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 5-1-2
3장 섬진강 기슭에서
기적을 우리며 멈춘 종착역, 쏟아져 나온 사람들 속에 송관수의 유해를 안은 영광과 영선네도 있었다. 그들은 지주 시내를 향해 걸음을 옮긴다. 후주레한 짚베 치마저고리를 입고 흰 댕기를 감은 쪽에 나무비녀를 찌른 영선네는 흐르는 땀을 닦을 생각도 없이 아들 등 뒤 숨듯 걷는다. 얼마 만에 찾아오는가. 그러나 영광에게 진주는 낯선 고장이었다. 남의 당, 하염없이 송화강 강가에 앉아 있곤 했던 길림보다 멀고 스스러워지는 진주, 참으로 얼마 만인가. 저녁노을에 잠긴 남강은 아름다웠다. 두지를 찾아가는지 무리지어 우짖으며 새들이 날아가고 있었다. 남강 다리 위에서 영광은 과연 저 강물에서 어릴 적에 개구리헤엄을 치며 놀았는지 의심스러웠다. 촉석루와 이헤미 바위를 오가던 기억, 일렁이는 강가 대숲에 과연 어린 날의 꿈이 실려 있는가 의심스러웠다. 그런 심정은 영선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아니 그는 더더욱 가슴이 메였을 것이다. 말하자면 이들에게는 고향이 없는 것과도 같았다. 그것은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틀 자리가 없었다는 뜻도 된다. 시내로 들어온 영광은 사람들에게 물어서 남강여관을 찾아갔다. 거리엔 더러 전등불이 나돋은 그런 시각이었다. 여관 입구에는 조그마한 사무실 같은 것이 있었다. 오십 세 안팎으로 뵈는 사내가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읽고 있다가 얼굴을 들었다. 유해를 안은 영광을 보는 순간 사내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다. 그는 다름 아닌 장연학이었다. 오 년 전에 연학은 최씨집을 떠나 독립을 했다. 그리고 여관업을 시작한 것이다. 외견상 그는 최씨네와 소원해진 듯 보였지만 그들의 밀접하고 은밀한 유대에는 변함이 없었다. 이미 연학은 영광이 올 것을 알고 있었다. 성루서 전갈을 받았던 것이다. 영광이 역시 서울역에서 잠시 동안 환국을 만났고 남강여관을 찾아가라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시선을 멀리 둔 연학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만주서 왔제?"
"네."
"항구야! 항구야!"
소년이 뛰어왔다.
"칠호실로 손님 안내해라."
그러고는 연하기 문이라도 닫아버린 듯 신문으로 시선을 떨구었다. 안내된 방은 깨끗하고 상이 하나 놓여 있었다. 영광은 상 위에 유해를 내려놓고 윗도리를 벗어 벽에 건 뒤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두 손을 깍지 끼고 방바닥을 내려다본다. 영선네는 보따리를 끄르고 수건을 꺼내어 비로서 땀을 닦는다.
"고단하시지요."
방바닥을 내려다본 채 영광이 말했다.
"아니다."
그러고는 모자간의 대화는 끊겼다. 옆방에는 손님이 들지 않았는지 사람의 기척이 없고 소년이 켜주고 간 전등 주변을 하루살이가 날고 있었다. 영선네도 그랬지만 영광이도 꼴이 말이 아니었다. 양볼이 홀쭉해졌고 눈동자는 빛을 잃고 있었다. 보름 가까이 이들은 제대로 밥을 먹지 못했다. 이제는 슬픔과 고통에도 지쳐버린 상태였다. 홍이가 동분서주, 모든 일을 처리해주었으나 호열자로 사망했기 때문에 관수의 시신이 화장터에 가는데 시간이 걸렸고 살림 정리를 하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반 넋이 나간 영선네는 울지도 못했고 아무 일도 못했다. 옷보따리를 쌌다간 풀고 쌌다간 풀고, 결국 영광이 자신을 타이르고 다스려가며 영구와 함께 짐을 챙겼다. 그리고 영구를 남겨둔 채 신경을 떠났던 것이다. 영선네가 정신을 차리고 한 일이란 신경역에서 꼬깃꼬깃 접은 십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어
"아가, 상의야 공부 잘해라."
하면서 전송 나온 사의 손에 쥐여 준 그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영선네는 눈물을 흘리고 울었다.
"좀 누워보시지요."
영광이 말했다.
"아니다. 괜찮다."
다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저녁상이 들어왔다. 여름인데 미역국이 놓인 밥상이었다.
"산에까지 갈려면 많이 걸어야 하는데 밥 좀 들어보세요."
"나는 괜찮다."
영광은 미역국에 밥을 말아 영선에 앞에 놓아준다.
"자아 어머니."
영선네는 영광이 말아준 밥을 다 먹었다. 영광이도 오래간만에 밥그릇을 비웠다. 상을 물리고 또다시 모자가 우두커니 앉아 있는데 연학이 향로와 향을 들고 들어왔다. 유해 앞에 향을 피워놓고 연학은 엎드렸다.
"형님 이런 형상하고 돌아올라고 갔십디까."
연학은 흐느꼈다. 영선네와 영광은 놀라며 앉은 자리에서 일어선다.
"형님! 용서하이소. 너무 억울합니다. 왜 그렇게 가야 했십니까."
연학은 한참 동안 흐느꼈다. 눈물을 닦고 연학은 영선네에게 절을 했고 상주인 영광에게도 절을 했다. 그의 눈에는 또 눈물이 흘렀다.
"고생 많이 하셨지요."
연학이 영선네보고 말했다.
"아, 아닙니다."
영선네는 당황하고 낯 설어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지가 다 압니다. 옛날에 진주 기실 때 한번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영광이가 조맨할 때."
영선네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다는 뜻인 모양이다. 영광은 방바닥에 두 손을 짚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고개를 숙인다.
"그런 말 마라. 그라믄 내가 부끄러버서 우짜노."
"아닙니다. 아버지가."
하다 말고 목이 메는지 말을 끝맺지 못한다.
"우리는 살아 있고, 그래 우리는 살아 있는데, 젤 고생 많이 한 형님이 먼저 갔으니 원통하고 억울하다.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 살아 있으니 죄인 아니가."
연학은 길상이 한 것과 꼭 같은 말을 했다.
"사람이 잘못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병으로 그리 됐는데,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자네는 모를 기구마. 우리들 맴을 모를 기다."
부지런하고 지혜로우며 온갖 뒤처리를 도맡아 해온 연학이, 냉정하고 감정을 내비치지 않는 것으로는 그를 따를 사람이 없었는데 그 둑이 터진 듯 주체하질 못한다. 그러한 자신을 추스르듯
"하여간에 이야기는 두었다 하기로 하고 내일 아침 일찍이 출발해야 할 기다."
"차편은 어떻게 됩니까."
"자동차로 하동까지 가서, 거기서 나룻배를 타믄 된다. 그리고 화개에 가믄은 아마 사람이 나와 있을 성싶다. 사람을 못 만날 경우를 생각해서 일러두는데 찾아갈 곳은 도솔암이다. 알겄제?"
"네."
"기별이 갔이니께 통영 사는 사우하고 딸도 하마 내일 저녁때쯤 당도할 상 싶은데."
딸이라는 말에 영선네는 움찔한다. 무슨 말을 하려고 주뼛거리다 만다.
"그라믄 내일 생각을 해서 일찍이 주무시이소."
연학은 영선네에게 말하고 나갔다.
기차를 타고 오는 동안 모자는 계속 잠만 잤다. 늪에 가라앉듯, 덮쳐오는 수마였다. 극도에 이른 신경들이 일시에 와해되어 기능을 완전히 잃은 것처럼. 꿈도 없는 먹빛과도 같은 잠이었다. 그러나 여관방에서 불을 끄고 드러누웠지만 모자는 다같이 잠을 이루지 못한다. 괴롭고 긴 밤이었다. 막상 깨어 있는데 꿈을 꾸는 것 같았다. 그간에 일어났던 일이 모두 꿈만 같았다. 현실 같지가 않았다.
"어머니 주무십니까."
"아니다."
"어머니."
"..."
"지를 용서 안 하시지요."
"그런 말을 와 하노."
새벽녘에 살풋 잠이 들었다가 모자는 놀라서 일어났고 서둘러 떠날 채비를 했다. 연학은 조그마한 사무실 같은 곳에 앉아서 어제 들어올 때와 같이 여관의 주인으로서 손님 대하듯, 여관비도 받았고 떠나는 모자 뒷모습을 덤덤히 바라보았다. 그들 모습이 사라진 뒤 연학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동까지 간 모자는 연학이 말한 대로 나룻배를 탔다. 이들에게는 초행인 고장이며 처음 보는 산천이었다. 강물을 거슬러 나룻배는 상류를 향해서 간다. 구성진 뱃사공의 노래를 들으며 장돌뱅이들의 수군대는 목소리를 들으며, 술집 작부인 듯, 머리는 지지고 눈썹을 그린 젊은 여자의 간드러진 웃음소리를 들으며, 강은 유장했다. 잔물결이 햇빛에 부서지며 희번덕거렸다. 뱃전에 부딪쳐오는 물살, 영광은 갑자기 아버지가 이 강을 얼마나 많이 오르내렸을까 하고 생각했다. 동학란에 죽었다는 친할아버지는 또 얼마나 이 나룻배를 탔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유해를 안고서 왜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지 알 수 없었다.
"그 목이 뿌러져 죽일 놈이 내 신세를 요모양 요꼴로 만들었지. 술집에 나를 팔아묵고 그러고는 종무소식이라. 어디서 뒤졌다는 소문도 없는 거를 보믄 살아 있기는 한 모양인데, 어찌 내가 꿈엔들 그놈을 잊겠나."
방금 간드러지게 웃던 작부풍의 여자는 제 또래의 여자를 상대로 신세타령이었다.
"소나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라. 늙고 젊고 할 것 없이...계집은 한번 허바에 발 디디놓으믄 그것으로 끝장이고 무신 희망이 있노. 빚만 없이믄 만주 가서 돈이라도 벌겠는데."
어느덧 배는 화개에 닿았다. 영광은 보따리를 든 영선네를 한손으로 부축하며 배에서 내렸다. 내렸는데 그들 앞에 다가선 사람은 강쇠였다.
"아저씨!"
"운냐. 온다고 욕봐제. 아지매 오래간만이오."
강쇠를 유해를 외면하며 덤덤히 말했다.
영광이 아저씨라 한 것도 강쇠가 아지매라 한 것도 다 틀린 호칭이다. 사돈지간에 그러는 법이 없는데 이들은 전혀 깨닫지 못한다. 아짐시, 아저씨 하다가 이들이 만나지 못하게 된 것이 십 년 넘게, 사돈으로서 어디 상면 한번 했던가. 산놈한테 맡긴다 하며 관수가 딸을 데리고 가는 것을 영선네는 보았을 뿐, 그것이 마지막이었고 영광은 휠씬 훗날에 영선이 시집갔다는 얘기를 뉘한테서 들었는지, 그나마 기억이 희미했다.
"아짐씨 보따리 이리 주이소."
강쇠는 영선한테서 보따리를 받아들었다. 이번에는 아지매가 아니고 아짐씨라 했다. 태연한 척했지만 강쇠 마음속에서는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었을 것이다. 오랜 친구, 오랜 동지, 생사를 같이 한 쌍두마차였고 분신이었던 김강쇠와 송관수, 장연학이 유해 앞에서 흐느껴 울었지만 강쇠의 슬픔, 충격에 비할 것이 못 된다.
"날 따라오니라."
영광에게 말하고 강쇠는 앞장서서 간다.
나루터의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민지연이었다. 삼베였지만 깨끗한 고의적삼에 흰 모시 조끼까지 입고 대님을 쳤으며 검정고무신을 신은 강쇠의 모습, 후주레한 짚베 치마저고리에 나무 비녀를 곶은 영선네, 그리고 유해을 안은 영광이, 누가 보아도 객사한 사람의 유골을 절로 모시고 가는구나 하고 짐작했을 것이지만 지연의 짐작은 단순하지가 않았다. 유해을 안은 도시풍의 잘생긴 남자가 맘에 걸렸다. 왜 강쇠가 일상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는가 그것도 마음에 걸렸다. 그러나 무엇보다 객사한 사람일 거라는 짐작이 지연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뭐 하나 확실히 잡히는 것은 없었지만 무엇인지 모르게, 그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의혹의 짙은 안개가 그의 심장을 죄는 것이다.
사십을 겨우 넘긴 지연은 아직 지리산을 떠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떠나지 않았다기보다 아주 붙박아 살고 있었다. 머리만 깍지 않았다 뿐이지 그는 중 옷차림이었고 은젓가락같이 가는 손에 염주를 들고 있었다. 가냘픈 몸매, 여름 햇볕에 그을리기는 했으나 야들야들하고 아리송하고 권태스러움이 감도는 얼굴에 구심점과도 같은 붉은 입술, 신기하게도 옛날과 별로 달라진 것 같지가 않았다. 바람에 나부끼는 머리카락도 비단실같이 부드러운 게 옛날 그대로였다.
어느덧 나룻배는 상류를 향해 떠나고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하늘에 까마귀 떼가 날고 있었다.
"소사야 가자."
소사 역시 중 옷차림이었다. 읍내에 나가 장을 보아온 소사는 짐 꾸러미를 들고 말없이 지연을 따랐다. 지연은 나루터에서 소사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실은 소사를 기다렸다기보다 할일이 없이도 지연은 나루터에 곧잘 나와 있곤 했다.
여러 해 전에, 지연이 간청하여 친정에서 암자를 하나 지어주었는데 어떤 면에서는 그랬던 것이 친정 부모의 마음을 홀가분하게 했는지 모른다. 세상을 버리지 않고 산에 있느니 차라리 형식에 불과하다 하더라도 세상을 버리고 산에 있는 편이 낫다 생각했을 것이다. 외사촌 오라비 소지감이 있는 곳이니 마음을 놓고 암자를 지어주었을 것이다.
"소사야 오늘이 며칠이냐?"
산길을 오르며 물었다.
"글쎄요. 양력으로 스무엿샛날인지 이레인지요."
"좀 있으면 여름도 가겠구나."
"가지요."
"너도 가고 싶지?"
"지금 가서 뭣하겠습니까. 이제는 아씨가 가라 하셔도 갈 곳이 없습니다."
"너만 그러냐? 나도 이 산말고 있을 곳이 없다."
"그것은 아씨가 청하신 일 아니었습니까?"
"그래. 너는 안 그렇다 그 말이지?"
"저야 뭐 아씨 분부에 따랐을 뿐이지요."
"원망하는구나."
"원망 같은 것 없습니다."
나이 훨씬 젊은 소사가 지연보다 더 늙어 보였다. 손은 거칠었고 살갗은 꺼실꺼실했다. 삼십을 갓 넘긴 그는 본시 민씨집 내림 종의 딸이었으니 갈 곳이 없다 한 것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주종 간에 주거니 받거니, 오늘 처음 해본 말도 아니었다. 단순한 산중 생활 속에서 별 지겨움 없이 되풀이되어온 얘기의 내용이었다.
"소사야."
"예."
"아까 그 사람들 말이다."
"누구 말씀입니까."
"나루터에서 너랑 함께 내린 사람들 말이야."
"아아 예. 유골을 가지고 온 사람들 말씀이지요?"
"그래."
"김장사말고는 낯선 사람인데요."
"그렇지? 못 본 사람들이지? 어디서 왔을까."
지연은 갑자기 흥분했다.
"이 근동 사람이겠지요. 영가를 천도하는 법사 때문에 절에 오는 길 아니겠어요?"
절 변두리에 살다보니 소사도 들은 풍월이 있어 제법 유식하게 말했고 나이 탓인지 말주변도 늘었으며 상전을 어려워하는 기색도 준 것 같았다.
"아니다. 그렇지가 않아. 근동 사람이면 어째 유골을 안고 오니?"
"객사했으면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요. 그게 뭐 이상해서 그러세요?"
"객사를 해도 그렇지. 아주 먼 곳이 아니면 시신을 옮겨왔을 거구."
"이 한여름에요?'
지연은 소사를 상대해서 말한다기보다 생각을 더듬고 생각을 꿰어 맞추어 어떤 사실에 접근해보려고 열중해 있었다.
"젊은 남자 보았지?"
"예."
지연은 걸음을 멈추었다.
"어떻게 보이든?"
"잘 생겼대요. 그리고 다리가 좀 성찮은 것 같구요."
"그게 아니야, 도시 사람, 그것도 아주 큰 도시에 살았을 것 같애."
"말씀을 듣고 보니 근동 사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데 김장사가 왜 마중을 나왔을까?"
"아씨도 참, 남의 일에 뭘 그리 깊이 생각하세요?"
"김장사가 마중 나온 걸 보면 도솔암으로 갔을 거야."
지연의 눈이 반짝였다.
"만주서 왔을까? 왔을지도! 그래 그게 틀림없을..."
말끝을 맺지 못하고 양 어깨가 축 늘어진다.
"아씨 어서 가세요. 짐이 무거워 죽겠는데."
"그래 가자."
지연은 가끔 일진이 만주로 갔을 거란 말을 해왔다. 만주로 찾아가겠다는 말도 했었다. 소사는 걸음을 빨리한다. 일진에 관한 얘기라면 참을성 있는 소사도 이제 넌더리가 났던 것이다. 암자에 돌아온 지연은 해가 깜박 넘어갈 때까지 꼼짝없이 소나무 밑에 있는 바위에 앉아 있었다. 열심히 염불을 하고 염주를 굴리다가도 어떤 계기가 있으면 지연의 병은 도진다. 그것을 알기에 소사는 모르는 척 못 본 척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오늘 밤엔 잠 설치겠다.'
소사는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지연은 저렇게 꼼짝없이 앉아 있는 날이면 밤새 소사를 상대로 넋두리를 했으며 새벽녘에 통곡을 하다가 흐느껴 둘다가 잠이 들곤 했던 것이다. 그것은 일종의 미신과도 같았고 신앙과도 같은 것이었다. 혼약한대로 혼인의 의식만이라도 거행해 달라, 그같은 지연의 의지는 미신같이 완명했고 신앙같이 절대적이었다. 출가한 일진에게 그것을 요구하기 그것을 요구하기 위하여 지연은 지리산으로 내려왔던 것이다. 일진이 모습을 감춘 지 십 년이 넘었는데 그 집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이제는 다만 기다림이 되고 말았으니, 어쩌면 그것은 지연이 살아가는 지렛대 같은 것인지 모르고 삶의 정열 같은 것인지 모른다. 해가 지는 산속에는 새 소리, 짐승 울음이 적막을 깨뜨리곤 한다. 싸아 하고 나뭇잎을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 맞은편 산허리는 붉게 타고 있었다. 한편 도솔암으로 간 일행은 그곳에서 해도사와 소지감을 만났는데, 영광의 모자와는 초면이었지만, 놀라운 일은 소지감이 삭발을 하고 승려가 돼 있었던 것이다. 그는 도솔암의 주지였다. 일단 절에 들었다가 강쇠는 영광이만 남겨둔 채 영선네를 데리고 거처로 돌아왔다.
"아이구 사돈!"
휘의 모친이 맨발로 뛰어나왔다. 비로소 강쇠 내외와 영선네는 사돈으로 대면하는 인사를 나누는 것이었다. 휘의 모친은 영선네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울기는 와 우노. 그 더러분 놈 생각하지도 마라. 나쁜 놈!"
"보소 그래도 되는 겁니까? 사돈한테."
눈물을 훔치다가 휘의 모친은 질겁을 하며 말했다.
"사돈이고 오돈이고, 숭악한 놈이다. 사람우 가심에 못을 박아도 유분수, 지 혼자 편할라꼬 저승에 가버린 놈, 생각하믄 머하노."
하며 씩씩거리는데
"어무이! 어무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아이를 업은 영선이 들어섰고 휘와 딸아이가 뒤따라 들어섰다.
"영선아!"
영선네의 고함은 차라리 산짐승의 포효였다. 그러나 다음 순간 제물에 놀라 뚝 그치더니 영선에게
"씨어른한테 인사는 안 하고."
낮은 소리로 일깨운다.
"밖에서 이럴 기이 아니라 방에 들어가입시다."
강쇠는 병아리 몰 듯 팔을 벌렸고 아이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면서도 어른들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간다.
"장모님한테 먼저 절 올리라. 애기도 어무이한테 절하고오."
강쇠 말이 떨어지자 딸과 사위는 이별의 긴 세월을 잡아당기듯 마음을 다하여 절을 했다. 주눅이 든 영선네는 처음 만난 사위의 얼굴을 바로 보지 못한다.
"장모님 볼 낯이 없십니다. 용서하시이소. 이렇게 상면하게 된 것이 한스럽십니다."
귀밑에서 턱밑까지 면도자국이 파란 휘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아니네. 우, 우리가 무신 부모 할 짓을 했다고 절을 받나."
간신히 말한 영선네는 꼬깃꼬깃 접어진 손수건으로 입을 막으며 울음을 삼킨다.
"이분에는 선아하고 선구가 외할무이한테 절을 해라."
해도사가 이름을 지어준 선아 선구, 열한 살의 계집아이와 네 살바기 사내아이, 어줍은 몸짓으로 아이들은 절을 했다. 마당의 밀보리를 늘어놓은 멍석 옆에 짝쇠와 안서방이 쭈뼛쭈뼛하며 서 있었고 그들의 댁네들도 장독가에 팔짱을 끼고 우두커니 서 있다가 슬그머니 사라진다. 띄엄띄엄 세 가구가 사는, 물소리 바람소리 까마귀 울음을 벗삼는 첩첩산중의 수수깡 갈대로 덮은 산막, 산사람들의 인륜지사는 대강 그 정도로 끝이 났다.
"절에는 안 가고 바로 왔나?"
휘의 모친이 아들에게 물었다.
"잠간 들리서 처남을 보고 왔십니다."
"이자 우리는 도솔암으로 내리가자."
강쇠가 일어서며 아들을 돌아보았다.
"사돈은 저녁 잡숫고 눈 좀 붙이이소."
영선네한테 말하고 부자는 종종걸음으로 산길을 내려간다. 그들이 가고 난 뒤
"어무이 저녁을 어찌할까요?'
영선이 시어머니한테 물었다.
"저녁은 내가 다 해놨네라. 채리기만 해서 가지오니라."
"예."
"그라고 깨미움을 좀 쑤어놨인께 그것도 한 그릇 상에 올리서 가지오고."
"예."
"선아야, 니도 나가서 엄니 거들어라."
"예 할무이."
선아는 어미 치마꼬리를 잡고 방에서 나간다.
"사돈."
"예."
"이자는 그만 우리하고 사입시다."
"그, 그렇지마는."
"다 잊아뿌리고 도솔암에 댕기믄서 저승길이나 딲업시다. 살믄 우리가 엄매나 살겄소."
"..."
"십여 년 전에 우리 선아에미 놔두고 가심서, 맴이 아파 그랬겄지요, 한분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나든 바깥사돈이 지금도 눈에 삼삼합니다."
"..."
"언제가는 식구들이 모이서 옛말하고 살 기다, 하고 생각했더마는 천지신명이 무상하요."
"원망하믄 머하겄십니까. 다 소용이 없는 일이라예. 생각하믄 야속하믄서도 불쌍하고."
처음으로 영선네는 제대로 된 말을 했다. 딸을 마나 마음이 한결 진정된 것 같았다.
"단 하루도 편키 못 살고 갔인께요."
"와 아니라. 그것은 나도 아요."
"사고무친한 곳에서 임종에 아무도 없이, 어, 어떻게 혼자 떠났는지... 그기이 젤 서롭소."
붙었던 입이 떨어진 듯 겹겹이 싸인 한을 찢어내듯 영선네는 스스럽게 울고 휘의 모친도 눈물을 닦는다.
"선아할배가 말하더마요. 가솔의 일이라 카믄 그렇게 애살스러울 수가 없고 자개는 거기 비하믄 벅수라 캄서, 식구들 남기놓고 참말 이제 우찌 눈을 감았일꼬."
"집에서는 그렇지도 않았십니다."
"아무튼지간에 사우도 자식 아닙니까. 아들이라 믿고 으지하고 사입시다. 산 사람은 살아야 안 하겄소."
"예. 밥 묵고 잠자고 금수만도 못합니다."
저녁은 먹는 둥 마는 둥, 영선네는 깨 미음에도 손도 대지 않았다. 입속이 마르는지 숭늉만 마셨다. 설거지를 끝내고 영선이 손을 닦으며 방에 들어왔을 때 사방에서 어둠이 밀려왔다. 배를 타고 차를 타고 걷고 해서 고단했는지 선구는 할머니 무릎에서 어느덧 잠이 들었다. 선아는 등잔에 불을 밝힌다. 지치고 여위어 눈만 퀭하니 뚫린 영선네 얼굴이 벽을 등지고 있었다.
"어이구 내 새끼, 떨어졌구나."
휘의 모친이 선구를 안고 일어선다.
"그라믄 애딸이 그 동안 쌓인 얘기나 하시이소. 선아야 니도 가자. 할매랑 함께 자자."
아이들과 시어머니가 나간 뒤
"엄니!"
영선은 어미에게 몸을 던졌다.
"엄니!"
"운냐, 운냐."
영선네는 딸의 등을 쓸어준다.
"불쌍한 울아부지!"
소리를 죽이며 운다. 한동안 모녀는 하염없이 울었다. 산에서도 소쩍새가 구슬피 울고 있었다.
"영선아."
"엄니."
"울지 마라. 이자 그만 울어라. 어디 얼굴 한분 보자."
영선네는 치맛자락을 걷어서 어릴 적에 그랬던 것처럼 딸 얼굴의 눈물을 닦아준다.
"그 동안 얼매나 고생을 했노."
"엄니한테 비하믄 내가 한 고생이사 머."
"통영서 아아들 애비는 머를 하고 사노."
"소목일이요."
"그것 해가지고 살 만하나?"
"밥은 안 굶소. 오두막도 하나 장만했고, 처음에는 좀 고생했지만."
"사람은 우떻노."
"학교 공부는 못했지만 고학을 읽어서 사리에 밝고 근실합니다."
"니한테 잘해주나."
"야."
"니 오래비하고 니를 만내는 것이 내 소원이더마는, 우째 소원이 이렇기 이루어지는지 모리겄다. 내가 죽고 니 아부지가 살아야 하는 긴데."
"이제는 엄니라도 오래 살아주어야 한이 없을 깁니다."
"살고 접잖다."
"그런 소리 마이소. 울고 갈 친정도 없었던 생각을 하믄, 그기이 얼매나 서럽고 외로운지 엄니는 모를 기요."
"..."
"그런데 엄니 영구는 와 안 데리고 왔십니까."
"그 아는 핵교 댕긴께 대학교를 댕긴께."
"대학교를요?"
"운냐, 공부를 잘해서 들어갔는데 니 오래비 몫까지 해야 안 하겄나? 영구도 따라올라고 하더라마는, 모두가 의논을 해서 영구는 남아 있기로 했다."
"학비는 어쩌고."
"그기이, 학비가 별로 안 드는 핵교고, 기숙사가 있어서 묵고 자는데는 지장이 없고, 또 책임을 져줄 사람이 있어서 그 아 걱정은 안한다."
"그 사람이 누군데요?"
"니 아부지하고 태생이 같고 공장도 하고, 그 얘기는 차차로 하자. 그런데 니는 터울이 와 그리 늦노."
"하나 잃어부맀십니다."
"우짜다가?"
"홍역 끝에 그만."
소쩍새는 여전히 울었다. 쉬었다가는 또 울고. 모녀도 흔들리는 호롱불 밑에서 얘기를 하다간 울고, 울다간 얘기하고, 밤은 깊어갔다. 도솔암에서 늦게까지, 소지감이 영가를 위하여 목탁을 치며 지장경을 독송하고 있었다. 백골이 되어 돌아온 지난날의 동지, 아니 친구, 그러나 엄밀히 따지자면 친구일 수도 없었고 동지일 수도 없었던 이상한 만남으로 이루어졌던 교류를 생각하면서 소지감은 목탁을 두드리고 독경을 하는 것이었다. 진보적 사회주의자였던 이종 이범준, 그가 진주의 형평사운동에 가담하면서 동지가 된 송관수와 소지감, 살아온 역정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생리적으로도 친구가 될 수 없었으며 더더구나 동지도 될 수 없었던 사이, 그런 그들의 교류는 어떤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민족의 동질감이었을 것이다. 운동권 밖에 있었던 소지감이 십여 년 전 군자금 강탈 사건에 미약하나마 가담하게 된 것도 바로 그 민족의 동질감 때문이 아니었던가. 아무튼 소지감이 산 사람이 된 데는 해도사의 존재도 컸지만 송관수와의 만남이 무관하다 할 수 없고 삭발하고 가사 걸친 중으로 변신한 것에는 구자금 강탈 사건의 영향이 컸던 것을 부인 못한다. 소지감은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토록 긴 방랑, 그토록 깊은 고뇌를 끝내고 젊은 날 입산한 일이 있었던 자리로 돌아와 지금 목탁을 치고 있는 것이다. 소짐감의 마음은 비통하지 않았다. 평화스러웠다. 소지감의 마음은 서글프고 쓸쓸하지가 않았다. 자신을 위해서도 송관수를 위해서도 어딘지 모를 뿌듯함이 없었고 교류가 아닌 합류를 느끼는 것이다.
"아땀 참 길기도 하다. 대강 하믄 좋겄구마는."
강쇠는 혀를 찼다. 강쇠의 추도하는 방법은 목탁이나 염불이 아니었다. 그는 고함지르고 소란을 한바탕 피우는 일이었다. 어쨌거나 밤은 깊을 대로 깊었고 법당 문을 열고 소지감이 나오자 송영광과 휘는 절방으로 들어갔고 가사와 장삼을 벗은 소지감 해도사 강쇠는 도솔암 가까이 새 둥지를 틀어놓은 해도사 산막을 향해 마치 개구쟁이들처럼 달려가는 것이었다.
술과 안주는 다 준비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땡땡이중이라 카는데 무슨 염불을 그리키 오래하요."
강쇠가 허두를 텄다.
"무식한 귀신은 진언도 못 듣는다 했소이다."
"그라믄 내가 진언도 못 듣는다 그 말이오?"
"아암, 그러니 김장사는 죽어서 혼백이 절 근처에 떠돌아도 법의 보시를 못 받는다 그 말이오."
"그런께 저승으로 못 가고 거릿구신으로 떠돈다 그 말이오?"
"그렇지요."
하자 해도사가
"걱정 마시오 김장사, 어차피 저승으로 간다면 지옥밖에 갈 곳이 없을 것인즉, 이곳에 남아 있는 편이 백번 낫지."
하고 실실 웃는다.
"하지마는 해도사 소지감선상이 모두 지옥으로 가부리고 나믄 나 혼자 심심해서 안 될 긴데."
술잔이 돌았다. 반백머리의 해도사는 희미해 보였다. 나무 옆에 있으면 나무 같을 것 같았고 바위 옆에 있으면 바위 일부일 것 같았고 물가에 있어도 눈에 뛸 것 같지가 않았다. 소지감은 깡말라서 팔다리가 길어 버마재비 같았고 눈은 아주 맑게 갠 하늘같았다. 강쇠만은 머리가 비교적 검고 잔주름이 잡혀 있었지만 살빛이 흰 덕택인지 늙은 푼수가 꽤 괜찮았다.
"그것은 염려 놓으시오. 내가 옆에 끼고 가리다. 원하면 말씀이오."
"되잖은 소리 하지도 마소. 아아니 이 김장사 거구들 우떻게 잔내비 겉은 해도사가 끼고 간단 말이오. 서천 쇠가 웃겄소."
"허허어, 저러니 무식한 귀신은 진언도 못 듣는다는 말을 듣지. 혼백한테 무슨 놈의 무게가 있단 말이오. 자아 사레 들지 않을 만큼 천천히 술 마시고 울든지 웃든지, 한바탕 분탕질을 치든지 해야 할 것 아니오."
"흥! 울기는 와 우노. 뭐가 서러바서, 사내대장부가 울믄 산천초목이 흔들린다 카는데 그 귀한 울음을 내가 울 상싶소? 뒤쫓아가서 그 숭악한 놈, 다리뭉댕이 뿌루고 눈두덩이 터지게 주먹질 못하는 게 한인데 흥!"
그러나 그 목소리에는 힘이 없었다.
"언젠가 한번 그린 일 있었지요?"
소지감 말에 해도사가
"구례 길노인 생신 때 한바탕 붙었지요."
"맞소. 그때는 누구 눈두덩이 터졌든가?"
"말하믄 잔소리지. 그때 내가 개 패듯 그놈을 패주었지요."
"나 땜에 그랬지요? 애꿎은 송형이 당했지."
"아직 꼬투리가 남아 있소?"
"머리 깎을 때 버렸소이다."
"허 참, 그때까지 그라믄 유갬이 있었다 그 말이구마는."
"나를 친 거나 진배없는데 꿀 먹은 벙어리 냉가슴 앓았으니 그게 그리 쉽게 잊을 일이든가."
"그릇이 제법 큰 줄 알았는데 형편없구마. 왜놈 술종지요 술종지."
술을 마시고 안주를 집어먹으며 강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산밑에서는 사람들이 소선상보고 땡땡이중이라 캄서 숭들을 보는데. 그 염불이라는 기이 진언이오? 하기시 부시기 어매야 아배야 그냥 줏어삼키는 말 아니오?"
"하시기 부시기지 뭐."
"그럴기요. 몇십 년을 중질 해도 나무아미타불하고 관세음보살밖에 못하는 중이 많다 카든데 벼락치기로 중이 된 소산상이 무슨 진언인가, 머 지신 밟는 소린가 그걸 하겄소."
"부처님 같은 말씀 하시네."
"야? 뭐라 캤소?"
"부처님 같은 말씀 한다 했소이다."
"그기이 무신 소리요? 답대비 유식꾼들은 바람 소리 겉은 말을 한께로 종잡을 수가 있어야제."
"허허어. 김장사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오. 본시 아무것도 없거든. 아무것도 없단 말씀이오."
해도사가 또 실실 웃으며 말했다.
"하믄은 중질은 와 하요."
"없어질려고 하는 거 아니오, 하핫핫핫."
소지감은 크게 소리 내어 웃었다.
"나는 또 불사나 받아서 묵고 살라고 그러는 줄 알았지. 없어질라 카믄, 그기이 머가 어럽어서 관수 그놈맨치로 불간에 들어가믄 될거 아니오. 안 그렇소?"
"없어지기는커녕 지금 법당에 와서 딱 앉아 있질 않소?"
"내일 강물로 들어가믄 고기밥 되지."
하는데 강쇠 목소리는 "또 한번 힘이 빠진다.
"송형 아들 말씀인데."
해도사가 말머리를 돌렸다. 순간 강쇠는 표정이 달라지면서 입을 꾹 다물어버린다.
"천고가 든 상호더구먼."
"그런 말은 와 하요."
퉁명스럽게 매우 불쾌해하는 투로 강쇠는 말했다.
"무슨 악의가 있어 한 말은 아니오. 그럴 리도 없고 그것이 반드시 나쁘다는 뜻만은 아니외다. 가슴이 아파서 한 말이었소."
"한 치 밖을 모리는 기이 사람인데 그런 말 마소."
심각해지면서 강쇠는 강하게 말했다.
"가슴이 아프다 하니 기분이 좋잖았던 모양인데, 하 참 저러니 무식한 귀신 진언도 못 듣는다는 말 들을 밖에."
"한판 붙어볼라요?"
"아아 천만에 사양하겠소이다. 분탕질하는데 이 산막은 내놓았소만 나는 아니오."
해도사는 팔을 휘휘 내저었다. 강쇠가 더 이상 응수하지 않고 술을 마시니 방안 분위기는 금세 가라앉았다.
"울어도 할 수 없고 웃어도 할 수 없고 사람이란 명대로 살 수밖에 없는 것, 명대로... 김휘도 그렇고 몽치 놈도 그렇고 송형의 아들, 영광이라 했든가? 세 사람 모두가 범속하지 아니 한 것 또한 웃어도 울어도 할 수 없는 명운인 것을."
해도사의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렸다. 강쇠는 여전히 응수하지 않았고 소지감은 개의치 않겠다는 듯 술잔을 들었다.
"범속하지 않은 명운이란 사람에게만 한한 것은 아니며 천지만물 억조창생, 생을 받은 그 모든 것에도 해당이 되는 것인즉, 천년을 사는 거목의 신령함이 있는가 하면 같은 나무로 태어나서 진작부터 베어져 불간으로 들어가는 불운이 있고 동네 어귀에서 세상 구경, 귀가 시끄러운 나무가 있는가 하면 벼랑끝에 홀로 있기도 하고."
"어디서 많이 든든 풍월이긴 한데, 해도사, 자다가 봉창 뚜디리는 거요?"
소지감이 핀잔을 주었지만 해도사도 개의치 않겟다는 듯 말을 이었다.
"날짐승 들짐승 벌레며 초목 미물에 이르기까지, 물속에서 기고 헤엄치는 목숨들, 생을 받은 억조창생 그 수없는 거의 명운이 어찌 그다지도 신묘하게 같지 아니한지, 연이나 각기 다르되 각기의 순환, 운동은 한결같이 같으니 그 조화가 대체 무엇일꼬. 운동은 시간의 연속이라, 하면은 유구한 시간을 돌아서 사람이 되는 시점이 있고 짐승이 되는 시점이 있고 초목이 되는 시점이 있고, 재앙의 자리 홍복의 자리도 번갈아서 오고가는 것, 그것이 법일진대 그 법을 짜놓은 존재는 대체 무엇일꼬. 조물주라고도 하고 창조주라고도 하고 신이라고도 하고."
하늘의 별과 산막에서 새나간 불빛밖에 없는 심산유곡의 깊은 밤, 물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데 이따금 고라니 울음도 들여오는 듯한데 주연이라 할까 송관수의 추도회라 할까, 그것 자체가 괴이쩍은 일이거늘 소지감이 '자다 봉창 뚜디리느냐', 했듯이 해도사의 모습이야말로 한층 기괴스럽고 주술적이다.
"그 조물주의 무자비함이야말로 목숨 속에 깃들여진 원초의 두려움이요 슬픔이라. 허나 그 무자비함이 공평인 것을 어쩌랴. 여지없는 순환은 선악의 인으로서 과로 통하고 물의 정연함과 더불어 영 또한 정연하니 오늘과 같은 말법의 시대도 세법의 도래를 준비하는 것으로 보아야 옳고 정연한 순환에 따라 말법은 썩어서 새것의 살이 되고 피가 되어 흔적 없이 되는 것이, 병든 목숨이 죽어서 썩어 없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르리. 하여 우주는 나요 나는 우주라. 홍복도 내 자신의 것이요 재앙도 내 자신의 것이며 벌레인들 내 자신 아니라 못하리. 날짐승 들짐승도 내 자신이며 간 사람도 내 자신이며 오는 사람도 내 자신, 모든 것은 일체요 또한 낱낱이라. 일체가 같은 것이라면 낱낱은 다른 것, 이 무궁무진함을 어찌 인간이 헤아리고 가늠하리."
"보소 해도사!"
하다가 강쇠는 목이 따가웠는지 캑캑 기침을 했다.
"사레 들지 않게 천천히 술 마시라 하지 않았소."
해도사는 지금껏 한 자신의 말을 두 동강이로 분지르듯 어세를 바꾸고 놓치듯 말했다.
"개대가리 죽쑤어 묵고 옴대가리 찜쪄 묵는 그 따우 소리 그만 못하겄소!"
"김장사 죽어서 절 근처를 맴돌 때 법의 포시라도 받으라고 지감 법사 대신으로 해본 말 아니오. 또 세 사람 젊으니 명운 얘기를 했던 거구요. 뭐 잘못되었소?"
"김장사 그 따위 잡설에 귀기울일 것 없소. 성도를 포기한 가짜 도사의 말이 뭐 그리 대수겠소, 하하핫핫..."
소지감의 웃음소리는 아까보다 컸지만 맥이 쑥 빠져 있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보고 짖는다 하더니 불과를 포기한 땡땡이중이 할 말은 아닌 듯싶소이다."
"흥! 놀고 있네. 점쟁이 땡땡이중, 죽이 맞구마는. 보소 해도사, 머라 캤소? 세 사람 젊은이의 명운 얘길 했소? 앵이꼽고 참말로 가소롭다. 애비 에미 없이 산중에 떨어진 몽치놈이나 산놈으로 태이나서 숯을 굽다가 도방으로 나간 내 아들놈이나 백정의 피를 받고."
또 기침을 한다.
"범속인지 굴속인지 팔자가 사나울 것은 까막눈 졸때기, 살강 밑을 드나드는 생아쥐도 알 만한 일, 유식한 문자 써가믄서 말할 것도 없는 기라. 본시 문자라는 그기이 알쏭달쏭해서 점치러 온 사람 주머니 털어묵기 십상이고 자고로 그것 가지고 백성들 가르치기보다 등쳐서 간 뽑아묵는 데 쓰여오기는 했지마는 대나깨나 대가리 디미는 거 아니라고 가아들 앞날이 고생바가지라는 거는 태어날 적부터 점지된 거를 새삼스럽게 나베어살 것 머 있소? 오장 뒤집히서 술맛 떨어지게시리."
소지감은 삭발한 머리를 슬슬 긁으며 웃고 있었다. 해도사는 안주를 집다 말고 젓가락을 상 위에 탁! 놓으며
"등쳐서 간 뽑아먹는 데 쓰이는 그놈의 글, 술병 들고 눈길 헤치며 찾아와서 아들 놈하테 글 가르쳐달라, 내게 너부죽 절한 사람이 누구더라? 지리산 중놈이던가?"
"그거야 머, 간 뽑아 묵는 놈 실개 씹으라고 그랬제."
강쇠는 씩씩거리며 말했다.
"허허어,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군. 식자한테 무슨 놈의 쓸개가 있누. 쓸개, 간 다 뽑아버린 지가 이미 오랜 옛일인데. 허나 오늘은 그 얘기 일단 접어두기로 합시다. 불끈뿔끈 성질낸 까닭을 이제사 겨우 알게 되었으니, 해서 하는 말인데 이보시오 김장사, 아까 내가 송형 아들한테 천고가 들었다고 했는데 그 말을 꼬깝게 생각한 모양이오만 그건 오해요. 그런 것쯤은 아녀자들도 알고 있는 일이라 설명을 아니 했던 것이 잘못이었소."
하면서 해도사는 사팔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강쇠 얼굴을 슬쩍 쳐다본다.
"그 천고의 고짜는 괴로울 고가 아니며 홀로 고란 말씀이오. 그러니까 알기 쉽게 말을 하자면 고생상이 아니라 외로울 상이다 그 말이오."
"그거나 저거나, 메치나 엎어치나 매일반 아니요! 맘고는 고가 아닌가? 사람이 외롭지 않다믄 멋 땜에 고생을 하겄소. 오는 사람 가는 사람 손가락만 물리믄 젖이 저로 나와서 그거를 빨아묵고 컨다는 천상의 아아들 이야기는 들었지마는 이 풍진세상 천애고아가 고생 없이 자랐다는 말 듣도 보도 못했소!"
"제법 귀동냥은 했구먼."
"머이 어째요?"
"지감법사와 나를 보시오. 지감 법사는 백정 혈통도 아니구 숯 굽는 산놈 자손도 아니오. 나 역시 물배나 채우는 가난뱅이 자손도 아니었소. 허나 지감이나 나는 천고성이오."
"그래서 우떻단 말이오."
"지감께서는 고생을 했소이까?"
해도사가 넌지시 묻는데 소지감은 또 음흉스럽게
"글쎄올시다, 흐리멍텅하게 살아놔서, 어느 만큼을 고생이라 하는지. 자로 재볼 수도 없고 그러나 굶주린 일은 없었고 모진 일 해본 적은 없었소."
"거 보시오. 쓸 고와 홀로 고가 다르지 않소?"
"이거 머 아아들 동전 갖고 노는 기가? 와 이라노."
"천고도 모르는 사람 알기 쉽게 하는 거요. 송형 아들한테 천고가 들었다 하니 김장사는 쪽박차고 빌어먹는 것으로 알았소?"
강쇠의 낯빛이 싹 변한다.
"영광이는 내 아들과 진배없소. 그런 말 함부러 해도 되는 기요?"
"함부러 한 게 뭐 있소? 쪽박 차는 팔자 아니라는데 어째 징을 내시오? 여하튼 오늘은 김장사한테 몽땅 내놨으니 한껏 핏대 올려보시오. 왜요? 하든 지랄도 멍석 깔아놓으면 안 한다 하더니 말이 막혔소?"
"집어치아라! 양반 소반 안 부럽다! 그 다우 졸부 안 부럽다! 씨도 못 받은 주제에 세상 나온 값도 못한 주제에, 니깟것들 사람 사는 기이 먼지 알기나 하나? 사람 사는 기이 멋꼬! 유식한 것들 어디 말 좀 해보라고! 돈푼 있는 놈, 문벌이 있어서 덕분에 식자깨나 얻어 걸치고 그것 밑천 삼아 입치레하고 살아온 것들이 머 어쩌고 어째? 몸으로 때운 기이 머 하나 있다고 잘난 소리 하노 말이다. 매 맞고 걷어 채이고 손바닥이 논바닥 되게 일을 해도 못 묵고 굶는데 일 안 하고 안 굶은 기이 자랑가! 그기이 호패가!"
강쇠는 펄펄 뛰며 악을 썼다.
"낱낱이 다 맞는 말이오. 허허헛헛 맞는 말이고말고. 한데 김장사 말로는 그러지만 어째 화를 내시오? 겁을 내고 있는 것 아니오? 자랑스럽지 못한, 잘먹고 잘사는 꿈 그 따윈 잊어버리시오."
태연하게 해도사는 말했으나 그 말 속에는 준열함이 있었다. 말이 막힌 강쇠는 입을 실룩거리다가 슬그머니 한다는 말이
"자식 없는 것들이 어디 사람가."
하루 이틀 사귄 사이도 아니요 십여 년을 산에서 함께 살면서 서로가 서로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처지, 신분의 차이라든지 식자유무 따위는 벌써 옛날에 헐어버린 담이었다. 그것은 가쇠가 인간으로서 그릇이 크기 때문이기도 했으나 청춘을 다 바쳐 그림자같이 따라다녔던 김환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강쇠의 판단력, 사고의 깊이는 본래의 소박함, 우직을 능가했고 한 우두머리의 풍모를 엿볼 수 있어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그들의 노는 푼수가 그러했고 유독 오늘 밤 강쇠 비위를 긁은 것은 말하자면 참담한 일에 대한 살풀이 같은 것이라 할까. 송관수의 죽음은 사실 죽음 그 이상의 의미로서 이들을 응축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술잔을 메어치고 강쇠는 밖으로 나왔다. 달이 휘영청 밝았다. 무작정 걷는데 가슴이 타는 듯했다. 입속이 바싹 말라서 혀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발에 익은 산길을 한참 지나서 개울가까지 온 강쇠는 엉덩이를 치켜들고 물을 굴컥굴컥 들이켠다. 손바닥으로 입가를 닦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별안간 중천에 떠 있는 서늘한 달이 슬렁 가슴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낀다. 마치 밤바다에 떠 있는 차디찬 해파리처럼. 동시에 산기운이 싸! 하고 전신을 감싸면서 다리가 후들후들, 한기가 든다. 그러나 얼굴은 뜨거웠다. 목에서는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개울가에 있는 썩은 등걸나무에 걸터앉은 강쇠는 옷 앞자락을 끌어당겨 얼굴을 문질러본다.
'다아 끝장난 기라. 끝장이 났어.'
조끼 주머니 속에서 궐련을 꺼내어 붙여 문다. 소쩍새가 자지러지게 울어쌌는다.
'내 한평생도 이자 끝이 안 셈이고 간 사람 남은 사람, 와 이렇기 모두 허망하노 말이다. 끝간 데 없는 이 깊은 산이 나를 미치게 하네.'
순간 강쇠 귀에 칼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서억서억 칼 가는 소리, 김환이 유치장에서 목을 매고 죽은 뒤, 그를 밀고한 지삼만을 죽이려고 한밤에 강쇠는 칼을 갈았다. 그러나 그때 생각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고 해도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술병 들고 눈길을 헤치며 찾아와서 아들놈한테 글 가르쳐달라, 내게 너부죽 절한 사람이 누구더라?'
강쇠는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날의 정경 하나하나도 빠짐없이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은 지상을 뒤덮은 하얀 눈에서 시작된다. 눈이 내린 뒤, 산속은 급격히 기온이 떨어져서 나뭇가지에 실린 눈은 설화이기보다 빙화였었다. 끝없는 빙화의 수림 속을 헤매듯, 미끄러지며 걸으며 떨어뜨려서 깨지 않으려고 해도사에게 가져가는 술병을 신주 모시듯, 가다가 한 구절밖에 모르는 노래 "한 오백년"을 되풀이하여 불렀는가 하면 흐느껴 울었고 고함을 치기도 했었다. 딸아이를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렇게 혼자 발광을 하고 있을 때 그는 실로 놀라운 일을 경험했던 것이다. 죽은 김환과의 산중문답 그것인데 강쇠로서는 아직도 설명이 안 되는 신령스런 경험이었다. 그 후반을 되새겨보면 다음과 같다.
'...만물이 본시 혼자인데 기쁨이란 잠시, 잠시 쉬어가는 고개요 슬픔만이 끝없는 길이네. 저 창공을 나는 외로운 도요새가 짝을 만나 미치는 이치를 생각해보아라. 외로움과 슬픔의 멍에를 쓰지 않았던들 그토록 미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은 강줄기 같은 행로의 황홀한 꿈일 뿐이네. 만남은 이별의 시작이란 말도 못 들어보았느냐?...'
'그거는 머, 다 하는 얘기 아니겄소.'
'...부처는 대자대비라 하였고 예수는 사랑이라 하였고 공자는 인이라 했느니라. 세 가지 중에는 대자대비가 으뜸이라. 큰 슬픔 없이 사랑도 인도 자비도 없을 수 있겠느냐? 어찌하여 대발 하였는고. 공이요 무이기 때문이며 모든 중생이 마음으로 육신으로 진실로 빈 자이니 쉬어갈 고개가 대자요 사랑이요 인이라. 쉬어갈 고개도 없는 저 안일지옥의 무리들이 어찌하여 사람이며 생명이겠는가...'
'성님!'
'...마음으로 육신으로 고통 받는 자만이 누더기를 벗고 깨끗해질 것이며 뱃가죽에 비계 낀 저 눈물 없는 무리들이 언제 그 누더기를 벗을꼬. 고달픈 육신을 탓하지 마라. 고통의 무거운 짐을 벗으려 하지 마라. 우리가 어느 날 어느 곳에서 만나게 된다면 우리 몸이 유리알같이 맑아졌을 때일까... 그 만남의 일순이 영원일까. 강쇠야 그것은 나도 모르겠네...'
'참 내, 무신 그런 말이 있소. 그렇다믄, 성님 말씸에 따르자믄 성님은 후회도 여한도 없거구마요. 그러크럼 고달프고 고통시럽게 살다가 갔인께요. 무신 후회가 있으며 한이 남았겄소.'
'...하하핫 하하핫핫 후회라, 회회는 없겠구나. 내 생전에도 회회는 아니 했으니, 한이야 지가 어디로 가겠나...'
'우째서 한이 남소? 후회 없이믄 한도 없제요.'
'...한이야 후회하든 아니 하든, 원하든 원치 않든, 모르는 곳에서 생명과 더불어, 내가 모르는 곳, 사람 모두가 알 수 없는 곳에서 온 생명의 응어리다. 밀쳐도 싸워도 끌어안고 울어도, 생명과 함께 어디서 그것이 왔을꼬? 배고파서 외롭고 헐벗어서 외롭고 억울하여 외롭고 병들어서 외롭고 늙어서 외롭고 이별하여 외롭고 혼자 떠나는 황천길이 외롭고 죽어서 어디로 가며 저 무수한 밤하늘의 별같이 혼자 떠도는 영혼, 그게 다 한이지 뭐겠나. 참으로 생사가 모두 한이로다...'
그때 강쇠는 자신이 저승, 삼도천 강가를 지나가고 있는 것 같은 환각에 빠졌었고 정신을 차린 뒤에는 김환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다. 눈에 덮인 산의 어딘가에서 살아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튿날. 도솔암 법당에서는 새벽부터 지감의 독경 소리가 들려왔고 날이 희뿌옇게 밝아왔을 때 상좌 일봉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절 마당을 쓸기 시작했다. 일휴는 도솔암에서 사미 시절을 보내고 지금은 해인사에서 수도 중이었다. 도솔암에는 주지 지감과 상좌 일봉, 공양주인 늙은이 세 사람이 있었다. 큰 불사가 있을 때는 산밑 마을의 신도들이 와서 거들어주는 형편인데, 길노인은 세상을 떠났고 소지감이 술을 마시며 속인과 같은 행동을 곧잘 해서 땡땡이중이란 말을 듣기는 했으나 학식이 깊었고 경전에 능하며 가사를 걸치고 목탁을 들 때 그 위엄이 예사롭지가 않아 불사를 맡기는 신도가 적지 않았다. 해서 도솔암은 길노인이 공양미를 대주던 시절과는 사정이 달랐다.
"일봉아, 일봉아."
나직이 부르는 소리에
"누구요."
일봉이 돌아보았을 때 소사가 팔짱을 끼고 새벽이슬에 젖어 오종종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침 일찍 웬일입니까."
퉁명스럽게 말했다.
"어제 유골 모시고 온 손님 말이다."
"...?"
"그 손님 어디서 오셨니?"
"그거는 왜요?"
"글쎄 어디서 오셨느냐구."
"부산서요."
"김장사가 마중나온 걸 봤는데 그 사람들 누구지?"
"참 별걸 다 묻소."
"일봉아 얘기해봐. 누구지?"
"김장사 사돈이래요."
역시 퉁명스럽고 귀찮다는 듯 말했다.
"사돈..."
소사 얼굴에는 실망의 빛이 역력했다. 지연이 가서 알아보고 오라는 성화에 못 이겨 투덜거리고 나온 소사였으나, 또 지연이 희망을 걸고 있는 그같은 실마리가 있을 리 만무이며 부질없는 짓, 언제 그 병에서 풀려나나, 짜증을 부리기도 했던 소사였으나 일진이 만주로 갔을 거란 지연의 믿음이 어느덧 소사에게 반영이 되어 알게 모르게 그도 믿었는지 모른다. 그 유골이 만주에서 왔다면 일진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을 것이란 지연의 생각도 어느새 소사 의식 속에 옮겨져 있었는지 모른다. 여자의 직감이었을까 우연이었을까. 지연의 추리는 정확히 들어맞은 셈이다. 그러나 주변에서 볼 때 그것은 황당한 것이었고 지연이 자신조차 구우일모의 가능성에 집착하는 자신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무위하고 덧없이 가는 시간 속의 몸부림이며 고인 물을 흔들어 파도치게 하려는 충동이었는지, 어둠 속에 도사리고 앉은 산고양이가 반딧불에도 덤벼보는 그같은 심사였는지, 여하튼 소사는 실망을 하며 발길을 돌렸다. 사돈이라 하는 데는 더 이상 뭣을 물어보겠는가. 날씨는 청명했다. 늦더위가 남아 있었지만 습기 없는 산들바람이 사람들 살갗을 쾌적하게 스쳐가곤 했다. 점심때가 조금 지나서 유해는 도솔암을 나섰다. 목탁을 치며 독경을 하며 지감이 앞장서서 유해를 인도했고 유해를 뒤따른 사람은 영선이와 영선네, 휘의 모친 그리고 휘와 강쇠 해도사 짝쇠 안서방이었다. 가파로운 곳에서는 목탁과 독경 소리가 멎었고 순탄한 길에선 목탁이 울리고 독경 소리가 울렸다. 일렬종대로 가는 일행을 떡갈나무 그늘이 사로잡았다가는 놓아주곤 한다. 하늘이 숨었다가는 나타나곤 했다. 강가에 당도한 일행은 그곳에서 멈추었고 미리 얻어놓은 작은 배에 유해를 실었다. 영광과 김휘가 승선하자 사공은 노를 저었다. 지감은 눈을 감고 힘찬 목소리로 독경했으며 여자 세 사람은 오열했고 나머지는 배를 바라보았다. 강심을 향해 멀어져가는 배를. 망자의 아들과 사위가 유골을 강물에 뿌리기 시작했다. 휘는 굳은 침묵으로 그 일을 행하였고 영광은 아이처럼 흐느끼며 아버지를 불렀다. 그 일이 다 끝났을 때 휘는 먼 산을 바라보았으며 영광은 뱃바닥에 엎드려 뱃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강물은 무심히 흐르고 하늘의 실구름도 무심히 흘러가고 있었다. 도솔암으로 돌아온 일행은 절 마당 여기저기 흩어져 우두커니 서 있다가 여자들과 안서방 짝쇠는 집으로 올라갔고 나머지 다섯 명의 사내들은 절 방에 모여 앉았다.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기 위해서였다. 시종 말이 없었던 영광이 호주머니 속에서 접은 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먼저 이것을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서, 아저씨."
봉투를 강쇠에게 건네주려 하자
"아저씨라니, 사돈어른이라 해야지."
해도사가 나무라듯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아저씨믄 우떻고 아부지믄 우떻노 괜찮다, 한데 이기이 멋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홍이 형님한테 남긴 유서입니다."
"그래?"
언해는 겨우 해독하는 강쇠가 봉투 속에 든 것을 꺼내었다.
홍이 보아라. 내가 아무래도 심상찮은 병에 걸린 것 같다. 신경으로 돌아가자니 심상찮은 병 때문에 어러불 것 겉고 가다가 죽어도 곤란한께, 아무튼지 만일을 생각해서 한자 적기로 했다. 자손한테 물리줄 전답 한때기 없는 처지에 무신 놈의 유서인가 할지 모리겄다마는 이대로 내가 가믄 남은 사람들 가심에 한을 심을 것 같애서... 와 이렇게 맴이 담담한지 참 내가 생각해도 이상타. 내가 죽으믄 무도 고생만 하다가 갔다 할 기고 특히 영광이 가심에는 못이 박힐 기다. 그러나 나는 안 그리 생각한다. 그라고 후회도 없다. 이만하믄 괘찮기 살았다는 생각이고, 장돌뱅이로 장바닥을 돌믄서 투전판이나 기웃거릴 놈이, 하늘 밑의 헐헐단신 계집이나 어디 하나 얻어걸리겄나. 그렇다믄 많이 출세한 것 아니가. 새삼시럽게 지나온 길을 돌아보이 정말 괜찮기 살았구나 싶다. 넘하테 큰 실수 안 하고 이렇기 가는 것도 다행 아니겄나. 이것은 진정이다. 여한이 없다. 자식들은 제 갈길 갈 것 이고 다만 내 모친이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싰는지 자식 된 도리, 시신이 어느 산천에 묻혔는가 모리고 가는 것이 나한테 남은 응어리다. 그라고 내 내자가 불쌍할 뿐이다. 그러나 본시 심성이 착하고 가는베 재놓은 듯키 말이 없는 사람이니 크게 남한테 폐가 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사람을 당부한다고 전해주라. 흥이 니한테는 신세 많이 졌다. 고향 산천이 보고 싶고 작별하고 싶은 얼굴도 많다마는 어차피 사람은 혼자 가는 거 아니겄나.
강쇠는 옆에 앉은 해도사에게 편지를 넘겨주고 나서 담배를 붙여 물었다. 몇 모금 피우다가
"빌어 묵을 놈."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모두가 돌려가며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강쇠에게 돌아왔다. 강쇠는 편지를 영광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 펜지는 최씨댁 그 사람도 보아야 할 기다. 연학이한테 주믄은 그리고 갈 기구마."
영광은 평사시로 가서 환국을 만난다는 얘기를 하지 않는다. 비밀로 하기 위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고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라믄 이제부터 사부인을 어디 계시게 할지 일단 우리끼리 의논을 해봐야 안 하겄나."
"그건 당연히 제가 뫼시야지요."
영광이 의외란 듯 말했다.
"나는 미장가의 몸이고 일정한 거처도 없으니."
"거처라면 서울 가서 마련할 수도 있고 그만한 준비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그라믄 장개부터 들어라."
"그거는 차차..."
처음으로 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출가외인인데 그럴 수는 없지."
영광이 강한 어세로 말했다.
"그럴 기이 아니라 당분간 안정이 될 때까지 우리랑 기시믄 안 되겄나?"
강쇠가 의견을 내놓았다.
"이런 일은 가족끼리 의논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송형의 부인 의사가 중요하니."
해도사 말이었다.
"그건 그렇네."
강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강쇠 부자와 영광이 집으로 갔을 때 마당에서 선일이는 안서방 외손자랑 함께 놀고 있었다. 영선과 휘가 혼인할 적에 죽네 사네 했던 순이는 그 후 산밑 마을 농사꾼한테 시집을 가서 잘살고 있었다. 얼마 전에 출산을 하여 산후 뒷바라지를 하러 갔던 안서방댁네가 돌아오는 길에 아우본 외손자를 데려왔던 것이다. 그리고 멀찌감치 짝쇠가 얼쩡거리고 있다가 사위 아들을 거느리고 방으로 들어가는 강쇠를 바라본다. 방에 들어와 자리에 앉은 양편 식구들은 영선네 거취 문제를 놓고 각기 저네들 생각을 개진했다. 절에서 말했던 것처럼 영광을 따라 서울로 가느냐, 당분간 통영의 영선이집에 가 있느냐, 아니면 산에 남아 정양을 하느냐, 말없이 의견을 듣고 있던 영선네는
"나는 그만 절에서 공양주하고 함께 있었으믄 싶습니다."
하고 말했다. 영광과 영선은 비로소 모친이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것을 상기했다.
"사돈댁도 가깝고 오며 가며."
영광과 영선은 그러는 어미를 설득하려 했지만 자식들 집에 가서 살지 않겠다는 영선네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그것도 마 괜찮겄십니다. 당분간 절에 기시믄서 관수 명복도 빌고 그러는 기이 신양에 좋을 깁니다. 너거들도 너무 우기지 마라. 어무이가 편한 대로 해야 하는 기라."
강쇠는 단을 내리듯 말했다. 영광과 영선은 서로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왜 자식들과는 함께 살지 않으려 하는가, 영선이나 영광은 알고 있었다. 자식의 앞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는 영선네 결심을. 어쩌면 그는 지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만큼 그의 출생의 멍에는 무겁고도 가혹한 것이었다.
영광은 산에서 이틀을 더 묵었다. 그러는 동안 매부 김휘와 여러 가지 얘기를 나누었고 산속을 헤매어 다니기도 했다. 산에 남은 영선네와 그곳 사람들과 작별을 하고 산을 떠날 때는 영선의 식구들과 함께였다. 그들도 통영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다. 화개까지 나와 강가에서 나룻배를 타고 하구를 향해 배가 내려 갈 때
"처남 이거 받아두소."
하며 휘가 접은 종이쪽지를 내밀었다.
"통영 우리집 주소요."
영광은 그것을 받아 호주머니 속에 간직한다.
"오빠 꼭 한번 오이소. 우리 사는 것도 보고."
아이를 안고 옆에 있던 영선이 말했다.
"그래 갈게."
"오빠."
"..."
"부디... 엄니를 잊으믄 안 될 기요. 불쌍한 울엄니, 찾아보기가 어러부믄 편지라도 자주 하이소."
"알았다."
"엄니가 말은 안 했지만 오빠 형상 보고 맘속으로 많이 울었일 깁니다."
"..."
"잘난 내 아들, 잘난 내 아들 하믄서 울든 엄니 생각이 나요."
"불편할 것도 없는데 뭘."
"만나믄 할 말이 태산이라 생각했는데 한마디고 못하고..."
"사람이 할 말 다 하고 살 수 있나. 나 같은 놈, 오라비로 생각해주는 것만도 과남하지."
"그런 말 와 합니까."
"내 잘한 것 없지. 식구들 못만 박았지."
"그러고 싶어 그랬겠소."
나룻배가 평사리에 가까워졌을 때 영광은 조카 선일을 영선한테서 받아 안았다. 그리고 얼굴을 비비며 가느다란 한숨을 내쉬었다. 나룻배에서 내릴 적에는 선아의 머리를 쓸어주고 호주머니를 뒤적이다가 돈을 꺼내어 쥐어준다.
"오빠!"
"그럼 잘 가아."
"처남 꼭 한번 오소."
휘가 말했다.
"그러지. 매부도 몸조심하구."
하동을 향해 떠나는 배 위에서 두 내외는 강가에 선 영광을 멀어져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는 것이었다. 영광은 발길을 돌렸다. 그러나 마을길로 들어서지 않고 강을 따라 천천히 걸어 올라간다. 강물에 씻기고 햇빛에 바래어 하얀 자갈을 밟으며. 강 언덕 아래 널찍한 바위 하나가 있었다. 바위에 걸터앉은 영광은 담배를 꺼내어 붙여 불며 강 건너 산을 바라본다. 마을에서 상당히 떨어졌는지 인적기가 없었다. 눈에 비치는 것은 푸른 하늘, 강 건너 푸른 산, 그리고 청록색 강물이었다. 너무 조용했다. 공간이 유리처럼 눈부시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일, 남강여관에서도 그렇게 느꼈지만 꿈같기만 했다. 방금 헤어진 누이 영선, 세파에 시달린 그러나 옛 모습을 간직한 그를 꿈속에서 본 것처럼 느껴졌다. 남강 다리 위를 유해를 안고 걸었던 일이며 법당의 독경 소리, 지감에게 인도되어 일렬종대로 내려가던 산길, 그 푸름의 공간도 꿈길에 있었던 일만 같았다. 그런가 하면 이십일 넘게 진행되었던 일들이 모조리 선명하게 상세하게,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과도 같이 마음속에서 펄러덕거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곳 강가 바위가 종착역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것은 죽음에 대한 강렬한 유혹이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는 진정 자신의 삶에 후회가 없었을까?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후회 없게 했을까?'
물새 한 마리가 돌팔매처럼 강물 수면 위로 핑! 핑 건너지르다가 날아오른다. 뗏목 하나가 하류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서울 가면 혜숙을 찾아볼까? 혜숙과의 관계를 되돌려볼까? 그 여자에게 어머니를 맡기고... 서로 의지하며.'
영광은 다시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물며 쓰디쓰게 웃는다. 웃던 얼굴은 차츰 일그러졌다. 타산과 냉혹함, 자신의 추악한 부분이 구역질나게 싫었던 것이다. 그는 다시 자신이 걸터앉은 널찍하고 편안한 바위가 종착역같이 느껴졌다. 아까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죽어버릴까... 저 강물에 들어가서 드러누워버릴까.'
물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영광의 가슴을 떨리게 했다.
'나는 벌써부터 어머니한테서 도망갈 궁리를 하고 있다! 나는 아버지에 대한 슬픔에서 놓여나기를 원하고 있다. 나쁜 놈! 나는 모든 것을 부정하고 나 혼자만의 동굴을 찾고 있다. 그것이 추방이든 도망이든 죽음이든.'
바로 옆에서 자갈 밝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얀 운동화를 신은 여자의 발이 맨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날씬한 종아리, 주름진 꽃무늬 치마, 녹색 계통이었다. 미색 블라우스, 미색 블라우스를 느꼈을 때 그것은 여자의 뒷모습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난 여자, 우선은 인기척을 낼 겨를도 없을 만큼 놀랐지만 영광은 뭔지 침해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별안간 돌팔매가 날아와서 의식세계가 찢겨져버린 듯 당혹스럽고 화가 나는 묘한 그런 기분인데 그보다 인적 없는 곳에 여자가, 그것도 이런 시골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도시풍의 젊은 여자가 세련된 양장 차림으로 나타났다는 것이 영광의 머리를 혼란스럽게 했다. 여자는 영광의 존재를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그는 바위 옆을 지나갔는데, 그러니까 영광이 앉은 언덕 밑 바로 옆에 강으로 내려오는 좁은 길이 있었던 것이다. 흰빛 보랏빛의 과꽃을 예쁘게 묶은 꽃다발을 여자는 들고 있었다. 천천히 물가까지 간 그는 무슨 말인지 중얼거리는 것 같았다. 아니 속삭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강물을 향해 꽃다발을 획! 던지고 다시 누군가를 애절하게 부르는 것 같은 음성이 들렸다. 이상한 그 행동은 어떤 무속적 의미를 담은 의식같이 느껴졌다. 한밤에 소지를 사르며 천지신명에게 소망을 고하는 소복의 연인과도 같은 엄숙하고 신비스러우며 절실한 염원을 느끼게 하는 모습, 어느덧 여자는 망부석이 된 듯 움직이지 않았고 말도 없었다. 강바람에 머리칼을 휘날리며 옷자락을 휘날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영광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인기척을 내자니 이미 시기를 놓쳤고 또 인기척을 낼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다. 얼마 동안의 시간이 흘렀을까. 영광은 시간 속에 밀폐된 것 같았다. 결박을 당한 것 같았다. 여자는 몸을 굽히며 앉았다. 엎드려서 두 손에 물을 걷어 올리며 얼굴을 씻는다. 아마 그는 울었던 모양이다. 꽤 오랜 시간 얼굴을 씻은 뒤 머리를 묶은 손수건을 풀었다. 소담스런 머리칼이 양 어깨 위에 물결치듯 흔들렸다. 얼굴을 닦고 일어선 그는 손수건을 펴서 비쳐보고 두세 번 털더니 다시 접어서 흩어진 머리를 모아 묶는다. 영광의 가슴은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이제는 현장을 들키는 순서만 남아 있었던 것이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남의 은밀한 행동을 지켜보게 된 무례한 사내로서, 어느덧 영광은 가해자 입장이 되어 있었다. 여자는 돌아섰다. 고개를 숙이고 몇 발짝 걷다가 얼굴을 들었다. 순간 영광의 눈과 여자의 눈이 정면으로 부딪쳤다.
"아..."
아연실색하여 멍해 있던 여자 얼굴이 벌겋게 물들기 시작했다. 격렬한 분노의 눈빛으로 변했다. 그러나 영광의 옆을 스쳐갈 때 그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영광은 몽둥이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여자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그는 양현이었다. 최양현, 아니 이양현이었다. 환국이와 함께 서울서 내려왔으나 따로 볼일이 있어 진주에 머물렀던 양현은 환국이보다 하루 늦게, 어제 평사리에 도착했던 것이다.
'봉변도 보통 봉변이 아니구나.'
분노의 눈동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목례를 하고 갔는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만한 나이의 젊은 여자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옆을 지나가는 것을 용서하라, 실례한다, 그런 뜻의 소위 교양을 나타낸 것이었을까. 무례한 사내에게 예절이 무엇인가를 일깨워주기 위한 것이었을까. 그 어느 편이든 불쾌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무례한 정도가 아니라 여자의 은밀한 행동을 지켜본 치한 취급을 당한대도 별도리가 없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꼬지는 타고 고기는 설다 하는가? 아니 버선목이라 뒤집어 보일 수 없다 하는 편이 들어맞겠구나. 허 참.'
한 마리 현란한 새가 날아왔다가 떠난 자리처럼 풍경은 본시로 돌아갔다. 영광의 마음도 본시로 돌아갔다. 바위에 죽치고 앉아서 그는 다시 혜숙이 생각을 한다.
'결혼을 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미고 어머니랑 함께 살아본다? 무엇이든 일정한 직업이 있어야겠지. 장사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부탁하면 환국이 아버님께서 도와주실 거구. 양품점? 문방구? 아니 책방, 레코드 가게는 어떨까? 자본금은 얼마나 들까? 혜숙이 양재점을 하니까 최소한도의 생활은 보장이 돼 있는 거구.'
하다가 영광은 크게 소리 내어 웃는다.
'미친놈, 어떻게 하면 최소한도의 나를 깎아주고 최소한도 주변을 조용하게 할까 궁리하는 좀생이 같은 놈! 네놈이 그 생활에 견딜 것 같으냐? 일 벌여놓고 밤낮 도망갈 궁리만 할 게 뻔한데 무슨 놈의 잠꼬대 같은 생각을 하누.'
다시 자기 자신한테 심한 혐오를 느낀다. 영선네는 자식들과 함께 살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그 결심을 굽힐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영광이 잘 알고 있었다. 한데 왜 그같은 생각을 해보는지. 말하자면 일종의 모형이었다. 모형이나마 만들어보면서 자신의 반윤리적 의식을 엄폐하려는 자기기만, 영광은 자신의 그 심보가 한심스럽고 슬펐다. 담배를 붙여 물고 엉덩이를 털면서 영광은 일어섰다. 물가까지 가서 강물을 따라 걷는다. 강물은 포구를 향해 흐르고 영광은 흐름을 거슬러 걷는다. 물결이 다가오고 밀려갔으며 축축이 젖은 고운 모래를 밟는 발이 무거웠다. 발자국을 남기면 물결이 와서 지워버리곤 한다. 보라빛 휜빛의 과꽃을 묶은 꽃다발이 지금 어디메쯤 떠내려가고 있을까, 문득 떠오르는 생각과 동시 영광은 자신의 장례식을 눈앞에 본 듯한 환각에 빠진다.
'방금 본 여자가 어쩌면 현실의 사람이 아니고 환상이었을까? 아니 죽음의 여신이었을까? 그것은 현란한 저승의 새였는지 모른다. 한 발짝 한 발짝 이렇게 내가 걷고 있는데 ㄱ자로 꺾으면 저 푸른 강물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강심을 향해 걷다가 드러누우면 영원히 잠들 것이다.'
졸음같이 달콤한 죽음의 유혹이 또다시 영광에게 스며들었다. 소년 시절에 겪었던 죽음에 대한 센티멘털, 그 미숙한 동경에 삼십 장년이 휘청거린다. 아무 희망도 없었다. 정열과 그리움도 없었다. 세월에 바래어지고 마모된 것 같은 어머니와 누이동생의 초라한 모습에서 느낀 것은 슬픔이나 애달픔보다 세월의 찬바람이었고 움츠려지는 뭔가 형용하기 어려운 두려움 같은 것이었다. 뼛가루를 강물에 홑뿌리고 뱃바닥에 엎드려 통곡을 했지만 그 순간이었을 뿐, 모든 것은 슬픔조차 남기지 않았고 마음은 사막이 되고 말았다. 어린 조카들의 눈망울만이 한 방울 이슬같이 가슴에 남아 있을 뿐.
'세상에 나와서 뭘 했으며 뭘 알았는가. 별로 한 일이 없고 깨달은 것도 없고 날건달이지 뭐.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것과 끝난다는 것, 아버지처럼 백골이 되어 강물에 뿌려지고 그리고 사라져버린다는 것, ...확실하지, 그것만은 확실해. 통속 시인 사이조 야소가 뭐랬지? 장려한 장례? 장려한 죽음의 행렬? 그런 시 구절이 있었던가? 에에라 순 날도둑놈! 긴란돈스(금실과 비단실로 짠 직물)를 걸친 막대기 같은 얘기다. 죽음은 현란한 환상의 새도, 장려한 행렬도 아니다. 바람에 나부끼는 만장도 아니며 꽃상여도 아니다. 슬픈 상두가도 아니다. 다만 초라할 뿐이다. 누구의 죽음이든, 살아 있는 모든 것, 생명 있는 모든 것의 죽음은 다만 초라할 뿐이다.'
초라하다 했으나 실상 영광은 장려한 행렬과도 같은, 현란한 환상의 새와도 같은 죽음의 그 짙푸른 색채에 쫓기듯 맞이하듯 평사리 마을과는 반대 방향으로 계속 걷고 있었으며 마을과의 거리는 차츰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강을 따라서 곧장 걸어가노라면 아까 내가 나루터에서 떠나온 화개라는 마을에 당도하겠지. 거기 가서 산으로 되돌아간다? 산으로 가면 어머니가 몹시도 낯설어하며 계실 것이다. 거미같이 여윈 어머니가, 내가 태어나고 자란 그 엷은 가슴, 가랑잎같이 된 그 엷은 가슴, 가랑잎같이 된 그 엷은 가슴으로 나는 돌아가야 한다. 그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
수없이 회전하고 또 회전했던 심경에 비쳐진 상황 중에서 가장 강렬하고 충동적인 감정이었다.
'어머니랑 함께 세상을 등지고 산다, 얼마나 좋은가. 평생 세상과 등지고 싶어 했던 어머니, 밤낮 달아나는 꿈을 꾸었던 나. 조그마한 초막을 짓고 나무꾼으로 살아본다, 숯을 굽고 약초를 캐며 살아본다, 영을 넘나들며 산짐승을 잡으며 살아본다, 아아 그 자유는 얼마나 싱그러운 것이냐.'
그러나 영광은 얼마 가지 않아서 방향을 바꾸었다. 강 언덕을 향해 달음박질쳤으며 강 언덕에 올라선 그는 평사리 마을을 향해 급히 걸음을 옮기는 것이었다. 마치 생각의 허울을 홀랑 벗어버린 듯 그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마을 어귀에 들어섰을 때 위풍당당한 기와집이 한눈에 들어왔다. 성곽과도 같은 그 집을 바라보며 영광은 마을길로 접어들었다. 자전거를 탄 사내가 그의 옆을 지나갔다. 사내는 자전거를 타고 앞서가면서 몇 번인가 돌아보았다. 음험한 눈빛이었다. 도덕적인 표정이었다. 그는 단꾸바지에 카키색 군민복 윗도리를 입고 있었는데 행색이 말단 관서의 직원 같았다. 기와집 가까이까지 갔을 때 길은 오르막이었고 대문간에 이르기까지 길 양편에는 보랏빛 휜빛, 그리고 분홍빛의 과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다.
"...?"
걷다 말고 영광은 꽃을 내려다본다. 벌들이 닝닝거리고 있었다.
'그 꽃다발엔 분홍 꽃이 없었다.'
대문은 열려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선 영광은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현란한 저승의 새인지 모른다고 생각한 환상의 여자가 등을 보이고 서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마주본 자리에서 낚시 도구를 챙기고 있던 윤국이 얼굴을 들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형!"
외침과 함께 양현이 돌아보았다. 양현과 영광은 어떻게 할 바를 모르고 쩔쩔맬 뿐이다. 윤국은 의아해하며 당황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다가
"웬일이오? 형."
했으나 아까보다 윤국의 어세는 처져 있었다.
"오래간만이구나. 몇 해 만이야?"
윤국이 묻는 말에는 대꾸 없이 딴전을 폈다.
"이삼 년 됐지요. 형은 악극단에 그냥 계세요?"
"응."
"작곡을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조금."
"그런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윤국의 물음에는 두 가지 내용이 있었다. 어떻게 여기가지 오게 되었느냐는 물음과 혹 양현과는 아는 사이가 아니냐는 물음이 포함되어 있었다.
"좀 그럴 일이 있었다."
영광이 역시 모호하긴 했으나 두 가지의 뜻을 포함한 대답이었다. 윤국의 표정에 의혹의 빛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양현아, 사랑에 가서 손님이 오셨다고 형님보고 말해."
약간 신경질적이다.
"알았어, 오빠."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양현은 도망치듯 급히 사랑으로 달려간다. 영광은 마루에 가서 걸터앉으며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문다. 그는 웃음이 터질 것만 같은 것을 간신히 참는다. 이들 형제에게 누이동생이 있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 같기도 했으나 그러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멀쩡한 이 집의 딸을 두고 비현실적 상상을 했던 것이 우스웠던 것이다. 윤국은 영광의 표정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유해를 가지고 지리산 절에까지 왔다가."
"유해라니요!"
"일 다 보고 가는 길에 들른 거야. 환국이하고 약속도 있고 해서."
영광의 어투는 딱딱했다. 이들 누이동생인 것이 밝혀져 꽃다발을 던진 여자에 대한 망상은 깨어졌으나 그의 이상한 행동을 생각하니 쉽게 발설할 수 없었고 그 일은 양현이라 하는 여자의 형편 따라 그쪽에서 밝힐 일이라 생각했으며 놀라고 당황한 자기 태도에 대한 해명을 못하니까 자연 어색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럼 아버지께서."
"세상 떴어."
"그렇게 됐군요."
윤국은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어릴 적에 집에 드나들던 송관수를 윤국은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그것도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럼 만주서..."
하다가 말을 끝맺지 못한다.
"형 모습이 말이 아니오."
"..."
"상심이 컸겠소."
애도하는 마음은 깊었지만 석연찮은 기분은 남는다.
"어떻게 그리 됐어요?"
"호열자로."
"더 사셔야 했는데, 뭐라 할 말이 없군요."
"왔어?"
환국이 나타났다. 영광은 담뱃재를 떨며 일어섰다.
"고생 많았지?"
환국은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하며 영광은 희미하게 웃었다.
"다 그런 거지 뭐."
"형색이 말이 아니군. 어머님께서는 건강이 어떠신지 걱정이구나."
양현은 환국이 등 뒤에 숨듯 서 있었다.
"비교적 잘 견디시는 것 같더군."
"들어가자. 가서 자세한 얘기 듣기로 하고."
환국은 영광의 등을 밀었다. 두 사람은 사랑으로 들어갔다.
"오빠 저 사람 누구예요? 이상한 사람이네."
양현이 숨 가쁘게 물었다.
"이상한 사람? 어째서?"
"다리가 그래서?"
"다리도 좀 이상하긴 해요."
"왜놈들한테 뚜딜게 맞아서 뿌러졌던 거야."
"아까 강가에서 보았어요."
"강가에서?"
"바위에 앉아 있었어요. 돌부처같이 말예요. 사람이 있는 줄도 모르고 얼마나 놀랐던지."
"그래? 해서 두 사람이 당황했구나."
"네."
윤국은 양현이 혼자 강가에 가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꽃다발을 만들어 가는 것도 알고 있었다.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양현이도 식구들에게 구태여 비밀로 하고 있지는 않았다. 말을 하지 않았다 뿐이지.
"한데 그 사람 누구지요?"
"형 친구야. 동경 있을 때 만난 친구."
의혹을 푼 윤국은 가볍게 말했다.
"양현이 너 안 갈래? 낚시하러 가자."
"싫어요. 햇볕이 따가워서요. 작년에 오빠 따라 다니다가 얼굴 껍질이 다 벗겨지고 혼났는데."
지금의 양현이 빛이라면 강가에서의 양현은 그늘이라 할까.
"엄살 부리지 마."
"엄살 아니에요. 정말 그랬단 말예요. 어머니가 야단치시던데, 어딜 쏘다녀 얼굴이 그 모양이냐구."
"고명딸 시집 못 갈까봐서?"
"오빠두 참, 나 시집 같은 것 안 가아."
"두고 보자, 가는가 안 가는가."
"남 얘길 말구 오빠 걱정이나 하세요. 가고 싶어도 오빠 땜에 못가요."
"나 땜에? 왜."
윤국은 양현을 쳐다본다.
"순서라는 게 있잖아요. 하지만 나 시집 안 가요."
"혼자 살 거야?"
"어머니하고 살지요."
"저러니 이 집의 며느리가 점술 못 따지."
"치이."
"그럼 어디 설설 나가볼까?"
윤국이는 낚시 도구를 들고 나가려다가 돌아보았다.
"양현아."
"왜요?"
"사랑에 차라도 내가."
"나, 민망해서 어떡허지?"
"건이엄마 시키지 말고 너가 해. 형한테 소중한 손님이야."
"알았어요."
윤국은 집을 나섰다. 그는 환국이만큼 영광이를 좋아하지 않았다. 첫째 경음악을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여자 문제도 있어서 건전치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무시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언젠가 그는 환국이를 보고 말한 적이 있었다.
"영광이 그 형, 지적 콤플렉스가 있었다면 결코 형하고 친해지지는 않았을 거요."
그것은 영광을 인정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 형의 감성에는 우리하고 전혀 다른 게 있는 것 같아. 그로테스크하다 할까."
했을 때 환국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너 영광이 혈통에 대한 선입관에서 하는 말 아니냐?"
"형! 나 그런 것 없어. 정말이오. 언젠가 영광이형이 베르드랑의 "밤의 가스파르"를 얘기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영광이형한테서 느낀 그 묘한 것이 규명된 듯싶었단 말이오."
"이른바 그로테스크냐? 그게."
"물론 그것만은 아니지. 환상적인 면도 있지만 악마적이고 괴기적인 것도 사실이잖아."
"나도 한때는 베르드랑에 끌린 적이 있었다. 시심으로 그리며 화심으로 시를 쓴다는 그의 예술세계는 일단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어. 일본에서도 히나쓰 고노스께를 위시하여 고답파 시인들이 베르드랑을 많이 모방했다. 물론 속빈 껍데기였지만. 영광의 경우도 옛날에 베르드랑을 한번 통과해본 것뿐인데 하필 넌 너 자신이 부정하는 면만 들추어 영광을 거기다 끼워보는 것은 경우에 따라 악의적이라 할 수도 있어. 영광의 생장과정에 대한 편견이랄 수도 있고."
"하지만 형, 나는 예술을 위한 예술은 싫어. 그것에 무슨 생명이 있어. 청동의 시체 같은 것."
"그건 얘기가 다르지 않아. 나도 영광이도 좋다 하진 않았다."
"영광 형은 한때 경도됐었다는 말을 했어."
"한때지. 누구에게나 흔히 있는 일이며 그래서 통과라 했다. 나 역시 통과했고."
"형은 지나치게 영광 형을 옹호하는 것 같아요."
"너는 지나치게 사시로 보고 있어."
베르드랑은 19세기 프랑스 파르나시앵에 속하는 시인이며 그의 댄대즘과 환성적 악마 취미는 보들레르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람이다. "밤의 가스파르"는 그의 유일한 시집이다.
'선입관 때문이라 해도 그렇다. 그의 배경의 칼과 피를 연상하기 때문에 그렇다 해도 역시 나는 그 형에게서 전해지는 악마 취향, 그게 허무주의와 상통한 것인지 모르지만, 하여간 나는 그것을 부정 못하겠다.'
윤국은 마을길로 들어서면서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낚시하러 갑니까?"
남자치고는 좀 높은 음성의 사내가 자전거를 끌며 윤국이 옆에 바싹 다가섰다.
"아아."
윤국은 그를 외면하며 내키지 않아 했다. 상대도 이미 달가워하지 않은 것을 알고 있는 듯 눈을 내리깔며 곁눈질을 했다. 아까 영광을 음험한 눈으로 돌아보고 돌아보곤 하며 자전거를 타고 가던 그 사내다.
"비가 좀 와야지, 그래야 낚시질도 할 만하지요."
"..."
"학교 졸업은 아직 멀었습니까?"
윤국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싸움 끝에 낫에 찔려 죽은 우서방 둘째아들이었다. 전 같으면 먼발치에서 인사나 하고 지나갔을 것인데 친숙한 체 얘기를 걸어오는 데는 그럴 만한 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은 우서방의 셋째아들 재동이 작년 가을, 자원병으로 나가게 되면서 둘째 개동이가 면소 서기로 취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마을에서 유세를 부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최씨 집안에 대해서조차 무슨 감시병이나 된 것처럼 당당해진 것이다. 우서방 일가는 조상 대대로 평사리에 살았던 농사꾼은 아니었다. 조준구가 최참판댁에 살림을 통째 들어먹은 후, 군대 해산이 있었던 그해 평사리에서는 마을 장정들이 들고 일어났고 김훈장과 목수 윤보를 따라 산으로 들어가는 등, 마을 전체가 큰 변동을 겪었을 무렵, 슬그머니 흘러들어온 뜨내기가 우성방 일가였던 것이다. 해서 마을 사람과 최참판댁의 인습적인 주종 관계에서는 비켜선 처지이기는 했다.
"면소 말고 주재소 순사라도 됐이믄 사람을 잡아도 몇은 잡았을 기다. 세상에 사람 영악한 것겉이 무서븐 기이 어디 있노. 그 악종들은 건디리지 않는 게 상수라."
"엽이네 처지가 기막히제. 까막소에서 나온 오서방이사 진작 식솔 데리고 떠났이니 빌어묵든 얻어묵든 다리 뻗고 자끼다마는."
"떠나고 싶어 떠났나아? 우가놈의 식구들, 밤낮없이 직이겄다고 굿을 치는데 견딜 재간 있든가? 그 억울한 사정, 다 말 못하지. 적반하장이라 카더마는 우가놈이 오서방 직이겄다, 낫을 들고 나왔는데 그라믄 가만히 앉아서 당하겄나? 안 죽을라고 실갱이를 하다 보이, 그리 된 긴데 전생에 무신 원수가 졌일꼬."
"오서방이사 당사자니께 그렇다치더라도 엽이네가 무신 할 짓인고. 본 대로 증언하지 그라믄 저거들 원하는 대로 거짓말 해서 오서방을 죽게 하겄나?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운수불길이지. 말도 마라. 일일이 말할라 카믄 해질 기다마는 콩밭에 소를 몰아놓질 않나, 울타리를 걷어차서 망가뜨리질 않나, 앵구 목을 짤라 마당에 던져 넣질 않나, 만나기만 하믄 증언 잘못해서 원수놈이 살아서 까막소 나왔다, 퍼붓고 시비 걸고."
"퍼붓기만 함사, 듣기만 해소 소름이 끼치는 악담은 어쩌고, 입에 담기조차 무서븐 말, 아이구 그런 소리 들은 날이믄 밤의 꿈자리도 시끄럽다카이."
"엽이네 심장이 질기서 산다."
"심장이 질기서 사나? 낭개도 돌에도 못 대니께 사는 기지."
"어지간해야 동네서 몰아내지. 그랬다가는 그놈의 식구들 동네 사람 몰살시킬라고 할 기구마. 그나마 이자는 왜놈하테 붙어서 재동 이놈은 병정 가고 개동이놈은 면소 서기 되고, 날개를 얻은 기라."
"최참판댁에서도 이자는 다스릴 힘이 없어이."
"무신 소리 하노? 어림도 없다. 벌써 상투 끝에 앉아서 쥐락펴락, 최씨집도 멀지 않았다고 큰소리 탕탕 치는 판국인데."
쉬쉬하면서도 몰래 하는 마을 사람들 말이었다.
둘째 개동은 끝내 윤국이 말이 없자 침을 탁 뱉고는 자전거에 올라타고 가버린다.
"죽일 놈!"
윤국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강가로 내려간 그는 낚싯줄을 드리워놓고 고기 잡는 일보다 생각에 빠져든다.
"그놈 꼴 보기 싫어 이제는 평사리에 못 오겠다. 오늘은 더럽게 재수 없는 날이다."
윤국은 개동이 행투에도 화가 났지만 영광을 맞이하고 자신이 행한 태도나 심리 상태에 대해서도 화가 났다. 영광과 양현이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왜 그렇게 심사가 올곧지 않았는지, 거의 이성을 잃을 뻔했던 자신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마치 그들이 몰래 만나기라도 한 것 같은 성급한 판단은 대체 무슨 까닭이었을까. 그것은 너무나 엄청난 비약이었던 것이다. 양현이 영광을 강가에서 만났다 했을 때, 이상한 사람이라 했을 때 비로소 마음을 놓았고 마음이 가벼워졌던 것 역시 지금 생각하면 수치감이 솟는다. 심리적으로 영광을 야수로 본 것이며 양현을 미녀로 본 것도 이 무슨 속단인가. 어쨌거나 윤국은 여태껏 경험한 일이 없는 깊은 갈등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런 그것을 규명하는 것이 두려웠다. 오라비로서의 보호본능인가, 양현을 누이동생이기보다 여자로서, 잠재의식 속에 있었던 것이나 아니었을까. 윤국의 얼굴은 붉어졌다가 창백해졌다가, 하늘과 강물이 마주보는 공간에 앉은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고 부끄러운 존재로 느껴진다.
"내일 양현이하고 하동에 가야지."
윤국은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듯 중얼거렸다. 그 순간 떠오른 것은 어머니의 이상한 변화였다. 벌써 오래전부터 양현의 이복 오라비 이시우가 요청해온 일이 있었다. 양현을 이씨 호적에다 입적시키겠다는 요청이었다. 의전을 나온 시우는 현재 진주 도립병원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는 사실을 안 이상 핏줄을 내버려둘 수 없다는 주장이었고 그의 모친도 전적으로 아들과 의견이 같았다. 그러나 최서희는 단호히 그것을 거절했던 것이다. 이유는 양현의 장래를 위해서, 그렇게 문제를 끌고 왔는데 별안간 최서희는 표변했던 것이다. 이씨 집의 요청을 받아들여 양현의 호적을 옮긴 것이다. 최양현서 이양현이 된 것이다.
'어머니의 심경이 변하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 왜 그렇게 갑자기 단을 내리신 걸까?'
양현의 문제라면 당연히 아들과 상의도 했어야 했는데 일절 그런 일이 없었고 그 일에 대해서는 환국이도 의아해했다. 길상에게는 상의를 했는지 전적으로 동의한 것 같았다. 양현에 대한 애착을 알고 있는 환국이나 윤국은 그것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였다. 서희가 응하지 않는 이상 이씨 집안에서도 양가의 길고긴 인연을 생각하면 강경하게 나올 처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해질 무렵, 고기 몇 마리를 낚아들고 윤국은 나갈 때와는 달리 몹시 초췌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양현이 잡아온 고기를 들여다보며 어쩌구 저쩌구 지껄였지만 윤국은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오늘은 많이 못 잡았십니다."
건이 아비가 고기를 가져가면서 말했다.
"아가씨 저녁은 사랑으로 차려갈까요."
언년이, 그러니까 건이네가 물었다.
"오빠 어떻게 해요?"
양현은 윤국에게 물었다.
"안채에서 함께 먹지 뭐. 그리고 건이 엄마 저녁은 좀 천천히 해요."
"알았습니다."
환국과 영광의 얘기가 대강 다 된 것으로 짐작한 윤국이는 사랑으로 가서 그들과 합류했다. 그리고 다시 정식으로 영광에게 애도의 뜻을 표했다. 그러고 나서
"형, 형은 앞으로도 경음악을 계속할 겁니까."
불쑥 물었다.
"내 하는 일이 밤낮 그렇지 뭐. 장담할 일이 뭐 있겠나. 세상을 핑계 삼는 것 같지만 요즘 맨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대체 뭘까?"
"왜 형은 보다 나은 길을 놔두고 그리고 갔습니까."
윤국은 영광에게 그런 식으로 단도직입적인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보다 나은 길이 뭘까..."
"형은 본래 문학을 하려 하지 않았소."
"문학... 글쎄 그것을 설명하려면 철학적으로 하하핫핫... 개똥철학이지만 말이야. 그보다 안 하는 이율 생각해본 일은 없지만 아마 샘이 말라버린 때문이 아닐까?"
영광의 표정이나 말투는 어딘지 모르게 너그러웠다. 홍이를 대했을 때와는 딴판으로, 강가를 헤맬 때와도 딴판으로 평화스러움, 무장을 해제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감성 문제를 말하는 건가요?"
윤국의 말에 환국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놈의 그로테스크가 나오면 어쩌냐 싶었던 것이다.
"감성 문제뿐이겠나."
"내일 하동에 갈 건가?"
화제를 꺾듯 환국은 윤국에게 물었다.
"왜요? 형은 안 갈 거요?"
"나는 영광이하고 등산하기로 했다."
"그럼 양현이하고 저만 갔다오지요 뭐. 시우형도 없는데."
"양현이는 그쪽에서 묵게 되더라도 넌 당일로 돌아와야 해."
"알고 있어요."
"넌 서울에 들리지 않고 바로 갈 거냐?"
"형님은 언제 돌아가시게요."
"온 김에 스케치나 좀 할 생각이다. 서울서는 답답하고, 그림이 안 돼."
"그까짓 학교 때리치우고 그림에 전념하세요."
"..."
"영광형도 그렇고 모두 답답합니다."
"너는 안 답답하구?"
"하긴 그렇군요."
윤국은 픽 웃었다.
"형님 서울 가실 때 저도 함께 가지요."
윤국은 덧붙여 말했다.
"자네도 여기서 머물다가 우리랑 함께 서울 가자."
환국이 영광을 보고 말했다.
"글세..."
"시골 바람이 필요한 꼴들이야. 세상일 좀 잊고."
"생각해보구."
"그런데 형."
불러놓고 윤국은 마른기침을 했다.
"거 우개동이라는 그자 알아요?"
"아비가 낫에 찔려 죽은 그 집 아들 아닌가. 막내가 자원병으로 나갔다며?"
"맞아요."
"그 얘기는 왜."
"아까 길에서 만났는데... 행패가 심한 모양입니다. 상당히 마을 사람들을 괴롭힌다는 얘기였소."
"건이 엄마가 그런 얘길 하더군."
"들어낼 수도 없고 골칫거리요."
"우릴 들어내려 할 텐데 그 자를 들어내?"
"악종도 보통 악종이 아니랍니다. 아들 삼형제와 그 어미까지."
"견디야지. 모든 것을 다 견뎌야 해. 이 마을뿐이겠나? 물밑에 가라앉은 것처럼, 자칫 잘못하면 영광이 저 다리 꼴이 된다. 얻은 것은 없고 잃었을 뿐이지."
영광은 쓰게 웃었다. 하룻밤을 이야기로 지새운 환국과 영광은 또 일치감치 일어나 모두 함께 둘러앉아 조반을 끝낸 뒤 등산한다며 집을 떠났고 윤국은 양현을 데리고 나룻배에 올랐다. 배 손님은 서너 명 가량, 남정네들이었다. 낯이 익은 뱃사공이 윤국과 양현을 향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했다. 사각모를 쓰고 제복 차림의 준수한 청년과 눈부시게 아름다운 양현 모습에 얼이 빠졌는지 하던 얘기를 중단하고 남정네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윤국은 이런 처지에 부딪칠 때마다 괴로웠다. 죄의식과 자신이 도둑놈같이 느껴지는 것이었다. 그들에게 등을 돌린 자세로 멍하니 하늘가를 바라본다. 먹구름이 몰려들고 있었다. 강물로 시선을 옮긴다. 흐린 탓인지 강물마저 우중충했다.
"하마 한줄기 퍼붓겄네."
남정네들 중에 누군가가 말했으나, 그러고는 아무도 말을 잇지 않았다. 윤국은 양현을 흘끗 쳐다본다. 쓸쓸해 보였다. 낙엽이 다 떨어진 가지에 홀로 앉은 새처럼 양현은 외로워 보였다. 하동으로 갈 때마다 양현의 표정은 늘 그랬다. 어제 낚시질 갔다가 돌아온 후로는 내내 무뚝뚝했고 말이 없었던 윤국이 말을 걸었다.
"가방에 뭐가 들었어?"
발치에 놓인 가방을 내려다본다. 자신이 들고 왔고 별로 무겁지 않던 영현의 가방이었다.
"갈아입을 옷하구 어머니, 진주 새언니가 전하라고 주신 것이 들어 있었요. 왜요?"
"가벼워서."
"어머니, 또 진주 새언니가 주신 게 옷감인가 봐요. 그보다 오빠."
"..."
"비 오시면 어떻게 해? 등산한 큰오빠 말예요."
"등산은 무슨 놈의 등산, 가다가 주막에 들러 술이나 마시고 있겠지. 아니면 절에 갔거나."
"그럴까?"
"이부사댁 민우가 와 있는지 모르겠다."
그 말대답은 하지 않았다. 아까부터 양현은 이복오라비 민우가 남해 작은집에라도 가고 없었으면 생각하곤 했던 것이다.
"동경서 만나지 않았어요?"
"가끔 만나기는 했지."
이상현의 둘째아들 민우는 경성제대에 시험을 쳤다가 떨어지고 이듬해 경의전에서도 시험에 떨어졌다. 집안사람들은 형인 시우 못지않게 머리가 좋고 열심히 공부도 했는데 학마가 들어서 그렇다는 것이었다. 두 번이나 고배를 마신 민우 본인도 그랬지만 모친 박씨도 진학을 포기하고 취직을 하든지, 그러길 원했으나 시우가 우겨서 동경으로 보냈던 것이다. 그는 현재 사립인 법정전문대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시우는 일찍부터 양자로 간 숙부와 외가의 도움으로 간신히 학업을 마친 뒤 진주 도립병원에서 일하고 있었으며 결혼도 했다. 민우는 심성이 괜찮은 청년이었다. 그러나 번번이 낙방을 하고 동경 바닥에서 보잘 것 없는 사립전문학교에 적을 두면서부터 형에게 열등감을 느끼기 시작했고 최씨네 형제들에게, 심지어 여의전을 다니는 양현에게까지 그는 열등의 비애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보다 민우가 심한 충격을 받은 것은 양현이가 자신의 이복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한번은 동경서 술에 만취가 되어 윤국의 하숙방을 찾아온 일이 있었다.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남들은 대학 하나도 못 가는데 형은 대학을 두 개나 다니고, 팔자치고는 상팔자요. 무슨 놈의 학운이 그리도 좋습니까."
"술 많이 했군."
"네. 술 진탕 마셨소. 동경 하늘이 돈짝만 합니다."
"기분 좋게 마신 술은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래?"
"동경서 기분 좋게 술 마실 조선 놈의 새끼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건 돈 쓰고 기집애 사귀는 재미로 유학 온 졸부 집구석 놈팽이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내말 틀렸습니까? 형님!"
"맞다."
"공부 방해됩니까?"
"공부, 공부 하지 마. 나 공부벌레 아니야."
"일류 농과대학을 마치고 또 경제과에 들어갔는데 공부, 공부, 공부벌레 아니라 말할 수 없지요. 아무리 세상이 다 알아주는 천재기로서니."
"사람 민망하게 하네. 비꼬는 것도 정도껏 해라. 출세도 못하는 학문에 무슨 의미가 있어서 공부벌레가 되누. 부잣집 아들, 놈팽이가 안 될려면 공부라도 해야지. 놀고먹을 순 없잖은가. 그는 그렇고 자네는 뭣 땜에 화풀이 술을 마셨나."
"이유야 어디 한두 가지겠소? 가련하고 불쌍한 조선 민족을 위하여 화풀이 술밖에 마실 수 없는 그놈의 지성들이 친일해서 땅마지기 생기고 친일해서 이권 나부랭이 따내고 그 따위 매국노와 한푼 다를 게 없다는 뜻에서도 술 마셨고."
하다가 민우는 트림을 했다.
"과연 이놈의 돌대가리, 형의 호주머니 축내가면서 공부를 계속할 필요가 있겠는가, 해서 술 마셨고, 처자를 내동댕이친 채 평생을 자신의 자유를 찾아 방랑하는 내 부친 말이오, 얼굴도 모르는 그 양반의 그 배신과 기만을 씹으며 술을 마셨고, 철저하게 속았소. 세상 떠난 억쇠할아범한테 속았고 어머님한테 속았어요. 밤이면 밤마다, 삯바느질로 지새며 한숨 쉬던 어머님의 세월, 상전이 뭐길래 뼈를 깎고 살을 저미듯, 백발이 되고 허리가 고부러질 때까지 봉사한 억쇠할아범, 유월이할멈, 도대체 그분들 희생에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요? 분노를 느낍니다. 우리 형제가 이렇게 자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거짓의 지릿대 때문이었소. 할아버님처럼 아버님도 나라를 위해 큰일 하신다, 하하핫핫 하하핫...그 큰일이 알고 보니 방탕이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버님 나름으로 고민도 하셨겠지. 글을 쓰셨잖았나."
"형도 생각 밖으로 속물이군요. 소설 나부랭이, 기생하고 연애하는 그 따윗 걸 썼다 해서 주색잡기는 이해하라 그 말씀이시오?"
윤국은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감히 말한다.
"민족을 위해 일하는 것만이 지고선은 아니지 않는가."
"형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나라를 위해 민족을 위해 사는 것만이 지고선이라 하지 않았소. 그것이 과장되고 분식될 때 오히려 혐오감을 느끼곤 했어요.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고 목적도 다르다, 그걸 모르는, 그렇게 순진한 이민우도 아닙니다. 하지만 묻겠는데요, 내 부친의 생애가 그럼 지고선에 속하는 건가요? 그리고 그것은 당연한 일인가요?"
민우는 억지를 썼지만 윤국은 할 말이 없었다.
"사나이의 풍류로서 기생과의 로맨스, 있을 수 있는 일이지요, 딸애도 낳을 수 있는 일이지요."
"듣기 거북하군."
"내 말이 뭐 틀렸습니까? 다만, 그렇지요, 다만 내가 분노를 느끼는 것은 늑대 울부짖는 벌판에 처자식을 내동댕이치고 떠난 사람, 형은 모를 겁니다. 가난이 어떤 것인지를, 겉은 멀쩡하면서 속으론 찬바람 굶주림에 웅크려야 했던 우리들 세월을 모를 거요. 평생을 외가의 도움, 넉넉지 못한 숙부의 도움으로 연명했던 우리들 심적 고통... 무책임하게 비정하게 내버리고 간 부친의 목적이 무엇이며 가치관은 무엇이냐, 새삼스럽게 그걸 따지자는 그걸 따지자는 건 아니오. 버릴 수 없었던 것은 어떤 면에선 모질고 강한 거지요. 하면은 자기 자신에게도 엄격했어야 하지 않았는가. 또 뭡니까? 기생과 동거했고 기집애까지 낳았으면."
민우의 어세가 흐트러졌다.
"그들도 독립운동하기 위해 내동댕이치고 간 건가요? 여자는 물에 빠져죽고 딸애는..."
하다가 민우는 웃었다. 숨이 막히게 웃었다.
"배다른 누이인 줄도 모르고, 마, 만일 내가 양현이를 사랑했다면 어쩔 뻔했어요?"
"입 닥쳐! 그 따위 모독적인 얘기 입에 담는 것 아니야!"
"형! 그게 내 잘못이오?"
"그런 말 하는 너 자체, 부친을 비난할 자격 없다. 누이로 순수하게 인정하는 것 이외 내 앞에서 다른 말 하지 마! 그 애한테 상처 주는 말 두번 다시 했다 봐라, 가만 두지 않겠다!"
민우는 순간 풀이 죽었다.
"이를테면 그렇다는 얘기죠 뭐."
나루터에서 내린 윤국과 양현은 읍내로 들어갔다. 장날이 아니어서 빈 장터는 썰렁했다. 비가 쏟아질 듯, 쏟아질 듯 하늘이 내려앉았으나 비는 아직 내리지 않고 목덜미에 땀이 베어날 만큼 날씨는 무더웠다.
"오빠."
"음."
"오늘 갈 거예요?"
"그래."
"나는 어떻게 해?"
"이삼 일 묵었다 와야지."
"이삼 일... 힘들어요. 오빠."
"..."
"낯설어서 어려워요."
"초행도 아닌데... 그래도 그래요."
"누가 언짢게 대하든? 환영하지 않는다면 안 가도 돼."
윤국이 걸음을 멈추었다.
"이쪽에서 원한 일 아니야. 정 그렇다면 돌아가자."
"그, 그게 아니에요. 민우오빠가 날 미워하자 봐요."
"그건 부친에 대한 감정 때문이다."
"민우오빠 말고는 다 잘해주셔요."
"당연하지. 호적 옮겨달라고 강경하게 말한 사람이 누군데? 기죽을 것 없다. 가고 안 가는 것 아무도 너에게 강요할 사람 없어."
했으나 윤국은 양현이 애처러웠다. 어떤 뜻에선 이부사댁 그 자체가 양현에게는 상처였기 때문이다. 양현은 하얀 손수건을 꺼내어 땀을 닦았다. 땀을 흘려서 그런지 얼굴은 더 희고 맑았다.
"양현아."
얼굴을 돌려 윤국이를 쳐다본다.
"이제부터는 견디는 힘을 좀 길러야겠다. 너 말이야."
"알아요."
"다 컸고 넌 이미 성인이다. 앞으로 수많은 일에 부대끼며 살아가야 하는데 세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험하고 각박하다. 사람들의 관계도 저마다 복잡하고, 복잡하지 않는 경우란 드물어."
어린 계집아이한테 타이르듯 한다.
"오빠."
"음."
"오빠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울한 거 아니에요. 실은 말예요, 나같이 행복한 사람 없을 거야."
"정말 그리 생각하냐?"
"응, 오빠, 난 말예요. 오빨 너무 사랑해. 어머니 아버지 큰오빠, 가슴이 찢어질 만큼 사랑해. 내 인생이 지금 끝나도 난 다 누린 거예요. 앞으로 어려운 일에 부닥쳐도 억울하지 않을 거구요. 진심이야."
양현의 표정은 환했다. 반대로 윤국의 얼굴은 어두웠다.
"나 이틀 밤만 자고 갈게요."
"생각 잘했다. 꽃 같은 기집애."
"어어? 그건 어머니 하시는 말인데? 오빤 어릴 적에 종달새야, 다람쥐야, 곰 새끼야 그랬지요?"
"곰 새끼는 형이 말했어."
"그랬나?"
"어서 가자. 남들이 들으면 웃겠다. 어른이 다 된 멀쩡한 것들이."
이부사댁에 들어섰을 때 민우는 모시 고의적삼을 입고 마당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왔어?"
마치 이웃에 사는 아이에게 하듯 양현을 바라보고 나서
"형, 그 동안 뭘 했어요? 낚시질했구나. 얼굴이 새까만 걸 보니."
반갑게 말했다. 부엌어멈 순천댁이 내다보며 인사를 했다.
"방에 들어가보아. 어머니 계셔."
듣기에 따라 어서 내 앞에서 사라지라는 것 같기도 했다.
"나도 인사해야지."
윤국이 민우를 뿌리치듯 나서는데 마침 방에서 양현이 온 기척을 알아차린 시우의 모친 박씨가 나왔다.
"양현이 왔구나. 윤국이도 오구. 어서 올라와."
두 사람은 신발을 벗고 마루로 올라갔고 민우는 마당에 선 채 내려앉을 것만 같은 흐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윤국이와 양현이 절을 한다.
"그래, 집안은 두루 평안하시고. 부모님께서는 서울 계신다며?"
"네."
하는데 그새를 못 참겠는지 민우는
"형 우린 밖에 나가지요."
했다. 윤국이 엉거주춤하니까
"모자하고 양복 윗도린 벗어놓고."
몹시 서둔다.
"그럴까?"
윤국은 저도 모르게 민우가 서두는 데 따라 모자와 윗도리를 벗고 셔츠 바람으로 마루에서 내려섰다.
"점심때까지 돌아오너라."
박씨 말에
"그러지요."
대답한 민우는 꽁지에 불붙은 것처럼 윤국을 끌고 나간다.
"순천댁."
박씨가 불렀다.
"예."
"점심 준빌 하게."
"저거, 도련님 안 오실 거인디."
"어째서?"
순천댁은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는다.
"왜 웃느냐?"
"술 생각 허시든 참에 윤국이 도련님이 오셨지라, 그런게로 쉽게 들어오시겄소?"
"기가 막혀서. 형은 술을 모르는데 그 애는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르겠구나."
혀를 찼으나 그럴 나이도 됐다 싶었는지 슬며서 웃는다.
"그러면 마님허구 애기씨 점심만 헐가요잉?"
"그래라."
박씨는 얼굴을 돌려 양현을 쳐다보면서
"방학인데 안 내려오나 하고 기다렸지. 공부는 할 만하냐?"
"힘듭니다."
"그럴 게다. 허나 공부 끝마치면 우리 집안에 의사가 둘이 난다. 경사지. 아무쪼록 열심히 해라."
"네. 이거."
양현은 가방에서 보자기에 싼 것을 꺼내어 박씨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냐?"
"하나는 서울서 어머니가 주셨고 또 진주 새언니가 드리라구 해서, 옷감인가 봐요."
"옷이 많은데. 이건 두었다 양현이 출가할 때 쓰지."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진다. 빗방울은 이내 세찬 빗줄기로 변했다. 그리고 뇌성벽력이 천지를 흔든다.
4장 몽치의 꿈
집이래야 큰방 작은방 부엌, 삼칸짜리 오막살이였다. 마당은 다소 넓은 편이어서 강아지 한 마리가 졸랑거리며 놀고 있었다. 장독가의 분꽃 봉선화는 한물 간 것 같았고 맨드라미가 타듯이 새빨갛게 한창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선아야, 선일이 나갈라. 아아 단속 잘해야 한다."
영선이 말에 마당을 쓸고 있던 선아는
"자는데 머."
"깨믄 말이다."
"알았구마. 옴마, 올 때 사탕 사올 기제?'
"운냐 사올게."
영선은 삶은 빨래가 든 통을 이고 휘는 작은 꾸러미와 술병을 들고, 양주는 나란히 집을 나섰다. 영선은 명정리 빨래터에 빨래하러 가는 길이었고 휘는 엎어지면 코 닿는 곳에 있는 곱새 소목장이 조병수의 집, 그러니까 휘에게는 스승뻘인 그에게 가는 길이었다.
"보소 선아아부지, 술 과하게 하믄 안 될 기요."
갈라지는 골목까지 왔을 때 영선이 말했다.
"술 많이 할 처지나 되건데?"
"참말로 그집 일도 큰일이요. 그라믄 엇 가보소."
영선은 내리막길을 곧장 내려간다. 치맛자락을 걷어 끈으로 허리를 잘쑥 동여맨 영선의 뒷모습, 바라보다가 휘는 걸음을 옮긴다. 고만고만한 오막살이, 싸리 울타리도 있고 판자 울타리도 있고 울타리 없는 집도 있었다. 삽짝문은 모두 열려져 있어 마당이 훤하게 들여다보였고 삽짝 없는 집은 부엌의 부뚜막까지 볼 수 있었는데 부잣집같이 큰 솥 작은 솥은 윤이 나게 가꾸어져 있었으며 장독들은 햇빛에 반들거렸고 마당은 깨끗이 쓸려 있었다. 그러나 가난한 동네다. 그런 집을 여남은 채나 지나갔을까, 제법 반듯한 대문에 짚으로 된 용마름을 얹은 토담이 나타났다. 휘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인다. 집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없었다. 조용하다는 것은 대개 이 집안에 사단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휘는 성큼 집안으로 들어간다. 본채는 초가였으나 사칸 접집으로 대청이 넓었다. 본채와 마주보는 아래채는 삼칸, 두 개의 방 사이에 도장이 있었다. 휘는 마당에 서서 한숨을 쉬다가 아래채, 오른편에 있는 방 앞에까지 간다.
"선생님."
"..."
"선생님."
마른기침 소리가 났다. 휘는 방문을 열었다. 조병수가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휘를 쳐다본다. 비애와 공포에 지린 눈빛이었다. 마치 소년과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휘는 신발을 벗고 방으로 들어갔다.
"다녀왔습니다."
병수를 향해 절을 하고 자리에 앉은 휘가 말했다.
"일은 잘 치렀느냐?"
"예."
병수는 여위어, 얼굴은 주름투성이였고 한층 더 작아 보였다. 그러나 눈빛만은 변함없이 맑았다.
"지감께서는 안녕하시고."
"예, 선생님께 안부 전하라 하시믄서 일간에 한번 오시겄다, 그런 말심이더마요."
"그래? 참 오랫동안 못 뵈었구나."
방은 넓었다. 문갑과 사방탁자에 책자가 쌓여 있을 뿐 그 밖의 것은 없었고 깨끗했다.
"주안상 차릴까요 ?"
"그래라."
별안간 병수 얼굴에 생기가 돌았고 음성에도 탄력이 있었다.
'불쌍한 선생님, 아직도 고가 안 끝났다 말가.'
휘는 환하게 눈에 익은 부엌으로 들어갔다. 소반을 부뚜막에 올려놓고 찬장문을 열며 뭐가 있나 하고 들여다본다. 십 년이 휠씬 넘는 술시중이었으니 어줍을 것 하나 없었다. 콩자반, 잘 삭은 콩이 파리, 멸치볶음, 가모의 알뜰한 사림 솜씨가 역력하다.
'빌어묵을 영감탱이 와 안 뒈지노. 살 만큼 살았는데 머 얻어묵겄다고 살아서, 사람우 형상을 하고 짐승보다 못한 늙은 것이, 무신 대복을 찌고 나서 저런 효자를 낳았는고, 하야간에 하루라도 속히 죽어야만 나머지 사람들이 살지.'
안주와 술잔 두 개, 젓가락 두 개, 술상을 본 휘는 상을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산의 선생님이 선생님 드리라고 하심서 머루주를 한 병 주시더마요."
산의 선생님이란 해도사를 이름이다. 실로 이 두 스승은 휘에게 막강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이다.
"고마운 분이시다. 그분 뷘 지도 오래구나."
"아마 지감스님 오실 적에 동행할 요량인 것 같더마요."
"그래?"
병수 얼굴에 기쁨의 빛이 넘친다.
휘는 하얀 술잔에 붉은 머루주를 따라 두 손으로 조병수에게 바친다. 병수는 생명수를 대하듯 눈을 지그시 감고 그러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술을 마셨다. 그러고 나서 휘에게 술잔을 돌렸다.
"술 받아라."
"예."
휘는 고개를 돌리며 받은 술잔의 술을 마신다. 스승과 제자, 그 예절이 각별하다. 이들은 소목장이의 기능을 전수하고 전수받는 단순한 관계를 넘어서 있었다. 조병수의 도저한 학문의 세계를 휘는 십여 년 동안 곁에서 엿보았고 불구의 몸이었으나 그의 청명한 감성과 인품에 접해왔으며 그의 비애와 고통을 지켜보았다. 해도사는 휘에게 기본적인 학문과 사람의 도리, 세상의 이치를 다져준 사람이다. 그러나 조병수는 그 다져진 터전에 실로 많은 빛을 던져주었던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예술에 대한 휘의 개안이었다. 조병수가 소목일에서 손을 뗀 것은 이 년 전의 일이었다. 딸은 오래 전에 출가했고 막내아들도 사범학교를 나와 사천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있었으며 중학교를 마친 큰아들은 취직을 마다하고 갯가에 어구점을 차렸는데 그것이 성공하여 돈을 벌었고 사업의 규모도 차차 커졌다. 뿐만 아니라 근검절약, 건실한 아내 덕분에 병수의 수입에서 양도에 족할 만큼의 전답도 장만했으니 그만했으면 몸이 성치 못한 병수의 처지, 일에서 손을 뗄 만도 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질 않았다. 지식들이 한사코 부친의 소목일을 반대하고 나섰지만 그는 역시 자식들 희망에 따르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연장들을 정리하고 일방을 폐쇄한 것은 마지막 쇠전 한 푼까지 털어먹은 조준구가 내려오면서부터였다. 쇠전 한 푼까지 털어먹었다 했지만 그는 영락하고 쇠잔한 몰골로 아들을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놀던 푼수가 있어 그랬겠지만 고급 스틱을 짚고 위풍당당하게 아들을 찾아온 것이다. 얼마나 보약을 질렀는지 팔십을 눈앞에 둔 노인답지 않게 힘이 세었고 허리도 꼿꼿했다. 그러나 그 추함은 모골이 서늘해질 만큼, 혐오감을 주는 것이었다. 노추라기보다 악행과 범죄의 세월이 각인처럼 그 모습에 나타나 있었던 것이다. 도착하여 그가 한 첫마디는
"사랑도 없이 이게 행세하는 집구석이냐?"
행세하는 집구석이기는커녕 소목장이의 집이라는 것을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이 기거할 처소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던 것이다. 사람이란 늙으면 대개의 경우 어깃장도 놓고 이기적으로 된다고들 한다. 하니 평생을 철판 깔고 살아온 조준구, 이를 말해 뭣하리.
"독선생 앉혀서 글이라도 가르쳤으니 이 짓이라도 해먹고 살았지. 애비 없는 자식이 어디 있으며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느냐. 팔십이 다 되도록 자식 놈 신세지지 않고 산 것만도, 아무나가 하나? 내 갈 날도 멀지 않았으니 깊이 명심해라."
탕탕 큰소리치기도 했다. 처음부터 고압적으로 나가기로 작심을 했던 것 같았다.
병수는 큰아들 내외를 내보냈다. 그들은 집을 장만할 여력이 충분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간창골 어귀에 가게를 하나 세내어 휘를 독립시켜 주었다. 아들과 자부에게 짐을 지우지 않겠다는 생각과 자신은 소목일에서 손을 떼겠다는 결심을 실행에 옮긴 것이다. 일 년 동안 조준구는 호의호식, 보약이다 뭐다 하며 입에 맞지 않은 음식은 몇 번이고 퇴하면서 아들의 사람을 뿌리째 뽑으려 들었다. 그는 잔인한 폭군이요 악마였다. 특히 아들에게는 가학적 쾌감으로 괴롭혔다. 때로 노망이 든 것처럼 가장을 하면서 행패를 부렸고 때론 노골적인 잔인성을 얼굴 가득히 나타내며 아들의 불구를 조롱하곤 했다. 희망도 낙도 없이, 죽음의 공포를 잊으려고 그랬는지 모른다. 아니면 마약같이 강도를 높이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악도 그러한 생리일까. 악을 행하는 것도 쾌감일까. 지금은 그의 인생의 끝머리, 그 대항이 아들 말고 누가 있는가. 실로 저주받은 생애라 할밖에 없다. 보다 못해 손자나 자부가 항의를 하면 어디서 힘이 솟는지, 아래 말고 위쪽의 눈 흰자위를 허옇게 드러내며 스틱을 들도 쫓아오곤 했다. 뿐만 아니었다. 집에서 부리는 여자아이나 아낙에게 추잡하게 굴어서 집안 망신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일하는 사람이 집에 붙어나질 못했다.
"양반꼴 좋다. 세상에 며느리보고 이년저년 욕하는 시애비가 어디 있노. 우리 겉은 상사람도 그런 망측한 짓은 안 하거마는. 늙어서 덕 본다. 젊었이믄 동네 가운데 두기나 할 기든가?"
동네 사람들 말이었다. 언젠가 병수는 혼잣말같이 말한 적이 있었다.
"내가 불구자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며 저런 부친의 아들로 태어난 것도 운명이다. 운명을 어찌 거역하겠느냐."
비애에 젖은 눈으로 병수는 휘를 바라보았다. 휘는 그때 눈물을 흘렸다. 조준구가 중풍으로 쓰러진 것은 작년 이맘때였다. 하반신 마비였던 것이다. 중풍으로 쓰러졌다 해서 집안이 조용해진 것은 아니었다. 잔혹한 상태에서 조준구는 광란 상태로 변하여 집안은 한층 더 시끄러워졌던 것이다. 별의별 요구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기막히는 것은 송장 썩은 물을 구해오라는 주문이었다. 송장 썩은 물이 중풍에 좋다는 말이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어디서 구해오는가. 오늘도 집안이 조용한 것은 한바탕 폭풍이 지나간 때문이다. 병수댁네는 속이 상해 아들집에 갔는지 없었고 조준구는 한바탕 광을 친 뒤여서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조준구는 한바탕 광을 친 뒤여서 잠이 들었는지 기척이 없었다. 병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조준구의 상태는 그야말로 목불인견이었다. 발작을 하면 삼이웃이 시끄러웠다. 한번은 병수가 오물을 치우려고 방에 들어갔을 때 대변을 거머쥐고 있다가 아들 면상을 향해 던진 일이 있었다. 그때 병수는 통곡을 했다. 가엾고 측은하다 했다.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살아야 하며 떠나갈 길을 생각지 않는가 하며 그는 울었던 것이다.
"소가죽을 뒤집어써도 유분수!"
조준구의 소문을 듣고 진주의 영팔노인이 담뱃대로 재떨이를 치며 내뱉는데 마누라가 받아서
"와요? 소가 우때서요? 얼매나 어진 짐승인데 거기 비하는 깁니까."
하고 타박을 주었다.
"천벌을 받을 그놈이 아직 안 죽고 살아서 자식 못할 짓 시키고 있다 카이 참말로 하늘이 있나 없나."
"벌 받니라꼬 살아 있는 거 아니겄소. 벼루박에 똥칠 해감서 벌 받니라꼬."
"그기이 벌가? 어림없다! 적악을 어디 한두 사람한테 했든가?"
"와 날보고 징을 내요. 그렇기 억울하믄 가서 직이든 살리든 해보소. 다 살 만큼 살았인께."
"그놈의 죄는 삼악도에 떨어져도 다 못 갚는다. 내가 만주서 그 고생할 직에는 씨퍼런 칼 가지고 그놈의 배애지 찔러 직이고 싶은 생각 한 두 번 한 줄 아나? 그래도 나는 소분지애씨라 관수나 석이 가아들한테 비하믄."
평사리 마을에서는 야무네와 천일네가 그 소문을 입에 오리곤 했다.
"최참판댁 털어 묵은 거는 그렇다 치자. 상전을 배반하고 조준구 수족 노릇을 했던 삼수놈을 무신 까닭으로 그랬는지 모리겄다마는, 왜헌병한테 찔러서 총상을 시킨 그 일도 접어두고, 많은 사람한테 해악을 끼친 것도, 곱새도령은 지 자식 앙이가. 그 자식한테 한 짓은 하늘이 알고 땅이 아는데 거기가 어디라고 찾아가노 말이다. 무신 염치로? 무신 낯짝 치키들고 갔일꼬? 우리가 그 내력을 다 아는데 그런 뻔뻔스런 인사가 어디 또 있겄나?"
"와 아니라요. 그 불쌍하고 가련했든 곱새도령, 지금도 눈앞에 삼삼하요. 눈뜨고는 못 볼 그 정상, 우리가 다 아는데, 죽을라꼬 물에 빠진 기이 어디 한두 번이든다?"
"호랭이도 지 새끼 귀타 카믄 내던지고 간 나물바구니 집 앞까지 물어다놓는다 카는데."
"사람 아닙니다. 밥이나 믹이달라꼬 기어들어와도 그 꼬라지 못 볼 긴데, 그 곱새도령 몸은 병신이지마는 마음은 관옥이요. 이 세상사람 아닌갑소. 컬 때도 보아서 알지마는 그 눈이 실프고 우찌나 맑고 빛이 나든지. 우째서 그리 착한 사램이 그렇기도 무도한 부모한테서 태어났을까요."
"목련도사도 그렇다 안 카드나. 어마님을 지옥에서 구해낼라꼬 오만 짓을 다했지마는 악한 본심이 변하지 않은께 구할 도리가 없었다 안 카드나."
절에서 귀동냥을 한 모양이었다. 목련존자나 목련도사나 뭐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지만 아무튼 야무네의 기억이 확실찮은 것만은 사실이다. 어쨌거나 진주에서, 평사리에서, 통영에 있는 조준구의 소식을 알게 된 데는 그럴 만한 연비가 있었다. 그 소문이 굼뜬 한복의 입에서 나왔던 것이다. 영호는 통영 어업조합에 취직이 되어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가서 산 지가 오래되었다. 해서 한복이 아들집에 가는 일이 더러 있었고 그러나 그보다 먼저 경위를 설명하자면 몽치 얘기부터 하는 게 순서다. 영호의 처 숙이가 몽치의 누님이었고 휘는 산에서 몽치와 함께 해도사로부터 글을 배운 처지, 동문이라기보다는 산속에서 이들의 잔뼈가 굵어진 만큼 휘와 몽치는 형제와 같이 유대가 깊을밖에 없었다. 해서 몽치는 열아홉 되던 그해 산을 떠나 통영으로 왔던 것이다. 그러나 몽치는 그 제의를 모두 마다했다. 그리고 그가 택한 길은 고깃배를 타는 일이었다. 이렇게 해서 몽치를 고리삼아 숙이와 영선이 알게 되었고 객지의 외로운 처지, 친하게 지냈는데 이들에게 인연이라 할까 우연이라 할까, 여러해 전에 이들 두 여자, 여자라기보다는 두 처녀는 이미 만난 일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영선이 아비 송관수를 따라 지리산으로 갈 때 일이었다. 그해 겨울의 추위는 혹독했다. 송관수 말마따나 칼날 같은 섬진강 강바람을 마시며 육로로 평사리에 닿은 부녀는 영산댁 주막에서 뜨거운 국밥으로 허기와 추위를 달래고 하룻밤을 그곳에서 묵었다. 그때 자줏빛 모슬린 치마에 주란사 검정 저고리를 입고 목에 흰 명주 수건을 감은 계집아이 모습을 숙이는 기억하고 있었으며 술항아리에 기대어 졸고 있다가 소스라쳐서 일어난 숙이는 뜨거운 국밥을 말아주었으며 이부자리를 깔아주었고 말없이 한방에서 잠들었던 것을 영선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기억을 되살린 것은 서로의 신상 얘기를 조금씩 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어쩐지 어디서 본 듯싶더마는, 참 이상도 하지. 여기서 이렇게 또 만나게 될 줄이야."
숙이는 그들의 인연을 신기해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믄 지금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다. 다짜고짜 옷 보따리를 싸라, 영문 모리고 따라나섰는데... 야속한 울아부지, 떠날 때는 엄니도 울고 나도 울고, 울기는 와 우노, 죽으로 가나! 하심서 욱대지르든 울아부지. 어디로 가는 줄도 모리고 부산에서 하동까지 왔는데 어찌나 날시가 칩든지 강이 얼어서 나룻배가 있어야지. 해는 저물고 아부지는 걸어서라도 가야 한다, 해서 걷기 시작한 것이 그러크름 먼 길인 줄 누가 알았겄노. 치분 거는, 간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배는 고프고 밤길이 무서바서 죽겄더마."
"아닌 게 아니라 그때 손을 호호 불믄서 얼굴이 새파래가지고."
"말도 마라."
"하지마는 옷맵시가 어찌나 이삐든지 도방서 왔구나 싶었지."
"그때 울아부지가 날 산에 놔두고 떠난 후로는 이날까지 식구들 종적을 모리니 울엄니 내 동생은 우찌 되었는지, 시아부지는 늘 걱정 마라 하시지만, 밥 묵고 잠자고 모진 기이 사람 맘인갑제."
"그 심정 왜 내가 모리겄노, 알지. 나도 겪은 일인께. 주막에서 자고 일어나니까 온데간데없이, 아부지가 몽치만 데리고 떠나부리고 천지가 아득하더라. 얼매나 울었는지, 강가에 걸레 빨로 가서도 울고 부석 앞에서 불을 때면서 울고, 돌아가신 할무이가 안 계싰다믄 나는 살지도 못했일 기다."
영선과 숙이는 가끔 서로의 처지를 얘기하며 눈물을 흘리곤 했다.
집도 가까이 있었다. 비탈진 곳에 옹기종기 초가가 모여 있는 가난한 동네 그러나 삼간 오두막이라도 집이 있다는 것은 이들의 안정된 생활을 의미한다. 여러 가지 면에서 영선과 숙이는 비슷한 점이 많았다. 서로의 처지도 그랬지만 깔끔하고 차분한 살림 솜씨, 다부지면서도 대범한 성품, 눈에 확 들어오는 용모는 아니었지만, 하기는 가꾸지 않는 탓도 있었지만 은근히 특색 있는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었다. 오목오목하게 생긴 영선의 얼굴은 총기가 있어 보였고 윤곽이 뚜렷한 것은 영광을 연상하게 했다. 숙이는 엷은 쌍꺼풀의 눈매가 고왔으며 숨은 꽃같이 아른아른한 자태였다. 보통학교를 마쳤고 독서광이던 영광의 영향도 있어 유식한 영선에 비하여 숙이는 무식한 것 같았지만 언해 정도는 깨치고 있었으며 감성이 풍부한 데 비해 자제력이 강하여 영호도 마음속으론 아내를 무시하지 못했다. 이들이 친숙해진 것은 자연스런 일이었다. 신상 얘기도 거침없이 하는 사이, 그러나 한 가지 영선은 외할아버지가 백정이었다는 말만은 하지 않았다. 숙이 역시 시할아버지가 살인 죄인이라는 것, 시할머니가 목매달아 죽은 일만은 말하지 않았다. 아무튼 안사람들끼리는 서로 의지하며 흉허물 없이 지냈는데 영호와 휘는 수인사만 했을 뿐 각별하게 대하는 일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서로가 못마땅해 하는 점이 없지도 않았다. 중퇴이기는 하나 중학 과정을 거의 마친 영호는 그 학력에 걸맞은 양복 입은 월급쟁이였고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본 휘는 일개 소목장이, 터놓고 친구가 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의지가지할 곳 없는 처남 몽치를 성질이 거칠며 본바 없다 하여 무시하고 경원하는 영호의 처사를 휘는 마땅찮게 생각했으며 영호는 영호대로 무식한 산놈 주제에 공부한 여자를 얻었다, 그게 기분을 뒤틀리게 했다. 사실 영호는 숙이가 교육받지 못했고 어디서 흘러들어 왔는지 근본도 모르며 주막집 양녀였다는데 대한 열등감이 항상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부모 강권에 못이겨, 또 혼처를 고를 만한 처지도 아니었기에 울분을 누르고 결혼하기는 했으나, 그러면서도 윤국이와 숙이의 뜬소문은 그에게 다른 또하 나의 열등감을 안겨주었다.
"내가 마음만 모질게 먹었음 동경 유학도 했을 거라구."
곧잘 입에 올리는 말이었다. 윤국을 염두에 두고 한 영호 말이었다. 숙이의 비천한 전력과 윤국과의 뜬소문은 서로 상반된 열등감으로 영호 맘속에 있었는데 어쩌면 그 상반된 열등감의 균형이 이들 결혼 생활을 파탄에 몰아놓지 않는 역할을 했는지 모른다. 한번은 영선과 숙이 개발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봄이면 들판에 나물을 캐러 가기도 했고 산에 가서 갈비를 긁어다가 땔감으로, 살림에 보태기도 했으며 때론 바다 쪽으로 나가는 일도 있었다. 그날은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해저 터널을 지나 발개라는 곳으로 간 이들은 사리 때라 그렇기도 했겠지만 유별나게 물이 많이 빠져나간 갯벌, 허허벌판이 되어버린 갯벌에서 얘기를 주고받으며 조개를 파기 시작했다. 조개는 많았다. 횡재라도 한 듯 영선과 숙이는 신을 내며 조개를 파서 바구니에 주워 담는다. 점심때가 지났을 때는 제법 바구니가 그득하게 조개를 팠다. 울려 퍼지는 뱃고동 소리, 두 여자는 허리를 펴며 일어섰다. 늦여름의 갯바람은 시원했으나 하얀 물살을 가르며 연신 뱃고동을 울리며 지나가는 윤선이 이들을 심란하게 했다. 배를 타고 떠나간 사람은 없었지만 죽음이든 어떤 모양으로든 떠나간 사람들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뱃고동 소리만 들으믄 왜 이리 서러분지 모리겄네."
머리에 슨 수건을 벗어 얼굴의 땀을 닦으며 영선이 말했다.
"와 아니라. 손수건 흔들며 떠나보낼 임도 없는데."
숙이 웃으며 말했다.
"울 오빠가 떠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람의 운명이다, 그런 말을 하더마는, 기약도 없는 세월이 이리 가는데 내 부모 내 형제를 언제 다시 볼꼬."
"선아엄마는 희망이 있인께 기다리기나 하지. 그라고 신랑이 점잖고 가숙을 귀히 여기니 나보다는 세월도 덜 서러벘을 기고."
"이녁은 어때서?"
"그냥 살았지 머."
"아들 있고 학식 있는 월급쟁이 남편, 그만하믄 남부러울 기 없일성싶구마는."
"속이 좁아 터져서 답답할 때가 있지. 핵교서는 무신 운동인가 하다가 퇴학을 당했다 하더마는 그런 사람치고는 국량이 모자란다. 시어른들 땜에 정붙이고 살았는데 하기사 나 같은 처지에는 과남한 사람이지."
"..."
"다만 어매 아배도 없는 내 동생, 천지간에 누부 하나뿐인데 그 아아한테 하는 짓이 서분코 야속하다. 아무리 출가외인이기로, 가숙을 생각하믄 그럴 수가 없지."
"마음으로야 생각 안 할라고? 오세바세 안 하는 성미니까 그렇겄지."
속사정은 다 알지만 영선은 그렇게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다. 처남은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 산에서 지쪼대로 컸어이 배운 기 머 있겄노. 불쌍한 우리 몽치, 저러다가 장개도 못 가고 몽다리귀신 안 되겄나."
"자기가 안 갈라 하든데 머."
"선아엄마 보고는 속맘 얘길 하제?"
"속맘 얘기라기보다."
"오므은 내 얼굴만 한분 보고 선아네집에 가서 뼈대니 자형 노릇은 선아아부지가 하신다."
숙이는 눈물을 씻는다.
"선아아배가 장개부터 가라 하니까, 돈 벌어서 가겠다, 지금이야 머어 보고 딸을 주겄는가, 가진 거라고는 못생긴 얼굴에 몸뚱이밖에 더 있는가, 함서."
"그거는 틀린 밀이 아니제."
"선아아배 말이 장개만 간다믄 해도사한테 몽치 몫이 있다 그러더마."
"...?"
"진규엄마는 그 소리 못 들었어?"
"나보고는 말을 해야지. 일체 얘기를 안 한다. 내 걱정 안 시킬라고 그러겄지만 어떤 때는 서운한 생각도 들고."
"얼매나 누부 생각을 한다고, 모린다 카이 하는 말인데 해도사한테 있다는 몽치의 몫은 돌아가신 주막집 할무이가 장개갈 적에 주라 하심서 해도사한테 맽기놓은 거라 하데."
"할무이!"
숙이는 별안간 울부짖었다. 흐느껴 울면서
"머리털을 뽑아서 신을 사, 삼아도 그, 그 은공은 다 못할 긴데, 다 가심에다 못박아놓고 가신 기라 하, 할무이! 으흐흐흣..."
한참 동안을 숙이는 울었다.
"울어라. 언제 맘놓고 한분 울었더나. 실컷 울어.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파도 소리뿐이다."
"그래, 그러니께 몽치가 뭐라 하든고?"
목이 꽉 잠긴 소리로 묻는다.
"한탐 동안 말이 없다가, 나도 생각한 일이 있인께 장개 갈 때가 되믄 가겄다, 그러이 형님 아무말 마소, 하더마."
"마음속으로 무슨 놈의 육도벼슬을 하는지, 우리 시아부지도 땅때기 좀 띠어주겠으니 장개들어서 농사 짓고 살아라 하싰는데 그 아아는 농사 안 하겄다, 그놈이 와 그라는지 모리겄네."
"세상에 그런 시어른은 안 기실 기다. 우리 어무이 아부지도 그렇지마는."
"부모복은 없임서 피도 살도 닿지 않는 분들 땜에... 우리 시아부지 말심이 부모가 안 기시니 누부가 부모 맞재비다, 그러이 우리 책임 아니가, 그 생각을 하믄 내가 무신 탓을 하겄노."
해가 중천에서 많이 기울었는데 영선과 죽이는 일어설 줄 몰랐다. 파기만 하면 나타나는 조개를 놔두고 차마 일어서지질 않았던 것이다.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며 욕심을 뿌리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몇 명 안 되는 개발꾼들이 다 떠나고 조수의 울림이 거세어지면서 차츰 갯벌을 물이 점령하기 시작했을 때
"아이구! 안 되겠다. 이러다가는 한밤중에 저녁하게 생겼네."
숙이 소스라쳐 일어섰고 영선도 따라 일어섰다.
"이 많은 걸 다 우짜지?"
갈 채비를 차리다가 바구니를 들여다본 숙이 중얼거렸다.
"가다가 장에서 팔지 머."
영선이 간단명료하게 말했다.
"그럴까? 그럼 서둘러 가야겄네."
두 여자는 검정 인조견 치마에 바람이 나게 부지런히 걸어서 장까지 왔다. 흥정을 하고 어쩌고, 조개를 파는데 시간이 걸렸다. 또부지런히 걸어서 영선의 집 가까이까지 왔을 때 사방은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미쳤다, 미쳤어. 집에서 난리가 났을 긴데."
숙이 걱정을 했다.
"쫓겨나믄 우리집에 오지 머."
약을 올리듯 영선이 말했다.
"속 편한 소리 하네."
"와, 걱정가? 서방님이 무섭기는 무서븐 모양이제."
"무서바서가 아니라 성가시니께, 남자가 한두 마디로 끝내지 않고 곱씹어싸아서."
영선은 삽짝에 들어서며
"보소 나 왔소."
휘가 남폿불을 들어올리며 내다보았다. 가난한 동네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어찌나 조개가 많든지 팔고 오니라고 늦었소."
"아아들 울리고 머하로 그런 짓 하는고."
하다가 휘는
"진규어머니, 진규가 자는데 깨울까요? 그냥 자게 둘까요."
숙이에게 물었다.
"예, 이거 참 미안스러바서."
당황하자
"어서 집에 가는 기이 좋겄네. 내가 좀 있다 진규 데리다 줄 기니께."
영선이 말에 숙이는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서둘러 삽짝을 나섰다. 어두운 골목을 뛰다시피 집에 왔을 때 초롱에 불을 켜놓고 마루에 걸터앉아 있던 영호가 벌떡 일어섰다.
"대관절 이게 머하는 짓고!"
눈을 부릅뜨고 우레같이 소리를 질렀다.
"잘못했소. 일이 그렇게 됐구마요."
숙이는 바구니를 장독가에 팽겨쳐놓고 부엌으로 달려가서 밥쌀부터 씻으려 하는데 부엌 앞까지 따라온 영호는
"설명이 있어야 할 거 아니가! 와 늦었노."
"밥쌀 앉히놓고 말하겠으니."
일없다! 나와!"
부엌까지 들어와 숙이 팔을 잡아 끈다.
"이거 놓으소. 갈께요."
영호를 따라 나온 숙이는 마루에 걸터앉는다.
"개발하러 간 것은 알겄는데."
선아 한테서 얘기는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캄캄한 밤에도 개발을 했나?"
억지소리다. 가고 오고 걸리는 시간이 있는데 밤에 개발을 했느냐, 영호 자신도 억지라는 것을 알고 한 말이었다.
"젊은 계집년들, 개발이라고? 핑계 한분 그럴듯하다."
"..."
"대체 어디 갔더노? 어떤 놈팽이하고 눈이 맞았노?"
마주보고 선 영호는 어둠을 등지고 초롱불을 받는데 묘하게 키가커 보였다. 얼굴도 길었고 목도 길어 보였다. 숙이는 그러한 남편을 말없이 바라본다. 근자에 와서 영호는 사람이 달라졌다. 옹졸한 면은 본시부터 없지 않았으나 내성적인 성격이여서 말은 적은 편이었는데 말이 많아진 것이다. 말이 많아지고부터 사람이 유치해졌다. 영호 자신도 그것을 깨닫고 있었다. 표현부족 때문에 그렇다는 것을, 옛날처럼 말을 줄이면 될 텐데 이미 그는 통제력을 잃고 있었다. 그래서 새로 생긴 버릇이 억지소리였으며 마음은 그렇지 않았는데 저도 모르게 엉뚱한 말을 해 놓고는 스스로 놀라고 수습이 안되니까 또 유치해질 수밖에.
"와 말을 못하노! 놀기는 논 모양이구나. 두 년이 죽이 맞아서."
"저보고는 무신 소리 해도 좋소. 줏어담지 않아도 되니께요. 남의 가숙 헌해하는 못난 남자, 선아아부지가 들어보소 가만 있을 기든가."
"가만 안 있음!"
"이녁 다리가 성하겄소?"
남편을 두려워하는 가색이 조금도 없다. 딱해하는 것 같았다.
"흥! 무식한 게 입은 살아서 제법 말하네."
"질게 말해봐야 늘 하는 그 말 아니겄소? 저녁이나 해묵고 따지든지 캐든지 하입시다."
"안돼."
"그라믄 이렇기 앉아서 밤 새기로 합시다. 사람이 나이 묵을수록 국량이 좁아지니 나도 이자는 못 살겄소."
"이 계집이, 간이 덕석만 하네. 남편 알기를 발싸개만큼도, 정 말 못하겠나?"
"조개가 많아서 장에서 팔았소. 그러니라 늦어진 겁니다."
"머라? 뭐라 캤노?"
"..."
"이자는 남편 얼굴 깎기로 작심했단 말이제? 우세 시킬라고 장바닥에 나앉은 기가?"
하다 말고 별안간 고함을 지른다.
"내가 밥을 굶겼나! 옷을 벗겼나! 계집 장바닥에 나앉힐 만큼 이내가 그렇기 못난놈가!"
하는데 영선이 다섯 살짜리 진규를 업고 들어왔다. 두 번이나 아이를 잃고 겨우 길러낸 영호와 숙이의 외아들이었다. 아이는 영선의 등에서 잠들어 있었다.
"진규아부지 지가 잘못했습니다. 진규 엄마는 자꾸 가자 하는 거를 지가 욕심을 부려서 지체된 거니께 용서 하이소."
"상관마소. 남의 가정사에 와 끼여드는 겁니까."
"끼여든다기보다 지가 잘못해서 불화가 생겼으니 하는 말이지요.“
해서 주거니 받거니 말다툼을 했던 것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호는 영선이 송관수의 딸이라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진주 농업학교에 다녔을 때 송관수와 정석, 그리고 영팔노인은 영호의 울타리가 되어주었던 사람이다. 광주학생운동 때 농업학교에서 주모자의 한 사람으로 영호가 퇴학을 당한 것도 송관수 정석의 영향을 받은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부친 한복이가 영선을 며느리로 삼고 싶어 했던 심중, 그것은 한복의 마음이었을 뿐 입 밖에 말을 꺼내기도 전에 영선은 강쇠에게 맡겨졌고 한복이 실망한 것을 영호는 알 턱이 없었다. 영선이라는 계집아이의 존재조차 그는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영선과 말다툼이 있은 지 한 달이 지났을까? 아들집에 왔던 한복이 영선의 집 앞 골목에서 우연히 영선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아, 아니 이기이 누고?"
한복이 먼저 알아보았다.
"관수형님 딸네미 아니가?"
"예?"
영선은 기억이 확실치 않은 듯 생각해내려고 애를 쓰는 모습이었다. 그도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았기 때문이다.
"여러 해 전에, 부산서 그 와.“
하다말고
"송관수 그분의 딸이제?"
"예."
"그럼 맞다. 부산서 그 와 검정다리 근처에 있던 너거 집에 간 일이 있는데 나를 모리나?"
"아 예! 아이구 참."
"여기서 니를 만나다니 참말로 세상이 좁구나. 한 골목에서 서로 친하게 지내믄서 그거를 모리고 있었다니."
저녁에, 숙이가 차린 밥상머리에 두 집 식구들이 모여 함께 저녁을 들면서 한복이 한탄스럽게 말했다.
"참말로, 관수아저씨 딸이라는 걸 어찌 알았겄십니까?"
누구보다도 태도가 돌변한 것은 영호였다. 그는 새삼스럽게 자기 자신의 변한 모습 찌들어진 모습을 돌아보는 것이었다. 가장 순수했던 시기의 기억이 영호를 순수한 상태로 되돌려 놓은 듯, 관수에 대한 친애의 정이 영선에게로 옮겨갔고 누이동생을 대한 듯, 그의 배우자 휘에게조차 남다른 감정으로 변해갔던 것이다. 진정한 우정이 시작된 것이다.
"아부님은 편안하시고."
깊이 알지는 못하나 한복이는 김강쇠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해서 휘에 대해서도 존중을 표했던 것이다.
"어쨌든 간에 이렇게 만낸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앞으로는 친형제가 진배없어이, 서로 의지하고 도아감서 살아라. 그래 자네는 살기가 우떻노?"
"예, 괜찮십니더."
휘의 점잖은 행동거지는 영호 눈에도 돋보였다. 한편 한복이는 휘의 스승이 조준구의 아들 조병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근처에 살고 있으며 조준구가 아들집에 와 있고 그의 횡포가 얼마만한 것인지 소송히 알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진주의 영팔노인 분노하는 것도, 평사리 마을에서 아낙들이 모여 수군거리는 것도 그 진원지는 한복이었던 것이다. 허튼 말을 하지 않는 한복이었지만 그러한 한복이조차 분개했고 조준구의 근황을 입 밖에 낸 것은 조병수가 평사리 마을에서 어떻게 지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
병수는 휘를 바라보았다.
"경주에 한분 다녀오시는 게 좋을 듯싶습니다. 제가 뫼시고 가겠습니다."
언젠가 한번 경주에 가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구경을 한다기보다 신라 천년의 고도 그곳에 남은 구조물에 접하고 싶은 병수의 심정을 휘는 알고 있었다. 휘는 스승을 위로하고 싶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며칠 동안이라도 그를 끌어내고 싶었다. 일에 대한 정열을 되살려주고 싶었다.
"어떻게 가겠나. 자네나 내 형편이 그렇게 안 돼 있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병수의 눈은 한순간 빛났다.
"형편 생각만 하시믄 아무 일도 못합니다."
"그건 그래."
"훌훌 털어부리고 다녀오시지요."
"그새 지감과 해도사가 오시면 어떻게 해?"
염려하는 병수의 표정은 마치 천진무구한 아이 같았다.
"그리 쉬이 오시겠습니까."
"그 사람들 하는 짓이 늘 엉뚱하니까."
"그게 염려시라믄 경주로 뒤쫓아 오시라는 전갈을 두믄 될 것입니다."
"그럴까..."
술을 마시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듯 말이 없더니
"휘야."
"예 선생님."
"나는 집을 짓고 싶었네라. 몸만 이렇지 않았다면 집을 짓고 싶었다."
"저하고 함께 집을 지어보시지요."
휘는 미소하며 말했고 병수도 싱긋이 웃었다.
"내 소원이 무엇인지, 모르지?"
"..."
"옛날에 내가 살았든 동네에 목수 한 사람이 있었다. 못생긴 곰보였지. 처자도 없는 혈혈단신, 몇 번밖에 본 일은 없었지만 얘기는 많이 들었어. 나는 그 사람이 부러웠다. 연장망태 짊어지고 발 닿는대로 떠다니는 그의 팔자가 부러웠네. 자유인이지.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이."
"선생님."
하고는 휘가 머뭇거리자
"말해보게."
"떠다니는 사람이믄 집은 왜 짓습니까."
"글쎄, 자네 말을 듣고 보니 그렇기도 하네. 떠나는 것과 머무는 것, 해서 사람들은 괴로운 것, 안 그러냐?"
"예."
"머무르고 싶은 욕망이 집으로 나타난다고 한다면 집을 짓고 싶은 내 마음도 욕망일까? 지리산의 해도사는 산속에다 집, 집이래야 산막이지만 지었다가는 버리고 또 지었다가는 버리고 한다는데, 집을 짓는 것도, 버리는 것도 자재로우면서 번뇌에도 자재로울 것이야."
"그런 말심을 도사님께서 하신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 해도사는 자재롭다 하시더냐?"
"아니지요. 그러질 못해서 버린다 하시더마요."
"하하핫핫핫..."
오래간만에 병수는 소리 내어 웃었다.
"참 선생님."
"..."
"평사리 최씨댁의 그 어른을 아시는지요?"
"길상이 그분 말이냐?"
"예."
"알지 알다마다."
순간 병수의 얼굴에 안개 같은 슬픔이 모여드는 것 같았다.
"내 어릴적에... 내가 어렸을 적에 나를 알아주든 단 한 사람이었네. 마른땅에 봄비같이 나를 적셔주든 소년이었네. 내 영혼을 어루만져 주셨고... 세월이 이렇게 흘러갔을 줄이야."
목이 메는지 병수는 술잔을 들고 눈물을 아니 흘리려는 듯 눈을 감으며 술을 마셨다. 실로 그는 만감에 사무쳤던 것이다. 그는 조준구와의 견디기 힘든 투쟁, 아니 자기 자신고의 투쟁도 새롭게 그의 가슴을 저미었다.
술잔을 놓으며
"그래 그분 얘기는 어째 하는 건가?"
"며칠 후에 도솔암으로 내려오신다는 얘기였습니다."
"뭣하러? 그분 운신하기 어려운 형편일 텐데?"
병수는 진주서 독립자금 강탈사건이 있은 후 소지감의 부탁으로 집에 와서 며칠을 묵었다가 만주로 같 사람들 생각을 했다.
"시국이 시끄러바서 그 어른이 언제 우떻게 될지 모리는 일이라 그리 되기 전에 도솔암에다 관음보살 탱화를 그릴라고 내리오신다는 얘기였습니다."
"뭐? 관음의 탱화를?"
"잘은 모르지만 돌아가신 스승과의 약조 때문이라 그런 얘기였습니다."
"스승과의 약조..."
돌아가신 스승이란 우관선사를 말하는 것이다. 우관이 생존시, 천수관음을 조성하여 도탕에 빠진 이 나라 백성의 원을 걸어라 하고 길상에게 당부했던 것이다. 그러나 천수관음의 조성은 대역사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오랜 세월 그 일에서 떠나 있었던 길상이고 보면, 해서 관음보살의 탱화를 착안했고 그 동안 길상은 꽤 오랜 시일을 두고 붓을 풀어왔던 것이다.
"그분이 오랫동안 붓을 놨을 터인데 그러나 진심이면 무엇을 못하리."
"선생님."
"또 왜."
휘가 할 말을 짐작하듯 병수는 또다시 술잔을 들었다. 어디 병수가 한이 그것뿐이겠는가. 불구의 몸으로 서희를 엿보았던 마음, 서희와 자신을 결합시키려 했던 부모의 간교에 빠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던 그 세월, 서희는 그에게 빛이였고 우주의 신비였다. 관음상이요 숭배의 대상이며 그것은 인간적이 아닌 천상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길상을 만날 수는 없었다. 간절하게 만나고 싶은 길상이지만 서희의 존재는 그것을 상쇄했다.
"도솔암으로 가시는 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 어른도 만나고 선생님 어떻습니까."
아니나 다를까 휘는 병수가 예상한 대로 말했다.
"말이 그렇지. 아버지 땜에 내가 어디를 가겠느냐."
"하지마는."
"아니다. 생각해본 것만도 좋았구나."
휘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었던지 한숨을 내쉬었다. 해거름에 아들집에서 병수댁네가 돌아온 것을 보고 휘는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는 영호와 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출장갔다 오느라고... 그래 일은 잘 치렀소?"
영호가 물었다.
"예, 괜찮기 끝났소."
"가보지고 못하고 내가 생각해도 한심스럽구만."
"떠벌리고 할 형편도 아니었은께, 나 역시나 사위로서 술 한 잔 대접한 일이 없으니 어찌 한이 남지 않겠소."
"이점, 저점, 술이나 합시다."
영호가 술을 사온 것 같았다. 영선이 술상을 차려왔고, 그새 또 울었는지 눈이 빨갛게 돼 있었다. 그리고 여자들은 작은방으로 갔고 큰방에서 두 사내는 마주앉았다.
"나도 한때는 관수아저씨 뜻에 어긋나지 않는 인물이었는데 살다보니 사람이 치사해지고 우물 안에 갇힌 개구리처럼 세상 보는 눈이 좁아지고 여러 가지로 김형한테 부끄럽소."
영호는 솔직하게 말했다.
"그런 말 마시오. 나한테 부끄러울 기이 머 있겠소."
"김형의 인품을 몰라보고 경박했던 언동을 용서하시오."
"자꾸 그러믄 입장 곤란합니다. 평사리의 춘부장 말심대로 형제겉이 지냈다믄 서로 무신 흉허물이 있겠소. 안사람끼리 다정하니 우리도 그러믄 될 기고."
"맞소. 나도 수양을 해야겄소. 사실 내 경우, 내 부친의 강경한 성품 아니었다면 무엇일 됐을지, 그거 생각해보니 부친과 백부, 이를테면 흰색과 검정색 같다 할 수 있는데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어중간하게, 내 세월에 곰팡이가 쓸었던 것 같소."
"이제 보니 김형 말솜씨가 보통 아니구마는."
"마음에 있는 대로 얘기를 하니까 그렇지요."
"김형도 가끔 우리 선생님을 만나보시오. 참말로 이슬같이 맑게 살아오신 분이라 말씀이 없으시도 몸으로 전해오는 귀한 것이 있소."
"그렇게 하리다."
"그리고 지리산 산속에도 더러 가보시고요. 나는 항상 그 산 생각을 합니다. 사람이 제아무리 재주를 다 부려도 그 산의 바위 하나를 따를 수 없고, 훌훌 털어부릴 수 있는 곳도 산이오."
"김형."
"예."
"알고 보면 내 부친이나 내 어머니, 한에 사무친 분들인데 착하게 살았소. 지금도 착하게 살고 계시고, 그분들 사이에서 태어난 내가."
"그런 말심은 마시오. 이 경우는 다르지마는 야차 겉은 어매 아배에서 태어난 사람도 부처같이 어진 경우가 있더만요. 하물며 착한부모 밑의 나쁜 자식은 없을 거요."
영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야차 같은 부모 사이에 부처같은 자식이 있다는 말은 상당히 큰 위안이 되었다. 야차 같은 할아버지 야차같은 큰 아버지.
"그 말은 맞는 것 같소. 내 부친도, 내 집안 얘기를 해서 안됐소만 내 부친도 그러한 부처가 아닌가 싶소."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많은 술을 마셨고 까닭 모를 눈물도 흘리곤 했는데 휘는 느닷없이 몽치 문제를 꺼내었다.
"첫째 김형이 해야 할 일은 몽치에 대해서 생각을 바꾸는 일이오."
순간 영호는 무척 당황했다.
"나, 나도 그렇지만 처남도 나를 바로 보는 일이 없고."
"그거는 김형이 달가워하지 않으니께 그런거요. 누님을 소홀히 한다는 것도 몽치 맘에는 아팠을 거요."
"그, 그거는 모리는 말이요. 집사람이 얼마나 도도한지 몰라서 그러요."
"그럴까요?"
휘는 웃었다.
"하여간 몽치 그놈은 장래성도 있고 뚝심이 보통 아니오. 누구한테 눌리서는 못 사는 성미니 우격다짐으로도 안되고 그 놈을 다스릴 사람은 해도사 말고는 없을 기요. 지몫 지가 찾아먹을 기니 머를 우찌하라는 것보다 붙이로 생각하면 다 잘될 깁니다."
선창가 뒷골목에는 색주가도 못 두는 영세한 술집이 많았다. 그런 술집을 다치노미집이라 했는데 종래의 주막이 이런 항구 도시에서는 일본말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모처럼 뭍에 오른 몽치는 그러한 술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을 동료 한 사람과 함께 어슬렁어슬렁 걸어 들어간다. 몽치는 회색 무명바지에 낡은 낫파후쿠 윗도리를 입었고 동행은 때 묻은 바지 적삼을 입고 있었다. 키는 몽치와 엇비슷하게 큰 편이었지만 몸은 깡말랐다. 이들은 단골인 다치노미집으로 들어간다. 주인 여자 사천집이 몽치를 힐끗 쳐다보았다. 다치노미의 주점 풍경은 살벌했다. 송판으로 두들겨 맞춘 탁자 걸상은 낡고 기름때에 절어 있었으며 벽 천장은 회갈색으로 그을어서, 땅거미가 지는 밖은 아직 희미한 밝음이 남아 있었는데 켜진 벌거숭이 전등 빛을 받은 주점 내부는 오히려 어두컴컴해 보였다. 서너 명 가량 술손님이 있었다. 뱃사람. 부두의 지게꾼과 하역부, 생선도가의 일꾼, 경매장을 얼쩡거리는 건달과 투정꾼들이 주된 고객인데 드나드는 대개의 술꾼들 기질은 드세었으나 지지리 궁상 남루한 행색들이었다.
"여기 국밥 두 그릇하고 막걸리 한 잔씩 갖다주소."
몽치가 사천집 모화에게 우렁우렁 울리는 목청으로 말했다. 몽치는 거구였다. 누구의 눈에도 힘깨나 쓰는 사내로 비쳤다. 못생긴 얼굴, 입술이 터져서 딱지가 앉아 있었고 햇볕과 바닷바람에 얼굴은 검붉었으며 정맥이 솟은 손은 몹시 거칠었다.
"아짐씨!"
뭉치는 또다시 그 목청으로 불렀다.」
"와요."
"뱃놈들 배애지 큰 거 알지요?"
"올 때마다 하는 소리, 귀에 못이 박이겄네."
사천집 모화는 사발에 밥을 담으며 쌀쌀하게 말했다. 여자는 허리가 홍두깨처럼 가늘었다. 가늘다 하여 가냘픈 것은 아니었다. 탄력이 있고 강인한 느낌을 주는 여자였다. 눈썹이 짙고 눈시울도 길고 짙었다. 그것 이왼 그저 보통 흔히 보는 얼굴인데 그 여자 기상이 대단한 것은 좀 유명했다.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폭행하려던 주정꾼이게 칼을 들이댄 사건으로 유명해진 것이다. 그냥 방어나 위협이 아니었고 정말 죽일 듯 눈이 빛나던 그를 바라본 술꾼들은 한순간 숨을 쉬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술꾼들도 모화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서른 안팎으로 보이는 사천집 모화의 전력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몰랐다. 과부인지 소박데긴지, 아들이 하나 있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사람들은 그 아들을 본 일이 없고 심부름꾼 머슴아이 하나를 데리고 주점을 꾸려나가고 있었는데 손님하고 함께 술을 마신다거나 젓가락 두들기며 노래 부르는 그 따위 짓을 결코 하지 않았다. 작년 가을이었던가 무슨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술을 마시던 놈팽이가 별안간 모화에게 덤벼들어 머리채를 감아쥐고 구타하려는 순간 마침 옆에서 국밥을 먹던 몽치가 일어섰다. 그는 사내 멱살을 잡고 끌어낸 뒤 솥뚜껑 같은 손바닥으로 사내 면상을 쳤다.
"아이크!"
사내는 마치 허수아비처럼 바닥에 나동그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모화는 떨어진 비녀를 주워 입에 물고 머리를 감아서 비녀를 꽂은 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하던 일을 계속했다. 몽치에게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머슴아이가 김치보시기 하나 막걸리 두 잔을 갖다 놨다.
"성님 드시소."
"음."
두 사내는 단숨에 술을 마시고 김치를 두어 젓가락 집어먹는다. 함께 온 사내는 몽치보다 한해 늦게 고깃배를 탔다. 본명은 이양생이었지만 뱃사람들은 그를 얌생이라 불렀다. 아직 앳된 자취가 남아 있는 모습이었고 장가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배를 탔다는 얘기였으며 병든 홀어머니와 생선을 가공하는 사쿠라보시 공장에 다니는 누이동생이 있다는 말을 했다. 국밥 두 그릇을 머슴아이가 가져왔다. 확실하게 분량이 많았다.
"묵자."
"야."
몽치는 뭍에 오르면 대개 혼자 와서 국밥 한 그릇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갔다. 일행과 함께 왔을 때도 그는 절대로 막걸리 한 잔을 넘기는 법이 없었다.
"성님 국밥 하나 가지고 간에 기별이나 가겄소?"
"술도 딱 한 잔, 취한 거를 본 일이 없소."
"맹물에도 취한단 말 못 들었나? 나는 술 안 마시도 늘 취해 있다."
"머라꼬요?"
"취하지 않고 이눔의 세상의 우찌 살아갈 기고."
양생은 웃다가 말했다.
"성님은 술 안 마시도 취할 수 있이니 얼매나 좋소. 평생의 술값 모우믄 집이라도 안 사겄소? 나는 술 안 마시믄 취할 수 없이니 그게 사단이지요."
"장개 밑천은 좀 모아놨냐?"
몽치는 실실 웃으며 물었다.
"말 마소. 우떤 때 그 생각을 하믄 눈이 뒤집힐 것 겉소. 뼈가 빠지게 일을 해도 남는 기 없이니 어느 세월에 가숙 거느리겄소."
"빚 안 지니 다행이다. 계집아한테 옷감 끊어주고 크리무 사다주고 그러이 그렇지."
"언제요?"
했으나 양생은 당황한다.
"내가 난전에서 그거를 봤는데 시치미 뗄 기가?"
"그거사 머, 어쩌다가... 술잔 마시고 집에 보탤라 카이, 동생이 사쿠라보시 공장에서 버는 거 가지고는 생활이 택부족이라요. 어매는 늘 골골거리고, 이러다가 내라도 아파 누으믄 속절없이 식구들 다 죽는 판이오."
"..."
"다 복이 없어서 안 그렇겄소."
"복이 없어 그렇건데? 세상이 고르잖으니 그렇제."
"그거나 저거나, 매치나 엎어지나."
"그 따우 생각 한께 평생 종놈의 신세 면키 어러버."
"나부댄다고 세상이 어디 달라지겄소? 달라지기만 한다믄 모가진들 못 걸겄소?"
"알고는 있이야제."
"머를 말입니꺼."
"와 뼈빠지게 일을 해도 묵고 살기 어러분지 그 이치 말이다."
"이 갈아봐야 이빨만 뿌러지지, 이치 겉은 거 알아 머하겄소. 알고 접지도 않구만요."
양생은 시들하다는 듯 말했다.
"실개 빠진 놈, 우리 몫을 누가 가리단죽 하는가, 뺏기더라도 셈은 해봐야, 그것도 안 하믄서 무슨 놈의 복타령이고."
"그라믄 성님이 셈 한번 해보소."
"선창가에 한분 나가봐라."
"...?"
"어구점 기름집 할 것 없이 큰 장사는 모두 왜놈들이 하고 있다. 통영 바닥의 돈은 그놈들이 긁어들이니께 우리 손바닥에 남는 돈이 적어진다. 그거는 그렇고 어장을 한분 생각해봐라. 대구릿배는 죄다 왜놈이 가지고 있다. 니도 알 기다마는."
"그거 모리는 뱃놈이 있겄소?"
"그놈들 구역에는 어업권이다 뭐다 함서 조선 놈 배 얼씬이나 하나? 모조리 다 차지해서 잽히는 개기는 모도 일본으로 가지가고 우리 쌀을 가지가듯이, 쌀이사 대신 알량미를 풀어 놓기나 하지마는 개기는 그것도 없다. 하니 산중 사람들 개기 천신이나 하는 줄 아나? 도방에서는 비싼 개기 묵어야 하고 팔 물건이 적은께 우리 손바닥에 놓이는 돈도 적은 기라. 물건을 비싸고 우리 수중에 돈은 적고 뼈가 빠지게 일해보아야 묵고 살기 어러분 것은 당연하다."
양생은 흥미 없는 듯 멍하니 앉아 있었다.
"조선 놈들은 게우 대구리선 몇 척 가지고 길목 나쁜 데를 훑어야 하고 주낙배를 의지해야 하고, 다만 하나 결판 낼라꼬 덤비는 기이 봄철의 멸어장이라. 돈푼 있는 것들, 아니믄 빚을 끌어댕기서 대가리 싸매고 디리덤비지마는 그거는 노름과도 같아서 운수 좋으믄 돈방석에 앉고 운수 불길하믄 빚더미 위에 앉고 해마다 망하는 자흥하는 자 물갈이가 심하제. 하니 어장애비들 노름하는 기분, 그거야 머 어쨌거나 돈방석에 앉든, 빚더미 위에 앉든 왜놈들한테 비하믄 새발의 피고 젓꾼들이 거머쥐는 돈이라는 것도 가랑잎 같은 건데."
"성님, 언변이 그리 좋은 걸 몰랐오. 목청만 큰 줄 알았더마는."
잠시 말을 멈춘 몽치는 화난 목소리로
"네놈이 하도 복타령을 한께 그랬다. 다 사람이 하는 짓이지 구신이 춤추나? 다 사람이 하는 짓이제, 사람이 하는 짓이믄 와 못 고치겄노. 팔자도 고치는데."
"그만 했이믄 알아듣겄소. 제발 목소리 좀 낮추소."
"와."
"잘못하다간 콩밥 묵소."
"보니께 모도 조선종잔데 와 내가 할말 못할 기고, 겁날 것 없다."
"강약이 부동인데 우짤 깁니까?"
"가진 놈들이 겁나지 몸뚱이 하나 머가 무섭노."
"하 참, 이제 그만 가입시더."
"왜놈한테 고해바칠까봐?"
툭 불거져 나온 눈을 부릅뜬다.
"낮말을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 한께... 사람들 맘을 누가 알겄소."
"흥! 내가 이래봬도 산에서 비신술을 배우믄스 컸고 이자는 바다 한가운데서 비신술을 배우는 중이라. 어느 놈이고 간에 왜놈 턱밑에 가서 고해바치는 놈이 있이믄 배애지를 칼로 푹 찔러서 직이비릴 기다. 갬히 나한테 대적을 해?"
어릴 적부터 산짐승 무서운 줄 모르고 이산 저산 헤집고 다니던 몽치였다. 그의 발이 귀신처럼 빠른 것은 사실이나 비신술 운운, 그것은 허풍이다. 그러나 배를 칼로 푹 찔러죽이겠다는 말에는 사람들을 전율하게 하는 괴기 같은 것, 피바람과 같은 살기가 있었다. 그의 말에 귀 기울이던 주점의 술꾼들 표정이 달라진 것이다. 어릴 적에 험준한 산속을 쏘다니는 그를 보고 산짐승에게 해를 입을까 걱정들 했을 때 해도사는 말했다. 짐승들이 그를 피해가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몽치는 어릴 적부터 기가 세었다. 첩첩산중, 행로에서 쓰러져 죽은 아비 시체 곁에서 홀로 지새웠던 어린 아이는 그때 무엇을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대체 무슨 경험을 했을까? 몽치는 겁내는 것이 없었다.
"이자 그만 나가입시더, 성님."
양생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하다가 몽치의 팔을 잡아끌었다. 사천집 모화가 혼자 슬그머니 웃고 있었다.
"와 이카노!"
양생이 잡는 손을 뿌리치고
"내가 가고 저버야 간다. 가라 마라, 누구 맘대로.“
하면서 일어섰다. 몽치와 양생이 밖으로 나왔을 때 사방은 어두워져 있었다. 선창가에는 노점상의 가스불이 늘어놓은 울긋불긋한 잡화를 화려하게 비추어주었으며 마치 굴비 엮어놓은 듯 항구에는 작은 배 큰 배가 빽빽이 정박해 있었다. 기름을 부은 듯 매끄러운 바다, 바다 위에 달빛이 희번덕이고 멀리 등대섬의 등댓불이 깜빡이고 있었다. 고동을 울리며 떠나가는 밤배, 들어오는 밤배, 어쨌거나 항구는 활기에 넘쳐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서 난 신작로말고는 거의 평지라고는 없는 이 고장, 부자들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건 빈자들의 오막살이건 모두다 산비탈에서 뻗치고 있었다. 그 산비탈에 등불들이 나돋아서 부자 빈자 구별 없이 아름다웠다. 옛날, 일개 편벽의 갯촌이었고 고성군에 딸린 관방에 불과했던 이 고장이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구국의 영웅 이순신의 당포와 한산도의 대첩을 거두게 되는데 그로 인하여 삼도통제사 군영이 이곳 갯촌으로 옮겨지게 된 것이다. 바로 통영이 탄생되었던 것이다. 그 당시 통영에는 벼슬아치들을 따라 서울의 세련된 문물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며, 팔도 장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을 것이며 나라를 구하겠다는 지순한 영혼들이 이곳을 향해 팽패했을 것인즉, 그 위대한 힘과 정신이 마침내 찬란한 승리의 꽃을 피게 했던, 그것은 편벽한 갯촌의 엄청난 변신, 변화였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자 각처에서 모여든 사람들은 귀향을 서둘렀겠지만 해류 관계인지 천하일미를 자랑하는 해물이며, 아름다운 풍광, 온화한 기후, 넘실대는 바다, 아득한 저편에 대한 동경, 그러한 생활의 터전을 사랑했을 감성 풍부한 장인들 자유인들이 잔류했을 가능성은 충분하고 상상키 어렵지 않다. 그들이야말로 남쪽 끝머리 새로운 모습으로 떠오른 통영의 주역들이며 뿌리가 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유례없는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자랑하는 통영 갓, 전국에 명성을 떨친 통영 소반을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나전칠기며 독특한 목공예가 뿌리 없이 되어진 것은 아니다. 선자방 칠방 주석방 등 공방이 이곳에 국영으로 있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이들 자유와 창조의 정신들은, 고깃배 찔러먹는 뱃놈이라 하시를 하면서도 그 바다에서 신선한 활력을 받아 쇠퇴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피는 맥맥히 흘러 이 땅에서는 아직 숨 쉬고 있다. 자긍심 높은 후손들이 치욕을 씹으며 그러나 오기를 잃지 않고 거닐고 있다. 사람들은 성지, 충렬사의 붉은 동백꽃을 마음으로 몸으로 수호하며 이순신이 팠다는 명정리의 쌍우물, 어떠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해서 가뭄 때는 통영 사람들 유일한 식수가 되는 명정리 우물을 바가지로 퍼올리는 아낙들 마음은 늘 경건했다. 왜국 군선들이 몰리었던 판데목, 어마지두한 왜병들이 손으로 팠다는 판데목, 사람들은 그곳에 설치한 해저터널을 다이코보리라 부른다. 그것은 일본의 참패를 상징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우람한 기둥의 세병관이 학교 교실로 쓰이며 퇴락해가는 것을 슬퍼한다. 어떤 여인이 일본인과 동서한다 하여 그의 부모가 집밖 출입을 아니 하고 형제자매 일가친척이 여인을 외면하며 고장 사람들 모두가 그 여인에게 말을 걸지 않았으니, 파문으로 철저하게 응징하는 그 치열함, 여하튼 일제 치하의 통영, 남쪽 멀리 멀리 날아가 버린 자유의 새가 돌아올 것을 기다리는 사람들, 자랑스러움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활기에 넘쳐 있다, 통영은. 양생과 헤어진 몽치는 간창골 입구에 있는 휘의 일방을 힐끗 쳐다보며 지나간다. 문이 잠겨져 있었던 것이다. 명정리 휘의 집에 몽치가 들어갔을 때 해도사가 그 집 작은방에 좌정해 있었다. 몽치는 절을 하고 해도사를 바라보았다. 남폿불 아래 해도사의 신수는 훤했다. 풀기가 빳빳한 베옷 고의적삼에 옥색 대님, 때 묻지 않은 버선은 진솔 같았다. 도방 출입이라 그랬겠지만 이상한 점이 없지도 않았다. 벽에는 흰
두루마기가 걸려 있었다. 몽치는 불거진 눈망울을 굴리면서 스승이자 자신을 길러준 해도사를 뭐가 틀어졌는지 올곧지 않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옷 꼬라지가 뭐냐?"
스승도 첫마디가 삐딱하니 나왔다.
"갓 쓰고 자전거 탄다는 말은 들었다만 아래 위가 따로 놀고 있구먼."
"더운밥 찬밥 가릴 처지라야지요."
"큰소리 땅땅 치고 길이 좁아라며 다니는 모양인데 그러다가 뜨거운 물 마시지."
"우찌 그거를 압니까."
"상호에 씌어져 있다."
몽치는 피시시 웃는다. 소년같이 무심한 웃음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술집에서 큰소리 좀 치고 왔십니다."
"술집?"
"걱정 마시소. 뭍에 오른 날만 막걸리 딱 한잔입니다."
휘가 들어오면서 거들었다.
"그건 틀림없십니다."
"어릴 적부터 숨겨놓은 술을 귀신 같이 찾아먹든 놈인데 믿을 수 없군."
"언제 왔노?"
휘는 뭉치에게 물었다.
"방금 왔소."
"기별 받고 왔나?"
"야. 선생님 오셨다 캐서."
"그거라도 알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해도사는 여전히 쓴 듯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지가 그렇기 불학무식한 놈은 아닌데 와 자꾸 그러십니까."
"뉘한테 볼멘 소리야."
"..."
"어서 자형집에 다녀오너라."
"거기는 와요."
"그러면 안 갈 작정이더냐?"
"가기야 가겄지마는 들어서자마자, 발밑 불 안 붙었십니다."
"허허허 저것 보게?"
휘는 웃고 있었다. 이들의 만남은 늘 이렇게 시작되기 때문이다.
"지가 오믄은 함께 밥 잡술라고 기다리고 기심서 어멍은 와 떠는 깁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랬었다.
"자형한테 가서 잠깐 얼굴이라도 보고 와야 그게 도리 아니겠나. 엎어지면 코 닿을 데 집이 있어."
할 수 없이 달래듯 말했다.
"지나온 것도 아니겄고 형님 집을 지나칠 수도 없고, 늘 그런께 걱정 마이소."
"늘 그런다구! 이집 양식 축내려고 작심을 했구먼. 먹기나 적게 먹으면 말도 안 하겠다."
"나중에 열 곱으로 갚을 긴데 머가 걱정입니까?"
"뭘 해서 열 곱으로 갚는고?"
"지한테 생각이 다 있인께요."
"생각을 하면 뭘 하나. 뱃놈 지 입치레도 못할 게 뻔한데, 산적놈 꿈이라도 꾸는 게야?"
"요새 세상에 산적이 어딨십니까."
공연한 말들을 주고받는데 영선이 저녁상을 가져왔다. 해도사는 독상이었고 휘와 몽치는 겸상이었다.
"반찬이 너무 없어서, 용서 하이소."
영선이 해도사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만하면 됐네. 아이들은?"
"저 방에서 지하고 묵을 깁니다."
남자 셋은 수저를 들었다. 거구인 몽치 탓도 있었지만 방안은 남자 셋으로 그득했다.
"몽치 놈이 요즘에도 자형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나?"
해도사는 휘에게 물었다.
"그런 모양입니다. 고집불통, 지 말도 안 듣십니다."
"형님 그러지 마소. 사람이 우찌 손바닥 디집듯이 달라지겄소."
입안에 음식을 가득히 밀어넣고 콧잔등에 주름을 모으며 몽치는 못마땅해 한다.
"그쪽에서 달라지믄 이쪽에서도 좀 달라져야지. 김형은 잘해볼라고 애를 쓰는데 누님을 생각해서라도 그러믄 쓰나."
휘는 타이르고 해도사는 몽치를 노려본다.
"근수가 안 나간께요."
밥 먹는 것을 멈추지 않고 말했다. 해도사는
"근수라니?"
"사람의 근수 말입니다. 평사리의 사장어른이 백 근이라믄 매부는 열근 도 안 되는 사람인께요."
"뭐라? 그럼 넌 몇 근이나 나가는고?"
"지야 머 몸무게만큼 나가겄지요."
"미친놈."
하는 수 없이 해도사는 웃고 휘도 웃었다.
몽치는 평사리 한복의 집에서 영호와의 첫 대면을 잊지 못한다. 차갑게 쳐다보던 영호의 눈빛을 잊지 못하는 것이다. 그때 화가 나서 저보다 나이 위인 영호의 동생 강호에게 주먹질을 해서 코피를 쏟게 한 것을 기억한다. 어린 마음에도 괄시를 받은 것이 분했던 것이다.
저녁상을 물리고 숭융으로 입가심한 몽치는
"지감스님하고 함께 오신다 하더마는."
"스님은 선생님댁에 계신다."
휘가 말했다.
"지도 인사를 올리야 안 하겄십니까."
지감 역시 한때는 몽치의 양부 노릇을 했다. 그러나 해도사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한참 후에
"재수야."
하고 몽치의 본명을 불렀다.
"모두들 의논을 한 일인데 이번에는 장가를 들어야겠다."
"…"
"마침 마땅한 처자도 있고 하니 언제까지 홀몸으로 떠돌 거냐?"
몽치는 마음속으로 지감이 동석하지 않았던 이유를 깨닫는다. 홀몸이긴 지감이나 해도사가 다 마찬가지였지만 장가를 간 일이 없는 지감에 비하면 해도사는 한 번도 아니요 여러 번 여자가 죽고 달아나고, 처운이 없어 세상을 버리고 산에 들어온 사람이다.
"왜 말이 없느냐."
"지는 장개 가고 저븐 생각이 없십니다. 가더라도… 갈 때가 되믄 가겄십니다."
"그때가 언제냐? 도통할 때냐?"
"그거사 선생님 길이제요. 지는 신선될 생각 없십니다."
몽치는 농치듯 말하며 대답을 회피한다.
"니가 마다는 데야 할 수 없지. 허나 누이 생각을 한다면, 평사리 사돈댁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고집만 부릴 일이 아니다."
"선생님 말심이 옳다. 무슨 배짱으로 그러노? 도모지 속을 알 수 없어이."
휘도 거들어서 말했다.
"지는 맘을 작정했십니다. 어장애비가 되기 전에는 장개 안 갈 깁니다."
"뭐?"
휘는 놀라고 해도사는 어리둥절 한다.
"사내자식이 세상에 나와 가지고 아침저녁 끼니 걱정이나 하믄서 살 바에야 차라리 죽어부리겄소. 모두 사람이 하는 것인데 못할 거 없지요."
"씨름판에 가서 소 타오는 일이라믄 모릴까 되지도 않을 그런 꿈을 와 꾸노? 생각한다고 아무나가 하나?"
"질고 짧은 거는 대봐야 알제요. 가보지도 않고 안 된다 하는 거는 밥솥에 불도 지피지 않고 밥 안 된다는 말과 같소."
"가이방해야 말을 안 하지, 그래 배 살 돈이나 있어서 하는 말가?"
"누구 깝대기를 벳기든 나는 하고 말 기요."
"잔말 말고 장개나 들어!"
"그만두어라."
해도사가 말했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휘는
"선생님 어디 가실라고 그럽니까?"
물었다.
"음."
해도사는 밤길에 나섰다.
'그놈이 상호대로 살려고 저런다. 말려봐야 소용없고 대역을 하든 대적이 되든 그놈은 저 갈길을 갈 게야'.
어릴 적부터 상식으로는 다스려지지 않았던 아이였다. 아니 다스려지지 않는 아이였다. 어쩌면 그는 아비 시체 옆에서 밤을 지새웠을 때 인간을 묶은 보이지 않는 속박에서 풀려났는지 모를 일이다. 슬퍼하거나 기뻐하거나 괴로워하는 빛이 나타난 일이 없었던 몽치의 얼굴, 결코 명령대로 움직이지 않았던 아이, 제 마음대로 먹고 제 마음대로 쏘다녔고 제 마음대로 일하던 아이, 도무지 남의 말이 필요 없던 아이였다. 해도사의 이번 행로는 한복의 부탁을 받은 때문이다. 혼처를 정해놓고 해도사를 찾아왔던 것이다.
"저렇기 떠돌게 내비리둘 수는 없는 일이고 자식놈이 속이 좁아서 처리를 못하니께 우리라도 나서야, 형편이 안 된다믄 모릴까 그만한 정도는 되니께."
한복은 띄엄띄엄 말을 했다. 해도사는 통영 오는 길에 평사리에 들러서 신부감의 모자라는 아비도 만나보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몽치만 응하게 되면 다 된 혼사였다.
해도사는 조병수의 집으로 갔다.
"지감 나 왔소."
병수가 일어서서 방문을 열고
"들어오시오."
"술 생각이 났던 모양이구먼."
지감도 내다보았다. 방으로 들어간 해도사는
"내일 날씨 좋겠구먼. 하늘에 별이 또렷또렷 박혀 있소."
하고 말했다. 집안은 아주 조용했다. 두 사람은 술상을 마주하고서 얘기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혼담은 어찌 되었소."
소지감이 물었다.
"그놈이 대역도가 될려고 마다하는구먼."
"내버려두시오. 몽치 그놈 바다 한가운데서도 살아갈 놈이오. 상상봉에 홀로 있어도 살아갈 놈이오. 해도사 격에 안 맞는 일을 하더라니, 자아 술이나 드시오."
하며 소지감은 술잔을 내밀었다.
"그거 참, 해도사는 대단한 제자를 두었소. 바다 한가운데, 상상봉에서홀로 살 수 있는 사람이라면, 부럽군요."
병수가 말했다.
"글쎄올시다. 그렇게 말씀하시니 그럴듯도 하구, 뭔지는 모르지만 글쎄 그게 뭔지 모르지만 그놈 옆을 뭔가가 늘 비켜가는 듯, 그게 재앙인지 홍복인지, 애비 에미 없이 홀로 산중에 내던져졌던 놈인데 그게 저절로 자란 듯싶기도 하고 하여간에 별남 놈이지요."
해도사는 자신의 느낌을 표현할 수 없었던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모르는 손이 있었을 게요."
"모르는 손, 조선생님께서는 그것을 믿으시오?"
"믿습니다."
"그러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신령입니까? 명운입니까."
"운명이라기보다, 가혹한 운명에 대한 연민 아닐까요? 방금 말씀하신 그 젊은이는 의식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힘들었을 겁니다."
"보이지 않는 무엇의 자비다, 그런 뜻의 말씀인데 지감법사 한 말씀 해보시오."
"불성을 말하라는 거요? 일체중생, 본디 가지고 있는 불성이라면 우주 공간에도 그 본성이 있다고 보아야지. 부처가 눈에 봬요? 안 보이지."
"실은 아까 해도사가 말씀하신 그 젊은이, 남의 일 같지 않소."
"어째서요?"
"글쎄올시다. 왠지 그렇구먼요. 어쩌면 그 사람 운명 앞에 큰대자로 누워버린 사람 아닐까요? 아주 편안하게요. 해서 자유롭게 거동하며 복종도 반항도 아닌 생각한 대로 구름 가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놈이 대단한 인물, 아니 도를 통한 인물 같지만 그렇지는 않소이다. 완명하고 독불장군."
"몽치는 귀가 가렵겠소. 어른들이, 그도 한가락씩 한다는 어른들이 아이를 두고 왈가왈부, 그만둡시다."
지감이 손을 저었다. 병수는 무안 타는 아이같이 삐죽이 웃는다.
"한데 조선생께서는 일손 놓고 적적해서 어떻게 지내십니까."
해도사가 물었다.
"적적하긴? 풍파를 겪는데 적적할 새가 있겠소."
지감이 대신 대답을 했다. 해도사도 대강 사정은 알고 있었기에
"하기는."
하다가
"조선생, 그러시는 게 효도 아닙니다. 더러 막아보기도 하시오."
병수는 소스라쳐 놀라며 해도사를 강하게 쳐다보았다.
"아버님의 악행을 무조건 수용하는 것은 아버님의 지옥행을 재촉하는 거나 다름없소."
사정없이 내리지른다. 병수의 얼굴이 추위 탄 것처럼 오종종해졌다.
"해도사! 무슨 말을 그렇게 함부로 하는 거요."
지감이 나무란다.
"아니오. 해도사 말씀이 옳소."
서둘러 말하고 나서
"저는 아마도 부친을 버렸을 겁니다. 미움을 버리면서 부친을 버린 셈이지요. 그, 그렇소. 부친에 대한 연민은 혈육에 대한 그런 아픔과는 다르오. 한 생명에 대한 것, 그, 그것 이외 아무것도 아닐 거요, 아니 그보다 나는 불효라는 말을 두려워했소. 불효라는 말은 악몽과도 같은 것이었소."
오종종했던 얼굴이 풀어지면서 병수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심경을 털어놨다. 지감은 오만상을 찌푸리고 올곧잖게 해도사를 노려보면서
"몹쓸 사람이구먼."
"허허어 참."
"상처에 소금 뿌리기, 손님된 처신도 모르오?"
강한 어조로 힐난한다.
"상처에다가 소금을 뿌리면 상처는 아무는 것이 이치요. 심약한 소리, 지감은 조선생을 강보의 아인 줄 아시오."
"점점 한다는 소리가."
"그게 다 어른이 돼보지 못한 탓이지 뭐겠소."
해도사가 태연하게 투박스럽게 말했다.
"기가 막혀서, 살다보니 별 회한한 말을 다 듣겠소."
"그는 그렇고 지감은 내일 용화산에 가시오?"
"들렀다 갈 작정이오. 해도사는 어쩌겠소?"
"새는 날 생각해보지요. 오래간만에 나왔으니, 언제 또 오겠소? 바다 구경도 좀 하구 찾아볼 곳도 두어 곳 있으니."
"조형"
지감이 불렀다,
"네"
"산에 한번 안 오시려오?"
"휘도 그런 말을 하던데 한번 가지요."
그러다 병수는 길상이 떠난 뒤 가리라 마음먹는다. 현재 길상이 도솔암에 와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일손도 놓고 했으니 더러 다니시오. 산천도 볼 만하고 인심도 각색이니."
조병수는 흥분해 있었다. 지감의 내방은 오로웠던 그에게 큰 기쁨이었던 것이다. 출가하기 전에는 주유가이던 지감이 일 년에 한두 번 병수 앞에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이번의 내방은 삼년만인지라 감회가 깊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손을 놓고 있는 처지였으니, 휘가 산을 다녀올 때마다 소식은 들어 그의 형편을 소상히 알고는 있었다. 병수는 지감이 염려하는 것처럼 해도사 말을 고깝게 들은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정곡을 찔려오는 바람에 충격을 받긴 했지만 이들과의 만남이 너무나 흡족하여 해도사 말을 마음에 끼워둘 틈새도 없었다. 그리고 부친의 일, 부친에 관한 것에 대해서는 이미 이골이 나 있어서 웬만한 것으로는 마음이 상하지도 않았다. 그의 말대로 육친을 떠난 연민이라면 다분히 객관적인 것으로, 또 그렇게 타인과 같은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병수도 견디어 배길 수 없었을 것이다. 해도사의 경우도 그랬다. 결코 무신경한 사람은 아니었고 거칠게 병수를 쓰다듬었던 것이다. 지감은 해도사와 병수가 주고받는 얘기를 들으면서 눈을 감고 앉아 있었다.
'일을 하나 끝내고 나면 왜 그리 허기가 드는지요. 밥은 먹어도 허기는 가시질 않고, 알 수 없는 허기, 속이 텅 비어서 껍데기만 남은 것 같아서 말할 수 없이 쓸쓸해집니다.'
언젠가 병수는 그런 말을 했다. 어느 도공도 지감에게 한 말이었다.
'일을 다 끝낸 뒤 다 된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한 일일까? 의심이 들지요. 정말 저걸 내가 만들었는가. 일한 시간은 간 데 없고 흔적도 없는데 물건이 하나 내 눈앞에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소. 내 손은 연장에 불과한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만들게 하는가. 생각이야 늘 하는 거지만 그것이 어떻게 물건으로 나타나 있는가.'
그런 말도 병수는 했다.
지감은 오래간만에 병수를 만나면서 자신이 출가한 몸이라는 것을 얼마 동안 잊고 있었던 것이다. 옛날과 같은 번뇌가 되살아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어떤 홀가분한 안도감 같은 것, 그것은 지극히 세속적인 편안함 같은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조병수와의 교유도 오랜 세월이다. 어느 향반의 집에서 묏자리를 보기 위해 불러온 해도사를 우연찮게 만나 알게 되면서 지리산과 인연을 맺었고 이종사촌 이범준을 통하여 송관수를 알게 되었으며, 그런 일들이 복합이 되어 강쇠와 그들이 중심인 패거리들과 붕우유신이랄까, 그런 지경에까지 갔는데, 껄껄한 사내들, 조야하고 분노에 가득 찼으며 거친 언행 속에 정을 간직한 그들 속에서 지감은 자신의 본래적인 것과 부딪는 일도 더러 있었고 소외감은 느낄 때도 있었다. 서울은 태생인지라 지적으로 세련된 지우가 많았으며 그밖에도 여수의 최상길을 비롯하여 전라도 경상도에 걸쳐, 향반 지주들을 적잖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조병수와의 교분만큼 애틋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아마도 동질감에서 그랬던 것 같았다. 병수가 젊어진 육체적인 멍에와 자신이 짊어진 정신적 멍에, 여하튼 명문 출신인 그들의 정서적인 공통점, 학문의 세계, 예술관에서 공명하는 바가 많았고, 그러나 그런 모든 것보다 지감은 병수의 맑은 감성을 사랑했다. 조선 팔도를 누비고 다니는 자신이 주유가라면 병수는 한칸 얼방과 한칸 서재에서 망망한 세계를 주유한다고 지감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길은 다르지만 한때 저는 불상을 조성하고 싶었습니다."
병수의 말이었다. 길상이 도솔암에 와서 관음탱화를 그리고 있다는 화제에 이어진 말인 것 같았다.
"무슨 원을 거시려구요?"
"원을 건다구요? 그런 것 없었소. 그냥 마음으로요."
"그게 최상이지요. 지금이라도 해보시지요."
"너무 늦었습니다."
하는데 눈을 감고 있던 지감이 번적 눈을 떴다. 괴상야릇한 고함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병수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방을 나가는데 해도사가 뒤따랐다. 병수댁네가 나와서 마루에 서 있었다. 몸채 작은방 문을 열고 병수는 들어갔다. 해도사 역시 병수를 뒤따라 들어갔다. 병수는 해도사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았다. 조준구가 눈을 희뜨고 병수를 노려보았다. 큰 호박덩이 하나가 굴러 있는 것 같았다.
"이 죽일 놈! 천하에 불효막심한 놈!"
첫마디가 그것이었다. 병수는 잠자코 이불자락을 걷으며 아이같이 기저귀를 찬 조준구 아랫도리를 조심스럽게 다루면서 오물을 닦아내고 기저귀를 갈아 끼운다.
"네놈은 누구냐!"
뒤늦게 해도사를 발견한 조준구는 물어뜯을 듯 말했고 조병수는 깜짝 놀란다.
"예, 소생은 잡인올시다. 지리산에서도 잡인이었습지요."
태연하게 말했다.
"나, 나가시지요 해도사."
기저귀를 싸들고 병수가 황망하게 말했으나 해도사는
"조선생은 먼저 나가십시오. 적적하실 터인데 영감님 말벗이나 하다가 가겠으니 염려 마시고."
거의 강압적으로 병수를 떠밀어내었다. 그리고 방문을 닫은 해도사는 조준구 머리맡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방안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조준구가 입은 옥양목 고의적삼, 이부자리도 깨끗했으나 퀴퀴한 냄새만은 고약했다. 말벗이라는 말에 다소 솔깃해진 것 같았으나 그러나 조준구는 의식을 풀지 않고
"뭣하는 놈이야!"
눈을 부릅뜨고 이빨을 드러내어 짐승같이 으르렁거렸다.
"아까 말씀드렸습지요. 지리산에서 온 잡인올시다."
"잡인이라면!"
"예. 점도 치고 묏자리도 보아주고 때로는 병을 고치기도 하옵니다만 돌팔이지요. 어쩌다 연때가 맞으면 병자가 낫기도 하더구먼요."
적당히 주워 삼킨다.
"뭐? 묏자리 보아준다구? 그럼 내 묏자리를 보아주러 왔다, 그 말이냐!"
병을 고친다는 말은 마음속에 접어두고 조준구는 또다시 으르렁거렸다.
"아니옵니다. 세상 돌아가는 이런 판국에 보아드릴 묏자리도 없거니와 영감님께서는 장수하실 상호인지라, 아아주 근력이 좋아 보이십니다."
"…"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도 그러하오나 머리숱이 많은 것으로 보아 풍만 아니었더라면 젊은 놈들 뺨치게 기운이 좋았을 것을."
머리숱이 많은 것은 사실이나 화색이 돌기는커녕 조준구의 누리팅팅하고 부석부석 부은 얼굴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야 그랬지."
어세가 누그러졌고 풀이 다소 죽은 듯했다. 해도사의 말도 싫지가 않았지만 공손한 말투와는 달리 형형히 빛나는 해도사 눈빛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리고 병을 고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도 있었다.
"산에는 뭣하러 들어갔는고?"
"원래는 불로장수, 신선이나 되어볼까 해서 입산을 했습지요. 한데 중도에 마음을 잘못 먹은 탓으로 용이 승천을 못하고 이무기 꼴이 되고 말았습죠."
"마음을 잘못 먹다니?"
"비신 둔신 변신의 술법을 익혔고 앉아서 천리를 보는 안력도 길렀으며 불로장수의 약초도 식별하게금 되었는데 그것을 악용했습지요."
"어떻게?"
"도둑질을 했고 남의 계집을 탐내어 겁탈을 했고 그리하여 술법을 잃고 말았습니다."
"허허헛 허허헛헛."
목쉰 소리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조준구를 웃었다.
"사기꾼 같으니라구, 비신술 둔신술이 어디 있누, 도적놈 같으니라구, 뭐 천리 밖을 본다구? 천리 밖을 본다면 도적질한 것도 없지. 일본 해군에 가서 쌍안경보다 나은 그놈의 눈깔 가지고 활약을 하면 얼마든지 출세할 터인데 미친놈, 거짓말도 가이방해야 믿어주지."
"믿든 아니 믿든 그것은 영감님 마음이니 소생 뭐라 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려면, 왜놈에게 빌붙어서 출세를 하겠습니까? 조상들이 산발하고 통곡할 일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도둑질 계집질은 재미있군 그래. 하하핫 하하하하… 젊었을 한때, 나는 계집에 관심이 없었다. 재물 있으면 권력 생기고 권력 있으면 재물 생긴다, 그렇게만 생각을 했지. 허나 나라가 없어지고 보니 재물이 있어도 세도를 잡을 수 없더군. 명문세가의 자손으로 태어나서 그 울울한 심정을 뉘 알겠는가. 허나 멸문지화를 자초할 수는 없는 일, 이미 대세는 굳어졌고 오."
하다가 별안간 어세를 높였다.
"못난 것들! 바늘 가지고 대포 찌르는 격이었지. 세계의 열강으로 일본은 지금 중국 땅을 석권하고 있는데, 허허어 종놈이 애국지사가 되고, 백정 놈이 진보주의 지도자라, 세상이 돌기는 돌아야겠지만 그렇게 돌아서는 안 되는 법이야. 아주 고약하게 돌았어. 나도 일찍이 개화당 한 사람이지마는, 하기야 누대에 걸쳐 빛나던 권문의 자손이 이 편벽한 고장에서 소목장이로 영락을 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인고. 병신에다가 천하에 못난 놈이니 할 수 없다 생각은 하나, 독선생 앉혀서 그만큼 가르쳤고 학문도 깊었으니 다른 일도 할 수 있었으련만, 조상에게 부끄럽고 죄스러울 뿐일세."
해도사의 능청, 거짓부리도 예사 재주가 아니었지만 조준구의 연극은 신묘의 경지다.
"어버이의 마음을 어찌 저러히 못난 자식들이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허나 영감님 슬퍼하지 마십시오. 신양에 해롭습니다."
점입가경이다.
"그놈이 이 애비 아니었던들 어찌 세상에 살아남았을꼬? 함에도 병든 애비를 박대하며 애미 병 고칠 생각은 아니 하고 원하는 약도 구해오질 않으니 내 죽기를 바라는 거 아니고 뭐겠나. 인간지사 효행이 으뜸이라 했거든, 불효막심한 놈! 생전에 이러하니 사후, 시묘 삼 년을 행할 놈이든가?"
'시묘 삼 년이라, 허허어 망령기도 좀 있는 모양이고, 혀는 짧아도 침은 길게 뱉는 겐가?'
해도사는 웃음을 참고 경청한은 자세를 고수한다.
"그놈을 낳은 계집, 그러니까 내 정실인데, 그 계집은 탐욕이 천하제일이요, 표독스럽기가 살쾡이 저리 나앉으라, 나한테서 긁어간 재물만 하더라도 실로 막대한 것이었건만 그래도 탐심은 불길 같았으니, 서울서도 누구라 하면 알 만한 가문의 계집인데 천성에는 엄한 가풍도 아무 소용이 없는 모양이라. 천벌을 받아서 임종할 시에는 곁에 사람 하나 없이, 언제 죽었는지도 모르게 뒈졌는데 그 많은 재물이며 패물들이 뉘 손에 넘어갔는지, 그게 다 뉘 돈인데!"
하다 말고 조준구는 호박덩이 같은 머리를 치켜들려고 용을 쓰며 흥분한다. 그것이 다 최참판댁 재물이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찾지 못하셨습니까?"
"찾을 길이 없었네. 자식 놈이라도 성했으면 어미 재산을 그냥 떠내려 보냈겠느냐? 우리 집안이 망한 것은 병신 놈을 낳았기 때문일세. 여하튼 에미라는 년이, 지가 내질러놓고서 병신이라 하여 자식을 돌보지를 않고 죽기만을 바랐으니, 이 애비가 없었던들 그놈이 연명은커녕 배필이나 얻었을까? 가난한 선비 집구석에 땅마지기 떼어주고 데려왔는데 그게 지금의 자부일세. 은공 모르기론 연놈이 다 같아. 내가 애비 노릇 못한 게 뭐 있누?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만도 그나큼 은혜, 비록 병신으로 나타나기는 했으되."
"아암요. 그렇고말구요. 개똥밭에 궁굴러도 이승이 좋다 했으니 이승에 나타난 것만도 큰 복입지요. 해서 바리대기는 병든 부친을 위하여 서천 서역구에 약물을 구하러 갔고 엄동설한 병든 모친을 위해 죽순을 캐온 효자도 있었구요."
해도사 말에 조준구 눈이 빛났다.
"개동밭에 궁굴러도 이승이 좋다? 그럼, 그건 맞는 말일세. 이승이 좋으니까 모두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게야. 허나 내가 이 누옥에 병든 몸으로 누워 있으니 실로 만감이 오락가락하네그려. 옛날이 좋았지. 만일에 내가 옛날로 돌아간다면 결코 놓치질 않아. 놓치질 않지."
"뭘 말씀입니까?"
"잃은 것, 잃어버린 그 모든 것, 어찌다가 그것을 다 잃었는지 자다가도 분하고 꿈속에서도 분하고?"
"예… 그게 무엇인지요."
"혁혁한 가문은 어디로 갔을꼬? 만석꾼 살림은 다 어디로 갔으며 서울의, 시골의 고래등 같은 기와집에는 씨종, 하인배가 입안의 혀같이 돌아주었건만 그것들은 다 어디로 갔으며 내 곁에 있던 처첩들은 또 어디로 가고 시중들 사람 하나 없는 고적한 처지가 되었는지 허허어 참, 이럴 수가 있나. 이럴 수는 없지."
"고정하십시오. 한탄하시면 신양에 좋을 것 없습지요."
"잊어야지. 재물이고 계집들, 자식 놈, 모두가 다 배은망덕일세."
"인사가 아니라 세월이지요. 세월이 사람을 배반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세월, 하기는 그렇구먼, 세월이 늙게 하고 죽게 하니…"
"밤이 깊은데 주무셔야지요."
"아, 아닐세. 낮에, 온종일 잠만 잤네."
조준구는 황급하게 팔을 내저었다. 그러고는 해도사를 잡아두기 위해서 얘기를 잇는다.
"젊었을 시절 나는 정실 하나를 두어서 자식 보고 가문의 모양만 갖추면 된다는 생각이었다네. 그때 나는 개화당이었고 개화사상에 깊이 빠져서 구습을 타파하고 일본과 서양의 문물을 들여와야 한다, 해서 서양 풍속에는 없는 첩실을 둘 생각을 아니 했던 게야."
'식객이 무슨 놈의 첩실.'
해도사는 조준구의 양미간을 내려다며 참으로 인간이란 기기묘묘하다는 생각을 한다.
"남 먼저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었으며 일본말 일본글을 배우고,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는 정말 내가 소쇄한 청년 신사였네. 꿈도 컸고, 그러나 차츰 계집을 탐하게 되었고 이 세상 어느 낙에도 비할 수 없는 그것들에게 빠져들기 시작한 게야. 장안의 명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전문학교를 나온 신여성에서 통지기에 이르기까지, 어린 것 늙은 것 할 것 없이 두루 섭렵했는데, 좋은 시절이었지. 재물은 썩을 만큼 남아돌고 할 일은 없어. 계집에게 쓰는 돈이야 새 발의 피, 결국 미두를 하고 광산을 하고 사는 바람에 살림을 고스란히 날렸지만 좋은 시절이었다. 삼삼하게 떠오르는 계집들의 그 자태, 원 없이 놀았지. 헌데 이 사람아."
"예 영감님."
"우리가 수을찮이 얘기를 했네만 자네 성명 삼자도 모르니, 성씨가 어찌 되는고?"
"성씨랄 것도 없고 남들이 해도사라 부르지요. 수십 년을 그러다 보니 성명 삼자는 잊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해도사라? 그렇게 부르는 연유가 무엇인고?"
"처음 입산하여 도를 닦을 적에 해를 향해서 며칠 몇날이고 기도하는 꼴을 보고서 붙여진 이름인가 봅니다."
"어인 까닭으로 해를 보며 기도를 했는가?"
"불로장수는 하자면 생명의 원천부터 알야야겠기에, 해는 천지만 물의 힘이 아니옵니까? 힘이야말로 모든 생명을 부지하게 하는 것인즉."
"자네 말이 맞네. 여부가 있나. 힘이야말로 생명이지. 힘이 없이 움직여지는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느니, 으흠, 그러고 보니 자네 학식이 제법 도저한 듯하이. 의관의 집안이냐?"
학식이 도저하다든가, 의관의 집안이라든가 그런 것은 생각해보지도 않았는데 슬쩍 추켜세우는 조준구의 말씨는 기름을 친 듯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아니올시다. 부친은 장사꾼이었고 선대는 아전살이를 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중인이군 그래."
"예. 돈푼이나 있는 덕택에 독선생 앉혀서, 예, 글을 배우기는 했습니다."
"독선생을 앉혔다구?"
독선생이라는 말이 심히 비위에 거슬린 듯, 그러나 이내 기색을 감추어버린다.
"그럼 그렇지. 처음부터 예삿사람으론 보지 않았네. 먹물 먹은 사람은 어디가 달라도 다른 게야."
"과찬의 말씀을, 먹물을 먹었다기보다 선비도 아닌 주제에 글줄깨나 읽다 보니 온갖 잡설에 사로잡혀서 중도 속도 아닌 꼴이 되고 말았습지요."
"아닐세. 학문하는 데 신분의 고하를 논하든 것은 다 지나간 시절의 얘기고 양반을 소반으로 부르는 세상의 추세, 개의할 것 없네. 그보다 아까 불로장수의 약초를 식별한다 했든가?"
드디어 꼬기꼬기 접어서 넣어둔 말을 조준구는 꺼내었다.
"예, 하오나."
"뭐 불로장수의 약초를 구해달라, 그럴 만큼 내가 어리석은 사람은 아닐세. 불로장수의 약초를 식별한다면 풍을 낫게 하는 약초인들 모를까. 부탁 좀 하세나."
해도사는 씁쓰레 웃는다.
"나, 이 풍 좀 바로잡아주게. 이제는 아무 소망도 없는 몸, 자식 놈은 내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불우한 처질세. 다만 한번 걸어보고 싶어이."
"…"
"저 배가 나고 드는 항구에 나가보고 싶고 한산섬에라도 한번 가 보았으면 여한이 없겠네."
처량하게 애원한다.
"그것은 아니 될 일인 듯싶습니다."
"아니 될 일이라니!"
순간적으로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일본하고 제승당은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데 가셔서 무슨 횡액을 당하시려고 그러십니까."
농담인 듯 진담인 듯, 해도사는 웃을 듯 말 듯, 조준구는 안도와 함께 연꽃이라도 매만지듯 조심스럽고 그윽한 음성으로
"그래서 안 될 일이라 했구먼. 에키 이 사람아."
"영감님 이곳이 어딥니까."
"통영이지 어디겠나."
"날이 새면 마주보이는 곳에 충렬사 사당이 있습지요. 영감님은 이곳에 좌정해 계시고, 일본을 높이 반드시는 영감님이고 보면 상극이 마주한 셈인데 그러고도 동티가 안 난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해도사의 심술도 어지간하다. 조준구는 꾸역꾸역 치미는 것을 꿀꺽꿀꺽 삼키면서.
"허허어, 자네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이구먼. 개화당과 친일파를 혼돈해서는 아니 되네. 내가 나라를 위하여 진작부터 개화를 주장하기는 했으되 친일은 아나 했느니라. 합방에 찬동한 바 없고, 그네들에게 협력한 일도 없었네. 하기야 뭐 일본말 일본글에 능통하고 집안을 보나, 또 요로에 지면이 많아서 내가 원하기만 했다면 도백쯤은 했을지 모르지. 허나 사기꾼 왜놈한테 폐광을 사서 그로 인하여 일어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설마한들 내가 친일 파겠느냐? 다만 세계 대세가 그렇다는 얘기, 칼자루를 일본이 잡고 있는 것은 엄연한 현실이고 보면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지."
"예."
"정 자네 말대로 그러하다면 한산도에 아니 가면 될 일이요, 굳이 가야 할 이유도 없으니, 충렬사의 경우는, 글쎄 그걸 어쩐다?"
마음속으로는 미친놈! 콧방귀를 뀌면서 겉으론 고분고분하게 나온다. 간교한 지혜가 일품이지만 이상한 것은 치매 현상도 두드러져 뵈는 일이다. 간교한 지혜에는 늘 이같이 치매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옛사람들은 그런 경우를 두고 약은 쥐가 밤눈 어둡다 했는가.
"어떤가? 풍에 좋은 약초를 구해다 주겠느냐?"
"글쎄올시다. 사심을 품은 후로는 도술을 다 잃었으니 약초가 눈에 뵐지."
"병도 고쳐주었다 하지 않았느냐? 내 병만 고쳐주면은 상아가 붙은 개화장을 자네에게 줌세. 아주 고가품이네. 뿐인가? 아들놈한테 내 엄명을 내릴 걸세. 집을 파는 한이 있어도, 약초 값을 흡족하게 치르라 하겠네."
"병을 고친 것은 연때가 맞아서 그랬던 거고, 그게 어디 쉬운 일이겠습니까."
"나하고 연때를 맞추면 되는 게야."
"인력으로는 아니 되지요. 신령의 힘을 빌지 않고는."
"허허어, 해보지도 않고서?"
"명심은 하고 있겠습니다만."
"그래, 그래, 아암 그래야지."
조준구 얼굴에 희색이 돈다.
난데없이 나타난 해도사다. 조준구의 감각에도 산내음이 풍겨오는 사내, 불편하기 짝이 없지만 형형히 빛나는 눈동자, 조준구는 믿는다. 해도사가 기적을 이루어 자기 병을 낫게 할 것이라는 예감을 믿는 것이다. 자기와 무관한 일이거나 불리할 경우에는 귀신이건 영신이건 미신으로 간단하게 단정해버리지만 자기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에는 미신이 아닌 것이다. 악과 탐욕의 속성인 것이다. 하여 치매 현상으로 나타나지만 완전하다고 믿는 것이 또한 그들의 속성인 것이다.
"영감님."
"어째 그러나."
"영감님께서는 저승이 있다고 믿으시는지요."
조준구는 희망을 쬐듯 해도사는 질문을 던졌다.
"그게 무슨 소린고?"
해도사의 속셈을 몰라 일부러 내숭을 떤다.
"저승이 있다고 믿으시는지, 물었습니다."
"그건 또 왜 묻는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나보다 자네가 더 잘 알 게 아니냐? 산에서 도를 닦았고."
"죽은 뒤엔 어찌 되겠습니까? 소생은 늘 그게 걱정입니다."
"죽은 뒤 일을 뉘 알겠나. 죽으면 흙이 되는 거지 뭐."
"흙이 되는 것은 소생도 아는 일입니다만 흙이 되는 것은 형체가 있는 것이라야지요."
"사람이 형체지 뭐겠나."
"형체 없는 것이 있습지요."
"그게 뭔데?"
"마음입니다."
"…"
"그것은 형제가 없으니 흙이 될 수도 없고 썩지도 않을 것이니."
"쓸데없는 소리."
"저승길 갈 때, 아, 아니 영혼이 떠돌 대 영감님을 만나게 되면 무슨 말을 할까 하고 생각해보았습니다. 영을 넘고 내를 건너면서 이승 얘길 하는 광경을 상상해보기도 하구요."
해도사의 목소리를 젖은 듯, 부드러웠다.
"별놈의 생각을 다 하는군."
했을 뿐 조준구는 전혀 무반응이었고 자신으로선 이미 할 말을 다 했다는 그런 얼굴이었다.
'혹을 떼러 왔다가 혹을 붙이고 가는 꼴이군. 겁을 좀 주어서 집안이 조용하게끔, 하기는 기대한 것도 아니지만, 내가 가고 나면 송장 썩은 물 대신 날 잡아오라고 성화겠지. 그거야 뭐 몸에 해롭잖은 풀이나 풀뿌리면 당분간은 괜찮을 게고.'
해도사는 휘한테서 들은 말을 떠올렸다. 똥벼락을 맞은 조병수가 대성통곡을 했다는 얘기, 가엾고 측은하며 사람이 어찌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떠날 길을 왜 생각지 않는가 하며 통곡을 했다는 얘기, 해도사는 병수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심정이 바로 지금 그와 같았다. 측은하고 가엾고, 미워할 수가 없었다. 정말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던 것이다. 구제받지 못하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하늘 아래 홀로 서 있는 자에 대한 슬픔이었다. 삭을 대로 삭아버린 육체를 안고 버둥거리는 한 생명에 대한 슬픔이었다.
"어르신."
해도사는 영감님이라 하지 않고 어르신이라 했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저승 얘기라면 관두게. 나는 믿지도 않고 흥미도 없네. 바로 눈앞의 일로 내 마음은 가득하이. 아무조록 약초를 구해다주게."
"예, 염려 마십시오."
"오늘 밤은 편한 잠을 잘 것 같네. 밤도 길고 해도 길더니, 그러고 밤에 들려오는 뱃고동 소리가 신경에 걸려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부탁하네. 참 자네는 부친이 생존해 계신가?"
"세상 떠났습니다."
"그래? 하긴 자네 나이 있으니 그랬을 게야."
"그러면 밤도 깊었고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밖으로 나온 해도사는 별이 총총한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숨을 내쉬었다. 해도사는 조준구 방에서 밤이 깊었고 지감과 병수는 또 얘기에 밤 저무는 줄 몰랐다가, 세 사람은 아주 늦게 자리에 들었다. 지감만 일찍 일어났을 뿐 병수와 해도사는 늦잠을 잤다. 병수댁네가 아침 장에 가서 신선한 참거리를 사다가 정성껏 차린 조반상을 물렸을 때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지감이 떠날 채비를 차리고 있었는데 몽치가 찾아왔다. 물론 초행의 집은 아니었다. 휘로 인하여 몇 번인가 와본 집이며 붙임성이 없고 무뚝뚝하며 못생긴 몽치를 병수댁네는 어떤 점을 좋게 보았는지 아들처럼 대해주었다. 언젠가 한번 몽치는 장작을 패준 일이 있었다.
"몽치총각, 밥은 어떻게 했나."
병수댁네가 부엌에서 나오다 말고 웃으며 물었다.
"아침 묵은 지가 언젠데 묻십니까."
"좀 이르지만 점심 먹겠나?"
"아입니다. 양가에서 다 아침을 먹었더니 너무 많이 묵었는가배요."
"몽치총각도 밥 마다할 때가 있는가 부지?"
"너무 그러지 마이소. 몸통이 커다보이, 하지마는 식충이는 아입니다. 산에서 오신 선생님 기십니까?"
"그 방에서는 방금 조반상이 나왔네."
"야아."
어슬렁거리듯 방 앞에까지 간 몽치는
"성생님 지 왔습니다."
하고 말했다. 해도사가 방문을 열었다. 몽치는 쪽마루가 휠 만큼 무거운 체중을 실었다가 방으로 들어간다.
"선생님 절 받으이소."
지감에게 넙죽 절을 했다. 옛날부터 몽치는 넙죽넙죽 절 하나는 잘했다.
"제법 사람 구실하는구나. 조금만 늦었으면 스님을 못 볼 뻔했지. 흠, 지딴에는 지감한테 인사하고 가려 했던 모양인데."
그러나 몽치는 병수에게는 절을 하지 않고 쳐다보며 친근하게 웃었다.
"그래 배타기, 할 만하냐?"
지감이 물었다.
"예. 이 덩치 해가지고 멀 못하겠습니까."
"하기는 그렇구나."
지감은 거칠 대로 거칠어진 몽치 얼굴을 바라본다. 해도사나 지감은 다같이 몽치의 양아버지인 동시 스승이다.
서로 무심상한 것 같았지만 숨은 정이 있었다.
"배에서 주는 밥은 양에 차고?"
"안 그러면 일을 우찌 하겠습니까. 걱정 마이소."
"바다에서는 싸돌아다닐 데가 없어 어쩌누."
"마, 그거사 속이 확 트이는 게 바다니께 안 싸돌아댕기도 갑갑할 것 없십니다. 선생님 오늘 떠나십니까."
"그래."
"몽치야."
해도사가 불렀다.
"야."
"몇 번을 말해야 알겠나."
"머 말입니까."
"선생님이라 하지 말고 스님이라 하지 않았더냐. 이놈의 까마귀 고길 먹은 화상아."
"잊임이 헐해서 그런 거를 우짭니까. 지한테는 선생님이지 중이 아닙니다."
"저놈의 버르장머릴 보았나! 중이라니?"
"그래도 지가 타는 배 선장하고 선주는 지를 보고 잘 배웠다 하든데요?"
"알 만하다. 그자들이 오죽 못 배웠으면 너 같은 놈 보고 그러겠나."
"하기사 머, 한문은 선주어른이 지보다 못한 모앵이더마요. 자네 글씨를 보니 뱃놈 되기 아깝다, 서기질도 실컨 하겠는데 하시고 시장은 뱃놈 때리치우고 대섯방 하나 차리라 하더마요."
"뭐? 서기질? 대섯방을 차려? 으하하핫 핫핫… 그 꼴 생각한 해도 절로 웃음이 난다."
"웃지 마시이소. 산에서는 늘 불학무식하다 하심서 대가리를 쥐어 박는 바람에 정말 그런 줄 알았더마는 도방으로 내리오니께 온통 모두가 불학무식하더마요."
"몽치야."
지감이 불렀다.
"추석에는 절에 다녀가도록 해라. 공양주할머니가 추석에 오면 너 주겠다고 옷 한 벌 지어놨다."
"머할라꼬요. 할매가 눈 짜부리감서 머할라꼬, 옷이 있어도 입을 짬도 없십니다. 그러나 누부가 한 벌 해주든데."
"그래 어젯밤에는 어디서 잤나."
해도사가 물었다.
"형님 집에서 잤십니다."
"저, 저놈 보게. 저 고집불통의 대가리를 도끼를 패든지 해야지. 어젯밤에 누누이 타일렀건만."
"가기는 갔십니다. 양가에서 다 아침밥을 묵었인께요."
해도사와 지감은 할 수 없이 웃는다. 병수도 웃었다.
"네놈 팔자가 상팔자로구나. 한 집에서도 밥 얻어먹기 어려운 세상인데, 허 참 저놈의 짚섬 같은 배를 채울 곳이 두 곳이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고."
"원래부터 식복은 타고났다 하시고서."
"누가?"
"선생님이 말심해놓고 그럽니까."
주점에서 놀던 품과는 사뭇 딴판이다. 바다의 사나이답게 거칠었고 힘깨나 쓰는 처지라 제법 의젓했고, 나를 대적할 놈 그 누구냐하며 자신감에 넘쳐 있던 몽치가 아니었다. 이 동네에 들어서면서부터 떼쓰는 아이 같은 꼴을 나타내더니만 이제 해도사와 지감 앞에서는 덩치 큰 아이, 숫제 어리광이 줄줄 흐르는 모습으로 변해 있었던 것이다.
"몽치야."
"야."
무슨 생각을 했는지 지감은 다소 익살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게 그러니까 십 년도 더 된 일이구먼. 까투리를 잡아서 볶아먹은 생각, 나느냐?"
"나구만요."
지감은 웃는 얼굴을 해도사와 병수에게로 옮기며
"그때, 산막하고 몽치 놈을 내게 떠넘기고서 해도사가 떠나든 날이었소. 온종일 아이가 보이지 않아 걱정이 됐는데, 그놈 짐승 밥 될 놈 아니오. 기가 보통으로 세야지, 떠나면서 하든 해도사 말도 있었고 혹 해도사를 뒤따라갔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해질 무렵 나타나질 않았겠소? 씩씩거리며 까투리 한 마리를, 그것도 목을 꽉 눌러 잡고 있더란 말이오. 어디서 잡았느냐, 놀라서 물었더니 저어기서요, 하고는 뒤꼍으로 휭하니 가버리더군. 저녁 밥상에는 꿩고기가 한줌 가량, 하기는 다 먹지 않고 한줌이나마 밥상에 올려놓은 것은 기특한 일이었지. 저놈의 먹새를 내가 알거든. 허허헛 허허허헛… 식복을 타고났다, 그럴는지도 모르지. 남이 한술 뜰 때 열 술이 들어가야 하는 저놈의 소 배애지, 그것도 식복이라면 그렇다 할 수 있겠군. 하하핫하…"
"술상에 손이 쑥 나타나서는 어포를 집어가든 생각은 안 나시오? 손을 탁 치면 한참 있다 또 수욱 나타나서 어포를 거둬가고, 한번은 어디 갔다오니까 숨겨둔 술을 얼마나 퍼마셨는지 하루낮 하룻밤을 꼼짝 않고, 죽었나 싶어 귀를 잡아댕겨보기도 하구… 저놈이 저만큼이나 된 걸 보면 신기하지. 홀로 산중에 뚝 떨어져서, 우리야 뭐 식자 나부랭이나 가르친 것뿐이고 산이 길러준 셈이오. 산의 품에 안겨서 자랐다 할 수도 있고, 사시사철 싸돌아다니면서 안 처먹는 게 없었으니,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열매며 풀이며 나무뿌리까지 산의 기운까지 몽땅 마시고서 몸뚱이가 저 지경 됐을 게요. 참으로 조화가 신기하지 않소? 도시 사는 의지를 누가 점지하였을꼬?"
해도사는 어떤 감동을 나타내었다.
"생명 있는 천지감의 만물이 다 그러하나 그 이치를 뉘 알겠소."
소지감이 대꾸했다. 말을 하려고 입을 주뼛거리고 있던 몽치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삼대 구년 묵은 얘기는 와 자꾸 합니까. 그보다 이자는 이놈 저놈 하지 마이소. 덩치를 보나 심쓰는 거를 보아 놈자 들을 시절은 벌써 지나갔는데 언제꺼지 그럴랍니까."
"오냐, 네놈이 장가만 간다면 여부가 있나, 놈자 빼고 재수야 하고 불러주마. 그리고 자형도 이보게 박서방, 할 터이니 염려 말아라."
해도사 말에 모두 크게 소리 내어 웃는다. 몽치야, 몽치 하다가 박서방이라니까 세 사람은 물론 몽치 자신이 킬킬대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슬슬 떠나볼까?"
지감은 바랑을 짊어졌다. 병수 내외와 작별을 하고 몽치와 함께 집을 나선 지감은 새터로 나가는 길을 잡아 내려갔고 몽치는 누이 집으로 향했다. 갈 때는 꼭 집에 들렀다 가라는 숙이의 신신당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부린 게 아닐까 하고 속을 태우고 있었다."
삽짝 밖에 나와서 팔짱을 끼고 기다리고 있던 숙이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 집안으로 들어와서 마루에 걸터앉은 몽치는
"아아는 어디 갔나? 집안이 쥐죽은 듯 조용하구마."
"떼를 쓰다가 방금 잠들었다. 누굴 닮았는지 한분 떼를 쓰기 시작하믄 학을 떼겠다 카이."
"아들 하나라꼬 오냐오냐 한께 그렇겄지요."
"둘이나 실패를 하고 보이, 그란할라 캐도 자연히 위하게 된다."
숙이는 몽치와 나란히 마루에 걸터앉는다. 어디선지 수탉이 한낮 울음을 한가하게 잡히고, 그러고는 사방은 다시 조용해졌다. 오누이가 느긋하게 한자리에 앉아서 얘기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니었다. 숙이 얼굴은 밝았고 충족된 듯 보였다. 평사리의 한복이가 아들 내외를 위해 큰 맘 먹고 장만해준 집은, 규가 잡힌 조병수 집에 비할 것은 못 되지만 휘의 집보다는 훨씬 나았다. 우선 칸수가 넓었고 집의 뼈대가 성했으며 시원해 뵈는 대청이 있었다. 대청은 반들반들 윤이 났다. 장독대의 크고 작은 항아리도 햇빛을 바당 반들거렸으며 마당은 깨끗하게 비질이 돼 있었다. 정갈한 숙의 살림 솜씨가 일목요연했다.
"마음에 맞잖은 사람이지만 매부가 있어야지, 없을 때는 이 집에 오기가 싫더마."
손을 깍지 끼고 허리를 구부려 땅바닥을 내려다보며 몽치는 혼잣말같이 중얼거렸다.
"와?"
"내가 머 얻어묵으로 오는 것도 아닌데 마치 매부 눈 피해감서 드나드는 거 겉애서, 도독괭이겉이 그러기는 싫다 그 말이요."
"니가 그런 생각을 하니 매부도 설풋하게 대하는 거 아니겄나. 임의러운 것이 형제지간인데 제발 그러지 마라. 누부집에 동생이 오는데 누가 머라 칼 기고."
"잘 사는 처가집, 덕본다고 창자가 꼬인 놈도 그렇지마는 보잘것 없는 처가라고 하시하는 놈도 곤장한 새끼들이제. 지가 잘난 사내라믄 그런 생각 안 하거마는."
그간에 쌓였던 울분을 한꺼번에 토하듯 몽치는 말했다.
"요새는 사람이 달라졌네라."
"달라졌이믄 얼매나 달라졌겄소. 개꼬리 삼년, 흰털이 검정털 되겄소?"
"아니다. 이자는 니 걱정도 하고 잘못했다는 생각도 하는 모앵이더라."
"내 걱정은 할 것 없고 누부나 하시하지 않았이믄 좋겄소."
"그거는 니가 모르이 하는 말이다. 날 무식하다고 입으로는 그러지마는 내가 정색을 하고 따지믄 꼼짝 못한다. 선아엄마한테 물어봐라.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안 하는지."
"평사리 사장어른 반몫만 돼도 내가 안 이럴 기요. 배웠이믄 얼마나 배웠다고 배운 사람이 그러요? 그 따우 핵교공보 하낫도 안 부럽거마는. 나도 불학무식은 아닌께."
"태성이 그런 거를 우짜노. 부모도 못 고치는 거를 니가 고칠라나? 사람이란 천층만층, 어디 다 같더나? 니가 넓기 생각하고 매부를 감싸주믄 안 되겄나? 자꾸 이래싸으믄 양새 낀 나무맨크로 내가 못 젼딘다."
울먹인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성질을 죽이며 몽치는 물었다.
"머할라고 들맀다 가라 했소."
"옷 갈아입고 가라고, 옷 한 벌 해왔다 안 카드나."
실은 그게 아니었다. 숙이는 어떻게 하든 몽치를 설득하여 평사리에서 주선하는 혼사를 성사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몽치가 치고나오는 바람에 말 꺼내기가 어려워졌다.
"저기, 아까 선아엄마 말로는 니가 선생 보고 장개 안 간다 했다믄?"
"야."
"어째 그러노."
"…"
"평사리의 아부니가 혼처를 봐놨다고 하시더라는데 아부이 성의를 생각해서라도 그러믄 쓰나. 나도 인병이 든다. 니가 이러고 댕기니께."
"오죽하믄 나 겉은 놈한테 시집 올라 카겄소."
"니가 우때서? 남자 인물 묵고 사나?"
"사람이야 안 봤인께, 형편이 그렇다 그 말이요. 하야간에 장개갈 생각 없소. 천천이 갈라요."
타일러보아야 소용없는 것을 숙이는 깨닫는다.
"하기사 머 선생도 손을 들었다 하는데 내가 무신 수로… 옷이나 갈아입어라."
"…"
"출입옷도 아니고 보통 때 입으라고 광목을 바래서 해놨다. 그냥 빠대리서 입으믄 된다."
자신의 마음을 달래듯 숙이는 큰방으로 들어가서 보자기에 싼 것을 내보인다.
"방에 와서 갈아입어라."
그러나 몽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다시 몽치 옆으로 온 숙이는
"니 매부가 해주라고 권해서 한 옷이니 딴생각 마라. 나도 니 매부한테 숨기가믄서까지 이런 짓 할 성질 아니다."
"자게 체면 깎일까 봐서 그랬겄지요. 호욕 길에서라도 만내믄 서기나으리, 입장이 난감해질 기니."
"몽치야!"
"…"
"니도 그렇다. 매부 체면 좀 세워주믄 안 되겄나? 그라믄 어디가 덧나기라도 하겄나?"
노기띤 눈초리로 숙이는 몽치를 쳐다본다. 한동안 우두커니 앉아있던 몽치가 일어섰다. 부스스 방안으로 들어간 그는 한동안 부시럭거리더니 옷을 갈아입고 나왔다. 양말을 신고 대님을 치고 조끼까지 입은 몽치, 얼굴이야 못생긴 그대로지만 사람이 달라져 뵈는 것은 틀림이 없다.
"옷이 날개라더니 그렇기 입으이 얼매나 좋노."
숙이는 우람한 몽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린다. 목이 메었던 것이다.
'불쌍한 내 동생, 어매 아배 없이 절로 커서 이만큼이나 되었구나.'
자신이 돌보아주지 못했던 세월도 서러웠고 원망스러웠다. 그것은 영호에 대한 원망이기도 했다.
"매부가 권해서 맨든 옷을 입으니 내일은 해가 서쪽에서 뜨겄소."
쑥스러워서 한 몽치 말이었다.
"인자 그만해라. 실이 노이 되겄다. 니 매부도 본심은 그리 나쁜 사람 아니다.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가심에 맺힌 한이 있다. 꼬장꼬장한 성미라 답대비, 하기는 우리 시아부니겉이 되기가 어디 쉬운 일가. 저저히 말을 못해서 그렇지 김씨집 식구들은 모두가 다 피멍이 든 사람들이다. 몽치야 부탁 좀 하자. 매부 맘이 달라졌어이 니도 풀어라. 뭐니 해도 남보담이야 안 낫겄나. 나를 생각해서라도, 우리 형제가 갈라져서 생사조차 모리고 눈물로 세월을 보냈는데 우리가 못 참을 일이 머 있겠노. 이리 만낸 것만 해도 얼매나 고맙노."
"…"
"아이구 내 정신 좀 보래. 깜박 잊고 니를 그냥 보낼 뻔했다."
숙이는 급히 부엌으로 달려간다. 삼베 수건에 싼 것을 가지고 그는 이내 나왔다.
"이거 가지가거라."
"머요?"
"찰밥이다."
"머할라꼬, 그만두소."
"아무 말 말고 가지가거라."
"내 한입도 아니고 어디다 찍어붙일라꼬."
"와, 그래도 서너 명은 실컷 갈라묵을 기다. 어이구 불쌍한 내 동생."
"하 참, 맥지 그래쌓네."
숙이는 헌옷과 찰밥을 싼 삼베 보자기를 함께 싸면서.
"니만 끈을 붙여주믄 나는 더 바랄 기이 없다. 평사리에서는 철마다 양식을 보내주시고 니 매부 얼굴 타고 살기가 괜찮으니 무신 걱정이 있겠노."
혼담을 매듭 짓지 못하여 아쉬움은 남았겠지만 몽치에게 옷을 해 입힌 것을 몹시 흡족해한다.
"시어무니가 길쌈한 베를 세 필이나 보내주싰다. 솜옷도 한불 맨들어줄께."
"별걱정을 다 하네."
집을 나선 몽치는 지감이 간 방향과는 반대편 비탈길을 내려간다. 내려갈수록 큰 함석집 기와집이 눈에 띄고 담쟁이가 무성한 양옥집도 나타났다. 그는 간창골 입구를 향해 가는 것이다. 몽치 역시 누이가 해준 옷을 입고 걷는 기분이 좋았다. 영호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다소 엷어지는 듯했다. 가슴에 품었던 말을 쏟아놓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했다.
'나는 어장애비가 될 기다. 돈 벌어서 기와집도 사고, 우리 누부도 기 피고 살아야지.'
간창골 입구에는 휘의 목공소가 있다. 목공소 옆의 좁은 골목에서 대패질을 하고 있던 목공 최병태가
"어, 몽치형 새신랑 같네. 무신 바람이 불었소."
"새옷만 입으믄 새신랑가."
대꾸하면서 몽치는 목공소 안으로 들어가는데 휘는 먹통에서 먹실을 뽑아 널빤지에 금을 놓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쌓아놓은 편자 위에 어떤 여자가 걸터앉아서 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몽치가 들어서자 얼굴을 돌렸다. 순간 눈이 부딪쳤다. 화장을 곱게 하고 검자줏빛 감댕기를 감은 족에는 비취 빛깔의 사기 비녀와 역시 비취 빛깔의 나비잠, 말뚝잠이 꽂혀 있었는데 간드러지게 찌른 쪽은 날아갈 듯 예뻤다. 연분홍 물항라 저고리에 생고사 옥색치마를 입고 흰 고무신에 담은 흰 버선발이 역시 예뻤다. 요염한 맵시로 보아 여염집 여자 같지는 않았다. 기생인 것 같았다.
"형님."
몽치 어세가 온당치 않았다. 휘는 쳐다보지도 않고 일을 하면서
"이제 가는 기가."
했다.
"야 갑니다. 그런데 형님은 세월 좋네요."
여자는 양미간을 찌푸렸다.
"무신 말고."
역시 쳐다보지 않고 일을 하며 말했다.
"이 각시는 누요?"
비로소 휘는 일손을 놓고 몽치를 쳐다본다. 눈에 노기를 띠고 있었다.
"와 그건 묻소?"
여자의 불쾌해하는 목소리였다.
"그러시, 젊디젊은 각시가 일하는 남정네 앞에서 턱 받치고 앉아있이니 물었소."
거침없이 그야말로 방약무인이다.
"턱 받치고 앉아 있다니!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고?"
여자는 빨딱 일어섰다. 입술이 떨고 있었다.
"몽치야!"
"와요?"
"손님한테 그 무신 행패고!"
꾸짖은 뒤 휘는 여자에게
"미안합니다. 저놈 머리통이 좀 비어서 양해하시이소."
"형니임! 머리통이 비다니요? 이거 참 생사람 잡네."
"시끄럽다! 안다니 나홀장 간다 카더니마는, 빌어먹을 자식!"
"개 모래 먹듯이, 아무나 보고 턱아리 놀리는, 나쁜 놈!"
여자의 얼굴은 새파랬다. 부릅뜬 눈으로 몽치를 노려본다.
"내가 참아야지. 미친 개한테 물린 셈치고."
치맛자락을 홱 걷으며 바람같이 여자는 나가버린다. 이때 대패질을 끝낸 병태가 널빤지를 들고 들어왔다.
"화심이가 눈물을 닦으며 가든데 무신 일 있었십니까?"
병태가 휘에게 물었다.
"이 빌어묵을 놈 때문이다."
했으나, 휘는 아까처럼 심하게 화를 내는 것 같지는 않았다.
"머를 어쨌기에요?"
그 말대꾸는 없이
"몽치야!"
"와요."
태연하다
"니 우리 일 훼방 놓을라고 마음묵고 온 기가? 응? 경우가 없어도 유분수지."
"훼방을 놓다니요? 머를 훼방 놨다 말이요."
시치미를 뗀다.
"잘 들어라. 이 멍충아. 장롱은 누가 쓰노? 늙든 젊든 여인네가 쓰는 거 아니가."
"그렇지요."
"그러니 손님은 늙든 젊든 여자다 여자 손님이 와 있는 기이 머가 이상하노? 아까 그 여자만 하더라도 동생 장개 보내겠다면 농 맞추로 온 사람인데 니가 지랄하는 바람에 쫓겨 갔다. 대관절 와 그랬노?"
"행토를 보아하니, 여염집 여자가 아니라서 그랬소. 남자 간 뽑아먹게 생겼더마요."
"니놈 간 봅아묵을라 카더나."
"우리 형수 속 터질까 봐서요."
휘는 껄껄걸 소리 내어 웃는다.
"흥, 부지런히 걷어믹이더마는 공력이 어디 안 갔구나."
휘는 담배를 꺼내어 붙여 문다.
"그나저나 큰일이네."
담배연기를 뿜으며 휘는 다소 풀이 죽은 듯한 몽치에게 곁눈질 한다.
"일감 놓쳐서 그러요?"
"일감도 일감이지만 그보다 그 여자가 노류장화이긴 하나 지금은 누구라 하믄 알 만한 사람의 소실인데 마누라가 그것도 총각 놈한테 수모를 당했으니 가만 있겄나? 니 다리가 성할지 걱정이다."
병태가 낄낄 웃으며 말했다.
"몽치형, 걱정 마이소. 그런 일은 없일 기요."
"무슨 말고?"
"화심이가 영감쟁이한테 그런 말 못할 기니께요. 형님한테 반해서 이 핑계 저 핑계 찾아오는데 영감쟁이 보고 말할 입장이 못 된다 그 뜻이요."
"쓸데없는 소리, 이놈아 니 함부로 입 놀리다가 뒷감당을 우짤라고 그라노. 머리빡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정색을 하고 꾸짖는다. 기가 살아난 몽치는
"하 참, 내가 꼭 짚었네. 내 눈은 못 속이다 카이."
기세 좋게 말했다.
"들어서는데 벌써 여자 눈빛이 다르더마. 만일에 사불여의 할 적에는 그놈의 계집 온전치 못할 긴데 형님도 조심하소."
사뭇 협박조다.
"사불여의? 문자를 쓸라거든 좀 제대로 써라."
"틀린 거는 머 있소. 비슷하믄 됐지 머."
휘는 담배를 눌러 끄고 하던 일을 시작한다. 사실 휘의 처지는 좀 난처했다. 화심은 아름답다 생각한 일은 있었으나 결코 마음이 동한 것은 아니었다. 화심이 탄식을 하고 추파를 보내고 했지만 고객에 대한 예의를 지켰을 뿐, 장롱을 해가고 머릿장을 해가고 또 일이 얼마나 됐는가 보러 오고 하는 화심에게 사사로이 대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부담스럽게 느낀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직접으로 유혹해온 것도 아닌데 뿌리칠 수도 없었다. 해서 몽치가 화심에게 수모를 준 것에 안됐다는 생각은 했으나 그게 화는 내지 않았고 오히려 어떤 면에서는 홀가분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왠지 모르게 우울해지는 것이었다.
"그라믄 가겠소."
몽치가 말했다.
"어서 가아."
"병태야 니 감시 잘해라. 알겠나?"
"걱정 마소."
몽치는 나가고 병태는
"화심이가 또 올까요?"
"잔말 말고 일이나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