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llnow 2024. 3. 11. 05:28

킬러

Don Pendleton

 

1권 마피아전

 

1. 프롤로그

맥 보란은 그의 전우들이나 상관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천부적인 살인자는 아니었다. 또한 그의 저격팀 동료들의 노골적인 비평처럼 기계적으로 임무를 수행하는 살인 로봇도, 어느 좌익계 기자의 주장처럼 냉혈한이거나 파괴주의자도 물론 아니었다. 맥 보란은 자신의 의지력으로 움직이는 단순한 사나이에 불과했다. 지원자 중에서 저격수를 뽑는 군대의 심리 담당관이 말했던 것처럼 그는 저격수의 모든 요건을 갖춘 사람일 뿐이었다.

"훌륭한 저격수란 감정에 동요되지 않고 자신의 의지력으로 적을 죽일 수 있는 자이어야 한다. 저격이란 단순한 사격 경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에 의지력이 필요한 것이다. 망원 렌즈에 죽여야 할 상대의 얼굴이 비칠 때, 그 절망적인 얼굴을 보았을 때 대부분의 훌륭한 군인들도 한 번쯤은 그러한 임무를 수행할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사람을 죽였다는 생각이 그들의 양심을 뒤흔든다. 여기에서 군인과 저격수의 차이점은 분명해진다. 저격수의 살인은 양심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계획을 위해 미친개들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계획을 위해 미친개들을 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살인과 임무를 엄격히 구별할 줄 아는 사람이다. 임무에 따른 살인은 단순한 살인행위가 아니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또한 위험에 처했을 때 냉정하게 임할 수 있어야 이상적인 저격수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맥 보란 중사는 바로 그런 유형의 군인이었다. 모든 종류의 무기와 탄약의 사용이 능숙한 병기계 출신이며 특등 사수이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지금껏 얼마나 많은 적들을 죽였는지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공식 기록에 올라 있는 숫자만 해도 월맹 정규군 고급 장교 32, 베트콩 게릴라 지도자 46, 게릴라와 내통하고 있었던 월남의 고위 관리 17명으로 돼 있었다. 그중에는 물론 악명 높은 월맹군의 코안 장군도 포함된다. 보란 중사의 조수로 근무하고 있던 T.L. 미네거스 하사는 그와의 마지막 작전에 출동했던 보고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 팀은 새벽 435B 지점에 도착했다. 정찰병 토머스와 얀세이가 정찰 후 450분에 돌아와 이상없음을 보고했다. 5시 화기 배치가 완료됐고, 630분 적들의 움직임을 포착했다. 642분 베트콩 정찰대가 도착하여 마을을 점검했다. 650분 트라 후옹과 호위병들이 촌장 집 입구에 나타나 자 촌장과 다른 한 사내가 환영을 나왔다. 그때 맥 보란 중사가 목표를 확인하고 즉시 사격에 들어갔다. 1탄은 트라 후옹 대령의 목을 관통했고, 2탄은 촌장의 우측 관자놀이를 관통했다. 이어 제3탄은 호위병의 등을 관통시켰다. 그것으로 상황은 간단히 끝났다. 652분 철수하기 시작했고, 940분 에이블 저격팀은 전원 사고 없이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베트남은 미군들에게는 새로운 형태의 전쟁터였다. 많은 미국의 젊은이들은 잔인한 특기들을 익혀야 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맥 보란만큼 철저히 숙달된 병사는 없었다. 보란은 30세의 유능한 직업 군인으로 12년간의 군복무 기간 중 두 번이나 월남 근무를 했고, 그 때문에 아직 결혼도 하지 못한 처지였다. 그의 어머니 엘자는, 47세의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이는 폴란드계 미국인 2세로,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에는 반드시 보란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은 위문품을 보내는 자상한 어머니였다. 그녀의 편지에는 언제나 따뜻한 애정이 깃들여 있었으며 그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편지에는 가끔 열일곱 살의 귀여운 누이동생 신디와 열네 살의 조니, 아버지 샘 보란의 사진을 동봉하기도 했다. 그의 아버지는 열여섯 살 때부터 강철 공장에서 일해온 직공이었다 보란은 언제나 그의 아버지를 강철과 같이 의지가 강한 사람으로 여겨 왔었다. 한번은 어머니의 편지 속에 이런 것이 적혀 있었다.

"사람들이 말하기를 동양 여성은 퍽 진실하다고 하던데 그게 사실인지 네 아빠가 퍽 궁금해하신단다. !"라고. 그때 맥 보란은 답장하기를 아빠에게 동양 여성들은 정말 진실하다고 말해주세요. 그리고 저는 그중에서도 가장 진실된 여성을 찾고 있는 중이라고……. 아하!"

신디 보란은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을 그 당시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앳된 처녀였다. 신디는 맥을 무척 따랐으며 그를 가장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녀는 일기 형식으로 쓴 글을 일주일에 한 번씩 오빠에게 보내곤 했다. 편지 속에서 그녀는 가끔 혼자만의 불안과 괴로움을 토로해 오기도 했다.

"오빠. 메리앤이 마리화나 파티에 함께 가자고 자꾸만 졸라대요. 오빠도 마리화나를 피워본 적이 있나요? 그곳에서는 모두 그것을 피운다고 하던데요. 하지만 나는 무척 망설여져서 언제나 거절하고 있지만 거절하기도 정말 힘들어요."

또 언젠가는 이런 글이 보내져 왔다.

"항상 고민하고 있는 문젠데 한계란 무엇인가요? 그티브와 함께 있을 땐 아무런 문제도 없지만 추크는 언제나 나를 고민하게 만들어요. 내 말은요, 그의 손버릇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이미 넌 알고 있지? 그렇다면 그건 제 자신의 문제란다."

신디의 답장에는,

"그런데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되고 말았어요. 이제 추크와는 끝났으니까요!"

어느 늦은 봄날 그의 어머니에게서 온 편지에 이런 내용이 씌어 있었다.

"이젠 어려운 고비를 넘겼으니 너에게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1월에 너의 아빠가 갑자기 심장 발작을 일으켜 쓰러졌는데 의사는 일을 쉬고 안정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었어. 우리는 생활비를 줄이고 공장에서 나오는 휴직 수당으로 간신히 살아갈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네 아빠가 다시 직장에 나가게 됐으니 걱정은 없단다. 빚이 얼마간 남아 있지만 곧 갚게 되겠지. 신디는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하려는 생각인 것 같다. 네 아빠는 그것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고. 교육을 더 시키고 싶으신 게지. 또 네 아빠는 너를 대학에 진학시키지 못한 것을 무척 미안하게 여기고 계셔. 하지만 이젠 모든 것이 잘 돼가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돈을 보내지는 말아라. 네가 만약 돈을 네 아빠는 또 심장 발작을 일으킬지도 모르잖니?"

그리고 몇 달 후인 812. 보란 중사는 종군 목사 사무실로 불려갔다. 그 자리에서 그는 가족들의 비극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공식적인 통보에 의하면 남동생 조니는 중태이긴 해도 목숨을 구했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신디는 모두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맥 보란은 특별 휴가를 얻어 가족의 장례식과 고아가 된 동생 문제를 정리하기 위해 서둘러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것은 엄청난 비극이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강력계 형사로부터 가족들의 죽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었을 때 그의 가슴은 더욱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 순간 분명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렇다 할 분명한 동기도 없이 아내와 자식들에게 총을 쏘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심장에 총을 쏘았다고 했다. 남동생 조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보란은 이틀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조니의 입을 통해 이 비극의 진상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조니가 병상에 누운 채 경찰이 속기사에게 진술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아빠는 병으로 한동안 직장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아빠는 1년 전에 빌린 돈 때문에 늘 걱정이셨지요. 얼마 후 건강이 좋아져서 직장엘 다시 나갔지만 건강에 무리가 가지 않는 부서로 옮겨야 했고 그 때문에 급료는 종전보다 적었어요. 그래서 빚을 더 얻게 됐고 돈을 빌려준 사람이 못살게 굴기 시작했답니다. 어느 날 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그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흡혈귀라고 흥분해 떠드시는 얘기를 들었어요. 어느 날 밤은 아빠가 팔을 다쳐 돌아오셨어요. 빚쟁이들에게 당했다는 거였어요. 어머니가 경찰에 전화를 걸려 하자 아빠가 말리셨어요. 어머닌 그 일을 신디에게 말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몇 주일 전부터 갑자기 그들의 횡포가 멎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사고가 일어난 것이었어요. 아빠가 갑자기 무척 화를 내시며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어요. 누나와 어머니는 아빠를 진정시키려 애썼죠. 그다음에 기억나는 것은 아빠가 오래된 권총을 꺼내 왔다는 거예요. 아빠는 우리에게 총을 쏘았어요. 그리고 건넌방으로 가셨고 또 한 방의 총소리가 들렸을 때 저는 정신을 잃었어요."

이것이 조니의 진술 내용 전부였고 그래서 경찰은. 이 사건을 가족을 동반한 자살 사건으로 처리했다. 그러나 맥 보란 중사에게는 단순한 자살 사건으로 처리될 수 없는 일이었다. 형과 단둘이 있게 된 조니는 아버지를 괴롭혔던 악당들과 신디가 관계했던 내용을 털어놓았던 것이다.

"누나가 그 사람들을 찾아갔었어요. 아빠가 심장이 약하니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던 거죠. 우린 누나가 그들과 어떤 내용으로 결말을 지었는지 전혀 몰랐어요. 처음에는 누나가 받고 있던 35달러의 주급으로 빚을 조금씩 갚아 나가는 것 같았어요. 그 돈은 누나의 대학 진학을 위해 저축하기로 돼 있었던 거였어요. 그러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누나가 무슨 일을 하기 시작했는지 알게 됐어요. 어느 날 밤 나는 누나를 미행해서 내 눈으로 직접 확인을 했어요. 누나가 무슨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서 미행했던 거였어요. 나는 모텔 밖에서 지켜보고 있었어요. 그리고 얼마 후 그 남자가 나갔을 때 누나에게로 뛰어 들어갔어요. 누나는 벌거벗은 채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다 나를 보자 절망적인 눈빛이 되었어요. 빨리 돈을 갚지 않으면 또 아빠를 괴롭힐 거라고 놈들이 말했대요. 한 달 안에 나머지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구요. 그리고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을 누나에게 가르쳐줬대요. 그 악당들이 누나에게 레오라는 사람을 보냈고 그 사람이 누나를 설득했던 거였어요. 내가 그 현장을 목격했을 땐 누나가 그 사람을 세 번이나 만났을 때였어요. 나는 누나에게 그런 짓은 그만두라고 애원했어요.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을 거라구요. 그러나 누나는 아버지가 어떻게 생각을 하든 빚은 갚아야 할 것 아니겠냐고 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내가 실수를 했어요. 아버지에게 그 사실을 말해 버렸거든요. 아빠는 그 이야기를 듣자 막무가내로 나를 두들겨 팼어요. 그리고 고함을 지르시며 내 주위를 돌며 어쩔 줄을 몰라 했어요. 아빠에게 이상한 발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아빠는 나를 일으키고는 두 빰을 번갈아 때리며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말해!"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그때 누나가 뛰어 들어와 말렸어요. 그리고 누나와 아빠의 말다툼이 시작됐어요. 나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어요. 아빠가 "거짓말이지! 거짓말!"하고 외치는 소리만 겨우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그때 어머니가 뛰어들었어요. 어머니는 침실에서 주무시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놀라 뛰어나왔던 거였어요. 그러자 아빠는 멍청히 한쪽에 서 있었고 어머니와 누나가 피투성이가 돼 있는 나를 치료해 주었어요. 아빠는 혼잣말로 뭐라고 중얼거리다가 방으로 들어가셨어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빠는 빌리 숙부에게서 얻은 낡은 권총을 손에 들고 방에서 나오셨어요. 놀라 소리를 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어요. 내가 최초로 맞았어요. 아빠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어요. 어머니와 누나가 쓰러졌어요. 그래도 아빠는 계속해서 방아쇠를 당겼어요. 총알이 떨어지자 아빠는 팔을 늘어뜨리고 힘없이 나를 쳐다보았어요. 누나는 내 위에 쓰러져 있었어요. 나는 가만히 아빠를 노려보았어요. 아빠는 우리들이 총에 맞은 것도 모르는 것 같았어요. 아빠는 나를 내려다보시면서 "조니, 입술을 다쳤구나. 미안하다"라고 말하시는 것이었어요. 그리고 아빠는 방으로 돌아갔어요. 잠시 후 총소리가 났어요. 그리고 누군가 현관문을 막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어요."

동생의 눈물겨운 이야기를 참을성 있게 듣고 있던 맥 보란은 동생의 이야기가 끝나자 목쉰 소리로 단 한마디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죽일 놈들!" 816일 일기장의 첫머리에 그는 이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이렇게 적고 있었다.

신디는 단지 자신이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을 뿐이고, 비록 복잡한 심경이었겠지만 아빠 역시 그랬다. 이제 나 자신도 어찌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817, 보란은 또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누가 나의 적인가를 잘못 알고 싸워왔던 것 같다. 나의 집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파멸로 몰아넣은 적을 두고 8000마일이나 떨어진 남의 나라에서 무엇을 위해 싸웠단 말인가. 내가 알고 있는 전쟁의 법칙은 미국의 경찰에는 적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적이 누구인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물적인 증거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 나에게 필요한 것은 전략상 빈틈없는 계획과 그것을 직접 행동으로 옮기는 것뿐이다. 월남 전선에서 우리는 "섬멸"을 구호로 외쳤다. 모조리 격멸시켜야 한다. 이제 나의 나라 안에서 적들을 향해 선전 포고를 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이곳은 월남의 전쟁터보다 오히려 나에게는 훨씬 더 절실한 전쟁터다.

818, 피츠필드의 사냥용 총을 파는 한 가게에서 도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의 말에 따르면 고성능 사냥용 라이플과 고성능 스코프, 몇 장의 표적지와 몇 상자의 탄약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물건값에 상당하는 충분한 액수의 현금이 들어 있는 봉투가 경리원의 책상에 놓여 있었다.

"단지 점원이 없었을 뿐 한밤중에 판매를 한 셈이죠."

상점 주인이 경찰에게 말했다.

"분명히 내게 아무런 손해도 끼치지 않았소. 내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범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소."

819, 피츠필드에서 몇 마일쯤 떨어진 채석장 뒤쪽의 조용한 곳에서 총소리가 울리는 곳을 채석장의 경비원이 들었다. 경비원은 훨씬 후에 이렇게 진술했다.

"나는 그곳까지 내려가 보진 않았어요. 그가 누구를 해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요. 그는 표적지를 100야드쯤의 거리에 두고 사격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주 고성능의 라이플 소리였어요. 잠시 동안 지켜봤죠. 다섯 발을 쏘고 다시 조절하여 다섯 발을 쏘곤 했어요. 두어 시간 정도 사격연습을 하더군요. 나는 그에게로 내려가 볼 필요가 없었어요. 그곳은 사격연습을 하기에는 안성맞춤인 곳이니까요.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해치지 않았으니까요. 나도 가끔 그곳에서 사격 연습을 하죠."

보란은 819일의 일기에 이렇게 적고 있다.

444구경은 처음 사용해 보지만 그 성능은 정말 놀랍다. 이 라이플 곰이라도 한 방에 쓰러뜨릴 만큼 강력하다. 나의 적들에게는 과분할 정도다. 100,110,120야드 거리에서 시험 사격을 하면서 스코프의 눈금을 확인했다. 아주 정확했다. 내일은 현장으로 가서 스코프를 통해 거리를 확인한다.

821일의 일기는 또 이렇게 적고 있다.

이제 됐다. 최초의 목표물을 확인했고 준비는 끝났다. 경감으로부터 TIF에 관한 정부를 얻을 수 있었다. TIF'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 파이넌스'의 약자다. 겉으로는 버젓한 금융회사지만, 놈들은 법의 허점을 이용하여 엄청난 이자를 받아 챙기고 있다. 법은 이들을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겠지만 맥 보란은 할 수 있다. 나의 준비는 완벽하고 목표물의 확인도 틀림없다. 주요 목표는 로렌티다. 이 악당이 이 일대의 책임을 맡은 간부급이다. 매일 저녁 550분에 놈의 승용차가 회사 앞에 나타난다. 운전사는 미스터 어윈이란 녀석이다. 미스터라고 불리는 녀석들은 무기를 휴대하고 있는 놈들이다. 세일즈맨같이 생긴 놈이 보로코란 놈이다. 그놈이 회사의 실무를 맡아 보는 것 같다. 대학생 타입인 피트 로드리게스는 회계를 맡고 있는 지독한 악질이다. 이 다섯 악당들은 6시쯤에 회사에서 나와 각 지점을 돌면서 수금을 한다. 그리고 지불이 늦어지는 고객들에게는 별도의 조치를 취하곤 한다. 그러나 내일 밤은 너희들 마음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맥 보란이 네놈들의 그 허울 좋은 금융회사를 박살 내기 위해 델지 빌딩 4층에 나타날 테니, 어젯밤 삼각 측정으로 거리를 쟀다. 오늘도 다시 확인했다. 이제 남은 일은 그들을 섬멸하는 일뿐이다. 마치 나트랑에서 적을 습격하던 때와 비슷하다는 느낌이 든다. 놈들이 도망칠 곳은 없다. 먼저 두 명의 미스터를 없앤다. 그러면 반격당할 가능성은 없어진다. 로렌티를 쏘는 데는 충분한 시간이 있다. 첫 한 발을 쏘고 6초 안에 사방으로 흩어져 가는 나머지 놈들을 잡으면 된다. 실제로는 더 빨리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총을 맞아본 적이 없는 놈일 테니 놀라 어리둥절해 하는 사이에 황천객이 되고 말겠지!

보란이 가족 장례를 치른 지 8일이 지난 822일 금융회사의 간부 다섯 명이 피츠필드의 회사 앞 노상에서 사살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목격자는 신문팔이였다. 그의 증언은 이러했다.

"다섯 명이 금융회사에서 나왔어요. 그들은 회사 앞에 세워 둔 승용차 옆에 멈췄습니다. 한 사람이 차의 반대편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 사람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렸습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였기 때문에 그의 눈까지 똑똑히 보였어요. 눈을 크게 뜨고 있었는데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어요. 총소리를 듣는 바로 그 순간이었어요. 총소리는 굉장히 크게 울렸는데 길 건너편 어딘가에서 쏘고 있는 것 같았어요. 너무나 순간적이라 길거리에 있던 사람들이 멍하니 바라보는 순간, 또 한 사람이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는데, 피가 튀면서 머리가 부서져 버린 것 같았어요. 그 순간 나머지 사람들 중 한 사람은 자동차 속으로 들어가려 했고 나머지 두 명은 건물 쪽으로 피하려 했지만 총알이 더 빨랐어요. 그저 탕, . 탕이었죠. 모두 다섯 발에 다섯 명이 나뒹굴었어요. 분명 다섯 발이었어요. 모두 즉사했죠. 총알은 한결같이 그들의 목이나 머리에 관통했죠. 무서운 솜씨였어요."

한 사복 경찰은 신문 기자들과의 사담을 통해,

"나는 갱들의 살인극에 큰 관심을 갖지는 않아요. 그건 뻔한 일이니까요. 그 금융회사가 마피아 조직이라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 아니오? 저희들끼리 서로 죽이거나 총격전을 한다 해도 선량한 시민들만 다치지 않는다면 신경 쓸 게 없는 거요. 암흑가의 살인 싸움에 오히여 경찰이 잘못 말려들면 골치만 아프게 될 테니까 그저 모른 척하고 있는 게 수죠."

이로써 맥 보란은 마피아를 향한 전쟁에 뛰어든 것이다.

 

2. 운명의 여신

문의 우윳빛 유리창에는 금박으로 '플래스키 엔터프라이스'라고 새겨져 있었다. 군복을 입은, 키가 큰 한 사내가 순간 멈칫거리고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그의 뒤에서 조용히 닫혔다. 가무잡잡한 빛깔의 예쁜 여자가 칸막이 밖에 있는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메모지에 낙서를 하고 있었는데 부드러운 살결의 쭉 뻗은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다. 그녀의 엉덩이만 겨우 가린 스커트 아래로 허벅지가 거의 다 드러나 보였다. 그녀는 몸을 비틀 듯 데스크에 기댄 채 얼굴만 들어 생긋 웃어 보였다.

"안녕하세요!"

방문자의 목소리는 명랑하면서도 위엄 있어 보였다.

"아무도 안 계신데요."

그녀는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해보이려는 듯 흘끗 빈 사무실 쪽으로 시선을 돌려 보였다.

"기다리시겠어요?"

사나이는 스커트 아래로 뻗어 나온 그녀의 다리를 눈으로 훑으면서 말했다.

"맥 보란입니다. 플래스키 씨가 9시에 만나자고 해서."

그는 손목시계를 한 번 쳐다보고 말을 이었다.

"정각 9시군요."

", 그러세요! 플래스키 씨는 아마 안에 계실 것 같군요."

그녀는 보란을 새삼스럽게 쳐다보면서 수화기를 들고 전화기의 아랫부분 버튼을 눌렀다.

"보란 씨가 찾아 왔어요."

그녀는 수화기에다 속삭이듯 말했다. 그리고 수화기를 그대로 든 채 맥 보란에게,

"들어가세요."

라고 말했다. 보란은 그녀를 한 번 더 돌아보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우. 플래스키 씨!"라는 그녀의 교태 어린 소리를 들으면서, 그는 칸막이 방안으로 들어가 책상 앞에 앉은 사나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회전의자에 비스듬히 누운 자세로 귀에 수화기를 대고 있었다. 그는 지금 접수 데스크의 여자와 농도 짙은 장난질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맥 보란은 가죽 의자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였다. 플래스키는 음흉하게 웃으면서 음담을 끝맺고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야기의 내용을 보란에게 들려주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보란은 플래스키가 수화기에다 대고 떠들고는 있지만 실은 자신을 관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플래스키는 몸집이 큰 편이었으나 비만하지는 않았다. 수화기를 쥔 손은 굵었으며 손톱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40 전후의 나이에 머리는 금발에 가까운 갈색이었는데 잘 빗겨져 있었다. 혈색 좋은 미남형이었다. 수화기에서 그녀가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플래스키는 사무적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남자들이란 하루 일과를 피곤하지 않게 하자면 이런 대화가 필요하답니다. 당신이 보란씨요?"

"맥 보란입니다. 이 마을에 오래 머물 시간이 없으므로 문제를 빨리 끝냈으면 좋겠습니다."

"선생께서 연락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물론 당신도 알고 있을 줄 믿습니다만 우리는 당신도 알다시피 감사 회사입니다.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의 불행한 사건이"

"나는 곧 돌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당신의 회사에서 트라이앵글의 업무를 대행하고 있다기에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정말 끔찍한 사건이었죠?"

플래스키는 중얼거리듯 말을 이었다.

"다섯 명이나, 그것도 유능한 사람들을 한꺼번에 해치워 버리다니, 그것도 순식간에. , 당신 아버지의 장부가 보관돼 있습니다."

그는 서류철을 꺼내 뒤적였다.

"솔직히 말씀드려 숫자가 상당히 불어나 있군요. 그동안 계속 지불이 밀렸습니다."

보란은 조그만 노트를 꺼내 플래스키의 책상 위고 던졌다.

"이걸 보닌 그렇지도 않군요. 아버지께서 기입하신 장부입니다. 11개월 전에 400달러를 빌려서 지금까지 550달러를 갚은 것으로 돼 있습니다. 또 여기에 적혀 있진 않지만 아버지 이외의 가족으로부터 받은 것도 있을 것입니다. 당신의 장부가 틀린 거요."

플래스키는 두 손을 책상 위에 올린 채 보란이 던진 노트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금융업은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 장부가 잘못될 수는 없답니다. 모든 장부가 한 해에 두 번씩 감사를 받고 있으니까요."

"차용액은 400달러이고 갚은 것은 550달러요. 그러니까 이자까지 다 갚은 거요."

플래스키는 억지웃음을 띠면서 대꾸했다.

"다시 말하지만 금융회사는 자선 사업을 하는 곳이 아니라 돈을 빌려주는 곳이오. 우리는 당신 아버지께 돈을 빌려 드렸습니다. 90일 안에 갚겠다는 조건이었죠. 그 기간 동안 원금과 이자를 다 갚았다면 문제는 간단히 끝났을 것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납입한 것은 이자와 연체료의 일부일 뿐입니다. 원금은 한 푼도 갚지 못했답니다."

"하지만 400달러의 이자로 550달러란 너무 비싸지 않습니까?"

"연체 이자를 모르시는군요. 다른 은행의 이자보다 우리 회사의 이자가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은행에서 망설이는 당신 아버지에게 우리는 위험 부담을 안고 돈을 융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당신 아버지는 은행에서 돈을 차용하지 않았죠? 우리는 그것을 아무런 조건 없이 해드렸지 않습니까? 이봐요. 군인 아저씨. 당신 아버지에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높은 이자가 붙어 오게 마련이잖소? 우리가 당신들에게 강제로 돈을 써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오. , 아시겠소? 그러면 이제 결론을 내립시다. 당신 아버지의 빛을 갚아 주시겠소?"

"그 부채는 다 갚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이곳에 온 것은 바로 이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봐요, 보란 씨. 계약은 당신 아버지가 한 것이니 당신 아버지를 오라 하시오."

플래스키는 언성을 높이며 말했다.

"그것 참 잘 되었는데. 플래스키 씨. 아버지는 열흘 전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이 말에 말문이 막혔는지 플래스키는 서류철을 한동안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의 법률부로 넘기겠소. 당신도 잘 알겠지만 재산을 차압할 수도 있을 거요."

"재산 같은 건 남아 있지도 않소. 하여튼 부채는 다 갚은 거요. 플래스키씨. 400달러를 빌렸는데. 550달러를 갚았으니 그것으로 빚은 충분히 갚았단 말이오."

보란이 일어서자 플래스키가 그를 따라 일어서면서 말했다.

"당신, 정말 겁 없이 떠드는구먼!"

순간 실내 분위기는 싸늘해졌다.

"그렇다면 당신들의 법률이 나를 월남까지 쫓아온다는 것인가?"

보란은 빈정대면서 말했다.

"월남이라구?"

플래스키가 소리쳤다.

"나는 가족을 매장하기 위해 긴급 휴가를 얻었소. 나는 며칠 내로 다시 돌아가야 된단 말이오. 그리고."

보란은 닷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뭐요?"

분노를 억누르느라고 혈색 좋은 얼굴이 붉어지면서 플래스키가 소리쳤다.

"나는 그 친구들을 해치우는 것을 봤소."

"뭐라고? 그 친구들이라니?"

플래스키의 눈이 둥그레졌다.

"트라이앵글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봤단 말이오."

"그래서?"

플래스키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놈 얼굴을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갑자기 호화로운 사무실 안에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플래스키는 손가락의 마디를 꺾어 뚝뚝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침묵을 더욱 실감 나게 했다.

"경찰에 신고했소?"

잠시 후 플래스키가 입을 열었다.

"내가 그런 짓을 해서 귀찮은 일에 말려들 것이라고 생각했소?"

보란은 그런 바보짓은 생각도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 내 동료들이 당신의 이야기에 꽤 흥미를 느끼겠는데."

플래스키는 무언가를 깊이 생각하는 듯했다.

"아까도 말했듯이 난 며칠 내로 월남으로 돌아가야 하오."

"빨리 만날 수 있게 해주겠소."

"지긋지긋한 정글로 돌아가기 전에 좀 재미있고 유쾌한 일을 하고 싶소."

키가 큰 사내는 싱긋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하지만 당하는 건 딱 질색이오."

"물론이지, 굉장히 재미있는 일을 즐기게 해주겠소."

플래스키는 급히 대답하고는 전화기로 손을 뻗었다.

"그런데 아까 그 이야기는 어떻게 되는 거요?"

보란은 그를 제지하면서 말했다.

"무엇 말이오?"

"회사와 고객의 딱딱한 관계 말이오. 보란의 빚은 다 해결됐다는 건가요?"

"물론이오. 물론 그것은 다 끝난 거요."

"그럼 차용 증서를 돌려주시겠소?"

플래스키는 서류철을 열어 증서를 꺼내 보란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는 급히 전화 다이얼을 돌렸다.

"보란, 당신은 운명이라는 걸 믿소?"

플래스키는 오늘 아침 뜻밖의 상황 변화로 기분이 매우 좋아져서 물었다.

"물론, 내가 얼마나 운명을 믿고 있는지 아마 당신은 상상도 못 할 거요. 플래스키."

키 큰 사내가 대답했다. 그리고 맥 보란은 미소 지었다.

 

3. 작전 계획

맥 보란은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결코 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는 신념에 미친 십자군의 병사도 아니었고. 더구나 복수심에 불타는 사람도 아니었다. '성급히 덤비지 말라'는 것이 그의 생활 모토였으며 어떤 동기 때문에 목숨을 버리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지도 않았다. 아마 이것은 그의 가족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단지 그것이 잘못된 형태로 나타난 것이었을 뿐이었다. 그의 누이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아버지의 행동처럼 맥 보란에게 있어서도 자신의 임무는 극히 뚜렷한 것이었다. 그는 거머리와 같은 마수가 아메리카의 목구멍까지 뻗쳐 있는 것을 보았고 또 그것을 어쩌지 못하는 아메리카의 무기력함을 보았다. 그리고 그는 또 계속 팽창해 가는 흡혈귀들에게 자신이 조금이라도 타격을 줄 수 있는 입장에 있으며 힘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맥 보란과 같은 사나이에게 있어서 그것은 당연한 임무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것이 그의 착각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위험하고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는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말할 것도 없이 법을 위반하여 다섯 사람을 죽인 살인범인 것이다. 만약에 체포된다면 그는 법정에서 한치의 동정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이미 경찰은 혈안이 되어 그의 뒤를 쫓고 있을 것이며, 플래스키를 찾아갔을 때의 상황으로 보아 '조직'도 트라이앵글 사건의 범인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가 플래스키 앤터프라이스를 찾아간 것은 어리석은 허세도 아니며, 풋내기의 무분별한 행동도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으며 앞으로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냉정하고 조심스러운 전투 계획에 따랄 움직였다. '찾아내 죽여 없애는 것' 이것이 그의 계획이었다. 발견, 확인, 그리고는 섬멸 - 그들이 재정비하거나 반격할 여지를 갖기 전에. 지금 그는 유리한 입장에 놓여 있다. 그는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의 배후에 연결된 끈을 찾아냈다. 그 끈을 통해 작전 계획은 잠입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잠입! 목표 발견! 확인! 섬멸! 이것이 그의 계획이다. 그 끈을 더듬어 가다보면 언젠가는 레오라는 사나이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보란은 그와 만나게 된다 해도 의무적인 냉정함 이상의 다른 감정은 갖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레오! 그도 역시 작전의 한 목표였다.

형사부장 알 웨더비는 그의 책상 한가운데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는 보고서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생각에 잠긴 듯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면서 200파운드가 넘는 육중한 몸집을 일으키더니 닫혀 있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다가 다시 책상으로 되돌아와서는 보고서 중에서 서류 한 장을 끄집어내 그것을 읽어 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그리고는 문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바로 문밖에 앉아 있던 피부 색깔이 검은 남자에게 말했다.

", 지금 그 군인을 데려오게."

그는 문을 열어 놓은 채 책상 바로 뒤에 있는 그의 의자로 되돌아왔다. 그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거리고 있을 때 한 경관이 군복을 입은 사나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웨더비는 키가 큰 사나이를 흘끗 보고는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부장님. 저는 여기 있을까요?"

경관이 그에게 물었다. 웨더비는 고개를 가로저은 뒤 육군 군복을 입고 있는 키가 큰 사내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내가 형사부장 웨더비요. 앉으시오. 보란 중사."

키가 큰 사나이는 악수를 하고는 책상 앞에 놓여 있는 평평한 나무 의자에 걸터앉아 형사부장을 바라보았다. 웨더비는 문이 닫히기를 기다린 다음 입가에 웃음을 띠면서 말했다.

"! 그것들은 대단히 흥미 있는 과일 샐러드(훈장들을 뜻함)로군요."

그는 군인의 가슴께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훈장들을 보기 위해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퍼플하트 훈장과 명사수 메달. 그리고 동성 훈장은 나도 알고 있소. 나머지 다른 것들은 내가 복무할 당시엔 없었던 것 같군. 도대체 당신은 얼마나 많은 병기에서 명사수의 자격을 땄소?"

보란은 갑자기 상대방의 눈이 자신을 쏘아보고 있음을 느꼈다.

"휴대용 무기는 거의 전부입니다."

"100야드 이상의 거리에서 5초 안에 다섯 발을 명중시킬 수 있소?"

"총에 따라 다르죠. 하지만 쏘아본 적은 있습니다."

보란은 가볍게 대답했다.

"레버 액션의 총이었던가요?"

"군에서는 레버 액션은 사용하지 않습니다."

보란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웨더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담배 연기를 힘껏 들이마시고는 다시 뿜었다.

"나는 사이공에 있는 나의 친구와 몇 번 텔렉스로 통화를 했소. 혹시 해링턴 소령을 알고 있소?"

보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이공에 있는 MP인데 옛날부터 잘 아는 사이요. 그가 당신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소. 중사."

형사의 얼굴이 굳어져 갔다. 그는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고는 탐색하는 눈빛으로 군인의 얼굴을 쏘아보았다.

"부대 안에서 당신의 별명이 '킬러'이라고 하던데 왜 그들이 당신을 그와 같이 부릅니까. 중사."

보란은 몸을 바로하고는 형사부장의 얼굴을 잠깐 동안 바라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만약 저하고 게임을 하시겠다면 그 게임의 이름을 가르쳐주시지 않겠습니까?"

"그 게임의 이름은 살인 사건이오."

웨더비는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내가 월남에서 사람을 죽인 것은 어디까지나 임무였습니다."

보란이 조용히 대답했다.

"여기는 월남이 아니란 말이오. 저격병이 자기 맘대로 누가 죽고 누가 살 것인가를 결정하며 이 거리를 걸어 다닐 수는 없어요."

웨더비가 소리치자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면서 말했다.

"내가 사격의 명수라고 해서 어젯밤의 저격 사건과 나를 연결시킨다면."

"그것 때문만이 아니야!"

웨더비가 반말로 소리쳤다.

"이것 봐. 보란! 자네는 지난번 하워드 경감을 찾아와서 트라이앵글의 사람들에 관해서 끈덕지게 물었어. 그리고 자네 아버지를 미치게 한 건 그들이라고 소리쳤어. 자네는."

"수사 책임자는 당신이 아니었던가요?"

보란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우리 가족이 죽었단 말이오."라고 말했다.

웨더비는 입을 열려다 말고 고개를 끄덕였다. 보란이 다시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은 봤을 거요. 그리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도 당신은 알고 있을 거요. 아무도 그 고리 대금업자들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 않았소. 어젯밤까지도 말이오. 드디어 누군가가 행동한 거요. 하지만 어느 누가 불평할 수 있겠소? 신문에서 그것을 갱들의 세력 다툼이라고 말했소. 누구의 짓이냐는 것을 문제 삼는 사람이 있느냔 말이오?"

웨더비 부장이 오랫동안 말없이 그를 노려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문제로 삼을 수밖에 없네. 보란. 이 나라에서 정의가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뭐라 해도 법 안에 있는 정의보다 더 좋은 정의는 없다고 생각하네. 우리는 한 사람이 제멋대로 판사도 되고 배심원도 되어 총을 들고 걸어 다니는 것을 용납할 수는 없어. 이봐. 여기는 월남이 아니란 말이야."

"만약 내게 혐의가 있다면 밟아야 할 수속 절차가 있을 텐데요?"

보란이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직은 혐의자로 되어있는 것은 아니야. 그러나 나는 분명히 알고 있네. 보란. 이 사실을 잊지 말게. 어떤 자가 818일 사냥용품점에 들어가서 444구경 머린 레버 액션 총과 고성능 스코프를 훔쳐 갔어. 그리고 그자는 이튿날 채석장에서 사격 연습을 했고 정해진 순서대로 100. 110. 120야드에서 각각 다섯 발씩 쏘면서 스코프의 눈금을 조절했어. 채석장의 경비원은 어제 아침 신문을 보기까지는 대단찮게 생각하고 있었지. 나는 그 경비원이 자네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네. 자네는 바보가 아니니까. 하지만 내가 자네와 게임을 하려는 것이 아님을 명심해 주게. 중사."

보란은 말없이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이틀 전에 그 저격수는 델지 빌딩의 4층으로 올라가 비어 있는 방의 창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 거기서 그는 팔말 담배를 네 대나 피웠어. 지금 자네가 피우고 있는 담배지. 그는 재떨이로 콜라병을 사용했어. 6시경에 그는 아래에 있는 거리를 향해 다섯 발을 발사했지. 곰이라도 잡을 수 있는 고성능 라이플이었어. 그리하여 트라이앵글사는 갑자기 기능이 마비되고. 그리고 그는 '나는 복수했다!'라고 말했어."

키가 크고 마른 듯한 중사가 몸을 움직이자 의자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렇게 잘 알고 있으면서 대체 왜 나를 체포하지 않는 거죠?"

그가 조용히 물었다. "진술하겠나?"

"나는 진술할 게 없어요."

보란이 냉담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봐. 중사! 자넨 그 머리로 무슨 바보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보란은 두 손바닥을 위로 펴 보이면서 말했다.

"바보 같은 하지 않습니다."

"언제 월남으로 돌아가지?"

"돌아가지 않습니다. 어제 전속 명령을 받았습니다. 군 당국의 인간적인 배려죠."

보란은 유쾌하게 웃으며 말했다.

"전속이라구? 어디로?"

웨더비가 다급히 물었다.

"프랭클린 하이네 있는 ROTC 훈련단입니다. 바로 이 프츠필드에 있죠."

보란은 능글맞게 답해 주었다.

"! 제기랄!"

"어린 남동생 때문입니다."

보란이 조용히 덧붙였다.

"내가 그의 유일한 혈육입니다."

웨더비는 문과 책상 사이를 불안스레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거 골치 아프게 됐는데. 난 자네가 정글 깊숙이 숨어 버리면 귀찮은 일도 없으라고 생각했는데."

그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들겼다.

"월남 전선이야말로 자네에겐 가장 인간적인 배속이었던 거야."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요."

보란이 불안하게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알고 있을 텐데. 나는 마피아에 관해 말하고 있는 거네. 절대로 용서하거나 잊어 주지 않는 마피아라는 조직 때문에 한 저격수를 걱정하고 있는 거라구. 그 사나이는 마피아의 간부 다섯 명을 죽였지. 아니 죽이지 않았는지도 모르지. 그러나 미피아의 율법은 법과는 다르네. 의심스러운 것은 벌하지 않는다는 법은 없네. 결국 이 거리는 사격장으로 변하겠지. 그런데도 나는 법정에 제출할 물적 증거를 하나도 갖고 있지 못하므로 방관할 수밖에 없거든. 내 말은 바로 그런 것을 말하고 있는 거야. 분명히 말해 두지만 자네가 범인이든 아니든 간에 자네는 도저히 그들 손에서 달아날 수 없네. 자네는 용의자로서 아주 불리해. 법정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마피아의 법은 자네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걸세. 오늘 무사했다고 내일도 또 무사할 수는 없어. 사실은 도와주고 싶은데도 말이야. 그렇다면 자네의 어린 동생은 어떻게 되지? 이 거리에서 자네가 피를 흘리고 쓰러진다면 자네의 어린 동생은 어떻게 되는 건가. 보란?"

"그럼 날 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죠?"

보란은 웨더비 부장을 노려보며 말했다.

"진술을 해주게. 자백을 하란 말이야. 그것만이 자네가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네."

웨더비는 진지하게 말했다.

"어떻게 보호해 준다는 거죠? 전기의자에 앉기 전까지 말인가요? 그렇게 되면 제 동생은 어떻게 되죠. 웨더비 부장님?"

보란이 냉담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네. 법관의 정상 참작이라는 것도 있으니까."

"물론 그렇겠죠."

보란은 일어섰다.

"형사부장님. 이건 역시 게임이었소. 이제 그만 가봐야겠는데요."

"이봐. 중사. 나는 자네를 기소하겠다는 것이 아니야."

형사부장이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자네에게 솔직하게 말했네. 경관이 이 이상 어떻게 더 솔직해질 수 있겠나? 나는 사소한 혐의로 전장의 영웅을 법정으로 끌고 가기는 싫네. 물론 자네를 기소할 만한 충분한 증거도 갖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나는 자네 같은 사람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자넨 '저격수'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언젠가는 놈들에게 당하고 말 거야. 놈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을 테니까."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란은 이렇게 말하곤 미소 지었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되겠죠?"

그는 문을 열고 나가다가 다시 한번 뒤돌아보았다. 형사부장은 양손을 주머니에 깊숙이 쑤셔 넣은 채 문가에 기대서서 보란의 뒷모습을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보란은 갑작스러운 냉기가 그의 등을 스치는 것을 느끼며 순간적으로 자신을 의심했다. 내가 너무 나의 힘을 과신하는 것은 아닐까? 경찰도 손을 댈 수 없는 조직과 나 혼자의 힘으로 맞서겠다는 말인가?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며 계단을 내려왔다. 차마 뒤돌아볼 수가 없었다.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그날 오후 맥 보란은 마피아 내부의 인물들과 만날 약속이 되어있었다. 법에는 그 나름대로의 견해가 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4. 기회균등

그곳은 거물급의 실업가들이 모여 마치 아늑한 컨트리 클럽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네트 플래스키의 혈색 좋은 얼굴은, 털이 무성한 그의 몸뚱이를 둘로 나누고 있는 진홍빛 수영 팬츠보다는 덜 붉어 보였다. 그는 풀 사이드에 있는 텐트에 기대어 얼음 주스 잔을 든 채, 알몸이나 다름없는 비키니 차림의 늘씬한 금발 여인과 무엇인가 속삭이고 있었다. 풀 사이드의 여기저기에는 미스 유니버스 정도의 미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제각기 그들의 몸매를 과시하고 있었다. 50세 정도의 온건하게 보이는 남자가 하얀 리넨 바지에 폴로 셔츠를 입고는 점잖게 비치 파라솔 아래의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그의 옆에는 스포츠 재킷 안에 얇은 스웨터를 입고 콤비 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는 몇 명의 사나이들이 각자 평사에 엎드려 일광욕을 즐기거나 탈의실 근처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보디가드로군!' 보란은 즉각적으로 그렇게 느꼈다. 그들은 보란의 등장을 유심히 보고 있다가 눈짓을 교환했는지, 아니면 본능적인지 몰라도 걸어오는 보란을 일제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었다. 이때 플래스키가 금발의 여인에게 무엇인가를 지시하고 보란에게로 천천히 걸어왔다.

"미국 육군이 쳐들어 왔군요."

한 여인이 키가 큰 군인에게 반한 듯 속삭였다.

"입 닥쳐!"

플래스키가 여인의 앞을 지나치면서 낮게 말했다. 그는 보란을 두 사람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데리고 갔다.

"월트 시모어. 이 사람이 맥 보란 중사야."

플래스키는 먼저 나이 많은 남자에게 보란을 소개했다. 그 남자는 형식적으로나마 보란을 정중히 대했다. 보란은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면서 그는 이들의 세계에 한 걸음 더 접근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형식적인 관계에 불과하며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도 물론 잘 알고 있었다. 시모어와 인사가 끝나자 옆에 있던 젊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레오 터린이오. 월남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 된다고 하던데. 당신은 어느 부대에 있었소?"

"9 보병 사단에 있었습니다."

보란은 상대방의 이름을 들었을 때 자신의 안색이 변하지 않았는지 걱정스러웠다. 그의 말투에는 전우를 맞는 듯한 친밀감이 스며 있었으나 그의 기억 속에서는 동생 조니의 말이 생생하게 되살아나고 있었다. '레오라는 자가 누나를 설득시켰어요?‘

"나는 그린베레에 있었소."

터린이 자랑삼아 말했다.

"나도 중사였었소. 5공수 특전단이었소."

보란은 조직의 내부에 있는 사나이와 공통된 화제를 갖게 된 것을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가 알기로는 그린베레에서 제일로 치는 특기라면 여자를 주선하는 것이라던데요?"

이 말은 뜻밖으로 들어맞았다. 터린은 점잖게 앉아 있는 시모어를 흘끗 쳐다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요. 그 이야기는 하자면."

소리치며 말하려다가 그는 시모어가 자신을 차갑게 노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예비군 GI는 보란에게 눈짓을 하고는 그의 자리로 가 앉았다. 이때 거의 알몸인 여자 하나가 보란에게 얼음이 든 컵을 건네주었다. 보란은 잔을 받아들이면서 그녀에게 눈인사를 하고는 플래스키에게 말했다.

"멋있는 여자군요."

"전부가 다 일류급이지! 당신 마음에 든다면 가질 수도 있소. 우리의 얘기가 끝난 다음에 말이오."

플래스키가 텐트 쪽으로 걸어가는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보란은 이제 보디가드들의 배치가 끝났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 이제 본론을 얘기합시다."

보란이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자 플래스키가 가볍게 기침을 하고는 입을 열었다.

"시모어와 터린. 그리고 나는 죽은 사람들 중의 하나인 조셉 로렌티와 동업자요. 물론 우리는 그 다섯 명을 다 알고 있소. 모두 가족과 같은 사람들이니까. 우리는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는데 협력할 생각이오. 그런데 보란 중사. 경찰에는 갔었소?"

보란은 그들에게서 그런 질문인 나오리라는 것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렇소. 오늘 아침 당신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그들에게 끌려갔었소."

"자네가 자진해서 경찰에 간 줄 알고 있는데."

시모어가 조용히 말했다.

"천만에."

"왜 경찰에 안 갔었나?"

시모어가 다그쳐 물었다.

"플래스키 씨에게 말한 대로 모처럼의 휴가를 귀찮은 일에 말려들어 망쳐 버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오."

보란은 한 차례 크게 웃은 다음 계속해서 말했다.

"그런데 갑자기 사정이 달라졌어요. 이제 월남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게 되었소. 전속 명령을 받은 거요. 앞으로 당분간은 피츠필도에 있을 겁니다."

"어째서 그렇게 되었지?"

시모어가 다시 물었다.

"어린 동생 때문이오. 그는 겨우 열네 살이고 혈육이라곤 나밖에 없소."

"군대도 그럴 땐 아주 인간적이군."

플래스키가 내뱉듯이 말했다. 그러나 시모어는 그것을 무시하는 듯했다.

"그래서 자네는 어리석게도 경찰에 협력할 생각이었군. 오늘 아침 플래스키를 만나고 나온 후 행운의 소식을 받고는 훌륭한 시민의 당연한 의무처럼 경찰에 연락했겠군."

보란은 계속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내 말을 잘못 알아들으셨군요. 나는 분명히 끌려갔었소. 오늘 아침 플래스키 씨를 만나고 나오니까 밖에 경찰차가 서 있었고 형사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고 그랬소."

"뭣 때문에?"

시모어가 이상하다는 듯이 높은 목소리로 물었다.

"일종의 우연이었소."

보란은 진지한 어조로 말을 계속했다.

"우리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 사건을 맡았던 형사가 또다시 트라이앵글 사건을 맡게 되었던 거요. 그리고."

"자네 아버지도 피살되었나?"

시모어가 다급하게 물었다.

"아니오. 자살이었소. 잘은 모르지만 신경 쇠약 같은 거였어요. 늘 병을 앓아 왔는데 게다가 빚 때문에 시달림을 받고 있었답니다. 담당 형사가 그 빚은 트라이앵글사에서 차용한 것이라고 말해주더군요. 그래서 그 두 사건을 연결시켜 내가 범인일 거라고 생각하고는 나를 연행해 갔던 거죠."

그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정말 나는 총으로 빚을 없애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아요."

보란은 플래스키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건 당신이 증명해 줄 수 있겠죠? 아무튼 나는 경찰의 호기심을 풀어 주었고 그들도 알았다고 나에게 말했소. 그걸로 다 끝난 거요."

"자네는 다 털어놓지 않는군."

시모어가 여유 있는 말투로 말했다.

"무슨 뜻이오?"

"샘 보란은 그의 아내와 딸도 총으로 쏘았지!"

"! 진정하게. 월트."

터린이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소!"

보란이 시모어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버지가 저지른 일을 원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나는 철이 들 나이가 되자 집을 떠났어요. 그러니 가족들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말아 주시오. 알겠소?"

시모어가 터린이 서로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것을 보고 보란은 자신의 화난 말투가 그들에게 먹혀들어 갔음을 알았다.

"알겠네. 중사."

시모어가 재빨리 대답했다.

"기분 나쁘게 생각지 말게. 단지 자네를 시험해 봤을 뿐이야. 이해하겠나?"

보란은 시모어를 응시했다.

"왜 내가 당신을 도와주어야만 하죠?"

". 그것은."

시모어는 난처한 듯이 콧등을 몇 번 문지르고 나서 천천히 말을 이었다.

"먼저 그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자네 쪽이고. 그리고 자네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이곳까지 왔을 텐데. 그렇지 않은가. 보란?"

"아닙니다."

"아니라구?"

시모어가 눈을 크게 뜨면서 플래스키를 쳐다보았다. 보란은 천천히 담배에 불을 붙여 한 모금 빨고 난 다음 연기를 내뿜으면서 말했다.

"경찰에 갔을 때 생각이 달라졌소."

"그랬군."

시모어가 말했다. 그러나 그는 보란의 말뜻을 모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그 저격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곳에 있었어요. 델지 빌딩에서 어떤 사람의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어요. 하마터면 그 사람과 부딪칠 뻔했었소."

"그래서?"

플래스키가 다급히 물었다.

"그러나 나는 경찰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만약 내가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말한다면 웨더비가 나를 더욱 의심할 테니까 말이오."

"웨더비가 누구지?"

시모어가 물었다.

"형사부장이오."

시모어가 한숨을 쉬고는 플래스키를 쳐다보고 웃었다.

"중사. 자네가 경찰에서 사실을 말하지 않은 건 잘한 일이네. 우리도 자네의 정보를 경찰에 넘기지 않을 걸세."

"그건 나도 알고 있소."

"자네가 알고 있다구?"

보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변하지는 않습니다. 알다시피 나는 당신들에게 정보를 팔 생각이었는데 경찰에서 당신들이 누구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 주었소. 그래서 생각이 달라졌단 말이오."

시모어는 순간적으로 플래스키에게 눈을 돌렸다.

"그래. 우리가 어떤 사람들인가?"

"당신들은 마피아요."

갑자기 시모어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플래스키 역시 당황한 듯 헛기침을 했고 터린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렸다.

"우리가 마피아라구?"

"그거야 뻔하지 않소?"

보란이 갑자기 어투를 바꾸어 말했다.

"경찰이 트라이앵글은 마피아일 거라고 말했소.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지만."

"그래서 무슨 게임을 하겠다는 건가. 애송이 군인?"

플래스키가 거칠게 쏘아붙이며 벌떡 일어섰다.

"앉아. 네트. 앉으라구!"

시모어가 플래스키를 말리면서 보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경찰의 말이 맞다고 하세. 그렇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진다는 건가?"

"나의 값어치가 달라지게 되죠."

터린이 의자를 들썩거리며 웃었다. 플래스키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입속으로 중얼거렸고. 시모어는 긴 한숨을 쉬고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

"자네는 대단한 수완가이거나 아니면 엄청난 바보일 걸세. 보란. 도대체 자네의 속셈은 뭔가?"

"그것은 말이오."

보란은 천천히 대답했다.

"나는 그들을 죽인 범인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소. 그런데 당신들은 나의 정보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나는 당신들은 나의 정보를 조금도 원하지 않는 것 같단 말이오. 나는 당신들과 입씨름을 하러 온 게 아니오. 그런 이야기가 어떤 줄거리로 얽혀 있는지 나는 알고 있단 말이오. 물론 당신들이 로렌티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지만 당신들이 어떤 때에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알고 있소. 로렌티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내가 알 바 아니오. 나는 다만 내가 함부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당신들이 알아주었으면 하는 거요. 경찰에서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소. 그러니까 내 값어치가 변했다는 거요. 값어치는 제로. 나는 목격한 것이 없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거요."

플래스키는 기가 막힌 표정으로 시모어를 바라보며 화가 나서 말했다.

"이 친구 생각은."

"저 친구 생각은 나도 알고 있네."

시모어가 플래스키의 말을 가로막으며 미소 짓고 있는 군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거요."

시모어가 시선을 조용히 받으며 보란은 대답했다.

"시문이 아무리 떠들어 대도 로렌티 일행을 죽인 것은 절대로 조직 안의 사람이 아니야. 자넨 쓸데없는 잔소리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어. 만약 자네가 정말로."

"서로 속셈을 터놓고 게임을 하고 싶은데, 어떻소?"

보란이 제의했다.

"자네 카드는 뭐지, 중사?"

시모어가 플래스키를 바라보며 보란에게 물었다.

"나는 일자릴 찾고 있소. 어제 당신네 사람들이 다섯 명이나 죽었으니 자리가 있지 않겠소?"

터린이 부자연스럽게 몸을 움직였다.

"군인이 일자리를 어떻게 구한다는 거지?"

플래스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나는 12년간 이 군복을 입어 왔소. 지금 내겐 1센트의 돈도 없단 말이오. 그리고 앞으로도 돈을 벌지는 못할 것이오."

시모어는 표정을 누그러뜨리며 보란에게 물었다.

"자네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총에 관한 일이면 뭐든지!"

"총이라구?"

시모어가 큰 소리로 웃었다.

"자넨 우리가 총으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보란이 그 말을 무시하며 말했다.

"총에 관한 건 뭐든지 할 수 있소. 조립. 개조, 수리. 실탄 제조. 그리고 사격까지도."

시모어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가령 우리가 자네가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자넨 잘못 생각하고 있네. 여긴 1920년대의 시카고가 아니야. 70년대의 피츠필드란 말이야."

보란의 반응을 지켜보며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란은 풀 사이드의 텐트 그늘에 있는 사나이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있는 녀석은 총을 갖고 있소. 또한 저쪽에 있는 녀석도 마찬가지요. 나는 여기 들어서면서 총을 갖고 있는 자들을 다섯 명이나 발견했소. 저들은 당신의 사설 군대겠죠? 당신에겐 빈자리가 있고 나는 일자리가 필요하오."

"군대에서는 탈영한 건가?"

지금까지 듣고만 있던 터린이 끼어들며 물었다.

"ROTC란 곳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지 않소. 터린? 그곳은 지루해서 잠이 오는 것이란 말이오."

군인이 조용히 말했다.

"거기에 관해 자세히 말해보게."

시모어가 흥미 있다는 듯이 말했다.

"군에서 인간적인 배려로 나를 피츠필드의 프랭클린 하이네 있는 ROTC 훈련단으로 전속시켜 주었소. 군인에게는 정말 한가한 곳이오. 학교 선생처럼 숙소를 배정받고 정해진 시간에 근무를 하는 건데 민간인과 다를 게 없는 생활이죠."

"아무리 한가해도 규칙이 있을 텐데 어떻게 두 가지 일을 한다는 건가?"

보란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정식으로 임명된 교관이 아니기 때문에 할 일이 거의 없을 것이오. 게다가 교관이 남아돌고 있는 형편이오. 말하자면 나는 임시 강사인 셈이니까 기껏해야 총기 취급법 같은 걸 몇 시간 정도 강의하면 될 거요. 그러니까 남는 시간은 많소."

"도저히 군대라고는 생각되지 않는군."

터린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도 역시 그렇소. 그러나 그것도 금년 말까지요. 그 후엔 또 전선으로 차출될 것이 분명하오. 그런데 난 동생을 돌봐 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동생을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다시 현역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제대하는 수밖에 없을 거요."

"자네는 굉장히 운이 좋을 것 같군."

시모어가 보란의 마음을 들여다보듯이 말했다.

"어쨌든 나에게는 어린 동생이 있으니까."

보란은 그 점을 강조했다.

"게다가 아까도 말했지만 한 푼도 저축한 게 없으니 연말에는 제대를 해야 될 것 같소. 그러기 위해서는 일찍부터 사회생활을 익혀 두는 게 좋지 않겠소? 그리고 당신들에게는 빈자리가 있을 테니까."

"중사는 지독한 기회주의자로군."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시모어는 터린을 쳐다봤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겐 기회주의자가 필요하겠는데. 그렇지 않은가?"

터린이 얼른 맞장구를 쳤다.

"그래. 그런 자가 우리에겐 필요한 것 같군. 그러면 우선 여자들을 불러오게. 레오. 바도 이리로 옮겨 새로 온 친구를 위해서 환영회를 열자구."

시모어는 억지로 웃으면서 말했다.

"이게 바로 자네에겐 황금의 기회라는 거네. 중사. 황금을 고철로 만들지 말게."

보란은 싱긋 웃으면서 잔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단숨에 술잔을 비웠다. 이제 그는 조직의 일원이 된 것이다. 일단은 부딪쳐 보는 거다. 누군가가 아까 그녀의 이름이 마리라고 그에게 말해줬다. 그녀의 역할은 뻔한 것이다. 그녀는 새 술잔을 그에게 건네주면서 보란의 무릎에 올라앉아 거의 벗은 몸을 그에게 비비면서 교태를 부리는 것이었다. 보란의 무릎은 여자가 앉기에 결코 불편하지 않았다.

 

5. 완전한 술책

월트 시모어는 항상 불안을 느껴 왔다. 그가 조직에서 지금의 지위를 이루어 놓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월트 시모어라는 이름이 조반니니 스칼라빈니니 하는 식의 이탈리아 이름이었다면 성공의 길이 그리 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때로는 네트 플래스키라는 이름조차도 그를 불안스럽게 했다. 그것은 플래스키라는 이름이 보스의 귀에 좋게 들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시모어가 출신과 혈통에 관계 없이 로렌티를 앞질러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던 것은 요컨대 로렌티가 결코 큰일을 할 수 없는 소인이기 때문이었다. 사실 로렌티는 월급날에 빚이나 받으러 다니는 고리 대금업자나 하면 꼭 어울릴 그런 사내였다. 시모어는 트라이앵글이 하는 일을 결코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그중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로렌티가 지나치게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것이었다. 막대한 돈을 불법으로 끌어들이는 창구로서 트라이 앵글이 하는 일처럼 쉬운 장사는 없었다. 그리고 시모어는 그것이 합법적으로 경영되고 있는 한 불만은 없었다. 그러나 로렌티로 인하여 트라이앵글은 야비한 수법을 일삼는 폭력 회사가 되어 버렸다. 물론 대금업자의 머리밖에는 가지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로렌티와 조직의 관계는 몇 세대 전까지 거슬러 올라갈지도 모른다. 그런 까닭에 시모어는 로렌티의 죽음을 은근히 기뻐하고 있었다. 그것은 결코 개인적인 과점에서가 아니라 사업적인 전망에서 볼 때도 그렇다고 그는 생각했다. 로렌티나 로렌티와 같은 류의 인간들은 조직에게 해가 된다. 그래서 동시에 그는 그들의 죽음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도대체 누가 로렌티와 그의 일당을 죽였을까? 뭣 때문에? 시모어는 사실주의자였다. 그는 피츠필드 조직의 보스가 자신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적이 결코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이 10년 동안이나 견습 대원으로 있어야 했던 이유를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런데 보란이라는 사나이가 나타나 이번 사건은 조직 내부의 세력 싸움이며 신문이나 경찰도 그렇게 믿고 있다고 말한 것이다. 만약 조직의 보스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들은 시모어가 로렌티의 공공연한 반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사실 월트 시모어는 불안을 느꼈다. 그는 몇 가지 불안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좀 전의 보란이라는 그 군인도 그를 불안하게 했다. 그에 대한 조사는 이미 충분히 되어있었으며 놈이 진짜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런 시모어는 맥 보란을 절대적으로 신용하지는 않았다. 아니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를 너무 신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한순간이라도 방심해서는 안 된다. 너무 많은 인간. 너무나도 말이 많은 인간들이 조직에 지나치게 관심을 갖고 있다. 연방 정부의 위원회, 사법부, 재무부 등이 모두 혈안이 되어 조직을 감시하고 틈만 있으면 덮치려고 하는 것이다. 월트 시모어는 맥 보란이 무슨 목적으로 조직에 나타났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는 여러 각도에서 맥 보란이 정체에 대해 조사를 해봤다. 관할 경찰이나 조직의 상부에서도 보란의 정체를 탐색하고 있었다. 다른 조직에서도 범인을 찾고 있었으나 범행 동기조차 알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월트 시모어는 맥 보란에 대해 상당한 불안을 느꼈다. 무언가가 켕기는 것이 있어 그를 마음 놓고 이용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그를 철저히 감시하는 것이다. 놈을 감시하기 위해서는 조직에 고용해 두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그리고는 놈의 정체가 드러나길 기다리는 것이다. 어쩌면 놈은 누군가의 첩자일지도 모른다. 혹은 보스의 끄나풀인지도. 그러나 만약 놈이 첩자가 아니라면 잘만 이용하면 그의 재산이 될지도 모른다고 시모어는 생각했다. 그렇다면 레오 터린이 시모어에게는 문젯거리다. 터린은 머리가 영리하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야심가이다. 그러니까 터린은 시모어에게 있어서는 위험인물이었다. 보란과 터린을 함께 있게 하자. 만약 보란이 첩자라면 그 불똥은 당연히 터린에게로 튈 것이 틀림없다. 이거야말로 완전한 술책이다!

"첫째로 자네가 명심해야 할 것은"

터린이 보란에게 말했다.

"사령관은 바로 나라는 점이야. 자네 스스로 자네를 일등 상사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유지만 내가 지휘관이라는 것을 잊지 말게. 둘째로 우리는 '마피아'라는 말을 절대로 사용하지 않아. 대신 '조직'이라고 부르지. 자네는 조직을 위해 일하고. 조직은 자네를 지켜준다. 이것이 조직의 율법이야. 그러나 자네는 멤버가 아니야. 앞으로도 멤버는 될 수 없다. 자네의 피는 멤버가 될 수 있는 혈통이 아니란 말이야. 사실 시모어도 멤버는 아니지."

"무슨 차이가 있소?"

보란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그들은 터린의 차에 타고 있었는데 연노란색의 컨버터블이었다.

"그거야 대단한 차이지."

터린이 담배를 찾자 보란이 팔말을 내밀었다.

"조직은 수 세기 전에 시실리에서 시작되었지. 바로 내가 태어난 곳이야. 로빈 후드와 비슷한 얘기지만 다른 점은 조직은 옛날이야기가 아닌 진짜라는 거지. 자넨 잘 모르겠지만 마파아는 아주 순수한 정신에서 생겨났어. 진실한 민주주의, 즉 약자를 위한 만주주의야. 그것은 분명히 로빈 후드보다 훨씬 높은 이상을 갖고 있는 대중을 위한 민주주의지."

"그래. 그런 건 잘 몰랐는데."

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넨 잘 모르겠지만 마피아란 말은 마태 복음의 마태에서 생긴 말이야. 마태는 '용기'. '담력'을 뜻하지. 조직은 반체제를 주장했기 때문에 비밀 조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어. 당시는 전제군주제도라서 재산을 모두 귀족이나 관료들끼리만 나누어 가졌지. 그때의 법은 부자는 부자인 그대로 가난한 자는 가난한 대로 살게 돼 있었어. 자네도 알다시피 법이란 본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는 거라네, 어디나 다 그래. 이탈리아나 시실리만이 그런 게 아니라 어느 나라든 법은 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야. 결국 용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 저항 운동을 시작했어. 그래서 조직된 것이 마피아야."

"히피들처럼 말이오?"

보란이 빈정거리며 말했다.

"뭐라구?"

"옛날 이탈리아의 히피들."

보란이 싱글거리면 말했다.

"그들이 시위할 때 뭐라고 소리쳤는지 아시오? '모든 자에게 피자를 주라'고 했던가?"

터린이 얼굴을 찌푸렸다.

"난 자네의 유머 감각을 좋아하지 않네. 난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어쨌든 마피아는 매우 민주적인 이론을 갖고 있어."

"좋소. 나도 진지하게 말하겠소. 그러면 그 도덕이란 건 어떻게 되었소. 레오? 100년 전의 이탈리아건 시실리건. 어디건 간에 도덕까지 타락하지는 않았겠지? 그런 것은 나도 알고 있소. 그러나 이 나라에 민주주의라는 게 있소. 법치 민주주의 말이오."

터린이 야비하게 웃었다.

"잘난 체하지 말아. 그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야. 지금도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들은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네. 그렇기 때문에 용기와 담력 있는 자들의 모임이 있는 거야."

"내 말을 오해하지 마시오. 나는 조직을 비난하는 게 아니오. 지금은 나도 조직의 일원이지 않소? 나는 다만 사실을 사실 그대로 보려 했을 뿐이오."

"그렇다면 있는 그대로 보게. 자네는 자네 앞으로 단 한 푼의 저축도 없다고 말했네. 자네가 월남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것도 다 그 부자 나리들을 지켜주기 위한 것이었지. 그렇지 않은가. 중사? 시모어가 자네는 주급 250달러로부터 시작하자고 말했잖은가? 어때. 이것이 가난한 사람이 더욱 가난해지는 것이라고 보나?"

중사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나를 보란이라고만 불러 주시오. 사령관."

터린이 다정한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맹세코 자네와 난 잘해 나갈 것일세. 중사. 모든 것이 잘될 거라구."

"당신의 임무는 뭐요. 레오?"

"여자들이지."

터린이 기분 좋게 웃으며 말했다.

"여자들이라구?"

보란의 그의 말을 되받아 소리쳤다.

"여자들. 모든 종류의 여자들이지. 호스티스 걸. 파티걸. 콜걸. 하우스 걸. 주문만 하면 남자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춰 알맞은 여자들을 붙여 주는 거야."

"그 여자들도 모두 용감하고 담력 있는 여자들이오?"

이렇게 물으면서 보란은 혀가 굳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이지. 자네가 조직을 위해 일하고 조직이 자네를 지켜주는 것처럼 우리는 서로의 재산을 늘려 주지."

보란은 푹신한 소파에 기댄 채 눈을 감았다.

"그렇군. 그것도 일리가 있단 말이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는 또 하나의 다른 보란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의 누이동생 신디는 그 용감한 자들 속에서 어떻게 용감했었을까?

 

6. 감시자

보란은 터린이 말하는 <여자 감시>의 일을 맡게 되었다. 그는 고급 양복과 32구경의 권총. 그리고 권총의 소지 허가증 및 속사에 편리하게 만들어지 숄도 홀스터도 받았다. 양복이나 무기의 대금은 앞으로 받을 그의 수입에서 지불하기로 했다. 권총의 소지 허가증은 보란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비밀 루트를 통해 그의 손에 들어왔다.

"이것은 합법적인 거야."

터린이 으쓱거리며 말했다.

"입수한 경로는 일반적인 방법이 아니지만 그 자체는 합법적이야. 그래서 만약 권총 소지에 관한 문제가 생길 경우에는 이 허가증이 해결해 주지. 정식으로 등록도 되어있는 것이니 걱정할 필요는 조금도 없어. 그런 것은 조직이 다 알아서 해주지. 조직 안에 있으면 누구나 안전하거든."

터린의 표면상의 직업은 <에스코트 언리미티드>라는 여성 알선 회사였다. 회사는 깨끗하였고 건물 자체가 매우 당당하였기에 사람들을 믿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사교장은 모든 면에서 취미의 고상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터린은 정규 훈련을 받은 프로그래머를 고용하여 컴퓨터를 이용한 여성 알선 서비스업을 하고 있었다.

"이 장사로 큰돈이 들어오는 건 아니야."

그가 보란에게 솔직히 털어놓았다. 보란은 듣기만 했다.

"종업원의 급료나 회사의 경비를 대는 정도지. 저기 저 컴퓨터는 저당이 돼 있어. 그리고 이 회사는 자유 기업의 위대한 기수인 트라이앵글 인더스트리얼 피이넌스에서 융자를 받고 있다네."

보란의 공식적인 직위는 보안계장이었다. 그는 <에스코트 언리미티드>의 정식 사원으로 등록되어 주급 250달러를 받게 되었으며 거기에서 보험료와 소득세가 공제되었다.

"원한다면 가불로 채권 저축을 해도 좋아. 국채라도 사보는 게 어때?"

잠시 침묵이 흐른 후 터린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규정대로 공제되는 몫에 대해서는 걱정말게. 적당히 메꾸어줄 테니까. 그리고 돈이 궁하진 않을 거야. 어느 면으로 보나 우리는 합법적인 장사를 하고 있으니까."

그의 말대로 외부에서 보면 합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내와 교외 일원의 매춘조직은 모두 터린의 컴퓨터에 등록되어 있었다. 사소한 부주의나 유도 수사에 의해 안전이 위협받는 일이 없도록 매춘조직은 모두 코드화되어 컴퓨터에 등록되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매춘업을 하고 있는 조직은 <예약 이외에는 소개 불가>라는 항목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특정 데이터를 위한 프로그램의 견출이나 분류의 지시. 데이터의 인출 같은 것에는 모두 비밀 부호가 사용되고 있었다.

"모든 것이 기계화야."

터린이 보란에게 설명했다.

"그렇지 않겠어? 기계는 틀림없거든. 자네는 이 회사의 영업 규모를 상상도 할 수 없을 걸세. 이 회사의 루트로 수백 명의 여자들이 일하고 있지. 그것을 전부 머릿속에 넣어둘 수 있겠나. 아니면 비밀 장부라도 만들어 놓겠나. 만을 수색을 당하게 되면 나는 다만 저 컴퓨터의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거야. 그러면 감쪽같이 위험한 기록은 없어지고 합법적인 것만 남게 되거든. 이렇게 편리한 기계가 또 어디 있겠나. 중사? 이것이 바로 진보라는 거네. 나와 내 프로그래머를 제외하고는 이무도 영업에 대해서 거는 게 없네. 그 녀석들이 지혜도 이 기계와는 상대가 안 돼. 그들에게는 틀림없이 건실하고 좋은 직장이지. 가령 어느 남자가 전화를 걸어 나는 에이스 인더스트리스에 근무하는 존 스미스라는 사람인데 아가씨가 필요하니 몇 명만 보내 주시오 하고 주문을 해왔다고 가정해 보세. 만일 그 남자가 확실한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야. 주문을 받은 담당 직원이 버튼만 누르면 아가씨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타이핑되어 나오게 되지. 당당 직원은 그 리스트에 따라 전화만 걸면 되는 거야. 설사 일이 잘못되어 주문받은 아가씨가 증언대에 서게 되더라도 성경에 대고 증언할 거야. 컴퓨터의 자유 선택에 의해 소개되었을 뿐이라고 말이야. 어떤가? 이것은 깨끗한 장사야. 또한 여자 쪽에서도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 일이 없도록 미리 대비해 두고 있지. 만약 여자가 엉뚱한 짓을 하거나 재수 없게 걸려들면 그 여자와 연락을 끊어 버리면 되지."

"그렇다면 여자들은 정말 안전하다고는 말할 수 없잖소?"

보란이 물었다.

"천만에. 어떤 여자가 감방에 갈 것 같으면 변호사를 사주는 거야. 보석금을 전액이나 일부분 빌려주고 변호사의 비용도 대준다구. 조직을 배반하는 여자가 아닌 이상 조직은 여자들을 보호해 준다 이거야! 이건 여자에만 한한 것은 아니야. 조직의 일원은 모두 보호받고 있다네. 여자가 풀려 나오면 장소를 바꾸어 다른 이름으로 컴퓨터에 등록해 주지. ! 이것으로 내 이야기는 끝났어. 이제 자네도 우리의 조직이 얼마나 안전한지 알겠지? 다시 말하면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합법적이며 걸려 들어가는 일은 없다는 거야."

터린과 프로그래머 이외에도 회사에는 조직의 사람이 다섯 명이나 있었다. 그 다섯 사람은 영업부장이라는 직함으로 외근을 하고 있었다. 직위는 그럴듯했으나 실제의 임무는 뚜쟁이였다. 그들이 접촉하는 상대는 대기업이나 각계의 명사. 정계의 거물과 같은 상류층 인사들이었다.

"그 녀석들은 머리가 잘 돌아간단 말이야. 거의 모두가 나보다 교육 수준이 높지. 그들은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아. 실제로 높은 인간들과 교제하지 않으면 장사도 되지 않아. 그 녀석들은 직접 여자들과 얘기하는 법이 없어. 함께 있어도 심지어는 같이 잠을 자도 말이야. 그 녀석들은 얼굴을 알고 있는 여자는 하나도 없어. 그리고 외근을 하는 친구들은 수당제로 일하고 있어. 그래서 능률도 더 오르고 있지. 녀석들은 스트리트 걸이나 하우스걸과는 잘 접촉하지 않아. 파티 걸이나 콜 걸과도 얼굴을 마주치지는 않지. 어느 모로 보아도 우리는 아주 안전하다구."

"그런 식으로 운용하고 있다면 당신도 그런 여자들과 만나지는 않겠군요."

보란이 말했다. 터린은 눈을 찡긋하며 알겠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걱정하지 말게. 중사. 자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여자는 얼마든지 있네"

터린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나도 그럴 필요를 느꼈을 때는 개인적인 접촉을 하지. 수입이 랭킹 상위인 여자들과는 잘 접촉하지 않지만, 그러니까."

그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때로는 개인적인 접촉이 필요할 때도 있어. 새로 들어온 여자를 지도해 줘야 하니까. 그렇지만 나는 아내와 새 아이가 있어. 그러니 매일 창녀와 잘 수는 없지 않겠나?"

터린이 웃으며 말했다. 보란은 팔꿈치로 가슴을 찔렀다.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수첩 속에는 좋은 여자가 한 다스는 들어 있을걸?"

"아니. 나는."

터린은 정색을 했다가 갑자기 싱글거리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의지를 잃게 되면 끝장이야. 사물을 올바로 평가할 수 없게 되거나 혹은 어떤 것에 빠지게 되면 정말 끝나 버리는 거야. 내가 개인적으로 여자와 접촉하는 것은 말야. 예를 들면 다른 조직에서 맡겨지는 여자가 있잖나? 그럴 때는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하거든. 특별한 경우니까. 때때로 아직 햇병아리 여자를 장사에 익숙해지도록 잘 봐주는 일도 있지. 무슨 뜻인지 알겠나?"

보란은 그의 말뜻을 잘 알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여자들과 감정적인 관계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말일세."

보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번의 서비스로 50달러나 100달러씩 버는 여자들도 있지. 그들은 자신이 황금의 물건이라도 가진 것처럼 생각하고 있거든. 나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아. 여자와 자고 싶은 생각이 들면 내가 따로 갖고 있는 창녀집으로 가지."

"그런 곳도 있소?"

". 물론 있고말고. 실제로 나는 그곳에 더 신경을 쓰고 있네."

터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컴퓨터보다 훨씬 낫지. 나는 그곳을 더 좋아한다네. 거기는 장사하는 방법이 전혀 다르지. 각각의 창녀집에 포주가 있어서 포주가 영업하는 것으로 되어있어. 조직은 포주에게 여자를 맡기고 포주에게는 비율제로 돈을 주고 조직이 나머지 돈을 거둬들이는 거지."

"굉장히 큰 사업 같은데요?"

"얼마나 광범위한지는 곧 알게 돼. 사령관의 지시사항을 잘 듣는다면 말이야. 우리는 새로운 여자를 찾아내는 것만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포주를 열 명도 더 갖고 있어. 그들이 어떤 곳에서 여자를 데려올 거라고 생각하나?"

그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을 이었다.

"대학 캠퍼스. 공장. 회사. 교외의 주택지지난달에는 신혼여행에서 갓 돌아왔다는 신부도 데리고 왔었어. 모델. 여배우 - 일류가 아닌 여배우로서 시간제로 돈을 버는 거야. 여자들에게는 반드시 얼마간의 창녀 기질이 있거든. 콜 걸은 시간제 예약자가 밀리고 있는 정도니까. 그중에는 양갓집 딸들도 들어 있어. 양갓집 딸이라고 해서 그 짓을 잠깐 해서 돈을 번 뒤 그만둘 정도로 순진하지만도 않아."

터린이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우리의 이 사업이 얼마만한 규모로 운영되고 있는지 자네가 안다면 자네는 아마 놀라서 기절할 걸세. 그런데 자네가 꼭 알아 두어야 할 일이 있네. 이 도시에서 우리의 경쟁상대는 없어. 그것은 여기뿐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야. 지금 자네가 있는 곳에서 50마일쯤 떨어진 곳에서 한 여자가 장사를 하고 있다고 할 때 그 여자는 조직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 거야. 알겠나. 보란?"

"그 정도는 이해하고 있소."

맥 보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아마추어가 개인적으로 장사하는 것을 묵인하지 않아. 그들을 우리 편에 흡수시켜 장사를 하게 하는가 아니면 그 장사에서 완전히 손을 떼게 하는 거야. 왜냐하면 그런 아마추어들 때문에 여론도 나쁘거니와 조직이 들러날 염려가 있기 때문에 절대로 묵인해 줄 수는 없는 걸세. 그러나 아마추어들을 때려부수고 다니는 짓 같은 것은 아무도 하지 않아. 그 점을 잘 알아 두고 또 나라는 인간에 대해서도 잘 알아 두게나. 나는 예일이나 하버드 같은 명문 출신은 아니야. 다만 사업가일 뿐이지. 장사는 내가 지시하겠어. 알겠나? 모든 면에서 말이야. 내 앞에서 누구라도 건방지게 구는 건 용서할 수 없어. 사람이 좋아 보인다 해서 그것으로 나를 얕본다면 큰일 날 걸세. 이 점을 잘 기억해 두게.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들어 한다고 해서 자네가 건방지게 구는 것을 용서해 주리라고는 생각지 말게."

"알겠소."

"좋아. 그리고 또 하나. 아까도 말했듯이 아마추어의 장사를 없애거나 사기꾼 녀석들을 때려 부수는 것보다는 세상의 요구에 따라 열심히 여자를 소개해 주는 것이 훨씬 이익이야. 컴퓨터에 등록되어있는 단골에는 일류 호텔이니 모텔, 고급 클럽, 레스토랑과 같은 곳의 이름이 줄지어 있으며 대체로 그런 주문은 컴퓨터로 처리하고 있어. 그밖에 우리는 프리랜서 여자들도 쓰고 있지. 우리는 그런 여자들을 필드 것이라고 부르지. 이건 완전히 자유 계약을 의미하는데 그중에는 자기의 아파트를 거점으로 해서 장사하는 여자들도 있네. 그네들은 매상을 속이거나 하지는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을 대체로 믿고 있네. 가끔 불시에 조사를 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들의 명예를 생각해서 자유롭게 놔두고 있다네. 하지만 자유 계약자라도 역시 조직의 여자들이야. 알겠나?"

보란이 힘있게 대꾸했다.

"우리는 여자들을 잘 대해 주지. 그들이 조직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한 절대로 거칠게 다루지는 않아. 그들이 원하기만 하면 나갈 수도 있어. 그러나 한번 나간 여자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지. 그들은 그걸 잘 알고 있어. 여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거야. 그것 역시 그들은 잘 알고 있지. 필드 걸은 자기가 직접 교제도 하지만 나머지 여자들은 소개에서 연락까지 모두 조직에서 해준다네. 조직에서 일하고 있는 한 그들은 안전하고 보수도 충분히 받고 있거든. 아까 자네에게 말했듯이 우리는 대담하고 용감한 사람들을 위해 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는 거라네."

". 기억하고 있소."

보란이 말했다.

"좋아. 가자구! 여자들이 있는 집을 하나 보여줄 테니까."

"나는 <여자 감시>라는 것이 언제 시작되는가를 생각하고 있는 중이오." 라고 보란이 말했다.

"<여자 감시>가 어떤 것인가를 자넨 아직 모르고 있어. . 가볼까? 지금부터 가는 곳은 피츠필드에서는 최고의 여자들을 모아둔 곳이지. 말해 두겠는데 눈을 똑똑히 뜨고 있게. 그러나 절대 손을 대면 안 되네. 명심하게. 눈은 뜨고 있되 손은 절대로 대지 말 것!"

피츠필드 일가의 간부는 유쾌한 듯이 말했다.

 

7. 목석같은 사내

그곳은 교외에 있는 커다란 저택이었다. 밖에서 보아서는 아무런 특색도 없었고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 집은 가로수를 따라 제각기 마음대로 지은 주택들이 줄지어 서 있는 한산한 거리의 한 모퉁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철문은 열려져 있었는데 그 안으로 아스팔트 길이 곧게 이어져 있었다. 앞뜰의 잔디가 깔린 화단에서 정원사가 꽃을 손질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정원수가 뜰의 경치를 조화롭게 이루면서 건물을 둘러싸고 거리로부터의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6피트의 철책이 뜰 바깥 담을 높게 둘러싸고 있어 저택은 외부와 격리되어 있었다. 정면에 자동차가 들어가는 입구 이외에 다른 문은 없었다. 보란은 고개를 뒤로돌려 정원사를 유심히 보았다. 정원사치고는 나이가 젊었으며 지나칠 정도로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게다가 저택의 입구에 너무 가까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정원사를 가장한 경비원이 분명했다. 터린은 아스팔트 길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노면의 불룩 솟은 곳에 컨버터블의 앞바퀴를 얹고 약 5초간 멈춰선 후 크게 원을 그린 아스팔트 길을 따라 건물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갔다.

"우린 매사에 조심하고 있다네."

그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불룩 솟은 곳에 압력식 스위치가 묻혀 있어. 항상 그곳에서 5초 동안 멈춰 서기로 돼 있지. 그렇지 않으면 저 안에 있는 친구들이 당황하게 되지."

터린은 머리로 그의 눈앞에 우뚝 솟아 있는 흰 페인트 칠을 한 건물을 가리켰다.

"우리는 여기를 파인 체스터라고 부르고 있어. 개인의 클럽이라는 명목으로 규정된 수속을 밟아 전세를 얻었지."

"훌륭한데! 그런데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하군." 보란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직 일러. 낮에는 거의 장사를 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은 대개 오후 늦게까지 자고 있어. 혹은 일광욕이나 수영 따위를 하기도 하지만."

터린은 보란이 눈썹을 치켜 올리는 것을 바라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 이 뒤로 돌아가면 풀이 있는데 아주 훌륭해. 이곳은 창녀 집 중에서도 아주 고급에 속하지. 나는 여기가 아주 좋아. 여기 있는 여자들은 모두 내게 잘해 주며 그들도 모두 여기 있고 싶어 하네. 여기야말로 그들에게는 천국이지."

보란이 동의하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두 개의 테니스 코트와 골프 연습용의 잔디밭을 지났다.

"여자는 몇 명이나 있소?"

보란이 궁금한 듯 물었다.

"침실의 수는 스물두 개야."

터린이 자랑스럽게 대답했다.

"때로는 여자가 그보다 많을 때도 있네. 그럴 땐 교대로 쉬게 하는 거야. 방은 최대한으로 활용하게 되는 거라네. 자네도 알겠지만 난 장사에는 철저하니까 말야."

그는 보란을 흘끗 쳐다보았다.

"여기는 회원제로 되어있어. 아까 말한 것처럼 여긴 명목상 클럽이거든. 장사도 클럽 식으로 하는 거지. 멤버가 되어 회비를 내는 것은 침실에 들어가기 위한 거야. 풀을 사용하거나 그 주위에서 노는 데는 별도로 돈을 받지 않아. 그리고 여기서 우린 가끔 파티를 여는데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 참석할 수 있어. 초대장을 받기 위해서는 목돈이 필요해. 그러나 그 파티의 초대를 기다리는 멤버들이 줄을 서 있지."

터린은 차고에다 자동차를 넣었다. 그리고는 엔진을 끄고 보란을 쳐다보며 여유 있게 웃었다.

"초대 손님의 리스트에는 기네트시의 창시회원이 반수는 올려져 있고 나머지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려고 아주 열심히야."

그는 유쾌하다는 듯이 덧붙였다. 두 사람은 건물의 옆으로 나 있는 입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넓은 홀로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아주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었다.

"저쪽은 도서실이야."

홀의 중앙으로 가면서 터린이 가볍게 벽을 두들기며 계속해서 말했다.

"상당히 좋은 방이지만 소용없는 장소야. 2000권이 넘는 책이 먼지만 뒤집어쓴 채 잠자고 있지."

그들은 돔식 천장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두 개 달려 있고, 우아하고 세련된 가구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긴 의자와 푹신한 쿠션이 놓인 의자가 셋. 혹은 네 개가 한 세트로 여기저기 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들에는 작은 사이드 테이블, 재떨이, 그리고 작은 액세서리들이 딸려 있었다.

"여기가 클럽 룸이야."

터린이 말했다.

"이곳은 우리가 꽤 신경을 써서 꾸몄는데 워낙 넓은 방이라 쉽지 않았어."

이렇게 말하면서 터린은 곁에 늘어져 있는 곱게 엮은 끈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조용한 저택의 어딘가에서 차임벨 소리가 은은히 울리더니 불타는 듯한 붉은 머리를 여왕처럼 높게 빗어 올린. 얼굴 윤곽이 뚜렷한 여자가 큰 걸음으로 걸어 들어왔다. 그녀는 다정히 웃고 있었다.

"다링. 레오!"

그녀가 기뻐서 소리쳤다. 그녀는 그에게로 달려가 그를 힘껏 껴안았다. 그리고는 곧 몸을 떼내며 애정 어린 눈빛으로 터린을 바라보았다. 보란은 여자의 키가 터린보다 머리의 절반 정도는 더 큰 것을 보고는 그녀가 얼마나 높은 하이힐을 신고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여자의 키는 터린과 같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자는 몸에 꼭 붙는 실크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그것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매를 여실히 드러내 보이고 있었다. 그녀의 실크 재킷의 늘어진 소매 속으론 보드라운 살결이 들여다보였으며 그녀의 부푼 가슴에는 단 하나의 끈만이 느슨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 사이로 보이는 여자의 터질 듯한 우윳빛 유방이 보란을 자극시켰다. 그는 시선을 똑바로 둘 수가 없었다. 빨간 머리의 여자는 터린이 보란을 소개할 때까지 보란의 존재를 완전히 묵살해 버리고 있었다.

"우리의 유능한 신입 사원을 소개하지. 리다."

터린이 말했다.

"맥 보란이야. 이쪽은 리다 데비시."

빨간 머리의 여자는 그제서야 보란에게로 눈을 돌렸다. 그 순간 그녀의 눈 속에서 관심의 빛이 번득였다. 그녀는 잠시 그를 흘끗 쳐다보았을 뿐이었으나 보란은 자기의 뱃속까지 그녀에게 다 들여다보인 것처럼 몸이 굳어졌다.

"안녕하세요. ! 공기가 어때요?"

"따뜻한데."

보란이 웃으며 말했다.

"어머. 저는 이곳의 분위기를 말하고 있는 거예요."

여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낯익게 되면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어요."

보란은 그녀의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으나 이 친절한 말의 뜻을 알 것 같기도 했다. 그는 아주 잠깐 동안 이 여자와 터린은 어떤 사이일까를 생각해 보았다.

"그렇게 되는 건 자네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을 때야."

터린은 보란의 상상을 단절시키려는 듯 재빨리 그녀의 말에 응수했다.

"매우 기다려지는데."

보란은 그녀의 보랏빛 눈을 다정하게 바라보면서 말했다. 그는 등줄기가 근질근질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런 여자가 오래전부터 이런 직업을 갖고 있으리라는 것을 맥 보란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기다리지 않으면 안 되네."

터린이 웃으면서 말했다.

"아까 내가 한 말을 잊지 말게. 눈을 크게 뜨고 있어. 손은 대지 말구."

그는 보란의 귀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했다.

"알겠나. 중사? 리다와 나는 할 이야기가 있어. 자네는 이곳에 있게. 꼼짝 말고 여기 있으라구. 알겠나?"

보란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꼼짝 않고 있겠소. 사령관!"

보란의 태도에 만족했는지 터린은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보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우리가 자네를 알게 된 건 정말 행운이야. 중사!"

그는 이렇게 다정하게 말하고 빨간 머리의 여자와 아치형의 출구로 나가 계단을 올라갔다. 그들은 서로 딱 붙어서서 얼굴을 맞대고 소곤댔다. 터린의 말을 듣고 여자는 못 참겠다는 듯이 깔깔거렸다. 보란은 그 두 사람이 사라지자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넓은 방안을 어슬렁거리면서 벽에 걸린 그림들을 훑어보았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누드 습작은 누구를 모델로 한 것일까? 모델이 역시 파인 체스터의 여자라면 창부의 세계에도 자기가 여지꼇 생각해 보지 않았던 대단한 면이 있을 것이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지금 보란이 서 있는 클럽의 방은 더없이 사치스러웠다. 동물적인 쾌락을 즐기기 위한 침실도 마찬가지로 사치스러울 것이다. 이 건물의 여러 곳에 놓여 있는 이렇게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보아 틀림없을 것이었다. 돈이 남아 돌아가는 미국 상류 사회의 남자가 이곳에서 하룻밤의 쾌락을 즐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뿌려야 하는 것일까? 보란은 시실리의 <마태> 즉 대담하고 용감한 농민이 이처럼 웅장한 <여자들의 성>을 자기 것으로 만들기까지 노력하여 뻗쳐 올라왔을 때의 만족감을 상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시실리안은 지기 재산의 불과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 그 성을 깨끗이 다음 사람에게 양도하고, 그것을 양도받은 사나이는 지금에는 교외에 있는 저택에 들어앉아 백만장자의 안락에 묻혀 살고 있는 것이다. 보라은 생각에서 깨어나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신에게 말했다. 터린은 건달이다. 단순히 건달일 뿐이다. 티끌만큼의 양심도 갖고 있지 않은 나쁜 놈인 것이다. 그는 어린 소녀들을 강제로 창녀로 만들어 놓거나 열심히 일하여 검소하게 살아가는 사나이들을 거친 폭력의 무리 속으로 몰아넣는 악한인 것이다.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금발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의 갑작스런 출현으로 보란은 넋이 나간 듯이 보였다. 여자는 리다와 마찬가지로 풍만한 몸매를 가졌으며, 온몸에서 넘치는 듯한 젊음과 정열을 발산하고 있었다. 금발 머리의 여인은 눈부시게 하얀 어깨와 희디흰 목덜미를 갖고 있었다. 크고 맑은 파란 눈, 오똑한 코, 계란 모양의 갸름한 턱, 그리고 길고 흰 목덜미를 미의 화신처럼 느껴졌다. 또한 젖어 있는 듯한 붉은 입술은 감각적이었으며 약간 열려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혀끝은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듯했다.

"당신. 누구세요?"

여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터린을 기다리고 있어."

맥이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은 참으로 바보 같은 대답이었으나 지금 상황으로서는 더 이상 적당한 대답은 없었다. 이 황금의 여인은 사실상 아무것도 몸에 걸치지 않은 것 같았다. 망사처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숄이 어깨에서 살짝 앞가슴을 흘러내려 히프 근처에서 걸쳐져 허리에 느슨하게 매어져 있었다. 그런 모습으로 그녀는 참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그리고 보란 듯이 사나이 앞에 눈부시게 서 있었다. 유방을 감싸고 있는 망사를 통해 내비치고 있는 핑크빛 젖꼭지는 한층 더 사나이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고 있었다. 비너스 언덕의 가장 그윽한 부분은 그녀의 곡선을 나타내 주는 거들과 허리에 맨 끈으로 살짝 가리워져 있을 뿐으로 그 부분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듯했다. 종아리와 허벅지는 무릎을 경계로 하여 미끈하게 뻗어 있었다. 보란은 난생처음 스트립쇼를 구경하는 애송이처럼 그만 침을 삼키고 말았다. 금발의 여인은 점수라도 매기는 것처럼 보란을 훑어보았다. 눈앞에 서 있는 사나이는 분명 그녀를 만족시킨 듯했다. 그녀가 숄의 앞자락을 걷어 올리자 그 사이로 부풀어 터질 것 같은 하얀 유방이 드러나 보였다. 그리고 그 풍만한 젖무덤 위에 붉게 상기된 젖꼭지가 보란을 향해 퉁기듯이 흔들리자 의지가 강한 그도 도저히 거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2층에서 기다려도 되지 않아요?"

금발의 여인이 말했다. 그녀는 보란이 지금 어떠한 상태에 빠져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괜찮아요. 레오는 언제든지 한 시간은 걸리는 걸요. 우리 같이 2층으로 올라가서 뭐 좀 마시지 않겠어요?"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되풀이해 말했다.

"미안해."

보란이 말했다. 그는 이것이 바로 밀회라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여기서 기다려야만 해."

하지만 여인은 몸을 밀착시켜 왔다. 그러자 향긋한 여인의 체취가 보란 속에 있는 남성을 강하게 자극시켰다. 그의 두 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여인의 몸으로 뻗고 있었다. 그의 손은 여인의 부드러운 살결에 닿는 순간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당겨졌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그녀는 허리를 높이 올리며 보란의 귀에 입술을 대고 속삭였다.

"그는 언제나 적어도 한 시간은 걸려요. 우리는 5분이면 끝낼 수 있지 않아요?"

보란은 정중히 말했다.

"고맙긴 하지만 안 되겠어."

그녀는 보란의 눈 속에서 그 말의 의미를 찾아내려는 듯이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그녀는 눈을 빛내며 이렇게 물었다.

"당신. 뭘 생각하고 있죠?"

여인의 콧방울은 화가 난 듯이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 화가 나 있는 괴물이 있잖아요? 당신은 그것을 내 몸속에 넣고 싶어 죽을 지경이면서."

"당신 말은 사실이야."

여인은 짧게 웃고는 엉덩이를 흔들면서 보란에게로 다가가 그를 두 팔로 힘껏 껴안았다.

"당신. 그 기분 알고 있어요?"

"물론 알고 있지."

이렇게 말하고 보란은 힘없이 웃었다.

"그렇게 화내지는 말아. 금발 아가씨. 지금은 다만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아니란 말야. 나를 좀 풀어줘. 제발 나를 혼자 있게 해 달라구."

그러자 여인의 눈이 새로운 경의를 나타내며 보란을 쳐다보았다. 그때 어디선가 스위치 소리가 나고 스피커의 음향이 정적을 깨뜨리더니 곧 레오 터린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스피커는 방 안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좋아. 중사!"

터린의 목소리였다.

"또 한 점 올렸군. 도대체 자네는 어떻게 된 사람인가? 감정도 없는 목석이란 말인가? 어때. 그 테스트는 견디기 힘들었을 텐데!"

터린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말했다.

"보란. 이제 그 달아오른 금발 머리를 안아 주게. 그녀의 풍만한 육체를 2층으로 운반해 마음껏 즐기라구! 들리나?"

"잘 들리오. 레오."

보란이 조용히 말했다. 그는 스피커가 있는 곳을 찾고 있었다.

"폐쇄 회로 텔레비젼이야. 나중에 자네에게 보여주지. 미치, 내 친구를 잘 대접해 주게. 듣고 있나?"

여인은 즐거운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듣고 있어요. 레오!"

"그리고 이것으로 너는 내게 이 집에서 또 하나 빚을 진 거야."

터린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나서 스피커의 소리가 끊어졌다.

"그것 봐요. 당신 덕분에 내가 빚을 졌잖아요?"

금발 머리의 여자는 원망스럽다는 듯이 보란을 보고 웃고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 우리 같이 어디 좋은 장소를 찾아보기로 해요. 지금도 아직 그런 일을 할 시간이 아니라고 말하겠어요?"

"아니야. 지금은 꼭 좋은 때야."

보란이 동의하자 두 사람은 손을 잡고 카펫이 깔린 계단으로 올라갔다. 목석 보란은 다음번의 어떤 테스트도 잘 패스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금발의 유혹자를 따라 굽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넓고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 홀을 지나 커다란 침실로 들어갔다. 그곳은 매우 사치스러운 방이었다. 지붕 있는 침대가 놓여 있었으며 바닥에는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었고 우아한 가구들이 방을 장식하고 있었다. 보란은 조용히 휘파람을 불었다.

"방이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금발의 여인이 그를 뒤돌아보며 말했다. 그녀의 시선은 보란의 허리 아래를 훑고 있었다.

"어떤 식을 원하세요?"

그녀가 보란에게로 다가서며 물었다.

"뭐라구?"

보란이 여인의 부드러운 어깨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앉아서 하는 것. 서서 하는 것. 누워서 하는 것 중에서 당신은 어떤 것을 더 좋아해요?"

보란은 잠자코 싱긋 웃으면서 그녀의 허리끈을 풀었다. 그리고 엉덩이에 걸쳐져 있는 숄을 조심스럽게 벗겼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받치고는 한 걸음 물러서면서 감상하듯이 여인의 몸을 바라보았다. 여인은 미소를 띠며 우아하게 양팔을 벌리고 발끝으로 천천히 돌았다. 그리고는 아래층에서 해보인 것처럼 허리를 흔들며 몸을 꼬았다.

"당신은 무대에 서본 적이 있지?"

보란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그녀는 짧게 웃고는 팔을 내리고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아마 벌거벗은 자신을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또 한 번 웃고는 침대로 다가가 조금 어색하게 보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침대 커버를 걷어 내리고 비단으로 된 시트가 깔려있는 침대 위로 올라가 누웠다. 보란은 천천히 옷을 벗었다. 여인은 누워서 사나이가 옷을 벗는 것을 만족스러운 듯이 지켜보고 있었다. 보란은 벗은 옷을 조심스럽게 의자 등걸이에 걸고 침대로 다가가 냉소를 띠며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침대 위의 여인을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그에게 미소로 답하고 자기 곁의 침대를 두들겼다. 보란은 그녀의 손을 잡아 그녀를 침대에서 안아 일으켰다.

"보이고 싶지? 일어서서 움직여 봐."

"어머 아니에요. 나는 다만."

"춤을 춰봐."

그녀는 이류 무대의 여왕이라도 된 듯이 허리를 비비 꼬며 춤을 추었다. 보란은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허리에 손을 얹고 그녀의 춤을 지켜보며 서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말했다.

"당신. 이런 일을 시키지 않으면 실감이 나지 않아요? 아니면 공연히 나를 애먹이려고 그러는 건가요?"

그녀는 춤을 멈추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그녀의 눈이 애타게 호소하는 듯 보란을 바라보았다. 그는 웃으며 억세게 그녀를 껴안았다. 두 사람의 살이 머리에서 발끝까지 밀착되자 보란의 몸이 어쩔 수 없이 크게 떨렸다.

"당신도 테스트에 합격한 것으로 치지."

그가 웃으면서 그녀를 내려다보고 말했다.

". 당신은 어떤 식을 원하지?"

그녀가 깔깔대면서 그에게 기대었다.

"우선은 똑바로 누워서 천천히 숨을 쉬고 싶어요."

"좋아. 적어도 당신의 쇼윈도식 껍질은 떨어졌으니까."

"뭐라구요?"

그녀는 침대에 몸을 던지듯이 누우며 두 손으로 유방을 감싸고 날씬한 두 다리를 천천히 꼬았다.

"그처럼 아양과 교태를 부릴 필요는 없어!"

보란이 말했다.

"당신은 누구에게나 그렇게 해보이나?"

"아무도 싫다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그녀가 분명히 말했다. 보란은 방바닥에 무릎을 꿇고는 한쪽 팔로 욕정에 불타는 여체를 안아 뜨거운 입술로 온몸을 핥기 시작했다. 그의 입술은 그녀의 터질 듯한 유방을 애무하다가 이윽고 목을 지나 뜨거운 입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기분이 좋아요?"

잠시 후 여인이 숨을 헐떡이기 시작하며 사나이의 등을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내려갔다. 보란은 그녀의 한쪽 다리를 굽히고는 두 손으로 허벅지를 애무하면서 무릎에 키스했다.

"당신. 다리를 좋아해요?"

그녀가 흥미롭다는 듯 물었다.

"당신 다리를 좋아하지. 그러나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틀려. 나는 당신이 잘 느끼는 곳을 찾고 있어."

"어머. 나는 온몸의 어느 곳에서나 잘 느껴요."

그녀가 재빨리 말했다. 그는 손으로 그녀의 부드러운 엉덩이를 어루만졌다. 그의 손이 허벅지의 맨 위쪽에 닿자 그녀의 구부리고 있던 다리가 경련을 일으키듯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가쁜 숨을 몰아쉬는 것이었다. 보란이 싱긋 웃었다.

"정말로 더욱 민감한 곳도 있나 봐요."

그녀는 시인하는 듯 웃으며 말했다.

"이봐요. 당신 나와 함께 침대에 눕지 않을래요?"

대답 대신 그는 여인을 안아 엎드리게 한 후 그녀의 등을 따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그녀의 예민한 부분을 더듬어 나가자 여자는 다시 숨을 몰아쉬었다.

"어서요."

그녀가 못 참겠다는 듯이 그에게 말했다.

"어서!"

그녀는 갑자기 일어나서 보란의 목을 껴안기 무섭게 입술을 찾았다. 그들은 꼭 껴안은 채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서로의 다리를 휘감으면서 키스를 계속했다. 그녀는 율동적으로 엉덩이를 움직이면서 몸을 밀착시켰다. 뜨거운 입술에서 입을 떼며 보란이 말했다.

"그래. 계속해! 침대 위에서는 아주 적당한 운동인 것 같군."

"그래요. 교수님!"

그녀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빨리 강의로 들어가요."

그녀는 다시 그의 입술을 빨았다. 풍만한 유방이 그의 가슴에 물결처럼 밀어닥쳤다.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그의 목을 껴안고 있던 손을 내려 두 사람의 몸 사이에 밀어 넣으며 보란의 그것을 찾아 헤맸다. 그러나 보란은 몸을 피하며 말했다.

"아직 부족한 것 같은데?"

"뭐라구요? 얼마나 더 기다려야 된다는 거예요? 지금 나는 미칠 지경이라구요."

그러자 그는 그녀의 옆에 누워 그녀의 풍만한 가슴을 뜨거운 혀로 핥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욱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몸을 비틀면서 그에게로 밀어붙였다. 이윽고 그는 여인을 다시 침대에 똑바로 누이고는 일어서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애원했다.

"어서요. 제발 부탁이에요."

보란은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제 여자가 되었군."

이렇게 말하며 그는 그녀 위에 덮쳤다. 그녀는 허리를 높이 올리면서 그를 맞았다. 그녀의 두 다리와 두 팔은 세찬 힘으로 그를 끌어당겼다.

"좋아요. 좋아요." 하면서 여자는 중얼거렸다. 그녀의 허리는 경련을 일으키는 것처럼 심하게 파도쳤다. 잠시 후 그녀는 나른한 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여자예요."

"물론이지. 내가 모르고 있다고 생각했나?"

보란이 지친 듯이 말했다. 테스트는 모두 오케이였다.

 

8. 두 번째 방문객

831일 새벽녘에 리버티에 있는 맥 보란의 아파트에 생각지도 않았던 손님이 찾아 왔다. 그 방문객은 다름 아닌 형사부장 알 웨더비였다. 철두철미한 경관의 눈이 재빠르게 사치스런 방 안의 구석구석을 살펴본 뒤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방 주인을 바라보았다.

"이것은 친구로서의 방문으로 생각해 주게"

경관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새벽 5시라는 건 친구의 방문치고는 너무 이르지 않소?"

"진짜 우정은 시간 같은 걸 따지지 않아. 좀 흥미 있는 정보가 있어서 들렀다네."

웨더비가 조용히 말했다. 보란은 형사부장을 거실 한가운데 세워 둔 채로 부엌으로 가서 물주전자를 불 위에 올려놓고 선반에서 컵 두 개와 커피병을 꺼냈다. 그리고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방을 향해 소리쳤다.

"이리 오지 않겠소?"

형사의 거대한 몸이 좁은 부엌으로 들어섰다. 보란은 테이블 옆에 있는 높고 둥근 의자에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면 물이 끓을 거요. 무슨 정보가 있다는 거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정보원으로부터 입수한 거야."

웨더비는 둥근 의자의 끝에 걸터앉아 희끄무레하게 밝아 오는 새벽빛 속에서 보란의 얼굴을 지켜보며 말했다.

"살인 청부업자가 고용되었어. 자네를 죽이기 위해서 말이야. 보란."

보란은 잠시 생각한 다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살인 계약이지."

경관이 설명했다.

"누군가가 자네를 죽이려 하고 있는 거야. 이제 알겠나?"

"어째서 아침에는 물이 천천히 끓을까?"

"못 알아듣겠나?"

", 아니오."

보란은 일어나 스토브 옆으로 가서 손가락을 주전자에 대보았다. 그리고는 이른 아침의 방문객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쏘아 보았다.

"겁주려고 그러는 건 아니겠죠?"

그가 조용히 물었다. 웨더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냐. 이건 진짜란 말이야, 보란. 나는 자네를 감시하고 있어. 자네가 그들한테 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그놈들도 벌써 알고 있어. 설마 자네는 그 녀석들이 그렇게 바보라고는 생각하지 않겠지?"

보란은 커피 병에서 두 잔 분의 커피를 떠낸 후 병을 웨더비에게 내밀었다.

"당신 지금 마태들 얘기를 하는 거요?"

보란이 물었다. 그는 끓는 주전자를 내려 자기 잔과 손님 잔에 물을 부었다.

"그렇게 똑똑한 놈들 같지는 않던데......"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들 손에 죽었어. 그들도 처음에는 자네처럼 생각했지."

웨더비가 말했다. 그는 커피를 저은 다음 맛을 즐기듯 천천히 마셨다.

"보란, 놈들은 자네에 대해서 철저히 조사했어."

웨더비는 후후 커피를 불며 말했다.

"그 녀석들은 이미 자네의 정체를 알고 있어. 그러니까 당연히 그들에게 접근한 이유도 알고 있단 말야. 그래서 살인 청부업자가 고용된 거야. 자네를 죽이기 위해서!"

"그럼 날 보고 어떻게 하란 말이요!"

보란이 소리쳤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자 웨더비가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도망가게!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그리고 아주 멀리! 동남아 같은 곳으로 말이네."

"나는 어느 곳으로도 도망가지 않소. 그 살인 계약이 맺어진 것은 언제죠?"

보란이 단호하게 말했다. 웨더비는 그의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

"내 정보 제공자의 이야기가 정확하다면 아마 네 시간 전쯤일 거야."

"살인업자는 어느 정도의 실력자들일까요?"

보란은 어깨를 움츠리며 말했다.

"그들이 자네를 죽이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일 거야. 내가 듣기로는 보수가 단 5000달러니까 말이네."

그는 크게 한숨을 쉬고는 말을 계속했다.

"사실을 말하자면, 보란. 나는 여기 오면서 벌써 자네가 피살되지 않았나 걱정하고 있었네."

"왜 그렇게 속단을 내렸죠?"

보란은 의심스러운 듯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요즘 쭉 그 녀석들 코앞에서 얼쩡거리고 있었소. 죽일 생각이 있었다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그런 숨바꼭질 같은 짓을 하는 것일까요?"

"자네 쪽은 어떤가?"

"무슨 말이오?:"

웨더비가 싱긋 웃었다.

"자네는 왜 해치우지 않았지? 목적은 그들을 죽이는 일 아닌가? 거기에 대해서 부인이나 변명 따윈 하지 말게. 자네로부터 그것을 듣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야. 문제는 방법인데 그것은 마피아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야. 청부업자의 계약에 의한 살인. 그것이 그들의 방법이지."

그는 콧소리를 내며 커피잔을 비웠다.

"이 커피는 맛이 좋지 않은데? 물이 충분히 끓지 않았군. 그런데......"

그는 둥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둥근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뒷짐을 지고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분명히 자네에게 말했네. 이것이 나의 임무이고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네. 만약 자네가 보호 감시를 원한다면 이야기는 다르지만."

보란은 그런 제안은 말도 안 된다는 투로 말했다.

"! 내가 그들을 먼저 죽인다면 법률상 내 입장은 어떻게 되죠?" "체포되면 일급 살인죄로 기소되겠지."

웨더비는 조용히 대답하고는 문을 향해 걸어갔다. 보란은 그를 배웅해 주려고 문까지 따라나서며 물었다.

"그것은 정당방위가 아닌가요?"

"자네가 법정에서 입증할 수 있어야 하네."

웨더비의 말투는 무거운 것이었다. 그는 문 앞에 이르자 보란을 돌아보며 말했다.

"알겠나? 자네에게 이것이 얼마만큼의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자네를 동정하네. 그러나 그건 순전히 개인적인 감정이야. 자네가 앞으로도 이 거리에서 그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당긴다면 난 가만 있지 않겠네. 자넨 지금 천국과 지옥 사이에 있는 거야. 나는 무엇보다도 자네가 지난 822일의 범행을 시인하고 경찰에 자네의 신병을 맡길 것을 권하네. 좋은 변호사라면 그것을 순간적인 정신 착란으로 돌려서 가볍게 처리할 수 있을 걸세. 그게 싫다면 난 도망치라고 말하겠네. 오직 달아나는 길뿐이야. 자네는 그들과 맞설 수 없어. 보란, 그들과 싸울 수는 없어."

그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어때, 나와 함께 가지 않겠나?"

보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고맙소, 웨더비."

그리고 그는 문을 닫았다. 곧장 욕실로 가서 면도와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는 터린에게서 받았던 속사용의 숄더 홀스터와 권총을 점검하여 몸에 건 다음 실탄 네 클립을 양쪽 주머니에 나눠 넣었다. 그는 침실의 가구를 옮겨 놓고 침대의 머리 쪽을 동쪽 창문 쪽으로 붙이고 블라인드를 열어 강한 햇빛이 들어오게 하였다. 그리고는 담요를 말아 침대 위에 놓은 뒤 그 위에 시트를 덮었다. 그리고는 거실로 나와 블라인드를 닫고 불을 꺼서 거실 안을 캄캄하게 해놓았다. 그는 다시 침실로 가서 커다란 옷장 안에 의자를 놓고 안에 들어가 앉은 다음 작은 틈만을 남기고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지구의 저쪽, 월남의 습지에서 익힌 인내와 침착성으로 기다리기 시작했다. 7시 몇 분 전, 보란의 아파트에 두 번째 방문객이 나타났다. 이번의 방문객은 두 사람이었으며 그들은 벨을 누르지 않았다. 그들은 잠시 동안 보란의 아파트 문에 귀를 대보고는 주머니에서 잭나이프와 송곳을 꺼내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문은 쉽게 열렸다. 두 사람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고 문은 소리 없이 닫혔다. 그들은 잠시 동안 어둠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아직 자고 있군!" 한 사나이가 속삭였다. 키가 큰 사나이가 소음기가 부착된 권총을 들어올렸다. 또 한 사나이가 흰 이빨을 드러내며 소리 없이 웃었다.

"실수 없도록 해. 굉장히 빠른 녀석이래."

키가 큰 사나이가 침실 문을 천천히 밀었다. 그리고는 문을 활짝 열면서 안으로 뛰어들었고 그 뒤를 한 명이 바로 뒤따라 들어왔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창문에서 들어오는 강한 햇빛 때문에 눈이 부셨으나 키가 큰 사나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침대의 머리 부분을 향해 세 발을 쏘아댔다. 소음기 때문에 둔탁한 소리가 났다. 바로 그때 그들의 오른쪽에서 문이 밀리는 소리가 났다.

"이쪽이다. 찰리!"

두 사나이가 동시에 돌아보았다. 그 순간 주황색 빛줄기가 그들을 향해 날아왔고 이어 귀청이 떨어질 듯한 강한 총소리가 계속해서 울렸다. 권총을 들고 있던 사나이의 목에서 붉은 핏줄기가 치솟았다. 다른 한 사나이는 그의 재킷 안쪽에 손을 댄 채 동작을 멈추고는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또 한발이 키가 큰 사나이의 얼굴을 뚫고 나갔다. 사나이는 그의 동료 위에 쓰러졌다. 그의 손에는 쓸모없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맥 보란은 옷장에서 나와 잠깐 동안 차가운 눈빛으로 두 구의 시체를 확인하고는 재빨리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그는 엘리베이터로 지하층까지 내려갔다. 그리고는 서둘러 비상구의 계단을 타고 좁은 복도를 지나 맞은편 건물로 뛰어가서는 열쇠로 비상구를 열고 그 안으로 사라졌다. 1분도 채 못 돼서 그는 그 건물 안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가스레인지 위에 커피 물을 올려놓고 방 안의 긴 의자에 쿠션을 들어내고 장총을 꺼냈다. 총의 윗부분에는 차가운 느낌을 주는 고성능 스코프가 달려 있었다. 맥 보란은 익숙한 솜씨로 총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놈들에게 당할 수야 없지." 우수한 저격수 보란은 어떠한 공격 계획에도 반드시 퇴각의 길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건 후퇴가 아니야. 다만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이동 작전이지." 그는 창문으로 걸어가 밑의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사이렌 소리가 멀지 않은 곳으로부터 들려 오고 있었다. 아직 계약이 이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마태들이 안다면 실망이 크겠지. 형사부장 웨더비가 이 소식을 듣는다면 그는 어떨까 하고 보란은 생각했다. 맥보란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모두 그의 뒤를 쫓을 것이다. 경찰, 마피아, 또 고용된 살인청부업자들, 아마 온 세계가 그를 쫓아올 것이다. 보란은 몸을 떨었다. 공포는 자연스런 감정이다. <나는 극복할 수 있다>라고 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그는 전쟁터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낄 때마다 수없이 이 말을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렇게 완전히 혼자인 적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공포의 감정을 철저히 이용해야 한다. 그리하여 마태들을 공포의 밑바닥으로 몰아붙여야 한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도망치게 만들어 내가 갖는 공포보다 더 큰 공포를 그들에게 안겨 줘야 한다. 그러나 경찰은 어떻게 해야 되나? 경찰은 직접 상대를 해선 안 된다. 그들은 피해야만 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그들을 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길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보란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아마 길어야 며칠일 것이다. 그 며칠 내로 보란은 그가 해야 할 일들을 해내야만 했다. 마피아를 공포 속으로 몰아넣어 도망가게 만들고 경찰을 피해야만 하고, 자신을 공포로부터 지켜야 한다. 그 모든 일을 며칠 안에 해낼 수 있을까? 그는 말없이 444구경 총신을 어루만졌다. 하지 않으면 나는 죽는다. 그것은 당연한 것이다. 보란은 이렇게 자문자답을 하는 동안에 한 가지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단순한 복수심에서 이 일을 시작했었다. 그는 지금 그 진실을 정면에서 마주 볼 수가 있었다. 강한 의협심, 억제하기 싫은 분노, 혼자 싸우려는 각오, 이 세 가지가 맥 보란을 복수로 몰아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복수는 더 이상 목적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기 방어도 아니다. 보란은 또 하나의 진실을 깨달았다. 그는 더 이상 그들을 미워하고 있지 않았다. 터린이나, 플래스키, 시모어와 같은 마태들을 그는 이해하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서 그들에 대한 증오도 달라졌다. 지금의 그는 월남에서의 적을 대할 때와 같은 느낌으로 그들을 상대하려는 것이다. 보란과 적 사이에는 개인적인 관련은 아무것도 없었다. 미움도 이해관계도 없는 것이다. 인생은 다만 카우보이와 인디언의 싸움의 유물인 것이다. 좋은 자도 있고 나쁜 자도 있으며 나쁜 자는 결국 죽어야만 하는 것이다. 맥 보란은 자신이 성스러운 전쟁터에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선은 악을 이긴다. 이것이 명제이고 또한 이것이 동기인 것이다. 맥 보란은 그것 이상으로 의지해야 할 더 좋은 동기를 찾지 못했다. 동기란 의지하는 바탕이 되어야 하며 그것 때문에 죽어서는 안 된다. 죽음으로써 승리를 얻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에게 있어서 그것은 분명한 것이었다. 승리는 악의 멸망에 의해서만 얻어져야 한다. 맥 보란은 아무 감정도 없이 그 싸움에 몸을 던지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피아는 악이다. 그러므로 마피아는 섬멸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동기였다.

 

9. 협박.

정오가 조금 지났을 무렵 육중해 보이는 검은 세단이 교외에 있는 저택의 철문을 천천히 미끄러지듯 들어가 길을 가로질러 달리다가 길의 돌출 부분에 잠깐 앞바퀴를 세우고 멈추었다. 그 세단을 운전하고 온 자는 정원에 있는 잡역부 차림의 젊은 사나이에게 가볍게 눈짓을 하고는 파인 체스터의 구부러진 도로를 따라 천천히 차를 몰았다. 그는 차고 바로 옆에다 차를 세우고는 건물의 옆문을 통해 저택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바로 클럽 룸으로 가서 그의 출현을 알리는 차임벨을 눌렀다. 조금 있다가 키가 크고 붉은 머리의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전과 마찬가지로 몸에 꼭 붙는 실크로 만든 옷을 입고 있었다. 그를 본 순간 그녀의 예쁜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 중사님.....당신이 어떻게.....?"

그녀는 그의 뒤에서 또 다른 사람의 존재를 찾는 듯 겁에 질린 눈을 두리번거렸다.

"내가 어떻게 이곳에 나타났느냐는 건가?"

보란이 웃으면서 말했다. 직업적인 미소가 곧 그녀의 얼굴에 나타났다. 그녀는 웃으면서 사나이에게 다가섰다.

"당신을 악마라고 미치가 말하더군요."

그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쨌든 당신은 나를 안으러 온 거죠? 좋아요!"

그녀는 팔을 앞으로 뻗으며 그의 목에다 두 손을 감으려 했다. 그는 뒤로 물러서며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넌 내가 나타난 이유를 잘 알고 있지!"

"무얼 원하는 거죠?"

그녀가 두려움에 떨면서 물었다.

"집 안에 있는 여자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 그들이 통닭구이가 되는 걸 원치 않는다면 말이야."

그녀는 순간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겠는 듯이 그를 바라보았다.

"집안에 불이 났다는 건가요?"

"지금부터 불이 나는 거니까 여자들을 밖으로 내보내. 어서!"

순간 여자의 눈에 분노의 빛이 서렸으나 보란의 시선에 눌려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는 재빨리 문 옆에 있는 작은 책상으로 달려가 서랍을 열고는 안의 것을 꺼내려 했다. 보란은 소리 없이 그녀의 뒤로 다가갔다. 그는 그녀를 거칠게 밀어젖혔다. 보란이 여자로부터 뺏은 권총의 실탄 클립을 빼는 동안 그녀는 천천히 일어서서 벗겨진 손목을 실크 바지에 비비면서 보란을 노려보았다.

"서두르는 게 좋아."

보란이 부드럽게 말했다.

"30초 뒤에 이곳에 불을 지를 테니까 여자들을 뒤에 있는 대피소로 데리고 나가!"

그는 자동 권총을 흔들며 나가라는 시늉을 해보이고는 신문을 집어 들어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리다는 숨을 삼키며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보란은 타고 있는 신문을 마루에 던지고 창문의 커튼 아래에 또다시 불을 붙였다. 일순간에 클럽 룸은 불바다가 되었다. 보란은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여유 있게 밖으로 나와 차를 타고 정문으로 차를 몰았다.

"불이 났소!"

그가 정원사에게 말했다. 그 남자는 놀라서 그를 바라보고는 집 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는 불타고 있는 건물을 향해 달려갔다.

"낡은 건물이라서 빨리 타겠군!"

보란은 혼잣말로 중얼거리고는 싱긋 웃었다. 그는 정문을 빠져나와 담을 따라 나 있는 도로를 달렸다. 100야드쯤 달린 후 그는 차를 조심스럽게 담에 붙여 세우고는 엔진을 껐다. 그는 뒷좌석에서 444구경을 집어 들고 훌쩍 담을 뛰어넘어 소리 없이 담 안쪽으로 내려섰다. 조용히 웃으면서 그는 뜰을 가로질러 집과 도로가 잘 내려다보이는 약간 높은 동산으로 올라갔다. 꼭대기에 도착한 그는 땅바닥에 엎드려 그 집을 감시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뛰어다니고 있었는데 그들의 대부분이 알몸이었다. 보란은 한 눈으로 리다의 화려한 녹색 옷을 구별할 수 있었다. 그가 라이플의 스코프로 들여다보니 리다가 화가 나 미쳐 날뛰는 모습이 보였다. 보란은 미소 지었다. 리다는 검거될 것이다. 그 낡은 건물은 벌써 불타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정원사를 가장한 경비원들이 한 손에 커다란 리볼버를 끌어 쥐고 고함을 지르면서 여자들 사이에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들리는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에 보란은 정신을 차렸다. 다음 순간 소방 주임의 차가 아스팔트 위에 날 듯이 나타나 잔디밭을 한 바퀴 돌아 입구 바로 안쪽에 멈춰 섰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차에서 뛰어내려 바로 뒤에 달려온 사다리차에 무엇인가 간단하 지시를 내렸다. 그가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사다리차는 집 쪽으로 달려 들어갔다. 보란은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소화 작업 같은 것은 안 해도 된다고 말했겠지. 호스를 끌어 내리기도 전에 이 집에 완전히 타버릴 것이다. 리다와 여자들은 트럭 주위에 모여 있었다. 소방수들은 불타고 있는 집보다도 여자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소방 주임은 뒤에 달려온 또 한 대의 소방차를 돌려보내고는 그의 차에 올라타고 집 쪽으로 향했다. 보란은 미소를 띤 채 기다렸다. 순간 불 속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아무도 차고에서 차를 끌어내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거의가 알몸인 여자들은 불안한 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이트 가운을 입은 젊은 여자 한 명이 맨발로 정문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보란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젊은 여자들이 이곳에 이렇게 많이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라는 질문이 쏟아질 것이 틀림없었다. 경찰차 한 대가 달아나려는 여자를 싣고 모여 있는 여자들에게로 다가갔다. 보란은 리다가 형사와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보란은 스코프로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리다와 그 형사는 분명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형사는 리다의 와 그 형사는 분명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형사는 리다와 무엇인가를 주고받으면서 계속 웃으면서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소방수들은 다 타버린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젊은 여자들의 대부분은 잔디밭에 앉아 있었으며, 리다와 다른 두 여자는 경찰차에 타고 있었다. 소방 주임은 순찰차에 기대어 젊은 여자들을 정신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이때 한 대의 리무진이 정문으로 들어오듯이 규칙대로 길 도중에 있는 돌출 부분에 앞바퀴를 얹고 멈춰 섰다. 터린은 앞좌석 운전사 옆에 앉아 있었다. 운전하고 있는 남자는 시모어의 저택에 있는 보디가드 중의 한 명이었다. 뒷좌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차가 그 돌출 부분에 멈춰 섰을 때 차의 앞바퀴 둘을 꿰뚫어 놓았다. 그리고는 잇달아 앞좌석의 두 사나이들 사이에 다 한 발 쏘았다. 그리고 자동차의 지붕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보란은 터린의 놀라움과 공포에 가득 찬 얼굴이 스코프의 시야를 가로지르는 것을 보았다. 뒷좌석의 문이 활짝 열리고 몸집이 큰 사내가 나왔다. 그는 피가 흐르는 관자놀이 부근을 손으로 누르고 있었다. 보란은 혀를 찼다. 최초의 공격에서는 누구에게도 상처를 입히지 않을 작정이었다. 요란한 라이플 소리는 잔디밭 위에서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놀란 경관이 그의 차에서 뛰어나와 불타고 있는 건물을 향해 뛰어갔다.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은 저택을 일순간에 삼켜 버린 치솟는 불길에 집중되었다. 보란은 다시 정문 가까이에 있는 자동차로 총구를 돌렸다. 운전하던 사나이는 찌부러진 타이어로 차를 움직여 보려고 애쓰고 있었다. 보란은 보닛 위의 표적을 겨낭하고는 재빨리 두 발을 쏘았다. 보닛 후드가 퉁겨 올랐다가 내려앉았다. 그 틈새에서 뱀의 혓바닥처럼 불길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자동차의 문이 일제히 열리면서 퉁겨나오듯이 사나이들이 굴러떨어졌다. 그들은 얼마 떨어지지 않은 나무 그늘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었다. 보란은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444구경의 총탄을 한 사나이의 다리에 쏘아 넣고는 재빨리 순찰차를 향해 총구를 돌렸다. 이때 한 경관이 권총을 뽑아 들고 문 옆에서 불타고 있는 자동차를 향해 뛰어가는 것이 보였다. 불이 난 곳의 혼란 때문에 보란은 유리했다. 아직까지는 총탄과 그가 있는 등성이를 연결지어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보란은 혼란을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순찰차에 두 발을 쏘아 넣자 펑 소리를 내며 불이 붙었다. 그러자 여자들은 재빨리 달아나기 시작했고 그사이에 소방 주임의 자동차도 바퀴가 납작하게 되어 버렸다. 보란은 라이플을 어깨에 메고 산등성이의 뒤쪽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는 이것으로 충분히 위협의 효과를 올렸다고 생각했다. 그는 담을 넘기 위해 나무 위로 올라가 자동차 지붕위로 뛰어내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집어넣고 차를 회전시켜 수라장이 된 그곳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경관들이 한 손에 총을 들고 엉망이 된 리무진을 멍청하게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리무진에 타고 있던 사나이들의 보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미리 대기시켰던 몇 대의 자동차가 길가에 줄지어 서 있었다.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그 주위로 몰려들어 웅성거리고 있었다. 보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며 그곳에서 약 8마일가량 떨어진, 역시 교외에 있는 레오 터린의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약 20분 후인 2시 정각에 보란은 터린의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눌렀다. 30세쯤 되어 보이는 검은 머리의 아름다운 여인이 그의 벨소리를 듣고 나왔다. 보란이 자기소개를 하자 그녀는 친절한 미소로 답하고는 그를 안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그는 문밖에 서서 용무를 전달하는 것이 더 좋다며 사양했다.

"그럼 내 이름은 알고 계시겠군요?"

"물론이에요. 레오가 당신은 아주 우수한 분이라고 말했어요. 보란 씨. 잠깐 들어오시지 않겠어요? 남편이 어디 가셨는지 저는....."

"아닙니다. 레오를 만나러 온 것이 아닙니다."

보란이 급히 말했다.

"사실은 조금 전에 그와 막 헤어져 오는 길입니다. 그에게 전할 중요한 것을 잊어버렸기에 마침 이 근처를 지나는 길이고, 또 당신에게 전해야 되겠기에 들른 겁니다."

"메모를 해야 합니까?"

그녀가 밝게 웃으면서 말했다.

"아닙니다. 간단한 것이기 때문에."

보란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에게 이렇게 전해 주십시오. 목석이 계약을 깨버렸다고요. 오늘 오후 불이 난 곳에서 그를 만날 수도 있었지만 하루나 이틀 더 형편을 보기로 한다구요."

"그렇게 전해 드리겠습니다만...."

그녀가 이상하다는 듯이 보란을 바라보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부인이나 아이들을 해치울 수도 있었다고 말해주십시오, 이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절대로 잊지 마세요."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어두워졌다.

"보란 씨, 저는..."

그녀는 말끝을 맺지 못하고 보란을 쳐다보았다.

"일종의 암호입니다. 레오는 그 뜻을 알 것입니다."

", 그러세요?"

그녀가 대답했다. 보란은 뒤돌아서서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녀가 뒤따라 오며 물었다.

"저어, 보란 씨, 대단히 실례지만 저의 남편과는 어떤 관계가 되시는지요?" 그는 유쾌한 듯이 웃으며 그녀에게로 몸을 돌렸다.

"그가 당신에게 얘기 안 하던가요? 당신은 남편이 무슨 사업을 하는지 모르십니까, 터린 부인?"

"물론 잘 알고 있습니다만...."

의혹의 짙은 구름이 순간적으로 그녀의 밝은 눈을 스쳤다. 보란은 지금까지 몇 번인가 그러한 의혹이 그녀의 눈을 흐리게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여러 가지 일에 관계하고 있습니다. 저는 다만..."

"내가 그중의 어느 관계라고 생각하십니까?"

보란이 그녀를 대신해서 질문을 끝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녀의 얼굴에는 의문과 당혹이 뒤섞여 있었다. 보란은 그녀에게 그것을 말하기가 괴로웠다. 그녀는 매우 착한 여자 같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저는 그의 호위병입니다."

"무엇이라고요?"

보란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그의 재킷을 열고 홀스터에 달려 있는 32구경을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당신의 남편이 마피아의 간부라는 것을 모르셨습니까?"

그가 조용히 말했다.

"뭐라고요?"

그녀는 거의 고함을 지를 뻔했다. 그녀의 얼굴은 놀라움과 공포로 인하여 일그러졌다.

"터린 부인, 당신에게도 그것을 알 만한 라틴의 피가 흐르고 있을 텐데요?"

보란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단을 내려와 그의 차에 올랐다 그의 차가 달리기 시작했을 때에도 그녀는 아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는 여자의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이 누구보다고 비열한 무뢰한인 것처럼 여겨졌다. 가냘픈 여인을 협박이나 하는 비열한 인간... 보란은 한숨을 쉬고 검은 세단을 월트 시모어의 저택 쪽으로 돌렸다. 이것은 싸움인 것이다. 내일이면 저 아름다운 여인도 과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오늘 밤 그녀는 그녀의 손을 잡고 떨고 있는 그녀의 남편을 보게 될 것이다. 성스러운 전쟁에는 도덕이라는 것이 없다. 다만 최선과 최악의 싸움뿐인 것이다. 전쟁이 한창일 때 선이 악으로 변했다는 것은 실제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전투는 모든 것을 악으로 바꿔 놓는다. , 그 자체가 전화 속에서는 사악한 것으로 되어 버리는 것이다. 최근 몇 년 동안에 그는 과거의 생각 때문에 얼마나 많이 괴로워했는가? 선악의 신화 같은 개념에 몰두했던 자신을 책망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마피아는 악이다. 그러므로 마피아에 대항하는 모든 것은 선인 것이다. 전선은 뚜렷하게 그어져 있다. 전장에서의 윤리란 잘 싸우는 것이다. 그리고 용감히 일어서서 때가 오면 실수 없이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것이 병사의 도덕이다. 맥보란은 최선의 병사였다. 그는 시계를 보았다. 만약에 길이 복잡하지 않다면 시모어의 집에 3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다. 이 협박은 재미있게 될 것 같았다. 이번에는 죽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 사건의 파문은 조직 내부의 구석구석까지 뒤흔들게 될 것이다. 대 간부 이외에도 조직의 원로들까지 뒤흔들게 될 것이다.

 

10. 성스러운 전쟁

보란은 시모어의 저택 뒤쪽에 있는 좁은 자갈길에 차를 세우고는 재킷을 벗고 녹색의 작업복을 입었다. 그는 32구경을 권총집에서 뽑아 바지의 벨트 속에 꽂고 허리에는 배선공들이 사용하는 도구를 넣은 가죽벨트를 매었다. 그 속에는 잭나이프와 스패너, 드라이버 등 갖가지 도구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작은 가방을 어깨에 메자 준비는 완료되었다. 보란은 차에 머린을 놓아두고 숲을 가로질러 가서는 삼목으로 된 울타리의 판자를 몇 개 떼어내고 쉽사리 시모어의 집 부지로 들어섰다. 시모어는 분명히 마지노 라인의 요새보다도 살아 있는 인간을 배치한 방위책에 안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경비원들의 대부분이 파인 체스터 소동에 동원되고 없을 것이다. 실제로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비치지 않았다. 그는 대담하게 정원수를 지나 잔디밭을 걸어갔다.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그는 풀까지 가서 마치 추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수면을 들여다보았다. 이윽고 그는 어깨에 멘 가방에서 무슨 봉투를 꺼내더니 그 속에 있던 덩어리를 꺼내어 물 속에 던져 넣었다. 짙은 염료가 금방 풀의 물을 붉게 물들었다. 그는 풀 사이드의 천막 두 개를 발로 차 물속에 처넣었다. 그때 하얀 바지에 붉은 재킷을 입은 한 사내가 정원의 끝에서 풀을 향해 뛰어왔다. 사내는 풀과 보란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거기서 뭐하고 있소?"

사나이가 대들 듯이 말했다. 그리고는 재킷 안쪽으로 손을 넣더니 권총을 꺼냈다. 보란은 권총을 무시하고 태연히 말했다.

"당신네 풀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그는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경비원에게 등을 돌리고는 풀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리 와서 당신도 한 번 보라구."

사나이는 보란 옆으로 다가와서 어리석게도 풀을 들여다보면서 권총으로 수면을 가리켰다.

"이거, 아무래도......"

사나이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피거품을 쏟았다. 권총은 힘없이 풀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남자는 갑자기 일어난 일에 깜짝 놀라 자기의 찢어진 목에다 손을 대고는 그대로 권총의 뒤를 쫓듯이 물속으로 떨어졌다. 이미 붉게 물들여진 물속에서 피거품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한쪽 무릎을 꿇고 피 묻은 나이프를 풀 속에서 씻어낸 뒤 심호흡을 하고는 그것을 칼집에 넣었다. 사나이의 몸은 물속에 가라앉아 보이지 않았다. 보란은 일어서서 전화선과 전선을 찾으며 집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절단기를 꺼내 먼저 전선을 자른 후 이어 전화선을 절단해 버렸다. 갑자기 집 안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뒷문이 열리고 중년의 가정부가 예쁘게 장식된 앞치마에 신경질적으로 손을 닦으며 나왔다. 그녀는 당황한 눈으로 보란을 보고는 화가 나서 외쳤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잠깐 전선을 수리하고 있는 중이오, 아주머니."

보란은 변명조로 웃으며 말했다.

"하필이면 이런 시간에......."

그녀는 정말로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지금 한창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중이란 말이에요. 앞으로 얼마나 걸리죠?"

보란은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때 경비원 한 명이 흥분해서 문 앞에 나타났다.

"모조리 나갔군!"

그는 손에 권총을 들고서 화가 나서 말했다.

"그 권총은 뭐요?"

보란이 물었다.

"권총으로 나를 쏴버리면 전기는 어떻게 고칠 건가요?"

사나이는 그를 노려보고는 권총을 다시 권총집에 넣었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요?"

그가 노골적으로 불평을 하며 보란에게 물었다.

"두 사람만 거들어 주면 곧 고칠 수 있을 거요."

사나이가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도와주겠소. 어떻게 하면 되지?"

"두 사람이 있어야 되겠는데."

보란이 고집했다.

"또 한 명이 밖에 있을 거요"

"그에게는 다른 일을 부탁했소."

즉흥적으로 이렇게 대답한 후 보란은 사나이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두 사람이 필요한데."

"사람이 없는 걸 어떻게 해!"

사나이가 화가 나서 소리쳤다.

"지금 여기엔 아무도 없단 말야. 그러니 사람이 필요하면 당신이 데리고 오시오"

"알았소."

보란은 사나이의 팔을 잡고 그를 풀 쪽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가정부는 집 안으로 되돌아갔다.

"잘하면 우리끼리 할 수 있을 거요. 문제는 풀 쪽에 있소. 저기....."

경비원은 핏빛으로 물든 풀장을 보자 얼굴빛이 새하얗게 변해서 소리쳤다.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이오?"

"전자 바람이오. 알겠소?" 보란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풀에서 메인 케이블에 누전이 일어났단 말이오. 이쪽으로 오시오. 내가 보여주겠소."

그는 풀의 가장자리로 걸어가 물속을 들여다보았다. 경비원이 천천히 보란의 옆으로 다가왔다. 권총을 쥔 손을 늘어뜨리고 그는 맥 보란의 옆에 섰다. 한 손을 목에 얹고 그 사나이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붉은 물과 떠 있는 천막을 바라보았다. "전자란 것은 무서운 작은 악마요." 보란이 진지하게 덧붙였다.

"당신도 알고 있겠지만 원자의 힘이지!"

"나는 잘 모르겠는걸."

경비원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이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려 하였으나 보란의 손이 더 빨랐다. 잭나이프가 반원을 그리며 권총을 쥔 사나이의 손의 정맥과 동맥, 그리고 힘줄을 한꺼번에 끊어 버렸다. 사나이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으나 기다란 나이프는 이미 사나이의 배에 깊숙이 꽂혀 있었다. 보란은 한 손으로 나이프를 뽑아 들고 다른 한 손을 사나이의 등에 대고 살짝 밀자 검붉은 물은 또 한 명의 손님을 삼켜 버렸다. 보란은 다시 한번 나이프를 물에 씻으며

"성스러운 전쟁에 도덕이란 없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집 쪽으로 되돌아갔다. 가정부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아직도 불이 안 들어오죠?"

그녀가 불평을 했다.

"이제 곧 들어올 겁니다. 실례지만 집 안도 좀 봐야 되겠군요. 괜찮겠죠?"

보란이 말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보란을 안으로 안내했다. 보란은 안으로 들어가 부엌을 들여다보았다.

"이게 무슨 냄새죠?"

"냄비가 타고 있나 봐요!"

여인이 놀란 듯이 대답했다.

"아니에요. 무언가가 잘못된 것 같군요. 아주머니는 밖으로 나가는 것이 좋겠어요. 집에서 되도록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게 좋을 거요."

그녀는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 쪽으로 뛰어갔다.

"집 안에 누가 또 있나요?"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보란은 재빨리 부엌을 빠져나와 식당을 지나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잭나이프를 뽑아 들고 침실로 뛰어다니며 집 안에 있는 모든 매트리스를 머리에서 발끝까지 베어 버렸다. 그 일을 해치우는 데는 2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거실을 지나면서 그는 벽에 걸려 있는 월트 시모어의 커다란 초상화를 보았다. 그는 그것을 차갑게 바라보고는 32구경을 꺼내어 두 눈을 쏘아 꿰뚫었다. 그리고 탄환을 새로 장전하여 허리에 차고 나와 잔디밭에 서 있는 가정부에게로 갔다.

"폭발 소리가 났어요!"

그녀가 흥분해서 소리쳤다.

"그래요. 아주머니."

보란은 그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옆을 지나갔다. 여자가 그의 뒤를 따라오며 숨이 찬 소리로 물었다.

"소방서에 전화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그럴 필요 없어요. 아주머니."

보란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뒤돌아보고 말했다.

"아주머니도 이 집 가족인가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여기서 일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면 다른 곳에서 일자리를 찾는 게 좋을 겁니다. 되도록 빨리!"

"왜요?"

"왜냐하면 당신의 주인은 오래 살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에게도 그렇게 전해 주시오!"

보란은 작은 가방의 밑바닥에서 무엇인가 금속으로 된 것을 꺼내더니 그것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

"이게 뭐죠?"

여인이 놀란 눈으로 그를 보며 물었다.

"그것을 시모어 씨에게 전해 주시오. 그리고 맥 보란이 주더라고 말하세요. 그리고 또 그의 차례가 되면 간단히 해치울 것이라는 말도 전해 주시오. 이것으로 간단히 말입니다. 아시겠어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로부터 받은 물건을 잠시 살펴보았다.

"우리 아들도 이런 것을 하나 갖고 있어요."

그녀가 멍청히 말했다.

"이것은 명사수에게 주는 배지죠?"

"맞아요. 그것을 시모어에게 전해 주고 내가 한 말도 전해 주세요."

"당신 전기 회사에서 나온 사람이 아니지요?"

그녀는 이제야 뭔가 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 아주머니. 이제 집 안으로 들어가도 괜찮습니다. 그리고 내 부탁 잊지 마십시오."

보란은 서 있는 그녀를 남겨 두고 잔디밭을 가로질러 담을 뛰어넘어 차로 돌아왔다. 그는 도구와 작업복을 트렁크에 넣고 운전석에 앉아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조용히 자기의 양손을 내려다보았다. 손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걱정 없다고 그는 자신에게 타일렀다. 지금은 떨려도 괜찮을 때다. 그는 시동을 걸어 좁은 자갈길을 천천히 달렸다. 지금쯤은 분명히 대소동이 일어났을 것이다. 이제 곧 신문들이 떠들어댈 테고 그러면 경찰은 더욱 압력을 가해올 것이다. 한 미치광이가 피츠필드의 거리를 휘젓고 다닌다고 신문은 써댈 것이다. 보란은 싱긋 웃음 띠며 언덕을 올라가 포장된 고속도로로 나갔다. 미치광이는 동기를 찾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지금 마피아의 내부가 지하실에서부터 지붕 꼭대기까지 뒤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약점투성이인가를 보란은 세상에 보여주었다. 싸움은 크게 펴져 나갈, 그러나 싸움은 극히 개인적인 것이었다. 이것은 냉혹히 수행되는 한편의 살인 계약의 문제가 아니다. 싸움은 감정의 싸움이며 공포와 끊임없는 죽음의 유희인 것이다. 그것은 바로 보란의 특기이기도 했다. 그는 전문적으로 그러한 싸움을 해왔었다. 마태들도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드디어 맥 보란은 마피아의 아성으로 뛰어든 것이다.

 

11. 동업자

보란은 공중전화로 중앙 경찰국에 전화를 걸었다.

"웨더비 형사부장을 부탁합니다."

그가 교환수에게 말했다. 잠시 후 귀에 익은 형사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 왔다.

"웨더비입니다."

"보란이오."

". 자네 지금 어디서 전화 걸고 있는가. 보란?"

"나를 찾으려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아요. 나는 단지 계약 상품이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당신에게 알려 주고 싶었소."

", 알겠네. 그런데 자네 그동안 무척 바빴더군. 그렇지 않았나?"

"발칵 뒤집혔소?"

보란이 큰 소리로 웃으며 물었다.

"아니, 그 정도는 아니었네. 그런데 자네에게 체포 영장이 나왔어. 방화, 폭행, 폭행을 위한 가택 침입, 살인......계속할까?"

"아니오. 그것으로 충분하오. 오늘이 끝나기 전에 그것보다 죄목이 더 많아질 거요."

형사의 목소리는 매우 괴로운 듯 떨려 나왔다.

"자네 왜 나에게 전화했지?"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 자수라도 할 생각인가? 내가 자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그것뿐이야. 보호 감시를 해주겠네."

이 말에 보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천만의 말씀이오. 내 동생을 병원에서 경찰로 옮겨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요."

"자네 동생은 오늘 아침에 벌써 옮겨 놓았네."

"그거 정말 고마운데요?"

보란은 놀라 말했다.

"그럼, 나는 많은 것을 생각하니까."

형사가 말했다.

"자넨 이것으로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거네. 이제는 자네 혼자뿐이라구. 알겠나?"

"아마 그럴 거요."

"이제 자네는 전 세계와 싸우는 거야. 모든 사람이 자넬 뒤쫓고 있어. 군대까지도 말야. 지금까지 연방 수사국에서 와 있다 갔네."

"일찌감치 그들의 힘을 빌리겠단 말이군요?"

"아니, 내가 그들에게 알린 게 아니야. 아마 정치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압력을 넣었겠지. 그들은 지금 겁을 잔뜩 먹고 있다네."

"당신은 왜 내게 전혀 화를 내지 않죠. 웨더비?"

"무엇 때문에 화를 내겠나? 나는 통쾌해서 소리라도 지르고 싶다네. 물론 자네에게만 하는 소리지만. 보란, 사실을 속으로는 자네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 많네. 그렇다고 해서 동정은 기대하지 말게. 법률상의 문제에 관한 한 자네는 그 친구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이 취급될 테니까. 이것만은 분명히 말해 두지만 말야......, 잠깐 기다려 주게."

보란은 웨더비가 누군가와 얘기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잠시 후 그는 다시 수화기를 들고는,

"자네 조금 전에 포탈 지구에 갔었나?"

하고 물었다. 그 소리는 약간 냉랭하게 들렸다.

"그런 것 같은데요?"

"월트 시모어의 집 근방이지?"

"맞는 것 같소."

", 그렇다면........"

그는 다시 옆사람과 무슨 말인가를 주고받더니 다시 보란에게 말했다.

"이것으로 자네는 일급살인 두 건을 추가하게 되었어. 보란, 이제 그만하고 자수하게. 이건 너무 지나치단 말야!"

"아직 멀었어요."

"뭐라구?"

"지나치다니, 천만의 말씀이오. 이제 비로소 전쟁의 시작일 뿐이오. 웨더비. 그것은 당신도 잘 알고 있지 않소? 그리고 사복 경찰 따위는 보내지 마시오. 절대로 안전하다고 믿어지지 않는 한 내게 덤비는 놈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쏴버릴 테니까 말이오."

"경관을 쏘거나 하진 않겠지?"

"일부러 쏘진 않을 것이오. 시간이 없어서 이만 끊어야겠소."

"보란, 방금 들은 정보를 자네에게 알려 줘야겠네."

"흥미 있는 거라면."

"이 정보가 자네 마음에 들지 모르겠네. 계약이 확대됐어. 자네의 목에 10만 달러의 상금이 걸려 있다네. 지금 동부 지방의 살인업자들이 총동원되어 자네를 찾고 있다는 말이군요."

"이 멍청한 친구야~ 자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나? 동부 10개 주의 살인업자들이 이 도시로 모이고 있단 말야."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바요."

보란은 딱 잘라 말했다.

"이젠 경찰도 가만히 쳐다보고만 있을 수는 없지 않겠소?"

"보란, 자네는 미쳤어!"

"내가 놈들을 끄집어냈으니 이젠 당신들이 그놈들을 좀 어떻게 하란 말이오!"

"우린 자네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할 걸세."

형사의 화가 난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 왔다.

"그러니까 우린 서로 이해한다는 거군요."

맥 보란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래,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있지. 그러나 보란......"

"듣고 있소."

"경찰은 쏘지 말게."

"나도 경찰을 쏘고 싶지는 않소."

"그러는 게 좋아. 내가 말했듯이 자네에게 동정을 보내는 사람도 많아. 우리 경찰 주에서도 말이야. 그러나....."

"우린 서로 이해하고 있지 않소"

보란은 차갑게 이 한마디를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는 싱긋 웃으면서 차로 돌아왔다. 그의 시계는 4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지금 출발하면 신간에 맞춰 플래스키 앤터프라이스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차를 운전하면서도 웨더비 생각을 하면서 웃었다. 진지하고 정직한 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보란은 생각했다. 남을 이해한다는 것은 전쟁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리고 지금 보란은 마피아에 대한 이해-재정상의 이해-를 필요로 하고 있다. 그는 차를 회전시켜 똑바로 금융회사를 향해 달렸다.

 

12. 약탈

55분 전에 보란은 문을 밀고 들어와 문을 잠근 다음 블라인드를 내렸다. 접수 데스크의 여자가 깜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보란은 터린에게서 받았던 플라스틱으로 된 신분증을 여자에게 보여 주었다.

"오늘 업무는 끝났는데요."

그녀가 사무적으로 말했다. 보란은 상담실 쪽을 바라보며 성급히 물었다.

"안에 누가 있나?"

"토머스 씨뿐입니다."

여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이때 칸막이 뒤쪽에서 다른 여자가 얼굴을 내밀었다. 보란은 시선을 곧 그 여자에게로 돌렸다.

"당신이 출납계원인가?"

", 그렇습니다만....."

여자가 놀라서 대답했다.

"오늘 계산은 다 끝났나?"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 지금 막 끝났습니다."

보란은 칸막이 뒤로 들어섰다.

"서류와 현금을 모두 토머스 씨 사무실로 가지고 들어와."

그는 접수 데스크의 여자를 잡아 일으켜 조용히 토머스의 사무실 쪽으로 등을 밀었다.

"안에 들어가서 토머스에게 불시 감사니 장부를 전부 준비해 두라고 말해. 모두 책상 위에 꺼내 놓으라고 말야."

여자가 그에게 돌아서며 말했다.

", 당신의 이름을 잊었는데요...."

"프래스키 사무실에서 온 사람이라고 말해."

그가 소리쳤다.

"빨리 서둘러! 시간이 없어."

여자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의 뛰듯이 사무실로 들어갔다. 보란은 출납계의 여자가 금고에서 꺼내는 현금을 나무 쟁반 위에 쌓기 시작했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요란스럽게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 지배인인 토머스는 얼굴을 찌푸리며 보란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당신이 누군지 잘 모르겠는데요?"

"몰라도 돼."

보란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생각해서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신은 여기서 오래 일하지 않았잖아."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커다란 강철 문을 가리켰다.

"금고를 열어!"

젊은 남자의 얼굴에는 망설이는 빛이 역력히 나타났다. "당신의 신분증을 보여 주시겠습니까?"

보란은 다시 한번 플라스틱 카드를 꺼내어 아주 잠깐 동안 그의 눈앞에 내밀어 보이고는 다시 집어넣었다. 보란은 갑자기 웃으며 친밀한 얼굴로,

"이봐, 그렇게 긴장할 필요는 없어."

하고 말했다.

"불시에 감사를 나가면 당신들도 정신을 차릴 것이라고 플래스키는 생각하고 있어. 걱정할 것 없어. 자아, 빨리 끝내고 싶으니까 금고를 열어 주게."

토머스는 주저하면서 금고의 번호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가 커다란 손잡이를 돌리자 금고의 문이 열렸다.

"현금은 얼마나 되나?"

보란이 급히 물었다. 출납계의 여자가 지배인에게 종이테이프를 건제 주자 그는 그것을 보면서 말했다.

"42698달러 40센트...."

"잠깐, 그런 숫자를 묻고 있는 게 아냐. <비밀자금>을 말하는 거야, 토머스. 그런 잔돈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아."

보란은 위엄 있게 말했다. 젊은 남자는 눈을 깜박이고는 금고 쪽으로 걸어가서 다시 그 안쪽의 문을 열고 커다란 가죽 가방을 꺼냈다.

"왜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가 불평하며 말했다.

"열어!"

보란이 명령했다. 토머스는 금고 안의 어딘가에서 열쇠를 꺼내어 열쇠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는 보란의 어깨너머로 사무실 복도 중앙에 어색하게 서 있는 두 여자에게 눈짓을 했다. 보란은 그 뜻을 알아차리고 말했다.

"아가씨들은 사무실 밖에서 기다리지."

두 여자는 서로 힐끔 쳐다보고는 밖으로 나갔다. 토머스가 그의 책상 위로 가방을 운반해 놓고 보란을 쳐다보았다.

"나는 당신이 이 돈을 세라는 말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소."

그가 지긋지긋하다는 듯이 말했다.

"모두 얼마지?"

"25만 달러요."

"틀림없겠지?"

지배인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쌓여 있는 지폐 다발의 맨 위에서 한 장의 종이를 꺼내 보란에게 넘겨주었다. 보란은 그것을 읽는 척하며 "! !" 하고는 금고 쪽으로 다가갔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게 정확히 뭡니까?"

토머스가 물었다.

"이리 와보게. 내가 보여줄 테니까."

보란은 그 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그의 멱살을 잡아 금고의 쇠벽에 세차게 머리를 밀어붙였다. 그는 무릎을 꺾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보란은 장부와 서류들을 사무실 바닥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 금고 속의 서류들도 모두 바닥에 쏟아 놓고 현금만 책상 위에 있는 가방에 넣었다. 그는 금고문을 닫은 후 라이터로 바닥에 널려 있는 서류에 불을 붙여 던지고는 가방을 들고 두 여자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나왔다.

"서류를 전부 꺼내어 바닥에 펼쳐놔."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여자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고 서류를 카운터 위에 쌓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리할 필요는 없어."

보란은 거칠게 말했다. 그는 카운터 위의 서류들을 손으로 쓸어내리고는 벽에 붙은 강철 캐비닛의 서랍을 차례로 뽑아 바닥에 내던졌다. 조금 있으면 불은 이쪽으로 타 들어올 것이다. 여자들은 비로소 그가 누구인가를 안 것 같았다. 보란은 한 여자의 손에 저격수의 메달을 쥐어주며 말했다.

"플래스키에게 말해. 맥 보란에게 이런 건 식은 죽 먹기라고 말야. 알겠지?"

"뭐라구요?"

"그렇게만 전하면 돼. 그리고 여기가 불바다가 되기 전에 지배인을 금고에서 꺼내 주는 게 좋을 거야. 그리고 플래스키에게 돈을 잘 쓰겠다는 감사의 말도 꼭 전해."

그는 현금이 들어 있는 가방을 들고 문을 열었다. 기다렸다는 듯이 여자들은 금고가 있는 사무실로 뛰어 들어갔다. 보란은 껄껄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범행의 현장에 다시 나타났으며 그리고 그곳에서 또 하나의 범행을 저질렀던 것이다. 마태들이 이 사실을 알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빼앗긴 돈 때문에 화가 나서 미친 듯 날뛸 것이다. 보란은 마피아를 화나게 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보란은 유유히 걸어가 그의 차에 올라타고는 시동을 걸었다. 그는 집에 돌아올 때까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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