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속삭임(Sunset Embrace) 1
황혼의 속삭임(Sunset Embrace)
Sandra Brown
신은 왜 인간이 죽는 걸 그토록 고통스럽게 만들었을까? 그녀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녀는 몸을 찢는 듯한 고통이 또 한 번 자신의 하체를 꿰뚫고 허벅지를 흔들어놓자 부른 배를 움켜쥐었다. 고통이 덮칠 것에 대비해 힘을 모으려고 애를 쓰면서 상처받은 짐승처럼 힘겹게 헐떡거렸다. 몇 분 안에 고통이 다시 자기 자신을 덮칠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는 결코 죽음이 허용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발작적으로 몸을 후들후들 떨었다. 비는 차가웠고, 빗방울 하나하나가 작은 바늘처럼 그녀의 살갗을 따끔하게 찌르면서 그녀의 헤진 드레스와 그녀가 아무렇게나 된 끈들로 간신히 묶어 놓은 몇 가지 속옷들을 흠뻑 적셨다. 그녀가 입은 누더기는 축축한 수의처럼 착 달라붙어 있어서, 가차 없는 진통만큼이나 확실하게 지긋지긋한 누더기의 무게가 그녀를 축축한 땅바닥에 묶어 놓았다.
그녀는 뼛속까지 으스스했지만, 끝도 없는 진통으로 인해 살갗은 땀으로 찐득거리고 번들거렸다.
진통이 언제 시작되었던가? 어제 막 해가 진 직후부터였다. 밤새도록 그녀는 등 아래 부위가 아팠고, 그 아픔은 허리를 타고 내려와 급기야는 그녀의 자궁을 성난 손으로 비틀어 짜는 듯이 심해졌다. 하늘은 구름이 잔뜩 끼어 어두컴컴했기 때문에 시간이 얼마나 되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지금이 오전 중반쯤 됐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다음 번 수축이 배를 뒤틀어오자 머리 위의 잿빛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무성한 나뭇가지들에 정신을 모았다. 테네시의 황무지에 홀로 누워 아기로서, 심지어는 한 인간으로서도 그녀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존재를 낳고 있는 갓 스무 살의 여자와는 아무 상관없이 비구름이 바삐 지나가고 있었다.
지난 가을의 흔적인 썩고 젖은 낙엽들 위에 누운 그녀가 얼굴을 비스듬히 돌리자, 그녀의 눈물이 빗물과 섞였다. 그녀는 아기가 치욕과 굴욕에서 잉태되었기에, 결코 이보다 더 행복하게 태어날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
"제발, 지금 죽게 해 주세요."
또다시 복부의 고통이 온몸을 뒤흔드는 것 같자, 그녀는 그렇게 빌었다. 그 진통은 여름 폭풍처럼, 번개가 산허리를 때릴 때와 같이 그녀의 몸의 내부에 무섭게 충돌하기 전의 힘을 축적하면서 그녀 안에서 우르렁거렸다. 뇌성이 산기슭 구릉에 울려 퍼지 듯 고통이 그녀의 몸 구석구석에서 진동했다.
어제 저녁 그녀는 아픈 걸 무시하려고 애를 쓰면서 계속 걸었었다. 그러나 허벅지 사이로 양수가 쏟아지자, 그녀는 걷기를 멈추고 누워야만 했다. 그녀는 멈추고 싶지 않았다. 하루라는 시간은 지금쯤은 틀림없이 발견되었을 시체에게서 그녀가 멀어지는 거리를 의미했다. 그녀는 시체가 부패돼서 결코 발견되지 않았으면 했지만, 실제로 그런 한 조각의 행운도 그녀는 기대하지 않았다.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이 가차없는 고통은 당신의 피조물 하나가 죽는 걸 보고서 기뻐한 것에 대한 신의 징벌인 게 틀림없었다. 거기다가 9개월 동안 자신의 자궁 속에 담고 있었던 생명을 조금도 원치 않은 것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 죄책감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몸에서 내쫓기는 것에 그토록 격렬하게 발버둥치고 있는 그 생명을 결코 보게 되지 않기를 빌었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죽기를 원했다.
다음 진통은 가장 심한 것이어서 그녀는 간신히 반쯤 몸을 일으켜 세웠다. 지난밤에 연 분홍빛 액체가 쏟아져서 속바지가 못쓰게 되자 그녀는 그걸 내버렸었다.
이제 그녀는 긴 윗옷을 찾아내서 그것으로 비와 땀에 젖은 얼굴을 닦았다. 그녀는 고통만큼이나 두려움 때문에도 막무가내로 떨었다. 그녀는 바로 전 진통으로 몸이 찢겨지는 것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녀는 세운 양 무릎 위로 헤진 드레스 자락과 남아 있는 얇고 가벼운 속치마를 그러모으고는 주저하면서 양다리 사이로 한 손을 집어넣어 그 부위를 만졌다.
"오오......"
그녀는 훌쩍거리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자궁은 이미 열려졌고, 크게 벌어져 있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아기 머리에 닿았다. 그녀의 손은 피와 점액으로 덮인 채 떨어졌다. 그녀의 입은 공포 때문에 벌어졌지만, 9개월 동안 포근하게 품고 있다가 낯선 물체가 되어 버린 존재를 배출하려고 애를 쓰느라 그녀의 육신이 잡아당겨지고 쥐어 짜여지자 입 밖으로 터져 나오는 소리는 극심한 고통의 찢어질 듯한 울부짖음이었다.
그녀는 양 팔꿈치를 바닥에 대고 몸을 일으켜 세워, 허벅지를 크게 벌리고 힘을 주었다. 피가 그녀의 고막과 질끈 감은 눈 뒤로 몰려들었다. 앙다문 입술은 터져서 보기에도 끔찍했다. 짧은 휴식 기간 동안, 그녀는 귀중한 공기를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하였다. 그런 뒤 또다시 진통이 왔다. 그리고 또다시......
그녀는 자신의 전 체중을 양쪽으로 갈라진 좁은 한 부위에 모으고 최후의 진통에 마지막 힘을 쏟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그런 뒤 그녀는 고통에서 풀려났다.
그녀는 기진맥진해서 뒤로 벌렁 누워 이제는 서늘하게 얼굴을 씻기는 빗방울들을 기분 좋게 느끼면서 공기를 듬뿍 들이마셨다. 울창한 숲 속에서는 그녀의 가쁜 숨소리와 심하게 쏟아지는 빗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건 오싹하고, 놀랍고, 이상한 것이었다. 그녀가 막 출산한 그 아기로부터 어떤 울음도 터져 나오지 않았고,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이전의 자신의 기도를 잊어버리고, 그녀는 간신히 몸을 일으키고 앉아서 자신의 긴 치마를 치웠다. 살아 보지도 못하고서 죽은 채로 허벅지 사이에 누워 있는, 푸르스름한 살덩이에 지나지 않은 아기를 보았을 때, 그녀의 입에서는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비탄과 비통의 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새어 나왔다. 아기를 길렀던 그 줄이 바로 아기의 죽음의 도구였던 것이다. 그 줄 같은 조직이 아기의 숨통을 단단히 감고 있었으며 아기의 얼굴은 짓눌려져 있었다. 아기는 자살을 하면서 세상에 뛰어든 것이었다. 아기가 자기 엄마한테서조차도 멸시를 받게 될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서 저속한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다고 생각하고 죽은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아가야, 어쨌든 넌 사는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됐구나."
그녀는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녀는 축축한 바닥 위에 다시 누워서 자신이 열이 있고, 어쩌면 헛소리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 그리고 아기가 자궁안에서 자살을 한다는 생각이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물을 흘린 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아기가 그녀가 그러기를 원했던 만큼이나 살고 싶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 그녀와 마찬가지로 죽고 싶었던 거라고 생각하는 게 훨씬 더 기분이 나았다.
자기 아기의 죽음을 기뻐한 것에 대해 용서를 빌어야 했지만, 그러나 그녀는 너무 피곤했다. 신은 틀림없이 이해해 주시리라. 어쨌든 그런 고통으로 그녀를 괴롭힌 건 신이었으니까. 이제 그녀는 쉬어도 되지 않겠는가?
마치 상처를 낫게 하는 향유처럼 그녀의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비 때문에 그녀는 눈을 감았다. 전에는 이런 평화를 한 번도 느껴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 평화를 기꺼이 맞아들였다.
이제 그녀는 편안히 죽을 수 있었다.
"이 여자 죽은 것 같애?"
아이가 쉰 목소리로 음산하게 말했다.
"모르겠어."
조금 더 나이든 음성이 속삭이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찔러 봐"
"난 싫어. 네가 해봐."
키가 크며 손발이 길고 가는 소년이 가만히 엎드려 있는 형체 옆에 여윈 무릎을 꿇었다. 그 소년은 자기 아버지에게 배운 대로 그의 라이플총을 총신을 위로 해서 조심스럽게 나무둥치에 세워 놓았다. 소년은 무서워 손을 떨면서 여자에게 두 손을 뻗었다.
"겁나지?"
더 어린 소년이 자극했다.
"아니야, 겁 안나."
더 나이든 소년이 되쏘았다. 그 소년은 겁이 없다는 걸 증명하느라고 집게손가락을 내밀어 그녀의 윗입술 옆에다 댔지만, 그건 댔다고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숨을 쉬고 있어"
그 소년이 안도하며 말했다.
"죽지 않았어."
"무슨 소리야....부바. 잘났어. 옷 밑에서 피가 나고 있다구."
부바는 반사적으로 펄쩍 뒤로 물러났다. 그의 동생 루크 말이 맞았다. 피가 흘러나와 여자의 드레스 자락 아래에다 시뻘건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그 드레스는 간신히 여자의 양 무릎을 덮고 있었다. 여자는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고, 갈라진 가죽 신발은 벗겨져 있었다. 구두끈들은 여러 차례 끊어졌다. 묶인 것이었다.
"이 여자 총에 맞은 것 같아? 어쩌면 우리가....."
"알아, 알아."
부바가 성급하게 말했다.
"빌어먹을, 입 좀 닥치고 있어."
"욕했다고 엄마한테 이를 거야."
"입 닥쳐!"
부바는 몸을 홱 돌리고 자기 동생을 노려보았다.
"난 네가 왓킨스 노부인이 야영장 주변에서 너무 시끄럽게 했다고 널 때린 것 때문에 그 부인의 세숫물 안에다 오줌 싼 걸 이를 거다."
루크는 당연히 겁을 집어먹었고, 그래서 부바는 다시 여자에게 몸을 돌렸다. 부바는 자신이 오늘 아침에 진짜 사냥을 가고 싶어했었다는 걸 믿을 수 없어하면서 아주 조심스럽게 그녀의 초라한 갈색 드레스 자락을 들어 올렸다.
"빌어먹을"
부바는 새된 소리를 지르면서, 스커트를 떨어뜨리고 벌떡 일어났다. 유감스럽게도, 그 더러워진 옷은 그녀의 가는 허벅지 사이에 누워 있는 죽은 형체를 다시 덮을 만큼 흘러내리지 못했다. 두 소년은 죽은 아기를 무서워하면서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루크의 목구멍에서 괴상한 소리가 났다.
"찔러 볼래?"
부바가 물었다.
"싫어"
루크가 힘들게 침을 꿀꺽 삼켰다.
"진짜야"
루크가 조금 전보다는 덜 분명하게 말했다.
"가서 엄마를 모셔와, 아빠도. 아빠가 이 여자를 마차로 데려가야 할 거야. 돌아가는 길을 찾을 수 있어?"
"물론이지."
루크가 경멸적으로 말했다.
"그럼 얼른 가. 보다시피, 이 여자는 지금이라도 죽을지 몰라."
루크는 고개를 한쪽으로 젖히고, 여자의 창백한 얼굴을 찬찬히 쳐다보았다.
"이 여자는 진짜 예쁘게 생겼어. 내가 간 사이 이 여자를 만질 거지?"
"얼른 가!"
자기 동생을 위협적인 자세로 쳐다보면서 부바가 소리를 질렀다.
루크는 안전하게 비아냥거리며 대꾸할 수 있는 거리까지 요란하게 나무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봐서는 안 될 걸 형이 봤는지 안 봤는지 난 알 수 있어. 그리고 엄마한테 이를 거야."
부바 랭스턴은 솔방울 하나를 집어 들고서 자기보다 나이가 두 살 어린 동생을 향해 세게 던졌다. 솔방울은 표적을 맞추지 못했지만 루크는 질겁해서 달아났다. 동생이 사라지고 나자, 부바는 여자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부바는 아랫입술을 깨물고 죽은 아기를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부바는 검지와 엄지 끝만을 사용해서, 그녀의 치맛자락을 끄집어내려 죽은 아기를 덮었다.
부바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지만 아기가 더 이상 안 보이게 되자 기분이 좀 나아졌다.
"부인"
부바가 살며시 속삭였다.
"여보세요, 부인. 제 말이 들리세요?"
무서워하면서 부바는 여자의 어깨를 슬쩍 찔렀다. 여자가 신음소리를 내면서 머리를 한쪽으로 젖혔다가 다시 돌렸다.
부바는 그토록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갖고 있는 사람을 전에는 한번도 본 적이 없었다. 잔가지들과 나뭇잎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고 또 비를 맞아 축축해 있고 흐트러져 있긴 했지만 아주 예쁜 곱슬머리였다. 머리 색깔 역시 부바가 전에 봤었던 그 어떤 색깔과도 같지 않았다. 빨간색도 아니고 그렇다고 갈색도 아닌, 그 중간쯤 되는 색깔이었다.
부바는 가죽끈으로 목에 맨 수통을 벗겨서 뚜껑을 열었다.
"부인, 물 마실래요?"
용감하게, 부바는 수통의 금속 주둥이를 축 늘어진 여자의 입술에다 대고서 그 위로 물을 조금 부었다. 수분을 핥으려고 여자가 혀를 내밀었다.
여자가 눈꺼풀을 떨면서 눈을 뜨고 자기를 멍하게 올려다보는 걸 부바는 넋을 잃고 쳐다보았다. 그녀는 눈을 크게 뜬 채로 걱정스럽게 자기에게 몸을 숙이고 있는 열여섯 살 가량의 소년을 보았다. 헝클어져 있는 소년의 머리칼은 너무도 밝은 색이어서 거의 하얗게 보였다. 천사일까? 내가 천국에 있는 걸까? 그렇다면, 실망스러운 일이었다. 천국은 지상과 같았던 것이다. 똑같은 하늘, 똑같은 나무들, 똑같이 비에 젖은 숲. 자기의 허벅지 사이에서 느껴지는 여전한 고통. 그녀는 아직 죽지 않은 것이었다! 아니야, 아니야, 얘, 저리 가. 난 죽고 싶어. 그녀는 다시 눈을 감았고 의식을 잃었다.
그 젊은 여자의 생명에 대한 걱정과 그리고 무력감 때문에, 부바는 나무 아래 축축한 땅에 주저앉았다. 부바는 자기 엄마와 아빠가 요란스럽게 싱싱한 초여름 꽃들이 만발한 빽빽한 덤불을 헤치고 다가올 때까지 그녀의 얼굴에서 결코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얘야, 어떤 여자에 관해서 루크가 지껄여대는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리냐?"
제크 랭스턴이 그의 장남에게 물었다.
"보세요. 엄마, 아빠. 제 말이 맞잖아요."
루크가 손가락질을 하면서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여자는 저기 있어요."
"비켜요, 모두들. 이 불쌍한 여자를 내가 봐야겠어요."
마가 성급하게 남자들을 옆으로 떼밀고 여자 곁에 무겁게 쪼그리고 앉았다. 마는 먼저 그 핏기 없는 두 뺨에 들러붙어 있는 축축한 머리칼을 옆으로 쓸어 주었다.
"아주 예쁘게 생겼잖아? 대체 여기서 혼자 뭘 하고 있었을까?"
"아기가 있어요, 엄마"
마 랭스턴이 부바를 올려다보고 나서 그녀의 남편을 쳐다보면서 소년들의 주의를 딴 데로 돌리라는 암묵적인 신호로 머리를 홱 치켜들었다. 그들이 등을 돌리자, 마는 여자의 무릎 위로 드레스를 들어 올렸다. 그녀의 상태도 나빴지만 그 광경은 정말 끔찍했다.
"맙소사"
마가 중얼거렸다.
"제크, 이리 와서 날 도와줘요. 너희들은 마차 있는 데로 달려가서 아나베스에게 침대를 제대로 준비해 두라고 해라. 불을 넉넉히 지피고 솥을 올려놓으라고 하고."
그 모험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을 놓치게 된 게 실망스러워서, 소년들은 입을 모아 항의했다.
"하지만 엄마......"
"어서 가"
그들은 둘 다 자기 엄마의 분노를 초래하기보다는, 차라리 일요일이라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마차 행렬이 있는 쪽으로 발을 끌며 걸어갔다.
"이 여자 상태가 아주 안 좋은 것 같아, 안 그래?"
제크가 자기 아내 곁에 쪼그리고 앉으면서 물었다.
"그래요. 먼저 태반을 꺼내야 해요. 좌우간 그 독으로 이 여자가 죽을 수도 있어요."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의식을 잃은 여자에게서 태반을 꺼냈다.
"이걸 어떻게 하지, 마?"
제크가 물었다. 그는 배낭 속에다 죽은 아기와 함께 그 잔해를 넣고는 배낭을 단단히 묶었다.
"묻으세요. 이 여자는 며칠 동안은 무덤을 찾아볼 만한 상태가 전혀 못 될 거예요. 나중에 이 여자가 돌아와서 무덤을 보고 싶어 할 지도 모르니까 그 자리를 알기 쉽게 표시해 두세요."
"짐승들이 못 가져가게 그 위에다 둥근 돌을 올려놓을게"
제크가 엄숙하게 말하고는 들고 온 작은 삽으로 얕은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여자는 어때?"
제크가 일을 다 끝내고 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물었다.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지만, 내가 단단히 막아 놓았어요. 우리가 여기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끝났어요. 이 여자를 안고 갈 수 있겠어요?"
"당신이 일으켜 세우는 걸 도와준다면"
제크가 여자의 양 무릎 아래와 등 뒤로 팔을 넣어서 그의 여윈 가슴높이로 들어 올리자 여자는 정신이 돌아와 두 팔을 힘없이 휘두르면서 저항했다. 그러다가 그녀의 가느다란 사지가 처지더니 그녀는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
그녀의 머리가 제크의 팔 뒤로 늘어지자 그녀의 목이 활처럼 휘었다.
"그런데 이 여자는 이상한 머리칼을 하고 있군."
제크가 자기 생각을 순박한 어조로 말했다.
"이런 색의 머리카락은 분명코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그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집어 들면서 마가 무심히 대답했다.
"서두르는 게 좋겠어요. 비가 다시 오기 시작해요."
그녀는 허벅지 사이의 그 부위가 타는 것만 같았다. 목구멍은 따끔거렸고 몸은 덥고 구석구석이 아팠다. 그래도 그녀의 주변에서는 안락한 기운이 스며 나오는 것 같았다. 그녀의 몸은 말려졌고 따뜻했다. 결국 천국에 온 걸까? 그래서 이렇게 안전하고 평온하게 느껴지는 걸까? 그렇지만 천국이라면 고통이 없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녀는 몹시 아팠다.
그녀는 눈을 뜨고 살펴보았다. 위에는 천막이 둥글게 쳐져 있었고, 램프 하나가 그녀가 누워 있는 침상 곁에 있는 상자 위에서 낮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는 양다리 사이의 아픔을 참을 수 있는 한 다리를 쭉 뻗고는 자기가 부드러운 침대에 누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맨발에다 스타킹도 벗고 있었지만, 하얀 잠옷을 입고 있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자기 몸을 여기저기 줄기차게 더듬거리면서 자기가 왜 그렇게 이상하게 느껴지는지 궁금해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자기 배가 평평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무시무시한 기억들이 밀려들면서 그 모든 게 다시 생각이 났다. 그 공포, 그 고통, 그녀의 다리 사이에 누워 있던 파랗고 차가운 죽은 아기를 봤을 때의 두려움. 눈물이 그녀의 두 눈에 고였다.
"저런, 저런, 또 그렇게 울려고 그래요? 당신은 울다가 몇 시간동안 잠을 잤어요."
그녀의 뺨에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는 손가락은 크고 거칠었으며, 부드럽게 타오르고 있는 램프 불빛 아래서 붉게 보였지만, 얼굴에 닿은 감촉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귀에 닿는 온화하고 걱정에 가득 찬 목소리도 그랬다.
"자, 이 수프를 좀 먹어 보겠어요? 오늘 아침 애들이 당신을 발견하기 전에 가져온 토끼로 끓인 거예요."
여자가 그녀에게 한 숟가락을 떠 먹이자 그녀는 그 영양가 있는 수프를 목이 메이지 않도록 삼키고는 맛이 좋은 걸 알았다. 그녀는 배가 몹시 고팠다.
"여기가 어디예요?'
그녀는 수프를 먹으면서 물었다.
"우리 마차 안이에요. 내 이름은 마 랭스턴이고요. 우리 애들이 당신을 발견했어요. 생각이 좀 나요? 당신 때문에 우리 애들은 깜짝 놀라 거의 죽을 뻔했어요."
마가 싱글싱글 웃었다.
"루크는 마차 행렬을 왔다갔다하면서 그 얘기를 했어요. 우리가 텍사스로 가는 마차 행렬에 있다는 얘기를 내가 했던가요?"
그건 한 번에 다 이해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사실이었기에, 그녀는 수프를 먹는 일에만 전념했다. 배가 따뜻하게 불러오자 그녀는 더 포근하고 평안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몇 주 전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고 며칠을 제외하고는 내내 추적 당하는 것이 너무도 두려워서 숲에서 모을 수 있는 채취물들은 뭐든 먹으면서 어디서 묵지도 못하고 바깥에서만 잤던 것이다.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윈 얼굴은 험하게 생겼지만 친절해 보였다. 험하게 생긴 사람이 친절할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험하게 생겨서 불친절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드문드문 난, 쥐색과 회색 그리고 갈색이 섞인 머리카락은 뒤로 빗겨져 목덜미 위에서 삐쭉삐쭉하게 쪽이 져 있었다. 그리고 두꺼운 허리까지 축 늘어진 거대한 가슴을 지닌 커다란 여자였다.
깨끗하지만 빛 바랜 옥양목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피부에는 가느다란 선들로 격자무늬가 새겨져 있었지만, 그에 비해 두 뺨은 소녀의 볼처럼 발그레했다. 마치 어떤 인자한 신이 자신의 작품을 쳐다보다가 그것이 너무 거칠다는 걸 발견하고서 그 거친 선들을 유화시키기 위해 이런 핑크빛 뺨을 그린 것만 같았다.
"충분히 먹었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자는 깡통으로 된 수프 그릇을 치웠다.
"이름이 뭐예요?"
그녀가 다음 화제를 기꺼워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눈치 채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가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부드러워진 음성으로 물어왔다.
"리디아"
그녀는 무언의 질문으로 들쭉날쭉한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것만으로도 아주 예쁜 이름이지만, 그 이름뿐인가요? 가족은 있어요?"
리디아는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자기 엄마의 얼굴을, 절망으로 죽어 가는 창백하고 공허한 여자의 얼굴이 아니라 그녀가 아주 어릴 적에 보았던 아름답고 젊은 엄마의 얼굴을 떠올렸다.
"리디아가 다예요! 전 가족이 아무도 없어요."
리디아가 조용히 말했다.
마는 그 말을 음미했다. 그녀는 이 젊은 여자의 손을 잡고 살살 흔들었다. 밝은 갈색 눈이 다시 자기를 올려다보자, 마가 부드럽게 말했다.
"당신은 아기를 낳았어요, 리디아. 애 아빠는 어디 있나요?"
"죽었어요."
"오! 이런 불쌍도 하지."
"아니요. 난 그가 죽어서 기뻐요."
마는 당황했지만 그녀는 아주 예의가 바른 사람인데다가, 그 젊은 여자의 몸 상태가 걱정돼서 더 이상은 캐묻지 않았다.
"그 숲에서 혼자 뭘 하고 있었어요? 어디로 가고 있었어요?"
리디아는 무관심하게 좁은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데라도. 어디든지요. 난 죽고 싶었어요."
"이런! 당신이 죽게 놔두지 않겠어요. 당신은 죽기에는 너무 예뻐요."
마는 이 낯선 젊은 여자에게서 자기가 느낀 갑작스런 감정을 감추려고 그 연약한 몸 위로 담요를 대충 덮어 주었다.
그녀는 마의 동정을 이끌어냈다. 등불 아래서 창백하게 빛나고 있는 고뇌에 시달린 얼굴 전면에 비극이 새겨져 있었다.
"우리, 제크와 내가 당신 아기를 숲에다 묻었어요."
리디아의 두 눈이 감겼다. 사내아기. 그녀는 그 아기를 한 번 흘긋 보았던 탓에 그 애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몰랐다.
"원한다면, 우린 이 행렬에서 뒤처질 수도 있어요. 당신 상태가 일어날 수 있을 만큼 좋아지면 당신은 가서 그 무덤을 볼 수 있어요."
리디아는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싫어요. 전 보고 싶지 않아요."
눈물이 그녀의 눈꺼풀 밑으로 흘러내렸다.
마가 리디아의 손을 토닥거렸다.
"당신이 왜 괴로워하는지 알아요, 리디아. 내겐 애들이 일곱이었지만, 두 명을 묻었어요. 그건 여자가 해야만 하는 일 중에서 가장 힘든 일이죠."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리디아는 속으로 말했다.
'여자가 해야만 하는 일 중에는 훨씬 더 나쁜 것들이 있어요.'
"이제 좀더 자요. 숲에서 그렇게 누워 있어서 감기에 걸렸을 거예요. 내가 곁에 있을게요."
리디아는 인정 많은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미소를 짓지는 못했지만, 리디아의 눈길은 고마움으로 부드러워져 있었다.
"고맙습니다."
"건강만 회복하면 나한테 감사할 시간은 충분할 거예요."
"여기 있을 수 없어요. 전.........가야만 해요."
"그래도 한동안은 당신 상태로는 아무데도 못 갈 거예요. 당신이 우리와 같이 있고 싶다면 우리하고 함께 있어도 좋아요. 당신이 좋다면 텍사스로 가는 동안 내내 말이에요."
리디아는 말싸움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처럼 친절한 사람들과 살 자격이 없었다. 만일 그들이 자기에 관해서 알게 된다면, 또......그녀는 눈을 내리감고 잠이 들었다.
그가 또다시 그녀의 몸을, 그녀의 몸 구석구석을 더듬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입을 열자 그는 짠맛이 나는, 모래 같은 그의 손바닥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속옷깃을 움켜잡고는 찢어 벗겼다.
고통을 가하는 데서 쾌락을 느끼는 가증스러운 그의 찐득찐득한 손이 그녀의 가슴을 쥐어짰다. 그녀가 그의 손바닥을 깨물자 그는 그녀의 뺨을 때렸다. 그녀의 귀가 울리고 턱이 떨렸다.
"가만히 있어. 안 그러면 깔끔한 네 엄마한테 우리 일을 모두 말할 거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걸 네 엄마가 알게 되길 바라는 건 아니겠지? 네 엄마가 알게 되면 곧장 미쳐 버릴 거야. 내가 널 임신시키고 있었다는 걸 네 엄마가 알았다면 네 엄마는 죽었을 거야, 안 그래?"
안 돼, 리디아는 자기 엄마가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다. 하지만 그가 또다시 자기에게 이런 짓을 하는 걸 어떻게 참고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 그는 벌써 강제로 다리를 벌리려고 하면서 자기 둔부를 그녀의 허벅지에 대고 누르고 있었다. 그의 손가락들이 그녀를 아프게 하면서, 그녀의 엉덩이를 헤집고 있었다. 그리고 그 메스꺼운 물체가 또다시 그녀의 살 속으로 돌진했다. 그녀가 손톱으로 그의 얼굴을 할퀴자, 그는 소리 내어 웃으면서 그녀에게 키스를 하려고 했다.
"네가 좋다면 거칠게 해줄게."
그가 비아냥거렸다.
그녀는 저항했다.
"싫어, 싫어"
그녀는 흐느껴 울었다.
"치워. 싫어, 싫어, 싫어......"
"왜 그래요, 리디아? 일어나요. 나쁜 꿈일 뿐이에요."
악몽이 그녀를 내던졌던 지옥 구멍에서 달래는 음성이 들어와 그녀를 꺼내주었다. 리디아는 따스하고 편안한 랭스턴의 마차로 돌아왔다.
클랜시가 그녀를 강간해서 그녀가 아픈 게 아니었다. 그건 아기를 낳아서 생긴 고통이었다. 오, 하나님, 클랜시에게 당한 성적인 학대에 대한 기억을 안고서 어떻게 계속 살아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녀는 그의 더러운 씨로 아기를 가졌었기에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서 살 수가 없었다. 마 랭스턴은 그런 쪽으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그 젊은 여자가 무서운 악몽을 꾸면서 그녀의 해진 드레스 소맷자락을 움켜쥐자, 마 랭스턴은 리디아의 머리를 자기 가슴에 꼬옥 안고서 달래는 말을 속삭이며, 그녀를 흔들면서 위로해 주었다.
"꿈이었을 뿐이에요. 당신은 열이 좀 있어서 악몽을 꾼 거예요. 하지만 나와 같이 여기 있는 한 어떤 것도 당신을 해치지 못할 거예요."
리디아의 공포는 물러갔다. 클랜시는 죽었다. 그가 죽어서 누워 있는 걸, 그의 머리에서 피가 콸콸 솟아나 그의 추한 얼굴을 덮는 걸 리디아는 보았던 것이다. 그는 더 이상 그녀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리디아는 기꺼이 자기 머리를 마의 가슴에다 축 늘어뜨렸다. 리디아가 거의 잠이 들자, 마는 리디아를 다시 베개 위에 눕혔다. 울퉁불퉁한 그 베개가 리디아에게는 솜털처럼 느껴졌다. 리디아는 지난 두 달 동안 소나무 솔잎 위나 건초 위에서 잤었다. 어떤 밤은 그런 행운도 없어서 나무에 기대서 자기까지 했다.
마가 계속 그녀의 손을 잡고 있자 달콤하고도 어두운 망각이 그녀를 다시 그 심연 속으로 이끌었다.
다음날 아침 리디아는 초원을 달리는 마차의 흔들거림에 눈을 떴다. 바퀴가 규칙적으로 굴러갈 때마다 요리용 냄비들이 덜컹거렸다. 가죽 마구들이 삐걱거렸고, 그것의 금속 조임쇠가 딸랑거리며 경쾌하게 울렸다. 마는 마차를 끌고 가는 말들에게 소리쳐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매번 채찍을 내리치면서 방향을 일러주었다. 마는 거의 같은 어조로 자기 애들 중 하나와 활기찬 대화를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권고와 훈계의 말들을 늘어놓고 있었다.
리디아는 침대에서 거북하게 방향을 바꾸고 고개를 약간 돌렸다. 호기심이 어린 파란 눈을 크게 뜨고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는 하얀 머리를 한 여자애가 손을 뻗으면 닿을 만한 곳에 앉아 있었다.
"엄마, 일어나셨어요."
그 여자애가 소리쳤다. 리디아는 갑작스런 소음에 벌떡 일어났다.
"내가 시킨 대로 해라. 지금은 멈출 수가 없다."
마가 마차 안으로 소리쳐서 대답했다.
그 소녀가 놀란 리디아를 다시 쳐다보았다.
"전 아나베스예요."
"난 리디아야."
리디아가 까끌까끌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녀는 목구멍 뒤가 숫돌처럼 딱딱하게 느껴졌다.
"알아요. 아침을 먹으면서 엄마가 당신 이름을 말해 주고는 우리보고 더 이상 당신을 '그 여자'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어요. 안 그러면 우리 주둥이를 뽑아 놓을 거라고 했어요. 배고프세요?"
리디아는 어떤 대답을 할까 생각했다.
"아니, 목이 말라."
"열 때문에 당신이 목이 마를 거라고 엄마가 그랬어요. 물이 든 수통과 차 한 잔이 있어요."
"물을 먼저 줄래?"
리디아는 물을 쭉 마셨다. 물을 마시는 데 얼마나 많은 힘이 드는지 리디아는 몹시 놀랐다. 그래서 그녀는 힘없이 다시 드러누웠다.
"차는 나중에 마셔야 할까봐."
생명과 그것의 모든 작용들을 랭스턴가 사람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아나베스가 그녀의 엉덩이 밑으로 그녀가 변을 볼 수 있게 세숫대야를 밀어 넣자 리디아는 당황했지만, 그 소녀는 친절하고 사무적이었으며, 그걸 마차 밖으로 비우면서도 조금도 성가셔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점심 휴식 시간 동안 사람과 짐승이 모두 쉬기 위해 마차 행렬이 멈추자, 마는 리디아의 허벅지 사이에 출혈을 막기 위해 대 두었던 천으로 된 패드를 갈아주려고 마차 위로 올라왔다.
"출혈은 그다지 심하지 않아요. 며칠 더 쓰라리긴 하겠지만, 당신 여성 기관은 잘 치료되고 있는 것 같군요."
마의 솔직함에는 전혀 천박한 구석이 없었지만, 그런 식으로 그녀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건 아직도 리디아를 당혹스럽게 했다. 지난 십 년 동안 자신이 어디서 살았었는지를 생각하고는 섬세한 감정들이 고스란히 상기된 게 리디아는 기뻤다. 그들이 러셀 농장으로 이사오기 전에 그녀의 엄마는 그녀에게 어떤 고상한 감정을 스며들게 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는 대개의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녀를 가난한 남부 백인으로 생각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고맙게도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들이 마을에 갈 때마다 불쾌한 조롱이 모녀를 따라다녔다. 리디아는 그 말들을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녀는 모욕적인 말투를 알아듣게 되었고 겁을 먹었다.
리디아는 매번 당혹스러웠고 그녀와 자기 엄마는 러셀가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었다. 그들은 달랐다. 하지만 누가 더럽고 남루한 맨발의 소녀의 말을 믿을 것인가? 그녀는 러셀가 사람들과 똑같이 창피스럽게 보였고, 그래서 그녀도 비웃음을 당했다.
하지만 분명히 그렇게 경솔하게 판단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 랭스턴가 사람들은 안 그랬다. 그들은 그녀의 더러운 누더기를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남편 없이 애를 가졌다고 그녀를 경멸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녀가 존경할 만한 사람인 양 그녀를 대했다.
리디아는 그런 대우를 받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바라는 건 존경할 만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러셀가 사람들이 그녀에게 덧씌운 더러움을 벗어버리자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그녀가 죽을 때까지 노력한다면 그걸 씻어낼 수 있을 거였다.
그 하룻동안 그녀는 랭스턴의 대가족들을 하나하나 만났다. 그녀를 발견했던 두 소년은 그들의 엄마가 자신들을 소개하자 부끄러워 머리를 숙였다.
"얘가 우리 장남 제이콥이에요. 하지만 다들 부바라고 불러요. 얘는 루크예요."
"날 도와줘서 고맙다."
리디아가 두 소년을 향해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자기 생명을 구해 준 것에 대해 더 이상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클랜시를 상기시키는 최후의 것이 없어졌기에 사태가 그렇게 비참하게 보이지 않았다.
아마색 머리칼을 한 소년들은 그들의 엷은 머리카락의 뿌리까지 얼굴을 붉히면서 중얼거렸다.
"환영합니다."
아나베스는 사교적이고 활기찬 열두 살의 소녀였다. 또 마리넬, 사무엘, 그리고 아틀란타가 있었다. 그 애들은 겨우 한 살 터울이었다. 마이카는 크고 튼튼한 세 살바기 아기였다.
제크는 그날 저녁 늦게 벗겨지기 시작한 자신의 머리에서 모자를 거머쥐면서, 마차 끝에서 말했다.
"여기 우리와 함께 계셔서 기쁩니다. 미스.....어.....리디아."
그가 미소를 짓자 그에게는 앞니가 두 개밖에 없다는 걸 리디아는 알아차렸다.
"너무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천만해요."
제크가 리디아의 말을 물리치면서 말했다.
"가능한 한 곧 떠날게요."
어디로 갈 건지, 뭘 할 건지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리디아는 부양해야 할 식구들이 너무도 많은 이 관대한 가족의 호의를 이용할 수가 없었다.
"당장은 안됩니다.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건강해지신 다음에 생각해 봅시다."
랭스턴가 사람들은 다들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리디아는 그 행렬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남편도 없이 황무지에서 사산아를 낳은, 그 데려온 여자에 대한 말들이 분명히 있었다. 마는 '그 가련하고 비참한 여자'에 대해 물어보러 온 가장 친절한 방문객들조차도 그 여자는 나을 것 같고 그리고 조만간 그녀를 만나보게 될 거라고만 말하면서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한밤중에 어떤 사람이 마차 궁둥이를 시끄럽게 두드려대는 바람에 리디아는 랭스턴가 사람들 외에 마차 행렬에 있는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녀는 클랜시가 살아나서 자기를 찾아온 거라고 확신하고서 얼른 일어나 가슴께에 시트를 붙잡고 똑바로 앉았다.
"괜찮아요, 리디아."
마가 그녀를 다시 베개 위로 눕히면서 말했다.
"마 랭스턴!"
묵직한 주먹으로 마차 뒷문을 탕탕 치면서 남자의 성급한 목소리가 소리쳤다.
"마, 제발. 안에 있어요?"
"젠장, 뭐 때문에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난리요?"
마차 밖에서 제크가 투덜대는 소리가 리디아에게 들렸다. 그와 소년들은 마차 밑의 휴대용 침구에서 잤던 것이다.
"제크, 빅토리아가 진통을 겪고 있어요. 마가 와서 봐 줄 수 있을까요?"
그건 걱정이 섞인 낮고 허스키한 음성이었다.
"빅토리아는 저녁을 먹고 난 후부터 아프기 시작했어요. 소화 불량이 아니라 진통인 게 틀림없어요."
이때 마가 마차 끝으로 기어가 천막을 홱 젖혔다.
"콜맨 씨? 당신이에요? 당신 아내가 진통 중이라구요?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닌 것...."
"내 생각도 그래요. 그녀는......"
리디아는 남자의 음성으로 그가 완전히 공포에 떨고 있다는 걸 알았다.
"빅토리아는 몹시 아파요. 나올 거요?"
"가고 있어요."
마는 마차 안으로 몸을 돌리면서 부츠에 손을 뻗어 재빨리 신었다.
"이제 조용히 쉬어요."
마가 리디아에게 태연하게 말했다. 그건 그녀의 민첩한 동작과는 대조적이었다.
"아나베스가 여기 같이 있을 거예요. 당신이 날 필요로 하면 그 애가 쏜살같이 달려올 거예요."
마는 커다란 자기 어깨 위에다 뜨개질한 숄을 걸쳤다.
"또 한 명의 아기가 태어나려는 모양이에요."
마는 다음날 아침 마차를 끌어낼 때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캠프에서 얘기 소리가 새어 나왔다. 콜맨 부인은 아직 산고를 겪고 있으며, 자기 때문에 하루의 여행이 놓치지 않기를 고집했다는 얘기였다. 부바는 콜맨 씨를 대신해 마차를 끌고 제크는 랭스턴가의 마차를 몰았다. 마가 없어서, 큰딸인 아나베스가 요리와 동생들 돌보는 일을 떠맡았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했던 것처럼 초연하고 능숙하게 리디아를 간호했다. 리디아는 이 소녀가 출산에 대해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나 때문에 이런 일을 하게 해서 죄송해요."
리디아는 아나베스가 요에 솜을 채워 넣는 걸 보며 미안해했다.
"아니에요. 그런 말씀 마세요. 전 엄마가 두 아이를 낳을 때 이런 일을 해봤어요. 그리고 열 살때부터 생리를 했구요. 이런 건 아무 일도 아니에요."
정오의 휴식 시간을 위해 일행은 잠시 멈추었다. 마가 돌아와 슬픈 소식을 전했다. 콜맨 부인이 아들을 낳고 불과 반시간 전에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척 까다로웠어요. 물론 콜맨 씨는 미친 사람처럼 행동하며, 그녀를 이 여행에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다며 자책했죠. 그녀가 그에게 그랬대요. 우리가 제퍼슨에 당도하고도 한참 지난 9월이 되어야 산달이라구요. 그건 그의 잘못이 아니었지만, 그는 그걸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는 거예요."
"아기는?"
제크가 아침 식사 후 남겨진 딱딱하고 마른 비스킷 한 조각을 주워들며 물었다.
"당신 같은 개구쟁이는 처음 봐요. 아기는 울 힘도 없어요. 그 애의 작은 영혼이 오늘 이 땅을 떠난대도 전혀 놀라지 않을 거예요."
그녀가 마차에 올라타며, 이 가족의 대화를 귓결에 듣고 있던 리디아에게 말했다.
"좀 어때요. 리디아?"
"괜찮아요. 랭스턴 부인"
"마라고 부르세요. 아나베스가 잘 돌봐 주고 있나요? 제가 여기 있을 수 없어서 미안해요. 그 사내아이가 잘못돼서요."
"전 괜찮아요. 회복되는 대로, 그만 폐를 끼쳤으면 좋겠어요."
리디아가 낮은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절대로 그런 얘기가 아니에요. 확실히 괜찮은 거예요? 얼굴이 조금 붉어 보이는군요."
그녀가 차가운 손길로 리디아의 이마를 짚었다.
"아직 열이 있어요. 오늘 오후에 당신 머리에 차가운 수건을 얹어 주라고 아나베스에게 얘기할게요."
리디아는 새로 몸이 불편해지는 걸 느꼈지만, 마의 부담을 가중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부풀어 올라 쿡쿡 쑤시는 젖가슴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 종일 깜박깜박 졸았다. 콜맨 씨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행렬이 멈춰 섰다. 아나베스가 리디아에게 정성스런 저녁을 먹여 주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콜맨 부인을 묻기 위해 모일 것이었다. 캠프가 조용해졌다. 리디아는 침대에 누워 둥근 천장을 가만히 올려다보았다. "세대의 바위"를 부르는 노랫소리 외에 장례를 치르고 있는 묘지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불현듯 자신도 놀라면서, 그녀는 가사를 입 밖에 냈다.
내가 교회에 나간 지는 얼마나 되었을까? 십 년? 이십 년? 그녀는 그 송가의 가사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러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녀는 미소를 머금은 채 잠이 들어 랭스턴 가족이 침울하게 마차로 돌아온 후까지 깨어나지 않았다.
다음날도 전날처럼 흘러갔지만, 리디아는 몸이 더 안 좋다는 걸 느꼈다. 젖가슴은 잠옷 속에서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 있었다. 그녀는 아나베스가 몸을 돌봐 준다거나 음식이나 마실 것을 가져다 줄 때마다 젖가슴을 감추려 애썼다. 젖가슴은 고동치며 터질 듯 팽팽한 느낌이었다. 잠옷 속을 살짝 들여다보았다. 젖꼭지가 빨갛고, 쓸려 벗겨진 것 같아 깜짝 놀랐다. 얼마나 민감하던지, 잠옷이 스치기만 해도 통증이 느껴졌다.
마는 여전히 콜맨의 아기를 돌보느라 아이들과 제크가 마차 아래에 잠자리를 펴고 한참이 지난 후까지도 돌아오지 않았다. 아나베스와 마리넬, 아틀란타는 모두 마차 반대편에서 곤하게 자고 있었다. 리디아는 잠에서 깼다. 몸은 피곤하고 욱신욱신 쑤셔왔다. 그녀가 가볍게 신음소리를 내고 있는데 마가 피곤에 지쳐 마차 안으로 기어들어왔다.
"세상에, 리디아, 뭐가 잘못 됐어요? 어디가 아파요?"
마가 리디아에게 몸을 수그렸다.
"죄송해요. 저.....가슴이....."
마가 지체없이 그녀의 잠옷 단추를 풀고, 젖이 들어 탱탱해진 리디아의 젖가슴을 살펴보았다.
"맙소사.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군요. 젖이 든 거예요.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으면 큰일 나요...."
마가 문득 말을 하다 말고 방금 벌레를 발견한 새처럼 민첩한 동작으로 리디아의 머리를 옆으로 돌렸다.
"자, 리디아. 나와 같이 갑시다."
"어디로요?"
마가 이불을 젖히고 다급하게 그녀를 일으켜 세우자 리디아는 숨이 턱 막혔다. 마의 동작은 거칠지 않았다. 적절했을 뿐이었다.
"제겐 옷이 아무것도 없어요."
"상관없어요."
마가 리디아의 팔을 잡아 리디아가 기는 자세로 일어서는 걸 도와주며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당신에게는 어머니의 젖이 있는데 아기가 없어요. 그리고 목숨이 경각에 달린 한 아기가 있구요. 그 애에게는 어머니의 손길이 필요하구요."
마는 거의 이틀 동안 그치지 않고 울어대고 있는 그 아기에게 리디아를 데려갈 생각이었다.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잠자는 캠프에서도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마는 미친 듯이 흥분된 목소리의 그 남자에게 리디아를 데려가고 있었다. 그녀는 가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리디아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며 왜 혼자 숲 속에서 아기를 낳았는지 궁금해 하는 걸 원치 않았다. 리디아는 랭스턴 가의 마차가 편안하고 안전하다는 걸 알게 되자, 그곳을 떠나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이 일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았다. 마가 어깨에 숄을 걸치고 리디아를 뒷문 계단 아래로 천천히 밀었다.
"당신 신발은 맨발보다 별로 나은 게 없을 거예요. 그러니 잠시 신발을 신지 않고 가는 게 좋겠어요. 돌을 밟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그녀는 처음에 발바닥이 땅에 닿자 화들짝 놀라 휘청거렸다. 그러자 손뜨개질한 숄을 걸쳤을 뿐인 잠옷 아래에 아무렇게나 매달려 있는 젖가슴이 쓰라렸다. 그 동안 머리카락은 전혀 빗질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흉하게 헝클어져 있을 것이었다. 마가 그녀의 넓적다리 안쪽에서 피와 양수를 닦아내 주긴 했지만, 리디아는 벌써 여러 날을 씻지 않았다. 무척 지저분할 것이 분명했다.
뒤꿈치에 부드럽고 촉촉한 땅바닥이 패였다.
"제발, 마, 아무에게도 절 보이고 싶지 않아요."
"쓸데없는 소리."
마가 유일하게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마차 쪽으로 리디아의 한쪽 팔을 끌고 가며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그 아기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신 모습이 어떤지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거라구요."
하지만 사람들은 신경쓸 것이 틀림없었다. 리디아는 그걸 알고 있었다. 그녀는 전에 창녀라고 불렸다. 사람들이란 얼마나 비열한 수 있는지를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레이슨 씨"
불 켜진 마차에 당도하자 마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더니 입구에 매달려 있는 덮개를 들췄다.
"여기 제게 도움을 좀 주세요."
마가 등을 밀자 리디아는 마차 안으로 떼밀려 들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넓적다리 사이의 탱탱한 피부가 당겨 고통스러웠다. 그녀는 주춤거렸다. 청색 셔츠를 입은 강한 두 팔이 불쑥 나오더니 그녀가 안으로 들어 올 수 있도록 거들었다. 마는 그녀 바로 뒤에 있었다.
낯선 세 사람은 얼굴을 맞대자 잠시 당황스러웠다. 반백의 남자가 앞에 선 아가씨를 궁금증 섞인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 옆의 야윈 여자가 놀라 입을 벌렸다. 리디아는 그들의 놀란 시선을 피하기 위해 눈길을 떨어뜨렸다.
"이쪽은 그레이슨 씨, 우리의 대장님이세요."
마가 리디아에게 말했다.
리디아는 고개를 숙인 채 마차의 널빤지 바닥을 딛고 있는 자신의 더러운 맨발을 들여다보며, 소개하는 걸 알아듣고 있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쪽은 레오나 왓킨스 부인이구요."
마는 낮은 좌대에 앉아 있는 남자에 대한 경의에서 속삭이며 말하고 있었다. 남자는 무릎에 팔꿈치를 괸 채 검은 머리를 두 손에 파묻고 있었다.
처음 말을 꺼낸 사람은 여자였다.
"대체 누가....왜 저렇게 벌거벗다시피 하고 돌아다니고 있는 거죠? 오, 당신 아이들이 발견해서 데리고 왔던 아가씨로군요. 분명히 해둬야겠군요. 당신이 그런....사람을.....이 마차로, 특히나 이런 시간에 데리고 들어오다니 놀랍군요. 죽음이 닥쳐올......"
"그러지 않을 거예요."
마가 말을 낚아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른 여자에 대한 혐오감이 명백하게 들어 있었다.
"그레이슨 씨, 이 아가씨는 그저께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서 젖이 생겼어요. 콜맨 씨의 아기가 그걸 빨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오 맙소사...."
왓킨스 부인이 소리쳤다. 리디아는 눈썹 밑으로, 여자가 앙상한 손을 빈약한 가슴께로 올리더니 악령을 물리치듯 앞섶을 움켜쥐는 걸 보았다.
마는 레어나 왓킨스의 반응에 기죽지 않고 계속해서 대장인 그레이슨에게 말했다.
"여기 있는 리디아의 젖을 빨리면 저 불쌍한 아기는 죽지 않을 거예요."
그레이슨 씨가 말을 꺼내기 전에 왓킨스 부인이 끼어 들었다. 가열된 언쟁이 벌어지자, 리디아는 주변의 광경이 허용하는 만큼 이 마차에 관해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랭스턴 씨 마차에서 덮고 지냈던 것보다 더 정교하게 끝처리된 담요가 한쪽 구석에 쌓여 있었다. 그 중 하나에는 누빈 공단 리본이 매달려 흔들거렸다. 도자기 접시 상자 옆에는 앙증스런 단추가 달린 흰 아기신 한 켤레가 놓여져 있었다.
그녀의 눈길은 더 멀리 뻗어나가다 한 켤레의 검은 부츠에 머물렀다. 송아지 가죽으로 만든 무릎 높이의 부츠였다. 부츠는 닳아 있었지만 최고의 가죽으로 만든 것이 분명했다. 길쭉하고 잘생긴 발에 딱 맞는 것이었다. 뒤꿈치 높이는 1인치 정도였으며, 나무로 만들어진 것으로서 반들반들 윤기 나는 검은색이었다. 그런 부츠를 신는 사람은 정강이뼈의 길이가 어느 정도라 해도 키가 클 것이었다.
"그건 합당한 일이 아니에요."
왓킨스 부인의 반대는 더 크고 강렬해졌다. 우악스런 어떤 손이 리디아의 턱을 움켜쥐더니 그녀의 고개를 위로 홱 젖혔다. 처음에는 온통 살밖에 보이지 않다가, 생명이 꿈틀거리며 살아나는 것 같았다. 좁고 선이 굵은 얼굴이었다. 앙상한 콧날은 칼날처럼 날카롭고 맹렬했다. 못마땅하다는 듯, 입술에는 무수한 잔금이 그어져 있었다. 두 눈은 목소리와 어울렸다. 비난이 서려 있는 악의적인 시선이었다.
"이 여자를 쳐다보세요. 창녀예요. 사람은 겉모습을 보면 알 수 있죠. 이 여자는 아마.....아기를 낳은 창녀일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말을 입 밖에 꺼내는 날 용서해 주시겠죠. 이 여자는 자신의 아기를 제거하기 위해 자기 손으로 죽였을 거예요. 틀림없이 이 여자는 그 애 아버지가 누구인지도 모를 거라구요."
여자가 하는 말에 소스라치게 놀란 리디아는 아무 말도 못하고 한참 여자를 쳐다보다가 낮게 숨 쉬듯 내뱉었다.
"아니에요!"
"왓킨스 부인, 제발."
그레이슨 씨가 수완가답게 끼어 들었다. 그는 관대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왓킨스 부인에게 동의하기가 쉽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리디아는 대담하게 그녀를 쳐다보았다. 리디아의 옷차림과 몸치장에는 손톱만한 세련됨도 없었으며 유별난 황갈색 눈동자로 그들을 맞받아 바라보는 대범한 눈길도 마찬가지였다.
"그건 그렇지 않아요!"
마가 부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레오나 왓킨스. 이 마차 행렬에서 어느 누가 이 아기를 돌볼 수 있겠어요? 당신요?"
"난 절대로 못해요!"
"맞아요."
마가 쏘아붙였다.
"당신은 그 말라비틀어진 젖꼭지에서 절대로 한 방울의 우유도 짜낼 수 없어요."
"마, 제발."
그레이슨 씨가 피곤한 음성으로 말했다.
레오나 왓킨스는 두 눈을 분노로 표독스럽게 치켜뜨고 있었지만, 입은 꼭 다문 채, 꼿꼿하게 등은 세우고 콧구멍을 벌름거렸다.
마는 그녀를 무시해 버렸다.
"그레이슨 씨, 이 마차 행렬에 끼어 있는 모든 생명을 지키는 것은 당신의 의무예요. 그리고 거기엔 저기 있는 저 아기의 생명도 포함돼요. 저 불쌍하고 작은 것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스무 가족 중에 젖이 있는 여자는 한 사람 뿐이에요. 그런데 그 여자는 쌍둥이에게 젖을 빨리고 있구요. 리디아는 저 아기의 유일한 희망이에요. 자, 저 아기의 생명을 구하실 건가요, 아니면 저 아기가 죽게 내버려둘 건가요?"
레오나 왓킨스가 모욕이라도 당한 듯 가슴에 팔짱을 꼈다. 그녀는 모든 책임을 결과에 떠넘기고 있었다. 그레이슨 씨는 참견하기 좋아하는 마 랭스턴이 제시한 대로 해야만 했다. 왓킨스는 항상 랭스턴 부인이 참을 수 없이 비천하다고 생각했으며, 지금 마는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중요한 건 콜맨 씨 의견이오."
핼 그레이슨이 말했다.
"로스, 이에 대해 뭐라고 하겠어요? 이 아가씨가 당신 아들에게 젖을 먹이길 원해요? 그렇다고 해서 당신 아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에서 말이오."
리디아는 이미 그들 모두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였다.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건 신경 쓰지 않았다. 몸이 회복되는 대로, 아무도 알지 못하는 어딘가로, 그래서 과거를 잊어버리고 새로 시작할 수 있는 어딘가로 갈 생각이었다. 자기도 모르게 그녀는 플란넬이 깔린 빈 사과 상자에 누워 있는 아기 쪽에 마음이 끌리고 있던 터였다. 그녀는 허우적거리고 있는 조그만 생명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때 아기 아버지가 숨을 죽이며 일어서는 소리가 들렸다.
로스 콜맨이 고개를 들고, 일어서서, 자신의 마차에서 그토록 소동을 일으키게 했던 아가씨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리디아의 등이 보였다. 그는 먼저 그녀의 머리카락을 쳐다보았다.
틀림없는 가시덤불이었다. 이보다 더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없을 것이었다. 어떤 종류의 여자들이 처음 와본 곳에서 저렇게 형편없는 모습으로 돌아다니는 것일까? 로스 콜맨은 딱 한 종류의 여자를 알고 있었다.
등을 보건대 그녀는 끔찍하게 말라 보였다. 발목은 가늘고 발은 작았다. 그리고 지저분했다. 맙소사. 그는 슬프고 고통스런 날들이 지난 후에 이런 방해까지 받을 필요가 없었다.
"저 아가씨가 내 아기를 만지는 걸 원치 않소."
그가 혐오감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들 모두 제발 나와 내 아들을 내버려두시오. 이 아이가 죽어야 한다면, 평화롭게 죽도록 해줘요."
"여기 있는 누군가가 생명을 지켜줄 수 있다는 걸 하늘에 감사하세요."
"입 닥쳐요."
레오나 왓킨스가 로스에게 다가가려 하자 마가 그녀를 옆으로 떠다 밀며 말했다.
"당신은 이성이 있는 사람일 거예요, 콜맨 씨. 리디아가 당신 아가에게 젖을 먹이게 해서 최소한 그 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애써보도록 해보는 게 어때요? 그렇지 않으면 그 애는 굶어 죽어요."
"우린 모든 걸 시도해 봤소."
로스가 성급하게 내뱉었다. 그는 절망적인 몸짓으로 검고 숱 많은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넣어 마구 쥐어뜯었다.
"이 애는 병에 든 우유도 먹지 않으려 했소. 어젯밤에 숟가락으로 넣어준 설탕물도 먹으려들지 않았소."
"그 애에게는 엄마 젖이 필요해요. 그리고 이 아가씨의 젖꼭지에서는 젖이 흘러나오고 있어요."
"오, 맙소사."
레오나 왓킨스가 말했다.
로스가 다시 한 번 아가씨에게 힐끗 시선을 던졌다. 그녀는 그와 파리한 등불 사이에 서 있었다. 얇은 잠옷 사이로 몸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녀의 젖가슴은 정말이지 무거워 보였다. 도발적인 젖가슴이 눈에 거슬렸다. 그녀는 왜 칠칠치 못하게 잠옷만 입고 돌아다니고 있는 걸까? 출산 끝이라 몸이 좋지 않다고 하더라도, 정숙한 여자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특히 남자들이 저런 모습을 보게 내버려두지는 않을 거야. 갑자기 그는 입술을 오므리고, 아가씨가 잡혀 나왔다는 갈보집이 어떤 곳일까 의문스러워졌다. 빅토리아가 저 여자를 보면 기절초풍하겠지.
"매춘부를 시켜 빅토리아의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는 않겠소."
그가 인색하게 말했다.
"당신은 그녀의 처지에 대해 나보다 더 많이 알지 못해요."
"이 여잔 매춘부요!"
그가 소리쳤다. 빅토리아가 부당하게 죽은 이후로 세상에 대해 품어 왔던 노여움이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어쩌다. 이 아가씨는 희생양이 되고 만 것이었다.
"마, 당신은 그녀가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자신을 돌봐줄 남편 없이 아기를 낳는 여자란 뻔하잖소."
"그럴 수도 있겠죠. 네, 인정해요. 하지만 전쟁 때문이었어요. 남부에 득실거리는 모든 것들과 모든 사람들이 배반자들과 부랑자들과 양키 뜨내기 정상배들에 속한다고는 할 수 없어요. 그녀가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지 우린 몰라요. 기억하세요. 그녀는 이틀 전에 자신의 아기를 잃었다구요."
리디아는 언쟁에 끼어 들 마음이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만이 그녀의 시선을 붙들고 있었다. 아기의 피부는 창백해서 건강하지 못한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리디아는 자신이 낳은 아기 이외에 다른 신생아를 본 적이 없었다. 이 아기는 더 작았다. 아기의 빈약한 체구가 그녀를 놀라게 했다. 저렇게 조그맣다면 어떤 생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공처럼 주먹을 꼭 쥐고 있는 아기의 손가락들은 거의 투명에 가까울 정도였다. 두 눈은 감겨 있었고, 가벼운 혼수상태에 빠져 있기라도 하듯 약하디 약하게 숨을 쉬고 있었다. 아기의 배는 움찔거리듯 위로 솟았다 가라앉곤 했다. 아기의 울음은 들쭉날쭉했다. 공기를 들이마시기 위해 가끔씩 울음을 그쳐야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약한 울음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울음은 리디아에게 로렐라이의 슬픈 노랫소리 같았다. 무정하게도 그 노랫소리가 그녀를 아기에게 이끌었다.
그녀는 산고를 치를 때와 다르지 않지만 고통스럽지 않게 자궁 속 깊은 곳이 확 당겨지는 느낌이었다. 심장이 팽창해 이미 부풀어 있는 젖가슴을 뒤덮어 버리는 것 같았다. 젖가슴은 젖이 철철 흘러 넘쳐서가 아니라, 어머니로서의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누군가 빨아주어야 했기 때문에 따끔따끔 쑤셔댔다.
그녀는 아기를 바라보다, 자신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손가락으로 아기의 부드러운 뺨을 만졌다. 그러다가 한 손을 아기의 머리 아래로 살그머니 집어넣었다. 손바닥을 쉽게 종기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기를 다치게 할까봐 천천히 움직이면서, 다른 손을 아기의 엉덩이 아래에 밀어 넣고 상자에서 아기를 들어 올렸다. 주름지고 얼룩덜룩 반점이 생긴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그녀는 낮은 세 발 의자에 깊숙이 앉았다.
아기의 가느다란 다리가 발길질을 해댔다. 아기의 발이 그녀의 배를 찼다. 그녀는 아기를 옆으로 돌려 팔에 곱게 안았다. 아기의 조그만 머리가 까불까불 움직였다. 몹시 여윈 얼굴이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에 파묻혔다. 리디아는 새처럼 조그만 입술이 자신에게 향해지는 걸 보고, 최면에 걸리기라도 한 것 같았다. 아기의 입술은 열려 있었고, 뭔가를 갈구하고 있었다.
진심을 다해, 그녀는 한 손을 들어 올려 빌린 잠옷의 첫 번째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 단추를 열었다. 왼쪽 어깨를 드러내고 젖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이어서 다른 단추도 풀었다. 다른 한 손으로는 아기의 얼굴을 향해 젖가슴을 들어 올렸다. 아기의 입이 떡 벌어지면서, 허둥지둥 그녀의 젖꼭지를 찾았다. 아기는 금세 젖꼭지를 입에 넣더니 게걸스럽게 빨아대기 시작했다.
갑자기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치자 마차 안의 적의에 찬 대화가 일시 중단되었다. 로스는 심장이 둘로 갈라지는 것 같았다. 첫 번째 생각은, 아들이 죽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들이 움직이지 않고 죽어 있는 걸 보게 되리라 예상하고 급히 아기에게 몸을 돌렸으나, 그의 걱정스런 두 눈에 들어온 광경은 그를 더욱더 놀라게 했다.
리디아가 그의 아들을 무릎에 올려놓고 있었던 것이다. 아기는 그녀의 커다란 젖가슴을 격정적으로 빨아대고 있었다. 아기의 갈망하는 입과 그녀의 지저분한 젖꽃판 주위에 젖이 하얗게 묻어 있었다. 그녀는 작은 소리로 부드럽게 아기에게 노래를 중얼거리며 아기의 입을 자신의 젖가슴에 더 깊이 밀어 주고 있었다. 로스는 아무렇게나 흘러내린 단정치 못한 머리카락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이봐요!"
마가 만족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그레이슨 씨, 레오나를 그녀의 마차로 데려다 주는 게 어때요? 난 리디아가 지낼 수 있도록 여길 좀 정리하겠어요."
"여기에서 지내다니!"
레오나가 날카롭게 비명을 질러댔다.
"절대로 여기 콜맨 씨의 마차에서 지낼 수 없어요. 그건 점찮치 못한 짓이에요."
"갑시다, 왓킨스 부인."
핼 그레이슨이 말했다. 그는 자신의 잠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요즘에는 새벽이 너무 빨리 왔고 콜맨 부인의 죽음은 텍사스로의 집단 이주 모험에 장막을 쳤던 것이다. 그는 특히 대장이라는 일을 원치 않았는데, 대장으로 추대되고 말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 신임을 주었던 사람들이 실망하는 걸 보고 싶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은 아침에 정리하도록 합시다. 그 사이에 점잖치 못한 일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으리라 확신해요."
그는 저항하는 왓킨스 부인을 마차에서 끌고 나갔다.
그들이 사라지자, 마는 아가씨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로스 콜맨을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걱정스러웠다. 그는 호감이 가고 친숙한 사람 같았다. 아내를 시바의 여왕이나 되는 듯이 다루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끊임없는 동요가 일고 있었다. 마는 이 남자에게 표면에 드러난 것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믿었다. 그가 불현듯 몸을 약간 움직였다. 그의 눈은 너무 날카롭고 불신으로 가득 차서 삶을 주도면밀하게 살아온 사람의 눈 같았다. 바로 지금 그는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사람 같았다. 그의 잘 다져진 근육 하나하나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로스는 억지로 일어서서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는 마룻바닥을 가로질러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아들은 굶주린 듯 젖을 빨고 있었다.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 이 매춘부 같은 여자, 이 이방인이 그의 아들을 안고 젖을 먹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런 일이 벌어지도록 내버려둔 채 거기에 서 있었다. 만일 빅토리아가 저걸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
로스는 빅토리아의 몸이 뒤틀리고 배가 부풀고 땀이 뻘뻘 흘러나오던 생각이 나자, 그의 아들이 아직 세상에 나오고 있는 도중에 그녀가 마지막 숨을 내쉬던 기억이 나자, 움찔했다.
안 돼, 다른 여자, 특히 헤픈 여자가 빅토리아 젠트리 콜맨의 아들을 기르게 해서는 안 돼. 그건 신성모독이야. 그런 일이 일어나게 한다면 내가 어떻게 고개를 들고 살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원칙을 고집하여 아기를 죽게 내버려둔다면 또 어떻게 살 수 있을 것인가?
내려야 할 결정에 가슴이 찢기면서, 그는 의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아들의 입이 풍만한 젖가슴을 탐욕스럽게 끌어당기고 있는 걸 바라보았다. 크림색의 젖가슴과 어울리는 유일한 것은 지도 위의 표시선처럼 검은 젖꼭지를 향해 흘러가는 희미한 푸른 핏줄이었다. 로스는 그 광경에 정신을 빼앗겨 여자의 얼굴 쪽으로 시선을 들어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여자의 속눈썹이 천천히, 고통스럽도록 천천히 들어 올려지는 걸 바라보았다. 속눈썹의 두터운 장막이 마침내 다 들어 올려지자 그는 그녀의 눈을 직접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서로를 향한 눈빛의 방향은 놀랍도록 직선을 이루고 있었으며 강렬했다. 서로 비밀스럽게 말없이 눈길을 간수하려 애쓰고는 있었지만 말이다.
로스는 여자의 광막한 세상으로 가라앉아 버린 느낌이었다. 그 세계는 그를 둘러싸, 코가 막히고 목이 막히게 만들었다. 그녀는 관능의 화신이었다. 그는 그곳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아내가 최근에 죽었다는 걸 기억하고 그런 자신을 혐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는 방심할 수 없는 위험한 늪에 빠져 출구를 찾아 더듬거리는 사람처럼 표면으로 떠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겨우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되자, 억지로 초연함을 가장하여 그녀를 살펴보았다.
갈색의 짙은 눈썹을 달고 있는 두 눈은 황금빛으로 비밀스럽게 박혀 있었다.
동공은 남자의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 따뜻한 포옹을 하듯 뱃속을 덥히는 값비싼 종류의 오래된 버본 색깔이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과 거의 같은 특이한 색깔이었다. 그는 그런 머리카락이 그녀의 거칠고 열광적인 성격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이라 생각했다.
피부는 깨끗했지만, 최근에 너무 많은 햇빛에 노출되었던 게 아닌가 싶었다. 약간 건방져 보이기는 했지만 균형이 잘 잡힌 코에 희미하게 주근깨가 몇 알 새겨져 있었다. 무엇보다 그녀의 입술은 그의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두터운 아랫입술은 시선을 온통 빨아들였다. 남자라면 저 입술에 욕망을 맡기고 죽어야 하리라. 그래서 그는 애쓰지 않았는데도 한껏 그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자신의 육감적인 입술을 부끄러워하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그런데, 그녀가 혀를 내밀어 그 유혹적인 입술을 촉촉이 적시는 것이 아닌가. 로스는 뱃속이 꿈틀거리는 걸 느끼고 다시 그녀에게 향하는 시선을 뿌리쳤다.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모습이나 그에게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거기에 앉아 있는 걸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난 그걸 보고 싶은 걸까? 그는 절대로 아니라고 맹세했다. 그녀를 찬탄하고 있는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의 눈길은 대담했다. 눈썹을 파들거리거나, 부끄러워 고개를 숙이거나, 새침을 떼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녀는 영락없는 매춘부였다. 그렇게 태어났던 것이다. 너무 많아서 그런 표시를 다 인식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빛에 잠복해 있는 말없는 도전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동맥에 흐르고 있는 뜨거운 피를 감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부드럽고 여자다운 그의 아내 빅토리아와는 정반대였다. 그것은 그녀를 경멸해도 좋을 충분한 이유였다.
리디아는 매서운 표정을 조금도 누그러뜨리지 않고 있는 로스의 표정을 보고 지금까지 본 얼굴 중에 가장 잘생긴 얼굴이라고 생각했다. 가장 강하게 눈길을 끄는 얼굴이 분명했다. 그녀는 그의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 호흡이 짧아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런 조바심이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반드시 수염을 깎을 필요가 있었다. 그의 턱에는 짙게 수염이 덮여 있었다. 짙고 검은 콧수염이 윗입술 양쪽 위에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녹색 눈동자로 그녀를 뚫어질 듯 쳐다보자 아랫입술은 일직선으로 엄해 보였다.
두 눈, 그녀는 두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희귀했다. 매우 선명한 녹색이었다.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짧고 검은 속눈썹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두 눈이 뾰족뾰족한 수풀에 둘러싸여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속눈썹을 쓸어내려 젖어 있는지 알아보고 싶은 유혹을 느꼈다. 젖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마는 부드럽고도 위협적이었다.
한밤처럼 까만 머리카락이 귀 끝과 셔츠 깃을 따라 굽이치고 있었다.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그의 몸집은 아주 큰 것 같았지만, 그녀는 그의 몸을 쳐다보지 않았다. 남자의 몸은 그녀에게 공포를 주고, 거부감을 일으켰다. 딱딱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길은 전혀 그녀의 공포를 경감시켜 주지 않았다. 그녀가 쳐다보고 있는 중인데도, 그의 눈길이 위협적으로 좁혀졌다. 가혹한 벌을 준비하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무엇 때문에? 그녀는 생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잠시 흔들렸다. 그러다가 아직도 젖을 빨고 있는 아기에게로 떨구어졌다.
"리디아, 다른 쪽을 물려야 할 시간이에요."
마가 리디아와 아기의 아버지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면서 부드럽게 말했다.
"네?"
그녀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남자가 그녀의 주의를 흐트러뜨렸다. 그것은 클랜시가 썼던 방식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녀의 정신을 산란하게 만들었다. 그가 일어서서 그녀에게서 멀어지자, 그의 거대한 몸집때문에 마차 안의 크기가 줄어드는 것 같았다. 갑자기 숨이 막히면서, 리디아는 아기가 그랬던 것처럼 호흡이 곤란해 헐떡거리는 자신을 발견했다.
"먼저 한쪽 젖을 먹이고 나서 다른 쪽을 먹이세요. 그래야 젖이 균형을 맞춰 흘러나오거든요."
마가 그녀에게서 아기를 들어 올렸다. 아기의 입술이 젖꼭지에 단단히 달라붙어 있었다. 입술이 떼어지자 아기가 다시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러나 리디아의 다른 쪽 팔에 안기자, 지체 없이 스스로 다른 쪽 젖을 찾아냈다.
유쾌한 웃음소리가 마차 안에 가득 찼다. 리디아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깔깔 웃어댔다. 그녀의 눈빛에 등불의 불빛이 반사되었다. 눈빛이 햇빛에 빛나는 위스키처럼 반짝거렸다. 그러다가 로스 때문에 반짝거림이 중단되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그가 마차 건너편에서 적대감을 드러낸 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일단 이 아가씨가 저기를 차지했으니, 내가 당신 잠자리를 봐줄게요."
마가 아가씨와 아기에게 방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아가씨는 여기 있지 않을 거요. 아기가 젖을 다 먹었으니, 그녀를 여기에서 데리고 나가시오."
우렁찬 목소리가 면도날처럼 정확하게 마차 안의 분위기를 갈랐다.
마가 로스에게 시선을 돌렸다. 커다란 엉덩이 옆에 주먹 쥔 손을 붙인 채였다.
"아기가 다시 배고파지리라고는 생각지 않으세요, 콜맨 씨? 무슨 의도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그녀를 데려갔다가 아기가 배고파 울 때마다 당신 마차로 뛰어오라는 건가요? 아니면 당신이 아기를 그녀에게 직접 데려다 줄 건가요? 그건 아주 쓸데없는 짓인 것 같군요. 아기가 겪을 노고는 말 할 것도 없구요. 난 아무 거리낌 없이 리디아를 받아들였어요. 그녀의 아기가 살았더라면 그 아기도 받아들였을 거예요. 하지만 당신 아기에게 피난처를 제공하지는 않겠어요. 그 애는 당신 자신의 마차인 이곳에 더 많은 공간과 더 많은 평화와 고요함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에요."
마가 왈칵 성을 내며 말을 맺었다.
로스는 오만한 위엄을 거두어들였지만, 여전히 똑바로 서 있었다.
"내 아들에 대한 당신의 자비에 의지할 생각은 없었소. 하지만 저 아가씨는 여기에서 지낼 수 없소."
"그녀 이름은 리디아예요."
마가 말했다.
"왜 그녀가 여기에서 지내면 안 된다는 거죠? 낮에는 누가 아기를 돌볼 거죠? 당신은 사냥하거나 정찰하러 떠나 있을 거잖아요. 아기가 귀찮게 보채면 누가 돌볼 거죠, 네?"
로스는 이빨 사이에 콧수염 끝을 물고, 마음속에서 거부감이 거세게 일어나기라도 하듯 수염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녀는 청결하지도 못해요."
"그래요. 청결하지 못해요. 그녀는 숲 속에서 홀로 아기를 낳았어요. 그녀가 어떻게 청결하기를 바라겠어요? 그리고 난 그녀를 목욕시키지 않았어요. 그녀에게는 아직 열이 있어요. 전 다만 또 다른 죽음을 맞고 싶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녀의 출생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라면, 그녀는 그토록 정숙하고 잘난 당신 아내가 하지 않았을 짓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하루나 이틀이면 끝날 거예요. 그리고 아나베스나 내가 그때까지 그녀를 돌보러 올 거구요."
리디아는 당황스러워 온 몸이 뜨거워지자 아기에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마의 노골적인 솔직함이 로스조차 말을 잃게 만든 게 분명했다. 그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마차 안에 무거운 긴장이 감돌았다. 난로가 한겨울에 열을 발산하듯 그가 적대감을 드러냈다.
마침내 아기가 배를 다 채웠다. 리디아는 젖가슴 위의 잠옷을 추스르고 마가 지시한 대로 아기에게 트림을 시켰다. 아기가 끄윽 소리를 내며 트림을 했다.
로스는 꼼짝 않고 서서 노여운 표정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저 매춘부는 자신의 침대에서 얼마나 많은 남자들과 놀아났을까, 아마 셀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점잖은 여자처럼 행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 아기에게. 빅토리아의 아기에게. 하지만 내게 달리 어떤 선택의 여지가 있단 말인가? 나는 아들이 살기를 원해. 이 아이는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여자에게 이어진 유일한 끈이니까.
그는 불필요하게 큰소리로 기침을 해댔다.
"좋아요. 여기 있어도 돼요. 일시적으로. 내가 스스로 아기를 먹여 살리고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기만 하면, 나가야 해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난 자비를 베풀지는 않을 거라구요. 게다가 난 빅토리아의 아기를 돌볼 사람으로 그녀 같은 여자를 원하지 않아요. 그녀의 아기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게 생각하지만, 그 아기는 아마 죽었어야 할 운명이었을 거요. 그녀는 왓킨스 부인이 말한 것처럼 창녀거나, 자신의 가족을 욕되게 한 아가씨거나, 남편에게서 도망친 여자일 거요. 어쨌거나 그녀는 내 아이를 돌봐 주었으면 하는 그런 여자가 아니오.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가 아니라면, 그녀는 절대로 안 돼요. 자, 그런 조건으로도, 여전히 여기 머물길 원해요?"
그가 정다운 목소리로 평화스럽게 아들을 재우고 있는 리디아에게 물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이글거리는 녹색 눈동자를 마주 보았다.
"아기의 이름이 뭐죠?"
로스는 그녀의 부드러운 물음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음.....리. 난 그 애의 이름을 리라고 지었소."
그녀는 아기를 내려다보며 살며시 미소 짓더니, 힘껏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아기의 이마를 어루만졌다. 검은 머리카락이 솜털처럼 보드라웠다.
"리"
그녀가 사랑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리고 온후한 표정으로 아기의 아빠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기가 날 필요로 하는 한 제가 리를 돌보겠어요. 콜맨 씨"
그녀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오만하게 덧붙였다.
"그게 당신 같은 인간들을 참아내야 한다는 걸 의미하더라도 말이에요."
'당신 같은 인간들을 참아내야 한다 하더라도, 당신 같은 인간들을 참아내야 한다 하더라도.'
이 말이 머릿속에서 울려 퍼졌다. 로스는 거칠게 마구를 말 등에 올렸다. 빌어먹을. 감히 누구한테 그런 식으로 얘기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는 자신의 노여움이 말을 향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말의 엉덩이를 토닥여 주었다.
그는 동쪽 하늘이 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첫새벽에 다시 지핀 불가로 돌아갔다. 커피는 아직 끓고 있지 않았다. 매일 아침 처음에 불꽃을 일으켜 커피를 끓이고, 빅토리아가 좀더 오래 잘 수 있도록 베이컨을 굽기까지 하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었다. 빅토리아는 일찍 일어나는 일에 익숙하지 않아서, 아침 식사를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 길고 고역스런 여행을 하느라 힘을 빼앗기곤 했다.
로스는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불꽃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빅토리아가 왜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을까 백 번도 더 자문했다. 그녀는 임신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아서 텍사스에 도착하고도 한참 후에나 애를 낳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그녀의 배가 조금밖에 부르지 않아, 그 거짓말은 믿을 만했었다. 그런데 여행이 시작되고 몇 주가 지나지 않아 갑자기 불러오기 시작한 그녀의 배가 그녀를 앗아가 버렸다. 어떻게 그토록 순식간에 배가 커질 수 있느냐고 로스가 한 마디 했을 때에도 그녀는 처음에 했던 얘기 이상을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임신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리는 예정일보다 여러 주 일찍 태어났다. 하지만, 그 사실은 여전히 빅토리아가 그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거짓말을 한 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는 그녀가 장인이 아기에 대해 아는 걸 원치 않았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장인 밴스 젠트리는 자신이 고용하고 있던 남자의 손에 딸을 넘기는 결혼을 받아들여야 하는 힘든 시기를 맛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대체 왜 빅토리아는 남편인 내게 완전히 정직하지 못했을까?
로스는 에나멜 커피 주전자로 손을 뻗어 양은 컵에 진한 커피 물을 부었다. 여행을 하면서 그는 빅토리아가 가져가자고 고집했던 도자기 잔보다 그런 종류의 세간이 더 좋았다. 끓을 대로 끓은 뜨거운 커피를 한 모금 홀짝이며, 그는 마음이 방황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아냐. 밴스 젠트리는 그의 마구간이나 돌보도록 고용한 남자와 딸이 사랑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어. 젠트리는 빅토리아만큼 훌륭한 가문의 남자가 그녀의 남편이 되기를 원했지. 하지만 남부의 오래된 가문 출신 가운데 결혼할 만한 나이의 남자들은 이날까지 버티기 힘들었어. 전쟁 때문에. 빅토리아는 자신의 선택에 행복해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농장의 모든 사람들은 로스 콜맨이 그녀의 남편이 된다는 생각에 익숙해졌어. 밴스만 빼고 모두가. 밴스는 결코 공개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일은 없었지. 하지만 사위에 대한 그의 분노는 위장될 수 없는 것이었어.
빅토리아는 그러한 분노를 알아챘던 거야. 그래서 아버지가 말을 사러 버지니아로 여행을 떠날 때까지 기다려 아기에 대해 내게 얘기할 참이었던 거야. 내가 텍사스에 있는 땅을 언급하자, 아버지가 돌아오기 전에 떠나려고 했던 건 그녀의 생각이었어. 난 그녀의 임신과 아기가 걱정되었지만,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정착할 시간은 충분하다고 스스로를 확신시켰던 거야. 그래, 아기는 태어났어. 난 그 아기를 가졌지만, 빅토리아는 잃어버렸어. 이제 빅토리아는 내게 없어.
그는 빅토리아 없는 삶이 어떨지 상상해 보려 애썼다. 그녀는 그토록 예기치 않게 왔다가 그만큼 갑작스럽게 떠나 버린 것이다. 그녀는 내게 일시적으로 날아온 선물이었어. 야멸차게 낚아채 가 버리기 전의 일시적인 선물. 이제 나의 삶에는 빛도, 웃음도, 사랑도 없게 되겠지. 다시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도,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질 수도, 그녀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도 없겠지. 그녀는 영영 돌이킬 수 없이 내게서 떠나가 버렸어. 그걸 참아낼 수 있을까?
리를 위해 참아야 할거야. 남편들은 매일 아기를 낳다 죽은 아내를 잃고도, 여전히 살아 남잖아. 나도 그럴 거야. 내 아들을 위해 행복한 삶을 꾸려갈 거야. 나와 리만을 위해. 단지 둘이서. 아냐, 다른 건 아냐.
이제 내 손엔 그 아가씨가 들어와 있어.
그는 커피를 목구멍으로 탁 털어 넣고 또 한 잔을 따랐다.
그때 부바 랭스턴이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로스?"
부바는 모든 남자들의 귀감이라고 여기고 있는 이 남자가 성씨로 자신을 불렀을 때 자신이 어딘가 성숙해지고 중요해진 느낌을 가졌더랬다.
"부바"
로스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마음속은 아직도 자신의 문제에 매달려 있었다.
"오늘 비가 올 것 같지 않아요?"
불길한 구름장들이 그의 녹색 눈동자에 비쳤다.
"아마도. 오지 말았으면 좋겠구나. 비는 신물이 나. 우리 여행을 늦추게 될 테니 말이다."
부바가 목청을 가다듬었다.
"저........음........당신 아내 빅토리아 일은 정말 안됐어요"
로스는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커피 들겠니?"
소년이 대꾸하길 기다리지도 않고 로스가 컵 하나를 집어 들더니 커피를 따랐다.
그들은 잠시 말없이 커피를 마셨다. 캠프의 다른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습한 공기 속에 밥하는 연기가 떠돌았다. 마구를 챙기는 소리, 말들이 킁킁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깨어나기 전에 남편과 아내가 소곤소곤 나누는 얘기소리, 금속 주전자와 프라이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편하고 익숙한 소음이 되어 아침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러한 익숙함이 안도감을 주고 있었다. 로스는 삶의 모든 것이 문득 낯설어져 버린 느낌이었다.
"벌써 말을 돌봤어?"
로스가 소년에게 물었다.
"물론이죠.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그 귀리자루를 가져다주었죠."
"고맙다, 부바"
로스가 처음으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간다면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졌다. 어쩌면 지난 시절과 다르지 않겠지. 어떤 사람들은 비천하게 태어나서, 평생 손발이 닳도록 일을 하지. 그는 빅토리아 젠트리가 자신과 사랑에 빠져 결혼했을 때 자기에게 두 번째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네가 이 여행에 함께 하면서 나를 도와 내 말들을 돌봐 주니 난 운이 좋은가봐. 일단 텍사스에 도착하면 내 말들은 내가 돌보도록 하지."
소년의 머리카락이 부드러운 아침 바람에 흩날렸다.
"그만 하세요, 로스. 당신은 돈을 주어 제게 말들을 돌보도록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자청한 일이에요. 아빠는 제가 농부가 되기를 원해요. 텍사스에 새로운 자작 농장을 알아보고 계시죠. 그리고 테네시에 있는 우리 땅처럼 매년 홍수에 잠기지 않는 곳을 찾고 계세요. 하지만 전 농사를 짓고 싶지 않아요. 당신처럼 말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요, 로스"
로스가 새로 커피 한 잔을 따랐다. 소년은 자신이 영웅의 주의를 끌었다는 것에 환호를 지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소년과의 대화는 로스의 마음을 여러 가지 문제에서 떠나게 해 주고 있었다. 소년이 얘기하면서, 절여 놓은 돼지고기 조각에서 살점을 잘라냈다.
"글쎄, 난 상처를 입었어......."
"전쟁의 상처 말인가요?"
부바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캠프 주위의 짙은 숲을 멀거니 응시하는 로스의 눈빛이 딱딱하고 차갑게 변했다. 대답할 때의 목소리는 낮고 사무쳤다.
"아니야. 사고 같은 거지."
그는 뜨거운 프라이팬에 고기조각을 홱 던졌다. 지글거리며 기름이 튀었다.
"존 삭스라는 노인이 날 발견해 자신의 오두막으로 데려갔지. 스모키즈에서 위로 올라간 곳이었어. 그는 수행자였어. 날 간호해 건강을 회복시켜 주었지."
로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대부분 질 나쁜 혼합주를 증류했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나더라 계곡으로 내려가 밴스 젠트리라는 남자를 찾아보라고 했어. 밴스 젠트리는 테네시에서 가장 혈통 좋은 말을 기르는 농장 가운데 하나를 경영하고 있었지. 난 그에게 가서 일하다가 빅토리아와 결혼했어."
"그리고 나서 삭스라는 노인이 당신에게 텍사스에 있는 그 땅을 팔았군요?"
로스는 장난기 어린 소년의 눈빛을 바라보았다.
"내가 전에 이 얘기를 했던가?"
"물론이죠, 로스. 하지만 전 그 얘길 듣는 게 좋아요."
"삭스 노인은 산 자킨토 전투에서 싸웠더랬지. 텍사스 공화국은 그 전투에서 싸웠던 군인들에게 땅을 하사품으로 내렸지. 하지만 그는 방랑하며 테네시로 돌아왔다가 다시 돌아가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만한 요령이 없었어."
로스는 기름진 동부 텍사스 땅이 사용되지 않고 거기 그대로 누워 있을 뿐이라는 생각에 흥분되곤 했었다. 그는 빅토리아와 함께 떠나지 않는다면 장인의 영향력 아래에서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게다가, 로스는 자신의 땅을, 자신의 말을 가지고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이방인들을 만나더라도 숨쉬기가 더 쉬운 곳을 원했다.
그는 속세를 떠난 그 노인에게 땅을 사겠다고 제의했다. 노인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몇 해 전에 텍사스 정부가 그에게 보낸 권리증을 건넬 뿐이었다.
"난 여기 이 오두막에서 죽을 걸세, 젊은이."
노인이 말했다.
"그 땅은 필요 없어. 난 종다리를 친구 삼아 텍사스에서 돌아왔어. 그 전쟁은 내게 한바탕의 대소동에 지나지 않았지. 자네가 그 땅을 원한다면, 그건 자네 땅이네."
그가 빅토리아에게 거처를 새로 정하는 주제를 꺼냈을 때, 그녀는 그보다 더 열성을 드러냈다. 그는 그녀보다 미리 가서 그 땅을 보고, 새로 시작할 집을 얻은 다음, 그녀와 아기를 데려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가 함께 가자고 우겼던 것이다.
"아빠가 안 계시는 동안에 일을 마무리하는 게 좋겠어요, 로스. 맥민 카운티에서 조직되는 그 마차 대열에 합류하도록 해요."
로스는 그렇게 하기로 계획했다. 여럿이서 여행하는 게 더 안전했으니까. 한 번 쓰고 말 세간들을 구하느니 가지고 간다는 이점도 분명했다. 사람들이 텍사스로 모여들고 있었다.
빅토리아는 그런 모든 것을 대단한 모험으로 여기고 그들의 출발을 비밀로 하기를 원했다. 그는 그녀와 언쟁을 벌였다. 장인이 집에 돌아와 말 한 마디 없이 그들이 떠나 버렸다는 걸 알게 되기를 원치 않았던 것이다.
"제발, 로스. 그 분은 우리가 가지 말아야 할 이유를 수천 가지로 생각해 낼 거예요. 특히 아기에 대해 알게 되면 말예요. 절대로 우리가 떠나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구요."
로스는 남은 비스킷으로 두 조각의 베이컨을 싸 샌드위치를 만들어 부바에게 내밀었다.
"난 내 자신의 농장을 시작할 말을 살 만한 충분한 돈을 저축해 두었단다. 네가 보았던 것 중에 가장 잘생긴 암말 다섯 마리와 럭키를 구해 두었어."
"그러셨을 거예요."
부바가 입 안 가득 샌드위치를 베어 물고 웅얼거렸다.
"매일 밤 그 말들을 돌봐 줘서 고맙다."
로스가 껄껄 웃었다.
"럭키는 그 암말 하나하나와 미치도록 사랑에 빠져 있단다."
소년은 로스의 총애를 받았다.
그들은 마차 안에서 아기가 깨어나며 내지르는 가느다란 울음소리를 듣자 정답게 서로를 쳐다보며 미소 지었다.
부바는 울음소리 쪽으로 담황색 머리를 젖혔다. 천막을 새어나와 그들에게 들려오는 소리는 어머니가 부드럽게 달래며 중얼거리는 소리였다. 그러다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부바는 의문스런 표정으로 로스를 쳐다보았다. 로스는 마차의 출입구를 쳐다보며 표정이 어둡게 변했다.
"그.......그 아가씨, 리디아. 마 얘기로는 이제부터 그녀가 당신 마차에서 지내며 아기를 돌볼 거라더군요."
로스의 검은 콧수염 아래에 드러난 입술이 얇아졌다.
"그렇게 될 줄 알았어. 빌어먹을."
조급하고 화가 난 로스는 어디 다른 곳으로 노여움을 돌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 않으면 폭발할 것 같았다. 그는 일어서서 마차 끄트머리로 걸어갔다. 융단으로 만든 손가방을 열고, 거울과 끝이 직선으로 뻗은 면도날, 면도용 솔과 컵을 꺼내, 뒷문에 놓았다. 그리고 나서 셔츠 깃을 안으로 접었다. 그는 이미 불가에 물 냄비를 놓아 데워 두고 있었다. 그는 면도용 솔을 뜨거운 물에 푹 집어넣었다가 컵에 넣은 후, 풍성한 비누거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얼굴 아래쪽에 흰 거품을 찰싹찰싹 바르고 능숙한 솜씨로 비눗물과 수염을 없애기 시작했다.
부바가 부러운 듯이 쳐다보았다.
"저와 루크가 그녀를 발견했을 때 그녀는 무척 초라했어요."
부바가 스스럼없이 말했다.
"그랬니?"
로스가 면도날을 물에 휙휙 내저으며 못에 매달아둔 거울을 더 잘 보기 위해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네. 빗속에, 죽은 것처럼 창백해져서 꼼짝 않고 누워 있었죠."
로스가 턱을 면도하며 긴장시켰다.
"글쎄, 지금은 생명력이 넘치고 건강이 좋아져서 터질 듯하더구나."
로스는 전등 불빛이 그녀의 젖가슴을 비춰 그림자를 드러냈던 광경을 기억할 수 없기를 바랐다. 특이한 황금빛 눈동자에 매혹되어 그는 그 기억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몸에게 잊어버리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그렇게 될 것 같지 않았다. 지금도 몸은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의 천성이 명백해지고 있었다. 아내의 시체가 무덤에서 아직 식지도 않았는데 그녀의 육체를, 그 아가씨의 육체를 들여다본다는 것은 점잔하지 못한 짓이었다. 제기랄! 그건 빌어먹을 매춘부의 아들이나 할 짓이야. 아무리 세련된 숙녀와 결혼한다고 해도 너의 내부에는 그런 씨앗이 맺혀 있는 거라구. 넌 아무리 빨리 달려도 너의 근본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그는 금속 면도기가 자석에 끌려가지 않을 수 없듯이 자신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더 나은 사람인 척하는 가장은 벌써 지옥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도 그녀처럼 쓰레기 출신이었고, 그런 쓰레기 더미에서 자신을 격상시키도록 노력했지만 실패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발, 다시 그런 종류의 삶으로 빨려 들어가기 전에 지옥으로 떨어지기를, 저 여자나 다른 누군가에 의해.
훌쩍거리는 아기 소리가 들여오자 로스는 그녀가 아기를 한쪽 젖에서 다른 쪽으로 옮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손이 떨렸다. 면도날에 살짝 베인 그는 숨을 멈추고 욕을 해댔다. 부바는 불안한 심정으로 한발씩 옮기며, 로스의 양 눈썹 사이에 저렇게 깊은 골이 파이도록 자신이 무슨 말을 했던가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로스가 저렇게 불안해하는 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지금 그의 아내가 죽었을 때와 똑같았다. 거울에 얼굴을 더 잘 비추어 보기 위해 무릎을 굽히다 얼굴을 찡그린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었다.
"미시시피에는 언제쯤 도착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로스?"
"아마, 일주일 후에."
"미시시피에 가 본 적이 있으세요?"
"여러 번."
로스는 거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면도한 물을 바닥에 쏟아 버렸다. 조심스럽게 면도날을 말려 다른 면도 도구들과 함께 융단으로 만든 손가방에 도로 넣었다. 이 순은 면도 세트는 지난 크리스마스 때 빅토리아에게서 받은 선물이었다. 그는 마차 안에서 새어나오는 부드러운 자장가 소리를 애써 무시하면서 그 생각에 집중하려 애썼다.
"야! 전 한 번도 못 봤어요."
부바가 미시시피 강 얘기를 했다.
"보고 싶어 못 기다리겠어요."
로스는 온화한 표정으로 소년을 쳐다보았다. 얼굴의 근육이 풀렸다.
"볼 만하지, 아무렴."
소년이 밝게 미소 지었다.
"오늘 제가 당신 마차를 몰기를 원하세요?"
로스는 재빨리 마차에 힐끗 시선을 던졌다.
"그럼, 네 부모님이 널 필요로 하지 않을 거라 생각되면 그렇게 해주면 고맙겠구나."
"예! 마에게 뭔가 할 일이 있으면 루크가 도울 수 있을 거예요"
"그럼 난 럭키에 안장을 얹고 사냥 나가겠다. 다른 사람들이 가져다 준 것 밖에 먹지 않았어. 그 때 이후로....."
그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에 슬픔의 그림자가 스쳤다.
"오늘은 고기를 구해 보는 게 좋겠다. 가서 네 가족들에게 얘기하렴."
"네, 그럴께요, 로스"
부바는 랭스턴가의 마차를 향해 캠프를 뛰어나갔다. 교련 담당 하사관처럼 명령을 내리고 있는 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로스는 마차의 후미를 쳐다보았다. 텐트 덮개는 닫혀 있었다. 그는 빅토리아와 함께 사용했던 침상으로 마가 그 아가씨를 밀어 넣기 시작했던 지난밤에 마차를 떠났었다. 그 이후로는 마차 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마차 밑에 담요를 깔고 말안장을 베개로 사용했다. 빌어먹을, 그는 그런 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성인이 되어서 그런 식으로 잔 적이 더 많았다. 그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빅토리아와 함께 잤던 침대, 빅토리아가 죽었던 침대에 누워 있는 아가씨에 대한 생각이었다.
그는 리디아를 바라보는 걸 참아낼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지만, 그 창녀와 그녀의 뻔뻔스런 혀가 그에게서 그 자신의 성질을 추방해 버리기 전에 지옥에 떨어질 것이었다. 단단히 각오를 하면서도 노여움을 느끼며, 그는 텐트 덮개를 열어젖히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자고 있었다.
리는 보호하듯 감싸고 있는 그녀의 팔과 가슴 사이에 옹송그리고 있는 조그만 한 뭉치의 살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부드러운 무명 포대기에 덮인 그녀의 가슴이 숨을 쉴 때마다 일정한 박자로 오르내렸다. 머리카락은 머리 뒤에 부챗살처럼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깨어날 때까지 그는 거기에 붙박인 채 서서 멍하니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사냥을 가려면 탄환이 필요했다. 그는 항상 정확하게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던 탄환 상자를 찾느라 시끄럽게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여러 발을 꺼내 셔츠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돌아서자, 그녀가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미동도 하지 않고, 말없이 누워 있었다. 그런 모습이, 빌어먹게도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방해한 것 같았다. 화가 난 손길로 트렁크에서 목도리를 잡아당겨 목에 감았다. 그녀는 여전히 말을 하거나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의 모든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왜 무슨 말이든 하지 않는 것일까? 전날 밤에도 그다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쓸모 없는 멍청이는 아닐까? 그토록 강렬하고, 말없는 눈길을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자, 그가 신경질적으로 물었다.
"커피 드시겠소?"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는 그런 질문을 한 자신이 싫어져서 마차 뒤편으로 쿵쿵 소리를 내며 걸어나갔다. 차마 진심에서 우러나온 소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커피 주전자를 집어 들고, 다른 양은 컵에 끓는 물을 거칠게 부었다. 뜨거운 물방울이 손에 튀자 과장되고 심술궂은 목소리로 욕을 해댔다. 그런데 느낌이 좋았다. 그는 빅토리아 젠트리가 장인의 마구간에서 건초를 정돈하고 있는 그를 처음 발견한 이래 욕설을 입에 담지 않으려 무진장 애를 써왔다.
기껏 보잘것없는 일 때문에 화를 내는 걸 억제하며, 그는 커피 잔을 마차 안으로 가지고 가서, 키에 맞추느라 허리를 구부리고 그녀 쪽으로 잔을 내밀었다.
그녀가 혀로 입술을 축였다.
"리를 좀 안아 주시겠어요? 아기에게 커피를 쏟을까봐 걱정이 돼서요."
로스는 먼저 커피 잔에서 피어오르는 김을 바라본 다음, 아기를 내려다보고, 침대에 반듯이 누워 있는 아가씨를 쳐다보았다. 그는 평생에 이보다 더 어색하고 어쩔 수 없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환상적인 식당에서 빅토리아와 그녀의 아버지와 함께 처음으로 식사를 했던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하지만 그때에도 그는 두 팔이 갑자기 쭉 뻗어나간다거나 두 손이 너무 커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았었다.
속으로 욕설을 중얼거리며, 그는 컵을 한 옆으로 놓아두고 아들을 들어 올리기 위해 무릎을 굽힌 채로 몸을 수그렸다. 아기는 죽은 것처럼 꼼짝 않고 있었다. 두 손은 쭉 뻗어져 있었지만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자고 있는 아기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와 닿지 않고 리를 들어 올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녀도 동시에 그걸 깨달은 것 같았다. 그녀의 시선이 그의 눈으로 올라가 부딪쳤던 것이다. 그러고는 얼른 눈길을 내렸다. 그녀는 아기에게서 떨어져 나와, 둘 사이에 공간을 만들려 애썼지만, 아기의 조그만 몸은 그녀에게 착 달라붙어 있다가 다시 더 파고들었다.
빌어먹을! 겨우 이런 식어야 하나? 난 저 여자가 바로 내 집에서 내가 고양이처럼 팔짝팔짝 뛰며 신경질을 부리도록 만들게 내버려둘 것인가?
로스는 손을 앞으로 뻗었다. 한 손은 아기의 등 뒤로 가져가고, 다른 손은 그녀와 리의 조그만 머리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의 손마디가 젖가슴의 풍성한 곡선에 닿았다.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는 재빨리 아기를 들어 올려 돌아섰다.
"기다리세요!"
그녀가 부드럽게 소리쳤다. 로스는 돌아서서 바라보았다. 성급하게 서두르느라 리의 담요와 함께 그녀의 잠옷자락이 끌려왔던 것이다. 잠옷자락이 그녀의 젖가슴 위로 팽팽하게 끌어당겨져, 커다랗고 검은 젖꼭지의 윤곽이 상세하게 드러났다. 로스는 홀린 듯 멈춰 섰다.
그녀가 손을 내밀어, 잠옷을 잡아당겼다. 리를 떨어뜨리면 어쩌나 하는 염려 때문에 쉽게 손가락의 힘을 뺄 수 없었다. 마침내 잠옷이 떨어져나가자, 로스는 의자로 가서 앉았다. 사실 그건 앉았다기보다 털썩 주저앉았다고 해야 옳았다.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커피를 빨리 마세요."
그가 심술궂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일어나 앉는 자세를 취하는 걸 쳐다보지 않았다.
리디아는 넓적다리 사이가 빽빽하게 죄어 오는 느낌이 들어 얼굴을 찡그렸지만, 그런 통증은 하루하루 가라앉고 있었다. 오늘 아침에는 열도 느껴지지 않았다. 고마워하는 손길로 그녀는 콜맨 씨가 옆에 놓아둔 커피 잔으로 손을 뻗어 한 모금 홀짝였다.
그녀는 컵 가장자리 너머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는 모나고 까칠한 얼굴을 부드럽게 해주는 표정으로 잠들어 있는 아들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기는 밤새도록 잤어요."
그녀가 조용하게 말했다.
"오늘 아침 이른 시간이 되어서야 아기 소리가 들리더군."
"배가 고파 깼었죠."
그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어색하게 서로를 빤히 바라보다, 얼른 시선을 돌려버렸다.
"쌌군요. 그렇죠?"
로스는 아기를 들어 올려 축축한 자리를 내려다보며 가만히 껄껄 웃었다.
"그렇군."
"어떻게 갈아줘야 하는지 전 몰라요. 마가 알려줄 수 있을 거예요. 기저귀 가진 거 있으세요?"
로스는 잠시 당황스런 표정을 보였다.
"모르겠소. 찾아보리다. 아마 빅토리아가..........."
그는 죽은 아내의 이름이 입 밖으로 나오자 잠시 말을 끊었다.
"아마 그녀가 어딘가에 꾸려 놓았을 거요."
리디아는 천천히 커피를 홀짝였다.
"당신 부인 일은 안 됐어요."
아들에게 시선을 돌리기 전에 그녀를 쳐다보는 그의 눈길은 모질고 굳어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이마를 짚어내려 갔다.
그의 손 하나가 아기 얼굴의 두 배쯤 되었다. 얼룩진 붉은 피부와 대조적으로 검어 보였다.
"왜, 죽은 사람이 나고 당신 부인이 살 수는 없었을까 생각하고 계신 거죠, 그렇죠?"
그가 검은머리를 홱 쳐들었다. 그 움직임이 어찌나 갑작스러웠던지 아기가 움찔하며 깜짝 놀랐다가, 아빠의 무릎 위에서 다시 편안해졌다. 로스는 그녀가 자신의 생각을 추측했던 게 부끄러웠지만, 사과할 수가 없었다. 아주 명백해져 버리자 부정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숲에서 혼자 아기를 낳을 생각을 했었소?"
"달리 갈 데가 없었어요. 어쩌다가 그곳에 이르게 되었을 뿐이에요."
그녀의 대답은 그를 화나게 만들었다. 빅토리아의 발톱만큼도 가치가 없는 이 여자가 빅토리아의 아기를 돌보고 있는데 빅토리아는 차디찬 무덤에 누워 있다는 건 너무 불공평하다는 생각에 화가 치밀었다.
"누구에게서 도망치고 있는 거요? 죄를 지었소?"
"아니에요!"
그녀가 소스라치며 소리쳤다.
"남편으로부터?"
그녀는 눈길을 딴 곳으로 던졌다.
"전 남편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맙소사.."
그가 못마땅한 소리를 냈다.
다시 한 번 그에게 눈길을 돌리는 그녀의 두 눈에 번쩍 불길이 일었다. 어떻게 감히 저 남자는 저기 앉아서 날 판단하고 있는 걸까! 내가 당했던 고통을 저 남자가 알 수나 있을까? 그녀는 이전에 한 남자에게 욕을 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것이다.
"어제 저녁에 뭐라 하셨죠, 콜맨 씨? 내 아기가 죽는 게 나았다구요? 당신 말이 맞았어요. 그 아기는 죽어 없어지는 게 나았어요. 그리고 저도 그랬더라면 좋았을 거예요. 전 그러기를 원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질 못했죠."
그녀가 턱을 치켜들고 앞으로 내밀자,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어쨌든, 전 여기에 있고 당신 아내는 없어요. 하느님께서는 그런 식으로 일이 일어나도록 하는 게 이치에 맞다고 생각하셨던 게 틀림없어요. 전 당신 이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저 아기에게는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고, 전 그 아기의 엄마가 될 거예요."
"당신은 이 아기의 유모가 될 거요. 그게 다요. 이 아기에게는 엄마가 있었소"
"그리고 그녀는 죽었어요!"
그가 입술을 말고 으르렁거리며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클랜시의 손찌검을 경험한 바가 있어서, 리디아는 마차 옆구리로 기어 들어가며 팔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지 말아요, 제발!"
"대체 뭘......"
"제기랄,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마가 마차로 튀어 들어오며 소리쳤다.
"당신 두 사람이 모든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어요. 레오나 왓킨스가 당신들 두 사람이 밤을 함께 보냈다는 말을 떠벌리고 있단 말이에요....."
"난 밖에서 잤어요."
로스가 이빨 사이로 내뱉었다. 저 아가씨는 그가 자신을 때릴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도 알아요."
마가 거칠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이젠 다른 모든 사람들도 알고 있어요. 내가 얘기해 줬으니까요. 이제 그 아기를 내게 주세요. 그렇게 안고 있다니, 아기 목이 부러지지 않는 게 신기하군요."
마가 아기의 아버지에게서 리를 데려갔다.
"그리고 리디아는 왜 맞기라도 한 것처럼 저러고 있죠?"
마가 남자에게 따지고 들었다. 그의 입술은 일직선으로 고집스럽게 닫혀 있을 뿐이었다.
"리디아, 무슨 일이에요?"
마가 물었다.
겁쟁이처럼 보이는 게 부끄러워 리디아가 조용히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가 그녀를 찬찬히 들여다보더니, 로스에게 눈길을 돌려 말없이 꾸짖는 표정으로 위아래를 훑어보았다.
"여기서 나가세요. 아나베스와 내가 리디아를 돌보겠어요. 부바가 오늘 당신을 위해 마차를 몰겠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사냥 갈 거라구요. 솔직히 그게 좋은 생각인 것 같군요. 여기에서 사라지면 당신 머리도 맑아질 거예요. 자, 나가세요."
마의 제의를 거절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로스는 더 이상 공포에 떨고 있지 않은 리디아에게 가엾은 시선을 던지다, 그녀가 자신을 슬픈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쿵쿵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일단 밖으로 나오자, 그는 머리에 모자를 눌러 쓰고, 한쪽 어깨에 안장을 둘러메며, 다른 쪽 어깨에는 권총을 차고, 밤새 말들이 매여 있던 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로스가 캠프에서 힘센 씨말을 몰고 나가 울창한 숲을 향해 힘차게 초원을 달려 사라지는 걸 두 명의 랭스턴가 아들들이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
루크가 형에게 말했다.
"아니, 난 관심 없어. 하지만 어쨌든 네가 내게 말할 것이라는 걸 알아."
"콜맨 씨가 비열한 개자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바는 말과 기수의 작아져가는 영상을 시름에 잠긴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는 영웅의 얼굴에서 그토록 표독스런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루크"
그가 동의했다.
"네 말이 맞을 수도 있겠어..."
"...그리고 그날 저녁, 모든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그들은 캠프 주위를 돌아다니며 손을 잡고, 마차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풍이라도 나온 것처럼, 멈춰 서서 옛날 얘기를 나누었어요."
리디아는 침상 매트리스에 누워 아나베스의 낭랑한 이야기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아나베스는 서랍에서 빅토리아 콜맨의 개인 소지품을 꺼내 트렁크에 집어넣고 있었다. 마가 그렇게 하도록 제안했던 것이다. 리디아와 아기를 위해 마차 안에 더 많은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로스도 마지못해 동의한 터였다.
그가 모든 걸 마지못해 행동하고 말한다는 생각이 들자 리디아는 희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 사흘 동안 그녀는 힘겨운 고난으로부터 서서히 회복되면서 마차 안에 누워 리를 보살폈다. 낮에는 아나베스가 그녀와 함께 머물렀다. 마는 매일 아침 그녀의 상태를 점검하고 저녁마다 음식을 가져다주었다. 로스는 랭스턴 씨 댁에 사냥감을 가져다주었고 그에 대한 보답으로 마가 그것들을 요리했다.
그는 마차 안에서 리디아와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는 거의 그를 보지 못했다. 그는 대열을 따라가며 혼자서 일했다. 가끔씩 동물에 대한 그의 지식에 감탄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아픈 말을 돌보거나 정찰을 담당했다. 콜맨의 마차는 부바가 몰았다. 마차로 돌아오면, 로스는 그녀를 보지 않도록 일부러 피했다.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힐끗 눈길이 가면, 험악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곤 했다.
그녀는 그의 못된 성질을 대부분 큰 슬픔 탓으로 돌렸다. 그는 아내의 죽음 때문에 힘겨워하고 있는 것이었다. 아내, 그 빅토리아 콜맨은 대단한 존재였던 게 분명했다. 아나베스의 상세한 설명에 의하면 진짜 숙녀였던 것 같았다.
"때때로 태양이 정말로 밝게 비출 때면, 그녀는 어깨에 이 레이스 모양의 파라솔을 얹고 마차 좌석에 앉아 있곤 했지요."
아나베스가 레이스와 실크가 혼합된 본홍 파라솔을 활짝 펼쳤다. 리디아는 평생에 그토록 예쁜 물건을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아나베스가 파라솔을 접어 트렁크 안에 집어넣자 유감스러웠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 소곤거리며 얘기를 나누었어요. 그들이 말하는 모든 내용이 세상 다른 사람들에게 커다란 비밀이라도 되는 듯이 말예요."
아나베스가 깊이 한 숨을 내쉬었다.
"콜맨 씨가 아내를 바라봤던 눈길로 절 쳐다봐 주기만 해도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면 그 자리에서 그대로 녹아 버릴 거예요."
리디아는 그녀가 있는 방향으로 그가 던지는 표정에서 유쾌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일어난다는 즐거운 감정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너무나 갑작스럽게 그녀는 자기의 친아버지가 살아 있었을 때 얼마나 즐거웠는지를 기억할 수 있었다.
그들은 읍내의 커다란 집에서 살았었다. 넓은 유리창과 뜨개질한 커튼이 달린 집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자주 함께 웃음을 터뜨리곤 했다. 두 분이 이웃을 방문하는 일요일이면, 아빠는 엄마의 손을 꼭 잡곤 했다. 그녀는 두 사람 사이에 끼어 자신의 손을 양쪽에 나누어 쥐었던 일을 기억해 냈다. 두 사람은 그녀를 땅바닥에서 들어 올리는 장난을 해주곤 했었다.
아나베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콜맨 부인의 피부는 신선한 크림처럼 부드럽고 희었죠. 그녀는 커다란 갈색 눈 때문에 더 아름다웠어요. 머리카락은 반짝거리는 옥수수 빛이었고 그만큼 부드러워 보였어요. 지금까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머리카락이었죠."
리디아는 손을 들어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 보았다. 콜맨 씨의 마차로 온 이후, 마와 아나베스가 그녀에게 세정제를 가져다주었다. 그들은 피부가 따끔거릴 정도로 그녀를 문질러 닦아주었다. 그녀의 머리카락에 묻은 찌꺼기를 털어 내는 데에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했다. 다음날, 아나베스가 물통을 들고 있는 상태에서 두 사람은 간신히 그녀의 머리를 감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감겨진 머리라도 반짝거리는 옥수수 빛과 닮은 데가 있을 리 없었다.
콜맨 씨는 그날 밤 새 셔츠를 갈아입기 위해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가 머리가 감겨지고 몸을 씻은 그녀를 보고 놀란 것 같았지만, 그녀에 대해서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투덜거리는 목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그가 반짝거리는 옥수수 빛 머리카락에 익숙해 있다면, 자신의 머리카락은 그에게 충격이었음에 틀림없다는 것은 리디아는 알고 있었다. 부당하게도 그것이 그녀를 매우 괴롭게 했다.
"피곤하세요?"
아나베스가 자신의 얘기를 듣고 있는 리디아의 시선이 흩어진 것을 보고 물었다.
"마가 당신이 피곤하고 졸린 것 같으면 저더러 입을 닫고 쉬게 하라고 했어요."
리디아는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랭스턴가의 사람들과는 모두 즐겁게 지냈지만, 특히 매우 개방적이고, 정직하고..........참을성 많은 이 소녀와는 더 그랬다.
"아니에요. 피곤하지 않아요. 지난 며칠 동안 충분히 잤어요. 그런데 리가 깨어나면 새끼 곰처럼 배가 고플 것 같아요."
그녀는 요람을 대신해 사용하고 있는 상자에 손을 뻗어 아기의 등을 토닥였다. 자신이 이 아기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녀에게는 정말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머니를 여읜 후, 리디아는 다른 사람을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될까 의심스러웠다. 어쩌면 아기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존하며 그녀에게 상처를 줄 수 없기 때문에 이 아기를 사랑하는지도 몰랐다. 아기는 그녀에게 사랑을 되돌려주는 것 밖에 모를 것이었다.
리가 막 젖을 다 먹었을 때 마차가 멈추었다. 리디아는 잠옷 단추를 잠갔다. 바로 그때 마가 마차로 들어왔다.
"여기서 나가 보는 게 어때요?"
그녀가 리디아에게 물었다.
"일어나라는 건가요? 마차를 떠나 밖으로 나간다는 거예요?"
리디아가 불안한 시선으로 물었다. 대열의 다른 사람과 함께 했던 경험은 그레이슨 씨와 왓킨스 부인과 같이 있었던 게 전부였다.
그녀는 아직 다른 사람들의 눈길과 비난을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일어나고 싶지 않으세요?"
"그러고 싶어요."
리디아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제겐 옷이 없어요."
"내가 가져왔어요."
마가 보따리 하나를 툭 던지며 말했다.
"아나베스 옷이에요. 꼭 맞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런 잠옷을 입고 싶지 않다면 이런 옷이라도 입어야 해요."
리디아는 일어서면서 몸이 떨려 왔지만, 잘 수선된 양말과 반바지와 패티코트를 차려 입었다.
"옷이 조금만 큰 게 아니군요."
마가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 리디아의 빈약한 엉덩이와 허벅지를 살폈다.
"그런 몸으로 어떻게 아기를 담고 다녔는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그건 그녀의 가슴에 대해서는 맞는 말이 아니었다. 보디스가 가슴 위로 꼭 끼었다.
"이런..."
마가 과장되게 말했다.
"얼마나 꼭 끼는지 단추를 일단 잠가 봅시다."
리디아는 가슴이 터질 것 같았지만, 적어도 몸은 가려졌다.
루크가 그녀의 신발에 구두약을 발라 문지르고 끈을 갈아 끼웠다. 그녀는 아나베스가 머리를 빗겨 주는 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자, 예뻐요."
마가 자랑스러운 듯 말하고, 제대로 입혀졌는지 살펴보며 그녀의 배를 두 팔로 안았다.
"콜맨 씨가 오늘 잡은 메추라기를 내게 가져왔어요. 당신 아궁이에서 벌써 끓고 있죠. 그게 바로 그가 마차로 돌아왔을 때, 맛있는 음식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게 만드는 방법이죠. 그는 지금 말 있는 곳으로 가고 없어요. 리의 침대를 뒷문 가까이 옮겨 놓고 한동안 바깥에 앉아 있는 게 어때요? 신선한 공기가 기분을 새롭게 해줄 거예요."
두려움을 느끼며 리디아는 바깥으로 안내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녀는 바깥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에 엄청나게 놀랐다.
거의 일주일 동안 귀담아 들어왔던 소리들이 이제는 행동들과 맞아떨어졌다. 여자들은 모닥불과 저녁 식사를 요리하는 휴대용 오븐 위로 몸을 수그리고 있었다. 남자들은 말을 풀어 문질러 주고, 땔감을 나르고, 물을 퍼 올리고 있었다. 아이들은 마차 입구 사이를 뛰어다니고, 소리치며 놀고 있었다.
"루크가 당신을 위해 샘물을 길어 왔어요."
마는 사태를 추스르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커피 주전자에 물을 끓이는 게 어때요? 콜맨 씨가 고마워할 게 분명해요."
"네, 제가 할게요."
리디아가 금세 동의했다.
그녀는 할 수 있는 뭔가가 있다는 게 다행스러웠다. 사람들이 그녀를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사람들이 슬쩍 옆구리를 찌르며, 호기심 어린 눈길을 던지고, 쉬쉬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는 걸 알아챘다.
"난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해요. 하지만 당신이 날 필요로 하면 저쪽에 있다가 금세 달려올게요."
마가 말했다.
리디아는 홀로 남겨졌다. 그녀는 땔감을 집어넣고, 고소한 냄새를 풍기고 있는 국물을 저어 주고, 커피를 끓이고, 까닭 없이 리가 어쩌고 있나 살펴보느라 바빴다. 그녀는 뛰어다니며 여러 가지 일들을 마치자, 루크가 그녀를 위해 마차 밖으로 들어다 주었던 의자에 앉아, 석탄 불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목적 없이 눈길을 들었다가 그녀 쪽으로 던져진 호기심 어린 여러 시선들과 마주쳤다.
그런 그녀를 로스가 발견했다. 로스는 그녀가 저녁을 요리하는 일에 신경 쓰며 거기에 앉아 있는 걸 보고 죽은 듯 그대로 멈춰 섰다.
늦은 오후의 태양이 붉은 빛이 도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물들이고 있었다. 그녀의 두 뺨은 음식을 끓이고 있는 불꽃의 열기와 자의식 때문에 장밋빛이 되어 있었다. 손가락은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섬세했다. 풍성한 겉옷이 섬약한 뼈대와 부드러운 곡선을 숨기고 있었다. 그녀는 마치 엄한 부모에게 순종하며 거기에 앉아 있는 아이 같았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볼 때까지는.
그때 그런 환상이 산산이 부셔져 버렸다. 그녀는 여자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가 다가오는 소리를 듣자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급하게 몸을 돌리다가 의자를 넘어뜨렸다. 잠시 두 사람의 눈길이 고정되었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깊은 심연이 숨어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반짝거렸다. 방금 귀가 멍멍할 정도로 뻥 하는 소리를 들은 터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어디서 났는지 그는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목은 그를 쳐다보느라 약간 휘어져 있었다. 목은 길고 가늘었으며, 만져 보고 싶도록 연약해 보였다. 맥박이 뛰고 있는 목 밑둥에서 시작해, 그의 시선은 양 젖가슴 사이의 깊은 골로 내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실밥과 단추가 아기를 돌보는 풍만한 젖가슴을 지탱하느라 위태하게 팽팽해져 있었다. 그는 거기에서 눈길을 뗀다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한 손을 올려 맨 꼭대기에 달린 단추를 불안스레 만지작거렸다. 그런 손놀림이 그의 주의를 붙들었다.
"마는 제게 신선한 공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나 봐요."
"리는 어디 있소?"
그는 안달이 나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그걸 나타냈다. 그는 화가 났다. 그녀가 알고 있던 것만큼 사악하지 않고 건전해 보였으며, 눈 깜짝할 사이밖에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거기 앉아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걸 보고 기뻤기 때문이었다. 그는 제발 리의 입술이 그녀의 젖꼭지를 빨던 모습을 기억할 수 없기를, 젖꼭지의 색깔을 기억할 수 없기를 바랐다. 그런 조바심의 대부분은 그녀가 말을 할 때마다 혀로 입가에 슬쩍 침을 묻힐 때 나타났다.
"리는 바로 저기 있어요."
그녀는 임시로 만든 침대에 아기가 자고 있는 뒷문 쪽을 가리켰다.
"아기가 울면 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릴 거예요."
그녀는 푸른 옥양목 치맛자락에 손바닥을 감추고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그가 그녀에게 소리 지르지 않기를 바랐다. 그녀도 되받아서 고함을 질러대 자신을 더 욕되게 만들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기가 누워 있는 상자로 걸음을 옮겨 안을 들여다보았다. 콧수염 가에 언뜻 미소가 번졌다. 그가 가볍게 아기의 등을 토닥였다. 아기는 엎드려서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자는 걸 좋아했다.
로스가 시선을 돌리자, 리디아도 애정 어린 표정으로 리를 내려다보며 미소 짓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다시 마주쳤다. 이번에는 서로 눈길을 피하기 전의 아주 짧은 동안이었다.
"커피가 준비됐어요."
그녀가 모닥불 쪽을 가리켰다.
"고맙소."
그는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올가미 밧줄을 벗어 마차 밖의 말뚝에 걸어 두었다. 권총은 마차 바퀴에 기대 놓았다. 탄띠를 풀고, 허벅지의 가죽끈을 풀었다. 리디아는 그런 식으로 다리에 권총 케이스를 차고 다니는 남자를 본 적이 없었다. 그가 엉덩이에서 권총 케이스를 들어내는 걸 보자 그녀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손이 떨리기는 했지만 엎지르지 않도록 조심하며, 리디아는 커피를 따라 그에게 내밀었다. 그의 손가락은 길고 끝이 가늘었으며, 강해 보였다. 손가락 마디는 검은 털로 반짝거렸지만, 햇볕에 그을린 피부와 거의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 그가 컵을 받아가자 그녀는 얼른 손을 거두어들였다. 불안스레 다른 손으로 그 손을 비틀어댔다.
"국 냄새가 좋군."
"마가 끓였어요."
"음, 정말 좋군..."
"네, 그래요."
두 사람은 서로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는 말없이 커피를 다 마셨다. 캠프의 소음은 그들 주위에서 계속되었다. 그들은 그런 대부분의 소리에 무심한 채 고통스럽도록 서로를 느끼고 있었다.
"씻어야겠소."
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루크가 샘에서 물을 길어왔어요. 당신이 다 씻을 때까지 음식이 준비될 거예요."
그는 마차 뒤로 걸어가서 대야에 물을 부었다. 셔츠를 벗자, 왜 그토록 땀을 흘리고 있었는지 의아해졌다. 몇 번이고 반복해서 그는 머리와 가슴에 물을 끼얹었지만 열은 식혀지지 않았다.
리디아는 마리넬과 아틀란타 랭스턴이 그녀에게 뛰어올 때까지 물 튀기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땀에 젖은 마리넬의 지저분한 손에 인도산 붓꽃과 미나리아재비 꽃다발이 들려있었다.
"우리가 꽃을 좀 가져왔어요, 리디아"
마리넬이 씩 웃으며 말했다. 이틀 전, 마리넬은 리디아에게 전날 밤 제크가 뽑아낸 피묻은 이빨을 보여 주었었다.
"아주 예쁘군요."
리디아는 소녀가 내민 손에서 축축하고 한껏 드리워진 들꽃다발을 건네 받았다.
"맡아보세요."
마리넬이 리디아의 코로 꽃을 밀며 말했다.
"향기로운 냄새가 날 거예요."
수줍음을 잘 타는 아틀란타가 더 소리를 높여 말했다.
그녀는 이 소녀들이 무엇 때문에 왔는지 알고 있었지만, 그녀들의 재미를 망가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미나리아재비 한 송이를 코끝으로 가져가 흠뻑 냄새를 들이마시는 척했다. 꽃다발을 내리자, 코 끝에 매달려 있는 끈적한 노란색 꽃가루가 보였다. 두 소녀가 깔깔 웃어댔다.
"우리가 속였어요, 우리가 당신을 속였다구요."
두 소녀가 낭랑한 목소리로 반복했다.
"오, 이런! 무슨 짓을 한 거예요?"
리디아는 한 번인가 어머니와 함께 이런 놀이를 했던 기억이 났다. 다른 사람과 놀이를 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코에서 알랑거리는 얼룩을 닦아냈다.
"꽃을 들고 있으니까 옷이 더 예뻐 보여요. 그렇지 않아. 아틀란타?"
마리넬이 말하며 동생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물론이지."
"그런 것 같아요."
마가 끌어당겨 간신히 잠가 주었던 맨 윗 단추를 풀며 리디아가 말했다. 숨쉬기가 더 편해졌지만, 옷 사이로 팽팽하게 부풀어오른 젖가슴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꽃줄기를 단춧구멍에 집어넣자, 보기 좋게 부분적으로 젖가슴 사이의 오목한 곳을 덮어 메웠다.
거울에 비춰 보면, 육감적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 때 그녀는 육감적이거나 유혹적이라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남자가 있었다. 아이를 낳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연애 같은 것에는 순진할 정도로 아는 게 없었다. 그녀에게 있어 짝을 짓는다는 것은 강제로 이루어지는 역겨운 행위였던 것이었다. 그녀는 실제로 그런 짝짓기를 환영할 여자가 이 세상에 있으리라고 상상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마차 반대편에 있던 로스는 이들의 말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자신의 여러 가지 생각 때문에 마음이 몹시 산란한 상태였다.
마차로 돌아와 저녁식사와 향긋한 커피가 끓여져 있다는 걸 발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저 아가씨는 자기에게 그 정도의 빚은 충분히 지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녀를 받아들인 걸까, 그럴까? 그녀에게 이슬을 가리고 잘 만한 곳이 없자, 그녀를 받아들여 '나'의 침대에서 여러 낮과 밤을 보내도록 하여 그녀의 고달픔이 사라지도록 도와준 것일까?
그는 새 셔츠를 입었다. 그는 그녀가 리 때문에 좋아지고 있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그녀에게서 흠을 잡을 수 없었다. 아기는 나날이 조금씩 자라고 있었다. 그녀가 아기에게 젖을 먹인 후로 아기는 통통하게 살이 오르고 있었다. 더 이상 오그라들고 아파 보이지 않았다.
면도용 거울을 치켜들고, 로스는 젖은 머리를 뒤로 빗어 넘겼다.
마지막으로 빗질을 해본 게 언제였던가? 그는 기억할 수 없었다. 빅토리아가 말하길, 신사라면 식사 시간에 자신을 보기 흉하지 않게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작업복을 입고 있었다. 대체 왜 모양을 내야 한단 말인가? 저 아가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라구. 하지만, 잠시 동안 둘은 함께 가까이 살게 될 것이었다. 그는 두 사람이 서로에게 더 친절해질 수 있다면 지내기가 휠씬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마가 그녀에게 두 소녀를 보냈다.
리디아는 음식 맛을 보기 위해 숟가락을 국물에 집어넣었다가 한 모금 홀짝 마셔 보았다.
맛이 좋았고 거의 다 끓은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그 목소리는 남부 사람 특유의 느린 말투에다 힘이 있고 가락이 느껴졌다. 위협적인 느낌이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디아의 심장 박동은 빨라졌다. 그녀는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지 않기를 원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레오나 왓킨스와 그녀의 딸로 생각되는 한 처녀가 눈길을 앞으로 똑바로 주고, 콧날을 바싹 치켜든 채 활보하며 지나갔다.
그 처녀는 위험을 무릅쓰고 리디아를 호기심 어린 눈길로 힐끔 쳐다보기까지 했다. 그러자 왓킨스 부인은 질책하듯 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
방금 리디아에게 인사말을 건넨 남자가 단지 그녀를 놀릴 뜻이었다면, 그녀도 그렇게 받아 쳐주리라.
리디아는 자신의 두려움을 내보이길 원치 않았기 때문에, 대담하게 도전적으로 눈길을 들었다.
남자는 젊었다. 콜맨 씨보다 몇 살은 어릴 것 같았다. 남자가 머리에서 챙이 넓은 모자를 벗자, 보기 좋게 말려 올라간 부드러운 갈색 머리카락이 나타났다. 남자는 하얀 자켓과 청색 조끼를 차려 입고 있었다. 조끼 주머니에는 금시계 줄이 달랑거리고 있었다. 눈은 슬프고, 사려깊으며, 정다워 보이는 푸른색이었다. 피부는 뺨을 제외하고는 창백했다.
리디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호기심, 어쩌면 상냥함일 수도 있는 표정을 발견하고 놀랐다. 비난의 흔적은 없었다.
"이렇게 나타난 걸 허락해 주십시오. 리디아 양. 저는 윈스톤 힐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모세구요."
남자가 옆에 서 있는 키 크고, 당당한 한 흑인을 가리켰다. 그는 하얀 와이셔츠에 수수한 검은색 저고리를 차려 입고 검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머리카락과 눈썹은 희끗희끗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지 않아 영원히 젊을 것 같은 인상이었다.
리디아는 두 사람의 정중한 태도에 끌려 첫 번째로 머리에 떠오른 생각을 말해 버렸다.
"제 이름은 알고 계실 거예요."
윈스톤 힐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 퍼져 있는 소문에 대해서는 사죄드리고 싶군요. 하지만, 당신과 당신의 아름다움에 대한 소문은 모두들 들었답니다. 이 참에 그런 소문이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걸 말씀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
그녀는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용모에 대해 그런 찬사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가 말했다.
"저두요. 콜맨 씨의 아들을 돌보고 계시다구요? 최근에 당신 자신의 아들을 잃은 것을 대신해 복 받을 일을 하고 계시는군요."
그녀는 일찍이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 듣기 좋은 말이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매무새 좋은 그의 입술에서 천천히 떨어져 나왔다. 꿀처럼 달콤하게.
"고맙습니다. 콜맨 씨의 아기에게는 별 문제 없어요. 무척 예쁜 아기랍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전 아기 어머니의 아름다움과 용기를 찬탄했습니다. 아기 아버지의 용감함은 말할 것도 없구요."
남자가 린넨 손수건을 입으로 가져가더니 여러 번 기침을 해댔다. 기침 때문에 당혹스럽고 실망스런 기분인 것 같았다.
"모세와 전 기꺼이 당신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자 합니다. 저희가 대접할 수 있는지, 언제라도 말씀해 주십시오."
그의 틀에 박힌 초대에 혼란스러워진 리디아가 말을 더듬거렸다.
"고맙습니다. 그럴게요."
"그러길 바랍니다."
그의 미소는 밝고 솔직했다.
"오! 안녕하시오. 콜맨 씨?"
리디아는 시선을 돌렸다. 로스가 등 뒤의 마차 끄트머리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힐 씨가 부드럽고 악의 없어 보였다면 로스는 딱딱하고 굳어 보였다. 간결하게 인사를 나누는 그의 턱이 날카롭게 치켜져 올라갔다.
"힐 씨, 모세."
"저희가 저녁을 못 드시게 하고 있나 보군요, 리디아 양."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그가 앞으로 몸을 수그리더니, 그녀의 한 쪽 손을 쥐고, 입술로 가져갔다. 그의 입술이 손등을 스쳤다. 그녀는 그가 모자를 다시 쓰고, 그녀에게 고개를 까딱해 보이고 나서, 옆에 모세를 세우고 성큼성큼 사라지는 걸 당황스런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키스 당한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행동에 어색해하며, 그녀는 어깨너머로 힐끗 콜맨 씨를 쳐다보며 다른 소매로 손등을 닦았다.
그의 얼굴은 천둥을 몰고 오는 구름처럼 어둡고 험악했다. 저렇게 화난 표정을 하고 있을 때면, 그의 아랫입술은 콧수염에 가려 거의 드러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저녁 준비 됐어요."
불안하고 낮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그녀는 불가로 돌아서서, 마가 그들을 위해 놓아둔 도자기 접시 하나를 집어 들고, 정성 어린 손길로 국물을 퍼 담았다. 그녀는 다시 그와 눈이 마주치자 접시를 그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손을 뻗어 그것을 받지 않았다. 대신 뻣뻣하게 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손은 둥글게 주먹을 쥔 채 뭔가를 칠 듯이 아래로 내뻗고 있었다. 이를 앙 다물자 턱뼈가 툭 튀어나왔다. 이미 태양이 지고 땅거미가 내려앉아 있었다. 보라색이 감도는 빛이 그의 얼굴을 더 어둡고 언짢아 보이게 만들었다.
그의 초록 눈동자가 어스름 속에서 빛났다. 리디아는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얼굴에서 젖가슴 사이에 꽂힌 꽃으로 미끄러지는 걸 보았다. 그녀는 당황되어 그에게 적지 않게 겁이 나 있었으므로, 불규칙하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옷 속의 젖가슴과 살에 닿은 꽃이 살아 있는 듯 흔들거리며 떨렸다.
그가 오랫동안 말없이 쳐다보았다. 그녀는 그가 어서 눈길을 거두기를 바랐다. 손에 접시를 들고 있지 않다면, 불만이 가득 찬 저 빌어먹을 눈길을 피할 수 있으련만.
"단정치 못한 창녀 같으니라고."
그가 모여드는 어둠을 가로질러 된소리로 내뱉었다.
"당신이 과거에 어떤 여자였는지 어디서 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집 지붕 밑에서 지내는 한, 그리고 내 아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한, 손님을 끌어들일 생각은 마시오."
빅토리아라면 그런 말에 졸도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리디아는 그러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분노 때문에 성난 황금빛으로 반짝거리며 머리카락은 바스락거리며 타 버릴 것 같았다.
그녀는 그가 있는 쪽으로 세 걸음 다가가서 그의 얼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들고 있던 접시를 그의 옆구리로 탁 밀쳤냈다. 그녀가 물러나면서, 접시를 놓아 버리기 전에 그는 뜨거운 음식이 든 접시를 겨우 잡을 수 있었다.
그녀는 매몰차게 홱 돌아서면서, 부츠가 신겨진 그의 정강이를 치맛자락으로 쓸었다. 그녀는 그의 하체에 뜻 없는 여운을 남기고, 한걸음에 쏜살같이 마차 안으로 뛰어 들어가, 텐트 덮개를 내려버렸다.
로스는 욕설을 퍼붓고 찌르르 떨리는 갈비뼈를 문지르며,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국을 입안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 거의 씹을 수도 없었지만, 씹을 때마다 성난 발톱을 긁어대는 짐승처럼 분노에 못 이겨 으르렁거렸다.
"빌어먹을 계집."
그가 접시를 한 쪽으로 밀어 버리고 커피를 따르며 말했다.
그렇게 꼭 끼는 옷을 입고 돌아다니고, 여자같이 차려입고 다니는 그 사기꾼 힐과 희희낙락 거려서 뭘 하고자 했을까? 내일이면 나가 버리겠지. 난 리를 돌볼 방법을 찾게 될 테고. 어쩌면 쌍둥이를 낳은 부인이 젖을 떼고 리에게 젖을 먹이도록 할 수 있을 거야. 만약 아들의 뱃속에 소젖을 집어넣어야 한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저 여자를 떼내어 버릴 수 있겠지...
"당신은 내가 믿었던 것만큼 똑똑하지 못하군요."
화가 난 채로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방해하며 어둠 속에서 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가 불가로 걸어왔다. 어깨에 행주를 걸치고 있었다. 냄비와 주전자를 문질러 녹을 닦아내느라 두 손은 벌겋게 달아 있었다.
"다 드셨어요?"
그녀가 그의 더럽혀진 접시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그는 머리를 끄덕이고 커피를 한 모금 더 홀짝였다. 마가 그의 접시에 물을 부어 행주로 닦았다.
"국물을 아끼면 내일까지 먹을 수 있을 것 같군요."
그가 불편한 기색으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래요."
여자가 계속했다.
"내가 처음에 생각했던 것만큼 당신이 영리하지 못하다는 건 유감이에요."
로스의 숨소리가 거칠어졌지만, 그는 미끼를 물었다.
"내가 왜 영리하지 못하다는 거죠?"
그 말은 마가 필요로 하는 모든 기회를 제공했다.
"당신은 부인이 죽은 후 아들을 돌볼 유모를 얻었으니 축복 받은 거예요. 리는 그 아가씨가 없었다면 지금쯤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당신은 그녀에게 손톱 만한 동정이나 친절도 보여 주고 있지 않군요."
"동정!"
로스가 우리에 갇힌 짐승처럼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면서 소리쳤다. 대열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생활을 잘 지킬 수 없다는 걸 깨닫고, 그는 급속도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친절이라구요? 저 여잔 이 대열의 모든 남자들 앞에서 자기를 과시하고 있다구요. 그런 점잖치 못한 옷을 입고...."
그가 더듬거리다, 짧게 끝맺었다.
"여봐란 듯이 자랑하고 다닌 다구요."
"힐 씨 얘기라면, 내가 다 봤어요. 그가 먼저 그녀에게 말을 걸었어요. 그리고 그녀는 벌벌 떨며 주눅이 들어 그를 쳐다보는 것조차 겁을 낸 것 같았어요."
로스가 이빨로 콧수염을 잘근잘근 씹으며 잔뜩 화가 나서 불가를 쿵쿵 소리 나게 돌아다녔다.
"그녀의 옷에 관한 얘기라면, 제가 그녀에게 그 옷을 입혔어요. 우리 애들이 그녀에게 그걸 가져다 줬죠. 입고 있던 옷은 넝마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보다 더 심했소. 솔기가 터질 것 같았다구요."
마는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입술을 비틀며, 짐짓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창녀요. 난 그녀가 나나 내 아들 곁에 얼씬거리는 걸 원치 않아요."
마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녀는 그의 한쪽 팔을 잡고 돌려 세웠다. 그녀의 키는 거의 그만큼 컸다.
"그 딴걸 어떻게 알고 있죠? 그녀는 창녀처럼 얘기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내 생각에 그녀의 말씨는 도시 풍이에요. 그리고 그녀의 손놀림을 본 적 있어요? 품위 있잖아요, 먹는 태도도 올바르구요. 그녀처럼 숙녀답게 걷고 행동하는 창녀는 본 적이 없어요."
마는 그의 팔을 놓아주고, 자신은 보다 경건하게 등을 꼿꼿이 세웠다.
"당신은 외모와 가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것 같군요. 난 절대로 그러지 않아요. 항상 그 사람 자체를 생각하죠. 그 사람의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하지만 당신은 그녀를 너무 쉽게 판단하는군요. 그녀는 어쩌면 당신이 모욕해서는 안 될 사람의 딸일 수도 있어요. 그래요, 그 아가씨는 곤란을 겪었고 아기를 낳았어요. 운명의 장난이었죠. 당신과 콜맨 부인은 결혼하기 전에 그녀 아버지의 마구간 건초더미에서 뒹굴지 않았나요."
로스의 입술이 가늘어졌다.
"빅토리아는 그런 여자가 아니었소."
그가 짤막하게 말했다.
마는 그가 했던 말과 말할 때의 오만한 태도 때문에 웃고 말았다.
"모든 여자들이 자기 남자와는 그런 식으로 해요. 그리고 당신의 여자가 그러지 않았다면, 그녀는 그랬어야 했어요."
"안 들은 걸로 하겠소"
"죽은 사람 얘기나 하려고 여기 온 게 아니에요."
마가 말했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러웠다.
그는 비극을 겪은 남자처럼 보였다. 그녀는 그 이유를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제크도 그녀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들은 어젯밤 아이들을 모두 밖에 내보내 놓고 마차에서 잠자리를 손보며 그 얘기를 했던 것이다.
"당신에게 저 아가씨가 당신 아기의 생명을 구했다는 걸 상기시켜 주러 왔을 뿐이에요. 그녀가 어떤 여자이건 말예요. 그녀는 당신이 자신을 받아들여 준 것에 보답하려고 오늘밤 정말이지 무척 애썼어요. 멋진 저녁 식사가 당신을 기다리게 하고 싶었던 거죠."
그 말은 그다지 사실에 가깝지 않았다. 그건 마의 생각이었지 리디아가 생각해 낸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는 필요할 때면 진실을 다소 과장하는데 인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당신은 말라깽이 왓킨스 부인처럼 주제넘고 도도하게 행동하고 있을 뿐이군요."
그녀는 틀린 말이 아니지 않느냐는 듯 어깨를 으슥해 보였다.
"당신은 저 아가씨를 당신 곁에 두어서 행복하게 해주는 법을 모르는 것 같군요. 그녀는 언제라도 여기를 떠나 버릴 수 있어요. 당신 아들을 남겨 두고요. 내가 당신이라면, 오늘밤 당장 행동을 고치겠어요. 콜맨 씨"
그녀는 매정하게 돌아서서 쿵쿵 사라져 버렸다.
로스는 불가에 웅크리고 앉아 주전자의 커피를 다 마셨다. 흩어져 있는 장작 불꽃이 하나하나 사그라지고 있었다.
짓궂은 아이들은 각자의 마차나 마차 아래의 침낭 속으로 기어들었다. 떼를 지어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마차로 흩어졌다. 사람들이 말을 걸어 왔으나, 그는 종잡을 수 없는 산만한 목소리로 대답할 뿐이었다. 그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가 홀로 우울해 하고 있는 것으로 여겼다.
사방은 조용했다. 아주 가벼운 미풍이 고용한 경비병 스코트(이 젊은이가 알려준 유일한 이름이었다)가 그레이슨 씨에게 오늘밤 야영지로 정하자고 제의했던 공터 주위의 사시나무와, 느릅나무, 참나무, 이집트 무화과나무의 이파리를 흔들고 있었다.
마 랭스턴이 했던 말에는 특별한 뜻이 담겨 있었고, 로스 콜맨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단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 뿐이었다. 쳐다볼 때마다 자신의 출신을 상기시키는 누군가를 비호하고 있다는 것이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다.
그는 그 동안 더렵혀진 모든 과거로부터 도망쳐 오고 있었다. 빅토리아는 일시적으로 그걸 잊게 해 주었다. 그런데 지금 거친 머리카락과 도전적인 눈매, 육감적인 육체를 가진 한 아가씨가 그가 그토록 간절하게 잊고 싶었던 것들을 기억나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가 없다면 리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난 아기를 겁내고 있어. 아기는 너무 어리단 말야. 난 아기들에 대해 아무것도 아는 게 없잖아. 내가 아는 것이라곤 그 애가 어머니의 사랑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정도뿐이잖아. 난 무시당하는 것이 삶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며 자랐어. 그렇다고 내 아들에게서 여성의 사랑을 빼앗을 수 있을까? 어떤 여성의 돌봄이라도? 그리고 저 아가씨는 리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어. 로스 넌 그걸 알고 있잖아.
그는 빅토리아를 만난 이후로 하지 않았던 욕설을 내뱉었다. 그것을 반복한다는 것이 매우 기분 좋게 느껴졌다. 무심결에 그는 불씨를 묻었다. 그는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끝내자, 마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마차 안에는 아직도 등불이 켜져 있었지만, 불꽃이 작아지고 있었다. 그는 뒷문으로 걸어가, 침을 꿀꺽 삼키고 땀 밴 손바닥을 허벅지에 문질러댔다.
리디아는 젖을 먹고 있는 리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낮게 노래를 불러 주고 있었다. 아기는 어머니의 자양분을 박탈당했던 게 틀림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배를 채워 본 적이 없었던 게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아기는 조그맣게 주먹을 쥐고 그녀의 젖가슴을 콩콩 치면서 때때로 즐거운 듯 발길질을 해대면서, 소리 나게 젖을 빨아댔다.
리디아는 크림 빛 피부와 옥수수 빛처럼 반짝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그 여자가 이 아기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아기에게 젖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얄궂기는 하지만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빅토리아 콜맨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상적인 여자라는 인상을 주었던 것 같았다. 그 여자의 이름이 얘기되는 걸 들을 때마다 리디아는 자신감이 엷어지곤 했다. 하지만 리는 '그녀'를 사랑하게 될 것이었다. 친 엄마가 아니라, 그녀를.
그녀는 그 사실을 리 아버지의 독선적인 얼굴에 똑바로 들이밀 수 있는 용기를 갖기를 바랐다. 그는 그녀를 수치스런 이름으로 불렀다. 눈물이 그녀의 눈에서 샘물처럼 솟았지만 이제, 처음 마차로 이끌려 왔을 때처럼, 그녀는 눈물이 떨어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 애썼다. 난 울지 않을 거야. 난 그들 모두가 생각한 그런 사람이 아니잖아.
'난 그런 여자가 아니야!'
그녀는 생각했다. 난 내게 일어났던 일에 속수무책이었어. 내가 얼마나 애썼는지 하나님은 아실 테지만. 얼마나 수없이 기절할 것 같은 순간들과 싸웠던가? 온몸에 검푸른 멍이 들도록 꼬집어대며 잠들지 않으려 애썼던가? 때로는 이겨냈지만, 너무 여러 번 이기지 못하고.....그녀는 눈을 감았다. 고통스럽고 수치스런 기억 때문에 부르르 몸이 떨렸다.
그런 순간들에 얼마나 죽어 버리기를 원했던가. 하지만 그때 자살했더라면, 엄마의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이 아기를 만나지 못했겠지. 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은 삶이 아니었어. 얼마나 치욕스러웠던가. 그래서 도망쳐 나오지 않았던가.
리처럼 예쁘고 천진한 어린것이 그토록 치욕적이고 거친 행동을 통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게 어떻게 가능할까?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는 콜맨 씨는 빅토리아를 때리기도 했을까 궁금해졌다. 리디아가 상처받았던 것처럼 그녀도 상처받았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서는 클랜시처럼 발정 나, 날뛰는 모습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그녀는 그가 그토록 숭배했다던 빅토리아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상상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한 아나베스의 설명이 타당하다면 말이다.
텐트 덮개가 열어젖혀지고, 그가 마차 안으로 들어오면서 무거운 부츠 소리가 들려왔다. 그녀는 순식간에 고개를 돌렸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펄럭였다가 푹신푹신한 망토처럼 등과 어깨의 맨살에 다시 내려앉았다.
로스는 암송할 준비가 다 되어 있던 말이 목구멍에 들러붙어 버린 것 같았다. 한 번 입을 벌려 보았으나 소용이 없자 텐트 덮개를 탁 소리가 나게 닫았다. 리디아는 등을 마차 입구 쪽에 대고 앉아 있었다. 그에게 신경질이 솟구치도록 만들었던 그녀의 옷은 상체가 벗겨진 채 허리께에 뭉쳐 있었다.
부드럽게 이랑 진 등뼈를 따라 허리를 형성하느라 말끔하게 쏙 들어간 곳으로 그의 눈길이 이어졌다.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무슨 일인지 물어보는 표정을 지었다. 살구 빛 어깨와 황갈색 머리카락 너머로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입술은 촉촉하고 약간 벌어져 있었다.
"뭘 하고 있는 거요?"
은퇴한 삼류 가수의 목소리처럼 쉰 소리가 흘러나왔다.
"리가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젖을 먹이고 있는 거예요."
그녀는 아주 낮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목소리는 그의 마음을 산란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 여자는 도대체 눈곱만큼이라도 부끄러움을 가지고 있지 않을 걸까? 들어오기 전에 노크를 하지 않아 사생활을 침입했다고 왜 소리치며 대들지 않는 걸까? 하지만 그랬다면 정말로 날 미치게 만들어 버렸을 수도 있지. 이건 내 마차잖아, 제기랄!
저 여자는 내 눈에 타오르는 노여움을 보았던 게 틀림없어. 고개를 돌리더니, 목을 움츠리고 가슴에 매달려 있는 아기를 내려다보니 말야. 로스는 잠시 전신이 뜨거워지고 시야가 가려지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시선을 다시 돌려 자신을 쳐다보자 그는 얼른 눈을 깜박거렸다.
"뭘 원하시는 거죠?"
그는 어색하게 걸음을 옮기며 웅크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저....."
그는 사과하고자 했던 말을 하기 시작했으나 더 이상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얘기를 좀 하고 싶소."
이 말은 어느 정도 그의 권위를 세워 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것이 그녀가 몸이 간지러울 정도로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할 때처럼 그를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다. 고개를 돌려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시선은 흔들림 없이 그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도대체 왜 그녀는 몸을 가리지 않는 걸까? 그가 볼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등뿐이었지만, 그의 상상력은 날개를 단 듯 뻗어나갔다. 빅토리아라면, 방에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게 누구라도 저런 식으로 아기에게 젖을 먹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그 생각을 옆으로 밀쳐 버렸다. 빅토리아를 생각하기만 하면, 해야 할 말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고맙소."
그가 짧게 말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를 응시하다가 조용하게 대꾸했다.
"무엇에 대해서 말인가요, 콜맨 씨? 내가 당신 마차로 남자들을 끌어들여 당신과 리가 보는 앞에서 자지 않았다구요?"
"빌어먹을"
그는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려는 말을 비틀어 막았다.
"나는 지금 당신에게 친절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소."
"친절요? 내가 매춘부라도 되듯 넌지시 내비치고 있는 게 친절을 베푸는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그건 너무 심한 말이었소."
"그래요? 당신이 생각하기에도 그건 너무 심한 말이었다구요?"
"그렇게 빈정거리지 마시오"
"당신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왜 갑자기 내게 친절해지기로 마음을 굽힌 거죠? 날 더 잘 다루는 남자에게로 도망쳐서 리가 굶어 죽게 내버려 둘까봐 겁이 났나요?"
로스는 두 가지 때문에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먼저,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두 번째, 그는 이토록 조그맣고 섬세하게 생긴 그녀의 몸 안에 불같은 성질이 들어 있는 걸 보고 순간적으로 말을 잃어버렸다.
리디아는 너무 심하지 않았나 걱정이 되기도 하고 그가 왜 진작 그녀에게 손찌검을 하지 않나 의아해하면서,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 잠들어 있는 아기를 젖가슴에서 안아 올렸다.
그녀가 등을 두드려 주지도 않았는데, 아기는 안아 올리자마자 트림을 했다. 그녀는 낮은 좌대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고, 아기를 천천히 상자에 뉘고 가벼운 담요로 덮어 주었다.
로스는 그녀가 부드러운 플란넬 옷을 집어 앞을 가리는 걸 지켜보며,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더니, 그녀는 보디스를 끌어올려, 소매에 어깨를 집어넣고, 단추 위로 고개를 수그렸다. 잠글 수 있는 단추를 모두 잠그자, 그녀가 일어서서 돌아서더니 그를 쳐다보았다.
"뭐가 고맙다는 거였죠?"
"내 아들의 생명을 구해 줘서 정말 고맙소..."
그가 팽팽하게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리디아는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의 얼굴에 노여움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지만, 위선은 없었다. 순간적으로 그녀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는 나를 좋아하지 않지만 아들은 사랑하지 않는가. 그의 감사 인사는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녀는 아기를 힐끗 내려다보고, 속삭이듯 낮게 말했다.
"어떤 면에서는 아기도 제 생명을 구했어요."
다시 남자에게 눈길을 들고, 그녀가 말했다.
"리 때문에 전 더 이상 죽고 싶은 마음이 없어졌으니까요. 네게 젖이 없었다면, 아기는 살지 못했을 거예요. 제 생각엔, 콜맨 씨, 우린 서로 주고받은 것 같군요."
그녀가 젖 얘기를 하지 않았다면 그는 뭐든 주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한, 그의 눈은 젖의 원천을 찾아 두리번거리지 않을 수 없었다. 풍만하게 튀어나온 둥근 젖가슴 위로 여전히 옷이 팽팽히 당겨져서, 젖꼭지를 납작하게 누르고 있었다. 그건 외설스럽고 육감적이지만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는 숨을 죽이고 계속해서 쳐다보지 않을 수 없었다.
리디아는 그의 얼굴에 드러난 당황스러운 표정을 즉시 알아챘다.
"죄송해요."
그녀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이 옷이 정숙해 보이지 않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당신 기분을 상하게 할 의도는 없어요."
그녀는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 양손으로 가슴을 감쌌다.
그녀의 손가락들이 부드러운 살을 눌러 열 개의 깊은 구멍을 만들어냈다. 그는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 얌전히 눌려진 오돌토돌한 젖꼭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빌어먹을!
로스는 속으로 그렇게 외치고는 사타구니가 꿈틀거리는 걸 지그시 눌러 참았다. 그는 힘겹게 눈길을 돌렸다. 그러나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에 걸려들고 말았다.
"잘 자시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처럼 필사적으로 애쓰며 힘겹게 말했다.
"마차 아래에서 주무시게 해서 죄송해요. 많이 불편하시죠?"
그러나 마차 안의 그녀 옆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더 편안했다.
"아니오"
그가 짧게 대답했다.
그는 작별 인사가 그녀의 귀에 닿기도 전에 성급하게 입구를 반쯤 빠져나가고 있었다.
잠시 후, 자리에 누워 별들을 쳐다보며, 로스는 허리 아래에서 죄어 오는 느낌 때문에 혼자 욕설을 중얼거렸다. 그녀를 매춘부라고 비난한다면 난 뭐지? 내 육체가 어떻게 이런 식으로 배반할 수 있는 거지? 난 아내를 사랑했고, 아내가 죽은 지는 겨우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았는데.
빅토리아가 아기를 낳을 거라는 걸 알게 된 날부터 여자와 함께 지내지 않았다는 것이 유일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사항이었다. 빅토리아는 임신 중에 아내로서의 의무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미안해하며 요청했었다. 그는 즉시 동의했다. 그녀의 민감한 감수성은 그에게 그리움을 더 크게 했던 한 가지였다. 게다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선적인 그녀의 아름다움까지. 그가 그녀 옆에 누워 밤마다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그녀를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분적으로 신사의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했다. 정부를 갖는다는 건 생각해 볼 수도 없을 만큼 로스는 빅토리아를 사랑했다.
하지만, 이제, 여러 달의 금욕 생활을 지내고 나니, 그의 몸은 여자의 육체에 확실한 반응을 나타내고 있었다. 살아 숨쉬고 있는 남자가 그런 반응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비난받을 수 있단 말인가? 빌어먹을! 그것은 그의 잘못이었다. 그는 몸의 그 부분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는 마음도 통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리디아, 그녀의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등 뒤에 나풀거리는 머리카락, 등뼈가 완전하고 유연하게 반으로 나뉘어진 뒷모습, 허리에서 빈약한 엉덩이로 흘러내린 부드러운 곡선, 손등으로 눈을 비비며 떠오르는 영상을 지워 버리려 애썼지만, 그녀의 모습과 향기와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리디아는 동이 트기 직전에 깨어났다.
리는 아직도 자고 있었다. 그녀는 아나베스의 옷인 잠옷만 입은 채 그녀의 닳아빠진 신발을 꿰었다. 엉성한 머리카락을 한데 묶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겨우 모양새를 갖추어, 빅토리아의 소유였던 화장품 그릇에서 살짝 훔쳐온 핀으로 뒤꼭지에 고정시켰다. 그녀는 다른 물건에는 전혀 손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핀을 가져오지 않을 수만 있었다면, 절대 그러지 않았을 것이었다.
마와 아나베스가 그 여자의 물건 대부분을 꾸려 안 보이는 곳에 넣어 두었다. 리디아는 기뻤다. 빅토리아의 흔적이 그녀에게 자신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상기시킬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꼭 끼는 옷을 힐끔 내려다보며, 그녀는 불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는 빅토리아의 옷을 입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콜맨씨는 아내와 관련된 일이라면 사람이 달라졌다. 그는 죽은 아내 옷을 리디아에게 주지 않았다.
어떤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의견을 목소리 높여 주장하는 데에 실패한 적이 없는 마조차도 감히 그런 제안을 하지 않았다. 마는 그가 절대로 그 생각에 수긍하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옷이 꽉 끼어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리디아는 텐트 덮개를 말아 올리고 마차 밖으로 나갔다. 태양이 지평선 위로 희미하게 드리운 나무 꼭대기 위에 막 떠오르고 있었다. 몸을 숙이고 불길을 일으키고 있던 로스가 놀라 위를 쳐다보았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리디아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를 보고 놀라워하는 그의 표정이 그녀를 초조하게 만들었다. 저 남자는 날 영원히 마차 안에만 숨겨 둘 작정이었나? 편리하게도 그녀는 자신이 불과 ? 시간 전에 이 안전한 감옥을 떠나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그의 눈길과 마주치지 않고, 그녀는 뒷문으로 사라져 땅바닥에 내려섰다.
"안녕하시오?"
"커피를 타 드릴게요."
그는 그녀의 냉담한 반응에 화가 났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이렇게 해왔다는 듯이, 그리고 이건 정상적인 일이며 평범한 것을 벗어난 것이 전혀 아니라는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그는 캠프를 둘러보았다. 가까이 모여 있는 다른 모든 마차의 부부들은 하루의 여행이 시작되기 전에, 부드럽고 은밀하게 얘기를 나누며 아침의 여러 가지 허드렛일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녀가 에나멜 주전자에 숟가락으로 커피를 넣자 그의 눈길이 그녀에게 돌아왔다. 겉으로 보아서는 그래, 모든 것은 괜찮아 보여. 하지만, 제기랄, 우린 부부가 아니지 않은가. 그는 루크 랭스턴처럼 어색하고 어설픈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사근사근한 태도가 그로 하여금 그런 식으로 느끼게 만들었다는 생각에 화가 났다.
"난 면도를 해야겠소."
그녀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턱에는 간밤에 자란 수염이 까맣게 덮여 있었다. 까만 콧수염을 쳐다보며, 그녀는 저걸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졌다. 그 동안 그녀가 알았던 남자들은 하나같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단지 너무 게을러서 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에 난 털이 성가셔지기 시작하면 남자들은 헛되이 문지르곤 했다. 로스의 콧수염은 잘 다듬어져서, 말끔하고 깨끗했다. 숱이 많기는 했지만, 털 하나하나가 부드럽게 반짝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밀가루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비스킷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수염을 깎으며 마차 뒤켠에 서 있는 동안, 그녀는 튀긴 베이컨과 비스킷으로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 그녀는 남은 베이컨 조각으로 진한 고기국물을 만들기도 했다. 그녀가 끓인 커피는 그가 여지껏 손수 끓여 마셨던 것보다 훨씬 더 맛이 좋았다. 그는 그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빅토리아가 끓였던 것보다도 더 맛있었다. 빅토리아는 그의 입맛에 딱맞을 만큼 진하게 끓인 적이 한번도 없었고, 그 차이를 알지 못했다. 빅토리아는 커피 대신 차를 마셨었다.
그는 아침 식사에 대해 그녀에게 감사하다는 말도 칭찬의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긴장된 침묵 속에서 아침을 먹었다. 그는 자신의 접시를 다 비우고 그녀가 물어보지도 않고 다시 접시를 채워주자, 그것마저 모조리 해치웠다.
"오늘이 무슨 요일이죠?"
리디아가 그릇을 씻어 꾸리며 그에게 물었다.
"무슨 요일? 목요일이오."
"마 얘기로는 일요일에는 행군하지 않고 대부분 빨래를 한다더군요. 그때까지 기다렸다가 리의 기저귀를 빨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들은 콜맨 씨의 마차에 들어 있는 트렁크 가운데 하나에 꾸려둔 아기의 옷과 기저귀를 찾았었다. 빅토리아는 아기에게 그런 것들이 필요하게 되리라는 걸 알고 미리 준비해 두었던 것이다.
아나베스가 매일 밤 리디아를 위해 더러워진 기저귀를 가져다 빨아 주었지만, 젖은 기저귀를 넣어둔 바구니에서는 냄새가 나고 있었다. 그녀의 출혈은 지난밤에 멈췄지만, 아나베스와 마가 가져가지 않은 패드를 헹구어야 했다. 패드를 깔끔하게 처리하는 건 어려웠지만, 엄마는 그녀에게 청결을 교육시켜 주었었다. 그녀는 랭스턴가 사람들이 그녀를 데려왔을 때에 말할 수 없이 지저분했었다. 이에 대해서 그녀만큼 개탄스러워한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저녁 식사 후에 물을 좀 덥힐 거예요. 빨아서 밤새 널어 두면, 마를 거예요."
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 상자를 마차 안에 놓아두고 있는데, 리의 배고파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정확하죠."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난 물을 부어 불을 끄고 말들이 어떤지 알아보겠소."
로스는 성큼성큼 걸어가며, 다가오는 날에 대해 그토록 유쾌한 느낌이 들고 있다는 사실과 그녀의 안색이 이른 아침의 햇빛 속에서 반짝거리던 모습을 바라보았던 자신이 미워졌다.
리디아는 리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리가 젖을 빠는 동안 마차 벽에 편하고 만족스럽게 몸을 기댔다. 이제 캠프는 떠날 준비에 여념이 없는 사람들의 소리로 가득 찼다. 대부분 벌써 아침 식사를 마쳤다. 여자들은 짐을 꾸리며 아이들에게 이것저것 할 일을 일러주고 있었다. 남자들은 말을 끌어내고 있었다. 날카로운 휘파람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리디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곳은 크고, 더 위협적인 세계와 떨어진, 안전하고 편안한 세계였다. 그녀는 이곳에서 알려져 있지 않았다. 아무도 그녀와 사귀려 하지 않을 것이다. 머리통이 부숴진 그 시체에 대해서는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발견되는 일도 없을 것이다. 발견된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이곳까지 그녀를 추적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지금 안전하다. 그녀는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