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에서 아침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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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표정은 완전히 바보와 같았다. 입이 벌어지고 두 눈은 빠르게 깜박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카터는 그녀의 놀란 얼굴을 보며 약간 기분이 좋아진 듯했다.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그 한쪽으로 기울어진 미소를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끝내기 전에는 아무도 읽지 못한다고 했잖아요."
금붕어처럼 움직이는 입술 사이로 말이 터져 나왔다.
"아무도 안 돼지. 이번만이 예외요. 난 당신이 잠자는 연인을 읽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길 원하오…… 솔직하게."
"벌써 끝내셨는 줄은 몰랐어요."
"아직은 아니오. 그래서 당신에게 읽어달라는 거야. 마지막 장이 날 아주 힘들게 하고 있소. 당신이 읽고 의견을 말해준다면, 머릿속에 영감이 떠오를지도 모르지."
잠시 후 그녀가 느릿하게 말했다.
"알리시아가 화낼 거예요."
"그녀가 알 리 없소. 적어도 난 당신이 읽었다는 걸 그녀에게 말하지 않을 거요."
곰곰이 생각에 빠진 채 그녀의 눈동자가 그의 얼굴 위에서 정처 없이 헤매 다녔다. 그의 귀를 스치는 반항적인 머리카락에 시선이 머물렀다. 그의 다른 모든 부분처럼, 그곳 또한 만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게 일어났다.
"당신을 위해 원고를 읽어줄 사람은 알리시아가 되어야만 해요."
그의 인생에서 알리시아의 자리를 빼앗는다는 비난은 받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마음에 든다고 할 거요. 그렇든 그렇지 않든 마음에 든다고 말할 거요. 그녀를 비난하는 건 아니오. 진실한 관찰에 의한 거지. 그녀는 내 마음을 상하게 할 모험을 하지 않을 만큼 상냥한 사람이거든."
"내가 그러지 않으리라는 건 어떻게 아나요? 내 생각 대신 당신이 듣고 싶어 하는 것을 말한다면요."
그 순간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깊고 풍부한 소리가 그녀를 따뜻하게 감싸며 행복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한 번도 조심스레 말한 적이 없었소. 내가 특히나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피하지도 않았소. 오히려 화나게 만들 정도였지. 당신이 이제 와서 그러지 않으리라곤 생각지 않아."
그는 그녀의 얼굴에 시시각각 지나가는 우유부단함을 보았다.
"시간을 많이 뺏지는 않을 거요. 밤에 읽으면 되잖소."
그때는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주에는 별로 바쁘지 않을 것 같아요. 당신이 유일한 손님이거든요."
"그것에 대해서 말인데, 나 한 사람만을 위해 주인으로서의 힘든 일과를 반복하지 마시오, 알겠소? 그럴 때의 당신은 사랑스러워. 그렇게 완벽하고 상냥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을 정도요. 하지만 내가 당신을 위해 식사를 준비하도록 해주시오."
그녀가 반대의 말을 하려 들자, 그는 두 손을 올려 저지했다.
"내 말대로 해요. 원고를 읽어주는 데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시오."
"하지만 아침과 저녁 식사는 방값에 포함되어 있다구요."
"그럼 물물교환이라고 해두지."
"당신의 식사가 더 비싼 걸요."
"휴우, 완고한데다 자존심도 강한 여자군. 좋아, 그럼 아침 식사는 당신이 준비하고 부엌에서 먹기로 해. 그리고 저녁 식사는 외출을 하거나 샌드위치같이 준비하기 쉬운 걸로 하자구. 됐소?"
그가 악수하자며 내민 손을 잡아 그녀는 두 번 확실히 흔들었다.
"됐어요."
"도장을 찍어야지. 악수와……."
그가 고개를 숙였다.
"키스로."
그의 입술이 부드러우면서도 강하게 그녀를 덮었다. 격정이 없는 친구로서의 키스가 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의 입술이 닿자마자 그녀의 온몸으로 사랑의 화살이 관통되었다. 그것이 자궁 속 깊이 박히며 몸속의 모든 것을 산산조각 냈다. 두 사람의 입은 열리지 않았고, 혀도 움직이지 않은 채 욕망으로까지 확산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어떤 다른 키스보다도 더 가치가 있는 듯이 느껴졌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마음이 육체적 욕망이 아닌 영혼의 욕구라는 것을 선포하는 것이었다. 그것 또한 절대 허락되지 않는 것인데 말이다. 그 사실이 가장 견디기 힘든 부분이었다.
그의 몸이 떨어져 나갔을 때, 셰리주색 눈동자는 열망으로 흐릿해져 있었다.
"언제 시작하고 싶소?"
그가 목쉰 소리로 물었다.
"오늘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녀의 거절은 모두 예의상이었다는 걸 알았으므로. 그녀가 자신의 원고를 얼마나 읽고 싶어 하는지 알게 되자 그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부풀어 올랐다.
슬론의 마음도 들뜨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아무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갖지 못할 기회를 그녀에게만 부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의 육체나 그의 이름이나 사랑이 아니었다. 지금 그가 주고 있는 것은 그의 인생이 걸린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보다도 그에게 가장 소중한 것임을 그녀는 직감했다.
"흠, 날 애원하게 만들 참이오?"
다음날 아침 부엌 식탁에 앉은 그가 물어왔다. 그녀는 가스레인지 앞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드는 중이었다.
"부엌에 내려온 벌이에요. 아침 식사가 우리 거래 중 하나 아니었던가요, 기억 안 나요? 난 쟁반에 담아 갖다줄 생각이었다구요."
그가 커피를 홀짝였다.
"난 아래층에 내려와도 괜찮을 시간이 될 때까지 몇 시간동안이나 방에서 안절부절못했다고. 어디까지 읽었소?"
"계란 드세요."
그녀가 그의 앞에 접시를 내려놓으며 몸을 살살 흔들었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욕설을 내뱉으면서도, 그는 음식 접시를 공략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더 침착하고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그의 맞은편에 앉아, 똑같이 편안한 옷차림으로 둘만이 이 집에 있다는 것을 그녀는 충분히 만끽했다. 그리고 이것은 일시적인 것이 아니며 알리시아라는 여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환상에 잠겼다.
페어차일드 하우스는 그들만을 남겨둔 채 텅 비어 있었지만 슬론에게 있어 이보다 더 편안한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빗속에 오그라져서 그들 주위로 방어막이 쳐진 듯, 다른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것 같았다.
"첫 장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오?"
입 안 가득 음식을 씹으면서 그가 물었다.
"적어도 1장은 읽었겠지?"
"일기예보에서 적어도 3일은 더 비가 내릴 거래요."
일부러 알아듣지 못한 척하며, 그녀는 비스킷에 잼을 살짝 펴 발랐다.
"좋아, 좋아. 알아들었다구."
그가 투덜거렸다.
"베이컨이나 좀 줘요."
식사를 다 마치자, 그녀는 접시를 싱크대로 가져가 그 위로 뜨거운 물을 붓고는 커피포트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두 사람 잔에 커피를 모두 채웠다.
카터는 안경다리를 엄지손톱으로 톡톡거리며 성마르게 모든 동작을 쳐다보고 있었다.
"첫 장은 아주 훌륭해요."
느긋하게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에야 그녀가 원하는 답을 들려주었다.
그의 어깨가 안도감으로 축 늘어졌다. 하지만 금세 다시 긴장이 되살아났다.
"그 말이 다는 아니겠지?"
그의 안경은 일하지 않을 때면 거의 그렇듯이 머리 위로 치켜 올려져 있었다.
기분 좋게 목안 가득 차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녀가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요. 난 뒤쫓아 오는 남자에 대한 공포로 복도를 달려가는 그 사람이 주인공인 줄 알았어요."
"그런 생각이 들게끔 썼지."
"어둠 속으로 울리는 발자국 소리, 축축하게 젖은 거리와 쿵쾅거리는 심장소리…… 음, 당신이 어떻게 썼는지는 알겠죠, 어쨌든 당신은 그 장면을 완벽하게 표현해 냈다고 생각해요. 그 남자의 공포와 두려움을 나도 같이 느꼈으니까요. 그 남자처럼 내 폐가 터질 것 같았다구요. 정말 놀랐어요……."
"그 남자가 나쁜 사내고 쫓아오던 사람이 주인공이란 걸 알았을 때."
"그래요! 아주 절묘하게 영리한 트릭이었어요. 독자들이 좋아할 거예요. 하지만……."
"하지만 뭐?"
그의 목소리에 근심이 서렸고, 그녀는 사뭇 몸서리를 쳤다.
"하지만 살인 장면을 그렇게 잔인하게 피투성이로 만들 필요가 있었을까요?"
그가 씨익 웃었다.
"그건 살인이 아니라 사형 집행이었소. 그 자는 무수한 잔학행위를 저지른 나치였지. 게다가, 주인공은 영웅적일 뿐만 아니라 위험스럽기도 해야 하오. 희미한 것 이상의 색조가 있어야지. 내 독자의 대부분은 남성들이오. 책이 그들의 환상을 대신해주지. 게다가 누군가의 머리가 .357 매그넘에 맞아 벽에 부딪혔다면, 내가 쓴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할 거요. 그걸 실제적으로 묘사할 방법은 없어."
그녀가 힘겹게 침을 삼켰다.
"당-당신…… 그런 장면 본 적 있어요?"
"응. 친구 녀석 하나가 FBI에서 일하는데, 내가 그런 걸 알고 싶다고 했더니 다음에 전화해서……."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그는 미소 지었다.
"좋아. 거기까지 읽었소? 1장?"
"4장까지요. 아주 재미있었어요, 카터."
"그래? 정말이오?"
"정말이구말구요. 맹세해도 좋아요."
그녀는 아이들이 하는 식으로 가슴에 십자가를 그렸다. 하지만 풍만한 가슴 둔덕 사이 그녀의 손가락을 따르는 그의 눈, 그 속의 번득임은 가장 어른스런 것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눈을 그는 억지로 가슴에서 떼어내 그녀의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상태가 엉망이라는 거 알고 있소. 제대로 읽을 수 있었소? 여기 도착해서부터 수없이 수정을 했거든. 마지막 장이 제대로 안되니까, 복수라도 하는 심정으로 다른 부분을 공격했었소."
"어떤 부분에서는 편집기호들을 따르기가 어렵긴 했어요, 하지만 해독을 해냈답니다. 이야기는 대단히 빠르게 진행되고 당신은 주인공을 불가능한 상황 속으로 몰아넣었죠. 그를 어떻게 그 상황에서 빼낼지 알고 싶어 몸살날 지경이었어요."
그녀의 얼굴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생기가 갑자기 가면을 치워버린 것처럼 가라앉았다.
"주인공이 죽지는 않겠죠, 그렇죠?"
그녀의 걱정을 알자 그가 낄낄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주인공은 죽지 않을 거요."
"그렇다면 얼른 뒷부분을 읽어보고 싶네요. 오늘 일할 계획이세요?"
"그렇소. 당신이 읽기 전에 6장을 좀 수정할까 해."
얘기하는 도중 식탁은 이미 깨끗해져 있었고 지금 그녀는 설거지 기계에 접시들을 넣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뒤에서 볼 때 그 자세가 얼마나 자극적인지 그녀는 모를 것이었다.
"왜요?"
"당신이 영감을 불어넣었거든."
그녀가 홱 돌아섰다. 얼룩 하나 없는 마루로 손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제가요?"
"청바지 입은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말한 적 있었지. 그걸 책속에 담고 싶소."
그녀는 수건에 손을 닦으며 감히 카터의 눈을 마주볼 수 없었다.
"다른 손님들이 없는 데다가 샤워기 하나를 고쳐야 하기 때문에 입은 것 뿐이에요."
"청바지 입은 모습이 엄청 섹시하다고 해서 사과할 것 없소, 슬론."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녀는 수줍게 귀뒤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난…… 난…… 엄청…… 섹시하다고 생각지 않는 걸요."
그의 시선이 방 건너편에서 쏟아져 그녀를 꼼짝 못하게 묶어두었다.
"알아. 당신은 모를 거요. 그래서 더 섹시한 거지."
밍크 장갑을 연상시키는 목소리로 말하지만 않았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견딜 수 있었을지 모른다. 잡지 뒷페이지에 나온 광고를 본 적이 있었다. 그 장갑은 장난감이었다, 섹시한 장난감. 서로 다른 사람을 마사지하는 동안 낄 수 있도록 연인들을 위해 디자인된 것이었다. 카터의 목소리는 그것이 귀를 간지럽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살갗 위에 미끄러지는 밍크의 촉감.
그것이 맨 살갗의 배와 허벅지 사이로 들어오는 상상을 애써 지우면서 그녀가 더듬거렸다.
"책에…… 내…… 음…… 청바지를 어떻게 사용할 건데요?"
"5장 마지막 부분에 그레고리가 어깨에 총을 맞는 부분이 있소. 그는 스위스 계곡의 미로속을 헤매 다니지, 열로 혼미해진 채 고통스럽게. 리사, 4장에서 둘이 만났었지, 그녀가 그를 따라오고 있었소."
"그 부분은 읽었어요."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피를 너무 많이 흘려 기절한 그를 그녀가 자기 아파트로 옮겨 상처를 치료해 주게 돼. 그는 며칠 동안 혼수상태에 빠졌소."
그가 자신을 비판하듯 어깨를 으쓱했다.
"흔한 얘기지, 하지만 효과적이오. 어쨌든, 그의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할 때, 난 그녀가 천사처럼 그의 위에 고개를 숙인 자세를 설정했소. 그는 일어나 앉으며 여자의 가슴에 얼굴을 묻지, 살아 있는 건지 확인하려는 것처럼. 그는…… 음…… 글쎄, 그녀에게 육체적으로 반응을 일으켰고, 그걸로 죽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었소."
"잘못된 건 없는 것 같은데요."
슬론은 넋을 잃고 그를 쳐다보았다. 의자에 앉아 있는 그에게 홀린 듯 걸어가며 그 강렬한 눈에서 시선을 떼어내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괜찮긴 하지."
카터가 다소 거칠게 목기침을 해댔다.
"하지만 그 대신, 그가 눈을 뜨고 첫 번째 보는 것이 딱 달라붙은 청바지를 입은 대단히 여성적인 엉덩이가 되면 어떨까 생각 중이오. 리사는 그의 발이나 그 주위에 이불을 덮어주려고 침대 끝에 몸을 숙이고 있을 수도 있을 거야. 그래, 바로 그거야."
그는 자신의 영감에 만족스러운 듯이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열이 났기 때문에 정신이 들기 시작했을 때, 이불을 걷어차 버렸거든.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엉덩이를 만져…… 그게 거기 있다는 걸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꿈의 일부임에 틀림없다는 듯이."
카터는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옮겨, 슬론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만졌다.
"그는 그걸 애무하지. 동그랗고 탱탱해.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스치는지를 알고 그대로 서 있어주는 거야, 그가 살아 있다는 걸 스스로 확신할 수 있도록 놔두는 거야."
카터는 그녀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리듬감 있게 주물렀고, 슬론은 그의 말과 그의 손길에 도취된 채 불안정하게 몸을 흔들었다. 본능이 그녀의 손을 들어 올려 그의 머리에서 안경을 치워냈다. 열심히 마호가니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위로하듯이 그의 눈썹을 쓰다듬었다. 마치 고열에 시달린 장본인이 바로 그인 것처럼.
"그 다음에 그는 손을 그녀의 앞으로 돌려 누르지…… 여기를."
그가 그녀의 배 부분을 보았다. 허리춤에는 투박한 셔츠의 옷자락이 묶여 있었다. 그의 손이 청바지 지퍼를 따라 흘렀다. 중지 끝이 단추에 닿고, 손등은 부드럽게 부풀어 있는 소중한 곳에 내려앉았다.
"결국."
그의 홀리는 듯한 목소리가 계속되며 관능의 거미줄 속에 그녀를 꼼짝없이 가둬두었다.
"그는 청바지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려."
그의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말은 실지 행동보다도 더 강력했다. 슬론은 두 눈을 감았다. 그 광경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지퍼를 천천히 내리지, 조그만 팬티의 고무줄이 보일 때까지. 그는 반쯤은 재미있는 듯이, 반쯤은 두려운 듯이 미소를 지어. 왜냐하면 이것이 아직도 환상일 수 있으니까. 그 다음에 손가락으로 그녀의 살결을 만져보는 거야, 배를 쓰다듬어 보지. 그녀의 피부가 생명력 있게 떨리고 그 떨림은 그의 손가락을 통과하여 그가 살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거야. 낮은 신음소리를 내며 그는 몸을 일으켜 앉고 나서 그녀에게 머리를 기대. 입술을 여자의 살에 눌러보는 거야, 너무나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좋은 향기가 나는 그곳에. 그녀의 배꼽에 키스하며 혀를 그곳에 밀어 넣는 거야."
자신도 모르게 슬론의 입에서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그의 손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고 그녀도 옷을 입은 채였지만, 그 속의 살갗이 반사적으로 떨리며 축축한 그의 혀가 배꼽 위에 닿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코를 비비며, 이로 팬티를 물어 그 자락을 따라 혀를 굴리지.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는 거야. 그녀가 환상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머리를 베개 위에 눕히며 손을 침대로 떨어뜨리지."
카터의 손이 그녀에게서 떨어져 옆으로 느슨하게 흔들렸다. 그녀는 윤기 나는 머릿속을 헤매 다니던 손을 그의 관자놀이에서 떼어냈다.
카터의 한숨은 대단히 평화로웠고 그의 속삭임은 자장가였다.
"그리고 두 눈을 감고 잠이 들어. 그녀가 존재하기 때문에, 그녀가 실지 인물이고 그와 같이 있기 때문에 자신은 살아나리라는 걸 믿으면서."
고요 속에 시간이 똑딱똑딱 흘렀다. 이윽고 그는 환상에서 깨어나며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꿈속의 여신이 된 기분 어때?"
"영광이에요."
가늘고 낮은 대답이었다. 그녀는 약간 몸을 흔들며, 그가 흠뻑 감싸버린 관능의 망토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다리가 꺾일 것만 같아 그녀는 재빨리 식탁에서 비틀거리며 물러섰다. 둘 사이에 공간을 만드는 것이 꼭 필요했다.
"하지만 이 여신은 고쳐야 할 샤워기가 있고 손봐야 할 커튼대가 있답니다."
그것은 슬론으로서 일을 올바로 정리해 보려는, 감정의 폭풍우를 씻어버리려는 용감하고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하지만 떨리는 입술과 눈물로 반짝이는 눈동자를 여전히 어찌할 수 없었다. 그녀는 마음을 붙들어 매고서 그 원인에 열심히 대항할 뿐이었다.
그가 자비를 베풀었다. 현실로 전개되기 전에 환상을 마무리 지으려는 그녀의 안내를 따라, 마지 못해서지만 하여튼 그도 똑같은 허세를 부렸다.
"그리고 이 작가는 수정해야 할 작품이 있지."
그들은 각자의 일로 돌아갔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들이 경험했던 장면외의 다른 것에 집중할 수 있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다.
"이건 미친 짓이에요, 카터."
"그러지 말라구. 조금만 더 가면 돼. 모험 정신은 다 어디로 간 거야? 한밤의 영상을 보는 거라구. 와, 멋진 제목 아니야? 카터 매디슨 저, 한밤의 영상. 마음에 들어. 상상해 보라구, 나이 드신 할머니. 거의 다 왔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건 내리는 빗속의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어디에 다 왔단 말이에요?"
"산 정상의 벤치."
그가 아래층으로 내려와 코트와 모자를 챙겨 따라오라고 말했을 때는 이미 어둠이 내린 뒤였다.
그녀는 그의 말을 기꺼이 따르며 차를 몰고 가자던 그의 고집에도 재미있어 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그는 편의점에 들러 빵과 적포도주 한 병, 치즈와 콜드 컷(냉동 고기와 치즈로 만든 요리)을 샀다.
그들은 금문교를 지나고 나서 소솔릿 사이드에 도착하자마자, 왼쪽으로 꺾어져 길고 칠흑같이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그 후에는 또 해안이 어렴풋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을 굽이굽이 올라갔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야 해."
브레이크를 걸며 그가 말했다.
"걸어요?"
믿을 수 없는 듯한 째지는 목소리가 그녀에게서 터져 나왔다.
"어디로?"
"꼭대기로."
이제 그는 차갑고 딱딱한 벤치 위에 나란히 그녀를 내려앉히며 팔을 크게 내둘렀다.
"페어차일드 양, 당신 앞에 샌프란시스코의 가장 멋진 광경이 펼쳐져 있소."
그들의 오른편 약간 뒤쪽은 바로 태평양이었다. 검고 험악하며 안개로 싸인 바다. 지독히 험상궂은 날씨를 거부하는 듯 흔들리는 보트와, 예인선의 크고 탁하면서 슬픔에 잠긴 듯도 한 부우웅 소리들이 어둠 속에서 울려 퍼졌다. 그들 앞의 왼쪽으로는 샌프란시스코 시내가 언덕 위에 솟은 보석처럼 자리를 잡았다. 슬론이 앉은 자리는 금문교의 윤곽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소였다. 다리의 불빛들이 흐릿하면서도 널리널리 퍼져가는 것 같았다.
"안개와 비로 완전히 가려진 샌프란시스코의 멋진 광경이군요."
그녀가 볼멘소리를 냈다.
"볼로냐 하나 먹으면 기분이 더 나아질 거야."
입술 뒤에 간신히 웃음을 숨기며 그가 동정하듯 말했다.
그들은 딱딱한 빵을 한 입씩 깨물었다. 이로 찢어낸 다음 습기를 피할 수 있도록 슬론의 판초 아래 넣었다. 치즈 덩이가 병 속의 포도주와 똑같이 흔들거렸다.
"오늘 오후에는 좀 읽었소?"
무심한 척 그가 캐어물었다.
"네. 다른 때 같으면 요리하고 청소할 시간에 책을 읽는다는 게 솔직히 죄스러웠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나 매혹되어서 어쩔 수 없었다구요."
"좋아. 이따금씩 죄스러울 만큼 방종해지는 것도 사람 몸에 좋다구. 이상적인 기상 조건은 아닌 게 분명하지만, 당신도 외출할 필요가 있었어. 어때, 즐겁소?"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나른하게 웃었다.
"네. 아주 멋진 시간이에요."
그는 그녀의 입술을 보았다. 자신에게 강요한 경계심과 엄숙함이 없이, 자연스럽고 솔직하게 웃을 때의 그녀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어둠 때문에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그녀의 입술에 와인이 묻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의 입술에서 와인을 핥는 것보다 더 맛있고, 더 도취되며 더 섹시하게 자극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었다.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마음을 그곳에서 떼어냈다.
"책은 어땠소?"
"대단히 재미있는 읽을거리에요, 카터. 눈물을 자아내기도 하구요."
"수정하기 전에는 그렇지 않았소. 계속해 봐요."
"아주 마음에 들어요. 당신의 최고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이오?"
"진심이에요. 마음에 걸리는 곳은 한 군데뿐이에요."
그녀는 판초 속으로 더 깊이 몸을 묻었다. 등에 닿는 대양의 바람이 몹시도 쌀쌀했다.
"추워?"
"약간요."
"이리 와 봐요."
그가 그녀를 벤치에서 일으켜 자기 무릎으로 앉혔다.
"내가 방패막이가 돼 줄게. 몸을 뻗어보라구."
그는 벤치 뒤에 어깨를 기대어 반쯤 누운 자세로 긴 다리를 쭉 뻗었고, 그녀는 몸을 움직여 차츰차츰 그에게 몸을 실었다.
"어때?"
그가 귓가에 대고 물었다.
비에 젖은 귀에 닿는 그의 숨결이 뜨거웠다.
"나아졌어요."
그 정도가 아니라 행복했다. 내리는 빗줄기와 추위와 시원찮았던 저녁 식사에도 불구하고, 평생에 이렇게 편안하고 충만하며 기분 좋았던 적은 없었다.
"와인 한 모금 더 마셔."
그녀의 팔 아래로 병을 건네주며 그가 재촉했다. 이미 머리가 윙윙거리고 몸은 감미로운 혼수상태로 무거웠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그녀는 어쨌든 그의 말을 따라 길게 한 모금 들이켰다.
그의 팔이 판초 밑으로 들어와 그녀를 더 꼭 끌어안았다. 그의 딱딱한 부분이 엉덩이 사이의 틈에 단단하게 닿았다.
"어느 부분이 신경 쓰이지?"
지금의 들뜬 정신으로 조리 있는 생각을 해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이렇게 자극적인 자세에서 어떻게……. 하지만 그녀의 입술이 뇌에서 전달하는 단어를 조심스레 뱉어냈다.
"폭력주의자들에게 도망친 후 그가 여자를 위로해주는 장면 있잖아요?"
"낡은 여인숙에서?"
생각에 잠긴 손가락이 그녀의 배를 두들겨댔다. 그녀의 목구멍이 동물적인 기쁨의 신음을 억제하느라 고통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래요. 음, 당신이 그 부분을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녀의 말이 뒤죽박죽 엉켰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 감히 당신에게 이렇다 저렇다 하겠어요? 글 쓰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기분 상하지 않았소. 내가 부탁한 거니까 계속해 봐요."
그의 손이 그녀의 가슴 바로 아래 놓였다.
"리사의 감정은 표면으로 폭발하기 직전이에요. 그녀는 위협을 당했고, 자신의 생명과 그레고리의 생명을 걸고 탈출하는 엄청난 경험을 했어요."
그의 손이 살짝 움직였다. 입을 틀어막았다 해도, 그보다 더 효과적으로 그녀의 말을 중단시킬 수는 없었을 것이었다.
"계속해."
그 중얼거림은 귓가에 부는 공기 한줌보다도 더 가늘었다.
"그-그 장면, 자신의 아이가 폭동 속에서 죽었다는 걸 알고 난 후에 그녀를 위로하는 장면……."
"우-후."
그의 입술은 이제 귓불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키스는 아니었지만, 그녀의 내부를 온통 휘저을 정도로 충분히 유혹적이었다.
"당신은 그 장면을 아름답게 처리했어요. 그때는 그게 필요했겠죠. 낭만적이지 않은 위로. 하지만 난 위로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해요."
"무슨 뜻이지?"
"그는 그녀를 껴안고 있었죠. 그녀는 거의 미칠 듯이 그에게 매달렸구요. 그때 그는 키스만 하고 그녀를 잠재워 주었어요. 그녀가 더 이상의 것을 원하지는 않았을까요……?"
"성적인 어떤 행동을?"
그녀의 심장이 콩당거렸다. 그제서야 그의 손바닥이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손가락이 풍만하고 부드러운 언덕을 감싸자 젖꼭지가 그의 손바닥 안에 갇혔다. 스웨터를 통해서조차도 그의 불타는 열기가 몸속으로 전해지며, 그 열기는 그의 이름을 가슴에 낙인찍어 놓았다.
"네."
그녀의 대답은 가장 가냘픈 숨소리와 같았다.
"그녀는 내부에 폭발하려는 감정에 대한 긍극적인 배출구를 찾을 거예요. 가장 험난한 방법으로 둘 다 살아난 사실을 축하하고 싶었을 거예요."
"두 사람이 섹스하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오?"
"네. 빠르고 격렬하게, 거의 야만스러울 정도로."
한마디 한마디를 뱉을 때마다 자신의 근육이 단단하게 응축된다는 걸 그녀는 몰랐다. 그녀가 상상하는 장면의 정열에 반응하는 것을. 카터의 무릎에서 엉덩이가 죄어들며 그의 날카로운 숨소리를 들을 때까지는.
"이런……."
그는 고약한 욕설을 내뱉으며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맙소사, 슬론, 당신이 무슨 짓을 하는지 모르는군."
그는 필사적으로 자제력을 찾으려 애썼다. 목덜미에 닿는 그의 숨결이 뜨겁고 난폭했다. 그녀도 또한 혼란 속으로 돌진하는 감각과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무척이나 힘겨운 노력을 기울이는 중이었다.
마침내 그 광포한 동요가 가라앉자, 그가 그녀의 목에 입을 맞췄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키스였다.
"아주 좋은 충고요, 슬론, 아주 훌륭해."
그의 손가락이 약간 굽어지자 그녀는 증가하는 압력 하에서 젖꼭지가 딱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효과가 있을 거요. 그레고리는 그녀에 대한 걱정으로 물러났던 거였지. 무사히 탈출했다는 걸 드디어 깨달았을 때, 난 리사에 대한 그의 욕망이 대단히 컸음을 묘사한 바 있소."
그녀는 웃음이 터져 나는 입을 막으며, 마음속에 떠오른 그 이중적인 의미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카터가 눈치 채지 못하길 바라면서.
하지만 그는 물론 눈치를 챘다. 그녀의 귀에 입술을 대며 외설적인 어조로 속삭였던 것이다.
"이상한 생각을 하는군, 페어차일드 양. 내가 선택한 단어가 우스운가?"
그녀가 다시 낄낄거렸고 그도 또한 같이 웃었다.
"당신은 취했어. 존경할 만한 페어차일드 하우스의 새침하고 단정한 주인께서 진짜 취하셨다구. 설마, 이상한 생각을 하는 건 아니시겠지."
그가 일어서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폐렴 걸리기 전에 집으로 모시는 게 좋겠어."
아까의 긴장감이 사라졌다는 것에 둘 다 안심을 했다. 하지만 그의 팔은 날카로운 자갈 비탈을 내려가면서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잡고 있었고, 차에 도착했을 때 그는 소리가 날 정도로 쪽 하고 키스해 주었다.
"도와주어서 고맙소.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장면을 손봐야겠소."
그들의 비정상적인 소풍은 지나고 그들은 전처럼 일상적인 생활로 되돌아갔다.
다음날 부엌에서 같이 아침 식사를 한 후, 카터는 위층의 타자기로 돌아갔고 슬론은 은접시를 닦기로 결정했다. 틈나는 대로 원고를 조금씩만 볼 작정이었는데 그녀는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을 쏟아 붓고 말았다. 카터가 창조해낸 이야기와 그 주인공들에 흠뻑 매료되었던 것이다.
오후 언제인가 커피를 한잔 마시러 내려온 카터가 밖에 나가서 저녁을 들자고 선언했다.
"이번엔 건물 안인가요?"
그녀가 비판적으로 대꾸하자, 그녀를 지나쳐 위층으로 향하면서 그가 재빨리 입을 맞추었다.
"건물 안. 테이블과 의자와 기타 모든 것이 갖춰진 장소."
그날의 나머지 시간을 그녀는, 아주 오랜만에 자신을 위해 서슴없이 할애하였다. 손톱과 머리를 다듬고, 오일 섞은 물 속에서 오래도록 목욕을 즐기고, 또한 가장 좋은 드레스를 다림질했다. 불가사의한 그녀의 눈동자색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드는 잔잔한 파란색조의 울 저지 드레스였다.
촛불 밝힌 테이블 너머로 그녀를 쳐다보면서, 카터는 그 사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선택한 곳은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 피어 39번가의 레스토랑이었다. 돛단배와 모터보트들이 물속에서 힘없이 흔들리는 모습은 비로 어두워진 밤에 쓸쓸하게 버려진 듯한 풍경이었다.
"카터, 결혼한 적 있어요?"
"아니, 결혼한 적은 없소. 그럴 뻔한 적은 한 번 있었지만."
"왜 결혼까지 가지 않았나요?"
그녀의 볼에 불현듯 빨간 기운이 떠올랐다.
"말하지 않아도 돼요."
그녀가 얼른 덧붙였다.
"내가 왜 물었는지 모르겠네."
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장난스레 꼭 쥐었다.
"당신은 알고 싶었던 거야. 나 또한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고. 사실, 내가 아직까지 독신인 데에 가슴 아픈 비밀 같은 건 없소. 그 여자는 명랑하고 아름다운 여자였소. 돈 많은 고객 리스트를 가진 장식가였지. 그녀는 내가 건축학 학위를 이용해서 큰돈을 벌어들이길 바랐소. 열심히 놀고 즐겁게 살 수 있을 만큼의 돈을. 하지만 난 돈 한 푼 벌지 못한다 해도 글을 쓰고 싶었어, 그렇게 열심히 놀고 마음껏 즐기는 걸 원하지 않았지.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서로 다른 것을 원했고 조화되지 못한 목표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헤어진 거요."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아요?"
"쾌활하고 잘생긴 외과의사와 결혼해서 원하던 대로 살고 있지."
"하지만 그 쾌활하고 잘생긴 의사는 당신만큼 잘 벌지 못할 걸요."
그녀의 노래하는 듯한 목소리에 그가 짐짓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눈썹을 치켜 올렸다.
"페어차일드 양, 이거 놀랐는걸. 당신의 흠 없는 성품에 그렇게 심술궂은 경향이 있었소?"
그들은 웃음을 터뜨리면서 커피를 더 드릴까 물어오는 웨이터의 제안을 거절했다. 주차장까지 인도교를 걷다가 문득 그녀가 말했다.
"당신이 건축에 관심 있는 줄은 몰랐어요."
"5년 동안 그걸 공부했지, 작가가 되겠다는 소망을 야망 없는 도피로밖에 생각지 않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기 위한 지루하고 긴 세월이었소."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지금은 내 책을 트로피처럼 선반에 전시해 놓으시지. 부모님은 팜스프링스에 살고 계셔. 아버님은 은행에서 일하시다가 은퇴하셨지."
"그분들을 사랑하세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오랫동안 그녀를 살폈다. 그리고 나서 조용히 말했다.
"그렇소. 그분들이 나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분들은 유일한 자식에게 부모 노릇하는 방법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셨기 때문에 그분들을 사랑하오. 그분들의 결점도 수없이 보았었지, 화도 나고 내 꿈을 비웃을 때는 진짜 미칠 것 같았소. 하지만 이제 난 내가 이룩한 것에 대해 약간의 신뢰를 갖고 있고, 그렇지 못했던 그분들을 비난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소."
그녀가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어딘가 설교가 담긴 것 같은 걸요?"
그의 입술 한쪽이 미소로 올라갔다.
"당신은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눈치도 빠르군."
그의 표정이 변했다.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 진지하게 덧붙였다.
"부모님이 애정을 나타낼 능력이 없다고 해서 당신이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오, 슬론.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그분들 잘못이었소. 그분들은 당신의 사랑을 스스로 저버린 거요. 그 이유 때문에 당신 자신을 저버리지는 말아요."
눈물이 그녀의 속눈썹에 맺혀 반짝였다. 그리고 속삭이는 입술이 바들거렸다.
"고마워요."
발끝을 올려, 그녀가 그의 뺨에 힘껏 입을 맞췄다.
그의 눈동자는 캄캄한 어둠 속에 불타는 횃불과 같았다.
"별 말씀을."
눈물로 인해 마지막 몇 줄이 흐릿해보였지만 그녀는 끝까지 그 날카로운 글을 죄다 읽어냈다. 무릎에 종이뭉치를 내려놓았다가 충동적으로 다시 가슴에 끌어안았다. 어차피 지금보다 더 구겨질 수는 없을 터였다. 종이의 사방 구석들이 꼬깃꼬깃했다. 여백에는 빨간 표시의 삭제와 첨가의 글들이 휘갈겨 있었다. 하지만 거기 쓰여진 내용은 은접시에 조각한 그림보다 더 아름다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후, 카터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잘 자라는 인사를 고하며 위층으로 올라갔었다. 상자에 담겨 있는 나머지 원고들이 너무나 유혹적이었으므로, 그녀는 벨루어 로브를 갈아입은 다음 응접실에서 그것을 집어 들었다. 외출하기 전에 꺼놓았던 불을 다시 지피고 담요로 몸을 감싼 채 그녀는 넓은 의자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작은 전등 하나를 테이블 위에 켜놓았지만, 책의 마지막 장면으로 빠져들었을 때는 방 안의 모든 것들이 망각 속으로 흐려졌다. 마치 삼차원의 세계에 빠져 있는 듯이.
그가 창조한 주인공들이 책 속에서 살아 숨쉬고 있었다. 슬론은 리사와 그레고리를 사랑하게 되어 버렸다. 사실 책의 마지막에 가까워질수록, 리사의 생각하는 것이나 삶에 반응하는 방법들이 그녀와 점점 더 흡사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카터의 방에서 일어났던 그 장면이 표현된 부분에서는 이미 읽었다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그녀가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음에도, 카터는 그녀의 애매모호한 의미와 감정과 육체적인 지각을 간파해냈다. 그녀 자신의 말인 것처럼 아주 날카롭게.
어떻게 그녀에 대해 이리도 잘 알 수 있었을까? 그녀가 품었던 은밀한 생각들이 리사의 생각 속에서 생생히 드러났다. 자신만의 깊은 곳을 뻔뻔스레 침입 당했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질 법도 한데 오히려 속박을 풀어버린 자유로움이 전해지는 것은 왜일까.
카터는 보호막을 쳐놓은 그녀의 신중함 뒤에 숨겨진 진짜 모습을 보았다. 그레고리가 리사의 비밀을 이끌어낸 것처럼, 카터도 또한 슬론 페어차일드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던 것이다.
그는 그녀의 영혼을 읽고 만졌으며, 날카로우면서도 달콤한 단어들로 표현해냈다. 같은 심장을 가졌다 해도 그에게 이보다 더한 친밀감을 느낄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의 영혼이었다.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일부…….
그녀의 눈이 무슨 신호라도 받은 듯 그를 찾아냈다. 문 옆의 어둠 속에 웃옷을 벗은 채 맨발로 그는 서 있었다. 저녁 식사 때 입었던 검은 바지 차림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그의 표정은 전혀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카터는 이제까지 이보다 더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담요를 말고 의자에 앉아 있는 아이같은 모습. 발을 몸 아래로 끼워 넣은 자세는 순진한 소녀와도 같았지만, 넋을 잃은 표정은 성숙한 여자의 그것이었다.
그의 심장이 목까지 튀어 올랐다. 자신의 마지막 원고가 그녀의 가슴에 안겨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하루종일 리사의 느낌들을 종이에 정확히 올바르게 옮겨보려고 무던 애를 썼었다. 슬론이 과연 자신의 모습을 알아차렸을까?
눈물이 맺혀 있는 걸까? 불빛 속에서 그것이 다이아몬드처럼 반짝거렸다. 그녀의 머릿결이 불꽃과 같이 살아났다. 뒤로 넘기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내버려두었음을 알았지만, 다시 완고하게 묶어버릴까 봐 찬사의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헝클어진 곱슬머리 사이사이로 벽난로의 불길이 내비쳤다. 그곳에 손을 녹이고 싶다고 그는 간절히 열망하였다.
그녀가 조심스레 상자 속으로 종이뭉치를 내려놓았을 때도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담요에서 다리를 풀어 일어섰을 때도 움직이거나 입을 열지 못했다.
그녀의 손이 로브의 지퍼로 올라갔을 때 그의 맥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지고 뿜어나오는 거친 숨을 어쩌지 못하여 입술이 살짝 열렸다.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고리를 잡아 아래쪽으로 움직여갔다. - 맙소사! - 배꼽을 지나갔다. 로브 사이로 그녀의 맨살이 가느다란 끈처럼 드러났다. 그것은 지극한 사랑의 눈길로 쓰다듬어졌다. 우아하게 긴 목, 가슴 사이의 계곡, 안쪽의 풍성한 곡선, 배를 가르는 홈, 움푹 들어간 배꼽, 그리고…….
그늘진 신비의 계곡에서 들어 올린 그의 눈동자가 그녀의 눈에 고정되었다. 그녀는 어깨에서 로브를 털어내어 발목까지 떨어뜨리며 유혹적으로 미소 지었다.
그의 입에서 벌거벗은 완벽한 나신에 대한 찬사의 속삭임이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왔다. 그녀는 생명을 불어넣고, 불꽃을 주입한 비너스였다. 너울대는 불길이 외설스러울만치 그녀의 몸을 핥아댔다. 그 황금빛 불길이 닿는 곳마다, 자신의 손, 입술, 혀로 철저히 알아보고 싶었다. 그는 사랑으로 충만하게 부풀어 올랐다. 자신에게 그녀의 몸 속에 들어가길 허락할 정도로 강렬하게.
그녀의 애절한 속삭임을 듣기도 전에 그는 이미 그녀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카터, 날 사랑해줘요."
7
"물론이야, 내 사랑, 기쁘게 사랑할 거야."
그는 그녀에게 손을 뻗어 꼭 잡았다. 두 손을 엉킨 머릿속으로 넣어 입술을 올리고 열렬하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입술이 부드러운 소유욕을 표현하며 그녀에게 비스듬히 닿았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당신은 모를 거야. 당신의 모습, 아름다운 몸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입술에 닿는 그의 말들은 사랑의 노래였고, 숨결은 따뜻하기 그지없는 사랑의 깃털이었다.
"당신의 입술은 너무나 달콤해. 그걸 맛보게 해줘."
그는 촉촉한 입술로 그녀의 입을 잘근잘근 물었다. 혀가 구석구석을 탐험한 다음 그녀의 풍성한 아랫입술을 따라 미끄러졌으며 그녀의 입술을 열고서 거의 짓뭉개듯이 그 가는 선을 정교하게 살폈다.
그녀의 입에서 성급한 흐느낌이 새어나오자, 그가 약간 고개를 들어 장난스레 놀려댔다.
"화끈한 바람둥이시군."
"그래요, 그래요. 당신 때문에 그래요. 키스해 줘요."
그의 목에 팔을 감으며 그녀는 그에게 몸을 바짝 밀착시켰다. 그리고 진심으로 환영하는 듯 마음껏 몸을 비벼댔다. 그의 눈동자가 짙어지며 볼 근육이 경련을 일으켰다.
강한 손이 그녀의 엉덩이에 펼쳐지며 더 힘껏 끌어안았다. 그의 입술이 입술 위에서 열리자 그녀의 몸에서는 길고 응축된 한숨이 터져났다. 그의 혀가 자신을 주장하며 입을 뚫고 들어와 충만히 채워주고 정열의 배출구를 찾아 헤매 다녔다.
그녀의 탐욕스런 손이 그의 머리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검게 그을린 등의 물결치는 근육을 어루만졌다.
계속해서 그의 혀가 공격을 감행했고, 매번 더 깊이 있게 휘몰아쳤다. 그녀는 전혀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
마침내 산소가 필요할 정도가 되자 두 사람의 가슴은 거세게 들먹이고 있었다. 거친 헐떡임을 교환하며 그들은 입술을 맞대었다.
그녀는 그를 오래 쉬도록 놔두지 않았다. 자신의 혀끝으로 그의 혀를 간지럽히며 기운을 북돋았다. 그의 혀가 다시 입속으로 들어 올 때까지. 이번에는 그녀가 공격자였다. 달콤한 입으로 혀를 단단히 감아 유혹적인 리듬으로 빨았다.
그의 가슴에서 울리는 그르렁거림을 가슴으로 흡수하며 그녀는 그를 이렇게 기쁨으로 몰고갈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환호했다. 그가 놀라움으로 고개를 홱 젖혔다.
"맙소사, 슬론. 내가 이 분야의 대가인 줄 알았는데."
"당신이 내 선생님이에요."
그녀의 손가락이 그의 젖은 입술과 광대뼈와 눈썹으로 흘러갔다. 마음속에서부터 번지는 사랑으로 그녀의 눈에서는 빛이 번쩍였다.
"나에게 가르쳐 주세요."
깊고 깊은 사랑의 메시지를 담아 그의 눈동자가 그녀에게 파고들었다. 담요를 들어 그가 불길로 따뜻해진 양탄자 위에 깔았다.
"여기 누워."
그가 부드럽게 명령했다.
그 말에 순종하면서도, 그녀의 눈은 옷을 벗는 그를 절대 떠나지 않았다. 그의 손이 허리띠로 향했고, 그녀는 금버클을 푸는 그를 지대한 관심으로 지켜보았다. 다음에는 단추에 그 다음에는 지퍼에 그의 손이 옮겨갔다. 나긋나긋하고 유연한 동작으로 그는 바지와 속옷을 모두 벗어던진 채 그녀의 위에 섰다. 벌거벗고 발기한 몸으로 자랑스럽게.
그는 조금의 후회나 혐오나 주저함이 있는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사춘기 이래로 지금처럼 자신의 매력에 대해 확신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런 감정은 그답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는 그녀가 남자에게 항상 바라왔던 가장 이상적인 남자이고 싶었다. 그녀가 싫어한다면, 그를 거절한다면 어쩌지?
하지만 그녀의 눈 속에서 본 것은 사랑받길 기다리는 여자의 빛나는 표정뿐이었다. 그는 몸을 눕히며 그녀를 밑으로 끌어당겼다. 두 사람의 몸이 오랜 세월 익숙해진 것처럼 편안하게 그리고 청룡열차를 타는 기대감 어린 흥분으로 어우러졌다.
"오랫동안 이러고 싶었소. 당신과 같이 벌거벗고 눕고 싶었어. 내가 느끼는 것처럼 당신도 아주 좋은 기분이라고 말해줘."
그의 입술이 그녀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더듬었다.
슬론은 그의 몸무게를 느끼며 그 쾌감으로 눈을 감았다.
"환상적인 기분이에요."
목과 어깨 사이의 움푹한 곳에 그가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의 머리끝에서 목덜미까지 덥수룩한 머리카락을 길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이 그의 어깨에서 매끄러운 등까지 내려갔다. 단단한 근육과 따뜻한 살결. 살짝 패인 곳이 있고 나서 바로 엉덩이의 탄탄함이 느껴졌다. 이 남자의 남성다움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주 딱딱해요."
그녀가 놀라움에 찬 찬탄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그의 낄낄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우-후."
"그런 뜻이 아니었어요."
그녀는 수줍게 미소 지었다.
"일반적인 뜻이었다구요, 전적으로."
"고맙소, 하지만 지금 당장은 그게 가장 내 관심을 요하는 곳이오."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의 입술에 부드러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의 옆으로 몸을 비틀어 자극적인 자유를 받아들이도록 자신에게 허락했다.
"그와는 반대로 당신은 아주 부드럽군. 부드럽고 달콤해."
"제가요?"
목과 가슴 위쪽에 키스를 받으며 그녀는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목이 살짝 휘어지자 매끄러운 그곳에 그의 혀가 지체 없이 내달렸다.
"그래, 그렇고말고."
거친 속삭임과 함께 그의 손은 젖가슴을 감싸 약간 위쪽으로 쥐어본 다음 입술로 장밋빛 유두를 집어 뺐다.
"아주 맛이 좋아, 슬론."
그녀의 유두가 갈망으로 오므라들 때까지 그의 혀가 그곳을 씻어 내렸다. 두 손으로 그의 머리를 움켜쥐며 그녀는 숨을 삼켰다. 그의 입이 한 입 가득 물었을 때는 낮고 만족스런 신음이 흘렀다. 자궁 깊은 곳에서 죄임이 느껴짐과 동시에 그의 손과 입이 오므라들었다. 그녀는 애원하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아파?"
"아뇨, 아뇨."
양쪽으로 머리를 흔들자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그녀의 얼굴 주위로 휙 나부꼈다.
"좋아?"
그의 입술이 다른 젖가슴으로 옮겨지는 순간에도, 그의 손가락은 이미 그의 사랑으로 윤기나게 젖어 있는 다른 쪽을 달래며 남아 있었다.
"카터, 카터."
그의 이름을 열정적으로 반복하는 것만이 그녀로서 최선의 대답이었다. 욕망의 소용돌이에 휩싸여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대답이었다. 심장이 몸에서 튕겨져 나가는 것 같은 기분, 이성은 벌써 도망친 지 오래였다.
그는 자기의 육체만을 만족시키려 하지 않았다. 그녀도 남자의 쾌감만을 위해 이용당하지 않았다.
그것은 상호교환적인 것이었고, 하늘로 치솟을 듯한 흥분이었다. 그 순간, 정열로 흐릿해진 그녀의 마음에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수많은 감정을 골라낼 수 없었다. 분류되기를 거부했다. 단지 지금껏 경험한 사랑 중에서 최상의 수준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의 손이 풍만한 육체를 만지며 배쪽으로 헤엄쳐갔다. 몸을 들어 올려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연약한 가장자리와 배꼽의 깊이를 시험해보았다. 방금 자기의 발가락을 발견한 아기처럼 그는 진지한 기쁨으로 장난치며 미소 지었다.
하지만 여성이 숨겨진 축축한 삼각지로 손을 내리면서 그의 눈은 그녀의 눈으로 돌아왔다. 그 주위를 감탄의 손길로 만져보았다. 그는 가볍게 달콤한 둥지를 쓸어내리며 그녀의 눈동자에 번지는 욕망을 지켜보았다. 그 자연의 신비를 지켜보면서도, 그의 손은 허벅지를 열기 위해 밑으로 움직여갔다. 촉촉하게 젖은 꽃잎 속으로 넣는 그의 손길은 절묘하게 부드러우면서도 대담했다, 자신만만하면서도 수줍었다.
"슬론."
그의 입술이 그녀의 이름의 형태로 움직였다. 하지만 그녀가 보고 있지 않았다면 아마 듣지 못했으리라. 조용한 목의 울림만이 그녀의 반응이었다. 등을 뒤로 젖히면서 그의 손에 몸을 밀어붙이는 것과.
"너무나 여성적이야."
그의 탐험은 소심함과 금지의 경계들을 넘어섰다.
차례로 밀려드는 정열의 파도가 그녀를 온통 휘감아갈수록 더욱 숨이 가빠졌다. 그녀가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의 손가락은 쓰다듬고 어루만지며 회전하는 행위를 계속했다. 그의 열기에 녹아드는 것 같았다. 젖꼭지는 제발 그만하라고 애원을 해댔고 이성의 모든 힘을 잃어버릴 것만 같았다.
"카터."
그녀의 육체가 손가락 둘레로 죄어들며 그녀는 비명을 질렀다. 그의 눈이 번들거렸다.
"당신 때문에 죽을 것 같아."
손이 물러가고 허벅지 사이로 그의 몸이 기대오며 그는 겨우 내뱉었다.
"달콤해……."
욕망의 봉우리가 그녀의 촉촉한 이슬로 뒤덮이며 그는 자제력을 찾아보려고 이를 악물었다. 몸을 숙여 그녀의 가슴에 부드럽게 충성을 맹세하듯이 키스를 퍼붓고 나서, 그녀가 약속한 천국의 입구로 천천히 미끄러져 들어갔다.
"아……!"
머리를 그녀의 옆에 기대며 그 귓가에다 숨을 헐떡였다. 단단하고 충만하게 그녀의 안에서 고동치는 순간에도, 마음속의 경외감이 대체 무엇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당신이 날 완전히 채웠어요."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려 그녀의 손이 그의 등을 긁었다. 물론 더 가까워진다는 건 불가능했지만.
그녀는 머리를 돌려 입술로 그의 귀와 그 위에 흩어진 머릿결을 더듬었다. 이로 귓불을 깨물며 부드럽게 유혹을 던졌다.
"그 속에서 움직여 봐요."
그가 찬성의 신음을 흘렸지만, 처음 동작은 시험적이었다.
"당신은…… 너무나 작아. 지금 아파?"
그녀는 애원하듯 그의 엉덩이에 손가락을 더 깊이 파묻었다.
"아뇨."
"더 기분 좋게 만들 수 있어."
불현듯 그녀가 두려움으로 물었다.
"내가 당신을 실망시켰나요?"
"아니야, 내 사랑, 아니야. 그냥 내 말대로 하면 더 나아질 거라구."
그는 지시사항을 말했고 그녀가 그대로 응하자 찬사를 터뜨렸다.
"소중한 사람."
점점 증가되는 그들의 흥분과 어울려 그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당신은 소중해, 슬론, 내 말 듣고 있어?"
물론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목소리, 거친 숨결, 고동치는 심장소리가 그녀에게 외쳐대고 있는 걸. 그녀는 또한 세상과의 모든 연결고리를 잃어버리면서 두 사람의 어우러져 절정에 도달한 비명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하강곡선은 상승될 때처럼 요란하지는 않다 해도, 달콤한 사랑을 담고 있었다. 그녀는 사랑에 취한 듯 나른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한테 어떻게 한 거예요, 카터 매디슨?"
"항상 사랑받아야만 했던 그대로 사랑해준 거야."
그는 고개를 들고 번득이는 눈으로 그녀에게 사랑의 비를 뿌렸다.
"진짜 해야 할 질문은 이거야, 당신이 나한테 어떻게 한 거지?"
"위층으로 올라가야 하나?"
그녀의 머릿속에 대고 그가 물었다. 서로를 껴안은 채, 그녀는 머리를 그의 가슴에 묻고 있었다. 그는 느린 동작으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비비 꼬았다.
"아뇨."
털로 뒤덮인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문대며 그녀가 대답했다.
"아직은 아니에요. 이건 너무나…… 난 움직이고 싶지 않아요."
두 사람의 몸이 옆으로 구른 후에도, 그는 여전히 그녀의 몸속에 남아 있었다.
"아주 기분이 좋아요."
"그래?"
집게손가락으로 그녀의 턱을 들어 올려 그가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그녀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추워?"
그가 담요를 두 사람 몸에 둘렀다.
"아뇨. 아직 진정되지 않아서 그래요."
그의 속삭임이 은밀하게 들려왔다.
"나도 그래."
그가 그녀의 몸속에서 요동치자 그녀는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내가 너무나 뻔뻔스러웠죠? 그런 식으로 로브를 벗어버리다니.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다니."
그 당시에는 그에게 구애할 용기를 내자는 생각도 못했고,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생각도 없었다. 단지 본능에 순종했을 뿐이고, 그도 또한 자신의 본능을 따른 것이었다. 후회는 없었다. 그 점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이건 잘못된 짓이다. 알리시아를 배신했고 슬론이 주장했던 모든 말들이 파괴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별로 유감스럽지 않았다. 알리시아는 카터의 나머지 인생을 소유할 수 있다. 오늘밤, 짧은 몇 시간동안만 슬론은 그를 소유할 것이다. 나중에 그 결과에 후회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번지는 유일한 걱정은 그를 실망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었다.
"내가 서툴렀다는 거 알아요."
가슴털을 꼬아대는 그녀의 손이 자신 없이 흔들렸다.
"슬론."
그녀가 반짝이는 불길 속에서 그의 눈을 마주볼 때까지 그가 그녀의 이름을 되풀이해 불렀다.
"난 만족해. 지금까지의 어떤 경험보다도 훨씬 만족스러워. 내가 필요로 한 사람은 당신이야, 바랄 수 있는 그 이상이야. 제발 자신을 격하시켜서 날 모욕하지 말아. 당신을 사랑한다구, 슬론."
"당신을 사랑해요."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불길로 인해 반사되었다.
"가슴이 아플 만큼 너무나 사랑해요."
그의 키스를 맞아들이기 위해 그녀는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의 혀가 입속으로 들어와 상처 난 영혼을 어루만져 주었다.
"전에 사귄 그 자식은 둔한 멍청이였어.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준 적 없었어?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니었나?"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적어도 당신에게 느낀 것 같은 느낌은 한 번도 없었어요."
"당신은 사실과 정 반대의 열등감 속에서 살아왔소. 당신의 몸은 아름다워, 슬론. 이 비참한 상처만 빼면."
"무슨 상처요?"
그를 약간 밀치며 그녀가 물었다.
"바로 여기."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가슴 사이를 만졌다. 자세 때문에 가슴 계곡은 더 깊어져서 그의 손가락이 묻힐 정도였다.
"당신 가슴이 깨져버린 곳. 눈에 보이는 상처는 아니지만, 난 볼 수 있소. 내가 치료해줄 수 있도록 해줘, 이번만은."
그는 머리를 내려 부드럽고 향긋한 가슴 위로 입술을 댔다.
"다시는 아무도 상처주지 못하도록 해, 슬론."
그녀에게서 모든 상처를 빨아내려는 듯이 그는 열심히 키스했다. 그녀의 가슴이 새로 발견한 자유로 인해 하늘높이 날고 있었다.
"당신은 무한한 사랑의 능력을 가진 아름다운 여자요. 당신의 모든 고통을 치료해줄게. 날 지켜보라구."
그녀는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그의 코가 가슴을 찔렀다. 풍만한 둥근 봉우리가 그의 손길에 의해 소중히 다루어지며 찬사를 받았다. 그의 머리가 드리우는 음영은 치유력을 가진 로션처럼 가슴 위에 펼쳐졌다.
유두에 그의 촉촉하고 능란한 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부드러운 공격자가 욕망의 불길을 지펴왔다. 갈증이 풀렸다는 그녀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다. 그들은 전보다 더 뜨겁고 강렬하게 순간의 생명을 토해내었다. 두 눈을 감으며 그녀의 머리가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그녀는 방금 전에 배웠던, 머리와 가슴과 그곳에서 울려대는 고동에 반응하는 발레를 다시 추고 있었다.
"당신이 얼마나 귀중한 여자인지 보라구."
그가 그녀를 들어 올려, 두 손으로 엉덩이를 감쌌다. 그녀를 충만하게 했던 욕망을 또다시 느끼도록 했다.
"카터, 당신……."
"그래. 천천히 죽어가고 있어. 이번에는 당신이 날 치료해줄 차례야."
그녀는 목에 퍼부어대는 키스로 인해 나른하게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뜨기 전에, 이불 밑에서 마음껏 몸을 뻗어보았다. 벌거벗은 몸 주위로 이불이 사랑스럽게 미끄러졌다. 그녀는 자신의 방이 아닌 이 집의 다른 침대에서 잠들어본 적이 없었다. 카터가 한밤중에 그녀를 안아 몇 주 동안 홀로 잠들었던 자신의 침대에 눕힌 것은 아주 드문 특권이었다.
어깨를 따라 키스하던 그의 애무의 대상은 이제 가슴이 되었다.
"마님, 아침 식사 대령이오."
눈을 뜨자 바로 창문이 들어왔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안정감 있게 떨어지는 그 빗소리가 오히려 반가웠다. 어쨌든 그것이 그들만의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고, 세상과 격리시켜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녀의 감각이 새롭게 탄생하는 것에도 기여하였다. 모든 자극이 그녀의 뇌 속으로 확대되었다. 비를 보고 소리를 듣는 것에 더하여, 그녀는 그 냄새도 맡을 수 있었고 맛도 느낄 수 있었다. 마치 빗방울이 살갗으로 똑똑 떨어지는 것 같았다.
"뭐라고 했어요?"
베개 속에서 신음하며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의 애무를 애원하며 벌써부터 팽창되어 있는 젖꼭지를 손가락으로 찾아낸 그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마님의 아침 식사를 가졌왔다고 했소."
이미 준비된 그곳으로 그의 입술이 따라와 가볍게 빨아보았다. 그의 손가락은 허벅지 사이 황갈색 둥지를 혼란에 빠뜨리기 위해 장난스레 배를 지나 내려갔다.
"음, 메뉴는 뭐죠?"
그녀는 신음을 흘리며 계속 꿈틀거리는 그의 섹시한 입술에 대고 물었다.
공격적인 혀가 그녀의 입술을 열며 소유하려는 듯이 휩쓸어댔다. 자신의 소유욕이 끝나기 전에는 그녀에게 어떤 즐거운 생각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이.
"오믈렛, 영국식 머핀, 오렌지 마말레이드, 바삭바삭한 베이컨과 커피."
그를 밀어내며, 슬론이 침대에 똑바로 앉았다. 그 바람에 시트가 허리까지 떨어져 내렸다. 그가 아침 식사 메뉴를 열거할 때, 그것이 코를 간지럽히던 향기였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침대 발치에 놓인 은쟁반을 쳐다본 그녀가 놀라움의 비명을 질렀다.
"당신이 진짜로 아침 식사를 가져왔군요!"
그는 쟁반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녀의 놀람에도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신에 잠과 섹스로 발개진, 그를 위해 너무나 자극적으로 전시된 그녀의 젖가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오만한 손가락이 그 유연한 곡선을 더듬었다.
"어젯밤엔 당신이 수고했으니, 내가 적어도 이 정도는 해야지."
"어머나!"
그의 손가락을 잡아 뒤로 밀치면서 그녀가 외쳤다.
"그건 내 생각이었다구요. 당신은 이러면 안 돼요."
그가 갑자기 달려들어 그녀를 베개로 눕히고는 자신의 몸으로 내리눌렀다. 불공평하게도 그는 완전히 옷을 입은 상태였다. 그가 희롱하듯 한 야만적인 키스로 그녀의 입을 공격했다.
"이게 당신이 원하는 거지, 응?"
그녀는 얌전한 척 대꾸했다.
"텅 빈 배를 채우면요."
"그럼 아침 먹은 후에?"
새침하게 눈을 내리까는 모습에 그는 기뻐했다. 왜냐하면 정숙한 척하는 가면 뒤에 그녀의 생각이 외설스러운 것임을 보았기 때문이다.
"주인님께서 나중에 확인해 보시죠."
그녀가 목쉰 소리로 놀려댔다.
그 후로, 그들은 쟁반 위의 음식들을 깨끗이 먹어 없앴다.
"맛이 좋은데요."
치즈 오믈렛을 우물거리며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당신이 이러면 안 돼요. 내가 이곳 주인인 거 기억하시죠?"
"당신도 즐길 자격이 있소. 그리고 너무 고마워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아."
"왜요?"
그녀의 포크가 근심스럽게 입 앞에서 멈추었다. 그는 커피를 마시면서 대답을 머뭇거렸다.
"카터?"
"청소를 못했거든."
그녀가 포크를 내려놓았다.
"부엌이 난장판이라는 말인가요?"
"난장판까지는 아닐 거야."
그녀는 가슴에 팔짱을 끼고서 화난 표정을 지어보이려 애썼다. 흔들리는 젖가슴과 현혹적으로 엉클어진 머리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정에 카터는 웃음을 참고 정색하기가 무던히도 힘이 들었다.
"어느 정도인가요?"
그가 두 눈을 살짝 치켜떴다.
"음…… 어질러졌다. 그래, 딱 맞는 단어야. 부엌이 좀 어질러졌어."
"청소를 해야 한다면 침대에서 아침 식사를 제공받는 게 무슨 소용이죠?"
"당신에게 보상할 만한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군."
침대에서 쟁반을 들어 올리며 그가 느릿하게 말했다.
부엌에서 그녀의 관심을 떼어낼 만한 가장 좋은 방법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샤워기 아래서 그녀의 몸에 비누를 칠해주고 비누칠한 손으로 마사지해주는 것부터 시작되었다. 그녀가 머리를 감겨주겠다고 고집을 피웠으므로 그도 타일에 앉아 그녀의 서비스를 받아들였다. 물줄기 아래 서서 한껏 몸을 적시며, 눈과 손과 입술로 흐르는 개울을 따라 그들은 격렬한 키스를 나누었다.
그가 수건으로 머리를 요란하게 말리며 나왔을 때 슬론은 이미 베개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유연한 근육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처음 봤을 때 깨달았듯이, 낭비되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그는 날씬하며 건강했다. 그의 책 속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연상시킬 만큼 대단히 날렵했다. 울퉁불퉁한 근육은 아니지만, 그 표면 아래는 과격한 남성다움이 숨겨져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흥분시켰다.
그는 수건을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아무렇지도 않게 그것을 건너, 침대에 자극적으로 기대어 있는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녀가 손을 올려 그를 붙잡을 때까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보기 좋군요, 매디슨 씨."
하프의 줄을 당기는 실크 스카프처럼 감미로운 유혹이 그녀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다.
"무릎이 튀어 나왔어."
"그렇지 않아요."
그녀는 연인을 위해 열심히 반대의견을 말했다. 그의 눈썹이 회의적으로 휘어지자, 그녀는 더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 미소 지으며 더욱 부드럽게 말했다.
"글쎄요, 아주 심하지는 않아요."
그를 침대로 끌어내리는 지금 공격자 역할은 그녀의 몫이었다. 그녀의 용감함에 즐거워하며, 그는 말없는 그녀의 요구에 굴복하여 침대에 누웠다. 호기심어린 탐사를 시작하는 그녀의 손길은 다소 소극적인 것이었다.
"부끄러워요, 카터. 당신이 다 벗고 있어서."
"알아. 그럴 필요 없어. 당신이 날 만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길 바래."
어젯밤 그녀의 기술이 그다지 개발되지 않았다는 것은 명백했었다. 하지만 그녀의 정열에 관한 한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자신의 욕구를 주장하며 벌거벗은 채 그의 앞에 선 그녀에게 그의 가슴은 자부심으로 가득 찼었다. 마침내 그녀가 섹시한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녀의 열뜬 동작들은 굶주린 듯 거칠었다. 그는 그것이 또한 마음에 들었다. 그는 그녀 안에서 수줍어하지 않는 욕망을 보았고, 절정으로 향하는 정열의 신음소리와 한 번도 연습해보지 않은 듯한 애무를 보았다. 그녀는 정직했다. 자신의 정열에 거의 순결하다 싶을 만큼.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녀를 사랑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이 놀랄 만큼 격렬하게 말이다. 그녀와 비교하면, 그가 알아왔던 다른 여자들은 모두 그가 원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그를 위해 수행해 보이는 움직이는 마네킹 같았다.
그도 언제나 그러지 않았던가? 자신이 내뱉었던 한숨과 사랑의 말들은 원고에 쓴 내용들이 아니었을까, 가끔은 자신의 책에서 끌어내지 않았던가? 그들이 듣고 싶어 한다고 생각했던 말들을 암송하지 않았던가, 그래야 빨리 욕망의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려 끝낼 수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은 그 후에 남은 공허함이 참을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지 않았던가? 육체적으로는 해갈되었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더럽혀진 듯한 느낌이 아니었던가?
어젯밤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녀의 촉촉한 곳이 죄어왔던 그 순간 슬론이 유일하며 단 하나뿐인 여자라는 걸 알았다. 이것이 사랑이란 것이다. 어떤 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지 않고 일어나는 대로 놓아두는 것. 더 이상 섹스는 육체적인 기능이 아니었고 영혼의 전달자가 되어버렸다. 육체의 일시적이고 의미 없는 결합이 아니라, 두 개의 완전한 인간이 섞이는 것이었다.
그는 억제된 환희와 섬세한 기쁨의 그 미묘함을 가르쳐 주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예전에 그녀를 아프게 한 그 나쁜 자식을 죽여버리고 싶었다. 아니 그건 사실이 아니다. 만약 제이슨이 제대로 그녀를 사랑해 주었다면, 지금 그녀는 그의 것이 되지 못했을 테니까.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황홀경의 극치로 그녀를 인도하는 특권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니까.
수줍게 그의 몸을 알아가며 그의 위에 무릎을 꿇은 이 여자를 어떻게 포기할 수 있을까 그는 의심스러웠다.
튀어나온 무릎에 손가락을 대며 그녀가 살짝 미소 지었다.
"심하지 않은 걸요."
그를 보며 속삭였다. 그녀의 손이 위로 기어 올라가자 허벅지 근육이 발작적으로 굽혀졌다. 그 손이 아까부터 명백히 발기되어 있는 장소에 도착했을 때는 숨을 죽이고 말았다. 그녀의 관심이 배꼽으로 옮겨질 때까지 그는 다시 숨을 내쉬지 못하였다.
그가 미처 준비를 하기도 전에, 그녀는 고개를 숙여 잔털이 휘몰아치는 곳에 재빨리 입을 맞췄다. 그의 손가락이 여전히 샤워로 인해 젖어 있는 그녀의 머릿속으로 엉켜들어갔다.
"아아아, 슬론."
그것이 그녀에게 더욱 용기를 주었다. 그녀의 혀가 거칠게 배꼽을 핥아본 다음 그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숨을 빼앗는 습격이었다.
몸을 숙이며 그녀는 허벅지의 단단한 기둥에 젖가슴을 대고 눌렀다. 그녀의 손은 무성한 검은 털의 숲을 만날 때까지 상반신을 헤매고 다니다가 마침내 입술을 대며 그 감촉을 시험해 보았다.
"사랑해요."
그렇게 속삭이며 그녀는 그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지경까지 자신의 사랑을 숨김없이 나타내 보였다.
그가 그녀를 올려 베개 속으로 눌렀다. 그리고 그에 대한 사랑으로 젖어 있는 여성의 그곳에 몸을 내렸다.
"당신은 내 거야, 슬론.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이 순간보다 더 사랑해본 적은 없다는 걸 알아줘. 내 사랑을 느껴봐, 그걸 받아들여. 제발. 아, 제발. 받아들이라구, 슬론."
"그래요, 그래요."
그를 꼭 끌어안으며 그녀가 흐느꼈다.
슬론이 자신과 같은 절정에 이를 때까지 그는 끈기 있게 참아냈다. 그가 속삭이는 그녀의 이름은 경건한 성가와 같았다. 그녀의 자궁 속에 흠뻑 젖어 들었을 때, 두 사람은 모두 새롭게 탄생하였다.
그녀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부엌 치우는 일을 기어코 도우러 나섰다. 표면상으로는 접시를 닦는 것이었지만, 비눗물 속에서 그들의 손과 손이 만나고 김나는 싱크대 위로 입술이 마주쳤다.
그때 전화벨 소리가 들렸다.
"받지 마."
그가 투덜거렸다.
"받아야 해요. 다음 주에 여섯 개의 방을 모두 예약할 사람인지도 모르잖아요."
"당신은 다섯 개의 방밖에 내줄 수 없어. 당신이 나와 한 방을 쓰지 않는 한은 말이야."
전화를 받으러 달려가는 그녀의 뒤로 그가 소리렀다.
"안녕하세요. 매디슨 씨 계세요?"
어린 아이의 목소리였다.
"네. 전화하는 사람은 누구신가요?"
그녀는 수화기를 움켜쥐었다. 누구인지는 벌써 알고 있었다. 죄책감과 불안이 몰려들어, 쇠로 만든 사슬이 온몸을 칭칭 감는 것처럼 무겁기만 했다.
"데이비드 러셀이에요."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서 간신히 흐느낌을 억제했다.
"아! 안녕, 데이비드. 난 슬론 아줌마야. 누군지 알겠니?"
"그럼요. 엄마는 언제나 아줌마 얘기를 하는 걸요. 금발 머리신가요?"
"그래. 일종의 금발이라고 할 수 있겠지."
"네, 기억나요. 이제 카터 아저씨와 통화할 수 있을까요? 중요한 일이에요."
"나쁜 일이 있는 건 아니겠지? 엄마나 아담에게?"
"아니에요. 엄마는 여기 안 계세요. 여긴 할머니 댁이거든요. 하지만 전화해도 된다는 허락은 받았어요."
"잠깐 기다려라."
그녀는 가슴에 수화기를 안고, 몇 번이나 큰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를 집어삼키려는 위협적인 절망의 파도를 어떻게든 막아보려 애를 썼다.
마침내 카터를 부르기 위해 몸을 돌렸을 때, 그는 벌써 문가에 서 있었다. 한쪽 어깨에 수건을 걸치고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무시무시하게 얇아졌고, 그녀는 그 안에 보이지 않는 과격한 긴장감이 있다고 생각했다.
말없이 그가 수화기 쪽으로 손을 뻗었고, 그녀는 무기력하게 그걸 건네주었다. 그녀가 방을 나서려 하자, 그는 손목을 잡아 침대의 자기 무릎 위에 끌어앉혔다.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쳤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귀로 수화기를 갖다 대며 그는 그녀를 꼼짝못하게 끌어안고서 하얗게 질린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안녕."
그가 냉담하게 대꾸했다가 좀 더 활기를 보탰다.
"잘 있었나, 친구. 네 동생은 어떠냐?…… 나도 보고 싶단다, 하지만 일하기 위해 와야 했다는 거 알잖니…… 아담이 무슨 짓을 했는데?……음 네가 형이니까 모범을 보여야지…… 그래, 물론 공평치는 않지, 하지만 완벽하게 공평한 건 거의 없단다."
슬론은 과감히 그를 올려다보았고 그 마지막 말이 전화 속이 아닌 그녀에게 한 말이라는 걸 알았다. 그의 눈이 그녀에게 견뎌달라고 애원하고 있었다. 이해나 용서가 아니라, 단지 견딜 수 없는 상황을 견뎌달라는 애원이었다.
"네가 아담에게 머리를 잡아당기지 말라고 말해보렴. 할머니가 동생에게 잔소리할까 걱정할 필요는 없단다. 내가 돌아가면 아담과 얘기해 보마. 됐지?…… 그래, 나도 빨리 보고 싶다…… 그럼, 물론이지. 아이스크림 두 개. 그럼 잘 있거라."
그녀를 풀지 않은 채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아무 말도 없이 그녀는 그의 무릎에 돌석상처럼 앉아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제 놔주세요."
"그럴 수 없어."
그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 당장 몸을 풀어주는 문제가 아니라, 영원히 헤어져야만 할 때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녀도 알아듣지 못한 척하지 않았다.
"그래야만 해요."
자신의 팔뚝을 움켜쥔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소용없는 노력을 하면서 그녀는 흐느꼈다.
"하지만 오늘은 안 돼. 지금은 안 되겠어."
블라우스 아래 풍만하게 솟은 가슴 사이로 그는 얼굴을 묻었다. 위로와 평화와 영양분을 구하는 어린아이처럼 그녀에게 머리를 비볐다.
"날 거부하지 말아줘, 슬론. 당신이 필요해. 부탁이야."
진심어린 애원을 달래보려고, 그녀는 그의 머리를 감싸 가슴에 힘껏 끌어안았다. 그 머리위에 광적으로 키스를 퍼부으며 되뇌었다.
"당신이 필요해요. 당신 때문에 난 죽어가고 있어요."
그들은 옷가지에 약간의 방해만 받았을 뿐이었다. 찢을 듯이 옷을 벗어던지고 서로가 야성적으로 하나가 될 때까지 손을 더듬으며 움켜잡았다.
모든 좌절과 고통과 두려움이 매번의 격렬한 삽입 때마다 폭발하였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고, 그 시계가 이제 마지막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그에 대항하여 내달렸다. 세상을 부숴버리고, 그들 자신의 양심을 지워버리고, 그들의 줄어들고 있는 천국의 조각을 움켜쥐길 원하면서 치달아갔다. 고통을 깨끗이 씻어주는 따뜻하고 달콤한 느낌이 카터에게서 흘러나왔다.
그 후, 땀으로 젖은 머리카락을 그가 그녀의 가슴 위로 무겁게 얹었다.
"슬론, 이젠 마지막 러브신을 쓸 수 있어."
8
그날 오후와 저녁 내내 그는 완전히 일에 빠져들었다. 슬론은 가끔씩 그를 살피면서, 이따금 새로 끓인 커피나 시원한 음료수를 가져다주었고, 가끔은 그의 방문 앞에 서서 종이 위에 영원히 꺼지지 않을 단어를 만들기 위해 골몰한 그의 모습을 말없이 쳐다보기도 했다.
푸짐한 식사를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를 위해 가벼운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두 개의 샌드위치를 네 등분으로 자르고 그 주위로 얇게 썬 과일과 신선한 야채를 놓았다.
그녀가 방으로 쟁반을 갖고 들어갔을 때, 그는 타자기에서 흘러나온 종이뭉치를 노려보고 있었다. 두 팔꿈치는 양 옆으로 넓게 벌리고, 맞잡은 두 손위에 턱을 기댔다. 이번만은 안경도 어울리는 장소에 놓여 있었다.
그녀는 가능한 한 조심스레 쟁반을 내려놓고 발꿈치를 들어 돌아섰다. 그가 지나가려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손바닥에 재빨리 입을 맞추었다.
"고맙소, 내 사랑."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무심하게 그가 말했다. 하지만 약간의 정신을 분산시킨 이 기계적인 애정표현이 길고 긴 포옹보다도 그녀에게 더 의미가 있었다. 일에 집중해 있을 때조차도 그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래층에서 중요치도 않은 일들로 몸을 바쁘게 움직였다. 쿠키를 구운 다음, 목욕을 했다. 그리고 그에게 쿠키와 뜨거운 커피병을 갖다 주기 위해 마지막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그는 여전히 원고뭉치에 고개를 숙인 채, 무자비하게 빨간 펜을 휘갈기고 있었다. 아까 놓아두었던 접시의 음식들은 모두 먹은 모양이었다. 그녀가 그걸 한쪽으로 밀고 그 자리에 쿠키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가 불현듯 고개를 들더니 그녀에게 초점을 맞췄다.
"무슨 향기가 이렇게 좋지?"
"초콜릿 칩 쿠키예요."
"쿠키 말고."
그가 의자 옆으로 그녀를 잡아당겼다.
"당신 말이야."
로브를 벌려 그 안으로 머리를 기댔다.
"당신한테는 언제나 좋은 향기가 나."
커다랗게 하품을 하며 만족스레 그가 말했다.
흥분한 손가락에 의해 학대를 받은 듯한 그의 머리결을 그녀가 살며시 쓰다듬었다.
"피곤해요?"
"점점 피곤해져. 그래도 아직 한참은 더 일해야 해."
"쿠키 좀 드세요. 보온병에 든 커피는 신선하고 뜨거울 거예요."
그녀에게서 훅 하는 바람소리가 터져 나왔다. 매끄러운 잠옷 위로 그의 얼굴이 미끄러지며 코와 볼을 비벼댔던 것이다. 간혹 그의 입술이 열렸을 때, 얇은 천을 통해 살갗을 간지럽히는 뜨거운 입김을 느낄 수 있었다.
"나도 그래. 신선하고 뜨거워, 바로 그래."
배꼽의 오목한 곳에 대고 그가 속삭였다.
그의 머리를 그녀가 억지로 끌어올리고는 호통을 쳤다.
"하지만 할 일이 있잖아요."
"노예감독이로군."
그의 투덜거림에, 그녀는 그 입에 정숙하게 입을 맞췄다.
"잘 자요."
방을 나서려고 몸을 돌리자, 그가 로브 자락을 잡아 막았다.
"어디로 갈 생각이오?"
"아래층 내 침대로요."
"안 돼. 여기 이 침대로 오시오."
그들이 어젯밤 같이 나눴던 침대를 그가 고갯짓했다.
"하지만 당신은 일해야 하잖아요, 카터."
"난 일하고 당신은 자고. 내가 당신에게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그게 아니라, 내가 당신을 방해할 걸요."
그가 머리를 저었다.
"아니 그렇지 않아. 나와 같이 이 방에 있어줘."
그녀가 눈을 흘기며 그를 쳐다보았다.
"진심이에요?"
"물론이지. 당신이 나와 같이 있었으면 좋겠어."
"좋아요. 쟁반을 갖다놓고 책을 가져올게요. 하지만 방해가 되는 것 같으면, 나갈 거예요."
"좋소."
그 말은 진실이었다. 그녀가 돌아왔을 때, 그는 수없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면서 또 다른 구절과 싸우는 중이었다. 그녀는 탁자 옆의 램프를 켜고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카터 매디슨의 소설을 무릎에 놓고, 배개를 겹쳐 세워 기댄 다음 읽기 시작했다. 두시간 후, 이야기에 빠져들면서도 하품을 억누를 수가 없게 되자 마침내 밀려오는 졸음에 굴복하고 말았다. 카터는 여전히 자기가 타이핑 친 종이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타자기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그의 대단한 자제력에 놀라워하면서.
매트리스가 기우는 것 같다고 느끼는 순간, 그녀는 날렵한 그의 맨 몸에 안겨 깨어났다.
"카터?"
"나 말고 누가 있겠어?"
그가 낄낄거렸다.
"다 했어요?"
"당신 아주 따뜻하군."
그녀에게 바싹 몸을 붙이며, 그의 입술이 목덜미의 부드러운 온기를 찾았다. 그의 손은 허리를 감아쥐었다.
"피곤하지 않아요?"
그녀가 하품을 하며 물었다.
"지쳤어. 이건 어떻게 하는 거지?"
그의 손이 잠옷의 깃과 투쟁하고 있었다.
"푸는 거예요."
"아, 됐다."
끈이 풀어지자 그가 만족스레 말했다. 그녀의 몸 아래로 움직여, 그는 가슴의 위쪽 곡선에 키스하다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미안해, 슬론. 한밤중에 이런 식으로 깨우다니 이기적인 짐승이지?"
"그래요, 당신은 짐승 같아요."
한숨과 함께 스스로 잠옷을 끌어내린 후, 그녀는 그의 손을 어둠속에서 찾아 자신의 가슴으로 갖다댔다. 그의 손바닥 안에서 유두가 완숙하게 자랄 때까지 천천히 그의 손을 회전시켰다.
"당신이 한 짓을 봐요, 당신은 짐승이에요."
그의 속삭임은 신에 대한 모독과 기도 중간의 것이었다. 손으로는 계속해서 가슴과 반응을 보이는 유두를 애무하면서, 그의 입술은 그녀의 입술을 내리덮었다. 혀가 찌르고 돌진하고 비비는 유희를 즐기며 깊이깊이 파고들었다가 물러가곤 했다. 그녀의 목과 가슴과 어깨를 사랑스럽게 살짝살짝 깨물어 맛을 보았다. 그의 키스는 뜨겁고 촉촉했다. 그녀의 몸이 열기로 인해 점점 발갛게 달아올랐다.
그녀를 소중히 보듬어 가슴에서 잠옷을 벗겨낸 다음 그 에로틱한 광경을 그의 눈동자가 마음껏 즐겼다. 애무의 손길로 인해 탱탱하고 검어진 젖꼭지, 가슴에 아름답게 솟은 봉우리는 사랑의 제단을 제공하는 것 같았다. 그는 그 제단에 있는 최고 수도승이었다.
그의 입이 달콤하게 그곳을 덮어 굶주린 듯 젖꼭지를 끌어당겼다. 그는 그녀를 철저하게 사랑했다, 섬세한 동작으로 사랑해주는 혀와, 마치 그녀의 모든 달콤함을 가지려는 것처럼 감싸는 입술.
이제 그녀는 졸음이 가신 정도가 아니라, 온몸의 세포가 그를 바라며 아우성을 쳐댔다. 그에게 몸을 비틀어대며 그녀는 잠옷을 열심히 발로 차 내버렸다. 옷을 밑으로 내리면서 그의 손은 허벅지 사이의 높은 부분을 따라 쓸어내려갔다. 애무하는 사랑의 손길로 그녀의 여성적인 부분을 눌렀다. 그녀는 부드럽게 탐험을 받았고, 도취되었으며, 금방이라도 불이 붙어 터지려는 정열을 끌어내었다.
조금씩 그녀의 몸을 유혹하며 내려가는 그의 동작에 따라, 드디어 잠옷이 모두 벗겨졌다. 자신의 몸 양쪽으로 그녀의 다리를 걸치며, 그는 입술에 키스한 것처럼 똑같이 배꼽에 절묘한 키스를 퍼부었다. 그의 입술이 그것을 마시고, 혀는 아주 희귀한 주스를 담은 귀중한 곳인 듯 그 작은 틈 속으로 할딱였다.
얕은 둔덕 위의 황금빛 곱슬거리는 털이 그의 숨결을 흐트러뜨렸다. 그녀가 놀라움으로 그의 이름을 외쳤다. 두려움은 아니었다.
"안 돼요, 카터."
"당신을 사랑해, 슬론. 당신의 모든 걸 경험하고 싶다구."
그의 숭배의식은 대담하고 부드러웠고, 육욕적이면서도 경건했다. 그녀는 약간 흥분한 정도가 아니라, 그의 입술과 찔러대는 혀에 완전히 정신이 몽롱해졌다. 그의 사랑이 너무나 절묘해서 축복 속에 흠뻑 잠기는 것 같았다. 절정이 다가오자, 그녀의 입에서 그의 이름이 터져 나왔다. 그는 거기 있었다, 그녀를 깔아뭉개며, 그의 마법 속에 그녀를 포함시키며, 그의 존재로 그것을 풍부하게 해주면서 말이다.
완전히 모든 기력이 빠진 상태에서, 그가 껴안은 몸을 옆으로 돌렸다. 그녀는 팔과 다리를 그의 위로 축 늘어뜨린 채 그의 가슴에 인형처럼 기대었다. 그의 손은 그녀의 등과, 엉덩이와 긴 허벅다리를 어루만졌다.
"당신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이제까지 살아왔다는 게 믿어지지 않아요."
그녀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당신은 내 사랑을 갖고 있었어.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해 왔었던 거야."
그녀의 머리를 안아 가슴에 힘껏 누르며 그가 조용히 말했다.
"이름만 몰랐을 뿐이지."
다음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그는 침대 발치에 앉아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속옷만 입은 모습은 그의 심볼을 더욱 세밀하게 돋보이게 했다. 아무 말 없이 그가 꼬깃하고 빨간 색으로 뒤덮인 원고를 그녀에게 건넸다.
그녀는 묻는 듯이 쳐다보고 나서, 내민 원고를 받았다. 침대에 일어나 앉아 신중하게 가슴까지 이불을 잡아 올렸다. 그가 잠깐 미소 짓고는 일어서서, 구름을 뚫고 물기어린 태양이 살짝 모습을 드러낸 창문 쪽으로 향했다.
원고의 한줄 한 줄이 그녀의 탐욕스런 눈길에 집어삼켜졌다. 한 구절을 읽을 때마다, 그녀는 영혼의 또 다른 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이 속에 숨 쉬는 것은 그레고리와 리사가 아니었다. 바로 그녀와 카터, 어떤 구속도 없이 사랑하고, 육체뿐 아니라 서로의 욕구에 대해 민감하게 알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는 그들이었다. 마지막 줄을 읽고 나서, 그녀는 원고를 내리고 눈물 가득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이건 우리들 얘기예요, 그렇죠?"
그는 창문을 떠나 그녀의 옆에 와서 앉았다. 떨리는 손가락이 그녀의 뺨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그래."
"언제 끝냈어요?"
"방금. 당신이 잠든 후에…… 두 번째로 잠든 후에 썼어. 그 전까지는 러브신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어."
그의 미소는 다소 냉담했다. 하지만 그 눈 속에 번들거리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이건 끝이 아니잖아요."
"마지막을 쓸 수가 없어, 슬론."
"하지만 어떻게 될지 알잖아요."
"우리 둘 다 알고 있지."
"그래요."
그의 손바닥에 뺨을 묻으며 그녀는 눈을 감았다.
"우린 언젠가 그가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그때까지, 그들은 후회없이 사랑할 거요. 미래란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영원한 것처럼."
그녀가 떨리는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요."
부드럽게 말한 다음 더 강하게 되풀이했다.
"그래요, 그래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아 그녀는 키스했다. 열린 입술과 배회하는 혀로 깊은 사랑을 전하였다.
"잠시 자는 게 좋겠어요. 내가 나중에 아침을 가져올게요."
"한 가지 조건이 있소. 잠들 때까지 내 옆에 있어줘."
대답 대신, 그녀는 이불을 들추어 그를 들어오도록 이끌었다. 그녀의 몸을 바짝 끌어안으며 그는 순식간에 잠으로 빠져들었다.
그녀가 일어났을 때도 깨지 않았지만, 그의 수척한 얼굴에는 평화로운 미소가 서려 있었다.
시간이 너무나 빨리 지나갔고, 그들은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하려 애쓰지 않았다. 자신들의 욕구대로, 기분대로, 본능을 따라 마음대로 생활했다.
카터는 이 집의 모든 방마다 가장 어울리는 방법으로 기억에 남을 방법을 생각해 냈다. 슬론은 빨래하고 다림질할 때마다 모든 이불에서 그를 생각할 것 같아 거절했지만, 그의 창조적인 정신이 활동을 시작했고 그녀는 그의 독창적인 방법에 놀라며 그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했다.
침실 마루의 양탄자 위에서 그에게 두 다리를 걸치고 마주앉은 모습으로, 그녀는 자신의 사랑행위가 그의 젖꼭지에 미치는 영향력을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 책에서 이런 장면이 나오면, 내가 영감을 준 거라고 생각할게요."
그는 열띤 시선을 그녀의 얼굴로 들어 올렸다.
"지금부터 당신이 내 영감이라는 걸 모른단 말이오?"
그가 그녀의 속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왔다.
다른 사람의 천벌이면서 한편으로 그들의 축복이기도 했던 빗줄기가 마침내 서서히 힘을 잃어갔다. 며칠 후에는 소녀처럼 수줍어하던 태양이 창백한 샌프란시스코의 시민들에게 살포시 모습을 나타내 보였다.
슬론은 이전에 취소되었던 세 개의 방을 다시 예약 받았다. 손님들은 다음 주면 도착할 것이다. 다음 달에 행운이 따라주어 예약이 많아진다면 지독했던 날씨가 가져가버린 손실을 보충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맞아, 맞아, 내 생각 어때? 서점!"
카터가 소리 높여 웃었다.
그들은 필요한 식료품도 살 겸 태양빛도 쬐일 겸 밖으로 외출을 하였던 참이었다. 차에 산 물건들을 내려놓고 나서는 산책을 하며 부족했던 운동을 위해 윈도우 쇼핑을 하기로 결정했었는데 지금 카터가 그녀의 팔을 잡아 워싱턴 스퀘어 근처의 낡은 집으로 이끌고 있는 것이다. 옛스러우면서 기묘하게 개조된 2층짜리 서점이었다.
그들이 들어서자 문 위에 달린 종이 유쾌하게 딸랑거렸다. 지루하게 생긴 서점 주인이 반쯤 안경을 내리고 그들에게 대머리를 약간 숙여 보인 다음 다시 읽던 책으로 관심을 돌렸다.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네요."
소설분야의 선반으로 끌고 가는 카터에게 슬론이 속삭였다.
"보통은 알아보지 못해. 그들이 내 책을 팔고 있는 한은 전혀 상관없지."
"표지에 실린 사진은 정말 지독해요."
"당신이라면 날 어떻게 찍을 건데?"
그녀가 그의 귀를 잡아내려 음란한 제안을 속삭이자, 그의 눈썹이 짐짓 믿을 수 없다는 듯이 홱 올라갔다.
"아주 방종한 여자로군. 그 점 알고 있었소?"
"아주 최근에 알았지요."
"음, 그렇다면 당신은 행운아야."
그가 청바지로 덮인 엉덩이를 한움큼 쥐어 눌렀다.
"난 방종한 여자를 좋아하거든."
그녀가 몸을 비틀어 빼내며 불안하게 서점 주인을 흘깃 돌아보았다. 감사하게도 그는 여전히 자신의 책에 몰두해 있었다.
"저도 안답니다, 매디슨 씨. 당신 책들을 읽었거든요."
"다음 작품을 기대하시라. 믿을 수 없을 만큼 짜릿한 목욕탕 장면이 있을 테니까."
"카터!"
두 손을 엉덩이에 대고 브래지어를 하지 않은 가슴을 스웨터 위로 탱탱하게 긴장시키며, 그녀가 소리렀다. 그가 오늘 아침 옷장에서 골라준 옷이었다.
"그것에 대해서는 쓰지 않기로 했잖아요!"
그녀의 두 뺨이 아주 발갛게 붉어졌다.
"내가 그랬던가?"
"그럼요!"
"당신을 끌어들이기 위해서 약속한 것뿐이야."
그가 태평하게 어깨를 으쓱 올렸다.
"당신 대단하던데. 그리고 나만큼이나 당신도 아주 즐거워했으니까 그렇게 심술지 말라구. 이제 좀 둘러볼까."
그가 그녀의 화난 표정을 무시하며 책장을 살펴나갔다.
"J, K, L, L-a, L-o, L-u, 루들럼. 빌어먹을, 이 작자가 이름을 바꿨으면 좋겠어. 그의 책이 항상 내 책 바로 위에 놓이거든. 아, 여기 있다, 카터 매디슨."
"카터 매디슨의 소설이 몇 권이나 돼죠?"
그녀는 이미 그를 용서해 버렸다.
"열두 권. 그리고 취향이 아주 훌륭한 이 멋진 서점에는 그게 모두 진열되어 있군. 잠자는 연인은 열세 번째 책이 될 거야. 반응이 괜찮았으면 좋겠어."
"열두 권 모두 베스트셀러였나요?"
"처음 두 권은 아니고, 다른 것들은 그렇지."
"몇 권이나 영화화됐어요?"
"두 권. 그리고 텔레비전 시리즈로 한 권. '카터 매디슨의 소설을 각색하였음'이란 설명이 붙었지."
그의 주름진 이마를 그녀가 곰곰이 들여다보았다.
"명성과 재산이 가끔 불편하지 않나요?"
사랑만이 발견해낼 수 있는 직관이었다.
그의 셰리주색 눈동자가 그녀를 찾아 얽혔다.
"약간은 그래."
"왜요, 카터?"
그는 한숨을 쉬며 선반에 기대어 섰다. 그녀의 손을 잡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대답했다.
"모르겠어. 가끔은 고급 창녀 같은 느낌이 들어."
"말도 안 돼요!"
"그런가? 내 글은 기교적으로 정확하고, 스타일은 다른 사람 것을 빌리지 않은 내 자신만의 것이지. 내가 잘하는 것을 하고 있고, 기쁨도 느껴. 그런데 가끔은 이런 일들이 의미없이 느껴질 때가 있어. 진정한 것을 표현하자. 처음 시작했을 때는 그런 포부와 목표가 있었어. 돈과는 아무 관계도 없었어."
"돈이란 세상에서 성공을 재는 잣대에요. 당신이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해서, 그 글의 가치가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가 슬픈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래도 상업적인 성공을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진짜 의미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
"그럼 쓰면 되잖아요?"
그의 시선이 그녀의 손에서 얼굴로 홱 올라왔다. 전에는 아무도 감히 그런 도전을 한 적이 없는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당신이 할 수 있다는 걸 알아요. 당신에게는 재능이 있어요. 당신 글은 최고예요.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나아가기만 하면 되요. 쓰고 싶은 책을 써서 스스로 즐기라구요. 당신 마음 속에는 벌써 구성이 세워졌을 걸요?"
"그래."
그가 흥분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됐어요. 당신이 쓰고 싶은 책을 쓰고 그 다음에 대중이 원하는 글로 돌아가는 거예요. 적어도 스스로는 만족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카터 매디슨의 책에 대해 누군가가 비판을 한다는 건 상상도 안 돼요. 특히나 이다음에 나올 것 같은 굉장한 책에 대해서는요."
손가락으로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한참을 그는 조용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에게서 뿜어나는 사랑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 같았다.
"당신은 특별한 여자야."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도 특별해요."
그녀가 상냥하게 대꾸했다.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하고 있어."
"저도요."
그가 더 가까이 다가왔다.
"당신 스웨터 속을 볼 수 있어, 아니 상상할 수 있어. 책벌레 주인께서 알아차릴까, 만약에 우리가 창고에 숨어들어가서 ……."
"이런, 우리 중에 저명하신 분이 와 계셨네."
빈정거리는, 비난하는 듯한 목소리가 갑작스런 방해가 되었다.
그들만의 세계에 침입한 남자는 슬론보다도 몇 센티쯤 더 작은 왜소한 사내였다. 머리카락은 두개골에 딱 달라붙었다 할 정도로 짧았고, 길쭉한 두상만이 눈길을 끄는 점이었다. 날카롭게 뻗은 염소수염이 왠지 불길한 느낌을 주었다. 그의 눈은 탐정의 눈처럼 쉴 새 없이 바쁘고 재빠르게 움직여댔다. 입고 있는 옷차림은 그런대로 말쑥했지만 목까지 올라오는 스웨터에서 가슴까지 금사슬 줄이 여러 개 연결되어 있었다.
"너무 겸손하시군, 시드니."
카터는 슬론을 보호하려는 듯 더 가까이 끌어당기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도 나만큼이나 저명하시잖소."
"저명하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지. 하지만 겸손이라니? 절대 아니지, 매디슨 씨. 내 독자들에게 그렇듯이 내 의견은 항상 확실하다오."
슬론은 카터의 근육이 분노로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슬론 페어차일드 양이오, 이쪽은 시드니 글래드스톤."
어쩔 수 없이 소개는 하지만 가능한 한 아주 간단하게 끝냈다.
"안녕하세요, 글래드스톤 씨."
중얼거리면서, 그녀는 감히 손을 내밀지 못했다. 뱀에게 아이를 떼어놓는 어머니처럼 카터가 그 손을 낚아채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어차일드 양이시군요."
글래드스톤은 약간 고개를 까닥해 보이며 아는 체를 했다.
그녀는 이 남자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그의 칼럼이 크로니컬지 서평란에 일주일에 두 번 실리고 있었고, 다른 중앙 일간지에 대해 독점이라는 것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글을 거의 읽지 않았다. 그의 칼럼이 작가의 작품에 대해서보다는 오히려 작가들을 잡아먹기 위한 조준사격이랄까, 그런 하찮으면서도 앙심을 품은 듯한 글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교활한 눈동자가 번득이며 그녀를 훑어보는 동안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몸을 떨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 뿐이었다.
"당신이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었소."
카터의 말에 이어 그가 터뜨린 웃음소리는 역겹고 구질구질했다.
"만약 들었다면 그 즉시로 떠났을 테지. 매디슨 씨, 아직도 지난번 책에 대한 내 비평에 화가 나 있소?"
"화나지 않았소. 지금도 그렇고. 그건 당신의 다른 기사들처럼 시시한 잡담에 불과하니까."
그 자의 말라빠진 콧구멍이 벌렁거려 거의 막힐 지경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내 충고를 받아들인 모양이군."
그가 다시 슬론에게 시선을 맞췄다. 목욕을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무슨 충고였지, 시드니?"
카터가 가슴 위로 팔짱을 끼며 대단히 권태로운 듯이 한쪽으로 몸무게를 실었다. 슬론은 그 관심 없는 태도가 진짜라고 생각지 않았다. 글래드스톤이 완전히 멍청이가 아니라면, 그도 아마 알아차렸을 것이다.
"기억하겠지만, 당신 소설에 등장하는 섹스 장면들이 활기도 없고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들이라고 말했었지."
"내 책의 주인공들이 그룹섹스나, 변태, 채찍과 쇠사슬 뭐 이런 걸 즐기지 않는다는 의미라면, 당신 말이 맞소. 그리고 그 점이 오히려 영광이군."
그 비평가는 까다롭게 코웃음을 쳤다.
"전적으로 그런 의미는 아니지. 당신의 섹스 장면에는 확실한 흥분이나 깊이가 결여되어 있어. 비평에서 내가 말한 것은 당신 소설의 사랑유희는 고정적이고 감정이 없고, 흔해 빠졌다는 거였소. 난 당신 자신이 새로운 사랑에 흥미를 갖게 되면 독자들에게 더 이득이 될 거라고 제안했었지."
그가 슬론 쪽을 조잡하게 훔쳐보았다.
"당신 손이 페어차일드 양의 스웨터 아래 들어갈 뻔한 걸 보고 내 충고를 받아들였다는 걸 알았소."
카터의 두 팔이 양쪽으로 떨어지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개자식."
"그런 상소리는 당신 책에나 쓰시지, 매디슨 씨. 거기에 대단히 잘 어울릴 테니까. 그리고 당신의 으르렁거림이나 포악한 표정을 책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남겨놓았다면 난 그런 폭력을 경멸한다오. 개인적으로 난 당신이 새로운 영감의 근원을 찾아내서 기쁘오. 사실 잠자는 연인이 은근히 걱정이 되었거든."
그의 눈이 슬론의 젖가슴에 고정되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가 기대되는군."
그의 말에 실린 경멸은 충분히 눈에 드러날 정도였다.
"비록 당신이 페어차일드 양 같은 연인과 아주 가끔씩만 잤을지는 의심스럽지만."
카터는 단숨에 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그의 목젖이 카터의 강철 같은 손가락에 눌리면서 선반에 쾅 부딪쳤다.
"잘 들어, 잘 들으라구, 시드니. 너의 그 예쁜 목걸이로 목을 졸라주고 싶어 미치겠지만, 넌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 네 칼럼들은 쓰레기일 뿐이고 그걸 읽는 사람들은 누구라도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여자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 네까짓 게 무얼 안다는 건지 모르겠군. 네가 유일하게 희열을 느낄 때는 작가를 석탄 위에 던져놓을 때 뿐이야. 그리고 그것밖에 즐거움을 찾을 방법이 없다면, 정말 네가 불쌍하고 가여울 뿐이다."
"하지만 페어차일드 양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말하다니, 널 죽여버릴 수도 있어. 그리고 그녀에 대해 한 마디라도 쓴다면, 넌지시라도 빗대어 말이 나오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겠어. 네 그곳을 잘라버리면 무슨 일이 생길지 꼭 확인해 볼 참이야. 그리고 만약에……."
"거기 무슨 문제 있습니까?"
주인이 드디어 자신의 책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무 문제없소."
카터가 대꾸하며 그제서야 흔들거리며 목이 꽉 막혀 있는 비평가를 죽음의 손아귀에서 놓아주었다. 하지만 아직 끝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눈과 목소리가 글래드스톤의 얼굴을 사정없이 강타했다.
"내 말 기억하도록."
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끝으로, 그는 부드럽게 슬론의 팔을 잡아 가게 밖으로 끌어당겼다.
차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자신의 무릎이 어떻게 견뎌냈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든 카터가 예의바르게 조수석 안으로 그녀를 밀었다.
"정말 미안해, 슬론."
자신도 차에 타고 나서 그가 말했다.
"당신 잘못이 아니었어요."
"그래, 하지만 내 원한 섞인 대결이었다고나 할까. 난 언젠가 한 번 투나잇쇼에서 그를 멍청하고 재능도 없는 얼간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 그리고 그는 나를 절대 용서할 수 없었지."
웃겨보려던 그의 시도는 비참하게 실패로 돌아갔다. 그녀가 계속 흐릿한 창밖만을 내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얼굴의 새하얀 고요함에 그의 창자가 스멀거리며 경고의 종을 쳐댔다. 하지만 사람들 다니는 거리의 주차된 차 안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일단 기어를 넣고, 차들 속으로 끼어들어 기록적인 시간을 경신하며 페어차일드 하우스에 도착하였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짐꾸러미를 들고 부엌 테이블에 놓는 것을 도와주었다.
그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슬론……."
"싫어요!"
포옹을 피하는 그녀에게 그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기분이 착 가라앉으며, 몸 전체가 차가워지고, 필사적으로 생명의 불길을 태우려고 애써보아도 영혼의 불길이 사그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교활하고 속 좁은 자식 때문에 신경 쓸 필요 없어, 슬론. 당신 그보다는 더 영리하잖아. 분명히 그래. 그 정도는 아닐 거야. 제기랄, 나한테 맞다고 대답해봐!"
말이 끝났을 때쯤, 그는 폭발 직전의 분노로 인해 거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아니, 아니요."
그녀도 되받아 소리를 질렀다.
"그 사람 때문이 아니에요……."
"그럼 뭐야?"
"나 때문이에요. 그의 말이 내가 절대 연인 외의 어떤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 거예요. 오, 맙소사. 난 그 말이 정말 싫어요."
"나도 그래. 자신에 대해 다시는 그런 말하지 말라구."
"왜요? 내가 당신에게 바로 그런 존재인 걸요, 그렇지 않나요? 당신의 아내도 아니고 친구보다는 더한 관계. 당신은 날 어떻게 부를 건가요?"
"사랑하는 사람."
그의 목소리는 평정을 되찾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
"하지만 당신이 결혼할 여자는 아니죠. 당신의 성을 받을 여자도 아니고. 당신의 인생, 당신의 아이들을 함께 나눌 여자도 아니에요."
"알고 있었잖소, 슬론. 우리 둘 다 알고 있었어. 그리고 그것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빌어먹게 하나도 없다는 걸 둘 다 알고 있다구. 시간이 허락되는 한 날 사랑하겠다고 당신이 말했잖소."
"나도 알아요."
그녀는 두 손을 비틀어짜며 흐느꼈다.
"그걸로 충분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렇지가 않아요. 난 제일 친한 친구를 배신했어요. 나 자신을 배신했구요. 그런 식으로 쳐다보지 말라고 그 추잡한 남자에게 당당하게 요구할 수도, 말할 수도 없었다구요. 그 사람이나 다른 모든 사람들은 우리 사랑을 싸구려 천한 것쯤으로 생각할 거예요. 우리 관계가 순수할지는 모르지만, 세상의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보지 않을 거예요."
"세상 사람들 따위 다 꺼지라고 해!"
그가 고함을 쳤다.
"누가 알겠어?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 글래드스톤은 당신에 대해 한 마디도 쓰지 않을 거야. 내 말을 알아들었을 테니까. 그 자식이 허풍은 부려도 사실은 겁쟁이에 불과해.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안다 해도 어떻다는 거야, 우리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정직하다면 왜 신경을 쓰냐구?"
"이건 정직한 게 아니에요, 카터. 우리의 사랑은 거짓을 깔고 있다구요."
그녀는 잠시 멈춰 깊이 몇 모금 숨을 들이쉬며 해야만 할 말을 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끌어 모았다.
"당신은 떠나야 해요, 카터. 더 이상 여기 머물 수는 없어요."
"당신을 떠날 수 없어, 슬론. 언제까지나."
불신과 분노가 섞인 눈으로 그를 쳐다보며, 그녀가 작고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설마, 알리시아와 결혼한 후에도 날 만날 생각은 아니겠지요?"
그녀의 눈을 마주보지 못하며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집어넣는 그의 방어적인 태도가 고백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당신을 포기할 수가 없어, 슬론."
"왜요?"
그녀는 코웃음으로 빈정댔다.
"내가 당신에게 대단히 즐거운 시간을 제공했기 때문에?"
그가 몸을 홱 돌리며 격분한 눈으로 그녀를 꼼짝 못하게 못 박았다.
"그런 말을 하다니."
그래도 그녀는 거만하게 말을 이었다.
"오, 잘 모르겠어요. 글래드스톤의 말이 맞았는지도 몰라요. 내가 확실히 편리한 상대였으니까. 달라붙을 염려도 없고. 이제 당신은 결혼하여 가정을 갖게 될 거고, 부유한 독신남으로서의 화려한 생활을 즐길 수 없겠죠. 당신의 로맨틱한 연애들은 극비가 되어야만 할 거예요.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게, 아주 비밀스럽게.
"내가 무분별하게 당신에게 영혼을 쏟아 부었으니, 당신도 내가 한평생 모든 사람의 흙털이개 정도였다는 걸 알겠죠. 부모님은 나를 제대로 간파하셨어요. 제이슨은 기쁨이 지속되는 동안 날 이용했어요. 이제 당신은 사랑하는 아내의 완전하고 이해력 있는 승인을 가졌음에 의심의 여지가 없고, 영감이 필요할 때마다 날 이용하고 싶은 거예요."
마지막 말은 그에게 침을 뱉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이 음흉하게 그녀의 몸 가운데로 내려갔다.
"그럼 몸이 아닌 말로 내 펜을 자극해 보시지그래."
그녀의 처절한 얼굴로 시선을 드는 순간, 그는 자신이 미워 견딜 수 없었다. 서로에게 던진 그 아픈 말들을 돌이킬 방법을 찾으려 애쓰며 머리를 위로 들었다가 턱을 가슴에 내려뜨리는 동안, 그의 말들이 천정에 메아리쳐 울렸다.
"미안해, 슬론."
그가 마침내 용서를 빌었다. 하지만 자신의 귀에조차 그 말은 공허하고 죽은 소리처럼 들렸다.
"아뇨, 그러지 말아요."
그녀는 씁쓸하게 웃었다.
"당신이 아주 잘 요약했군요. 내가 말하려던 걸 정확히 표현했을 뿐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완벽하게 합의가 됐군요. 할 말은 모두 했어요. 이제 당신은 떠나야 해요. 지금 당장."
"제기랄, 슬론, 그게 당신의 진심일 리 없어."
"오, 애석하지만 진심인 걸요."
그녀는 더 이상의 논쟁을 거부하는 듯이 단호했다.
그의 시선이 통렬하게 그녀에게로 쏟아졌다.
"또다시 그 빌어먹을 껍데기 뒤로 숨을 작정이군, 그렇지? 갑옷처럼 단단하고 어떤 것도 뚫을 수 없는 그 보호막 뒤로 숨을 작정이야."
"분석은 당신의 장기가 아닌 걸요, 매디슨 씨. 명사와 동사, 조잡한 단어와 저속한 빈정거림을 고수하시지요. 그 방면에 아주 뛰어나시던데."
"애원도 또한 내 장기가 아니요."
그는 부엌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좋아, 슬론. 당신의 안전하고 고독한 세계로 돌아가시오. 그리고 자아도 잃어버린 공간에서 뒹구시오. 밤에 혼자 잠들려고 노력하면서, 그 대가가 무언지 생각해 보시오."
거의 박살낼 듯이 문을 밀고 나가는 그를 그녀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 문이 앞뒤로 흔들렸다가 마침내 정지했을 때도 여전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심장이 멈춘 것과 똑같이 멈추어진 문을.
9
그는 떠났다.
텅 빈 공간을 노려보며 부엌 식탁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창문을 통하여 황혼이 기어들고, 어둠으로 가라앉았을 때에도 그녀는 여전히 미동이 앉아 있었다. 어느 한순간 그가 떠나버렸다는 것, 그녀만이 이 집에 홀로 남았다는 것을 그녀는 또렷이 깨달았다. 그는 떠나면서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들어왔을 때보다 더한 팡파르도 없이 그녀의 인생에서 나가버렸다.
슬론은 억지로 몸을 일으켜 어두운 복도를 지나 최면술사의 명령에 따르는 사람처럼 계단을 걸어 올라갔다. 그의 방문이 약간 열려 있었다.
텅 빈 방이 불길해 보였다.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은 깨끗하게 치워진 주검 같았다. 종이뭉치와 타자기, 사전과 백과전서, 그의 빨간 펜들은 사라졌다. 그의 분노와 성급함을 알았던 돌돌 뭉쳐진 종이조각들은 슬프게도 바닥에 버려져 있지 않았다. 욕실에서 그의 개인 용품들은 깨끗이 치워졌다. 옷장은 입을 쩍 벌린 채 비어 있었다. 침대는 정돈되지 않았고 이불이 활짝 피었다가 이제는 시들어 죽어버린 꽃잎처럼 매달려 있었다.
슬론은 성소의 고행자처럼 방을 떠돌았다. 눈에 눈물이 가득 찼다가 어느 순간엔가 홍수처럼 터져 나왔다. 쓰레기통 속에 버려진 원고지를 보고, 그녀는 무릎을 꿇어 그것을 하나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 위로 하나하나 얌전하게 펴서 쌓았다. 그것을 가슴에 누르며, 그녀는 문으로 향했다.
아직은 이 방을 청소할 수 없었다. 나중에, 더 강해졌을 때, 다른 사람을 위해 청소를 할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가슴에서 이렇게 피가 흐르는 동안은 가능하지 않았다.
그가 그렇게도 신중하게 썼다가 그렇게도 쉽게 버린 그 종이들을 가슴에 안은 채, 그녀는 방을 나섰다. 그 뒤로 조용히 문을 닫았다.
"페어차일드 하우스입니다."
이틀 후, 전화벨이 울렸다.
"슬론."
그 목소리는 불가능할 것 같은데도 여전히 낯익은 것이었다.
"알리시아?"
오 하나님, 안 돼요! 이것이 슬론의 머리에 처음 떠오른 생각이었다. 카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그렇지 않다면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이렇게 쓸쓸할 리 없어.
"알리시아, 무슨 일 있니?"
갑자기 떨려오는 손으로 수화기를 꽉 쥐며 그녀가 물었다.
"별일 없어."
알리시아가 맥없이 대답했다.
"적어도 긴급한 일은 아니야. 널 놀라게 할 생각은 아니었어."
슬론의 심장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하지만 어떤 예감이 입속에 쓴 맛처럼 퍼져갔다.
"목-목소리가 너답지 않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슬론은 핏기가 사라진 입술을 손가락으로 짓뭉갰다. 알리시아가 알 리는 없어! 알아채지 못했을 거야! 카터? 아니, 그는 절대 말하지…… 시드니 글래드스톤! 그가 무슨 얘기를 썼을까?…… 아니야, 그녀는 그의 칼럼을 빠짐없이 읽었다. 자신에 대한 내용은 단 한 마디도 쓰여진 적이 없었다.
알리시아가 어떻게 알아냈을까?
"우리 얘기 좀 할까?"
슬론이 눈물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 슬론, 그래 부탁이야. 난 누군가와 얘기를 해야만 해."
알리시아가 눈물로 무너져 내렸다.
슬론은 이 사건의 변화에 어이가 없었다. 알리시아는 카터와 그녀의 연애사건이 아닌, 전적으로 다른 일을 말하고 있었다. 안심이 되었다가, 그녀의 마음에 즉시 걱정이 되돌아왔다.
"무슨 일이야?"
그녀는 근심스럽게 물었다.
"알리시아, 그렇게 울지만 말고 말 좀 해봐."
"말할 수 없어. 그러고 싶은데…… 누군가와 얘기를 해야만 해."
슬론은 아랫입술을 깨문 다음 입을 열었다.
"카터. 그와 얘기해 보지그래?"
"카터는 여기 없어."
"거기 없다구?"
"페어차일드 하우스를 떠날 때 어디로 간다고 얘기 안했니? 그이는 로스 앤젤레스에 오지 않았어. 공항에서 전화해서 뉴욕에 직접 원고를 전달하러 가는 중이라고 말했어. 운반되는 걸 기다릴 수 없으니 결혼식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짓고 싶다고 했어. 결혼식은 다음 주야, 너도 알겠지만."
슬론의 가슴에 납덩이가 얹어진 것 같았다. 그 납덩이가 도망갈 곳도 없는 깊은 심연 속으로 그녀를 끌어내리고 있었다. 그는 이제 이번 책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그녀를 생각나게 하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지길 기다릴 수도 없고,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상처의 딱지를 떼어버리듯이 그것에서 풀려나고 싶은 것이다.
"아-아니."
목이 잠겨 있었다. 그녀는 목을 가다듬고 더 기운을 보탰다.
"아니, 그는 어느 날 저녁 그냥 떠났어. 어디로 간다는 말 안 하길래 난 집으로 가는 줄 알았지."
"나도 그럴 줄 알았어, 책을 끝내자마자.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그게 오히려 잘된 일인지도 몰라."
"무슨 상황?"
슬론은 알리시아가 원래 전화했던 이유로 돌아갔다.
"슬론, 로스앤젤레스로 좀 와줄래?"
슬론이 짧게 웃었다.
"안 되는 거 알잖아. 너 무슨 얘기 하는 거니?"
"제발, 슬론. 네가 날 친구로서 사랑한다면, 이리로 와줘. 딱 하루만. 너와 얘기를 꼭 해야겠어."
"그럴 수는 없어, 알리시아. 전화로 얘기하면 되잖아."
슬론은 알리시아가 친구로서의 사랑 운운하지 않기를 바랐다.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아마 그녀와 비교될 수 있는 전형적인 친구일 것이다.
"네가 와야만 해."
알리시아의 목소리가 잠겼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난 거기 갔었잖아, 너무 최근에 아이들을 떠났었다구. 비행기 표 값은 내가 줄게. 무슨 짓이든 할게, 제발 와주기만 해, 슬론. 지금은 페어차일드 하우스에 아무도 없잖니, 그렇지? 제발 부탁이야."
슬론은 책상 위의 청동 문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알리시아의 목소리에 담긴 절망은 진짜였다. 무슨 일인가가 대단히 잘못되었고, 그녀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도움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녀가 얼마나 비열한 친구인지 안다면 재고해 보겠지만 말 그대로, 그녀는 슬론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슬론은 이미 한 번 그녀를 배반했었는데, 다행히도 친구는 그것을 절대 알지 못할 것이다. 지금 그녀의 도움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알리시아에게 무엇으로도 보상할 수 없는 빚이 있지 않은가?
"다음 주 수요일에 올 손님이 있어. 그 전까지는 돌아와야 해."
"내일."
알리시아가 재빨리 말했다.
"내일 와, 부탁해."
슬론은 동요된 손가락으로 찌푸린 이마를 문질렀다. 알리시아를 제대로 쳐다볼 수 있을까?
"그럴 수 있을 거야. 아침 첫 비행기를 타고 가서 너희 집까지는 택시로 가면 될 거야."
"난 카터의 해변 집에 있어. 그이가 와서 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고, 아이들도 해변에서 놀고 싶어 하거든."
맙소사. 이 고문, 이 악몽은 언제까지나 끝나지 않을 셈인가? 카터의 집이라니!
"주소가 어떻게 되지?"
그녀는 험악하게 물었다. 비행기 표를 사주겠다는 알리시아의 제안을 거절하며, 그녀는 내일 가기로 약속해 주었다.
그리고 나서, 남은 하루는 몽유병자처럼 지냈다. 카터가 떠난 후로는 언제나 그랬었다. 습관적으로 생활을 이어나갔다. 잠을 자고, 깨어나고, 먹고…… 프로그램이 입력된 로봇처럼 집안일들을 했다.
예전에 많은 기쁨을 가져다주었던 페어차일드 하우스가 카터의 일시적인 방문으로 인하여 완전히 변해버렸다.
2층 구석에 있는 그 커다란 방은 영원히 카터의 방이 될 것이다.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여도, 빨래를 하거나 공기를 바꾸어 보아도 그를 쫓아내지는 못할 것이었다. 그녀의 마음과 똑같이 그의 영혼을 몰아내지 못할 것이다. 절대로.
적어도 날씨 때문에 손해본 수익에 대해 초조해할 필요는 없었다. 매일매일 방이 예약되고 있었다. 이대로만 유지된다면, 어려움을 극복하고 여행 잡지에 광고를 실 정도의 돈을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페어차일드 하우스의 미래는 얼마나 대중적인 호응을 얻느냐에 달렸다. 그녀는 지금까지 머물고 간 사람들에게 제안해왔던 자신의 상품에 자신이 있었다.
일은 제대로 돌아갈 것이다. 그녀는 다른 실망감들에서 살아남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 혼란 속에서도 일어설 것이다. 결국엔 그렇게 가슴 아프지 않게 될 것이다. 그의 영상은 마음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어쩌면 경대 위 상자 속에 잠궈둔 그 원고를 읽지 않고서 잠들 수 있는 성공적인 밤이 며칠쯤 생기게 되겠지. 결국에는 그의 강인한 팔에 안겼을 때의 느낌과, 사랑해주던 그 화려한 감각을 더 이상 기억하지 않게 될 때가 올 것이다.
회복이 느리긴 하겠지만, 어쨌든 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공항 택시에서 내려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솟아오른 그의 집을 보면서 어쩔 수 없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그 집이 너무나 주인의 성격을 반영하고 있었기에, 운전사에게 요금을 지불하는 그녀의 눈은 눈물로 흐릿해졌다.
아이들의 고함과 웃음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그 집을 둘러싼 삼나무 테라스를 돌아갔다. 알리시아가 뒷난간에 고개를 내밀고 해변을 달리는 두 아이들에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담, 모래 던지지 마. 그렇지 않으면 들어오게 할 거야."
"그렇게 잔인한 짓은 안하시겠죠, 네?"
"슬론!"
알리시아가 친구를 알아보고 달려와서는 그녀에게 매달려 꼭 끌어안았다. 그러한 순수한 환영의 몸짓에 슬론은 죄책감으로 목이 메었다.
"아, 널 보니까 너무 좋다. 와주어서 기뻐. 고마워."
"고맙단 말 하지마. 난 아무것도 한 게 없는 걸."
"여기 왔잖아. 그걸로도 충분해. 안으로 들어가자."
"아이들은……."
"물가에는 가지 말라고 얘기해 두었어. 너무 차갑거든. 그리고 내가 눈을 떼지 않을 거야."
"아이들은 참 빨리 자라는구나."
슬론은 신나게 모래를 달리는 자그마한 몸체들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래, 정말이야."
알리시아는 바닥에서 천정까지 연결된 문을 활짝 열고 슬론을 카터의 집 안으로 끌어들였다. 거실은 천정 높은 2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베이지와 갈색톤의 수에드 소파와 의자들이 벽난로 둘레에 잘 정돈되었다. 벽난로 앞에는 어디서 구한 건지 알 수 없는 양탄자가 나무마루 위에 깔렸고, 카터가 세계 구석구석을 여행했음을 말해주는 밝은 사진과 색색의 포스터들이 하얀 회벽 위에 걸려 있었다. 나선형 계단으로 책상과 의자 하나밖에 없는 다락방이 연결되었는데 그곳의 벽은 책장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방 전체가 햇살을 가득 받아들이고 있었다. 슬론은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카터가 디자인한 것임이 틀림없었다.
"레모네이드 마실래?"
알리시아는 슬론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부엌이래야 오픈된 바에 의해서만 겨우 거실과 분리된 구역이었다. 그녀가 커다란 유리피처에 클럽 소다와 분홍빛 얼음을 섞는 동안, 슬론은 그 방의 분위기에 푹 젖어들었다.
카터의 취향은 완벽했다. 사방의 책장에 꽂힌 읽을거리는 철학과 종교에서부터 춘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것이었다. 수집해 놓은 레코드도 부러울 정도였다. 그가 자신을 둘러싸게 만들어 놓은 물건들을 보면서, 슬론은 그의 영혼을 만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 집의 나머지 부분들도 보고 싶었지만, 알리시아가 제안하지 않는 한 부탁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행기 여행은 어땠어?"
차가운 컵을 건네며 알리시아가 물었다.
"요란했어. 아기가 둘 탔는데 여행을 즐긴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거야."
알리시아는 용감히 웃어보이려고 애썼다.
"테라스는 너무 추울까?"
"아니.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볼 수 있어서 더 좋아."
"편한 옷으로 갈아입어. 하지만 넌 거의 그런 적이 없지, 참."
슬론은 지난주에 속옷도 없이 청바지와 스웨터만 입은 차림으로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녔노라고 말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리시아가 그걸 믿을지는 의심스러웠다. 카터도 간신히 눈으로 확인하고서야 믿었으니까. 비록 그것이 그녀의 벽을 깨주려는 치료의 일부였지만 말이다. 그는 익살스런 윙크를 하며 이렇게 말했었다. '장난삼아 한 말이었는데.'
오늘 그녀는 하늘색 치마 정장과 그에 어울리는 헤링본 재킷을 완벽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블라우스도 단정했다. 청바지와 셔틀넥 차림의 알리시아 옆에 있으니, 자신의 틀에 박힌 모습이 소화가 잘 안되는 느낌이었다.
슬론은 또다시 카터가 이 친구보다 자신을 어떻게 더 좋아할 수 있었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아니면, 그녀를 침대에 끌어들이기 위해 그런 척만 했을 뿐일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거의 숨이 막히려 했다. 아냐, 아냐, 아냐. 그가 화난 채로, 자존심을 껴안고 모욕당한 마음으로 떠났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고백이 거짓말이라는 건 믿을 수 없었다. 믿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 믿지 않을 것이다.
알리시아는 긴 의자에 날렵한 몸을 쭉 폈고, 슬론은 바다가 보이는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나중에 만나고, 먼저 너와 얘길 하고 싶어. 괜찮겠니?"
알리시아가 물었다.
"물론이지.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너의 그 온전하고 현실적이며 안정적인 목소리를 듣는다는 게 얼마나 좋은지 아니?"
한숨을 쉬자 알리시아의 풍만한 젖가슴이 스웨터 아래에서 사뭇 떨렸다. 슬론은 카터가 그곳을 만지며 키스……하는 상상을 하지 않으려 노력해야만 했다.
"나 창피해 미치겠어."
알리시아의 울부짖음이 슬론을 골몰한 생각에서 이끌어냈다.
"알리시아, 제발 그러지 마."
격렬한 흐느낌에 알리시아의 어깨가 바들거렸다.
"무슨 일인데 그래? 그리고 창피하다니 무슨 뜻이야? 네가 창피할 만한 짓을 하는 건 상상이 안 돼."
"나도 그런 줄 알았어."
그녀는 훌쩍이며 침을 삼켰다.
"하지만 그런 짓을 했다니까. 그리고 더 심한 건 그렇게 부끄러운 짓을 했다는 걸 후회하지도 않고 있다는 점이야."
슬론은 알리시아에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주며 인내력 있게 앉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돌아온 그 주말에 난 타호에 갔었어. 몇 달 전에 이혼한 친구가 하나 있는데 그 친구가 주말에 같이 시내에 나가자고 했어. 신께 맹세코, 슬론 내가 왜 거기 갔는지 이유를 모르겠어, 다만…… 그 이유는 나중에 얘기하자. 난 하여튼 거기 가서 어떤 사람을 만났어. 그이는 잘생기고, 친절하고 재미있는 남자였어. 우리는 하루종일 같이 스키를 타면서 즐겁게 보냈어. 그리고 그날 밤 난 그의 방에서 잤어. 그이는 밤새도록 날 사랑해 주었고 아주 굉장한 느낌이었어."
그녀는 마침내 말을 해버렸다는 사실에 대단히 안도한 듯이 긴 한숨을 품어내며 몸을 떨었다. 그 후로 한참동안 두 사람은 침묵 속에 남아 있었다. 마침내 알리시아가 고개를 들어 슬론을 쳐다보았다.
"내가 너무 충격을 준 거니?"
슬론은 얼른 머리를 내젓고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아니야."
알리시아가 다시 의자의 쿠션에 머리를 기댔다.
"물론 나도 충격이었어. 나 자신한테 놀랐어. 넌 거의 알지도 못하는 남자와 잠을 잔 데다가 그걸 아주 즐거워한 나를 창녀처럼 생각할 거야, 틀림없이. 너를 이해시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슬론? 너처럼 이성적인 여자는 절대 그런 식으로 자신을 내버려두지 않겠지? 조심성을 바람에 던져 버리고, 내일을 악마에게 내맡긴 채, 옳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죄를 짓는 것 말이야."
슬론은 가슴이 더 이상 고통스럽게 쿵쾅거리고 머릿속의 천둥이 지금보다 더 커진다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열만을 위해서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이 어떤 건지 그녀가 모른다고? 아니, 오히려 너무나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나에게 유일한 핑계거리가 있다면, 짐 러셀을 너무 어렸을 때 만났다는 거겠지. 우린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결혼했고 몇 년 만에 두 아들을 낳았어. 그리고 나서 짐은 죽어버리고 난 너무나…… 너무나 늙어버린 느낌이 들었어. 늙고 모든 기력을 다 써버린 듯한. 내가 즐길 시간을 갖기도 전에 인생이 날 지나쳐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어. 짐과 일찍 결혼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야. 그렇지는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속하지 않았던 시간, 오로지 나만을 위해 살 시간은 내 인생에서 한 번도 없었던 거야."
그녀는 모래에서 장난치는 두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시간은 절대 오지 않을 거야, 그렇지?"
"네가 다음 주에 카터와 결혼한다면, 그렇지 않겠지."
알리시아의 맑은 눈동자가 다시 눈물로 가려졌다.
"그래서 그날 일에 대해 이다지도 죄책감을 느끼는 거야, 슬론. 난 카터를 사랑해, 하지만……."
그녀는 말끝을 흐리며 풀려나온 스웨터의 실밥을 뜯어냈다.
"어쩌면 너에게 이 얘기를 고백하면 안되는 거였는지 몰라, 하지만 그걸 가슴에서 씻어낼 방법이 필요했어. 카터와 난 절대, 너도 알겠지, 같이 자본 적이 없어. 우리는 온화한 애정 이상으로 진전된 적 없어. 음, 너의 집에서 딱 한 번 있었구나, 네가 방에 들어왔을 때 우리 키스를 보았잖니, 기억나?"
슬론은 벙어리처럼 고개만 끄덕였다.
"넌 아마 깃털 하나로도 날 쓰러뜨릴 수 있었을 거야! 그이는 나한테 한 번도 그렇게 대한 적이 없었거든. 그리고 난…… 음, 그렇게 정열적인 키스가 나한테는 아무 느낌도 없었다구. 말도 안된다는 거 알지만, 난 짐에게 충실치 못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구. 난 카터를 볼 때마다, 짐을 봐. 우리가 그에게 못할 짓을 하는 것만 같아. 그런데 타호에서 만난 그 남자에게는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어."
"카터는 짐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 네가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당연한 거야."
슬론은 더 나은 말이 생각나지 않아 그냥 그렇게 말했다. 카터가 떠난 뒤 그녀를 집어삼켰던 깜깜한 어둠 속에서 조그만 광선 하나가 빛나기 시작했다. 그것이 완전한 희망의 빛이 될 수 있다는 바람은 감히 할 수도 없었다…….
"솔직히 카터는…… 한 번도 날 자극한 적이 없어. 아주 좋은 친구였을 뿐이야. 물론 난 결혼한 후에 신부들이 해야할 일을 하긴 할 거야. 그이가 성적으로 나에게 아무 느낌이 들지 않는다 해도 카터의 남성적인 면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니까. 그가 혼자 자는 결혼생활을 견딜 것 같지는 않아. 우린 둘 다 아이를 더 바라고 있어."
그녀의 목소리가 점점 희미해지면서, 그 희미한 속삭임이 몰아치는 바닷바람에 운반되어 왔다.
내부의 혼란에도 불구하고, 수줍게 말하는 알리시아는 아름다워 보였다.
"슬론, 맥이 - 그게 그 사람 이름이야 - 만질 때마다, 난 온몸이 얼얼해. 내 말 무슨 뜻인지 알겠니? 날 몹쓸 인간이라고 생각해?"
슬론의 부드러운 미소는 약간 슬퍼보였다.
"그래, 그 말 무슨 뜻인지 알아. 그리고 아니, 넌 전혀 그런 여자가 아니야."
애정 어린 태연함으로 그녀가 물었다.
"그 맥이라는 사람, 어디 사니? 그를 다시 만나고 싶어?"
"그이는 포트랜드에 살아. 그리고 그이가 날 만나러 오겠다고 했어. 물론 난 안된다고 했지. 그 사람한테 죄다 말해버렸어."
그녀가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야. 문제는 내 선택이 제한되었다는 거야."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 앉았다.
"그렇다고 아무하고나 자고 싶지는 않아. 내 말 뜻 알겠지?"
"그래."
슬론도 성실하게 대답했다.
"난 그런 종류의 삶을 경멸해. 그런 식으로 사는 친구도 사실 좋아하지는 않아. 타호에 같이 갔던 친구는 아마 타호에서의 주말 이후로 수십 명의 남자랑 잤을 거고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을 거야. 난 그렇지 않아, 슬론. 난 그런 식으로 자신을 전락시킬 수 없어, 아이들을 위해서도 그렇고. 다만 온 마음을 다해서 정열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남자가 짐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달았을 뿐이야.
"난 내 일부가 죽었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렇지가 않았더라고. 그냥 잠들어 있었을 뿐이야. 맥의 손길을 느꼈을 때, 난 내가 여자라는 걸, 미망인이나 엄마나 친한 친구만이 아닌 한 여자라는 걸 깨닫게 됐어. 샌프란시스코를 다녀온 후로, 카터에게 그런 식으로 키스받은 후로, 난 알았어. 그가 내 무릎을 떨리게 만들지 못하리라는 것을. 처음으로 타호에 가게 된 건 바로 그 이유였어."
"어떻게 할 거니?"
슬론이 천천히 물었다. 아까의 그 빛이 더 밝아졌다. 그녀는 의자에 침착하게 앉아 있는 것이 고작이었지만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지르고, 해변에서 뛰노는 아이들과 같이 달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겨울 털을 갈아낸 동물처럼, 새롭게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모르겠어."
알리시아는 고통스럽게 대답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줘, 슬론."
알리시아의 수정 같은 눈동자와 목소리에 애원이 담겨 있었다.
"카터가 아주 멋진 남자라는 걸 말해줘. 그와 함께 있으면 아무 위험도 없을 거라고 말해줘. 아이들과 난 안전할 거라고. 아이들의 행복이 내 자신의 이기적인 욕망보다 중요하다고 말해줘. 카터가 그 애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짐의 미망인이 낯선 남자와 같이 잤으며 그 순간순간을 즐겼다는 걸 알게 되면 카터가 얼마나 실망할지 나에게 일깨워줘. 결혼하고 나면, 한 침대를 쓰고 나면, 그때는 정열이 생길 거라고 확신시켜 줘. 이런 얘길 모두 나에게 해줘봐, 슬론. 무엇이 정숙하고 책임 있는 행동인지 일깨워줘 봐."
알리시아는 깊은 한숨을 쉰 후에 다시 계속했다.
"아니면, 옳은 일 따위는 집어치우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말해줘. 진실을 알게 되면, 카터가 오히려 안도할 지도 모른다고. 그이가 짐에 대한 의무감으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나와 결혼하는 거라고. 카터에게 가서, 그를 사랑하지만 원래 사랑하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해버리라고 해."
둘 사이의 공간에 손을 뻗어, 그녀가 슬론의 두 손을 잡았다.
"슬론, 제발 충고 좀 해줘."
"그럴 수는 없어."
슬론은 갑작스런 감정을 폭발시키며 소리 질렀다.
"나한테 그런 거 요구하지 마, 알리시아. 난 너에게 무얼 어떻게 하라고 말할 수 없어."
'그럴 수만 있다면. 카터와의 약혼을 깨면 모든 면에서 최선이 될 거라고 말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마음 한구석이 소리 지르고 있었다.
'말해, 그녀에게 말해. 쉽게 결정하도록 만들어. 너와 카터가 사랑에 빠졌다는 걸 기뻐할 거야. 말하라구.'
그것은 한 문장만으로 족했다.
'난 카터를 사랑하고 그이도 날 사랑한다고 믿어.'
그런 일이 생기게 할 의도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그렇게 되어버렸다고 알리시아에게 정직하게 말할 수도 있었다. 이제 그들은 원하는 것을 모두 가질 수 있었다. 슬론은 카터를 가질 수 있다. 그이도 그녀를 가질 수 있다. 알리시아는 자유롭게 자신의 행복을 찾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다른 한 부분은 가슴 속의 논쟁에 귀를 틀어막았다. 그녀는 알리시아의 결정에 간섭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알리시아가 카터를 더 사랑하고 있을 수도 있다. 타호에서의 주말은 처음이어서 그 진귀함에 푹 빠져있을 뿐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마음이 사실보다 더 낭만적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나중에, 카터와 나눴던 그 안전하고 믿음직한 사랑이 바로 필요한 것이라는 걸 깨닫는다면 어쩌겠는가.
안 돼. 슬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알리시아가 이 인생이 걸린 결정 때문에 후회를 경험하게 된다면, 슬론은 살 자신이 없었다. 알리시아가 카터를 포기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친다면, 카터와 함께 절대 행복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알리시아의 결정이어야만 했다, 그녀 혼자만의 결정.
하지만 제발, 하나님, 내가 기도한 쪽으로 되게 하소서.
"슬론, 난 어쩌면 좋아?"
그들은 각자 자신들의 생각에 잠겨, 해변에서 노는 아이들을 응시했다.
"애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해."
알리시아가 조용히 말했다.
"카터 같은 아빠, 하지만……."
다시 그들은 침묵에 잠겼다, 각자의 지옥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싸우고 있었다.
그때 데이비드가 노는 걸 멈추고 동생을 홱 잡아당기며 집 쪽을 손가락질했다. 데이비드가 무언가 소리를 지르고 이어서 아담은 더 짧고 느린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두 아이는 가슴이 찢어져라 고함을 쳐대며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슬론과 알리시아는 당혹스레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때 데이비드의 쾌활한 목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들어왔다.
"아저씨, 아저씨. 카터 아저씨가 돌아왔어."
둘이 동시에 몸을 돌리자, 베란다 구석을 돌아오는 카터의 모습이 보였다. 알리시아와 같이 있는 사람을 알아채자, 그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친 것처럼 돌연 멈춰섰다. 세 사람이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네 개의 운동화 신은 발이 해변에서 계단을 달려 올라오는 동안.
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두 명의 작은 아이들을 껴안으면서, 카터는 슬론을 본 충격에서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돌아왔군요, 돌아왔군요."
데이비드가 카터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춤을 추었다.
"카터, 아이스크림 사오셨어요? 말 잘 들으면 아저씨가 사오실 거라고 엄마가 그랬는데."
아담이 옆에서 거들었다.
"우린 착하게 지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우리 물고기가 죽었어요. 아빠와 같이 천국에 있을 거예요. 하지만 엄마가 다른 걸 가질 수 있을 거라고 말했어요."
"배를 뒤집고 물 위에 떠 있었다구요. 내가 먼저 봤어요. 데이비드는 죽지 않았다고 했지만, 난 죽었다고 말했어요."
알리시아가 슬론의 눈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비참함에 싸여 있지만 않았더라면, 그 안개 낀 깊은 웅덩이 속에 자신과 똑같은 서글픔이 깃들어 있는 것을 보았을 텐데. 모든 걸 체념한 미소를 확실히 지어보이려 애썼지만, 잘 되지 않았다.
"사실 선택의 여지는 없는 거겠지?"
슬론의 귀에 대고 그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슬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로 자신이 망가질지라도, 영원히 침묵을 지키는 외의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
"마음속으로는, 내가 다른 짓을 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어. 네 식으로 할 거야. 넌 언제나 옳은 행동을 하잖아, 슬론. 너라면 그럴 거야."
옳은 행동이라구? 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게 옳은 일이야? 그래. 이 상황에서는 그렇다. 카터와 알리시아는 둘 다 사랑하고 있는 아이들을 통해 서로에 대한 사랑을 키워갈 것이고, 성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짐의 기억은 점차 흐릿해질 것이다. 그들은 둘 다 육체적으로 아름답다. 그걸 깨달을 때 틀림없이 정열의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그래. 이상적이진 않지만, 그것이 옳은 일이다.
알리시아가 슬론의 손을 힘껏 쥐고 나서 재빨리 일어서며 카터의 품속으로 안겼다.
"집에 오신 걸 환영해요, 무심한 사람."
그녀가 쾌활하게 입을 열었다.
여전히 바짓자락에 매달린 두 아이들 사이로 그가 그녀를 안았다. 다정한 한 가족의 재회 장면이 완벽하게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의 눈동자는 알리시아의 어깨 너머 슬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이 수천가지의 메시지를 담아 번득였고, 그녀는 그 하나하나를 받아들였다. 전에 한 말은 미안해. 그리웠소. 비참했소. 당신이 없는 세상, 당신이 없는 생활에 지쳤어, 진력이 났어. 이 집에서 당신이 무얼 하고 있는 거요? 그 옷차림새와 단단하게 묶은 머리모양은 또 대체 어떻게 된 거요? 그녀에 대한 책망도 담겨 있었다.
"당신이 없어서 너무나 외로웠어요. 그래서 슬론에게 와달라고 전화했죠."
알리시아가 간이 접의자들 쪽으로 그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하지만 슬론은 카터를 본 후로 지금까지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신발이 그 자리에 못이라도 박힌 것처럼. 눈과 입가에 드리워진 피로의 기색과 충혈된 눈 속의 공허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멋져 보였다. 목 주위에 매듭이 있는 스포츠 셔츠와 편한 바지를 입은 모습이었다.
"안녕, 슬론."
"안녕하세요, 카터. 뉴욕은 어땠어요?"
"춥고 비가 오지요."
"당신은 비를 몰고 다니는 모양이에요."
알리시아는 놀랄 만큼 회복력이 강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있을 때도 거의 계속해서 비가 왔잖아요?"
"그랬지."
대답하는 그의 눈이 슬론의 눈 속으로 녹아들었다.
"얘들아, 그만들 싸우고 슬론 아줌마에게 인사해야지."
알리시아의 명령에 아이들은 유순하게 인사말을 중얼거렸다.
그녀는 그들의 인사에 미소로 답했다. 지금의 느낌처럼 부서질 듯이 보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주 멋진 신사들이 됐구나."
"저희 아빠를 아세요?"
아담이 물었다.
"아빠는 죽었어요."
슬론의 눈이 팔짱을 끼고 선 알리시아와 카터를 재빨리 쳐다보았다.
"그-그래, 알아. 넌 아빠처럼 아주 잘생겼단다."
"엄마도 그렇게 말했어요. 이제는 카터 아저씨가 아빠가 될 거예요."
"좋겠구나."
그 말이 목을 졸라오는 끈 속에서 어떻게 살아나갔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요, 좋아요."
데이비드의 말에 아담이 노래하듯 소리쳤다.
"좋아, 좋아, 좋아."
"이제 가서 놀아라."
알리시아가 말했다.
"당신 책은 어떻게 됐어요?"
테라스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살핀 후 그녀가 카터에게 물었다.
"다 끝냈어요?"
"그래. 이미 편집자 책상에 있지. 그 사람 말로는 내 최고의 작품이 될 거래."
"아주 좋은 소식이에요, 달링."
알리시아는 그를 숭배하듯 올려다보며 두 손을 가슴에 모았다.
"당신은 너무 열심히 일했다구요."
"많은 게 이 책 속으로 들어갔지."
그는 슬론을 보지 않으려 진심으로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것쯤 다 집어치우라지. 그의 눈이 이성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얼굴을 집어삼킬 듯이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행복한 결말인가요?"
알리시아가 물었다.
카터는 슬론에게서 눈을 잡아떼어 약혼녀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아이들만큼이나 순수하고 결백해 보였다. '내가 그녀에게 왜 화를 내고 있었던가?' 그런 감정은 절대 안 될 말이다. 그가 잘못된 여인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닌 것을. 황량한 눈을 슬론에게 되돌리며, 그는 엄숙하게 대답했다.
"끝날 수밖에 없는 방법으로 끝났지."
그의 말이 마치 공기공급을 차단해 버리기라도 한 듯, 슬론은 부리나케 몸을 돌려 현관을 향해 돌진했다.
"택시를 불러야겠어."
"안 돼, 슬론. 저녁이라도 먹고 가야지."
알리시아가 고함을 쳤다.
"그럴 수 없어. 돌아가야 해."
"거기 그대로 서 있어. 데이비드와 아담을 잡아올 때까지 아무 짓도 하면 안 돼."
알리시아의 관심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사라져버린 아이들에게 전환되었다. 하지만 카터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집 안으로 슬론을 따라 들어오며, 그녀를 껴안지 않으려고 육체의 모든 근육을 잡아매야만 했다.
그녀의 볼품없는 옷차림과 또다시 뒤로 묶어버린 머릿다발, 그가 익히 알고 있는 모든 생기를 뒤로 감춘 경계심어린 표정이 저주스러웠다. 얇게 꽉 다문 입술은 사랑의 자비로움으로 그의 감각을 혼란스럽게 했던 그 미소 짓던 유혹적인 입술과 전혀 닮아 있지 않았다.
그 패배주의의 벽 뒤에 숨은 정열적인 여인을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한 번 족쇄를 푼 이상 그의 손길로 그녀의 정열은 금세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양심이란 것이 두 사람을 서로에게 금지시켜 버렸다.
하지만, 얼마나 그녀를 원하는지, 얼마나 그녀를 필요로 하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리지 않고 보낼 수는 없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크게 말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후회할 것만 같았다.
"슬론, 난……."
"됐어요."
그녀는 이를 악물었다. 의자 등을 뻣뻣한 팔로 감아쥐며 그에게 등을 돌렸다.
"아무말 하지 말아요."
"난 말해야겠어, 제기랄."
"아뇨. 제발. 만약 당신이 말하면, 견딜 수 없을 거예요."
"슬론, 택시 부르지 마."
분명 한 편의 드라마가 펼쳐지려는 방 안으로 알리시아가 성큼 들어섰다.
"아이들이 공항에 가서 비행기 보고 싶대."
"싫어. 카터는 방금 공항에서 돌아왔잖아."
슬론이 재빨리 거절을 했다.
"난 괜찮소."
"당신은 여기 계세요, 카터. 내가 바래다줄게요. 다음 주 결혼식 때나 수고해주시라구요."
알리시아의 말에 마치 배를 강하고 빠르게 얻어 채인 듯한 기분이었다.
"결혼식에는 못 올 거야."
이제 멍한 표정은 알리시아의 몫이었다.
"하지만, 슬론, 넌 와야 돼!"
지구상의 어떤 것도 카터가 다른 여자에게 사랑과 인생을 서약하는 걸 앉아서 듣게 할 수 없다. 어떤 여자에게라도. 비록 그 사람이 슬론이 좋아해 마지않는 친구라 해도.
"미안해, 하지만 올 수 없어. 그 때쯤이면 페어차일드 하우스에 손님들이 와 있을 거야. 난 거길 떠날 수 없어. 오늘 온 걸 결혼축하로 생각해 주렴."
알리시아는 화나고 속상한 표정이었다.
"넌 내 첫 번째 결혼식 때도 안 왔잖니."
그리고 발끈하며 말했다.
"이번에도 안 오겠다니 믿을 수가 없어."
"널 실망시키고 싶지는 않아, 알리시아. 하지만 올 수가 없어…… 네 결혼식 때 올 수가 없어."
알리시아가 몇 번이나 항의를 했지만, 그녀의 대답은 끝까지 논쟁의 여지가 없었다. 카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분쯤 후에 그들은 집을 출발했다. 드라이브웨이로 차를 후진시키면서 알리시아는 아이들에게 비행기가 어떻게 나는지 설명하고 있었다.
슬론은 용기를 내어 마지막으로 한 번 집을 돌아보기로 했다. 카터가 테라스에 서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바람에 머리카락이 찢어질 듯이 나부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끼워 넣고 어깨는 약간 움츠린 모습,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마음속의 적을 막아내기 위해서일까, 그녀는 알 수 없었다. 깊은 그늘 속에 가리워진 듯한 얼굴은 헤아릴 수 없었다.
이게 낫다. 그의 눈 속에서 감정이 번득였다면, 슬론은 결과야 어찌되든 절대 그를 떠날 수 없었을지도 몰랐다.
10
'적어도 이건 갖고 있잖니.'
슬론은 식당 테이블에 둘러앉은 손님들에게 캐러멜 소스를 뿌린 커스터드를 내놓으며 생각했다. 페어차일드 하우스는 꽉 들어차 있었다. 위층에 빈 침실은 없었다. 하나만 빼고. 하지만 그 하나는 원래 계산하지 않는 거니까.
그녀는 살아남을 것이다. 전에도 그랬으니, 다시 그렇게 되지 말란 법도 없다.
페어차일드 하우스가 그녀의 모든 에너지, 육체적 정신적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도록 요구하겠지. 이것이 그녀의 몫이다. 이것이 그녀의 인생이다. 그녀가 가진 모든 것은 이 곳을 성공시키기 위해 쏟아 부어질 것이었다.
금요일 저녁.
오늘 두 시에 카터와 알리시아는 결혼을 했다.
그는 이제 그녀의 인생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그녀에게 남은 것은 페어차일드 하우스뿐. 지금부터는 사업에만 신경을 써야 한다.
"무척 끔찍하셨겠어요. 그렇지 않았나요, 페어차일드 양?"
그녀는 하마터면 아주 아끼는 아이리쉬 리넨 식탁보에 커피를 쏟을 뻔했다. 그녀 주위로 대화가 흐르고 있다 해도 듣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질문이 떨어지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죄송해요. 뭐라고 하셨어요?"
"바깥이 온통 비투성이였으니, 무척 끔찍하셨겠다고요."
동부 해안 쪽에서 온 여자의 콧소리 섞인 발음이었다. 끊임없이 남편을 못살게 굴던 그 여자였다.
그녀와 카터를 기꺼운 죄수로 잡아두었던 비, 계절과 어울리지 않았던 날씨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녀의 눈에는 안개가 서렸다.
"밖에 나가야 하는 경우라면 끔찍했겠죠. 커피 더 드시겠어요, 윌리엄즈 부인?"
진심어린 부드러운 목소리, 겸손하면서도 자신의 슬픔을 전혀 드러내지 않도록 훈련된 목소리였다.
슬론은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 커피와 술과 풀잎차를 제공해 주었다. 마지막 손님이 위층으로 사라졌을 때는 이미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었다. 슬론은 지친 몸으로 돌아다니며 문이 잠겼는지 불을 다 껐는지 확인했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서랍장 위의 램프를 켜고 나서 무의식적으로 잘 보이는 곳에 위치한 상자의 뚜껑을 만져보았다. 그녀의 입가에 쓰디쓴 미소가 서리며 또다시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찼다.
그녀에게 있어 둘이 되는 일이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언제나 하나일 수밖에 없는 운명.
기계적으로 손을 올려 머리에서 핀들을 뽑아냈다. 하나씩하나씩, 천천히 머릿다발이 어깨 위로 무거운 파도를 치며 떨어질 때까지. 두 손으로 머리를 빗어 넘겨 목 위로 회전시켰다. 슬픔이 마음을 깊이 갈라놓았을 때도 행복한 척해야 하는 긴장감을 이제서야 모조리 풀어놓았다.
그녀는 치마의 지퍼를 열어 벗은 다음 의자 등에 조심스레 걸쳐놓았다. 입고 있는 슬립이 엉덩이에 매달려, 여성적인 삼각지 위로 깊은 곡선을 만들고 허벅지의 형태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블라우스의 단추를 열기 위해 고개를 숙이자, 병약하게 움푹 패인 두 뺨으로 머리가 떨어져 내리며 애무를 했다.
주름진 앞자락에 늘어진 단추들이 나른하게 풀려나가는 동안 그녀는 가까운 곳의 명확치 않은 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블라우스를 벗으며 우연히 거울을 본 순간, 방 건너편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보였다.
심장이 목까지 치솟아 오르는 것 같아, 비명이 나오기 전에 얼른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몸을 홱 돌렸다. 그 돌연한 움직임과 머리에 솟구치는 핏줄기로 인해 현기증이 나고 시야가 흐릿해졌다. 그녀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서랍장 끝을 움켜쥐었다.
그 사람이었다. 매일 밤 그 의자에 앉아 이런 일상을 늘 보았던 듯이 행동하고 있었다. 한쪽 발목을 다른 쪽 무릎에 올린 채. 무릎에는 책 한 권을 올려놓고 안경이 코끝에 위태롭게 걸쳐져 있었다.
"나 때문에 멈추지는 마시오."
그의 시선과 마찬가지로 유혹적인 목소리가 말을 걸었다. 그의 눈이 심사숙고하듯 그녀의 몸을 배회하고 있었다.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가장 흥미롭고 자극적인 스트립쇼를 보는 중이지."
"집어치워요, 카터. 대답하라구요."
그 동안의 모든 욕구불만과 가슴아픈 상처와 절망이 표면으로 떠오르며 그녀는 성난 황소처럼 그를 향해 돌진했다. 고통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제 포기하기로 겨우 마음을 잡았는데, 어떤 못된 신이 그녀를 이런 꿈으로 괴롭힌단 말인가? 아니면 이게 현실일 수 있을까? 그가 진짜 여기 있는 걸까? 처음 현관문에 도착했던 밤과 똑같은 낡아빠진 재킷 차림으로 진짜 여기 있는 것일까?
"어떻게 들어왔어요? 문은 다 잠겼는데."
"<주교의 입맞춤> 5장에 나오지."
그가 무릎 위의 책을 들어 올렸다.
"내가 제대로 해낸 건지 지금 읽어보던 중이었소. 물론 논란의 여지는 있지. 난 뒷문을 열고 들어와 누가 발견하기 전에 다시 잠궈놓았으니까."
그의 미소에 소년 같은 자부심이 서렸다.
"내가 슬레터처럼 무척이나 잘 해낸 것 같아. 그는 이 책의 주인공……."
"여기서 뭐하는 거예요?"
주먹을 불끈 쥔 채 그녀가 고통스런 비명을 내질렀다.
책과 안경을 바닥에 내려놓고서, 그가 의자에서 일어나 성큼 걸어왔다. 한 손으로는 그녀를 꽉 끌어안으며 다른 손으로는 입을 막았다.
"당신 손님들을 방해하고 싶진 않으시겠지, 페어차일드 양?"
그녀의 목덜미로 혀를 쓸어내리며 그가 매끈하게 물었다.
"거칠게 굴고 싶진 않지만, 여주인공의 아파트로 침입했을 때 슬레터가 바로 이랬지. 우리의 친구 그레고리에 대해서는 말하지 맙시다. 그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디까지 갔는지 우리 모두 알고 있으니까."
그녀는 몸을 꿈틀거리며 그의 손바닥에 대고 입을 벌리려 애를 썼다.
"이해할 수가 없군, 슬론. 곧 필요하게 될 테니 숨과 에너지를 절약하는 게 좋을 거요."
그의 입이 귓가에 내려와, 머리를 찰싹이다가 젖은 혀끝으로 그녀의 로브를 만지작거렸다.
"밤새도록 아니면 우리 둘 다 정신을 잃을 때까지 당신을 사랑할 계획이거든, 어떤 게 먼저이든 간에."
그가 손바닥으로 그녀의 비명을 막아냈다.
"나가라고 했소? 왜지? 아, 알겠다. 내가 간통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는군. 틀렸소. 난 결혼하지 않았고 당신이 몇 시간 시간을 내서 시청으로 갈 때까지는 그런 일이 없을 거요."
굴복한 듯 그녀의 몸이 늘어지며 그의 바위처럼 단단한 몸에 유순하게 매달렸다. 그녀는 넘쳐나는 눈물을 깜박여 자제하며 눈을 크게 뜬 채로 그를 쳐다보았다.
"더 낫군. 난 완력을 쓰는 걸 싫어하지. 하지만 훨씬 더 유쾌하고 미묘한 방법으로 비명을 막을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
그가 점점 그녀의 입에서 손을 내리고 그 자리를 입술로 대치하였다. 달콤하게 그 입술을 봉했다. 그녀는 순응했다. 처음에는 너무 당황하여 저항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무례하게 입 속으로 쳐들어오는 혀로 인해 다시 카터의 품안에 있다는 것과 그가 사랑해주고 있다는 생각 말고는 모든 생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기운이 다 빠져버린 팔로 겨우 힘을 모아 그의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그녀는 탐욕스런 손가락으로 옷깃까지 길게 자란 그의 머리카락을 잡아 뜯었다. 그의 입술 아래서 그녀의 입술이 활짝 피어나는 꽃잎과 같이 열렸다. 그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벌꿀처럼 마법적인 나른함이 온 혈관으로 넘쳐나 또다시 그녀를 괴롭혔다. 그녀의 모든 힘은 그로 인한 것이었으며, 그의 에너지 근원에 대고 말없이 애원하듯 나긋하게 몸부림을 쳤다.
"아주 기분 좋아."
입술로 그녀의 목을 탐하며 그가 중얼거렸다. 그의 두 손은 매끄러운 슬립 속 엉덩이를 감싸고 허벅지 사이의 낮은 계곡으로 안락하게 들어맞을 때까지 몸을 눌렀다.
"어떻게 된 거죠?"
그녀가 신음 섞인 소리로 물었다.
"왜 결혼하지 않았어요? 다시는 상처주지 말아요, 카터. 사랑해준 후에 상처 입히려면 차라리 죽이세요, 하지만 다시는 날 떠나지 말아요."
"절대로, 절대로. 맹세해. 이거 벗을래?"
그녀의 블라우스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가 팔에서 소매를 빼내는 동안 블라우스를 털어냈다.
"젖꼭지가 보이는군."
그가 부드러운 기쁨의 숨을 들이마셨다.
"브라 안했소?"
"꼭 해야 하는 게 아니면 아무것도 입지 않아요."
"마음에 들어, 아주 좋아."
그는 슬립의 브라 부분을 애무했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결정을 하게 됐지?"
"당신을 생각나게 해주니까요. 거기 키스해줘요."
그의 손가락이 흥분으로 솟아오른 젖꼭지를 찾아내자 그녀는 떨리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머리가 내려와 그 주위 천과 그 모든 부분에 입술을 덮었다. 젖은 곳이 달라붙어 형태를 드러낼 때까지 그가 철저하게 핥았다.
"당신을 봐."
중얼거리며, 그의 손가락은 젖꼭지의 뾰족한 부분을 더듬었다.
"알리시아와 결혼할 수 없었어. 당신 말고는 누구와도 결혼할 수 없어, 슬론."
그녀의 손이 바빠지며 그의 재킷과 셔츠를 벗겨냈다. 다 벗기고 나자, 그 열뜬 살결과 검은 털로 뒤덮인 곳을 그녀의 손이 헤매 다녔다. 손바닥이 관능적으로 그의 가슴을 긁어대고, 무수한 감각으로 미칠 지경이 될 때까지 앞뒤로 쓰다듬었다. 그의 젖꼭지를 쓰다듬자, 그것들이 돌연 단단하게 반응을 보였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세요."
손가락으로 팽창시켰던 부분에 그녀의 혀가 장난질을 쳤다.
"달콤해…… 미치겠어…… 아, 맙소사, 그래, 슬론. …… 말할 수가 없어……."
그가 바지 지퍼를 더듬거렸다.
"나중에…… 나중에 말할게…… 난 당신만의 거라는 거, 우리가 함께 있는 것에 상처받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만 알아줘."
"카터."
그의 이름을 되풀이해 부르며 그 소리를 즐기며 그녀는 숨을 헐떡였다.
그녀의 슬립 끝에 엄지를 걸어 그가 욕망으로 부푼 가슴 위로 끌어내렸다. 슬립이 떨어져 나갈 때, 그녀의 배는 흐트러진 숨결로 오르락내리락하였다. 더 밑으로 진행되어가며 그가 그녀의 팬티스타킹마저 함께 끌어내렸다. 이윽고 벌거벗은 몸이 되자, 그의 손가락은 부드러운 털이 난 삼각지를 헤치며 날씬한 허벅지를 애무했다. 그의 눈이 평원 위로 뜨겁게 번져가는 초원의 불길처럼 그녀를 훑었다. 그녀의 손을 잡아 그는 자신의 욕망이 드러난 곳으로 잡아내렸다.
"용서해줘. 기다릴 수가 없어."
슬론도 그의 손을 자신의 축축한 곳으로 안내했다.
"저도 그래요."
그가 그녀의 몸을 들어 침대로 데리고 가자 그녀는 몸을 바르르 떨었다. 그녀와 같이 침대로 누우며, 그는 자신의 나머지 옷가지를 벗어 발로 걷어찼다.
한 번만의 재빠르고 확실한 삽입으로, 그는 그녀의 육체와 결합하였다. 엄청난 자제력을 동원하여, 그녀의 얼굴을 감싸고 다른 곳의 숨막히는 친밀감과 똑같이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자신의 혀로 달콤하게 젖은 온기 속을 깊이 파고들어갔다.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껴봐, 슬론 페어차일드.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당신을 가질 때까지는 내가 불완전할 거라는 걸 알았어. 내 사랑을 느껴봐. 받아들여. 당신은 가장 사랑받을 가치가 있는 여자야. 볼품없고 하찮은 사람은 바로 나라구. 슬론, 날 완전하게 만들어줘."
그에게 다리를 엮은 채, 그녀의 몸이 그의 허벅지 사이에 웅크리고 누워 있었다.
갈비뼈 밑의 우묵한 배에 뺨을 기댔다. 그녀의 머리가 다양한 갈색과 황금빛으로 엮은 망토처럼 그에게 드리워졌다. 그의 손가락이 느릿하게 그 위를 달렸고, 그녀의 손가락은 배꼽에 위치한 무성한 둥지를 등글게 회전하고 있었다.
화산이 폭발할 듯한 절정 후에 그들은 만족감으로 드러누웠다. 한 번이 아니라 두 번. 자유와 죄의식없는 정열이 그들을 또 다른 영역으로 감아주었다. 이제 그들은 지금까지 알아왔던 중에 가장 달콤한 피로를 탐닉하는 중이었다.
"내 기분을 좋게 하려고 그런 말한 거 아니죠, 카터?"
"그럼. 결혼식 전에 나에게 와서 요구한 사람은 알리시아였어. 우린 그녀 부모님의 집에 있었지. 하객들이 하나 둘씩 도착하는 중이었어. 데이비드와 아담은 완전히 광을 내서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녀의 감시를 받고 있었어. 내가 옷을 입고 있는데 알리시아가 침실 문을 두드렸어."
"그녀와 얘기할 때 옷을 안 입었단 말이에요?"
그는 머리카락을 한 움큼 쥐어 그녀의 머리를 들어 올렸다.
"아니, 그녀와 얘기할 때는 옷을 다 입고 있었지."
"그냥 확인해 본 거예요."
애정 어린 입술로 털 덮인 가슴에 키스하며 그녀가 가볍게 말했다.
"남의 집을 파괴하고 침입하는 솜씨가 능숙한 남편을 단단히 감시해야겠어요."
"그래, 내가 특히나 좋아하는 건……."
"침입이겠죠."
그녀가 그의 말을 마무리 지었다.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군요."
배꼽의 우물 속을 만지작거리며 그녀가 짐짓 호통을 쳤다.
"얘기 계속해 보세요."
"알리시아가 침대에 앉더니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거야. 그녀는 무서운 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했어. 날 세상에서 가장 못된 위선자처럼 느끼게 하면서 말이야."
"나에게 고백했을 때 느낌이 어땠는 줄 상상하시겠죠? 나 같은 여자는 그런 일을 절대 하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그리고 여기서 난 그녀의 약혼자와 같이 누워 있었어요. 일이 어떻게 이리도 복잡하게 되어버렸을까요?"
"우린 사랑에 빠졌어. 아무도, 우리조차도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지."
손을 그녀의 머리 밑으로 내려 그가 목덜미를 마사지했다.
"그런 다음 내가 아이들에게 멋진 아빠가 되어 주었고 짐이 날 얼마나 끔찍이 생각했었는지, 부모님께서는 내가 완전한 보호자가 되리라 생각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하기 시작했어. 당신 귓불은 벨벳 꽃잎 같아."
그 간단한 말이 너무나 동떨어진 내용이라 그녀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카터가 날카로운 숨을 들이켰다.
"또 한 번 웃으면 얘기를 다시 연기해야 할 거야."
"왜요?"
"더 이상 흥분시킬 필요도 없는 곳에 당신 가슴의 진동을 느낄 수 있거든."
"미안해요."
전혀 미안하지 않는 듯이 사과하면서 그녀가 오히려 그의 가슴 아래로 손을 미끄러뜨렸다.
"얘기해 봐요."
숨결이 고르지 않았지만, 그는 끈질기게 얘기를 이어갔다.
"난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눈을 똑바로 들여다 보았어. 그리고 날 사랑하느냐고 물었어."
"대답은요?"
"그렇다고 했어."
슬론은 벌떡 일어나 앉아 그를 쳐다보았다. 악마적인 쾌락으로 빛나던 그 눈동자가 혼란스러움으로 뒤덮였다. 카터는 위로하듯이 집게 손가락을 그녀의 아랫입술로 내달렸다.
"날 사랑한다고 말했어, 하지만 '그런' 사랑은 아니라더군. '그런'이라는 의미가 뭐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어.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는 그런 식은 아니에요. 같은 침대를 쓸 만큼도 아니고. 계속 거절하면서도 맥의 전화에 답하고픈 마음을 억제할 만큼은 아니라고.' 그때 내가 그녀를 껴안고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정열적으로 키스를 한 거야, 이 집에서의 키스는 되새길 필요도 없이 예외이고. 난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어. '당신이 짐에게 완벽하게 멋진 여자였으며 다른 행운의 사나이를 위해서도 그렇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를 위한 여자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한다.' 이렇게 말했어."
슬론은 그의 가슴에 턱을 기댄 채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아이들에게는 뭐라고 했어요? 실망이 대단했겠죠?"
"아, 그럼, 슬프게 통곡을 했지."
"어머나, 그러면 안 돼요!"
아까의 경고를 무시한 채 슬론이 몸을 흔들어댔다.
"아, 괜찮고 말고. 그 애들은 해변에서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견딜 수 없었던 거야."
안도감으로 슬론이 머리를 다시 그의 가슴에 내렸다. 그는 낄낄거리며 그녀의 척추부분을 손가락으로 쓸어내려갔다.
"내가 일하지 않을 때면 이 해변집에 언제든지 올 수 있다는 걸 알고 나자, 그리고 내가 여전히 스케이트장에 데리고 가고 공놀이도 해주고 아이스크림도 사줄 거라는 걸 확인하고 나자, 그리고 웨딩 케이크 한 조각을 앞에 내놓자, 진정이 되더라구."
"그 애들에게는 아빠가 필요해요."
그가 일어나려는 듯이 몸을 긴장시켰다.
"음, 당신이 정 그렇게 생각한다면, 언제라도 알리시아에게 돌아가서 무릎을 꿇고……."
그녀가 두 팔을 벌려 그의 팔뚝을 붙잡고는 침대로 다시 눕혔다.
"아빠가 필요하긴 하지만, 당신은 아니에요."
"당신이 날 잡을 셈인가?"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살폈다.
"심각하게 고려중이에요."
한참의 망설임 끝에 그녀의 대답이 전해지자 그가 그녀의 등을 껴안고 뒤집어 그들의 자세를 바꾸었다.
"그렇다면 이걸 심각하게 고려하라구."
으르렁거린 다음 그녀의 입술 위로 입을 내리덮었다. 그의 혀는 돌진해 들어와 파고들고, 빙글 돌며 맛을 보고, 섬세히 탐험하고 설득을 했다.
마침내 그가 아래로 내려가 젖가슴에 고개를 묻었을 때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당연히 고려해 봐야죠."
한참 동안이나 그들은 그대로 있었다. 그녀가 손가락에 매달린 그의 머릿결을 한껏 느끼는 동안, 그는 귓가에 들리는 견고한 심장박동소리를 들었다.
"카터, 저……."
그녀가 입술을 축였다.
"알리시아에게 내 얘기 했어요?"
"우-후."
유혹적인 분홍 젖꼭지를 불어대며 그가 흥미 없는 척 대꾸했다.
슬론은 죄의식과 수치심을 느꼈다.
"뭐라고 말했어요?"
"사실대로."
그는 몸을 들어 그녀의 비통한 눈을 들여다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당신이 내가 타본 중에서 가장 뜨거운 여자더라고 했지."
"뭐라구요?"
그를 밀쳐내고 일어나 앉으며 그녀가 소리를 질렀다. 그는 등을 털썩 뒤로 눕히고 배를 쥔 채 웃어댔다.
"당신 표정을 스스로 봤어야 하는 건데."
마침내 웃음이 잦아들고 나자 그가 말했다.
"가장 심한 말이라도 할 수 있어요."
그녀가 불끈 화를 냈다.
"나한테 그러지 말라구, 페어차일드 양."
그가 다시 그녀를 자기 위로 낚아챘다.
"그 새침하고 단정한 모습은 고객들에게나 보이라구, 나한테는 말고. 내가 도착한 날 밤 입었던 그 끔찍한 로브 뒤에 어떤 여자가 숨어 있는지 난 진짜를 봤어. 내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그 지독한 로브를 내 손으로 불태우고 말 거야."
그녀를 잡아당겨 확실하게 입을 맞추는 동안 그의 손은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다시 그녀가 온순하게 그의 옆에 눕자 그가 말했다.
"당신 질문에 대답하면 이렇다구. 난 알리시아에게 당신과 아주 친한 친구가 되었고 내 약혼이 더한 관계가 되는 데 유일한 방해물이었는지 알아보러 페어차일드 하우스로 갈 거라고 인정했어."
"그래서 알아보셨나요?"
"물론이지. 난 아주 깊은 관계를 만들 생각이야."
그녀는 그의 가슴에 대고 미소 지었다.
"알리시아가 신경 쓰는 것 같지 않던가요?"
그가 킥킥거렸다.
"그녀는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직관적이더군. 고개를 한쪽으로 기울이며 날 찬찬히 살피는 거야.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어. '그 낡은 집에는 침실이 많이 있죠. 그리고 개인적으로 그것이 더 좋은 일을 위해 사용될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난 그걸 시인한 걸로 받아들였어. 어쨌건 간에, 그녀는 내가 넥타이를 풀고 공항에 태워다줄 사람이 있는지 물어볼 때까지 계속 웃고 있었다구."
슬론이 더 바짝 달라붙으며 속삭였다.
"아주 기뻐요. 자유롭게 만든 쪽이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나도 그래."
"우린 이제 어쩌죠?"
"당장의 미래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면, 어리석인 질문이라고 할 수 있겠군."
그의 손이 젖가슴을 찾아 그 거뭇한 꼭대기를 빙글빙글 만졌다.
"음, 그렇기도 해요."
그녀의 입에서 한숨이 새나왔다.
"하지만 당신의 집과 일과 페어차일드 하우스에 대한 질문이라구요. 난 이 일을 그만두고 싶지 않아요, 카터."
"그렇겠지. 나도 그러라고 요구하지 않을 거야. 이 낡은 집을 사랑하거든. 하지만, 하지만이라는 단어를 강조하고 싶은데, 약간의 변화는 있을 거야. 이 결혼에 돈을 좀 들여서 그 중 일부는 당신을 도와줄 사람을 고용할 거야. 요리사, 청소할 사람, 서빙 도와줄 사람……."
"하지만 난 요리하는 게 좋아요."
"그럼 당신이 해도 좋아. 하지만 항상은 안 돼. 어느날 오후 당신과 거칠게 사랑을 나누고 싶을 때는 식사준비를 할 수 없다구."
그가 그녀의 코끝에 키스해 주었다.
"난 여기, 이 방에서도 일할 수 있었어. 우린 이곳을 근거지로 삼을 수 있어. 하지만 난 당신이 정기적으로 쉬길 바래. 나와 같이 여행을 했으면 좋겠어. 당신을 어디로든 데려가서 여러 가지를 보여주고 또 당신을 자랑하고도 싶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나요?"
그는 그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질문을 하기 위해 얼마나 용기를 내야 했는지, 그리고 불과 몇주 전만 해도 그런 용기조차 전혀 갖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의 주목을 받을 가치도 없다는 것, 자신의 존재가 무의미하다는 실패자같은 생각을 해보았을 것이다. 그의 눈길이 그녀의 얼굴 구석구석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 그리고 그 호박색 눈동자 속에서, 그녀는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느끼게 하지 못했던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
"당신이 자랑스러워. 당신은 내가 만난 여자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야. 당신은 언제나 그런 모습이었어, 슬론.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보여주기에는 형편없이 모자란 후보자들을 만났던 것뿐이지."
"그 말 믿을게요. 당신 말이기 때문에 믿는 거예요. 내가 사랑받는다는 거."
그녀가 가볍게 그의 입술을 매만졌다.
그는 그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당신은 사랑받고 있어."
그 순간의 복받치는 감정에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한참만에야 그가 입을 열었다.
"해변가의 집 어떻게 생각해?"
"아주 마음에 들어요."
그녀의 눈이 반짝거렸다.
"아름다워요."
"그럼 마음 내키는 대로 여기서도 살고 거기서도 사는데 동의하는 거겠지? 우리가 잠시 부재중일 때 페어차일드 하우스를 운영할 사람을 고용하고 말이야?"
그녀는 생각에 빠져 입을 다물었다.
"내 책임을 넘겨줄 만한 사람에게 난 아주 까다로울 거예요. 하지만 그 조건은 받아들일 만하다고 생각되네요. 페어차일드 하우스를 성공시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있어요, 카터."
"그래, 그래."
그가 다급히 속삭였다.
"그리고 유명한 소설가 한 명이 산다고 평판이 나빠지지는 않을 걸."
"유명하면서도 볼품없는 소설가죠."
"그건 말할 것도 없어."
진지하게 말한 후 그의 얼굴이 갑자기 환해지며 다시 한번 그녀를 옆으로 끌어당겼다.
"내 아기를 낳아 주겠어?"
"우리 아기를 낳을 거예요."
그녀는 조용히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녀의 머릿결 속에다 사랑의 말을 중얼거리다가 그가 문득 물었다.
"상자에는 뭐가 들었지?"
"상자?"
"경대 위에 있는 거. 당신이 들어와서 쓰다듬었던 거 말이오."
그녀는 천천히 그의 포옹에서 빠져나와 벌거벗은 채 방을 가로질러 갔다. 옻칠한 상자를 들어 침대로 가지고 와서 말없이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두 발을 마루로 내려놓고 일어나 앉아 그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것을 받았다.
거기에 매달려 있던 까만 술장식 달린 열쇠를 돌려 뚜껑을 열어보았다. 굳이 내용을 읽지 않더라도 단번에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원고를 훑어보고 나서 당혹스런 눈을 들어 올렸다.
"왜지? 내 책을 갖고 있지 않다면 아무 데 가서라도 살 수 있는 걸."
그녀는 그의 눈썹을 스치는 짙은 머리카락을 애정 어린 손길로 쓸어 넘겼다.
"당신의 책은 누구나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이 버려진 종이들은 나에게 남겨진 당신의 모든 것이에요. 아무도 이걸 읽은 적 없고 앞으로도 없겠죠. 이것들은 완전히 나만의 것이라구요."
"슬론, 이건 찌꺼기야, 쓰레기라구. 쓸모도 없는 건데."
머리를 흔들자, 그녀의 머리가 그에게 부채처럼 펼쳐졌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나에게는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인 걸요. 사랑의 시인 걸요."
처음에는 못마땅한 듯하던 그에게 이제 사랑의 느낌이 전해졌다. 그는 듣는 사람에 따라 저속한 욕설도 될 수 있고 아니면 열렬한 기도도 될 수 있을 말을 중얼거렸다.
그는 그녀의 소중한 보물 원고들을 옆으로 내려놓으며 그녀의 허리를 감아 가슴에 머리를 기댔다.
"당신이 바로 시야. 당신이 시인이야."
그가 속삭였다.
그의 손은 그녀의 몸을 미끄러지며, 모든 부분의 감촉과 모든 향내와 모든 움푹한 구석과 연약한 듯한 골격과 탄력있는 피부를 헤매고 다녔다.
입을 그녀의 젖가슴에 대고 부벼댔다.
"당신이 필요해, 슬론. 당신의 조용한 용기와 내 글에 대한 탁월한 견해가 필요해. 잘 되지 않을 때는 당신의 이해와, 모든 게 무너져 내렸을 때는 당신의 찬사가 필요해. 당신의 달콤한 육체의 양분이 필요해."
부드러운 동작으로 그녀의 젖꼭지가 그의 입술에 밀어지고 그는 그녀의 몸속에서 폭발하는 사랑으로 고통스러울 때까지 가볍게 키스를 퍼부었다. 입으로 그 섬세한 봉오리를 잡아 달콤한 열망으로 빨아 당겼다. 그녀의 손은 그의 머리를 움켜쥐며 단단히 껴안았다.
"아, 내 입으로 느끼는 당신의 느낌이 좋아. 이걸 맛보는 게 너무나 좋아."
그녀의 젖꼭지에 그의 혀가 침을 발랐다. 에로틱한 리듬으로 입술을 끌자 그의 닫혀진 입술이 쉽게 미끄러졌다.
두 손이 허벅지 뒤 무릎에서 엉덩이까지 올라가는 동안 그는 다른 젖가슴도 똑같이 정열적으로 사랑해 주었다. 그의 손가락이 안쪽으로 구부러지며 입술은 배꼽을 향해 내려갔다. 뜨거운 키스가 퍼부어지고 수염자국이 있는 볼이 비벼댔다. 그녀의 심장은 미친 것처럼 널을 뛰었고 모든 감각들이 폭발하려 했다.
그때 그의 입이 여성의 그곳을 가린 황금물결로 스쳐 내려갔다. 그녀의 영혼이 또 다른 환상의 세계로 뛰어올랐다. 허벅지 안에 느껴지는 그의 달콤한 요구에, 그녀는 그의 사랑을 받아들이기 위해 앞으로 몸을 밀었다.
그녀의 손가락은 그의 등을 파고들었다. 그의 입이 내뿜는 열기에 자신이 새로이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민활한 혀의 변덕에도 유순하게 순종했다. 그녀의 육체는 그의 갈증을 풀어주기 위해 액체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 풀어질 수 없는 갈증이었다. 그것은 광포한 갈증이었고, 그녀를 침대로 내려 그녀의 사랑 속에 자신을 감싸야만 할 충동이었다.
"슬론, 슬론."
그들의 몸이 함께 휘어지며 그는 그녀의 귓가에 대고 신음했다.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잠시 잠깐 죽었다가 새롭게 태어나는 듯한 느낌을 경험했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 속에서 그녀의 새로운 부활도 보았다.
한참 뒤 심장박동이 훨씬 더 안정되자, 그가 그녀를 끌어안았다.
"위대한 미국의 소설을 쓸 수 있도록 인도해 주지 않겠소?"
"영광이에요."
"아무리 음침한 분위기라도 견뎌낼 건가?"
"당신을 그 밖으로 끌어내고 싶을 거예요."
그의 손은 젖가슴을 소중히 보듬었다. 정열이 아니라, 무한한 사랑의 손길이었다.
"당장 시작할 거요?"
"먼저 할 일이 두 가지 있어요."
"뭐지?"
"페어차일드 하우스에서 신혼여행을 보내는 거예요."
가슴에 덮인 그의 손을 그녀가 더 힘주어 눌렀다.
"또 하나는 뭐지?"
"잠자는 연인의 마지막 페이지를 수정하는 일. 행복한 결말이 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