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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대회

Bollnow 2024. 3. 23. 16:23

미술대회

조선작

 

인터폰을 통하여 교장이 나를 불렀던 모양이었다.

내가 화장실에서 교실로 돌아오자,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서 떠들었다.

선생님, 교장선생님이 교장실로 오시래요.”

아이들이 모두가 다투어서 떠들었기 때문에 나는 언뜻 아이들의 말을 알아들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앞줄에 앉은 성욱이라는 아이를 지명하여 이야기를 시켰다.

성욱이는 다리를 저는 아이였고, 내성적이고 말수가 적어 특별히 유념해 두지 않으면 언제 그런 아이가 내 수업을 받고 돌아갔는지 모를 그런 어린이였다.

나의 지명을 받고 성욱이는 쭈뼛거리며 일어섰다.

교장선생님께서 선생님 교장실로 오시래요.”

나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성욱이는 벅찬 소임을 다했다는 듯이 한숨까지 쉬며 제자리에 앉았다.

다음 시간 시작종이 울렸기 때문에 나는 교장실로 내려가는 일을 뒤로 미루고 수업에 들어갔다.

미술 시간이었다.

그림을 그리려다 실패하고 교사가 된 나였으므로, 나는 미술 시간만은 열성적으로 가르쳤다.

국민학교 교사는 모든 교과를 담당하여 가르치도록 돼 있으므로 모든 교과를 다 충실하게 다루어 주어야 할 의무를 지고 있지만, 아이들은 역시 담임교사의 능숙한 교과에 더 충실한 학습을 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내 반 아이들은 역시 즐겁든 지겹든 미술 시간만은 어쩔 수 없이 담임이 지도를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전날 나는 아이들에게 고무판과 조각칼을 준비시켰기 때문에 아이들은 일제히 고무판과 조각칼을 꺼내 놓았다. 이런 종류의 부담이 큰 준비도 아이들이 기피하지 못하고 모두들 해왔다.

미처 조각칼이 준비되지 못한 아이도 있었지만, 내가 그 옆을 지날 때 주머니칼과 연필 깎는 면도날을 들어 보이며 씩 웃었다.

나는 만족한 느낌으로 수업에 임했다.

교재에는 여러 종류의 판화가 나온다.

목판화를 비롯해서 유리판, 드라이포인트, 종이판화 등

나는 먼저 그 여러 종류의 판화를 설명한다.

기법과 효과를 참고작품을 들어 보이며 가르쳤다.

그러나 이를테면, 목판화 같은 것은 아이들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그리하여 아이들이 대부분 소유하고 있는 무딘 조각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 같은 진실을 알려 주지는 못했다.

아이들이 가진 칼로서는 고무판을 밀어 내기도 힘든 편이었다.

아무튼 이런 판화 같은 교재에서는 상상력의 확대보다 기법이 훈련이 앞설 염려가 많다.

크레파스나 그림물감만이 미술의 전부인 줄 알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이런 새로운 재료는 다분히 그럴 위험이 뒤따른다.

순진한 아이들은 겁도 없이 교재에 나온 참고작(參考作)을 그대로 복사하려 드니까

여기에서 교사는 아이들을 자신의 세계로 이끌어 내야 하는 임무를 지게 된다.

그리하여 그것을 미숙한 솜씨로나마 고무판에 옮겨 보려는 욕망으로 부채질하여, 그 욕망이 어떠한 형태로든지 그 낯선 고무판과 투쟁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아이들을 그렇게 이끌어 냈다.

수업이 30분쯤 경과하여, 아이들 모두가 고무판에 매달려 쩔쩔매고 있을 때 교실로 교무실의 사환아이가 찾아왔다.

손님이 오셨으니 자습을 시키고서라도 빨리 교장실로 내려오라는 전갈이었다.

교장은 걸핏하면 이런 식으로 나를 찾았다.

교장이 찾는다는 일은 나로서는 유쾌한 일이 못 되었다.

그것이 설사 수업시간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불유쾌하기는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인사 기록 카드에 미술대학을 중퇴한 학력이 적혀 있어 그것이 화근이 되어 나는 이 학교의 미술과를 담당하고 있고, 그래서 나에게는 언제나 강조주간(强調週間)의 입간판을 그리는 일 따위가 불시에 생겨나 괴로움을 주었다.

그런 일거리가 생기면 교장은 언제나 나를 불렀다.

구선생, 추계대청소기간 입간판을 좀 그려 주어야겠는데.”

교장은 잔뜩 위엄을 부리고 언제나 이런 식으로 나를 압박해 왔다.

미술과를 담당했다는 죄밖에는 없는데 나는 번번이 이런 귀찮은 주문을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이다.

강조주간 계몽기간 같은 것이 왜 이리도 많은지, 나는 한 달에도 몇 장씩 그런 것을 그려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런 종류의 일이 아닌 모양이었다.

교장실에 손님이 와있다고 했다. 나는 좀 의아한 느낌이었지만, 고무판에 열중하고 있는 아이들 사이를 한 바퀴 돌아, 어이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 교실을 뒷문으로 해서 복도로 나왔다.

교장실까지는 긴 복도를 지나 계단을 내려가서 다시 긴 복도를 걸어야 한다.

복도를 걷는 동안 나는 교장실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손님에 대해서 생각했다.

글쎄, 밀린 대폿값을 받으러 온 단골술집의 여자는 아닐테고

나쁜 일로 나를 호출할 사람이라면 그밖에는 아무것도 없는 참말 선량한 사람, 그게 바로 교사 구태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그만 나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유리문을 드르륵 열고 교장실에 들어서니 단정하게 넥타이를 맨 두 명의 사나이가 응접세트에 앉아 있었다.

나는 교장에게 인사를 했다.

부르셨습니까?”

아 오셨구먼. 이 분이 본교의 미술주임인 구태식 선생님입니다.”

교장은 엉거주춤 일어서면서 응접세트에 앉아 있는 두 명의 사나이에게 나를 소개시켰다.

그들은 손을 내밀어 나에게 악수를 청했다.

나는 그 두 명의 낯선 사나이들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들 중의 한 명이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명함을 한 장 꺼내어 내밀었다.

내가 미처 명함의 문면(文面)을 읽기도 전에 교장이 회전의자에서 응접세트로 내려오며 말했다.

신문사 소년부에 계신 분들인데, 구선생님에게 협조 요청이 있어 오신 모양입니다.”

교장은 이렇게 말하고, 자신이 회전의자에 앉아 읽고 있던 서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공문서와 그의 별첨(別添)인 미술대회 개최요강이었다.

알고 계시겠지만하고, 한 명의 사나이가 입을 열었다.

저희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아동미술대회는 연륜(年輪)이 매우 깊고 권위도 높지 않습니까? 귀교 같은 다인구(多人口) 학교가 이번 대회에 대대적으로 참여해 주시면 대단한 성황을 이룩할 것 같습니다.”

교장선생님께서는 이미 내락(內諾)을 하셨습니다만, 역시 실무를 맡아주실 선생님께서 적극적으로 협조를 해 주셔야겠습니다.”

또 한 명의 사나이가 말했다. 교장이 안경알을 번뜩이며 성급하게 끼어들었다.

아 뭐 나야 좋다고 했습니다마는, 담당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어 결정해 보도록 합시다.”

교장은 이런 일로 쓸데없이 오해를 받아서는 곤란하다는 투로 발뺌부터 하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좀 음산한 냄새가 느껴지는 득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우선 내가 미술대회에 대해서 평소 생각하고 있던 바대로, 그러나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미술대회 같은 것이 글쎄요, 어린이들의 미술교육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참 사려 깊으신 분이시군요라고 명함을 내밀던 사나이가 재빨리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리지 않도록 내버려 두는 것보다는 이런 대회를 계기로 하여 한 장의 그림이라도 그려보도록 한다는 데 의의가 있지 않을까요?”

사나이는 마치,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으면 아니 될, 귀찮스런 장애물이 앞에 놓였다는 듯한 시선으로 나를 건너다보았다.

또 한 명의 사나이가 말했다.

이런 큰 대회를 주관하시자면 괴로움이 많으실테죠. 그렇지만 뒤에서 저희들이 최대한으로 보살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물질적으로도 좀 보답해 올리겠습니다.”

과연 내가 가장 저어했던 이야기가 서슴없이 터져 나왔다.

나는 결국 그들의 눈에 국물을 바라고 미술대회의 무의미성을 이야기한 타락한 교사로밖에 비쳐들지 않았다.

나는 아주 참담해진 표정으로, 그리하여 약간 격해진 음성으로 말했다.

나는 물질적인 보답을 기대하고 그런 말씀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나의 단호한 어투에 두 사람은 좀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중 한 명의 사나이가 성급하게 말했다.

아니, 저희들도 그런 뜻으로 한 말은 아니고, 뭐랄까, 우리도 이런 게제에 일선에서 수고하시는 선생님들의 노고에 조금이라도 보답드릴 수 있다는 일이 기뻐서지요.”

창졸간(倉卒間)에 묘하게 흐려진 분위기를 수습할 요량으로 교장이 끼어들며 너털웃음을 웃고 말았다.

고마운 일입니다. 교단에서 수고하는 교사들의 남모를 고생을 알아주는 분들이 계시니 우리는 외롭지 않군요. 우리 구태식 선생은 미술과를 담당하여 특별히 수고가 많지요. 잘 좀 도와주십시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나의 표정을 간취(看取)하고 사나이 하나가 이야기를 서둘렀다.

, 서로 돕고 삽시다. 대화요강은 읽어 보시면 아시겠습니다만, 사무적인 이야기를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우선 대회 장소 문제인데 원칙적으로야 아이들이 모두 대회장소인 창경원으로 나와야 되겠습니다만, 어떨까요? 이 큰 학교의 전교생을 창경원까지 인솔한다는 것이 불가능하겠지요? 그렇다면 그냥 교내에서 실시하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달 안에 귀교의 형편대로 날짜를 잡으셔서 신문사로 통고해 주십시오. 그럼 그 전날 대회용(大會用) 도화지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다음은 참가비 문제인데, 대회 참가비는 아동 일인당 80원입니다. 교장선생님 말씀대로 귀교는 변두리에 위치하여 학부형들의 이해도가 나쁘고 또 경제 사정들이 빈곤하여 참가비가 너무 과중하다는 의견이셨는데, 구선생님도 같은 의견이시겠죠? 그런데 이건 저희들 사정입니다만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이 대회의 참가비를 어떤 학교는 80원이고 어떤 학교는 50, 뭐 이런 식으로 운영할 수는 없습니다. 교장선생님, 그렇지 않겠어요? , 그래요, 그래서 이건 편법입니다만, 대회용 도화지는 재적수(在籍數)대로 드린 걸로 하고, 수금은 저희들이 70퍼센트를 하기로 하겠습니다. 이것은 저희들도 윗사람들에게 사정하여 특별히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입니다만어떻습니까? 그 정도라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골치가 지끈지끈 아플 지경이었다. 모든 것은 이미 교장과 이 사나이들 사이에서 양해가 돼 있는 사항이었고, 나는 단지 이 어물쩡한 미술대회를 운영하는 하수인(下手人)으로서 불리움을 받은 것에 불과했다.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자리를 뜨면서 말했다.

우리는 또 이웃 학교로 가보아야 합니다. 털어 놓습니다만, 전교적인 규모로 이 행사에 참여해 주시는 학교에 대해서는 단체상으로 우승기를 드리도록 돼 있습니다.”

, 그렇습니다.”

또 한 명의 사나이가 잊고 있었던 사실을 깨우침 받았다는 듯이 성급하게 맞장구를 쳤다.

그럼 우승기를 받는 학교가 여럿이겠군.”

교장이 말했다.

상관없지 않습니까? 단체상이니까요.

학생들의 사기를 올리는 데 대단한 효과가 있잖겠습니까?”

상관없겠지.” 교장이 말했다.

, 그래요.” 그들 중의 하나가 되받았다.

교장은 그들을 교장실 출입구까지 배웅했다.

그들은 출입문에서 나를 돌아다 보며 아무래도 저 작자가 골치라는 표정을 짓고서, 그러나 시종 웃음기를 흘리며 말했다.

구선생님, 그럼 잘 좀 부탁합니다.”

, 그럼 연락 바랍니다. 명함의 그 전화번호로.”

그들이 돌아가고 나자 교장은 문을 닫고 들어오면서 말했다.

구선생, 좀 떨떠름한 모양인데 우리 사회에서 어떤 기관끼리는 그래도 모종의 유대(紐帶) 같은 것이 필요하다는 게 교장의 입장이요. 그럼 교감과 상의를 하여 기안을 해 주시고, 또 아까 그 참가금 건은 85퍼센트 정도로 하는 것이 어떨까? 그 정도는 무리가 아닐 거야. 그럼 15퍼센트가 남나? 내 개인 의견인데, 그건 친목회로 돌리든가 뭐 그러면 되겠지.”

나는 선 채로 교장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교장은 뭐 할 말이 있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어느새 근엄한 표정으로 되돌아가 회전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갑작스럽게 분노가 터져 오르는 느낌이었다.

벌겋게 상기한 표정으로 내가 말했다.

이런 행사는 민주적인 절차를 밟는 것이 어떨까요?”

민주적인 절차라니?” 교장이 낯빛을 흐리면서 말했다.

교직원회 말입니다.” 내가 말했다.

교직원회까지 열 필요야 없고, 이따가 기획위원회에서 논의하겠소.”

기획위원회란 주임교사들의 목요 주레회의를 뜻한다. 그날이 바로 목요일이었다.

교장은 이 출세주의자들로 구성된, 그리하여 교장의 전횡기관(專橫機關)으로서의 구실을 다하는 기획위원회를 아주 유효하고 적절하게 활용하는 위인이었다.

나는 단절을 느끼며 말했다.

저는 도저히 이 일에 앞장을 설 수가 없습니다.”

왜 그러나, 구선생.”

교장이 깜짝 놀랐다는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이어서 다시 회유(懷柔)하는 듯한 은근한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사회생활이라는 게 다 그렇지 않은가. 모난 돌이 먼저 정() 맞는다고 하지 않던가?”

협박(脅迫)이십니까?”

나는 충혈된 눈으로 교장을 쏘아보며 소리쳤다.

교장은 또 한 번 흠칫 놀라는 듯한 표정이더니,

이내 평정을 되찾고서 이야기 했다.

구선생은 너무 흥분하기를 좋아해서 탈이야. 교실로 가보아요. 그리고 아이들을 하교시킨 뒤 기안을 해서 기획위원회에 가지고 들어오시오. 이건 협박이 아니고 명령이오.”

나는 다시 보지 않을 사람에게 하듯이 교장실의 유리문을 세차게 밀어 닫고 밖으로 나왔다.

나의 격한 향동을 보고 교장실에 결재를 받으려고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서무직원이 의아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벌써 점심시간이 시작되고 있었다.

운동장으로 쏟아져 나온 아이들이 흙먼지를 피우면서 하나 가득히 놀고 있었다.

이건 콩나물시루 교실이 아니고, 콩나물시루 운동장이었다.

저 많은 아이들에게 일제히 그림을 그리게 한다

허위(虛僞)와 불의(不義)로 가득 찬 거대한 힘이 저 천진난만한 어린이들의 손으로 하여금 그림을 그리도록 한다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도저히, 도저히 그럴 수는 없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완성된 고무판에 잉크칠을 하여 사인지레 찍어내느라고, 손바닥에 온통 잉크칠을 하고 법석을 피우고 있었다.

내가 교실로 들어가자 아이들은 다투어서 자신의 작품을 내 코 밑에 들이대며 자랑들을 했다. “어때요, 선생님.”

이건 자동차 경주여요.”

선생님, 이건 말예요. 선생님, 선생님, 지난 번 소풍가다가 본 목장이여요.”

아이들은 선생의 기분 같은 건 아랑곳할 바가 아니었다.

나는 겨우 이성을 되찾아 아이들에게 점심을 먹였다.

그러나 내 자신은 점심을 먹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아내가 아침에 준비해서 가방 속에 넣어 주었던 도시락을 꺼내어 교탁 위에 갖다 놓았다.

승길이란 놈이 재빨리 눈치를 채고서 말했다.

, 선생님 또 밥맛 없으신가 보다.”

승길이의 말을 듣고 반장 아이가 앞으로 나와서 교탁 위의 도시락을 잡으며 소리쳤다.

선생님 점심을 오늘은 누굴 줄까?”

나 주라.”

기름쟁이처럼 빤들빤들 말을 잘 듣지 않는 영근이가 벌떡 일어서며 말했다.

영근이의 옆자리에 앉아 있는 동철이가 영근이의 어깨를 눌러 앉히며 말했다.

영근이는 안 돼. 아까 미술시간에 판화도 하지 않고 영근이는 제 점심을 다 먹어 치웠어. 계란 후라이도 한 개 하고.”

영근이와 동철이가 서로 주먹을 한 개씩 교환했다.

반장이 그들을 한 번 사납게 흘겨보고 말했다.

오늘은 창훈이를 주는 것이 어떠냐?”

창훈이는 필요 없다는 뜻으로 손바닥을 펴서 흔들었다.

가난한 집 아이들의 자존심이 보이는 듯했다.

반장이 계속해서 말했다.

솔직히 말하겠다. 오늘 아침 학교 오는 길에 나는 창훈이네 집에 들렸는데, 오늘 아침에 창훈이네 집에서는 창훈이네 아버지랑 엄마가 싸웠기 때문에 창훈이는 아침도 못 먹고 왔다.”

창훈이 줘라.” 축구 선수 재권이가 할 수 없다는 듯이 소리쳤다.

모두를 좋다고 합창을 했다.

반장이 도시락을 들고 창훈이 자리로 갔다.

창훈이는 어느새 책상 밑으로 숨어 버렸다.

나는 슬그머니 교실 밖으로 나왔다.

복도에서는 이웃반 아이들이 백 미터 달리기를 했다.

나는 복도를 쿵쾅거리며 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줄 생각도 있은 채 창가에 가대어 서서 담배 한 가치를 피워 물었다.

오후의 학과를 끝내고 아이들을 귀가시킨 뒤까지도, 나는 교장실에서 습득한 불쾌감을 좀처럼 털어 버리지 못했다.

나는 교실의 내 의자에 앉아 이 사태를 어떻게 모면하여야 옳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교장은 명령이라고 말했다.

교장실에서 나올 때에는 제법 객기까지 부렸었지만 실상 나는 더없이 나약한 한 명의 교사에 불과했다.

명령을 불복하면서까지 그와 싸울만한 힘이 나에게는 없었다.

마흔을 이태 앞둔 나이까지 살아오면서 나의 어깨는 야윌 대로 야위어 버렸다.

어쩌다 부독본(副讀本)도 팔아먹은 선생이 되었고, 학부모가 넣어 주는 편지도 받아먹은 선생이 되었으며, 그래도 두 살짜리 귀여운 딸년이 오줌을 싸면 갈아입힐 여벌의 내복바지가 없어 짜증을 부리는 아내를 우울한 마음으로 건너다 보아야 하는 가난한 가장에 불과했다.

그런대로 나는 십팔 년 동안을 교단에 서 왔다.

항상 자신 없이 뒷전에 물러서서 기분이 안 내키면 왈칵 불평이나 말하여 윗사람의 비위를 거슬리고, 그리하여 약삭빠른 친구들은 주임교사다

교감이다 장학사다 하고 부쩍부쩍 승진을 하는 틈바구니에서 만년 평교사로 늙어가고 있었다.

교장의 말대로 사회생활이란 그런 것이 아닐는지 모른다.

요컨대, 나라는 위인은 사회생활의 열등생(劣等生)이란 말이다.

그렇다. 중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절 육학년 담임의 호경기도 나는 누려보지 못했다.

어지간만한 남자 선생이면 누구라도 한두 번씩은 수험반을 담임하여 재미도 보았다지만, 나는 그때는 번번이 빠졌었다. 요즈음에 와서야 시간만 많고 학부모의 열의도 한산해졌기 때문에 누구라도 꺼리는 졸업반 담임이 번번이 내 차례가 되는 판이었다.

이건 확실히 열등생다운 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속절없는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 어느새 내 팔은 백지 위에 볼펜을 굴려 미술대회 개최에 대한 계획을 기안하고 있었다.

잠시 후에 교무에서 기획위원회의 소집을 알리는 인터폰의 소리가 들려왔다.

구태식 교사도 이번 회의에 참석하라는 교장의 분부도 아울러 전하여졌다.

나는 번쩍 귀가 뜨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비로소 내 시야에 들어온 듯이 느껴진 책상 위의 기안용지를 나는 북북 찢어 휴지통에 처넣었다.

그 기회위원회에만은 참석해서 안 된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잠시 후면 또 교실로 사환아이를 보내올 것이 분명하여 난ㄴ 아래층에 있는 강위석 선생의 교실로 내려갔다.

강선생이 나를 맞으면서 말했다.

구선생이 웬일이야? 아참 자네 뭐 기획위원회인가 뭔가에 참석하라고 스피커에서 나오던데, 언제 주임 발령받았나?”

강선생과 나와는 허물없이 농담도 나누고 하는 처지였다.

나이도 비슷하고 대포 실력도 비슷하다는 것이 두 사람을 허물없게 만들어 놓은 이유였다.

강위석 선생은 아동문학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 방면의 세계에서 강선생은 꽤 많이 알려져 있는 듯했다.

그런데 강위석 선생은 묘한 고집을 한 가지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글을, 그것이 아무리 빼어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일절 지지(紙誌)에 발표해 주는 일이 없었다.

소년신문 등에 자신은 소년 소설 같은 것을 연재하면서도, 학과가 파하면 그의 교실로 몰려들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원고지를 메꾸는 꼬마 글쟁이들의 글은 단 한 번도 발표해 주는 일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글짓기대회나 백일장 같은 데에도 그의 주선으로 참가시키는 일이 결코 없었다.

교내에서 문예신문 따위를 계획하는 일도 없었고, 그러니까 아이들의 원고는 강선생이나 읽어볼 뿐 그대로 사장(死藏)되기 마련이었다.

좀 빼어난 글을 발견하면 강위석 선생이 먹던 빵 같은 것을 건네주며 너 이거 먹을래?” 하는 따위가 고작 칭찬이었다.

왜 그러냐?” 하고 내가 물을라치면 강위석 선생은 귀찮아서 그래하고 가볍게 답변해버린다.

나는 가끔 내 교실에서 과외활동으로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을 인솔하여 미술대회 같은 곳에서 그리도록 한다.

그러나 만약 강선생이 나에게 자엔 왜 아이들을 끌고 다니나?” 하고 묻는다면 강선생이 한 정도의 신통치 못한 대답도 나는 마련할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농담은 하였지만, 강위석 선생은 나의 좋지 못한 안색을 발견하고는 정색을 했다.

아니, 이 사람. 얼굴이 왜 똥색이 되어 가지고 그래? 무슨 일이 있나?”

아니야. 담배 한 가치 줘.”

나는 빈 담뱃갑을 구겨 쥐며 말했다.

강위석 선생은 청자 한 개비를 뽑아 주며 말했다.

, 니코친이 부족해서 사기가 떨어졌나? 기획위원회는 또 무슨 일이래?”

거길 들어가기 싫어 피해왔네.”

내가 정직하게 털어 놓았다.

눈치가 빠른 강선생은 재빨리 전후사정을 간취하고서, 역시 그의 말버릇대로 이야기했다.

교장이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모양이로군.”

이런 경우 자네 같으면 어떻게 처신을 하나?”

내가 애걸하는 듯함 목소리로 이야기를 꺼냈다.

교장이 전교적인 규모로 미술대회를 개최하려고 하네. 또 소년지에서 주최하는 대회인데 참가금이 80원이나 된다네.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 학교의 어린이들은 모두가 참가해야 하는 걸세. 그래야만 단체상으로 우승기가 수여된다는 걸세. 신문사 측의 특별한 배려로 수금은 재적수의 70퍼센트를 가져간다지만 교장은 내적으로 85퍼센트를 수금하자는 걸세.”

골치 아픈 이야기로군.”

강선생이 말했다.

나는 상황을 강선생에게 올바로 전달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렇잖으면 강위석 선생이 그렇게 뜨뜻미지근한 말로 반응을 보알 수 없다는 느낌이었다.

그의 성질로 보아 강선생은 마땅히 총살을 할 놈의 새끼들하고, 속 시원히 뇌까려 주었어야 옳았다.

내가 다시 말했다.

나는 이 허위에 가득 찬 미술대회를 기안하여 기획위원횐가 뭔ㄱ사에 참석하라는 교장의 명령을 받았단 말일세.”

그래서 이 강위석의 품으로 피난처를 찾았다 이 말씀이로군.”

강선생은 심드렁한 태도로 농담을 했다.

나는 외톨이가 된 느낌이었다. 내가 말했다.

나는 농담이나 하고 있을 그런 기분이 아니야.”

그럼 우리 장기나 한 판 둘까?”

강위석 선생은 서류함에서 장기판과 장기알이 든, 유아(乳兒)가 웃고 있는 사진이 그려 넣어진 분유깡통을 꺼내 놓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실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장기 한 판이 끝났을 때, 강선생은 갑작스럽게 밑도끝도 없이 말했다.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에 대해서 마, 너무 신경을 예각적(銳角的)으로 곤두세우고 산다는 것은 참으로 피곤한 일이야. 정신위생상 해로와요.”

곧 종례 시작종이 울렸으므로 강선생과 나는 교무실로 내려왔다.

조금 전에 끝났을 기획위원회에서 미술대회에 대한 건이 의제(議題)에 올랐었던지, 나는 궁금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에게 그것에 대해 귀띔해 주는 사람은 없었다.

종례시간에도 그것에 대한 발언은 한 마디도 없이 그저 일상적인 이야기들만으로 끝났다.

*

다음날 아침, 내가 학교에 출근하여 교장실에 들어가 출근부에 날인을 하고 교무실로 돌아오자 교감이 나를 불러세웠다.

그러나 더욱 놀란 것은, 교감의 자리 뒷벽에 걸려 있는 게시판에 미술대회 실시에 대한 세부계획이 기재되어 있는 사실이었다.

역시 교감의 글씨였다.

구선생, 이따가 직원조회 시간에 발표해 주시오. 구선생은 좀 반대의사를 가졌었던 모양이지만, 기획위원회에서 숙의하여 실시하기로 되었소.”

내가 입안하지도 않은 것을 내가 왜 발표합니까?”

나는 고작 볼이 부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교감이 말했다.

그럼 내가 할까?”

마음대로 하십시오.”

집어 던지듯이 나는 이렇게 말하고 교감의 앞을 물러나 내 자리로 돌아 왔다.

나는 좀 출근이 늦었기 때문에 교실에 다녀서 아이들의 아침 활동을 돌볼 새도 없이, 직원조회 시작종이 울리고 있었다.

교실에서 교사들이 교무실로 모여오고 있었다.

교사들은 게시판을 한 번씩 흘끗흘끗 쳐다보고

저건 또 뭐야

하는 표정들을 짓는 듯했다.

우매한 교장일수록 행사를 좋아한다.

그들은 눈에 띄는 것만이 교육의 성과라고 생각하며, 그렇기 때문에 일 녀 열두 달을 잠시의 간격도 주지 않고 그 행사들에 비끌어 매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렇게 하여 어린이들은 그의 담임선생을 행사와 눈의 띄는 교육적인 성과를 빌미하여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80, 90명을 담임한 대한민국의 초등학교 교사들은, 그것만으로도 기진맥진(氣盡脈盡)하여 두 손을 들고 나가 자빠져 있는 상태라는 것을 눈치 채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다.

그리하여 비본질적인 임우로써 교사의 능력을 판가름하고, 약삭빠른 교사들은 이런 풍조에 편승(便乘)하여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로부터 재빨리 구제된다. 참말 이런 악순환의 연속이 교직(敎職)이다.

내가 이런 암울한 생각들에 빠져 있는 동안 직원조회는 벌써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교감의 발언순서가 되었다.

여기 게시판을 좀 보십시오. 오는 토용일 자유학습일에 전교적으로 미술대회를 실시합니다. oo소년 신문사가 해마다 이맘 때가 되면 실시하는 미술대회로서 연조가 오래되고 권위도 높은 미술대회지요. 본교에서는 지난 일학기 동안 자유학습일, 기타 미술시간을 통하여 갈고 닦아온 어린이들의 미술 실력을 이 기회를 통하여 대대적으로 선양할 계획입니다. 종목은 크레파스화, 수채화, 파스텔화로 한정되어 있고, 시상은 최우수상, 우수상, 특선, 가작, 입선, 장려상 등 푸짐하고, 또 단체상으로 주는 우승기도 있어요. 대회장소는 원칙적으로 창경원이라지만 전교적으로 참여하는 본교의 사정을 고려하여 교내에서 실시하기로 하였으며, 이렇게 전교적으로 참여하는 학교에 대해서는 단체상을 주기로 돼 있답니다. 그러니까, 우승기 하나는 거저 오는 거지요.”

교감의 발언 도중에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강위석 선생이 저쪽에서 안경 너머로 눈을 꿈벅거리며 나를 건너다보고 있었다.

교감이 이어서 말했다.

참가금은 일인당 80원씩인데, 이것도 본교의 특수사정을 고려해서 80퍼센트만 납부하기로 양해를 보았어요. 그러니까 선생님은 각 학급의 가난한 집 자제들을 20퍼센트만 골라 무상으로 참가시키면 됩니다. 그럼, 오늘 어린이들의 귀가 전에 가정통신을 배부하여 학부모들에게 통지하도록 하겠습니다.”

교감이 발언을 마치고 제 자리에 앉자,

2학년 담임 차효길 선생이 불쑥 일어서서 말했다.

그런 건 잡부금 단속에 안 걸립니까?”

햇병아리 선생의 당돌한 질문을 바자 교감도 교장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교장이 이내 노회(老獪)한 웃음을 짓고 앉은 채로 말했다.

잡부금이랄 수야 없겠죠. 어디까지나 대회 참가비니까요. 그것에 대한 모든 책임은 교장이 집니다.”

교장선생님께서 책임을 지시건 말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이번에는 4학년 담임 최경환 선생이 말했다.

왜 그런 외부의 행사를 교내로 끌어들여야 하는지를 모르겠군요. 더구나 적지도 않은 참가비까지 부담시키면서 말이지요.”

이어서, 차효길 선생이 마치 분풀이라도 하려는 듯한 언성으로 소리쳤다.

전교적인 규모로 참가시키면, 우승기를 준다느니, 참가비는 80퍼센트만 납부한다느니, 그런 웃기는 미술대회가 어디 있습니까? 전 이런 흑막에 가득 찬 미술대회에 저희 반 아이들을 참가시킬 수는 없어요. 교사의 양심을 가지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누군가 한구석에서 짝짝짝 하고 박수를 쳤다. 교감이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가지고 일어섰다.

흑막에 가득 찼다니, 차선생, 그게 무슨 말이야!”

교장이 교감을 만류하며 일어섰다. 역시 교장은 침착하고 태연한 태도를 유지했다.

차효길 선생이나 최경환 선생님, 그밖에도 여러 선생님들이 이번 행사에 대해서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장도 잘 알고 있고, 역시 교장으로서도 함께 우려하고 있는 바입니다. 이렇게 우려하고 있는 선생님들이 여러분 계실 때 본교의 이번 행사는 무사하게 치러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저쪽과도 약속이 된 행사니까, 좀 거슬리는 점이 있더라도 여러 선생님들께서 이걸 교육적으로 유효하게 이끌어 주셔야겠습니다.”

교장이 이야기를 마치자, 직원조회는 교무의 재빠른 진행으로 금시 끝나 버렸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웅성이는 가운데, 누군가 나의 어깨를 툭치며 말했다.

미술 주임은 어째서 찍 소리가 없어?”

돌아보니 강위석 선생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나는 강선생을 쳐다보고 어이없는 표정으로 웃어 보였다.

강선생이 말했다.

교실로 가지.”

역시 강선생 말이 옳았던 것 같아. 신경을 예각적으로 너무 곤두세우고 살아보았댔자 역시 피곤하기만 하더군. 그래도 돌아갈 것은 모두 그대로 돌아가니까.”

내가 말했다.

강선생과 나는 교무실을 나왔다.

그날 학과가 끝나고 잠시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있는 데 친목회를 주관하고 있는 한수길 선생이 내 교실로 찾아왔다.

한순길 선생은 나이답지 않게 좀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만년 청년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는 개인적인 감정이지만 한순길 선생에게 좋지 않은 이상을 받고 있었다.

언제던가 내 학급 어린이 중 한 집에서 초대가 있어, 한순길 선생이 낀 몇 사람이 함께 간 일이 있었다.

음식점을 경영하는 집이었다.

학부모가 술을 좋아하여 모두들 거나하게 취했었다.

사실은 그만해도 초대한 측에 대해서 미안할 만큼 부담이 컸었다.

나는 그것이 걸려 좌중에게 눈짓으로 그만들 이어나 줄 것을 종용했다.

그러나 한순길 선생은 좀처럼 일어날 기색이 아니었다.

그러더니 자리에서 일어난 나를 주저앉히며 하는 말이

구태식, 너 임마, 봉투라도 두둑히 얻어내고 싶어 자리를 깨뜨리는 거야?” 했다.

나는 그때만큼 교직에 대해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충격적인 환멸을 느껴 본 적은 없었다.

한순길 선생은 용건부터 늘어놓았다.

즉 이번 대회를 계기로 하여 친목회에서도 좀 수입을 잡아야겠다는 요지였다.

아까 교장이 불러서 갔더니, 대회 측에는 70퍼센트만 납부하면 된다더군. 10퍼센트는 친목회로 돌린다는 거야.”

, 저도 그런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말이야, 10퍼센트라야 까짓 거 얼마 되냐 말이야. 다음 달에는 추계 교직원 친목 야유회도 있고 재원이 모자라 큰일이거든. 그래서 구선생과 의논하려는 건데.”

한선생은 여기서 말을 끊고 양복 안주머니에서 만년필을 꺼냈다.

한순길 선생은 그것으로 책상 위의 시험지 뒷장에 숫자를 기록해 가면서 말을 이었다.

무상으로 참가시킨다는 20퍼센트 말이야, 그것은 애초에 저쪽에서 도화지를 타오지 말자구. 그러면 한 천이백 명분쯤 되나? 그만큼은 친목회에서 도화지를 나누어 주자는 거지.”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되는데요.”

내가 분노를 삼키며 말했다.

한선생은 계산이 우둔한 나를 책망한다는 투로 다시 말했다.

젊은 사람이 왜 그렇게 어두워. 그러니까 재적수의 20퍼센트는 친목회가 장사를 하겠다 이거야. 아무튼 학급당 80퍼센트는 납부되잖아? 그것만 도화지를 받아오고 도화지 받아온 수의 70퍼센트만 그쪽에 압부하면 나머지는 모두 친목회에서 수입을 잡을 수 있는 거 아니야? 다른 학교에서는들 미술 주임이 이렇게 해서 재미를 본다지만 구선생이야 애당초 그런 인물이 못되고, 뭐 친목회에서나 참여를 해야지.”

내가 말했다.

전 이 일에는 나서지 않기로 했어요. 그러니까 한선생님, 이 일을 맡은 분과 상의를 해주십시오.”

아니, 미술 주임이 안 맡으면 누가 맡아.”

한순길 선생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으며 말했다.

업자한테서 금일봉(金一封)이 없었던 모양이군. 그러지 말고 해봐요. 차차 아마 그런 것도 있을 테니까.”

글쎄 난 아닙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분노를 터뜨리고 말았다.

나하고는 상관도 없는 일이란 말이예요.”

한순길 선생은 나를 이상한 사람이라는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면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

기획한 대로 미술대회는 추진되었다. 모든 일을 교감이 나서서 처리했다.

친목회의 한순길 선생은 교감과 담합(談合)이 이루어졌는지, 천 장이 넘는 수의 도화지를 구입하여 등사실(謄寫室)에서 대회용 도화지처럼 배면(背面)에 학교명과 학년반, 성명을 기입하도록 되어 있는 난을 등사시키고 있었다.

등사실에 다른 볼일로 들어간 나를 발견하고 한순길 선생은 빙긋 웃으면서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이런 장사 좀더 많이 있었으면 좋겠어.”

무슨 장산데요?”

등사하는 아이가 호기심어린 눈으로 한선생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한선생이 말했다.

임마, 넌 몰라도 돼.”

잡종계(雜種係) 담당교사는 학급별로 납부되는 대회 참가비를 수합하느라고 정신없이 바쁠 지경이었다.

교감은 수시로 그 수납 사항을 체크하면서 미납 학급의 담임교사를 불러 독촉하였다.

교장실로 더러는 학부모들의 항의 전화가 걸려오는 모양이었다.

교장은 그런 전화를 받고 아주 능란(能爛)한 답변으로 응답해 주더라는 이야기가 교장실에 다녀온 교사의 입을 통하여 교무실에 전해졌다.

허긴 그래. 도화지 한 장 값이 90원일 까닭이야 없지.”

그렇지. 그 수많은 작품을 보아야 하는 심사위원들의 심사료다, 도화지를 전국 방방곡곡으로 싣고 다니는 용달차(用達車) 운임이다. 또 뭐야, 우승기 값, 상장이나 상품 값, 금메달 은메달 동메달 값, 많지 않아.”

그러고도 장사가 되니까 그런 대회를 열겠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는 되겠지.”

교사들은 제각기 이렇게 한 마디씩 거들었다.

예정한 데로 예정한 날에 어김없이 미술대회는 실시되었다.

어린이들은 모두가 하룻동안 꼬마 화가가 되는 날이었다.

아침부터 아이들은 재재거리면서, 크레파스나 그림물감 팔레트 물통이나 그림붓 같은 것을 화판에 끼워 어깨에 걸머메고 신바람이 나서 등교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암울한 기분으로 뒤따르면서 출근길을 서둘렀다.

난 적어도 특선 하나는 문제 없다.”

내 앞에 가던 사내아이 하나가 말했다.

그 앞에 나란히 걷고 있던 더벅머리, 역시 사내 녀석이 말했다.

씨발, 80원만 내버리는 거야.”

나도 그래. 난 도화지만 쳐다보면 골치가 딱딱 아프더라.”

나도 안 나갈려고 그랬는데, 우리 선생은 순 깡짜야. 안 나가도 80원씩은 몽창 내는 거래.”

또 그 옆에 있는 사내 녀석이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내 동생네 반은 오늘 미술대회 안 그린다더라.”

그러나 다른 아이들 중의 아무도 이 어린이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는 녀석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나는 강위석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학교로 들어가자 바로, 출근부에 날인할 생각도 잊은 채 강위석 선생의 교실로 달려갔다.

아이들은 모두 아침 청소를 하고 있었고 강선생은 진작에 출근하여 의자에 앉아 무슨 책인가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이들의 책상 근처를 나는 훑어보았지만 미술대회를 위한 준비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를 발견하고 강선생이 말했다.

미술 주임께서 독찰(督察)을 나오셨군. 그만 난 깜빡 잊고 아이들에게 준비를 못시켰지 뭔가.”

원고지들은 준비해 온 모양인데?”

나는 아이들의 책상 쪽을 건너다보며 말했다.

, 아이들의 불만이 이만저만 아닐세. 다른 반은 모두 미술대회를 하는 데 우리 반만 또 지긋지긋한 글짓기라고어떤 녀석은 돈 80원을 들고 외서 다른 반에 가서라도 그림을 그리겠다고 야단이던 걸.”

그럼 대회 참가비도?”

그래, 깜빡깜빡 잊고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못 해주었어. 잡종계에 우리 반만 그게 수납이 안 되니까, 아니 뭐 처음에는 우리 반만은 아니었지. 차효길 선생 반과 최경환 선생 반도 그랬던 모양이야. 그들은 워 교감과 따따부따 시비를 거는 듯하더니, 그만 제풀에 넘어가 버리더구먼. 나는 언제나 교감 앞에서야, 네 그저 하겠습니다, 하고 다짐을 했지만 돌아와 교실로 와버리면 그만 까맣게 잊어버린다 말씀이야.”

강선생의 그 편리한 건망증이 부럽군.”

내가 말했다.

강선생이 웃으며 내 말을 받았다.

교감도 그러더군. 강선생의 그 건망증에는 두 손을 들었노라고.”

내가 돌아서 강선생의 교실을 나오려 하자, 강선생은 나를 향해서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런데 묘한 세상인 건 무엇인고 하니어떤 반은 무상 참가 범위 20퍼센트까지도 모조리 수금해 납부하여 교장을 흐뭇하게 했는가 하면, 또 어떤 반은.”

내가 강선생의 말을 끊고 말했다.

그래, 또 어떤 반은 절반도 못 걷어 교장의 심려를 끼친다 이거지. 이를테면 우리 반 같은 경우 말이야.”

그게 아니고.” 강선생이 말했다. “구선생은 상상력이 빈약해서 탈이로군. 어떤 반은 역시 백 퍼센트 수금을 하여 교통비에라도 보탤까 하다가 말썽이 나가지고 망신을 했다는 정보일세.”

망신이라니?” 내가 물었다.

교감이 그 반에 들어가 참가비를 낸 아이들 수를 조사해 보고, 야단이 났었다더군.”

그게 어떤 선생인가?”

들어 봐. 교장이 그 선생을 교장실로 불렀겠다. 왜 젊은 교사가 요령을 부리냐고 꾸중을 했는데 그 선생은 오히려, 늙은 교장은 왜 이런 흉계를 꾸몄느냐고 대들어서 그만 교장실이 수라장이 되었다 하더군.”

나는 아침 먹은 것이 거꾸로 넘어올 지경이었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강위석 선생은 너털웃음을 웃었다.

웃음의 꼬리를 아무리며 강선생은 덧붙여 말했다.

모두들 개성들이 독특해서 좋지 않나?”

그날 미술대회는 별 탈이 없이 무사하게 지나갔다.

친목회에서 나온, 이름 쓰는 난이 좀 색다른 도화지에 대해서 교사건 아이들이건 주의를 기울이고 불평을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무튼, 아이들은 자기에게 배부된 도화지 위에 꽃과 집과 무지개를 그리고, 달리는 기차와 나는 비행기를 그렸다.

엄마의 얼굴도, 넥타이를 맨 아버지도 그리고, 동화 속에 나오는 난장이도 인어아가씨도 뒷다리 한 짝을 들고 오줌을 지리고 있는 강아지도 그렸다.

혹은 만족하거나 혹은 조금씩 불만스럽더라도 아이들은 모두 입선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자신의 작품을 제출했다.

신문사 측에서는 오후 늦게 용달차를 몰고 와서 아이들의 작품과 함께 수합된 참가비를 싣고 운동장을 가로질러 달려갔다.

*

두 달쯤 지나서였다.

교사들이나 아이들이나 언제 그런 미술대회 같은 것이 있었냐는 듯하게 가물가물해졌을 무렵이었다.

교무실에는 좀 듣기에 민망한 소문이 하나가 나돌고 있었다.

미술대회가 가짜였을는지 모르겠다는 해괴망측(駭怪罔測)한 소문이었다.

교감이 신문사 측에 전화를 걸고 야단법석을 부렸는데 신문사 측에서는 아마, 귀교의 그런 미술대회 참가신청을 접수한 일도, 실시토록 한 일도 없다고 딱 잡아떼더라는 이야기였다.

교감은 교장실로 들락거리고 안절부절못하는 눈치였다.

그러더니 나를 부르면서 혹시 그 명함을 가지고 있지 않느냐고 물었다.

명함이란, 내가 처음에 교장실에서 미술대회의 참가를 원유하러 나왔던 넥타이를 맨 두 명의 사나이들 중 한 명에게서 받았던 것을 말한다.

교장도 물론 그 명함을 받았지만 그동안에 어디로 갔는지 없어졌다는 이야기였다.

그 명함이 없어 신문을 보고 신문사에 전화를 걸었더니 그런 엉뚱한 대답이라는 것이었다.

글쎄요, 교실에 가서 찾아보면 있을는지요.”

교감은 빨리 좀 찾아다 달라고 성화였다.

나는 교실로 가서 책상 서랍 한쪽 구석에 처박혀 있는 명함을 찾아내서 교무실로 가지고 내려왔다.

내 손에서 명함을 빼앗듯이 받아 쥐더니 교감은 혀를 차면서 말했다.

이것 봐, 전화번호가 틀리잖아? 이 순 사기꾼들.”

그러면서도 교감은 명함을 보고 다이얼을 돌렸다.

신호가 떨어지자 교감이 말했다.

여보세요. 거기가 소년신문사 업무부 아닙니까? 뭐요? 분식센터요? 그럴 리 없는데.”

교감은 아주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교감이 전화를 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한 떼의 여교사들이 모두 어머머하고, 탄성을 질렀고, 이내 불안스러운 소요에 휩싸였다.

교감이 교장실에 다시 다녀 나오더니 이내 출장 차비를 했다.

아마 신문사에 다녀올 모양이었다.

바바리를 걸치면서 교감이 말했다.

아니, 그것은 차라리 비명이래야 옳았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

서너 시간 뒤에 교감이 돌아왔는데, 아무런 성과도 없었던 모양이었다.

교감이 까칠해진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던 교사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거기서 그때 미술대회를 개최한 건 사실이라는데, 우리 학교에 대한 것은 접수된 사실이 없다는 거야. 이만큼 쌓여 있는 참가 신청서를 모조리 들쳐 보았는데 우리 학교 것은 없었어. 이 명함 속의 이름도 자기들은 아는 바가 없다는 거야. 그쪽에서도 통탄을 금치 못해 하더군. 이거 야단인데. 학부형들은 그때 그 미술대회 시상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야단이고오늘 아침에도 그런 학부형의 전화가 걸려 와서 이렇게 들쑤시게 된 것이지만.”

교사들은 모두들 암담한 표정으로 교감의 야기를 듣고 있었다.

잠시 후에 교장이 교무실로 나왔다.

교장에 대한 예의로 교사들은 모두 자리를 비켜섰다.

교장이 말했다.

교감 선생, 교장실로 좀 들어오시오. 그리고 선생님들, 너무 염려하지 마시지요. 교장이 모든 책임을 진다 하지 않았소?”

다음날,

교사들은 교장의 명에 의하여 미술대회가 있었던 날의 가물가물한 기억을 더듬어 우수한 그림을 그렸던 어린이의 명단을 작성해 내느라고 진땀들을 뺐다.

명단 작성이 끝나자, 교감은 붓글씨에 자신이 있는 교사들을 징발(徵發)하여 교무실에 모아 놓고 손수 진두지휘를 하여 상장을 작성하였다.

가히 필력(筆力)으로도 알가를 이루었다 할 강위석 선생이 그 작업에서 빠져 있었다.

교감은 교무실에 들어온 강위석 선생에게 붓을 맡기려 들었지만, 강선생은 손가락을 묘하게 꽉 펴서 교감에게 보이며 익살을 부렸다.

이것 봐요. 쥐가 났어요.”

다음 월요일에 있을 애국조회에는 시상식을 가져야 했으므로, 토요일인데도 모두들 퇴근도 못하고 이른바 일체화된 힘으로 작업을 서둘렀다.

어쩌는 수 없이 나도 교감에게 징발당하여 수상대장을 기록하는 일을 맡고 있었다.

서무에서는 우승기를 맞추었는데, 월요일 아침 일찍은 가져온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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