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사랑 나의 귀신(鬼神) - 귀신(鬼神)에 관하여
내 사랑 나의 귀신(鬼神)
귀신(鬼神)에 관하여
최인석
1
그 달동네 꼭대기에는 거대한 송전탑이 하나 시커멓게 곤두서 있었다. 민둥바위와, 찰기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메마른 흙, 사람들이 오랜 세월 동안 갖다버린 온갖 쓰레기들, 망가진 세발자전거나 구멍난 양동이, 소주병들, 담배꽁초, 본드가 말라붙은 비닐 주머니, 찢어진 만화책과 고무신짝, 운동화 짝, 빈 음료수통과 더러는 죽은 짐승들의 시체 따위가 널린 가운데에 소나무가 말라 죽어가고, 그 자리에 아카시아가 가시를 드러내고 끈질기게 뿌리를 틀어내리기 시작하는 빈터 쓰레기밭 한가운데였다. 그리고 그 밑에는 마치 오래 전에 누가 갖다버린 커다란 쓰레기인 듯 집 한 채가 납작하게 엎어져 있었다. 판자 울타리는 여기저기 기울고 쓰러져 밖에서도 집안이 들여다보였고, 대문간에는 대나무 가지 끝에 높다랗게 하얀 깃발이 매달려 바람이 불면 바람에 나부끼고 비가 오면 비에 후줄근히 젖어들었다. 무허가이기는 그 동네의 다른 집들과 마찬가지였으나, 그 집은 방 세 칸, 마루 한 칸, 부엌 한 칸의, 그 동네에서는 제법 규모가 있는 집이었다. 이를테면, 마루 끝에 부엌 살림살이들을 늘어놓고 다섯 식구가 방 한 칸에 복닥거리며 사는 우리 집과는 천양지차였다.
그곳이 나의 순례지였다. 나는 매일 학교에서 돌아오면 흔히 민둥산이라 불리던 산꼭대기 빈터로 올라갔다. 쓰레깃더미 옆에 비죽이 머리를 내민 민둥바위에 올라앉아 나는 그 집을 무작정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무엇인가 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나는 그저 그곳에 앉아 하염없이 그 집을 바라보았고, 멀리 흘러가는 한강을, 우람한 대리석 다리들로 하늘을 떠받들고 당당히 서 있는 그 너머의 국회의사당과 한국방송공사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가끔은 그 집 쓰러진 울타리 너머로 당골네가 빨래를 하거나 밥상을 들고 부엌에서 나와 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슬아슬한 기분이었다.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잘못 밟으면 그녀는 그만 넘어져 온몸의 마디마디가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녀의 몸은 그토록 가늘어 마른 나뭇가지 같았으니까. 밤이 깊어지면 무수한 별들이 내 이마 바로 앞까지 내려와 반짝거렸고, 그때마다 나는 그 별들과 더불어 나와 민둥바위와 그 집과 그 집 위로 높다랗게 버텨선 송전 철탑이 한꺼번에 그 거대한 밤하늘 속으로 까마득하게 빨려드는 것 같은 기분에 부르르 몸을 떨었으며, 나의 마음속에서도 작은 별 하나가 슬픈 음악을 연주하며 외롭게 반짝였고, 밤이 깊어도 돌아오지 않는 나를 찾아 올라온 어미는 그 바위 위에 쪼그리고 앉아 잠에 빠진 나의 등짝을 후려치며 저 캄캄하고 아득한 하늘이 한꺼번에 쩌렁쩌렁 울리도록 이 미친놈의 새끼야, 집 놔두고 어째서 여기서 자빠져 자, 하고 고함을 질렀다. 어미는 내 마음속에 별이 빛나건 두꺼비가 왱왱거리건 보지도 듣지도 못했으니까. 하기야 누가 그런 것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으랴.
귀연이는 내가 민둥바위에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하면 늘 쪼르르 쫓아나와 내 옆에서 서성거렸다. 뭐 해? 놀아. 혼자? 응. 그게 노는 거야? 응. 몇마디 얘기를 주고받는 적도 있었으나, 얘기가 오래 이어지는 적은 없었다. 너 오늘 쪽지시험 몇점 받았어? 내일 미술 준비물 챙겼어? 늘 묻는 것은 귀연이었고, 내 대답은 짧았다. 응. 아니. 그뿐, 우리 사이에는 별로 할 얘기가 없었다. 나는 민둥바위를 떠나지 않았고, 귀연이는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귀연이는 내 옆에 앉아 그 흰 얼굴로 나를 할끔할끔 쳐다보았고, 나는 멍하니 어둠속을 넘겨다보았으며, 가끔 귀연이의 숨이 쌕쌕 들떠오르는 소리를 들었고, 하늘이 기우뚱하게 북쪽으로 기울어진 듯 별들이 그쪽을 축으로 서서히 기울어가며 내 곁에서 멀어져가고 새로운 별들이 내 이마 위로 흘러내리는 것을 보았다. 우리 엄마가 들어와서 저녁 먹으래. 어느 날 귀연이가 말했을 때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늘 그 집을 지켜보면서도 나는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집은 감히 가까이할 수 없는 집이었다. 나는 돌아보지도 않고 민둥산을 뛰어내려왔다. 그러나 이튿날에도 나는 그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은 나의 성지(聖地)요 나는 순례자였으니까. 그리하여 며칠 뒤에 다시 귀연이가 같이 들어가서 저녁을 먹자고 권했을 때는 그 초대를 받아들였다. 청룡도와 삼지창, 종이꽃들, 방울과 삼신부채, 오색 깃발이 치렁치렁 걸리고,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귀신의 초상화가 나를 내려다보는 신당에 들어가 나는 당골네에게 인사를 했다. 당골네가 나를 알아보았던가? 그녀는 눈을 치떠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서 와 앉아라. 나는 온몸이 오그라드는 느낌으로 밥상 앞에 주저앉았다. 숨이 가빠오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당골네는 고깃점을 떼어, 생선을 발라 내 밥숟가락 위에 놓아주었다. 우리 귀연이랑 사이좋게 지내라. 여기도 자주 놀러 오고.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한번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물론 당골네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저 그 방에 가득 밴 짙은 향냄새, 그리고 그보다도 당골네가 반찬을 권하기 위하여 몸을 기울일 때 언뜻언뜻 끼쳐오는 살냄새에 취했고, 그녀의 코끝과 목덜미에 방울방울 맺힌 땀방울을 발견했을 때에는 아득한 현기증 같은 것을 느꼈으며, 그때마다 더욱 고개를 숙이고 밥 먹는 일에만 열중했을 뿐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귀연이 어미를 기분에 따라 당골네라고도, 무당년이라고도, 화냥년이라고도 불렀고, 동네 아이들은 귀연이를 기분과는 상관없이, 어김없이 새끼 무당, 무당 딸년이라고 불렀다. 귀연이는 초등학교 6학년, 나와 같은 반이었으나, 동네 아이들은 아무도 그녀와 놀아주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녀와는 같이 노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었으니까. 그것은 그녀를 놀리는 일이었다. 니네 엄마하고 귀신하고 방아 쪄서 나온 새끼가 너라면서, 이 새끼 무당아? 쿵덕쿵덕 북장단에 춤만 추고도 잘 먹고 잘살 텐데, 학굔 뭐하러 다니냐? 귀연이는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 흰 얼굴이 더욱 희게 질릴 뿐, 대꾸 한마디 않고, 몸을 더욱 꼿꼿이 세우고 제 갈 길만을 갔다. 아이들은 그런 그녀의 등에 대고 외쳐댔다. 이리 와서 귀신 한번 불러내봐라. 오늘 내 운수가 어떤지 점 한번 쳐보라니까. 아이들이 그녀를 그렇게 따돌리고 놀린 가장 큰 이유는 그녀의 어미가 무당이었다는 것보다도, 어쩌면 그녀가 남달리 깨끗하다는 것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단정한 옷차림, 희디흰 손발과 얼굴, 언제나 반질반질 윤이 나는 머리, 길고 가는 손가락에는 언제나 깨끗이 잘 손질된 분홍빛 손톱. 그 동네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시커멓게 때 낀 손톱에, 터지고 갈라진 손등에, 땟국물을 줄줄 흘리고 다니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귀연이와 사이좋게 지내라는 당골네의 말은 귀연이를 더이상 놀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만일 당골네가 섭섭하게도 나를 그런 아이들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다면 그것은 오해였다. 나는 얼마 전부터, 성지순례가 시작된 무렵부터 이미 귀연이를 놀리는 아이들 가운데에는 끼여 있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하여 아이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아이들과 같이 깡통차기라도 하며 놀다가 저만큼 귀연이가 오는 것이 눈에 뜨이면 얼른 그 자리에서 사라져버리는 것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니까 더 이상 귀연이를 놀려먹을 수 없게 된 아이가 하나 더 생긴 것은 나로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느 날, 민둥산에 올라간 나는 거기에서 나를 기다리는 아이를 하나 만났다. 우리 이웃에 사는 승규였다. 그는 나를 보자 말했다. 너 나한테 귀연이 양보해. 나는 무슨 소린지 알 수가 없었다. 승규는 계속해서 말했다. 시치미 떼지 말아. 니가 귀연이 좋아하는 거 다 알아. 나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왜 맨날 여기 와서 귀연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건데? 나는 그런 적 없다고 말했다. 승규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난 귀연이를 사랑한단 말야, 하며 그는 이 사이로 침을 찍, 뱉어냈다. 나는 말했다.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야. 승규가 다시 물었다. 그럼 맨날 여기 와서 뭘 기다리는 건데?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고 싶었으나…… 무엇인가가 나의 입을 막았다. 나를 강렬한 구심력으로 끌어당기면서도 동시에 그에 못지않은 원심력으로 완강히 밀어내는 무엇인가가. 승규는 추궁했다. 정말 너 귀연이 좋아하는 거 아니지?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당골네 집 판자문이 열리고 귀연이가 나오고 있었다. 승규는 그쪽을 쳐다보며 초조히 다시 한번 다짐을 두었다. 정말이지, 너? 나중에 딴소리 하면 안돼.
2
내가 틈만 나면 민둥산 바위에 올라앉아 기다린 사람이 나의 연인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승규의 생각과는 달리, 내가 사랑한 사람은 귀연이가 아니었다. 나의 연인은 언제나 나를 저 강렬하고도 황홀한 구심력으로 끌어당기면서도 동시에 그보다 훨씬 더 강하고 무자비한 원심력으로 밀어냈다. 나는 나의 연인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줄 수 없었다. 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했다. 귀연이는 승규가 아니라 나를 사랑했다. 그리고 나는 귀연이가 아니라,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거리에 떨어져 있는 사람을 사랑했다. 승규와 귀연이와 나는 모두 열두살이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열두살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다.
그때부터 학교에서나 동네에서나 승규는 귀연이를, 귀연이는 나를 쫓아다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쫓아다닐 수 없었다. 승규는 귀연이에게 쪽지 편지를 보냈다. 귀연이는 나에게 쪽지 편지를 보냈다. 이따가 민둥바위에서 만나. 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래. 어제 굿했거든. 그러나 나는 나의 연인에게 편지를 보낼 수 없었다. 승규는 귀연이에게 군고구마를 사주거나 그녀를 놀리는 동네 아이들을 막아주는 것으로 사랑을 구하려 애썼고, 귀연이는 몽당연필 서너 개가 전부인 내 필통 안에 늘씬한 키의 새 연필을 예쁘게 깎아 넣어주거나 내가 마련하지 못한 미술시간 준비물을 불쑥 내미는 것으로 사랑을 구하려 애썼다. 그러나 나는 나의 연인에게 아무것도 사줄 수 없었다. 나의 연인에게 나의 사랑을 고백하는 것은 물론이요, 승규와 귀연이를 포함하여, 어떤 사람에게건 알릴 수도 없었다. 승규처럼 누군가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양보해라, 하고 말할 수도 없었다. 어느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도 하소연할 수도 없는 사랑, 나의 사랑은 비밀이요 함정이요 덫이었다. 나의 연인은 한순간도 내가 자신의 인력권에서 벗어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나는 한번도 그 인력권 안으로 들어서는 것을 허락받은 적도 없었다. 내가 원하는 것과 얻을 수 있는 것 사이의 거리는 결코 좁힐 수 없는 거리, 저주받은 거리였다. 그것은 너무 멀어 불가능에 가까웠고, 나는 그 불가능에 온전히 저항 한번 해볼 수 없었다. 어쩌면 차라리 그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아예 불가능했으므로 나는 바랄 뿐 성취를 꿈꿔본 적이 없으니까. 처음부터 불가능했으므로 성취를 위해 노심초사할 기회마저 얻을 수 없었으니까. 승규나 귀연이처럼 애를 쓸 생각조차 해볼 수 없었고, 그런 생각을 해볼 필요조차 없었으니까. 나는 나의 사랑을 마음속에만 감춰둬야 했고, 그것이 고개를 내밀지 못하도록 짓눌러둬야 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사랑을 짓눌러두면 그 자리에 열정이, 어두운 열정이, 짐승으로 친다면 아마 두꺼비나 뱀, 지렁이나 지네 따위를 닮았을 그늘진 열정이 생긴다는 것을. 그 어두운 열정은 사랑이 짓눌릴수록 더욱 크게, 더욱 어둡게, 더욱 음침하게, 저 민둥산 꼭대기에 자리잡은 거대한 철탑처럼 거대하게 자라난다는 것을. 그리고 유일한 위로란 그 어둡고 음침한 짐승과 친해지는 길뿐이라는 것을. 나는 그것을 두꺼비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놈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보다 더 크게 자라났다. 그놈은 가끔 꾸억꾸억, 기이한 소리를 내며 울었고, 내 몸 바깥으로 빠져나가기 위해 몸부림쳤다. 그때마다 내 마음속의 작은 별 역시 공명(共鳴)하는 말굽자석처럼 가늘고 작은 소리로 울었고, 어딘가로, 이곳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으며, 민둥바위에 머리를 부딪고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나만의 순례지였다가 얼마 뒤에는 서로 다른 것을 바라는 나와 귀연의 순례지가 되었던 민둥바위는 이제 나와 귀연이와 승규의, 역시 서로 다른 것을 바라는 순례지가 되었다. 서로가 엇갈리는 방향으로 벋어나가는 우리의 어두운 열정이 우리들을 서로 어울려 다니게 만들었다. 승규가 나타난 뒤부터 우리들의 순례 영역은 확장되고 순례 시간도 길어졌다. 이를테면 우리들은 밤이 깊어지면 길고 구불구불한 달동네의 골목길을 달려내려가 텅 빈 거리로, 달동네 영역 바깥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런 순례를 통하여 나와 승규는 귀연이가 놀라운 재주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승규가 처음 그런 제안을 한 날이었다. 이 밤중에? 귀연이가 물었다. 승규는 그녀 앞에서는 언제나 뭐든 다 알고 뭐든 다 할 수 있는 사람처럼 행세하지 못해 안달이었다. 뭐 어때? 난 한밤중에 수도 없이 나돌아다녔어. 자전거 타고 남대문시장까지, 롯데백화점까지 갔다온 적도 있어. 남대문시장, 롯데백화점. 나는 그런 것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귀연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내가 좋다고 하기만 하면 그녀도 따라나설 것이 분명했다. 내 마음속에서 무엇인가가, 아마도 저 어두운, 내 몸뚱이보다 더 커다래져서 빠져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던 저 두꺼비란 놈이 벌떡 고개를 들고 일어서 온몸에 가득 힘을 주고 더욱 크게, 저 송전 철탑처럼 높다랗게 곤두서더니 뒷발질을 했다. 민둥바위에 머리를 부딪는 기분으로 나는 말했다. 좋아. 가자! 승규가 달리기 시작했다. 내가 그 뒤를 따랐다. 귀연이가 내 뒤를 따랐다. 우리는 급경사진 달동네의 골목길을 달려내려갔다. 우리들의 뜀박질 소리가 텅 빈 골목 안에 소나기처럼 쏟아졌고, 우리는 터무니없는 용기와 투지로 그 소나기를 뚫고 달렸다.
달동네를 빠져나오자 골목은 훨씬 넓어지고 집들도 말끔해졌다. 판자로 울타리를 한 것이 아니라 붉은 벽돌로 담장을 한 집들이, 완고히 잠긴 대문을 거느리고 우뚝우뚝 서 있었다. 귀연이가 갑자기 몸을 훌쩍 날려 어떤 집의 담장 위에 올라섰다. 나도 승규도 놀라 멍하니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태연히 담장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나와 승규는 넋을 놓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발 하나를 올려놓기도 아슬아슬한 벽돌 담장 위를 마치 사방치기라도 하듯 태연하게 팔랑팔랑 발을 움직여 달릴 뿐이었다. 한 담장이 끝나면 다음 집 담장으로, 그 담장이 끝나면 이웃집 담장으로 그녀는 날듯이 몸을 날려 이동하였고, 계속해서 담장 위로만 달려 골목이 끝나고 큰길이 시작되는 곳에 이르러서야, 더이상 달려갈 담장이 없어진 다음에야 땅으로 뛰어내렸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안 무서워? 나와 승규가 물었으나 그녀는 대답도 않고 팔랑팔랑 육교로 뛰어올랐다. 거리는 완벽하게 텅 비어 있었다. 10차선의 넓은 도로가, 늘 온갖 차들과 사람들, 엔진 소리와 경적 소리로 뒤엉켜 있던 거리가 거대한 잠든 짐승처럼 우리의 발 아래 조용히 엎드려 있었다. 나는 육교 위로 따라 올라가며 말했다. 천천히, 천천히 가자. 그러나 육교 위로 올라가다 말고 나와 승규는 다시 한번 놀라 발을 멈추고 멍청히 귀연이를 바라보아야 했다. 그녀가 육교 난간 위에 올라서 있었다. 아니, 그녀는 그 작고 둥근 난간 위를 걷고 있었다. 허공에 두 팔을 벌려 균형을 잡은 그녀의 두 발은 마치 나비처럼 가볍고 자유롭게 난간 위에서 뛰놀았다. 달동네 같은 것은 물론이요 중력이나 인력, 무게나 부피 따위의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난 듯한 모습이었다. 우하하하. 나도 모르는 사이에 웃음이 밀려나왔다. 내 마음속의 두꺼비란 놈이 신나게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승규는 입을 벌린 채 육교 난간 위를 걷는 귀연이와 그것을 보며 웃어대는 나를 번갈아가며 쳐다보았다. 너희들 왜 이래? 그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귀연은 어느새 이쪽으로 달려와 마른빨래를 집어들듯 냉큼 승규의 몸을 잡아들었다. 으으, 승규는 짓눌린 신음을 내뱉었다. 괜찮아. 귀연은 승규를 잡은 채 난간 위를 걸었다. 내 마음속의 두꺼비란 놈은 더욱 큰 소리로 웃어댔다. 승규가 부르짖었다. 내려줘, 어서 내려줘. 그러나 귀연이는 그를 내려주지 않았고, 승규는 곧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귀연이 앞에서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겁을 내서는 안된다는 것을 상기해낸 것이다.
그렇게 육교를 건너간 우리는 그 건너편의 고급 주택가에 이르렀다. 큰길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우리는 낯선 땅, 낯선 나라에 들어선 것 같았다. 주택가에 들어서자마자 귀연은 다시 담장 위로 뛰어올랐다. 승규가 다시 기겁을 했으나 귀연은 태연했다. 야야, 도둑으로 오해받을까봐 무섭다. 그녀는 웃었다. 담장 위를 이렇게 걸어다니는 도둑은 없어. 도둑은 담장을 뛰어넘어 들어가지. 난 그런 건 안 무서워. 내가 말했다. 내려와. 그냥 걸어가자. 귀연은 지금 걷고 있잖아, 하고 대답했다. 나는 승규에게 말했다. 넌 정말 괴상한 애를 사랑하는구나. 나와 승규는 밑에서, 귀연은 위에서, 우리는 이층집 삼층집 사층집이 즐비하고 골목에 가득 차가 엎드린 그곳 주택가를 순례하였다.
귀연이가 담장 위를 걸으며 문득 입을 열었다. 우리 엄마는 맨날 기도를 해. 무당도 기도하냐? 승규가 물었으나 그녀는 얘기를 계속했다. 그 기도를 하지 않으면 땅속의 모든 악한 귀신들이 다 쏟아져나와서 이 세상을 차지하게 된대. 벌써 악한 귀신들이 너무나 많이 쏟아져나와서 세상이 이 모양이래. 그러니까 엄마가 하루라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이 세상은 완전히 악한 귀신들 차지가 되어버리고, 그렇게 되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지금처럼 사는 것마저 불가능하게 된대. 지금은 저 작은 민둥산 하나라도 차지하고 살지만, 저런 산 하나도 차지할 수가 없게 되고 마는 거야. 무섭지? 난 그런 게 무서워. 승규는 이제 심각하게 그녀의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온 도시가 다 잠들어 있었다. 아니, 다 죽어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거리낌없이 큰 소리로 얘기하고 웃어댔고, 귀연이는 나비처럼, 새처럼 이 집 담장에서 저 집 담장으로, 유리 조각이 박힌 담장에서 철조망이 쳐진 담장으로 뛰어다녔으나, 우리를 막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셋만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귀연이 얘기하고 있었다. 사람은 귀신이 되기 위해 태어나는 거래. 지금 여기 사는 게 목적이 아니라 나중에 귀신이 되는 게 태어나는 목적이래. 착한 귀신이 될 수도 있고 악한 귀신이 될 수도 있대. 그런데 악한 귀신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대. 그래서 엄마는 기도를 그칠 수가 없대. 귀연이는 나와 승규를 담장 위로 끌어올렸다. 쭈볏쭈볏하면서도 나와 승규는 담장에 걸터앉았다. 우리의 발 아래로는 거대한 향나무와 소나무, 석상과 동상 따위로 꾸민 정원, 연못과 분수, 황금으로 빚은 유리창과 황금으로 빚은 계단과 황금으로 빚은 처마와 문설주, 황금으로 빚은 기둥과 서까래, 황금으로 빚은 처마와 기와로 지어진 집이 있었다. 너희들 내가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생각하지? 귀연이가 물었으나 나도 승규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동네 아이들 사이에는 귀연이는 당골네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낳은 아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왜 하필이면 그런 얘기를 꺼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보다는 다른 얘기, 재미있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아니야. 우리 아버지는…… 귀신이야. 무슨 귀신? 최영 장군 귀신. 그것이 당골네가 모시는 귀신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귀연이는 최영 장군의 딸이란 말인가? 귀연이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대답한 순간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나도 모른다. 그냥 알았다. 갑자기 승규가 우린 모두 아비 없는 호로자식들이다, 하고 선언했다. 너희들은 아버지가 있잖아. 귀연이가 말하자 승규는 고개를 저었다. 없는 거나 마찬가지야. 우리 아버지는 외항선 타고 외국에 나간 게 아니야. 그건 어머니가 만들어낸 거짓말이야. 사실은 감옥에 들어가 있어. 강도질을 했대. 바로 이런 담장을 뛰어넘어, 이런 집에 들어가서…… 돈을 훔치다가 붙잡혔어. 나는 놀랐다. 승규는 머뭇거리다가 덧붙였다. 그래도…… 귀신 아버지보다는 낫다고 해야 하는 건가? 귀연이가 나를 쳐다보았다. 그 잠깐 사이에 나는 깨달았다. 나 역시 아비 없는 호로자식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비는 늘 지방의 건설공사장으로 나돌았다. 서너달에 한번씩 집에 돌아오면 몇날며칠 동안 잠만 자고, 술만 마시고, 또 잠만 자다가 어느 날 내가 학교에서 돌아와보면 그는 이미 다른 공사판을 찾아 떠난 뒤였다. 그러나, 승규의 생각은 달랐다.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어머니들은 거짓말쟁이들이니까. 니 아버지가 돌아다니는 데가 공사판인지 노름판인지 야바위판인지는 아무도 몰라.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나 승규는 자신있게 덧붙였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아버지가 외항선 타고 있는 줄로만 알았어. 어느 쪽이건 우리 셋이 모두 아비의 슬하에서 자라고 있지 못한 것만은 사실이었고,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아비 없는 호로자식이라는 그의 선언은 옳았다. 귀연이는 그러나 고집스러웠다. 난 아니야. 내 아버지는 최영 장군이야. 나는 승규를 돌아보았다. 네가 사랑하는 앤 정말 괴상한 아이야. 귀연은 내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난 널 사랑해. 하지만 넌 날 사랑하지 않아. 넌 누굴 사랑하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는 입을 열었다. 아니, 입을 연 것은 내가 아니었다. 내 마음속에 너무나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사랑과 두꺼비가 마침내 최초로 제 목소리를 찾아내어 대답하고 있었다. 그놈은 귀연이 엄마,라고 말하지 않았다. 당골네,라고 말했다. 내 마음속에서 작은 별이 출렁이듯 크게 반짝거렸다. 뭐? 너 미쳤어? 승규가 비명처럼 소리쳤다.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귀연이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백살이나 천살쯤 된 사람처럼 말했다. 우린 왜 늘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는 걸까? 승규가 시무룩하게 말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귀연이가 다시 말했다. 어째서 우리는 늘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을 소망하는 걸까? 승규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중얼거렸다. 순서대로 한다면 귀연이 엄마는 날 사랑해야 하는 건데……
먼동이 트기 시작할 무렵에야 우리는 달동네로 향했다. 나는 담장을 팔랑팔랑 걷는 귀연이를 바라보다가 내가 당골네를 발견한 날 그녀가 민둥바위에서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3
우리 식구들이 그곳으로 이사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2학년 때였다. 빚에 쫓긴 아비 어미는 한밤중에 발자국 소리마저 죽여 고향에서 도망을 나와야 했다. 이웃집의 개들이 짖어댔고, 나는 난생 처음 개 짖는 소리가 내 뒷덜미를 물어뜯는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나를 지켜보는 먼 하늘의 초승달마저 무서웠다. 우리 식구들은 마을을 같이 빠져나오지도 못했다. 나는 어미와, 형은 아비와, 그리고 누이는 혼자서 사이를 두고 띄엄띄엄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밥그릇과 숟가락, 시커먼 양은냄비, 그리고 고물 트랜지스터 라디오, 어미가 챙길 수 있었던 짐은 그것이 모두였다. 이불도 가져올 수 없었다. 영등포역에서 내렸을 때 마주친 괴물 같던 건물들, 바다처럼 넓은 거리, 그 거리에 가득 차 있던 분주함, 빼곡히 들어차 있던 차들과 사람들, 높다랗게 나를 굽어보던 신호등이 생각난다. 나는 그런 것들을 두리번거리며, 신호등보다 형편없이 키가 작은 아비에게 물었다. 우리 사는 동네는 어디야? 아비는 대답했다. 달동네란다.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달동네! 얼마나 멋진 이름인가. 동네 어귀에 도착했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검은 산을 가득 뒤덮은 무수한 별들이었다. 별들이 아주 가까이 내려앉아 빛나고 있었다. 붉고 노랗고 흰 별들이 촘촘히 박힌 동네, 그곳이 어째서 달동네인지를 나는 알았다. 내 가슴 깊은 곳에서 기대와 설렘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그것이 별이 아니라 판잣집 창문으로 새어나오는 불빛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도, 우리가 살 집이라는 것이 사실은 집이 아니라 눈곱만한 방 한 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된 다음에도 내 기대와 설렘은 그 비좁은 방 한 칸을 외면한 채, 처음 그 달동네를 멀리서 바라보던 날의 무수한 별들과 더불어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비와 어미, 나와 형, 그리고 누이가 그 비좁은 방 한 칸에서 다 같이 자야 했다. 등으로 눕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한쪽 어깨로 누워도 갑갑했다. 형은 숨이 막혀 잘 수가 없다고 투덜거리다가 마루로 나가버렸다. 이불도 베개도 없었으므로 아비는 옷을 입은 채로, 눕기 직전까지 비워낸 소주병에 옷을 둘둘 감아 베고 잤다. 누이는 벽에 기대어 잤다. 어미는 자지 않았다. 밤새도록 울었다. 나는 어미의 흐느낌을 자장가 삼아 어미가 벗어준 치마를 덮고 잤다.
기이한 동네였다. 집에 변소가 없었다. 우물도 없었다. 우습게도 똥을 누기 위해서도 물을 먹기 위해서도 돈을 내야 했다. 공중변소 앞에는 사람들이 늘 줄을 지어 늘어서 있었고, 공동수돗가는 늘 사람들과 가지각색의 양동이들로 뒤덮여 있었다. 사람들은 사나웠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아무렇게나 욕설을, 그것도 지독한 욕설을, 형제들끼리, 식구들끼리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었다. 얼굴이 하나같이 새카맸는데, 그것은 고향 마을 사람들의 시커먼 얼굴 같은, 햇빛에 그을고 일에 시달린 검은빛이 아니라 짜증과 분노, 괴로움과 절망에 찌든 검은빛이었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집을 다닥다닥 붙여 짓고 살면서도 그들은 서로 정답지 않았다.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이웃과 이웃이, 아비와 어미가, 아비와 자식이 다투고, 주먹다짐을 하고, 몽둥이질에 칼부림까지 해치웠다. 그 동네 사람들은 사람들끼리 싸워도 말리지 않았다. 구경만 했다. 잘 웃지도 않았다. 게을렀다. 더러웠다. 툭하면 이웃사람이, 친구의 형이, 아비가, 누이가 절도다, 폭력이다, 강도다, 강간이다, 사기다, 하여 경찰들에게 잡혀갔고, 어느 날 갑자기 이웃집에 낯선 사람이 나타나는데, 그들은 그날 감옥에서 나온 그 집 아비이거나 형이었다. 사람이 살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가 아니라 망가지지 위해, 서서히 죽어가기 위해,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세상이라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곳인지를 입증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네였다.
이사온 지 몇달이 지나지 않아 나는 그곳이 싫어졌고, 아비 어미가 싫어졌고, 형도 누이도 싫어졌고, 사람이 싫어졌으며, 살기가 싫어졌다. 내가 적어도 한 가지 위로를 발견한 것은 몇달이 지난 뒤였다. 언젠가는 나는 죽을 것이다. 그것은 처형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곳에서의 삶은 이미 처형을 위한 심판이니까. 나는 생일을 축하한다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스러웠고, 나를 낳은 아비와 어미가 증오스러웠으며, 내가 태어난 이 세상에 염증이 났다. 나는 여기 사는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주받은 한 마리 짐승에 불과했다. 나의 저주가 시작된 날은 내가 태어난 날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이 세상이 통째로 나를 저주하기 위해 마련된 것은 아닐까. 이 세상이 시작된 날, 나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채로, 이미 나에 대한 저주는 시작된 것이 아닐까.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저주가, 아직 까마득한 세월이 더 흐른 뒤에야 태어날 무수한 사람들의 저주가 시작된 날 역시 이 세상이 시작된 바로 그날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오직 그때 시작된 저주를 완수하기 위하여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 저주 가운데서 나의 연인을 발견한 것이다.
나의 연인을 만난 날을 어떻게 얘기해야 할까. 그날 아침 깨어났을 때 내가 처음 느낀 것은 동네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기이한 정적, 예감으로 가득 찬 정적이었다.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다가 나는 예감으로 짓눌린 하늘과 예감으로 잔뜩 무거워진 먹구름을 보았다. 학교로 가기 위해서는 달동네 비탈길을 걸어내려가야 했으나 나는 비탈길을 역방향으로 걸어올라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알 수 없는 예감이 맥박처럼 온몸 구석구석에 고동치는 것을 느끼며, 비탈길을 걸어올라가 마침내 쓰레기가 널린 민둥산 꼭대기 민둥바위에 이르렀다. 이따금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 그곳에 올라와본 적은 있었으나, 혼자서, 그런 시간에 거기 올라간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아니, 어쩌면 내가 올라간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예감이, 나중에 나의 연인에 대한 예감이라는 것으로 밝혀진, 그러나 아직은 뭐가 뭔지도 알 수 없었던 기이한 힘이 나를 그곳으로 이끈 것이라 해야 할지도 모른다.
민둥바위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나는 눈이 부셔 손을 들어 이마에 가져갔다. 그러나 소용이 없었다. 여자는 촛불처럼 빛을 내는 듯했다. 예감으로 가득한 구름 속에 묻힌 해가 희미하게 흩뿌리는 빛이 그 여자의 치마저고리에 부딪는 순간 돌연 폭발하듯 증폭되어 반사되는 것 같았다. 나는 멀거니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두 손을 합장하고 먼 하늘을 바라보며 입안으로 오랫동안 뭔가를 뇌고 또 뇌더니 엎드려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자세로 절을 했다. 엎드렸다가 일어선 그녀는 다시 합장을 하고, 뭔가를 간구(懇求)하는 듯 절절한 얼굴로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나는 희고 깨끗한 얼굴이 빛을 발하는 그녀를 홀린 듯 지켜보았다. 호리호리하고 작은 몸집에 머리칼 한 올 흩어지지 않도록 야무지게 쪽찐 머리도 빛을 발했다. 다시 그녀가 오체투지로 엎드렸다. 그녀와 더불어 나의 마음속에서 또하나의 내가 엎드렸다. 그녀가 일어나 먼 하늘을 향해 간구할 때면 나의 내부에서 또하나의 나도 따라서 간구하였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그녀가 왜 여기 올라와 있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하나, 그녀가 아름답고 깨끗하다는 것, 이 동네와도, 거기 사는 사람들과도 어울리지 않는 아름다움과 깨끗함이 그녀의 몸 전체에서 스스로 빛을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몇번이나 절을 했던가? 얼마나 오래 절을 하고 있었던가? 그런 기억은 이미 나에게는 없다. 어쩌면 그녀는 하루 종일 절을 했고, 나는 하루 종일 그녀를 지켜보고 서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극히 짧은 동안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녀가 거기, 거대한 철탑 아래, 쓰레기밭 한 귀퉁이에 커다란 쓰레기처럼 놓인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그 집에 흰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을 보고서야 나는 그녀가 무당이라는 것, 다름아닌 귀연이의 어미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천천히 걸어 민둥산 꼭대기에서 내려왔으며, 그때부터 내 마음속에서는 낯선 별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나는 틈만 나면 민둥산 민둥바위로 올라갔다. 뭘 어떻게 해보겠다는 생각도, 그녀를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기대 같은 것도 없었다. 골목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치면 나는 애써 그녀를 외면하고 고개를 숙인 채 스쳐 지나갔다. 고개를 들면, 그녀의 그 깊고 맑은 눈에 노출되면 내 마음속에 감춰진 별이 당장 들켜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면서도 나는 그녀를 처음 발견한 곳으로 올라가기를 그치지 않았다. 올라가면 촛불처럼 빛나던 그녀를 생각하며 멍하니 민둥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올라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마음속에 빛나는 별빛은 점점 더 크고 형형해졌고, 점점 더 외로워졌으며, 그 외로움에 내 입술은 바작바작 타들어갔다. 그러나 나의 연인은 결코 내 사랑을 알지 못했다. 내 사랑에 응해온 것은 나의 연인이 아니라 그녀의 어린 딸 귀연이였고, 나의 연인에게 나는 언제까지나 가끔 불러들여 굿을 한 뒤 남은 떡이나 과일, 고깃점을 나눠줄 수 있는, 어린 딸의 친구에 불과했다.
그녀를 통해 나는 한 가지 중대한 사실, 즉 이 세상이 오직 저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저 희게 빛나는 나의 연인이, 그녀를 향해 내 가슴에 타오르는 이 별이 어찌 저주일 수 있단 말인가. 그 깨우침으로 나는, 나의 삶은 바뀌었다.
4
승규는 귀연이를 사랑하여 그녀에게 입맞췄다. 귀연이는 나를 사랑하여 나에게 입맞췄다. 나는 당골네를 사랑했으나 그녀에게 입맞출 수 없었다. 나는 당골네의 달 같았다. 당골네를 중심으로 공전하였다. 귀연이는 나의 달, 나를 중심으로 공전하였고, 승규는 귀연이의 달, 귀연이를 중심으로 공전하였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결국 당골네를 축으로 하여, 그녀가 움직여가는 궤도를 따라 서로를 중심으로 공전하며 우주를 유영하고 있었다. 가난뱅이들이 짓밟힌 몸뚱이를 누이기 위해 도시의 버려진 산자락에 가까스로 마련한 달동네는 우리의 우주였다. 그러나 그 달동네가 파괴되고 말 운명이라는 것이 곧 알려졌다. 철거가 계획되고, 그 땅 위에 지어질 아파트의 입주권이 배부되었으며, 입주권은 배부되기 전부터 이미 다른 동네 사람들에게 매매되기 시작했다. 얼마요? 백만 깎읍시다. 내가 이사비용은 조금 붙여드릴 테니까. 얼마 준대? 얼마 드리면 되죠? 얼마에 팔았대요? 얼마 받았어요? 동네에서 가장 많이 오가는 대화는 그런 것이었다. 비좁은 골목 복덕방 앞에는 때아닌 자가용들이 줄을 지어 늘어서고, 온종일 다른 동네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지폐 뭉치와 수표 뭉치와 입주권 다발을 품고 들락거렸다. 동네가 갑자기 술로, 고기로 흥청거리기 시작했고, 몇몇 가구는 입주권을 처분하고 이사를 떠났다. 그 동네가 파괴될 예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나의 민둥산, 나의 민둥바위, 거기 서서 기도를 올리는 나의 연인과 그녀의 딸, 그리고 그들의 집, 나의 성지였다. 나의 연인은 어디에 가서 기도를 올려야 하는 것일까? 당골네가 떠나면 나는 무엇을 중심으로 공전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의 우주가 파괴되면 우리들은 어디에 우리의 좌표를 설정해야 하는 것일까? 그러나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월세 입주자와 전세 입주자와 집주인이, 큰 집을 소유한 사람과 작은 집을 소유한 사람이, 서로 다른 크기의 아파트 입주권을 놓고 다퉜고, 입주권 받기를 거부하고 철거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들 모두를 상대로 하여 싸우기 시작했으며, 입주권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전세나 월세 입주자들, 그리고 신축 아파트의 입주 조건에 불만을 품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가담했으며, 그러면서도 입장이 다른 서로가 서로와 끊임없이 싸우고 흠집내고 괴롭히고 비웃고 욕했다. 그들을 통하여 나는 흥정이나 매매 역시 싸움의 한 방법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았다. 돌연 우리의 우주는 싸움터가 되었다. 철거반원들이 삽차와 지게차 등을 끌고 올라왔다가 프로판가스통과 폐품이 된 자동차 바퀴들과 기름통으로 만든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세숫수건이나 보자기 따위로 얼굴을 가린 달동네 주민들과 싸움을 벌였다. 귀연이는 철거반원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아, 저 사람들, 저 사람들은 패패어를 너무 많이 잡아먹었어. 내가 패패어가 무어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무서워, 무서워, 할 뿐이었다. 돌멩이와 몽둥이, 쇠파이프와 곤봉, 최루탄과 화염병이 날았고, 여기저기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고, 비명과 통곡이 터져나오고, 부상당한 사람들은 병원으로, 경찰들에게 붙들린 사람들은 경찰서로 실려갔다. 민둥산 민둥바위에 올라선 당골네의 기도는 점점 더 길어지고, 점점 더 간곡해졌으며, 반복되는 오체투지의 절은 날이 갈수록 격렬해져 그녀는 마치 민둥바위 속으로 파고들어가려는 것 같았고, 이제 그녀의 기도가 무엇인지를 아는 나는 그것을 지켜보며 혼자 애를 태웠고, 그녀의 기도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랐다. 날 좀 도와다오. 이리 올라와 같이 기도하자. 문득 그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을 때 나는 기겁을 했으나 곧 나의 연인의 말에 복종했다. 그녀 옆에서 서투르게 오체투지의 절을 반복하면서 내가 염원한 것은 무엇이었던가? 나의 사랑이었던가, 선한 귀신이 많아지는 것이었던가? 아니면 그녀의 붉은 입술에, 끊임없이 선한 귀신들을 불러일으키는 기도를 반복하는 그녀의 귀기(鬼氣) 서린 입술에 입맞추는 것이었던가? 어쩌면 그랬는지도 모른다. 나는 엎드렸다가 일어나 두 손바닥을 허공으로 들어올리는 잠시 동안에도 그녀의 붉은 입술을 몇번이나 훔쳐보고 또 훔쳐보았으니까. 내 입술에 닿던 귀연의 입술을 떠올리며, 그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슬픈 촉감을 떠올리면서 내 입술이 당골네의 붉은 입술에 닿는 것을 상상했으니까. 그녀의 옆에서 몇시간 동안이나 오체투지를 반복했지만, 그리하여 이튿날에는 온몸이 쑤시고 결려 걸을 수도 없었지만, 내가 그녀를 도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더없이 행복했고 더없이 불행했다. 낯선 행복, 낯익은 불행, 낯익은 안타까움이었으나, 나는 그것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를 이미 알고 있었고, 알면 알수록 나의 갈증은, 안타까움은 더 강렬해졌다. 나는 사랑하는 여인의 단 한번의 미소를 위하여 나라의 모든 군대를 장난감처럼 이리저리 옮기고 희롱하여 나라를 무너뜨린 황제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단 한번의 입맞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에게 나라가 있다면 나라를, 군대가 있다면 군대를 바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연이와 승규, 그리고 나는 밤이 깊어지면 전쟁터가 되어버린 우리의 우주를 벗어나 여전히 야간 순례를 계속했다. 귀연이는 점점 더 높은 담장으로 날아올랐고, 덕분에 우리들도 점점 더 높은 담장에 걸터앉아 세상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때로는 5층이나 10층 아파트의 베란다나 옥상 난간에, 전선기둥에, 으리으리한 고급주택의 담장이나 지붕에 올라앉아 꼬박 밤을 새우며 우리는 얘기를 나누었다. 귀연이가 자신에게도 신이 내렸다는 얘기를 한 것은 우리의 우주가 전쟁터가 되어버리기 며칠 전이었다. 어떤 귀신을 받았는데? 고산자(古山子) 김정호 귀신. 김정호? 대동여지도를 만든 그 사람 말이야? 귀연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청도 김씨 김정호. 지도를 만들기 위해 30년 동안이나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고 다녔어. 하지만 축적 1만 6천 분의 1로 정밀하게 만든 대동여지도를 대원군에게 바쳤더니, 대원군은 그 사람을 감옥에 내던졌다가 끌어내어 목을 베어버렸어. 그 김정호가 내 몸에 들어왔어. 아아아아아…… 돌연 귀연은 몸을 틀며 내 가슴에 쓰러졌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녀를 껴안은 꼴이 되었다. 승규가 눈에 퍼렇게 불을 켜고 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그보다는 갑자기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귀연이 때문에 그는 당황하여 어쩌지, 어쩌지, 하며 지붕 위를 서성거렸다. 나는 그녀의 몸이 뜨거워지는 것에 놀랐다. 마치 뜨거운 물주전자를 껴안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아아…… 귀연은 허공을 향해 두 다리를 벌리고 내 목을 껴안은 채 이상한 신음소리를 계속해서 내질렀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가 없었으나 나는 그녀의 신음소리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았다. 승규와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그녀의 입에서 뜨거운 신음소리가 비눗방울처럼 밀려나와 어두운 허공으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온몸이 땀으로 촉촉이 젖은 채 의식을 되찾았다. 지금…… 몸주님이 들어왔다가 가셨어. 승규가 물었다. 어, 어떻게? 그녀는 다시 두 다리를 벌리고 그 사이를 가리켰다. 여기로. 승규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멀거니 그녀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제 막 만났다가 헤어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얘기하는 성숙한 여인처럼 그리움에 흠뻑 취한 어조로 말했다. 나의 몸주님이, 불쌍하게도 망나니의 칼에 목숨을 잃은 나의 몸주님이. 학교에서 그분에 대해 배운 건 다 엉터리야. 그분의 목적은 단순히 이 땅의 생김생김을 지도로 만드는 게 아니었어. 단순히 이 땅의 생김생김을 알기 위해 평생을 다 바친 것이 아니야. 그분은 그 지도를 통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곳, 어떤 지도에도 표기될 수 없는 곳을 확인하고, 그곳으로 넘어가려 한 거야. 이 땅을 넘어, 이 세상을 넘어. 양 같은 범이 살고 범 같은 양이 사는 곳, 금 같은 돌이 나고 돌 같은 금이 나는 곳, 꽃 같은 비가 내리고 비 같은 꽃이 피어나는 곳, 별 같은 노래가 있고 노래 같은 별이 빛나는 곳, 곰과 사람이 혼례를 치르고, 물고기와 새가 나란히 하늘을 나는 곳, 담장 같은 뜰이 있고 뜰 같은 담장이 있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곳이 아니라 모든 사랑이 고스란히 성취되는 곳, 친구와 친구 어미가 사랑을 이루고, 서로가 서로를 향하여 별이 되고 달이 되는 곳…… 자기를 사랑해주지 않는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일이나 이룰 수 없는 것을 바라는 일 같은 것은 절대로 벌어지는 법이 없는 곳. 대원군이 나의 몸주님을 처형한 것은 단순히 그 지도 때문이 아니라 몸주님이 그런 곳으로 넘어가려 했기 때문이었어. 대원군은 담장을 더 만들고 더 높이 세우는 것으로 이 땅에 그런 나라를 만들려고 했는지 모르지만 몸주님은 그런 방법으로는 그런 나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셨거든. 지금 나의 몸주님은 그곳에 살고 계셔. 나에게…… 가끔 찾아와 그곳 소식을 들려주시는데, 그때마다 나는…… 너무나 황홀해서…… 그녀의 얼굴이, 온몸이 분홍빛으로 환해졌다. 그럼 너도 무당이 되어야 하는 거냐? 몰라, 아직은. 몸주님은 그런 말씀은 안하셔. 아직도 지도 생각만 하셔.
며칠 뒤 사회시간에 선생님이 지리부도를 펼쳐놓고 산맥과 강, 석탄과 텅스텐, 철광석과 석회석 등 각 고장의 지형과 특산물을 설명하고 있을 때 귀연은 갑자기 일어나서 말했다. 이 지도는 엉터리예요. 경계선과 경계선, 담과 담뿐이에요. 잘못되었어요. 진짜 지도가 아니에요. 그게 무슨 소리냐? 선생님은 짜증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북쪽으로 280리를 가면 대함 산이 있고, 그 산에는 나무나 풀 같은 건 자라지 않지만 옥이 많이 나고, 돼지 같은 털로 뒤덮이고 딱딱이를 두들기는 것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뱀이 살고, 계속해서 320리를 가면 돈홍산, 계속해서 200리를 더 가면 소함산이 있는데, 그 산에서는 사람의 얼굴에 소의 몸에 말의 발을 가지고 어린아이 같은 소리로 울면서 사람을 잡아먹고 사는 짐승이 살고, 거기 흐르는 물에는 패패어라고 하는 이상한 물고기가 사는데, 그 물고기를 많이 잡아먹은 사람은 결국은 사람을 죽이게 되고…… 그런 길이 표기되어 있는 지도가 진짜 지도예요. 선생님은 엄격한 얼굴로 말했다. 복도에 나가서 두 손 들고 서 있어. 귀연은 말했다. 정말인데. 두 손 두 발 다 들고 서 있어. 선생님이 다시 명령했다. 귀연은 밖으로 나가면서도 다시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정말인데. 그런 게 진짜 지돈데. 선생님은 이번에는 고함을 질렀다. 네 손 네 발 다 들고 서 있어.
수업이 끝나고 복도로 나온 아이들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귀연이가 정말 네 손 네 발을 들고 서 있었던 것이다. 내가 말했다. 넌 정말 괴상한 아이를 사랑하는구나. 승규가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얼마나 멋지냐! 선생님은 당황하여 부르짖었다. 내려, 귀연아. 어서 다 내려!
5
전투가 계속되면서 철거지역은 차츰 확장되었다. 아래쪽부터, 전투경찰과 철거반원들, 구청과 동회의 직원들은 차츰차츰 달동네 주민들을 밀어붙이고 올라왔고, 그들이 점령한 지역의 집들은 삽차의 요동 한번으로, 망치질 몇번과 몽둥이질 몇번으로 쓰러져 폐허가 되었다. 집을 철거당한 주민들은 후퇴하는 군인들처럼 위쪽으로 밀려 올라가 남의 집 마루를 빌리거나 빈터에 천막을 치고 거기에서 밥을 끓이고 잠을 자면서 버텼으나, 이튿날에는 그 지역까지도 점령을 당했고, 그러면 더욱 많은 주민들이 남의 집 마루로, 장소를 옮겨 친 천막으로 모여들었으며, 그 사이에 일부 주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욕설을 퍼부으며 또다른 무허가 판자촌을 찾아 떠나갔고, 일부 주민들은 부상을 당하여 병원으로 실려가거나 체포되어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주를 거부한 주민들 삽십여 명이 마지막으로 밀려난 곳은 민둥산 꼭대기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불과 며칠 전까지 가져다버린 쓰레기 옆에 천막을 쳤다. 거기, 높다란 철탑 아래 이제 마지막 남은 한 채의 집이 서 있었고, 거기 높다랗게 매달린 흰 깃발은 바람을 따라 미친듯 나부꼈다. 인자 마지막이여. 내일은…… 여길 쫓겨나거나 경찰에 끌려가거나…… 양단간에 결정이 나겄지. 아이고, 징허고 징허다, 이놈의 세상살이. 이 꼴 당헐라고 십여 년을 그 고생으로 버텼든고…… 밤이 깊자 어른들은 쓰레기 위에 불을 피우고 돼지고기를 굽고 소주잔을 나눴다.
귀연이가 나를 불렀다. 나와 승규는 그녀를 따라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엌문은 굳게 잠겨 있었고, 안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당골네는 보이지 않았다. 귀연이가 하자는 대로 우리 셋은 마루 끝에 놓인 떡과 과일, 돼지머리를 들고 나와 민둥바위 앞에 늘어놓았다. 귀연이가 제물들을 정리하는 사이 나는 다시 집안으로 들어갔다.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이어붙인 부엌문 앞으로 다가간 나는 판자 사이의 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 당골네가, 물이 담긴 커다란 함지박 안에 들어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나는 홀린 듯 그것을 지켜보았다. 훔쳐보고 있다는 생각도, 부끄럽다거나 무섭다는 생각도 없었다. 심장이 당장 몸뚱이 밖으로 뛰쳐나올 듯 격렬히 박동하였다. 어느 순간 당골네가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눈부시게 흰 몸이 고스란히 내 눈앞에 드러났다. 저 대나무 끝에 매달린 흰 깃발처럼, 그녀의 몸이 희게 타올랐다. 눈이 부셨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나의 연인이 말했다. 들어와라. 나는 그녀의 명령을 거역할 수 없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두 팔을 내밀어 나를 부드럽게 껴안았고, 다음 순간 그녀의 입술이 내 입술로 다가왔다. 그 입술의 부드러움으로 내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오래 전부터 홀로 빛나던 내 마음속의 별이 별똥별처럼 타올랐다. 그녀가 한숨처럼, 노래처럼 흥얼거렸다. 어쩌끄나 어쩌끄나 나 죽으믄 어쩌끄나……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그녀가 나를 놓아주고 옷을 입기 시작했고, 나는 그 집을 나왔다. 귀연이와 승규는 민둥바위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다. 나도 그들 옆에 가서 앉았으나 아직도 눈앞에서는 당골네의 흰 몸이 타오르고 있었고, 귓속에서는 그녀의 흥얼거림이 메아리처럼 계속되고 있었다. 어쩌끄나 어쩌끄나 나 죽으믄 어쩌끄나 착헌 귀신 좋은 귀신 어느 누가 대접하고 어느 누가 북돋아서 악한 귀신 나쁜 귀신 막아내고 쫓아내어 우리 세상 지켜내꼬…… 당골네가 녹의홍상(綠衣紅裳)을 떨쳐입고 오색한삼(五色汗衫)까지 늘어뜨리고 집에서 걸어나왔다. 소주잔을 기울이던 사람들이 놀라 그녀를 주시하였다. 당골네는 민둥바위 위로 걸어올라가 한들한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방울이 쩔렁거리고 삼신부채가 펄럭거렸다. 천막으로 들어갔던 주민들까지 하나둘 민둥바위 앞으로 몰려들었다. 바람이 불어 종잇조각과 비닐주머니 따위의 쓰레기가 허공으로 날아올랐고, 당골네 집의 흰 깃발도 춤추듯 펄럭거렸으며, 당골네의 몸도 깃발처럼 펄럭거렸고, 어둠 속에서도 멀리 국회의사당과 한국방송공사는 흰 조명 속에 유령처럼 떠 있었다. 못 먹고 못 입어 원혼 되고 한혼 된 혼신네 애저녁에 가고 청춘에 가고 칼 맞어 가고 총 맞어 가고 오다 죽고 가다 죽고 서서 죽고 앉어 죽고 누워 죽고 우로 죽고 좌로 죽고 비명객사에 노중객사에 돈 없어 죽고 돈 많아 죽고 계집 없어 죽고 계집에 치여 죽고 사내 없어 죽고 사내에 치여 죽고…… 총각 죽어 몽달귀신 처녀 죽어 명두귀신 애기 죽어 동자귀신 각시 죽어 사귀혼신…… 황천해원신 황천해원신 황천해원신이요오…… 귀연이 내 손을 잡았다. 그녀의 눈이 내 눈을 깊숙이 파고들며, 내 손 안에서 그녀의 작은 손이 꼬무락거리며 무슨 얘기인지를 전했다. 승규는 그녀와 나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그녀의 남은 한 손을 움켜쥐었다. 나는 당골네를 향하여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내 손을 마주 잡는 것이 아니라 방울과 삼신부채를 쥐고 겅중겅중 뛰었다. ……일기제왕님은 핏줄을 마련허고 왕신제왕님은 젖줄을 마련허고 낮제왕은 이심줄을 마련허고 거리 안토제왕은 태방석을 마련허고 일신이 탄생허실 적에 아버님께 뼈를 빌고 어머님께 살을 빌어…… 쩔렁쩔렁 방울이 울고 펄럭펄럭 당골네의 몸이 흩날렸다.
날이 밝아오면서 눈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철거반원들이 삽차에 지게차를 앞세우고 올라왔다. 눈보라 속에 그들은 알 수 없는 나라에서 들어온 침울한 군대처럼 보였다. 눈곱을 떼어내며 어른들이 몽둥이와 돌멩이를 찾아 쥐었으나 그들은 이미 전의(戰意)나 투지보다는 슬픔과 절망감으로 압도당한 듯 보였다. 희끗희끗한 바위 위에서 그때까지 오체투지를 계속하고 있던 당골네가 내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녀는 내 손에 방울과 삼신부채를 쥐어주며 중얼거렸다. 어쩌끄나 어쩌끄나 나 죽으믄 어쩌끄나 착헌 귀신 좋은 귀신 어느 누가 대접하고 어느 누가 북돋아서 악한 귀신 나쁜 귀신 막아내고 쫓아내어 우리 세상 지켜내꼬…… 그때야 비로소 나는 그녀가 죽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이제 그녀는 귀신이 될 것이다. 최영 장군은 당골네를 통하여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김정호는 귀연이를 통하여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그렇다면 당골네는 누구를 통하여 돌아올 것인가? 나는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것 같았다. 당골네가 겅중겅중 뛰며 더욱 큰 소리로 흥얼거렸다. 한빙지옥을 여우고 금수지옥을 여우고 그마지옥을 여우고 토산지옥을 여우고 독사지옥을 여우고 칼산지옥을 여우고 철산지옥을 여웠으니 인자는 왕들을 여우리라 왕은 초제왕은 진광대왕 이제왕은 초관대왕 삼제왕은 송제대왕 사제왕은 오관대왕 오제왕은 염라대왕 육제왕은 변성대왕 칠제왕은 태산대왕 팔제왕은 평등대왕 구제왕은 도시대왕 열제왕은 전륜대왕 여웠나이다…… 그 소리와 더불어 당골네는 맨발로 삽차를 향해 치달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인지 짐작할 틈도, 말릴 틈도 없었다. 그녀는 깃발처럼 펄럭이며 달려가 삽차에 부딪쳤고, 삽차가 멈춰선 것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 나서도 몇번이나 바퀴가 더 구른 다음이었다. 동네 어른들이 고함을 지르며 삽차로 달려가 기사를 끌어내었고, 전투경찰들이 덤벼들었으며, 다시 최루탄과 곤봉과 몽둥이와 돌멩이가 날아 싸움이 시작되었고, 그러나 잠깐 사이에 달동네 주민들은 쓰레기밭으로 밀려났다. 승규가 나를 붙잡아 멀리 하늘을 가리켰다. 당골네의 집 위, 높다란 새벽 하늘 밑 검은 송전 철탑에 귀연이가 올라서 있는 것을 나는 보았다. 눈보라 속에서 그녀는 송전탑 위를 걷고 있었다. 팔랑팔랑 나비처럼 그녀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어느 새 승규도 송전탑 위로 기어오르고 있었다. 나는 절렁절렁 방울을 흔들기 시작했다. 삼신부채는 혼자 생명을 가진 듯 흥겹게 너풀거렸다. 나는 겅중겅중 뛰며 부르짖었다. 한빙지옥을 여우고 금수지옥을 여우고 그마지옥을 여우고 토산지옥을 여우고…… 지게차가 짐승처럼 덤벼들어 지붕을 베어물자 당골네의 집이 무너져내렸고, 철탑이 번쩍번쩍 불꽃을 토하며 무너져내렸고, 민둥산이 무너져내렸고, 하늘과 땅이 뒤엉켜 쏟아져내렸고, 우리의 우주가 한꺼번에 붕괴하였고…… 나는 귀연이가 네 손 네 발을 다 치켜들고 하늘 높이 나비처럼 날아가는 것을 보았고, 승규가 그녀의 손에 매달린 것을 보았으며, 나의 방울과 삼신부채는 저 혼자 절겅절겅 팔랑팔랑 흔들리고 펄럭거렸고, 나는 당골네의 음성으로 부르짖고 있었다. 독사지옥을 여우고 칼산지옥을 여우고 철산지옥을 여웠으니 인자는 왕들을 여우리라 인자는 왕들을 여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