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관계
유재용
나만큼 일자리를 많이 옮겨 다닌 사람도 드물 것이다.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을 합해 가지고도 그 수를 다 헤아릴 수가 없을 지경이니 말이다. 그러자니 이상한 일, 어처구니없는 일, 엉뚱한 일 을 적지 않게 겪어 보았다. 장현삼 씨 집에 들어가서 겪은 일만 해도 그랬다.
그해 여름 또 일자리를 잃고 빈들거리는 내 꼬락서니가 보기에 딱했던지 동네 복덕방 영감님이 손가락을 까딱까딱해 나를 불렀다.
"만복이, 자네 놀구 먹느니 다문 며칠 밥 얻어먹을 자리라두 들어가 보려나?"
"식구들이 피서 여행 떠나서 비어 있는 집 봐주는 일인가요?"
"지레짐작으루 아는 척 말구 생각 있는지 없는지나 말하게."
나는 며칠 동안 밥 얻어먹을 자리라도 들어가 보겠노라고 대답했다.
"들어가겠다니 말이네만, 그렇다구 해서 며칠 동안이라구 날짜가 딱 정해져 있는 건 아니야. 상 전 비위만 맞출 줄 알면 몇 해 동안이라두 붙어 있을 수 있는 자리란 말일세."
두 다리 못 쓰는 사람 시중들어 주는 일이라고 했다. 한데 일을 하겠다며 그 집으로 들어간 사 람은 오래 붙어 있지 못하고 뛰쳐나오곤 한다는 것이었다.
"먹여 주구 재워 주기만 하는 게 아니라 월급두 넉넉하게 준다는데, 상전 비위 맞추면서 진득 이 붙지 못하구 왜들 그렇게 서둘러 뛰어나오는지 영문을 모르겠구만."
사람을 구해 보내고 나서 며칠이 지나기가 바쁘게 사람이 나갔으니 새 사람 구해 달라고 전갈 이 온다는 것이었다. 공장이니 공사판이니 해서 일자리가 여기저기 쉽사리 굴러 다니는 판이라 개인집 심부름 따윈 눈에차게 여기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해 보기도 했다.
"저두 남 비위 맞추는 데는 젬병인데요."
나는 남의 가려운 곳 눈치로 알아내 가지고 살살 긁어 주는 일에는 별로 자신이 없었다.
"비위 맞춘다는 게 별난 짓하는 게 아니야. 시키는 일 고분고분 따라하면서 좀 언짢거나 고까 운 일 생기더라두 꾹 참구 견디구 하는 게 바루 비위 맞추는 게지."
그런 것이라면 나두 누구 못지않게 해낼 자신이 있다는 생각이었다. 건강한 몸과 참을성이야말 로 내가 지닌 재산의 전부인 것이다.
"어쨌든 들어가서 시중들어 보다가 정 못하겠거든 훌쩍 뛰쳐나와 버리게나. 자네두 훌쩍 뛰쳐 나오는 데는 선수 아닌가?"
그것은 잘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바로 말하면 수없이 많은 일자리를 옮겨 다녔지만 내가 먼저 일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상전의 노여움을 사서 쫓겨난 일도 없었다. 부득이한 일, 나를 부리던 사람이 세상을 떠났다든가, 이민을 갔다든가, 파산을 했다든가, 아니면 그 일자리 가 처음부터 기한부의 것이었다든가 했을 뿐이었던 것이다.
장현삼 씨를 처음 대했을 때 이 사람이 이제부터 내가 섬겨야 할 상전이라는 실감이 생겨나지 않았다. 진짜 상전이 어디서 나타나
"현삼이는 내 아들인데 앞으루 잘 돌봐 주게"
이렇게 말할 것 같았다.
장현삼 씨는 조그맣고 가냘픈 모습으로 안락의자 속에 푹 파묻혀 있었다. 더위로 드러내놓은 목줄기와 팔다리가 보기에 딱할 만큼 창백하고 가느다랬다. 안락의자에 편안히 기대고 앉아 있기 에도 힘들어 하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들 만큼 연약해 보였다.
"이만복 씨, 참 외우기 쉬운 이름이군요. 허지만 우리 집에 며칠 동안이나 머무르다가 떠나가시 려나?"
겉보기와는 달리 장현삼 씨의 말소리는 탄탄하게 힘이 배어 있었고 의젓했다. 나는 자리를 고 쳐 앉았다. 말소리를 들으니 장현삼 씨가 상전노릇을 제법 해낼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 다. 상전이란 이왕이면 넘보이는 쪽보다 우러러보이는 쪽이 나은 것이다.
"선생님이 필요 없으니 떠나 달라구 말씀하실 때까지 있겠습니다."
나는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보이며 말했다. 물그늘처럼 아스무레한 미소가 장현삼 씨의 입꼬리 와 눈꼬리에 잠시 머물렀다가 흩어졌다. 미소가 걷힌 눈꼬리에서 서릿발같이 싸늘한 빛이 뿜어나 왔다.
"복덕방 영감님한테 소개비 얼마나 줬나요?"
장현삼 씨가 여담이라는 듯 물었다.
"첫 월급 받으면 대포값이나 드리기로 했는데요."
"월급이라, 물론 월급 지급하지요. 오늘이 칠월 십오일이니까 팔월 십오일에 첫 월급 지급해 드 리지요. 두구 보시오. 절대루 섭섭치 않을 만한 액수가 될 테니까요. 헌데 이만복 씨가 첫 월급 손에 쥐어 보두룩 붙어 있을래나 모르지."
장현삼 씨의 눈빛은 내 가슴속을 헤쳐 보려는 듯 날이 서 있었다. 장현삼 씨에게 탄탄하고 의 젓한 말소리 말고도 싸늘하게 날선 눈빛이 있었다.
"제가 쓸 만한 인간이라구 선생님이 생각해 주신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말꼬리를 감췄다. 장현삼 씨의 날선 눈빛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보다 앞서서 이 집에 며칠씩 머무르다가 떠나가 버렸다는 사람들을 떠올려 보았다. 스스로 뛰쳐나간 것일까, 쫓겨난 것일까.
"어디 두구 봅시다. 이만복 씨가 첫 월급을 손에 쥐게 되나 못 되나?"
장현삼 씨의 입꼬리와 눈꼬리에 다시 물그늘 같은 미소가 살짝 엉겼다가 흩어졌다. 미소가 걷 힌 눈꼬리에서 서릿발 같은 빛이 뿜어나왔다.
장현삼 씨와 나 말고 박씨 성 가진 오십 줄의 가정부가 한 사람 있었다. 부엌일만 열심히 할 뿐 그림자처럼 조용히 움직이며 말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신경에 거슬르지를 않았다.
내가 맡은 역할은 미리 알고 넘어온 대로 장현삼 씨의 손발, 팔다리 노릇을 하는 것이었다. 장 현삼 씨가 쓰지 못하는 것은 두 다리뿐이었지만 성한 손팔도 덩달아 묶여 있는 거나 다름없었다.
다리에 힘이 없으면 대신 팔심이 세어진다고 하지만 장현삼 씨는 팔심도 별로 세지 못했다. 장현 삼 씨가 아침에 잠을 깨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나는 대용 팔다리로서 장현삼 씨 곁에 붙어 있어야 했다.
장현삼 씨는 새벽잠이 없었다. 삼십도 안된 젊은 사람인데 이상할 만큼 새벽잠이 없었다. 나로 말하면 줄곧 남의 밑에서 일해 주며 살아온 터여서 아침 여섯 시면 습관적으로 잠을 깨곤 했는데 장현삼 씨는 나보다도 한 시간 앞서 잠을 깼다. 내 방에 설치된 부저가 요란하게 소리를 질러대 깜짝 놀라 일어나 보면 네 시 오십 분에서 다섯 시 사이였다.
나는 허겁지겁 옷을 주워 입고는 까고 잔 요 밑어 넣어 두었던 옆방문 열쇠를 찾아들고 방을 나간다. 장현삼 씨의 침실문은 열쇠로 열어야 열린다. 방에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장현삼 씨 의 침대 머리맡 벽에는 몇 개의 스위치가 장치되어 있다. 나는 침대 곁에 가 서서 지시를 기다린 다. 장현삼 씨의 방광이 팅팅 부풀어 있을 것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나 는 지시를 기다린다.
"오줌."
장현삼 씨가 말한다. 나는 요강 뚜껑을 열어 놓고, 장현삼 씨의 잠옷바지를 까내리고 장현삼 씨 를 안아다가 요강에 앉히고, 배설이 끝나기를 기다려 침대위로 다시 옮겨다 눕히고, 요강 뚜껑을 닫고는 침대 곁 먼저 자리로 돌아가 선다. 정원을 산책한 차례였다. 그래도 나는 다음 지시를 기 다리며 묵묵히 서 있는다.
"정해진 순서나 다름없는데두 내가 말을 해야 움직이오?"
언젠가 장현삼 씨가 짜증스럽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나는 그대로 버티고 선 채 대답했다.
"마치 기계 같으시구만. 철저하게 기계가 될 수 있다면 그것두 좋지. 정원에 나가서 새벽 공기 를 마실 차례요."
장현삼 씨는 내 가슴속을 헤쳐 보듯 날선 눈초리로 쏘아보며 말했다. 나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 게 다가가 장현삼 씨의 몸에서 잠옷을 벗기고 평상복으로 갈아입힌 뒤 바퀴의자로 옮겨 앉힌다.
장현삼 씨의 몸은 이불 홑껍데기처럼 얇고 가뿐하다. 그 가뿐한 몸을 안아 올릴 때면 장현삼 씨 의 말소리와 눈초리가 일으켜 주는 존경심과 두려움이 조금은 묽어지는 느낌이기도 하다. 장현삼 씨는 바퀴의자의 바퀴를 제 손으로 굴려 방을 나가 마루를 풍뎅이가 기어가듯 움직여간다. 현관 못미처에서 바퀴의자가 멎는다. 나는 장현삼 씨를 안아 올려 현관에서 대기하고 있는 옥외용 바 퀴의자로 옮겨 앉힌다. 현관과 정원 사이에는 층계가 있다. 나는 장현삼 씨는 태운 채 바퀴의자를 번쩍 들어올려 층계 밑에다 옮겨 놓는다. 날이 비로소 밝아오기 시작한다. 정원의 화초와 수목들 이 잠을 깨어 하품하며 기지개 펴듯 모습을 드러내 놓는다. 장현삼 씨는 바퀴를 굴러 정원을 느 릿느릿 움직여 다니고, 두 마리의 셰퍼드가 그 옆을 따르고 나는 정원에 물을 뿌리고 청소를 시작한다.
장현삼 씨가 식전에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한 시간 반쯤 된다. 나는 장현삼 씨를 집안으로 옮겨 놓고 세면장으로 데리고 간다. 커다란 타월을 이발할 때처럼 두르고 세면대 앞으로 바퀴의 자를 바짝 다가 놓는다. 세면대는 장현삼 씨가 바퀴의자에 앉아서 사용하기 알맞는 높이이다. 그 래도 얼굴을 씻고 나면 타월을 펑 젖는다. 나는 세수를 끝낸 장현삼 씨를 안아다가 식탁의자에 앉힌다. 식사를 하며 몸을 앞으로 구부릴 때 의지가 되고 손도 짚으라고 나무판자를 가슴 앞에 가로지르도록 장치된 의자다. 제 능력만으로 제 몸을 추스릴 수 없는 장현삼 씨가 살아가기에 편 리하도록 구석구석 손질이 되어 있다. 장현삼 씨가 식사하는 모습은 고양이 같다. 요것조것 가려 내고 들춰내며 깨지락거린다. 부과된 의무를 완수하기 위해서라는 듯 억지로 밥 한 공기를 비워 내는 꼴이다. 아침식사를 끝마치기가 바쁘게 장현삼 씨는 변의를 느끼게 되는 모양이다.
"관장합시다."
장현삼 씨가 말한다. 나는 약장에서 관장약을 꺼내온다. 관장약은 애초에 주사기 속에 들어 있 다. 나는 주사기를 장현삼 씨의 항문 속에 찔러넣고 관장액을 천천히 주사하고는 장현삼 씨를 안 아다가 화장실 변기 위에 앉힌다. 물을 그렇게 많이 먹는데도 변은 몹시 되다랗다. 장현삼 씨는 늘 물을 목구멍 속으로 넘기는 빛이다. 믹서가 항시 윙윙 소리를 내고 돌아가며 당근물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딸기물을, 토마토물을, 때로는 인삼물을 만들어낸다. 장현삼 씨가 일을 마친 뒤 장현 삼 씨의 항문을 들여다보며 휴지로 닦아 주는 것도 내게 할당된 일이다. 장현삼 씨는 변기 위에 서 마루 창가의 안락의자로 옮겨진다. 등의자는 시원하긴 하지만 배긴다며 싫어한다. 여름용 등받 이와 깔개가 부착된 안락의자에 푹 파묻히듯 기대앉아 장현삼 씨는 여름이 무성한 정원을 멀거니 내다본다. 배설을 하고 난 뒤여서 그런지 얼굴빛이 평화로워 보인다. 이때를 틈타 가정부 박씨가 내게 일을 시키거나 심부름을 시킨다.
"이씨, 나 조금만 거들어 주겠수?"
박씨는 이런 식으로 나를 부려먹는다. 박씨는 부려먹지만 미안해 하면서 부려먹는다. 나는 기꺼 이 일을 거들어 준다. 점심 때가 된다. 점심을 먹고나서 한 시간쯤 지나면 장현삼 씨는 목욕을 한 다. 나는 미지근하게 데워진 목욕물 속에 장현삼 씨의 알몸을 담근다. 장현삼 씨는 이 더위에도 찬물이 몸에 닿으면 질색을 한다. 투덕한 데라고는 한구석 없이 바싹 마른 몸뚱이가 가엾다는 생 각을 일으켜 준다. 변성기의 소년처럼 불두덩에 음모가 삐죽삐죽 솟아 있었지만 성기는 어린애의 고추처럼 왜소하다. 나는 그것이 발기한 모습을 본 일이 없다. 목욕을 끝낸 장현삼 씨는 다시 마 루 창가의 안락의자에 파묻히듯 앉아 느릿느릿 흘러가는 오후속으로 잠겨들어간다. 책을 보다가 생각에 잠기다가 하는 장현삼 씨 곁에서 나는 일이나 심부름을 시켜줄 때를 기다린다. 가정부 박 씨가 틈틈이 나를 부려먹는다. 어느덧 해가 기울고 저녁 산들바람이 정원의 나뭇잎을 쓰다듬는다.
장현삼 씨는 새벽잠이 없는 대신 초저녁잠이 많다. 저녁을 먹고 나서 한 시간쯤 정원에 나가 있다가 곧바로 잠자리에 들어간다. 나는 잠을 잘때는 장현삼 씨와 다른 방을 쓴다. 그렇다고 내게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내 방에는 굉장하게 요란한 소리를 내지르는 부저가 장치되어 있 었다. 장현삼 씨가 그의 방 침대에 누운 채 머리맡 벽에 설치된 단추를 누르면 내 방의 부저가 요란한 소리를 내질러 내 잠을 풍비 박산 깨부수도록 되어 있다. 장현삼 씨는 온 세상이 곤히 잠 든 깊은 밤중에도 몇 차례씩 나를 호출한다. 장현삼 씨는 잠자리에 들기 전에 물 마시는 버릇이 있다. 장현삼 씨는 믹서가 윙윙 소리내며 만들어낸 물을 맥주컵으로 두 컵이나 마시고 잠자리에 들어간다. 장현삼 씨는 자면서 땀을 많이 흘린다. 그처럼 몸이 바싹 여윈 사람이 땀을 많이 흘리 면 탈수현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고, 탈수현상이 일어나면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기까지 한댄다.
한밤중 홀로 잠든 사이에 혼수상태에 빠진다는 것은 죽음을 뜻할 수도 있다. 장현삼 씨는 그런 사태에 대비해서 예방으로 수분을 충분히 섭취해 두는 것이라고 했다. 그를 이을 후계자도 마련 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불리 죽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섭취한 수분이 두세 시간뒤면 땀으로 빠져나가고도 장현삼 씨의 방광을 팅팅하게 부풀려 놓는다. 장현삼 씨는 머리맡을 더듬어 단추를 누른다. 내 방 부저가 잠꼬대하듯 요란하게 소리를 지른다. 나는 화들짝 놀라 깨어 요 밑에서 열 쇠를 찾아들고 방을 나간다. 옆방문을 열쇠로 따고 들어간다.
"오줌."
장현삼 씨가 말한다. 나는 장현삼 씨를 안아 들고 요강에 옮겨 앉힌다. 뒤에서 장현삼 씨의 상 체가 넘어가지 않도록 부축하고 서서 오줌이 요강 속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소리를 하품을 깨물며 듣는다. 소리가 멈추어 오줌방울마저 떨어져 내렸다 싶을 즈음 장현삼 씨를 안아올려 침대에 눕 힌다.
"요강 부셔다 놉시다."
장현삼 씨가 말한다. 나는 요강을 들어내다가 변기에 쏟아 버리고 부셔다 놓는다.
"손 씻으셨소?"
장현삼 씨가 말한다. 나는 목욕탕에 가서 소독비누로 손을 씻고 온다.
"물."
장현삼 씨가 내 손을 살펴보며 말한다. 나는 냉장고 속에서 주스병을 꺼내 빈 컵에 가득 따라 놓고는 장현삼 씨를 부축해 앉힌다. 장현삼 씨는 컵을 들어올려 주스를 목구멍 속으로 넘긴다. 땀 으로 오줌으로 몸 속의 수분을 뽑아냈으니 새로 보충을 해야 하는 것이다. 수분을 충분히 재공곱 했다고 생각되면,
"고만 가서 자게. 문 잠그구 나가게."
비로소 나를 놓아준다. 자다가 깨면 한두 시간을 엎치락뒤치락해야 다시 잠이 드는 사람이거나 아주 잠을 설치고 마는 사람은 못할 노릇이다. 다행히 나는 내 방에 돌아와 누우면 그 길로 다시 잠을 잘 수가 있었다. 이런저런 상전들 밑으로 옮겨다니며 살아오는 동안 내 몸에 틀잡힌 적응력 이라고나 할까.
두세 시간 후면 장현삼 씨의 방광이 다시 팅팅하게 부풀어오르고, 장현삼 씨는 머리맡의 단추 를 눌러 내 방 부저가 악몽에 놀라 비명을 지르듯 요란하게 외치도록 할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 잠을 깨고 허겁지겁 옆방으로 달려가 장현삼 씨의 잠옷바지를 까내리고, 요강에 앉혀 오줌을 누 이고, 다시 침대에 눕히고, 요강을 부셔 오고, 손을 소독비누로 씻고, 냉장고에서 주스병을 꺼내 컵에 따르고, 주스가 장현삼 씨의 목구멍 속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섰다가 내 방에 돌아 와 세 번째 잠을 청해갈 것이다.
나는 하룻밤에 두세 번씩 부저 소리에 잠을 깨가지고 그 짓을 치러내곤 했다. 나보다 앞서 이 집에 들어왔다가 며칠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간 사람들 중에는 밤중에 울려대는 부저 소리를 견뎌 내지 못한 사람도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혹은 날마다 장현삼 씨의 항문 속에 관장기를 꽂 아 넣어야 하는 일을 참아내지 못한 사람도 끼어 있을지 모른다. 가정부 박씨가 슬금슬금 새치기 로 부려먹는 것에 화를 내고 나간 사람도 있었을까.
"만복씨, 다시 봐야겠는걸."
첫 달치 월급봉투를 내 손에 넘겨 주며 장현삼 씨가 말했다.
"그 동안 선생님 눈에 거슬르는 짓을 과히 많이 저지르지는 않았습니까?"
나는 공손하게 물었다.
"천만에요. 내 팔다리 노릇을 썩 잘해 주었소. 헌데 이만복 씨가 내게서 두 번째 월급두 탈 수 가 있을래나?"
아무래도 미덥지가 않다는 듯 장현삼 씨가 말했다.
"선생님 입으루 필요 없으니 떠나 달라구 말씀하실 때까지는 떠나지 않겠다구 말씀드린 그대룹 니다."
"그렇다면 만복 씨한테 다달이 월급 주는 대신 내가 만복씨 이름으루 적금을 들어 주는 게 어 떻겠소? 만복씨는 아직 홀몸이기두 하구 말이오?"
장현삼 씨는 떠보듯 물었다.
"좋습니다."
나는 월급봉투를 되돌려주며 선선히 대답했다. 장현삼 씨의 입꼬리와 눈꼬리에 물그늘같이 아 스무레한 미소가 어렸다. 하지만 미소가 지워진 뒤에도 서릿발처럼 싸늘한 눈빛은 뿜어나오지 않 았다.
장현삼 씨는 내게 한결 다정하게 굴었다. 일을 시키며 하는 말 이외에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와 더불어 나누었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장현삼 씨가 이런 말을 했다.
"만복씨와 내가 이렇게 한 지붕 밑에서 살게 된 걸 보면 우리 두 사람은 전생에서 무슨 인연을 맺었던 것 같소. 전생에서는 만복씨가 두 다리 못쓰는 처지였구 나는 만복씨한테 월급을 받으면 서 만복씨 시중드는 일을 했는지두 모르지."
장현삼 씨는 내 튼튼한 다리를 쓸어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전생에서는 만복씨가 내 튼튼하구 싱싱한 다리를 부러워하면서 이렇게 손으로 자꾸 쓰다듬었 는지두 모르지.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가는걸. 안 그렇소? 만복씨."
"글쎄요. 그랬을지두 모르지요."
나는 건성으로 대꾸했다.
"아니, 우리는 전생에서 한 사람이었는지두 모르지. 한 사람 속에 들어있던 두 마음이 따루따루 몸을 지니구 태어났는지두 모르지. 안 그렇소?"
장현삼 씨의 눈은 꿈을 꾸듯 몽롱했다.
"그랬을지두 모르지요."
두 번째 월급이 적금통장 속으로 들어갈 무렵에는 제법 밤이 서늘했다. 장현삼 씨가 땀을 덜 흘려서인지 밤중에 울리는 부저 소리는 두세 번에서 한두 번으로 줄어들더니 시월에 접어들면서 부터는 한 번으로 굳어 버렸다. 장현삼 씨는 여전히 식은땀을 흘리기는 해서 한 번쯤은 부저를 울려야 했고, 나는 땀에 펑 젖은 장현삼 씨의 내복을 갈아입히고, 빠져나간 수분을 공급해 주어야 했다.
그 무렵부터 나는 장현삼 씨와 같은 식탁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느 날 억세게 퍼먹어대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던 장현삼 씨가 혼자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게두 저렇게 식욕이 왕성한 때가 있었을 거야."
이튿날 장현삼 씨는 닭고기가 먹고 싶은 것 같다면서 닭 한 마리를 사다가 푹 고아 놓으라고 일렀다. 늘 별?? 먹고 싶은 것이 없다면서 깨지락대던 장현삼 씨에게도 가을이 되어 입맛이 돌아 왔나 보다고 생각되었다. 하지만 가정부 박씨가 닭 한 마리를 고아가지고 통째로 식탁 위에 턱 올려 놓으니까 장현삼 씨는 고기 두어 점을 뜯어 입에 넣고 우물거려 보더니 젓가락을 내려놓아 버렸다. 그리고는,
"만복씨는 닭 한 마리를 앉은 자리에서 먹어 치울 자신 있소?"
하고 물었다.
"닭 한 마리라는 게 뼈 빼면 얼마 됩니까?"
나는 자신만만하게 대꾸했다.
"그럼 먹어 보시오. 못 먹으면 닭 한 마리 값 물어내기요."
장현삼 씨가 부추기듯 말했다. 없어 못 먹을 판이었다. 닭고기가 입 안에서 슬슬 녹았다. 큼직 한 닭 한 마리가 눈결에 내 뱃속으로 녹아 들어가 버렸다.
"오래간만에 닭고기 한 번 먹은가 싶게 먹은 것 같은걸."
장현삼 씨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잡수시지두 않구서 잘 잡수셨다구 하세요?"
나는 농담 받아넘기듯 말했다.
"농담이 아니오. 만복씨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까 꼭 내가 먹구 있다는 느낌이 들더란 말이오. 맛두 느껴지구 배두 불러오는 느낌이더란 말이오."
나는 빙긋 웃어보이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로 장현삼 씨는 먹고 싶다면서 별식을 집에서 만들게 하거나 음식점에서 시켜오게 해가지고, 자기는 깨지락거리다가 수저를 놓아 버리고 나더러 먹어 보라고 했다. 아니, 한 그릇에 서 함께 먹자며 자기는 숟갈질 젓갈질 흉내만 내고는 나 혼자 먹도록 했다. 내가 맛있게 먹음직 스럽게 먹는 모습을 침을 삼키며 지켜보고 있다가 음식이 내 뱃속으로 모두 들어가 버리고 나면,
"아, 맛있게 잘 먹었다. 뱃속이 든든한걸."
트림이라도 하듯 말했다.
"저 먹는 걸 지켜보시기만 하구서요?"
"나두 이상해. 만복씨가 먹구 있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내 몸이 만복씨 몸속으로 슬며시 빨려들어가 만복씨와 한몸이 돼 버리는 것 같은 생각이 들거든. 만복씨와 한몸이 돼 가지구 음식 을 내 입 속으루 퍼넣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단 말이오."
음식뿐만이 아니었다. 언젠가 장현삼 씨는 텔레비전에서 자전거 경주하는 모습을 보고 있다가 자기도 자건거를 타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튿날 장현삼 씨는 내게 자전거를 사오게 해서 타고 다 니도록 했다. 또 언젠가는 자동차 학원에 다니며 자동차 운전을 배우기도 했다.
그렇게 해가 가고 새봄이 돌아와 무르익어가는 어느 날 장현삼 씨가 불쑥 말을 꺼내 놓았다.
"만복씨, 여자 선 한 번 봐주시오."
"네?"
나는 어리둥절해서 되물었다.
"내 아내 될 사람 선을 봐야겠는데 내 대신 만복씨가 그 자리에 나가주시오."
"선생님께서 저더러 꼭 나가 앉으라구 하신다면 나가 앉아 있긴 하겠습니다만."
다른 일과 달라 나는 어떻게 해야 될지 몰라서 말끝을 흐렸다.
"자, 그럼 우리두 준비를 서두릅시다."
장현삼 씨는 이야기가 끝났다는 듯 말했다. 장현삼 씨와 나는 바퀴의자를 택시에 싣고 시내로 나갔다. 나는 시내 중심가의 일류 양복점에 들어가 장현삼 씨가 바퀴의자에 앉아 지켜보는 앞에 서 최고급으로 양복을 맞췄고, 양복점에 들러 와이셔츠니 넥타이니 혁대 따위를 제일 좋은 것으 로 골라 사가지고 돌아왔다.
이윽고 새 양복에 새 구두에 새 넥타이를 매고는 선을 보러 나갔다. 장현삼 씨도 뒤따라와 저 만큼 떨어진 자리에서 내가 선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신부감은 꽤 예쁘고 탐스러웠다. 하 기야 예쁘건 밉건 나로서는 상관할 바 아니었다. 저만큼 떨어져 앉은 장현삼 씨가 판가름할 일이 니까 말이다. 나는 장현삼 씨의 이름과 나이와 신분으로 신부 쪽에 소개가 되었지만 이러다가 사 실이 탄로나면 어쩌나 한다든가 일이 이상한 쪽으로 꼬여들면 어쩌나 하는 근심 따위는 마음에 담지도 않았다.
일이 여기서 더 복잡해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선을 보고 난 지 한 달 만에 약혼식을 치르게 되었을 때 나는 좀 겁이 나기 시작했다.
"제가 약혼식에두 신랑으로 나가게 되면 일이 복잡해지지 않겠습니까?"
나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아니지. 만복씨가 약혼식에 나가지 않을 때 일이 더 복잡해질 게요."
장현삼 씨의 대답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약혼식에도 신랑으로 참석했다. 장현삼 씨도 신랑 쪽 의 친척인 양 참석했는데 신랑과 신부가 선물을 교환할 때 사진이 찰칵찰칵 찍히는 소리를 들으 며 나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약혼식에서 돌아와 신부에게서 약혼선물로 받은 시계를 장현삼 씨 앞에 내놓았더니,
"만복씨가 받은 거니 만복씨가 차구 있으시오."
장현삼 씨는 시계를 내 앞으로 되밀어 놓으며 말했다.
"이러다가 탄로가 나면 어떻게 합니까?"
내 목소리는 떨려 나왔다.
"그렇게 겁낼 것 없어요. 만복씨 마음속으루 나는 이만복이가 아니라 장현삼이다. 이렇게만 생 각하시오. 약혼식을 하든 결혼식을 하든 그보다 더한 것을 하든 이만복이가 아니라 장현삼이가 하구 있는 거라구 생각하시오. 장현삼이가 이만복이 몸속에 들어와 하구 있는 것이라구 말이오. 자 내 눈을 보시오. "
장현삼 씨가 내 눈을 뚫어져라 쏘아보며 말했다. 나도 그 눈을 맞받아 바라보았다.
문득 내 몸이 장현삼 씨의 눈 속으로 빨려들어가 장현삼 씨의 몸과 하나로 합치는 것 같은 느 낌을 받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한 달 뒤에 나는 그 여자와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을 떠나서 첫날밤 그 여자의 알몸을 끌 어안고 그 여자와 살을 섞었다. 나는 장현삼이다, 이만복이가 아니라 장현삼이다, 하는 말을 마음 속으로 끊임없이 뇌이면서.
나의 그 이상한 결혼생활은 일년이나 계속 되었다.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아이의 성은 장현삼 씨 를 따라 장씨였고 아이의 이름도 장현삼 씨가 지어 주었다. 호적에는 장현삼 씨와 내 아내가 부 부로 올라 내 아들은 장현삼 씨와 내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아이를 낳은 지 석달 만에 아이 엄마가 죽었다. 산후 처리를 잘못한 탓이었다. 죽은 사람에게는 안된 얘기지만 여자가 죽고 그 슬픔이 어지간히 가라앉게 되자 나는 잃어버렸던 나를 비로소 다 시 찾은 기분이었다.
그 동안 깊은 감옥 속에 갇혀 있던 나를 여자가 죽어 구해줬다는 느낌이기도 했다.
어느 날 장현삼 씨가 말했다.
"시골에 있는 우리 선산을 돌아봐 주었으면 하오."
돌아오는 길에 관광여행을 하고 오라며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주었다. 내 아들에게는 유모가 달 려 있었고 내가 여행을 다녀올 동안 장현삼 씨를 돌봐줄 사람도 구해 놓았다. 나는 가벼운 마음 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 달 뒤에 돌아와 보니 장현삼 씨네 일가족은 이사를 하고 없었다. 그동안 내 월급으로 부어 가던 적금통장과 이 집을 내 앞으로 등기 이전했다는 편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울컥 외로움 이 치밀어 올랐다. 그 외로움 속에서 내 아들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내 몸을 휘감아 잡았다. 이 사한 곳쯤 쉽사리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마루 창가 장현삼 씨가 앉아 정원을 내다보곤 하던 안락의자에 몸을 파묻으며 떠나간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싶은 생각을 눌러 앉혔다. 정원에는 여름이 무르익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