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3. 23. 06:52

대관령

김별아

 

고향의 감자꽃이 다시금 흐드러져, 계절은 어느덧 봄이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모내기를 마친 너른 무논가를 한참이나 달린 끝에, 가장 먼저 고향의 모습으로 은민을 맞이한 것은 하얀 꽃을 틔워올린 채 배를 깔고 엎드려 있던 키 낮은 감자밭이었다. 이윽고 평평한 무논의 경치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도로변까지 드리운 어둑신한 그늘을 보니 어김없이 험준한 강원도의 산세로 접어들고 있었다.

10분간 쉬기로 한 휴게소에서는 해묵은 냉동감자를 햇감자처럼 구워 팔고, 적두赤豆몇알을 넣은 검은 감자떡을 향토식품이랍시고 빚어 팔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싹을 틔워올려 뽀얀 꽃을 매단 씨감자들은 말복을 지나 해수욕장이 파장할 무렵에나 열매를 맺을 참이었다. 그래도 은민은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담배 한 갑과 감자떡 한 접시를 샀다. 한 귀퉁이에 백설탕을 뿌리고 이쑤시개를 찔러놓은 감자떡은 고작 애기손가락만한 것 여덟 개를 얹은 한 접시에 천원이었다. 가공 녹말을 섞은 듯 미끈거리는 감자떡을 씹으며, 은민은 어린 시절 해마다 뒷마당에서 부글부글 거품을 물고 썩어가던 감자독들을 생각했다. 은민이 까치발을 세워야 겨우 닿을 만큼 높고 두텁던 감자독, 그 안에서 고약스런 냄새를 풍기며 썩어들던 애감자들이 따끈하고 맛난 감자떡으로 빚어진다는 사실은 신기하기만 했다. 시커멓게 썩은 감자들을 고운 체에 거르고 또 걸러 하얗고 뽀오얀 감잣가루를 만들던 어머니, 어머니의 세월은 오래 거르고 삭인 감잣가루처럼 끈기진 것이었다.

이은민……? 너 은민이 맞지?”

일회용 접시에 담긴 감자떡이 두어 개쯤 남았을 무렵, 누군가 등뒤에서 은민의 이름을 불렀다. 은민은 뜻밖의 장소에서 불린 자신의 이름 때문에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강릉 내려가는 길이니? 버스 타고 온 거야?”

매끄러운 서울말씨가 어색치 않은 그녀는 현영이었다. 은민은 잠시 대답을 잃은 채 곱게 분단장을 한 그녀의 얼굴을 빠안히 쳐다보았다.

…… 오랜만이다. 그동안 잘 지냈어?”

도대체 얼마 만이니? 3? 아니, 4년 전에 만났던가? 우리 신촌 홍익서점 앞에서 만났던 게 마지막이었지?”

그런 것 같다. 정태는? 같이 온 거야?”

현영은 대답 대신 주차장 한켠에 세워진 청색 세피아를 가리켰다. 자동차 보닛 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남자가 정태인 듯 했다.

결혼생활은 어때? 재미있어?”

재미?”

현영은 풀피리를 불 듯 푸후후 높고 가볍게 웃었다.

넌 아직 결혼 안했구나? 미혼들은 다 그렇게 묻지. 하나같이 그래. 너도 결혼해봐.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

그렇게 대답은 하지만 현영의 얼굴은 썩 나빠 보이지 않았다. 깡말랐던 몸매에도 제법 살점이 붙어 건강해 보였고 얼굴 한편에 드리웠던 그늘도 말끔하게 가신 상태였다. 은민은 굳이 불행의 그림자를 찾아낼 수 없는 그녀를 바라보며 공연한 스산함을 느꼈다.

정태씨! 이리 와봐! 은민이를 만났어!”

현영이 목소리를 높여 정태를 불렀고, 이어 정태가 커다랗게 손을 벌려 놀랍고 반갑다는 제스처를 쓰며 다가왔다.

오랜만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아직도 시 쓰고 그러고 사나?”

정태는 눈에 보이게 몸이 불어서 딴사람 같았다. 하관이 강한 각진 얼굴의 희미한 윤곽선만 빼고는 예전의 모습을 찾기 힘들었다. 다만 억양이 강한 고향 사투리만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사투리는 여전하네? 서울생활이 벌써 십년이 되어가는데 그건 고쳐지지 않나봐. 난 벌써 다 잊어버렸는데 말이야.”

이거? 이기 뭐이 고친다고 될 일이나? 그렇지 않아도 사투리 때문에 은행에서 온갖 구박을 다 받는다는 거 아니나. 고객들이 박대리는 귀순용사 출신 아닙니까, 하는 통에 내 별명이 은행에서는 귀순용사.”

정태의 너스레에 현영과 은민은 얼굴을 마주보며 웃었다. 외모는 변했을지언정 정태의 털털하고 뚝뚝한 성격은 하나도 변하지 않은 듯했다. 그래, 정태와 결혼하길 잘한 거야…… 은민은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있는 현영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입 속으로만 중얼거렸다.

뭔 일로 내려오는 거나? 집에는 다 무고하시제?”

동생은 작년에 시집갔고…… 어머니가 좀 편찮으셔.”

왜서? 니네 어머이 나한테도 참 잘해주셨는데 어디가 편찮으시나?”

……위암이셔. 벌써 이년째야.”

정태와 현영의 얼굴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그들의 얼굴에 닮은꼴로 그려지는 안타깝고도 동정어린 표정을 바라보며 은민은 부부는 여러가지 면에서 닮아가는 거로구나, 하고 생각했다.

, 이젠 익숙해졌어. 어머니도 담담하시고. 이번 귀향은 어머니 때문만은 아냐. 너희도 알지? 내일이 희수 기일이라는 거. 오랜만에 윤규랑 만나서 거기 가기로 했어.”

기일이 내일이나? 깜쪽같이 잊고 있었네. 사는 데 바빠서 친구들 일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미안하다. 그걸 잊으면 안되는데……

정태는 금세 자신의 무심함을 사과했고, 은민은 문득 현영의 얼굴에 그어지는 당혹스런 표정을 훔쳐보았다.

괜찮아. 이젠 희수 부모님도 거기 가지 않으시나 보더라. 위패를 모신 절에 가서 불공만 드리시나봐. 우리도 오랜만에 통화하다가 우연히 생각해낸 거야. 난 어머니도 뵐 겸, 겸사겸사 내려가는 길이야.”

우린 사실 별 볼일이 없다. 저 사람이 하도 바다가 보고 싶다고 노래를 해서 갑작스레 떠나온 거지. 우리 집이 서울로 이사하면서 강릉 내려갈 기회가 별로 없어서 말이야, 저 사람 친정에도 들르고 할라고. 그럼 잘되었네. 오늘 처가에서 자고 내일 너네랑 동행하면 되겠네. 나도 희수 그놈 본 지도 꽤 오래되었고……

정태의 말에 더 당황한 것은 은민이었다. 윤규와 약속을 잡으면서도 굳이 정태에게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은 정태와 현영이 결혼을 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지만 즉흥적인 정태의 동행 약속에 현영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무덤덤해했다.

니도 괜찮겠제? 바다는 갔다 와서 보면 되고.”

정태는 동네 산책이라도 제안하는 것처럼 현영의 어깨를 툭 치며 물었다.

괜찮아. 나도 오랜만에 가보고 싶네. 거기 걸어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아.”

은민이 타고 온 고속버스에 손님의 인원을 점검하는 휴게소 아가씨가 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은민은 급히 정태에게 약속장소와 연락처를 알려주고 버스에 올라탔다. 마알간 봄볕 아래 서 있는 정태와 현영의 모습이 왠지 쓸쓸하게 보였다. 버스가 모퉁이 급커브를 돌아서 마침내 그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은민은 한참이나 고개를 꺾어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해발 832미터 대관령 정상에 서면 조붓한 골 안에 자리잡은 강릉 시가지와 얕으나 긴 남대천, 내 끝에 이어지는 동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록 예보를 간단히 무시하는 변화무쌍한 일기 때문에 선명한 풍경을 볼 수 있는 날은 며칠 되지 않지만, 안개가 끼지 않은 오늘 같은 날에는 대관령의 적송赤松과 동해 물빛이 어우러져 보색의 신천지를 보는 듯했다.

은민은 차창에 바짝 얼굴을 붙인 채 골짜기에 은둔한 작은 도시를 감싼 바다의 옷자락 한 귀퉁이를 훔쳐보고 있었다.

바다……

되뇌면 입안 가득 짠내가 고일 듯한 이름이었다. 풍덩 안기면 그 가슴을 풀어헤쳐 희고 탐스런 젖을 배불리 먹여줄 듯, 언제나 은민에게 허기를 일깨우던 그림이었다.

처음엔 희수를 그 바다에 묻으려 했다. 본디 화장한 뼛가루는 강에 뿌리지 바다에 뿌리는 것이 아니라 했지만, 돌밭에서 자란 아이는 돌밭으로 돌아가고, 나릿가에서 자란 아이는 나릿가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 생각했다. 허벅지가 팍팍하도록 모래펄을 즐겨 걷던 그들, 천둥벌거숭이의 모습으로 서슬 푸른 겨울바다에 떼를 지어 뛰어들던 그들의 치기어린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리 한켠에 친구의 짧은 생애를 묻고 싶었다.

바람 잽혀라, 얘야

서릿발 칼날 위에

잘리는 바다

우리는 어둠에 내리는

닻이 되고 싶구나

 

아아 검푸른

적막이고 싶구나*

일없다. 재 넘어가 죽은 자식 여기까지 끌고 올 필요 없다. 아주 안 보이는 곳, 보고 싶어도 행장 꾸릴 일이 번거로워 엄두를 못 낼 만한 곳에 뿌려두거라. 태풍이라도 몰려오고 해일이라도 밀려들면 그 자식 생각에 잠이라도 편히 들겠느냐? 머얼리, 아주 멀리 뿌리고 오거라.”

자식 앞세운 죄인이라며 꼬박 삼일간 식음을 전폐하셨던 희수 아버지는 곱게 갈아 빻은 희수의 뼛가루를 친구들에게 맡기며 그렇게 말씀하셨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바다에 묻는 것이 몹쓸 일이었다. 고향 어느 귀퉁이에 살든 십여분 안에 달려가 만날 수 있는 바다, 아버지는 너무 자주 달려가 만나고파 뒤척일 일을 걱정하셨던 게다.

어린날의 노래처럼 강물이 흘러흘러 바다로 간다면, 언젠가 그 바다에서 다시 만날 일을 기약하며 북한강 지류에 뿌리는 것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나룻배에 냉큼 올라앉아 간단히도 이루어지던 그 일이 엄연히 수질보호관리법이나 상수도원보호법으로 금지되어 있음을 확인한 후, 그들은 결국 대관령을 마지막 종착점으로 삼게 되었다.

영동과 영서의 교통로인 대관령ㆍ미시령ㆍ진부령ㆍ한계령ㆍ진고개ㆍ구룡령의 여섯 고개 중 가장 나지막한 대관령, 아흔아홉 굽이 구절양장 같은 길을 감고 묵묵히 서 있는 그 고개는 가난한 변방의 사람들에게 유일한 탈출구이자 벽이었다.

젊은이들은 언제나 그 벽을 넘어 탈출하고 싶어했다. 뒷맛이 싸하고 들큰한 경월소주를 병나발 불며 언젠가는 그 벽을 넘어가고야 말겠노라 호기롭게 외치곤 했다. 술이 삼분의 일쯤 남은 병을 가만히 흔들어보면 소주는 동해처럼 맑고 투명하게 흔들리고, 젊은이들의 가슴속에 가득 찬 고도孤島의 우울과 광기도 차갑게 흔들리곤 했다.

희수도, 은민과 정태와 윤규와 현영까지도 젊은 그들 무리 중의 하나였다. 낮은 바람의 움직임조차 감지할 수 없는, 주술과 체념으로 가득 찬 고향을 떠나고 싶었다. 바다에 움켜잡혀 있는 한쪽 발목을 잘라내고라도 낯선 익명의 도시로 도망치고 싶었다.

그들이 전염병 같은 역마살에 몸살을 앓던 때는 1987년이었다. 고개 너머로는 연일 알싸한 최루탄과 감미로운 민주民主의 향내가 바람에 실려 전해지고, 변방의 젊은이들은 역사歷史라는 장수의 몸에서 살점처럼 떨어져나간 소외감으로 치를 떨고 있었다. 하지만 고향에는 오직 소문뿐이었다. 언제나처럼 평화롭고 나른한 일상이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새로운 소문을 전하고, 그들은 소문의 귀만 커다랗게 키우며 기형적으로 자라났다.

고향은 그만큼 보수적인 동네였다. 먼 옛날, 남도에서 봉기한 동학혁명의 바람이 골 깊은 영월 평창 정선 인제 땅에도 뜨겁게 불어 스스로 떨쳐 일어선 농민군이 깃발을 휘날리며 대관령을 넘어오려 했을 때 양반과 농민 들이 총궐기 단합하여 막아세웠다고 하는 기막힌 일화가 전해져오는 곳이었다. 이라는 성을 가진 자가 왕국의 수도 경주로 왕위책봉을 받으러 떠난 길에 물난리를 만나 막강한 왕권을 포기하는 대신 명주군왕溟洲郡王으로 주저앉아, 조악한 도구로 산과 들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제 일족을 퍼뜨린 탈정치의 연유가 있는 땅이었다.

뜨거운 젊은이들의 피가 굴절된 역사와 일그러진 정치에 대한 변혁의 힘으로 불쑥불쑥 솟구치던 시절, 고향은 젊은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 아니었다. 사랑했기에, 그들은 자신의 탯줄이 묻힌 땅을 배반했다. 고향의 탈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대관령을 넘어 유학길에 나선 젊은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거대 역사가 넘실대던 거리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그들은 바다를 잊기도 했고, 때로 가슴에 묻어두기도 했다. 하지만 완전히 바다를 지울 수는 없었다.

버스는 급커브를 도느라 좌우로 심하게 기우뚱거렸고, 버스 안 안내방송에서는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라는 코맹맹이 여자의 멘트가 흘러나왔다. 점심끼니를 거른 은민은 빈속에 미미한 멀미를 느끼며 차창 밖으로 먼 눈을 던졌다.

희수가 은민을 찾아온 것은 사건이 나기 열흘쯤 전이었다.

나야.”

쏟아지는 비가 아니었음에도 희수의 온몸은 흠씬 젖어 있었다. 오랫 동안 우산 없이 거리를 쏘다닌 듯 지친 기색이 역력한 희수는 누구세요?’를 연거푸 묻는 은민의 방 앞에서 한마디 짧은 말로 자신의 방문을 알렸다.

? 네가 웬일이야. 어디서 이렇게 젖었어? 빨리 들어와서 머리라도 말려. 감기 들면 어쩌려고 그래!”

은민은 재빨리 희수의 팔을 방 안으로 끌어들였다. 그의 팔을 잡는 순간, 은민은 마치 삭정이를 움켜잡은 듯한 느낌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너 왜 이렇게 말랐니? 방학에 국토순례투쟁 선봉대를 한다더니 거기 갔다 와서 이런 거야?”

너희 집에 커피 같은 거 있니? 그거 한잔 마셨으면 참 좋겠다.”

커피?”

으응. 원두라면 더 좋겠지만…… 인스턴트라도 상관없어.”

글쎄, 커피믹스가 몇 봉 있는데 그거라도 괜찮겠니?”

할 수 없지. 그거라도 줘. 따뜻하게……

은민이 허리를 굽히면 반대편 벽에 엉덩이가 닿는 좁은 자취집 부엌에서 인스턴트 커피를 끓여내오는 동안, 희수는 어느새 새우처럼 웅크린 채 방 한구석에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비에 젖어 거무죽죽한 빛깔을 띤 야전잠바를 벗지도 않은 채 낮은 코를 골며 잠들어 있는 희수의 모습은 구겨져 던져진 한 뭉치의 휴지 같았다. 친구들 중에서도 유난히 마음이 여리고 내성적이던 희수가 이토록 고단하게 잠든 연유가 무엇일까 헤아려보는 사이, 은민이 들고 들어온 머그컵 속 커피는 서서히 식어들고 있었다.

어머니의 오랜 단골 점쟁이 말대로 진학운進學運이라는 것도 따로 있다면, 희수는 참으로 진학운이 없는 친구였다. 입시학원 옥상에서 꽁초를 나눠 피우고 재수생이라는 어정쩡한 신분으로 대학생들의 시위물결에 휩쓸려다니는 사이 그들 무리는 급속도로 친해졌다. 모의고사가 끝난 날이면 막소주집 낡은 탁자에 둘러앉아 현대문학 주관식 문제의 모호한 해답과 저당잡힌 젊음의 간극을 안주 삼아 쓰디쓴 취기에 젖어들기도 했다. 찾아들 깃발도 없는 정치집회장에서 최루탄 한 사발을 들이켜고 돌아온 날이면, 짐짓 대학생들의 흉내를 내어 서투른 사구체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법대 지망생이던 정태, 외교관의 꿈을 꾸던 윤규, 감미로운 프랑스어 본토발음을 잘도 소화해내던 희수, 희수 곁에 바싹 붙어앉아 새카만 눈을 빛내던 신방과 지망생 현영, 그리고 그들 무리에서는 자칭 타칭 시인이던 은민…… 하지만 수은주가 영하로 곤두박질치던 겨울 하루의 덧없는 일을 정점으로 은밀한 모의와 결사의 집단은 간단히 해체되고 말았다. 정태와 현영과 은민이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은 것과 동시에 희수와 윤규는 그 이름도 끔찍스런 삼수생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재수는 필수, 삼수는 선택이라고 누군가 농담처럼 말했지만 다시금 답보된 시간 속으로 끌려들어간 희수와 윤규를 위로하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고 삼수생이 된 만큼 시간과 공간의 간극은 그들 사이를 넓혀놓았고, 은민이 여태껏 써오던 시와는 전혀 다른 서툴고 거친 집회시를 쓰기 시작할 무렵쯤에는 백일주와 모의고사와 인내의 허들 따위는 깡그리 잊혀져 있었다. 정태와 은민은 각자의 생활에 정신없이 바쁘기도 했거니와 친구들의 자존심이 상할까 염려해 쉽게 연락을 할 수 없었고 자격지심 때문인지 희수와 윤규에게서도 더이상 연락이 없었다. 현영의 근황 또한 은민이나 정태의 그것과 별다를 것 없었기에 희수와의 사이가 뜨악해진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웠다.

힘들어.”

은민과 정태는 같은 학교를 다녔기에 종종 집회장이나 강의실 앞에서 마주치기도 했지만 타대학에 진학한 현영은 가끔 전화통화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은민이 쎄미나를 마치고 밤 늦게 돌아와 현영의 전화를 받았을 때, 그녀는 다만 술취한 목소리로 힘들다는 말만 몇번 반복하다가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때 현영은, 현영의 거울에 언제나 어른거리던 희수는 어떻게 살고 있었을까.

다시금 겨울이 찾아와 온 나라를 뒤흔드는 시끄러운 대학입시전쟁이 치러진 후, 그들은 다시 난감한 소식을 접해야 했다. 윤규와 희수가 삼수에마저 실패한 것이었다.

난 고향으로 돌아가.”

술이 약했던 윤규는 소주 몇잔에 취해 달아오른 얼굴로 더운 숨을 토하며 말했다.

여긴 아냐. 난 애초부터 서울하고 인연이 없나봐. 지난 이년 동안도 어떻게 견뎠는지 몰라. 소음, 매연, 사람들과의 부딪침…… 서울서 후기대학을 다니느니 고향으로 돌아가겠어. 차라리 잘되었지 뭐. 물 맑고 살기 좋은 내 고향 강릉!”

자조 섞인 윤규의 말에 막소주집 낡은 탁자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들은 오직 떠나기 위해 발버둥치며 견뎌왔을 뿐이었다.

희수, 니는?”

나도 다시 시험을 치를 자신은 없어. 이 유예된 시간이 끔찍할 뿐이야. 난 후기를 볼 거야. 돌아갈 자신도 없어. 다시 그곳으로는……

잘 생각했다. 젊은 아들이 뭐 시험 떨어졌다고 당장 죽나? 원하던 대학은 아니지만 가서 열심히 하면 되재. 자아 자아, 우리의 젊음을 위해 잔이나 들자.”

은민은 다 설명할 수 없었다. 신문 보도에는 희수가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여 비관자살을 한 패배자로 둔갑해 있었다. 정태나 희수의 동아리 친구들은 당시 심심찮게 발생하던 의문사일 수도 있다며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야 한다느니 어쩌니 하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그 또한 희수의 죽음을 설명하기에는 미진하기 이를 데 없었다. 은민은 희수가 억센 동아줄에 목을 걸고 일주일간 발견되지 않은 채 매달려 썩어갔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부터 그의 죽음이 자살이라는 생각에서 한번도 벗어나본 적이 없었다.

기억한다. 은민과 정태의 학교에서 열린 어느 연합집회장에 각 단과대와 동아리가 횃불처럼 저마다 피워올린 깃발의 파고를 뚫고 홀연히 초라한 깃발 하나를 들고 나타났던 희수. 운동의 마이너 캠이라는 의식 때문이었든지, PVC 막대 끝에 매단 깃발마저도 터무니없이 커 보이는 소수의 인원 때문이었든지 그들의 구호와 노래는 우렁차면서도 처연했다. 그들은, 악전고투의 운명을 지닌 포위당한 섬 같았다.

소용돌이치는 시대의 격랑을 헤치고 나아가기에는 턱없이 나약한 자신을 학대하며 힘겨워하던 희수, 그는 쇠파이프로 전경들의 완강한 철방패를 두들기면서도 용감무쌍한 선봉대가 될 수 없었다. 용광로 속의 쇳물처럼 끓어 넘쳐흐르기보다는 그가 원했던 한잔의 커피처럼 소리없이 식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시린 어깨를 다독거릴 친구가 곁에 있어주었다면, 잊혀진 섬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줄 누군가가 있었다면 그리 쉽게 떠나지는 않았으리라는 자각에 남겨진 사람들은 더욱 아프게 몸부림쳤다. 다만, 희수가 목을 건 튼실한 나무가 하필이면 그가 세 번이나 시험을 보았다 낙방한 바로 그 대학의 뒷산에 뿌리박은 것이라는 사실만이 씁쓸한 여운을 남길 뿐이었다.

희수조차, 자신의 죽음을 다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어머니는 햇빛이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서 오징어 무거리를 찢고 있었다. 은민이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훅 하고 숨을 잠시 막아세우던 짠내는 바로 그 오징어포에서 풍기는 냄새였다.

뭘 하고 계신 거예요? 이건 다 뭐예요? 몸도 안 좋으신 분이…… 엄마, 정말 이러면 나 화낼 거예요.”

너무 화내지 마라. 방구들 지고 누워 있는다고 달라질 게 있나? 어차피 죽으면 썩어질 육신, 일도 않고 빈둥거리면 공연한 곳까지 더 아프다. 우리 강아지, 점심은 챙겨먹었나?”

……별 생각 없어요.”

하지만 은민의 대답과 상관없이 어머니는 이미 부엌 쪽으로 몸을 돌려세운 터였다. 동북향의 고향집은 대낮에도 안방이나 부엌 할 것 없이 어둠이 기세좋게 점령하고 있었다. 은민은 어머니가 당신의 육신 같은 밥을 고봉으로 퍼올리느라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방안을 둘러보았다. 어머니가 하루종일 찢어놓은 흰 무거리는 방 한가운데 산처럼 쌓여 있었다. 은민의 고향마을 여자들은 기력이 쇠해 항구로 품팔이를 나가지 못할 지경에 이르면 부업으로 오징어 무거리를 찢었다. 손톱 밑이 갈라지도록 찢고 또 찢어야 반찬값 정도의 푼돈이 생기는 허드렛일이었다. 그래도 여자들은 평생 바닷바람 속에서 소금기에 전 배추처럼 눅눅해진 육신을 놓아두지 않았다. 어머니는 천상 죽기 직전까지 수족을 쉬지 못하는 나릿가 여자였다.

약은 꼬박꼬박 드시죠? 몸은 좀 어떠세요?”

괜찮다. 달포에 한번씩 은주가 와서 도립병원에 데리고 가니까, 약도 꼬박꼬박 잘 먹고 있다. 마음 같아서는 금방이라도 털고 일어나 그물일이라도 나갈 것 같은데 말이야……

어머니의 1차수술을 담당했던 의사는 병의 진도에 비해 환자가 너무도 잘 견뎌주고 있다며 어머니의 정신력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은민은 하도 어금니를 악물어 이가 다 상해가면서도 자식들 앞에서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는 어머니의 초인적인 인내심에 오히려 마음이 더 쓰렸다. 이제는 강짜라도 부리듯 아프다는 말 한마디쯤 해도 좋으련만, 끝끝내 평생을 옥죄어둔 마음 한자락을 놓지 않으실 작정인 모양이었다.

은민의 고향마을에는 유난히 과부로 늙어가는 이들이 많았다. 제 몸을 풀어 사람들을 먹여살렸던 바다는 그 대가로 아직 물빛 같은 젊음을 간직한 사내들을 많이도 데려갔다. 바다가 성을 내어 폭풍우와 해일을 일구면 여자들은 모두 포구에 나가 발을 굴렀다. 목이 쉬도록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국 끓이던 냄비를 뒤집어 들고 나와 밑바닥이 뚫릴 때까지 두들기기도 했다. 행여 송진을 발라 빗속에서 너울대며 타오르는 횃불마저 보지 못한다면, 제 계집의 악다구니라도 알아듣고 찾아오라는 실낱 같은 희망을 바다에 던지고 또 던졌다. 어미들이 끝내 통곡이 되고 마는 악다구니를 치노라면 천지분간을 못하는 애새끼들도 덩달아 악을 쓰며 아비를 불렀다. 다시금 그토록 소리쳐 부르지 못할 아비의 쓸쓸한 이름을.

어머니는 바다가 준 오랜 기다림과 견딤으로부터 발병했다. 주저앉아 사내를 잃은 계집의 설움을 곱씹을 겨를도 없이 그물뜯기 품앗이를 하고 고지랑물 흐르는 난전에 나가 가자미, 꽁치, 생물오징어, 심퉁이와 양미리의 이름을 외쳐부르는 동안 어머니의 병은 먼바다 물빛처럼 깊어갔다.

오랜 속쓰림과 소화불량이 위암으로 진전되었음을 선고받고도, 어머니는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마치 집시법으로 잡혀들어간 은민을 구치소 창살 너머로 처음 대면했을 때처럼 지나치리만큼 냉정하고 분명했다.

내 병은 내가 안다.”

고집스런 촌로들의 억지처럼 들리던 그 말이, 이상스럽게도 은민에게는 낯설지 않았다. 어머니는 비리고도 짠 바다냄새가 밴 치마꼬리를 잡고 눈물부터 흘리는 누이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고, 은민은 정말 어머니의 병은 어머니만이 아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더이상의 미련도 없이 스스로 가야 할 때를 정한 사람처럼 어머니는 담담하게 입원실 창가에 선 후박나무 가지를 바라보았다. 은민은 오히려 그 눈길에 문득 스치는 평온함을 감지하는 자신에게 소스라치게 놀랐을 뿐이었다.

은민은 어머니의 고단한 삶의 내음 같은 오징어 무거리의 짠내를 맡으며 자신이 고향에 돌아왔음을 확인했다. 그리고 어두운 부엌에서 밥상을 차리느라 분주한 어머니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그다지 멀리 있지만은 않은 죽음을 생각했고, 곧이어 희수를 떠올렸다. 희수, 그리고 어머니…… 떠나가는 사람들은 남겨진 사람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걸까. 그들은 바다처럼, 정녕 은민의 발목을 놓아주지 않으려는 것일까.

 

어흘리 대관령 박물관 앞에서 만나 산기슭에 접어들 때까지, 그들은 짧은 인사를 나눈 것 외에는 줄곧 말이 없었다. 고속도로가 뚫리면서 사람들의 왕래가 끊겨버린 대관령 옛길은 어느덧 쇠락하여 자취마저 스러져가고 있었다. 오백여년 전 사임당 신씨가 친정을 떠나 서울의 시댁으로 가면서 굽이굽이 눈물과 함께 넘었다 하여 끄트머리에 시비詩碑가 세워진 그 길에는 이제 옛 정취를 그리는 관광객들이나 간혹 오고갈 뿐이었다.

침묵 사이로 파고드는 물소리, 울창한 송림에 가려 시내 한자락 보이지 않지만 노래처럼 돌돌돌 흐르는 그 소리는 도깨비바늘처럼 끈질기게 일행의 옷자락에 묻어 따라오고 있었다. 그때처럼 뒹구는 잔돌들, 그때처럼 푸른 소나무, 그때처럼 낮은 물소리, 그때처럼 눈이 시린 하늘……

여긴 안돼. 여긴 너무 가팔라서 희수가 눕기 불편할 거야. 좀더 평평하고 바람 들지 않는 곳을 찾아보자구.”

바람 들지 않아 춥지 않은 곳, 가파르지 않아 숨차지 않은 곳, 생전에 그리도 좋아했던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는 전망 좋은 곳을 찾느라 그때 그들의 산행은 목적에 어울리지 않게 떠들썩했다.

여기가 괜찮겠다. 바람도 조용하고 전망도 좋고……

안된다, 여긴.”

왜서?”

저거 봐라.”

윤규의 손끝이 가리킨 곳에는 작은 팻말 하나가 서 있었다.

 

이웃에 오신 손님 간첩인가 다시 보자 -- 간첩 3000만원

홀로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 간첩 3000만원 간첩선 5000만원

 

둘은 그만 푸석한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정말 안되겠네. 미친 놈들, 아직도 저런 케케묵은 냉전식 사고를 하고 있으니. 희수놈이 봤으면 당장 뽀개서 감자 구워먹자 했을 거다.”

하지만 웃음의 뒷맛은 씁쓸하기만 했다. 그들은 산중까지 따라와 서있는 이데올로기의 잔해를 보고 가슴 한켠이 저릿했다. 너무 큰 싸움을 벌인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감당해낼 수 있을까, 짚어보기 두려울 만큼.

그렇게 산마루에 오르도록 기껏 괜찮은 터를 찾았다 싶으면 꼭 한 사람씩 나서서 트집을 잡았고, 사소한 말시비는 끝내 주먹다짐이 되고 말았다. 윤규와 정태는 부어오른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또다시 울음을 터뜨렸고, 말리기에 지쳐버린 은민도 울음을 곱씹으며 주저앉아버렸다. 이제는 눈물도 말라버린 듯 사막같이 건조한 표정으로 그들의 뒤를 따라오던 현영만이 먼 눈으로 바람에 흔들리는 솔가지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바보같이, 죽긴 왜 죽나? 끝까지 눈 시퍼렇게 뜨고 살아서 새 세상을 보지는 못할망정, 병신 같은 놈! 천치 바보 등신 같은 놈!”

이건 우릴 고문하는 거다. 희수놈은 이제 우리 친구도 아니다. 친구라면 이럴 수 없어. 죽으면 죽는 이유라도 알려줘야 했을 것 아니나?”

정태와 윤규는 어느새 한덩어리로 껴안은 채 엉엉 목놓아 울고 있었다. 스물하나, 소주 두 병의 무모한 취기에 기대어 모험 같은 자살을 감행하기에 어울리는 격정의 나이인지는 모르나, 삶의 독법讀法도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채 친구의 죽음을 감당하기에는 턱없는 나이였다.

역사가, 시대가 지놈한테만 버겁나? 나도 버겁다. 무겁고 버거워서 미칠 지경이다. 지놈만 도망가면 다라고? 그렇게 도망가버리면 역사가 끝이 나나? 안 끝난다. 역사는 안 끝난다. 그렇게 도망가버린 놈 무덤 속까지 쫓아갈 징그러운 역사다. 병신 같은 놈, 넌 끝내 이길 수가 없는 놈이었다!”

방백을 하는 연극배우처럼 부르짖는 정태에게 갑자기 현영이 소리쳤다.

그만 해!”

현영의 절규는 메아리가 되어 되돌아왔다. 그만 해, 그만 해, 그만해……

그 소리에 놀란 암갈색 멧새 한 마리가 솔숲 위로 푸르르 날아올랐다.

희수의 죽음 앞에 가장 황망했던 사람은 그 누구도 아닌 현영이었을 것이다. 무덤까지 함께 가자는 비장한 약속 따위는 하지 않았을지언정, 그녀에게 한마디 언질도 없이 삶의 감옥에서 홀로 탈옥해버린 연인을 용서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희수의 부질없는 육신을 담은 목관이 화로 안으로 끌려들어갈 때, 자신의 목에 걸려 가늘게 반짝이던 목걸이를 쥐어뜯었다. 그리고 일렁이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 뿌리치듯 그것을 던져넣었다. 추억도, 사랑이라는 이름의 덧없는 열정도 그 목걸이처럼 불길 속에 녹아 쉬이 스러졌을까.

현영은 멧새가 하늘에 그려놓은 자취없는 포물선을 따라 천천히 시선을 옮기고 있었다. 그 침묵 사이로, 한바탕 울음의 소용돌이 속에 질퍽하게 앉아 있던 정태와 윤규의 얼굴에서 서서히 눈물이 걷히고 있었다.

희수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낮은 목소리로 묻는 현영의 얼굴이 마악 세수를 마치고 나온 것처럼 말갰다.

오래 끌고다니지 말자.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피곤할 거야. 멀리 갈 것도 없이, 여기 진달래 근처에다 뿌려주면 어떨까? 희수는 꽃 좋아했잖아?”

은민의 말에 정태와 윤규가 반색을 했다.

그래. 이놈도 반골 기질이 있는지 다른 녀석들 다 지고 난 다음에 외롭게 피었구만. 희수는 이놈이랑 벗하면 딱 좋겠군.”

역시 시인은 뭐가 달라도 좀 달라. 우린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지? 산에 지천으로 피는 게 진달래니 아무 진달래 앞에다 술을 따라도 좋고……

그들은 결국 산비탈 양지바른 곳에 뒤늦게 핀 진달래 근처에 희수를 뿌렸다. 이승에서 제일 먼저 떠난 녀석, 부디 다음 세상에는 꽃으로 나도 이른봄에 불쑥 피어 쉬이 시들지 말고 늦게 늦게 피라고.

그 진달래가 해풍에 등을 의지하여 매부리코마냥 가지가 비틀어진 적송 근처에 피었던가. 우윳빛처럼 뽀얀 색을 띤 반석 근처에 피었던가. 은민은 어느덧 길가의 소나무들을 유심히 살펴보며 걷고 있었다. 하지만 올따라 성큼 앞서 온 봄기운 탓이었던지 진달래들은 어느덧 자취를 감추어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저만치에서 소주와 황태를 넣은 비닐봉지를 부스럭거리며 앞서가던 윤규가 발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여기서 잠깐 쉬어 가자.”

이제 그들은 더이상 극성스럽게 희수를 뿌린 곳이 여기인가 저기인가 따져묻지 않았다. 그리 길지도, 그리 짧지도 않은 육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해마다 소리없이 피었다 스러지는 꽃처럼 친구의 죽음이 남긴 상흔은 희미해졌고 그만큼 그들은 변해 있었다. 와이셔츠의 맨 윗단추를 끌러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어헤친 정태가 제일 먼저 담배를 피워 물었고 이어 윤규와 은민이, 마지막으로 한눈으로 흘깃 정태의 눈치를 살핀 현영이 담배 한 가치를 빼어 물었다. 그들은 동시에 향불을 피워올리듯 말없이 담배를 빨았다.

더 갈 것도 없이 여기서 술을 붓지. 아무래도 진달래는 다 져버린 것 같다.”

정태의 말이 옳았다. 이제 산길은 어렴풋이 끝자락을 내비치고 있었고 길 끝에 연결된 4차선 도로를 기어오르기 위해 엔진을 가속하는 자동차들의 소음이 아련하게 들리고 있었다. 진달래는 다 피어 스러졌다…… 은민이 입속으로 되뇌는 사이 앞니로 담배 필터를 잘근잘근 씹던 윤규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내뱉으며 소리쳤다.

좀더 찾아보자구. 뭐가 그렇게 급해?”

은민이 전화로 정태와 현영의 동행을 알렸을 때부터 윤규의 심사는 사납게 뒤틀려 있었다. 고향에서 대학을 마치고 작은 기획사를 차려 고향 사투리 대회관노官奴가면극 경연대회니 하는 단오제 이벤트를 만들어내는 윤규에게서는 아직도 패배를 자인하지 않는 사람들의 독한 기운이 풍겼다. 은민이 안부전화를 할 때마다, 요즘 어떻게 지내냐는 의례적인 인사에 요즘 지역운동이 잘 풀리지 않는다. 서울은 어떠냐?’며 심각하게 정세를 물어오곤 했었다. 그런 윤규도 올해 들어오면서는 아무래도 예전 같지 않았다. 윤규가 학생운동의 씨앗을 뿌리다시피 했던 대학에는 난투극과 금권선거 끝에 지역 깡패 출신 총학생회가 들어섰고, 윤규가 제법 깊이 관여했던 지역단체장 선거에서는 여지없이 보수성향의 인사들이 다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기 때문이었다.

여긴 안돼. 글러먹었어. 썩을놈의 동네! 누구 말대로 여기 놈들은 더 당해봐야 해. 그렇게 무관심과 냉대를 당하고도 여전히 투표용지만 받으면 맨 앞대가리로 손이 가니 말이야.”

그렇지만 은민은 윤규의 자조 섞인 독설 뒤에 숨겨진 고향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만은 의심할 수 없었다. 어떤 이야기를 하든 윤규는 끝내 고향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고향을 떠나지 않는 한 몸부림과 절규에 가까운 변화에 대한 윤규의 의지는 쉬이 꺾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 윤규는 많이 지쳐 있다. 지친 사람들은 자신의 어깨를 내리누르는 피로의 무게를 견디기 위해 종종 타인에게 과장된 증오와 적의를 드러내곤 한다. 이때 정태와 현영이 나타났으니, 그에게서 듣기 좋은 말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틀린 일이었다.

……미안하다. 니 말대로 더 찾아봐야 하는 거를. 어딘가는 있겠지. 그때도 철 잊은 참꽃이 있었던 것처럼.”

윤규 못지않게 다혈질이던 정태가 의외로 목소리를 낮추고 사과를 했다. 은민은 발밑에 구르는 애꿎은 잔돌들을 구두코로 문지르는 정태의 무거운 어깨 너머로 무심히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조각보 같은 하늘을 보았다.

산산이 흩뿌려진 희수의 흔적을 털어내며 돌아서는 길에, 정태는 저승길 가는 노자라며 주머니에 들어 있던 동전들을 꺼내 던지며 소리쳤었다.

가라, 자본의 세상!”

그리고 시간이 흘러, 그는 지금 거대한 자본의 시장에서 하급 노동자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투자, 대출, 이자, 금리…… 솔숲 어디엔가 흩어져 있을 그의 빛바랜 구호 대신 정태의 일상에 틈입한 새로운 단어들이다. 그렇지만 은민은 정태의 변신을 새삼스레 탓할 염은 없었다. 그것은 윤규 또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희수놈 목이나 축여주려고 했더니 우리 목이 타서 안되겠다. 먼저 한 병 까서 마시자.”

아까 공연히 정태에게 화를 낸 탓에 스스로 민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던 윤규가 들고 오던 봉지 속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다. 라이터 뒤꽁지로 능숙하게 소주병을 딴 윤규는 일행에게 종이컵을 하나씩 나눠준 후 천천히 소주를 따랐다.

이런 후레자식들이 어디 있나? 제도 올리기 전에 음복부터 하고.”

정태는 잠자코 받아든 잔을 맛나게 훌쩍 들이켜고는 특유의 너스레를 떨었다.

종간나야. 니가 언제부터 잔 돌리는 순서 따졌나? 서울물 처먹더니 사람껍질 쓴 티를 무지 내누마.”

기억 저편에 박혀 있던 거칠고 투박한 고향의 욕설이 윤규의 입을 통해 튀어나오자 부지불식간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번졌다. 과장된 사투리와 욕설 사이로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자 아까의 냉랭한 분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모두들 육년 전 그때, 이 산길을 함께 걷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아주 가끔 옛날 꿈을 꾼다. 대학병원 쪽에서 폭투가 벌어졌는데, 갑자기 백골단들이 화이바를 벗어제끼고 기관총을 쏘면서 밀려드는 거야. 그 총격전 속에 때로는 은민이가 죽기도 하고, 윤규가 죽기도 하고, 마누라가, 아니 언젠가 피터지게 사투를 벌이고 정치적 입장이 달라 갈라선 친구놈이 죽어 자빠지기도 하지. 이상해…… 아직도 그런 꿈을 꾸는 걸 보면 말이다.”

정태가 말끝에 씨익 멋쩍게 웃었지만 그의 입아귀가 쓸쓸함으로 기묘하게 비틀리는 것을 은민은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틀렸었다고 생각해?”

은민은 몇해 가까운 동안 입속에서만 맴돌던 말을 불쑥 뱉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도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했고, 말을 꺼낸 은민도 명쾌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었다. 침묵 사이로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시냇물이 돌돌돌 흐르고, 낮잠에서 깨어난 소쩍새 한 마리 솥이 적다고 처량하게 울며 지나갔다.

은행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 수십번이나 면접을 보았지. 철강회사, 섬유회사, 컴퓨터회사, 자동차회사, 하다못해 입시학원 강사자리라도 없나 해서 기웃거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내 추억을 꿰뚫는 듯한 날카로운 면접관의 눈길에 금방이라도 질식할 것만 같아 준비해둔 답변도 제대로 다 하지 못했거든. 난 내게 달린 운동권이라는 꼬리표가 싫었어. 누군가는 그걸 배신이라 하고 타협이라고도 하더만…… 난 할 수만 있다면 그 꼬리표를 떼어버리고 싶었다, 진짜로.”

등신같은 자식, 그래서 우리한테 연락도 안했나?”

난 윤규 니랑 은민이 니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너희들은 적어도 타협은 하지 않았잖아?”

타협? 나는 일체의 타협 없이 의연하고 고고하게 견뎌온 것 같으나? 이벤트 딴다고 시청에서, 예총에서, 하다못해 졸부들 앞에서도 손을 비볐다. 그럴수록 나는 더욱 뻔뻔스럽게 소리지른 것뿐이다. 이 모든 것이 지역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것이다. 내가 탄 배는 난파선이니 물이 새고 바닥이 꺼져도 탈 놈은 타라…… 그렇게 말이다.”

자해의 맛처럼 쓰고 달큰한 소주가 식도를 타고 흘렀다. 섣부른 취기에 기대어 좌파의 몰락을 말하기에 그들은 너무 젊고 서툴렀다. 하지만 짧은 생애 속에 폭탄처럼 터져버린 이십대는 바다처럼, 비린내처럼, 쉬이 그들을 놓아줄 성싶지 않았다.

희수가 죽고, 빵에 들어갔다 나오고, 세월이 바뀌고 세상이 변한 걸 알았지. 한동안 빛에 적응할 수 없어 두터운 이불 속에 숨어 지냈어. 나는 복학을 하고 이년이 다 지나도록 시 한 줄도 쓰지 못했어. 헐거운 알리바이는 상품이 되고, 모두들 바이러스처럼 잠복해버린 세상. 하지만, 잊지 못하겠어. 그럼 우리에게…… 희수는 도대체 뭐지?”

윤규가 이번에는 어금니로 소주 한 병을 더 땄다. 정태는 윤규가 따라준 종이컵 속 소주를 한동안 응시하다가 생각난 듯 훌쩍 단숨에 들이켰다. 사업을 한답시고 주량이 제법 는 윤규도 정태가 따라준 술을 쉼없이 마셨다.

우리, 노래 하나 할까?”

무슨 노래?”

희수랑 우리랑 제일 먼저 배운 운동가요 말이야.”

낄낄. 그래, 그때 우린 참 겁대가리도 없었다. 조그만 재수생놈들이 가투를 나간다고 보충수업도 빼먹고 말이야.”

윤규는 노래를 참 잘했다. 정태도 울림통이 커서인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한몫을 했고, 음치인 은민이나 번번이 박자를 놓쳐 박치라고 놀림을 받던 희수도 그 불안한 하모니에는 제법 어울렸다. 그리고 높고 가는 현영의 소프라노.

 길은 내 앞에 놓여 있다

 나는 안다 이 길의 역사를

 길은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여기서 네 할 일을 하라……

그때껏 한마디 말도 없이 종이컵만 만지작거리던 현영은 노래가 시작되자 한 구절을 따라부르다 말고 문득 일어서 숲으로 들어갔다. 은민이 따라가보려 몸을 일으켰지만 정태의 소리없는 만류에 그냥 주저앉았다. 이 시간, 이 자리가 누구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사람은 바로 현영일 것이다.

은민은 현영의 좁고 낮은 어깨에 드리운 담쟁이덩굴을 보았다. 그해 봄도 스러져갈 무렵, 한밤중에 걸려온 유령 같은 현영의 전화를 받고 최면에 걸린 듯 따라나섰던 길에 만났던 병원 담벽의 담쟁이덩굴. 스스로 세상과의 교신을 끊어버린 못난 녀석이 마지막 남긴 흔적의 탯줄을 묻은 그곳의 담쟁이는 왜 그리도 창창하고 유난했던지. 은민은 현영의 뒷모습에서 돋아오르는 잊혀진 봄을 떨쳐버리려 거칠게 고개를 흔들었다.

현영이는…… 괜찮지?”

그나저나 니들도 결혼한 지 꽤 되었는데 왜 아가 안 생기는 거나?”

아이…… 사실은 그동안 현영이 두 번이나 유산을 했다. 습관성이라고 클리닉에 다니고는 있지만…… 모르겠다. 번번이 삼개월을 넘기지 못하는 이유를. 의사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권하고 있지만 본인한테 말할 수가 없어서……

어느 날 느닷없이 정태가 찾아와 현영의 이름이 새겨진 청첩장을 내밀었을 때, 은민은 당황스러움에 한마디 의례적인 축복의 말조차 건넬 수가 없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친구의 여자를……

윤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펄펄 뛰기조차 했다. 끝내 윤규는 결혼식장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태는 그 모든 비난과 의혹을 감수해내기로 한 사람처럼 담담하기만 했다.

친구의 여자? 은민이 평생을 지고 갈 현영의 비밀은, 그녀가 더이상 그 누구의 여자도 아니라는 것뿐이었다. 은민은 희수의 연인으로서의 현영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영혼의 상처를 입은 현영을 감싸안으려는 정태에게 연민을 느꼈다. 그들이 함께 어울려다닐 때에도 간혹 현영을 향한 정태의 눈길에서 반짝이며 타는 불길을 느끼기는 했지만 정태는 비겁한 방법으로 얻은 사랑에 만족하는 인물이 되지 못했다. 그의 너털웃음과 과장된 제스처들 속에 숨은 슬프고도 여린 정서는, 고스란히 그를 키운 바다의 몫이었다. 윤규는 연거푸 깡소주를 들이켜는 정태의 얼굴을 말없이 바라보며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현영이 연기처럼 숨어든 숲에는 여름을 준비하는 신록이 창창히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녀의 빈 자궁 안에서는 무엇이 자라고 있었을까. 그들이 추억의 흔적을 지워버리려 애쓰는 사이, 구차한 손익계산서를 돌려보는 사이, 서서히 잊고 잊혀지는 사이, 현영은 몸에서 돋아난 불모不毛의 징표를 껴안은 채 홀로 뒤척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것 봐! 여기 좀 와봐!”

갑자기 숲에서 현영의 높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동시에 벌떡 일어나 수풀을 헤치고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이것 봐. 정말 신기하지? 아직까지도,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게 있었어……

현영이 가리킨 곳에는 이제 마악 피어난 듯 진하고 붉은 진달래가 오롯이 서 있었다. 날로 선명해지는 초록이 희미한 연분홍빛을 지우는 사이, 홀로 오랜 기다림을 뚫고 뒤늦게 피어난 그놈이 고스란히 친구의 모습 같아 그들은 어린아이처럼 감격했다.

용케 찾았네. 희수가 좋아할 거다.”

정태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현영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정태를 바라보는 현영의 얼굴에도 그늘 없는 쨍한 웃음이 맴돌고 있었다.

이러고 있지 말고 내가 가서 술이랑 챙겨올게. 니네 여기 가만히 있어라.”

약간 혀가 꼬부라지는 목소리로 윤규가 말했다. 수풀을 헤쳐 거슬러가는 그의 발걸음이 흥분과 열기로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철을 잊은 듯 뒤늦게 피어난 진달래. 그 붉디붉은 기운이 어떻게 이 등성이까지 찾아든 사람들의 가슴을 물들이는지, 그는 지난 계절에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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