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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나토노트(Les Thanatonautes) 5

Bollnow 2024. 3. 11. 06:44

 제3기 깨달은 이들의 시대

 

 207. 타로79)카드의 가르침

 타로카드의 열세 번째 것은 죽음을 나타낸다. 그 카드에는 이름이 붙어 있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카드에 죽 그림이 나오다가 열세 번째 와서는 빠져 있다. 처음 열두 장의 카드는 하루 중 오전의 열두 시간과 같다. 그것은 열두 가지의 (작은 신비)이다.

 열두 번째 시간, 즉 정오가 지나면 홀연 죽음이 나타나고, 하루 중의 다른 열두 시간이 시작된다. (위대한 신비)라는 다른 차원이 열리는 것이다.

 어떤 비교(숨길 비, 가르침 교)에서는 죽음을 상징하는 비밀 의식을 열세 번째로 행한다. 그 죽음이란 비신자가 신자로 거듭나는 죽음이다. 그렇듯 타로의 열세 번째 카드는 불길한 것이 아니다.

 사람이 죽음의 단계를 넘어서지 못하면, 더 이상 진보할 수가 없다.

 - "마르세이유 타로 카드의 의미"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08. 역사 교과서

 우리 조상들의 신앙

 우리 조상들은 사후 세계에 대해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까? 1981년 유럽에서 사람들의 신앙 내용이 종교에 따라 어떻게 다른지를 조사한 적이 있다. 사후 세계와 관련된 여러 개념들을 제시하고 그것의 존재를 얼마나 믿는지 알아보려는 조사였다. 항목별로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의 수를 백분율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자료 출처: 장 스토에첼, "현대의 가치관. PUF, 1983).

 

신앙 내용 가톨릭 신교 비신자
사후 세계 52 38 13
천국 45 43 8
지옥 30 16 3
환생 23 21 12
영혼의 분리 66 56 24
87 75 23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209. 천사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들

 "천사가 존재한다는 것을 믿으라고? 갈수록 태산이군."

 콩라드 형에게 그것은 하나의 루비콘강이었다. 그는 그 강을 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영계 탐사에 빌붙어 장사를 하는 동안, 그는 자기 가치관에 비추어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을 숱하게 참아 왔다. 그러나 천사 이야기가 나오자 그는 영계 탐사라는 이름의 현대적인 광기에 동조하기를 거부했다.

 물론 천사 이야기를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터였다. 내가 직접 천사를 보기 전에, 누군가가 나에게 죽고 나면 천사들이 우리를 맞아준다고 얘기했다면, 나 역시 코웃음을 치고 말았을 것이다. 직접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나 역시 그 모든 것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우리의 발견은 놀라운 것이었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 일이 발전해 온 과정을 생각해 보면 천사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는 게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에게 가장 어려웠던 단계는 사후 세계가 하나의 대륙처럼 존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단계를 넘었다. 다음에 우리는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또, 영혼이 비물질적이며 은빛 생명 줄이 그것을 육체와 연결해 준다는 것도 인정했다. 그렇다면, 천사 이야기를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따지고 보면, 모든 종교가 이미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천사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지 않은가?

 뤼생데르 대통령은 우리가 새로이 발견한 내용을 극비에 부쳐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당분간은 천국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숨겨야 한다는 거였다.

 "천사라니! 다른 건 몰라도 그 얘기는 안 되네. 이왕이면 신을 만날 것이지, 왜 하필 천사누? 자네들은 폭탄을 하난 가지고 있는 셈이야. 그것의 폭발 시간을 되도록 늦춰야 하네.

 대통령은 하샤신의 산중 장로 때문에 메예르가 죽었다는 것을 알고 벌컥 성을 냈다.

 "명색이 종교 지도자라는 자가 폭력과 배타주의밖에 모르니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영계에서 이교도하고 전쟁을 하자는 거야? 천국에서 폭력이 자행되는 것을 묵과해서는 안 돼."

 "그자는 이미 죽었습니다. 끔찍한 결투가 있었지만 미카엘과 아망딘이 그자를 이기고 완전히 저승으로 보내 버렸습니다."

 라울이 그렇게 말했으나, 마호가니 책상 뒤에 있던 대통령은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고 소리쳤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닐세. 이제 종교 전쟁이라면 진저리가 나네. 지금은 중세가 아니라 21세기란 말일세. 종교적 불관용을 언제까지고 관용할 수는 없어. 내게 맡기게."

 

 210. 힌두교 신화

 인간은 해탈에 이르고 싶어 한다.

 (하레 크리슈나) 찬가를 3 천5백만 번 되풀이해서 읽으면 다음과 같은 큰 죄를 면할 수 있다.

 높은 카스트인 브라만에 속한 사람들을 죽이는 것.

 남의 재물을 빼앗는 것.

 황금을 독점하는 것.

 낮은 카스트인 카리아에 속한 여자와 자는 것.

 다르마의 법마저도 다 버린 후에라야 순수함과 해탈을 얻을 수 있으리라.

 - 칼리, "삼타라나 우파니샤드"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11. 국제 연합

 그다음 주에 프랑스 공화국의 장 뤼생데르 대통령은 유엔 총회에서 연설을 했다. 그는 영계 탐사가 우리 시대의 풍속으로 자리를 잡은 만큼 영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암중모색하던 시기, 의학적인 시기, 공포의 시기, 쾌락을 찾던 시기, 천문학적인 시기, 폭력의 시기를 거쳐, 이제는 법적인 시기가 도래했다는 거였다.

 "입법자들이 나설 때가 되었습니다. 영계 탐사에 관한 헌장을 만들어서 규범을 어기는 자들을 제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계는 영원히 서부 영화의 활극장으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적도 기니의 대표가 시큰둥하게 말했다.

 "우리는 이미 영계 탐사와 관련하여 두 개 조항의 원칙을 채택한 바 있습니다.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까?"

 "충분치 않습니다. 새로운 조항을 추가해야 합니다."

 뤼생데르는 그다지 귀담아듣고 있지 않은 청중에게 두 가지 조항을 힘있게 제안했다. 영계 탐사에 관한 제3, 제4의 원칙이었다.

 제3조: 다른 타나토노트의 생명 줄을 자르는 행위를 금한다.

 제4조: 타나토노트가 영계에서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지상에 있는 그의 육신이 책임을 진다.

 그 제안에 이어, 타나토노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 어떠한 형벌을 내릴 것인가에 관한 논란이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의 대통령은 단호하게 말을 이었다.

 "영계는 남극 대륙처럼 중립 지대로 남아 있어야 합니다. 아무도 그곳에서 전쟁을 벌여서는 안 되고, 그곳을 점유하려고 원정대를 보내서도 안 됩니다."

 유엔 사무총장이 뤼생데르를 거들고 나섰다.

 "천국은 모두의 것입니다. 필요하다면 우리는 그곳에 평화유지군을 보낼 것입니다. 평화유지군의 임부는 영계의 평화를 유지하고 영혼들과 타나토노트들의 자유로운 왕래를 보장하는 것입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피지 섬의 대표가 신문을 보다가 고개를 들고 수리남의 대표는 선잠을 자다가 퍼뜩 깨어났다.

 사무총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평화유지군을 보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샤신의 산중 장로가 영계를 독차지하려고 사적으로 군대를 일으킨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 자들이 또 생기지 말란 법이 없습니다. 그런 경우에 우리는 우리의 군대를 파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타나토노트 평화유지군, 영계의 경찰이 필요합니다."

 뤼생데르가 제안한 세 번째, 네 번째 원칙은 절대 다수의 찬성으로 채택되었다. 약 스무 나라의 대표가 반대하거나 기권했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눈치를 본 거였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하샤신의 산중 장로를 은근히 부추기고 그의 활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했다는 것은 모두가 다 아는 일이었다.

 타나토노트 평화유지군을 창설하자는 제안은 부결되었다. 당장 군대를 창설해야 할 만큼 영계에서 어떤 폭력이 행해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다, 너무 많은 비용이 들지도 모른다는 것이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었다. 게다가 지상에서 평화유지군을 파견했을 때 흔히 나타나는 문제를 생각하면, 그것은 괜한 골칫거리가 되기 십상이었다. 예를 들어, 평화 유지군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규정하려고 들면, 필요할 때는 타나토노트를 죽일 수 있도록 할 것이지, 단지 타나토노트의 범죄 행위를 막는 것만 허용할 것인지 하는 문제가 생긴다. 어려운 문제다. 그래서 결국 유엔 대표들은 평화유지군을 포기하는 쪽으로 표를 던진 것이다.

 뤼생데르가 영계 분쟁의 문제를 법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것은 잘한 일이었다. 영계에서 분쟁을 야기하는 행위가 전인류의 이름으로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영계 탐사에 관한 원칙은 우리의 활동이 국제적으로 공인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모흐 6을 넘었다는 사실에 의심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어머니는 1층 가게에서 완전한 영계 지도를 상품화하여 팔기 시작하셨다. 여섯 군데의 장벽과 일곱 천계로 이루어진 영계의 모습은 입구가 넓게 벌어지고 끝이 뾰족해서 전체적으로 보면 트럼펫과 비슷했다. 파랑, 검정,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하양의 순서로 색깔도 들어가 있었다. 지도가 예쁘장하게 생겨서 과학자 지망생이나 몽상가의 벽을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콩라드 형은 전설이 되어 버린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말을 지우는 표시로 줄을 그어 놓았다. 그는 우리가 영계에 관해 모든 것을 발견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아직 영계의 전모가 드러난 상황은 아니었다.

 우리는 백색계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발표했지만, 천사나 빛의 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아직 너무 일렀다.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의 펜트하우스에서 우리 비행 팀은 여러 차례에 걸쳐 모임을 가졌다. 프레디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백색계를 본 사람은 우리 부부뿐이었다. 동료들은 (영혼의 계량)과 그 뒤에 이어지는 환생에 대해서 많은 질문을 퍼부었다.

 나는 우리가 어떻게 백색계에 도달했는지에 대해, 그리고 네 줄기로 갈라지는 영혼의 강과 거대한 백색 평원, 영혼의 무게를 다는 장소가 있는 산, 세 명의 대천사에 대해서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나는 보았어요. 하지만 본 것만 가지고는 안 돼요.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해요."

 사실 나는 아내를 구하는 데 정신이 팔려서 정보를 모은다던가 천사들에게 질문하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거라고는 그저 거기에 다다르면 선행과 악행의 무게를 달고 그 결과에 따라 환생이 결정된다는 것뿐이었다.

 "자네는 그런 주장을 사람들이 믿어 주리라고 생각하나?"

 뤼생데르 대통령이 퉁명스럽게 반문했다.

 라울이 늘 지니고 다니는 자기 아버지 사진을 꺼냈다. 살쩍이 희끗희끗하고 눈이 웅숭깊은 중년 남자의 모습이었다. 라울의 그 사진을 흔들며 물었다.

 "자네, 혹시 이렇게 생긴 분 못 봤나?"

 나는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곳에는 영혼이 아주 빽빽하게 모여 있네. 거기에서 어떻게 자네 아버님을 찾을 수 있겠나? 자네 아버님 아니라 우리 아버님을 찾으려도 도저히 못 찾을 걸세. 주황색계부터 영혼의 행렬이 더 조밀해진다는 건 자네도 확인한 것 아닌가! 영혼은 빽빽히 늘어서서 천천히 이동하고 있네. 수백만 영혼이 이동하는 속에서 누구를 찾아낸다는 건 불가능하지."

 아망딘도 궁금한 게 많은 모양이었다. 늘 입고 다니는 검은 옷이 이젠 상복이 되어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곳이 정말 끝이라고 생각해요? 그 뒤에 뭐가 더 있지 않을까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낸들 그걸 어찌 알겠는가?

 "백색계 안쪽에 빛의 산이 있어요. 영혼의 무게를 다는 곳이 있는 산이지요. 거기에서 나오는 빛이 영계 입구부터 영혼을 이끌지요. 이승의 업에 대한 심판을 받고 나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는 나도 몰라요. 그 산에서 나오는 빛이 너무 강렬해서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어요."

 "그 산 너머에 아직 뭔가가 더 있을지도 몰라요."

 아내가 말했다. 아내 역시 이승으로 돌아올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문제에 골몰하느라고 그곳을 찬찬하게 조사할 겨를이 없었다.

 라울은 더욱 깊이 있는 탐사를 하기 위해 집단 비행을 다시 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무엇보다도 자기 아버지를 다시 찾겠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나는 영계로 다시 떠나는 것에 그다지 열의를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천사들을 만나고, 삶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는 생각에 무척 들떠 있었다.

 아망딘과 스테파니아와 로즈는 대뜸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로즈는 병원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몸이면서도 완전히 회복되어 아주 건강하다고 주장했다. 블랙홀 너머에 화이트홀이 있다는 자기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서 영계로 다시 떠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였다. 아망딘의 경우는, 비록 프레디를 잃는 슬픔을 맛보기는 했지만 자기의 첫 비행이 무척 매력적이었던지 새로운 모험에 기꺼이 동참하고 싶어 했다.

 좋든 싫든, 나는 동료들의 안내자 역할을 맡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13일의 금요일에 함께 이륙했다. 공교롭게도 13일의 금요일이었기 때문에 나는 그날을 아주 잘 기억하고 있다. 바람이 무척 심하게 불던 날이었다. 강풍에 나무들이 휘어지고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다. 나는 바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동료들과 함께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컴퓨터에 연결된 비행복을 입고, 다섯 개의 이륙용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비디오카메라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발진!"

 나는 스위치를 눌렀다. 우리는 다 같이 천사들의 나라를 향해 떠났다.

 

 212. 유대교 신화

 영혼은 세 등급으로 나뉘는데, 그 세 영혼은 다음과 같이 뇌의 세 부분에 해당된다.

 시상 하부(視床下部: 네페슈(生靈). 먹고, 마시고, 잠자고, 구합하는 생존의 욕구와 같은 수준의 영혼.

 주변 조직: 루아크(情靈). 두려움, 욕망, 시샘 따위의 감정과 같은 수준의 영혼.

 대뇌 피질: 네카마(理靈). 논리, 전략, 철학, 미학 및 다른 뇌들을 통제하는 능력과 관련된 영혼.

 카발라에 따르면 육체적인 죽음과 때를 같이해서 정신적이고 생리적인 몇 가지 변화가 일어난다고 한다. "조하르"에 나온 설명을 보면, 시체가 썩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생체 에너지인 네페슈가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루아크는 생체 에너지의 흐름과 관련을 맺고 있지만 조금 더 머물다가 육신을 떠난다. 영혼의 초월적인 부분인 네카마가 마지막으로 육체를 떠난다. 그러면 이승에 사는 동안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의 영혼이 그 네카마를 맞아준다. 아버지와 이미 고인이 된 가족의 다른 구성원들이 그 네카마 주위에 모여들면 네카마도 이승에서 만났을 때처럼 그들을 알아본다. 그 영혼들이 새로운 영혼을 머물 곳으로 데려간다.

 사람은 죽음의 순간에 저승의 자기 부모와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죽은 이가 고결한 사람이면 그 영혼들이 그를 기쁘게 맞아준다. 그러나 죽은 이가 악행을 많이 한 사람이면 게히놈(연옥)에 떨어진 사람들만이 그를 맞아준다. 게히놈에서 그 영혼은 자기의 때를 씻어 내야 한다.

 게히놈은 육신이 죽은 다음에야 나타난다. 게히놈의 필요성은, 힘든 운동 경기 끝에 하는 한바탕의 샤워나 바다 속에 들어갔던 잠수부가 수면으로 올라오기 전에 감압실을 거치는 것에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13. 천사들의 나라에서

 두 번째 비행은 첫 비행만큼 수월하지 않았다. 첫 비행 때는 오로지 로즈를 구하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렇게 다른 사람들 생각을 하노라면 자기 고뇌 따위는 잊어버리는 법이다.

 그런데 두 번째 비행에서는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다. 또 다른 하샤신의 용병들이나 악마를 섬기는 무리들이 갑자기 덤벼들어 우리의 생명 줄을 잘라 버리지나 않을까?

 나는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우리는 밀집 대형을 지어 빛의 속도로 우주 공간을 날아갔다. 지구의 공전 때문에 이번에는 태양이 은하 중심으로 통하는 길과 일직선상에 놓여 있어서 우리는 태양을 통과할 수 있었다.

 잊을 만하면 찾아 들던 그 질문- (내가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지?)- 이 다시 고개를 쳐들려 해서 나는 잡념을 떨치려고 애썼다.

 러시아의 우주 비행사들을 다시 만났는데, 이번에는 우습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소행성들 사이를 빠져나갈 때는 소름이 돋았고, 행성들이 다가들 때마다 내가 금방이라도 박살이 날 것 같은 기분이 들곤 했다.

 은하계가 참으로 크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무슨 별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우리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흩어져 있는 은하수를 헤쳐나갔다. 은하수!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은하수를 (젖길)이라고 불렀다. 제우스의 아내 헤라가 젖을 뿌려 놓은 것 같다 해서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우리는 어머니의 젖에 미역을 감으면서 영계를 향해 계속 나아갔다.

 두려움을 잊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바뀌어 가는 우주의 풍광을 즐기기로 했다. 나는 날아가면서 주위의 모든 것을 빼놓지 않고 보았다.

 오리온성운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한 가리비와 비슷한 모습이다. 역시 오리온자리에 있는 말머리성운도 보인다. 이름 그대로 말머리를 닮았다. 왼쪽 더 멀리에는 백조자리의 두드러진 선과 마젤란운의 여러 가지 별들이 보인다. 베가 초신성이 나타난다. 그 모든 이름들이 저절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 같지만, 사실을 멀리서 로즈가 텔레파시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로즈는 내가 별들을 보며 기뻐하는 것을 알고 자기 지식을 내게 전해 주는 것이다. 오, 훌륭한 아내여.

 방향을 튼다. 전방 멀리 오른쪽에 안드로메다 은하가 보인다. 그 은하는 생김새도 우리 은하와 비슷하고, 거리도 겨우 200만 광년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중심핵 주위에 있는 별들은 우리 은하의 별들보다 한결 노랗다. 아마 우리 은하보다 더 어린 천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아름다운 은하는 자매인 안드로메다보다 더 나이가 많은 것이다.

 우주 한복판에서 벌이는 천문학 강의. 굉장하다! 아프리카에서 행하는 어떤 수렵 여행도 이보다 더 흥미진진하지는 못하리라.

 그런데, 우주에도 야사가 있는 모양이다. 맹견 두 마리가 곰에게 맞서는 자세를 하고 있다 해서 사냥개자리라는 이름이 붙은 별자리에 두 은하가 맞닿을 만큼 가까이 붙어 있다. 소용돌이 모양의 큰 은하가 성게 모양의 작은 은하를 끌어당긴 것이다.

 로즈가 텔레파시를 통해 천문학 강의를 계속한다.

 "큰 쪽이 M51 은하예요. 다른 은하를 잡아먹는 은하지요. M51은 대단히 크기 때문에 자기 힘이 미치는 곳으로 지나가는 다른 은하를 모두 빨아들여요. 지금도 NGC51이라는 은하를 삼키고 있는 중이에요. 두 은하가 충분히 가까워지면, M51의 나선팔 하나가 뻗어 나와서 NGC51을 낚아챌 거예요."

 "그런 다음, 그걸 잡아먹는 거요?"

 "아니에요. 두 은하가 결합해서 훨씬 더 거대한 새로운 은하를 만드는 거예요. 그럼으로써 더 힘이 세고 더 탐욕적인 은하가 되는 거지요,"

 먹고 먹히는 관계는 어디에나 있다.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물질에도 자기의 파란만장한 드라마가 있다.

 우리는 계속 우리의 목표를 향해 날아간다. 신기로움을 더해 주는 유성군, 붉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소천체군, 어떤 행성에 떨어져 폭발한 운명을 지는 파편들을 통과한다. 별들이 모여 있는 곳을 지나니 팅 빈 공간이 길게 이어진다. 어둠과 추위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

 이윽고 블랙홀의 입구가 나타난다. 소용돌이치는 거대한 터널 입구에서 별들이 서로 부딪친다.

 우리는 마지막 천계로 떠나간 프레디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방법 가운데 하나를 활용해서 다섯 가닥의 은빛 생명 줄을 단단하게 엮는다.

 제1 천계에 들어선다. 소용돌이가 우리를 빨아들인다. 죽어 가는 별들과 갖가지 파동과 알갱이들이 믹서 안에 한데 뒤섞여 (빛의 즙)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곳이 바로 영계의 기슭이다. 첫 번째 장벽을 이루는 막(막 막)은 무엇이 거기에 부딪히거나 그것을 통화하면 고막처럼 바르르 떨린다. 그러고 보면, 영계는 인간의 귀와도 닮은 구석이 있다. 나는 그 물렁물렁한 막을 통과한다.

 제2 천계에 들어선다. 과거에 겪은 무서운 일이 다시 떠오른다. 지칠 줄 모르는 괴물들과 싸움을 벌인다. 암흑계를 지나갈 때마다 그 괴물들이 두고두고 나를 괴롭힐 것이다.

 제3 천계에 들어선다. 내가 꿈꾸던 쾌락이 더 색정적이고 더 사악한 형태로 실현된다. 나는 기꺼이 그것을 즐긴다. 쾌락이 없는 삶은 얼마나 끔찍한가! 그러나 나는 욕망이나 쾌락의 진창에 빠지지는 않는다.

 제4 천계에 들어선다. 기다림의 시련을 겪는 곳이다. 죽은 이들의 행렬이 강물처럼 천천히 주황색 평원을 흘러간다. 나는 전보다 더 주의 깊게 행렬 속에 있는 영혼들을 살피면서 그들 위를 날아간다. 놀랍게도 내가 만나고 싶어 했던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마릴린 몬로, 필립 딕, 쥘 베른, 라블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역사책에 나오는 신화적인 인물들도 모여 있다. 샤를마뉴 대제, 베르생제토릭스, 조지 워싱턴, 원스턴 처칠, 레온 뜨로쯔끼 등이 보인다.

 군중 속에는 갖가지 사람들이 두루 섞여 있다. 제임스 딘이 보이는가 하면, 아직도 탭댄스 스텝을 밟고 있는 프레드 아스테르도 눈에 띈다. 몰리에르, 게리 쿠퍼, 마르고 여왕, 릴리언 기시, 루이즈 브룩스, 졸라, 후디니, 마오 쩌뚱, 애버 가드너 등도 있고, 르네상스 시대에 두 명의 교황을 배출한 보르지아 가문 사람들도 뤼크레스를 중심으로 한자리에 모여 있다.

 유난히 성미가 급한 영혼들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빛에 다다르기 위해 행렬의 한가운데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줄 서는 일에 익숙치 않은 영혼들은 행렬을 벗어나 늑장을 부린다. 그렇게 쉬고 있다가 뜻하지 않은 영혼을 만나는 일도 흔하다.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와 그의 가족들이 모여 말다툼을 벌인다. 러시아 혁명을 예견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서로 비난하고 있다. 루이 16세가 자기 역시 프랑스 혁명이 터질 것을 내다보지 못했다며 그들을 화해시키려고 애쓴다. 루이 16세는 대화 상대를 바꾸어 이번에는 마르코 폴로와 지도 제작에 관해 토론을 벌인다. 지도 제작이 바로 루이 16세가 진짜 좋아하던 일이다. 거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루이 16세는 감옥에서 쓸 자물쇠를 만드는 일에도 관심이 많았지만, 캐나다의 강들을 지도에 그려 넣는 일과 (테라 인코그니타)라는 말을 밀어내는 일을 가장 좋아했던 것이다.

 영계는 그야말로 사람들끼리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는 마지막 살롱, 멋진 사랑방이다! 턱수염을 길게 기른 빅토르 위고가 내려다보인다. 그는 사냥의 여신 다이아나 같은 여자를 꾀느라고 여념이 없다. 그의 모습을 보니 문득 라울이 내놓았던 낱말 수수께끼가 떠오른다. 라울은 착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수수께끼를 내놓고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 고약한 취미도 가지고 있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는 격으로 나는 라울이 빅토르 위고의 낱말 수수께끼라고 소개한 바 있는 그 문제의 해답을 알아내기 위해 그 대문호 옆으로 내려갔다. 빅토르 위고는 처음엔 자기 연애 사업을 방해한다고 성을 내더니, 내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파안대소하면서 답을 가르쳐 준다.

 "내 첫음절은 수다스럽다고 했으니, 말 그대로 수다쟁이 (바바르 bavard)라네. 내 두 번째 음절은 새라고 했으니, 말 그대로 새 (우와조 oisau)일세. 세 번째 음절은 카페에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커피 (카페 cafe)일세. 세 음절을 합치면 해답은 과자 이름인 바바루와조 카페 Bavaroise au cafe), 즉 커피를 넣은 바바루와즈가 되지."

 알고 보니 너무나 쉬운 문제였다. 내가 그 답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은 간단하게 생각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시간이 더 있다면, 스트라디바리를 찾아내서 훌륭한 바이올린을 만드는 비결을 알고 싶다. 또 생떽쥐베리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칠레와 페루는 무슨 이유로 그렇게 길쭉해졌는지도 알고 싶다.

 갑자기 아는 얼굴이 눈에 띈다. 나의 증조모인 아글라에 할머니다. 나는 할머니 쪽으로 서둘러 나아간다. 할머니는 나를 금방 알아보시고 내가 그렇게 빨리 다가오는 이유를 알아차리신다.

 "그래, 안다. 난 내가 죽었을 때 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다 보았다. 하지만 네가 울지 않았다고 해서 너를 탓하지는 않았다. 난 너의 진짜 마음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거든. 눈물을 흘리던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들은 남의 이목을 끌 생각이나 하는 위선자들이었지."

 기쁘다.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고 나를 학대했던 아버지를 찾아서 할머니 말씀을 전해 주고 싶다. 그러나 아글라에 할머니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신다.

 "내가 벌써 네 애비에게 그 사실을 알려 줬다. 게다가 지금 그 사람은 훨씬 앞쪽에 가 있단다."

 나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비행을 다시 시작한다.

 아래에서는 라울이 헛되이 자기 아버지를 찾고 있다. 아망딘은 펠릭스와 마주쳤지만, 세계 최초의 타나토노트가 절망에 찬 텔레파시로 불러대는데도 아는 척하지 않는다. 스테파니아는 군중 위를 조용히 날면서 빛을 향해 계속 나아가고 있다. 천문학자인 아내는 블랙홀의 바닥이 화이트홀로 통한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맨 앞에서 날고 있다.

 제5 천계로 들어선다. 절대지의 세계다. 버터와 밀가루와 설탕과 계란을 똑같이 4분의 1씩 섞어 만드는 카트르카르 케익 요리법이 저절로 터득된다. 그것 역시 지식의 일부임에는 틀림없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지상에 돌아가 활용해야겠다.

 제6 천계로 들어선다. 아름다움의 세계다. 보랏빛 장식을 두른 화단이 이어진다. 형형색색의 갖가지 아름다운 이미지들이 끝없이 펼쳐진다. 오색 영롱한 나비들은 장밋빛 제비의 부리를 두려워하지 않고, 파란색과 검은색과 흰색 개구리들이 잠자리의 날개를 어루만져 준다. 신화에 나오는 황금빛 일각수(한 일, 뿔 각, 짐승 수)가 뒷다리로 일어서서 춤을 춘다. 두려움이 그렇듯이 아름다움이 실현되는 방식은 아주 다양하다.

 마침내 우리는 여전히 생명 줄을 한데 엮은 채, 모흐 6 앞에 다다랐다.

 이미 한 번 가본 길이라고 해서 안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주 왕복선 챌린저호는 탐사가 거듭되면서 사람들이 이젠 우주 비행이 조금도 위험하지 않다고 믿게 되었을 무렵에 폭발해 버리지 않았던가? 안전하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위험한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신중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영계 탐사는 그동안 눈부신 발전을 이루어 왔다. 기술이 발전하면 그 발전된 기술 때문에 작은 사고가 어마어마한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더 커지는 법이다.

 이제부터 우리가 발견하게 될 것은 인공위성에 장착된 아무리 좋은 망원경으로도 관측할 수 없는 곳이다. 우리는 은하계 한가운데 블랙홀 속에 있고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다. 어떤 천문학자도 이보다 더 큰 야망을 품지는 못하리라!

 영계의 5총사인 우리는 이제 탐사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서 있다. 영계의 마지막 모습을 감추고 있는 커다란 장막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

 나는 앞으로 나아갔다. 다른 사람들은 선뜻 따라오지 않고 머뭇거린다. 그들은 영혼들이 강물처럼 행렬을 지어 모흐 6을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 겁먹은 기색이 역력하다. 이미 제7 천계를 들어가 본 적이 있는 나는 겁먹을 게 없다는 뜻으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나는 무시무시한 것을 감추고 있는 커튼 자락을 들어 올리듯이 모흐 6의 한 귀퉁이를 엮고 동료들에게 따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강렬한 빛이 우리를 엄습한다. 아주 공격적이고 자기(磁氣)를 띤 빛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몰라도 나는 거대한 백색 평원과 너울 같은 안개를 다시 보게 된 것이 여간 기쁘지 않다,. 저 아래에서 영혼의 강물이 네 줄기로 갈라지고 있다.

 천사들이 후광을 빛내며 나타났다. 희끄무레한 영혼에 비해 그 빛은 아주 찬란하다. 누가 나에게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야망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는 이제 자기 영혼을 천사의 영혼처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큰 꿈을 어찌 이룰 수 있으리오!

 동작이 날렵한 천사 하나가 날아와서 우리에게 묻는다.

 "생명 줄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들이 여기에 뭐하러 왔나요? 호기심 때문이요, 아니면 과학을 발전시키려는 욕망 때문이요"

 우리는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망설인다. 입심 좋은 스테파니아 조차 말문을 열지 않는다. 결국 질문한 천사 자신이 우리를 대신하여 대답한다.

 "당신들은 깨달은 이들이군요, 그렇죠?"

 "뭐라고 하셨나요?"

 라울이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깨달은 이들이라고 했어요."

 천사가 참을성 있게 같은 말을 되풀이한다.

 그는 우리의 틈입을 그다지 놀라워하지 않는 듯하다. 천사들은 살아 있는 채로 이곳에 들어온 사람들을 가리키는 용어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깨달은 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말고 다른 사람들이 벌써 이곳을 다녀간 적이 있다는 얘기다. 그들은 이곳의 비밀을 알았으면서도 그것을 발설하지 않았던 것이리라. 우리보다 여기를 먼저 다녀간 사람들이 누굴까? 다른 타나토노트들일까? 승려들, 샤먼들, 라비들, 현자들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아무도 몰래 현대적인 장비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 이런 종류의 탐사를 해왔던 것은 아닐까?

 천사가 환하게 웃는다. 처음 천국에 들어왔을 때 천사들이 내게 별로 질문을 하지 않았던 이유를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옛날부터 (깨달은 이)들이 이곳에 왔을 것이다. 그런 일이 빈번하지는 않았더라도 천사들은 그들을 맞이하는 일에 익숙해져 있음에 틀림없다.

 

214. 시베리아 신화

 시베리아 무속 신앙에서는 죽고 나면 모든 것이 거꾸로 된다고 보고 있다. 사람이 죽어서 가는 세상은 높은 것이 아래로 가고 밝은 것이 어두워지는 나라이다.

 이따금 산 사람이 죽은 이들의 나라에 들어가는 일이 있다. 무당이 굿을 할 때, 또는 심한 병을 앓거나 약물에 중독되거나 꿈을 꾸고 있을 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자신이 저승에 들어가 있으면서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으려면 저승의 몇 가지 특징을 알아두어야 한다.

 죽은 이들의 나라에서는 나무가 뿌리를 높이 세운 채 거꾸로 자라고 강물은 산 쪽으로 흐른다. 희미한 햇빛이 비치는 낮은 어둑어둑한데, 검은 달빛이 비치는 밤은 환하다.

 별것 아닌 정보이지만 그런 거나마 알고 있으면, 자신이 더 이상 산 사람들의 나라에 있지 않게 될 때 그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15. 아살리아

 우리를 맞아들인 천사의 이름은 프랑스어로 생 제롬, 히브리어로는 아살리아로서 (진리를 알려 주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 다른 많은 언어에도 그를 부르는 이름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그를 프타라고 불렀고, 수메르인들은 엔키, 로마인들은 아폴론, 갈리아인들은 마파노스, 아일랜드의 켈트인들은 디안세트, 게르만인들은 프레이르, 슬라브인들은 스바로크, 인도인들은 사비트르, 아즈텍인들은 크소시필리, 잉카인들은 일라파 등으로 불렀다.

 백색 천계에서 그가 맡은 일은 진리를 드러내고 영혼들이 영적으로 드높아지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라울이 천국의 구성에 대해 질문을 하자, 그는 아주 기꺼이 대답해 주었다.

 "주요 천사가 일흔둘이 있고, 보조 천사가 70만이 있지요. 위계 제도는 간단해요. 상급에는 치품 천사, 지품 천사, 좌품 천사가 있고, 중급에는 권품 천사, 능품 천사, 역품 천사가 있으며, 하급에는 주품 천사, 대천사, 찬사가 있어요. 대천사 가운데 대표적인 셋을 들자면, 예언자이며 선도자인 가브리엘과 괴물의 처단자인 미가엘, 그리고 의사와 여행자의 수호자인 라파엘이 있어요."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우리가 선택하기 나름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천사를 성인이나 라메드 바브로 생각할 수도 있고, 보살이나 부처, 선민(選民)이나 차딕80)으로 볼 수도 있다. 종교에 따라서 그들은 여러 가지로 불릴 수 있다. 그들은 이승의 삶을 훌륭하게 산 덕분에 윤회에서 벗어난 해탈자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떠도는 영혼을 계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대로 그들을 (천사)라는 호칭으로 부르기로 했다.

 생 제롬이면서 동시에 프타, 크소시필리인 그 천사는 라울의 질문에 대답하고 나서, 아래에 군중이 붐비고 있어서 할 이리 많다며 사과의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떴다, 결국 우리끼리만 탐방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었다.

 저 군중을 굽어보는 신, 또는 신들이 있는 걸까? 하느님은 하나라고 유대인들은 강조해서 말한다. 하지만 프레디가 가르쳐 준 바로는 히브리 말로 하느님은 (엘로힘)81)이라 하는데 그 이름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라고 한다. 그렇다면?

 주요 천사가 일흔둘이라는데, 그 수를 들으니 뭔가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때 라울이 텔레파시로 내게 이렇게 일깨웠다.

 "그 수는 야곱의 사다리82)에 있는 가로장의 수일세."

 

 216. 주요 천사들

 주요 천사들의 이름을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이 명칭들의 출처는 성서83)이지만, 그리스어나 중국어나 힌디어 등에도 대응하는 명칭이 있을 수 있다.

 제1 천사: 베후이아. 묵상과 영적인 계시를 주관하는 천사.

 제2 천사: 젤리엘. 부당한 반란을 진압하는 천사.

 제3 천사: 시타엘. 재난을 막아 주는 천사.

 제4 천사: 엘레미아. 배신자들을 폭로해 주는 천사.

 제5 천사: 마하아시아. 주위 사람들과 평화롭게 살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6 천사: 렐라헬. 병을 고쳐주는 천사.

 제7 천사: 아카이아. 자연의 비밀을 알게 해주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8 천사: 카헤텔. 악령을 쫓아 주는 천사.

 제9 천사: 하지엘. 거물들의 총애를 받게 하고 약속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10 천사: 알라디알. 자기의 비밀을 발견하는 것에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지켜주는 천사.

 그밖에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천사들을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제12 천사: 하하이아. 꿈의 세계를 다스리고 거룩한 신비를 이따금 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는 천사.

 제13 천사: 이에잘렐. 우정과 화해와 부부간의 정절을 다스리는 천사.

 제14 천사: 메바헬. 재산을 강탈하는 자들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천사.

 제16 천사: 하카미아. 배신자들의 악의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주는 천사.

 제17 천사: 라우비즈. 어둠에 대한 두려움과 슬픔을 몰아내 주는 천사.

 제18 천사: 칼리엘. 뜻하지 않은 재난이 닥칠 때 신속하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는 천사.

 제20 천사: 파할리알. 성직자와 마법사를 보호해 주는 천사.

 제23 천사: 멜라헬. 사고 없이 여행할 수 있게 해 주는 천사.

 제26 천사: 하아이아. 송사에서 이기게 해주는 천사.

 제38 천사: 하하미아. 보물을 찾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42 천사: 미가엘. 정치인과 통치자들을 보호해 주는 천사.

 제50 천사: 다니엘. 선택 가능한 몇 가지를 앞에 두고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천사.

 제53 천사: 나나엘. 과학자들을 도와주는 천사.

 제59 천사: 하라엘. 자녀들이 부모를 더욱 공경하도록 타이르는 천사.

 제69 천사: 로켈. 잃어버린 물건이나 물건을 훔쳐 간 사람들을 찾도록 도와주는 천사.

 제72 천사: 무미아. 사업이 성공하고 사람들이 더 오래 살도록 도와주는 천사.

 (주) 속담에 (자기가 기리는 성인들에게 부탁하기보다는 하느님께 부탁하는 편이 낫다)라는 말이 있지만, 구체적인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총괄적인 성격을 지닌 신에게 도움을 청하기보다 그 문제를 전문 분야로 삼고 있는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17. 천사들과 함께

 스테파니아가 평소의 활기찬 모습을 되찾고 어떤 천사에게 다가가 말을 건다. 남자 같기도 하고 여자 같기도 한 천사다. 그 천사는 좀 특이한 데가 있다. 다른 천사들이 그에게 말을 걸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역시 동료들과 어울리기를 원치 않는 것 같다.

 "천사님은 이름이 뭐예요?"

 다른 천사들이 그랬듯이 그도 우리를 보고 그다지 놀라지 않는다. 그가 기꺼이 대답한다.

 "사마엘이라고 해요. 하지만, 여러분 세계에서는 흔히 사탄, 타락한 천사, 하이데스, 헤르마프로디토스 따위로 부를 거예요. 또 수메리아 사람들은 네르갈, 이집트 사람들은 세트라고 불러요. 그것 말고도 다른 이름이 많이 있는데, 유감스럽게도 다 기억할 수가 없네요"

 그는 이상한 빛을 발하고 있다. 검은빛이라고나 할까... 전등을 까만 통에 넣었을 때 나오는, 흰옷에 강렬한 색조를 주는 빛, 그런 것과 비슷하다.

 스테파니아는 사탄이라는 말에 놀라서 하마터면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당신이 여기 천국에 있어도 되는 건가요?"

 그가 큰소리를 내며 웃는다.

 "물론이지요. 천국과 지옥은 같은 거예요. 저 아래, 여러분의 세계에서 나를 받아주듯이 이곳에서도 나를 받아주지요. 그뿐이 아니에요. 나는 그 어떤 천사보다도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어요. 나는 무지한 사람들을 유혹해서 그들의 나쁜 성향을 부추겨요. 그럼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의 무지를 깨닫게 해 주지요. 물론 이승 사람들이 나에 대해 나쁜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무지한 사람들을 개선시키려면 자기들이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이는 방법밖에 없어요. 내 덕분에 온갖 잘못을 범하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 속담에 바닥에 닿은 다음에야 다시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이 있잖아요? 말하자면 나는 사람들이 바닥에 닿았다가 다시 올라갈 수 있도록 도와 주는 거지요."

 그의 표정에 (사탄 같은)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사실 나는 선을 위해 일하는 것이지만 그 방식이 너무 독특해서 여러분이 이해하기 어려울지도 몰라요."

 스테파니아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나는 그 천사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선과 악은 별개의 것이 아니다. 큰 전쟁일수록 명분은 언제나 더 그럴싸하지 않던가? 선의 이름을 내걸고 악을 행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거꾸로 악에서 선이 나올 수도 있다. 사마엘 천사가 인용한 속담이 바로 그 점을 일깨우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사마엘 천사가 우리 곁을 떠날 즈음에 다른 천사가 나타난다. 그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이자 아니엘이자 메르쿠리우스라고 자기를 소개한다. 그는 우리의 이해를 도우러 온 것 같다.

 "악마는 천사의 그림자일 뿐이지요."

 "천사님이 성 베드로세요? 천국의 열쇠를 관리하신다는 바로 그 성 베드로이신가요?"

 스테파니아가 어린 시절 이탈리아에서 배운 교리 문답을 기억해 재고 소리친다.

 "그래요. 예전에 여기에 왔던 깨달은 이들이 나를 그렇게 불렀어요. 이곳에 새고 들어온 사람들에게 이곳에 관해 알려 주는 일을 나 혼자 맡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벌써 생 제롬 천사로부터 몇 가지 설명을 들었어요."

 "그래요? 여러분은 참 운이 좋았군요."

 "그런데, (천국의 열쇠)가 무엇을 뜻하는 건가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가 상냥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물질적인 의미로 말하면 열쇠 같은 것은 없어요. 그건 하나의 비유예요. 말하자면 내가 사람들에게 천국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준다는 것이지요."

 그 얘기를 끝내고 그는 화제를 일흔두 명의 주요 천사들에 관한 것으로 돌린다.

 "천사들이 모두 그렇듯이, 주요 천사들도 저마다 자기의 어두운 이면을 지니고 있어요. 따라서 일흔둘의 주요 악마가 있는 셈이지요. 그들은 모두 자기의 궁전을 가지고 있어요. 여기에서는 그것을 영역이라고 불러요. 그러니까 통틀어 144개의 영역이 있는 것이지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는 사람들에게 뭔5가 가르쳐 주기를 좋아하는 천사인 모양이다. 그가 다른 자물쇠를 열어 우리에게 보여 준다.

 "대천사 가브리엘은 바로 마왕의 그림자이고, 마왕 역시 대천사 가브리엘의 그림자예요. 또 악마 베엘제불, 샤아탄, 요그 소토트에 해당하는 대천사들도 있어요. 저기 있는 저 천사 보세요. 인상적이지 않아요?"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온몸에 가는 줄이 그어진 검은 천사가 하나 있다. 그가 강물처럼 흘러가는 영혼의 행렬 속으로 재빨리 스며든다. 그가 다가가자 영혼들은 찬바람을 맞은 것처럼 오들거린다.

 "이곳에 올라오지 않고도 천사들을 만날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물론이지요.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수호천사와 악마가 딸려 있다는 말을 들어 보았을 거예요... 그 말은 사실이에요."

 수호천사와 악마에 대한 민간의 신앙이 그저 순진한 상상의 산물인 줄만 알았더니, 실제로 그런 것이 있다지 않는가!

 깨달은 이들이 일찍이 자기들의 지식을 아주 이해하기 쉬운 형태로 전달하였음에도, 사람들은 대뜸 그것을 단순한 미신으로 치부하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이 태어나는 날, 각자의 수호천사와 악마가 결정돼요. 나중에 영혼이 이곳에 올라와 대천사들로부터 심판을 받을 때, 수호천사와 악마가 그 영혼 편에 서서 중재를 하지요. 천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방법은 아주 간단해요. 기도를 하거나 어떤 천사의 활동 영역과 관련된 감정을 발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어떤 파동이 천사에게 전달되고 천사는 자기가 개입할 여지가 있는지를 판단하러 내려가지요. 우리 천사들은 각자 정해 진 영역 안에서만 활동해요. 우리가 맡고 있는 감정의 영역도 각자 다르지요. 분노를 맡은 천사도 있고, 평화나 조화를 맡은 천사도 있어요. 자기 영역을 임의대로 바꿀 수는 없어요. 예를 들어 나는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만을 도와 줄 수 있어요. 나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로서 이해의 열쇠를 주고 의혹을 풀어 주는 천사이니까요."

 요컨대,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은 간단한 일이고, 천사들의 역할 분담은 아주 체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기도하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천사가 개입할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비로소 기도의 위력과 유용성을 깨달았다. 기도랑 아주 구체적으로 천사의 개입을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그 대가는 치뤄야 돼요."

 천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나는 뜻밖의 말에 영혼의 눈썹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니, 찬사들의 도움이 공짜가 아니란 말인가요? 그럼 천사들에게 어떻게 대가를 지불하지요?"

 "카르마, 즉 업(업 업)으로 보상하지요. 일종의 거래예요. 드문 일이긴 하지만,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도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러려면 내면의 순수성을 지니고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다면 어떤 소원이 이루어진 대가로 자기 능력의 일부를 포기해야 돼요."

 천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일종의 거래란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나오는 이야기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힘을 얻기 위해서는 자기 영혼을 팔아야 한다. 나는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가 알려 준 것을 내 영혼 속에 다음과 같이 기록해 두었다.

 1. 언제나 천사들을 존중하고 조금이라도 그들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말 것.

 2. 천사의 도움을 청할 때는 언제나 계통을 밟아서 할 것: 총괄적인 역할을 맡은 천사에게 도움을 청해서 그가 전문적인 역할을 맡은 하급 천사에게 일을 위임할 수 있게 할 것.

 3. 성인처럼 행동하지 않는 이상, 각각의 소원은 힘의 상실, 업의 훼손, 인격의 손상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4. 천사뿐만 아니라 악마에게도 소원을 빌 수 있다. 그 효과는 동일하나, 치러야 할 대가는 다르다. 따라서 누구에게 앙갚음을 하려는 경우라면, 분노의 악마보다는 정의의 천사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5. 한 천사에게는 한 번에 한 가지 일만 부탁할 수 있다. 한 천사는 주어진 기간에 한 가지 임무만 감당할 수 있다.

 6. 소원이 성취되면, (나는 이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라고 생각함으로써 천사를 보내 주어야 한다. 천사는 지상에 너무 오래 머물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자기 궁전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지상의 질서를 깨뜨릴 염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자기 궁전을 너무 오래 비워 두면 비슷한 영역을 가진 하급 천사들이 그를 대신하여 부정적인 힘을 행사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미움은 하급 천사들을 움직이고, 사랑은 상급 천사들을 움직인다. 하얀 천사들은 선을 위하여 활동하고 검은 천사들은 악을 위해 활동한다. 어쨌든 천사들은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

 듣고 보니, 삶이라는 게 별 게 아니다 싶다. 삶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가 원하는 것을 언제나 얻을 수 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천사들은 절실한 욕망과 치기 어린 변덕을 구별할 줄 안다. 천사들은 절실한 소원만을 들어주는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고 세상의 문제가 다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어느 시대에나 깨달은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깨달음을 신비의 너울로 감추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가 퍼뜩 놀라는 시늉을 한다. 지상에서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 달라고 기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는 작별 인사를 하고 우리 곁을 떠나갔다.

 우리는 생명 줄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그곳을 계속 둘러보기로 했다.

 육익(여섯 육, 날개 익) 천사들이 날갯짓을 하고 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작은 벌새 같다. 여섯 날개가 잠자리 날개처럼 얇고 곱다. 내가 그중 하나에게 말을 걸었다.

 "천사님은 왜 날개가 여섯인가요?"

 작은 천사가 경멸하듯 나를 아래위로 훑어본다.

 "성서도 안 보았나 보죠? 두 날개는 얼굴을 덮는 데 쓰고, 다른 두 날개는 성기를 가리는 데 쓰며, 나머지 두 날개는 나는 데 사용하지요."

 그 작은 천사가 나의 무지를 조롱하고 있는데도, 나는 내친김에 다른 질문을 하나 더 하고 싶어졌다. 아까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와 이야기하는 동안, 물어보고 싶어서 입술이 간질간질했으면서도, 천국의 열쇠를 관리하는 그는 오로지 자기가 알려 주고 싶은 것만 알려준다는 것을 눈치채고 감히 엄두를 못 냈던 질문이다.

 "그런데 천사님, 우리는 이곳에 들어와서 영혼들도 보고, 천사와 대천사와 악마도 만났어요. 그런데 하느님은 어디 계신 건가요? 천사들 위에 하느님이 계시지 않나요?"

 그는 빛의 산 쪽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어요? 여기에서는 하느님을 본 적이 없어요. 하지만 어떤 천사들은 하느님이 존재한다고 믿고 있어요. 나는 불가지론자예요. 당신도 만나게 되겠지만 나는 성 토마와 비슷해요. 나는 내가 본 것만을 믿지요."

 작은 천사가 생긋 웃는다. 천사 같은 웃음이라는 게 저런 것이지 싶다.

 나는 그처럼 빛의 산 쪽을 바라보면서 질문을 계속했다.

 "그럼 저 뒤로도 천국의 터널이 계속되고 있나요?"

 그의 대답에 장난기가 섞여 있다.

 "글쎄요? 그럴지도 모르고 안 그럴지도 몰라요. 저 뒤에 하느님이 계실지도 모르지요. 확실한 건, 내 자리는 여기고 당신 자리는 저 아래 세상이라는 거지요."

 그는 날개를 저으면서 가버렸다.

 로즈는 빛의 산 뒤에 가서 블랙홀을 보완하는 화이트홀이 존재하는지를 알아보자고 우리를 떼민다. 그러나 우리 생명 줄은 늘어날 대로 늘어나서 더 이상 나아가는 것은 무리다. 게다가 스테파니아는 우리 육체로 되도록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한다. 육체를 떠나 온 뒤로 시간이 꽤 흘렀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으면 우리 육신 곳곳에 회저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아쉬움을 남긴 채, 우리는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을 향해 서둘러 출발했다.

 

 218. 아라비아 신화

 무덤에 들어가면 죽은 이는 이내 문카르와 나키르 두 천사에게 심판을 받는다. 두 천사가 어떻게 결정하느냐에 따라, 무덤은 예비 지옥이 되기도 하고 예비 연옥이나 예비 천당이 되기도 한다. 심판이 끝난 뒤에 천사들은 영벌을 받은 죄인들을 구제하기 위해 신을 상대로 중재에 나서기도 한다.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그들 덕분에 지옥에서 나와 "초롬(작은 오이)"과 비슷해진다. 그런 다음 세 개의 강에서 잇달아 목욕을 함으로써 순결함을 되찾는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19. 첫 번째 후유증

 지상으로 돌아오자마자, 라울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그늘진 눈에 빛이 번득이고 손은 두 마리 독거미처럼 몸통 주위에서 부들거렸다.

 "무슨 일이야? 자네 아버님을 뵌 거야?"

 "아니. 선친을 뵌 게 아니라 어떤 천사에게서 그분 얘기를 들었어."

 "성 베드로 헤르메스 말인가?"

 "아니. 그는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하지만, 사탄은 기꺼이 내 기도를 들어주었네."

 라울은 아주 오래 전부터 아버지의 진실을 알고 싶어 했다. 그 욕구가 아주 강렬했기 때문에 틀림없이 그의 기도는 강한 파동으로 천사들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검은 천사만이 그에게 비밀을 알려 줄 수 있었던 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버지의 진실이 그토록 끔찍한 것이었을까? 라울이 이야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검은 천사의 이야기는 이러했다.

 라울의 부모인 라조르박 부부는 말년에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은 아내를 완전히 저버리고 오로지 "죽음에 관한 한 연구"라는 논문을 작성하는 데만 몰두했다. 그의 연구가 진척되면 될수록 그의 아내는 그에게서 멀어져 갔다. 급기야 라조르박 부인은 필립이라는 이름을 가진 샛서방을 두게까지 되었다.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라울의 아버지는 어느 날 두 남녀가 뜨겁게 사랑을 나누는 장면을 목격했다. 격분한 라조르박 씨는 아내를 나무라면서 이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라조르박 부인은 그 으름장에 눈도 끔쩍하지 않고 도리어 이혼을 할테면 하자고 맞섰다. 남편과 헤어지게 되면 그의 수입으로 먹고살 수는 없겠지만, 별거 수당이 나오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을 것이고 라울도 자기가 키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였다.

 바로 그날 저녁에 프랑시스 라조르박은 목을 매달아 죽었다.

 라울이 보기에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타살이었다. 어머니가 간통 행위를 저질러서 심성이 여린 아버지를 극단적인 상황에 빠뜨린 것이다. 그러고서도 어머니는 태연하게 아버지 재산을 상속받고 마음껏 샛서방과 놀아났던 것이다.

 아무도 그 기만행위를 눈치채지 못했다. 죽음에 관한 연구에 몰두해 있던 철학 선생이 피안의 세계를 더욱 자세히 알기 위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그럴듯했다. 라울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사탄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는 끝내 진실을 몰랐을 것이다.

 진실은 그 어떤 무기보다 무섭다. 검은 천사는 사건의 세세한 실황과 동기를 거리낌없이 폭로했다. 어떻게 보면 그것은 천국에서 이루어진 최초의 사건 수사였다. 영계 탐사는 여러 분야에 걸쳐 많은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었다.

 펜트하우스에서 우리는 아망딘이 만들어 준 칵테일을 마시면서 라울을 진정시키려고 애썼다. 우리가 아무리 간곡하게 타일러도 그는 도리어 역정만 냈다. 우리는 다 지나간 일이니 너그럽게 이해하자고 거듭 말했고, 고인의 안식을 방해하지 말고 산 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살게 내버려 두자며 그를 달랬다.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라울의 분노는 더욱 격렬해 지는 듯했다.

 "그 여자가 그분을 죽였어. 그 여자가 내 아버지를 죽인 거란 말일세."

 라울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소리쳤다.

 "아니야. 그분은 자살하신 거야. 그분이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떠나셨는지 아무도 모르는 거야. 자네도 그건 알 수 없어."

 "나는 몰라도 사탄은 알아. 아버지는 어머니를 사랑하셨어. 그 여자가 아버지를 배신한 거야. 그게 다야."

 "사탄의 몫은 오로지 무지한 자들을 무지한 행동 속으로 몰아넣는 데 있어."

 나는 설득해 보려고 애썼다. 그러나 라울은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그는 분별력을 잃고 있었다. 어머니에 대한 미칠 듯한 분노 때문에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뒤틀리고 있었다.

 그는 결국 분노를 견디지 못하고 벌떡 일어나 의자와 술잔을 뒤집어엎고 타나토드롬을 뛰쳐나갔다.

 나는 라울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를 짐작하고, 황급히 그의 어머니 전화번호를 찾았다.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라울은 이제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믿고 있어요. 그가 지금 아버지 대신 앙갚음을 하겠다고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

 라울의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 애가 어쩌다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하지만, 내가 결백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게야."

 그렇게 말하면서도 여인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옷가지와 몇 가지 소지품을 재빨리 가방에 챙겨 넣고, 라울의 어머니는 부랴부랴 집을 나섰다. 라울이 증오심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어머니 집의 문을 박차고 들어갔을 때, 어머니는 이미 그곳에 없었다.

 라울은 형편없는 몰골로 돌아왔다. 어머니를 찾지 못하자 그는 당시 어머니 샛서방이던 그 필립이라는 작자의 집으로 달려갔던 모양이다. 그는 다짜고짜 그에게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 사람은 필립이 아니라 그보다 덩치가 훨씬 더 좋은 다른 사람이었다. 졸지에 공격을 받은 그 애먼 사람은 홧김에 라울을 카펫 바닥에 눕혀 버렸다. 라울은 어처구니없는 웃음거리가 되고 말았다. 유명한 타나토노트가 성난 십대처럼 발길질을 하고 모든 걸 때려 부수려고 날뛰었으니!

 진실은 때로 모르는 편이 낫다는 것을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라울의 아버지에 관한 진실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편이 나았다. 성 베드로이자 헤르메스가 침묵을 지킨 이유를 알 만했다. 프레디도 "이미 진리를 찾아낸 사람은 바보이고, 진리를 찾고 있는 사람은 현자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 않은가?

 우리에게로 돌아오자 라울은 분노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어머니를 욕하는 불상놈이라고 해도 좋네. 하지만 그 여잔 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여자야. 난 용서할 수가 없어."

 라울의 아내 스테파니아가 라울의 피멍든 곳에 젖은 수건을 갖다 대면서 화를 냈다.

 "도대체 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어머니를 심판하려 드는 거예요? 따지고 보면 당신 아버님에게도 잘못이 있어요. 아내를 저버리고 오로지 책하고만 씨름하셨잖아요. 당신도 그분의 보살핌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나한테 고백한 적이 있어요. 당신을 키워 주신 것은 아버님이 아니라 어머님이셨어요."

 그러나 라울의 심리 상태는 그렇게 냉정하게 사리를 따질 형편이 못 되었다.

 "아버지는 철학자셨어. 오로지 학문에 헌신하신 거지. 그분은 죽음에 관한 연구에 길을 여셨어. 그런데 어머니가 그분을 죽인 거야!"

 라울이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다.

 로즈는 라울의 뜨거운 이마에 손을 대보고 나서, 다정한 목소리로 가만가만 말했다.

 "세상일이 그리 간단하진 않아요. 어떻게 보면, 라울은 어머니께 감사해야 할지도 몰라요. 아버지를 자살하게 만듦으로써 어머니는 라울에게 알고자 하는 욕구와 그것을 채우려는 강한 의지를 갖게 해주셨어요. 어머니 덕분에 라울은 생물학 공부를 하게 되었고, 마르모트의 동면을 연구하게 되었어요. 그럼으로써 영계 탐사의 개척자가 되었고 마침내 영계를 발견했어요."

 "그래도 진실은 진실이에요."

 라울이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얘기가 위안이 될지 모르겠지만, 나중에 영계에서 어머니가 심판을 받게 되신다는 점을 생각하세요. 다른 영혼들처럼 어머니도 심판을 받을 거예요. 천사들은 아버지의 증언을 비롯해서 그 사건의 모든 요소들을 고려할 거예요. 그때 비로소 정의가 실현되는 거지요. 이승에서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오만한 생각이에요. 이승의 정의는 환상일 뿐이지요."

 "그래, 라울. 천사들과 운명을 믿게. 어머니가 벌을 받아야 한다면 영계에서 당신 죄에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될 거야."

 나는 아내를 거들었다.

 "천사들은 어쩌면 라울의 어머니를 두꺼비로 다시 태어나게 만들지도 몰라요."

 아망딘은 라울을 위로하려고 엉뚱한 생각을 해냈다.

 라울은 아망딘이 갖다 준 코냑 한 잔을 단숨에 털어 넣고 한 잔을 더 달라고 했다.

 "두꺼비 중에는 행복한 놈들도 있을 거요. 나는 그 여자가 차라리 발뒤꿈치로 으깨어 버릴 수 있는 바퀴벌레로 환생하기를 원해요."

 라울은 이성을 잃고 있었다. 나도 아망딘에게 술 한 잔을 더 달라고 부탁했다.

 "여보게, 라울. 자네, 정신분석을 한번 받아 보는 게 좋을 것 같네. 자넨 준비가 덜 된 채로 사탄의 이야기를 들었어."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탄은 어디까지나 악의 천사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아망딘이 새삼스럽게 라울을 일깨웠다.

 "자네 생각나나? 우리 둘이서 사탄 숭배자들을 물리쳤던 일 말일세. 지금 자네는 사소한 개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사탄의 힘을 빌리고 있는 거야. 자넨 파우스트의 축소판일 뿐이야."

 분노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그의 모습이 갑자기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파락호처럼 술에 취해 있는 그 가련한 사내를 호되게 꾸짖어 주고 싶어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봐! 정신 차려! 자네가 이러면 우리 타나토드롬은 일이 안 돼. 자네 어머닌 그냥 그대로 사시게 내버려 두게. 계속 이렇게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거야?"

 라울이 갑자기 기분 나쁜 웃음을 터뜨렸다.

 "뭐든지 다 아는 것처럼 떠드는 자넨 뭐야? 자네가 뭔데 나한테 설교를 하는 거야? 이봐, 미카엘. 자네 사정은 뭐 나보다 나은 줄 알아? 천만의 말씀. 난 자네에 대해서도 많은 걸 알아냈지."

 나는 그의 말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말도 안 돼. 사탄이 자네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를 털어놓은 것은 자네가 그것을 진심으로 원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사탄이 무엇 하러 나에 관한 얘기를 자네에게 들려주겠나?"

 "이봐, 이 불쌍한 친구야... 내가 파동을 아주 강하게 내보냈더니 사탄이 나에게 자네에 관한 두 가지 진실을 가르쳐 주더군."

 나는 그가 말하는 진실이라는 것들이 나에게 고통을 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가장 친한 친구가 내 약점을 가장 잘 아는 법이다. 나는 "오냐, 살무사야, 네 독을 마음껏 뱉아 보아라!" 하고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두려움이 그 마음을 억눌렀다. 그가 지껄이는 동안에 나는 귀를 막고 듣지 않았다. 세 여인의 안색을 보고 나는 라울의 입에서 심각한 소리가 흘러 나왔음을 알았다. 로즈가 특히 큰 충격을 받은 듯 했다.

 내가 귀에서 손을 떼기가 무섭게 라울이 밉살스럽게 빈정거렸다.

 "제대로 못 들었지? 다시 말해 줄까?"

 "나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아!"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내가 미처 다시 귀를 막을 겨를도 없이 라울이 부르짖었다.

 "자네 부모는 애를 못 낳는 분들이었어. 자네와 콩라드는 양자야! 이게 첫 번째 진실이야."

 나는 트럭에 받힌 느낌이 들었다. 아까부터 나를 추격해 오던 트럭이 드디어 나를 치어 버린 것이다. 트럭이 나를 짓이겨 놓고 지나갔다.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내 과거는 더 이상 내 과거가 아니었다. 내 가족은 결코 내 가족이 아니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내 아버지 내 어머니가 아니었고, 형도 내 형이 아니었다. 게다가 아글라에 할머니까지도.

 라울은 득의에 찬 얼굴로 나를 노려보았다. "어디 맛 좀 봐라. 이번엔 네가 고통을 받을 차례다!" 하는 잔혹한 표정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두 번째 미사일을 발사하려 하고 있었다.

 "두 번째 진실!"

 트럭 한 대가 나를 뭉개고 지나간 것만도 끔찍한데, 밖으로 터져 나와 피투성이가 된 내장 위로 또 다른 트럭이 지나가게 내버려 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서 내 고막을 눌렀다. 알지 말자. 어떠한 일이 있어도 알지 말자. 더 이상은 안 돼. 제발, 첫 번째 진실이나 제대로 참아 낼 수 있게 해줘. 그러나 라울은 기어이 두 번째 진실을 입에 올린 모양이었다. 아망딘과 스테파니아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뚜렷했다. 아내의 낭패감이 특히 심해 보였다. 나는 화를 참지 못하고 나의 가장 친한 친구였던 자의 턱에 주먹을 날렸다.

 라울은 얼굴을 살짝 찡그리면서 밉살스럽게도 몹시 기뻐하는 표정을 드러냈다.

 "고맙네. 그러잖아도 실컷 두드려 맞고 싶던 참이었네. 특히 내 가장 친한 친구한테서 말일세."

 그를 꼼짝 못 하게 할 만한 어떤 말로 대꾸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재치 있는 말로 응수할 겨를이 없었다. 나는 판결문을 읽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무 의미가 없는 말을 뱉아 냈다.

 "사돈 남말 하시네."

 

 220. 유대교 신화

 지금은 볼 수 없는 세계를 그들은 보게 될 것이고, 지금은 그들에게 감추어진 시간을 보게 될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그들은 늙지 않을 것이다. 그 세계의 꼭대기에 삶으로써 천사와 같아지고 별들과 비슷해 질 것이며, 자기들이 원하는 온갖 모습으로 바뀌어 아름답고 우아하고 영광의 광채로 빛날 것이다. 그들 앞에 천국의 공간이 펼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또 옥좌 아래의 선택받은 사람들과 모든 천사들의 빼어나게 아름다운 모습을 보게 될 것이다. 선택받은 사람들과 천사들이 지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내 명령에 따라 그들이 출연할 날을 기다리면서 각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 바룩 51:8~11

  프랑시르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21. 경찰 기록

 관계 부서에 보내는 보고

 경솔한 천사들이 인간들에게 몇 가지 비밀을 누설했음. 유감스런 결과가 우려됨. 이 위험한 모험을 끝장내기 위해 개입이 불가피함.

 

 관계 부서의 회신

 하찮은 일에 화를 낼 필요가 없음. 우리는 상황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음. 모든 일이 여전히 아주 잘 진행되고 있음. 이번 일도 예전과 다르게 대처할 이유가 전혀 없음.

 

 222. 역사 교과서

 진실과 맞닥뜨리기 위해서는 아주 강해야 한다. 진실을 알고 나서도 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얼마나 될까? 영계 탐사의 역효과가 알려지자, 교육부는 재빨리 진실 대처법이라는 과목을 개설했다. 처음엔 상급 학년에서만 그 과목을 가르쳤으나 곧 전학년으로 확대되었다. 진실 대처법은 최근에 대학 입학 시험 과목에 포함되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223. 고아

 우리 침실로 돌아오기가 무섭게 로즈와 나는 살을 섞었다. 아내 쪽에서 먼저 나에게 달려들었다. 아내는 하루 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고 속삭였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나 역시 오래전부터 아내가 아이를 낳아 주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었다.

 그때까지 우리 부부가 키워 온 것은 동물과 식물뿐이었다. 우리는 식물 재배와 동물 사육을 차츰차츰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왔다. 처음엔 단조로운 녹색식물을 키우다가, 먹을 수 없는 열매나마 맺을 수 있는 오렌지 나무를 들여놓았고, 다음엔 금붕어를 키웠다. 그 금붕어의 이름은 거창하게도 구약성서 욥기에 나오는 바다 괴물 레비아단이었는데, 어느 날 그놈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배를 위로 드러낸 채 죽어 있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바다거북 주주를 키웠다. 그 녀석은 걸신들린 것처럼 끊임없이 구더기를 먹는 일에 몰두했다. 그 다음엔 기니피그였다. 우리는 그 녀석에게 부이부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그것은 그 녀석이 배고프다는 것을 알리 때 늘 (부이, 부이, 부이) 하는 소리를 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고양이 한 마리를 들여놓았는데, 그 고양이가 기니피그를 잡아먹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개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 개는 자나깨나 고양이를 괴롭힘으로써 기니피그의 원수를 갚았다.

 우리에게 아이가 생긴다는 것은 아주 반가운 일이었다. 고양이도 좋아라 할 게 틀림없었다. 자기 대신 아이가 개의 귀와 꼬리와 다리를 잡아당기고 눈덩이와 주둥이를 때려 줄 테니까 말이다. 아이들은 본래 평등한 관계를 회복시켜 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로즈는 과학자답게 달력을 보며 말했다.

 "날짜가 꼭 들어맞을 것 같은데요."

 "운이 좋으면 프레디의 환생이 될 아이를 잉태할 수도 있겠는걸."

 프레디는 일 년 안에 환생하기 위해 주황색계를 빠르게 통과할 거라고 말했었다. 따져 보니 그로부터 석 달이 흘러갔다. 좀 어렵기는 하겠지만, 운이 좋으면 프레디의 환생이 우리 아이로 태어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다.

 어쨌든 내 얘기를 듣고 로즈는 무척 기뻐했다. 프레디의 영혼이 깃들인 아이의 부모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또 한 분야에서 선구자가 되는 셈이었다. 아이에게 깃들일 영혼을 미리 선택한다는 생각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겠는가! 비유하자면, 꽃을 먼저 준비해 놓고 그것을 꽂을 꽃병을 만드는 일과 비슷했다.

 "시작합시다."

 나는 힘이 솟는 것을 느끼며 말했다.

 우리는 기분 좋게 포옹을 했다. 그런데 아내의 머리를 침대의 긴 베개 위에 내려놓다가 나는 문득 아내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아내에게 물었다.

 "왜 그래, 갑자기. 무슨 일이 있는 거요?"

 아내는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라울이 두 번째 진실을 들먹이며 당신을 또 괴롭히려 하면, 계속 귀를 막고 듣지 말아요. 알았죠?"

 "그 친구 다시는 안 그럴거야. 어머니 때문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고 제정신이 아니었어. 나한테 한 행동 때문에 지금쯤 무척 마음 아파하고 있을거야. 나는 그 친구를 이해해."

 아내가 라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하지만 아무 상관도 없는 당신에게 화풀이를 한 건 너무 심했어요. 나는 도대체 그 사람이 무슨 심보로 사탄이 가르쳐 준 비밀을 누설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건 그렇고, 당신, 주먹 한번 세던데요. 난 내 남편이 그렇게 강한 주먹을 가진 사람인 줄 미처 몰랐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아내는 다시 내 품으로 파고들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겠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사람을 때려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오. 그래서 결국 가장 친한 친구를 잃게 되었지만..."

 내가 시무룩해지자 아내가 확신에 찬 어조로 말했다.

 "아니에요. 라울은 당신에게 전혀 나쁜 감정이 없어요. 우리 기욤 삼촌이 늘 하시던 말씀이 있어요. 들어볼래요?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화를 낼 때, 그는 사실, 당신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차례 더 사랑을 나누었다. 엉뚱하게 머릿속에 떠오르곤 하던, (그런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쳐들려고 했다. 나는 재빨리 잡생각을 털어 버리고 더욱 유쾌한 기분을 느끼려고 애썼다.

 로즈는 잠옷을 입은 매력적인 모습으로 발코니에 기대어 별이 총총한 밤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별들이 저마다 자기를 보아 달라고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로즈가 시름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데, 우리가 바로 선무당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계의 마지막 천계를 발견하고 난 뒤에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는 점을 생각해 봐요."

 "그렇다고 설마 우리 탐사를 금지하고 싶어 하는 몽매주의자들을 지지하려는 건 아니겠지요?"

 "물론, 그런 건 아니에요. 다만 사악한 폐단을 먹기 위해 어떤 대책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라울 사건을 하나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해요. 생각해 봐요. 아무나 천국에 가서 천사를 만나고 아직 몰라도 될 진실들을 알아 버린다면 세상이 어떻게 되겠어요?"

 "다들 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요. 라울이 내가 고아였다는 사실을 알려 주었지만, 그렇다고 뭐 달라진 게 없잖소? 오히려 나는 이제 나를 양자로 맞아서 키워 주신 양부모님께 더욱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소."

 나는 나 자신이 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임을 확인하고 싶어서, 라울이 말한 두 번째 진실이 무어냐고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는 대답하기를 거절했다.

 "영원히 그것을 알려고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약속하죠?"

 아내는 두 번째 진실이 첫 번째 것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주리라고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아내의 눈빛에서 그것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단 한 순간도 내 부모임을 의심한 적이 없는 이들이 내 진짜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아는 것보다 더 끔찍한 일이 세상에 또 있으랴 싶었다.

 우리는 서로의 팔을 벤 채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라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세 여인, 로즈, 아망딘, 스테파니아와 함께 있는데도, 타노토드롬이 텅 빈 것만 같았다.

 아내는 펜트하우스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포스터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은하를 그린 포스터인데, 은하 한가운데에는 바닥 없는 우물 같은 천국이 그려져 있었다. 나는 그 그림을 볼 때마다 새로운 감회를 느끼곤 했다. 그 동안 우리가 바친 모든 노력의 결말이 그 우물이었다. 모든 에너지, 모든 빛, 모든 사상, 모든 영혼이 거기에서 나와 거기로 돌아간다. 그곳은 쓰레기통이자 자궁이다. 우리 삶의 참뜻이 거기에 있다.

 천국.

 프레디가 거기에 있다. 프레디뿐만 아니라 초창기의 우리 타노토노트들이 모두 거기에 있다. 마르셀랭, 위그, 펠릭스, 플뢰리 메로지의 수감자들.

 땅거미가 질 무렵, 나는 가끔 우리 타나토드롬 꼭대기에 설치된 대형 안테나의 수신기 앞에 앉아서, 모니터 화면을 통해 비둘기 떼처럼 날아오르는 영혼들을 바라보곤 했다. 친애하는 동시대인들이여, 잘들 가시게.

 죽은 이의 영혼 하나하나가 푸른 점으로 나타났다. 다른 영혼들보다 유난히 빨리 날아가는 영혼들이 보였다. 이승을 떠나고 싶은 욕구가 남보다 더 강한 모양이었다. 아주 드문 일이지만, 지상으로 되돌아오는 영혼을 보게 될 때도 있었다. 의술의 힘으로 소생한 사람이거나, 혼자 떠났다가 돌아오는 타나토노트,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차마 떠날 수 없었던 연인, 유령의 모습으로 앙갚음을 하러 오는 피살자, 명상중인 수도사, 아니면 자기의 도움을 청한 사람을 몰래 찾아가는 천사였을 것이다.

 라울은 여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그가 어머니를 찾아 지상의 어딘가를 헤매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는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찾는데 지치고, 우리와 싸운 것 때문에 마음이 아파서, 그는 이 술집 저 술집을 전전하고 있었다. 그는 술을 마시는 것이 경우에 따라서는 자기의 비행 기술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너스레를 떨며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이 깨고 나서 라울은 어머니에 대한 자기의 생각이 다라지고 있음을 문득 깨달았다. 그는 타나토드롬으로 돌아와 우리 아파트를 찾아왔다.

 "미카엘, 미안하네. 내가 자네에게 정말 못할 짓을 했네. 용서해 주게. 다시는 진실 따위를 들먹이면서 자네를 괴롭히지 않겠네."

 그것은 요행히 내가 듣지 않은 두 번째 진실을 영원히 묻어 두겠다는 약속이었다.

 나는 그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약속을 고맙게 여겨야 하는지, 아쉬워해야 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기 삶을 송두리째 뒤집어엎을 수 있는 어떤 진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애써 그것을 외면하고 산다는 것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 나의 양어머니와 의형이 찾아왔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남이었다. 하지만 내 인생에서 그들은 친어머니, 친형보다 더 중요했다. 내 양부모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언제나 나를 친자식처럼 대해 주셨다. 그분들은 나를 사랑해 주셨고 비밀을 지켜 주셨다. 때로는 나를 꾸짖고 내게 욕설을 퍼부으셨지만, 그런 것은 오히려 친부모의 당연한 권리로 보였고, 그래서 나는 친자식임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그분들에게 대들 수 있었다. 결점이 많은 분이기는 했지만 그런 양아버지가 계셨기에 나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성마른 분일지언정 양어머니가 계셨기에 이성에 대한 무의식적인 사랑을 느낄 수 있었으며, 한심한 사람이지만 형이 있었기에 경쟁심을 느끼며 나를 발전시킬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없이 고맙게만 느껴졌다.

 나에게 선행을 베풀어 준 이들에게 감사할 줄 알고, 나에게 해를 입힌 자들의 손을 핥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참다운 정의가 아니겠는가. 언뜻 보기엔 쉬운 일 같지만, 우리는 종종 자신이 왜 그러는지조차 모르면서 어처구니없게도 거꾸로 행동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나는 어머니와 형을 힘껏 껴안았다. 식구들을 그렇게 다정하게 껴안아 보기는 그게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했다. 나를 헌신짝처럼 저버린 내 친부모를 저승에서 만나더라도 그들을 내 부모로 받아들이지 않겠노라고. 나는 그들이 나를 버린 이유- 물론 아주 그럴듯한 이유겠지만- 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그들의 얼굴조차 보고 싶지 않았다. 그들이 나를 저버렸으니 나도 그들을 저버릴 작정이었다. 나를 자식으로 받아들여 주신 이들을 언제까지고 내 어버이로 섬길 생각이었다.

 끊임없는 잔소리로 나를 달달 볶으시는 어머니, 멍청하기 짝이 없는 콩라드 형, 그이들만이 진짜 내 가족이었다. 라울은 그들이 내 진짜 가족이 아니라고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오히려 그들만이 진정한 내 가족임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다.

 친구를 선택할 수 있듯이, 우리는 가족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224. 기독교 신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우리가 전파하고 있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하니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만일 죽은 자가 부활하는 일이 없다면 그리스도께서도 다시 살아나셨을 리가 없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전한 것도 헛된 것이요 여러분의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만일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가장 가련한 사람일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다면 (내일이면 죽을 테니 먹고 마시자)해도 그만일 것입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 2~14, 19, 32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25. 순회 강연

 천사를 만난 사실을 비밀에 붙인 가운데, 우리는 가능하다면 천국의 가장 깊은 곳까지 철저하게 탐사하기 위하여 몇 차례의 비행을 더 했다.

 천사들은 다섯 타나토노트로 이루어진 우리 탐사대의 방문에 익숙해 져서, 우리를 (잠깐씩 다녀가는 깨달은이들)이라고 불렀다. 우리가 질문을 하면, 그들은 좋든 싫든 우리와의 대화를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의 하나로 여기고 대답에 응해 주었다.

 천사들을 조금 사귀어 보고 나서, 우리는 그들이 아주 친절하고 대단히 지혜롭다는 것을 알았다. 과연 그들은 보살 중의 보살, 라메드 바브 중의 라메드 바브, 성자 중의 성자였다.

 삶과 죽음의 비밀에 관한 우리의 지식이 차츰차츰 쌓여 갔지만, 당분간은 그것을 우리만 알고 있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뤼생데르 대통령이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대중에게 알리 때가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었고, 뤼생데르는 삼선을 노리고 있었다. 그의 임기를 결산해 보니, 정치, 경제, 외교 등 모든 분야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선거전에서 그가 던질 수 있는 승부수는 오직 하나, 영계 탐사뿐이었다. 그러나 천사와 천국에 대한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해야했다. 마이너스 성장률이나, 악화 일로를 치닫는 실업률, 국민들의 사기를 완전히 꺾어 버리는 무역 적자 따위를 들먹일 때보다 더 신중을 기해야 했다.

 뤼생데르는 우리 힘을 빌려서 다시 정복자의 이미지를 얻고 싶어 했다. 따지고 보면, 그러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쨌든 그는 영계 탐사라는, 대답하기 이를 데 없는 사업을 발족시킨 사람이니까 말이다.

 사람들은 물론 죽은 다음에 벌어질 일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할 것이다. 뤼생데르는 대중의 그런 마음을 선거전에 이용하려 하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란 없는 거요. 죽음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내게 표를 던지시오.) 뤼생데르의 선거 전략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로서는 뤼생데르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었다. 모흐 6 너머에 천사들이 사는 백색 천계가 있고, 죽은 이들은 거기에서 이승을 거쳐 가는 동안에 행한 모든 선행과 악행을 보고하게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밝히기에는 아직 때가 이르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나는 굳이 몰라도 되는 것을 알았을 때 그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천사들에게 궁금한 것을 물어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사람들은 감추어진 모든 진실을 알아내려고 기를 쓸 것 같았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을 지시하고, 마릴린 몬로의 살해를 획책한 자는 누구인가? 라바약84)의 손에 무기를 쥐어 준 자는 누구인가? 철가면(85)은 누구인가? 해적 (검은 수염)의 보물은 어디에 감추어져 있는가? 알고자 하는 아주 강렬한 욕구를 천사들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사람들은 그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바람직한 일일까?

 문제는 그뿐이 아니었다. 천사들에게 간절하게 도움을 청하기만 하면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알려질 때, 어떤 소동이 벌어질지는 짐작이 가고도 남았다. 사람들의 욕망은 가지각색이고, 욕망들끼리 상충하는 경우도 흔하다. 권력을 탐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유산을 노리는 사람들이 있고, 그저 평화만을 꿈꾸는 축이 있는가 하면, 오로지 살육만을 벼르고 있는 축도 있다. 지구인들의 그 많은 욕구를 어떻게 동시에 충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천사에게 소원을 비는 것만으로 모든 욕망이 실현되는 세상, 그런 세상이야말로 지옥이 아닐까? (우리는 욕망을 경계해야 한다. 그것이 실현되면 권태에 빠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프레디가 언젠가 그런 얘기를 했다. 내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 자신도 사악한 소원을 품었던 적이 여러 번 있다. 나는 걸핏하면 화를 내던 지리 선생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고, 한 무리의 여자들이 노예처럼 부릴 수 있기를 바란 적이 있으며, 산다는 게 고달픈 생각이 들어 죽기를 바랐던 적도 있다. 다행히 천사들은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세계를 지배하는 자가 되기를 바랐던 많은 군주들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용기를 내어 대통령에게 내 생각을 말했다.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천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누설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알려 주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사람들은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통령은 너그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그래, 그래. 자네 마음은 알겠네. 양자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자네가 충격을 받은 게로군. 자네 그것 때문에 일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건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모르고 있는 두 번째 진실이 유령처럼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대통령에게 나의 그런 강박 관념까지 털어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나는 그저 라울의 예로 내 얘기를 뒷받침하려 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라울과 그의 어머니를 생각해 보십시오."

 대통령은 그 문제를 아주 쉽게 일축해 버렸다.

 "라울에겐 휴식이 필요하네. 그 천구 술을 너무 많이 마셔. 나는 그에게 알콜 중독 치료를 받으라고 권했네. 몸이 괜찮아지는 대로 선거 운동을 도와주러 우리에게 올 걸세."

 "그는 그렇다 치고, 그의 어머니는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하는 겁니까?"

 "라울은 어머니를 용서했네."

 그 소식은 나를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그가 어머니를 용서하도록 설득하셨습니까?"

 대통령은 아주 흡족한 표정으로 손을 비비며 말했다.

 "천사들은 정말 능력이 있더군. 라울을 설득한 건 내가 아니라 스테파니아의 부탁을 받은 천사일세. 그 모든 문제를 일으킨 것은 검은 천사 사탄인데, 스테파니아는 그 검은 천사의 분신인 가브리엘 대천사에게 문제를 수습해 달라고 부탁했던 거지, 알겠나, 미카엘? 천사들을 믿어도 될 거야. 그들은 자신들이 일으킨 악을 선으로 탈바꿈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네."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게다가 무슨 자격으로 내가 국가 원수의 뜻을 거스를 수 있겠는가? 라울이라면 틀림없이 반대의 뜻을 표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스테파니아와 로즈와 아망딘은 최후의 비밀을 모든 사람들에게 털어놓는 일에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전체의 의사를 따랐다.

 그리하여 우리의 영계 탐사는 바야흐로 (흥행업)의 국면으로 접어들어 있었다.

 우리는 순회 강연을 시작했다. 전세게를 돌아다니며 우리는 천사, 대천사, 육익 천사, 검은 천사 등과 나눈 이야기를 전파하였다. 처음에는 스테파니아, 아망딘, 로즈, 나, 이렇게 넷이서 함께 다녔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오로지 아망딘만이 그런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처음엔 거의 말이 없었고, 그 뒤에도 늘 말을 아끼는 편이던 매력적인 간호사 아망딘이 돌연 탁월한 웅변가의 자질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가장 말이 없든 사람들이 기회가 주어지면 가장 훌륭한 웅변가로 변신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아망딘은 영계 탐사에 관한 자기의 열정을 전달할 줄 알았다. 프레디를 찾기 위해- 결국 못 찾기는 했지만-, 그리고 천사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천국에 올라가는 일이 더욱 빈번해졌고, 아망딘은 거기에서 자기가 보고 들은 것을 감동적으로 전달했다. 게다가 그녀가 남편을 잃은 지 얼마 안 된 과부라는 사실도 그녀의 이야기를 더욱 믿을 만한 것으로 보이게 했다. 남편의 죽음 때문에 죽음이라는 문제를 더욱 절실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여인이 거짓말을 하리라고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더구나 그녀의 남편은 영계 비행술의 최고 권위자가 아니었던가!

 아망딘의 강연은 그야말로 하나의 볼거리가 되었다. 합창단이 "카르미나 부라나86)" 서곡을 부르는 가운데, 그녀가 하얀 조명을 받으며 온통 검은 옷을 입은 차림으로 등장하곤 했다. 까마귀 몸을 가진 금발의 천사라고나 할까. 그녀의 모습은 내가 영계의 적색계를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그녀의 환영과 점점 닮아 갔다.

 어느 날 밤, 그녀가 강연을 끝냈을 때, 한 기자가 손을 들었다.

 "(영혼의 계량)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그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천국에서 그들이 우리의 선행과 악행에 대해 점수를 매긴다는 말인가요?"

 아망딘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삶이란 어떻게 보면 일종의 자격 시험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일정한 점수에 도달할 때까지 재수, 삼수를 계속해야 합니다.

 방청석이 술렁거렸다.

 그 기자가 계속 물고 늘어졌다.

 "그러면, 영혼이 윤회를 끝내기 위해서는 선악 평점을 몇 점이나 받아야 하나요."

 성 베드로가 설마 그런 것까지 가르쳐 주었으랴 싶었는데, 아망딘은 정확한 수치를 제시했다.

 "600점이오. 삶이라는 시험을 다시 치르지 않으려면 심판을 맡은 세 대천사의 채점 기준에 따라 600점을 받아야 합니다."

 장내가 웅성거렸다. 인생이 한낱 시험을 준비하는 교실에 지나지 않는단 말인가? 조금이라도 더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아둥바둥거려야 하는 게 인생이란 말인가?

 삶을 하나의 시험으로 여기는 그런 인생관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단순 명쾌하다는 장점은 있었다.

 "한 차례의 선행으로 단번에 600점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아망딘의 설명이 이어졌다.

 방청석의 누군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살아가면서 딱 한 번만 착한 일을 해도 구원을 받을 수 있겠구나!" 하지만 좋아하기엔 아직 일렀다. 아망딘이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나 마찬가지 방식으로 단 한 차례의 악행이 평생 쌓은 공덕을 일거에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어떤 천사가 저에게 귀띔해 준 바로는, 당장에는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는 행동 때문에 합격을 할 수도 있고 낙재를 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영혼의 무게를 다는 일은 아주 미묘한 작업이라서 심판을 맡은 대천사들은 아주 오랫동안 계산에 매달립니다. 사실 600점을 얻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죽은 이들 만 명 중에 한 명이 있을까 말까입니다. 그렇게 600점을 얻은 영혼은 환생에서 벗어나 순수한 정신이 되지만, 대부분의 영혼은 점수에 미달해서 환생을 하게 됩니다."

 다른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천국에는 동물들도 있습니까?"

 "네, 있습니다. 동물들이 현생을 훌륭하게 마치면 인간으로 환생합니다. 인간은 환생 사다리의 맨 꼭대기에 있습니다. 인간이 자유 의지를 가진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 얘기는, 우리가 인간이 되기 전에는 모두 동물이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까?"

 "물론입니다. 진화의 방향은 광물에서 식물, 식물에서 동물, 동물에서 사람, 사람에서 순수한 정신으로입니다. 생명은 그런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아망딘은 세계의 모든 비밀을 털어놓은 셈이었다. 그럼에도 질문은 계속 빗발쳤다.

 "환생이 거꾸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습니까?"

 "그러믄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하면, 이전의 삶의 형태로 전락합니다. 인간에서 동물이 되는 거지요. 그러나 그런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러면, 악행을 많이 하기는 했지만 동물의 단계로 되돌아갈 정도로 나쁘지는 않았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나요?"

 "그런 사람들은 사람으로 환생하기는 하지만, 그들이 새로 받는 삶은 아주 힘겨울 것입니다. 그 삶을 사는 동안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들의 가장 좋은 점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옥은 바로 여기 지상에 있습니다.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은 전쟁의 참화에 휩싸인 나라나 만성적인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에 다시 태어날 것입니다. 그들은 가난과 질병과 장애로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하지만 삶의 조건이 그렇게 비참할 때, 전생의 죄를 씻어 버릴 수 있는 기회는 훨씬 더 많습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더욱 장렬하게 자기를 바칠 수 있을 것입니다. 참담한 상황일수록 인간의 선의는 더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요."

 아망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예의 그 기자가 다시 손을 들었다.

 "서방 세계의 부유한 가장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전생에서 선행을 많이 했다는 얘깁니까?"

 아망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건 너무 도식적인 것 같군요. 서방의 부유한 가장에 태어난 사람이라도 지독하게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또 제3세계의 빈민굴에 사는 사람일지라도 따뜻한 인정과 연대 속에서 아주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자살률이 가장 높은 나라들은 소위 선진국이라는 우리 서방의 나라들이 아닌가요?"

 청중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머쓱해 진 얼굴로 출구를 향해 걸어갔다.

 

226. 기독교 신화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을 몸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약한 자로 묻히지만 강한 자로 다시 살아납니다. 육체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 15:42--44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27. 배꼽

 라울은 어머니를 찾아서 다시 떠났다. 그의 어머니는 라울이 마음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모른 채 여전히 어딘가를 헤매고 있었다. 그는 말수가 적어지고 분노를 드러내는 일도 없었지만, 여전히 그의 마음 한구석에는 분노가 남아 있는 듯했다.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터라 그의 하루하루는 더 힘겹게만 보였다. 자기 아버지를 만나려고 그렇게 애를 쓰던 그가 이젠 어머니를 찾으려고 부심하고 있었다. 아버지를 만나고 싶어하고 어머니를 찾는 것은 별로 특별한 것이 없는 정신 분석학적 탐색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라울의 경우에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거꾸로 발동하고 있다는 점이 달랐다. 그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래서 어머니를 죽이려 했던 것이다.

 스테파니아는 어떻게든 그에게 위안을 주려고 애썼다. 두 사람은 오랫동안 대화를 가졌다. 나하고 있을 때 라울은 내내 침묵을 지켰다. 자기의 지난 잘못을 부끄러워하고 있는 듯했다.

 아망딘은 이제 나무랄 데 없는 스타가 되었다. 그녀가 우리 타나토드롬을 대표하는 최고 타나토노트였다. 아망딘은 뷔트 쇼몽과 천국 사이를 부지런히 왕래하였다. 아망딘과 성 베드로 사이의 관계도 아주 돈독해져서, 아망딘의 주장대로라면, 성 베드로가 그녀를 (나의 깨달은이)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다.

 선거를 앞둔 여론 조사에서 뤼생데르의 인기는 급상승하고 있었다.

 그러는 동안, 로즈와 나는 오로지 영계의 완벽한 지도를 만드는 일에 매달렸다. 영혼의 심판소 뒤에는 무엇이 있을까? 빛의 산 뒤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보려고 우리는 여러 차례 그 산에 접근했다. 그러나 우리의 은빛 생명 줄이 더 늘어나지 않아서 그 산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를 볼 수 없었다. 생명 줄이 끊어지는 것을 무릅쓸 수 있는 형편도 아니었다. 로즈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천문학자인 나의 아내는 블랙홀 끝에 그것과 반대의 성격을 가진 천체, 즉 포문이 벌어진 대포처럼 영혼을 쏘아 보내는 화이트홀이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한시도 버리지 않았다. 죽은 이들의 영혼은 한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다른 쪽에서 분출하여 환생을 하게 된다는 것이 아내의 생각이었다. 그것을 확인하러 갈 날을 기다리는 동안 아내는 X선이나 자외선보다 더욱 강력한 감마선에 관한 연구에 전념했다. 그 연구를 토대로 아내는 새로운 감마선 탐지기를 만들었다. 그것을 사용해서 우리는 지구로부터 우리 은하의 중심을 한층 더 효과적으로 관측할 수 있게 되었다.

 어느 날, 나는 목욕을 끝낸 다음, 목욕물이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광경을 한참 동안 지켜보았다. 천문학의 모든 비밀이 바로 그 소용돌이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폐수가 빠져나가는 그 구멍이 바로 블랙홀이었다. 원과 에너지가 가득 찬 원의 중심, 문득 라울의 수수께끼가 떠올랐다. (원과 원의 중심을 펜을 떼지 않고 그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배수구로 빨려 들어간 물은 하수도로 들어간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은 어디로 빠져나가는 것일까? 어떤 사물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머리만 찾으려 하지말고, 그 중심에 대해 생각을 집중해야 한다. 스테파니아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진정한 자아는 어머니와 나를 연결해 주던 통로에 있다고 한다. 바로 배꼽이다. 그곳을 통해 우리는 자양과 피와 힘을 받았지만, 출생과 더불어 문이 닫혀 버렸다. 그럼에도 배꼽은 여전히 중요한 곳으로 남아 있다고 스테파니아는 말했다. 배꼽은 중력의 중심, 즉 우리의 진정한 중심이라는 것이다.

 배꼽은 예전의 신체의 모든 부분에 영양을 공급하던 통로였기 때문에 병이 났을 때 배꼽을 덥혀 주면, 활력이 온몸으로 퍼져 나간다.

 우리 배에 있는 배꼽을 통해서 우리의 삶이 시작되고, 우리 은하의 배꼽에서 우리는 죽음을 맞는다.

 나는 넋을 잃고 텅 빈 욕조를 바라보다가 축축한 살갗 위에 가운을 걸쳤다.

 

 228. 이집트 신화

 고대 이집트에서는 파라오와 왕족의 주검을 아주 분명하고 엄격한 법식에 따라 미라로 만들었다. 특히 신왕국 시대의 제18왕조 동안에 그러하였다.

 주검을 썩지 않게 하는 의식은 먼저 주검을 등이 바닥에 닿도록 눕히는 것으로 시작된다. 의식을 집전하는 살망느 대개 오시리스 신을 모시는 사제로서 호루스87)처럼 옷을 입이며, 보조자들은 시체의 털을 없애고 배의 왼쪽 부위를 가로막 어름에서 절개한다. 그러면 오시리스의 사제는 절개된 곳으로 손을 집어넣어 부패하기 쉬운 주요 기관들, 즉 간, 지라, 허파, 창자, 위 따위를 들어낸다. 그것들을 세척하고 나면, 식물에서 채취한 보존 용액에 담가 방부 처리를 하고 다시 집어넣는다. 보조자들은 살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시체의 흉곽에 역청을 바른다. 그 일이 끝나면 몸통에 그름, 천, 몰약 따위를 채워 넣어 배의 부풋한 모습을 되살린다. 머리 부분도 마찬가지 방식으로 처리한다. 우선, 보조자들이 망자의 콧구멍에 단단한 막대기를 꿰어 두 비강을 관통시킨다. 그러면 사제는 비강 안에 구부러진 도구를 집어넣어 머릿골을 잘게 자른 다음 반대쪽 콧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머릿골을 잘게 자른 다음 반대쪽 콧구멍으로 바람을 불어넣어 밖으로 빼낸다. 머릿골이 다 빠지면, 의식을 집전하는 사제는 망자의 머리 속에 역청을 넣는다. 그때는 역청이 두개(머리 두, 덮을 개) 안쪽 면에 골고루 펴지도록 머리를 모든 방향으로 살살 돌려 가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시체를 노란 아마포 붕대로 감는데, 나무로 만든 의안(옳을 의, 눈 안)을 박아 넣고 천에 감긴 얼굴 위에 죽은이의 모습을 그려 놓은 판지 데스 마스크를 올려놓는다. 거기에 그려 놓은 얼굴은 젊고 평화로운 얼굴이어야 한다.

 - 블라크 파피루스 제3장에 의거한 것임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29. 동물 이야기

 아망딘의 강연은 날로 인기를 더해 갔다. 어머니의 가게에서 그녀의 포스터는 날개 돋친 듯이 팔려 나갔다. 포스터에 실린 그녀의 모습은 속살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으면서도 섹시하기 그지없었다. 포스터가 대대적인 성공을 거둠으로써 어머니의 수입이 상당히 늘어났다. 그러나 아망딘의 눈부신 활약이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는 그것이 아니었다.

 처음에 아망딘의 강연에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은 주로 새로운 지식을 갈망하는 지식인들과 신비주의에 심취한 호사가들이었다. 그러더니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퍼지면서 과학자들이 몰려들었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한 텔레비전 방송이 아망딘이 출연하는 쇼를 기획하기에 이르렀다. 방송에 출연한 뒤로 아망딘의 아파트로 문의 전화가 쇄도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들의 카르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했다. 전생에 나는 무엇이었는가? 내생에 나는 무엇이 될까? 세상이 열린 뒤로 사람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던 영원한 질문-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갑자기 모든 사람들의 화두가 된 것이다.

 어느 날 저녁, 강연이 끝난 뒤에 우리는 타나토드롬 앞의 타이 식당에 모였다. 우리는 동물의 환생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식탁에 둘러앉은 모든 사람들이 옛날 어느 땐가는 민달팽이나 개구리나 뾰족뒤지였을지도 모른다고 기분이 묘했다.

 식당 주인 랑베르 씨는 우리에게 장미향이 나는 아페리티프와 새우 크로케를 날라다 주면서, 우리의 방담에 끼여들었다.

 "나는 가끔 한 다리로 서서 휴식을 취하곤 해요. 안 믿으실지 모르지만, 그 자세가 이상하게도 편안한 느낌을 주거든요. 그래서 해본 생각인데, 난 아무래도 옛날에 왜가리였나 봐요."

 그러면서 그는 실제로 한 다리로 서서 완벽하게 평형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아망딘은 자기의 (추측)을 말했다.

 "난 아마도 전생에 토끼였던 것 같아요. 보실래요?"

 그녀도 대수롭지는 않지만 자기 나름의 증거를 보여 주었다. 아망딘은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귀를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가 귀를 앞뒤로 쫑긋거리자 뺨 한쪽에 근육의 움직임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긴 그녀의 코도 이따금 토끼의 주둥이처럼 발름거릴 때가 있었다.

 "게다가 나는 당근을 무척 좋아해요."

 그녀가 생글생글 웃으며 덧붙였다.

 나는 전생에 무엇일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게는 여우에 대한 기억이 있는 듯했다. 일시적으로 일어난 엉뚱한 생각일까? 아니면 착각일까? 나는 자아의 심층에서 수풀을 헤치며 네 발로 달리던 때의 기분을 느꼈다. 굵고 긴 꼬리로 절묘하게 균형을 잡아가면서, 한 발짝 뛸 때마다 척주를 접었다 폈다 하는 동작을 경험한 듯했다. 생각을 더욱 집중하니, 따뜻한 땅굴 속에서 암여우, 새끼 여우들과 함께 웅크리고 지낸 기나긴 겨울들이 생각났다. 세상에 그보다 더 좋은 휴식이 있으랴.

 봄에는 숲속을 오랫동안 달리면서 즐거움을 만끽했다. 힘껏 달리노라면 이끼 냄새와 꿀풀의 향기가 날아와 나를 취하게 했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네 발로 달리는 기분을 알 것 같았고, 겨울 동안 따듯한 땅굴 속에 웅크리고 있을 때의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여우였던 때의 기억이 분명해 졌다. 나는 달리기에 능한 편이 아니어서 사냥을 잘 하지는 못했다. 고슴도치를 건드렸다가 고통을 겪은 적도 있었다. 숲의 냄새.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코를 들이대고 있으면, 주위의 지리적인 상황을 완벽하게 알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나는 분명히 그런 일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저마다 다른 삶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식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 화제에 관심을 보였다. 우리끼리 나누던 방담이 어느새 모두가 참여하는 이야기판이 되었다. 뚱뚱하고 코가 길쭉하게 생긴 어떤 남자는 코끼리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고, 몸집이 아담하고 수줍음이 많아 보이는 어떤 부인은 자기가 과거에 메추라기였던 듯하다고 말했다. 얌전하게 생긴 한 꼬마는 자기는 백악기의 육식 공룡인 티라노사우르스였던 것 같다면서 유난히 뾰족한 이빨을 드러내 보였다.

 사람들의 화제가 동물 이야기에서 사람 이야기로 옮아갔다.

 먼저 현생의 질병을 전생의 업으로 설명하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저마다 한마디씩 한 이야기를 모으니 다음과 같은 업보 목록이 만들어졌다: 목에 탈이 자주 나는 사람은 프랑스 대혁명 때 기요틴으로 처형된 사람의 환생일 가능성이 많고, 천식을 앓는 사람은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의 환생, 음경 강직증에 걸린 사람은 교살된 사람의 환생이다. 밀실 공포증 환자는 전생에 지하 감옥에 갇힌 적이 있고, 치질 환자는 꼬챙이에 찔려 죽은 사람의 환생이다. 간이 나쁜 사람은 독살된 사람의 환생이고, 위궤양을 앓는 사람은 전생에서 할복 자살을 한 사람이다. 마른 버짐이 피는 사람은 불에 타 죽은 사람의 환생, 두통에 시달리는 사람은 머리에 권총을 쏘고 죽은 사람의 환생이다. 근시인 사람은 전생에 두더쥐였다.

 식당 손님들은 저마다 별난 전생을 살았다고 주장했다. 그들 말대로라면 식당 안에는 중세의 기사였던 사람, 이집트의 파라오였던 사람, 전직 신부, 전직 창녀도 있었다.

 어떤 사람들이 전생에 대한 기억이라며 한참 얘기를 하길래, 가만히 들어 보니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는 장면이었다. 자기가 옛날에 평민이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럭저럭 믿어 주고 싶었지만, 스스로를 인디아나 존스, 바르바렐라, 또는 만화 주인공인 탱탱이나 아스테릭스, 심지어 추리 소설의 명탐정인 에르퀼 푸아로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그런 인물들이 실제로 전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지적해 주지 않을 수 없었다.

 진담과 농담이 어우러진 자리였지만, 어쨌든 우리는 즐거운 한때를 보냈다.

 뤼생데르가 식당으로 와서 우리와 자리를 같이했다. 그 역시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는 꿀풀향이 나는 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서, 우리에게 정치 얘기를 꺼냈다.

 여론 조사 결과가 더 이상 달라지지 않고 있었다. 순회 강연을 시작한 뒤로 급상승했던 지지율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뤼생데르는 변하기 쉬운 여론에 결정적인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사건을 만들 때가 되었음을 느끼고 있었다.

 "아망딘 양이 철학적이고 도덕적인 개념으로 사람들에게 충격을 주는 데 그치지 말고, 영혼이 심판을 받는 광경을 아주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주면, 상황이 훨씬 좋아질 것 같네. 환생의 서막이 되는 그 마지막 대화 때 모든 것이 결정되는 거니까 말일세. 선업 점수와 악업 점수를 매기는 방식에 대해서 더욱 자세히 알아야 해. 그래서 생각한 건데, 심판을 맡은 대천사들과 영혼이 나누는 대화를 생생하게 중계했으면 하네."

 우리도 잠깐 엿보았을 뿐인 그 장면을 찍겠다고 심령적인 카메라를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그 장면을 세세히 관찰하고 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방법은 있었다. 그러나 심판 대천사들과 영혼이 텔레파시로 나누는 대화를 녹음했다가 그대로 재생시킬 수 있을 만큼 탁월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은 우리 가운데 아무도 없었다.

 그때 로즈가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고 큰소리로 말했다.

 "막심 빌랭이 있어요!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의 기자 말이에요. 그는 엄청난 기억력을 가진 사람이에요. 이 일에는 그가 적임자예요."

 대통령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 그 친구라면 그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 낼 수도 있을 걸세. 그렇게 되면 우리 유권자들은 의자에 편히 앉아서 천국을 볼 수 있게 될거야."

 대통령은 벌써부터 막심 빌랭의 증언 덕분에 자기가 더 얻게 될 표가 얼마나 될지를 계산하고 있었다.

 나는 막심 빌랭을 여러 차례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언제나 알이 두꺼운 안경을 쓰고 다녔다. 영혼은 눈이 없어도 완벽하게 볼 수 있다. 나 자신이 직접적인 경험을 통해 그 사실을 확인했다. 프레디는 장님이면서도 가장 뛰어난 타나토노트였지 않은가? 그럼에도 나는 막심 빌랭을 만날 때마다, 안경을 안 쓰고도 그가 영계에서 용케 활동한다는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막심 빌랭은 19세기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의 모습을 연상시켰다. 땅딸막한 체고, 두꺼운 안경, 짤막한 턱수염, 남을 비웃는 듯한 표정이 그랬다. 이튿날 우리는 그를 타나토드롬으로 초대했다.

 그가 우리 제안을 받아들이자 아망딘이 선웃음을 치며 그를 추켜세웠다.

 "기억력이 그토록 뛰어나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에요. 나는 즉시 적어 놓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요,"

 막심 빌랭은 두툼한 입술을 입가로 당기면서 서글픈 웃음을 지었다.

 "행운이라고요? 기억력이 너무 좋다는 게 내겐 큰 골칫거리예요. 좀 잊어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이따금 하지요."

 아망딘이 놀라는 표정을 짓자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일단 내 머릿속으로 들어온 정보는 밖으로 나가지를 않아요. 내 머릿속은 쓰레기 잡탕 지식으로 가득 차 있어요. 아는 게 너무 많으면 오히려 짐이 돼요. 책을 한 권 써보려고 숱하게 시도했어요. 그런데, 몇 쪽 쓰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무수한 문학 작품들이 떠오르면서 내가 표절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작업을 할 수가 없지요.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려면 다른 사람들의 작품을 모두 잊어버려야 하는데, 나는 그게 안 돼요."

 나는 백과사전을 통째로 머릿속에 넣고 다니는 듯한 그의 기억력을 늘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런 기억력이 그에게는 장애가 되는 모양이었다. 하긴, 잊는다는 것이 때로는 아주 다행스런 일이기도 하다. 나는 끈질기게 괴롭히는 그 번째 진실, 그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아주 영원히 잊어버릴 수 있으면 좋으련만!

 뤼생데르 대통령이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망각의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게 아니지. 그건 아주 특별한 자질이라네."

 그는 망각의 능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덕분에 그는 야당 시절에 자기가 비난했던 선임자들의 정책을 거리낌없이 답습할 수 있었고, 자기를 공격했던 사람들을 기꺼이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그는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었고, 대중의 인기도 얻었다.

 그에 비하면 막심은 가엾은 사람이었다. 그는 잊을 줄 몰랐다. 그래서 그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이루지 못하고 언제까지고 기자로 남아 있어야 했다.

 그래도 우리에겐 그의 능력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가 임무를 원만하게 수행하는 데 필요한 계획을 짰다. 우리의 계획은 이런 것이었다. 스테파니아와 아망딘, 그리고 로즈와 내가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교란 작전을 편다. 그 틈에 막심은 빛의 산으로 되도록 높이 올라가서 심판하는 내용을 듣는다.

 더 이상 시간을 끌 필요가 없었다. 사흘 후에 우리는 영계 특파원을 데리고 이륙했다. 막심 빌랭에게 엄청난 명성을 안겨 준 영계 전투 이야기보다 훨씬 더 충격적인 탐방 기사를 쓰기 위해서였다.

 막심 빌랭은 심판 대천사들과 영혼의 대화를 한마디도 빼놓지 않고 머릿속에 담아 왔다. 그 내용이 삽화와 함께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에 실렸다. 나중에 그것은 아망딘 발뤼스의 두 번째 저서인 "어떤 영혼과의 대화"에 전재되었다. 역사적인 문헌이 된 그 원고는 현재 워싱턴의 스미스소니언 협회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다.

 

 230. 역사 교과서

 타나토노트들은 천사들에게 언제나 최대의 존경을 표시했다. 누구든 천사를 보기만 하면 존경하는 마음을 저절로 갖게 되었다. 인간이 천사의 모습을 닮으려면 아마 서기 10 만 년은 되어야 할 것이다. 천사들은 우리보다 백만 배나 진화했고, 우리보다 백만 배나 치밀하다. 그들이 시간을 지각하는 방법은 우리와 다르다. 인간의 과거와 미래의 틈바구니에 갇힌 채, 과거를 어쩔 수 없었던 일로 받아들여야 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천사들은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투시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현재-미래) 라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을 제공한다. 천사는 언제난 자기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단기적이고 중기적이고 장기적인 결과를 헤아리며 (현재-미래) 속에서 행동을 결정한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뷔페 식당에서 어떤 음식을 골라 먹는 것과 비슷하다. 우리는 그 음식을 먹어 보기 전에, 그것이 우리 입안에서 어떤 맛을 낼 것인지를 알고 있다. 마찬가지로 천사는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다.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231. 막심 빌랭 약전(略傳)

 어린 시절, 막심 빌랭은 한 가지 점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아이였다. 한 가지 다른 점이란, 그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싶어 하는데 그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가 무슨 말을 시작하기만 하면, 공교롭게도 곧바로 누군가가 나서서 그의 말을 가로막곤 했다. 우연치고는 참으로 기이한 우연이었다. 식구들하고 밥을 먹을 때는 누군가가 (소금 좀 건네줄래) 하면서 그의 말을 잘랐고, 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자, 오늘은 그만하고 다음 시간에 계속하기로 하자)고 말함으로써 할 말을 준비하고 있던 막심을 맥빠지게 하기 일쑤였다. 그가 말문을 열기만 하면 무언가가 튀어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아 가거나 누군가가 코를 풀곤 했다.

 막심 쪽에서는 누구의 말이건 귀담아들었고, 사람들이 전해 주는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갈무리하면서 몇 시간이고 침묵을 지키고 있을 수 있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받은 마음의 상처는 더 컸다.

 어쨌거나 그 덕분에 친구는 많이 생겼다. 친구들은 막심이 자기들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에 우쭐해져서 자기들이 흥미를 갖고 있는 분야에 대한 지식을 차례차례 늘어놓았다.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던 분야는, 최면술, 구급법,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 컴퓨터,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천체 물리학, 나폴레옹 전쟁의 전략, 수학, 12음 음악 등 아주 잡다했다. 그는 그 모든 지식을 닥치는 대로 머릿속에 저장하였다.

 하지만, 말을 주고받지 못하고 마냥 듣기만 하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노릇이었다. 처음에 그는 사람들에게 청취를 강요하려고 무진 애를 썼지만, 력국은 제발 좀 들어 달라고 애원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그가 말머리를 꺼내기가 무섭게 그의 부모는 하품을 하거나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나누었고, 선생님들은 (아주 흥미롭기는 하다만 다음에 얘기하기로 하자)고 건성으로 말하곤 했다. 그의 친구들도 어른들과 별로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내 목소리라 나직하고 힘이 없어서 사람들이 지루함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저음은 가슴과 심장에 작용하기 때문에 사람을 졸립게 한다. 반대로 고음은 뇌에 직접 호소하기 때문에 사람을 흥분시키고 긴장시킨다. 막심은 별것 아닌 것도 높은 소리로 얘기하면, 재미있는 것을 낮은 소리로 얘기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관심을 더 끌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자기 목소리를 바꾸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성과는 별로 없었다. 그는 홧김에 트라피스트 교단의 수사가 되었다. 트라피스트 교단의 수사들은 침묵의 서원(誓願)을 한 사람들이어서 서로 대화를 나눌 필요가 없었다. 그들 속에서 막심은 비로소 자기가 인정받고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수도 생활을 하는 동안 그는 자기의 운명에 대해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고 나니 비로소 스스로의 처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는 자기가 수신기 노릇을 하기 위해 태어났음을 깨닫고 발신기 구실에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그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수도원을 떠나, 남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식을 축적하는 일을 계속했다. 물론 그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여전히 없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가 축적한 지식을 조금도 방출하지 않았다. 그러하여 그는 거의 무한에 가까운 방대한 지식을 축적한 인간 정보 은행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전혀 쓸모가 없을 것 같은 지식까지도 차곡차곡 쌓아 두었기 때문에, 일반교양 문제를 주로 하는 텔레비전 퀴즈 게임에 나가면 그를 당할 사람이 없었다.

 막심 빌랭은 지칠 줄 모르고 모든 분야에 대해 알고 싶어 했다. 그는 저널리즘이 자기의 욕구를 마음껏 채워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언론계에 뛰어들었다. 그는 사회, 과학, 가십, 정치, 문화 등 모든 부분을 거쳐 가면서 기사를 썼다. 기사를 쓸 때는 자기 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는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다. 신문 구독자 가운데 적어도 한 사람은 자기 글을 진지하게 읽어 줄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기를 더 잘 이해시키고 자기가 상정한 그 독자의 관심을 붙들어 두기 위하여, 그는 그림을 곁들이기로 마음먹었다. (말이란 언제나 불완전하다. 그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서는 이미지가 필요하다)라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모든 기사에 그림을 곁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의 가장 인기 있는 기자가 되었다.

 처음에는 글쓰기를 자기 구원의 매개물 정도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는 곧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엄격한 구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쓰기가 정확성을 요구하는 하나의 과학이라고 생각하게 되면서, 그는 그것에 정열적으로 매달렸다. 막심 빌랭은 아주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글을 쓰고 싶어했다. 누가 읽더라도, 첫 단어부터 최면에 걸린 듯 빨려 들어가서 끝까지 다 읽지 않고는 못 배기는 그런 글을 쓰고 싶었다.

 그런 글을 쓸 수 있다면, 예전의 그의 얘기를 들어 주지 않았던 사람들에게서 받은 설움을 깨끗이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막심은 (나의 가치 체계에서 문학은 아주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아름다운 문장을 짓는 것도 아니고 멋진 인물을 만들어 내는 것도, 정교한 플롯을 짜는 것도 아니다. 문학의 궁극적인 목적은 사람들을 더욱 멀리 꿈꾸도록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하곤 했다.

 사람들을 더욱 멀리 꿈꾸도록 만드는 것!

 그러나 그런 야심에 찬 계획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막심은 아직 책 한 권 변변히 쓰지 못한 채 기자로 남아 있었다. 어쩌면 그는 목표를 너무 높은 곳에 설정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232. 유대교 신화

 사람이 죽을 때 무시무시한 광경이 벌어진다. 동서남북 네 방위가 그의 죄를 논하고 사방에서 동시에 벌이 내린다. 물, 흙, 불, 공기 네 원소가 그 사람의 시체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서 서로 차지하려고 다툰다. 그때 한 사자(하여금 사, 놈 자)가 나타나 큰소리로 그를 부른다. 그 소리는 70세계에 울려 퍼진다. 만일 그 사람이 그 부름에 합당한 자격을 지닌 사람이면 모든 세계에서 기꺼이 맞아주고 그의 죽음은 모든 세계가 기뻐하는 경사가 된다. 그러나 반대로 그 사람이 사자의 부름에 응할 만한 자격이 없으면, 그에게는 저주가 내릴 것이다.

 - "조하르"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33. 경찰 기록

 기초 신원 조회

 설명: 막심 빌랭

 모발: 갈색

 신장: 1m 62m

 외모의 특징: 없음

 특기 사항: 영계 탐사 개척자

 약점: 언변이 좋지 않음

 

 234. 어떤 영혼과의 대화

 막심 빌랭은 삽화를 곁들여 가며 "어떤 영혼과의 대화"라는 기사를 작성했다. 그 원문은 다음과 같다.

  장면은 천국의 끝, 빛의 산기슭에서 전개된다. 우리의 운명을 심판하는 대천사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곳이다.

  등장인물은 세 대천사와 죽은지 얼마 안 되는 샤를 도나위의 영혼. 샤를 도나위의 수호천사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동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대천사들이 내릴 심판의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안녕하시오, 도나위 씨.

 영혼: 여기가 어딥니까?

 죽은 이가 주위를 둘러보며 죽기 직전에 잘려 나간 왼쪽 팔 부위를 주무른다. 그러다가 머리를 들고 마지막 심판이 벌어지는 언덕과 세 대천사들을 바라본다. 대천사들은 매듭이 잔뜩 달린 투명한 끈들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여기는 영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곳이오. 우리는 곧 당신의 지난 삶을 계량할 것이오.

 영혼: 계량한다고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심판한다는 말이오. 이제부터 당신의 삶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선행과 악행을 심판해서 당신이 환생을 끝내도 좋은지 어떤지를 결정할 거요.

 영혼: 전 아주 착하게 살았습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기록을 검토하며): 그건 당신 생각이오.

 영혼: 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 들었는데, 내 수호천사로부터 변호를 받을 권리가 있다던데요. 수호천사는 여기에 없습니까?

 심판 대천사 미가엘: 사실 당신에겐 수호천사뿐만 아니라 당신의 악마까지도 입회시킬 권리가 있소. 그런데 그들 둘 다 현재 이승에서 한창 일을 하고 있는 중이오. 아는지 모르겠지만, 당신이 태어나던 날 수호천사가 당신에게 배정되었소. 그런데, 당신과 같은 날에 출생한 어떤 사람에게 그 수호천사와 악마를 긴급히 보낼 일이 생겼소. 부당 해고라는 골치 아픈 문제요. 수호천사가 입회하지 않는 것은 예외적인 상황이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맙시다. 걱정할 건 없어요. 당신은 아주 공정하게 심판을 받을 테니까요. 당신의 수호천사와 악마의 생각이 이 산 위에 떠돌고 있어요. 따라서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 우리가 동시에 그것을 알 수 있어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당신은 더할 나위 없이 객관적으로 시험을 받을 거요. 여기는 누구에게나 공평한 곳이오. 우리는 이미 당신에 관한 것을 다 알고 있소. 당신의 모든 행동에 대해, 어떤 의도에서 그런 행동을 하게 되었는가까지 알고 있어요.

 영혼 (열을 내며): 나는 비난받을 만한 일을 한 적이 없어요. 난 아주 착하게 살았어요. 결혼을 했고 자식이 셋입니다. 죽기 전에 아내에게 상당한 재산을 물려줬어요. 내 생각엔 지금쯤 내 가족은 내가 두고 온 뜻밖의 선물에 기뻐하고 있을 겁니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가브리엘이 매듭이 잔뜩 달린 끈을 흔들고 있는 동안에):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것)은 그런 게 아니오. 이 매듭들이 보이지요? 이것들 하나하나가 당신 생애의 행동 하나하나에 대응하지요.

 첫 번째 코마 장벽 너머에서 죽은이들을 맞아들이던 기억의 거품들과 아주 비슷한 것들이 하나하나 피어오른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당신 아내 얘기를 했지요? 여길 보면 당신이 아내를 자주 울렸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아내를 속이고 바람을 피웠지요? 그것도 바보 같은 여자하고 말이오.

 영혼 (체념한 듯): 어디 저만 그럽니까? 우리 시대 풍속이 그런 걸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아주 매정하게): 기혼자와 미혼자 사이의 간통은 말루스88), 즉 악업(악할 악, 업 업) 점수 60점이오. (다른 기억 거품들을 검토하고 나서) 당신은 아까 아이들 얘기도 했소. 그런데 당신은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았다고 생각하시오? 여기 보니까 당신은 혼자만 편하려고 잔꾀를 꽤나 부렸군요.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언제나 출장 간다고 핑계 대고 휴가 여행을 떠났지요? 당신 부인이 그 어느 때보다도 당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당신은 밤에 아이가 보채는 걸 피하기 위해 부인을 혼자 남겨 둔 채 달아났어요.

 영혼: 나는 일에 지쳐서 늘 정신없이 살았어요. 가족의 행복을 위해 등이 휠 정도로 일을 했습니다. 게다가 집에 돌아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한 아름씩 안겨 주곤 했지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당신은 장난감이 아버지의 존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유감스럽군요. 악업 점수 100점.

 영혼: 악업 점수라는 게 뭡니까?

 심판 대천사 라파엘: 윤회를 끝내고 성인이 되려면 이승에 사는 동안 보누스89), 즉 선업(善業) 점수 600점을 얻어야 해요. 현재 당신은 악업 점수 160점을 얻고 있어요. 계속합시다. (끈을 풀어서 하얀 매듭이 나올 때마다 유심히 살핀다.) 당신은 늙은 부모를 싸구려 양로원에 보내 놓고, 겨우 1년에 한 번 얼굴만 비죽 내밀었군요.

 영혼: 두 분이 노망이 드셔서 모시기가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저는 일에 치여서 정말 정신없이 살았고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그분들이 노망이 드셨다고요? 그분들이 당신을 키울 때, 당신은 (노망든 것)보다 더 했어요. 똥오줌도 못 가렸고, 울보, 침흘리개에다 어지르기 잘하고 칠칠치 못하고 걸음마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래도 당신 부모는 인내심을 갖고 당신의 응석을 받아주었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당신은 늘 일을 핑계 대면서 부모님 찾아뵙는 일을 소홀히 했어요. 그 내막은 당신 비서가 잘 알 테니 그 얘기를 해볼까요?

 영혼 (깜짝 놀라며): 아니, 그런 것까지 알고 계십니까?

 심판 대천사 라파엘: 여기에서 우리는 모든 걸 보고,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헤아립니다. 당신 부모는 당신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자 절망에 빠졌지요. 그분들은 정말로 당신을 그리워했어요. 게다가 양로원에서는 방문객이 많은 노인일수록 돌보는 사람들에게 대우를 잘 받아요. 찾아 주는 사람이 없는 노인들은 홀대받기가 십상이지요.

 영혼: 그래도 저는 부모님께 선물을 많이 보내드렸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아직도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요. 그분들이 원한 건 선물이 아니에요. 그분들은 당신이 옆에 있는 걸 바랐어요. 당신 아내와 당신 자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오.

 영혼: 조금 과장해서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요? 그분들은 양로원에서 그다지 불행하지 않으셨어요. 부모님을 뵈러 갔을 때마다 그분들은 아주 잘 지낸다고 말씀하셨는데...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그만큼 그분들은 당신을 사랑했고 그래서 당신에게 죄책감을 지우고 싶지 않았던 겁니다. 다시 악업 점수 100점! 점수가 별로 좋은 편은 아니오. 벌써 마이너스 260점이나 돼요.

 영혼: 잠깐만요. 제 삶을 너무 쉽게 판단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너는 무슨 죄를 지었으니 무슨 벌을 받아라, 이런 식이 아닙니까? 천사님들은 어떤 선입견을 갖고 나쁜 측면만을 고려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이승에서 좋은 일도 꽤 했습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얘기해 봐요.

 영혼: 저는 병 공장을 세웠습니다. 실업자들에게 일거리를 주었고, 여러 가족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살림살이를 도와 주는 물건들을 생산했어요. 또...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그럼 당신 공장 얘기를 해봅시다. 그 공장은 주변 지역을 전부 오염시켰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또 공장의 근로 조건은 한심했어요! 당신은 관리자들과 노동자들 사이에 끊임없이 알력을 만들었어요. 관리자들과 노동자들이 서로 싸우게 만들어서 그들 모두의 힘을 약화시켜 버렸어요.

 영혼: 효과적으로 지배하려면 먼저 분열을 시켜라, 이것은 현대적인 경영 원리예요. 경영학을 공부한 것도 죄가 되나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공장과 관련해서 악업 점수 60점. 합하면 벌써 마이너스 320점이오. 별로 좋은 점수가 아니오. 자, 그럼 이제부터 "자질구레한 것들"을 추가해 볼까요?

 영혼: 자질구레한 것들이라고요? 아직 남은 게 있습니까?

 심판 대천사 라파엘: 당신은 지난 생애를 통틀어 주위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 거짓말을 8,254회 했고, 비열한 행동은 경미한 것 567회, 심각한 것 789회를 저질렀어요. 그리고 당신 자동차의 타이어에 45마리의 작은 동물들이 깔려 죽었어요. 또, 당신은 도박에 빠져서 가산을 낭비하기도 했고, 소음을 내며 자동차를 몰기도 했군요. 또, 당신은...

 영혼 (낙담한 표정으로): 저를 완전히 개차반 취급하시는 것 같군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사실을 그대로 말했을 뿐이오. (대천사 라파엘은 매듭이 잔뜩 달린 끈을 다시 들여다본다. 끈에서는 이제 기억들이 샴페인 거품처럼 일어난다.) 당신은 병원에 가서 정기적으로 헌혈을 했군요. 선업 점수 20점. 고속 도로에서 어떤 운전자의 차가 불길에 휩싸이기 전에 그 사람을 구한 적이 있군요. 선업 점수 50점. 또, 낡은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지 않고 (엠마우스의 벗들)에게 주었어요. 선업 점수 10점.

 영혼: 제가 죽던 때의 상황도 빼놓지 마세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여전히 끈을 바라보며):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이 죽던 때의 상황은 관심을 가질 만하군요. 당신은 자전거를 피하려다 플라타너스를 들이받았어요. 그때 맞은편에서는 트럭 두 대가 추월 경쟁을 벌이며 달려오고 있었지요. 그 트럭 운전수들이 바로 당신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어요.

 영혼 (돌아서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두 영혼을 바라보며) :아, 그렇군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일단 당신이 반사적으로 자전거를 피한 것은 인정해 줘야겠군요. 선업 점수 10점을 드리지요. 하지만 당신의 반사 신경이 더 발달했더라면 자전거를 피하는 것은 물론이고 플라타너스에도 피해를 입히지 않았을 텐데요.

 영혼 (기가 막히다는 듯이): 뭐라고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사실, 그 어린 플라타너스는 더 자라서 도로에 그늘을 드리우기로 되어 있었는데, 당신이 그것을 두 동강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다음번에 비슷한 상황이 생기거든, 대처를 잘해서 트럭과 자전거와 플라타너스를 다 피하고 붕 날아서 도랑에 처박혀 보세요. 실제로 당신이 그렇게 했더라면, 차에 불이 나서 당신이 타죽었을지도 모르지요. 여기에서는 불에 타 죽는 것을 아주 높이 평가해 주거든요.

 영혼: 그게 혹독하게 죽는 방식이기 때문인가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죽음이 고통스러울수록 큰 수난을 겪은 것으로 인정을 받지요. 당신이 불에 타 죽었더라면 선업 점수 100점을 얻었을 것입니다.

 영혼: 아까 다음 번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인가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대단한 참을성을 발휘하며): 심판을 시작하면서 설명했듯이, 윤회를 끝내려면 600점을 얻어야 해요. 그런데, 당신은 지난 삶 동안에 도합 마이너스 230점을 얻었어요. 그래도 끔찍한 점수는 아니에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당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환생한 게 193번째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나쁜 건 아니지요. 우리는 당신을 다른 육체로 되돌려 보낼 수밖에 없어요. 마이너스 230점이 형편없는 점수로 느껴지거든, 다음 심판 때는 그보다 나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세요.

 영혼 (겁에 질려서): 다른 육체라고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그래요. 다른 육체, 다른 삶이오. 당신이 이제부터 그것을 선택하는 거요.

 영혼 (더욱 더 놀라며): 제가 제 삶을 선택할 수 있단 말입니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물론이오. 사람은 언제나 자기가 선택한 삶을 사는 거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덧붙이자면, 우리가 여기서 하는 일은 영혼들을 돕는 거요. 우리는 지금 당신이 스스로를 개선할 수 있도록 돕고 있는 겁니다. 우리가 당신을 환생시키는 것은 당신의 행복을 위한 것이고 당신이 스스로를 개조할 수 있게 하려는 거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우리는 당신에게 전생에서 쌓은 악업을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입니다. 당신의 새로운 삶을 향해 출발하기에 앞서 유리한 조건과 불리한 조건을 당신이 직접 선택하십시오. 자, 그러면 마이너스 230점에 맞는 삶으로 우리가 준비해 둔 것을 보기로 합시다.  심판을 벌이는 동안 줄곧 그들 위를 날아다니던 두 육익 천사를 세 대천사가 부른다. 그러자 육익 천사들이 즉시 가는 끈들을 가져다 준다. 그 끈에는 풍부한 정보가 담긴 영상들이 거품처럼 매달려 있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지금 이 시간에도 장차 부모가 될 사람들이 한참 방사를 벌이고 있어요. 그 사람들의 새로운 명단이 여기 있어요.

 영혼: 제가 제 부모를 선택할 수 있습니까?

 심판 대천사 미가엘: 몇 번씩 얘기해야 알아듣겠소? 누구나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시작합시다. 신중하게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부모가 엄한 편이 좋습니까? 아니면, 자상한 편이 좋습니까?

 영혼: 음... 어떤 차이가 있지요?

 한 육익 천사가 텔레파시 영상을 방출한다. 뚱뚱한 남자와 뚱뚱한 여인이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 그들은 어느 쪽도 상대방의 몸무게 때문에 질식하지 않을 수 있는 체위를 찾느라고 고심하고 있다. 남자가 위로 올라가는 자세와 여자가 위로 올라가는 자세를 번갈아 시도하지만, 어느 것도 여의치 않자 모로 누운 자세로 서로를 껴안는다. 짤막한 숟가락 두 개를 포개 놓은 것 같다.

 전화벨이 울린다. 그러나 여인이 남자에게 전화를 받지 말라고 신호한다. 남자는 얼굴이 벌겋고 땀에 흠뻑 젖어 있다. 그가 요란하게 헐떡이다. 여인이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머리채를 잡고 비튼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드오르뉴 부부요. 착하고 인정 많은 사람들이라서, 당신을 잘 보살펴 주고 사랑해 줄 거요. 한 가지 단점은 그들의 직입이오. 그들은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데, 손님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저녁마다 그들은 당신에게 남은 음식을 억지로 먹일 거요. 그들의 전문 요리는 카스텔노다리 스튜와 초콜릿 슈크림이오. 그들처럼 당신도 금방 뚱뚱한 아이가 될 거요. 어때요, 드오르뉴 부부가 마음에 드십니까?

 영혼 (그 부부의 거북한 방사 동작을 마뜩찮은 표정으로 바라보면서): 물론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어느 부모나 다 유리한 점이 있으면 불리한 점도 있는 거요. 당신 점수를 생각해야죠. 그 점수를 가지고는 까다롭게 굴 형편이 못 돼요.

 새로운 텔레파시 영상이 나타난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폴레 부부요. 남편은 담배 가게를 가지고 있는데, 담배를 많이 피우고 술을 너무 많이 마셔요. 아내는 문맹이고 남편에게 개처럼 순종합니다. 폴레 씨는 밤이면 곤드레만드레 취한 채 돌아와 아내와 자식들은 물론이고 아무한테나 손찌검을 해요. 분명히 말하지만, 그 사람하고 살면 가죽띠로 매질께나 당할 거요.

 폴레라는 사내가 마침 자기 아내의 엉덩이를 움켜쥐더니 피가 날 정도로 그곳을 할퀴고 있었다. 아내는 불평을 하기는커녕 황홀경에 젖어 신음을 내뱉고 있었다.

 영혼: 아니, 저 사람들 변태 성욕자들 아냐! 끔찍해요. 다음 사람들을 보여 주세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이너스 230점이라는 점수를 가지고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드 쉬르낙 부부요. 고상한 사람들이죠. 젊고 활동적이고 언제나 붙어 다니는, 친구 같은 부부예요. 그들은 친구가 많고 춤추러도 자주 가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지요.

 잘생긴 젊은 부부가 이불 속에서 서로를 껴안고 즐거워한다.

 영혼 (무척 마음에 드는 듯): 괴물들만 보여 주시는 줄 알았더니 저런 사람들도 보여 주시는군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그렇게 간단히 말할 건 아니오. 그들은 자기들의 행복을 위해서 당신을 무엇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방치할 거요. 하지만 그들은 너무 활동적인 사람이라서 그들과 같이 살면 당신은 늘 소외감을 느끼며 기가 죽어 지낼 겁니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처음엔 그들을 시샘하다가 나중엔 증오하게 될 거요. 그들 부부는 서로를 너무 열렬히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한테는 별로 애정을 쏟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늘 우거지상을 짓고 걸핏하면 화를 내는 아이가 되겠지요. 그 부부는 환갑이 되어서도 여전히 젊음을 유지할 터인데, 당신은 열두 살만 되면 벌써 애늙은이가 될 거요. 자기 부모를 미워한다는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우니까 당신은 곧 세상을 원망하게 될 겁니다.

 영혼: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누구죠?

 심판 대천사 라파엘: 우리는 당신에게 사물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다 보여 줄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당신의 선택이 더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고믈랭 부부를 고려해 보시죠. 벌써 나이가 지긋해서 이젠 아이를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는 부부랍니다. 인공 수정 기술이 발달한 덕택에 이미 폐경기가 된 그 부인이 아이를 낳을 수 있게 된 거죠. 당신은 그 가정에 뜻하지 않은 선물로 들어가는 겁니다. 그 부부는 당신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줄 것이고, 당신은 그들을 무척 사랑하게 될 거예요.

 영혼 (믿을 수 없다는 듯): 이번엔 어디에 함정이 있지요? 사탕을 많이 먹여서 나를 뚱뚱보로 만드나요? 아니면, 내 학교 성적을 자랑하고 싶어서 내가 점수를 잘못 받아 올 때마다 회초리를 드나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아니오. 그 부부는 나이가 많아요. 하지만 아주 착해요.

 영혼: 그럼 저에게 딱 맞을 것 같군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그렇게 생각하세요? 당신은 그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가정이라는 고치에 갇혀 살게 됩니다. 언제나 집에 틀어박혀 지내기 때문에 폐쇄적인 사람이 될 거예요. 당신 어머니를 너무나 사랑하는 까닭에 당신 눈에는 어떤 여자도 어머니만 못합니다. 세상의 어떤 남자도 지혜롭고 너그럽기 한량없는 당신 아버지를 따라갈 수 없을 것처럼 보일 겁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그런데, 그들은 나이가 많아서 당신을 나약한 고아로 남겨 둔 채 곧 죽게 됩니다. 당신은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와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그들을 그리워하며 살게 됩니다.

 영혼 (애석하다는 듯): 다른 사람들이 아직 남아 있습니까?

 한 부부가 호사스런 거실의 카펫 위에서 뜨겁게 포옹하고 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시루블 부부요. 이 사람들, 지금은 서로 껴안고 있지만 며칠 후면 이혼할 거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부모가 헤어지고 당신은 어머니가 맡게 됩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이미 정을 통하는 남자가 있어요. 그 사내가 당신을 미워할 겁니다. 그들은 더 편안하게 섹스를 즐기려고 당신을 다락 안에 가두어 버립니다. 당신이 울 때마다 어머니가 당신을 때립니다. 자기 애인이 당신 때문에 헤어지자고 할까봐 두려운 거지요. 아버지가 주말에 이따금 당신을 데리러 올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 역시 당신보다는 자기 여자들에게 더 관심이 많지요.

 영혼: 갈수록 가관이군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하지만, 시루블 부부를 당신 부모로 선택하면 몇 가지 유리한 점이 있어요. 당신 마음속에 그들에 대한 분노가 점점 자라서 당신은 박탈당한 삶에 대해 앙갚음을 하려 할겁니다. 여자들을 보면 어머니 생각이 나기 때문에 모든 여자들을 싫어합니다. 여자들에 대한 그런 무관심이 오히려 당신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할 것이고, 당신을 색마로 만들어 버리지요. 당신은 아버지 때문에 남자들도 다 미워합니다. 그래서 당신은 남자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갈망하게 되지요. 당신처럼 불행한 어린 시절을 겪는 사람들이 흔히 악착같은 기업주나 정력적인 정치가가 되는 법이오.

 심판 대천사 미가엘: 그뿐 아니에요. 당신이 끔찍한 어린 시절을 들먹이기만 하면, 누구나 당신에게 연민을 느끼고 당신의 악행을 용서해 줄 겁니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또, 만일 당신이 자서전을 쓰게 되면, 그 책은 날개 돋힌 듯 팔려 나갈 것이고, 영화 제작자들이 판권을 따내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겁니다. 사람들은 불행한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꽤나 좋아하죠.

 도나위의 영혼이 잠시 머뭇거린다. 언뜻 보기엔, 카펫 위에서 뜨겁게 사랑을 나누고 있는 듯한 그 부부가 괜찮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얼른 생각을 바꾸었다.

 영혼: 저는 "레 미제라블"의 코제트나 가브로슈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부부를 보여 주십시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당신의 점수가 마이너스 230점이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미안하지만, 그 점수대에서 우리가 당신에게 권할 수 있는 건 다 보여 주었어요. 식당을 운영하는 뚱뚱한 부부, 술에 절어 사는 담배 가게 주인 부부, 항상 젊게 다니는 고상한 부부, 인정 많은 늙은 부부, 곧 이혼할 부부, 그게 전붑니다. 빨리 선택을 하십시오. 이어서 당신의 건강 상태를 결정해야 하니까요.

 영혼: 하지만 어느 쪽도 마음에 들지 않아요. 그야말로 페스트와 콜레라 중에서 고르라는 거나 다름없어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이제 와서 그런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길래 진작에 이런 날이 오리라는 걸 생각했어야지요. 부모, 아내, 자식들에게 더 잘했더라면, 더 좋은 점수를 받았을 테고, 그러면 우리가 더 좋은 가정을 추천했을 거예요. 당신보다 앞서 심판을 맡은 사람은 악업 점수가 20점밖에 안 됐어요. 그래서 우리는 그 정도 점수로도 포도주 도매업을 하는 화목한 가정을 추천해 줄 수 있었지요. 좋은 부모가 그를 훌륭하게 교육시켜서 어쩌면 더 이상 환생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현명해 질 기회를 갖게 될 거예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제3세계 나라에 다시 태어날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어요. 그런 나라에 태어나면 당신은 배불리 먹지는 못해도 인정이 넘치는 환경을 향유할 수는 있을 거예요.

 영혼: 고통받으며 힘겨운 삶을 사는 한이 있더라도, 아직 나라를 바꾸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내가 당신이라면 카펫 위에서 뒹굴던 그 곧 이혼할 부부를 택하겠어요. 이번 삶에서 당신이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좋은 점수를 받을 가능성이 많고, 그러면 당신의 다음 삶이 한결 나아지겠지요. 긴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해요. 사람 한평생, 알고 보면 잠깐입니다.

 육익 천사들이 지금까지 추천된 부분들의 영상을 주위에 퍼뜨려 놓는다.

 심판 대천사 라파엘: 내 생각에도 그게 좋을 것 같군요. 그 선택이 당신을 진보시킬 거예요. 처음엔 어렵겠지만 어른이 되면 그에 대한 보상을 받게 될 겁니다.

 영혼 (가브리엘에게): 천사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내가 당신이라면 그쪽보다는 담배 가게 주인인 폴레 부부를 선택할 겁니다. 술주정뱅이에다 주먹을 예사로 휘두르는 아버지가 있는 가정이지요. 나 같으면 기꺼이 그런 타락한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겠어요. 그런 가정에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사정이 좋아집니다. 언젠가는 당신이 아버지보다 더 힘이 세져서 당신 아버지가 감히 당신에게 손찌검을 못 하는 날이 올 것이고, 당신이 문을 꽝 닫고 집을 떠나서 아버지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날도 올 겁니다.

 영혼: 하지만 천사님들은 아까 제가 전생에서 부모를 홀대했다고 나무라지 않았습니까?

 심판 대천사 라파엘: 각각의 삶이 다릅니다. 절대적인 법칙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나쁜 부모를 벗어나려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나중에 가서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면, 당신은 상당히 높은 선업 점수를 받게 될 겁니다.

 샤를 도나위의 영혼은 각 부부의 영상을 주의깊게 검토하면서 한참 동안 숙고한다.

 영혼 (한숨을 쉬며): 좋아요. 카펫 위에서 사랑을 나누는, 곧 이혼할 부부를 고르겠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훌륭한 선택입니다. 아홉 달 지나면 당신은 시루블 부부의 가정에서 환생할 겁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이제 건강 문제로 넘어갑시다. 살다 보면 당신 몸에 탈이 날 텐데, 당신은 그것도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이너스 230점으로는 다음 목록에서 두 가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마비성 류머티즘, 위궤양, 항시적인 치통, 만성적인 안면신경통, 끊임없는 신경 발작, 설명 상태에 가까운 근시, 난청, 외사시(밖 외, 비낄 사, 볼 시), 항시적인 구취, 마른버짐, 변비, 알츠하이머 병, 왼쪽 다리 마비, 말더듬기, 만성 기관지염, 천식.

 영혼: 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서두르세요. 그렇잖으면 내가 당신 대신 결정할 테요. 당신 뒤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아요.

 영혼: 그럼 아무거나 하지요. 위궤양하고 천식으로 하겠습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영혼이 말한 것을 기록하며): 괜찮은 선택이에요. 뭘 아시는 분이군요.

 영혼: 전생에서 이미 만성 기관지염하고 지긋지긋한 치통 때문에 고생한 적이 있어요. 견디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바꾸는 게 낫겠어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간단한 절차가 더 남았어요. 당신은 남자로 환생하고 싶어요, 여자로 환생하고 싶어요?

 영혼: 무슨 차이가 있죠?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남자로 태어나면 병역 의무를 이행해야 합니다. 평균 수명은 80세입니다. 여자로 태어나면 산고를 치러야 합니다. 평균 수명은 90세입니다.

 영혼: 잠깐만요. 제가 여자로 태어나면, 여러분이 저에게 약속하신 매력적인 남자나 카리스마적인 우두머리가 될 수 없는 것 아닙니까?

 심판 대천사 미가엘: 아직도 남성 중심의 세계관을 못 버렸군요. 당신은 잘못 생각하고 있어요. 미래는 여성 군주들의 것입니다. 역할이 바뀌는 것일 뿐 당신의 상황은 달라지지 않습니다. 뭇사내들이 당신에게 머리를 조아릴 것이고, 당신은 마음껏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을 겁니다. 게다가 풍속이 계속 바뀌어 가고 있어요. 나라나 기업을 이끄는 여인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영혼: 그래도 출산의 고통이 너무 심하지 않을까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정 힘들면, 제왕 절개를 하는 방법도 있지요. 게다가 아는지 모르지만, 여자의 오르가슴은 남자의 오르가슴보다 아홉 배나 강렬합니다 여자들만이 진정한 쾌락을 경험할 수 있지요.

 영혼: 그 분야에 대해서 천사님은 저보다 더 많이 아시는 것 같군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왜 사내애들보다 계집애들이 많이 태어나는지 아세요? 그것은 사람들이 다음 삶을 선택하기 전에 서로 정보를 교환하기 때문이에요.

 영혼: 그럼, 좋아요. 여성으로 하겠습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이제 모든 삶에 걸쳐서 당신이 수행해야 하는 임무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당신은 아마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당신의 영혼은 지금으로부터 70 만 년 전에 나타났어요. 당신의 임무는 회화 예술을 완전히 혁신할 작품을 완성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금까지 당신이 만들어 낸 작품이 뭔 줄 아세요? 학습 노트 여백에 장래성을 겨우 짐작케 하는 낙서들을 몇 가지 남긴 게 전부예요. 당신은 이전의 어떤 삶도 당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활용하지 않았어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인류가 여러 분야에서 정체를 계속하고 있는 까닭을 알 만해요. 각자 지상에서 맡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으면 모든 예술 분야와 과학 분야가 정체할 수밖에 없지요.

 영혼: 전생에 나는 너무 일이 많아서 여가를 즐길 겨를이 전혀 없었어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한심하다는 듯): 당신 지금 우릴 놀리는 거요? 당신이 이전에 삶들을 어떻게 허비했는지 여기 다 나와 있어요. 당신은 메머드 사냥꾼, 짐수레꾼, 어떤 귀족의 시종, 아프리카 탐험가, 진주 캐는 사람, 영화 배우 따위를 했어요. 그런 걸 하느라고 그림 한 점 그릴 시간을 내지 못했단 말인가요?

 영혼: 그림 그릴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그럴까 봐 걱정이군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이제부턴 그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온 인류가 당신이 그림을 통해 기여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당신의 게으름 때문에 인류의 회화가 아직도 새로운 활력을 못 찾고 헤매는 거예요. 수많은 화가들과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스스로를 더 잘 표현하고 당신의 메시지를 풍부히 하기 위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다가 그림 한 점 못 그리고 죽기도 해요.

 영혼: 그것 참 유감스럽군요. 이번엔 최선을 다 해보겠습니다. 그렇지만, 화가는 배고픈 직업이에요. 50년을 기다려야 겨우 이름을 얻는 경우가 흔하죠.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비꼬듯): 굉장히 급하시군요. 기차 시간에 쫓기기라도 하시는 모양이죠? 깊이 생각하고 붓을 사는 데 필요한 시간이 90 년이나 있어요.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아요?

 영혼: 게다가 여자라는 점 때문에 어려움이 더 많을 텐데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어려움이 많을수록 보상이 커요. 당신의 작품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 훌륭하다면, 당신에게 선업 점수 700점을 드리기로 약속하지요. 그것은 100점 내에서 당신에게 악업을 허용한다는 얘기가 되요. 그 정도 점수면, 그림을 그리다가 싫증이 날 때 조금 방탕한 생활을 해도 괜찮을 거예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이분이 임무를 빨리 완수하고 싶어하는 것 같으니, 모짜르트 식의 삶을 마련해 주는 게 어떨까요?

 심판 대천사 미가엘: 모짜르트 식의 삶이라,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영혼 (흥미를 느끼며): 모짜르트 식의 삶이라는 게 뭡니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당신의 걸작을 아주 빨리 완성해서, 명성도 어느 정도 먹고 살 만큼 돈도 번 다음에, 질 좋은 작품을 대량으로 계속 만들어 내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일찍 죽는 거죠.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짜르트처럼 서른 다섯에 말입니다. 당신 경우에는 서른 아홉까지 갈 수도 있을 겁니다.

 영혼 (구미가 당기는 듯): 그거 괜찮은데요.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잠깐만요.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당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일이 남아 있어요.

 영혼: 죽음을 선택한다고요? 하지만 전 벌써 죽어 있지 않습니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당신의 다음 죽음을 말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걸 미리 결정해 놓아야 합니다.

 영혼: 그럼 지난번에 멍청하게 플라타너스를 들이박고 죽은 것도 제가 선택한 거란 말입니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그렇다마다요. 이번엔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또 자동차 사고로 할까요? 아니면, 코카인 과다 복용? 그것도 아니면, 당신 팬이나 당신을 연모하다 퇴짜를 맞은 사내에게 살해당하는 걸로 할까요? 우리는 지상에서 생길 수 있는 모든 죽음을 다 준비해 두고 있어요. 경찰관의 실수, 발코니에서 우연히 떨어진 화분, 익사, 자살 등 뭐든지 있어요. 죽음이 고통스러울수록 선업 점수가 크지요. 중세에 이단으로 몰려 화형당한 카타리 파 신도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선업 점수 500점을 얻고 윤회를 끝냈어요. 당시에는 화형이 유행했지요. 하지만 죽는 방법이 현대화된 다음부터는 그렇게 높은 점수가 없어요. 죄가 없는 사람이 누명을 쓰고 전기 의자에서 처형된다거나, 일반적인 암에 걸려 죽은 사람은 선업 점수 300점을 받을 수 있어요.

 영혼: 보상이 적어도 할 수 없어요. 저는 죽는다는 걸 느끼지 못하는 채 자다가 죽고 싶어요. 산 채로 잠들었다가 죽은 채로 깨어나고 싶어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누구나 그럴 수 있으면 좋게요. 미안한 얘기지만, 당신의 점수는 마이너스 230점이에요. 그 점수로는 그렇게 안락한 죽음을 바랄 수 없어요. 당신이 삶에서 죽음으로 이행하는 방식은 격렬할 수밖에 없어요. 게다가 당신의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하려면 그렇게 죽는 편이 나아요. 반 고흐를 생각해 보세요. 그림다운 그림을 그릴 줄 아는 사람이었는데, 고통도 겪을 만큼 겪었고 죽음도 고통스러웠지요. 그래서 그는 600점을 얻고 윤회를 끝낼 수 있었어요. 그는 순수한 정령이 되었어요. 그를 본보기로 삼아 보세요.

 영혼 (애처롭게): 하지만 저는 고통받고 싶지 않아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따지고 보면, 인간이 지상에 머무는 목적은 그저 즐기는 데 있는게 아니에요. 게다가 당신이 선택한 부모와 살면, 당신의 어린 시절이 장밋빛은 아닐 텐데요.

 영혼: 정말 어렵군요! 할 수 없죠. 자살을 택하겠어요. 하지만 고통스럽지 않고 아주 신속하게 이루어지는 자살이라야 해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높은 건물 창문에서 투신하는 건 어때요?

 영혼: 안 됩니다. 저는 줄곧 현기증 환자였어요.

 심판 대천사 라파엘: 미지근한 물이 담긴 욕조에서 정맥을 자르는 것은 어때요? 하지만 조심해야 돼요. 실패하지 않으려면 손목에 깊이 상처를 내야 해요. 그러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려워요. 칼날을 아주 예리하게 만드는 것도 잊으면 안 돼요.

 도나위의 영혼은 속이 메슥거리는지 입을 비죽 내민다.

 영혼: 하는 수 없지요. 면도칼 자살로 합시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가는 끈의 매듭을 문지르며): 자, 그럼 요약을 하겠습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당신은 위궤양과 천식을 앓는 여자로 다시 태어납니다. 당신의 부모는 이혼을 해서 당신에게 심한 마음의 상처를 줍니다. 당신은 젊은 나이에 훌륭한 그림을 그려냅니다. 당신은 욕조에서 정맥을 자르고 죽습니다. 나머지는 당신의 자유 의지대로 그때그때 알아서 하면 됩니다. 자, 다음 분 오십시오!

 심판 대천사 라파엘: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신상 기록 카드를 작성하는 일이 남았어요.

 영혼: 그건 또 뭐죠?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걱정할 것 없습니다. 당신의 특성 중에서 몇 가지를 분명히 해두려는 거니까요. 판단은 우리가 하는 거니까 당신은 아무 말씀 안 하셔도 됩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자, 시작하겠습니다.

 체력: 보통보다 낮은 수준

 미모: 보통보다 높은 수준

 시선의 강도: 보통보다 높은 수준

 목소리의 울림: 보통 수준

 카리스마: 아주 높은 수준

 재치를 발휘하는 능력: 낮은 수준

 거짓말 소질: 높은 수준

 기술적인 소질: 낮은 수준

 영혼: 기술적인 소질이 낮은 수준이라는 게 무슨 뜻이죠?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당신이 여자로 태어났을 때, 운전면허를 따는 데 애를 먹는다든가, 고장 난 세탁기를 혼자서는 고칠 수 없다는 걸 뜻하는 겁니다.

 영혼: 별거 아니군요. 미모가 있고 영리하면 나 대신 고쳐주러 올 사람이 언제나 있을 텐데요, 뭐.

 심판 대천사 미가엘: 계속하겠습니다.

 지력: 보통 수준

 유혹 능력: 높은 수준

 지구력: 낮은 수준

 고집: 높은 수준

 요리 소질: 낮은 수준

 흥분하는 경향: 높은 수준

 영혼: 저는 성미 급한 사람이 되는 겁니까?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꽤 급할 겁니다.

 심판 대천사 미가엘 (자꾸 방해를 받아 성가시다는 듯):

 악기 연주 능력: 낮은 수준

 권총 사격 능력: 높은 수준

 스포츠 활동에 대한 관심: 낮은 수준

 자식 욕심: 낮은 수준

 영혼: 자유 의지라는 건 말뿐이군요. 아직도 더 알려 줄 게 있습니까? 십자말풀이에 재주가 있다는 말씀은 안 하십니까? 내 환생을 내가 선택하는 거라고 하셨는데, 내 의지와 상관없이 미리 정해진 요소가 너무 많군요. 이래도 되는 겁니까?

 심판 대천사 미가엘: 보세요, 당신이 성미 급한 사람이라는 게 벌써 표가 나잖아요. 계속합시다.

 싸움 소질: 높은 수준

 거짓 울음을 우는 능력: 높은 수준

 모험에 대한 관심: 낮은 수준

 자, 다른 분 오세요!

 영혼: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데요. 제가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게 되나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물론 아니지요.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이 여기를 거쳐갔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하지만, 이따금 어떤 직감이나 예감을 갖게 될 겁니다. 이 심판에 관해 당신이 간직하게 될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 직감이 생기거든 그것을 믿고 따르시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당신 부모들이 방사를 끝내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기차를 놓치게 돼요. 자, 가요!

 다음 분 오세요!

 싸움 소질: 높은 수준

 거짓 울음을 우는 능력: 높은 수준

 모험에 대한 관심: 낮은 수준

 자, 다른 분 오세요!

 영혼: 한 가지만 더 묻고 싶은데요. 제가 이 모든 것을 다 기억하게 되나요?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물론 아니지요. 당신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할 겁니다. 당신이 여기를 거쳐 갔다는 사실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예요 그편이 훨씬 나을 겁니다.

 심판 대천사 가브리엘: 하지만, 이따금 어떤 직감이나 예감을 갖게 될 겁니다. 이 심판에 관해 당신이 간직하게 될 것은 그게 전부입니다. 그런 직감이 생기거든 그것을 믿고 따르시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얘기가 너무 길었군요. 당신 부모들이 방사를 끝내기 전에 서둘러 내려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당신은 기차를 놓치게 돼요. 자, 가요!

 다음 분 오세요!

 

235. 기독교 신화

 우리는 천사들의 형체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천상의 뜨락으로 인도받아 들어갈 때 천사들의 휘황 찬란한 모습을 보고 우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무수한 복된 영혼들과 영원히 형제처럼 지낸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천사들은 아주 뛰어난 영혼들이어서 우리의 예술가와 천재들은 그들에 비하면 난쟁이에 불과합니다.

 - 샤누완 G. 판통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36. 역사 교과서

 완성된 영계 지도

 1. 이륙

 2. 생명의 징후가 사라짐. 약 86kHz의 파동이 나옴.

 3. 코마

 4. 지구를 벗어남.

 5. 우주 공간을 비행함. 지속 시간: 약 18분

 6. 소용돌이 치는 거대한 빛의 동그라미 출현. 영계의 가장자리. 파란 기슭.

 7. 제1천계에 다다름.

 

 제1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18분

 빛깔: 청색

 느낌: 유혹, 물, 하늘. 삽상함과 즐거움.

 겪는 일: 빛의 유혹을 받음.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첫 번째 코마 장벽 넘기를 두려워하지 말 것.

 끝나는 곳: 모흐 1

 

 제2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21분

 빛깔: 암흑

 느낌: 두려움, 혐오감, 추위, 전율

 겪는 일: 갈수록 가팔라지는 벼랑길 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과 맞딱뜨림. 빛을 여전히 존재하나 기억의 공격 때문에 아스라해 짐.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자기 과거를 이해하고 자기 행위 하나하나에 대해 자기 입장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끝나는 곳: 모흐 2

 

 제3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24분

 빛깔: 적색

 느낌: 쾌락, 불, 더위, 습기.

 겪는 일: 자기의 가장 타락한 마음과 가장 터무니없는 환상을 만남. 가장 깊숙한 내면에 감추어 두었던 욕망들이 표면으로 떠오름. 그것들에 굴복당하지 말고 의연하게 맞서야 함. 방심하다간 끈끈한 내벽에 붙어 버릴 염려가 있음.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환상의 진창에 빠지지 말고 의연하게 받아들일 것.

 끝나는 곳: 모흐 3

 

 제4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27

 빛깔: 주황색

 느낌: 시간과의 싸움, 강한 바람.

 겪는 일: 끝없이 늘어선 영혼의 행렬을 만남. 영혼의 행렬은 원통형의 거대한 평원을 가로질러 천천히 나아가고 있음. 지리한 시간과 맞섬으로써 인내심을 배움. 유명한 고인들과 만다 대화를 나눌 수 있음.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시간을 허버하고 있다는 두려움이나 시간을 벌겠다는 조바심에서 벗어날 것. 불멸성을 받아들이고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으로 행동할 것.

 끝나는 곳: 모흐 4

 

 제5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42분

 빛깔: 황색

 느낌: 열정, 힘, 전지 전능함.

 겪는 일: 이제껏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모든 신비를 깨우침. 요가 수행자들은 샤크라의 의미를 깨닫고 제3의 눈을 찾음. 도교 신자들은 도(길 도)를 발견함. 유대교도는 카발라의 신비를 풂. 회교도에게는 알라의 낙원이 나타나고 기독교인에게는 에덴 동산이 나타남. 절대지의 천계. 모든 것이 자기의 존재 이유를 찾음. 무한히 큰 것에서 무한히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삶의 의미를 깨달음.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지식에 너무 현혹되지 말 것. 지식에 걸신들린 것처럼 마구 삼키려 들지 말고 자신을 지혜로 가득 채울 것.

 끝나는 곳: 모흐 5

 

 제6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49분

 빛깔: 녹색

 느낌: 완벽한 아름다움.

 겪는 일: 화려한 풍광을 발견한다. 꿈 같은 광경, 고운 꽃, 오색 영롱한 열매를 달고 있는 식물. 녹색 천계는 절대미의 세계다. 그러나 뜻밖의 시련을 겪는 곳이기도 하다. 절대미를 보게 되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흉측하고 쓸모없고 투박하고 우둔하게 느낀다. 겸허함을 느끼는 정도가 아니라 자신에 대해 지독한 혐오감을 느끼는 것이다.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자기 자신의 추악함을 받아들일 것.

 끝나는 곳: 모흐 6

 

 제7 천계

 자리: 코마 플러스 51분

 겪는 일: 천사와 악마를 만난다. 한가운데는 영혼의 행렬이 장강처럼 흘러간다. 안쪽에는 마지막 심판이 이루어지는 빛의 산이 있다. 여기에서 영혼들의 이동이 끝나고 새로운 환생이 시작된다. 세 대천사가 영혼을 심판한다.

 계속 나아가기 위한 도움말: 자기의 업보를 받아들일 준비를 할 것. 전생의 악업을 씻을 수 있는 환생을 자발적으로 요구할 것.

 끝나는 곳: 빛의 산

   "기초 강의용 영계 탐사의 역사"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영계지도.jpg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602pixel, 세로 834pixel
사진 찍은 날짜: 2022년 07월 02일 오후 10:16
프로그램 이름 : Adobe Photoshop 22.3 (Windows)
색 대표 : sRGB

 

 237. 우려

 샤를 도나위의 심판 장면을 기록한 기사는, 조촐한 "프티 타나토노트 화보"에 실렸지만, 그 반향은 세계적이었다. 그 기사는 모든 언어로 번역되었고, 가장 뛰어난 심리학자, 철학자, 성직자, 정신 분석학자, 정치가들이 해설을 덧붙였다.

 가장 말이 많았던 사람은 물론 우리의 친구 뤼생데르 대통령이었다.

 그는 모든 텔레비전 방송을 동원하여 우리가 메시아의 시대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연설을 했다. 그는 영계 탐사가 이제껏 닫혀 있던 모든 문을 열어제쳤다고 주장했다. 이제부턴 영계의 발견 이전과 이후로 시대를 나누어야 하리라는 거였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그가 그 새로운 시대를 뤼생데르의 시대로 규정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 이전과 이후를 기준으로 한 기독교의 시대 구분은 사라지고, 우리가 사는

연대가 갑자기 장 뤼생데르 출생 이후 68 년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뤼생데르가 모든 유권자들이 자기를 지지하게끔 만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그의 연설을 들은 사람은 누구나 뭔가 아주 중요한 일이 성취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커다란 문이 열리자 폭풍이 몰려 들어와 오랫동안 닫혀 있던 방을 휩쓸려 하고 있었다.

 죽음이 하나의 나라라는 것, 그 나라에 천사들이 살고 있다는 것, 대천사들이 우리의 지난 삶을 심판한다는 것을 알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었다. (어떤 영혼과의 대화)는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왜 도덕적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더욱 분명하게 가르쳐 준 셈이었다.

 이승에는 착하게 사는 방식과 나쁘게 사는 방식이이 있다. 지상에 머무는 동안 사람들은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이나 다름없다. 그들은 측은지심과 너그러움과 양심의 고양을 배워야 했다.

 그 가르침은 아주 간단하고 유치하고 도덕적인 것이었다. 갖가지 교리 문답서들만이 가르쳐 왔을 뿐, 수세기를 거치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을 잊고 있던 것이었다. 하지만, 미래가 착한 사람들의 것임은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성직자들이 되풀이해 온 얘기가 아니던가!

 죽음의 마지막 비밀이 모두에게 밝혀짐으로써 나타날 폐해가 분명히 있었다. 내가 그 위험성을 깨달았을 때는 이미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있었다. 이미 모든 사람들이 비밀을 알아 버린 뒤였다. 이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악취로 가득 찬 자기의 업을 정화하고, 일체의 악행을 저지르지 않음으로써 자기의 삶을 더럽히지 않는 것이었다. 살고, 고통받고, 죽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순수한 정령이라는 정점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할 삽화에 지나지 않았다.

 우리는 펜트하우스에 모여 그 문제에 관해 토론했다. 촛불의 은은한 빛을 받고 있는 유리 지붕을 통해 별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가 된 아망딘은 여사제 같은 분위기를 풍기려고 애썼다. 그녀의 복장은 이제 한 가지뿐이었다. 깃을 세우고 치마를 길게 튼 중국식의 긴 드레스가 그것이었다. 빛깔은 물론 검은색이었다. 또, 아망딘은 펜트하우스의 모든 전등을 없애고 촛대를 들여놓았다. 오렌지색 불빛이 우리를 담뿍 적시고 있었다.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우리는 중대한 위기를 맞고 있어요. 뜻하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는 속수무책이에요. 영계 탐사는 우리 손을 떠났어요."

 아망딘이 비극 배우가 대사를 하듯이 짐짓 드레지게 말했다.

 "이런 사태가 오리라는 걸 예상했어야 해요. 영계 탐사는 중요한 문제들을 너무 많이 건드렸어요. 우리는 죽음의 신비를 벗기는 일에서 삶의 보람을 찾았는데, 그 결과가 너무 이상해졌어요."

 스테파니아가 평소처럼 괄괄하게 말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경우도 비슷했어요. 그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도 귀환의 때를 놓쳤어요. 그는 앵무새와 초콜릿으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려고 생각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조롱했어요. 우리가 무시당하는 게 당연한 건지도 몰라요."

 또 콜럼버스 얘기다...

 "그 가련한 콜럼버스는 비참과 망각 속에서 죽었어요. 그에 비하면 우리 형편은 나은 편이에요."

 로즈가 스테파니아를 달랬다. 그러자 스테파니아는 더욱 화를 냈다.

 "하지만, 콜롬부스가 진짜 비참한 이유는 탐험의 성과를 완전히 남에게 빼앗겨 버렸다는 거예요. 아메리카라는 이름이 에스파니아 왕실로부터 공인을 받은 유일한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의 이름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걸 말해 주고 있어요. 우리도 그와 비슷해요. 사람들이 우리에게서 우리 일을 빼앗아 가고 있어요."

 나는 동감한다는 뜻으로 나지막한 탁자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하마터면 아망딘이 만든 칵테일이 엎어질 뻔했다. 라울을 포기한 뒤로는 이상하게도 그 친구 대신에 내가 고함을 질러대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다. 어떤 집단에나 다 그렇듯이 우리 동아리에도 성미 급하고 다혈질인 사람이 꼭 있어야 할 것만 같았다.

 "우리는 영계 탐사의 주도권을 지켜야 해요. 우리는 영계 탐사의 개척자였고, 그것을 통제하는 것도 당연히 우리 몫이 되어야 해요."

 내가 그렇게 소리를 치자, 로즈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하지만 여보, "어떤 영혼과의 대화"가 나온 뒤로 영계 탐사는 우리 손을 떠난 거예요."

 스테파니아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다시 나섰다.

 "뉴스에서 말하는 거 다들 들었죠? 범죄 건수가 현격하게 줄어들었대요. 이제 살인하는 사람은 미친 사람들밖에 없어요. 선행에 보상이 따른다는 걸 알게 되더니, 세상 사람들이 다들 성인이 되려나 봐요."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뭐죠?"

 아망딘이 실제적인 물음을 던졌다.

 "없어요. 너도 나도 착하게 살겠다고 마음먹고 있으니, 선행이 대조류를 이룰 거예요. 그런 것은 인간 세상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어요. 그런 조류가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두고 봐야죠."

 로즈의 말에 다들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앞에 놓인 음료를 음미하며 마셨다. 알코올은 별로 들어 있지 않고 너무 달았다. 혐오감이 일었다.

 

 238. 아마조니아 인디언 신화

 옛날에 과라니90) 인디언들은 하늘에서 신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그들의 임무는 항성의 불을 간수하고 행성의 반사광을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리고 서툰 어떤 전사가 활을 쏘던 중에 하늘에 구멍을 냈다. 그 구멍으로 땅을 내려다보니 여간 풍요로워 보이는 게 아니었다. 양떼, 사냥감, 꿀벌통, 물고기, 열매 따위가 하도 먹음직스러워서 그 전사는 자기가 발견한 것을 형제들에게 알렸다. 신들이 한눈 파는 틈을 타서 과라니들은 땅으로 덩굴식물을 던진 다음 그것을 타고 내려왔다. 그때 그들이 다다른 곳은 오리노코 강 연안의 숲 한가운데였다. 그들은 지상의 음식을 마음껏 먹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동물들이 경계심을 갖게 되면서 점점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큰물이 나서 열매들이 썩어 버렸다. 과라니 인디언들은 오한이 들어 덜덜 떨면서 신들에게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다. 하늘은 닫혀 버렸고 과라니 인디언들은 그들이 그토록 갈망하던 그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도록 벌을 받았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39. 달작지근한 세상

 사람들은 갈수록 착해져 갔다. 악행을 저질러서 자기의 업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 애썼다. 악업을 쌓으면 허덕이는 아프리카, 또는 뉴욕이나 파리의 빈민가에 환생할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어떤 공상 과학 소설도 그토록 감미로운 현실을 상상하지 못했다. 상냥함이 전염병처럼 온 세상을 휩쓸고 있었다.

 자선 사업 단체에 기부금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사람들은 수표나 자기의 가장 좋은 옷을 내놓기 위해 몇 시간씩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헌혈을 하려는 사람들이 병원에 몰려드는 바람에 병원 쪽에서는 수많은 헌혈 희망자들을 골고루 만족시키기 위해 대기자 명부를 만들어야 했다.

 세계 전역에 걸쳐서 만성적인 분쟁이 저절로 종식되었고, 무기상들은 악업의 원천이 되는 자기들의 사업을 기꺼이 포기했다. 멀건 가깝건 악행으로 간주될 염려가 있는 일은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마약 중독자들은 공급자들을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은행업자들은 요구만 하면 가장 낮은 금리로 대출을 허락했다. 고객들의 상환 능력은 더 이상 알려고 하지 않았다. 너그럽게 베풀다가 손해를 보는 것은 틀림없이 저승에 가서 좋은 보상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었다.

 거지의 깡통 앞에도 착한 영혼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거지들은 신용 카드를 받을 수 있도록 기계를 준비했고, 수표는 신분증을 제시해야만 받아주었다.

 더 이상 문에 빗장을 지를 필요가 없었고 경보 장치도 폐기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아파트며 자동차며 금고의 문을 활짝 열어 둘 수 있게 되었다. 훔쳐 갈테면 훔쳐 가라! 하고 내버려 둬도 아무도 훔쳐 가는 사람이 없었다.

 인색함, 강도, 말다툼, 몸싸움 폭력 따위가 자취를 감추었다. 그에 비해 상업은 번창했다. 인색함 때문에 죄를 짓지 않으려고 사람들은 아무에게나 닥치는 대로 선물을 했다. 장님이 길을 건널 기미를 보이면, 수십 명이 팔을 내밀었다. 그러다 보니, 길을 건널 의사도 없는 맹인들이 반대편 보도로 옮겨져서 길을 잃는 경우가 속출했다.

 제3 세계 국가들은 상당한 액수의 원조를 받았다. 저승에 가서 시험에 떨어지면 가난한 나라에 환생할지도 모르는 일이니, 그 동안에 가난한 나라들이 부유해져야 나중 삶이 더 편하리라는 생각이 그런 사정의 바탕이 되었다. 자기가 다시 태어날지도 모를 불행한 가정의 수를 줄이는 일이 일반적인 관심이 되었다.

 사람들은 찡그린 얼굴이나 험한 말로 이웃에게 불쾌감을 줄까 저어하며 억지로라도 웃는 얼굴을 보이려고 애썼다.

 사람들은 착하고 슬기롭게 살아서 순수한 정령이 될 만한 점수를 받지 못하면 끝없이 환생을 되풀이해야 한다는 법칙을 저마다의 가슴에 단단히 새겨 놓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화실, 음악가의 연습실, 도자기 가마, 심지어 요리사의 주방에까지 위대한 임무를 띠고 환생한 예술가를 찾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도나위의 영혼처럼, 곧 숨겨진 재능을 발휘할 예술가가 어떤 사람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사정이 그렇고 보니, 가장 형편없는 작품조차 사려는 사람이 나섰다. 가난한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싶어 안달하는 독지가들은 기들의 그림을 거실에 당당하게 내걸었다.

 누구나 배우고, 깨닫고, 진보하고, 자기를 개선하는 일에 전념했다. 각종 교육 기관에서 학생을 모집할 때는 한결같이 (영혼의 아름다움을 유지하세요. 정원을 가꾸듯 당신의 영혼을 가꾸세요)라는 식으로 광고를 냈다.

 기업주들은 자기 사원들에게 임금 인상을 받아들여 달라고 애원했다. 하지만 사원들은 그것을 거절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들의 재능을 계발하는 데 필요한 여가였다. 노조에서는 (돈이 아니라 도서관을)을 요구했다. 그러자 건축업자들은 기꺼이 도서관을 세워 주었다.

 사정이 그러하니, 영계 탐사에 관한 관심이 되살아나는 것은 당연했다. 저승에 올라가서 )먼저 가신 소중한 이들")을 다시 만나거나, 그것까지는 이루지 못하더라도 자기의 업에 대해 한 번쯤 알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240. 나바호91) 인디언 신화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죽음을 병적으로 두려워한다. 특히 나바호 인디언들이 그러하다. 그들은 시체에 다가가는 일도 겨우겨우 할 만큼 두려워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들은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조금이라도 몸이 닿을세라 조심조심하면서 재빨리 시신을 묻어 버린다. 시신은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외진 곳에 묻는다. 그들은 망자의 물건에는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고 그의 천막에도 다가가지 않으며 그 사람 것은 이제부터 다 더러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바호 신화에는 나바호들을 죽이려는 괴물들을 죽이기 위해 태양에서 무기를 탈취해 왔다는 쌍둥이 영웅이 나온다.

 그 괴물들이란 늙음, 더러움, 가난 그리고 배고픔이다. 그 괴물이 아직도 살아 있는 것은 쌍둥이 영웅의 일이 사소한 차질을 빚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 괴물들에게 현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41. 프레디 메예르의 환생을 찾아서

 라울은 세상의 갑작스런 변화에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알콜 중독 치료가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한 셈이었다. 그의 음주벽이 이미 중증에 들어섰음을 알고, 그에게 술을 주려는 술집 주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줄곧 마셔댔다.

 그리하여 타나토드롬에는 여전히 나와 (나의) 세 여자 로즈, 스테파니아, 아망딘만이 있었다. 그 기간 동안 우리가 즐기던 소일거리는 프레디의 환생을 찾기 위하여 신문의 출생 광고란을 낱낱이 뒤지는 일이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머리글자가 F. M.인 아기들을 찾아냈다. 프랑스와 모를롱, 파니아 마우이치, 프랑크 미냐르, 펠리시테 뮈냉, 페르낭 멜리시에, 플로랑 무시냐르, 파비앵 메르칸토비치, 피르맹 마글루아르, 플로랑스 메르원... 그런 이름들을 찾아낼 때마다 우리는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부모들과 만날 약속을 했다. 그들 집에 찾아가서 우리는 아이 앞에 손목시계와 만년필과 메달을 각각 10개씩 죽 늘어놓고 그 속에 프레디의 소지품이었던 손목시계와 만년필과 메달을 섞어 놓았다. 그러나 프레디가 사용하던 물건 쪽으로 손을 뻗는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내가 실망한 기색을 보일 때마다 아내는 나를 위로하곤 했다. "너무 일러요. 줄을 서서 기다리던 영혼의 행렬을 생각해 봐요. 프레디는 아직 황색 천계에서 북적거리는 영혼들 속을 빠져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빅토르 위고도 아직 환생을 기다리고 있어요. 19세기에 죽은 사람도 아직 통과하지 않았는데, 프레디는 말할 것도 없잖아요?"

 "죽은 이들이 모두 똑같은 속도로 나아가는 건 아니오. 빅토르 위고는 너무 수다스러워서 다른 영혼들하고 입씨름을 하느라고 뒤로 처진 거요. 서둘러 나아가는 영혼들도 있어요. 도나위의 영혼이 얼마나 빨리 환생했는지 생각해 봐요!"

 "참고 기다립시다. 프레디는 언제나 참을성 있는 모습을 보여 준 분이잖아요."

 참고 기다리자는 아내의 말 속에는 장차 태어날 우리 아기가 프레디의 환생일 수도 있다는 기대가 잠겨 있었다. 우리는 여러 차례의 토론을 거쳐 우리 아기가 태어나기도 전에 프레데릭 마르셀 팽송이라는 이름을 지어 놓고, 한술 더 떠서 우리끼리는 아예 프레디 2세라고 불렀다.

 나는 아내의 분만을 도왔다.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었다! 입맞춤과 포옹을 하고 아홉 달이 지났더니, 우리의 뜨거운 사랑이 3.2kg의 작고 연약한 아기로 변해 있었다. 따뜻한 보살핌을 갈망하는 발그레한 생명체였다. 나는 일찍이 그보다 더 감동적인 일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그것은 수십억의 수십억 번이나 되풀이된 평범한 일이었다. 하지만 생명의 탄생이라는 그 기적에 비하면 영계의 발견조차 아무것도 아니었다.

 며칠 전만 해도 뷔트 쇼몽 타나토드롬의 우리 아파트에는 두 사람만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셋이 되었다. 그보다 더 경이로운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것에 비하면 영계 탐사도 내 카르마도 사소한 일에 지나지 않았다. 오로지 우리의 (프레디 2세)만이 중요했다.

 

 242. 경찰 기록

 관계 부서에 보내는 보고

 우리가 대단히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영계 탐사가 발전하도록 방치한 것은 실수였습니다. 현재 매일 열 팀 이상이 영계를 향해 이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기술은 갈수록 안전성이 높아 갑니다. 천사들과 악마들이 일을 하는 데 방해를 받고 있습니다.

 

 관계 부서의 회신

 사태를 과장할 필요는 없음. 영계 탐사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임. 천 년의 전통이 있음. 우리는 영계로 들어올 줄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입계를 허용해 왔음. 아직 우리의 태도를 바꿀 만한 이유가 없음.

 

 243. 도교 철학

 인생은 한바탕의 꿈과 같다. 형체가 바뀌는 것에 불과한 죽음 때문에 근심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단 하루를 머물 집에 어찌 그리 미련을 두는가?

 - 노자(늙을 노, 아들 자)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244. 프레디 2세

 우리는 고(옛 고) 프레디의 소지품으로 우리 프레디 2세를 시험하기까지 1년을 기다렸다.

 고인의 소지품을 가지고 환생을 알아내는 것은 티벳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이다. 아프리카의 몇몇 부족에도 그와 비슷한 관습이 있다. 그들은 죽은 사람의 손가락뼈를 잘라 두었다가 나중에 그와 똑같은 손가락뼈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한다. 우리가 보기에는 티벳의 식별 의식이 더 타당했다.

 로즈와 아망딘과 나는 프레디 2세를 카펫 위에 앉히고, 우리도 아이 옆에 무릎을 꿇고 손바닥으로 바닥을 짚은 채 엎드렸다. 아이는 우리가 잔뜩 펼쳐 놓은 손목시계와 만년필과 메달을 빤히 바라보았다. 신기하고 흥미롭게 생긴 딸랑이들을 바라보듯 했다. 평소 같으면 우리는 그런 물건들이 아이 손에 닿지 않도록 멀찌감치 떼어놓았을 것이다. 아이가 물건을 망가뜨리거나, 더 나쁜 경우에는 삼켜 버릴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먼저 시계에 관심을 보이며, 그중의 몇 개를 잡고 흔들다가 두 개를 깨뜨리려고 했다(바로 그런 일을 염려해서 나는 내 물건을 아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어 왔던 것이다). 그러다가 아이는 마침내 우리의 라비가 사용하던 시계를 잡고 좋아라 했다.

 우리는 이미 서로 얼싸안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프레디 메예르가 우리 아들의 몸을 빌려 지상에 돌아왔다! 그러나 로즈는 아직 그럴 때가 아님을 일깨웠다.

 "흥분하지 말아요."

 로즈가 속삭였다. 아이는 카펫 위에 놓은 물건 더미를 계속 뒤적거리고 있었다.

 다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아이가 프레디의 만년필을 자랑스럽게 흔들고 있었다. 아이는 만년필 더미에서 그것을 식별한 다음 곧바로 그것을 집어 든 것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그 순간에 나는 우리가 프레디 메예르를 다시 찾은 거라고 확신했다. 천국에서 부모를 선택하는 순간에 그가 우리를 고른 것이다. 프레디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그는 우리가 자기를 알아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쨌든 나는 프레디 메에르와 프레데릭 마르셀 팽송이 똑같은 하나의 업을 가지고 있다고 확신했다.

 아이가 이미 자기 안에 엄청난 지식을 지니고 있을 터이므로 우리는 아주 많은 시간을 벌게 되는 셈이었다.

 아망딘이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철이 드는 대로 이 아이에게 무용과 안무를 가르쳐요."

 그 말을 받아 내가 덧붙였다.

 "탈무드 학교에도 보냅시다. 그리고 우리가 프레디 1세의 삶을 프레디 2세에게 이야기해 주면, 프레디 2세는 환생의 순환에서 눈부신 도약을 이루어낼 겁니다."

 "우리 아이는 대번에 60 년의 경험을 활용하게 될 거예요. 이 애는 두 삶의 기억을 동시에 가진 첫 번째 사람이 되겠지요."

 로즈는 우리의 신동에 대해 자기가 품고 있는 야망을 숨기지 않았다.

 "스무 살이 되면, 우리 아이는 벌써 위대한 현자가 되어 있을 거예요. 모짜르트 같은 사람이 나타나게 된 사정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모짜르트는 다른 탁월한 음악가의 환생이었고, 그의 부모는 대번에 그 사실을 깨달았던 거예요."

 우리는 기쁨에 젖어 아이의 미래를 위한 제안들을 자꾸 늘어놓았다.

 우리가 프레디 2세에게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고 한눈을 팔고 있을 때, 우리의 들뜬 마음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벌어졌다. 아이는 프레디 1세의 만년필을 팽개치고, 한결 더 솔깃한 오렌지색 형광펜을 잡았다.

 아이가 이 물건에서 저 물건으로 편력을 계속하는 동안, 우리는 낭패감을 느끼며 아이를 지켜보았다. 아이는 우리 라비의 시계와 메달을 내던지고 짙푸른색 일회용 라이터와 금박 종이에 싸인 막대 초콜릿을 움켜쥐었다. 고약한 일이었다. 우리는 갑자기 우리의 사랑스런 아들을 낯모르는 아이를 대하듯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는 우리가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어떤 낯선 사람의 환생인가 보았다.

 로즈는 아이가 우리 가정 같은 곳에 태어난 걸 보면 전생에 착하게 살았던 사람의 환생임이 분명하다면서 나와 아망딘을 위로하고 스스로도 힘을 얻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우리 아이가 프레디가 아닌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갑자기 아니가 웬지 낯설게 느껴졌다. 아이가 우리를 실망시켰다. 우리가 낳은 아기는 우리가 모르는 어떤 사람의 업을 받고 나온 평범한 아기였다. 우리 아기는 성인 같은 사람의 전생이 아니라 어떤 평범한 사람의 전생을 잇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피부색이 다른 외국의 아이를 입양한 느낌, 또는 상거래에서 사기를 당한 느낌을 받았다.

 정말 실망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는 집어든 막대 초콜릿을 먹기 시작했다. 아이가 얼굴에 초콜릿을 잔뜩 묻히자, 로즈는 마땅치 않다는 기색까지 보이면서 아이의 얼굴을 닦았다.

 그날 밤, 침대에서 우리는 부부 싸움을 했다. 아내가 먼저 지청구를 했다.

 "당신이 애한테 프레디라는 이름을 지어 주자고 했지요? 그건 너무 경솔했어요. 이제 그 이름이 우리 애하고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게 밝혀졌으니, 우리 애는 자기 것도 아닌 이름을 평생의 짐처럼 지고 살아야 해요."

 나는 그때까지 한 번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악의를 가지고 억지를 부렸다.

 "잘못은 당신에게 있어요. 따지고 보면, 애는 당신 뱃속에서 만들어진 거지, 내 뱃속에서 만들어진 게 아니잖소? 당신이 좀더 신경을 썼으면 프레디의 영혼이 깃들은 아이를 낳았을지도 몰라요."

 아내가 화가 나서 깃이불을 열어제치며 되받았다.

 "그게 가능하려면 수십억 번에 한 번 있는 행운이 따라야 한다는 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왜 그래요?"

 "수십억 번에 한 번 있는 행운이 따라서 우리가 (진짜) 프레디를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섭섭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 애가 당신과 나의 유전자에서 나온 우리 애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돼요. 이 애가 나중에 프레디 같은 사람이 되지 말란 법이 없잖아요?"

 "우리 애의 눈을 멀게 하면, 프레디만 한 재주와 운을 갖게 될지도 모르지."

 로즈가 몹시 화를 냈다. 하긴, 자식에게 험담하는 자를 가만히 내버려 둘 어미가 어디 있겠는가. 로즈는 갖은 수단을 다 동원해 아들을 옹호하려 했다. 아내가 그렇게 성을 내는 모습은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아내는 갖가지 묵은 원망을 내 면전에 마구 쏟아부었다. 아내는 내가 개성도 없고 진취성도 없으며, 늘 라울에게 순종만 해왔다고 비난했다. 또, 어머니와 형이 우리 아파트에 불쑥불쑥 드나드는 것을 막지 못한다고 나무랐다.

 "특별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예고도 없이 식사 때에 불쑥 찾아오면 나보고 어떡하란 말이에요? 내가 시장 볼 시간이 있는지 없는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으시고, 언제 우리 집에 오시면서 꽃 한 송이 들고 오시는 거 봤어요?"

 "그렇다고 당신이 대접을 잘해 드린 것도 없잖소? 당신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은 것도 아니고 말이오. 게다가 당신, 애를 제대로 돌봐준 적 있소? 천문학 연구에 몰두하느라고 그럴 틈이 없었다고 변명할 거요? 그러고도 아이 어머니라고 큰소리칠 수 있소?"

 말이 또 다른 말을 끌어내어 뜻하지 않던 이야기들이 튀어나왔다. 아내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지, 집히는 대로 옷을 걸쳐 입고 친정으로 피해 버렸다.

 혼자서 프레디 2세를 보고 있자니 한심한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 울적한 마음을 아는지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을 하릴없이 흔들어 주다가 결국 아이를 내 침대로 데려갔다.

 아들이 잠이 들자, 나는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공포 소설을 읽으면서 위안을 찾으려 했다. 아주 끔찍한 이야기들을 읽노라면, 자기의 사소한 문제가 상대적으로 가볍게 느껴지면서 거리를 두고 바라볼 여유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나는 아내에게 행한 나의 비열하기 짝이 없는 행동과 모욕적인 언사를 도저히 잊을 수 없었다.

 바로 그때, 뜻밖에도 라울이 타나토드롬에 돌아와 우리 아파트를 찾아왔다.

 그는 몸도 겨우 가눌 만큼 대취해 있었지만 내가 완전히 낙담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 나는 아내와 싸운 일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라울은 묘한 표정을 짓더니, 주사(술 주, 간사할 사)라도 하려는 듯 나에게 다가와 거창하게 말했다.

 "미카엘, 자네에게 두 번째 비밀을 알려줄 순간이 왔네."

 다른 때 같았으면 나는 재빨리 귀를 막거나 그의 입을 막기 위해 주먹을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아내와 싸운 일로 대단히 흥분해 있었다. 나는 아내에게 했던 약속을 저버리고 오히려 라울의 이야기를 재촉했다.

 "로즈와 관계가 있는 건가?"

 "음,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

 "자, 어서 말해 보게."

 라울은 카펫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카펫 위에 있던 프레디의 유품들은 다 치워 놓은 뒤였다. 나는 라울 옆에 배를 깔고 엎드렸다. 라울은 카펫 위에 침을 흘리며 바보처럼 히죽거렸다. 그를 마구 흔들고 싶었지만, 이내 그 충동을 억눌렀다. 자칫하면 그가 토악질을 해서 카펫을 더럽힐 염려가 있었다. 아내는 그 손실을 결코 묵과하지 않을 거였다.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라울을 안아 일으켜 안락 의자에 앉히면서 물었다.

 "그런데, 그 두 번째 진실이라는 게 뭐야?"

 라울이 딸꾹질을 했다.

 "그건 사랑에 관한 거야."

 "사랑에 관한 거라고?"

 "그래. 이 세상 어딘가에 자네를 사랑하면서 자네를 기다리고 있는 여인이 있어."

 라울은 더듬거리며 무슨 말인가를 더 주절거리다가 마침내 동이 닿는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는 전생에 위대한 사랑을 경험했네. 정말 아주 위대한 사랑일세. 놀랍도록 아름다운 여인과 열렬한 사랑을 나누었지.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여인은 선천적으로 불임이었네. 그래서 전생의 자네 부부에겐 애가 없었지. 그 때문에 여인은 엄청난 고통을 느꼈고 자네도 마찬가지였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무심코 대로를 건너다가 차에 치이고 말았네. 천사들은 그것을 일종의 자살로 생각하고 있지. 어쨌든, 자네는 아내를 잃은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슬픔의 나날을 보내다가 몇 달 뒤에 아내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네."

 라울은 취기가 조금 가신 듯 차분하게 설명을 계속했다.

 "부부가 그렇게 열렬히 사랑하고도 애를 낳지 못하면, 내생에서 다시 만나 그 한을 풀 수 있다네"

 라울의 말인즉슨, 그 여인이 나의 진정한 아내이기 때문에 나는 그 여자를 다시 만나야 한다는 거였다. 라울은 그 여인에 대해서 거의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사탄이 그에게 많은 것을 알려 주었던 모양이다.

 "현생에서 그녀의 이름은 나딘 켄트라네. 미국인인데 지금은 파리에 살고 있어."

 어쩌면 길에서 우연히 그녀와 마주친 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영혼이 영계 탐사에 완전히 매여 있어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 거였다.

 "나딘 켄트!"

 나는 꿈꾸듯 생각에 잠겨 그 이름을 되뇌었다.

 "그래, 사탄이 내게 가르쳐 준 이름이 그것일세."

 "사탄은 악의 천사야."

 "하지만, 자네 같이 가엾은 영혼을 도와주기도 하지."

 라울은 그가 상대한 사탄만큼이나 악마적이었다. 그는 이미 자기 나름대로 조사를 해둔 터였다.

 "나딘 켄트는 뛰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일세. 그럼에도 이제껏 살아오면서 남자를 거의 사귀지 않았다네. 그토록 아름다운 여자가 왜 혼자 살기를 고집하느냐고 사람들이 물으면, 나딘은 생긋 웃으면서 매력적인 왕자님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대답한다는 거야. 그 여자는 올해 스물아홉인데,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끝내 독신을 고집할까 봐 한 걱정을 하고 있다더군."

 "그 매력적인 왕자가..."

 "멍청하고 코알라같이 순해 빠진, 바로 자네지 누구겠나! 자네 같은 친구가 어떻게 전생에 그런 미인과 사랑을 할 수 있었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어."

 라울은 미친 듯이 껄껄거리다가 밭은기침을 여러 차례 토했다.

 "이봐, 미카엘. 생각해 보라고. 여신처럼 매력적인 여인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네. 그 여자는 오로지 자네만을 원해. 그녀에게 다른 사내들은 그저 시시풍덩해 보일 뿐이라네. 자넨 참 운이 좋아! 이미 위대한 사랑을 경험한 데다, 아직 또 다른 사랑이 남아 있으니 말일세."

 이제껏 존재조차 모르고 있던 생면 부지의 여인이 내 사랑이란다. 내가 나딘 켄트라는 여인을 사랑하지 않은 것은 그것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내가 특히 사랑했어야 할 사람이 그 여인임을 내 어찌 알았으리오.

 나딘 켄트가 그랬듯이, 나 역시 이성을 유혹하는 데 언제나 많은 어려움을 느꼈고, 부부 생활에 적응하는 데도 힘이 들었다. 나는 비로소 그 까닭을 알았다. 알고 보니, 애초에 나는 그 나딘 켄트라는 여인을 잉태시키도록 되어 있었다. 로즈와 프레디 2세는 운명의 방향을 잘못 잡은 결과일 뿐이었다. 다른 때는 몰라도, 라울에게 처음 그 얘기를 듣던 순간의 내 생각은 그러했다.

 나는 낭패감에 빠진 채, 전화번호부를 꺼내어 켄트라는 이름을 찾았다. 나딘 켄트. 하얀 바탕에 까맣고 작은 글씨로 그녀의 전화번호가 나와 있었다. 나는 주저하지 않고 송수화기를 잡았다.

 

 245. 유대교 신화

 천국의 입구에는 금강석으로 지은 문 두 개가 있고, 그 곁에 봉사자로 나온 70 만 명의 천사가 모여 있다. 의인(고결한 사람)이 문 앞에 다다르면, 천사들은 무덤 속에서 입고 있던 수의를 벗기고 영광의 구름 옷 여덟 벌을 입힌다. 의인의 머리에는 두 개의 관을 씌워 주는데, 하나는 보석과 진주로 만든 것이고 또 하나는 황금으로 만든 것이다. 그런 다음 의인의 손에 도금양 나뭇가지 여덟 개를 쥐어 주고 어떤 곳으로 그를 데려가는데, 그곳에는 8백 가지 장미야 도금양 나무 사이로 시냇물 여덟 줄기가 흐른다. 그러고 나서 의인은 저마다 자기만의 닫집을 받게 되는데, 그 닫집으로부터 네 줄기의 강물, 즉 우유의 강, 포도주의 강, 감로의 강, 꿀의 강이 흘러나온다. 의인 한 사람마다 60 명의 천사가 시중을 들면서, (가서 마음껏 꿀물을 마시게나. 그대가 지성으로 율법을 읽은 보람이라네)라고 말한다.

 - "얄쿠트", 천지 창조 2장

  프랑시스 라조르박의 논문, "죽음에 관한 한 연구"에서 발췌

 


63) 성 바실레이오스(330~379). 그리스의 교부(敎父). 라틴어 이름은 바실리우스. 콘스탄티노플과 아테네에서 학문을 쌓고 근동의 고행 수도자 밑에서 금욕 수행을 한 뒤 카파도키에서 수도원을 설립, 수도원 제도의 효시를 이루었다. 카이사레아의 주교로서 아리우스파를 상대로 논전을 펼쳤으며 삼위일체 교리의 확립에 힘썼다.

64) (전통)을 뜻하는 히브리어로서, 유대교의 신비주의적 전통을 일컫는다. 그 기원은 기독교 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천지 창조에 관한 신비주의적 사색과 성서에 관한 비유적 주석, 히브리 어 문자에 관한 우주론적 해석 등에 뿌리를 두고 있다. 11세기 이후 서서히 유대인들 사이에 퍼져 나가다가 14세기 이후 스페인을 중심으로 대중적인 확산이 이루어져, "탈무드"를 중심으로 하는 유대교의 주류적 전통과 구별되는 한 흐름을 형성해 왔다. 카발라의 중요 문헌인 "조하르"는, 토라(구약성서의 모세 5경), 탈무드에 이어 유대교의 제3경전이라 할 만한 것으로, 신의 성질과 운명·선과 악·토라의 참뜻·메시아·구원 등에 관한 신비주의적 사색을 담고 있다.

65) 러시아의 도시로 (학자들의 작은 도시)라는 뜻. 1959 년 서부 시베리아 노보시비르스끄 근처에 순수 응용 과학 연구를 위해 건설한 신도시.

66) 1968년 인도의 퐁디셰리 근처에 세워진 실험적 공동체. 벵골 철학자 스리 오로뱅도와 프랑스 철학자 미라 알파사가 벵골 철학자 오도벵도 고즈의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을 모아 이상 도시를 만들려고 했으나, 내부의 분열로 실패하고 말았다

67) Hasan Ibn Al Sabbah(?~1124). 하야신의 창시자. 처음에는 이스마일 파의 선교사였으나 1094 년 이스마일 파의 본거지인 이집트에서 내분이 일어나 칼리프의 적자인 니자르가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이집트와 단절하고 독자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였다.

68) (경선)을 뜻하는 히브리 어 하시드 hasid에서 나온 말로, 동유럽으로 퍼져 나간 유대교의 한 운동. 전통적인 라비들이 가르치는 경건한 생활과 카발라의 신비주의적 정열, 즉 열렬한 기도와 법열을 강조한다.

69) 프랑스어로 샤라드 charade라고 하는 식으로, 한 단어를 구성하는 각각의 음절이 독립적으로 어떤 단어를 이룰 수 있을 때, 그것들을 힌트로 제시하여 문제의 낱말을 찾게 하는 놀이다. 간단한 예로, (내 첫음절은 집에서 기르는 동물입니다. 내 둘째 음절은 액체의 하나입니다. 내 음절을 모두 합치면 영주가 거주되는 곳이 됩니다)라는 수수께끼의 답은, 첫 음절 고양이(chat)와 둘째 음절 물(ear)을 합쳐 성(성 성, chatear)이 된다.

70) 이슬람 신비주의. 교파나 분파라기보다는 신비주의적 실천 활동을 일컫는 말. 8세기 말에서 9세기에 걸쳐 이슬람 성법(샤리아)의 고전적인 형태가 확립되고 국가 권력이 성법의 준수를 강제하면서 신앙의 형식주의와 위선이 나타났다. 수피즘은 그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것으로, 자아 의식을 완전히 소멸시키고 신과 자아의 이원적 대립을 초월하여 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금욕적인 수행과 명상 등을 통해 신과 합일하는 실천을 강조했다.

71) 잘랄 알 딘 알 루미(1210~1273). 페르시아의 시인. 수피즘의 교리를 비유로 설명한 그의 "마스나비"라는 작품이 신비주의 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72) Kahlil Gibran(1883~1931). 레바논의 시인, 화가, 철학자. 1902 년 조국을 떠난 뒤, 그리스·이탈리아·스페인 등지를 여행하고 파리에서 미술 공부를 한 다음, 미국에 정착하여 세상을 떠날 때까지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살며 글을 썼다. 산문시인 "예언자(1923)"는 영어로 쓴 첫 작품으로 삶의 근본 문제에 대한 한 구도자의 심오한 대답을 아름답고 감동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73) "열자(列子)" 제5 탕문편.

74) Et mysterium mysteriumque. 신비 그리고 신비.

75) Vade retro Satanas. 사탄아 물러가라.

76) "장자(莊子)", 내편 제3 양생주. 화전야(火傳也), 불지기진야(不知其盡也).

77) Ramakrishna Paramahansa(1834~1886). 힌두교 신비주의자, 종교 사상가. 신고과의 합일 체험과 여러 종교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모든 종교에서 신에 도달하는 길이 같다고 가르쳤다. 그의 제자인 비베카난다는 그의 가르침을 세계적으로 전파하는 한편, 종교간의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라마크리슈나 교단을 설립하였다.

78) 스키에서, 사형(蛇形)을 그리면서 좌우로 돌며 활강하는 경기.

79) 타로: 22 매를 한 벌로 하는 놀이카드. 보통의 카드와 다른 상징적인 그림들이 들어 있으며, 카드 점을 칠 때 많이 사용된다.

80) 탁월한 덕성과 경건함을 지닌 사람)을 뜻하는 히브리어. 주로 유대교 하시디즘의 지도자를 일컫는다.

81) Elohim은 Eloh의 복수.

82) 야곱의 사다리 구약성서 창세기 28:12

83) 여기에서 말하는 성서는 에녹서 등과 같은 경외 성서를 말한다.

84) 프랑스와 라바약(1578~1610). 1610년 프랑스 국왕 앙리 4세를 죽인 가톨릭 광신자. 그는 나라와 종교를 구하려 단독으로 범행했다고 주장했으나, 왕비의 측근들로부터 암암리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한다.

85) 1703년 프랑스의 바스티유 감옥에서 죽은 한 국사범에게 붙여진 별명.

86) Carmina Burana. 11세기에서 13세기 사이에 작곡된 성악곡. 주로 라틴어로 되어 있으나 예외적으로 고지 독일어나 프랑스어로 된 것도 있다. 사랑 노래, 권주가 등 세속적인 내용이 주류를 이루며 교회를 비판한 노래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다.

87) 이집트의 신. 매의 형상이나 매의 머리를 가진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천신 중의 하나로 두 눈이 해와 달을 상징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데, 곧 왕조의 수호신으로 받들어지다가 아예 파라오 자체와 동일시되었다. 제5왕조에 이르러 오시리스 숭배가 온 이집트에 확산되면서 호루스는 오시리스 신화군(群)에 포함되었다. 그리하여 죽는 파라오는 오시리스와 동일시되고, 살아 있는 파라오는 호루스의 화신으로 믿어졌으며, 호루스는 오시리스와 이시스의 아들로서 자기를 권좌에서 내쫓으려는 삼촌 세트와 끊임없이 싸운다는 신화가 생겨났다.

88) malus, (악, 악행)을 뜻하는 라틴어.

89) bonus, (선, 선행)을 뜻하는 라틴어.

90) 남미 파라과이강 동쪽에 사는 원주민.

91) 북아메리카 원주민의 한 종족. 아파치족과 친족 관계에 있으며, 오늘날 북미의 인디언 인구 중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에 동화하는 것을 거부하고 애리조나주의 거대한 보호 구역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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