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3. 21. 05:20

개벽

이인해

 

20041024일 일요일 1130분 강동교회 예배가 끝났다. 아멘! 아멘!

외치는 소리, 박수 소리 이것은 오르가즘이다! 36살 검은 연미복을 입은 숫물개 같은 박 목사의 능숙한 오르가즘이다 .준비한 모든 설교는 이백 오십 명의 신도들을 무아지경으로 끌고 갔다.

답답하게 찍어누르던 레포트를 완성하고 유쾌해지던 대학시절의 자신으로 돌아간다. 뒷줄에서 세 번째 자리에 앉아 언제나 신앙과 에로틱한 눈길을 잘 배합한 긴 생머리의 채린, 채린이 출입구로 나가는 많은 신도들의 물결 속에 있다. 그렇게 서 있기만 해도 다 알 것 아니냐는 저 눈빛 저 불룩한 가슴, 저 비들기 날개 같은 두 어깨 위에 춤추는 밤바다의 물결 ...저 긴 머리 ... 누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질 수 있나. 누가 저 샬로메 같은 천사 같은 매력에 거부할 자신이 있을까. 박 목사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오빠! 아니 ....목사님! 호호 ... 어디로 요? 점심 식사... "

둘이만 있을 때 부르던 오빠라는 호칭이 느닷없이 튀어나온 걸 미안해하며 채린은 큰 키의 박 준규를 올려다본다. 준규는 아직 퇴장하지 않은 신도들을 의식하는 듯

"채린 자매님 ...! 식사요? 제가 잠시 다녀올께요."라며 화장실 쪽을 가리켰다. 채린은 거북스런 순간들을 삭제하고 밖으로 나가 준규의 자가용차 옆으로 천천히 발길을 향했다. 그리고 오늘 그와 있어야 할 모든 일정에 부풀어 오르는 가슴을 꾹꾹 누르며 벌써부터 흥분하고 있었다.

산다는 건 무엇인가? 저 사랑하는 준규, 잘생기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자기 맡은 일을 잘해 나가는 준규와 건강하고 예쁜 채린 자신이 그냥 요즘처럼 자주 만나고 데이트하고 단풍처럼 활활 타오르면 되는 것 아닌가? 사랑이란 단어의 어원은 살기,살다 .와 불사르다의 합성적 의미라고 누가 그랬던 걸 생각해 보며 채린이 준규의 뜨거운 가슴과 정사 장면을 떠올리고 있을 즈음 준규가 나타났다.

"무슨 생각을 골돌히 했지?"

순간 붉어지는 얼굴에 기막히게 의미 있는 웃음을 띄우며

"글쎄 알아 맞춰봐 오빠"

"글세 ... 뭘까? ! 알았다! "

"그래 뭔데요?"

"그걸 채린이 말해봐!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 "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자가용차에 타 앉으며 썬팅으로 밀폐된 공간에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며 서로의 생각과 생각의 일치를 느끼며 순간 와락 끌어안았다. 잠시 후 채린이 귓속말로

"오빠! 누가 볼까 봐! "

"응 밖에선 안 보여! 그러니까 더 재밋잖아?"

"이그! 목사님이 속물이 다 되셨어!"

"그래 난 속물인 게 더 좋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서로 떳떳이 사랑하는 사이도 표현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독일 갔을 때 거기 연인들은 멀건 대낮에 거리에서 뽀뽀하더라구! 어떤 사내는 두 여자를 양팔에 안고 이 여자 한번 저 여자 한번 하더라구."

"요즘은 여기도 그런 거 지하철역 외진 곳에서 자주 봐요. 젊은 남녀의 키스장면 ... "

"세상은 변하고 변하는 대로 배 띄워 살아가는 거지, 그리고 교회의 종소리에 영혼을 깨우고 또 나아가 설교하고 기도하고 채린과 아름다운 미래를 주님께 부탁하는 거야."

준규의 어조는 갑자기 성스러워지고 채린도 천사 같은 표정으로 준규의 그런 얼굴을 올려다봤다.

"오빠! 문명은 생각과 행동의 간격을 좁혀주는 것 같아 그치? 그게 기존 윤리관을 너무 충격하고 있어서 구세대를 걱정에 빠트릴 뿐이지만 오히려 솔직한 것 아닐까? "

"그래! 요즘 성 윤리에는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이 강하게 노출되고 있어. 그래서 양식이 있는 사람들은 지나치게 앞서가지 않는 거야 너무 본능적이고 쾌락적인 쪽으로 가다가 스와핑인가 뭔가 같은 것도 나오는 것 아닌가? 성경에는 그런 게 소돔과 고모라 부분에 신기하게도 나와 있어서 말세론이 형성되는 거지 .. "

준규와 채린은 자신들의 만남과 애정 행위를 자유와 도덕성의 한계 안에 편안하게 설정하고 의식하게 하는 무의식중의 대화를 하고 있었다. 좀 탈윤리적이다가 다시 목사라는 자기 신분으로 되돌아오기도 하고 그러다가는 젊음의 돛배에 실려 욕망의 바다로 흘러가기도 하는 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행복했다. 행복하게 점심을 먹고 가을바람 속으로 드라이브도 하고 도시에서 먼 야외 러브호텔에서 어항 속의 비단잉어들처럼 지느러미를 서로 휘감으며 땀에 흠뻑 졌으며 할 수 있는 행위는 다 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 보다 지혜롭기 때문에 절망의 부분이 더 큰 동물이다. 죽음의 필연성에 부딪혀 생존의 한계성을 벗어나려고 온갖 종교와 예술의 능력에 기대 살고 또 현실적 쾌락에 애처럽게 의지하기도 한다.

준규는 채린을 아파트까지 태워다 주고 돌아서 오후 4시 진작 초대받았던 어느 문학회의 시 낭송회에 갔다. 아주 훌륭한 도서관 건물 안의 별실에 차려진 시 낭송회장에 백여 명의 문인들과 초청 인사들이 모여 오늘은 특별 초청 연사로 우주 공학을 연구하며 미국 항공우주국에 근무했다는 김재수 박사의 강연을 듣는 순서가 있다는 진행 안내 멘트가 흘러나오고 프런트의 안내자가 반가운 웃음으로 준규를 맞으며 방명록에 한 말씀 써달라고 한다.

싸인을 끝냈을 때 뒤에서 누군가 준규의 팔을 잡으며

"아이구! 늦으셨네? 혹시 못 오시나 걱정했는데!"

돌아본 준규가

"아이구! 만산 선생님! 특별히 초대해 주셨는데 제가 어떻게 안 옵니까? 늦어서 죄송합니다!“

70세가 넘은 문학 박사 만산 김규호 시인은 문단에서 이름 있는 인사였다 준규와는 10여 년 전 같은 교회에서 만난 대학 선후배였고 신앙 문제로 깊은 토론을 자주 하는 사이였다. 오늘의 특별 연사 김재수 박사의 초청을 주선한 것도 김규호 시인이다

진작 김재수 박사의 우주에 대한 이야기에 너무나 충격을 받은 만산 시인은 젊고 투철한 기독교 목회자인 후배에게 그러한 새로운 인식의 세계를 소개하고 싶었고 가까이 지내던 40대 승려 한 사람에게도 이 자리를 권하여 과연 광대무변한 우주공간 속의 신과 인간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스스로는 도저히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 없어 두 종교인을 초청했던 것이다. 승려 오탈은 대학을 나와 한때 교수로 재직하다가 출가하여 서울 근처의 어느 암자에서 수도하고 있고 본명은 김익중 법명은 오탈이다. 만산 시인은 이미 좌석에 앉아 있는 오탈 스님을 불러 준규에게 인사를 시켰다. 준규는 "승려와 인사를 해야합니까?"고 의아해하면서도 존경하는 선배의 권유이고 내심 불교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넉넉한 웃음으로 오탈과 인사를 나눴다. 오탈은 합장하고 지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준규와 눈을 마주쳤다

"이미 목사님의 고명을 들어 압니다."

소승은 관악의 작은 암자에 있는 오탈입니다" .

"아 그러시군요. 저는 강동교회의 목사 박준규입니다. 오늘 우주 박사님의 이야기가 아주 기대 됩니다."

"달나라에 사람이 산다는데 왜 그런 사실이 아직까지 공개되지 않았는지 .."

세 사람은 인사를 끝내고 자리에 앉는데 환등기의 스크린에 불이 켜지고 컴퓨터를 한참 점검하던 김재수 박사가 이제는 준비를 완료했다는 표정으로 연단에 올라 백여 명의 시청자들을 향해 인사를 하고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오늘 문학 하시는 여러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제게는 시를 쓰는 친구가 하나 있습니다만 여행하는 차 안에서도 책을 읽고 시를 쓰더라구요. 그런 모습이 좋아 보였습니다."

아주 일상적인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화두를 찾는 세련된 인사법이 분위기를 편안하게 하며 그에 대한 친근감을 느끼게 했는데,

"저는 오늘 저를 여기 초대해주신 만산 선생님과 잘 아는 사이입니다. 원래 제가 오늘 들려 드리는 얘기는 제가 원해서 하는 게 아니고 궁굼해 하시는 분들의 요청에 의해서 해 드리는 겁니다. 저는 원래 소재를 연구하고 제조 판매하던 사람입니다, 가령 로켙에 쓰인는 특수한 내열 소재 같은 걸 개발하는 일이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우주의 신비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구하다 보니 미국의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오늘 보여 드리는 사진은 대부분 특수 망원경을 사용했거나 인공위성에서 찍은 것들입니다."

김재수 박사는 이야기를 하다 말고 청중을 향해 아주 태연하고 부드러운 표정으로 빙그레 웃으며

"제가 오늘 들려 드리고 보여 드릴 강연의 내용의 핵심은 달나라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임을 여러분이 알고 오셨지요? 그런데 이 문제가 왜 달나라엘 다녀온 미국과 소련의 우주인 그리고 거기 종사자들에 의해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이점은 저도 참 설명하기 어려운 점입니다."

김박사는 모든 사람의 혹은 전 인류의 의혹인 엄청난 우주의 신비를 공개할 사람치고는 너무나 태연했고 자기가 사는 주택의 문을 열어 보여 주려는 사람처럼 어떤 당연한 사실 앞에 서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여러분 앞에서의 이 강연은 적어도 4시간 동안을 요하는 강연내용을 시간 관계상 2시간으로 줄였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뚜껑을 열기 전에 이 우주에 대한 여러분의 막연한 상식을 점검해 드립니다. 여러분은 그냥 우주가 넓다고 알고 계시지요? 빛이 일 초 동안에 일곱 바퀴 반을 돈다는 건 알고 계실 겁니다. 이 우주에는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수백억 개의 행성이 있고 그 행성 중에는 일 초에 지구를 일곱 바퀴 반 도는 빛이 몇십 년 걸려야 한 바퀴 돌 수 있는 크기의 행성도 있습니다. 거기다 비교하면 지구는 사막의 한 알 모래에 불과한 크기라고 할 수 있고 그러한 지구에 사는 인간의 존재는 얼마나 작습니까?"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놀람과 호기심과 신비감으로 초긴장 돼 있고 김 박사는 더욱 태연하고 아주 친절한 말투로

"여러분 우리는 화성이 불덩어리거나 바위 같은 것으로 돼 있고 습기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계셨지요? 이게 화성에서 쏟아지는 폭포를 찍은 사진입니다."

김박사가 모던을 누르자 스크린에 떠오른 화성 폭포의 사진은 지구에서 보는 것과 같은 물의 흐름이었는데 관객 모두 아하! 하는 탄성을 지르고는 이내 다음 얘기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이제 제가 제일 처음 보여 줄 가장 중요한 사진입니다. 우주인들이 처음 달나라에 도착했을 때 항공우주국 팀과의 첫인사 장면이지요, 지금 저 사진에 보면 머리 위로 UFO가 날아가는 게 확실하게 보이지요? 바로 저겁니다. 그리고 지금 세 명의 우주인들의 표정과 제스추어를 자세히 보세요. 한 사람은 입에 손가락을 대고 침묵해야겠다는 의사를,. 또 한 사람은 눈을 손으로 가리고 못 본 체하라는 신호를 ,또 한 사람은 두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못 들은 체하라는 암시를 나타내는 겁니다. 왜 저 사진이 메스컴에 공개되지 않았을까요? 너무 쑈킹한 뉴스라 일단 침묵하고 보자는 현명한 처사일 수도 있고 누가 그들이라도 어떤 본능적으로 무의식중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 사진은 정말 충격적인 것이었다. UFO의 실존 여부를 놓고 숱하게 벌리던 시비가 저 한 장의 사진으로 확고해지면서 달나라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실증을 나타내고 있으며 저런 장면이 공개되지 않은 사실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김박사는 다음 장면을 보여 주기 전에 표정을 더욱 가다듬고

"지금 미국에서는 UFO가 있다 없다를 가지고 말하는 사람은 촌사람입니다. UFO는 아주 말랑말랑한 실리콘 같은 걸로 만들어져 있다고 합니다. 그냥 엔진이나 그런 기관 같은 게 아무것도 없고 그냥 실리콘 같은 말랑말랑 한 것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UFO를 공격했던 소련의 군인들 25명이 그 자리에서 죽고 5명은 선 채로 돌이 됐다고 합니다. 왜 이런 일이 공개되지 않고 있을까요? 이것은 선진국의 횡포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너희들은 알 것 없다. 말하자면 그러한 파묻힌 중요한 우주 정보를 아는 데서 오는 어떤 잇점을 나눠 줄 수 없다는 것으로 해석하면 어떨까요? 말 되잖아요? 바로 그겁니다. 미국이 UN을 만들었지만 사실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고 국제 사회는 사실상 냉정한 것이지요. 이걸 우리는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달나라 사람들의 지능지수는 지구인의 몇십 배인지 알기 어려울 정도로 발달 돼 있고 달나라에서는 무공해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지구는 에너지 공해로 심각합니다. 정말 지구가 망한다면 에너지 공해로 망한다는 게 모든 학자들의 지론입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생활 속의 얘기이고 다 짐작할 수 있는 얘기지요? 지구는 이대로 가면 정말 멸망합니다. 오존층 파괴로 수십만 년 얼어 있던 빙하가 사그리 녹아내리고 있잖습니까? 대기 오염으로 맥시코 같은 데서는 날아가던 수천 마리의 새가 한꺼번에 떨어져 죽는 일도 있었고요. 바닷물 수위가 점점 높아져서 섬이 가차 없이 파묻히는 거 다 예상과 진행이 증거되는 사실입니다. 이 지구의 생존여부는 무공해 에너지를 찾아내느냐 아니냐에 달려있습니다."

김재수 박사의 얘기는 현실 문제에서 아주 진지했고 간곡하기도 한 것이었다.

"이 무한한 우주의 도저히 다 알 수 없는 신비! 여기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작은 벌레에 지나지 않는 존재입니까?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살아 있다는 생존 의식, 이것뿐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고 죽음이나 삶 자체가 조그만 변화일뿐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 때문에 우주를 알므로 해서 생기는 허무감 때문에 미국에서는 지금 알게 모르게 종교관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모르고 있는 것이지요. 이점은 참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이점을 다시 생각해야 하며 따라서 종교는 물론 모든 학문도 차원이 달라져야 합니다. "

여기까지 진행한 김재수 박사는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면서 다시 이야기를 계속했다.

"! 보십시오. 저게 달 표면 아주 가까이서 찍은 사진입니다. 저 사진 속을 자세히 보세요. 어떤 규칙적으로 전개되는 축조물이 있지요? 저게 달나라 사람들의 주택입니다."

사진으로는 달나라 사람들의 주택은 마치 벌집을 뒤집어놓은 것같이 규칙적으로 축조된 건물이었다 모든 시청자들은 여기서 다시 한번 "!" 하고 탄성을 질렀다.

"달나라에는 공기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이 사느냐?고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겠지요? 그건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을 보아 왔던 관념이 얼마나 편협하게 고정돼 있었느냐는 것을 증명하는 얘깁니다. 세상이 꼭 이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고정 관념! 이제부터는 그것을 허물어 내릴 수 있어야 올바르게 우주를 이해하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김 박사의 모든 얘기는 우물 안 같은 협소한 인식의 세계에 새로운 빛을 밝히는 신지식의 등불이었고 종교와 예술과 모든 학문과 개인의 자아 문제에 새로운 사상의 정립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외계에서 찍은 지구의 아름다운 사진 몇 컷을 보여 주는 등 시 낭송회를 대신한 김 재수박사의 강연은 끝났다.

오탈 스님과 박준규 목사는 김규호 시인의 안내로 가까운 식당에 들었다. 음식을 주문할 때 오탈 스님이 설농탕을 시키는 걸 보고 준규가 의아해서

"아니?! 스님들은 육식을 금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 이것 저것 다 금하면 어찌 성불을 합니까? 막걸리도 한잔해야겠는데요."

너무도 태연하고 무엇인가 주관적 확신의 세계를 바라보는 듯한 그의 태도에 준규는 강연회의 충격과 함께 연타를 맞는 기분으로 위축되고 속으로 떨려 오는 듯함을 느껴 애써 진정을 촉구하고 있을 때 ,

"하하하 오탈 스님은 속인과 똑같게 사시고 있어요. 기승(奇僧)이시지요. 그러나 저분을 다 알고 나면 누구나 참 삶의 도를 깨닫게 될 겁니다."

김규호 시인의 말과 표정 속에는 한 인물에 대한 깊은 신뢰와 외경의 마음까지 보였다.

"김선생님 훌륭하신 목사님 앞에서 저 같은 땡초를 그리 말씀하시면 몸 둘 곳이 없네요."

"아 물론 박준규 목사님도 훌륭하시지요. 저분의 설교는 요즘 교계의 화재거리가 될 정도로 훌륭합니다."

"아이고! 선배님 저를 너무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 저는 아직 성서의 깊은 말씀도 다 모릅니다."

"역시 두 분 다 겸허하시군요. 그런데 오늘 김재수 박사의 강연에 대해 두 분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두 사람을 이 자리에 의도적으로 초대한 김규호 시인은 비로소 본론적인 말을 꺼내 놓고 눈치를 살폈다. 사실 아까부터 놀라운 우주 정보에 자신의 존재의 허무감과 종교적 회의에 빠져 있던 준규는 안색마저 피곤해 보이는 채 잠시 먼 창밖에 시선을 두다가 김시인의 질문을 받고 오탈 스님의 눈치를 살폈으나 오탈은 지극히 태연한 표정으로 준규의 시선을 의식하며

"글쎄요! 저도 그에 대해 고매하신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싶던 중이라 ..."

이때 준규는 너무나 쇼킹한 강연내용에 태연한데다가 오탈의 말투에 다소 비위가 거슬렸다.

"저는 사실 충격입니다. 우주공간에 대해 그간 아무 깊이 있는 지식 없이 무심한 채 살기도 했지만 둘레가 몇백만 광년 되는 행성의 존재와 지구의 크기 그 작은 지구촌에서 사는 수십억 인구 속의 나의 존재의 허탈과 달나라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이 모든 게 호기심 정도만으로 왔던 제게 예상 없이 크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더욱 미국 같은 나라에서 종교적으로 큰 갈등을 겪고 있다는 점은 상당히 수긍할 수 있는 일일 듯하네요. 오탈 스님께서는 어찌 생각하시는지 ...."

이때 오탈은 김규호 시인을 한번 힐긋 건너다보고 ,

"예 목사님! 질문에 답하기 전에 제가 외람되이 한가지 목사님께 먼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 질문 내용에 대해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시지 마시고 그냥 예수를 믿으시는 한 신도 입장에서 대답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목사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서를 믿으십니까?"

오탈의 질문은 준규에게는 예상 못 한 당혹스럽고 곤혹스러운 질문이었다. 자신은 목회자고 많은 신도들 앞에서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의 신념을 바탕으로 설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 자기에게 가장 기본적인 신앙 여부를 묻는다는 것은 의도가 어디에 있느냐는 의혹과 혹은 너는 말만 목사지 예수는 안 믿을 듯하다는 전제에 대한 확인으로 인간적 모독이고 시험일 수도 있는 듯하고 또 그보다는 순간적으로 자기를 돌아봤을 때 자기가 정말로 예수를 믿고 있느냐는 자문에 전혀 믿는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게 되는 당혹함이 처음 듣는 당돌한 질문에 대한 자신의 숨기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준규는 용기를 냈다 .

"~니 스님! 제가 목회자라는 걸 아시면서 어떻게 그런 질문을 하십니까?"

이때 오탈은 허허허 웃으며 딴청을 부리듯 준규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믿는지 아닌지 대답만 하시라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분이 언짢아진 준규는 그래도 김규호 시인의 체면을 봐서 참고 대답했다.

"예 당연히 믿지요 스님께서는 부처님을 믿습니까?"

듣고 있던 김규호 시인은 심상찮은 대화 분위기에 속으로 웃으며.

"참 예상 밖으로 화두가 놀랍습니다. 오탈 스님께서는 무엇이 궁굼하신 지 원 좀 그러네요?"

".. 김시인님 그냥 염려 마시고 지켜보세요."

오탈의 무쇠 같은 당당함과 상상 할 수 없이 먼 곳을 바라보는 눈길과 묘한 부드러움마저 지닌 듯한 표정에 김규호 시인은 소름이 끼치는 듯한 긴장을 느끼며 스스로 진정하려고 태연을 가장 했다.

"저는 부처님을 믿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의 대상이기보다 그냥 내게 큰 가르침을 주시는 스승으로 선택한 것이지요. 제 생각이지만 믿는다는 것은 정말 믿을 수 없는 말인 것 같습니다. 매번 교회에 가는 신자들이 정말로 예수를 확실하게 믿는다면 교회에 안 가도 믿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남편이 일터에서 일하는 동안 자기 아내가 집에서 빨래나 밥을 할 것으로 아무 의심 없이 당연하게 믿는 것 이게 믿음 아닌가요?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고 그의 말은 모두 옳다고 생각하는 게 믿음이라면 그렇게 믿는 순간부터 교회에 갈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요?"

너무나 평이한 말속에 충격적인 관찰력과 논리가 도사리고 있어서 소름 끼칠 만큼 체면과 자존심에 위협을 느끼는 준규는 ,

"믿는다는 것은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기도와 찬양으로 체질화하고 늘 바라보고 구원을 부탁하는 것이지요. 주 예수를 믿으라 그러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밑도 끝도 없는 성서의 이 한 구절에서 말씀하신 이의 영성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구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오로지 한 분으로 믿는 것이지요. 이러한 상상력의 능력으로 주님의 영성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비 오는 날 지붕 밖으로 나아가 공연히 비를 맞고 서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지요."

말을 하고 나니 준규는 다소 기가 일어서고 자신감이 생기는 느낌이었다.

"예수를 신격화하는 것은 그분을 믿는 이들 특유의 고집이지요 다 같은 밥 먹고 똥 누는 인간이래도 너무나 그 점에서 인간들은 갈라진 길을 가야 하는 것이지요. 오래전에 읽은 인도에서의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서 독일의 젊은 신학자 홀거 케르스텐은 예수가 부활 후에 어떤 라마교 사원에서 80세까지 살다 죽은 것으로 확인한 것으로 쓰고 있고 예수의 행적에 대한 그의 현지 취재는 상당히 신뢰할만한 것으로 읽었습니다. 저는 예수가 인간이라고 믿습니다. 온 인류에게 나쁘지 않은 영향을 더 많이 남겨주고 간 큰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신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분이 정말로 전지전능한 신이라면 성서에 있듯이 그의 출생과 함께 죄 없는 많은 신생아들을 죽게 했겠습니까?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인간뿐이고 신은 가설적인 존재라고 봅니다. 가설적인 존재라고 해도 그 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많은 위안과 힘을 주는 게 사실이지요. 그러나 그것은 동물 중에서 인간만이 지닌 상상력의 편의일 뿐 신을 본 사람도 대화한 사람도 없다고 봅니다. 김규호 시인께서 잘 아시겠지만 시는 상상력으로 쓰는 것 아닙니까? 강낭콩꽃보다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런 최고의 비유나 표현이 상상력 때문에 이뤄지는 것이고 그러한 시인의 능력 때문에 많은 독자들은 논개의 애국심에 대해 실제보다 더 절실하고 아름답게 느낄 수 있는 것이지요. 종교도 상상력 때문에 보이지 않는 신과 인간의 연결이 가능하고 때론 엄청난 신앙의 힘으로 죽을병에서 살아나는 경우를 정신과 의사들의 임상 경험담으로 듣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까 김재수 박사의 강연 소감에 대한 목사님 질문에 대답하겠습니다. 이 우주가 끝이 있는가 없는가.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존재를 보지 않아 알 수 없는 것처럼 끝에 도달해 보지 않았으니 아무 말도 할 수 없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상상마저도 허용이 되지 않으니 하늘을 처다보면 늘 신비할 수밖에 없지요. 우주의 끝이 있느냐 없느냐 이 문제는 인간의 이성의 한계를 자각시키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몇백만 광년의 둘레 크기를 가진 행성과 비교적으로 먼지에 불과한 지구에 사는 수 십억 인구 중에 한 인간! 생각하면 얼마나 허무합니까? 우리가 바라보는 하루살이라는 작은 곤충이 하잘것없이 보이지만 인간의 한 생애도 찰라에 불과하고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으로 볼 수 있지요. 그래서 부처님은 찰라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우주에 비해 지구에 비해 수십억 년 역사에 비해 인간의 존재와 생애는 얼마나 왜소합니까? 그러나 엄청난 바닷물도 한 방울의 물로 시작합니다. 피타고라스나 알키메데스 같은 수학자이고 철학자인 사람들은 바닷물이 몇 방울의 물인지 셀 수 있다고 장담할 것입니다. 누군가 지구를 지렛대로 들 수 있다고 한 과학자도 있지 않습니까? 과학이 발달하면서 가까운 별인 달나라의 신비가 우선적으로 벗겨지듯 시간이 흐르면 우주의 신비는 벗겨질 것이라고 믿을 수 있지요. 과학을 믿는 것도 하나의 신앙이 아닐까요? 과학에 대한 믿음이 없다면 인간은 얼마나 어렵게 살아야 한다는 걸 상상할 수 있으니까요. 부처님은 세상에 태어나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첬습니다. 이 말에서 저는 큰 의미를 발견합니다. 엄청난 우주보다 내가 더 클 수 있다는 것이지요.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으니까요. 이해를 하시겠습니까? 이 말은 염세 철학자 쇼펜하워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라는 논문의 핵심입니다. 이에 행하는 교리를 찾아야 한다고 봅니다.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신의 존재를 상상의 세계에만 의존해서 증명하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죄를 지은 사람은 공존 사회의 적이므로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게 마련이고 그러한 고통은 그 인생을 파멸에까지 이르게 하므로 신에게 벌을 받게 된다는 기존의 종교적 해석이 없더라도 하나의 윤리 도덕적 논리에 대한 신앙으로 사회를 계도 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제 말은 듣기에 따라 괴변일 수도 있습니다."

준규는 오탈의 논리 정연한 인식 세계에 감동하면서도 그러한 자신에 대한 거부감이 고개를 처들어

"저는 스님의 말씀을 잘 들었고 이해할 수 있지만 종교와 신에 대한 말씀에는 어쩔 수 없는 편견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왜 그런가 하면 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지구상의 몇억의 신도들의 신앙의 힘과 필요와 실제적인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임을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준규의 지론은 가까스로 챙겨 내놓는 임기응변인 듯 기독교사상과는 상관없는 결과론적 이점 정리여서 그의 표정은 자신감을 잃고 있었다 .

그때 돌연히 오탈은 벌떡 일어서며

"자 김 시인님! 저는 이만 물러갑니다. 박목사님! 시간 있으실 때 저의 누추한 암자에 오셔도 좋습니다. !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씀, 소승은 남들이 부르는 대로 땡초입니다만 오늘 비교적 우주관을 재정리하게 할만한 충격을 줄 수도 있다고 보는 강연회 자리에 존경하는 김시인님과 자리를 함께 하게 된 분이 교계에서도 널리 알려지신 젊으신 박준규 목사임에 저는 참으로 공교롭고도 묘한 우연 속의 무게가 느껴지는 운명감을 느낍니다. 저는 오늘 달나라에 사람이 산다는 보고 중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고정 관념의 편견 속에 살아왔는가 라는 각성입니다. 공기가 없으면 생물체 특히 사람이 살 수 없다고 가르치고 배워 왔는데 거기에 사람이 산다는 것! 이거야말로 우물 안의 개구리로 살아온 나의 아니, 모든 지구인들의 상상과 지적 능력의 추락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고정 관념은 얼마나 무서운 적입니까? 김시인님? 저는 시를 모릅니다만 우리나라 1910년 초창기 문단에 이상의 <오감도>가 발표됐을 때 고정 관념에 도전한 그의 시에 문단은 충격을 받았지요.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게 없고 진리도 변한다고 보는 게 상식이던 시절에 그리스의 철학자 파로메인데스라는 사람이이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있고 그것이 진리다라고 말했을 때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저 사람은 미첬다라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데모클리토스 라는 사람이 물질을 쪼개고 쪼개면 원자라는 불변하는 것이 남는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였을 때 누가 미첬는가가 전도되고 말았습니다. 종교! 그것은 자칫하면 고정 관념으로 빠트려 진실한 스승(랍비)의 말씀에 이해의 차원을 넘어 도취의 차원으로 몰입하게 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참으로 무서운 결과를 초래합니다. 아랍권의 회교 신자들을 보세요. 폭탄을 실은 차로, 비행기로 자신과 타인의 아무 죄 없는 목숨을 빼앗는 무서운 사고를 저지르지 않습니까? 산다는 것은 하나의 수신의 도를 걸어가는 것이고 인류 사회는 가시와 불 가시, 흑과 백 한 이념에 도전하는 반대 이념의 갈등 속에서 도출되는 새로운 지혜로 이뤄져야 한다고 봅니다."

오탈은 오늘의 강연회 소감을 큰 교훈적인 차원에서 깔끔하게 정리하면서 자리를 떠났다 .

그가 떠나간 후 두 사람은 한동안 침묵했다. 준규는 김규호 시인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김규호 시인의 얼굴에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깊은 감회를 내포한 만족감을 보이는 미소가 흐르고 있었다.

"저 사람은 대단해! 저 사람의 사색의 경지는 타인의 상상을 불허해! 언제 무슨 얘기를 할지 알 수 없는 사람이야! 또 그의 현실 생활도 경이적인 부분이 있어. 저 사람은 최근에 어떤 자리에서 쏘련 사람과 만나 러시아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걸 봤거든! 전혀 대학에서도 전공하지 않았고 그 나라에 여행조차도 간 일이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원래 천재였으니 조금은 수긍이 가지만 ..."

박준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상념과 자가당착 같은 것에 착찹 해 하며 만산 김규호 시인과 헤어져서 승용차에 올라탔다. 9시가 넘은 늦은 저녁 도시의 불빛이 난무하며 큰길 자동차 소음은 그를 더욱 망막하게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그 총명하던 두뇌, 신학대학을 나오고 결혼을 하고 목사가 되고 많은 신도들의 절찬을 받으며 설교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아내를 배신해가며 채린과 밀회를 즐기며 삐뚜러진 속물 삯꾼 목사로 전락하며 목사로서의 신에 대한, 가족에 대한, 양심에 대한, 배신의 길을 걸어오며 모든 이들의 신뢰의 벽 뒤로 숨겨온 자아의 초라한 방황! 오늘 우연치 않게 듣게 된 충격적인 우주의 실제 상황에 너무나 놀랍고 오탈 스님의 의연하고 여유 있는 관조적 태도에 부러움도 느끼고 자신의 초라한 종교관과 철학적 견문에 스스로 자존심을 상하며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에서 느끼는 자책과 회심에 눈앞이 보이지 않았다. 자신은 어디로 가야 하나 삶의 이유를 어디서 찾아야 하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교회 생활과 신 앞에 바친 순종과 기도의 아름다움을 스스로 짓밟은 가책과 물질에 대한 속된 욕망의 사슬이 자신을 휘감아 오고 있어 어쩔 수 없는 구속감을 느끼지 않을 수도 없었다. 밤이 점점 깊어가고 있었다. 준규는 잎이 무성한 푸라타나스 가로수 아래 세워놓은 차 안에서 깊은 사념에 잠겼다. 오탈은 어떤 사람일까? 그 의연하고 당당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분명히 자신보다 먼 곳을 바라보고 사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준규는 이튿날 오탈의 명함을 주머니에서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정작 오탈의 꽉 차오는 듯한 목소리가 들리자 스르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시 먼 산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옷을 주섬주섬 입고 미친 사람처럼 차에 오르자마자 도시를 빠져나갔다.

관악산 바로 아래 차를 세워두고 한참이나 걸어서 인터넷에서 미리 짚어놓은 지도 속의 오탈의 암자라는 곳을 찾았다. 그러나 같은 번지수에는 암자라기보다는 100여 평이 넘을 듯한 낡은 단층 스라브 건물이 있고 작은 시골 분교 같은 마당에는 주인의 솜씨인 듯한 철봉과 시이소오 같은 놀이 기구가 있고 작은 우물도 있었다. 그런데 휠체어에 몸을 의지한 열 살쯤 된 아이가 준규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더니 어머니! 손님이 오셨어요!” 하고 방문 쪽을 향해 불렀다. 그런데 대답은 아주 서툰 한국어의 외국인 목소리였고 거실문을 열고 오탈과 함께 준규를 바라봤다. 준규는 오탈을 보자 머리를 숙여

안녕하십니까? 놀라셨지요? 그냥 한번 와 봤습니다.”

그러나 뜰 아래로 내려서는 오탈은 당신이 올 줄 알았다는 듯 태연하게,

아닙니다. 여기는 공기가 신선하고 마음이 한가로울 수 있는 곳이니 산보 삼아 오셨겠지요? 반갑습니다.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 참 내 아내 쏘냐입니다. 저 사람은 러시아에서 10여 년 전에 한국에 취업차 건너왔는데 제 처가 되었습니다

준규는 김규호 시인의 하던 이야기에 비로소 의문점을 알 수 있었다. 결국 오탈은 저 여자에게서 러시아어를 배웠겠구나! 뒤에 오탈의 얘기를 들어 다 알게 됐지만 너무나 아름답게 생긴 쏘냐는 한국에 온 러시아의 무용수였다. 결국 수많은 선친의 가산을 방탕한 생활로 다 털어먹는 과정에서 만난 술집 접대부 소냐를 자기 집으로 데려와 아내를 삼고 회개하여 20여 명의 갈 곳 없는 고아나 장애인 아이들을 보살피며 세상에 노출되지 않게 사랑을 실천하며 불경뿐만 아니라 성서나 각종 철학 문학 서적을 읽고 저술을 하며 몇 가지 발명 특허를 가지고 있어서 생활에 불편이 없이 살고 있었다 .

김규호 시인은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배이고 스승인 셈입니다. 나는 저분이 아니었다면 지금 타락의 구덩이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아마 거지가 되어 죽었거나 자폐의 지경에 있을 것입니다. 저분은 내가 폐인 술주정뱅이가 되어 거리에 쓰러져 있을 때마다 찾아와 자기 집으로 데려갔고 삶에 대해 누구나 해답 없는 길을 가고 있으나 하루하루 상식에 가까운 삶에 충실하지 않으면 고통만 더 할 뿐이고 결국 비참한 세상으로 향해 갈 뿐이다는 말을 거듭하며 걱정스럽게 바라봐 줘서 결국 이렇게 잘 살게 해줬습니다. 저번에 강연회장에서 박목사님을 만난 일이 결국 우연이 아니고 김규호 시인에게 어떤 이유가 있었을 듯합니다.”

준규는 그때서야 무엇인가 감을 잡았다는 듯.

그렇습니다. 그분은 저의 앞날을 걱정 한 것입니다. 저는 교회의 목사라는 건 겉치레에 불과하고 흔히 말하는 꾼목사입니다. 얼마의 보수에 마음을 쏟는 속물이지요. 하느님을 속이고 신도들을 속이고, 처자식과 거기다 불륜에까지 빠져서 ...“

준규는 목이 메었다, 오탈의 앞에서 자존심을 버리고 어떻게 자신의 고해성사를 했는지 순간적 착각인 듯 스스로 놀랍기까지 했다. 그때 깜짝 놀랄 정도의 큰 웃음소리로 껄껄대며 오탈은

아 지금 목사님께서 뭘 그렇게 세상의 잘못을 혼자 짊어지신 것처럼 힘들어하십니까? 너무나 당연한 인간의 속성대로 자신의 역할을 맡아서 한 것뿐이지 않을까요? 이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역할에 싫증이 나셔서 정반대 편의 사람으로 전환을 해보려는 본능적인 자각에서 이러시는 것 일 듯하네요. 이 땡초도 그랬거든요. 나는 몸을 파는 저 여자의 고객이었으니까요.”

준규는 그 순간 또다시 자존심이 상하는 듯한 느낌을 억제하며

그러셨습니까? 참 사람의 일이란 알 수가 없으니 하느님도 제게 미리 가르쳐 주지 않으셨나 봅니다. ! 어떡게 해야 할지 막막합니다.”

오탈은 다시 껄껄 웃으며

그렇습니까? 그러시면 돌아가서 차츰차츰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시며 세상을 내려다보세요. 그러면 실마리가 풀릴 것입니다.”

?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준규는 오탈과의 대화에서 태산준령 같은 장엄한 사상에서 예측할 수 없이 불거지는 작은 골짜기의 시냇물 같은 신선하고 차거운 언변에 어린 포로처럼 당황해할 수밖에 없었다. 오탈은 다시 정색을 하고 차분하고 그윽하고 다정한 목소리로.

예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삶의 지혜는 사랑을 제대로 배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자비그것과 아무것도 다른 게 없다고 봅니다. 다만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가르침의 원래 뜻을 사람들이 곡해하게 되는 것이지요. 만산 김규호 선배님은 야생화를 기르고 계십니다. 아주 이름도 없는 야생초를 집으로 데려다 열심히, 극진히, 길러서 앙증스러운 꽃을 피워 주는 분입니다. 정말 진심으로 사랑하고 먹이를 주면 산에 있는 새들이 사람의 손위에 의심 없이 날아와 앉는 걸 TV에서 봤듯이 사랑은 상식을 허물고 기적을 보여 줍니다. 간절한 사랑에는 죽어가던 야생초도 응답을 합니다. 물주고 가꾸면 아주 튼튼하게 생기 있게 자라서 꽃을 피워주더라구요, 저는 제가 기르는 아이들이 화초이고 새입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사랑하면 내 자신의 시야가 넓어지면서 세상이 편안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계단 위를 차츰 높이 밟고 올라가는 것 아닌가요. 테레사 수녀처럼 자신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지요.”

오탈의 말과 표정에서는 아직까지 체험해보지 않은 숭고한 진심이 보였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는 편안함과 무욕의 광야에서 불어오는 봄바람 같은 순수가 보였다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마저도 의식 하지 않는 드높은 해탈의 경지가 보였다. 준규는 부끄러우면서도 기쁨 같은 걸 느꼈다. 사랑의 의미가 무엇인가 여태 입에 발린 설교 속에 자기가 가장 잘 아는 체하며 외쳤던 단어! 사랑! 그것은 진실해야 하며 그러므로써 세상을 밝게 내려다 볼 수 있다는 진리! 가장 진부한 표피로 가려져 있던 진리! 그것은 아무나 얻어낼 수 없는 값진 것이다, 준규는 한참이나 그 부처님처럼 편안한 오탈을 건너다보다가 의미 있는 눈길을 나누며 일어섰다.

이제 가겠습니다. 제 생애에 빛의 씨앗을 주신 오탈 스님 고맙습니다!”

오탈은 다시 태연해지면서

별말씀을요, 차를 저 아래 두고 오셨겠군요. 그러시면 제 아내와 담소도 나누시며 차 있는 곳까지 가시지요 저 사람도 이런 저녁에는 산책을 좀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순간 또다시 준규는 놀랐다. 어둠이 내려오는 산길을 빼어난 미모의 자기 아내와 산책하며 가라니. 그때 쏘냐가 또 명랑한 목소리로

, 그러세요 저도 산책을 갈 겁니다.”

준규가 바라본 쏘냐는 아직 폭포수 같은 긴 생머리의 처녀티가 나는 숙녀. 러시안 특유의 하얀 피부가 불빛에 눈부시리만큼 아름다웠고 약간 서툰 한국 말씨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분위기도 더욱 순수해 보였다. 준규는 무슨 응답을 할 어조가 마련되지 않아 어정쩡한 표정으로 그냥 오탈에게 평안하시고 또 뵙기를 바란다는 인사와 함께 그 집 마당을 떠났다. 말없이 한참 동안 함께 걷던 소냐는 뒤따라오는 준규를 해맑은 눈빛으로 바라보며

목사님? 목사님의 사모님께서는 어떤 분이신가요?”

그냥 평범한 주부입니다.”

말씀대로라면 평범하다는 것은 사실은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뜻도 될 것 같습니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특별하게 잘생기거나 못생기다 보면 세상을 불안하게 하는데 한몫을 담당하거든요. 저 같은 여자처럼...저는 저 자신이 잘났는지 못났는지 알 수는 없으나 한때 밝은 세상에 먹칠을 한 걸 보면 평범한 여자가 아닌 건 확실하거든요? 저의 남편 오탈도 저처럼 평범하지 않습니다. 저 같은 별난 여자랑 살게 된 걸 보면요. 그러나 저분은 등불을 켤 줄 아는 분이었습니다. 어두운 곳을 끝까지 어둡게 버려두지 않는...저분과 함께하게 된 동기는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만 저분은 언제부터인가 제게 믿음을 주고 있었어요. 외로운 세상을 다 잊을 수 있을 만큼요.”

준규의 머릿속에 소냐의 그 외로운 세상이라는 말이 공연히 자꾸 크로즈엎 되는 것을 느끼며 준규는 앞서가던 쏘냐가 보이지 않음을 비로소 느껴 뒤를 돌아다봤다. 쏘냐는 저만치 서서 준규를 바라보며

훌륭한 목사님! 가셔서 세상의 등불이 되세요! 그러시려면 아마 바쁘셔서 여기 오실 시간이 없으실 겁니다.”

준규는 모든 죄를 벗어버린 인간이 어떤 것인지를 저 두 사람에게서 느끼며 걸어가고 있었다. 저렇게 넓은 밤하늘 수많은 별 그 속의 작은 지구, 지구 위의 작은 자신이 결국은 우주의 전부이고 아무런 죄가 없는 빛이라는 것을 깨달으며 ...



목차로 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