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 잡는 날
돼지 잡는 날
김용택
사람들이 나에게 취미가 무엇이냐고 물을 때 나는 매우 난감해진다. 나는 친구라고 해봐야 강진면, 덕치면 동갑내기들 다 합쳐서 15명밖에 되지 않는다. 동갑이라고 해서 다 친구가 되는 것도 아니다. 친구가 없으니 자연 그들과 어울려 지내는 일이 없다. 고스톱도 늦게 배워 두어 번 치면 재미가 없고 맥이 빠진다. 장기나 바둑도 갑갑하고 낚시도 그렇고 수석이니 분재니 난 가꾸기니 하는 것들도 전혀 흥미가 없다. 늘 하는 일이 독서인데 글을 쓰는 사람들의 취미가 독서라고 할 수는 없잖은가.
알고 보면 나같이 외롭고 쓸쓸하고 고독한 삶이 없을 것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야기인데 많은 때는 한 주일에 두서너 팀씩 이야기 상대가 학교를 찾아오니 그건 취미니 뭐니 하기 전에 '일'이 된다.
나도 친구를 갖고 싶다. 한가한 저녁 벗들을 불러모으고 마당에 앉아 또는 술집에 앉아 평안한 마음으로 시를, 인생을, 세상을, 남자의 외로움을, 삶의 고독함을, 나이의 쓸쓸함을 더듬거리고 싶다.
그러나 나라고 어찌 취미가 없겠는가. 어쩌다 취미를 기재할 난이 있으면 이것저것 생각하다가 꼭 '영화감상'이라고 쓴다. 나는 식구들과 함께 늘 영화를 보러 간다. 우린 특히 한국영화를 좋아한다. 신문을 보다가도 영화, 비디오를 소개하는 난은 절대 빼놓지 않고 읽는다. 한때 나는 동아일보를 보았는데 이따금 속지에 나오는 연예인들의 사사로운 가십란까지 어찌 자세히 읽는지 아내에게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지금도 나는 문화면을 제일 먼저 보며 그것도 영화나 비디오를 소개하는 프로는 놓치지 않고 보는데 우린 대개 그 짧은 몇몇 장면들을 보고 그 영화를 볼지 안 볼지를 결정한다. 그러나 안성기, 박중훈이 나오는 영화는 거의 본다. 안성기나 박중훈이 한국에 산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할 때가 있다. 좀 지나치다고 할지 모르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리고 우리는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버스타 스탤론이 나오는 영화는 무조건 본다.
언젠가 우리 네 식구가 극장가를 지나다 간판을 보니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주연한 영화가 상영 중이었다. 우린 만사 제치고 극장으로 들어갔는데 웬걸 극장 안은 초만원이어서 키가 작은 우리 식구들은 큰일이었다. 그런 일에 용감한 아내가 어딘가 쑥 뚫고 갔다 포도시 나오더니 통로가 조금 비어있다는 것이다. 우린 거기다 신문을 깔고 앉아서 영화를 보았는데 무지 재미있었다. 한참을 보다가 나는 아내에게 "여보, 근디 이 영화 제목이 뭐여"했더니 "몰라, 그냥 봐요"하며 손가락을 입에 대며 "쉿!"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래도 궁금해서 옆에 앉은 여자에게 물어보니 그도 모른다며 킥킥 작은 소리로 웃었다. 나는 지금도 그 영화제목을 잘 모른다. 아참, 생각이 났다. 정확한가는 몰라도 아마 트루라이즈가 아닌가 한다. 우리가 주로 보는 영화는 그들이 주연하는 터무니없는 액션영화인데, 나는 그런 영화가 좋다.
사람들은 영화에서 무슨 심오한 어떤 것을 읽거나 또는 영화를 놓고 온갖 유식한 체하며 거기서 역사와 사회를 꼭 읽어내려 하지만 난 솔직히 그게 골치 아프다. 딱 잘라 말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보면 즐겁고 신나고 그리고 후련하면 된다는 가벼운 생각을 나는 갖고 있다. 나는 내 나름대로 안목을 갖고 있어서 신문이나 어떤 매체들이 떠들어대고 온갖 난리들을 피워도 속지 않는다.
도대체 극장에 가서까지 어떤 심각함 속에 빠지기는 싫은 것이다. 영화는 있을 만한 일과 있을 수도 있는 일을 그리기도 하고, 있을 수 없는 일을 곧잘 그려내기도 한다. 나는 이 두 가지 영화가 다 좋은 것이다. [서편제]가 우리 영화에 끼친 공로까지 부인할 생각은 없지만 나는 이 영화에 쏟아진 찬사들에 눈꼽만큼도 동의하긴 싫었다. 임권택 감독 영화를 다 좋아하지만 [서편제]나 [장군의 아들]에서 나는 큰 감동을 받지 못했다.
나는 요즘 [축제]와 [학생부군신위]를 보았다. 이 두영화를 만든다고 할 때부터 바짝 긴장하며 개봉을 기다린 것은 모두 초상 마당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소문 때문이었다. 나는 진작부터 초상 마당의 독특함에 늘 매료되어 있었다. 그래서 할머니의 죽음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가며 시를 한 편 썼는데, 그 시가 [맑은 날]이었다. 나는 내가 평소에 진메마을에서 보아온 그 초상 마당의 분위기를 생각하며 [축제] 개봉관에 들어갔다.
[축제]는 참으로 골고루 잘 만든 영화였다. 초상을 치르는 절차를 고루 갖추고 있었으며 문상객 중에 머리 허연 이가 한 분 끼여 있었는데 아마 작가 이청준씨인 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여유 있어 보였고 조연으로 나오는 소리하는 분의 연기는 참으로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윷판도 시종일관 아주 잘 짜여 있었고 빈 상여 놀이를 시작할 때와 화면 밖에서 들리는 유행가 소리도 아주 재미있고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었다. 우리 동네 정규아재, 한수형님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학생부군신위]는 비디오로 보게 되었다. 그런데 이건 아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절대 이럴 수는 없는 것이었다. 영화가 이렇게 건조하고 맥없이 이어지다니! 에피소드와 에피소드가 연결이 안 되고 얼토당토않은 이야기들이 전개되었다. 민방위 훈련이 시골에서 벌어진 것은 너무나 엉뚱했다. 풍자라고 한다면, 글쎄 그렇다면 거기에 어울리는 그 무엇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어떤 친척이 보험을 들라고 설치고 다니는데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어떻게 총으로 돼지를 잡을 수 있으며, 왜 다방 아가씨들을 비디오로 찍는단 말이며, 아무리 그렇더라도 초상 마당에 찾아온 여자가 정사를 벌일 수 있겠는가. 그 아이는 또 뭔가. 아 정말이지 나는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다. 아이들은 아예 보지 않고 딴전을 피우며 저희들끼리 놀고 있었다. 나의 영화수준이 형편없거나 아니면 그 영화가 형편없거나 둘 중의 하나였다. 어떻든 유감이다.
영화 [축제]를 보다 지난 시절 우리 동네의 돼지 잡던 날들이 문득 떠올랐다.
옛날 동네에서 돼지를 잡는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추석이나 설이 돌아오면 동네에서 돼지를 잡았고, 고된 모내기나 가을일이 끝나도 돼지를 잡았다. 아마 70년대 들어서였을 것이다. 돼지를 잡는 날은 대단한 축제일이다.
모내기가 서서히 끝나갈 무렵 동네 사람들은 무논에서 일을 하느라 진기가 다 빠지고 기름기를 흙이나 물에 뺏겨 몸이 푸석푸석해진다. 세상에서 제일 고된 일은 비 맞으며 혹은 뜨거운 햇볕 아래 무논에서 일하는 것일 터이다. 모내기철에 어른들 장딴지가 거머리에 뜯겨 피를 질질 흘리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다니는 모습을 늘 본다.
모내기를 하다가 다리가 간지러워 손으로 얼른 문지르다 보면 통통해진 거머리를 장딴지에서 뚝 떼어내어 손으로 꽉 눌러보면 주삿바늘에서 나가는 물줄기처럼 피가 찍 나갔다.
어떤 놈은 한껏 피를 빨아먹어서 어찌나 배가 부른지 배불리 먹은 젖먹이처럼 스스로 뚝 떨어지기도 했는데 그런 놈은 구슬처럼 동그랬다. 징그러웠다. 거머리에 뜯긴 데는 두고두고 비가 올라치면 얼마나 가려웠던가. 그럴 때마다 아버지나 어머니는 거머리에 물린 데를 담뱃불로 지져서 가려움을 넘기곤 하셨다. 그렇게 피와 기름기를 다 논에 빼앗긴 동네 사람들은 모내기가 모두 끝나고 써레도 씻어 매달아 놓으면 돼지를 잡았다.
"여어, 일도 슬슬 끝나가는디 돼지 한 마리 까야제."
하며 누군가가 한마디를 던져놓으면 그 말이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며 하루, 이틀, 사흘...열흘 굴러다니다 드디어 누구네 집돼지로 결정 나면 잘 먹어야 본전이라는 여름 돼지를 잡는 것이다.
돼지 잡는 날, 마을 회관 앰프는 여지없이 실험된다. 성질 급한 사람이 나와 돼지를 달 저울부터 찾는다.
"아아, 마이크 실험 중. 아아, 푸푸 마이크 시험 중. 니미 이놈의 마이크는 맨날 고장이여. 아아, 나온다. 마이크 나와. 그려 주민 여러분에게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마이크만 잡으면 표준말이다.). 다름이 아니라 지금 큰 저울을 찾고 있습니다. 큰 저울을 가지고 계신 분은 지금 빨리 회관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아 저울을 썼으면 제자리에다 갖다놔야지 빨리빨리 싸게 싸게 갖고 옷씨요잉."
동네에 큰 저울과 작은 저울이 있다. 큰 저울은 돼지나 공판 보리, 공판 나락을 달 때, 작은 저울은 고추나 돼지고기들을 달 때 쓰인다. 이런 방송이 나가면 벌써 회관 마당엔 기선이 양반, 임종호씨, 문수씨, 아랫집 큰아버지 등이 서성거리고 계신다. 저울이 나오기까지 저울의 보관과 사용에 대해서 얼마나 갑론을박 시끄러운가. 거기서 큰소리가 나기도 해서 돼지 잡는 시간이 배나 늦추어질 때도 있다. 아무튼 큰 저울이 나오면 한수형님, 이환이형님, 판조형님, 백석이양반 등이 저울을 들고 잡기로 한 돼지가 있는 집으로 간다.
뉘집 돼지든 잡거나 파는 날 배가 떠지도록 포식을 시킨다. 그래야 근수가 많이 나가니까. 옛날엔 푸주간 쥔들이 돼지 잡는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놓고는 부러 하루나 이틀쯤 지나서 돼지 잡는 날짜와 시간을 맞추어 놓고는 부러 하루나 이틀쯤 지나서 돼지 밥때가 훨씬 넘었을 쯤에 느닷없이 기습작전을 펴는데, 이 최후의 만찬이 지난 시간을
택해야 한두 근 이득을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돼지 쥔은 아무것도 안 먹였다고 시침 뚝 떼지만 아이들까지 다 아는 게 일반화된 상식이다.
아무튼 동네 사람들은 배부른 돼지를 잡아야 한다. 대여섯 사람이 돼지 막에 둘러서고 누군가가 칡이나 새끼줄을 들고 안으로 들어간다. 그때 꼭 돼지 막에 들어가는 사람은 한수형님이다. 우선 돼지 귀를 꽉 잡고 휙 자빠뜨리면 대개의 돼지들은 벌러덩 넘어진다.
이때 재빨리 달려들어 앞다리와 뒷다리를 꽉잡아 묶어야 하는데 이완이 양반이나 판조형님이 꼭 그 일을 하신다. 귀를 잡고 휙 넘어뜨릴 때 돼지가 "꽥, 꽤애액" 지르는 괴성은 대단해서 그 소리는 마을에서 불끈 솟아오른 불꽃같고 느닷없이 터지는 총소리 같다. 하지만 그 소리는 그보다 훨씬 시적이다.
돼지 괴성이 동네 앞산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면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돼지 잡기 잔치가 벌어지는 것이다. 우선 똥을 질질 아니 물똥을 질질 싸는 돼지를 묶은 앞다리와 뒷다리 사이에 서까래만 한 줄작대기를 꿰어 어깨를 메고 큰 저울로 근수를 단다. 이 일은 꼭 종만이 양반이나 박세완이 한다.
"아, 빨리빨리 달아. 어깨 아파 죽겄구먼."
"아, 가만히 좀 있어 이 사람아, 눈금이 흔들린당게."
돼지가 꽥꽥거리며 온 몸을 요동치기 때문에 줄작대기를 멘 어깨가 아프다.
"몇 근이여, 몇 근? 아 빨리빨리 좀 허랑께!"
어떨 때는 눈치로 짜고 눈금을 다시 보고 다시 보고 하다가 "어매 잊어부렀네. 다시 한번 메어봐"하기도 한다.
"거 뭣같이 눈에다 동태눈깔 달았는가."
어쨌든 근수를 달고 나면 돼지를 둘러메고 가마솥에 물이 끓는 용택이네나 종만이양반네로 향한다. 용택이네 집은 한곳에 큰솥이 두개 나란히 걸려 있고 종만씨 집은 대문간에 바로 쇠족 솥이 걸려 있는 데다 길가에 있기 때문에 늘 그 집으로 간다. 동네 사람들은 벌써 와서 어떤 사람은 물을 긷고 어떤 사람을 칼을 간다.
묶인 돼지를 뚤방이나 조금 높은 곳에 모로 뉘어놓고 도끼머리고 돼지를 쳐 죽여야 하는데 이 일을 하는 사람은 꼭 정해져 있다. 그분은 하도 그 일을 많이 해서인지 도가 터서 한 방에 끝내버린다. 뭣이든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도가 트이게 마련이다. 우물도 한 우물을 파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 어른이 없으면 그날 돼지 잡는 일은 약간의 사태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돼지머리를 여러 차례 때려야 하니 머리가 거의 박살이 나버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분의 도끼 한 방에 돼지는 똥을 싸며 쭉 뻗고 괴성도 그쳐 버린다. 동네는 다시 조용해진다. 조용한 가운데 돼지는 숨을 거두는 것이다.
돼지의 숨이 끊어지기 전에 할 일이 또 하나 있다. 가장 중요한 멱따기이다. 숨이 깔딱깔딱할 때 단 한칼에 목을 찔러야 돼지 몸속에 돌고 있는 피를 다 받아낼 수 있다. 동네에서 가장 날카롭고 잘 드는 이 작은 칼을 쓰는 칼잡이 또한 꼭 정해져 있다. 만약 이분도 어디 가고 없으면 이날의 순대는 별 볼 일이 없게 되어버린다. 왜냐하면 선지피가 영
형편없기 때문이다. 이분도 어찌나 그 일을 오래 했던지 도가 틔었다.
아, 이제 돼지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버렸다. 이제 뜨거운 물을 끼얹어 털을 뜯으면 되는 것이다. 뜨거운 물을 퍼다 찌들면 사람들은 너나없이 달려들어 털을 뽑는다. 가을철이나 여름철엔 괜찮지만 섣달 그믐 추운 때는 참 힘이 든다. 손은 뜨거운데 뒤는 춥기 때문이다. 어쨌든 털이 다 뽑히고 밀려서 몸뚱어리가 하얗게 되면 돼지를 지게에 짊어지고 강가로 간다.
그런데 징검다리에 가서 기다리는 사람들보다 돼지는 항상 강물에 늦게 도착해서 징검돌 중에서 가장 넓적한 데다 뉘어진다.
징검다리나 강가의 돌멩이에 어른, 아이들이 앉거나 서 있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다. 어떤 때는 평화이며 어떤 때는 기다림이며 어떤 때는 희망이기도 하다.
돼지가 뉘어지고 징검다리가 좁아라 사람들이 삥 둘러싸면 아이들은 신을 벗어 부치고 물로 들어가 고개를 들이미느라 정신이 없다가 꿀밤을 자꾸 먹는다. 남정네들과 아이들 모두 징검돌에 하나씩 혹은 서너 명씩 서서 돼지 잡는 광경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어른들은 그 살벌한 칼질을 아이들이 보지 못하게 했다.
돼지 잡는 날이면 아이들은 온통 돼지 오줌보에 정신이 팔려있다. 짚공보다 아주 그럴듯하게 좋은 것이 돼지 오줌보에 바람을 넣은 공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아버지나 삼촌을 꾀어 오줌보를 따내야 했다. 그 일을 우리 아버지가 꼭 해주시곤 했다. 돼지 배를 따고 내장을 들어낸 다음 아버지는 재빨리 돼지 오줌보를 뚝 따서 우리들에게 던져주었다. 우리들은 돼지 오줌보를 모래밭에다 득득 문지르고 오줌보에 달라붙은 기름을 떼어내고 바람을 불어넣어 풍선처럼 만들어 강변에서 논배미에서 축구를 했다.
돼지의 배를 따는 일을 하는 사람이 또 정해져 있다. 배가 슬슬 따지면 깨끗한 내장에서 김이 뭉게뭉게 난다. 간, 큰창자, 작은창자...이때 기술이 가장 중요하다. 배를 가를 때 밥통을 잘못 건드리면 똥물이 온 내장에 퍼져 내장은 그야말로 못 먹게 된다. 내장이 보통 내장인가. 온 동네 사람들이 삶아 나눠 먹는 내장이 아닌가.
김이 뭉게뭉게 나는 따뜻한 내장에 손을 넣어 간을 꺼내면 사람들의 눈은 빛나고 목울대에선 침 넘어가는 소리가 나기 마련이다. 피가 별로 묻지 않은 칼을 흐르는 냇물에 씻어 간을 조금씩 잘라 왕소금에 찍어 들고 소주 한잔을 마시고 고래를 쳐들고 생간을 입에 넣어 꿀꺽한다. 나도 한점, 너도 한점, 더 달라, 고만 묵어라, 언제 내가 먹었냐, 거짓말 마라 하며 "지선이양반 아까 묵었잖여" "은제 내가 묵어" "너는 나만 그러드라" "내가 언제 그렵뎌" "하따 그만들 뒤. 돼지 간 식겄네" "니기미 나는 한점도 못 묵었네" "누가 인자 오래야?" "지미 그놈의 소가 해필 그때 새끼를 낳대야" "어이 얌쇠양반 한점 더 드셔" "아녀 자네나 더 묵어" "어매 술 다 떨어졌네. 난 한잔도 안 묵었는디."
간이 다 떨어지고 다시 조용해지면 동환이양반은 작은창자를 가지고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창자를 뒤집어 소금에 빤다. 나는 이분의 그 말 없는 작업에 늘 눈길이 가 머물곤 했다.
뙤뚱한 징검다리. 두툴두툴한 징검다리. 아 이제 그 그리운 징검다리가 뜯기고 거지 본때 없는 시멘트 다리가 놓였다. 징검다리만 생각하면 나는 느티나무에서 바라보던 그 모습이 눈에 어려 분노와 함께 안타까움이 가슴을 친다. 그 징검다리는 우리 동네의 상징이었다. 그 징검다리로 인하여 동네의 서정이 맘껏 빛났던 것이다. 거기서 들리는 천 가지 만 가지 물소리들이며 달빛에 빛나는 돌멩이들이며 그 위에 소복소복 쌓인 겨울날 아침의 눈이며 저물녘 나뭇짐 풀짐 이고 오가는 농부들의 모습이며...그 징검다리가 사라짐으로써 진메마을의 풍경이 죽어버렸다.
동환이양반이 내장을 뒤집어 깨끗이 빨고 나면 돼지 잡는 일은 거의 끝이 난다. 다리는 다리대로 발목은 발목대로 내장은 내장대로 다 분리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도 하나둘 징검다리를 떠나고 징검다리 밑에 온갖 물고기들이 다투어 돼지에서 나온 것들을 먹는다.
이제 고기가 되어버린 돼지를 집에 가져다 놓으면 나는 잡기장을 준비한다. 고기 근수를 사 가는 대로 적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용택이네 두근 반, 한수네 세 근 한 눈...동네 사람들에게는 좀 싸게 팔아야 하는 것이다. 돼지를 판 쥔에게는 시장가격대로 주지만 고기를 사 먹은 사람들은 시장가격보다 훨씬 싸게 사 먹는 것이다.
돼지를 잡은 사람이 물주가 되는데 장사가 아니니 소주 두어 병 값만 벌면 되므로 고깃값을 정하는 데 별로 큰 문제가 없다. 쌀이 날 때면 쌀로 고깃값을 계산하고 보리 때가 되면 보리 때가 되면 보리를 주면 되는 것이다. 아침밥 먹기 전 고깃값을 받으러 다니는 한수형님, 종길이아재, 판조형님이 고기 장부를 펼치며 "용택이네는 한 근 두 눈이구만"하는 그 모습을 지금 떠올리니 그냥 눈물이 다 글썽해진다.
고깃값이 정해지고 손해를 봤네 어쨌네, 돈 벌었네 어쨌네 시끄러운 속에 가마솥에서 돼지 내장이 푹푹 삶아지고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르고 마당에 덕석이 펴지고 커다란 상에 왕소금과 김치 한 보시기 놓이면 사람들은 상에 빙 둘러앉는다.
이 글을 나는 새벽 네 시에 일어나서 쓰기 시작했다. 잠은 한두 시쯤 깨었을 것이다. 모기가 물어서 일어났다가 잠이 오지 않아 뒤척였는데 창문을 보니 훤하게 밝았다. 마루에 나갔더니 앞산 너머도 환했다. 꼭 새벽빛이었던 것이다. 물소리가 간간이 들리고 소쩍새가 울고 청개구리가 울었다.
내가 마루에 나가는 소리에 어머니도 깨셨다. 나는 다시 자리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아 오줌을 싸러 앞논에 나갔다. 별들이 보였다.
그리고 달이 높이 떠 있었다. 앞산이 싱싱하고 까맣게 서 있었다. 밤꽃 내음이 어지럽구나. 나는 방에 들어왔다. '그래 시를 써야돼. 왜 시인들이 시를 쓰지 않을까. 나는 시를 써야지.' 하며 뒤척이다가 일어나 쓰다 만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동네 풍경이, 그때 돼지를 잡던 왁자한 모습들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먼데서 새가 울고 있었다. 네 시 반쯤 되었다. 밖에 나가보았다. 앞산에 안개가 하얗게 내려오고 있었다. 문을 열었다. 날이 밝아왔다. 나는 늘 이렇게 아침이 오는 것을 보곤 했다. 제비들이 울고 물새가 울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꿈엔 듯 들렸다. 개가 짖고 안개가 산을 내려와 강을 덮고 강을 건너와 강변까지 덮고 느티나무까지 덮었다. 안개 속에서 새가 지저귀고 제비들이 날아다닌다. 우리 집 제비 새끼는 다 컸다. 뒷산 밤꽃 내음은 내 코끝에 있다.
김이 무럭무럭 나는 내장을 도마 위에 얹어 숭숭 썰어 양푼째 상에 내다놓으면 숟가락 젓가락을 잡기도 전에 맨손이 먼저 나간다.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곳곳에 서거나 앉아 훌훌 국을 마시는 사람들, 그들에게 고기란 대체 무엇인가. 배가 부른 이들은 지푸라기로 꿴 살코기를 들고 집으로 돌아간다. 내장으로 양이 덜 찬 사람들은 또 고깃국을 끓이리라.
여름철에 잘 먹어야 본전이 될 돼지고기지만 먹는 것이다. 오랜만에 기름기가 들어가 설사야 나건 말건 꺼먼 부엌에 연기를 자욱하게 피워 올리며 고깃국을 끓여 마루에서 모기에 뜯기며 먹는 것이다. 오랜만에 목구멍에 때를 벗기는 것이다.
잔치는 끝났다. 그러나 내가 하려는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잔치가 끝났다고 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다.
돼지를 잡아서 고기를 만들고 내장을 삶아 먹고 설거지를 마무리할 때까지 시종일관 많은 사람들이 동원되어 한 가지 일이라도 거들게 마련인데, 일이 끝나기까지 손가락 끝에 물 한번 안 묻히고 피만 묻히며 (피는 묻힌다. 생간을 집어 먹어야 하니까) 말을 가장 많이 하는 이가 한 분 있다.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묶을 때부터 고기를 나눌 때까지 참견하며 입으로만 감 놔라, 배 놔라, 틀렸다, 그렇게 하면 되간디, 거긴 아니여, 그래봐라 뼈만 가져간 사람은 손해다, 누가 뼈만 가져간다고 허겄냐...뒷짐 지고 호주머니에 손 집어넣고 서서 칼질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일하는 사람의 부아를 돋우고 약을 올리는 이가 한두 분쯤 어느 마을에든 있다.
돼지 잡는 일뿐 아니라 동네 길가에 난 풀을 베거나 동네 앞길 청소할 때, 동네 징검다리 손볼 때, 아무튼 자기 일이 아닌 동네의 공동부역이 있을 때 반듯하게 서서 빗자루만 들고 왔다리갔다리 하거나 낫만 쥐고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풀 한 주먹 베어들고 그 풀 끝까지 들고 다니면서 자기가 가장 동네를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아니면 동네가 금방 폭삭 망하기라도 할 것처럼 입으로만 온갖 일을 다 참견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동네마다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분이 진메에도 있다. 아직 생존해 있다. 돼지우리에서 돼지를 잡아 묶을 때 동네 사람들 뒷전에서 고개를 들이밀고 일하는 사람들을 나무라기 시작하는 것이다. 간섭하고 시비 걸고 찍자 붙고 탓하고 무시하고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것이다.
돼지 발목을 그렇게 묶는 것이 아니여, 저울추가 그렇게 밑으로 가면 되간디, 헤리고만 아니 세고만, 물이 안 뜨겁고만, 칼이 안드는고만, 그러다가 창자 터지겠다, 나도 술 좀 더 달라...맛있는 데는 자기가 다 골라 먹고 자기가 다 사 가려고 큰소리 지르고 자기가 하는 말이 다 옳고 자기가 아니었으면 돼지고기가 닭고기로 될 것처럼, 자기가 아니면 돼지 곱창이 싱겁고 짜서 못 먹을 것처럼 시종일관 따라다니며 따지고 큰소리치고 비웃는 사람, 그래서 동네 사람들한테 무시당하고, 핀잔받고, 욕을 얻어먹는 그런 사람.
그러나 이제 그분도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동네에서 돼지를 잡을 일이 별로 없고 잡는다 해도 두어 사람뿐이니 그분이 끼어들어 잔소리할 데가 없는 것이다. 돼지 잡는 판이 그분 때문에 쌈판이 되고, 칼질을 몇 번이고 멈추고 칼을 던지며 나가던 왁자하던 일도 이젠 없어졌다. 어찌 보면 돼지 잡는 일이 없어진 뒤로 동네는, 진메는 끝이 난지도 모른다. 생각을 해보라. 그분의 간섭이 없다면 어찌 돼지 잡는 판이 살아나겠는가.
돼지를 잡는 일은 생명을 죽이는 일이다. 칼날이 번득이고 피가 낭자하고 돼지의 몸이 하나하나 해체되는 그 무시무시한 죽음의 판에 아무 소리도 없이 숨을 죽이고 피와 칼에 잘리운 돼지의 몸을 보고 있다면 생각만 해도 으시시하다. 그 침묵과 공포의 시간에 죽음을 살려내는 이가 바로 그 분인 것이다. 으시시한 죽음의 판을 말로 살려내어 살판으로 만들어내는 분, 그분을 나는 마을의 예술가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죽음을 축제로 승화시키는 타고난 솜씨와 기질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제 그분은 늙어서 잘 걷지도 못하다. 논배미에 넋 놓고 앉아 파랗게 자라난 벼포기들을 보기도 하고 시멘트 다리로 변한 징검다리께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다.
물소리를 들으며 그분은 옛날의 돼지 잡는 판이 쌈판으로 번지던 그 왁자한 소리와 벗들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그분은 훌륭한 농군이었으며 한 번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대단한 오기를 가졌다. 그분이 바로 문계선씨이다.
죽음까지도 삶의 한 과정으로 끌어안았던 옛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어찌 보면 한도 슬픔도 그 무엇도 아니다. 그냥 자연의 과정이었다. 한 어린 서러움과 분노와 슬픔이 많았던 농군들의 삶, 그리고 그들의 일상이 담긴 초상 마당이나 공동의 일터에는 늘 그 판을 일구고 살려내는 꿀이 있었다. 그 꾼 들은 끊임없이 명멸했다. 생명력을 가진 예술가는 이 죽음의 판을 삶으로 들려놓은 사람일 것이다.
나는 땀 냄새 사람 냄새가 덕지덕지 붙은 그 판을 좋아해 왔다. 나는 고급스럽고 점잖은 내실의 예술보다 걸판지고 걸쭉하고 덜 세련되고 투박하고 서툴고, 그러면서도 그런 것까지 다 살려 아우르는 민중의 예술을 사랑한다. 나는 심각해지기를 극히 싫어한다. 어떤 사실의 이면을 될 수 있으면 무시하고 또 잘 보지 못한다. 나는 그냥 눈에 보이는 것, 마음에 그려지는 그 무엇을 좋아하고 읽으려 한다.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와 쉬다가 이 글을 끝맺는다. 해가 졌다. 산그늘이 서늘하게 온 동네를 덮자 할머니 한 분이 하얀 옷을 입고 뒷짐을 지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강물 흐르는 쪽으로 걷는다. 푸른 산을 배경으로 그림같이 걷는다. 단순한 고요의 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