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3. 16. 14:15

화도

민병삼

 

 

오원과 만나기 전에

버스표를 끊기 위해 대합실로 들어갔다. 말이 대합실이지 실은 간이의자 몇 개 놓인 잡화상이었다. 주인이지 싶은 사내에게 분원리 가는 버스가 몇 시에 오느냐고 묻자 퉁명스러운 어조로 15분 후라고 말했다.

나는 표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 들었다. 아까부터 검은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하고 간혹 바람이 먼지를 일으키는 회색의 창밖 풍경은 매우 을씨년스러웠다. 오늘 중으로 비나 혹은 눈이 내릴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 만큼 음산한 날씨였다. 갑자기 불안해진 나는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며 얼굴이 푸르죽죽하게 언 모습으로 대합실에 들어서는 사람들을 구경하였다. 들어서는 사람마다 하나같이 투덜대는 것으로 보아 스산한 날씨를 원망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눈은 내려도 괜찮지만 비가 오면 낭패를 겪게 될 것 같은 하늘을 다시 올려보았다. 조만간 비나 눈이 내리고 말겠다는 단정이 주저 없이 들었다.

분원리가 초행이기 때문에 나는 운전석 바로 뒤에다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분원리에서 내릴 수 있게 해 달라고 당부했다. 운전사는 딴전만 피울 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무안하고 불안했으나 룸미러에 들어 있는 그의 얼굴이 전혀 온화하지 않아 입을 굳게 닫았다. 그러자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노인이 나도 분원리에서 내리니까, 따라 내려요.” 하였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분원리에 사십니까?”

그렇소먼...?” “잘됐군요, 어르신께 도움 좀 받아야 되겠습니다. 초행이라서...”

분원리 누구를 찾는데 그러우? 보아하니, 땅 사러 가는 사람 같자는 않은데...”

그가 갑자기 허리를 세우더니 내 행색을 요리조리 훑는 것이었다. 나는 정색을 하여 저 그런 사람 아닙니다.” 하고 황망히 지갑을 꺼내 명함 한 장을 내밀었다. 그가 엉거주춤 명함을 받아 들고는 눈을 잔뜩 찌푸려 한참 들여다보았다.

“...대학 선생이시구먼.”

그는 내 차림새나 어림 나이로 보아 교수가 어울리지 않은 듯 나를 또 훑어내렸다. 나는 그저 웃어 보이는 것 외에 다른 표정을 지을 수가 없었다.

. 뭣 좀 알아볼께 있어서요.”

답사하러 가시는구먼. 분원리에 연구할 것이 뭐가 있누...? 조선 시대 사옹원 자리가 있시는 하지만, 지금은 면사무소가 들어섰는걸.”

그럼, 도요지는 더러 보존돼 있나요?”

웬걸. 가마 있던 자리에 학교가 들어서는 바람에, 교문 옆에다 비석만 하나 세워 놨지.”

그랬군요, 혹시, 분원리에 장씨 성을 가진 분들이 많이 계신가요?”

장씨?”

이때 버스가 느닷없이 급정거하는 바람에 무심히 서 있던 승객 일부가 비명을 지르며 쓰러질 듯 한참을 비틀거렸다. 나와 얘기를 나누던 노인도 하마터면 앞 좌석 등받이에 이마를 찧을 뻔하였다. 그러자 그가 하얗게 뜬 얼구로 운전 좀 잘 해. 사람 죽이겠어.” 하고 운전사한테 삿대질을 하였다.

저눔의 자가용이 갑자기 끼어드는 바람에 그랬지, 일부러 그랬어요?”

운전사가 얼굴을 돌려 눈을 부라렸다. 그제서야 노인이 씩씩대던 숨을 가라앉히고 그러니까, 차를 사알살 몰아야지.”하고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나는 놀란 노인의 감정이 수그러질 때를 기다려 잠시 입을 닫았다.

장씨가 있기는 하겠지만... 그중에 도자기 굽던 사람이 있을까 해서 그러우?”

그런 분이 계시면 다행입니다만...”

그럼, 장씨 성 가진 사람을 찾아나선 거유?” “그렇긴 한데, 그게 좀 까다로운 일이라서요.”

장씨가 하나 있기는 해도, 그 사람은 도공의 후손이 아니고 그냥 농사꾼인걸.”

혹시, 장씨 집성촌이 있을까 해서 나섰는데...”

그렇다면, 헛걸음 한 거구. 혹시, 옛 사옹원에 관해서 알고 싶으면 박응서라는 노인을 만나 보구료.”

이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사신 분인가요?”

그렇다고 볼 수 있지. 분원리에서 출토된 도자기를 많이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옹원에 관해서라면 마을에서는 제일 박식한 노인이나까.”

그분부터 찾아뵈야 되겠군요.”

이때 차창 밖으로 저만치 마을이 보이자 노인이 일어설 준비를 하였다. 나도 따라 내릴 채비를 하였다. 마을은 온통 음식점으로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팔당 저수지를 배경 삼아 쏘가리매운탕’ ‘메기매운탕 ’‘붕어찜’‘장어구이등의 간판을 내건 음식점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옛 도요지였다기보다는 차라리 먹자 마을이었다.

내가 차에서 내려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자 노인이 전면의 산자락 쪽으로 손을 뻗어 큰 기와집 하나를 가리켰다.

저 집이 아까 말한 박응서 노인 집이니까, 생각 있으면 찾아가 봐요, 그리구, 저기 국민학교 자리가 바로 옛날 가마터니까 둘러보구료.”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럼, 나는 가우.”

노인은 이내 나와는 무관한 사람이 되어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나는 노인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지척에 있는 학교부터 보기로 하였다.

학교 정문 바로 옆에 광주 조선백자 도요지라는 알루미늄 안내판과 사적 314호로 지정된 도요지 기념지가 비스듬히 박혀 있었다. 안내판에는 학교터가 조선 시대에 백자를 굽던 사옹원 분원이고, 광주 땅 곳곳에 사기번조소가 분포돼 있었음을 설명하는 글이 음각돼 있었다. 운동장에 들어서자 전면에 비석 십여 개가 서 있는 것이 금방 눈길에 잡혔다. 나는 학교 건물을 곁눈질하며 비석이 들어앉은 언덕으로 올라갔다. 마침 방학 중이라 운동장에는 아이들 몇몇만이 뛰어놀고 있을 뿐 아주 썰렁해했다. 비석에는 당시 사옹원에 있던 벼슬아치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사옹원도재조채공제공

번조관정공학연선정비

여러 이름들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이는 그 당시 그릇이나 도자기 제작에 참여했던 관리들의 후손들이 선대의 공적비로 세운 듯싶었다. 인적은 간 곳 없고 이름 석 자 박힌 비석만이 쓸쓸하게 서서 백여 년의 세월을 헤진 옷처럼 입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당시 중노동으로 흙과 장작 따위를 나르던 상민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결국 그들을 감독했던 벼슬아치들의 이름만 비석으로 남아, 천민들의 애환이 눈앞에서 아른거리는 것 같아 갑자기 마음이 울적했다.

비석 뒤에는 그리 넓지 않은 공터가 있고 여기저기에 깨진 사기 조각들이 박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폐기한 도자기들을 버리던 곳으로 짐작되었다. 박응서 노인이 소장하고 있는 도자기들도 결국 이곳에서 파낸 것이 틀림없을 것이라 생각하니 보통 노인은 아니겠다 싶었다. 기어코 눈발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기온도 따라서 내려간 듯 손끝이 시렸다. 나는 박응서 노인을 만나 보기 위해 그의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이곳 분원리에 음식점이 즐비한 것이 팔당댐이 만들어지자 민물고기 좋아하는 관광객을 노린 것이려니 생각했었다. 그러나 버스에서 만난 그 노인의 전언에 의하면 옛날에 이곳이 온통 채마밭이어서 각종 채소가 수로를 통해 뚝섬으로 보내졌다고 했다. 결국 사옹원의 그릇 말고도 이곳에서 재배된 채소를 실어 나르던 나루터였고, 그래서 항상 상인들로 북적댔고, 그때부터 이미 음식점이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박응서 노인 짐은 매우 큰 전통 한옥이었다. 옛날에는 행세깨나 했을 양반이 살던 집이 틀림없다고 단정하는 데 조금도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대문 앞에서 잠시 서성거리고 있는데 마침 안에서 초로의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안을 향해 기웃거리자 그가 대뜸 경계하는 표정으로 누구를 찾아왔냐고 물었다.

이 댁에 박응서라는 노인이 사신다고 해서 왔습니다.”

무슨 일로 오셨소?”

실은, 그분께 여쭤볼 것이 좀 있어서...”

나는 서둘러 명함을 꺼내 정중하게 내밀었다. 명함을 받아 든 그가 내 행색을 훑어내렸다. 나는 그의 의심을 풀어주기 위해 사옹원에 관해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자 왔습니다.” 하였다. 비로소 그가 기다려 보슈. 주무시는 것 같은데...” 하고는 혼자서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눈발을 쏟아놓고 있는 회색 하늘을 올려보며 이곳에 찾아온 소득이 과연 있을까 조바심이 들었다. 죽은 지 이미 한 세기가 흘러 버린 지금, 어디에서도 볼 길이 없는 그의 계보를 찾겠다고 나선 내 의욕에 또 회의가 들었다. 어쩌면 근거도 없이 태어났을 그가 그림 몇 점만으로 자신의 족적을 마감하려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한 그의 성품을 알고 있었던 당시의 주변 사람들이나 후세 인척들이 그의 뜻에 부응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의 근거를 찾아내기 위해 사방을 기웃거리고 있는 일에 보람을 얻을 수 있을지 요즘 와서 자주 의심이 드는 것이었다.

잠시 후 남자가 다시 나타나 안으로 들어가자고 했다. 그가 마당 한가운데로 들어서더니 말머리는 잘라 버리고 대뜸 "아버님 연세가 아흔이요."하는 것이었다. 비로소 그가 박응서 노인의 아들임을 알았다. 아흔이면 나보다 곱절도 넘게 산 인생이었다.

대청마루에 올라서자 여남은 개의 퇴색한 도자기가 낡은 장식장에 올려져 있음이 금방 눈길에 잡혔다. 내 안목으로는 그것들의 진가를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버스에서 만난 노인의 전언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진품은 벽장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내가 관심을 갖는 것이 도자기가 아니기 때문에 그것들이 진품이든 아니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아들이 열어 준 문틈으로 내가 몸을 넣자 박응서 노인이 나를 흘끔 올려보았다. 내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다가앉자 그가 무슨 말인가 몇 마디 웅얼대며 손짓을 보냈다. 편히 앉으라는 뜻으로 알고 비로소 정좌를 했다. 외모상으로는 그저 고령의 촌로에 지나지 않았다. 바싹 쪼그라든 몸피에 듬성듬성 남아 있는 백발과 앙상한 뼈마디에 차라리 가죽으로밖에는 달리 표현할 수 없는 마른 표피를 보면 며칠 새에 죽고 말 몰골이었다. 그러나 나를 쏘아보는 그의 눈빛에는 아직도 총명의 찌꺼기가 보이는 것 같았고 잇새로 발음이 가끔 새는 것 같으면서도 어조는 분명하였다. 나는 그에게 몇 마디로 예의를 건넨 다음 찾아온 용건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이곳이 옛날에는 사옹원의 분원으로서 사기그릇 제작소가 있었으며 도요지가 많았던 곳임을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 전혀 새로울 것이 없었다.

"어리신께서도 아시겠지만, 조선 후기에 장승업이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있었지.“

"그럼, 장승업이 한때 여기 분원에 와 있었다는 얘기도 들으셨습니까?“

"...그런 얘기가 전해지기는 해도 확실하지는 않아. 얘기만 전해질 뿐이지. 기록된 것이 없거든. 얘기로는, 장승업이 화원직으로 와 있으면서 궁중으로 들어가는 자기에다 그림을 그렸다는 게야." "저도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선생도 알고 있겠지만, 여기가 원래 뚝섬과 연결되는 나루터여서 장사치들로 늘 북적댔던 곳이야. 그러다 보니, 객주집이 많을 수밖에. 무려 삼백여 호나 됐다는구먼. 예나 지금이나 술집에는 으레 기생이나 작부들이 있기 마련이구.”

대단했겠습니다.”

내 얘기는 그런 게 아니구... 그때 장승업이 화원으로 내려와서는 자신의 본분은 내팽개치고, 이집 저집 작부집을 돌며 주야를 술로 보냈다는 게야.”

그 사람이 원래 술과 여자 없이는 붓을 들지 못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겠습니다.”

결국, 사옹원에서 그 꼴을 보다 못해 한양에다 상소를 올렸다지 뭔가.”

상소 내용이 뭐였을까요?”

그야 뻔하지. 도자기에 그림을 그려야 가마에 넣을 텐데, 이건 밤낮 주색에 빠져있으니 작업이 진행돼야지. 그러니, 쫓아 버릴 수밖에.”

하긴, 왕의 명을 어기고 궁중을 빠져나간 사람이었으니까요.”

더 흥미로운 얘기는 그 사람이 사옹원의 상소 때문에 한양으로 불려간 것이 아니라, 실은 스스로 도망쳤다는 얘기도 있어.”

왜 도망을 쳤을까요?”

원래 한 여자한테 정착을 못 했던 그 사람이 명씨 성을 가진 계집한테만은 폭 빠졌던 게야. 그러다 보니 그 계집이 아이를 배지 않았겠어.”

그래서요?”

여자가 아이를 배면 으레 앙탈이 있기 마련이거든. 그래서 그길로 줄행랑을 쳤다는 얘기지.”

그게 사실일까요?”

글쎄...? 사실일 수도 있고,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 그러나, 말이란 근거 없이 떠도는 법이 없어.”

그럼, 사실이라는 말씀이군요, 당연히 그 자손도 있을 테구요.”

자손? 아암, 있구말구.”

? 어르신. 지금 하신 말씀이 사실입니까? 알고 계시면 말씀해주십시오. 이미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장승업의 계보를 찾기 위해 몇 년을 헤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 자손이 있다니요...”

장지연의 일사유사에는 장승업을 대원 장씨라 했고, 또 누구는 태원 장씨라고도 했어. 어느 것이 사실인지는 모르나, 어쨌든 장씨 본관에는 대원도 없구 태원도 없어. 그러니 장승업의 족보를 못 찾을밖에. 똑똑한 후손이라도 있으면 장씨 가문 어느 쪽에서든 껴 붙였을 테지만, 그럴 위인이 있어야지.”

그 후손이 있다고, 조금 전에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그게 확실치 않아. 자칭 후손인걸. 그걸 누가 믿어.”

어르신께서는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알고는 있지만, 원래 횡설수설 잘 하는 반미치광이야.”

어르신. 그 사람 지금 어디 있습니까. 아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만나 보려구?” “물론입니다.”

미치광이라니까.”

미치광이라도 좋습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몹시 흥분했다. 내가 이곳 분원리에 온 것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는 장승업의 계보를 찾아낼 길이 있을까 해서였다. 그는 출생과 사망이 분명치 않은 비운의 화가였다. 그에 대한 각종 논문에 의하면 장승업은 1843년에 출생하여 1897년에 졸한 것으로 돼 있었다. 그러나 계보가 없는 그의 출생인들 어찌 믿을 수 있겠으며, 누구도 그의 죽음을 확인한 바 없어 그가 사람들 시선에서 홀연히 사라진 때를 생의 마감으로 어림잡았으니만큼, 그저 활자화됐을 뿐 신빙성은 전혀 없다고 봐야 한다. 일설에 의하면 광주 어느 곳에 장씨 집성촌이 있다는 말을 얼핏 들었다. 그들 중에 혹시 대원이나 태원 장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여기를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장씨 집성촌이 있음을 아는 사람은 없다는 얘기다. 이런 마당에 장승업의 후손이 생존해 있다니, 신빙성 여부는 차치하고라도 우선 감격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미치광이면 어떻고 반송장이면 어떤가. 나한테는 생존 그 자체가 중요할 따름이었다.

어르신. 어디로 가면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까.”

가르쳐 줘도 만나지는 못할 거야.”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람 만나기를 꺼리거든. 정신이 온전치 못해서 그러는지.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러는지는 알 수가 없어. 그 사람이 거처하는 곳에 사람들이 접근하면 돌을 던져 쫓아 보내거든. 그러니, 어찌 만나겠어.”

왜 사람들을 기피하는 걸까요?”

낸들 아나? 그러니까 미치광이랄 수밖에.”

어쨌든, 부닥쳐 보겠습니다. 있는 곳이나 말씀해 주십시오.”

“...여기 분원리 오기 전에, 금사리라는 곳이 있어. 거기 가서 토굴 나으리가 사는 곳이 어디냐고 물어봐.”

“...토굴 나으리라고 하셨습니까?”

가마터가 있던 곳에다 굴을 파 놓고 살면서, 자칭 나으리라 해서 붙여진 별호야.”

그럼, 그 사람이 스스로 장승업의 후손이라고 했다는 말씀인가요?”

내가 직접 들은 바는 없고, 그 마을의 어떤 영감이 언뜻 들었다는구먼. 믿을 만한 얘기가 못 돼.”

글쎄요...?”

이튿날 나는 금사리로 가기 위해 광주행 버스에 다시 올랐다. 어제 내린 눈으로 바람이 다소 쌀쌀하지만 하늘은 청명했다. 마을은 바로 코앞에 팔당 저수지를 눕혀 놓고 뒤로는 산을 병풍처럼 둘러 옴팍하게 들어앉아 온종일 따사로운 햇빛을 받을 것 같았다. 나는 시멘트로 포장된 길을 따라 십여 분쯤 걸어 들어갔다. 이미 얘기 들은 대로 이곳에도 역시 가마터는 남아 있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한테는 문화유적을 보존해야겠다는 의식이 없는지 또 한 번 안타까웠다.

이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내 나이 또래의 사내가 농기구로 짐작되는 물건을 겨드랑이에 낀 채 오고 있었다. 나는 그가 가까이 다가서기를 기다렸다. 그도 내가 낯선 사람임을 알고 흘끔흘끔 곁눈질하였다. 나는 그에게 바싹 다가서며 이 마을에 사느냐고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럼, 토굴 나으리라는 사람의 거처를 알고 계시겠군요.”

“...실례지만, 어디서 오셨습니까?”

나는 그에게까지 명함을 건네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잠시 우물쭈물하였다. 그러자 그가 그 사람을 잘 아십니까?”하고 물었다.

실은, 분원리 박응서라는 노인의 말씀을 듣고 찾아온 겁니다. 제가 뭘 좀 연구하는 게 있어서요.”

글쎄요...? 아마, 만나기 어려울 겁니다. 마을 사람들조차 피하는 사람이까요.”

저도 그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어쨌든, 위치만 가르쳐 주십시요. 일단 시도는 해 봐야지요.”

그제서야 그가 손을 들어 왼쪽 산등성을 가리켰다. 그 산등성 너머 큰 바위 하나를 끼고 돌면 그의 거처를 바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는 조심하라는 충고를 덧붙였다.

돌팔매질을 조심하라는 말씀이겠군요.”

정신이상자니까요.”

설마, 죽이기야 하겠습니까?”

그건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는 고개를 갸우뚱대며 빠른 걸음으로 앞질러 갔다. 나는 비로소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잠시 후의 일이 난감했다. 그가 사람을 기피하는 데다가 광인이 틀림없다면 예측할 수 없는 봉변을 당할 수도 있겠다 싶어 두려웠다. 나는 잠시 회의에 빠져들었다. 뜻밖의 변을 당하면서까지 그를 만날 값어치가 과연 있는지 출발할 때의 의욕이 조금씩 오그라들고 있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얻은 정보가 아닌가. 어디에서도 찾을 길도 없었던 장승업의 계보를 그가 가지고 있는 마당에 어찌 그냥 돌아설 수 있겠는가.

젠장. 아무리 미친놈이라도, 설마 죽이기야 할라구.

나는 배에 힘을 넣어 구석구석으로 숨어든 용기를 모두 끌어모았다. 그리곤 주먹을 단단히 쥐고 산등성을 향해 당당하게 걸어갔다. 그런데도 긴장과 두려움이 여전히 등짐처럼 어깨를 짓눌러 산등성에 미처 다다르지도 않아 전신이 땀으로 흠뻑 젖어 버렸다.

등성이를 넘자 갑자기 개 짖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정없이 짖어대는 울림이 산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다. ‘토굴 나으리가 사람들의 접근을 막으려고 기르는 개로 짐작되었다. 나는 또 두려웠다. 주인처럼 미친개가 아닐까 하고 공포에 떨기 시작했다. 개한테 먼저 물리는 수모를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했다. 그러나 개가 짖기만 했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풀어 놓지는 않았다 싶어 다소 안심이 되었다.

숨을 죽인 채 조심조심 등성이를 넘자 마치 승용차 한 대가 꼴사납게 처박힌 모습으로 큰 바윗덩어리가 불쑥 튀어나와 있었다. 사내가 일러 준 대로 옳게 찾아온 것 같았다. 개는 끊임없이 짖어댔다. 주먹을 잔뜩 움켜쥔 나는 도둑처럼 살그머니 바위를 끼고 돌았다. 순간 왠놈이냐!”하는 일갈과 함께 꼭 쑥대강이처럼 머리칼이 뒤엉킨 늙은이가 사납게 부릅뜬 눈으로 몽둥이를 쳐들고 서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자지러져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개도 주인 따라 곧 목줄을 끊을 듯이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댔다.

뭘 훔치러 왔어?”

그가 몽둥이를 쳐든 채 한발 한발 다가섰다. 여차하면 내리칠 기세였다. 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도둑이 아니라, 영감님을 뵈러 왔습니다.”를 침을 흘리듯이 간신히 뱉어냈다. 그러자 그가 눈을 부릅떠 영감님이라니. 나으리라고 불러.” 하였다.

“..., 나으리.”

“...나는 너한테 볼일이 없으니까, 어서 가. 그렇지 않으면 이걸 던질 테니까.”

그가 몽둥이를 팽개치더니 느닷없이 맷돌짝만 한 것을 번쩍 들어 올리는 것이었다. 그걸로 나를 내리치겠다는 위협이었다.

제가 찾아온 사연을 말씀드릴 테니, 제발 그것 좀 내려놓으십시오.”

사연은 무슨 얼어 죽을 사연. 잔말 말고 어서 가. 이 개까지 풀어 놔야 가겠어?”

그가 이번에는 돌을 내던지고 개 목줄을 움켜잡았다. 순간 나는 그의 눈빛을 보았다. 얼굴은 마른 대추처럼 쪼글쪼글하나 광기 서린 눈빛과 늙은이답지 않게 붉은 입술에서 결코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읽었다. 나의 감상주의가 발동했는지는 몰라도 순간적인 판단이 그랬다. 게다가 나를 노려보는 눈빛이 오로지 경계로 가득 찬 것만은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쩌면 자기를 찾아온 내 심증을 알아챈 것 같은 단정을 멋대로 내렸다.

저는 나으리한테 해코지하러 온 사람이 절대 아닙니다. 그러니, 고정하시고 제 말을 좀 들어 주세요.”

네까짓 놈한테 들을 얘기가 뭐 있겠어. 잔말 말고 어서 가.”

그럼, 딱 한 말씀만 여쭙겠습니다.”

한 말씀만? 그게 뭔데?”

그제서야 그가 개를 진정시키고 자세를 고쳐 꼿꼿이 섰다. 얼마나 늙은 나이인지 쉬 가늠할 수는 없으나 서 있는 자세를 보아서는 정정했다. 제법 기골도 있어 보이고 젊어서 힘깨나 썼을 체구였다. 나는 글로 묘사된 장승업의 몸피를 재빨리 떠올렸다. 이 노인이 정말 장승업의 후손이라면 관계를 이해하는 데 별 무리가 없을 듯싶었다.

빨리 여쭙지 않고 뭘 꾸물거려?”

나으리가 장승업 화가의 후손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누가 그래?”

나으리가 그렇게 말씀하셨다는데요.”

나는 그런 말 한 적 없어. 별 미친놈 다 보겠네.”

그가 갑자기 등을 돌려 움막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확실히 그가 자신을 숨기는 것이 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순간 그의 발목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으리는 틀림없이 그분의 후손입니다. 저는 그렇게 확신합니다.”

다른 놈들은 안 믿는데, 너 혼자 뭘 확신한다는 거야? 별 미친놈 다 보겠네.”

나으리는 사실을 숨기고 계신 겁니다.”

이때 그가 다시 등을 돌리더니 담배 있어?”하고 퉁명스럽게 물었다. 나는 손끝을 떨며 담배를 갑째로 내밀었다. 그러자 그는 마치 빼앗듯이 담배를 채뜨렸다.

너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뭔데 나를 만나러 왔어?”

나으리가 장승업 화가의 후손이라는 애기를 듣고 뵈러 왔습니다.”

?”

제가 그분의 생애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학자야?”

그가 담배를 깊숙하게 빨아들이고는 나를 잔뜩 노려보았다. 나는 그가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사람인가를 의심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그러자 그가 명함 든 내 손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게 뭐야?”

제 명함입니다.”

비로소 그가 명함을 받아들었다. 나는 활자를 읽고 있는 듯이 보이는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가 갑자기 명함을 내던지며 훈장이로군.” 하였다.

무엇 때문에 내 조부를 연구하지?”

“...이렇게 말씀드리면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그분이 유명한 화가인데다가 생애가 흥미로워서요.”

흥미롭다...하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그분이 정말 나으리 조부 되십니까?”

사실이라면 믿겠어?”

“...

정말, 믿겠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따라 들어와.”

그의 어조가 여전히 무뚝뚝한 명령투여서 나는 다시 경계심에 묶여 산뜻 발을 떼지 못하였다. 그러자 그가 뒤를 돌아보며 뭐 하구 있어? 따라오라니까... 싫으면 가.”하고 눈을 부라렸다. 나는 점점 그가 무서웠다. 나를 토굴로 끌어들여 감당키 어려운 행패를 부릴까 싶어 경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미 덜미를 잡힌 처지라 도망칠 수도 없었다.

그가 하는 대로 널빤지 문을 밀고 발을 들여놓자 안은 턱밑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새카맣게 어두웠다. 뿐만 아니라 판별할 수 없는 악취가 몰려와 호흡이 곤란할 지경이었다.

깊숙한 곳에서 잠시 부시럭대는 소리가 나더니 불이 희미하게 밝혀졌다. 물론 전등을 켠 것은 아니고 남포등을 밝힌 것이었다. 비로소 토굴의 규모와 이것저것 잡동사니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거지 살림이었다. 그래도 굴이라 그런지 겨울 외풍을 별로 느낄 수가 없었고 거저 위에 질그릇 화로까지 있어 불씨를 품고 있었다. 벽에서 남루한 옷가지가 주렁주렁 걸려 있었고 안쪽 한구석에 석유곤로와 냄비와 식기가 꼭 개 밥그릇처럼 더러운 꼴로 놓여 있었다. 내가 허리를 구부린 채 어정쩡하게 서 있자 앉어.”하고 턱을 흔들었다. 당장이라도 여기저기서 벌레들이 기어 나올 것만 같아 선뜻 앉지를 못했다. 그러자 그가 먼저 털썩 주저앉았다. 비로소 나도 그와 거리를 두고 쪼그려 앉았다.

그래, 내 조부에 대해서 뭘 알고 싶어?”

궁금한 게 많습니다만, 우선 그분의 본관이 어디인지 확실치가 않습니다. 몇몇 기록에 대원 장씨라고도 했고, 태원 장씨라고도 해서요. ‘한국 성씨 대관에는 그분이 태원 장씨로 올라 있긴 합니다만...”

지금의 충주를 태원으로 불렀던 적이 있어서 그렇게 기록했겠지.”

그럼, 본관이 잘못 전해졌다는 말씀인가요?”

우리 시조는 원래 중국 사람이었거든. 중국 산시성의 타이위안이란 곳이야. 그게 바로 태원이지. 그런데도 일부에서 대원 장씨라는 말이 전해지는 것은 조부가 마침 황해도 안악 어디쯤인가 대원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나셨어. 그러나 자기가 태어난 곳을 관향으로 정할 수는 없잖겠어. 일부에서 조부를 대원 장씨라 한 것은 그분이 황해도 대원이라는 곳에서 태어난 것을 그렇게 오해한 것이고, 태원 장씨로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시조의 본향을 생각해서 그렇게 단정했던 거지. 그러나 조부는 자신이 무슨 장씨든 개의치 않으셨던 거야. 조실부모한 당신께서도 자손을 남길 생각이 없었으니 양반들처럼 본관 따위에 마음을 쓰지 않으셨던 거야. 족보라는 것은 자손이 있을 때 의미가 있는 거지, 자기 한 몸만 달랑 살다가 죽을 사람이 본관은 가져서 뭐 하겠어. 안 그래?”

“...그렇다면, 나으리가 그분의 후손이라는 증거가 있나요?”

이눔아. 속일 것이 따로 있지, 아무나 대고 조상으로 섬겨?”

혹시, 그분의 유품이라도...”

뙤놈처럼 의심은 많아 가지구...”

그가 나를 조소하는 듯한 야릇한 미소를 흘리며 갑자기 구석진 곳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그리곤 낡은 모포가 덮인 사과 궤짝을 끌어내는 것이었다. 나는 바싹 긴장하여 마른침을 자주 넘겼다. 그 속에서 과연 어떠한 유품이 나올지 여간 궁금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미치광이라고들 하지. 그러나 나는 미치지 않았거든. 다만 미친 척하는 거지.”

왜죠?”

귀찮거든. 내가 장승업의 후손이라는 걸 믿지 않으면서도 혹시 그분의 그림이라도 한 폭 가지고 있을까, 그걸 노리거든. 나를 찾아온 사람이 많았었어. 그때마다 내가 미치광이로 구니까, 줄행랑을 치지 뭐야. 그런 놈들 모두가 장승업을 팔아 공을 세우거나, 한몫 잡자는 수작이거든.”

저한테는 왜 모질게 대하지 않으셨습니까?”

“...관상을 보니까, 얕은 수작은 부리지 않겠어.”

옳게 보셨습니다. 저는 장승업 화가를 제대로 알리고 싶을 뿐입니다. 몇몇 사람들이 쓴 글을 보니까, 모두가 멋대로 추리한 것뿐이라서 신빙성이 없습니다. 나으리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저 역시 그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글을 썼을 겁니다.”

그랬다면, 네놈도 사기꾼 학자지. 가만 있자... 이제부터는 놈자를 쓰지 말아야 되겠군. 그냥 선생이 좋겠어. 내가 선생을 믿고 이것들을 보여주는 건 그분의 생애를 바르게 남기라는 뜻이야. 나는 글재주도 없을 뿐더러, 설령 있다고 해도 어느 놈이 내 말을 믿어 주겠어. 그래서 마지막으로 선생의 발목을 잡은 것이고.”

저를 믿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그러니까 지금부터 내가 하는 얘기를 잘 들어야 해.”

그러데, 무슨 이유로 이렇게 숨어 사시는지 궁금하군요.”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뿐이지, 나는 숨어 산다고 생각 한 해. 이젠 늙어서 일할 힘도 없고, 가진 게 없으니 거처할 곳도 마땅치 않고, 그러니, 이 꼴로 살 수밖에 더 있어?”

“...그러셨군요.”

내가 어떻게 살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 훌륭하지만 쓸쓸하게 살다 가신 조부의 생애를 누구에겐가 옳게 전해주고 가면 됐지 뭐. 마침, 선생과 같은 사람을 만났으니 다행이고. 어젯밤에 누군가 나를 찾아온 꿈을 꿨어. 지금 생각하니, 그 사람이 바로 선생이었나 봐. 신통한 꿈이지.”

정말 저를 그렇게 보셨습니까? ”

그랬으니까 이 자리에 앉아 있지.”

그리고는 나를 한참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광기라고는 티끌만큼도 들어 있지 않았다. 비로소 나는 그에 대한 경계심과 의구심을 말짱하게 걷어 버릴 수 있었다. 오히려 그의 품에 파고들고 싶을 만큼 신뢰감이 깊이 드는 것이었다.

자아, 이것들을 봐. 그래야 선생이 내 말을 믿을 테니까.”

그가 피우던 담배를 눌러 끄고는 궤짝에서 천이나 마대 따위로 싼 것들을 꺼내 나란히 늘어놓았다. 모두 대여섯 개가 되었다.

이게 다 뭡니까?”

그분이 쓰시던 것들이지.”

그가 천을 풀자 거기엔 벼루, , 연적, , 석간주, 낙관용 도장, 담배쌈지, 주머니칼, 심지어 날고 때가 꾀죄한 허리끈까지 있었다. 나는 그것들을 보며 벌린 입을 오랫동안 다물지 못하였다. 그것들에 어떠한 표시도 없어 과연 장승업의 유품들인지는 확인할 길은 없겠으나 그것을 철석같이 믿고 있을 그의 감정에 우선은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이걸 누가 물려주셨습니까?”

그야 내 부친이 물려주셨지.”

그럼, 부친께서도 이것들을 손수 챙기셨던 거야?”

웬겔. 조모께서 보관하고 계셨어.”

그럼, 나으리는 다음에 이걸 누구한테 물려주실 건가요?”

없어.”

“...없다니요? 자손이 없으시다는 말씀인가요?”

그래.”

여태 혼자 사셨다는 말씀인가요?”

할아버지도, 아버지도 다 그렇게 사셨으니까.”

그래도, 오원 선생께서는 후손을 남기셨잖습니까.”

남기고 싶어 남겼나? 실수로 남긴 거지. 결국, 내 아버지나 나나 조부처럼 살라는 팔자를 타고난 거야. 사실 말이지, 조모도 근본이 없는 여자였고 어머니 역시 근본이 없어 이리저리 떠도는 여자였다니까, 그럴 만도 하지. 다행히도 조부가 쓰시던 물건을 조모께서 버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 오늘까지 이것들이 남아 있는 거야.”

그렇군요. 그럼, 오원 선생이 생을 마친 때가 언젠지 알고 계십니까? 기록에는 천팔백구십칠년으로 돼 있지만...”

그건 누구도 몰라. 조부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었으니까. 어쩌면 속세에서 자취를 감춘 날이 곧 돌아가신 날이라는 설이 맞을지도 몰라. 어쨌든 기인으로 살다가 가신 분이야.”

그러한 오원 선생의 삶을 존경하십니까?”

멋있는 인생이었는데, 어떻게 존경을 안 해?”

나으리는 그분의 재주를 물려받지 못하셨나요?”

글쎄...? 있다고 해야 할지... 그러나 전쟁 직후, 극장 간판이나 그려 주는 어설픈 재주라서 그만뒀어. 조부의 명예나 더럽히겠다 싶어 아예 등을 돌렸지.”

혹시, 오원 선생의 그림은 없습니까?”

“...딱 한 장 있어. 보여줄까? 그래야 내가 장승업 후손이라는걸 확실하게 믿을 테니까.”

보여주십시오.”

그가 다시 무릎으로 기어가 역시 천으로 싼 막대 같은 것을 들고 왔다. 천을 풀자 옛날에 졸업장 따위를 보관하기 위해 쓰였던 둥근통이 나오고, 뚜껑을 열자 색이 바랜 신문지가 말린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숨을 죽이자 지켜보는 동안 그는 귀퉁이가 녹슨 양철처럼 보여지는 신문지를 조심스럽게 펴고는 누렇게 뜬 화선지를 바닥에 다 펼쳐놓았다. 나는 남포동을 그림 가까이 끌어다 놓고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소재는 화로와 주전자, 그리고 꽃이 있는 나뭇가지가 배열된 것이었다.

아하. 이건 기명절지도로군요.”

여기를 봐. 오원이라고 쓴 밑에 낙관이 선명하잖아.”

다만, 화제만 없을 뿐이군요.”

아버지 말씀으로는, 할머니 기생 시절에 조부가 화대로 대신 그려 준 거래. 그분이 당신 이름 석 자 말고는 글을 모르셨으니, 화제가 없을 수밖에.”

어쨌든, 이걸 보관하고 계시다니...”

이 정도면 내가 누구라는 걸 믿겠어?”

“....”

어째, 대답이 시원찮아. 그래도 의심이 남았어?”

그런 게 아닙니다. 가슴이 벅차서 그럽니다... 오원 선생의 부친께서 무반이었다는데, 그건 사실입니까?”

나도 아버지한테 그런 얘기를 듣긴 들었는데, 확실치가 않아. 아버지도 조모한테 들은 얘기였으니까. 조모 또한 귀동냥으로 안 것이라 신빙성이 있어야지. 내가 그분을 할머니라고는 하지만, 두 분이 정식 부부로 지낸 것도 아니고, 술 좋아하는 양반이 잠시 정을 붙여 머물다가 조부가 자신도 모르게 덜렁 씨앗 하나 남긴 관계뿐이라... 어쨌든, 조부에 대한 일화는 아버지한테 들은 것만도 꽤 많아.”

그가 말을 끊고는 쇳소리가 나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얼른 담배를 뽑아 그에게 건네고 불을 달아 주었다.

 

 

 

1

함박눈이 끊임없이 쏟아지고 있는 한낮의 저잣거리. 행인들의 발걸음은 마치 눈발에 쫓겨가듯 몹시 바쁘고, 미처 장을 보지 못한 사내들이나 아낙들은 차일을 쳐 놓은 노점상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길 건너 맞은편 국밥집에는 남정네들이 포렴을 젖히고 수도 없이 드나들고,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나뭇단을 잔뜩 실은 달구지가 눈을 하얗게 뒤집어쓴 채 느럭느럭 지나갔다.

소년은 봉두난발을 해 가지고 국밥집 처마 밑에 꼭 망태 모양으로 옹크리고 앉아서 드나드는 사내들을 올려보며 침을 꿀꺽꿀꺽 삼켰다. 쏟아지는 눈을 피해 비스듬히 비껴 앉은 소년의 어깨에도 눈이 소복하게 쌓였다. 이때 구정물을 길에 뿌리고 들어가던 국밥집 주모가 소년을 발견하고는 분풀이하듯 냅다 욕을 퍼부었다.

어이구. 저눔으 아새끼래 여태 있구만기래. 기리키 밤낮없이 쪼그리고 앉아 있으믄 누구래 밥 주간? 썩 꺼리라우. 재수 없어야.”

주모가 구정물 통을 소년의 머리에 씌울 듯이 높이 쳐들었다. 그래도 소년은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정말 못 가갔어?”

아주마이. 길디 말구 뼈다구락두 한 개 주시라요.”

머시 이드래? 뼈다구? 야 말하는 것 좀 보라우.”

기럼, 재강이락두 주시라요. 어제부터 굶었시요.”

굶어 죽은 사람 천지야. 니 배만 곯은 줄 아네? 어서 가라우 씨양. 구정물 뒤딥어쓰기 전에.”

재강이락두 얻어먹기 전에는 안 가갔시요.”

뭐이 어드래? 안 가갔다?”

주모가 소년 앞에다 코를 팽 풀어 놓고는 서둘러 들어가더니 이내 통을 들고 다시 나왔다. “당장 가갔어, 아니믄 이 구정물을 뒤딥어쓰갔어. 날래 말하라우.”

주모가 물통을 이리저리 흔들며 여차하면 소년한테 쏟아부을 기세였다. 주모의 험악한 표정에 잠깐 움찔하던 소년이 맘대루 하시라요.” 하더니 눈발에 질척해진 땅바닥에 벌렁 누워버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주모가 허공에다 실소를 터뜨리며 소년을 향해 물통을 거꾸로 세웠다. 누비옷도 아닌 소년의 무명옷이 흠뻑 젖어 몸에 착 달라붙었다. 그런데도 소년은 입으로 스며든 구정물만 퉤퉤거릴 뿐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마치 국밥집으로 들어가려던 괴나리봇짐의 한 사내가 이 광경을 목격하고는 주모로부터 물통을 거칠게 빼앗아 동댕이치고는 냅다 걷어찼다. 행색은 비록 깨끗하지 못해도 범상치 않은 용모가 양반 축에 드는 것은 틀림없었다.

인심 한번 고약한 여편넬세그려. 동냥은 못 할망정 쪽박은 깨지 말랬다는 말도 모르구 사슈? 아이한테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이오. 이것이 황해도 하고도, 안악 인심이오?”

사내의 일갈이 어찌나 우렁찼던지 주모가 그 자리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사내는 주모가 어찌 됐건 거들떠보지도 않고 소년의 손목을 낚아채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사내는 소년을 곧장 아궁이 쪽으로 밀어놓고는 옷을 말리게 하였다. 소년이 몸을 달달달 떨며 젖은 옷을 벗자 속옷 하나 없이 이내 알몸이 나왔다. 이를 지켜보고 섰던 중년의 남자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혼잣말로 한참을 구시렁댔다. 행색으로 보아 국밥집 주인이 틀림없었다.

이 집 주인장이슈?” 사내가 묻자 그는 기렇습네다만...?” 하고 볼멘소리를 구슬처럼 뱉어냈다.

이 아이한테 국밥 한 그릇 말아 주슈.”

“...돈은 나으리가 내시갔시요?”

주인이 사내와 소년을 번갈아 바라보며 의심쩍은 듯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자 소년이 주인을 올려보며 날래 국밥이나 주오.” 하고 의기양양하게 재촉했다. 그러자 주인이 소년을 걷어찰 듯한 자세를 취하다가 사내와 눈이 마주치자 멈칫하였다.

이 새끼래 밥값은 꼭 나으리가 내시라요.”

말 많기로는 과부집 종년이라더니, 웬 말이 그리도 많소. 여기도 술 한 대접하고 국밥 하나 말아 오슈.”

사내가 주인을 흘끔 노려보고는 마루 한쪽에 걸터앉았다. 잠시 후 주인이 국밥 두 그릇을 들고 와 하나를 부뚜막에다 팽개치듯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날래 처먹고 가라우.” 하고 꼬리를 달았다. 소년은 채 마르지도 않은 옷을 대충 걸치고 부뚜막으로 냉큼 다가앉았다. 그리고는 삽질하듯이 정신없이 입에 퍼 넣기 시작했다.

야 이놈아. 사타구니에 불붙겠다. 불알까지 구워 먹을 셈이냐?”

소년의 하는 양을 내내 지켜보던 사내가 측은해서 못 견뎌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소년은 듣지 못한 듯 먹은 일에 온통 정신을 쏟고 있었다.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그릇을 깨끗이 비운 소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면서 아궁이를 향해 엉덩이를 돌려 앉았다.

배가 어지간히 찼느냐?”

사내가 빙긋이 웃으면서 묻자 소년이 사내 앞으로 냉큼 달려와 앉았다.

나으리한테 청이 하나 더 있시요.”

그래도 청이 더 있다? 그 청이란 게 뭐냐.”

이왕 동냥하시는 김에, 주인한테 재강 한 사발만 얻어 주시라요.”

“...술재강을?”

, 나으리.”

이 염치없는 놈아. 그래도 배가 안 찼단 말이냐?”

배가 찰라믄 아직 멀었습네다. 밥은 염치가 없으니까니, 재강이나 한 사발 더 먹개 해 주시라요.”

고개를 끄덕이던 사내가 탁주를 단숨에 들이키고는 주인 남자를 다시 불렀다.

이 녀석이 배가 아직 안 찬 모양이나, 거어 재강 있으면 한 그릇 내오구려. 값은 내가 쳐 주리다.”

이눔으 아새끼래 염치두 좋구만. 어른한테 감히... 나으리. 이 새끼래 재강을 처먹으믄 십중팔구는 중정합네다. 마시라요.”

주정을? 거어 재미있겠스다. 어디 한번 먹여 봅시다. 어린 놈이 어떻게 주정하는지, 구경 한번 합시다.”

사내 말이 떨어지자 주인이 소년의 머리를 냅다 쥐어박고는 광 쪽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꾀죄한 소년의 얼굴이 활짝 피면서 누런 이를 짐승처럼 드러냈다. 잠시 후 주인이 사발에다 재강을 소족하게 담아 왔다. 소년의 입이 금세 개구리만큼이나 찢어졌다.

네 아비 어미는 있느냐?”

“...옛날에 죽었시요.”

일가붙이는?”

아무도 없시요.”

족보두 없는 상놈이로구나. 네놈 성이나 알고 있어?”

장씨야요.”

장씨라... 그럼, 본은?”

아주 옛날에 혼자 됐으니까니, 그런 것 잘 모르갔시요. 얼마 전에 이웃 할아범한테 들었습네다. 나한테 대원인지 태원인지, 여하튼 그런 장씨라고 일러 줬시요.”

허긴, 거렁뱅이한테 본관은 있어서 뭣에 쓰겠냐만... 몇 살이냐?”

열두 살이야요.”

그 나이치고는 뼈대가 제법 실허구나. 그 허우대에 노비짓도 못 할 팔자라니, 굶어 죽기 십상이다.”

나으리는 한양에서 오셨습네까?”

소년의 입은 제강을 씹느냐고 지저분하기가 꼭 여물 씹는 소 꼴인데다가 이미 눈마저 충혈돼 사내가 낯을 찡그려 소년을 얼른 외면하였다.

오는 길이 아니라, 가는 길이다.”

한양헤는 어드런 사람이 삽네까? 한양에두 거지가 있시요?”

조선 천지에 거지 없는 곳이 어디 있더냐. ? 네놈두 한야 가서 거렁뱅이 하려구?”

여게처럼 인심이 야박하지는 않갔지요?”

이놈아. 한양이라는 곳이 별건 대낮에도 코를 싹뚝 베어 간다는 얘기두 못 들었어?”

정말입네까? 정말, 사람 코를 베어 갑네까?”

이놈아, 그만 지껄이고 어서 그릇이나 비워. 주인한테 얻어맞지 말고.”

그러자 소년이 마치 떠날 차비를 서두르는 것처럼 남은 재강을 쉬지도 않고 마구 퍼 넣었다. 그러고는 소매로 입을 문질렀다.

나으리. 저두 나으리를 따라너서믄 안 됩네까?”

뭣이 어째?”

제발 떼꾸 가시라요. 나으리를 귀찮게는 안 하갔시요.”

소년이 갑자기 마루를 내려서더니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그리곤 연해 애소하였다. 사내가 소년을 물끄러미 내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물에 빠진 놈 건져 냈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로구나. 이놈아. 꼴이 하도 측은해서 허기 면케 해 줬더니...뭐어, 나를 따라나서? 예끼, 염치라고는 때만큼도 없는 자식. 내 앞에서 썩 사라져라.”

지금까지 내내 온화한 표정이던 사내가 갑자기 무서운 얼굴로 태도를 바꿔 언성을 있는 대로 높였다. 소년이 당장 기절할 듯이 눈을 하얗게 뒤집었다.

잘못했습니다요, 나으리. 용서해 주시라요.”

시끄럽다. 거렁뱅이 꼴에 감히 누구를 따라나서.”

사내가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주인을 불러 밥값을 셈하고는 휑하니 나가 버렸다. 그러자 기회는 이때다 싶어 주인 남자가 소년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걷어찼다.

아무리 거렁뱅이락두 염치를 알아야디. 그 꼴에 감히 한양을 입에 올리다니, 말이 되갔어? 날래 꺼디라우. 니 새끼래 있으믄 손님이 끊어져야.”

그리고는 소년을 또 한 차례 걷어찼다. 그제서야 소년은 아픈 엉덩이를 문지르면서 밥집을 재빨리 빠져나갔다. 눈은 여전히 폭설로 쏟아지고 있었다. 소년이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저만치 그 사내가 빠른 걸음으로 가고 있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소년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사내가 가는 방향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사내를 겨우 따라붙은 소년이 그의 앞을 딱 가로막고는 나으리.”를 불러 놓고 눈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웬놈이냐?”

나으리.”

아니, 네놈이...?”

저를 나으리 댁 머슴으로 삼아 주시라요.”

어허, 이런 억지가 있나. 이놈아. 내가 너를 어찌 알고 머슴으로 쓴단 말이냐. 당치않은 소리 그만하고, 길을 터라.”

그래도 소년은 물러서지 않고 눈을 내리는 대로 다 맞고 엎드려 있었다. 그러자 사내가 이 염치없는 놈아.”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소년을 곧 걷어찰 기세로 다가섰다. 소년은 죽기 살기로 사내의 다리 한 짝을 끌어안았다.

나으리. 제발, 저를 버리지 마시라요. 여게서는 굶어 죽습네다.”

이놈아. 한양에 가면 누가 거저 먹여 준다든?”

그러니까니, 나으리 댁에 머슴을 하갔습네다. 제발, 받아 주시라요. 무슨 일이락두 하갔시요.”

이놈아. 내 갈 길이 바쁜 몸이다. 어서 물렀거라.”

차라리 저를 죽이고 가시라요. 어차피 여게서는 굶어 죽습네다.”

소년이 아예 사내의 다리 둘을 안아 버렸다. 그 바람에 사내가 중심을 잃고 잠시 비틀대더니 종내는 눈밭에 넘어지고 말았다.

이런 고얀 놈을 봤냐. 거렁뱅이 주제에 감히 양반을 넘어뜨려? 네놈이 혼이 나도 단단히 나야 되겠구나.”

사내가 낭패스런 낯으로 일어나 눈을 털자 소년이 이마를 땅에 대고 납작하게 엎드렸다.

나으리. 죽을죄를 지었습네다.”

네놈이 다른 양반을 만났으면 주리를 틀었을 게다. 나 같은 사람 만난 것을 천행으로 생각해라.”

, 나으리. 기래도 저를 떼어 놓지는 마시라요.”

답답한 노릇이다. 내 비록 양반이기는 하나 가세가 보잘것없는 데다가, 정처 없이 떠돌기를 좋아하는 몸이라, 네놈을 데리고 있을 수가 없어.”

“...기러시면, 한양까지 곁에 있도록만 허락해 주시라요.”

그건 어렵지 않다만... 도대체, 네까짓 놈이 한양에는 가서 뭐하게?”

비럭질을 해도 한양에 가서 하갔습네다.”

네놈이 한양 병이 단단히 들었구나. 그러나저러나, 이 엄동설한에 입성이 그래 자기구서야 어찌 견디겠느냐. 얼어 죽기 딱 알맞구나.”

염려 없습네다. 밤에는 남의 집 굴뚝에 등짝을 대고, 낮에는 살을 서로 부비면서 뛰어댕기믄 추위를 이길 수 있습네다.”

거지꼴에 꾀는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 글은 좀 깨쳤느냐?”

배운 적이 없습네다.”

“...어쩌면, 네가 더 편한 인생일지도 모른다. 아무 데서나 먹고 자고, 게다가 식자우환도 없을 테니 말이다.”

기렇지만 나으리. 저처머 배운 것이 없는 놈은 평생을 천대만 받고 산다고 들었습네다.”

꼬라지와는 다른 구석이 있구나. 네놈이 천민인, 천대받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 제 분수를 알아야지.”

기렇지만 나으리. 양반도 천민도 다 같은 사람 아닙네까. 출신이 천민이라고 해서, 같은 사람한테 짐승 취급을 받는 것은 좀 억울하지 않습네까.”

이놈이...? 누구한테 들은 소리더냐, 아니면 네놈 생각이더냐.”

“...제 생각입네다.”

네놈 생각이라... 한양 가서 머슴 하겠다는 놈이 양반한테 맞아 죽을 생각만 하는구나. 한양에 가서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 알겠느냐?”

“..., 나으리.”

숨은 내쉬고 말은 내지 말라고 했다. 말은 입 밖에 내기를 조심하라는 뜻이야. 네놈이 천대를 많이 받은 모양이다만, 양반도 입성이 반듯하지 못하고 행동거지가 바르지 못하면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야. 무슨 말인고 허니, 행동거지를 바르게 가지면 남이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 나으리.”

네놈한테 똑똑한 구석이 있는 듯도 한데, 글을 익히지 못했다니 아쉽구나.”

양반이 아니면 글을 배워도 소용이 없다고 들었습네다.”

이놈아. 글을 익힘이 꼭 입신양명하기 위해서만 한다더냐.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 하는 것이야.”

“..., 나으리.”

쑥대강이같이 흐트러진 머리에다 거무칙칙한 무명 저고리와 바지만 달랑 걸친 소년의 모양새를 꺼림칙하고 측은한 눈길로 내려보고 있던 사내가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비럭질로 썩기는 아까운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배운 것도 없는 놈이 생각하는 것은 철 안 든 어른보다 낫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네놈은 재강만 먹으면 주정을 한다지 않았더냐. 그런데, 어째서 그리 멀쩡하지? 술이 벌써 깨 버렸느냐?”

기런 게 아닙네다. 재강을 먹고 나면 갑자기 어지럽고, 저도 모르게 노래가 나와서 기럽네다.”

날씨도 춥고 노정이 지루하니, 노래나 불러 보렴.”

잘 못합네다.”

못해도 괜찮다.”

꾸중하시믄 안 됩네다, 나으리.”

알았다니까 그러는구나.” “기럼...”

소년이 갑자기 허리춤을 올리며 목을 길게 뽑았다. 그 모양이 재미있는 듯 사내가 웃음을 참지 못해 슬그머니 외면을 하였다.

정방산성 초목이 무성한데

밤에나 울 닭이 대낮에 운다

~에헤에 에헤요 어림마 둥둥 내 사랑아

 

슬슬 동풍에 궂은비 오고

시화나 연풍에 임 섞여 노자

~에헤에 에헤요 어림마 둥둥 내 사랑아

 

사면십리 느러진 능파 속에

님 찾아갈 길이 망연이로다

~에헤에 에헤요 이림마 둥둥 내 사랑아

소년은 제법 중모리장단을 흉내 내면서 재강 힘인 듯 목청을 있는 대로 뽑아 젖혔다. 구성진 데가 있었다. 두 사람 외에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외진 산길에 눈은 퍼붓고, 마침 아이가 낭낭하게 뽑아내는 가락이 나느네 발걸음을 더욱 무겁게 하는 듯하고 기하고 기특하여 거지라는 생각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놈아. 그건 <긴난봉가>가 아니더냐.”

황해도 사람이 많이 부릅네다.”

누구한테 배웠길래, 그토록 빠진 곳 없이 부를 수 있더냐?”

“...그냥, 몇 번 듣고 불렀습네다.”

제법이구나.”

또 있습네다.”

그 녀석 참... 어디, 더 들어보자꾸나.”

소년이 갑자기 곰배팔이와 다리병신 흉내를 내더니 <병신난봉가>를 뽑기 시작하였다. 영락없이 병신에다가 바짓가랑이까지 우습게 걷어 올린 것이 시장바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거지패 중의 하나였다.

병신의 종자가 또 따로 있나

한 다리 한 팔 못 쓰면 병신이지

~에헤여 어거야 어야어야 디야 네가 내 사랑아

 

능라도 수양버들 휘어휘어 잡고서

가지나 말라고 생야단만 친다

~에헤여 어거야 어야어야 디야 네가 내 사랑아

 

십오야 큰 달아 말 물어보자

우리 임 계신 곳 비추어나 주렴

~에헤여 어거야 어야어야 디야 네가 내 사랑아

그것도 귀동냥으로 배운 것이냐?”

, 나으리. 꾸중은 안 하시갔지요?”

그 녀석 참...”

사내는 소년의 눈썰미와 밝은 귀에 새삼 놀라고 있었다. 무식한 천민 출신이 분명한 듯한데 겨우 열두 살 사이에 그만한 가사를 빠뜨림 없이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사내는 소년이 새삼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정말 천민 출신인지 아니면 무슨 곡절이 있는 가문의 후손인지 아리송하였다.

얘야, 뭣 좀 물어보자꾸나.”

, 나으리.”

네가 몇 살 때 아비를 잃었더냐? 숨김없이 말하거라.”

“...여섯 살 때 돌아가셨습네다.”

네 어머니는?”

제가 아홉 살 먹었을 때 병을 앓다가...”

그 대목에서 소년은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죽은 닭처럼 맥없이 떨어뜨리며 소매로 눈을 문질렀다. 사내는 자신도 모르게 소년 어깨에 팔을 올렸다.

안됐구나. 혹시, 아비한테 너희가 양반의 가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없으냐?”

아바지는 비장이댔시요. 오마니한테 들었습네다.”

그렇다면, 무반이구나. 어쩐지...”

사내는 소년의 얼굴을 다시 한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마음속으로 그러면 그렇지...”를 되뇌었다. 몸을 씻기고 입성만 깨끗하게 갈아입히면 총명함이 저절로 드러날 얼굴임을 비로소 깨달았다.

나으리, 무반은 양반과 무엇이 다릅네까?”

양반은 양반으로되, 문반에게 하대를 받느니라.”

기럼, 제가 천민이 아니라는 말씀입네까?”

천민은 아니다만, 비장이 원체 말직에다가 가세가 빈곤했던 탓에 양반 대접을 받지 못했을 게다. 하지만 분명 천민은 아니니, 차후로 행동거지를 천하게 드러내지 말아야 하느니라. 알겠느냐.”

, 나으리. 까막눈이 양반 행세는 해서 뭐 하갔습네까.”

네 아비가 자식한테 글을 배우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허구나.”

오마니가 못하게 했시요.”

어미가? 왜 그랬다너냐?”

과거를 보지 못할 바에야, 무식한 것이 낫다고 했습네다.”

어허. 네 어미가 무식했구나.”

오마니 말이 맞습네다. 거렁뱅이가 어드렇게 글을 배우갔습네까. 나으리께서도 식자우환이라고 하셨으니까니, 차라리 잘됐지 뭡네까.”

이 녀석, 말은 뻔지르하구나. 그러나 독학도 있느니라.”

“...머슴 일 하믄서, 배나 곯지 않으면 좋갔습네다.”

내가 비록 양반이기는 해도 밑이 빠지게 가난하니, 네 뒤를 돌봐 줄 수가 없구나.”

아닙네다, 나으리. 한양까지만 데려다 주시믄, 혼자 살 수 있습네다.”

기특한 생각이다.”

조금 전만 해도 한낮이었던 시간이 그만 눈 속에 파묻힌 듯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눈발은 약해졌으나 골짜기를 타고 내려온 바람이 살을 에는 것처럼 매웠다. 사내는 봇짐을 풀어 소년에게 젖은 버선을 갈아신기고 짚신도 한 켤레 선뜻 내주었다. 소년이 황송해서 마다하는 것을 눈을 부릅떠 억지로 신게 하였다.

어둡기 전에 저 등성이를 넘어야 되겠다.”

산을 넘으믄 인가가 있습네까?”

주막이 하나 있느니라.”

나으리.”

왜 그러느냐.”

“...나으리는 예삿분이 아닙네다.”

녀석...아첨할 줄도 아는구나.”

아닙네다. 저 같은 거렁뱅이를 천대하지 않으시는 것이 기렇습네다. 다른 사람은 저를 꼭 짐승처럼 박대를 하잖습네까. 양반집 아이들은 물론이고, 같은 천민인데고 아바지 오마니가 있다고 그 아 새끼덜까지 업신여깁네다. 그런데 나으리께서는...”

소년은 목이 맺힌 듯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는 사내를 하늘이 맺어 준 은인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거지 중에서도 상거지인 놈을 불쌍히 여기는 온정이 한없이 고마웠다.

그러고 보니, 네 이름을 물어보지 않았구나. 성은 장가라 했는데...”

승업이라 합네다.”

이름자는 쓸 줄 아느냐?”

“...모릅네다. 오마니가 기러는데, 베풀 장에 이을 승과 업 업자를 쓴다고 했습네다.”

... 네가 기억력은 좋은 모양이구나.”

무엇이든 한번 들은 것이나 본 것은 까먹디 않습네다.”

그래? 그러면, 네 이름을 써 줄 테니 익히겠느냐?”

, 나으리.”

사내가 나뭇가지를 꺾어 눈밭에다 소년의 이름 장승업크게 써 주었다. 그러자 소년이 제 이름 자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았다.

쓸 수 있겠느냐?”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한번 써 보렴.”

사내가 글자에 눈을 덮어 버렸다. 그리고는 나뭇가지를 소년에게 넘겨주었다. 소년은 한 자 한 자 써 나갔다. 비록 조악하기 이를 데 없지만 신통하게도 획을 하나도 빠뜨리고 않고 이름 석 자를 그려 놓았다.

...정말, 놀랍구나.”

사내는 소년 승업이 더 기특하고 대견하여 눈에 젖은 그의 더벅머리를 움켜잡아 마구 흔들었다.

네 이름 석 자만은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 나으리.”

갈 길이 멀다. 서두리자꾸나.”

사내는 뜻 모르게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눈밭을 헤치며 성큼성큼 앞장섰다. 그 뒤를 소년이 강아지처럼 따라붙었다.

 

 

 

2

조선 시대에는 동지가 지난 후 제3의 미일을 납일로 정하여 조정에서는 종묘와 사직에 큰 제사를 지냈다. 여기서 미일이란 지지, 즉 자. . . . . . . . . . . 해 중에서 미의 날을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납일은 사냥하는 날로서, 천지만 물의 덕에 감사하기 위하여 산짐승을 사냥하여 여러 신에게 고하는 제사 때 제물로 썼으며, 그 고기로는 주로 산돼지와 산토끼를 썼다. 경기도 산간의 군에서는 특히 산돼지를 제물로 많이 썼기 때문에 그곳 수령은 산돼지를 수색하기 위해 온 군민은 물론이고 서울 장안의 포수까지 동원하였다.

그리고 각 가정에서는 참새를 잡아 어린아이한테 먹이면 속칭 천연두라 불리던 마마를 깨긋하게 한다 하여, 이날에 그물을 쳐서 참새를 많이 잡았다. 또한 납일에 내린 눈을 녹여 그 물을 약용으로 쓰기도 하였고, 그 물에 물건을 적셔두면 구더기가 생기지 않아 눈을 매우 중하게 여겼다.

오늘이 바로 그 납일이어서 각 고을의 산과 골짜기마다 산돼지를 몰기 위해 동원된 장정들이 내지르는 함성으로 여기저기서 마치 군사작전을 전개하는 것처럼 요란했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참새를 잡기 위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또한 야단법석이었다.

이른 아침, 용문산을 끼고 경기도 양평에 들어서고 있던 사내와 소년 장승업은 죽자 사자 산돼지를 쫓고 있는 군민들을 목격하고 둘이서 한참을 구경하였다. 뿐만 아니라 마을 한가운데로 들어오자 참새를 잡으려고 아이들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승업은 갈 길이 바쁜 것도 깜빡 잊고 아이들 노는 모습이 재미있어 잠시 넋을 잃고 있었다. 사내가 길을 재촉하며 여러 차례 불렀는데도 듣지를 못하였다.

야 이놈아. 한가하게 구경만 하고 있을 테냐? 서둘러 가도, 오늘 중으로 한양에 닿을 둥 말 둥 하다니까 그러는구나.”

헤헤. 저놈들, 새 잡는 솜씨 하고는...”

승업이 새를 쫓아 우왕좌왕하는 아이들을 보며 연신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는 네놈은 뾰족한 수가 있을 성싶으냐? 어서 가자.”

이때 승업이 갑자기 사내의 소맷자락을 잡아끌었다. 사내가 귀찮아하는데도 승업은 소매를 놓지 않았다.

대체, 왜 그러느냐?”

나으리. 시장한 데 새나 잡아 구워 먹으믄 어떻갔시요?”

“...나는 새를 무슨 수로 잡는단 말이냐?”

그러자 승업이 붙들어 맬 끈이 있어야디...?” 하고 중얼대더니 갑자기 사내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눈빛을 반짝이며 훑어내리는 것이었다. 사내가 영문을 몰라 승업을 멀뚱하게 내려보았다.

나으리. 죄송하지만 그 술띠 좀 빌려주시라요.”

뭣이 어째? 띠를 빌리자니? 이놈아. 남의 중치막에 두른 띠를 달라면 나는 어찌하고?”

새끼라도 있으믄 되갔는데... 잠시만 빌리면 됩네다.”

이놈이...? 대체, 띠는 무엇에 쓰려는냐?”

새를 잡으려고 그럽네다.”

그리고는 마치 허락이라도 얻어 낸 것처럼 사내한테 손을 불쑥 내밀었다. 사내는 승업의 행동이 하도 당돌하고 어처구니가 없어 비척비척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는 사이에 그의 술띠는 이미 풀려 승업의 손으로 넘어갔다. 사내는 어허, 어허...” 하면서 승업의 손에 넘어간 띠를 잡으려고 팔만 마구 흔들어 댔다.

승업은 사내의 술띠를 재빨리 자기 허리에 두르고는 제 허리띠를 풀렀다. 그리고는 돌 한개를 골라 끝으로 단단히 묶었다. 그래도 제 딴에는 양반의 술띠로 차마 돌을 묶을 수가 없어 사내의 띠를 자기가 두른 것이었다.

승업이 사내를 세워 둔 채 참새가 많이 앉아 있는 나무를 골라 살금살금 다가가면서 돌을 매단 띠를 쥐불놀이하듯 빙빙 돌리는 것이었다. 사내가 보기에 놈이 많이 해본 짓이었다. 결국 사내도 승업의 다음 행동을 지켜보았다.

나뭇가지에 참새 대여섯 마리가 눈치도 없이 마냥 앉아 있었다. 어느덧 사내도 긴장하여 가슴을 졸였다. 그 순간, 연처럼 꼬리를 달고 승업의 손을 떠난 돌이 참새 한 마리를 정통으로 맞혀 여지없이 떨어뜨렸다. 사내는 놈의 재주에 감탄한 나머지 양반의 체통도 잊고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 바람에 띠를 잃은 중치막이 바람에 빨래처럼 날렸다.

야 이놈아. 띠를 냉큼 가져오지 못하겠느냐?”

그러나 승업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 띠 내놔, 이놈아.”

, 나으리. 세 마리만 더 잡고 드리갔습네다. 잠시만 참으시라요.”

승업은 얼굴조차 돌리지 않고 또 다른 나무를 향해 걸음을 날렸다. 잽싸기가 꼭 다람쥐 같았다. 사내는 볼멘소리로 양반 체통이 말이 아니구나.”를 투덜대며 꼭 누가 보는 것 같아서 발만 구르고 있었다. 한참 만에 승업이 돌아왔다. 결구 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아주 의기양양했다. 새를 자그만치 다섯 마리나 잡았다.

나으리. 이것으로 요기는 되갔지요?”

네 이놈. 띠를 냉큼 내놓지 못할까. 천하에 불상놈 같으니.”

사내는 승업의 재주가 신통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승업이 그제서야 생각이 난 듯 재빨리 띠를 벗어 사내에게 돌려주었다.

잘못했습네다, 나으리. 너무 배가 고파서 기랬습네다. 용서하시라요.”

못된 놈 같으니라고...”

나으리. 주막에 가서 맛있게 구워 드리갔습네다.”

시끄럽다. 네놈이라 실컷 처먹거라.”

“...노여움을 푸시라요, 나으리. 다시는 안 기러갔습네다.”

내가 띠를 또 풀어 줄 것 같더냐?”

나으리. 제 솜씨가 어떻습네까?”

그게 무슨 자랑이라구... 팔매질은 누구한테 배웠느냐?”

혼자서 익혔습네다. 고무줄총이 있으며 수도 없이 잡습네다.”

굶어 죽지는 않겠구나, 마침 오늘이 납일이니, 네놈이나 구워 먹어라. 그래야 마마를 곱게 하니니라.”

노여움을 푸셨으니, 다행있네다.”

어서 가자. 네놈 때문에 많이 지체했다.”

사내는 승업의 행동이 어처구니없으면서도 결코 밉상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았다. 승업을 참새를 짚으로 솜씨 있게 엮어 허리춤에 차고는 망아지처럼 쫄래쫄래 따라붙었다.

날이 저물 무렵에서야 한양에 겨우 당도했다. 무슨 연유인지 사내는 오는 길을 항상 재촉하였다. 꼭 주막에 들러야 하는 일 빼고는 쉬는 법이 없었다. 승업이 숨이 가빠 잠시 쉬자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애써 잡은 참새를 구워 먹을 새도 없이 길을 재촉하였다. 걷는 힘으로는 장사였다. 마치 걷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 같았다.

나으리. 한양에 왔으니까니, 이자는 저를 버리십네까?”

갑자기 불안해진 승업이 힘없이 물었다. 그러나 사내는 묵묵히 걷기만 하였다. 승업이 사내의 소매를 슬그머니 잡았다.

그렇게 약조하지 않았더냐?”

“..., 나으리.”“그렇게 알고, 이제부터는 네 갈 길을 찾거라.”

나으리.”

왜 그러느냐?”

한양에서 머슴을 살라믄 어떻게 합네까? 기것만 가르쳐 주시라요.”

그 또한 네가 찾을 일이다.”

나으리...”

어허, 이놈아... 정녕, 머슴을 할 테냐?”

,나으리.”

사내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무엇인가 생각에 잠기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갸웃하였다. 승업을 맡길 만한 마땅한 곳을 궁리하는 듯싶었다.

헷걸음 삼아 한번 가 보기나 하자.”

사내가 더 빠른 걸음으로 앞장서 갔다. 승업은 낯선 곳에서 그를 잃어버릴까 봐 더욱 바싹 따라붙었다.

나으리. 저를 데리고 가시는 거디요?”

말이 많구나. 이제부터는 행동거지를 천하게 하면 안 되느니라.”

, 나으리.”

그 댁에서 너를 받아 줄지 모르겠구나.”

일만 열심히 하믄 밥은 배불리 먹갔디요?”

낸들 알겠느냐? 밥을 줄지, 거름을 줄지.”

헤헤, 나으리도... 설마, 똥이야 먹이갔습네까?”

밥을 안 주면 거름이라도 먹어야지, 네놈이 별수 있겠느냐?”

설마...”

승업은 한양의 양반 인심이 은근히 두렵고 궁금하면서도 설마,설마...”를 중얼거리며 축 처진 어깨로 사내를 따라갔다. 창경궁을 지나 안국동으로 접어들었다. 그러자 대궐같이 큰 기와집들이 곳곳에 들어앉아 있는 것이 단박에 눈에 들어왔다. 그 위세에 눌린 승업은 벌린 입을 오랫동안 다물지 못했다. 귀동냥으로만 들었던 한양의 양반댁이 이처럼 으리으리할 것으로는 차마 상상하지 못했다. 마치 별천지에 온 것만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황해도 안악에서도 또 몇십 리를 들어간 오지에서 태어난 승업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는 동안 사내는 승업을 아랑곳하지 않고 어디론가 바삐 걷기만 하였다. 승업이 숨을 헐떡거리며 사내를 뒤따랐다.

나으리. 이렇게 큰 집에는 어떤 양반들이 삽네까?”

너 같은 놈한테는 일러 줘도 모르니니라. 워낙 지체 높은 양반들이니까.”

“...나으리도 양반이니까니, 집이 저마큼 크갔습네다.”

헛소리 그만하고, 어서 따라오너라. 내가 이 무슨 짓이냐.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느닷없이 거렁뱅이를 혹으로 달고 다니다니.”

사내는 승업이 갑자기 귀찮아진 듯 짜증 섞인 어투로 말했다. 승업은 금세 주눅이 들어 입을 딱 봉해 버렸다. 비로소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양반 체통에 거지를 마다 않고 거둬 준 은혜를 잠시 잊고 버릇없이 굴었던 순간순간들이 몹시 송구스러웠다. 승업은 다시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자신이 귀찮은 나머지 혹시 길거리에다 그냥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다고 해도 사내를 원망할 수는 없음을 승업은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몰골을 새삼 살펴본 승업은 사내와 조금씩 간격을 두고 따라갔다. 양반의 체통을 생각해서도 그와 나란히 걷는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고 누가 봐도 어울리지 않는 모양새라고 판단했다.

사내가 큰길에서 골목을 두 번 꺾어 돌더니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옷매무새를 고치는 시늉을 하였다. 그리곤 한 기와집 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것이었다. 솟을대문이 아니고 빌고 평대문이긴 하지만 눈어림으로 규모가 꽤 큰 집이었다. 사내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승업은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불안한 가운데에도 가슴 한편으로는 흥분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이 집 주인 양반이 과연 자신을 머슴으로 써 줄는지 점점 자신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미 머슴이 되어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한량없이 기뻤다.

사내가 안에 대고 이리 오너라.”를 외치자 잠시 후 문이 삐그르 열리며 머슴이 틀림없을 중늙은이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둑어둑한 시야에서 방문객을 확인하느라 목을 거위처럼 늘였다.

날세.”

어이구, 진사 어른. 어서 오십쇼.”

집안은 무고한가? 대감마님이랑 내당 마님께서도 평안하시고?”

, 진사 어른. 모두 무고하십니다요. 대감마님께서는 마침 저녁 진지를 들고 계십니다.”

이때 승업은 재빨리 진사 어른...?”을 되뇌이며 마음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비로소 그가 진사 양반임을 깨달았다.

시장하던 차에 때를 잘 맞춰 왔구만.”

머슴이 허리를 낫처럼 구부려 사내에게 길을 터 주자 그가 안으로 들어가다 말고 승업을 가리키며

저놈한테 밥 한 덩이 주게.”

“...누굽니까요?”

그냥 밥이나 한술 먹이게.”

그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머슴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이 진사와 승업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승업의 몰골을 파악한 그는 기가 막힌 듯 한동안 멀뚱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승업은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처분만 기다릴 뿐이었다.

어여 들어와, 이눔아. 꼬락서니 하구, ...”

머슴이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리며 승업을 안으로 들게 하였다. 잔뜩 주눅이 든 승업이 게걸음으로 비치적거리자 행동을 빨리 하라며 눈을 부라렸다. 머슴은 승업을 행랑채 툇마루에 남겨 두고는 말없이 사라졌다.

잠시 후 머슴이 다시 나타나 승업에게 바가지 하나를 불쑥 내밀었다. 바가지에는 찬밥과 김치 두어 쪽이 담겨 있었다. 승업은 바가지를 받자마자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를 열어 동강 난 숟가락을 꺼내 들었다.

도대체 웬 놈이냐? 웬 놈인데 감히 진사 어른을 따라다니는겨?”

눈알이 불거지도록 밥을 꾸역꾸역 퍼 넣고 있는 승업을 내려보며 머슴이 물었다. 그러자 승업이 목을 뽑아 밥을 목구멍으로 급히 넘겼다.

저를 한양으로 데려가 달라고, 나으리한테 부탁했시요.”

한양에는 왜?”

“...머슴살이 하러 왔시요.”

우리 대감댁에?”

그건 잘 모르갔시요. 나으리께서 정해 주시믄 있을 생각입네다.”

글쎄다. 내당 마님이 네 꼴을 보시고, 과연 허락하실지...”

밥만 먹여 주시믄, 무슨 일이든지 다 하갔시요.”

그건 내당 마님께서 결정하실 일이다.”

승업이 머슴이 내뱉은 말에 다시금 불안하기 시작했다. 그의 말대로 이 집에서 머슴으로 써 주지 않는다면 당장 정처가 없어 걱정이었다. 진사 양반한테 더는 매달릴 염치가 없어 낯선 한양 땅을 떠도는 신세가 될 판이었다.

대감 내외한테 문안 인사를 마친 이 진사는 사랑채로 건너와 독상을 받아 허기부터 채웠다. 이때 문이 스르르 열리며 내당 마님이 들어섰다. 그녀는 좌참찬 김우근 대감의 부인이며 이 진사 용후한테는 누님이 된다. 김우근 대감은 당시 영의정에 올라 있는 김좌근과는 사촌 간이라 안동 김씨 세도에 편승하여 장안에서는 세도 있는 집안이었다.

밥숟가락을 보니, 몹시 시장했던 모양이네.”

어서 드십시오, 누님.”

이용후가 밥을 뜨다 말고 송구한 몸짓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자 그녀가 혀를 차며 동생에게 별로 곱지 않은 눈길을 내려놓았다.

마저 자시게. 그래, 이번에는 또 어디를 유람했나?”

“...금강산에 좀 다녀왔습니다.”

벼슬자리도 마다하고, 그렇게 유람이나 다녀서 어쩌겠다는 게야?”

입에 거미줄만 안 치면 되지요, .”

저렇게 속 편한 사람이 조선 천지에 또 있을는지 원...”

그건 그렇고, 누님께 청이 하나 있습니다.”

청이라니?”

“...어쩌다가 어아 한 놈을 달고 왔는데, 머슴으로 두면 어떨까 싶습니다. 생긴 건 거지꼴이지만 제법 총명한 구석이 있는 놈입니다.”

그 아이가 누군데 달고 왔다는 게야?”

황해도 지방에서 주운 놈입니다.”

이용후는 승업과 연을 맺게 된 사연과 그의 면면을 소상하게 얘기했다. 그러나 그녀는 한마디로 거절했다. 근본이 없는 아이를 집에 들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근본이 아주 없는 것이 같지는 않습니다. 무반의 자식인 듯한데, 워낙 조실부모한 탓에 거지꼴이 된 것뿐입니다. 제 형편이 웬만하면 데리고 있겠지만 누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자네 그 모양새도 거지나 별반 다를 게 없으니, 둘이서 붙어 다녔다면 볼 만했겠네. 제발, 양반 체통 좀 지키게. 방금 전에 대감께서도 자네를 외면하시지 않던가. 대감 뵙기가 민망해서 혼났네.”

그녀는 초라한 동생의 몰골부터 못마땅해 하던 차에 거지까지 데리고 다녔다는 말에 가슴에서 열방망이가 뛰는 것 같았다. 마음 같아서는 몰인정하게 당장 내쫓고 싶어 안달이 솟을 지경이었다.

그래서, 저도 되도록 누님 앞에 나타나지 않으려 했습니다만 저놈한테 코를 꿰는 바람에...”

자네, 참으로 못났네그려.”

그녀는 동생으로부터 아예 돌아앉았다. 이용후는 누님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녀는 웬만해서는 노여움을 갖지 않는 성격이지만 일단 감정이 뒤틀렸다 하면 그것이 풀리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정이 많은 여자이면서도 동생의 생활 태도가 양반스럽지 못한 점이 항상 불만이었다. 이릴 때부터 워낙 총명한데다가 문장이 훌륭해 진사까지 됐으면서도 관직에 들어가기를 싫어했다. 그리고는 무슨 생각에선지 그저 떠돌아다니기를 좋아했다. 동생의 역마살이 가뜩이나 안타깝고 못마땅한 판에 왠 거지까지 달고 와서 머슴으로 쓰라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미운 벌레가 모로 간다더니, 자네가 꼭 그 짝일세. ”

“...미운 놈한테 떡 하나 더 준다는 말도 있잖습니까.”

그만두게. 어차피 늦었으니 오늘은 예서 묵도록 하고,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그 아이를 데리고 가게. 행여, 대감 눈에 띄지 않도록 하게. 대감이 아시면 자네 얼굴에 미운털만 더 박힐 테니까.”

누님 뜻이 정 그러시다면, 분부대로 행하겠습니다.”

이용후는 그녀가 자리를 뜨자마자 곧장 행랑채로 향했다. 승업이 방에도 들어가지 못한 채 툇마루에 앉아 몸을 달달 떨고 있었다. 그가 측은하다는 생각에 갑자기 머슴들이 괘씸하였다.

박서방, 안에 있는가?”

비로소 문이 열리며 아까 그 중늙은이 머슴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가 이용후를 보자 당황해서 마당으로 황망히 내려섰다.

진사 어른께서 이 누추한 곳에 어인 일이십니까.”

이 아이를 밤새 여기에 둘 텐가. 저러다 얼어 죽기라고 하면 어쩌려고... 윗목에라도 재우게.”

꼴이 하도 저 모양이라고 그만...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내당 마님께서 저 아이를 머슴으로 쓰시겠다고 하셨습니까? ”

“...오늘 밤만 묵도록 하셨네. 형편이 되거든 저 아이한테 헌 솜옷 한 벌 입히게. 저 꼴로는 얼어 죽기 십상 아니겠나.”

글쎄요...? 마땅한 옷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요.”

누더기라도 좋을 것이니, 찾아보게. 그리고, 주먹밥도 네댓 개 준비하게.”

주먹밥은 무엇에 쓰시게요?”

그건 알 필요 없으니, 준비나 하게.”

“...알았습니다요.”

그제서야 승업은 방에 들어갈 수 있었다. 몇날 며칠을 한데서만 지내던 그가 방에 몸을 넣는 순간 꽁꽁 얼었던 몸이 귀뿌리부터 녹기 시작하더니 얼굴 전체가 화끈화끈 달아올랐다.

박 서방은 이용후한테 뜻하지 않은 무안을 당해 승업이 가뜩이나 미운 데다가 꼴이 너무 더러워 윗목 구석에다 그를 처박다시피 하였다. 아랫목에는 박 서방 말고도 젊은 머슴 넷이 더 누워서 코를 드르렁드르렁 골고 있었다.

이눔아. 내가 뭐라고 했냐. 마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을 거라고 했지? 원래 입은 거지는 얻어먹어도, 벗은 거지는 못 얻어먹는다고 했어. 꼴이 그래 가지구서야 누가 너를 거두겠냐. 애비 에미도 없이, 땅에서 솟은 거지 같구나.”

옛날에는 이렇지 않았댔시요.”

애비 에미가 너를 버린 거냐?”

“...일찍 죽었시요.”

머슴보다 더 서러운 놈이구나. 앞으로 어쩔 셈이냐?”

모르갔시요....어드렇게 하믄 머슴으로 들어갈 수 있는지, 좀 가르쳐 주시라요. 밥만 먹여 주믄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시요.”

이눔아. 머슴한테 고작 밥이지, 바랄 것이 더 있는 줄 알아? 어린놈이 염치두 좋지. 방법이 있다면, 딱 한 가지뿐이다.”

기거이 뭡네까?”

믿을 건 아니지만, 지체 높은 양반댁 문전에다 몇 달이고 자리 깔고 눕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인정 많은 양반 눈에 띄면 거둘지도 모르니까. 운이 좋아야지.”

운이 좋아야 한다니까. 그렇게 해서, 밥은 굶지 않은 놈이 더러 있어.” “가르쳐 줘서 고맙습네다. 기런데, 누구래 지체 높은 양반입네까?”

승업은 박 서방이 일러 준 말에 귀가 번쩍 열려 흥분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 방법을 철석같이 믿는 것 같았다. 눈치로 보아 이 집에서 머슴 노릇 하기는 틀린 성싶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결국 이 진사하고도 헤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그런 판에 박 서방 말은 매우 그럴듯하였다.

누구 누구 지체 높다고 하면 네놈이 알겠냐? 문패를 달아 놓은 것도 아닌데.”

기럼, 어떻게 압네까?”

무작정 대궐 같은 집을 골라 떼를 써야지.”

알겠습네다.”

그러다가, 죽도록 매만 맞고 쫓겨나는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야 해.”

“...설마, 죽이기야 하갔습네까.”

녀석, 말하는 것 좀 보게.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것도 몰라?”

자칫 매 맞고 쫓겨나는 수가 있다는 말에 승업은 다시금 불안해지면서 금세 눈앞에 캄캄했다. 엄동설한에 문밖에다 자리 깔고 눕는 일도 두렵고 막막한 일인데 게다가 매까지 맞을 것을 생각하니 걱정이 태산처럼 불어났다.

이튿날 동이 트자 박 서방이 뭇국에 더운밥 한 사발을 내와 승업은 그걸 샅샅이 핥아먹고 이용후를 다시 따라나섰다. 이용후 분부대로 박 서방이 솜을 넣어 꽤 두툼한 옷가지를 내놓아 눈물이 쑥 빠질 만큼 따뜻했다. 게다가 주먹밥까지 안겨 주는 바람에 승업은 갑자기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모두가 이 진사의 배려임을 잘 알고 있어 그에게 장차 은혜 갚을 날이 과연 있을까 생각하였다.

승업아. 내 갈 길도 바쁜데다가 더 이상 너를 데리고 갈 수가 없으니, 여기서 헤어지자꾸나, 산 입에 설마 거미줄 치겠느냐.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고 했으니, 꾀를 내어 살아가도록 해라. 나무라도 해다 팔면 굶어 죽지는 않을 게다. 알았느냐?”

“....”

승업은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다. 그와 헤어진다는 서운함과 다시 혼자가 된다는 서러움이 치밀어오르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이거 받아라. 몇 닢 안 되지만 나중에 요기나 하거라.”

이용후가 중치막을 젖혀 엽전 몇 개를 꺼내 승업이 손에 쥐여 주었다. 그리고는 말없이 서둘러 길을 떠났다.

나으리. 안녕히 가시라요.”

승업은 이용후의 뒷모습을 망연하게 바라보며 눈물을 하염없이 쏟았다. 한 번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지는 그가 갑자기 야속하고 서러웠다. 염치 팽개치고 다시 그를 따라붙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으나 차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판단이 가슴을 압박하였다.

안녕히 가시라요.

승업은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아 내며 멀리 사라지고 있는 이용후를 향해 무릎 꿇어 큰절을 올렸다.

 

 

 

3

철종임금이 왕위에 오른 지 5년째 되는 해 갑인년(1854) 제석. 제석은 곧 섣달그믐날 밤을 말한다. 이날에 사대부 집에서는 사당에 가서 조상에게 참례를 하고, 각 가장에서는 연소자들이 친척 어른들을 찾아가 묵은 세배를 한다. 그래서 길거리에서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이들 세배객들이 밝힌 등불이 줄을 이어 끊어지지 않았다.

반면에 대궐 안에서는 연종포라 하여 제석 전날 대포를 쏘았다. 지금의 불꽃놀이처럼 불화살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리며 징과 북을 울렸다. 이는 대나, 즉 궁중에 있는 모든 악귀를 쫓기 위한 행사였다.

전통적으로 설날 같은 명절에는 으레 고기를 많이 쓰기 때문에 섣달그믐에 당연히 소나 돼지를 잡았다. 그러나 철종 5년인 그해 12, 소를 일절 잡지 못하도록 조정에서 영을 내렸다. 이는 오랜 흉년으로 전국적으로 굶어 죽는 사람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호구책으로 밀도살이 성행했기 때문이었다. 전에는 제석 하루 이틀 전부터 소를 일절 잡지 못하게 했다가도 슬그머니 완화해서 정초에 백성들로 하여금 쇠고기를 실컷 먹게 하는 위무정책을 쓰기도 했으나, 워낙 밀도살이 많아 아예 금지를 시켰다. 그래도 사대부 집이나 웬만한 중인 집에서는 쇠고기를 비밀리 사들여, 예나 지금이나 법령에 묶인 계층은 오직 서민뿐으로써 한동안 명절에도 고기맛을 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절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에게 즐거운 날이었다. 각 가정마다 다락. 부엌. 마루. 방에다 등잔불을 밝혔다. 흰 사기 접시 하나에다 실을 여러 겹으로 꼬아 심지를 만들고 기름을 부어 외양간이나 변소에까지 환하게 불을 밝혀 집집마다 대낮 같았다. 그리고는 밤새도록 잠을 자지 않았다. 이를 경신수세라 하였다. 이는 바로 12월 경신일에는 잠을 자지 않고 밤을 지켜야 복을 얻는다는 도교적 풍속이었다. 제야에 잠을 자면 두 눈썹이 모두 센다는 속담이 정말 밤을 꼬박 새우는 아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간혹 자는 아이가 있으면 밀가루나 분을 발라 이튿날 거울을 보게 하여 놀려먹곤 하였다.

승업과 헤어진 이용후는 그날로 동대문 밖 그의 초옥에 당도하여 칩거하였다. 그의 집은 당시 놀이터로 유명한 흥인문 외양유(동대문 밖 버드나무골) 너머 지봉 길목에 자리 잡고 있어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다. 집이래야 삐딱하게 기울어진 세 칸 방 촉옥이고, 허물어진 돌각담에 얼기설기 엮은 삽짝문이 전부였다. 그는 어릴 적부터 총명한데다가 문장이 좋아 진사과에 급제했으면서도 관직에 들어갈 마음이 없어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으로 살고 있었다. 승업이한테 말한 것처럼 밑이 빠지게 가난한 살림이었다. 그래도 끼니를 굶지 않는 것은 동냥하듯 얻어 오는 부인의 삯바느질에다가 안국동 누님이 동생 모르게 간간이 쌀말이나 보내 주기 때문이었다. 이용후는 그러한 사실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형편에도 나 몰라라 하고 태연했다. 어떻게 입에 밥술이 들어오는지 아내에게 묻는 법도 없고 관심도 없는 위인이었다. 그래도 그의 아내는 사실을 숨기고 있는 중이었다. 만약 누님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음을 뒤늦게라고 알았다가는 그 길로 당장 자취를 감추거나 누님과 연을 끊을지도 모를 위인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남편한테 비밀을 감추고 있기도 마음이 편치 않고 장래가 막막하여 살 도리를 마련하기를 권하면, 그의 대답은 늘 우산각을 머리맡에 두고 사는 사람이 어찌 그런 말을 하시오.” 하고 발끈해서 돌아서는 사람이었다. “또 그 우산각을 들먹이십니까?” “어허, 이 사람이 ...?” 이쯤으로 두 사람의 대화는 끝이었다. 조신한 양반의 아내가 더는 각박하게 굴 수도 없거니와 남편의 성미를 잘 아는 터라 입을 봉할 수밖에 없었다.

세종대왕 시절 정승을 지내던 유관이라는 사람이 흥인문 밖에 살고 있었다. 원체 청빈했던 그는 비가 올 때마다 지붕이 새는 바람이 방에다 우산을 펴 비를 가리곤 했다. 그의 청빈함을 알고 있는 세종은 그의 부음을 듣고 사흘 동안 조정의 업무를 중단했을 뿐만 아니라 철시령까지 내려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 후에 그가 살던 집을 우산각이라 불러 청빈의 대명사로 남겼다.

선조 때 이 우산각에 유관의 외가 쪽 후손인 전주 이씨 이희검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 그는 호조. 형조. 병조 3조판서를 두루 지냈을 만큼 높은 벼슬이었으면서도 그 또한 청렴하여 입성은 몸을 가리는 것으로 족하고, 음식은 창자만 채우는 것으로 족하다.” 할 만큼 욕심이 없었다. 청빈이 그에 그치지 않고 그의 아들 이수광이 이 집을 물려받아 살았다.

이조판서를 지낸 지봉 이수광은 일찍이 개화사상을 가져 우리나라에 최초로 서학을 도입했으며, ‘지봉유설이라는 책을 지어 서양의 문물과 천주교 지식을 소개한 장본인이다. 청빈이 가풍으로 이어진 집안이었다. 후에 우산각이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자 이수광이 이를 복원하고 비우당이라는 당호를 달아 청빈의 표본이 된 유관의 뜻을 기렸다.

이용후가 바로 이수광의 후손이다. 선조의 청빈사상을 추앙하고 있는 이용후가 관직에 몸담지 않고 재물에 욕심이 없음을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한양을 등지고 굳이 동대문 밖 지봉 길목에 초옥을 얻어 사는 것도 조상의 청빈사상이 숨쉬고 있는 비우당을 한시라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가세가 빈곤하여 가장으로서 처자식에게 옷가지를 따뜻하게 입히지 못하고 음식을 배불리 먹이지는 못해도 양반의 체통은 절대 잃지 않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어린 자식들로 하여금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엄한 교육을 시켰다. 그가 비록 낭인처럼 외지를 떠돌아도 집을 나설 때는 반드시 어린 남매에게 <동몽선습> <동몽집요><소학> 따위를 숙제를 안겨 철저히 익히도록 하였다. 그만큼 가난과 사람의 본분은 구분하도록 교육하였던 것이다.

내일이 설이라는 건 알고 계십니까?”

이용후가 입을 딱 봉한 채 서책만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답답하기도 하고 야속하여 그의 아내가 입을 삐쭉거리며 물었다.

오늘이 섣달그믐이니, 내일이 설임은 당연하지 않소.”

어린것들한테 설빔 한 벌을 제대로 해준 적이 없어 민망해서 그럽니다. 체통을 중히 여기는 양반 집안에서 어린것들 대하기가 부끄러워서 원...”

그의 아내가 방골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이용후가 아내의 바느질을 곁눈질하며 빙긋이 웃었다.

왜 웃으세요?”

꼭 흥부 마누라처럼 푸념하니까, 내 웃을 수밖에. 빨아 입힐 옷가지도 없는 흥부네에 비하면 우리는 부자나 다름이 없소. 우리한테는 입던 옷가지 있으니, 부인의 훌륭한 바느질 솜씨로 지금 하듯 깨끗하게 다듬으면 되지 않소. 아이들한테도 우리 살림이 결코 가난하지만을 않다는 걸 깨우쳐야 하오. 그것이 자식을 가르치는 부모의 도리라는 말이오.”

입성은 그렇다치고여, 매년 차례상은 또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상에 고깃국 한 번 올리지 못하니, 조상한테 면목이 없어서 그럽니다.”

면목이 없기는 내가 더하오. 그러나 어쩌겠소. 재물 모으는 능력도 없는 데다가 물려받은 재산이 없으니, 형편에 맞추어 정성이나 다하는 수밖에. 우산각 어르신들을 생각하신다면, 부모님께서도 우리를 그리 탓하지는 않을 것이오. 그러니, 너무 부끄럽게 생각지 마시오. 부인의 품삯으로 올린 차례상이니, 이해하실 테니까.”

아전인수도 유분수지. 어떻게 그런 말씀을...”

아내는 아픈 마음을 찔릴 때마다 일부러 벽창호 노릇을 하는 남편이 어처구니가 없어 그저 한숨이나 내쉴 뿐이었다.

밤이 이슥한데도 남매 경과 원이 잠을 자지 않고 연신 방을 들락날락하였다. 왜 자지 않느냐고 이용후가 묻자 눈썹이 셀까 봐 밤을 지키겠다는 것이었다. 이용후는 어린것들이 귀여우면서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것이 갑자기 애처로워 슬그머니 눈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사람 사는 일에 서러운 것이 이것저것 많겠지만 배고픈 서러움을 따를 만한 것이 또 있겠는가. 어미 젖도 제대로 빨지 못한 아이들이었다. 가장으로서 염치없는 중에도 아내와 아들놈 경한테는 늘 고마웠다. 다행히 경이 태어나 대를 끊기지 않게 되었으니 조상한테는 일단 면목이 선 셈이었다. 게다가 경이 총명해서 아비의 가르침을 잘 따를 것이 틀림없어 마음이 놓였다.

순간, 승업의 얼굴이 갑자기 떠올랐다. 비록 거렁뱅이 꼴이 더럽기 그지없는 아이었으나 하는 짓이 밉지 않았고 제법 총명한 구석까지 있어, 아쉬운 마음이 자꾸 드는 것이었다. 한양까지 오는 동안 미운 정까지 들어 버려 간간이 놈이 그립고, 안국동 누님 집에 눌러앉히지 못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삳달 그믐날 밤을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있을지 궁금하고 안타까웠다. 이 엄동설한에 얼어 죽거나 굶어 죽지는 않았는지... 당장 눈앞에 있는 어린 남매보다 놈이 더 애처로웠다. 평소에 누님한테 밉상만 주지 않았어도 놈 하나쯤 머슴으로 떠맡길 수도 있었음을 생각하니, 이용후는 자신의 처지가 갑자기 한심스럽기도 하였다.

녀석이 굶어 죽지는 말아야 하는데...”

승업의 몰골을 계속 마음에 잡아놓고 있던 이용후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 섞인 말로 내뱉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남편의 얼굴을 멀뚱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나도 잘 모르는 놈이오.”

잘 모르신다면서, 남 굶어 죽는 건 왜 걱정하십니까?”

어찌 된 사연인고 하니...”

이용후는 비로소 며칠 전에 있었던 승업과의 인연을 아내한테 대충 설명하였다. 그러자 그녀가 대뜸 혀부터 찼다. 집안 식구들 걱정은 않고 웬 거렁뱅이 걱정이나 하고 앉았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참으로 딱한 양반이십니다. 지금, 여기저기서 굶어 죽은 사람이 쌓여 산을 이루고 있다는데, 그 아이가 뭐 그리 대단합니까. 우리 아이들 꼴도 그 아이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처지인 줄 모르고 계셨습니까?”

아내가 드디어 악이라도 쓰지 않고는 못 견뎌 하는 어조로 가쁜 숨을 삼키느라 안달을 하였다. 이용후는 아내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천장만 망연히 바라보았다.

우리 아이들한테는 부모가 있고, 눈비 가릴 만한 집도 있고, 끼니도 거르지 않는데, 무엇이 걱정이오. 그 아이가 비록 밥은 빌어먹어도 무반의 자식인데다가 총명하니, 더욱 안됐다는 말이오. 그놈이 좋은 가문에서만 태어났어도 장차 인재가 될 법한데... 아니지, 놈은 어떻게든 살아남을 거요. 그리하여 장차 세상 사람을 놀라게 할지도 모르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범상치 않은 놈이거든.”

그런 아이라면 걱정할 일이 없겠습니다. 장차 큰 인물이 될 터이니.”

“...우리가 궁색히도, 그 아이를 데리고 올 것을 내가 생각을 잘못한 것 같소.”

이용후는 안타까운 마음을 차마 버리지 못해 끝내 후회하고 있었다. 옆에서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아내는 남편이 갈수록 미웠다. 자신의 코가 석 자나 빠져있는 주제에 웬 거렁뱅이 걱정에 묻혀 있는 모양이 한심스러워 애간장이 타는 것 같았다.

그렇게 아쉬워하실 걸 왜 떼어 버리고 오셨는지, 저도 안타깝군요.”

그렇게 비양거리지 마시오. 고목생화라는 말도 있지 않소. 메마른 나무에서 꽃이 핀다는 말이니, 보잘것없는 집안에서도 인물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오.”

허긴, 백옥이 진흙에 묻히고, 개똥밭에서도 인물이 난다고 했으니, 누가 압니까마는...”

“<사기열전><자루 속의 송곳>이라는 고사가 있소. 춘추전국 시대 조나라에 재상으로 있던 평원군이 식객 수천 명을 두었는데, 마침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지 평원군이 초나라에 구원을 청하러 가는 사신으로 발탁이 됐소. 그래서 식객 중에 문무가 뛰어난 자 이십 명을 뽑아 데리고 가려는데 마땅한 자 한 명이 부족했어요. 그러자 모수라는 자가 자진해서 나섰지. 평원군은 그를 눈여겨보지 않았던 터라 잠시 망설이다가 생각난 것이, 원래 쓸 만한 인물이라 흡사 송곳이 자루 속에 들어 있는 것과 같아서, 그 끝이 곧 나타나는 법임을 깨달았대요. 그래도 평원군은 모르는 체하고 모수에게 말하기를, 자네는 내 집에 삼 년이나 있으면서 내 눈에 뜨인 적이 한 번도 없지 않느냐 했지. 그랬더니 모수가 대답하기를, 저를 자루 속에 넣어 주시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지 않았겠소. 평원군은 모수의 말이 자기 생각과 일치한 고로 그를 수행하게 됐지. 결국 모수는 초나라에 가서 외교적으로 큰 공을 세웠다는 말이오. 이처럼, 사람들 중에는 비범한 재주를 가진 자가 있기 마련이오. 단지 그 기회를 잡지 못하여 재주를 사장시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는 뜻이지.”

그럼, 그 승업이라는 아이가 모수와 같은 재목감이란 말씀입니까?”

내가 보기엔 그렇소.”

그렇다면, 역시 우리가 걱정할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무슨 뜻이오?”

그 아이도 평원군의 식객처럼 어느 집엔가 들어가, 모수 같은 인물로 재주를 인정받게 될지 모르니까 말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야 천만다행이지만...”

아무렴요. 그 염려가 어련하시겠습니까.”

그의 아내는 남편의 쓸데없는 걱정이 밉기는 하면서도, 사람을 함부로 천대하지 않는 바른 마음과 사람을 보는 그 안목을 높이 보고 더는 비웃지 않았다.

정월 초하루.

조정의 의정부대신(행정부 최고기관의 영의정, 좌의정, 우이정)은 모든 관원을 대동하고 대궐에 나가 새해 문안인사를 드리고는, 신년을 하례하는 내용의 한문 서체인 전문과 시골에서 짠 거친 무명이나 명주 등의 소박한 정성을 전하는 표리를 바친다. 그런 다음 왕이 있는 정전의 뜰로 가서 임금한테 하례를 올린다.

신년하례는 이들 의정부 대신들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8도의 관찰사, 병마절도사와 수군절도사, 각 주와 목사(지방 행정관리)들도 전물과 방물(지방 특산물)을 바쳤다.

또한 각 관청의 아전과 종들, 그리고 병영의 교졸(장교와 사병) 등은 고을의 관원이나 선생에게 종이를 접어 만든 명함을 들어간다. 그러면 그 집에서는 대문 안에 쟁반을 놓아두고 명함만 받아들인다. 주인이 다른 곳에 하례 가서 집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 말하면 주인이 없는 집에 인사하러 갔을 경우, 선물과 명함을 두고 가거나 방명록에 이름을 적어 놓고 나오는 것과 같다.

일반 가정에서는 여자들이 신년 벽두에 나들이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대개는 하녀를 서로 보내 새해 문안 인사를 나누었다. 이때의 하녀를 문안비라고 했다. 특히 사돈 간의 하례에 이들 문안비를 잘 보냈다.

그 당시에는 모두가 민간신앙에 의존하여 새해 소망을 기원하거나 악귀를 쫓는 일에 정성을 다했다. 특히 신년 초에는 그러한 풍습이 필수적이었다. 새해 신수를 점치는 것으로는 오행 점(나무에다 금. . . . 토를 새겨 장기알처럼 만든 다음, 그것을 일시에 던져 얻는 점괘)을 많이 봤다.

그리고 악귀 난 병마를 예방하는 방법으로는 벽에다 닭과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이 오지 못하도록 빌었는가 하면, 남녀가 일년간 빗질할 때 빠진 머리카락을 모아 상자에 넣어 두었다가 설날 황혼을 기다려 문밖에서 태움으로써 나쁜 병을 물리치는 방법도 썼다.

속담에 야광이라는 귀신은 설날 밤 인가에 내려와 아이들의 신을 두루 신어보고는 발에 맞으면 곧 신고 갔다고 한다. 그러면 신을 잃은 아이는 그해가 불길하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집집마다 아이들이 신을 깊이 감추고는 체를 마루 벽이나 뜰에다 걸어 두고 잠을 잤다. 그러면 야광 신이 와서 체의 구멍을 세느라고 신을 훔칠 생각을 잊게 되고, 그러다가 닭이 울면 귀신이 허둥지둥 도망가버린다고 믿었다.

초이튿날.

이용후는 남산골에 사는 장인 장모한테 세배하러 일찍 집을 나섰다. 마음으로는 아내도 친정 부모가 보고 싶겠지만 정초에 양반집 부녀자가 거리에 나서는 법이 없는지라 세배는 늘 이용후 혼자 갔다.

장인 박 생원은 학문도 있고 의기도 있으나 안동 김씨 세도 편승할 기회를 얻지 못해 평생을 무 벼슬로 지내는 전형적인 샌님이었다. 무남독녀 딸 하나 있는 것을 이씨 가문으로 출가시키고는 내외만 남아 매우 궁색하게 사는 중이었다. 정초에 사위가 세배를 와도 씨암탉 한 마리 잡아 줄 수 없는 살림이라 이용후는 갈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사위랍시고 생선 한 마리 사 들고 갈 형편이 못되는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그의 아내도 남편의 마음을 알아 차례상에 올랐던 전 몇 쪽이라도 인편에 보내고 싶지만 그걸 사내한테 들게 할 수가 없어 그저 한숨만 폭폭 내쉬고 말았다.

동재문 안으로 들어선 이용후는 남산골로 빠지는 길로 가지 않고 청계천으로 휘었다. 청계천 양 둑에 조성된 모래산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원래는 개천 또는 청풍계천으로 불리었던 청계천은 서울의 복판을 동서로 흘렀다. 이 하천은 동대문과 광화문 사이에 만들어 놓은 오간수문(쇠창살로 다섯 개의 구멍을 만들어 그 사이로 물이 흐르도록 한 문)을 지나 중랑천에 합류하여 한강으로 흘렀다. 영조 때 이 청계천을 준설하기 위해 인부 20만여 명이 동원되었고, 이때 퍼낸 모래를 하천 양 둑에 산더미처럼 쌓아 인공산이 되는 바람에 가산이라 불렀다.

조선 초기부터 한양 거지들이 여기 가산에다 땅굴을 만들어 집단으로 거주하였는데, 이들을 일명 땅꾼으로 불렀다. 이들 거지들은 사대부나 부잣집에 경조사에 으레 나타나 잡배들의 행패를 막아 주기도 했고, 상여가 나갈 때는 온갖 궂은일을 도맡아 그 대가를 챙겼다.

이용후는 승업이 혹시 이들 거지 소굴에 들어가지는 않았을까 해서 그 꼴을 볼 겸 나선 것이다. 설사 그가 거지패에 들어 있다고 해서 당장 구제해 줄 방책이 있는 것도 아니면서 오직 궁금하여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수백 명에 이르는 거지들 틈에서 승업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거지들은 대개가 전과자로서 법도 두려워하지 않는 개망나니들로 누구한테도 안하무인으로 대하였다. 때문에 이용후도 그들 소굴을 함부로 기웃거릴 수가 없었다. 섣불리 말을 붙였다가는 망신당하기 십상이었다.

말 좀 묻겠소이다.”

이용후는 한 늙은 거지한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양반 체면으로는 “...묻겠네.”로 하대를 해야 옳지만 차마 말을 놓지 못하였다. 그러자 거지가 대뜸 눈을 치뜨더니 이용후를 시답잖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행색으로 보아 상대방을 보잘것없는 중인쯤으로 단정하는 눈치였다.

물어봐.”

오히려 거지가 하대를 하였다. 이용후는 금세 욕지기가 올라올 지경으로 불쾌했으나 차마 시비를 걸 수가 없었다. 이미 늙은이 주위에 험상궂은 젊은 거지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겁이 덜컥 솟으면서 볼에 닭살이 돋는 것이 느꼈다.

여기에 혹시, 황해도 말씨를 쓰는 아이가 왔는가 해서 왔소이다. 성이 장가에다가 승자 업자를 쓰는 아이오만.”

황해도 말씨를 쓴다...? 애들이. 그런 놈 본 적 있어? ”

늙은이가 얼굴을 돌려 주위 거지에게 묻자 못 봤어요.” 하고 일제히 고개를 저었다.

이곳에 왔다고 누가 그래?”

혹시나 해서 온 것이오.”

그놈을 왜 찾아? 애비 되남?”

아니오, 잠시 만난 적이 있을 뿐이오. 그런 게 아니오. 잠시 인연을 맺은 터라, 행방이 궁금할 뿐이오.”

인연을 맺었다... 그럼, 놈이 이리로 오믄 어떻게 해? 누구를 찾아가라고 해? 보아하니, 세도 있는 양반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 됐소. 연이 닿으면 또 만나겠지.”

이용후는 거지들과 더는 대거리하기 싫어 서둘러 소굴을 빠져나왔다. 잠깐 머물렀던 시간이 마치 며칠을 보낸 것만큼이나 고역스러웠다. 보잘것없는 양반임을 알고 집단으로 행패를 부릴까 싶어 내내 긴장했었다. 말 붙인 상대가 늙은이라 그만했지. 만약 우두머리 격인 꼭지딴이었으면 상황은 훨씬 달랐을 것이다. 그들 세계에서 꼭지딴의 위세는 대단했다. 그로 하여금 거지들의 기강을 잡게 하는 지휘권을 줄 뿐만 아니라, 이것저것 특권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장안의 내의원이나 지금의 진료소 격인 혜민원에서 약재로 쓰는 뱀, 지네, 두더지, 두꺼비 따위를 잡아다 주고 보수를 받거나, 심지어는 세도가들이 정적의 행동을 염탐할 필요가 있을 경우 이들 꼬지딴을 시켰으므로 일조의 사설탐정 노릇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끌혀 팔도록 하는 이권까지 따내 이들의 추어탕은 한때 장안의 명물이 되었다.

이용후는 승업의 행방이 그래도 궁금하여 이번에는 광화문에서 무악재 사이로 즐비한 나무시장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승업과 헤어질 때 그에게 나무라도 해다 팔면 굶기는 면할 수 있다는 말을 해 준 기억이 났던 것이다. 아직 머슴 일도 못 하고 거지 소굴에도 없다면, 천상 나무를 팔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승업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곳 나무 시장은 상권을 따낸 한 부호가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개인이 끼어들 수가 없었다. 그랬다가는 부화와 밀착돼 있는 꼭지딴한테 봉변을 당하기 일쑤였다. 만에 하나 승업이 거기에 끼어있다면 하역이나 돕고 몇 푼 얻어 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당장 승업을 찾기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은 이용후는 남산골로 맥없이 발길을 돌렸다. 황해도에서 한양으로 오는 도중 <긴난봉가><병신난봉가>를 신나게 부르던 승업의 능청스런 모습이 갑자기 눈에 삼삼해 콧등이 저려 왔다. 부모를 일찍 잃어 날마다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하면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남을 궁리만 짜고 있는 어린 소견이 마냥 대견하였고, 그에게 마음을 더 썼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좀처럼 떠나지 않았다.

이놈이 대체, 어디에 처박혔는지 원...

 

 

 

4

막 동이 트려는 시각에 박 서방은 대감 내외가 거처하는 침방과 사랑방에 이미 군불을 넣고는 부리나케 행랑채로 내려와 아직도 잠에 빠져있는 머슴들을 흔들어 깨웠다. 늘 새벽잠이 아쉬운 머슴들이라 입만 쩝쩝거릴 뿐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박 서방이 내처 볼기를 찰싹찰싹 때리는데도 한결같이 요지부동이었다.

이놈들아,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줄 몰라?”

박 서방이 돌아가며 코를 냅다 비틀었다. 그제서야 오만상으로 하나둘씩 허리를 세웠다.

해가 워디 떴다구 그려유? 아적 동두 안 텄구만. 노인네가 잠이 없으니까 괜히 우리덜만 들볶는구먼.”

누가 아니래.”

잠 좀 실컷 자 봤으믄 원이 없겠네.”

머슴들이 저마다 입을 대짜로 내밀어 툴툴거렸다. 그러자 박 서방이 비를 들어 등짝을 한 대씩 후려쳤다.

이놈들아. 대감마님 기침하신 지 한참 됐어. 마님 납시기 전에 집 안팎으로 비질하는 거, 몰라서 그려? 어여들 냉큼 일어나. 만득이는 부엌에 물 길어다 붓고, 덕쇠는 장작 날려야 혀. 영구는 서둘러 되련님들 방에 군불 때구, 손님 방에두 장작 몇 개비 넣어. 칠성이는 대문 밖 쓸고, 말끔허게 쓸어야 혀. 낭중에 집사헌티 혼쭐나지 말구.”

식객덜이 뭔 손님이래유? 빈대도 콧등이 있다고, 인간덜이 염치가 있어야지. 허구헌 날 늘러붙어서 밥이나 축내구 있으니 원...”

덕쇠가 공연히 나서서 제 밥 축내기라도 한 것처럼 입을 씰룩거렸다. 그러자 만득이가 눈을 부릅떴다.

그 사람덜이 네놈 밥을 축냈어? 으쨌그나 다 양반들이니께, 조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어. 말이 새서, 대감마님 귀에라도 닿는 날이믄 네놈은 그날로 뒈지는 줄 알어.”

. 양반두 양반 나름이지. 벼슬 없고, 재산 없으믄 말짱 헛 거여.”

저눔이 그래도...? 그라믄, 이 진사 어른하테두 그딴 소리 할껴?”

그 어르신이야 저 사람덜이랑 엄청 다른 분이지유.”

입들 다물어. 꼭두새벽부텀 웬 휜소리여?”

박 서방이 듣다 못 해 소리를 지르고서야 머슴들이 하품을 해 대며 버선을 신는다, 볼끼를 동여맨다 하며 한동안 부산 떨었다.

젠장, 왜 이렇게 춥다? 이 방에다 새벽 군불을 때야 허는디.”

제일 나이가 어린 영구가 어깨를 부르르 떨며 구두덜거렸다. 그러자 만득이가 영구 머리를 사정없이 쥐어박았다.

이 빌어먹을 놈아. 이 방에 네놈보다 아랫것이 있는지, 눙깔 좀 부릅떠 봐라. 진작에 일어나 되련님들 방에 군불을 넣었어야 되잖아. 그리구서, 우리 방도 따습게 해야지. 곁머슴 주제에, 머시 으째? 밥이나 웬만큼 처먹어야지.”

아자씨는 으째서 날 못 잡아먹어서 난리래우?”

어어? 이 자석, 으른헌티 능깔 치뜨는 것 보래?” 만득이가 대뜸 주먹을 높이 쳐들자 영구가 삿대질만 빼고는 내가 밥을 많이 먹으믄, 아자씨 밥 먹어우?”하고 턱을 바싹 쳐들었다.

저눔 자석이 꼬바꼬박 말대꾸허내? 웬만큼 터 먹어야 말을 않지. 뱃속에 거지가 몇이나 들앉았는지 원... 일이나 잘허믄 밉지나 않지.”

그러자 박 서방이 손바닥으로 만득이 잔등을 냅다 갈겼다.

똑같여, 똑같여. 니잇살이나 먹은 놈이 눈꼽두 안 띠구서 아랫것들이랑 입씨름이나 허구...”

영감님두 그러시는 거 아녀우. 이왕이믄 아랫것을 혼내야지, 왜 저만 가지구 야단친대유?”

시끄러워. 어여들 나가. 헐 일이 태산 같은디, 마냥 이러구 있을껴? 영구부텀 싸게 나가. 되련님들 고뿔 드시게 않게 해야 혀.”

비로소 머슴들이 어이구 춰, 어이구 춰.”하며 하나둘 방을 빠져나갔다. 새벽마다 치러야 하는 행랑방 소란이었다. 잠시 후 박 서방 귀에 큰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웬일로 칠성이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눈을 흰자위로 가득 씌우고는 아자씨, 아짜시.”만 되풀이할 뿐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이놈이 웬 방정야? 하라는 비질은 않구.”

큰일났시유.”

“...큰일났다니, 뭐가?”

저를 따라와 보세유. 대문 밖에..”

칠성이가 자초지종은 빼 놓고 박 서방 소매만 막무가내로 잡아끌었다. 박 서방은 박 서방대로 의구심이 들어 선뜻 따라가지 못하고 엉덩이를 뺐다.

도깨비헌티 불벼락을 맞었나, 웬 지랄여? 이 팔 놓지 못혀?” “바깥에 사람이 죽어 있시유.”

뭣이 으째? 사람이 죽어?”

그제서야 박 서방도 칠성이 뒤를 쫓아 걸음을 날렸다. 사람이 죽어 있다는 말에 바싹 긴장하였다. 근간에 굶어 죽고 얼어 죽는 사람이 많다는 소문에다가 개중에는 세도 있는 사대부 집 앞에서 죽는 사람이 종종 있다는 얘기까지 들어 온 차에 겁이 덜컥 났다. 더구나 대감 등청길을 가로막는다 싶어 걱정이 금세 태산처럼 커 갔다.

에그... 하필 대감댁 앞에서, 이게 뭔 흉칙헌 일이라냐?”

칠성이 말대로 웬 놈이 거적에 둘둘 말린 채로 꼼짝도 않고 누워있었다. 박 서방이 엉덩이를 잔뜩 빼고는 발끝으로 거적을 툭툭 쳤다. 정말 죽은 놈이로구나 싶은 생각이 들 만큼 거적은 미동은 하지 않았다.

죽은 것이 틀림없다닝께유.”

몸피가 으른 같기도 허구, 애들 같기두 허구... 죽었는지, 확인은 혀봐야 되겄지?”

가마니를 열어 보세유.”

박 서방은 비로소 거적 끝을 겨우 잡아 살며시 열었다. 그러자 그 안은 어른은 아닌 것 같은 걸인이 잔뜨기 웅크린 채 꼼짝 않고 있었다.

“...죽었이쥬?”

가만... 아직 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려유?”

박 서방이 주의 깊게 들여다보니 숨이 아직 끊어진 것은 아닌 듯 간간이 어깨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틀림없이 오랜 굶주림에다 얼어 죽기 직전인 것 같았다. 박 서방이 재빨리 몸을 낮춰 걸인의 코에다 귀를 갖다 댔다. 숨소리가 아주 가냘프게 새나오고 있었다.

아직, 죽지는 않았다. 칠성아, 너는 어여 행랑태 뒷방에다 불 좀 지펴라.”

이런 거지를 들이게요?”

잔말 말고, 어여 들어가 불이나 지피라니께. 그리고,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어야 헌다. 내당 마님 모르시게 해야 돼.”

박 서방은 서둘러 걸인을 둘러메고 다른 사람 눈에 띄지 않도록 살그머니 행랑 뒤채로 숨어들었다. 봉두난발이 얼굴을 온통 뒤덮고 있는 데다가 황망해서 웬 놈인지 미처 확인할 새가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 알아내는 것보다 우선 목숨부터 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놈은 오래도록 깨어나지 않았다. 몸에 박힌 얼음이 빠져나가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박 서방은 놈의 머리카락을 이마 위로 쓸어올리고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았다. 아니, 이놈이...? 뜻밖에 그는 얼마 전 이 진사를 따라왔던 바로 그 거지였다. 박 서방은 놀란 가운데 갑자기 난감했다. 놈이 머슴 자리를 구하지 못해 여태 떠돌다가 다시 찾아왔는가 싶었다. 추위와 굶주림에 지쳐서 떼를 쓰려고 온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하자 갑자기 부담스러웠다.

승업은 조금씩 의식이 들면서 자신이 전혀 낯선 곳에 누워 잇음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했다. 더구나 어느 집 처마 밑도 아니고 굴뚝 곁도 아닌, 어엿한 방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고는 화들짝 놀라 등짝을 세웠다.

“...내가 어드렇게 여게 와 있시요?”

승업은 자신이 뜨거운 방에 누워 이불까지 덮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고는 송구스러워 안절부절못하였다.

이제야 정신이 드는 모양이구먼. 네놈이 아예 죽을라구 작심을 했던겨. 이놈아. 이 엄동설한에. 거적때기 하나로 견딜 줄 알았어? 여기 들어오기 전에는 거적송장이나 다름없었단 말여. 사람 눈에 띄었으니까 망정이지...”

박 서방은 승업의 입술에 마른 딱지가 하얗게 덮인 것을 보고 머리맡에 놓아둔 물대접을 승업한테 내밀었다. 승업이 대접을 받아들자 물에 환장한 사람처럼 들이켰다.

“...아저씨. 고맙습네다. 너무 추워서, 내가 살았는지 둑었는지, 까맣게 몰랐댔시요.”

죽어가는 마당에, 네놈이 그걸 알었겄어? 대체, 여긴 왜 또 온겨?”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나도 모르게 왔시요.”

굶어 죽거나 얼어 죽기 십상이구나.”

어리신. 미안하디만 찬밥 한 덩이만 주시라요. 벌써 사흘을 굶었시요.”

이딴 세상에, 차라이 죽는 게 나을지 모르지... 잠시 기다려라. 이 사람 저 사람 눈이 많은 집이니께, 내 눈치껏 얻어오마.”

고맙습네다, 어르신.”

그 대신, 죽은 듯이 있어야 되는겨. 알았냐? 행여, 내당에서 알었다가는 내가 경을 치게 되니께.”

염려 놓으시라요. 그딴 눈치는 있습네다.”

박 서방이 서둘러 방을 나가자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칠성이가 발소리를 죽여 들어왔다. 그리고는 다시 죽은 듯이 누워있는 승업을 내려보며 이 자석이 여태 죽었나?” 하며 발로 승업의 엉덩이를 툭툭 쳤다. 승업이 능청을 부려 살며시 눈을 떴다.

“...살았구나. 임마. 너는 나 아니었으믄 이 댁 대문 밖에서 꼼짝없이 얼어 죽었을 거다.”

기럼, 형님이 처음 봤댔시요?”

그래, 임마. 처음엔 송장인 줄 알구서, 을매나 놀랬는지 알어? 으쨌든, 박 서방 아자씨가 아니었으믄 너는 저 세상으루 갔을 거다.”

살려 줘서, 모두 고맙습네다. 형님은 이 딥 머슴이야요?”

승업은 자기보다 몇 살 위인 것으로 보이는 칠성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마른침을 자주 넘겼다. 마치 이마에 벼슬을 붙이고 있는 것처럼 칠성이를 우러러보았다.

나도 너처럼 거렁뱅이짓을 하다가, 이 댁 머슴으루 들어왔어.”

거렁뱅이 하다가, 어들렇게 머슴으로 들어갑네까? 재수가 좋았습네다.”

승업은 칠성이처럼 재수 좋은 운수를 가지지 못한 팔자가 한스럽기도 하였다. 팔자라는 것은 원래 타고난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어 왔지만 어째서 칠성이와 같은 팔자를 업고 태어나지 못했는지 갑자기 억울하였다.

너 몇 살이냐?”

열세 살 됐시요.”

나보다 네 살이나 아래구나.”

내래 형님으루 삼갔시요.”

그래봤자 소용없어. 이 댁에서 너를 머슴으로 써 주셔야 말이지.”

이 댁에서는 머슴이 더 필요하디 않습네까?”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니. 내당 마님이 정하실 일인데. 나도 사실은 박 서방 아자씨가 데리구 온 거야.”

기럼, 그 영감님한테 잘 보이믄 머슴이 되는 겁네까?”

그런 게 아니라, 마침 잔심부름할 아이가 필요했던 거야. 그때 마침 내가 눈에 뜨인 거지.”

“...기랬구만요, 나는 거저 방에서 잠자고, 밥이나 실컷 먹었으믄 원이 없갔시요.”

거지 노릇 할 때는 누구나 그렇지. 나도 그랬으니까 뭐... 젠장헐, 대갓집에서 밥이 지천인데, 굶어 죽는 사람이 많다니...”

굶어 죽은 사람, 숱하게 봤시요. 그때마다 무서워서 혼났시요.”

그러니께, 천민으루 태어나믄 말짱 헛거여. 대갓집 개만도 못하니께.”

형님 말이 맞아요. 며칠 굶을 때는 개밥이라도 훔쳐먹구 싶었댔시요. 그렇디만, 개가 가만 있어야디요.”

하긴...”

박 서방이 다시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그가 바가지를 내밀자 승업이 발딱 일어나 바가지를 빼앗듯이 껴안았다.

칠성이는 여기서 뭐 하는겨? 되련님 세숫물 들여놓지 않구서.”

이놈이 살아났는지 보려구 왔다가, 그만 깜빡했구먼유.”

이런 경을 칠 놈이 있나. 냉큼 나가 봐.”

칠성이가 물살처럼 방을 빠져나가자 박 서방은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승업에게 눈길을 내려놓았다. 부엌 여자들이 별다른 눈친 못 채게 시래깃국에다 찬밥을 가득 말아서 고양이 걸음으로 품고 왔다.

승업은 밥을 먹는다기보다 차라리 삽으로 퍼 넣는다는 표현이 옳을 것 같았다. 자칫 볼이 터지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이놈아. 뺏어 먹을 사람 없으니께, 천천히 먹어. 체하면 약까지 줄 형편이 아니니께.”

그런데도 승업은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정신없이 쑤셔 넣었다. 박 서방 보기에 저러다 체하기 십상이다 싶어, 바가지를 잠시 빼앗을까도 생각했으나 오죽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해서 망연히 바라보기만 했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바가지 가득한 걸 홀랑 먹어 치웠다. 그리고도 부족해서 혀를 내밀어 얼굴을 바가지에 처박았다. “이자 좀 살 것 같습네다.” 승업이 바가지를 바닥에 내려놓고 비로소 이를 드러냈다. 박 서방은 잠시 초점 잃은 눈길로 승업을 바라보았다. 그는 갑자기 자신이 배고팠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배고픈 서러움을 무엇에다 비하겄냐. 그 서러움이라니...”

살려 주셔서, 정말 고맙습네다.”

그건 그렇구, 이젠 어쩔 셈여? 네놈을 더 둘 수가 없단 말여.”

“...이 딥에선 머슴이 더 필요 없습네까?”

답답허긴... 접때 이 진사 어른헌티 말씀 못 들었어? 내당마님이 한번 안 된다고 하시면, 절대 안 되는겨.”

기렇다믄 할 수 없구만요.”

승업이 금세 낙심하여 비틀린 닭 모가지처럼 고개를 떨어뜨렸다. 불쌍한 마음 같아서는 내당마님한테 청을 넣고 싶지만 원체 지엄한 어른이라 감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늙은 몸을 데리고 있는 것만도 감지덕지한 판에 남 불쌍한 형편을 말할 염치가 없었다. 더구나 친동생이 넣은 청을 거절한 사람이 일개 머슴의 말을 들어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내당마님이 인정 많기로는 하늘도 알고 있지만, 반면에 사람을 쓰고 부리는 일에는 엄격하기가 칼날 같고 때로는 얼음장처럼 냉정했다. 하인을 다스리는 사대부 집 안방마님들이 대개 그렇지만 특히 이 댁 마님은 공과 사가 분명했다.

네놈헌테는 안됐지만, 날이 더 밝기 전에 여기를 떠나야 되겠구나. 더 있다가는 내가 처신하기 어려워. 내 말뜻을 알아듣겄냐?”

“....”

물이나 마저 마시고, 곧장 떠나거라.”

한 가지 물어 보갔시요.” “...?”

지난번 그 진사 어른을 어디로 가믄 뵐 수 있습네까?”

? 그분이 너를 거둬 주실까 해서?”

꼭 기래서는 아닙네다. 거저, 뵙고 싶어서 기럽네다.”

네놈 뜻은 알겄다만, 그분 마음을 약허게 해서는 안 돼. 네가 몰라서 그런다만, 살림 궁색하기가 이를 데 없는 분이시다. 그런 댁에 네가 나타나믄 그분 마음이 을매나 아프시겄냐. 가뜩이나 정이 많으신 분인데.”

거저 멀리서 어르신 얼굴이나 한번 뵈었으믄 좋갔시요.”

승업이 내내 울먹울먹하더니 기어이 눈물을 쏟아놓았다. 어린 것이 얼마나 인정이 그리웠으면 저럴까 싶어 박 서방도 눈시울을 적시고 말았다.

“...네 마음은 안다만, 그러지 않는 게 좋을 게다.”

절대루 그분을 귀찮게 하지 않을 기야요. 맹세하갔시요. 거저 멀리서 얼굴만 뵙구서 곧장 떠나갔시요. 제가 굶어 죽거나 얼어 죽으믄, 그분을 다시는 뵙지 못하잖습네까. 저한테는 하늘 같으신 어른이대서 기래요.”

승업은 박 서방한테 바싹 다가가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애처롭게 간청하였다. 마음 약한 박 서방이 한참 망설이다가 몇 번이고 다짐을 받아 낸 후에야 이 진사가 사는 곳을 일러 주었다.

정말이지, 그 어른을 귀찮게 해서는 안 된다. 그분이 당신 식솔한테는 무심하셔도, 남 불쌍한 꼴은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으신 분이니께 허는 말여. 한동안 네놈을 끔찍하게 생각허신 분 같아서, 내가 걱정이 되는겨.”

염려 마시라요. 절대, 앞에 가서 인사하지 않을 기야요.”

꼭 그래야 한다. ”

박 서방은 승업을 내몰다시피 하여 대문 밖으로 끌어내고는 그사이에 헌 솜 버선 한 켤레와 휘양(머리와 얼굴 일부를 가리는 쓰개)을 준비하여 박 서방이 억지로 품에 넣어 주었다. 그러자 승업이 고개를 숙여 눈물을 방울방울 떨어뜨렸다.

쫓아낸다고 서운해하지 말어. 내 처지가 그러니께.”

아닙네다. 너무 고마워서 기래요. 정말 고맙습네다. 이 은혜는 평생 잊디 않갔시요.”

내 마음을 알아주니 다행이다. 어여 가거라.”

“...기럼, 안녕히 계시라요.”

승업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박 서방한테 큰절을 올렸다. 박 서방은 황망히 승업을 세워 등을 밀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보지 않고 재빨리 문을 닫아걸었다.

박 서방이 일러 준 대로 승업이 서둘러 동대문 길로 들어섰다. 먼발치에서나마 이 진사를 꼭 보고 싶었다. 그와 헤어진 이후 하루하루가 여삼추로 느껴질 만큼 고생스러웠고, 그때마다 인정 많던 이 진사 그리웠다. 죽은 어머니보다 그의 얼굴이 더 자주 떠오르는 것이었다.

머슴으로 들어가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다. 어느 집이든 문전 박대만 할 뿐 승업의 사정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툭하면 걷어차거나 물벼락이었다. 제 놈들도 고작 하인인 주제에 마치 주인이나 되는 양 거드름을 피우며 냉대하였다. 거적을 둘둘 말아 등에 지고, 쪽 떨어진 바가지와 숟가락 하나를 허리춤을 매달고 다니는 꼴이라 굳이 대접받을 생각도 없었다. 그렇더라도 있는 집에서 찬밥이라도 한 덩이 던져 주면 고맙겠는데 발길질이 고작이었다. 그런 박대는 시장 국밥집도 마찬가지고 주막도 똑같았다. 승업이 나타나면 마치 문둥이 대하듯 몰인정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아직 굶어 죽지 않았던 것은 때때로 국밥집과 주막에 물을 길어다 주고 밥 한술 얻어먹은 힘으로 버텼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러움을 당할 때마다 이 진사가 으레 부처님 얼굴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그와 같은 따스한 인정은 어디에서도 만날 수가 없었다. 그러니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이 엄동설한에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모를 운명이라 죽기 전에 어떻게든 이 진사를 꼭 만나야 했다.

동대문으로 가는 길을 종로로 빠질 것을 잘못 들어서 청계천을 끼고 가는 바람에 더 많이 걸었다. 청계천 둑 곳곳에 말로만 듣던 가산이 거대한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이 모래산에 장안 거지가 다 모여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승업은 그 앞을 조심스럽게 지나갔다. 이곳 거지들이 텃세가 심해서 눈에 거슬리면 무조건 잡아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버린다는 소문을 들었다. 차라리 굶어 죽거나 얼어 죽을망정 놈들한테 개 꼴로 죽기는 싫었다.

이때, 둑 저만치에게 거지 한 패거리가 장타령을 부르며 다가오는 것이 눈길에 잡혔다. 승업은 겁이 스르르 나기 시작했다. 순간, 길을 잘못 들어섰구나 싶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다른 길로 꺾을 수도 없었다.

승업은 재빨리 둑 아래로 내려가 몸을 납작하게 숨겼다. 그들 눈에 띄지 않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그 요행은 승업을 지켜 주지 않았다. 어느새 다가온 패거리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 중 하나가 돌을 냅다 던졌다. 그래도 승업이 죽은 듯이 엎드려 있자 이 새끼야. 냉큼 올라오지 못해?”하고 돌을 또 던지는 것이었다. 승업이 마지못해 고개를 들어 그들을 올려보았다. 눈어림으로 열 명은 될 것 같았다. 결국 여기서 죽는구나 싶었다.

“...나 말이야요?”

승업이 짐짓 주위를 둘러보며 능청을 떨었다. 그러자 한 놈이 뜻 모를 욕을 퍼부으면서 또 돌을 던졌다. 더 버틸 수가 없어 승업은 거적을 둘러멘 채 둑으로 올라갔다.

이거, 어디서 굴러온 개뼉따구지...? . 너 어디서 왔어?”

“...집이 없시요.”

물론 집이 없겠지. 내 말은 어디서 빌어먹다가 왔냐, 이거지.”

“...기냥, 여게적 떠돌아다녔시요.”

그래? 여긴 왜 왔어?”

동대문으로 가는 길이야요.”

거기에 누가 있는데?”

“...동대문 밖에 사는 이 진사 댁에 가는 길이야요.”

이진사가 뭐 말라 비틀어진 놈인데?”

기냥 아는 사람이야요.”

거렁뱅이 주제에, 제법 양반을 만나러 간다..?”

그러자 그중에 나이가 제일 어려 보이는 놈이 나서더니 가만...”하고 승업을 돌려세워 위 아래를 자세히 훑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고향을 물었다. 황해도라고 하자, 갑자기 그가 반색을 하는 것이었다.

형님, 혹시 지난번 그 중치막 입은 사람이 찾던 놈 아닐까요?”

중치막 입은 사람이라니?”

며칠 전, 황해도 말씨 쓰는 아이를 찾는다는 사람 있었잖아요.”

“...있었지.”

이 새끼가 바로 황해도 놈이잖아요.”

말을 들어보니 그럴 수도 있겠구나. , 네 이름이 뭐냐?”

장승업이야요.”

틀림없구나. 그때, 그 사람도 장 무엇이라고 했어... 그 사람이 너한테 뭐가 되냐? 혹시, 애비 아니냐?”

아니야요. 우리 아바지는 죽었시요.”

그럼, 친척이냐?”

그 사람, 양반야?”

“...진사 어른이야요.”

진사라면, 양반은 양반이로구나. 양반 꼴이 어째 그 모양이지? 그 꼴에 정말 양반이라면, 끈 없는 갓이나 마찬가지지.”

거지 주제에 양반을 비웃고 있는 놈들이 우스웠으나 승업은 내색하지 않고 가만있었다. 잠시 그들끼리 무엇인가 귓속말을 나누더니 갑자기 승업의 덜미를 움켜쥐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왔던 길로 승업을 끌고 갔다.

놔 주시라요.”

잔말 말고 따라와. 네놈 써먹을 일이 생겼어.”

내래 잘못한 거 없시오. 놔 주시라요.”

입 봉해. 확 찢어 놓기 전에.”

덜미를 잡고 있던 놈이 느닷없이 승업의 정강이를 냅다 걷어찼다. 승업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뒹굴자 다른 한 놈이 엉덩이를 찼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때리냐고 항변하자 승업이 차고 있던 바가지를 빼앗아 머리를 강타했다. 그 바람에 바가지 박살이 나 조각조각 흩어졌다.

 

 

 

5

남산골을 빠져나온 이용후는 곧장 명례방 가는 길로 들어섰다. 명례방을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전에는 북달재혹은 북고개라고 불렀다. 이곳에다 북을 매달아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조정에 직언할 사람이 있으면 이 북을 두드려 자신들의 뜻을 상달하던 곳이라 해서 그렇게 불렀다. 그러다가 후에 종현으로 불리었다. 이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 장수가 북달재에다 진을 치면서 남대문에 걸려 있던 종을 이곳에다 옮겨 단 후부터 이름이 바뀌었다.

이용후는 종현을 지나서 둔덕 아래 한 폐가를 바라보며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그 집은 정조 때 역관으로 있으면서 열렬한 천주교 신자였던 김범우가 살던 집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 벽과 이승훈, 정약전, 정약용, 정약종 3형제와 권일신 등 수십 명의 신자들을 모아 놓고 천주교 교리를 설교하며 예배를 보던 곳이었다. 결국 관헌에 발각되어 모두 잡혀갔다. 이때 양반과 명문 출신은 감히 문초하지 못하고 방면했으나, 중인 계급이었던 김범우만 혹독한 고문을 받고 단양 지방으로 유배당해 죽고 말았다. 이때부터 조정에서 천주교를 사학으로 몰아 활동을 금지시켰고 박해가 시작되었다. 결국 김범우는 조선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고 그의 집 역시 조선 최초의 천주교 교회가 된 셈이어서, 명동성당도 이러한 뜻을 받들어 현재 위치에 세워진 것이었다.

이용후는 한숨을 내쉬며 김범우 집을 망연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돌려 언덕을 올라갔다. 둔덕 중간중간에 하나같이 초라하기 짝이 없는 가옥이 폐가의 모습으로 들어앉아 있었다. 그런 집에 사람이 살고 있으리라고는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낡고 허물어져 밤에는 결국 귀신이나 들락거릴 것이 틀림없다는 단정을 내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그런 집에 남산골 샌님처럼 벼슬 없이 지내는 청렴한 선비들이 살고 있음을 생각하면 결코 경멸해서는 안 될 집들이었다. 우산각에 살았던 유 관이나 이수광, 그리고 한때 남산골에서 살았던 고산 윤선도의 누옥을 생각하면 감히 고개를 세우고 지나갈 수가 없었다. 이용후는 그들의 삶을 생각할 때마다 늘 과분하고 부끄러웠다.

이용후는 둔덕 너머 울타리도 없는 초가에 닿자마자 헛기침 한 번으로 대뜸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일 년 내내 햇빛이 닿지 않을 음지에 박혀 있는 초옥이었다. 방 안에는 이미 남정네 대여섯이 먼저 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들의 입성은 비록 초라한 꼴이지만 이용후를 보자 바르게 예의를 갖춰 맞이할 만큼 도리에 어긋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먼 길 다녀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겠습니다. 별고는 없으셨는지요.”

그들 중 상좌에 앉아 있던 중노인 김후안이 이용후에게 아랫목을 내주며 물었다. 이용후는 그에게 먼저 큰절로 예의를 갖추고는 한쪽으로 비켜 앉았다. 김후안은 순교한 김범우의 후손으로서 열렬한 천주교 전도자 중 하나였다.

오는 길에 거처할 곳이 마땅치 않았을 뿐이지, 다른 고생이야 뭐...”

그래, 황해도 사정은 어떠하던가요?”

근간에,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완화됐다고는 해도, 제가 보기에는 교리에 대해서 무지한 관원들이 많아 박해는 여전한 것 같았습니다. 그렇지만, 천주님을 향한 마음은 모두가 일편단심이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지요. 그래, 안 베드로 신부님은 만나 보셨습니까?”

웬걸요. 아직도 평안도에 머물고 계시답니다. 행동이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겠지요. 저도 더 지체할 수 없는 형편이라, 뜻만 남겨놓고 왔습니다.”

관원들의 감시가 여전한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습니다. 어쨌든, 우리의 뜻을 분명하게 전했습니다. 그러니까, 신부님이 당도하시는 대로 무슨 기별이 있을 겁니다.”

지금으로서는, 기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도리가 없겠군요. 그럼, 예배를 시작하지요. 모두 묵상하십시다.”

상좌가 품에서 꺼낸 묵주를 목에 걸자 나머지도 그를 따라 하나둘 묵주를 꺼내 들고는 무릎을 꿇었다.

조선에 천주교가 전해진 것은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사신으로 명나라를 자주 왕래했던 이수광이 그의 <지봉유설>을 통해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소개한 데서 비롯된다. 이는 조선 초기부터 공리공론만 일삼던 주자학의 성행에 염증을 느껴 오던 일부 학자들이 보다 현실적인 학문, 즉 실학의 필요성을 주장하였다. 이수광이 바로 그 선구적 인물이었다.

그 후 천주교는 자연히 서학과 연결되면서 마침내 신봉 운동으로 발전하여 권철신, 권일신 형제와 정약전, 정약종, 정약용 3형제가 주동이 되었다. 이들은 교리연구회를 열어 권철신 지도로 수도 생활을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권철신의 매부인 이 벽과 정약전의 매부인 이승훈이 참가하였다. 이승훈은 교리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갔고 거기서 세례까지 받아, 한국 최초의 세례 신자가 되었다. 그는 귀국 후에 이 벽과 권철신 형제에게 대세를 주었고, 이들이 다시 정약전 3형제와 역관 김범우 등에게 대세를 주어, 김범우 집에서 주일행사를 갖는 것을 계기로 조선 최초의 교회가 창설되었다.

그러나 이 교회는 관원들에게 곧 발각되어 해산되고, 이어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근 백여 년간 계속되었다. 그중 가장 큰 박해가 1801년 신유년에 있었던 신유교난과 1829년에서 1841년에 있었던 기해교난, 그리고 1846년의 병오교난, 1866년에 있었던 병인교난이었다.

이같은 박해의 표면상 이유는 천주교 신자들이 조상의 신주를 모시지 않을 뿐 아니라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의 이유는 정권 유지에 전전긍긍하던 무리들이 그 반대파를 제거하는 방법의 하나로 천주교 신자들부터 탄압했던 것이다. 신유교난 때에는 오가작통법을 써서 교인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임금의 교서를 전국에 내렸고, 이때 희생된 교인 수가 300명이 넘었다.

이러한 박해로 김대건 신부는 병오교난 때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효수되었고, 기해교난 때에는 외국 신부도 잡혀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이와 같은 박해가 철종 시대에 잠시 보호를 받는 듯하다. 이는 철종이 즉위하면서 수렴청정했던 김 대왕대비가 일찍이 천주교에 연루돼 처형된 철종의 조부 은언군 내외의 죄명 문서를 지워버리면서부터였다.

지난해 말경, 이용후가 승업을 데리고 김우근 대감 집에 들렀을 때 그의 누님한테는 금강산에 유람 갔었다고 했으나, 실은 평안도와 황해도 등지에서 선교사업을 벌이고 있는 안경오 베드로 신부를 만나러 갔던 것이다. 세례받기를 열망하는 교우들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이용후가 그 임무를 맡았다.

김우근 대감은 물론 누님에게도 그가 천주교를 믿는다는 사실을 숨겨야 했다. 그들이 이러한 사실을 알았다가는 발걸음을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김우근에게 자칫 화가 미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김후안 집을 나선 이용후는 그 길로 재동에 사는 이종형 한흥주 집으로 향했다. 한흥주는 이용후와 한날 진사과에 급제한 사람이다. 그가 비록 유생이기는 해도 급진적 사고를 가지고 있어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하루빨리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이었다. 그리하여 천주교를 통해서 서학을 접하고 있는 이용후가 자연스럽게 마음이 통하였다. 그 역시 이용후처럼 관직을 기피할 만큼 청렴한데다가 심성이 대쪽 같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용후가 그를 깊이 존경하였다. 그러나 이용후처럼 궁색한 형편은 아니었다. 그는 성격이 호방하면서도 물려받은 재산만큼은 함부로 축내지 않고 관리를 잘해 살림은 비교적 넉넉한 편이었다. 그렇게 규모 있는 사람이면서도 매우 정의로워 옳고 그름의 경계가 언제나 분명하였다.

이용후가 하인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서자 마침 한흥주가 매화나무를 보며 무엇인가 깊은 사색에 빠져 있는 듯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형님.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십니까?”

“...반가운 손님이 오셨구먼. 어서 안으로 드시게.”

그가 활짝 웃는 얼굴로 이용후 손을 잡아 사랑채로 이끌었다. 마치 이용후의 내방을 기다렸던 것처럼 반가워했다. 이용후한테는 항상 다정하게 대하였다.

가내 별고 없으셨는지요.”

이용후가 예를 갖추어 신년하례를 넣자 그도 맞절로 받았다. 좌정한 두 사람이 세상 돌아가는 얘기로 말문을 열고 있을 때 주안상이 들어왔다.

황해도에 다녀오겠다더니, 일은 잘 보시었나?”

한흥주가 이용후 잔에 술을 따르며 넌지시 물었다.

“...대충 보고 왔습니다.”

이 엄동설한에, 고생이 많았겠구먼.”

집 떠나면 으레 고생 아닙니까. 형님과는 너무 적조했던 것 같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소일하셨는지, 궁금하군요.”

나야 늘 그렇지 뭐. 그래, 아우는 새로운 소식 좀 가져오셨나? 나는 집에만 처박혀 있는 몸이라, 바깥소식은 캄캄절벽이네.”

그가 말하는 바깥소식이란 곧 서양의 문물에 대한 것임을 이용후는 잘 알고 있었다. 이용후 역시 서양 문물에 대해서 깊이 아는 바는 없지만 외국 선교사들 입에서 새나온 얘기들을 전해 들어, 마냥 칩거하고 있는 한흥주보다는 조금 더 아는 정도였다.

저 역시 주워들은 풍월인지라...”

그래도, 아우는 조선 팔도를 고루 다녀 본 사람 아닌가. 그러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사람도 많이 만날 테고. 나야 집 말고는 도통 숙맥이니 하는 말일세. 이왕 온 김에 며칠 묵으면서, 안팎으로 세상 돌아가는 얘기나 들려주시게.”

그러면서 그가 이용후 술잔에 첨배를 하였다. 그가 외국의 문물에 대해서 얼마나 궁금해하는지를 잘 아는 이용후는 말머리를 어떻게 꺼내야 좋을지 한참을 궁리하였다. 하긴 들려준 얘기를 반복한다 해도 그는 결코 지루해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글쎄요...?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군요.”

두서는 가려서 뭐 하겠나. 생각나는 대로 얘기하시게.”

이용후는 술로 목을 더 축이고는 서양 사람들은...” 하고 말문을 열었다. 이용후가 알고 있는 서양 지식이란 것이 뻔하여서 결국은 했던 얘기를 다시 들려주는 데 지나지 않았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서양 사람들 생각 중에서 가장 으뜸은 만인이 평등하다는 것입니다. 우선 남자와 여자가 하는 일을 따로 구분하지 않는 것이 그렇고, 남자 여자 구별 없이 서로의 생각을 존중하는 것이 그렇고, 심지어 아이들의 의견도 무시하지 않는 진보된 풍습이 배울 점인 것 같습니다. 여러 나라 중에서도 미국이나 영길리(영국)와 같은 나라가 특히 그러하답니다. 새로운 문물이 발달한 것도 우리보다 앞섰지만, 제 생각에는 그 사람들의 평등사상을 배워야 될 것 같습니다. 미국이나 영길리에서는 노예제도라는 것이 있어서 사람을 물건처럼 팔고 사고한다고 그럽니다만, 이러한 제도를 곧 없애는 방향으로 사람들의 뜻이 모아지고 있답니다.”

조선의 한때 노비제도하고 다를 게 없구먼. 그래도, 조선에서는 이미 순조 원년에 내수사(대궐에서 사용되는 곡물과 과일, 기타 잡물 따위와 노비 등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청)과 각 관방(벼슬아치들이 대궐에서 일을 보다가 숙직하던 곳)의 노비문서를 불태웠을 뿐만 아니라, 공노비(관아에서 부리는 노비) 5만 명을 해방시켰잖은가. 이러한 점은 외국보다 한 걸음 앞서 정책이라 할 수 있겠구먼.”

그렇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반상 제도가 아니겠습니까. 한번 양반이 되면 신분적으로 특권을 누리게 되고, 그렇지 못한 상민이나 천민은 양반한테 멸시를 받으며 살아야 하는 풍습은 인본 이념에도 어긋나는 일이니, 하루빨리 없애야 할 줄 압니다. 하늘 아래 같은 사람으로 태어나서 누구는 양반이 되어 평생 권세를 누리고, 누구는 천대를 받아야 한다는 악습은 우선 천지의 이치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조선 사람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빨리 깨쳐야 합니다. 그 지름길이 바로 천주교 교리를 배우고, 서학을 과감히 받아들여야 한다는 겁니다.”

천주학쟁이다운 말이로군. 아우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지. 그러나, 세도 있는 자들부터 정저지와(우물 안 개구리) 생각에서 벗어나야 해. 답답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림없는 일이지.” “그렇다고 이렇게 무지몽매한 채로 무한히 방관만 할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형님 같으신 분이야말로 하루빨리 선각자 위치에 계셔야 합니다. 그래야 나라의 문물이 나날이 발전하고, 백성들이 삶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언제까지 쇄국적인 생각에만 머물러 있을 겁니까.”

어허. 그리 닦달하지 마시게. 중차대한 일이란 서둘러서는 아니 되네. 개혁을 서두르다 보면 으레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니까. 더구나 개혁을 몇몇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는가.”

그렇지만 형님, 개혁하는 일은 누군가의 희생이 있지 않으면 안 됩니다. 외국의 선교사들이 효수를 당하면서까지 순교를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보십시오. 그분들에 비하면 저 같은 사람은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어허, 아우. 그런 식으로 자신을 비하하지 마시게.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해서 그런 것이니까. 순교하지 않고도 교리를 전도할 방도가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해서 더 많은 백성들에게 진리를 깨우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니겠나. 절대 서두르지 마시게. 아직도 시기적으로 좋은 때는 아니네. 조정에서 비록 박해를 완화했다고는 해도, 잠시 상감에 대한 위무책일 뿐이야. 지방에서는 아직도 악질 관원들이 있어서, 신부들은 잡아들이지 않아도 대신 신자들을 잡아들여 뇌물을 받고 풀어준다지 않은가.”

그런 경우는 한양에서도 종종 있는 일입니다.”

권세 잡은 자들의 마음이 언제 변할지도 모르는 일일세. 폭풍전야라고, 조용한 때일수록 정세 판단을 잘해야 하네. 괜히, 경거망동하면 시작 아니 함만 못해.”

저도 각별히 조심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러한 박해 중에도 우리 신도 수가 전국적으로 일만 명이 훨씬 넘어섰다고 합니다.”

민심이 곧 천심이니, 그럴밖에.” “외국에서 신부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으니, 앞으로는 기해교난이나 병오교난과 같은 박해는 절대 없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니까 그러는구먼. 어쨌든, 조심하시게.”

두 사람은 밤 깊은 시각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나라 안팎의 일들을 얘기하였다. 특히 불란서, 미국, 러시아 등 외국 선박들이 수시로 들어와 교역할 것을 요구하는 작금의 정세로 보아, 조선도 결국 그들의 뜻을 받아들여 문호를 개방할 수밖에 없는 날이 머지않아 있을 것으로 예견하였다. 더구나 천주교 교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외국의 문물제도나 풍습들을 귀동냥하고 있는 신자들이 많아짐으로써 새로운 조류가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임을 장담하였다. 그러면서 민심이 곧 천심임을 재삼 강조하였다.

한흥주는 이용후처럼 아직 천주교를 믿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리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이미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교우론> 그리고 지봉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을 접했을 만큼 서학에 뜻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이용후가 천주교에 입문하기를 권했으나 그것만은 사양하였다. 교리를 학문으로 알고 싶을 뿐이지 신앙으로는 삼지 않겠다는 것이 그의 뜻이었다. 그의 대쪽 같은 성품을 알고 있는 이용후로서도 더는 권하지 않고 있었다. 그냥, 개혁 의지가 있는 동지애로 만족할 뿐이었다.

이용후는 한흥주 집에서 결국 사흘 밤을 새웠다. 그리고도 주인이 놓아 주지 않으려는 것을 간신히 뿌리치고 나왔다. 한흥주는 그만큼 얘기 상대가 그리웠던 것 같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다. 이용후는 어둠이 짙게 깔리기 전에 집에 당도할 생각으로 걸음을 재촉하였다. 한흥주 집에서 사흘 밤낮을 술로 보낸 탓에 속도 불편하고 걷기에도 몹시 힘이 들었다. 기온이 매우 낮아 손과 발은 이미 무감각하게 얼어 버렸고 쌀쌀한 바람은 얼굴을 마치 칼로 긋는 것처럼 아팠다.

사립문을 열고 인기척을 내자 그의 아내가 방문을 삐긋이 열고 경계심이 잔뜩 밴 얼굴을 겨우 내밀었다. 남편임을 확인하자 비로소 문을 활짝 열었다.

별고 없었소?”

그렇게 걱정하시는 분이 신년 벽두부터 사나흘씩 집을 비우십니까?”

어허, 당신이야말로 신년 벽두에 웬 바가지를 긁소?”

너무 야속해서 그럽니다. 식솔 생각도 좀 하셔야지요.”

내가 잘했다고는 말하지 않을 테니, 더는 무안 주지 마시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이 추위에, 객사하지 않으신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

그의 아내는 불만스러운 표정을 끝내 거두지 않았다. 이용후는 그제서야 집안에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가 싶었다. 혹시, 그새 아이들이 병을 얻은 것은 아닐까 하고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경이나 원이가 어디 아프기라도 했소?”

“...아닙니다.”

그럼, 무슨 일이 있었던 거요?”

어서 안으로 드시기나 하세요. 언제까지 그렇게 서 계실 겁니까?”

그의 아내가 크게 마음이 놓이는 듯 불만이 다소 누그러진 듯한 어조로 힐난하였다. 아내가 그럴수록 더욱 미안한 쪽은 이용후였다. 여자는 버릇 들이기에 달렸다는 생각을 하고는 있지만 왠지 이번만큼은 평소처럼 당당할 수가 없었다. 가정에 소홀했던 지난날들이 한꺼번에 면목이 없었다.

경과 원 남매는 마치 한밤중인 것처럼 곤한 잠에 빠져 있었다. 아직 자고 있을 시각이 아난데 오늘은 일찍 잠들어 있었다. 자는 모습을 들여다봤으나 특별한 일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았다.

별일이 있었던 건 아니지요?”

“...세 식구가 무서워서 혼났습니다.”

아내가 갑자기 어깨를 바르르 떨며 눈물을 글썽거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 사이에 도둑이라도 들었던 것이 아닐까 하고 긴장하였다.

무서웠다니? 산적이라도 왔었단 말이오?”

산적이 왔었으면 제가 무사했겠어요? 벌써, 산속으로 끌려갔겠지요.”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여지껏 거지떼라고는 본 적이 없었는데, 어제 그제 이틀 동안 웬 거지들이 떼를 지어 다니면서 우리 집 주위를 배회하지 뭡니까.”

아내가 또 한 번 몸서리를 쳤다. 단단히 혼이 났던 것은 틀림없었다. 웬만한 일이 아니고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던 여자였다.

거지떼라니...? 거지들이 당신한테 행패라도 부렸다는 말이오?”

행패 부린 것이나 다를 게 없었습니다.”

정말, 당신한테 행패를 부렸다는 말이오?”

그런 게 아니구요...갑자기, 웬 사람들이 집 앞에서 웅성대길래 나가 봤더니 글쎄, 거지 대여섯이 우리 집을 기웃거리지 않겠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동냥하러 온 줄 알고, 밥이 없다고 했지요. 우리 형편에 거지한테 줄 밥이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도 가지 않고 마당을 기웃거리며 안 가는 겁니다. 어찌나 무서웠던지...집안에 남자가 없는 줄 알고 그러는가 싶어 더욱 무섭지 뭡니까.”

굳이 우리 집 앞에서만 그랬단 말이오?”

그렇다니까요.”

이상한 일도 다 있군. 하필이면 왜 내 집에서 그랬을꼬?”

그뿐이 아닙니다. 어찌 된 사연인지, 나으리를 지목한 듯 이 진사, 이 진사를 중얼거리지 뭡니까. 꼭 나으리한테 행패를 부리러 온 사람들 같았다니까요. 이상하지 않습니까. 나으리를 지목했으니 말입니다.”

거 참, 이상한 일이네. 거지들이 왜 나를 찾아왔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혹시, 짐작 가는 데가 없으십니까?”

글쎄요...”

참으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느닷없이 거지가 떼로 몰려와 자신을 지목했다는 것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평소에 거지들한테 못 할 짓을 한 적도 없는데,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필경 사연이 있을 것 같았다.

오늘은 오지 않았소?”

나으리가 안 계신 것을 눈치챘는지 오늘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랑 제가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얼마나 놀랬으면, 원이가 자다가 헛소리를 다 했겠습니까.”

그런 망할 놈들이 있나. 별 해괴한 일도 다 있군.”

혹시, 나으리께서 그 사람들한테 원한 살 일이라도 하신 거 아닙니까?”

별소리를 다 하는구료. 내가 어디 그럴 사람이오?”

그러실 분은 아닙니다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지 뭡니까.”

부인이 놀랄 만도 했겠구료. 내가 집을 비운 탓이니, 잘못은 나한테 있다고 할 수밖에요.”

이용후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더니, 웬 거지들이 와서 소란을 피웠다니... 아무리 상상을 해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며칠 전 청계천 가산에 가서 승업을 놈을 수소문한 적은 있었으나 당시 못 할 짓은 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더구나 그들에게 집을 가르쳐 준 적도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아내가 말한 거지 떼들이 가산의 그들이 아님은 분명했다. 대체 어디서 온 작자들인가? 순간순간 승업의 얼굴을 떠올리기는 했어도 놈이 일당을 몰고 올 처지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우선 집을 모르는데 그가 어떻게 오겠는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튿날 이용후는 마음의 무장을 하고 집을 지키기로 했다. 놈들이 이틀씩이나 왔었다면 또 나타날 것이 틀림없다고 단정했다.

그러나 놈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당장 급한 볼일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당분간 집에 있기로 작정하였다.

그로부터 나흘 뒤였다. 이용후가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마당을 거닐고 있는데 마침 거지 하나가 멀리서 이쪽으로 오고 있는 것이 눈길에 잡혔다. 뒤에 다른 놈이 따라붙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당을 이루어 나타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분명히 혼자였다. 그리고 어린놈이었다.

이용후는 재빨리 몸을 숨겨 놈의 거동을 살폈다. 왠지 놈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매우 긴장한 몸짓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 승업일 수도 있다 판단이 섰다. 숨을 죽이고 놈을 지켜보았다. 역시 승업이 틀림없었다. 녀석이 내 집을 어떻게 알고...?

이용후는 혹 놈의 일당이 있어 뒤 숲속에서 잠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으로 승업의 주위를 샅샅이 훑었다. 그런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지켜보았다. 역시 승업 혼자였다.

승업은 집 앞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 몸을 납작하게 웅크렸다. 그리고는 마치 망보는 임무를 띤 것처럼 이쪽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왠일로 왔을까?

이용후는 숨겼던 몸을 세워 사립문을 열고 나갔다. 그런데도 승업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쪽에서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이용후도 놈의 판단에 맞춰 딴청을 부리며 놈이 숨은 쪽으로 느릿느릿 다가섰다. 그때까지도 놈은 꼼짝하지 않았ㄷ. 잔뜩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았다.

네 이놈. 냉큼 나오지 못할까.”

이용후가 큰 소리로 호령하였다. 그러자 놈이 산짐승처럼 놀라며 숲속으로 꽁지가 빠지게 내빼는 것이었다. 짐승보다 더 날랜 모습으로 달아났다.

승업이 이놈. 게 섰지 못하겠느냐.”

이용후는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재차 호령하였다. 놈이 달아나기를 멈춘 듯 숲속이 고요했다.

이놈아. 어서 나오너라. 내 눈에 띄었으니, 숨어도 소용없다.”

이용후는 어조를 부드럽게 하여 넌지시 타일렀다. 그래도 놈은 꼼짝하지 않았다. 이용후가 재차 달랬다. 그제서야 부시럭대는 소리가 들리며 놈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어뜨린 채 게걸음으로 나왔다.

대체, 어찌 된 일이냐?”

그러자 승업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나으리. 죽을죄를 지었습네다.”하고는 이용후 앞에 무릎을 꿇었다.

여기는 어떻게 알고 왔느냐?”

잘못했습네다, 나으리. 죽여 주시라요.”

승업이 이마를 땅에 박고 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용후는 겁먹었던 아내의 말이 떠올라 놈이 괘씸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갑고 측은하였다.

누가 우리 집을 가르쳐 주더냐. 아니면 네 놈이 내 뒤를 미행한 것이냐?”

“...미행하지 않았습네다.”

그럼, 누가 가르쳐 주었더란 말이냐?”

그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네다.”

어느 놈인지는 모르나, 단단히 약조를 한 모양이구나.”

“...기렇습네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왜 왔느냐?”

나으리를 뵙고 싶었습네다.”

그리고는 엉엉 울기 시작했다. 이용후가 울음을 그치라고 했는데도 한참을 울어댔다. 마치 잃었던 가족을 만난 것처럼 서럽게 울었다.

나를 만나서 어쩌려구? 내가 너를 거둘 줄 알았더냐?”

아닙네다. 거저, 나으리 모습만 잠깐 뵙고 가려구 했습네다. 정말입네다.”

이용후는 놈이 얼마나 사람의 정이 그리웠으면 그랬으랴 싶어 기특하기도 하고 더없이 측은하였다.

그만 일어나거라.”

이용후는 비로소 승업의 어깨를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더 서럽게 울었다. 꾀죄하기는 전과 다름이 없었다. 오히려 더 야위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었다. 그래도 휘양까지 얻어 쓴 모습이 다행스럽게 보였다. 얼어 죽지 않으려고 나름대로 방도를 챙긴 것이 대견하였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이용후 아내와 경과 원이 마루에 서서 잔뜩 긴장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경과 원은 승업을 보자 제 어미 뒤로 몸을 숨겼다. 이용후는 그들에게 사정을 변명할 궁리에 빠져 한참을 서 있었다.

대체, 그 아이가 누구입니까?”

이용후 아내가 내내 괴이쩍은 눈길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몰아쉬며 물었다. 이용후는 선뜻 대꾸를 못하고 승업을 짐짓 꺼림한 표정으로 내려보기만 하였다.

보아하니 걸인인 것 같은데, 어인 일로 집 안에 들이십니까?”

옳게 보았소. 걸인은 걸인인데...”

혹시, 일전에 말씀하신 황해도 아이가 아닐까 합니다.”

그렇소, 이놈이 바로 승업이라는 녀석이오.”

어떻게 이곳까지 왔답니까?”

나도 아직 묻지를 못했소. 우선, 밥이나 한술 먹입시다. 이 엄동설한에 굶기를 밥 먹듯 하였을 테니, 오죽 배가 고프겠소.”

이용후는 아내의 동의가 떨어지기도 전에 승업의 등을 밀어 양지쪽 툇마루에 앉혔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기가 찬 듯 또 한숨을 내쉬었다.

, 별일도 다 봅니다. 집 안에 걸인까지 끌어들이시다니...”

나도 뜻밖에 당한 일이오. 어서 밥이나 한술 내오구료.”

이용후는 슬그머니 승업의 표정을 살폈다. 승업은 고개를 죽은 닭처럼 늘어뜨리고 있었다. 비록 어린아이지만 그의 귀가 열려 있는 자리에서 아내의 타박이 좀 과하다 싶어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제서야 그의 아내가 부엌으로 들어갔다.

네놈이 나를 왜 찾아왔는지, 사실대로 말하여라.”

멀리서라도 잠시 뵙고 싶어서 왔습네다. 믿어 주시라요.”

그래도 네놈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구나.”

아닙네다. 정말입네다.”

승업이 재빨리 바닥으로 내려가 무릎을 꿇었다. 얼굴에 두려움이 가득 번지고 있었다.

며칠 전, 거지패들과 이곳에 온 적이 있느냐 없느냐.”

그러자 승업이 눈을 내리깔고는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왜 대답을 못하느냐? 사실이렷다?”

“...기건 맞습네다.”

옳거니. 그럼, 네놈이 끌고 온 것들이냐?”

기런 게 아닙니다. 청계천 거지들한테 붙들려 개지구 끌려왔습네다.”

그렇다면, 내 집을 일러 준 것이 바로 네놈 아니더냐.”

“...처음에는 모른다고 했시오. 기러니까니, 저를 마구 두들고 팼시오. 기래도 끝까지 말하지 않았댔시요.”

그럼, 너를 죽이려 했단 말이냐?”

“...기렇습네다.”

그놈들이 어째서 네놈을 끌고 이리로 왔더란 말이냐.”

나으리께서 저를 찾아오셨다구 했시오. 저는 믿지 않았습네다. 나으리께서 왜 저를 찾으셨겠습니까.”

그래서?”

거짓말이라구 했더니, 몽둥이로 사정없이 패디 뭡네까.”

놈들이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했더란 말이냐.”

“...나으리한테 구전을 뜯을라구 했을 겁네다.”

나한테 구전을 뜯어?”

틀림없습네다.”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날 승업을 그들의 소굴로 끌고 간 거지패들은 그를 이용후한테 데려다주고 돈을 뜯어낼 계획이었다. 보잘것없는 거렁뱅이 한 놈을 찾으러 양반이 소굴에까지 왔었다면 필시 사연이 있을 것으로 단정하였다. 이용후가 중요치 않은 것처럼 말하고 갔으나 웬만한 일로는 양반이 직접 찾아 나설 리가 없다. 청계천 가산이라면 중인은 고사하고 천민들조차 지나가기를 꺼리는 곳이었다. 그런 곳을 지체가 높든 낮든 간에 양반이 나타났다면 예사로운 관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건 그렇고, 네놈이 내 집을 어떻게 알았느냐? 나를 미행하지 않고서는 알아낼 방도가 없을 것이다.”

미행하지 않았습네다.”

그럼, 누가 일러 줬는지 사실대로 고하거라.”

나으리, 기건 말씀드릴 수가 없습네다. 용서하시라요.”

나만 알고 있을 것이니, 주저치 말고 고하여라.”

사실은...”

이때 이용후 아내가 국밥이 든 바가지를 들고나왔다. 승업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바가지를 보자 눈이 뒤집혀 이용후 질책쯤은 안중에도 없는 듯 마른침만 거푸 삼켰다. 이용후는 그 모양이 하도 측은하여 추궁은 뒤로 미루기로 하였다.

나으리께서 정말 저를 찾아오셨댔습네까?”

밥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이 먹어 치운 승업이 혀로 입 언저리를 핥으며 물었다. 포만감에 기분이 썩 좋은 표정이었다.

네까짓 놈을 찾아 뭘 하게? 어림도 없다. 누가 내 집을 일러 줬는지나 어서 고하여라.”

사실은...”

승업은 그제서야 김우근 대감 집에 갔던 사실과 문전에서 얼어 죽었을 것을 머슴한테 발견되어 살아난 것, 그리고 박 서방의 갖가지 배려 등을 고백하였다. 인정 많은 박 서방한테 고마운 것까지 사족으로 달았다.

정말, 나으리를 멀리서만 뵈올 생각이었습네다.”

그건 왜?”

그 영감님이 그러라고 했습네다. 절대루 나으리를 귀찮게 하디 말라구 했시요. 나으리, 그 영감님을 혼내지 마시라요. 영감님이래 잘못이 없시요.”

승업이 다시 바닥에 꿇어 엎드려 두 손을 비볐다. 이용후는 어린 소견이 기특하다 싶어 선뜻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중에도 그는 승업을 맡길 만한 곳이 어디 없을까 생각하였다. 배운 것이 전무한 아이치고는 영민한 구석이 많아 거지로 마냥 떠돌게 하기가 안타까웠다. 각별한 배려는 못 해도 가로지른 입에 풀칠이라도 할 수 있도록 주선하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았다.

 

 

 

6

1855. 철종이 왕위에 오른 지 6년이 되는 해였다.

이해 5.

영남지방의 유생 1432명이 장헌세자를 추존하자는 만인소를 올렸다.

만인소란 이조 때 유학자들이 연명으로 올렸던 상소를 말한다. 이조가 전제 군주국가였지만 왕의 정치이념이 옳지 않을 경우는 유생들이 상소하여 자신들의 뜻을 내세울 수 있었다. 만인소라는 말이 생긴 것은 1823년에 유생 9,996명이 서자와 그 자손들도 관직에 임용할 것을 상소한 데서 비롯되었다. 서출도 겉으로는 양반이었으나 가정에서부터 천대를 받았으며 상속권조차 없었다. 이조 시대는 대부분 혈통이나 결혼에 의한 인척 관계로 출세가 보장됐으므로, 이들 서출에게는 문과의 응시 자격을 주지 않았고 무과에 한해서만 허용되었다. 그나마 관직에는 임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갈수록 서출의 수가 많아지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자 선조 때 적서의 차별을 잠시 완화하여 지방의 수령 등으로 봉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가 영조 때에 와서 다시 적서 차별을 엄격히 하였고, 1894년에 이르러서야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와 같은 신분적 제약으로 서출이 정치 쪽으로는 거의 진출하지 못하는 등의 냉대를 받자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고, 심지어 의적이 되어 사회를 어지럽히는 경우가 빈번하였다. 그러나 학문과 문예 쪽으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자가 많아 어숙권의 <고사촬요>와 한치윤의 <해동역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사도세자는 17625,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 속에 갇혀 굶어 죽은 비극적 인물이었다. 영조한테는 정성왕후 서씨와 계비인 정순왕후 김씨가 있었으나 소생이 없어 영빈 이씨에게서 효장세자와 사도세자를 얻었다. 마침 효장세자가 일찍 죽자 영조는 사도세자로 하여금 대리청정케 하였다. 그러나 갑자기 나쁜 병에 걸려 광기를 부리기 시작하더니 자연 학문을 멀리하게 되었고, 궁녀와 내시들을 우롱하며 함부로 죽이는 경우도 있었고, 심지어는 여승을 궁중에까지 불러들여 희롱하였다. 게다가 영조 몰래 관서 지방으로 유람까지 다녀오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조정 대신들이 왕세자의 체통 문제를 들고나와 비행을 낱낱이 열거해서 영조한테 상소하기에 이른다. 이들 상소에 몹시 분노한 영조는 세자를 폐위하고 서인으로 강등시켜 뒤주에 가둬 놓고 굶겨 죽였다.

임오년의 이 비극적 사건이 있자 당시 시파와 벽파 간의 당파싸움이 일어났다. 이 당쟁은 세자를 동정하는 파와 세자를 못마땅하게 여겨 자신들의 상소를 합리화시키려는 파들 간의 정치싸움이었다. 즉 세자를 동정하는 쪽을 시파라 하여 그들 대부분이 소론의 남인 계통이고, 그 반대파가 벽파로서 노론이었다. 이로써 사색 당쟁이 더욱 깊어졌다.

영조가 죽고 정조가 즉위하자 아버지 장헌세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슬퍼한 나머지 자연 벽파를 멀리하고 시파를 측근에 두었다. 그러나 정조가 죽고 어린 순조가 즉위하면서 영조의 계비였던 벽파 계열 김씨가 섭정하게 됨에 따라 벽파가 다시 정권을 잡았다.

1801년 신유년에 있었던 천주교 박해 사건이 겉으로는 천주교가 조선의 전통적 유교 사상에 해악이 된다하여 일어났지만, 실은 시파인 남인 계통 대부분이 천주교 신자 내지는 천주교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았기 때문에 탄압이 더욱 심했던 것이다.

이러한 음모가 있었음을 알고 반기를 든 유생들이 사도세자를 추존하자는 만인소를 올렸던 것이다. 그러나 철종은 이를 받이들이지 않았고 고종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장조라는 시호로 추존하였다. 사실 장헌세자 문제로 만인소를 올렸던 유생들은 남인 후손들로서 서학에 심취한 자들이 많았던 것이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천주교에 연루돼 처형된 조부 은언군의 죄명을 지워 버리는 것을 계기로 천주교에 대한 탄압이 잠시 수그러들었지만, 정권을 잡고 있었던 안동 김씨 일파는 천주교의 교리를 연구하고 있는 자들의 이 같은 만인소를 자신들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여 장헌세자의 추존을 묵살했던 것이다.

유생들의 이 같은 만인소에 이용후가 참여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매부 김우근이 노발대발한 것은 물론이었다. 이에 입장이 더욱 난처한 쪽은 아무래도 이용후 누님 이씨일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동이 트자마자 머슴 박 서방을 보내 이용후를 불러들였다.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이용후는 박 서방을 보자 짐짓 시치미를 떼었다.

"이른 아침부터 박 서방이 웬일인가?" "내당마님께서 급히 듭시라는 분부가 계셨습니다요.“

"누구를 말인가?“

"진사 어른이십니다.“

"나를? 무슨 일인 것 같은가?“

"쇤네가 어찌 알겠습니까요.“

"...내당마님께서 상이라도 주시려나?“

"글쎄올습니다. 쇤네는 급히 모시고 오라는 분부만 받았을 뿐, 내당마님의 의중은 전혀 아는 바가 없습니다요.“

"알겠네. 내당마님이 부르시니 아니 갈 수는 없는 일. 앞장서게."

이용후는 미처 아침도 뜨지 못한 채 단출하게 행장을 꾸려 집을 나섰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의구심이 가득한 낯으로 따라나서며 "무슨 일인 것 같습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녀는 남편이 이미 그 까닭을 알고 있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낸들 알겠소. 누님이 부르시는 일이니, 그저 갈 수밖에.“

"좀처럼 드문 일인데, 전혀 짐작이 안 가십니까?“

"그렇다니까요. 어쨌든, 다녀오리다. 설마, 동생한테 곤장이야 치시겠소?“

", 별 해괴한 말씀을...“

"...누님이 상이라도 주실는지 누가 아오?"

이용후는 자꾸 불안해하는 아내 앞에서 마음을 위장하여 안심시켰다. 그녀는 남편이 만인소에 연루돼 있음을 전혀 모르고 있어, 김우근 대감이 진노해 있다는 사실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래도 그녀는 남편이 혹시 누님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는 않았을까 하고 노심초사하였다. 심지는 굳은 사람이지만 다소 방만한 데가 있어, 평소 그의 누이가 항상 마음을 놓지 못하고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런 이유로 간혹 박 서방 편에 서찰을 보내 남편을 잘 단속하라고 당부까지 하였다. 그렇다고 아녀자가 어찌 남편을 단속하랴 싶어 물가에 내놓은 자식처럼 늘 걱정만 할 뿐이었다.

이런 중에 박 서방이 꼭두새벽에 들이닥쳤으니 그녀 심장이 콩알만 하게 오그라든 것은 당연하였다. 가뜩이나 미운털이 박힌 동생한테 갑자기 상을 줄 리는 없고, 아무래도 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 틀림없다는 단정 쪽으로 마음을 몰아가고 있었다.

이용후 딴에는 한달음에 달려갔는데도 안국동에 당도하니 그새 사시(오전 9시에서 11)에 이르렀다. 박 서방은 내실 앞으로 바로 나서지 않고 내당마님 몸종인 향원이를 조용히 불러 이 진사가 당도했음을 아뢰라고 지시한 것 같았다.

잠시 후 향원이가 나와 이용후를 내실로 안내하였다.

그의 누이 이씨는 이용후가 들어서는 모습을 비스듬히 노려보면서 대뜸 혀부터 찼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용후는 시치미를 뚝 떼고 "어인 일로 저를 보자고 하셨습니까?" 하고 물었다.

"저런... 정말 몰라서 묻는 겐가?“

"...무슨 말씀이신지요?“

"이 사람아. 그렇게 능갈만 치면 대순가? 지금, 대감마님의 노기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나 할는지 모르겠구먼."

그녀가 볼을 바르르 떠는 것으로 보아 화가 나도 단단히 났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용후는 그제서야 자세 가다듬는 시늉을 하였다.

"대체, 그런 일에 뭐 하러 끼어든단 말인가. 자네가 지금 만인소 따위에 마음 쓸 처지인가? 장헌세자 추존은 거론할 일이 못 된다고 상감께서도 이미 전교(왕의 명령)가 계시지 않았나. 대사간(왕의 잘못을 지적하는 관직)에서 이번에 상소를 낸 유생들을 엄중히 다스릴 것을 상감께 청한 사실을 알고나 있는 게야? 도대체, 자네는 목숨이 몇 개길래 천둥벌거숭이로 날뛰는 겐가. 딱두 허지. 그러니까 제 처자식 입에 풀칠도 못 하는 형편이 아닌가.“

"누님. 어찌 그리 꾸중만 하십니까?“

"그럼, 칭찬이라도 들을 줄 알았나? 학문을 그만큼 했고, 사리 판단이 있는 사람이 세상살이에 분별이 있어야 되잖는가. 이번 만인소에 자네 이름이 든 바람에 대감 입장이 이만저만 난처한 것이 아니란 말일세. 김좌근 영의정께서도 자네 이름을 보시고 대감께 몹시 화를 내셨다 하네. 그러니, 내가 무슨 낯으로 대감을 마주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분별이 없기로서니, 일이 이 지경에 이르게 될지 짐작을 못했단 말인가?“

"대감마님과 누님께는 죄송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뭔가? 변명할 말이 있는 게야?“

"이번 만인소는 명분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조정의 당파싸움에 희생되신 세자를 추존하는 일은 하늘의 뜻이라 여겨집니다. 선왕이신 영조께서도 세자의 죽음을 애통하게 생각하시어, 사도 시호를 내리신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 아닙니까.“

"설사 그렇더라도, 자네까지 나설 필요는 없잖은가 말일세. 자네만 도리를 찾아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한다면, 대감은 어디 가서 도리를 찾는가. 자네 매부께서 김좌근 대감과 인척간임은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인데, 자네가 연루됨으로써 대감 입장이 어떠하리라는 것쯤은 삼척동자도 짐작할 수 있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관여했다면, 이는 미친 척하고 떡판에 엎어진 격 아닌가.“

"...그런 생각이야 했겠습니까. 실은, 저도 어느 정도 염려는 했습니다. 그러나, 만인소가 명분 있는 일이라 생각되어 상감께서도 마땅히 윤허가 계실 줄 믿었습니다.“

"매부더러 일가권속을 제대로 단속하지 못했다고, 김좌근 대감의 노하심이 이만저만 아니었다네." "영의정께서도 그렇지요. 상감께서도 불문에 붙이신 일을 가지고 그토록 마음 쓰는 까닭이 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자리에 오르다 보면, 이것저것 대소사를 일일이 단속하지 않을 수가 없는 법이네. 이 사람아. 누울 자릴 보고 다리 뻗으랬어. 그러니, 차후 경거망동하지 말고 사리 분별을 잘하시게. 대감께는 내 단단히 훈계했다고 말씀드릴 테니, 당분간 근신하는 것이 좋을 걸세."

이용후는 누이의 힐책이 이쯤으로 끝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하여, 점심이나 먹고 가라는 것도 마다하고 도망치듯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러자 박 서방이 숨이 턱에 차 가지고 따라왔다.

"나으리. 웬 걸음이 그리도 빠르십니까? 쇤네 가랭이 찢어지는 줄 알았습니다요.“

"무슨 일인가?“

"내당마님께서 이걸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작은 보에 둘둘 말린 것을 이용후한테 내밀었다.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것이 뭐라고 하시던가?“

"나으리께서 진지도 안 드시고 가셨다면서, 전해 드리라 하셨습니다요.“

"그럼, 주먹밥이라도 들었단 말인가?“

"쇤네가 보기에,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요. 저엉 궁금하시면, 가시다가 끌러 보시지요. 그럼, 쇤네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요."

박 서방이 왠지 이용후 눈치를 힐끔힐끔 살피며 뒷걸음질로 물러섰다. 이용후는 어쩐지 꽁무니를 빼는 것처럼 보이는 박 서방의 뒷모습과 보에 싼 것을 번갈아 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대체, 뭐가 들었길래...?

이용후는 비로소 보를 끌렀다.

뜻밖에도 돈이었다. 얼추 스무 냥은 되는 듯싶었다.

누님이 어인 일로 돈을...? 혹시, 내 마음을 돌려놓을 심산인가?

이용후는 누이의 저의를 가늠하느라 선 채로 생각을 이리저리 굴렸다. 그러나 딱히 무엇이라 단정할 수가 없었다. 순간, "진지도 안 드시고..." 운운하던 박 서방의 말이 떠올랐다.

누님의 마음이 그러하셨구나.

동생을 꾸짖어 놓고 밥도 먹여 보내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던 누이의 깊은 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이용후는 콧등이 저리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실은 누이 앞에서 이번 만인소의 마땅함을 역설하고 싶은 오기가 은근히 발동했었으나 고작 안방이나 지키고 있는 여자한테는 의미 없는 일이다 싶어 그만두었다. 더구나 누이가 안동 김씨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남편이 더 높은 벼슬에 오르기만을 고대하는 여자임에야, 소한테 경 읽어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였다.

이용후는 만인소 일로 누이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자신의 소행이 잠시 후회가 되었다. 이용후한테 마치 미운털이라도 박힌 것처럼 누이가 겉으로는 홀대를 해도 속으로는 친정 동생이 구차하게 사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동기간의 정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용후는 경황이 없던 차에 비로소 시장기를 느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꼭두새벽에 박 서방을 따라나섰던 것이 벌써 미시(오후 1시에서 3) 한가운데 와 있을 시간이 되었다. 서둘러 요기부터 해야 했다. 누이가 이럴 경우를 다 헤아렸던가 싶어 또 콧등이 저렸다.

그는 곧장 피마골로 발길을 돌렸다. 피마골은 말이 피해 다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종로는 옛날부터 고관대작들이 많이 통행하던 길이었다. 고관이 지나갈 때마다 서민들은 땅에 엎드려 있어야 했다. 중인이나 장사치들이 말을 타고 가다가도 고관이 지나가면 얼른 말에서 내려 신분상의 예의를 갖추었다. 그러다 보니 서민들은 걷는 시간보다 엎드려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이러한 폐단을 없애기 위해 종로 대로변에 들어앉은 가옥 뒤쪽으로 겨우 말 한 마리 지나다닐 만한 골목길을 만들었다. 지금의 종로 뒷골목이다. 서민들이 종로 대로를 가다가 멀리서 고관의 행차가 있다 싶으면 얼른 말 머리를 이 골목으로 돌려 번거로움을 피하곤 하였다.

이 골목은 자연 서민들의 길이 되었고, 따라서 이들을 상대로 한 상점이나 선술집, 국밥집과 같은 음식점이 즐비하게 들어섰다. 종로3가 쪽으로는 음식점뿐만 아니라 색주가(술도 팔고 매음도 하는 술집)도 있어 여자들이 나와 호객 행위도 하였다.

이용후는 무엇을 먹을까 하고, 음식점 여기저기를 기웃거렸다. 선술집에서 풍겨 나오는 너비아니와 누름적이나 산적, 생선 따위를 굽는 비릿한 냄새와 국밥집의 국 끓는 냄새들이 코를 후비고 들어와서는 뱃속을 온통 휘젓고 다녔다. 오랜 공복으로 이것저것 다 먹고 싶었다. 오랜만에 기름진 너비아니도 먹고 싶고, 생선도 먹고 싶고, 누름적도 먹고 싶었다.

그는 선술집 앞에 서서 산적과 생선을 굽고 있는 중노미의 손놀림을 한참 구경하였다. 공복도 채우고 술안주로도 일품이겠다 싶어 연신 침을 삼켰다. 순간, 영양실조로 얼굴이 누렇게 뜬 경과 원이 도깨비방망이처럼 다가섰다. 이용후는 한숨을 내쉬며 얼른 고개를 돌렸다. 어린 자식들이 눈에 밟혀 차마 사 먹을 수가 없었다.

이때, 뒤에서 "이 진사가 아니신가." 하고 어깨를 치는 사람이 있었다. 이용후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홍 생원께서 어떻게 여기를...?“

"그러는 이 진사는 여기서 무얼 하시오?“

"그저 지나는 길이었소만, 홍 생원께서는 웬일이시오?“

"마침 시장하던 참에 요기나 할까 해서요. 웬만하시면 저랑 함께 들어가십시다.“

"저야 뭐..."

그러자 홍 생원이 선술집을 가리키며 이용후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중노미가 젓가락을 빼들고는 "무엇으로 구울깝쇼?" 하고 물었다. 홍 생원이 목판 앞으로 다가가 산적과 생선 따위를 가리켰다. 중노미가 그것들을 집어 석쇠에다 올려놓았다. 이어서 주모가 소반에다 술병과 술국을 받쳐 들고 나타났다.

"그래. 이 진사께서는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저야 늘 그렇습니다만, 홍 생원께서는 근황이 어떠신지요?“

"보시다시피 이렇게 반건달이지요. 허허허...“

"학문이 있으신데, 건달이라니요? 당치도 않은 말씀이외다.“

", 과찬의 말씀을... 학문이 있으면, 이러고 있겠습니까? 벌써 벼슬길에 올랐지요. 허긴, 우리네야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겠지만요."

벼슬하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라고 말한 것은 안동 김씨 권세를 등에 업지 않으면 벼슬하기 어렵다는 비유였다.

생원 홍경무는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대과에는 응시하지 않았다. 안동 김씨의 배경이 없이는 벼슬길에 오르기 힘든 사회 풍조를 일찍 깨닫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용후가 홍경무를 알게 된 것은 생원시 때 만난 인연이었고, 김씨 세도와 사회제도에 대한 인식과 견해가 비슷한 처지였다.

중노미가 산적과 생선 구운 것을 소반에 내려놓고 갔다. 술 한 잔씩을 비우는 동안 잠시 얘기가 중단되었다. 이용후는 누이 집을 나와서부터 마음이 답답하던 차에 뜻밖에 홍경무를 만나, 회포를 풀 수 있을까 하여 공연히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큰 즐거움이었다.

"사람은 시류를 잘 타야 출세할 수 있는 것 아니겠소?“

"그래서 드리는 말씀이외다. 김씨 성 가진 놈 아니고는 어디 얼굴을 내밀 수 있습니까. 그래도, 이진사께서는 나보다야 좋은 조건이잖소이까. 매부가 영의정과 가까운 인척이신데다가 이미 좌참찬에 올라 계시니, 이 진사께서 뜻만 있으시면..."

홍경무는 이용후를 눈앞에 두고 어찌 들으면 비아냥대는 것도 같고 진정 부러워하는 것도 같은 어조로 말했다. 두 가지 뜻을 다 내포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이용후가 듣기에는 매우 거북한 말이었다.

"듣기 민망하외다. 나는 그저 이용후일 뿐이지, 매부와 연관 짓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소이다."

이용후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어색한 표정을 짓자 홍경무가 금세 낯빛을 고쳐 말을 돌렸다.

"이르다 뿐입니까. 이 진사가 출세에 뜻이 있는 분이셨다면, 이번 만인소에 참여하셨겠습니까.“

"아니...? 홍 생원께서 그걸 어찌 아셨소?“

"허허. 제가 당나귀 귀를 갖지 않았습니까. 웬만한 사람은 만인소임을 다 알고 있지요. 이 진사 용기는 정말 대단하시오. 누이의 처지를 생각해서도 선뜻 실행 못 할 일인데...“

"그렇게 말씀하시니, 더욱 몸둘 바를 모르겠소이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 누이한테 잔뜩 꾸중을 듣고, 근신하라는 엄명까지 받고 오는 길입니다.“

"내당에서는 당연히 그러실 테지요. 저 같아도 그랬겠습니다. 어쨌든, 일이 이쯤 해서 마무리되었으니 다행 아닙니까. 조정에서 문제 삼기로 작정했더라면 이 진사께서도 곤욕을 치를 뻔하지 않았습니까.“

"글쎄올시다...? 과연, 다행으로 여겨야 옳은지 모르겠습니다.“

"한 진사께서도 안녕하신지요. 뵈온 지 하두 오래 돼서..."

그가 말한 한 진사는 곧 이용후 이종형인 한흥주를 말한다. 그와 한흥주가 서로 알게 된 것은 역시 생원시 응시 때 인사를 나누고부터였다. 세 사람이 학문의 깊이도 같거니와 나이 또한 비슷하여 호형호제하여도 서로 섭섭할 것이 없었다. 게다가 세상을 보는 시각에도 별 차이가 없어, 가끔이긴 하지만 서로 만나면 반가운 낯으로 대하곤 하였다.

"연초에 인사를 갔었습니다."

"어찌 소일하고 계시던가요? 워낙 출입이 없으신 분이라... 우리네처럼 바깥출입도 가끔 하셔야 덜 적적하실 텐데요.“

"형님이야 오로지 책만 벗하시는 분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제가 가면 좀처럼 놓아 주질 않습니다. 이번에도 사흘이나 묵었지 뭡니까.“

"이 진사가 워낙 반가운 인척인데다가, 외로우셔서 그럴 겁니다. 그래, 이번에 가셔서는 두 분이 무슨 얘기를 나누셨는지요? 사흘씩이나 묵으셨으니, 꽤 많은 얘기가 오갔겠습니다.“

", 별 얘기 있었겠습니까. 그저, 세상 돌아가는 얘기였지요."

그러자 홍경무가 갑자기 주위를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그분도 천주학에 관심이 많으시다고 하셨던가요?" 하고 물었다.

"...그렇긴 합니다만, 깊이 들어갈 생각은 없으신 것 같습니다. 혹시, 홍 생원께서도 천주교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서양 문물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궁금하다 보니까, 자연 그쪽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리를 깊이연구할 기회가 생기면, 서양 문물에 대해서도 그 이치를 자연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홍 생원께서도 그럴 생각이 있으신지요?“

"글쎄요...? 아직은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때가 오면, 그때 가서 이 진사께 도움을 청하겠소이다.“

"그러실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군요."

이용후는 홍경무가 뜻밖에 천주교에 관심을 나타내는 것이 몹시 반가워 그의 손을 끌어다 힘주어 잡았다. 그리곤 눈을 감아 '천주님이시여...' 하며 바로 앞에서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한동안 중얼거렸다.

"이 진사께서는 이 자리를 뜨시면 곧장 어디로 가시렵니까?“

"마침 집으로 가려던 참이라, 특별히 마음에 둔 곳은 없습니다만...?"

그러자 홍경무가 갑자기 반가운 낯을 하며 안면에 웃음을 가득 싣는 것이었다. 순간, 그에게 꿍꿍이속이 따로 있음을 눈치챘다.

"그럼, 오늘은 저와 회포를 푸는 것이 어떠신지요? 그동안 너무 적조해서 드리는 말씀이외다.“

"회포라니요? 무슨 뜻으로 하시는 말씀인지, 잘 모르겠군요.“

"그야 허락만 하신다면 제가 안내할 것 아니겠소.“

"글쎄올시다. 갑작스러운 제안이라...“

"그럼, 저를 따라나서십시오."

홍경무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서둘러 음식값을 치르고는 마치 급한 용무가 있는 것처럼 휑하니 선술집을 나섰다. 이용후는 그의 속셈을 짐작할 수가 없어 주뼛주뼛 따라붙었다. 홍경무가 술이 거나하면 음담패설도 서슴지 않는 데다가 때로는 한량기를 드러내기도 하여, 이용후는 대뜸 그의 객기부터 떠올렸다. 지기를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방금 마신 술이 낮술치고는 조금 과한 듯하여, 그의 의식이 조금씩 산란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역시 한흥주처럼 가세가 곤궁치 않은 집안이라 기방 출입을 자주 하는 눈치였다. 이용후 형편으로는 감히 실행하지 못할 일이었다. 요즘 기생들이란 돈에 닳아 빠진 여자들뿐이어서, 어설프게 사내의 멋 따위엔 눈길을 주지 않고 있었다. 오로지 화대나 챙기는 일에 혈안이 돼 있었다.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겠으나 홍경무는 벌써부터 신바람이 나는 듯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피마골을 따라 경쾌하게 걸어갔다. 한량들의 걸음이 대개 그렇듯 그는 걸음도 매우 빨라 이용후 걸음으로는 따라잡기조차 힘이 들었다.

"홍 생원. 대체 어디를 가시려고 이리 서두르십니까?“

"...제가 단골로 가는 곳이 있으니, 이 진사께서는 염려 놓으시고 따라오시지요."

그리고는 마치 이용후를 곤경에 몰아넣을 음모라도 꾸미는 사람처럼 호탕하게 웃어넘기는 것이었다. 그럴수록 이용후는 자꾸 의구심만 들었다. 회포를 풀자고 했으니, 제가 갈 곳이 기생집밖에 더 있겠는가. 원님 덕에 나팔이나 불어 보지.

이용후가 예상한 대로 홍경무가 걸음을 멈춘 곳은 기방이었다. 그는 누구를 부르는 법도 없이 대뜸 문을 열고 들어가 정원 한가운데에 우뚝 섰다. 그러자 하인인 듯한 어린 계집이 놀란 얼굴로 그에게 쪼르르 달려와 공손하게 조아렸다.

"어서 오십시오, 나으리.“

"연홍이 안에 있느냐?“

", 나으리.“

"어서 안내하렸다. 오늘은 매우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으니, 연홍이한테 그리 이르거라."

계집을 부리는 어투가 아주 당당했다. 계집이 홍경무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단골로 드나드는 집이 틀림없어 보였다.

", 나으리. 안으로 듭시지요."

계집이 여전히 머리를 조아린 채 종종걸음으로 앞장섰다. 이용후가 언뜻 보기에 여느 기생집과 다를 바가 없는 분위기를 갖추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별채로 안내되었다. 이용후가 홍경무를 따라 마루로 막 올라서는데, 머슴으로 보이는 사내가 그르듯 달려오더니 벗어 놓은 신을 가지런하게 모아 놓는 것이었다. 놈은 감히 머리를 들지 못하고 내내 허리를 구부린 채 있었다.

이용후가 곁눈질로 놈을 힐끔 내려보는 순간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기절할 뻔하였다. 천만뜻밖에도 놈은 승업이 아닌가.

저 녀석이 어떻게 이곳에 와 있을까...?

이용후는 놈이 눈치채지 못하게 얼른 고개를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도 이용후는 가슴이 한참 두근거렸다. 마치 보아서는 안 될 사람을 외나무다리에서 마주친 것처럼 심장이 굳어 버렸다.

잠시 후 홍경무가 찾던 연홍이라는 기생이 들어왔다. 그녀는 홍경무를 홍조 띤 얼굴로 다가와 대뜸 큰절을 올렸다. 그 자태도 고우려니와 첫눈에 미색이었다.

"오랜만에 오셨습니다, 나으리. 별고 없으셨는지요?“

"그동안 적조했지? 그래서, 마침 귀한 분을 만나 내 한달음에 달려오지 않았겠느냐. 어서 인사 올리거라. 이 진사 어른이시다."

그러자 그녀가 다시 일어나 이용후한테도 큰절을 올렸다.

"저것이 술 따르는 계집치고는 문자를 제법 쓰는 아이올시다. 시문으로 화답할 수 있으면 술딸개로는 쓸 만하지 않습니까."

홍경무가 연홍이를 추켜올리려고 애쓰는 마음이 역력하게 보였다. 그렇게 하여 여자를 보는 자신의 안목을 은근히 과시하려는가 싶어 이용후는 튀어나오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잠시 후 술상이 들어오면서 기녀 하나가 더 들어왔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옥수라 소개하면서, 연홍이보다 더 수줍은 티를 내었다. 홍조 띤 얼굴이 몹시 앳되게 보여 몇 살이냐고 물었더니 열일곱이라 하였다. 그러자 홍경무가 대뜸 "연홍이보다 세 살이나 아래로구나." 하며 다소 부러운 눈길로 넌지시 바라보았다. 연홍이가 금세 무안해하였다. 눈치챈 홍경무가 다시 "연홍아. 나는 너만 한 나이가 좋으니, 서운해하지 말거라." 하고 그녀를 위로하였으나, 기녀로서 나이 든 서러움이 있는 듯 한동안 얼굴을 펴지 못하였다.

술이 몇 순배 오갔다. 술이 어느 정도 오른 홍경무가 연홍이와 음담을 주고받으며 수작을 붙이는 동안 이용후는 내내 승업이 생각을 하였다. 배곯지 않는 길을 찾은 것은 퍽 다행한 일이나 오리가 홰(새나 닭이 앉도록 가로 지른 막대) 탄 것 같다는 말이 있듯이, 하필이면 기생집 머슴이 됐나 싶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어린 나이에, 장안의 한량이나 오입쟁이들의 못된 수작부터 눈에 익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보게 연홍이. 들어오다 보니까 웬 거렁뱅이로 생긴 놈이 있던데, 이 집에 몸 붙이고 있는 아인가?“

". 오갈 데 없는 거지이옵니다.“

"기방에서는 거지가 할 일 따로 있는가?“

"그런 게 아니옵고... 며칠 전 문밖에서 몹시 굶주린 얼굴로 있길래 밥만 한술 먹여 보내려고 했더니, 저리 눌러있지 뭡니까. 밥값 하겠다고 온갖 궂은일을 자청해서 하고 있어, 차마 내쫓지 못하고 있습니다. 꼴은 더러워도 어린 것이 기특한 구석도 있고... 나으리 보시기에 거슬리시는지요? 그러시다면, 당장 내보내겠습니다.“

"아닐세. 그저 물어본 것뿐이니, 마음 쓰지 말게."

이용후는 차마 말을 덧붙일 수가 없어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재빨리 돌아왔다. 놈을 당장 주선할 곳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처지에, 그나마 밥 얻어먹을 곳을 찾은 것만도 다행으로 접어 두었다.

홍경무는 술을 과하게 마신 탓에 혀는 두루마리처럼 꼬부라진 듯하고, 잠이 밴 눈은 업혀가는 돼지 눈깔처럼 거슴츠레하였다. 연홍은 그 모습이 민망했던지 "잠시 주무시도록 해야겠습니다." 하며 홍경무를 부축하여 곁방에다 눕혀 놓고는 이내 돌아왔다.

"이보게, 연홍이. 내 부탁이 있네.“

"나으리께서 저 같은 것한테 부탁이라니요...?“

"조금 전에 말한 그 거렁뱅이 말일세.“

", 나으리. 말씀하십시오.“

"웬만하면 그 아이를 잠시 데리고 있게나.“

"무슨 말씀이신지요? 혹시 나으리께서 아시는 아입니까?“

"실은 그렇다네. 내가 황해도를 다녀오던 길에 우연히 만난 아이야. 놈이 비록 꼴은 저렇고, 배울 기회가 없어 문자는 없어도 제법 똑똑한 데가 있는 아이라네. 어디 머슴 자리라도 주선하려고 했으나, 마땅한 곳이 없어 궁리 중이었다네.“

"그럼, 뉘집 자식입니까?"

"애비 에미가 일찍 죽어 혈혈단신인 모양이네. 저놈한테는 그저 밥이나 먹여 주면 더 바랄 것이 없는 놈일세.“

"글쎄요...? 어차피 남는 밥이나 먹이는 것이야 어렵지 않사오나, 제 집에 드나드시는 어르신들이 저 꼴을 보고 불쾌하게 생각지 않으실는지,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모양새가 너무 불결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내 보기에도 꼴이 사나우니, 저 아이를 손님들 눈에 띄지 않게 하면 되지 않겠는가. 내가 마침 몇 푼 가지고 있는 것이 있으니, 이것으로 입성이나 갈아입히면 남 보기에도 괜찮을 성싶네만..."

이용후는 누이가 준 엽전 이십 냥을 연홍이 앞에 선뜻 내놓았다. 그러나 연홍이가 그 돈을 받으려 하지 않았다.

"나으리께서 그토록 부탁하시는 일이니, 헌 옷 한 벌 빌려 입히겠습니다.“

"고맙네. 그럼, 이걸로 오늘 술값을 치르게. 홍 생원께는 이르지 말고.“

"그것도 아니되옵니다. 나으리가 아시면 저희만 혼나지 않겠습니까.“

"어허. 이것도 아니된다, 저것도 아니 된다... 그럼, 나보고 어쩌란 말인가. 다른 생각이 있으면 말을 하게.“

"아닙니다, 나으리. 나으리께서는 하찮은 거렁뱅이를 그토록 애달파 하시는 모습을 뵙고 크게 감동하였습니다. 짐승보다 나을 것이 없는 천한 것들을 가엽게 여기시는 마음이 제 가슴을 도려내는 것 같았습니다."

연홍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말을 더듬거리자 옥수까지 훌쩍훌쩍 우는 것이었다.

"왜들 이러나. 앉아 있기가 심히 민망하네. 어쨌든, 내 손에서 이미 떠난 것이니 쓰임을 말하게. 도로 넣을 수는 없지 않은가.“

"저희도 명분이 없어 그 돈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

"말해 보게.“

"제 집에 다시 들르시겠다는 약조만 해 주십시오.“

"그야 어렵지 않은 일이네만, 내가 좀처럼 기방 출입을 안 하는 샌님이 돼놔서...“

"약조를 아니 하시겠다면, 저도 나으리께서 하신 부탁을 들어드릴 수가 없겠습니다. 안 그러니, 옥수야?“

"당연히 그렇지요.“

"어허. 이런 낭패가 있나... 좋으네. 내 약조를 하지.“

"고맙습니다, 나으리.“

"허나, 자주 오지는 못해. 내가 기방 출입이나 할 처지가 아니라네.“

"...저희도 그리 알고 있겠습니다. 그럼, 약조하는 뜻으로 제 술 한잔 받으십시오."

연홍이가 이용후에게 잔을 건네고 술을 따랐다. 그러자 옥수도 제 술을 받으라며 또 잔을 건넸다.

"내가 여기서 나갈 때, 그놈을 멀리 있도록 하게.“

"무슨 뜻이옵니까?“

"내가 모르고 있는 것처럼 하는 것이 그놈한테 좋을 듯싶어서 그러네.“

"보잘것없는 거렁뱅이한테 그토록 마음을 쓰시다니...“

"놈이 나를 믿고 행여 방자해질까 봐 그러네.“

"후에 알게 될 일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네만, 그때까지 자네가 교육을 단단히 시키게.“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나는 이만 일어나야 되겠네. 홍 생원을 잘 모시게."

이용후가 일어날 차비를 하자 승업이를 멀리 있게 하려고 연홍이가 앞질러 나갔다. 그 틈을 타서 옥수에게 엽전 몇 닢 내어 화대로 주었다. 그러나 받지 않으려고 몸을 이리저리 빼었다. 이용후가 눈을 부릅떠도 막무가내로 고집을 부렸다.

"내 손을 두 번씩이나 부끄럽게 하는구나.“

"용서하십시오, 나으리. 하지만, 오늘은 절대 받을 수가 없사옵니다. 다음에 오셔서 주시면, 그때는 받겠사옵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연홍이가 다시 들어와 승업이를 얼씬대지 못하게 했다면서 능숙한 손놀림으로 나갈 차비를 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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