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발밑으로 사라진 사람들
이기호
1
이 소설은 우리 곁에 머물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린 한 모자(母子)에 관한 이야기이다.
2
그들 모자가 사라졌을 당시, 소년의 나이는 열세 살, 어미의 나이는 서른두 살이었다. 그 외에 그들에 대해 남아 있는 정보는 대부분 명확하지 않은, 뜬소문처럼 허망한 것들뿐이었다. 그들 모자는 행정적인 기록마저 전무할 정도로 깨끗한 상태였다. 호적, 주민 등록 등본, 출생 신고서, 인감 증명, 부동산 등기부 등본, 재산세 납부 실적…… 그 어떠한 서류에도 그들 모자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우린 다 알고 있다. 때론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렇게 말없이 사라진 사람들이 여럿 된다는 것을…… 특히 그들 모자가 살았던 사십 년 전은 그런 일들이 더욱더 비일비재했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막 주민 등록 번호가 부여되던 시절, 바로 그때의 일이었다.
3
소년의 어머니 황순녀(黃順女)는 참나무 숯처럼 검은 윤기가 흐르는 소에게 일을 당한 뒤, 그녀의 아들을 가졌다. 검은 밤, 그녀가 홀로 일군 화전 구릉지, 조그마한 천막 안에서였다. 당시, 그녀는 멧돼지와 고라니로부터 자신의 감자밭을 지키기 위해 밤마다 무명 이불잇을 뜯어 만든 천막 안에서 절굿공이 하나 달랑 든 채 잠을 잤다. 그녀를 돌봐주던 큰아버지는 식구들을 데리고 피난을 떠났기 때문에 집에서 자나 천막에서 자나 혼자 자는 것은 마찬가지였다(피난을 떠나지 않은 것은 전적으로 그녀의 의지였다. 순녀는 자신이 직접 일군 감자밭을 두고 떠날 수는 없다고 버텼다). 그땐 동네도 거의 태반이 빈집이었다. 그녀는 천막 안 흐릿한 호롱불 밑에서 멧돼지나 고라니의 발자국 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바람에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라도 들리면 득달같이 밖으로 뛰쳐나가 절굿공이를 휘둘러대며 고함을 질렀다.
“야, 이놈들아아아, 네놈들은 피난도 안 가고 뭐 하고 자빠졌다냐!”
그렇게 용감무쌍했던 당시 열여덟 살의 순녀는, 그러나 불행히도 초저녁잠이 너무 많았다. 이내가 깔릴 무렵부터 팔에 절굿공이를 끼고 까무룩 까무룩 졸기 시작한 순녀는, 아침마다 절굿공이를 베고 누워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겁지겁 감자밭으로 뛰어나가보면 어지럽게 파헤쳐진 이랑 사이로 채 굳지 않은 멧돼지 똥만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랑을 다시 만들고 멧돼지 똥을 모아 거름을 만들고, 동네 빈집을 돌아다니며 걷어 온 시퍼런 식칼들을 감자밭 주위에 창날처럼 꽂아두었다. 그러다 다시 어스름이 찾아오면 절굿공이를 팔에 낀 채 잠이 들었고.
그러던 어느 날 밤. 평소와 마찬가지로 천막 안에서 절굿공이를 죽부인 삼아 졸고 있던 그녀는 사방에서 울려 퍼지는 거칠고 묵직한 쇳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난생처음 듣는 기괴하고 소름 끼치는 소리였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질수록 그녀가 깔고 앉아 있던 멍석이 요동쳤고, 그녀의 연약한 씨감자들을 감싸고 있던 두두룩한 흙과 거름이 부르르, 고랑께로 떠밀려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녀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안고 허리를 무릎께로 잔뜩 구부렸다. 그녀는 생각했다. 멧돼지란 놈들이 떼로 몰려오는구나, 저놈들이 배를 곯더니 저리 사납게 이빨을 갈아대는구나, 아이고, 어쩌나 내 감자밭……. 순녀는 한쪽 구석에 떨어진 절굿공이를 집었다 놓고, 다시 움켜쥐었다 놓기를 반복했다. 그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쇳소리가 어느 정도 잦아들자 이번엔 산짐승들의 어지러운 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양손으로 귀를 막고 마치 절하는 듯한 자세로 엎드렸다. 숨소리를 내지 않으려 여벌로 갖다 놓았던 치마저고리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기도 했다. 얼마나 굶주렸기에 저것들이 저리 울어대노, 감자알이 실하지 못하다고 성질을 부리나? 그런데 왜 감자알이 실하지 못할까? 멧돼지 똥으로 거름을 써서 그러나? 그녀는 입을 틀어막은 상태에서도 오직 감자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쇳소리도 차츰 멀어져갔고,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희미해져 갔다. 하지만 그녀는 엉덩이를 천막 입구 쪽으로 바짝 치켜세운 상태 그대로, 옴쭉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었다.
사위가 고요해지자 그녀는 그제야 천막 입구를 향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녀는 천막 안을 들춰보던 검은 소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녀는 똑똑히 보았다. 어둠보다 더 짙은 낯빛 때문에 유난히 더 동그랗고 맑게 보이는 흰자위와 뿜어져나오자마자 물안개처럼 천막 안을 휘감던 회색빛의 입김을. 갓 짜낸 콩기름을 흠뻑 뒤집어쓴 듯한 번드르르한 두상과 그 위로 엉겅퀴처럼 성깃성깃 돋아나 있는 검은 털들을…….
순녀는 한동안 굳은 듯 검은 소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저것이 짐승인가, 가축인가, 그도 아니면 헛것인가? 열여덟의 용감무쌍했던 순녀는 바로 그 순간에도 저놈 등 위에 쟁깃줄을 잇고 감자밭을 갈면 얼마나 좋을까, 보습 날에 깎여 나오는 쟁깃밥이 얼마나 실할까, 하는 생각을 했다. 천막 안으로 반쯤 디밀어진 검은 소의 어깨와 두상은 그만큼 탄탄하고 장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 검은 소의 울룩불룩한 한쪽 발이 천막 안으로 불쑥 디뎌지자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돌려 다시 멍석 위에 머리를 조아렸다. 그 바람에 그녀의 엉덩이가 조금 더 위로 추켜올라가고 말았다. 머리 앞엔 절굿공이가 모로 누워 있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집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녀는 열여덟 살이었다. 감자밭에 대해서만 용감무쌍했을 뿐, 정작 자기 자신에게 닥친 위기와 위협에는 엉덩이를 추켜올리고 바닥에 엎드리는 것이 전부였던 어린 처녀.
검은 소는 천천히 그녀의 종아리 근처로 다가왔다. 거친 숨소리와 토해져 나온 더운 입김이 그녀의 종아리에 좁쌀만 한 소름을 만들어냈다. 검은 소는 한동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두 앞발을 세워 순녀의 검은 광목 치마를 허리까지 감아올렸다. 그러자 여러 날 빨지 않아 누리끼리해진 그녀의 고쟁이가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오래된 간장 냄새와 땀 냄새가 천막 안에 진동했다. 그녀는 걷어 올려진 치마보다도 자신의 몸에서 나는 냄새가 더 창피스러웠다. 마지막으로 목욕을 한 게 언제인지도 가물가물했다. 그녀는 걷어 올려진 치마를 다시 내리기 위해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어댔다. 손을 이용하고 싶었지만, 머리 위에 단단히 깍지 낀 두 손은 좀처럼 풀어지지가 않았다. 그저 허리를 좌우로 흔들어대는 것만이 부끄러움을 이겨내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냄새는 더욱더 심해져만 갔고, 괜스레 고쟁이와 그 안에 받쳐 입은 속곳만 엉덩이 아래로 한 뼘쯤 더 흘러내리는, 순녀가 결코 원치 않았던 상황을 초래하고 말았다.
검은 소는 두꺼운 입술로 그녀의 냄새나는 고쟁이와 속곳을 천천히 벗겨나갔다. 촛농처럼 뜨겁고 끈끈한 침이 그녀의 엉덩이 굴곡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온몸의 맥이 노글노글 풀리는 듯한 기운에 사로잡혔지만, 그 기운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이를 앙다문 채 깍지 낀 양손에 힘을 주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차츰 혼미해지는 정신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호미로 감자알을 캐내는 자신의 미래를 상상했다. 뿌리마다 가득 달려 나오는 어린아이 주먹만큼이나 토실토실한 감자알들을…….
검은 소가 그녀의 등 위로 올라탔지만, 순녀는 오직 감자 생각에만 골몰했다. 알이 굵은 것들은 쪄서 먹고, 곯고 상한 것들은 화롯불에 구워 먹어야지……. 너무 일찍 항아리에 쟁여놓으면 싹이 틀지도 몰라. 큰아버지네 안방에다 널어놓아야지……. 검은 소의 입김은 그녀의 등 뒤를 타고 올라와 귓불 근처에서 맴돌았다. 그녀는 감자 생각을 놓지 않으려 큰 목소리로 빠르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알이 굵은 것은…… 쪄서 먹고…… 곯고 상한 것은…… 화롯불에 구워 먹어야지…….”
그녀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검은 소의 움직임은 더욱더 빨라져만 갔다. 엉덩이에서부터 뒤통수까지 신작로가 뚫리고, 그 길을 통해 자신의 머릿속 뇌수가 줄줄 새나가는 것만 같았다. 그녀는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더욱더 빠르게 중얼거렸다. 자신이 무엇을 웅얼거리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쟁기로…… 감자밭을…… 갈아서…… 씨감자를 묻고…… 땅속…… 깊이…… 씨감자를…….”
그러다 그녀는 끝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 그녀는 검은 소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너무도 슬프고 여린, 사람의 울음소리를 닮아 있었다.
4
큰아버지가 피난에서 돌아왔을 때, 순녀는 이미 만삭의 몸이었다. 안방에는 굵은 감자알들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큰아버지가 순녀에게 물었다.
“누가 너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느냐? 북쪽이냐, 남쪽이냐?”
순녀는 씨감자들을 작은 항아리에 옮겨 담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소요, 검은 소가 그랬어요.”
큰아버지네 식구들 중 그 누구도 순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북이냐 남이냐, 만을 집요하게 따져 물었을 뿐이었다. 사촌들은 소련군이나 터키군을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순녀는 완강했다.
“사람은 등 뒤에서 그 짓을 못하잖아요. 그건 네 발 달린 짐승들이나 하는 짓이죠. 내 말이 틀린가요?”
순녀의 말에 큰어머니는 얼굴을 붉혔고, 큰아버지 또한 더 이상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큰아버지는 순녀의 하얀 천막이 있던 곳에 작은 초가를 한 채 지어주었다. 전세(戰勢)가 역전되자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피난지에서 되돌아오고 있었다. 큰아버지는 순녀에게 당부했다.
“이 집을 벗어나지 말거라. 마을로 내려오지 말라는 얘기야. 감자밭은 네가 일궈 먹어도 괜찮을 거다. 몸을 풀고 나면 암송아지도 한 마리 사주마.”
순녀는 큰아버지 말에 고분고분 따랐다. 감자밭과 그 밭을 일굴 황소 한 마리만 있다면 굳이 마을로 내려갈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순녀는 동짓달부터 미리 감자밭 주위의 자갈을 골라내며 내년 농사를 준비했다. 때때로 태어날 아이 걱정을 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순녀는 감자밭으로 나가 언 흙을 두들겨보거나 서리 맞은 엉겅퀴의 우듬지를 뜯어냈다. 머리에 뿔을 달고 나와도 상관없어. 아버지를 닮았으면 순할 테니까……. 아이가 크면 감자 농사부터 가르쳐야지. 아버지를 닮았으면 힘이 좋을 거야. 둘이 함께 거름을 나르면 저쪽 뒷동산 기슭까지 감자밭으로 만들 수 있을 거야. 아가야, 함께 감자밭을 넓혀가자꾸나. 알이 굵은 것은 쪄서 먹고, 곯고 상한 것은 화롯불에 구워먹자꾸나. 순녀는 밤하늘 별이 떠오를 때까지 감자밭 주위를 서성거리며 반달처럼 부푼 자신의 배를 어루만졌다.
순녀가 아이를 낳은 것은 전쟁이 끝나기 아홉 달 전의 일이었다. 저녁나절, 식칼을 빌리러 순녀의 집에 들렀던 사촌 언니는(동네엔 식칼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다시 집으로 내려가 삼신끈과 가위를 들고 올라왔다. 순녀는 문고리에 묶은 삼신끈을 바투 잡은 후, 사촌 언니를 방 밖으로 내보냈다. 그녀는, 아이의 모습이 온전치 못해도 자신의 손으로 키울 결심을 했다. 그러자면 사촌 언니가 아이의 모습을 보면 안 되었다. 그나마 감자밭 근처에 살게 해주었던 큰아버지가 또 어디 먼 곳으로 보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산통은 그리 심하지 않았다. 아이의 머리가 음부 사이로 빠져나오기 시작했을 때, 으읍, 소리 한 번 낸 것이 전부였다. 순녀는 아이와 자신을 이어주는 탯줄을 자르기도 전에 그을음이 나는 등잔불 옆으로 아이를 데리고 갔다. 그러곤 아이의 발목을 쥐고 몸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다섯 개씩 모두 온전했다. 엉덩이에 꼬리도 없었고, 이마에 뿔이 달리지도 않았다. 다행히 아이에게서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순녀는 긴 한숨을 한 번 내뱉은 후 아이의 엉덩이를 소리나게 때렸다. 그러나 아이는 울지 않았다. 순녀는 조금 세게 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철썩, 철썩. 그제야 아이는 작은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방 밖에서 식칼을 들고 서 있던 사촌 언니가 뛰어들어왔다. 그러곤 아이를 들어올리고서 소리쳤다.
“사내애야, 사내애! 까무잡잡하게 생긴 사내애!”
5
큰아버지는 아이의 이름을 황우석(黃牛石)이라고 지어주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일 년 뒤 누런 암송아지 한 마리를 사주었다. 순녀는 그 암송아지를 우석과 함께 같은 방에서 키웠다. 그녀는 그것이 우석 아버지에 대한 작은 예의라고 생각했다.
우석은 별 탈 없이 잘 자라났다. 몇 번 암송아지의 여물을 뺏어 먹다 사레가 들리기도 하고, 꼬리를 잡아채다 뒷다리에 걷어채기도 했지만, 큰 병을 앓거나 뒤늦게 꼬리가 자라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만 아이가 만 두 살이 다 되도록 엄마, 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두 발로 걷지 못하고 온종일 방바닥과 툇마루를 기어 다닌다는 것, 그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언젠가 사촌 언니가 그런 우석을 보며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얘가 왜 이렇게 늦되지? 뭐 잘못된 거, 아니야? 이러다 걷지도 못하는 앉은뱅이가 되면 어쩌지?”
하지만 순녀는 무덤덤했다.
“잘못된 거 하나 없어. 그냥 피를 이어받은 거지. 감자 농사 짓는 덴 아무 문제 없어. 뼈가 아주 굵은 애거든.”
순녀는 우석에 대해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았다. 말을 못해도 상관없단다, 아가야. 네 큰 눈망울을 보면 엄마는 네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다 알 수 있거든…… 걷지 못해도 상관없단다, 아가야. 네 탄탄한 두 팔로 감자밭을 기어 다니면 되지,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단다…….
순녀는 우석을 품에 안고 잘 때마다 그렇게 중얼거렸다. 암송아지는 방 윗목에 누워 연신 큰 눈을 슴벅거리며 그들 모자를 조용히 지켜보았다.
순녀와 우석, 그리고 암송아지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들은 평온했고, 조용했다. 감자순 또한 자고 일어날 때마다 소리 없이 자라나 있었고, 때가 되면 꽃을 피웠다. 가끔 놀러 오던 사촌 언니마저 대처로 시집가고 난 뒤부터는 그 누구도 그들을 찾아오지 않았다.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만이 그들을 찾아왔다 떠나갈 뿐, 세상은, 그들의 감자밭은,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 속에 말없이 누워 있었다.
6
문제가 생긴 것은 우석이 만 네 살 되던 해 봄, 순녀의 집 뒷동산 너머에 군부대가 주둔하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모든 것은 순식간에, 순녀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일어났다. 맨 처음, 순녀의 집 뒷동산 오른쪽 고욤나무에서부터 왼쪽 끝 산벚나무까지 둥근 철조망이 반원을 그리며 촘촘히 쳐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군인 몇 명이 커다란 망치를 들고 나타났다. 그러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군사 보호 지역’이란 하얀 푯말을 박아대기 시작했다. 그들이 다녀간 지 이틀 후, 벽돌을 잔뜩 실은 트럭들이 예닐곱 차례 드나드는가 싶더니, 며칠 뒤 투박하고 길쭉한 막사가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곧이어 깃발을 앞세운 군인들이 떼로 몰려들었고, 거대한 확성기가 순녀의 집 바로 뒤편에 설치되었다. 여명이 밝기도 전에 확성기에선 시끄러운 나팔 소리가 울려퍼졌고, 나팔 소리가 울려퍼지자마자 군인들은 웃통을 모조리 벗어던지고 고함을 내지르며 순녀의 감자밭 주위를 뛰어다녔다. 한낮에는 느닷없이 총소리가 울려퍼져 누렁이(송아지는 그새 다 자라 듬직한 황소가 되어 있었다. 순녀는 그 황소를 누렁이라 불렀다)를 날뛰게 만들었고, 늦은 밤에는 구슬픈 나팔 소리가 흘러나와 순녀의 꿈을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참다못한 순녀는 우석이와 누렁이를 데리고 군부대 정문 앞으로 찾아갔다. 정문 앞에는 일병 계급장을 단 젊은 군인 한 명이 경계총 자세로 서 있었다. 순녀가 말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거죠?”
군인은 부동자세를 풀지 않은 채 슬쩍 시선만 순녀 쪽으로 보냈다. 순녀는 계속 앞으로 걸어 나가려는 누렁이의 고삐를 움켜쥐고 재차 물었다.
“며칠이나 더 있을 거냐고요?”
“저…… 말이십니까?”
젊은 군인은 그제야 순녀 쪽으로 몸을 틀었다.
“아니요. 전부 다요.”
“……?”
“여기는 내가 우리 아들과 함께 예전부터 감자밭을 만들기로 약속한 곳이란 말이에요. 내가 그동안 틈틈이 거름도 다 뿌려놓은 곳이구요. 댁들이 빨리 나가야 흙을 고르든 이랑을 만들든 할 거 아니에요.”
“어디 말씀이십니까? 여기 말입니까? 여기, 우리 부대 안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젊은 군인은 손가락으로 자신이 밟고 있는 땅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곤 잠깐 순녀와 우석, 그리고 누렁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았다. 우석이는 순녀의 등에 업힌 채 군인과 눈을 맞추었고, 누렁이는 길고 게으른 울음을 울었다. 젊은 군인은 잠시 막사 쪽을 한번 살펴보더니 좀 전과 달리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줌마, 여기엔 감자밭을 만들 수 없어요. 돌아가세요. 우린 이사 안 갑니다.”
“왜죠? 여긴 내가 아주 오래 전부터 봐둔 곳이란 말이에요. 주인도 없는 자갈투성이 땅이었단 말이에요.”
순녀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예전, 멧돼지에 맞서 절굿공이를 휘둘렀던 순녀의 기백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여긴 국가에서 군인들만 살게 지정해준 국유지란 말입니다. 알겠습니까, 국유지!”
“그게 무슨 말이에요? 여긴 내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아무도 살지 않은 땅이에요! 여긴 국가가 한 번도 살지 않은 땅이란 말이에욧!”
젊은 군인은 잠시, 순녀가 불순 용공 세력이 아닐까, 의심했다. 대대 운용본부에 보고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내 생각을 고쳐먹었다. 아이를 둘러업고 암소를 끌고 다니는 불순 용공 세력이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것 같았다. 괜스레 보고했다가 욕만 얻어먹기 십상이지…….
젊은 군인은 순녀와 우석, 그리고 누렁이를 쫓아냈다. 순녀가 꼼짝 않고 버티자 누렁이 엉덩이를 캘빈 소총 개머리판으로 살짝 내리쳐 그 자리에서 날뛰게 만들었다. 누렁이가 날뛰자 우석 또한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순녀는 어쩔 수 없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 순녀는 총 스물여섯 차례나 부대 정문 앞을 찾아가 위병과 실랑이를 벌였다. 갈 때마다 위병이 바뀌어 있어서 순녀는 매번 자신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해야만 했다. 빨리 이사를 가라, 못 간다, 지금 파종하지 않으면 올해 감자 농사는 망친다, 저쪽 당신 밭에다 씨감자를 심으면 되지 않느냐, 아줌마가 이렇게 나오면 저쪽 밭도 장담 못 한다, 식구가 늘어서 밭이 더 필요하다, 그건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도대체 국가가 누구냐, 국가는 제일 신성하고 높은 것이다, 그렇게 신성한 것이 어찌 그리 자주 피난을 가버리느냐, 당신 지금 국가를 모독하는 거냐, 멧돼지도 피난 한 번 안 갔다, 이 아줌마가 정말…….
순녀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위병들은 늘 대대 본부에 보고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궁리하다가, 그냥 캘빈 소총으로 애꿎은 누렁이의 엉덩이만 내리쳤을 뿐이었다.
순녀가 정문 앞 위병들과 실랑이를 그만둔 것은 오로지 씨감자의 파종 시기 때문이었다. 밭을 늘릴 작정으로 평소보다 세 배가량 더 준비해두었던 씨감자들의 눈에 하나 둘 싹이 트기 시작했다. 순녀는 그런 씨감자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조마조마해졌고 애가 탔다. 말싸움만 하면서 하염없이 기다릴 순 없는 노릇이었다.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사위는 완연한 암갈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이곳저곳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올랐고 길 잃은 지렁이가 순녀의 찢어진 고무신 뒤축 사이로 기어들어왔다. 순녀는 방 한편에 모아둔 씨감자들과 우석의 얼굴을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길고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던 사월 중순 어느 날(이틀 동안 내리던 봄비가 그친, 볕 좋고 따스한 날이었다), 순녀는 우석이를 둘러업고 누렁이의 고삐를 짧게 쥔 채 집을 나섰다. 누렁이의 등 위엔 씨감자들을 담은 자루가 얹혀져 있었고, 순녀의 한 손엔 녹슨 호미 한 자루가 쥐어져 있었다.
순녀는 부대 철조망 담벼락을 에워 돌아가며 씨감자를 네 조각으로 나눈 후, 한 조각씩 한 조각씩 파종하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씀바귀와 차전초는 뿌리째 뽑아내고 그 자리에 조각난 씨감자를 조심조심 묻어나갔다. 두 줄로 심을 만한 여유가 있는 곳엔 두 줄로, 커다란 돌덩이가 가로막고 있는 곳엔 담벼락에서 좀더 멀찌감치, 푯말이 박힌 곳엔 푯말 바로 앞쪽으로, 순녀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씨감자를 묻고 또 묻어나갔다. 손톱 끝이 아려오고 등 뒤에선 우석이가 쉴 새 없이 칭얼거렸지만, 순녀는 씨감자 파종을 멈추지 않았다. 부동자세를 취한 채 곁눈질로 순녀를 바라보던 위병들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그들 눈에 순녀는, 그저 봄나물을 캐러 나온 순진한 아낙네에 불과했다.
파종을 시작한 지 닷새째 되던 날, 드디어 누렁이의 등에 얹혀 있던 씨감자들이 모두 본래의 고향인 땅으로 되돌아갔다. 순녀는 호미 든 손으로 허리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러곤 우석이에게 젖을 물리며 군부대 철조망 담벼락을 바라보았다.
“아가야, 걱정할 것 하나 없단다. 엄마가 심은 감자 뿌리가 땅 밑으로 쭉쭉 뻗어나갈 거야. 국가란 놈이 암만 땅 위에서 설친다고 해도 땅 밑은 여전히 우리 감자밭이란다…….”
7
순녀의 씨감자들이 부대 밑 땅속에서 쭉쭉 뿌리를 뻗어나가고 있을 때쯤, 지상에선 우석이가 제 몸피를 늘리며 쑥쑥 자라나고 있었다. 젖을 떼는가 싶더니 어느새 제 손으로 감자 껍질을 깠고, 만 네 살이 지나면서부터는 순녀 사촌 언니의 우려와 달리 사립문 옆 화장실 부{돌 위에 두 발로 앙가조촘 서서 일을 보기 시작했다. 다섯 살이 넘어서는 일어나 걸어 다니기 시작했고(하지만 여전히 걷는 속도보단 기는 속도가 더 빨랐고, 그게 더 편해 보였다), 그리 발음이 정확하진 않았지만 ‘어마, 어마’ 소리를 내며 순녀를 부르기도 했다.
우석이가 아홉 살 되던 해엔 면서기라는 사람이 그들 모자의 집을 처음으로 방문하기도 했다.
“거, 군인들한테 들으니까 이 집에 아이가 한 명 있다던데, 얜가?”
면서기는 철끈으로 질끈 묶은 서류 뭉치를 뒤적거리면서 우석이를 힐끗 내려다보았다.
“애가 크네. 올해 몇이야?”
“아홉 살인데, 왜 그러시죠?”
순녀는 우석이를 등 뒤로 숨기며 되물었다.
“왜 그러긴. 애가 컸으면 학교엘 보내야지. 뭘 좀 가르쳐야 할 거 아니야? 허, 거참 이상하네……. 왜 얘만 서류에 없는 거지?”
“얘가 배워야 할 건 제가 다 가르칠 수 있는데요. 제가 밭으로 데리고 나가서 하나하나 천천히 가르쳐주면 돼요.”
면서기는 잠시 순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서류 뭉치로 눈을 돌리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군인들 말 그대로일세. 이것 봐, 젊은 엄마. 그게 의무야, 세상 모든 부모의 의무라고. 아무리 이런 외진 곳에 처박혀 산다 해도 뭘 좀 알고 애를 키워야지. 아, 근데 얘 입학 통지서는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면서기는 순녀 앞에서 한참을 더 서류 뭉치를 훑어보다가 결국 입학 통지서를 건네지 못한 채 되돌아갔다. 나중에 따로 입학 통지서를 보낼 테니 그땐 꼭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순녀가 고발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면서기의 말과는 달리 그후 몇 년이 지나도록 우석의 입학 통지서는 배달되지 않았다. 순녀는 아들을 밭으로 데리고 나가 하나하나 천천히, 감자순과 잡초를 구분하는 법부터 가르치기 시작했다.
군부대는 그때까지도 이사 가지 않고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순녀는 해마다 군부대 주위를 하얀 감자꽃으로 포위해가며 위협을 가했지만, 군부대 담벼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수확도 신통치가 못했다. 보름에 한 번꼴로 부대 담벼락을 돌며 김을 매고 솎음을 해주고 북을 돋우어주었지만, 결과는 늘 마찬가지였다. 알이 굵어질까 싶어 꽃이 피기 무섭게 꽃대도 따주고, 품종도 난곡 1호에서 2호로 바꾸어보았지만, 언제나 잘고 속 빈 감자들이 달려 나왔다. 순녀는 그 모든 것이 다 땅의 기운이 빠져나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군인들 총부리에서 퍼져나온 쇠 기운이 땅의 기운을 모두 앗아가서 그런 것이라고(그녀는 거름을 만들어 부대 담벼락 주위에 뿌려보기도 했다. 그 때문에 순녀는 또 한번 군인들과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군인들은 순녀의 그런 행동이 심각한 국가 모독죄에 해당된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순녀는 실망하지 않고 해마다 군부대 주위에 씨감자를 묻고 김을 매주었다. 자신의 감자 줄기가 군부대 땅 밑에서 서로 뒤엉켜, 막사 벽돌에 균열을 일으키고 건물 주춧돌을 뒤흔들어 머지않아 군인들 모두가 이곳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설령 자기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우석이가 꼭 이뤄내고 말 것이라고……. 언젠가 또 시간이 흘러 국가가 피난을 떠난다면 그 빈자리에 우석이가 하얗고 탐스러운 감자꽃을 지천으로 피게 만들 것이라고…….
8
또다시 조용하고 느린 시간들이 흘러갔다. 정문을 지키던 위병들은 모두 제대를 하여 고향으로 되돌아갔고, 그 자리를 다시 어린 신병들이 채워나갔다. 부대 막사 뒤로 새로 각개 전투장이 지어지는 바람에 담벼락이 조금 더 늘어났고, 폐타이어를 덕지덕지 붙인 망루와 초소가 철조망 사이사이에 지어졌다.
우석이는 소나무처럼 자라 어느새 열두 살이 되어 있었다. 키도 순녀보다 한 뼘쯤 더 커졌고, 어깨도 더 넓어졌다. 금방이라도 자잘한 땀방울들이 송골송골 맺힐 것 같은 구릿빛 피부와 굵게 쌍꺼풀진 눈매 때문에 더욱더 순해 보이는 눈망울, 그리고 완고한 턱선과 두꺼운 입술을 가진, 잔병치레 한 번 치르지 않은 건강한 소년으로 자라났다. 이미 아홉 살 때부터 순녀와 함께 감자 농사를 짓기 시작한 우석은 해가 뜰 때부터 달이 뜰 때까지, 제비가 찾아왔다 다시 돌아갈 때까지, 순녀와 누렁이와 함께 감자밭에서 밥을 먹고 감자밭에서 낮잠을 잤으며, 감자밭에서 오줌을 누었다. 봄이 되면 순녀를 따라 군부대 담벼락 주위에 씨감자를 심었으며 중간중간 커다란 돌덩이가 나올 때마다 혼자 힘으로 뿌리째 캐내어 어머니의 길을 터주었다. 김을 매는 손은 맵고 꼼꼼했으며, 순녀가 세 끼 내내 내놓는 감자 음식(그러니까 삶은 감자, 구운 감자, 감자전, 감자떡, 감자수제비, 감자무침)에도 군소리 한 번 없이 제 그릇을 비웠다.
하지만 우석은 그때까지도 두 발로 걷는 것보다 두 팔과 무릎으로 기어 다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집 안에선 방과 툇마루, 그리고 부엌 사이를 두 발로 잘 걸어 다녔지만, 감자밭에만 나가면 두 손과 무릎을 땅에 붙이고 이랑과 이랑 사이를 기어 다녔던 것이다. 순녀는 그런 우석을 나무라지 않았다. 그녀는 그것이 우석의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단지 아버지의 걸음걸이를 이어받은 것뿐이라고.
우석이는 말도 여전히 ‘어마, 어마’ 하는 게 전부였다. 그 말도 이틀에 한 번, 혹은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드물게 했다. 순녀는 언제나 우석의 눈망울을 보고 말했고, 우석이의 눈망울을 보고 무슨 말인지 알아들었다. 그녀는 답답해하지도, 쓸쓸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우석이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너무 많은 것을 묻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녀는 어린아이처럼 우석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며 슬쩍 미소 지었다. 네 아버지는 그렇게 말을 많이 하지 않았어.
그해 구월엔 순녀가 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은 감자들이 땅에서 태어났다. 슬쩍 줄기만 당겨도 예닐곱 개의 씨알 굵은 감자들이 앞 다투어 말간 알몸을 드러낸 채 탯줄 같은 뿌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버둥거렸다. 이미 땅속에서부터 탯줄을 놓친 감자들은 흙을 양수 삼아 이곳저곳 유영하다 순녀와 우석의 손에 조심스레 제 몸을 맡겨왔다. 어디를 파나 흙 반 감자 반이었다. 밤엔 비가 내렸고 아침엔 구름이 끼었다. 흙은 스스로 제 옷고름을 풀고 보드라운 속살을 맡겨왔다. 순녀와 우석은 호미질을 하지 않고 오직 두 손만으로 감자를 캐내었다. 방과 부엌 벽면은 온통 감자 가마니로 가득 채워졌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부엌 뒤편에 따로 토방(土房)을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
“여긴 에미들의 방이구나. 여기서 한겨울 잘 나야 씨감자가 되는 거란다.”
순녀는 밭에서 돌아올 때마다 토방 가득 채워진 감자들을 토닥거리며 말을 건넸다. 그럴 때마다 순녀는 가슴 한편이 따뜻해지고 훈훈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우석이는 그런 순녀의 등 뒤에서 말없이 자신의 엄마와, 이제 내년이면 다시 엄마가 될 씨감자들을 향해 다소곳이 고개를 숙였다.
겨울엔 순녀의 집안에 뜻하지 않은 한 가지 우환이 찾아왔다. 감자 걷이 때부터 굵은 눈곱이 끼고 시름시름 힘을 못 쓰던 누렁이가 동짓날을 닷새 남기고 기어이 자리보전을 하고 누워버린 것이었다. 순녀와 우석은 방 아랫목을 누렁이에게 양보하고 군불을 지피고 여물을 쑤었지만, 누렁이의 병세엔 별다른 차도가 보이질 않았다. 우석이는 하루 종일 누렁이의 곁을 떠나지 않고 얼굴을 맞댄 채 두 눈을 끔벅거리기만 했다. 가끔씩 고개를 끄덕이며 누렁이의 목덜미를 매만져주기도 했다. 순녀는 자신의 감자죽을 누렁이의 입에 떠 넣어주었지만, 누렁이는 멀건 감자죽마저도 목구멍 안으로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하루가 다르게 말라갔다. 보다 못한 순녀가 수년 만에 처음으로 읍내에까지 나가 누렁이의 약을 구하려 노력했지만, 결국 빈손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읍내 사람들은 순녀에게 주로, “몇 근이나 나가는데?” 하고 되물을 뿐이었다. 순녀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우석이는 누렁이 옆에 조용히 잠들어 있었고, 그런 우석의 뺨을 누렁이가 찬찬히 핥아주고 있었다. 순녀는 한동안 방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설주에 기댄 채 조용히 서 있었다.
그리고 정월 초하루를 사흘 앞둔 추운 겨울날 아침, 잠에서 깬 순녀와 우석은 아랫목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순녀와 우석은 직감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았다. 그들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옷을 챙겨 방 밖으로 나왔다. 그들은 서로 말하지 않았으며 무엇을 찾기 위해 애써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사립문에서 감자밭으로 이어진 길 옆, 순녀가 거름을 모아두기 위해 옴폭 파놓은 땅 위에, 두 눈을 감은 채 모로 누워 있는 누렁이를 발견했다. 순녀도 우석이도 울지 않았다. 그저 한동안 누렁이의 뻣뻣해진 털을 어루만져주었을 뿐이었다. 거센 바람이 몇 차례 불어오고 군부대 위병의 근무 교대가 몇 차례 더 이루어질 때까지, 그들 모자는 그렇게 누렁이 곁에 굳은 듯 서 있었다. 그리고 밤이 되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집 뒤꼍에 모아둔 거름을 누렁이 몸 위로 나르기 시작했다. 거름이 손에 묻고 매서운 겨울바람이 목덜미를 할퀴고 지나갔지만, 순녀와 우석이는 인상을 쓰지도 머뭇거리지도 않았다. 될 수 있는 한 서로의 눈을 피한 채, 묵묵히 삼태기를 져 나를 뿐이었다.
거름을 모두 옮긴 후, 순녀는 말없이 우석이를 끌어안고 누렁이의 몸 위로 올라섰다. 그러곤 읊조리듯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아버지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감자밭에 거름이 되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누렁이와 비슷한 생을 누렸을 테니…….”
우석이는 그제야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그 소리는 예전 순녀가 들었던, 너무나도 슬프고 여린, 아비의 울음소리를 닮아 있었다.
9
다시 봄이 되었지만 순녀와 우석이는 씨감자를 파종하지 못한 채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근 이십 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춘삼월에도 폭설이 내리는, 봄 같지 않은 봄날이 연일 이어졌다. 밭은 돌덩이처럼 딱딱했고 바람은 시퍼렇게 날을 세운 채 대기를 떠돌아다녔다. 토방에 쌓아둔 씨감자들의 눈에선 하루가 다르게 푸릇한 기운이 느껴졌고, 군데군데 푸른곰팡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순녀와 우석이는 이른 아침부터 쇠스랑과 화가래를 들고 감자밭으로 나갔지만 좀처럼 이랑과 고랑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화가래를 놀렸지만, 돌아보면 예년에 비해 턱없이 얕고 비좁은 골을 이룬 이랑들이 초라하고 어색한 자세로 누워 있었다. 순녀는 매일 아침 토방에 들어가 썩은 감자들을 골라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씨감자들이 어미가 되지 못하고 처녀로 늙어가는 것이 모두 자신의 탓만 같아, 마음이 아프고 애잔해졌다. 누렁이만 있었더라도…… 순녀는 입버릇처럼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러다 다시 화가래를 쥐고 밭으로 뛰어나갔지만, 결과는 언제나 마찬가지였다. 화가래와 쇠스랑으로는 밭 이곳저곳에 생채기만 낼 뿐, 허방 같은 골짜기는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렇다고 생채기에 씨를 뿌릴 수도 없는 일…… 시간이 흐를수록 순녀의 마음은 무거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토방에서 상한 씨감자들을 골라 부엌으로 힘겹게 걸어 나오던 순녀는, 마당 한가운데 마치 큰절하듯 엎드려 있는 우석이를 발견했다. 그리고 무춤, 그 자리에 멈춰 서고 말았다. 엎드려 있는 우석이의 어깨에 예전 누렁이의 등 위에 있던 쟁깃줄이, 굵고 거칫한 짚으로 얼기설기 엮은 쟁깃줄이, 단단하게 묶여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겨우내 쓰지 않아 녹이 슨, 그러나 여전히 날카롭고 묵직해 보이는 보습과 한마루가 아무렇게나 누워 있었다. 마치 누렁이가 다시 살아 돌아온 듯, 순녀의 마음속 저편에서 쨍, 하며 돌부리에 보습 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녀는 한동안 말없이 우석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우석이에게 다가갔다. 우석이는 예전 누렁이가 그랬던 것처럼 한 손을 땅에 디딘 채 연신 흙을 파헤쳤다 다시 덮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네가 할 작정이니……?”
순녀의 말에 우석이는 무표정한 얼굴로 두 눈을 끔벅였다.
“누렁이도 다 큰 다음에야 쟁기질을 한 거란다…….”
사립문 옆 상수리나무 위에선 까치가 시끄럽게 울어댔고, 군부대에선 오전 일과를 알리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우석이는 순녀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순녀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순녀 또한 시선을 돌려 감자밭 너머 군부대 망루를 멀거니 쳐다보았다. 망루 위에선 초병 두 명이 부동자세를 취한 채 순녀의 감자밭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가, 난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단다. 넌, 네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았으니까……. 하지만 이건 좀 빠르구나…….”
순녀가 망설이자 우석이가 허리를 펴, 배 밑에 깔고 있던 얇은 싸리나무 가지 하나를 순녀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예전에 순녀가 누렁이의 등을 쳐 방향을 일러주던, 순녀와 누렁이의 보이지 않는 대화를 더듬거려주었던, 소경의 지팡이와도 같은 여린 싸리나무 가지였다. 순녀가 그것을 받아들자 우석이는 뒤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그 바람에 무방비 자세로 누워 있던 보습이 땅에 끌리며 요란한 쇳소리를 냈다. 마당에 깔려 있던 자갈들도 함께 쓸려가며 뿌연 먼지를 토해냈다. 쩡강, 쩡강.
순녀는 사립문을 나서는 우석이와 쟁깃날을 무연히 바라보다 느릿느릿 뒤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감자밭 입구에서 한마루 중간 부위를 집어 들었다. 그제야 우석이 순녀를 향해 힐끔 뒤돌아보았다. 우석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고 무덤덤했다. 순녀는 잠시 우석의 얼굴과 쟁기를 번갈아가며 바라보다 이내 결심한 듯 성에에 힘을 줘 감자밭 입구에 보습을 박았다. 보습은 한 자 깊이로 제대로 박혔고, 그와 동시에 한마루와 우석이의 등을 느슨하게 이어주던 줄이 팽팽하게 일어섰다. 먼 곳에서 구름이 꾸물꾸물 밀려오고 있었다.
순녀와 우석이는 그 자세 그대로 굳은 듯 움직이지 않았다. 망루 위에 있던 초병 두 명이 부동자세를 풀고 허리를 앞으로 길게 뻗어 그런 순녀와 우석이를 신기한 듯 내려다보았다. 한차례 바람이 그들의 얼굴을 훑고 지나가고, 상수리나무 위에 앉아 있던 까치가 어딘가를 향해 날아오를 때쯤, 순녀의 손에 들려 있던 싸리나무가 허공을 갈랐다.
“이랴!”
순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우석이는 앞으로 기어 나가기 시작했다. 순녀가 잡고 있던 쟁깃날도 부르르, 떨리며 쟁깃밥을 토해냈다. 겨우내 굳어 있던 흙들이 뽀얀 목선과 풍성한 젖가슴과 잘록한 허리선을 거쳐, 깊고 검은 제 음부를 세상에 드러내며 수줍게 다리를 벌렸다. 흙은, 겉은 메마르고 거칠어 보였지만, 음부는 깊은 곳에서부터 흠뻑 젖어 있었다. 순녀는 최대한 손목에 힘을 줘 우석의 걸음을 가볍게 해주려 노력했다. 성에에 와 닿는 우석의 힘은 예전 누렁이의 그것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것이 순녀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이 아이는 정말 제 아비를 쏙 빼닮았구나, 제 아비가 여기 숨어 있었구나……. 순녀는 다시 한 번 싸리나무를 가볍게 쳐들었다.
“이랴, 자라!”
망루 위 초병들은 들고 있던 소총을 아예 폐타이어 옆에 세운 채 순녀와 우석이를 내려다보았다. 까치발까지 디뎌가며 감자밭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순녀는 그런 초병들을 개의치 않고 더 큰 목소리로 우석에게 말을 건넸다.
“이랴! 자라! 워, 어디디디어! 서라……! 돌아라……!”
10
그러나 순녀와 우석의 쟁기질은 채 사흘도 가지 못해 중단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군인들이, 순녀네 감자밭으로 떼를 지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 순녀와 우석이를 찾아온 사람은 몇 년 전에 봤던 바로 그 면서기였다. 면서기는 화난 표정으로 순녀에게 따지듯 물었다.
“이게 지금 무슨 짓이야!”
우석이는 면서기를 본체만체, 계속 앞으로만 기어 나가려 했다. 순녀가 그런 우석이를 싸리나무로 달랬다. 워, 워.
“뭐가요? 또 뭐가 잘못됐죠?”
“아니, 지금 애한테 무슨 짓이냐고! 군부대에서 도 교육청으로 전화하고 난리 났잖아! 사병들이 우울해져서 근무를 못 서겠다고!”
“그게 우리하고 무슨 상관이지요? 그리고 이건 우리 아들이 원해서 하는 일이에요.”
“아니 아무리 애가 원해도 그렇지 이게 말이 돼……. 그리고 이 꼬맹이가 뭘 알아서 원한다는 거야? 야야, 꼬맹아, 너 정말 그거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응? 아저씨한테 말해봐.”
면서기에 물음에 우석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면서기는 그런 우석이를 외면한 채 가지고 온 서류 뭉치만 뒤적거렸다.
“잔말 말고 내일 당장 학교부터 보내.”
“우린 이랑을 만드는 게 급해요. 저쪽 부대 앞에도 씨감자를 심어야 하고요.”
“아, 이랑이고 아랑이고 학교부터 보내라고! 국가에서 공짜로 가르쳐준다는 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면서기는 버럭 목소리를 높이며 서류 뭉치를 뒤적였다. 하지만 이번에도 우석이의 입학 통지서는 나오질 않았다. 면서기는 내일 중으로 입학 통지서를 보낼 테니 여하간 모레부턴 아이를 꼭 학교에 보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순녀를 고발할 거라는, 사 년 전에 했던 말을 똑같이 반복한 뒤 돌아갔다. 순녀와 우석은 그런 면서기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쟁기질을 시작했다.
그날 오후엔 생전 처음 보는 기자 한 명도 그들 모자를 방문했다. 왼쪽 팔에 ‘보도’라는 완장을 찬 기자는 순녀와 우석이가 쟁기질하는 모습을 연신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그들 모자를 쫓아다니며 이것저것 자질구레한 것을 물어왔다. 언제부터 그랬느냐, 집에 딴사람은 없느냐, 애가 올해 몇 살이나 됐느냐, 애 밥은 주로 뭘 먹이느냐, 하루 몇 시간이나 일하느냐 등등. 순녀는 기자의 말에 사실대로 대답해주었고, 기자가 원하는 대로 잠시 멈춰 서서 우석이와 함께 포즈를 취해주기까지 했다.
기자가 다녀간 다음 날, 그 지역 유일한 지방지 사회면 하단엔 ‘비정한 모정(母情),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 혹사시켜’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기사는 대강, 하루 세 끼 내내 감자만 주면서 이제 열세 살 된 아들을 학교에 보내지도 않은 채, 열두 시간 넘게 황소처럼 밭에서 기어 다니게 만든 비정한 어머니를 고발한다는 식의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기사 위편에, 순녀가 싸리나무로 엎드려 있는 우석이를 내리치고 있는 사진도 한 장 덧붙여졌다.
기사가 나가자마자 더 많은 사람들이 순녀네 감자밭 주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오전엔 읍내 국민학교 여교사가 6학년 아이들 육십 명을 인솔하고, 순녀네 감자밭으로 찾아왔다. 여교사는 아이들을 감자밭 가장자리에 일렬로 세운 뒤 큰 소리로 ‘우리 친구를 괴롭히지 마세요!’ 하고 선창했다. 그러자 육십 명의 아이들이 선생님을 따라 한목소리로 외치기 시작했다. ‘우리 친구를 괴롭히지 마세요!’ ‘우리 친구를 학교로 보내주세요!’ ‘우리 친구를 학교로 보내주세요!’ ‘우리 친구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우리 친구에게 먹을 것을 주세요!’
오후엔 읍내 부녀회 소속 회원 삼십여 명이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살피자’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찾아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부인들의 남편들과 시아버지, 시어머니, 그리고 학교를 파한 아이들까지 몰려와, 일가 식구 모두가 순녀네 감자밭 앞에서 상봉하는 집안들도 여럿 생겨났다. 그들은 몇 번 구호를 외치더니 이내 준비해온 자리를 깔고 앉아 막걸리를 마시거나 두부를 먹으면서 순녀와 우석이를 멍하니 바라보았고, 몇몇 술 취한 노인들은 군부대 담벼락 앞까지 걸어가 애꿎은 위병들에 대고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순녀와 우석은 그들을 개의치 않고 계속 밭을 갈아나갔다. 사람들이 감자밭 주위로 몰려드는 것에 적잖이 신경이 쓰였지만, 그렇다고 작업 속도를 늦출 순 없었다. 어서 빨리 이랑을 만들고 씨감자를 심어야만 제때 수확을 거둘 수 있으리라. 또 그래야만 군부대 담벼락 밑에도 늦지 않게 파종할 수 있으리라. 순녀는 좀더 힘을 내었다.
“이랴! 자라!”
순녀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사람들의 탄식이 이어졌고, 아이들은 순녀의 목소리를 따라 소리치며 저희들끼리 버드나무 가지를 휘둘러댔다.
사람들이 대부분 돌아간 늦은 오후 무렵엔 군부대 사단장이 십여 명의 군인들을 대동하고 직접 순녀네 감자밭을 방문했다. 사단장은 순녀와 우석이를 지시봉으로 가리키며 연신 고함을 질러대다 부동자세로 서 있던 한 군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바로 옆에, 역시 똑같이 부동자세를 취하고 서 있던 나머지 군인들의 정강이도 프리킥 하듯 차례로 걷어찼다. 정강이를 맞은 군인들은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감자밭을 바라보았고, 순녀와 우석이는 그 시선을 피해 서둘러 그날 일을 마무리했다.
밭갈이는 어느새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내일 오전에 쟁기질을 마치면 오후엔 씨감자를 심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순녀는 무릎을 꿇고 우석이의 어깨에 단단하게 매여 있던 쟁깃줄을 풀어주었다. 우석이의 얼굴은 땀과 흙으로 범벅되어 있었고, 군데군데 하얀 소금 알갱이가 뭉쳐져 있었다. 순녀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풀어 우석이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그러자 우석이 다시 그 수건의 끝머리를 잡아 순녀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순녀는 그런 우석이 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우석이는 자신의 등에 순녀를 태웠다. 순녀는 손사래치며 거절했지만 끝내 우석이의 고집을 이기진 못했다. 아들의 등은 생각보다 더 널찍하고 단단했다. 우석은 천천히 집을 향해 한 손 한 손 내디뎠다. 때마침 불어온 저녁 바람은 순녀와 우석의 이마 근처에서 맴돌다 그날 하루치의 땀과 함께 감자밭 고랑 사이로 흩어졌다. 길어진 그림자는 그들 모자를 길옆 미루나무 밑동까지 잇닿게 해주었고, 그때마다 이제 막 푸른빛을 띠기 시작한 줄기들은 제 몸을 흔들어 다시 순녀와 우석을 향해 바람을 내보내주었다. 그들은 한적하고 평화로웠으며,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그들 모자는 그때까지만 해도 다음 날 벌어질 일들에 대해 아무런 예상도, 그 어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밭에서 한 쟁기질이 그들 감자밭에 대한 마지막 쟁기질이 될지, 또 그렇게 느긋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는 순간이, 그 순간이 영영 마지막이 될지……. 그 모든 것을 전혀 의심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날 밤, 순녀와 우석이 집 안으로 사라지자마자 부대 안 군인들은 바쁘게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11
다음 날 아침, 우석의 등에 씨감자 가마니를 싣고 감자밭으로 나온 순녀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 서고 말았다. 감자밭이, 수십 개의 이랑이 가래떡처럼 그어져 있던 순녀와 우석이의 감자밭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대신 그 자리에 사방을 둥근 철조망으로 촘촘하게 두른 군부대 영점 사격장이,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거기에 있었다는 듯 시치미를 뗀 채 돌아앉아 있었다. 이랑이 그어져 있던 밭 한가운데에는 직사각형의 표적판이 띄엄띄엄 세워져 있었고, 밭 가장자리에는 누운 화살촉 모양의 소총 거치대가 십여 개 넘게 박혀 있었다. 철조망 바로 앞에 새겨진 ‘경고! 접근 금지!’ 표지판과 ‘○○○○부대 사격장’ 푯말에선 시큼한 페인트 냄새가 났다.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곳이 순녀가 십여 년 넘게 가꾸어온 감자밭이었다는 사실을 찾아볼 구석은 없었다. 하룻밤 사이에, 모두가 잠든 사이에, 순녀의 십수 년 세월이 남김없이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순녀는 머리에 쓰고 있던 수건을 벗어 두 손에 쥔 채 한참 동안 철조망 너머로 보이는 자신의 감자밭을 바라보았다. 우석은 그런 순녀의 옆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씨감자 가마니는 여전히 우석이의 등에 올려져 있었다. 감자밭 옆 미루나무는 전날보다 좀더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그 위로 까치 두 마리가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고 있었다.
순녀는 우석이를 데리고 군부대 정문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마침 밤샘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부대 주임상사와 마주쳤다. 순녀가 먼저 물었다.
“당신들이 저랬나요?”
주임상사는 순녀의 시선을 외면한 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왜 그랬죠? 저긴 감자가 심어질 곳이란 말이에요.”
순녀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거 봐, 젊은 아줌마. 그만 좀 하자고, 나도 아주 피곤해 죽겠다고. 저긴 엄연히 국유지란 말이야, 국유지.”
주임상사는 신경질적으로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그의 두 눈은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저긴 내가 손수 불을 놓아 일군 내 감자밭이라구요. 당신들이 이곳에 오기 훨씬 이전부터 감자만 심었던 땅이란 말이에요.”
“그건 아줌마가 그동안 나라 땅을 공짜로 부쳐 먹어서 그런 거고……. 이젠 더 이상 그럴 순 없다는 거야. 다 아줌마가 자초한 일이야……. 그거, 알아? 아줌마가 자초했다고!”
주임상사가 우석이를 내려다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석이는 순녀 옆에 엎드린 채 말이 없었다.
“좋아요, 다, 좋아요……. 그럼, 일단 씨감자만이라도 심게 해주세요.”
순녀는 우석이의 등에 실린 씨감자를 보며 말했다. 하지만 주임 상사는 대꾸하지 않았다. 피우던 담배를 워커로 비벼 끄며 예전 순녀의 감자밭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아줌마, 저게 뭔지 몰라? 저거 사격장이라고, 사격장. 총 쏘는 사격장! 아줌마 감자 심다가 총 맞고 싶어? 감자 캐다가 애 잡고 싶냐고?”
“총 안 쏠 때 심으면 되잖아!”
순녀가 별안간 목소리를 높였다. 그 바람에 우석이 움찔했고 등에 있던 씨감자 가마니가 밑으로 떨어졌다. 씨감자들이 우르르, 주임상사 가랑이 사이를 지나 부대 안으로 굴러들어갔다.
“그러면 되잖아!”
하지만 주임상사는 그런 순녀를 무시한 채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우석이는 자신이 떨어뜨린 씨감자들을 줍기 위해 이곳저곳 바쁘게 기어 다녔지만, 채 다섯 알도 건지지 못했다. 나머진 모두 부대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씨감자들이…… 씨감자들이 다 죽는단 말이야!”
순녀가 소리치며 주저앉았지만 주임상사는 끝내 뒤돌아보지 않았다. 우석이는 부대 정문 앞에 엎드린 채, 연병장 한편으로 굴러가버린 씨감자들을 멀거니 바라보기만 했다. 씨감자 심기에 더없이 적당한, 흐린 봄날 아침이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날, 군부대에서 돌아온 순녀와 우석은 부엌 옆 토방에 들어가 하루 종일 문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토방 안에서 단 한 마디의 말소리도, 무엇을 먹거나 움직이는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마치 방 안엔 오직 씨감자들만이 모여 있는 듯,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이 흘러갔다. 간간이 순녀네 집 옆 상수리나무 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토방 앞까지 그림자를 드리웠지만 그 누구도 손을 내밀진 않았다. 그들은 멈춰버린 시간들과 굳어버린 풍경 속에 사로잡힌 것만 같았다.
그리고 다시 봄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 깊은 밤 어느 한때, 토방 문이 조용히 열리고 그 안에서 순녀와 우석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순녀의 손엔 씨감자 한 가마니가, 우석의 어깨엔 두 가마니가 들려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평상시 감자밭으로 향할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침울할 것도, 화가 난 것도 아닌 표정. 순녀는 씨감자 가마니를 툇마루에 부리고 우석의 어깨에 쟁깃줄부터 이어주었다. 그것 또한 그들이 아침마다 변함없이 하는 일과였다. 비에 젖은 흙 때문에 우석의 정강이가 금세 거무튀튀한 빛깔로 젖어들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았다. 순녀는 그 어느 때보다 더 꼼꼼하고 단단하게 쟁깃줄의 매듭을 지어주었다. 그런 후, 우석의 등에 씨감자 가마니를 옮겨 실었다. 이제 준비는 다 끝난 셈이었다.
출발하기 직전, 순녀와 우석은 그들이 누렁이와 함께 살던 방과 부엌과 토방을 바라보았다. 집은 어둠 속에 잠긴 채 물기를 흠뻑 빨아들이고 있었다. 벽 어느 면이라도 손가락으로 슬쩍 누르기만 하면 금세 굵은 눈물방울들이 흘러내릴 것만 같았다. 순녀는 한동안 화석처럼 멈춰 서서 집 이곳저곳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이내 돌아서서 싸리나무를 들어 올렸다.
“이랴!”
우석이 사립문을 향해 한 손을 내딛었다. 빗줄기에 날이 선 보습이 파르르, 떨려왔다.
“이랴! 자라!”
순녀의 싸리나무가 빗줄기를 가르며 흔들렸다.
12
후에 진술한 사실이었지만, 그날 밤, 군부대 정문 근무를 섰던 네 병의 위병들은, 순녀가 정문 앞에 도달하기 이전부터 마치 길 잃은 어린아이마냥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고 한다. 그들은, 먼 곳에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들려오는 순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가슴 한편에서 무언가가 뭉클거리기 시작했고, 그 소리가 부슬거리는 빗소리에 더해져 더 낮고 길게 울려퍼지자, 그때부턴 도통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자신이 어딘가로부터 쫓겨 왔다는 서러움이, 무언가를 뿌리치고 도망쳐왔다는 죄스러움이 동시에 가슴을 짓눌렀고, 그와 더불어 눈물이, 눈물이 멈추지 않고 계속 쏟아졌다고 한다. 그것도 한 사람뿐만이 아니라, 네 명 모두, 동시에…….
순녀와 우석이 정문 앞에 도착했을 때쯤엔 네 명의 위병들 모두 연신 팔꿈치로 눈물을 훔치며 주저앉고 말 것 같은 심정이 되어 있었다. 실제로 한 명은 빗물 고인 물웅덩이에 풀썩 엉덩이를 깔고 앉아버렸다. 순녀와 우석은 제자리에 멈춰 서서 그런 위병들을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앞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다. 부대 정문 안쪽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이랴! 자라! 어디디디디어!”
위병들은 그런 순녀와 우석을 제지하지 않았다고 한다. 막기는커녕 그들의 뒤를 따라 전원 근무지를 이탈했다는 것이다. 순녀의 목소리가 이끄는 대로, 싸리나무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아무런 저항이나 반항 없이……
“그리고 깨어보니까 그렇게 되어 있더란 말이지?”
대대 주임상사가 간밤 근무지를 이탈한 네 명의 위병들의 진술서를 보며 그렇게 물었다. 그들은 모두 아침 점호 무렵 각개 전투장 중턱에서 잠들어 있는 상태로 발견되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니들 어제 술 처마신 거 아니야?”
위병들은 강력히 부인했다. 실제로 그들 몸에서 술 냄새는 나지 않았다.
“그럼 도대체 거기서 뭣들 한 거야? 위병 근무자들이 지키라는 정문은 내팽개치고 각개 전투장까지 기어올라가서.”
“그러니까…… 그게…… 쟁기질을 했습니다…….”
“쟁기질? 각개 전투장에서?”
“그러니까, 저…… 소가…… 검은 소가 나타나서…….”
“소?”
“네…….”
“그래서, 그 소를 몰아 각개 전투장을 갈아엎었다?”
“네…….”
“근데 깨어보니까 소가 아니라 옆 동료더라?”
“네…….”
“미치겠군……. 좋아, 그럼 총은 왜 그렇게 된 거야? 뭐 하느라 그렇게 엉망이 됐냐구?”
“그게…… 저어…… 그게 분명 어제는 쟁기였는데…….”
주임상사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다 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럼 여자는? 그 소처럼 기어 다니는 애는?”
“저기…… 씨감자를 심는 거까지는 봤는데 그뒤론 통…….”
“너네 새끼들아, 단체로 꿈꾼 거 아니야? 그 여편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들어와? 그리고 들어왔다는 증거도 하나 없잖아?”
“그래도…… 어떻게 네 명이나 똑같은 꿈을 꿀 수 있습니까……?”
주임상사는 다시 담뱃불을 붙이며 서류를 작성했다.
“이 새끼, 이거 아직 군대를 잘 모르네. 마, 군대는 사단 병력이 똑같은 꿈을 꾸는 곳이 군대야! 그게 군대라고! 알았어!”
주임상사는 그렇게 말한 뒤, 그들 네 명의 진술서에 각각 ‘군기 해이, 정신 교육 요망’이라고 똑같은 필체로 적어놓았다.
13
그날 이후, 그 고장에서 순녀와 우석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몇몇 사람들의 입을 통해 그들 모자가 한밤중에 읍내 보건소 앞과 학교 담벼락 옆에서 여전히 씨감자를 심고 있더라는 말만 전해졌을 뿐이었다. 며칠 뒤엔 이웃 도시의 소방서 앞과 가로수 주변에서 무언가를 심고 있는 그들을 봤다는 증언이 이어졌고, 다시 또 일주일 후엔 전방 부대 옆에서 그들을 봤다는 목격자가 나타났다. 이곳저곳에서 그들 모자를 보았다는 목격담이 우후죽순처럼 전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오히려 반감되었다. 그래? 또 어느새 거길 갔대? 어허, 이러다 전 국토가 감자밭이 되겠네, 하는 정도였다. 반년 정도 흐른 뒤엔 술에 취한 면서기가 그들 모자를 어느 도시 터미널 옆 감자탕집에서 봤다는, 그리 신빙성 없는 말을 내뱉었지만, 이틀 뒤엔 그것이 정설로 되어 읍내 사람들 입에서 입으로 옮겨졌다. 결국은 그렇게 됐네, 잘됐네, 감자탕집이 농사짓는 것보단 훨씬 낫지, 뭐. 그래? 그게 그렇게 괜찮대? 그럼 우리도 한번 해볼까……. 사람들은 그렇게 그들 모자, 순녀와 우석이를 잊어갔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그때 막 부여되기 시작한 자신의 주민 등록 번호 외우기에도 바빴으니까. 그들에겐 사라진 모자를 기억하거나 추억할 틈이 없었던 것이다. 그것이 우리들 기억력의 한계이고, 현실이니까…….
이제 이 이야기는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지금,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그들 모자는 어느 곳 어느 땅에서 씨감자를 심고 있을지 모른다. 또 그들 모자가 파종한 씨감자가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 집 앞, 어느 양지바른 곳에서 자라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인지 아닌지 궁금하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뛰쳐나가 눈앞에 보이는 아무 땅이나 파보아라. 지상에서부터 약 15센티미터 정도만 파고들어가면, 그곳에 당신이 이전까지 알지 못했던, 당신이 상상치도 못했던, 씨감자가 싹을 틔우고 있을 테니……. 주변이 온통 시멘트 천지라고? 철물점에 가서 시멘트 깨부수는 망치를 사라, 이 친구야. 시멘트 밑에 뭐가 있겠는가? 제발 상상 좀 하고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