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Bollnow 2024. 3. 22. 17:32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김성중

 

[1]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말하기 좋아하고, 말을 많이 하는 족속은 의자다. 그들은 L자의 입을 가진 굉장한 수다쟁이들이다.

당신은 내가 공상을 좋아한 나머지 모든 사물이 말을 걸어온다고 착각하는 멍청이냐고 빈정거릴 수 있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침대는 굉장히 과묵하다. 침대는 피곤한 육신을 받아 주고 근사한 꿈을 선사해주지만 온통 애무만 할 뿐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건 책상도 마찬가지다. 널따란 등짝을 척하니 내밀지만 당신이 책상에서 종이를 채우든 오리든 별 관심이 없다. 글쎄, 어떤 사람은 가로등의 말을 듣고 또 어떤 사람은 한강 다리와 떠들 수 있는지도 모르지. 여하튼 내가 아는 한 세상에서 가장 말이 많은 사물은 오로지 의자, 의자뿐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진솔한 대화가 소원이라며 발을 제외한 온몸이 입뿐이니 그럴 만하지 않느냐고 내게 물어왔다. 등과 엉덩이를 밀어 넣는 그 오목한 구석을 입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당황스럽다.

그러나 내가 만난 모든 의자들은 스스로를 실용적인 측면에서 평가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을 개성적인 고독을 지닌 견자(見者), 즉 바라보는 자들로 생각했다. 그리고 자신이 본 세상에 대해서 지구가 끝나는 날까지 떠들고 싶어했다.

내가 만난 최초의 말하는 의자는 팔걸이가 높고 등받이가 깊숙한, 베이지색 격자무늬의 일인용 소파였다. 몸에 꼭 맞아서 앉으면 의자에게 푹 싸여 있는 느낌이 들었다.

구립도서관 한 귀퉁이에 놓인 그 의자는 비어 있을 때가 많았다. 시청각자료실에서 내 눈길을 끈 건 오디오 사용자를 위한 네 개의 탁자였다. 탁자도 큼직하고 유리 칸막이가 쳐진 데다 팔걸이가 높은 일인용 소파에 쿠션까지 놓인, 공공시설에선 보기 드물게 안락한 좌석이다. 게다가 이 도서관은 한강변에 있기 때문에 창밖으로는 강의 전경까지 한눈에 들어왔다.

오디오 한 대가 모자라는 바람에 무선 인터넷 노트북 사용자를 위한 좌석이라는 텅 빈 책상이 있었는데 나는 즉각 이곳을 차지하고 앉았다. 그리고 노트북이 켜지는 소리를 들으며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런데 문득 이런 말이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자유롭게, 어떤 말이든 지껄여볼까요? 그건 제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주제나 소재를 정해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앉아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전 끝없이 떠들어댈 운명을 지녔으니까요. 아마도 전생에 벙어리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전생에 못한 말들이 있다면 이생에 다 쏟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야 다음 번엔 온전한 언어를 갖게 되겠지요. 온전한 형체도요…… 저는 지금 의자거든요. 정말이지 하품 나는 형체예요.

창밖엔 가로등의 열주 사이로 차들이 지나가는 다리가 보이는군요. 그 아래에는 한강이 흐르고요. 어떻습니까, 썩 나쁜 풍경은 아니지요? 그러면 이 멋진 전경 아래 우리의 첫 대화를 시작해봅시다.

현재 당신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데, 그다지 열의가 없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가장 정직한 욕망인지 확신하지 못하는군요. 당신은 중산층의 삶에 공포를 느끼지만, 한편으로 중산층의 삶에서 완전히 멀어질까 봐 두려워하고 있어요. 이쪽이든 저쪽이든 소질이 없다며 넌덜머리를 내고 있는 게 가장 정확한 상태일 겁니다. 이것에 대한 처방은 딱 한 가지입니다. 행동하고 또 행동할 것! 아무리 짧더라도, 혹은 완전히 무위의 시간을 보내더라도 저에게 와주십시오.

계절은 겨울이고 날씨는 아직 춥습니다. 하지만 이곳에서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겠지요. 조금 부지런하다면 매일 저를 손에 넣을 수 있겠지요. 게다가 이 공기! 도서관 특유의 조심스럽고 진지한 침묵을 떠올려보세요. 2층엔 책들이 그득하고, 사람들의 입술에 침묵이 걸려 있습니다. 사색의 추를 드리우기에 딱 적당한 농도로 말이죠.

솔직히 말하자면 전 언제나 예술가의 후원자가 되는 삶을 동경해왔습니다. 작가와 화가들로 가득 찬 살롱에 홍차를 나르고 조용히 미소 짓는 16세기 귀부인처럼 말이죠. 이제 막 현관에 들어선 예술가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매달 수표책에 서명을 하는 인생이라면 얼마나 근사할까요…… 하지만 전 구립도서관의 의자로 태어났고, 수표책도 금화도 없답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글을 쓰는 동안 품어줄 몸뚱이뿐이지요.

만약 당신이 이곳에서 무언가 쓸 작정이라면 기꺼이 그 글의 대부가 되어 드릴까 합니다.”

이건 뭐랄까, 한 번도 인사를 나눈 적 없는 이웃집 남자가 둘만 탄 엘리베이터에서 돌연 악수를 청하는 느낌이다. 의자는 터진 둑처럼 줄줄 말을 내뱉었고 심지어 내 카운슬러를 자청하며 과장된 말투로 떠들었다. 이 굉장한 달변가는 말을 마치고 수줍게 툭 물러나서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다음날 그를 만나러 도서관에 갔을 때 활발하게 말을 걸더니 그 후로 한 번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앉아 있기만 하면 되겠어. 의자가 떠드는 말만 받아 적어도…….’

궁둥이 밑의 수다를 듣는 동안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그때 내가 원한 건 그저 타격감, 일정한 속도로 자판을 두드릴 때의 고른 리듬뿐이니까.

그날부터 글이 써지지 않는 건 오로지 도서관 의자에 앉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디어는 모두 의자에서 나왔고 나는 그저 받아 적는 타자수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글을 써보려 했지만 깎아놓은 손톱처럼 쓸모없는 서설만 수북이 쌓일 뿐이었다. 그러니 다시 도서관에 오는 수밖에. 그러면 의자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열정적인 이야기꾼으로 변하는 것이다.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명령하고, 노예처럼 일하라조각가 브랑쿠시의 말이던가요? 명심하세요. 한 가지 삶을 얻으려면 백 가지 삶을 포기해야 하는 겁니다.”

내 도서관 의자는 이렇게 유식한 말도 잘했다. 그러나 거기에 앉아있는 동안 예술가는 그였고 나는 어디까지나 조수에 불과했다.

추위를 싫어하는 나지만 이번만은 봄이 오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의자와 수다를 떠는 동안 기묘한 겨울이 찾아왔다. 개나리와 목련이 피어나는 겨울, 바람이 옷소매를 부드럽게 부풀리는 겨울, 봄빛이 짙어도 내 마음속 겨울은 깎여나가지 않았다. 이 계절에 나는 한 명의 본처와 여러 명의 애인을 거느린 호색한마냥 많은 의자와 사귀게 되었다.

이를테면 지하철 승강장에 나란히 박힌 일곱 개의 의자들은 그중 한 개에만 앉아도 동시에 짹짹거리는 것이다.

아직 겨울외투네?”

그런다고 봄이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잠깐, 가지 말아요. 여기 오는 사람은 모두 금방 가버린다고요!”

전철 안에 앉으면 이번엔 긴 의자가 한숨을 쉬며 말을 걸었다.

저 빌어먹을 무료 신문 좀 치워줘…… 그런데 자넨 척추가 꽤 휘었군그래.”

이런 식으로 만나는 의자마다 지껄여대니 성가신 적도 없지 않았다. 그렇다고 의자들이 무례하다는 뜻은 아니다. 대화는 항상 사귀고나서 이루어진다. 그러니까 나를 눈여겨 본 의자들이 눈치를 보다가 말을 좀 들어주겠다 싶으면 그때부터 입을 연다는 뜻이다.

새로운 친구가 늘어났지만 그래도 역시 가장 친한 건 도서관 의자다. 가끔 다른 의자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도서관 의자는 숨죽이며 들었다.

붙박이 의자로 지내면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래도 지하철 의자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겠네요. 그건 부러운데요.”

다른 의자로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 있어?”

로마 시대 집정관이 앉는 의자나 우아한 곡선을 가진 귀부인의 휴식용 의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있죠.”

우리의 대화는 가보지 않은 삶에 대한 것으로 이어졌다.

언젠가 나와 동명이인인 여자를 본 적이 있어. 여자로 태어났더라면 좋았을까?”

테라스에 놓인 등나무 의자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요.”

다 집어치우고 집에 내려가서 살걸 그랬나봐.”

극장 의자면 영화는 실컷 봤겠지요?”

서로의 말은 전혀 듣지 않으면서도 이야기는 길게 이어졌다. 도서관 의자는 평범한 식탁 의자라거나 사무실 의자가 아닌 것은 천만다행이라고 했다. 이 의자는 어깨너머 읽은 책들에 중독되어 있었고 일상적인 세계는 경멸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무의식으로 자판을 두들기며 우리가 가지 못한 길들을 적어 보았다. 아무 의미 없는 글이었지만 하얀 모니터 위에 까만 개미 같은 글씨들이 톡톡 지나가는 게 즐거웠다. 그리고 또 이런 상상을 했다. 이 순간은 백지 위에서 의자와 내가 사이좋게 산책하는 시간들이라고. 나는 이국의 포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 적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번역가라고.

새로운 친교에 빠져 있는 사이 내 일상은 다리가 썩어 삐걱대는 의자처럼 조금씩 무너지고 있었다. 우선 예정된 가난이 덮쳤다. 번역 아르바이트비가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전화를 걸어 결재는 언제라고 웅얼거리다 수화기를 내려놓으면 분노가 치솟았다. 일한 대가를 요구하는데 왜 이렇게 비굴하게 느껴질까? 문제는 통화의 주제가 이라는 데 있고 돈을 재촉하는 소리는 아무리 정당한 것이라도 품위 없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도서관 대신 술집으로 직행한 어느 날, 나는 내 푸념을 들어주고 있는 것이 궁둥이 밑 파란 플라스틱 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인간들이 똥을 싸기 전과 싸고 난 후가 다르다 이 말이군.”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의자와 통성명을 하고 난 후였다. 어라? 나는 취기를 털기 위해 머리를 흔들고 새로운 술동무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파란 플라스틱 의자다. 여기저기 긁힌 자국과 낡아서 닳아빠진 다리가 싸움터에서 잔뼈가 굵은 장수처럼 관록이 붙어 보였다.

그만 좀 쳐다보라고. 등받이가 없는 것도 서러운데 다리까지 부러져서 아주 고단한 인생이니까.”

의자는 언짢은 표정으로 내 시선을 뿌리치며 톡 쏘아붙였다. 마치 술주정까지는 들어주겠지만 개인 사생활은 묻지 말라는 바텐더처럼.

나는 즉각 술집 의자의 까칠한 말투가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 의자는 지나치게 지성을 강조했고 울분을 나누기에는 적당한 상대가 아니었다. 게다가 도서관 의자라니, 더럽고 낡아빠진 술집 의자야말로 내 궁둥이에 어울리지 않을까? 기왕 의자의 말을 받아 적는 거라면 술집 의자의 얘기가 더 재미있지 않을까? 나는 몽롱한 취기 속에서 넌지시 내 생각을 말해보았다.

헛소리 말고 꺼져.”

술집 의자는 단칼에 내 제안을 거절했다. 의자들에게 환대만 받던 나로서 이건 좀 당황스러운 반응이다.

소주 주소!”

그때 포장마차의 주홍색 비닐차일 사이로 벙거지 모자를 쓴 부랑자 하나가 얼굴을 쑥 내밀었다. 마치 자기 차례가 되어 연극무대에 나선 배우처럼.

모든 것이 검거나 누런 인간이다. 누런 옷으로 감싸지 않은 살은 시커멓게 때가 끼었고, 벌어진 입 사이로 보이는 누런 이빨은 반쯤 까맣게 썩어 있다. 그 뒤로 크고 툽상스럽게 생긴 도사견 세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따라 들어와 나를 비롯한 모든 손님들을 놀라게 했다.

벙거지는 출입문 근처에 앉아있는 내게 곧장 다가오더니 손짓으로 비키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느닷없이 자리를 옮기라니,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개들이 탁자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 바닥에 침을 뚝뚝 떨어뜨렸다. 기세에 눌린 나는 먹던 소주와 잔을 들고 옆으로 옮겼다.

벙거지는 단골 레스토랑에 들어온 사업가처럼 당당하게 내가 내준 의자에 턱 앉더니 큰 소리로 주문했다.

내 새끼들 먹이게 우동도 세 그릇 갖고 오고!”

다들 벙거지와 개를 힐끔거렸다. 포장마차 주인은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 듯 벙거지에게 다가가 술 한 병을 내밀었다.

나가서 먹어. 술값은 안 받을 테니.”

뭐야, 거지처럼 밖에서 먹으라는 거야? 나 돈 있어!”

알아. 아는데 장사하는 데서 이러면 어떡해.”

오사리 잡년 같은 게 확 찢어 죽일까보다. 어디서 사람을 차별하고 지랄이야, 지랄이. 에잇 쌍!”

그는 인상을 우그러뜨리더니 점점 더 더럽고 추잡한 욕을 쏟았다. 보다 못한 직장인 하나가 벙거지에게 외쳤다.

거 곱게 처먹을 것이지 왜 행패요? 말씀을 너무 심하게 하시네.”

그 말을 들은 벙거지는 활짝 웃으며 돌아섰다. 마치 상대해줘서 고맙다는 듯 화색이 도는 얼굴이다. 오냐 좋다, 본격적인 드잡이판을 벌려보자. 이런 콧노래가 나올 것 같다.

, 이 년하고 무슨 사이야, 니가 전 남편이라도 돼? 내가 우습게 보이나 본데 안 그래도 우리 아그들이 고기 맛 본 지 좀 됐거든?”

순식간에 실내는 난장판이 됐다. 개들이 일제히 짖어댔고, 꽤나 용감하게 나서던 직장인도 드러워서 피한다는 둥 변명을 눙치더니 나가버렸다.

놀라운 건 포장마차 여주인의 침착한 태도였다. 주인여자는 온갖 더러운 욕이 퍼부어질 때도 침착하더니 벙거지가 집기를 내던지는 순간에도 고요히 파를 썰고 있었다. 그리더니 행주로 손을 쓱 닦고 휴대폰 버튼을 눌러 누군가를 호출했다.

좀 와 줘야겠는디……. 김씨가 또 행패네요.”

구석에 쭈그리고 잔을 비우던 나는 과연 누가 올지 몹시 궁금해졌다. 믿는 구석이 있지 않고서야 제 가게를 부수고 있는데 저렇게 태연할 수는 없지 않나?

막상 출동한 해결사는 육십이 넘어 보이는 작달막한 할머니였다. 눈빛이 맵고 안차고 다라진 인상이다. 그렇다한들 다 늙은 할머니가 불한당을 어떻게 대적하겠는가 말이다.

할멈은 들어서자 송아지만 한 개 세 마리가 재빨리 달려들었다. 변이라도 당할까 싶었는데 웬걸, 꼬리를 들까불고 재롱을 떠는 개들의 품새가 스스럼이 없다. 벙거지도 슬그머니 들었던 의자를 내려놓았다. 입으론 여전히 욕설을 씨우적거렸지만 삶아놓은 고기마냥 분노의 핏기가 빠지고 흐물흐물해진 모양새다. 할멈은 그제야 빙긋 웃으며 두 팔로 벙거지를 감싸 안더니 소리 나게 등을 두들겨댔다.

오랜만이여. 근데 뭣에 이리 성이 나셨을꼬. 피차 먹고 살기 힘든 팔자들인데 어려운 사람끼리 도와야지 여기서 뭐하는겨.”

저 년이 나가서 먹으라잖아요! 다른 사람한테는 잘만 파는데.”

그거야 자네 개들이 워낙 무섭게 생겨서 그렇지. 그래도 어쩌겠어. 자네가 개를 팔 것도 아니고, 아줌마는 장사를 해야 하고…….”

할멈은 조곤조곤 이치에 맞는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벙거지를 달래기 시작했다. 벙거지가 고함을 치려 하면 할멈은 가죽 같은 손으로 등을 쓸어내린다든지 반쯤 포옹을 한다든지 해서 완곡하게 막아섰다.

자자, 나가서 한잔 하세.”

대체 무슨 조화속인지 몰라도 할멈은 마침내 벙거지를 데리고 밖에 나가는 데 성공했다. 실내에는 다시 주인 여자의 파 써는 소리만 고요히 재생되고 있었다.

한판 시끄러울 줄 알았지.”

파란 플라스틱 의자가 뒤스럭거리며 운을 뗐다. 속사정이 궁금할 때는 그 집 의자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다.

대체 누구야? 저놈이 왜 고분고분한 거지?”

굉장히 멋진 분이지?”

자부심으로 뿌듯해진 표정으로 의자는 약간 뜸을 들였다.

공장에서 막 태어난 나를 이곳으로 데려오신 분이야. 이곳에서 장사를 오래하셨고 돈도 꽤 만지셨어. 나중엔 사람을 두고 포장마차를 다섯 개나 하셨지. 여주인이 워낙 통 크고 인심이 좋아서 이 근방의 부랑아치고 국밥 한번 안 얻어먹은 놈이 없거든.”

의자는 여왕을 모신 기사처럼 으스댔다. 팔이 있으면 술잔도 털어 넣을 기세다. 어쩐지 술을 마신 건 난데 알근해지는 건 그의 파란 얼굴이다.

가끔 말썽꾼이 나타나면 저렇게 중재를 해주셔. 다들 왕년에 얻어먹은 국밥이 목에 걸려 행패를 길게 안 부리거든.”

오호라, 근데 어떻게 그렇게 사정을 잘 아니?”

처음 가게에 온 의자 중에 살아남은 건 오직 나뿐이거든. 보시다시피 우리가 수명을 길게 타고 난 의자는 아니잖아……. 저 사람도 알고 보면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냐. 내 다리가 시원찮다고 청테이프를 붙여준 것도 저 사람이야.”

포장마차 의자는 열심히 벙거지 편을 들었다. 내 느낌엔 의자는 할멈을 존경하고 벙거지를 사랑하는 듯했다.

비틀거리며 포장마차를 나왔을 때는 새벽이 다가오고 있었다. 발짝을 떼다 뭐에 걸려 고꾸라질 뻔했다. 발밑을 살펴보니 이런, 아까 그 벙거지가 아닌가

봄이라고는 하나 아직 꽃샘추위가 가시기 않은 3월의 밤, 개들과 벙거지는 포장마차에서 멀지 않은 길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개들은 큰 몸을 옹송그리며 주인의 옆구리를 파고들었고 벙거지 역시 자기 옷을 끌어당겨 한사코 개들을 덮어주려고 애쓴 자세다. 아까 행패를 부리던 놈이 맞나 싶게 순하고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 놈이 목에 힘이 들어가는 순간은 나한테 앉아 있을 때뿐이거든.”

문득 포장마차 의자의 말이 떠올랐다. 한때 할멈이 퍼주는 음식으로 목숨을 연명한 그는 돈만 생기면 이곳에 와서 우동을 사먹었다. 개들 때문에 안쪽으로는 들어오지도 못하고 출입구 쪽 의자에 앉아서 한 그릇씩 비워내곤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새로 온 주인은 아예 그를 들이려 하지 않았다. 전통을 무시하는 처사에 벙거지는 모욕을 느꼈고 올 때마다 실랑이를 벌였다.

어쨌거나 자신을 기필코 사수하려는 사람을 만난 포장마차 의자로서는 그가 천하의 불상놈이라도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자신과 벙거지는 나와 도서관 의자와는 비교할 수 없는 끈끈한 사이라는 거다.

세상에 의자와 사귀는 사람이 너 하나뿐인 줄 알았어?”

솔직히 말해 그런 사람은 나 혼자뿐인 줄 알았다. 사람들이 의자에 자기의 이야기를 묻히고 다닌다는 것을 모르듯이, 의자와 우정을 나누는 사람이 나 외에도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모르는 것이 많아 울고 싶은 밤이었다.

나는 가벼운 궁둥이를 팔락거리며 그 거리에서 퇴장했다. 이런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명의 친구가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도서관에 체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이 있다. 세상엔 완전히 미친놈도 있고 덜 미친놈도 있는데 그중 몇 할은 반드시 구립도서관을 이용한다는 것이다. 그들이 도서관에서 뭘 이용하는지는 분명치 않다. 반쯤은 온전한(완전히 돌았다면 제 발로 여길 오겠는가?), 겉으로 보기에 멀쩡한 이들은 자기 몫의 한 자리를 차지한 후 조심스레 광기의 똬리를 풀기 시작한다.

매일 도서관에 출입하면서 내 존재는 자판기나 책상, 혹은 서가에 꽂힌 책처럼 도서관의 정물 중 하나가 됐다. 그럼에도 가끔 일찍 온 사람에게 내 의자를 뺏기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공공시설이니 어쩔 수 없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사람들이 밉고 싫었다.

그날 내 의자를 차지한 사람은 대머리였다. 대머리는 엄청나게 큰 구형 노트북을 가지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 방석과 보온 병, 한 뼘 크기의 약병까지 들고 왔다. 나는 마누라 뺏긴 남편처럼 안절부절 못하고 그가 가버리기만 기다렸다.

약병은 임산부들이 먹는 철분제처럼 보였다. 사실 그게 약병인 줄도 몰랐다. 대머리가 5분마다 대여섯 개의 알약을 꺼내 씹기 시작하기 전까지는.

와그작와그작.

조용한 실내에 그 소리는 꽤 요란한 파동을 남겼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차츰 소리의 진원지로 모여들었지만 대머리는 느긋했다. 바로 뒤에 앉아 있던 나는 대머리의 뒤통수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모르고 있었다. 누군가 경고를 해야 할 텐데, 수개월째 의자하고만 대화하고 어떤 인간과도 말을 섞은 적 없는 내가 나설 일은 아닌 듯했다.

와그작와그작.

다시 알약 깨무는 소리가 들리자 경영정보시스템이라고 쓰인 두꺼운 책을 들여다보던 안경 쓴 남자가 들으라는 듯이 욕설을 뱉었다. 그 사람이 뭔가 행동을 하기를 간절히 바랐건만 그는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은 채 몸을 돌려버렸다. 나는 소심하고, 다른 사람은 비겁하고, 그 결과 저 끔찍한 소음을 견뎌야 하는 사실에 아찔해질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와그작와그작.

삼십 분쯤 지나자 대머리의 소음은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열람실의 일부가 되고 말았다. 아무도 대머리에게 경고를 주지 않는다. 아무도! 난 머릿속에 벌레 한 마리가 들어온 것처럼 거슬려 죽겠는데 다들 괜찮은 걸까? 나처럼 인질로 잡힌 의자가 없기 때문인가?

결국 한참을 고민 끝에 아까부터 써둔 쪽지를 들고 대머리에게 다가갔다.

이곳은 도서관입니다. 먹는 일은 밖에서 해야 하지 않을까요?’

쪽지가 대머리의 손에서 펼쳐지는 것을 보자 숨통이 트이는 듯했다. 더 이상 침묵함으로서 대머리가 아닌 나 자신을 질책할 일에선 벗어난 셈이다. 그러니 제발 입 좀 닥쳐준다면 나로서는 사소하지만 무척 큰 성취감을 맛 볼 것이다.

그러나 다음 순간, 무언가 단단히 잘못되고 말았다.

대머리가 벌어진 꽃처럼 활짝 웃었던 것이다. 마치 예쁜 여자에게 우리 밖에서 만날까요?’라는 쪽지를 받은 사람처럼. 영문 모를 웃음은 그의 정신 상태를 말해주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구나.’

그제야 일을 벌인 게 후회가 됐다. 벙글벙글 웃는 대머리와 돌처럼 굳은 나를 도서관에 있는 모두가 안 보는 척 쳐다보고 있었다. 다들 그가 미친놈이라는 걸 알아차렸고, 그래서 가만히 있었던 것이다.

대머리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다시 알약을 입가로 가져갔다. 와그작와그작.

머릿속의 벌레가 수십 배 불어난 느낌이다.

다음날 그대로 도망쳐버린 어제의 일을 사과했을 때 도서관 의자는 듣는 둥 마는 둥 말허리를 잘랐다.

어제 그분 말이죠? 실제로 볼 줄은 상상도 못했는데.”

스프링을 신나게 쿨렁거리는 의자는 일종의 흥분상태였다. 그런데 어제 그분이라니, 설마 나에게 망신을 준 대머리 말인가?

우리 세계에선 유명 인사거든요. 십 수년 전 어떤 의자와의 인연을 맺었고 그 후 수많은 의자를 옮겨 다니며 순례를 하는 중이죠. , 난 이 모든 게 그저 뜬소문인 줄 알았어요.”

그러니까 온갖 의자를 앉아보고 돌아다니는 미친놈이란 말이야? 왜 그런 짓을 하지?”

도서관 의자는 그것도 모르냐는 듯이 잠시 말이 없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서 가장 이야기를 잘하는 의자를 찾으려고요. 그 사람도 작가랍니다.”

대머리가 사라진 후 이번에는 혼잣말을 하는 여자가 등장했다. 폭우가 심한 장마기간이라 실내엔 그녀와 나, 둘밖에 없었다. 정기간행물실 유리 너머로 두어 개의 머리통이 더 보였지만 어쨌든 이곳엔 그녀와 나뿐이다. 예감이 안 좋았다.

혼잣말은 키보드가 부서져라 두들겨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끄러웠는데 잠깐잠깐 쉴 때마다 불규칙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둠 속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나이프처럼 날카롭고 돌연한 목소리.

하하하하, 내일도 나올 거지?”

처음엔 그녀가 휴대폰 통화를 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혼잣말의 손아귀엔 전화기가 들려 있지 않았다. 다시 노래를 부르듯 그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카모마일이 좋아. 로즈메리는 싫어.”

나는 몸서리치며 의자에 파고들었다. 또다시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전력을 다하는 형국이다. 독처럼 차오르는 아찔함 때문에 머리가 아파왔다.

나는 몰라. , 미셀, 윤주를 괴롭히지 말아줘.”

정작 괴로운 건 나다. 폭우를 뚫고 도서관에 도착했더니 또다시 광인이 내 주변을 어지럽히고 있다. 이어폰을 꽂고 볼륨을 올렸지만 이래서는 도서관 의자하고 대화할 수 없다. 망할 사서들은 늘 그렇듯이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문득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 여자에게 말을 걸더라도 쳐다볼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 사실에 용기를 얻은 나는 뚜벅뚜벅 걸어가 그녀 앞에 섰다.

소리 좀 낮춰요. 당신 목소리가 얼마나 큰 줄 알아요?”

그녀는 깜짝 놀라 쳐다보더니 입술을 움직여 이렇게 되받아쳤다.

소리 좀 낮춰요. 당신 목소리가 얼마나 큰 줄 알아요?”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

그녀는 내가 하는 말을 고스란히 반복했다. 메아리가 된 님프처럼. 당혹스럽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나는 말을 멈출 수가 없었다.

, 짜증나.”

, 짜증나.”

길쭉하고 못난 얼굴. 풀어진 눈자위. 왜 미친 사람은 한 번에 한 명씩만 나타나는 것일까? 무슨 영역 표시라도 되어 있나? 이렇게 내 도서관을 더럽힐 바에야 한꺼번에 나타나 굿판을 벌이고 사라지면 좋으련만.

결국 하릴없이 내 자리로 물러나온 나는 투덜대며 분을 삭일 수밖에 없었다.

저 여자 왜 저래?”

자신의 목소리가 사라질까봐 두려워하는 거 아닐까요? 책에 그런 사례가 나왔잖아요. 자신이 낯설어서 끊임없이 대화하는 사람 얘기.”

속으로 떠들면 환자가 아닌데, 겉으로 지껄이니까 문제지.”

저 여자는 아마 자기 자신과 사귀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중일 겁니다. 뭐 누구나 자기 자신과 잘 지내긴 쉽지 않으니까.”

대체 왜 이렇게 미친 사람이 많은 거지?”

나는 원망스러운 눈초리로 여전히 떠드는 혼잣말의 뒤통수를 노려보았다.

당신 처지를 생각해보세요.”

도서관 의자가 너그럽게 웃는다.

의자와 얘기를 나누는 건 정상이라고 생각해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머리와 혼잣말을 내쫓고 싶었던 건 이곳이 나의 구역이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나도 조금씩 미쳐가는 것은 아닐까?

의자와 나는 결국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인물의 첫 등장은 근사했다. 하지만 갈수록 갈팡질팡하더니 시무룩하게 앉아 우리 둘의 말다툼을 쳐다보기만 했다. 의자와 나는 자주 싸웠는데 처음엔 왓슨 역할을 자처하던 그가 점차 홈즈 노릇을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아니, 왓슨 역할인 내가 홈즈 노릇을 하려 든 건가?

시간이 갈수록 의자는 까다롭게 굴었고 나중엔 제대로 받아 적지 못한다고 나무라기까지 했다.

이 부분은 문제가 있어요. 그냥 어물쩍 넘어가려는 티가 너무 난다구요.”

의자는 이야기의 모든 부분이 전면적이어야 한다고 고집했다. 그러니까 첫 문장이 다음문장을 부르는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맡겨야지 머리를 굴려 논리를 맞추는 식으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안테나를 세우고 특별한 전파가 수신될 때까지 뿔을 세우는 것이야말로 신성한 방법이며, 쓸데없는 노력으로 전파를 뭉개버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의자 주제에 중뿔나게 뮤즈 타령이라니. 먹지도 자지도 않고 옷도 돈도 필요 없는 그가 다달이 불어나는 내 카드빚을 알 리 없지만, 그보다 견딜 수 없는 건 그의 말이 갈수록 꼬여간다는 것이다. 이 난삽한 독서가가 불러주는 글들은 제멋대로 튀어나오는 서랍처럼 어떤 것부터 받아야 할지 난감할 때가 많았다.

나는 심술이 나서 일종의 태업으로 응수했다. 가끔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아무 이야기나 적어버리기도 했다. 내가 쓰는 내용은 에디슨이 고안한 전기의자였다. 쇠로 된 족쇄와 처형자의 몸부림을 막기 위한 벨트가 달린 끔찍한 괴물, 앉으면 영혼과 생명이 뽑혀나가는 처형 의자에 대한 글자가 찍혀나가자 내 친구는 불같이 화를 내더니 종일 입을 닫았다.

며칠간 도서관에 발을 뚝 끊기도 했다. 일부러 다른 자리에 앉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의자의 초조한 시선을 무시하는 일이 왜 그리 통쾌했는지 모르겠다. 풀죽은 그는 아이를 잃어버린 우둔한 유모 같았다.

나는 이 모든 상황에서 날카로운 쾌감이 느껴졌다. 뭔가를 배반하는 일은 야만적인, 따라서 즐겁기까지 한 에너지를 몰고 왔다. 결국 나는 친구의 고통을 희생제물 삼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던 것이다.

이렇듯 의자와 거리두기를 하던 어느 날, 적게나마 용돈을 벌 수 있는 아르바이트가 들어왔다. 나는 의욕에 차서 도서관으로 돌아왔다. 보란 듯이 다른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충동 때문이었다.

프린트 물을 놓고 번역을 하는 동안 해는 긴 꼬리를 남기고 창밖으로 사라졌다. 입을 꾹 닫고 지켜보던 의자는 가로등에 하나 둘 불이 들어오자 말문을 뗐다.

…… 전기의자는 어떻게 됐나요?”

그는 여전히 이야기에 집착했다. 그 얘기들은 커서가 깜박거리는 모니터의 끝에서, 마치 절벽에서 뛰어내릴 수 없는 여자처럼 붙박여 있는데 말이다.

글쎄, 의자 얘기는 좀 신물이 나서.”

인간과 말을 튼 대부분의 의자들은 배신당한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이 의자는 아직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 ‘그런 일이 막 벌어지는 참이다.

그러면 나를 찾지 않을 건가요?”

의자는 처량한 목소리로 물었다. 솔직히 좀 놀랐다. 예술가의 후견인 운운한 건 그저 나를 붙들려는 핑계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든 것이다. 우리의 관계는 서로의 외로움에 잠깐 지핀 모닥불 같은 것이었을까? 하지만 이미 시작한 잔인함엔 가속이 붙어 있었다.

오늘 온 건 너에게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서야. 더 빨리 떠났어야 하는 건데.”

작별이란 말을 떠올리자 신파적인 낭만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간 친구가 되어 주어 고맙다, 하지만 너 말고도 가져야 할 것들이 많다는 말이 내 목구멍에서 흘러나왔다. 도서관 의자는 금방이라도 울어버릴 것 같더니 간신히 작별인사를 건넸다.

결국 이런 날이 오고 말았군요. 그래도 꼭 한번 저를 찾아주셨으면 해요. 자격증 교재나 창업 가이드 같은 것이 당신 손에 들려 있더라도 전 상관없어요.”

마지막 말은 그런 꼴을 꼭 보고 싶다는 말처럼 들렸다. 의자가 나를 비꼰다고 생각하자 참을 수가 없었다. 그건 의자에게 끌렸던 중력을 완전히 소멸시키는 말이었다. 감히 의자 주제에 나를 비웃는 건가? 수개월간 나를 포로로 잡아놓고 조종했으면서. 어쩌면 조롱했으면서 말이다.

그때 내 마음엔 오직 한 가지 욕망밖에 없었다. 의자에게 모욕을 주고 박살을 내주고 싶은 욕망.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도서관 의자를 밀어 버렸다. ! 소리를 내며 뒤로 넘어간 의자는 네 가랑이를 허공에 세운 채 나자빠졌다. 볼트와 너트와 베니어합판, 아무렇게나 찍힌 호치키스 자국, 먼지와 범벅이 된 더러운 밑바닥이 속수무책으로 드러났다. 내 환상의 친구는 이토록 남루한 내면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내가 세워주지 않는다면 그는 스스로 일어날 수도 없다. 의자는 말도 못하고, 서 있지도 못하고, 자신의 고유한 상태를 모조리 잃어버린 채 아랫도리가 벗겨진 사람처럼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었다.

도서관의 모든 것들이 우리의 불화를 목격했다. 책이, 책상이, 다른 이용자들과 사서들이 깜짝 놀라 우리를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대머리도 이 광경을 훔쳐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연상이 그에 이르자 그토록 증오했던 광인과 다를 바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똑똑히 깨달을 수 있었다. 공공장소에서 큰 소리를 지르며 소동을 벌이고 있는 꼴이라니. 견딜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와 그대로 도서관을 뛰쳐나오고 말았다.

구립 도서관의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 순간 그때까지 나를 감싸고 있던 얇은 막이 찢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파란 창공이 사라진 자리에 검고 더러운 우주가 드러났다. 와그작와그작, 벌레들이 돌아다니는 소리가 머릿속 가득 번식했다.

도서관을 나온 다음에도 나는 많은 의자를 만났다. 사무실의 하이테크 의자나 아내가 사온 식탁 의자 같은. 시간이 갈수록 부양해야 할 의자가 늘어났고 여러 개의 의자를 가진 삶이 만족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이젠 어떤 의자도 말을 걸어오지 않는다.

 

[2] 의자들은 고독한 인생을 산다. 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평생을 보내는 이 족속은 바닥에서 약간 올라온 곳에 흐르는 공기- 우리의 무릎이나 종아리 부분 정도-를 호흡하며 누군가 말을 들어주기를 기다린다. 어떤 의미에서 의자의 삶은 나무와 비슷하다. 누군가 옮겨주지 않으면 언제까지 한자리에 붙박여 있어야 하니 말이다.

내가 자주 가는 공원의 벤치는 오랫동안 자신이 나무인 줄 알았다고 털어놓았다.

우선 그는 커다란 나무 그늘 밑에 있었다. 발은 흙 속에 묻혀 있고 몸뚱이에 나이테가 그려져 있는 탓에 자신은 하늘을 향해 직립한 생명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는 것이다. 의자가 되면서 기억을 잃었을 뿐이라고, 나무와 자신은 형제라고 공원의자는 생각했다.

차가운 김밥을 밀어 넣던 나는 넌 시멘트로 만들어졌고 공원에 어울리게 꾸며진 것뿐이야. 얼마나 조악한지 멀리서도 가짜 나무라는 게 티가 난다고. 지금 내 엉덩이가 얼마나 차가운지 아니?’라고 대꾸하고 싶었지만 이 말은 김밥과 함께 꿀떡 삼켜 버렸다. 오랫동안 어떤 의자도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 공원 의자가- 작게 축소된 인공자연 속에 살아서 그런지 소박하고 눈치가 좀 없는- 실로 오랜만에 말을 붙인 것이다.

나무와 전 부부나 다름없어요. 사람들은 그늘을 보고 제게 오지요. 저에게 앉아 다시 나무를 바라보고요. 우린 젓가락과 숟가락처럼 한 세트인 셈이죠.”

내가 보기에 이건 순전히 공원 의자만의 착각이다. 나무는 과묵하다. 나무는 이미 하나의 대륙, 하나의 세계였기 때문에 의자의 이런 마음을 알 겨를이 없다. 사철마다 다른 과제가 주어지고 수많은 잎, , 열매를 가진 그에게 다른 짝이 필요할까? 나무가 주변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들의 세계는 충분히 복잡하고 유기적이기 때문이다.

의자는 나무를 사랑했다. 그의 그늘, 바람이 불 때마다 나뭇잎을 통과해 들어오는 햇살을 즐겼으며 씨주머니에서 떨어진 열매가 자기 몸 위에서 도르르 굴러가는 것을 경이롭게 바라보았다. 빨간 잎들이 쏟아지는 가을의 나무 샤워는 환희를 안겨주었고 첫 순이 움트는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봄밤의 며칠을 지새우기도 했다. 그리고 겨울이 다가오면 나무보다 더 빨리 쓸쓸해졌다. 겨울에는 사람들도 나무도 제 집으로 들어가 버리고 의자 혼자 고독 속에 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청승에 장단을 맞춰줄 시간이 내겐 없었다. 도서관을 떠난 다음부터 내 우주엔 구직과 실직밖에 없었으니까. 끼니를 때웠으니 이력서를 제출할 시간이다.

다시 공원 의자를 만난 것은 꽤 오랜 후였다. 그러니까 한 번의 실패를 여러 번의 실패로 늘리고 환상도 현실도 다 잃어버린 끝에 우연히 공원을 찾은 것이다. 공원 의자는 홀로 되어 있었다. 번개가 몹시 치던 밤, 나무는 허리가 반으로 꺾여 죽음을 맞이했다. 공원 의자는 나무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고 했다. 대지의 젖줄에 맞닿아 있고 태양과 교신하는 위대한 그가 이렇듯 한순간 사라질 수 있단 말인가? 무서울 정도로 성성한 푸른빛에서 어떻게 생명이 싹 빠져나갈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제 자신이 두 동강 나는 편이 나았을 거예요.”

사람들은 흉측하게 변한 나무의 주검을 파헤쳤다. 나무뿌리는 공원 의자의 발이 묻혀 있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속정 깊은 남편을 잃은 과부처럼 의자는 눈물을 삼켰다. 뿌리를 모조리 뽑고 나자 또다시 아득한 구멍이 드러났다. 생명을 빨아들이고 푸른색을 검은색으로 바꾸어버린 암흑이었다.

그 구멍을 메우며 시간이 흘러갔다. 어차피 시간은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나침반이 남과 북을 가리키지 않는 시간 속에서 의자는 긴 잠을 잤다. 공원은 꿈으로 가득 찼다.

나무의 꿈을 너무 많이 꾼 것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의자의 몸은 점점 파랗게 변해갔다.

늙을수록 푸르러지는 몸뚱이. 그런 게 존재할 수 있나요?”

나는 공원 의자를 내려다보았다. 온몸에 이끼가 껴서 앉을 데도 마땅치 않은 낡은 의자를. 비로소 나무가 되어버린 의자를. 당신이 나라면 무슨 말을 해주겠는가? 난 너무 가벼운 엉덩이를 가지고 있어서 이런 순간을 감당하기가 어렵다. 푸름에 몸을 내준 채 녹이 슬고 있는 저 의자는 좀 더 무거운 엉덩이, 백지의 끝까지 걸어간 자에게 말을 걸었어야 했다. 나이 오십에 초경을 치르는 여자처럼 수줍음이 가득 차 자신의 몸을 내보이는 그에게 당신은 늙고 나서 젊어졌다는 모순을 멋있게 말해줄 요량이 내게는 없는 것이다. 만약 내가 꿈꾸기를 다시 시작한다면 그처럼 푸른 몸뚱이를 가질 수 있을까?

오래전 나에게는 도서관 의자가 있었다. 그가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쓸 수 없다. 세상엔 쓸 만한 꺼리들이, 그러니까 진리라는 것들이 아무 데서나 옷 벗고 눕는 여인처럼 떠다닌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을 받아 적으려면 내 도서관 의자가 필요하다. 나는 타자수, 그는 내 두뇌이자 영감이기 때문이다. 도서관 의자와 대화할 수 없는 내가 무엇을 쓸 수 있겠는가.

늙은 나무가 내 친구의 안부를 묻는다.

당신의 의자는 잘 있나요?”

그 의자는 여기에도 없고 도서관에도 없다. 딱 한 번 내가 그를 찾았을 때 그곳은 각종 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곳으로 바뀌어 있었다. 커다란 탁자 아래 놓인 열 개의 의자들은 완강한 침묵에 둘러싸여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공원에 앉아 나는 내 의자의 최후에 대해 상상했다. 내가 찾지 않은 동안 도서관 의자는 창밖을 나와 한강을 건너 우주 속으로 영원히 사라졌다. 그와 내가 만든 이야기들은 우주의 불쏘시개가 되어 어디선가 활활 타고 있을 것이다. 어느 귀부인 못지않게 예술가의 후원자를 자처했던, 그러나 실은 자신이 예술가였던 도서관 의자가 다른 주인을 만났다면 좋았을 텐데. 세상에 의자와 사귀는 사람은 나 혼자가 아니니까 말이다.

이런 비극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은 악기를 잃고 어떤 사람은 주머니를 잃었을 것이다. 당신은 라디오를 잃고 또 다른 당신은 거울을 잃었다. 유년 이후 처음 말을 붙여준 사물이 다가올 때 우리가 소통한 세계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그들은 우주에서 기다란 성운을 이루며 떠다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같은 비애를 가진 이와 그곳을 여행하고 싶다. 우리에게 말을 건네던 모든 사물들이 떠다니는 성운. 당신의 악기·주머니·라디오·거울이 떠 있는 그곳에서 내 도서관 의자를 되찾고 싶다. 그곳은 우주의 고물상 같겠지만 우리들의 낡은 꿈이 모인 가장 아름다운 별일 테니까.

우주를 여행하는 그 의자에게 돌아오라는 말을 건네기 위해 이 글을 쓴다. 도서관 의자가 있다면 이 글은 이렇게 서툴게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기 없고 나는 그 겨울을 떠올리고 있다. 종이 위에 글자가 끝나가는 순간이 몹시 두렵고 그가 그립다. 등을 기대고 깊숙이 앉을 때 건네 오던 도서관 의자의 명랑한 첫 인사가.

오후에 나는 내 인생에게 말하고 싶어진다.

내 의자를 돌려주세요, 라고.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