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기다 소나무 숲에 갔다가
리기다소나무 숲에 갔다가
김연수
시골 농가의 음력 11월이란 여자들의 손놀림이 바빠지는 때다. 부엌에서는 뜨거운 장작불에 메주를 쑤느라 분주하다면 따뜻한 방안에서는 조각이불을 덮어쓴 오누이들의 얘기가 정겹다. 그런 정경이 눈 속에 파묻히면 고개를 들어 볼 수 있는 끝까지 평안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수 없다. 이 평화로운 음력 11월 산간마을의 풍경에 가끔 졸린 듯 총소리가 들리면 멧돼지 사냥철이 시작됐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멀리서 들리는 총소리에 아득한 겨울 낮잠에서 깨어나면 비로소 계절도 깊어질 대로 깊어진다. 다음해 정월로 예정된 입대 날짜만 기다리던 내게 삼촌의 연락이 온 것은 덕유산 일대에서 멧돼지 사냥이 시작된 지도 한참 지난 다음의 일이었으니 1987년 동지 지날 무렵이다. 아마도 삼촌은 입대를 앞둔 내게 사냥이 아니라 사내다움의 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사냥과 사내다움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는 모르지만, 이 사냥을 통해 삼촌이 말하는 사내다움이 단순히 방아쇠를 당길 수 있는 용기를 뜻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처음에 나는 삼촌이 말하는 그 용기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이점에 대해 말하자면 삼촌의 이력을 설명해야 한다. 삼촌은 일본인들이 조성한 그 모습 그대로 남은 상가지역인 아래장터에서 치과를 운영했다. 시내를 뚫고 지나가는 3번국도 옆 버스정류장 부근이었다. 손님들이란 대개 치통을 견디고 견디다가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장날 충동적으로 치과에 들어온 시골 사람들이었다. 그런 순박한 사람들을 상대하며 삼촌은 정말 무서운 기세로 돈을 벌어들였다. 왔다가 그냥 돌아가면 모르지만, 일단 진료 의자에 눕기만 하면 그 자리에서 몇십만원, 심지어는 몇백만원짜리 견적을 받아쥘 수밖에 없었다. 그럴 줄 알았다면 시내 약국에서 진통제나 잔뜩 사서 돌아갔을 축들이었다. 하지만 엑스레이 사진과 모형 이를 늘어놓고 제때 이를 치료하지 않으면 치아를 완전히 들어내고 죽을 때까지 틀니를 해야만 한다는, 무자비한 삼촌의 판정에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래서 농가로 돈이 모이는 가을만 되면 말도 아닌데 삼촌의 치과는 무럭무럭 살이 붙었다.
그러더니 채 삼십대가 끝나기도 전에 삼촌의 그 기세는 다른 쪽으로 물꼬를 틀었다. 온 집안이 발칵 뒤집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연애사건이 벌어졌던 것이다. 상대는 시장 한쪽에서 카페 ‘물망초’를 운영하던 당진 출신 동갑 여자였다. 그러니까 몇 번 치과로 찾아와 속을 보여주고 들여다보고 수작을 벌이더니 더 깊은 속까지 서로 넘나드는 사이가 된 것이다. 그 정도야 아래장터에서는 흔한 일이니 웬만하면 눈감아주련만 삽십몇 년 동안 그 많은 순정을 어디다 감춰뒀는지 삼촌은 그 여자 없이는 죽고 못 살겠다고 난리를 쳤다. 삼촌은 급기야 시 외곽 소년원 근처 빌라에다 살림을 차리고야 말았다. 어디 서울도 아니고 손바닥만한 동네에서 두 집 살림이라니 그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집안 어른 몇몇이 질화로를 뒤집어쓴 듯 화끈거리는 얼굴로 그 여자를 찾아 나서고 하는 야단법석을 떨었다. 결국 삼촌은 당진은 아니고 어디 그 비슷한 해안 동네로 그 여자를 보내야만 했다.
물망초의 꽃말이 ‘나를 잊지 마세요’였던가? 일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순정의 말로는 정말이지 잡지 표지보다도 더 통속적이었다. 명색이 치과의사인 삼촌이 자살을 시도했으니까. 이쯤이면 귀를 기울이던 사람도 넌더리를 낼 수밖에 없다. 아쉬운 게 하나도 없는 삼촌이 왜 약국을 전전하며 수면제를 사서 삼킨단 말인가. 그나마 목적을 성취했다면 다행이지, 위 세척을 끝내고 깨어났을 때 도립병원 담당의사가 혀를 끌끌 차면서 치대에서는 약리학 실습도 안 배우는가라고 물었다니 창피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그러니까 담당의사의 말에는 약리학까지 배운 치과 의사가 고작 배만 부른 수면제를 집어삼키며 자살 시도를 하느냐는 비아냥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때 일은 명절날 안방에 모인 어른들의 입에 두고두고 회자됐다. 그때 병삼이가 닭똥 겉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뭐라 캤는고 하니 사랑해서, 도저히 잊을 수 없어서 삼켰습니다, 다 삼키고 싶었어여, 마지막 한 알까지 다, 죽은 게 뻔한 길인 줄 알민서도 그래밖에는 못 하겠어여, 라나. 암튼 우리 집안에 그런 걸물이 있을 줄이야.
원근의 일가붙이들에게는 심심찮은 제삿밥상머리 얘기를 제공해준 삼촌은 자기 삶은 그저 그렇게 죽는 길만 남았다면 한동안 눈물을 쥐어짜더니 이번에는 짐승들 죽이는 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했다. 브라우닝 제 샷건이니 포인터니 하는 단어가 삼촌의 입에서 청상유수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가끔 서울 학교를 오르내리느라 인사하러 찾아가면 프로스트의 시를 담은 유치한눈 내린 풍경화나 하나 달랑 걸어놓은 원장실에 꿩이며 메추리 따위의 짐승 박제가 하나둘 늘어나는 게 눈에 보였다. 언젠가 엽총을 닦는 삼촌의 모습을 보고는, 사람들이 삼촌보고 총만 안 들었지 강도라고 하디만 이제는 진짜 총까지 구했응께 큰일났네요, 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으니 그 인간성의 위대한 승리라 할밖에.
하지만 내게는 그게 자꾸만 부질없는 오기처럼 여겨지니 참 안된 일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다 어렸으니까 집안 어른들이 뭐라고 하든, 여자가 어느 바닷가로 떠나버리든 정말 사랑한다면 쫓아가 그 사랑에 목숨을 걸아야 걸물이지 눈물이나 쏟는 게 무슨 걸물인가, 그런 막된 생각을 했다. 그럴 만한 용기는 없고 죽지 않을 만큼 수면제를 삼킬 용기는 있는 사람이니까 쉽게 마음 돌려 공연히 날짐승들의 목숨이나 차압하는 신세가 된 게 아닌가. 그러니 눈깔 대신에 구슬을 갖다 박은 박제 따위가 내 성에 찰 리가 없었다. 하물며 입대 직전의 황금 같은 시기를 삼촌과 함께 멧돼지 궁둥짝이나 보면서 보낼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그런데도 따라가겠다고 대답한 것은 인간에 대한 내 일련의 연구과정 때문이었다. 이 연구의 내력을 말하자면 대학 영문과 신입생이 된 그해 5월, 학교에서 열린 집회 도중 한 학생이 분신자살한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집회에서 불붙은 채로 떨어지는 몸뚱어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그늘이 드리워졌다는 사실을 인정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신입생이던 내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나도, 그 사람도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다. 죽을 게 뻔한 길인 줄 알면서 걸어갈 수밖에 없는 심정이란, 카페 여자와 딴살림을 차렸다가 실패하고 내뱉는 말이 아니다. 바로 그런 경우에 필요한 말이다. 카톨릭 신자로서 자살이 용서받지 못할 죄인 줄 알았을 텐데 자살해야만 하는 그 심정의 어디에서 어디까지를 일러 예사스런 마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내가 결국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입학 일 년 만에 자원입대를 신청한 것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영 찾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식으로 나는 삼촌에게도 물어볼 질문이 있었다. 뭐, 왜 어떤 인간은 자기 영혼마저 지옥에 떨어질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갈 수밖에 없는 것인가 같은 숭고한 질문에는 채 가 닿지도 못할 하찮은 것이기는 했다. 그래도 질문은 질문이었다. 왜 어떤 인간은 그게 죽는 길인 줄 알면서도 철부지처럼 터무니없는 오기를 부려야만 하는가? 물론 삼촌은 내가 자신에 대해 그런 의문을 느낀다는 사실은 꿈에서도 몰랐을 테다. 그처럼 그저 내 편한 대로 생각하고 한 해가 저물 무렵, 나는 삼촌을 따라 충청북도, 전라북도, 경상북도 등 삼도(三道)의 경계선이 교차하는 민주지산 삼도봉 부근으로 멧돼지 사냥을 떠났다. 삼도봉 경상도 쪽 초입인 해인리 산불감시 초소에서 도라꾸 아저씨를 기다리는 동안 올려다 본 산에는 구름장이 넓게 걸려 있었다.
영동군 삼촌면 흥덕리 출신인 도라꾸 아저씨는 굉장히 특이한 이력을 가진, 덕유산 인근에서는 이름난 몰이꾼이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사냥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그 사람을 전에 알고 있었다거나 그 이력을 전해들은 바가 있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애당초 촌부들의 눈먼 돈에, 그 다음에는 황해 비린내 풀풀 풍기는 카페 여자에게 걸었던 전 생애를 사냥으로 돌린 지 오 년째가 다 돼가는 삼촌이 그렇다고 하기에 그런 줄로 알았던 것이다. 영동군 상촌면 일대가 워낙 유명한 멧돼지 사냥터이다 보니까 도라꾸 아저씨는 어려서부터 낫 대신 엽총을 잡았다고 했다. 그러니 얼마나 솜씨 좋은 포수였겠냐마는 삼촌의 표현대로 하자면 ‘어느 날 총을 꺾어버렸다’.
“힘이 장사인 모양이네요. 총이 다 꺾어지고요.”
“오죽하만 도라꾸라 그러겠나. 그란데 내가 지금 진짜로 그 양반이 총을 부러뜨렸다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잘 알민서 니가 까부나.”
커피를 끓여 마시겠다고 석유버너에 불을 붙이느라 연신 펌프질을 하던 삼촌이 한 대 쥐어박는 시늉을 했다. 왜관 미군부대에서 빼돌린 미제 커피를 사냥터에서 타 마시는 일은 삼촌에게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호사였다.
“여자보다 재미있다카는 총을 그 사람은 왜 꺾었대요?”
“그 사람 오만 물어봐라, 뭐라 카는지.”
“삼촌 말은 소금 뿌리면서 들어야겠네요. 나올 때는 용대가리 같디만 우째 그래 싱겁습니까?”
펌프질을 너무 했는지 얼굴이 붉어지는가 싶더니 삼촌은 이내 호탕을 사람을 흉내내느라 껄껄거렸다. 여전히 나는 사냥과 사내다움의 거리가 얼마나 가까운지 몰랐다. 그러나 삼촌과 내 거리는 그처럼 가까웠다. 우리는 싸늘한 초소 안에서 커피를 나눠 마셨다. 유리 대신에 압정으로 박아놓은 비닐로 금방 김이 서렸다. 내다뵈는 하얀 바깥 풍경이 한층 더 희미해졌다. 아래 초소 기둥에 매어놓은 사냥개들이 컹컹 하얀 울음을 토해냈다. 그쯤에서 나는 연구를 좀더 진행시킬 생각이었다.
“삼촌만 보면 궁금한 게 하나 있는데, 물어봐도 됩니까?”
“뭔데?”
“그때 그 카페 여자 진짜 사랑했습니까?”
삼촌은 놀랐는지 커피를 조금 쏟았다. 삼촌은 얼른 속리산 산행지도가 그려진 빨간 손수건을 꺼내 입가에 묻은 커피 방울을 훔쳤다.
“왜? 너도 내가 심심풀이로 그랬다고 생각하나?”
“그때 겨우 열다섯 살이었는데 제가 우째 압니까?”
“그란데 뭐 한다고 물어보나?”
“우째 그래 쉽게 잊을 수 있는가 싶어서 그랍니다. 살림까지 차렸다 카만 그래 쉽게 잊을 수 없는 거 아입니까? 근데도 사냥 좀 배웠다고 금방 잊어먹습니까?”
“쪼만한 짜식이 어른한테 못 하는 말이 없구만. 그건 니가 나중에 질부될 사람 데리고 오만 내가 다 얘기해주마.”
“어데 집안 망신시킬 일 있어여? 그캤다가는 내 혼삿길 막히는 거 아이라여.”
“썩어서 새카매진 이빨하고 시퍼런 청춘의 혼삿길을 일찌감치 틀어막을수록 좋은 기다.”
사냥개들은 점점 더 크게 짖어대기 시작했다.
“삼촌 자신의 오기 때문에 사랑한 거 아입니까? 처갓집에 눌려 지내는 게 아니꼬와서 말입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어째 그래 빨리 사냥으로 돌아선단 말입니까? 그랑께 간단히 말해서 여자든 사냥이든 그래 절실한 이유는 없었던 가 아인가, 이런 질문이라여. 도대체 삼촌은 궁극적인 목적지는 어데란 말입니까?”
“나의 궁극적인 목적지에 대해서 꼭 알아야 되겠나?”
“그래야 군생활 잘할 것 같습니다.”
“군대 갔다오만 가르쳐줄게.”
“에이.”
그때 초소의 문이 벌컥 열렸고 마침내 기다리던 도라꾸 아저씨, 말을 더 정확하게 하자면 도라꾸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사람이 나타났다. 트럭이란 뜻의 ‘도라꾸’가 별명이라기에 장비를 닮은 덜퍽진 거인이 바윗덩어리라도 하나 짊어지고 나타날 줄 알았더니 키도 작고 몸집도 모착한 호호백발이었다. 그런데도 둘이서 얼싸안고 인사하는 품을 살피니 고작 사십대인 삼촌과는 말을 놓고 지내는 듯해 어리벙벙했다. 첫인상으로는 도라꾸 축에도 끼지 못할 삼륜차에 불과한듯 보였으나, 커피를 군용 반합에 타 미시는 것을 보고는 과연 그 용량은 도라꾸구나, 라고 감탄했다. 물론 커피 도라꾸라서 좀 안됐지만, 그렇긴 해도 눈이 마주칠 때면 싱긋거리는 모양이 참 보기 좋은 사람이었다. 커피를 마시면서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는 삼도봉 일대 지도를 펼쳐놓고 작전을 짰다. 도라꾸 아저씨가 추천하는 곳은 머무막골 북쪽 사면 중턱에 있는 리기다소나무 숲이었다.
“원래 여가 다 리기다소나무 숲이거든. 좀 생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카만 장차 목재를 생각해서 낙엽송을 심궜을 것인데. 우리 고향도 마찬가지지만 여기두 사방공사를 아주 질 낮게시리 리기다소나무로 대충 해버렸다. 당장 보기 좋고 잘 자라고 손이 덜 가거든. 나무 듣는 데서는 이런 말 못하고 멀찍하니까 하는 말이지만, 목질이 나쁜 나무가 시급한 녹화사업에는 맞을지언정 삼림육성에는 불가한데도 양지바른 곳에다가 누가 볼세라 얼른 리기다소나무를 심궜다 카는 것이야말로 이곳의 토질이 안 좋고 건조하다는 얘기고 산도야지님들이 거하시기에 퍽 좋은 곳이라는 표지판이지. 고 옆에는 칠게밭이니 겨울 별장으로 그보다 더 좋은 곳은 없겠다. 그란데 엽견을 고작 세 마리 데려온 거라? 호식이하고 다른 놈들은 또 뭐라?”
“한 마리는 포인터, 한 마리는 아키다라. 호식이하고 아키다마나 있으만 웬만한 멧돼지는 충분할 거라.”
“안 될 낀데. 니 불질이 입심만큼이라도 늘었다 카만 모르지만, 엽견 없이 멧돼지를 잡겠나 말이다.”
“호식이가 멧돼지 전문 아이라.”
둘은 나란히 앉아서 서로 나를 바라보면서 수선거렷다. 에라,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 인간 연구나 계속하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저씨는 총을 꺾었다믄서요? 총도 안 쏠라만 여는 뭐 하러 왔습니까?”
도라꾸 아저씨는 나를 향해 눈을 껌뻑거렸다.
“이 더벅머리는 누구라?”
“조카라, 조카. 다음달에 군대 가. 싸나이의 세계가 어떤 건가 보여줄라고 데려왔지.”
“아직 총도 안 잡아본 거라? 부랄에는 털이라도 났는가 모르겠네.”
그 말에 삼촌은 통쾌하다는 듯이 헤헤거렸다.
“도라꾸 아저씨는 거기도 호호백발입니까?”
사람이 낙낙해보여서 내가 한 번 더 쏘았다.
“제가 되바라진 게 아이고 도라꾸가 색이 허옇게 바랬네여.”
“야, 그래 너 고리삭지 않은 게 참 반갑다. 사내는 모름지기 그래 입심이 미끈하고 수월해야 하는 기다. 그래, 반갑다. 너 잘 맞춰봐라, 오늘. 눈먼 탄알이라도 경로야 어쨌든 멧돼지만 찾아가기만 하만 되는 기다. 너 삼촌 닮은 입심으로 봐서는 너도 맞춰 잡기는 곤란할 것 같고 하늘보고 쏘만 우째 맞을지도 모른다.”
찐 고구마까지 나눠먹으며 셋이서 그런 시시껄렁한 얘기를 한도 끝도 없이 지껄였다. 비닐창 바깥에서는 동짓달 바람이 부리나케 달려가고 있었다. 가끔 까마귀들이 그 바람을 잡아타고 머무막골 너머로 날아갔다. 툭툭 비닐을 치고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나는 인간 연구의 한 페이지에 도라꾸 아저씨도 넣기로 했다. 총을 꺾었다면서 사냥터를 기웃거리는 그 마음은 무엇일까?
선도견은 어디까지나 족보만 진돗개인 호식이였으므로 포인터와 아키다는 호식이 뒤를 따를 뿐이었다. ‘호식(好食)’이라는 작명에서 알 수 있다시피 먹을 것만 눈앞에 보인다면 사람의 지휘를 받을 개가 아니었다. 워낙 수렵을 좋아해서 인간이었다면 필시 사냥꾼이 됐을 것이라는 게 삼촌의 말이었다.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가는 동안, 삼촌은 몇 해 전 호식이와 처음 메소대지 사냥을 나섰을 때의 경험으로 이야기의 꼭지를 땄다.
“가을 내 들에서 닭도 잡게 하고 토끼도 잡게 해서 피맛을 보게 했단 말이라. 잡는 데는 귀신인데, 일단 잡았다 카만, 사람으로 치자만 밥숟갈이 주둥이에서 밀려날 때까지 처먹고 처먹은 뒤에야 입을 떼기 그거 길들이느라 을매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어야든둥 그래 맹훈련을 시키니까 슬슬 엽장에 나가도 될 정도가 됐단 말이지. 그래 요놈 머리 얹어도 되겠다 싶어서, 거 왜 황간 최사장 팀하고 무주 위에 거, 용화면에 갔어. 거기서 무주로 어디로 해가지고 몇박 며칠을 쫓아 댕깄는가 몰라. 장이 파열돼서 피똥을 싸면서도 멧돼지 한 마리가 한정 없이 도망가. 그걸 쫓아쫓아가서 결국 잡았지. 눈 위에 피똥 떨어진 거 보고는 내가 다 잡았다 싶었던가 나중에 멧돼지 옮길 몰이꾼 보내준다 카민서 최사장 일행은 일찌감치 다른 멧돼지 찾아갔응께. 그 멧돼지 잡을 때는 나하고 호식이하고 둘이만 남게 된 거라. 엄동설한에 산 속이니까 을매나 춥나. 배도 고프고 하니까 멧돼지 잡자마자 대통(竹筒)을 꺼내가지고 피를 빨아 마셨는 거라. 한참 빨아 마시다가 고개를 들어보이 반대편에서 호식이가 총알 구멍으로 피를 마시고 있는 거라. 거기까지는 좋다 이거야. 이눔이 나를 보더니 이빨을 보이면서 으르렁거리는 거 보이 꼭지가 확 돌대. 이거 이래 봬도 엽력 삼 년차인 나를 동기동창으로 보나 싶어서. 근데 그때는 때려도 이게 피맛에 넋이 나갔으니 내가 불리하지. 그래 무라, 마이 처무라, 그래놓고서 산 밑에 내려와서는 작살나게 매타작을 해버렸지, 뭐.”
제 이름이 연신 들리자, 앞서 가던 호식이가 힐끗힐끗 우리를 돌아봤다. 내린 지 하루가 지난 뒤라 입자가 굵어 눈 밟히는 소리가 무거웠다. 햇살을 받지 못해 눈빛은 약간 거무튀튀했다.
“재주는 호식이가 부렸는데 주인은 벌써 식사 도구까지 들고 뎀비니까 화가 안 나겠나. 그래 호식이한테 빨대라도 줬으만 후사받았을 낀데 말이다. 그라고 같이 사이좋게 나눠 먹었으만 그만이지, 패긴 왜 패나?”
도라꾸 아저씨가 수더분하게 싱그거리며 말했다.
“엽장은 전쟁턴데 군기 빠지만 끝장잉께 그라지. 하지만서두 저게 그래 아무 생각이 없는 것 같아도 똑똑하기 그지없어여.”
“그게 똑똑한 거라여? 평상시에 을매나 못 먹었다믄 그래 걸신이 들었을까.”
삼촌의 말에 내가 끌끌거리며 토를 달았다.
“고구마 껍데기까지 처먹은 놈은 등가죽하고 뱃가죽이 사돈 맺었겠다, 이 자슥아. 암튼 그래도 저놈이랑 내가 동기동창은 동기동창이라. 재작년인가 무주에 멧돼지 잡으러 갔다가 올무에 걸려갖꼬 뼈가 부러진 적이 있어여. 일어나지도 못하고 자빠진 나를 보더니 호식이 놈이 냅다 도망가는 거 아이라.”
“동기동창이 전투에 임하여 배신 때린 거구만.”
“그렇지. 그래갖고 이눔의 개새끼, 주인이 자빠졌는데도 도망갈 생각만 하다니, 하민서 혼자 산길을 기어가지고 내려갔어여. 사실 내려갔다가보다는 혼자 용쓴 것뿐이지만. 그래 가다보이까 어디서 마이 듣던 개 소리가 들려.”
“소리인즉슨 좋을 호, 먹을 식, 호식이란 이 말이겠지.”
“그렇지, 그렇지. 나 다친 거 보고 사람들 데리오니라고 그래 된 거라.”
“촌놈들 이빨 뽑은 돈으로다가 열녀문 아니라 열견문이라도 세워줘야 할 판국이네.”
“개뻐다귀로 세운다 카만 그를 두고 금상첨화라 카는 기지.”
만담도 그런 만담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사내들은 어쩌면 이렇게 쉽 없이 지껄이기 위해서 사냥터를 찾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내들이 묵은 얘깃거리를 털어내는 동안, 겨울나무들은 바람에 무거운 눈을 조금씩 떨어뜨렸다. 저벅저벅 걸어가다 보면 점점이 녹아내리는 눈가루들이 시야를 가렸다.
“어찌 됐건 다리 부러져서 그놈 보는데 눈물나데. 그때부터 내가 호식이에게 맹세하기를, 너 죽는 자리는 내가 반드시 봐주마 그래 된 거라. 저놈하고 나하고 그 동안 그래 다친 게 을매나 되는가 몰라. 사람으로 치자면 낙동강 전선을 함께 넘은 전우라 할 수 있어여.”
그쯤이면 호식이도 삼촌의 말을 알아듣는 듯 감격에 찬 눈빛으로 귀를 쫑긋 세우고 먼 산을 바라보며 걷게 바련이다. 이번에는 만담의 두번째 주인공 도라꾸 아저씨가 나설 차례였다.
“동물들이 암것도 모르는 것 같아도 알 거는 다 안다. 우리가 멍청한 인사보고 새대가리 닭대가리 하는데 그 새대가리도 얼마나 똑똑한가 아나? 내가 한참 사냥 맛을 알 때니까 한 칠십년대 후반쯤 됐나보다. 이제 짐승 발자국 보만 대충 오냐, 덩치는 큰게 얼굴만 잘생겼으면 좋았을 낀데, 이런 말도 서슴없이 나오던 때였어. 그때 권중달이라고 영동읍에서는 주유소 크게 하던 양반이 있었어.”
“그 사람은 엽장에서 숨을 거둔 사람 아이라.”
둘이서 손발이 척척 맞는 품을 보니 서로간에 한두 번 얘기했던 사람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렇지 그렇지. 그 사람하고 용산면에 고라니 사냥을 나섰는데, 이이도 눈먼 총알에는 일가견이 있는지 고라니는 안 잡고 매를 잡았단 말이다. 그랑께 너맨치로 실수로 잡은 거지, 잡을라고 한 게 아이고. 그래 매가 툭 떨어지니까 퍼득퍼득대는 걸 잡을라고 왼손을 내밀다가 그냥 매가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요나라 하셨다는 거 아이야. 퍼득퍼득하는 바람에 매 발톱이 방아쇠에 닿은 거야. 사냥터에서는 그래 가는 수도 있어여. 다 살아 있는 놈들하고 벌이는 싸움이니까 그런 거지.”
“사람으로 태어났으만 필시 사냥꾼이 됐을 매네요.”
만담이라면 나도 빠질 수 없는 노릇. 내가 나달거리자, 도라꾸 아저씨는 나를 향해 눈꺼풀을 삼박거리더니 덧붙였다.
“그랑께, 사냥터에서는 입 단속이 최고다. 멧돼지야 십 리 밖 소리를 들응께 먼저 자기 주둥아리를 꼭 붙이는 게 첫째 일이고 자칫하다가는 인명을 살상할 수 있응께 총 구멍을 단디 틀어막는 게 둘째 일이다. 안 그라다가는 들쥐가 너를 사냥할 수도 있단 말이다, 이 자슥아!”
나는 부러 화들짝 놀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얘기하면 얘기할수록 도라꾸 아저씨가 왜 총을 꺾었는지 궁금하기만 했다. 무슨 마음을 먹어야지 아침에 이 닦고 세수하듯이 평생 해오던 일을 하루아침에 딱 그만둔단 말인가. 삼촌에 대한 인간 연구야 자료가 풍부해 어느 정도 끝나고 있었지만, 도라꾸 아저씨는 좀더 겪어봐야지 알 것 같았다. 어쨌거나 삼촌에 버금갈 만큼 흥미진진한 인간을 알게 됐다는 점 때문에 마음이 즐거웠다.
리기다소나무 숲이 가까워지자 도라꾸 아저씨는 눈발에 남은 멧돼지 자취를 찾았다. 푸른 기가 도는 하얀 바람이 숲에 되튀어 불었다. 도라꾸 아저씨가 리기다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묏등까지 가서 우리를 불렀다. 거기서 도라꾸 아저씨는 비스듬히 놓이 멧돼지 발자국을 발견했다. 아직도 생생한 게 눈 내린 뒤에 밟은 자국이 분명했다. 눈이 내린 게 전날의 일이었으므로 아직 리기다소나무 숲속에 멧돼지가 은신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백오십 근 정도의 앰퇘지로 새끼는 세 마리, 아직 따라다니는 수컷은 없네, 라고 도라꾸 아저씨가 말했다. 생각보다 큰 멧돼지였다. 잡는다고 해도 들고 내려올 엄두가 안 날 정도였다. 이 정보를 근거로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는 작전을 짰다. 일단 삼촌과 내가 바람을 안고 앉을 수 있는 묏등 아래쪽에 목을 잡으면 도라꾸 아저씨와 사냥개 팀이 리기다소나무 숲 위에서 멧돼지를 몰고 내려오기로 했다. 멧돼지가 내려올 때, 내려왔을 때, 다시 올라갈 때 세 번에 걸쳐서 삼촌이 총을 쏠 계획이었다. 나는 삼촌에게서 멀찌감치 떨어져 계곡을 따라 이어진 경사면에 놓인 차(次)목을 지키기로 했다. 말이 차목이지, 그쪽으로 멧돼지가 올 것 같지는 않았다.
도라꾸 아저씨는 개들을 데리고 리기다소나무 숲을 돌아 산정으로 올라가고 삼촌과 나는 맡은 목으로 들어가 저마다 오들오들 떨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소리개 한 마리 하늘 높이 맴도는 게 보이더니 구름이 몰려다녀 해가 보였다 안 보였다 했다. 발끝이 무감각해져 자리에서 일어나 뜀뛰기도 하고 팔운동도 하는 등 법석을 떠는데도 멧돼지를 몰아온다던 도라꾸 아저씨는 감감 무소식이었다. 눈을 가늘게 뜨고 리기다소나무 숲을 찬찬히 살펴도 움직이는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눈 내린 숲은 달력 사진처럼 멋있었다. 햇살을 받아 점점이 반짝이는 것들이 죄다 녹아내리는 눈이었다. 솟구치는 수증기였다가, 구름이었다가, 다시 눈이었던 뭔가가 물로 바뀌는 그 순간의 아름다움이었다.
“삼촌!”
오십 미터 정도 떨어진 풀숲 속에 앉은 삼촌을 향해 내가 소리쳤다. 하지만 아무런 대꾸도 들려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여?”
그래도 대꾸는 없었다.
“이래 기다리만 뭐가 오기는 옵니까?”
그때까지도 묵묵부답이었다. 그게 얄미워서 내가 소리쳤다.
“물망초 여자 진짜로 사랑했습니까?”
“입 안 닥치나? 멧돼지가 저 위에서 다 듣는다.”
왜? 어디 멧돼지가 들으면 질투라도 할가봐? 다시 소리치려다가 그만뒀다. 며칠 뒤면 입대할 처지에 눈 쌓인 산골짜리에 쪼그리고 앉아 리기다소나무 숲에서 빠져나올 생각도 하지 않는 멧돼지를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하다니 스스로가 좀 안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기다소나무 숲에서 신호가 온 것은 사십 분도 더 지나서였다. 말이 사십 분이지 한 네 시간은 더 흐른 것 같았다.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십 분 정도를 더 기다렸는데 소리가 더 가까워지거나 멀어지지 않았다. 숲에서 뭐라고 사람 고함 소리가 들리더니 삼촌이 나를 불렀다. 나는 엉거주춤 뻣뻣해진 몸을 추슬러 삼촌에게 뛰어갔다.
“야, 올라오란다. 얼릉 가자.”
삼촌이 엽총을 짊어지고 숲으로 뛰어갔다. 눈밭을 헤치고 뛰어오르느라 숨까지 턱까지 차오른 나도 허겁지겁 삼촌의 뒤를 쫓았다.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보니 호식이를 비롯한 개들과 도라꾸 아저씨가 멧돼지를 향해 죄어드는 상황이었다.
“거, 밑에 멧돼지 보이나? 지금 점거농성에 들어갔다. 꼼짝도 안하고 있응께 조심조심 다가가봐라.”
숲속 어디선가 도라꾸 아저씨기 소리쳤다. 개 짖는 소리만 요란할 뿐, 내 눈에는 도라꾸 아저씨도 멧돼지도 보이지 않았다.
“상현아, 너는 거 있거라. 거기서 총 들고 있다가 만약 멧돼지 뛰어나오만 총으로 갈기만 된다, 알겠나?”
삼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요란한 개 소리에 이미 모든 자신감을 잃은 상태였다. 부디 삼촌이 이 모든 사태를 잘 처리해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윽고 삼촌은 개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곧 총소리가 들리고 멧돼지 일가가 살육을 당하겠구나, 어디 잡힐 사람이 없어 사랑 하나 제대로 못 하는 삼촌에게 잡히다니. 멧돼지 일가가 좀 안됐다고 생각하는데 삼촌의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개 짖은 소리가 멈추고 정적이 이어졌다. 본능적으로 나는 총소리를 기다렸다. 하지만 리기다소나무들이 바람 가르는 소리만 들릴 뿐, 총소리는 터지지 않았다. 잠시 후 비명 소리와 함께 다시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무슨 상황인지 몰라 답답하던 찰나 도라꾸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그, 그쪽으로 멧돼지 내려간다. 잡아라.”
잡아라! 그런데 도대체 뭘 어떻게 잡으란 말인가? 와뜰한 마음에 총을 들고 위쪽을 겨누는데 산사태라도 일어난 듯 쌓인 눈이 아래 쪽으로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그건 동물이라기보다는 굴러 떨어지는 바윗돌에 가까웠다. 나는 약간 튀어나온 둔덕 아래 가풀막에 있었는데, 눈을 뿌리며 둔덕 위로 나타난 멧돼지는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찌나 수꿀하고 얼떨떨하던지 멧돼지를 보자마자 나는 방아쇠를 당길 뻔했다. 하지만 엄청난 인내심으로 나는 그 욕구를 견뎠다. 바로 그 때 둔덕을 따라 새끼들을 대피시키느라 경계의 눈초리를 늦추지 못하던 멧돼지와 내 눈이 마주쳤다. 나는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구를 억누르면서 그저 총으로 겨냥하기만 했다. 쏠 수도 없었지만, 나는 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도 내가 어떻게 감히 멧돼지와 마주하고도 총을 쏘지 않을 용기를 낼 수 있었는지 신기하기만 하다. 멧돼지는 뜨거운 콧바람을 내쉬면서 몸을 부르르 떨더니 나를 본숭만숭하고는 새끼들이 사라진 쪽으로 달려갔다. 멧돼지가 사라진 뒤에야 나는 총구를 허공에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그러고 나서야 나는 안전장치를 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았다. 섬뜩하면서도 한심한 순간이었다. 만약 멧돼지가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면 어떻게 됐겠는가. 나는 안전장치를 서둘러 풀고는 삼촌과 도라꾸 아저씨가 오기 전에 방아쇠를 당겨 쏘았다. 내가 총을 쏘자, 뒤늦게 멧돼지를 쫓아 뛰어오던 호식이와 아키다가 낑낑거리며 걸음을 멈췄다. 잠시 내 눈치를 보던 개들은 냄새를 쫓아 다시 멧돼지를 행해 달려갔다. 어쩐지 호식이는 나를 원망하는 듯했다.
“우째 됐나? 총 쐈나? 잡았나?”
둔덕 위로 도라꾸 아저씨의 모습이 나타났다.
“총을 쐈는데 우째 됐는가 모르겠습니다. 절로 도망갔어여.”
도라꾸 아저씨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개들이 우짤란가는 모르겠지만, 일단 놓쳤응께 다음 목을 바라는 수밖에 없다. 원래 멧돼지 사냥은 몇박 며칠 동안 산을 헤매면서 하는 거니까 첫 시도에 놓쳤다 캐도 너무 실망하지는 마라.”
“그래도 아깝네요.”
아깝기는. 다시는 멧돼지를 정면에서 보는 일이 없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뒤늦게 나타난 삼촌의 몸은 온통 눈과 흙투성이였다.
“상현아, 잡았나?”
“잡을라 캤는데 하도 빨라서 놓쳤어여.”
“아, 정말 크네. 백오십 근도 더 넘겠는데. 한 삼백 근 안 되겠어여?”
“거 머리에 눈이나 털어라. 새 잡나? 날치꾼도 아이고 자빠지가꼬 우째 총을 쏘나?”
“포위했다 카디만 누가 그래 확 튀어나올 줄 알았나. 뛰어가다가 그눔이 확 튀어오르는 바람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캉께.”
“무당은 깔아놓은 멍석 탓한다 카디만 된불을 날리지는 못할망정 사냥꾼이 사냥감에 놀라 자빠지는 일이 어데 있나?”
“하, 삼백근은 넘겠지?”
“백오십 근이라캉께.”
자꾸만 근수를 말하는 삼촌을 쏘아붙이더니 도라꾸 아저씨는 내게 말했다.
“그래도 너는 소질이 좀 있는갑다. 선불질이라 캐도 웬만해서는 멧돼지 첨 보고 총 쏘기 힘든데. 혈흔도 없는 거 봉께 진짜 맞지는 안 했는 모양이고.”
계속 멧돼지 일가를 쫓아가는지 개 짖는 소리가 요란하게 골을 울렸다. 멧돼지 얼굴 한 번 본 것으로 그만하면 멧돼지 사냥도 해볼 만큼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뛰어다니느라 해토머리 때 봄물 흐르듯이 긴장이 풀어졌다. 하지만 사냥개들이 멧돼지를 봤으니 진짜 사냥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 우리는 밤나무 한 그루가 솟은 개활지에 섰다. 리기다소나무 숲을 파고드는 파도 모양으로 비탈이 층층고랑을 만들고 있었다. 멧돼지와 사냥개의 발자국이 허물어내리는 듯한 고랑의 물결을 거슬러 위를 향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사투(死鬪)의 길은 꼬불꼬불 이어지다가 어느 순간 고량을 세로로 파고드는 길고 너른 흔적으로 바뀌었다. 사냥개들이 멧돼지의 궁둥짝을 물고 늘어진 흔적이라고 설명하는 도라꾸 아저씨의 입에선 연신 입김이 쏟아졌다. 가파른 고랑을 뛰어올라가기란 그처럼 힘에 부친 일이었다. 밭고랑이 끝나는 둔덕 너머로 개 짖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곳은 또다른 리기다소나무 숲이 있는 사유지였다. 경계선을 따라 이 미터 간격으로 사각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놓고 거기에 철조망을 둘렀다. 그런데 그 콘크리트 기둥 하나가 숲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하얀 눈 위로 검은 흙이 파헤쳐진 모습을 보니 금방 쓰러진 게 틀림없었다. 요란스럽게 개 짖는 소리가 숲 안쪽에서 울려퍼지고 있었다. 삼촌은 어깨에 멘 총을 오른손으로 잡고 철조망을 뛰어 넘어 숲으로 들어가더니 개 짖는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삼촌의 앞쪽으로 나무들이 심하게 흔들리면서 쌓인 눈이 흩날렸다. 삼촌은 그 눈가루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 뒤를 도라꾸 아저씨가, 그 뒤를 내가 쫓았다. 뭔가 딱딱 부딪치는 소리, 우리의 발걸음 소리, 내 몸 안에서 들리는 심장 뛰는 소리가 두서없이 귀를 메웠다.
어둡고 음울한 리기다소나무 숲 한가운데에서 삼촌은 총을 겨누고 서 있었다. 삼촌의 양 옆으로 호식이와 아키다가 큰 소리로 짖어대며 서 있었다. 삼촌의 주위로 개들의 입김이 하얗게 피어올랐다. 우리는 거기까지 가서야 비로소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우리와 멧돼지 사이에는 뒷다리가 모두 부러진 새끼 한 마리가 힘겹게 어미 쪽으로 기어가고 있었다. 호식이와 아키다는 감히 어미 멧돼지는 공격하지 못하고 다리 관절이 끊어져 어미를 못 쫓아가는 새끼만 노릴 뿐이었지만, 어미가 지키고 선 까닭에 그도 여의치 않았다. 게다가 개들도 이미 상처를 입고 하얀 눈 위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철조망에 걸렸는지 아니면 개들에게 물렸는지, 자신을 겨눈 삼촌을 마주 보는 어미 멧돼지의 찢겨진 코나팔에서도 피가 뚝뚝 흘렀다. 멧돼지에 압도당한 개들만 요란하게 짖어댈 뿐, 삼촌과 멧돼지는 움쭉달싹하지 않고 서로 쏘아볼 뿐이었다. 그때까지도 리기다소나무는 가루 같은 눈가루를 조금씩 떨구고 있었다. 마치 삼촌과 멧돼지 사이에 하얀 커튼을 드리우듯, 조금 전까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민 멧돼지가 좌충우돌 리기다소나무와 부딪혔기 때문이다. 삼촌은 멧돼지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천천히 안전장치를 풀었다. 관절이 부러진 새끼가 엉금엉금 어미 쪽으로 기어갔다. 삼촌의 코에서 하얀 김이 가늘게 뿜어졌다. 그리고 몇 초간의 침묵.
“내려온다, 쏴라 쏴!”
도라꾸 아저씨가 소리쳤다. 그 말을 신호로 십여 미터를 떨어져 있던 어미 멧돼지가 삼촌을 향해 달려들었다. 삼촌을 총을 겨눴다. 삼촌은 멧돼지의 진행 방향을 따라 총신을 내렸다. 삼촌은, 그러나 끝내 방아쇠를 당기지 못했다. 삼촌의 몸이 비명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허공으로 솟구치는가 싶더니 이내 멧돼지의 엉덩이 쪽으로 돌아서서 맹렬하게 짖어대며 공격을 시작했다. 가까스로 호식이가 엉덩이를 물고 늘어졌으나 떨쳐내려는 생각으로 멧돼지가 몸을 부르르 떨어대자 역시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삼촌과 마찬가지로 코나팔에 정면으로 부딪힌 아키다는 던져진 고양이처럼 몸을 뒤틀면서 오 미터 남짓 날아가더니 깽깽거리며 땅바닥에 나자빠졌다. 그 바람에 눈가루가 일어 숲속에 하얀빛이 떠다녔다. 그 하얀 빛 사이로 번득이는 멧돼지의 눈이 보였다. 그때 총소리가 리기다소나무 숲속을 울렸다. 숲을 뒤흔드는 새청을 내지르며 멧돼지가 풀썩 주저앉았다. 내가 쐈는가? 아니다. 그럼 호식이가, 아키다가? 아니다, 아니다. 삼촌의 총을 주워든 도라꾸 아저씨였다. 도라꾸 아저씨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면서 주저앉은 멧돼지를 바라봤다. 한동안 앉아서 눈만 껌뻑이던 멧돼지는 하얀 콧김을 내뿜으며 도라꾸 아저씨에게 다시 달려들 기세였다. 그런 멧돼지를 바라보면서 도라꾸 아저씨는 또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멧돼지 뒤쪽 리기다소나무를 향해서였다.
“가라, 가! 너 새끼들하고 빨리 가! 미련스럽게 뎀비지 말고.”
그래도 멧돼지는 미련을 버릴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도라꾸 아저씨는 다시 한번 총을 쐈다. 멧돼지는 피를 흘리며 리기다소나무 숲 깊숙한 곳으로 사라졌다. 멧돼지가 뛰어간 자리에는 하얀 바람만 남았다.
“글쎄, 그놈의 눈을 봉께 잠시 잠깐이나마 옛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거라. 그랑께 야는 잘 모르는 얘긴데, 내가 어떤 여자를 찾아서 저 경주하고도 감포까지 간 적이 있어여.”
“어, 물망초 윤마담 말이라. 그야 시내 산다 카만 세 살 먹은 얼라들도 아는 얘긴데 야가 와 모르나?”
포인터를 제외한 호식이와 아키다 부상에다가 삼촌은 다리가 골절. 우리는 완전히 패잔병 꼴로 밭 둔덕에 앉아 아래쪽 리기다소나무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쏠 시간이 충분했는데 왜 멧돼지를 쏘지 않았느냐고 묻자, 삼촌은 느닷없이 물망초 얘기를 꺼냈다. 다리까지 부러진 마당에 다시 만담을 시작하겠다는 속셈인 것 같았다.
“내가 감포까지 따라간 거는 모른단 말이지. 야는 나보고 그때 왜 안 따라갔어요, 카는데 따라갈라 카만 내가 왜 못 딸라가겠나? 감포라 캐봐야 하룻저녁이만 갔다 오는 길인데.”
삼촌은 옆에 앉은 나를 흘낏 바라보더니 말했다.
“감포에 언니 산다 캤응께 거기 간 줄은 다 알고 있었던 거고.”
“그래, 입 놀릴 기운이 있다 카만 얼릉 내려가서 병원에나 가자.”
“이깐 노무 다리. 어데 한두 번 부러졌능가. 왜 총을 안 쐈나 캉께 하는 얘기 아이라.”
“그래, 다리 빙신 되는 한이 있다 캐도 오매불망, 잊지 못할 물망초 얘기 실컷 해봐라. 그게 니 다리지, 내 다리는 아닝께.”
숲 너머로 까치들이 날개를 펼치며 활강했다. 눈 내리면 까치들은 어디서 먹이를 구할까.
“그 여자 떠난 거 보고 그 길로 바로 감포로 따라갔어여. 칼 하나 가슴에 풀고 말이지. 어데, 진짜 칼 말이라. 그날 저녁에 동해바다 보면서 둘이서 술을 한정 없이 마셨어여. 속이 부글부글 끓는데 술 들이붓는다고 어데 취하나? 한참을 마시고도 또 마시다가 이래 얘기했다. 잘 들어봐라, 나는 내 인생뿐만이 아니라 니 인생까지 떠메기로 작정한 사람이다. 우리 집안 사람이고 누구고 간에 니는 말을 들으만 안 된다. 내 말을 들어야 된다. 왜냐? 나는 기꺼이 니 인생을 떠메기로 작정한 사람이니까.”
“다 늦게 청춘극장 찍느라 애썼구먼.”
“청춘극장보다 더 짠하지. 그리고 내가 말했어여. 그랑께 니는 내 말을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 나는 니를 사랑한다. 니도 나를 사랑하나? 끄덕이지, 고개를 끄덕이지. 그때 탁 칼을 꺼내가지고 내가 말했어여. 그라만 오늘로 니하고 나하고는 생을 마감하는 기다. 나는 원도 없고 한도 없다. 니는 어떠나?”
“하이고, 조카 듣는데 창피하지도 않나? 뭔 사설이 그래 기나?”
“왜 안 쐈는냐고 물어봉께 안 그카요? 무서워서 안 쏜 게 아이란 말이라. 들어봐, 그캉께 그래 그 여자가 펑펑 울면서 고개를 끄덕끄덕해. 죽겠다는 말이지. 그래 둘이 여관 잡고 안 들어갔다. 그란데 여관 강께 이 여자가 두 손을 싹싹 빌민서 막 울어. 살려달라는 거야. 술도 취한 김에 그거 봉께 화가 머리끝까지 오르데. 애시당초 나도 죽겠다, 죽이겠다, 뭐 이런 마음은 없었는가도 몰라. 칼 들고 찾아간 기야 나는 니를 그래 사랑했다, 그란데도 나를 버리고 떠나나, 뭐 이런 마음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거지. 근데 진짜 내가 지를 죽인다고 생각했던 모양이지. 그랑께 펑펑 울민서 살려달라고 그래 싹싹 빌었겠지.”
통증이 오는지 삼촌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란데 살리달라고 하는 꼴을 봉께 진짜 죽이고 싶데. 안 그라요? 안 그렇겠나? 같이 죽자고 사랑했는데 그카만 안 그라겠나?”
청춘극장 결말이 영 두 고 못 보겠네요. 삼촌의 다리만 부러지지 않았어도 그렇게 말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래 또 호기를 부려가지고 진짜 너 죽고 나 죽는다며 칼을 꺼내는데, 이 여자가 주머니에서 약병을 꺼내. 뭔 약병이냐고? 그게 수면제 모아놓은 약병이라. 수면제 모아놓은 약병이라고!”
한심한 광경이랄 수밖에 없으나 삼촌이 느닷없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귀 먹은 사람 없응께 살살 얘기해라.”
“그래 안 그래여? 나는 장난으로 칼 꺼내고 지랄 떨었는데 이 여자는 수면제 약병 꺼내민서 한다는 소리가 지도 죽고 싶었다고, 몇 번을 죽을라 캤다고, 그란데 도저히 용기가 없어서 죽을 수 없었다고, 그랑께 한 번만 살리달라고 싹싹 비는 기라. 사람 미치고 환장하는 노릇 아이라.”
비극적인 모든 청춘극장의 결말 부분이 그렇듯 삼촌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것도 단숨에 잔뜩 고였다. 그게 텔레비전 연속극의 결말이었다면 나는 한껏 비웃어줬을 것이다. ‘통속’이라는 부모는 돌아서면 마를 눈물이나 낳을 뿐이니까. 하지만 오 년 뒤에 터진 삼촌의 그 눈물은 어느 호적에 올라 있었던 것일까?
“그래 그 여자 내 가슴에서 떠나보낸 기라. 그제서야 알았지. 우리가 진짜 우리로 사는 인생이 을매나 되겠어여. 다 그림자로 살아가는 인상 아이라여? 그란데 그 여자하고 살았던 시절은 그래도 내가 나로 살았던 시절이구나, 그걸 깨달은 거라. 그 여자 여관에 버려두고 밤이 늦어 감포에서 경주까지 걸어갔지. 달도 참 밝은 밤이라. 한 손에 수면제 약병 들고 미친놈처럼 밤길을 하염없이 걸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불후의 명시 「더 로드 낫 테이큰」을 읊으면서 말이라. 두 로드 디버지드 인어 옐로 우드, 앤 쏘리 아이 쿠드 낫 트래블 보쓰…… 이 불후의 명시가 그래 통속적인 시라 카는 거를 나는 그 때 처음 알았다.”
다친 자리가 아픈지 온갖 인상을 쓰면서도 삼촌은 또 ‘앤 비 원 트래블러 롱 아이 스투드’ 라고 중얼거렸다.
“총을 왜 안 쐈느냐고 믈응께네 지금 뭔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하나? 지금 씨부리는 게 시가?”
“그랑께 그 멧돼지 봉께 그 여자 살리달라 카민서 싹싹 빌던 눈동자가 생각이 나서……”
도라꾸 아저씨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멧돼지 눈텡이 보고 옛날 애인 눈동자가 생각나서 총 못 쐈다 카는 얘기는 참 거룩하기는 하나 내 불질 사십여 년 만에 첨 듣는 얘기라. 놀랠 노자다. 허튼 소리 말고 이제 일어나라. 빨리 내리가서 근처 병원이라도 가자.”
“몰라여, 몰라. 내 가슴속이 붉은지 푸른지 아무도 몰라.”
소매로 눈물을 훔친 삼촌은 마지못해 도라꾸 아저씨의 등에 업혔다. 나는 총을 양 어깨에 메고 부상당한 사냥개들과 함께 뒤를 따라 걸었다. 우리는 밭고랑을 지나 아래쪽으로 리기다소나무 숲으로 들어갔다. 숲속은 서늘했다. 묘한 침묵이 숲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밟고 올라온 눈길을 되밟으며 우리는 조금씩 걸음을 옮겼다. 두 번째 리기다소나무 숲을 지나는 동안, 내 마음속에는 궁금증이 일었다. 감정 정리를 하는지 삼촌의 만담도 더이상 이어지지 않았으므로 나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그란데 도라꾸 아저씨는 아까 왜 멧돼지를 안 죽였어여? 아저씨도 쏠 수 있었잖아여?”
내 물음에 도라꾸 아저씨는 영 딴소리였다.
“호식이가 새끼 관절을 물고 늘어진 모양이라. 그라만 어미가 도망 못 가거든. 엽견 중에는 그런 짓 하는 놈들 참 많아여.”
“저게 원체 영물이라 캉께.”
코맹맹이 소리로 훌쩍거리며 삼촌이 말했다. 조금 전까지 사랑이 어쩌네 수면제가 어쩌네 징징거리던 삼촌이 주인을 닮아 어디가 부러졌는지 오른쪽 뒷발을 들고 껑충껑충 뛰어가는 놈을 가리켜 영물 운운했다. 호식이 얘기가 나오니까 또 만담을 시작할 모양이었다. 삼촌 가슴속은 암만해도 푸른색인가보다.
“하지만 그건 암수(暗數)라. 그런 암수를 쓰만 안 되는 거라. 나도 한때 그 이름도 아름다운 물망초 윤마담까지는 못 되더라도 헛된 공명심에 눈이 먼 적이 있어여. 불질 잘한다고 알려지만 여기저기서 해수구제해달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 캉께. 가서 잡아주만 영웅 되고 참 재미나지. 근데 한번은 을매나 대단하던지 새끼를 물고 다니민서도 손아귀로 모래알 빠지듯 몰이꾼들 사이로 잘도 피해다니는 놈을 만난 적이 있어여. 삼백 근도 넘을까. 엄청시리 대형 멧돼지였는 거라. 그런 놈이 어데 다시 만나겠나. 무려 육박 칠일 동안 그놈을 쫓아댕겼응께 말 다 한 거지. 그라고 봉께 안 되겠더라. 어느 순간부터 요놈이 나 갖고 노나, 그런 생각이 들데. 지금 생각하만 틀린 생각이지. 살겠다고 도망가는 멧돼지 신세에 어데 사냥꾼을 갖고 놀겠나? 사람이든 짐승이든 숨탄것 목숨이 그래 우스운 게 아인데 말이라. 그란데 그런 생각이 한번 드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는 거라. 우쨌든 잡아죽이겠다는 생각뿐이지. 그래서 다음부터는 어미가 아이라, 새끼를 죽였어. 보이는 족족 쏴 죽였어여. 그래 암수지 암수. 한 다섯 마리쯤 죽였을 끼라. 그때가 초가을잉께 아직도 새끼들 등에 줄이 쫙쫙 그어져 있을 때였어여. 한 두어 방 쏘만 새끼들은 꿈틀꿈틀하다가 죽어버리여. 멀리 있어도 호수(號數) 작은 산탄으로 쏘만 되니까. 어미는 산탄이 박혀도 괜찮다 캐도 새끼들은 어미 보는 눈앞에서 픽픽 쓰러지지.”
새끼만 노리고 다섯 마리를 죽인 뒤에 도라꾸 아저씨는 일행에게 다시 돌아가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때는 이미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삼십 킬로미터 정도는 올라간 뒤였다. 도라꾸 아저씨는 며칠간의 사냥으로 거지꼴이 된 채 그냥 돌아갈 수 없다고 불평하는 일행을 이끌고 다시 능선을 따라 돌아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야 몰랐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필시 쫓아온다는 거를 말이라. 뭐긴 머라, 어미 멧돼지지. 우리가 새끼들을 들쳐메고 가니까 어미가 계속 그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쫓아왔어여. 죽을 줄 알민서도 계속 그래 쫓아오더라. 그래, 한 여섯 시간을 걸어가다가 새끼를 내리놓고 다시 몰이를 시작했어여. 그래갖꼬? 잡았지. 죽을라고 쫓아온 놈이니까. 그란데 봐라, 잡는 그 순간에 나도 너맨치로 그놈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 그 눈에 뭐가 보였는가 아나? 아무것도 안 보이더라. 텅 비었더라. 결국 너는 못 쐈지? 나도 한참을 못 쐈다. 그래 벌써 죽은 놈이라 카는 거를 아는 이상은 못 쏘는 거라. 쏘만 안 되는 거라. 하지만 일행이 지켜보는데다가 공명심도 있응께 안 쏠 수가 없었다. 살아생전 총 한 번 제대로 안 쏘고 잡은 멧돼지는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녹아내리는지 멀리 가지에 쌓였던 눈무지가 쏟아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총 쏘기 전에 벌써 죽은 놈이라 카만 나는 도대체 뭘 쏴 죽인 거겠나? 마음에서 영웅대접 받고 집에 돌아와 며칠을 끙끙 앓다가 깨달았다. 잘못했다, 잘못했다, 아무래도 총을 쏘만 안 되는 거였다.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더라. 그라고 보만 그날 내가 잡은 거는 정녕 멧돼지가 아니었던 거지. 이래 산에 오만 쓸모 적은 나무나마 리기다소나무도 살아가고 청솔모도 살아가고 바람도 쉽없이 움직이지만, 정작 그 멧돼지는 이미 죽은 거였응께 말이라.”
“그라만 아저씨가 그때 쏴 죽인 거는 뭐라여?”
우리는 리기다소나무 숲을 빠져나왔다. 하얀빛과 성긴 겨울햇살이 투명하게 서로 뒤엉키고 있었다. 도라꾸 아저씨는 코를 한번 훌쩍거렸다. 눈 밟는 소리와 사냥개들이 끙끙거리는 소리만 사이를 두고 들릴 뿐이었다.
“그래 나는 한 번 죽었다.”
도라꾸 아저씨는 또 딴소리였다.
“너는 색이 허옇게 바랬다 카지만 내가 너만할 때만 해도 짐승을 얼마나 많이 잡았는가 모른다. 그때는 겁이라는 걸 모르고 살았다.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는 엽장 인생이었다마는 죽고 사는 거 그렇게 개의치 않았어. 그란데 그 일을 겪고 나 ㄴ뒤로는 짐승들한테 도통 총부리 겨눌 수가 없게 됐단 말이라. 왜 그카겠나? 내 눈에도 물망초 윤마담 같은 게 보였단 말이겠나? 내가 왜 그카는지 너는 알겠나?”
“부랄에 털도 안 났는데, 제가 우째 압니까?”
“저 봐라 리기다소나무도 있고 직박구리도 있다. 저래 다 살아가고 있는 거라. 산 것들 저래 살아가게 하는 일이 을매나 용기 있는 일인가 나는 그때 다 깨달았던 기라. 내가 해수구제한다꼬 싸돌아다니민서 짐승들 쏴 죽인 것도 용기가 있어서가 아이라 나하고 마누라하고 애새끼들하고 먹고살아갈라고 그런 거라는 걸 그때야 알게 된 거다. 그것도 모르고 나는 영동군 상촌면 흥덕리 도라꾸가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사냥꾼인 줄 알았던 거라. 그라고 나니까 어데 약실에 돌멩이 하나도 못 집어넣겠더라.”
삼촌을 등에 업은 도라꾸 아저씨는 지친 기색도 없이 눈 쌓인 산길을 터벅터벅 걸어내려갔다. 아저씨의 말을 알 듯 말 듯했다.
“내가 니 삼촌을 왜 좋아하는가 아나?”
“좋은 말상대니까 그런 거 아이라여?”
“멧돼지 눈 보고 옛날 애인 생각나서 총 못 쏜다 카는 사람 아이라. 그래 내가 니 삼촌 좋아하는 거라. 내가 뭔 소리 하는가 알겠나?”
“지금 뭔 소리 합니까? 이것도 만담입니까?”
내가 진심으로 되물었다. 하지만 도라꾸 아저씨가 대꾸하기도 전에 등에 업힌 삼촌이 다시 프로스트의 시를 읊기 시작했다. 두 로드 디버지드 인 어 옐로 우드, 앤 쏘리 아이 쿠드 낫 트래블 보쓰. 액자 가게에 내걸린 통속화 속의 풍경처럼 눈 내린 해인리가 한눈에 펼쳐졌다. 앤 비 원 트래블러 롱 아이 스투드…… 악을 써대며 시를 읊는 삼촌의 목소리가 온 골짜기로 울려 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