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인 1
회색인
최인훈
1
벗이 멀리서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않은가
1958년 어느 비가 내리는 가을 저녁에 독고준(獨孤俊)의 하숙집으로 그의 친구인 김학이 진로 소주 한 병과 말린 오징어 두 마리를 사 들고 찾아들었다.
학은 벌써 취해 있었다. 그는 침침한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자식은 이상한 데다 둥지를 틀고 있단 말이야, 하고 친구의 해사하면서 무슨 일에든지 신명을 내지 않는 우울한 눈빛을 얼핏 머리에 떠올렸다.
주인은 집에 있었다. 반색을 하는 품이 그답지 않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잘 왔어."
"정말?"
"믿지 못하는 친구군. 삶을 좀 고지식하게 받아들이란 말야. 좋다면 좋은 거야."
"아이쿠, 언제부터야."
그들은 큰 소리로 웃었다.
준은 그래도 주인이라고, 미안한데 어쩌구 중얼거리면서,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다 학이 들고 온 물건으로 술상을 차렸다.
"자, 한잔."
학은 술잔을 내밀어 준이 따르는 술을 받으려다가 황급히 손을 거둬들였다. 그리고 술잔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왜 그래?"
준의 말.
"이게 뭐지? 묻었어……."
준은 목을 빼고 들여다보더니,
"아, 그거, 양치질할 때 쓰는 컵이야. 치약일 거야."
"자식이, 무슨 사람이 그래."
학은 종이로 컵 가장자리를 되게 문질러 댔다.
"아주 깨끗한 체하는데? 세균과 망상의 덩어리면서."
"딴소리 말어. 더러운 건 더러운 거야."
그들은 또 한 번 웃었다.
"아, 참……."
학은 들고 온 종이봉투 속에서 얄팍한 팸플릿을 꺼내어 준에게 주었다.
"자네 거 이번에 실렸어. 틀린 글자나 없는지 몰라……."
그는 준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우리 동인(同人)들이 칭찬하더군. 자네 정말 동인 될 생각 없어?"
그것은 학이 적을 두고 있는 정치학과 학생들의 학술 동인지 《갇힌 세대》였다. 학의 요청으로 거기에 이를테면 초대투고를 한 것이 이번 호에 났다는 것이다. 준은 잔에 남은 술을 쭉 들이켜고 목차를 뒤졌다. 그의 글은 맨 뒤에 실려 있었다.
만일 우리나라가 식민지를 가졌다면 참 좋을 것이다. 먼저 그 많은 대학 졸업생들을 식민지 벼슬아치로 내보낼 수 있으니, 젊은 세대의 초조와 불안이 훨씬 누그러지고 따라서 사회의 무드가 느긋해질 것이다.
집안에서 싸우던 사람들도 밖에 나가면 경쟁의식이 훨씬 사그라지고 그 대신 현지의 문화 유적이나 살피면서 점잖은 취미를 기를 것이다. 여야가 아무리 치고받는 국회라 할지라도, 일이 식민지 통치에 관한 한 쉬쉬하면서 아무래도 민족은 이해공동체라는 본을 훌륭하게 드러내 보일 것이다. 무어니무어니 해도 유부녀 외입만한 것이 없다고, 타족(他族) 족치면서 살아가는 것만큼 깨 쏟아지는 재미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치 싸움의 숨쉴 구멍이 생긴다. 심심하면 차볼 수 있는 개 옆구리가 말이다. 가령 수도 서울에 어마어마한 화재가 생겨서 온통 생지옥이 벌어져서 민심이 흉흉할 때, ‘땃벌떼’ ‘백골단’ 같은 애국단체를 풀어 놓아 ‘화재는 모(某)국인들의 계획적 소행이다’ 하는 헛말을 퍼뜨린다. 모국인이란 말할 것 없이 우리의 식민지 사람을 가리킨다. 불같이 성난 군중은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당국의 치안 유지를 돕기 위해서 밀려간다. 불난 집이 성한다는 옛말이 옳다는 것이 이렇게 밝혀진다. 노동자들도, 인터내셔널이니 만국의 노동자니 하는 말에 그닥 입맛을 돋우지 않을 것이며, 그보다는 값싼 식민지 노동군(軍)의 내지(內地) 이동을 막으라고 요구하는 온건한 파업을 할 것이다. 경제 사정은 나쁘지 않을 것이다. 현지 농민의 무지와 법의 불비를 농간질하여 엄청난 땅을 빼앗아서 본국(우리, 즉 한국 말이다) 농민을 옮겨다 앉힌다. 식민지의 이권을 한 손에 쥐고 있는 조건에서는 웬만한 경영 솜씨라도 수지는 맞출 수 있을 것이다. 살림이 넉넉하니 짐승 사랑하기 모임 같은 풍류인의 구락부가 생겨서, 개장국집 앞에서 앉아서 버티기 데모를 하는 사진이 신문을 장식할 것이다. 하물며, 순경이 시민의 머리카락이라도 건드리는 날에는 생야단이 날 것이다. 대학에서는 국학(國學)의 연구가 성하고, 허균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큰 선배며 토머스 모어의 선생이라고 밝혀질 것이며, 이퇴계의 사상이 현대 핵물리학의 원리를 어떻게 앞질렀나를 밝혀낼 것이다. 우리들의 식민지를 가령 나빠유(NAPAJ)라고 부른다면 ‘정송강(鄭松江)과 나빠유를 바꾸지 않겠노라.’ 이런 소리를 탕탕할 것이다. 식민지가 얼을 찾아 하나로 뭉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곳 옛 지배층에게 뼈다귀나 던져 주어 지킴개로 부리며 지방별과 족보, 사주 같은 것을 부추겨 저희끼리 싸움질하게 부채질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너무 족쳐서 뜻하지 않는 일을 빚어내지 않기 위하여 문치(文治)비슷한 일을 물론 해야 한다. 불온한 청년들의 사명감을 꾀스럽게 돌려서 농촌 계몽으로 카타르시스 시킨다. 한국 불교 조계종 분원(分院)을 두어 인생무상과 제법개공의 이(理)를 선전하여 ‘곤냐꾸(곤약)’ 정책을 쓴다. 고려자기를 왁자지껄 선전하여, 이런 예술을 낳은 국민이 치자(治者)가 되어있는 현실은 골백번 공평한 역사의 보수임을 알려 준다. 하도 태평천하라 도대체 우리는 무얼 하란 말이냐고 투덜거리는 앵그리 젊은 맨들의 귀여운 투정이 문학계를 즐겁고 볼 만하게 할 것이다. 문학 얘기가 났으니 말이지, 교양 있는 독자는 늘어가고 염가판이 쏟아져 나오고 고전의 보급이 희한할 만큼 잘 돼 있고, 이런 기름진 밑거름 위에, 국민사(史)이면서 인간사일 수 있는 활달 정묘한 산문이 낭자하게 꽃필 것이다. 한글의 역사가 낱낱이 캐지고, 방대한 국어사전이 쏟아져 나오고, 한 문학가는 ‘한국 문학의 에스프리는 첫째로 멋, 둘째는 멋, 그리고 셋째가 멋’이라고, 익살을 부릴 것이다. 음악의 발달은 아유 기막혀서 비엔나를 가리켜 ‘오스트리아의 서울’이라 부르게 될 것이다. 국악(國樂)의 저, 다 죽었는가 하면 문득 되살아나며, 넋의 어깨춤이 절로 나는 백천 번 멋들어진 가락이 전 세계의 음악 팬을 환장하게 만들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국주의를 대외 정책으로, 민주주의를 대내 정책으로 쓸 수 있었던 저 자유자재한, 행복한 시대는 영원히 가고 우리는 지금 국제 협조, 후진국 개발의 새 나팔이 야단스러운 새 유행 시대에 살고 있으니, 민주주의의 거름으로 써야 할 식민지를 부앙 천지 어느 곳에서 손에 넣을 수 있으랴. 그러나 식민지 없는 민주주의는 크나큰 모험이다.
나는 몹시 괴로워서 마침내 내가 평소에 존경하는 나의 여자 친구를 찾아가서 여차여차 자초지종을 말하고 묘안의 유무를 물었다. 그녀는 먼저 나의 애국심을 칭찬하고 난 다음 말하는 것이었다.
"식민지의 대용물을 찾아야죠."
"대용물?"
"그렇죠. 이제 식민지야 어떻게 얻겠어요? 그러니까 그것말고 그런 효력이 있는 다른 걸 찾아야죠."
"막 뺏고, 밟고, 퍼내도 아깝지 않을 그런 것이, 에이 여보쇼, 어딨단 말씀이오?"
"있지요."
"뭡니까?"
"사랑과 시간."
나는 경악하여 넉넉히 십 분 남짓을 망연자실한 끝에 모기 소리만 하게 대꾸한 것이다.
"여자여, 그대의 언(言)이 미(美)하도다."
그리고는 그녀를 미친개처럼 키스하였다."
"잘 썼는데!"
그것은 당자인 준의 말이었다. 그는 잡지를 책상 위에 얹었다.
"음, 인정해.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내 얘기 어때?"
"뭐?"
"동인이 되라는 얘기 말야."
"정치학도들과 소설가 지망생이 동인이라는 건 좀 우습지 않아?"
"준이답잖은 옹졸한 말인데? 물론 정치과에 있는 애들끼리 서로 배우자는 게 뜻이지만, 그렇게 해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서로 정신적으로 묶이자는 건데, 동인들이 자네 원고를 보고 무슨 과에 다니느냔 거야. 국문과라니까, 어버이 살아실 제의 후예치고는 꽤 쓸 만하다는 거야. 정치 감각이 있다는 거야."
"어버이 살아실 제란 건 뭐야?"
"왜 어버이 살아실 제 효도를 다할 것이 하는 시조 있잖아?"
"그래서?"
"우리 패들 얘기가, 그게 무슨 예술이냔 거야. 시조라는 게 다 그런 투 아냐? 주어진 질서를 곧이곧대로 차원도 옮김이 없이 자수에 맞춰서 풀이하는 게 무슨 예술이야?"
"그런 점도 없지는 않아. 그러나 국문학의 전부가 시조는 아니야. 그리고 국문학은 운문보다 산문 쪽이 나아."
"전문이 아니니까 그런 것까지 알 수 있나. 고작해서 대학 입시 때 고대문 지식하고 일학년 때 교양과목으로 얻어들은 것밖엔 없는 친구들이니까 좀 표현이 지나친지도 모르지만, 아무튼 우리가 알기론 요새 문학이란 것도 우습더군. 어느 나라에 살고 있는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시공(時空)의 좌표가 부재란 말야. 한국인의 정신 풍토는 나침반과 시계가 없는 배 같은 거야. 그 시간이 그 시간, 조금도 다름이 없어. 어쩌다 소설을 읽어 봐도 조금도 사무치지 않아. 문학에 소양이 없어서 그럴 테지만 요새 나오는 시 같은 건 아주 손든 지 오래. 그건 무슨 소리지? 우리만 하면 그래도 한국에선 고급 독자에 들지 않아? 아무리 예술의 세계가 어려워졌대도 그 어려운 대목은 예술가가 맡고, 표현으로 나왔을 때는 적어도 최대공약수적인 얼굴을 하고 나와야 할 게 아닌가? 그렇지 않으면 현대 예술이란, 벌써 그 길에 전문으로 몸담은 사람이어서 문학사와 작가 연구를 한 사람이 아니면 대뜸 작품 하나만 가지고는 뜻이 오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단 말인가? 그렇다면 예술은 폐쇄사회를 만든 게 아닌가? 내 말은 유행가를 쓰라는 게 아니야. 역사적인 시간과 공간을 함께하는 동시대인들에게만은 적어도 알 수 있는 형태와 감동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이야. 문학사에서 평가는 어떻게 돼 있는지 모르지만, 난 김동인보다는 이광수가 훨씬 좋더군. 김동인한테서는 역사 감각이란 걸 조금도 찾아볼 수 없어. 그가 역사 소설을 썼다는 것이 그 증거야. 그에게는 이야기로 들은 역사, 이미 화석이 된 역사밖에는 파악할 수 없었던 모양이지. 그의 현대 소설에는 날짜 표시가 없어. 그 인물들은 이조 시대라도 좋고 일제시대라도 좋고 오늘이라도 좋은 사람들 아닌가? 그의 소설은 역사의 비명(碑銘)이 아니라 자연의 가락이야. 바람과 물 같은 것이야. ‘발가락이 닮았다’는 단편 있잖아. 그래 발가락이 닮았으면 어쨌다는 거야? 삼천리강산이 다 일본을 닮아 가는 판에, 발가락쯤 닮아서 무에 그리 신기한 게 있겠어? 역사를 자연과 헷갈리고 인간을 씨돼지와 혼동하고 있는 게 아닌가? 김동인은 일본의 침략을 독감 같은 걸로 알았던 모양이야. 그에 비하면 이광수는 훌륭해. 다른 작품은 다 말고 ‘흙’ 하나만 가지고도 그는 한국 최대의 작가야. 그 시대를 산 가장 전형적 한국 인텔리의 한 사람을 무리 없이 그리고 있잖아? ‘살여울’에서 한 그의 사업이 성공했느냐 못 했느냐는 물을 바가 아니지. 그는 그 당시 국내에서 살았던 낭만적인 인간의 꿈을 그린 거야. 그는 시대의 큰 줄기가 무엇인지를 보는 눈이 있었어. 이런 소설을 써달란 말이야. 우리 시대에 "허숭 이 살아 있다면 그가 무엇을 했겠는가를 써달란 말이야. 자네가 그런 걸 쓸 만하다고 인정했기 때문에 동인이 돼달라는 거야. 싫어?"
먼저 들어간 것이 있는 학은 꽤 취하는 모양이었다. 준은 오징어다리를 씹고 있다가 학의 말이 끝나자 박수를 쳤다.
"자네 문학 평론으로 돌아보지 그래. 그리고 루카치한테 추천을 받아."
"루카치?"
"응, 헝가리 사람인데, 뭐랄까 이를테면 낭만적 마르크스주의자라 할까 그런 사람이야. 아, 취하는데……."
"농담이 아냐. 그만 빼고 자 어때, 내 면목을 세워 줄 수 없어?"
"내가 입회하면 자네 면목이 서나?"
"그래, 내가 권유하도록 맡았으니까?"
"그런 데 들어선 뭘 해?"
"이런, 몇 번 말해야 알아…… 아까도 얘기하잖았어? 취지를 말하면……."
"아니, 그걸 잊은 게 아냐. 그런 걸 해서는 뭘 하자는 거야. 부질없어. 그리구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하구 갑자기 회원이 된대도 잘 어울릴지 모르잖어?"
"다 좋은 애들이야."
"물론 그렇겠지. 그 점을 염려하는 게 아냐. 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반드시 호감을 준다는 법은 없어. 그리구 난 현재로선 조직이라는 걸 믿을 수 없어."
"그건 자네 잘못이야.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을지 모르지만 어차피 사람은 조직을 통해서만 행동을 할 수 있는 거야. 이봐, 사람 일 알수 없는 거야. 언젠가 우리 패가 내각을 만드는 날이 올지 누가 알아? 그땐 자네한테 문교부 장관 한 자리 돌아오지 말란 법도 없을걸."
"정치과 학생은 다른데? 설득 방법이 리얼해."
"결국 거절하는 건가?"
"자네하고 나하고 이렇게 술이나 마시면 되잖아? 그보다 자네 정치학을 그만두고 문학 평론을 하지."
"하하하, 이번엔 내가 설득당하는 차례군. 어때, 내 의견에도 들을만한 데가 있나?"
"확실히 일리가 있어. 그러나 자네가 말한 한국 문학의 문제도 역시 한국적 상황 일반의 부분적인 형태라는 게 내 생각이야. 한국의 문학에는 신화(神話)가 없어. 한국의 정치처럼 말야. ‘비너스’란 낱말에서 서양 시인과 서양 독자가 주고받는 풍부한 내포와 외연(外延)이 우리에게는 존재치 않는단 말이거든. 서양의 빛나는 시어(詩語)나 관용어들이 우리의 대중 속에서 매춘부로 전락하는 사례를 얼마든지 들 수 있어. 가로되 ‘니콜라이의 종소리’ ‘성모 마리아’ ‘슬픔의 장미’ ‘낙타와 신기루’ ‘아라비아’ 같은 거. 이런 말은 그쪽에서는 강렬한 점화력을 가진 말이야. 왜냐하면 그 말들 뒤에 역사가 있기 때문이야. ‘니콜라이의 종’ 하면 희랍 정교회의 역사와 비잔틴과 러시아 교회와 동로마 제국의 흥망이 그 밑에 깔려 있는 게 아니겠나? ‘성모 마리아’는 더 말해서 뭣해? 바이블과 카톨릭 중세 기사들의 순례와 수억의 인간이 긋는 성호(聖號)가 이 고유명사를 받치고 있지 않아? 탄식의 장미는? 장미꽃을 빼고서 서양 문학을 말하는 건 달을 빼고 이태백이를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사막’ ‘낙타’" ‘아라비아’ 같은 것도 마찬가지야. 유럽의 모험과 통상(通商)의 역사를 빼고 이런 이미지를 이해할 수는 없을 거야. 그것은 아라비안 나이트와 아라비아의 로렌스와의 이상한 혼합물이야. 주민과 풍토에서 떨어진 신화는 다만 철학일 뿐 신화는 아니야. 신화는 인간과 풍토가, 시간과 공간이 빚어낸 영혼의 성감대(性感帶)지. 거기를 건드리면 울고 웃고 발정하고 손톱을 박아 오는 그러한 지역이거든. 이 성감대가 없고 보면 애무는 부자연한 장난이며 실례이며 변태에 지나지 않고, 독자는 불감증의 게으른 잠에서 깨지 못해. 한국의 현대시와 그 독자는 서툰 부부와 같아. 그렇다고 우리는 돌아갈 만한 전통도 없다. 아니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 전통은 자칫 우리들의 헤어날 수 없는 함정이기 십상이다. 흥얼거리는 타령조와 질탕한 설움 속에 너울너울 춤추는 선인들의 미학은 불쌍한 우리들 개화손(開化孫)들의, 그나마 탐탁지 못한 얼을 빼고 골을 훑어서 급기야 하이칼라 머리를 몽똥그려 상투를 꼬아 줄 테니까. 우리들에게 있어서 서양은 매춘부와 같고 선인들은 물귀신 같애. 귀신이래서 나쁜 것은 아니지. 다만 사이렌과 발푸르기스의 마녀들의 후손은 달을 포격하기에 이르렀으나 손오공의 후예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하늘을 나는 모포와 사이렌의 피리는 살아 있다. 그러나 손오공의 여의봉은 어디 있는가? 그들의 경우 과거와 현재는 이어져 있으나 우리는 끊어져 있다. 전위(前衛), 보수(保守)란 말은 우리들의 경우 이중의 뜻을 가지고 있어. 우리들에게도 전위란 여전히 서양적인 것일 수밖에 없지만, 정작 그 상대는 보수적 서양과 동양이라는 두 겹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거야. 저들은 단단한 벽돌 위에 얹힌 풍차와 싸우고 있으나 우리는 허공중에 거꾸로 매달린 허깨비와 싸우고 있어. 우리는 돈키호테도 될 수 없어. 저들은 낡은 신화를 부수고 새 신화를 세우기 위해 시를 쓰지만, 우리에게는 부술 신화가 없고, 서양의 그것은 서양 시인들이 부술 것이며 동양의 그것은 이미 폐허가 돼버렸으니 부수려야 부술 수 없어. 우리들은 패배한 종족이야. 상황은 뚜렷해. 우리들은 몇백 년 혹은 몇십 년씩 식민지민(植民地民)이었어. 동양은 백인들의 노예로서 세계사에 끌려 나왔어. 맞먹는 경기자로서가 아니야. 이 사실이 모든 것을 설명해. 피카소에게는 필연적인 일이 우리에게는 필연적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은 이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 봐. 에어플레인을 날틀이라고 말해 본대서 무에 달라지겠는가 말이야. 비행기를 우리 것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손이 비행기를 만들고 우리들의 몸이 비행기의 떨림에 더 많이 친근해지는 때에만 가능해. 문제는 말의 영역이 아니라 역사의 공간에 있지. 언어로 친다면 우리도 과히 빠지지 않아. 지난날 우리에게 언어는 즉 존재였지. 언어 그것이 목적이었지. 그러나 서양인들에게는 그것은 부호였어. 그것은 작업을 위한 눈금이며 수획의 기록이었다는 거야. 서예(書藝)라는 예술이 이 같은 차이를 잘 말해 준다고 볼 수 있어. 언어가 부호이기를 그치고 존재로 승격했을 때 우리는 존재를 잃었지. 그래서 가장 풍부한 언어인 한자(漢字)는 가장 가난한 언어가 되었고 가장 소박한 표음문자는 그 속에 풍부한 역사의 육신을 가지게 되었어. 신화의 부재란, 사실은 역사의 부재였던 것이야. 언어는 생산하지 않아. 다만 역사, 행동만이 생산해. 언어는 그 생산고(生産高)를 기록할 뿐. 엘리자베스 시대(Elizabethan Age)라는 말이 풍기는 뉘앙스는 결코 기계적인 실러블의 배합의 결과가 아니라 구체적인 문화사적 부호인 거야. 그것은 엘리자베스가 아니라도 좋아. 가령 불독(Bulldog)이라도 좋아. 그렇더라도 그 시대가 동일한 것인 이상 우리는 불독 시대(Bulldog Age)에서 엘리자베스 시대와 동일한 심상(心象)을 받을 게 아닌가? 부잣집 딸이 설사 ‘천둥이’라는 이름을 가졌대도 거기서 따뜻한 유머와 화려한 익살을 볼 테지. 그러나 심봉사의 딸인 한, 그녀가 선화공주란 이름을 가졌대도 별수 없어. 거리에 나앉은 성명 철학자들을 찾는 것이 부질없는 건 이런 때문이야. 이렇게 말하면 시의 창조적 기능이나 예언으로서의 기능을 잊었다고 할 테지만 창조나 예언도 인간에 관한 한 운명에 대한 모험이란 뜻일 테고, 운명에 대한 모험이란 어차피 역사에 대한 ‘반격 형식’이 아닌가? 우리가 무리했던 것은 우리들의 ‘현재’에 통과시킴이 없이 엉뚱하게 파리에 혹은 서라벌에 비약한 데 있지 않겠는가 말이야. 파리도 서라벌도 우리에겐 이방(異邦)이야. 이제까지 우리는 오해하고 있었어. 이 같은 현상이 왜 문학에 한한 일이겠어? 이건 한국의 상황 일반이 아닌가? 다시 말하면 문학 자체에만 책임을 묻는 건 너무 가혹하다는 거야."
학은 술잔을 입에서 떼면서 귀를 기울였다. 철떡철떡 처마 끝을 떠나는 빗물 소리. 접시에 담긴 죽을 핥아먹는 개의 혓바닥 소리 같은 철떡이는 가락이 이슥한 밤을 알렸다.
학은 문득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렇다면 행동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나는 행동하지 않으려는 거야."
"논리가 맞지 않는데?"
"알라딘의 램프는 아무 데도 없어. 우리 앞에 홀연히 나타날 궁전은 기대할 수 없어."
"그렇다면?"
"사랑과 시간이야."
"비겁한 도피다!"
"용감한 패배도 마찬가지지."
"패배를 거쳐서 사람은 자란다."
"무책임한 소리 말어. 자기 자신이 받는 피해는 그만두고라도 남에게 끼친 피해는 무얼로 갚겠나?"
"앉아서 굶어죽자는 식이군."
"극단적인 비유는 잘못을 저지르기 쉽지. 내 뜻은 한국의 상황에서는 혁명도 불가능하다는 말이야. 개인적인 용기의 유무보다 훨씬 복잡해."
또 대화가 끊어졌다. 이번에는 침묵이 오래 끌었다. 학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더니 천천히 말했다.
"그것도 역시 거짓말이야. 혁명이 가능했던 시대라는 건 어디도 없었어. 그래서 혁명이 일어났던 거야. 이런 역설의 논리는 인간의 의지에 의해서만 뚫렸어. 그 의지의 발동을 망설이는 것을 나는 비겁이라고 부르는 수밖에는 없어."
"아마 그럴 거야."
준의 말투는 화난 듯했다. 학은 친구를 한참이나 쳐다보다가 방바닥을 짚고 일어섰다. 휘청했다. 왜? 하고 준이 눈으로 물었다.
"가겠어."
"비가 오잖아. 자고 가."
"아니, 오늘은 가봐야 돼."
"그래?"
준은 더 말리지 않고 친구를 따라 방을 나갔다. 바깥은 안에서 낙숫물 소리로 짐작한 푼수로는 덜한 비였다. 안개보다 조금 무거운, 그러나 몹시 차가운 가을비였다.
"정말 가겠어?"
준은 손바닥을 펴서 비를 받는 시늉을 하면서 다시 한번 물었으나 학은 곧장 대문 쪽으로 걸어갔다. 대문을 나서기 전에 학은 낮은 소리로 말했다.
"자네 말이 맞는지도 몰라."
줄곧 그 생각을 하고 있었던 모양으로 그의 말은 당돌하게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준의 가슴을 쳤다.
"조심해."
준은 그렇게만 말했다.
그는 방에 돌아와서 번듯이 드러누웠다. 갑자기 외로워졌다. 둘이서 소주 한 병을 비웠으면 그의 주량으로서는 무던한 편이었는데도 조금도 취하지 않았다. 술이란 먹는 자리에 따라서 취하기도 하고 않기도 하는데 지금의 준이 그랬다.
그는, 빈 병과 오징어 쪽을 신문지에 버무려 마루에 내놓고, 대강 방을 훔친 다음에, 자리를 깔고 드러누웠다. 낙숫물 듣는 소리가 점점 굵어진다.
철, 철, 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처마 밑에 받쳐 둔 양철대야에 떰벙떰벙 물 떨어지는 소리가 그 사이로 규칙적으로 들려온다. 철, 철, 철, 떰벙, 철, 철, 철, 떰벙. 매양 한결같이 끝없이 이어 가는 그 소리는 먼, 아주 먼 기억의 벌판으로 그의 마음을 천천히 천천히 몰고 간다. 북한의 고향집. 항구 도시에 연한 작은 마을. 멀리 제련소 굴뚝이 바라보이고 왼편으로 눈을 돌리면 저 아래로 Y만의 해안선이 레이스 주름처럼 땅을 물고 들어오는 곳. 과수원을 하는 집이 그의 고향 집이었다. 풍경을 이룬 부드럽고 구불구불한 둘레의 선(線) 속에서 자로 댄 듯이 하늘로 뻗친 하얀 굴뚝. 중학교 이 학년짜리 아이에게 그 희디흰 여름날의 굴뚝은 얼마나 놀랍고 달디단 신비였던가. 그것은 여름 한낮이면 눈부신 빛의 기둥처럼 솜구름이 우쭐우쭐한 하늘 속으로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그것은 굴뚝이 아니고 그렇게 큰 장승이었다. 끝에서 쉴 새 없이 내뿜는 잿빛 연기. 준은 그것을 장승의 머리카락이라고 생각하였다. 형이 보면 항상 꾸중을 하였으나, 그는 학교가 파해서 돌아오면 과수원 끝쪽의 오래 묵은 사과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굴뚝과 바다를 바라보았다. 여름에 연기는 항상 바닷바람을 받아서 뭍으로 날린다. 바다에서는 바람만이 아니고 냄새와 빛깔도 오는 것이었다. 그 냄새로 사과꽃이 피고 그 빛깔 속에서 준의 소년 시절의 시간이 익었다. 어린 그의 꿈만큼 집의 사정은 행복한 것이 아니었다. 토지개혁으로 과수원과 논의 태반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고 집에서 부칠 수 있는 이 작은 과수원과 몇 마지기 논이 남은 살림은, 여섯 식구 입을 지탱하기에 빠듯한 것이었다. 가장인 형네 내외와 두 살짜리 조카. 생과부가 된 누나. 어머니와 준. 그것은 묘한 가족이었다. 끼니때에도 대체로 묵묵히 말이 없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모녀간이라느니보다 설움을 아는 과부끼리였다. 그녀들의 남편은 똑같이 해방이 된 이듬해, 그러니까 토지개혁이 있은 해에 월남했었다. 아버지가 월남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 덕분으로 일본 유학을 마친 후로는 줄곧 이 시골에서 과수원을 지켜 온 아버지는 공산당의 눈으로 보면 전형적인 봉건 지주라는 것이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막 이곳으로 왔을 무렵 소작인들의 편을 들어서 할아버지와 한동안 마찰이 있었던 것 같은 자그마한 반역(反逆)의 에피소드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느 달무리가 진 늦은 봄날에 아버지는 집에서 사라졌다. 몇 달 동안이나 준에게는 아버지는 W시의 친척댁에 가 계시다는 설명이 주어졌다. 차츰 시간이 가면서 준은 아버지의 간 곳을 물어서는 안 되는 그런 곳에 아버지가 갔음을 알았다. 아버지는 이렇게 그의 소년 시대의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러나 매부의 경우는 좀 달랐다. 그는 장인이 떠난 후에도 반년이나 있다가 월남했다. 그는 해방 직후 북한 사회에 흔히 볼 수 있었던 주관적 동반자(同伴者)의 한 사람이었다. 주관적이라고 해야 하는 까닭은, 본인은 공산 정권에 대해서 동반자 의식을 갖고 있었으나 공산당은 손톱눈만큼도 그를 동지로 알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가 그런 엉뚱한 착각을 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학병에 나갔다가 도망 왔던 것이다. 그는 그 일을 투쟁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공산당의 동무들은 그런 것은 조금도 투쟁이 아니라고 했다. 그런 투쟁을 할 수 있는 처지가 도대체 나쁘다는 것이었다. 학병이라는 특수 신분의 뿌리에는 한국의 봉건층과 일본 제국주의의 야합이 있었던 것이라고 매섭게 꾸짖었다. 매부는 당황했다. 그제야 그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렇게 해서 이 집에는 또 한 사람의 생과부가 생겨야 했다. 하기는 그들 두 사람은 아직 결혼식을 올린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같은 W시의 고등학교를 다닐 때 눈이 맞았던 것이다. 해방 전 준이 초등학교 삼사 학년 시절에 그는 젊은 두 사람의 만남에 가끔 어울리곤 했었다. 또 지금 생각하면 바둑이를 데리고 가는 셈쳤겠으나 그런 대접을 받는 재미도 싫지는 않았다. 또 한 가지는 셋이 있을 때는 누나가 유별나게 준을 위했다. 보통 때는 학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남자의 앞에 있을 때 그녀는 지나치게 준을 끔직이 다르는 듯이 보였다는 얘기다. 좋아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여자는 마음까지도 더 착해지는 것일까.
아무튼 그러한 누나가 매부가 떠난 뒤로는 사람이 달라졌다. 여위고 통 말이 없는 그녀는 밭이나 과수원에서 일제 시대에 입던 작업복을 걸치고 하루내 짜증내는 일도 없이 맡겨진 일을 했다.
형으로 말하면, 매부하고 동창이었으나 매부가 재주가 넘쳐 보이고 미남자인 데 비하여 그는 말없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없는, 덤덤한 사람이었다. 형수는 근처의 보통학교를 나온 시골 색시였다.
이런 환경은 어찌 보면 그리 나쁜 것은 아니었다. 가족마다 저마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 집안에서는 준의 행동을 간섭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 아버지가 계실 때는 가끔 잔소리를 들었고, 학기말마다 가져오는 성적 통지부를 들고 고민해야 하는 때가 괴로운 기억으로 남아 있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그럴 사람이 없었다.
밤이 깊어지면 이 집에서는 남모르는 의식(儀式)이 벌어졌다. 그것은 의식이라고 하는 것이 옳았다. 집안에서 제일 치우친 뒷방에는 라디오가 있었다. 일제로, 마이크 앞에 강아지가 앉은 표가 있는 그 다섯 구(球)짜리 라디오가 말하자면 신탁(神託)을 알리는 무당이었다. 그들은 깊은 밤에 보내는 남한의 대북 방송을 듣는 것이었다. 숨을 죽이고. 가슴 울렁이면서. 깊은 감동과 공감을 가지고. 전파를 타고 오는 여자의 아름다운 목소리를 듣는 깊은 밤의 의식(儀式). 사랑하는 북한 동포 여러분으로 시작하는 그 여자의 목소리는, 독고준의 소년 시절을 수놓고 있는 아름다운 시(詩)들 가운데서도 가장 빛나는 것 가운데 하나였다. 언제나 그 목소리와 더불어 시작하는 애국가의 가락은 그의 가슴을 달고 아릿한, 기쁨과 슬픔의 어느 것이라고 집어 낼 수 없는 야릇한 감동으로 막히게 했다. 언덕과 벌판의 한 모퉁이에 외따로 떨어진 집은 거의 완전하도록 안전한 곳이었으나 그들은 안심할 수 없는 신경을 달래는 방법을 마련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파수병 역할은 대개 어머니와 형수가 맡아 보았다. 그들은 라디오가 있는 방으로 지나가는 대청마루에서 다리미질을 하거나 적당한 일거리를 흩뜨려 놓아서 길을 막았다. 전파를 타고 호소하는 여자는 밤마다 놀라운 소식을 옮겨 주었다. 북한의 지배자들의 선전은 거짓말이라는 것. 북한은 감옥이라는 것. 자유와 행복을 뺏어 버리고 인민들을 노예처럼 부려먹는 무시무시한 감옥이며 북한 인민들은 그 감옥 속에 갇힌 죄수들이라는 것. 남한에서는 여러분을 하루바삐 구해 낼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자유. 꽃피는 문화. 세계와 통한 생활. 자유민들의 행복한 나라. 삼천리 금수강산. 이승만 박사. 김구 선생. 민주주의. 자유. 압제자들은 기어코 망하고야 말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 민족의 얼을 빼앗고 그 대신 붉은 제국주의자들의 혼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토지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착한 국민의 재산을 빼앗아 공산당이 지배하는 새로운 소작인(小作人)의 나라를 만들고야 말았습니다. 그들은 신의주와 함흥에서 우리들의 어린 꽃봉오리들을 소련의 전차와 총검을 빌려서 무참히도 학살했습니다. 여러분, 그러나 희망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의 조국은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부모 형제자매는 마(魔)의 38선을 넘어서 그리운 당신들을 우리들의 품에 안을 날을 고대합니다. 자유로운 조국. 민주주의의 나라. 유토피아…… 그것은 아버지의 목소리였으며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이 집안에서 그 목소리가 전하는 말을 의심할 사람이 있을 턱이 없었다. 준에게는 그것이 진리보다 더한 것이었다. 그것은 그에게 아름다운 동화로 들렸다. 오색 무지개에 싸여서 꽃이 피고 털빛이 고운 새들이 지저귀는 남쪽 나라에서 들려 오는 훈훈한 꿈의 속삭임이었다.
준 자신은 그때 모르는 일이었지만 당시 북한에는 이 같은 밤의 의식을 지내는 사람이 무척 많았다. 소문은 소문을 낳고 그러한 사람들의 티없는 가슴속에서 남조선은 이 세상에 없는 번영을 누렸다. 개인도 아니고 한 시대를 산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지니고 있었던 어떤 환상(幻像)을 다른 자리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실감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준은 월남 후 가끔 그것을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 마침내 그는 생각해 냈다. 아날로지에 의하는 길밖에는 없었다. 근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이탈리아에 보낸 미친 듯한 그리움. 저 "미뇽의 노래 가 풍기는 향수의 몸부림 속에 그는 그 쌍둥이를 찾아냈다. 바이런, 괴테, 횔덜린, 니체 같은 그 시대의 엘리트들의 이탈리아에 대해서 품고 있던 환상의 강렬함. 그들은 이탈리아에 그들 영혼의 주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들의 전기를 읽어 볼 기회를 가진 사람이면 쉽사리 알 수 있다. 해방돼서 전쟁이 날 때까지 북한 사람들이 남한에 대해서 품고 있던 심상(心象)의 모습도 이에 닮은 모습이었다. 사회에 널리 퍼진 그와 같은 믿음이 그 속에 사는 티끌인 한 소년에게도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었고, 하물며 집안의 형편이 몸으로 그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돼 있는 바에야 더더구나 그러했다. 그것은 독고준에게는 분위기로 있었다. 그리고 시대의 분위기라는 것이야말로 여자의 성감처럼 복잡한 진리가 아니겠는가. 말로 나타내자면 어쩔 수 없이 빙글빙글 도는 길을 더듬어야 되면서도 동시대인에게는 곧바로 사실로 존재하는 것. 아버지가 사는 지역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이렇게 해서 그들 집안을 정신적인 망명 가족으로 만들었던 것이며, 소년 독고준은 일찍이 그 나이에 망명인의 우울과 권태를 씹으며 자랐다.
비록 소년일망정 준에게도 박해의 시련이 있었다. 학교에서 소년단 집회가 열릴 때마다 그는 이단 심문소(異端審問所)에 불려 나간 배교자의 몫을 맡아야 했다. 그의 하찮은 생활의 잘못, 이를테면 지각이라든가 시간중에 졸았다든가, 청소가 깨끗지 못했다든가 하는 일들이 빠짐없이 그의 반동적 가족 성분에 연결돼서 검토되고 냉혹한 자기비판이 강요되었다. 소년단 지도원이라는 이름으로 학교에서의 공산당 출장원 노릇을 맡아 보는 교원은, 미래의 공산당의 달걀인 그의 꼬마 영웅들― 소년단 간부들을 지휘하여 회의를 진행시키면서 준을 공격하였다. 그것은 꼭 여러 마리 사냥개를 풀어서 죄 없는 짐승을 물게 하는 사냥꾼의 솜씨 같은 것이었다.
어느 날 역사 시간이었다. 새로 온 역사 선생이 처음 가지는 시간이어서 학생들은 조금 굳어 있었다. 올봄에 교원대학을 나왔다는(그는 아직도 학생 옷을 입고 있었다) 젊은 선생은 출석을 부르고 나자 학생들을 한 바퀴 죽 훑어본 다음 이렇게 물었다.
"여러분, 역사란 무엇일까요, 아는 사람?"
학생들은 약간 기가 질려서 눈만 말똥거릴 뿐 대뜸 반응은 없다.
"생각한 대로 말해 보십시오."
그 한마디에 끌리듯이 여기저기서 손이 올라갔다.
"녜, 역사란 옛날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역사는 지나간 일에 대해서 배우는 시간입니다."
"역사란 과거를 돌이켜보고 미래의 지침으로 삼는 과학입니다."
이것은 준의 대답이었다. 선생님은 대답마다 싱글싱글하면서 고개를 옆으로만 흔들고 있다가 모두 지쳐 버리자 비로소 입을 열었다.
"동무들은 모두 아주 귀여운 부르주아 역사가들이군요."
이 불길한 부르주아란 선언 때문에 학생들은 기가 질려 버렸다.
"역사란 옛날 일도 아니고, 또 옛날을 돌이켜서 앞을 보자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다 부르주아 역사가들이 인민을 속이기 위해서 만들어 낸 거짓말입니다. 역사란 계급투쟁의 과정입니다. 피지배 계급과 지배 계급 간의 피 흘린, 그리고 흘리고 있는 싸움의 과정, 이것이 역삽니다. 어떤 시대에 어떤 지배자들이 어떤 피압박 계급을 어떻게 착취했는가, 그들을 착취하기 위해서 어떤 전쟁을 했으며 어떤 문화를 만들어서 인민들의 눈을 속였는가를 연구하는 과학이 역삽니다. 이것은 일찍이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세워 놓은 역사의 방법입니다. 즉 유물사관입니다. 이것만이 참다운 역사의 방법입니다. 지금 이 시간부터 여러분은 압제자들에 대한 인민들의 반항의 역사를 배우는 것입니다."
중학교 일학년 생도들을 놓고 한 것을 생각하면 좀 너무한 일이었다. 사실 그 무렵 북한 땅에는 한 가지 종류의 진리의 말밖에는 없었다. 같은 진리라도 아이, 어른, 배운 사람, 못 배운 사람, 책임이 많은 사람, 책임이 적은 사람에 따라 몸에 맞게 처방된 진리의 양적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정말 너무한 것은 그날 저녁에 일어난 소년단 학급 총회였다. 학급 소년단 분단장은 느닷없이 준을 고발하는 것이었다.
"……독고준 동무는, 평소에 비열성적이며 낙후한 사업태도를 가지고 일해 왔는데, 오늘 역사 시간에는 부르주아적인 말을 하여 역사의 참다운 정의를 알지 못하면서 과오를 범했습니다. 자아비판을 요구합니다."
분단장은 종이에 적은 것을 읽고 있었다. 소년단 지도원이 적어 준 것임에 틀림없었다.
이날 준은 근 한 시간이나 고문을 당했다. 그리고 이런 일은 그후 심심치 않게 계속됐다. 그는 점점 더 망명자가 되었다.
사과꽃이 피기 전 매우(梅雨)의 계절에 그는 밤늦도록 안방에서 책을 읽으면서 새웠다. 그 방에는 아버지와 형님, 누나의 세 사람이 읽어온 책들이 그득했다. 그리고 이제 그 모든 책이 다 그의 것이었다. 아버님 책은 거의 모두가 오래된 일본 법률책이었다. 그것들은 준에게 아무 쓸모없는 휴지들이었다. 형과 누나의 책의 대부분은 소설이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읽었다. 누나가 밭일 속으로 망명(亡命)한 것처럼 그는 책 속으로 망명하였다. 그가 제일 좋아하며 되풀이 되풀이해서 읽은 책은 ‘플랜더스의 개’였다. 아름다운 사랑, 개와 사람 간에 맺어진 우정과 믿음, 어른들의 쓸데없는 겉치레, 소년의 야망, 우연이 빚어 낸 비극. 아름답고 착한 소년이 바르고 씩씩하게 살다가 쓰러지는 모습이 그를 감동시켰다. ‘집 없는 아이’도 그를 기쁘게 했다. 그것은 ‘플랜더스의 개’와는 거꾸로 바르고 굳센 사람이 끝에는 이기고야 마는 이야기였다. 레미 소년과 더불어 그는 프랑스 방방곡곡을 떠돌았다. 원숭이가 폐렴에 걸렸을 때 준은 몹시 슬펐다. 양어머니를 그리워하는 레미의 마음을 헤아리고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다. 모험과 싸움의 이야기가 그의 어린 마음을 즐겁게 했다. 이런 쉬운 이야기만 읽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두툼한 ‘나나’를 몰래 읽고 있었다. 이 게으르고 방종한 여자의 이야기가 어쩌면 그렇게 재미있을까. 그는 나나가 벽난로 앞에서 맨몸뚱이가 되어 불을 쬐는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이 뛰었다. ‘플랜더스의 개’나 ‘집 없는 아이’와는 또 다른 세계가 거기 있었다. 그리고 더 어찔하고 짜릿한 세계였다. ‘나나’를 그는 몰래 읽었다. 어쩐지 남이 보는 데서 읽기는 계면쩍었기 때문에. 어머니 앞에서만은 그는 버젓이 그 책을 펴놓고 읽었다. 어머니는 한글과 한문을 조금 뜯어볼 뿐, 책을 못 읽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그저 준이 아무 책이나 들고 있으면 공부하는 줄만 알고 몸이 상하겠다고 늘 말했다. 그럴 때 그는 사람을 속이고 있다는 죄의식을 느꼈다. 그것은 아마 그 자신 분명히 죄스럽다고 느낀 맨 처음 감정이었다. 죄의 기쁨 속에서도 이야기의 세계는 여전히 매력이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꾸로선 세계, 물구나무선 마음의 나라였다. 이야기가 더 현실적이고 현실이 더 거짓말 같은 질서였다. 이 같은 죄의 기쁨을 위해서 그는 나중에 값을 치러야만 했다. 그가 책을 읽고 있는 방 바깥 처마 끝에는 커다란 옹기 도가니가 늘 빗물받이로 놓여 있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철, 철, 철, 떰벙 떰벙, 하는 소리가 문득 그의 귀를 울렸다. 그는 한참씩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가는 다시 책장을 넘겼다. 책을 읽고 있는 사이 그 소리는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그의 주의력이 느슨해지면 그 소리는 다시 기어들었다. 사람이 들어서는 기척에 준은 머리를 들었다. 누님이 문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전에 없이 새 옷을 갈아입고 치장을 하고 있었다. 준의 곁에 와 앉는데 엷은 분 냄새가 풍겼다. 그녀의 표정은 어딘지 심상치 않은 데가 있었다. 준은 말없이 누나를 쳐다보았다.
누나는 준이 읽고 있는 책을 들여다보다 말했다.
"준아, 나하고 얘기 좀 할까?"
준은 눈으로 대답하고 일어나 앉았다.
"준은 매부 얼굴이 생각나?"
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나는 오른손을 내밀었다. 손바닥 위에 사진이 한 장 놓여 있었다. 준은 들여다보았다. 누나와 매부가 가지런히 앉아서 찍은 사진이었다. 두 사람 다 학생복 차림이었다. 사진 속의 두 사람은 활짝 웃고 있었다. 누나는 지금보다 갑절이나 젊고 싱싱해 보였다.
"셋이서 해수욕하던 생각 나니?"
누나는 사진을 이윽고 들여다보면서 혼자말처럼 물었다.
"응."
준은 그녀가 왜 갑자기 매부 이야기를 묻는지 이상스러웠다. 그는 무료해서 읽던 책에 다시 손을 뻗치려다가 흠칫 굳어 버렸다. 누나가 털썩 방바닥에 엎드리면서 소리를 죽여 흐느끼기 시작한 때문이었다. 준은 한참이나 그녀를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겨우 용기를 낸 그는 조심스레 누나의 어깨에 손은 얹었다.
"왜 그래, 응 누나?"
그녀는 거기 동생이 있는 것을 잊은 사람처럼 소리는 그대로 죽인 대로지만 세차게 몸부림치며 흐느꼈다. 준의 코허리와 가슴이 쥐어짜인 듯이 아파오면서 설움이 북받쳐 올랐다. 누나의 설움이 그의 가슴으로 옮아와서 그를 흐느끼게 했다. 문밖에 기척이 나고 누군가 거기 머물러 서는 듯했으나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척 오래 그런 자세대로 한 사람은 까닭이 있어서, 또 한 사람은 동기의 슬픔을 위해서 울었다.
이윽고 눈물을 거둔 누이는 준의 얼굴을 닦아 주고 동생을 꼭 끌어안았다가 놓아 주었다. 그리고 애써 웃어 보였다.
"누나가 바보지? 괜히 울고 싶어서 준이 방을 빌렸어."
준은 안심이 되면서 일부러 볼멘소리를 했다.
"뭐야 어른이, 이젠 울지 마."
"어마 얘는, 어른은 울 일이 없나 뭐."
그녀는 주먹을 들어 준의 머리를 찧는 시늉을 했다.
"어른은 괜히 울고 싶은 때가 있나?"
"그럼, 너두 이따가 자라면 다 알게 돼. 준인 어른이 돼서두 누나같이 약한 여자를 울리면 안 돼."
"여자를 왜 울려?"
"글쎄, 그것도 이담에 알게 돼."
그녀는 또 울먹해졌다. 오늘 저녁의 그녀는 울기는 했지만 오랜만에 예전의 그녀답게 보였다. 활발하고 수선스러웠던 옛날의 모습을 보면서 준은 왜 그런지 가슴이 훈훈해졌다. 그리고 속으로 ‘난 누나가 좋아,’하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누이가 방에서 나간 다음에 그는 다시 책을 집어 들었으나 영 읽을 수 없었다. 허공의 한 곳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누이의 눈매가 자꾸 어른거렸다. 그는 책을 집어 던지고 누이가 하던 것처럼 허공을 보면 서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
철, 철, 철, 떰벙, 철, 철, 철, 떰벙. 밖에서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이 비가 걷히고 나면 곧 사과꽃이 필 것이었다.
2
폭음의 단풍 사이로 난
검은 숲을 헤치고 나의 님은 갔습니다
독고준은 문득 잠에서 깨었다.
그는 무슨 꿈을 꾸고 있었으나 잠에서 깨는 참에 그만 잊어버렸다. 그만 잊어버렸다는 것은 우습다. 깨었을 때는 벌써 꿈의 내용은 아주 생각나지 않았고 다만 꿈을 꾸었다는 흐릿한 느낌만 남았기 때문에. 즐거운 꿈은 분명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구체적 내용은 싹 솎아진 채 그 꿈이 짐짓 물들여 놓은 느낌만 남아 있었다. 그 여운은 허망하고 안타까운 것이었다. 허전함과 안타까움은 서로 맞지 않는 감정일 텐데 지금의 독고준의 머릿속에서 그들은 같이 있었다. 그 느낌은 가을과 같은 것이었다.
방은 빛받이가 좋은 편이었다. 동남으로 양쪽이 트인 방 안은 그러나 언제나처럼 밝지 않았다. 비는 밤새 내리고도 이 아침까지 멎지 않고 있다. 어제 저녁에 김학과 술을 나누던 일이 바로 전같이 생각되었다. 준은 언제나처럼 "반듯이 누운 채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지는 얼룩얼룩한 모양이 무슨 풀잎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메뚜기들의 수없이 많은 무리 같기도 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 다시 들여다보면 수많은 거미들이 벌름벌름 기어가고 있었다. 분홍빛 잔등에 새파란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준은 이불 밑에서 발가락을 옴지락거렸다. 그의 왼쪽 엄지발가락 바깥쪽에는 사마귀가 있다. 그는 오른발 엄지발가락으로 그것을 만지작거렸다. 발톱에 걸어서 꽤 세게 지그시 밀었으나 아프지는 않다. 그는 발가락으로 장난은 하면서도 천장지를 보면서 멋대로 그림을 만들며 생각하였다. 꿈에 대해서였다. 무슨 꿈이었을까. 사실 꿈을 꾸었는지 않았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아니 분명 꾸었어. 그건 확실해. 그건 확실해도 무슨 꿈이었던지는 여전히 떠오르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생각해 내지 못하리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번번이 그런 일이 있었지만 궁리를 해보아서 생각해 낸 적은 없었다. 내용도 모르는 꿈을 기억한다는 사실이 그를 붙잡고 놓지 않는다. 그리고 무언가 짜증이 난다. 그것은 알리바이를 대지 못하는 무고한 혐의자의 마음 같은 것이었다. 일어나 볼까. 아니 일어나선 뭘 해, 벌써. 그는 비로소 느긋해졌다. 오늘은 일요일. 그 생각이 왜 그런지 불쑥 송구스럽도록 아련한 느낌을 주었다. 일요일. 준은 모든 요일 중 일요일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일요일 아침에는 늦잠을 잘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날이라 해도 원하기만 한다면 그렇게 못 할 것은 없지만 일요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과는 기분이 틀린다. 나. 독고준. 너도 일요일 같은 인간이 아닌가, 그는 생각한다. 조금만 늦잠을 잔 다음 적당한 시간에 일어나서 간단한 아침을 마치고 성경책을 정성스레 옆에 끼고 자기 구(區) 교회로 가는 그런 일요일의 인간이라면 그는 행복하다. 한가족이 부산스럽게 도시락을 준비하고 아내와 아이들의 옷치장을 재촉해서 어느 고궁(古宮)이나 근교의 유원지로 떠나는 그런 일요일의 인간이라도 조촐한 행복의 소유자다. 아니면 어느 찻집이나 공원 입구에서 여자와 만나서 무해무익한 지껄임과 농담과 식사와 그리고 영화관에서 서양 사람들의 풍요(豊饒)를 눈요기하면서 소비하는 일요일의 인간. 그러나 준은 그 어느 것도 아니다. 그의 일요일은 늦잠을 자는 날.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날. 할 일이 없다는 자체가 행복해지는 그런 날이다. 그는 벌써 오래전부터 자기의 몸 속 어디선가 자라고 있는 식물의 지극히 은밀한 성장을 느끼고 있었다. 그는 그 식물의 행태를 눈으로 보지는 못했다. 만져 보지도 못했다. 그러나 사람이 제 몸 속에 자라는 암을 언젠가는 눈치를 채듯이 그도 속의 부스럼이 자라고 있는 기척을 알고 있었다. 그는 가끔 심란하게 스스로 의심해 보기도 했다. 나는 정신병의 초기나 혹은 상당히 깊어진 상태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런데 몸의 탈과는 달리 마음의 그것인 바에야 환자가 스스로를 진단하는 힘이 있는 동안에는 아직 그의 정신은 파멸까지에는 이르지 않은 것일 테지. 그리고 나는 파멸은 원치 않아. 그리고 아니, 나는 행복을 원한다. 다만 그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지 못하는 것뿐이다. 행복. 과연 그런 것이 있는 것인가, 그렇더라도 반드시 인간은 행복해야만 하는가. 이렇게, 그래도 자기만의 독방을 쓸 수 있고 하루 세 끼를 굶지 않고, 대학에 다니고 약간의 용돈을 쓸 수 있다면, 이 시대 이 사회에서는 고등관에도 상(上)이 아니겠는가. 머릿속에 처넣은 온갖 잡탕의 지식의 조각, 혹은 잘해서 부분품. 그리고도 조금도 안심(安心)이나 입명(立命)에는 먼 상태. 하기는 지금 이 시대를 그런 고전적인 해탈의 길은 막혔다고 한다. 벌고, 쓰고, 섹스를 즐기고, 될 수 있는 대로 더디게 늙도록 조심을 하고, 기어코 늙으면 피로한 내분비선에 인공의 에너지를 주입해서 젊음을 늘이고…… 그래서는 어쩌자는 것일까. 아니 어쩌겠다는 투의 사고방식이 벌써 시체 생각이 아닌 것이다. 그저 그뿐이다. 그러다가 죽는 것이다. 흥분하는 것은 귀찮다. 이런 것이 민주주의. 앵글로 색슨족은 쇠가죽 같은 신경을 가졌다. 쇠심줄처럼 시간을 되씹는다. 그들은 뛰지 않는다. 허들 경기 같은 삶을 짜증부리지 않고 되풀이한다. 게르만족 같은 것은 대지도 못한다. 대뜸 미치고 들리고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습성은 리얼리즘과는 멀다. 러시아인들의 광신. 그 뼛속까지 스민 미신들. 그들은 언제나 식탁 위에 놓은 고기 대신에 하늘나라의 꽃송이를 택하는 바보들이다라고 서양사는 가르치고 있다. 우리. 우리는 대체 뭔가. 풀만 먹고 가는 똥을 누면서 살다가, 영악스런 이웃 아이들에게 지지리 못난 천대를 받으며 살다가 남의 덕분에 자유를 선사받은 다음에는 방향치(方向痴)가 되어서 갈팡질팡의 요일(曜日)과 요일. 눈 귀에 보고 듣는 것은 하나에서 열까지 서양 사람들이 만들고 쓰고 보급시킨 심벌 심벌…… 몸가짐을 바로잡으려야 잡는 재주가 없다. 연달아 신안(新案) 특허를 양산(量産)해 내는 억센 장사 솜씨 그대로 벌써 바닥이 드러난 이야기를 되풀이 또 되풀이 우려 내고 재생시키는 그 솜씨. 서양 애들은 훌륭해. 얼마나 힘차고 놀라운 종자들인가. 악착같이 제 것을 찾고 잘 사는 것이 옳다는 인종들. 인정사정도 없이 포만하게 행복해야만 하겠다는 탐욕. 이런 앞뒤 사정이 좀 알아질 만큼 되고 보니 벌써 때는 늦어서 발버둥쳐도 뺏지 못할 역사의 고삐. 너도 나쁘지 않고 나도 나쁘지 않은, 그래서 모두가 나쁜 이 시대. 이런 속에서 개인이 홀로의 영광을 누릴 수도 없거니와, 그렇더라도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는 어제저녁 심각한 얼굴로 돌아간 김학의 마지막 말을 생각해 본다. 자네 말이 옳을는지 몰라. 아니 내 말은 반드시 옳지는 않다. 혁명은 논리의 이율배반을 의지로 뚫는 것이야라고 했지. 물론 그럴 테지. 그런데 그 의지가 녹슨 스프링처럼 주저앉은 채 튀어주지 않는다면? 그러면 어떻게 된다는 말인가? 혁명. 그렇구말구. 우리 시대뿐이 아니라 혁명은 언제나 최대의 예술이다. 그러나 이 예술이 불모(不毛)의 예술인 것은 이미 실험이 끝난 일이 아닌가. 천년 왕국을 앞당겨 땅 위에 이뤄 본다는 집념은 확실히 서양종(種)이다. 우리한테는 이런 풍속이 원래 없었다. 종 속에 깊이 파묻힌 에고. 그들은 게으르게 잠자고 꿈지럭거리고 힘없이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면서 수천 년을 살아왔다. 산천초목 속에도 배어 있을 이 리듬을 어느 누가 하루아침에 고칠 수 있을까. 학은 혁명을 하자는 것일까. 그 생각에 준은 픽 웃었다. 젊은 사람이 할 만한 일이라면 사랑과 혁명일 것이다. 혁명. 누가 누구를 위한 것이라도 좋다. 그저 가슴에서 뜨거운 물이 흐르고 눈에 불을 켤 수 있는 그런 무슨 믿음을 가지고 살 수 있는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녀석은 이광수를 추켜세웠것다. 문외한들이 할 만한 소리야. 아무튼 이광수에게는 임이 있었다. 용운 스님의 말마따나 임만 임이랴. 이광수의 임은 민족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민족 같은 것을 업고 나설라치면 단박 바지저고리 소리를 들을 테니 이러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세대. 무슨 일을 해보려 해도 다 절벽인 사회. 한두 사람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시대. 아니다. 나는 시대를 걱정하는 건 아니다. 실상은 시대 같은 건 아무래도 좋다. 민족 같은 것도 아무래도 좋다. 다만 내가 그 속에서 살고 있으니까 그걸 이용한다는 것뿐이다. 한국이 아니면 죽고 못 산다는 건 아니다. 서양은 또 모르지만 적어도 중국이나 일본 같은 데 혹은 베트남이나 몽고 같은 데로 가서 살라면 그리 고통스럽지 않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인 이웃을 사랑하는 만큼은 그들도 사랑할 수 있을 테고 그 이상은 미워하지 않을 것이다. 참으로 더러운 시대 못난 지역의 주민이 우리다. 아시아 천지라도 마음대로 여행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좀 살 만할 것인가. 칭기즈칸의 후예들의 너절한 오늘 속에서 유럽을 떨게 한 위대한 기병(騎兵)들의 고함 소리를 떠올려 보는 것은 가난한 마음의 시인을 위해서 얼마나 훌륭한 자극제일까. 그의 시는 살찌고, 이미지는 살아 움직이고, 심벌은 허공에서 내려와 뿌리를 박을 것이다. 서양에는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첫째 언어에 자신이 없다. 다음에 틀림없는 촌닭 노릇을 해야 한다. 돈내고 바보 노릇 하러 갈 필요는 없다. 그래서 그는 친구들 중에 흔히 있는 외국 유학 광집파(狂執派)에는 그리 동정할 수 없다. 3년이나 4년에 무엇을 배운단 말인가. 고작 고등학교 어학 실습이나 한다는 정도일 게다. 잘 해야 그 애들 멋대로 만들어 놓은 백색(白色)의 체계를 열심히 익혀 가지고 와서는, 어리둥절한 고향 사람들에게 거짓 선지자가 되는 게 고작이지. 아, 돈이 있으면 가는 것은 좋다. 그저 그뿐이다. 그래서? 그래서는 없다. 한때 독고준은 맹렬한 집념에 사로잡힌 시대가 있었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초년에 걸친 시대에 그는 에고에 눈이 떴다. 여러 사람 가운데서 유독 귀여운 자기를 발견한 것이다. 민족의 일원도 국가의 일원도 그리고 가족의 일원이기도 전인 "자기. "그는 이 발견에 몸이 으스스하도록 감격했다. 그는 자기의 에고를 가꾸고 매끄럽게 다듬고 대뜸 눈에 뜨일 유별난 빛깔을 내게 하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다. 그는 몇 시간씩 거울에 마주서서 표정을 연구했다. 그것은 계집애들이 화장대 앞에서 소비하는 시간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로서는 분칠을 하는 무기물의 화장이 아니고 정신의 분장술을 연구한다고 했겠지만 마찬가지였다. 그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에게 있어 책이란 계집애들에게 있어서의 크림이나 로션이나 루주 같은 것이었다. 속의 얼굴을 단장하는 일을 그는 스스로를 속이는 그럴듯한 대의명분 아래 진행시켰다. 역사든 철학이든 그는 짓이겨서 그, 속의 얼굴을 다듬는 데 썼다. 무엇 때문에 그처럼 미친 듯이 읽었을까. 아마 외로워서였다. 외로워서? 아마.
그 여름. 그 여름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사과꽃은 오월 중순에 피었다. 과목밭에서는 한창 바쁜 철이었다. 준도 가마니에 넣어서 곳간에 쌓아 뒀던 닭똥을 소쿠리에 담아서 밭으로 나르는 일을 도왔다. 그러자 전쟁이 났다. 전쟁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참으로 시시하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처음에는 그저 소문처럼 왔다. 한 달 후 전쟁은 처음으로 사람들의 눈앞에 불쑥 다가섰다. 수평선 저편으로부터 시커먼 강철의 새들이 항구의 하늘 위로 덮쳐들면서 땅 위에 있는 사람들과 집들을 공격하였다. 대공 포화가 악을 썼으나 비행기가 떨어졌다는 소문은 없었다. 그리고 이날부터 도시의 사람들에게 있어서나, 물론 독고준에게 있어서도 새롭고 무서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검은 새들의 뒤를 이어 그보다 더 미끄럽게 보이는 은색의 전투기와 폭격기들이 매일같이 도시의 하늘에 모습을 나타냈다. 이것은 이 도시가 세워지고 처음 있는 일이었다. 완전한 악의를 품은 은빛의 기계들이 하늘로부터 도시를 부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 그들은 바닷가에 자리잡은 조선소(造船所)와 석유공장을 공격하였다. 재목과 쇠붙이가 산산이 흩어져 불붙기 시작하고 거대한 기름 탱크가 시커먼 연기를 뿜으며 불타 올랐다. 모든 기름 탱크가 터지면 전시(市)가 불바다가 되리라는 소문이 떠돌았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소개령이 내렸다. 소개는 재빨리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그렇다고 해서 도시는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도시는 움직이고 살아 있었다. 사람들은 나날이 부서져 가는 도시로 "출근 하였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가재 집물을 다 옮겨 낼 수는 없었기 때문이며 또 어떻게 된 일인지 주요한 기관, 관공서 들은 여전히 소개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경보가 울리기는 했으나 언제나 적기가 머리 위에 온 다음에야 뒤늦게 으앵 하고 바보 같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예사로 된 다음부터는, 사람들은 사이렌을 듣고도 피하지 않고 있다가 폭음 소리를 들은 다음에야 호 속으로 들어가는 버릇이 붙어 버렸다. 그것은 일종의 반항― 당국에 대한 불신의 나타냄이었으나 이제는 아무도 그것을 통제하는 사람이 없었다. 사태는 그쯤 돼 있었다. 거리에는 매일같이 전과를 알리는 벽보가 붙었는데, 만일 그 내용이 사실이었다면 조선의 강토는 삼천리가 아니고 구천리쯤은 되었어야 옳았고 "미 제국주의자 들의 부대는 매일같이 대량 섬멸이 돼서 본국에 남아 있는 병력은 얼마 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누구의 입에서 나왔는지 알 수 없는 말이 쉴새 없이 돌았다. 가로되 미군 비행기는 예배당은 절대 치지 않는다. 비행기 속에는 특별한 장치가 있어서 땅 위에서 하는 말소리까지 다 듣는다면서. 비행사들은 땅 위에 있는 사람 중에서 군인과 민간인을 귀신같이 가려내서 군인만 쏜다는 이야기. 어느 것이나 지극히 패배주의적인 사설들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옮아갔다. 그 가운데 어떤 것은 그럴 만한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었다.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천주교당은 아직 말짱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울긋불긋한 칠이 여름 한낮의 하늘가에서 어느 때보다도 자신 있게 빛나고 있었다. 예수교 신자들은 어떤 임박한 영광을 어렴풋이 느끼면서 그들의 남모르는 기도 속에서 자기들의 도시를 소돔과 고모라로 불렀다. 멸망해 가는 도시를 커다란 핵처럼 둘러싸고 근교에 피난한 시민들이 그 속으로 들락거리면서 여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것은 속으로부터 썩어 가는 능금 알을 둘러싸고 기어오르며 기어 내리고 혹은 파먹고 있는 한 무리의 개미에 비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많은 사람이 죽어 갔다. 약은 없었다. 식량은 무섭게 모자랐다. 영양들이 나빴다. 처음에 군사시설만 공격하던 하늘의 은빛 기계들은, 차츰 가리지 않고 아무 데나 공격하기 시작했다. 햇빛만이 푸짐한 칠월의 하늘을, 은빛 날개를 번쩍이며 유유히 날아와서는 사람들의 가난한 삶의 우리들을 간단히 푸숴 놓고는 또다시 남쪽으로, 또는 바다 쪽으로 사라지는 폭격기의 편대를 어느새 사람들은 생활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였다. 마치 무슨 행사처럼 하늘에서 죽음과 파괴를 선사하러 매일같이 도시의 상공을 찾아오는 이 철의 새들에 대해서 그러나 사람들이 나타낸 반응이야말로 놀랍고도 뜻깊은 것이었다. 그들은 폭격기를 사발기(四發機)라 부르고 제트기는 "쌕쌕이 라는 이름으로 불렀는데, 앞의 것은 글자 그대로 엔진의 수로 부른 것이고 뒷것은 날아갈 때의 소리를 따서 붙인 것인데, 이와 같은 이름의 어디에도 적의 비행기에 대한 증오의 울림은 없었으며 설사 이런 현상이 비극적인 것도 흔히 농쳐서 다루는 어느 나라나 비슷한 서민 기질이라 치더라도 역시 그것은 중요한 것을 비치는 일이었다. 쌕쌕이라는 발음 속에다 사람들은 망나니 자식이 남의 아이를 때려서 울려 주고 들어왔을 때 어버이들이 나타내는 그 미묘한 표정을 담아 넣었다. 말썽만, 짜식이…… 하는 그런 기분 말이다. 그런데 그 성가시다는 것이 바로 집이 무너지고 팔다리가 날아가고 일터가 불이 붙게 되는 일이었으니, 그해 여름의 W시에는 거꾸로 선 절망과 허무의 악마가 소리 없이 웃으며 목숨을 비웃고 다닌 것이었다. 권력의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민중은 처음부터 마음의 소통이 없어서, 말하자면 옛날에 추장들이 헌 계집을 부하에게 배급했듯이 떠맡겨진 정부가 눈앞에서 망해 간다는 사실은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자기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하기는 따지고 보면 자기 집, 자기 목숨이 허물어져 가는 것이었지만 동시에 그것은 싫고 따분하던 동무들이 망해 가는 일이기도 했다. 아마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통치 아래 있던 2차 대전 말기에 가끔 엉뚱하게 울리곤 했던 "적기 내습 의 경보를 들었을 때에 사람들이 느꼈던 심정과 거의 다름이 없었을 것이다. 항상 정치의 밖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슬픈 버릇이다.
이 같은 일들이 독고준에게 모두 다 관계 있는 일은 아니었다. 어느 날의 오후 그의 공상의 장승인 제련소의 흰 굴뚝이 그날따라 이십분이나 계속된 폭격으로 중허리가 부러졌다. 폭격이 끝난 다음, 뚝 꺾어진 굴뚝의 뻐끔한 구멍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말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 굴뚝은 그에게는 값진 것이었다. 그가 철이 들면서부터 멀리 바라보이는 W시의 이쪽 변두리에 키 높이 하늘로 솟은 그 하얀 시멘트의 막대기는 그와 더불어 많은 이야기를 나눈 친구였다. 준은 사과밭을 둘러싼 밤나무숲에 앉아서 연기가 피어오르는 도시를 바라보았다. 도시는 벌써 멀리서도 알아볼 만큼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반듯한 인공(人工)의 선이 마음대로 부서진 그 원경(遠景)은 소년의 눈에는 무엇인가 신선한 놀라움을 안겨 줄 뿐이었으나, 꺾어진 굴뚝은 그에게 확실한 슬픔을 주었다. 7월 중순에 끝나서 9월에 다시 열리는 학교도 이대로 가면 어떻게 될는지 물론 알 수 없었다. 그는 학교에서 비상소집이 있을 것을 은근히 두려워했다. 폭탄이 떨어지는 거리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영악한 꼬마 "동무 들과 그들의 주인인 소년단 지도원 선생의 까닭모를 박해가 무서웠던 것이다.
이런 때 멀리 떨어진 교외에 살고 있다는 것은 독고준의 집으로서는 복 받은 일이었다. 미 제국주의자들은 사과나 밤 같은 것에는 그닥 흥미가 없는 모양으로, 독고준은 그 도시가 나날이 피 흘리며 망해가는 것을 마치 먼 곳에서 돌림병이 한창인 도시를 보듯 구경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어느 날 마을의 인민위원회에서 사람이 나와서 오랫동안 형과 이야기하다가 돌아갔다. 그날 밤 형과 어머니는 라디오가 있는 방에서 늦게까지 의논하였다. 방 앞을 지날 때 이런 소리가 들렸다.
"……더 생각할 것 없다. 사람이 무사하고 봐야지……."
어머니의 말이다. 준은 이 전쟁이 오래 계속되기를 바랐다. 방학이 끝없이 이어 나가고 학교에는 영 다니지 않게 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럴 수만 있다면 그는 흰 굴뚝이 꺾어진 슬픔까지도 그럭저럭 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학교에 가지 않고도 집에서만 지낼 수 있다는 기쁨과 도시에서 마을에서 집에서 매일마다 허물어져 가는 생활의 질서가 빚어 내는 어두운 공기 속에 끼여서, 준은 소년다운 고민을 맛보았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름은 변화와 놀라움에 가득한, 그래서 어느 여름보다 벅찬 것이었다. 아침밥이 끝나면 수확을 높이기 위해서 떼어 낸 사과 풋열매를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 책을 옆에 끼고 밤나무숲으로 간다. 그가 요즈음 읽고 있는 책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였다. 유명한 소련 작가의 그 소설은 러시아 제정 끝 무렵에서 시작하여 소비에트 혁명, 그 뒤를 이은 국내 전쟁을 통하여 한 소년이 어떤 모험과 결심, 교훈과 용기를 통해서 한 사람의 훌륭한 공산당원이 되었는가를 말한 일종의 성장소설(成長小說)이었다. 그러나 그가 공산당원이라든가 차르 정부가 얼마나 혹독했는가는 아무래도 좋았다. 소설의 처음부터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주인공 소년의 익살스럽고 착한 성격이, 그리고 황폐해 가는 농촌과 도시의 눈에 보이는 듯한 그림, 주인공의 바보같이 순진한 사랑, 그러한 것이 준의 마음에 들었다. 그것은 다름아닌 '집 없는 아이'의 소비에트판 번안이었다. 선량하고 용기 있는 소년이 세상을 이기고 씩씩한 청년이 되어 이쁘고 영리한 색시를 얻는 이야기였다. 그는 한 소설을 되풀이 읽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하면 그는 그 책 속에 씌어진 집과 수풀, 강과 도시, 붉은 벽돌집과 학교, 구름과 햇빛, 차르의 기병들과 노동자들의 지하실, 희랍정교의 중과 수도원 학교, 그리고 그 모든 인물들을 그의 소유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한줄 한줄 되풀이해서 읽을수록 그것들은 그의 마음속에 튼튼히 자리 잡고 그의 소유권은 굳어졌다. 그런 뜻에서 그는 참으로 부자였다. 그가 머릿속에서 쌓아 둔 온갖 재물과 인물, 강과 산은 그에게 외계(外界)에 대한 무관심을 가져왔다. 희고 빛나는 시멘트의 굴뚝을 빼놓는다면. 도(道) 인민위원회 건물이 넘어지는 것 같은 것은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른들이 자기네 도시가 망하는 것을 거꾸로 선 기쁨, 어떤 마조히즘의 눈으로 바라본 심정도 소년 독고준의 태도보다 그렇게 이성적인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어른들 여기 눈에 보지 못한 동화(童話)― 남쪽 나라에서 번영하고 있다는 태극기와 이승만 박사의 나라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눈앞에서 벌어지는 파괴를 눈감아 버렸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 태도의 차이는 마치 ‘집 없는 아이’와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 사이의 다름만 한 것밖에는 없었다. 소년 독고준은 그의 독서를 통해서 눈부시게 다채로운 현상(現象)의 저편에서 울리는 생명의 원(原) 리듬, 혹은 원 데생을 찾아낸 것이었다. 어느 이야기나 같은 이야기였다. 다만 레미는 불란서 농민 집안의 옷을 입었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인공은 러시아 농촌의 아이들 옷을 입은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는 밤나무숲에 누워서 책을 읽었다. 차르의 기병들이 달려가고 있었다. 폭음이 들린다. 눈을 들어 보면 멀리 도시에서는 검은 연기와 불꽃이 솟아오르고 있다. 폭격기가 오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책으로 고개를 숙였다. 소년은 산림관원의 산장(山莊)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도시의 하늘에서 B29들은 살찌고 미끈한 사지를 눈부시게 뒤채면서 죽음의 검은 강철 촉매(觸媒)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땅 위에서는 노예처럼 유순한 도시가 그때마다 상처에서 피를 흘리고 몇 개나 될지 알 수 없는 뼈다귀가 으스러져 간다. 그런 것은 아무튼 좋은 것이다. 소년은 뜨거운 여름날 산장으로 오르는 길을 걷고 있었다. 소년은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고 농민의 아들이다. 하나님이란 거짓말쟁이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는 이상한 아이였다. B29들은 커다란 원을 그리며 곱돌아 들면서 공격한다. 마치 상처를 입은 짐승에게 달려드는 사냥개들처럼.
땅에 떨어진 열매나, 너무 많이 달린 나무에서 솎아낸 풋열매는, 모아서 사과술을 만들어 국영 식당에 팔거나 현물세에 넣을 수도 있었다. 준의 호주머니에 든 아기 사과는 커다란 독에서 대개는 몰래 집어낸 것이었다. 그날도 그는 벌써 알콜이 풍기기 시작한 사과 열매를 입속에서 우물거리면서 밤나무숲에 누워 있었다. 주인공은 책을 넣어가지고 다니는 가방 속에 탄약을 넣어서 몰래 날랐다. 차르의 헌병들도 조그만 소년의 책가방 속에 설마 그런 물건이 들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소년은 혁명군에게 총알을 날라다 준 것이다. 꼬마 영웅. 책과 꽃이 아니고 총알과 수류탄을 만지며 자란 소년. 그것은 먼 나라의 어떤 소년의 모험이었다. 위대한 문학이 그렇듯이 이 소설도 역시 그것이 생산된 시대를 넘어서 살아남을 수 있을 힘을 가졌는데, 그 까닭은 다름이 아닌 그 시대를 가장 잘 그려낸 때문이었을 것이며, 비록 어린아이의 이야기였으나 보다 많이 어른의 이야기였다. 오늘은 시간이 되었는데도 비행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 대신 집 쪽에서 준을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준은 그쪽을 보았다. 뜰 한가운데서 어머니는 이쪽을 손짓하고 있었다. 그 옆에 레닌모를 쓴 사람이 서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얼핏 소년단 지도원을 떠올린 때문이었다. 그는 눈을 사려서 자세히 바라보았다. 아니었다. 좀 더 키가 작은 모를 남자였다. 그는 W시에서 온 민청(民靑)원이었다.
"학생동무, 내일 학교로 나오시오. 지금 거리는 놈들의 폭격으로 부서지고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습니다. 민청과 소년단이 동원되어 건설과 간호 사업을 하도록 되었습니다. 동무는 이 근처에서 할 수 있는 대로 학생들을 많이 연락해 가지고 나오시오. 알겠소?"
준은 물었다.
"학교로 가면 됩니까?"
"그렇소. 내일 아침 열시에 우리 학교에서 민청과 소년단의 합동 궐기대회가 있소. 위대한 조국 전쟁에 우리들이 이바지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쳐선 안 됩니다."
민원청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눈을 빛내며 웅변조로 말했다. 그의 얼굴은 W시에서 이곳까지 걸어오는 사이 빨갛게 익어 있었고 구두는 먼지투성이였다. 어머니는 그를 마루에 청해 올려서 사과술과 감자떡을 대접했다. 그는 주먹만한 떡을 다섯 개나 먹고 난 다음에 폭격에 다친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염려 말라고 어머니를 안심시켜 놓고 돌아갔다. 그가 돌아간 후에 어머니는,
"준아, 안 가면 안 되겠니?"
하고 어린아이한테 상의했다.
"왜?"
"이애가, 매일같이 저 모양인데 아이들을 불러내서는 어쩌자는 건지…… 그 사람들 하는일은……."
어머니는 멀리 W시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어떻게 된 일일까. 아직도 폭격기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해안을 낀 거리에서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보이고 어업조합의 하얀 벽이 한결 눈부시게 뚜렷했다. 그 건물은 아직 무사했다. 이런 때 자세히 보면 아직도 도시는 버티고 있었다. 만일 부서진 건물을 다 쓸어내면 여유 있게 자리 잡은 거리쯤으로 넉넉히 우길 수 있음 직했다.
"아직도 집이 많은걸."
준은 어머니를 돌아보며 말했다.
"응?"
그녀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다가 어리둥절해서 준을 쳐다보며 되물었다. 준은 대답하지 않고 어머니는 누나하고 꼭 닮았다고 생각했다. 입 언저리가 더 그랬다. 그는 마루에서 내려와 밭으로 나갔다. 누님은 옥수수밭에 있었다.
"나, 내일 학교 가."
그녀는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머릿수건 밑으로 내민 머리카락을 치켜올리면서 물었다.
"학교?"
"응, 사람이 알리러 왔어."
준은 민원청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감자떡을 다섯 개나 먹었다는 것을 덧붙였다. 그는 누님과 얘기할 때면 언제나 우습게 말을 하는 것이 예사였다. 어머니는 우스운 말도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하는 게 일쑤여서 그런 방식이 통하지 않았다. 누님은 그러나 근심스런 얼굴이 되더니,
"얘, 너 가지 마라."
하였다.
"안 돼?"
"거기를 어떻게 가려고 그러니?"
"괜찮다고 그러던데?"
"누가?"
"아까 그 사람……."
"얘는……."
누님은 머릿수건을 벗어서 탁탁 털었다. 그리고는 집 쪽으로 걸어갔다. 어머니한테로 가는 모양이었다. 준은 시내를 바라보았다. 그의 학교는 저 언덕 뒤편이어서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다. 그는 무섭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다 나가는데 혼자만 빠질 수는 없었다. 학기가 시작한 다음에는 늘 하듯 방학 동안의 활동을 보고하는 소년단 대회가 열릴 것이며, 그때 또 자기 비판을 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미 제국주의자들의 비행기보다도 소년단 지도원 선생의 눈초리가 더 무서웠다. 컴컴한 교실에서 촛불을 켜놓고 아버지가 왜 월남했으며 매부는 어디로 갔는가, 그들이 집에 있을 때 준에게 어떤 말을 했는가, 거기 대해서 준의 생각은 어떠한가, 준의 행동은 그 사람들한테서 영향을, 소부르주아적인 나쁜 버릇을 물려받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이런 닦달질이 끝없이 이어질 일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졌다. 이 동네에서 준이 알려 줄 아이는 둘밖에 없다. 내 책임은 둘 뿐이야. 그 애들한테 연락해서 데리고 가면 지도원 선생은 좋아할 것이다. 그는 레닌 모자를 뒤로 젖혀 쓰고 입을 꽉 다문 지도원 선생의 얼굴을 떠올렸다. 준은 지도원 선생을 대할 적마다 늘 야릇한 느낌을 가졌다. 이 선생이 처음 왔을 때 준은 퍽 호감을 가졌다. 그는 국어를 맡고 있었는데 말소리가 상냥스럽고 얼굴도 잘생겼다. 어느 날 그는 학생들에게 숙제를 냈다. 제목은 "봄 이었다. 준은 며칠 후 직원실로 불려갔다. 지도원 선생은 준이 낸 작문을 꺼내 놓고 그에게 여러 가지를 물었다. 그의 태도 속에서 독고준은 국어 선생님이 아니라 한 사람의 내무서원을 느꼈다. 대답하는 그의 혀는 더듬거리고, 그러면서 지도원 선생이 알고자 바라는 바를 소롯이 다 불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지도원 선생님의 얼굴은 차디찼다. 그는 문득 공포를 느꼈다. 그의 작문은 봄철의 비와 물에 젖은 과목들, 하얀 제련소 굴뚝과 멀리 내다보이는 바닷가를 말했다. 그것이 왜 선생님에게는 비위를 거슬렸을까. 준의 머리로서는 한 소년의 작문 속에서 반동 부르주아의 집안을 알아낸 이 젊은 "동무 의 솜씨를 물론 알 수 없었다. 그 다음부터 준은 지도원 선생을 피했다. 준이 제일 좋아하고 자신 있는 국어 시간에도 그는 손을 드는 횟수를 조정하도록 애썼다. 번연히 아는 물음에도 그는 태연히 멍청한 표정을 짓는 거짓을 익혔다. 다른 학생들이 대답할 때 그는 마음속으로 그들의 답변을 보탰다. 그는 처음에 선생님을 보았을 때 가졌던 그 호감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고 슬펐다. 그후에 선생님은 그의 적이 되었다. 소년단의 "동무 들을 시켜서 그를 비판대에 세우는 무서운 선생님이 된 것이다. 준은 어머니한테 일러 두고 가까운 데 있는 한반 친구의 집으로 갔다. 동무는 집에 없고 그 애 어머니가 나왔다. 준이 학교에서 부르러 왔다고 말하자 그 애 어머니는 깜짝 놀라 보였다.
"에그, 저걸 어째, 그 애는 요새 감기 기운이 있어서 밤이면 열이 심하단다. 매일 그 시간이면 꼼짝을 못하는데…… 학질인가 보구나."
준은 학질인데 열이 난다는 말이 이상스러웠다.
"그래도 안 가면 안 돼요."
"아픈 데야 어떡허니? 알았다. 너는 전하기만 하면 됐으니까."
준이 더 말을 하려는데 아낙네는 집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모른 채 마당 한 귀퉁이에 자란 해바라기의 노란 얼굴을 바라보았다. 행여나 친구가 돌아올까 기다렸으나 좀체로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아이 말고는 이 근처에 한 반 아이는 없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저녁상에 둘러앉았을 때 형님이 말했다.
"준아, 너 내일 학교 가지 마라."
"……"
"알겠니?"
"그럼 어떡해……."
"뭐가 어떡해야…… 알겠지?"
"……"
그는 어머니와 누나를 보았다.
"형 말대로 해라…… 온, 사람들이 정신이 없지……."
"오빠 얘기대로 해라, 준아."
아무도 준의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요사이는 밤마다 형과 누나는 라디오가 있는 방에서 오래 머물렀다. 두 사람은 가끔 쳐다보고 눈으로 이야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준에게는 그 ‘남쪽의 목소리’가 전보다 못해 보였다. 전에는 아름다운 음악과 재미난 이야기가 많아서 좋았으나 전쟁이 시작되고는 어딘지 평양에서 보내는 말과 비슷해져 갔다. 형과 누나는 반대로 요즈음 방송이 한결 재미있는 것 같았다. 그는 어머니가 다리미질을 하는 마루 끝에 앉아서 멀리 시가지 쪽을 보았다. 칠월 하순의 밤은 맑은 하늘에 별이 빛날 뿐 불빛 하나 없는 시가지의 모습을 삼키고 있었다. 다만 가까운 산등성이는 별빛 속에서도 뚜렷이 드러나 보였다. 별빛이 땅에 내려온 것처럼 보이는 반딧불이 스르륵 날곤 했다. 그는 무릎을 세워 안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가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가야 한다. 만일 가지 않았다가, 아니 그러지 못해. 그는 한숨을 쉬었다.
"준아……."
그는 깜짝 놀랐다. 다리미질을 하던 손을 멈추고 어머니가 그를 보고 있었다. 희미한 등잔불 때문에 어머니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준은 마루에 벌렁 드러누웠다. 참으로 고운 별밤이었다. 구름 한 점 없이 온 하늘이 빛나는 보석으로 꽉차 있었다. 준은 속으로 야아 하고 소리쳤다. 별하늘을 보는 것은 언제나 좋았다. 책 읽는 것 다음으로 좋았다.
새벽이다. 한 시간이나 걸었다. 이제 집은 멀리 뒤에 있었다. 그는 몇 번씩 뒤돌아보았다. 그 산모퉁이에서 형의 모습이 금시 나타날 것만 같았다. 여기서는 집보다 시내가 더 가까웠다. 고개를 뒤로 돌릴 적마다 거기 어머니와 형의 모습을 바라는 마음과 그러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은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반반으로 어울렸다. 그는 밤내 생각한 끝에 몰래 집을 빠져나오기로 한 것이다. 이 길을 방학 전까지는 통학 기차로 다녔으나 전쟁이 나고는 차가 안 다닌 지 오랬다. 시내로 가는 길은 곳곳에서 철로와 교차하기도 하고 나란히 뻗기도 한다. 나란히 된 곳에서는 준은 도로를 버티고 철로의 자갈을 밟으며 걸었다. 그것은 낯익은 길이었다. 기차를 놓칠 경우에는 그들 통학생은 언제나 이렇게 오고 갔기 때문이었다. 그는 걸어가면서 주머니 속의 감자떡을 꺼내 먹었다. 양쪽 주머니에 든 떡은 하루 양식으로는 넉넉할 것이었다. 혼자서 새벽 일찍이 폭격이 있는 곳으로 가는데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포근한 안도감 속에서 꾸준히 발을 옮겼다. 학질에 걸렸다던 친구처럼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는 이제 해야 할 일을 했으므로 지도원 선생에게도 꿀릴 일이 없다고 생각하니 무엇인가 가슴을 누르던 것이 툭 트인 느낌이었다. 그는 아래 호주머니를 들춰서 사과 열매를 집어 내 입에 넣었다. 새큼한 맛이 좋았다. 그는 문득 ‘집 없는 아이’의 레미를 생각했다. 그리고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었는가'의 주인공 소년을 생각했다. 그들의 모험과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그를 기쁘게 했다. 그리고 자기 행동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도 거기서 찾아낸 듯싶었다. 어른들의 말이 다 옳은건 아냐, 왜냐하면 그 책의 주인공들은 여러 번 어른들의 말을 거슬렀지만 그 어른들은 다 옳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발끝에 차이는 자갈. 길가에 아무렇게나 자란 코스모스. 그런 것들이 하나하나 신선하게 그의 마음을 끌었다. 그것은 신선한 아침 공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또는 그 이상의 까닭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여태까지 책 속에서만 살아왔다. 그것은 사람의 세계가 아니라 사람의 그림자의 세계였다. 그는 풀이나 나무나 꽃을 보아도 그가 읽은 책 속의 어느 것과 겨눠 보지 않고서는 그것들을 마음에 새겨 둘 수 없었다. 예수교도가 성경을 통해서만 세계를 보듯이, "동무 들이 볼셰비키 당사(黨史)를 통해서만 역사를 보듯이, 소년 독고준도 그의 주인공들을 통해서만 세계를 받아들였다. 그것은 다 나쁜 것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니었다. 오늘 새벽의 탈출과 지금의 이 탈출은 그러므로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그렇게 작은 사건이 아니었고, 그의 앞날을 위해서 어떤 상징마저도 될 만하였다. 시내에 닿기까지 그의 주머니 한쪽은 거의 비고 사과 열매만 조금 남았다. 시내에 들어서면서 준은 비로소 전쟁의 모습을 보았다. 수도원을 지나서 시의 변두리를 흐르는 강에 걸린 시멘트다리는 기둥만 덩그렇게 남기고 부서져 있었다. 그 대신 갑자기 만든 나무다라기 놓여 있었다. 인민학교의 벽돌건물이 반이나 허물어졌고, 담을 따라서 심어진 포플러가 마당 안으로 또는 한길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엎어진 사열대(臺)가 제자리를 훨씬 벗어나서 뒹굴어 있다. 전봇대들은 둘에 하나꼴로 부러지거나 밑에서 꺾여서 넘어져 있었다. 그의 학교인 제2중학이 있는 시내 중심으로 가까워짐에 따라서 부서진 모습은 더욱 거칠어져 갔다. 석유공장은 그 중심지였다. 새카맣게 탄 기둥이 겹쳐서 쓰러진 위에 벽돌 부스러기와 기와가 널려 있었다. 그 웅장하던 건물의 그런 모습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거리에는 사람들이 이따금씩 이 골목에서 불쑥 나오고 저 골목으로 흘끗 사라지고 그런 정도였다. 독고준은 마치 다른 도시, 어느 낯선, 처음 오는 도시를 걷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눈익은 건물이 눈익은 자리에 없는 것은 도시의 얼굴을 다르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도시는 땅 위에다 집을 지은 것이다. 그 집들이 없어지거나 바뀌면 도시가 바뀌는 것이다. 그의 집 과목들이 하룻밤 사이에 없어지고 밋밋한 맨땅이 드러나는 것을 떠올릴 수 없듯이 이 거리가 이렇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눈으로 본 지금에야 그를 놀라게 했다. 멀리 집에서 밤나무숲에 누워서 바라볼 때 그는 이런 것들을 짐작하지 못했다.
학교에 다다랐을 때 그는 또 한번 놀라야 했다. 학교는 절반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교실은 없어진 그쪽이었다. 그는 달려가서 그 무너진 자리로 들어갔다. 커다란 쇠망치로 후려갈긴 모양으로 건물은 반이 잘려서 나머지 부분만 더욱 우뚝해 보였다. 옆구리가 드러난 그 모습은 생리 교과서에서 있는 해부도(解剖圖)처럼 부자연스러웠다. 그보다도 연극의 무대장치를 더 닮아 보였다. 무대에서는 집이 반쪽만 나오기도 하고 네 벽 가운데 한쪽 벽만 열려 있는, 그런 꼴이었다. 무대에서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그런 방식이 자기 학교일 때 준에게는 가슴이 뛰도록 놀라웠다. 산산이 흩어진 의자, 떨어진 흑판, 깨진 창유리. 그는 직원실로 가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잠겨 있었다. 그는 마치 무엇엔가 홀린 사람처럼 어리벙벙해졌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그는 집을 몰래 나왔다는 데서 오는 흥분과 그렇게까지 해서 학교의 명령을 지킨다는 자랑스러움이 있었다. 그러나 허물어진 학교와 텅 빈 교정은 그의 마음이 기대고 있던 무슨 막대 같은 것을 훌렁 뽑아 버렸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서 넘어진 기둥 위에 주저앉았다. 그는 시계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나 열시까지는 아직도 멀었다. 잘 돼서 여덟시나 그쯤일 테니까. 그는 일이서서 성한 쪽 교실을 한방 한방 기웃거리고 다녔다. 어떤 교실은 쇠가 잠겨 있었고 어떤 것은 열려 있었다. 그는 열린 방에 들어가 보았다. 책상과 마루에 먼지가 두껍게 앉아 있었다. 그는 교단에 올라섰다. 그리고 교탁 속에 머리를 디밀어 살펴봤다. 분필통이 있었다. 그는 분필을 하나 집어 내서 흑판에 ‘학교’하고 써보았다. ‘부서진 학교’ 하고 썼다. ‘빈 교실 없다’ ‘선생님이 없다’ ‘학생도 없다’ ‘전쟁’ ‘폭격’ ‘미 제국주의자’ (그는 낙서를 계속했다) ‘나는 민청 형님이 시킨 대로 학교에 왔으나 아무도 없습니다’ ‘학교’ ‘학교’ ‘거리’ ‘사람들은 다 어디 갔을까’ ‘학교에 나 혼자 있다’ ‘지도원 선생님’ ‘자아비판’ ‘소부르주아’ ‘피오네르’ ‘소년단’ ‘간부’ ‘벽보’ ‘지도원 선생님’ ‘지도원’ …… 어디선가 기척이 나는 것 같았다. 그는 얼결에 지우개를 들어 흑판을 덮었다. 그러면서 귀를 기울였다. 이내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교단에서 내려서서 머리만 내밀고 복도를 내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그대로 한참이나 있다가 그는 복도로 나섰다. 나오면서 다시 한번 교무실을 들러 보았으나 여전히 자물쇠가 잠긴 대로였다. 그는 학교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섰다. 조금씩 조금씩 그는 이 이상한 거리에 익숙해 갔다. 사람은 먼 곳에 보이다가는 사라지고 또 나타나고 했으나 차는 한 대도 다니지 않았다. 햇살이 차츰 따가워졌다. 사람이 없는 거리를 걷는 것이 점점 재미스러워졌다. 그는 골목으로 들어서서 될수록 천천히 걸었다. 극장은 오래된 간판을 붙인 채 문이 텅 열려 있었다. 간판 그림에는 아코디언을 안은 남자가 벌판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그 옆에는 머릿수건을 쓴 여자가 서 있었다. 어떤 집에서 광주리를 인 여자가 나왔을 때 그는 깜짝 놀랐다. 집에 사람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신기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집들은 비어 있었다. 그는 문득 그 집 속으로 들어가 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혹시 사람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겉으로 보아서는 분명히 빈집이었으나, 걸음을 옮기면서 집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지면서 참을 수 없어졌다. 마침 한반 동무의 집이 나섰다. 그는 여태껏 그 생각을 못 한 것이 이상했다. 오늘 학교에 나오라는 이야기는 혹시 잘못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알아보기 위해서도 그는 누군가 같은 학교 친구를 찾아야 했다. 그는 동무의 집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사람은 보이지 않고 문은 꼭 닫혀 있었다. 그는 동무의 이름을 불러 보았다. 대답이 없었다. 그는 용기를 내서 문을 밀어 보았다. 문이 열렸다. 그는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방은 텅비어 있었다. 다음 방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번 방에는 밖으로 자물쇠가 잠겨 있었다. 그는 단념하고 그 집을 나왔다. 깊은 밤처럼 인적이 없고 그 대신 환한 대낮이었다. 모든 집과 사람이, 도시 전체가 마술에 걸리고 독고준 혼자 깨어 있어서 걸어 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아무튼 모이기로 했다는 시간까지는 기다려야 했다. 그는 나머지 떡과 사과 열매를 씹으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이 혼자서 이 빈 거리를 거니는 것이 처음에는 서먹했으나 지금 그는 즐거웠다. 그는 중앙 거리를 지나서 시장으로 가보았다. 장이 서 있었다. 과일과 음식이 많았다. 사람들이 폭격이 그칠 새 없는 이곳으로 모여드는 까닭은, 써야 할 물건을 바꾸는 데에도 있었다. 세간들을 다 옮길 수는 없었기 때문에 집을 돌아보기 위해서도 와야 했다. 그런 일은 어느 것이나 가족 가운데 한두 사람이 오면 되는 것이었으므로 거리에 나오는 사람의 수효는 뜸할 수밖에 없었다. 준은 될수록 사람이 없는 골목을 골라서 걸어갔다. 그는 어떤 집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뜰에 하나 가득 꽃이 피어 있었다. 그는 담 너머로 꽃밭을 바라보았다. 손을 뻗치면 이쪽에서 제일 가까운 꽃송이는 딸 수 있었다. 그러나 손이 나가지 않았다. 집은 이 시간에 창과 문이 꼭 닫혀 있었다. 그는 꽃밭과 그 닫힌 창과 문을 번갈아 보면서 망설이고 있었다. 불쑥 그의 손은 담장 너머로 건너갔다. 바로 그러자였다. 찢어지는 듯한 쇳소리가 머리 위를 달려갔다. 뒤를 이어 또 또. 공습. 닫혔던 문이 열렸다. 준의 누님 또래의 여자가 나타났다. 그녀는 달려 나오면서 준의 팔을 잡았다. 준은 여자가 끄는 대로 달렸다. 어디서 나왔는지 그들의 앞뒤에는 사람들이 달리고 있었다. 제트기들은 낮게 날면서 총을 쏘았다. 준과 여자가 가까운 방공호에 다다랐을 때에는 와랑거리는 폭격기의 엔진 소리가 하늘을 덮었다. 방공호에는 이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뒤로 자꾸 밀려들었다. ㄱ자로 구부러진 호(壕) 속은 캄캄했다. 준과 그녀는 아직도 손을 잡고 있었다. 세찬 소나기가 퍼붓듯 쏴 하는 소리에 이어 쿵, 하고 멀리서 땅이 울렸다. 그 소리는 같은 짬을 두고 이어졌다. 캄캄한 속에서 사람들은 말없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사람의 훈김과 정오 가까운 한여름의 열기로 굴속은 숨이 막혔다. 폭음이 점점 멀어져 간다. 그때 부드러운 팔이 그의 몸을 강하게 안았다. 그의 뺨에 와닿는 뜨거운 뺨을 느꼈다. 준은 놀라움과 흥분으로 숨이 막혔다. 살냄새. 멀어졌던 폭음이 다시 들려 왔다. 준의 고막에 그 소리는 어렴풋했다. 뺨에 닿은 뜨거운 살. 그의 몸을 끌어안은 팔의 힘. 가슴과 어깨로 밀려드는 뭉클한 감촉이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헝클어지게 만들었다. 폭격은 계속되었다. 폭탄이 떨어져 오는 그 쏴 소리와 쿵, 하는 지동 소리는 한결 더한 것 같았다. 준은 금방 까무러칠 듯한 정신 속에서 점점 심해 가는 폭음과 그럴수록 그의 몸을 덮어 누르는 따뜻한 살의 압력 속에서 허덕였다.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 갑자기 아주 가까이에서 땅이 울렸다.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한꺼번에 웅성거렸다. 폭음. 또 한번 굴이 울렸다. 아우성 소리. 폭음. 살냄새…….
3
역적의 공산당을 때려부수자
김일성을 잡으러 가자
지루하던 비가 한낮이 지나서야 개었다. 준은 자리를 거두고 가까운 음식집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하고 들어왔다. 그는 오늘 아무 예정도 없었다. 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으레 담배가 당긴다. 보통 때는 기계적으로 담배를 꺼내서 물게 되지만 문득 이상해질 때가 있다. 그가 첫 담배를 피우기는 군에 들어가서의 일이니까, 벌써 삼사 년 경력이 붙은 셈이다. 복학한 다음에도 그럭저럭 피우고 있다. 사실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 담배는 요긴한 몫을 했다. 하필 배속된다는 게 엠비피 사단의 수색 중대였다. OP라는 곳은 독고준과 같은 남자에게 안성맞춤으로 잔인한 자리였다. 이북 출신은 되도록 OP 근무를 시키지 않는 다는 것으로 되어 있었으나 그는 거기서 근무하게 되었다. 지호지간(指呼之間)이란 이것을 말하는 것일 게다. 바로 눈앞이었다. 녀석들이 호 밖으로 나와서 평행봉 하는 것이 보인다. 자식들은 저것도 체육 사업이라고 부를 테지. 두 개의 막대기 사이에서 흔들리는 몸뚱어리를 바라보면서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포대경(砲臺鏡) 속에서 바라보이는 그들의 옷차림은 예나 지금이나 초라했다. 산굽이를 돌아 나와 이쪽의 관측에 백 미터가량 노출된 보급로를 소달구지가 지나간다. 이런 불리한 도로를 왜 그냥 쓰는지 모를 노릇이었으나, 준이 고지에 와서 내려갈 때까지의 이태 사이, 그 길은 줄곧 사용되었다. 해가 지루한 여름날 같은 때 느린 걸음으로 지나가는 그 달구지를 보고 있노라면, 문득 알 수 없는 슬픔이 가슴을 적신다. 저게 혹시 고향의 동창일지도 모른다든지, 설명하자면야 이리저리 그럴듯한 풀이가 되겠지만 그런 분석의 이전이나, 마찬가지 얘기지만, 분석 이후랄까 아무튼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노곤한 서글픔이다. 조금도 격하지 않다. 어느 편인가 하면 달고 연하다고 할 만한 허탈의 심정이다. 그럴 때 담배가 제일이다. 불을 붙여서 한 대 피워 문다. 행복. 행복하다고 느낀다. 겹겹 산속에 전망대를 만들어서 천하에 게으르고 쓸모없는 인간에게 이 같은 엑스터시를 맛보게 해주는 이 시대(時代)를 마음껏 노래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달구지는 천천히. 확 연기를 뿜어 낸다. 눈을 감고 싶지는 않다. 눈은 어디서나 감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눈을 감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유유히 산마루를 타고 넘는 구름. 칵 쏟아지는 햇볕 아래, 자라고 싶은 대로 자란 방초(芳草)가 굽이쳐 내려가고 올라간 골짜기와 산마루. 나무는 없다. 시야를 막기 때문에 양편에서 쳐버렸다. 풀이 없으면 이곳의 봄과 여름은 계절의 뜻을 잃을 것이다. 이 풀도 하기는 반가운 것이 아니다. 키 높이 자란 그 풀 속으로 간첩과 때로는 기습 부대가 건너오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탁 트인 전망 속에 여름은 무르익는다. 보급은 1종에서 4종에 이르기까지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리고 전쟁은 아니지만 전쟁이라는 아주 사람 죽이는 희한한 상황. 준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 시간을 맞추어 녀석들은 스피커로 선전을 한다. 친애하는 국군 장병 여러분, 그리고 미 제국주의, 이승만 매국 도당, 남반부 인민들이여. 전체 지식인 학생들이여. 북반부에는…… 늘 그 소리가 그 소리. 꽤나 우둔한 놈들이다. 곰이 한 가지 재주밖에 없다더니, 온 저렇게야. 좀 산뜻한 궁리가 좀 안 날까. 그러나저러나 그것들은 이미 말이 아니다. 바람이다. 햇빛이다. 구름이다. 그것은 공기의 진동이기 때문에. 아무도 잡으려 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것보다는 이쪽 것이 훨씬 지능지수가 높다. 울고 넘은 삼팔선. 항구야 잘 있거라. 마도로스 풋사랑. 비 내리는 고모령. 불효자는 웁니다. 고향길 눈물길. 남매는 단둘이다. 명동 부기우기. 화류계 사랑. 이런 식민지 멜로디에서 캄 온 어 마이하우스. 유 아 마이 선샤인. 오오 캐럴. 테네시 왈츠. 달링 아이 러스 유. 베이비스 커밍 홈 같은 GI 센티멘털리즘까지. 그것들은 놈들의 헛고함질보다 훨씬 낫다. 군가나 건설의 노래 같은 것보다 백 배나 낫다. 놈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그런 것을 들었을 터이니까. 언젠가는 가까운 OP에서 소대장의 목이 잘렸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이십사 시간 삼백육십오 일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은 사람으로는 불가능하다. 이런 시간이 너무나 풍부한 하얀 대낮에는 다만 인생을, 더욱이 내 인생을 찬미하고 싶을 뿐이다. 주여, 당신이 계시다면 내 찬송을 받으시기를. 이 좋은 구경을. 이 좋은 하늘을. 저 풍성한 풀들을. 저 좋은 태양을. 그리고 늦춰진 죽음을. 그런 심정이다. 또 하나 마차. 한 시간 동안의 일이 이것이다. 그러므로 담배다. 화랑 담배다. 화랑의 전통은 살아 있다. 황산벌의 기사(騎士) 관창. 화랑 담배 연기 속에 신라의 넋은 살아 있다. 그래서 담배다. 바라보이는 저 산 너머로 곧장 가면 W시로 가는 길이 나선다. 지도를 보면 그렇다. W시. 이제는 절대로 갈 수 없는 곳. 그날 그 대폭격에 무너진 방공호에서 모진 상처 하나 없이 살아난 것은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를 찾으러 나온 형이 준을 발견한 곳은 시립 병원 복도였다. 그 길로 집으로 업고 갔다. 다친 데는 없었으나 까무러쳤다가 살아난 그는 집에 돌아와 누워서도 밤마다 가위에 눌렸다. 겨우 열이 내린 다음에도 그는 누워서 지냈다. 도시에서 폭격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갔다. 한동안 그는 폭음이 들리면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 소리가 끝날 때까지 그대로 있었다. 캄캄한 이불 속에 하얀 얼굴이 보였다. 따뜻한 팔. 뜨거운 뺨. 살 냄새. 그것들은 누님의 것과 같으면서 달랐다. 집의 사람들은 그가 이불을 뒤집어쓸 때마다 폭음이 무서운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나 이불 속의 어둠은 그 방공호의 암흑을 되살려 주었다. 집 사람들은 비행기 소리가 지나간 다음이면 으레 그의 이불을 벗기려고 했다. 안간힘을 쓰는 그의 노력을 그들은 가시지 않은 무서움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 오해가 또한 그에게 죄(罪)의식을 갖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그의 경우에도 섹스는 죄와 비밀의 무대에서 시작했던 것이다. 그것은 두려움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나 찢어지는 쇠뭉치에 대한 것이 아니라, 부드러운 살의 공포였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 리 없었다. 하늘과 땅을 울리는 폭음이 아니라 귀를 막아도 들리는 더운 피의 흐름 소리 때문에 떨고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있을 리 없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다음 또다시 밤나무숲에 앉아서 W시를 바라보고 있는 소년은 이미 다른 아이라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나나'에서 그는 무엇인가 설레는 것을 알아보고 있었다. 백작이 보는 앞에서 나나가 알몸뚱이가 되어 맨틀피스를 향해서서 불을 쬘 때 그는 가슴을 두근거렸다. 그러나 그것은 유리 하나 저편의 세계였다. 방공호 속에서 일어난 일은 몸으로 겪은 일이었다. 그는 겹겹이 둘러싸인 이야기의 세계에서 처음 이 세계 속으로 밀려 나왔다. W시를 바라보는 그의 눈은 반딧불처럼 약한 것일망정 소년의 속에서 점화된 욕망의 빛을 담고 있었다. 시(市)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생각이 불현듯 그의 마음을 스치고 갔다. 그를 안아 준 여자는 죽었을지도 모른다. 몸으로 막이 주었기 때문에. 그러므로 그녀의 생사는 알아야 한다는 논리를 어린 마음이 꾸며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저번과 달라서 이번 경우에는 집의 사람들이 옳게 여길 그럴싸한 핑계가 없었다. 학교에서 부르러 왔다는 것과 소년단 지도원에 대한 준의 두려움은 지난번 탈출을 누구에게나 이해할 수 있도록 했고, 또 준에게는 용기를 주도록 만들었다. 이번에는 그럴 수 없었다. 지금 그가 또 없어진다면. 그는 매를 맞든지 미친 아이 취급을 받을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한없이 우울하고 짜증스러웠다. 그의 기억 속에서 그 여자의 초상화는 매일 확실해져 갔다. 얼굴은 둥글다. 흰 얼굴. 줄무늬 간 원피스. 검은 눈썹. 맵시 있는 코. 흰 이빨. 그의 기억과 상상력은 사이 좋게 의논해서 부드럽고 젊은 여자의 초상화를 만들어 갔다. 얼굴은 더욱 희어 갔다. 눈썹은 더 곱게. 코는 더 오똑하게. 이빨은 진주를 닮아서 매끄럽고 빛났다. 입술은 다정하고 붉었다. 도시의 폭격은 커다란 역사의 다른 국면이 곧 이 도시에 덮쳐 들어오려고 하는 그 발자국 소리였으나 독고준의 귀에는 전혀 다르게 들렸다. 누님과 형은 밤마다 라디오 앞에서 전보다 더 깊은 눈짓을 주고받았다. 어른들에게는 그 폭음과 그 진동 소리의 뜻이 또 다리게 들렸던 것이다. 9월이 갔다. 남루한 옷과 군용 트럭들이 이따금 마을 앞길을 지나갔다. 또다시 유언비어가 성하기 시작했다. 전쟁 초에는 왜놈들이 미군과 국방군의 선두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번에는 깜둥이가 선두에서 싸우는데 그들은 사람을 보는 대로 잡아먹는다는 이야기를 마을 부인들과 아이들이 퍼뜨리고 다녔다.
10월 초순의 어느 날. 남쪽의 사람들은 끝내 이 마을에 나타났다. 나타났대야 그들은 지나가는 것이었다. 그들은 트럭을 타고 군가를 부르면서 W시로 질주해 갔다. 그들은 흥분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물과 과일을 들고 길에 나갔다. 손에손에 태극기를 들고. 병사들은 흥분해 있었다. 사람들은 미끈한 GMC와 으리으리한 복장, 깔끔하고 빛나는 총기에 감탄했다. 트럭들은 가끔씩 멈추어서 사람들이 받쳐 올리는 사과 궤짝을 담아 올리고 물을 마셨다. 병사들의 발에 걸친 윤나는 군화와 장교들이 신은 반장화는 그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다. 너무나 값지고 의젓했기 때문에. 형은 연방 사과 궤짝을 날라 왔다. 어머니는 누님과 둘이서 물을 나르기에 바빴다. 트럭은 한정 없이 자꾸 뒤를 이어 지나갔다. 병사들은 흥분하고 있었다. 그들은 차 위에서 소리 높이 군가를 불렀다.
역적의 공산당을 때려부수자.
역적의 김일성을 잡으러 가자.
물러가기를 싫어한 여름이 아직도 서성서리는 듯 햇살은 따가웠다. 승리한 사람들의 노랫소리는 높이 하늘로 울려 가고 빨리 달려가는 GMC들은 누런 먼지를 수없이 날렸다. 사람들 틈에서 구경하던 준은 아까부터 골똘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지도원 선생은 이제 쫓겨갔다. W시. 이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이 차고 넘친 거리로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그는 자기 마음을 설명했다.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는 참다운 바람에 대해서. 그것은 소년다운 위선이었지만 전혀 위선만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한테서 빠져나와서 트럭이 나가는 쪽으로 걸어갔다. 집 식구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그냥 걸었다. 길가에는 사람들이 잇대어 늘어서 있거나, 좀 끊어져도 곧 또 사람들이 뭉쳐 있고 했기 때문에 그의 행색은 조금도 드러나보이지 않았다. 축제일(祝祭日)에 어른들 사타구니 사이로 빠져 다니는 아이들을 거들떠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퍽으나 걸어서 그는 다음 마을에 이르렀다. 거기서 차들은 줄을 지어 멈취서 쉬고 있었다. 여기서도 물을 마시고 사과 대접을 받고 있었다. 장교들은 길가의 농가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 툇마루에 반짝거리는 반장화들이 여러 켤레 놓여 있었다. 그 집 부엌 쪽으로 돌아갔을 때 솥에서는 김이 나고 여자들이 오락가락하는 것이 보였다. 뜰 한쪽에 닭털이 수북이 흩어진 것으로 보아 닭을 잡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어느 집 뜰에 사람이 둘러서 있다. 그는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이 우람한 황소의 고삐를 잡고 있고 다른 사람이 망치를 들고 그 앞에 서 있었다. 한 번에 해야 되우. 둘러선 사람들 가운데서 누군가 말했다. 망치 든 사람은 손바닥에 침을 탁 뱉더니 연장을 고쳐잡았다. 소는 뒷발을 뻗고 메, 하고 울었다. 자루가 긴 망치가 빠르게 반원을 그렸다. 일 초. 이 초소는 앞다리를 꺾었다. 그러자 가벼운 먼지를 일으키며 육중한 몸뚱이가 모로 쓰러졌다. 그만이었다. 다른 사람들이 바꿔 들어서서 날카로운 칼을 소의 배 한복판에 찔러서 사타구니까지 쭉 내리찢었다. 다른 사람은 소의 목에 칼을 푹 찔렀다가 뺐다. 받쳐진 대야에 콸콸 피가 쏟아져 내려갔다. 쇠가죽을 벗기는 사람은 가슴과 배를 다 마치고는 다리를 벗겨 냈다. 지금은 널찍한 모피(毛皮) 위에 흰 막(膜)에 덮인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얹혀 있었다. 그는 소의 오금을 잘라서 뒷다리 둘을 끊어 내고 다음에는 앞다리를 도려냈다. 아까 피를 받아 내던 사람이 목둘레를 잘라 낼 때 준은 자리를 뜨려고 했으나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쇠대가리가 따로 났다. 한 사람이 뿔을 잡고 번쩍 들어서 날라 갔다. 이제 사람들은 내장을 들어내는 판이었다. 그는 자리를 떴다. 그는 트럭 있는 데로 가보았다. 한 마을 사람이 군인에게 말하고 있었다.
"시내에 좀 갈 수 없을까요?"
"여보시오, 지금 어느 땐데 시내엘 간단 말이오."
"인민군 아이들은 다 도망하고 시내는 비었다던데요?"
"안 돼요, 전투 중이란 말요"
그 사람은 시내에 꼭 가야 할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트럭을 태워 달라는 것이다. 병사는 사과를 씹으면서 건성으로 말을 들어 주고 있었다. 준은 생각했다. 저 사람이 차를 타게 되면 나도 따라서 타야지. 여기서 시내까지 가자면 멀기도 하려니와 여느 때와 달라서 군인들을 실은 트럭이 길을 메우고 있는 속을 걸어간다는 것은 불안스러웠다. 그는 이 자리에 지켜 섰다가 하회를 보아 그렇게 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을에 흩어졌던 군인들이 하나둘 차를 세워 둔 길가로 돌아온다.
차들이 발동을 걸고 부릉부릉대기 시작했다. 어떻게 타협이 되었는지 아까 그 사람은 트럭에 기어오르고 있었다. 트럭에 앉은 병사들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준은 화끈거리는 얼굴을 숙이면서 그 사람 뒤를 따라 차에 올랐다. 군인들은 보고만 있었다. 차의 행렬은 출발했다. 황백색의 먼지를 자욱이 날리며 차는 달려간다. 준이 보통 같으면 엄두를 못 낼 이런 일을 재빠르게 혼자 해내도록 만든 데는 이 돌변한 사태의 어수선한 분위기가 많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었으나 지금 그는 머리가 아프도록 W시에 가고 싶었다. 그런 감정은 지금까지 그의 생활에서 비슷한 것을 찾아본다면, 친구가 가진 책을 빌리기 위해서 그의 마을과는 반대쪽인 S리(里)로 밤을 새워 다녀왔던 일밖에는 없었다. 동리마다 비슷한 환영을 받으면서 차량들은 W시로 다가갔다. 그 차에는 여덟 사람의 군인과 마을 사람 그리고 준이 타고 있었다. 병사들은 바닥에 실은 사과 궤짝을 터서 먹으면서 연방 노래를 불렀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가슴에 고동치는 애국의 핏줄
넓고 넓은 사나이 마음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
달리는 차 위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목이 터질 듯이 노래를 부른다. 귀에 익지 않은 군가(軍歌)는 소년 독고준에게 무엇인가 형용키 어려운 고독을 맛보게 했다. 마을을 지나서 다음 마을까지 양쪽에 펼쳐진 논 사이로 차는 달리고 있었다. 병사들 가운데 가장 젊어 보이는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쳤다.
"야, 맞히나 봐."
그는 말을 끝내기도 전에 손에 든 사과 한 알을 차가 달리는 저 앞쪽을 향해서 던졌다. 사과는 지게를 지고 걸어가던 늙은 농부의 어깻죽지를 때리고 땅에 굴렀다. 겁에 질린 농부의 얼굴이 차 위를 살폈다. 그 옆을 왁자지껄한 웃음 소리를 실은 차가 지나가면서 몇 알의 사과가 더 날아갔다. 농부는 길가에 모로 돌아서서 그것을 피했다. 처음 사과 한 알이 날아가는 순간 준은 가슴이 꽉 막혔다. 그의 눈앞에서 병사는 거푸 두 번 세 번 던졌고 순식간에 농부는 저 뒤로 남겨졌다. 준은 웃고 있었다. 병사들이 유쾌하게 웃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표정을 닮았던 것이다. 그는 몰래 차를 얻어 타고 있었다. 그는 표정으로나마 맞장구를 쳐야 했다. 그러나 그의 가슴은 슬픔과 아까 군가를 들으면서 느꼈던 것보다 비할 수 없이 강한 고독으로 울렁거렸다. 머릿에서 왕왕 소리가 났다. 앞차가 멎으면서 준이 탄 차고 멎고. 뒤를 이어 오던 차가 고장이 생긴 모양이다. 준이 탄 차 바로 옆에 두 구의 시체가 넘어져 있었다. 시체는 인민군 병사였다. 마른 논에 얼굴을 반쯤 묻고 이쪽으로 드러난 네 개의 운동화 바닥을 길에 걸친 자세로 그들은 나란히 넘어져 있었다.
"그 새끼들 더럽게 뒈졌다."
"먹어라, 새끼들아."
앞뒤 차에서 사과가 날아가서, 시체 위에 혹은 옆에 떨어졌다. 진흙 속에 박히는 사과를 바라보면서 독고준은 웃고 있었다. 차에 있는 사람들의 표정을 닮기 위해서. 차는 다시 출발했다. 황백색의 먼지를 자욱이 날리며…….
지프 한 대. 탑승자 셋. 지프도 가끔 나타난다. 포대경 속에 드러나는 동무들의 지프는 우리 것보다 스타일이 둔하다. 지프는 백 미터의 거리를 우(右)에서 좌(左)로 가로질러 사라져 버렸다. 길 위에서 되비치는 하얀 햇살. 아지랑이. 어디선가 새가 운다. 발동기의 웅웅 소리. 조직(組職)이란 것은 묘하다. 보통 거대한 기계에 박힌 톱니바퀴란 말을 한다. 그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조직 속에는 늘 맹점(盲點)이 있다. 없어서는 안 될 임무지만 잘만 이용하면 에고를 위한 디오게네스의 통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자리가 늘 있는 법이다. OP만 해도 그렇다. 여기는 말하자면 양쪽의 더듬이다. 여기서 얻어지는 관측은 물론 빙산의 한 모서리지만 모아서 맞춰 보면 물 밑에 잠긴 거대한 부분의 부피를 짐작해 내는 데 긴요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근무하는 한 사람에 대해서 말한다면 그저 단조한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뿐이다. 맹점이란 말은 다분히 조직의 입장에 서서 능률을 걱정하는 울림을 주지만 오히려 이런 것을 달리 생각해서 긍정의 방향으로 돌리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만일 조금도 낭비가 없는 완전을 그려 본다면 그것은 지옥이다. 조직은 그 자신 속에 모순의 논리를 가지고 있다. 조직이 계속하자면 필요한 비능률을 그 속에 지녀야 한다. 그래야 에고가 숨 막히지 않는다. 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일만 하고 놀지 않으면 사람은 바보가 된다). 그것은 조직과 에고와의 야합이다. 야합이란 현실의 논리다. 점잖게 중용(中庸)이네, 해보아도 속은 마찬가지다. 기승해서 달려들면 기계는 고장 나고 사람은 멍이 든다. 지금 생각하면 북에서 동무들이 해방 후 벌여 놓은 일 가운데는 무리가 많았다. 무엇인가 잘못된 데가 있었다. 그들은 조직을 이루고 있는 낱낱의 에고들이 저마다 그 조직 자체를 삼켜 버릴 수 있는 허무의 "점 "들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 사회의 무겁고 따분한 공기가 생긴다. 동무 두 사람이 막사 밖으로 나온다. 평행봉에 매달린다. ‘체육사업’이다. 사업 하하. Dull boy(바보). 도대체 뭐가 뭐란 말인가. 남들은 나이가 들면 세상이 알아지고 철이 든다고들 하지만 나의 경우는 갈수록 오리무중 캄캄한 밤길이다.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생사도 다 버리고 공명도 없다는 마음으로 여기 제6 OP에 서서 포대경을 들여다보는 것은 아니다. 잡념과 번뇌는 저 벌판의 잡초처럼 이내 맘엔 무성도 하고. 욕망의 태양은 지글지글 끓는다. 다만 풍경은 움직이지 않는다. 이 벌판처럼. 움직여야만 하는가. 움직여야만 하는가…… 태양은 하늘에 있고 잡초는 게으르게 숨쉬며 나 독고준은 포대경 속에 백 미터의 길을 지켜보며 취생(醉生)해서는 안 되는가.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 생길 때마다 그는 당황해진다. 무엇을 할 것인가. 그 물음은 인간은 무엇을 해야만 된다는 요청을 앞세우고 있다. 그러나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무엇을…… 뜨거. 그는 담배를 발로 비볐다. 교대는 오지 않을 것이다. ‘미안한데 . 전우여 조금도 관계없다. 나는 이 근무를 사랑한다.’ 그렇다, 만일 인생에도 이런 자리가 있다면. 인마(人馬). 적 보급 차량. 덮개를 씌운 마차 하나, 15시 30분. 그뿐. 이런 자리가 만일 이 인생에 있다면 나는 그것을 원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보기만 하는 생활. 한없는 욕망을 간직한 채 인생의 밖에서 있는 몸가짐. 그것도 한 가지 참여라? 그렇기는 하다. 그렇더라도…… 그렇다 치더라도…… 괜찮다. 그러나 밥을 먹어야 할 것이 아닌가. 누가 밥을 먹여 주는가. 밥. 밥이란 물건이 그렇게 중요한 것을 그는 피난 시절에 처음 알았다.
월남해서 만난 아버지는 그의 기억 속에 있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풍신이 좋고 말이 없으나 위엄이 있는 인물이 그의 기억 속에 있는 아버지의 초상화였다. 물들인 UN 점퍼의 구겨진 칼라 위에 솟은 야윈 목을 바라보면서 그는 왜 그런지 흐뭇한 ‘아버지’를 느꼈다. 가족들이 다 남고 준이 혼자 나오게 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의 눈에서는 거침없이 눈물이 흘렀다. UN군의 철수가 전해졌을 때 온 시(市)는 발칵 뒤집혔다. 바로 전날까지도 모르고 있던 시민들은 부두로 몰려갔다. 피난할 사람을 태우려고 항구에는 화물선이 하나 들어와 있었다. 아무나 태우는 것이 아니었다. UN군이 들어온 다음에 여러 기관에서 협력한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준의 집에서는 준과 누나가 피난하기로 정해졌다. 잠깐 갔다가 곧 오는 줄만 알았다. 형이 두 사람을 데리고 부두로 나갔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들은 배를 타는 것을 단념해야 했다. 아버지가 시 자치회에 근무한 한반 친구의 가족을 만난 것은 전혀 우연이었다. 친구는 준을 열(列)에 끼워 주면서 자기 아버지에게 부탁해서 허락을 받았다. 못난 누나는 떼밀면서 자기는 다른 사람들한테 끼여 갈 테니 먼저 타라고 했다. 두 사람씩이나 폐를 끼칠 수 없다고 생각한 때문이다. 그는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는 가만있었다. 친구의 아버지도 시무룩한 채 딴 곳을 보고 있었다. 친구의 어머니는 짜증이 난 목소리로 친구의 어린 누이를 쥐어박고 있었다. 할 수 없었다. 그는 밀리는 배를 타고 누나는 남은 채 배는 출항했다. 아버지에게 이야기하면서 그는 죄지은 사람의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지(死地)에 가족을 두고 도망해 온 치사한 두 사람. 이렇게 해서 아버지와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영주동에 2평방미터의 판잣집을 짓고 아버지는 국제시장에 나갔다. 그는 여러 가지 장사를 했으나 한 번도 재미를 보지 못했다. 준이 매부 얘기를 물었을 때 아버지는 사람 같지 않은 놈이라고 내뱉듯이 말했다. 그는 이남에 나와서 다른 여자와 결혼했던 것이다. 누나와는 이미 관계없는 그는, 따라서 매부도 아니고 사위도 아니었다. 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자본이 없어서 장사가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 돈이 제일 첨에는 어떻게 생기는지 준은 몹시 궁금했다. 준은 피난 온 다음해에 학교에 들어갔다. 피난민촌에 있는 바라크 학교였다. 그들 두 사람의 생활은 어려웠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는 월남한 이후 줄곧 뉘우치고 계셨던 것이 분명하다. 이북에 있는 과수원에서 가족들과 같이 사상이고 뭐고 아무도 다치지 말고 살 수만 있었다면 그는 그쪽을 택했을 것임에 틀리없다. 물론 ‘동무’들이 그렇게 놔두지 않아서 넘어온 것이지만. 부모 덕에 공부를 하고, 물려받은 과목밭이나 가꾸고 주재소 주임이 보여 준 존경 비슷한 것 속에 살아온 그는 나이까지 들고 난 지금은 아주 약하디약한 생활자였다. 게다가 남한 사회는 한국이 여태까지 겪지 못한 새 사회로 변모하는 중이었다. 돈이면 그만인 사회. 적당한 겉치레와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전통도 없는 채 자본주의의 가솔린 냄새 나는 사회로 변해 가고 있는 속에서 그는 낙오자가 되었다. 약해진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곧잘 심각한 이야기까지 나누는 것이었다. 고독했을 것이다. 어느 겨울에 아버지와 아들은 바람이 몰아치는 거리를 거닐면서 주고받았다.
"이런 날은 부산도 춥지요?"
"겨울이니까……."
"추울 때도 배가 든든하면 떨리지 않아요. 배가 고프면 더 추워. 그러니까 추워도 먹을 것만 있으면 안 추운 거나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멀리 바다 쪽을 내다보면서 한 손으로 준의 손을 잡으며 신음하듯 말했다.
"그래…… 맞았어……."
그날 그들은 아직 아침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겨울의 스산한 거리. 찌푸린 하늘. 주린 배를 안고 손을 잡고 걸어가면서 배가 고프면 더 춥다는 이야기를 중요한 발견이나 한 듯이 주고받았다. 지프 1, 탑승자 3, 14시. 아까 그 지프다. 앞자리에 탄 친구가 손을 들어 이쪽을 가리키고 있다. 지프는 사라졌다. 환경에 적응한다는 점에서는 그 독고준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섹스의 계절이 시작되고 있었다. 무력한 아버지였으나 그가 아버지와 같이 생활한 것은 거칠고 벌거벗은 성(性)의 시대로 성급히 쓸려 들어가는 것을 막아 주었다는 뜻에서도 크나큰 도움이었다. 그렇지 않았던들 독고준의 정신의 세계는 다른 길을 밟았을지도 모른다. 뜰도 없는 바라크 건물이었으나 학교는 학교였다. 아버지는 준에게 일을 시킨다는 것은 엄두도 내지 않았다. 아무튼 그는 학생이었고 바라크일망정 집이 있고 집에는 ‘아버지’가 계셨다. 준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오랜만에 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너만 성공하면 내 고생은 아무 일도 없다. 아버지는 그렇게 말씀하셨다. 대학 이학년이 된 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준은 어른이 됐다. 그것은 슬픔이란 말로는 잘 나타낼 수 없는 차디찬 절망이었다. 우선 다음 학기에 낼 돈을 마련할 수 없었다. 그는 군에 지원했다. OP의 생활은 그에게 휴식과 마음을 가라앉히는 시간을 주었다. 아버지는 그의 생활의 뿌리였다. 그는 거기서 자양―돈과 애정을 공급받았다. 그가 없는 지금, 그는 허공에 떠 있었다. 독립한 에고의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바람막이와 따뜻한 볕이 필요했다. 새로운 생활을 위한 결의와 체념을 그는 이 특수지대의 고요한 공기와 햇빛과 눈과 바람 속에서 익혔다. 그것은 물론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다. 기댈 데 없이 된 한 피난민 청년이 생활의 밑바닥에 제 발로 서야 되게 되었다는 시시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독고준에게는 3·1운동이나 6·25동란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3·1운동이나 6·25동란은 준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자기 일이었다. 산과 산. 그 너머에 멀리 W시의 항구와 그 거리들과 5월의 사과꽃과 양철지붕을 인 고향의 집이 마음속에서 새로운 신(神)이 된 것은 이곳의 생활 속에서였다. 그것들은 예전에 마귀 할미나 백설 공주, 신데렐라, 손오공, 나나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현실의 세계에서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같았으며, 그러면서도 현실보다 아름답고 빛난다는 점에서 같았다. 그것은 발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아득한 하늘 위의 신들 대신에 땅으로 이어진 저쪽에 살고 있는 신이 대신한 것은 꿈이 그만큼 가까워진 것이니까. 다르게 생각하면 역시 독고준의 비극이었다. 아버지와 같이 생활했다는 준(準) 정상적인 조건이, 비록 아래위 양옆으로 줄줄이 얽힌 부르주아 가정의 그것보다 못할망정, 독고준이 성의 세계로 거칠게 휩쓸리는 것을 막은 것처럼 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향수(鄕愁)라는 우상은 현실과의 사이에 또 하나의 벽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의 마음은 철조망의 선을 넘어서 고향의 집으로, 사과밭으로, 부서진 학교로, 방공호 속의 그의 나나에게로 공상의 나그네 길을 떠났다. 사랑이 그러한 것처럼 향수도 결정작용(結晶作用)을 한다. 그의 마음속에서 고향의 풍물은 금테를 두르고 돌아왔다. 고지의 일몰은 빠르다. 산마루에 해가 얹혔는가 하면 사방은 흠씬 어둠에 잠겨 버린다. 풀벌레가 울고, 갠 밤이면 하늘은 한결 가까워진다. 별하늘의 아름다움. 사방에 둘러선 산으로 막힌 하늘은 진한 물이 괸 호수다. 반딧불. 차단한 빛의 작은 알맹이들이 그 호수 위를 스르륵 날아간다. 별하늘에서 받는 높고 깨끗한 감동. 하나님과 단둘이 말을 주고받는다는 기도의 습관을 가지지 못한 독고준은 별하늘을 대할 때는 언제나 확실한 에고의 존재감을 맛보았다. 누군가와 확실히 면대하고 있다는 느낌은 거꾸로 말하면 그렇게 면대하고 있는 에고가 있다는 말이었다. 내가 있다는 것은 그렇게 놀랍고 벅찬 일이었다. 나는 정말 있는가. 별하늘을 보면 그는 확신할 수 있었다. 내가 딛고 있는 이 땅덩어리만 한, 혹은 저 태양만 한 별들이 바닷가 모래알보다 더 많이 꽉 들어차 있다는 저 공간. 그는 차가운 외로움을 느낀다. 그의 눈은 이웃에게로 간다. 거기 자기와 똑같은 외로운 한 인간이 있다. 그는 이 허허한 벌판에 놓인 똑같은 운명의 소유자다. 무연(無緣)의 중생(衆生)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 막막한 공간에서 고독을 같이 견디고 있다는 인연이 사람과 사람을 맺어 준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다. 머나먼 나그네 길에서, 어느 벌판의 오솔길에서 문득 사람을 만났을 때의 기쁨. 그것이 인간의 윤리를 지탱하는 마지막 뿌리가 아니겠는가. 다른 뿌리가 다 마르고 썩는 날에도 이 우주 감정(宇宙感情)만은 남는다. 이렇게 해서 독고준의 에고는 이웃 에고에게로 연대(連帶)의 손을 뻗친다. 그의 에고와 이웃 에고와 별하늘. 이 세 개의 점을 연결한 삼각형 속에서 그는 외로움과 싸웠다. 청년 시절에 흔히 있는 대로 독고준도 체계(體系)에의 집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세계를 한 가지 원리로 설명하고 싶다는 욕망. 그것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 소속할 체계를 잃은 에고가 자기분열을 막기 위해서 환경과의 사이에 벌이는 본능의 싸움일 것이다. 여러 가지 구불구불한 잡담을 다 제하고 간단히 말한다면 그는 외로웠기 때문에 별하늘을 사랑하게 되었고 뒤늦게는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졌다는 말이 되겠지만, 간단한 일을 간단히 생각하지 못하는 것이 그 나이의 병일진대 그런 호걸스런 충고는 독고준에게 아무 쓸모도 없다.
고지(高地)의 생활도 끝나고 다시 민간인이 됐을 때 그는 막막했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대로 그의 머리에 매부 얼굴이 떠올랐다. 남한에 나와서는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사람이었다. 매부도 아닌 사람이었지만 그의 기억에는 아직도 검은 학생복을 입고 누나와 같이 사과나무 밑에 앉아서 곧잘 해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하던 하얀 얼굴의 청년으로 남아 있었다. 물론 망설였다. 매부의 집은 으리으리한 집이었다. 그 속에 사는 사람도 옛날의 그 사람이 아니었다.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다. 학(鶴)이 알아봐 준 가정교사 자리에서 등록금을 대주기로 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아무 방도도 없었을 것이다. 제대했을 당시는 한동안 묘한 감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일선 고지에서 돌아온 사람이다, 이 나라를 위해서 전선을 지키다 왔다, 하는 신파(新派)의 감정이 있었으나 어느 강아지 한 마리 그런 감정을 살펴 주지 않았다. 제대 군인이 백만도 더 될 사회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매부의 처사는 그에게 또 하나 사람을 믿지 않는다는 나쁜 씨를 심어 놓았다. 오늘까지 가정교사 자리를 옮겨 다니면서 독고준은 점점 자기 자신에 대해서 절망해 갔다. 그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것이 막연한 희망이었으나, 그것도 꼭 되고 싶다는 것보다도 그저 되어 볼까 하는 것뿐이었으며 그게 아니면 죽고 못 산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소설을 탐독했으나 소년 시절처럼 빠져들 수 없었다. 다 거짓말이고 가슴에 오지 않았다. 사실은 그 자신의 속이 비어 있는 것은 생각지 않고 소설 속에서 소설을 찾자는 데 까닭은 있었으나 그의 가슴에서 정작 활활 타오를 그런 불길은 없었다. 일요일 같은 인간. 매일 날에 날마다 일요일 같은 놈. 그는 자기의 에고를 마치 구경거리이기나 한 듯이 바라보았다. 그 바둥거리는 모양. 측은했다. 두 개로 쪼개진 이 자기가 한데 어울려 붙어야 무슨 일에든 신명이 날 테지만 이런 모양으로는 언제까지나 그는 깊은 회의와 권태의 의자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W시에서 폭격을 당하던 날, 그 굴 속의 여자를 생각할 때면 그는 다시 소년의 날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진격하는 부대를 따라 들어가던 일. 사과. 한낮의 햇볕 아래 자기의 가죽을 외투처럼 깔고 누워 있던 소. 노인에게 사과를 던지던 병사. 그 병사의 모습은 그 후에 "그가 남한에서 본 것을 상징하는 그림이었다. 그 여자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의 가슴속 제일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가장 소중한 물건이란 이렇게 시시한 일일까? 만일 다른 사람이 그것을 본다면 하찮은 부스러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게 진주(眞珠)라는 데 문제는 있다. 거기를 건드리면 언제나 울리고 아프다. 나의 친구 학은 좋은 놈이다. 한국 같은 땅에 두기가 아까운 아이다. 그러나 그는 어딘가 막혔다. 마치 저 "동무 들처럼. 그는 아주 고결하고 훌륭하기 때문에 바보다. 녀석은 혁명을 하자는 것일까. 이 삼천리 금수강산을 유토피아로 만들자는 것일까. 바보자식. 개자식. 무엇 하러 이 땅에 유토피아를 세운다는 거야? 누가 부탁했어? 누가 해달랬어. 이 땅은 구조할 수 없는 땅이야. 한국. 세계의 고아. 버림받은 종족. 동양의 유태인. 사랑하는 김학 선생,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려는 거요? 유다여, 그대의 일을 하라고 뽐내고 싶으신가요? 김학 선생. 그것은 안 됩니다. 이 사람들은 밸도 없고 쓸개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성내지도 않고 울지도 않습니다. 그렇데 무엇 하러 당신같이 고운 맘씨 가진 사람이 아까운 일생을 망쳐야 합니까? 가끔 신문 삼면에 나는 기사를 못 보십니까? 칠십 평생을 조국에 바친 노지사(志士)의 말로. 그런 기사를 대할 때마다 소름이 끼치더군요. 무슨 오산이었을까 하고. 당자는 그만두고라도 사랑하는 이를 밤낮 꿈속에서만 만난 그의 아내며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자녀들은 누가 갚아 줍니까? 그런 것도 보람이라고요? 거짓말. 가장 나쁜 거짓말입니다. 그런 거짓말만 해왔기 때문에 이 꼴인지도 모르지. 김학과 만날 때는 준도 끌려서 세상을 바르게 보고 청년다운 논리에 열중한다. 사실 김학이 없다면 준의 생활은 훨씬 쓸쓸할 것이다. 그는 학을 공격하고 빈정거리고 비웃으면서 어떤 쾌감을 즐겼다. 그와 마주앉아서는 준은 그래도 세상을 생각하면서 살자는 사람같이 보였다. 학은 친구의 그런 겉모양에 속고 있었다. 한번 홀로가 되면 독고준은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렸다. 애써도 추켜세울 수 없는 이 허물어진 마음. 회색의 의자에 깊숙이 파묻혀서 몽롱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만 하자는 이 몸가짐. 그러면서도 학의 말에 반발하고 싶고 그들이 만들고 있다는 모임에 퍼뜩 생각이 미치곤 한다. 나라는 놈은…….
준은 일어서서 창으로 갔다. 이 집은 낡은 일본집인데 집 주인네는 아래층을 쓰고 그는 위층을 쓴다. 위층에는 준의 방 하나밖에 없다. 준이 이 집을 택한 것은 우선 집세가 싸기 때문이다. 도심지는 아니지만 한 달에 천 환이란 세는 좀체로 생각할 수 없다. "집 주인은 철도국에 벌써 30년 일하고 있는 50대의 남자고 고등학교 일학년에 다니는 딸이 하나, 마누라, 이렇게 세 식구다. 위에 시집간 딸이 셋이고 아들은 없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이 적산집을 차지했는지는 모르지만 수리를 제때에 안 한 탓으로 집은 많이 낡았다. 주인네 식구가 단출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준은 이층에서 내다보는 전망을 사랑했다. 남쪽 창으로 내다보면 미군 부대가 있고 그 저쪽으로는 한강이다. 미군 부대는 막사와 시설이 먼눈에 보면 더욱 반듯한 것이 눈을 끈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만하다. 테니스 코트가 있는데 하얀 공이 반짝하면서 나는 것을 보기를 준은 즐겨했다. 땅에 그은 하얀 줄. 하얀 유니폼. 하얀 네트. 하얀 공. 그것들이 재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은 두는사람 없이 제대로 움직이는 장기말 같다. 그 훨씬 저쪽에 한강이 흐른다. 그는 이곳에서 강에도 무수한 얼굴이 있는 것을 알았다. 기슭에 자란 풀이나 나무가 계절마다 모습이 달라지는 것이 변화의 첫째 원인이다. 이른봄에 쪼개진 얼음이 흘러내리는 물빛은 얼음과 눈 때문에 차갑다. 그러는 사이에 새싹이 푸르무레 돋아나고 햇빛이 한결 밝아지면 강물은 부드러운 청색이 된다. 그것은 봄철에 아직 목에서 떼지 못하는 젊은 여자들의 털실 목도리처럼 부드러워진다. 한여름의 강물. 수없이 많은 빛의 알맹이들이 강 표면에서 튕겨져서 서로 부딧치면 강물은 흐늘흐늘 몸을 뒤척이는 양단이 된다. 물론 나룻배나 벌써 멱감는 아이들, 빨래하는 여자들이 개입하면 느낌은 또 바뀌는 것이지만. 얼음이 언 다음에는 강은 강이 아니다. 강은 오히려 마음속에 있다. 저 언저리에 분명 다리가 있었는데. 저 나무는 여름에 어떻게 보이던 나무던가. 강줄기가 땅과 어울려 붙어서 제 모습을 알아내기 힘든 것처럼 잎사귀 떨어진 나무도 못지않게 달라진다. 그 나뭇가지에 눈이 쌓인 대로 있은 적은 별로 없다. 걸치는 데 없는 벌판의 바람은 눈이 쌓이기 무섭게 날려 버린다. 겨울에 달이 있는 밤에 이 창에서 보는 한강은 스산하기 이를 데 없다. OP에 근무할 때나 이 집에서 살면서 독고준이 절실히 느낀 일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한국의 산수(山水)에 관한 것이다. OP에서 바라보는 산에는 그처럼 깊은 골에도 눈길 닿는 데까지 번번한 맨몸인 채 나무가 없었는데도 산의 몸매는 결코 거칠지 않았다. 여름 풀들이 부드럽게 덮여 있는 탓이기도 했으리라. 그러니 이 산에 나무가 들어찼을 때는 그야말로 금수강산이란 말을 빼고는 다른 말을 고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 산천이 너무 좋아서 사람을 망친 것이 아닌가. 하릴없는 시간에 그런 생각을 하고 웃은 적도 있다. 이 창에 서서 보는 한강의 겨울 풍경도 비록 스산하기는 할망정 결코 사람의 영혼을 두려움에 떨게 하도록 가혹하지는 않다. 이 산천을 보면 세계가 어둡고 구원할 수 없는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느 한구석에는 빠지는 길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물며 지금은 가을. 그것은 흔히 보는 산수화 그대로였다. 동양화의 사실성을 그는 놀랍게 생각하였다. 그것은 천재들의 기교라느니 보다도 이 강과 산과 구름을 그대로 배껴 놓은 것이다. 자욱이 서리는 안개, 그 속에 들락날락하는 봉우리, 산허리에 자리 잡은 한 채의 기와집, 그 가운데를 섶을 진 마을 사람이 내려오는 장면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나라는 망하고 사람도 망했는데 강산은 왜 이다지도 아름다울까. 그는 무엇인가 깊디깊은 설움이 그 안개처럼 몸을 휩싸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것은 애국가를 부르는 어떤 순간 코허리가 시큰해지는 그런 감정을 닮은 것이었다. 그것이 싫었다. 그런 드높아지려는 낌새가 싫다. 그래 봤자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란 것도 한 세대가 지나면 얼마나 맥빠진 것이겠는가. 아니 그러나 사람은 그 흐름 속에서 살게 마련이 아닌가. 해탈하려는 것, 그 인연의 사슬 밖으로 벗어나려는 것이 바로 번뇌의 원인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해탈하지 말자. 사슬에 매인 채로 사는 것. 그는 무슨 큰 발견을 한 듯이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렇다. 해탈은 석가모니 한 사람에게나 맡기고 인간은 열심히 번뇌에 살아야 옳지 않겠는가. 번뇌의 기쁨. 번뇌의 아름다움. 우리 동양 사람은 이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표적을 얼마나 학대했는가. 지금 우리는 값을 치르고 있다. 또 그날 밤 학의 말을 떠올린다. 혁명이 가능했던 상황이란 건 없었어. 혁명은 그 불가능을 의지로 이겨 내는 거야. 거기에 대해서 나는 무어라 대꾸했던가. 사랑과 시간. 사랑과 시간. 그러나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언제 우리들의 가슴에 그 진리의 불이 홀연히 댕겨질 것인가. 그것은 기다리면 자연히 오는 것인가. 만일 너무 늦게 온다면. 사랑과 시간. 이것이 스스로를 속이는 기피가 안 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하는가. 무지한 백성. 몽매한 역사. 그런 것일까. 아니 문제는 그런 데 있지 않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이다. 나는 진리를 믿고 싶지 않은 것이다. 천 사람, 만 사람에게 하나같이 꼭 들어맞는 그런 진리를 믿고 그 때문에 가슴을 태울 만한 순결은 이미 내 몫이 아닌 것이다. 어떻게 하다 이렇게 된 것일까? 내 나이에 어떻게 하다 이런 인간이 된 것일까? 이것은 시대가 나를 거세한 것일까? 아니. 시대에 책임을 넘기겠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불행은 내가 책임진다. 만일 극락에 가서도 불행한 사람이 있다면 그 불행은 당자만이 책임지는 수밖에 없다. 인간의 불행 속에는 얼마까지가 필연의 탓이고 얼마까지가 우연의 탓일까. 이 가늠을 그는 일찍이 배워 보지도 못하고 제 힘으로 알아내지도 못하고 있다. 지금의 독고준에게 한가지 희망이 있다면 언젠가 한 번은 고향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그 고향에 가서 일생을 묻겠다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가 봐야 그곳은 옛날에 불던 풀피리 소리 아니 나고 메마른 입술에 풀피리는 쓰디쓸 것이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한 번 가고 싶다. 그 쓰디쓴 풀피리를 불기 위하여. 메마른 입술에 풀피리를 씹으며 그 밤나무숲에 다시 한번 앉아서 희디희게 빛나는 제련소 굴뚝을 볼 수 있다면. 이런. 굴뚝은 벌써 그해에 부서졌는데. 굴뚝은 다시 섰는지도 모른다. 또 서지 않았다면 어떤가. 눈익은 그 공간에 이미 흰 기둥 없다는 것이 쓰디쓴 풀피리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그곳엔 언제 갈 수 있는가. 사랑과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인가. 열 몇 해 전 여름의 어느 날 갑자기 우리들을 일본 사람들에게서 풀어 준 그 운명이 또 한 번 기적을 가져올지도 모르지. 그렇게라도 좋다. 한 번만 더 가보았으면. 그래서 형님과 어머니와 누님에게 우리들이 그 하고많은 밤의 굿을 치르며 그리워하고 그곳에 살고지라 빌었던 귤이 무르익는 남쪽 나라는 와보니 있지 않은 허깨비더라는 것, 따라서 그 목소리 곱던 아가씨는 거짓말쟁이라는 것, 누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나고 제일 훌륭한 남자라고 여겼던 사람은 치사한 녀석이더라는 것― 이 모든 얘기를 그 사람에게 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런 날이 올라구.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이다. 다른 누가 와서 또 한 번 겁탈하는 것을 기다리는 실성한 갈보처럼 우리 엽전은 언제까지고 임을 기다릴 것이다. 사랑과 시간. 엽전의 종교. 하하. 속으로는 번연히 괘가 그른 줄 다 알면서 얼렁뚱땅 거짓말이나 해가면서 처자식 고생이나 시키지 않게 처신하는 유식한 분들이 정치를 하고 사업을 하고 신문을 내고 교육을 하는 판에, 백년하청이지 어느 날에 물이 맑아질까. 그러니까 혁명이라? 싫다. 누가 이따위 엽전들을 위해서 혁명을 해줄까 보냐. 아까운 목숨을 걸자면 좀더 귀여운 사람들을 택해야지. 독고준 자네는 엽전 아닌가. 그러니까 엽전답게 목숨을 아낀단 말이다. 나는 더러운 고슴도치처럼 혼자만 웅크리고 살다가 나만큼 비열하고 그저 그만한 여자가 있으면 같이 살아도 좋고. 그러니까 김학 선생. 나는 당신이 좋으면서 싫어. 당신은 내 생활을 어지럽히니까. 되지도 않을 일로 슬픈 환상을 일으켜 주니까. 김학선생, 당신의 순정은 잘 알아. 그러나 난 엽전의 생리를 잘 알아. 내가 엽전이니까. 안 될 거야. 잘 안 될 거야. 실은 그게 아니야. 서양 아이들 등쌀에 제대로 되겠어? 그 애들의 거창한 힘과 겨룰 수 없어, 김학. 엽전답게 살지 않으련?
무엇인가 스스로 격해지면서 그는 의자등에 거칠게 머리를 기대며 눈을 감았다.
가까운 극장에서 음악이 들려 온다. 이 강산 낙화유수 흐르는 봄에 새파란 잔디 얽어 지은 맹세야 세월에 꿈을 실어 마음을 실어 꽃다운 인생살이 고개를 넘자…….
4
청춘을 따르자니 부족이 울고
부족을 따르자니 청춘이 울더라
오후의 캠퍼스는 철지난 해수욕장을 닮았다. 더구나 토요일이다. 도서관 뒤에 두 그루 마주 선 은행나무 밑에 《갇힌 세대》의 동인 네 사람이 번 듯이 드러누워 있었다. 이름은 동인지 제2호 편집회의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다고 그들의 자세는 말하고 있었다. 높이 저 멀리 가볍게 비낀 구름은 과연 그게 구름인가 자꾸 눈을 사려야 할 만큼 하늘은 맑았다. 가을의 이맘때가 되면 공연히 뒤숭숭하고 무언가 잊어버린 것 같은 그런 심사에 눌리곤 한다. 누군가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생각해 내려고 안간힘을 쓸 때처럼 그렇게 안타까운 것이다.
"김학……."
"……"
누군가 김학을 불렀다. 대답이 없어도 그저 그뿐 다른 사람도 더 말이 없다. 은행잎이 떨어져 온다.
"이봐……."
김정도(金正道)가 김학 쪽으로 돌아누우면서 불렀다. 그들 사이에는 몸집이 비대한 김명호(金明浩)가 겹진 턱을 쳐들고 번듯이 누워서 눈을 감고 있다.
"도예이, 뭐꼬?"
김학은 일부러 고향 사투리로 정도를 받아 주었다. 정도는 한참 학의 머리 너머로 허공을 쳐다보다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동지여,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가’를 익살스럽게 높여서 물었다.
"글쎄."
"글쎄라니 그건 무슨 대답이야?"
"글쎄다."
"계속해서 글쎈가? 아는 사람?"
정도는 제가 팔을 들면서 누워 있는 동인을 한바퀴 둘러보았다. 저만치 떨어져 누워 있던 오승은(吳承恩)이 손을 들었다.
"자넨가? 좋아."
승은은 털보라는 별명이 어울리는 얼굴에, 웃음을 지었다.
"글쎄란 말이 그렇게 이해가 안 가? 좋은 말 아냐? 판단을 머뭇거리고 있는 회의(懷疑)의 정신이 그대로 나타난 우수한 한국어야. 글쎄. 얼마나 좋은 말인가. 이것이냐 저것이냐, 극적인 정점에 이르렀을 때 한마디 ‘글쎄,’ 이래서 드라마는 맥이 빠지고 위기는 자연 해소가 돼. 난 글쎄란 말 가운데는 한국인의 한없이 아름다운 중용(中庸)의 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야. 글쎄, 내 말에도 자신은 없지만."
정도는 친구의 비꼬인 의견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한숨을 쉬었다. 학은 말했다.
"우리만은 그러지 말자, 응? 그런 말을 하기는 쉬워. 그건 사실이었으니까. 해방 후에 무슨 연설마다 삼십육 년간이란 말이 나오지 않았어? 지금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없어. 말해 봐야 쓸데없기 때문이지. 지난날에 있었던 못난 역사의 상처를 자꾸 그리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지만 그것은 다만 그걸로 끝나는 거야. 문제는 미래의 시간에 있어. 미래만이 진정한 시간이 아닌가. 과거는 시간이 아니야. 그건 셈이 끝난 계산서 같은 거야. 이제 어떻게도 할 수 없는 일이야. 우리의 문제는 미래의 문제야. 우리가 인간답게 사는 건 그것을 알아내야 해.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도 도를 지나치면 비겁하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말이야, 내 말은. 내 의견으론 우리 조상이 잘못했던 점에 대해서 너무 깊은 감정적인 열등감을 가질 필요는 없는 거야."
"김학,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선인은 말씀하셨어."
"잘못이야. 콩과 팥은 그럴 거야. 그러나 사람은 콩도 아니고 팥도 아니야. 역사는 콩밭도 아니고 팥밭도 아니야. 그게 자연과 역사가 다른 점이 아닌가. 인간의 역사에는 혁명이 있지만 자연에는 마멸이 있을 뿐이야.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역사관은 아마 ‘정감록’이야. 누군가를 기다리는 그 사관(史觀), 난 그걸 비난만 하는 게 아니야.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태도, "그 사람 이 와서 이 세상을 바로 잡고 역사의 끝장을 낸다는 사상은 바로 기독교의 근본 사상이 아닌가. 그들은 수천 년 동안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어. 다만 그들은 인간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고 하면서도 빵에 매달리고 그 빵에 집착해서 피를 흘리고 혁명을 하면서 살아왔어. 기다리는 태도가 틀려. 정감록파는 목욕이나 하고 산골에 엎드려서 정씨 오기만 기다리지만, 기독교인들은 구세주가 올 때까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일을 해서 이윽고 오실 큰사람 앞에서 떳떳하자는 게 아닌가. 어찌 보면 이건 교활한 타협이야. 빵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한다니, 얼마나 능글맞은 친구들인가 말일세. 이런 간단한 장사꾼의 논리 때문에 우리들 유현(幽玄) 풍류(風流)의 종족이 골탕먹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 참으로 ‘못나고 또 못났도다 배달의 아이들아’야."
"학의 말은 역사는 필연이 아니라 자유에 의해서 움직인다는 설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도 않아. 구체적으로 꼼짝할 수 없는 그런 환경이란 게 있어. 어떻게 해보려야 해볼 수 없는 그런 환경이 말이지. 우리의 지금 상태가 그것 아냐? 자, 여기서 혁명을 일으키자니 그토록 무시무시한 사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안 그러자니 따분하고 희망이 없고, 사는 것 같지 않고 창피하고 그래서 ‘갇힌 세대’가 아닌가? 갇혔다는 것. 옥 속에 있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환경이야. 우리는 갇혀있어. 갇혀있으니까 최소한 입에 들어가는 먹이는 누군가가 준단 말이야. 마치 죄수처럼. 죄수들은 생존은 허락되지만 생활은 금지당한 사람들이거든. 그들은 자유로부터 소외당하고 있어. 그러나 당장 죽는 것이 아니니까 그럭저럭 포로의 생활에 길들어지는 거야. 이것이 무서워. 사람마다 말세라 하고 이거 망나니 세상이라고 하면서도 그렇다고 사생 결판을 내는 그런 상태는 바라지 않고 있거든. 여기에 양(羊)의 무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오른쪽으로 몰면 오른쪽으로 우르르 몰리고 왼쪽으로 몰면 왼쪽으로 달리고. 이건 동물이야. 인간이 아니야. 우리에게는 단 한 가지 길만 허용되고 다른 길은 용납되지 않아. 요 먼저 어느 야당의 국회의원이 남북통일은 무력이 아니라 평화적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지 않아? 그랬더니 어떻게 됐어? 국시(國是)를 어겼다, 용공(容共)이다, 괴뢰들에게 동조한다고 야단이더군. 앵무새처럼 한 가지 말만 하라. 이것이 정부의 요구야. 인생과 정치를 좀 다원적으로 보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터부에 속해. 이른바 대통령이 산다는 집은 구중궁궐인 것처럼 신비의 안개에 싸여 있고, 국민들에게는 그 속에 사는 인물의 모습은 종잡을 수 없는 풍문처럼밖에는 전해지지 않는다. 오백 환을 주면서 신사 모자를 사 오라더란 일화 같은 게 그거야. 또 사람들은 이렇게 말해. "그분이야 어디 나쁜가. 주위의 간신 놈들이 나쁘지. 이것 봐, 간신이란 말일세. 민주 국가의 대통령의 보좌관들을 부르는 데 쓰여진 이전 시대적 용어를 좀 보게나. 행정의 최고 책임자는 신성불가침이고 잘못이 있다면 그 간신들을 물리쳐야 한다고 이 투표자들은 말해. "우리 대통령은 혹시 나쁜 놈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을 꿈에도 못 하고 또 못 하도록 만들고 있어. "간신 들이. 나는 보통선거에 의문을 가지고 있어. 한국의 민주주의가 이토록 썩은 데는 선거제도에 책임이 있어. 서양에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싸워서 얻은 선거권이 우리 경우에는 헐값으로 선사되었거든. 그래서 고무신 한 켤레에도 팔리고 막걸리 한 잔과도 바꾸는 거야. 이것이 우리들의 비극이야. 서양의 비극은 특권을 안 내놓겠다고 앙탈하는 귀족들의 손을 피 묻은 도끼로 찍어 내고 그 손아귀에 틀어쥐고 있던 인간의 권리를 뺏어 와야만 했던 그 피의 드라마, 그게 서양의 비극이었어. 아름다운 것을 위해서 피가 흘려져야만 했던 모순(矛盾)이 서양의 비극이었어. 로베스피에르의 피투성이의 사랑. 크롬웰의 가혹한 사랑. 그게 서양의 비극이었어. 자유의 역사에는 끈적끈적한 피가 엉겨붙어 있어. 그 피는 지금도 후손들에게 호소하고 명령하는 힘을 지니고 있어. 우리들의 경우는 피 대신에 막걸리가 흐르고 인간의 모가지 대신에 고무신이 굴러가고 있어. 이것은 비극이 아니야. 이것은 드라마가 될 수 없어. 우리는 갇혀 있으나 탈출은 금지돼 있어. 이번 영일 을구(迎日乙區)의 선거만 해도 그렇지 않아?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이 부패한 공기는 고질이 됐어. 악의 평화 속에 가라앉은 이 세대의 마음을 잡아 흔드는 것은 인력으론 불가능해. 요 먼저 그, 이 몸이 살아실제의 후예 말마따나 사랑과 시간밖에는 해결할 도리가 없을 게야. 김학, 어때?"
"응…… 자네가 지금 좋은 말을 했어. 우리들에게는 드라마가 없다고. 그건 사실이야. 이것이 아니면 죽는다 하는 신념이 없기 때문에 자유가 박탈당했을 때도 그것이 절실하지 않은 거야. 그러니까 반항도 하지 않아. 그래서 드라마도 없다는 결론이 나오지. 이 구원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감옥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기가 정말 우리들이 살 수 있는 단 하나의 장소일까 하고 의심을 품고, 그런 의심을 품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이 감옥을 때려 부수는 것, 이것이 이 시대를 사는 지식인의 길이 아니겠어? 자유를 박탈당하고 사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는 것, 민주주의를 노래하면서 선거구민에게 고무신을 보내는 것은 치사한 일이라는 것, 그런 상태는 참을 수 없다는 것, 이게 우리들의 감정이 아닌가. 남들이 그러니까 낸들 별수 있는가 하는 식으로 하면 끝없는 악순환이 이어 나갈 뿐이야. 우리의 마음 가운데 비극의 정신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리고 이 같은 정신을 전달하면서 단 한 사람에게라도 더 영향을 미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야."
그때 정도가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자네들 둘이 다 옳아. 우리들의 이 현실은 혁명도 불가능하도록 되어 있어. 혁명이란 늘 극도로 썩은 정권이 극도로 포학을 부릴 때에 일어나는 게 통례였어. 오늘날 우리가 눈앞에 보고 있는 현실은 불란서 혁명이나 러시아 혁명 당시의 상황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세 가지가 있어. 첫째는 전자의 두 혁명은 모두 지배 계급이 달라진 혁명― 계급혁명이었어. 시민과 노동자가 귀족을 대신했어. 그런데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혁명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는 이 계급혁명의 불가능 때문이야. 현재 우리는 국체상으로 공화국이기 때문에 특권계급이란 존재하지 않아. 주권은 인민의 것으로 되어 있어. 이념상으로는 문제는 해결이 돼 있는 거야. 정치의 부패는 이념상의 악에서가 아니라 실천 면에서의 시행착오로 받아들이도록 사회구조가 돼 있단 말야. 헌법은 좋은데 운용이 나쁘다는 것이지. 둘째 원인은 국내 정치와 국제 정치와의 떨어질 수 없이 맺어진 연대 관계 때문이야. 우리가 사는 세기에서는 아프리카에서 흘려진 피는 불란서의 지식인들을 노하게 만들며 코리아에서 모욕당한 민주주의는 워싱턴에서 걱정을 일으키는 그런 식으로 되어 있어. 한 국가의 정치가 고립하지 않고 세계적인 관련 속에 들어 있단 말야. 가령 알제리인들을 예로 든다면 자기들의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자들과 자기들에게 하루속히 독립을 주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꼭 같이 불란서인이라는 사실은 기묘한 콤플렉스를 일으켜. 또 이승만 정부의 부패를 묵인하는 것이 미국 정부인가 하면 이승만 정부를 아프게 꼬집는‘워싱턴 포스트’도 미국 신문이라는 거야. 서양 사람들은 패를 두 장 가지고 있으면서 엇바꿔 던지는 거야. 그 사람들의 선의(善意)는 여하튼 후진국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독(毒)이 되고 있어. 미국이 잘사는 것은 반드시 한국도 잘살게 되리라는 증명이 되지 못하는데도 ‘자유 진영’이라는 이름으로 착각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이지. 이승만이는 미국이 데려온 사람이다, 그 사람을 쫓아내면 미국이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북쪽에서 노리는 자들이 있는 현 정세로는 불안하기 그지없다. 이래서 혁신의 뜻을 가진 사람도 이박사를 업고 나설 계획이나 하게 되니 그게 무슨 혁명이 되겠어? 역설 같지만 미국 원조 때문에 우리는 스포일되고 있어. 바쁘면 도와 주려니, 미국이 있는데 이승만 정부가 설마 민주주의의 마지막 정조를 팔지는 못하려니, 이런 사회 심리가 있어. 이런 데서는 절망감이 생기지 않아. 막다른 골목이다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단 말이야. 끝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들어 가면서 숨 쉬는 파이프 하나는 무한히 길게 뻗쳐서 수면(水面)위의 공기를 공급해 주는 것, 이게 우리들의 이상한 현실이야. 우리 사회에는 절망이라는 활자(活字)는 있으나 절망은 없어. 혁명 시대의 불란서 국민이나 러시아인들에게는 혁명이라는 길밖에는 살아날 도리가 없었어. 이것이냐 저것이냐가 아니라 길은 하나, 혁명뿐이었어. 우리는 그렇지 않아. 우리들에게는 미국이라는 숨쉴 구멍이 있어. 하나 예를 들까. 정부에게 쫓기는 야당 국회의원은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외국 선박에 피신하지 않았는가? 현실에 절망한 많은 이상주의자들은 미국 유학이라는 길을 택하지 않았는가. 자네는 혹시 제정 러시아의 인텔리들이 불란서 유학생이었다는 사실을 들는지 모르지만, 그것과는 달라. 그네들은 파리에서 돌아올 때 과격한 개혁주의자들이 되어 돌아왔지만 한국 사람들이 미국에서 돌아올 때는 얌전한 공리주의자가 되어 오는 거야. 이래서 국민의 영혼에 불을 지를 역할을 해야 할 민족의 알맹이들이 정신적인 고자들이 돼버리는 거지. 셋째 번 이유는 국토의 분단 때문이야. 정부를 때리는 것도 국가의 안녕 질서를 위태롭게 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만 허락된다는 것이 우리의 처지가 아닌가. 북한에서 기회만 노리는 공산주의자들에게 틈을 주어서는 안 되니까. 살을 다치지 말고 뼈를 수술하자는 거나 마찬가지 이야기지. 그래서 살도 썩고 뼈도 썩고 있어. 절망도 불가능하다는 것, 이것이 우리의 비극이야. 우리들의 시대는 고전적인 격정의 드라마도 허용되지 않는 시시한 비극이야. 나타나는 모습이 시시하니까, 사태의 중대성을 좀체로 깨닫지 못하는 거야. 이천만의 인간이 키 없는 배를 타고서, 폭포를 향하여 천천히 흘러가고 있어. 다만 배의 갑판에는 커다란 텔레비전이 설치돼 있어서, 거기에 어머어마하게 크고 튼튼한 한 척의 강철선이 물거품을 물면서 장쾌하게 달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어. 그 배의 옆구리에는 USA라고 찍혀 있어. 텔레비전을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문자 위에 ROK라는 문자를 오버랩시켜서 그 배가 우리가 탄 배다, 라는 환상을 즐기고 있어. 스크루는 멎고, 방향타는 부서지고, 나침반은깨어지고, 옆구리에서는 조금씩 물이 새들어와서 쥐새끼들이 갑판으로 이동을 시작하고 있는 판국에 말이야."
동인들은 저마다의 자세로 누워 있었으나, 정도의 말을 귀담아듣고 있었다. 그들은 꼭 같이 어떤 슬픔을 느꼈다.
오래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학이 끝내 그 침묵을 깨뜨렸다.
"정도, 자네 말은 어떻게 들으면 오해받기가 쉬워. 우리는, 절망의 조건은 비록 바깥에서 올는지 모르지만 절망하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우리 자신이라는 걸 알 필요가 있어. 우리들의 현실이 아무리 괴기하고, 따라서 반응하기가 어려운 것일지라도, 그것은 노력을 포기하는 이유는 되지 않아. 일제 말엽에 한국의 명사들이 학도들에게 지원병을 장려하는 망동을 하지 않았나? 그 사람이 어떻게 그랬을까 싶은 사람들까지도 그랬었단 말이야. 그 사람들의 생각은 이랬다는 거야. 일본을 넘어뜨리고 독립하기는 인제 틀렸다, 일본은 너무 강해졌다, 이런 현실에서 조선 사람들에게 반항을 설교한다는 것은 피해만 크고 이득은 적다, 거꾸로 우리가 그들에게 협력함으로써 우리들의 몫을 늘리자, 이 전쟁이 끝났을 때 우리는 백의 동포의 아들들이 흘려 준 피의 값을 받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조금씩 자치를 실현해 가자, 백만 학도여, 그대들은 역사 앞에 바쳐지는 순결한 어린 양이다, 겨레를 위해서 죽으라, 이것이 그분들의 논리였다는 거야. 국제 정세에 어두웠던 것은 용서해 준다고 치더라도 이 얼마나 비열한 노예의 논리냐 말이야. 민족을 향해서 발언하는 사람들의 이 어처구니없는 헛소리가 당시의 청년들에게 얼마나 해독을 끼쳤을까? 이 논리를 그대로 좇는다면, 우리는 한국말 대신에 일본말을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하고, 그들의 생활을 본받아서 끝내는 삼천만 명이 모조리 뼛속까지 일본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결론이 나오지 않겠나. 차라리 입을 다물면 모르되 순진한 정신을 그르치는 이런 말을 뇌까린 사람들이 이른바 지도자들이었으니, 우리는 참 복도 없는 민족이야.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은 있다지만 애 배지 않은 것만큼은 못할 게 아닌가? 독립선언문을 기초한 사람이 침략자들이 세운 대학에서 강의를 하였으니 슬픈 일이었어. 이런 잘못을 다시 저질러서는 안 돼. 정치의 세계에서는 당분간 이빨에는 이빨로 대한다는 법칙이 있을 뿐이야. 그러지 않겠거든 침묵하든지. 이광수 같은 사람이 자기가 그토록 사랑하던 청년들더러 원수의 싸움을 도와주라고 권한 것은 얼마나 기막힌 일이야. 해방 후에 이광수가 발간한 '변명'은 없느니만 못하더군. 차라리 가만있을 일이지. 개인끼리든 사회나 국가에서든 유혹에 지고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뉘우치고 근신해야 하고, 어려움에 이긴 사람은 상을 받아야지 않겠어? 그래야 정의가 실현되지. 해방 후에 우리는 정치적 대차대조표를 작성할 때 사기를 당했어. 이승만 씨가 친일파들을 끌어들였을 때 비극은 시작된 게 아냐? 한국이란 참 이상한 나라지."
그 말을 오승은이 받았다.
"한국이 특수지역이라는 증거는 얼마든지 있어. 2차 대전 후에 이른바 후진국에서는 내셔널리즘이 휩쓸었고, 지금도 그게 최대의 조류로 흐르고 있는데도 한국에는 그런 바람이 불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는 건 확실히 놀라운 일이야.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사랑도 필요하지만 증오도 역시 필요해.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다는 거야. 해방 직후에는 그런대로 ‘일본 제국주의’가 당분간 그런 증오의 표적 구실을 했지만 6·25 바람에 끝장이 나버렸어. 하기는 6·25 전에도 반일 감정은 이미 국민적 단합의 심벌로서의 효력을 잃고 있었어. 그 대신 ‘빨갱이’가 그 자리를 메꾸었어. 오늘의 불행을 만들어 준 나쁜 이웃에 대해서 이렇게 어물어물 감정 처리를 못 한 채 흘려 버리는 것은 기막힌 일이야. 강간당하고도 헤 웃는다면 말은 다 한 것 아닌가. 개인의 마음이나 집단의 심리나 짜임새는 마찬가지야. 한은 풀어야 하고, 욕망은 이루어져야 해. 정치적인 강간의 상처를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 그 국민은 정치적으로 불감증이 돼. 정치에서 어두운 면만 보고 외면해 버려. 그저 몸으로만 당할 뿐 감격을 모르고 산다는 얘기야. 우리가 지금 그렇지 않아? 지금 한국 정치를 맡아보고 있는 사람들은 다 전과자들이야. 어쨌든 그들은 일본 사람들과 타협하고 산 사람들이야. 애국자가 소중한 것은, 슬픈 역사의 장난으로 어떤 국민이 욕된 삶 속에 있을 때 인간다운 반항의 모범을 보여 주는 일이야. 그런 사람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해서 용기와 믿음을 되찾게 해주는 것이지. 김구와 이승만이라는 두 지도자 중에서 이승만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도덕적 타락의 길은 열렸지. 김구가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다른 일은 몰라도 자그마치 친일파에 대한 태도만은 철저했을 거야. 친일한 사람을 모조리 사형하라는 게 아니야. 정치에서는 결과만 문제되는 것이니까 그들의 동기야 어쨌든 정치에는 얼씬도 말아야 하고. 김구가 정권을 잡았더라면 그렇게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거야. 정치 수완이 어떻고 할 테지만, 여보게, 이 모양으로 나라 망치는 게 정치 수완이라면 그런 건 없는 게 좋아. 군자는 외롭지 않다고 했으니, 그런 사람 밑에는 그런 사람이 모였을 거야. 늘 비분강개하고 상해의 뒷골목식인 애국 주의를 강요하는 바람에 좀 귀찮기는 할 테지만, 거짓말만 하는 이 기독교인 박사님보다야 나을 게 아닌가. 역시 아버지를 가지려면 좀 고집불통이라도 깨끗한 선비가 낫지, 늙은 체신도 없이 노상 "권력 의 호르몬제를 복용하고 "권력 의 실버 텍스를 조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친구를 어떻게 존경하겠나 말이야. 김구를 이승만이가 죽였는지 빨갱이가 죽였는지 몰라도 그 범인이 버젓이 나와 다닌다니 이거 도깨비 세상이지, 어느 미친 새끼가 남을 위해서 자기 생애를 바치리라는 생각을 멋으로라도 가져 보겠나. 빌어먹을, 배웠다는 새끼들도 돈만 주면 개처럼 꼬리치는 판이니 우리 같은 송사리 인텔리들이 흥분하다가도 머쓱한 일이 아니야?"
학은 맞받아 대꾸하려다가 문득 입을 다물었다. 갑자기 시들해졌다. 여태껏 주고받은 말들이 아무 쓸모 없이 생각되었다. 공중에 대고, 들을 사람도 없이 지껄인 넋두리라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 혀를 굳게 했다. 공중에 뱉은 말. 먼지처럼 공중에 뜨는 말. 황금빛 부채 모양을 한 은행잎이 한잎 두잎 심심치 않게 떨어져 온다.
가을이다. 그리고…… 학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집에서 온 전보를 만지작거렸다. 갑지기 무슨 일일까.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막상 고향에 내려간다고 생각하니 여기 누워 있는 친구들이 자기의 서울 생활의 내용이라는 느낌이 새삼스럽게 들었다. 비슷한 냄새를 풍기는 짐승들은 얼려 다닌다. 그들도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했다. 서울내기인 김명식을 빼고는 춘천이 고향인 김정도, 목포가 고향인 오승은, 이렇게 모두가 객지살이였다. 그는 요즈음 그 객지란 말을 아프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숙에서 한밤중 어쩌다 잠이 깨었을 때 고향집과 어머니를 불현 듯 생각하곤 했다. 오늘처럼 학교에서 모이는 때도 있지만 대개는 서로의 하숙을 돌면서 모였다. 아직 여자의 재미를 모르는 청년들이 그러하듯이 그들의 우정에는 순수함이 있었다. 서로 얼려서 웃고 떠들고 독백에 가까운 대화를 나누고 나면, 한결같이 무슨 일을 치르고 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어느 누구도 모임을 좌지우지하려거나 한곬으로 몰고 가려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기 위하여 그들은 서툰 논리를 움직여 보고 자기에게만 가장 확실한 아포리즘을 상대방에게 던지고 하면서 정신의 줄타기를 희롱하는 한 무리의 광대들이다. 그들은 그것을 알고 있다. 자기가 광대라는 그들의 분위기는 아슬아슬하고 숨차고 약간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나 그것은 다 거짓 위에 세워진 것을 알고 있었다.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 아슬아슬함은 진짜 위험이 아니라는 것을, 그 감격은 환상이라는 것을, 그 긴박감은 에고의 초조라는 것을, 약간의 아름다움은 자기 도취라는 것을 그들의 속 마음은 알고 있다. 어떤 순간에 문득 혀가 굳어지고 말할 수 없이 허전해지는 것은 그런 까닭이었다. 그것이 그들을 더욱 뭉치게 했다. 거짓에는 거짓의 진실이 있다. 마치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광대들에게 그들대로의 우정이 있듯이.
혁명. 피. 역사. 정치. 자유. 그런 낱말들이 그들의 자리를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으나, 그것들이 장미꽃, 저녁노을, 사랑, 모험, 등산 같은 말과 얼마나 다른지는 의문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그 무거운 낱말들― 혁명, 피, 역사, 정치, 자유와 같은 사실의 책임을 질 만한 실제의 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언어뿐이었다. ‘사실’에 영향을 주고, ‘밖’을 움직이는 정치의 언어가 아니라 제 그림자를 쫓고 제 목소리가 되돌아온 메아리를 되씹는 수인(囚人)의 언어 속에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그들이 몸부림치면 칠수록 현실은 더욱 멀어 보였다. 언어와 현실 사이에 가로놓인 골짜기를 뛰어넘는 길은 막혀 있었다. 그 골짜기를 이을 수 있는 다리를 놓기에는 그들은 너무나 초라한 ‘아이들’이었다. 물론 그들의 언어가 수인의 언어여야만 했던 것은 그 언어를 품고 있는 사실(事實)의 세계를 반영한 탓이었다. 젊은 영혼의 세계와 현실의 체계가 비교적 원만한 연속을 가지고 있는 사회였다면 그들은 덜 괴로웠을 것이다. 마음은 높고 현실은 낮았다. 무슨 방법으로든지 착륙하는 것이 필요했으나 그러지 못하는 데 슬픔이 있었다.
반쯤 잎이 떨어진 은행나무는 잎사귀 사이가 허술해져서 수척해진 대신에 가려졌던 작은 가지들이 드러나서 한결 골격이 뚜렷해 보였다.
오랜 침묵을 깨고 승은이 말했다.
"우리 오늘 술이나 할까, 김학 어때?"
"난 오늘 내려가야 한대두."
"그러니까 이별주로 말이지."
"무슨 이별주야……."
"아무튼……."
"그러지 말고, 제안이 있어."
"……"
"자네 김구를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그런가?"
"사랑스런 테러리스트 아냐?"
"됐어. 그럼 우리 김구 선생 묘를 참배하는 게 어때?"
"지금?"
"지금. 우리집도 거기서 가까우니까 그 길로 짐을 싸고 떠나겠어."
승은은 나머지 두 사람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대답 대신에 꿈지럭 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교문을 나서자 마침 달려온 버스를 탔다.
가로수들은, 벌거벗은 가지를 손가락처럼 하늘로 쳐들고 그 손가락 사이에 전깃줄이 여러 줄로 걸쳐져 있었다. 아스팔트 위에는 낙엽들이 자그마한 휴짓조각처럼 굴러다닌다. 늘 보지만 이 길은 조용한 거리다.
승은은 학의 옆구리를 꾹 찌르면 말했다.
"봐, 세상은 아무 일 없는 것 같지?"
학은 한참 말없이 있다가,
"글쎄, 정말 아무 일도 없는지도 모르지."
하고서는, 한쪽 팔꿉을 창틀에 얹으면서 돌아앉았다.
효창공원 바로 앞에서 내려 그들은 걸어갔다.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여자대학교 뜰을 학생 서넛이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오승은 씨, 자넨 연애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정도가 말했다.
"애국지사의 묘를 참배하러 가는 길에서 그런 말 하면 못써."
승은이 점잖게 타일렀다. 정도는 킥 웃었다.
그들은 김구 선생 묘 앞에 섰다.
"기분이 묘한데?"
승은의 말.
"왜?"
김학.
"쑥스럽다."
김명식.
"애국지사의 묘 앞에서 쑥스럽다는 것은?"
김학.
"글세, 그러니까 말이야."
김명식.
"내 말은 그게 아니야."
오승은.
"그럼?"
김명식.
"스릴이 있단 말이야."
오승은.
"스릴?"
김학.
"대통령이 지나가는 연도에서 손뼉을 치는 것과 꼭 반대의 일을 하고 있단 말이야. 우리는, 지금……앗, 앉아라!"
그들은 일제히 주저앉았다.
그리고 꼭 같이 주변을 재빨리 살폈다.
"핫핫핫……."
승은은 좋아서 깔깔 웃으면서 잔디풀 위에 뒹굴었다. 세 사람은 병신처럼 쭈그리고 앉은 채 그가 좋아하는 모양을 바라보았다.
"흐흐…… 아, 통쾌하다. 왜 그러고 있어. 오줌 누는 거야? 누워."
그제야 속은 줄 안 세 사람은 묘소 쪽을 머리로 하고 드러누웠다.
그들 네 사람은 승은의 장난에 대해서 나타낸 자기들의 반응을 생각하면서 누워 있었다. 이윽고,
"지사의 묘를 방문하면서 스릴을 느낀대서야."
승은은 신음하듯 그렇게 말했다.
그들의 발치 저만치에서 어린 계집애들이 줄넘기를 하고 있다.
학이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는 늦가을의 해가 기울어진 다음이었다. 그는 3등 대합실에 들어서면서 경부선 창구를 찾았다. 창은 닫혀 있고 그 앞에 줄을 선 사람도 없었다. 그는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아직 두 시간이나 있다. 너무 일렀다. 그는 돌아서 나오면서 고개를 들어 건물 정면에 달린 둥근 전기시계를 올려다보았다. 시계의 분침은 그의 팔목시계의 그것보다 3분이 늦어 있었다.
그는 광장을 가로질러 역을 마주보는 위치에 있는 다방으로 들어갔다. 손님이 듬성듬성 앉아 있고 조명은 어두웠다. 그는 카운터를 바라보는 벽 옆 자리를 차지하고 트렁크를 빈자리에 얹었다.
카운터에는 어려 보이는 레지가 앉아서 손님이 들어왔는데도 움직이는 빛도 없이 한팔을 전축에 얹고 멍하니 돌아가는 레코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레코드는 약한 목소리로 유행가를 부르고 있었다. 당신이 주신 선물 가스음에 안고서어 달도 없고 해도 없는 어둠을 걸어가오. 학은 담배에 불을 댕겨 한 모금 빨면서 눈을 감았다. 저 멀리 니콜라이 종소리 처량한데 부엉새 우지 마라 가슴 아프다. 학은 으스스한, 마치 오한 같은, 그러나 가벼운 까닭 모를 쾌감이 등골을 타고 내리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퍼뜩 준을 생각했다. 니콜라이의 종소리. 한국 유행가에는 그러고 보면 엉뚱한 사설이 많다. 니콜라이면 러시아 소설에 나오는 러시아 정교회의 성자의 이름이다. 그러니까 니콜라이의 종소리면 정교회의 종각에서 울려오는 미사의 종일 것이다. 한국에 러시아 교회가 있는지 없는지 학은 알지 못했다. 아마 없을 것이다. 가령 있더라도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라면 정서상으로는 없는 셈이다. 저 노래 가사를 지은 사람은 무슨 속으로 그런 말을 가져왔는지 궁금한 일이다. 아마 니콜라이라는 발음이 풍기는 엑조티시즘을 빌린 것이리라. 외국말에는 그런 이상한 힘이 있다. 자기 나라 말은 너무 가까워서 씹을 맛이 없다. 외국 말에는 어딘지 ‘남’으로서의 저항이 있다. 원서 강독 같은 시간에 학은 그런 경험이 있다. 해석해 놓고 보면 신기할 것도 없는 말인데 원문으로 읽으면 무언가 단단하고 뿌듯한 느낌을 준다. 단순한 열등감일까. 아마 절반은 그렇고 반은 이유가 있다. 아무려나 지금 차 시간을 기다리면서 듣는 유행가는 이상하게 가슴에 왔다. 니콜라이의 종소리가 울리는 저녁. 사랑을 잃어버린 여자는 부엉이(웬 난데없는 부엉일까)더러 울지 말아 달란다. 부엉이야, 그러면 울지 말아라.
"뭘 드시겠어요?"
학은 눈을 떴다. 레지가 곁에 와 있었다.
"커피를…… 맛있어요?"
레지는 물론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학은 뜻 없이 팔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십 분이 지나 있었다. 기차를 탈 적마다 그는 쓸데없이 일찍 오곤 한다. 언제부터 그런 버릇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공연히 차를 놓칠 것 같은 생각 때문이다. 오늘도 시간이 있으니까 술이나 한잔 하자는 제의를 물리치고 부랴부랴 떠났던 것이다. 그는 호주머니에서 전보를 꺼내 펴들었다.
"급 귀성 부."
무슨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조금만 있으면 겨울 방학인데 급히 오랄 만한 일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막연한 전보를 보낸 부친을 조금 원망했다. 기왕이면 전보 나름으로 짧게라도 용건을 적으시지. 레지가 차를 날라 왔다. 학은 달착지근한 초콜릿빛의 물을 조금씩 넘기면서 고향집을 생각했다. 남들은 경주에 산다면 야 서라벌이구나 석굴암이구나 하지만, 정작 거기서 나고 자란 학으로 말하면, 어떻달 것 없는 시골 도회지에 지나지 않는다. 게다가 학이 철이 나고서부터는 줄곧 기울어져 가기만 하는 집안 살림이었다. 지금 학이 공부를 하는 것도 사실은 무리한 일이었다. 아주 바랄 수 없이 깡그리 망했다면, 그러면 그런대로 이를테면 독고준처럼 스스로 고학하는 길을 택하기도 하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고 보면, 학의 마음은 하숙비 송금을 받을 때마다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그래서 다음 학기부터는 가정교사를 나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경주도 그가 어렸을 때에 비하면 퍽으나 달라졌다. 사변 후에 어느 도시나 그렇게 된 것처럼 군대가 들어오고 상점이 많아지고, 다방과 여관이 많아졌다. 그것은 어수선하고 지저분한 시골 도회였다. 물론 시가지를 벗어나면 거기는 옛 경주가 있었다. 그러나 능과 탑과 절들까지도 변하는 시대의 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부쩍 많아진 관광 손님들을 상대로 음식점과 구멍가게와 여관이 들어찬 불국사 일대는 찾아갈 때마다 그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토함산은 예대로의 토함산이었으나 그것이 왕좌에서 물러난 왕족처럼 하루하루 위엄을 잃어 가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겼다. 그의 나이로서는 고적에 매달려서 삶을 이어 가는 가난한 사람들의 살림보다도 속되어 가는 고향의 운치가 더 아깝게 느껴지는 것이었다. 옛날에 영국의 노동자들이 새로 발명된 기계를 파괴했다는 이야기나 별다를 것이 없는 게 그의 정신적 풍토였으나 스스로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저런 까닭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그의 마음은 조금 우울하였다.
전축은 이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 신라의 밤이여, 불국사의 종소리 들리어 온다. 지나가는 나그네야 걸음을 멈추어라. 고요한 달빛 어린 금오산 기슭에서 노래를 불러 보자. 신라의 밤 노래를. 가수는 묘하게 목소리를 떨면서 부르고 있었다. 듣는 사람이 숨이 찰 것 같은 야릇한 창법이었다. 우리가 찾는 것, 우리가 찾는 신라는 저런 것인가. 그 노래는 판잣집과 구멍가게와 철조망이 흔해진 고향에는 차라리 어울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돼서 모든 일이 이렇게 한 자리씩 격이 떨어졌을까. 모든 것이 그렇다. 모든 것이.
기차는 정각에 떠났다. 밖에는 달이 있었다. 한 모서리가 약간만 이운 창백한 가을 달이 언제까지나 그의 눈앞에 떠 있었다. 시가지를 벗어나자 학은 처음으로, 집에 가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한강을 넘어서고는 부서지듯 하얀 달빛을 받은 산과 발판이 잇따라 펼쳐진다.
학은 창틀에 팔을 괴고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을밤의 풍경을 지루한 줄 모르고 바라보았다. 도시에서 한 발자국만 나서면 이렇게 변함없는 한국의 얼굴이 있다. 기차와 나란히 달리는 하얀 국도. 연변의 초가집들. 엷은 안개에 싸인 초가지붕은 달빛 아래에서 틀림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지붕 밑의 삶은 틀림없이 고달프고 불행한 것일테지만. 그럴까. 정말 그런가. 만일 초가지붕 밑에 있는 사람들이 그 삶에 만족하고 있다면. 만족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그저 그렇게 사는 것이려니 여기고 산다면. 그들의 정신을 깨워 주고 더 높은 욕망을 배워 주는 것은 옳은 일일까. 그것이 옳다. 잠에서 깨야 한다. 비록 한때의 혼란이 있더라도 그들은 반드시 깨야 한다. 그 간소하고 겸손한 욕망의 버릇을 버리고 더 진하고 억센 욕망에 눈떠야 한다는 것이 계몽주의자들의 일관한 생각이었다. 아니, 문제는 그런 데 있지 않다. 남의 욕망을 깨우쳐 준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자기 삶의 목표로 삼는 다는 일이 우리 세대에서도 청년의 자세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다. 그게 문제다. 준은 사랑과 시간이라고 했지. 사랑과 시간. 사랑과 시간. 기차는 철교를 지난다. 물 위에 부서지는 달빛이 아름답다. 학은 점점 멀어져 가는 강을 바라보면서 깊이 숨을 들이켰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깊은 숨을 쉬어도 공기는 이렇게 시원하지 않았다. 서울에서 그는 늘 초조했다. 당장 무엇을 해야 할 일도 없을 텐데 늘 마음은 환경과 겉돌면서 안간힘을 썼다. 그것은 촌놈이 고향 떠나서 뿌리를 박지 못한 불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따진다면 지금의 서울은 촌놈의 서울이지, 서울 사람의 서울은 아니다. 서울뿐만 아니라 어느 도시건 도시란 원래 그런 것이다. 새로운 힘과 허영을 가슴에 품은 지방 사람이 도시에 와서는 그들의 정력과 끈기로 그것을 살찌게 하고 변하게 만드는 것이다. 학의 경우에는 그래도 유학을 온 셈이지만 자기 손으로 살림을 꾸리는 사람들에게는 서울은 커다란 저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분주하게 속이고 상대방을 넘어뜨리고 허세를 부리면서 화폐를 한 장이라도 더 긁어모을 생각에 바쁠 뿐 이웃을 즐기고자 동네를 치장하는 그런 겨를은 없다. 서양의 도시 발달을 보면 그들은 봉건 귀족들에게 맞서서 한 가지씩 권리를 주장해서, 끝내는 시민의 권리와 신분을 만들어 낸 것이지만, 서울은 이도 저도 아닌 그저 오가잡탕의 추악한 도시였다. 돌아가는 이유야 어찌 되었든 이렇게 차를 타고 보니 그의 마음은 점점 어떤 해방감을 느꼈다.
찻간은 붐비지 않았다. 학이 앉은 데도 한 사람 몫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무엇 때문에 오라는 것인지 몰라서 궁금했지만 그는 더 생각지 말기로 했다.
밤 기차의 풍경은 늘 비슷하다. 말이 적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사람이 많다. 학의 앞에 앉은 노인도 벽에 머리를 기대고 졸고 있다. 학의 옆에 있는 사람은 차가 떠나자마자 눈을 감아 버렸다. 학은 다행스럽게 여겼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 동행이 되면 좀 고생을 해야 한다. 지금 그는 홀로이고 싶었다. 기차를 타거나 버스를 탈 때면 그는 으레 그 시간을 잘 이용하리라고 맘먹는다. 목적하는 곳에 이를 때까지는 아무 할 일이 없는 시간이므로 그사이에 생각이나 실컷 한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그런 계획은 번번이 실패한다. 출발역에서 종착역까지 그의 ‘생각’은 한 자리를 빙빙 돌고 있었다는 결과가 되기 일쑤다. 기차를 타고 그 속에서 달리기를 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아무 그럴듯한 착상 한 가지 떠올라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다음부터는 아예 다른 생각을 말고 푹 잠이나 자게 될 법한 일이었으나 그렇지가 않았다. 그때마다 이번에는, 하고 또 유혹에 진다. 그래서 잠만 설친다. 무엇 때문일까. 아마 매양 한결같은 기차의 리듬 때문인지도 모른다. 방향은 앞으로 자꾸 나가는 셈이지만 속에 타고 있는 사람에게는 지루한 진동이 내리 이어질 뿐이다. 졸음이 오기 꼭 알맞다. 설령 기차가 굉장히 빨리 달린다는 경우에도 탄 사람이 속도를 느낀다는 일은 드물 것이다. 기차가 자동차와 다른 점이다. 기차의 경우에는 사실상 속도감이 없다. 자기가 움직인다는 느낌이 안 든다. 기차라는 한 사회(社會)가 덩어리로 움직이는 것이지 그 속에 탄 낱낱의 사람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거야. 지구를 타고 있는 사람이 속도를 느끼지 않는 것처럼. 이런 점에서도 공산주의는 낙제야. 사유(私有)가 허락되지 않는 행복은 행복으로 느껴지지 않아. 집단에서 에고로, 에고에서 집단으로. 인간의 역사는 이 두 극(極)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같은 것. 그 사이에 집단도 아니고 에고도 아닌 중간형을 만든 게 우리 ‘동인’이지. 사회에 이런 작은 집단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사람이란 백 사람을 사랑하기보다는 열 사람을 사랑하기가 쉽고 그보다는 다섯 사람을 사랑하기가 더 쉽지만 한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은 다섯 사람을 사랑하기보다 더 어렵다. 그래서 동인(同人)이다. 그 뭉침은 두텁고 오래 간다. 학교를 마치고 직업을 가지고, 이윽고 나이가 든 다음에도 동인들은 여전히 모인다. 그때는 남몰래, 신문 같은 데다 광고를 내는 일은 없을 뿐만이 아니라 집안 식구에게도 자기의 소속을 알리지 않는다. 눈에 뜨이지 않는 데서 우리는 조용히 만날 것이다. 그때는 서로가 돈도 모았을 때일 테니까 모이는 장소도 돈을 좀 들여서 그럴듯한 곳으로 할 수 있다. 우리는 모이면 별 형식은 없더라도 서로 위안을 받을 것이다. 자기 아내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인간의 비열한 상처를 서로 드러내 보이면서 악마의 웃음을 교환한다. 이를테면 섹스의 문제도 아무 치레 없이 서로 이야기한다. 아무한테나 음담을 벌이는 사람은 바보다. 우리끼리만 한다. 흥분하지 않고(물론 흥분할 나이도 아니겠지만). 그리고 그 나이에 가서도 아직도 이 세상에 선(善)을 이루어 보겠다는 은밀한 야심을 버리지 않는다. 순진. 세상을 겪고도 살아남은 순진함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불혹(不惑)의 나이를 맞고도 꺼지지 않는 육체의 욕망을 못내 창피하게 여긴 옛날의 여자들처럼. 머리가 희끗한 점잖은 사람들이 아직도 인간은 신비스럽다고 생각하고, 따지고 또 따져도 해탈(解脫)은 못 얻고, 그래서 마누라와 다 자란 자식들의 눈을 피해서 비밀의 동인들의 모임에 나간다. 그들은 평생 음모(陰謀)를 해왔으나 그들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슨 음모였을까. 세상을 바꾸는 음모다. 이상한 반란을 꿈꾼다. 세상을 바꾸는 일. 사람은 왜 혁명에 그토록 미치는 것일까. 우리는 정말 혁명에 성공할지도 모른다. 역사는 우연의 함정투성이이니까. 그래서 우리는 피 묻은 웃음을 웃으며, 사랑하게 때문에 증오하는 생애를 보는지도 모른다. 그럴 때 인간은 그런대로 사는 것이다. 그럴 때 양같이 순하던 사람도 포악한 독재자가 될는지도 모른다. 혹은 《갇힌 세대》의 이름대로 우리들의 미래도 다름없는 수인(囚人)의 시대일지도 모른다. 아마 그렇게 되기가 쉽다. 나갈 길 없는 지평선. 그렇더라도 우리들의 집념은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겉보기에는 조용하고 온건한 사람들이지만 우리들은 속으로 미쳐 있는 것이다. 그것을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울부짖지 않는다. 가끔 농담도 하고 잡담에도 끼어든다. 우리들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다. 남들이 우리들을 수상쩍게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하자면 평범의 탈을 쓰고 사는 고독한 망명자다. 그래서 우리들끼리는 더욱 가까워진다. 우리는 서로 다른 직업에 종사하면서도 거기다 공동의 낙인을 찍는다. 그렇게 해서 이 세계에 우리들의 영토를 넓히는 것이다. 그런데 독고준은 어떻게 생겨먹은 놈일까. 그는 혼자서 세상을 견디어 낼 수 있을까. 얼마나 강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의 매사에 얼른 열을 내지 않는 고집을 무슨 수로든지 꺾어 버려야지. 이번에 만나면 꼭 끌어들여야지…… 그는 일어섰다. 통로를 지나 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왼쪽 승강대 쪽으로 목을 돌린 그는 거기에 자기보다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보았다. 두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맨 아랫단에 서 있는 사람이 있다. 여자다. 머리가 옆으로 날리고 목덜미가 하얗다. 학은 그 자리에 선 채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달빛 아래 환한 바깥 풍경은 빨리 지나간다. 공간이 좁은 탓으로 더욱 빨라보인다. 여자의 몸은 위태해 보였다. 뒤에서 슬쩍 밖으로 밀어 버리면. 그는 어처구니없는 자기 망상에 저항하려는 듯이 차체의 모서리를 꽉 붙들었다. 그러자 그 여자를 기차 밖으로 밀어 버리고 싶다는 북받침은 점점 강해졌다. 모서리를 잡은 손이 경련을 일으키듯 당긴다. 안심하고 서있는 여자는 간단히 밖으로 굴러떨어질 것이다. 아마 새벽이 되기까지는 살인은 발견되지 않을 것이다. 그때쯤 해서는 나는 집에 가 있다. 범인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찰은 우선 여자의 남자관계를 캐고 들 것이다. 그 여자와 친분이 있는 남자들에게는 다 알리바이가 있다. 경찰의 수사는 막힌다. 오늘 이 열차를 탄 사람들을 모조리 알아내는 것도 불가능하다.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사건은 영원히 해결되지 않은 채 의문으로 남는다. 아무 증거도 남지 않는다. 할 것인가. 절대로 안전한 범죄다. 왜 안 해야 하는가. 오른팔로 가볍게 밀면 된다. 그것으로 끝난다. 절대로 안전한 범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밀자. 가만있자. 혹시.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자기가 소리 없이 웃으며 서 있었다. 악.
학은 손을 들어서 앞을 가렸다.
"웬일이세요?"
그의 옆에서 줄곧 자고 있던 사람이 그의 팔을 붙잡고 있었다.
"가위에 눌리신 모양이군요……."
학은 머리를 흔들면서 일어섰다. 통로를 지나서 문을 열고 밖에 나섰다. 그는 거기 기대서서 가슴을 두군거리며 승강대 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시커먼 장방형의 공간 속에서 연기와 더불어 사방에 부딪혀 갈 곳을 잃은 쇳소리가 몰려 들어오고 있었다. 터널에 들어왔던 것이다.
학은 이마에 밴 진땀을 문지르면서 매캐한 연기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5
하늘과 나만이 아는데 왜 악(惡)을 놓칠 것인가? " ― ‘생활의 발견’
십일월 중순부터 날씨는 처음으로 겨울다워졌다.
독고준은 골목 어귀에서 군밤을 한 봉지 사들고 바람을 등에 받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그가 낡은 판잣문을 밀고 현관에 들어섰을 때 나지막한 목소리가 주인네 방에서 들려 왔다. 보통 같으면 주의를 하지 않았겠지만 그 목소리는 좀 특별했다. 책 읽는 소리처럼 가락이 섞여 있었다. 그는 언제나처럼 현관에서 구두를 벗어서 한 손에 들고 마루에 올라섰다. 이 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가자면 주인네 방 앞을 지나야 한다.
그 앞을 지나면서 그제야 아하 하고 속으로 끄덕였다. 전도사가 온 것이었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었다. 준은 호주머니에 든 군밤 봉지를 만지작거리면서 조금 망설이다가 그냥 이 층으로 올라와 버렸다.
방문을 열었을 때 따뜻한 어둠이 그를 맞았다. 속에서 타는 불이 난로 뚜껑을 비집고 나와서 어둠 속에 보얗게 떠 있다.
준은 어둠 속에서 그 희미한 빛을 바라보았다. 불빛은 순간적으로 그를 묘한 감동에 젖게 하였다. 마치 기회를 놓쳐 버린 타수처럼 준은 좀체로 전등을 켤 생각을 않고 의자를 더듬어 걸터앉아서 어둠 속에서 작은 행복처럼 공간을 밝히고 있는 빛을 그대로 지켜보았다. 문득 고향집 아궁이에서 밤을 구워 먹던 먼 옛날이 그의 머리를 스치고 갔다. 빈 부엌. 그곳만, 남은 불로 어스무레한 아궁이에 밤톨을 파묻고 만화를 보던 생각. 그러니까 저 불빛보다는 밝았다…… 눈이 어둠에 익어지면서 지금은 난로의 윤곽도 알아볼 수 있었다. 밑의 받침대도. 그리고 역시 아주 흐릿하게 조명을 받은 천장도. 귀를 기울인다. 아래층에서는 아무 기척도 나지 않았다.
고요하다. 준은 어둠 속에서 머리를 저었다. 이런 것이 생활인가. 갑자기 그는 이름 모를 적막함을 느꼈다. 그것은 오랫동안 잠자지 못한 사람이 갑자기 느끼는 저항할 수 없는 고달픔 같은 것이었다. 그는 손을 들어 자기 얼굴을 만져 보았다. 다음에 목을 더듬었다. 그것들이 흡사 남의 살처럼 신기하게 만져졌다. 그런 상태대로 오랫동안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아래층에서 문 여닫는 기척이 난다. 그는 외투를 벗어 놓고 군밤 봉투를 들고 일어났다. 방문을 열고 마루에 나섰다. 계단을 반쯤 내려 가다가 준은 한 발을 내려디딘 채 우뚝 멈춰 섰다.
방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나오고 있다. 그는 뚫어지듯이 그 얼굴을 바라보았다. 뒤따라 나온 주인 내외와 영숙의 배웅을 받으며 그녀는 현관 쪽으로 걸어갔다.
손님을 보내고 그들이 돌아들어올 때에야 준은 천천히 계단을 밟아 내려갔다.
"추워져서…… 연탄은 괜찮던가요?"
영숙이 아버지는 도수 높은 안경 너머로 이층을 살피듯 하면서 물었다.
"잘 탑니다."
준은 영숙의 손에 봉지를 쥐어 주면서 대답했다.
"들어오시우, 선생님."
영숙이 어머니는 방바닥에 펼쳐 놓았던 성경책을 덮어서 한옆으로 밀어 놓으면서 준을 불러들였다.
"좀 앉았다 갈까요?"
"들어오슈. 아무리 난로를 놔두……."
준은 권하는 대로 아랫목에 앉았다. 영숙은 동그란 나무접시에 군밤을 담아서 준이 쪽으로 밀어 놓는다.
"예배를 보셨군요?"
"녜, 김순임 자매한테 많이 배웁니다."
"녜…… 전도사?"
"녜, 우리 교파에서는 전도사라고는 부르지 않는다우. 남자들끼리는 형제고 여자는 자매지요."
"교파 이름이 무언데요?"
"왕국재림교회랍니다. 참, 주께서 내리신 은총으로 눈을 뜨게 된 것이 다 높고 깊으신 뜻이지요."
"왕국재림교회?"
"진리를 깨치면 복을 받아요. 우리도 얼마 안 되지만 요즈음은 모든 게 고맙고 고마워요. 김순임 자매 덕분이죠. 선생님도 배우시우. 이제 곧 아마겟돈 싸움이 옵니다."
"아마겟돈요?"
"암요."
영숙이 어머니는 한옆에 밀어 두었던 성경을 들어 무릎에 얹고 책장을 넘겼다.
"들어 보시우.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고 나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무너지니 큰 성 바벨론이 하나님 앞에 기억하신 바 되어 그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으매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야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더라. ‘이게 아마겟돈이라오. 세상 종말이 곧 온답니다.’ 바벨론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노엽게 한 죄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사 이 세상을 없이하는데 오직 복음을 믿는 자만이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셨소. 그날이되면 예수님께서 천사군을 거느리시고, 이 세상에 왕으로 오셔서 악의 권세를 뿌리째 뽑으시고 믿는 자들을 거느리고 왕국을 차리신답니다."
준은 속으로 놀랐다. 이분이 이처럼 긴 얘기를 하기는 처음이었다. 말수가 적고 늘 언제 보아도 손에 일감을 쥐고 있는 그저 말없는 분이었는데, 하고 그 자그마한 몸매를 다시 한번 바라보면서 놀란 것이다.
그녀는 남편을 바라보면서, 타이르듯 말했다.
"영감도 처음에는 좀체 귀를 안 기울였는데 요즈음은 많이 깨달았다우. 다 은총이죠.
영감은 마누라가 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준은 성경을 집어 들고 한참 동안 그저 뜻 없이 책장을 넘기다가,
"말씀 잘 들었습니다."
하고 일어났다.
"좀 앉아 계시지."
"아닙니다. 몸 잘 녹였습니다."
그는 방을 나왔다.
"선생님도 믿으우. 형제들 중에는 대학생도 많답니다. 요 담 집회 때, 같이 가보아요."
영숙이 어머니는 독고준이 관심을 보여 주는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마지막까지 전도를 잊지 않았다.
"녜, 언제 한 번……."
준은 계단에 올라서면서 말했다.
방에 돌아와서도 그는 불을 켜기를 망설였다. 그는 의자를 가져다 난로를 다리 사이에 끼는 자세를 잡고 앉았다. 연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계단에 발자국 소리가 나더니,
"선생님!"
문밖에서 영숙이 목소리가 났다.
준은 앉은 채로,
"응? 들어와."
하면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그녀는 문을 열고,
"감자 삶은 거 갖다 드리래요. 여기 놓아요……."
하고는 계단을 내려가 버렸다.
준은 일이서 불을 켰다.
난로는 남향한 창에 가깝게 놓여 있다. 한편의 창은 봉해 버렸다. 방 끝에 벽장이 있다. 왜식 벽장이다. 바닥은 물론 다다미다. 나머지 벽에 책상이 있다. 책상 옆에 책상 키 두어 배 되는 책꽂이가 있다.
벽장에서 이부자리를 내서 깐다. 그는 일기장과 팬 그리고 잉크를 머리맡에 갖다 놓은 다음 옷을 벗고 자리에 들었다. 벽장 속에서 종일을 얼었던 이부자리는 썰렁하다. 그는 무릎이 턱에 받히도록 몸을 오그리고 머리끝까지 이불 속으로 집어넣는다. 남이 본다면 좀 경망스런 꼴이지만 별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하고 한참을 지내면 답답한 것과 잔뜩 오그린 자세에서 오는 피로 때문에 좀 훈훈해진다. 이럴 때마다 그는 야릇한 기분을 느낀다. 그것은 아마 비참(悲慘)이라는 느낌이다. 추워서 몸을 오그리는 일이라면 그만이지만 준은 언제나 그런 기분이다. 겨울마다 그렇다. 그리고 울고 싶어진다. 그리고 지금은 울어도 별수 없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해진다. 가족. 가족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생각해 본다. 사람이 그 속에서 나고 살다가 죽는 것이 가족이다. 죽으면 그뿐인 것도 아니다. 가족의 명예를 위하여, 라고 말한다. 가문이 어떻고 한다. 그런 "가족 이 독고준에게는 제일 아득한 존재가 되어 있다. 이남 땅에 부친을 파묻은 그의 형편으로서는 가족을 생각할 때에도 분열증에 걸린다. 그의 가족의 일부는 W시에 있고 일부는 서울 교외 땅 밑에 누워 있고, 그리고 독고준 나는 여기 셋집 이 층에 쭈그리고 누워 있다. 그는 세 개의 점을 연결한 세모꼴을 만들어 본다. 그 도형(圖形)은 깨뜨릴 수 없이 든든하고 빛깔은 진해 보인다. 피와 추억과 사상과 약간의 증오― 즉 과거라는 시간이 만들어 놓은 허물지 못할 집이다. 자기의 에고를 뒤따라가면 가장 평범하게 그의 손에 잡히는 것이 한 권의 족보다. 한국 사회는 족보가 신분 증명을 하는 사회 형태에서는 점점 벗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에고의 좌표를 정위(定位)하려고 할 때 제일 그럴듯하게 느껴지고 사실 태반의 사람들이 알며 모르며 받아들이고 있는 자기 정위(自己定位)는 역시, 혈통이라는 축(軸)과 몇 대(代)라는 시간의 축으로 이루어지는 자기상(自己像)이다. 현대 한국인이 방황하고 자신이 없는 것은 어떤 "연속 의 체계 속에 자기를 자리매김하지 못하고 있으며 또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가족’을 그러한 체계로 삼는 것은 지난날에는 곧 ‘가치(價値)’의 체계에 참가하고 있다는 말이 될 수 있었다. 유교의 원리는 곧 가족의 윤리였기 때문에. 지금은 다르다. 정승의 직계손이라 할지라도 설마 그 사실이 곧 자기의 뛰어남을 나타낸다고는 생각지 않게쯤은 되었다. 지금 세상에 양반 상놈이 어디 있어, 하는 상식이 그 사정을 말해 준다.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는 이 ‘가족’을, 혹은 ‘가문’을 대신할만한 체계가 아무것도 없다. 현실적으로 없다는 말이 아니라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그만한 힘을 내도록 익지 못했다. 현대 한국인에게도 ‘가문’이라는 말은 사무칠망정 ‘국가’는 아무래도 거북하다. 그런대로 가문이나 씨족을 넓혀서 짐작할 수 있는 ‘만족’은 훨씬 알아먹기 쉽다.
해방 후에 남의 숙제를 떠맡아 고민하는 어리석은 민주주의― 공산주의 싸움 같은 어쭙잖은 일 대신에 해방된 그 마음으로 우직한 민족주의로 치달았더면 지금쯤은 훨씬 자리가 났을 것이다. 민중에게 제일 알아보기 쉽고 무리 없는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체계가 그것이었고 제일 가짜 아닌 일손의 재고(在庫)를 가지고 있던 방법도 그쪽이었다. 그랬더면 영감들은 자신을 가지고 무슨 일을 했을 것이고 새 세대는 그러한 노인들을 뚜렷한 벽으로 알고 값 있는 반항의 자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하고 준은 비로소 이불 속에서 머리만 자라 모가지처럼 쏙 내밀었다. 자리가 녹은 것이다.
선뜩하다.
늘 하는 버릇이다. 하려고 해서라느니보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으면 자연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대로 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기를 보게 된다.
머리맡에 놓인 감자. 보기에는 썰렁하다. 알이 굵고, 껍질이 터진 사이로 보드라운 가루가 보인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어 한 알을 집었다. 따뜻한 기운이 있다. 게다가 접시 한쪽에는 설탕도 있다. 그는 손에 쥔 감자에 설탕을 꾹 묻혀서 한입 베어먹었다. 부드럽고 단맛이 그게 아니었다.
창문이 부르르 울린다. 바람이 센 모양이구나. 한쪽만 남기고 반은 발라 버려야겠다. 준이 누워 있는 위치는 벽장과 나란히 머리를 남쪽에 두었다. 벽장에 붙어 눕는 것은 그래도 의지가 되는 것 같은 심리가 있고, 또 하나는 그의 물건은 거의 이 벽장 속에 있으므로 누워서 손쉽게 벽장문을 여닫아서 소용되는 것을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감자를 먹으면서 오늘 일을 생각했다. 그가 지금 보아주고 있는 학생은 고등학교 3학년인데 명년 봄에 대학에 들어가면 가정 교수는 그만하겠다는 학생 아버지의 말이었다. 어느 국영기업체의 간부 사원인데 요즈음은 거기를 그만둔다는 얘기를 학생의 어머니한테서 들었다. 그때까지 다른 자리를 구해보되 자기도 적당한 데가 있으면 주선해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한 달에 삼만 환씩 주고 등록금을 대주는 조건은 다른 아이들이 다 부러워한 자리였는데. 당장은 아무 궁리도 나지 않았다. 방학이 지나면 이월. 한 달은 어물어물 지날 테고 삼월에 입학시험. 그러니까 일은 급하다. 당장 새 학기 등록이 문제였다. 이렇게 중대한 고비에 설 때마다 그는 멍해진다. 마치 남의 일이기나 한 것처럼 손을 놓고 그저 게으르게 꿈지럭거린다. 언제부터 이런 게으름이 몸에 배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아무튼 오래전부터 임에는 틀림없다. 할 수 없는 놈이다, 나는. 그는 자기 자신을 할 수 없는 놈이라고 생각한다. 일요일의 인간. 영원한 일요일의 인간. 교회도 모르고 놀이터도 모르는 일요일의 인간. 교회라. 그는 또 한 개 접시에서 감자를 집어 들어 베어먹었다. 교회. 예수쟁이들을 생각할 때마다 왜 묘한 생각이 들곤 할까. 정치와 교회는 무관한 것이 아닌가. 제국주의와 기독교는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다. 물론 우리는 원주민이다. 우리의 정치제도는 우리가 싸워서 얻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나사못 하나도 발명하지 않았다. 지성인이기 위해서는 될수록 많은 외국어를 알아야 할 형편이다. 우리가 쓰는 일용품― 정신적인 것이건 물질적인 것이건―의 전부가 외래품. 럭키 치약이나 해태 캐러멜은 외래품이 아니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좀 둔하다. 우리 조상은 가락엿을 애호했고 이빨에는 소금이 으뜸인 것으로 알았다는 그러한 의미에서 럭키 치약과 해태 캐러멜은 외래품이다. 도막엿이 아니고 캐러멜, 이〔齒〕 소금이 아니고 투스 페이스트인 바에야.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한국이라는 풍토에 이식된 서양이 아닌가. 서양. 예수교와 과학의 세계, ‘나에게 지점(支點)을 달라.’ 지구를 움직여 보이겠다는 생각과 ‘세상을 얻은들 무슨 소용인가. 너의 영혼을 구하라’고 말한 영구 혁명론자의 사상이다. 과학과 기독교 사이에는 아무 연속성이 없다. 발생적으로도 그렇고 본질적으로도 그렇다. 그것은 완전히 단절된 모순의 상태에 있는 두 개의 사상이다. 서양사는 이 두 사상 사이의 드라마라고 요약될 수 있다. 성경의 이야기를 빌리면 신과 인간의 씨름인 것이다. 진정한 드라마는 오직 신과 인간 사이에만 있다. 인간 사이의 드라마도 그것이 드라마로서의 의미를 가지자면 ‘신과 인간의 씨름’이라는 ‘원형’의 ‘모형’일 때에 한한다. 서양 예술처럼 단순한 것도 없다. 그것은 줄곧 이 유일한 라이트모티프인 ‘신과 인간의 씨름’을 한없이 변화시킨 수많은 변주곡에 다름아니다. 성경에 나오는 탕자의 기본 리듬인 ‘고향―방랑―귀향’의 공식에 살을 붙인 것들이다. 미학은 간단하다. 서양 예술은 항상 세 박자로 춤춘다. 왜 예술뿐이랴. 헤겔의 철학은 방대한 ‘왈츠’곡집을 연상시킨다. 그가 만일 작곡가가 되었더라면 틀림없이 요한 슈트라우스가 되었을 것이다. 정반합(正反合), 정반합, 정반…… 이런 식이다. 이것은 서양 문화의 밑바닥을 흐르는 ‘어미 가락’이다. 그들의 문화의 어느 한 곳을 취하든 우리는 이 가락을 가려낼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동양 음악이 전혀 알지 못하는 골격이다. 국악만 해도 그렇다. 국악이란 끝도 중턱도 하물며 시작도 없는 허망한 가락이다. 거기가 거기고 거기가 거기다. 홀연히 일었다가 그윽하게 사라지는 신비한 목소리. 국악이 전달하는 그윽한 맛을 서양 음악은 알지 못한다. 서양 미술은 그 바탕에 있는 생활을 노골적으로 느끼게 하고, 심포니는 사상을 전달할 뿐이다. 심포니처럼 현학적(衒學的)인 음악도 없다. 그 증거로 이른바 해설이라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국악을 해설한다는 소리는 못 들었고 아마 부질없다. 우리 음악의 내림은 소리 없는 소리. 소리 없기 위한 소리다. 우리 예술의 전통은 로고스에 뿌리를 둔 미학에 있지 않고 선(禪)의 미학 위에 서 있다. 로고스와 분석에 대한 철저한 불신임이다. 그래서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격이다. 독고준은 종이를 끌어당겨 쓰기 시작했다.
우리는 원주민이다. 서양사는항상삼박자로춤춘다. 내가가장쓸쓸했던때는최남선씨와오경웅씨의개종을알았을때였다. 크라이스트와아르키메데스의시소게임― 놀라운곡예. 서양이인류에게제공한두사람의리바이어던― USA와USSR. 우리는살지않았다쳇. 왈츠의대가헤겔. 이카로스와달마. 내려오시오깨어나시오. 역사는역사가치료한다. 왈언덕이있어야비빈다옳습니다. 서양사람들의 언덕 으로서의기독교. 그렇다고해서우리의언덕석굴암이나백마강에서구해야할는지…… 도자신이없고즉다시말하면그리하여. 한국이사는길은농민이사는데있다고생각할수없다한국이사는길은한국이사는데있다. 우리들의언덕은그렇다면하처재일까?없는데있다(사기다아니다사기다이하약). 만일기독교를언덕으로받아들인다면우리는또한번8·15를가져야할것이다그래도좋지만. 모든앙가주망이모든데가주망보다나은것은아니다즉모든암캐가모든수캐보다약한것은아니다즉모든수캐가모든암캐아이구그만두자. 예의를지키는놈은속물이고예의를지키지않는놈은개아들이다. 나는일본을한없이사랑한다그들은우리를망신시켰으므로. 근세사회최대의비극은아마청일전쟁에서중국이패배한그것이다. 어떤서양사람이말하기를 영국자본주의가발전한것은인도를차지한데서온것은아니라 고했다물론이다영국은오직다음이야기를하기위해서인도에머문것이다왈 셰익스피어를잃느니차라리인도를잃겠다 Anglosaxon-Christianity=(컷) (Manchester+Christ)-Christ=Stalin, (정치대수학을위한겸손하고도소박한공식기일의장) 서양휴머니즘은존재했지만휴머니즘일반이란것은존재하지않았다. 네플류도프공작이영국왕이라면영국으로하여금4백년동안인도의식민지가될것을주장했을것이다쓰레기통에서장미꽃은피지않는다그러나강간속에서는민주주의가핀다그리고진흙에서연화는핀다운운. 요즈음고양이는퍽인도적이라는쥐들사이에떠도는풍문이있기는하다어떤짓궂은쥐는그것은쥐가멸종할까봐금렵기를둔것뿐이라는설울세웠는데이쥐는유아기외상이남아서만사를비꼬아서보는버릇이있다고하는것은고양이의진단어쩌구. 우리는아리조나카우보이다야(이것은또길이의파렴치한세계관).
독고준은 쓰기를 멈췄다. 한 개 남은 감자를 집어서 입에 넣었다. 손을 뻗쳐서 벽장문을 연다. 아래위 두 칸으로 나누어진 벽장 안은 조그마한 잡화상 못지않게 다채롭다. 칠팔 년 동안의 객지 살림에 하나둘 모은 재산들이다. 그 중에서 그는 고무줄로 묶어 놓은 대학 노트 꾸러미를 꺼냈다. 일기장과 비망록이다. 그는 가끔 그것을 꺼내 읽는다. 이런 일이 있었던가 싶은 사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어떤 구절에서는 쓴웃음을 짓는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생활의 기록이다. 그는 끌리는 대로 한 권에서 몇 군데씩 띄엄띄엄 읽어 갔다. 어느 권을 집어 드는데 책갈피에서 수첩 같은 것이 떨어진다. 그것을 집어 들고 문득 놀랐다. 노동당원증. 매부의 사진이 붙어 있다. 그는 한동안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누렇게 뜬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그날 W시에서 UN군의 철수선을 탈 때 그는 누님의 가방(하기는 꾸릴 때는 두 사람의 물건을 같이 넣었기 때문에 누구만의 것도 아니지만)을 가지고 왔었는데 그 속에 매부의 당증(黨證)이 들어 있었다. 없어진 줄만 알았는데 낡은 일기장 속에 파묻혀 있었구나. 준은 당증을 손바닥에 얹은 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을 처음 발견했을 때는 별다르게 여기지 않았다. 누님이 보려고 가져온 것이려니 여겼던 것이다. 지금의 독고준에게는 그러나 좀 이상했다. 당증이라면 까딱하면 사람이 죽고 살 수도 있는 물건이 아닌가. 사진을 지니고 싶었다면 다른 것도 얼마든지 있었는데 왜 하필 이런 것을 가져왔을까. 그는 다시 한번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비록 색은 바랬을망정 그것은 젊고 잘생긴 지금의 준이 나이 또래의 젊은이의 얼굴이었다. 자식. 그는 사진을 툭 방바닥에 던졌다. 그 순간 그의 머릿속을 어떤 생각이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너무 당돌한 생각에 엎드린 채 침을 삼켰다. 설마. 아니다. 그 누이가 그럴 수 없다. 그는 몸을 움직여 이불 속에서 무릎을 꿇고 두 팔로 턱을 괴었다. 그는 방금 자기의 머리에 떠오른 생각이 두려웠다. 그러나 그는 끝내 거기서 벗어나지 못했다. 누이는 복수를 하기로 맘먹은 것이 아니었을까. 매부가 월남해서 딴 여자와 산다는 이야기를 누이는 들었을 것이다. 그녀가 가끔 혼자서 울고 우울해지고 몸이 상해 가던 것은 물론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때만 해도 38선은 헐렁한 국경이었다. 이남의 사람들은 이북에 있는 친척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고 이북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준은 한번 친구한테서 '마인'이란 소설을 빌려 본 것을 기억한다. 해방 후 서울에서 찍은 것이었다. 그 친구의 아버지나 형이 아마 남한을 들락날락한 밀수 상인이었겠지. 그런 실정이었다. 그러니까 온 집안에서 매부의 일을 모른 사람은 나 혼자였고…… 준은 얼굴을 이불에 대고 눈을 감았다. 배신한 애인의 당증을 가지고 그 남자가 있는 곳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군중이 아우성치는 물결 속을 헤매고 있는 한 사람의 여자가 보였다. 그녀는 배를 탄다. 고달픈 항해 끝에 남한에 온다. 옛 애인을 만난다. 변심한 남자는 쌀쌀하기만 하다. 그녀는 애원한다. 남자는 더욱 귀찮아한다. 그녀는 남자를 쳐다본다. 거기 옛날에 그녀의 삶의 보람이었고 손에 쥔 꿈이었던 한 남자 대신에 죽이고 싶도록 미운 타인을 본다. 여자는 빙긋 웃는다. 그리고는 핸드백에서 한 장의 증명서를 꺼내서 그의 눈앞에서 비친다. 물론 뺏기지 않도록 멀찌감치서. 순간 경악한 남자의 얼굴…… 준은 가볍게 신음했다.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았다. 소설이다. 소설이다. 그럴 리가 없다. 그 착한 누이가. 아니 착한 것과 사랑은 관계가 없다. 누이는 착하기는 할망정 바보는 아니다.
그는 베개를 베고 반듯이 드러누웠다. 가슴이 몹시 뛰었다. 그는 한참 후에 다시 당증을 집어 들었다.
빛에 바랜 한 장의 사진이 붙어 있는 조그마한 그 증명서는 복잡한 생각을 자아내게 했다. 북한에 있을 때 "당증 이란 소련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두 남녀가 사랑한다. 두 사람은 한마을에서 자란 소꿉친구다. 남자는 공산당청년동맹의 열성 맹원이다. 그는 장차 공산당원이 될 것이며 아름다운 애인과 결혼할 예정이다. 그때 한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몰락한 부르주아 출신의 청년으로 소비에트 정권을 파괴하려고 하는 반동 비밀결사의 한 사람이다. 그는 자기의 임무를 해내기 위한 수단으로 여자에게 접근한다. 여자는 탕아 기질이 풍기는 이 미남자 스파이에게 점점 기울어진다. 끝내 여자는 스파이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만다. 공산당 간부인 여자의 아버지 후원을 받으면서 스파이는 점점 출세한다. 그들은 이미 결혼한 사이다. 스파이는 어느 중요한 공장의 공장장이 된다. 드디어 기회는 왔다. 어느 날 스파이는 동력 스위치를 조작하여 공장에 불을 지른다. 다행히 불은 이내 소화되고 한편 발화 원인에 관하여 수사가 시작된다. 스파이는 도망하기로 작정한다. 도망가는 데는 당증이 필요하다. 당증을 넣어 둔 금고의 열쇠는 아내가 가지고 있다. 스파이는 비로소 아내에게 자기의 정체를 밝히고 자기와 같이 도망해 줄 것을 애원한다. 아내는 놀란다. 그녀는 스파이(남편)의 말에 응하여 서랍에서 열쇠를 꺼내는 척하다가 대신에 권총을 집어 들고 남편을 겨눈다. "꼼짝 마라. "한 손으로 수화기를 들어 당국에 연락한다. 새파랗게 질린 남편은 무릎을 꿇고 애원한다. 나는 당신을 사랑했다. 진정이다. 우리들의 사랑을 생각해서라도 이렇게 잔인할 수 있는가. 그러나 여자는 끄떡도 않는다. 당의 적이라는 것을 안 이상 당신은 이미 나의 사랑도 아니며 남편도 아니라고. 막다른 골목에 몰린 스파이는 그녀에게 달려든다. 바로 그때 문을 박차고 들어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 손에 권총을 든 내무서원들이다. 그 선두에는 옛날의 애인이 서 있었다. 스파이는 잡히고 여자는 끝내 소꿉친구의 가슴으로―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상대방의 사랑이 거짓이었다는 것을 발견한 경우에 돌아선다는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거기에는 괴로움과 슬픔이 따르는 게 사람의 정인 것이다. 영화에서는 그런 배려는 아예 셈에 없었다. 남자의 정체를 알기 무섭게 여자는 권총을 집어 들고 있었다. 영화에 나타난 한에 있어서 남자가 반혁명분자라는 것은 분명했으나 사랑까지도 가짜였다는 증명은 없었는데도 그랬다. 옛날에 일본 아이들이 만들던, 아들을 싸움터에 보내면서 눈썹 하나 까딱 않는 군국(軍國)의 어머니식인 영화였다.
독고준은 그 영화의 생각이 이 순간 문득 떠올랐다. 만일 누이가 정말 그렇게 마음먹었다면 그녀의 계획은 훨씬 인간다운 것이 아닌가. 아들이 죽으러 가는데도 웃으며 보낸다든가, 남편의 정치적인 견해가 정부의 그것과 다르다고 해서 권총을 집어 드는 기계들보다는 훨씬 사람다운 일이 아닌가. 처음에 그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을 때 느꼈던 놀람과 어떤 죄악감은 점점 사라지고 준의 마음은 이런 데로 기울어져 갔다. 누이는 이 땅 남한에 오고 싶었을 것이다. 정말 오고 싶었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목적이 있었다. 일생에 단 한 번 진정을 걸었던 승부의 결말을 보기 위하여 이곳에 오고 싶었을 것이다. 승리를 바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자기 눈으로 자기 운명의 얼굴을 보고 싶었을 테지. 이 한 장의 카드에서 어떤 실속 있는 결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방법으로 사랑을 되찾을 수도 없거니와 그녀의 자존심도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 한 장의 카드를 내던지는 것. 그 일을 위해서 그녀는 오고 싶어했다. 아니 그렇게 하는 것은 결국 악에 지는 것이 아닌가? 똥이 무서워서 어쩌나 하는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은 악이 번영을 누려 왔던가. 똥은 구덩이를 파고 묻어야 할 것이 아닌가. 이빨에는 이빨로라는 말이 애정에만은 통하지 않는 것일까. 이 카드의 임자가 이것을 언제 어디서 어떻게 쓸 셈이었는지는 끝내 알 수 없는 일이다. 내 머리에 떠올랐던 그 생각은 누이의 것이 아니라 내 것이었다. 그는 다시 한 번 놀랐다. 그렇다면 이 카드는 내 것이다. 바로 던지느냐 외로 던지느냐는 내 맘에 달렸다. 준은 뚫어질 듯이 사진 속 사나이의 눈을 노려보았다. 내 손에 달렸다. 이 카드는 아직도 시효가 지나지 않았다. 누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는 관계가 없다. 준은 또 한 번 신음했다. 당증을 쥔 손이 떨렸다. 우연히 굴러 나온 한 장의 낡은 증명서가 게으르고 주저앉은 그의 정신을 잡아흔들었다. 지금 매부가 차지하고 있는 사회적인 자리를 고려한다면 이 낡은 종이쪽지의 힘은 독을 묻힌 화살이었다. 내가 바란다면 이 화살을 그의 몸에 꽂을 수 있다. 반드시 심장이 아니라도 좋다. 아무데나 닿기만 하면 그 자리는 썩는다. 매부는 거기를 도려 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무엇 때문에 그렇게 하자는 것인가. 도려낸 살점을 먹기 위하여? 그의 망막에는 몇 년 전에 만난 매부의 군턱이 진 하얀 얼굴이 떠올랐다. 평화스럽고 복스러운 표정이었다. 어렸을 때 그가 보던 시원하면서도 어딘지 침울하던 빛은 변해 있었다. 자기는 인생을 다 살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성공했다고 느낀 것이다. 자기는 행운의 길을 찾아내고 더 방황할 필요가 없는 처지에 놓여 있다고 안심하고 있을 테지. 그런 사람에게 갑자기 함정을 만들어 놓는다. 지금 준에게는 수많은 월남민이 기약 없는 귀향(歸鄕)에 지쳐서 재혼해야만 했던 사정은 별로 사무치게 오지 않았다. 게다가 매부와 누이의 관계는 더욱 허술한 것이었다는 조건도 소용없었다. 그들은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기다림에 지쳐서 다른 여자를 맞았다는 핑계도 대지 못한다. 그는 월남 직후에 딴 여자와 붙은 것이다. 그 소식은 이미 고향에 전해져서 그 때문에 누이는 병이 났다. 몸이 상하고 젊음을 잃어버렸다. 그는 어느 여름 비 오던 밤에 그의 방에 찾아와서 소리를 죽이며 느껴울던 그녀의 꿈틀거리던 등을 생각했다. 그렇게 쉽사리 맘 변하는 가벼운 녀석을 그녀는 애타게 사랑했구나. 누이의 세대만 해도 옛날의 순정어린 사랑을 진심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의 마음은 누이에 대한 그리움과 부실한 남자에 대한 미움으로 가득 찼다. 모르는 사이에 그는 자기 마음에 싹튼 복수의 계획을 정당한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자기 심장을 선동하려고 애쓰고 있었다. 준은 '죄와 벌'이라는 러시아 소설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를 생각하였다. 그 가난한 러시아 학생은 한 노파를 죽였다. 그의 눈으로 볼 때 살 값어치가 없는 한 늙은 여인. 한 떨기의 꽃보다도 이 세상에 유익하지 못한 늙은 돈버러지. 그런 흉물에게서 돈을 뺏어 쓰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렇게 해서 자기 같은 전도유망한(그러나 돈만 없는) 청년이 생활의 위협을 덜게 된다면 이 세계를 위해서 좋은 일이라고 판단하고 노파를 죽였다.
준은 담배를 붙여 물었다. 깊이 빨아들였다. 그는 흥분하고 있었다. 연기를 길게 내뿜는다. 따분하던 그의 생활의 질서에 난데없이 드라마가 생기려 하고 있다. 그렇다. 드라마다. 아무 나쁜 일도 하지 않고 드라마를 만들려는 것은 되지 않을 일이다. 나는 한다. 나의 경우는 라스콜리니코프처럼 당돌하지는 않다. 나는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그를 협박해서 졸업할 때까지 학비를 대게 하자. 그가 사람이면 원래는 그럴 만도 한 일이 아닌가. 한때는 틀림없이 사랑했던 여자의 아버지고 동생이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들을 도와주겠다는 센티멘털리즘이 없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버지 장례식에도 오지 않았다. 기억의 바다에 가라앉아 있던 숱한 원한이 연달아 떠올라와서 파도를 일으켰다. 그를 망하게 하고 싶은 증오가 부풀어 올랐다.
그런 놈이 버젓하게 살아 있기 때문에 이 사회는 이 꼴이다. 그런 사람을 버려두기 때문에 드라마는 없는 것이다. 사람을 속인 인간. 자기를 가장 믿는 인간을 밟은 녀석은 사람이 아니다. 김학이 모양으로 국가 민족을 상대로 흥분하도록 내 영혼은 고상하지 못하다. 내게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 상처를 입었을 때 내 신경은 곤두선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한다면 정의는 가장 확실히 행해질 이치가 아닌가. 죽이자는 것도 아니다. 그를 협박해서 불안하게 만들고 인생이란 장미꽃 가시 하나에 의해서도 파괴된다는 것, 손바닥만 한 종이 한장 때문에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자. 그리고 그에게서 돈을 착취하자. 꿈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제일 중한 물건은 돈일 테니까. 그것을 잃는다는 것은 아픔일 테니까. 심장이 돌처럼 굳어진 사람을 울리자면 돈을 뺏는 수밖에 없다. 학비 정도가 아니고 많이 뺏자. 착실한 학생을 몇 명 골라서 학비를 대주는 것도 좋다. 우선 납부금 낼 때마다 찔끔거리는 주인집 영숙이를 공부시킨다.
그는 이 엄청난 음모에 머리가 어찔하도록 흥분했다. 만일 이 음모에 실패해서 귀찮은 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그 화가 미치는 것은 나한테서 그친다. 나는 여기서 고아니까. 그는 왼쪽 엄지발가락의 사마귀를 지그시 밀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이상한 감동을 주었다. 혼자다. 가족이 없는 나는 자유다. 신은 죽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유다, 라고 예민한 서양의 선각자들은 느꼈다. 그들에게는 그 말이 옳다. 우리는 이렇다. 가족이 없다, 그러므로 자유다. 이것이 우리들의 근대 선언이다. 우리들의 신은 구약(舊約)과 신약 속에가 아니고 족보 속에 있어왔다. 우리들의 우상은 십자가에 박혀 스스로 죄를 짊어진 한 인간이 아니고, 항렬과 돌림자로 새겨진 족보였다. 그런 까닭에 우리들의 신은 ‘집안’이요 ‘가문’이었다. 나사렛의 이방인 이야기를 들을 때 언제나 타관 사람을 대하는 미묘한 어색함은 이 때문일 것이다. 신은 죽었다 할 때 그 말은 필경 서양 사람들에게 대하여 죽었다는 말이다. 서양은 세계가 아니라 그 부분. 예수를 십자가에 달 때 마음 약한 총독은 손을 씻음으로 공범됨을 면하려 했지만 우리는 그것도 아니다. 우리는 ‘현장’에 없었던 것이다. 카이사르의 것은 카이사르에게, 서양 사람들의 도덕적 범죄는 그들의 책임으로 그쳐야 한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확대해석해서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새 번역을 한다. 이스라엘이란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종(種) 개념에서 영으로 맺어진 집단이라는 유(類) 개념으로 옮아 앉는다. 얼마나 점잖지 못한 사기의 논리인가. 우리들 동양인은 그리스도교의 비유와 심벌이 가지는 미학적인 일반성을 역사적인 동시성으로 착각 당해 왔다. 불쌍한 정신적 강간. 영국 자본주의가 해외 식민지 경영을 통해서 자기 사회의 모순을 완화하고 위기를 넘어서고 활력을 찾은 것처럼, 서양 속에서 막다른 골목에 선 기독교는 선교(宣敎)라는 공간적 확대를 통하여 위기를 완화해 온 것이다. 문제를 정직하게 정면으로 받는 대신에 그들은 시간을 번 것이다. 공간적 확대를 통하여. 우리 사회에 넘치고 있는 이 ‘심벌의 이중구조’ 때문에 문제는 자꾸 순환하고 고뇌는 비극의 표정을 이루지 못하고 끝없이 신파가 되고 만다. 서양의 언어가 우리를 정복한 것이다. 핏줄이 다른 언어를(언어라고 얕보고) 받아들였을 때 우리는 그 언어 뒤의 역사까지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떨게 하지 않는다. 그는 나와 무관한 이방인이다. 그러므로 그와 나 사이에 드라마는 없다. 우리는 다른 각본의 등장인물이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만나는 자리는 서로 족보를 겸허하게 포기한 자리여야 할 게다. 독립은 주고도 연방으로 얽어매려는 친구들, 얼마나 놀라운 정치적 천재들인가? 죽은 놈만 억울하다는 식으로, 서양이 저지른 악(惡)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의 입에서도 회개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회개를 요구하는 말은 동서(東西)의 대립이라는 오늘의 상황 때문에 우리들에겐 터부가 돼 있다. 이러고서 무슨 자유며 무슨 독립이며 무슨 희망인가. 서양은 야누스.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공산주의. 우리들의 자리는 없다. 우리는 주역이 아니라 엑스트라일 뿐. 우리에게는 선도 없고 악도 없다. 아직도 우리들 엽전에게는 집이 제일이다. 우리가 정말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집뿐이다. 집 있는 사람은 함부로 처신 하지 못한다. 그는 모험도 할 수 없고 도박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나 독고준에게는 집이 없다. 나는 그러므로 무다. 나는 나 자신을 선택할 수 있다. 아니 내게는 북한의 집이 있지 않은가. 어머니와 누이와 형님의 가족과. 그것을 생각하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분명히 있기는 있다. 그러나 있는 것인가. 없다. 고향이 그리워도 못 가는 신세 저 하늘 저 산 너머 아득한 천리. 그는 피식 웃었다. 왜 한국의 시들은 유행가보다도 절실하지 못할까? 거짓의 언어를 빌려 썼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정신의 독립을 찾기 전에는. 에고의 고향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그의 눈앞에 어떤 모습이 연락 없이 떠올랐다. 하얀 목덜미. 풍부한 입술. 계단을 내려가다가 흘깃 훔쳐본 여자의 얼굴. 누군가를 닮았다. 어디서 본 여자다. 그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 여자다. 폭격. 사람들이 물러간 거리를 헤매던 그 여름날의 이상한 산책. 빈집. 막 꽃을 꺾으려던 참에 집 안에서 달려 나오던 여자. 폭음. 더운 공기. 더운 뺨. 더운 살. 폭음. 어둠 속에서 사람들이 일제히 웅성거린다. 아우성 소리. 폭음. 살냄새…… 그녀를 보던 순간에 느꼈던 충격의 원인을 그는 이제야 알았다. 그의 기억의 깊은 바다 밑으로부터 한 마리의 인어(人魚)가 물결을 헤치고 올라와서 바다 위에서 헤엄치던 다른 한 마리의 인어와 어울려 하나가 되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창가로 걸어갔다. 그 창으로 내다보니 바깥에는 어둠이 바로 거기까지 밀려와 있을 뿐 불빛 하나 없었다. 그는 반대편 창으로 내다보았다. 멀리 시가지의 불빛이 바라보였다. 그의 눈은 불빛을 넘어서 더 멀리 저쪽을 보고 있었다. 항구에 닻을 내린 수없이 많은 배들. 그 위에 드리운 밤하늘에 한 여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은 보고 있을수록 밤하늘 가득히 울려 퍼졌다. 음악처럼. 더 이상 커질 수 없게 퍼졌을 때 얼굴은 별똥이 흐르듯 그에게로 달려왔다. 아름다운 환상에 취하여 독고준은 창유리에 이마를 기댔다. 유리의 차가움이 상쾌하게 피부를 적셨다. 어쩌면 그렇게 같은 수 있을까. 어쩌면. 그는 혼자서 중얼거렸다. 오랫동안 오랫동안 그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바다의 산호처럼 신비하게 뿌리박고 있던 꿈이 정말이 되었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면서 양편의 창문 사이를 오갔다. 그 어두운 창문은 예측할 수 없는 내일처럼 그를 불안하게 했다. 또 한편의 먼 항구의 밤 모습처럼 보이는 도회의 불빛은 예고 없이 찾아드는 놀라움과 기쁨과 유혹처럼 보였다. 달그락소리가 났다. 그는 후딱 문간으로 머리를 돌렸다. 이내 기척이 없었다.
그의 시선은 이부자리 머리맡에 놓인 당증으로 옮아갔다. 이 저녁에 생긴 일들이 그를 차츰 더 혼란하게 했다. 망가져서 버려두었던 시계가 손도 보지 않았는데 갑자기 똑딱거리기 시작하면 사람은 놀랄 수밖에 없다. 그처럼 먼지가 앉고 소리를 죽이고 있던 독고준의 속의 시계는 똑딱거리기 시작하고 톱니바퀴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증을 집어 들었다. 자유에의 여권(旅券). 그는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진 속의 약간 우울한 미남자는 준의 얼굴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사진을 품고 남자가 있는 나라로 가는 배를 타려던 여자. 폭격이 한창인 도시. 어두운 방공호 속에서 소년을 애무하던 여자. 먼나라, 먼 옛날의 이방인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하여 집집을 찾아다니는 하얀 목덜미와 풍부한 입술의 여자. 세 사람의 여자가 그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준은 그들이 서로 보내는 눈웃음 속에서 어떤 한가지 의미를 읽어 내려고 안간힘 썼다. 그는 또 한번 뒤로 돌아서 반대편 창으로 갔다. 유리 저편에는 짙은 어둠뿐이었고 그 대신 독고준 자신의 얼굴이 유리에 어려 있었다. 뜻밖에도 그 얼굴은 밝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세 사람의 여자는 세 사람의 뮤즈처럼 가난한 그의 영감을 싱싱하게 했다. 그는 생각을 서두르지 않았다. 잡아 놓은 먹이를 희롱하는 짐승처럼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자유를 천천히 요리하기로 했다. 그의 마음은 알고 있었다. 그것은 아직 언어로 표현이 될 만큼 분명하지는 않았으나 조만간 그는 논리를 만들어 내고야 말 것이었다. 언어보다 더 중요한 것, 거기서 참 언어가 울려 나오는 확실한 기적을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든든했다.
애써서 생각하지 않고도 그 여자의 모습은 눈앞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옆구리에 낀 성경책과 그것을 받쳐 든 하얀 손까지도. 현관 쪽으로 옮기던 걸음걸이도. 첫눈에 본 여자 때문에 뜨거운 불처럼 그의 몸을 싸던 욕망을 그는 부끄럽게 생각지 않아도 되었다. 그는 이유가 있었다. 그 여름날의 여자는 성숙한 욕망을 가진 어른이었고 그는 아직 어린 소년이었다. 지금 그는 어른이었다. 그런데 여자는 여전히 그 나이대로였다. 여자는 기다려 준 것이다. 그는 시간을 거꾸로 달려서 그 여름으로 돌아갔다. 그 여름 속에는 많은 것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순결하고 세계는 살 만한 곳이었다. 검은 새들은 도시를 폭격해 주었다. 도시는 거짓말처럼 준을 위해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악역(惡役)이었던 소년단 지도원에게 맞서기 위해서 그는 폭탄이 쏟아지는 거리로 찾아갔던 것이다. 그 여름 속에는 용기가 있었다. 그리고 그 용기는 보답을 받았다. 조용한 빈집의 정원에서 한껏 햇빛을 즐기던 꽃들. 여태껏 그것은 먼 옛날 일로 돼 있었다. 그런데…….
새봄에 등록금을 댈 걱정에 골똘히 잠겨서 하숙으로 돌아온 가난한 학생은 한없는 공상과 흥분에 싸여서 이슥한 밤을 잊어버렸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자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