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 퀼트 5
49. 선사시대 해안
표본들을 수집한 지 몇백 년이 지나서야, 우리는 그 오랜 공룡 시대에 대해 아주 조금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얼마나 많은 종이 존재했었는지 우리는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K. 카렌 손탁. 사라진 자연의 종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언 보호 구역 화요일 오후 4시 25분(태평양 표준시)
피트라는 한 손으로 가지를 꼬 잡고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내밀었다. 나뭇잎 사이로 밖이 보였다. 하지만 공룡들이 왜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알 수 없었다. 경계를 서고 있던 공룡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수놈들은 호수 쪽에 있던 공룡들이 무리 옆으로 부지런히 오는 동안 땅을 긁어댔다. 덩치 큰 수놈들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서서 정글 쪽을 바라보았다. 암놈들은 그 뒤쪽에서 원을 이루고 새끼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피트라는 공룡들의 본능적인 방어에 감탄했다. 수놈들은 긴 주둥이와 목에 달린 큰 깃으로 아주 훌륭한 방어벽을 만들고 있었다. 암놈들 또한 마찬가지로 감동적인 보호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는데, 새끼들을 보호하기 위해 어깨를 서로 붙이고 나란히 서 있었다. 피트라는 이 정도의 보호벽을 감히 공격하려고 하는 공룡은 도대체 어떤 것인지 상상할 수 없었다.
우지끈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났기 때문에 피트라는 덤불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뭔가 덤불을 헤치고 공룡 무리를 향해 돌진해 오고 있었다. 피트라는 숨을 죽이고 소란의 정체가 뭔지 계속 살펴보았다. 갑자기 그 주인공이 개간지 쪽으로 필사적으로 뛰어오고 있었다. 콜터였다. 피트라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한편으로는 안심하고 한편으로는 너무 기뻐 그의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다. 콜터는 초원으로 뛰어들다가 공룡의 방어벽을 보더니, 나무들이 있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파트라는 다시 그를 부르며 손을 흔들었다. 하지만 콜터는 못 들었는지 계속 뒤를 돌아보며 달리고 있었다. 피트라는 콜터가 쳐다보고 있는 것을 눈으로 쫓았다. 그 순간 그녀는 나무를 집고 있던 손을 놓을 뻔했다. 덤불을 제치고 오는 것은 그들이 지금까지 본 것 가운데 가장 큰 공룡이었다. 두 다리로 걸어오는 공룡은 나무들 위에 닿을 정도로 키가 컸고, 엄청나게 큰 머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필쳐 박사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큰 소리로 말했다.
"더 올라갈 데도 없어요."
피트라는 너무 두려워 소리조차 지를 수도 없었고, 대신 콜터가 나무가 있는 곳까지만이라도 올 수 있기만을 소리 없이 기도했다. 쿰 박사의 엉망이 된 몸이 눈앞에 떠올랐다. 괴물은 콜터를 쫓아오라는 마음밖에 없는 것 같았고 모노클로니우스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콜터는 점점 뒤쳐지고 있었고, 곧 공룡은 그를 따라잡을 것이다. 공룡은 콜터에게 덤벼들어 그를 한입에 먹어 치울 것이다. 피트라는 더 이상 볼 수 없어 눈을 돌렸다. 하루 동안에 두 명이나 친구를 잃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때 콜터가 갑자기 방향을 왼쪽으로 틀었다. 콜터는 모노클로니우스 쪽으로 달렸다. 공룡은 그의 뒤를 바짝 뒤쫓아오고 있었다. 피트라는 그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안돼, 콜터. 안돼! 너를 공격할 거야!"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계속 눈을 떼지 못했다. 모노클로니우스들은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았는데 수놈들은 서로 어깨를 붙이고 고개를 아래로 내린 채 뿔로 적을 찌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콜터는 계속 달렸고, 공룡은 거의 그를 따라잡았다. 콜터는 뿔 방패와 무시무시한 아가리 사이에 놓였다. 하지만 콜터는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대신 그는 엄청난 속도로 모노클로니우스들의 벽을 뚫고 두 마리의 수놈 사이를 지나 빠져나갔다. 그러고 나서는 몸을 돌려 암놈들이 만든 벽을 피해 공룡들 사이를 요리저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더니 피트라와 필쳐 박사가 숨어 있는 나무 쪽으로 달려왔다. 콜터를 쫓던 공룡은 자신보다 두 배를 큰 침입지를 공격할 태세를 갖추고 있는 모노클로니우스 수놈들의 뿔 앞에서 멈췄다. 사냥에 실패한 괴물은 포효했고, 조용히 그러나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모노클로니우스를 향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갑자기 모노클로니우스 한 마리가 머리를 낮추더니 침입자의 옆구리를 공격했다. 침입자는 공격을 피했고 분노에 차 괴성을 질렀다. 하지만 또 다른 모노클로니우스가 다른 쪽에서 공격해 왔다. 미처 피하지 못한 괴물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다가 허술한 틈을 찾기 위해 모노클로니우스들이 만든 방어선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콜터가 자신이 숨어 있는 쪽으로 달려오는 걸 보고 있다가 나뭇잎에 가려 그의 모습을 놓쳤다. 그녀는 다시 그에게 소리를 질렀지만 공룡의 울음소리에 파묻혀 들리지 않았다. 피트라가 뒤를 돌아다보니, 괴물이 방어선을 따라 자신이 숨어 있는 나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당황했다.
"필쳐 박사님, 더 높이 올라가야겠어요. 지금 바로요!"
필쳐 박사는 일어서려고 애썼고 다른 가지를 잡았다. 나뭇가지들은 훨씬 작았고 서로 엉겨 있었지만 필쳐 박사는 지쳐 있었다. 그렇지만 잎이 무성 해서 피트라가 그를 돕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나무줄기에 몸을 붙이고 필쳐 박사가 위로 올라가는 동안 그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것이었다. 괴물은 계속 걸어오고 있었고, 모노클로니우스들은 침입자가 움직일 때마다 최전방에 큰 수놈들이 서 있도록 계속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괴물은 가끔씩 모노클로니우스를 향해 울부짖었으나 공격은 하지 않았다. 이제 괴물은 아주 가까이와 있었고, 피트라는 필쳐 박사에게 공룡이 자나갈 때까지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공룡의 머리가 나무들 쪽에 맞춰져 있었고 피트라는 그 커다란 눈을 보고 최면에 걸린 듯 꼼짝하지 못했다. 어떻게 저렇게 큰 동물이 살아있을 수 있었을까? 괴물은 나무를 지나쳐 콜터가 사라진 호수 쪽을 향해 걸어갔다. 피트라는 콜터를 위해 기도했고, 필쳐 박사에게 다시 위로 올라가라고 손짓했다. 무시무시한 사냥꾼은 호수에 도착했고, 그의 분노는 더욱 끓어오르고 있었다. 틀림없이 거기에서도 뿔과 단단한 가죽으로 무장된 모노클로니우스의 방어벽을 뚫은 공간이 없을 것이다. 경험으로 볼 때 괴물을 세 마리의 모노클로니우스를 죽일 수 있지만, 그건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경우에만 가능했다. 무리를 지어 있을 때 모노클로니우스는 같이 행동했고, 끊임없이 뿔로 찔러 댔으며, 육식 공룡의 머리를 향해 뿔과 딱딱한 깃만 내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침입자는 배가 무척 고픈 것 같았고 분노는 그 만큼 더 컸다. 결국 괴물은 크게 울부짖더니 모노클로니우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허공을 가르는 괴물의 울부짖음은 피트라의 온 신경을 마비시키고 있었다. 그녀는 공룡의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침입자는 모노클로니우스 가운데 한 마리의 목 짓을 주둥이에 물고 있었다. 모노클로니우스도 지지 않고 울부짖었고, 목깃을 물고 있는 괴물을 떼 내기 위해 몸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하지만 괴물은 모노클로니우스의 목을 놓지 않았다. 모노클로니우스는 울부짖었다. 피트라는 목깃에 신경 섬유가 없을 거라고 추측했다. 갑자기 다른 모노클로니우스가 앞으로 돌진해왔고, 콧등에 달린 뿔로 침입자의 허벅지를 들이받았다. 그러고 나서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괴물은 아가리를 벌리고 새로 나타난 골칫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때 다른 수놈이 공격해 왔다. 괴물은 비명을 질렀고 새로운 위협자를 물어뜯으려고 했다. 이번에는 침입자의 왼쪽에서 공격이 가해졌다. 피트라는 마음속으로 모느클로니우스를 응원하고 있었다.
사냥꾼은 피를 흘리며 뒤로 물러섰고, 고통과 분노로 미쳐 날뛰고 있었다. 이제 모노클로니우스들은 고개를 숙인 채 천천히 앞으로 나오고 있었는데 땅을 박차며 육식 공룡을 계속 위협하고 있었다. 피트라는 육식 공룡이 그들이 숨어 있는 나무로 뒷걸음쳐 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몸을 돌려 필쳐 박사에게 움직이지 말라는 신호를 보내려고 했지만 그녀가 발견한 것은 거꾸로 매달려 있는 필쳐 박사였다. 그의 한쪽 다리가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박사는 몸을 일으키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었다. 피트라는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공룡의 뒤통수를 보았다. 그녀는 필쳐 박사에게 계속 매달려 있으라고 소리친 다음 팔로 나무를 감싸 안고 얼굴을 나무에 찰싹 붙었다. 드디어 육식 공룡은 몸을 돌려 그들이 숨어 있는 나무 바로 옆까지 왔다.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었기 때문에 괴물은 계속 밀고 들어오는 모노클로니우스를 향해 아가리를 벌렸다. 모노클로니우스가 약간 뒤로 물러났다. 모노클로니우스는 육식 공룡이 도망갈 수 있도록 충분한 공간을 남겨주었고, 침입자는 귀가 찢어질 만큼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돌아서다가 피트라와 필쳐 박사를 발견하였다. 괴물이 자신들을 뚫어지게 보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피트라는 몸에서 힘이 모두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공룡이 머리를 돌렸고 두 눈과 함께 벌렁이는 콧구멍이 보였다. 공룡은 머리를 나무 속에 쳐 박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공룡이 천천히 주둥이를 벌리는 것을 보고 아래쪽 가지 위로 뛰어내렸다. 그녀는 가지를 붙잡았지만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다시 그 밖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나뭇가지에 팔을 두르고 떨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다리는 대롱대롱 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녀는 위를 쳐다보았다. 필쳐 박사는 다시 아래쪽 가지로 내려왔고 괴물과 얼굴을 마주대고 있었다. 박사가 뒤로 물러서다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몸을 돌리는 순간 공룡의 얼굴이 다가왔다. 공룡은 나뭇가지와 필쳐 박사의 발을 함께 물었다. 박사는 비명을 지르며 떨어졌고, 그의 발목은 공룡의 입안에 들어가 있었다. 공룡은 엄청난 힘으로 머리를 흔들었고 박사는 땅 위로 떨어졌다. 아직 의식이 남은 그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었고, 찢어진 다리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두려움이 엄습했고, 피트라는 공룡이 필쳐 박사의 머리와 어깨를 향해 아가리를 벌리는 순간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눈을 감았지만 살아있는 동안 그 모습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공룡은 사냥감을 먹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나무 아래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그녀는 서둘렀다. 괴물한테 먹히느니 나무에서 떨어져 죽는 편이 나았다. 땅이 울리는 소리에 그녀가 정신을 차려 보니 사냥꾼이 그녀가 있던 나무에 대고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녀는 발을 디딜 가지를 찾을 새도 없이 거의 나무에서 미끄러져 내려오다시피 했다. 머리 위에서 뭔가 덜거덕거렸고, 소리는 아주 가까이에서 들리고 있었다.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고 땅 위로 몸을 날렸다. 몸을 웅크린 그녀는 공룡의 다리가 자신을 향해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피트라가 일서자 괴물이 울부짖으며 뜨거운 숨을 토해냈고, 그녀는 땅에 엎드렸다. 피트라가 엎드린 채 뒤를 돌아보니 괴물은 뭔가 보느라 몸을 돌리고 있었다. 콜터였다. 그는 피 묻은 창을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피트라는 다시 일어났고, 두 사람은 나무 사이를 빠져나갔다. 성난 공룡이 그들을 뒤쫓았다. 나뭇가지들이 마구 부러져 나갔지만 거대한 공룡이 지나가기에는 나무들이 너무 울창했다. 마침내 공룡은 그들이 초원으로 나올 것을 예상하고 숲의 반대쪽으로 달려갔다. 콜터가 갑자기 팔을 뻗더니 피트라의 어깨를 밀었다. 피트라는 넘어졌고, 이제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콜터는 왼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질렀다.
"호수 쪽으로 가."
피트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덤불과 나무를 헤치고 콜터가 가리킨 곳을 향해 있는 힘을 다해 달렸다. 콜터가 그녀 옆에서 뛰고 있었다. 나무가 죽 늘어서 있었다. 그들은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며 공룡을 찾아보았다. 공룡이 덤불을 짓밟으며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콜터는 신발을 벗어 던지더니 셔츠와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피트라도 그를 따라 벗었다. 콜터의 몸을 쳐다보다가, 피트라는 그의 가슴과 다리에 생긴 십여 군데에 피가 말라붙어 있는 것을 보았다. 피트라가 당황하고 있는 사이. 그는 그녀가 벗어 놓은 바지의 지퍼를 올리더니 바지 밑단을 묶었다. 피트라를 올려다보는 콜터의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괜찮아?"
그가 물었다.
"뭐 말이야?"
그녀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러자 콜터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이마를 쓰다듬었다. 이마가 온통 피로 덮여 있었다. 피트라는 다친 데는 없는지 머리를 살펴보았지만, 그것은 괴물이 자신을 향해 숨을 몰아쉬었을 때 튄 필쳐 박사의 피였다.
"난 괜찮아."
그녀가 조그맣게 말했다.
"내 피가 아니야."
콜터는 누구의 피인지 묻지 않았다.
"이제 됐어."
그가 말했다.
"자, 가자."
콜터는 한 손에 바지를 들고 호수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쌀쌀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그들은 속옷 외에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땀에 젖은 몸이 불어오는 바람에 급속히 식고 있었다. 그들이 호수까지 반 정도 왔을 때 괴물은 호수 주변의 나무 가까이에 와 있었다. 괴물은 바로 그들을 발견하고 공격해 왔다. 그들은 호수를 향해 전력 질주했다. 피트라와 콜터는 있는 힘을 다해 물속으로 뛰어들어 호수 가운데로 나아갔으나 움직임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허리에 찰 정도로 들어갔을 때 괴물이 호수로 뛰어들어 물보라를 일으키며 다가오고 있었다. 콜터와 피트라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헤엄을 쳤다. 그녀가 발장구를 치다가 뒤를 돌아보니 괴물이 그들 바로 뒤에 와 있었다. 콜터는 잠수를 하려는 참이었다. 괴물은 울부짖으며 피트라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녀는 물속으로 잠수하며 미친 듯이 발을 찼고, 견딜 수 있을 때까지 숨을 참았다. 잠시 후 그녀는 다시 물 위로 올라와 공기를 들여 마셨다. 그녀는 괴물의 포효를 듣고 다시 잠수했다. 이번에는 오래 참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물 위로 올라왔을 때 공룡은 그녀에게 등을 돌리고 물속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조용히 숨을 들여 마신 뒤 다시 잠수했고, 괴물에게서 도망쳤다. 그녀가 숨을 쉬기 위해 다시 물 밖으로 나왔을 때도 공룡은 계속 물속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수시로 뒤를 돌아보며 공룡이 쫓아오는지 확인했다. 공룡으로부터는 안전해졌지만, 그녀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공룡은 저쪽에서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쫓아오지는 않았다. 그녀는 공룡이 헤엄을 칠 수 없기만을 바랬다. 콜터는 한팔로 헤엄을 치느라 힘들어했다. 피트라는 그가 팔을 다쳤는지 걱정했지만, 그는 다른 팔로 청바지를 끌어오고 있었다. 콜터가 피트라에게 바지를 밀었다.
"여기. 이걸 잡아"
"뭐하는 거야?"
"그냥 하기만 해."
그가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그녀는 한 손으로 청바지 한쪽을 잡은 다음 다른 팔을 호수 바닥으로 뻗었다. 콜터는 다리로만 헤엄쳐 물 위에 뜬 상태였고 손으로는 바지를 잡고 있었다. 잠시 후 그는 허리까지 바지를 끌어 내렸다가 바지를 올렸다. 그런 다음 다시 물속으로 집어넣어 바지의 다리 부분을 부풀렸다. 피트라는 바지를 잡아 허리에 대고 있었는데 그것이 임시 구명조끼처럼 그녀의 몸을 받쳐 주었다. 콜터가 나머지 바지에 바람을 집어넣었고, 그와 피트라는 서서히 물 위로 떠올랐다. 호수는 잔잔했다. 성난 육식 공룡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더니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청바지 틈새로 새어 나오는 공기 소리뿐이었고, 그들은 계속 공기를 집어넣어야 했다. 피트라는 물속에서 작은 물방울들이 떠오르는 것을 보았다. 잠시 후 물살이 일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것이 눈을 반짝였고, 피트라는 비명을 지르며 물속으로 들어갔다.
"피트라, 그만해. 이것 좀 봐."
콜터가 손을 내밀었다. 커다랗고 튀어나온 눈을 가진 갈색 물고기였다. 물고기에는 두 개의 지느러미와 네 개의 다리가 달려 있었다.
"이에 뭐야. 콜터?"
"모르겠어. 하지만 숨을 쉬고 있어. 물고기 종류이거나 개구리나 뭐 그런 거겠지. 위험할 것 같지는 않아."
콜터가 작은 생물을 물속에 놓아주고는 피트라 곁으로 헤엄쳐 왔다. 그러더니 그녀 곁에 몸을 누이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물 위에서 있다가 추위를 느끼고 다시 움직였다. 그들은 물살을 가르며 호수를 가로질러 헤엄쳤고, 중간쯤 갔을 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은 공룡의 관심을 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천천히 움직였다. 괴물은 사라졌지만 그들은 너무 지쳐 있었기 때문에 1미터 크기의 공룡을 만난다 해도 당해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지만 호수 주변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그들은 호숫가로 가까이 갈수록 공룡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때 뭔가 피트라의 다리를 치고 지나갔다. 아주 큰 물체 같았다. 피트라는 비명을 질렀고, 콜터가 재빨리 옆을 다가왔다.
"내 다리! 뭐가 내 다리를 치고 지나갔어. 피가 나는 것 같아."
"이런, 피를 흘리는 것은 저녁 식사 종을 울리는 것과 같아. 빨리 호숫가로 가야겠어."
피트라는 다리로만 헤엄을 쳤고, 손으로는 허리에 두른 청바지를 잡고 있었다. 호숫가가 가까워질수록 속력은 점점 느려졌다.
"피트라, 왼쪽을 봐. 물속에 있어."
피트라는 콜터가 가리키는 데로 몸을 돌렸다. 무엇인지 몰라도 그들 옆을 따라 헤엄치는 것이 있었는데 그들이 움직이는 속력과 비슷하게 움직이고 있었다.-2미터 내지 2.5미터 정도 크기였다. 피트라에게는 물고기처럼 보였지만 머리를 물속에 넣어 보지 않고는 그것이 무슨 종류인지 알아낼 방법이 없었다. 쿰 박사나 필쳐 박사가 여기에 있었다면 그들은 피트라에게 선사 시대의 호수에 어떤 종류의 물고기들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었을 것이다.
피트라는 기억을 더듬어 보았지만 생각나는 것은 가느다란 목에 엄청난 지느러미를 가진 종류뿐이었다. 이 무리들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상어만 해 보였다. 상어가 민물에 사나? 그녀는 혼자 겁먹고 있을 뿐 그 무리는 공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호수를 거의 다 건너왔다는 점이었다.
"콜터, 없어졌어, 봤어?"
"아니, 저 놈들이 좋은 놈인지 나쁜 놈인 알 수만 있으며 좋겠어. 계속 헤엄쳐."
피트라는 다리에 통증을 느꼈지만, 이를 물고 발장구를 쳤다. 그녀는 헤엄치며 계속 좌우를 살폈다. 그녀는 박사가 그냥 죽은 게 아니라, 잡아 먹혔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냥 죽는다는 것보다 잡아먹힌다는 것에 더 큰 두려움을 느끼는 것일까? 쿰 박사나 필쳐 박사에게는 그런 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피트라에게는 중요했다. 그러나 그녀가 제일 끔찍하게 여겼던 것은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었다. 인간은 식량이 아니었다. 최소한 공룡들은 그들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다시 오고 있어, 피트라."
콜터가 알려주었다.
"바로, 우리 사이에 있어. 내 생각에는 우리를 갈라놓으려는 것 같아. 그냥 그대로 가. 내가 바로 뒤에 있을게."
피트라는 애썼지만 완전히 지친 상태였다. 갑자기 콜터가 숨을 몰아쉬는 것 같더니 물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는 재채기를 하더니 얼른 말했다.
"난 괜찮아. 나도 긁혔어. 맛을 보는 것 같아."
"조용히 하고 수영이나 해. 콜터."
그때 무엇인가 그녀의 다리에 달려들었고, 그녀의 후들거리는 다리 주위에서 소용돌이가 일기 시작했다. 피트라는 속력을 냈지만, 정체를 알 수 없는 동물들은 다시 달려들었고, 이번에는 훨씬 가까이에 있었다. 피트라는 공격이 시작됐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 콜터가 소리쳤다.
"이렇게 해! 이리 와, 피트라!"
공포에 질린 피트라는 지금 움직이고 있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콜터는 다른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물고기를 볼 수는 없었지만 그녀는 물살이 콜터 쪽으로 이는 것을 보았다. 피트라는 콜터의 구명대가 없어진 것을 알았다. 그녀도 허리에 둘렀던 구명대를 풀었다. 그리고 육지를 향해 팔을 열심히 움직였다. 그동안 팔을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다리보다는 힘이 많이 남아 있었다. 물장구를 치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그녀는 뒤에서 달려드는 물고기들을 느낄 수 있었다.- 물고기들은 거칠게 물살을 가르며 가까이 오고 있었다. 피트라는 너무 두려워 콜터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는 스스로를 격려하며 헤엄쳤지만 그녀의 팔에도 힘이 빠졌고 움직임은 느려졌다. 이제 새로운 소리가 그녀의 뒤쪽에서 리드미컬하게 물살을 가르고 있었다. 피트라는 울고 있었다. 팔은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속력은 점점 느려지고 있었다. 눈앞이 뿌옇게 변했다. 전에 그녀는 깊은 바닷속을 본 적이 있었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초록색 물체가 다가오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걷어찼다. 호수 바닥이었다. 그녀는 새우뜨기를 하기 위해 몸을 구부렸지만, 너무 물가에 가까웠다. 그녀는 기어서 기슭으로 올라왔다. 그녀는 땅 위로 올라왔고, 호수 속의 위협자들로부터 안전하다고 느꼈다. 그 때 그녀는 뒤에서 물이 첨벙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몸을 돌려보니 콜터가 물속에서 걸어 나오며 팔을 내밀고 있었다. 피트라는 그를 잡으려고 일어섰지만 콜터는 그녀를 돌려세우고는 땅 위로 밀었다. 그들은 팔짱을 끼고, 물속에서 걸어 나왔다. 그들의 몸이 차가운 공기에 노출되면서 소름이 돋았다. 피트라는 추위를 피하기 위해 기슭으로 뛰어가 초원에 있는 덤불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콜터가 그녀를 말렸다.
"저 속에 아무것도 없는지 확인해 보자."
바람이 차가웠기 때문에 피트라는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속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콜터? 난 네가 물고기한테 당한 줄 알았어."
"거의 그럴 뻔했어. 내 청바지를 물고기 입에 처넣었지. 아마 고생깨나 했을걸. 그사이에 빠져 나온 거야."
"미안해. 도와주지 못해서."
"그런 말 하지마, 피트라. 내가 하는 일은 모두 너를 위한 거야. 필쳐 박사가 옳아... 아니, 옳았어. 나는 너와 달리 그렇게 똑똑하지 못해. 나는 실제로 그룹에 속할 수가 없었어. 내가 거기에 있었던 것은 오로지 너 때문이었어.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너를 여기에서 구해 내는 것뿐이야."
"우리가 여기에서 빠져나가는 거야."
피트라가 정정했다. 피트라는 물속에서 일어났다. 콜터가 그녀의 팔을 잡았고, 두 사람은 서로 포옹했다. 그들은 눈을 감고 서로를 부드럽게 더듬었고 그들의 몸 안으로 따뜻한 감정이 퍼져나갔다. 피트라는 콜터의 품에 안긴 채 머리를 기댔다. 콜토는 머리 숙여 그녀에게 키스하려고 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콜터는 피트라에게 다가서다가 그녀의 뒤쪽에서 뭔가 뛰쳐나오는 것을 본 것이다. 바로 그 물고기였다. 이런 물고기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물고기의 모양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머리에서 꼬리까지 완전히 철갑 같은 것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 괴물에게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제 개의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콜터는 피트라를 옆으로 밀었지만, 이미 때는 너무 늦었다. 물고기는 뒤에서 그녀를 쳤고, 그녀의 왼쪽 다리를 물었다. 그 충격에 피트라가 콜터 위로 쓰러졌고, 그는 중심을 잃고 모래톱으로 넘어졌다. 피트라는 비명을 지르며 다리를 끌어당겼지만, 괴물은 그녀의 다리를 물속으로 잡아끌고 있었다. 콜터는 피트라를 향해 달려갔다.
"차 버려, 피트라."
그가 안타까와하며 소리쳤다. 콜터가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욕설을 퍼붓던 피트라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다. 콜터는 물속으로 뛰어들었지만 피트라는 점점 깊이 딸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녀는 콜터를 잡으려고 팔을 내젓고 있었다. 그는 피트라의 팔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소용없었다. 그가 피트라의 애원하는 듯한 눈빛과 물속으로 잠기는 팔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가운데 마침내 그녀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50. 구출
너는 이미 네가 파멸을 예언했다고 고백했다. 내가 신이라는 것을 잊었는가? 만약 알 수 있는 미래라면 내가 보지 못할 수 있겠느냐? 바빌론의 왕이 조라스트러스에게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화요일 오후 5시 20분(태평양 표준시)
그들은 사내들을 피해 숲속을 달렸다. 앞장을 선 리프먼은 수푸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거침없이 달렸다. 엘렌과 앤지는 그를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두 연인은 아직도 신발과 바지를 걸치고 있었지만, 애진의 불라우스는 이미 간 곳이 없었고, 엘렌의 것은 단추가 모두 떨어져 있었다. 노출에 익숙하지 않은 연약한 피부가 나뭇가지와 수풀에 긁혔다. 그들이 리프먼을 따라 숲으로 뛰어들자. 칼과 다른 사내들은 미친 듯이 총을 쏴댔다. 사내들이 난사하는 총소리에 -총알 일부는 근처의 나무에 박히기도 했다. -그들이 움직이는 소리는 묻혀 버렸다. 리프먼은 총성이 멎은 지 한참이 지났어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태양은 이제 모습을 감추었고 숲은 마치 끝없이 늘어져 있는 그림자 같아 보였다. 그들은 곧 어둠에 눈이 익었지만 리프먼의 속력에 맞추다 보니 비틀거리거나 넘어지기 일쑤였다. 엘렌이 잠시 쉬어가자고 말하려는 순간 그가 멈추라는 손짓을 보냈다. 그들은 바위가 불쑥불쑥 튀어나온 언덕배기를 오르고 있었다. 거대한 나무 한 그루가 숲속으로 쓰러져 있었다. 리프먼은 나무 주위를 한바퀴 돌더니 허공에 들려있는 뿌리 위로 기어올라갔다. 그가 바위 사이로 모습을 감추자 엘렌은 다시 겁에 질렸다. 그프먼은 그들의 구세주였고 보호자였다. 이들 또래였지만 그의 행동은 그런 마음을 갖게 하고도 남았다.
그는 곧 밖으로 툭 빠져나온 바위 위에 모습을 드러냈고, 그들에게 조용히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앤지와 엘렌은 서로 도와가며 바위를 올랐다. 나무의 뿌리 부근까지 올라왔을 때 그들은 나무가 마치 그날 아침에 쓰러지기라도 한 것처럼 피어오르고 있는 먼지들을 보았다. 리프먼이 뿌리 아래에 나 있는 구멍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엘렌과 앤지는 벽에 기대며 쓰러졌고, 마치 자궁 속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느꼈다. 잠시나마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자 엘렌은 앤지에게 벌어진 일을 생각했고 걱정과 죄책감으로 마음이 괴로웠다. 앤지의 우정이 있었기에 존을 찾으러 올 수 있었던 것인데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엘렌은 리프먼이 나타나기 전에 앤지가 어떤 정도로 심하게 당하고 있었는지 알지 못했다. 절대로 앤지에게 물어볼 수 없는 일이었고, 앤지가 자기에게 그 일을 이야기 할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엘렌과 앤지는 존재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숲속에 숨어 있었고, 쫓기고 있었다. 아마 전을 찾는다면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희망은 별로 없어 보였다. 포틀랜드는 사라졌다. 집도 없어졌고 아들도 없어졌다. 그녀는 손으로 입을 박고 소리 죽여 울었다. 얼마 후 엘렌은 앤지가 자신의 어깨를 감싸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 엘렌은 리프먼이 그들과 함께 있다는 것이 기억났다.
"리프먼! 여기에 있구나! 존도 여기에 있니? 걔는 살아 있니?"
구멍 속으로 달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엘렌은 리프먼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불편해 하는 것처럼 보였고 몸을 돌리는 것이 부끄러워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는 살아 있었어요."
"그게 언젠데? 왜 같이 있지 않니?"
"처음에는 같이 다녔어요, 우리는 그 그일이 벌어졌을 때 뉴버그에서 나오던 중이었어요. 존과 커비는 부모님을 찾겠다고 했고... 그래서 우리는 집을 찾기 위해 숲으로 들어온 거예요."
리프먼은 말을 있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저는 그 둘을 ... 그바보들을 믿을 수 없었어요. 걔들은 뭘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었어요. 할 수 있는 실수는 모두 저질렀어요. 걔들은 떠들다가, 넘어지다가, 그러면서 길을 헤매고 다녔어요. 언제 조용히 해야 하고 언제 말해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제가 아니었다면 백 미터도 못가 죽었을 거에요."
리프먼은 눈을 들고 엘렌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결국 저는 애들과 떨어지게 됐어요. 걔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소동을 벌이며 제 뒤를 따라오고 있었는데 공룡이 그 소리를 듣고 우리를 쫓아왔어요. 정신없이 도망쳤어요. 제기 앞장서고 있었는데, 뛰다가 뒤를 돌아보니 애들은 제멋대로 도망을 가고 있었고 바로 뒤에 공룡이 있었어요. 저는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도망쳤을 뿐이에요."
"이럴 수가!"
엘렌이 숨을 몰아쉬었다. 앤지가 그녀를 꼭 안았다.
"애들은 잡히지 않았어요. 나중에 애들이 제 이름을 부르는 걸 들었거든요. 숲속을 다니며 제 이름을 부르고 있었어요. 아주 바보 같은 짓이죠. 애들 때문에 죽을 뻔했기 때문에 저는 나서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한 애들은 아직도 저를 찾고 있을 거예요."
"너도 같이 있었어야 해."
"왜요? 걔들 때문에 하마터면 전 죽을 뻔했어요. 같이 다녔으면 지금은 시체가 되어 있을 거라구요. 여기에서는 누구나 스스로 살아남아야 돼요. 애들은 저를 필요로 했어요. 하지만 저는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걔네들이 필요하지 않아요. 난 아무도 필요 없어요."
앤지는 엘렌 옆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그럼 왜 우리를 도와주었니?"
앤지가 물었다.
"재미있으니까요. 나는 그들이 공룡에게 한 짓이 싫어요.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 공룡을 죽인 게 아니라 재미로 그런 거예요. 나도 똑같은 종류의 즐거움을 느껴볼려구요."
"우리를 놔두고 갈 수도 있었잖니."
"지금도 그럴 수 있어요."
"아무도 필요 없다구?"
"네, 그래요."
"그럼 왜 계속 내 가슴을 쳐다보고 있는 거지?"
앤지가 시비조로 말했다.
그녀는 앤지가 웃옷을 아무것도 입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리프먼, 네 옷을 앤지에게 주렴."
엘렌이 딱딱하게 말했다.
리프먼은 반항하듯 돌아앉았다. 그는 입을 꾹 다문채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는 누구도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마침내 앤지가 입을 열었다.
"만약 추우면, 그냥 입고 있어, 난 괜찮아."
리프먼이 작은 소리로 콧방귀를 뀌더니 중얼거렸다.
"난 추위를 타지 않아요."
그러더니 옷을 벗어 앤지에게 던져 주었다.
"잠을 자 두세요."
그가 명령했다.
"제가 망을 볼게요."
그가 배낭과 수통을 가지고 자리를 떠났다. 엘렌은 리프먼을 다시 보게 될지 자신이 없었다. 앤지는 잠시 후 잠들었지만 엘렌은 존에 대한 걱정과 자신을 두고 가 버린 남편에 대한 원망으로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들은 술에 취해 있었지만, 흥겨운 부위기는 사라진지 오래였고, 두려움과 분노만 넘쳐흐르고 있었다. 존은 그 사내들 중 한 명이, 엄마를 해치려던 사람이 죽은 것을 다행스럽게 여겼다. 다른 한 명은 다쳤지만 존은 상처가 심하지는 않았다. 존은 사내들에게 화살을 쏘고 엄마가 도망치도록 도와준 것이 리프먼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사내들은 동료의 시체가 있는 자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모닥불을 지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커비와 존은 숲에서 기어 나와 사내들이 두려움에 떨며 다음 계획을 세우는 소리를 엿들었다. 상처를 입은 남자. 칼은 한참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동료들을 비웃으며 자신의 다리에서 뽑아낸 파이버 글래스 화살을 동료들의 얼굴에 던졌다.
"그 여자들을 그대로 도망가게 할 수는 없어."
그가 우겼다.
"그들은 경찰이 죽은 걸 봤어."
아무도 감히 칼이 살인을 저질렀다고 말하지 못했다.
"우리가 여자들한테 한 짓은 어떻고? 이봐, 밀러. 네 장인 뭐라고 하겠어? 네가 그러고도 장인네 공장에서 일할 수 있겠나? 버틀러, 피터스 서장은 벌써 너를 싫어하고 있는 걸, 집행유예를 끝장내버릴 구실만 찾고 있을 거야, 그는 이 사건을 알게 될 거고 바보같은 네놈은 교도소에 다시 가 있겠지. 그는 떠벌이 쿱을 다른 사람들 못지 않게 싫어하지만 그가 거느린 경찰 중 하나가 살해됐다면 어떻게 할 것 같아? 나 혼자한테가 아니라 우리 모두를 의심할 거라구. 그럼 바비는 어떻구? 키쉬톤, 너는 바비와 제일 친했잖아. 바비는 웬 놈의 손에 그렇게 죽었는데 그냥 내버려 둘 거야? 등 뒤에서 그놈을 쏘아버리라구... 빌어먹을, 등 뒤에서 말이야! 그래. 그냥 있을 수는 없어."
칼은 사내들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았고, 사내들이 찬성을 표시할 때까지 계속 움직였다. 그들은 여자들을 도망치게 내버려 둘 수 없었고, 바비를 죽인 것이 누구든 간에 그에 대한 복수를 해야 했다.
커비와 존은 그들의 이야기를 엿듣다가 그 자리에서 빠져나왔다.
"우리가 해야 왜. 커비. 리프먼이 우리 엄마를 구해 줬어. 만약 우리가 그런 어려움에 처래 있었더라도 리프먼은 우리를 도와줬을 거야."
커비도 그 말에 동의했고, 그들은 리프먼과 두 여인이 도망칠 수 있도록 오토바이들을 없애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면 커비와 존도 그들을 뒤쫓아가기가 훨씬 쉬울 것이다. 존은 사내들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를 오랫동안 들었다. 그중에는 물론 칼도 포함되어 있었다. 또 다른 사람들로는 밀러, 키쉬톤, 그리고 버틀러가 있었는데 버틀러는 거의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존은 조금 불안했다. 존은 야영지서 빠져나오며 목소리를 유심히 들었고 기억하려고 애썼다.
존이 엎드려 기기 시작한 지 몇 시간은 흐른 것 같았고, 이제는 거의 오토바이 옆에 와 있었다. 하지만 풀들이 뭉개져 있어 모습이 쉽게 드러날 수 있었기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존은 사내들이 모닥불을 바라보고 있기를 바랬다. 눈동자가 수축되면 어둠 속에서 모습을 금방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커비가 자신의 왼쪽으로 기어오는 소리를 들었다. 그들은 양쪽에서 오토바이를 향해 거리를 좁혀 가고 있었다. 그때 존의 오른편에서 소리가 들렸고, 존은 얼어붙었다. 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고 천천히 몸을 굴렸다. 모닥불 주위에서 갑자기 고함 소리가 터져나왔고, 키쉬톤 다음에 밀러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렇다면 근처에 와 있는 사람은 칼이거나 버틀러였다. 그는 걸음걸이를 주의 깊게 들었다. 절룩거리며 걷는 것 같지는 않았다. 칼은 심하게 다리를 절고 있었다. 그럼 버틀러가 틀림없었다.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발자국은 거의 존의 얼굴 근처까지 다가와서야 멈췄다. 뭔가 부스럭거리는 것 같더니 요란한 소리가 났다. 잠시 후 존의 무릎이 축축해졌다. 존은 속으로 그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초원 쪽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아주 크게 들렸고, 존은 너무나 당황해 숨을 죽였다. 그는 들켰을까 봐 떨고 있었다. 버틀러가 앞으로 나오며, '제기랄, 뭐야?'라고 중얼거렸다. 버틀러가 소리쳤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못 봤어?"
다가오던 목소리의 주인이 물었다.
"빌어먹을, 쿱하고 그년들이 옳았을지도 몰라. 공룡이 더 있는 것 같아. 아마 더 클지도 몰라."
쾅하며 부서지는 소리는 계속 들리고 있었지만 점점 잦아들고 있었다. 사내들은 소리가 어느 정도 멀리에서 들리는지 귀 기울여 보더니 모닥불 옆으로 돌아왔다. 버틀러가 맨 뒤에 있었다. 존은 그가 걸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오줌 웅덩이 속에서 다리를 빼냈다. 다시 분노가 치밀었고 그는 용기를 냈다. 드는 다시 앞으로 기어갔다. 조금씩 조금씩, 가능한 아주 조용히, 풀 위를 지나가면서 소리를 내리 않도록 조심했다. 그는 머리를 들고 풀이 짓밟히면서 새로 생긴 길을 바라보았다.
아직도 사내들은 함께 있었다. 존이 왼쪽을 바라보자 커비가 그에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보이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오토바이로 기어가고 있었다. 그들의 계획은 연료선을 자르고 점화전을 서로 연결해 놓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며 그들은 다른 오토바이를 가지고 고장 난 오토바이를 고칠 수도 있을 것이다. 리프먼이 훔쳐 온 칼은 매우 날카로웠고, 연료선은 쉽게 잘라졌다. 하지만, 점화전은 엔진 깊숙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에 손에 쉽게 닿지 않았다. 두 번째는 점화전이 쉽게 잘렸다. 그는 어떤 관을 발견하고는 그것을 잘라 버렸다. 그는 천천히 기어서 불 쪽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마지막 오토바이로 다가갔다. 사내들은 이제 조용히 이야기하고 있었고 나무를 가지고 불을 쑤시며 술병을 돌리고 있었다. 존은 점화전 하나를 잘랐고 다른 오토바이의 것도 잘랐지만 자신이 있는 쪽에서는 다른 선들에 손이 닿지 않았다. 하지만 연료선을 자르자 곧 개스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존은 돌아가려고 하다가 커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망가뜨리기로 한 부분은 다된 것 같았다. 존이 커비를 쫓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가 오던 길로 되돌아갈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는데, '피싯'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고개를 돌려보니 커비의 얼굴이 오토바이 너머 풀숲에서 보이고 있었다. 사내들을 살펴보며 존은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가 다가가자 커비는 사라져 버렸고, 다시 존은 그 뒤를 쫓았다. 몇 미터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커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커비는 존의 귀에 속삭였다.
"저들이 죽인 남자를 찾도록 도와줘. 이 근처 어디에 있을 거야. 하지만 조용히 해야 돼."
존은 이유를 묻기가 두려웠다. 그들은 각자 흩어져 찾으면서도 서로 보이는 거리 내에서 움직였다. 얼마 후에 커비가 존에게 자기 쪽으로 오라고 손짖했다.
"우리가 뭘 더 찾아냈는지 봐."
존은 마지 못해 시체를 쳐다보았지만 속이 뒤집혔다. 시체는 숲의 작은 사냥꾼들의 먹이가 되고 있었고, 그는 날이 어두운 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존은 시체 위를 기어다니는 곤충들을 피해 죽은 남자의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툭툭 쳐다보았다. 가슴께의 주머니에는 피가 말라붙어 있었고 존은 그쪽만 뒤져 볼 수 있었다. 다른 주머니에는 피범벅이 된 카멜 담배 한 갑과 커다란 라이터 하나가 들어 있었다. 지갑, 빗, 그리고 잔돈 ㅂ 개가 바지주머니 속에 들어 있었는데 그것들을 꺼낼 때 엄청나게 많은 열쇠 꾸러미가 소리를 내며 따라 나왔다. 그 소리에 놀란 커비와 존은 움직이다 말고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조끼에서 권총용 탄창을 발견했고, 장총용 탄약통도 찾아냈다. 그들은 허쉬 초콜릿도 발견했다.
"그들이 이 사람의 라이플을 오토바이에 놔두었을까?"
존이 겨우 들릴 정도로 물었다.
"아니. 내가 벌써 봤어. 이 사람의 오토바이는 파란색이었거든."
그들이 숲으로 돌아가는데 왁자지껄한 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렸다.
"저게 누군지 알지. 존?"
"그래 알아."
"너의 오랜 친구인 애꾼눈 공룡이야. 그놈은 너를 찾고 있어. 존, 한밤중에 간식 좀 먹어 볼래?"
"너나 먹어, 난 초콜릿이나 하나 줘."
"먼저 밤을 지낼 만한 장소부터 찾아보자."
그들은 뽑힌 나무 밑에서의 경험을 기억했고 이번에는 피난처를 높은 곳에서 찾았다. 하지만 그들이 오를 만한 나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들은 뽑힌 나무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는 작은 숲을 발견했다. 나무 주위에는 작은 나무들이 빙 둘러서 작은 원을 이루고 있었다. 그들은 울타리의 중간 부분으로 들어간 다음 나뭇가지들로 입구를 막았다.
그들은 허쉬 초콜릿을 먹으며 수통의 물을 마셨다. 그들은 자신들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수행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만족감을 맛보고 있었다. -그들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놀이 기구를 탔었고, 용감하게 거기에서 내려온 것이다. 한 시간 후 그들은 잠이 들었다.
51. 나쁜 새
그러므로 신께서 계획하신 것을 들어라... 무리 가운데 새끼들이 끌려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목장을 완전히 멸하시리라...보라! 독수리가 날개를 펼치며 하늘로 올랐다가 먹이를 향해 덮치는 모습을.
예레미아서 49장 20~22절
오레곤주 5번 고속도로 위에 생긴 산 화요일 오후 10시 5분 (태평야 표준시)
크리시는 아파서 눈을 떴고 엄마를 부르며 울었다. 하지만 엄마는 오지 않았다.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지만 계속 흐느꼈다. 크리시는 다친 팔을 보고는 비명을 지르고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자 뭔가 커다란 것이 뒤에서 움직였다. 아주 어두웠지만 그녀는 커다란 새가 자기를 바라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가만히 앉은 채 울음을 삼키려고 애썼다 .그녀는 커다란 새를 기억하고 있었다. 텔레비전에서 본 것과는 다른 아주 나쁜 새였다. 크리시는 그 새가 자신을 땅 위로 쓰러뜨리고 팔과 어깨에 상처를 입혔다는 걸 기억해냈다. 나쁜 새는 그녀 곁을 떠나지 않고 계속 아프게 했다. 그리고는 그녀를 물고 하늘로 올라온 것이다. 그녀는 엄마가 자신을 붙잡으려고 달려왔던 것을 생각해 냈고, 엄마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하늘로 들어 올려질수록 팔과 어깨가 아파 왔던 것을 모두 기억해냈다. 하지만 새는 그녀를 점점 높이 데리고 올라가기만 했었다. 올라갈수록 엄마와 멀어지고 있었다. 새는 산 가까이 날더니 산에서 멀어져 갔었다. 크리시는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었다. 그러고 나서 떨어진 것이 기억났다. 새도 같이 떨어졌다. 그들은 산 쪽으로 굴러떨어졌다. 그다음부터는 아무것도 기억할 수 없었다. 그녀는 흐느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새를 바라보았다. 새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날개를 접고 앉아 있었다. 그녀는 새도 다쳤다는 것을 알았다. 날개에 피가 묻어 있었다. 그때 새가 입을 벌리더니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크리시는 소리를 지르며 새를 피해 기어가려고 했지만 팔이 무척 아팠다. 그녀는 아프지 않은 팔을 바닥에 대고 엎드렸다. 새는 일어서기 위해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다. 갑자기 새가 크리시를 향해 달려들었고 커다란 부리고 그녀의 얼굴을 쪼려고 했다. 크리시는 다시 비명을 질렀고, 새가 일어서려고 요동치는 사이 뒤로 피했다. 그녀는 이 못 된 새로부터 피할 속을 찾다가 산 중턱에 밖으로 튀어나온 바위 끝으로 달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피할 수 있는 곳은 너무 아래쪽에 있었기 때문에 보기만 해도 현기증이 났다. 그녀는 다시 나쁜 새를 쳐다보았다. 새는 곧 공격을 해 올 것이다. 크리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갈 곳이 없었다. 숨고 싶었지만 숨을 데도 없었다. 크리시는 바위 위로 오르려고 했다. 하지만 두 손을 쓴다고 해도 오를 수가 없었다. 뒤를 돌아보니 새가 일어서고 있었다. 그러더니 다친 날개를 질질 끌며 비틀브틀 그녀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크리시는 다시 바위를 오르려고 했지만 할 수 없었다. 새가 바로 뒤에 와 있었다. 새가 부리고 공격을 했다. 그녀는 도망치려고 하다가 발이 걸려 넘어졌다. 그녀의 팔이 바위 속으로 빠졌고, 그녀는 다친 팔로 땅을 짚고 있었다. 나쁜 새는 깡충깡충 뛰며 그녀의 주위를 돌로 있었다. 그녀는 구멍 속에 빠진 팔을 움직였고 구멍은 점점 넓어지고 있었다. 크리시는 팔을 이리저리 움직였고 마침내 구멍 속으로 몸을 집어넣을 수 있었다. 나쁜 새는 밖에서 구멍 안을 쳐다보고 있었다. 새는 구멍 속에 무리를 넣고 마구 찔러댔다. 크리시는 다시 소리를 지르며 울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구멍 속으로 깊이 파고 들어가고 새는 끊임없이 공격해 왔다. 그건 마치 오빠인 매트가 하던 못된 장난과도 같았다. 마침내 크리시는 새가 더 이상 가까이 올 수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는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새가 다가오지 못할 곳에 가만히 누웠다. 새는 아직도 밑에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때때로 새는 주둥이를 벌리고 그녀를 향해 끽끽 소리를 질렀다.
"가 버려, 이 나쁜 새야!"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새는 몇 번 더 공격을 하며 소리를 질러대다가 마침내 상처 입은 날개를 끌고 물러갔다. 새는 이제 크리시의 눈앞에서 사라지고 없었다.
"넌 나쁜 새야!"
그녀는 다시 소리를 질렀다. 그러고 나자 엄마가 왔을 때 엄마가 어떻게 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크리시는 다시 울움을 터뜨렸다.
"이 나쁜 새야."
그녀가 말했다.
"난 네가 정말 미워."
그녀는 다친 팔을 잡고 누워서 엄마를 찾으며 울다가 한 시간 정도 지난 후 잠이 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는 칠흑같은 어둠이 주위를 뒤덮고 있었다.
52. 열대에 내린 눈
우리가 텔레비전에서 '루시'를 보고 있을 때였다.- 우당탕하는 소리가 나더니 벌거벗은 사람이 지붕 위로 떨어졌다. 경찰이 그 사람이 얼어 죽었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그렇게까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쉬 한슨. 1959년 7월 15일 플리리다 잭슨 빌
하와이 주 하와이선 힐로 화요일 오후 8시 15분(알류산-하와이 시간대)
힐로 가는 평소와 달리 조용했고 고나광객들과 주민들은 뉴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도로 위에 흐트러진 여러 가지 잡동사니들만이 무슨 일들이 벌어진 건지 말해 주고 있었다. 오하우에서와 마찬가지로 물건들이 남아 있는 가게는 무장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식료품 가게들이 완전히 털렸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백화점과 전자 제품 가게들이 약탈당해 있었다. 그중에서도 제일 끔찍한 모습은 완전히 파괴된 주류 판매점이었다. 하지만 시골은 조용했고 다니는 차들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캐롤리는 사화산인 마우나키 위에 있는 관측소로 올라가면서도 예의 생기발랄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음, 그 여자 이름 뭐였더라."
그녀가 놀렸다.
"그녀와 두서너 번쯤 데이트를 했겠죠. 당장 세 봐요. 그렇지 않아요? 귀가 빨개지네요. 당신 내 말을 인정한다는 증거예요. 이름이 뭐였어요? 바비? 아냐, 그녀의 모습이 어땠을지 생각 좀 해봐야겠어요, 버니?"
"아야. 그녀의 이름과 성적 특징이 막 헷갈리네요. 플러피? 아냐. 그건 오히려 성격에 맞는 이름이지. 그럼 풀루지? 이런, 그 여자의 윤리관을 생각했네. 그 여자 이름이 뭐에요? 맞아. 브리지트."
"브리짓뜨."
"나도 그렇게 발음했어요. 브리-지트, 왜 브리-지트가 당신에게 그녀의 망원경을 써도 좋다고 했죠? 내가 알기로는 당신 둘은 친구였던 적이 없었는데."
"우리는 사이가 좋았어요. 우리가 헤어진 것은 그러니까, 그녀는 내가 야심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아, 그래요. 그건 그래. 그녀는 기다렸어요... 1주일인가 그랬을텐데. 아니에요?... 그러고는 그 캐나다 남자한테로 집을 옮겼잖아요. 그 사람이 더 전망이 있었겠죠. 그렇죠?"
"한 달 동안 기다렸어요. 어쨌든 그건 그녀의 망원경이 아니에요. 풀슨 박사가 그녀와 연락을 취해 보라고 했고 사진을 볼 수 있도록 허가를 얻어 주었어요. 잘하면 우리가 그 곳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을 거요."
"아주 좋아요."
"입 좀 다물고 있을래요"
"그러죠."
캐롤리는 얼굴을 돌리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조금 전에 에밋의 아픈 상처를 들쑤셔 놓고는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고도는 점점 높아지고 있었고, 푸르게 우거진 열대림들은 그들 뒤로 모습을 감추고 있었다. 에밋은 대통령의 과학 담당 자문역이 프레스넷을 통해 보낸 메시지를 받았을 때 두려움을 느꼈다. 하지만 폴슨 박사는 에밋이 프레스넷을 불법 사용한 것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그의 모형에 대해서만 관심을 표시했다.
"그 모형의 의미를 이해하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에밋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그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그럼 당신의 이론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에밋은 수학에 능숙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폴슨 박사는 훨씬 간단한 방법을 생각해 냈다. 에밋은 바로 동의했다- 결국, 이제 그는 본격적인 게임에 뛰어든 것이다. 에밋은 캐롤리를 공룡 알에서 떼어 내지 못할까 봐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은 아주 쉬웠다. 이제는 자원자 한 부대가 그 장소를 지키고 있었고, 알이 부화하기 전까지는 별로 흥미진진한 일이 없을 것이다. 에밋은 여행의 목적을 애매하게 설명했고, 얼마 걸리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캐롤리는 그 자리에서 같이 가기로 결정했다. 에밋과 함께 있다는 사실을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비행기는 아직도 섬 사이를 다녔기 때문에 그들은 비행기로 하와이로 갔다. 그들은 얇은 여름옷을 사물함에 놓아두고, 쌀쌀한 날씨에 맞게 옷을 두꺼운 것으로 갈아입었다. 캐롤리는 에밋이 볼 때 지금까지 제일 점잖은 옷으로 갈아입고 화장실에서 나왓다. 하지만 그 옷도 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붉은색 멜빵이 달린 청바지에 붉은색 긴소매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의 손에 붉은색 체크무늬 스웨터가 들려있었다. 그녀는 붉은색 양말과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년의 밝은 붉은색 립스틱이 블라우스와 스웨터와 잘 어울렸다. 그가 캐롤리의 옷차림을 칭찬하려는 순간 캐롤리는 빨간색과 하얀색이 섞인 체크무늬 띠를 가방에서 꺼내더니 머리에 묶었다.
"이 모든 것들이 빨간 고무 코에서 나온 거예요?"
캐롤리의 입가에 웃음이 떠올랐고, 그녀는 말을 잘못 알아들은 체했다.
"가지고 온 콘돔이 뭐 어쨌다구요?"
그녀는 공항 대합실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일불 크게 말했다. 에밋은 얼굴을 붉혔고, 뭔가 말하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그는 캐롤리를 절대로 이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차를 타고 가는 동안 우스꽝스런 농담이나 주고받았고 시간의 붕괴에 대해서는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그들은 플레시오사우루스와 이상한 해초들에 대해서 말했다. 하지만 에밋은 프레스넷을 통해 알게 된 공룡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들은 왕 박사의 자리를 누가 차지하게 될지, 누가 신규 임용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들은 고용, 조건, 그리고 승진 같은 것들은 옛날 세계에 속하는 질서하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은 새로운 질서를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사화산인 마우나 키를 오르는 동안 기온은 낮아졌고, 에밋은 좀처럼 틀지 않던 히터를 켰다. 마우나 킨는 하와이 위로 우뚝 솟아 있었는데, 산 정상은 해발 4.200미터를 기록하고 있었다. 에베레스트산의 절반 정도 높이로 대학 관측소 위치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꼭대기에는 여러 나라에서 제공한 온갖 기구들이 놓여 있어 마치 달에 찍힌 반점처럼 보였다. 에밋과 캐롤 리가 가는 곳은 캐나다-프랑스-하와이 자상 천체 관측소였지만 그들이 필요하다면 다른 연구소의 기구들도 사용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불고 있었고, 그들은 마지막 초지를 지나 산의 지붕을 이루고 있는 용암 지대로 들어섰다. 차 안은 많이 따뜻해져 있었지만 바깥은 눈이 내릴 정도로 기온이 내려가 있었다. 실제로 땅 위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차 안은 따뜻했지만 높이 올라갈수록 공기는 건조해졌고, 그들은 입술에 침을 자주 묻혔다.
"여기에서는 공기가 너무 건조해서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던데요. 제대로 쓸 수 있게 주전자에다 물을 넣고 끓이기도 한다면서요."
캐롤 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 산소마스크를 꺼내 쓰죠?"
그녀가 물었다.
"비상시에 천장에서 떨어져 내려와요. 진지하게 묻는 건데, 정망 괜찮아요? 얼굴이 창백한 것 같아요. 우리는 해발 3.200미터 위에와 있어요."
"괜찮아요. 콜로라도에 스키 타러 갔을 때를 생각하고 있었어요. 적응하는 데 한참 걸렸어요. 만약 오랫동안 스키를 탔더라면 병이 났을 거예요."
"그래요, 저산소증이에요, 하지만 문제가 있어서는 안 돼요. 나 스키를 타거나, 많이 걸을 생각은 전혀 없으니까요. 그저 그들이 사진 찍은 것을 본 다음 이 차가운 바위에서 내려오고 싶을 뿐이에요."
"브리-지트와 함께였다면 절대로 차갑지 않았을걸요."
에밋은 뜨끔했다.
"여기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의 일부는 적응하느라 애를 먹죠. 공기는 건조하고 산소는 부족하죠. 생각하는 데 영향을 미쳐요. 대학에서는 15분 안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 여기에서는 한 시간은 걸려요. 하지만, 관측소 자리로는 세계 제일이죠."
잠시 후 캐롤리가 에밋을 바라보았다.
"곧 도착할 것 같군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니에요? 당신은 우리가 해안에서 발견한 것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는 것 같았어요. 나는 비밀을 잘 지키지 못해요. 그렇지만 당신도 마찬가지에요. 결국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난 공모자가 된 거라구요."
에밋이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그녀에게 말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뉴스에서 떠들고 있었기 때문에 누구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잠깐 법적인 문제를 걱정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수많은 홍수, 화재, 사태, 해일, 그리고 정전 사태 등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녀는 스스로도 플레시오사우루스라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았었다.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어떻게 이런 일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공룡 이야기를 듣고도 놀라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배꼽을 잡으며 웃었다.
"생각해 봐요."
캐롤리가 말했다.
"티라노사우루스 렉스가 다시 지구상에 나타나 호령을 하다니. 어떻게 그런 일들이 있을 수 있죠? 이런, 기다려 봐요. 오빠도 그런 얘기를 들었대요. 오빠는 사냥 면허를 따고 싶어 하던데. 물론 공룡의 머리를 벽에 걸어놓기 위해서는 헛간만 한 전시실이 있어야겠지만요."
잠시 후 그녀는 중요한 질문을 했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죠? 이젠 다 끝났어요? 다시 일어날까요? 지금 공룡이 있다는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 거죠?"
퍼글리시는 할 수 있는 한 고농도의 물질이 미칠 수 있는 영향력과 시간의 파동, 그리고 시간의 전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다양한 이론을 설명했고 그가 고메즈 모형을 또 달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지에 대해서도 알려 주었다. 풀슨 박사와 연락했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공룡이 나타났다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서 여기에서 뭘 찾는 거죠?"
그녀가 물었다.
"이론을 보강할 만한 근거요. 달에서는 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가 필요해요. 이론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어떤 것이라도 가져가야 되요. 폴슨 박사는 특별히 증거 자료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그는 급하다고 말하지는 않았지만, 뭔지 준비하는 일들을 하기에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그렇게 중요한 거라면, 내게도 이런 흉물스런 산 위로 올라오는 것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중요한 자료일 수 있는 거예요."
캐롤리는 그녀답지 않게 수심에 차 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자 에밋은 그녀의 목소리가 그리워졌다.
"뭘 생각해요. 캐롤리?"
캐롤 리가 고개를 젓더니 자리를 고쳐 앉았다.
"본토에 있는 우리 가족을 생각했어요 -엄마하고 여동생이 있어요. 연락이 되지 않았지만 전화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가족들은 무사할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 가족들이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은 건 아니겠지만 사라졌겠죠. 시간과 함께 어딘가로 사라져 버렸을 거예요. 당신이 말한 것이 그런 거죠? 그런 일이 다시 벌어질지 궁금해요. 그렇다면 난 혼자 미래로 가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생각한 건데, 같이 사라지고 싶은 사람한테 앞으로는 더욱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겠어요."
"만약 우리가 핵실험을 재개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그렇게 말했지만 에밋은 만약 그가 다른 세계로 보내진다면 가까이 있었으면 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에게는 가까운 친척이 없었고 아이오와에 아저씨 한 분이 계실 뿐이었다. 그는 여러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다가 같이 있고 싶은 사람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이 점점 험해지고 있었다. 정상에 가까이 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검은색 용암의 단조로운 풍경이 이어지고 있었다. 바람은 계속 세차게 불고 있었고, 하얀 가루 같은 것이 날리고 있었다.
"이거 눈이에요?"
캐롤리가 물었다.
"믿을 수 없어요. 열대 지방에 눈이라니. 물론 이 위에서는 눈이 내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정말ㄹ 이렇게 보니 믿기지 않네요."
갑자기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메마른 용암 지대 위에 문명의 이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보조 장비들을 갖추고 평지에 자리 잡은 6개의 관측소 지붕들이 산꼭대기 위에 펼쳐져 있었다. 다른 건물들도 근처에 있었다. 마치 시간의 전이가 기술 문명의 장식품들을 원시 시대의 차가운 용암 지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지붕 위에는 각각 한 대 또는 두 대의 4륜구동 차량들이 올려져 있는 것이 보였지만 에밋은 브리짓트가 어디에서 근무하는지 알 수 없었다. 네 대의 차가 길이 막다른 곳, 관리 본부 옆의 평지에 주차되어있었다. 에밋은 거기에서부터 찾아보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옷을 더 껴입었다. 캐롤리의 붉은색 체크무늬 스웨터는 이런 날씨라면 짧은 거리를 걷는 데나 어울릴 것 같았다. 자동차의 문을 열자 차가운 공기가 갑자기 습기와 온기를 빨아내었다. 캐롤리는 얼른 건물 쪽으로 뛰어갔고, 현관문을 열어 제쳤다. 안에 들어가 보니 의자와 테이블 몇 개가 놓인 간이 라운지가 있었다. 아무도 없었지만 복도에는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그때 한 남자가 그들 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방문객들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고,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캐롤리를 자세히 살펴보고 있었다.
"라살르 박사를 만나러 왔는데요."
"제가 가서 손님 오셨다고 말하죠."
남자는 캐롤리를 다시 쳐다보더니 몸을 돌려 오던 복도로 되돌아갔다. 기다리는 동안 캐롤리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천문학 잡지들을 뒤적이다가 내려놓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문이 열렸다. 브리짓뜨는 에밋이 기억하는 대로 아름답고 매력적이었다. 그녀는 맞춤옷이 분명할 흰색 바이어스로 처리한 연한 물빛 정장을 입고 있었다. 재킷 끝에는 손으로 뜬 레이스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그녀는 캐롤리처럼 색상을 맞추고 있었지만 캐롤리보다는 정도가 훨씬 덜하였다. 브리짓뜨의 자태를 보자 에밋은 그들이 함께 지냈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그녀의 표정은 에밋에 대한 감정은 전혀 남아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었다. 에밋의 엉큼한 회상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브리짓뜨는 캐롤리를 돌아보고는 그녀의 머리에 매달린 커다란 머리띠부터 빨간 양말까지 죽 훑어보았다.
"에밋, 이 사람은 누구야? 꼭 미니 마우스를 닮았는데?"
브리짓뜨가 불어로 말했다.
에밋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는 캐롤 리가 ㅈ은 갈색 머리에 붉은색 체크로 온통 뒤집어쓰고 있는 모습이 꼭 미니마우스처럼 보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캐롤리의 얼궁이 묽어졌는데 그것은 당황해서가 아니라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브리짓뜨, 당신이라면 캐롤리처럼 입지도 못할 거고, 금방 당황했을 거야. 캐롤 리가 입을 여는 순간 에밋은 숨을 죽였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라살르 박사 에밋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에밋 이야기로는 당신은 아주... 꽤... 쉽게..."
에밋은 캐롤 리가 '친해진다'라고 말하기를 가다렸지만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브리짓뜨는 파르르했지만 그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넘어갔다.
"어떻게 이 문제로 폴슨 박사하고 연락이 됐죠? 그가 전화를 하지 않았다면 난 결코 이런... 지긋지그한 일에 시간을 허비하는 일에 ... 절대로 동의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건 폴슨 박사의 생각이었소."
"누구의 생각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이건 자원의 낭비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보여줄 게 있어요."
브리짓뜨는 몸을 돌려 밖으로 걸어 나갔다. 에밋이 캐롤리를 흘낏 보고는 그녀의 뒤를 따랐다.
"미니 마우스라고! 모든 사람들이 미니는 물방울 옷만 입지 체크무늬를 입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그녀는 계속 열을 내고 있었다.
"참, 부드러운 사람이네요, 안 그래요?"
그녀는 쉬지 않고 떠들어댔다.
"당신이 그런 모욕을 참고 있는 걸 보니 그녀가 침대에서는 대단했었나 보죠."
에밋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캐롤리를 따라 문을 나섰다.
"저기를 보세요."
브리짓뜨가 다른 것들과 떨어져 직사각형의 건물 쪽으로 휘어진 길에 있는 건물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게 NASA의 IRTF에요. 적외선 망원경이죠."
그져가 캐롤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통역을 했다.
"NASA에 있는 것보다 유일하게 큰 일안 적외선 망원경이 바로 저기에 있어요."
그녀가 기지와 섞여 있는 다른 건물의 지붕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리고 저쪽은"
그녀가 계속했다.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큰 광학 망원경이 있어요. 이 망원경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어요?"
"달의 사진을 찍고 있나요?"
캐롤 리가 말했다.
"맞습니다."
브리짓뜨가 캐롤리를 바라보며 오만하게 대답했다.
"내 생각이 아니에요."
캐롤 리가 방어하듯이 말했다.
"난 그저 에밋과 동행했을 뿐이에요. 나였다면 플루토 사진을 찍고 있었겠죠."
캐롤리는 틀림없이 브리짓뜨가 미니 마우스 운운한 것을 빈정대고 있었다. 그러나 브리짓뜨는 냉정을 잃지 않고 말했다.
"우주에는 이것보다 성능이 훨씬 뛰어난 기기들이 많아요. 만약 계획이 취소되지만 않았다면 폴슨 박사의 부탁을 거절했을 거예요."
"취소라고?"
에밋이 물었다.
"그래요. 아무런 현상도 없었어요. 그래서 우리의 관찰 교대 일정이 비게 되었는데 대기자 명단에 있던 사람들과 연락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죠."
이런 기기들을 사용하려면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했다. 그리고 이런 기회에 대기자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는 것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에밋은 그녀의 일정에 왜 차질이 생겼는지 알아차렸지만 브리짓뜨는 그녀 발아래의 세상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분명했다. 그는 그녀에게는 그 사실을 말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사진을 원했다.
"벌써 사진을 검토하기 시작했나요? 뭐 도와줄 거 있어요?"
"도움은 필요 없어요, 사진을 인화하려면 1시간 반은 기다려야 할 거예요."
에밋은 기다릴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이런 상황에서 학교에 가서 사진을 인화할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다.
2시간 후 그들은 사진 한 꾸러미를 챙겨서 화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캐롤 리가 운전하는 동안 에밋은 사진에 파묻혀 눈에 띄는 변화가 있는지 찾았다.
"사진만으로 구별할 수 있을 만큼 나는 달의 지형에 대해 잘 알지 못해요."
마침내 그가 고백했다.
"게다가 차멀미까지 생기는데요."
"에밋은 멀미약 안 먹었어?"
캐롤 리가 애기 목소리로 그를 비꼬았다.
"그건 그렇고 뭘 찾고 있어요?"
"뭔가 달라진걸요. 변화한 것들을 찾고 있어요. 내 이론을 뒷받침하기 위해 필요해요. 풀슨 박사는 자세한 자료를 갖고 있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게 도와 달라고 하지 그랬어요."
캐롤 리가 말했다.
"당신은 공룡알 때문에 바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걸요. 그저 모래만 쳐다보는 것이 재미있는 일은 아니라구요."
에밋은 자신이 그런 것처럼 캐롤리도 이 연구에 이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가 자신의 도움을 원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캐롤리, 이 사진을 분석하는 것을 도와주지 않겠습니까?"
에밋은 매우 정중하고 진지하게 말했지만 마지못해 하는 태도가 역력히 나타나고 있었다. 캐롤리는 웃음을 겨우 참고 불어로 대답했다.
"좋아요.“
53. 문명의 몰락
인간들이 다른 생물들을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운송 도구나 다른 기구들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무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존 해먼드 경. 1872년 역사 철학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안 보호 구역 화요일, 오후 10시 30분(태평양 표준시)
그의 생존 본능이 간신히 그를 익사 위기에서 건져냈다. 이미 신체적으로는 탈진한 지 오래였지만 그는 계속 잠수를 하며 피트라를 찾았다. 하지만 아무 흔적도 찾지 못한 채 그는 물 위로 올라와 기슭 위에 쓰러졌다. 그는 잠시 쉬었다가 그녀를 다시 찾아보려고 생각했지만 그는 정신을 잃고 거의 혼수상태로 빠져들고 있었다. 음식도 전혀 먹지 못한데다 심한 추위에 떨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깨어난 후에도 꼼짝하지 못했다.
그에게는 너무 가혹한 처사였다. 어니와 웨인 부인을 잃었을 때는 직접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저 무서운 마음만 들었었다. 쿰 박사와 필쳐 박사가 죽었을 때는 매우 고통스로웠지만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피트라의 죽음은 콜터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고통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피트라 외에 그 누구에게서도 그런 친근감을 느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하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이 세상에 없었다. 모두 떠나갔다. 그것은 그 괴물들, 필쳐 박사가 뭐라고 했든 간에 그 공룡들 때문이었다. 공룡들은 갑자기 나타나서 그들을 공포 속에 빠뜨렸고, 상처를 입히고 그리고는 죽여 버렸다.
그래. 나도 너희를 죽일 수 있어. 콜터는 생각에 잠겼다. 나는 인간이고 인간은 다른 동물들보다 훨씬 더 너희들을 잘 죽일 수 있어. 그는 일어나 자동차가 있는 덤불을 향해 정신없이 달렸다. 그는 거의 알몸이나 다름없었고 무기도 없었고 지쳐 있었지만 불사신이 된 것 같았다. 그는 달리면서 공룡이 없는지 주위를 살폈다. 물론 그는 쉽게 공격당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상관없었다. 그는 죽이거나, 죽게 될 것이다. 그가 갑자기 자동차 문을 열어 제치자 무스는 캐비닛 위로 기어 올라갔고, 사라는 뒤뚱거리며 차 뒤쪽으로 가서 옷 속에 숨어 버렸다. 그들을 본 콜터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그러나 그는 그냥 욕설만 퍼붓고는 옷더미를 뒤지며 청바지를 찾았다.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은 콜터는 옆으로 물건들을 마구 집어던지고 뒤쪽으로 갔다. 불룩하게 쌓인 옷더미 속에서 자신의 청바지를 발견하고 옷을 잡아당기는 순간 사라가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콜터의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그는 쌓여 있는 옷들을 하나하나 벗겨 내며 사라 위에 덮인 옷을 걷어냈다. 사라의 뒷다리 하나가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었다. 그가 옷을 잡아당기자 사라는 다리를 꼬며 몸을 움츠렸다. 콜터가 천천히 뒷다리를 꺼내 주자 사라는 다른 옷더미로 뛰어가서 몸을 숨겼다.
미안함을 느낀 콜터는 캐비닛을 뒤지다가 건포도 봉지를 발견했다. 그는 봉지를 찢고 반 정도를 덜어 사라가 숨은 옷 앞에 놓았다. 그러자 잠시 후 사라의 머리와 목깃이 옷더미 밑에서 나타났고, 사라는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붉은색 레이스 같은 것이 그녀의 깃 속에서 대롱거렸다. 콜터는 그 모습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피트라의 속옷이라는 것을 깨닫자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속옷을 빼앗기 위해 다가서자 사라는 무서워하며 웅크렸다. 하지만 도망가지는 않았다. 그는 깨진 유리창 사이로 속옷을 던져 버렸다. 사라는 잠깐 그를 쳐다보더니, 건포도에 코를 묻었다. 그는 피트라의 옷을 보고 느끼게 된 크나큰 고통에 당황하고 있었다. 그 모양과 촉감이 그동안의 그리고 앞으로는 오지 않을 것들에 대한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콜터는 어지럽게 늘어진 물건들을 뒤졌고, 피트라의 물건을 있는 대로 찾아낸 뒤 창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지만, 그녀를 잊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피트라의 물건을 다 던져 버린 후 그는 다른 사람들의 물건을 버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는 할 일이 더 남아 있었다. 학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위에 셔츠를 걸쳐 입고 운동화를 신었다. 준비를 끝낸 후 위를 올려다보니 무스가 건포도를 먹고 있는 사라를 바라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었다. 콜터는 봉지에서 건포도를 한 줌 꺼내 캐비넷 위로 던져 주었다. 콜터가 나가자마자 무스는 건포도로 달려들었다.
망가진 자동차 휠을 타이어에서 떼어내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타이어를 떼 내지 않아도 될 만큼 정리가 되자 그는 운전석으로 올라가 시동을 걸었다. 개간지에서 발견했던 공룡알을 수건에 쌓인 채 아직도 자동차 계기반 위에 올려져 있다. 콜터는 알을 캐비닛 아래에 내려놓고 다시 시동을 걸었다. 두 번 만에 시동이 걸렸다. 그는 아직도 문명이 남아 있기를 기대하며 선사 시대를 떠났다. 그가 백미러를 바라보자 캐비닛 위에 올라앉아 있는 무스가 보였다. 무스는 캐비닛 위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콜터가 욕설을 퍼부으며 차를 세운 다음 뒤로 돌아가 무스를 붙잡고 집어 던졌다. 무스는 차 뒤쪽으로 날아가다시피 했고, 침대 위에 어질러진 물건들 사이로 숨었다. 무스를 쫓아가는 대신 콜터는 사라에게 다가갔다. 사라는 절룩이며 그를 피해 도망갔다. 그는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좋아. 친구들."
그는 체념했다.
"넌 기회를 잡은 거야. 같이 마을로 가보자."
그는 한 줌만 나며 놓고 나머지 건포도는 차 바닥에 뿌렸다. 그가 운전석으로 돌아가자 작은 두 공룡은 다시 건포도를 먹기 시작했다. 콜터는 문명이라고는 흔적만 남아 있는 마을에 도착했다. 이재민들과 꼼짝 못하게 된 관광객들이 도처에 있었고, 그들은 물건을 사려고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어디에나 공포가 도사리고 있었다.
콜터는 스포츠용품 가게 두 군데를 들러 장총을 찾았다. 아주 늦은 시간이었지만, 가게는 모두 열려 있었다. 첫 번째 가게에서 총을 사려고 했지만 주인은 돈을 받고는 팔려고 하지 않았다. 콜터는 애원했고, 빌었고, 그리고 협박도 했지만 총을 구하지 못하고 가게를 나와야 했다. 두 번째 가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그는 차를 차고에 넣고 횃불을 어렵사리 구한 다음, 차고 주인에게 차를 고치겠다고 허락을 구했다. 콜터는 사고로 구멍이 생겼다고 변명했지만 주인은 믿지 않은 것 같았다. 콜터는 차에 난 구멍을 용접으로 때운 다음 횃불을 들고 자동차 안으로 들어갔다. 쿰 박사와 필쳐 박사는 캐비닛 안에 금고를 넣어 두었었는데 그것은 차 바닥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 금고는 전문털이범한테는 소용없겠지만. 자동차 오디오나 잔돈푼을 뒤지는 사람들의 손으로부터는 끄떡없을 정도로 튼튼했다. 콜터는 내용물을 태우지 않도록 조심하며 연결 고리를 잘랐다. 예상했던 대로 금고 안에는 돈이 가득 들어 있었다. -현찰 수천 달러와 6천 달러어치의 여행자 수표가 들어 있었다. 콜터는 지폐 뒤에서 무거운 나무 상자 두 개를 발견했다. 콜터가 그중 하나를 열어 보니 금화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스무 개가 있었다. 콜터는 그 가운데 6개를 집었고, 나머지는 원래대로 넣어 두고 용접을 했다.
그는 첫 번째 스포츠용품 가게로 다시 갔다. 주인은 두 개의 금화를 보이기 전까지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주인은 동전을 한참 살펴보았고, 정말 금화인지 확인하기 위해 이빨로 물어보기까지 했다. 그러고 나서야 협상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주인은 흥미를 보이면서도 금화 두 개만으로는 총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콜터는 주인에게 금화가 네 개밖에 없다고 처량하게 말했고, 애쉬랜드에 가족이 있는데 보호 장비 없이 집에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청년."
그가 말했다.
"이 총으로는 코끼리라도 죽일 수 있을 거요. 보호용 총이 필요하다면 당신이 원하는 만큼 빨리 발사되는 공격용 총도 줄 수 있어요. 어디에서 물건을 얻었는지 말하지만 않는다면 당신에게 구해 줄 수 도 있어요."
콜터는 물러서지 않았고, 협상은 계속되었다. 콜터는 그에게 금화를 네 개나 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그제서야 콜터는 왜 해적선의 보물들이 여러 군데 나뉘어 숨겨져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조금씩 수를 내보이는 것이 협상을 쉽게 만들 것이다. 마침내 그는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른 가게로 가보겠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그 가게에서 거래를 성사시켰다. -총과 8개들이 탄창 3벌, 그리고 탄약 3상자를 금화 세 개로 구입했다. 총을 구한 뒤 콜터는 음식을 구하러 다녔다. 문을 연 유일한 식료품 가게는 6병의 무장 경찰이 지키고 있었고, 사람들은 아주 적은 양의 물건만 사서 나오고 있었다. 콜터는 물이 닫힌 가게 한 군데로 가서 유리문을 세차게 두드려댔고, 얼마 후 마른 중년의 남자가 총을 들고 나와 콜터에게 고함을 질렀다. 콜터는 문 유리에 금화를 붙여 그 남자에게 보여주었다. 그 남자는 안경을 꺼내 썼고 콜터는 그의 눈이 빛나는 것을 보았다. 남자는 콜터에게 물건들을 들여오는 문으로 돌아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금화를 주고 거기에서 식료품과 프로판 가스, 주스와 물, 그리고 사라와 무스에게 줄 건포도와 다른 물건들을 샀다.
54. 소굴
우리가 드럼통 위에서 실을 감아 그물을 고치고 있을 때 누군가 '저기 좀 봐'라고 소리를 쳤어요. 그래, 내가 그쪽을 쳐다보니 틀림없이 모리가 있는 거예요... 화물선 돛대 나무만큼이나 두꺼운 머리가 목위에 달려 있었어요. 하지만 눈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더라구요. 덩치는 엄청 컸지만 다 죽어 가는 것 같았죠... 어부생화을 하는 동안... 그런 건 처음 봤어요... 정
말 엄청나게 컸어요.
마리오 라파나 선장, 바다의 괴물들과 그 밖의 위험한 선원 생활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언 보호 구역 수요일 오전 1시 10분(태평양 표준시)
피트라는 어둠 속에서 깨어났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이 아팠다. 머리를 들려고 하자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서 그녀는 바닥에 머리를 조심스럽게 놓았다. 고통이 조금 가라앉았고, 그녀는 상처가 어느 정도 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머리가 제일 아팠지만 왼쪽 다리와 발목도 부상이 심했고 그녀는 발목을 제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주위는 아주 캄캄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심한 악취가 나고 있었다. 어떤 냄새를 아주 익숙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토해 놓은 오물 속에 누워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달아나고 싶었지만 악취보다는 고통이 더 심챘기 때문에 가만히 누워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기억을 더듬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콜터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짙은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을 보았었다. 그는 멀어져 가고 있었고, 허공에서 팔을 저어 대고 있었다. 아니, 팔을 젓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는 수영을 하고 있었고 멀어져 간 것은 그가 아니었다. 바로 피트라였다. 그때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 이상한 물고기였다. 한 마리가 물 밖으로 나와서 네 지느러미로 걷더니 그녀의 발목을 물었다. 그리고 물속으로 그녀를 끌고 들어갔고, 그녀는 심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러나 이것이 지옥이 아닌 이상 그녀는 아직 살아 있었다. 그러나 여기는 천국도 아니었다. 그녀는 도대체 어디에 와 있는 것이고 왜 죽지 않았을까?
피트라는 머리를 되도록 움직이지 않으며 천천히 오른팔을 뻗어 축축한 바닥을 만져 보았다. 틀림없는 바위였다. 그녀의 손에 얇은 비늘 같은 것이 만져졌다. 그녀는 놀라 손을 얼른 치우고는 쥐 죽은 듯이 있었다. 그것은 물고기였다. 그녀의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고, 그녀는 물고기가 그 소리를 들을까봐 겁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자, 피트라는 좀 더 분명하게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방금 만졌던 물고기는 그녀를 끌고 온 그놈은 아닐 것이다. 그 물고기는 비늘이 무척 딱딱했었다. 이 물고기는 아주 홀쭉했다. 피트라는 다시 손을 물고기에게로 뻗쳐 만져 보았고, 손톱으로 몸통을 찔러 보기도 했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손으로 더듬어 길이를 재 보았다. 길이는 1미터가 조금 넘는 것 같았고 한쪽 끝에 지느러미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물고기가 죽었다는 것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머리를 만져 볼 엄두를 내리 못했다.
피트라는 자신이 물고기의 소굴에 들어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걸어 다니는 물고기의 사냥감이 되어 있었다. 굴까지 오는 동안 그녀는 익사하지 않았다. 심한 두통이 그녀가 꽤 오랫동안 충분한 산소 공급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선사 시대 물고기의 먹잇감이 되었다는 것과 그 물고기가 벌일 다음 반찬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사실을 똑똑히 깨달았다.
피트라는 가만히 누워 주변에 귀 기울였다.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물고기가 지금 이굴 안에 없는 게 확실했다. 정적이 감돌았다. 그녀는 물고기가 물 밖으로 걸어 나와 그녀와 다른 육상 동물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면 폐로 호흡하는 동물일 거라고 짐작했다. 유일하게 들리는 소리는 그녀의 숨소리뿐이었다. 이 굴 안에는 생명이 아닌, 죽음 썩어 가는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만이 예외였다.
피트라는 천천히 머리를 들어올렸지만 현기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자주 멈춰야 했다. 너무 아파 눈물이 날 정도였지만, 그녀는 거의 일어나 앉을 수 있었는데 이때 어지럼을 느끼며 천장에 머리를 부딪혔다. 천장은 나무와 진흙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굴 안에는 산소가 있었다. 환기가 되지 않아 악취가 나기는 했지만 틀림없이 공기였다. 그녀는 호수 표면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녀는 천장을 파려고 생각도 해보았지만, 위에 뭐가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여기는 호수 밑일까? 천장이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면 아마 물속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팔에 힘을 주고 몸을 구부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더 잘 보였다. 하지만 어디에서 빛이 들어오는 걸까? 피트라는 유심히 살폈지만 어둠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무릎을 벌리고 그사이를 바라보았다. 바닥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 지나서야 물이 가득찬 웅덩이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웅덩이에서 희미하지만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고는 하지만 이 체력과 다친 발목으로 멀리 도망갈 수 있을까? 그녀가 어떻게 할지 고민하는데 빛이 갑자기 사라지면 물결이 일렁였다. 뭔가 통로를 헤엄쳐 오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누워 있었던가를 기억하려고 애쓰며 뒤로 풀썩 주저앉은 채 꼼짝하지 않았다. 웅덩이의 물이 그녀의 발목에까지 닿을 정도로 세게 튀었다. 그녀는 공포에 질려 몸을 떨기 시작했고,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입술을 힘껏 물었다. 갑자기 물이 첨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축축한 숨결이 느껴졌다. 그녀 뒤에 물고기가 와 있었다. 물고기는 몇번 더 숨을 몰아쉬더니 침입자가 아무도 없었는지 확인하는 것처럼 냄새를 맡았다. 피트라는 살기 위해 죽은 체해야 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피트라의 본능은 도망치거나 맞서 싸우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걸어 나오는 동안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때 뭔가 그녀를 뒤쪽으로 밀었다. 피트라는 죽은 척하며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두려움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사후경직. 그녀는 딱딱하게 굳어져 있어야 했다. 그렇지 않은가? 너무 늦었다. 이제 바꿀 수 없었다. 물고기는 다시 그녀를 밀었고 피트라는 죽은 척하며 몸을 조금 움직였다. 그녀는 조금 더 있다가 몸이 굳은 척해야 했다. 물고기는 앞으로 걸어가 굴 뒤쪽에서 뭔가 뒤지고 있었다. 잠시 후 우두둑하는 소리를 내며 뭔가 먹는 소리가 들렸다. 안도감이 그녀의 몸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녀는 저녁 식사후의 디저트로는 너무 컸다. 그렇기 때문에 물고기가 그녀를 맛볼 생각만 하지 않는다면 오늘은 무사할 것이다. 동굴 안의 냄새를 맡아볼 때 이 선사 시대의 물고기는 음식물을 썩혀 먹는 것 같았다. 물고기는 식사를 마치자 아까보다 오랫동안 굴을 뒤졌다. 그러더니 피트라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꼼짝하지 않았다. 물고기는 놀랍게도 그녀 등 뒤로 몸을 날리더니 등을 그녀의 등에 기대고 누웠다. 그녀는 물고기가 움직일 때를 기다렸지만, 물고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얼마 후 숨소리가 들렸다. 물고기는 잠들어 있었고 등은 피트라와 맞대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는 갇혀 버린 것이다.
55. 팻과 패티
식인 고래에게는 적수가 없었다. 자신의 영토 내에서 그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았고, 같은 고래를 비롯해 바닷속에서 마주친 동물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사람도 죽일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제임스 B. 스웨니. 바다의 괴물들과 그 밖의 위험한 선원 생활
플로리다주 네이플즈 서쪽 수요일 오전 7시 12분(서부 표준시)
"보세요, 지느러미에요!"
크리스가 소리쳤다.
론이 잠에서 깨어나 보니 검은색 지느러미가 물살을 가르고 나타났다가, 잠시 후 모습을 감추었다. 다른 지느러미들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계속 나타나고 있었다.
"상어일까요?"
카르멘이 물었다.
"아냐."
로자가 대답했다.
"상어치고는 너무 커."
"여기에도 있어요."
크리스가 신이 나서 말했다.
론이 오른쪽을 보니 두 개의 지느러미가 더 보이고 있었다. 그때 무리 중의 하나가 물 위로 솟구쳐 올랐다. 모리 쪽은 검은색이었지만 꼬리 쪽은 하얀색을 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이 오르카 고래였다. 최소한 열 마리 이상의 식인 고래가 있었다.
고래는 팻과 패티를 둘러싸고 포위망을 점점 좁혀 오고 있었다. 크리스가 소리를 지르며 바로 밑을 가리켰다. 검은 물체가 패티와 팻 사이로 지나가고 있었다. 다른 고래들이 그 뒤를 따랐고 이 킬러는 팻을 들이 밭으며 새끼를 어미에게서 떼어놓으려고 하고 있었다.
"고래들이 새끼를 쫓고 있어요."
로자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도와줘야 돼요."
갑자기 팻이 귀가 찢어질 정도로 날카롭게 비명을 질렀고, 어미는 그 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패티의 몸이 조금 돌면서 론과 다른 사람들이 기우뚱했고, 그들은 물속으로 빠지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어미는 새끼가 계속 따라오는지 확인한 다음 계속 헤엄쳤다. 론은 새끼를 살펴보았는데 팻은 숨을 몰아쉬다가 처량하게 낑낑거리고 있었다. 로자가 말없이 새끼를 가리켰고 모두들 물속에 묽은 색 흔적이 꼬리를 감추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팻이 물속 깊이 빨려 들어갔고, 머리만 겨우 물 위로 내놓고 비명을 질렀다. 크리스는 너무나 끔찍한 그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지느러미 두 개가 팻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이제 고래들은 바로 물 밑에 있었고, 팻은 순식간에 이루어진 연속 공격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팻은 계속 비명을 질렀고,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고래들은 피 냄새를 맡고 점점 가까이 몰려들었다. 번들번들한 가죽으로 뒤덮인 식인 고래들은 이런 공격을 위해 태어난 것 같았다. 아주 강력한 힘을 지닌 식인 고래들은 돌진했다가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버둥대는 팻을 공격했고, 그럴 때마다 팻은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패티의 거대한 꼬리는 육지에서는 엄청난 위력을 보였겠지만 물속에서는 팻 조차 보호할 수 없었다. 때때로 패티는 꼬리로 물속을 내리쳤지만 소용없었다. 처음에는 오르카 고래들이 그 소리에 주춤하는 것 같았지만, 곧 그 소리를 무시하고 내려치는 꼬리를 요리저리 피해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공포에 질려 있었다. 하지만 론은 식인 고래들한테는 그저 한번의 사냥에 불과하고 팻이 그 사냥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문명 세계에서도 정의는 덧없는 것이었다. -동물 세계에서는 아예 의미가 없었다. 팻에 대한 공격은 천천히 계속되었다. 고래들은 사냥을 즐기며 무서운 속도로 밑에서 치고 올라왔다. 패티의 등에 앉아 있는 론과 사람들에게 피가 튀었다.
"여기에서 내렸으면 좋겠어요."
크리스가 하소연했다.
"저도요."
로자가 말했다.
"헤엄쳐서 가요."
론은 오르카 고래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굶주림에 광기를 보이며, 온 바다를 피로 물들이고 있는 고래 사이를 그들이 헤엄쳐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카르멘은 그의 생각에 동의했다.
"여기가 더 안전하단다. 얘들아."
그녀가 말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고래들이 우리를 뒤쫓아 올 거야. 할 수 있는 데까지 참아보자."
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제 마지막 남은 물을 꺼내 아이들에게 물을 건네주었다. 아이들은 각각 병의 4분의 1씩을 마시고 카르멘에게 병을 건네주었다. 카르멘은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했고 론은 그녀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얼마 안 되는 물을 아끼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다. 그는 마지막 물을 마셨고, 머리 위에는 바다새 십여 마리가 날고 있었다. 그들은 학살자 무리를 따라온 게 분명했다. 그들은 남은 찌꺼기를 얻어먹으려고 온 것이다. 새들은 원을 그리며 꽥꽥 울어댔고, 독수리처럼 기다리고 있었다. 팻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힘들어 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패티는 점점 참을성을 잃어 가기 시작했고, 원을 그리고 모여 있는 오르카들을 위협하려는 듯 울어댔다. 그러나 팻이 거의 움직이지 못하자 패티는 새끼 주위를 커다란 원을 그리며 돌았다. 카르멘은 모두 가만히 누워 있으라고 소리쳤다. 패티는 그 긴 꼬리를 가졌으면서도 포위되어있는 새끼한테 다가갈 수 없었다. 고래들은 공격을 멈추고 패티의 새로운 전략을 탐색하는 듯 했다. 팻은 주위를 피로 물들이고 물 위에 떠 있었다. 팻은 구슬프게 울며 어미의 도움을 요청하고 있었다. 론은 지금이 물속으로 뛰어내릴 기회라고 생각했다.
"고래들이 다시 와요!"
카르멘이 외쳤다.
론이 보니 고래들은 패티의 꼬리 공격을 피해 가며 수면 바로 아래에서 팻에게 쏜살같이 달려들고 있었다. 갑자기 패티는 꼬리를 들어 올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고래들은 패티의 공격을 피할 수 있다는 듯이 계속 다가왔다. 하지만 론은 고래들이 잘못 판단했다는 것을 알았다. 패티가 몇 톤은 나갈 꼬리를 휘둘러 고래들을 내리치자 패티의 등 위로 엄청난 진동이 느껴졌다. 패티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들은 모두 패티를 응원했다.
"네가 어미라는 걸 고래한테 보여줘!"
카르멘이 소리쳤다.
"계속해, 패티!"
로자가 외쳤다.
"그래, 계속해."
크리스가 다시 덧붙였다.
"하나는 쓰러졌어, 이제 아홉 마리 남았어."
크리스가 말한 숫자에 다른 사람들은 침울해졌다. 아직도 고래들은 많았고 고래들은 자신들의 동료가 얼마나 심하게 다쳤는지 모르고 있었다. 그때 고래가 패티의 방어선 밖에서 떠올랐다. 고래가 뿜어내는 물이 붉었다. 고래는 다시 잠수했다.가 바로 물 위로 나왔고 여전히 붉은 빛 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상처 입은 고래 몸이 기울어진 채 서쪽으로 헤엄쳐 가고 있었다. 그 뒤를 새들이 고래를 쫓아가고 있었다. 고래들은 아직도 포위를 풀지 않았고, 아주 민첩하고 효과적으로 공격해왔다. 고래 한 마리가 대열에서 이탈해서 패티의 옆구리로 방향을 돌리더니 물속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대열에서 백여 미터는 떨어져 있었다. 그때 갑자기 뭔가 패티의 몸에 쿵하고 부딪쳤고, 론 일행은 중심을 잃었다. 패티가 울부짖으며 꼬리를 거칠게 내려쳤다. 사람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중심을 잡았다. 반대쪽에서 다시 공격이 가해졌다. 패티는 새로운 공격이 가해진 쪽으로 몸을 돌렸다. 또 다른 공격이 있었고 패티의 비명이 하늘을 찔렀다. 잠시 공격이 주춤해졌고, 론은 고래들을 찾아보았다. 이제 고래들은 팻에게 달려드느라 바빴다. 팻은 물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었고, 고래들이 공격할 때마다 목을 앞뒤로 흔들어 대고 있었다. 팻은 옆으로 쓰러지면서도 몸을 세우려고 애썼다. 잠시 후 팻의 몸이 뒤집어지면서 팻의 왼쪽 앞다리가 물 위로 떠올랐다. 고래들은 다리에 몰려들었고 팻의 몸을 앞뒤로 굴리며 살을 찢었다. 팻은 더 이상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옆구리에 가해진 공격이 결국 팻을 쓰러뜨렸고, 팻의 머리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팻은 익사하거나 심한 출혈로 곧 죽을 것이다. 팻의 몸이 다시 뒤집혔고 론은 살점이 조금 덜렁거리며 달려있는, 하얗게 드러나 뼈밖에 남지 않은 왼쪽 뒷다리를 보았다. 고래들은 팻을 뜯어먹으면서도 패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요동치는 패티의 등 위에 앉아 있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고통을 견디지 못한 패티는 팻을 잊어버렸고 공격을 피해 도망치기 시작했다. 패티도 피를 흘리고 있었다. 잠시 패티에 대한 공격이 그쳤다. 패티는 동쪽으로 계속 나아갔고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가졌다. 사람들 사이에 안도감이 퍼져나갔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뒤를 바라보았다. 공포의 오르카 고래들이 쫓아올 것이다.
56. 마리엘과 이구아노돈
그들은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들의 숨겨진 의미를 모르고 있습니다. 과거가 주는 교훈도 역시 알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그들은 어떤 일이 닥칠지 알지 못합니다.
다가오는 종말. 사자의 서
뉴욕시 수요일 오전 7시 50분(서부 표준시)
루이스는 머리속에서 북을 울리는 것 같은 소리에 잠을 깼다. 그것은 자신의 맥박이 뛰는소리였다. 하지만 맥박이 뛸 때마다 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두통이 심했지만 그는 흔들의자를 잡고 간신히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 조금씩 사물들이 보였지만 눈이 아물거려 멀리 있는 것은 볼 수 없었다. 화장실 변기에 조금 남아 있던 물로 눈을 씻고 보니 물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거실에 돌아왔을 때 그는 초원에 꼼짝하지 않고 서 있는 물체를 보았다. 비틀거리면서도 그는 방에서 나왔고, 난간을 꽉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흔적을 찾기는 쉬웠다. 피가 떨어져 있었다. 루이스는 피가 말라붙은 풀을 따라 천천히 걸였고, 따을 유심히 살피면서 조심스레 걸어갔다. 고개를 들어보니 앞쪽에 공룡이 있었다. 그 공룡은 위더비 부인의 공룡에 비하면 크기가 작았고 루이스의 키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룡은 꼼짝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마침내 그는 짐승을 향해 소리쳤다.
"쉬이, 쉬이,! 꺼져버려"
공룡은 루이스의 뒤쪽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루이스는 갑자기 앞으로 몇 걸음을 뛰어들며 고함을 질렀다. 공료은 느닷없이 루이스의 왼편으로 도망쳤고, 어깨높이로 자란 수풀로 사라졌다. 잠시 후 두 마리의 공룡이 더 나타났고, 루이스 앞을 가로질러 사라진 공룡을 쫓아갔다. 루이스는 너무 놀라 가만히 서 있다가 너털 웃음을 터뜨렸다. 만약 세 마리가 있는 걸 알았어요 자신이 공룡을 쫓았을까? 물론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씩 생각하는 것이지만, 운이 좋아 잘 넘어가기는 해도 자신은 조금 무모한 데가 있었다.
루이스는 걸음을 재촉했다. 다친 공룡이 길을 잃었는지 길이 왼쪽으로 꺾이고 있었다. 루이스는 가다 말고 발끝으로 섰다. 풀 끝 위로 공룡의 모습이 보였다. 루이스는 몸을 돌리고 수풀을 헤쳐나가다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앞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다. 풀이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쪼그리고 앉아 귀를 기울였다.
그는 가족과 함께 있었어야 했다. 가족들이 보고 싶었다. 그중에서도 씬다가 제일 보고 싶었다. 루이스는 마술에 걸린 이 초원과 약탈이 벌어지고 있는 거리를 얼른 빠져나가야만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루이스는 계속 걸었다. 그는 떠날 것이다. 하지만 위더비 부인과 함께 떠날 것이다. 천천히 움직이던 그는 자신이 옆으로 몸을 주인 이구아노돈 뒤에 있다는 걸 알았다. 엄청난 크기의 뒷다리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루이스는 몸을 숨기기 위해 공룡의 다리 뒤로 몸을 숨겼다.
루이스가 있던 자리 쿵하는 소리와 함께 뭔가 떨어졌다. -이구아노돈의 꼬리였다. 공룡은 살아 있었다. 루이스가 상처입은 공룡의 다리 사이에 숨어있는 것이었다. 일어서기가 겁이 난 그는 짐승의 등을 따라 기었다. 공룡이 머리를 살짝 들어 올리고 있었다. 공룡의 눈은 갈색으로 매우 컸다. 루이스가 놀라 꼼짝하지 않고 있는데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 왔다.
"안돼, 움직이지 마. 그냥 누워 있어. 그러면 아프다니까."
목소리는 작고 잠겨 있었지만 분명히 위더비 부인의 목소리였다. 공룡이 다시 머리를 땅 위에 놓았고 루이스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위더비 부인은 풀 위에 누워 공룡의 어깨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공룡의 머리와 목밑에 깔린 풀이 피에 젖어 있었다. 위더비 부인은 눈을 감은 채 쉰 목소리로 공룡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어서 자거라. 제발 잠 좀 자. 잠을 자면 덜 아플 거야."
"위더비 부인? 위더비 부인? 제 말이 들리세요?"
루이스가 물었다.
루이스가 부르는 소리에 위더비 부인이 말을 중단했다.
"루이스? 오, 이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예요? 왜 식구들과 있지 않구?"
그녀는 감았던 눈을 뜨고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루이스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것 같아삳. 루이스는 그녀가 안경을 쓰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집으로 모시고 가려고 왔습니다. 위더비 부인."
"난 떠날 수 없어요. 공룡은 다쳤더요... 지금 죽어 가고 있어요."
"죄송해요, 부인. 공룡을 쏘게 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어요. 짐으로 가기 위해 그저 깡패들을 쫓아 버리려고 한 건데 다치게 할 생각을 없었어요... 부인을 가슴 아프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알아요, 루이스. 루이스하테는 공룡이 무서운 괴물이었겠지만, 내게는 친구였어요. 그리고 친구는 다친 친구를 두고 떠나지 않아요."
"위더비 부인. 혼자서는떠나지 않겠습니다. 이번에는 절대로 안갑니다."
위더비 부인은 루이스가 팔을 뻗자 저항했다. 그녀는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았다. 그녀는 찬백한 안색에 땀을 흘리고 있었고, 루이스가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도 그를 떠밀지도 못했다. 그는 위더비 부인을 안아 올렸다. 그녀는 아주 가벼웠지만 그녀를 들자 다시 두통이 몰려왔다.
"안 돼요, 루이스. 난 공룡이 혼자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어요. 동물이라도 혼자 죽어 가서는 안 돼."
"공룡은 죽지 않을 거예요, 위더비 부인."
루이스는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상태가 나빴다. 그녀는 깡패들과 맞섰을 때도 이처럼 창백하고 약해져 있지 않았다.
"루이스, 공룡은 죽어 가고 있어요. 난 알아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맞아요. 부인"
"혼자 죽게 두면 안돼요."
"네. 절대로 혼자 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가 떠나야지 같은 공룡 친구들이 올 겁니다."
위더비 부인은 그 말을 듣자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를 데리고 가면서 루이스는 머리를 돌려 공룡의 엄지발톱과 머리를 살펴 보았다. 공룡은 입을 천천히 벌렸는데 위협하는 것이 아니었다. 루이스가 이미 들어본 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다.
"아아아 -잉 -잉-"
위더비 부인이 머리를 들었다. 루이스는 발걸음을 멈추고 위더비 부인이 그녀의 치구를 볼수 있도록 몸을 돌렸다. 그들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위더비 부인의 눈에 슬픔이 가득했다. 루이스가 그렇게 상상하는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공룡의 눈에서도 똑같은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공룡이 다시 조그맣게 '아아 -아잉'하고 울었다. 그러더니 머리가 피에 젖은 풀 속으로 툭 떨어졌다. 눈은 감고 있었고 콧구멍에서 길고 가느다란 숨소리가 나오고 있었다. 그러더니 움직이지 않았다.
눈물이 위더비 부인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루이스는 서둘러 그녀를 공룡이 있는 데로 데려갔다. 그녀는 돌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노부인은 루이스의 팔에 힘없이 매달려 있었고, 창백한 얼굴에 계속 땀을 많이 흘렸다. 날씨가 서늘한데도 땀을 흘렸기 때문에 루이스는 걱정이 됐다. 그는 자주 멈추고 팔보다 더 아파오는 두통을 삭히고 있었다. 중위의 수풀 속에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무시했다. 루이스가 잠시 쉬기 위해 아파트 근처에 섰을 때 다른 소리가 들렸다. 총소리였다. 시가전이 다시 격렬해지고 있었다. 루이스는 소리가 어디에서 들려 오는 것인지 알아내려고 애썼다. 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멀리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루이스는 부인을 내려다보았다. 위더비 부인은 잠이 든 것 같았다. 그는 이것이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 알지 못했다. 그는 아파트까지 가면 안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루이스는 그녀의 정원을 자나 그녀의 집으로 들어갔다. 그는 소파에 그녀를 뉘었다.
"꼭 집에 온 것 같아요, 루이스."
루이스는 그녀가 자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녀가 말했을 때 무척 놀랐다.
"집이에요, 부인. 가만히 누워 계세요. 좀 쉬셔야 해요."
"다시 총을 쏘기 시작했나요?"
"네, 길거리에서요. 아주 가까운 것 같지는 않아요."
위더비 부인은 조용히 숨을 물오쉬었다. 루이스는 행주를 찾아 화장실 변기 물통에 남은 물에 적셔 가지고 왔다. 그는 적신 행주로 위더비 부인의 땀을 닦아주었다. 그는 그밖에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는 그녀를 조금도 도울 수 없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다. 젖은 행주가 그녀의 의식을 깨웠는지 그녀가 눈을 뜨고 루이스를 올려다보았다.
"머리카락에 다시 피가 묻어 있군요."
그녀가 말했다.
"네, 괜찮아요."
"내가 닦아줄게요."
"조금 괜찮아지시면요."
위더비 부인은 머리를 들었지만 앉을 힘은 없어 보였다. 그녀는 다시 누웠고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창가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혀 줘요."
"여기가 훨씬 나으실 거예요. 침대로 가실래요?"
"내 의자로 데려가 줘요.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내가 항상 앉던 자리 말이에요."
위더비 무인은 안절 부절하지 못했다. 그녀를 불행하게 하는 것은 회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창가 옆에 있는 흔들의자에 살짝 올려놓았다. 위더비 부인은 머리를 들어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루이스는 이구아노돈의 시체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이구아노돈 주위에 동물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위더비 부인의 친구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루이스?"
위더비 부인이 조그만 소리로 불렀다.
"초원에서 안경을 잃어버렸어요. 공룡이 보여요? 친구들이 같이 있어요?"
"네, 잘 보여요. 공룡 주위에 친구들이 아주 많아요."
"다행이군요. 나도 같이 있고 싶었는데."
제가 모시고 왔잖아요. 자책하지 마세요."
위더비 부인은 한동안 아무 말하지 않았고, 한참 있다가 루이스에게 속삭였다.
"부탁이 있는데 차 한잔만 갖다 줄래요?"
부엌에서 루이스는 스토브에 불을 켜고 물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그는 비 부인 옆에 앉아 기다렸다. 부인의 얼굴은 빨갛게 달아올랐고, 땀을 엄청나게 흘리고 있었다. 그녀는 땀을 흘리다가 심하게 떨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손뜨개 이불을 소파에서 가져와 그녀의 몸에 덮어 주었다. 그녀는 손에 힘을 주고 바깥을 계속 바라보았다. 주전자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기 때문에 루이스는 부엌으로 갔다. 루이스는 차를 가지고 위더비 부인에게 돌아왔다. 그가 차를 내려놓았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눈을 뜬 채 창밖을 멀리 내다보고 있었다.
루이스는 그녀의 가슴과 입술을 살펴보았다. 그녀는 숨을 쉬지 않았고, 루이스가 손을 눈앞에서 움직여도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루이스는 그녀를 구하려는 생각을 포기했다. 그녀는 외로움과 슬픔의 고통을 두 번 다시 느끼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바라던 대로 친구와 함께 죽어간 것이다.
루이스는 그녀의 머리를 초원 쪽으로 향하게 놓았다. 그녀는 영원히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루이스는 찻잔을 그녀의 오른쪽에 뜨개질 거리를 그녀 바로 옆 마루 위에 놓았다. 그녀는 루이스의 딸에게 주려고 했던 침대보를 영원히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루이스는 언젠가 그것이 그녀를 덮는 데 쓰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내세에 필요한 물건들과 함께 매장되는 파라오처럼 그녀도 이런 방식으로 묻혀야 한다고 믿었다. 루이스는 그녀와 함께 이 방을 완전히 봉해 버리고 싶었다. 천년 후에 어떤 고고학자가 열어보고는 어떻게 한 여인의 인생이 마감되었는지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고고학자가 위더비 부인을 발견했을 때, 그녀가 친구도 없이 홀로 죽어 갔다고 추측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루이스는 마음이 괴로웠다.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녀는 마지막을 맞이하는 순간 아주 좋은 친구 둘이 있었다. 하나는 다른 시간에서 온, 그래서 그녀와 친구가 된 공룡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으로 아무런 혈연 관계도 없지만 지금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었다.
루이스는 문을 닫고 위더비 부인의 집을 나섰고, 완전히 털려 버린 자신의 아파트로 갔다. 그는 소파에 앉아 거리에서 울려오는 총성을 듣고 있었다. 이제 소리는 조금씩 잦아들고 있었다. 누군가 이 싸움에서 이길 것이다. 루이스가 잠깐 졸다가 일어나 보니 거리는 조용해져 있었다. 그는 한참 있다. 용기를 냉 밖으로 나왔다. 그가 아파트 현관 앞을 살펴보는데 군인 두 명이 거리를 지나갔다. 그들은 헬멧을 쓰고 있었고, 안전하다고 생각하는지 총을 아무렇게나 들고 있었다. 루이스가 입구를 나와 그들을 불렀다. 군인들이 그에게 총부리를 댔고 그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올렸다. 군인들이 신분을 대라고 요구했고, 루이스는 그가 습격을 당해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며 그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머리의 상처를 가리켰다. 그들은 의심스럽게 듣고 있다가 한 사람이 그의 몸을 수색한 뒤 그를 대피소로 쓰이고 있는 약탈된 가구점으로 데리고 갔다. 그들은 교통편을 기다리는 노인들로 가득한 방으로 들어갔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 때 루이스의 이름이 불려졌고, 한 여자 군인이 그에게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더니 두 개의 양식에 루이스가 말한 것을 적었다. 루이스는 그녀에게 처남 스티브의 전화번호와 주소를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루이스에게 전화가 연결되지 않는다고 알려주고 그에게 노인들과 여자들 옆으로 가 앉으라고 말했다.
루이스는 벽에 등을 기대고 팔 위에 모리를 얹고 있다가 잠이 들었다. 누군가 그를 흔들어 깨웠다. 그 여자 군인이었다. 그녀는 자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깨웠다. 그 여자 군인이었다. 그녀는 자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깨워 이동시켰다. 그는 사람들 위로 따라갔고, 밖에는 텐트 천으로 덮개를 씌운 군용 트럭 두 대가 있었다. 그는 그중의 한 대에 올랐다. 루이스는 이웃을 뒤로 하고 떠나는 트럭 뒤 칸에 앉았다. 거리 여기저기에 시체들이 흩어져 있었고 그중 몇몇은 좀비파들이었다. 디아블로파 갱들도 쓰러져 있었다. 마침내 ㅌ렁 시체들과 불에 탄 건물들을 뒤로 하고 출발했다.
트럭이 멈췄고 군인들을 사람들이 차에서 내리는 것 도왔다. 부리스는 아는 사람이 있는 재 찾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을 헤치고 거리 표지판을 찾기 시작했다. 그가 군중의 끝부분까지 거의 다 왔을 때 누군가 그를 뒤에서 쳤다. 그리고 그의 허리를 껴안았다. 딸 샬롯트였다. 다른 아이들이 뒤에서 달려 왔다. 아이들을 하나씩 포옹한 후 얼굴을 들자멜린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었다. 그는 팔을 벌려 아내를 안았다. 그들은 같이 울었다. 잠시 후 그들은 포옹을 풀고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멜린다가 바로 머리카락에 말라붙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여보, 다쳤군요-"
그녀가 시작했다. 구리스는 손가락을 그녀의 입에 갖다 대고는 아이들에게 고래를 끄덕였다. 그는 아이들이 걱정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멜린다가 그 마음을 금세 알아차리고 화제를 바꾸었다.
"걱정 많이 했어요. 오빠하고 함께 당신을 찾아보았었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거의 전쟁통이나 다름없어요."
"전쟁이야, 씬다는 어디 있지.?"
"오빠 부부한테 맡겼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위더비 부인은 어떠세요?"
루이스가 애들이 보지 못하게 살짝 고개를 저었다. 그는 멜린다와 샬롯트는 그 의미를 이해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친구와 함께 있어, 절대로 그녀를 떠나지 않을 친구와 함께."
그는 말했다. 나중에 자세히 설명하지 했다. 그런 다음 루이스는 카트리나를 팔에 안았고, 그와 그의 가족들은 남아 있는 도시 속으로 걸어갔다.
57. 달의 표면
콕스 소령은 오늘 이상한 일이 있다며 전화했다. 그는 서섹스에 있는 그의 집 연못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의무에 따라 조사를 해보았더니 그것은 정말 사실이었다. 보트도, 선창도, 물도, 그리고 물고기와 모든 것이 없어져 버렸고, 진흙 구멍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클라크 경사. 1921년 10월 6일
하와이 호놀룰루 수요일 오전 3시 25분 (알류산 - 하와이 시간대)
왕 박사의 책상 위에 달 사진이 펼쳐져 있었다. 캐롤리와 에밋은 분석을 위해 사진을 분류했다. 대학 수업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연구를 도와줄 대학원생들을 몇 명 구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과학자였고, 만약 어떤 중요한 발견을 할 기회가 온다면 처음으로 그걸 찾는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그들은 각각 사건이 있기 오래전에 찍힌 사진 뭉치들과 새 사진을 비교해보았다. 새 사진들을 모두 샅샅이 조사해서 눈에 띄게 달라진 변화들을 찾아낸 다음 확대경으로 살펴보고는 파일의 사진들과 비교를 하였다. 그들은 동전을 던져 누가 달의 고요의 바다를 조사할지 결정했다. 에밋이 이겼지만 캐롤리는 그의 어깨 뒤에서 기웃거리면서 그가 발견하기 전에 뭔가 찾아내려고 애썼다. 하지만 파일에서 꺼낸 사진들에서는 아무거도 발견할 수 없었다. 실망한 그들은 나머지 달의 착륙 지점들을 반으로 나누어 각각 그 지점들을 주의 깊게 살폈다. 그런 다음 차근차근 달의 표면을 조사했다. 에밋이 고개를 들고 팔을 머리 위로 뻗었다. 그는 밤새 몸을 숙이고 사진을 보고 있었고 등이 뻣뻣해 왔다.
"등이 아파 죽겠어요."
그가 투덜거렸다.
"그래도 당신은 책상 위에서나 했잖아요."
캐롤 리가 등을 몇 번 문지른 뒤 눈을 비비며 말했다. 캐롤리는 흰색 니트와 반바지를 입은 채 바닥에 엎드려 일했다. 하얀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색이다. 하지만 캐롤리는 그 가운데에 포함되지 않았다. 그녀는 광택이 나는 흰색 벨트에 흰색 양말에 흰색 신발을 신었고 동그란 하얀색 귀걸이를 하고 있었는데 그 크기가 탁구공만 했다. 거기에다 하얀색 베레모까지 쓰고 있었다. 하얀색 엉덩이가 의자 위에 걸쳐 있었다. 눈보라 속에 있었다면 그녀는 보이지 않도록 러시아의 눈부대보다 더 잘 위장할 수 있을 것이다. 에밋은 그녀를 잠깐 곁눈질한 다음 다시 등을 문지르고, 책상 위로 몸을 숙였다. 그는 확대경으로 초점을 잡다가 캐롤 리가 뒤에 와있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손으로 그의 엉덩이에 갖다 자신의 몸을 그에게 붙였다. 에밋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에밋의 어깨를 부드럽게 안마하고 있었지만, 그녀의 몸이 이렇게 가까이 닿아 있는 한 에밋의 긴장은 절대로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손이 등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고 그는 조금씩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는 아직도 책상 위에 엎드려 있었고, 그의 몸속에서 일깨워지는 감각들과 변화들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캐롤 리가 친하기 때문에 그냥 안마를 해주는 것뿐이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말했다. 이일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이 개인적인 관계로 발전하지는 않을 것이다. 에밋은 자신의 등을 어루만지던 캐롤리의 손길이 멈출 때까지 그것은 순수한 행동이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캐롤리는 등 뒤에서 그를 껴안았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쓰다듬기 시작했다. 그를 포옹하고 있는 그녀의 몸이 진실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녀는 가느다랗게 한숨을 쉬고는 그의 등에 머리를 기댔다.
"다음에는 당신이 내 등을 문질러 주거나, 아니면 다른 방법으로 긴장을 풀어 줘요. 우리는 아직 아폴로처럼 확실한 것들을 찾지 못했어요. 당신한테 뭔가 좋은 생각이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도 그녀의 손은 에밋의 가슴을 문지르고 있었고, 따뜻한 기운이 그의 몸 안에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말을 꺼내면 그녀가 중단할까 봐 걱정했다.
"생각해 보았는데."
캐롤 리가 말했다.
그녀가 손놀림을 멈추었고 머리를 들었다. 하지만 아직도 그를 껴안고 있었다.
"어떻게 그 착륙 지점들을 지도로 만들었을까요? 아폴로호가 도착하기 전에 뭔가 다른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러니까 무인 탐사 같은 것 말이에요?"
그 말과 함께 캐롤 리가 일어났고 이제 그녀의 마음과 분위기는 눈 앞에 닥친 문제들로 완전히 돌아가 있었다. 에밋은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말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참고 대답했다.
"물론이에요. 그들은 좋은 착륙 지점을 찾아야 했어요. 그래서 그들은 달에 여러 개의 무인 탐사 위성을 발사했었죠. 두세 개가 착륙에 성공한 걸로 알고 있어요."
에밋은 욕망을 떨쳐 버리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레인저라고 불렸는데 그일로 인해 끔찍한 경험을 해야만 했어요. 맞아요, 이제 기억나요. 지구 궤도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여섯 번인가 일곱 번 시도를 했었어요. 그리고 그 위성들은 달을 찾지 못했어요. 그 외에 다른 실패 사례들도 있었어요."
에밋은 말하면서 아폴로 착륙 지점을 표시한 스페이스 알마냑 자료를 찾았다. 마침내 그는 자료를 찾았다.
"세 개의 우주선이 달에 떨어졌어요."
"그 지점을 알려 줘요."
"7호 우주선은 달의 바다에, 8호 우주선은 고요의 바다에, 그리고 9호 우주선은 구름의 바다 근처에 있는 고지에 떨어졌죠."
"당신이 구름의 바다를 찾아보고, 나는 달의 바다를 맡죠."
캐롤리는 마룽에 널려 있는 자신의 사진 자료 쪽으로 뛰어가 사진을 마구 뒤지며 루나 아틀라스와 사진을 대조해 보았다. 에밋은 갑자기 경쟁심이 생겨 급히 자신의 자료집을 넘기기 시작했다. 20분이 지났고 그들은 실망했다.
"캐롤리, 우리가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봐요. 이건 이론일 뿐이에요. 정확하다고 해서 그게 달에서 그 현상이 일어난다는 증거가 되는 것도 아닌데."
캐롤리는 듣기는 했지만 얼굴 표정은 에밋의 말을 믿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그녀 나름대로 조사를 했다. 아무런 소득이 없자 그녀는 무척 실망하는 눈치였다.
"두서너 개의 우주선은 착륙에 성공했다고 했죠? 레인져라고 했나요?"
"아뇨, 그것들은... 서쳐... 아니 서베이어라고 불렸어요."
에밋이 다시 알마냑을 뒤졌고 서베이어 계획을 찾아냈다. 그는 재빨리 그 부분을 읽었다.
"여기 있군요. 우리는 폭풍의 바다에서 두 개의 착륙 지점을 찾아냈다. 두 곳이. 고요의 바다와 중앙만이 있는데, 거기에는 추락한 흔적이 있었다. 그리고 티코 브라헤 근처에 고지가 있어요. 당신은 폭풍의 바다를 찾아봐요. 나는 중앙만부터 시작할게요. 티코 브라헤를 먼저 찾는 사람이 이기는 거에요."
에밋이 경쟁심을 부추겼다.
그들은 사진들을 각각 검토했고 가능한 빠른 시간내에 서로의 연관성을 찾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의 경쟁도 곧 몇 가지 부분적 사실들을 연결시키는 단조로운 형태로 다시 되돌아오고 있었다. 에밋은 자료에 동그라미를 치다가 그가 다시 살펴보아야 할 부분들을 발견했다. 그는중앙만을 모두 조사했으며 티코 브라헤를 키롤리보다 먼저 찾아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꼈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그녀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는데 아까 그녀가 등을 문지르던 느낌이 되살아났다. 그녀는 마루에서 몸을 구부리고 확대경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머리는 바닥에 대고 엉덩이는 하늘로쳐들고 있었다. 그는 캐롤 리가 그랬던 것처럼 뒤로 가서 그녀를 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육체가 느껴졌다. 그러다가 그는 캐롤 리가 확대경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뭐 발견했어요?"
"모르겠어요. 하지만 좀 독특한데요. 그냥 그림자 같기도 하고."
에밋은 자신의 확대경을 들고 캐롤리의 옆에 앉았다.
"바로 여기에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저 분화구 안에요. 내 생각엔 플램스티드 분화구 같아요."
둘이 함께 볼 수는 없었기 때문에 캐롤 리가 뒤로 물러났고, 에밋은 잘 볼 수 있었다. 그는 먼저 루나 아들라스를 보았고 그다음으로 브리짓뜨의 사진을 살펴보았다. 이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에게 치욕을 안겨주었다.
"바로 이거예요. 이게 폴슨 박사가 찾는 거예요. 이걸 그에게 보내야 돼요. 하지만 어떻게 보내지? 우리는 아주 고주사 팩스가 있어야 하는데."
"라차드 오빠가 군에 있잖아요. 기억나죠."
"근사하군요! 이건 아주 중요한 자료일 거예요 - 내가 무슨 이야길 하는 거지? 정말 믿을 수 없어요. 당신이 오빠한테 전화하는 동안 이 사실을 프레스넷에 올리겠어요."
모든 준비는 다 끝났고 그들은 나가기만 하면 됐다. 캐롤리는 손으로 에밋의 등을 쓰다듬었다. 에밋의 몸은 그녀의 손길에 더워지고 있었고 그는 팔로 캐롤리의 어깨를 안았다. 그는 그녀를 끌어안았고 이제 직업상의 동료에서 개인적인 관계로 가는 선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돌아와서 등을 맛사지 해 줄게요."
그가 제안했다. 캐롤리는 웃으며 불어로 대답했다.
"아주 좋아요.“
58. 사내들
난 나를 야수와도 같은 사람들에게 파괴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넘겨줄 것이다.
에제키에서 21장 31절
오레곤주 포틀랜드가 있던 자리에 생긴 숲 수요일 오전 6시 44분(태평양 표준시)
리프먼은 아침에야 돌아왔다. 하지만 선택을 요구했다.
"저 변두리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 거기서부터 알아서 가세요."
"좆과 커비는 어떻게 하고? 걔들은 네 친구들이야. 리프먼, 너의 제일 친한 친구들이라구."
엘렌이 말했다.
"여기에서는 친구들이 나를 죽일 수도 있어요. 나도 개들이 살아남기를 바래요. 하지만 그건 내 문제는 아니에요. 여기에서 빠져나가시도록 도와드려요. 말아요?"
엘렌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녀가 스스로 존을 찾을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미쳐 날뛰는 칼과 사내들, 그리고 공포의 공룡들이 가까이 있었고 그녀는 도움이 필요했다. 그것 말고도 앤지는 여기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그들은 불과 며칠 전에야 알게 된 사이였지만 오랫동안 사귀어 온 친구나 다름없었다.
리프먼이 그들을 칼튼 쪽으로 데려다주기로 했다. 그의 걸음이 빨랐기 때문에 힘들기는 했지만 따라갈 수는 있었다. 땅에 쓰러져 있는 큰 나무의 줄기 위로 올라가자 가을의 차가운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몸에 돋는 소름이 초원에 두고 온 코트를 생각나게 했다. 아마 칼과 사내들이 옷을 가지고 있겠지만 그들은 절대로 나를 가질 수는 없어. 리프먼이 걸음을 늦추지 않았고 엘렌과 앤지는 금방 땀에 젖었다. 다행히 큰 나무들이 많고 잔잔한 덤불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걷기는 쉬웠다. 엘렌은 방향을 잡을 수 없었지만 그들이 가는 길이 지름길인 건 분명했다. 그녀는 지쳤고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발을 내려다보며 아들과 자신의 앞날에 대한 걱정을 잊으려고 했다. 갑자기 그녀는 리프먼에게로 달려갔고 발이 걸리면서 그를 쳤다.
"들어봐."
엘렌과 앤지는서로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리프먼이 남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엘렌과 앤지는 그의 시선을 따라 몸을 돌렸다. 얼마 후 멀리서 부르릉거리는 소리가 났는데 그것은 비행기 소리였다. 소리는 점점 커졌고, 그들은 비행기를 보기 위해 머리 위로 무성하게 나 있는 나무 끝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나무가 너무 많았다. 소리는 바로 위를 지나서 멀어져 가며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정말 이상해요. 엘렌."
"뭐가요. 앤지?"
"여기에... 이 불가능한 숲에 있다는 것이요. 공룡들은 주위에서 돌아다니고 있고, 우리는 정글 소년의 뒤를 따라가고 있고, 머리 위에서는 비행기 소리가 들리다니."
엘렌은 대답하려다가 아직도 리프먼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다시 귀를 기울였고 나직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비행기 엔진 소리가 아니었다. 리프먼은 그들에게 움직이지 말고 조용히 서 있으라는 신호를 보내고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는 몸을 낮추고 등성이로 올라갔다. 그는 한동안 엎드려 있다가 엘렌과 앤지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기어서 리프먼의 옆으로 다가갔다. 엘렌은 조심스럽게 등성이에 나 있는 풀과 그 너머를 살펴보았지만 나무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리프먼에게 뭘 보고 있는지 물어보려는 순간 앤지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가리켰다. 숲이 우거져 있었지만, 그리고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지만 공룡들이 분명했다. 공룡은 몇 마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 떼가 있었다. 이 공룡들을 칼과 사내들이 전리품으로 죽였던 공룡과 같은 종류가 아니었다. 덩치가 아주 컸고 색깔도 짙은 녹색이었다. 공룡들은 그들과 떨어진 곳에서 언덕으로 오르고 있었다. 공룡들은 모두 네 발로 걷고 있었고, 키가 3, 4미터 정도로 보였다. 이마에는 세 개의 뿔들이 튀어나와 있었고 목에는 갑옷 같은 깃이 달려 있었다. 엘렌이 리프먼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도망가야 하는 것 아냐?"
"놀라지 마세요. 큰 소 정도로 생각하세요. 저 공룡은 사람을 잡아먹지 않아요. 아마 지금까지 사람을 본 적도 없을걸요. 저쪽에 초원이 있어요. 거기에 있던 공룡들이에요. 아마 무슨 이유가 있어 이동하나 본데요. 그냥 지나가게 두면 돼요."
그들은 앉아 공룡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리프먼의 말에도 불구하고 엘렌은 공룡이 한 마리도 남김없이 숲속으로 사라질 때까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엘렌이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리프먼이 팔을 잡아 앉혔다.
"문제가 생겼어요. 만약 이 길로 곧장 가면 저 공룡들과 마주칠 거예요."
엘렌과 앤지가 서로 쳐다보았지만 둘 다 뭐가 문제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공룡들은 무슨 일이 생겼기 때문에 이동하는 거예요. 어제까지만 해도 평화롭게 풀이나 뜯고 있었던 공룡들이에요."
"더 푸른 목초지를 찾아가나 보지."
엘렌이 말했다.
"그럴 수도 있겠죠. 아니면 죽고 싶지 않아 도망가던가요."
엘렌은 도대체 어떤 것이 저 정도의 공룡을 먹어 치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자 얼굴이 창백해졌다.
"자, 그럼, 오던 길로 다시 돌아가 다른 쪽 길을 찾아보죠."
앤지가 엘렌에게 도와달라는 시선을 보냈다.
"만약 그리고 간다면 칼과 그 남자들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가게 될 거에요."
엘렌이 말했다.
"만약 공룡들이 돈 쪽으로 간다면 공룡을 사냥하려던 것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고, 하지만 만약..."
"알았어요."
앤지는 위험부담을 저울질했다.
"만약 저기를 가로질러 가면 훨씬 빨리 움직일 수 있을 거예요. 우리는 뭐가 공룡을 쫓고 있는지, 얼마나 멀리에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리프먼은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는지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는 두 사람이 판단해서 선택하도록 놔두었다. 앤지가 먼저 결정했다.
"짐승 같은 놈들한테 당하느니 차라리 잡아 먹히겠어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할 수 있는 한 빨리 저기를 가로질러서 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는 길뿐이에요. 쿱을 생각해 봐요!"
앤지는 힘없이 쿱의 이름을 말했다.
"그래 그렇게 하자."
엘렌이 리프먼에게 말했다.
리프먼은 그들의 명확한 사고에 대한 동의를 표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평소의 속도대로 길을 걸었지만 이번에는 때때로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엘렌과 앤지도 주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더 믿었다. 나무들을 멀리에서 보기에도 꽤 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리프먼이 옳았다. 공룡의 모습을 발견하기 전에 소리를 먼저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공룡 무리가 지나간 지점에 거의 다 왔을 때 리프먼은 무릎을 꿇고 땅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엘렌과 앤지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오면서도 눈으로는 계속 공룡을 찾았다. 리프먼에게 다가서기도 전에 그들은 피 웅덩이를 보았다. 엘렌은 존부터 떠올렸지만 존이 흘렸다고 보기에는 너무 많았다. 피는 숲속으로 이어진 길에 떨어져 있었고, 또 다른 핏자국이 공룡들이 지나간 쪽으로 이어져 있었다. 리프먼이 갑자기 머리를 휙 돌리는데 얼굴이 창백해져 있었다.
"어서요, 뛰세요."
엘렌과 앤지는 리프먼의 뒤를 따라 달렸고, 그를 놓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들은 그의 본능을 믿었다. 달리면서 들은 뭔가 엄청나게 큰 것이 다가오는 소리를 들었다. 커비와 전은 요란하게 부르릉대는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잠이 깼다. 존은 일을 확실하게 처리하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곧 자신이 실수했을 거라고 생각했고 커비도 그렇게 생각했다. 리프먼이 있었다면 틀림없이 존을 비난했을 것이다. 커비가 힐난하듯 쳐다보자 존은 변명했다.
"네가 그랬을 수도 있잖아."
엔진이 회전하다가 움직임이 느려지면서 피시식하는 소리가 났다. 마침내 엔진이 한 번 더 피시식 하는 소리를 내더니 꺼졌다. 두 사람이 캠프로 좀 더 가까이 가보니 오토바이가 옮겨져 있었다. 그들은 아직도 모닥불 근처에 있었다. 다행히 존이 어떤 오토바이를 손댔는지 알아볼 방법은 없었다.
네 명의 사내는 모두 한 대의 오토바이 주위에서 떠들어대고 있었다. 잠시 후 그들 중 하나가 오토바이에 올라 시돌을 걸었다. 세 번 만에야 시동이 걸렸다. 그 남자는 계속 시동을 켜 놓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그사이에 엔진을 손보고 있었다. 다시 시동이 꺼졌다. 타고 있던 사내가 화를 내며 오토바이에서 내리더니 엔진을 손보고 있던 사내에게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자리를 바꾸고 다시 시동을 걸어 보고 있었지만 얼마 안 가 엔진은 또 꺼져버렸다. 그 이후로는 시동이 전혀 걸리지 않았다. 칼이 사내들에게 소리를 질러대더니 뭔가 지시했다. 그들은 한동안 서로 입씨름을 했고, 칼과 두 며으이 사내가 총을 들고 숲으로 향했다. 세 번째 사내는 총을 들고 다른 사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오토바이에 시동을 걸었다. 오토바이의 시동은 걸리지 않았고 잠시 후 옆으로 쓰러졌다. 커비가 존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들은 숲속으로 숨어들었다.
"저 남자를 포로로 잡을까?"
커비가 물었다.
"어떻게? 그는 지금 망을 보고 있는 데다가 총을 가지고 있잖아. 저 남자를 때려눕히기 전에 우리 몸이 총알집이 될 걸, 그리고 난 총을 쏘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단 말이야. 넌 해봤어?"
"한번, 이런 상황에서는 아니었었지만,"
커비가 자신이 없다는 듯이 총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안전할 것 같은데."
그가 힘없이 말했다.
"좋아. 그럼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 보자. 일단 리프먼이 너희 어머니와 친구 분을 안전한 곳에 피신시켰을 테니까 우리는 집 쪽으로 가자."
그들은 초원을 빙 돌아 칼과 다른 사내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갔다. 커비가 앞장을 섰고, 그들은 거의 뛰다시피 했기 때문에 사내들을 따라잡을 수가 있었다. 그들은 곧 한 사내를 발견했는데 그 사내는 총을 목 뒤에 놓고 양손으로 총구와 개머리판을 잡은 채 걷고 있었다. 그는 무사태평하게 걷고 있었다. 갑자기 오른쪽에서 목소리가 들려 오는 바람에 존과 커비는 뒷걸음쳐 숨었다. 칼은 절룩거리며 걷고 있었다. 상처가 심한 것 같았지만 존에게는 충분치 않았다. 그는 자신이 칼에게 쏜 화살을 리프먼이 공룡의 몸속에서 꺼낸 것이기를 빌었다. 만약 그렇다면 칼은 고칠 수 없는 선사 시대의 병균에 감염될 수도 있었다.
비행기 엔진 소리가 나자 사내들은 걷다가 말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비행기는 아주 빨리 지나가 버렸고 사내들은 수색을 계속했다. 존은 사내들이 엄마를 쫓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렸고, 엄마와 리프먼이 무사히 도망쳤을 거라고 확신했다.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고, 그들은 그 자리에서 총을 점검했다. 또 다른 울음소리가 좀 더 가까이에서 들렸고 사내들은 그쪽으로 걸어갔다. 칼이 앞장섰고, 사내들이 그 뒤를 따랐다. 울음소리가 가까워졌다. 공룡은 그들을 향해 오고 있었다. 존은 앞으로 뛰어가 커비를 잡았다.
"가게 내버려 둬. 공룡들이 그자들을 잡아먹었으면 좋겠어."
커비는 한동안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지금쯤 리프먼은 멀리 갔을 거야."
그때 비명소리가 들려 왔다. 여인의 비명소리였다. 리프먼은 있는 힘을 다해 언덕을 달렸다. 앤지와 엘렌은 곧 숲에서 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달리던 방향으로 계속 달렸다. 앤지는 점점 뒤쳐지고 있었다. 엘렌은 언덕 위에 오른 다음 앤지를 기다렸다. 내리막길에서 빨리 달리면 될 것이다. 리프먼의 목소리가 수풀 속에서 들렸다.
"앉으세요!"
엘렌은 몸을 낮추고 리프먼의 옆으로 기어갔다. 앤지는 언덕을 오르느라 매우 힘들어했고, 꼭대기에 올라왔을 때는 거의 발을 질질 끌고 있었다. 엘렌이 그녀를 잡아끌어 앉혔다. 앤지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엘렌도 헐떡이고 있었다. 리프먼은 엎드리고 소리를 들으려고 했다. 그는 그들에게 계속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그들이 겨우 숨을 골랐고, 리프먼은 머리를 숲으로 돌리고 귀를 기울였다.
"핏자국을 따라가지 않았을까?"
엘렌이 물었다.
"잡아먹을 수 있는 공룡이 있는데 왜 우리를 쫓아왔을까? 우리는 아주 작잖아, 안 그래?"
리프먼은 짜증스러워하며 엘렌의 질문을 무시했다. 마침내 그가 대답했다.
"만약 그것들이 육식 공룡이라면 공룡 무리들을 쫓아갔을 거에요. 바로 그게 먹이니까요. 하지만 이미 잡아먹었다면 굶주림을 느끼지 않을 거예요."
"그럼 위험하지 않겠네?"
엘렌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더 위험해요. 만약 우리 냄새를 맡는다면 호기심을 가질 거에요. 그놈은 항상 저 공룡을 쫓아갈 수 있어요. 배가 부르다는 것은 새로운 먹이를 찾을 여유가 있다는 것과도 같아요. 좀 더 쉬운 먹잇감을 노리는 거죠."
"우리가 되겠군."
엘렌이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디저트밖에 되지 않을 거야."
앤지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쉿."
리프먼이 갑자기 말했다. 엘렌이 소리를 알아듣는 순간 리프먼이 땅에 드러누웠다. 울창한 숲과 공룡의 피부색이 비슷해 보였기 때문에 육식 공룡을 구별하기는 쉽지 않았다. 공룡은 강력해 보이는 두 뒷다리로 걷고 있었고, 앞으로 굽은 몸은 금방이라고 땅 위로 쓰러질 것 같았다. 몸 뒤쪽 어딘가에 몸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꼬리가 있을 것이다. 앞다리는 갈이가 3미터 정도 됐고, 커다란 머리에는 거의 아가리밖에 모이지 않았다. 숨을 쉴 때마다 피 냄새가 진동했고 공룡은 걸으면서 계속 머리를 앞뒤로 흔들고 있었다. 엘렌은 몸을 일으켜 도망치려고 했지만 리프먼한테 붙잡혔다. 리프먼이 엘렌에게 속삭였다.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따라오세요. 이번에 따라오지 못하면 그냥 갈 겁니다. 친구분에게도 말씀하세요."
엘렌이 앤지에게 조용히 그 말을 전했다. 앤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리프먼은 공룡을 피해 언덕 아래쪽으로 조금씩 내려가기 시작했고 가능한 수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활은 아직 어깨에 매달려 있었다. 엘렌과 앤지는 머리가 보이지 않게 풀 속으로 몸을 낮추고 리프먼을 따랐다. 언덕을 반 정도 내려왔을 때 리프먼이 숲으로 방향을 바꾸었고, 공룡과 멀어질수록 달리는 속도와 소리는 점점 커져 갔다. 엘렌과 앤지는 그의 뒤를 열심히 따라갔지만 그들의 속력으로는 리프먼을 따라갈 수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은 리프먼을 놓쳐버렸다. 앤지는 손을 허리에 대고 숨을 헐떡였고, 점점 동작이 느려지고 있었다. 엘렌은 그녀의 옆에서 같이 걸었다. 그들은 조금 천천히 뛰었고, 앤지는 그 정도는 견딜 수 있어 했다. 2킬로미터쯤 갔을 때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엘렌이 뒤를 돌아보자 나무 근처에서 공룡이 자신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너무 놀란 나머지 그들은 멍하니 공룡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 순간 공룡은 숲이 떠나갈 정도로 큰 소리로 울부짖으며 그들의 혼을 빼고 있었다. 앤지가 있는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고, 공룡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숲이 끝나면서, 그들은 초원에 들어서게 되었다. 반대편에는 황폐해진 숲이 있었다. 초원 저멀리 하늘 위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리프먼의 머리가 풀 위로 불쑥 올라오더니 그가 팔을 흔들었다. 그의 목소리가 초원에 퍼지고 있었다.
"여기에요. 이쪽으로 오세요!"
앤지와 엘렌이 초원을 가로질러 뛰었다. 그들은 너무 두려워 뒤를 돌아볼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리프먼은 비친 듯이 팔을 흔들어 계속 뛰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들이 지나가자 리프먼은 횃불을 들고 그 뒤를 따라가면서 풀에 불을 질렀다. 리프먼은 죽을 힘을 다해 달렸고 다시 그들을 앞섰다. 공룡은 불 속에 갇혀 있었지만, 그 엄청나게 큰 발로 불길을 끄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이 해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리프먼이 먼저 쓰러져 있는 나무들 사이로 뛰어들었고, 그는 커다란 잎사귀 사이를 뚫고 지나가 다른 나무의 줄기 위로 올라갔다. 그는 부러진 가지들을 사다리 삼아 나무 위를 올랐다. 엘렌은 공룡의 요란한 소리에 겁을 먹고 나무 위로 몸을 내던지다시피 하며 그를 따라 올라갔다. 그녀는 앤지를 잡아 끌어올리기 위해 손을 내밀었으나 앤지는 더 이상 오르지 못하고 가지 위에 엎드린 채 매달려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가망이 없었다. 앤지 위에 공룡이 있었다.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앞발은 3미터나 되었고, 그 발로 나무를 치자 두꺼운 나뭇가지들이 사방으로 부러져 나갔다. 앤지는 공룡의 앞발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비명을 질렀고, 몸을 뒤틀었다. 공룡이 앤지의 허리를 물었다. 그녀의 왼팔이 팔꿈치 밑으로 없어져 버렸고, 그녀는 토르소 조각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공룡은 엘렌의 바로 눈앞에서 앤지의 팔을 풀 속으로 던져 버렸다. 공룡은 앤지를 나무에서 떼내고 초원으로 팽개쳤다. 그러고는 승리감에 큰 소리로 울부짖었다. 공포에 질린 엘렌은 나무줄기 밑 잎사귀 안에 누워서 풀이 피로 물드는 것을 보고만 있었다. 그때 누군가 자신을 잡아 밖으로 끌어냈다.
"저놈이 한눈파는 사이에 도망가야 돼요. 시간이 많지 않아요."
엘렌은 기계적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리프먼을 따라 정신없이 달렸고, 발밑이나 손에 닿는 것에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여러 번 넘어졌고, 그녀의 바지와 블라우스는 갈기갈기 찢어졌다. 살이 나뭇가지에 긁혀 피가 나고 있었다. 그러나 풀 위를 흐르던 앤지의 피 외에 그녀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마다 그녀의 움직임이 느려지고 있었다. 리프먼은 그녀가 일어날 때마다 그녀를 도와야만 했고, 자신의 팔로 그녀를 부축했다. 리프먼은 가끔씩 그녀가 나무 위를 올라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나무 꼭대기에 오르자 그녀는 큰 대자로 누워 버렸다. 눈은 잘 보이지 않았고, 그녀의 마음속엔 온통 피로 물든 수풀이 가득 차 있었다. 함성과 웃음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울려 퍼졌다. 피에 젖은 풀밭이 점점 다른 모습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웃고 있는 칼의 얼굴이었다. 그녀는 눈을 깜박이며 잘 보려고 애썼고, 그것은 환영이 아니었다. 그것은 틀림없는 칼이었고 그 뒤에는 다른 사내들이 서 있었다. 칼은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아니, 여기서 만나게 됐잖아?“
59. 도구를 만드는 인간
랍비 지도자 라쉬에 따르면 고대 전설은 주기적으로 하늘의 붕괴를 말하고 있었다. 그 주의 하나는 노아의 대홍수 때 일어났는데 이런 것들은 1656년 간격으로 반복되고 있다.
이마뉴엘 벨리코프스키, 충돌하는 세계
오레곤주 웜스프링즈 인디언 보호 구역 수요일 오전 7시 10분(태평양 표준시)
무스는 자동차 계기반 위에서 몸을 쭉 편 채 아침 햇살을 받으며 졸고 있었다. 한편 사라는 조수석 위에 놓진 담요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콜터는 쿰 박사가 왔던 길로 다시 가고 있었다. 쿰 박사와 필쳐 박사 그리고 피트라는 조사를 하기 위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를 알아내기 위해 여기로 왔었다. 콜터는 오로지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에게서 피트라를 뺏어 간 괴물을 그 한 놈을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는 어떻게 괴물을 죽일 수 있을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놈의 머리를 베지 않고는 절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거의 다 와 있었다. 길에는 두 개의 바퀴 자국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가 놀라서 차를 세웠다. 멀리 공룡들이 길을 따라 내려가고 있는 것이었다. 공룡들은 엔진 소리를 듣고 몸을 돌려 자동차를 바라보았다.
공룡은 쿰 박사를 죽인 그놈들처럼 보였다. 콜터의 적개심이 불타올랐다. 그는 캐비닛에서 총을 꺼냈다. 그는 탄창이 제대로 들어있는지 확인한 다음 총을 장전했다. 그가 총을 앞 유리창에 올려놓고 걸어가고 있는 공룡의 엉덩이를 겨누었을 때, 총구 끝에 무스의 머리가 보였다. 콜터는 총을 내려놓고 무스를 창에서 쫓았다. 그런 다음 사라를 담요에 싸서 RV의 뒤쪽으로 갔다. 그는 자신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건포도 약간을 부스가 올라가 있곤 하던 캐비닛 위에 올려놓았다. 사라 몫으로는 건포드를 조금 더 많이 바닥에 놓아주었다. 무스는 자기 몫을 다 먹은 뒤에도 계속 그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사라의 몫으로 덤벼들었다. 콜터는 소리를 죽이고 웃었다. 그는 무스가 좋았다. 무스는 생각할 줄 알았다. 공룡들은 길을 거의 다 내려간 상태였고, 콜터는 차를 몰아 공룡의 왼편으로 다가갔다. 그 동물들은 계속 걸으면서도 자신의 옆에서 움직이고 있는 자동차를 신경질적으로 바라보았다.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었다. 왜 공룡이 겁먹지 않는 걸까? 콜터는 공룡의 앞쪽으로 차를 몰고 간 다음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총을 들고 차에서 내렸다. 콜터는 주위를 주의 깊게 살펴보았고, 주위에 커다란 육식 동물은 전혀 없다는 걸 확인했다. 다음 순간 그는 길에서 본 그 공룡과 마찬가지로 다른공룡들도 허둥대며 이리저리 몰려다닌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풀 외에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풀은 시들어 있었다. 물이 충분하지 않은 걸까? 콜터는 궁금했다. 아마 찬 공기 때문일 것이다. 공룡의 영토는 거의 열대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풀이나 관목들에게 낮은 기온이라면 공룡에게도 차게 느껴질 것이다. 아마 들은 죽을 것이다. 콜터는 그 생각을 하자 웃음 나왔다. 그때 뭔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그가 자동차 밖으로 내던져 버렸던 피트라의 티셔츠였다. 피트라를 생각하자 콜터의 얼굴이 달아올랐고, 그는 총을 어깨에 매었다. 공룡은 그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다. 콜터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공룡이 가까이 다가오기를 기다렸다. 그는 실수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공룡의 머리와 목은 두꺼운 골질로 무장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는 한 방에 공룡을 쓰러뜨리고 싶었다. 그저 상처만 입힌다면 공룡들은 그들이 훔쳤던 알의 어미처럼 위험해질 것이다. 공룡 눈의 흰자위가 보일 때까지 기다려. 그는 혼잣말을 했다. 공룡은 콜터를 향해 똑바로 걸어오고 있었다. 그는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기 시작했고 공룡의 넓은 미간 사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순간 공룡이 몸을 돌려 콜터의 왼쪽으로 돌고 있었다. 콜터는 계속 조준을 하고 있었지만 공룡이 머리를 이따금씩 흔드는 바람에 시야가 공룡 목 주위의 깃에 가렸다. 콜터는 씁쓸해하며 총을 내려놓았다. 그는 머리를 정통으로 맞추고 싶었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자동차에서 떨어져 있을 수는 없었다. 실망한 그는 총을 다시 어깨에 대고 공룡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총알이 공룡의 어깨 앞쪽에 박혔다. 하지만 공룡은 커다란 총소리에 움찔하기만 했다. 그러고는 계속 걸었다. 콜터는 다른 탄창을 끼워 넣었고 공룡을 뒤쫓았다.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었다. 갑자기 공룡이 무릎을 꿇고 쓰러지더니 코로 숨을 깊이 몰아쉬었고, 마침내는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공룡의 가슴이 들썩이고 있었다. 죽어 가는 공룡을 보며 콜터는 온몸을 채우는 만족감을 느꼈다. 잠시 후 공룡의 호흡이 불규칙해졌고, 콜터는 공룡이 그대로 죽을까 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총알 한 방을 공룡의 목에 또 다른 한 방은 젖혀져 있는 가슴을 향해 쏘았다. 공룡은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야, 해냈어!"
콜터가 함성을 질렀다. 그런 다음 두 개의 탄환을 공룡의 배와 눈에 쏘았다.
"그래!"
그가 소리쳤다.
"사냥당하는 기분이 어때? 응? 사람이 도구를 만들어 그걸로 뭘 할 수 있는지 보았지? 흥? 그래서 너희가 멸망한 거야. 이 바보 같은 놈들아!"
콜터는 잠시 사냥의 여운을 즐기다가 자동차로 되돌아왔다. 오늘은 행운의 하루가 될 것이다. 누가 정말 최고의 약탈자인지 콜터가 가르쳐 줄 것이다. 그는 다른 사냥감을 찾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모노클로니우스들은 총성에 겁먹고 있었다. 그들은 초원에서 방어 대역을 만들고 서 있었다. 콜터는 그 모습을 보고 조소를 머금었다. 그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며 소리를 질렀다.
"그래 봤자 소용없어. 내게는 무기가 있다고!"
그는 총을 머리 위로 들고는 껑충껑충 뛰며 춤을 추다가 차로 돌아왔다. 그는 전에 차를 세워 놓았던 곳 가까에에 차를 세웠다. 수많은 파편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그중에는 피트라의 옷가지들도 포함되어있었다. 무스와 사라를 차 안에 남겨둔 채 콜터는 공룡에게 다가갔다. 공룡 6마리가 두 줄로 서서 머리를 숙이고 콜터를 향해 뿔을 세우고 있었다. 그는 방어벽을 따라 걸으며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자신을 따라오는 뿔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줄의 끝까지 간 다음 총을 들고 가장자리에 서 있던 공룡의 미간에 총을 겨누었다. 그리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크게 울려 퍼진 총성에 공룡들은 당황하고 있었지만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총알은 공룡 주둥이 바로 위에 박혔을 뿐이었다. 콜터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했다.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앞다리가 푹 꺾이더니 공룡이 쓰러졌다. 뒷다리는 움직이지 않았고, 엉덩이가 하늘로 솟았다. 그러더니 공룡의 눈이 감겼다. 뒷다리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가 잠시 후 몸이 왼쪽으로 기울면서 땅 위로 풀썩 쓰러졌다. 더 이상 숨을 쉬지 않았다. 뒷줄의 공룡들이 머리를 흔들며 신경질적으로 움직여댔다. 콜터는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 이 바보들은 너무 어리석어 죽을 것이다. 그는 다음 공룡을 향해 다가섰다. 그가 공룡 정면에 서자 공룡이 발로 땅을 긁었다. 콜터가 총을 들어 올리는 순간 뒷줄에 있던 공룡 한 마리가 줄에서 벗어나 그가 죽이려고 하는 공룡의 뒤로 달려왔다. 콜터는 놀랐으나 총을 공룡에게서 떼지 않았다. 새로 나타난 공룡은 죽은 공룡에게 다가가더니 자신의 뿔로 시체를 뒤로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더니 머리를 위아래로 흔들며 시체를 찔러 보고 있었다. 공룡은 마침내 몸을 돌리고 콜터를 향해 공격해 들어왔다. 이번에는 콜터가 위기일발의 상황에 처했다. 무시무시한 괴물이 그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콜터는 공룡의 미간을 향해 총을 쏜 다음 몸을 던지면서도 언제라도 다시 조준할 수 있도록 총을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나 다시 쏠 필요가 없었다. 탄환은 공룡의 멀에 박혔고, 공룡은 가 자리에서 쓰러졌다. 콜터는 공룡의 시체를 받침대로 삼아 다른 공룡을 향해 총을 쏘아댔다. 이번에는 공룡의 목 어딘가에 박혔고 공룡은 몸부림치며 머리를 흔들어 대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나머지 공룡들은 전속력으로 덤불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콜터는 부상 당한 공룡을 향해 다시 한 발을 쏘았고, 탄환은 공룡의 엉덩이에 박혔다. 공룡은 다시 울부짖었고, 피를 엄청나게 흘리면서도 계속 도망쳤다. 콜터가 다시 총을 쏘았지만 도망치던 공룡은 낑낑거리기만 했기 때문에 콜터는 실망했다. 하지만 최소한 피를 더 흘리게 될 것이다. 총을 더 쏘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공룡은 피를 흘리며 초원을 건너가서 덤불 속으로 모습을 감췄다. 콜터는 만족스러웠다. 공룡은 그들 영토 한가운데로 가 있었고, 다른 사냥꾼들을 몰려들게 할 만큼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는 웃었다. 이건 그가 완벽하게 준비한 저녁 만찬의 시작일 뿐이다.
그는 차로 돌아와 물과, 음식 그리고 탄환을 챙겼다. 그런 다음 바닥에 놓인 매트리스 위에 누워 낮잠을 청했다.그는 다른 청소부 동물들이 공룡을 충분히 공격할 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주려는 것이다. 자고 일어난 뒤에도 시간은 얼마든지 있었다. 사라가 담요에서 기어 나와 먹을 것을 찾음 콜터의 주위를 돌아다녔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사라는 콜터의 옆에 털썩 주저앉으며 그의 겨드랑이로 파고들었다. 귀찮았지만 사라는 피트라에 대한 기억을 일깨웠고, 콜터는 그녀를 생각하다가 곧 잠이 들었다. 콜터가 자다가 깨어나 보니 무스는 그의 가슴 위에서 몸을 쫙 편 채 자고 있다가 그가 몸을 움직이자 바로 일어나 캐비닛 꼭대기로 올라갔다. 하지만 사라는 흔들어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콜터는 사라가 떨고 있는 걸 보고 담요로 몸을 덮어 주었다. 공룡에게는 너무 추운 날씨였다. 콜터는 쿰 박사와 필쳐 박사 중 한 사람이 공룡의 멸종에 대해 말했던 것을 기억해냈다. 멸종을 설명하기 위한 이론 가운데 지구와 혜성이 충돌하면서 그 잔해가 태양열을 차단하여 지구 전체에 겨울이 찾아왔다는 이야기였다. 공룡은 그래서 얼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그는 무스와 사라가 겨울은 물론이고, 오레곤의 가을 날씨에도 적응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두 마리 모두 행동이 둔해지면서 오랜 시간 잠만 자고 있었다.
물론 공룡이 멸망하게 된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필쳐 박사나 쿰 박사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이유들이 있을 것이다. 아마 공룡들은 느닷없이 미래로 와 있었기 때문에, 또 내 총에 맞아서 멸망하게 되는 건지도 몰랐다. ! 피트라를 생각하자 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무스와 사라에게 과일을 던져 주고 그 자리를 떠났다.
밖으로 나와 보니 해가 지고 있었다. 시체들은 멀쩡히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마 총성이 시체 청소부들을 겁주어 쫏아 버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마리는 피를 흘리며 도망쳤기 때문에 지금쯤은 사냥꾼들이 모여들었을 것이다. 흔적을 따라가기는 어렵지 않았다. 핏자국은 덤불을 자나 육식 공룡이 필쳐 박사를 잡아먹은 그 초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흔적은 피트라가 죽은 호구로 계속 이어졌다. 콜터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먼저 그는 시체에 몰려든 청소부들을 죽인 후 호숫가에서 야영을 하며 기다릴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면 그는 호수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을 미끼 삼아 괴물을 유인할 것이다. 그는 걷는 물고기가 대가를 치른 뒤에야 이곳을 떠날 것이다. 핏자국은 계속되고 있었다. 콜토는 초원 쪽으로 가다가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탄환이 제대로 들어 있는 걸 확인한 후 그는 앞으로 기어갔다. 모노클로니우스가 초원에 쓰러져 있었는데 깃부터 꼬리까지 남아 있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시체는 덤불에서 불과 15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갈비뼈에도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5미터 정도 돼 보이는 육식 공룡 세 마리가 갈비뼈를 씹어 먹고 있었고, 1미터 정도의 작은 공룡 6마리가 눈치를 살피며 그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바로 콜터가 원하는 일이었다. 이제 마음 놓고 사냥을 시작할 수 있었다.
콜터는 사격하기에 좋은 장소를 찾아 덤불을 기었다. 그는 첫 번째 제물로 육식 공룡 세 마리 가운데 한 마리에게 총을 겨누었다. 거의 형체가 남아 있지 않은 시체에서 머리를 들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공룡의 주둥이가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다. 공룡과 콜터의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총이 불을 뿜었다. 공룡은 날카롭게 소리를 질렀다. 다른 공룡들은 총성을 듣자 동작을 멈추고 머리를 곧추세우며 적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찾았다. 총에 맞은 공룡이 앞발로 자신의 주둥이를 쥐어뜯고 있었다. 콜터는 최초의 살육제 이후 실력이 많이 늘어 있었고, 이제는 다른 공룡을 향해 총을 쏘았다. 총에 맞은 첫 번째 공룡은 나중에 처리해도 됐다. 두 번째 공룡은 첫 번째 놈과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돌려 자신을 공격한 대상을 찾고 있었다. 통증과 분노로 미친 듯이 날뛰던 공룡이 첫 번째 총에 맞은 공룡의 목을 물었다. 공룡이 몸부림치며 울부짖었고 싸움이 시작되었다. 공룡들이 서로 엉켜서 뒹굴고 있었다. 두 번째 공룡은 아직도 동료의 목을 물고 있었고, 밑에 깔린 공룡은 날카로운 세 발톱을 이용해 자신을 공격해 들어오는 놈의 배를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두 놈이 일으키는 소음에 귀가 찢어지는 듯했지만 콜터는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 그는 두 놈의 싸움을 즐겼다. 공룡들은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콜터는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싸움을 구경하고 있는 마지막 공룡도 잔치에 끼워 주기로 결정했다. 그는 공룡 가슴팍에 총을 쏘았다. 하지만 놈은 잠시 몸을 부르르 떨 뿐 가만히 서서 싸움을 보고만 있었다. 콜터는 다시 공룡의 다리에 총을 쏘았다. 이번에는 공룡이 빙그르르 돌았고 콜터는 다시 꼬리를 쏘았다. 공룡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두 발이 다시 공룡의 머리에 명중되었다.
싸움은 이미 끝나 있었다. 밑에 깔린 놈은 동료의 아가리 속에서 죽어 갔다. 콜터는 살아남은 놈을 죽이려고 조준했으나 총을 쏘지 않았다. 그의 뒤에서 뭔가 걸어오고 있었다. 풀이 밟히는 소리로 짐작컨대 덩치가 무척 큰 것 같았다. 그는 짐승이 거의 자신의 머리 위에 와 있다는 걸 깨달았다. 총성과 공룡들이 일으킨 그 소음에 가려 공룡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는 몸을 돌려 땅에 등을 댄 채로 위를 올려다보았다. 그의 몸 위로 키가 10미터는 될 것 같은 공룡이, 필쳐 박사를 죽이고 자신을 쫓아 왔었던 바로 그 공룡이 서 있었다. 총을 들어 쏘려고 하는 순간 그는 공룡이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공룡은 콜터가 거기에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공룡은 초원에 모여 있는 육식 공룡을 바라보고 있었다. 콜터는 공룡의 다리를 걱정스럽게 보았다. 공룡이 계속 걸어간다면 자신은 밟혀 죽을 적이다. 그는 조용히 일어섰다. 전혀 소리를 내지 않고 이곳을 빠져나갈 방법은 없었다. 콜트는 한동안 그 거대한 다리를 바라보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그때 공룡이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더니 콜터가 숨어있는 덤불 쪽으로 고개를 숙였다. 공룡은 소리를 지르더니, 씩씩거렸다. 공룡은 그를 기억하고 있었다. 콜터는 총을 단단히 잡고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공룡의 주둥이에 총알이 박히면서 왼쪽 콧구멍에서 피가 솟구쳐 나왔다. 공룡은 화가나 머리를 쳐들었고, 날카로운 발톱이 달린 발로 허공을 휘젓고 있었다. 그는 덤불 속에서 빠져나와 공룡의 옆구리에 미친 듯이 총을 쏴댔다. 공룡은 물러서지 않았다. 콜터를 향해 돌아서는 공룡의 눈에 살의가 번뜩였다. 콜터는 움츠리고 있는 작은 청소부 공룡 무리를 자나 초원으로 도망치며 공룡이 작은 공룡들에게 덤벼들기를 빌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다시 괴물을 피해, 필쳐 박사가 죽임을 당한 나무와 피트라가 납치당한 그 호수가 있는 쪽으로 달렸다. 몇 시간이 흘렀고 시간이 자날수록 피트라의 고통은 점점 심해졌다. 그녀는 물고기가 두려웠고 몸은 통증으로 욱신거렸다. 새로운 두려움이 찾아왔다. 그녀는 잠이 들었다가 몸을 움직여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을 물고기가 알아차릴까 봐 겁이 났다. 그래서 피트라는 몇 시간 동안이나 꼼짝하지 않고 누워 있으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녀는 쿰 박사와 필쳐 박사의 죽음을 슬퍼하며 자신의 처지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콜터에 대해서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그는 자기의뒤를 쫓아오고 있었지만 어쨌든 그는 무사할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콜터가 나를 찾고 있을까? 아니, 그는 차로 돌아가 사라와 무스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콜터가 자신을 애도해주기를 바랬다. 콜터가 느낄 슬픔과 그녀가 맞이하게 될 죽음을 생각하자 눈물이 흘러내렸다. 통증과 피로에 지친 그녀는 자제력을 잃었고, 계속 흐느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물고기가 움직인 것이다. 피트라는 물고기가 그녀의 등에 몸을 기댄 채 일어서려고 버둥대는 것을 알았다. 피트라는 너무 지쳐 더 이상 두려움도 느끼지 못하고 그대로 누워있었다. 그녀는 체념한 채 가만히 누워 다음 순간에 벌어질 일들을 기다렸다. 그녀는 저항할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녀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길게 싸울 시간도 없었다. 물고기의 비늘이 그녀의 맨살을 긁자 살점이 떨어져 나갔다. 그녀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기다렸다. 그녀는 자신이 움직인 걸 물고기가 눈치챘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물고기는 동굴 속으로 깊숙이 들어가더니 먹이를 먹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등이 쑤셔 왔고, 그녀의 발목 또한 많이 아파왔지만 머릿속만은 또렷했다. 두통도 많이 가라앉았다.
물고기는 식사를 마치고 다시 피트라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다. 물고기는 피트라의 등 뒤에서 샅샅이 냄새를 맡다가 엉덩이 부근에서 멈춰 섰다. 물고기는 피트라가 방금 흘린 피 냄새를 맡고 있었다. 물고기는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피를 계속 흘리는 먹이는 거의 없었을 것이다. 물고기는 다시 머리 쪽으로 거슬러 올라오며 냄새를 맡다가 그녀를 툭툭 쳤다. 피트라는 사후 경직 상태를 가장하느라 살짝 힘을 주었다. 물고기는 피트라를 다시 한번 밀어보고는 콧바람을 내뿜었다 콧구멍에서 뿜어져 나온 축축한 온기가 등에 와 닿았다. 피트라는 눈을 크게 뜬 채 움직이지 않았고, 물고기는 웅덩이로 걸어가더니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피트라는 한참동안 그렇게 있다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몸을 일으켜 앉는데 머리가 쿡쿡 쑤셔 왔다. 하지만 의식은 또렷했다. 그녀가 앉은 걸음으로 바닥을 기는데 다리가 물속으로 툭 떨어졌다. 물이 너무나 차가웠기 때문에 발목의 통증이 되살아났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기운이 조금이나마 생겼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오랫동안 헤엄치게 될 때를 대비하여 공기를 들이마시는 연습을 했다. 그리 봤자 물 밖으로 나가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공기를 가득 들여 마신 후 웅덩이 속으로 몸을 날렸다. 피트라는 물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웅덩이 끝을 향해 열심히 헤엄쳤다. 한쪽 다리로만 헤엄을 치고 있었기 때문에 움직임이 매우 느렸다. 그녀는 앞에 보이는 밝은 빛에 초점을 맞추었다. 헤엄치다기보다는 통로를 따라 나있는 바위를 잡고 나아간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동작은 빠르지 못했기 때문에 산소는 급격히 떨어져 가고 있었다. 빛은 점점 환해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통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 발을 차며 필사적으로 헤엄쳤다. 그녀가 통로를 빠져나와 물 위로 올라왔을 때는 거의 산소가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녀의 몸은 산소를 필요로 했고, 그녀는 정신을 잃어 가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공룡은 그보다 몇 발자국 뒤에 있었고 그는 숲을 이루고 있는 나무 사이로 들어가 나무줄기 뒤에 몸을 숨겼다. 괴물은 작은 나무들을 짓밟으며 쫓아오고 있었다. 공룡은 이번만큼은 제물이 그냥 도망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이 괴물에게 콜터는 한입의 군것질거리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배고픔과 관련된 것이 아니었다. 이 괴물에게는 사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건 아무래도 좋았다. 그도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은 공룡과 마찬가지였다.
그는 호숫가에 도착했고 괴물은 숲을 헤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완벽했다. 괴물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거의 없었고 콜터는 나무 뒤에 숨어 호흡을 고르며 일발을 날릴 채비를 갖췄다. 숲 끄트머리에서 나뭇가지가 부러지고 있었고 그는 그쪽을 응시했다. 괴물은 화가 잔뜩 나서 달려오고 있었다. 크고 작은 가지들이 부러지는 소리가 대기 중에 울려 퍼졌다. 피트라는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들여 마셨다. 맑은 산소가 공급되면서 머릿속이 맑아졌고 두통도 훨씬 덜했다. 그녀는 물속에 물고기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이제 기슭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녀는 몸을 펴고 약하기는 하지만 천천히 발장구를 치며 헤엄쳐 갔다. 나무들이 작은 숲을 이루고 있는 기슭이 가까이 있었다. 거기에서 필쳐 박사가 공룡에게 당했었다. 그녀는 숲에 자신이 올라갈 수 있는 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무에 오른다고 해도 큰 괴물로부터는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이미 필쳐 박사가 그 사실을 증명해 주었지만 최소한 그녀가 잠시 쉬면서 기운을 차리는 동안은 안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갑자기 숲에서 뭔가 뛰어나오고 있었다. 웬 물체가 땅 위에 쓰러져 있는 커다란 나뭇가지를 훌쩍 뛰어넘더니 호수를 등지고 섰다. 그녀는 그 물체를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콜터였다. 콜터는 완벽한 공격을 생각하자 기분이 좋아졌다. 그는 폐가 있으리라 생각되는 곳을 겨누기로 했다. 폐를 쏘게 되면 그가 다시 도망쳐야 할 경우가 생긴다고 해도 시간을 벌 수 있을 것이다.
콜터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방아쇠를 당겼다. 그때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소리는 뒤에서 들려오고 있었는데 물속에서 첨벙거리다가 물방울을 떨어뜨리며 호수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소리를 향해 몸을 돌려보니 희끄무레한 물체가 물 밖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사람처럼 보였는데 꼭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기슭을 걸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끔찍스러운 것은 그 물체가 피트라를 닮았다는 것이었다. 콜터는 자기 머리가 이상해진 거라고 여겼다. 피트라는 죽었다. 그녀는 어제부터 호수 바닥에 가라앉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살아있을 수 없었다. 그는 공룡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눈앞의 유령을 응시하고 있었다. 피트라는 손은 물살을 가르고 비틀거리며 콜터를 향해 걸어갔다. 간신히 호수 기슭으로 나왔을 때 콜터가 갑자기 몸을 돌리고 자신에게 총을 겨누었다. 그녀를 콜터의 얼굴에 떠오르는 표정을 보고 그 자리에 섰다. 그는 그녀를 쏘려고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녀는 콜터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서고 있는 괴물을 보았다. 지금 시체가 왼쪽 다리를 절룩거리며 물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콜터는 물고기가 그 다리를 물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그는 일어나서 피트라 쪽으로 다가섰다.
"피트라? 피트라? 피트라 맞아?"
콜터가 소리쳤다.
그녀였다. 그녀는 살아 있었다. 그녀가 자신의 뒤편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하지만 그녀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물속에서 뭔가 달려들고 있었다. 그 물고기였다.
"도망쳐. 피트라!"
콜터가 소리쳤다.
"그놈이 뒤에 있어!"
계속 콜터 뒤쪽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던 피트라는 뒤를 돌아보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다리를 절룩이며 도망치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걷는 물고기는 기슭에 오르고 있었는데 지느러미 다리를 이용해 물을 텀벙대며 피트라를 뒤쫓고 있었다. 물고기는 강력한 꼬리를 이용해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콜터는 몸을 움직여 피트라를 피해 총을 쏘았다. 총알이 물
고기의 몸을 관통했고, 물고기는 물속으로 쓰러졌다. 그는 다시 장전을 하고 총을 들었다. 물고기는 다시 피트라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콜터는 순간 망설였지만 다시 총을 쏘았고 총알이 물고기의 등에. 거의 꼬리 쪽으로 밖혔다. 물고기는 움찔하는 것 같았지만 피트라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피트라는 물고기에 다리가 걸려 물속으로 고꾸라졌다. 물고기가 다시 돌진했고, 피트라의 왼쪽 다리가 물고기의 입안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머리가 물속으로 들어갔고, 잠시 후 그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다시 그녀는 물고기에게 잡혔고, 콜터는 총을 들고 피트라를 향해 겨누었다. 이번에는 물고기의 몸뚱이 한가운데를 바로 맞추었지만 물고기는 여전히 피트라의 다리를 놓지 않고 물살을 가르며 나아가고 있었다. 콜터는 다시 한번 총을 쏘았고 이번에는 물고기의 턱을 맞추었다. 물고기는 요동을 치면서도 피트라의 다리를 놓지 않았다. 피트라는 물고기를 떼내려고 다리를 내질렀고, 갑자기 몸이 자유로워졌다. 그녀는 성한 다리로 헤엄을 쳤다. 콜터가 다시 총을 쏘았고 물고기의 몸뚱이에 세 발이 더 명중되었다. 드디어 물고기가 물 위에 떠올랐다.
"그래, 난 해냈어. 이 망할 놈아!"
콜터가 환호성을 질렀다. 그는 승리를 자축하다가 피트라가 소리를 지르는 바람에 공룡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몸을 돌려보니 공룡이 몸을 흔들거리며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는 총을 쏘려고 했지만 시간이 충분치 않았다. 대신 그는 총을 내리고 땅으로 몸을 날렷다. 그는 땅으로 떨어지면서 이전에도 몸을 숨겼었던 나뭇가지 뒤로 피했다. 공룡의 발은 피할 수 있었지만 공룡이 몸을 돌리면서 휘두르는 꼬리는 피할 수 없었다. 콜터는 공룡에게 들키지 않기를 바라며 나뭇가지 아래로 몸을 피했다. 꼬리가 옆을 스쳐 지나갔다.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가지들을 피했다. 피트라는 겁에 질려 바라보기만 했다. 그녀는 콜터를 볼 수 없었으나 미친 듯이 날뛰는 공룡의 움직임으로 보아 그는 아직 살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녀가 나무 쪽으로 달려갔고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요란한 소리가 나는 가운데 콜터의 목소리가 들려 왓다.
"피트라, 총을 집어! 어서"
피트라는 콜터가 불진 나뭇가지 밑에 있다는 사실만 알 수 있었다. 그때 콜터가 피트라에게 뭔가 던졌다. 공룡은 콜터를 공격하는데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에 피트라는 그 물건을 - 장전된 탄창을 - 집어들 수 있었다. 총은 공룡의 몸뚱이 밑에 있었다. 괴물 근처로 뛰어드는 방법 외에는 총을 집을 방법이 없었다. 콜터가 다시 도움을 요청하는데도 피트라는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떨고만 있었다. 이제 공룡은 콜터를 밟아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듯 거대한 발로 잔디를 마구 파헤치고 있었다. 공룡은 정신없이 땅을 파헤쳤고 피트라에게까지 흙더미가 튀었다. 피트라가 총을 집으러 갈 기회를 엿보는데 흙더미 속에 묻혀 총이 날아왔다. 피트라는 우박처럼 떨어지는 흙을 피해 총을 집어 들었다. 총은 심하게 긁혀져 있었고, 총신에는 이물질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녀는 총이 아직 쓸모가 있기를 빌었다. 갑자기 콜터가 죽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피트라는 총을 들어 공룡의 등을 정통으로 겨눈 뒤 방아쇠를 당겼다. 총이 발사되면서 그녀가 그 반동으로 땅 위로 쓰러졌다. 공룡이 피트라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녀는 총의 노리쇠를 잡아당겼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총을 살펴본 후 노리쇠를 올리고 다시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다행히 탄창에 총알이 하나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공룡은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고 그녀는 자신이 손쉬운 사냥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에게는 더 이상 힘도, 싸울 수 있는 투지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녀가 총을 들어 공룡의 왼쪽 다리를 겨냥했고, 공룡이 몸을 돌리고 가슴을 내보일 때를 기다렸다. 그녀는 심장을 맞추어야 했다. 하지만 어디에 심장이 있을까? 중앙에? 왼쪽에? 총알 한 방으로 저렇게 큰 짐승을 쓰러뜨릴 수 있을까? 피트라는 공룡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갑자기 마음을 바꾸었다. 그녀는 공룡의 미간을 겨누고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탄환은 공룡의 왼쪽 눈 바로 위에 명중하며 그 두꺼운 뼈를 산산 조각냈다. 총알과 뼛조각들이 뇌신경을 파괴시키면서 공룡을 쓰러뜨렸다. 희망과 안도감이 피트라를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공룡이 콜터가 숨어있던 곳 위로 쓰러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괴물이 나무 위로 쓰러지면서 나뭇가지들이 부러졌다. 얼마 후 모든 것이 잠잠해졌다. 피트라는 멍하니 서 있었다. 그녀는 공룡을 죽였지만 콜터가 그 엄청난 몸뚱이 밑에 깔려 버린 것이다. 그녀는 공룡 주위를 뛰어다니며 콜터의 이름을 불렀다. 그녀는 그가 피할 만한 공간이 있는지 살폈다. 공룡이 땅을 마구 파헤쳐 놓았기 때문에 땅 위는 울퉁불퉁했지만 사람이 들어갈 정도의 큰 공간은 없었다. 마침내 그녀는 주저앉고 말았다. 그녀에게는 흘릴 눈물도, 슬퍼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다. 이제는 모두 가 버렸다. 처음에는 웨인 부인과 어니 파웰이, 그다음에는 필쳐 박사와 쿰 박사가 떠났다. 그리고 이제는 콜터까지 가 버린 것이다. 그들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어쩌면 팻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고, 아니면 애쉬랜드로 돌아가 친구들이 살아 있는지 찾아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차가 아직ㄷ 그대로 있는지 보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차가 아직도 그대로 있는지 보러 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차가 있다면 이 악몽 같은 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그녀는 지금 바깥세상이 어떻게 변해 있든 간에 이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아직도 그녀는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절망이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그녀는 가만히 앉아 총을 만지작거렸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으로 청을 어떻게 장전해야 하는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마침내 탄창을 빼내고 콜터가 자신에게 던져 주었던 새로운 탄창으로 갈아 끼웠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갑자기 위험을 느낀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놀이쇠를 풀면서 그녀는 자신이 총을 다시 쏠 필요가 없기를 빌고 있었다. 피트라는 가만히 서서 숲을 바라보며 소리가 다시 나기를 기다렸다. 소리는 뒤에서 나고 있었다. 그녀가 소리를 잘 듣기 위해 숨을 죽이며 뒤로 돌아섰다. 소리를 공룡의 시체 밑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공룡의 등을 따라가며 콜터를 보았다고 생각되는 지점으로 뛰어갔다. 공룡의 어깨 부근에서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콜터, 너니?"
콜터가 약간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질러 대고 있었다.
"물론 나지. 너"
피트라는 그의 마지막 말을 알아듣지 못했지만 미소를 지었다. 살아 있다면 그가 무슨 말을 해도 상관없었다.
"나를 여기서 빼낼 수 있겠어?"
그가 한 번에 한 단어씩 소리쳤다. 소리가 울려 나왔지만, 피트라는 그 말을 이해했고, 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속으로 천천히 땅을 파냈다. 그녀는 콜터가 전에 한 것처럼 엎드려 흙을 파내려고 했지만 이것은 공룡 알을 덮고 있던 부드러운 부식토와는 달랐다. 피트라의 손톱이 하나둘씩 부러져 나갔고 남은 두 개의 손톱에서도 피가 나고 있었다. 마지막 손톱이 부러지자 그녀는 땅을 파다가 말고 막대기를 찾아내어 그것으로 땅을 팠다. 일이 더뎠다. 팔이 점점 아파 왔고, 그녀는 조금씩밖에 파내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면 밤새껏이라도 땅을 파낼 것이다. 그녀가 한 줌의 흙을 퍼내고 있을 때 그녀 옆을 휙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그녀는 흙을 내팽개치고 총을 집어든 뒤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공룡의 시체가 너무 컸기 때문에 반대쪽을 넘겨다 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총을 앞으로 겨눈 채 공룡의 꼬리 쪽으로 몸을 옮겼다. 갑자기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함께 뭔가 북 찢는 소리가 났다. 다시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뼈 씹는 소리가 들렸다. 피트라는 한 걸음씩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뒤에서 콜터의 목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었지만 다행히 시체 뒤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는 그 동물은 콜터의 목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다. 소리를 듣는다고 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피트라는 무릎을 꿇고 공룡의 꼬리 부근까지 기어간 다음 시체 너머를 훔쳐보았다. 두 마리의 육식 공룡이 시체의 배를 물어뜯고 있었다. 잠시 후 조금 더 큰 공룡이 숲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먼저 와 있는 공룡들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큰 놈은 자리를 차지하고 시체를 물어뜯었다. 피트라는 뒤로 물러나 공룡의 등 쪽으로 다시 돌아갔다. 반쯤 되돌아왔을 때 큰 공룡 한 마리가 숲에서 그녀 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피트라가 공룡을 향해 총을 겨누었지만 그 공룡은 그녀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공룡들이 몰려 있는 쪽으로 뛰어갔다. 피트라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다시 기어가기 시작했다. 수풀 속에 있는 자갈과 나뭇가지에 살이 긁혀 까졌다. 일어서도 괜찮을 정도가 되자 그녀는 발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었다. 그녀는 콜터의 목소리가 울려 나오는 것을 듣고는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쳐 알려주고 싶었지만 그런 모험을 할 수는 없었다. 시체 반대편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이미 한 떼가 몰려들었다는 걸 알려주고 있었다. 작은 공룡하나가 다시 숲에서 뛰어나와 시체로 달려들고 있었다. 피트라는 숨을 고르고 땅을 다시 파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른 움직임이 그녀의 주의를 끌었고,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키가 5미터나 되는 공룡이 나무를 지나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피트라는 총을 공룡의 가슴에 겨누었다. 그 공룡을 쏘게 되면 총성이 다른 공룡들의 주의를 끌게 될 것이다. 그녀는 콜터를 두고 떠나기는 싫었지만 더 이상 방법이 없었다. 육식 공룡에게 총을 겨누며 그녀는 시체의 머리 쪽으로 움직였다. 공룡은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녀 때문에 눈앞의 먹이를 놓치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녀는 아픈 다리를 끌며 숲속으로 몸을 숨겼다. 그녀의 왼편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의 오른쪽으로 피했다. 가지가 낮은 쪽에 달려있는 나무가 눈앞에 나타났고, 그녀는 그 위에 올라가서 가지 사이에 총을 잘 놓아두었다. 그녀는 대부분의 공격자들로부터 안전할 수 있다고 생각될 때까지 위로 올라가ㅆ. 그녀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줄기에 등을 대고 무릎에 총을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휴식을 취했다.
60. 경계 근무
머지않아 모든 것이 재편될 것이다. 그러나 악의 시대에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노스트라다무스
오레곤주 미드포드 수요일 오전 9시 37분(태평양 표준시)
식료품점 앞에 서 있던 카일에게 긴급 호출이 왔다. 평상시의 경계 근무는 쉬운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을 때는 뭐하나 쉬운 게 없었다. 정부는 사재기를 막기 위해 식료품 구입을 제한하고 있었고 시민들은 불안과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폭동이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캐런은 호출 이유에 대해서는 단지 '특수 임무'라고만 설명할 뿐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았다. 카일은 더 이상의 특수 임무를 원하지 않았다. 특히 그 동굴 사건 이후에는 더욱 그러했다. 카일의 두려움은 주차장에서 등반 복장을 입고 있는 셜리를 보았을 때 확실해졌다. 카일이 경찰서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셜 리가 그를 막았다.
"코는 어때요, 경관님?"
"괜찮아요."
대꾸하는 카일의 얼굴이 붉어졌다.
"지금은 이야기할 시간이 없군요. 안에 들어가 봐야 합니다."
"여기에 오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당신의 기술을 필요로 해요."
셜리는 그 말을 하며 미소를 지었고, 카일은 미소로 응답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녀가 원하는 일이라면 매우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었다.
"셜리, 난 이곳에 필요한 사람이에요. 당신은 지금 위기일발의 상황이 벌어지는 곳에서 나를 빼내려 하고 있어요."
"누구라도 식료품점 앞에 서서 무게를 잡을 수 있어요."
카일은 당황했다. 셜리는 자신을 바보로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이상의 중요성이 있어요."
그가 항변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그녀가 인정했다.
"하지만 난 당신이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때문에 여기 온 거예요."
"산을 타는 것과 관련이 있겠군요. 안 그런가요?"
"바위 위에 아이가 잡혀 있어요. 올라가서 아이를 구해야 해요."
어린아이를 입에 올리는 순간 셜리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아이가 다쳤나요?"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거기에 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어요."
카일은 셜리가 뭔가 감추고 있다는 걸 알았다.
"어린 소녀라구요? 좋아요. 사무실에서 장비를 꺼내 오죠."
"벌써 내 차에 실어 놓았어요."
셜리가 말했다.
"좋아요. 그럼 뭐 좀 먹도록 하뇨."
"벌써 사 왔어요."
셜리가 차로 다가서면서 맥도날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거기는 문 닫은 줄 알고 있었는데."
"다른 방법을 좀 썼죠."
자랑스러워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어려 있었다.
"마실 것 좀 주겠소?"
셜리는 웃더니 창문으로 손을 집어넣었고 음료수 컵을 꺼냈다. 그녀는 너무나 빈틈없이 보였지만 그는 그녀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준비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그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면서 셜리의 옆모습을 살펴보았다. 그래. 그녀를 좋아할 구석을 더 있었다.
"빅맥이 있었으며 좋겠는데요."
"감자튀김 큰 것도 있어요."
카일은 주차장을 떠나기 전에 감자튀김을 먹어 치웠다. 마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비교해 볼 때 부상당한 어린 소녀를 구출하는 것도 그리 나쁠 것 같지는 않았다. 이번 일이 남아 있는 임무들을 쉽게 만드는 지름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카일은 감자튀김을 입 안에 넣었다. 그들이 5번 고속도로 쪽으로 차를 돌려 북쪽으로 향하는 순간 카일은 빅맥을 먹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