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3
제2권 로스앤젤레스
1. 도박
맥 보란이 로스앤젤레스에 도착한 것은 9월 20일 해 질 무렵이었다. 그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안내방송으로 공항은 무척 시끄러웠고 그 소음 때문에 조금은 쓸쓸하였다. 그는 곧 라스베이거스로 접어들며 시가를 가로지르는 고가도로 위를 한참 달리다가 샌타모니카에 들어섰다. 그 후 그는 해안 고속도로를 몇 분쯤 달리다 차를 멈추었다. 그는 주유소의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전화번호부를 뒤적여 번호를 확인한 후 다이얼을 돌렸다. 제대한 군대 동료이자 베트남 전쟁의 노련한 전투병이었던 조지 지트카에게 거는 전화였다. 변하지 않은 지트카의 음성이 우선은 반가웠다. 보란은 싱긋 웃으며 송화기에 대고 활발하게 지껄였다.
"촐싹쟁이 참샌가? 난 소방수다. 거기 재미가 어때?"
상대방은 무슨 말인가 하려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조심스러운 음성으로 차갑게 대답했다.
"그저 그렇다. 소방수. 내 생각엔 여길 피하여 곧장 쿠앙 트리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은데?"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보란이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어느 틈에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난 R과 R을 위해서 참새에게 가려고 한다. "
"R과 R을 위해서 쿠앙 트리로 가는 게 좋다니까!"
"그럴 수는 없어!"
보란이 잘라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잠시 동안 전화통을 뚫어져라 노려보았다. 이내 차로 돌아온 그는 주유소 뒤로 차를 빼내 다시 고속도로 위를 달렸다. 핸들을 잡은 채 그는 코트를 벗어 시트 위에 올려놓고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어 32구경 리볼버와 어깨 고정 벨트를 끄집어내서 어깨에 둘렀다. 그러고 몇 차례에 걸쳐 그것을 뽑는 연습을 했다.
"쿠앙 트리라고? 빌어먹을!"
그는 코트를 다시 입으며 투덜거렸다.
그로부터 20분 뒤, 한 대의 스포츠 타가 고속도로 톨게이트 아치 속으로 스르르 빠져들어 가 호화로운 해안 아파트 단지를 끼고 달리더니 타원형으로 닥 트인 풀장 반대쪽에 멈춰 섰다. 검은 안경을 쓴 몸이 좋은 사내 하나가 그 날씬한 스포츠카로부터 나왔다. 그는 벌거벗은 것에 가까운 사람들로 붐비는 풀장 곁을 지나갔다. 불빛이 어둠의 구석구석을 눈부시게 밝히고 있었고 몇 개의 하이파이 스테레오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시끄러운 볼륨으로 풀장을 지배하고 있었다.
실오라기 같은 비키니를 입은 풍만한 블론디의 여자가 물속에서 나오더니 청동빛으로 그을은 몸을 보기 좋게 흔들며 서서히 테이불로 다가갔다. 일행인 듯한 여자가 깔깔거리며 그녀에게 커다란 유리잔을 내밀었다.
보란은 미소 지으며 그 미치광이 놀이터같은 풀장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는 건물 바깥 아파트 계단에 있는 문패들을 잠시 훑어보았다. 산뜻한 색의 비키니를 입은 여인이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녀는 술잔을 받친 쟁반의 균형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녀를 지나가게 하려고 한쪽으로 비켜섰다. 그러나 그녀는 쟁반으로 그를 슬쩍 밀었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코트의 앞섶으로 들어갔다. 그는 거의 벌거벗은 그 여자가 키들거리며 말했을 때에야 비로소 긴장을 풀고 웃었다.
"방 번호를 알려줘요. 미남 아저씨!"
"고마운 말이지만 난 파티에 온 사람이 아니오."
"이건 파티가 아니에요. 그저 즐기기 위한 모임일 뿐이라고요."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회복되기 어려운 알코올 중독자처럼 흐느적거렸다.
"좀 시원한 옷으로 갈아입고 내려오세요."
그녀는 다시 한번 키들거리며 지나갔다. 자신의 육체가 훌륭한 감식력을 가진 사람에 의해 관찰되고 있음을 의식한 듯 그녀의 엉덩이는 더욱 요염하게 흔들거렸다.
보란은 계단을 올라가다 아래의 미친듯한 광경을 다시 한번 바라보기 위해 잠시 멈춰 섰다. 그러고는 3층까지 천천히 올라갔다.
3층의 베란다는 쓸쓸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고 문은 모두 열려있었다. 마치 건물 전체가 하나의 대가족을 위해 지어진 듯했다. 주민들의 대부분이 풀장에 몰려 있다고 생각한다 해도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풀장에서 나는 소리들은 계단을 올라갈수록 점점 더 시끄럽게 들려 왔다. 보란은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저런 소음 속에서 계속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일까.
잠시 후 그는 찾던 방 번호를 발견했다. 문은 닫혀있었다. 모든 문이 열려 있는데 반해 굳게 닫힌 그 문은 남의 눈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가 초인종을 누르자 감시구가 거의 동시에 열렸다. 누군가가 그를 노려보았다.
"누구요?"
하고 무겁게 물었다.
"조지 지트카를 만나려 왔소. 여기 사는 것으로 아는데......"
"그의 이름이 문에 붙에 있는걸 못 봤소?"
" 난 원래 눈에 보이도록 기록 되어 있는거라곤 믿지 않는다오."
보란은 색안경을 벗어 코트주머니속에 넣었다. 그의 손은 코트의 앞섶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네가 지타카지?"
"그래!"
감시구가 닫히고 문이 조금 열렸다. 보란은 좌우를 재빨리 살핀 다음 200파운드나 되는 몸을 날려 조금 열린 문을 힘껏 걷어찼다. 순간 그의 몸은 캄캄한 아파트 내부를 몇 바퀴 굴렀다. 총성이 아파트 내부를 뒤흔들었다. 몇 발인지 알수 없는 권총은 계속 불을 뿜으면서 그가 들어선 아파트 입구를 벌집처럼 만들어 버렸다.
보란은 이쪽저쪽으로 몸을 굴려 탄환을 피하면서 권총을 꺼냈다. 새로운 총성이 조금 전의 총성을 대신하더니 비명과 바닥에 구르는 소리가 활짝 열려진 현관 근처에서 들렸다. 첫 번째 응사의 결과였다.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응사에 대한 결과도 나타났다.
고요함이 뒤를 이었다. 그 고요함을 깨뜨리는 것은 방의 한구석에서 들려 오는 가느다란 신음소리 뿐이었다.
"지트!"
보란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
"여기 있어!"
"괜찮아? 지트!"
"괜찮아. 모두 세 놈이었는데 , 세 놈 다 해치운 거야?"
"셋? 그럴 거야. 확인해 보지."
보란이 대꾸했다. 그는 몸을 털며 일어서서 문을 닫은 다음 불을 켰다. 세 사나이가 좁은 방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었다. 지트카는 허리와 발목을 밧줄로 꽁꽁 묶인 채 방구석에 처박혀 있었다. 보란은 호주머니에서 칼을 꺼내 능숙하게 밧줄을 끊었다.
"네 전우한테 귀띔이라도 해줬어야지. 이 자식!"
웃으며 그가 말했다.
"지옥으로나 가라지, 우라질 놈의 전우!"
"그런데 네 머리색이 왜 그 모양이야?"
그는 손목과 발목을 주무르면서 보란을 바라보았다.
"표백을 했네. 어때. 이상해 보여? 콧수염도 표백하려다가 음탕하게 보일까 봐 참았지. 그놈들이 네 팔다리를 꽁꽁 묶는 동안 넌 뭘 했어?"
지트카는 알아들을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리더니 탁자에서 담뱃갑을 집어 들었다. 피부가 검고 건장한 체격인 그는 놀랄 만큼 세련된 태도로 움직였다. 그는 수영복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보란은 익숙하게 시체의 주머니를 뒤져 소지품들을 꺼내 놓고 조사하기에 바빴다.
"이놈들이 경찰관이 아니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보란은 손을 털며 물었다.
"경찰이라면 함부로 두들기지도 않고 사람을 짐승마냥 꽁꽁 얽어매지도 않잖아."
지트카가 다시 중얼거렸다.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들은 마피아야."
보란이 말했다.
"빌어먹을! 이럴 줄 알고 오지 말라고 했잖아."
보란은 웃으며 다음 시체로 옮겼다.
"나도 눈치챘었네. 그렇지만 이 정도는 그 지긋지긋한 쿠앙트리 매복 작전 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안 그래?"
"이 자식들이 장난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둬, 맥."
보란은 여전히 입가에 장난스런 미소를 띠고 있었다.
"밀림에서 옛날에 같이 싸우던 전우들과는 자주 만나나? 나한테 슬쩍 말을 건넨 것처럼 그렇게 엉뚱한 식으로 말이다. 지트카. 뭐? R과 R을 위해서 쿠앙트리로 가라고? 하나님 맙소사!"
"그렇게라도 얘기하지 않았으면 네 목이 지금까지 온전할 것 같아?"
지트카는 뚱해서 대꾸했다. 그는 아직도 농담을 할 기분이 아니었다.
"이놈들이 얼마 동안이나 여기 죽치고 있었어. 지트?"
"덩치 큰 녀석은 벌써 이틀 동안이나 이 근처에서 서성거렸어. 틀림없이 정찰을 한 거겠지. 그 놈들이 내 전화를 도청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네.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온통 네가 마피아를 상대로 벌인 영웅적인 싸움 얘기더군. 결국 내 생각이 옳았다는게 확인된 셈이야. 전화가 도청되고 있었어. 너하고의 통화를 끝내자 마자 이놈들이 여기로 밀려 들어왔어. 빌어먹을! 우리 전우들 중에서 그래도 너 하나만은 깨끗이 살거라고 기대 했는데......넌 정말 깨끗이 살았어야 했다고! 말썽없이 살았어야 할 놈은 바로 너였어. 맥!"
보란의 웃음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 졌다.
"깨끗이 있을 수가 없었네. 지트. 그 빌어먹을 놈들은 내 삶을 온통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놓았어. 내가 가는 곳마다 그들은 나를 노리고 있어. 그놈들은 어디에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단 말이야. 오마하에서도, 덴버에서도, 에버그린의 고든네 가게에서도, 베이거스에서도, 그리고 여기에서까지도...... 정말 지긋지긋하게 달라붙고 있다고. 나한테 필요한건......"
그의 흥분됐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그는 지그시 그의 친구를 바라보았다.
"너에게 필요한 건, 기적뿐이야!"
라고 지트카는 단언했다. 그러고 그는 밑을 내려다 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이놈의 쓰레기들을 여기에서 끌어내는 일이고."
보란은 한숨을 내쉬었다.
"경찰을 불러. 지트.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얘기해. 그동안 난 여기에서 사라져 버릴 테니까."
"참 별난 소릴 다 듣겠군! 나보고 네 엉덩이를 걷어차서 쫓아내 버리기라도 하라는 말이야?"
지트카는 분통을 터트렸다.
"이것은 너의 싸움이 아니니까 너까지 끼어들 필요는 없어."
보란은 조용히 말했다.
"닥쳐! 풍 둑에서 네가 내 더러운 몸뚱이를 끌러내 주지 않았더라면 난 지금 여기서 너하고 말다툼도 할 수 없었을 것이야."
지트카가 소리쳤다.
"나는 단순히 네가......."
"정신차려. 이 친구야! 싫다는 일을 억지로 시키지는 않을 테니까. 넌 여기에 왔어. 그리고 지금 여기 서 있어. 중요한 건 바로 그 점이야. 내가 나팔을 불어 댈 놈처럼 보여? 그렇게 여겼다면 나한테 오지도 않았을걸? 자. 쓸데없는 얘긴 집어치우고 우선 이놈들을 아파트 밖으로 끌어내자고. 그다음 일은 그다음에 생각하는 거야. 알겠지? 제발 그 어디론가 사라진다는 둥 없어진다는 둥 하는 소리는 집어치워. 이 자식아!"
그는 보란의 손을 쥐었다. 보란도 지트카의 손을 힘껏 마주 쥐었다. 지트카가 다시 한번 다짐을 했다.
"네가 날 무시하지 않는 거라면 그런 소린 집어치우라고!"
그들은 손과 손을 마주 잡은 채 서로의 우정을 확인했다. 그들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아직 아무도 총 쏘는 소리를 듣지 못한 모양이군. 대체 여긴 왜 이렇게 소란스럽지? 항상 이런 소동이 계속되나?"
보란이 먼저 손을 놓고 시체 쪽으로 다가가 그중 하나를 가볍게 걷어차며 말했다.
"대충 그런 셈이지. 여긴 자유분방한 독신자들을 위한 일종의 특수 지역이야. '레지던스 클럽'이라고 하지. 이 아파트에 입주하기 위해서 난 거짓말까지 했어. 내가 벌써 구세대라나. 원!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보란은 혀를 찼다.
"우리는 망각된 존재였어. 무엇을 위해서인지도 모르는 채 낯선 땅에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동안 세월은 우리를 앞서간 거야. 비극이지. 그건 그렇고 난 코르베트를 몰고 왔는데 폐차 직전의 고물이야. 겉은 번지르르하지. 네 차는 어때? 쓸 만해?"
"구형 다치인데 아직은 새것이나 다름없어. 문제는 차가 아니라 차가 있는 곳까지 어떻게 시체를 운반하느냐야. 주차장까지 가려면 반드시 정원을 통과해야 하거든. 좋은 방법이 없을까?"
"내 생각엔 시체를 둘러메고 정원으로 나가도 별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 같진 않은데? 일단 한번 부딪쳐 보자고. 달리 방법이 없으니까 말이야."
보란은 잠시 시끄러운 풀장의 스피커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말했다.
지트카는 구석에 놓인 탁자에서 열쇠 꾸러미를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시체 한 구를 가볍게 들쳐 업고 먼저 방을 나섰다. 보란도 어깨에 시체를 둘러메고 그 뒤를 따랐다. 풀장 주변은 여전히 그와는 관계없이 흥청거리고 있었다. 블론디의 여자도 마찬가지로 다른 패거리들과 함께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있었다. 그들은 아마도 어떤 경연대회 비슷한 것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가 지트카에게 큰 소리로 인사말을 건넸다. 장난꾸러기 어느 한 쌍이 보란과 그가 둘러멘 시체를 하마터면 풀장에 빠뜨릴 뻔하기도 했다. 그런 점들을 제외하고는 그들도, 그들의 행동도 완전히 서로를 무시하고 있었다.
보란은 그의 짐을 어깨위에 다시 잘 올려놓기 위해 잠시 숨을 돌렸다. 옆에는 어깨선이 고운 여자가 젖가슴을 기술적으로 노출시킨 수영복을 입고 서 있었다. 그는 그녀가 들고 있는 잔을 슬쩍 빼앗아 장난스레 한 모금 마시고는 고맙다고 말했다.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돌아보았을 때는 이미 보란이 몇 걸음 옮기고 난 뒤였다. 지트카가 구형 다치 뒷좌석에 시체를 쑤셔 넣는 것을 보고 그도 어깨에 둘러멨던 시체를 그 위에 포갰다.
지트카는 서둘러 정원을 가로질러 갔다. 보란은 자신이 몰고 왔던 코르베트로 다가가 탄환 한 줌을 꺼내 코트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곧 그는 다치로 되돌아와 그의 권총에 탄환을 장전했다. 그 일이 끝나자 담배를 불 붙여 물고 지트카가 오길 기다렸다. 그가 그 담배를 비벼 끌 때쯤 지트카가 나타났다. 그는 진과 니트 셔츠를 입고 단단해 보이는 신발을 신고 있었다. 어깨 위에는 세 번째의 시체가 둘러 메여 있었다.
그때 한 대의 승용차가 소리도 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차에서 내리쏟는 헤드라이트의 불빛이 그물을 만들어 지트카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다음 순간 그 차는 튀어 오르며 정지했다. 마치 운전하는 사람이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뭉개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와 동시에 양쪽 문이 활짝 열리더니 덩치 좋은 사내들이 쏟아져 나왔다. 밀림에서의 본능으로 보란이 다치 승용차를 가로질러 날 듯이 몸을 굴린 순간 밤의 어둠을 찢어발기며 자동 소총이 포효했다.
보란은 주위를 재빨리 살펴보았다. 지트카의 어깨에 있어야 할 세 번째 시체가 그들이 타고 온 차의 트렁크 위에 길게 가로질러 뉘어져 있었다. 지트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트카의 안부를 걱정할 만큼 그는 한가하지 않았다. 보란은 그제야 32구경 권총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나기처럼 퍼부어 지고 있는 기관총 세례 앞에서 너무나 무력한 존재였다. 그는 주차된 차들을 엄폐물로 삼아 구르기도 하고 엉금엉금 기기도 하면서 조금씩 나아갔다. 마침내 그는 공격자들의 승용차와는 정 반대쪽으로 옮겨갈 수 있었다.
총알은 아직도 지트카의 다치 승용차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그때 자동 소총과는 약간 다른 총성이 한번 울리더니 공격자들의 승용차 헤드라이트가 박살 났다. 적들 가운데 하나가 조심하라고 큰소리로 경고했다. 자동 소총은 다시 불을 뿜기 시작했고 지트카가 시체를 내던진 차위로 탄환이 소나기처럼 퍼부어졌다.
보란의 얼굴이 약간 밝아졌다. 지트카가 행동을 개시한 것이었다. 그는 보란의 다음 행동을 예상하며 적에게 엄호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마지막 표적이었던 가스탱크가 폭발하면서 화염이 눈부시게 솟아올랐다. 낯선 목소리가 울부짖었다.
"빌어먹을! 저걸 좀 봐!"
말쑥하게 차려입은 한 사나이가 차들을 따라 뛰어가는 것을 발견하자 보란은 발을 뻗어 몸을 고정시켰다. 다음 순간 그의 32구경 리볼버가 불을 뿜었다. 그 사나이는 한 바퀴 빙글 돌더니 도로 위에 쓰러졌다.
총격전에서 다음 행동을 미리 예상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없다. 전투에서의 행동은 머리에서부터가 아니라 본능으로부터 우러나는 것이다. 보란은 첫 번째 사격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사격을 가했다. 혹은 몸을 옆으로 굴리면서, 혹은 뛰쳐나가면서 사격했다. 그러나 그의 눈만은 적에게 고정된 채 움직이지 않았다. 전투에 있어서 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것이 세 번째 방아쇠를 당김과 동시에 적의 자동 소총 하나가 침묵했다. 적들은 보란의 의치를 가늠해서 총알 세례를 퍼부었다. 보란은 교묘하게 위치를 옮겨가며 적절하게 응사했다. 네 번째. 다섯 번째. 그의 다섯 번째 총알은 사격 중인 적의 팔을 여섯 번째 총알은 적의 콧잔등을 관통시켜버렸다. 철거덕 철거덕, 적의 손에 있던 자동 소총이 연속적으로 땅에 떨어졌다.
이제 남은 놈은 하나. 그는 차바퀴의 흙받이 부근에 숨어 최후의 발악을 하고 있었다. 총알이 음산하고 날카로운 노래를 부르며 보란의 귓가를 스쳤다. 그는 총알이 떨어진 32구경 리볼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 질풍같이 달려나가 숨어있는 적의 가슴을 두 발로 걷어 붙였다.
침묵이 요란한 총성을 몰아내고 잠시 주차장을 엄습했다. 그 소란스럽던 풀장까지도 조용해졌다. 불붙은 자동차에서 불꽃의 탁탁 튀는 소리들이 그 침묵을 더욱더 적막하게 만들었다.
지트카는 다치 승용차로 달려들어 시체들을 포장도로 위로 내던졌다. 보란은 그의 코르베트로 가서 시동을 걸자마자 다치 숭용차 곁으로 달렸다. 문을 활짝 열러 젖히자 지트카가 재빨리 뛰어올랐다. 그들은 풀장을 지나 곧 고속도로에 이르렀다. 지트카는 시트에 몸을 기댔다.
"그놈의 쓰레기들을 차 밖으로 끌어내 버렸어."
"경찰들이 알아서 할 거야!"
보란은 잘라 말했다. 그들은 서쪽으로 얼마간 달리다가 해안 고속도로를 가로질러 남쪽을 향해 달려나갔다.
"보란 회사에서 지불을 해줄지 모르겠는데"
지트카는 걱정이 대단했다.
"뭐라고?"
보란은 이제 한가하게 차를 몰고 있었다. 긴장되었던 그의 신경 조직이 정상적인 상태로 되돌아온 것이다.
"내 차 말이야! 못 봤어? 구멍투성이잖아. 다 망가졌어. 그런데도 그 더러운 자식들은 보험금을 주지 않으려고 할 게 뻔하다고."
"전우로 되돌아오게 된 걸 축하한다. 지트카!"
보란은 슬쩍 화제를 바꿨다.
"내가 그 지긋지긋한 싸움을 이렇게까지 그리워하고 있었을줄은 정말 몰랐어."
"정말이야?"
보란이 물었다.
"그래. 진지하게 얘기하는 거야.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로 오늘 같은 스릴을 느낀 적은 없었네."
그들은 잠시 침묵하면서 몇 분 동안 더 달려갔다. 지트카는 담배에 불을 붙여 보란에게 건네고는 자신의 입에도 담배를 물고 불을 붙였다. 보란이 정겹게 말했다.
"넌 참 좋은 친구야. 지트카!"
"앞으로 더 좋아질 게다!"
"뭐?"
"더 좋아지게 될 거라고 그랬어. 네 목에는 수십만 달러의 현상금이 달려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어떤 멍청한 녀석이 나더러 솜씨를 한번 보이지 않겠느냐고 유혹하더군."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보란은 갑자기 목이 말랐다.
"정말이라고. 수십만 달러! 그놈들. 아마 널 사랑하나 봐."
"지트카. 만일 네가 날 마피아한테 밀고 한다면 말이야...... 아마 돈에 연연해서가 아닐 테고..... 재미 때문이겠지?"
"내가 만일 그 수십만 달러를 챙겨 넣기로 작정을 한다면 우리 둘 중에 누가 죽게 될까?"
"너야."
보란은 감정을 조금도 나타내지 않은 채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럴까?"
"분명해! 지트카. 난 널 죽이고 싶지는 않아. 하지만 죽이게 될 거야. 만일 그래야 한다면."
"내 생각에는 넌 그러고도 남을 놈이야. 그것 참. 정말 끔찍한 노릇이군!"
하고 지트카가 말했다.
"정말 거창한 노름이야. 야. 맥! 내 얘기 깊게 생각하지마."
"만일 네가 무슨 재미있는 소일거리로 나를 고발한다면 난 승산이 거의 없어. 난 재미로 일을 시작한 건 아니기 때문이야. 그리고 아편쟁이들이나 하찮은 떨거지들. 얼간이 건달 같은 녀석들. 거기다가 아마추어건 프로건 간에 총잡이들은 모두 나를 노리고 있지. 아니 나에게 붙은 현상금을 노리고 있지. 또 큰돈이라면 기갈을 하고 덤벼드는 녀석들도 빼놓을 수 없지. 그 놈들 뒤에는 세계에서 제일 조직망이 탄탄한 범죄 신디케이트 마피아가 있을 테니까. 재미는 거기 있어. 노림을 당하는 재미! 지트. 만일 네가 찾고자 하는게 재미라면......"
"내 말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잖아. 젠장! 그놈들한테 휩쓸려 들어갈 건더기는 얼마든지 있었다고. 그렇지만 내 쪽에서 거부했지."
"우린 훌륭하게 일을 해냈어. 지트카."
지트카는 좀 갑갑했다.
"우리 어디 가서 한 잔 할까?"
"미안해. 술집이 내게는 출입금지 구역이야. 지트카. 아무리 작은 시골 마을에서도 난 술집엔 들어가지 않아. 커피는 어때?"
"생각 없어. 그냥 달리면서 말장난이나 하자. 서로 얘기할 것도 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좋아."
"네 계획은 뭐야?"
"짐 브랜슨을 찾을 작정이야."
"브랜슨 박사 말은가?"
"그래. 그 녀석도 제대를 해서 민간인 생활을 하고 있다더군. 병원을 차렸다고 하던데. 성형수술이 전문이라든가? 닥토에서의 그 기습작전 생각나? 그 녀석은 그것 때문에 항상 나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단 말이야. 만일 그놈이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아주 잘된 일이지."
"갑자기 은혜를 베푼 자의 뻔뻔함으로 나타나시겠다는 건가?"
보란은 소리 내어 웃었다.
"그러기는 싫지만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뿐이야. 내가 지나는 길목마다 숨어서 기다리는 그림자들 속으로 더 이상 혼자 뛰어드는 일은 계속해 낼 수 없기 때문이야."
"마피아로부터 달아나겠다는 건가?"
지트카가 물었다.
"난 그런 뜻으로 얘기한 건 아냐, 단지 위장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뿐이지. 그게 다야. 싸움을 끝낼 생각은 추호도 없어."
지트카는 다시 한번 갑갑함을 느꼈다.
"그렇다면 징병 모집은 아직 안 끝났다는 얘기지?"
보란은 지트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내고 말겠다는 듯이 굳은 표정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도 끼고 싶어?"
"난 벌써 끼어든 것 같은데..........."
"그. 그런 것 같군. 너도 아마 지금쯤은 그놈들의 리스트에 올라 있을 게 분명해."
"나도 그 생각을 하는 중이야."
"무슨 생각?"
"내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보란이 웃음을 터뜨렸다.
"죽음의 신과 사랑을 속삭이는 지트카라? 이봐. 내가 거기 있었다는 것 생각나? 쿠앙 쏘에서도, 푸아 트링에서도, 착동에서도 너는 나에게 필요했어."
"널 지원해 줄 병력이 더 필요하잖아, 맥?"
"그래, 사실이야."
"근데 넌 베트남에서 귀환한 많은 사람들이 민간인 생활의 그 복잡함과 단순함에 쉽게 적응하질 못하고 얼마나 애를 먹고 있는지 알아? 나나 붐붐 하파워처럼 말이야."
보란은 눈을 치켜뜨고 지트카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붐붐하고도 만났단 말이지?"
"그래, 로럴 계곡에 땅을 좀 갖고 있는데 지루해서 죽을 지경이라더군. 그 친구 마누라는 어떤 삼류 배우하고 눈이 맞아 달아나 버렸어. 그런데도 그 친군 조금도 개의치 않더군.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탁월한 폭탄 전문가가 좀이 쑤셔 죽을 지경일 텐데도 그저 우두커니 앉아 허송세월만 하니...."
"지금 내 개인적인 싸움에 가담할 사람을 더 확보할 수 있다는 얘기야?"
보란이 조용히 물었다.
"그들에게 어떤 조건을 내거느냐에 달렸지. 왜냐하면 너에겐 그것이 절실한 싸움일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보수 말이군."
"물론이야. 왜 안 되겠나? 넌 돈뭉치를 놓고 싸우는 것이나 마찬가지잖아?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총에는 총으로! 내 생각에 넌 얼마든지 돈을 만져 가면서 이 싸움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트카는 눈을 가늘게 뜨고 보란의 반응을 기다렸다.
"돈이라...... 그래 돈을 벌 수도 있겠지. 마피아들이 있는 곳엔 언제나 엄청난 현금이 있게 마련이니까."
"바로 그거야. 돈은 모든 놀이의 흥미를 배가시켜 주거든. 설사 지더라도 재미는 만끽할 수 있단 말이야. 자신 있게 얘기하겠는데 돈만 준다면 직업적인 싸움꾼들은........"
"알았어. 생각해 보겠네."
보란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잘 생각해 봐!"
지트카도 퉁명스레 말을 받았다.
보란은 미소 띤 얼굴로 조용히 차를 몰았다. 그들은 해변을 따라 한가롭게 계속 나아갔다. 지트카는 몇 차례 심호흡을 하였고 보란은 깊은 생각에 잠긴 채 천천히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좋아!"
"정말이야?"
지트카가 재빨리 되물었다.
"필요한 인원은 10명! 그 정도면 충분해. 기동성과 단결력이 생명이니까 그 이상은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뿐이야. 단,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각 분야의 전문가일 것. 사격수가 두 명, 또 너처럼 능란한 척후병이 두 명 필요해. 붐붐 같은 수준의 폭탄 전문가도 두 명 있어야 하고 중화기를 다룰 사람도 있어야겠어. 멋있잖아? 뛰어난 전쟁 기술자들로 구성된 작은 군대!"
"적들은 수천 아니 수만 명일지도 몰라."
지트카는 불만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걸로 충분하다니까. 난 대규모의 군대를 바라는 게 아니야. 특공대야. 죽음의 5분 대기조, 바로 그거야. 너무 규모가 크면 다루기 힘들어. 지휘는 물론 내가 하겠어. 내가 팥으로 메주를 쑤라고 명령해도 그들은 팥을 삶으면서 어떤 모양의 메주를 원하느냐고 물어 와야 해. 언제 공격할 것인지. 어떤 방법을 쓸 것인지도 모두 내가 결정할 거야. 그들은 단지 내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돼."
"아, 물론 그렇게 해야겠지!"
지트카가 보란의 말에 동의했다. 이제 어느 정도 갑갑함이 가라앉은 듯했다.
"명령에 불복종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사살할 거야. 이 점은 전 대원이 항상 명심해야 돼. 이런 일에는 엄격한 규율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법이니까."
"잘돼 나갈 거야. 모두들 그걸 받아들일 거고."
"물론 받아들여야지. 그렇지 않으면 도박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테니까. 그리고 또 하나, 모두가 알아 둬야 할 게 있어. 이것은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전쟁이라는 것. 우리가 꿈꾸는 승리는 실현되지 못할지도 몰라. 죽음을 항상 앞세운 도박이니까. 지트카."
"바로 그런 점이 해볼 만한 도박이라고 생각하는 놈들만 끌어들이는 것이 포인트야, 안 그래? 너나 나처럼 말이야."
지트카의 미소에 보란은 고개를 몇 번 끄덕여 주고 조용히 외쳤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싸움에 돌입한다. 우리의 적은 전 세계의 마피아들이야. 우리는 그놈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공격한다. 나의 저주가 어떻다는 걸 보여 줄 작정이야. 그리고 무너지는 그 조직의 최후와 나의 죽음을 함께 하겠어."
지트카는 좀 멍한 얼굴로 보란을 바라보았다. 용기와 복수에 불타 그의 뺨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가에는 미세한 경련까지 일었다. 그것은 참으로 결의에 찬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지트카는 자기도 모르게 마피아에 대한 일종의 연민을 느꼈다. 그는 베트남의 무성한 밀림 속에서 여러 차례 보란과 함께 일했었다. 이제 그 밀림은 마피아의 영토로 옮겨진 것이다.
"맥, 차를 돌려! 로럴 계곡으로 가는 길을 안내할 테니까."
보란은 길가의 빈터로 일단 차를 몰았다가 방향을 반대로 바꾸어 고속도로로 되돌아갔다. 액셀러레이터를 밟는 그의 발에 점점 힘이 가해졌다.
"주사위는 또 던져졌어!"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2. 죽음의 특공대
빌(붐붐) 하파워. 대형 폭탄 전문가인 그는 닷새 동안 계속 술독에 빠져 지내다가 술에서 깨어난 지 겨우 2분 만에 보란의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나이는 스물여섯. 펜실베니아 출신의 그는 금발에 푸른 눈동자를 지녔고 키는 6피트였다. 그는 보란의 제의를 듣자마자 그것에 매료당하고 말았다. 그는 베트남에서는 보란과 겨우 얼굴 정도만 알고 지냈다. 그리고 최근 동부에서 보란이 행한 큰 싸움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이제까지 마피아란 미국인들이 만들어낸 환상일 따름이라고 생각해왔었다.
"아니, 그럼 마피아라는 게 정말로 있단 말이오?"
이것은 보란의 제안을 받고 그가 처음으로 뱉은 말이었다. 그가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기로 결심한 것은 우정때문도, 이상주의자이기 때문도 아니었다. 그는 최근까지 해저 탐사를 주된 업무로 하는 석유 회사에 다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아내가 그를 버리고 달아났다. 그 후 그는 매사에 의욕을 잃고 직업도 버린 채 거의 두 달동안 술이나 마시며 세월을 보냈다. 그 무력감이 그가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한 동기라면 동기였다. 하파워는 폭탄을 다루는 그의 탁월한 솜씨를 보란에게 증명해 보이기 위해. 또한 그동안 자신을 지배해 온 무력감을 때려 부수기 위해 자기의 집을 제물로 내놓았다. 채권자들이 이 집을 빼앗으려고 화요일에 오기로 돼 있어. 그 놈들의 더러운 낯짝 앞에서 멋지게 폭파시키려고 미리 준비해 두었었지. 보란은 하파워의 기술에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는 대형 폭탄 전문가로서의 하파워의 명성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었다. 하파워는 폭발물에 관한 한 '황금의 손을 가진 사나이'란 별명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월남 전투에서도 그는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사람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하는 대가로 하파워는 수천 달러를 받았다. 그리고 개인적인 여러 가지 일들을 정리할 시간으로 40시간이 주어졌다. 그는 그동안에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톰(블러드 브라더: 피의 형제) 루데크는 몬태나의 블랙루트 보호구역에서 전화로 보란의 제의를 들었다. 베트남 저쟁 때 그는 여러 가지 군 업무로 보란과는 물론이요 지트카와도 여러 차례 함께 일했었다. 그는 이야기를 채 다 듣기도 전에 이미 동의했다. 그것은 죽음의 특공대 입대 상여금이 수천 달러에 이른다는 얘기도 물론 듣기 전이었다. 그는 황소 세 마리를 팔아 치우는 대로. 또 육체노동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곧장 로스앤젤레스로 날아오겠다고 약속했다. 보란이 기억하기로 루데크는 가장 믿음직스럽고 능력 있는 병사였다. 비정한 면에서는 지트카를 능가할 정도였다. 베트남에서 루데크는 총 한 방 쏘지 않고 적을 67명이나 살해했다. 또한 칼 쓰는 데에는 그야말로 귀신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맨손으로 사람의 목을 쳐서 부러뜨리는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
그다음에 그들은 안젤로 (차퍼:도끼) 폰테넬리를 샌타모니카의 한 술집에서 찾아냈다. 그들은 그 술집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젖가슴을 거의 드러낸 여자들이 술과 안주 접시를 들고 바쁘게 오가는 모습을 제일 먼저 볼 수 있었다. 안젤로는 그곳에서 지배인 겸 경비원 일을 맡아 보고 있었다. 뉴저지 토박이인 그는 스물네 살에 5피트 반밖에 안 되는 조그만 사내였지만 조무래기 건달패들과는 질적으로 달랐다. 그의 육체는 온통 근육으로 덮여있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가 도끼라고 불리는 이유는 중화기를 다루는 그의 전문적인 노련함 때문이었다.
1년 전, 보란의 저격 임무가 철회되어 작전 지역으로부터 철수할 때의 일이었다. 적의 우수한 대부대가 추격해 왔다. 그때 그는 지원 사격할 헬리콥터가 도착할 때까지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혼자서 기관총을 쏘아대며 그 막강한 적의 추적을 막아 냈다. 그는 주의 깊게 죽음의 특공대에 대한 이야기를 경청하였다.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그는 입술에 침을 바르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보란이 2만 달러를 내놓으며 이야기를 마치자 그는 그 돈을 움켜쥐며 기꺼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도 이 생활이 지겨워 미칠 지경이었다고!"
폰테넬리는 자신의 무기를 챙겨 들고 즉시 죽음의 특공대에 입대했다. 그의 무기란 수냉식 기관단총인 캐리버 50이었는데 그것은 새로운 개틀링식 중화기 모델이었다. 그는 개인 병기고에 베트남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각종 화기들을 거의 다 구비하고 있었다. 그 무기들을 어떻게 구하였으며 어떤 경로로 미국으로 수송해 왔는지는 폰테넬리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그는 그것에 대해서는 전혀 얘기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병기고를 죽음의 특공대에 기꺼이 헌납했다.
주앙(플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노스 할리우드 힐스에서 프라 주니아톨라는 이름의 배우로 명성을 떨치고 있었다. 불과 11개월 전에는 '탄 빈의 학살자'라고 불렸던 그였다. 중무기 사수인 안드로메다는 야전 박격포를 사용하여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을 사살하는 전문가였다. 그느 또한 여러 가지 종류의 화기를 다루는 것에도 능하며 독자적으로 탄착을 관측하는 능력이나 다른 화기 제어 기술 역시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었다. 뉴욕의 빈민가에서 태어나 비정상적인 환경에서 성장한 그 푸에르 토리코인은 보란의 이야기를 듣고 조용히 승낙의 뜻을 표했다.
"죽은 자만이 천국을 즐길 수 있어. 지옥은 산 자들의 것이거든. 선금을 준단 말이지? 좋아. 천국을 받아들이기로 하겠어."
안드로메다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섬세한 용모의 젊은이였다. 나이는 스물셋. 그는 여성들에게는 모성애를 불러일으키게 하고 중년 남자들에게는 그를 <내 아들아!> 라고 부르고 싶은 감정을 일어나게 할 만큼 준수했다. 그는 입으로는 폭력을 개탄했으며 평화의 표지가 붙은 옷을 밤낮으로 입고 다녔다. 사람을 살해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언제나 그 질문마저도 불쾌해했다.
"난 사람들을 죽이지 않았소, 그들은 자유롭게 해방시켜 주었을 뿐이지. 죽음이란 온갖 것들로부터 해방을 의미하니까......"
베트남에서 그는 수백 명의 영혼을 해방시켜 주었다.
헤르만(기계 장치 혹은 부속품) 슈바르츠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후에 로스앤젤레스의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공업 전문학교에 입학했다. 무선 통신 분야에서 FCC(연방 통신 위원회) 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였다. 슈바르츠는 실제 경험으로 교사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희귀한 학생 중 하나였다. 그러나 '면허가 없으면 직업도 없다'는 규범이 통용되는 사회이기 때문에 어쩔수 없이 교실에서의 형식적인 수업에 참가하는 모욕을 참아내야 했다.
그는 언제나 현실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그의 말을 빌리면 현실 세계란 천부적인 능력보다는 학문적인 이론에 더 감명을 받는 곳이었다. 입학한지 다섯달만에 '비교적인 엉터리' 수업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 그 전자 공학의 천재는 보란의 특공대에 참가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베트남에서 그는 정보 부대 요원이었으며 한때는 보란과 지트카의 저격 작전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베트콩 지휘 본부에 도청장치를 설치한 적도 있었다. 그때 보란은 슈바르츠의 침착하고 정확하고 성실한 태도와 뛰어난 기술에 깊이 매혹당했었다. 그리서 그는 슈바르츠를 특별히 죽음의 특공대 후보로 지목했던 것이다.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슈바르츠는 베트콩의 거점 근처 풀밭에 6일 동안 잠복해 있기도 했었다고 한다. 물론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가 사용한 것은 유선 마이크와 소형녹음기였다. 보란은 마피아와 전투에 있어서 슈바르츠가 놀랄 만한 위력을 발휘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짐 해링턴은 로스앤젤레스 교외에 있는 한 공원에서 보란의 전투원으로 채용되었다. 보란의 기억으로는 개인 소유의 무기를 베트남 전투에 사용하도록 허락받은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해링턴이었다. 그는 베트남의 포연 속에서 두 자루의 6연발 권총을 재빨리 뽑아 드는 옛 서부인의 모습ㅇ르 재현 했었다. 아니 모습만이 아니었다. 그의 콜트권총에는 특별히 제작된 촉발 방아쇠가 장치되어 있어 그는 보통사람들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재빠르게 총을 뽑아 발사할 수도 있었다. 그 옛날에 태어났다면 황야를 주름잡고도 남을 만한 솜씨였다. 저격 작전 수행에 있어서 그는 보란과 둘도 없는 단짝이었다. 적지 깊숙이 스며 들어가는 침투 공격 작전에서는 으레 일어나게 마련인 갑작스러운 적과의 대면에서 그는 자신의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라이플과 각종 자동 화기, 그리고 가벼운 반자동 카빈소총을 다루는 데 있어서도 대단한 솜씨를 과시했다. 그의 특기는 속사와 달리면서 사격하는 것이었다. 지난 14개월 동안 그는 1주일에 6일, 하루에 열여섯 차례씩이나 사격 시범을 보이며 살아왔다고 털어놓았다. 공원의 오락실 무대에서였다. 보란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부터 보란의 피츠필드에서의 활약을 열심히 지켜보아 왔던 그는 보란에게 죽음의 특공대에 관한 이야기를 꺼낼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표백한 머리와 어두운 색안경으로 변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한눈에 보란을 알아보았으며 이렇게 외쳤던 것이었다.
"이렇게 반가울데가 있나! 자네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는 했지만 진짜로 내 눈앞에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내 총 솜씨가 필요한 모양이군, 그렇지? 오랜만에 살맛 나는군, 당장 가자고, 시시한 장난만으로 가득 한 이곳은 당장 떠나는 게 좋겠어. 14개월 동안이 나 빈 종이에다 총을 쏴대고 있었으니. 원! 난 참 복도 많은 놈이야. 복도 많은 놈이라고!"
마크(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보란이 아는 한 가장 순수한 혈통의 흑인이었다. 그보다 더 시커먼 피부를 가진 흑인은 매우 드물 정도였다. 그리고 아마 그보다 더 위험한 흑인 역시 드물 것이다. 그의 장기는 20배의 조준 망원경이 부착된 라이플 사격이었다. 그는 장거리용 고성능 화약으로 만든 탄환을 사용하였다. 보란은 단 한 번 워싱턴의 솜씨를 목격했을 뿐이었다. 500야드 밖에서 빠르게 움직이는 3개의 표적이 목표였다. 백발백중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자신의 사격술을 유감없이 증명했다. 또 그것으로 그는 보란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는 미시시피만 해변가의 엉성한 방 세개짜리 판잣집에서 태어났다. 열여덟 번째 생일이 돌아왔을 때 그는 군에 입대했다. 음울하고 작은 흑인 고등학교에서의 졸업식을 몇 주일 앞둔 때였다. 그는 결코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졸업장마저도 찾아오지 않았다. 의무적인 군복무 기간을 두 차례나 연장 신청하여 33개월 동안이나 전투에 참가한 후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고향에 돌아온 그는 흑인 민권 운동에 대해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보란이 그를 찾아온것이다. 그가 귀향한 지 5주일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보란은 워츠라는 호텔로 그를 불러냈다. 그에게도 역시 긴 얘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마크 워싱턴은 흑인 민권 운동에 깊이 관여하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블랙파워란 곧 남성다움이었다. 그리고 그 남성다움의 가장 차원 높은 표현 형태는 기다란 라이플과 20배 조준 망원경에서 발견되는 것이었다.
로자리오 블랭카날레스는 베트남에서의 근무를 특수 공격대의 일원으로 시작했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을 잘 이해했다. 그것은 그가 그들을 알고 싶어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는 그들의 언어와 풍습을 익혔다. 그러는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남보다 뛰어난 수완가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침내 그는 베트남 전역에서 '정치가'라는 별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보란은 몇 차례의 침투 작전에서 그가 길 안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유능한 의사이기도 했고 대단한 기계수리공이기도 했다. 게다가 총격전에서 최소한 자기의 몫은 수행해 낼 수 있었다. 보란은 블랭카날레스를 누구보다도 탐냈다. 어떤 환경에나 잘 파고들어 훌륭하게 적응해나가는 그의 카멜레온적인 능력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른 살인 이 사람의 조직과 관리에 대한 천부적인 재질을 존경했다. 언젠가는 블랭카날레스가 미국의 정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수소문 끝에 보란은 그가 병원 잡역부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적절할 때 날 찾아냈군. 기다리고 있었어!"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그도 보란의 활약을 이미 알고 있다는 투였다. 수완가인 그로서도 병원 잡역부란 적응해 내기 힘든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보란의 제안을 기다렸다는 듯이 재빨리 받아들였다. 보란의 지갑속에 있던 고액권 몇장이 그에게 건네졌다. 이제 남은 일은 기지를 마련하는 일이었다. 보란은 샌타모니카의 북쪽에 위치한 넓고 한산한 해변 별장을 임대했다. 그러고는 약간의 식료품과 생활필수품을 비축했다. 마침내 9월 24일 오후, 죽음의 특공대는 닻을 올리고 마피아와의 전쟁이라는 험난한 바다를 향해 출항했다. 해변가의 기초 기지에는 모든 대원들이 모여 각자의 특수한 임무에 착수함으로써 새로운 정쟁의 문이 열린것이다. 슈바르츠는 벌써 안전장치를 만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하파워는 지형 조사를 맡겠다고 나서서 참호와 기타 시설물의 위치 선정에 주목했다. 지트카와 루테크는 전진 기지 건설에 합당한 지점을 물색하기 위해 지역 전체의 완벽한 파악을 서둘렀다. 폰테넬리와 워싱턴은 벼랑의 그늘에다 사격연습에 필요한 기구들을 설치하기 위해서 해변을 순질했다. 보란과 플랭카날레스는 산 베르나디오로 나갔다. 화기와 탄약을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3. 또 하나의 지옥
9월 27일 새벽. 고급 주택가인 벨에어 지역의 전화선이 절단되엇다. 그것은 정확하게 오전 6시 10분의 일이었다고 인근 주민들은 주장했다. 그는 잉글우드 공항의 타켓팅 담당 직원과 통화 중이었는데 갑자기 전화가 불통되었다고 말했다.
한 노인도 그 시각이 오전 6시 10분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지오르다노 저택의 정원사인 그 노인은 바로 그 시각에 초대하지도 않은 사내가 집 뒷문을 통해 들어왔다고 했다. 그 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 불청객은 청동빛 피부를 가진 단단한 몸집의 사내였는데 마치 '고양이'처럼 소리 없이 다가와 그 정원사를 나일론 밧줄로 꽁꽁 묶고. 입은 반창고로 막아버렸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번쩍 들어올려 침대 위에 사뿐히 내려놓았다고 한다. 침입자는 색 바랜 청바지와 두꺼운 면으로 만든 작업복을 입고 인디언의 사슴 가죽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 띠를 두르고 있었고 탄환 주머니가 붙어 있는 군용 혁대를 차고 있었다. 봉투처럼 생긴 주머니에는 캘리버 45구경 자동 소총이 들어 있었다. 또 한쪽 엉덩이에는 긴 대검이 매달려 있었다. 그 사내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노인은 침실 창문을 통해 그 사내의 다음 행동을 지켜볼 수 있었다. 몸에 꼭 끼이는 옷을 입은 그 사내는 본관 건물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다음 순간 그는 담장을 넘어 본관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고 제 2의 사내가 그 뒤를 따랐는데 그의 어깨에는 대단히 무거워 보이는 짐꾸러미가 얹혀 있었다.
거의 같은 시각에 지오르다노 저택의 북쪽에 사는 자가용 운전수는 차고 옆 아파트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그는 육군 작업복을 입은 한 사내가-"분명히 6천 발 권총을 차고 있었어요. 맹세해도 좋아요"-지오르다노의 저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목격했다. 경차에 전화를 하려고 했으나 그의 전화는 불행하게도 불통이었다.
역시 같은 날 오전 6시 10분쯤에 일찍 일어나는 버릇이 있는 한 가정부가 지오르다노 저택 앞 오솔길을 따라 그녀의 귀염둥이 강아지와 함께 산책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느닷없이 군용 지프가 그녀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놀라서 재빨리 옆으로 비켜섰다.
"차 안에는 군인 두 명이 타고 있었어요. 그들은 두 명 다 커다란 총을 메고 있었어요."
그 지프는 지오르다노 저택으로 가는 차도에서 멈추더니 곧 되돌아서 옆길을 가로질러 갔다. 그때 그 커다란 기관총은 지오르다노 저택 정면을 겨누고 있었다. 그 여자는 너무나 놀라 기절할 뻔했다. 그 남자들 중 하나가 그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이봐. 아가씨! 다른 길을 택해 가시지. 그놈의 개새끼랑 빨리 빨리 말이야!"
오전 6시 13분에 한 침착한 이웃 사람은 땅을 울리는 폭발과 일제 사격되는 총소리에 경악하고 말았다. 그는 집안일을 하기 위해 지오르다노에게 고용된 사람들 몇 명이 저택 앞으로 끌려 나오는 것을 보았다. 총소리가 들린 직후였다.
물론 육군 작업복을 입은 사나이들에 의해서였다. 그 고용원들 중 몇몇은 아직도 잠옷 속에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들은 길가로 끌려나와 공포에 떨며 한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을 몰고 온 사내는 서둘러 지프에 오르더니 운전사에게 문가를 지시하는 것 같았다. 지프는 곧 그 저택을 향해 달렸다. 지프가 속력을 높이면서 연막탄을 터트려 검은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지오르다노 저택은 서서히 연막 속에 휩싸였고 지프의 모습 역시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검은 연기는 여전히 뭉게뭉게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부근 전체가 완전히 어두운 연막에 의해 가려졌다. 목격자들은 단지 그 저택 안으로부터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총소리와 자동 소총의 요란스러운 사격 소리를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
정확하게 오전 6시 16분에는 정적이 모든 것을 포용했다. 그 시각은 여러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되었다. 정원사 노인은 색 바랜 청바지를 입은 사내가 다시 나타나는 것을 분명히 보았다. 그 사내는 정원사의 결박을 풀어 주고 겁에 질린 그의 머리를 툭툭 치더니 조용히 문을 빠져나갔다.
첫 번째 순찰차는 6시 22분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소방차도 그때서야 도착했다. 연막이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목격자들은 순찰차로 벌떼같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숨 가쁘게 자기들의 목격담을 경찰관들에게 보고했다. 순찰 경찰관은 무선 연락을 취해 지원을 요청했고 소방대원들에게는 그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금지시켰다. 두 대의 지원 순찰차가 몇 분 후에 도착했다. 경찰관들은 그제야 조심스럽게 그 건물 안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총탄으로 벌집이 된 파자마 차림의 시체가 아래층 복도에서 발견되었다. 뒤틀린 몸뚱이 근처에서 발사된 흔적이 없는 권총이 발견되었다. 그 저택의 식당은 분명히 기관총인 것으로 추측되는 것에 의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기구는 모두 산산 조각나 있었다. 도자기들과 다른 장식품들도 무질서하게 나뒹굴었다.
또 하나의 시체가 2층 응접실에서 발견되었다. 완전히 옷을 갖춰 입고 권총 케이스까지 걸친 남자였다. 그의 두개골은 피에 절은 종잇조각 같았다. 수많은 탄환들로 산산조각이 난 그 저택은 더 이상은 부서질 게 없을 정도였다. 침실과 응접실 사이에 있는 벽은 폭발로 완전히 허물어져 앙상한 잔해만 드러나 있었다. 바닥에 흩어진 작은 돌조각들은 조금 전의 파괴가 몰고 온 그 엄청난 결과를 침묵으로 증언하고 있었다.
오전 6시 30분에 경찰관들은 그 저택의 소유자인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를 찾아냈다. 정원사인 맥 마츠무라가 멍청히 서서 주인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서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분명히 살아 있었고 상처도 입지 않은 듯했다. 그렇지만 순찰 경찰관 해럴드 칼브가 그 상황을 묘사한 것을 인용하자면 '하나의 지옥'이 거기에 응고되어 있었다. 그 억만 장자는 옷을 하나도 입지 않은 상태로 허리와 발목이 나무 말뚝에 묶인 채 화단 구석에 있는 비료 더미 위에 쓰러져 있었다. 그의 몸은 얽히고 설킨 전선으로 휘감겨 있었는데 그 전선 끝에는 두 개의 수류탄이 연결되어 있었다.
그중 하나는 두 손 사이에 나머지 하나는 두 무릎 사이에 끼워져 있었다. 수류탄의 안전핀은 언제라도 뽑혀져 나갈 듯이 팽팽하게 전선줄에 묶여 있었고, 그의 등에는 커다란 검은 손이 그려져 있었다.
칼브는 폭탄 제거 작업을 도와줄 전문가를 요청하기 위해 순찰 경찰관에게 무선 연락을 취할 것을 지시했다. 그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오르다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피해자를 안심시키기 위한 제스처까지 써야 했다. 지오르다노는 지극히 조심스럽게 호흡하고 있었다. 그는 말을 함으로서 일어날 수 있는 근육의 이완으로 인한 폭발 위험까지도 알고 있는 듯했다. 참으로 기묘하고 긴장된 20분이 지났다. 그제야 폭탄 제거반이 도착했다.
폭탄 제거반의 고통스럽고도 신경질적이며 주의를 요하는 작업이 몇 분 동안 진행되었다. 그들의 이마는 땀으로 범벅이 되었다. 작업 결과 그 두 개의 수류탄은 연습용 모조품임이 밝혀졌다. 이 사실을 전해듣는 순간 지오르다노는 무섭게 격분하다. 제풀에 곧 기절해 버리고 말았다. 경찰관들이 50세의 그 억만 장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8시가 훨씬 지난 후였다. 그 역시 이 사건의 배경과 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금발의 키가 큰 사내에 의해서 잠에서 깨어났었다. 그 사내는 특공대원들이나 입을 범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그는 군용 45구경 자동 소총의 총구로 지오르다노의 콧등을 눌렀다. 그러고는 지오르다노에게 침대에서 일어나라고 명령했다. 그는 평소의 습관대로 벌거벗고 잠자리에 들었으므로 옷을 챙겨입기 위해 손을 뻗쳤다. 그러나 그들은 그 사내가 옷을 한 가지도 걸치지 못하게 하고 복도로 내팽개쳤다.
또 한 명의 사내가 그들을 뒤따라 서둘러 방에서 뛰쳐나왔다. 곧이어 일제 사격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그 키가 큰 사내는 지오르다노를 끌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동안에도 몇몇 다른 사내들은 집안 곳곳에서 마구 총질을 해대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뒤뜰로 끌려나왔다. 그때 또 한 명의 사내가 그들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놈은 인디언인 것 같았습니다. 그놈들은 나를 비료 더미 위에다 내팽개쳤습니다."
지오르다노는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꼼짝도 하지 않고 엎드려 있는 한 얼마든지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 거라고요. 도대체 그놈의 수류탄이 진짜가 아니라는 걸 내가 어떻게 알 수 있었겠습니까?"
지오르다노는 죽은 두 사내가 자신의 개인 경호원임을 확인했다. 그러고는 그 침입자들이 누군지 짐작조차 할 수 없어 분통이 터질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수사를 맡은 담당 경사는 지오르다노의 등에 그려져 있는 검은 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지오르다노에게 검은 손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지오르다노는 자신을 그런 식으로 모욕한 자들이 왜 그따위 우스운 짓으로 일을 끝냈는지 알 수 없노라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러고는 그자들이 이런 조잡한 일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단 하나의 그럴듯한 동기는 강도질을 하기 위해서였을 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도둑맞은 현금이나 물품이 있는지 조사해 보겠다는 경찰의 제의를 거절해 버렸다.
경찰관들은 그 지역 일대에 걸친 일반적인 탐문 수사에서 몇가지 단서를 찾아내긴 했다. 즉 사건 발생 장소로부터 불과 두 블럭 떨어진 곳에 있던 어느 경비원이 두 남자와 중화기를 실은 군용 차량이 지나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한 것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뒤 몇 분 지나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간선 도로의 교차로에 있는 주유소에 일하는 두 종업원은 그런 차가 지나가는 것을 전혀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 주유소는 경비원이 군용 차량을 보았다는 지점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도 역시 폭발 소리는 들었을 것이고 그래서 어떤 사건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 없었을 텐데도 그들의 대답은 하나같았다. 또 그들은 전화가 불통이었기 때문에 신고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아침나절 내내 벨에어 지역에서의 탐문 수사를 계속했다. 10시 정각에 긴급을 요하는 전문이 피츠필드로부터 로스엔젤레스로 타전되었다. 11시 30분에는 로스엔젤레스 치안국에서 긴급 경찰 간부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공표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문제의 남자는 맥 보란으로 추정된다. 그는 일명<사형 집행인>이라고도 불리는 자로서 이곳으로 잠입해 들어온 것 같다. 확실한 것은 그는 혼자가 아니란 점이다. 그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몇 명과 함께 행동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맡은 바 임무를 신속하고 효과적으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이 도시의 치안은 참혹할 지경으로 마비되고 무력화될 우려가 크다. 전 경찰은 동원할 수 있는 최대의 병력과 모든 능력을 경주하여 그를 체포해야만 한다."
그즈음에 경찰들이 혈안이 되어 찾고 있는 그 일단의 사내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회의를 개최하고 있었다. 샌타모니카에서 북쪽으로 몇 마일 떨어진 조용한 해변에 연한 별장에서였다. <냉혹한 열명이 사나이들>은 정원에 모여 있었다. 분위기는 자유로운 어떤 가정처럼 평화로운 기운마저 감돌았다. 지폐 뭉치가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 있었다. 투명한 크리스털 술잔 속에서 얼음이 맞부딪치는 맑은소리도 들렸다. 맥 보란은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는 의자를 조금 뒤로 물러앉아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약간의 말썽이 있었지만 점점 나아지겠지. 우리는 장족의 발전을 해야 한다. 이번과 같이 간단한 일일 경우에는 정확히 시간을 맞추는 일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블랭카날레스를 쏘아보았다.
"정치가 선생, 자넨 그 연막으로 뿌리는 데 있어 40초나 빨랐다. 연막이 우리들을 뒤엎었을 때 블러드 브라더는 그때까지도 수류탄에 전선을 연결하고 있었어. 그게 진짜 수류탄이었다면...."
"난 걱정이 되었던 걸세"
하고 블랭카날레스는 말을 꺼냈다.
"목격자들이 워낙 많았기 때문이었네. 어떤 녀석이든지 어리석은 일을 저지를까 봐 두려웠어."
보란은 고개를 끄떡였다.
그것으로 블랭카날레스의 변명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전하고는 폰테넬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프를 멋지게 몰라 줬어. 차퍼, 훌륭하게 해냈어. 내 추측으로는 경찰관 나리들이 아직도 그 지프를 찾느라고 이 잡듯이 뒤지고 있겠지?'
폰테넬리는 미소를 지었다. 보란으로부터 칭찬을 듣자 그는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녀석들은 단단히 혼이 났을 거야!"
보란은 하파워를 향해 돌아서며 생각에 잠겨 말했다.
"붐 넌 화약을 얼마나 썼지?"
"금고를 털기에 충분할 만큼 쓰라고 했잖아? 난 금고를 털어왔어"
보란은 빙그레 미소를 지어 보였다.
"좋아 너도 잘 해냈어. 하지만 나는 더 적은 화약으로도 해낼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그 목발 소리는 시청에서도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단 말이야."
"그래. 조금은 과용한 셈이야. 처음에는 금고를 못 빼냈어. 그래서 조금 더 화약을 넣었지. 그렇게 된 거야."
하파워는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지폐 뭉치 위로 담배 연기를 훅 뿜어냈다. 그는 지폐 한 묶음을 집어 들더니 그것을 하파워에게 던졌다.
"그게 깨뜨린 금고 안에서 나온 거다. 녹색 새종이 묶음을 상상해 보라고. 잘못 깨뜨린 금고 속에서 꺼낸 돈은 그 모양 그 꼴이 되고 말아. 명심해 둬."
하파워는 싱긋 웃으며 지폐 뭉치를 탁자 위에 던져 놓았다.
"유념해 두겠네"
지트카는 크게 재채기를 하고는 헛기침을 몇 차례 해서 목을 가다듬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어느 정도 늦게 그 집에서 나왔는지 말해줘"
"1분이 거의 다 지난 뒤에야 나왔지. 아마, 아래층에 있던 그 늙은 놈은 집중 사격이 만들어 낸 포연 속에 갇혀 버렸어. 그 포연이 그놈을 식품 창고로 몰아붙이지 않았더라면.... 무엇이 널 그렇게 지체시켰나?"
보란이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2층의 하녀가 화장실에 처박혀 있었어. 최대한으로 서둘러 끌고 내려온 게 그 모양이었어."
지트카는 진지한 얼굴로 보고했다.
특공대원들은 서로 마주보고 키들거렸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화장지 좀 갖다 주시겠어요?"
누군가가 익살을 떨었다. 지트카의 얼굴이 뻘겋게 달아올랐다.
좌중의 웃음이 걷히기를 기다려 보란이 입을 열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배웠어. 앞으로 계획을 세울 때는 그때마다 인간적인 요소들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것. 그것을 마음에 새겨 두기로 하자고."
"단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궁리해 낼 수는 없는 거야."
지트카가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모든 대원들 각자가 앞장서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거야."
이렇게 말하며 보란은 슈바르츠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무슨 곤란한 문제라도 있다. 갯지트?"
하고 그는 조용히 물었다.
슈바르츠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저었다.
"나는 시간을 맞추는 문제가 힘들었다. 그 PT와 T지점의 하수도 위로 내가 올라선 것은 정확히 6시 5분이었으니까."
그는 하파워에게 슬쩍 윙크를 보냈다.
"전화선 절단은 절묘했어! 언제 다시 한번 데려가 주게. 붐. 그런 기발한 재주를 나도 좀 배우 둬야겠어. 계획대로 나는 6시 10분에 하수도에서 플라워하고 헤어져 그 집을 가로질러 갔었지. 도착한 것은 6시 19분에 다시 합류해서 여기 도착한 거야."
"전화선에선 아무런 문제도 없었어."
안드로메다가 말문을 열었다.
"6시10분에 정확히 끊어 버렸으니까. 시간표대로 된 거지. 간단했어. 그렇지만 떨리던 걸 생각하면..."
마크 워싱턴은 나즈막히 소리내어 웃었다.
"자네가 그 하수도 구멍에서 나와 일을 벌이는 걸 난 다 봤다고"
그는 안드로메다에게 말했다.
"그래?"
"정말이야. 바로 내 코앞에서 일을 하던걸. 폭발 소리 때문에 깜짝 놀란 새 한 마리가 똥을 찍 갈겼어. 그 작은 폭약을 다룰 때 말야. 자네가 나처럼 시커먼 피부였다면 아마 새하얗게 됐을 거야"
"그렇게 내가 또렷이 보였나?
안드로메다는 믿어지지 않는 다는 듯 반문했다.
"물론이지! 자네의 얼굴 쪽에다 20배짜리 망원 렌즈를 고정시켜 두면 자네의 그 눈 밑에 있는 실핏줄까지도 다 보인다니까!"
"그 집을 향한 위치는 어땠나?"
보란이 물었다.
"잘 보였어. 북쪽과 뒤쪽은 잘 보였는데 앞쪽은 나무가 너무 많아서 좀 애를 먹었지. 그래도 전체적인 조망에는 문제가 없었어. 뒤쪽에서 누군가가 포위망을 뚫으려는 걸 본 것 같아. 순전히 추측에 불과하지만."
워싱턴이 웃으면서 덧붙였다.
"동쪽 언덕 아래에선 말이야. 어떤 여자가 홀딱벗은 채 수영을 하고 있었다고!"
"그래?"
해링턴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워싱턴은 아직도 웃고 있었다.
"그랬다니까. 젊은 여자가 뒤뜰에 있는 조그맣고 둥근 풀장에서 말이야."
"20배짜리로 들여다본 젖가슴은 어땠어? 크고 뚱뚱해 보였나?"
"크고 뚱뚱? 그 여자는 뚱뚱하지 않았어. 날씬하고 삼삼했지.'
"나도 널 봤어. 데드 아이스"
킬킬거리고 있던 루데크가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차분하게 말했다. 워싱턴은 올빼미같이 무표정한 눈으로 인디언을 주시했다.
"자네 망원 렌즈에서 반사되는 빛을 내가 몇 번 발견했거든."
루데크는 계속 얘기를 했다.
"기억해 두는 게 좋을 거야. 떠오르는 해나. 지는 해의 방향으로 렌즈를 향했을 때는 렌즈의 반사광을 없애기 위한 무슨 조치를 위해야 한단 말이야."
"다음에는 폴라로이드를 써야겠구먼! 고맙네."
워싱턴은 겸손하게 중얼거렸다.
그때 보란이 조금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달아나는 걸 볼 수 있었나. 데드 아이스? 내 말뜻은 무슨 추적자 같은 건 없었느냔 말이야"
"물론 봤지. 그러나 지프는 못 봤어. 내가 아까 얘기한 대로 그쪽으로 나무가 너무 많았어. 그저 가끔 무언가가 슬쩍슬쩍 나타나는 걸 봤을 뿐이야. 자네도 알잖아? 20배짜리 망원경이 잡을 수 있는 시야의 한계 말이야. 경찰관들이 오는 건 봤어. 그 녀석들의 관심을 내가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릴 수도 있었어. 그놈들이 거기 도착하기도 전에 말이야. 그런데 그럴 필요가 없었어. 그자들보다 자네들이 3분 정도 앞서고 있었으니까. 그런 정도까지는 멋지게 다 살펴볼 수 있었어. 그놈의 엉덩이가 펑퍼짐한 경찰 녀석들 눈앞을 밭 갈 듯이 총탄으로 다 쟁기질 해줄 수도 있었을 거야. 자네들을 쫓아올 수 없게 말이야. 그러나 그 녀석들은 숨도 크게 안 쉬었다고."
보란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놈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됐을 거야."
"물론이지."
워싱턴은 자기 코끝을 잡아당기며 말을 이었다.
"보란. 얘기하고 싶은 게 있어."
"뭔가?"
"그만하면 공격은 정말 훌륭했어. 기가 막힐 지경이었어. 시쳇말로 끝내주더군! 내가 보기엔 시간 맞추는 데에도 잘못된 점은 없었어. 자네가 지시했던 대로 움직였으니까. 경찰관들까지도 자네가 예상했던 대로였어."
"그거야 당연하지. 특별히 경찰관과 관계되는 일이라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충돌은 피해야 하니까."
보란은 대가를 치르더라도?
폰테넬 리가 신음하듯 물었다.
"물론!"
"난. 그놈의 경찰 녀석들과 사랑놀이를 하기는 싫은데?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밀고 나갈 일이란 사랑뿐인 것 같아서 말이야."
폰테넬 리가 투덜거렸다.
"차퍼. 넌 스스로 무덤을 파고 싶은 거야?"
보란이 조용히 물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만일 내가 그런 경우에 처하게 되면 그때는..."
폰테넬리는 재빨리 주위의 얼굴들을 둘러보고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내가 그놈들을 해치지 않고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들을 피해서 달아나야 해. 도끼!"
보란은 다리를 떡 벌리고 서서 팔짱을 낀 채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모두들 이걸 알아 두기 바란다. 우리들이 경찰에게 총질을 하면 우리들의 불쌍한 엉덩이는 끝장나는 거야. 잘 들어 끝장이라고! 오늘의 작전에 관해서 아까 데드 아이스가 얘기한 그런 우발적이고도 충동적인 계획 따위를 나는 좋아하지 않아. 경찰관에게 총알을 명중시키는 것과 하들의 차이가 없어. 경찰관들의 관점에서는 더욱 그렇지. 이 사실을 명백히 알아두도록 해. 우리가 하수도를 청소해 내는 동안만은 사람들은 우리를 응원할 거야. 공식적으로는 욕을 하고 외면하겠지만 분명히 마음속 깊이 성원을 보내 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한 사람의 경찰관이라도 죽인다면, 또 평범한 놈팽이나 다른 죄 없는 구경꾼들을 상상한다면, 그것으로 우리는 끝장이야. 경찰관들이 우리들을 특별히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신문쟁이들도 우리 기사를 낭만적으로 쓰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른 하수도의 허섭쓰레기들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무리로 전락하고 말겠지? 그리고 그때부터 20세기의 로빈 훗이라는 우리의 자부심은 지옥의 밑바닥을 헤매게 될 거야. 모두 명심해!"
"물론 그래야지"
폰텐렐 리가 동의했다.
보란은 팔짱을 풀고 그의 전우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내가 자네들에게 비난을 퍼부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지금까지 내가 한 얘기는 우리의 처지를 분명히 밝힌 것에 불과해. 우리특공대를 들쥐 떼로 전락시키려는 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내가 사살하겠다. 이런 원칙이 싫다면, 특공대를 떠나는 게 좋겠지? 선택할 시간은 아직도 충분해."
물을 끼얹은 듯한 정적이 10명의 사나이들을 감싸기 시작하면서 긴장된 분위기가 서서히 퍼져 나갔다. 보란은 그들 하나하나의 마음속에 자신의 강렬한 의지가 충분히 먹혀들었다고 생각되자 비로소 미소를 띠었다. 그는 헛기침을 몇 번 하여 주의를 집중시키고 다시 말을 이었다.
"좋아. 모두 우리의 입장에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 이제 우리들의 사업에 대해 얘기하기로 하겠다. 오늘의 가벼운 탐색전은 모든 면에서 성공적이었어. 마피아의 서부 지역 간부들과 연결되어 있는 분파 중에는 지오르다노가 가장 막강한 편이었다. 어제의 일로써 마피아는 우리들이 이 도시에 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지오르다노의 졸개 두 명을 살해했고. 집을 파괴했으며, 그놈으로부터 돈을 강탈했어. 그리고 그놈에게 치욕을 안겨 줬어. 우리가 그 정도로 그쳤기 때문에 그 녀석이 지금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게 되었는 사실을 우리는 마피아들에게 똑똑히 보여 준 셈이야."
폭소가 터져 나왔다.
"마피아의 두목으로서는 쉽게 잊지 못할 만큼 쓰디쓴 맛을 보았을 것이다. 앞으로 며칠 동안은 조용히 엎드려 있겠지. 그들은 경찰이 이것저것 냄새를 맡으며 헤매고 다니는 동안에는 움직이지 않을 거야. 경찰이 떠나고 나면 그때서야 지오르다노는 양철 깡통을 두드리는 것처럼 분노를 터뜨리기 시작하겠지? 그는 주변을 모조리 들쑤셔 가며 수색을 시작할 게고. 자기 분에 못 이겨 발을 동동 구르다가 끝내는 마피아 본부에 우리들의 목줄을 따달라고 강력히 요구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바라고 있는 바야."
보란은 지트카를 다정한 눈길로 쳐다보았다.
"반 둑에서의 작전을 기억하고 있나. 지트카?"
지트카는 웃음을 터뜨리며 기억하고 있다고 보란에게 대답했다. 지트카는 둥그렇게 모여 있는 얼굴들을 훑어보았다.
"닌드는 오랫동안 베트콩의 점령하에 있던 요새에 대한 습격작전을 지휘하고 있었지. 그러나 그는 적을 만날 수가 없었어. 도대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거야. 베트콩들이 분명히 그 근처 어딘가에 있다는 것도 아는데. 매번 감쪽같이 사라져 버리거든. 닌드가 10일 동안이나 기세를 올려 가며 감행한 습격의 성과란 고작 마을 원주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뿐이었지. 그래서 우리들을 파견하기로 결정한 거였어"
그는 얼굴을 들어 보란을 잠시 쳐다보았다. 이내 그는 낄낄거리며 하던 말을 계속했다.
"맥과 나였어. 우리는 둘뿐이었지만 단짝에다가 전문가였거든. 우리는 사흘 동안 계속 걷기만 했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게다가 베트콩식으로 게임을 한 거야. 공격하고 사라지고, 또 공격하고 사라지고. 그때쯤에는 벌써 반 둑을 통과한 후였어. 베트콩들은 피에 굶주린 두 살인귀들 때문에 비명을 질러댔지. 우리가 이미 그놈들의 장군 하나를 처형해 버렸거든. 반 다스 정도의 야전군 장교들과 그들의 지방 정치국원들도 여러 명 처치했고, 결국에는 그 베트콩 녀석들이 자기들의 구멍으로부터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어. 앞도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설쳐대는 6인조 분대였어. 반 둑에서 그놈들이 우리들한테 올가미를 씌우려고 덤벼들지 않겠어? 그런데. 두말 하면 잔소리지만. 바로 그게 우리 둘이 언제나 노려온 것이었지. 그놈들을 정면으로 밀어붙였어. 그랬더니 곡창 지대를 가로질러 달아나더군. 바로 거기에서 그놈들은 우리 공군기들과 마주쳤어."
하고 해링턴이 끼어들었다.
"공중에서. 갓 태어난 아이가 헬리콥터 안에서 사흘 동안이나 살았던 게 바로 그때였잖아?"
"그래 반 둑에서였지. 그놈들을 깡그리 불태워 버렸어. 공군기들이 해치우지 못한 놈들은 닌드가 해치웠지."
지트카가 머리를 천천히 끄덕였다.
"우린 바로 이곳에서 반 둑의 활약을 재현하려고 했다. 다른 점이라면 공군의 화력이 없고 우리들이 넓은 지역으로 유도해낸 적들을 섬멸해 줄 지원 부대도 없다는 점이야. 우리는 완전히 우리의 힘만으로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우리는 마피아를 공격하는 것이다. 공격하고 공격하고, 또 공격해야 한다. 그놈들이 각자 자신들의 무릎 속에다 대가리를 감출 때까지 줄곧 공격을 계속하는 거야. 그래서 놈들이 어떤 녀석들이며,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하게 되면, 그때는 일거에 완전히 섬멸해 버리도록 해야 해. 이것이 계획의 전부야. 자세한 계획은 은밀하게 세우게 되겠지? 갯지트가 지오르다노의 집안 구석구석에다 도청장치를 설치해 두었고. 전화에는 소형 녹음기를 장치해 두고 왔어. 두 시간 안에 지트카와 블러드 브라더는 자신들의 감시 위치에 배치될 것이다. 플라워. 너는 지트카를 따라가라. 건 스모크, 넌 불러드 브라더를 수행해. 방법은 잘 알고 있겠지? 생사가 걸린 문제라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해! 아차 하면 머리가 날아가 버릴 거야. 붐, 갯지트와 교대로 전자 경보를 감시하도록 해, 정치가와 데드 아이스는 나를 따라와, 그러나 너무 바짝 붙지는 마. 왜냐하면 내가 지휘하는 것을 모두가 볼 수 있도록 간격은 둬야 하니까. 차펴, 너는 기초 기지를 보호해, 아, 그리고 붐, 그 충격 수류탄을 한 다스쯤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겠나?
"파괴용을 원하는 건 아니겠지?"
"그래. 섬광과 진동이 강한 것이면 좋겠는데............"
"20분이면 돼!"
"좋아! 당장 시작해, 완성되면 그것들을 뒷주머니에 넣어둬,"
보란은 미소를 머금고 서성대기 시작했다.
"피츠필드보다도 훨씬 훌륭한 작전이 되겠어. 자네들과 함께 일한다는 게 나를 대단히 즐겁게 만드는군."
그는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지. 돈은 정치가가 분배해 줄 거야. 열하나로 나누면 한 사람 앞에 4750달러씩이다. 열한 번째의 몫은 저축한다. 각자 자기몫을 받고 나면 쉬도록 해. 오늘 밤에는 별로 잘 시간이 없을 거니까."
보란은 돌아서더니 뜰을 가로질러 해변을 향해 뛰어갔다.
"저축은 뭣 때문에 한다는 거야?"
안드로메다가 입을 뗐다.
"전투 기금이야. 그는 자신의 몫까지 저축에 포함시키라고 했어"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누구 나한테 300달러만 빌려주지 않겠어? 5000달러를 한꺼번에 손에 쥐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은데...."
이미 탁자로 다가가서 지폐를 한 뭉치 들고 열심히 돈을 세면서 폰테넬 리가 익살을 떨었다.
"그런데 보란은 어디로 가는 걸까?"
멀어져 가는 보란을 눈으로 좇으며 하파워가 말했다.
"작전이 끝난 뒤에는 그는 항상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길 원해. 내버려 두는 게 상책이다."
지트카가 탁자 위에서 자신의 몫을 집어 들며 대꾸했다.
"그가 원하는 게 돈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야?"
하파워가 시선을 계속 해변 쪽에 둔 채 물었다.
"원한에 사무쳤지! 마피아란 놈들이 그의 가족들을 몰살시켜 버렸어."
해링턴이 대답했다.
"성스러운 싸움이군? 인과응보라 이 말이지? 지상에서 천국으로! 결국엔 지옥으로 굴러떨어지겠지만."
안드로메다가 중얼거렸다.
하파워는 자기 몫의 지폐 뭉치를 주의 깊게 세더니 그중 한 묶음을 믈랭카날레스에게 내밀었다.
"이건 그가 내게 선불로 줬던 거야. 저축에 포함시켜!"
"그건 선금이 아니라 상여금이었어!"
블랭카날레스가 조금 놀란 눈빛으로 말했다.
"어쨌든 저축에 두라니까!"
하파워는 굽히지 않았다.
블랭카날레스는 전투 기금을 한동안 바라보더니 1000달러를 그 위에 얹었다. 폰테넬리도 아깝다는 표정이긴 했지만 1000달러를 내놓았다.
그즈음 보란은 해변을 향해 계속 뛰어가고 있었다. 워싱턴은 바람을 가르며 점점 시야에서 멀어져 가고 있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가 말했다.
"저 친구가 바로 심판관이라고.!"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고는 탁자로 다가가 지폐 뭉치를 전투 기금 위에 놓았다.
"가벼운 탐색전이라고 그랬던가? 이렇게 하면 나도 이기는 쪽에 투표하는 셈이 되나?"
루데크는 엷게 미소 지으며 미처 세보지도 않은 자신의 몫을 점점 쌓여 가고 있는 전투 기금 위에 던져 놓았다.
신뢰의 투표는 만장일치의 의견으로 압축되어 갔다. 전투 기금은 급속히 불어났고- 이 점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10명의 사나이가 일심동체가 되어 감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프라워 차일드 안드로메다는 정원 끝까지 걸어가더니 동료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표정은 엄숙했다
"반 둑, 반둑, 피와 쓰레기에 뒤덮인 땅!"
"저 녀석이 뭐라고 지껄여대는 거야?"
워싱턴이 볼멘소리로 중얼거렸다.
"누가 알아? 우리도 그에 대해서는 알고 있잖아. 이 흑인 녀석아?"
루데크의 음성이었다.
"그래, 이 흰둥이 녀석아!. 우린 다 알고 있지. 그게 죄악으로부터의 해방인가?"
워싱턴은 다시 목소리를 높여 안드로메다에게 외쳤다.
"이봐, 종군 목사! 이리 좀 오지 않겠어? 내가 행한 죄악들을 고백할 테니까"
"너의 죄는 네 자신이 다뤄야 해. 나는 내 죄를 다룰 뿐이고, 지금 나는 죽음의 전당을 건설할 작정인데 한 다리 끼시지 않겠나? 잔잔한 물가에서 함께 명상에 잠겨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걸."
안드로메다가 농담조로 말했다.
"반 둑에서였다면 너와 합세했겠지?"
워싱턴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때는 한계 상황이었지!"
안드로메다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오래전부터 생각해 오던 문제에 대해 결정을 내렸다. 죽은,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지닌 유일한 한계 상황이었다.
4. 궤도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적이라곤 없었다. 하기야 단 한 번, 그가 서른 살 무렵에 어떤 녀석이 그를 멍청이라고 놀린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후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녀석은 잔인하게 살해되었다. 지난 15년동안 그에게 존경을 표하지 않았던 자는 아무도 없었다. 단 두 경우의 예외가 있긴 했다. 범죄 위원회의 한 멍청한 상원의원이 그랬고, 흔히 검찰총장으로 불리는 그 무식한 새크라멘토의 얼간이가 그랬다.
그자들은 모두 지금은 정치적으로 매장되어 은둔 생활을 하고 있다. 만일 그 빌어먹을 놈의 우둔한 중사-그 귀환병 말이다- 그 천하의 날강도 같은 총잡이가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를 깔아뭉개고 웃음거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십자가에 맹세하건대 그 중사 놈은 지오르다노가 엉덩이에 매달아 준 포도송이(속어로 조롱걸. 놀림감이 된다는 뜻)를 깔아뭉개며 죽어가게 될 것이다. 지오르다노가 총에 마지막으로 손을 댄 것은 15년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직 총기 사용법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 그것은 잊을래도 잊을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지오르다노는 다시 권총의 싸늘한 촉감을 반갑게 느끼며 번쩍번쩍 광이 나는 38구경 권총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손가락에 얼마간의 친근감이 되살아났다. 그는 탄환을 장전하고는 곧 엉덩이 뒤쪽에 있는 가죽으로 만든 권총집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다음에 그는 권총집을 다시 끌러 놓고 여러 가지 서류들이 빽빽한 상자를 뒤적여 마침내 총기 면허증을 찾아냈다. 그는 만기일을 살펴보고는 지갑 속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었다. 그러고는 다시 권총집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그는 그 면허증 없이는 아무리 위급한 때라도 결코 행동을 개시하지 않았다. 언제나 흥분해선 안 된다고 자신에게 충고하곤 했다. 그날 오후 지오르다노는 봐로네의 전화를 받았다.
"그 녀석을 자네가 그놈의 도박 속으로 말려 들어오기를 바라는 거야. 그 녀석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나? 그 녀석은 자네가 흥분해서 어리석은 짓을 저질러 주기를 바라고 있단 말일세. 그 녀석 수작에 말려 들어가지 마라. 말려 들어가면 당하는 거야. 에밀리오, 알겠나?"
봐로네는 충고했다.
물론이지. 흥분해서는 안되는 일이지. 그런데 그런 조롱을 받고도 말인가? 그 더러운 미치광이가 나를 거름 더미 속에 매달아 놓았는데도 나의 재산을 모두 약탈해 갔는데도 나를 지근지근 짓밟고 다녔는데도 마치 내가 에밀리오 지오르다노가 아닌 것처럼 행동하란 말인가?
일 포르투나토의 피는 마피아 가문의 네 세대에 걸쳐 피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흥분하지 말라니! 진정을 하라니!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더 이상 참고 있을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좋다. 그렇다면 나 에밀리오는 그 수작을 받아줄 것이다. 그 녀석의 수작에 말려 들어가 줄 것이다. 그러나 나도 놀림거리 취급에 대한 답례는 꼭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자에게 새로운 도박의 방법을 알려 주리라.
지오르다노는 책상으로 돌아가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간드러질 듯한 여자의 목소리가 즉시 대답해 왔다.
"돈 갖고 있나. 제리?"
"네, 사장님. 2만 5000달러입니다. 20달러짜리와 50달러짜리입니다."
"좋아. 지금 곧 갖고 올라와! 아니 밖에서 만나기로 하지. 지금 즉시 말야."
지오르다노는 다른 번호의 버튼을 눌렀다.
"이봐! 거기서 도대체 뭣들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소리를 버럭 질렀다.
"네 사장님 대기하고 있습니다."
"차는 준비돼 있나?"
네 사장님, 준비 완료입니다."
"좋았어. 지금 내려가겠네. 눈을 똑바로 뜨고 기다리고 있어."
"알았습니다. 사장님!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오르다노는 벌떡 일어서서 그의 서재를 나섰다. 그는 집 뒤로 돌아갔다. 지오르다노는 그의 침실에서 일하고 있는 목수들의 떠들썩한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아래층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 소리들이 <놀림거리>에 대한 그의 짜증을 되풀이하게 했다. 그는 꽝! 소리가 나게 문을 걷어찬 다음 손을 펴서 계단의 난간을 붙들고 아래층으로 '뛰어 내려갔다. 쫓기는 사람처럼 그는 서둘러 뒤뜰로 나왔다.
번쩍이는 검은 색 콘티넨털 승용차가 도로 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의 가장 뛰어난 다섯 명의 부하들이 그 자동차 안에 편안히 앉아 낮은 소리로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사나이는 지오르다노가 바삐 스쳐가자 손을 흔들어 보였고. 지오르다노는 응답으로 윙크를 보냈다.
지오르다노는 눈부시게 번쩍이는 새하얀 롤스로이스 승용차의 문을 열고 한 젊은 남자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 젊은이는 무릎 위에 장방형의 검은 서류 가방을 올려놓고 앉아 있었다.
운전석에 앉은 두 사나이는 검은 제복 차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쓴 모자는 흰색이었고 황금색의 사슬이 가로질러 있었다. 지로르다노는 편안한 자세로 앉아 말했다.
"대니! 돌아가서 브루노가 2분이라는 것을 알아들었는지를 확인하고 와"
운전석에 앉아 있던 제복을 입은 사나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롤스로이스에서 미끄러져 나왔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닦고 차고로 뛰어갔다. 콘티넨털 승용차에는 다섯 명의 경호원이 타고 있었다 사장님이 떠난 다음 2분 동안 기다려야 한다는 걸 잊지 않으셨는지 확인해 보랍니다.
그는 자신의 임무를 솔직히 밝혔다.
앞 좌석에 앉아 상체를 구부리고 있던 젊은 사내가 머리를 재빨리 끄덕였다.
"그래 알아들었어."
그는 지긋지긋 하다는 표정이었다.
대니는 웃으며 롤스로이스로 돌아왔다.
그는 롤스로이스의 앞 좌석에 올라앉아 뒷좌석과 차단된 두터운 유리창에다 대고 한참 떠들다가 순간 인터폰을 생각해 내고는 버튼을 눌렀다.
"그들은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사장님"
"그들이 2분 동안 여기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했다는 건가?"
지오르다노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사장님 그들은 그게 2분이라는 걸 알아들었답니다"
돌대가리들이 어쩌면 길도 알지 못할 거야."
"압니다. 사장님. 산타야나 고속도로에서 짜르고 들어가서 리버사이드로 그러고는 뒷문으로 그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오르다노는 잠시 후 입을 열었다.
"자. 그럼 농장의 과일들을 확인하러 가는 거야. 출발해!"
운전수는 가볍게 클랙슨을 울렸다. 앞장선 콘티넨털은 도로를 따라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갔고 롤스로이스도 천천히 그 뒤를 따랐다. 지오르다노는 방탄판과 방탄유리 뒤의 안전한 자리로 깊숙이 눌러앉았다. 말려들지 말라고? 응? 하나님의 이름으로 명예를 걸고 에밀리오는 도박을 시작하고 있어. 그 중사 놈이 그 대가의 전부를 지불하게 될 것이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풀이 잔뜩 뒤덮인 언덕을 서둘러 내려왔다. 커다란 쌍안경이 그의 목 뒤에 걸쳐져 있었다.
"됐어! 그놈들이 지금 떠났어! 차 두 대! 크고 검은 것이 앞에 섰어. 링컨 승용차거나 뭐 그런 종류. 또 하나는 크고 하얀 리무진이야."
보란은 순간 웃음을 띠며 말쑥하게 다듬은 베레모를 머리 위로 눌러썼다.
"두 대 정도라면 간단해."
그는 코르베트 승용차 안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추적자 나오라! 여기는 독수리. 그들이 출발했다. 하나는 디트로이트산 검은 차고 또 하나는 하얀 억만장자 용인데 바짝 뒤따르고 있다. 2번 표적이다."
루데크의 부드러운 음성이 즉시 전파를 타고 흘러나왔다.
" 잘 알았다. 2번 표적이다. 됐다...... 지금이다! 2번 표적은 이제 사냥감이다. 지금 세어 보겠다. 디트로이트 검은 차에는 다섯 명이 있다. 영국산 하얀 탱크에는 네 명이다. 반복한다. 탱크다. 2번 도로는 표적에 잡혔다. 그들은 빠르게 지나가고 있다"
지트카의 억눌린 음성도 비집고 들어왔다.
"좋다. 좋다! 표적 1번은 델타 지점을 포착하기 위해 서성거리고 있다."
"표적으로 떠나라!"
하고 보란은 명령했다.
"냄새가 난다. 반복하겠다. 냄새가 난다!"
희미하게 알았다는 대꾸가 르데크로부터 날아왔다. 지트카가 잇달아 외쳤다.
"푸른 차가 온다."
잠시 후 그는 또다시 외쳤다.
"표적 2번이 진입한다. 주의하라. 주의하라!"
"알았다. 2번 감시자는 신중하다."
인디언의 음성이 주의 깊게 대꾸했다.
"신호대로만 행동하라!"
그는 코르베트의 좌석 위에 무전기를 내려놓고 바퀴 뒤로 재빨리 다가갔다. 그는 워싱턴에게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내고는 덜컹덜컹 흔들리는 그 작은 차를 몰았다. 차가 포장도로를 박차며 속력을 내어 언덕을 달려 내려갔다.
워싱턴은 도로에서 몇 야드 안 떨어진 나뭇가지 아래에 주차되어있는 무스탕 승용차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차 안에 있던 블랭카날레스를 향해 내뱉었다.
"됐어! 거기서 눈을 떼지 마!"
무스탕도 앞으로 달려나갔다. 워싱턴은 두 다리를 벌려서 몸을 흔들리지 않게 유지하고 쌍안경을 뒷자리로 던져 놓았다. 그러고는 시트 끝을 들치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블러드 브라더가 그러는데. 그놈들은 장갑차도 갖고 있다는 군!"
블랭카날레스는 길이 꺾어지는 곳으로 무스탕을 몰고 갔다. 그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
"뭐라고?"
"그놈들은 차에다 방탄 장치를 한 게 틀림없어. 커다랗고 하얀 리무진일 거야. 유리창을 통해 본 것 같다"
"그거 참 고약하게 돼 가는군!"
"자네는 아직 아무것도 몰라! 보란의 말에 의하며, 복병이 있는 듯한 냄새가 난다고 했어. 또 지트카는 경찰이 합세했다고도 하고"
"우리가 너무 질질 끌어온 거 같다니까!"
블랭카날레스가 말했다. 그의 오른손이 무전기를 잡기 위해 좌석 위를 더듬거렸다. 그는 무전기를 워싱턴에게 넘겨주었다.
"우리가 맞게 가고 있는 건지 한번 알아봐!"
그때 무전기에서는 보란이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측면 나와라. 측면 나와라."
"측면 2호 여기 있다."
건 스모크 해링턴이 점잔을 빼며 대답했다.
"측면 1호도 여기 있다. 우리는 동행이다. 종마를 타고 도박판을 쫓아가는 중이다."
블랭카날레스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임으로써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보란의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데. 어디 있나?"
"우리는 표적을 향해 우측을 달리고 있다. 직선 도로에서 합세할 것이다."
"꼭 딕시의 경마 대회 같은데!"
"그 종마는 여기선 눈에 너무 잘 띄어."
블랭카날레스가 중얼거렸다.
보란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
"좋아, 측면 잘 생각했다. 1번 추적자. 위치 보고하라!"
"추적자 1번은 푸른 차에 바로 당도하는 중이다"
지트카가 소리쳤다.
"거기에 다른 이상한 차량은 없나?"
"없어! 프레인제인과 밤색의 폰티악 승용차뿐이다. 걱정할 것은 없다. 우리는 정면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곧 다른 차들이 바로 네 코앞에 갈 것이다. 그리고 이상 있는 사람 있나?"
그들은 지트카의 음성이 들려오기 전에 잠깐 동안 차가 붕붕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모르겠다. 커다란 검은 차가 하나 온다. 다섯이 타고 있다"
"아아, 잘 됐어!"
하고 보란은 말했다.
"그건 아까 조금 지체한 후방의 경호대일 것이다. 좋아! 추적자 1번을 들어가라. 조심하라! 그리고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라"
"좋다. 지금 곧장 접근하겠다. 거기에서 만나자"
"추적자 2번은 정위치에 있다. 명령을 바란다.!"
루데크가 보고했다.
"거리를 유지하라!"
하고 보란이 지시했다.
블랭카날레스와 워싱턴은 잠시 서로의 시선을 교환했다. 그들은 이제 코르베트가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것을 잘 볼 수 있었다. 고속도로를 향하여 뻗어 오른 비탈길과 그 위로 쌩쌩 나는듯한 하얀 색 리무진도 볼 수 있었다. 워싱턴은 다른 것은 더 없나를 조사하기 위해 목을 길게 늘였다. 그러고는 무전기의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했다.
"뒤쪽은 아무것도 없다"
"알았다.! 측면 이제 너희들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고 생각된다. 푸른 차를 알아볼 수 있겠나?"
"밤색 폰티악 말인가? 물론이다. 하나, 둘..... 아. 셋이 타고 있다. 젠장! 길에 점점 더 차가 많아지고 있다."
"그런가! 음..... 그들을 지금과 같이 붙들어 둘 수 있겠나?"
"나 자신도 붙들려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자들을 없애 버리지 않는 한은!"
"빌어먹을 안돼! 안된다. 다치게 해서는 안 돼!"
보란이 대답했다.
"방해하라! 반복한다. 방해하라! 그래서 지체시켜라! 알았나?"
"그렇게 하겠다! 당장 착수하겠다. 누군가 우리가 길을 막는걸 도와줄 수 있나?"
해링턴이 말했다.
그때 지트카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내가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잠깐 동안은 좋은가?"
"물론 좋아! 냉정하게 해라. 아무런 의심도 불러일으켜서는 안 된다."
보란이 대답했다.
"알았다"
무스탕은 이제 비탈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블랭카날레스는 고속도로를 빠르게 달려가는 차량들 사이로 진입하기 위하여 온몸을 긴장시켰다. 코르베트는 최고의 속도로 2차선을 가로질러 돌진해 들어갔다. 순식간에 블랭카날레스도 차들 사이로 섞여 버렸다. 그는 주의 깊게 뒤쪽의 차량들과 차선 안쪽을 살폈다. 그러고는 보란의 뒤를 지키기 위해 속력을 높이며 다시 차선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그들이 커브길에 이르렀을 때 워싱턴이 중얼거렸다.
"저 앞에 종마가 가고 있는 것 같은데! 저쪽 모퉁이 중간쯤 말이야. 그게 아닌가? 바깥쪽 차선에...."
블랭카날레스는 달리는 차들 사이로 끼어들어 바람막이 유리 너머로 흘낏거리며 말했다.
"종마처럼 보여? 그들이 어떻게 앞장설 수 있었지?"
"우리들을 앞질러 벌린 거야. 어떻게 그랬을까?"
워싱턴은 추측했다. 바로 그때 해링턴이 보내는 무전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가 행렬의 제일 앞에 서 있다. 그들이 보인다. 중간 차선의 바로 내 차 뒤에 있다. 커다란 디트로이트산 검은 차다. 그리고 브 바로 뒤를 영국산의 흰 차가 따르고 있다. 길을 차단해야겠다."
"내가 가겠다. 아직 길은 막지 마라! 내가 지나갈 때까지는 안된다. 뒤쪽 너희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보란이 말했다.
"바로 자네 뒤야! 잘 안 보이는 곳이지만....."
워싱턴이 보고했다.
"좋다. 추적자 2번을 제외하곤 다 모였다. 우리는 모두 하나의 궤짝형을 만드는데 합세한 것이다. 그래서 거창한 도박을 한번 벌여 보자고! 잘 들어라. 이번 한 번의 시도밖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단 한 번에 해치워야 한다. 차선을 왼편에서 오른편까지 1, 2, 3, 4번이라고 번호를 붙이기로 하자. 인터체인지는 3번 거리에 있다. 4번 차선은 거리에서 우리를 떠날 것이다. 궤짝은 2번 차선에서 견고하게 짜여져야 한다. 아마도 산타야나. 또는 산 베르두로 향하는 차선일 것이다. 좋다. 위치는 그곳이다. 모두들 자기의 임무를 다시 생각하라......"
워싱턴은 막연한 기분을 느끼며 보란의 침착한 지시를 듣고 있었다. 1분에 1마일 이상이나 질주해 가는 자동차의 행렬들이 할리우드 고속도로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그들의 차는 범퍼와 범퍼를 맞대고 4개의 행렬을 따라 끝이 없는 긴 선을 이루며 비탈길을 오르고 비탈길을 내려서며 달리고 있었다. 단조롭기 이를데 없었으나 또한 위험하기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가운데 보란은 두 마리의 사냥감을 잡기 위해 올가미를 씌우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는 머리를 저으며 블랭카날레스를 바라보았다. 그의 파트너는 보란의 지시를 온몸이 귀가 된 듯 열중하여 듣고 있었다. 그의 눈동자는 계속하여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앞쪽으로, 백미러로 다시 왼편으로 오른편으로......굴러다니고 있었다. 그런 모습이 워싱턴의 기분을 조금은 덜어 주었다.
"좋아! 움직이기 시작해. 50으로 속도를 떨어뜨려! 좋아...... 1분이면 인터체인지다......"
붉은 코르베트가 두 개의 차선을 가로지르며 뚫고 나갔다가 얼마쯤 앞쪽으로 다시 그들의 차선 속으로 되돌아 들어가는 것을 워싱턴은 보았다. 선두 주자였던 거대한 세미 트레일러(트렉터와 트레일러로 분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대형 화물자동차)-바로 그것이 <종마>라고 불리던 차였다-가 약간 앞쪽의 오른편 차선에서 일을 벌이고 있었다. 그 종마가 갑자기 속도를 줄이며 바깥쪽의 두 번째 차선으로 위치를 이동하며 사라지는 바람에 당황하고 있었다. 두 차선 사이에 <공간>이 생겼다. 이때란 듯이 그곳으로 다가들고 있는 한 대의 차를 워싱턴은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보란의 코르베트였다. 그는 낄낄거렸다. 보란과 블랭카날레스의 차 사이에는 이제 두 대의 차가 있었다. 그들이 노리는 차들이었다. 콘티넨털의 운전사는 이제야 비로소 상황을 깨달은 듯 걱정스런 시선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의 눈에 다음번에 벌어질 일들이 훤히 보이는 듯했다.
"모두 정위치!"
블랭카날레스는 힘껏 가속 페달을 밟으며 3번 차선으로 밀고 들어가서는 자기의 위치를 지켰다.
"좋아! 다음은 지트카!"
지트카가 운전하는 메르쿠리 웨거능ㄴ 제일 안쪽 차선으로 밀고 들어갔다. 마침내 그들 넷 -지트카, 블랭카날레스, 보란, 그리고 디젤의 종마-은 시속 50마일의 속력으로 인터체인지로 들어갔다.
그 후 잠시 동안은 긴박스러움의 연속이었다. 종마 바로 뒤에 차 두 대쯤의 사이를 유지해 낼 만한 또 하나의 공간이 있기만 했다면, 조금은 덜 아슬아슬했을 것이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어째든 그들은 1초를 100으로 분할하여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숨이 가빴다. 그들은 완전히 덫 모양을 형성한 가운데 달려나갔다. 보란과 종마 사이의 콘티넨털은 지오르다노의 차가 갑자기 인터체인지 쪽으로 사라져 버리자 갑자기 종마 뒤편으로 파고 들어왔다. 폰티악이 기어를 바꾸자 한쌍의 배기 구멍으로부터 가스가 쏟아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폰티악은 보란의 옆쪽으로 비스듬히 방향을 바꿔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지오르다노의 뒤에 있던 경호 차량은 폰티악이 지나간 자리로 밀고 들어왔다. 뒤를 따르려는 의도임이 분명했다. 그러니 그 의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참으로 무의미한 행위였다. 왜냐하면 보란이 속력을 높여 그의 앞 범퍼를 종마의 뒷바퀴와 나란히 가져다 맞췄기 때문이었다. 타이어들이 급정거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화물차 하나가 방향을 잡지 못해 비척거리더니 종마의 뒤로 뛰어들었다. 어디선가 나타난 경찰 순찰차가 급작스레 브레이크를 밟아 속력을 한껏 낮추었으나 타이어가 도로와의 마찰 때문에 요란한 소리를 냈다. 워싱턴은 분노로 얼굴이 일그러진 경관을 바라볼 수 있었다. 결국 콘티넬털은 경찰차의 뒷바퀴와 충돌했다. 시끄러운 소리는 들었지만 보란을 그 광경을 목격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가벼운 충돌이었다. 단지 타이어가 펑크났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요란스럽게 동반되었을 뿐이었다. 이렇게 하여 특공대원들은 뒤쪽 경호 차량을 간단히 따돌릴 수가 있었다.
종마는 이제는 우아하게 클로버 잎새(인터체인지에서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둥근 원을 그리며 돌아가는 도로) 위에서 천천히 방향을 전환하며 달리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죽음의 특공대 차량들이 속도를 높여 재빨리 종마에 접근하고 있었다.
보란의 의기양양한 목소리가 무전기를 통해 들려왔다.
"훌륭해. 정말 잘 해냈어!"
"너의 부들부들 떨리는 엉덩이가 그걸 해냈지?"
지트카가 떠벌였다.
"정말 힘 드는데? 이봐. 도대체 내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거지?"
해링턴이 끼어들었다.
"클로버 잎새를 따라가는 거야!"
보란이 다시 나타났다.
"신호를 따라오면 된다. 우리가 가는 곳은...... 좋다. 산타야 나다! 가능한 최대 속력으로 달려 다시 모이자!"
해링턴이 무전기에 대고 투덜대고 있었다.
"그놈들은 떨어져 나가 버렸어. 깨진 범퍼하며...... 미친 짓이었어."
우리가 계획했던 것보다 더 잘 됐어. 멋진 구경거리였다. 서로의 위치를 잘 확인해가며 신나게 달려가자."
보란이 말했다.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블랭카날래스에게 머리를 흔들어 보이며 한마디 했다.
"제기랄, 이건 정말 못 해먹을 노릇이구먼! 안 그래?"
블랭카날래스는 코르베트 앞 유리밖으로 시선을 고정시킨채 고개를 끄덕였다. 지트카의 메르쿠리는 루데크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담배 하나 주게."
블랭카날래스가 청했다.
"이 놈의 운전대에서 손을 떼기가 무서워. 당장 곤두박질이라도 쳐버릴 것 같거든."
워싱턴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담뱃불을 붙여서 파트너의 입에 물려 주었다.
"이 특공대에 끼여든게 정말 자랑스럽구나! 이봐. 자네는 어떻게 생각해?"
"좀 기다려. 우리가 20만 달러치나 되는 차들을 한꺼번에 박살을 낼 뻔했다는 걸 아나?"
블랭카날래스는 중얼거렸다. 커다란 검둥이는 즐겁게 킬킬거렸다.
"무얼 기다리지? 그때까지 내가 살아남기만 한다면, 그 때는..... 그렇지, 좋아. 나도 끼어든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겠네."
블랭카날래스는 그의 동료에게 갑자기 환하게 웃어 보였다.
"자네가 옳아. 우리는 지옥의 특공대니까."
5. 복병
"저놈의 스테이션 웨건이 계속해서 우리 뒤에 따라붙고 있었습니까?"
젊은이가 서류 가방을 주물럭거리며 물었다.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했어. 자넨 이제야 그 사실을 발견한 건가?"
하고 지오르다노는 점잔을 빼며 대꾸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아니죠. 한참 동안은 포드 세단이 뒤를 쫓아오더니, 지금은 또 스
테이션 웨건이 뒤에 있잖아요?"
지오르다노는 낄낄거리다가 만족스럽다는 듯 좌석 깊숙이 엉덩이를 밀어붙였다.
"도박이야! 그놈들은 놀기를 좋아하거든. 그놈들 마음대로 놀도록 내버려 두는 거야!"
그들은 몇 분 전에 그 소란스런 도로를 벗어 나왔다. 이제 그들은 아스팔트가 깔린 매끄러운 도로 위에서 시골의 경치를 내다보며 달리고 있었다. 차는 시속 80마일의 일정한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곧 그들은 도시와 인접한 사막과도 같은 평지에 이를 것이며 그 후 그들은 로키의 뷰트(미국의 서쪽과 캐나다에 있는 외따로 솟아 있는 산)를 향하여 북쪽으로 달려나가게 될 것이다. 이윽고 지오르다노의 눈앞에 웅장한 숲이 나타났다. 날카로운 바위 사이에 있는 은폐된 계곡 안쪽이었다. 크레이프 열매, 레몬, 탄지르 오렌지, 아모카도 등이 거기에서 재배되었다. 그러나 부유한 지오르다노의 욕심을 충족시킬 만큼 충분한 양은 되지 못했다. 사실 그 농장에 대한 엄청난 세금이 매년 그를 따라다녔다. 그의 합법적 사업체 가운데 농장은 그렇게 재미있는 사업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더욱 비밀스러운 사업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의 불법적인 사업을 위한 어떤 특수한 일을 행해 나가는 데 있어서 그곳은 없어서는 안 될 만큼 긴요한 곳이었다.
롤스로이스는 농장에 접근하는 도로로 들어서기 위하여 속도를 줄이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몸을 일으켜 인터폰의 단추를 눌렀다.
"뒤따라오는 차에 무슨 일이 생겼나?"
"그들은 계속 뒤떨어지기만 하는데요. 저는 벌써 1마일 전쯤에서부터 그들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운전사가 보고했다.
"옆으로 빠져 차를 세워!"
그들은 방향을 바꿨다. 그 무거운 차가 매끄럽게 멈춰섰다. 검은 콘티넨털 승용차 역시 몇백 피트쯤 더 나아가서 멈춰섰다. 그다음 롤스로이스는 지오르다노의 차로부터 몇 야드 떨어진 곳으로 뒷걸음질 쳐 다가왔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어. 돌대가리들은 어쩔 수 없다니까. 그들이 오는 것을 발견하는 즉시 다시 출발해. 그렇지만 천천히, 나는 그들이 우리를 놓치길 원치 않으니까."
지오르다노가 명령했다.
운전사는 창문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앞에 서 있는 차에게 지시 사항을 전달했다. 그들은 조용히 그리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지오르다노는 짜증이 났다. 그는 시가에 불을 붙여 물었다. 다시 몇 분이 지났다.
"도대체 어떻게 시골길 위에서 우리를 놓칠 수가 있나?"
"아마 차가 고장 났는지도 모르죠"
"뭐야? 그렇다면 브루노는 도대체 어디 있다는 거야? 브루노는 어디로 가버렸어?"
그는 인터폰의 단추를 다시 눌렀다.
"그래, 그 천재적인 브루노는 어디 있다는 건가?"
"누군가 오고 있습니다!"
운전사가 외쳤다. 지오르다노는 머리를 창문 밖으로 내밀었다. 조금 전에 달려온 길을 그는 훑어보았다.
"트럭이다! 저놈의 빌어먹을 트럭!"
거대한, 흑백으로 도색된 디젤 화물차가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화물차 꼭대기에 있는 배기 구멍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지오르다노는 트럭이 다가오는 것을 지켜보면서 점점 더 지긋지긋한 기분에 휩싸였다. 두 남자가 거기에 타고 있었다. 그들이 지오르다노를 스쳐갈 때 운전사는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오르다노는 투덜거렸다.
"두 돌대가리들! 하난 술래잡기도 제대로 못 하고, 또 하나는 도로 가운데서 길을 잊다니."
그는 인터폰의 단추를 두드렸다.
"좋아, 가자! 가자고 가!"
고속도로 벗어나자마자 곧 보란은 시속 40마일로 속도를 줄이며 천천히 달려나갔다. 블랭카날레스는 종마를 기다리기 위해 지름길에 남아 있었다. 종마는 몇 분 뒤에 도로 끝에 나타났다.
"내가 살던 곳 같은 시골로 접어드는데! 공격하기에는 더없는 장소야."
루데크가 말했다.
"냉정해야 해. 차선을 바꿔!"
보란이 충고했다.
"좋아. 나는 뒤로 처지기로 하지. 앞장서, 지트카!"
"좋았어! 저놈들은 아마 90킬로쯤에서 달아나고 있을 거야. 이 낡은 웨건으로 무리겠지?"
"80킬로쯤이야. 넌 90킬로까지 높여서 달려야 돼. 아니면 그놈들을 놓칠 거야. 지트카!"
루데크가 말했다.
"그래? 그럼 달려 보자!"
보란은 빙긋 웃으며 그들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안녕, 친구?"
루데크는 잠시 뒤에 속삭이듯 말했다.
"이야, 거창해 보이는데. 잘해 봐, 친구!"
"좋아!"
하는 지트카의 목소리는 흥분으로 뻣뻣하게 굳어 있었다.
"그놈들이 보여, 벌써! 너무 뒤로 많이 움직이고 있어!"
"좋았어. 저기 왼쪽에 있는 게 뭐야? 뷰트 산인가?"
"그래. 거기 갈림길이 있어. 그놈들은 북쪽으로 달아나고 있다고! 뷰트 산 쪽이야!"
그때 보란이 대화 속으로 끼어들었다.
"위치를 정확히 얘기해 줘! 언제 어디로 들어갈 것인지. 우리도 뒤따라가야 하니까."
"좋았어."
루데크의 침착한 대답이 울려 왔다.
"그럼 누군가가 곧 날 뒤따르게 좋을 거야. 이놈의 늙어 빠진 엔진으로는 더는 못 쫓겠는데."
지트카가 말했다.
"가고 있어!"
보란은 속력을 최대로 높이며 말했다.
그때 해링턴과 워싱턴이 동시에 리버사이드의 지름길에 도착했음을 보고해 왔다. 보란은 무전기를 뽑아 들었다.
"빨리 와! 전 속력을 다해 나에게 접근해!"
"그러겠다!"
해링턴이 대꾸했다.
"고속도로에서 많이 지체했나?"
"별로!"
"이 지역을 잘 아나, 건 스모크?"
"내가 어릴 때 갖고 놀던 장난감 상자처럼 잘 안다."
"이 뷰트 산 위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나?"
"별것 없다. 감귤 농장들이 있다. 가축을 기르는 곳도 좀 있고."
"좋아! 계속 가까이 다가오라. 추적자, 이제 네가 보인다. 혹시 무슨 일이 벌어졌나?"
"알 수 없어. 뒤쪽으로 먼지가 풀썩거리고 있을 뿐이다."
"추적자 2호, 보고해!"
하고 보란은 명령했다.
"블러드 브러더!"
그는 다시 불렀다.
고통스러운 침묵이 뒤따랐다. 이제 보란은 뷰트 산 깊숙이까지 들어와 있었다. 그는 눈을 번득이며 길 양쪽으로 펼쳐진 지세를 이쪽저쪽으로 열심히 살폈다. 코르베트는 화살처럼 달렸다. 달리면서도 그는 지트카의 모습을 시야에서 놓치지 않았다. 갑자기 루데크의 부드러운 바리톤이 크고 깨끗하게 들려왔다.
"독수리가 정위치했다. 상황은 훌륭하다. 지시 바란다!"
"시야에 목표가 보이나?"
보란이 물었다.
"완벽해! 로스앤젤레스와 리버사이드 사이 중간쯤의 위치야."
"지형을 살펴보고 보고하라!"
"비포장 도로가 동쪽으로 뻗어 있어. 목표는 현재 위치로부터 약 3마일쯤 떨어져 있다. 길 끝에는 나무들이 서 있고, 푸른 잎들이 무성하다. 별다른 것은 보이지 않는다."
"그럼 그곳에 멈춰!"
하고 보란은 즉각 명령했다. 그러고 그는 월코를 불렀다.
"월코다. 딱 좋은 위치다."
보란은 차의 속도를 줄였다.
"현재의 내 위치로부터 어느 지점에 있는가. 독수리?"
"1분쯤 전에 현재 내가 있는 지점을 자네가 지났어,"
" 알았어. 독수리처럼 시야를 똑똑히 유지하되 상황의 변화를 그때그때 보고하라. 그리고 종마는 포장도로를 박차고 달려서 가능한 빨리 이곳에 당도하라."
"알았다."
지트카는 메르쿠리를 길가에 세워놓고 그 옆에 서 있었다. 보란이 차를 세웠다. 지트카는 재빨리 그 차에 올랐다. 그들은 다시 한가롭게 앞으로 달려갔다. 보란은 무전기를 들고 말했다.
"종마. 거기 승차한 사람 중에 하나가 메르쿠리 웨건으로 가라. 그것은 너회들 바로 앞의 길가에 세워져 있다."
"알았다. 내가 가겠다."
워싱턴이 말했다.
"종마. 다음 명령이 있을 때까지 계속 따라붙어라."
"알았다."
"보란, 아주 잘하는데? 그놈들은 조금 전 비포장도로를 기어 올라가서 멈춰 섰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루데크가 끼어들었다.
보란은 낄낄거리며 속력을 줄이고 루데크에게 말했다.
"훌륭한 경치군. 계속 감시하라! 그 차가 연기를 뿜어내는 것이 보인다. 종마! 계속 달려가! 목표는 3분 거리 전방에 있다. 그들 너머로 나아가라! 그래서 맨 처음 눈에 띄는 편리한 지점에 세워라. 종마. 길이 갈라지는 지점까지 되돌아가라. 두 차를 모두 갖고 가되 그들에게는 상관없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라. 그 도로 위를 지나가는 모든 차량을 보고하라."
"종마다. 알았다."
"이제"
하고 보란은 지트카에게 말했다.
"우리는 사냥개들로부터 여우들을 떼어 놓아야 해."
에밀리오 지오르다노는 대단히 불쾌했다. 이런 날에는 농장일도 제대로 될 가능성이 없는 것이다. 그는 고속도로 위에서 벌어졌던 즐거웠던 차량 싸움에 관련된 두 운전사를 해고했다. 그다음에 그는 농장 지배인을 불러 호통을 쳤다. 지배인은 저장 창고의 재고품 명세서를 제 시간에 작성해 놓지 않았던 것이다. 몇 분 뒤에는 그가 브루노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지 떠벌였다.
"만일 그 녀석이 여기로 오는 길을 찾아내기만 한다면! 당도하는 즉시!"
뒤쪽 경호를 맡았던 콘티넨털 승용차에 탔던 브루노와 네 사나이는 지오르다노가 도착한 지 2분이 아니라 30분 뒤에야 도착했다. 그 차는 보기 흉하게 일그러져 있었을 뿐만 아니라 헤드라이트의 유리는 깨져 나가고 없었다.
"사고를 당했습니다."
브루노는 보고 했다. 지오르다노의 형용할수 없는 분노앞에서 그의 목소리는 기어들어 가는 듯했다.
"사고를 당했어?"
하고 지오르다노는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 멍청한 놈! 널 죽여 버리겠다. 널 죽여 버리겠어.!"
"사장님. 그런 일은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것 아닙니까?"
"너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어!"
지오르다노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 돌대가리들이 나에게 달려들었다면 무슨 꼴이 됐겠어. 응? 그 녀석들이 이 에밀리오에게 덤벼들었다면 어떻게 되었겠냐고? 응?"
그는 앞으로 걸어가더니 재빨리 브루노의 따귀를 한 대 갈겼다. 그러고는 다른 경호원들에게도 주먹을 날렸다. 경호원들은 말할 수 없는 치욕으로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러나 그들은 참을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우리가 경찰차의 뒷범퍼를 들이받았어요."
"경찰차? 경찰이라고 했나?"
"그렇다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지체된 겁니다. 흉기에 대한 면허증을 제시해야 했고. 또 사고에 대한 완전한 보고서 작성 때문에..... 또, 그렇죠. 경찰관들도 화가 나 있었으니까요. 저는 생각하기를......"
" 잔소리 마라고 차에 올라타! 빌어먹을. 다시 돌아가는 거야. 이제부터라도 다시 시작해야겠어."
그는 서류 가방을 들고 있는 사내를 불렀다. 그가 다가오자 거칠게 차 안으로 밀어 넣었다. 농장 지배인은 얼굴 근육이 뻣뻣해질 정도로 긴장한 채 근처에 있었다.
"이리 와!"
지오르다노는 이제 머리까지 아픈지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계획한 대로 일을 처리해야 해. 2만 5000달러 경리담당까지 데리고 왔어. 왠지 알아? 경찰관들이 보기에. 내 무장한 경호원들을 좀 더 합법적으로 보이게 하려고 그랬던 거야. 무엇을 위해서? 브루노가 경찰차와 부딪쳐 범퍼를 부수라고 그랬는 줄 알아?"
그의 분노는 좀처럼 사그라질 줄을 몰랐다.
"7만 정돕니다. 그걸 가지고 가시려굽쇼?"
지배인은 기어드는 목소리로 답했다. 지오르다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에는 이 중사 놈이 내가 떠난 뒤 한 시간쯤 후에 나타나 이 주위를 헤맬 거야. 이 집을 박살 내려 할 거야."
그는 손을 흔들어 브루노를 불렀다.
"가서 돈을 가져오도록 해!"
브루노는 차에서 내려 지배인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 지오르다노가 그의 등 뒤에다 대고 야유를 퍼부었다.
"사고 없이 차까지 운반하도록 해보라고. 이 멍청아!"
몇 분 뒤 몇 대의 자동차가 그 지저분한 도로를 향해 달려 나왔다. 하얀 롤스로이스는 두 대의 검은 콘티넨털 사이에 끼어있었다. 이번에는 브루노의 차가 앞장을 서고 있었다. 서류상자를 무릎 위에. 작은 금속상자를 두 다리 사이에 올려놓은 경리담당은 지오르다노의 바로 옆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이봐. 내가 너무 흥분했었나?"
"괜찮습니다. 이해 합니다."
"누구나 재수없는 날이라는게 있다고는 해도 오늘 보다더 운이 나쁜 날은 없을거야."
지로으다노는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사장님!"
그러나 그런 일은 또 생기고 말았다. 그것도 몇분이 지나지 않아서,
"자동차 행렬을 추적 중이다."
루데크가 조용히 보고했다.
"그래? 우리 뒤에 뭐가 있나?"
보란이 응답했다.
"없어!"
하고 루데크는 말했다. 그는 높은 곳에 자리잡고 아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교차로를 마지막으로 지나간 것은 망가진 디트로이트산 검은 승용차였어."
워싱턴이 보고했다.
"알았다. 종마는 어때?"
"종마. 이상 없다."
해링턴이 보고했다.
"그럼굴려 보라고!"
자동차의 시동이 걸리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길가의 커다란 동덩이가 차의 진동으로 들썩이기 시작했고 떼굴떼굴 구르다가는 튀어 오르고 끝내는 길 위에까지 튀어 나왔다. 잠시 주위가 잠잠해졌다. 지트카와 안드로메다가 그 돌동이들을 높은 뷰트산의 그늘 속으로 질질 끌고 들어갔다. 죽음의 특공대가 잠복하기 위해서 그보다 더 좋은 장소는 없었다. 그곳은 감귤 농장으로 가는 도로와 다른 주로 이어지는 도로의 중간으로, 개인 점유의 지저분한 도로로 꺾어져 들어가는 곳이었다. 바리케이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세워졌다. 90도로 꺾어 드는 도로의 바로 너머였다. 지프는 종마에서 끌어내려졌다. 그러고는 바리케이드 조금 너머의 뷰트 산 그늘 속에 놓여졌다. 그 지프에 설치된 커다란 캘리버 50이 어떤 긴박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안드로메다가 그것을 맡았다.
지트카는 왼편을, 보란은 오른편을 맡았다. 두 사람 모두 가벼운 자동 화기를 보유하고 고지라는 훌륭한 이점도 안고 있었다. 세대의 화기로 그 지점을 완벽하게 장악해야만 했다. 그들은 그 일이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건 스모크 해링턴은 그 지점의 정면을 담당했다. 바리케이드의 방향을 향해서였다. 그의 6연발 총은 낮게 조준되어 있었고 가벼운 자동화기가 그의 어깨에 매달려 있었디. 그는 모든 은신처나 퇴각로를 봉쇄하기로 되어있었다.
"1마일 전방이다!"
루데크가 보고했다.
"알았다. 종마. 움직여라. 지저분한 비포장 도로의 교차점을 장악하라."
보란이 말을 받았다. 그는 블랭카날레스와 워싱턴으로부터 응답을 받고 무전기를 한쪽으로 치우고는 기다렸다.
자동차의 행렬은 대단히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앞선 차량들 때문에 먼지가 일었다. 그 먼지는 세 번째의 차를 대열로부터 조금 이탈하게 했다. 브루노는 커다란 콘티넨털을 능란하게 몰아갔다. 그는 이 도로에 이미 충분히 익숙해져 있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지도 못했던 장애물 때문에 급히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했다. 보란은 영화 구경을 하듯 브루노의 질겁하는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어 브루노의 몸뚱이가 뻣뻣해지더니. 그의 긴장된 손이 핸들을 꽉 움켜쥐는 것도 볼 수 있었다. 그것은 단 몇 초 동안의 일이었다. 그러나 길고 긴 몇 초였다. 콘티넨털 승용차는 바리케이드 위로 올라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실패했다. 3톤짜리 콘티넨털이 16톤 정도의 완고한 바위덩이를 만났기 때문이었다. 콘티넨털은 그러나 쉬지 않고 붕붕거렸다. 차의 앞 보닛이 튀어 올랐다. 깨져 없어진 앞 유리 때문에 사내들은 머리를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차가 앞쪽으로 진행하다가 멈출 때마다 차를 탄 사내들은 심하게 흔들렸다. 그들은 운전석에 앉은 사내에게 뭐라고 투덜거렸다. 곧이어서 내부가 장갑차와 같은 롤스로이스가 뒤쪽으로 부딪쳐 왔다. 멋진 충돌이었다. 브레이크가 부서져 나가고 경적소리가 시골 하늘을 맴돌았다. 곧 뒤를 이어 세 번째의 충돌이 있었다. 뒤에 따라오던 콘티넨털이 롤스로이스를 들이받은 것이다.
이 소란함에 캘리버 50의 스타카토가 뛰어올랐다. 안드로메다는 총알들을 분수처럼 그들의 머리 위로 쏟아부었다. 세 번째의 차로부터 필사적으로 기어 나온 한 사나이가 앞이 안 보이는지 바위에다 대고 사격을 해댔다. 그러자 한 사나이에게도 총격이 가해 졌다. 순간 사나이의 몸이 뒤로 펄쩍 튀어 오르더니 땅바닥에 널브러졌다. 심한 반격이 롤스로이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무거운 차는 앞뒤로 차체를 흔들어대면서 쉴 새 없이 총탄을 퍼부어댔다. 운전사는 충돌사고로 가운데에 끼이게 된 롤스로이스를 뽑아내 탈출하기 위해 기를 쓰고 있었다. 그 강력한 엔진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울부짖고 있었다.
"힘 좋군. 좋아!"
보란은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건 스모크. '거대한 몸뚱이'를 가져오라!"
특공대 세 사람 모두가 이제는 롤스로이스에 집중적으로 사격을 가하고 있었다. 아직도 롤스로이스는 늪에 빠진 코뿔소처럼 몸을 뒤채며 웅웅거리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계속 반격의 총성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때 보란은 커브길을 따라 해링턴이 잽싸게 뛰어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바주카포를 어깨에 둘러메고 있었다. 보란은 그가 롤스로이스로부터 100피트 지점까지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 그의 한쪽 무릎이 땅위에 닿자마자 바로 그는 바주카포를 조준하였다. 다음 순간에 이미 요란한 굉음과 불꽃과 연기가 뷰트산을 뒤덮었다. 장갑차를 꿰뚫는 로켓포가 발사된 것이었다. 좌충우돌하던 롤스로이스는 거대한 폭발 속에 두 동강이 났고 따라서 무든 항쟁도 즉시 중단되었다.
한 사나이가 재빨리 차와 포연으로부터 빠져나왔다. 그는 콜록거리며 넓은 지역으로 나와 멈춰 섰다. 보란은 바위꼭대기로 뛰어 올라갔다. 그러고는 아래쪽을 향해 외쳤다.
"계산을 끝내야 할 때가 됐어! 지오르다노."
"돌대가리!"
지오르다노의 팔이 움직이고 동시에 그의 38구경이 세 번 불을 뿜었다. 그러나 그뿐 그는 힘없이 쓰러졌다. 보란은 확인이라도 하듯 그 널브러진 시체에 대고 총알을 난사했다. 이렇게 하여 싸움은 몇분 지나지 않아서 다 끝났다. 조각난 롤스로이스로부터 지트카는 시커멓게 변색된 서류 가방과 금속상자를 꺼냈다. 중무기들과 전리품들은 지프 안으로 옮겨졌다. 안드로메다은 차 뒤로 뛰어내려서 바리케이드의 뒤쪽으로 빠르게 달려갔다. 지트카가 보란에게 말했다.
"롤스로이스에 아직도 살아남은 놈이 있어."
보란은 지트카와 해링턴을 지프로 올려보내고 지트카의 보고를 확인 하기 위해 앞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연기가 일고 있는 롤스로이스의 바닥에서 그는 공포로 하얗게 질린 한 젊은이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나는....난...단지....경리 직원일 뿐입니다."
보란은 그의 45구경 권총을 꺼내 젊은이의 양미간에 겨누고 말했다.
"너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야! 아무것도 말하지 마라! 대신 너를 살려주겠다."
소름 끼치는 공포 속에서도 그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보란은 그를 버려두고 달리는 대원들과 합세했다. 지프는 벌써 종마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해링턴은 경사진 언덕을 따라 신경을 곤두세운 채 걸어가고 있었다.
"종마에 실을 것이 또 있나?"
그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는 보란이 그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다시 한번 같은 말을 물었다.
"아직은 없네. 웨건을 몰고 가다가 어딘가에 내버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먼 길이니까 서두르도록,"
보란이 응답했다.
"알았어."
해링턴은 이미 차에 올라타고 있었다. 안드로메다가 그를 돕기 위해 급히 뛰어갔다. 보란과 지트카는 코르베트의 곁으로 뛰어갔다. 보란이 그 차를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지트카는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독수리. 상황이 어떤가?"
"깨끗해. 친구들! 깨끗하다고. 나는 재미있는 일에 손 하나 대지 못하고 말았어."
루데크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좋아. 내려오라!"
지트카가 말했다.
"알았다. 내려가겠다."
그때 보란이 다가왔다.
"데드 아이스에게 웨건에 대해서 얘기해 주게."
지트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웨건은 종마를 타고 간다."
"알았다. 그런데 대장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
지극히 가라앉은 목소리였다.
"아니야. 나는 소총을 손보고 있다. 무전기를 잠시 그에게 맡겼을 뿐이다.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모두 훌륭했다. 아마 우리는 돈을 좀 번 것 같다."
"알았다. 잘 끝나서 기쁘다. 다음번에는 내가 최전선을 맡겠다."
워싱턴이 대답했다. 보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좋다 고려해 보겠어. 너희들 덕분에 작전이 성공했다. 축하한다. 그러나 집에 도착할 때까지는 침착을 잃지 마라. 무전기 사용은 일단 중지한다. 단. 긴급할 때는 제외다. 알았나?"
"알았어"
데드아이스 워싱턴이 대꾸했다.
"좋다."
해링턴이었다.
"그러겠다."
블러드 브라더의 대꾸였다.
"알겠다."
블랭카날레스의 응답했다.
6 트로이의 목마
수사본부의 브래독 주임은 혼란에 빠졌다. 그보다도 더 고약한 것은 이제는 그 자신에 대해 더 이상 확신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는 사무실 벽에 걸린 커다란 지도로부터 멀찌감치 물러서서 <불치의 죄인> 작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을 들여다보았다. 두 명의 경장과 네명의 형사가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까지 이 기록들을 주의 깊게 분류 정리, 선택해온 담당자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탁월한 경찰관들이었으며, 경찰 근무기록에도 사소한 오점 하나 남기고 있지 않은 이들이었다.
"무엇이 잘못됐나?"
브래독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앤디 포스터 경감은 머리칼을 손으로 쓸어 올리고 이내 머리를 긁적였다. 그와 브래독은 경찰 학교시절부터 잘 아는 사이였다.
"우리는 그 자를 과소평가했습니다."
하고 그는 민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자는 너무나 손쉽게 그 일을 해치워 버렸습니다. 저는 그자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사건 후 여러 가지 점들을 종합해 보기 전까지는 속았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젊은 경위인 칼 라이온스가 얘기했다.
포스터는 라이온스의 실수를 변명해 주려고 말을 꺼냈다.
"좀 혼란스러운 요인이 있었습니다. 첫째로, 지오르다노는 두 대의 차를 끌고 나왔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적당한 위치에 그는 또 한 대의 차를 감춰 두었던 겁니다. 칼이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차들은 고속도로를 향해 달려 들어갔습니다. 지오르다노가 그 싸움을 도발하려 했다는 것은 상당히 근거 있는 사실로 보입니다. 우리는 그 차들 가운데 어떤 것이 보란의 차인지 구별해 낼 수 있는 방법도 물론 없었고요. 또 어떤 차들이 그들을 동반한 차들인지도 밝혀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칼에게 그냥 지오르다노가 탄 차를 뒤따라가다가 변화가 생기면 보고하라고 명령했을 뿐이었습니다."
라이온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어떤 돌발 사태에 줄곧 대비하고 있었습니다. 보란이 추적을 하리라고는 예상도 못했습니다. 저는 그저 지오르다노의 뒤에 매달려 가려고 노력했을 뿐입니다. 고속도로로 들어섰을 때, 저는 좀더 바짝 붙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충돌이 일어난 겁니다. 저는 인터체인지의 클로버잎 속으로 처박혀 버렸습니다. 그게 함정이었습니다. 또 다른 차 하나가 내가 탄 차의 뒷범퍼를 들이받았습니다."
"그래서 즉각 그런 명청한 상황을 보고했었나?"
브래독은 힐난했다.
"그렇게 됐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포스터 경감님과 연락하고 있었습니다. 지오르다노를 놓쳤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포스터가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
"그때가 3시 반쯤이었습니다. 고속도로가 막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너무 수가 부족했습니다. 주임님, 만일 우리의 병력이 지금의 세 배였다고 해도 아마 그 사태에 대한 적절한 조치는 취하기 힘들었을 겁니다. 일반적인 민첩성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저 혼자서 골든 스테이트와 산 베르나디노 게다가 산타야나까지를 다 커버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지역에는 적극적으로 손도 대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랬겠지!"
브래독은 웅얼거렸다. 그는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또 하나 기억하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특별한 때에, 그런 상황에서 보란이 지오르다노에게 관심을 가지리라고는 짐작조차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만일 제가 긴급 비상 단추를 눌러서 모든 <불치의 죄인>에 소속된 차량들을 불러 모아 지오르다노를 미행하게 했다 하더라도, 보란이 그에게 올가미를 씌울 가능성은 충분히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주임님께서도 그가 탁월한 전술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저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브래독이 불쑥 끼어들었다.
"물론이네. 앤디 자네는 적절하게 행동했어. 비난하자는 게 아닐세."
"저는 안전하게 처리하려고 했습니다만 적절하게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작전 지역에 무선으로 지오르다노의 차를 발견하는 즉시 연락해 줄 것을 당부 했습니다. 그러고는 발을 동동 구르고 손톱을 물어뜯으면서 그들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있기를 기다렸습니다."
포스터는 중얼거렸다.
이제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찰리 리케트 경감이 비로소 입을 열었다. 그는 <스물네 시간 근무하는 경찰관>이라고 소문이 나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범한 가장 커다란 실책은 브르노 스카렐리를 추적하는 데에 실패한 거요. 그게 멍청이 노름이었소. 그놈이야말로 또 하나의 확실한 길이었습니다. 지오르다노의 위치를 찾아내는 데 있어서는 말이오."
칼라이온스는 충혈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나는 결정을 내려야 했고 마침내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나는 내 능력이 미치는 한에서 끝까지 스카렐리를 지체시켰던 겁니다. 그러나 그놈의 차가 내 차의 뒤쪽을 들이받고 나자빠졌는데 도대체 어떻게 그를 추적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 당신도 그때는 내 마음을 알게 될 거요."
그는 목 뒤를 문지르면서 리케트를 쏘아보았다.
"제가 브루노 스카렐리를 지키도록 차 한 대를 보냈습니다. 30초쯤 늦게 그곳에 도착했는데, 바로 그 우라질 놈의 인터체인지에서 그를 놓쳐 버렸답니다."
포스터는 입술을 깨물었다.
"나는 아직도 생각하기를......"
리케트가 포스터를 건드리는 듯한 아슬아슬한 말대꾸는 갑자기 나타난 경관에 의해 중단되었다.
"리버사이드 실험실에서 보고서를 보내 왔습니다. 주임님."
"무슨 보곤가?"
브래독은 말끝을 삼켰다.
"그것은 장갑차를 정통으로 꿰뚫는 성능을 가진 포탄이었습니다. 아마도 바주카포를 사용한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 롤스로이스 승용차의 뒤쪽이 날아가고 유탄이 차 안으로 뚫고 들어갔습니다. 앞쪽의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습니다. 다른 탄흔들은 캘리버 50으로 발사된 철갑탄들이었습니다. 차들은 하나같이 모두 그 캘리버 50으로 완전히 박살이 난 상태였습니다."
"고맙네. 아트"
브래독이 대답했다. 그 경관은 보고를 끝내자 곧 밖으로 나갔다.
"완벽하게 준비된 전투 장비였군!"
"또 제 짐작으로는 흔적이 없는 매복 작전......"
말을 얼버무린 포스터는 이내 깊은 침묵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 버렸다. 리케트는 그의 주머니에 손을 넣어 긴 금속성의 물체를 꺼내 브래독의 책상 위로 던졌다.
"뷰트 산 맞은편에 있던 바위산이 캘리버 50으로 산산 조각났습니다."
브래독은 그 탄피를 집어 들었다. 그는 그것을 그의 큰손으로 무의미하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자들은 캘리버 50이 설치된 지프를 거기에 세워 놓고 있었던 거야. 자, 이제 누군가 얘기 좀 해보게. 그놈들은 무장한 지프를 타고 돌아다녔는데 어떻게 사람들의 눈에 띄이지 않을 수 있었을까? 그놈들은 어디에서 그 중장비를 얻을 수 있었을까? 바주카포로부터 캘리버 50이 탑재된 지프는 또 어디서? 도대체 무슨 귀신같은 놈들이기에 그놈들은 백주에 도로를 통해 그런 것들은 이동시킬 수 있었을까? 도대체 어떻게......"
리케트 경감은 무겁게 한숨을 내쉬고 자신의 상의 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 들고 말했다.
"내가 보고할 것이 좀 있을 것 같소이다. 지난 3시간 동안 여러 가지 보고들을 종합해서 면밀히 검토해 보았소. 그래서. 에 그러나까 좀 들어보시오 <벨 에어> 사태에 대한 보고서부터 시작하겠소. 지프가 마지막으로 관찰된 지점은 스카이 레인 도데 바로 다음 지역의 두 목격자는 맹세코 그 지프가 그곳을 지나가는 것을 본 적이 없다는 거였소. 경찰순찰차와 소방서 차량들을 제외하면 그 시각에 지나간 자동차라고는 커다란 세미 트레일러뿐이었다고 보고되었답니다. 목격자는 그 트레일러에 대해서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그 차의 특징은 물론 색깔마저도 기억해 내지 못했습니다."
리케트는 라이온스 경위를 정시하며 말을 이었다.
"다음에는 칼의 보고서에서 인용하겠소. <...... 그리하여 나는 천천히 달리고 있는 세미트레일러를 따라 클로버잎 속으로 진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 자네는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았더군. 칼. 그레 화물차 모양으로 생긴 트레일러였던가. 뭐던가?"
화물차 모양이었습니다.
라이온스 경감의 눈을 들여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화물차였다고? 계획이 아주 대단했어. 놈들은, 자, 이제는 지오르다노씨 고용인의 증언에서 인용해 보기로 합시다. 그는 그 총격전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생존자라오. <지오르다노씨는 우리가 계속해서 미행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그 미행자들이 우리를 놓치는 일이 없도록 기다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는 그자들을 올가미 속에 빠뜨리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뒤따라온 것이라고는 그저 거대한 디젤 트럭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청동빛의 화물차였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 물론 이것은 어쩌면 우연한 일이랄 수도 있다고 봅니다만, 그 안에 어떤 해답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브래독의 눈에서 불꽃이 일었다.
"그 교활한 녀석!"
하고 그는 중얼거렸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개연성이 높군요."
포스터가 브래독을 바라보며 말했다. 브래독은 눈을 부라리며 외쳤다.
"나는 어떤 것도 우연이라고 무시해 버리지 않는다. 보란이 그 우연 안에 없을지라도 말이야."
그는 책상으로 재빨리 돌아가서 서류 뭉치를 뒤적였다. 그중에서 한 장을 끄집어내 타이핑된 내용을 입속으로 부지런히 훑어 내려갔다.
"여기 있군. 제럴드 영이라는, 살아남았다는 바로 그자야. 이게 지오르다노의 고용인이라는 그자의 진술 조서 사본이야. 왜 지오르다노는 그들이 미행당하고 있다고 느꼈는가 하는 질문을 받자 다음과 같이 대답했어. < 글쎄요. 나 자신은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같은 차 두 대가 우리 뒤를 계속 따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푸른색의 포드 세단이었고 구형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낡은 스테이션 웨건이었는데 커다란 차였습니다. 아마 뷔크나 메르쿠리였을 것입니다.> 아직도 모르겠나. 경위?"
젊은 경관의 두 눈이 뜻밖의 새 사실에 튀어나올 듯이 커졌다.
"푸른색의 포드 승용차가 우리의 행렬에 끼어들었답니다. 웨건은 간선도로에서 바로 내 뒤로 끼어들었다고요. 우리가 오르막길로 올라갈 때는 이런 순서였습니다. 거대한 콘티넨털 승용차. 다음이 롤스로이스. 포드 승용차. 스테이션 웨건. 그리고는 고속도로로 들어서자 모든 차들이 앞을 다투어 달려나갔었죠. 나는 롤스로이스에만 정신을 빼앗기고 있었습니다."
리케트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놈들이 계속해서 자네를 가둬둔 걸세. 이봐. 라이온스 그놈들은 자넬 조롱거리로 만들고. 자네를 꽁꽁 묶어서 끌고 다닌 거야."
"지오르다노의 차와 다른 차들이 고속도로에서 뒤섞여 있는데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할 수 있었다는 겁니까? 나는 잠깐 동안도 다른 차들에 대해서는 신경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물론 그 세미 트레일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누가 그런 데까지 신경을 쓰겠습니까?"
"칼의 말이 옳아."
브래독은 담배를 피워 물고 말을 이었다.
"누구나가 다 눈을 번쩍 뜨고 놀란 입을 다물지 못했겠지. 만일 그 엄청난 기관총을 탑재한 군용 지프가 자동차의 행렬에 끼어들었다면 말이야. 그러나 그 교활한 놈은 그런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어. 그놈은 트로이의 목마를 이용했던 거야. 그 세미 트레일러 속에 작은 지프를 감출 수가 있었겠지?"
"그 빌어먹을 녀석들이 그 안에 탱그를 한 대 감춰 뒀다 해도 난 놀라지 않아요!"
포스터는 투덜거렸다.
브래독은 칼이 무엇인가 기억해 내기를 바라며 물었다.
"칼. 다시 주의 깊게 생각해 보게. 어떤 차가 자네한테 올가미를 씌우던가? 포드였나, 콘티넨털이었다. 아니면 웨건이었나?"
"둘 다 아니었습니다."
라이온스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에 저는 너무 당황해서요.....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저는 의아하게 생각했었습니다. 도대체 왜 그 차는 그다지도 느린지를 말입니다. 그러고는... 그렇습니다. 그건 분명히 스포츠카였어요! 붉은 스포츠카. 맞아요. 확실해요!"
"어디 제품이었나?"
"그게...... 외국산 자동차였을 겁니다. 그래요! 이제 기억이 조금씩 납니다. 저는 그 차를 보면서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도로 사정이 좋은 곳에서도 그 정도의 속력이라면 다 된 차라고요. 이젠 폐차 처분할 때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것은 계획에 따른 시간 맞추기 계략이었습니다. 다른 차들을 지체시키려는 의도에서 그랬겠지요. 그런데 그런 일은 계획만으로는 성공시킬 수 없는 법입니다. 그 녀석들은 분명히 차 안에 무전 시설을 갖추고 있었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포스터가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빌어먹을!"
브래독은 낮게 중얼거렸다.
리케트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 사실이 이 사건을 새로운 차원으로 옮겨 놓을 것 같군."
"왜 아니겠나? 보란이라는 자가 무선 전신기를 사용하지 말라는 법이 있겠어? 그놈들은 이미 군용 장비로 완전히 무장되어 있어. 바주카포도 갖고 있다는 게 확인되잖아? 그리고 더욱 기막힌 노릇은 돈만 내면 총 같은 건 어디에서라도 구할 수 있다는 거야. 요즘 세상에서는 말일세."
브래독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주의 깊게 덧붙였다.
"우리 전략을 완전히 수정해야겠어. 그 놈들의 무전 연락을 도청할 수 있는 방법을 한 번 연구해 보기로 하세. 앤디, 그 일을 자네에게 맡기겠네. 자자 정보를 다룬다는 것은 대단히 복잡한 과학 분야와 관계된 일이므로 지원을 받아야 할 걸세. 연방 통신 위원회 도움을 얻어보게. 육군이나 해군, 중앙 정보국의 도움까지도 요구해 봐. 필요한 경우에는 말야. 하여튼 모두 다 여기에 초점을 맞추고 일을 진행해 나가기로 하세. 우리의 적수인 그 녀석은 기름을 잔뜩 친 기계처럼 원활히 작동하고 있네. 우리가....아니 그놈들은 우리들을 조롱거리로 만들고 말지도 몰라."
그는 중도에서 말을 끊고 리케트레게로 걱정스러운 시선을 옮겼다.
"자네가 이번 사건을 이런 식으로 만들고 만 것 같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차량들에 대해서 우리는 세밀하게 조사해 두어야겠어.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모든 단위 수사 요원들에게도 이 정보를 보내주게. 그 트로이의 세미 트레일러에 대해선 가능한 한 빨리 정보를 입수하도록 하게. 그런 물건은 사용하고 있지 않거나 터미널에 주차되어 있지 않는 한은 은폐시키기 어려운 법이야. 화물 트럭형의 세미 트레일러로 간주될 수 있는 물건이라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무엇이든지 모두 철저히 수색. 조사해 주게. 칼. 자네는 화기 등속의 장비들을 추적해 주게. 바주카포나 기관총 같은 중무기들은 인근에 있는 무기 가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지 말게. 또한 무선 송수신기 기재들도 최근에 수집된 정보에 입각하여 철저히 추적하게. 그러니까 내가 요구하는 바는......."
"이제 거의 자정입니다. 주임님."
하고 리케트가 상기 시켰다.
"우리들 대부분은 18시간 동안 계속 뛰었습니다."
포스터가 피곤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네에게 몇 사람 더 지원하겠네. 어떻게 해서든 그놈들이 우리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해야 해"
그때 아까 그 경관이 문을 열고 뛰어들어와 급하게 소리쳤다.
"조금전에 버뱅크의 <트리 해변 레코드>를 공격했습니다."
"레코드 회사라고?"
브래독은 얼이 빠진 듯했다.
"왜 자네는 그게 보란 패거리의 짓일 거라고 단정하지? 아무런 연관성이 없을 수도....."
"그에 대해서는 저도 잘 모릅니다."
하고 경관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사건은 < 스튜디오 웨이 >건물의 바깥쪽에 있는 창고에서 일어났다고 합니다. 보고에 의하면 놈들이 소이탄을 터뜨리며 습격하는 동안에 공중에서는 헬리콥터로부터 총알이 빗발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저는 단지 그들이 <불치의 죄인>으로 추측돼서......."
브래독은 이미 사무실을 나서고 있었다. 그 뒤를 한 떼의 수사진들이 뒤따랐다. 그들은 <불치의 죄인> 특별 통제실로 들어섰다. 브래독은 몸을 홱 돌리며 발악하듯 외쳤다.
"나가 봐! 일이 있으면 무전기로 연락하겠어!"
수사관들은 재빨리 뒤로 돌아서더니 복도를 달려나가 차고로 향했다. 통제실 인터폰 앞에 선 브래독은 재빨리 버튼을 하나 누르고 큰 소리로 지시 사항을 말했다.
"급전이다. <불치의 죄인.> 비상이다. 모든 단위 수사대는 들으라. 코드 7 –10.복수화하라! 글렌데일의 샌타모니카 시. 버뱅크 스튜디오다. 알파 지점으로 집결하라! 알파 4가 사건 발생지점이다. 알파 지점으로 집결하라! 근처에서 집결 대기하라!"
그는 중앙 지급 송신소에서 전문 내용을 제대로 인지했는지의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또 다른 스위치를 올리고 앉은뱅이 마이크를 통해 <불치의 죄인> 특별 네트워크에 대고 지시사항을 퍼부어 대기 시작했다. 칼라이온스 경위는 포스터 경감과 함께 나란히 차고를 향해 뻗은 긴 복도를 뛰어 내려가고 있었다.
"그자들이 맞을까요? 하루 사이에 벌써 세 차례의 공격을 감행하다니!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인 데요."
포스터는 점차 숨이 가빠 왔다.
"우리가 베트남에서 왜 이기지 못했는지 점점 알 수 없게 만드는 구먼!"
그는 혼잣말을 하듯 나직이 중얼거렸다.
"또 재수 없게 일너 생각이 드는군 그래. 이번에도 또 그놈들에게 당했다는....."
라이온스는 외쳤다.
"우린 그놈을 잡아야 합니다. 놈을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잡고 말겠아요!"
"내 생각으로는 우리는 포병대와 공군의 지원을 받아야 할 것 같네. 이건 도무지 경찰관들의 임무 밖의 일들이야. 그 놈들은 어쩌면 어디엔가에 진짜 탱크를 숨겨 놓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야! B52 폭격기까지 동원할지 모르고. 어쨌든 난 이제 더 이상 놀라지는 않겠어. 모든 걸 예상하고 있으니까."
라이온스가 조용히 웃었다. 그들은 차고에 도착했다. 그는 이미 그의 파트너가 자리 잡고 앉은 차 안으로 뛰어올랐다. 라이온스는 오늘 이 기회에 보란이 경찰관들의 그물 속에 사로잡히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는 그 영리한 놈의 얼굴을 대하고 싶었다. 경찰에서 가장 촉망받는. 젊고 유능한 자신을 형편없는 멍텅구리로 전락시켜 버린 행위에 대해 그는 그자에게 감사를 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그 자의 이마에 탄환을 쏘아붙임으로써 심심한 감사를 표시하고 싶었다.
"오케이! 끝내자!"
보란은 무전기에 대고 외쳤다. 저장 창고는 맹렬한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으르렁거리는 거대한 화염이 하늘 끝까지 치 솟아서 주위 100야드 까지는 밤의 도시를 훤한 대낮처럼 밝히고 있었다. 창고를 둘러싸고 있느 거대한 울타리는 뜨거운 열기에 휩싸였다.
"알았어. 대장! 저 지글거리는 소릴 들어봐.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레코드를 만들기에 저렇지?"
폰테넬 리가 대꾸해 왔다. 보란은 그의 차에 뛰어올랐다. 차는 창고 뒤의 담장 밖 조금 떨어진 것에 주차되어 있었다. 그는 무전기를 윗주머니에 쑤셔 넣고 전속력을 내어 자갈로 뒤덮인 뒷길로 후진했다. 저쪽 코너에 있는 저장 창고의 사무실을 향해서였다. 거기에서 그는 붐붐 하파워를 만났다. 그는 방화 직전에 저장 창고의 종업원들을 불러모아 이번 사고로부터 보호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하파워는 재빨리 무표정한 보란의 옆자리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아차! 매시맬로를 가져오는걸 깜박 잊어버리고 말았어!"
보란은 기어를 바꾸고 조금 더 스피드를 내 머캐덤의 자갈길위를 달려가고 있었다. 그들은 거리로 미끄러져 들어섰다. 그들은 먼 거리에 늘어선 언덕을 행해 전속력으로 곧장 달렸다. 그들을 방해하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보란은 바퀴의 진동을 조금 줄이더니 무전 송수신기의 단추를 눌렀다.
"차퍼. 어디에 있나?"
그가 외쳤다. 아무런 응답도 없었다. 보란은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하파워는 안절부절못하더니 무전기를 집어 들었다. 보란의 귀에 비탄에 찬 폰테넬리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는 굉장히 당황해 하고 있었다.
"대장. 사냥개들이 쫙 깔렸어!"
보란은 입속으로 뭐라고 웅얼거렸다. 그러나 그의 손과 발은 침착하게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손은 무전기를 쥐고 발은 힘껏 브레이크를 밟았다. 코르베트가 멈춰서기를 위해 비명소리를 냈다. 보란은 무전기에다 이렇게 외쳤다.
"상황을 설명하라. 차퍼!"
폰테넬리의 격앙된 음성이 즉시 튀어 나왔다.
"내 주유 탱크가 터져 버렸다. 차들이 타고 있어! 나는 부상 당했고 사냥개들이 벌떼같이 몰려들고 있어!"
코르베트는 U자로 급커브를 틀더니 곧장 앞으로 달려나갔다. 보란은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거머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무전기를 조종하고 있었다.
"북서쪽 구석 담장 밑으로 가! 거기 몸을 깔고 낮게 엎드리고 있어. 곧 가겠다!"
"알았어."
"침착해! 침착하라고! 차퍼!"
칼 라이온스는 거대한 불꽃이 꿈틀거리며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잇따른 사이렌 소리와 중장비로 무장된 소방 트럭이 밤의 도로를 이리저리 헤매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마치 영화 세트장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갖게 했다. 그의 운전사는 액셀러레이터의 페달을 힘껏 밟고 저장 창고로 향하는 모퉁이 길로 쏜살같이 내달아 갔다. 그때 무전기가 빽빽거리며 브래독의 흥분된 음성이 그의 귀를 파고 들어왔다.
"<불치의 죄인> 단위 수사대 1, 3, 5, 7은 들으라. <불치의 죄인> 비상이다. 지급이다. 멀찍이 떨어져 대기하며 견제하라!"
"맙소사. 그놈들은 할리우드에서처럼 공격을 해오는구먼!"
에버스 경사는 라이온스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그의 발은 액셀러레이터 위에 얹힌 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잊어버려! 여긴 현장이야!"
라이온스는 소리를 질렀다. 그들은 늘어서 있는 순찰차의 긴 행렬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흰 헬멧과 빨간 진입용 화기를 휴대하고 정복을 입은 경찰관들이 창고 구내에서 신중한 태도로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소방 대장이 라이온스의 차 옆으로 총알같이 뛰쳐나가 진입로를 정리하고 있었다. 소방수들은 호스와 다른 소방 장비들을 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엄청난 불기둥 속으로 물을 뿜어대고 있었다. 브래독의 음성이 무전기 사이로 다시 울려 나왔다.
"2번 지역. 완전봉쇄하라! 킹 5번과 킹 9번 사이도 차단하라! 폐쇄하고, 감시하라! 3번 단위대 보고하라!"
에버스는 라이온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보고 안 하실 겁니까?"
하고 그는 급히 재촉했다. 경위는 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그러나 그는 문 쪽으로 다시 되돌아와 고개를 디밀고 말했다.
"자네가 보고해. 보고하고 싶거든 말이야. 주임한테 말해. 나는 현장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저라도 보고하는 게 낫지요?"
그는 마이클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이미 라이온스는 그로부터 멀리 떨어져 수라장 속으로 재빨리 사라지고 말았다. 조지 지트카는 어깨에 캔버스 가방을 둘러메고 좁은 뒷골목을 맹렬히 달리고 있었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이 그의 뒤를 바짝 뒤따르고 있었다. 어깨에는 자동 화기를 둘러멨고 그의 커다란 손에는 작은 가방이 매달려 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힘도 들이지 않고 그 긴 다리로 성큼성큼 앞으로 내딛어 갔다. 그들은 주차장 시설이 있는 텅 빈 공간을 가로질러 바인 거리를 날 듯이 빠르게 지나갔다. 한 대의 포드 세단이 천천히 모퉁이에 멈춰 서는 것이 그들의 시야에 들어오자 그들은 더욱 속력을 내서 달렸다. 차 있는 곳에 이르자 그들은 들고 있던 장비와 화기. 가방 등을 창문으로 던져 넣었다. 문이 열리고 지티카와 워싱턴은 훌쩍 차 안으로 몸을 날렸다. 차는 즉시 그 자리를 떠났다. 운전대 앞에 앉아 있던 해링턴이 흥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떻게 됐어? 다 무사한 거야?"
워싱턴은 낄낄거리며 대답했다.
"바로 네 녀석은 놀라서 뒤집어지려고 하더군. 그놈은 우리가 돈을 가져갔다고 소릴 지르고 있어. 우리도 인정했지."
지트카는 흥분하여 헐떨거리고 있었다.
"어떤 멋진 금발머리와 놀아나고 있는걸 붙잡았지."
"그래에?"
하고 해링턴은 놀라는 시늉을 해보였다. 그러나 즉시 그는 도로쪽에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는 길옆으로 차를 붙였다가 네거리로 나가 할리우드 고속도로의 진입로를 향해 그대로 달렸다.
"젠장! 내가 어쩌다 그 재미를 몽땅 놓쳐 버리게 됐을까?"
그는 불평했다.
"빌어먹을! 재미는 그놈 혼자 보고 있었어!"
워싱턴이 대꾸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우리의 출현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고. 그녀석이 아마 자기들의 행위를 녹음하자고 보채고 있었던 모양이지? 그들의 얘기를 내가 잠깐 들었거든."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 한 대가 그들과는 반대 방향으로 광폭하게 스쳐 지나갔다.
"어디로들 가는지 모르겠군?"
해링턴은 유쾌하다는 듯 키들거렸다.
"저놈은 틀림없이 레코드 스튜디오로 달려 가고 있을 거야."
지트카가 말했다.
데드 아이스 워싱턴은 흐뭇한 표정이 되었다.
"나한테는 그놈의 공장이 그대로 지옥 속으로 굴러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리더구먼. 나는 누가 그런 짓을 하고 싶어 했는지 모르겠어."
포드 세단은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언덕으로 올라서서 질주하는 차량의 홍수 속으로 밀려 들어갔다. 해링턴은 잠시 뻣뻣해져서 그들 곁을 금방 로켓처럼 달려가 버린 차를 눈으로 좇고 있었다.
"저기 블러드 브라도가 가잖아! 우리의 시간 맞추기가 완벽하군!"
해링턴의 포드는 차량들의 홍수 속으로 섞여들었다.
"대장은 어떻게 그런 공격 방법을 생각해 냈을까?"
"자네는 그 사람에 대해서 눈꼽만큼도 모르고 있어. 그의 공격에 대해선 당할 자가 없다고."
워싱턴이 자랑스럽게 말했다.
땀이 칼 라이온스의 두 팔뚝을 따라 흐르더니 그의 손가락 끝에서 떨어져 내렸다. 그는 권총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그는 조금 전에 자신이 이 뜰의 구석으로 들어선 것이 맹렬한 열기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만 어리석은 경찰관의 본능 때문이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활활 타오르고 있는 구석 쪽의 울타리가 갑자기 그에게 그의 운명이 거기에 있음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어떤 형태의 것이든 상관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점점 자신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었다. 울타리 근처에 무언가가 있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드디어는 이를 악물고 경기관총을 든 사내를 찾아냈다. 그는 군용 작업복과 검은 베레모를 쓰고 있었으며 트랜지스터 소자의 송수신 겸용 무전기를 어깨에 메고 있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있었는데 라이온스가 나타나자 이를 악다문 얼굴로 웃어 보였다. 라이온스의 눈에 사내의 무기가 뚜렷하게 들어왔다. 자동 기관총이었다.
"버려!"
라이온스가 소리쳤다.
"허어. 그러지!"
하고 그 사내는 말했다. 그는 아직도 이를 악다문 채 웃고 있었다. 100미터도 채 안 되는 거리로부터 들려오던 소음과 화염에 싸인 아수라장이 갑자기 드들의 뇌리에서 사라져 버렸다. 춤추듯 일렁이며 주위를 태우고 있는 불길은 이 순간의 기묘함을 더 짙게 채색하고 있었다.
"여기는 베트남이 아니야. 보란!"
라이온스가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주체할 수 없는 흥분 때문에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경찰이야. 무기를 버려라."
"난 보란이 아니다. 마음대로 해라.쏘든 말든 ! 그러나 너는 나보다 먼저 지옥을 방문하게 될 테니까."
라이온스는 순간 온몸의 피가 차갑게 식는 것을 느껴야 했다. 또 다른 목소리가 그들의 대화에서 끼어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더할 수 없이 침착하고 유유자적한 목소리였다.
"일어서라 차퍼. 그만 떠나자."
키가 큰 한 사나이가 쇠사슬로 얽힌 담장 밖에 우뚝 서 있었다. 라이온스는 이제야 자신의 주의력을 몽땅 빼앗아 버렸던 그 불길의 정체가 이해되었다. 그 담벼락 중간 지점은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그 연기는 기괴한 모습으로 뒤틀리며 하늘로 뻗쳐 올랐다. 쇠사슬은 보기 흉하게 넘어진 울타리를 따라 길게 이어져 있었다. 그들은 울타리를 폭파했던 것이었다. 냉정한 목소리의 그 키가 큰 사나이는 군용 45구경을 들고 있었다. 그는 그 총구 끝으로 이를 악다문 사나이를 가리켰다.
"대장, 나는 꽁무니를 빼는 법이라고는 없는 사람이다."
사나이는 불평을 토했다.
"죽거나 살거나, 둘중에 하나야! 차퍼."
침착한 목소리가 충고했다.
라이온스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 키가 큰 사나이가 그가 해야 할 일을 가로채려 하고 있었다.
"잠깐 기다려! 아무도 달아날 수는 없다."
"어서 일어나라. 차퍼."
키 큰 사나이는 라이온스를 완전히 무시해 버리고 단호하게 명령했다. 그러나 명령받은 그 사나이는 여전히 킬킬거렸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가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자존심과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글이글 타고 있는 눈을 들어 라이온스를 쏘아보고 있었다. 라이온스는 당혹감을 느꼈다. 그의 두 귀가 멍멍해지고 있었다. 경찰용 특수 38구경은 라이온스 자신의 뜻으로서가 아니라, 총 자신의 의지로 자신의 손에 불쑥 나타나 있는 듯이 보였다. 그래도 그는 방아쇠 위에 걸린 자신의 손가락 힘이 차츰 강해지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사나이는 천천히 한 걸음, 또 한 걸음 뒷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그는 울퉁불퉁한 땅 위를 주의 깊게 골라 딛으며 발을 옮겼다. 라이온스는 키 큰 사나이에게 눈의 초점을 맞췄다.
"네가 보란이로군!"
그 사나이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너하고는 싸우고 싶지 않다. 경위!"
"언제부터냐?"
라이온스가 물었다. 그는 자신의 목소리마저도 들을 수 없을 만큼 흥분해 있었다. 보란은 대꾸하지 않았다. 보란은 이제 천천히 사나이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라이온스와 느리게 뒷걸음질하고 있는 사나이 사이로 조금씩 다가갔다.
"객기 부리지 마!"
그는 짤막하게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눈은 타오르고 있는 저장 창고로 옮겨졌다. 느리게 걷던 사나이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라이온스는 왜 자신이 거기에 서 있는 것인지조차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보란의 45구경은 천천히 총구가 내려지더니, 어느 사이엔가 보이지 않았다.
"자, 이제 나는 가겠다."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라이온스는 키 큰 사나이를 향해 권총을 들어 올려 사격 자세를 취했다.
"너를 체포한다. 보란!"
"나는 가겠다."
하고 보란은 반복했다. 그는 침착하게 한 걸음 떼어 놓았다. 이윽고 소리 없이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라이온스는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보란이 서 있던 자리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는 리볼버를 들고 있던 손을 내리고 화가 난 듯이 그것을 케이스에 쑤셔 넣었다. 달려오는 발소리들이 그의 등 뒤로부터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 후 두 명의 정복 경찰관이 그가 서 있는 주변으로 달려왔다.
"폭발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지점일 거야!"
한 정복 경관이 말했다. 그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넘어진 담장의 일부분을 손으로 더듬거렸다. 잠깐 뒤에 그는 머뭇거리며 손을 거둬들였다.
"아직도 뜨거운데. 뭐 보신 것 있습니까? 경위님?"
"틀림없이 시한폭탄이었을 게다. 그 우라질 놈의 것이 내 눈앞에서 터졌어."
라이온스는 중얼거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셨습니까. 경위님?"
"못 보았어!"
라이온스는 담장 너머의 어둠 속을 응시한 채 멍청하게 서 있었다. 그는 소원대로 그 영리한 불한당과 얼굴을 맞대고 만났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자는 그를 무시하며 그냥 제 발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무것도 볼 수 없었어."
그는 조용히 다짐하듯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