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1
포레스트 검프(FORREST GUMP)
Winston F. Groom
1.
한 가지 말해둘 것이 있다. 바보가 된다는 것은 절대로 초콜릿처럼 달콤한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바보를 비웃고 신경질을 내며 형편없는 대접을 한다. 장애자를 친절하게 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만은 없다. 나는 내가 꽤 재미있는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는 태어났을 때부터 바보였다. 나의 아이큐는 70 정도로, 사람들은 그것으로 나를 바보로 규정한다. 그러나 아마 나는 천치나 심지어는 저능아에 더 가까울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개인적으로 나는 나 자신을 얼간이와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바보는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바보라는 것을 생각할 때, 바보를 <몽고증 환자>의 하나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몽고증 환자란, 중국 사람처럼 보이도록 두 눈을 꼭 감고 침을 질질 흘리며 자위행위를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나는 느리다. 나도 그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휠씬 똑똑할 지도 모른다. 내 마음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사람들이 보고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나는 많은 것들을 생각할 수가 있지만 그것을 말로 하거나 글로 쓰려고 노력하면 도통 아무 것도 나오지를 않는 것이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여러분에게 보여주겠다.
언젠가 내가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자신의 뜰에 나와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은 한 다발의 관목을 심으려 하고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 돈 좀 벌어 보겠냐?"
그래서 나는 말했다.
"으응."
그래서 그는 내게 땅을 파는 일을 시켰다. 하루중 가장 더울 때 약 열 수레 가량의 흙을 신바람나게 날랐다. 일을 모두 마쳤을 때 그는 주머니를 뒤져서 1달러 지폐짜리를 꺼냈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싼 품삯 때문에 소동을 벌여야 하는 것이었지만 그러는 대신에 나는 빌어먹을 1달러짜리 지폐를 받아들고 기껏 한다는 소리가. "고맙습니다" 느니 뭐니하고 입속에서 중얼중얼거리고, 자신을 바보처럼 느끼며 그 돈을 손안에서 구겨쥐고 거리를 계속 걸어 내려갔다.
내가 말하는 의미를 알겠는가? 이제 나는 바보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 아마도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것일 지도 모르지만, 나는 바보에 관해서 많은 것을 읽었다.
--도스토--- 에프스키의 바보로부터 리어왕에 나오는 바보, 포크너의 바보, 벤지 심지어는 <앵무새 죽이기>에 나오는 부우레들리까지 모조리 읽었다. --이제 그는 '진지'한 바보였다.
그러나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의 하나는 <오브 마이스 앤 맨>의 레니이다. 작가들의 대부분은 바보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 --- 왜냐하면 그들의 작품에 나오는 바보들은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항상 영리했기 때문이다. 그렇다. 나는 그것에 동의한다. 어떤 바보라도 그럴 것이다. 하하--.
내가 태어났을 때, 우리 엄마는 내게 남북전쟁에서 싸운 네이던 베드포르 포레스트 장군의 이름을 따서 포레스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엄마는 우리들이 항상 포레스트 장군의 가족과 어떻게 해서인가 친척이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전쟁이 끝난 다음에 쿠 크락스크란<KKK단>을 창단했고 할머니조차 그들은 나쁜 사람들이라고 말하는 것을 빼놓고는, 훌륭한 사람이라고 엄마는 말하고 있었다. 할머니의 말에 나도 동의하고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여기서 <그랜드 이그젤티트 피슈포트>라고 하던가 혹은 그가 그 자신을 뭐라고 부르고 있던 간에 그는 한때 시내에서 총포상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마 내가 12세가량 되었을 때의 일로서, 그곳을 지나갈 때 나는 진열창 안을 들여다보았는데, 그는 그 안에 커다란 교수형 집행인의 올가미를 진열해 놓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자, 그는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감고서, 마치 목이라도 매달 것처럼 바짝 조이고는 혓바닥을 쭉 빼물고 나에게 겁을 주려고 했다. 나는 도망을 쳐서 누군가가 경찰을 불러서 그들이 나를 엄마에게 집까지 데려다줄 때까지 주차장의 자동차들 뒤에 숨어 있었다. 하여간 포레스트 장군이 그밖에 무슨 훌륭한 일을 했든간에 KKK단을 창시한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은 아니었다. 어떤 바보라도 그런 말은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렇게 해서 내 이름을 얻었던 것이다.
우리 엄마는 정말로 좋은 사람이다.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난 직후에 살해당했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전혀 모른다. 그는 부두에서 하역 인부로 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유나이티드 후루츠' 회사 소속의 화물선의 하나에서 크레인이 바나나를 가득 담은 커다란 그물을 내리고 있을 때, 무엇인가가 고장이 나서 우리 아버지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우리 아버지는 그것에 깔려서 팬케이크처럼 납작해져 버렸다. 언젠가 나는 어떤 사람들이 그 사고에 관해서 얘기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었다. 그 사고는 끔찍한 참사로서, 반 톤이나 되는 바나나가 우리 아버지를 완전히 으깨버렸다고 했다. 나는 바나나 푸딩 만을 빼놓고는 바나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나나 푸딩 만은 끔찍히 좋아한다.
엄마는 유나이티드 후루츠 회사로부터 얼마간의 부조금을 받았으며, 우리 집에서 하숙을 쳤기 때문에 생활에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다른 아이들이 놀려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주로 나를 집안에만 가둬두었다. 여름날 오후, 못 견디게 더울 때, 그녀는 나를 거실에 집어넣고 햇빛을 차단하여 시원하도록 차양을 내리고 내게 라임에이드를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곳에 앉아서 특별히 아무런 내용도 없는 이야기를 마치 사람들이 개나 고양이에게 얘기해주듯 내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에 익숙해져 있었으며 또 얘기를 듣는 것을 좋아했다, 왜냐하면 엄마의 목소리는 나로 하여금 진정으로 안전하다는 느낌을 갖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내가 자라나기 시작했을 때, 어머니는 밖에 나가서 아이들과 어울려 놀게 했으나, 그때 그들이 모두 나를 놀려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어느 날 어떤 사내아이가 나를 놀려대다가 막대기로 나를 때려 끔찍한 상처 자국을 남겼다. 그런 일이 있은 다음부터 어머니는 내게 그 아이들과는 더 이상 함께 놀지 말라고 말했다. 나는 계집애들과 놀아보려고 노력을 했지만 그것도 잘 되지를 않았다. 그 이유는 계집애들은 모두 내게서 도망쳐버리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내가 다른 모든 아이들처럼 될 수 있도록 도와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나를 공립학교에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동안 학교에 다녔을 때 선생님이 찾아와서 엄마에게 다른 학생들과 함께 다니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1학년은 마치게 해주었다. 때때로 나는 선생님이 얘기를 하고 있는 동안, 그곳에 앉혀져서 내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지를 도통 알 수가 없었으나, 창 밖에 있는 커다란 늙은 떡갈나무에 앉아있거나 기어오르거나 하고 있는 새들이나 다람쥐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러면 선생님이 다가와서 크게 야단을 쳤다. 또 어떤 때는 정말로 이상한 동물이 내게 달려와서 악을 쓰기 시작하고, 그리고는 그녀는 나를 밖으로 나가게 하고 복도에 있는 벤치에 앉아있게 하기도했다. 그리고 다른 아이들은 나를 쫓아다니거나 나를 비웃을 수 있도록 소리를 지르거나 하는 이외에는 나와 절대로 놀아주지 않았다. --- 단 한 사람, 제니 커란을 빼놓고는 말이다. 그녀는 최소한 내게서 도망은 치지 않았으며, 이따금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갈 때 그녀의 옆을 걸어가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다음 해가 되자, 그들은 다른 종류의 학교에 나를 집어넣었다. 그리고 한마디로 말하면 그 학교는 을씨년스러웠다. 그곳은 그들이 마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찾아낼 수 있는 괴상한 아이들을 모조리 모아놓은 것 같았다. 나이는 내 나이 또래와 더 어린아이부터 16세이나 17세가량의 커다란 아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온갖 종류의 지진아와 경련증 환자와 심지어는 혼자서는 밥을 먹을 수 없거나 화장실에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아마 그 가운데서는 가장 증세가 가벼웠을 것이다.
그곳에서는 14세가량의 덩치도 크고 뚱뚱한 사내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는 마치 전기의자나 그런 것에 앉아있는 것처럼 경련하게 만드는 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다.
우리들의 선생님인 미스 마가레트는 그가 이상한 짓을 하지 못하도록,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는 나에게 항상 함께 따라가라고 명했다. 그러나 그는 어차피 그런 짓을 했다. 나는 그를 못 하게 할 방법을 알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변기의 하나에 걸터앉아서 그가 끝날 때까지 그곳에서 기다리다가 다시 교실로 데려오고는 했다.
나는 그 학교에 5, 6년가량 동안 다녔다, 그러나 그곳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선생님들은 손가락을 그림을 그리게하고 조그만 물건들을 만들게했으나 대개는 우리들에게 운동화의 끈을 매는 법이나 음식을 흘리지 않는 법을 가르키거나 했다.
특별히 이렇다하고 배우는 책도 없었다. -- 우리들에게 교통 표시를 읽는 방법이나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 사이의 차이점 같은 것을 가리키는 것 이외에는 말이다. 그곳에 있는 아이들은 정말 심각한 바보들이기 때문에 그 이상의 것을 가르친다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또한 나는 그 학교는 정상인들의 주변에서 우리들을 격리시켜 놓으려는 목적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도대체 누가 한 무리의 정신 지진아들이 자기 주위를 맘대로 쏘다니는 것을 원하겠는가? 나같은 사람조차 그것은 이해할 수가 있었다.
내가 13세가 되었을 때, 몇 가지 몹시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첫째로, 나는 갑자기 몸이 커지기 시작했다. 나는 6개월 동안에 6인치나 자랐기 때문에 우리 엄마는 노상 내 바지를 늘여 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또한 나는 너무나 커져 버렸다. 16세가 되었을 때, 나는 키가 6피트 6인치에다 체중이 242파운드나 되었다. 나는 선생님들이 내 체중을 달아주었기 때문에 그것을 알았다. 그들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다음에 일어난 일이 내 인생을 근본적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바보들의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기 위헤 어슬렁어슬렁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자동차가 한 대 내 옆에 다가와서 멈췄다. 어떤 사나이가 나를 불러 세우더니 내 이름을 묻는 것이었다. 이름을 말해주자 그는 내가 어떤 학교를 다니느냐고 물으면서, 어떻게 너를 보지 못했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바보 학교에 대해서 얘기를 해주자 그는 내게 한 번이라도 미식축구를 해본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의당히 나는 다른 아이들이 미식축구를 하는 것을 많이 보았지만, 아이들이 한 번도 끼어주지를 않았다고 대답을 해야 옳았겠지만, 이미 말한 것처럼, 나는 길다란 대화에는 익숙치가 않아서, 그냥 고개만 젓고 말았던 것이다. 그것은 신학기가 시작되고 2주일가량 지난 뒤의 일이었다. 사나흘이 지났을 때, 그들이 찾아와서 나를 바보 학교에서 꺼내 주었다. 그곳에는 우리 엄마가 있었고, 자동차에 탄 남자와 깡패처럼 보이는 다른 두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소란을 부릴 경우에 대비해서 와 있을 것이라고 나는 추측했다. 그들은 내 책상 안에 있는 물건들을 모두 꺼내서, 갈색 종이 봉지에 집어넣고, 마가레트 선생에게 작별 인사를 하라고 내게 명했다. 그러자 갑자기 놀랍게도 마가레트 선생은 나를 미친 듯이 와락 껴안더니,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나서 나는 모든 다른 바보들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자 그들은 침을 흘리고 몸을 경련시키면서 주먹으로 책상을 쾅쾅 두드렸다. 그렇게해서 나는 바보 학교를 하직했다.
엄마는 자동차의 앞좌석에 그 사나이와 함께 앉아있었고, 나는 뒷좌석에, 옛날 영화에서 '본서'로 경찰이 범인을 연행해 갈 때처럼 두 명의 깡패 사이에 끼어 앉아있었다, 물론 우리는 본서로 가지는 않았다. 우리는 그들이 세운 새로운 고등학교로 갔다. 그곳에 도착하자 그들은 나를 학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교장실로 갔다. 엄마와 나와 사나이는 두 명의 깡패가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동안 교장실로 들어갔다. 교장은 넥타이와 헐렁헐렁한 바지에 얼룩이 있는 늙은 회색 머리의 남자로서, 그는 영락 없이 바보 학교 출신처럼 보였다. 우리들 모두는 의자에 걸터앉았고 그는 학교에 대해서 여러 가지를 설명하고, 내게 여러 가지의 질문을 했다.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거리고 있었으나 그들이 원하고 있는 것은 내가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 것이라는 것을 나도 어느 정도 눈치로 때려잡을 수가 있었다.
자동차에 타고 있던 사나이는 웰러스라는 이름의 미식축구코치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리고 그날 나는 다녀야 할 교실 같은 곳에는 가지 않았으나 웰러스 코치는 나를 데리고 라커룸으로 가서 깡패 하나가 온통 패드와 잡동사니가 달린 미식축구 유니폼과 얼굴이 다치지 않도록 앞에 보호대를 댄 플라스틱 헬멧을 가져다주었다. 그들이 찾아내지 못한 유일한 장비는 신발로서 내게 맞는 신발을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특별한 크기의 신발을 주문할 때까지 나는 옛날의 운동화를 그냥 신을 수밖에 없었다.
웰레스 코치와 그 깡패들은 내가 혼자서 유니폼을 입을 수 있을 때까지, 내게 유니폼을 입혀 주었다가는 다시 벗겨내곤 하는 것을 열 번이나 스무 번 가량 되풀이했다. 한 가지, 한참 동안 고민했던 것은 서포터 건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그것을 착용하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은 내게 그것을 설명해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리고는 하도 답답해서 깡패 하나가 동료를 보고 내가 '멍청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했다. 그리고 그가 내가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종류의 일에는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는 탓으로,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감정을 상했다는 얘기는 아니다. 나는 그것보다 더 심한 모욕을 당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말을 깊이 머리에 새겨 두었다.
잠시 뒤, 학생들이 우루루 락커룸으로 들어오기 시작하고, 자신들의 축구 장비를 꺼내서 착용했다. 그리고나서 우리들은 모두 밖으로 나가고, 웰러스 코치는 선수 전부를 모이게 하고 나를 그들 앞에 세우고 소개했다. 그는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시시한 소리를 지껄여 대고 있었는데 그것은 평생에 그 누구도 나를 모르는 사람 앞에 세워놓고 소개를 해준 적이 없기 때문에 절반 쯤은 겁에 질려서 넋이 나가 있었던 탓이었다. 그러나 그 뒤에 몇몇 선수들이 다가와서 악수를 하고 내가 자기네 팀에 들어와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것이 끝나고 나자 웰러스 코치는 호각을 불었다. 그 호각 소리는 나를 대경실색하게 만들었으나 다른 아이들은 연습을 하기 위해서 운동장으로 흩어져 나갔다.
그다음에 일어난 일들을 얘기하자면 한이 없지만 하여간 나는 그렇게 해서 미식축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웰러스 코치와 깡패 하나가 내가 풀레이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특별히 지도를 해주었다. 미식축구에는 상대방 선수를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지점이 있는데, 그들은 그것을 내게 설명해 주려고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나 우리가 여러 차례 그것을 시도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나에게 실망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도통 생각해 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그들은 그들이 '방어'라고 부르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들은 내 앞에 세 명의 선수를 세워놓고, 나는 그들을 뚫고 들어가 공을 가진 선수를 붙잡도록 되어 있었다. 첫 번째 부분은 누워서 떡먹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다른 선수들의 머리를 밀어서 넘어뜨릴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공을 가진 선수를 붙잡는 방법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들은 나로 하여금 그 감각을 익히게하기 위해서 스무 번 쯤 떡갈나무에 태클을 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얼마 뒤, 내가 떡갈나무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웠으리라고 추측한 그들은 나를 다시 세 명의 선수와 공을 가진 선수들 앞에 세워놓고, 내가 3명의 선수를 밀어젖힌 다음에 정말로 우왁스럽게 공을 가진 선수에게 덤벼들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그날 오후에 나는 무수히 욕을 얻어먹었다.
연습을 끝내고 나는 웰러스 코치를 만나러 가서 공을 가진 선수에게 상처를 입힐까 봐 도저히 그에게 우왁스럽게 덤벼들 수가 없다고 말했다. 코치는 그는 축구 유니폼으로 완전히 보호되어 있기 때문에 절대 상처를 입을 염려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실은 나는 그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가 내게 화를 내고, 또한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하지 않을 경우 모두가 한패가 되어 나를 못살게 굴게 되지 않을까가 두려웠었다. 하여간 짧게 말한다면, 내가 미식축구의 요령을 익히는 데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는 한편, 나는 수업 시간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바보 학교에서는 우리들은 사실상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으나 이곳에서는 학생들은 공부에 대해서 휠씬 더 진지했다. 어떻게 해서인가 그들은 내가 세 시간의 생활 지도 수업을 받도록 해주었다. 그 시간에는 교실에 앉아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내게 읽는 법을 가르쳐주는 여선생과의 수업이 세 시간이 있었다. 교실에는 우리들 두 사람뿐이었다. 그녀는 정말로 친절하고 아름다워서 여러 차례 나는 여선생에 관해서 몹쓸 생각을 하곤 했다. 미스 핸더슨이라는 것이 그녀의 이름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단 하나의 수업 시간은 점심시간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모두들 그것을 수업 시간이라고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바보학교에 다닐 때 우리 엄마는 내게 샌드위치와 쿠키와 과일 한 개--물론 바나나는 아니다--- 를 싸 주었는데, 나는 그 도시락을 들고 학교에를 갔었다. 그러나 이 학교에는 아홉 가지나 열 가지의 음식을 내놓는 학생 식당이 있어서, 매번 나는 무엇을 먹어야할지 마음을 정하는데 애를 먹곤 했다. 누군가가 무엇이라고 일러바친 것이 틀림없다. 왜냐 하면, 약 일주일쯤 지났을 때 웰러스 코치가 내게 다가와서 모든 음식은 '공짜' 니까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집어먹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었다. 빌어먹을! 누가 그런줄 알았나!
생활 지도 시간에 누가 있었는지 상상해 보라. 그것은 다름 아닌 제니 커란이었다. 그녀는 복도에서 내게 다가와서 1학년 때의 나를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지금은 완전히 성장해 있었다. 아름다운 검은 머리칼. 길고 날씬한 다리,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 그리고 차마 여기서는 언급할 수 없는 다른 부분들이 있었다.
미식축구는 정확히 웰러스 코치의 취향대로는 진행되지 않았다. 그는 많은 것에 불만을 느끼고 있는 것 같았으며, 그래서 늘 선수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는 나에게도 역시 악을 썼다. 그들은 내가 공을 가진 우리 팀 선수를 다른 팀 선수들이 잡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해 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이 공을 라인의 한중간으로 보낼 때 이외에는 쓸모가 없었다. 코치는 또한 나의 태클에 대해서도 썩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많은 시간을 그 떡갈나무 옆에서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공을 가진 선수에게 우악스럽게 태클을 가할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가 나를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가지 사건이 일어나서 그러한 모든 것을 바꿔버렸다. 학생 식당에서 나는 음식을 담아가지고 제니 커란의 옆자리로 갔다. 나는 한 마디도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녀는 학교 안에서 내가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유일한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그곳에 앉아있으면 기분이 좋게 느껴졌다. 대개의 경우, 그녀는 내게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다른 아이들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 나는 몇몇 축구 선수들과 함께 앉아있었는데 그들은 마치 내가 투명인간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나 최소한 제니 커란은 내가 그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행동해 주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뒤에 나는 어떤 아이가 역시 그곳에 노상 와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내게 대해서 신랄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얼간아, 안녕?" 하는 투의 말을 말이다.
이런 일이 한두 주일 계속되었으나 나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중에 참다 못해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도 내가 그런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다-- "나는 얼간이가 아니야." 그러자 그 녀석은 나를 빤히 쳐다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자 제니 커란이 그 녀석에게 조용히 하라고 쏘아붙였으나 그는 우유팩을 집어 들더니 우유를 내 무릎에 부어버렸다. 그러자 나는 껑충 뛰어 일어나서 그것이 무서워서 식당 밖으로 뛰어나갔다.
2, 3일 뒤, 그 녀석이 복도에 있는 내게 다가와서 나를 '묵사발'을 만들어 버리겠다고 말했다. 나는 하루 종일 무서워서 벌벌 떨면서 지냈다. 그리고 그날 오후 늦게 체육관으로 향해가고 있으려니까 그곳에 그는 한패거리의 친구들과 함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다른 길로 피해 가려고 했지만 그가 다가와서 어깨를 떠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온갖 욕설을 퍼붓고 나를 '병신'이니 뭐니하면서 내 배에 주먹을 넣었다. 그다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몸을 돌려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와 그의 친구들이 내 뒤를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축구 연습장을 가로질러서 체육관을 향해 전속력으로 뛰었다. 그때 갑자기 나는 웰러스 코치가 외야석에 앉아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쫓아오던 아이들은 결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가 버리고 웰러스 코치는 기묘한 표정을 얼굴에 띄고 당장 유니폼을 갈아입고 오라고 말했다. 잠시 뒤 그는 여러 가지 작전도를 그린 종이쪽지를 들고 락커룸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세 가지의 작전도였다. 그리고는 최선을 다해서 그것들을 외우라고 지시했다.
그날 오후 축구 연습 때, 코치는 모든 선수들을 두 개의 팀으로 늘어서게 했다. 그리고는 갑자기 쿼터백이 내게 공을 주었다. 따라서 나는 라인의 오른쪽 끝을 따라서 골포스트까지 달려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선수들이 모두들 나를 잡으려고 쫓아오기 시작하자, 나는 죽을 힘을 다해서 뛰었다 --- 나를 따라 잡아서 쓰러뜨릴 때까지 7, 8명이 쫓아왔다. 웰러스 코치는 굉장히 좋아했다. 그는 껑충껑충 뛰면서 소리를 지르고 선수들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우리들은 이전에도 우리가 얼마나 빨리 달릴 수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수없이 달리기 시합을 했으나 나는 누가 쫓아올 때 더 빨리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바보가 더 빨리 달리지 않겠는가?
어쨌든 간에 나는 그 사건이 있은 뒤에 훨씬 더 인기가 상승하게 되었고, 팀 내의 다른 선수들도 내게 상냥하게 대해주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첫 번째 시합을 가졌고, 나는 죽을 듯이 겁이 났지만 그들은 내게 공을 주었고, 나는 두세 번 골라인을 통과했다. 그 다음부터 사람들은 그렇게 내게 친절할 수가 없었다,
그 고등학교는 분명히 나의 인생에 있어서 여러 가지 것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공을 가지고 달리고 싶어 하는 곳으로 가게 만들었다. 물론 내가 중앙에서처럼 다른 선수들을 떼어놓을 수가 없다고 해서 주로 그들은 사이드로만 달리게 했지만. 깡패 한 사람은 내가 전 세계에서 가장 덩치가 큰 고등학교 '하프백' 이라고 평했는데, 나는 그가 그 말을 칭찬으로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편, 나는 미스 핸더슨에게서 읽는 법을 많이 배웠다. 그녀는 내게 <톰 소여>와 지금은 기억할 수 없는 다른 두 권의 책을 주었다. 나는 그 책을 집으로 가지고 돌아가서 모두 끝까지 읽었다. 그러나 그 뒤에 그녀는 내게 시험을 치르게 했으나 화끈한 점수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그 책들을 재미있게 읽었다.
얼마 뒤에 나는 식당에서 제니 커란의 옆자리에 앉게 되었으나 오랫동안 그것으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 뒤 봄철의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내게 우유를 쏟아붓고 나를 쫓아왔던 녀석이 다시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는 막대기를 들고, 나를 '병신'이니 '바보천치'니 하며 내게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몇 사람의 통행인이 지켜보고 있었고, 잠시 뒤에 제니 커란도 그곳에 왔다. 그때 나는 다시 도망치려 하고 있었다. -- 그러나 그 순간 어떤 이유인지는 나도 모르지만, 나는 그냥 도망치는 것을 그만두었다. 그 녀석은 막대기를 들어서 그것으로 내 배를 찔러댔다. 그때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에라, 나도 모르겠다. 그리고는 그의 팔을 움켜잡은 뒤 다른 손으로 머리 꼭대기를 쥐어박았다. 그리고 그 한 방에 그는 끝장이 나고 말았다.
그날 밤 우리 엄마는 그 녀석의 부모로부터 항의 전화를 받았다. 그 내용은 만일 내가 그들의 아들에게 다시 한번 손을 댔다가는 경찰에 전화를 걸어서 나를 정신병원으로 보내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사건의 내막을 설명하려고 노력하고, 그녀는 알겠다고 말했으나. 나는 엄마가 심히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엄마는 나에게 너는 몸집이 크기 때문에 자칫하면 누구를 해치게 될 수도 있으니까 각별히 자신의 행동에 조심해야 한다고 타일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무도 해치지 않겠다고 엄마에게 약속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었을 때 나는 엄마가 자신의 침실에서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 녀석의 머리 꼭대기를 때린 사건이 내게 한 가지의 교훈을 가져다주었다면 그것은 나의 축구 기술에 새로운 빛을 던져주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튿날, 나는 웰러스 코치에게 나로 하여금 중앙으로 곧장 달리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가 오케이를 하자 나는 앞에 아무도 없어질 때까지 4, 5명의 수비 선수를 헤치고 달려가서, 그들이 다시 나를 쫓아오지 않으면 안 되게 만들었다. 그해에 나는 주 대표팀의 선수로 선발되었다.
나는 그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내게 두 켤레의 양말과 새로운 셔츠를 생일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돈을 저축해서 주 대표팀 시상식에 갈 때 입을 새 양복을 사 주었다. 난생처음 가져보는 양복이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넥타이를 매어주고, 나는 새 양복을 입고 집을 떠났다.
2.
주 대표팀 선발 축하연은 후로마튼이라는 작은 도시에서 열리게 되어 있었다. 그곳을 웰러스 코치는 '철로가 교차하는 곳'이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우리들은 ---상을 받게 된 사람은 이 지역에서 5, 6명이었다---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갔다. 그곳까지는 2시간쯤 걸렸는데, 버스에는 화장실이 없기 때문에 떠나기 전에 두 컵의 스러피를 마신 나는 후로마튼에 도착했을 때는 거의 바지에다 오줌을 쌀 지경이었다. 버스는 후로마튼 고등학교의 강당에서 멈췄다. 그리고 강당 안에 들어갔을 때, 나와 다른 몇 사람은 우선 화장실부터 찾았다. 그러나 간신히 화장실에 들어가서 바지의 지퍼를 내리려고 하자 지퍼가 셔츠 자락에 결려서 열리지를 않았다.
이렇게 한창 실랑이를 하고 있을 때, 라이벌 학교의 친절한 선수 하나가 나가서 웰러스 코치를 찾아가지고 깡패 두 명과 함께 들어왔다. 그리고 그들은 내 지퍼를 열어 보려고 안간힘을 썼다. 깡패 하나가 바지 앞을 여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찢어 버리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 웰러스 코치는 양손을 엉덩이 위에 얹고 말했다.
"자네는 내가 이 소년을 지퍼를 찢어내 가지고 물건을 드러낸 채 식장으로 내보내리라고 생각하나?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리라고 생각하나?"
그리고는 내 쪽으로 돌아서서 말했다.
"포레스트, 이 행사가 끝날 때까지 너는 그대로 오줌을 참아야 해. 그다음에 우리가 지퍼를 열어줄께. 알겠지?"
나는 달리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피곤한 긴 밤이 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우리들이 화장실에서 나와 강당에 도착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테이블에 둘러앉아 있다가 우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쳤다. 우리들은 모든 사람의 앞에 있는 무대 위의 크고 긴 테이블에 앉혀졌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밤에 대한 최악의 공포는 서서히 실현되어갔다. 강당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연설을 하기 위해서 일어서는 것 처럼 생각되었다--- 심지어는 웨이터들과 수위들까지도. 나는 엄마가 이곳에 함께 왔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했다. 엄마만이 나를 도와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마는 집에서 유행성 독감으로 드러누워 있다. 마침내 상이 주어지는 시간이 되었다. 상품은 조그만 황금색의 축구공으로서, 이름이 불려졌을 때, 우리들은 마이크가 있는 곳으로 가서 상을 받고,
"감사합니다."
하고 말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누구든 그 밖에 얘기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모두들 20세기가 모두 지나가기 전에 집에 돌아가기를 원하고 있으니까 가능한한 짧게 하라고 지시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이 상을 받고,
"감사합니다"
하고 물러나서, 이윽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마이크 앞에 선 누군가가 큰 소리로 불렀다.
"포레스트 검프"
검프는 ---만일 내가 먼저 말하지 않았다면-- 나의 성이다. 나는 일어나서 마이크 앞으로 가서 상을 받았다. 나는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
"감사합니다."
하고 말하고, 모든 사람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박수를 치고 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누군가가 미리 그들에게 내가 일종의 바보라고 말했기 때문에 특별히 나에게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광경에 너무나 놀라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알 수가 없어서 그곳에 우두커니 서 있기만 했다, 그러자 갑자기 모든 사람이 조용해지고, 마이크 옆에 있는 사람이 몸을 기울이고 내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한마디 하라고 권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오줌이 마려워 미치겠어요!"
청중들 모두는 잠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로의 얼굴을 이상한 표정으로 마주 보면서 낮은 소리로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헬러스 코치가 연단으로 올라와서 내 팔을 움켜잡고 내 자리 쪽으로 끌고 갔다. 나머지 시간 동안 그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으나 축하연이 끝난 뒤에 코치와 깡패들은 다시 화장실로 나를 데리고 가서 바지 지퍼를 찢어냈고 나는 양동이 한 통쯤 되는 양의 오줌을 누었다!
"검프!"
코치는 내가 소변을 모두 마치고 나자 말했다.
"자네는 말 그대로 실천에 옮기는군."
그 이듬해는 그다지 특기할만한 일이 없는 해였다. 누군가가 주 대표팀 시상식에서 바보가 오줌을 누었다는 소문을 퍼트린 것과 수많은 편지가 미국 전체로부터 날아 들어오기 시작했다는 것 이외에는. 엄마는 그것들을 전부 모아서 스크랩북에 붙여 놓았다. 어느 날 소포가 뉴욕시에서 왔는데, 그 소포 속에는 뉴욕 양키스팀의 전 선수가 싸인한 공식 야구공이 들어 있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 가운데서 최고의 사건이었다! 나는 그 공을 황금 벽돌처럼 소증하게 다뤘다. 어느 날 뜰에서 토스를 하고 있을 때 커다란 늙은개가 들어와서 공을 공중으로 던졌을 때 그것을 덥썩 깨물어 버렸을 때까지는 말이다. 내게는 항상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곤 했다.
어느 날 휄러스 코치가 나를 부르더니 교장실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대학에서 온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나와 악수를 나누고, 대학에서 미식축구를 계속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그들이 나를 계속 지켜보아 왔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모두가 그 사람에 대해서 겁을 집어먹고 있는듯 연상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을 문지르고 그를 "미스터 브라이언트" 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자기를 "베어(곰)"라고 부르라고 말했다. 나는 웃기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지만 어떤 면에서 그는 곰과 닮은 면이 있기는 있었다. 휄러스 코치는 내가 그렇게 영리한 학생은 아니라고 지적했으나 곰은 그의 선수들의 대부분이 그렇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나의 공부에 특별한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보증했다. 일 주일 후, 그들은 내가 전혀 익숙치 못한 온갖 종류의 까다로운 질문을 가지고 나를 테스트했다. 얼마 뒤 나는 싫증을 느끼고 테스트받는 것을 그만둬 버렸다.
이틀 뒤, 곰은 다시 찾아오고 나는 휄러스 코치에게 끌려서 교장실로 갔다. 곰은 실망한 것 처럼 보였으나 그래도 계속 친절했다. 그는 내게 테스트에서 최선을 다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교장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그러자 곰은 말했다.
"그렇다면 불행한 일이군요. 왜냐하면, 그 성적표는 이 소년이 바보라는 것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교장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며, 휄러스 코치는 주머니에 양손을 집어넣고 그곳에 서서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은 나의 대학 축구선수로서의 장래에 종지부를 찍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대학 축구계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에는 지나치게 저능이라는 사실은 미합중국 육군에는 전혀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그것은 고등학교에서의 나의 마지막 해였고, 봄에는 다른 모든 학생은 졸업을 했다. 그러나 그들은 연단 위에 나를 앉혀놓고, 차례가 돌아오자 교장은 그들이 내게 '특별한' 학위를 수여하게 되었다고 공표했다. 나는 일어나서 마이크 앞으로 걸어 나갔고, 두 명의 깡패도 일어나서 나와 함께 걸어갔다 --내 생각에는 내가 주 대표팀 시상식에서 한 것과 같은 말을 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 같았다. 우리 엄마는 맨 앞줄에 앉아서 울면서 양손을 쥐어짜고 있었고, 나는 정말로 무엇인가를 성취한 것 같아서 정말로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집에 돌아왔을 때 나는 드디어 엄마가 소리치고 이성을 잃은 행동을 한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나에게 지방 징병사무소나 그와 유사한 기관에 출두하라고 하는 육군으로부터의 징집 영장이 나와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고 있었으나 엄마는 알고 있었다--- 그 해는 1968년으로서, 온갖 빌어먹을 놈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엄마는 징집관들에게 건네줄 학교 교장으로부터의 편지를 내게 주었으나 나는 그곳에 가는 길을 잘못해서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것은 미치광이 같은 광경이었다. 육군 제복을 입은 덩치가 큰 흑인이 사람들에게 고함을 지르면서 그들을 반 단위로 분류하고 있었다. 우리들이 모두 그곳에 서 있으려니까 그는 다가와서 소리쳤다.
"좋다. 너회들 중의 절반은 저쪽으로 가고, 너희들 중의 절반은 이쪽으로 가고, 나머지 절반은 그 자리에 남아 있어라!"
사람들은 여기저기로 밀려 다니며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지어는 나까지도 저 녀석은 천치라고 추측을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들은 나를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가더니, 우리들 모두들 줄을 세우고는 입고 있는 옷을 벗으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별로 달갑지가 않았으나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도 할 수 없이 그렇게 했다. 그들은 우리들의 모든 곳 ---양쪽 눈, 코, 입, 양쪽 귀--- 을 들여다보고, 심지어는 성기까지 살펴보았다. 어느 시점에서 그들은 내게 몸을 구부려 보라고 말하고, 내가 그렇게 하자 누군가가 손가락을 내 항문 속에 쑤셔 넣었다.
이제, 너는 죽었다!
나는 몸을 돌려서 그놈을 움켜잡고 머리 꼭대기에 한 방 먹였다. 갑자기 방안이 소란스러워지더니 사람들이 우루루 달려와서 내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나는 그런 공격에는 익숙해져 있었다. 나는 그들을 집어던지고 문밖으로 뛰어나갔다.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일어난 일을 얘기하자 엄마는 당혹스러운 얼굴을 했으나, "걱정하지 마라, 포레스트, 모든 일이 잘 해결될 거야."라고 말했다.
그러나 잘 해결되지는 않았다. 다음 주 한 대의 밴이 우리 집 앞에 멈춰 서고, 육군의 제복과 반짝이는 헬멧을 착용한 여러 명의 군인이 문으로 다가와서 나를 찾았다. 나는 내 방에 숨어 있었으나 엄마가 올라와서 그들이 나를 징병사무소까지 태워다 주려고 찾아 왔다고 말했다. 그곳으로 가는 도중에 그들은 마치 내가 어떤 정신병자나 되는 것처럼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 커다란 사무실로 통하는 문이 있고 그곳에는 번쩍이는 군복을 입은 나이가 많은 군인이 있고 그 역시 나를 아주 조심스러운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나를 앉혀놓고 내 앞에서 또 다른 테스트를 했는데, 그것은 대학 축구팀 테스트보다는 훨씬 쉬웠지만 그것 역시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테스트를 끝내자 그들은 나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긴 테이블에 4, 5명의 군인들이 앉아서 나에게 질문을 하기 시작하고 내가 받은 테스트의 결과처럼 보이는 것을 돌아가면서 보고 있었다.
그다음에 그들은 모두 모여서 밀담을 나누고, 그것이 끝나자 그들 중의 하나가 서류에 싸인을 하고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을 갖고 집에 돌아오자 엄마는 그것을 읽고 머리칼을 잡아당기고 울면서 주님을 찾았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내가 바보이기 때문에 '일시적인 징병 유예처분'이 되었다고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일에는 내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사건이 되는 어떤 일이 일어났다. 우리 집에는 전화 회사에서 교환수로 일하고 있는 여자 하숙인이 우리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미스 프렌치였다. 그녀는 참으로 친절한 숙녀로서 거의 남들과는 교제를 하지 않고 살고 있었는데, 무척이나 무덥고 천둥 번개가 치고 있는 어느 날 밤, 내가 그녀의 방 앞을 지나가려는데 문에서 얼굴을 내밀고 말을 거는 것이었다.
"마침 오늘 오후에 맛있는 크림 과자를 한 상자 받았는데, 한 개 먹어보지 않을래?"
그래서 나는
"네."
하고 대답하고, 그녀는 자기 방으로 나를 들어오게 했다. 그 크림 과자는 방안의 화장대 위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과자를 한 개 집어 주고는 한 개 더 먹겠느냐고 묻고 손가락으로 침대에 걸터앉으라고 지시했다. 나는 아마 과자를 열 개나 열다섯 개는 먹었을 것이다. 그리고 밖에서는 번개가 번쩍이고, 천둥이 쳐대고, 커텐은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때 미스 프렌치가 나를 떠밀어서 침대 위에 드러눕게 만들었다. 그녀는 내 몸을 어루만지기 시작했다,
"너는 그냥 눈을 감고 있으면 되는 거야." 그녀는 말했다,
"아무것도 걱정할 것 없어."
그리고는 이전에는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어떤 일이 내 몸에 일어났다. 나는 그것이 어떤 일인지는 말할 수가 없다. 나는 계속 눈을 감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우리 엄마가 그것을 알면 나를 죽이러 들테니까.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것은 내게 완전히 새로운 인생관을 갖게 해주었다고.
문제는 미스 프렌치는 멋지고 친절한 숙녀이기는 하지만, 그날 밤 그녀가 내게 한 것과 같은 행위는 제니 커란이 내게 해주기를 원해 온 행위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현재의 나의 상태로서는 그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생각해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누군가에게 데이트를 신청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우격다짐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 탓으로 나는 제니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엄마에게 물어볼 용기를 얻을 수가 있었다. 물론 나는 자신과 그 미스 프렌치에 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그 일을 해결해 주겠다고 말하고. 제니 커란의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서 상황을 설명했다, 그리고 이튿날 저녁때 놀랍게도 제니 커란 자신이 우리 집 문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는 온통 흰 드레스로 차려입고, 머리에는 핑크색 꽃을 한 송이 꽂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꿈꾸어 온 것보다도 훨씬 아름다웠다. 그녀는 집안으로 들어오고, 엄마는 그녀를 거실로 안내하고, 아이스크림을 대접하고, 나에게 방에서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쳤다. 나는 제니 커란이 문 앞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내 방에 뛰어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방을 나가기보다는 차라리 5천 명의 사람들이 죽어라 하고 내 뒤를 쫓아오는 쪽을 나는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엄마는 2층으로 올라와서 내 손을 잡아끌고 거실로 내려갔다.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는 것이 훨씬 좋았다. 엄마는 우리에게 영화 구경이나 가라고 말하고 집을 나설 때 제니에게 3달러를 주었다. 제니는 그렇게 상냥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쉴새 없이 얘기를 하고, 깔깔거리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바보처럼 빙긋빙긋 웃기만 했다.
극장은 바로 우리 집에서 다섯 블럭가량 떨어진 곳에 있었다. 제니가 표사는 곳에 가서 두 장의 표를 사 가지고, 우리는 안에 들어가서 좌석에 앉았다. 그녀는 내게 팝콘을 먹겠느냐고 묻고, 그녀가 그것을 사 가지고 돌아왔을 때, 영화가 시작되었다.
그 영화는 두 사람에 관한 것으로서 보니와 클라이드라고 부르는 남자와 여자가 은행을 터는 얘기였다. 그 이외에도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다. 그러나 영화는 온통 죽이고 총을 쏘고 하는 장면뿐이었다. 나에게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서로를 죽이고 총을 쏘고 하는 것이 이상스럽게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런 일이 계속될 때마다 큰 소리로 웃었고, 내가 웃을 때마다 제니 커란은 의자 속에서 몸을 움츠리고 의자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가 절반쯤 상영되었을 때 그녀는 거의 바닥 근처까지 기어 내려가 있었다.
나는 갑자기 그것을 깨닫고 그녀가 어떻게 하다가 의자 속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래서 나는 얼른 손을 뻗어서 다시 그녀를 제자리로 끌어 올리기 위해서 그녀의 드레스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그녀를 끌어올리고 있을 때 나는 무엇인가가 찢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밑을 내려다보았다, 제니 커란의 드레스가 커다랗게 찢겨져 있고 알몸이 드러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알몸을 가려 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녀는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고, 나를 마구 때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녀가 다시 떨어지거나 혹은 드레스가 완전히 벗겨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녀를 붙잡으려고 노력했다.
그러자 우리 주위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웬 소동인가 하고 고개를 돌려 우리 쪽을 살펴보려고 했다. 돌연 웬 남자가 통로를 달려오더니 제니와 나에게 환한 불을 비추는 것이었다. 그러나 불빛에 노출된 그녀는 갑자기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지르고는 벌떡 일어서서 극장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그다음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두 사람이 다가오더니, 나에게 일어서라고 말하고 나를 끌고 사무실로 데려갔다. 몇 분 뒤, 네 명의 경관이 도착해서 함께 가자고 말했다. 그들은 나를 끌고 순찰차로 가서 두 명은 앞 좌석에 타고, 두 명은 휄러스 코치의 깡패들이 한 것처럼 뒷좌석에 나와 함께 올라탔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들은 '본서'로 가는 것이었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그들은 나를 어떤 방으로 데리고 가서 종이에다 내 손가락을 한 개씩 눌러대고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는 나를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그것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나는 시종 제니에 대해서 걱정을 했다. 그러나 얼마 뒤에 엄마가 나타났다. 엄마는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유치장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다시 내가 곤경에 빠졌다는 것을 알았다.
2, 3일 뒤, 법정에서 어떤 종류의 의식이 행해졌다. 엄마는 내게 양복을 입혀주고, 나를 그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는 커다란 가방을 든 수염을 기른 친절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판사에게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여댔고, 그다음에는 엄마를 포함해서 몇 명의 사람들이 또 다시 시시껄렁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 차례가 돌아왔다.
수염을 기른 남자가 내 팔을 잡아끌었기 때문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판사가 내게 어떻게해서 이런 일이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그냥 어깨만 으쓱해 보였다. 그랬더니 판사가 그 외에 추가해서 하고 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말했다.
"오줌이 마려워서 미치겠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나는 그곳에 거의 반나절이나 앉아있었기 때문에 오줌통이 터지기 직전이었던 것이다! 판사는 커다란 낡은 참나무 책상 뒤에서 몸을 반쯤 내밀고 내가 마치 화성인이나 되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염을 기른 남자가 목청을 높여서 말을 하고 그 말에 따라서, 판사는 그에게 나를 화장실로 데리고 가라고 명했다. 수염 난 남자는 나를 화장실로 데려다 주었다. 방을 나가면서 고개를 돌려 보니까 불쌍한 우리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아내는 것이 보였다.
어쨌든 화장실에서 돌아오자, 판사는 턱을 쓰다듬으면서 모든 일이 '매우 특이'하지만, 나를 정상으로 회복시키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군대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엄마는 판사에게 미합중국 육군은 내가 바보라는 이유로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아침, 대학에서 편지가 와서 내가 그들을 위해서 축구를 해준다면 등록금 면제로 대학을 다니게 해주겠다고 말했다고도 얘기했다. 판사는 그것도 또한 이상하게 들린다고 말했으나, 하지만 말썽 많은 내가 이 도시에서 떠나주는 한 그것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튿날 아침, 나는 짐을 싸 가지고 엄마와 함께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에 올라탔다.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엄마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울고 있었다. 그것은 내게 너무나도 익숙해진 장면이었다. 그것은 나의 기억 속에 영원히 새겨졌다. 어쨌든 시간이 되자 버스는 출발하고 나는 그 도시를 떠났다.
3.
우리가 대학에 들어갔을 때 브라이언트 코치는 우리가 모두 반바지와 셔츠를 입고 줄지어 있는 체육관으로 나와 연설을 시작했다. 그것은 나같은 얼간이조차도 이 사람이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휄러스 코치가 하는 연설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의 연설은 짧아서 좋았지만, 마지막으로 덧붙인 말은 연습장으로 나갈 때 제일 끝에 버스에 타는 녀석은 버스가 아니라 브라이언트 코치 자신의 구두를 타고 가게 될 것이라는 협박이었다. 알았습니다. 우리는 그의 말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고, 따라서 번개처럼 우르르 버스를 향해 뛰어갔다.
이 모든 것이 알라바마가 그 어디보다도 더 뜨거울 때인 8월 한 달 동안에 일어난 일이다. 말하자면 미식축구 헬멧 위에 계란을 깨뜨려 놓을 경우, 10초 이내에 프라이가 되는 때였던 것이다. 물론 정말로 그런 실험을 해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랬다가는 브라이언트 코치의 화를 돋우게 될 테니까. 그 누구도 감히 브라이언트 코치를 화나게 만들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화나면 인생은 어려워진다. 견디기 힘들 만큼 브라이언트 코치는 자기가 데리고 있던 얼간이들을 나에게 보냈다.
그들은 내 숙소가 될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는데, 누군가가 '원숭이 기숙사'라고 부른다는 캠퍼스 안의 멋진 벽돌 건물이 바로 그곳이다. 그 얼간이들은 나를 차에 태우고 그곳까지 데려간 다음, 윗층의 내 방으로 안내한다. 불행히도 겉보기에는 그럴듯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정작 안에 들어가 보면 사정은 완전히 달라진다. 처음에는 오랫동안 아무도 살지 않던 곳처럼 보였다. 사방이 너무나 지저분했으며, 계단이나 문짝도 멀쩡한 것이 없었다.
방안에는 학생 몇 명이 거의 옷을 걸치지 않고 누워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 온도가 화씨 110도는 족히 넘을 것이 때문이었다. 홀에는 신문지 더미가 잔뜩 쌓여 있었는데, 처음에 나는 우리더러 그 신문을 읽으라고 할까 봐 겁을 먹었다. 어차피 대학은 대학이니까. 하지만 나는 이내 그 신문지의 용도를 알아차렸다. 사방이 하도 지저분하기 때문에, 걸어 다니다가 오물을 밟지 않도록 그 신문지로 덮어두려는 것이었다. 얼간이들은 나를 내 방으로 데려가며 거기에 내 룸메이트가 있을 거라고 했다. 커티스 뭐라고 하는 이름이었는데, 정작 내가 도착했을 때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들은 내 짐을 풀고 욕실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 욕실은 시골 변두리의 다 쓰러져 가는 주유소 화장실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나서 그 얼간이들은 가버렸는데, 가기 전에 한 녀석이 나더러 너하고 커티스는 둘 다 지독한 멍청이들이기 때문에 서로 잘 어울릴 거라고 지껄이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듣는 것도 지겹고 해서 그 녀석을 뚫어질 듯 째려보았다. 그랬더니 그 녀석은 나더러 바닥에 엎드려서 팔굽혀펴기를 50번 하라고 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시키는 대로 했다.
나는 몸에 먼지를 묻히지 않으려고 간이침대 위에 신문지를 깔고 누워 잠이 들었다. 그리고는 꿈을 꾸었는데, 날씨가 더우면 언제나 그랬듯이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어머니가 타 준 라임수를 마시며 어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꿈이었다.
그때 갑자기 문짝이 부숴지는 소리가 나서, 나는 간이 콩알만 해질 만큼 깜짝 놀랐다. 문앞에는 험상궂은 얼굴을 한 녀석이 하나 버티고 서 있었는데, 눈알이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고 앞니가 하나도 없으며 콧잔등도 잔뜩 일그러진 몰골이었다. 머리는 마치 전구 소켓에 넣었다 꺼낸 것처럼 빳빳하게 위로 곤두서 있었다. 나는 이 친구가 커티스라는 녀석인가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는 마치 싸움터에도 나가는 사람처럼 씩씩거리며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피는 것이었다. 그렇게 큰 키는 아니었지만 왠지 아이스박스를 연상케 하는 인상이었다. 그가 맨 처음으로 나에게 내뱉은 말은 어디에서 왔느냐는 질문이었다. 내가 모빌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그곳을 형편없는 동네라고 깔아뭉개며 자기는 오프에서 왔다고 알려 주는 것이었다. 그곳은 땅콩버터가 많이 생산되는 곳인데, 만약 내가 땅콩버터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기 손으로 내 엉덩이에 버터를 처발라 주겠다고 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나눈 대화라고는 그 정도가 고작이었다.
오후 연습 때의 운동장은 기온이 1만도 정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런데도 브라이언트 코치의 얼간이들이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고함을 지르며 우리를 훈련시켰다. 나는 혀가 축 늘어져 마치 넥타이처럼 보일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연습을 할려고 애를 썼다. 이윽고 그들은 우리를 두 편으로 나누더니 패스 연습을 시켰다.
대학에 들어오기 전에 나도 수백만 가지 미식축구 작전이 담긴 교재를 받아 보았다. 휄러스 코치에게 그걸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었더니, 그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무것도 하려 하지 말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대학에 갈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고 있으면, 그들이 알아서 가르쳐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나는 그때 휄러스 코치의 그 충고를 따르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막심하다. 처음으로 내 차례가 되어 패스를 받기 위해 뛰는데, 방향을 잘못 잡아서 엉뚱한 곳으로 뛰어갔던 것이다. 대번에 얼간이 대장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며 나에게 뛰어오더니 자기네가 보낸 미식축구 작전 교재를 공부하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 저......."
하고 내가 대답을 얼버무리자, 그는 미친 말벌처럼 한참 동안 길길이 날뛰더니 조금 흥분이 가라앉자 운동장을 다섯 바퀴 돌라고 명령했다. 그 동안에 자기는 브라이언트 코치와 함께 내 문제를 상의해 본다는 것이었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무슨 임금님이라도 된 것처럼 높다란 망루 위에 앉아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내가 운동장을 돌며 흘끗 쳐다보니 얼간이 대장이 그곳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가 뭐라고 이야기를 하자, 브라이언트 코치는 목을 길게 늘이고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마치 그의 뜨거운 시선 때문에 엉덩이에 불이 붙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그때 갑자기 확성기에서 커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포레스트 검프, 망루 쪽으로 뛰어와!"
나는 브라이언트 코치와 얼간이 대장이 밑으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곳으로 뛰어갈 때면 언제나 차라리 뒤로 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그러나 뜻밖에도 브라이언트 코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가 의자를 가리키며 앉으라는 시늉을 해서,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이어서 그는 다시 한번 자기네가 보내준 교재를 읽어 보지 않았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나는 휄러스 코치가 한 말을 설명하려 했지만, 브라이언트 코치는 내 말을 가로막으며 어서 내려가서 패스 받는 연습이나 하라고 말했다. 그때 나는 그가 별로 듣고 싶지 않았을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고등학교 때 한 번도 패스를 받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털어놓은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모두들 내가 패스를 받는 것이 우리편 골라인이 어느 쪽인지를 기억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거라고 떠들어대곤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브라이언트 코치는 이상하다는 듯 눈을 찡긋거리더니 마치 달이라도 쳐다보는 듯 먼 허공만 바라보는 것이었다. 잠시후 그는 얼간이 대장에게 가서 공을 하나 가져오라고 일렀다. 공이 도착하자 브라이언트 코치는 나더러 약간 저쪽으로 물러가서 서보라고 하더니, 나에게 공을 던졌다. 그 공은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처럼 느릿느릿하게 날아왔지만, 내 손가락을 튀기고는 땅바닥에 떨어지고 말았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알 만하다는 듯 고개를 아래위로 끄덕였지만, 나는 그가 그리 기분이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내가 무언가를 잘못할 때마다 엄마는 "포레스트, 조심하지 않으면 망태 할아버지가 잡아간다." 하고 주의를 주곤 했다. 나는 잡혀가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잘못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애를 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살고 있는 이 원숭이 기숙사보다 더 나쁜
곳으로 잡혀갈 수는 없을 것 같다.
이곳에는 정신병원에서도 쫓겨나기 딱 알맞은 녀석들이 많다, 이를테면 누군가가 변기를 뽑아가 버리는 바람에 화장실에 똥을 누러 들어가 보면 구멍 하나만 달랑 남아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녀석들은 변기를 바깥에 세워져 있는 자동차 위에 쌓아두곤 한다.
어느 날 밤에는 한 덩치 큰 녀석이 라이플 총을 꺼내서는 길 건너편의 서클 회관 유리창을 모조리 박살내 버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대번에 교내 청원경찰들이 달려왔지만, 그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커다란 발동기 하나를 창밖으로 집어 던져 순찰차 지붕을 망가뜨려 놓았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그 녀석에게 운동장을 구보하는 벌을 내렸다.
커티스와 나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이 외로웠다. 엄마가 보고 싶었고,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커티스와의 문제는, 내가 그 녀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 있었다. 그는 말을 한마디 할 때마다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욕을 섞어서 지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저 뭔가 기분나쁜 일이 있나 보다 하고 짐작할 뿐이다.
커티스에게는 차가 있어서 나를 연습장까지 태워다 주곤 했는데, 어느 날 그를 만나기로 한 곳으로 나가 보니 그는 길거리에서 하수도를 막아 놓은 격자 무늬의 뚜껑을 들여다보며 뭐라고 욕을 퍼붓고 있었다. 보아하니 타이어가 펑크 나서 갈아 끼우다가, 실수로 볼트가 떨어져 그 구멍으로 들어가 버린 모양이었다, 거기서 어물거리고 있다가는 연습 시간에 늦기 십상인데, 정말로 그랬다가는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이 틀림없었다. 그래서 나는 커티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머지 세 개의 바퀴에서 너트를 하나씩 빼다가 타이어를 끼우면 되잖아. 그렇게 하면 타이어 네 개 모두 세 개씩의 너트를 가지는 셈이니까 연습장까지는 그럭저럭 갈 수 있지 않겠어?"
커티스는 욕질을 멈추고 나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너 엄청난 얼간이인 줄 알았더니, 어디서 그런 좋은 생각이 떠올랐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얼간이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난 멍청하지는 않아."
그러자 커티스는 갑자기 벌떡 일어나 스패터를 휘두르며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는 것이었다. 결국 그 일 때문에 우리 둘 사이는 한층 더 나빠졌다.
그뒤 나는 어딘가 다른 잠자리를 찾아봐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연습이 끝나고 나자 원숭이 기숙사의 지하실에 내려가서 밤을 새웠다. 그곳은 윗층의 방들보다 오히려 덜 지저분했고, 전구까지 달려 있었다. 그다음 날 나는 내 간이침대를 지하실로 옮겼고, 그때부터 내 숙소는 지하실이 되었다.
한편 학교가 개강을 하고 나자 그들은 나를 어떻게 처리할지 궁리하기 시작했다. 체육학과에는 다른 일은 하나도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얼간이 같은 녀석들을 졸업시킬 수 있을 지에 대해서만 고민하는 직원이 하나 있었다. 체육 교육학 같은 강의는 학점을 따기가 굉장히 쉽다고 해서 나도 그 강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그것 말고도 영어 과목 하나, 과학이나 수학 가운데 하나를 수강해야 했는데, 그런 과목들은 아무나 쉽게 통과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나중에 나는 미식축구 선수들에게는 유난히 학점을 잘 주는 교수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운동을 하다 보면 아무래도 공부할 시간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이해해 준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과학 분야에는 그런 교수가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 그 교수가 맡은 과목은 '중간 광학'이라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그것은 대학원에서도 물리학을 전공한 학생들이나 듣는 강의였는데, 아무튼 그들은 물리학이라고는 '물' 자도 모르면서 나를 그 강의에 등록시켰다.
영어 과목에서는 상당히 운이 나쁜 편이어서, 그렇게 미식축구 선수들을 잘봐 주는 교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낙제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일단 수강 신청을 내놓고, 나중에 가서 대책을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중간 광학 강의에서는 무게가 무려 5파운드나 나가고 중국 글자 같은 이상한 글들만 잔뜩 쓰인 교재를 주었다. 그러나 나는 매일 밤마다 그 책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고, 내 침대를 전구 밑으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 얼마가 지나자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그 이상한 글자들이 점점 말이 되는 소리처럼 보이기 시작했다.
말이 안 되는 것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런 책을 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었지만, 어쨌거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책에 나오는 방정식들은 간단한 더하기 빼기만큼이나 쉬워졌다. 호스라는 이름을 가진 그 강의의 담당 교수는 첫 번째 시험이 끝나고 나자 자기 사무실로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군,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면 좋겠군. 누가 시험 문제의 답을 자네에게 가르쳐 줬나?"
내가 고개를 가로젓자, 그는 문제가 쓰인 종이를 한 장 건네주며 풀어 보라고 했다. 내가 문제를 푸는 것을 지켜보던 호스 교수는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이런, 세상에 이럴 수가!" 하고 소리쳤다.
영어 강의는 또 문제가 달랐다. 미스터 분이라는 이름의 담당 교수는 말이 아주 많고 엄격한 사람이었다. 첫날 수업이 끝날 무렵, 그는 우리에게 자기 자신의 지금까지의 생애를 간단하게 적어서 제출하라는 숙제를 내주었다. 나는 그런 숙제는 딱 질색이었지만, 그래도 밤을 꼬박 새워가며 무엇을 쓸 것인가를 생각했다. 결국 나는 어차피 내가 이 과목을 통과하지 못할 거라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각해내고, 아무렇게나 생각나는 대로 종이를 메꿨다.
며칠 후, 미스터 분은 모든 학생들이 듣는 앞에서 일일이 평가를 해가며 우리가 낸 숙제를 돌려 주었다. 이윽고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커다란 웃음 거리가 될 것이 틀림 없다고 각오를 단단히 했다. 그러나 미스터 분은 내가 낸 과제물을 들고는 큰 소리로 읽어내려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중간중간에 그 자신은 물론 학생들까지 와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 과제물에다 정신병원에 있을 때의 이야기, 휄러스 코치와 함께 미식축구을 하던 이야기, 전국 미식축구 대회에 참가했던 이야기, 제니 커란에 대한 이야기, 영화에 대한 이야기 등등 모든 것을 다 털어놓았다. 내 글을 다 읽은 미스터 분은,
"이 글엔 독창성이 있어! 내가 원하던 글이 바로 이런 글이야."
하고 말했다. 다들 나를 돌아보는 가운데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검프 군, 자네는 문예 창작반에 가입하는 것을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요."
미스터 분은 잠시 주춤하는 것 같더니, 이내 커다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학생들도 모두 따라 웃었다.
"검프군, 자넨 정말 놀라운 친구야."
그렇게 하여 나는 다시 한번 놀라운 사람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어느 토요일, 첫 번째 미식축구 시합이 열렸다, 연습 때 내가 보여준 솜씨는 형편없는 수준에 그쳤으므로, 브라이언트 코치 역시 고등학교 때의 휄러스 코치와 똑같은 조치를 취했다. 누군가가 내 품에 공을 안겨 주면, 나는 냅다 달리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그날 내 달리기 솜씨는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어서, 나는 네 개의 터치다운을 기록했다. 덕분에 우리는 조지아 대학을 35대 3으로 이겼고, 모두들 내 등을 철썩철썩 두들기는 바람에 아파서 혼이 났다. 샤워를 하고 나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엄마는 라디오로 그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다며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날 밤 파티가 벌어져 모두들 신나게 놀아댔지만, 나는 아무도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서 지하실로 내려가 있었다. 조금 있으니 윗층 어디선가 무슨 음악 소리 같은 것이 들리는데, 그 소리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나는 나도 모르게 위로 올라가 보았다.
소리가 나는 곳을 찾아가 보니, 버바라는 친구가 자기 방에서 하모니카를 불고 있었다. 그는 연습을 하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경기에 나가지 못했고, 따라서 다른 선수들과 함께 어울릴 기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는 내가 자기 옆에 앉아서 하모니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 단지 그는 자기 침대에 걸터앉아 하모니카를 불었고, 나는 맞은편 침대에 앉아 그 소리를 들었을 뿐이다. 그렇게 한 시간가량이 지나고 나서, 나는 그 친구에게 나도 그 하모니카를 한번 불어보면 안 되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선선이 불어보라고 했고, 나는 그것이 내 인생을 영원히 바꿔놓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잠시 연습을 해보고 나니, 나는 제법 그럴 듯하게 하모니카를 불 수 있게 되었다. 버바는 눈이 휘둥그레져서 그렇게 아름다운 하모니카 소리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고 중얼거렸다. 나중에 버바는 나더러 그 하모니카를 가져가라고 했고, 그래서 나는 지하실로 내려와 졸려서
곯아떨어질 때까지 하모니카를 불었다.
다음 날은 일요일이었는데, 내가 하모니카를 돌려주려고 버바를 찾아갔더니, 그는 자기는 또 있으니 나더러 가지라는 것이었다. 나는 찢어지게 기분이 좋아서 하모니카를 가지고 산책을 나갔다. 그리고는 커다란 나무 밑에 앉아 더 이상 아는 노래가 없어질 때까지 하루 종일
하모니카를 불었다.
어느덧 해가 서산 너머로 떨어질 무렵에야 나는 원숭이 기숙사를 향해 돌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막 캠퍼스의 안뜰을 지나가고 있는데, 뒤에서 내 이름을 부르는 어떤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포레스트!"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그 자리에 바로 제니 커란이 서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제니 커란은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손을 덥썩 움켜쥐며 어제 내가 경기장에서 뛰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그녀는 영화에서처럼 정신이 나가거나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했고, 그것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자기 입으로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나더러 같이 콜라나 한잔 마시지 않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것은 정말이지 기분좋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제니 커란과 나란히 앉아 콜라를 마셨고, 그녀는 음악과 연극 강의를 듣고 있는데 나중에 배우나 가수가 될 생각이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또 조그만 포크송 밴드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며, 내일 밤 학생 회관에서 연주회가 있는데 와주지 않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그때의 내 심정을 솔직히 말하면, 내일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끔찍하기만 할 정도였다.
4.
그때부터 브라이언트 코치와 우리 선수들 사이에는 조그만 비밀이 하나 생겼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우리끼리도 그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게 했다. 그들은 나에게 패스받는 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나는 매일같이 연습이 끝나고 나면 얼간이 둘과 쿼터백 하나와 함께 쉴새없이 패스 받는 연습을 했다. 그러고 나면 어찌나 피곤한지 혓바닥이 배꼽까지 늘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럭저럭 패스 볼을 잡을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브라이언트 코치는 내가 우리 팀의 '비밀 병기'가 될 거라고 큰소리를 치는 것이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다른 팀 선수들도 그런 사실을 알게 되면 아무도 나에게 볼을 던져 주지 않을 거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브라이언트 코치는 이렇게 덧붙였다.
"우린 너의 그 돼지 같은 덩치 --- 6피트 6인치의 키에 240파운드의 체중--- 를 좀 줄여야겠어. 그러고 나면 1백 야드를 9.5초에 달리는 네 모습이 아주 볼만할 거다."
이제 버바와 나는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는 몇 가지 새로운 노래의 하모니카 연주법을 가르쳐 주었고, 수시로 지하실로 내려와 나와 함께 하모니카를 불곤 했다. 그러면서 버바는 자기가 평생을 연습해도 나처럼 하모니카를 잘 불지는 못할 거라고 말하곤 했다. 사실, 나는 만약 그 하모니카가 없었다면 일찌감치 보따리를 챙겨서 집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하모니카를 불고 있으면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었다. 마치 나의 온몸이 하모니카와 하나가 되어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는 것 같았다. 하모니카를 불 때면 대부분 혀와 입술, 손과 목의 움직임에 따라 소리가 달라진다. 아무래도 매일 같이 패스 받는 연습을 하느라 뛰어다니다 보니 혀가 옛날보다 길어져서 하모니카를 부는 데 약간 도움이 된 것 같다.
다음 주 금요일, 나는 버바에게서 빌린 머릿기름과 면도 로션으로 한껏 폼을 내고 학생회관을 찾아갔다. 그곳에는 이미 많은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무대 위에는 제니를 비롯한 서너 명의 밴드가 서 있었다. 제니는 롱 드레스를 입은 채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고, 그밖에도 밴조와 콘트라베이스를 든 친구들이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고 있었다. 그들의 연주는 대단히 훌륭했고, 제니는 줄곧 객석에 앉아 있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미소를 지어 주었다. 제니 커란이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며 객석에 앉아 있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때 나는 제니에게 크림 과자를 사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한 시간가량 연주를 했는데, 모두들 흡족한 표정이었다. 그들은 조안 바에즈와 밥 딜란, 피터, 폴 엔드 메리의 음악을 연주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서 연주를 듣고 있던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머니에서 하모니카를 꺼내 그들의 연주를 따라 불기 시작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그때 제니는 '블로잉 더 윈드' 라는 곡을 부르고 있었는데, 내 하모니카 소리를 들은 듯 갑자기 잠시 노래를 멈추었다. 벤조를 연주하던 친구도 손놀림을 멈추었다. 그들은 깜짝 놀란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더니, 이윽고 제니가 활짝 웃는 얼굴로 그 노래를 다시 부르겠다고 말했다. 그때 벤조를 연주하던 친구가 잠시 나 혼자 하모니카를 연주할 기회를 주었는데, 내가 하모니카를 불자 청중들은 하나같이 환호성을 지르는 것이었다.
밴드가 잠시 쉬는 동안 제니는 무대에서 내려와 나에게 다가왔다.
"포레스트, 도대체 하모니카는 어디서 배운 거니?"
어쨌건 그 뒤로 제니는 내가 자기네 밴드와 함께 연주를 할 수 있게 해주었다. 매주 금요일마다 연주회가 벌어졌는데, 그 덕분에 원정 경기가 없는 날이면 나는 하룻밤 사이에 25달러를 벌 수 있었다. 그야말로 천국 같은 나날이 이어졌지만, 어느 날 제니 커란이 벤조를 연주하는 친구와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본 뒤로 천국은 사라져 버렸다.
불행히도 영어 시간이 항상 그렇게 잘 풀려나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자서전 과제물 사건이 있은지 한 1주일 정도가 지난 어느 날, 미스터 분은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했다,
"검프 군, 내 생각엔 아무래도 자네가 장난은 그만두고 좀 더 심각해져야 할 때가 된 것 같군."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쓴 워즈워드에 대한 리포트를 돌려주는 것이었다.
"낭만주의 시대는 '고전적인 똥덩어리' 따위를 추종하지 않았네. 시인 포프나 드리이던도 '똥덩어리'가 아니고 말일세."
그는 그렇게 말하며 리포트를 다시 써오라고 지시했는데, 그제서야 나는 미스터 분은 내가 바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하긴 어차피 금방 알게 될 걸 뭘. 한편, 그 사이에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무언가 이야기롤 한 것이 틀림없다. 어느 날 체육학과의 카운셀러가 나를 부르더니, 다른 과에서 나를 봐주기로 했으니 다음 날 아침 의과 대학의 밀리스 박사를 찾아가 보라고 하는 것이었다.
내가 시키는 대로 밀리스 박사를 찾아갔을때, 무언가 두툼한 서류뭉치를 뒤적이고 있던 그는 자리에 앉으라고 하더니 몇가지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질문이 끝나자 그는 나더러 속옷만 남기고 옷을 모두 벗으라고 했다. 지난번 육군 군의관을 만났을 때를 생각하니 숨쉬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이어서 그는 눈을 비롯한 내 몸 전체를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조그만 고무망치로 내 무릎을 두들겨 보기도 했다.
이어서 밀리스 박사는 혹시 오후에 하모니카를 가지고 다시 와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하모니카를 잘 분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자기 학생들 앞에서 한곡 연주해 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내 멍청한 머리로 생각해봐도 우스꽝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날 오후 의과대학 강의실에는 푸른 앞치마를 두른 학생 1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밀리스 박사는 강단에 의자를 놓고 그 위에 나를 세운 다음, 내 앞에는 주전자와 컵 하나를 놓아두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뭐라고 내가 알아듣지 못할 말을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자 나는 그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가 커다란 목소리로 "특수한 재능을 가진 정신 박약아"라는 말을 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나를 쳐다보았다.
"넥타이를 맬 줄 모르는 사람. 자기 구두끈을 맬 줄 모르는 사람, 여섯 살 내지 열 살 정도의 정신적 능력을 가진 사람, 그리고 --이 경우에는-- 아도니스와도 같은 육신을 가진 사람......"
밀리스 박사는 대단히 내 마음에 들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아주 드물긴 하지만 그러나 그런 사람의 마음속에 커다란 총명함의 주머니가 깃들어 있는 수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 있는 이 포레스트 군은 자네들이 손도 대지 못할 고난도 수학 방정식을 척척 풀어낼 수 있으며, 리스트나 베토벤처럼 아무런 어려움 없이 복잡한 음계를 읽어낼 수 있다."
그는 다시 한번 '특수한 재능을 가진 정신 박약아'라는 말을 하며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나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청하게 서 있다가, 하모니카를 불어보라는 말을 기억해내고 하모니카를 꺼내 <퍼프, 신비의 용>이라는 노래를 불었다. 모두들 무슨 벌레라도 쳐다보는 것처럼 나를 바라보았고, 연주가 끝나고 나도 박수 한 번 치지 않고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기만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이 내 하모니카 솜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고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그 강의실을 나와 버렸다. 빌어먹을 녀석들!
그 무렵 학교에서 일어난 다른 일들 가운데 약간 중요한 것이 두 가지 있다. 첫 번째는 우리가 전국 대학 미식축구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해 오렌지 볼에 출전하게 된 것이고, 두 번째는 제니 커란이 벤조치는 녀석과 부둥켜안고 있는 것을 목격한 일이다.
그날은 우리가 서클 회관에서 연주를 하기로 되어 있던 날이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유난히 힘든 훈련을 마친 뒤여서, 나는 개처럼 변기의 물이라도 핥아먹고 싶을 만큼 목이 말랐다. 그러나 원숭이 기숙사 근처에는 대여섯 블록을 가야만 조그만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나는 연습을 마치고 나서 그 가게를 향해 걸어갔다. 라임과 설탕을 좀 사서, 엄마가 만들어 주시곤 하던 라임수를 만들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가게 카운터에는 사팔뜨기 눈을 한 나이든 아주머니가 앉아 있었는데, 내가 마치 좀도둑이라도 되는 듯 유심히 째려 보는 것이었다. 내가 열심히 라임을 찾아 헤매고 있는데, 그 아줌마가"무얼 찾수?" 하고 물어서, 나는 "라임을 좀 사고 싶은데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 아줌마는 라임이 없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라임이 없으면 레몬은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레몬수라도 만들어 먹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가게에는 레몬도 없다고 했다. 레몬은 물론 오렌지니 뭐니 그런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런 과일을 파는 가게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한 시간 이상이나 가게 안에서 어물쩡거리고 있으니, 아줌마는 한껏 짜증을 내면서 아무 것도 안 사려면 어서 나가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선반에서 복숭아 통조림 하나와 설탕을 집어들었다. 다른 과일이 아무 것도 없으니 '복숭아수' 라도 만들어 먹으려 했던 것이다. 정말이지 나는 목이 말라서 돌아가실 지경이었으니까. 지하실로 돌아온 나는 칼로 깡통을 딴 다음, 양말에다 복숭아를 집어넣고 즙을 짜서 컵에 받았다. 그런 다음 설탕과 물을 좀 타서 잘 섞었는데, 정작 그걸 먹어 보니 라임수 비슷한 맛은 하나도 나지 않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양말에서 배어나온 꼬랑내 밖에 나지 않았다.
아무튼 나는 일곱 시까지 서클 회관으로 나가야 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몇몇 친구들이 공연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제니와 벤조 치는 녀석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그들을 찾아보다가 바람이나 좀 씌려고 주차장으로 나왔다. 그곳에서 나는 제니의 차를 발견했다. 제니가 도착하기는 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니의 차는 창문이 모두 닫혀 있어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나는 제니가 차안에 갇혀서 유독 가스인가 뭔가 하는 것에 숨이 막혀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차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문을 열자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제니는 차 안에 있었다. 뒷좌석에 누운 그녀는 드레스 위쪽은 밑으로 내려오고 아래쪽은 위로 올라간 모양을 하고 있었다, 벤조 치는 녀석도 차안에 있었는데, 그는 제니의 위에 올라타고 있었다. 나를 본 제니는 깜짝 놀라서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는데, 그때 나는 문득 그녀가 '치한을 만난'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벤조 치는 녀석의 셔츠를 붙잡고 --그 녀석은 그 셔츠밖에 입고 있지 않았다— 녀석의 궁둥이를 제니에게서 떼어냈다.
글쎄, 아무리 멍청한 바보라도 내가 뭔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제기랄, 빌어먹을! 그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는가? 벤조 치는 녀석은 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었고, 제니 역시 나에게 온갖 욕설을 퍼부으며 드레스를 위로 끌어올리고 아래로 끌어내리고 하느라 부산을 떨었다. 급기야 그녀는, "포레스트, 네가 어쩜 이럴 수가 있니!" 하고 쏘아붙인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벤조 치는 녀석도 자기 벤조를 집어 들고 그녀를 따라 가버렸다.
그러고 나자 내가 그 밴드에서 환영을 받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했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그냥 지하실로 돌아왔다. 그때까지도 나는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정확하게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나중에 지하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본 버바가 내려와서 내가 그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포레스트, 안됐군. 그 친구들, 아마 사랑을 나누고 있었던 모양이야."
글쎄, 아마 버바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나 혼자 그런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을 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내가 별로 알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차피 남자라면 때로는 사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리라.
내가 미식축구 때문에 정신없이 바빴던 것은 차라리 잘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제니가 벤조 치는 녀석과 그 짓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 그녀는 아마 나하고는 그런 것을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으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 정말이지 기분이 엉망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즌에는 우리 팀이 무패의 전적으로 오렌지 볼에서 전국 챔피언을 가리는 경기에 나가게 되었다. 상대는 네브라스카에서 온 얼간이들이었는데, 우리가 북쪽에서 온 팀과 시합을 할 때면 언제나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했다. 그것은 아무래도 그 녀석들이 깜둥이들을 데리고 오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것 때문에 내 룸메이트인 커티스 같은 친구들은 미리 겁을 집어먹고 쩔쩔 매곤 했다.
그러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그런 문제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을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깜둥이들은 대부분 백인들보다 나에게 더 잘해 주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우리는 마이애미에 있는 오렌지 볼로 갔고, 드디어 시합이 시작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다들 상당히 흥분해 있었는데, 라커룸으로 내려온 브라이언트 코치는 별로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이기고 싶으면 열심히 뛰라는 등의 몇마디를 했다. 그리고 나서 경기장으로 들어갔더니, 이내 상대편의 선축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 공은 곧장 나를 향해 날아왔고, 간신히 그 공을 잡은 나는 몸무게가 500파운드는 족히 넘을 것 같은 깜둥이와 흰둥이들이 진을 치고 있는 상대편 진영으로 곧장 돌격해 들어갔다.
전반전은 내내 그런 양상으로 진행되었다. 하프 타임 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우리는 28대 7로 형편없이 뒤지고 있었고, 우리 선수들은 하나같이 패잔병처럼 기가 죽어 있었다. 탈의실로 들어온 브라이언트 코치는 내 이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연신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윽고 분필을 들고 칠판 앞에서 쿼터백인 스네이크를 비롯한 몇몇 친구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끝나자 브라이언트 코치는 내 이름을 부르면서 복도로 따라 나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포레스트, 이렇게 당하기만 할 수는 없잖나."
브라이언트 코치가 말했다. 그는 얼굴을 어찌나 바짝 들이밀고 있는지 그의 뜨거운 숨결이 내 뺨에 느껴질 정도였다.
"포레스트, 우리는 지금까지 1년 내내 너한테 패스를 주는 비밀 작전을 연습해 왔고, 너는 무척 잘해 주었다. 이제 후반전이 시작되면 우린 네브라스카 얼간이들을 상대로 다시 한번 그 작전을 써먹어야 한다. 놈들은 아마 감쪽같이 속아서 손도 쓰지 못할 거다. 그러나 모든 것은 너한테 달려 있다, 포레스트. 자, 나가서 미친 호랑이 한 마리가 너를 쫓아오고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
나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시간이 되어서 다시 운동장으로 나갔다. 모두들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치고 있었지만, 나는 내 어깨에 그런 무거운 짐을 올려놓은 것은 어딘지 부당하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다. 하지만 어쩌랴, 때로는 그런 일도 생기는 것을.
우리가 공을 잡고 첫 번째 플레이의 후들 때 쿼터백인 스네이크가 이렇게 말했다.
"좋아, 이제부터 우리는 포레스트 작전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그는 나를 향해 말했다.
"넌 뒤도 돌아보지 말고 20야드를 뛰어. 그러고 나서 손을 뒤로 뻗으면 공이 네 손에 떨어질 거다."
안 떨어지면 어떡할 뻔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 덕분에 점수 차는 졸지에 28대 14로 좁혀졌다. 그때부터 우리는 정말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네브라스카에서 온 깜둥이와 흰둥이들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들도 나름대로 작전을 구사했는데, 마치 우리가 모두 종이로 만든 허수아비나 되는 듯이 그대로 밀물처럼 돌진해 들어오는 것이 그들의 주요 작전이었다. 내가 패스를 너댓 번 정도 더 무사히 받고 나자 스코어는 28대 21이 되었는데, 그랬더니 상대편 선수 두 녀석이 그림자처럼 나만 쫓아다니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되니 놈들은 우리 편의 엔드인 그윈을 쫓아다닐 사람이 없어졌다. 이번에는 그가 스네이크의 패스를 무사히 잡았고, 우리는 15야드 라인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우리의 필드 골키퍼인 위젤이 골을 성공시키자 이제 스코어는 28대 24가 되었다. 사이드라인에 서 있던 브라이언트 코치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포레스트, 네가 대단한 멍청이란 건 잘 알지만, 우리를 위해서 이번 한 번만 정신을 좀 차려다오, 나 개인적으로는 너를 미국 대통령이든 뭐든 네가 원한다면 뭘로든 만들어 줄 생각이 있어. 네가 저 공을 들고 한 번만 더 골 라인을 넘어가 준다면 말이다."
그는 내가 마치 강아지라도 되는 듯 내 머리를 두들겼고, 나는 다시 경기로 돌아갔다.
스네이크는 첫 번째 플레이가 시작되자마자 상대편에게 붙잡혀 버렸고, 그러는 사이 시간은 빠른 속도로 흘러가고 있었다. 두 번째 플레이 때 그는 공을 다른 사람에게 던져 주는 척 페인트 모션을 쓰며 사실은 나에게 공을 넘겨주었지만, 눈 깜빡할 사이에 2톤이 넘는 네브라스카 얼간이들이 엄청난 기세로 내 몸을 덮쳐 버렸다. 나는 꼼짝도 못 하고 자빠진 채 우리 아버지를 덮친 바나나 뭉치의 기세는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다가, 다시 후들로 돌아갔다.
다시 스네이크가 작전 지시를 했다.
"포레스트, 난 그윈에게 패스를 하는 척하다가 너한테 공을 던질 생각이야. 그러니 너는 죽기 살기로 코너백까지 뛰어간 다음, 거기서 곧장 오른쪽으로 돌면 공이 네 품속으로 떨어질 거다."
스네이크는 마치 호랑이처럼 눈알을 번득이며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역시 스네이크가 던진 공은 정확하게 내 손아귀에 떨어졌고, 나는 필드 한가운데를 뚫고 들어가기 시작했다. 눈앞에 정면으로 골포스트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 순간 어디서 뭐가 휙 날아오더니 내 허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것이었다. 내가 잠시 주춤하는 사이에 네브라스카의 모든 깜둥이 흰둥이들이 벌떼처럼 덤벼들어서 나를 덮치더니, 나를 깔아뭉개고 짓밟고 온갖 난리를 피웠다. 제기랄, 이제 몇야드만 더 가면 이길 수 있는데.....
간신히 몸을 일으켜 보니 스네이크가 이미 우리 편 선수들을 모두 모아놓고 있었다. 우리에게는 이제 작전 타임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내가 내 위치로 돌아가자마자 스네이크는 공을 던질 채비를 했고, 나는 다시금 정신없이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은 내 머리보다 20피트는 높게 휙 날아가 버렸다.
나는 스네이크가 이제 불과 2, 3초밖에 남지 않은 시간을 정지시키기 위해 일부러 아웃 오브 바운드를 시킨 줄 알았다. 그러나 불행히도 스네이크는 뭔가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 아마 그때가 세 번째 플레이여서 한 번의 공격 기회가 더 남아 있는 줄 알았던 모양인데, 사실은 그것이 마지막인 네 번째 플레이여서 공격권은 상대편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우리가 그 게임에서 패배를 맛보았음은 물론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나에게는 유난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제니 커란이 틀림 없이 그 게임을 지켜보고 있으리라고 생각했고, 내가 마지막 공을 잡아서 게임에 이겼더라면 그녀가 나를 용서해 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대단히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간신히 감정을 억누르고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내년이 있잖아."
하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이었다.
5.
오렌지 볼이 끝난 후, 체육학과에서 첫학기 진급 심사를 한지 얼마 안 되는 무렵이었다. 브라이언트 코치가 부른다는 연락이 와서 그의 사무실에 가보았더니, 그는 무척 난감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포레스트."
브라이언트 코치가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나는 네가 영어 과목에서 낙제를 한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중간 광학인가 뭔가 하는 과목에서 네가 어떻게 A 학점을 따냈는지는 아마 죽을 때까지 궁금해할 것 같구나. 또 하나 궁금한 게 있지. 남동부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미식축구 선수로 뽑힌 네가 어떻게 체육 교육학에서 F를 맞을 수 있었느냐는 거야."
나는 내 생각을 주절주절 늘어놓아 브라이언트 코치를 성가시게 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나 같은 사람이 미식축구 경기장의 양쪽 골포스트 사이의 거리 따위를 외워야 한단 말인가? 어쨌건, 브라이언트 코치는 엄청나게 슬픈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포레스트, 자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 나 자신이 얼마나 유감스러운지 몰라. 하지만 자네는 이제 더 이상 이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됐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군."
나는 두 손을 비틀며 그냥 거기에 서 있었다. 하지만 이내 나는 그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알아차렸다. 더 이상 미식축구를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뿐만 아니라 이제 이 학교를 떠나야 하니 더 이상 동료들을 만나지도 못할 것이다. 어쩌면 제니 커란조차 두 번 다시 볼 수 없을 지도 모른다. 지하실에서도 보따리를 챙겨 나와야 할 것이고, 호스 교수의 말과는 달리 다음 학기에 고급 광학을 배우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채 가만히 서 있기만 했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나에게 다가와 두 팔로 나를 감싸 안았다.
"포레스트, 괜찮아. 자네가 처음 여기에 왔을 때, 나는 머지 않아 이런 일이 벌어지리라고 생각했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자네를 한 시즌 만이라도 데리고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었네. 내가 요구한 것은 그것뿐이었어. 자. 포레스트, 우리는 이제 한 시즌을 마쳤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때 스네이크가 네번째 플레이에서 공을 옆줄 밖으로 던진 것은 절대 네 잘못이 아니야......"
내가 고개를 들어 보니, 브라이언트 코치의 눈에는 눈물이 조금 고여 있었다.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나를 쳐다보았다.
"포레스트, 이 학교에서 미식축구를 한 녀석들 중에 자네 같은 놈은 하나도 없었어. 앞으로도 없을 거야. 자네는 정말 훌륭했네."
그런 다음 브라이언트 코치는 창가로 다가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행운을 비네, 포레스트 --자, 이제 자네 그 멍청한 엉덩이를 여기서 좀 치워 주게나."
그렇게 하여 나는 대학을 떠나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나는 지하실로 내려가 내 물건을 챙겼다. 버바가 캔맥주 두 개를 들고 내려와 나에게 하나를 건네주었다. 나는 그때까지 맥주를 마셔본 적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맥주를 즐겨 마시는지 알 것 같았다. 나는 버바와 함께 원숭이 기숙사에서 걸어나왔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바깥에는 미식축구팀 동료들이 모두 나와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잠시 후 스네이크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손을 내밀었다.
"포레스트, 그 패스는 정말 미안했어."
"그래, 스네이크, 괜찮아."
하고 나는 대답했다.
그다음에는 모두들 차례차례 내 앞으로 다가오며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심지어는 룸메이트 커티스조차 나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버바는 버스 터미널까지 짐을 들어다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혼자 가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 연락이나 해." 버바가 말했다. 나는 버스 터미널로 가는 도중에 학생 회관 앞을 지나갔다. 하지만 그때는 금요일 밤이 아니었고, 따라서 제니 커란의 밴드는 그곳에서 연주를 하고 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며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모빌에 도착했을 때는 밤이 늦은 시각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학교에서 짤렸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다. 괜히 그만큼 마음 아파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집앞에 도착하니 엄마 방에 불이 켜있었다. 안으로 들어갔더니, 엄마는 여느 때처럼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오히려 어머니가 나에게 사태를 설명해 주었다. 미합중국 육군에서 벌써 내가 낙제했다는 사실을 알고 신병 모집 센터에 보고하라는 연락을 취해 왔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때 내가 지금 같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아마 난 그때 신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며칠 후 나는 엄마와 함께 신병 모집 센터로 갔다. 어디로 가게 될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중간에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도시락을 싸주신 어머니였다. 그곳에는 한 백 명가량 되는 젊은이들이 모여 있었고, 너다섯대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덩치가 커다란 하사관 하나가 뭐라고 고함을 지르며 돌아다녔다. 엄마는 그 하사관을 붙잡고 말했다.
"당신네가 내 아들을 어떻게 데리고 있으려는지 모르겠군요. 아이는 바보랍니다"
하지만 하사관은 어머니를 돌아보며 이렇게 쏘아붙였다.
"그럼 아주머니 눈에는 다른 녀석들이 모두 아인쉬타인처럼 보입니까?"
그러고는 다시 다른 사람들을 향해 고함을 질러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머지않아 그는 나를 향해 소리를 질렀고, 나는 그가 가리킨 버스에 올랐다.
내가 정신병원에서 나온 이후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고함을 질러댔다. 휄러스 코치가 그랬고, 브라이언트 코치가 그랬으며, 이제 육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해 두어야겠다. 육군에 있는 놈들은 다른 누구보다도 더 오랫동안, 더 크게, 더 심하게 고함을 질렀다. 그들은 한 번도 기분이 좋아 보이는 적이 없었다, 더욱이 그들은 미식축구 코치들처럼 내가 멍청하다고 불평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생리적인 부분뿐인 것 같았는데, 입을 벌릴 때마다 '좇대가리'니 '똥구멍'이니 하는 말들이 튀어나오는 것을 보면 충분히 그것을 짐작할 수 있다. 때때로 나는 커티스도 미식축구를 하기 전에 육군에서 복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아무튼, 하염 없이 버스를 타고 달린 끝에 우리는 조지아주 포트 베닝이라는 곳에 도착했다. 그동안 줄곧 내 머릿속에는 35대 3이라는 숫자만이 맴돌고 있었는데, 그것은 우리가 조지아 독스를 물리쳤을 때의 스코어였다. 그곳 막사 역시 원숭이 기숙사보다 별로 나을 것이 없어 보였지만, 음식만은 더욱 형편없었다. 그나마 양은 충분해서 다행이었지만.
그다음 몇 달 동안 내가 들은 소리라고는 서슬이 퍼런 고함 소리밖에 없었다. 그들은 우리에게 사격술과 수류탄 던지는 법과 낮은 포복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런 훈련을 받지 않을 때는 목적지도 없이 정처 없이 구보를 하거나 화장실 청소 따위를 해야 했다. 포트 베닝에서 보낸 시간 동안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거기에는 나보다 똑똑한 놈들이 아무도 없는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는 사실뿐이다.
나는 그곳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주방에 배치되었다. 아마 내가 사격 연습을 하다가 실수로 급수탑을 쏜 뒤의 일인 것 같다.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아무도 요리사 노릇을 하려 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누군가가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검프, 넌 오늘부터 당장 요리를 시작해."
"무슨 요리를 하라는 거지? " 내가 물었다.
"난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를 해본 적이 없는데."
"없으면 어때?" 누군가가 말했다,
"여긴 어차피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구."
"설마 스튜 정도는 만들 줄 알겠지? " 다른 누군가가 말했다.
"그건 굉장히 쉽잖아."
"뭘로 만드는데?" 내가 물었다.
"아이스박스하고 식료품실을 한번 뒤져봐." 한 친구가 말했다.
"거기 있는 것들을 몽창 쓸어 넣고 끓이면 되는 거야."
"맛이 안 좋으면 어떡해?" 내가 다시 물었다.
"그런 건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아, 너도 지금까지 여기 음식을 먹어 봤을 것 아냐."
그건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박스와 식료품실에 있는 재료들을 모조리 꺼내기 시작했다. 토마토와 완두콩과 복숭아와 베이컨 통조림 등이 있었고, 쌀과 밀가루 푸대, 감자가 가득 든 자루, 그밖에 나로서는 뭔지도 알 길이 없는 온갖 재료들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것들을 모두 한데 모아놓고 한 친구에게 물었다.
"이걸 어디에 넣고 요리하지?"
"벽장에 보면 냄비가 몇 개 있을 거야."
나는 벽장을 샅샅이 뒤져 보았지만 하나같이 조그만 냄비밖에 없었다.
2백 명의 중대 병력이 먹을 스튜를 끓일 만큼 큰 냄비는 하나도 없었다.
"고참한테 한번 물어보지 그래?" 누군가가 말했다.
"그는 지금 작전 나가 있어." 다른 누군가가 대답했다.
"그럼 나도 모르겠다." 먼젓번 친구가 말했다,
"하지만 훈련 나간 친구들이 돌아오면 배가 고파 죽을려고 할걸? 그러니 어떻게든 궁리를 해보라구."
"여기다 하면 어때?" 내가 물었다.
높이는 6피트, 둘레가 5피트나 되는 거대한 드럼통 같은 것이 한쪽 귀퉁이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거? 그건 보일러야. 어떻게 보일러에다 스튜를 끓이니?" "뭐 어때." 내가 말했다.
"아이구, 나는 모르겠다. 내가 너라면 그런 짓은 하지 않을 거야."
"이 통은 아주 뜨겁잖아. 안에 물도 있고." 내가 말했다.
"니 마음대로 해." 누군가가 말했다.
"우린 다른 음식을 준비할 테니까."
그래서 나는 그 보일러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통조림을 모두 따고 감자 껍질을 벗겨서 고기니 양파니 당근이니 뭐든지 손에 집히는 대로 쏟아부었다. 케찹을 열병인가 스무 병 넣고 겨자도 듬뿍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쯤 지나니, 제법 스튜 끓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이봐, 잘 돼가? " 누군가가 물었다,
"응, 지금 간을 보는 중이야." 내가 대답했다.
보일러 뚜껑을 열어 보니, 국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마다 양파와 감자가 둥둥 떠다니는 것이 보였다.
"어디 맛 좀 보자." 한 친구가 다가오더니 양철 컵으로 국물을 약간 떠냈다.
"이런, 아직 다 끓으려면 한참 멀었잖아." 그가 말했다. "불을 좀 더 때는 게 좋을걸? 이제 훈련 나간 친구들이 언제 들이닥칠지 모른다구."
그래서 나는 보일러의 화력을 좀더 높였다. 그때 정말로 중대원들이 연병장으로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조금 있으니 막사에서 샤워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이제 곧 저녁 먹을 준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을 것이다. 이제 정말로 머지않아 식당으로 몰려오기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하지만 스튜는 아직도 다 끓지를 않았다. 나는 다시 한번 맛을 보았지만, 건데기 중에는 아직 하나도 익지 않지 않은 것들이 씹혔다. 바깥이 소란스러워지는가 싶더니, 이내 사병들이 식당 안으로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다시금 보일러의 화력을 높였다.
한 30분 정도가 지나자, 그들은 마치 폭동을 일으킨 죄수들처럼 나이프와 포크로 테이블을 탕탕 내려치며 빨리 밥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웠다. 다급해진 나는 보일러의 화력을 최대한으로 높였다. 내가 초조하게 보일러를 바라보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상사 하나가 주방 문으로 불쑥 들어오는 것이었다.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그가 소리쳤다.
"음식 준비가 아직도 안 됐나?"
"이제 거의 다 돼 갑니다"
내가 그렇게 대답하는 순간, 갑자기 보일러가 이상한 소리를 내며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옆구리에서 김이 새나오는가 싶더니 보일러를 지탱하고 있던 다리 하나가 부러졌는지 기우뚱했다.
"저건 뭐야? " 상사가 물었다.
"너, 저 보일러에다 요리를 하고 있는 거야?"
"지금 저녁 거리가 열심히 끓고 있잖습니까?"
내가 그렇게 대답하자 상사는 진짜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다음 순간 그는 마치 망가진 자동차가 자기를 향해 돌진해오는 것처럼 겁먹은 표정으로 바뀌었고, 바로 그때 굉음과 함께 보일러가 터져 버렸다.
나는 그다음부터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단지 주방 지붕이 날아가고 식당의 모든 창문과 문짝이 깨진 것올 기억할 뿐이다. 그 바람에 접시를 닦고 있는 녀석이 한쪽 벽으로 날아가 처박혔고, 접시를 쌓고 있는 친구는 마치 로켓 맨처럼 공중으로 붕 날아올랐다. 상사와 나는 기적적으로 별로 다친 데가 없었다. 너무 가까운 곳에서 수류탄이 터지면 다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그때 내가 머리에 쓰고 있던 커다란 요리사 모자를 제외하고는 우리 둘 다 옷이 완전히 걸레 조각으로 변해 버렸고, 온몸에 흠뻑 스튜 국물을 뒤집어썼다. 그래서 우리 꼬락서니는 --- 글쎄 정확하게 어땠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사람 꼴이 아니었을 것만은 분명하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그때 바깥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던 부대원들 중에도 다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 다들 스튜 국물을 뒤집어썼으니, 저녁 식사가 언제 준비되느냐고 아우성치던 그들의 의문은 해결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중대장이 허둥지둥 주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중대장이 소리쳤다.
"어떻게 된 거냐구?" 중대장은 상사와 나를 번갈아 쳐다보더니, 다시금 소리를 질렀다.
"크란쯔 상사, 자넨가? "
"검프가...... 보일러에다..... 스튜를......! "
그는 어쩔 줄 몰라서 몇마디 더듬거리더니, 갑자기 벽에 걸려 있던 커다란 식칼을 집어 드는 것이었다.
"검프가...... 보일러에다.....스튜를......!"
그는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칼을 들고 나에게 덤벼들었다. 나는 잽싸게 문밖으로 도망쳤지만. 그는 연병장과 장교 식당과 주차장을 지나 끝까지 나를 쫓아오는 것이었다. 내가 남들보다 유일하게 잘할 자신이 있는 게 바로 달리기 아닌가. 결국 나는 상사에게 잡히지는 않았지만, 이제 크게 봉변을 당하게 생겼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다음 해 가을의 어느 날 밤이었다. 내무반의 전화벨이 울려서 받아보았더니, 귀에 익은 버바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발목이 심하게 부러지는 바람에 더 이상 체육 장학금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그래서 자기도 학교를 그만두게 생겼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나더러 우리 학교가 미시시피에서 온 얼간이들과 시합하는 것을 구경하러 버밍햄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그 주 토요일에도 부대에 갇혀 있어야 했다, 보일러가 폭발한 뒤로 나는 근 1년 동안 주말에도 외출을 못 하는 신세였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변소 청소를 하면서 라디오로 그 경기 중계방송을 들었다.
3쿼터가 끝날 무렵 스코어는 아주 근접한 차이로 좁혀져 있었는데, 그날은 아무래도 스네이크의 생일날 같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38대 37로 이기고 있었지만 불과 1분 정도를 남겨놓고 미시시피 얼간이들이 터치다운을 기록해 버렸다. 어느덧 우리에게 마지막 공격 기회가 주어졌는데, 작전 타임조차 한번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속으로 스네이크가 오렌지 볼에서 했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기도했다. 하지만 이게 웬일인가, 그는 내 기도를 완전히 배신해 버리는 듯했다. 나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갑자기 사방에서 환호성이 터지는 바람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지경이었다. 한참 후에야 조금 조용해져서 자세히 들어보니, 그동안 벌어진 상황은 이러했다.
스네이크가 네 번째 플레이에서 시간을 정지시키기 위해 볼을 아웃 오브 바운드 시키는 척하면서, 사실은 커티스에게 볼을 건네준 것이었다. 커티스는 방심한 상대편 진영을 뚫고 마지막 터치다운을 성공시켰고, 덕분에 우리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고 보면 브라이언트 코치도 그렇게 멍청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그는 미시시피의 얼간이들이 우리가 똑같은 실수를 두 번씩이나 되풀이할 것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간파했던 것이다.
나는 우리 학교가 이겨서 무척 기분이 좋았지만, 만약 제니 커란이 그 경기를 지켜 보았다면 혹시 내 생각을 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나에게는 그것이 별 의미가 없는 일이 되어 버렸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우리는 배를 타야 했기 때문이다. 1년 가까이 마치 로봇처럼 훈련을 받은 우리는, 드디어 1만 마일이나 떨어진 곳으로 실려 가게 되었다. 이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우리는 베트남으로 파견된 것이다. 소문으로는 베트남도 작년처럼 지옥 같기만 한 상황이 아니라고 했지만, 그것은 과장이었음이 금방 드러났다.
2월에 그곳에 도착한 우리는 남지나해 해안에 있는 퀴논이라는 곳에서 가축용 트럭에 실려 프레이쿠라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 트럭 여행은 주변 경치가 좋아서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도로 좌우로 바나나 나무와 야자나무가 우거져 있고, 논에서는 드문드문 쟁기질을 하고 있는 농부들이 보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이는 등 아주 친절한 모습이었다.
반나절을 달려서 프레이쿠에 도착하고 보니, 그곳은 온통 붉은 흙먼지로 뒤덮인 황무지였다. 마을 외곽에는 알라바마에서 본 것보다도 더 초라한 오두막이 몇채 서 있었고, 어른들은 비쩍 마른 몸집에 이빨이 다 빠져 버린 모습으로, 아이들은 옷도 제대로 걸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에게 구걸의 손길을 내밀었다. 포대 진지 겸 군단 본부 건물에 도착해 보니, 그 빌어먹을 붉은 흙먼지만 아니라면 그리 나쁘지는 않은 조건인 듯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가지런히 늘어선 깨끗하고 산뜻한 막사와 그것들을 둘러싸고 있는 모래와 먼지뿐이었다. 언뜻 보면 도무지 전쟁터의 막사 같지가 않았다. 마치 포트베닝으로 돌아와 있는 기분이었다.
고참들 말에 의하면 베트콩들이 새해 명절을 맞이했기 때문에 당분간 전투가 중단되어서 지금은 아주 조용하다고 했다.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던 우리는 그제서야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았다. 하지만 그런 평화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우리가 막사를 배정받고 나자, 연대 샤워실로 가서 목욕을 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샤워실이라고 하는 것이 땅바닥에 커다란 웅덩이를 파고 물탱크 트럭 서너 대를 집어넣어 놓은 것에 지나지 않았다, 군복을 잘 개서 구덩이 가장자리에 놔두고 밑으로 내려가면, 고참들이 물을 끼얹어 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벌써 일주일 동안 목욕 한번 못해본 우리에게는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였다. 다들 몸에서 썩는 냄새가 풀풀 날 지경이었던 것이다. 날이 저물어갈 무렵, 우리가 모두 옷을 벗고 구덩이속에 들어가 호스를 끌어 내리고 있는데, 갑자기 우리에게 물을 뿌려 주고 있던 고참 하나가 "온다!" 하고 고함을 지르는 것이었다. 구덩이 가장자리에 있던 고참들이 순식간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우리가 궁둥이를 드러낸 채 영문을 몰라 서로 얼굴만 보고 있는데, 갑자기 바로 옆에서 귀를 찢는 듯한 폭발음이 들렸다. 그제서야 우리는 깜짝 놀라 미친 듯이 고함을 내지르며 옷이 있는 곳으로 올라가려고 부산을 떨었다. 폭발 때문에 흙덩이가 와르르 쏟아 내리자, 누군가가 "제기랄, 또 흙이 묻었잖아!" 하고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구덩이 바닥에 납작 엎드려 사람이라기보다는 벌레에 더욱 가까운 꼴을 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흙 좀 묻었다고 투덜거린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다.
그때 또 하나의 폭탄이 떨어지면서 구덩이 한쪽 구석에 있던 녀석들의 머리 위로 파편이 비오듯 쏟아져 내렸다. 대번에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와 신음 소리가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벌써 피를 흘리며 쓰러진 친구들도 있었다. 구덩이 안이라고 해서 안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다.
갑자기 구덩이 위에 크란쯔 상사가 나타나 우리더러 빨리 구덩이에서 기어 나와 자기를 따라오라고 외쳤다. 폭격이 잠시 뜸해진 사이에 우리는 번개처럼 구덩이에서 기어 나왔다. 가장자리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뒤를 돌아보았더니, 하나님 맙소사! 우리에게 호스로 물을 뿌려 주던 고참 너댓 명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그야말로 사람이라고 하기 힘든 몰골이었다.
나는 그때까지 사람이 죽어 있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세상에 태어난 뒤 그렇게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것은 크란쯔 상사는 자기를 따라서 기어오라고 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시키는 대로 했다. 만약 누군가가 그 장면을 위에서 내려다보았다면, 정말로 볼 만했을 것이다. 150명이나 되는 젊은이들이 벌거벗은 채 길게 열을 지어 벌레처럼 땅바닥을 기어가는 꼴이라니! 조금 기어가니 1인용 참호를 일렬로 쭉 파놓은 곳이 나타났다. 크란쯔 상사는 그 참호 하나에 서너 명씩을 집어넣었다. 하지만 나는 그 참호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차라리 그냥 구덩이 속에 남아 있는 게 나을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호 안은 빗물이 썩어서 퀘퀘한 냄새와 습기가 우리를 질식시키는 것 같았고, 개구리와 굼뱅이와 뱀을 비롯한 온갖 벌레들이 꾸물꾸물 기어 다니는 것이었다.
폭격은 밤새도록 계속되었고, 따라서 우리는 그 참호 속에서 밤을 지새워야 했다. 물론 저녁은 먹지 못했다. 날이 밝아오기 직전에야 폭격이 멈추어서, 간신히 우리는 옷을 찾아 입고 무기를 챙겨서 공격 준비를 갖추었다.
우리는 모두 비교적 신참들이었기 때문에 고참들도 우리를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 같았다. 어쨌건 우리는 장교 화장실이 있는 남쪽 경계선을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정작 그곳으로 가보니, 거기는 참호 속보다 더 형편없었다. 폭탄 하나가 정통으로 화장실을 때리는 바람에 5백 파운드에 달하는 장교의 똥들이 온통 그 주변을 뒤덮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침도, 점심도 먹지 못하고 그곳에서 하루 종일을 죽치고 있어야 했다. 해가 질 무렵, 누군가가 다시 폭격이 시작된다고 해서 우리는 심지어 그 똥구덩이 속에 엎드리기까지 해야 했다. 아, 정말이지 그때 일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다. 드디어 누군가가 우리가 무척 배가 고플 거라는 사실을 기억해낸 듯, C-레이션 박스가 배급되었다, 나에게는 차가운 햄과 계란 몇개가 주어졌는데, 깡통을 보니 1951년에 만들었다는 표시가 쓰여 있었다. 그동안에도 우리들 사이에는 온갖 소문이 떠돌았다. 누군가는 베트콩이 프레이쿠 마을을 점령했다고 했고, 또 누군가는 베트콩이 원자폭탄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의 기를 꺾기 위해서 머지않아 그걸 사용할 거라고 했으며, 또 누군가는 우리에게 폭격을 퍼붓는 것은 베트콩이 아니라 호주 아니면 네덜란드 아니면 노르웨이 군일 거라고도 했다. 나는 그게 어느 군대이건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소문 같으니......
어쨌거나 그렇게 첫날이 지나고 나자 우리는 남쪽 경계선 부근을 좀 더 사람 사는 곳답게 꾸미기 시작했다. 개인용 참호를 파고, 깡통과 널빤지를 이용해서 장교 화장실에서 피어오르는 악취를 막기도 했다. 하지만 공격은 좀처럼 시작되지 않았고, 우리는 베트콩이라고는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나는 아무리 베트콩이라지만 변소를 공격할 만큼 어리석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매일 밤마다 새벽 서너 시만 되면 어김없이 폭탄이 쏟아졌는데, 드디어 어느 날 아침 폭격이 멈추자 군단 참모인 볼스 대령이 우리 중대장에게 기어오더니 밀림 속에 갇혀 있는 다른 부대를 지원하기 위해 우리가 북쪽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잠시 후, 후퍼 중위는 우리에게 이동 준비를 갖추라는 명령을 내렸다.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은 C-레이션과 수류탄을 주머니에 집어넣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그것은 일종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었는데, 수류탄을 먹을 수는 없고 그렇다고 C-레이션만 잔뜩 가져가서는 그걸 먹을 기회를 포착하기가 그만큼 힘들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쨌건, 헬리콥터는 우리를 싣고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헬리콥터가 땅에 착륙하기도 전에 제3연대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 지를 짐작할 수 있었다. 밀림에서는 형형색색의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지상에서는 맹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놈들은 우리 헬리콥터가 착륙하기도 전에 총알 세례를 퍼부었는데, 불행히도 한 대가 총에 맞아 공중에서 불이 붙고 말았다. 그 헬리콥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빤히 보였지만.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나에게는 기관총 탄약수라는 임무가 주어져 있었다. 내가 덩치에 비해 꽤 많은 양을 운반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던 모양이다. 우리가 출발하기 전에 동료 두 녀석이 나더러 자기네 수류탄을 대신 가져가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대신 그들은 C-레이션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싶었던 것이다.
나는 선선히 그러겠다고 했다. 별로 기분이 나쁘지도 않았다. 게다가 크란쯔 상사는 나더러 10갤론짜리 물통을 들고 가라고 했다. 무게로 따지면 50파운드는 족히 나갈 양이었다. 또 헬리콥터에 오르기 직전에는 다니엘스라는 녀석이 기관총을 받쳐줄 삼각대를 나에게 맡겼다. 자기는 그걸 짊어지고는 도저히 뛸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 짐들을 모두 지고 나니, 나는 마치 네브라스카에서 온 미식축구 선수 같은 형색이 되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미식축구 시합에 나가는 길이 아니었다. 우리가 언덕마루에 올라가 찰리 중대를 지원하라는 명령을 받았을 때는 이미 땅거미가 내리고 있었다. 찰리 중대는 그곳에서 베트콩들에 의해 포위되어 있는지 아니면 베트콩들을 포위하고 있는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성조기]에 실린 뉴스를 보느냐, 자기 눈으로 직접 현장을 목격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정반대로 보일 수 있을 듯했다. 어쨌거나 우리가 그 언덕에 올라갔을 때는 모든 종류의 총알들이 비오듯 쏟아지고 있었고, 사방에서 부상당한 부대원들이 신음을 내뱉거나 울부짖거나 하고 있었으므로, 다른 소리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땅바닥에 그림자처럼 납짝 엎드린 채 탄약과 물통과 삼각대와 나 자신의 사물 등을 지고 찰리 중대가 있는 쪽을 향해 열심히 기어가고 있었다. 내가 막 좁다란 참호 사이를 지나가려고 애를 먹고 있는데, 그 참호 속에 숨어 있던 녀석들이 저희들끼리 주고받는 소리가 들렸다.
"저 멍청이 좀 봐. 꼭 프랑켄쉬타인 같군."
나는 그러지 않아도 힘들어 죽겠는 판에 그런 놀림까지 받자 열이 받쳐서 뭐라고 한마디 대꾸를 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오 하느님 맙소사! 참호 속에 있던 다른 녀석 하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큰소리로 외치는 것이었다.
"포레스트--- 포레스트 검프!"
세상에, 그 녀석은 다름 아닌 바로 버바였다. 버바의 발목은 미식축구을 할 수 없을 만큼 심하게 망가지기는 했지만 미합중국 육군을 위해 지구의 반을 달려오지 못할 만큼 심하게 망가지지는 않았던 것이다. 아무튼 내가 나의 불쌍한 엉덩이와 온갖 짐들을 끌고 지시받은 곳까지 기어온 다음, 버바는 잠시 폭격이 뜸한 틈을 타서 (아군 비행기가 나타날 때마다 적의 포격은 중단되곤 했다) 나에게 뛰어왔고, 우리는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버바는 그동안 자기가 전해 들은 이런저런 소문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제니 커란은 학교를 그만두고 반전 운동인가 뭔가 하는 녀석들과 어울려 다닌다는 것이었고, 커티스는 자신에게 주차 위반 스티커를 발부한 교내 청원경찰을 두들겨 팬 다음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리다가 학교 당국자들이 커다란 그물을 뒤집어씌운 다음 강제로 마취제를 주사해서 간신히 끌고 갔다는 것이었다. 브라이언트 코치는 커티스에게 그런 소란을 피운 벌로 연습이 끝난 다음 운동장을 50바퀴 더 돌게 했다고 한다.
커티스 녀석, 고소하다!
6.
그날 밤은 유난히 길고 불편했다. 아군은 그날 밤 비행기를 띄울 수가 없었으므로, 놈들은 저녁 내내 마음 놓고 포탄을 퍼부어댔다. 두 개의 언덕 사이에 조그만 산등성이가 하나 있었는데, 한쪽 언덕은 우리가 다른 한쪽 언덕은 놈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말하자면 그 산등성이를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던 것이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흙과 먼지뿐인 그 산등성이를 서로 차지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크란쯔 상사는 벌써 몇 번이나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이곳에 온 것이 아니라, 그저 명령받은 대로 움직이기 위해 왔을 뿐이라고. 그러고 나서 이내 크란쯔 상사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지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더러 산등성이 한가운데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기관총을 설치하라는 것이었는데, 그곳은 적군의 총알이 날아오지 않기 때문에 안전할 거라는 이야기였다. 나는 내가 보고 듣는 모든 상황을 고려할 때, 지금 현재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을 포함하여 안전한 곳은 아무 데도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저 산등성이로 내려가는 것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죽으러 가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는 바로 그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나하고 기관총 사수인 본조, 또 한 사람의 탄약수 도일, 그리고 다른 두 친구가 참호에서 기어 나와 완만한 경사를 타고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반쯤 내려갔을 때, 베트콩들이 우리를 발견하고 자기네 기관총을 퍼부어대기 시작했다. 우리는 거의 구르다시피 언덕을 내려가서 재빨리 수풀 속에 몸을 숨겼다. 나는 1미터가 정확히 얼마나 되는 거리인지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충 1야드하고 비슷하다는 것은 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커다란 나무 근처에 도착했을 때 나는 도일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아무래도 왼쪽으로 움직이는 게 낫겠는데?"
그러자 도일은 얼굴을 찌푸리며 나를 똑바로 노려보더니,
"닥쳐, 포레스트. 거긴 베트콩들이 우글거린단 말야." 하고 쏘아붙이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정말로 그 큰 나무 밑에는 베트콩 예닐곱 명이 모여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도일이 수류탄을 꺼내 안전핀을 뽑더니 나무를 향해 휙 집어던졌다. 하지만 그 수류탄은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터져 버렸다. 본스는 당장 기관총을 설치하기 시작했고, 그 사이에 나하고 다른 두 친구는 정확히 겨냥을 해서 수류탄을 까 던졌다. 한 1분쯤 지나고 나니, 사방이 다시 조용해져서 우리는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우리는 마침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서 기관총을 설치한 다음,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하지만 그 밤이 완전히 샐 때까지 기다려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방에서 총소리가 들려왔지만, 우리만 따로 달랑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태양이 떠오를 무렵이 되자 우리는 엄청나게 배가 고프고 피곤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 크란쯔 상사가 보낸 전령이 하나 달려오더니, 앞으로 몇분 이내에 아군 비행기가 떠서 산등성이에 있는 베트콩들을 모조리 쓸어 버릴 것이고, 이어서 찰리 중대가 행동을 개시할 거라고 알려 주었다. 조금 있으니 진짜로 비행기가 날아와서 사정없이 폭탄을 퍼부었고, 베트콩들은 완전히 쓸려 버린 것 같았다.
우리는 찰리 중대가 산마루를 타고 등성이로 내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산마루 끄트머리에 도착하기가 무섭게, 어디선가 엄청난 화력이 그쪽으로 집중되어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대번에 찰리 중대에는 커다란 혼란이 일어났다. 우리가 있는 곳에서는 울창한 수풀 때문에 베트콩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 숲속에 누군가가 있어서 찰리 중대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들은 네덜란드군이나 노르웨이 군일 지도 몰랐다.
기관총 사수인 본즈는 초조해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이미 찰리 중대를 공격하고 있는 베트콩들이 우리 전방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베트콩들이 우리하고 우리 본대 사이에 숨어 있다는 의미였지만, 바꿔 말하면 그것은 우리가 고립되어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본즈의 말에 의하면 조만간 베트콩들이 찰리 중대를 섬멸하지 못할 경우, 그들은 틀림없이 이쪽을 향해 퇴각할 것이고, 만약 그들이 우리를 발견하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주장이었다. 결론은, 더 늦기 전에 위치를 옮겨야 한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짐을 챙겨서 산마루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일이 갑자기 오른쪽 산등성이 아래를 내려다 보더니, 얼굴이 파랗게 질려 버렸다. 막 버스를 타고 도착한 베트콩 지원 부대가 이빨에까지 무장을 한 채 찰리 중대를 향해 언덕을 올라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때 우리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라고 한다면, 재빨리 그 베트콩들을 친구로 사귀어서 다른 일은 모두 잊어 버리는 것이었지만, 그것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조치가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커다란 관목 밑에 몸을 숨기고 놈들이 언덕 꼭대기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뒤 본즈는 기관총을 난사하기 시작해서, 베트콩 열 명이나 열다섯 명 정도가 쓰러져 나뒹굴었다. 그동안 도일과 나는 다른 두 친구와 함께 정신없이 수류탄을 던졌다. 그때까지는 비교적 순조롭게 일이 풀려간 셈이다. 본즈가 탄약이 떨어진 것을 본 나는 새 탄창을 넣어 주었는데, 본즈가 다시 방아쇠를 당기려 하는 순간 베트콩의 총알 하나가 정통으로 그의 머리에 명중하여 해골 속에 있던 내용물을 밖으로 꺼내 놓고 말았다. 본즈는 기관총이 마치 자신의 생명이라도 되는 듯 땅바닥에 쓰러져서까지도 총을 꼭 붙잡고 있었지만, 이미 그에게는 더 이상 생명이 붙어 있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었지만, 사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만약 놈들의 손에 생포된다면 어떤 일을 당할지 알 수 없다. 나는 도일의 이름을 부르며 어서 이쪽으로 와보라고 소리쳤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나는 본즈의 손가락에서 기관총을 떼내어 어깨에 메고 도일이 있는 곳으로 기어갔다. 하지만 그때는 도일과 다른 두 친구도 모두 총을 맞은 뒤였다. 다른 두 친구는 이미 숨이 끊어졌지만 도일은 아직 살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무슨 쌀푸대처럼 그를 들처메고 찰리 중대를 향해 수풀 속을 달리기 시작했다. 나는 겁에 질려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빗발치는 총탄 속을 뚫고 아마 한 20야드 정도는 달린 모양이었다. 달리면서 나는 언제 내 엉덩이에 총알이 박힐 것인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신히 대나무 숲을 지나 키작은 잡초들이 우거진 곳으로 나왔을 때, 놀랍게도 그곳에는 베트콩들이 우글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누워있는 베트콩, 먼 산을 보고 있는 베트콩, 찰리 중대를 향해 총을 쏘고 있는 베트콩......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뒤에도 베트콩, 앞에도 베트콩, 발밑에도 온통 베트콩뿐이지 않은가. 달리 별 뾰족한 수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미친 듯이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며 전속력으로 냅다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때 나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며 달음질친 것 말고는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으니 말이다. 한순간 모든 것이 서로 뒤엉켜 뒤죽박죽이 되는가 싶더니,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찰리 중대 한복판에 서 있었다. 모두들 마치 내가 터치다운을 했을 때처럼 내 등을 두들겨 주었다.
아마 베트콩들은 느닷없이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라서 순간적으로 숨어 있던 곳으로 꼬리를 숨긴 모양이었다. 어쨌든 내가 도일을 땅바닥에 내려놓으니 의무병이 달려와서 그를 들여다보았고, 이내 찰리 중대의 지휘관이 나에게 다가오더니 폄프질 하듯 내 손을 아래위로 붙잡고 흔들며 마구 칭찬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나, 검프?"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는 모양이었지만, 그건 나 자신도 답을 알지 못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냥 얼떨결에 "오줌을 누고 싶은데요" 하고 말해 버렸다. 그것은 사실이었다. 중대 지휘관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바라보더니, 옆에 와있던 크란쯔 상사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그러자 크란쯔 상사는 "맙소사 검프, 따라와!" 하고 중얼거리며 나를 나무 뒤로 데리고 갔다.
그날 밤 나는 개인용 참호 속에서 다시 버바를 만나 함께 C-레이션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버바가 준 하모니카를 꺼내 함께 몇 곡을 신나게 불었다. 밀림 한복판에서 '오 스잔나'와 '목장의 집' 따위의 노래를 불고 있으니 어쩐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버바는 자기 어머니가 보내준 조그만 사탕 봉지를 가지고 있어서, 함께 몇 개를 나눠 먹기도 했다.
나중에 크란쯔 상사가 오더니 10갤런짜리 물통은 어떡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도일과 기관총을 함께 들고 와야 했기 때문에 물통은 밀림 속에 그냥 놔두었다고 대답했다. 나는 크란쯔 상사가 당장 그곳으로 돌아가서 물통을 찾아오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는 본즈는 죽었고 도일은 부상을 당했으니 나더러 기관총 사수를 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그러면 삼각대와 탄약과 다른 잡동사니들은 누가 들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크란쯔 상사는 그것까지 내가 다 들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그런 일을 할 인원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때 버바가 혹시 자기가 우리 중대로 전입할 수 있으면 자기가 그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크란쯔 상사는 한동안 생각을 해보더니 자기가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어차피 찰리 중대에는 더 이상 화장실을 청소할 병력이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하여 버바와 나는 다시 함께 움직이는 사이가 되었다. 그다음 몇 주는 너무나 느리게 흘러갔기 때문에 나는 시간이 멈춰 버린 줄 알았다. 한쪽 언덕으로 올라갔다가 다른 쪽 언덕으로 내려오고 하는 식이었다. 어떤 때는 언덕 위에 베트콩이 있었지만. 없을 때도 있었다. 크란쯔 상사는 이제 모든 일이 잘되어서 우리는 곧 미국을 향해 행군하게 된다고 떠벌였다. 베트남을 가로질러 라오스를 지나고, 중국과 러시아를 통해 북극까지 올라갔다가 얼어붙은 바다를 지나 알래스카까지만 가면, 엄마들이 마중을 나와 있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버바는 그따위 멍청한 이야기에는 귀도 기울이지 말라고 나를 타일렀다. 밀림 속에서는 대단히 원시적인 일들이 이어진다. 똥을 눌 데도 없었고, 잠은 짐승처럼 땅바닥에서 자야 했으며, 자나 깨나 통조림만 먹어야 했고, 목욕 따위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며, 옷은 다 떨어져서 누더기가 되어있었다.
나는 일주일에 한 통씩 엄마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집에는 아무 일도 없이 잘 지내고 있지만, 내가 다닌 고등학교가 내가 떠난 이후로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다는 등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다. 나도 엄마에게 답장을 하긴 했지만 어떻게 감히 엄마를 또 다시 훌쩍거리게 만들 소리를 적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그저 나도 잘 지내고 있으며 모두들 우리를 잘 대해준다고만 쓰곤 했다. 한 번은 제니 커란에게 보내는 편지를 엄마에게 부치며 혹시 그녀의 친척이라도 만나게 되면 꼭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로서는 그녀가 어디에 있는지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지만, 거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한편 버바와 나는 제대한 후의 계획을 함께 세우기도 했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면 새우잡이 배를 한척 구해서 새우나 잡으며 살기로 했다. 버바는 배이유 라 바트레 출신이기 때문에 새우잡이에 대해서는 전문가였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을 수만 있으면 우리는 선장이 되어 일 년 내내 배 위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했다.
버바는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했다. 새우 몇 파운드를 잡아야 대출금을 갚을 수 있고, 배의 연료비는 얼마나 들어갈 것이며, 식대는 얼마나 들 것인가를 꼼꼼이 따져본 다음, 남는 돈을 모아두면 나중에 신나게 놀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새우잡이 배의 키를 잡고 있는 나 자신을 떠올려 보았다. 그것보다 더 좋은 상상은, 갑판에 앉아 새우를 먹는 장면이었다. 내가 버바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대답했다.
"정신 차려, 포레스트. 그렇게 먹어대다가는 집이고 뭐고 아무것도 남아나지 않겠다. 이익이 나기 전까지는 새우 한 마리도 먹으면 안 돼."
그래, 그것도 맞는 말이지. 까짓 새우는 안 먹어도 좋았다. 어느 날부터인가 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두 달 동안 쉬지 않고 비가 내렸다. 우리는 진눈깨비나 우박만 빼고는 모든 종류의 비를 다 맞으며 돌아다녔다. 어떤 때는 조그맣고 가느다란 빗방울이 떨어졌으며, 또 어떤 때는 크고 뚱뚱한 빗방울이 떨어졌다. 어떤 때는 하늘에서 똑바로 떨어지기도 했지만, 또 어떤 때는 오히려 땅에서 빗방울이 솟아오르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어떤 비가 어떻게 오건 말건, 우리는 언덕을 오르내리고 베트콩을 찾아 헤매는 등의 일과를 수행해야 했다.
어느 날, 우리는 드디어 베트콩을 발견했다. 그들은 아마 베트콩 회의라도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마치 개미집을 밟았을 때 순식간에 개미들이 사방에서 기어 나오는 형국이었으니 말이다. 이번에도 비행기가 뜰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베트콩을 처음 발견한 지 2분이 지나자 다시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번에는 우리가 형편없이 당할 차례인 모양이었다. 우리는 사방에서 쏟아지는 총탄 세례를 뚫고 몸을 숨길 곳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논을 가로질러야 했다.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왔고, 누군가가 "엎드려!" 하고 외치는 소리도 들렸다. 나도 내 기관총을 옆구리에 끼고 다른 사람들을 따라 정신없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몇 그루의 야자나무를 향해 뛰어가고 있는 셈이었는데, 거기까지 살아서 도착한다면 적어도 빗방울은 몇 개 피할 수 있을 것이었다. 간신히 엉성한 경계선을 치고 또 하루의 기나긴 밤을 지새울 준비를 하며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그제서야 버바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누군가가 상처를 입고 논바닥에 쓰러진 버바를 보았다고 했다. 내가 "빌어먹을!"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옆에서 들은 크란쯔 상사는 "검프, 뛰쳐나갈 생각일랑 꿈도 꾸지 마라!" 하고 겁을 주었다. 그런 게 어딨어, 나는 무게가 많이 나가는 기관총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마지막으로 버바를 본 지점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나갔다. 하지만 절반쯤 뛰어갔을 때, 나는 하마터면 상처를 입고 쓰러져 있는 2소대 녀석 하나를 밟을 뻔했다. 그는 애처러운 눈길로 나를 올려다보며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할까 잠시 망설지만, 하는 수 없이 그 친구를 들쳐 업고 번개처럼 우리 진지로 돌아왔다. 그동안에도 총알은 사정없이 사방에서 날아오고 있었다.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이런 짓거리를 해야 한단 말인가? 미식축구를 하느라 뛰어다니는 것은 그나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빌어먹을!
나는 그 친구를 내려놓자마자 다시 뒤돌아서서 달리기 시작했지만, 이번에도 다른 부상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나는 다시 그 친구를 들쳐 업었지만, 이내 그의 골이 논바닥으로 쏟아져 내린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자세히 보니 그는 뒷통수가 완전히 날아가고 없었다. 빌어먹을! 그 친구를 도로 내려놓고 다시 한참을 달리다 보니, 드디어 버바가 눈에 띠었다. 그는 가슴에 두 방을 맞은 모양이었다.
"버바, 괜찮을 거야. 내 말 들려? 우린 새우잡이 배를 타야 되잖아." 나는 버바를 업고 진지로 돌아와 그를 땅바닥에 내려놓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버바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와 고름이 내 군복에 잔뜩 묻어 있었다. 버바는 나를 올려다보며 간신히 말했다.
"제기랄! 포레스트, 왜 이래야 하지?"
글쎄, 내가 뭐라고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버바가 다시 힘겹게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 하모니카 좀 불어줄 수 있겠어?"
나는 하모니카를 꺼내 아무 곡이나 불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버바는 "포레스트, "스와니강' 좀 불어줄 수 있어? " 하고 물었다. 나는 "물론이지, 버바" 하고 대답한 다음, 얼른 하모니카를 불기 시작했다, 그동안에도 빗방울만큼이나 많은 총탄이 날아오고 있었고, 나는 내가 기관총을 쏘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빌어먹을, 나는 계속해서 스와니강을 불었다.
나는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어느새 비가 그치고 하늘이 핑크빛으로 붉게 물들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의 얼굴이 귀신처럼 보였다. 무슨 까닭인지는 모르지만 베트콩이 갑자기 사격을 멈추었고, 그래서 우리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나는 의무병이 버바에게 주사를 놓으며 최선을 다해 치료하겠다고 약속하는 동안, 버바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몇 번이고 스와니강을 되풀이해서 불었다. 버바는 내 다리를 꼭 붙잡고 있었는데, 그의 눈에는 짙은 구름이 잔뜩 끼어있었고, 섬뜩한 핑크빛 하늘이 그의 얼굴에서 모든 색깔을 다 빼앗아가 버린 것 같았다. 버바가 뭐라고 말을 하려 했다. 나는 귀를 그의 입에다 바짝 갖다 댔지만,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의무병에게 물어보았다.
"뭐라고 하는지 들었나?"
의무병이 대답했다.
"집. '집'이라고 했어."
버바, 그는 죽었다.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것밖에 없다.
그날 밤은 내 생애 최악의 시간이었다. 폭풍우가 다시 몰아치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원군이 도착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적군과의 거리가 어찌나 가까웠던지, 우리는 베트콩들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지경이었다. 1소대는 한때 정말로 백병전을 벌이기도 했다. 새벽녘이 되자 아군 비행기가 나타나 네이팜탄을 투하하기 시작했는데, 그것들이 바로 우리 옆에 떨어졌기 때문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더러는 불길에 휩싸인 친구들도 있었고, 다들 공터로 뛰어나와 겁에 질린 채 마구 욕을 퍼부어댔다. 숲에 불이 붙었지만, 비 때문에 금방 꺼져버리기도 했다.
그 와중에 나도 총알을 한 방 맞았다. 운이 좋았던 모양인지 총알은 엉덩이에 박혔는데, 나는 언제 맞았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끔찍한 상황에 처해 있었고, 그 뒤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도 자세히 생각나지 않는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었다. 나는 기관총을 내려 놓고 더 이상 쏘지 않았다. 그리고는 나무 뒤로 기어가 동그랗게 몸을 웅크리고 울기 시작했다. 버바도 가버렸고, 새우잡이 배도 사라졌다. 버바는 하나밖에 없는 내 친구였다. 어쩌면 제니 커란과도 친구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것도 이제 옛날 일이 되어 버렸다. 엄마만 아니었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었을지도 모른다. 새파랗게 젊은 나이니 뭐니 하는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한참 후, 지원 병력을 실은 헬리콥터가 도착했고, 베트콩들은 네이팜탄 때문에 겁을 먹은 모양이었다. 같은 편한테 그렇게 무자비하게 네이팜탄을 퍼부을 수 있다면, 자기네들한테는 말해 무엇 하랴 싶었을 것이다. 그들이 부상병들을 데리고 사라지자, 머리칼은 온통 헝클어지고 군복도 여기저기 타다 만 자국이 나 있어서, 마치 포탄 대신 대포로 쏘아진 듯한 모습의 크란쯔 상사가 나타났다.
"검프, 어제는 정말 잘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담배 한 대 피우겠느냐고 물었다. 내가 담배를 안 피운다고 대답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검프, 넌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놈들 중에 제일 똑똑한 놈은 아니지만, 너야말로 진짜 군인 같은 놈이야. 너 같은 놈 백 명만 있으면 좋겠다."
그가 아프냐고 물어서 괜찮다고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그가 다시 말했다.
"검프, 넌 집으로 돌아가게 될 거야. 너도 알고 있지? "
나는 크란쯔 상사에게 버바는 어디에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이상하다는 듯 나를 바라보며, "죽었잖아." 하고 대답했다. 나는 내가 버바와 같은 헬리콥터를 탈 수 있느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크란쯔 상사는 그건 안 된다고 대답했다. 버바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제일 나중에 후송된다는 것이었다. 의무병이 놔준 큼직한 주사를 한 대 맞고 나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나는 다시금 크란쯔 상사의 팔목을 붙잡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부탁 같은 건 해본 적이 없지만 지금은 한 가지 해야겠어요. 버바를 상사님 손으로 직접 헬리콥터에 실어서,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시겠어요?"
"그야 물론이지, 검프."
그가 대답했다.
"우린 그 친구를 일등석에 태워 고향으로 데려갈 거야."
7
나는 다닝의 병원에서 두 달 가까이를 지냈다. 말이 병원이지 사실은 별로 병원답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나마 우리는 모기장이 쳐진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었고 하루에 두 번씩 청소를 하는 마룻바닥이 있었으며, 따라서 이전보다는 훨씬 나은 삶을 누렸다고 할 수 있다. 그 병원에는 나보다 훨씬 더 심한 상처를 입은 친구들도 많았다. 팔과 다리와 손과 발과 또 다른 어디어디가 부러진 친구들도 있었고, 배와 가슴과 얼굴에 총을 맞은 친구들도 있었다. 밤이면 그들이 내지르는 고함과 비명, 엄마를 부르는 소리 등이 합쳐져 흡사 고문실을 연상케 했다.
내 바로 옆 침대에는 댄이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자기가 타고 있던 탱크가 폭발해 버렸다고 했다. 온몸에 화상을 입었고 여기저기 고무관이 끼워진 상태였지만, 나는 단 한 번도 그 친구가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지 못했다. 굉장히 낮고 조용한 목소리로 차분하게 이야기하는 그와 하루 이틀이 지나자 나는 친구가 되었다. 댄은 코네티컷주 출신인데, 육군에 끌려오기 전에는 역사 교사로 학생들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는 머리가 좋았기 때문에 육군에서도 그를 장교 학교에 보내 중위 계급장을 달아 주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중위들은 나만큼이나 멍청한 녀석들이었지만, 댄만은 달랐다. 적어도 그는 우리가 왜 여기까지 와 있는지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우리는 정당한 이유를 위해 잘못된 일을 하고 있거나 혹은 반대로 잘못된 이유 때문에 정당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쪽이건 우리가 옳은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했다, 결국 그는 탱크를 모는 장교가 되었는데, 대부분의 지형이 늪이나 산으로 이루어져 있어 탱크를 몰고 다닐 데가 별로 없는 곳에서 그런 일을 해야 하는 것을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나는 댄에게 버바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그는 아주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이 전쟁이 끝날때까지 버바 같은 젊은이가 수없이 생겨날 거라고 한숨을 지었다.
한 1주일 정도가 지나자 나는 비교적 회복이 빠른 환자들이 수용되는 다른 병실로 옮겨졌다. 하지만 매일같이 중환자실의 댄을 찾아가 한동안 그의 침대 옆에 앉아 있곤 했다. 가끔 내가 하모니카를 불어주면 댄은 무척 좋아했다. 엄마가 오래 전에 보냈다는 허쉬 초콜릿 한 상자가 마침내 병원까지 나를 찾아왔는데, 나는 그 초콜렛을 댄과 나눠 먹고 싶었다. 하지만 댄은 고무관을 통해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는 처지였다.
나는 그때 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눈 것이 내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바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따라서 내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는 따위는 생각도 해보지 못했다, 하지만 댄의 철학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이 우주를 지배하는 자연적인 법칙에 따라 통제된다고 하는 것이었다. 어떤 주제에 대한 그의 관점은 굉장히 복잡했지만, 그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사물을 바라보는 나의 관점 역시 조금씩 변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나에게 일어난 일들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 가지 일이 벌어지면, 또 다른 일이 벌어지고, 그다음에는 또 다른 일...... 뭐 그런 식이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것들이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댄은 그 모든 것이 일종의 법칙의 일부라고 했으며, 우리가 좀더 바람직하게 살아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어떻게 하면 그 법칙에 순응할 수 있을 것인가를 알아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이야기를 듣고 보니 나도 나에게 벌어진 일들의 의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어쨌건 그 이후 나는 빠른 속도로 건강을 회복했고, 엉덩이의 상처도 멋지게 아물었다. 의사는 나더러 '완벽한 궁뎅이'를 가졌다고 했다.
병원에는 휴게실이 하나 있었는데, 달리 할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나는 심심하면 그 휴게실을 어슬렁거리곤 했다. 어느 날 거기에 가보니 두 녀석이 탁구를 치고 있었다. 잠깐 구경을 하고 있던 나는 나도 한 번 쳐보면 안 되겠냐고 물었다. 그들은 나를 끼워 주었고, 처음에는 몇 점을 잃었지만 얼마 안 가 그 두 녀석을 모두 이겨 버렸다.
"덩치는 커다란 녀석이 제법 빠른데?"
한 녀석이 나에게 말했고,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나는 매일 조금씩 탁구를 쳤고, 믿거나 말거나 나중에는 꽤 잘 치게 되었다.
오후에는 댄을 만나러 가곤 했지만 아침에는 할 일이 별로 없었다. 병원 측에서는 가고 싶으면 외출을 나가도 좋다고 했는데, 매일 나 같은 친구들을 싣고 마을로 나가는 버스가 다녔다. 다른 친구들은 다낭 시내를 돌아다니며 가게에서 이것저것 쇼핑도 하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필요한 것이 없어서 그냥 구경만 하며 돌아다녔다. 부둣가에는 베트남 사람들이 생선이나 새우 따위를 파는 조그만 시장이 있었는데, 어느 날 나는 그곳에서 새우를 좀 사서 병원으로 가지고 왔다. 병원 요리사가 그걸 익혀 주었는데, 맛이 아주 좋았다.
나는 댄도 그 새우를 좀 먹을 수 있었으면 했는데, 댄은 내가 그걸 잘게 으깨서 고무관 속에 집어넣으면 되지 않겠느냐며 간호사에게 그래도 되는지 물어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가 농담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날 밤, 나는 침대에 누워 버바를 생각했다, 그가 이 새우를 먹었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지에 대해서, 그리고 우리의 새우잡이 배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았다. 아, 불쌍한 버바. 그다음 날 나는 댄에게 버바가 왜 죽어야 했는지, 도대체 어떤 망할 놈의 자연법칙 때문에 버바가 죽어야 했는지를 물어보았다. 댄은 한동안 내 질문을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포레스트, 이 세상의 모든 법칙들이 다 우리 마음에 드는 것만 있는 건 아냐. 밀림에서 호랑이가 원숭이를 잡아먹었다고 할 때, 원숭이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호랑이에게는 잘된 일이잖아. 모든 게 그런 식이야."
며칠 후 나는 다시 다낭의 그 시장으로 나갔다. 조그만 베트남 사람이 새우를 잔뜩 갖다 놓고 팔고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새우를 어디서 잡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는 뭐라고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영어를 몰랐던 것이다. 내가 마치 인디언처럼 몸짓 발짓으로 한참을 물어보자, 드디어 내 말을 알아들은 그는 자기를 따라오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처음에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었는데, 그가 밝은 미소를 짓고 있어서 나도 웃어 보였다.
바닷가에 늘어선 배들을 지나 한 1마일쯤 걷고 나니, 물이 고여 있는 조그만 웅덩이가 하나 나타났다. 그 웅덩이에는 밀물 때마다 바닷물이 흘러들어왔는데, 나를 데려간 베트남 사람은 그곳에다 철사로 된 조그만 그물을 쳐두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곳에서 새우를 기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그물을 붙잡고 손으로 물을 한 웅큼 퍼올리자, 거기에만 열 마리도 넘는 새우가 파닥거리고 있었다. 그가 조그만 봉지에 새우를 담아 주어서 나도 그에게 허쉬 초콜릿을 좀 나눠 주었다. 그는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날 밤 야전군 본부 근처에 야외극장이 설치되었다. 구경을 가보았더니 앞줄에 앉아 있던 몇몇 녀석들이 대판 싸움을 벌이는 바람에 영화는 끝까지 상영되지도 못하고 끝나 버렸다. 병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있는데, 갑자기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다. 제대하고 나서 할 일이 생각난 것이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웅덩이가 있는지 찾아봐서 새우를 기르기로 마음먹었다. 버바가 없으니 새우잡이 배를 구할 수 없을 지는 모르지만, 웅덩이와 그물만 있으면 얼마든지 새우를 기를 수 있다. 틀림없이 버바도 좋아할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매일 아침마다 그 조그만 베트남 사람이 새우를 기르는 웅덩이를 찾아가 보곤 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미스터 치였다. 내가 웅덩이 옆에 앉아 있으면, 그는 어떻게 새우를 기르는지를 보여주었다. 그는 조그만 뜰채로 아기 새우 몇 마리를 잡아서 자기 웅덩이 속에 집어넣는다. 그런 다음 밀물이 들어올 때 음식 찌꺼기를 비롯한 이런저런 잡동사니를 웅덩이 속에 뿌린다. 그러면 플랑크톤인가 뭔가 하는 조그만 벌레들이 자라게 되고, 새우는 그것들을 잡아먹으며 점점 더 크고 뚱뚱해지는 것이다. 너무나 간단해서 아이큐가 25만 넘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며칠 후 야전군 본부에서 제법 높은 계급장을 단 사람 몇이서 나를 찾아와서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검프 일등병, 자네는 지극히 영웅적인 활약을 펼친 공로로 컨그레셔널 명예 훈장을 받게 되었다. 자네는 내일 모레 미국으로 돌아가서 미합중국 대통령 각하로부터 직접 훈장을 수여 받게 될 것이다."
그때는 내가 아직 침대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이른 아침이어서, 막 화장실에나 갈까 생각하고 있는 참이었다. 하지만 그 높은 분들은 내가 뭐라고 대답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눈치였다. 나는 당장이라도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았지만 그냥 "고맙습니다" 라고만 말한 뒤 입을 다물어 버렸다. 아무래도 그게 자연법칙에 순응하는 길인 것 같았다.
그들이 가고 난 다음 나는 댄을 만나러 중환자실로 갔다. 하지만 내가 갔을 때, 그의 침대는 비어 있었고 매트리스는 단정하게 접혀 있었다. 순간적으로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군의관을 만나러 뛰어가 보았지만, 마침 그는 자기 자리에 있지 않았다. 대신 복도에서 간호사 한 사람을 만나서 물어보았더니, 그냥 "갔어요."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다시금 "어디로 갔단 말입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녀는 "몰라요, 그가 떠날 때는 내 근무 시간이 아니었거든요." 하고 대답했다. 수간호사를 찾아가 다시 물어보았더니, 그녀는 댄을 좀 더 잘 치료하기 위해 미국으로 후송시켰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가 괜찮으냐고 다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럼요. 양쪽 허파에 모두 구멍이 뚫리고, 장이 파열되고, 척추가 부러지고 한쪽 발이 절단되고, 다른 쪽은 다리가 절단되고, 온몸의 절반에 3도 화상을 입은 상태를 괜찮다고 말할 수 있다면 괜찮은 거죠 뭐."
나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한 뒤 그곳을 나왔다.
나는 그날 오후에는 댄에 대한 걱정 때문에 탁구도 치지 않았다. 어쩌면 그가 벌써 죽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먼저 유족에게 그런 사실을 알려야 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아무도 말해주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에 잠겨 있는 나는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혀 정처 없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돌맹이와 깡통 나부랭이를 걷어찼다.
내가 병실로 돌아왔을 때, 침대 위에는 우여곡절 끝에 여기까지 나를 찾아온 편지 몇 통이 놓여 있었다. 엄마가 보낸 편지에는 우리 집에 불이 나서 모든 것이 홀랑 타버렸다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엄마는 보험 같은 것도 가입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천상 구빈원으로 들어가야 될 것 같다고 했다. 미스 프렌치가 고양이에게 목욕을 시킨 다음 헤어드라이어로 고양이 털을 말려 주다가, 고양이와 드라이어에 한꺼번에 불이 붙어서 결국 집 전체가 고스란히 타버렸다는 것이다. 따라서 엄마는 이제부터 답장을 '가난한 자매들의 집'이라는 구빈원으로 보내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나는 수많은 눈물들이 우리의 앞날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 앞으로 배달된 또 한 통의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존경하는 검프 씨, 귀하는 최신형 폰티악 GTO 자동차를 선물 받을 분으로 당첨되셨습니다. 동봉한 엽서를 통해,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는 백과사전 한 질과 매년 발행되는 최신 연감을 귀하의 사망 시까지 매년 75달러의 비용으로 구입하겠다고 약속하시면, 당장 자동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그 편지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나 같은 바보에게 백과사전이 무슨 소용이며, 더군다나 나는 운전도 할 줄 모르지 않는가. 그러나 세 번째 편지는 그런 잡동사니가 아니었다. 발신인 란에 '매사추세츠주 캠브리지 제니 커란. 일반우편' 이라고 씌여 있는 것을 본 순간, 나는 손이 떨려서 봉투를 열기까지 한참 시간이 걸릴 지경이었다.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포레스트에게. 우리 엄마가 네 편지를 너의 엄마에게서 건네받아서 나에게 전해 주셨어. 네가 그 끔찍하고 부도덕한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니 정말 안됐더구나'
그녀는 이곳에서 무참한 살육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비록 너로서는 어쩔 수 없이, 본의 아니게, 명령을 수행할 수밖에 없겠지만 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낄 테지.'
가만히 읽어 보니 그녀는 깨끗한 옷이나 신선한 음식을 구경할 수 없기 때문에 끔찍하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틀 동안이나 장교의 똥덩어리 속에 얼굴을 묻고 엎드려 있어야 했다.'라고 편지에 쓴 것을 오해한 것 같았다.
"너한테 그토록 가혹한 일을 하라고 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그 글을 읽으며 상황을 좀 더 잘 설명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건 제니의 글은 계속 이어졌다.
'우리는 그 끔찍하고 비도덕적인 전쟁을 중단시키기 위해 돼지 같은 국수주의자들에게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를 조직하고 있어.'
그녀는 그 문제에 대해 한 페이지 이상을 장황하게 늘어놓았지만, 나로서는 그저 똑같은 소리만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나는 대단히 신중하게 그 편지를 읽었다. 그녀의 손으로 쓰여진 글씨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쿵쾅거릴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넌 그래도 버바를 만났겠지.'
마지막에 가서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렇게 비참한 상황에서도 친구를 만났으니 얼마나 기쁠까 생각해 본단다.'
제니는 버바에게 꼭 안부를 전해 달라며 편지를 마쳤지만, '추신'이라고 쓰고는 자기가 하버드 대학 근처의 어떤 커피숍에서 일주일에 이틀씩 연주를 하는 조그만 밴드에서 연주를 하며 조금씩 돈을 벌고 있으니 혹시 지나가는 길이 있으면 꼭 들르라고 덧붙였다. 밴드의 이름은 '깨어진 달걀'이라고 했다. 그때부터 나는 하버드 대학 근처를 서성거릴 핑곗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날 밤, 나는 조국으로 돌아가 미합중국 대통령에게서 명예 훈장을 수여 받기 위해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옷과 치솔, 그리고 병원에서 지급해준 면도기를 빼고는 챙기고 말고 할 짐도 없었다. 다른 짐은 모두 프레이쿠의 기지에 놔두고 왔던 것이다. 그때 야전군 본부에서 파견된 잘생긴 육군 중령 한 사람이 나를 찾아와서는, "그따위 잡동사니들은 다 잊어버려. 오늘 밤 우리는 사이공의 양복쟁이 20명을 동원해서 네가 입을 군복을 맞추고 있어. 네가 파자마 차림으로 대통령을 만나도록 할 수는 없잖아."
그 중령은 워싱턴까지 나와 동행하며 내가 먹을 음식, 내가 묵을 숙소, 내가 탈 차량 등을 돌봐 준다고 했다. 물론 대통령을 만나서 어떻게 처신할지도 가르쳐준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구치 중령이었다.
그날 밤 나는 야전군 본부 중대에서 온 친구와 마지막 탁구 시합을 벌였다. 그는 육군 탁구 대회인가 뭔가 하는 데서 우승을 했다는 친구였는데, 자기 라켓을 가죽 케이스 속에 넣어서 항상 가지고 다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려 하지 않는 등 어딘지 태도가 좀 이상했다. 그는 나에게 형편없이 깨진 다음, 습도가 높아서 탁구공이 제대로 튀지를 않는다고 중얼거리며 자기 라켓을 챙겨 들고 가버렸다. 하지만 그가 가져온 탁구공은 그냥 놔두고 갔는데, 덕분에 앞으로 병원 휴게실에서 탁구공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떠나야 할 아침이 밝자, 간호사 한 사람이 내 이름이 적힌 편지 봉투를 하나 건네주었다. 열어 보니, 댄이 남긴 편지였다. 정말로 아직 살아 있는 모양이었다.
포레스트에게.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만날 시간이 없어서 무척 아쉬웠어. 의사들이 갑자기 결정을 내리는 바람에 영문도 모르고 이 병원에서 끌려나가지만, 의사들에게 부탁해서 간신히 너한테 이 편지를 쓸 시간을 허락받았어.
너는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나에게 너무나 잘해 주었거든. 포레스트, 나는 네가 네 인생에 아주 중요한 영향을 미칠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혹은 너를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갈 사건이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지. 너는 이 기회를 잘 포착해야 돼. 절대로 그냥 흘려보내서는 안 돼.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네 눈에는 항상 조그만 불길이 빛나고 있었어. 특히 네가 미소를 지을 때면 그 불은 더욱 밝게 빛나곤 했지. 그때마다 나는 생각하고, 창조하고, 또 존재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거의 천재에 가까운 능력을 발견하곤 했어.
친구, 이 전쟁은 결코 너를 위한 것이 아니야. 물론 나를 위한 것도 아니지. 나는 머지않아 네가 제자리를 찾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때 네가 무얼 할 것이냐 라는 거지. 나는 네가 바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어쩌면 바보들의 판단 기준으로는 네 능력이 모자란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지만 포레스트, 나는 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타고 있는 호기심의 불길을 보았어, 포레스트, 운명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너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야 해. 어두운 것, 더러운 것과는 가차 없이 맞서 싸우고,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면 안 돼,
너는 정말 좋은 놈이야, 포레스트. 너는 너무나도 커다란 가슴을 가진 친구야.
--- 너의 친구, 댄
8
나는 댄의 편지를 열 번인가 스무 번쯤 읽어 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들어있었다. 그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는 대충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알아차릴 수 없는 단어나 문장 같은 것들이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구치 중령이 와서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임을 알려 주었다. 우리는 먼저 사이공으로 가서 20명의 베트남 양복쟁이들이 밤새 만든 새 군복으로 갈아입고, 거기서 곧장 미국으로 날아가게 된다고 했다. 나는 구치 중령에게 댄의 편지를 보여주며 그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한참 편지를 들여다 보더니, 내게 돌려주며 이렇게 말했다.
"글쎄다. 검프. 내가 보기엔 대통령이 너에게 훈장을 걸어줄 때 까불지 말라는 뜻인 것 같은데?"
우리가 비행기를 타고 태평양 상공을 날으는 동안, 구치 중령은 우리가 미국에 도착하면 국민적인 영웅 대접을 받게 될 거라고 말했다. 사람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퍼레이드를 지켜볼 것이고, 나는 내 돈을 주고는 음료수 한 잔이나 밥 한 끼 사 먹을 수 없을 거라고도 했다. 사람들이 서로 먼저 나에게 사주려고 아우성을 칠 것이기 때문에... 그는 또 육군에서도 나를 데리고 전국을 순회하며 신병 모집이나 공채 판매 등의 행사를 벌일 것이라고도 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는 '임금 대접'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는데, 그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우리가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했을 때, 수많은 군중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온갖 깃발과 플래카드가 나부끼고 있는 비행기 창밖을 내다보며, 구치 중령은 자기도 브라스 밴드까지 나와 우리를 맞아줄 줄은 몰랐다고 했다. 정말이지 내가 봐도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있었다. 우리가 비행기에서 내렸을 때 군중들은 일제히 우리를 향해 뭐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가 집어던진 커다란 토마토 하나가 구치 중령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다. 그다음부터는 문자 그대로 난장판이 벌어졌다. 경찰이 몇명 있기는 했지만 군중들은 그들을 밀치고 우리에게 달려오며 온갖 고함과 욕을 퍼부어대는 것이었다. 시커멓게 턱수염을 기르는 등 가지각색의 모습을 한 2천 명 가량의 군중이 일시에 덤벼드는 것을 보니, 나는 버바가 목숨을 잃은 논두렁에서 느낀 것만큼이나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구치 중령은 얼굴에서 토마토를 닦아내며 근엄하게 행동하려고 애를 썼지만, 아무리 그래 봤자 우리 둘이서 2천 명이나 되는 군중을, 그것도 무기도 없이 상대하기란 도저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재빨리 도망을 치기 시작했다. 군중들은 마치 무언가 쫓아갈 대상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듯, 뭐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피켓을 휘두르기도 하면서 득달같이 나를 쫓아오기 시작했다. 나는 툭하면 사람들을 피해 도망쳐다니던 어린 시절의 일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그 넓은 공항 활주로를 거의 한 바퀴 돈 다음, 다시 터미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오렌지 볼에서 네브라스카의 얼간이들에게 쫓겨 다닐 때보다 훨씬 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급기야 나는 화장실 안으로 숨어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변기에 앉아 군중들이 집으로 돌아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약 한 시간가량이 지났다. 내가 로비로 나와 보니, 구치 중령이 한 무더기의 헌병과 경찰에게 둘러싸인 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나를 발견한 그는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며, "빨리 와, 검프!" 하고 소리를 질렀다.
"우리를 워싱턴까지 태워갈 비행기가 기다리고 있어."
워싱턴으로 가는 비행기에는 민간인들도 많이 타고 있었다, 구치 중령과 나는 앞쪽에 좌석을 차지하고 앉았는데, 비행기가 이륙도 하기 전에 근처에 앉아 있던 다른 사람들이 하나둘 뒤쪽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었다. 구치 중령에게 왜 저러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아마 우리에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모양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워싱턴에 도착하면 상황이 훨씬 나아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이기를 빌었다. 나같은 저능아도 지금까지는 구치 중령의 말이 하나도 들어맞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워싱턴에 다가가자. 나는 도저히 흥분을 가눌 길이 없었다, 워싱턴 기념관과 국회의사당을 비롯하여 사진으로만 보았던 온갖 건물들이 비행기 창문 밖으로 한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비행기에서 내린 우리는 육군에서 보내준 승용차를 타고 아주 근사한 호텔로 안내되었다. 그 호텔에는 엘리베이터도 있었고, 짐을 날라주는 심부름꾼도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타 본 적이 없었다. 각자 방을 배정받은 다음, 구치 중령이 내 방으로 건너오더니 아래층에 있는 조그만 바에 내려가서 한잔하자고 했다. 옛날에 한번 가본 적이 있는데, 예쁜 여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이곳 동부 지방은 캘리포니아보다 훨씬 문화 수준이 높은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아까와는 사정이 다를 거라고 했다. 하지만 그 말 역시 빗나가고 말았다.
테이블에 앉은 후 구치 중령은 내가 마실 맥주와 자기가 마실 이름도 모를 술을 주문한 다음, 내일 대통령이 훈장을 걸어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구치 중령이 한참 설명을 하고 있는데, 예쁜 아가씨 하나가 우리 테이블로 다가오는 것이었다. 구치 중령은 그녀를 올려다보더니, 웨이터레스인 줄 알고 술을 좀 더 갖다 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녀는 우리를 빤히 내려다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당신들처럼 음탕한 개자식들에게는 술을 갖다 주기는커녕 침도 뱉어줄 수 없어."
그러더니 그녀는 다시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이봐, 덩치 큰 얼간이, 오늘은 불쌍한 아기들을 몇 명이나 죽였지?"
우리는 그 일이 있은 다음 얼른 객실로 올라왔다. 그리고 룸서비스로 맥주를 시켜 마시며 구치 중령의 설명을 마저 들어야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대통령이 살고 있는 백악관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넓직한 잔디밭과 모빌 시청만큼이나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아주 아름다운 집이었다. 육군 군복을 입은 사람들이 연신 나에게 악수를 청하며 훌륭한 군인이니 뭐니 떠들어 대는 사이에, 드디어 훈장을 받을 시간이 되었다.
대통령은 텍사스나 그 근처 지방의 말투를 쓰는 덩치가 큰 아저씨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행사장으로 모여들어 있었다. 그중에는 하녀나 청소부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는데, 그들은 이 멋진 장미 정원을 가꾸는 사람들 같았다.
육군 소속의 장군 하나가 뭐라고 연설을 하기 시작하자, 모두들 신중한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아침을 먹지 못해서 너무나 배가 고팠고, 그래서 그의 연설을 귀담아들을 수가 없었다. 이윽고 한참만에야 그 사람의 연설이 끝나고 나자, 대통령이 나에게 다가와 상자 안에 들어있던 훈장을 꺼내 내 가슴에 달아주었다. 그런 다음 그는 나에게 악수를 청했고, 다른 사람들은 사진을 찍거나 박수를 치는 등 난리를 피웠다. 나는 이제 다 끝났으니 그만 여기서 나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했지만, 대통령이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재미있다는 듯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한참 후 그가 말했다.
"이보게, 지금 이 꼬르륵 하는 소리가 자네 배에서 나는 건가?"
나는 구치 중령을 힐끗 돌아보았지만, 그는 빳빳한 자세로 눈알을 위로 치켜뜨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아, 예......" 하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대통령은 "저런, 이리 오게. 가서 뭘 좀 먹자구."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을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간 나는 조그맣고 둥그스럼하게 생긴 방으로 들어갔다. 대통령은 웨이터 같은 차림을 한 친구에게 내가 먹을 아침 식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방안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었다.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그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베트콩과 싸우고 있는지 아느냐, 군대에서 처우는 제대로 해주더냐 하는 등의 질문이었다. 내가 그저 고개만 몇 번 끄덕이고 말았더니, 잠시 후 대통령은 질문을 그만두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흐른 다음, 대통령이 물었다.
"자네 식사가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텔리비전이나 좀 보겠나?"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고, 대통령은 자기 책상 뒤에 있던 텔레비전을 켰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비버리 시골사람들' 이라는 프로그램을 보았다. 대통령은 무척 재미있어하며 자기는 매일 이 프로그램을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제트로라는 등장인물과 닮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아침을 먹고 나자 대통령은 백악관 구경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나는 "예." 하고 대답했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갔다, 우리가 나가자 사진 기자니 뭐니 하는 작자들이 와르르 몰려들어 우리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대통령은 조그만 벤치에 앉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보게, 자네 부상을 입었다고 하던데, 사실인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이걸 좀 보게."
하며 자기 셔츠를 걷어올리더니 배에 나있는 커다란 흉터를 보여주었다. 무슨 작전에 나갔다 입은 상처라고 했다. 이어서 그는,
"그래, 자네는 어디를 다쳤나?"
하고 물었다. 나는 바지를 내리고 내 상처를 보여주었다. 그랬더니 갑자기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마구 사진을 찍어대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급하게 뛰어오다가 자빠지기도 했다. 나는 얼른 구치 중령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날 오후 호텔로 돌아온 다음, 갑자기 구치 중령이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더니 신문을 한 웅큼 손에 들고 미친 듯이 씩씩거리며 뛰어 들어왔다. 그는 뭐라고 고함을 지르기도 하고 나에게 욕을 퍼붓기도 했는데, 그가 침대위에 집어던진 신문의 제1면에는 내 엉덩이가 대문짝만 하게 나와 있었다. 어떤 신문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려고 내 눈 위에다 까만 막대기를 붙여 놓기도 했는데, 그것은 무슨 더러운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나 하는 짓이었다. 그 사진에는 '장미 정원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는 대통령과 전쟁 영웅'이라는 사진 설명이 붙어 있었다.
"검프, 이 얼간아!"
구치 중령이 말했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지? 난 이제 망했어. 진급이고 뭐고 다 끝장이라구."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잘 모르기는 하지만,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렇게 왕창 스타일을 구긴 다음에도 높은 양반들은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육군 당국은 나를 신병 모집 순회강연에 내보내기로 결정했고, 구치 중령은 사람을 시켜서 내가 낭독할 연설문을 작성해왔다.
연설문은 대단히 길었지만, '위기의 시대에는 군에 입대하여 조국에 봉사하는 것보다 더 영광스럽고 애국적인 길은 없다'라는 등의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문제는 아무리 애를 써도 내가 그 연설문을 외울 수가 없다는 데 있었다. 머릿속에서는 줄줄 흘러나오는데, 정작 입으로 말을 하려고 하면 서로 뒤엉켜서 엉망진창이 되어 버리는 것이었다. 구치 중령은 안달이 나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는 매일같이 나를 자정이 넘도록 잠도 못 자게 하며 그 연설문을 외우라고 닥달했지만, 결국에는 그도 손을 들고 말았다.
"이래 가지고는 아무래도 안 되겠군."
이윽고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검프, 좋은 생각이 있어. 내가 이 연설문을 좀 더 짧게 줄여볼 테니까, 너는 조금만 외워도 되도록 해보자구."
그래서 그는 연설문을 줄이고 줄이고 또 줄였다. 드디어 나는 바보처럼 보이지 않고도 연설문을 만족스러울 만큼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내가 할 말은 "육군에 입대하여 여러분의 자유를 위해 싸우십시오."라는 것뿐이었으니까.
우리는 어느 조그만 대학에서 첫 번째 강연회를 열었다. 커다란 강당에는 연단이 마련되었고, 취재 기자와 사진 기자들이 모여들었다. 먼저 구치 중령이 일어나서. 원래는 내가 하기로 되어있던 연설을 대신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최근 콘그레셔널 명예 훈장을 받은 포레스트 검프 일등병을 이 자리에 모셔서 몇말씀 들어보시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나에게 앞으로 나오라는 몸짓을 해보였다. 청중 몇 사람이 치는 박수가 그치자, 나는 고개를 앞으로 쭉 내민 다음 "육군에 입대하여 여러분의 자유를 위해 싸우십시오." 하고 말했다.
청중들은 내 입에서 무슨 소리가 몇 마디 더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분위기였지만, 나는 내가 하도록 되어있는 말을 다했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청중들은 멀뚱멀뚱 나를 쳐다보았고, 나도 그들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그때 갑자기 앞줄에 앉아 있던 한 친구가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전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합니까? "
나는 제일 먼저 마음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냥 내뱉었다.
"개똥 같은 거지요."
구치 중령이 벌떡 일어나더니 마이크를 빼앗으며 나를 밀쳐냈다. 하지만 이미 모든 기자들은 내가 한 말을 수첩에 휘갈겨 적고 있었고, 사진 기자들은 미친 듯이 사진을 찍고 있었으며, 청중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환호성을 질러대고 있었다. 나는 구치 중령에게 이끌려 그곳을 빠져나온 다음, 자동차를 타고 잽싸게 그 마을을 떠났다. 구치 중령은 나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자기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이따금 미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음을 짓곤 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가 어느 호텔에서 두 번째 강연을 준비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구치 중령에게 걸려온 전화였다. 누군지는 몰라도 상대방이 줄곧 이야기를 했고, 구치 중령은 열심히 듣고 있다가 "네, 알았습니다." 하고 말하곤 했는데, 중간중간 나를 노려보는 그의 눈초리가 무척 차갑게 느껴졌다. 이윽고 통화를 마친 그는 자기 구두만 뚫어지게 내려다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자, 검프, 이제 다 끝났어. 순회강연은 모두 취소됐어. 나는 아이슬랜드 기상국으로 발령이 났고, 자네가 어떻게 될 건지는 나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나는 구치 중령에게 콜라 한 잔만 마실 수 없겠느냐고 물어보았는데, 그는 한 1분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자기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며 이따금 미친 사람처럼 피식피식 웃음을 짓곤 했다.
그 뒤 그들은 나를 포트 딕스로 보내 스팀 히트 중대에 배치시켰다. 나는 하루 종일, 그리고 밤의 절반을 삽으로 보일러 속에 석탄을 퍼넣는 일을 해야 했다. 그래야 막사가 따뜻하게 유지된다는 것이었다. 그곳 중대장은 주변 일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성격인 것 같았는데, 내가 처음 도착했을 때 너는 앞으로 2년만 더 있으면 제대를 할 테니 그동안 말썽만 피우지 않으면 만사가 잘 될 거라고 말했다. 나도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다. 나는 엄마와 버바와 새우 장사와 하버드에 있다는 제니 커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이따금 탁구를 치기도 했다.
다음 해 어느 봄날이었다. 부대 내에서 탁구 대회가 개최되는데 우승자는 워싱턴으로 가서 전국 육군 탁구 대회에 출전 자격을 얻게 된다는 공고가 나붙었다. 나는 참가 신청서에 내 이름을 적어넣었는데, 나 말고 유일하게 대회에 참가한 친구는 전쟁터에서 손가락 몇 개가 날라가 버린 바람에 툭 하면 라켓을 떨어뜨리곤 했으므로 별로 힘들이지 않고 이길 수 있었다.
그다음 주, 나는 워싱턴으로 보내졌고, 부상병들이 시합을 구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월터 리드 병원에서 벌어진 토너먼트에 참가했다. 1회전과 2회전은 무난히 이겼는데, 3회전에서 만난 녀석이 요리조리 교묘하게 공을 깎아 치는 바람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 결국 나는 세트스코어 4대 2까지 뒤져서 아무래도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갑자기 내 눈에 휠체어를 타고 시합을 지켜보고 있는 한 부상병의 모습이 들어왔다. 바로 다낭의 병원에서 헤어진 댄 중위가 아니겠는가! 한 세트가 끝나면 잠시 휴식 시간이 있는데, 그때 나는 얼른 댄에게 달려갔다. 그는 두 다리가 모두 절단된 상태였다.
"포레스트, 다리는 잃었지만 그것 말고는 다 멀쩡해." 댄이 말했다.
얼굴을 칭칭 감고 있던 붕대도 사라져있었다. 하지만 탱크에 불이 붙으면서 얼굴 전체에 화상을 입어 흉칙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또 휠체어에 달린 기둥에는 아직도 무슨 약병이 매달려 있었고, 그것이 고무관을 통해 댄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
"의사들은 이게 나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야."
댄은 그렇게 말했다. 그는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포레스트, 나는 네가 스스로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어. 네가 탁구 치는 모습을 쭉 지켜봤는데, 너는 틀림 없이 저 친구를 이길 수 있어. 왜냐하면 너는 탁구의 귀신이기 때문이고, 1등을 하도록 운명 지워져 있기 때문이야."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경기에 임했다. 그때부터 나는 단 한 점도 내주지 않고 그 시합에서 승리를 거두었고, 이어서 결승전에 진출했으며, 결국은 우승을 차지했다.
나는 그곳에서 사흘을 묵었는데, 그동안 댄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가끔은 댄이 햇빛을 볼 수 있도록 그의 휠체어를 밀며 정원을 산책하기도 했고, 밤에는 옛날에 버바를 위해 그랬던 것처럼 댄을 위해 하모니카도 불어 주었다. 물론 댄도 역사와 철학 등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어느 날 그는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이야기와 그것이 우주의 개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설명해 주었다. 나는 그의 설명을 들으며 종이를 한 장 꺼내 상대성 이론의 공식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 보았다. 대학 시절 중간 광학 시간에 배운 기억이 났기 때문이었다. 댄은 그걸 보더니,
"포레스트, 너는 끊임 없이 나를 놀라게 하는군."
하고 말했다.
내가 다시 포트 딕스로 돌아와 스팀 히트 중대에서 열심히 석탄을 삽질하고 있던 어느 날, 국방성에서 나왔다는 한 친구가 가슴에는 훈장을, 얼굴에는 미소를 가득 띄운 채 나를 찾아오더니 이렇게 말했다.
"검프 일등병, 자네가 미합중국 탁구 대표 선수로 선발되었다는 사실을 알리게 되어 무척 기뻤네. 자네는 곧 중공으로 건너가 중국 사람들과 탁구 시합을 벌이게 될 거야. 이건 대단한 영광일세. 근 25년 동안 우리나라가 중국 사람들과 아무 교류가 없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건 이 세상의 다른 어떤 시합보다 중요한 탁구 시합인 셈이지. 단순한 탁구 시합이 아니라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는 중차대한 외교라는 사실을 명심하도록.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는 바보에 지나지 않는데, 그런 나에게 전 인류의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이 아닌가.
9.
나는 다시금 지구를 반 바퀴 돌아서 중국의 베이징에 도착했다. 대표팀의 다른 탁구 선수들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착하고 온순한 친구들이었고, 특히 나에게는 모두들 잘해 주었다. 중국 사람들 역시 아주 착해 보였는데, 겉보기에는 같은 동양인이지만 내가 베트남에서 보았던 사람들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옷차림이 깨끗하고 태도도 정중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차이점이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죽이려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미국 국무성에서는 우리가 중국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줄 감독관을 한 사람 딸려 보냈는데, 이 친구는 내가 만나본 사람들 중에서 가장 덜 괜찮은 작자였다. 그의 이름은 윌킨스였는데, 얍삽한 콧수염을 기르고 언제나 서류 가방을 들고 다녔으며, 틈만 나면 구두에 광이 나는지, 바지에 주름은 제대로 잡혀 있는지, 셔츠는 깨끗한지 등을 걱정하곤 했다. 아마 그 작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을 뱉어가며 자기 똥구멍에 광을 낼 것이 틀림없다. 윌킨스는 틈만 나면 나를 참견하곤 했다.
"검프, 중국 사람들이 자네한테 절을 하면, 자네도 같이 절을 해야 해. 검프, 자네는 사람들 앞에서 제대로 처신하는 법을 좀 배워야 돼. 검프, 바지에 그 얼룩은 뭐야? 검프, 자네 식탁 예절은 완전히 돼지 수준이군 그래."
마지막 언급은 어쩌면 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중국 사람들은 조그만 작대기 두 개로 음식을 집어 먹었는데, 나로서는 그걸로 음식을 입에까지 실어나르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내 옷이 온갖 음식 자국 때문에 얼룩져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중국 사람 치고 뚱뚱한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사람들도 이제 포크를 사용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건 우리는 중국 선수들과 탁구 시합을 했고, 그중에는 정말 실력이 뛰어난 친구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도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밤마다 거의 매일같이 저녁 만찬이다 음악회다 하며 우리를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어느 날 우리는 베이징 덕이라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우리가 그곳으로 가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내려왔을 때, 윌킨스가 또 꼬투리를 잡았다.
"검프, 자네 아무래도 방으로 올라가서 그 셔츠 좀 갈아입고 와야겠어. 꼭 음식 쟁반 던지기 대회에 나갔다 온 사람 같잖아."
그러면서 그는 나를 호텔 데스크로 데리고 가더니,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에게 중국어로 쪽지를 하나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는 나더러, 목적지가 베이징 덕이라고 적은 그 쪽지를 택시 기사에게 보여주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먼저 갈 테니 택시 기사한테 그 쪽지를 보여주면 자넬 그곳으로 데려다줄 거야."
나는 윌킨스가 하는 말을 들으며 내 객실로 올라가 새 셔츠로 갈아입었다. 호텔 앞에서 택시를 집어 타고 한동안 달리다가, 문득 주머니를 뒤져보니 조금 전에 받은 쪽지가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 쪽지를 아까 입고 있던 지저분한 셔츠에 그냥 넣어두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택시는 시내 한복판으로 한참 들어와 있었고, 기사는 연신 나를 돌아보며 뭐라고 중얼거렸다. 나는 어디로 갈 거냐고 묻는 줄로 생각하고 몇 번이나 "베이징 덕, 베이징 덕"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택시 기사는 그결 못 알아듣는지 손을 내저으며 베이징 시내 관광을 시켜 주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 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고, 덕분에 나는 베이징 구경을 잘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기사의 어깨를 톡톡 두드린 다음, 그가 돌아볼 때 다시 한번 '베이징 덕.'하고 말하며 오리 날개처럼 두 팔을 퍼득거려 보였다. 그러자 갑자기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짓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어디론가 차를 몰고 가는 것이었다. 그가 한 번씩 뒤를 돌아볼 때마다 나는 날개짓 시늉을 해 보였다. 다시 한 시간가량이 지나 그가 차를 세웠을 때, 창밖을 내다본 나는 그가 나를 공항으로 데려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제 시간은 이미 너무 늦어 버렸고, 그때까지 저녁도 못 먹은 나는 굶어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베이징 덕에 찾아가는 걸 포기한 나는 정부에서 나눠준 중국 돈을 기사에게 건네주고 차에서 내렸다. 기사는 거스름돈을 내준 다음 차를 몰고 가버렸다. 나는 식당을 찾아들어가 테이블에 앉기는 했지만, 마치 달나라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아가씨 한 사람이 다가와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살펴보며 메뉴판을 건네주었다. 하지만 글씨가 모두 중국어로 쓰여 있었기 때문에 한참 동안 망설이고 있던 나는 아무거나 하나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다행히도 음식은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다 먹고 나서 계산을 한 다음 거리로 나와 호텔로 돌아갈 길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몇 시간 동안 길거리를 헤매던 나를, 누군가가 붙잡더니 어디론가 데려가는 것이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내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덩치 큰 중국인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마치 옛날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나에게 담배를 권해가며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나는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간신히 그곳에서 풀려나왔다. 윌킨스가 감옥까지 나타나서 한 시간가량이나 이야기를 한 다음에야 그들은 나를 석방시켜준 것이다. 윌킨스는 미친 사람처럼 펄펄 뛰었다.
"검프, 그들은 너를 스파이로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몰라?"
윌킨스가 말했다.
"너의 이런 행동이 이번 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있어? 너 미쳤냐?"
나는 윌킨스에게,
"아뇨, 난 그냥 바보일 뿐이에요."
라고 대답해 주려 했지만 마음을 바꿔 그만두었다. 그 뒤로 윌킨스는 길거리 행상에서 커다란 풍선을 하나 사오더니, 그걸 내 셔츠 단추에 매달아 놓은 것이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쉽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것도 모자라 나중에는 내 옷깃에다 내 이름과 숙소를 적은 쪽지를 붙여두기까지 했다. 그런 꼴이 되고 나니 나 자신이 진짜 바보처럼 느껴졌다.
어느 날 중국 사람들은 우리를 버스에 태우고 커다란 강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수많은 중국인들이 몰려와서 강물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유인즉슨 중국 사람들의 대장인 마오 주석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다. 마오 주석은 부처님처럼 생긴 뚱뚱하고 덩치가 큰 노인이었는데, 수영 팬티를 입고 있었다. 중국 사람들은 마오 주석이 여든의 나이에도 이 강에서 수영을 즐긴다고 떠들어댔다. 그것을 우리에게 구경시켜 주고 싶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주석이 물에 뛰어 들어 수영을 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일제히 사진읕 찍기 시작했고, 우리를 데려간 중국인들도 환호성을 지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마오 주석은 한참 헤엄을 치더니, 물속에 멈추어 서서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였다. 우리도 모두 열심히 손을 흔들어 화답했다. 한 1분쯤 지나자 주석은 다시 손을 흔들었고, 우리도 다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불과 얼마 지나지 않아 마오 주석은 세 번째로 다시 손을 흔들었는데, 무심코 화답을 하던 사람들은 한참이 지나서야 그가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니라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나는 중국 사람들이 평소에 '소방 훈련'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똑똑히 구경할 수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황급하게 물속으로 뛰어들었고, 반대편 강둑에서는 보트가 달려오기 시작했으며, 강둑에 모여 서 있던 사람들은 손바닥으로 자기 머리를 쾅쾅 쥐어박으며 팔짝팔짝 뛰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욕을 한마디 중얼거렸다. 나는 마오 주석이 가라앉은 지점을 정확하게 보았던 것이다. 하는 수 없이 나는 신발을 벗고 강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중국 사람들을 모두 앞질러서 제일 먼저 사고 지점에 도착한 나는, 얼른 물속으로 잠수를 했다. 보트는 연신 주위를 맴돌고 있었고, 사람들은 뭔가 좋은 구경거리라도 생긴 듯 흥미진진하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강물이 하수도에서 흘러나오는 물처럼 뿌옇게 흐려 있어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건 나는 서너 번 자맥질을 한 다음에야 그 영감탱이를 물 위로 끌어 올리는 데 성공했다. 그러자 몇몇 중국인들이 달려들어 그를 보트 위로 끌어 올렸고, 그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보트를 몰고 강둑으로 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나는 혼자서 다시 헤엄을 쳐서 강둑으로 기어 나와야 했다. 내가 강둑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달려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내 등을 두들겼고, 그다음에는 나를 자기네 어깨에 둘러메고 버스가 있는 곳까지 데려다주는 것이었다. 하지만 버스가 다시 도로상으로 나오자, 윌킨스가 내게 다가오더니 고개를 설레설레 가로저으며 "이 멍청아!" 하고 소리쳤다.
"우리 미국을 위해서는 그 영감탱이가 물에 빠져 죽도록 그냥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이었다는 걸 몰라? 너 때문에 평생 한 번 올까 말까 한 기회를 놓쳤잖아."
그래서 나는 잘은 모르지만 내가 또 사고를 쳤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지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탁구 시합은 끌났지만 나는 누가 이기고 졌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마오 주석을 강물에서 끌어낸 이후, 중국 사람들의 국민적 영웅이 되어 있었다.
"검프."
윌킨스가 말했다.
"너의 그 멍청한 머리도 도움이 될 때가 있군. 중국인들이 미국과의 외교 관계 재개를 검토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뿐만 아니라 그들은 너를 데리고 베이징 시내에서 시가행진을 할 계획이래. 그러니 이번에는 제발 좀 제대로 처신해야 해."
이틀 후에 진짜로 시가행진이 벌어졌는데, 정말이지 볼 만했다. 10억 중국 인구가 모조리 길거리로 쏟아져 나와서는 내가 지나갈 때마다 일제히 손을 흔들거나 절을 해대는 것이었다. 행진은 중국의 국회의사당 같은 곳인 쿠밍탕까지 이어진다고 했는데, 그곳에서 마오 주석이 직접 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는 것이었다. 그곳에 도착하자 주석은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점심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내 자리는 주석 바로 옆에 마련되어 있었다. 한참 점심을 먹다 말고 주석이 나를 향해 말했다.
"자네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것으로 들었다, 전쟁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통역이 영어로 옮겨준 그 질문을 받은 나는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내 나는 만약 주석이 진짜로 궁금하지 않으면 묻지도 않았을 거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렇게 대답했다.
"개똥 같은 거지요."
통역이 내 대답을 중국 말로 바꿔서 전해 주자, 마오 주석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한동안 나를 쳐다보더니, 점점 얼굴 가득 환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 열심히 아래위로 흔들어대며, 마치 목에 스프링이 달린 인형처럼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람들은 열심히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고, 그 사진은 나중에 미국의 신문에 실렸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도 내 대답이 무엇 때문에 그 노인을 그렇게 미소짓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들은 바가 없다.
중국을 떠날 날이 되었다. 호텔에서 나와 보니 수많은 군중들이 나와 환호성을 지르며 우리가 떠나는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나는 얼핏 군중들 틈에서 조그만 남자아이를 어깨 위에 무등 태우고 있는 중국 여인을 발견했는데, 그 소년은 한눈에 봐도 정신박약아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눈알이 뒤틀리고 혀를 쭉 내민 채 침을 질질 흘리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다.
윌킨스는 자기 허락을 받기 전에는 어떤 중국인과도 접촉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나는 나도 모르게 그 소년을 향해 다가갔다. 내 주머니에는 탁구공 몇 개가 들어 있었는데, 나는 그 공 하나를 꺼내 팬으로 X라고 사인을 해서는 소년의 손에 쥐어 주었다. 소년이 제일 먼저 한 행동은 그 탁구공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었지만, 이내 그는 자기 손으로 내 손가락을 꼭 붙잡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미소를 짓기 시작했다. 그 미소는 점점 얼굴 전체로 퍼져갔다, 그러자 갑자기 소년의 어머니는 눈물이 글썽글썽해지더니 뭐라고 지껄이기 시작했는데, 통역은 그 소년이 미소를 짓는 것은 태어나고 나서 처음이라고 그녀의 말을 옮겨주었다. 나는 소년의 어머니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시간이 없었다. 내가 돌아서서 발길을 옮기는 순간 소년이 탁구공을 집어 던진 모양인데, 그게 마침 땅바닥을 한번 튕기면서 내 뒤통수에 맞았다. 누군가가 그 장면을 정확하게 포착해서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은 다시 신문에 실렸다.
'미국 자본주의자들에게 증오를 표시하는 중국 어린이.' 이것이 그 사진에 붙어 있는 설명이었다.
어쨌건 나는 윌킨스에게 이끌려 비행기에 올랐고, 이내 비행기는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워싱턴에 착륙하기 직전 윌킨스가 마지막으로 나에게 한 말은 이러했다.
"검프, 중국 사람의 목숨을 구하면 평생 그 사람을 책임져야 한다는 중국인의 풍습은 잘 알고 있겠지?"
그는 내 옆자리에 앉은 채 야비한 미소를 지으며 깐죽거리고 있었다. 방금 기내 방송에서는 안전 벨트를 메고 자리에서 일어서지 말라는 주의가 흘러나왔었다. 나는 윌킨스를 힐끗 쳐다보며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힘찬 방귀를 한방 뀌었다. 마치 전기톱이 돌아가는 듯한 소리가 났다. 윌킨스는 눈이 퉁방울만해지더니, 이내 "우왁!" 하고 비명을 지르며 손으로 연신 코앞을 부채질하는 것이었다. 윌킨스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캑캑거리며 기침을 해대자, 예쁘게 생긴 스튜어디스가 무슨 일인가 하고 얼른 뛰어왔다. 나도 얼른 코를 감싸 쥐고 부채질을 하며 윌킨스를 가리켰다. 그리고는 "누가 창문 좀 열어줘요!" 하고 소리쳤다. 윌킨스는 얼굴이 시뻘개져서 범인은 자기가 아니고 나라는 시늉을 해보였지만, 이미 스튜어디스는 생긋 웃으며 자기 자리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한참 만에야 간신히 정신을 차린 윌킨스는 옷매무새를 고치며 어금니를 꽉 깨문 채 나즈막하게 내뱉었다.
"검프, 네가 한 행동 중에서 가장 지독한 것이었어." 하지만 나는 그냥 싱긋 웃으며 앞만 바라보았다.
그 뒤 나는 다시 포트 덕스로 돌아갔지만, 이번에는 스팀 히트 중대로 보내는 대신 조기 제대를 시켜준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차를 밟는데 하루 정도 시간이 결렸고, 그다음부터 나는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들은 나에게 차비 하라고 약간의 돈을 주었고, 나도 전부터 가지고 있던 돈이 몇푼 있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나는 일단 구빈원 신세를 지고 있는 엄마를 만나 보기 위해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또 새우 장사를 시작하여 내 삶의 기반을 다져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여전히 하버드에 있다는 제니 커란에 대한 생각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일단 버스를 타고 기차역까지 갔다. 그동안 줄곧 내가 해야 할 가장 옳은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하지만 표를 사야 하는 순간이 되자, 내 입에서는 '보스턴'이라는 지명이 튀어나왔다. 살다 보면 옳은 일이 내 앞길을 막아서지 않도록 해야 할 경우도 생기기 마련이다.
10.
나는 제니 커란의 사서함 번호만 알고 있을 뿐 정확한 주소는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그녀가 '깨어진 달걀'이라는 밴드와 함께 연주를 하고 있는 장소를 알고 있었다. 호대디 클럽이라고 하는 곳이었다. 나는 기차역에서 그곳까지 걸어가려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길을 잃어버리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택시를 탔다. 내가 호대디 클럽에 도착했을 때는 아직 이른 오후여서, 실내에는 술 취한 주정뱅이 두어 명 밖에 없었다. 바닥에는 어젯밤에 엎질러진 맥주가 반 인치 정도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카운터 뒤에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제니와 그녀의 밴드는 아홉 시쯤 되면 나온다고 했다. 여기서 기다려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러라고 해서, 나는 느긋하게 신발을 벗고 대여섯 시간을 기다렸다.
얼마 안 가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들기 시작했다. 대부분 대학생처럼 생기기는 했는데, 옷차림을 보면 길거리에서 구걸하는 거지와 별로 다를 바가 없었다. 모두들 지저분한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었는데, 남자들은 수염을 기른 채 안경을 썼고 여자들은 당장이라도 까치가 날아오를 듯한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밴드가 도착해서 무대 위로 올라가더니 연주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서너 명 정도가 커다란 악기를 들고 무대 위를 왔다 갔다 하며 여기저기 전깃줄을 연결하는 모양이었다. 그것만 봐도 대학 시절 학생회관에서 하던 연주와는 어딘지 다른 분위기가 풍겼다. 하지만 제니 커란의 모습은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전기 장치들을 모두 설치하고 나자 그들은 연주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기서 꼭 한마디 해두고 싶은 게 있다. 다름이 아니라, 그놈들 정말이지 더럽게도 시끄럽더라는 것이다. 머리 위에는 색색가지 불빛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는 마치 제트 비행기가 이륙할 때 나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소리가 대단히 마음에 드는 듯, 연신 고함을 지르며 환호하는 것이었다. 그때 조명이 무대 한쪽을 비추는가 싶더니, 거기에 제니가 나타났다! 그녀는 내가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는 많이 변해 있었다. 머리가 엉덩이까지 치렁치렁 드리워 있었고, 실내에서 그것도 밤인데도 불구하고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다. 그녀 역시 청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는데, 셔츠에는 번쩍거리는 반짝이들이 너무 많이 붙어 있어서 꼭 전화 교환기 같아 보였다. 밴드가 다시 연주를 시작했고, 제니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마이크를 잡고 무대 위를 펄쩍펄쩍 뛰어다니는가 하면, 미친 듯이 팔을 흔들거나 머리칼을 휙휙 돌려대기도 했다.
나는 노래의 가사를 들어보려고 귀를 세웠지만, 연주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도저히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깨지는 듯한 드럼 소리와 쿵쾅거리는 피아노 소리, 찢어질 듯한 전자 기타 소리가 어울려 문자 그대로 천정이 들썩거릴 지경이었다. 나는 속으로, 도대체 이게 웬 난리람. 하는 생각을 했다.
잠시 후 휴식 시간이 되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무대 뒤로 통하는 문을 향해 가보았다. 하지만 거기에는 어떤 녀석이 지키고 서서 들어가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내 자리로 돌아오자, 나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들 내 군복을 쳐다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떤
녀석은 "의상이 아주 그럴. 듯한데?" 하고 중얼거렸고, 또 어떤 녀석은 "당장 꺼져!" 하고 소리를 질렀으며, 또 어떤 녀석은 "진짜 군발이야?" 하고 소곤거렸다.
나는 다시금 멍청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산책이나 좀 하며 정신을 가다듬어 볼려고 바깥으로 나왔다. 한 30분 정도 여기저기 쏘다니다가 돌아와보니, 클럽 문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지어 서서 들어갈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입구로 다가가서 내 짐이 모두 저 안에 있다는 사실을 설명하려 했지만, 클럽 직원은 막무가내로 차례를 지켜 줄을 서라고 떠미는 것이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줄을 서서 한 시간가량 안에서 들려 나오는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떨어진 곳에서 들으니 훨씬 듣기가 좋았다.
나는 무작정 기다리기도 지쳐서 클럽 뒷쪽과 연결된 골목으로 들어가 보았다. 조그만 계단이 몇개 있어서 거기에 걸터앉아 쓰레기통 사이로 쥐들이 서로 쫓아다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문득 주머니 속에 하모니카가 있다는 생각이 나서 시간도 때울 겸 그걸 꺼내 불기 시작했다. 클럽 안에서는 아직도 제니의 밴드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조금 연습을 해보니 하모니카로 그들의 연주를 따라할 수가 있었다. 혀로 하모니카 구멍을 막았다 땠다 하면 반음을 연주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니 밴드의 연주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이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는 모르지만, 다장조로 코드를 잡고 자유자재로 그들의 곡을 따라 할 수 있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연주를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연주를 해보니, 곡이 그리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갑자기 뒤에서 문이 삐걱거리며 열리더니, 제니가 나타났다. 조금 전에 다시 휴식 시간이 된 듯 연주가 멈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계속해서 내 하모니카를 연주하고 있었다.
"거기 누구예요?"
제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야." 나는 얼른 대답을 했지만, 제니는 골목이 어두워서 잘 안 보이는지 문밖으로 고개를 약간 더 내밀고 다시 물었다.
"거기 하모니카 불고 있는 사람이 누구예요?"
나는 벌떡 일어났다. 순간 내가 입고 있는 옷이 다소 마음에 걸렸지만, 나는 "나야, 포레스트." 하고 대답했다.
"누구라구요? " 그녀가 다시 물었다.
"포레스트,"
"포레스트? 포레스트 검프!"
갑자기 그녀는 문밖으로 쏟아져나와 내 품에 안겨들었다. 제니와 나는 무대 뒤에 나란히 앉아 그녀가 다시 노래하러 나갈 시간이 될 때까지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정을 들어보니 그녀는 학교를 그만둔 것이 아니라 남자 방에서 잠을 자다 들켜서 짤린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그것이 퇴교 조치에 해당하는 규칙 위반 행위였다. 같이 퇴학당한 벤조 치는 녀석은 군대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캐나다로 도망쳐 버렸고, 따라서 밴드도 깨져 버렸다. 제니는 한동안 캘리포니아에서 머리에 꽃을 꽂고 돌아다녔지만, 허구헌날 돌멩이나 집어 던지는 자들이 모두 사기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뒤 그녀는 어떤 남자를 만나 보스턴으로 건너와 평화 행진을 몇 차례 했는데, 알고 보니 그 작자는 동성연애자여서 헤어졌다. 그다음에는 폭탄을 만들어서 건물을 폭파시키겠다고 떠들어대는 아주 심각한 평화 운동가와 함께 살았는데, 그의 뜻이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아 결국 그 사람과도 찢어졌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어떤 녀석과 눈이 맞았는데, 알고 보니 그는 유부남이었다,
그다음에 만난 남자는 아주 괜찮은 것 같았지만,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가 걸려서 제니 자신까지 경찰서 신세를 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제니는 이제 정신을 좀 차려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깨진 계란'이라는 이름의 이 밴드를 만났고, 그들은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스턴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는데, 나중에는 뉴욕으로 건너가 앨범을 제작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제니는 지금은 하버드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는 녀석과 함께 살고 있는데, 나더러 오늘 밤 공연이 끝나면 같이 가서 자도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제니에게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실망스러웠지만, 달리 갈 곳도 없고 해서 그녀를 따라가기로 했다.
제니의 지금 남자 친구 이름이 루돌프라고 했다. 그는 몸무게가 한 100파운드 정도 나갈까 말까 한 조그만 녀석이었는데, 우리가 제니의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꼭 먼지털이 같은 머리를 하고 목에는 커다란 구슬더미를 잔뜩 건 채 마룻바닥에 앉아서 명상을 하고 있었다.
"루돌프."
제니가 말했다.
"얘는 포레스트라고, 나랑 고향 친구 사이야. 앞으로 당분간 여기서 묵을 거야."
루돌프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마치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는 교황 같은 몸짓으로 점잖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제니에게는 침대가 하나밖에 없었지만 바닥에 조그만 요를 하나 깔아 주어서 나는 거기서 잠을 잤다. 군대에서의 잠자리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루돌프는 아직도 방 한가운데서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나는 제니가 만들어준 아침을 조금 먹은 뒤, 루돌프를 그냥 내버려 두고 함께 밖으로 나와 캠브리지를 구경했다. 제니는 무엇보다도 먼저 내가 새 옷을 사 입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곳 사람들은 내가 군복을 입고 돌아다니면 자기네를 군대에 집어넣으러 온 사람인 줄 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재고 정리 가게를 찾아가 멜빵 바지와 헐렁한 쟈켓 하나를 사서는 그 자리에서 갈아입고 군복은 종이 봉지에 담았다.
우리가 하버드 대학 근처를 걸어가고 있는데, 제니는 옛날에 데이트를 즐기던 유부남 대학교수와 우연히 마주쳤다. 제니는 그를 '썩어빠진 건달'이라고 부르곤 했지만, 겉으로는 아직도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인 모양이었다. 그 사람 이름은 콰켄부쉬 박사라고 했다. 그는 다음 주부터 순전히 자기 머리로 생각해낸 새 강좌를 하나 개설하게 되었다며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강좌 이름이 '세계 문학에 있어서 바보의 역할'이라고 했다. 내가 제목만 들어도 굉장히 재미있을 것 같다고 했더니, 그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포레스트, 시간이 날 때마다 와서 내 강의를 들어보게. 아주 재미있을 거야."
제니는 잘들 논다 하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아파트로 돌아갔을 때, 루돌프는 그때까지도 혼자 마룻바닥에 앉아 있었다. 나는 부엌에 있는 제니를 따라 들어가 들릴락 말락 하는 소리로 조심스럽게 물었다. 루돌프가 말을 할 줄 아느냐고. 그러자 제니는 이따금 한마디씩 하기는 한다고 대답했다.
그날 오후 제니는 나를 데리고 나가서 밴드의 다른 멤버들과 인사를 시켜주었다. 하모니카를 정말 끝내주게 분다고 떠벌이면서, 오늘 밤 공연 때 나를 무대 위에 올려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묻기도 했다. 한 녀석이 나에게 제일 잘 부는 노래가 뭐냐고 물어서 '딕시' 라고 했더니, 그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고 중얼거렸다. 그때 제니가 끼어들어서 "걱정하지 마. 누구든 네 하모니카 연주를 한 번만 들으면 마음에 들어할 거야" 하고 말했다. 그래서 그날 밤, 나는 그들과 함께 무대에 섰는데, 다들 내 하모니카 소리가 자기네 연주와 무척 잘 어울린다고 칭찬해 주었다.
다음 주 월요일이 되자, 나는 큰마음을 먹고 콰켄부쉬 박사의 '세계 문학에 있어서 바보의 역할'이라는 강의를 들으러 갔다. 강의 이름만 들어서는 나 자신이 제법 중요한 인물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이윽고 콰켄부쉬 박사의 강의가 시작되었다. "오늘, 이따금 우리 강의를 청강할 손님이 한 분 오셨습니다. 다들 포레스트 검프 씨를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모두들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잠깐 손을 흔들어 보였다.
"바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역사나 문학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여러분도 모두 어렸을 때 여러분 동네에 살던 바보를 한 사람쯤 기억하고 있을 겁니다. 종종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되곤 하던 정신지체아 말입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런 사람들을 이른바 궁중 광대라고 해서, 귀족들에게 재미있는 쇼를 보여주는 광대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경우 그런 사람들은 진짜 바보이거나 저능아였지만, 더러는 어릿광대나 익살꾼인 경우도 없지 않았습니다......"
그의 강의는 한동안 이런 식으로 이어졌는데, 듣고 보니 바보도 전혀 쓸모없는 인간인 것만은 아니라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에는 댄 같은 친구가 말하는 어떤 목적이 개입되어 있었고,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내는 것이 바로 그 목적이었다. 여기에는 확실히 무슨 의미가 있는 것 같았다.
콰켄부쉬 박사의 강의는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일종의 '복선' 장치를 작품 속에 도입하기 위해 바보를 이용하곤 합니다. 바보로 하여금 우스꽝스러운 짓을 하도록 한 다음, 도가들에게는 그 어리석음 속에 담긴 의미를 깨닫게 하는 것이지요. 때로는 섹스피어 같은 위대한 작가들도 바보가 오히려 작품의 주인공을 바보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을 묘사하곤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효과적으로 독자들을 각성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이쯤 되자 나는 상당히 헷갈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어쨌건 콰켄부쉬 박사는 방금 자기가 설명한 대목의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가 직접 짧막한 연극을 하나 해보자고 제안했다. 변장한 바보와 광인, 그리고 진짜로 미쳐 버린 왕이 등장하는 [리어왕]의 한 대목을 재연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엘머 해링턴 3세라는 친구에게 광인 톰 오베드람 역을, 루실이라는 여학생에게 바보역을 각각 맡겼다. 호레이스 뭐라고 하는 친구가 미친 리어왕 역할을 맡았는데, 마지막으로 콰켄부쉬 박사는 나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포레스트, 자네는 글로세스터 백작 역을 하면 어떻겠나?"
콰켄부쉬 교수는 자기가 연극반에서 몇 가지 무대 장치를 빌려올 테니, 의상은 각자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래야 한층 실감이 날 거라나? 그리하여 나는 얼떨결에 그 연극 놀음에 휩쓸려 들고 말았다.
한편 우리 밴드 '깨어진 달걀'에 조그만 사건 하나가 일어났다. 뉴욕에서 왔다는 어떤 남자가 우리 연주를 귀담아듣더니, 우리를 녹음 스튜디오로 데리고 가서 테이프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니 커란을 비롯한 모든 멤버들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물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뉴욕에서 왔다는 그 사람의 이름은 피볼스타인 씨였다. 그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우리는 야간 야구 경기가 시작된 이래 최고의 히트를 치게 될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에게 계약서에 서명만 한 다음부터 부자가 되기를 기다리면 된다고도 했다.
우리 밴드에서 키보드를 연주하는 조지라는 친구가 나에게 몇 가지 건반 누르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드럼 주자인 모즈는 드럼 두드리는 법을 조금 가르쳐 주었는데, 하나둘 배워갈수록 점점 재미가 붙었다. 나는 매일 조금씩 연습을 했고, 밤이면 그들과 함께 호대디 클럽에서 연주를 했다.
어느 날 오후 강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보니, 제니가 소파에 혼자 앉아 있었다. 루돌프는 어디 갔느냐고 물어보니, 그녀는 "찢어졌어."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다시 물었더니, 루돌프 역시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별 볼 일 없는 작자임이 확인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밖에 나가서 저녁이나 먹으면서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제니는 저녁을 먹으며 남자라는 족속들에 대한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남자들이란 하나같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이고 비열한' 인간들이라는 것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잔뜩 흥분해서 지껄여대던 제니는 이윽고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제니를 달래 주기 시작했다.
"제니, 그러지 마. 아무것도 아닌 일을 가지고 뭘 그래. 그 루돌프라는 친구는 내가 봐도 너랑 어울리는 남자가 아니었어. 며칠 동안이나 꼼짝하지 않고 앉아만 있는 녀석하고 뭘 할 수 있겠어?"
그러자 제니는
"그래, 포레스트, 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자."
하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오자, 제니는 주섬주섬 옷을 벗기 시작했다. 그녀가 속옷 차림이 되자 나는 소파에 앉아서 못 본 체하려고 애를 썼지만. 그녀는 똑바로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포레스트, 난 지금 너랑 같이 자고 싶어."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순간, 누군가가 훅하고 불기만 했어도 나는 그 자리에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나는 완전히 넋이 나간 채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는데, 그녀는 내 옆에 앉더니 내 바지 속을 더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그녀는 내 셔츠를 벗기고 여기저기 키스를 하거나 애무를 했다. 처음에는 그러는 그녀가 약간 이상하게 느껴졌다. 비록 그것은 오래전부터 내가 꿈꿔온 것이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일이 벌어질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다음 순간, 아무려면 어떠냐 하는 생각을 했던 모양이었다.
우리는 소파 위에서 서로를 끌어안은 채 뒹굴고 있었고 옷이 하나둘 벗겨져 나갔다. 이윽고 내 팬티를 끌어 내린 제니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더니 탄식처럼 이렇게 중얼거렸다.
"우와. 도대체 이게 뭐야?"
그러면서 그녀는 옛날에 미스 프렌치가 그랬던 것처럼 내 아랫도리를 끌어안았지만, 미스 프렌치와는 달리 눈을 감고 있으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눈을 감지 않았다.
그날 오후 우리는 내가 꿈속의 꿈에서도 미처 상상해 보지 못한 온갖 짓들을 경험했다. 제니는 지금까지 나 자신도 알지 못하고 있던 나의 갖가지 능력을 일깨워 주었다. 옆으로 하기, 비스듬히 하기, 거꾸로 하기, 밑으로 하기, 길게 하기, 개처럼 하기, 서서 하기, 앉아서 하기, 구부리고 하기, 기대고 하기, 뒤집어져서 하기...... 우리가 그날 해보지 않은 것은 서로 떨어져서 하기뿐이었다. 우리는 거실 바닥을 뒹굴다가 주방으로 굴러 들어갔는데, 그동안 가구들이 발에 채이고 의자가 자빠졌으며 커튼이 드리워졌고 양탄자가 둘둘 말려 버렸는가 하면 텔레비전이 쓰러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우리는 싱크대 속에서도 그걸 했는데, 어떻게 했는지는 제발 묻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이윽고 그게 끝나고 나자 한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누워 있던 제니는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제기랄, 포레스트! 진작 좀 나타나지, 그동안 어디 가 있었어?"
나는 대답했다.
"난 항상 네 곁에 있었어."
그 뒤로 제니와 나 사이에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우리는 한 침대에서 같이 잠을 자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지만 머지않아 익숙해졌다. 호대디 클럽에서 공연을 할 때도 제니는 내 근처를 지나갈 때마다 내 머리칼을 어루만지거나 내 목덜미를 만져 주었다. 나는 갑자기 온 세상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내 인생이 새롭게 시작된 기분이었고,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놈이 된 기분이었다.
11.
하버드의 콰켄부시 교수님의 수업 시간 중에 우리의 조촐한 연극을 보여줄 날이 다가왔다. 우리가 연기할 장면은 바보같은 리어왕이 황야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늪지던가 들판 같은 곳에서 엄청나게 몰아치는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모든 사람이 '헛간'이라고 부르는 오두막집으로 뛰어 들어가는 대목이었다.
그 헛간 안에는 미치광이 토모베들램이라고 불리우는 사내가 있었는데, 그 배역의 실제 극중 이름은 에드가로서, 사납기 그지없는 오빠에게 겁탈 당한 탓에 미친 사람이 되어 버린 에드가가 그런 모습으로 변장한 것이었다. 그때에 이르러, 왕은 완전히 미친 상태였는데, 에드가도 또한 미친 척하면서 바보 행세를 하고 있었다. 나의 배역은 에드가의 아버지인 글로우세터 백작이었는데, 다른 배역들을 돋보이게 하는 들러리 역할이었다.
콰켄부시 교수는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낡은 담요를 무대 위에 깔고 헛간처럼 보이도록 다른 소품들을 배열했으며, 종잇조각들을 끄트머리에 매단 기다란 천들을 날개에 묶은 커다란 선풍기를 돌려서 마치 폭풍과 같은 소리를 내면서 바람을 일으켰다. 어쨌든 리어왕 역할은 엘머 해링턴 3세가 맡았는데, 황마로 만든 푸대자루에다 머리에는 소쿠리를 뒤집어 쓰고 있었다. 바보 역할을 맡기로 한 여자아이는 어디선가 바보처럼 분장할 수 있는 소품들을 찾아냈던지, 방울이 달린 작은 모자를 머리에 붙들어 매고, 아랍사람들처럼 앞부분이 구부러져 올라간 신발을 신고 있었다. 토모배들램 역할을 하는 친구는 차고 한구석에 쑤셔박혀 있던 먼지가 잔뜩한 기름이 잔뜩 낀 천 조각을 찾아내서 얼굴에 검댕을 칠했다.
그들은 모두 연극에 진지하게 임하고 있었다. 아마도 내가 그 떼거지들 중에서 가장 멋진 차림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니가 베개 껍데기를 벗겨서 분장 도구를 재봉질해 주었기 때문에 나는 마치 방패 모양의 문장을 달고 있는 것 같았고, 또 테이블 천으로 마치 슈퍼맨이 입고 다니는 것 같은 망토를 만들어주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콰캔부시 교수는 선풍기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미치광이 톰이 자신의 슬픈 사연을 우리에게 들려주는 대목인 12페이지부터 시작하라고 말했다.
"불쌍한 톰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지독스런 악마들이 그를 괴롭히고 있나이다" 톰이 말한다. 그러면 리어왕이 말한다. "뭣이라구? 딸이 그를 이곳으로 데려왔단 말인가? 너는 정녕 아무것도 남길 수 없었는가? 그 모든 것들을 다 줘버렸단 말인가?" 바보가 말한다. "아뇨, 그는 담요
한 장은 남겼죠. 우리들은 수치심을 느꼈어요." 언제나 잠시 동안 이런 수작이 오고 간 뒤에 바보가 말한다. "이 추운 밤이 우리들 모두를 바보에 미치광이로 만들 것입니다." 이 점은 바보의 말이 옳았다. 바로 이 대목에서 내가 횃불을 들고 헛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한다. 그 횃불은 콰켄부시 교수가 연극학과에서 빌려온 것이었다. 바보가 소리친다.
"저길 봐요! 불이 걸어오고 있어요!"
그리고 콰켄부시 교수가 횃불에 불을 붙이면 나는 방안을 가로질러 헛간 안으로 들어간다.
"이건 끔찍한 악마의 장난이야."
토모베들렘이 말한다.
"그는 누구지?" 왕이 소리친다.
그러면 내가 말한다.
"거기서 무엇들을 하는 거요? 당신들 이름이 뭐요?"
미치광이 톰이,
"불쌍한 톰이다. 내가 먹고 사는 건 개구리, 두꺼비, 올챙이, 벌레들......"
그가 그따위 말들을 계속 지껄여대고 나면, 나는 갑자기 왕을 알아본 듯한 동작을 취하며 말한다.
"세상에! 폐하께서는 더 좋은 친구들이 없으십니까?"
그러면 미치광이 톰이 대답한다,
"어둠의 왕자께서는 신사분이시라오-- 그는 모도라고 하는 사람이고 이쪽은 마후요."
이제 선풍기의 바람이 더욱 세차게 불어오기 시작할 즈음, 나는 콰켄부시 교수가 무대 위에 헛간을 지을 때 내 키가 6피트 6인치나 된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들고 있던 횃불의 끄트머리가 천장을 그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미치광이 톰이 말할 차례다. 그는,
"불쌍한 톰은 추운 밤을......"이라는 대사 대신에 "저 횃불 좀 봐!"라고 소리쳤다.
나는 그런 대사가 어디쯤에 있는 건지 몰라서 대본을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엘머 해링턴 3세가 나에게 말했다.
"그 횃불을 보란 말이야, 이 바보야!"
나는 되받아 쳤다.
"난 단 한 번도 내 인생에서 바보짓을 한 적 없어. 바보는 바로 너야!"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헛간 천정이 갑자기 확 타오르기 시작했고, 불꽃이 떨어져 누더기 옷자락에 옮겨붙었다.
"그 빌어먹을 선풍기 좀 꺼요!"
누군가 그렇게 소리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모든 것이 불타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겁에 질린 미치광이 톰은 마구 소리를 질러댔고 리어왕은 겉옷을 벗은 뒤 둘둘 말아서 미치광이 톰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려고 했다.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연신 기침을 하며 눈물을 훌쩍였고, 바보 역할을 하던 여자아이는 발작적으로 비명을 질러댔다.
"이러다 몽땅 죽게 될 거야!"
잠시 동안이지만 정말로 모두 죽게 될 것만 같았다. 나는 내 몸을 비틀며 빌어먹을 망토에 불이 옮겨붙지 않았나 살펴봤다. 그리고나서는 창문을 연 뒤에 바보 여자아이의 허리를 감싸 안고 밖으로 뛰었다. 창문의 높이는 2층밖에 안 됐지만, 밑에 덤불들은 우리가 뛰어내리자 부러져 나갔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기 때문에 교정에는 수백 명의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속에 온통 불에 그을린 몰골로 우리가 뛰어내린 것이다.
열려진 창문에서 검은 연기가 꾸역꾸역 밀려 나오고 있었다. 갑자기 창문 밖으로 콰켄부시 교수가 몸을 내밀더니 주위를 둘러보면서 주먹을 흔들어댔다. 그의 얼굴은 온통 검댕투성이였다.
"검프! 이 빌어먹을 녀석아, 바보 같은 놈! 네 녀석이 모두 물어내야 돼!?"
바보 역할을 하던 여자아이는 손을 버둥거리며 바닥 위에 드러누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별 탈은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있는 힘을 다해 교정을 가로질러 뛰어갔다. 아직도 두르고 있던 망토에서는 불길이 미처 꺼지지 않은 채, 달리는 나의 뒤로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나는 집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아파트에 도착하자 제니가 말했다.
"세상에, 포레스트,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대단했었나 보군!"
그러더니 갑자기 아주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봐, 혹시 뭐 타는 냄새 나지 않나?"
그녀가 소리쳤다.
"말하자면 길어."
나의 대답이었다.
어쨌든 그 일이 있고 난 이후로 나는 '세계 문학에서의 바보의 역할'에는 더 이상 출석을 하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히 배울 만큼 배웠으니까. 하지만 매일 밤 제니와 나는 '깨어진 달걀'과 연습을 했고, 하루 종일 사랑을 나누거나 그야말로 천국과도 같았던 찰스 강변의 강둑으로 소풍을 나가곤 했다. 제니는 '힘차고 빠르게 해주세요'라는 감미로운 노래를 썼고, 나는 5분 정도 되는 그 곡을 하모니카로 연주했다.
어느 화창한 여름날이었다. 우리는 뉴야크로 가서 테이프를 만들어 미스터 피블스타인에게 보냈고 몇 주 뒤에 그에게서 레코드 앨범을 만들게 될 것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로부터 멀지 않은 시간 뒤에 우리는 사람들로부터 자신들의 마을에 와서 연주해 달라는 요청을 받기 시작했고 미스터 피블스타인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침대와 화장실이 딸린 버스를 사서 도로를 누비고 다녔다.
그 기간 동안에는 나의 인생에서 중대한 역할을 하는 무언가 중요한 것이 있었다. 어느 날 밤, 우리가 호대디 클럽에서 첫 번째 무대를 끝내고 내려온 뒤에, '깨어진 달걀'의 드러머인 모세가 나를 옆으로 불러내더니 말했다.
"포레스트, 자넨 참 괜찮은 친구야. 하지만 내가 자네에게 원하는 건 하모니카를 좀 더 그럴듯하게 불었으면 하는 거라구. 뭔가 특별한 수를 써 보게."
내가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묻자 모세는,
"여기 있네."
라고 말하면서 담배를 한 가치 건네주었다. 나는 담배를 피지 않는다고 말하며 어쨌든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러자 모세가 말했다.
"이건 보통 담배가 아냐. 너의 생각의 수평선을 넓혀줄 만한 게 안에 들어 있지."
나는 모세에게 나는 생각의 수평선을 넓힐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는 거의 우기듯이 말했다.
"적어도 시도는 해볼 수 있잖아."
나는 잠시 생각해보다가 한 가치 정도는 전혀 해가 될 게 없을 거라고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그렇게 했다. 이점 하나만은 말해두고 싶다. 나의 생각의 수평선은 정말로 넓어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천천히 아래로 처져 내리는가 싶더니 아스라한 장밋빛으로 물들어가는 것 같았다, 두 번째 무대에서 나는 일생에서 가장 뛰어난 연주를 한 것 같았다. 연주를 하는 동안 나의 귓전에는 수백 번이나 연습한 듯한 가락이 들려오는 것 같았다. 연주가 끝난 뒤 모세가 다가와서 말했다.
"포레스트, 너도 그 정도면 끝내준다고 생각했을 거야, 일이 안 풀릴 때면 그걸 사용하라구."
정말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세는 그 점에서도 옳은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벌어들인 돈 중에 일부를 그렇고 그런 물건들을 사는 데 썼다. 어떤 때는 하루 온 종일 그것에 취해서 지내곤 했다. 유일한 문제가 있었다면, 그걸 피우고 난 얼마 뒤부터 내가 더 멍청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는 그들이 '조인트'라고 부르는 그 담배를 한 대 피웠고, 연주할 시간이 될 때까지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제니는 한동안 나의 그런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한 두번은 그걸 피워봤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포레스트, 너무 심하게 빠져 있다고 생각지 않아?"
"잘 모르겠어." 나는 말했다.
"어느 정도면 너무 심한 거야?"
그러자 제니가 말했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딱 그 정도면 너무 심한 거야."
하지만 나는 끊을 생각이 없었다. 어쨌든 그 담배는 나의 근심거리들을 없애주었고, 당시로서는 아무리 피워대도 심할 것 같지가 않았다.
밤이면 나는 호대디 클럽에서 연주를 하는 사이사이에 무대를 내려와 작은 복도에 앉아 별을 올려다 보곤 했다. 실제로 그것이 별이 아니었을지라도, 어쨌든 나는 별을 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내가 빗속에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데 제니가 다가오더니 말했다.
"포레스트, 이제 이쯤에서 그만두는 게 좋겠어."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걱정돼, 네가 하는 일이라곤 하루 종일 취헤서 누워있는 것 빼곤 아무것도 없잖아. 건강에도 좋지 않다구, 네가 잠시 떨어져서 생활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 내일 이후로는 예약된 지방 도시 순회공연 일정이 없으니까, 적당한 장소에 가서 휴가를 보내는 게 좋을 것 같아. 산에 오르는 것도 좋겠지."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기만 했다. 그녀가 하는 말을 내가 모두 알아들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웠다.
그 도시에서 다음 날 밤을 맞이했을 때, 나는 무대 뒤편에 있는 비상구를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나가 조인트를 한 대 피워물었다. 거기에 혼자 앉아 내 문제를 골똘히 생각해보았다. 그때 아가씨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들 중에 한 아가씨가 말했다.
"이봐요, 당신 '깨어진 달걀'에서 하모니카 부는 사람 맞죠?"
나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아가씨는 풀쩍 뛰더니 내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 다른 아가씨는 씽긋 웃으면서 소리를 지르더니 갑자기 블라우스를 벗어제쳤다. 그사이 다른 아가씨는 내 바지의 지퍼를 내리면서 자기 스커트를 들춰올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버둥거리며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갑자기 무대 쪽의 문이 열리더니 제니가 소리쳤다.
"포레스트, 시간이 됐......."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소리쳤다.
"이런 빌어먹을!"
그리고는 쾅하고 문이 닫혔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먼저 내가 당한 일에 대해 얼마나 상심하고 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약물에 손대지 않겠다고 맹세했을 뿐만 아니라 더 이상 사악한 유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 밴드에서 연주하는 것도 그만둬 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나는 짐이 있는 곳으로 가서 더블백을 뒤져 챙이 없는 낡은 해군 모자를 찾은 뒤 다시 차로 돌아와 그것을 막대기에 걸어서 창문을 통해 밖으로 삐죽 내걸었다. 그녀는 그것을 받아 머리에 쓴 뒤 차로부터 멀어져 가면서 말했다.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일어나, 이 멍청아, 어서 집으로 들어오라구."
우리는 앉아서 얘기를 나눴다. 다른 사람들은 마약을 피우고 맥주를 마셨지만 나는 전혀 입에 대지 않았다. 그들은 내일 해야 할 일에 대해 토론을 하는 중이었다. 미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서 베트남전 참전 용사들에게 메달을 수여하는데, 그 자리에서 대규모 시위를 해야 한다는 얘기들이었다. 그런데 제니가 갑자기 말했다.
"여기 있는 포레스트가 의회의 명예 메달을 받았다는 거 알아?"
모든 사람들이 갑자기 완벽할 정도로 조용해지면서 나를 쳐다보더니 서로를 둘러보았다. 그들 중에 하나가 말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보내주신 거야!"
다음 날 아침, 내가 소파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거실로 제니가 나오더니 말했다.
"포레스트, 오늘 네가 군복을 입고 우리와 함께 갔으면 좋겠어."
내가 까닭을 묻자 그녀는 말했다.
"그렇게 하면 베트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그 모든 고통들을 중단시키는데 뭔가 기여를 할 수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군복을 입었고, 잠시 후에 제니는 철물점에서 산 사슬 뭉치를 들고 돌아왔다. 그리고는 말했다.
"포레스트, 이걸 몸에 둘러."
내가 다시 까닭을 묻자, 그녀는 대답했다.
"그냥 시키는대로 해. 나중에 알게 될 거야. 넌 나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지? 그렇지?"
그렇게 우리는 길을 나섰다. 군복에 쇠사슬을 두른 나와 제니와 그리고 다른 무리들이었다. 아주 화창한 날이었다. 우리가 의사당 앞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많은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세계에 있는 모든 텔레비전 카메라와 경찰들이 다 그곳으로 몰려온 것 같았다.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경찰관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 잠시 후, 제복을 입은 사내들이 함께 모여 무리릎 짓더니 차례로 줄어지어서 한 사람씩 의사당 앞의 계단으로 가까이 다가간 다음, 메달을 받아 목에 거는 게 보였다, 그들 중에 몇몇 친구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몇몇 사람은 절뚝거렸으며, 몇몇은 팔과 다리가 없었다. 몇몇 사람은 메달을 받아 그대로 계단에 내팽개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정말로 소중하게 다루는 것 같았다.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이제 내 차례가 됐다고 말했다. 제니를 돌아보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도 혼자서 그곳으로 올라갔다.
주위는 그냥 조용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가 메가폰에 대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내가 베트남 전쟁의 종결을 지지하는 뜻에서 의회로부터 받은 명예 메달을 반납하러 간다고 소리쳤다.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쳐댔다. 계단 위에 메달을 받기 위해 서있는 대열이 보였다. 그 줄이 끝나는 곳 맨 위에 의사당의 거대한 정문이 보였다. 그 앞에 몇몇 사람들이 서있었다. 경찰 두 명과 정장 차림의 사내들이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당당한 자세를 취하려고 애썼다. 그리고는 메달을 벗어서 잠시 동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버바와 댄과 다른 모든 사람들을 생각했다. 그 다음에는 내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르겠다. 다만 뒤로 물러나면서 있는 힘껏 메달을 위로 던져올렸다. 몇 초나 흘렀을까, 정문 옆에 서 있던 양복을 입은 사내 중에 하나가 별안간 나뒹굴었다. 불행하게도 내가 메달을 너무나 멀리 던지는 바람에 그 사람의 머리에 맞아 그 꼴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온통 난장판이 벌어졌다. 경찰들이 군중들 속으로 돌진해 들어갔고, 사람들은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으며, 최루가스가 터졌다. 갑자기 대여섯 명쯤 되는 경찰들이 나를 덮치더니 경찰봉으로 나를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잠시 뒤에 더 많은 경찰들이 몰려왔고 그다음에 벌어진 일들은 뻔했다. 내 손목에는 수갑이 채워지고 나는 경찰차에 실려 유치장으로 끌려갔다. 나는 밤새도록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 다음 날 아침 경찰들이 와서 나를 법정으로 데려갔다. 전에도 가본 적이 있는 곳이었다. 누군가 판사에게 내가, "위험한 무기인 메달을 남용했고, 체포 시에 저항한 죄목"으로 피소됐다고 말하면서 한 장 남짓한 내용을 읽어내려갔다. 판사가 말했다.
"검프씨, 당신이 메달로 미 상원에 소속의 서기의 머리에 부상을 입혔다는 것을 인정합니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내심 이번에는 뭔가 심각한 곤경에 처했음을 느끼고 있었다.
"검프씨"
판사가 계속해서 말했다.
"나는 당신처럼 조국을 위해 충성을 다한 사람들이 어쩌다가 그런 무지막지한 패거리들과 어울려 메달까지 내던지게 됐는지 잘 모르겠군요. 어쨌든 나는 당신이 왜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했는지 관찰해보도록 30일간의 정신 감정을 언도합니다."
그 말이 있고 나자 경찰들이 와서 나를 유치장으로 다시 데려갔다. 잠시 후에 그들은 나를 버스에 태워서 세인트 엘리자베스 정신 병원으로 호송했다.
드디어 나는 '집어 쳐 넣어진' 것이다.
12.
이곳은 심각한 사람들이 오는 정신 병원이다. 그들은 나를 이곳에 온 지 1년 가까이 되가는 프레드라고 하는 친구와 한 방에 쳐넣었다. 그는 즉시 내가 마주해야 하는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종자들인지 말해주기 시작했다. 그들 중에는 여섯 명을 독살한 사람도 있으며, 자기 어머니의 살점을 짤라서 식육으로 사용한 사람도 있다고 했다. 살인 강간범에서부터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거나 스페인의 국왕이라고 주장하는 놈들까지 온갖 종류의 환자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마침내 프레드에게 왜 이곳에 오게 되었느냐고 묻자, 그는 도끼로 살인을 저질렀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병원에서는 그를 한두 주일 후에 내보낼 예정이라고 했다. 내가 그곳에 가게 된 지 이틀째 되던 날, 나는 담당 의사인 월튼 박사의 사무실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월튼 박사는 여자였다. 그녀는 우선 나에게 간단한 테스트를 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리고나서 신체검사를 받으라고 했다.
그녀는 나를 테이블에 앉게 한 다음 잉크가 점점이 흩어져 있는 카드들을 보여주며, 무슨 생각이 나는지 말해보라고 했다. 나는 계속 '잉크 자국'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그녀는 화를 내더니 뭔가 다른 걸 말해보라고 윽박질러댔다. 그래서 나는 말을 꾸며대기 시작했다. 그리고나서는 기다란 시험지를 주더니 그걸 채우라는 거였다. 내가 시험을 끝내자 그녀가 말했다.
"옷을 벗어요."
한두 번의 예외를 제외하곤 내가 옷을 벗을 때면 언제나 무언가 안 좋은 일이 벌어지곤 했었다. 그래서 나는 안 벗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 말을 기록하더니 내 스스로 벗을 벗지 않으면 옷을 벗겨줄 조수를 부르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될지 뻔한 일이었다. 나는 다른 방으로 가서 옷을 벗었다. 내가 알몸이 됐을 때, 그녀가 방안으로 들어오더니 위아래로 나를 훑어보면서 말했다.
"어머나, 세상에, 당신은 남성의 견본을 해도 되겠군요."
어쨌든 그녀는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그랬던 것처럼 작은 고무망치로 내 무릎을 두드리기 시작하더니 이어서 온몸 구석구석을 두드려댔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결코 '몸을 숙이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점이 나를 기쁘게 했다. 잠시 후에 그녀는 옷을 입고 병실로 돌아가도 좋다고 말했다. 병실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문이 유리로 되어있어서 안이 들여다보이는 방앞을 지나게 되었다. 방안에는 작은 아이들이 거지로 모여 있었는데, 그 아이들은 앉거나 눕거나 나뒹굴면서 주먹으로 마룻바닥을 두드려대기도 했다. 나는 그 자리에 멈춰서서 잠시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런 아이들을 보자 정말로 마음이 아팠다. 바보 학교에 다니던 나의 옛 시절이 생각났기 때문에.
이틀 뒤에, 다시 월튼 박사의 사무실에 가서 검사를 받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사무실에 가자 그녀는 의사 차림을 한 두 남자와 함께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듀크 박사와 얼 박사이며 두 사람 다 국립정신건강연구소에서 근무한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은 내 사례에 대단히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말도 해주었다.
듀크 박사와 얼 박사는 나를 자리에 앉히더니 온갖 종류의 질문을 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고무망치로 내 무릎을 두드려 보기도 했다. 그리고나서 듀크 박사가 말했다.
"여보게, 포레스트, 우리는 자네 테스트 점수를 기록해야 된다네. 이미 수학과 관련된 테스트는 잘 치뤄냈더구만. 그러니 이제 다른 테스트를 받아보기로 하세."
그리고나서 그들은 시험지란 걸 내놓았다. 처음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문제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최선을 다해 잘 치러 냈다. 만일 그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았다면, 난 대충대충 치러서 망쳐 버렸을 것이다.
"포레스트."
얼 박사가 말했다.
"이건 주목할만한 현상이야. 자넨 마치 컴퓨터와 같은 두뇌를 가지고 있군. 자네가 어떻게 그렇게 테스트를 잘 치를 수 있는지 모르겠군. 하긴 애초에 그 때문에 자네가 이곳에 오게 된 건지도 모르지만 말일세. 어쨌든 예전에는 이런 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네."
"이봐, 조지"
듀크 박사가 말했다.
"이 친구는 정말로 주목할만한 인물일세. 얼마 전부터 난 미항공우주국을 위해 어떤 일을 맡아서 하고 있는데, 이런 친구는 휴스턴의 항공우주센터로 보내서 그곳에서 검사를 받도록 해봐야 될 것 같아. 그들이 마침 이런 친구를 찾고 있거든."
세 명의 의사들이 모두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나서는 내가 처음 그 방에 들어갔을 때처럼 고무망치로 무릎을 두드려댔다. 그들은 나를 비행기에 태워서 텍사스주의 휴스턴으로 보냈다. 낡고 커다란 비행기 안에는 듀크 박사와 나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사슬로 나의 손과 발을 의자에 묶어 놨다는 것만 빼면 여행은 즐거운 것이었다.
"여보게, 포레스트"
듀크 박사가 말했다.
"문제는 이렇다네. 자네는 지금 미 상원 의회의 서기에게 메달을 던져서 이런 곤경에 처해 있는 거지. 그런 일이면 10년 동안 옥살이를 할 수도 있어. 하지만 자네가 NASA에 있는 친구에게 잘만 협조하면, 자네가 석방될 수 있을 거라고 내가 개인적으로 약속하지. 괜찮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빨리 구속된 상태에서 벗어나 다시 제니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독스러울 정도로 그녀가 그리웠다. 나는 휴스턴에 있는 NASA에서 약 한 달 정도를 머물렀다. 그들은 나를 관찰하고 실험하고 마치 이러다 쟈니 캬슨 쇼에 나가게 되는 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수많은 질문을 퍼부어댔다. 어쨌든 난 아니었다.
어느 날 그들은 나를 커다란 방 안에 앉혀놓더니 나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그들의 생각을 말해주었다.
"검프"
그들이 말했다.
"우리는 우주여행을 하는데 자네를 이용하고 싶네. 듀크 박사가 지적한 대로 자네의 정신은 마치 컴퓨터와 같아. 차이가 있다면 좀 더 낫다는 것뿐이지. 우리가 그 컴퓨터를 제대로 프로그래밍할 수만 있다면, 미국의 우주 계획에 있어서 지극히 중요한 도움을 받게 될 거야. 무슨 할 말 있나?"
나는 잠시 동안 생각을 하다가, 먼저 나의 엄마에게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한층 더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10년간을 교도소 안에서 썩으라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는 예스라고 대답했다. 내가 곤경에 처하게 되는 건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나를 우주선에 태워서 지구에서 백만 마일 떨어진 곳으로 날려 보낸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달나라에도 사람을 날려 보낸 적이 있었지만, 그 일 가지고는 아무런 가치 있는 발견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다음번 계획으로 나를 화성으로 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나에게 다행스러운 것은, 그들이 그 순간에는 진짜 화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니라, 화성까지 날아가는데 어떤 종족이 가장 잘 어울리는지 알아보기 위한 일종의 훈련을 계획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 이외에도 그들은 여자 한 사람과 원숭이 한 마리를 선발했다. 심술궂어 보이는 표정의 그 여자는 쟈네트 프리치 소령이라고 불리웠는데, 미국 최초의 여성 우주비행사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었다. 다만 그 모든 일이 극비리에 진행되었으므로 아무도 그 여자에 관해서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마치 밥그릇을 머리에 뒤집어쓴 것처럼 보이는 짧은 머리에 키가 작은 편이었는데, 나나 원숭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원숭이는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그 늙은 암놈 오랑우탕은 이름이 <수>였는데 수마트라의 정글 어디에선가 잡아 왔다고 했다. 사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원숭이들을 잡아다가 우주선에 태워 쏘아 올려 봤지만, 숯놈 원숭이보다는 암놈 원숭이가 더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수가 가장 적격일 것이라고 판단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수의 세 번째 우주여행이 될 예정이었다. 이 말을 듣고 난 뒤에 나는 그들이 우주여행 경험자라곤 원숭이 한 마리뿐인 대원들을 어떻게 쏘아 올리겠다는 건지 의아해지기 시작했다. 여러분들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가?
어쨌든 우리는 비행 전에 온갖 훈련들을 받았다. 그들은 원자파괴 장치인 사이클로트론 속에 우리를 집어넣고 빙글빙글 돌리기도 했고, 중력이 없는 작은 방안에 우리를 넣어놓기도 했다. 그리고 하루 온 종일 그들이 내가 기억하길 원하는 내용들을 머릿속에 암기시켰다. 예컨대 우리가 있는 곳과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 사이의 거리를 구하는 방정식이나, 귀환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었다. 그밖에 공통 좌표, 삼각함수, 위상 수학, 4차원 분석, 행렬, 합성로그 등등의 내용이었다. 그들은 그러한 내용들을 컴퓨터에 저장하듯 내 머리 속에 '백업' 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제니 커란에게 계속해서 편지를 보냈지만, 모든 편지가 '주소불명'으로 되돌아왔다. 엄마에게도 편지를 보냈는데 그녀는 "불쌍한 엄마를 세상에 혼자 남겨 두고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느냐?" 하는 내용의 장문의 답장을 보내왔다. 나는 엄마에게 만일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게 될 것이라는 얘기는 차마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경험 많은 동료가 있으니 무사히 귀환하게 될 것이라며,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의 답장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그 요란한 날이 다가왔다. 이점을 말해두고 싶다. 나는 조금도 초조해하지는 않았다. 반쯤 넋이 나가 있었으므로! 그 실험이 극비이기는 했지만 어떤 틈새론가 언론에 정보가 새어나갔던지 우리의 출발 모습이 TV에 나가게 될 거라고 했다. 그날 아침 누군가 우리에게 신문을 가져다 보여주면서 우리가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알려주었다. 그 신문의 머리기사는 다음과 같았다.
'여성, 원숭이 그리고 백치...... 차기를 위한 미국 우주 계획의 노력'
'미국 괴상한 대표단을 외계의 혹성으로 파견하다!'
'아가씨, 얼간이, 암고릴라 오늘 출발하다'
그 날짜 뉴야크 포스트에는 이런 기사도 실렸다.
'그들이 올라간다 - 하지만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나마 어느 정도 정상적인 제목을 뽑아준 곳은 뉴욕 타임즈가 유일했다.
'다양한 선원들의 새로운 우주 탐사'
평소처럼 우리가 일어난 순간부터 모든 것이 온통 혼란의 도가니로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우리가 아침을 먹으러 갔을 때 누군가가 말했다.
"비행이 있는 날에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말했다.
"네 그렇게 하죠."
그러자 또 다른 사람이 말했다.
"아뇨, 먹어도 돼요."
아무도 배가 고프지 않을 때까지 그런 말들이 오고 갔다.
그들은 우리에게 우주복을 입혀서 작은 버스에 태워 발사대로 데려갔다. 수는 우리에 넣어 뒷편에 태웠다. 우주선은 백 층 정도의 높이였는데 우리를 잡아먹기라고 하려는 것처럼 쉭쉭하는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가 타고 갈 캡슐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들은 우리를 안에 밀어 넣은 뒤 뒤편에 수를 태웠다. 그리고나서 우리는 기다렸다.
그리고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렸다. 그동안에도 우주선은 쉭쉭 소리를 내며 김을 뿜어대고 있었다. 누군가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텔리비전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렇다면 그들도 우리처럼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럭저럭 정오가 되었을 때, 누군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올라와서 우주선의 문을 노크하며 말했다. 그들이 우주선을 수리할 때까지 우리의 임무가 일시적으로 취소된다는 얘기였다.
그래서 나와 수와 프리치 소령은 모두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내려왔다. 수와 나는 한시름을 덜었으므로, 우리들 중에서 투덜대며 욕을 한 건 그녀뿐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안심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한 시간쯤 후에 누군가가 우리가 대기하면서 막 점심을 먹으려고 하던 방으로 달려와서 말했다.
"지금 당장 우주복을 입어요! 그들이 우주선을 수리했어요!"
모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어쩌면 기다리다 못해 짜증이 난 텔리비전 시청자들이 전화를 걸어 불평을 늘어놓는 바람에, 무슨 일이 벌어지든 간에 어쨌든 우주선을 쏘아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우리는 다시 버스에 태워져 우주선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엘리베이터가 반쯤 올라가는 도중에 누군가가 갑자기 말했다.
"맙소사, 그 빌어먹을 원숭이를 두고 왔어!"
그리고나서 그는 땅 위에 있는 동료들에게 빨리 돌아가서 수를 데려오라고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시 우주선 안에 타고 그들이 수를 데려와서 태우자, 누군가가 백부터 거꾸로 숫자를 세어나가기 시작했다. 우리들 모두는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카운트가 "열"까지 내려왔을 때, 나는 뒤편에 있는 수가 내는 괴상한 신음소리 같은 것을 들었다. 나는 등을 돌리고 자세를 낮춰 뒤를 봤다. 그런데 그곳에 앉아 있는 건 수가 아니었다. 커다란 '수놈' 고릴라가 그곳에 버티고 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는 금세라도 자리에서 뛰쳐 일어나려는 것처럼 이빨로 좌석의 안전 벨트를 자근자근 물어뜯고 있었다! 나는 프리치 소령에게 얘기했고 그녀는 뒤를 보더니 말했다.
"맙소사!"
그리고는 무전기를 켠 뒤 지상의 관제탑에 있는 아무에게나 대고 소리쳤다.
"이것봐요, 실수를 저질렀어요. 수놈 고릴라를 태웠다구요. 뭔가 제대로 될 때까지 이 일을 연기하자구요."
그러나 우주선은 순식간에 요동을 치며 출발하기 시작했고 관제탑의 무선에선 다음과 같은 소리가 울려 나왔다.
"이제부터 그건 당신들 문제요. 우리는 회의 스케쥴이 잡혀있소."
그리고 우리는 그들로부터 멀어져 갔다.
13.
나의 첫 번째 느낌은 무언가의 밑에 깔려서 짓눌리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나의 아버지가 커다란 바나나 자루 밑에 깔려 넘어졌을 때의 그런 느낌이었다. 움직일 수도 없었고, 비명을 지를 수도 없었고,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정말이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우주선을 타고 있는 우리들은 그렇게 철통같이 묶여 있었다. 창문을 통해 보이는 바깥은 온통 푸른 하늘뿐이었다. 우주선은 계속 날아가고 있었다.
잠시 후에 몸이 천천히 밑으로 가라앉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좀 편안해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프리치 소령이 이제는 안전 벨트의 버클을 풀어도 좋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뭐가 됐든지 간에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 나가야 된다는 말도 했다.
지금 우리는 시속 1만 5천 마일로 날아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뒤를 돌아보니 지구가 마치 외계로 멀어져 가는 작은 공처럼 보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커다란 고릴라가 그렁그렁하는 신음 소리를 내며 떫은 표정을 하고 나와 프리치 소령을 쳐다보고 있었다. 소령은 고릴라가 점심을 먹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면서, 고릴라가 화가 나서 사고를 치기 전에 바나나를 줘서 달래보라고 말했다.
고릴라에게 줄 음식은 작은 가방 안에 포장되어 있었다. 그 안에는 바나나와 시리얼 몇 종류, 건포도 등등이 들어있었다. 나는 가방을 열고 그 안에서 고릴라를 즐겁게 해줄 만한 게 뭐가 있을지 뒤적거렸다. 그동안 프리치 소령은 휴스톤의 지상 통제소와 무선으로 교신을 하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통제소 들어라, 이 원숭이에게.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겠다. 이 원숭이는 수가 아니라 다른 수놈 고릴라다. 이곳에 있는 게 몹시도 못마땅한 표정이다. 어쩌면 난폭해질지도 모르겠다."
그곳에서 응답 메세지가 우리에게 오는 데는 잠시 동안 시간이 걸렸지만, 누군가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쨌든 원숭이는 다 비슷비슷한 것 아니오."
"빌어먹을!"
프리치 소령이 말했다.
"당신이 이 비좁은 공간에 그 험상궂게 생긴 늙은 고릴라를 타고 있다면, 그런 소리 함부로 지껄여대지 못할 거야."
잠시 후에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 일에 대해서 다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겠소.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 모두 웃음거리가 될 테니까. 누가 되었든지 간에 이제부터 그 고릴라는 수라구. 그놈 다리 사이에 뭐가 달려 있든지 간에 말이야."
프리치 소령이 나를 보더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곳에 머무는 동안에는 내 맘대로 저놈을 꽁꽁 붙들어 묶어두겠습니다. 알겠죠?"
지상 통제소에서는 단 한 마디의 응답만 들려왔다.
"알았다."
사실 익숙해지기만 한다면 우주에서 보내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는 중력 없는 곳에 있었으므로 우주선 안을 둥둥 떠다닐 수 있었다. 또한 해와 달과 별 등의 경치도 볼만했다. 문득 지구에 있는 제니 커란은 어떻게 지낼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는 계속해서 지구 둘레를 돌았다. 한 시간 남짓한 사이에 밤과 낮이 바뀌었다. 그것은 사물에 대해 색다른 전망을 주는 경험이었다. 내 말뜻은 우주밖에 머무르고 있다 보니 돌아가면, 아니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때는 뭘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새우를 키우는 사업을 계속 해야 할까? 제니를 다시 찾으러 갈까? '깨진 달걀'에서 다시 연주를 할까? 집에 있는 어머니를 위해 뭔가를 해야 할까? 그 모든 것들이 색다르게 생각되었다.
프리치 소령은 틈만 나면 잠깐씩이라도 눈을 붙였다. 하지만 자고 있지 않은 동안에는 늘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고릴라에 대한 잔소리, 지상 통제소에서 보내는 명령에 대한 잔소리, 배변과 화장을 할 공간이 없다는 데 대한 잔소리, 점심이나 저녁 식사 시간이 아닌데도 내가 음식을 먹는다는 데 대한 잔소리......젠장, 어쨌든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거라곤 딱딱한 막대기 같은 농축 식품이었는 데도 말이다. 나는 불평 같은 걸 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상에 있는 그들이 기왕이면 예쁜 여자를 뽑든가, 아니면 적어도 잔소리는 없는 여자를 뽑는 게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마디만 덧붙여야겠다, 고릴라도 결코 이상적인 짝꿍은 아니라는 것이다. 먼저 그에게는 바나나를 주어야만 하니까? 별 것 아니라구? 바나나를 움켜쥐고 껍질을 벗기는 것까지는 좋지만, 그다음에 그것을 밑으로 내리는 게 문제다, 바나나 알맹이가 빠져나가 우주선 안을 둥둥 떠다니기 일쑤이고 그러면 나는 그걸 찾으러 헤매고 다녀야 한다. 겨우겨우 붙잡아서 그걸 고릴라에게 주면, 그 녀석은 그걸 먹는 대신에 짓뭉개서 아무데나 내팽개쳐 버린다. 그러면 나는 그걸 깨끗이 치워야만 한다. 상당한 주의가 필요한 일이다. 고릴라를 혼자 내버려 둘 때면 언제나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이빨을 벅벅 갈아대고 가슴을 쿵쿵 두드려댄다. 그 소리를 잠시 동안 듣고 있으면 곧 미쳐버릴 것만 같다. 마침내 나는 하모니카를 꺼내 짧은 곡을 연주한다. 아마 '목장의 집'을 연주했던 것 같다. 그러면 그 고릴라 녀석은 조금이라도 잠잠해진다.
그러면 나는 '텍사스의 노란 장미'나 '나는 밝은 갈색 머리를 가진 제니를 그리워한다'와 같은 곡을 좀 더 연주한다. 그러면 고릴라는 그 자리에 누워 아이처럼 평화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우주선 안에 TV 카메라가 있어서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그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내가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휴스턴에 있는 누군가가 신문을 카메라에 구멍에 대고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신문의 머리기사는 '백치, 우주 음악을 연주하여 원숭이를 달래다' 였다. 그다음은 나로서는 몹시도 불만스러운 그렇고 그런 내용들이 이어졌다.
어쨌든 모든 일은 꽤 잘 진행되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새로 수라는 이름을 얻은 녀석이 프리치 소령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그녀가 그 녀석에게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수는 그녀를 붙잡으려는 듯 펄쩍 뛰면서 팔을 뻗치곤 했다. 그러면 수는 그 녀석에게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이 빌어먹을 녀석아, 멀리 떨어져. 손 치우란 말이야!"
그러나 수라는 녀석은 마음속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다. 그 점만큼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그 녀석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개인적인 용무를 보기 위해서 작은 단지를 들고 비좁은 공간 뒤쪽을 갈라놓은 작은 칸막이 뒤로 가 있는 동안이었다. 갑자기 요란한 소동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칸막이 위로 고개를 내밀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까스로 프리치 소령을 붙잡은 수라는 녀석이 그녀의 우주복을 벗기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비명을 질러대면서 무전기의 마이크로 수의 머리를 두드려댔다. 그러자 뭐가 문제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우주로 나온 지 이틀 사이에 수는 의자에 꽁꽁 묶여 있는 바람에 아무 짓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렇게 묶여 있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하게 기억할 수 있다.
이제 드디어 그 녀석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쨌든 나는 황급히 앞으로 달려가 그 녀석을 프리치 소령으로부터 떼어놓았다. 소령은 계속해서 소리를 질러대며, "지저분한 동물 같으니라구" 같은 욕들을 연신 내뱉었다. 일단 자제력을 잃어버리자 프리치 소령은 조종석에 머리를 처박고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수를 끌러서 칸막이 뒤로 데리고 갔다. 난 그 녀석이 소변을 볼 수 있는 빈 병을 찾아주었다. 그러나 그 녀석은 볼일을 끝낸 뒤에 병을 집어 들더니 전등이 깜빡거리는 벽을 향해 그 병을 집어 던졌다. 그 녀석의 오줌이 산지사방으로 흩어지면서 우주선 안을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내가 억지로 수를 끌고 억지로 그 녀석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굵직한 오줌 방울 뭉치가 곧장 프리치 소령을 향해 천천히 날아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면 오줌 방울이 그녀의 뒤통수에 부딪힐 것 같았다. 나는 일단 수를 놓아준 뒤에 공중에 떠다니는 물건들을 잡으라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이 넣어 준 채를 가지고 그 오줌 뭉치의 방향을 바꾸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채로 오줌 뭉치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 프리치 소령이 뒤로 돌면서 의자에서 일어나는 바람에 오줌 뭉치가 그녀의 얼굴 정면에 부딪혔다. 그녀는 한동안 다시 소리를 지르면서 날뛰기 시작했다. 수는 이미 조종판 위에 있는 전선들을 붙잡고 쥐어뜯기 시작하고 있었다. 프리치 소령이 비명을 질러댔다.
"저 녀석을 붙잡아! 못하게 하라구!"
그러나 미처 그를 붙잡기도 전에 우주선 안에선 스파크가 일어나면서 불꽃이 사방으로 튀기 시작했고 수는 천장에서 바닥으로 오락가락하며 좌충우돌하기 시작했다. 무전기에서는 "대체 무슨 일이야?" 라는 목소리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우주선은 사방으로 요동을 치기 시작했고, 수와 프리치 소령은 벽에 부딪혀 콜크 마개처럼 통통 튀고 있었다.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었고, 서 있을 수도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무전기에서 다시 지상 통제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우주선의 불안정한 상태를 파악했다. 포레스트, 오른쪽에 있는 예비 컴퓨터에서 D-6 프로그램을 실행시킬 수 있겠나?"
빌어먹을! 이 자식이 지금 농담을 하고 있나! 나는 지금 이곳에서 사나운 고릴라와 한데 어울려 갈피를 못 잡고 사방으로 부딪히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프리치 소령이 너무나 크게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나는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고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녀는 이러다가 곧 우주선이 폭발해서 우리가 불길에 휩쓸리게 될 것이라고 외쳐대고 있었다. 나는 창문을 통해 가까스로 바깥을 내다볼 수 있었다. 그녀의 말마따나 실제로 상황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지구가 우리를 향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가까스로 예비 컴퓨터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고, 한 손으로는 벽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D-6 프로그램을 실행시켰다.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것과 같은 긴급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주선이 인도양으로 떨어지도록 고안된 프로그램이었다. 프리치 소령과 수는 그래도 계속 목숨이 붙어 있었다. 프리치 소령이 소리쳤다.
"이봐, 거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그녀에게 하는 일을 말하자 그녀가 말했다.
"집어치워, 이 멍청아. 이미 인도양은 지나쳐 버렸단 말이야. 한 바퀴 돌아서 다시 인도양으로 돌아갈 때까지 기다리든가, 아니면 남태평양으로 떨어질 수 있는지 살펴봐."
믿거나 말거나 우주선에 타고 있으면 세상을 한 바퀴 도는 데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프리치 소령은 무전기 마이크에 대고 지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악을 써대기 시작했다. 우리가 남태평양에 가서 떨어질지도 모르니 가능한 한 빨리 우리를 구조하러 오라는 거였다. 나는 미친 듯이 버튼들을 눌러댔고 곧이어 거대한 지구가 훨씬 더 가까워져 있었다. 우리는 프리치 소령의 짐작에 따르면 남아메리카라고 생각되는 지역 위를 날아서 다시 물만 보이는 곳 위를 나르고 있었다. 왼쪽으로 남극이 보였고 앞쪽으로는 오스트레일리아가 나타났다.
이제 모든 것이 찜통 속처럼 뜨거워지면서 우주선 밖에서는 괴상망칙한 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곧이어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바로 코 앞에 지구가 바싹 다가와 있었다. 프리치 소령이 나에게 소리쳤다.
"파라슈트 레버를 당겨!"
하지만 나는 의자에서 옴짝달짝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우주선 천장에 찰싹 달라붙어서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시속 1만 마일로 대기권을 통과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양 위에 떠 있는 커다란 섬을 향해 날아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만일 거기에 부딪히면 우리는 흔적도 남기지 못하고 사라져 버릴 것 같았다.
그러나 갑자기 무언가 '퍽'하는 소리가 나더니 우주선의 속도가 느려지기 시작했다. 까닭을 살펴보니 수가 실수로 파라슈트 레버를 건드리는 바람에 우리의 목숨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그 순간 문득 이 모든 소란이 끝나고 나면 저 녀석에게 바나나나 실컷 먹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속도가 떨어진 우주선은 파라슈트에 매달려 날아가고 있었지만, 아직도 땅 위에 떨어질 것처럼 보였다. 결과는 안 좋을 게 뻔했다. 계획에 따르면 우주선은 물에만 떨어지게 되어있었고, 배가 와서 우리를 건져내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놈에 우주선에 발을 붙인 이후로 도대체 뭐하나 제대로 된 게 있었던가? 그러니 앞으로 대체 뭘 기대할 수 있겠는가?
프리치 소령은 마이크를 붙잡고 지상 통제소에 말하고 있었다.
"우리는 오스트레일리아 북부의 대양 어느 지점엔가 곧 떨어질 예정이다. 하지만 어느 곳이 될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몇 초 뒤에 응답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실히 알 수 없다면 창밖을 한 번 내다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러자 프리치 소령은 무전기를 내려놓고 창밖을 내다보더니 말했다.
"맙소사, 이건 보르네오 근방인데."
하지만 그녀가 지상 통제소에 그 말을 하기도 전에 무전기가 끊어져 버렸다, 이제 우리는 지구에 정말로 가까워져 있었다. 우주선은 여전히 파라슈트에 매달려 떨어지고 있었다. 아래쪽으로는 갈색으로 보이는 작은 호수들을 제외하고는 온통 정글과 산악지대만 보였다. 이제는 그곳에 있는 호수에 떨어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 셋 —나와 수와 프리치 소령--- 은 모두 창문에 코를 바싹 붙이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갑자기 프리치 소령이 악을 써댔다.
"세상에! 여긴 보르네오가 아냐, 빌어먹을 뉴기니아라구! 카고 부족들이 있는 바로 그곳이야!"
수와 나는 열심히 아래만 내려다보았다, 땅 옆에 있는 호수가 보였다. 뒤를 돌아보니 천 명쯤은 될 것 같은 원주민들이 무장을 하고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카락을 바싹 밀어버리고 풀잎으로 만든 작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창과 방패를 들고 있었다.
"빌어먹을! 저들이 무슨 부족이라고 그랬죠?"
내가 말했다.
"카고 부족."
프리치 소령이 말했다.
"2차 대전 당시에 저들을 우리 편으로 만들기 위해서 비행기에서 사탕 같은 것들을 떨어뜨려 준 적이 있어. 아마 저들은 결코 그걸 잊지 않고 있을 거야. 아마 하느님이나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무언가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었을 거라구. 천연 활주로까지 만들어 놓구 말이야, 저기 보여? 검은색으로 둥그런 표시들을 만들어 착륙 지점까지 표시해 놨잖아."
"내가 보기엔 나를 삶으려는 가마솥처럼 보이는데요."
나는 말했다.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
프리치 소령이 잘 모르겠다는 듯이 대답했다.
"정말 저들 중에 식인종은 없는 거예요? "
내가 물었다.
"어쨌든 우린 곧 발견될 거야."
그녀가 말했다.
우주선은 호수에 떨어지며 가볍게 흔들렸다. 우리가 떨어진 직후부터 원주민들은 북을 두드리면서 입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는 캡슐 안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 소리도 들을 수 없었지만, 기계장치는 아직 멀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