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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Bollnow 2024. 3. 21. 06:00

구스타프 김의 슬픈 바다

전유선

 

구스타프 김이 죽었다.

내가 구스타프 김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출근하고 나서도 한참 시간이 지난 열 시경이었다. 간부회의를 마친 후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고 막 담배에 불을 붙였을 때 탈북자 관리를 맡고 있는 정보7처장 김상기 중령이 들어와 구스타프 김이 지난 밤 운명했다고 짤막하게 보고했다.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었다. 그의 죽음은 예견된 것이었고, 나는 그가 하루라도 빨리 고단한 삶을 마감하기를 바랐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예상과 바람도 막상 현실에 부딪히고 보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커다란 유리창이 한꺼번에 부서져 내리는 듯한 허망함에 나는 망연자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실종된 지 다섯 달 만에 강화도 철산리 접적지역에서 행려병자로 발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던 보름 전만 해도 나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강제로 입원한 보훈병원 특별실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나서 나는 그러한 바람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던가를 철저히 깨달았다. 그는 다섯 달 새에 완전히 변해 있었다. 바싹 여윈 시커먼 얼굴에 퀭한 두 눈. 변한 것은 그의 외모만이 아니었다. 우리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선 증오의 벽은 어느새 무쇠처럼 단단히 굳어 뚫고 들어갈 조그마한 틈새도 허용하지 않고 있었다.

차라리 그가 내게 욕지거리라도 해대면서 악다구니를 썼다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한마디 말 없이 나를 응시하기만 했다. 삼십여 분간의 차가운 응시, 그것이 결국 그와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그는 이십여 년 간 피붙이처럼 가까웠던 우리의 관계를 무언의 질책으로 마감하기로 한 것이다.

그는 의사의 치료를 완강히 거부했다. 의사의 손이 몸에 닿으면 악을 쓰면서 날뛰어 최선을 다하려는 의료진들을 곤혹스럽게 했다. 사흘 전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까지는 링거 주사바늘조차 제대로 꽂지 못할 정도였다.

철저한 공산주의자인 그는 사후세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스스로 죽음을 택한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자신의 소망대로 맞이한 죽음에 진실로 만족해하고 있을까. 그리고 이제야 비로소 나는 그 무거운 짐을 벗게 되는 것일까. 장례식과 함께 그의 파일도 소각되면 이 세상에서 그를 기억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복수의 칼을 갈던 북한 인민무력부도 하릴없이 그에 관한 자료를 갈아엎는 것으로 만족해야 할 테지. 하지만 나는. 살인자라고 외쳐대던 그 무언의 질책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파렴치한 인간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아마 영원히 그렇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를 구스타프 김이라고 불렀다.

내가 사진으로만 얼굴을 익혔던 그를 처음 만난 것은 20년 전 스웨덴 주재 무관으로 부임한 지 한 달쯤 되던 그해 겨울 스웨덴 국왕 구스타프의 생일 리셉션이 열린 국왕 관저에서였다.

무관 부임을 축하합니다. 같은 동포끼리 잘 지내보기요.” 불쑥 다가와 악수를 청한 그는 내게 뭐라고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바로 옆에 서 있던 스웨덴 국방차관에게 몸을 돌리더니 알아들을 수 없는 유창한 스웨덴어로 한동안 농지거리를 해댔다.

그것은 의도적인 무시이며 도발이었다. 따라서 한 마디로 건방진 동무인 그에 대한 나의 첫인상은 불쾌함뿐이었다.

참사관 김준. 1946927일 황해도 해주 출생. 평양 보통강 노동자 3구 거주. 64년부터 69년까지 스웨덴 왕립대학에서 국제정치학 수학. 국제정치학 석사.76년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관 부임. 미혼. 부수상 김춘기의 차남.’ 스웨덴 외무성에서 입수한 인물카드는 그가 소위 그 사회의 핵심 엘리트이며 위대한 수령 동지의 열렬한 추종자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스웨덴 주재 북한 대사관내 서열은 3위입니다만 대사는 허수아비이고 그가 전권을 행사하는 것이 아닌가 의심되는 사례가 자주 관측되고 있습니다. 각국 대사관원들은 모두 그를 스웨덴 국왕에 빗대어 구스타프 김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그의 영향력이 상당히 크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입니다.” 정보담당 오 서기관의 설명에 잠시 호기심이 일었을 뿐 그것으로 끝이었다. 위해 행동을 벌이지 않는 한 그에게 신경을 쓸 여유는 없었다. 대사관을 개설한 지 일 년 남짓한 그 당시 몇 안 되는 인원으로 쏟아지는 업무를 처리해 나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몇 번인가 이런저런 자리에 그와 동석한 일이 있었지만 대화는 없었다. 따라서 그가 나를 접속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행길에서 스쳐 지난 수많은 풍경들처럼 내 기억 속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해가 바뀌고 여름 휴가철이 끝날 무렵 바사 호텔 아이리스 홀에서 신임 수상 취임 경축 리셉션이 열렸다.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을 때 파란 눈의 금발 웨이트리스가 은밀하게 다가와 구스타프 김이 보냈다는 메모를 한 장 건네주었다.

내일 저녁 8시 보른스트로 28번가 공중전화 4번 부스.’ 몇 잔 걸친 브랜디가 불러일으킨 기분 좋은 취기가 순식간에 사라지며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뇌리를 스쳤다. 리셉션이 끝난 뒤 대사관에서 열린 작전 회의에서 대사는 단독 행동만 아니라면 큰 위험에 빠지지 않을 것이므로 구스타프 김의 제의를 접수한다고 결론지었다.

보른스트로는 비요른 공원을 우회하는 작은 도로로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한적한 곳이었다. 정각 8, 28번가 공중전화 4번 부스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코스모스-1, 노인과 바다 펭귄북 74년 판. 전화번호부 표지 안쪽 스카치테이프.” 무관한 사람에게 그것은 흔히 볼수 있는 흑백 필름의 네거 한 장일 뿐이다. 하지만 코스모스-1이라는 키워드가 작용하면 그것은 마이크로 난수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코스모스-1, 그것은 십여 년 전에 개발한 난수로 조작하기는 쉬우나 보안이 허술하다는 약점이 있어서 실전에는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 단지 기초 암호 교육용으로만 쓰이고 있는 것으로 중요한 비밀사항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 방식을 정확히 알고 있다는 사실은 커다란 놀라움이었다.

‘220820 762406 341201 812711,220820 380101(망명을 받아주겠느냐. 대사관 직원 전원이 후세에 길이 빛날 훈장을 받을 수 있는 중요한 정보를 주겠다. 접수 의사가 있으면 내일 대사관 국기 왼쪽 하단에 붉은 점을 그려 달아라. 차후 연락은 밤 열시에 내가 전화로 하겠다. 암호는 아이리스와 큐빅.)’ 긴급 대책회의에서 대사는 자신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므로 본부의 지시에 따라 행동하자고 결론을 내렸다. 서둘러 보낸 암호 전문에 본부는 차후 지시까지 대기하라는 간단한 회신을 내려 보내고는 새벽이 다가오도록 침묵했다. 백야의 태양이 지평선을 타고 숨바꼭질하며 반 바퀴 돌아 동쪽 창에 희미한 얼굴을 들이밀 때쯤에는 대사관 직원 모두가 파김치가 되고 말았다. 그때에서야 본부로부터 지시가 내려왔다.

일단 접수. 진행사항 즉각 보고. 차후 행동 지침은 추후 지시 예정.’ 조국을 떠나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던가. 대사관 국기 게양대에 붉은 점을 그려 넣은 국기를 내걸자 교민들로부터 대사관원들의 불성실과 태만을 질타하는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그러나 그날 밤 열시 그토록 기다렸던 전화벨 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결국 일주일을 무의미한 기다림과 긴장 속에서 보낸 후 대사는 자신의 경솔한 판단에 따른 과오를 인정하며 구스타프 김의 망명 문제를 공식적으로 종결하기 바란다는 내용의 전문을 본부에 발송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사는 구스타프 김이 개설한 지 얼마 안 되는 우리 대사관의 업무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장난질을 친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했다. 그러나 본부의 분석은 그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암호 체계를 파악하기 위해 치밀하게 계획한 공작이었다는 것이며, 대사의 판단 착오로 전 공관의 암호 체계를 변경해야만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었다. 암호 체계 변경에는 많은 성가신 작업이 필요하겠지만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일주일간 구스타프 김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동안 북한 대외연락부가 우리의 암호 체계를 파악하고서 전 대사관과 외무부 간에 오고 간 암호 전문 내용을 모두 해독했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대사는 즉각 경질되고 나머지 공관원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징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대사관 전체는 문상객 없는 초상집처럼 가라앉았다.

그로부터 사흘 후, 대사관에 출근하자마자 나는 대사로부터 긴급 호출을 받았다. 대사의 방에는 이미 공관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만 것인가. 착잡한 마음으로 방에 들어서니 대사는 침통한 얼굴로 신문 한 장을 치켜들며 집게손가락으로 어떤 인물의 사진을 가리켰다. 뜻밖에도 그것은 구스타프 김의 사진이었다. 스벤스카 다그블라데트자 1면 상단을 그의 싱글거리는 프로필이 장식하고 있었고 그 사진 위로는 큼직한 활자가 왕관처럼 덮여 있었다. 무슨 기사일까. 더듬거리며 표제 활자를 읽어가던 나는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교통사고로 외교관 사망.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외교관 김준.’ 당시 내 스웨덴어 구사력으로 상세한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것은 공관원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오 서기관이 스웨덴어·영어사전을 갖다놓고 단어를 찾아가면서 기사 내용을 해독하려 했으나 장님 코끼리 만지듯 사건의 추이는 오리무중이었다. 스웨덴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일을 맡고 있는 헨더슨 양이 출근하고 나서야 비로소 정확한 내용을 알 수 있었다.

‘29일 밤 10시경 스톡홀름 북방 252번 국도상 유프란 제지공장 진입로 인근 절벽에서 스웨덴 주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대사관 소유의 볼보 승용차가 추락, 화염에 휩싸인 것을 주민이 발견하여 경찰에 신고. 전소된 차량 내부에서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시체 한 구 발견. 북한 대사관은 사망자가 김준 참사관이라고 확인. 외무성 고위 관계자는 사망한 김 참사관이 열흘 전부터 실종 상태에 있으며 자살 가능성이 크다고 언급.’ 저녁 무렵 본부로부터 짧은 지시가 내려왔다.

김준은 이탈 의도가 탐지되어 자체 처단된 것으로 판단됨. 북한 공관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여 이상상황 발생시 신속 보고할 것.’ 북한 공관은 밤늦도록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알 길이 없었다. 열흘 새 십년은 나이를 더 먹은 듯 초췌해진 대사는 북한 대사관 주변에 21개조의 감시조를 배치하라고 지시하고는 자신의 관저로 돌아갔다.

자포자기하거나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도통 방향을 잡지 못할 때 사람의 마음은 더 편안해지는 것일까.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한밤중 전화벨이 울렸다. “아이리스.” 수화기 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구스타프 김의 암호였다. 반가움이 울컥 치밀어 나는 자신도 모르게 발악하듯 소리쳤다.

큐빅,큐빅.반복한다.큐빅.” “아이리스.아이리스가 말한다. 230113 053520 381618, 110501(내일 밤 열시. 스톡홀름 3번 부두 북쪽 제방. , 단독면담.)” 구스타프 김은 아무 감정도 싣지 않은 단조로운 목소리로 코스모스를 말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가 끊어진 후 나는 한동안 식은땀을 흘리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가 죽은 것이 아니란 말인가. 그러면 그 시체는 도대체 뭘까.

백야의 여름밤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서울의 궂은 날처럼 음울한 회색빛이었다. 황량한 스톡홀름 3번 부두에는 드문드문 화물차가 서 있을 뿐 사람 그림자는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대형트럭 사이에 차를 세우고 사방을 둘러보았다. 열시 정각. 30m쯤 떨어진 창고에서 불빛이 반짝였다. 사라졌던 불빛은 금세 다시 나타나 깜빡이기 시작했다.

, 저거 모르스 부호모르스 부홉니다.악속을지켜서고맙다. 창고 안으로오기 바란다.” 뒷좌석에 몸을 숨기고 있던 오 서기관이 속삭였다.

이건 너무 위험하다.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면서 전율을 느꼈다. 하지만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긴다는 비장한 각오로 걸음을 옮겼다. 반쯤 열린 창고 문이 모진 북해의 바람을 받아 삐걱삐걱 음산한 신음소리를 내고 있을 뿐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오 서기관에게 엄호를 부탁한 후 나는 콜트 리볼버를 움켜쥐고 어둠에 몸을 내던졌다.

무엇인가에 발이 걸려 고꾸라지는 순간 창고 문이 닫혔다. 사방은 시린 어둠이었다. 오 서기관이 부서져라 문을 흔들어대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황급히 몸을 세웠다.

이봐, 밖에 있는 놈은 뭐이야?” 질책하는 목소리가 방향을 알 수 없는 곳에서 낮게 울렸다.

오 서기관이오. 당신도 잘 알고 있는. 당신 신변을 보호하려면 나 혼자로는 무리라고 생각했소.” “신변 보호? 내가 신변 보호 해달라고 말했던가? 멍청하기는. 쓸데없이 간참하려고 하지 말라우.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함정이라고 생각한 모양이지? 그래, 당신들은 사람을 납치할 때 이런 유치한 방법을 쓰는가?”

구스타프 김의 비난이 속사포처럼 이어졌다.

미안, 미안. 사실 믿을 수가 없었어. 당신이 이런 경우에 처한다면 당신 역시 나처럼 행동하지 않을까.” “웃기지 마.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내가 당신과 같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썩어빠진 미제의 앞잡이들.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에게 어떤 후과가 오는지 이 자리에서 보여줄까?”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그러나 구스타프 김을 진정시킬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되는 대로 소리쳤다.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었소. 오해하지 마시오.” 잠시 수상쩍은 침묵의 시간이 흐른 뒤 구스타프 김이 낮고 단호한 음성으로 외쳤다.

좋다, 들여보내.” 나는 앉은뱅이처럼 어둠을 더듬어 잠겨진 문고리를 풀었다. 갑자기 창고 문이 왈칵 젖혀지자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며 허둥대는 오 서기관의 실루엣이 눈앞에 어지러웠다. 오 서기관의 리벌버는 표적을 찾지 못한 채 가늘게 떨고 있었다.

오 서기관, 아무 일도 없어. 걱정하지 마. 총 치우고 이쪽으로 들어와.” 구스타프 김이 밝힌 손전등을 가운데 두고 세 사람이 마주앉았다. 구스타프 김은 낡은 청바지와 미 공군 파카 차림에 텁수룩한 턱수염을 달고 지저분한 장발의 가발까지 쓰고 있었다. 북구에서 흔히 눈에 띄는 일본인 히피 여행자의 모습이었다.

김준씨, 교통사고 기사를 보고 우리는 당신의 망명 의도가 노출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따라서 어젯밤 우리에게 다시 연락을 했을 때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망명을 원한다면 우리 대사관으로 직접 찾아오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요? 당신의 행동은 불신을 자초한 것입니다.” 한숨 돌린 오 서기관이 해명을 요구했다.

그런 식으로 내가 이곳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어? 안이하구만. 썩어빠진 자본주의의 쓰레기들. 당신들은 늘 그 따위로 일을 처리하는가? 도대체 당신들은 믿을 수가 없어. 내 방식대로 하겠어.” 구스타프 김은 눈을 치켜뜨며 오 서기관을 힐난했다.

당신 방식? 그래서 유프란 교통사고도 조작해 낸 거라 그 말입니까? 완벽한 도주 방식이라. 저쪽도 바보는 아닐걸. 금방 알아내고 말텐데 너무 무리한 거 아닌가요?” “천만에. 알아내지 못해. 완전히 타버렸어.” 구스타프 김은 경멸하는 눈초리로 오 서기관을 노려보았다. 숨을 몰아쉬며 뭔가를 말하려는 오 서기관을 제지하면서 나는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유프란에서 죽은 자는?” “일본인 히피거나 떠돌이 화교겠지. 예테보리에서 배회하는 놈을 술을 한 잔 사주고 꾀었어.” 구스타프 김의 두 눈은 물에 젖은 듯 번득이고 있었다. 그것은 광기였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아무라도 쉽게 죽일 수 있는 자만이 갖고 있는 광기. 그러한 광기는 앞으로 그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지도 모른다. 불안한 예감이 엄습했지만 나는 그의 망명을 저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헛된 공명심에 사로잡혀, 혹시라도 그가 마음이 변해 떠나버리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했다.

우리가 할 일은?” “남조선으로 데려다 주시오. 절대 비밀로.” “알겠소. 그러면 연락은?” “밤 열시 정각 내가 전화를 하리다.” “지난 열흘간 연락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저쪽 사람들도 청맹과니는 아니오. 잠적 상태에서 저네들의 눈을 속이며 움직이느라 시간이 많이 필요했소.” “망명 이유와 정보는?” “지금은 말할 수 없어. 일이 순조롭게 끝나면 그때 말하지. 난 일주일 이상은 기다리지 않아. 일주일 후에도 당신들이 완벽한 계획을 마련하지 못하면 나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오.” 일주일 후 새벽안개가 자욱한 예테보리 항을 출항한 덴마크 선적의 유람선 블루버드는 구스타프 김을 무사히 코펜하겐 항에 안착시켰다.

동행한 오 서기관으로부터 신병을 인수한 덴마크 주재 대사는 그를 육로로 파리로 데려갔고 파리에서 그는 대한항공기를 타고 무사히 남조선 땅에 발을 내딛었다, 그가 쏟아낸 정보는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등 북구 3개국에 주재하고 있는 북한 대사관원들이 마약을 밀수한다는 정보였다. 방콕에서 사들인 아편을 외교 행낭에 싣고 들어와 현지 갱 조직의 하수인들을 통해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스웨덴 내무성은 즉각 북구 주재 북한 대사관의 마약 밀수에 대한 수사를 비밀리에 착수했다. 두달 후 사건 전모가 공식 발표되었고 북한 대사관원은 전원이 추방되었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었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을 등지고 삐죽이 솟은 노루봉이 어느새 단풍으로 칠갑을 하고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영원히 계속될 듯 여름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는데 이미 세상은 붉은 가을이었다. 곧 눈이 내리겠지. 한 인간이 죽는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계절이 정해진 순서에 따라 해마다 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것처럼 그 빈자리는 곧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는 법이다. 내 자리 또한 잠시 후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듯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가 십년 전 가을에 바라보던 노루봉의 저 핏빛 단풍은 지금과 같은 것일까. 그렇지 않다. 지금 붉게 물든 저 단풍은 단지 예닐곱 달 전에 수줍은 얼굴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 아니던가.

장례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담배에 새로 불을 붙이려고 창에서 몸을 돌리자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김상기 중령이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말을 걸었다.

, 아직까지 거기 있었나? 미안하네. 유언은 없었을 테고.유서 같은 것도 없었나?” 유서가 있을 턱이 없지만 나는 확인하고 싶었다.

병실에서 소지품 외에 특이한 것은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런가. 문상객이 없더라도 하룻밤 정도 빈소를 차리는 것이 망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겠지. 오늘 밤만 빈소를 차리고 내일 중으로 우이동 무연고지 묘지에 매장하도록 하게.” 분노도 슬픔의 한 가지 표현 방식이 될 수 있는 것일까.

김 중령이 물러난 후 나는 치뻗는 분노에 몸을 떨었다. 그것은 대상을 찍을 수 없는 막연한 분노였다. 어쩌면 나 자신에 대한 분노인지도 모른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삭여 줄 마땅한 화풀이 대상을 찾지 못해 나는 한동안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때 책상 한 귀퉁이에 놓여 있는 꽃병이 눈에 띄었다.

김준, 이 엉터리 바보새끼야!” 나는 미치광이처럼 소리치며 꽃병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구스타프 김은 4년 전부터 고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파리 주재 무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바쁜 중에도 구스타프 김과는 꾸준히 전화와 서신 연락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인가부터 그가 침묵했다. 여름 휴가중 틈을 내 귀국해서 그의 보디가드로 일했던 정보본부 수사관 김창우 하사를 만나고서야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지난 봄 구스타프 김이 신입생을 인솔하여 강촌으로 MT를 갔을 때 사건이 터졌습니다. 십년 이상 아무 일 없었기에 보호 등급은 3급으로 내려가 있었습니다. 초임 수사관인 제가 경험 삼아 스웨덴어과 조교로 위장하여 그의 신변을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나마도 여름에는 보호 등급을 해제하고 철수할 계획이었습니다. 학보나 삐딱한 정치학회에 좌경 논문을 발표해서 담당 과장은 골치깨나 썩었지만, 저야 뭐 평온한 나날이었죠.” “좌경 논문을? 구스타프 김이?” “뭐라더라. 스웨덴 공산주의 운동의 좌절 원인과 교훈, 스웨덴 복지주의의 허상. , 이런 것들을 자꾸 떠들어댔습니다. 골수 빨갱이라며 당장 집어 처넣자는 사람도 있었고. 안에서 정말 굉장했습니다. 그런 거 빼고는 조용했죠. 하지만 구스타프 김은 그들이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고 그들이 나타나자마자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그들? 그들이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2인조 특수 공작팀이 내려왔습니다. 구스타프 김이 지난 가을 중국 조선족 교포를 해주에 들여보냈는데 연락이 끊어졌답니다. 배신했거나 아니면 붙잡혔겠죠.” “해주에?” “몰라서 물으시는 겁니까? 박주희를 빼내오겠다는 거였죠.” 박주희. 문제의 핵심은 박주희였구나. 결국 언젠가는 올 일이 마침내 오고야 말았구나. 김 수사관의 입에서 박주희라는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나는 눈앞이 아득해지며 캄캄한 절망감을 느꼈다.

예테보리에서 블루버드를 타기 직전에 구스타프 김은 내게 무리한 요구 조건을 제시했다. 해주 제2사범대학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는 박주희를 빼내 달라고 했다. 불가능한 요구였다. 하지만 그 당시 한 건을 올리겠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었던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덜컥 약속을 해버렸다. 한국 땅에 들어온 이후에도 한동안 구스타프 김은 주희를 데려오면 정보를 제공하겠다고 버텼다. 그러나 결국 언젠가는 데려다 준다는 약속을 하는 선에서 타협했다. 협상 과정에서 집요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려 했던 것과는 달리 그 후 그는 한 번도 자신의 담당관에게 주희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타협을 하면서 그는 결심했을 것이다.

나는 네놈들을 믿지 않는다. 내 방식대로 하겠다. 결국 속에서 곪고 있던 상처가 터지고 만 거였다.

강촌 사건에 관해 자세히 듣고 싶네.” “민박집에서 막 짐을 풀고 있는데 커튼 사이로 창밖을 내다보던 구스타프 김이 말하더군요. ‘예비로 갖고 있는 총이 있으면 한 자루 주게. 하루에 같은 얼굴을 세 번이나 봤다면 의심해야겠지? 저기 한 놈, 공중전화를 걸고 있는 잿빛 파카. 그리고저쪽 벤치에 앉아서 신문을 보고 있는 청바지. 아침에 교문 옆에서 서성거리고 있더니 아까 화도 휴게소에서는 커피를 마시고 있더군.’ 여느 상춘객과 다름없는 평범한 모습의 사내들이었습니다. 구스타프 김이 귀띔해 주지 않았으면 당했을 겁니다. 소형 베레타를 건네주고 만반의 준비를 갖추었죠.” “지원 요청은 하지 않았나?” “그 일 때문에 나중에 징계를 먹었어요. 솔직히 믿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새벽 두시에 정말 치고 들어오더군요. 구스타프 김이 한 놈은 생포해야 한다기에 무리를 하다가 어깨에 한 방 맞고 말았죠. 먼저 들어오는 놈을 제가 급소를 질러 쓰러뜨리고 구스타프 김이 뒤에 들어오는 놈을 쏘기로 했죠. 그런데 예상과는 달리 두 놈이 거의 동시에 뛰어드는 바람에 시야가 막혀 뒤에 들어서는 놈을 구스타프 김이 바로 잡을 수 없었어요. 놈은 쓰러지기 전에 두 방을 날릴 여유가 있었죠. 그 중 한 방이 여기에 푸욱. 불을 켜니 먼저 뛰어들다가 쓰러진 녀석이 독약 앰풀을 물고 있더군요.” “구스타프 김은 지금 어디 있나? 그리고 상태는?” “모릅니다. 어느 보호소인지에 수용되어 있다는 것 밖에는. 강촌에서 돌아온 이후 그는 완전히 미쳐 버렸어요. 알리지 말았어야 했는데. 위에서 구스타프 김에게 박주희는 이미 오래 전에 죽었으니 헛된 일벌이지 말라고 경고했다더군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죠.” “왜 그런 말을? 그냥 묻어두는 것이 올은 일 아니었을까?” “보복이죠. 그렇게까지 뒤를 봐줬는데 그럴 수가 있나 하는. 활용할 가치가 없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거구요.” “주희라는 여자. 정말 죽었나? 구스타프 김도 자기 나름대로 이리저리 정보를 모으고 다녔을 텐데 박주희가 죽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우리도 강촌에서 일이 터지기 얼마 전에야 겨우 알았습니다. 사건이 나기 보름 전에 해주 인근 지역 고등중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던 사람 하나가 목선을 타고 넘어왔는데 그 친구가 해주 제2사범대학 출신이었습니다. 박주희를 잘 알고 있더군요. 부수상 김춘기의 집안이 풍비박산 나고 얼마 되지 않아 자살했답니다. 상당한 미모로 학생들 사이에 인기가 대단했기 때문에 자살 사건이 크게 센세이션을 일으켰답니다.” “그런가.” 죽고 말았구나. 구스타프 김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박주희는 스스로 죽음을 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영원한 기다림, 그것 또한 사랑의 본질 가운데 하나가 아니던가. 그러면 구스타프 김은? 그가 여태껏 삶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언젠가는 박주희를 다시 만난다는 희망 때문이 아닐까. 그가 북에 두고 온 사람들 가운데 박주희만이 유일하게 생존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던 만큼 그 희망은 더욱 간절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유일한 희망마저 사라졌다면. 그 역시 자살을 기도하지 않았을까. 나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보호소에는 왜? 그냥 풀어 놔두지 않고.” “강촌 사건이 일어난 후 보호 등급도 해제하고 풀어놓았죠. 될 대로 되라는 거였죠. 그런데 계속 말썽을 일으키는 거예요. 고급 룸살롱에서 술을 퍼마시고 돈을 내지 못하겠다고 종업원들과 싸움판을 벌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술에 취해 투박한 평양 사투리로 고래고래 소리치면서 적기가를 불러대기도 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파출소에 붙들려 들어왔어요. 그 친구 정말 대단하대요. 레드마운틴에서 한 판 붙었을 때는 덩치가 이만한 건달 일곱을 순식간에 때려눕혔대요.” 휴가 기간이 짧았던 데다 이것저것 처리할 일들이 많아서 나는 그를 만나보지 못한 채 파리로 출발했다. 아니, 처리할 일들이 많았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다. 하려고만 했다면 어떻게 하든 틈을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고의로 바쁜 일을 만들면서 차일피일 그와의 만남을 미뤘다. 그를 만나기가 두려웠다. 구스타프 김이 적어도 자살을 꾀하고 있지는 않다는 안도감도 그와의 만남을 뒤로 미루는 데 한 몫을 했다. 일단 소나기는 피해 보자는 심정이었다.

어느새 밤이 깊었는지 잉크를 쏟아부은 듯 짙푸른 밤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산등성이에서 한 뼘쯤 높이로 막 조각달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달을 마주보며 차는 영안실로 향하는 한적한 뒷길로 접어들었다.

본부장님, 피곤하신 모양이죠? 이제 다 왔습니다. 그나저나 오늘 따라 영안실 입구가 아주 을씨년스러운데요.” 앞좌석에서 부관 최 소령이 룸 미러를 통해 눈을 맞추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 소령의 말대로 영안실 주변은 두꺼운 어둠에 짓눌린 묘지처럼 황량했다. 귀에 익은 울음소리도, 단조로운 스님의 독경소리도, 쉬어터진 찬송가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썰렁한 독방에 구스타프 김의 빈소가 마련되어 있었다. 근무 사병인 이등병 두 명이 무료한 표정으로 입구에 앉아 있을 뿐 빈소는 절간처럼 고요했다. 내가 유일한 조문객인 것이다.

흰 국화꽃으로 장식한 제단에 향을 피우고 예를 올렸다. 사병 하나가 부리나케 상을 펴고 종이컵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한 잔을 더 따라 제단 위에 놓고 구스타프 김의 사진을 마주했다. 사진 속의 구스타프 김은 막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는 장난기어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외대 스웨덴어과 교수로 정착한 무렵의 사진인 듯했다. 그때가 그의 짧은 한국 생활 중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을 것이다.

사진 속의 그가 나를 보고 빙긋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노래를, 그가 내 앞에서 자주 부르곤 했던 북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학교 가는 길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내 머리의 빨강 리본 꽃인 줄 아나 봐요. 달려가다 돌아봐도 따라오며 팔랑팔랑 꽃밭에는 가지 않고 나만 자꾸 따라와요. 랄라라 랄랄라 자꾸자꾸 따라와요.’ 예테보리에서 구스타프 김을 블루버드에 태운 후 내가 그를 다시 만난 것은 3년 후 본부 발령을 받아 귀국하고 나서였다. 점잖고 실력 있는 교수로 변신한 그는 거의 완벽하게 한국 생활에 적응했다. 짤막짤막 끊어 가며 끝 부분마다 어색하게 억양을 올리던 선동적인 말투도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학가에서 생맥주를 마시고 조용한 카페로 자리를 옮겨 양주 몇 잔을 비운 후 그가 나직한 목소리로 나비노래를 불렀다.

약속을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어려운 일이죠. 기다리는 것은 더 어렵구요. 나는 주희가 생각날 때면 이 노래를 부릅니다. 고등중학교 시절 내가 써보낸 편지의 답장 첫머리를 주희는 이 동요로 시작했어요. 내가 이 나비처럼 줄레줄레 뒤를 따라다니는 게 무척 안쓰러웠답니다.”

주희 문제에 대해서는 정말 미안합니다. 그렇지만 현재 나로서는 어떻게 할 방법이 없군요.” “일없어요. 당신 잘못만은 아니니까. 잊지 않고 누군가가 생각해 준다면 언젠가는 다시 만날 날이 있겠지요. 주희는 잘 있을 겁니다. 당시 우리 사이를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으니까요. 따라서 내가 사라졌다고 해서 주희가 해를 입을 이유는 없는 거지요.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지금의 나처럼.” 구스타프 김은 모든 것을 포기한 듯한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물론 전적으로 내 잘못은 아니지만 주희 문제에 대해서는 당국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미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구스타프 김이 망명한 직후 나는 실현 불가능한 망명 조건을 자의로 수락한 것에 대해 본부로부터 심한 질타를 받았다. 그런 무리한 요구는 망명을 허용하기 전에 해결했어야 할 문제였다는 것이다. 나는 구스타프 김이 망명했으니 주희에게 때를 기다리라는 연락을 해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올리기도 했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내려온 것은 더욱 더 심한 질책뿐이었다.

구스타프 김의 초연한 자세 때문이었을까. 내가 서울에서 근무했던 다섯 해 동안 우리 가족은 그와 아주 가까운 친척처럼 허물없이 어울렸다. 야구광인 큰애는 주말마다 구스타프 김과 야구장을 순례하는 게 큰 일과였다. 만능 스포츠맨인 그는 아이들에게 축구와 농구를 가르쳐 주었고 아이들은 그런 그를 무척 따랐다. 학교에서도 그는 외교관인 아버지 덕에 스웨덴에서 중·고등학교와 대학을 마친 유복하고 유능한 교수로 인정받고 있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평온한 시절이었다. 게다가 독신이라는 점이 많은 여학생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고, 수시로 쏟아놓는 정통하고 해박한 마르크스 이론은 학생들을 열광시켰다. 물론 그는 마르크스의 이론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데 그쳤고, 북한의 주체사상과 김일성 독재 체제에 대해서는 사이비 공산주의라며 날카로운 비판으로 일관했다. 따라서 당국에서도 주의 깊게 관찰만 할 뿐 제재는 하지 않았다.

이러한 성향은 정통 마르크시스트인 그의 아버지 김춘기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정통 마르크시즘으로 회귀할 것을 기치로 내걸고 김일성과 정면 대결을 벌였던 김춘기는 패배하여 종파분자라는 이름 아래 처형되었다. 불안을 느낀 김춘기는 자신이 체포되기 한 달쯤 전부터 사람을 시켜 매일 하루에 두 번 구스타프 김의 숙소로 안부 전화를 걸도록 지시했다. 세 번 신호음이 울리고 끊어지는 전화를. 그리고 구스타프 김에게 약속된 시각에 전화벨이 울리지 않으면 즉각 도피하라고 일러두었다. 밤 열두시 전화벨 신호가 침묵하자 구스타프 김은 곧바로 집을 나와 잠적했다.

자네는 미국으로 망명하거나 중남미쯤으로 숨어 버리지 않고 왜 한국을 택했나? 주희 때문인가 아니면 남조선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고 싶다는 야심 때문인가?” 어느 해 겨울 바닷가를 산책하면서 내가 이런 질문을 했다. 주희가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비중과 그가 학생들 앞에서 마르크스 이론을 자주 거론하는 까닭을 알고자 슬쩍 떠보았던 것이다.

둘 다.” “둘 다? 주희도 빼내오지 못하고 남조선 프롤레타리아 혁명 가능성도 사라진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어.” 깊게 밀려들어온 파도가 다리를 적시는데도 구스타프 김은 피할 생각을 하지 않고 우뚝 서서 차가운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았다. 가슴을 후비는 듯한 섬뜩한 그 눈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느새 소주병이 바닥을 드러냈는지 잔이 반도 차지 못해 술이 끊어지고 만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사병 하나가 소주 한 병을 들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레 다가온다.

아무리 마셔도 취할 것 같지 않은 날. 두 번째 병을 따 잔에 술을 따르고 허공에 응답 없는 건배를 청한다.

지난 봄 해외근무를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나는 보호소에 수용되어 있는 구스타프 김을 만났다. 간암 초기 진단을 받은 그는 눈에 띄게 수척해져 있었다. 보훈병원으로 이송을 준비하던 무렵이었다. 그는 싸늘한 시선으로 나를 맞이했다.

알고 있었지? 주희가 오래 전에 죽었다는 걸.”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좀 다정하게 대할 수 없겠나? 몰랐어. 4년전에야 겨우 알았지. 해주에서 탈출한 사람을 통해서.” “4년 전? 웃기는군. 해주에서 사람이 넘어오지 않았다면 아직까지도 모르고 있을 거라는 얘긴가? 당신은 분명히 내게 약속했어. 주희를 빼내오겠다고. 그런데 약속을 지키기는커녕 주희가 죽었다는 사실도 4년 전에야 겨우 알았다고? 그것도 어쩌다 걸린 정보로? 정말 웃기는군. 당신들은 철저히 나를 무시해 왔던 거야. 내가 망명한 직후 연락을 해주었으면 주희는 죽지 않아. 당신은 살인자야.” “살인자라고? 그게 어디 모두 내 잘못이던가. 내 잘못도, 자네 잘못도, 그리고 어느 누구의 잘못도 아니야.” 구스타프 김이 뭐라 소리를 지르며 몸을 날려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옆에 있던 보호관이 황급히 달려들어 떼어놓는 바람에 별 일은 없었지만 대화는 그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미안하네. 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 하지만 이제 뭘 어떻게 하겠는가. , 술이나 들게.’ 세 번째 병을 따고 있는데 부관 최소령이 휴대전화를 들이밀었다.

김상기 처장인데 급한 일인 모양입니다.” 휴대전화를 집어들자 스피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본부장님! 김상깁니다. 구스타프 김의 병실에서 난수가 발견되었습니다. 간호원이 침대 명패를 치우다가 뒤에 감춰져 있는 것을 발견했답니다. 난수 체계가 생소합니다만 지금 즉시 직원들을 불러 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난수? 숫자 여섯 개가 한 조로 되어 있지? 드문드문 쉼표가 있고.”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직원들은 부를 필요 없어. 내게 가져와. 구스타프 김이 내게 남긴 유서니까. 오는 길에 내 방에 들러 서가에서 펭귄 포켓북 노인과 바다를 함께 가져오게.” “구스타프 김이 병실에 남긴 소지품에 노인과 바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영문판이기는 합니다만.” “그래? 그거면 됐어. 내 방에는 들를 필요 없네.” 김처장이 가져온 구스타프 김의 유서는 대학 노트 두 장을 빼곡한 숫자로 가득 채웠다. 김처장과 부관 최소령을 집으로 돌려보낸 후 술잔을 밀어놓고 혼자 편지를 해독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숫자가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헝클어져 있었고, 칸을 채우지 못한 공간들이 듬성듬성했다. 혼신의 힘을 다한 마지막 절규인 것이다. 가슴이 아려오면서 눈물이 울컥 솟았다.

최형, 빈 병실에서 편지를 씁니다. 끝까지 쓸 수 있을지 자신이 없군요. 형에게만 이야기하고 싶어 코스모스를 사용합니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 재를 형이 간수하고 있다가 잊지 말고 형의 손으로 중국 고비 사막에 뿌려 주십시오. 이른 봄날 흙바람을 타면 그 가운데 몇몇은 해주까지 날아갈 수 있겠지요. 마지막까지 무리한 요구를 합니다.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을 문 격이라고 마음껏 욕해 주십시오. 미안합니다. 실현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이데올로기는 쉽게 팽개칠 수 있었지만 사랑은 팽개쳐지지 않았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한 열정은 이미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그 문제를 입에 올린 것은 아버지 때문입니다. 평생의 신념인 그것을 실현하고자 목숨까지 걸었던 가엾은 분. 남조선에서 마르크스의 이론을 정확히 전달하는 것이 그분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들을 곤란하게 한 점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예테보리에서 형에게 무리한 요구를 했던 것, 그리고 보호소에서 형에게 보였던 추태. 그 모든 것을 넓은 아량으로 용서해 주십시오. 해주에 보낸 사람이 돌아오면 중국에 들어가 단동에서 국경을 넘을 계획이었습니다. 주희와 함께 유럽이나 미국으로 잠적할 계획이었죠. 실패했지만.주희를 만날 수만 있다면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참고 기다릴 수 있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주희가 살아 있다면 또 다른 방법이 있었을 테지요. 하지만 이제는. 지난 봄에 병원을 탈출한 것은 해주에 숨어들어 주희의 무덤을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너무 늦었는지 몸이 말을 듣지 않더군요. 강화도에서 북의 해안을 바라보며 죽음을 기다렸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용서를.” 편지는 끝을 맺지 못한 채 중단되어 있었다.

이 바보 자식아, 무엇 때문에 용서를 비는가. 용서를 빌 사람은 오히려 내가 아닌가. 게다가 고비 사막, 고비 사막이라고? 그곳이 어디 마음먹은 대로 언제라도 쉽사리 갈 수 있는 곳이던가? 자네는 내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왜 또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하는 것인가? 어리석은 친구. 자네는 스톡홀름에서 왜 하필 나를 택한 것인가?” 사진 속의 구스타프 김은 여전히 싱글거리고 있었다.

떨어진 눈물방울에 글자가 얼룩덜룩 번져가고 있었다. 나는 구스타프 김의 유서를 곱게 접어 제단 위에 밝혀 놓은 촛불로 가져가 불을 댕겼다. 삽시간에 붉게 타오른 불덩이는 금세 사위고 검은 재가 사박거리며 날렸다. 푸른 연기를 타고 날아오른 검은 재는 멀리 가지 않고 어디선가 날아온 나비 떼처럼 훠이훠이 제단 위를 서성거렸다.

사진 속의 구스타프 김이 나를 쳐다보며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빙긋이 웃음을 터뜨렸다.

학교 가는 길에 노랑나비 팔랑팔랑 내 머리의 빨강 리본 꽃인 줄 아나 봐요. 달려가다 돌아봐도 따라오며 팔랑팔랑 꽃밭에는 가지 않고 나만 자꾸 따라와요. 랄라라 랄라라 자꾸자꾸 따라와요.’ 노랑나비 떼가 눈앞을 가득 채웠다.

어지럽게 날아오르는 나비 떼를 바라보며 나는 어느새 노래를, 구스타프 김이 내 앞에서 자주 불렀던 북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듣기만 했을 뿐 한번도 함께 부른 적이 없었던 그 노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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