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1-9
25. 농민, 그 사무치는 설움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땅이 촉촉하게 젖을 만큼 하염없이 내리는 세우였다. 하늘이 낮았다. 제석산 중턱이 묻히고 선수머리까지의 포구가 반나마 가릴 정도로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큰비라도 쏟아낼 것처럼 험상궂어보였다. 바람기는 없었다. 어디서 행보를 시작했는지 모를 가랑잎들이 갈 길을 멈춘 채 함초롬히 몸을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기온은 싸늘했다. 냉기 서린 실비에 읍내가 스산하게 젖고 있었다. 길거리에는 행인이 드물었다.
하나같이 몸을 웅크린 네 여자가 종종걸음을 치며 소화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서로 다투듯 부산스런 그 여자들의 걸음걸이는 무엇에 쫓기는 것 같기도 했고, 비와 추위를 피해 한 걸음이라도 더 빨리 목적지에 당도하려는 것 같기도 했다. 그녀들 중에는 종이우산 하나 든 사람이 없었다. 비가 바로 얼굴에 뿌리는 것을 막아주는 건 각기 머리에 두른 무명수건이었다. 그 여자들의 입성은 궁기가 흐르고, 무명수건도 거의가 낡아 있었다. 그러나 낡을수록 희어지는 무명수건을 머리에 두른 맵시만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고 고와보였다. 아마 위로 가붓하게 얹힌 듯, 살포시 내려앉은 듯하며 이마를 반쯤 가려 차양을 만들고 있는 수건의 끝머리는 가랑비 정도가 얼굴에 바로 뿌리는 것을 얼마 동안 막아내기에는 그럴 듯한 우비였다.
들일이며 밭일이며 치러내야 하는 농촌 아낙네로서의 수건을 머리에 두르는 맵시를 익히는 것은 부잣집 여인네들이 비단저고리 옷고름을 매는 맵시를 익히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농사일을 하는 아낙네들이 머리에 수건을 두르는 것은 들일이나 밭일을 나가면서 농구를 챙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뉴월 땡볕 아래서 농사일을 할 때 그것은 직사광선을 막는 모자였고, 팥죽 땀을 닦아내는 수건이었고, 그늘에서 쉴 때는 깔개였고, 일을 마치고 나면 옷털이개였고, 임질을 할 때는 또아리였고, 예기치 않은 물건이 생겼을 때는 보자기였고, 길을 가다가 내외해야 할 남자라도 마주칠 때면 눈가리개였다. 머릿수건은 여름에만 소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겨울에는 부족함이 없는 방한모자의 구실을 해냈다. 겨울 마파람을 받고 걸을 때 귀는 그 얼마나 시린가. 그런데 머릿수건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흩어짐이 없도록 꼭꼭 붙여 빗어 추위를 잘 타는 쪽진 머리만을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귀까지 넉넉하게 감쌀 수 있도록 매는 것이라서 더없이 좋은 방한모자였다. 다만, 머릿수건은 여름에는 삼베로, 겨울에는 무명으로 바뀔 뿐 농가의 아낙네들은 사시사철 머릿수건을 두르고 살았다. 머릿수건을 두르는 맵시는 쪽진 뒷머리 위에 매듭을 짓는 솜씨에 따라 좌우되었다. 수건의 두 귀가 한데로 모아져 느슨한 듯 낙낙한 듯 매듭을 지어야 수건이 바람결에 날아와 머리에 가볍게 얹힌 듯 살포시 내려앉은 듯 자연스런운 태가 나는 것이다. 매듭을 그렇게 짓는 것은 외관상으로 태를 내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었다. 수건이 그처럼 얹힌 듯 내려앉은 듯해야만 머리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그 공간이 더위나 추위를 막아내는 효용성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수건의 두 귀는 무작정 '묶는 것'이 아니라 그런 효용성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솜씨 있는 '매듭짐'이었다. 그런데 그 매듭이라는 것이 기묘했다. 쪽머리에서 비녀를 빼면 머리채가 얽히거나 맺힘이 없이 풀려 내리듯 머릿수건도 그 끝을 손으로 잡아당기기만 하면 매듭이 그냥 풀리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그 매듭은 웬만한 바람이나 어지간한 몸놀림에는 풀리는 법이 없었다. 느슨한 듯 낙낙한 듯 매듭을 짓되 그 매듭이 손을 대기 전에는 풀리지 않게 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농가의 사내아이가 누구에게 특별히 배운 바 없이 낫질이며 지게질을 익혀 장성한 농사꾼이 되듯 아낙네들도 언제부터인지 자신들도 모르게 머릿수건을 맵시 있게 두르게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땅의 아낙네들이 머릿수건을 언제부터 두르게 되었는지 아무도 모르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오랜 옛날부터 이 땅의 사람들은 팔 할이 농사를 지으며 연명해왔고, 농사일에 노동을 바치지 않을 수 없는 여인네들은 삶의 슬기를 모아 그런 다목적인 머릿수건을 두르게 된 터일 것이다. 머릿수건은 농가의 아낙네만 두르는 것이 아니었다. 장사하는 여인네나 주막집 주모까지도 머릿수건을 둘렀다. 그건 유행이 아니라 머릿수건의 다목적인 이용도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땅의 여인네 거의 전부가 머릿수건을 두르고 사는 셈이었다. 그래서 일본의 입장에서 일찍이 이 땅에 찾아왔던 어느 서양여자는 '단아하고 정갈하게 흰 수건을 머리에 쓴 말수가 적은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습에서 '조선인을 발견'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흰 빨래를 정성스럽게 빠는 여인들'과 '일본인에 비해 월등히 잘생기고 몸집도 큰 남자들'의 모습을 보고, '이 민족이 왜 일본의 식민지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일까'를 그 서양인은 회의하고 안타까워하기 시작했다. 하이얀 천을 머리에 맵시 있게 두른 여인네들의 모습은 분명 그 여자에게는 경이롭고 특정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흰 머릿수건을 두른 여인네의 모습은 앞에서 보나, 옆에서 보나 그지없이 단정하고 정숙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외간남자와 정면으로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살짝만 숙여도 이미 이마를 반쯤 가리고 있던 차양에 의해 남자 쪽에서는 얼굴을 볼 수가 없고, 옆얼굴은 아예 반쯤 가려져 있어서 표정을 읽을 도리가 없었다. 그 서양여자는 머릿수건의 흰 색깔에서 종교적 경건을, 쉽사리 얼굴을 볼 수 없음에서 여성적 정숙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빨면 빨수록 희어지다 못해 하늘빛을 닮아가는 무명이라는 천은 천년에 걸쳐 이 땅에 이음하여 내려온 가난과 배고픔의 색깔인 것이고, 그 흰 천을 머리에 두르고 있는 여인네들이 정작 흰색을 경원해 마지않는다는 사실을 그 여자는 몰랐을 것이다. 한평생 흰 수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자기네의 신세를 여자들은 한스러워했고, 누구나 마음속에는 언젠가 그 지긋지긋한 흰 수건을 벗고 비단 치마저고리에 머리에는 동백기름 자르르 바르며 살게 되기를 한 가닥 소망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십중팔구 시집올 때 한번 그리고 죽어서 다시 한 번 그 소망을 이룰 수 있을 뿐이었다.
네 여자는 서로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회정리 일구를 지나고 있었다. 그 여자들은 남편들을 면회하려고 경찰서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경찰에서는 면회를 시켜주지 않았다. 그녀들은 없는 살림 중에 애써 장만해간 음식들을 맡기고 돌아서야 했다.
"워메 이 사람덜아, 숨 잠 돌리세."
도래등 마루에 이르러 김복동의 아내 장흥댁이 긴 숨을 토해냈다.
"요리 비가 한정도 웂이 오는디, 비 피헐 디가 있어야 숨얼 돌리든지 말든지 허제. 더 옷 젖기 전에 한 걸음이라도 싸게 집으로 가세."
노덕보의 아내 조성댁이 장흥댁의 등을 떼밀었다. 두 사람보다 나이 아래인 마삼수의 아내 목골댁이나 강동기의 아내 남양댁은 잔뜩 웅크려 팔짱을 낀 채 서너 걸음 앞서 걸어가고 있었다.
"자네 말이 옳네. 근디, 무신 눔에 비가 요리도 청승시럽게 가랑가랑 허는지 몰르겄네?"
장흥댁은 미간을 찡그리며 낮게 드리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 시국이 뒤숭숭헌께 생기는 징조시."
조성댁이 혼잣말을 하듯 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장흥댁은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라 걸었다. 마음이 쓰이고 닿는 데는 다 마찬가지라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꼭 숨이 가빠서 잠시 쉬자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불안감과 답답증을 혼자 주체하기가 어려워 무슨 말이든 주고받으며 걸으려 했던 것이다. 도래등을 넘으면서부터는 속에 든 무슨 소리를 지껄여도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던 것이다.
목골댁과 남양댁은 가풀막진 길을 뛰듯이 빠르게 걸어 내려가고 있었다. 장흥댁은 질정없이 펄럭이는 두 여자의 치맛자락을 바라보며, 저것덜이 장딴지 심이 좋아 저리 날래게 가는 것이 아니라 맴얼 추슬리지 못혀 저럴 거이다, 짐작하고 있었다. 술도가 정 사장네로 몰려갈 때만해도 남정네들이 그런 큰일을 저지를 줄은 몰랐던 것이다. 네 사람만 갔으면 몰라도 마름 허 서방이 앞장을 선 길이어서 일이 좋은 쪽으로 풀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한 가닥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네 남정네가 저지른 일을 동네사람들은, 속 시원하게 잘한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기분으로야 열 번 속 시원하고 가슴 후련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죄인으로 끌려가 갇히고, 앞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가족들로서는 애가 타고 답답할 뿐이었다.
"집에 돌아가 계세요. 아직 조사가 다 안 끝났으니 면회를 시킬 수가 없는 겁니다. 여기서 밥 굶기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으니, 아무 걱정 말고 돌아가 집안일들 하세요."
소문으로만 들었던 '군인대장'이 한 말이었다. 장흥댁은 그 군인대장의 말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그 사람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밥 안 굶기고 때리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당장의 걱정은 던 셈이었다. 회정리 삼구에 다다른 그녀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초입에 자리 잡은 조성댁의 집으로 들어갔다.
"싸게들 방으로 드소. 뜨건 물 한 사발썩 혀야 쓸 것잉께, 나 얼렁 아궁지에 불 붙이고 들어갈라네."
조성댁이 세 여자에게 먼저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부엌 쪽으로 부산한 걸음을 옮겼다.
"엄니다아!"
"엄니, 아부지 워치케 됐는가?"
"아부지 오는가?"
세 아이가 문을 박차고 나오며 제각기 소리치고 있었다.
"워따, 귀들도 볽다."
장흥댁은 소리치는 아이들을 나무라려다가, 언뜻 아이들의 귀 밝음이 초조한 기다림이었다는 것은 깨닫고는,
"그려... 그 맛에 새끼덜 길르는 것 아니겄냐"
중얼거리며 더디게 마루로 올라서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선 세 여자는 아무렇게나 퍼질러 앉았다. 아무리 가랑비라고 하지만 오 리가 넘는 길이라서 옷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한기가 전신을 감고 돌며 진저리를 일으켰다. 장흥댁은 머릿수건을 벗어 얼굴을 훔쳤다. 목골댁과 남양댁은 머릿수건을 벗을 생각도 않고 앉아 있었다.
"자네덜 넋 나갔는가!"
장흥댁이 머릿수건을 털며 목골댁과 남양댁을 나무라듯 했다.
"금메 말이요, 넋이 나갈라고 그요."
목골댁이 어색스럽게 웃으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남양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앞으로 당해야 헐 일이 첩첩산중일 것잉께 넋 빼덜 말어야 써."
장흥댁은 연장자답게 말했다.
"근디 말이요, 빨갱이로 다 몰아 붙여뿔먼 워쩌제라?"
남양댁이 불현 듯 한 말이었다.
"거 먼 소리당가?"
목골댁이 움찔했고, 장흥댁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이다가,
"고런 베락 맞을 짓언 안헐 것이네."
자신있게 말했다.
"고걸 워찌 장담허씨요?"
남양댁은 눈자위가 붉어져 있었다.
"나넌 그 젊은 군인대장얼 믿네."
"장흥댁도 참... 이 일이 그 사람 혼자서만 허는 일이요? 정 사장이 뒤에서 종그고 있당께요."
그때서야 장흥댁의 얼굴이 변했다.
"시장들 허고 춥제? 뜨건 물에 요것 한 입썩 묵어보소."
조성댁이 다 낡은 소반에 물 사발 네 개와 조그만 소쿠리 하나를 올려 가지고 들어왔다. 소쿠리에는 손바닥 크기의 거무칙칙한 개떡이 서너 개 들어 있었다.
"워쩐 개떡이다요?"
목골댁이 제일 먼저 물 사발을 집어 들며 물었다.
"면회감스로 하도 가지갈 것이 웂어서 개떡얼 맨들기는 혔는디, 아무리 웂이 살아도 사람체면이란 것이 있제, 행여 누가 볼란지도 모른디 요리 숭악허게 생긴 개떡얼 차마 가지갈수가 있더라고."
"아그덜이나 믹이씨요."
"아그덜언 폴세 다 묵었네. 다 시장헌 판인디 얼렁 하나씩 묵어보드라고."
세 여자는 뜨거운 물만 달게 마실 뿐 개떡은 집어들지 않았다.
"워따, 인자 쪼깐 살 만허시. 자네덜 안 갈란가?"
장흥댁은 빈 사발을 소반에 놓자마자 수건을 머리에 둘렀다. 수건의 물기가 느껴져 그녀는 가벼운 진저리를 쳤다.
"새끼덜이 기둘린께 가야제라."
목골댁이 일어날 채비를 했다.
"음마, 속 답답헌디 이약이나 허다 가제 요리 금세 갈라먼 머 헐라고 들어왔당가? 개떡 묵으라고 안헐 것잉께 쪼깐 앉았다가 가소."
조성댁이 정말 싫은 기색을 했다.
"요 벌교바닥서 우리만치 속 답답허고 애간장 타는 여편네덜이 또 있겄는가. 근디, 우리찌리 입방아 찧고 애태우먼 무신 소양이 있는가. 쉬느니 한숨이요, 짜느니 눈물 아니겄어? 앞일이 워찌 될란지 모른께 우리넌 남정네덜 뒷수발헐 궁리나 각단지게 혀야 써."
장흥댁이 세 사람을 둘러보며 야무지게 말했다.
"참말로 벌이나 받지 말고 풀려나야 쓸 것인디, 벌 받게 되먼 당자고상은 더 말헐 것 웂고, 무신 수로 옥바라지럴 해낼 것이여."
조성댁의 목소리가 잠기며 한숨을 쉬었다.
"보소, 금세 한숨이고 눈물 아닌가? 갇힌 사람덜에 비허먼 우리야 극락에 있응께 무신 짓인들 못허겄는가. 헌 고쟁이꺼정 폴아서라도 뒷수발얼 혀야지."
"성님 말이, 칼 쓰고 앉은춘향이 기운 채리게 허는 이도령 말이나 진배웂소. 맘 독허게 묵고 뒷수발 잘 혀야지라."
목골댁이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듯 앉음새를 고쳤다.
"참말로, 좌익 냄편 둔 여자덜언 워찌 사는고." 여태껏 말이 없던 남양댁이 탄식하듯 입을 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사촌 시아주버니 강동식의 존재가 한사코 떠나지 않았다. 남편을 강동식과 얽어 빨갱이로 몰아붙일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을 떼칠 수가 없었다. 그 동안에도 강동식과 연관을 의심받아 몇 차례나 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아왔던 것이다. 자신이 일을 당하고보니 동서 외서댁이 겪어내고 있는 고초가 얼마나 아프고 쓰린 것인지를 알 것 같았다.
"그렇제, 거그다 비허자먼 우리 팔자는 또 상팔자제. 문딩이 콧구녕 겉은눔의 시상, 여자들이야 무신 죄가 있겄어."
조성댁이 짧고 빠르게 한참이나 혀를 차댔다.
"우리찌리 앉었응께 터놓고 허는 소리제만, 남정네덜이라고 무신 죄가 있다요? 사람이 사람맹키로 공평허게 사는 시상얼 맹글겄다고 나선 사람들인디, 고것이 워찌 죄겄소."
목골댁이 입바른 소리를 하고 나섰다.
"누가 들을랑가 무섭네."
장흥댁이 입 조심하라는 손짓을 했다.
"참말로 나넌 애가 터져 이눔에 시상 못 살겄소. 엊저녁에도 남정네 웂은 썰렁헌 방에서 새끼 달랑 품고 잠 한숨 못 잠스로 되작되작 생각혀본께, 기가 찹디다. 일정 때넌 일정 때대로 그 고초 당험시로 근근이 살고, 해방이 됐는디도 하나또 달라진 것 웂이 살다가, 베락 맞은 거맹키로 소작꺼정 날라가뿐디다가 갇히는 신세가 되얐는디. 있는 눔덜언 이제나저제나 양지살이고, 웂은 것덜언 이제나저제나 음지살이 허는 것도 분허고 원퉁헌디, 더 분헌 건 나라가 있는 눔덜 편역드는 것이요."
목골댁의 열기 받친 말을 조성댁이 막았다.
"이 사람아, 있는 사람덜이 나라 채럴 잡었응께 그것이야 당연지사 아니겄어? 자네는 나라가 따로 있고, 있는 사람덜 따로 있는 것맨치로 말얼 허는디, 이 사람아, 나라가 있는 사람덜이고, 또 있는 사람덜이 나라시."
"긍께 빌어묵을 눔에 나라고, 있는 눔덜이 요강꼭지가 된 배꼽도 모지래서 솥뚜껑꼭지가 되게 헐 욕심으로 웂은 사람덜 몰아쳐서 죄 맹그는 것인디, 나라가 정헌 죄고 벌이고 다 틀려묵었다 그 말이요. 나라럴 믿느니 지 병 고치자고 아그덜 잡아다가 간 빼묵는 묵딩이덜얼 믿겄소."
목골댁이 분결에 사발을 들어 올렸다가 물이 없는 것을 알고는 도로 내려놓았다.
"고걸 누가 몰르겄는가. 배 불르고 식자 들었다는 유식헌 사람덜이야 우리 겉은 가난헌 농새꾼 알기럴 바보 멍텅구리로 알제만, 시상살이 쓰고 짜운 맛이나, 시상이 순리로 돌아야 헐이치나 우리만치 세세히 아는 사람덜이 워디 있겄어. 다 암스롱도 심 웂응께 그저 몰른 디끼, 바본 디끼 사는 것이제. 아까 자네 일정 때 말 비쳤는디, 그때 농새꾼덜이 당헌 고초 워찌 말로 다 허겄는가. 근디, 정작 나라 폴아묵고 뺏긴 것은 누구였냔 말이여. 고 알량헌 양반에다가 배 불른 사람덜 아니었는감? 그런디 고것덜이 일본 눔덜허고 짝짝꿍이 되야갖고 못살게 주리럴 틀어댄 것이 누구였어? 우리 가난허고 심 웂은 농새꾼 아니였냔 말이여. 일 년 농새 짓고 쭉쟁이만 보듬고 울어야 허게 지독시럽든 동척 소작료에, 항꾼에 놀아난 조선 지주덜. 오직이나 못 살겄으먼 고향 버리고 그 먼 간도 땅으로 떠나고, 산중으로 회전 일구로 들어가고 혔을 것인가. 말얼 허자먼야 한이 웂고, 몰른 디끼, 바본 디끼 사는 것이제."
장흥댁이 허전한 웃음을 지으며 목골댁을 건너다보았다.
"아이고메 성님, 심 파허게 일정 때 이약 멀라고 허고 그요. 이약얼 허자먼 지끔 시상얼 이약혀야제라. 일본헌테 그리 나라 폴아묵고, 일본 눔덜허고 짝짝꿍이 되야갖고 돌아감스로 배터지게 잘 묵고 잘 산 양반이고 지주라는 것덜이 또 미국 눔덜허고 강강수월래 험스로 잘도 돌아가는 요 빌어묵을 시상에 헐 말이 을매나 많소."
목골댁이 기를 세웠다.
"아이고, 저눔에 입, 큰 탈 나겄다. 우리찌리라도 안헐 말언 안혀야 쓰는 겨. 미국 이약 씀벅씀벅 잘못혔다가 좌익으로 몰려 졸갱이친 사람덜이 워디 한둘이여? 말언 해버릇허먼 자꼬 느는 것잉께 그 이약은 애시당초 입에 담덜 말어."
조성댁이 고개를 내둘렀다.
"성님, 무신 말얼 그리 심 빠지게 허고 그요. 우리 남정네덜이 아무 죄 웂이 철창신세 지고, 우리 꼬라지가 요리 각다분허고 앉었으먼 누구 땀세요. 헹펜이 돼갖고도 입얼 봉허고 앉었으먼 고것은 빙신 중에 상빙신이요."
없는 듯이 앉아 있던 남양댁이 다부지게 말을 하고 나섰다.
"근다고 무신 일이 풀리간디? 우리가 잘못혔다가는 일만 되갱기제."
장흥댁이 눈을 흘겼다.
"와따 성님, 서울 사람 무섭당께 영산포서부텀 기는 꼴이요이. 성님맹키로 말헐람사, 사람이 죽으먼 멀라고 울겄소. 운다고 한분 죽어뿐 사람이 살아날 것도 아닌디. 운다고 살아날 것 아닌지 뻔허게 암스롱도 지설움에 우는 것 아닙디여? 사람이 무신 일 당허고 말 씹는 것이야 워디 일 풀리라고 그러간디라? 맺힌 속 풀고, 전후 사정 따져 기운 채리잔 것이제라."
남양댁의 옹골진 대꾸였다.
"참말로, 저눔에 입 변사 회 쳐 묵겄네웨. 자네 말도 영 틀린 말은 아니시."
장흥댁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말이 났응께 말인디, 우리 남정네덜이 저리 갇히게 된 것은 재작년 십일월에 들고 일어났든 일얼 망쳤기 땀세요. 그때 그 일만 성사됐드라먼 지주고 머시고 싹 다 없어지고, 지끔이야 을매나 살기 존 시상이 되얐겄소. 근디, 골골이 기세 뻗어올라 성사가 다 된 일얼 가로막고 나서서 우리 농사꾼덜헌테 무지막지허게 총질허고, 잡아가고 헌 것이 누굽디여? 양코배기덜이 아닙디여? 그눔덜언 생김생김만 징헌 것이 아니라 허는 행투도 을매나 모지락시럽고 징헙디여. 일본 눔덜만 독살시런지 알었등마 그 눔덜도 일본 눔덜 찜쪄묵게 악독헌 것덜인디, 고것덜이 지주 편들지 안혔음사 우리 남정네덜이 인자 와서 워째 철창신세가 되얐겄소. 알고보먼 우리 웬수는 정 사장도, 순사덜도 아니요. 질로 큰 웬수가 양코배기덜리고, 그 담이정 사장이고 순사요."
남양댁은 핏기 돋아오른 얼굴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잉, 그 말이 영축웂어. 순사덜이야 일정 때나 지끔이나 천하에 못된 심바람꾼덜이고, 그때일 훼방 놓고 뎀빈 것이야 양코배기덜인 것얼 우리 눈으로 똑똑허니 본 일 아니드라고? 고런 양코배기덜이 우리럴 해방시켜줬다고? 가당찮다. 고것덜얼 믿느니 외손지가 지사 지내준다는 말얼 믿는 게 낫제. 숭악헌 눔덜. 그때 우리덜도 나섰응께 알제만, 그 눔덜이 먼첨 총질 시작헌께 이쪽에서도 남정네덜이 대창 깎아든 것 아니드라고? 근디 그 눔덜언 사람얼 그리 무작시럽게 쥑이고도 시체꺼지 즈그 맘대로 파 묻어뿔지 안혔어? 고것이 워디 사람이여? 일본 눔덜허고 근수 똑겉이 나가는 숭악헌 즘생이제."
목골댁도 따라서 감정이 흔들리고 있었다.
"참말로, 그때 일 생각헌께 지끔도 가심이 새시로 방맹이질 시작헐라고 그네. 그때 참말로 골골이 많이도 들고 일어났제. 이 전라도에서 안 일어난 골이 웂었는디, 노친네덜이 말이, 농새꾼덜이 그리 일시에 심모타 일어나기는 갑오난리 후로 첨 보는 일이라고 안허든가. 그 기세로 몰아때름사 시상이 열 분도 뒤집어졌제. 근디 군정이 나스고봉께, 그 씬 기세 땀세 애꿎은 사람덜만 더 많이 죽어간 것이제."
장흥댁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금메 말이여, 그때 죽어간 사람덜이 골골이 수도 웂이 많은디, 그 수가 전부 을맨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웂고, 안직꺼지 시체럴 못 찾은 사람덜이 수두룩헌디, 그리 아까운 목심덜만 상허게 허고 된 일 암 것도 웂을 줄 알었음사 애초에 일어나덜 말었어야 헐 일이었제."
조성댁의 한숨도 깊었다.
"그리 말허자먼 시상에 맘묵고 헐 일이 암 것도 웂제라. 일이 틀어지고 난께 속 씨리고 가심 아퍼 고런 말도 나오는 것인디, 그때야 들고 일어나덜 않으먼 안될 헹펜 아니었는 게라. 쌀값은 하늘이제, 억울허게 싼값에 내는 공출은 순사덜 등쌀에 피헐 도리가 웂제, 배급표는 지대로 안 나와 다 굶어죽을 판이제, 사는 방도야 군정이 맹근 공출법 웂애고, 공출법 웂어지먼 순사덜 날치는 꼴도 웂어지고, 우리가 지대로 살게 되는 것인디 워찌 안 일어나고 견디겄습디여? 니나나나 다 그런 생각으로 한통속이 된 것이제라."
남양댁의 빈틈없이 아귀를 맞춘 말이었다.
"그려, 사람덜 맴이 찰 대로 다 찬 봇물이었제. 넘칠 일만 남은 그 봇물을 어느 장사가 막고 나서겄는가. 한분은 터질 일이었제."
장흥댁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여자들의 감정은 어느덧 그때처럼 한 줄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화순광탄의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가면서 사람들은 마을마다 인민위원회를 중심으로 뭉쳐졌다. 미군정의 미곡수매에 반감이 쌓일 대로 쌓이고, 그 정책을 강압적으로 수행하는 경찰들의 횡포에 불만이 쌓일 대로 쌓인 사람들에게 화순탄광의 사건은 큰 충격인 동시에 행동에 불을 붙이게 하는 더없는 계기였다. 거기다가 인민위원회가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결속시켰다. 인민위원회에서는 전단을 뿌렸고, 농민들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고 구호를 외치며 대열을 이루었다.
"공출제도 쳐 없애고 토지개혁 단행하라!"
"이북식 토지개혁 그것만이 살 길이다!"
이런 구호를 목이 터져라 외치며 각 마을 사람들을 읍내로 몰려갔다. 이 마을, 저 마을 사람들을 큰 길에서 합류했고, 그 구호는 더 한층 어기차게 십일월의 하늘로 퍼져 올랐다. 그들의 목소리에 기운이 오른 만큼 징소리 북소리도크고 빠르게 울렸다. 농민들만이 나선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도 머리띠를 두르고 대열을 꾸몄다. 학생들은 팔을 치뻗어 주먹으로 하늘을 치며 외쳤다.
"미군정은 각성하라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
"경찰은 각성하라 어느 나라 사람이냐!"
"민족을 살해하는 경찰을 타도하자!" 학생들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영세 상인들도 하나로 뭉쳐졌다. 그렇게 한 덩어리가 된 사람들은 경찰서로, 읍사무소로 몰려갔다. 징소리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며, 북소리에 맞추어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오랜 굶주림으로 광대뼈가 불거져 나오고 볼들이 패어 있었다. 광목 일색이다시피 한 입성들도 궁기가 흘렀다. 그러나 소리를 합친 구호는 힘이 넘쳐났고, 메마른 얼굴 얼굴에는 결의가 서려 있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징징징...징!
"공출제도 쳐없애고 토지개혁 단행하라!"
"민족을 살해하는 경찰을 타도하자!"
둥둥둥둥...두둥 둥!
"이북식 토지개혁 그것만이 살 길이다!"
"미군정은 각성하라. 조선은 식민지가 아니다!"
분위기는 갈수록 고조되었다. 그러나 경찰서나 읍사무소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해결방안이 아니었다. 그것은 총구멍이었다. 대기하고 있던 경찰, 소방관, 청년단원 들은 시위대가 가까이 가자 총을 쏘아댔다. 시위대의 전진이 멈춰지며 대열이 헝클어졌다.
"모두 진정하시오. 저건 공포요!'
"여자들은 모두 뒤로 빠지고 남자들이 앞으로 나오시오!"
"겁먹을 것 하나 없어요. 우린 당당하게 우리 권리를 주장하는 겁니다."
인민위원회 청년들과 학생들이 대열을 정비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묶고 있었다. 남자들이 앞으로 나서고 여자들이 뒤로 물러나면서 대열은 곧 정비되었다. 사람들의 굳어진 얼굴에는 더 강한 결의가 드러나고 있었다.
"우리는 이 기회에 기필코 우리의 권리를 찾아내야 합니다. 우리가 다 같이 찰떡같이 뭉쳐지면 틀림없이 우리의 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똘똘 뭉칩시다. 구호도 더 크게 외칩시다. 그리고 정당한 우리의 권리를 찾도록 합시다. 갑시다, 경찰서로!"
경찰은 공포를 쏘아 시위대를 저지할 수 없게 되자 마침내 사격을 가하기 시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피를 쏟으며 퍽퍽 쓰러졌다. 시위대에서는 비명과 아우성이 터져 올랐다. 대열도 헝클어지고 흩어졌다. 대열은 다시 정비되지 않았다. 총 맞은 사람들을 수습하느라고 앞에 나서는 청년도 학생도 없었다. 대열은 흩어지고, 사람들은 총소리에 계속 쫓겼다. 경찰들은 공포를 쏘아대며 뒤쫓고 있었고, 사람들은 자기네 동네 쪽으로 각기 밀려가고 있었다. 총에 맞은 사람들에 대한 불안과 경찰에 대한 분노를 안고 사람들은 동네로 밀릴 수밖에 없었다. 총 앞에선 맨주먹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그날 밤 총을 꼬나들고 각 마을을 덮쳤다. 주모자들을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 기습은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그런 수법을 일정 때부터 겪어온 데다가, 특히 화순에서 경찰이 저지른 행투를 알고 있는 인민위원회 사람들이나 학생들은 미리 피해버렸던 것이다. 경찰들이 집집마다 뒤지고 다니며 폭행을 가하고 협박을 하고 해서 사람들의 분노는 더 뜨거워졌다.
다음날 시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 내내 읍내는 조용했다. 그리고 모든 마을도 평온할 뿐이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제석산에 봉화가 타올랐다. 그 봉홧불을 따라 마을마다 둥둥둥 두둥둥둥 두둥 두둥 두둥...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어둠을 헤치고 마을 당산나무 아래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모두 남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각기 무장을 하고 있었다. 그 무기는 각양각색이었다. 대창이 제일 많았고, 쇠스랑, 괭이, 낫 같은 농기구를 들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무기들 말고 공통적으로 지닌 무기가 있었다. 그건 허리에 찬 망태기나 보자기에 담은 감자 크기만큼씩한 돌들이었다. 경찰의 총알에 맞서는 그들의 총알이었다.
구호를 외치지 않고 어둠에 몸을 감추고 읍내로 밀려든 그들에게 경찰서와 읍사무소는 삽시간에 장악당하고 말았다. 경찰은 미처 몇 방의 총을 쏘아보지도 못하고 그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낮의 조용함에 방심한 경찰에서는 서너 명만을 숙직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경찰들은 누구인지 모를 많은 발들에 채이며 쏟아지는 욕들을 고스란히 먹어야 했다. 그러나 경찰이 두 명을 죽이고, 여섯 명을 부상 입힌 것처럼 그들은 경찰을 죽이거나, 죽게 패지는 않았다. 그들은 경찰서와 읍사무소를 뒤져 미곡수집대장을 찾아내서 불질러버렸다.
다음날부터 싸움은 본격적으로 일어났다. 다른 지방에서 경찰병력이 밀려들었고, 그 뒤를 기관총을 단 미군 지프차들이 따랐다. 동네마다 들이닥친 경찰들이 젊은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갔다. 집집마다 남자들은 뒷산으로 줄행랑을 놓았다. 경찰은 그들을 향해 사격을 가했다. 그날 밤 다시 봉화가 오르고, 북소리에 징소리까지 울리면서 남자들은 모여들었다. 그들은 또 어둠에 몸을 감추며 읍내로 나아갔다. 읍내에서는 오래도록 총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이 뒤섞여 울리고 있었다. 양쪽이 서로 죽고 다친 그날 밤의 싸움을 고비로 농민과 학생들의 기세는 점점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경찰이 인민위원회 사람들을 잡아내려고 혈안이 된 데다가, 젊은 사람들을 닥치는 대로 끌어갔고, 읍내 안통으로 이어지는 길목 길목에다가 모래가마니를 쌓아올리고, 언제라도 총을 갈겨댈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싸움이 다 끝난 것은 아니었다. 전체적으로 힘을 합쳐 경찰과 정면으로 맞서는 것을 피했을 뿐 한두 마을씩이 합쳐져 여기저기서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 싸움이야말로 경찰들을 더 신경질 나게 만들었고, 괴롭히는 방법이었다. 사람들은 이제 공격표적을 친일파나 악덕지주로 바꾸었기 때문에 경찰은 피해를 입은 그들에게 항의를 받고 시달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친일파들은 나무에 거꾸로 매달리기가 예사였고, 눈치 없이 불호령을 놓다가 대창이나 쇠스랑에 찔려 죽어가기도 했다. 그리고 악질지주들의 쌀 창고는 문이 박살나 속이 텅 비어버리기 일쑤였다. 악이 받칠 대로 받친 경찰들은 장터거리에서든 마을 고샅에서든 개머리판으로 사람을 개 패듯 했고, 청년단원들은 제철을 만난 듯 몽둥이며 자전거 체인을 말아들고 다니며 닥치는 대로 폭력을 휘둘렀다. 그러나 그들도 혼자서는 어느 마을에도 접근할 수가 없었다. 혼자 나돌며 그런 짓을 했다가는 누구의 손에 당했는지 모르게 목숨이 끊어져 철둑에 버려지거나, 논가의 커다란 똥구덩이에 처박혔다. 처음에는 그런 꼴을 당한 경찰이나 청년단원이 네댓이었다. 그 뒤부터 대여섯씩 패를 짜게 되었다. 젊은 남자들이 당하는 수난은 말이 아니었다. 젊은이들은 무조건 잡혀 들어갔고, 뼈가 부러지는 매타작을 당하며 주모자로 몰렸고, 결국에는 빨갱이가 되어 죽거나 감옥살이로 넘어갔다. 젊은이들은 경찰과 청년단의 무자비한 손길을 피해 도망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이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은 단 한 군데, 군대였다.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놓고 자원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군대는 그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은식처였다. 그리고 그들도 무장을 갖출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날이면 날마다 들려오는 것이 소문이었다. 나주에서 수천 명이 일어났다고 하는가 하면, 다음날이면 해남에서 또 수천 명이 일어났다고 했고, 그 다음날이면 영산포에서 일어나 얼마가 죽었다고 하고, 또 그 다음날에는 무안에서 얼마가 일어나 얼마가 죽었다는 소문이 잇따라 들려왔다. 십일월이 저물어갈 때까지 그런 소문이 빠진 날이 거의 없었고, 소문의 반만 잡는다고 하더라도 한 달 동안에 죽어간 사람들의 수는 수천을 헤아렸다. 결국 농민들만 수없이 죽어간 채로 십일월의 커다란 싸움은 끝났다. 미곡수매는 더 강력하게 시행되었고, 경찰들은 더욱 인정사정없이 몰아쳐댔다. 기가 꺾일 대로 꺾여버린 농민들은 당장 끓일 쌀이 없어도 할당량을 채우기에 숨을 헐떡거려야 했다. 사람은 죽었으되 시체도 찾지 못한 많은 사람들의 한은 그 밑에 깔려 또 한 겹의 켜를 이루었다.
"그려라, 요리 말얼 혀바도 결국에는 천불만 끓어올른께 말얼 허덜말어야제라. 참말로 나넌 해방만 되먼 배 안 곯고 사는 존 시상이 올줄 알았는디..."
목골댁이 어깨를 부리며 말끝을 흐렸다.
"염상진이 그 사람, 딱 한 가지 잘못헌 것이 있구만."
남양댁이 느닷없이 한 말이었다.
"그 사람이 멀?"
조성댁이 의아한 눈으로 물었고, 장흥댁과 목골댁도 의문스럽게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들 체면 보지 말고 술도가눔얼 그때 쥑였어야 허는 겨!"
남양댁은 야멸치게 내쏘았다.
"워메, 저 뜽금 웂는 소리 허는 것 잠 보소웨."
장흥댁이 놀란 얼굴로 어이없어 했고, 조성댁은 기가 질린 표정으로 그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목골댁은 아랫입술을 문 채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못쓰겄다, 요리 앉었다가 집안 망칠 중죄인덜 되겄다. 싸게 가자."
장흥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망칠 집안이나 머 있고라?"
목골댁이 말을 받으며 따라 일어섰다.
"워따, 염병헌다."
조성댁이 목골댁의 어깻죽지를 치며 눈을 흘겼다.
채방 주인 문기수는 무쇠난로 옆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장사를 하느라고 습관이 된 이른 저녁밥을 배불리 먹고 훈훈한 난롯가에 앉았으니 식곤증이 생긴 것이다. 해가 짧아진데다가 하늘에 구름까지 끼어 여느 날보다 빠르게 어둠살이 퍼져 내렸다. 통금이 아직 멀었는데도 밖은 진한 어둠으로 차 있었다. 책방 옆에 붙어 있는 방에서는 정님이가 친구 순덕이와 횃댓보에 십자수를 놓고 있었다. 둘이는 경쟁이라도 하듯 동그란 수틀 위아래로 숙달된 손놀림을 계속하면서도 입은 입대로 놀려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둘이의 횃댓보는 거지반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중앙에 두 마리의 봉황이 마주 보며 온갖 색깔의 휘황한 꼬리를 양쪽으로 길고 길게 늘렸는데, 그 꼬리는 수평으로 나가다가 자연스럽게 꺾여 수직으로 늘어져 있었고, 두 개의 긴 꼬리가 만든 넓적한 직사각형 가운데에 '수, 복' 두 글자가 다섯 송이씩의 줄 장미에 꽃송이에 떠받치듯 자리 잡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두 사람 다 완성을 시켰고, 지금 놓고 있는 수는 가장자리를 빙 돌아가는 완자무늬였다. 횃댓보는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그런데, 십자수가 그려낸 여러 그림 중에서 횃댓보의 주인은 길고 휘황한 꼬리를 가진 두 마리의 봉황도 아니었고, 다섯 송이씩의 싱싱한 꽃을 달고 있는 두 줄기의 장미도 아니었고, 감색 한 가지만으로 수놓아진 터무니없이 큰 '수'자와 '복'자였다. 오래 오래 살며 복을 받으라는 것인지, 복을 받으며 오래오래 살라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지만, 그 두 글자가 횃댓보의 주인인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수와 복, 두 글자는 미완성인 채 구겨져 있는 횃댓보 위에서도 그지없이 근엄하고도 엄숙한 표정이었다.
"피이, 거짓말허고 있네. 본정통에 소문이 짜아허든디."
"얼랴, 무신 소문이?"
정님이는 수틀을 팽개치듯 하며 고개를 발딱 들었다. 예쁘장한 얼굴에 찬 기운이 돌고 있었다.
"들으나마나 아녀? 솥공장집 태주허고 니가 그렇고 그런 사이란 것이제."
순덕이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며 느릿느릿 말하고 있었다. 쌍갈래로 단정하게 땋아 내린 머리 사이로 뒷가르마가 하얗게 일직선을 긋고 있었다.
"가시네야, 손 놓고 딱 뿌러지게 말혀봐. 구렝이 담 넘어가는 시늉말고."
정님이는 순덕이의 팔을 낚아챘다.
"히히, 도적눔 지 발 저린다고, 니 몸 다는 것 봉께로 무신 일 있기는 있구나. 못된 가시네, 얼굴값 허니라고."
순덕이는 둥글넓적한 얼굴에 장난스런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녀, 아녀. 그 자석이 누구 신세 망칠라고, 싸게 말혀, 싸게."
정님이는 순덕이의 소매를 잡으며 바짝 다가앉았다.
"참말로 아무 일 웂는겨?"
"아, 그렇당께!"
정님이는 발칵 짜증을 냈다.
"얄궂어라, 니가 지 것이라고 태주가 떠들고 댕긴다는디?"
순덕이가 무엇을 알아내려는 듯 정님이의 눈을 빤히 쳐다보았다.
"워메, 고런 문딩이 겉은 자석!"
정님이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가 부리는 바람에 엉덩이가 방바닥에 철퍽 부딪쳤다.
"궁뎅이에 금가겄다, 가시네야. 근디, 워째서 그 자석이 험헌 소리럴 허고 댕길꼬?"
순덕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고런 오살헐 눔, 다 우리 아부지 땀세 그리 된겨. 그 눔이 책 산다고 핑계허고 책방에 들락이먼 책만 딱딱 폴고 엄허게 대해야 허는디, 웃어주고, 말 받아주고 헝께 그눔이 그 지랄병허고 댕기는 것이여."
눈자위가 붉어진 정님이는 숨까지 쌕쌕거렸다.
"근디, 니넌 통 맘에 웂냐?"
"니넌 워쩌냐?"
정님이가 눈꼬리를 세우며 반문했다.
"나야 니보담 못났다만, 솥 공장 집 재산이 탐났으먼 탐났제 윤태주 가는..."
순덕이도 고개를 홰홰 저었다.
"나 맘도 니허고 똑같어."
정님이는 정하섭을 생각하고 있었다. 윤태주하고는 인물이나 사람 됨됨이가 비교할 수조차 없는 사람이었다. 한 번도 표현할 길 없는 채로 그녀는 정하섭에게로 쏠려가는 마음을 외롭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가 대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떠나 멀어진 것만도 안타까웠는데, 빨갱이까지 되어버리자 그녀의 마음은 허방을 딛고는 했었다. 순덕에게는 전혀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십자수를 놓는 손끝에서 신명이 식어버린 지는 이미 오래 전의 일이었다.
책방 유리문 밖에서 늙수그레한 여자가 안을 기웃기웃하다가 문을 옆으로 밀었다. 레일 위를 구르는 작은 쇠바퀴 소리에 놀라 문기수는 잠을 깼다.
"쥔이제라?"
여자는 고개만 디밀고 낮고 다급한 음성으로 물었다.
"그런디요."
문기수는 잠이 덜 깬 눈을 껌벅거리며 의자에서 느리게 일어났다.
"요것 받으씨요."
여자는 무엇을 던지는가 싶더니 문을 거칠게 닫고 황급히 돌아섰다. 그 순간 문기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몸이 얼어붙는 것 같은 긴장감이 엄습했다. 그는 다급하게 문 쪽으로 내달았다. 시멘트 바닥에는 네모로 접힌 조그만 종이쪽이 떨어져 있었다. 전신에 소름이 쭉 끼쳐왔다. 그것은 살아서 꿈틀거리는 징그러운 벌레와도 같았다. 그는 발로 종이쪽을 밟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문을 밀치고 밖을 내다보았다. 그의 시야를 차단하는 것은 어둠 뿐 여자의 모습은 간 곳이 없었다. 그는 눈을 부릅뜨고 어둠 속을 헤집으며 여자의 얼굴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다. 늙었다는 느낌이 어렴풋이 남아 있을 뿐이지 여자의 얼굴은 윤곽조차 잡히지 않았다. 졸았던 것을 그는 뒤늦게 후회하고 있었다. 그는 발밑의 종이쪽을 향해 천천히 팔을 뻗어 내렸다. 그것을 집고 싶지 않은 거부감이, 끌리듯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 손의 반대방향으로 뻗쳐오르고 있었다. 종이쪽이 손끝에 잡혔다. 그 건조하고도 싸늘한 감촉이 일직선으로 심장을 찔러왔다. 종이쪽을 집은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는 서둘러 책방의 덧문을 닫아 걸었다.
‘최후의 명령이다. 내일 오후 네 시에 부용산 용연사 미륵바위 아래로 오라.*’
문기수가 펼쳐 든 종이쪽지에 적힌 내용이었다. 처음 순간 염상진의 명령 하달일 것이라고 판단했던 직감은 종이쪽지 위의 '별'로써 현실이 되었다. '별'은 염상진의 고유표지였던 것이다.
"혁명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며, 혁명 동지는 어둠 속에서 빛나는 영원한 별이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염상진의 말이 쟁쟁하게 울리고 있었다. '최후의 명령' '어둠속에서 빛나는 영원한 별', 문기수는 혼란한 의식 속을 헤매며 종이쪽지를 난로에다 넣었다.
심재모는 서민영의 조그마한 앉은뱅이 책상 앞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서민영의 방은 꽃히기도 하고 쌓이기도 한 책들로 어지럽기 그지 없었다. 심재모가 서민영의 서재에 앉게 된 것은 농촌문제 전반에 걸친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였다. 심재모가 정 사장의 사건을 공정하게 처리하기 위해 농촌문제를 구체적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의사를 표하자 경찰서장이 처음에 천거한 사람이 김범우였다. 심재모를 만나본 김범우가 심재모의 뜻을 이해하고, 소개한 것이 서민영이었다. 심재모가 알고자 하는 정도의 농촌문제에 대해서는 김범우로서도 충분히 개략해서 들려줄 수가 있었다. 그러나 기왕이면 그 방면에 전문적인 견식과 이해를 갖춘 사람을 소개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것은, 군인의 신분으로서 굳이 그런 문제를 파악하고자 하는 심재모의 바람이 보다 정확하고 효과 있게 이루어지게 하기 위함이었고, 그와는 다른 측면에서, 서민영 선생이 엄연히 있는데 자신이 농촌문제에 대해서 입을 뗀다는 것은 턱없이 주제 넘는 일로 여겨졌던 것이다.
"주색잡기 빼놓고, 모르는 것을 무엇이나 배우고 알려고 하는 것은 가상한 일이지. 더구나 군인이 그런 태도를 취한다니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구만. 그런데, 나더러 자기 앞으로 오라는 것인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배우려는 자가 의당 선생님을 찾아뵈어야지요. 제가 찾아뵌 것은, 선생님께서 그 사람의 뜻을 거두어 주십사고 말씀 여쭈려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어 심재모는 서민영의 비좁고, 오래된 종이냄새가 그득한 서재를 찾아들게 된 것이었다. 심재모는 방문에 앞서 서민영이 어떤 사람인지를 김범우에게 대충 들었다. 서민영은 고흥 사람이었다. 그의 집안은 고흥에서 첫손가락 꼽을 만큼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것은 농토가 많은 양반지주여서도 아니었고, 높은 권력의 자리를 누리고 있어서도 아니었다. 물론 그의 집안은 지난 왕조에 걸쳐 벼슬자리깨나 누린 거창한 족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의 집안을 첫손가락에 꼽는 것은 그 족보를 자랑삼지 않은데서 연유하는 것이었다. 양반이 족보자랑을 하지 않는 것, 자기 과시 욕구를 본능 중의 하나로 가진 인간의 상태로서 그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님은 분명했다. 그러나 자기 과시욕구 못지않게 상대 비하욕구 또한 인간 본능 중에 하나이고, 양반에 대해서는 피해의식과 적대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족보자랑을 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 주저 없이 첫손가락을 꼽는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납득의 이유로 부족감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거기에는 그럴 만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의 집안은 경제적으로 몰락한 것이 아니라 백여 마지기의 논을 가지고 소작을 내놓는 입장이면서도 가장이 손수 농사를 지었다. 양반이라는 신분으로 손수농사를 짓는다고 하는 경우 그 정도가 문제이겠는데, 옛날에 임금이 권농책을 내걸고 그 목적달성을 위한 효과극으로 어느 하루를 골라 모내기 시늉을 하는 그런 식은 분명 아니었다. 지게로 똥장군을 진다거나, 볏잎에 눈 찔려가며 논매기를 한다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모내기 때 무논에 예사로 들어서거나, 소매를 걷어붙이고 물꼬를 막고 트는 모습은 아무나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그런 직접 노동도 중요한 것이었지만, 그의 집안 어른들은 대를 이어가며 효과적인 영농법을 개발 실천하면서, 그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일깨우고 활용시키려는 노력을 계속했다. 그런 가풍은 그의 고조부가 세운 것이었다. 그의 고조부는 전통적인 유학을 토대로 한 학문을 닦은 외에 실학사상을 수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다산정약용이 강진에 유배되어 왔을 때 절친한 교분을 나눌 정도로 학문의 깊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양반의 지체를 개의치 않고 직농의 가풍을 세운 것도 결코 우연의 사실은 아닌 것이었다. 그는 다산의 '목민심서'를 행동으로 옮긴 셈이었다. 그러고 보면 그의 고손자 서민영이 중학교를 기독교 재단인 순천 매산학교로 가게 된 것 또한 우연일 수가 없었다. 다산의 유배는 정치적 결과였지만 원인은 종교적인 것이었다. 다산 일가는 천주교 박해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그의 셋째형 약종은 참형의 순교를 했고, 다산은 부인함으로써 참형을 모면하고 유배의 천리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약종의 순교와 비교하여 다산의 행위를 비겁이나 이중인격으로 비판하는 것은 종교주의자들의 입장일 뿐이고, 한 인간이 하나뿐인 목숨을 내걸어야 하는 극한 상황에 처해 신의 존재 긍정이나 부정의 선택은 '믿음의 절대성과 유동성'에 따라 좌우되는 것이므로 인간성이나 인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일 것이었다. 신의 존재를 부인한 다산은 순수한 종교의 입장에서 '방황하는 가엾은 영혼'으로 긍휼이 여겨질 수는 있으나, 그 행위 자체가 곧 인간으로서의 제반 자격을 심판받아야 하는 요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리라. 다산이 비록 신을 부인하기는 했지만 그의 의식 속에 스며든 기독사상마저 일소된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매산학교를 마친 서민영은 동경제대 영문과를 졸업하고 광주사범의 선생이 되었다. 그는 학교에서는 영어선생이었고, 일과가 끝나면 농민야학의 교장이었다. 농촌계몽운동은 일천구백이십년대 후반부터 시작되어 일천구백삼십년으로 접어들면서 전국적으로 본격화되었다. '브나로드,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민중 속으로)를 외치지 않은 학생이 없을 정도였다. 그 운동은 '아는 것이 힘이다, 배워야 산다' '가르치자, 나 아는 대로'등의 구호를 앞세운 문맹퇴치운동 같았지만 야학공부를 통해서는 독립정신과 애국정신을 암암리에 일깨우고 주입하는 것이었다. 이와 때를 같이해서 자유주의, 자유사회주의, 공산주의, 무정부주의 같은 것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농촌사회를 파고들어갔다. 서민영이 뜻있는 학생들을 이끌고 야학운동에 열성을 받친 것도 그런 사회분위기에 포함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본 식민정치는 그런 운동을 오래 두고 보지 않았다. 공개적으로 활동을 금지 당하게 되자 서민영은 음성적인 학생조직을 만들었다. 그가 지향하는 바는 '이상농촌의 건설'이었고, 굳이 성분을 따져 이야기하자면 그는 '기독교사회주의자'였다. 한때 염상진, 안창민, 김범우, 손승호 등이 그의 아래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는 일천구백사십일년 치안유지법에 저촉된 공산주의자로 몰려 일 년 육 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그때 당한 고문의 상처로 그는 왼쪽 절름발이가 되고 말았다. 감옥에서 풀려난 그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일체 끊고 농촌문제에 대한 자료를 모으거나, 책 읽는 것으로 나날을 보냈다. 해방이 되자 순천사범과 순천중학에서 다투어 찾아다녔지만 그는 끝내 교단에 다시서지 않았다. 그는 전혀 말 한마디 하지 않고 고개를 젓는 것으로 거절을 하고 말았는데도 그가 선생을 하지 않는 것은 절름발이의 창피스러움 때문이라는 약간 속되면서도 그럴 듯한 소문이 퍼졌다. 그런데, 그가 교단에 다시 서지 않은 이유는 그 후에 곧 밝혀졌다. 그는 자신의 농토 전부를 공동농장화 했고, 야학을 개설했다. 그는 일제하에서 중단 당한 일을 다시 시작한 것이었다. 농토의 공동농장화는 그가 꿈꾸던 '이상농촌의 건설'이었는데, 고흥과 벌교 일대에서 두고두고 화젯거리가 되었다. '다 함께 농사 짓고, 다 함께 먹고 산다'는 목표가 기독교정신 아래 세워져 있었다. 기독교인이 아니면 그의 공동농장의 농사를 지을 수없는 제약이 있었지만, 기존 소작인들 중에서 그 제약을 거부하고 이탈하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그는 삼 년 동안 그야말로 '다 함께 농사짓고, 다 함께 먹고 산다'는 약속을 지켰고, 그의 공동농장은 모든 소작인들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는 지주에게는 지극히 못마땅한 존재였지만 그 외의 사람들에게는 더없는 존경과 대접을 받았다. 자애병원의 전 원장이 받고 있는 존경을 그도 받고 있는 것이었다. 그가 벌교에도 초가삼간을 두고 있는 것은 야학경영을 위해서였다.
"그래 자네가... 아니, 내가 자네라고 해도 실례가 안 되겠소?"
심재모의 인사를 건성으로 받고나서 거의 이십분 가까이 자료들을 추려낸 서민영의 첫마디는 이랬다.
"그러믄요, 저는 배우러 온 학생입니다. 말씀도 편히 낮추십시오."
심재모는 김범우의 말을 들은 터라 자신을 있는 껏 낮추었다.
"옳지, 말 한번 상 받게 잘하는군. 태도가 그래야만 배우는 효과가 나는 법이지. 난리 통에 벌교가 인물을 만난 게로군."
서민영은 간추린 자료들을 앉은뱅이책상으로 옮겨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외모만으로는 책 속에 파묻혀 있는 것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허름한 옷이며 햇빛에 그은 얼굴이며 천생 농사꾼이었다. 잡티가 없이 깊고 예리한 눈이 그가 범부가 아님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에에, 장황하게 얘기해봤자 쓸모없는 일이겠고, 중요한 대목들만 짚어서 말할 테니 필요한건 적고, 물을 것이 있으면 내 말 다 끝난 다음에 하시게."
"네, 알겠습니다."
"에에, 우리나라에 있어서 농민의 문제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바로 나라의 문제인 것이야. 왜냐하면, 조선시대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국민의 팔 할이 농민이기 때문이야. 농민의 문제를 잘 푸느냐, 못 푸느냐에 따라서 나라의 안정과 불안정이 좌우되는 것도 다 그 까닭이지. 조선 오백년의 곪고 곪은 농정의 실패와 관리의 타락이 결국은 동학란이라는 농민봉기를 일으키게 한 것인데... 참, 동학란을 아시겠지?"
"예,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암, 의당 알고 있어야지. 역사상 조선이 망한 건 천구백십년 한일합방과 동시로 기록되어있지만, 실질적으로는 그보다 십육 년 전인 동학란 때 조선이라는 나라,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이씨 왕조라는 집권세력은 붕괴한 것이야. 국호를 바꾼다, 왕의 칭호를 높인다, 하는 짓들은 다 허수아비 발버둥에 지나지 않았던 게야. 동학란의 중요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가 있지. 첫째, 내적인 중요성으로, 농민의 힘으로 농민이 원하지 않는 집권세력을 타도하려 했다는 것이고, 이것은 곧 농민의 문제가 정치적으로 그만큼 비중이 크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지. 내가 서두에 동학란을 들먹이는 이유도 거기 있고. 둘째, 외적인 중요성인데, 외세배격이 그것이야. 동학란은 전반부에는 착취를 일삼는 부패한 봉건체제의 타도를 목적으로 싸우다가, 일본이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한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부터는 일본 놈들을 상대로 싸운 거야. 조선왕조가 그때 무너졌다는 것은, 자체 방어능력이 없어서 청국과 일본을 끌어들인 사실이 입증하는 것이지. 일본이 발악적으로 동학란의 진압에 총력을 쏟았던 것은, 첫째, 청국세를 압도하려는 것이었고, 둘째, 반도 땅을 손아귀에 넣고자 하는 자신들의 의도를 방해하는 국내 세력을 일소하고자 함이었지. 결국 일본 놈들의 우세한 무기 앞에 동학군은 패했지만, 그 의의만은 참으로 대단한 것이었네. 안으로는, 봉건왕권체제를 타도하고 자기 권리를 찾으려는 사회혁명이었고, 밖으로는 외세를 배격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전쟁을 수행했으니 말이야. 그런 의미로 볼 때 '동학란'이라는 명칭은 잘못 된 게야. 그건 어디까지나 집권세력 입장에서 붙인 것이고, '난'이란 대의명분 없이 개인적 야망만으로 무력을 행사했을 때 쓰는 명칭이야. 자체부패로 집권 수행능력이 없어 국민 절대다수의 불신을 당한 왕조에서 어찌 감히 그런 명칭을 붙일 수가 있나. 여러 이유로 그리 됐지만, 앞으로 필히 고쳐져야 할 거야. 어떤가, 지루한가?"
"아닙니다, 재미... 아니,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심재모는 '재미있다'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그 멋 적음 탓으로 자신도 모르게 뒷머리로 손이 올라갔다. 사실 동학란이라는 것을 배고픈 농민들이 일으킨 난리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지 그렇게까지 거창한 의미가 있는 것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것이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고, 더욱이, 바글거리는 소학생들을 몇 마디 구령으로 정연하게 줄을 세우는 선생처럼 조리 있게 말을 해나가는 서민영의 말솜씨가 지루한 줄을 모르게 했다.
"재미만 있으면 됐네."
이렇게 말하는 서민영의 얼굴에는 희미한 웃음이 스치고 지나갔다.
"내가 왜 이렇게 동학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을 늘어놓는고 허니, 그것이 그 후의 일제통치기간 동안의 의병활동, 삼일운동, 독립운동, 소작쟁의 같은 것과 연관이 되는 농민정신의 바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야. 자아,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농촌의 문제점에 대해선데, 그건 바로 일본 놈들이 침략과 동시에 만들어낸 것이니만큼 한일합방을 기점으로 하여 전후부터 훑어내려야 맥이 잡히게 되네. 일본 놈들은..."
일본은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승리함으로써 이권산업을 목적으로 그들의 대기업 자본을 한반도에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그때 이미 왕이나 내각은 정치 수행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로,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려는 일본, 러시아, 청국 등의 세력다툼에 따라 좌우를 모른 채 휘둘리고 있었다. 청나라를 물리친 일본은 다시 일천구백오년에 러시아와 싸워 이김으로써 우리나라와 을사보호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이 조약은 일본이 한반도를 독무대로 삼을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되었고, 식민지화를 위한 발판을 완전하게 굳힌 것이었다. 일본은 그 일 단계 작업에 착수했는데, 그것은 토지의 약탈이었다. 곡창지대인 삼남지방을 목표로 사고 대자본을 동원시켰다. 일본이 토지 소유욕을 첫 번째로 나타낸 데에는 뚜렷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 식민지화를 위한 실질적 세력 확대였고, 둘째, 이윤이 큰 사업이었다. 한반도의 농토는 일본에 비해 열배에서부터 서른 배까지 싼값이었다. 그런데 소작조건은 지주에게 수확량의 절반을 바치도록 유리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땅을 사서 소작을 주는 경우 투자이윤은 연간 이 할 삼부에서 삼 할 일 부에 달하는 기막힌 장사였다. 일천구백칠년 우리나라를 여행한 시가라는 사람은 여행기를 통해 '망망한 전주 평원의 하유일망 오만 석이 내려다보이는 곳이 일 단보에 사오 원이니, 더 말하여 무엇 하랴. 한국에 이주하라, 한국에 이주 할지어다'라고 쓸 지경이었다. 땅의 확보와 함께 일본인의 이민이 뒤따랐는데, 일천구백칠년 삼월에 십만이백팔십 명이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었다. 이들이 소유한 토지는 대략 십이만구천삼백여 정보(삼억팔천칠백구십만 평)에 이르고 있었다.
"... 그러니 이것 보시게. 이 나라는 한일합방 이전에 벌써 일본 자본주의의 식민지가 되고 말았던 게야. 이 대목에서 보자면, 일본을 탓하기 전에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먼저 반성해얄 것이네. 역사를 돌이키는 것은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데 그 목적이 있으니까. 다음은 한일합방으로 넘어가세나."
완전한 국권상실인 한일합방이 되면서 일본은 '토지조사사업'을 전국적으로 본격화시켰다. 그 목적은 첫째, 식민지 지배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조직구성의 수단으로 식민지인의 실제 재산권을 파악할 필요가 있었고, 둘째, 옛날부터 토지대장이 불완전하고 토지소유의 문서화가 불확실했던 허점을 이용하여 토지를 강탈할 계기를 만들어야 했으며, 셋째, 토지조사로 토지소유권을 확립해야만 더 많은 일본 자본을 끌어들이게 되며, 매입, 저당, 차압 등의 업무처리가 신속하게 되고, 넷째, 세금원의 확보를 위함이었다. 이미 일천구백팔년에 건립된 동양척식회사가 토지조사를 맡았다. 조선총독부가 만든 '토지조사령'이란 법령은 총독이 정한, 일정기한 내에 자기 소유의 토지를 신고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므로 기한 안에 신고를 하지 않으면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정단위별로 토지조사위원회 조직을 만들었다. 각 도의 위원장은 도지사였고, 다섯 명의위원 중 세 명은 도참여관이나 도의 부장급인 친일파 관리였고, 나머지 두 명이 지주를 중심으로 한 지방 유지들로 짜여졌다. 그 아래 조직은 지방관청의 관리를 중심으로 해서 면장, 이장, 지주대표로 구성되는 지주위원회였고, 거기에는 지방관청이 선정한 마을 지주대표 두 사람이 끼여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농민이 자기 땅의 신고서를 제출하면 그 내용을 검토하고 인정 가부의 도장을 찍는 것이었다.
토지조사가 시작되자 각 지방, 각 마을마다 말썽이 빈발했다. 그중 가장 심각한 기한 내에 신고를 못해 소유권을 박탈당하는 경우였다. 홍보의 무성의로 기한을 놓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글을 모르는 농민들이 당한 수난이고 억울함이었다. 애초에 신고제를 실시한 것부터가 그런 식의 약탈을 전제로 했던 것이다. 그 다음의 말썽은, 공동소유의 땅인데도 한 사람만 신고를 하면 그 사람에게 소유권을 인정해버려 발생하는 것이었다. 세 번째의 문제는, 현지 활동을 하고 있는 지주위원회에 소속된 지주대표가 마음대로 저지른 만행이었다. 그들이 신고서에 도장을 찍어주지 않으면 그대로 토지소유권을 박탈되는 것이었다. 그런 절대권을 가지고 그들은 무식한 농민의 땅을 가로채거나, 일부를 상납 받고 도장을 찍어주는 횡포를 저질렀다. 네 번째의 문제는, 조선시대부터 조상 대대로 경작해오던 공전을 총독부는 모조리 국유지로 편입시켜 소유권을 박탈한 점이었다. 토지소유의 문서화가 불확실한 까닭에 이름만 공전이었지 실질적으로는 사유지였던 것이다.
"결국 토지조사사업이란 일본의 악랄한 토지탈취작업이었던 게야. 자아, 이것 한번 들어보게나. 천구백십년 유월 이십일일자 황성신문에 실린 동척 중역의 말이네. '본 회사가 현재 소유한 토지는 인계받은 역둔토 및 매수지단을 합하여 약 삼만 정보에 달하니 이는 세계의 한 신례라, 식민정책에 빈능한 독일도 그 영지 프러시아 및 폴란드에서 일년간에 그처럼 많은 토지를 차지하지는 못했다. 합방의 책은 형식에 있지 아니하고 이민정책으로 동화술을 시행함에 있도다.' 어떤가?"
"괘씸하게도 약탈을 자랑하고 있군요."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왜놈이지. 이게 왜놈들의 근성인 게야. 좀 편히 앉고, 담배 피우거들랑 피우게."
"아닙니다, 안 피웁니다."
심재모는 짐짓 거짓말을 했고, 서민영은 무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토지조사는 팔 년 만에 끝났는데, 이 자료를 보면, 그 해인 천구백십칠년에 동척이 소유한 땅이 칠만사천칠백삼십팔 정보였구먼. 제일 많았던 해가 천구백이십일년으로 구만구천사백팔십 정보니까 십만 정보고, 십만 정보면 삼억 평의 땅일세. 동척은 이 나라에서 제일가는 지주가 된 셈이지. 그게 다 우리 농민의 땅이었으니, 땅을 잃은 농민들의 형편이 어떻게 됐겠나. 동척뿐만이 아니라 기존 일본인 지주와 우리나라 지주들까지 토지약탈에 가세했으니 수많은 농민들이 하루아침에 파산 당하게 되고, 농촌사회의 안정이나 질서는 파탄상태에 빠지고 말았지. 물론 토지분쟁이 끝없이 일어났어. 그러나 칼자루 쥔 놈들의 흉계가 따로 있는데 약자의 항의가 제대로 받아들여질 리가 있었겠나. 이때부터 우리 농촌의 참담한 현실이 시작된 게야."
헌병과 경찰력을 동원하면서 강행된 토지조사 결과 농촌사회는 분해와 파탄의 수렁이 되었다. 그전의 중, 소 지주가 자작농이 되어야 했고, 자작농은 자작 겸 소작농으로 몰락하는 과정을 거쳤다. 물론 이것은 대체적인 단계였을 뿐이고, 소지주에서 바로 소작농으로, 자작농에서 바로 소작농으로 전락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공전을 소유하고 있었거나, 토지소유를 문서화시키지 않고 있던 사람들이 당한 비극이었다. 그런 사람들 중의 일부는 도시 노동자가 되어 농촌을 떠나거나 떠돌이장수로 변모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의 땅을 모아들여 한편에서는 대지주가 생겨나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식민적 수탈을 목적으로 하는 식민통치방법을 체계화한 것이었다. 지주체제를 일단 구조화시킨 일제는 소작 경영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치밀한 방법으로 지주세력을 확대 강화하고, 수탈을 극대화시켰다. 첫째, 소작기간을 최대한 짧게 정했고, 둘째, 소작계약을 문서화했으며, 셋째, 고리채를 시작했다. 소작기한은 일 년이었다. 이것은 일제가 실시하기 시작한 제도였다. 그전 시대에는 소작기한이라는 것이 없었다. 일제가 소작기한을 일 년으로 한 것은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첫째, 소작기한을 짧게 함으로써 소작권의 쟁탈을 유도하고, 둘째, 일방적으로 새로운 조건을 첨부해나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 있었다. 그 결과 기본소작료 오 할 이외에도 각종 공과금(수리조합비, 지세, 비료 값, 종자 값, 타작마당 사용세, 운반비, 소작지 개간비용 등)을 소작인이 부담해야 하는 악조건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렇게 됨으로써 소작인들은 보통 수확량의 칠 할 이상, 심한 경우에는 팔 할에서 구 할까지 착취당하게 되었다.
"왜 그리 고개를 젓고 있나. 믿어지지 않아서가 아니라 기가 막혀서겠지? 그래, 식민지시대에 우리 농민들은 그리 어렵게 살았어.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이 있잖던가. 옳지, 여기에 쓸 만한 자료가 있구먼. 천구백삼십이년 사월 이십구일자 동아일보 기사일세. 들어보게나. 이 나라의 소작료가 세계 최고율로, 최고 팔 할 내지 구 할에 달하는 곳도 있다. 이는 조선총독부 당국자들이 행한 소작관행조사의 결과 판명된 것인데, 특히 우심한 곳은 삼남지방이며, 그중에서도 심한 곳은 전라도지방이다, 이리 돼 있구먼."
"선생님,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지만 그런 악조건 밑에서 농부들은 집단항의 같은 것도 못했단 말입니까?"
"아까 내가 뭐라던가? 물을 게 있으면 내 말 다 끝난 다음에 하랬지? 잊어버릴 것 같으면 적어둬. 자네가 말한 집단항의 같은 것을 '소작쟁의'라고 하는데, 왜, 치열하게 했었지. 내가 순서대로 차근차근 다 말할 테니까 진득하니 기다리고 있게나."
"네, 죄송합니다."
"소작기한이 일 년이었던 것이 전 소작의 칠 할이었어. 나머지 삼 할은 이 년이나 삼 년 정도로 길었는데, 그나마 조선인 지주들이 베풀어준 은혜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자기 이익 앞에서는 조선인 지주들도 거의가 일본 놈 지주들과 똑같았어. 일본의 식민정책은 어디까지나 지주를 보호하는 것이었으니까 조선인 지주들도 법의 보호를 받아가며 마음대로 착취했고, 그 대가로 식민정치를 북돋우는 기부금이다 헌납이다 했던 거지."
소작계약을 문서화하는 것도 일본인들이 고안해낸 방법이었다. 그것은 첫째, 소작인의 정확한 거주 파악과 대리소작을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소작인들에게 법적 구속력을 과시함으로써 계약조건을 위반할 수 없게 했고, 만약 계약조건을 위반했을 때는 법적 조처를 취할 수 있게 함이었다. 일본이 고리대금을 공공연하게 실시했던 것은, 첫째, 가장 손쉬운 금전 이윤을 취하기 위함이었고, 둘째, 농토를 빼앗기 위한 적극적 수단이었다. 농민들을 상대로 한 금리는 연 일 할이 부에서 사 할 내지 오 할에 이르는 고리였다. 어떤 피할 수 없는 사정으로 이런 고리의 돈을 빌려 쓰게 되면 결국 그 이자 때문에 가산은 파산하게 마련이었다. 해가 갈수록 소작인의 수가 증가했던 것은 바로 이 고리채 때문에 자작농이나 자작 겸 소작농들이 농토를 상실해갔던 것이다. 그리고 소작인들의 경우는 빛을 갚지 못해 입도선매나 입도압류를 당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선생님, 죄송스럽습니다만 하도 답답해서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지주에게 칠팔 할씩이나 바쳐야 하는 소작인의 입장에서 입도선매나 입도압류를 당해 쌀 한 톨 구경하지 못하면 그 사람들은 무슨 수로 살았단 말입니까?"
심재모의 어조에는 비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래, 분이 솟을 만한 일이지. 그러니 소작인들의 생활이 어디 생활이었겠나. 춘궁이라는 말만이 아니라 추궁이라는 말이 왜 있었겠나. 가만있어 보게나, 내가 뭐라느니 보다 왜놈이 직접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이 더 실감나지 않겠나. 그래, 여기 있구먼. 이건 농업경제학자 히사마켄이치라는 자가 쓴 거야. 어디, 들어보게. '...밥은 죽으로, 쌀은 잡곡으로, 그 잡곡도 만주산 조로, 그러나 실제로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만주산 조를 사먹는데도 형편이 어려워, 조선술의 찌꺼기나 쌀겨를 극소량 섞은 야채나 마른 풀잎사귀로 끓인 멀건 죽으로 연명하며, 그것마저 얻기 어려울 때면 친척 일가의 집을 전전하며 강제식객 노릇을 하거나, 그것도 여의치 못한 삶들은 거지가 되어 각처를 유랑 걸식하고 있다. 소작계급의 농민으로 일 년간의 식량을 지탱하는 자는 극소수이고, 봄, 여름의 보릿고개나 칠, 팔월 경에 이르면 식량이 떨어져 지주로부터 벼나 그 밖의 식량을 빌려 먹는 자가 많고, 추수기에 이런 부채의 상환과 소작료를 물고 나면 식량이 얼마 남지 않으므로 매년 식량을 빌려 먹는 자가 적지 않다.' 이런 지경이었으니 빚 탕감을 위해 딸을 지주에게 바치는 일쯤 예사였고, 마누라를 탐하면 마누라까지 바쳤고, 그래서도 못 견디게 되면 야반도주를 해서 만주나 간도로 가거나 화전민이 되기도 했었지. 소작인들의 생활은 그렇게 비참한데도 지주들의 횡포는 갈수록 심해졌어. 소작료 선납제를 쓰는가 하면, 계약 시 보증금 제를 만들어내기도 했으니까 말야. 그렇게 미리 착복한 돈으로 무얼 했겠나. 소작인들을 상대로 고리채놀이를 했다네. 소작인들이 당한 것은 그뿐만이 아닐세. 지주 집의 관혼상제 때마다 불려가 아무런 보수 없는 부역노동을 해야 했어. 그게 일 년이면 열흘 이상씩이었지. 그런 것 외에도 소작인들은 사음(마름)에게도 시달리지 않았나. 추수 때면 으레 술, 닭, 계란, 밤, 곶감, 조청 같은 것들을 상납해야 했지. 그렇지 않으면 소작이 떨어지는 걸 어떻하겠나. 일본 놈 마름은 농감이라고 따로 불렀는데, 그자들의 횡포야말로 대단했었지."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도망을 한다
매끈매끈 먹기 좋은 쌀올벼쌀은
호미속 바람에 도망을 한다
아무렴 그렇지 그렇고말고
아팝 먹기 좋은 줄 누가 모르나
주린 배를 달래며 고된 농사일을 하는 소작인들이 시름 겨워 부른 노래였고, 소작권마저 박탈당한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며 읊조린 노래였다.
계약조건을 위배하지 않았는데도 소작권을 박탈당한 것은 두 가지 경우였다. 첫째는 농민이민을 본격화하면서 일본인들과 교체를 시킨 것이었고, 둘째는 소작쟁의나 농민운동 갚은 것에 가담하거나 연루되었을 때의 보복조처였다. 당시 일본인의 농업이민은 일백만 명을 헤아렸다. 우리나라 전인구의 팔 할이 농민이었고, 농민의 팔 할이 소작농이었으며, 소작농의 팔 할이 절량농가였던 것이 식민지시대의 현실이었다.
맨발로 헤매며 논에 왔노라
집에 병들어 누운 아내를 생각하며
서 마지기 조그만 나의 논에
파랗던 어린 모는 가뭄에 타 마르고
쪼개진 논바닥엔 새우새끼 누웠고야...
아, 이 모양 차마 보기 어려워
나는 논두렁 치며 엉엉 울었노라
해 넘어가는 것도 그저 모르고.
시인 장만영이 일천구백삼십이년에 쓴 시 '농부의 설움'이다.
"지금까지 전반적인 실태를 얘기했으니까, 이제부터는 아까 자네가 물었던 소작쟁의에 대해서 얘길 하지. 어찌, 지루하지 않으신가?"
"아닙니다. 정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다행이군. 얘기도 얼마 남지 않았어. 그러니까, 그런 악조건 아래서 사람이 견딘다는 것은 한계가 있는 법이지. 그런 악조건을 개선해야 하는데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고, 그래서 자연히 힘이 뭉쳐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게지. 암암리에 뭉쳐진 그 농민의 힘이 거국적으로 폭발한 것이 바로 삼일운동 아니었겠나. 자네 거 기미독립선언문이라는 것 내용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는데, 그 내용을 보면 허약하고 나약하기 짝이 없어. 평화적으로 독립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 골잔데, 정작 그 실행 자체는 어떠했나 말이야. 규모에 있어서 전국적이었고, 방법에 있어서 투쟁적이었던 거야. 그렇게 된 것이 누구에 의해서였겠나. 그게 바로 농민들 힘이였어. 농민들은 그 기회를 이용해서 일본 놈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고자 했던 것이지. 그런 의지가 아니고서야 전국적으로 일시에 일어났을 리야 없고, 투쟁도 그렇게 격렬해질 수가 없는 일이지. 내가 만나본 바 없으니까 장담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아마 민족대표라는 사람들도 그렇게 범위가 확산되고 치열한 항쟁이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을 거야. 농민들이 그렇게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은 생존권을 쟁취하고자 한 누적된 욕구의 폭발과 동학 봉기의 정신이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일 게야. 그 투쟁에서 죽은 농민이 팔천여 명, 검거된 농민이 오만삼천여 명이었으니, 삼일운동의 실질적 주체는 농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걸세. 삼일운동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농민들은 어떤 일체감을 발견하게 되지. 자기는 혼자가아니라 어떤 큰 힘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자각, 그것을 굳이 이름 붙여보자면 '민족적 자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 천구백이십년대부터 해방이 되기까지 전국 도처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던 소작쟁의는 그런 자각 아래서 벌인 생존권의 투쟁이었고 항일운동이었던 거야. 조직화된 힘으로 우리나라 최초로 소작쟁의를 일으킨 곳이 어딘지 아나? 바로 육십 리 밖에 있는 순천에서였네. 삼일운동 다음 해인 천구백이십년 그들은 '농민대회'라는 단체를 결성하고'부당한 소작권 이동 폐지'를 내걸고 투쟁한 거야.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 단체를 시작으로 해서 농민단체가 해마다 늘어났는데, 삼십 년 후인 천구백삼십삼년에는 전국으로 일천삼백오십일 개로 확산된 점이야. 천구백이십년부터 일제는 그 악질적인 치안유지법을 시행했는데도 힘의 조직화와 체계화를 꾀하는 농민단체 수가 가속적으로 늘어났음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겠나. 삼일운동을 통해서 얻은 민족적 자각 의지가 그렇게 표출된 것이네. 소작쟁의는 다 그 단체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지. 소작쟁의의 요구조건은 대체로, 소작권의 이동 반대, 소작료의 인하, 소작료 체납제 실시, 각종 공과금의 지주 부담, 사음제도 폐지, 소작인의 사역 폐지 등이었지. 소작인들로서 당연히 주장할 것을 주장한 것이야."
일천구백삼십년대로 접어들면서 소작쟁의는 한층 격렬해지기 시작했다. '토지는 농민의 것으로' '일제를 타도하라' 같은 전투적 구호를 내걸고 주재소, 동척 지사, 군청, 면사무소 등을 습격하고 파괴했다. 그것은 경제투쟁이 정치투쟁으로 변모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라 일제는 철저한 탄압을 가중시켰다. 농민단체는 성격상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었다. 첫째, 공산주의적 성격, 둘째, 민족주의와사회주의가 복합된 성격, 셋째, 온건한 성격이었다. 단체수로는, 첫째의 것이 이백육 개, 둘째의 것이 일천구십육 개, 셋째의 것이 일백사십구 개였다. 그런데 일제는 거의 모든 농민단체들이 공산주의운동을 하는 것으로 몰아 치안유지법으로 탄압을 가했다. 농민단체들은 해체의 위기를 맞았고, 공산주의 성격의 단체들은 지하로 잠적했다. 일제는 그들의 농민운동을'적색농민조합운동'이라고 부르며 탄압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이렇게 지주의 착취와 소작쟁의와 무력의 탄압이 뒤섞이면서 천구백삼십년대가 지나고, 천구백사십년대로 접어들면서 장기화하는 중일전쟁을 치르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랴, 일제의 발악이 극에 달했으니 농촌의 피폐는 더 말할 것이 없었지. 농민은 지주의 착취만이 아니라 징용, 징발, 징병, 여자정신대, 보국대 등의 대상이 되었고, 공출이 의무화되었던 게야. 공출도 쌀만이 아니고 잡곡, 면화, 삼, 채소, 고사리, 칡넝쿨까지 사십여 종을 헤아렸으니 농민 생활이 어찌 됐겠나. 그렇게 기막히게 몇 년 살다가 해방이 된 게야. 여기까지가 제일단계네."
서민영은 깊은 눈으로 심재모를 바라보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의 입가에는 침 찌꺼기가 희게 말라붙어 있었다.
"선생님, 뭐라고 감사의 말씀을 드려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심재모는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분의 진지한 태도와 최선을 다하는 성의가 가슴을 뻐근하게 저리게 했다.
"고맙기는, 열심히 들어줘서 내가 외려 고맙구먼. 그럼 제이단계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이 얘길 끝내기로 하지. 제이단계란 말할 것도 없이 해방 이후와 미군정이 되겠지. 이북을 쏘련군이, 이남을 미군이 점령하고 양쪽에 식의 정권을 세우려고 한 의도야 너무 자명한 것이니 더 말할 필요가 없겠네. 그런데, 미쏘가 서로 자기네 식 정권을 세우는 데 있어서 차이점을 보였으니, 그게 중대한 문제네. 그 차이점이란 공산주의다, 자본주의다 하는 체제의 다른 점이 아니라 그 체제를 꾸미는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를 말하는 것이네. 이북은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은 완전하게 정치적 사회적으로 숙청을 단행해버렸네. 그래서 오십만이 넘는 친일반민족자들이 삼팔선을 넘어 이남으로 도망을 나왔네. 그런데 이남에서는 이북과는 반대로 오히려 친일반민족자들을 옹호하고 보호하며, 그들을 핵심세력으로 해서 정권을 세워나갔네. 그 차이란 뭔가? 한쪽은 절대다수의 민중들이 권력기반을 이룩했는데, 다른 한쪽은 극소수의 반민중들이 또다시 다수민중들을 노예화한 것이네. 다시 말해 그것은 물이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순리와, 그 물을 낮은 데서 높은 데로 거꾸로 흐르게 하려는 역치와의 차이다 그 말이지. 그 차이에 따라 당연하게 나타난 현상이 이북의 전면적인 토지개혁 단행과 이남의 법조차 아직까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처사 아니겠나? 군정이 그런 역리를 저지르면서 야기된 사회적인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자네가 알고자 하는 문제로 국한시켜 살펴보자면 사십육년 시월부터 십일월까지 두 달 동안에 일어난 대대적인 민중봉기를 들어야겠지. 자네, 내가 말하는 것 그 사건이 뭔지 모르진 알겠지?"
"예, 대구에서 일어난 십일폭동을 말씀하시는 것 아니신가요?"
"맞네. 십일폭동이라... 그래, 자네가 군인이니까 그렇게 부르는 것을 이해해야겠지. 명칭에 대해선 내 이야기를 먼저 듣고 나서 생각해보도록 하세. 농민들이 주축이 되고, 학생이나 선생들까지, 그러니까 민족적 양심과 사회적 정의를 가진 모든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일어난 그 사건은 미군정에 대한 전체적인 항거인 동시에 미군정 정책의 전면적인 실패를 입증한 것이었네. 친일반민족세력을 옹호하다보니 그들의 반대에 부딪혀 토지개혁이거나 농지개혁은 실행할 수가 없지, 그러면서 미곡수집책은 강제로 단행해서 민중의 생활은 도탄에 몰아넣지, 친일파세력의 횡포는 날로 심해져가지, 이런 군정에 대해 모든 민중들의 불신감은 깊어질 대로 깊어지고, 불만은 쌓일 대로 쌓여 터지고만 것이 바로 그 사건이네. 그 사건이 일어나면서 외친 구호들이 다양했는데, 그것을 간추리면 세 가지야. 첫째가 미곡수집 없애고 토지개혁 단행하라는 생존권과 직결된 문제였고, 둘째가 조선은 미국의 식민지가 아니라는 민족의 자존심과 연결된 문제였고, 셋째가 경찰이나 포악한 지주들의 표적으로 삼은 친일반민족세력의 척결문제였지. 그 세 가지는 바로군정이 안고 있는 현실적인 정치문제였던거야. 민중들은 무서운 기세로 일어났는데, 그 큰 규모로 보거나 그 치열하게 싸운 도로 보거나 그건 단순한 사건이 아니었어. 그건 군정을 상대로 한 일종의 전쟁이었지. 나도 그 틈에 끼었던 한 사람으로서, 미군들이 행사한 폭력은 가관이었지. 완전히 적을 섬멸하는 식으로 탱크는 말할 것도 없고 비행기까지 하늘에 띄웠으니까. 미군이 점령군이고, 우리 땅을 식민지화하려는 의도를 숨김없이 증명했던 것이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죽은 사람들보다 몇 배가 부상을 당했고, 부상당한 사람들보다 몇 배가 잡혀 들어가 고문을 당했고, 그리고 수없이 감옥에 갇히게 되었네. 그 정황은 어느 모로 보나 내가 앞서 말했던 동학혁명의 재현이라고 해야 옳아. 그래서 내가 아까 '십일폭동'이라 하지 않고 '민중봉기'라고한 거네. 그건 나 혼자만 그리 부르는 것이 아니라 당시의 신문들도 한둘을 빼놓고는 다 민중봉기라고 썼던 거지. 물론 경찰에서는 가담자들을 모두 좌익으로 몰아대는 상투적인 악의를 저질렀지. 그러나 좌익은 극소수였고, 거의가 순수한 민족애와 절박한 생존욕구를 가진 사람들이었지. 결국 그 봉기가 실패로 끝나자 미곡수집은 강행됐고, 경찰을 포함한 우익의 횡포는 앙갚음이라도 하듯이 날로 심해지면서 오늘에 이르렀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하게 지적할 대목이 있네. 그때 봉기가 궁지로 몰리면서 경찰에서는 젊은이들을 무작정 잡아들였는데, 그 위험을 피해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로 들어갔네. 그들의 상당수가 십사연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네."
"아니, 그게 그렇게 됩니까?"
심재모가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네. 이 세상일이란 시작 없는 끝이 없는 법이고, 나무는 괜히 흔들리는 법이 아니지. 어쩔 수 없이 군인이 된 그 젊은이들이 현 정권이나 경찰에 품은 원한을 잊었을 리 만무고, 더구나 수많은 농민들이 갈수록 심해지기만 하는 정책 시행에 시달림을 당해오면서 가슴속에 채곡채곡 쌓은 게 뭐였겠나? 자아, 이만 내 얘기는 끝내기로 하겠네."
서민영은 마른 입술을 훔치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선생님,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심재모는 머리를 조아리고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이번 사건도 일종의 소작쟁의인데, 아둔한 저로서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방도가 생각나지 않습니다. 정 사장이 나쁘고, 소작인들의 요구가 정당하다는 쪽으로만 생각이 기울었는데, 선생님 말씀을 듣고 더 그쪽으로 기울어집니다. 그렇다고 제 입장에서 소작인들을 바로 풀어줄 수도 없는 일입니다. 무슨 좋은 방안이 없겠습니까?"
"소작인들의 입장을 이해하는 건 참 고마운 일이네. 그런데... 그들의 행위는 도의적인 문제일 뿐 법적으로 폭행과 주거침입에다 재산파손까지 했으니... 자네 입장이 딱하네그려. 낸들 당장 묘책이 있을 리 있나. 두고 생각해보겠네. 그런데 말일세, 그 사건을 자네 권한 내에서 처리할 수는 있는가?"
"네, 계엄 상태니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무슨 방법이 있겠구먼."
눈을 내리감은 서민영은 느릿느릿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지주와 소작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한 빨갱이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이번 반란사건도 공산주의자들의 반란만이 아니라 일제 때의 소작쟁의 같은 성격이 있다고도 보아지는데, 제 생각이 틀렸습니까?"
"허어! 군인으로서 마땅한 말은 아닐지 모르지만, 아주 정곡을 찌르는군 그래. 평소의 식견인가, 교육의 효관가?"
눈을 크게 뜬 서민영은 밝게 웃고 있었다.
"물론 교육의 효과입니다."
심재모는 쑥스럽게 웃었다.
"그렇네, 내가 처음에 농민의 문제가 곧 나라의 문제라고 하지 않았나. 이 나라는 지금 가장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덮어놓고 있네. 식민지시대 지주들과 결탁해서 권력을 잡은 정부이기 때문이야. 지주치고 친일파고 민족반역자가 아닌 자는 일 퍼센트도 안 될 걸세. 앞에서 살펴본 바대로, 그들은 일제치하에서 누린 부귀와 지은 죄로 해방과 동시에 마땅히 모든 기득권을 박탈당했어야 했고, 민족 앞에 사죄했어야 했네. 그리고 모든 소작인들은 일제치하에서 겪은 굶주림과 당한 고통의 대가로 마땅히 지주들의 소유를 분배받았어야 하네. 그런데, 미국의 세력이 작용하고, 이승만은 집권야욕으로 민족을 배반하고, 지주계급들은 자기방어를 위해 뭉쳐지고, 서로를 위해 상호작용을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네. 내가 크게 우려하는 바는 지주계급들로 이루어진 현 정권이 농민이나 반대세력권을 일본 놈들 식으로 무작정 공산주의로 몰아가는 것이야. 그 방법은 모든 계층, 모든 분야의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들한테까지 퍼져나가 공산주의를 자기네들의 방어를 위한 적극적인 공격무기로 사용하고 있는 실정 아닌가. 이거야말로 어불성설이고 주객전도야. 참으로 큰일 날 일이지. 일본 놈들한테 배워도 못된 것만 배웠지. 일본 놈들은 하나님 믿는 나 같은 사람도 공산주의자로 몰아댄 형편이었으니까, 농민운동에 가담한 농민들의 경우에는 더 말할 것이 없었지. 물론, 앞에서 살폈듯이 농민단체 중에는 공산세력이 이끌었던 게 있었어. 그러나 거기에 연관된 농민 전부를 공산주의자로 모는 건 위험천만한 경솔이고 악의야. 설령 그들이 공산주의적 구호를 외쳤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한 소작쟁의의 수단일 뿐이었어. 그들이 마르크스 철학에 대한 신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된 정치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야. 다만 감상적이거나 소영웅적인 지식인이나 지하 공산조직이 그들을 이용했을 뿐이야. 지금도 형편은 마찬가지지. 당장 농지개혁을 단행해 논밭을 무상으로 분배해봐. 벌교지역을 예로 들더라도, 이번에 입산한 농민들의 구십 퍼센트는 아마 하산하게 될 거야. 자기네들의 절대 목적이 성취됐는데 공산주의를 추종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말야. 현 정부는 그 간단명료한 원인해결은 하려 하지 않고 공산주의만 척결하려 하고 있어. 말이 해방일 뿐이지 정치하는 방식이나, 지주들이 그대로 군림하고 있는 것이나, 변하지 않은 소작조건이나, 그대로 일정시대의 연장인 게야. 그러니 소작쟁의가 계속될 수밖에. 친일파 지주계급들, 참 짐승만도 못한 족속들이야. 일제 때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군정과 야합해서 더 부자가 되지 않았는가 말이야. 적산을 차지한 게 다 그들 아닌가. 그 부귀영화를 지키기 위해서 앞으로도 반대세력은 계속 공산주의자들로 몰아붙이겠지. 이미 정치적으로 국토와 민족이 분단됐는데, 그것도 모자라 반쪽에서지만 민족 분열까지 조장하고 있는 게야. 이런 식으로 나가다간 점점 더 문젯거리가 생길 거야. 이 나라 장래가 큰 걱정이네."
책 냄새 그득한 방에는 침묵이 한 겹씩 내려앉고 있었다.
26. 겨울달빛 실린 고샅길
안창민의 어머니 신씨는 햇볕이 가득한 마루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쪼그리고 앉은 모습은 조그마했고, 아무런 표정이 없는 초로의 얼굴에는 병색과 함께 깊어 보이는 근심기가서려 있었다. 신씨는 테러를 당한 후유증이 거지반 회복되어가고 있을 즈음에 병원사건 소식을 알게 되었다. 아들이 다리에 총을 맞고 병원에 숨어 있었다는 것도, 신씨에게는 테러를 당한 것보다 더 심한 마음의 병이 되었다. 아들이 피했다니까 그나마 다행이지만, 다리에 총을 맞은 몸으로 산 생활을 할 아들 걱정으로 신씨는 다시 앓아 눕고 말았다. 눈만 붙이면 외다리의아들이 나타나거나, 죽은 아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었다. 신씨는 아들을 만나고 싶은 안타까움과 만날 수 없는 고통을 병으로 앓았다. 끓었다 식었다 하는 열에 시달리면서 신씨는 그저 나무관세음보살만 엄하였다. 그러면서 마음은 깊고 깊은 산골짜기들을 지향 없이 헤매고 있었다. 산은 언제나 자비로워 무슨 죄든 짓고 쫓기는 죄인을 다 보듬어 피난은 시켜주었다. 그러나 머리카락 검은 짐승은 끝까지 배겨내지 못하고 산을 벗어나 화를 만나는 것이었다. 그저 관세음보살만 염하면서 꼭꼭 숨어 견뎌라. 신씨의 마음은 그 말을 당부하면서 산골짜기 골짜기를 헤매고 있었다. 아들을 걱정하는 마음 한편에는 원장과 이지숙 선생에 대한 염려가 떠나지 않고 있었다. 고마움과 죄스러움이 생각할수록 가슴 저리게 했다. 물질로 갚아지는 것이 아닌 고마움은 어찌하는 도리가 없더라도 죄스러움에 대한 자기 몫을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신씨는 하루라도 빨리 몸을 일으키려고 애썼던 것이다. 사나흘 전부터 열의 오르내림이 없어지면서 한기도 도지지 않았다. 기운을 얻으려고 밥도 일삼아먹었다. 뼈마디의 저리고 시림이 점차 물러나 앉으며 몸에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바람 끝이 맵싸한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지만 맑고 깨끗한 햇살에 이끌려 마루로 나앉은 것이었다. 신씨는 이지숙을 생각하고 있었다. 선생 이지숙이 아니라 여자 이지숙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방 서방이 전하는 말을 들으면 재판에 넘겨지기 전에 벌써 말 못할 고초를 당한 모양이었다.
"모다 사랑혀서 헌일로 낙착되어 빨갱이죄는 면했다는구먼요. 을매나 다행시런 일인지 몰르겄구만이라. 고상헌 끝이 있어 참말로 잘된 일이구만요"
방 서방은 그런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된 것까지도 기쁨인 듯 연방 벙글거리며 말했었다. 신씨는 이지숙이 빨갱이 죄를 면했다는 것도, 시무룩한 얼굴로 드나들던 방 서방이 오랜만에 웃음 짓는 것도 기쁨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이내 식고 말았다. 모두 사랑해서 한 일... 그 말 앞에는 이지숙 선생이 여자 이지숙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신씨는 여자 이지숙을 의식하는 순간 가슴이 메이는 슬픔을 느꼈다. 진작 그런 눈치를 못 챈 것은 아니지만, 여자의 몸으로 남들 앞에 그런 발설을 했다는 것은 이미 한 남자에게 일생을 바칠 각오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신씨는 아들의 평탄하지 못할 앞길과 함께 그런 아들을 사랑하는 이지숙한테서 가엾고 안스러운 한 여자의 일생을 보았던 것이다. 어쩌면 신씨는 이지숙의 모습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다. 이제 이지숙이를 놓고 며느리감으로서 적합 여부를 따질 단계가 아님을 신씨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지숙은 아들을 무사히 도망시킨 은인이었고, 그 죄로 갇히기까지 했다. 이지숙은 당당히 남편을 얻은 것이고, 자신은 이지숙을 며느리로 맞아들일 것을 신씨는 이미 마음속으로 정하고 있었다. 마음을 정하게 되자 안쓰러움과 가엾음은 한결 진하게 가슴을 채우는 것이었다.
"아짐씨, 바람끝이 매운디 감기 들리면 워쩌실라고 이리 나와 기신가요오?"
대문을 들어서던 방 서방이 놀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방서방의 얼굴에는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연했다. 마루에 나앉을 만큼 기운을 차렸다는 것이 방 서방으로서는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머 헐라고 또 오시는가."
신씨는 망연하게 던지고 있던 눈길을 모으며 걱정스레 말했다.
"나온 지 을매 안되네. 앉소."
신씨는 흐트러지지도 않은 치맛귀를 여미며 작게 웅크린 몸을 약간 꼼지락거렸다.
"요것, 잣죽에다가 갈치속젓으로 무친 배추속이구만이라. 묵을 만허든디, 죽 식기 전에 얼렁 잠 드시씨요."
"이 시끌시끌헌 시국에 귀헌 잣은 어찌 또 구했는고. 너무 애쓰지 말소. 나가 옹색시럽네."
"와따, 옹색시럼기는 머시가 옹색시러라. 우리가 입고 있는 음덕에 비허먼 요런 것이 무신애쓰는 것이간디라. 그라고, 시국이 시끌시끌헌 것은 사람찌리의 일이라 잣은 잣대로 장에 나온께 쉽게 구허는구만요."
방 서방은 둥실둥실하게 생긴 무던한 얼굴에 웃음을 담아가며 이야기했다.
"방 서방 안사람이 고상이제. 잣죽이 손 가는 음식이니. 앵글어 보낸 가실댁 정성을 생각혀서라도 한 술 떠야제."
신씨는 두 손을 무릎에 받치고 힘겨웁게 몸을 일으켰다. 방 서방은 위태위태한 기분으로 신씨의 거동을 지켜보며, 저 맘씨 고운 마나님이 아들 땀세 질레(지레) 무신 일 당허겄다, 속으로 혀를 차고 있었다. 신씨가 몸을 제대로 가누기를 기다려 방 서방은 방문을 열었다.
"읍내 무신 일 웂제?"
신씨는 문지방을 넘어서며 물었다. 방 서방이 올 때마다 묻는 똑같은 물음이었다.
"야아, 술도가집 일 말고는 별일 웂구만이라."
"그래, 그 일은 워찌 돼가는고?"
"안직 무신 변동이 웂이 그러고 있구만요. 조사가 덜 끝났다고 허드만이라."
"인제라도 정사장이 나서서 풀어주라고 해야 헐 것인디. 불쌍한 사람덜헌티서 소작 뺏었으먼 됐제 죄꺼정 살리겄다고 혀서는 안 될 일이제. 사람이 천년만년 사는 것이 아닌디, 정 사장도 욕심쪼끔 줄이고 넘 가심에 못 치는 일 안혀야 쓰는디."
신씨는 중얼거리듯 말하며 아랫목 요위에 더디게 앉았다. 그 낮은 어조에는 걱정스러움이 젖어 있었다. 방 서방은 요 밑에 손부터 넣어보았다. 방 공기에서 별로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대로 방바닥은 미지근했다.
"수저꺼정 다 챙게왔응께 드시고 계시씨요. 지는 나가서 군불 잠 때고 오겄구만요."
"심드는디 그만두시게. 나 안 추워."
"심은 무신 심이 들어라. 젊은 지가 썰렁헌디 아짐씨야 나이 잡순디다가 몸할라 성찮으신디요."
신씨는 고개를 보일락 말락 끄덕이며 보자기를 끌렀다. 방 서방을 중심으로 다섯 명의 작인들이 지성스럽게 돌보아주는 것이 신씨는 더없이 고마울 뿐이었다. 잣죽은 놋그릇에 담긴데다가, 그릇을 다시 솜 보자기로 감싼 탓에 금방 솥에서 퍼낸 것처럼 따끈따끈했다. 알뜰살뜰한 가실댁의 정성이 잣죽만큼 따끈하게 신씨의 가슴에 전해져왔다. 보시기에 담긴 배추속무침은 보기만으로도 맛갈스러워 어금니 사이에서 신침이 배어났다. 고춧가루를 아끼지 않고 써서 색깔이 고운 데다가 실고추와 참깨까지 뿌려놓아 식욕을 돋우고 있었다. 전라도 젓갈이라면 팔도에서도 유명했고, 그중에서도 갈치속젓은 으뜸이었다. 신씨는 갈치속젓의 고소름한 향내를 맡으며 숟가락을 들었다. 소작인들의 지성스러움은 다 신씨의 베품이 되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신씨는 자신의 베품을 잊어버리고 소작인들이 알뜰하고 깍듯하게 하는 것만을 고마워하고 소중하게 여겼다. 애초에 소작료를 파격적으로 내릴 적을 제안한 것은 안창민이었고, 신씨는 아무런 이의 없이 동의했던 것이다.
"그 동안 소작료를 높게 받았던 것은 제가 학교를 다녀야 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만 제가 인제 월급을 받게 됐으니 당연히 낮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장한 생각이다. 그리 혀야지."
안창민의 소작인 다섯은 사 할씩 내던 소작료를 이 할씩만 내게 되었던 것이다. 안창민의 말로는 전에 소작료를 높게 받았다고 했지만, 사 할씩 받아들인 데서 제세공과금을 물었으므로 안창민네 작인들은 다른 작인들에 비해 엄청난 혜택을 받아온 터였다. 소작료를 이 할로 내리고 나서도 만족해하지 않는 아들의 마음을 신씨는 말없는 속에서 다 헤아리고 있었다. 아들이 남모르게 하고 있는 운동이 무엇인지 신씨는 대충 윤곽을 잡고 있었던 것이다. 언젠가 아들은 소작료를 안 받는 것만이 아니라 농지의 소유권까지 소작인들에게 넘겨주자고 하리라는 것을 신씨는 예측하고 있었다. 그 시기는 아마 아들이 하는 일을 남들에게 숨길 필요가 없게 될 때일 것임도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 날이 오면 신씨는 또 아들의 의견을 따를 마음이었다. 그건 아들이 하는 운동을 이해해서도 아니었고 동조해서도 아니었다. 부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채우고 사는 신씨로서는 재물에 별다른 애착이 없었다. 신씨는 그 먼먼 날의 인연 이후 부처님의 말씀의 바다에서 두 발 다 빼본 일이 한시도 없었다.
"쪼깐 기둘리먼 방이 뜨셔질 거구만요."
방 서방이 윗목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애썼네. 편히 앉게나."
"야아. 워쩌신게라, 짐치가 잡수실 만허신게라?"
"어이, 맛나네. 그래 이리 잣죽을 다 묵은 거 아닌가. 가실댁이 워낙에 손끝이 매시라운 사람이제."
"그 멍청이가 머... 워쨌거나 아짐씨가 많이 드신 걸 본께로 지 맘이 아조 좋구만이라."
방서방은 잣죽 그릇이 거의 다 비워진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방 서방, 장날이 언젠가?"
"이틀... 아니구만요, 바로 내일인디요."
"내일 장에 쌀을 다 냈으면 허는디, 자네가 손이 나겄는가?"
"하먼이라. 김 서방, 장 서방불러서 후딱 해치워뿔제라. 근디... 인자 시안(겨울)이 시작인디 워째서 쌀얼 다 내실라고..."
방 서방은 신씨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묻고 있었다. 자기네들이 바치는 소작료가 손바닥 들여다보듯 환해서 앞으로 일년을 살아내자면 쌀이 별로 여축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 더구나 안창민의 벌이도 없어진 형편이었다.
"광고헐 일은 아니고, 방 서방이 알아서 안 될 일도 아니시. 우리 창민이 살리니라고 병원 원장님이 그 고초를 당허고 기신디, 내가 워찌 손 묶고 앉어 있어야 허겄는가. 기동을 헐 수 있게 됐응께 내 힘 닿는 디꺼지는 뒷수발얼 혀야제."
"그렇구만이라. 원장님이나, 이 선상님이나, 간호부나 다 고마운 사람덜이제라."
방 서방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아침 일찍허니 냈으먼 싶으네."
"시세가 스자먼 오정 때나 돼야 헐 것인디요. 긴허게 쓸 돈인디 한 푼이라도 더 받아야제라."
"맘이 급헌께 오기는 일찍 오시게."
"그리 허겄구만요."
"그라고 지끔 가는 길에 봉림 김범우 선생님 찾아뵈웁고, 나가 잠 만났으먼 허드라고 전헐란가?"
"하먼이라. 김 선생님이 안 기시먼 안어른헌테 전해도 되제라?"
"안어른? ... 아니여, 그리허먼 맘 쓰인께..."
"알겄구만요. 한 행보 더 허드락도 김 선상님얼 꼭 만나겄구만요."
방 서방이 시원스럽게 말했다.
"그려, 고맙네."
"참말로 아짐씨도 무신 말씸을..."
"오래 있었는디 인자 가보시게."
"야아, 바로 김 선상님댁에 가겄구만요."
방 서방은 빈 보퉁이를 들고 일어났다. 방 서방은 빠른 걸음으로 고샅을 걸으며 안창민을 생각하고 있었다. 크지 않은 체구에 비해 통이 크고, 그다지 잘 생겼다고 할 수 없는 인물에 비해 세상 이치 모르는 것 없이 똑똑한 사람이었다. 나라에서는 죄인 취급을 할망정 자기네 소작인들한테는 더없이 고맙고 존경스러운 사람이었다. 안창민의 속 깊음도 깊음이었지만, 그 어머니 신씨의 한량없는 마음 넓음도 눈물 겹게 고마울 따름이었다. 그분은 펄쩍 뛰는 것이었지만 작인 등의 입에서는 저절로'생불'소리가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아저씨들은 우리 집 종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마님이니 마나님이니 하지 말고 그냥 아주머니라고 불러요."
'마나님'을 '아짐씨'로 바꿔 부르며 자꾸만 더듬거렸던 것은 입버릇이 재빨리 고쳐지지 않기도 해서였지만, 그보다는 꼭 죄를 짓는 것 같은 황송함 탓이었다. 자기네들을 스스럼없이 '아저씨'라고 불러주는 안창민의 그 과분한 사람대접은 소작료를 내려주는 것만큼이나 고마운 일이었다. 자기네가 신씨네 소작을 부치고 있음을 작인들 모두는 천복을 받은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방 서방은 김범우네 작인 방찬돌의 친동생이었다. 자기네 형제가 복이 많아 인심 좋은 주인을 만났음을 방 서방은 항시 마음에 새기고 있었다. 그 겸손하고자 하는 마음 한구석에는 형에게 으스대고 싶은 유혹이 간지럼처럼 스멀거리고 있었다. 김사용 어른네가 아무리 인심 후하다고 소문이 나 있지만, 소문이 안 난 신씨네의 인심에는 비할 바가 아니었던 것이다. 병원사건이 일어난 다음부터 방 서방은 청년단에 몸담고 있는 조카 만복이를 뻔질나게 찾아다녔다. 그 사건에 관련된 것이면 무엇이나 속 빠르고 정확하고 자세하게 알기를 원하는 신씨를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었다.
"작은아버지, 행여 그쪽 세포 노릇은 아니겄제라?"
"이눔아, 주딩이 찢기기 전에 닥쳐라. 은혜갚음이라고 을매나 더 말해야 쓰겄냐."
"쪼깐 삐딱혔다가는 작은아부지나 나나 절딴난께 허는 말이제라."
조카 놈한테 가당찮은 의심을 받아가면서도 찾아다닐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래도 그놈이 내뱉아주는 소식이 속 빠르고 정확하고 자세한 대목이 있어서였다. 아들 걱정으로 마음병을 앓으며 신씨가 헛소리를 해댈 때면 그대로 들쳐 업고, 징광산이고 조계산이고 샅샅이 까뒤집어 모자를 상봉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는 했다. 내일 쌀을 다 처분하게 되면, 다섯 작인이 힘을 모아 신씨를 받들어야 한다고 방 서방은 마음을 굳히고 있었다. 그것만이 큰 은혜를 받은 작은 보답의 길이라 여겨졌던 것이다.
몸피도 작고 색깔도 볼품없는 굴뚝새 한 마리가 짧은 꽁지를 깝신거리며 잎 다 떨어진 나뭇가지 사이를 포르륵 포르륵 옮겨 다니고 있었다. 잎들이 지기 시작하면서 그 무성하던 여름 숲이 시나브로 무너져 내리고, 산은 본래의 야성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숲이 있어야 사는 여름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굴뚝새 한 마리가 겨울 산의 적막 속을 헤집고 있었다.
문기수는 다리쉼을 하느라고 바위에 걸터앉아 담배를 빨고 있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시계를 보았으면서도 또 시계를 꺼내 보았다. 명령된 시간에서 아직 삼십 분이나 남아있었다. 용연사가 멀지 않았으니 시간은 충분했다. 그는 두려움을 지우려고 담배를 깊이 빨아들이며 눈길을 멀리 보냈다. 선수머리까지의 긴 포구가 한눈에 들어왔다. 왼쪽으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도방죽과 오른쪽의 장좌리 해변이 반쯤 편 쥘 부채 모양으로 선수머리를 향해 넓어지고 있었고, 선수머리 밖으로는 먼 바다가 산굽이에 가리고 숨고 하면서 아득하게 솟아보였다. 석양빛을 담뿍 받고 있는 그 풍경은 어느 때 없이 아름다워 보였다. 그 풍경에 하염없는 눈길을 보내고 있던 문기수는 자신도 모르게 긴 한 숨을 내쉬었다. 사람 한세상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문득 스쳤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에 놀라며 또 시계를 꺼내 보았다. 시간은 미처 오 분도 지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탓이었다. 그 동안 그는 자신을 나무라기도 했고, 설득하기도 했고, 욕하기도 했다. 그러나 한번 균열을 일으키기 시작한 또 다른 자기를 미워하고 비난했다. 염상진을 향하여 비겁해지고 싶지가 않았고, 더구나 배신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러면서도 상황전개에 따라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고 있었다. 그는 염상진이 읍내를 장악했을 때 그야말로 꿈꾸던 세상이 실현되었음에 전율하고 환호했었다. 그런데, 읍내를 그렇게 쉽게 장악했던 것처럼 또 그렇게 쉽게 퇴진하고 말았다. 처음의 쉬움이 염상진에 대한 영웅적 신뢰였다면 다음의 쉬움은 패자적 실망이었다.
"문 동무는 노출되지 마시오."
염상진은그 서릿발 같은 위세를 떨치면서도 속으로는 패배를 예측하고 있었던 것인가.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도면밀한 염상진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자신을 은폐시켰을 것이다. 조직의 비밀은 철저해서 일차의 경찰 검거를 무사히 넘겼고, 이차의 토벌대 검거도 무사히 넘겼고, 이제 삼차의 계엄군하에 놓이게 된 것이다. 염상진이 자신을 그처럼 철저하게 은폐시켰던 것은 이런 상황 하에서 활동시키려는 목적이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 눌려 오금을 펼 수가 없었다. 강동식이가 명령을 전했을 때는 얼렁뚱땅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일로 하여 염상진 대장은 '최후의 명령'을 내린 것이었다. 최후의 명령을 거역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는 생각조차 할 필요가 없었다. 혁명의 적으로 판단하면 가차 없는 처단명령을 내리는 것이 염상진이었다. 그런데 읍내 상황은 처음의 명령을 비켜섰던 때보다 한층 나빠져 있었다. 토벌대보다 배가 많은 계엄군이 주둔하고 있는데다가, 계엄군은 토벌대처럼 엉성하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최후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문기수는 대장 염상진을 만나 확답을 듣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문 동무, 참고 기다리시오. 혁명 성취의 날은 곧 올 것이오."
염상진의 굵고 믿음직스러운 목소리로 이런 말을 직접 들으면 마음의 금이 메워질지 모를 일었다. 문기수는 용연사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것처럼 보자기에 쌀 한 됫박을 싸들고 집을 나섰던 것이다. 산사 자리에 'M1고지'가 설치된 위험 상황인데 대장이 용연사까지 접근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이 없지도 않았다. 문기수는 시계를 꺼내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명령 시간 십오 분 전이었다. 보통걸음으로 올라가면 시간이 제대로 맞을 것 같았다. 문기수는 용연사를 먼발치로 돌았다. 부용산 칠부능선 움푹한 터에 자리 잡은 용연사는 벌써 산그늘이 덮여 햇빛 한 줄기 없었다. 잘그랑거리며 울리는 맑은 풍경소리가 절의 위치를 알리고 있었다. 문기수는 콧속으로 물씬 풍겨드는 향 내음을 맡았다. 풍경소리를 듣거나 단청을 보면 으레 맡아지는 환향이었다. 미륵불은 절 뒤로 더 올라가 바위들이 덩이를 이루고 있는 곳에 있었다. 문기수는 다시 시계를 꺼내 보려다가 그만두었다. 그 지점에서 시계를 본다는 것이 혹시 누구의 눈에라도 띄어 이상스럽게 여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갔던 것이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미륵불을 찾아 소원을 빌러 가는 불교신도여야 했다. 그는 걸으면서 숲이 없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다. 말아 쥔 손아귀에서 땀이 배어났다. 미륵불로 오르는 자연석 계단 앞에 다다른 문기수는 고개를 치켜들었다. 어디에도 인적은 없었다. 잔잔한 웃음을 머금은 미륵불만이 커다란 돌덩어리들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빠르게 좌우를 살폈다. 괴이쩍은 산의 적막만 끼쳐왔다. 먼 안개 빛처럼 흐린 어둠살이 산 그림자 속에 섞이고 있었다. 그는 돌계단을 느린 걸음으로 밟아 올랐다. 계단은 모두 일곱 개였다. 계단을 다 올라서자 미륵불은 올려다보아야 하게 가까워져 있었다. 그는 다시 좌우를 살폈다.
"문 동무, 시간 영축웂이 맞치니라고 수고혓소."
문기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숨죽인 목소리는 어디서 들려오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질정 없이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문 동무, 시키는 대로 허씨요. 미륵불에 대고 절을 험시로 나가 허는 말 똑똑허니 들으씨요."
목소리는 왼쪽 바위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요, 얼굴이나 내미씨요."
문기수도 숨죽여 빠르게 말했다.
"볼 필요 웂소. 미행이 있을란지 몰른께 사게 절을 험시로 내 말얼 들으씨요. 요것은 다 대장님 명령이요."
문기수는 하는 수 없이 살 보자기를 미륵불 앞에 놓고 느린 동작으로 절을 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로 보아 대장은 분명 아니었고, 목소리만으로는 그가 누구인지 전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이지숙의 존재가 그렇고, 어젯밤의 늙은 여자 존재가 그렇듯이 바위 뒤에 몸을 감추고 있는 사람도 아는 얼굴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사람인지도 몰랐다. 조직의 철저성을 다시 느끼며, 행여라도 대장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걸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그는 뒤늦게 깨닫고 있었다.
"이것은 최후의 명령이다. 똑똑허니 듣고 철저하게 책임완수혀라."
존대말이 '해라'로 바뀌어 있었다. 두 번째의 절을 시작하려고 두 팔을 높이 들어 올린 문기수의 전신은 찬바람이 휘감았다.
"읍내에 세포조직망을 구축혀라. 첫째, 청년단에 세포럴 심어라. 들째, 계엄군을 포섭혀라. 계엄군 중에는 사상적 동지가 분명 있을 것잉께, 접촉해서 찾아내라. 셋째, 문 동무의 중지된 정보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혀라."
잠시 말이 끊겼다. 그 명령이 염상진의 명령임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목소리가 다른데도 대장의 어투를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최후의 명령이다."
문기수는 땅바닥에 이마를 박고 한참이나 엎드려 있었다.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산의 적막만이 그를 에워싸고 있었다.
철새들의 바쁜 날갯짓에 쫓기듯 해는 남쪽으로 기울어 서산 너머로 잰걸음 질을 했다. 그럴수록 북쪽하늘은 갈매빛으로 시리고 높아갔다. 아침이면 어김없이 서리가 뽀얗게 내려 있고는 했다. 짚단이나 대나무 잎에 돋은 예리한 서릿발들은 언제 닥칠지 모를 강추위를 물고 있었다. 추워질수록 행렬의 길이가 길어지던 기러기 떼는 어느덧 광목 한 필의 길이보다 더긴 행렬을 이루며 포구의 창공을 무시로 날았다. 추위를 피해온 새떼의 행렬이 그리 길어지면 사람들은 습관처럼 깊어지는 겨울을 느꼈다. 그리고 겨우살이 손길을 바삐 놀리게 마련이었다. 남정네들은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나 덕석을 짤 볏짚을 고르고, 해동이 되면 거름으로 쓸 볏짚재를 받아낼 자리를 넓히느라 헛간이나 뒷간을 치웠다. 아낙네들은 마당가나 부엌 쪽 흙담 아래 갈무리한 무 구덩이의 덮개를 새로 단속하고, 헛간 벽에 걸린 물레를 꺼내다가 손질을 하는 한편 시루에 콩을 안쳐 안방 윗목에 콩나물 기를 자리를 꾸몄다. 두세 달을 못넘겨 시래기죽을 끓일 수밖에 없이 궁한 살림살이라 하더라고 모든 농가에 그래도 후기가 돌고 이맛살이 펴지는 절기가 이때였다. 고구마를 섞을망정 자식들에게 '밥'을 먹일 수가 있는 것이고, 내년 농사를 위해 일손을 게을리 할 수는 없지만 여름의 피곤을 풀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휴식이 있었던 것이다. 배불리 먹은 자식들이 곤한 잠에 빠져가는 건넌방의 숨소리를 들으며, 새 보리가 날 때까지 저것들을 저렇게 먹일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안쓰럽고도 아쉬운 바람을 떼치지 못한 채로 그래도 내외가 느긋하고 안온한 기분으로 깊은 화합을 할 수 있는 것도 이즈음이었다. 그러나 금년 겨울의 시작은 예년과 같지 않았다. 사람들의 마음은 뒤숭숭하고 불안했다. 어디서 생겨나서 누구의 입으로 전해져온 것인지 알 도리가 없는 소문이 흉흉하게 퍼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소문은, 선암사의 미륵불이 사흘 밤을 통곡했다거나 징광산의 약수 샘에 피가 흥건하게 괴었다거나 어느 마을 상여움막에서 며칠 밤에 걸쳐 여자들의 곡성이 울렸다거나 하는 식의 미신적인 것이 아니었다. 거의가 반란군과 군경 사이의 전황에 관한 것이거나, 반란사건으로 파급되는 시국에 대한 것이었다. 순천에서 일단 물러난 반란군은 백운산과 지리산에 진을 쳤는데 군경이 도저히 당하지를 못한다는 것이었다. 타지 사람들로 모아진 군인은 길을 모르는데다가 지리에 밝은 경찰이 앞장을 서지 않고 꽁무니를 빼기 때문이라고 했다. 반란군들은 낮에는 산속에 꼼짝 않고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습작전을 펴는 까닭에 군경의 피해가 크다는 것이었다. 이정도의 소문이 들렸을 때는 사람들은 '빨갱이니까'하고 귓등으로 들어 넘겼다. 빨갱이가 밤눈이 밝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관심거리가 아니었다. 일정 때부터 공산당 하는 사람들은 밤길 백 리를 떡 먹듯 오간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계속 피해를 입게 된 군경이 그 원인을 따진 결과 현지의 민간인 동조세력이 밤이면 좌익으로 변한다는 판단을 내렸고, 대대적인 색출작업을 벌여 광양과 구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다는 소문이 뒤를 이었다. 이 소문은 사람들의 가슴에 섬뜩한 찬바람을 뿌렸다. 군경 한 사람의 목숨은 민간인열 사람의 목숨과 같다는 것을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북진통일'을 부르짖는 대통령의뜻에 따라 공산도배는 씨를 말려야 한다는 '멸공'이 앞세워진 마당에 '억울한 죽음'이란 있을 수가 없었다. 소문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다. 백운산의 반란군들은 광양만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순천까지 다시 점령하려고 오리정 앞의 국도를 따라 야간기습을 감행해오는 것을 북국민학교께서 어렵게 막아냈고, 다음날로 오리정 다릿목과 농업학교 앞에 이중으로 대창을 엮은 방사선을 설치했다는 것이었다. 순천의 몇몇 부자들은 난리가 완전히 다스려지기를 기다리며 해남쪽 섬으로 피난을 떠났다고도 했다. 반란군을 돕기 위해 이북에서 대규모 지원병을 파견했는데, 태백산맥을 따라 내려오고 있는 그들은 멀지 않아 지리산에 도착해 반란군과 합세하게 될 것이고, 염상진이 여태까지 죽은 듯이 있는 것은 바로 그 지원병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염상진이 힘을 얻게 되면 벌교바닥에서 큰 싸움판이 벌어질 것이라고 했다. 소문이 여기에 이르자 사람들은 불안한 안색을 감추지 못했다. 서로 쉬쉬하면서 사람들은 의미가 불확실한 고개젓기를 했다. 염상진이 처형을 감행하고, 뒤따라 경찰이 처형을 감행하고... 사람들은 그 되풀이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전후를 가릴 수 없는 소문은 뒤죽박죽이 되어 찬바람을 타고 흉흉하게 떠돌았다. 곧 이남 군대가 이북으로 쳐 올라가 통일을 이룩할 것이라고도 했다. 그때에 맞춰 일제히 총공격을 가하기 위해 이남에 숨어 있는 공산당들이 준비를 진행시키고 있다고 하는가 하면, 남북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수백만이 죽을 것이라고도 했다. 사람들은 그런 소문 듣기를 끔찍해했고, 더욱이 낯 모르는 사람 앞에서 입을 올려 되씹는 것을 한사코 피했다. 모두 귀를 막아 귀머거리 이고자 했고, 입을 봉해 벙어리이고자 했다. 그런데도 어찌 된 영문인지 소문은 무성하게 퍼질 뿐이었다. 춘향이가 겉눈을 감은 대신 속눈은 크게 떠 이도령을 살폈듯 사람들이 막은 건 겉귀였고 봉한 건 겉입이었을 뿐 속귀는 더 예민한 촉수로 열려 있었고, 속입은 더 은밀한 소리로 속삭이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겨울추위를 피부로 느끼기보다 먼저 가슴으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추위는 피부에 닿는 추위와는 사뭇 달랐다. 옷으로 감싸도, 방에 들어앉아도 가셔지지 않는 추위였다. 그 조마조마하고 아슬아슬하고 꺼림칙한 소문의 추위를 가슴에서 몰아내거나 다스릴 방도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다리를 마음 놓고 뻗지 못한 채 잠을 잤고, 길을 걷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종종걸음을 치고 있기 일쑤였다. 이웃을 만나도 주위를 살피기부터 먼저 했고, 무슨 말을 하든 간에 목소리는 낮고 조급했다. 아낙네들은 끼니때마다 쌀독 앞에서 머뭇거리면서도 고개를 갸웃거렸고, 다시 눈가늠을 해가며 몇 걸음 옮기다 말고 되돌아서 바가지의 쌀을 한줌 집어 쌀독에 넣고서야 안심이 되었다. 난리가 나면 어떡해. 가슴속의 추위가 속삭이는 말이었다.
남원장에서는 저녁상을 겸한 술자리가 벌어지고 있었다. 상좌인 아랫목에는 읍장과 정현동 사장이 나란히 앉았고, 맞은편에는 윤삼걸과 최익달이 좌정하고 있었다. 네 사람의 좌측으로는 서로 예쁜 꽃이기를 다툼하듯 야하게 분칠을 한 기생 넷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이 물오리고기는 특별히 장만시킨 것잉쩨 많이들 드십시다. 겨울보신에야 이것 당할 게 없다고 안 그럽디까."
술자리를 마련한 정 사장이 헛웃음을 치며 좌중을 둘러보았다.
"산에는 산삼, 바다에는 해삼 허디끼 겨울 보신으로야 산에는 꿩이요, 바다에는 물오리 아니든가요."
윤삼걸이가 유식한 문자라도 쓰듯 거드름을 피우며 말하고는,
"요 괴기가 물이 어쩐가 몰르겄다?"
그는 빠끔하게 뜬 눈으로 일삼아 아가씨들을 살펴나갔다.
"음마, 회장님도 무신 말씀얼 그리 섭허게 허시는지 모르겄네라. 오늘 아칙 일찍허니 물오리럴 잡아왔는디, 그때도 퍼덕퍼덕 살아 있었당께요."
정 사장 옆에 붙어 앉은 아가시가 재빨리 말하며, 눈짓으로 다른 아가씨들에게 응원을 청하고 있었다. 어색한 표정의 정 사장은 엉거주춤 정종 잔을 들고 있었다.
"하먼, 그 포르소룸헌 색깔에 윤기가 자르르 흘르는 날개럴 퍼덕이든 놈을 잡아묵기는 아까웠제. 집오리맹키로 키웠으면 싶등마."
읍장 옆에 앉은 경월이가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능청을 떨었다. 윤삼걸이와 최익달의 옆에 앉은 두 아가씨도 눈치 빠르게, 참말로 이뿌등마, 나도 키우고 잡아 생각혔는디, 한마디씩 맞장구를 쳤다. 그들이 얼핏얼핏 보았던 물오리는 모가지를 축 늘어뜨린 채 부엌 기둥에거꾸로 걸려 있었던 것이다.
"그러먼 그렇겄제. 정 사장이 특별허니 주문헌 것잉께 펄펄 산 놈이 었겄제."
윤삼걸이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물오리고기를 덥석 집어 들었다. 정 사장의 얼굴은 어느덧 편안하게 풀려 있었다.
"통금을 그리 엄하게 실시하는 디도 밤중에 물오리 잡는 사람은 따로 있으니 원..."
읍장이 언짢은 기색을 드러내며 혼잣말 하듯 했다. 물오리 사냥에서 읍내의 경비 소홀을 간파해내는 읍장다운 면모였다. 읍장의 말이 자신에게로 겨누어진 화살인가 싶어 멈칫했던 정 사장을 그것이 심재모를 향해 날아가야 한다고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그거 열 번, 백 번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겨울 보신을 하자 해도 물오리가 주안상에 올르지 못해야 정상이지요. 그런데, 말하기가 무섭게 척척 올라오는 형편이니 문제는문제지요."
정 사장은 심재모를 향해 시위를 당겼다. 성질 같아서는 더 직설적으로 말을 해버리고 싶었지만 계집아이들까지 끼여 있는 자리여서 말을 다독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물오리 사냥꾼 눔덜이야 겨울 한 철 목빠지게 기둘리고 사는 눔덜잉께 통금이고 머고 무서울 것 있겄는가요."
윤삼걸이 물오리고기를 우물거리며, 아무러면 어떠냐 하는 투로 말했다.
"열 포교가 한 도둑 못 지킨다고 혔는디, 군인덜이 지아무리 통금을 단속헌다 혀도 그 넓디나 넓은 선수머리 갯가럴 싸돌아댕기는 사람꺼정 워쩌겄소. 그저 읍내 안통에만 빨갱이 얼찐대지 못허게 허면 될 일 아니겄소."
최익달이가 심재모를 향해 날아가는 화살막이로 나서듯 눈치 없이 말하고 있었다. 정 사장은 그 둔하고 주책없음에 혀를 찼다.
"글쎄요, 그렇기도 합니다만..."
읍장이 석연찮게 말꼬리를 흐렸다.
"빨갱이논덜이 선수머리 갯뻘 밭에서 꽹맥이를 치든, 징광산 골짝에서 징을 쳐댐서 지랄발광을 허든, 워쨌거나 읍내 안통만 철통같이 지켜줘서 우리가 편헌 잠자게 해주먼 될 일 아닌가요?"
최익달은 읍장의 석연찮아하는 기분을 들려놓기라도 하려는 듯 말에 힘을 넣고 있었다. 정사장으로서는 최익달이가 멋모르고 화살막이로 나서고 있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읍장의 말에 따라 아주 자연스럽게 심재모를 향해 화살을 쏘아댈 기회를 잡았는데 최익달의 주책으로 망칠 수는 없었다. 아까운 돈 써가며 술자리를 마련한 목적 중의 하나가 그것이기도 했다.
"최사장 말도 틀린 말을 아니오. 허나, 읍내 안통만 통금이 지켜지고, 안통을 둘러싸고 있는 사방팔방 모든 동네가 지멋대로 통금을 안 지켜 빨갱이 놈들이 활개 치게 되면 안통이라고 두 다리 뻗고 자질 것 같소? 안통이 편한 잠자자면 멀리 변두리부터 철저하게 단속을 해야 하는 법이오. 지금 시국이 어떤 시국이고, 빨갱이가 노리는 목숨이 어떤 목숨인데 최 사장은 그리 태평스런 말을 하시오."
정 사장은 일부러 검지를 꼿꼿이 세워 자신의 목을 찌르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 효과는 최익달이 엉겁결에 목을 쓰다듬는 것으로 금방 나타났다.
"정 사장 말이 맞소. 물오리괴기 맛난 것은 맛난 것이고, 통금법을 지켜야 허는 것은 지켜야 헌께, 엄하게 다스리는 것이 이치에 맞소."
입가에 묻은 기름기를 손등으로 썩썩 문지르며 윤삼걸이 진하게 동의를 표하고 나섰다. 읍장은 느리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최익달을 아직 목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였다.
"이건 심재모가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문제요. 우리 목숨이 어디 둘씩이오?"
정 사장은 심재모의 심장을 향해 활을 있는 힘껏 당겼다.
"거 말이 났으니 말인디, 그 심이라는 사람 워떻소?"
윤삼걸이 고개를 삐딱하게 틀고는 딱히 누구에게 묻는 것이 아닌 말을 던졌다.
"그 젊은 대장, 을마나 근사하고 멋지다고라."
윤삼걸의 옆에 앉은 춘매가 눈마저 가느스름하게 뜨며 날름 말을 받았다.
"저, 저, 방정맞은 것. 어른들 말씀하시는데 어디다 토를 달고..."
정 사장은 혀를 차대며 춘매에게 고약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린 춘매는 겁 실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소문이야 그럴싸허게 났든디, 그 소문이란 것이야 토벌대가 원체 못 되게 굴었응께 쉽게 얻은 인심이라 치고, 그 사람이 쓸 만헌지 워쩐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 아니겄소? 진돗개맹키로 빨갱이 잘 때레잡고, 눈치 싸게 우리 편 들어감서 일허면 누님 좋고 매부 좋고 헐 것이고..."
최익달이가 된소리로 입맛을 다시며 밍기적 밍기적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읍장이 두어 번 헛기침을 했고, 정 사장을 무슨 말로 심재모를 물어뜯을까 생각하며 정종 잔을 홀짝 비웠다.
"앞으로 두고 볼 것이나 머 있겄소? 마침 정 사장 일이 걸린 판잉께, 고 느자구웂은 눔덜헌테 을매나 맵고 짜게 벌을 내리느냐에 따라 결정하는 것 아니겄소?"
윤삼걸이 정 사장을 쳐다보며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정 사장은 고개부터 젓는 것으로 심재모를 구석으로 몰아대기 시작했다.
"윤 회장이나 최 사장도 내 꼴 나기 전에 정신 똑똑허니 채려야 쓸 것이오. 언제 작인 놈들이 들고일어날지 모를 일이고, 죄진 놈들한테 내속 풀린 만치 벌주기도 힘들게 외었응께..."
정 사장은 윤삼걸이와 최익달의 긴장된 눈길을 의식하면서도 술잔을 천천히 기울여 뜸을 들이고는,
"어쨋거나 윤 회장이나 최 사장은 나 같은 꼴 되기 전에 정신들 바싹 차리씨요."
정 사장은 변죽만 울리고 입을 닫았다.
"정 사장, 그 일이 꾀이는 모양인데, 탁 터놓고 말을 해봇써요."
윤삼걸이가 의분을 느낀다는 듯 언성을 높였고,
"우리찌리 못헐 소리가 머 있겄소. 정 사장 일이 우리 일이나 같은디, 워째, 일이 잘 안 풀리요?"
최익달도 목을 쑥 빼내는 관심을 보였다. 정 사장은 비로소 술자리를 마련한 목적이 달성되어가는 쾌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자신이 던진 투망에 윤삼걸과 최익달은 그리도 쉽게 걸려든 것이었다. 동병상련이란 말은 역시성현의 말씀이렷다! 정 사장은 속으로 쾌재를 올렸다.
"내 체면 깎이는 일이라 말하고 싶지 않소만, 두 분도 당하게 될지 모를 일이라 말을 해두겠소. 거 작인 놈들이 집단폭행에다 주거침입, 재산파손, 공갈협박 등등, 진 죄는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인데도 그 심이라는 자는 제까닥 제까닥 일을 처리해 죄인들을 처벌하지 않고 공정한 조사를 내세우며 날짜만 보내고 있단 말이오. 집단폭행당한 사람이 앓아 눠 있고, 다 부서진 집이 그대로 있는데 더 무슨 공정한 조사냐 말요. 심, 그자가 시간을 질질 끌고 있는 건 작인 놈들 편을 들자는 수작이 아니고 뭐겠소. 이번에 작인 놈들이 콩밥을 단단히 먹지 않고 풀려난다면, 어찌 되는지 아시겄지요?"
정 사장은 위협이 담긴 눈길을 윤삼걸과 최익달에게 번갈아가며 던지고는,
"두 분도 머잖아 나처럼 당하게 될 것이오."
비감한 어조로 말하더니 긴 한숨을 토해냈다.
"우리가 당허다니, 고것이 무신 소리요?"
최익달이 허리를 곧추세우며 눈을 부릅떴고,
"듣고봉께 그 젊은 놈이 영판 싸가지 웂네그려"
윤삼걸이 숟가락으로 상머리를 내리쳤다. 읍장은 목젖을 다듬는 듯한 기침을 두어 번 하고는 맞은편 벽에 붙은 서화로 먼 눈길을 보냈고, 네 아가씨는 죽은 듯이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읍장인 면전에서 차마 하기 거북한 말이긴 하지만, 지금 읍내에서 심의 권력을 덮을 사람이 누구 있소. 심은 안하무인인 권력을 쥐고 있으니 어떤 일이든 지멋대로 처리할 위험이 있소. 이번 내 집 사건도 작인들 편을 들어 경찰서에 며칠 더 가둬뒀다가 어물어물 풀어줄지도 모를 일이오. 만약 그리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 아시겠소? 그때는 나 혼자 당하는 문제가 아니라 여기 앉아 계신 윤 회장, 최 사장, 그리고 읍내 지주 모두가 당하게 될 사태가 터질 것이오."
정사장의 말은 자못 선동적이었다.
"고것이 대체 어떤 사태요?"
최익달이 술상 앞으로 바싹 다가앉았다. 윤삼걸은 긴장된 얼굴로 마른 침을 삼켰다.
"두말할 것 없이, 작인이란 작인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지주를 못 잡아먹어 한이 되어 있는 건 두 분도 잘 알 거요. 그런데, 이번 사건을 일으킨 작인 놈들이 중벌을 받지 않고 적당히 풀려나보시오. 그 영향이 어디로 가겠소? 읍내 작인들이 간을 보고 여기저기서 들고일어날 것 아니겄소? 내가 사람을 놓아 알아보니, 작인 놈들이 모여 앉으면 이번 사건을 입에 올리고, 어떻게 결말이 나나 마음들을 쓰고 있다는 것이오."
정 사장은 이제 느긋한 마음으로 투망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작인 눔덜 심뽀야 면경 딜에다보디끼 뻔헌 것이고, 워쨌거나 요번 사건이 중허긴 중헌디,우리헌테 해가 안 미치게 좋도록 막음헐 방도가 머 없겄소?"
윤삼걸이 심각해진 얼굴로 읍장과 정 사장을 번갈아 보았다.
"이 마당에 딴 방도가 머 있겄소. 심간가 계엄대장인가가 우리 편에 서서 작인 눔덜이 꼼짝을 못허도록 야물딱지게 처벌허게 맹글어야제."
최익달은 다급한 최씨 성질을 그대로 드러내며 정 사장이 해야 할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글쎄요... 최 사장 생각이 정통을 찌르긴 찔렀소만, 우리가 바라는 대로 심가가 우리말을 안 듣는 데야 별수가 없지 않겠소?"
정 사장의 느물거리는 어조는 최익달의 성질을 자극하는 촉수로 변하고 있었다.
"아니, 지까짓 눔이 먼디 우리 말얼 안 들어. 우리 지주들은 핫바지 저구리요? 계엄 덕에 지눔 권세가 하늘을 찔른다 혀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빨갱이 때레잡은 디 써묵을 권세지 우리 지주들 앞에 내세울 권세가 못 된다 이것이요. 나라가 지눔헌테 그만한 권세를 준 것은 빨갱이덜 때레잡고 지주들을 잘 모셔라 해서 준 것인디, 정작 우리 지주 편을 안 들고 작인들 편을 들어? 고런 짓거리 허다가는 모가지가 열 개라도 모자랄 것이요. 지주들 재산을 무조건 갈라묵자는 생각을 품고 있는 작인 눔덜은 모두 빨갱이 사상에 불그딕딕허게 물이 든 반빨갱이들이요. 근디, 빨갱이럴 때레잡아야 헐 자가 반빨갱이들 편을 들어? 고건 참 간단한문제요. 사상적으로 얽으면 고만이요."
최익달은 이미 제풀에 흥분되어 있었다. 정 사장은 최익달의 흥분을 부채질하듯 폭넓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고, 방안에는 뜨악한 침묵이 이어졌다. 정 사장이 술자리를 마련한 목적은, 지주들을 충동질해서 힘을 모으고, 그 힘으로 심재모에게 압력을 가해 자신의 직성이 풀리도록 작인들을 처벌하게 할 작정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최익달의 입에서 심재모의 직위까지 좌우할 수 있는 묘안이 나온 것이었다. 사상적으로 얽는다-그것은 그지없이 만족스러운 수확이 아닐 수 없었다. 최익달의 육촌형이 바로 국회의원 최익승임을 생각할 때 그 방법이야말로 허황된 큰소리가 아니라는 실감이 왔다. 솥 공장 윤 부자의 사촌이고 남초등학교 사친회장인 윤삼걸과 제재소 사장인 최익달을 술자리에 불러 앉힌 것은 그들이 재산을 소유한 만큼 보호욕도 크다는 것을 계산했던 탓이었다. 읍장을 한자리에 앉힌 것은 자신들의 움직임을 심재모에게 전하는 중간역할을 시키기 위함이었다.
"이거 오랜만에 기분 좋게 한잔 하려고 한 것인데, 얘기가 어찌 이상하게 돌아가 기분들 망치지 않았나 모르겠소?"
정 사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능글맞게 말했다.
"기분을 망치다니요. 정 사장 덕에 아조 중대헌 문제에 뜻을 모은 것 아니요? 인자부터 술맛 나게 생겼소."
윤삼걸이 손바닥으로 입을 야무지게 훔쳤다.
"그려, 이년들아, 꿔다논 보릿자루맹키로 뚱허니 앉었지들 말고 술잠 맛나게 쳐라!"
최익달이 기분을 돋우듯 큰 소리를 지르며 옆에 앉은 아가씨의 어깻죽지를 치고는,
"워쨌거나 지주는 지주들끼리 똘똘 뭉치는 도리밖에 웂소. 요런 빌어묵을 시상이 워찌 돼갈라고 상것들이 날치고 지랄 발광인디, 시상이 지대로 될라면 일정 때맹키로 꼼짝달싹 못허게 마구잡이로 두들겨패서 다스려야 허는 것이요. 근디, 해방이다, 자유다, 민주주의다, 새 날아가는 소리가 퍼져싼께 아, 상것들이 허파에 바람 들고 간뗑이가 부어올라 위아래 몰라보고 설레발치는 것 아니겄소. 짐승허고 상것들은 패서 다스리는 길밖에 웂응께, 나라에서 민주주의고 지랄이고 다 때레치우고 일정 때 법을 시행해야 헐 것이요. 시상이 요런 판세로 돌아가다가는 언제 빨갱이 시상으로 엎어질지 모른쩨."
최익달은 목덜미까지 벌겋도록 열이 올라 있었다.
"그래도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헌테는 상감이요. 그 양반이 국부로 앉아 계시니 우리 지켜주는 시상 이만치 끌고가지 딴 사람이 정권을 잡았으먼 어떤 시상이 닥쳤을지 모를 일이요."
윤삼걸이 자신의 말을 재삼 확인하듯 술잔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윤 회장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말을 허시요그려. 이 대통령이 참말로 우리 편에 섰다면야 워째서 우리 한민당이 원허는 분을 국무총리 자리에 앉히지 않았느냐 그 말이요. 길짐승 날짐승꺼지 다 아는 일이제만, 우리 한민당 웂은 이 대통령이 워디 있겄소. 근대도 우리 한민당이 힘을 합쳐 대통령 자리에 모셔논께 정작 국무총리를 정허는 마당에서는 한민당을 외면해부렀소. 문제는 바로 여그에 있소. 우리 한민당이 국회고 정부고 다 틀어쥐고 흔들었어야 토지개혁이니 뭐니허는 잡소리가 안 나왔을 것인디, 방구가 잦으면 머가 나오드라고 토지개혁법이 통과되는 날에는 우리 신세가 워찌 되겄소. 총리자리럴 놓고 얼굴을 싹 바꿨디끼 이 대통령이 언제 토지개혁법을 통과시키게 헐란지 모를 일이다 그 말이요."
최익달은 정견발표라도 하듯 목청을 돋우고 있었다.
"자아, 자아, 정치 얘기는 그만두고 술이나 한잔씩 나누고 헤지도록 합시다. 통금시간도 얼마 안 남았고 허니..."
읍장이 공직자답게 분위기를 바꾸고 나섰다. 윤삼걸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중지 당한 언짢음을 풀려는지 정종 잔을 단숨에 비웠고, 정 사장은 만족스러운 기분으로 옆에 앉은 아가씨의 치마를 들춰 손을 디밀고 있었다. 술이 한 순배 돌았지만 술좌석의 흥은 돋아 오르지 않았다. 상 위의 온갖 음식들도 이미 식거나 헤집어져 술자리의 고비는 진작 넘어가 있었다. 그렇다고 정 사장은 새 술상을 봐오라고 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는 추월이의 허벅지 탄력을 손바닥으로 만끽하고 있는 참이었다.
윤 부자네 작인 네 사람은 오늘 밤에도 유동수의 아랫방에 모여 앉았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니었고 무슨 볼일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저녁밥을 먹고나서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한 사람씩 어슬렁거리며 유동수 네 사립을 들어섰고, 그러다보면 네 사람은 마주 앉아, 머묵자것 있다고 밤마동 마실얼 도냐고 서로를 핀잔하며 희멀건하게 웃고는 했다. 그 말은 자신들이 집을 나설 때 뒤통수에 부딪혀오던 마누라의 투정이었다. 사실 밤마다 모여앉아 하는 일이라고는 것을 그들 자신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거리가 손에 잡히지를 않았다. 까닭 모르게 마음이 소란스럽고 들뜨고 흔들리는 것이었다. 애써서 일손을 잡았다가도 마음이 들썩거려 방문을 박찰 수밖에 없고는 했다. 그들 네 사람이 또아리를 틀 듯 마음이 엮어진 것은 같은 작인의 처지여서만은 아니었다. 토벌대에 끌려가 볼기를 맞고 나온 사건이 있은 다음부터였다. 청년단에서 아무리 끄나풀을 감쪽같이 심었다 하더라도 다섯 사람 중에서 그것이 누군가를 밝혀내는 데는 사흘이 걸리지 않았다. 끄나풀은 마름 오 서방이었던 것이다. 그들 앞에서는 볼기가 아파 앉고 설 때마다 앓는 소리를 입에 무는 오 서방이 집안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앉았다 일어섰다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던 것이다. 서인출, 김종연, 유동수, 장칠복 네 사람은 마침내 서로의 볼기를 까 보여 멍 자국을 확인한 다음 서로 간에 가졌던 의심과 경계심을 풀고 오 서방을 범인으로 확정했다. 오 서방의 소행은 딱 몰매감이었지만 그는 어찌해볼 수 없는 마름이어서 몰매를 치기는커녕 그런 소문조차 낼 수가 없었다. 그런 일을 당하고도 계속 웃는 낯으로 오 서방을 대해야 하는 그들은 쓰리고 아린 속을 서로 어루만지듯 밤이면 모여 앉기를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런데다 세상 돌아가는 뒤숭숭한 소문들은 일에 마음을 붙일 수 없게 그들을 들썩여댔다.
"거 뻔헌 일 놓고 조사헐 것이 멀 그리 많다고 오늘 해럴 또 그냥 넴겠을꼬?"
허리가 구부정한 앉음새를 한 장칠복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공평하게 조사럴 허니라고 그런다드랑께요."
김종연은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는 정 사장 사건에 대한 소식을 알아내는 책임을 맡고 있었고, 장칠복의 되씹는 말이 자신을 믿지 못하는 것 같아 속이 꼬였던 것이다.
"그려... 그리 들으면 그렇고, 무신 수작 꾸미니라고 찍 소리도 안내는 것이 아닌가 싶으면 꼭 그런 것 같고, 도깨비에 홀린 것맨치로 정신이 왔다리갔다리 혀서 있겄소."
김종연의 수고를 생각해서 서인출이 거들었다.
"우리 겉은 작인 신세에 기둘리지 않으면 멀 워쩌겄는가. 밥줄 끊기고 벌꺼정 받게 된 그 사람덜 신세가 하도 불쌍허고 답답혀서 이러는 것이제. 그 사령관이란 사람이 을매나 똑바른진 몰라도 믿을 만허진 못헐 것이네. 그 사람도 보나마나 있는 집 자석일 것이고, 작인덜속 몰라주는 나라가 시키는 대로 허는 군인인디 우리 편얼 들 리 있겄어. 팔은 다 안으로굽는 법잉께 애시당초 바라지럴 말더라고."
장칠복은 자조적인 웃음을 흐흐거렸다. 흐린 등잔불빛 아래 웃음소리만 잠길 뿐 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었다. 읍내의 작인들이 거의 그렇듯 그들도 정 사장네 사건이 터진 다음부터 작인들의 처벌 결과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어 있었다. 정 사장의 처사도 충격적이었는 데다가 그에 맞선 작인들의 행동은 더욱 큰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때 나는 어찌했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고, 그 사건은 결코 남의 일이라고 여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저나 아무리 생각혀도 그 작인덜이 영판 똑바라진 사람덜 아니여. 재작년 십일월 일낭패보고 나서 야물딱진 작인덕언 싹 다 웂어져 뿐 중 알었등마 그 사람덜이 용허니 남었드랑께로."
유동수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와따, 성님언 벨 요상시런 소리 다 허요이. 개도 밥그럭 뺏으면 주인이고 머시고 물고 뎀빈다는디, 사람이 지 밥통 뺏기고 가만히 있겄소? 이판사판, 당연헌 것이제라."
김종연이 화를 내듯 하는 말투로 내질렀다.
"니도 그런 꼴 당허먼 그리 용감허니 뎀빌 자신이 있다 그것이여?"
장칠복이 비웃듯이 말했다.
"아아니, 성님언 또 무신 맥아리빠지는 소리럴 그리 허요? 허먼, 성님언 두 손끝 맺고 당허고만 있겄다 그 말이요?"
김종연은 이제 정색을 하고 있었다.
"글씨이... 그저 고런 꼴 안 당러기럴 바래야제, 정작 당해뿔먼 워쩔 것이여. 홧김에 워찌사람 멫 방 치고, 집구석 뚜둘겨 뿌식어 봤자 남는 것은 철창신세 아니겄어?"
"아, 고것이야 허나마나헌 소리 아니요. 그라고, 그 사람덜이 술도 가집서 헌 일이 워찌 홧김에만 헌 일이겄소? 자기덜 권리 찾고자 헌일이제."
김종연은 야무지게 공박하고 들었다.
"권리이? 고것이 다아 원님행차 떠난 뒤에 나팔이제 권리라는 것이 찾는다고 찾아지는 것이드냐? 일정 때나 해방이 되고나서나 그리 혀서 찾아진 권리가 머시가 있냐? 그저 죽고상허기만 혔제."
장칠복이 쓰게 웃으며 코웃음을 쳤다.
"성님맹키로 말허자먼 그간에 죽고 상헌 사람덜만 빙신이다 그것인디, 그리라도 뎀비고 싸우고 안 혔으먼 지주 놈덜 행투넌 워찌 되고, 그나마 나라에서 농지개혁법인지 먼지럴 맹글라고 헌다는 소리라도 나와졌을 것 겉으요?"
"아, 그눔에 법도 맹글어져야 맹글어졌는갑다 허제 지끔으로서야 그가망이 아시무락헌 일이고, 니나 나나 재작년 겉은 때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빨갱이질로 나스지도 못허고 요리 앉었음시로 큰소리칠 것웂이다 그것이네."
장칠복은 김종연의 허점을 노리듯 이렇게 내질렀다.
"그리 말해불먼 나도 말이 맥히요, 근대, 나도 그간에 눈치나 살살봄스로 산 눔이 아닝께 근천스럽게 그 말에 대꾸허고 잡은 생각은 웂소. 헌디, 말이 났응께로 한 말만 허겄는디, 우리도 은제 밥통 싹 뺏길 일 당헐지 몰른다는 것은 똑똑허니 알고 있어야 된다 그것이요."
김종연이 결론 짓듯 말했다.
"하먼, 요분 일이 워치케 결말나느냐에 따라 지주 눔덜이 묵는 생각도 달라질 것잉께로." 그때까지 말없이 앉아 있던 서인출이 못을 치듯 분명하게 말했다.
"어찌 됐거나 결판이야 날 일잉께 진득허니 기둘려보는 도리밖에 머 있겄어."
유동수가 벽에 기댔던 등을 일으켜 담배쌈지를 끌어당기고는,
"갇힌 사람덜이야 안되얐다만 우리는또 우리대로 살아야 헌께, 인자 답답헌 이약 그만 허고, 종연이 니 간질간질허게 재미진 음담이나 한자리 혀봐라."
발끝으로 김종연의 허벅지를 찝적였다.
"성님도 차암, 간질간질허긴 워디가 간질간질혀라?"
김종연이 물러나 앉으며 픽 웃었다.
"기분도 지랄 겉은디 재미진 것으로 한 자락 읊어봐라."
"금메 성님, 양심 잠 있으씨요. 누구넌 냉돌 유치장에 갇혀 생똥 싸는 소강을 허고 있는디 우리넌 뜨뜻헌 방에 다리 뻗고 앉어 음담이나 늘어놓다니, 요것이 워디 사람이 헐 짓이겄소?"
김종연은 장칠복의 눈치를 힐끗힐끗 보며 말하고 있었다.
"워따, 니 인자 본께 공자님헌테 절 받을 양심가다와. 헌디, 양심도 찾을 때 찾아야지 빛을 내는 양심인 것이여. 사람 사는 이치라는 것이 드럽고도 요상시런 것인디, 부모 시체 붙들고 통곡 허다가도 밥은 묵고, 호열자로 죽은 새끼 파묻고 와서 숨넘어가게 밤일은 허는 것이라 이 말이여. 긍께 양심 찾지 말고 오늘 저녁 우리 사는 것은 우리대로 살고, 우리도 소작얼 뺏기는 날에는 윤 부자네로 쳐들어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싸우다가 유치장에 갇히자 이것이여."
"워따 성님, 워찌 그리 청산유수시요이? 변사 밥 굶게 생겠고, 선암사, 송광사 도통헌 중덜 가사 장삼 다 벗게 생겠소. 근디 말이요, 쓴 막걸리 한잔도 웂이 간질간질헌 음담얼 허라니, 웂은 살림에 내놓는 것 웂기로 약조넌 혔지만, 음담얼 들을라먼 술언 아니라도 씨언헌 동치미 국물이라도 한 사발 내놔봇씨요."
"저것이 시방 무신 냄새럴 맡고 허는 소리다냐, 되나케나 씨부렁이는 소리다냐?"
유동수가장난스런 웃음을 지으며 김종연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맞소! 술이 있제라?"
김종연이 눈치 빠르게 다잡고 들었다.
"허 참, 저것이 귀신이로시. 할아부지 지사럴 지내 막걸 리가 딱 한되 있구만."
유동수가 빙긋 웃으며 일어섰다.
"워쩐지 아까부텀 코끝에서 술내가 폴폴 나드랑께."
김종연이 손바닥을 맞때렸다. 서인출은 기분이 넘치고 있는 김종연을 바라보며 가만히 웃음 짓고 있었고, 장칠복은 목울대가 움직이도록 입에 괸 침을 삼키고 있었다. 유동수가 사발 두 개와 막걸리가 목에까지 차오른 대두병을 들고 들어왔다. 사발 하나에는 서너 가지 나물이 담겨 있었고, 빈 사발은 술잔이었다. 연장자 순으로 장칠복이가 먼저 술잔을 받았다. 막걸리는 사발에 찰랑찰랑하도록 따라졌다. 그렇게 따라 한 사발씩이면 술이 동난다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장칠복은 꿀럭꿀럭 소리를 내며 잔을 기울였고, 소리가날 때마다 오르내리는 목울대를 세 사람은 부러운 듯 지켜보았고, 장칠복은 사발을 입에서 떼지 않고 한 숨길에 술을 다 비웠다. 아하! 술맛 장단을 겸해 막혔던 숨을 토해낸 장칠복은 손가락으로 나물을 이것저것 집어 고개를 뒤로 발딱 젖히고 입에다 몰아넣었다. 나머지 세 사람도 장칠복과 닮은 모습으로 술 한 사발씩을 비우고 안주를 먹었다. 술병처럼 나물사발도 깨끗하게 비워졌다. 네 사람은 달디 단 입맛을 다셔가며 담배를 말아 피워 물었다. 술이 부족한 아쉬움이 그들의 얼굴에는 역력했지만 그것을 아무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담배가반나마 타들어가고 있었다.
"자아, 인자 걸찍허니 한 자리 혀보소."
유동수가 두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훔쳐댔다. 무엇을 치우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 들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표시와 동시에 이야기하는 사람을 모신다는 예절인 셈이었다. 그런 예절은 판소리 마당을 차리는 데서 보고 배워 몸에 익은 것이었다.
"술꺼정 얻어묵었응께 한 자리 허긴 허겄는디, 고눔에 음담이 좆대감지럴 간질간질허게 헐라는지, 귓구녕얼 간질간질허게 헐라는지, 배창시럴 간질간질허게 헐라는지, 워쨌거나 워디거나 간질간질허게 허기는 혀얄 것인디, 고눔에 음담이 워찌 풀릴란지 이 몸도 걱정이 태산이라, 기왕지사 간지럴라먼 좆대감지 간지런 것이 음담패설의 왕도렷다. 그러허나 지아무리 좋고 존 음담이라도 귀먹쟁이헌테는 소양웂은 것, 보배귀 지녔음사 내 이약 들음시로 좆대감지만 간지런 것이 아니라 용두질도 칠 것이고, 먹통귀 달았음사 마이동풍에 우이독경일것잉께, 간지럼 타고 안타고는 내 탓이 아니라 다 즈그덜 귓구녕 생게 묵은 탓일시 분명허니 날 원망 말렷다!"
입담이 좋은 김종연이 가락까지 넣어가며 즉흥적인 사설을 늘어놓았다.
"얼싸 조오타!"
유동수가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한 번 치고, 두 손바닥을 맞때리며 박자를 맞추었다. 그대로 판소리 마당의 흉내로서, 김종연은 명창이요 유동수는 고수인 셈이었다. 서인출과 장칠복도 어느새 흥이 일어 자신들도 모르게 상체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년시절부터 귀동냥하고 눈동냥 한 값이었다.
"장홍골에 길 장자 장가가 살았는디, 이 사람 성만 긴 것이 아니라 팔도 기라죽허고 다리도 기라죽허드라. 워디 그뿐인가, 팔다리가 긴라둑허다본께 키 또한 아니 길 수가 웂은 이치렷다. 어허 이 사람 대밭에서 밤일 혀서 불거졌다냐, 긴 것도 많기도 허다. 근디, 요것 보소,긴 것이 하도 많다본께로 또 한 가지 긴 것을 빼묵었네그랴. 고것이 무엇이냐, 좌중은 알쁘렀겄제. 알았드락도 초치지 말고 입 다치고 있드라고잉! 키 길고, 팔 길고, 두 다리가 긴디, 가운뎃다리라고 빠질 수가 있겄어. 당연지사로 가운뎃다리도 기라죽허드라 그것이여. 옛말에 키 크고 싱겁지 않은 눔 웂고, 팔다리 긴 인종치고 게을르지 않은 이종 웂다고 혔는디, 그 말언 바로 이 길 장자 장가럴 두고 이른 말이겄다. 이 장가 게을르기가 오뉴월에 추욱 늘어진 말좆 꼴새였는 지라, 남정네 일꺼정 도매금으로 떠맡은 예펜네 찍 소리 한분 내덜 않고그 고상 다 참고 젼뎌내는디, 하 고것 참 알다가도 몰를 일이라. 허나, 자고로 음양의 조화란 인간만사 형통이라 혔으니, 장가의 사대육신 게을르기가 늘어진 오뉴월 말좆이라 혔지만도, 그중에 부지런헌 것이 딱 한 가지 있었겄다. 고것은 물을 것도 웂이 가운뎃 다리였당께로. 고것이 부지런허기가 장닭이 무색허고, 기운이 씨기가 개좆이 성님! 헐 판이라. 고 눈도 코도 웂은 것이 밤마동 구녕얼 찾니라고 사죽을 못 써대니 밝은 날 사지가 축 늘어지는 것이사 당연지사 아니겄는감. 그 예펜네 찍소리 않고 고상 참아내는 것도 다 그런 야로였는디,하 요것 봐라, 하늘이 무너질 크나큰 변고가 터졌겄다. 그것이 무엇이냐, 장가의 길고 실헌물건이 구녕 속에서 뚝 뿌라져뿌러? 사람 물건이 뼉다고 든 개좆이간디 뚝 뿌라지고 말고혀? 고것이 아니라먼, 글먼 고 부지런허던 물건이 팔다리맹키로 축 늘어져 게을러져 뿌렀으까? 음질얼 앓은 것도, 늦은 홍역얼 앓은 것도 아닌디 무담씨 물건이 게을러져? 고것이 무엇인고 허니, 장가가 읍내 기생 설매허고 구녕얼 맞춰뿐 것이었어. 음기가 승헌 설매가 장가물건이 좋다는 소문 듣고 살살 꼬디긴 것인디, 지까진 것이 좋으먼 을매나 좋을라고, 반 믿고 반 못 믿는 마음으로 이부자리 깔고 구녕얼 맞춰본 설매년, 눈에서 불이 번쩍, 입에서 쎄가 낼름, 워야워야 내 서방님 워디 있다 인자 왔소, 설매년이 코울음을 울어대는디, 장가눔정신이 지정신이아니더라. 배라고 다 똑같은 배가 아니고 구녕이라고 다 똑겉은 구녕이 아니라. 호시가 좋기럴 춘풍에 흔들리는 나룻배요 구녕이 요술을 부려대는디 사대육신 육천마디가 저릿저릿 녹아내리는 판이라, 천국이 여그다냐 용궁이 여그다냐, 장가는 정신얼 채릴수가 웂었더라 이것이여. 형국이 이리 되니 장가 예펜네는 독수공방이라, 사지에 맥이 탁 풀리는 것이 일헐 기운얼 잃었고, 성질대로 허자먼 읍내로 발통 달고 쫓아가서 설매년 대갱이럴 와드득 잡아뜯고, 속곳 발기발기 찢어 그년이 구녕얼 다시는 못 쓰게 참나무 말뚝을 박았으먼 쓰겄는디, 넘새시런 시앗다툼은 칠거지악 중의 하나라, 가심에 불화로럴 안고 남정네맘 돌리기만 기둘림스로 독수공방만 지켰니라. 헌디, 아무리 기둘려도 남정네가 맘 돌릴 기색은 보이덜 않고, 슬쩍슬쩍 곡식얼 퍼내 들고 읍내걸음을 허는 것이 아니겄는가. 사람 뺏기는 것도 분허고 원통헌디, 웂은 살림에 곡식꺼정 뺏기다니, 더 참고 있다가는 설매 그년 밑구녕에 집안 살림꺼정 쓸어널 판세라, 맘 독허게 묵고 남정네헌테 눈 치 뜨고 대들었겄다. 근디, 남정네 허는 말이, 구녕이라고 다 똑같은 구녕인지 아는갑구만? 내 참 깝깝혀서. 이러고는 사정없이 떠다밀고 방문을 차고 나가뿔었겄다. 방구석에 처백혀 울다본께 남정네가 내뱉은 말이 귀속에서 앵앵이는디, 다 똑겉은 구녕이 아니먼 그년 구녕은 워치께 생겠을꼬? 아무리 생각혀도 워치께 달븐지 알 수가 웂어 고개만 자웃자웃허고 있는디, 서방이 그년헌테 넋얼 빼는 것은 그년 낯짝이 아니라 구녕이라는 것만은 똑똑허니 알 수 있는지라, 서방맘얼 돌리자먼 내 것도 그년 것만치 돼야 쓰겄다는 생각이 번쩍 떠올랐겄다. 근디, 그년 것이 워쩐지 알 방도가 있어야제. 그 방도는 딱하나, 그년얼 찾아가는 길밖에 웂드라 이것이여. 그년얼 찾아가자니, 챙피시럽고 천불이 끓어올르는 일이었제만 서방얼 찾고 집안 망허는것얼 막자먼 그만헌 일 못헐 것도 아니었다. 그리하여 설매럴 찾아가게 되얏는디, 설매년 머리끄뎅이럴 휘어잡아 패대기럴 치고 잡은 속마음 꾹꾹 눌러감스로, 서방 뺏기고 집안꺼정망허게 생겠으니 이년 신세 불쌍허니 생각혀서 우리 서방 홀긴 고것이 나 것허고 워찌 달븐지 갤차주라고 눈물 흘려감스로 사정얼 혔겄다. 설매가 묻되, 밤 일얼 헐 때 워처께 허느냐. 여자가 대답하되, 워처께 허긴 멀 워처께 혀라, 그냥 누웠으먼 남정네가 다 알아서 허제라. 허먼, 장작개비맹키로 뻣뻣허니 눠만 있단 말이요? 여자가 그래야제 멀 워쩔 것이요. 설매가기가 찬 얼굴로 쎄가 끊어지도록 쎄럴 차등마는, 참말로 답답허요이, 나가 허는 것 보고 배우씨요, 치마럴 훌렁 걷어올리고 속곳 바람으로 방바닥에 누웠겄다. 여자가 남정네럴 받자먼먼첨 몸을 깨끔허니 씻어야 허고, 속적삼이라도 옷이란 것은 몸에 걸치지 말 것이고, 워서말얼 허는 설매는 엄헌 선상님이고, 야, 야, 대답 찰방지게 잘허는 장가 마누래넌 착헌 생도라. 남정네 물건이 편히 들게 두 다리럴 요리 벌리고 있다가, 물건이 지대로 자리럴 잡았다싶으먼 그때부텀 여자 헐 일이 시작되는 것이요. 요리 궁데이럴 살살 돌리는디, 최로 몇 분허다가 우로 몇 분 허고, 번차례로 돌리는디, 요것얼 소꼬리뱅뱅이라고 허는 것이요. 소꼬리가 이쪽으로 빙글 돌아 포리럴 쫓고, 저쪽으로 빙글 돌아 포리럴 쫓는 격이나 같으다 그런말이요. 그 다음이 궁뎅이럴 좌우가 아니라 상하로 움직기리는디, 요렇게, 소꼬리뱅뱅이 때보담 싸게싸게 흔들어야 쓰요. 요것얼 조리질뱅뱅이라고 허는 것이요. 쌀일 적에 조리질허디끼 허란 것이요. 인자 끝막음으로 물명태뱅뱅인디, 물통에 갇힌 명태가 지멋대로 정신웂이튀고 돌고 박치고 허디끼 상하좌우 가릴 것 웂이 미친 거맹키로 궁뎅이럴 흔들고 돌리고,봇씨요, 똑똑허니 봇씨요. 요렇게, 요렇게 허는 것이요. 장가 마누래넌 실습꺼정 혀서 설매의기술을 배와갖고 집으로 돌아왔겄다. 날이 어둡기럴 꼬박꼬박 기들려 몸얼 깨끔허니 씻고,마실 나갈라는 서방얼 붙들고 살살 음기럴 풍겨대기 시작혔겄다. 허나 설매헌테 빠져 있는장가가 마음이 동헐 리 만무라, 서방이 꿈쩍도 안헌께 맘이 급해진 장가 마누애넌 옷얼 홀랑홀랑 벗어대기 시작혔겄다. 아니, 저년이 미쳤다냐? 생판 안허든 짓거리럴 해대는 마누래럴 보고 장가는 첨에 놀랬고, 옷얼 홀랑 다 벗어뿐 마누래 맨몸얼 오랜만에 보니께 장가 맘에도 불이 붙기 시작혔는디, 장가의 그 크고 실헌 물건이 구녕을파고들기 시작허자, 장가 마누래는 하도 오랜만에 그 기맥힌 맛얼 보는디다가 궁데이 운전허는 기술도 새로 배왔겄다,절로 신바람이 나는 것이었었다. 그리하야, 소꼬리뱅뱅이! 장가 마누래넌 느닷없이 소리질르고는 궁데이럴 살살 돌리기 시작혔다. 얼fi, 요것이 워쩐 일이다냐! 요 멍텅구리가 워찌 요런재주럴 알았을꼬? 장가는 마누애가 변헌 것이 놀랍고도 재미진 바람에 새 기운이 솟고, 새로 이뻐보여 용얼 써대는디, 인자 조리질뱅뱅이! 나누래가 또 소리질름스로 궁뎅이럴 위아래로 추슬러대기 시작혔겄다. 워따메, 요것이 참말로 지대로 허네? 장가는 더 신바람이 나서숨얼 헐떡이는디, 담은 물명태뱅뱅이! 마누래가 더 크게 소리질름시로 궁뎅이가 상하좌우웂이 요동질을 쳐대니 장가의 기분은 안개에 싸였는 듯 구름에 실렸는 듯 그 호시가 너무좋아 정신이 오락가락허는 판인디, 장가 마누래가 물명태뱅뱅이럴 너무 심허게 허는 바람에장가 물건이 쑥 빠지고 말았겄다. 헌디도, 장가 마누래넌 물건이 빠진지도 몰르고 정신웂이물명태뱅뱅이만 해대고 있드라. 마누래 허는 꼬라지럴 매레다보고 있자니 장가는 하도 기가맥혀서 소리럴 뻐럭 질렀는디, 그 소리가 워떠했는고 허니, 야 이년아, 헛뱅뱅이다!"
김종연은 반 남짓 타다가 꺼진 꽁초를 입에 물더니 성냥을 그었다. 그의 표정은 언제 음담패설을 했더냐 싶게 천연덕스러웠다. 그런데 이야기를 듣고 있던 세 사람은 웃음을 걷잡지 못하고 있었다.
"옛끼 순, 저눔에 주딩이 농사 지어묵고 살기 서럽겄다."
장칠복이 헛주먹질을 했다.
"참말로 은제 들어도 우리 종연이 입심 하나는 아깝다. 그종 입담 돈버는 디 쓸 수는 웂을끄나?"
유동수가 진정 아깝다는 듯 말했다.
"다 일 웂소. 나가 바래는 것은 내 논 열 마지기 정도 갖고 농새짐스로 요런 자리서 음담헐 적에 막걸리 석 되씩만 비울 구 있었으먼 더 바랠 것이 웂소."
"참말로 꿈도 오지다. 고런 시상이 우리헌테 원제 오겄냐. 통금이 다 되얐을 것잉께 그만덜 가드라고."
장칠복이가 무거운 몸짓으로 일어섰다. 방안 분위기는 금방 침울해졌다. 겨울달이 밝았다.
"빌어묵을, 머 묵자고 달은 요리 밝어."
김종연이 불똥스럽게 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세 사람은 무심결에 달을 쳐다보았다. 드높은 달은 차고 맑았다. 아무도 말이 없었다. 서인출은 문득 누님을 생각했다. 서러움 한줄기가 가슴을 찡하니 울렸다. 무당집이라 꺼림칙하긴 했지만 두 자식을 배곯게 하지 않게 되었으니 우선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소작을 못 부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 큰 시름을 덜게 된 셈이었다. 이 겨울을 산속에서 워찌 살라는고... 매형 생각이 잇따라 마음을 춥게 만들었다.
"가세, 들."
장칠복이 걸음을 떼어놓았다. 김종연과 서인출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고개 수그린 세 그림자가 고샅을 가고 있었다.
27. 우리의 국토를 양단시킴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어 동족상잔의 비극을 초래하려 한다 - 백범 김구
"참말로, 무신 짓거리고 다 해묵어도 징역살이넌 못 해묵을 것이로구만."
마삼수가 신경질적으로 턱을 훔치며 한숨을 토해냈다.
"그러다가 턱 떨여져 나가겄다. 앞으로 요리 갇힌 신세로 일 년얼 살게 될란지, 이 년을살게 될란지 몰를 일인디, 성질 낋이지 말고 진득허니 젼디는 연습 혀얄 것이여. 성질 있는 대로 다 부리다가는 밝은 시상 보기 전에 피 보타 죽을 것잉께."
작은 체구를 웅크려 박고 앉는 김복동이가 눈을 깜박거리며 감정이 담기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워따, 성님은 그새 도통해뿐 것맨치로 말얼 허요이?"
마삼수는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김복동을 쳐다보았다.
"니미럴 것, 늙은 엄니에 처자석만 옶다면야 내사 평상 징역살이 해묵겄다. 패기럴 허냐, 일얼 시키기럴 혀냐, 쎄빠지게 일험스로도 맘 놓고 못 묵어본 뜨신 국밥 끼니 때마동 믹여줌시로 오리 편안하게 모시는디, 요렇크롬 호강허기는 내 평상에 첨이다. 담배럴 못 꼬실리는 것이 쪽깐 서운혀서 그렇제, 담배만 꼬실린다면야 극락이 따로있겄냐."
몹시도 담배생각이 난다는 듯 쩝쩝 입맛을 다시며 노덕보는 능청을 떨고 있었다.
"아이고 덕보 성님. 그 오기 한분 창창허요. 엄동설한에도 시퍼렇게 살아올를는 대꼬챙이겉은 그 오기 끄자면 천상 담배 한 대가 있어야 쓸 것인디, 섭혀서 워쩔께라?"
마삼수도 지지 않고 느물거렸다.
"소금도 옶는디 싱건 소리덜 고만들 허고, 어이 말이시, 동기, 오늘해도 그냥 넴길라는가 모르겄네?"
김복동이 강동기에게 말을 옮겼다. 그때까지 유치장 마룻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던 강동기가 느리게 고개를 들었다.
"글씨요..."
마지못한 듯 이 한마디를 하고는 그의 입은 무겁게 다물려버렸다.
"콩밥얼 믹이겄으먼 싸게싸게 콩밥얼 믹일 일이고, 풀어줄 것이먼 속 씨언하게 풀어줄 일이제, 하로이틀도 아니고 참말고 사람 환장헐 일이시."
김복동은 웅크려 박고 있던 상체를 일으키며 화를 내듯 했다.
"성님, 시방 꿈꾸요? 행여라도, 터럭 긑맨치라도 그냥 풀어줄란지도 몰르것다는 생각은 허덜마씨요. 우리가 저질른 잘못도 잘못인디다가, 지끔이 워떤 시상이라고 그냥 풀려나지겄소? 우리찌리 치고 박은 것도 아니고 지주눔 집구석을 그 모냥 맹글었응께 콩밥이야 진작 받아 논 콩밥 아니겄소?"
마삼수는 조금 전의 장난기를 전혀 느낄 수 없는 태도로 말했다.
"나가 고걸 몰라서 허는 소리가 아니시. 딱 뿌러지게 결정이 안 나고 날만 질질 끌어간께 답답허고 애가 타서 허는 소리제."
김복동은 마삼수의 말에 야무지게 쐐기를 박았다.
"두고 볼 일이겄제만, 조사허는 날짜가 길어지먼 길어질수록 우리 헌테 이로울 것이요."
강동기가 신중하게 말했다.
"워째 그까? 그 대장이란 사람이 무신 귀뜸이라도 허등가?"
노덕보가 강동기 옆으로 바싹 다가앉았고, 김복동과 마삼수도 강동기에게 눈길을 모았다.
"찬찬히 생각돌 혀보씨요. 정 사장 편얼 들어 우리럴 처벌헐라고 혔으면야 폴세 순천재판소로 넘게뿌렀을 것 아니오? 허고, 조사럴 험스로도 두들겨패고 난리가 났을 것 아니겄소? 근디 패는 일도 웂고, 순천으로 넴기지도 않음시로 나흘때가 되얐소. 우리가 머가 이뿌다고 사령관이 우리 편 들 리가 웂지만서도, 그렇다고 정 사장 편얼 드는 것도 아닌 것이 분명허요. 그 사람이 중도에 서서 공평허게 일얼 혀주먼 우리가 벌얼 받아도 그만치 적게 받게 될 것 아니겄소."
"그렇구만, 자네 말 듣고 본께 필경 그런 것이로구만. 그리만 됨사 을매나 고마운 일이겄는가."
노덕보가 금방 변색된 음성으로 말했고,
"그려, 죄인덜헌테 끼니때마동 값나가는 국밥 믹여주는 것을 봐도 정사장 편 드는 것은 아니로구만. 고마운 일이고말고"
김복동도 동의를 표하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와따 짐치국덜 너무 급허게 마시지 마씨요들."
마삼수가 불퉁스럽게 내쏘았다. 노덕보와 김복동이 무슨 소리냐는 얼굴로 마삼수를 쳐다보았다.
"사령관인가 대장인가가 공평허게 중도에 섰는지 워떤지 안직 확실허게 몰르는디다가, 혹시 중도에 섰다고 혀도 우리가 징역살기는 매일반일 것인디 고맙기는 머시가 그리 고맙냐그런 말이오."
마삼수는 급한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었다. 저것이 유치장생활 나흘에 몸살이 나는구나, 생각하며 강동기는 피식 웃었다.
"마삼수야 이눔아, 고 개도 안 뜯어묵을 빌어묵을 성깔 눌루고 내말 똑똑허니 들어라. 사령관이 중도에 안 스고 정현동 쪽에 붙어뿔먼 우리 신세가 워찌 되는지 아냐? 정현동이는 워쨌거나 지눔 속 써언헐만치 우리럴 중죄로 처벌헐라고 허고, 거그에 사령관이 짝짝꿍이 돼서 놀아나는 날에는 우리 네 사람 목심 포리목심이여. 요새 닭 모강댕이 비틀기보담도 쉽게 사람 모가지 비틀어뿌는 것이 먼지 니 알지야? 고 것이 바고 빨갱이여. 사령관이 조서에다 '빨갱이'라고 써서 도장 찍어 뿔먼 워쩔 것이냐? 그려도 징역살이가 매일반일 것이냐?"
마삼수는 두려움이 서린 눈으로 강동기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고, 노덕보와 김복동도 찬물에 낯 씻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다 늦게 그리 놀래지 말어. 인자 그럴 위험은 지내간 것 같응께."
강동기는 무심결에 주머니로 손을 밀어 넣었다. 분명 손에 잡혀야 할 것은 잡히지 않고 헛잡힌 손에는 허전감만 가득했다. 담배쌈지는 우치장에 갇히기 전에 압수당했던 것이다.
"여시 겉은 눔, 워째 고런 샐각꺼정 세세허게 허고 앉았다냐."
마삼수는 강동기에게 신뢰의 눈길을 보내며 멋적게 웃고 있었다.
"마누래 웂이는 살아도 담배 웂이는 못 살겄다는 말 인자 알아묵겄네웨."
강동기는 딴전을 피우고 있었다.
"어이, 보소, 동기, 자네 말얼 들은께 그럴 법도 헌디, 그 반대로 말이시, 우리럴 빨갱이로 몰 궁리 허니라고 날얼 질질 끄는 것이 아니까?"
노덕보가 불안한 표정으로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동기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어보였다.
"사령관 권한으로 우리 겉은 것털 빨갱이로 몰아치자먼 나흘씩이나 궁리허고 자시고 헐 것이 웂은 일이요. 그 사람이 맘 고약허게 묵고 우리럴 빨갱이로 몰아 소화다리서 총살얼 시켜뿌려도 그 짓이 부당허다고 들고 나설 사람은 읍내에 하나또 웂을 것이요. 그리 큰 권한 가진 사람이 우리럴 해꼬지 헐랐음사 폴세 혔을 것이오."
"금메, 그럴 법도 헌디, 좌우지간 걸핏허먼 빨갱이로 몰아때리는 요런 눔에 망쪼 든 시상도 다시 웂을 것이로구만."
노덕보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공평하게 헌다먼 징역얼 을메나 살게 될란고?"
김복동이 주저하며 입을 열었다.
"금메 말이요, 우리가 저질른 잘못이 있는디... 삼동을 살어야 허지 않을랑가 모르겄소."
미간을 좁히며 강동기가 신중하게 말했고,
"삼동 내내 깜빵에서 살어?"
김복동은 눈을 크게 열어젖히며 목청을 높였다.
"와따매 성님, 멀 그리 놀래뿌요? 코피 탱 풀어 던짐스로 박치기허고 들어갈 적에 깜빵에서 삼동 날 생각은 미처 안 해뒀습디여? 그때 기백으로 깜빵 살아내먼 삼동도 눈 깜짝헐 새에 지나갈 것잉께 그리 겁묵지 마씨요."
마삼수가 히물거렸다.
"저, 저, 물에 빠져 죽어도 끝꺼정 떠서 옴죽기릴 저 주딩이..."
"김복동은 마삼수를 향해 소린께 맘 쓰덜 마씨요. 당헐 때 당허드라도 당장당장은 삼수맹키로 웃는 소리 혀감스로 때우는 것이 상책이요."
강동기가 김복동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려, 자네 말이 맞네. 삼수 저것도 속맘이야 을매나 씨리고 아플것잉가."
"와따 우리 성님, 쪽집게 무당이시. 내 속 그리 딱 알아 맞춰뿐 판에 우리 각시 뱃속에 든 것이 꼬친지 조갑진지 워디 잠 알아맞춰주실라요?"
마삼수는 임신도 하지 않은 아내를 어느새 임산부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온냐, 복채나 톡톡허니 내라. 꼭 찍어 맞춰줄 팅께."
김복동은 앉음새를 고치며 명랑한 척 어조를 바꾸고 있었다.
"김범우 선생의 움직임을 알고 계신가요?"
심재모가 갑작스럽게 이런 말을 물어올 때까지 경찰서장 권병제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습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입장에서 반사적으로 나가야 할 이 당연한 반문을 얼버무린 채 그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그가 엉거주춤할 수밖에 없었던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먼저 자신의 직책에 대한 책임감 탓이었고, 다음은 김범우의 움직임이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순간적으로 압박을 가해왔던 것이다. 병원사건에 대해서일까, 아니면 정 사장 사건과 관련된 것일까, 일단 두 갈래로 나누어진 생각 앞에서 그의 추리력은 더 이상 작동을 못하고 있었다. 그의 의식 속에 박혀있는 김범우라는 인물은 두 사건 모두에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병원사건에는 이미 재판소를 드나들 정도로 적극성을 띠고 있었고, 정 사장 사건에는 소작인들 편에서 어떤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이 농후했던 것이다.
"전 원장이란 사람의 무죄석방을 위해서 진정서에다 도장을 받고 있소."
심재모의 말이 그의 막힌 추리에 답을 마련해 주었다. 그 답 앞에서 그는 또 추리를 해야 했다. 심재모가 병원사건에 대해 이미 알고 있을까, 아직 모르고 있을까. 그러나 그 답은 명료했다. 숨김없이 사실대로 밝히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었다. 진정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심재모가 나름대로의 정보망을 통해 병원사건을 캐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 사건을 심재모에게 고의적으로 감춘 것은 아니었다. 그가 주둔하기 전에 이미 일단락 진 사건이어서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았고, 더 이상 말썽 없이 재판이나 좋은 결과로 끝나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김범우가 읍민들을 상대로 진정서를 꾸미게 될 줄은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심재모가 병원사건에 대해 다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을 알아내는 과정에서 혹시 자신에게 품었을지도 모를 오해를 제거하기 위해서라도 권병제는 사건 전말을 자세하게 밝힐 필요를 느꼈다.
"큰 사건 처리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겠군요."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심재모가 지극히 무감하게 한 말이었다. 그 무감한 반응이 바로 사건내용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간접표현일 수밖에 없었다. 그 무감함 앞에서 권병제도 무감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김범우가 진정서를 돌리고 있는 형편에 무감할 수가 없었다.
"그 진정서 돌리는 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권 서장은 심재모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그는 진정서가 나돌게 된 것에 스스로 책임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정 사장의 사건 처리로 신경을 쓰고 있는 심재모가 김범우의 행동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글쎄요, 무슨 조처를 할 필요가 있으십니까?"
"아니, 뭐..."
예기치 못했던 심재모의 반문에 권 서장은 당황하고 있었다.
"진정서를 돌리는 일이 위법행위도 아닌데다가, 하나밖에 없는 병원에 의사까지 없어서 읍민들이 애로가 많은 모양인데, 진정서를 내서 효과를 볼 수 있다면 좋은 일이지요."
권 서장은 하마터면, 그리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할 뻔했다. 심재모가 그렇게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은 김범우에 대한 호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권 서장은 눈치 채고 있었다.
"나와 같은 학병출신을 이런데서 만날 줄이야..."
김범우를 처음 만나고 나서 심재모는 무척 기뻐했었고,
"서민영 선생이야말로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난 체하지 않고 그런 선생님을 앞세울 줄 아는 김범우 선생의 겸손한 태도도 본받을 만큼 훌륭합니다. 이런 데 그런 분들이 계시다니..."
서민영을 만나고 와서 심재모는 흡족한 기분으로 무척 만족을 표시했는데, 그의 만족의 도는 '이런 데'라는 지역감이 앞서서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 같았다.
"나는 여기오기 전까지는 '벌교'라는 이름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순천이야 많이 들어봤지만 벌교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습니다. 벌교, 한자로 뜻을 알지 않고 소리로만 들을 때는 얼마나 이상스런 이름입니까. 빨갱이들이 득실거리는 어느 심심산골인 줄 알았었지요. 와서 보니 교통도 편리하고, 경치도 아름답고, 생각보다 괜찮은 곳이로군요."
권 서장은 심재모가 잠깐잠깐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서장님, 정 사장 사건을 해결하는 데도 진정서를 돌리면 어떻겠습니까?"
"네?"
심재모의 말이 너무 돌연해서 권 서장은 얼핏 말뜻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아, 미안합니다. 나 혼자 생각을 하다보니까 설명을 붙이지 않고 결론부터 말을 하고 말았군요. 다름이 아니라, 이건 비밀에 부쳐야 할 사항입니다만..."
정 사장 사건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 소작인들이 유리한 쪽으로 해결하자고 작심은 했는데, 그 최선의 방법이 쌍방간에 화해를 하고 가해자 측에서는 피해자 측에 치료비와 손해배상을 하면 되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정 사장이 화해를 할 리가 만무하고 그렇다고 화해를 강압할 수도 없는 처지이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계기를 자연스럽게 만들자면 읍민들의 진정서가 꼭 필요한데, 그 일을 비밀리에 지시할 수 있는 선이 있느냐는 것이 심재모가 말한 골자였다.
"참 묘안이긴 합니다만 경찰이 움직일 수는 없는 일이고, 청년단이 있긴 합니다만 그쪽 끈도 경찰의 끈이나 마찬가지로 지시의 비밀이 끝까지 지켜지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나도 같은 생각이오. 만약 지시 사실이 누설된다면 일은 난감하게 되고 말아요."
권 서장은 어제 읍장이 귀띔해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었다.
"젊은 혈기도 좋지만 조심하라 이르시오."
정 사장의 움직임을 상세하게 알려주고 나서 자리를 뜨며 읍장이 했던 말이었다. 권 서장은 그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 사실을 알려준다고 심재모가 마음을 바꿀 것 같지 않았고, 자신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비밀이 지켜지자면 김범우 같은 사람이 앞장을 서야 하는데..."
권 서장은 다급한 마음으로 중얼거렸다.
"그렇소! 적임자가 있소!"
심재모가 느닷없이 소리치며 손바닥으로 무릎을 쳤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왜 진작 그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소."
심재모의 기뻐하는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권 사장은 그 적임자가 서민영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했다.
"서민영 선생이 어떻소?"
심재모가 동의를 구해왔다.
"그 분이 나서주기만 한다면 더 바랄게 없지요. 비밀이 지켜지는 건 물론이고 정 사장이나 다른 지주들한테 미치는 파급효과가 클 테니까요."
"고맙습니다. 서장님이 이 일을 해결했습니다."
"무슨 과분한 말씀을..."
병원사건을 뒤늦게 밝히고 나서 찜찜하게 남아 있던 감정의 찌꺼기가 말끔하게 씻겨나가는 것을 권 서장은 느끼고 있었다. 김범우가 진정서를 돌리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심재모는 직접 그를 찾아갔던 것이다. 김범우는 병원사건 전말을 들려주었다.
"담당 판사가 제 아버님한테 요구해서 시작한 일이니 무용지물은 안 될 겁니다. 책임한계가 불분명하고 책임전가를 쉽게 할 수 있는 요즘 같은 과도기적인 사회에선 이런 물건들의 효과가 의외로 큰 법 아닙니까."
김범우가 진정서를 들어 보이며 한 말이었다.
이십 평 남짓한 창고 안은 차곡차곡 쌓아올려진 짚단으로 반 가까이 차 있었다. 나머지 공간에는 과일궤짝들이 별로 정돈이 안 된 채로 쌓여 있었고, 여러 종류의 농기구들이 벽에 걸리거나 기대어져 있었다. 북쪽으로 뚫린 창에는 창문대신 곧은 나뭇가지들이 한 뼘 간격정도로 박혀 창살을 이루고 있었다. 그 창살들 사이로 석양 햇살이 곧게 비쳐들고 있었다. 창의 크기만큼 비쳐드는 햇살은 창살의 수효에 맞춰 쪼개져 있었다. 여러 조각의 햇살 속에 수없이 많은 먼지들의 끊임없는 부유가 투명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창고 안에는 정적만이 가득했고, 어디에서도 인적이라고는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유심히 살펴보면 먼지들의 부유속에 희미한 연기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짚더미 속 그 어디에선가 흘러나오고 있는 담배연기였다.
나무의 마찰음과 함께 창고문이 약간 열렸다. 그 사이로 여자 노인네가 황급히 들어섰다. 배성오의 어머니 과수원댁이었다. 그녀는 행주로 싸들고 있던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고 밖을 살핀 다음 창고 문을 재빨리 닫았다. 나이에 비해 무척이나 기민한 동작이었다. 냄비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그녀는 북쪽 벽면인 짚더미의 왼쪽을 향해 곧장 걸어갔다.
"성오야, 에미다, 에미."
과수원댁은 짚더미의 구석에다 대고 낮게 그러나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엄니요? 기줄리씨요."
냄비를 바닥에 내려놓은 과수원댁은 허리 높이의 짚단 하나를 힘도 들이지 않고 뽑아냈다. 그리고 그 아랫것들도 들어냈다. 그런데도 천장 가까이까지 쌓인 짚단은 끄떡없이 그대로였다.
"엄니, 심드는디 가만있제 머 헐라고 짚단은 들고 그러요."
짚더미 속에서 얼굴을 쑥 내밀며 배성오가 말하고 있었다.
"워쩌끄나, 짚단 서너 개 드는 것이 심드는지 아는 효자가 워째 에미 애간장을 그리 태우는고?"
과수원댁은 아들을 향해 눈을 흘겼다. 그어나 눈자위에는 그지없니 따스한 웃음이 어려 있었다.
"엄니도 참, 얼렁 들오씨요."
배성오는 과수원댁의 저고리 소매를 잡아끌었다.
"가만 있거라, 요것 들어야 쓴다."
아들의 손을 뿌리친 과수원댁은 날랜 몸놀림으로 냄비를 들고 돌아섰다.
"고것이 뭣이다요?"
"닭얼 한 마리 괐다."
"참 엄니도 태평시럽소."
"호랑이헌테 열 분 물려가도 정신얼 채려야 살드라고, 아무리 다급허게 쬦기는 몸이라도 닭 한 마리는 과묵고 떠나야제 기운얼 쓰제."
허리를 반으로 구부려 짚 구덩이 안으로 비집고 들며 과수원댁은 중얼거리듯 말하고 있었다.
"얼렁 자리 잡고 앉으씨요. 문얼 막을랑께요."
왼손으로 짚단 하나를 들며 배성오가 말했다.
"어이 와, 닭얼 묵어야 쓴디 고걸 안 막으먼 워쩌겄냐?"
"그러다가 누가 불쑥 들어와불먼 워쩌고라?"
"컴컴헌 속에서 닭언 워치께 묵을라고 그러냐? 여그 들을 사람 집에는 아무도 웂다."
"지아무리 컴컴한 속에서도 묵을 것은 다 코로 안 들어가고 입으로 들어가는 법잉께 하나또 염려 마씨요. 하나부컴 열꺼정 철저한 방비가 최고요."
배성오는 빠른 동작으로 짚단을 쌓기 시작했다.
"참말로, 연필이 워디 있는지, 잡기장얼 워디다 뒀는지 사방팔방 몰르고 덤벙대는 것이 워찌 저리 야물딱지게 철이 들어뿌렸는지 모르겄네웨."
과수원댁은 정신없이 짚단을 쌓고 있는 아들의 뒷모습에 눈을 박은 채 중얼거리고 있었다. 높이가 앉은키보다 약간 높고, 넓이가 한 사람이 겨우 누울 정도인 짚굴은 위아래로 통나무가 받쳐져 있었다. 문은 짚단을 세 겹으로 서로 엇지게 쌓아올려 막았으므로 전혀 표가나지 않았고, 일삼아 발길질을 하기 전에는 허물어질 염려도 없었다. 그것은 배성오가 이번에 단독으로 읍내 침투를 하게 되면서 하룻밤 동안에 만든 은신처였다. 짚단을 빼내면서 통나무를 받쳐 들어간 그 작업은 땅을 파는 일보다 수월하게 해치울 수 있었다. 굳이 짚더미 속에다 은신처를 만든 것은 다른 은신처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군경이나 청년단의 눈을 피하기 전에 먼저 아버지나 형의 눈을 피해야 했던 것이다.
"그 짚단만이라도 안 막으먼 어쩌겄냐와."
세 겹의 짚단 중 맨 앞 것을 막으려는 아들에게 과수원댁이 말했다. 짚굴 속은 이미 어둠침침해져 있었고, 마지막으로 그 세 겹을 막아버리면 빛은 완전히 차단되는 것이었다.
"묵을 것은 다 입으로 들어간당께요."
배성오는 퉁명스레 말하며 빠끔하게 뚫린 공간에 짚단을 우악스럽게 쑤셔 박았다.
"워메!"
과수원댁은 왈칵 밀려드는 어둠을 느끼는 순간 반사적으로 냄비를 감싸 잡았다.
"쪼깐 있으먼 눈앞이 번허게 티이요."
자리를 더듬거려 앉으며 어둠 속에서 배성오가 말했다.
"뜨시고 존 방 다 놔두고 무신 벼슬을 얻을 것이냐, 무신 상을 받을 것이냐."
과수원댁의 탄식 담긴 목소리에 냄비뚜껑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섞였다.
"인민 해방얼 얻고, 영웅 칭호럴 받제라."
배성오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투박하게 울렸다.
"워따 장허다, 내 아덜."
과수원댁의 비꼬는 목소리가 뒤따랐다. 그때 어둠 속의 확 밝아졌다. 배성오가 성냥을 켠 것이었다. 그는 담배에 불을 붙였다.
"요런 쥐콧구녕만헌 굴 속에서 연기가 워디로 가라고 담배럴 피냐. 그라고, 짚북데미에 불이 붙으면 워쩔라고 그로는겨? 니가 정신이 있냐 웂냐?"
과수원댁의 음성은 자못 사나웠다.
"엄니, 아무 걱정 마씨요. 연기야 지푸랑구 새로 솔솔 다 빠져나가게 되야 있고, 나가 요고상 험시로 한때럴 못 보고 짜잔허게 담뱃불에 타죽을 상싶으요?"
"말이나 못 험사 밉지나않제. 어여 담배 끄고 닭이나 묵어라. 국물 식어빠지먼 묵으나 마난께."
"어두운디 국물 뜨거우먼 묵기가 고약헌께 식으라고 쪼깐 더 두씨요."
"아니다, 손꾸락 담가봉께 지끔이 딱 묵기 좋다. 어여 손 일로 뻗어라, 냄비 여그 있다."
과수원댁은 오른손으로 냄비를 붙든 채 아들이 빨고 있는 담뱃불 쪽으로 왼팔을 뻗어 어둠속을 휘저었다.
"봉사놀음 허는 것도 아니겄고, 머 할라고 손얼 뻗고 말고 혀라."
다시 어둠이 밝혀졌다.
"욜로 냄비 옮기씨요."
성냥불이 꺼질세라 과수원댁은 냄비를 아들 앞으로 잽싸게 옮겼다.
"얹힌디 꼭꼭 씹어 묵어라."
어두워진 속에서 과수원댁이 말했다.
"엄니도 좀 잡수씨요."
"니나 어여 많이 묵어라. 해 떨어지자먼 당아 멀었응께 찬찬히 꼭꼭 씹어서 국물꺼정 다 묵어라. 그간 을매나 배럴 곯았겄냐."
"안 선생 엄니넌 만냈소?"
배성오의 말은 벌써 입에 먹을 것을 잔뜩 넣고 있는 소리였다. 그는 두 발바닥으로 냄비를 고정시키고는 손에 잡히는 대로 닭을 찢어 입에 몰아넣었던 것이다.
"잉, 안 선상 엄니가 금메 나가 올 줄 알었다는 것맹키로 큰 돈얼 선뜻 내놓덜 않겄냐."
"돈은 무슨 돈을요?"
배성오가 문득 씹기를 멈추었다.
"아들 치료비로 쓰게 해도람서 돈얼 내놓드란 말이다."
"을매를요?"
"쌀 열 가마니값이라고 허드라."
배성오는 어금니를 물며 눈을 감았다. 가슴이 찡 울이더니 먹먹해져와 닭고기를 넘길 수가 없었다. 테러를 당하던 날 밤의 비명과 아직도 기동이 어려운 안창민의 모습이 겹쳐지고 있다.
"나가 돈얼 잘못 받아온 것이나 아니냐?"
"아니요, 아니구만요. 잘 받아오셨어라."
배성오는 서둘러 대답하며 닭고리를 꿀떡 삼켰다. 피를 많이 흘렸을 것이고, 먹는 것도 부실허니 그 돈으로 보약을 먹이면 되겠구나, 생각하고 있었다.
"그 안 선상도 늙은 홀엄씨 속께나 태우드라. 그 노친네가 워낙이 엄전혀서 넘 앞에 눈물얼 쏟덜 안혀서 그렇제, 전신이 눈물로 맥질이 되야..."
"엄니, 엄니, 나가 부탁헌 돈 워찌 되얐소?"
배성오는 어머니의 말허리를 자르며 거칠게 내쏘았다. 과수원댁은 그만 찔끔해져서 말꼬리를 삼켰다.
"어찌어찌 장만은 혔다."
"되얐소. 요분에 엄니가 아조 고상얼 많이 허셨소."
"말도 마라, 피 다 보타뿌렸다."
"엄니도 인자 당당헌 혁명전사가 되얐소."
"이눔아, 꿈에라도 고런 징헌 소리 허덜 말어. 새끼 일이라 죽지 못혀 나선 것이제 빨갱이 돕자고 헌 일이 아닌께, 이 에미 속 똑똑허니 알어야 씨."
과수원댁은 싸늘한 어조로 말했다.
"요분에 엄니가 일 척척 해내는 배짱 본께 나가 꼭 엄니럴 탁했는갑소."
"염병헌다!"
과수원댁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렸다.
"다 장난말이고라, 워낙에 형편이 다급헌께 그랬제, 나라고 늙은 엄니헌테 그런 위험시런일 시키고 잡겼소. 앞으로는 그런 일 다시 웂을 것이요."
"나야 워쩌든간에 암시랑 않다만 아부지나 느그 성이 못 당헐 고초 당허는 것이 애가 씨리다. 이참에도 느그 성이 조사럴 받고 야단났었다. 자꼬 그러다가는 읍사무소 쬧겨날란지도 모를 일이다. 워쩌냐, 여러 사람 살리는 셈치고..."
"엄니!"
배성오는 버럭 소리쳤다.
"아녀, 아녀, 나도 장난말이여."
과수원댁은 황급히 자신의 말을 수습했다. 지금 작은 아들의 얼굴 모양이 어떨지 그녀의 뇌리에는 환히 떠올라 있었다. 이빨을 앙 다물고 눈을 부릅뜬, 도저히 자신의 새끼로는 믿어지지 않는 험악한 모습일 것이었다. 큰아들에 비해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정도 많은 편이어서 그녀의 마음자락은 어느 면 작은아들한테 더 기울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작은아들이 공산당을 하고부터 그녀는 자신의 마음자락을 거두어야 한다는 서운함과 아픔을 겪고는 했다. 그 누구든 공산당을 못하게 하면 작은아들은 생판 딴 사람으로 돌변하고 마는 것이었다. 공산당 사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 아버지한테 몽둥이찜질을 그리 당하면서도 끝내 버리지 않는 것이었다. 속마음까지야 그럴까마는 남편은 자식 하나 없는 셈 친다고 한지가 오래였다. 다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한 가닥 행여나 하는 마음을 떼치지 못해 또 그 말을 입 밖에 냈던 것이고, 오랜만에 입에 대게 한 닭을 그나마 못 먹이게 될까봐 부랴부랴 자신의 말을 없는 것으로 해버린 것이다.
"시방 닭 묵고 있냐?"
"야아."
"목 미인디 국물 훌훌 마셔감스로 묵어라."
작은 아들은 대꾸가 없었다. 새끼라는 것이 무엇일까, 과수원댁은 그 지향 없는 물음에 빠져들었다. 가랑잎처럼 파삭 시들어버린 안 선생 모친의 모습이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아들이 건강하게 잘 있다는 말을 듣고 그 어찌 할 줄 모르던 모습, 그것이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에미들의 마음인 것이다. 아들이 국물 들이켜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려, 한 방울도 냄기지 말고 다 묵고 몸 실해야 쓴다. 염상진 대장도 안창민 선상도 똑똑허기로 읍내서 꼽히는 사람덜인디, 공산당이 그리 나쁘기만 험사 그 똑똑헌 사람덜이 워째서 허겼냐. 서로가 나쁘다고 욕질에 총질허기로 치자먼 피장파장이다. 니가 바라는 대로 끝이야 보든지 못 보든지 간에 기운이 좋아야 당장 도망이라도 잘 칠 것 아니겼냐.
"여자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인디 솜옷은 워찌 그리 날래게 해 입었드라냐?"
"돈만 있음사뛰는 호랭이 눈썹도 뽑소."
"솜옷 한 벌 혔는디 갖고 가그라."
"그러제라."
아들의 대답이 의외로 선선해서 과수원댁은 한 가지 더 욕심이 동했다.
"이불은 있냐?"
"솜옷이 이불이요."
과수원댁은 이불을 줘 보낼 생각은 단념했다.
"행여라도 보리짚 믿고 잠자지 말어라와."
"다 아요. 보리짚은 냉해서 얼어죽소."
"그려, 볏짚허고는 달븐께. 몸 숨기고 댕기자먼 밥헐 적에도 싸리나무만 때야 써. 그래야 연기가 안 난께."
"다 아요. 맹감나무도 내가 안 나요."
"맹감나무도? 고런 것얼 워찌 그리 다 아냐?"
"다 알게 되야 있소."
"산중에 칡 많겄제?"
"있겄제라."
"일삼아 칡얼 캐묵어라. 고것이 보약이다. 물이 올르는 이삼월 칡얼 음지에 말렸다가 가리럴 내서 한 주먹썩 묵으먼 하로 세 끼 굶어도 까딱 웂다. 이삼월 솔잎도 그러허먼 보약이고임시변통 양식이 되니라. 괸 물언 묵지말고 흘르는 물만 묵고, 시상웂이 춥더라도 땀 찬 발로 자 버릇 허지 말어. 땀 안 씻고 자다가는 영축웂이 발꾸락에 얼음 백일 것인께. 발꾸락, 손꾸락, 귀에 젤 쉽게 얼음 백이고, 얼음 백이기 시작혔다 허먼 문딩이가 따로 웂응께. 그라고, 그라고..."
"나가 세 살 묵은 애기가 아닌께 인자 고만 허씨요."
니가 백 살을 묵어도 이 에미 맘에는 세 살 묵은 애기여, 과수원댁은 속으로 안타깝게 부르짖었다. 일러 보낸 말이 끝없이 많을 것 같은데 막상 떠오르지가 않았다.
"인자 해가 떨어졌을 상싶은디요?"
"국물도 다 묵었냐?"
"한 방울도 안 냄겼소."
"잘혔다. 나가 나가보고 올 거싱께 기둘리고 있거라."
"돈허고 짐언 워딨소?"
"돈언 여그 있고, 짐언 대밭에 내다놨다."
"얼렁 나갔다 오씨요."
배성오는 짚단을 허물기 시작했다. 조성에 침투한 강동식과 오금재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강동식이 무사한지 궁금했고, 문기수가 대장의 명령을 제대로 수행 할 것인지 염려가 되었다.
시방 벽을 따라가며 쌓아올려진 책들뿐 방에는 장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벽지나 장판마저 낡을 대로 다 낡은 방에는 언제나 오래된 종이 냄새가 매캐하게 감돌고 있었다. 비좁고 볼품없는 방인데도 발을 들여놓기만 하면 허리가 꼿꼿하게 긴장되고 어깨가 눌리는 압박감을 느끼게 되고는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인지 더러더러 생각했고, 그럴 때마다 싱겁게 웃고 말고는 했다. 지금도 김범우는 주인 없는 방에 혼자 오두마니 앉아 여기저기 눈길을 보내며 또 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예수상 때문인가, 저 많은 책들 때문인가, 이 가식 없는 청빈 때문인가. 김범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원인이었다. 꼭 하나로 원인의 대상을 밝히자면 그건 서민영일 수밖에 없었다. 예수도, 책도, 청빈도 서민영을 이루는 일부분들일 뿐 서민영 자체는 아니면서, 그 하나하나는 완전한 서민영을 표현해내고 있었다. 예수상은 진정한 종교인 서민영을, 책들은 정직한 지식인 서민영을, 청빈은 진실한 사회의 서민영을 나타애고 있었다. 그 세 가지 복합체가 서민영이었고, 긴장과 압박감은 그 앞에서 생기는 것이었다. 김범우는 예수상을 물끄러미 올려다보고 있었다. 가시면류관을 쓴 고통스러운 모습의 예수였다. 서른세 살의 나이로 문둥이나 창녀, 걸인 같은, 버림받은 자들의 편에 서서 스스로의 목숨을 버린 청순한 사나이. 가시면류관뿐인 생애를 살다가 끝내 십자가에 못 박히며 저리도 고통스럽게 죽어간 갸륵한 사나이. 스스로의 믿음을 지켜 육신을 버림으로써 인간의 역사위에 영생의 삶이 무엇인지를 일깨워준 거룩한 사나이. 종교적인 위압감보다 인간적인 외경감으로 예수상을 올려다보며 김범우는 언제나 했던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예수를 인간적인 친근감을 가지고 대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서민영 선생이었다. 그 분은 기독교사회주의와 무교회주의자답게 예수를 신앙적 대상으로 떠 받들지 않고 실천적 선구로 따르려 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분에게 예수는 내용이었지 형식이 아니었고, 풀어야 할 숙제였지 맹종해야 할 심판자가 아니었다. 김범우는 가시면류관을 쓴 똑같은 예수상 중에서도 저 벽에 걸린 예수상에 한층 친근감과 절실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서민영 선생이 손수 그린 것이었다. 매산중학 시절에 꼬박 일 년이 걸려 그렸다는 그 펜화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무수한 선들이 모아져 예리한 가시가 돋친 면류관을, 방울져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을, 하늘을 우러르고 있는 슬픔과 고뇌에 찬 눈동자를, 생살이 찢기는 고통을 물고 입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건 서민영의 그림솜씨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깊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 수많은 선들이 단순한 손재주로 그어진 적이라면 예수의 고뇌를 그처럼 생생하고 절실하게 표현해내지는 못했을 것이라 싶었다. 그 선 하나하나에는 소년 서민영의 순수하고도 뜨거운 믿음이 응결되어 있었다. 어쩌면 어린 서민영은 예수를 그림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자신의 손으로 스스로의 영혼 속에 각인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교회의 제도화된 종교적 권위를 배격하고 의식화된 맹신적 아집을 비판하면서 스스로를 버리는 생활로 일관하고 있는 오늘의 서민영 선생을 생각하면서 예수상을 바라보노라면 자연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다.
김범우는 예수상에서 눈을 옮겨 책들을 찬찬히 훑어나갔다. 건성으로 보아 넘기면 그 책들은 언제나 먼지를 뒤집어 쓴채 제자리에 쌓여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유심히 보면 그 책들은 쉴 새 없이 위치 변동을 하고 있었다. 그건 서민영 선생이 끊임없이 책을 펼치고 무언가를 찾아 헤매고 있다는 증거였다. 남들의 눈에는 그지없이 무질서해 보이는 그 책 더미들은 서민영 선생에게만은 완전히 정돈된 상태였던 것이다. 그분은 필요한 책을 언제나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뽑아내곤 하는 것이었다. 책들은 대충 세 종류로 분류할 수 있었다. 농촌과 농업, 사상과 철학, 종교와 문학이었다. 그분은 정작 전공인 영문학 서적은 별로 가지고 있지 않았다. 스스로가 영문학을 전공한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것 같았고, 특히 미국에 대해서는 경멸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황금만능을 앞세운 그들의 패권주의를 경원했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그들의 단순한 행동성을 경멸하면서 경계했다. 미국이란 나라를 직접 경험한 김범우로서는 그 투시력 강한 안목에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그런데 그분의 서재에서 정말 소중하고 값진 것은 따로 있었다. 그분이 다각도로 수집해놓은 자료들이었다. 톨스토이는 두 번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은 애당초 읽지를 않는다고 했는데, 서민영 선생의 서재에 쌓인 책들이야말로 몇 번씩이고 읽을 필요가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 책들의 가치가 자료들의 중요성을 능가하거나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었다. 김범우는 서민영의 전갈을 받고 서재를 찾아온 것이다. 이런 일은 거의 드문 경우였다. 그래서 그는 약속시간보다 먼저 오게 되었고, 주인 없는 방에서 다른 때보다 더한 긴장감과 압박감을 느끼는 지도 몰랐다.
"선생님, 계십니까? 저 손승홉니다."
조심성이 잔뜩 밴 손승호의 목소리였다. 손승호도 부르셨구나, 대체 무슨 일일까. 김범우는 순간적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전혀 잡히는 것이 없었다.
"손군인가. 어서 들어오시게."
김범우는 서민영 선생의 음성을 흉내 내고 있었다.
"예예..."
상체가 굽혀지는 느낌이 여실한 손승호의 대답에 뒤이어 쪽마루 삐꺽이는 소리가 가늘게 들렸다. 김범우는 앉음새를 고쳐 허리를 펴고는 눈을 지그시 내려감았다.
"아니 자네!"
"어서 앉으시게. 좀 늦었구만 그래."
김범우는 눈을 감은 채 여전히 선생의 흉내를 내고 있었다.
"이 사람아, 어쩐 일인가?"
손승호는 김범우의 어깨를 흔들었다. 그때서야 천천히 눈을 떠 손승호를 올려다보았다.
"호출명령을 받지 않았나."
자네도 그렇겠지, 하는 말을 김범우는 눈으로 묻고 있었다.
"무슨 일이실까?"
손승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선생님이 곧 오실테니 가다리기도 하고, 자네 머리의 상처는 괜찮은가?"
"그럼, 그때가 언제라고."
"그러고 보니 못 만난 지도 꽤 오래 됐구먼. 그래, 어찌 지냈나?"
"나야 뭐 그렇지. 전 원장님 일로 자네가 애쓰고 있다는 소식 듣고 있네. 효과는 있겠는가?"
"그럴 것 같네."
"다행이군, 모두를 위해서."
두 사람의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손승호는 망연한 눈길을 예수상에 보내고 있었다. 서민영과 마음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이 방에 들어오면 예수상에 눈길을 보내게 마련이었다. 김범우는 이지숙을 생각하고 있었다. 여전히 불투명하고 해득이 어려울 뿐이었다. 구름에 가렸거나 안개에 싸인 것 같은 여자였다. 병원 사건이 마무리될 때까지는 수시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존재였다.
"이런, 먼저들 와 있었구만 그래."
서민영의 목소리였다. 두 사람은 튕기듯 일어났다.
"그냥 앉어들 있지 나오기는..."
두 사람은 토방으로 내려서 허리를 굽혔고, 서민영은 방으로 들어가라는 손짓을 하며 인사를 받았다. 의례적인 인사일망정 주인 없는 방에 먼저 들어가 있었던 실례를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서민영의 집은 언제나 사립문이 반쯤 열려 있었고, 인기척이 나면 아랫방에 거처하는 불구 노파가 문을 빠꼼하게 열었다. 서민영이 머무를 때 끼니를 장만하는 것이 맡은 임무의 전부인 그 그림자 같은 노파가 문을 닫는 것으로 출입허가는 끝났다. 그 다음에 서재로 들어가는 것은 실례가 아닌 것으로 되어 있었다.
"내가 고흥에서 넘어오느라고 조금 늦었어."
서민영이 책상머리에 앉으며 말했다.
"선생님께서 늦으신 게 아닙니다. 저희가 빨리 온 거지요."
김범우가 건성으로 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런가, 이게 농사 진 곶감일세. 맛이 어떤지 하나씩 들어보시게."
서민영이 보자기를 두 사람 앞으로 밀어놓았다. 싸리꽂이에 꿰지 않고 말린 곶감이었다. 흰 분이 고르게 돋아 있는 곶감에는 잡티 하나 묻어 있지 않았다. 정성스럽게 다룬 청결감이 구미를 당기게 했다.
"어서 맛들을 봐. 먹으면서 내 이야기 듣게나."
두 사람은 곶감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내가 자네들을 보자고 한건 다름이 아니라, 신설될 상업학교 문제를 의논하려 함이야."
김범우와 손승호는 약속이나 한 것처럼 서로를 맞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은 똑같이 의문에 차 있었다.
"학교 신설은 기정사실인 모양이고, 중요한 것은 교사진이 문제인데, 우리 읍내에 최초로 생기는 상급학교가 내실을 기하자면 실력 있고 올바른 교사들을 모으는 게 급선문데, 내 생각 같아서는 자네들 두 사람이 자리를 옮겼으면 싶으네. 의향들은 어떠신가?"
"그 일에 조한규가 설치고 있습니다."
손승호가 불쑥 한 말이었다. 선생님은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하는 뜻이 분명한 손승호의 어투는 김범우가 듣기에도 민망할 지경으로 투막스러웠다. 마땅찮은 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손승호의 성미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그자가 바람을 일으키기 때문에 자네들을 거기로 보냈으면 하는 거네."
서민영의 의도는 확실해졌다. 손승호는 고개를 수그렸다. 얼굴이 침울했다. 그런 그를 바라보며 김범우는 가만히 웃음 지었다. 이미 조한규의 똑같은 제의를 받고 얼마나 난감한 심정일까를 헤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제의는 같았지만 그 목적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거부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조한규는 자파세력으로 이용하려는 목적이었고, 서민영 선생은 조한규를 견제하려는 목적이었다.
"손군이나 저는 벌써 조한규한테 부임 제의를 받고 거절한 입장입니다."
김범우는 이렇게 말함으로써 거부의사를 대신하고자 했다.
"벌써 그런 일이 있었던가..."
서민영은 무언가 생각하는 얼굴이 되어 고개를 주억거렸다.
"선생님, 제게 생각할 시간 여유를 좀 주셨으면 합니다."
손승호가 말했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으리라고 생각하며, 김범우는 잠자코 있었다.
"물론이네. 내가 강요하는 건 아니니까 두 사람 다 자유롭게 생각들을 해보게나."
서민영의 말은 오늘 자리를 함께 하게 된 용건의 결론인 셈이었고, 두 사람은 같은 숙제를 받은 것이었다. 아무도 더는 말이 없었다. 어색스러운 침묵이 이어졌다. 분위기를 바꿔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김범우는 마땅한 화제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 선생님께서는 어찌 하실 겁니까?"
손승호가 고개를 들며 갑작스럽게 한 말이었다.
"내가...?"
무슨 뜻인가, 하는 얼굴로 서민영은 손승호를 쳐다보았다.
"선생님께서 교장자리에 앉으시면 되겠습니다."
손승호는 엉뚱한 듯했으나 묘책 중의 묘책을 내놓고 있었다. 서민영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앉은뱅이책상에 시선을 던진 채 붙박힌 듯 앉아 있었다. 그 침묵 앞에서 손승호는 자신이 너무 입바른 소리를 한 것이 아닐까 염려하고 있었고, 김범우는 손승호의 제안이 결코 받아들여지지 않으리라 짐작하고 있었다.
"그래, 자네 말뜻을 내 모르는 바 아닐세."
서민영은 앉음새를 고치며 손승호와 김범우를 차례로 눈여겨 쳐다보고는,
"허나, 재목이란 다 제각각 쓰임새가 있는 법이야. 몸도 불편한 나로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최선이야. 내가 또 달리 하고자 하는 일이 있다면 자네들 같은 젊은 인재들을 지원하고 면학능력이 있는 가난한 학생들을 위해 장학회 같은 걸 만드는 것이네. 나는 모든 면에서 일선교육자로서 적임이 아니네."
차분한 어조속에 거부 의사를 분명히 담아 말했다.
"선생님께서 적임이 아니시라면 사범학교밖에 못나온 저는 중학교 교사가 되기에는 기본자격 미빕니다."
빈틈이 없는 손승호의 반격이었다. 김범우는 속으로 빙그레 웃고 있었다. 서민영선생의 말은 개인적으로 거부의사가 확실하지만 객관적으로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을 느꼈고, 그 점을 손승호가 놓치지 않으리라고 예상했던 바였다. 그리고 손승호의 말도 현실성을 제거해버린 억지였던 것이다. 사범학교를 나오면 소학교 교사자격을 갖게 되고, 중학교 교사가 되려면 전문학교 이상의 학력을 취득해야 한다는 원칙은 이미 해방과 함께 깨어진 것이었다. 일본인 들이 쫓겨 가고 나자 사회 각 분야에서는 인력공백상태가 발생했다. 가장 심한 것이 행정조직이었고, 그 다음이 교육계였다. 그런 인력부족 사태는 친일 공무원이나 경찰을 재등용시키는 그럴 듯한 명분과 구실이 되었고, 교육계에서도 자격기준의 원칙이 자연스럽게 파기될 수밖에 없었다. 김범우 자신이 대학 중퇴의 학력으로 중학교 선생 노릇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변동의 일환이었다. 사범학교 출신이라 하더라도 단기강습을 받고 소정의 시험을 거치면 얼마든지 국민학교에서 중학교로 자리 옮김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손승호는 이런 현실적 여건을 묵살한 채 서민영 선생의 회피를 막고자 억지를 쓰는 것이었다.
"나는 나서려 하지 않고 자네들한테만 자리를 옮기라 하는 내 말이 납득이 안 될 수도 있겠지. 허나, 우리 각자가 처해 있는 입장을 한 번 생각해 보세나. 자네들도 알다시피 교단을 떠나 그 일을 시작한 게 벌써 몇 년짼가. 그런데 그게 이제 겨우 싹이 트고 있는 형편이네. 열매를 맺자면 아직도 멀었는데 어찌 다른 일을 생각할 수 있겠는가. 쉬운 말로는 겸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그거야말로 쉬운 말일 뿐이고, 두 가지 일을 다 망치는 교만이고 어리석음이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인간의 능력에는 분명한계가 있는 법 아닌가. 하나님이 인간을 지으실 때, 한 가지 일에 겸손한 성실을 다하는 경우에만 당신을 닮게 하는 영광을 베푸셨고, 두 가지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교만한 불성실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네. 물론 이런 섭리는 인간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게는 균등하게 주어졌지. 동물의 제왕이라 일컬어지는 호랑이나 사자가 먹이를 사냥할 때 그 사냥감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노루를 쫓을 때나 토끼를 쫓을 때나 힘의 경중을 두지 않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네. 그게 아마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성실한 삶의 본보기가 아닐까 싶어. 나는 내가 현재 서있는 자리에서 해내야 할 책무가 있고, 자네들은 현직교사로서 좀더 뜻있게 바쳐야 할 노력이 있는 게 아니겠나."
김범우는 곁눈질로 손승호를 일별하며 속으로 웃고 있었다. 서민영 선생은 마침내 설득력 있는 논리를 전개한 것이고, 그것은 바로 손승호가 내놓은 묘책의 와해였던 것이다. 손승호는 아무 할 말이 없었다. 서민영 선생의 말 앞에서는 언제나 그랬다. 논리적이기에 앞서 교훈적이고 설득적이기보다는 대화적인 그분의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이 압도되는 것은-설득되는 것이 아니라 분명 압도였다-그분이 가진 진실의 힘 탓이었다. 자신이 공산주의에 등 돌리게 된 것도 그분의 영향이 컸음을 손승호는 자인하고 있었다.
"하늘이 세상만물을 창조하실 때 상호간에 조화와 균형을 이루며 생존할 나갈 수 있는 질서와 지혜를 주셨지. 그 질서를 인간의 말로 하자면 먹이사슬이고 지혜는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나 갈무리가 되겠지. 그런데,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늘의 뜻을 거역한 존재가 일찍부터 있었어. 그게 바로 인간이야. 하늘이 내린 지혜를 활용하되 탐욕적 이기를 채우는 무기로 악용하기 시작한 거야. 인간의 역사란 탐욕을 태우기 위해 지혜를 악용해가며 인간끼리 살육을 되풀이해온 기록에 불과해. 뱀이나 개구리가 동면을 위한 영양섭취를 하나 다음해 봄까지 빈사상태로 견딜 수 있을 정도만 하는 것이고, 개미나 벌이 겨우살이 갈무리를 하지만 마찬가지로 해동이 될 때까지 필요한 최소한의 먹이만을 보관해. 그런데 인간은 어떤가. 다음해 봄까지가 아니라 자신의 평생을 위해, 그것으로도 모자라 자손대대로 이어질 갈무리를 하고자 탐욕한 것이야. 그 탐욕의 부가 상대적인 빈을 낳게 되고, 더 큰 탐욕을 채우고 지키지 위해 필연적인 폭력이 조직화되고, 그 폭력에 대항하고자 하는 또 다른 힘이 결속됨으로써 필연적으로 살육이 자행되는 것 아닌가. 먹이다툼을 해서 동류끼리 살육을 자행하는 것도 인간뿐이야. 동류끼리 상대방의 생활터전이나 사냥터를 침범하지 않는 것은 모든 동물들의 불문율이네. 동물들이 동류끼리 싸우는 경우가 있긴 하지. 그러나 그건 먹이 때문에 아니라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수컷들의 힘겨룸이지. 힘세고 건강한 수컷이 암컷을 차지함으로써 우량한 새끼를 낳게 하려는 것, 그것이야말로 싸움이 아니라 종족보존을 위한 신성한 의식 아닌가. 그런데 인간들이 스스로를 일컬어 뭐라고 했지? 만물의 영장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건 신의 섭리를 거역한 존재로서 당연히 저지르게 된 자만이야.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 찬 인간사회는 착취를 위한 폭력이 조직화되고 상대적으로 인간의 노예화와 굶주림이 상습화되었네. 모든 만물은 신의 섭리에 따라 골고루 나눠 먹고 겨울을 무사히 넘기는데 인간만은 헐벗고 굶주려 죽어갈 수밖에 없게 된 거야. 그건 인간들 스스로가 만든 지옥이지. 그 지옥 다음에 올 것이 무엇이겠나. 파멸이지. 그 극점에 이르러 하나님은 인간들을 일깨우고 구원하기 위해서 예수를 보내신 거야. 하나님께서 예수를 통해 하신 말씀이 '서로 사랑하며 고루 나누어 먹으라'는 것이었네. 곧, '박애의 실천'으로 스스로 만든 지옥에서 벗어나 천국을 얻게 되리라는 일깨움이었지. 그러나 인간들은 그 일깨움을 알아듣지 못했어.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실천한다는 성직자들까지 인간의 탐욕과 자만을 키워 하나님을 욕되게 했네. 중세 암흑시대가 그 좋은 증거 아닌가. 성직자들까지 그 모양이었으니, 인간이란 과연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 존재인지 회의로 와. 나 스스로부터 말이야. 그런 회의를 바탕으로 하여 보자면 인간의 역사는 끝없이 발전한다는 변증법적 논리나, 물질중심의 가치체계로 인간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려고 드는 유물론이나 다 동의 할 수 없어. 난 크리스찬 입장에서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유물사관이나 마르크시즘을 상대적 감정으로 비판하려는 것이 아니야. 지배와 피지배로 얼룩져온 인간사의 과정을 통해 볼 때 그런 것들의 발생은 충분한 당위성을 가지고 있어, 또 인간사의 모순을 해결하고 불합리를 개혁하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그런 것은 소중하고 값진 거지.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새로운 주의나 주장이라 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고, 인간의 행복을 절대적으로 보장할 수가 없네. 왜냐하면 인간이란 탐욕과 자만을 버리지 못하는 제아무리 새로운 주의나 사상을 내세워도 거기에는 또 다른 모순과 불합리를 내포하게 마련이야. 마르크시즘은 핍박받는 민중을 혁명세력으로 응집시킴으로써 최초의 불꽃이 되었고, 혁명을 성취시킴으로써 최후의 불꽃이 되었네. 공산주의 정치 체제를 수립함으로써 마르크시즘은 정작 살해당하기 시작한 거야.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내세움으로써 새로운 재배계층이 형성되었고, 그에 따라 공산주의적 계급사회가 이루어지면서 공산주의적 귀족이 생겨나게 되었지. 그리고 전 인류적 인민해방이라는 미명하에 코민테른이란 국제조직을 만들어 세력 팽창을 꽤했는데, 소련의 그 팽창주의가 황금만능주이란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의 패권주의와 어떻게 다른지 나로선 구분이 안 되는구먼.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근본적으로 신뢰할 수가 없고,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네."
그래서 그분은 기독교사회주의의 실천이 그 길이라 믿고, 자신의 농토를 공동소유화해서 몸소 농사를 짓는 생활을 한다는 결론이었다. 그분을 교장자리에 끌어내고자 했던 자신의 의도가 얼마나 얄팍한 것이었나를 생각하며 손승호는 그분이 전에 했던 말을 새롭게 되새기고 있었다.
"자네, 무슨 생각을 그리허나."
김범우가 손승호의 허벅지를 찔벅였다.
"아니네, 그저..."
손승호는 생각을 떨치며 앉음새를 고쳤다.
"자네들 말이야. 그냥 내 생각을 부담 없이 피력한 것뿐이니깐 자네들도 그저 부담 없이 들어주면 좋겠어. 내가 괜한 소릴 한 것이나 아닌지 원."
"마음 쓰지 마십시요, 선생님."
김범우는 고개를 숙이고 예를 갖추며 말했고,
"저희들이 자리를 옮기든 안 옮기든 그 문제와는별도로 조한규 같은 위인이 만약 교장이 된다면 그건 참 곤란한 문제가 아닐까 합니다."
손승호가 심각하게 말했다.
"그리는 안 될 것일세."
서민영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김범우와 손승호는 동시에 눈길이 마주쳤다. 그리고 같은 느낌을 교환했다. 그분의 단호한 태도는 학교 신설문제에 쏟고 있는 관심의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었고, 한편으로는 행정적인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표현이기도 했던 것이다. 학교 신설에 대한 그분의 관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분은 조국독립의 방법으로 도산 안창호의 교육준비론에 결코 동조하지 않은 입장이면서도 가르침에 대한 열성을 대단했었다.
"그대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도대체 뭘 할 것인가!" 영어공부에 게으른 학생들을 향해 그분은 울부짖듯 했고, 끝내는 회초리를 들고 들어와 자신의 장딴지에 피멍이 들도록 회초리질을 해댔던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학생들은 "...도대체 뭘 할 것인가!" 하는 그분의 애타는 말에, "그대들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독립운동을 할 것인가!"라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독립운동을 못할 바에는 공부나 열심히 해야 할 것이 아니냐는 그분의 자학적 회초리질은 학생들에게 무서운 경종이 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그분의 별명은 '재림 예수'가 되었다. 공부에 등한한 학생들의 잘못을 벌하는 대신 자신의 몸에 회초리질을 가한 것은 예수가 모든 인간의 죄를 스스로 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같다는 뜻이었다. 그것은 결코 비아냥거림이 아니라 존경의 뜻으로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분을 대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일변한 것이 그 증거였다. 그분은 학교에서 열성적으로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야학을 운영했고, 해방이 되고 나서 지금까지도 고흥과 벌교에서 야학을 계속해 오고 있는 것이다.
서민영 선생의 뜻밖의 제의로 김범우는 마음의 갈피가 헝클어짐을 느끼고 있었다. 교직에 계속 머무를 것인지, 아버지의 지시를 따라 만학을 해야 할 것인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그분의 제의는 또 하나의 문제 거리였다. 그는 자신의 의식이 정치, 사회적 미궁 속에서 질정 없이 부동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중단된 공부를 계속하라는 아버지의 뜻도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관심이 어디에 쏠려 있는지 정확하게 파악한 것이고, 혼란한 시류에 잘못 말려들 위험을 사전에 막고자 함이었다. 그러나 자신의 정치, 사회적 관심은 단순한 호기심의 발동이거나 졸렬한 소영웅심리의 충동이 아니었다. 공부를 계속한다 하더라도 그 관심의 도는 엷어질 수가 없었다. 그건 전공 그 자체였던 것이다.
"선생님, 앞으로 김구 선생의 입장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김범우는 화제도 돌릴 겸 하여 평소부터 마음에 담아왔던 문제를 꺼냈다.
"백범의 입장? 글쎄에... 그건 이 나라 장래가 어찌 될 것인가 하는 문제만큼이나 예측하기 지난한 문제 아니겠는가?"
서민영은 신중한 태도를 취하며 반문했다.
"예, 제 식견으로는 전혀 판단이 안 됩니다. 선생님께서 좀 정리를 해주시지요."
"글쎄에... 낸들 뭘 알 도리가 있겠나, 그저 한 가지 자명한 사실이 있다면, 그분의 정치적 입장이 임정을 외롭게 지킬 때보다 더욱 외롭게 되리라는 점이지."
"예, 그 문제와 연관해서, 백범이 좀 더 나라의 장래를 길게 내다보고 지난 선거에 참여해 국회를 장악한 다음 이승만의 독주를 견제했어야 한다는 비판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그래, 백범이 우남보다 정치역량이 한 수 낮다, 백범은 우남에 비해 국제정치 기류의 파악능력이 모자란다, 백범은 혁명강리 뿐이고 정치가는 역시 우남이다, 별의별 말들이 다 많지. 허나, 그런 대조 비교는 양지쪽만 찾아 혈안이 된 현실주의자들의 얄팍한 입놀림에 지나지 않는 것이네. 백범과 우남은 민족관이나 국가관이나 정치관이 당초부터 판이한 극과 극이었으니 대조하고 비교하는 것부터가 어불성설일세. 두 사람의 차이는 신탁통치 반대서부터 확연하게 드러났네. 백범의 반탁은 또 다른 형태의 식민지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우남의 반탁은 자신의 집권욕구를 하루라도 빨리 앞당기려 함이 아니었나. 여기서부터 백범은 역사적 대의명분의 길을 택했고, 우남은 반역사적 소아이익의 길을 택했네. 좌익진영의 찬탁과 우익진영의 반탁이 엇갈리는 소란 속에서 이승만 중심의 남한정부 단독수립이 싱가포르 통신을 통해 들어온 것이 사십육년 사월이었고, 우남은 마침내 유월 삼일에 남조선만이라도 즉시 자율적 정부를 수립해야 한다는 그 유명한 '정읍 발언'을 한 것이 아닌가. 백범의 입장에서 보면 그 발언은 곧 민족분단의 획책이었지. 같은 민족이 서로 상대되는 주의를 앞세워 정권을 수립함으로써 필연적으로 민족분단을 야기 시킨다, 그건 백범으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대사건이었지. 식민지시대에도 민족의 분단은 없었으니깐. 그때부터 백범과 우남은 서로 등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백범은 민족분단을 막고 통일조국을 이룩하기 위한 일념으로 금년 사월의 남북협상까지 분투했던 것이고, 우남은 자신의 집권만을 조직화한 것 아닌가. 백범이 미, 쏘 양군의 철수와 남북지도자간의 한민당 계열은 백범의 그런 구상이 비현실적이라고 일제히 비난을 하지 않았나, 그때 백범이 기자회견을 통해 한 말, 그것이 백범의 진실이고 사명감이었네. 자네도 기억하겠지?"
"예... 우리는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이 정도냐 사도냐가 생명이라는 것을 명기해야 합니다. 이 대목만 겨우 기억하고 있습니다."
"바로 핵심을 기억하고 있구먼. 민족일체의 자주독립을 정도로 본 백범은 그것을 저해하는 다른 모든 행위를 사도로 취급한 것이네. 미, 쏘가 분할점령한 상황은 뜻을 합쳐 자주독립을 추구할 시기가 아니라는 판단인데, 민족사적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탁견이고 진실이 아닐 수 없네. 백범의 그런 진실은 '삼천만 동포에게 읍고함'이라는 성명서로 이어지고 있지 않나, 권력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 백범과 우남은 본질적으로 다르네. 그건, 자네도 알겠지만 임정 초기에 이미 나타나지 않았나. 백범은 임정청사의 '문 파수'를 자칭했는데, 우남은 대통령이 아니면 임정 참여를 절대 수락할 수 없다고 했으니깐 말이야." "예, '백범'이란 호에서도 그분의 그런 겸양은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김구 선생의 정치능력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세, 그것 참 관심 가는 문제로구만. 백범의 정치능력이야 잘 모를 일이지만 정치적 끈기만큼은 아마 당할 사람이 없지 않나 싶으이. 이동녕 선생과 함께 삼십여년간 임정을 끝까지 지켜낸 것이 그 좋은 증거겠지. 과욕을 부리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정치적 욕구도 끈기만큼이나 강했다고 보아야지. 임정의 경무국장으로 출발해서 노동국총판, 내무총장을 거쳐 국무령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다시 국무위원이 되었다가 주석의 자리에 올랐거든, 그런 전력을 헤아려 그분의 정치능력을 자네 나름으로 생각해보게나."
"그런 전력을 가진 분이 정권쟁취의 기회를 단호하게 외면했다는 것은 장하고 훌륭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지, 그리 보아야 백범의 값을 제대로 평가하는 거겠지. 헌데, 우남의 행동은 정반대였네. 참 유감스럽게도 대중들이 우남을 훌륭한 독립투사로만 알 뿐 그 비행은 거의 모르고 있다는 것이 문제일세. 이제 조심스럽게 알려지고 있는 사실이지만, 우남은 상해 임정의 수반이 될 때부터 말썽이 많았지 않았나. 그가 수반이 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반대한 분이 단재 신채호 선생인데, 미국 정부에 한국의 위임통치를 청원한 매국노 이승만을 어찌 수반으로 앉힐 수 있느냐는 것이었지. 그러나 국제외교를 통한 독립획득이라는 외교론 쪽이 우세하여 이승만이 수반으로 결정되었네. 물론 미국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감안한 조처였지. 이에 분개한 단재는 임정과 관계를 끊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등을 돌리고 말지 않았나. 대통령에 취임하기 위해 미국에서 상해 임정으로 온 이승만은 얼마 머물지도 않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 말았네. 미국 교포들이 모금해준 독립자금을 우남이 유용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는 가운데, 조선 민족의 이름으로 미국 정부에 낸 위임통치 청원서 문제가 계속파문을 일으켜 마침내 탄핵재판소가 개정되었고, 이승만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는 선고를 받았지. 그런 이승만이 해방과 함께 미국의 힘에 얹혀 민족의 영웅이 되어 귀국해서 민중 앞에 군림하지 않았나. 백범과의 사이에 남한만의 단독선거에 대한 공방이 치열했을 때 우남은 임정의 법통을 부인하는 공개연설을 했지. 그리고는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임정의 법통을 이어받았다는 정통성을 앞세웠어. 그게 우남의 면모야. 우남이 삼십오 년에 걸쳐 망명 항일투쟁을 했다는 사실은 존경해야겠지. 허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문제가 없는 것도 아니네. 상해 임정에 잠시 머물렀던 것을 제하면 그는 위험의 무풍지대인 미국에서만 살았다는 사실이야. 그가 내세운 외교독립론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말이야."
"참 주제 넘는 말입니다만 임정의 역할에 대해서도 저는 회의적입니다. 삼십여 년의 세월에 비해서, 비록 망명 임시정부라 하더라도 성취한 일이 너무 미미하다는 느낌입니다. 정부다운 독립운동의 조직화도 이루지 못했고, 정부로서 국제적인 인정도 받지 못했고..."
김범우는 흔들리려는 감정을 자제하느라고 말을 중단했다. 정부가 없다는 이유로 포로 취급을 당했던 그때의 분노가 되살아나려고 했던 것이다.
"그건 한마디로 하기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걸세. 우리의 역사에서 식민지시대를 지울 수 없듯이, 독립운동사도 빼놓을 수 없이 위대하고 소중한 민족사인 동시에 민족유산이 아니겠나. 앞으로 두고두고 조사 연구해야 할 부분이네. 그 일이 바로 자네 같은 젊은 역사학도들이 해내야 할 임무가 아니겠나. 필히 명심하게나."
서민영은 김범우의 눈을 응시했다. 김범우는 생빛 한 줄기가 번쩍 의식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서민영 선생의 견고한 모습이 그대로 망막에 남아 있었다. 공부를 계속해야 할 이유와 그 방향을 찾은 것 같은 느낌이 스쳐갔던 것이다.
"상해 임시정부의 기능이나 업적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많네. 그러나 식민지국가로서 망명 임시정부 하나 갖추지 못했다고 생각해보게. 우리 민족의 꼴이 뭐가 되었겠나. 상해 임시정부를 세움으로써 우리 민족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고자 한다는 결의를 세계적으로 보여주었고, 그것은 또한 전통적 독립국임을 입증하고 체통을 세우는 일이었네. 그것만으로도 임정의 가치는 우선 평가해야 할 것이네."
"선생님, 결국 국토고 민족이고 두 쪽이 나고 말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가 더 문제 아니겠습니까?"
돌덩이처럼 앉아 있던 손승호가 불쑥 한 말이었다.
"그렇겠지. 허나, 아까도 말했지만 그건 예측 불가능한 문제 아니겠나. 남한만의 단선을 실시하려는 유엔 한국위원단을 향해 백범은, 우리의 국토를 양단시킴으로써 민족을 분열시키어 동적상잔의 비극을 초래하려 한다고 공박했지. 나로서는 그 판단이상은 할 수가 없구먼 그래."
"국토양단, 민족분열, 동족상잔..."
손승호는 글을 갓 깨친 어린이가 책을 읽듯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되뇌고는,
"인제 한 가지만 남은 셈이로군. 아니, 그것도 아닌데, 지금 서로 죽이고 죽는 잘들 하고 있는 판이군그래."
비웃음 서린 얼굴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선생님, 분단이 기정사실이 된 마당에 다 부질없는 소리긴 합니다만, 아무리 미, 쏘의 힘이 작용하고 있다고 해도 분단을 막을 다른 무슨 방법이 없었을까요?"
김범우는 화제를 새로운 방향으로 돌리고 있었고, 손승호는 그런 김범우를 피곤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그래, 그건 현시점에서 불필요한 것 같은 말이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자문인 것일세. 민족의 장구한 미래를 내다보고, 민족적 양심을 가지고 그 자문을 진실하게 계속할 때 민족일체의 길이 모색되는 것 아니겠나. 우리의 현실을 단적으로 진단하자면, 민족을 위한 이념이나. 이념을 위한 민족이냐, 두 갈래 길일 것이네. 전자를 택하는 경우 민족은 하나가 되고 선택할 이념도 다양해지고, 후자를 택하는 경우 민족은 분열되고 이념도 선택의 여지가 없어지고 마는 거지. 일단 우리는 후자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네. 그러므로 그 자문은 더욱 필요하게 되었네. 민족이란 물줄기와 같은 것이지. 바위를 만나면 갈라지기도 하고, 무른 땅을 만나면 스미기도 하지만 끝내는 합쳐져 하나로 흐르는 물줄기 말이야. 어떤 정치 이념이나 조직화된 폭력이 한 민족을 영원히 갈라놓을 수 없다는 것은 세게 도처의 역사가 입증하는 바이네. 자네가 찾고자 하는 '다른 무슨 방법'이란 다른 말로 바꾸면 현재의 분단 상황에 대한 비판과 원인규명이 되겠는데, 그건 성급하게 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네. 내 나름대로도 생각해보았지만, 그건 외적 내적, 종적 횡적으로 얽힌 그야말로 복잡 미묘한 문제일세. 그 문제도 두고두고 검토 연구해야 할 과제일 것이네. 지금 앞에 놓인 것은 현상일 뿐 감추어진 것이 너무나 많지 않은가."
"선상님, 저녁진지 다 되얐는디요."
쪽마루에 상 놓이는 소리와 함께 노파의 갈라진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벌서 그리 되었나."
서민영은 눈을 좁히며 방안을 휘둘러보았고, 김범우는 빠른 동작으로 방문을 열었다. 조촐한 밥상 위에 어스름이 묻어 있었다. 서민영 선생을 만나면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 분은 무심하다고 할 정도로 말이 없으면서도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물음 앞에서는 온 성의를 다해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었다. 김범우는 상을 들여왔고, 손승호가 방문을 닫았다.
"소찬일세. 어서들 들게나."
숟가락을 얼굴 높이로 들러 잠시 멈추고 나서 서민영이 말했다. 얼핏 보아서는 눈치를 챌 수 없도록 짧은 그 수간적인 동작은 기도였던 것이다. 그의 말에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이 섞여 있었으나 그 누구에게도 '예수를 믿으라'고 직설적으로 말한 적은 없었다. 무교회주의자다운 태도였다. 반찬은 언제나처럼 간소했다. 김치와 시금치나물, 간장 한 종지가 전부였다. 그리고 잡곡밥과 뜨물로 끓인 콩나물국이 각각 놓여 있었다. 간소하다기보다 빈한에 가까운 이 식사가 언제나 달고 맛있게 느껴지는 까닭을 김범우는 신기해하고는 했다.
"선생님, 아까 단재 말씀을 잠깐 하셨는데, 저는 그분에 대해서 별로 아는 것이 없습니다."
첫술의 밥을 삼킨 김범우가 말했다.
"그럴 테지. 그분은 삼십육년에 돌아가신데다가 자넨 어린 나이였으니까. 그 분의 글을 대충 모아놓았으니 필요하면 가져다가 읽게나. 독립운동에 몸 바친 훌륭한 분들이 많지만 단재 선생은 그중에서도 출중한 분이셨지. 사학자고 독립투사며 문장가고 논객이었는데, 그 분은 어느 한 부분에서도 소홀함이 없었네. 민족의 자존을 일으킨 투철한 사관은 단재사학의 산맥을 이루었고, 민중을 힘의 주체로 파악하고 끝까지 행동투쟁을 벌인 독립운동은 가히 독립투사의 본보기가 아닐 수 없네. 우남이야 말할 것도 없고, 백범이다, 도산이다, 그 누구든 단재 옆에 서면 빛이 바랠 수밖에 없는 노릇일세. 나도 감옥살이를 해봤지만 변호사를 거부한 채 법정투쟁을 벌여 십 년형을 받았고, 겨울이면 영하 이십 도가지 내려가는 혹한에 시달리며 지장 하나만 찍으면 가출옥을 시켜주겠다는 끊임없는 유혹을 뿌리치며 어찌 팔 년 세월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 그 사실 하나만 가지고도 숙인 머리를 들 수가 없을 지경이네. 끝끝내 옥사하고 만 그분의 영혼이나. 도처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수많은 희생들 앞에 오늘의 현실은 치욕일 뿐이고 우리들 모두는 죄인일 따름이지."
서민영의 음성이 가라앉고 있었다. 손승호가 젓가락 끝으로 김범오의 허벅지를 쿡쿡 찔렀다. 그리고 눈이 마주치자, 아무 말도하지 말라는 눈짓을 해 보였다. 김범우는 무슨 기분전환이 될 만한 화제를 찾고자 했으나 이상하게도 머릿속은 점점 비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