교실 정리를 하고 마지막에 나섰다. 복도는 텅 비어 있었는데 문득 복도 끝에서 선생님이 나타나 걸어왔다. 선생님은 또 검은 여자 한복을 입었고 발은 바닥을 스치지 않고 둥실 떠 있었다. 여자애는 너무 무서운 나머지 복도 한가운데서 굳어 버렸다. 선생님은 왜 이 시간에 교실로 가는 것일까. 왜 여자 옷을 입었을까 선생님은 무엇엔가 끌려가는 환영처럼 공허하게 여자애의 곁을 지나갔다. 여자애는 계단을 내려오며 그 무시무시한 비밀을 간직한 선생님이 가여워졌다. 여자애는 다른 아이들에게 소문을 내지 않고 비밀을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 꿈을 꾸어서인지 선생님이 무섭지 않다. 선생님과 여자애 사이에는 서로를 이해하겠다는 약속이 되어 있는 것만 같다.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고 들어가 앉으라고 말한다. 돌아설 때 여자애는 조금 웃는다. 아이들이 일제히 여자애를 쳐다본다. 여자애의 두 눈에 언듯 파란 커튼 그늘 속에 놓인 엄마의 빈 침대가 떠오른다. 여자애는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말을 해도 아무도 납득하지 못할 혼란스럽고 무서운 꿈, 엄마들이 떠나면 흔히 아이들의 인생에 일어날 수 있는 슬픈 일들이 여자애의 눈 속을 스쳐 간다. 술 취하고 난폭한 아버지 끝나지 않을 가난 음식 냄새도 없는 어둡고 텅 빈 저녁들 겨울하늘의 샛별 같은 떨림 무언가를 집어 던지게 되는 삶의 균열 잠이 들려고 할 때 흘러내리는 눈물 어둡고 낯선 길을 혼자서 걷는 꿈들... 그것은 앞으로 오랫동안 계속될 것만 같다. 그러나 여자애는 조금 웃는다. 여자애는 꿈속에서 선생님을 이해하겠다고 결심한 것처럼 전날 밤 엄마의 음성을 들으면서 엄마를 이해하려고 이미 결심했다. 겨울에 들판과 숲의 길들이 선명하게 드러나듯... 엄마는 그 길을 따라갔다. 누구나 노력하면서 살고 싶은 것이다. 여자애는 엄마 없이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들을 마음 속으로 천천히 세어 본다. 배가 고프면 냉장고 문을 열고 무언가를 찾아 먹을 수 있고 계란후라이를 만들 수도 있다. 옷이 더우면 벗어 던질 수 있고 추우면 더 껴입을 수 있고 세탁기를 돌릴 수도 있다. 먼지를 없애지는 못하지만 바닥을 쓸고 닦을 수 있고 가게에 가서 필요한 것을 살 수 있으며 명을 데리고 병원에도 혼자 갈 수 있다. 운동회엔 엄마 없이도 달릴 수 있고 자모회에 엄마가 나타나지 않아도 마음에 담지 않을 것이며 친척들이 모이는 날에도 엄마가 부엌에 없는 것 때문에 마음을 상하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날에 마치 먼지에 무관심하듯 엄마에 대해 무심한 척 할 수 있다. 실제로 슬픈 일 따위는 없다고 자꾸만 자신에게 타이를 것이다. 조그만 나무 의자에 앉을 때 여자애는 자라서 마술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먼 훗날 여자애는 여러 곳을 여행하다가 우연히 엄마가 사는 마을에 도착할 것이다. 그러면 늙은 엄마의 집을 찾아가 모자 속에서 가장 자리가 시든 장미꽃들과 보라색 소국과 커다란 꽃잎을 가진 노란색 꽃과 흰 꽃들을 만들어 내고 입 안에서 핑크색 종이 테이프 속에서 깃털이 망가진 살찐 비둘기들을 꺼내어 창 밖으로 날려 보내고 그리고 비밀번호가 635인 검은 트렁크에서 메메를 꺼내 다시 살려 낼 것이다. 엄마의 웃는 모습이 여자애의 눈동자에 아프게 박힌다. 여자에도 조금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