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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

Bollnow 2024. 3. 10. 13:48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Milan Kundera

 

1부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

 

1

영원한 재귀는 아주 신비스런 사상이다. 니체는 이 사상으로 많은 철학자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었다. 모든 것이 그 언젠가는 이미 앞서 체험했던 그대로 반복된다는 것이다. 이 반복 또한 무한히 반복된다는 것!

이 어처구니없는 신화가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영원한 재귀, 이 신화는 그것의 부정적 이면에서 우리에게 말해주는 바가 있다. 영원히 사라져가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삶은 하나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 그것은 아무런 무게도 없는 하찮은 것이며 처음부 터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삶이 아무리 잔인했던, 아름답거나 찬란했든 그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와 같은 잔인함, 아름다움, 찬란함은 아무 의미도 없는 것으로, 우리는 이러한 것들에 조금도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마치 14세기 아프리카에 있었던 두 나라 간 전쟁과 같다. 비록 전쟁에서 30만 명의 흑인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 죽었다 하더라도 이 전쟁은 세상 상황을 아무것도 바꿔놓지 못했다.

만약 아프리카 두 나라 간의 이 전쟁이 영원한 재귀의 형식으로 수없이 반복된다면, 그것이 이 전쟁에서 무엇인가를 바꾸어 놓게 될 것인가? 확실한 것은 이 전쟁은 보다 오래 지속되는 우뚝 솟은 하나의 큰 덩어리가 될 것이며, 전쟁이라는 우둔한 짓거리는 결코 개선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프랑스 혁명이 영원히 반복되도록 되어 있다면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로 베스피에르를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역사 기술은 반복되지 않은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기 때문에 피비린내 나던 혁명의 세월은 그야말로 다양한 이론 및 토론으로 변했다. 그것은 깃털보다 더 가볍게 되어 아무에게도 두려움을 불어넣어 주지 못한다.

역사에서 단 한 번 등장했던 로베스피에르와 프랑스 사람들의 머리를 자르기 위해 영원히 재귀하는 로 베스피에르 간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영원한 재귀의 생각은 사물을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보게끔 하는 시각을 우리에게 열어준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이 시각에서는 사물이 그것이 갖는 무상의 완화적 상황을 상실하고 나타난다. 그런데 무상의 이 완화적 상황은 우리가 어떤 판결을 내릴 수 없게끔 한다. 무상한 것을 어떻게 심판할 수 있단 말인가?

저녁노을에 비치면 모든 것은 향수의 유혹적인 빛을 띠고 나타난다. 단두대까지도 그렇다.

얼마 전 나는 믿을 수 없는 어떤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나 자신을 보았다. 히틀러에 관한 책을 넘기고 있었는데 그 속에 실린 많은 사진들에 나는 마음이 몹시 동했다. 그 사진들은 나 어린 시절을 회상시켜 주었다. 나는 전쟁 중에 자라났다. 몇몇 내 친구들은 히틀러의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죽었다. 하지만 그들은 히틀러의 사진들 앞에서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지난 시절 내 삶에 대한 회상을 생생히 불러일으켜 준 이들 사진 앞에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히틀러와의 이 같은 화해는 본질적으로 재귀가 있을 수 없는 세계의 깊숙이 놓여 있는 도덕적 전도 현상을 드러내 준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처음부터 용납되어 있다. 결국 무슨 짓이든 냉소적으로 허용되어 있기 때문이다.

 

2

만약 우리 삶의 순간 순간이 모두 수없이 반복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듯이 영원히 못 박힌 꼴이 된다. 너무나도 무서운 생각이다. 영원한 재귀의 세계에서는 모든 동작에 견디어낼 수 없는 무거운 책임의 짐이 지워져 있다. 이러한 근거에서 니체는 영원한 재귀의 생각을 "가장 무거운 무게"라 일컬었다.

만약 영원한 재귀가 가장 무거운 무게라면 우리들의 삶은 이 배경 앞에서 아주 가벼운 것으로 찬란하게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무거운 것은 정말로 무섭고, 가벼운 것은 찬란한가? 가장 무거운 무게는 우리를 짓눌러 우리를 압사케 한다. 우리를 땅바닥에 압착시킨다. 하지만 어느 시대나 사랑의 서정시에서 여자는 남자 육체의 육중한 무게를 동경한다. 따라서 가장 무거운 무게는 동시에 가장 집약적인 삶의 충족 이미지다. 무게가 무거우면 무거울 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더 땅에 가깝다. 그것은 더욱더 실제적이고 참된 것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무게가 전혀 없을때 그것은 인간이 공기보다도 더 가볍게 되어 둥둥 더올라 땅으로부터, 세속의 존재로부터 멀리 떠나게 한다. 그래서 인간은 절반만 실제적이고, 그의 동작은 자유롭고 동시에 무의미한 것이 된다.

, 그러니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무거운 것을? 아니면 가벼운 것을? 기원전 6세기 파르메니데스는 자신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그는 온세계가 여러 가 지 대립의 쌍으로 양분되어 있다고 보았다. -어둠, 섬세-난삽, 따뜻함-차가움, 존재-비존재 등. 그는 한쪽 극", 섬세, 따뜻함, 존재"을 양으로, 다른 극을 음으 로 생각한다. 그와 같은 분할은 너무나 쉽게 보이지만 한가지 어려움을 동반한다. , 어떤 것이 양이냐 하는 것이다. 무거운 것이? 아니면 가벼운 것이?

파르메니데스는 대답했다. ‘가벼운 것은 양이고 무거운 것은 음이다라고. 그의 대답이 옳았는가? 아니면 틀렸는가? 이것이 문제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한가지뿐이다. 즉 가벼운 것과 무거운 것의 대립 쌍은 모든 대립들 중에서 가장 신비스럽고 가장 타의적인 것이다.

 

3

이미 여러 해 전부터 나는 토마스를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이같은 철학적 숙고의 조명 아래서야 비로소 나는 그를 명백히 내 앞에 보게 되었다. 그가 자기 집 창가에서 서서 안마당 너머, 건너편 거주구획의 담벽을 바라보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하고 있는 것을 나는 본다.

그는 약 3주 전에 테레사를 보헤미안 지방의 시골 도시에서 알게 되었다. 그들은 겨우 한 시간 동안 함께 보냈다. 그녀는 정거장까지 전송하여 그가 기차에 올라타기까지 기다렸다. 열흘 후 그녀는 프라하에 있는 그를 찾아왔다. 바로 그날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그날 밤 그녀는 몸에 열이 났다. 그리고 그녀는 독감으로 일주일 내내 그의 집에서 머물렀다. 그때 그는 거의 알지 못했던 이 처녀에 대해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느꼈다. 그에게는 그녀가 마치 어느 누가 까맣게 콜타르를 칠한 바구니 속에 넣어 강물에 띄워 버린 아기처럼 생각되었다. 그가 이 아기를 자기 침대의 강둑에서 구조하도록 말이다. 그녀는 일주일 동안 그의 곁에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건강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프라하에서 2백 킬로미터 떨어진 그녀의 시골 도시로 되돌아갔다. 그런데 이제 내가 바로 앞서 이야기했던 그 순간이 이어진다. 바로 나는 토마스의 삶을 열어줄 열쇠를 본다.

토마스는 창가에 서서 안마당 너머 건너편에 있는 거주 구획의 담벽을 바라보고 곰곰이 생각한다. 그녀를 영원히 프라하로 데려올 것인가? 그가 그녀를 초청한다면 그녀는 자기 의 온 삶을 그에게 바치기 위해 올 것이다. 아니면 그녀에게 자신의 소식을 더이상 아무것도 전하지 않을 것인가? 이는 테레사가 시골 도시에서 식당 종업원으로 머물고, 그가 그녀를 다시는 못 보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가 그에게 오기를 그는 원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가? 그는 안마당 너머 건너편 담벽을 바라보며 대답을 구한다. 계속 그에게는 자기 침대에 누어 있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억으로는 어느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녀는 연인도 부인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가 까맣게 칠한 광주리에서 주워 올려 자기 침대의 강둑에 내려놓은 아이였다.

그녀는 잠이 들었다. 그는 그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열기 있는 그녀의 호흡은 보다 빨라졌다. 그리고 그는 약한 신음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기 얼굴을 그녀의 얼굴에 갖다 대고 잠들어 있는 그녀에게 위로의 말을 속삭였다. 얼마 후 그녀의 숨결이 조용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얼굴을 그의 얼굴을 향해 치켜뜨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의 입술에서 열기의 씁쓸한 냄새를 느꼈다. 마치 그녀 육체의 친밀감 을 완전히 빨아드리려는 듯 오는 이 냄새를 들이켰다. 그에게는 그녀가 이미 여러해 동안 그의 곁에 있었고 이제 임종의 자리에 누워 있는 것으로 여겨졌다. 갑자기 그는 그녀가 죽은 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녀 곁에 누워 그녀와 함께 죽고 싶었다. 그는 얼굴을 그녀 옆 베개에 묻었다. 그리고는 오랫동안 이런 자세로 머물렀다.

이제 그는 창가에 서서 바로 그 순간을 생각한다. 그것이 이런 식으로 그에게 나타났던 사랑 이외에 다른 것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이 사랑이었던가? 그녀의 곁에서 죽고 싶었던 느낌은 명백히 사리에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는 그때 그녀를 자기 삶에서 겨우 막 두 번째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오히려 히스테리가 아니었던가? 자기 마음의 밑바닥에서는 자기가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을 의식하고도 자신을 속여 이것이 사랑임을 믿도록 하기 시작한 인간의 히스테리 말이다. 이때 그의 잠재의식은 너무도 비겁하여 자기 희극을 위해 근본적으로 자기의 삶에 뛰어들 기회가 전혀 주어져 있지 않은 식당 종업원을 하필이면 선정했던 것이다. 그는 안마당 너머 더러운 담벼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히스테리 인가 아니면 사랑인가를 자기가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을 책망했다. 정상적인 남자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즉각 알았을 상황에서 자기는 주저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자기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의 "그는 그녀가 잠자는 침대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그녀가 죽은 뒤 자신이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여겨졌다" 의의를 송두리째 빼앗아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책망했다. 그는 이러한 자신과 다투었다.

결국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자기가 어떻게 해 야 할지 모르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것이라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단 하나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것을 이전의 삶과 비교할 수도 없거니와 이후의 삶에서 교정할 수도 없다. 테레사와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혼자 있는 것이 나은 것인지? 어떤 결단이 올바른 것인가를 검토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떤 비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든 것을 직접적으로 체험한다. 최초로 준비 없이 체험한다. 미리 앞서 연습도 해보지 않고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와 같다. 하지만 삶을 위한 최초의 시연이 이미 삶 자체라면 삶은 어떤 가치가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근거에서 삶은 언제나 스케치와 같다.

스케치 또한 맞는 말이 아니다. 스케치는 언제나 어떤 것에 대한 초안, 어떤 그림의 준비인 데 반해 우리들 삶의 스케치는 무에 대한 스케치로서 그림 없는 초안이기 때문이다. 한번은 없는 것과 같다라고 토마스는 자신에게 말한다. 여하튼 우리가 단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가 살지 않는 것과 같다.

 

4

어느 날 한 간호사가 두 수술 사이의 휴식 때 전화를 받으라고 그를 불렀다. 그는 수화기에서 테레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정거장에서 전화했다. 그는 기뻐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날 저녁 그에게는 선약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를 다음날에 자기에게 오도록 초청했다. 그는 수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즉시 자기에게 오도록 그녀에게 청하지 않은 데 대해 자신을 책망했다. 그에게는 그날 저녁 자기의 약속을 취소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는데! 그는 그들이 서로 만나기까지 36시간 동안 테레사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즉시 자동차를 타고 프라하의 거리에서 그녀를 찾고 싶은 충동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녀는 다음 날 저녁에 왔다. 어깨에 백을 메고 있었다. 그녀가 지난번보다 더 세련되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손에는 두터운 책을 들고 있었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였다.

그녀는 명랑하게 행동했다. 뿐만 아니라 다소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했고 전혀 우연스럽게 들르게 되었다는 것을 그에게 암시하려 애썼다. 직업적인 이유에서 프라하에 왔노라고 그녀는 밝혔다. 가능하다면"이 말은 확실하지가 못했다" 일자리를 하나 찾으려고 왔노라 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은 옷을 벗고 지친 몸으로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었다. 날은 이미 어두웠다. 그는 그녀가 어디에 머무냐고 묻고 차로 그녀를 그곳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녀는 아직 호텔을 정하지 못했으며 트렁크는 역 화물보관소에 맡겨 두었다고 당황하며 대답했다. 전날 저녁까지만 해도 그는 그녀를 프라하에 있는 자기에게로 데려올 경우 그녀는 온 삶을 자기에게 바칠 것이라고 염려했었다. 그녀의 여행 가방이 화물보관소에 맡겨져 있다고 말했을 때 그에겐 그녀의 온 삶이 이 가방 속에 들어 있으며 그녀가 그것을 결국 그에게 바치기 위해 다만 일시적으로 역에 맡겨 두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그녀와 함께 집앞에 세워둔 차를 타고 정거장으로 가 트렁크를 찾아"이 트렁크는 아주 컸고 말할 수 없이 무거웠다" 테레사와 함께 자기 집으로 돌아왔다. 거의 보름 동안이나 주저했고 그녀에게 안부 카드 한 장조차 보낼 수 없었는데 이제 어떻게 그토록 빨리 그가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가? 그 자신도 놀랐다. 그는 자기 주의에 반해서 행동했던 것이다.

10년 전 그는 자기의 첫째 부인과 이혼을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결혼식에서나 가능한 축제 분위기 속에서 그는 이 이혼을 체험했다. 그때 그가 깨달은 것은 어떤 여인 곁에서 계속 살도록 자기가 태어나지 않았다는 것, 오직 독신자로서만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여인도 트렁크를 가지고 자기가 사는 곳에 들어오지 않도록 자기의 삶을 꾸려나가는데 세심한 신경을 썼다. 이 때문에 그가 사는 곳에는 단 하나의 침대만이 놓여 있었다. 비록 그것이 충분히 넓은 침대였지만 토마스는 모든 자기 여자친구들에 대해 자기는 어느 누구와도 같은 침대에서는 잠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여자친구들을 모두 밤이면 번번이 차로 집에 데려다주었다. 테레사가 처음 독감으로 자기 집에 머물게 되었을 때도 그는 그녀와 같은 침대에서 잠자지 않았다. 첫날밤에는 큰 안락의자에서, 다음 며칠 밤은 병원에서 보냈다. 병원 그의 진찰실에는 그가 야근을 하는 동안 사용하였던 소파가 놓여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그는 그녀 곁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그가 깨었을 때, 아직도 잠들어 있는 테레사가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그들은 온밤을 손을 마주 잡고 누워 잤던가? 이것은 그에게 거의 믿기지 않았다. 그의 손을 잡은 채"아주 꽉 잡고 있어 그의 손은 그녀의 움켜쥔 손에서 풀려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잠결에 깊은숨을 쉬었다. 그리고 침대 옆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무거운 트렁크가 세워져 있었다. 그는 감히 자기의 손을 빼내지 못했다. 그녀를 깨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더 잘 관찰할 수 있도록 몸을 옆으로 살짝 돌렸다. 다시금 그에게 테레사는 누군가가 까맣게 콜타르 칠을 한 바구니 속에 넣어 물에 띄워 버린 아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기가 담긴 바구니를 매정스럽게 강물에 휩쓸려가게 할 수 없지 않은가! 파라오의 딸이 어린 모세가 담긴 바구니를 물 위에서 건져 내지 않았던들 구약성서도, 우리들의 문명도 없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옛 신화가 어느 누군가가 버려진 아이를 구제한 데서 시작되었던가. 폴리보스가 어린 오이디푸스를 돌보지 않았던들 소포클레스는 자기의 가장 훌륭한 비극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토마스에게는 메타포가 위험하다는 것이 분명하지 않았다. 은유의 놀이를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단 하나의 은유에서 탄생 될 수 있다.

 

5

그는 그의 처음 부인과 겨우 2년 함께 살았고 아들을 하나 낳았다. 이혼 판결에서 법정은 아이를 어머니에게 주어야 한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토마스가 모자의 생활비로 자기 월급의 3분의 1을 지불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동시에 격주마다 자기 자식을 만나볼 수 있는 권한이 그에게 인정되었다. 하지만 그가 아들을 만나고자 할 때마다 아이 어미는 번번이 어떤 핑계를 찾아냈다. 그가 모자에게 값비싼 선물을 했던들 방문은 틀림없이 보다 쉽게 이루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자기 아들에 대한 사랑을 어미에게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아니 미리 지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기 아들에게 후에 모든 점에서 어미의 견해와 반대되는 자기 자신의 견해들을 돈키호테의 경우처럼 단단히 명심시켜 줄 것인가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이미 그를 패하게 했다.

어느 일요일 어미가 다시금 마지막 순간에 아들과의 상면을 거부했을 때, 그는 갑자기 아들을 다시는 보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뿐만 아니라 경솔했던 하룻밤 말고는 더 이상 아무것도 그를 아이와 결부시키고 있지 않은데, 그가 어떤 다른 아이보다 이 아이에게 더 이상의 감정을 가져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그는 어김없이 정확히 지불할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그가 아버지로서 느끼는 여하한 감정의 이름으로 자기 아들을 쟁취하기 위해 싸울 것을 그에게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도 이 같은 생각에 동의하고 있지 않다고 구태여 말할 필요조차 없다. 그 자신의 부모까지 그를 비난했다. 그리고 그가 자기 자식을 돌볼 것을 거부하는 경우, 자기들도 그에 대해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을 것임을 선언했다. 그의 양친은 보라는 듯 며느리와 긴밀한 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며느리의 모범적인 행동과 그녀의 정의감을 말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자랑했다. 그래서 그는 아주 짧은 기간에 부인, 아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그에게는 오직 여자들에 대한 두려움만이 남아 있었다. 그는 여자들을 열망했다.

하지만 그들을 두려워했다. 그는 두려움과 열망 간에 타협을 찾아내야 했다. 그는 이것을에로틱한 우정이라 일컬었다. 그의 여자친구들에게 그는 특히 강조해서 말했다. 상대의 삶과 자유에 대해 요구를 하지 않는 비감상적 관계에서만 두 사람은 행복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에로틱한 우정이 공격적인 사랑으로 절대 변질되지 않는다는 것을 확신케 하고자 했기 때문에 그는 자기의 영속적인 여자친구들을 시간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만났다. 그는 이 방법이 완전하다고 생각해 친구들에게 이 방법을 선전하기까지 했다.

"세 번의 규칙을 지켜야 해. 여자를 짧은 간격으로 만나게 될 때는 세 번 이상 만나지 말 것이며, 아니면 여자와 수년 동안 사귀고자 할 때는 어떻든 간에 적어도 3주 간격을 두고 만난다는 조건을 지켜야 해

3의 규칙은 토마스에게 그의 고정적인 여자친구들과의 관계를 유지시켜 주고 또한 동시에 상당한 수의 여인들과 일시적인 사귐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마련해 주었다. 하지만 모두가 그를 늘 이해해 준 것은 아니다. 그의 여자 친구들 중에서 사비나가 그를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그녀는 화가였다. 그녀는 말했다.

"나는 너를 좋아해. 너는 저속의 반대니까. 저속의 제국에서는 너는 하나의 괴물이 될 거야. 미국 영화나 소련 영화의 시나리오에서 네가 경고의 본보기로 등장하지 않을 경우는 하나도 없을 거야."

그는 사비나에게 간청했다. ‘테레사를 위해 프라하에서 일자리를 하나 찾는데 도와줄 수 없느냐?’ 에로틱한 우정의 행동 규범인 불문율에 따라서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했다. 실제로 그녀는 얼마 있지 않아 어느 그림 잡지의 사진실에서 일자리를 하나 찾아냈다. 이 일자리는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고 있지 않지만, 그것은 테레사를 식당 종업원의 미래에서 잡지사 직원의 미래로 승격시켜 주었다. 사비나 자신이 테레사를 데리고 편집실로 들어갔다. 토마스는 평생에 이보다 더 좋은 여자친구를 가진 적이 없었다고 자신에게 말했다.

 

6

에로틱한 우정의 비성문화된 계약은 토마스가 사랑을 자기 삶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내용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가 이 조건을 무시하는 순간에 그의 다른 여자친구들은 제2급으로 냉대받는다고 느껴 반발한 것이다. 그는 그 때문에 테레사를 위해 방 하나를 내주었다. 이곳에 테레사는 그녀의 무거운 트렁크를 내려놓아야 했다. 그는 그녀에게 주의를 기울여 그녀를 보호하려 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있는 것을 즐거워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생활방식을 바꾸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테레사가 그의 집에서 잤다는 사실을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었다. 함께 잠을 잤다는 것은 사랑의 증거 자료다. 그는 한 번도 다른 여자 곁에서 자지 않았다. 그가 다른 여자들에게 갔을 때는 간단했다. , 그가 원할 때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여자들이 그에게로 와, 자정이 지난 후 그가 그들을 차로 집으로 데려다주겠다는 것을 설명해야 할 때 그것은 비교적 어려웠다. 그는 잠을 잘 자지 못해 고생하고 있어 다른 사람 가까이에서는 잠들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들에게 설명해야 했다. 이것은 실은 사실과 동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주된 이유는 이보다 더 나쁜 것이었다.

그것을 그는 감히 여자친구들에게 고백할 수 없었다. , 성교를 하고 난 후 그는 혼자 있고 싶은, 자제할 수 없는 욕구를 느꼈다. 한밤중에 다른 사람의 옆에서 잠을 깬다는 것은 그에게는 너무나 불쾌했다. 함께 아침에 일어난다는 것 또한 그의 마음에 거술렸다. 그가 욕실에서 이 닦는 것을 누가 엿듣는다는 사살을 그는 전혀 좋아하지 않았다. 둘이서 다정하게 조반을 한다는 것도 그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 때문에 그가 잠을 깨 테레사가 그의 손을 꽉 쥐고 있는 것을 보자 그는 매우 놀랐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시간을 생생히 눈앞에 떠올렸다. 마치 이들 시간이 알지 못할 행복의 향기를 풍기는 것처럼 그에게 여겨졌다. 이 순간부터 두 사람은 함께 잠자는 것을 즐거워했다.

성교의 목적이 두 연인 에게는 쾌감에 있기보다는 오히려 오히려 그 후에 따르는 잠에 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테레사는 토마스 없이는 잠들 수가 없었다. 테레사가 때때로 혼자 그녀의 단칸 셋방에 있을 때에는"이것은 점점 일종의 알리바이가 되었다" 그녀는 온밤 동안 눈 한번 붙일 수 없었다. 토마스의 품 안에서는 그녀는 아직도 매우 불안해했지만 언제나 잠들 수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위해 생각해 낸 동화나, 짧은 이야기들을 그녀에게 속삭이듯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위안의 말이나 재미있는 말을 반복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 말들은 어지러운 환상들로 변했다. 이 환상들과 더불어 그녀는 첫번째 꿈속으로 들어갔다. 그녀의 잠은 완전히 그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정한 순간에 잠이 들었다. 그들이 잠을 잘 때는 그녀가 첫날밤에서처럼 그를 잡았다. 손으로 꽉 그의 손목을, 손가락 하나를, 아니면 그의 손가락 마디를 움켜잡았다. 그가 그녀를 깨우지 않고 그녀로부터 떨어지고자 할 때에는 꾀를 써야만 했다. 그녀가 움켜쥐고 있는 자기의 손가락"손목, 손마디"을 그가 빼낼 때, 번번이 그녀는 잠이 반쯤 깨었다. 그녀는 잠자면서도 그를 유심히 감시하기 때문이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해 그는 자기 손목 대신에 어떤 물건을 그녀의 손에 쥐어 주었다"접어서 만 파자마라든가, , 혹은 신 한 짝을". 그러면 그녀는 이것을 마치 그의 몸 한 부분인 것처럼 꽉 움켜쥐었다. 언젠가 그가 그녀를 막 잠재워 놓아, 그녀가 아직은 그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잠결이었을 때,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 됐군. 이제 가봐야지.’

어디로 가요?’

하고 그녀가 물었다.

떠나는 거야

하고 그가 엄하게 대답했다.

함께 가겠어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안돼, 그건 안 돼. 나는 영원히 가는 거야.’

하고 그가 말했다. 그리고는 방에서 나와 현관으로 갔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눈을 깜빡거리면서 그를 따랐다. 그녀는 짧은 잠옷 하나만을 입고 있었고 그 속에는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그녀의 얼굴을 굳어져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동작은 단호했다. 토마스는 건물 현관"아파트 셋집의 공동현관"으로 나가 테레사 면전에서 현관문을 닫았다. 그녀는 우악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그를 따라갔다.

반쯤 잠이 든 상태인데도, 그녀는 그가 영원히 떠나가려 하기 때문에 그를 잡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첫 번째 계단 참이 있는 데까지 계단을 내려와 그녀를 기다렸다. 그녀는 그에게로 다가와 그의 손을 잡고 그를 자기 침대로 도로 데려갔다. 토마스는 자신에게 말했다. 여자와 잔다는 것과 여자와 잠든다는 것은 두 가지 상이한 열정일 뿐만 아니라 정반대의 열정이야. 사랑은 성교 행위의 욕구에서 표명되는 것이 아니라"이 욕구는 무수한 여자에게 해당된다". 공동의 수면 욕구에서 표명된다"이 욕구는 오직 한 여자에게만 해당된다".

 

7

한밤중에 그녀는 잠 속에서 신음하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그녀를 깨웠다. 그러나 그의 얼굴을 보자 그녀는 증오에 차 말했다. ‘가버려요! 가버려!’하고. 그런 다음 그녀는 자기가 꿈꾸었던 것을 그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들 둘이 사비나 와 함께 어떤 엄청나게 큰 방에 있었고 방 한가운데에는 침대 하나가 높은 단처럼 놓여 있었다. 토마스가 그녀에게 구석으로 가도록 명령하고는 사비나를 그녀 눈앞에서 사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바라만 보았는데 이렇게 바라본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을 불러일으켰다. 그녀는 정신적 고통을 육체적 고통 속에서 질식시키려 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손톱 밑을 바늘로 찔러댔다.

미치도록 아팠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마치 두 손이 실제 다쳤기나 한 것처럼. 그는 그녀를 두 팔로 안았다. 그러자 천천히 그녀는 "그녀는 오래도록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포옹 속에서 잠이 들었다. 그가 이튿날 아침 이 꿈을 생각했을 때 그에게는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자기 책상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사비나가 그에게 써보냈던 편지 꾸러미를 끄집어내었다. 그는 재빨리 다음 글이 적힌 곳을 찾아냈다.

나는 당신을 마치 무대 위에서처럼 아틀리에에서 사랑하고 싶어요. 사방에는 사람들이 둘러서 있지만 한 발짝도 더 가까이 다가와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그들은 우리로부터 눈을 뗄 수가 없지요.’

일을 무엇보다도 악화시키는 것은 이 편지에 날짜가 적혀 있다는 점이다. 테레사가 이미 오래전부터 토마스의 집에서 살았는데, 이 편지는 최근에 씌어졌다는 사실이다.

당신은 내 편지를 뒤적였어!’하고 그는 테레사를 다그쳤다.

그녀는 부인하지 않고 말했다.

그러니 나를 쫓아버려요!’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테레사가 사비나의 아틀리에 벽에 몸을 바싹 붙여 서서 자기 손톱 밑을 바늘로 콕콕 쑤시는 모습을 자기 앞에 그려 보았다. 그는 그녀의 손가락을 두 손으로 쥐고 쓰다듬었다. 그리고는 그의 입술에 갖다대고 키스했다. 마치 아직도 핏 자국이 그녀 손가락에 묻어 있기나 한 것처럼.

이때부터 모든 것이 그에 대해 공모를 한 듯 보였다. 테레사가 그의 비밀 애정 생활에 대해 어떤 새로운 것을 알게 되지 않는 날이 거의 없었다. 처음에 그는 모든 것을 부인했다. 그러나 사실들이 너무나도 명백히 드러나자 그는 일부다처적인 그의 생활과 테레사에 대한 그의 사랑이 결코 모순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려 애썼다. 그의 말에는 논리적인 필연성이 없었다.

한번은 자신의 불성실을 부인하는가 하면 다음에는 다시금 자신의 불성실을 정당화시켰다. 어느 날 그는 어떤 여자와 만날 약속을 하기 위해 그녀와 전화했다. 통화가 끝났을 때 옆방에서 마치 소리 높이 이를 덜덜 떠는 것 같은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테레사가 우연히 집에 돌아와 있었다. 그는 이것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진정제가 담긴 작은 병 하나를 손에 들고 그 내용물을 자기 입에 따랐다. 그녀의 손이 너무도 떨려, 작은 유리병이 그녀의 이빨에 부딪혔던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로 달려갔다. 마치 그녀를 익사하기 전에 구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처럼. 진정제 약병이 바닥에 떨어져 양탄자 위에 약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저항했다. 그로부터 빠져나가려 했다. 그는 그녀가 진정될 때까지 15분 동안 그녀를 미친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옷을 입혀놓은 것처럼 꽉 붙들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어떤 변명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이 상황은 절대적인 불공평에 근거했기 때문이다.

아직 그녀가 사비나와 가진 그의 편지 왕래를 찾아내기 전 어느 날 저녁, 그들은 몇몇 친구들과 함께 테레사의 새로운 직장을 축하하기 위해 바에 간 적이 있었다. 테레사는 렙실에서 하는 일을 그만두고 어느 주간지의 사진사가 되었던 것이다. 토마스는 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젊은 동료 한 사람이 그녀와 춤을 추었다. 쪽 마루판 바닥에서 움직이는 이들의 동작은 아주 멋졌다.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어느 때보다도 더 아름답게 보였다. 그녀가 자기 파트너의 의지에 한순간 앞서 이 의지에 정확하게 순응하는 것을 보고 그는 놀라 아찔했다. 이 춤은 그녀가 토마스의 눈치를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이행하려는 그녀의 소망, 그녀의 이 희생정신이 반드시 그 개인에게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그녀가 자기 대신에 만났을 어느 남자의 부름에도 기꺼이 따랐을 것임을 그에게 보여주는 것 같았다. 테레사와 춤추고 있는 그의 동료를 한쌍의 연인으로 생각해 보기란 그에게 조금도 어렵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바로 이같이 생각할 수 있게끔 한 이 경솔함이 그의 마음을 상하게 했다. 테레사의 육체가 어느 다른 남자의 육체와 함께 동침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는 것도 힘들지 않았다. 바로 이 생각이 그의 기분을 잡쳐 놓고 말았다. 그들이 밤늦게 집으로 돌아올 때 그는 그녀에게 자기의 질투심을 털어놓았다. 순전히 이론적인 가능성에 연관된 어처구니없는 이 질투심은 그가 그녀의 정절을 하나의 전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가 그의 아주 현실적인 여자친구들에 대해 질투하고 있는 것을 그가 나쁘게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8

낮 동안 그녀는 토마스가 말하는 것을 믿으려고 애썼고 또 이전과 똑같이 명랑하고자 애썼다"이것은 다소의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낮에 억제된 질투심은 더욱더 격렬하게 그녀의 꿈속에 터져 나왔다. 그녀가 꾼 꿈들은 번번이 소리 높은 그녀의 흐느낌으로 끝났다. 그는 그녀를 잠에서 깨움으로써 그녀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녀의 꿈들은 변주를 담은 테마나, 아니면 TV 연속극의 에피소드적 사건처럼 반복되었다. 예컨대 그녀의 얼굴에 뛰어올라 날카로운 발톱으로 그녀의 얼굴을 할퀴는 고양이에 관한 꿈이 종종 반복되어 나타났다. 이 꿈은 아주 쉽게 해명될 수 있다

체코의 일상어에서고양이는 매력있는 여자를 위한 표현이다. 테레사는 여자들, 아니 모든 여자들로부터 위협받고 있는 것으로 느꼈다. 여자들은 모두 토마스의 잠재적인 애인이었기에 그녀는 여자들을 두려워했다. 연속된 또 다른 그녀의 꿈에서는 그녀가 죽음으로 보내지는 것이었다. 그녀가 꿈에서 기겁을 해 소리쳤기 때문에 토마스는 그녀를 다시금 깨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자 그녀는 그에게 꿈 이야기를 했다.

넓은 실내 수영장이었어요. 우리는 약 스무 명가량이었어요. 여자들뿐이었어요. 우리는 모두 알몸이었고 물을 담아 놓은 풀 주위를 돌아 행진해야만 했지요. 지붕 밑에 바구니가 하나 걸려 있었고 그 속에 한 남자가 서 있었어요. 그는 그의 얼굴을 온통 가린 차양 큰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이 당신임을 알았어요. 당신은 우리에게 명령을 했어요. 당신은 소리쳤어요. 우리는 행진하면서 노래 부르고 무릎 꿇기를 해야 했어요. 한 여자가 이것을 못할 때엔 당신은 권총으로 그 여자를 쏘았어요. 그러면 그 여자는 풀 속으로 떨어져 죽었어요. 이 순간 모든 여자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더 소리 높여 노래 불렀어요. 그런데 당신은 우리에게서 잠시도 한눈팔지 않았어요. 그래서 다시금 어떤 여자가 잘못된 동작을 할 때면 당신은 이 여자를 쏘아 죽였어요. 결국 풀은 수면 바로 밑에 떠돌아 움직이는 시체들로 가득 찼어요. 나는 내게 다음 무릎 꿇기를 위한 힘이 더 이상 없다는 것을, 그리고 당신은 나를 쏘아 죽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연속된 세 번째의 또 다른 꿈들은 테레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녀는 가구 운반용 자동차만큼 큰 시체 운반용 차속에 누워 있었다. 그녀 주위에는 순전히 여자들만이 누워 있었다. 너무나 많은 여자들이 실려 있어 차의 뒷문을 열어두지 않을 수 없었고 몇 개의 다리가 밖으로 나와 있었다. 테레사는 소리쳤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요! 난 아직도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우리도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어

하고 시체들이 웃었다. 그들은 그때의 산 여자들과 똑같이 웃었다. 이 여자들은 그녀에게 전에 언젠가 심술궂게 말했었다. 자기들 자신이 나쁜 이빨, 병든 난소와 주름살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그녀 또한 나쁜 이빨, 병든 난소와 주름살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시체들은 웃음과 함께 이제 그녀가 죽었으며, 죽은 존재 또한 그 나름대로의 질서를 갖는다고 그녀에게 해명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갑자기 오줌이 마려웠다. 그녀는 소리쳤다.

그러나 나는 오줌을 누어야 하겠어요! 이것은 내가 죽지 않았다는 증거요!’

다시금 여자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오줌을 누어야 하는 것은 아주 정상적이야! 그러한 욕구는 오래 남는 거야. 팔을 하나 절단하게 된 사람과 같은 것이지. 그는 절단 후에도 오랫동안 팔이 있는 것으로 느껴. 우리에게는 오줌이 없는데도 아직도 계속 오줌을 누어야 하겠다고 생각하는 것이지!"

테레사는 침대 속에서 토마스의 품에 바싹 매달려 말했다.

"그런데 모든 여자들이 내게 말을 놓았어요. 마치 나를 이미 항상 알기나 하는 것처럼. 내 여자친구들인 것처럼 말예요. 그리고 나는 영원히 그들에게 머물러야 한다는 생각에 더할 나위 없이 무서웠어요!"

 

9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은 모두가 "동정"이라는 단어를 "com, 함께 라는 뜻"이라는 전철과, 원래는 "참고 견딤"이라는 의미였던 "passio"라는 단어로 만들었다. 다른 언어들, 예컨대 체코어, 폴란드어, 스페인어 등은 이 개념을 하나의 명사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함께"라는 의미의 전철과 "감정"이 라는 단어로 구성되는 명사이다. 라틴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언어들에서 이 "compassio"라는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우리는 냉정하게 어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바라볼 수 없다. 혹은 우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참여한다. 대개 이와 동일한 뜻을 지닌 다른 말 등에는 뿐만 아니라 고통받고 있는 사람에 대한 관대한 마음씨 같은 여운이 모름지기 깔려있다. Avoir de la pitie pour une femme"우리는 이 여인보다 입장이 낫다. 우리는 이 여인을 굽어본다. 우리는 자신을 낮춘다" 를 뜻한다. 이러한 근거에서 "동정"이란 말은 불신을 야기 시킨다. 그것은 사랑과는 그다지 많은 관련이 없는, 부차적으로 느껴지는 좋지 않은 감정을 표현한다. 누구를 동정하여 사랑한다고 함은 그를 진정하게 사랑하지 아니함을 일컫는다. 이 말을 "참고 견딤"이라는 뿌리로부터가 아니고 "감정"이라는 명사에서 만들고 있는 언어들에서도 이 말은 대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말이 부차적인 좋지 않은 감정을 나타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말의 어원이 지닌 신비한 힘이 이 말을 다른 빛을 띠도록 하며, 그것에 보다 포괄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함께하는 감정"이란 어원의 동정은 다른 사람의 불행을 함께 체험한다는 것, 꼭 마찬가지로 모든 다른 감정도 함께 느낄 수 있음을 의미한다. 기쁨, 두려움, 행복, 고통 등. 이러한 동정은 따라서 감정적 표상력의 극치를, 감정 텔레파시의 기법을 표현한다. 감정 체계에서 그것은 제일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테레사가 자기 손톱 밑을 바늘로 찌르는 꿈을 꾸었을 때에는 그녀가 몰래 토마스의 서랍을 샅샅이 뒤졌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만 것이다. 다른 여자가 그렇게 했던들 그는 그녀와 더 이상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테레사는 이것을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말했다. "나를 쫓아 버려요!" 하고. 그러나 그는 그녀를 쫓아 버리지 않고 오히려 그녀의 두 손을 잡고 그녀 손가락 끝에 키스했다. 왜냐하면 그는 바로 그 순간 스스로가 그녀 손톱 밑의 고통을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그녀의 손가락 신경이 직접 그의 뇌와 연결되어있는 것처럼 말이다. 느낌을 함께하는 이 "동정"의 저주스런 능력을 갖지 못한 자는 테레사의 태도를 오로지 냉담하게만 비판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영역은 신성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왕래했던 편지들을 넣어둔 서랍은 남이 열지 않는다. 그러나 "동정"은 토마스의 숙명이 "혹은 저주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그 스스로가 자기 책상의 열려진 서랍에 무릎을 꿇고 사비나가 쓴 글귀에서 눈을 뗄 수가 없는 듯 여겨졌다. 그는 테레사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는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그녀를 오히려 더욱더 사랑했던 것이다.

 

10

그녀의 동작은 거칠고 산만해졌다. 그녀가 토마스의 부정을 발견한 이래 2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상황은 더욱 더 나빠져 갔다. 한마디로 말해 돌파구가 없었다.

실제로 그는 에로틱한 우정 관계들을 그만둘 수 없었던가? 그렇다. 만약 그만둔다고 한다면 그것은 그를 파괴하고 말았을 것이다. 다른 여자들과 즐기는 그의 쾌락을 억제할 힘이 그에게는 없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한다는 것이 그에게는 소용없는 짓거리로 여겨졌다. 그의 에로스 행각이 전혀 테레사를 위협하지 아니한다는 것을 그 자신보다 더 잘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니 무엇 때문에 그가 그것을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그것은 그에게 마치 축구시합 구경 가는 것을 단념하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어처구니없는 짓거리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아직도 기쁨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가? 그는 이미 여자친구에게 가는 도중 일종의 반발을 느끼곤 했다. 그러면 그는 이 여자를 마지막으로 만나는 것이라고 자신에게 맹세했다. 그는 테레사의 모습을 눈앞에 떠올리고 있었다. 테레사를 더이상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그는 재빨리 술을 마셔 취해야만 했다. 그가 그녀를 알고 난 뒤부터는 알코올을 마셔야만 다른 여자들과 동침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알코올 냄새 때문에 테레사는 더욱더 쉽게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일종의 함정에 걸려들었다. 그가 다른 여자에게 갈 때면 언제나 그 여자에 대한 욕구가 그에게서 사라졌다. 그런데도 다른 여자 없이 하루만 지나도 곧 그는 벌써 전화 다이얼을 돌려 만날 약속을 했다. 그가 가장 기분 좋게 동침할 수 있었던 여인은 사비나였다. 그녀가 조심성 있는 여자임을 그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에게 가 있을 때 들킬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화실은 그로 하여금 그의 지난 삶을, 그의 목가적인 총각 시절을 회상시켜 주었다. 어쩌면 그동안 자기가 얼마나 변했는가에 대해 그 자신 확실히 알지 못했다.

테레사가 자기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너무 늦게 집으로 돌아가게 되지 않을까 하고 그는 염려했다. 언젠가 사비나는 그가 성교 도중에 시계를 바라보고 빨리 끝내려고 애쓰는 것을 알아차렸다. 성교가 끝난 후 그녀는 발가벗은 채 아주 침착히 화실을 거닐며 돌았다. 그리고는 반쯤 완성된 화가 앞에 멈추어 서서 옆으로부터 토마스가 황급히 옷을 주워 입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옷을 다 입었다. 오직 한쪽 발만이 양말을 신고 있지 않았다. 그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책상 밑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찾았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 그런 모습으로 보면 당신이 내 그림의 영원한 테마로 변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돼요. 두 세계의 만남, 이중 조명 말에요. 방탕아 토마스의 윤곽 이면에 낭만적으로 홀딱 반한 자기의 믿기지 않는 얼굴이 나타나고 있어요. 아니면 거꾸로, 오직 자기의 테레사만을 생각하는 트리스탄의 실루엣을 통해 방탕아의 아름다운, 노출된 세계를 볼 수 있어요

토마스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비나의 말을 건성으로 들었다.

도대체 당신을 무엇을 찾고 있어요?’

하고 그녀는 물었다.

양말 한 짝을

그들은 함께 온 방을 샅샅이 찾았다. 그런 다음 그는 다시금 무릎을 꿇고 다 시 한번 책상 밑을 들여다보았다.

여기에는 양말이 없어요

하고 사비난는 말을 이었다.

당신은 틀림없이 한쪽 양말을 신지 않고 왔어요

어떻게 내가 양말을 신지 않고 올 수 있었겠어!’

하고 토마스는 소리치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난 절대 한쪽 양말만을 신고 오지는 않았어!’

반드시 그렇다곤 말할 수 없어요. 당신은 최근 너무나도 정신이 산만해요. 계속 서두르고, 계속 시계를 들여다본단 말에요. 그러니 한쪽 양말 신는 것을 잊었다고 이상해할 필요가 없어요

그는 한쪽 양말을 신지 않은 채 신발을 신을 결심을 이미 하고 있었다.

밖이 몹시 추운데

하고 사비나는 말했다.

그러지 말아요. 당신께 스타킹 하나 빌려줄게!’

그녀는 그에게 긴 니트 스타킹 하나를 내밀었다. 그가 성교할 때 시계를 들여다보았기 때문에 이것이 일종의 복수라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양말 한쪽을 그녀가 어디엔가 감추었음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실제 날씨가 차가웠기 때문에 그는 그녀의 말에 순순히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한쪽 발에는 양말을, 다른 한쪽 발에는 여자 스타킹을 발목까지 말아 신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의 여자친구들 눈에는 테레사에 대한 사랑 때문에, 테레사의 눈에는 여자친구들과 놀아난 그의 정사 때문에 그에게는 굴욕적인 낙인이 찍혔다.

 

11

테레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그는 그녀와 결혼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강아지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마침내 그녀는 셋방을 그만두고 나올 수 있었다. 셋방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워두었던 방이었다" 토마스 동료의 세인트 베나트"역주: 망도 보고 사람 구조도 돕는 개의 일종" 암캐가 새끼를 낳았다. 새끼들의 아버지는 이웃집의 셰퍼드였다. 아무도 이 어린 잡종 새끼들을 갖고자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것들을 죽인다는 것이 이 동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토마스는 이 잡종 새끼를 한 마리 골랐다.

그리고 그는 다른 새끼들은 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가 마치 사형 언도를 받은 네 사람 중에 한 사람에게만 특사의 은전을 베풀 수 있는 대통령처럼 생각되었다. 결국 그는 암캉아지로 결정했는데 그것의 몸은 셰퍼드를 연상시켰고 머리는 반대로 세인트 베나 트를 연상시켜 주었다. 그는 그것을 테레사에게 가져왔다. 그녀는 강아지를 치켜들고는 가슴에 껴안았다. 그러자 즉시 강아지는 그녀의 블라우스에 오줌을 쌌다. 강아지의 이름을 찾아내야 했다. 토마스는 강아지의 이름에서 이미 이 개가 테레사에게 속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랐다. 그녀가 사전 통보도 하지 않고 불쑥 프라하로 왔을 때 팔 밑에 끼고 있던 책이 그의 생각에 떠올랐다. 그래서 그는 개를 톨스토이로 명명할 것을 제의했다.

톨스토이, 그것은 안돼요

하고 테레사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 개는 암컷이에요. 어쩌면 안나 카레리나가 어떨까요

안나카레리나는 안돼요. 이렇게 장난기 있게 생긴 주둥이를 가진 여자는 없어

하고 토마스는 말했다.

차라리 카레닌이 낫지 않아? 분명, 그래 카레닌이 좋아. 이 이름을 난 언제나 꼭 그렇게 생각했었어

이 암캉아지를 남자 이름인 카레닌으로 이름 붙인다면 성적인 발전에 지장을 주지 않을까요?’

토마스는 말했다.

자기 주인이 계속 수캐 이름으로 부르는 암캐에게 동성애적인 경향이 발생한다는 것은 가능하겠지

이상하게도 토마스의 말대로 되었다. 암캐는 보통 바깥주인에 더 매달리는데도 불구하고 카레닌의 경우에는 그 반대였다. 그 암캐는 테레사를 보다 더 좋아할 것을 결심했던 것이다. 토마스는 이 개에게 그것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는 개의 머리를 쓰다듬고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좋아, 카레닌. 네가 바로 그렇게 하기를 기대했던 거야. 내가 혼자 해내지 못할 때엔 네가 나를 도와주어야겠어

하지만 그는 카레닌의 도움을 받고도 테레사를 행복하게 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은 러시아 탱크가 체코를 점령한 뒤 약 2주일쯤 지나 그에게 분명해졌다. 19688월이었다. 그가 어느 국제 회합에서 알게 된, 취리히에 있는 한 병원의 과장 선생이 그때 매일처럼 토마스와 전화했다. 그는 토마스를 몹시 염려했다. 그래서 토마스에게 일자리를 하나 제의했다.

 

12

토마스가 스위스에서의 직장 제의를 오래 생각하지 않고 거부했다면 이는 테레사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주하려 하지 않을 것임이 그에게 확실했다. 그녀는 러시아군 점령의 첫 주를 일종의 최면상태에서 보냈다. 이것은 행복의 상태와 비슷한 것이었다. 그녀는 사진기를 가지고 거리를 쏘다녔다. 그리고 자기가 찍은 사진을 외국 기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들은 그녀의 사진을 얻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한번은 그녀가 너무나 과감하게 앞으로 나아가 권총으로 시위대를 겨냥하고 있던 장교 한 사람을 가까이에서 찍었는데 이때 그녀는 체포되어 러시아 진영 본부에서 그날 밤을 지새워야 했다. 그녀를 총살시키겠다고 위협했으나 결국은 풀어 놓아주었다. 그러자 그녀는 즉시 다시금 거리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그 때문에 그녀가 점령 후 10일째 되던 날

왜 당신은 스위스로 가려 하지 않아요?’

하고 말했을 때 토머스는 자못 놀랐다.

왜 내가 스위스로 가야 해?’

여기서 그들은 당신에게 책임 추궁을 할 거예요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이 있소?’

하고 토머스는 그녀의 말을 거부해 버렸다.

당신 외국에 가서도 살 수 있겠어?’

왜 못 살아요?’

당신이 이 나라를 위해 당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본 후 당신이 어떻게 이 나라를 떠날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나는 자문하오

두브체크가 돌아온 이래 모든 것은 바뀌었어요

하고 테레사는 말했다.

그것은 틀림없었다.

점령 후 처음 일주일 동안만 고조된 감정이 두루 지배했었다. 체코의 대변자들은 러시아군에 의해 마치 범법자들처럼 끌려갔다. 그들이 어디에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목숨을 잃을까 떨고 있었다. 러시아인에 대한 증오가 사람들을 도취시켰다. 그것은 증오의 도취된 축제였다. 체코의 도시들에는 손으로 그린 수천의 플래카드가 사방에 걸려 있었다. 브레즈네프와 그의 군대에 대한 조소적인 글귀, 경구들, , 만화들. 이것들을 보고 모두 웃었다. 마치 문맹자들의 서커스 구경을 하듯. 하지만 어떤 축제도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러는 사이 러시아인들은 체포된 대표인사들을 강제로 모스코바에서 타협안에 서명하게끔 했다. 두브체크가 이 서류를 가지고 프라하로 돌아왔다.

그는 자기의 연설문을 라디오를 통해 낭독했다. 6일 동안의 감금이 거의 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를 형편없이 만들어 놓았다. 그는 더듬거렸고 숨이 차 헐떡거렸다. 그래서 문장 사이에는 매우 긴 침묵이 생겼다. 그러한 침묵은 30초까지 계속되기도 했다. 타협안은 체코를 최악의 것으로부터 보호했다. 처형과 시베리아로의 집단수송으로부터 보호했다. 이것들에 대해 사람들은 모두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포를 가졌었다. 나라가 침략자에게 굴복해야 하며 앞으로 계속 알렉산드르 두브체크처럼 더듬거리고 헐떡거려야 할 것이다. 굴욕의 나날이 따랐다.

이 모든 것을 테레사는 토마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이 사실임을 알 았고, 또한 이 사실 이면에 테레사가 프라하를 떠나고자 하는 또 다른 하찮은 이유가 숨겨져 있었다는 것도 알았다. , 지금까지의 생활에서 그녀가 행복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기 삶의 가장 좋은 날들을 프라하의 거리에서 보냈다. 그것은 러시아군의 탱크를 사진 찍으며 위험에 몸을 맡겼을 때였다. 오직 이 며칠 동안 그녀의 꿈에서 나타나던 TV 시리즈는 중단되었고 그녀의 밤은 행복했었다.

탱크 위의 러시아 군인들이 그녀의 불행을 보상했던 것이다. 이제 증오의 축제는 지나갔다. 그녀는 다시금 밤을 두려워했고, 이 밤들로부터 도망가고 싶었다. 그녀는 자신이 강하고 만족스럽게 느낀 상황이 있음을 경험했다. 그래서 그녀는 밖으로 멀리 떠나가, 그곳에서 어쩌면 그와 비슷한 상황을 다시금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희망했다.

그런데 사비나도 스위스로 이민 갔는데 그것이 당신에게 아무 상관 없을까? ’

하고 토마스는 물었다.

제네바는 취리히가 아녜요

하고 테레사는 말을 계속했다.

확실히 그녀는 여기 프라하에서보다 그곳에서 내게 덜 방해가 될 거예요

자기가 살던 곳을 떠나고자 하는 사람은 행복하지 않은 것이다. 토마스는 이민 가려는 테레사의 소망을 마치 죄지은 사람이 판결을 대하듯 받아들였다. 그는 상황에 순응했다. 어느 날 그는 테레사와 개 카레닌과 함께 스위스의 가장 큰 도시에 나타났다.

 

13

빈집에 들여놓을 침대 하나를 그는 샀다"다른 가구 마련을 위해서는 아직은 돈이 없었다". 그는 사십이 넘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사람의 열성을 띠고 일에 뛰어들었다. 그는 제네바에 있는 사비나에게 여러 번 전화했다. 그녀가 그곳에서 러시아군의 체코 침공이 있고 난 일주일 후에 미술전람회를 열었던 것은 아주 다행이었다. 스위스의 예술 애호가들은 그녀의 작은 고향나라 체코에 대한 동감의 물결에 아직도 완전히 휩쓸려 있었다. 그들은 그 때문에 그녀의 그림들을 몽땅 사 버렸다.

러시아군 덕택에 나는 부자가 되었어하고 그녀는 전화에 대고 웃었다.

그리고는 토마스를 자기의 새로운 화실로 초대했다. 화실은 그녀의 말에 의하면 그가 프라하에서 알고 있던 그녀의 화실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는 그녀를 기꺼이 방문했을 거다. 하지만 테레사에게 그의 여행을 설명할 핑계를 그는 찾지 못했다. 그래서 사비나가 취리히로 왔다. 그녀는 어느 호텔에서 여장을 풀었다. 토마스는 근무시간이 끝난 뒤 그녀를 방문했다. 그는 수납에서 그녀에게 전화하고 그녀의 방으로 갔다. 그녀는 문을 열고 그녀의 아름다운 긴 다리를 드러내고 그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팬티와 브래지어만 제외하고 옷을 홀딱 벗고 있었다. 머리에는 검을 멜론모를 쓰고 있었다. 그녀는 한참동안 움직이지 않고 한마디 말도 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토마스 또한 말없이 서 있었다. 갑자기 그는 자기가 감동되었음을 의식했다. 그는 그녀의 머리에서 모자를 벗겨 그것을 침대 머리맡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서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서로 사랑을 했다.

호텔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그의 새집에는 이미 오래전에 책상, 의자, 안락의자, 양탄자를 갖추어 놓았다" 그는 행복감에 젖어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는 자기의 생활방식을 마치 달팽이가 달팽이 집을 가지고 돌아다니듯 자신과 함께 지니고 다닌다고. 테레사와 사비나는 그의 삶의 양극을 구현하고 있었다. 이 두 극은 떨어져 서로 합치될 수 없으며 제 나름으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그가 자기의 바로 이 생활체제를 마치 그것이 자기 육체의 이부인 양 사방으로 지니고 돌아다녔기 때문에 테레사는 아직도 계속 같은 꿈을 꾸었다. 그가 언젠가 저녁 늦게 귀가해서 책상 위에 편지 한 장이 놓여 있는 것을 본 것은 그들이 취리히에서 이미 6, 7개월 산 때였다.

이 편지에서 테레사는 자기가 프라하로 돌아갔노라고 그에게 알렸다. 그녀는 외국 생활을 할 힘이 더 이상 없기 때문에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자기가 토마스에게 여기서 하나의 받침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노라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될 수 없다고 했다. 외국이 그녀를 변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이 어리석은 것이었다고 했다. 러시아군이 침입했던 동안에 그녀가 체험했던 모든 것에 비추어 이제 더 이상 그렇게 편협하고 소심하게 행동하지 않고 성숙하고 현명하고 강한 존재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자신을 과대평가했노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에게 하나의 짐이라고 말하고 그러한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너무 늦기 전에 귀결을 짓겠노라고 했다. 또 카레닌을 자기가 데려가는 데 대해 그에게 용서를 빈다고 했다.

그는 강한 수면제를 먹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이 가까워서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다행히 토요일이어서 그는 집에 머물 수가 있었다. 그는 150번이나 상황을 반추해 보았다. 그의 고국과 세상의 나머지 지역 간의 경계는 그들이 떠나올 때처럼 그렇게 더 이상 개방되어 있지 않았다. 전보로도, 전화로도 테레사를 되돌아오도록 부를 수가 없었다. 당국은 그녀를 다시금 출국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의 귀향은 완전히 최종적인 것이 되고 말았다.

 

14

자기가 손을 쓸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에 대한 의식이 그를 완전히 굳어지게 만들었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동시에 그를 진정시켜 주었다. 아무도 이제 그가 결단을 내리도록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건너편 집들의 담벽을 바라보고 자기가 그녀와 살고자 하는지 아닌지를 자문할 필요가 없었다. 테레사는 모든 것을 스 스로 결단했던 것이다. 점심을 먹으러 그는 식당으로 갔다. 그는 기가 꺾인 듯 느껴졌다.

하지만 식사하는 동안에 그의 처음 절망감은 마치 힘을 잃은 듯 사라지는 것 같았다. 오직 우울한 감정만이 남게 되었다. 그는 함께 보낸 세월을 되돌아보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의 이야기가 더 좋게 끝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누가 이 이야기를 상상으로 생각해 냇다고 하더라도 이 이야기를 달리 종결지을 수 없었을 것이다. 테레사는 어느 날 초청도 하지 않았는데 그에게 왔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같은 방법으로 다시금 가버렸다.

그녀는 무거운 트렁크를 하나 들고 그녀는 다시금 여행길을 떠났다. 그는 식비를 지불하고 식당에서 나와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우울한 감정에 흠뻑 젖어 있었고 이 감정은 점점 더 아름다워졌다. 테레사와 함께 산 7년의 세월이 그의 뒤에 놓여 있었다. 이 세월이 실제에 있어서보다 회상에서 훨씬 더 아름답다는 것을 지금 그는 확인했다. 그와 테레사 간의 사랑은 아름다웠지만 힘겨웠다.

그는 계속 무인가를 비밀로 해야 했고, 은폐해야 했고, 거짓말하고 보상해야만 했다. 그는 그녀를 기분 좋게 해주어야 했고 그녀를 진정시키고 그녀에게 계속 자기의 사랑을 증명해야 했다. 그는 그녀의 질투, 그녀의 고통, 그녀의 꿈의 탄식을 참아내야 했고 죄책감을 느껴야 했다. 그는 변명해야 했고 그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했다. 이제 이 모든 부담이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오직 아름다움만이 남았다. 토요일 저녁이 다가왔다. 처음으로 그는 혼자 취리히시를 산책하고 그의 자유의 향기를 호흡했다. 길모퉁이 뒤마다 모험이 숨겨져 있었다. 그의 미래는 다시금 비밀이 되었다. 독신자의 삶이 그에게 다시 돌아왔다. 이 삶이야말로 자기에게 정해진 것이었다고 그는 이전에 확실하게 믿었다.

왜냐하면 오직 그런 삶의 방식으로만 그는 그의 실제와 일치하여 존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7년 동안을 그는 사슬로 테레사와 묶여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두 눈은 그의 발걸음 하나하나를 추적했었다. 마치 그녀가 그를 묶은 사슬에 무거운 쇳덩이를 매달아 놓은 것같이 여겨졌다. 이제 그의 발걸음은 갑자기 아주 가벼워졌다. 그는 거의 둥둥 뜨는 듯했다. 갑자기 그는 파르메니데스의 마술 영역으로 들어와 있었다.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사비나에게 전화하고 싶은 욕망을 느꼈던가? 아니면 지난 몇 달 동안 그가 사귀었던 취리히 여자들 중 누구에게 데이트를 청하고 싶은 충동을 느꼈던가? 아니다. 그런 것에 그는 조금도 관심이 없었다. 그가 어떤 다른 여자와 함께 있게 된다면 테레사에 대한 회상이 그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줄 것임을 그는 예감했다."

 

15

이 독특한 멜랑콜리한 마력상태는 일요일 저녁까지 지속되었다. 월요일에 모든 것은 달라졌다. 테레사가 그의 생각 속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는 그녀가 작별 편지를 쓸 때 그녀의 마음이 어떠했던가를 느꼈다. 그는 그녀의 두 손이 떨리 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녀가 한 손으로는 트렁크를 끌고 다른 손으로는 카레닌을 맨 끈을 잡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프라하에 있는 집의 문을 여는 것을 그는 눈앞에 그려 보았다. 그녀가 문을 열자 황량함과 고독감이 그녀 얼굴에 불 어오는 것을 그는 자기 가슴속에 느꼈다. 멜랑콜리한 감정이 지배했던 지난 이틀 간의 아름다운 시간 동안 그의 동감은 잠을 잤었다. 일주일간의 힘든 교대작업을 하고 난 뒤 월요일에는 다시금 갱으로 들어가 일할 수 있기 위해 일요일에 잠자는 광부처럼 그는 푹 잠을 잤던 것이다. 그는 환자 한 명을 진찰했다. 그러자 환자 대신에 그는 테레사를 보았다. 그는 머릿속에서 자신을 나무랐다. 그녀를 생각하지마! 하고. 그는 또 스스로에게 말했다. 바로 내가 동정"역주: 동일 감정이란 뜻으로 연민과 구분됨. 9장을 참조" 병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떠나간 것, 그녀를 내가 다시는 보지 않게 되는 것이 올바른 거야. 내가 해방되어야 하는 것은 그녀로부터가 아니라 나의 동정인, 바로 이 병으로부터야. 나는 이 병을 옛날에는 알지 못했는데, 그녀가 내게 이 병의 병균을 감염시켰어! 토요일과 일요일에 그는 존재의 달콤한 가벼움이 미래의 심원에서 자기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느꼈었다. 월요일엔 그가 아직껏 알지 못했던 크나큰 무거움이 그에게 떨어져 그를 짓눌렀다. 러시아군 탱크의 수백 톤짜리 쇳덩이들을 모두 합쳐도 이 무게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동정보다 더 무거운 것은 아무것도 없다. 자신의 고통까지도 다른 사람과 함께, 다른 사람을 위해, 다른 사람 대신에 느끼는 고통처럼 무겁지는 않다. 이 고통은 표상력을 통해 수없이 많아지고 수백의 메아리로 연장된다. 그는 동정에 굴복하지 않도록 자신에게 경고했다. 그의 동정은 마치 자신이 죄스럽게 느끼는 듯 머리를 떨구고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의 동정은 자기 권리를 옹호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말없이 권리를 고집했다. 그래서 토마스는 테레사가 떠난 후 5일째 되는 날 병원장에게 "이 병원장은 프라하에서 러시아군 점령이 있은 후 그에게 매일 전화했던 사람이다" 지체없이 고향으로 되돌아가야겠다고 통보했다.

그는 부끄럽게 생각했다. 자기의 태도가 병원장에게 무책임하고 용서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음이 틀림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원장에게 솔직히 털어놓고 테레사가 그의 책상 위에 써놓았던 편지에 대해 이야기해 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스위스의 의사에게 테레사의 행동은 신경질적이고 동감이 가지 않는 것으로 나타날 것임이 틀림없기 때문이었다. 토마스는 어느 누구도 테레사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는 것을 용납하려 하지 않았다. 원장은 실로 당황했다. 토마스는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말은 일종의 암시였다.

베토벤의 마지막 4중주곡 마지막 악장은 다음의 두 모티브에 따라 작곡되었다. "그렇게 해야 하나? 그렇게 할 수밖에! 그렇게 할 수밖에!" 이 말의 의미를 아주 명확하게 하기 위해 베토벤은 이 마지막 악장의 제목을 "힘겹게 내린 결심"이라 붙였다. 베토벤에 대한 이러한 암시로 토마스는 근본에 있어서 이미 테레사에게 돌아간 것이었다. 왜냐하면 결국 베토벤의 4중주와 소나타를 담은 전축 판 구입을 관철시켰던 것은 테레사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암시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효과가 있었다. 왜냐하면 병원장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였기 때문이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짓고 조용히 베토벤의 멜로디에 맞추어 말했다.

그렇게 해야 하나?’

토마스는 다시 한번 말했다.

네 그렇게 할 수밖에요

 

16

파르메니데스와 다르게 베토벤에게는 무거움이 명백히 어떤 궁극적인 것이었다. "힘겹게 내린 결심"은 운명의 소리"그렇게 할 수밖에!"와 연관되어 있다. 무거움, 필연성, 가치는 서로 긴밀히 연관된 세 개념이다.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 이러한 확신은 베토벤의 음악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작곡가 베토벤 자신보다도 오히려 그의 해설자인 연주가들에게 그러한 확신에 대한 책임이 "개연성은 없지만" 있을 수 있다고 할지라도, 오늘날 우리 모두는 다소 이 확신에 동조한다. 우리에게 인간의 위대성은 인간이 자기의 운명을, 마치 아틀라스"역주: 희랍신화에서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거대한 신"가 천개를 자기 어깨에다 받쳐 들고 있었다"받쳐 들고 있다"는 데 있다. 베토벤의 주인공은 형이상학적 중량을 들어 올리는 역도선수다. 토마스는 스위스 국경을 갔다.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토벤이 머리는 어지럽게 헝크러뜨린 채 직접 소방대 악단을 지휘하여 토마스의 이민 생활 작별을 위해 그에게 행진곡 "그렇게 할 수밖에!"를 연주해 주었다고 나는 생각해 본다. 토마스는 체코 국경을 통과하자 곧 러시아군 전차대열과 만났다. 그는 교차로 앞에 멈추어서, 이들 전차가 모두 지나갈 때까지 반 시간이나 기다려야 했다. 검은 제복을 입은 섬뜩한 탱크 운전병이 교차로 위에 서서 교통정리를 하고 있었다. 마치 체코의 모든 도로가 자기 혼자의 소유인 것처럼. "그렇게 할 수밖에!"하고 토마스는 혼잣말로 반복했다. 그러나 그는 곧 이것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정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하고. 틀림없다. 취리히에 남아, 프라하에서 테레사 혼자 산다는 것을 생각하기란 견 딜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정이 그를 얼마동안 괴롭혔을까? 평생동안? 일 년 내내? 한 달 동안을? 아니면 다만 일주일 동안만 그를 괴롭혔을까? 어떻게 그가 그것을 알 수 있었겠는가? 어떻게 그것을 검토할 수 있었겠는가? 물리 시간에 학생은 어느 누구나 실험을 통해 어떤 학문적 가설이 맞는지를 검토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오직 한평생을 살 뿐이다. 그에게는 가정의 정당함을 실험을 통해 증명할 가능성이 없다. 그 때문에 자기 감정에 따랐던 것이 옳았는가 아니면 잘못되었는가를 그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그가 자기 집 문을 열었을 때 그의 생각은 거기에까지 이르렀었다. 카레닌이 그에게 뛰어올랐다. 이것은 재회의 순간을 어렵지 않게 해주었다. 테레사의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가 "이 욕구는 그가 취리히에서 자동차에 탔을 때 느꼈던 것이다" 완전히 사라졌다. 그 감정은 마치 눈 쌓인 들판 한가운데서 그녀와 마주 보고 서서 두 사람 모두 추워 몸을 떨고 있는 듯했다.

 

17

러시아군 점령 이후 러시아의 군용기들은 밤마다 프라하 상공을 날았다. 토마스는 이 소음에 익숙하지 않아 잠들 수가 없었다. 그는 잠자고 있는 테레사의 옆에서 엎치락뒤치락 몸을 움직였다. 그는 그녀가 오래전에 하찮은 대화에서 그에게 말했던 것을 생각했다. 그들은 그때 그의 친구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그때 그녀는 말했다.

당신을 만나지 않았던들 나는 틀림없이 그에게 반했을 거예요

그 당시 이 말은 토마스를 이미 독특한 멜랑콜리에 젖어 들게 했었다. 말하자면 테레사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친구를 사랑하지 아니한 것이 다만 우연이었다는 것이 갑자기 그에게 분명해졌던 것이다. 토마스에 대한 그녀의 실현되었던 사랑 외에도, 가능성의 영역에는 다른 남자들에 대한 무한히 많은 실현되지 아니한 사랑이 있다는 것이 갑자기 그에게 분명해졌다. 우리들 삶의 사랑이 어떤 가벼운 것, 어떤 무게 없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들의 사랑이 어떤 필연적인 것이라는 것, 즉 우리들의 사랑이 없을 경우 우리의 삶은 우리의 삶이 아닐 것으로 우리는 생각한다.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시무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베토벤이 직접 그의 <그렇게 할 수밖에!>를 우리들의 큰 사랑을 위해 연주한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토마스는 그의 친구에 관한 테레사의 말을 회상했다. 그의 삶이 지닌 사랑의 역사에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가 아니라 <달리할 수도 있어!>가 울려 퍼진다는 것을 그는 확인했다.

7년 전 <우연히> 테레사가 살았던 도시의 병원에서 복잡한 뇌병 케이스가 하나 나타났다. 그래서 토마스의 과장"의사" 선생님은 급한 대진 부탁을 받았다. <우연히도> 그때 과장 선생은 좌골신경통을 앓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토마스를 대리로 그곳 지방병원으로 보냈다. 그 도시에는 다섯 개의 호텔이 있었다.

그런데 토마스는 <우연히도> 테레사가 일하고 있던 곳에서 내렸다. <우연히도> 그에게는 기차가 출발하기 전 다소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그는 어느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테레사가 <우연히도> 일하는 시간이었고 <우연히도> 그가 앉은 식탁 시중을 들었다. 따라서, 마치 토마스 자신이 전혀 그녀에게 가려 하지 아니한 것처럼, 그를 그녀에게로 밀치기 위해서는 여섯 번의 우연이 필요했었다. 그는 그녀 때문에 프라하로 되돌아왔다. 이 막중한 결단은 그의 과장 선생이 7년 전 좌골신경통에 걸리지 않았던들 전혀 존재하지도 않았을, 그토록 우연한 사랑에 근거했다. 그리고 절대 우연을 구체화시키고 있는 이 여인이 이제 그의 곁에 누워서 잠 속에서 깊은숨을 쉬고 있었다. 벌써 밤도 깊었다.

정신적 괴로움이 있을 때 흔히 있는 위의 통증이 나타났음을 그는 느꼈다. 그녀의 숨소리는 한두 번 조용히 코 고는 소리로 넘어갔다. 토마스는 한치의 동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가 느꼈던 유일한 것은 위에서의 압박감과 자기가 돌아온 데 대한 실망이었다.

 

 

 

2부 육체와 영혼

 

1

작가가 자기의 작중인물이 실제 살았노라고 독자로 하여금 믿게 하려 한다면 이것처럼 바보 짓거리도 없을 것이다. 작중인물은 어머니 뱃속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몇몇 암시적인 문장이나 어떤 키 포인트가 되는 상황에서 탄생한다. 토마스는 <한 번은 없었던 것과 같은 것>이란 관용어에서 태어났고 테레사는 꾸르륵거리는 배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처음으로 토마스가 살던 집에 들어설 때 그녀의 뱃속이 꾸르륵거렸다.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그녀는 그날 점심도 저녁도 먹지 않았기 때문이다. 먹은 것이라곤 오직 그날 오전 기차에 오르기 전 플랫폼에서 먹은 샌드위치 하나뿐이었다. 그녀는 그녀의 대담한 여행에 완전히 정신을 쏟고 있어서 식사하는 것을 망각했던 것이다. 자기의 육체를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더욱더 쉽게 육체의 희생이 된다. 그때 토마스의 앞에 서서 자기의 뱃속이 요런하게 소리내는 것을 듣는다는 것이 얼마나 난처한 일이었겠는가. 그녀는 거의 울음을 터뜨릴 지경이었다. 다행스럽게 토마스가 10초 뒤 그녀를 포옹해 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뱃속의 소리를 잊을 수 있었다.

 

2

테레사는 무자비하게도 기본적 인간 경험인, 육체와 영혼이 통합될 수 없는 이 원성을 드러내 주는 상황에서 탄생했다. 아득한 옛날 언젠가 인간은 자기 가슴속의 규칙적인 고동 소리에 놀라 귀를 기울였다. 하나 그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육체처럼 그토록 낯설고 생소한 것과 자신을 일치시킬 수 없었다. 육체는 일종의 새 장이었다. 그리고 그 속에 보고 듣고, 두려워하고 생각하며 놀라워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육체를 빼낸 다음 남는 잔유물, 그 무엇이 영혼이었다.

오늘날 육체는 더 이상 생소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알고 있다.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것이 심장이고, 코는 허파에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육체에서 밖으로 돌출한 호스의 끝이라는 것을, 사람의 얼굴은 소화시키고. 보고 듣고 숨 쉬고 생각하는 육체의 모든 기능이 집결되어있는 일종의 계기판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인간이 자기 육체에 붙어 있는 모든 것을 명명할 수 있게 된 이래 육체는 인간을 덜 불안케 한다. 또한 우리는 영혼이란 것이 회색빛 덩어리의 뇌 활동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육체와 영혼의 이원성은 학문적 개념으로 감싸지게 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이원성은 시효를 잃은 선입관으로서 우리는 흔쾌히 그것을 조소할 수 있다.

그러나 한번 홀딱 반해서 자기의 내장에서 꾸르륵거리는 소리를 들어보기만 해보라. 그러면 이미 학문적 시대의 서정적 환상인 육체와 영혼의 통일성을 해체되고 만다.

 

3

그녀는 자기 육체를 통해 자신을 보려 애썼다. 그 때문에 그녀는 종종 거울 앞에 섰다. 그럴 때 어머니에게 들키지 않을까 걱정했기 때문에 거울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시선은 몰래 저지르는 죄악의 성격을 띠었다. 그녀는 거울 앞으로 유혹한 것은 허영이 아니라 자신의 자아를 보는 데 대한 놀라움이었다. 그녀는 자기 육체 기능의 계기판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녀는 자기 얼굴 모습에서 나타나는 자기의 영혼을 본다고 믿었다. 그녀는 코가 다만 허파로 가는 공기통의 끝에 불과하다는 것을 망각했다. 그녀는 자기 얼굴에서 자기 성격의 순수한 표현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을 오랫동안 관찰했다. 때때로 자기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당황해했다. 그 때문에 그녀는 더욱더 집요하게 자신을 관찰했고, 어머니의 모습을 지워 생각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결국 그녀는 자기 얼굴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완전히 지울 수가 있었다. 그녀 얼굴에는 오직 그녀 자신인 것만이 남아 있어야 했다. 이것이 성공될 때 그것은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그때 그녀의 영혼은 마치 갑판 안에서 밖으로 뛰쳐나와 온 갑판을 뒤덮고 하늘을 향해 손을 저으며 노래하는 선박의 승무원들처럼 육체의 표면으로 솟아올랐다.

 

4

그녀는 그녀의 어머니와 닮은 것만이 아니었다. 때때로 나는 그녀의 삶이 다만 어머니 삶의 연장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마치 당구 알 굴러가는 것이 당구 치는 사람의 손동작의 연장인 것처럼 말이다. 뒤에 테레사의 삶으로 바뀐 동작은 언제 어디에서 시작했던가? 아마도 프라하의 상인이었던 테레사의 할아버지가 자기 딸의 아름다움을 최초로 지나치게 칭찬했던 순간일 것이다.

테레사의 어머니는 그때 세 살 아니면 네 살이었다. 그때 그는 테레사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라파엘이 그린 마돈나와 닮았다고 했다. 겨우 네 살의 나이인데도 그녀는 그 말을 귀담아들었다. 그래서 후에 그녀가 중학교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그녀는 선생님 말을 듣는 대신에 자기가 어떤 그림과 비슷한가를 곰곰이 생각했다.

그녀가 결혼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을 때 그녀에게는 아홉 명의 구혼자가 있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고 그녀 주위에 둘러앉았다. 마치 공주처럼 그녀는 한가 운데 앉아서 누구를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첫 번째 남자는 미남이었고, 두 번째 남자는 재주가 많았고, 세 번째 남자는 부자였고, 네 번째 남자는 스포티했고, 다섯 번째 남자는 가문이 좋았고, 여섯 번째 남자는 그녀에게 시를 낭송해 주었고, 일곱 번째 남자는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닌 사람이었고, 여덟 번째 사람은 바이올린 연주자였고, 아홉 번째 사람은 모든 구혼자 중에서 가장 남성적이었다.

그런데 모두가 똑같은 식으로 무릎을 꿇고 있었고, 모두가 똑같이 무릎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결국 그녀는 아홉 번째 남자를 택했다. 그러나 그가 가장 남성적이었다는 이유에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그와 서로 사랑하는 동안 그의 귀에 대고 "조심해요, 조심해"하고 속삭인 순간, 바로 그때 그는 전혀 조심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임신중절을 할 의사를 제때에 찾아낼 수 없었기 때문에 황급히 그를 남편으로 맞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식으로 테레사가 태어났다.

수많은 친척들이 체코의 구석구석에서 와 요람을 굽어보고 속삭였다. 테레사의 어머니는 속삭여주지 않았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다른 여덟 구혼자를 생각했다. 여덟 명 모두가 아홉 번째였던 남편보다 훨씬 나았다고 생각했다. 딸 테레사처럼 어머니 또한 거울을 들여다보고 자신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눈가에 많은 주름이 생긴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자기의 결혼생활이 하나의 착오라고 자신에게 말했다. 그녀는 비남성적인 남자를 만난 것이다.

그는 여러 차례의 착복 횡령 전과가 있었고 두 번이나 이혼했었다. 그녀는 무릎에 군살이 박힌 구혼자를 증오했다. 그녀는 스스로 무릎을 꿇고 싶은 무한한 충동을 느꼈다. 그녀는 어느 사기꾼 앞에 무릎을 꿇었고 남편과 테레사에게서 떠났다. 가장 남성적이었던 남자는 가장 불쌍한 남자가 되었다. 그는 너무나도 슬퍼한 탓으로 모든 것이 그에게는 무관심하게 되었다.

어디에서나 그는 생각나는 대로 지껄여댔다. 그는 무지막지한 진술을 함으로써 공산당 경찰을 자극시켰다.

경찰은 그를 체포했고 재판하여 투옥시켰다. 그의 집은 차압 당했고 테레사는 어머니에게로 갔다. 더없이 불쌍한 그 남자는 투옥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어머니는 그녀의 사기꾼과 테레사와 함께 산기슭에 있는 작은 도시로 이사를 했다. 테레사의 의붓아버지는 어떤 관청에서 일했고 어머니는 상점 점원이 되었다. 어머니에게는 테레사 말고도 세 아이가 있었다. 어느 날 그녀는 다시금 거울을 보고 자신을 관찰했다. 그리고 자기가 늙고 추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5

그녀는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것을 확인하자 죄 있는 남자를 하나 찾았다. 모두 죄가 있었다.

남성적이고 사랑을 받지 못했던 그녀의 첫 번째 남편은 죄가 있었다. 그는 그녀가 그의 귀에 대고 조심해야 한다고 속삭였는데도 이에 따르지 않았었다. 남성적이 못 되었으나 사랑을 받았던 그녀의 두 번째 남편은 죄가 있었다. 그는 그녀를 프라하로부터 작은 도시로 끌고 갔고, 그곳에서 모든 여자들의 꽁무니를 쫓아다녀 그녀의 질투가 하루도 잠잘 날이 없었다.

이 두 남자에 대해 그녀는 힘이 없었다. 그녀의 말에 순종했고 그녀로부터 떠나갈 수 없는 유일한 인간, 모든 남자들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인질, 그것은 테레사였다. 어쩌면 그녀가 실제로 그녀 어머니의 운명에 책임이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는 가장 남성적인 남자의 정자와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난자가 서로 만난 어처구니없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테레사라고 일컫는 그 운명적 순간에 어머니에게는 실패한 그녀 삶의 마라톤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어머니는 테레사에게 어머니가 된다는 것은 모든 것을 희생시키는 것임을 끊임없이 설명해 주었다.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있었다. 그녀의 말은 자기 아이 때문에 모든 것을 상실하고만 한 여인의 경험을 표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테레사는 귀담아듣고 믿었다.

인생에서 가장 값진 가치는 어머니가 되는 것이며, 어머니가 되는 것은 크나큰 희생이라고 믿었다. 어머니가 되는 것이 하나의 <희생>이 라면, 딸의 운명은 결코 속죄될 수 없는 하나의 <>인 것이다.

 

6

물론 테레사는 그녀의 어머니가 아버지 귀에다 조심하라고 속삭였던 그 날 밤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테레사는 일종의 죄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원죄처럼 불확실했다. 그녀는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했다. 어머니는 딸이 15세 되었을 때 학교를 그만두게 했다. 그 후 그녀는 식당 종업원으로 일했고 그녀가 번 돈을 모두 어머니에게 주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살림을 돌보았고 자기 동생들을 보살폈다. 일요일에는 온종일 청소하고 빨래하는 데 시간을 보냈다. 그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학교 다닐 때 그녀는 반에서 공부를 제일 잘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보다 높이 오르고자 했다. 하지만 이 작은 시골 도시에서 그녀에게 보다 높은 곳은 없었다.

테레사는 빨래를 빨았다. 그런데 빨래통 옆에는 언제나 책 한 권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책장을 넘겼고 물방울이 책 종이에 떨어졌다. 집에서는 수치심이라곤 없었던 어머니는 속옷만 입고 집안을 돌아다녔다. 때로는 브래지어도 하지 않고, 때로는 여름날에는 아주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녔다. 의붓아버지는 알몸으로 돌아다니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는 테레사가 욕조에 들어가 물속에 누워 있을 때면 언제나 욕실로 들어왔다. 그 때문에 그녀가 언젠가 한 번 욕실 문을 잠그자 어머니는 야단법석을 했다.

"넌 너를 도대체 누구로 생각하느냐? 도대체 내가 누구라고 믿느냐? 네 아버지는 너의 미모를 훔쳐보지 않을 테니 염려하지 마!"

"이 상황은 딸에 대한 어머니의 증오가 남편이 자극하는 질투심보다 강하다는 것을 아주 분명히 하고 있다.

딸의 죄는 무한히 컸고 남편의 부정"不貞"까지도 내포한 것이 되었다. 딸이 해방되어 자기의 권리 주장을예컨대 목욕할 때 욕 실문을 잠가두는 권리 같은 것하려 한다면, 어머니에게 그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남편이 테레사에게 눈독을 들이는 것은 용납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겨울날 저녁 어머니는 불을 켜놓은 채 알몸으로 집안을 돌아다녔다. 테레사는 건너편에 사는 이웃 사람들이 어머니를 볼 수 없도록 재빨리 커튼을 닫았다. 그녀는 등 뒤에서 웃음소리를 들었다.

다음날 어머니의 여자친구분들이 방문했다. 한 분은 이웃이었고, 한 분은 상점 동료였으며, 한 분은 같은 구역에 사는 여선생, 그리고 규칙적으로 만나는 두세 명의 여자들이었다. 테레사는 이들 중 한 여자분의 16세짜리 아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는 즉각 이 기회를 이용하여 자기 딸이 자기의 수치심을 보호하려 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그녀는 웃었다. 그러나 모든 여자들이 함께 웃었다. 그러자 어머니가 말했다.

"테레사는 인간 육체가 오줌 싸고 방귀 뀐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순응하려 하지 않는 거야"

그리고는 즉각 요란한 소리로 방귀를 뀜으로서 스스로 대답했다. 모든 부인들이 웃었다.

 

7

어머니는 소리 높이 코를 골고,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성생활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한 자기 틀니를 뽑아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틀니를 놀랍도록 익숙하게 혀를 이용하여 잇몸으로부터 떨어지게 한다. 한번 활짝 웃으면서 윗니를 아랫니에서 떨어지게 함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러면 그녀의 얼굴은 갑자기 징그러운 표정을 갖는다. 그녀의 이 태도는 그녀의 젊음과 아름다움을 던져버리기 위한 유일하고도 잔인한 제스처다. 아홉 명의 구혼자가 무릎을 꿇고 그녀 주위를 둘러앉았던 그때, 그녀는 살이 드러날까 봐 부끄러워 세심한 신경을 썼다. 마치 그녀 육체의 가치를 그녀의 부끄러움의 척도에서 재려고 하는 것처럼 그랬다. 오늘에 와서 그녀가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녀는 이 점에서 아주 극단적이다. 그것은 마치 그녀가 수치심을 모르는 그녀의 태도로써 그녀의 삶 밑에 엄숙하게 선을 긋고, 자기가 과대평가했던 젊음과 아름다움이 실은 아무런 가치가 없노라고 소리 높이 외치려는 것처럼 보였다.

테레사는 내게 바로 이 제스처의 연장인 것처럼 보였다. 아름다운 여인으로서의 그녀 어머니는 그러한 제스처로 그녀의 삶을 멀리 던져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테레사의 행동이 신경질적이고 그녀의 제스처가 우아하지 못할 때 우리는 놀랄 필요가 없다. 거칠고 자기 파괴적인 어머니의 그 큰 제스처가 테레사가 남아 있었다. 아니 테레사가 되어버렸다!"

 

8

어머니는 정의를 요구하고 죄 있는 사람에게 벌이 내리기를 바랐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녀의 딸이 자기와 함께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계에 머물 것을 고집한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젊음과 아름다움이 전혀 의미가 없고 세상 모두가 똑같을 뿐, 영혼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거대한 하나의 육체 집단수용소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테레사가 비밀리에 행하는 죄악의 의미를 보다 잘 이해할 수가 있다. 즉 자주 오랫동안 거울을 들여다보는 그녀의 행위를 보다 잘 이해할 수가 있다. 그것은 그녀에게는 어머니와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처럼 하나의 육체가 되지 않고, 자기 얼굴 표면에서 영혼의 승무원들이 배의 내부로부터 밖으로 뛰쳐나오는 것을 보려는 소망이었다.

그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영혼이 겁에 질리고 위축되어, 기가 죽고 슬픈 나머지 테레사의 내장 깊숙한 곳으로 숨어버려 전면에 나오기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토마스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 날 테레사는 바로 그런 상태였다. 그녀는 식당 술집에서 술 취한 사람들 틈을 왔다 갔다 하느라 안간힘을 썼다. 그녀의 몸은 그녀가 둥근 판자 위에 얹어 나르는 맥주 조끼의 무게에 눌려 휘청 굽었다. 그리고 그녀의 영혼은 위나 췌장 어디엔가 깊숙이 숨어 있었다. 이 순간 토마스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그녀의 어머니도 알지 못했고 또 그녀에게 매일 짓궂은 말을 건네는 술꾼들도 알지 못한 어느 누구였기 때문에, 그가 그녀에게 말을 건 것은 더욱더 의미가 있었다. 낯선 사람의 신분이란 것이 그를 다른 사람들보다 격상시켰다.

그리고 또 한 가지가 있다. 펴놓은 책이 그의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이 호텔 식당에는 아직 어느 누구도 책을 펴놓고 보는 사람은 없었다. 책은 테레사에게 어떤 비밀협회의 식별표지였다. 그녀를 둘러싼 거친 세계에 대해 그녀는 말하자면 단 하나의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시립도서관에서 빌리는 책들이었다. 특히 소설류를 많이 빌렸다.

그녀는 필딩에서 토마스 만에 이르는 작가들의 수많은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들은 그녀에게 자기의 불만스런 삶에서 환상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었다. 또한 동시에 그것들은 대상으로서도 의미가 많았다. 그녀는 팔 밑에 책을 끼고 길을 산보하기를 좋아했다. 책은 그녀에게 지난 세기의 멋쟁이들의 근사한 지팡이와 같은 것이었다. 책을 통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구분되었다. "책과 멋쟁이의 근사한 지팡이와의 비교가 아주 올바른 것은 못 된다. 지팡이는 멋쟁이의 식별표지였고 또한 그의 모던하고 유행적인 존재로 만들었다. 책은 테레사를 다른 사람들과 구분지어 주지만 그녀를 유행에 뒤지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이가 너무 어려 무엇이 그녀에게서 유행에 뒤진 것이었나를 알지 못했다. 요란한 트랜지스터라디오를 들고 그녀 옆을 지나가는 젊은 남자들을 그녀는 멍청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들이 모던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에게 말을 걸었던 바로 그 남자는 말하자면 낯선 사람이었고 동시에 어떤 비밀협회의 회원격이었다.

그는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그리고 테레사는 그녀의 영혼이 모든 핏줄과 땀구멍을 통해 뛰쳐나와 자신을 그에게 보이려 하는 것을 느꼈다.

 

9

취리히에서 프라하로 돌아오는 도중 토마스에게는 자기와 테레사의 만남이 여섯 번의 거의 불가능한 우연에 근거했다는 생각에 일종의 불쾌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떤 사건은 그것의 발생을 위해 필연적인 우연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더 의미가 많아지고 더욱더 중요하게 되지 않는가? 오직 우연만이 메시지로서 이해될 수 있다. 필연성에서 발생하는 것, 예측할 수 있는 것, 매일 반복되는 것에는 메시지가 없다. 오직 우연만이 무엇인가를 이야기해 준다. 우리는 우연에서, 마치 집시여인들이 잔의 밑바닥에 그려진 커피세트의 무늬를 보고 점을 치듯 무엇인가를 읽으려 애쓴다. 그 호텔 식당에 토마스가 나타난 것은 테레사에게는 절대적 우연의 계시였다. 그는 책을 앞에 펴두고 탁자에 앉아 있었다. 그는 테레사를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코냑 한 잔 줘요!"

이 순간 음악이 라디오에서 울려 나왔다. 테레사는 코냑을 가져오기 위해 카운터로 갔다. 그리고 라디오 소리를 더 크게 하려고 스위치를 돌렸다. 그녀는 이 음악이 베토벤임을 다시금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녀는 프라하의 한 4중주단이 그녀의 이 도시에서 초청 연주를 한 이래 베토벤의 이 곡을 알고 있었다. 테레사는"우리가 알다시피 그녀는 <보다 높은 것>에 대해 꿈꾸었다"이 콘서트에 갔었다.

홀은 텅 비어 있었다. 그녀 외에 다만 약제사가 부인과 함께 와 있었다. 단상 위에는 네 명의 악사들이 앉아 있었고, 홀에는 세 명의 청중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 악사들은 아주 친절하여 콘서트를 그만두지 않았다. 그들은 하루 저녁 내내 단 세 사람을 위해 베토벤의 마지막 세 4중주곡을 연주했다. 콘서트가 끝나고 나서 약제사는 음악가들을 식사에 초대했고, 그가 알지 못하는 여자 청중 테레사까지도 합류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 이래 베토벤은 그녀에게 <다른 편에 있는> 세상의 형상이었다. 그녀가 꿈꾸었던 세계의 형상이었다. 그녀가 주문한 코냑을 카운터로부터 토마스가 앉아 있는 탁자로 가져오는 동안, 그녀는 이 우연에서 무엇인가를 읽으려고 애썼다. 그녀가 자기의 마음이 끌리고 있는 알지 못하는 이 남자에게 코냑을 날라다 주고 있는 지금 하필이면 베토벤 곡을 듣는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가? 마술처럼 신비스런 것은 필연이 아니고 우연이다. 사랑이 잊을 수 없는 것이 되자면 처음 순간부터 우연들이 사랑 위에 내려앉아 있어야 한다. 마치 성자 프란츠 폰 아시아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새들처럼.

 

10

그는 술값을 지불하기 위해 그녀를 불렀다. 그는 책"비밀협회의 식별표지"을 접었다. 그녀는 그가 무슨 책을 읽는가고 기꺼이 물었을 것이다.

"내 호텔 계산으로 달 수 있나요?"

"물론이죠, 당신의 호텔 방 번호는요?"

그는 호텔 방 열쇠가 매달려 있는 팻말을 그녀에게 보였다. 거기에는 붉은색으로 6이라는 숫자가 씌어 있었다.

"이상한데, 6호실이라"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것이 어째서 이상하단 말이오?"

하고 그는 물었다.

그녀는 그녀의 양친이 이혼하기 전 살았던 프라하의 집 번호가 6이었음을 회상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달리 대답했다"우리는 그녀의 약삭빠른 재치에 놀랄 뿐이다".

"당신의 호텔 방 번호는 6이고, 저는 6시에 근무를 끝내거든요."

"그런데 내가 탈 기차는 7시에 떠나요."

하고 낯선 사람은 말했다.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는 그에게 서명할 계산서를 건네주었고 그것을 수납에 갖다 주었다. 그녀가 근무를 끝냈을 때 그 낯선 남자는 이미 그의 탁자에 앉아 있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은근한 메시지를 이해했던가? 그녀는 흥분되어 식당을 떠났다. 맞은편에 작은 공원이 하나 놓여 있었다. 몇 그루 되지 않는 나무들이 보잘것없이 가꾸어져 있었다.

더러운 소도시의 공원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그녀에게는 언제나 아름다운 섬이었다. 그곳에는 잔디밭이 있었고, 네 그루의 버드나무, 벤치, 수양버들, 개나리 나무가 있었다. 그는 노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곳에서는 호텔 식당의 입구를 볼 수 있었다. 바로 이 벤치에서 어제 그녀는 무릎 위에 책을 놓고 앉아 있었다! 이 순간 그녀는 알지 못하는 이 남자가 자기에게 정해진 사람임을 파악했다 "우연의 새들이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은 것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자기 옆에 앉으라고 권했다"영혼의 선원들이 육체의 갑판 위로 뛰쳐나왔다". 그런 다음 얼마 뒤 그녀는 그를 동반하여 역에까지 갔다. 그곳에서 그는 그녀와 작별할 때 전화번호가 적힌 자기의 명함을 주며 말했다.

"언젠가 우연히 프라하에 올 기회가 있을 때……"

 

11

그가 그녀에게 마지막 순간에 주었던 이 명함보다도 훨씬 더 크게 그녀에게 작용한 것은 우연의 손짓", 베토벤, 6, 공원에서의 노란 벤치"이었다. 그것은 그녀에게 집을 떠나 자신의 삶을 바꾸겠다는 용기를 주었다. 그녀의 사랑을 동하게 하였고, 그녀 삶의 마지막까지 공급원이 될 에너지 원천이 되었던 것은 어쩌면 이 우연들이었을지 모른다"그런데 이들 우연은 아주 평범한 것으로서 두드러진 것이 못되며 하찮은 이 소도시의 격에 맞는다고 볼 수 있다".

우리들의 일상은 우연의 폭격을 받는다. 더 정확히 말하면 흔히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고 일컫는 인간과 사건 간의 우연한 만남으로 점철된다. 예기치 않았던 두 사건이 동시에 발생한다든지, 이 두 사건이 서로 만날 때 우리는 우연의 일치에 대해 말한다. 토마스가 라디오에서 베토벤 곡이 방송될 때, 바로 그 순간 그 식당에 나타난 것이다. 그와 같은 우연의 일치들은 아주 빈번히 있기 때문에 우리는 흔히 그것을 감지하지 못한다. 토마스가 아니라 식당 옆에 사는 푸줏간 주인이 식당의 그 식탁애 앉았던들 라디오에서 베토벤 곡이 연주되었던 것이 테레사에게는 눈에 띄지 않았을 것이다"비록 베토벤과 푸줏간 주인의 만남 역시 재미있는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그러나 싹트고 있는 사랑은 테레사에 있어서 아름다운 것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했고 그녀는 이 음악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이 음악을 듣게 될 때마다 그녀는 감동될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그녀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그녀에겐 이 음악은 찬란한 빛을 띠고 나타날 것이며 아름다울 것이다. 그녀가 토마스에게 올 때 팔에 끼고 있었던 그 소설의 시작 부분에서 안나와 브론스키가 독특한 상황에서 서로 만난다. 그들은 플랫폼에 서 있었는데 바로 그때 그곳에서 누가 차 밑으로 떨어졌다. 이 소설의 마지막에서 안나는 기차 밑으로 몸을 던진다. 동일한 모티브가 처음과 마지막에 나타나는 이 대칭적 구조가 독자 여러분에게는 너무나도 <소설처럼>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나도 그것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여러분께서 <소설처럼>이란 말은 여하한 경우에도 <만들어낸>, <인위적인>, 혹은 <삶과는 낯선> 등의 말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그것을 인정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은 바로 위에서와 똑같이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죠. 인간의 삶은 음악 작품처럼 구성되어 있다. 미적 감각에 이끌린 사람은 어떤 우연한 사건"베토벤의 음악, 정거장에서의 죽음"을 차기 인생의 총보에 담는 하나의 모티브로 변형시킨다. 그는 마치 작곡가가 자기 소나타의 테마를 전조"轉調"하듯 그 모티브를 다시금 수용하고 반복하며, 변형하고 반전시킨다.

안나는 자기의 생명을 달리 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정거장과 죽음의 모티브, 그녀 사랑의 탄생과 결부된 이 잊을 수 없는 모티브는 절망의 순간에 그것의 어스름한 아름다움으로 그녀의 마음을 끌었다. 인간은 자기도 모르게 자신의 삶을 아름다움의 법칙에 따라 구성한다. 이것은 더없이 깊은 절망의 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 때문에 우리는 소설이 우연들의 신비한 만남에 매료되어 있다고 비난할 수 없다"예컨대 브론스키, 안나, 플랫폼, 죽음의 서로 만남이라든가 혹은 베토벤, 토마스, 테레사, 코냑의 서로 만남 등". 그러나 인간이 일상에서 그러한 우연에 대해 눈멀고 그래서 삶에서 아름다움의 영역을 빼버린다고 그 인간을 비난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12

그녀의 어깨에 내려앉은 우연의 새들에서 용기를 얻어 그녀는 어머니에게 한마디 말도 하지 않고 일주일간 휴가를 받아냈다. 그리고는 기차를 탔다. 그녀는 자주 화장실에 가 거울을 들여다보고 그녀의 영혼이 그녀 삶의 이 결정적인 날에 잠시도 그녀 육체의 갑판으로부터 떠나지 말아 줄 것을 간청했다. 그런 식으 로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 그녀는 갑자기 깜짝 놀랐다. 그녀는 목 안이 쓰림을 느꼈다. 하필이면 이 운명적인 날에 병이 나야만 했던가? 그러나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녀는 역에서 그에게 전화했다. 그리고 그가 문을 열어주는 순간 그녀의 뱃속은 요란하게 꾸르륵거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부끄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것은 마치 그녀의 어머니가 뱃속에 들어앉아 그녀의 랑데부를 망치기 위해 요란한 진동 소리를 내며 웃는 것처럼 여겨졌다. 처음 순간 그녀는 그가 자기를 이 어처구니없는 뱃속 소리 때문에 내보낼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녀를 두 팔로 꼭 안아주었다. 그가 꾸르륵거리는 뱃속 소리를 들어주지 아니한 데 대해 그녀는 그에게 더욱더 정열적으로 키스했고 눈앞은 눈물 때문에 안개막이 낀듯 보이지 않았다. 시간은 정지했고 그들은 사랑했다.

그때 그녀는 소리를 질렀다. 그녀에게는 이미 열이 있었다. 독감에 걸렸던 것이다. 산소를 허파로 공급하는 호스의 입구가 빨개졌고 막혀버렸다. 그러고서 그녀는 다시 한번 그녀의 모든 소유물을 꾸려 담은 무거운 트렁크를 가지고 왔다. 그녀는 다시는 그녀의 작은 도시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결심했다. 그는 그녀를 다음 날 저녁에야 비로소 초청했다. 그래서 그녀는 값싼 호텔에서 밤을 지냈다.

이튿날 아침 그녀는 트렁크를 역의 수화물 보관소로 가져가 보관하고 하루종일 소설 안나 카레니나를 팔에 끼고 프라하의 거리를 어슬렁거리면서 돌아다녔다. 저녁에 그녀는 그의 집 초인종을 울렸다. 그는 문을 열었고 그녀는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토마스 의 세계로 들어가는 입장권인 것처럼, 그녀는 통행증으로서는 보잘것없는 이 입장권 외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명백히 의식했다. 그녀는 더없이 울고 싶었다. 그러나 울지 않으려고 그녀는 말을 많이 했고, 소리 높이 이야기했고 웃었다.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그는 그녀가 도착하자 곧 두팔로 안아주었고, 그들은 사랑의 동침을 했다. 그녀는 안개처럼 몽롱한 상태 속에 침잠했다. 이 상태에서 그녀는 아무것도 볼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오직 그녀는 외침 소리만이 있었다.

 

13

그것은 한숨 소리도 신음 소리도 아니었다. 그것은 실제 외침 소리였다. 그녀가 그토록 소리 높이 외쳐, 토마스는 그의 귀에다 대고 외친 이 소리가 그의 고막을 찢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서 머리를 돌렸다. 이 외침은 육욕의 표현이 아니었다.

육욕이란 모든 감각의 가능한 최대 동원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을 긴장해서 바라보며 극히 미세한 소리도 감지하는 상태다. 그것과는 반대로 그녀의 외침 소리는 감각을 마비시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도록 하는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외침은 모든 대립들을 지양하려 하는 그녀 사랑의 소박한 이상주의였다. 육체와 영혼의 이원성 지양, 어쩌면 시간의 지양까지도 그녀의 사랑은 지향했다. 그녀는 눈을 감았던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텅 빈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때때로 그녀는 머리를 격하게 내저었다. 그녀는 외침소리가 조용해졌다. 그녀는 그의 옆에서 잠들었고 밤새도록 자기의 한 손에 그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 벌써 여덟 살 나이에 그녀는 그렇게 한 손으로 다른 손을 잡고 잠들었고, 자기가 사랑하는 남자, 그녀 삶의 동반자 손을 잡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이제 토마스의 손을, 자면서 그토록 고집스럽게 꽉 잡고 있었다면 우리는 이것을 잘 이해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그것을 위한 준비를 했었고, 연습을 통해 익혔던 것이다.

 

14

보다 높은 것을 지향하는 대신에 술취한 사람들에게 맥주를 팔아야만 하고 일요일에는 동생들의 더러운 빨래를 해야 하는 젊은 처녀는 내면에 큰 생활력을 저장하고 있다. 이같은 생활력은 대학에서 공부하며 책을 보며 하품하는 사람들에게는 납득이 가지 않을 것이다. 테레사는 이들 모두보다도 더 많이 읽었고, 삶에 대해 더 많이 경험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사실을 결코 의식하지 못할 것이다. 대학 공부를 한 사람과 독학한 사람을 구분짓는 것은 풍부한 학식이 아니라 생활력과 자신감의 차이다. 테레사가 프라하에서 삶에 뛰어들었던 돌진력은 저돌적이고도 부서지기 쉬운 것이었다. 어느 날 자기에게 누군가 너는 이곳에 속하지 않아! 네가 왔던 그곳으로 돌아가! 하고 말해주기를 그녀는 기대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온 삶은 가는 끈에 매달려 있었다.

겁을 먹고 내장 깊숙이 숨은 그녀의 영혼을 언젠가 표면으로 나오게 했던 토마스의 소리에 매달리고 있었다. 테레사는 사진실에 직장을 구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녀는 스스로 사진 촬영을 하고자 했다. 토마스의 여자친구 사비나는 그녀에게 유명한 사진사들의 사진 책을 굽어보며 그들이 보고 있는 각 사진에서 무엇이 주목할 만한가를 그녀에게 설명해 주었다. 테레사는 사바나의 말을 조용히 주의 깊게 들었다. 아마도 어느 대학교수도 이같은 주의력을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 보지 못했을 것이다. 사비나 덕택에 그녀는 사진과 그림 간의 유사성을 파악했다. 그녀는 프라하에서 개치되었던 모든 전시회를 자기와 함께 구경가자고 토마스를 졸랐다. 그 뒤 그녀는 그림잡지에 자신이 찍은 사진들을 게재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신문 사진사로 일하기 위해 그 동안 일하던 사진실을 떠났다. 그날 저녁 그들은 그녀의 이 승진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바 무도장에 갔다. 토마스는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 이유를 가르쳐달라고 그녀는 그에게 졸랐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는 질투했었다고 자백했다. 그녀가 그의 동료와 춤추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당신 정말 질투했어요? 하고 그녀는 그에게 적어도 열 번은 물었다. 마치 그가 그녀에게 당신 노벨상 탔어 하고 알려주었는데 그녀가 이 말을 믿지 않으려 는 것처럼 그녀는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녀는 그의 허리를 잡고 그와 함께 온 방을 돌아다니며 춤추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녀가 방금 전 바의 플로어에서 추었던 유행 춤이 아니었다. 그것은 템포 빠른 일종의 시골 춤으로서 멍청하게 껑충껑충 뛰는 춤이었다. 그녀는 발을 공중으로 던졌고 서투른 뜀질을 하면서 그를 끌고 방을 가로질러 갔다. 유감스럽게도 그녀는 그 후 곧 자신이 질투하게 되었다. 토마스에게 그녀의 질투는 노벨상이 아니고 하나의 짐이었다. 그는 죽기 1년인가 아니면 2년 전에 가서야 비로소 이 짐을 벗도록 되어 있었다.

 

15

그녀는 알몸으로 한 무리의 발가벗은 다른 여자들과 함께 품 주위를 행진해야 했다. 토마스는 위쪽 천장에 매달려 있는 바구니 안에 서서 그들에게 고함쳤다. 그는 그들을 노래 부르게 강요했고 무릎 굽히기를 시켰다. 한 여자가 틀린 동작을 할 때면 그는 그녀를 사살했다. 나는 다시 한번 이 꿈 이야기로 되돌아가고자 한다. 질겁한 무서움은 토마스가 처음으로 총을 발사했을 순간에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악몽이었다. 발가벗고 다른 발가벗은 여자들과 함께 동일한 템포로 행진한다는 것, 그것은 테레사에게 공포의 원형이었다.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살던 당시 그녀의 욕실 문을 잠가서는 안 되었다. 어머니는 이것을 통해 그녀에게 말하고자 했다. 너의 육체는 모든 다른 육체들과 같다. 네게는 부끄러움에 대한 권리가 없다. 동일한 형태로 수없이 많이 존재하는 무엇을 감출 이유가 네게는 없다. 어머니의 세계에서는 모든 육체가 동일했고 일렬종대로 행진하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나체는 테레사에게 강제노동수용소의 획일화 표지였다. 굴욕의 표지였다. 꿈의 맨 처음에 또 다른 무서운 것이 있었다. 즉 모든 여자들이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의 육체는 동일하여, 똑같이 격하된 영혼 없는 소리 나는 장치일 뿐 아니라, 또한 이들 여인은 그것에 대해 즐거워했다! 영혼 없는 자들의 환호하는 단결이었다! 이들 여인은 영혼의 짐을, 이 우스꽝스런 자만을, 유일무이성에 대한 이 환상을 던져버려 서로가 완전히 동일하다는 데 대해 행복 해했다. 테레사는 그들과 함께 노래 불렀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즐겁지 않았다. 그녀는 겁이 나 노래 불렀다. 자기가 함께 노래하지 않을 경우 이 여인들은 자기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토마스가 그들을 쏘아, 하나씩 하나씩 죽어 풀 속으로 떨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한단 말인가? 자신들의 동일성과 구분 불가능한 것을 기뻐하는 이 여인들은 근본적으로 그들의 앞에 닥칠 죽음을 축하했다. 죽음은 그들의 동일성을 절대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총의 발사는 소름끼치는 그들 행진의 행복한 종말일 따름이다. 이러한 근거에서 권총 발사가 있을 때마다 그들은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시체들이 천천히 물속에 가라앉는 동안 그들의 노랫소리는 더욱더 높아진다.

총을 쏘는 사람이 왜 하필이면 토마스인가? 그가 테레사까지도 사살하려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테레사를 이 여자들에게로 보낸 것이 그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이 꿈이 토마스에게 알리고자 한 것이다.

왜냐하면 테레사 스스로 그에게 그것을 말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모든 육체가 동일한 어머니의 세계를 탈출하기 위해 그에게로 왔었다. 그녀는 자기의 육체가 유일무이하며 전혀 대체할 수 없는 것이 되려고 그에게로 왔었다. 그런데도 토마스 또한 그녀와 다른 여자들 간에 동일성 표지를 두었다. 즉 그는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방식으로 키스하고 그들을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쓰다듬는다. 그는 전혀 구분을 하지 않는다. 그는 테레사의 육체와 다른 육체들 간의 구분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는 테레사를 그녀가 탈출하려 했던 세계로 되돌려보낸 셈이었다. 그는 그녀를 다른 여자들과 함께 맨몸으로 행진하게 했다.

 

16

그녀는 세 가지 시리즈의 꿈을 번갈아 가면서 꾸었다. 고양이들이 행패를 부리는 첫 번째 시리즈의 꿈은 생시 그녀의 괴로움에 대한 이야기였다. 두번째 것은 수없이 많은 변형으로 그녀의 처형 현상들을 보여주었고, 세 번째 것은 그녀의 굴욕이 영속적인 상태가 되어버린 사후의 그녀 삶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들 꿈에서 풀이할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이 꿈들이 토마스에게 한 비난들은 너무나 명백하여 그는 다만 입 다물고 머리를 떨군 채 테레사의 두 손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이 꿈들은 많은 것을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또한 아름다운 꿈들이었다. 이것이 바로 프로이트가 그의 꿈 해석에서 빠뜨려놓았던 관점이다. 꿈은 어떤 "아마 도 암호로 된" 보고일 뿐만 아니라, 그것은 또한 미학적인 적극성을 뜻하는 상상의 유희다. 그리고 이 유희는 그 자체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의 유희다. 그리고 이 유희는 그 자체 하나의 가치다. 꿈은 상상하는 것, 즉 발생하지 아니한 것을 꿈꾸는 것이 인간의 가장 깊은 욕구들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바로 이 점에 꿈에 숨겨져 있는 배반적인 위험의 근거가 있다. 꿈이 아름답지 않다면 우리는 그것을 빨리 잊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테레사는 계속해서 그녀의 꿈으로 되돌아왔고 그것을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그리고 그것을 그녀는 전설로 변화시켰다. 토마스는 테레사의 꿈이 지닌 고통스러운 아름다움의 최면적인 마술 아래에서 살았다.

"테레사, 테레사 당신이 내게서 떠나가는 곳은 어디지? 당신은 마치 정말 나를 두고 떠나려는 것처럼 매일 죽음의 꿈을 꾸고 있으니"

하고 언젠가 그는 그들의 어느 포도주 집에서 마주 앉아 있을 때 그녀에게 말했다. 낮이었다. 이성과 의지가 다시금 우세한 세력을 잡은 후였다. 한 방울의 빨간 포도주가 천천히 잔을 타고 흘러내렸다. 테레사는 대답했다.

"토마스, 나는 어쩔 수가 없어요. 모두 이해하겠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어요. 이 같은 나의 탈선이 비극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그녀는 그를 다정하게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녀는 다가오는 밤을 두려워했다. 그녀는 자신의 꿈을 두려워했다. 그녀의 삶은 분열되어 있었다. 밤과 낮이 그녀를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었다.

 

17

언제나 보다 높이 올라가려는 사람은 언제나 갑자기 현기증이 그를 찾아온다는 것을 계산하고 있어야 한다. 현기증이란 무엇인가? 추락 공포증인가? 그렇다면 난간으로 안전장치를 해놓은 높은 전망대에서도 우리에게 현기증이 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현기증은 추락 공포증과는 다른 것이다. 현기증은 깊이가 우리를 유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깊이는 우리 마음속에 추락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킨다. 그럴 때 우리는 깜짝 놀라 이 동경에 대해 방어한다. 발가벗은 여인들이 풀 주위를 도는 것, 테레사가 자기들처럼 죽었음을 기뻐하는 시체운반차에 실린 죽은 여인들, 이런 것은 바로 그 밑인 것으로서 그것은 그녀를 놀라게 했고, 그녀는 언젠가 이미 그것 앞에서 도망쳤다. 그런데 그녀는 신비스럽게도 그것에 이끌렸다. 그것은 현기증에 대한 그녀의 느낌이었다. 즉 그녀에게는 운명과 영혼을 포기하게끔 하는 달콤한 "거의 즐거운" 부름이 들렸다. 그리고 약해지는 순간에 그녀의 이 부름에 따라 어머니에게로 돌아가고자 했다. 그녀의 영혼의 선원들을 그녀 육체의 갑판으로부터 물러가도록 명령하고, 그녀 어머니의 친구들 편으로 가서 그들 중 누군가가 요란스럽게 방귀 뀌는 것을 보고 웃고, 발가벗고 그들과 함께 풀 주위를 행진하며 노래 부르고자 했다.

 

18

테레사가 어머니 집에 살았을 때, 계속 어머니와 싸웠다는 것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사실은 불행하게도 그녀가 동시에 어머니를 사랑했다는 것이다. 만약 어머니가 사랑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간청했던들 그녀는 어머니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그러한 목소리를 한 번도 듣지 못했기 때문에 그녀는 집을 떠날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기의 공격력이 딸에 대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프라하에 있는 딸에게 불평이 가득 담긴 편지를 썼다. 그녀는 그녀의 남편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녀 직장의 사장, 건강, 자식들에 대한 불만을 썼다. 그리고는 테레사만이 그녀가 세상에서 가진 유일한 인간이라고 했다. 테레사는 20년 동안 그토록 동경했던 어머니의 사랑의 목소리를 듣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선 테레사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이것은 그녀가 약하다고 느낄 때 더욱더 심했다. 토마스의 불성실은 갑자기 그녀의 무기력을 드러나게 했다. 그리고 이 무기력의 감정에서 현기증이, 추락에 대한 이 무한한 동경이 발생했다. 언젠가 어머니가 그녀에게 전화했다. 암에 걸려 그녀의 생명은 몇 달밖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이 소식은 토마스의 불성실에 대한 테레사의 실망을 반 항으로 변질시켰다. 그녀는 자기를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 때문에 자기가 어머니를 배반했다고 자신을 나무랐다. 그녀는 어머니가 자기를 괴롭혔던 모든 것을 잊으려 했다. 그녀는 더구나 어머니를 이해할 입장이었다. 이 모녀는 동일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어머니는 테레사가 토마스를 사랑하듯 의붓아버지를 사랑했다. 토마스가 테레사를 괴롭힌 것과 똑같이 의붓아버지는 외도를 함으로써 어머니를 괴롭혔다. 어머니가 테레사에게 화를 냈을 때는 그것은 오직 어머니가 너무나도 고통받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토마스에게 어머니의 병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에게 일방적으로 말했다. 일주일간 휴가를 내 어머니에게 가겠노라고.

그녀의 목소리에는 반항의 기미가 있었다. 테레사를 어머니에게로 이끈 것이 현기증 감정이었음을 알기라도 했던 것처럼 그는 이 여행을 반대했다. 그는 그곳 소도시에 있는 병원에 전화했다. 암 조사에 관한 환자 기록은 그곳 보헤미아 지방에서는 아주 철저하게 작성되어 있어 그는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테레사 어머니의 경우 암 징조가 진단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또한 지난 1년 동안 그녀는 한 번도 의사를 찾은 적이 없었음을 확인했다. 테레사는 토마스의 말을 듣고 어머니에게로 가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그날 그녀는 길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쳤다. 그녀의 걸음은 불완전하게 되었다. 그녀는 거의 매일 넘어져 몸을 다치거나 손에 쥐고 있던 물건들을 떨어뜨렸다. 그녀는 떨어지고 싶은 무한한 갈망을 느꼈다. 그녀는 중단되지 않는 현기증 상태에서 살았다. 넘어지는 사람은 말한다.

"일어나게 도와줘요!"

참을성을 가지고 토마스는 그녀를 도와 일으켰다.

 

19

"나는 당신을 마치 무대 위에서처럼 내 화실에서 사랑하고 싶어. 주위에는 사람들이 서 있는데 그들은 한 발짝도 가까이 와서는 안 되는 거야. 그러나 그들은 우리에게서 눈을 돌릴 수는 없지"

시간이 지나는 동안 이 이미지는 그것이 원래 지녔던 잔혹성을 상실하고 그녀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동침하는 동안에 때때로 그녀는 이 상황을 속삭이면서 토마스에게 회상시켜 주었다. 토마스의 부정에서 그녀가 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이 있다고 그녀는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가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다! 그의 여자친구들에게로 함께 데려가는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그녀 육체를 다시금 제일의, 유일무이한 것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었는지 모른다. 그렇게 할 때 그녀의 육체는 그의 제2의 자아가, 그의 부관이, 그의 조수가 될 것이다.

"나는 당신을 위해 그들의 옷을 벗기겠어요. 당신을 위해 그들을 목욕통에서 목욕시키겠어요."

하고 그녀는 서로 몸을 휘감고 그와 함께 누워 있을 때 그에게 속삭였다. 그녀는 그와 합쳐져 하나의 자웅동체가 되고자 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의 육체는 그들 공동의 장난감이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20

그의 일부다처제적인 삶에서 제2의 자아가 된다는 것, 그것을 토마스는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 생각을 뿌리칠수 없어 사비나에게 접근하려 애썼다. 그녀는 사비나에게 반신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제의했다. 사비나는 그녀를 자기 화실로 초청했다. 테레사는 그때서야 드디어 한가운데 넓은 침대가 있는 널찍한 화실 공간을 보았다. 그곳 침대는 마치 연단처럼 놓여 있었다.

"당신이 아직 내 집에 한 번도 오지 아니한 것은 치욕스런 일이에요"

하고 사비나는 말하고 벽에 기대놓은 그림들을 그녀에게 보였다. 그녀는 그 외에도 자기가 대학 시절에 그렸던 캔버스까지 끄집어내었다. 이 그림에서는 건조중에 있는 용광로를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이 그림을 미술대학에서 엄격한 사실주의가 요구되던 시절에 그렸다"비사실적인 예술은 당시 사회주의를 매몰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사비나는 유희충동에 자극되어 미술대학 교수들보다도 더 엄격하게 되려고 노력했었다. 그녀는 터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게 그려 마치 사진 처럼 보이게끔 그림을 그렸다.

"여기 이 그림은 망가뜨렸어요, 붉은 색감이 그곳에 그어졌어요, 처음에는 몹시 속상했어요. 그러나 얼룩이 마치 하나의 갈라진 틈처럼 보였기 때문에 내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그것이 마치 이 용광로 공사장이 실제 공사장이 아니라 공사장을 그린 파손되기 쉬운 극장 장식처럼 보였어요. 나는 그 갈라진 틈에 붓 을 대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시리즈를 나는 무대배경 장식 세트인 측벽이라고 명명했어요. 물론 아무도 이 그림들을 볼 수 없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나는 학교에서 쫓겨났을 거예요. 전면에는 언제나 완전히 사실적인 세계가 있었고 그리고 그 이면에서 우리는 마치 무대화의 찢겨진 캔버스 뒤를 보는 것처럼, 다른 것을 볼 수 있었지요. 신비스럽거나 혹은 추상적인 것을 말이에요"

테레사는 다시금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대단한 주의력을 집중시켜 들었다. 이 같은 주의력은 지금까지 어느 대학교수도 자기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얼굴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사비나가 전에 그린 그림이든 최초에 그린 그림이든 모든 그림들이 실제 언제나 동일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음을 확인 했다. , 모든 그림이 마치 이중 조명을 한 사진처럼 두 주제, 두 세계의 만남임을 확인했던 것이다.

탁상램프의 불빛을 받고 있는 풍경화, 사과, 호도, 크리스마스트리가 있는 목가적인 정물화를, 뒤에서 활활 타고 있는 촛불을 가지고 파괴하는 손. 그녀는 사비나에 경탄하기 시작했다. 이 여류화가가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그녀의 경탄에는 불안이나 불신이 전혀 깃들지 않았다. 그것은 동감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진 촬영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거의 망각할 뻔했다. 사비나 가 그녀에게 그것을 회상시켜 주어야만 했다. 그녀는 그림들로부터 몸을 돌려 방 한가운데 연단처럼 놓여 있는 침대를 다시금 보았다.

 

21

침대 옆에 침대용 작은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고 그 위엔 가발을 씌워놓기 위해 이발사들이 사용하는 것 같은 머리 모양의 일종의 스탠드가 있었다. 사비 나의 가발용 머리에는 그러나 가발이 아니라 맬론모가 씌워 있었다. 사비나는 미소를 짓고 말했다.

"이것은 우리 할아버지의 맬론모지요"

검고, 빳빳하고 둥근 그와 같은 모자를 테레사는 지금까지 오직 영화관에서만 보았다. 채플린이 그와 같은 모자를 썼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모자를 손에 들고 그것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다음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이것을 쓰고 촬영해 주기를 바라나요?"

사비나는 이 질문에 한참 동안 웃었다. 테레사는 모자를 내려놓고 사진기를 손에 들어 촬영하기 시작했다. 거의 한 시간 뒤 그녀는 사비나에게 갑자기 물었다.

"당신에게 나체 사진 찍어드릴까?"

"나체로?"

"그래요"

하고 테레사는 과감히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린 좀 마셔야 하겠어요"

하고 사비나는 말하고 술병을 따러 갔다.

테레사는 그녀의 육체가 약해짐을 느꼈다. 사비나가 손에 술잔을 들고 왔다 갔다 하면서 어느 지방 도시의 시장이었던 그녀의 할아버지에 대해 지껄이고 있는 동안 입을 다물었다. 사비나는 할아버지를 알지 못했다. 할아버지에게서 남은 것이라곤 이 모자와 오래된 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사진에는 소도시의 고위 관직자들이 연단에 서 있었다. 그들 중 한 사람이 사비나의 할아버지였다. 그들이 연단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명백하지가 않았다. 어쩌면 어떤 다른 고위 관직자를 위한 기념비를 제막했는지 모른다. 그도 경사 스런 기회가 있을 때엔 마찬가지로 맬론모를 썼을 것이다. 사비나는 멜론모와 할아버지에 대해 길게 이야기했다. 그녀가 세 번째 잔을 다 비우고는 "좀 기다려요" 하고 말하고 욕실로 사라졌다. 그녀는 목욕 가운을 입고 돌아왔다. 테레사는 사진기를 들어 눈앞에 갖다댔다. 사비나는 가운을 열었다.

 

22

사진기는 테레사에게 토마스의 여자친구를 관찰하는 기계의 눈으로서, 동시에 또한 자신의 얼굴을 그 뒤에 감추기 위한 우산으로 봉사했다. 사비나가 입은 가운을 벗기로 결심하기까지에는 어느 정도의 시간을 필요로 했다. 그런데도 상황은 그녀가 예견했던 것보다 더 어려웠다. 사비나는 한동안 나체 포즈를 취한 뒤 테레사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제 내가 당신을 촬영할게. 옷을 벗어!"

"옷을 벗어!"란 말을 사비나는 토마스로부터 자주 들어 왔다. 그래서 이 말은 그녀의 기억 속 깊이 박혔다. 그것은 토마스의 명령으로서 이제 그의 여자 친구가 그의 부인에게 말했던 것이다. 토마스는 이 두 여자를 동일한 요술 같은 이 하나의 문장으로 묶어놓았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대화를 예기치 않게 애로틱한 상황으로 바꾸어 놓는 것은 그의 매우 독특한 방식이다. 그는 애무를 한다든가, 만진다든가, 쓰다듬는다든가, 아니면 간청함으로써가 아니라 명령을 함으로써 그렇게 했다. 그것은 갑자기 내려지는 뜻밖의 명령으로서 조용하지만 엄하고 언제나 상대에 대해 일정한 거리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 때문에 명령의 순간 그는 여자에게 손을 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테레사에게도 그는 종종 동일한 어조로 "옷을 벗어!"하고 말했다. 그가 그것을 아주 조용히 말할 때에도, 다만 속삭일 때에도 그것은 하나의 명령이었다. 테레사는 그의 말에 순종했기 때문에 그럴 때면 그녀는 이미 흥분되었다. 이제 그녀는 동일한 이 말을 들었다. 순종하고 싶은 그녀의 욕구는 아마도 더욱더 컸을 것이다. 어느 낯선 사람의 말에 순종한다는 것은 독특한 광적 행동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명령이 남자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이번에는 한 여자에게서 나오는 것이기에 더욱더 멋진 광적 행동이다. 사비나는 테레사의 손에서 사진기를 받아들었고 테레사는 옷을 벗었다. 나체로 무장해제되어 그녀는 사비나 앞에 서 있었다. 단어의 참된 의미 그대로 무장 해제되어. 다시 말하면 방금 전 그녀가 자기의 얼굴을 가릴 수 있었고 동시에 하나의 무기로서 사비나를 겨냥했던 사진기 없이 사비나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토마스의 여자친구에게 양도된 셈이다.

이 아름다운 복종은 그녀를 도취시켰다. 그녀는 나체로 사비나 앞에 서 있는 순간순간이 결코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 이 상황의 독특한 마력이 사비나까지도 사로잡고 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 애인의 부인이 기이하게도 자기에게 순종하여 부끄러워하면서 자기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두세 번 그녀는 터를 누른 다음 마치 그녀가 이 마력을 두려워한 것처럼 소리 높이 웃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 마력을 재빨리 쫓아 보내고자 했다. 테레사도 함께 웃었다. 그리고 두 여자는 다시금 옷을 입었다.

 

23

러시아제국이 전에 범한 범법행위는 모두가 눈에 띄지 않는 어스름한 어둠의 엄호 속에서 자행되었다. 백만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유형, 수십만 폴란드인의 살해, 크림반도의 타타르인 숙청, 이 모든 것이 사진 증거물도 없이 우리들 기억 속에 묻히고 말았다. 그것은 따라서 증명할 수 없는 것으로서 그들은 그것을 조만간 기만적인 거짓이라고 해명하게 될 것이다. 이런 것과는 반대로 1968년 러시아군의 체코 침공은 촬영되었고 필름화되어 세계의 모든 기록 수집실에 보관되었다. 체코의 사진사들과 카메라맨들은 아직도 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을 하는 것이 그들의 과제임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 먼 장래를 위해 폭력의 모습을 잡아두는 것이었다. 테레사는 이 7일 동안 러시아군 병사 및 장교들의 폭력 상황들을 사진 찍기 위해 거리에서 보냈다. 러시아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 들은 누가 자기들을 향해 총을 쏜다든지 돌을 던질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정확한 지침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카메라 렌즈를 자기들에게 향하게 할 때 어떻게 반응해야 할 것인가 하는 시달을 아무도 그들에게 해주지 않았다. 테레사는 백통 이상의 필름을 촬영했다. 그중에서 반 정도를 그녀는 현상하지 않고 외국 기자들에게 건네주었다"국경은 아직도 여전히 열려 있었다. 기자들이 멀리에서 들어왔다. 대부분의 경우 그들은 잠시 머물렀기 때문에 어떤 도큐먼트를 입수하든 그것에 매우 감사해했다". 그녀가 찍은 많은 사진들이 여러 외국 신문에 실렸다. 사진에는 협박하는 주먹, 훼손된 집, 피에 얼룩진 청백 적색의 깃발로 덮어놓은 시체, 오토바이를 타고 고속으로 전차 주위를 맴돌며 긴 대에 매단 국기를 흔드는 젊은이들, 러시아군의 눈앞에 서 알지 못하는 행인에게 키스함으로써 여자에 굶주린 러시아의 가련한 병사들을 자극하던 아주 짧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처녀들을 볼 수 있었다. 이미 언급했다시피 러시아 침공은 하나의 비극일 뿐만 아니라 또한 증오의 축제로서 여기에는 독특한 "아무에게도 설명할 수 없는" 들뜬 병적인 쾌감이 지배했다.

 

24

그녀는 스위스로 갈 때 약 오십 장의 사진을 가져갔다. 이들 사진은 그녀 자신이 정성 들여 사진 예술의 모든 규범에 따라 현상했던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큰 잡지사에 제시했다. 편집인은 그녀를 친절하게 맞아주었다"모든 체코인 들은 아직도 불행의 후광을 지니고 있었고, 그들의 불행은 착한 스위스인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그녀를 안락의자에 앉도록 하고 그녀의 사진들을 살펴보았다. 그는 이 사진들을 칭찬하고는 그녀에게 말하기를, 사진의 사건들이 이미 오래전의 것이기 때문에 지금 이 사진들을 게재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다"사진은 아주 좋지만!".

"프라하에서는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는데요!"하고 그녀는 항의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점령된 자기 나라에서 지금 막 노동위원회들이 결성되었으며, 대학생들이 점령에 대한 항의 스트라이크를 하고 있으며, 전국이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서투른 독일어로 편집인에게 해명하려 애썼다. 그런 것이야말로 바로 믿어지지 않는 대단한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아무의 관심도 끌지 못한다고! 편집인은 정열적인 여자 한 명이 편집실로 들어와 대화를 중단시키자, 안도의 숨을 쉴 수 있었다. 이 여자는 그에게 서류 뭉치 하나를 건네주고 말했다.

"이것은 나체촌 해변에 대한 리포트입니다."

이 편집인은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는 탱크를 촬영했던 체코의 이 여인이 해변의 나체 사진들을 뻔뻔스러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하고 염려했다. 그는 서류 뭉치를 가능한 한 멀리 책상가로 밀어놓고 들어온 여자에게 재빨리 말했다.

"당신에게 프라하의 동료 한 분을 소개하고 싶은데오. 그분은 내게 훌륭한 사진들을 가져왔어요"

그 여자는 테레사에게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고 테레사의 사진들을 손에 들었다.

"제 사진도 한번 보세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테레사는 서류 뭉치를 굽어보고 그 속에서 사진들을 꺼냈다. 편집인은 거의 사죄하는 어조로 그녀에게 말했다.

"그것은 당신이 찍은 사진과는 완전히 반대죠"

테레사는 응답했다.

"아니에요, 거의 마찬가진데요"

아무도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테레사가 나체촌 해변을 러시아의 침공과 비교할때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해명하는 데는 내게까지도 다소의 어려움이 있었다. 그녀는 사진들을 눈여겨 바라보았고 한 사진을 오랫동안 응시했다. 이 사진에는 네 식구의 가족이 둥그렇게 원을 그리며 서 있었다. 나체의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몸을 굽혔다. 그래서 그녀의 큰 젖가슴이 마치 염소나 암소의 젖처럼 아래로 드리워져 있었다. 앞쪽으로 몸을 기울인 남편은 뒤만 보였다. 그래서 그의 고환주머니가 꼭 마찬가지로 작은 암소 유방과 같았다.

"마음에 드시지 않나요?"

하고 편집인이 물었다.

"사진을 잘 찍었는데요"

"아마 사진 테마에 쇼크를 받았나 봐요"

하고 사진사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을 보면 당신이 나체촌 해변에는 가지 않을 것임을 알겠어요"

"가지 않지요"

하고 테레사는 말했다. 편집인은 미소를 지었다.

"당신의 출신을 알 수 있겠어요. 공산주의 국가들은 너무 청교도적이죠"

사진사는 어머니 같은 친절을 가지고 말했다.

"발가벗은 육체들, 아무렇지도 않잖아요! 그것은 아주 정상적이에요! 정상적인 것은 모두 아름다워요!"

테레사는 발가벗고 집안을 돌아다니던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아무도 어머니를 볼 수 없도록 재빨리 커튼을 닫았을 때 그녀 등 뒤에서 웃음소리를 들었었다.

 

25

여자 사진사는 테레사를 구내식당으로 초대하여 커피를 샀다.

"당신의 사진들은 아주 흥미 있어요. 나는 당신이 여자 육체에 대해 비상한 감각을 지니고 있는 것을 알아챘어요.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는지 아시겠지요! 도적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그 젊은 여자들을 생각하고 있어요"

"러시아군 탱크 앞에서 지나가는 남자들에게 키스하고 있는 여자들말인가요?"

"바로 그래요, 당신은 탁월한 유해 전문사진사라고 생각하는데요. 무엇보다도 우선 모텔을 찾아야만 해요. 바로 당신처럼 우선 자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처녀가 제일 좋아요. 그런 다음 당신은 어떤 회사를 위해 시험 촬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물론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려요. 그때까지 어쩌면 내가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우리들의 정원" 이란 표제를 단 잡지의 편집인에게 당신을 소개할 수 있어요. 어쩌면 그는 선인장, 장미 등의 사 진들을 필요로 할 거예요"

"당신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하고 테레사는 상대가 선의에서 말하는 것을 보고 솔직히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곧 자신에게 말했다. 무엇 때문에 내가 선인장 사진을 찍어야 하자? 그녀가 자기가 프라하에서 이미 알았던 것을 다시 한번 감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거부감을 느꼈다.

, 일자리를 얻고 경력을 쌓으며 사진 게재를 위한 투쟁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허영으로라도 야심을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어머니의 세계로부터 도피하고자 했었다. 그렇다. 그녀는 이것에 대해 아주 명백히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실로 대단한 열의를 가지고 사진을 찍었다. 그녀는 이러한 열의를 꼭 마찬가지로 어떤 다른 업무에도 바칠 수 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진 촬영은"보다 더 전진하고 보다 더 높이" 올라 코마스의 옆에서 살수 있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제 남편은 의사예요. 그래서 먹고 살 수는 있어요. 사진 찍는 것이 제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사진사는 대답했다.

"당신이 그토록 좋은 사진들을 찍었는데 어떻게 사진 찍기를 그만둘 수 있는지 이해 못 하겠는데요!"

그렇다. 러시아군 침공 때의 사진들, 그것은 아주 다른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정열에서 찍었다. 사진 촬영을 위한 정열이 아니라 증오의 정열에서였다. 그러한 상황은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사성이 없기 때문에 아무도 갖고자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이 정열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오직 한 포기의 선인장만이 영원히 시사성이 있는 것이었다. 그러한 선인장은 그녀에게 전혀 흥미를 주지 못했다. 그녀는 말했다.

"당신은 매우 친절합니다. 그러나 나는 차라리 집에 있겠어요. 나는 일할 필요가 없어요"

사진사는 물었다.

"그렇다면 집에 있는 것에 당신이 만족하겠어요?"

테레사가 대답했다.

"선인장 사진을 찍기보다는 낫죠"

사진사는 말했다.

"당신이 선인장을 찍는다고 해도 그것은 "당신의" 삶이에요. 그런데 당신이 당신 남편만을 위해 산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이 아니에요"

테레사는 갑자기 화가 났다.

"나의 삶, 그건 내 남편이지 선인장이 아니에요!"

사진사도 화가 나서 물었다.

"당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할하려 하시나요?"

테레사는 여전히 흥분해서 말했다.

"물론이죠, 난 행복해요!"

사진사는 말했다.

"그와 같이 말하는 여자란 매우...."

그녀는 자기가 생각했던 것을 입 밖에 내지 않는 것이 차라리 좋겠다고 생각했다. 테레사가 보충했다

"매우 고루한 여자란 말이죠"

사진사는 자제해서 말했다.

"고루하단 말이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란 말예요"

테레사는 생각에 잠겼다.

"당신 말이 옳아요, 그것이 정확히 내 남편이 나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거예요"

 

26

그런데 토마스는 낮 동안은 언제나 병원에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 집에 있었다. 그녀에게 적어도 카레닌이 있었고 이 개와 함께 장시간의 산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었다. 산보 후 그녀는 독어와 불어 학습서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녀는 슬펐고 정신집중을 할 수 없었다. 종종 그녀는 두 브체크가 모스크바로부터 돌아온 후 라디오를 통해 낭독했던 연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벌써 완전히 잊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도 그의 떨리는 음성이 들렸다. 그녀는 그를 생각했다. 외국 병사들이 주권국가의 원수인 그를 자신의 나라에서 체포하여 끌고 가 그를 4일 동안이나 우크라이나 산악 속에 잡아두었다. 그들은 그에 앞서 12년 전에 그 헝가리 선임자 임래 나기를 그랬듯이 그를 총살하게 될 것임을 그에게 귀띔해 주었다. 그들은 그를 모스크바로 데려가 목욕하고, 면도하고, 옷을 입고 넥타이를 맬 것을 그에게 명령했다. 그들은 그가 처형되지 않을 것임을 그에게 알려주었다. 그들은 그가 앞으로도 자신을 국가원수로 보아야 한다고 명령하고 그를 부레크네프와 함께 테이블에 앉혀 협상하도록 강요했다. 굴욕을 당하고 돌아와 굴욕을 당한 민족에게 그는 연설했다. 그의 굴욕은 너무도 심했기 때문에 그는 바르게 말할 수조차 없었다. 케레사는 문장 사이에 너무나도 긴 그 침묵을 결코 잊니 못할 것이다. 그가 그토록 지쳤던가? 그토록 아팠던가? 그에게 약을 먹였던가? 아니면? 다만 절망 때문이었을까? 두브체크에게서 아무것도 남게 되지 않을지라도, 그가 더 이상 숨을 쉴 수 없어, TV 화면에 매달리고 있는 국민들 앞에서 헐 떡일 때의 무섭도록 긴 그사이, 바로 이 사이만은 남을 것이다. 이 사이 속에 그토록 무겁게 이 땅을 뒤덮었던 그 무서운 공포가 놓여 있었다.

침공 후 7일째 되는 날이었다. 테레사는 그때 저항의 확성기역을 했던 어느 일간신문의 편집실에서 이 연설을 들었다. 그 방에서 두브체크의 연설을 들었던 사람도 모두가 그 순간 그를 증오했다. 그들은 그가 받아들였던 타협을 나쁘게 생각했다. 그들은 그의 비굴함을 통해 자신이 비굴하게 된 듯 느꼈고, 그의 허약을 통해 모욕을 당한 듯 느꼈다. 그녀가 취리히에서 이 순간을 돌이켜 생각했을 때, 그녀는 이제 더 이상 멸시를 느끼지 못했다. "허약"이란 말은 그녀에겐 더 이상 어떤 유죄판결처럼 들리지 않았다. 우리가 보다 강한 세력과 대치될 때 우리는 언제나 약하다. 이것은 두브체크처럼 그토록 건강한 체격을 가졌을 때도 마찬가지다. 당시 그들 모두에게 그토록 참을 수 없이 생각되었고 반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녀를 체코에서 쫓겨나게 했던 그 허약을 그녀는 갑자기 매력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자기 또한 허약한 사람들에 약자의 진영에, 약자의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이들 약자는 힘을 썼다. 바로 그 때문에 자기가 이들에게 성실하게 머물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마치 현기증에 이끌리듯 이러한 허약에 마음이 끌렸다. 그녀는 자신이 허약하게 느껴졌기 때문에 그것에 이끌렸다. 그녀는 다시금 질투심이 났다. 그녀의 두 손은 다시금 떨리기 시작했다. 토마스는 이것을 알아차리고 다정한 동작을 취했다. 즉 그는 그녀의 두 손을 자기의 손에 쥐고 꼭 눌러줌으로써 그녀를 진정시키고자 했다. 그녀는 손을 뿌리쳤다.

"당신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에요."

"당신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당신이 늙었으면 좋겠지요. 십 년, 이십 년 더요."

그녀가 이 말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은 당신이 약해졌으면 좋겠어요, 당신도 나처럼 똑같이 약해졌으면요 하는 것이었다.

 

27

스위스로 이주하는 것은 카레닌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카렌닌은 변화를 싫어했다. 개에게는 시간이 직선상에서 경과하지 않는다. 시간은 한 곳에서 다른 곳으로 계속, 지속적인 전진운동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시계 침처럼 회전운동을 한다 시계 침은 미친 듯 앞으로만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문자판 위에서 빙빙 원을 그리며 돈다. 매일매일 동일한 궤도를 돈다. 그들은 프라하에서 다만 새 의자 하나를 사고 화분 하나를 다른 장소에 놓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카레닌은 이것을 불쾌하게 받아들였다. 그것은 개의 시간 감각을 어지럽게 했던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계속 문자판 위의 숫자들을 교체한다면 시계 침에게도 그와 같은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는 곧 취리히의 집에서 전의 질서와 전의 의례를 다시금 도입할 수 있었다. 프라하에서처럼 개는 아침에 침대에 뛰어올라 새로운 날을 맞는 그들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테레사를 따랄 아침 쇼핑 하는 데 갔고 프라하에서처럼 규칙적인 산책을 고집했다.

카레닌은 그녀 삶의 해시계였다. 절망의 순간 그녀는 자기에게 말했다. 카레닌이 그녀보다 더 약하기 때문에, 어쩌면 두브체크와 그녀의 고국보다 더 약하기 때문에 카레닌을 위해서라도 버텨나가야 한다고. 그녀는 막 산책에서 돌아왔다. 바로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그녀는 수화기를 들고 누구냐고 물었다. 그것은 독일말로 토마스를 바꾸어달라고 요구하는 여자 목소리였다. 이 목소리는 성급하게 들렸다. 그리고 테레사에게는 경멸의 어조가 섞여 있는 듯 여겨졌다. 토마스가 집에 없으며 언제 귀가할지 모르겠다고 그녀가 말하자 상대방 여자는 소리 높이 웃고는 작별 인사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테레사는 그것을 중요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병원 간호사일 수도 있고 여자 환자, 여비서, 아니면 그 외의 어느 누구일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당황했고 아무 일에도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 순간 그녀는 자기가 프라하 집에서 지니고 있었던 마지막 남은 힘마저도 이젠 사라져 버려 이렇게 하잖은 일까지도 견디어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이국에서 사는 사람은 지면 위 높이 허공 속을 걷는 것이다. 가족, 동료, 친구가 있고 어렸을 때부터 익혀 알고 알고 있는 언어로 힘들지 않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곳인 자기의 나라가 제공해 주는 구조망이 그에게는 없다. 프라하에서 그녀는 그녀의 마음에서만 토마스에게 얽매여 있었다. 여기 취리히에서 그녀는 모든 면에서 그에게 얽매여 있었다. 그가 그녀를 떠난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겠는가? 그를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그녀가 평생을 보내야 하겠는가? 그녀는 그들의 만남이 처음부터 착오에 근거했다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녀가 팔에 끼고 있었던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잘못된 입장권이었다. 이것으로 그녀는 토마스를 속였던 것이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하나의 지옥을 만들고 말았다. 그들은 정말 사랑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잘못된 점이 그들에게, 그들의 태도에, 혹은 그들의 불안한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서로 맞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는 증거다. 그는 강했고 그녀는 약했기 때문에 그들은 서로 맞지 않았다. 그녀는 문장 한가운데서 30초나 중단했던 두브체크와 같았다. 더듬거렸고, 숨이 막혀 안간힘을 썼고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던 그녀의 고국과 같았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약자는, 그 약자가 너무 약해 강자가 부당한 일을 가할 수 없을 때는 강하게 될 수 있어야 하고 가버려야 한다. 이것을 그녀는 자신에게 명백히 했다. 그녀는 그녀의 얼굴을 털이 텁수룩한 카레닌의 머리에 대고 말했다.

`카레닌, 내게 화내지 마. 넌 다시 한번 이사를 해야겠어.`

 

28

그녀는 기차 좌석의 구석에 바싹 몸을 밀착시켰다. 무거운 트렁크를 머리 위 선반에 얹고 카레닌은 그녀의 발밑에 두었다. 그녀는 어머니와 함께 살 때 일했던 식당의 요리사를 생각했다. 그는 기회 있을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를 찰싹 때렸었다. 그리고는 수차례 모든 사람들이 있는 앞에서 자기와 잠 한번 자자고 요구했다. 그녀가 바로 지금 그를 생각했다는 것은 이상하다. 그는 그녀에게 구역질 나게 한 모든 것을 구현했었다. 그런데 이제 그를 찾아가 `나와 잠자고 싶다고 하지 않았나? 여기 내가 왔어`라고 그에게 말할 것이리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그녀에겐 되돌아갈 수 있는 모든 길을 차단하고픈 충동이 생겼다. 지난 7년간을 강제로 지워버리고 싶은 욕구가 일어났다. 그것은 현기증 나는 감정이었다. 사람을 마취시키는, 자제할 수 없는 추락에 대한 동경이었다. 현기증이란 허약을 통한 도취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자기 허약을 의식하고 허약을 막으려 하지 않고 그것에 복종하려는 것이다. 자신의 허약함에도 취되어 더욱더 허약하게 되고자 한다. 어떤 장소의 가운데서 모두가 보는 앞에 서 쓰러지고자 한다. 밑에, 밑보다 더 깊은 곳에 있고자 한다. 그녀는 자기가 프라하에 있고 싶지 않으며 더 이상 사진사로도 일하고 싶지 않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는 토마스의 목소리가 언젠가 그녀를 불러냈던 그 작은 도시로 되돌아갔을 것이다. 그녀는 프라하에 도착했을 때 우선 그곳에 머물러 실제 필요한 일을 처리해야 했다. 그녀는 프라하를 떠나는 것을 연기했다. 그래서 닷새가 지나갔고 갑자기 토마스가 집에 나타났던 것이다. 카레닌이 그에게 뛰어올랐고 무엇인가 말해야 하는 필연의 순간을 위해 그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그녀에게는 눈 덮인 들판의 한가운데 서서 추워 몸이 떨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아직 한 번도 키스하지 못한 연인들처럼 서로를 향해 다가갔다. 그는 물었다.

`별일 없소?`

`없어요.`

`신문사에 갔었소?`

`전화를 했어요.`

`그래서?`

`아무것도요. 난 기다렸어요.`

`무엇을?`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기다렸다고 그에게 말할 수 없었다.

 

29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순간으로 돌아갑시다. 토마스는 절망했고 위에 통증을 느꼈다. 그는 밤늦게야 비로소 잠이 들었다. 잠시 후 테레사가 잠에서 깨었다.

"러시아군 비행기가 아직도 여전히 도시 위를 선회했다. 그 같은 소음에서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녀의 처음 생각은 다음과 같았다. 그는 그녀 때문에 되돌아 왔다. 그녀 때문에 그는 그의 운명을 바꾸었다. 이젠 그녀를 위해 책임질 사람은 그가 아니었다. 이젠 그녀가 그를 위해 책임을 져야 했다. 그녀에겐 이러한 책임이 그녀의 힘을 넘어서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런데 그녀에겐 그가 어제 막 문으로 들어왔을 때, 프라하 교회의 종들이 6시를 쳤다는 것이 갑자기 생각났다. 그들이 처음으로 만났을 때 그녀의 근무는 6시에 끝났었다. 노란 벤치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다시금 눈앞에 보였고 교회 탑의 종소리가 들렸다.

아니다. 그것은 미신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것을 위한 미적 감각으로서 그녀의 조바심을 덜어주고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욕구를 충만시켜 주었다. 우연의 새들이 한 번 더 그녀의 어깨 위에 내려앉았다.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괴었고, 토마스가 자기 옆에서 숨 쉬고 있는 소리를 듣고는 그녀는 무한히 행복해했다.

 

 

 

3부 이해되지 아니한 단어들

 

1

제네바는 분수와 분수 놀이의 도시다. 도시공원에는 전에 음악이 연주되었던 원형 소음악당들이 서 있다. 대학까지도 나무 속에 파묻혀 있다. 방금 오전 강의 를 끝마친 프란츠가 대학건물에서 나왔다. 스프링쿨러에서 뿜어진 물이 가랑비처럼 잔디에 내리고 있었다.

프란츠는 더없이 기분이 좋았다. 그는 대학에서 곧바로 그의 애인에게로 갔다. 그녀는 몇 개의 거리만 지나면 되는 곳에 살고 있었다. 그는 종종 그녀에게 들렀다. 그러나 언제고 붙임성이 있는 친구로서 들렀지 한 번도 정부로서 가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면 그라 그녀의 화실에서 그녀와 동침을 했던들 그는 하루 사이에 한 여자로부터 다른 여자에게로"부인으로부터 애인에게로, 또한 그 반대로" 갔을 것이다.

제네바에서 부부는 불란서 침대"역주:부부가 함께 잘 수 있는 2인용 침대"에서 잠을 자기 때문에 그는 몇 시간 안에 이 침대에서 저 침대로 옮아갔을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그에게는 애인을 위해 서나 자기 부인을 위해서나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그 자신을 위해서 저속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가 몇 달 전 홀딱 반했던 이 여자에 대한 그의 사랑은 그에게 무척이나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는 자기 삶에 있어서 그녀에게 그녀 자신의 자리, 아무도 들어갈 수 없는 순수한 영역을 비워 주려고 애썼다. 그는 종종 외국 대학의 초청 강연에 초대받았다. 그리고 지금은 모든 강연 제의를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초청 강연으로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부인에게 여행하는 것을 정당화시키기 위해 그는 각종 회의와 심포지엄들도 생각해냈다. 자기 시간을 자유로이 활용할 수 있는 그의 애인이 그를 동반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를 통해 짧은 시간 동안에 유럽의 많은 도시들과 미국의 한 도시를 알게 되었다.

"당신이 반대하지 않는다면 우린 열흘 후 이탈리아의 팔레르모로 여행할 수 있겠어."

하고 그는 말했다.

"내겐 제네바가 더 좋아요"

하고 그녀는 대답했다. 그녀는 캔버스 앞에 서서 미완성의 그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팔레르모를 난 알고 있어요"하고 그녀는 말했다.

"어떻게?"하고 그는 거의 질투하듯 물었다.

"아는 여자분이 내게 그곳의 그림카드를 보내왔어요. 그것을 화장실 벽에다 붙여두었어요. 그 카드가 당신 눈에 띄지 않았나요?"

그래고 그녀는 덧붙여 말했다.

"20세기 초에 시인 한 분이 있었어요. 그는 이미 나이가 많았어요. 그래서 그의 비서가 그를 모시고 산책했어요. 선생님, 하늘을 쳐다보십시오 하고 비서는 그에게 말을 계속했어요. 최초의 비행기가 우리 도시 위를 날아가고 있어요! 하고. 시인은 자기 비서에게 말했지요. 땅에서 눈을 들지 않고도 난 그것을 상상할 수 있어 하고. 그것 보아요. 나도 팔레르모를 상상할 수 있어요. 그곳에는 모든 도시에서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호텔, 똑같은 자동차가 있을 게 아녜요. 적어도 내 화실의 그림들은 번번이 다르죠"

프란츠는 슬퍼했다. 그는 사랑의 삶과 여행의 연결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있어. <팔레르모로 여행 가요!>라고 한 그의 요구에는 에로틱한 메시지가 내포되어 있었다. 그래서 <내겐 제네바가 더 좋아요!>라고 한 대답은 그의 애인이 자기를 더 이상 욕구하지 않음을 의미할 수 있을 뿐이었다. 그가 그녀에 대해 왜 그토록 자신이 없었던가? 그럴 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이 서로 알게 된 직후 적극적인 주도권을 잡은 것은 그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는 외모가 잘생긴 남자였다. 그는 자기의 학문적 경력의 정상에 서 있었고, 그의 동료들까지도 그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전문분야 토론에서 양보할 줄 모르는 그의 태도 때문에 그를 두려워했다. 그의 애인이 자기를 버리지 않을까 하고 그가 매일같이 생각했던 이유가 무엇인가? 이것은 나는 오직 다음처럼 해명할 수밖에 없다. 사랑은 그에게 공적인 사회 생활의 연장이 아니라 그 반대극이었다는 것이다. 사랑은 그에게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조건 없이 내맡기자 하는 요구를 의미했다. 마치 병사가 포로가 되듯 자신을 다른 사람에게 내맡기는 사람은 앞서 무기를 버리고 항복해야 한다. 타격을 막아내기 위해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은 언제 이 타격이 자기를 맞출 것인가를 자신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프란츠에게 사랑은 이 타격을 계속 기다리고 있는 것을 의미했다. 그가 자신을 마음조이는 불안에 내맡기고 있는 동안 그의 애인은 붓을 놓고 옆방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포도주 한 병을 들고 돌아왔다. 그녀는 코르크 마개를 뽑고 잔을 두 개 채웠다. 그는 겨우 안심했다. 그는 자신이 우스꽝스럽게 생각되었다. <내겐 제네바가 더 좋아요>란 말은 그녀가 더 이상 그와 동침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전혀 반대로 그녀는 사랑의 시간을 낯선 도시에만 국한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자기 잔을 들고 단숨에 비웠다. 프란츠는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셨다. 그는 그녀가 팔레르모로 여행하기를 거부한 것이 오히려 사랑의 요구로 드러나자 매우 기뻐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유감스러움을 느꼈다. 그가 그녀와의 관계에 부여했던 순수의 질서 규범을 어길 것을 그녀가 결심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랑을 진부하게 되지 않도록 하고 그것을 부부관계와는 파격적으로 분리시키려는 그의 불안스런 노력을 알지 못했다. 제네바에서 이 여류화가와 동침하지 않는다는 것은 본래 하나의 벌이었다. 자기가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있는 데 대한 대가로 그가 자신에게 부과한 하나의 벌이었다. 그는 이 상황을 하나의 죄, 하나의 흠처럼 느꼈던 것이다. 자기 부인과의 에로틱한 삶은 근본적으로 말할 가치조차 없었지만 그들은 늘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그들은 그들의 시끄러운 숨소리 때문에 서로 상대의 잠을 깨웠고 상대의 입김 또한 들이마셨다. 그는 실은 혼자 자고 싶었다. 그러나 공동의 침대는 여전히 부부생활의 상징이며, 또 상징들이란 우리가 알다시피 가히 불가침적이다. 그는 자기 부인 곁에 누울 때마다 자기 애인이 지금 막 그가 부인 곁에 눕는 것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할 때마다 그는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자기 부인 곁에 누워 잠자는 침대가 그가 사랑하는 애인 침대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랐다. 여류화가는 술잔에 술을 다시금 따라 한 모금 마셨다. 한마디 말도 않고 그녀는 이상하게도 아무렇지 않게 그녀의 블라우스를 벗었다. 마치 프란츠가 그곳에 없는 것 같은 행동이었다. 그녀의 행동은 방안에 혼자 있고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을 때, 어떤 동작을 하는가를 즉흥 연기 연습에서 보여야만 하는 연극 여배우의 행동 같았다. 그녀는 스커드와 브래지어만 하고 서 있었다. 연인들 간에는 재빨리 연애 놀이 규범이 발생한다. 두 연인은 이 규범을 의식은 못하고 있지만 그것은 통용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이 규범에 위배되는 것이다. 이 시선은 보통 그들의 연애놀 이에 앞서 나타나는 시선과 제스처와는 전혀 공통점이 없었다. 이 시선 속에는 성적인 요구도 교태도 들어 있지 않고 오히려 일종의 질문이 담겨 있었다. 다만 프란츠는 이 시선이 무엇을 묻는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스커트를 벗었다. 그녀는 프란츠의 손을 잡고 그를 돌려 큰 거울로 향하게 했다.

거울은 벽에서 한걸음 떨어진 곳에 놓여 있었다. 그의 손을 놓지 않고 그녀는 꼼짝 않고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에서 그녀는 그 긴 질문조의 시선을 때로는 그에게로, 때로는 자기 자신에게 향하게 했다. 거울 옆 방바닥 위에 오래된 멜로모가 씌워져 있는 가발용 머리가 하나 세워져 있었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모자를 잡아 그것을 썼다. 거울에 비친 모습은 갑자기 변했다. 거기에는 속옷만 입은 여자가 서 있었는데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가까이 할 수 없는 듯했고 무관심하게 보였다.

그리고 머리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멜론모를 쓰고 있었다. 그는 회색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맨 신사 한 분이 손을 잡고 있었다. 다시 한번 그는 자기의 애인을 얼마나 잘못 이해했는가 생각하고 이에 몹시 놀랐다. 그녀는 그에게 사랑을 요구하려고 옷을 벗은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하나의 소극, 오직 그들 두 사람을 위한 다정한 해프닝을 연출하려고 그녀는 옷을 벗었던 것이다. 그는 이해심 있게 동의하는 태도로 미소지었다. 그는 이 여류화가가 그의 미소에 응답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의 기대는 헛 된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거울 속의 그녀의 시선은 한 사람에서 다른 사람으로 옮아갔다. 해프닝의 시간으로서는 훨씬 지났다. 프란츠는 이 소극이"비록 그는 이 소극을 재미있게 해보려고 했지만" 너무나 오래 지속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멜론모를 조 심스럽게 두 손가락으로 잡고 미소지으면서 사비나의 머리에서 벗겨 그것을 다시금 스탠드에 씌웠다.

그는 마치 버릇없는 아이가 동정녀 마리아의 그림에 그린 콧수염을 지워버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그러고도 몇 초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서 거울 속의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다음 프란츠는 그녀에게 애정 어린 키스를 퍼부었다. 그는 다시 한 열흘뒤 함께 팔레르모로 가자고 그녀에게 간청했다. 그녀는 순순히 응했고 그는 작별을 했다. 그의 좋은 기분은 다시금 되살아났다. 그가 평생 권태의 수도로 저주했던 이 도시 제네바가 그에게 아름답고 모험에 찬듯 나타났다. 거리로 나와 그는 몸을 돌려 그녀 화실의 넒은 창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초여름이라 매우 더웠다. 모든 창에는 블라인드가 드리워져 있었다. 프란츠는 공원으로 갔다. 멀리에서 그리스 교회의 둥근 황금빛 지붕탑들이 마치 도금한 둥근 포탄처럼 보였다. 강타 직전 볼 수 없는 힘을 집약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 포탄이 공중에 멈추어 선 것처럼 탑들도 공중에 떠 있는 듯 보였다. 프란츠는 기분이 좋았다. 그는 호반을 따라 내려가 정기여객선을 타고 호수를 건너 그가 사는 다른 쪽 호반으로 갔다.

 

2

사바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녀는 다시 한번 거울 앞에 섰다. 그녀는 여전히 속옷만 입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멜론모를 쓰고 자신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이미 그토록 오랫동안 잃어버린 유일한 한순간을 뒤쫓고 있었다는 데 놀랐다.

여러 해 전 언젠가 토마스가 그녀에게 왔었다. 그때 이 멜론모는 그를 매료시켰다. 그때 그는 이 모자를 쓰고 큰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았다. 프라하의 그녀 화실에서 그때의 거울 또한 여기에서와 똑같이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지난 세기의 시장으로서 어떤 모습을 띠었을까를 보고자 했다. 사비 나가 천천히 옷을 벗기 시작할 때 그는 그녀에게 이 멜론모를 씌웠다. 그들은 거울 앞에 서서 자신들을 바라보았다"사바나가 옷을 벗는 동안 그들은 언제나 그렇게 했다". 그녀는 속옷만 입고 머리에 멜론모를 쓰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이렇게 바라보는 것이 그들 둘을 흥분시킨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방금까지도 그녀에게는 머리에 쓴 이 멜론모가 마치 하나의 익살처럼 여겨졌다. 우스꽝스러운 것과 선정적인 것은 다만 한 발자국 차이란 말인가? 그렇다. 그녀가 그때 거울을 들여다보았을 때 그녀는 우선 하나의 우스꽝스런 상황만을 보았다. 그러나 곧 이 우스꽝스러움은 흥분에 밀려났다. 멜론모는 더 이상 익살이 아니었다. 그것은 위력을 의미했다. 사바나에 있어서의 위력, 여자로서 그녀의 품위가 담은 위력을 의미했다. 그녀는 얇은 팬츠만 입고 맨살의 다 리를 그대로 드러낸 자신을 보았다. 팬츠를 통해 그녀 치부의 삼각형이 은은히 비쳤다. 속옷이 그녀의 여성다운 매력을 돋보이게 했다. 빳빳한 남자 모자인 멜론모가 이 여성다움을 부정하고 억압했으며 그것을 우스꽝스럽게 만들었다. 토마스는 옷을 입은 채 그녀 옆에 서 있었다. 이것은, 그들 둘이 거울 속에 제공한 모습은 익살이 아니라 "익살이기 위해서는 그는 속옷만을 입고 멜론모를 써야 했을 것이다" 저속이었다. 이 저속을 저지하는 대신 그녀는 동조했다. 마치 그녀가 자발적으로 공공연하게 자신에게 폭행을 가하도록 하는 것처럼 그녀는 자만스럽고도 도전적이었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 토마스를 방바닥으로 잡아끌었다. 멜론모는 굴러서 책상 밑으로 들어갔고 그들은 거울 앞 양탄자 위에서 뒹굴었다. 다시 한번 멜론모로 되돌아가 보자.

우선 그것은 지나 세기 보헤미아 지방의 작은 도시의 시장이었던 잊혀진 할아버지에 대한 막연한 회사이었다. 둘째, 그것은 사비나의 아버지에 대한 기념 유물이었다. 장례식이 끝난 후 그녀는 오빠 양친의 소유를 모두 차지했다. 그녀는 자만심에서 반항조로 상속권 투쟁을 거부했다.

그녀는 냉소적인 어투로 아버지로부터의 유일한 유물로 멜론 모를 갖겠다고 선언했다. 셋째, 그것은 그녀가 의식적으로 가꾸어온 그녀의 특이성을 위한 표지였다. 그녀는 스위스 이주 시 많은 것을 가져갈 수가 없었다. 많은 장소를 차지하는 짐이자 실용성이 없는 이 물건을 함께 갖고 간다는 것은 보다 유용한 다른 물건들을 포기함을 의미했다.

넷째, 외국에서 이 멜론모는 감상적 대상물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취리히로 가 토마스를 방문할 때, 그녀는 이 멜론모를 가져갔다. 그리고 토마스에게 호텔 방 문을 열어줄 때 그녀는 그것을 머리에 쓰고 있었다. 이 순간 그녀가 예기치 않았던 일이 일어났다. 멜론모는 익살스럽지도 선정적이지도 못했다. 그것은 과거 의 회상물이었다. 두 사람은 감동했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열렬히 사랑했다. 음란한 유희를 위한 여지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만남은 과거 그들의 에로틱 한 랑데부의 연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랑데부를 할 때 그들은 번번이 다소 성도착적 유희를 생각해냈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만남은 시간의 개괄이었고, 그들 공동의 과거에 대한 후절이고, 멀리 사라지는 바감상적인 그들 역 사를 감상적으로 요약한 것이었다. 멜론모는 그녀 삶의 총보에서 하나의 모티브가 되었다. 이 모티브는 계속 돌 아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것은 다른 의미를 가졌다. 이 모든 의미가 마치 물이 강바닥을 흘러 지나가듯 이 멜론모를 관류했다. 그것은 헤라크리트의 하사이었다고 나는 말할 수 있다. <같은 강물에서 두 번 목욕하지 못한다>고 헤라크리트는 말한다. 멜론모는 강바닥이었고 여기서 사바나는 매번 다른 <의미론적 강물>이 흐르는 것을 보았다. , 동일한 대상이 매번 다른 의미를 불러일으키지만, 앞서 생겨났던 모든 의미들을 윌는 이 새로운 의미 속에서 들을 수가 있다"마치 산울림, 연속된 산울림들과 같다". 하나하나의 새로운 체험이 보다 풍부한 화음의 선율을 만들었다. 취리히 호텔에서 토마스와 사비나는 멜론모를 보고 감동되었었다. 그래서 그들은 거의 눈물을 흘리며 사랑했다. 왜냐하면 이 검은 물건은 그들의 사람의 유희에 대한 회상이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사비나의 아버지, 자동차와 비행기가 없었던 세기에 살았던 그녀 할아버지에 대한 기념이었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사비나와 프란츠를 분리시키고 있는 심연을 아마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녀의 삶의 역사를 열심히 들었고 그녀 또한 마찬가지로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었다. 그들은 실제 서로가 말했던 단어들의 의미를 잘 이해했다. 하지만 이들 단어를 관류하는 의미론적 강물의 흐르는 소리를 그들은 들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근거에서 프란츠는 사비나가 자신이 보는 앞에서 멜론모를 썼을 때 그토록 당황했었다. 그것은 마치 누가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그에게 말했던 것과 같았다. 그는 그 동작을 음란한 것으로도 감상적인 것으로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가 납득할 수 없는 행동으로서 그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기 때문에 그를 당황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아직 젊고 자기들 삶의 총보가 겨우 처음 박자에 와있는 한 그들은 공동으로 작곡하고 모티브들을 서로 교체할 수 있다"토마스와 사비나가 멜론모의 모티브를 그랬듯이". 이미 서로가 나이가 들어 만나게 되면 이 작곡은 많든 적든 간에 완성된 것이다. 그래서 어떤 말이나 어떤 대상을 막론하고 그것은 각자의 작곡에 있어서 다른 것을 의미한다. 사비나와 프란츠 간의 모든 이야기들을 추적했던들 나는 그들의 오해를 자료로 큰 사전을 하나 펴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는 "단어" 목록으로 만족하기로 하자.

 

3

이해 못 한 단어 소목록

여자 여자인 것이 사비나에게는 하나의 운명이다. 그녀는 이 운명을 자신이 선택하지 않았다. 자신이 선택하지 아니한 것은 공로나 실패로 기록될 수 없다. 누구나 자기에게 주어진 운명에 대해 좋은 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이 사비나의 견해였다. 여자로서 태어난 사실에 반발한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그 사실에 자만하는 것과 똑같이 어리석게 생각되었다. 그들이 처음 만나던 어느 날 프란츠는 유별나게 강조하며 그녀에게 말했다.

"사비나, 당신은 정말 <여자>"

무엇 때문에 그가 이 말을, 마치 아메리카 해안을 방금 발견한 콜럼버스처럼 장엄한 표현으로 그녀에게 했는지를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뒤에 가서야 비로소 그가 그토록 힘을 주어 강조했던 <여자>란 말이 그에게는 성의 표시가 아니라 하나의 <가치>를 서술한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모든 여자가 여자라고 일컬어질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사비나가 프란츠에게 <여자>라고 한다면 그의 부인 마리-클로드는 무엇인가? 20년 전 이들이 겨우 몇 달간 사귀었을 때 그녀는 그가 자기를 버릴 경우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 프란츠는 이 위협에 매혹되었다. 마리-클로드는 실은 그의 마음에 각별히 든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랑이 그에게는 놀랍게 나타났다. 그는 자신이 그처럼 큰 사람을 받을 자격이 없으며 그녀 앞에 깊이 허리 굽히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머리가 땅에 닿도록 허리를 굽혔고 그녀와 결혼했다. 비록 마리-클로드는 그녀가 자살하겠다고 위협하던 그 순간처럼 그토록 강한 감정을 그 후 다시는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하나의 계율이 살아 있었다. 그녀의 마음을 절대 아프게 하지 않는다는 것과 그녀 내면에 있는 여자를 존경한다는 것이었다. 이 문장은 아주 흥미롭다. 그는 마리-클로드 자신이 하나의 여자일진대 그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그녀 내면에 숨어 있는 다른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말하자면 그것은 플라톤의 여자의 이데아란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그의 어머니였다. 그에게는 그의 어머니에 대해 말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을 거다. 그는 그녀 내면의 여자를 존경했다. 그는 그의 어머니를 신격화했지 그녀 내면의 어떤 여자는 아니었다. 플라톤의 여자의 이데아와 그의 어머니는 동일한 것이었다.

프란츠의 아버지가 갑자기 가족을 떠나버렸을 때, 그의 나이는 열둘이었다. 이 소년은 어떤 중대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그를 보호하고자 부드럽고 중립적인 말로 이 사실을 숨겼다. 그들은 그날 시내로 갔다. 그들이 집에서 나왔을 때 프란츠는 어머니가 서로 다른 두 개의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그를 어리둥절하게 했다. 그는 어머니에게 그것을 알려주려고 했으나 자기가 그것을 말함으로써 어머니의 마음을 해칠까 봐 두려워했다. 그는 두 신간을 어머니와 함께 시내에 있었는데도 한시도 어머니의 발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때 그는 고통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기 시작 했다. 충실과 배반 그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시신을 따라 공동묘지로 갔던 순간까지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는 또한 회상 속에서도 어머니를 사랑했다. 그래서 그의 마음속에는 충실이 모든 덕목에서 최고의 것이라는 감정이 생겨났다.

충실은 우리들 삶에 하나의 통일성을 부여한다. 충실이 없을 때 우리의 삶은 수천의 순간적 인상으로 산산조각이 나고 만다.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종종 그의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어쩌면 무의식적 타산에서 그랬다고 볼 수도 있다. 그는 자기가 충실할 수 있다는 것이 사비나의 마음을 매료시킬 것이며 그렇게 해서 그녀를 자기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사비나를 매혹시킨 것이 충실이 아니라 배반임을 알지 못했다. <충실>이란 말은 그녀로 하여금 그녀 아버지를 회상시켰다. 소도시의 청교도 였던 그의 일요일 취미는 해지는 숲의 모습과 화병에 꽂은 장미꽃다발을 그리는 것이었다. 아버지 때문에 그녀는 벌써 아이 때 그림 그리기를 시작했었다. 열네 살이 되었을 때 그녀는 동갑내기의 소년에게 반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걱정이 되어 1년 내내 그녀가 혼자 외출하는 것을 금했다. 어느 날 아버지는 그녀에게 피카소의 복사물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것들을 웃음거리고 보고 재미있어했다. 자기 동급반 소년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적어도 피카소의 이 입체파 그림을 사랑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이젠 드디어 자기 집을 배반할 수 있다는 즐거운 기분으로 프라하로 갔다. 배반, 그것은 사람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혐오스런 것이라고 우리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와 선생님으로부터 들어왔다. 그런데 배반이란 무엇인가? 배반은 대열에서 빠져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배반은 대열에서 이탈하여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비나는 미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는 미술대학에서 공부했다. 그러나 그녀는 피카소처럼 그려서는 안 되었다. 그때는 의무적으로 소위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충실해야 했고 초. . 고등학교에서는 공산주의 정치가들의 초상화를 그렸던 시기였다. 아버지를 배반하려는 그녀의 소망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공산주의는 다른 아버지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공산주의는 사랑을 금했고"당시는 청교도적인 시기였다" 피카소를 금한 아버지와 똑같이 엄했고 편협했다. 그녀는 어느 프라하 극단의 형편없는 배우와 결혼했다. 그것은 그가 행패 부리는 사람으로 소문나 있어 그녀의 두 아버지에게 용납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후 그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돌아온 하루 뒤에 그녀는 전보를 받았다. 그녀의 아버지가 슬픈 나머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양심의 가책을 받았다. 아버지가 장미꽃다발이 꽂힌 화병을 그렸고 피카소를 싫어한 것이 그토록 나빴단 말인가? 열네 살 먹은 자기 딸이 임신하여 집에 오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했던 것이 그토록 비난스런 것인가? 그가 부인 없이 살 수 없었다는 것이 그토록 우스꽝스러운가? 다시금 배반에 대한 욕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남편에게"남편에서 그녀는 더 이상 행패꾼을 볼 수 없었고 다만 성가신 술주정뱅이를 보았다" 자기가 그를 떠날 것이라고 통보했다.

B를 위해 A를 배반했던 사람이 B를 배반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이 그렇게 함으로써 A와 화해했음을 반드시 일컫는 것은 아니다. 이혼한 이 여류화가의 삶은 배반당한 그녀 양친의 삶과 같지 않았다. 최초의 배반은 보상될 수가 없다. 그것은 일종의 연쇄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이때 각 배반은 우리를 원조 배반의 시발점 으로부터 점점 더 멀리 떨어지게 한다. 음악 프란츠에게 음악은 도취로서 이해되는 디오니소스적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하는 예술이다. 소설이나 그림에 의해 도취되기란 힘들다. 하지만 베토벤의 제9번 심포니, 바르토크의 두 개의 피아노와 타악기를 위한 소나타, 혹은 비틀즈의 노래에 우리는 쉽게 도취될 수 있다. 프란츠는 진지한 음악과 오락 음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이 구분은 그에게 구태의연하고 잘못된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는 록 음악을 모차르트와 꼭 마찬가지로 좋아한다. 그에게 음악은 해방이다. 음악은 그를 고독, 한적, 책 먼지에서 해방시켜 준다. 음악은 그의 육체의 문들을 열어주고, 이를 통해 그의 영혼은 세상으로 나가 친교를 맺을 수 있다. 그는 기꺼이 춤춘다. 사비나가 이 정열을 그와 함께 나누어 갖지 않는 점을 그는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들은 식당에 앉아 있다. 식사를 위해 확성기에서 요란한 리듬 음악이 울려 나온다. 사비나는 말한다.

"이건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도는 꼴이지. 사람들은 점점 더 큰 소리의 음악을 듣기 때문에 귀가 어두워져요. 그리고 그들은 귀가 어둡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보다 더 크게 트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어요."

"당신은 음악을 좋아하지 않나요?"

하고 프란츠가 묻는다.

"좋아하지 않아요."

하고 사비나는 말한다. 그런 다음 곧 그녀는 덧붙여 말한다.

"내가 다른 시대에 살았다면 아마 좋아할지도 모르죠..."

그녀는 음악이 끝없는 침묵의 설원에 핀 장미와 같았던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시대를 생각한다. 음악으로 위장된 소음은 소녀 때부터 그녀를 따라다니며 괴롭혔다. 모든 대학생들처럼 그녀는 방학을 소위 청년건설단에서 보내야 했다. 공동숙박소에서 생활했고 제련소를 건조했다. 아침 5시에서 저녁 9시까지 음악이 확성기에서 울려 나왔다. 그녀는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음악은 신나게 울렸다. 음악 소리를 피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었다. 화장실에서도, 이불을 뒤집어써도 마찬가지였다. 도처에 확성기가 있었다. 음악은 그녀에게 달라붙도록 풀어놓은, 사냥개의 무리 같았다. 그때 그녀의 음악의 이 같은 야만적 짓거리가 공산주의 세계에서만 있을 것을 믿었다. 그 후 외국에서, 그녀는 음악을 소음으로 변질시킨 것은 인류로 하여금 추한 것이 전적으로 지배하는 역사적 단계로 돌입하도록 한 범세계적 과정임을 확인했다. 추한 것의 전적인 지배는 우선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청각적 불쾌감으로서 나타났다.

자동차. 오토바이, 전기기타, 압축공기 굴착기, 확성기, 사이렌 등. 시각적 불쾌함의 항존도 곧 뒤따라올 것이다. 그들은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그녀의 방으로 가 사랑을 했다. 프란츠의 생각은 잠의 문턱에서 몽롱해졌다. 그는 저녁 식사 동안의 요란한 음악을 회상했다. 그는 자신에게 말했다. 소음이 이로울 때가 있어. 한마디 말도 들을 수가 없거든. 청소년 시절부터 그는 말하고, 쓰고, 강의하고 또한 문장을 만들고, 표현들을 찾고 이것들을 수정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므로. 결국 그에겐 단어도 정확하게 생각되지 않아 그 의미가 애매하게 되었음이 명백해졌다. 단어들은 내용을 상실하여 부스러기, 껍질, 쓰레기가 되었고 모래가 되어 그의 뇌를 통해 흩날려 그에게 두통과 불면증을 불러일으켜 그의 병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비록 불확실했지만, 강력한 음악을, 거대한 소음을, 멋있고 즐거운 굉음을 동경했다. 그러한 소음, 그러한 굉음은 모든 것을 뒤덮고 넘쳐흘러 마비시켰다. 그리고 그 속에 괴로움, 허영, 내용 없는 단자들의 공허함이 영원히 침몰하고 말았다. 음악은 문장의 부정이었다. 음악은 반단어였다! 그는 사비나와 함께 한없이 오랫동안 서로 껴안고 누워서 침묵한 채 다시는 한 문장도 말하지 않고 육적 쾌감을 음악의 열광적 굉음과 함께 흐르게 하기를 동경했다. 머릿속에 이 같은 행복스런 소음을 지니고 그는 잠이 들었다.

빛과 어둠 사비나에게 삶은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다는 것은 두 극을 통해 경계가 지어진다. , 눈부신 빛과 절대적 어두움이 그것이다. 사비나가 어떠한 극단도 싫어한 것은 아마도 거기에서 유래했을 것이다. 극단은 경계를 표시하는 것으로 이 경계를 넘어설 때 삶은 끝장이 난다. 극단에 대한 정열은 예술에 있어서나 정치에 있어서나 은폐된 죽음의 동경이다. 빛이란 말은 프란츠에게 낮의 부드러운 반사광 속에 놓인 풍경의 표상 같은 것이 아니라, 광원 자체의 표상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해, 전구, 조명 등이 그것이다. 그는 잘 알려진 메타포를 회상한다. 진실의 빛, 이성의 눈부신 빛 등. 그는 어둠에 못지않게 빛에도 매력을 느낀다. 사랑할 때 불을 꺼버리는 것이 오늘날에는 우스꽝스럽게 작용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다. 그 때문에 그는 침대 위에 있는 작은 등을 켜둔다. 그러나 그의 남근이 사비나 몸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에 그는 눈을 감는다. 그를 사로잡는 쾌락은 어둠을 요구한다. 이 어둠은 순수하고 절대적이다. 표상이나 비전이 거기에는 없다. 이 어둠에는 끝도 경계도 없다. 이 어둠은 우리 모두가 우리 내면에 지니는 무한한 것 그것이다. "그렇다. 무한한 것을 구하는 사람은 눈을 감아라!" 쾌감이 그의 육체를 관통해 흐르는 것을 느끼는 순간 프란츠는 늘어나 그의 어둠의 무한 속으로 용해되며 스스로 무한한 것이 된다. 남자가 자기 내면의 어 둠 속에서 크게 되면 될수록 그의 원형은 더욱더 작아진다. 눈을 감은 남자는 다만 자기 자신의 잔여에 불과하다. 사비나에게 이러한 모습은 불쾌하다. 그녀는 프란츠를 더 이상 바라보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녀는 자기 편에서 눈을 감아버린다. 그녀에게 이 어둠은 무한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보았던 것과의 불일치, 보았던 것의 부정, 보기를 거부함을 뜻한다.

 

4

사비나는 자기 나라 사람들의 한 모임에 가 달라는 설득을 받아들였다. 당시 손에 무기를 들고 러시아군에 대항하여 싸웠어야 했는지 아닌지에 대해 다시 한번 토론이 벌어졌다. 여기 안전한 망명지에서 모든 사람들은 물론 말할 필요도 없이 싸웠어야만 했을 거라고 공언했다. 사비나는 말했다.

"그렇다면 가서 싸워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좋았다.

희끗희끗한 곱슬머리를 한 남자 하나가 긴 집게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아요, 우리 모두가 고국에서 일어났던 것에 대해 책임이 있어요. 당신도 말이오, 도대체 당신은 고국에 있을 때 공산주의 정권에 대항해서 무슨 말을 했나요? 당신은 그림을 그렸지요. 또한 그것이 전부였을 거요...."

공산주의 나라에서는 시민들을 평가하고 조사하는 것이 사회적인 주 업무에 속한다. 화가에게 전람회를 허락해 주기 전에, 시민이 해변에서 휴가를 즐길 수 있도록 그에게 비자를 발급하기 전에, 축구선수가 국가대표팀에 수용되기 전에, 우선 이들 인물에 대한 판정서 및 증명서를 "집 관리인 안주인으로부터, 동료로부터, 경찰 및 당 기관으로부터, 노동조합으로부터" 받아 와야 한다. 그러면 이들 판정서는 특별히 이를 위해 지정된 관리들에 의해 읽혀지고 심사숙고되어 요약된다. 이 판정서에 적혀 있는 것은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자질, 혹은 축구를 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것도 아니요, 휴가를 해변에서 보내기 위해서 필요하게 될 건강상태에 관한 것도 아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시민의 정치적 프로필"이라고 일컫는 것에 관련되어 있다. "그 시민이 어떤 것을 말하고, 무엇을 생각하며, 어떻게 행동하느냐, 또 그가 각종 회의와 5·1절 노동자 시위에 참석하는지 또는 어떤 식으로 참석하는지 등". 그런데 모든 것이 "일상생활, 승진, 휴가 등" 어느 시민이 어떻게 판정받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에 누구나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하려 하든, 그림을 전시하려 하든, 아니면 해변으로 여행하려 하든 간에" 자기에게 유리하게끔 처신해야 한다. 사비나는 이 반백의 남자가 말하는 것을 듣자 그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기 나라 사람들이 축구를 잘하는지, 혹은 그림을 잘 그리는지 "사비나의 그림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체코인은 한 사람도 없었다" 하는 것에 그는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아마도 그들이 적극적으로 아니면 소극적으로, 솔직하게 아니면 다만 겉보기로만, 처음부터 아니면 지금에 와서 비로소 공산정권에 반대하는 태도를 취했는가 하는 데에는 그의 관심이 있었을 것이다. 화가로서 그녀는 얼굴을 관찰할 줄 알았다. 프라하에서부터 그녀는 열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검사하고 비판하는 사람들의 인상을 알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가운뎃손가락보다 긴 집게손가락을 지녔고 이것으로 그들은 자기들 대화의 상대를 손가락질한다. 뿐만 아니라 14년간"1968년까지" 보헤미아 지방에서 통치했던 노보트니 대통령도 또같이 반백의 곱슬머리였고 중유럽의 모든 주민들 중에서 가장 긴 집게손가락을 가졌었다. 공로가 있는 이 반백의 망명가는 사비나의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류화가의 입에서 자기가 공산주의 대통령 노보트니와 같다는 말을 듣고 그의 얼굴은 새빨갛게, 그리고 백묵처럼 하얗게 되었다. 다시 한번 새빨갛게, 그런 다음 다시금 하얗게 되었다. 그는 무엇인가 말하려 했으나 아무것도 말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사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날 때까지 함께 침묵했다.

그녀는 이 불상사에 대해 슬퍼했다. 그러나 벌써 보도 위에서 그녀는 생각했다. 도대체 자기가 무엇 때문에 체코 사람들과 왕래해야 하는가? 무엇이 자기를 그들과 연결시키고 있는가? 풍경인가? 그들 모두가 보헤미아라는 지명 아래 생각하는 바를 말해야만 했다면 그들의 눈앞에 떠오른 모습들은 아주 상이할 것이며 결코 통일성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

아니면 문화인가? 그러나 무엇이 문화인가? 음악? 드보라크와 야나체크? 그렇다. 그러나 체코인이 음악적이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체코의 특성의 본질은 갑자기 사라지고 만다. 아니면 위대한 사람들? 얀 후스? 그곳에 있었던 사람들 중 그가 쓴 작품의 한 줄이라도 앍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이 공히 이해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불꽃, 그 불꽃의 명예였다. 이 불꽃 속에서 그는 자유 신앙주의자로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당했던 것이다. 또한 그것은 재의 명예였다. 그는 한 줌의 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체코 특성의 본질은 그들에게 이 한 줌의 재 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사비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 체코인들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은 공동의 패배와 그들이 서로 상대에게 퍼붓고 있는 비난들이다.

그녀는 급한 걸음으로 길을 갔다. 망명인들과의 단절보다 더 그녀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만든 것은 그녀 자신의 생각들이었다. 그녀는 자기가 부당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체코인들 중에는 긴 집게손가락을 한 그 남자와는 다른 사람들도 있었다. 그녀가 한 말에 뒤따랐던 당혹스럽고도 조용한 분위기는 모두가 그녀에게 반대했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갑작스런 증오의 폭발에, 몰이해에 놀랐다. 망명에서 모든 사람들이 이 몰이해의 희생이 되었다. 어째서 그들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어째서 그녀는 그들에게서 감동적인 버림받은 인간을 볼 수가 없었는가? 그 대답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이미 그녀가 자기 아버지를 배반했을 때 삶은 배반에서 배반으로 연결되는 먼 길로 그녀 앞에 나타났었다. 새로운 배반은 어느 것이나 죄악이나 승리처럼 그녀의 마음을 매료시켰다. 그녀는 대열에 서 있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그녀는 대열에 서 있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언제 나 같은 것을 말하는 같은 사람들과 언제나 함께 한 줄에 서 있지 않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자기 자신의 부당성에 대해서 그토록 당황해했다. 그러나 이 당황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전혀 그 반대였다. 사비나는 방금 승리를 했으며 어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박수갈채 소리를 듣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도취에 불안이 뒤따랐다. 어딘가에서 이 길이 틀림없이 끝날 것이라는 불안이었다. 언젠가는 배반도 틀림없이 끝날 것이다. 언젠가는 그녀도 틀림없이 멈추어 설 것이다.!

저녁이었다. 그녀는 서둘러 플랫폼을 따라갔다. 암스테르담행 기차가 벌써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탈 기차간을 찾았다. 친절한 차장이 그녀를 동반하여 그녀의 칸막이 차실로 안내했다. 그녀는 차실 문을 열렸다. 그리고 펴놓은 침대에 프란츠가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인사하려고 일 어났다. 그녀는 그를 껴안고 그에게 키스를 퍼부었다. 그녀는 마치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처럼 그에게 다음처럼 말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를 떼어놓지 말아요. 나를 붙들어요. 나를 길들이고, 나를 꼼짝 못 하게 해요. 강하게 되어줘요! 그러나 이것은 그녀가 말할 수도, 말하려 하지도 않았던 말들이었다. 그녀는 그에게 포옹을 풀어주고 말했다.

"당신과 함께 있게 되어 아주 기뻐요"

그녀의 조심스런 태도에서 그녀가 할 수 있었던 말은 이것뿐이었다.

 

5

이해 못 한 단어 소목록 "계속" 행진 이탈리아나 프랑스는 살기가 편하다. 교회에 가도록 부모의 강요를 받을 경우 입당함으로써 복수를 한다"공산당, 모택동당, 트로츠키당, 혹은 이와 유사한 당". 그런데 사비나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그녀를 교회에 내보냈는데 그런 다음 겁이 나서 자기가 직접 그녀로 하여금 공산주의 청소년연맹에 가입하도록 했다. 그녀는 5·1절 행진에 늘 함께 행진해야만 했다. 그럴 때면 그녀는 한 번도 보조를 맞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 뒤따라오던 여학생이 그녀에게 소리쳤고 고의로 그녀의 발뒤꿈치를 밟았다. 노래 불러야 했을 때 그녀는 그 노래 가사를 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녀는 다만 소리 없이 입술만 움직였다. 그녀의 여자 동료들이 이것을 눈치채고 고자질했다. 젊을 때부터 그녀는 모든 행진을 싫어했다. 프란츠는 파리에서 공부했다. 그의 비상한 재능 덕분에 이미 스무 살의 나이에 그에게는 학문적 출세의 길이 확실해졌다. 그때 이미 그는 자기의 삶을 대학 연구실, 공립도서관, 강의실에서 보낼 것임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생각을 하면서 그는 감정을 억눌러야 했다. 마치 집에서 거리로 나가듯, 그는 자기의 삶에서 뛰쳐나오고 싶은 욕망을 느꼈다. 이러한 근거에서 그는 파리에서 살 때 기꺼이 시위하러 나갔다. 무엇을 축하하고 요구한다는 것, 무엇에 항의한다는 것. 혼자 있지 않고 밖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그토록 멋졌다. 환상도로 생 제르맹을 지나가거나 혹은 공화국 광장에서 바스티유 감옥으로 가는 시위행렬은 그를 매혹시켰다. 행진하면서 합창으로 구호를 외치는 무리는 그에게 유럽과 유럽 역사의 모습이었다. 유럽, 그것은 긴 행진인 대장정이다. 혁명에서 혁명으로, 싸움에서 싸움으로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행진이다. 나는 이것을 또한 달리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책 사이에 파묻힌 프란츠의 삶은 그에게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그는 현실적인 삶을, 자기 옆에 가는 다른 사람들과의 접촉을 동경했다. 그는 그들의 외침을 동경했다. 그에게 비현실적으로 보였던"서재와 도서관의 고독 속에서의 공부" 그것이 바로 자기의 현실적 삶이었고, 반면 그에게 현실로 보인 시위행진들은 연극, , 축제 다른 말로 표현해서 하나의 꿈이었다는 것이 그에겐 분명하지 않았다. 사비나는 대한 시절에 기숙사에서 살았다.

 

5

노동자의 날에 모든 학생들은 행진을 위해 아침 일찍 집합장소에 나와야 했다. 아무도 빠지지 않도록 학생 간부들은 건물이 정말 비어 있는가를 조사했다.

그녀는 화장실에 숨었다가 다른 모든 학생들이 떠나간 지 오래되어서야 비로소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거기에는 사비나가 아직껏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고요함이 지배한다. 다만 멀리에서 행진 음악 소리가 울려왔다. 그녀는 조개 속에 숨어서 멀리 적의 세계에서 부서지는 파도소리를 듣고 있다고 믿었다. 그녀가 고향을 떠난 뒤 1, 2년이 지나서 러시아군 침공 기념일에 그녀는 우연히도 파리에 와 있었다.

항의 시위가 개최되었다. 그녀는 이 시위에 참가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젊은 프랑스 사람들이 주먹을 높이 들고 소련 제국주의를 반대하는 구호들을 외쳤다. 이들 구호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는 자기가 함께 외칠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불과 몇 분 동안만 시위행진 속에서 버틸 수 있었다. 그녀는 이 체험을 프랑스 친구들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은 이상하게 여겼다. "너는 너의 나라 점령을 반대하는 투쟁을 하려 하지 않느냐?" 그녀는 그들에게 공산주의, 파시즘, 모든 점령과 모든 침입이 오직 하나의 보다 근본적인 그리고 보다 보편적인 화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이 화는 그녀에게 하나의 이미지로 집약되었다. 팔을 들고 하나가 된 소리로 같은 말을 외쳐대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시위행진이 그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을 그들에게 해명해 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뉴욕의 아름다움 몇 시간이고 그들은 뉴욕을 산책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들에게는 새로운 광경이 나타났다. 그것은 마치 그들이 꼬부랑길을 따라 결정을 이룬 산악 지대를 돌아다니는 듯하게 했다. 보도 한가운데 한 젊은 남자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 흑인 미녀가 나무에 기대어 명하니 앞만 보고 있었다. 검은 양복을 입은 남자가 거리를 횡단하며 큰 동작으로 보이지 않는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우물에서 물이 출렁거렸다. 우물 주위에는 공사장 일꾼들이 둘러앉아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철제 사다리들이 흉측한 빨간 벽돌집 구역의 건물 정면에 높이 세워져 있었다. 이 건물들은 흉측할 정도로 낡아서 이제 다시금 아름답게 보였다. 아주 가까이에 유리로 지은 거대한 마천루가 하늘 높이 치솟아 있었다. 그 뒤에 똑같은 또 하나의 마천루가 있었는데 그 지붕 위에는 자그마한 탑들과 회랑, 도금된 원주형 기둥들이 세워져 있는 자그마한 아랍식의 공전이 솟아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에서도 서로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서로 마주치고 있었다.

건축 중에 있는 제련소와 배경의 석유등, 혹은 또 다른 등, 채색된 유리로 만든 이등의 구형 갓이 산산조각이 났는데, 그 조각들이 황량한 습지 풍경 위에 떠 있었다. 프란츠는 말했다.

"유럽에서 아름다움은 언제나 국제적 유형의 것이었어요. 언제나 미학적인 의도와 장기적인 설계가 있었어요. 그러한 설계에 따라 수십 년 동안 고딕 성당이나 르네상스 양식의 도시가 건립되었던 거요. 뉴욕의 아름다움은 젼혀 다른 근원을 지니고 있어요. 그것은 비국제적 아름다움이거든요. 그것은 종유석 동굴처럼 인간의 의도 없이 생성된 거요. 자체만으로 바라보면 흉측한 형태들이 우연히 아무런 계획 없이, 전혀 예기치 못한 유사형태로 변질되어 갑자기 신비스런 시로 빛을 발하는 것이오."

사비나는 말했다.

"비국제적 아름다움, 잘 표현했어요, 하지만 "착오에서 이룩된 아름다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예요. 아름다움이 최종적으로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 이 아름다움은 한동안 착오로 말미암아 존재할 거예요. 착오에서 이룩된 아름다움, 그것은 아름다움의 역사에서 마지막 장이지요."

그녀는 실제 성공된 자기의 최초 그림을 생각했다. 그것은 실수로 붉은색 물감이 캔버스에 떨어졌기 때문에 생성된 작품이었다.

그렇다, 그녀의 그림들은 착오의 아름다움에 근거했다. 그리고 뉴욕은 그녀의 그림 화법의 은밀하고도 본래 적인 고향이었다. 프란츠는 말했다.

"뉴욕의 비국제적 아름다움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설계의, 너무나도 엄격하고 하나하나 완벽하게 구성한 아름다움보다 훨씬 더 풍부하고 화려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더 이상 유럽의 아름다움은 아니오, 그것은 우리에겐 낯선 세계요"

그렇다면 이 두 남녀가 의견의 일치를 볼 수 있는 것이 있단 말인가?

그렇지 않다. 거기에도 차이가 있다. 뉴욕의 아름다움에서 낯선 점은 사비나에게는 대단히 매력적인 것으로 작용한다. 프란츠도 그것에 매료되었지만 동시에 그 낯선 점은 그를 놀라게 한다. 그것은 그에게 유럽에 대한 향수를 일깨운다. 사비나의 고향 사비나는 미국에 대한 그의 거부감을 이해한다.

프란츠는 유럽의 구현이다. 그의 어머니는 비엔나 출신이고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 사람이다. 그리고 그 자신은 스위스 사람이다. 프란츠로서는 사비나의 고향을 경탄해한다. 그녀가 그에게 자신과 보헤미아 출신의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프란츠는 감옥, 추적, 거리의 탱크, 망명, 금서, 금지된 전시회 등과 같은 말들을 듣는다. 그러면 그는 향수가 섞인 부러움 같은 것을 느낀다. 그는 사비나에게 고백한다.

"언젠가 어떤 철학자가 내가 말하는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없는 사변이라고 썼어요, 그리고 그는 나를 "거의 정말 같지 않은 소크라테스"라고 일컬었어요. 나는 심한 모욕을 당해 그에게 격노한 어조로 대답했어요. 이것을 한번 생각해 봐요! 이 어이없는 에피소드가 내가 지금까지 체험했던 가장 큰 갈등이라는 것을! 이 갈등으로 나의 삶은 극적 가능성의 최대를 기록했어요. 우리 둘은 전혀 다른 척도에 따라 살고 있어요. 당신은 내 삶에 마치 걸리버가 난쟁이 나라로 들어가듯 들어온 것이오."

사비나는 항의한다. 갈등, 드라마, 비극은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뜻하지 않으며, 여하한 가치도 구현하지 않고 또한 존중도 경탄도 받을 가치가 없다고 그녀는 말한다. 누구나 프란츠를 부러워한다면 그것은 그가 조용히 수행할 수 있는 그의 작업 때문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프란츠는 머리를 흔든다.

"부유한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두 손으로 일할 필요가 없고, 정신적 활동에 전념해야 해요, 점점 더 많은 대학, 점점 더 많은 대학생이 있게 돼요. 이들 대학생들이 그들의 공부를 끝마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졸업 논문을 위한 테마들을 찾아내야만 해요. 수없이 많은 테마가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서 논문을 쓸 수 있기 때문이오. 산더미처럼 많은 논문들이 문헌실로 수집되어요. 이들 문헌실들은 공동묘지보다 더 서글픈 거요. 만령절"역주:112일로 모든 죽은 이들의 영혼을 기리는 가톨릭 기념일" 때도 사람들은 공동묘지는 찾지만 문헌실엔 들어가지 않으니까 말이오. 문화가 물량 속에, 문화사태에, 대중의 광기 속에 침몰하는 것이오. 그래서 난 당신께 항상 말하죠, 당신 고향에서 단 한 권의 금서가 우리들 대학에서 내뱉어지는 억조의 단어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뜻한다는 것을"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모든 혁명에 대한 프란츠의 약점을 이해할 수 있다. 언젠가 그는 쿠바에 동감을 가졌고 그런 다음에는 중국에 동감했다. 그런데 이들 정권의 무자비성에 혐오감을 느껴, 그는 자기에게는 오직 무게도 없고 삶도 아닌 문자의 이 넓은 바다만이 있다는 것으로써 우울하게 자신의 마음을 달랬다. 그는 제네바에서"이곳에는 데모가 없다"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일종의 체념 속에서"여자도 시위행진도 없는 고독에서" 학문적 저서들을 출간하여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런 다음 어느 날 사비나가 마치 계시처럼 나타난 것이다. 그녀는 혁명의 환상이 이미 오래전에 지나가 버린 나라에서 왔다. 그러나 그곳에서 프란츠가 혁명에서 무엇보다도 경탄해 마지않았던 것, 즉 모험과 용기와 죽음의 위험으로 이룩된 대범한 차원이 문제가 되는 삶이 지속되고 있었다. 사비나는 그에게 다시금 인간 운명의 위대성에 대한 믿음을 주었다. 그녀는 자기 나라의 고통에 찬 드라마를 그녀의 모습을 통해 표출하고 있어 더욱더 아름다웠다. 그런데 사비나는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는다. 감옥, 박해, 금서, 점령, 탱크 같은 말들이 그녀에겐 낭만주의의 입김이 전혀 없는 흉측스런 말들이다. 그녀의 귀에 그녀 고향에 대한 향수적인 회상처럼 부드럽게 울리는 단어는 공동묘지란 말이다. 공동묘지 보헤미아 지방에는 공동묘지들이 정원과 같다. 무덤 위에는 풀과 찬란한 꽃들이 자라고 있다. 여러 가지 유형의 묘비들이 푸른 나뭇잎 속에 가려져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활활 타는 촛불로 뒤덮인다. 죽은 이들이 아이들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고 여겨질 수 있겠다. 그렇다. 아이들의 축제다. 죽은 이들은 아이들처럼 순진하니까. 삶이 아무리 무자비할지라도 공동묘지에는 언제나 평화가 지배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히틀러 치하에서도, 스탈린 치하에서도, 모든 점령이 있는 동안에도, 사비나는 슬플 때면 자동차에 몸을 던져 프라하로부터 멀리 타고 나가, 그녀가 각별히 좋아했던 공동묘지에서 산책을 했다. 파아란 산들을 배경으로 한 이들 공동묘지는 자장가처럼 아름다웠다. 프란츠에게 공동묘지는 뼈와 돌을 버리는 흉측스런 쓰레기장이었다.

 

6

"난 자동차를 절대 타지 않을 거야! 난 사고 날까 무서워! 죽지 않는다 해도 충격의 영향은 남은 인생 내내 있게 돼" 하고 조각가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무심코 자기의 집게손가락을 잡는다. 그는 언젠가 목각작업을 할 때 이 집게손가락을 잘라버릴 뻔했었다. 기적적으로 그는 이 손가락을 구제할 수 있었다.

"아니 무슨 소릴"

하고 멋진 폼을 지닌 마리-클로드가 소리 높여 말했다.

"언젠가 나는 큰 자동차 사고를 당했어요. 그런데 그건 멋졌어! 난 당시 병원에서처럼 그토록 기분 좋았을 때가 한 번도 없었어! 난 눈을 감을 수가 없었고 밤낮으로 계속 책을 읽었어!"

모두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그녀를 눈에 띄게 행복하게 했다. 프란츠의 마음속에는 혐오감과"그는 자기 부인이 앞서 언급한 사고가 있은 후 아주 침울했으며 쉴새 없이 불평을 늘어놓았던 것을 생각했다" 일종의 경탄"체험한 것을 모조리 변형하는 재주에 대한 경탄으로 이것은 대단한 활력을 드러낸다"이 뒤섞였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책을 밤에 읽을 것과 낮에 읽을 것으로 나누기 시작했어요. 실제로 낮을 위한 책이 있고 밤에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어요."

모두가 경탄하면서 놀라워하는 기색을 보였다. 여전히 손가락을 꽉 쥐고 있는 조각가만이 그때의 불쾌한 기억 때문에 침울한 얼굴을 했다. 마리-클로드는 그를 향해 물었다.

"당신은 스탕달의 저서를 어떤 그룹의 책에 넣겠어요?"

조각가는 귀담아듣지 않았고 당황해서 어깨만 으쓱했다. 그의 옆에 있던 예술 평론가 한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는 스탕달의 저서는 낮에 읽을 책 그룹에 속한다고 분명히 말했다. 아리-클로드는 머리를 흔들고 외쳤다.

"당신 틀렸어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지 않아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스탕달은 밤의 작가예요!"

프란츠는 이 낮 예술과 밤 예술에 대한 토론에 다만 방심한 상태로 참여했을 뿐이다. 그는 사비나가 여기 나타나게 되리라는 것 외에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사비나와 프란츠 둘은, 마리-클로드가 그동안 그녀의 사설 화랑에서 그녀의 작품 전시를 했던 모든 화가와 조각가들을 위해 베푼 이 칵테일 파티에의 초청을 사비나가 수락해야 할는지의 여부를 놓고 며칠 동안을 이리저리 곰곰이 생각했다. 프란츠와 가까운 사이가 된 이래 사비나는 그의 부인을 피했다. 그들 사이가 드러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서 결국 사비나가 파티에 가는 것이 더 자연스럽고 덜 의심스러울 것이리라는 데 두 사람은 합의를 보았다. 그가 몰래 입구 쪽을 살펴보고 있는데 화랑의 다른 모퉁이에서 열여덟 살 된 그의 딸 마리-안네의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기 부인이 모아놓고 있는 그룹에서 자기 딸의 서클 쪽으로 갔다. 안락의자에 누가 앉아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빙 둘러서 있었다. 마리-안네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프란츠는 자기 화랑의 다른 끝에 있는 마리- 클로드로 곧 바닥에 앉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손님들 앞에서 바닥에 앉는 마리- 클로드의 정력은 프란츠로 하여금 그들이 담배를 사는 상점에서 상점 다방에 앉아 있는 그녀를 만나지나 않을까 하고 염려케 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지금 당신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요?"

하고 마리-안네가 그녀 앞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이 남자의 발부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알랑은 자기 천생 그대로 순진하고 솔직하게 화랑 여주인의 딸에게 진지하게 대답하려 했다. 그는 그녀에게 사진과 유화를 연결시킨 그의 새로운 기법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그가 겨우 세 문장을 말하자마자 그녀는 휘파람을 불기 시작했다. 화가는 천천히 집약적으로 이야기했다. 그는 그녀의 휘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프란츠가 속삭였다.

"왜 휘파람을 부는지 내게 말해 줄 수 있겠니?"

"정치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그래요"

하고 그녀는 아주 소리 높여 대답했다. 실제로 거기 모인 그룹에서 두 남자가 앞으로 있을 프랑스 선거에 그녀는 아주 소리 높여 대답했다. 실제로 거기 모인 그룹에서 두 남자가 앞으로 있을 프랑스 선거에 대해 토론하고 있었다. 환담을 조정할 책임이 있다고 느낀 마리-안네는 두 사람에게 이탈리아 앙상블이 다음 주 제네바에서 공연하는 로시니 오페라를 극장에서 구경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화가 알랑은 그러는 사이 자기의 새로운 그림법을 해명하려 고 더욱더 적중하는 표현을 찾았다. 프란츠는 자기 딸 때문에 부끄럽게 여겼다. 그는 딸을 입 다물게 하기 위해, 오페라는 자기에게는 죽도록 지루하다고 말했다.

"아버진 정말 우스꽝스러워요."

하고 마리-안네는 말했다. 그리고 그녀는 여전히 바닥에 앉아서 아버지의 배를 치려고 했다.

"주연 배우는 너무 멋져요! 그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미치겠어요! 난 겨우 두 번 그를 보았는데 벌써 홀딱 반했어요!"

프란츠는 자기의 딸이 그녀의 어머니를 너무나도 닮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왜 그녀가 자기를 닮지 않았는가? 아무 소용 없는 짓거리였다. 딸은 그를 닮지 않았다. 마리-클로드가 이 화가 혹은 저 화가에게, 음악가와 작가에게 혹은 정치가에게 반했노라고 공포하는 것을 그는 이미 수백 번이나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젠가는 자전거 선수에게 반했다고까지 말했다. 물론 그것은 파티 환담에서 수사학적 표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는 때때로 그녀가 20년 전 같은 말을 그에게 주장했고 자살하겠다고 위협했다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사비나가 화랑으로 들어왔다. 마리-클로드가 그녀를 보고 그녀에게로 갔다. 그의 딸은 계속해서 로시니에 대해 환담하고 있었다. 그러나 프란츠는 두 여자가 서로 주고받는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몇 마디 친절한 인사말을 하고 난 뒤 마리-클로드는 사비나의 목에 걸려 있는 도자기 장식을 손에 들고 큰 소리로 말했다.

"도대체 무엇을 달고 있지? 얼마나 보기 흉해!"

이 문장은 그를 사로잡았다. 그것은 공격적으로 내뱉은 말이 아니었다. 그 반대였다. 큰소리로 그녀가 웃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장식을 거부하는 그녀의 말이 화가에 대한 마리-클로드의 우정을 아무것도 변화시키지 않았음을 순간적으로 명백히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은 보통 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그녀의 어조에 상응하지 않는 문장이었다.

"내가 직접 그것을 만들었어요."

하고 사비나는 말했다.

"그런데 그건 정말 보기 흉해요."

하고 마리-클로드는 아주 큰 소리로 반복했다.

"그와 같은 것은 달고 다니지 말아야 좋겠어!"

프란츠는 장식이 보기 흉한가 아닌가 하는 것은 자기 부인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흉하게 보려 했던 것은 흉했고, 아름답게 보려 했던 것은 아름다웠다. 그녀 여자친구들의 장식은 아예 볼 것도 없이 아름다웠다. 그녀가 무엇을 흉하게 보았을 때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아첨하는 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제2의 천성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비나 자신이 만든 목걸이 장식을 그녀가 흉하게 보려고 결심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프란츠에게 사비나의 전시회는 성공적인 것이 못 되었다. 마리-클로드는 각별히 사비나의 호의를 사려고 애쓰지 않았다. 거기에 반해 사비나에게는 마리- 클로드의 호의를 살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그와 같은 태도를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다. 프란츠에게는 명백해졌다. 마리-클로드는 사비나에게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자기들 둘 간의 힘의 관계가 실제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알도록 하기 위한 기호를 이용한 것이었다.

 

7

이해 못 한 단어 소목록"마지막"

암스테르담의 옛 교회 한쪽 편에는 주택들이 있고 쇼윈도처럼 보이는 제일 밑층 큰 창문들 안으로 창녀들의 작은 방들이 보인다. 이 창녀들은 속옷만 걸치고 창유리 바로 뒤 작은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그들은 지루해하고 있는 큰 고양이들처럼 보였다. 길의 다른 쪽 편에는 14세기에 지은 크나큰 고딕 성당이 서 있다. 창녀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 사이에는 마치 두 세계 사이에 강이 놓인 것처럼 코를 찌르는 오줌 냄새 나는 구역이 있다. 성당 내부에 고딕 건축양식으로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높고 흰벽, 원주형의 기둥, 천장, 창문들뿐이다. 벽에는 그림도 걸려 있지 않고, 어느 곳에도 입상 하나 서 있지 않다. 교회는 마치 체육관처럼 텅 비어 있었다. 다만 한가운데 연단 둘레에 큰 사각형을 이루도록 줄지어 놓은 의자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연단 위에는 설교자를 위한 작은 책상 하나가 놓여 있다. 의자 뒤에는 부유한 시민 가족의 칸막이 특별석인 목조 밀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의자들과 밀실들은 교회의 벽과 기둥의 배열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세워져 있다. 마치 고딕 건축양식에 대한 무관심 및 멸시를 표현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수백 년 전 칼빈교가 이 교회를 신자들이 기도하는 것을 눈비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 외에는 전혀 다른 기능을 갖지 않은 단순한 홀로 바꾸어 놓았다.

프란츠는 매료되었다. 이 거대한 홀을 통해 역사의 대장정이 지나갔기 때문이다. 사비나는 공산당이 세력을 잡은 뒤 보헤미아 지방의 모든 성들이 국가에 귀속되어 견습공 실습장으로, 양로원 및 소 외양간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와 같은 소 외양간을 그녀는 언젠가 구경했었다. 쇠고리가 달린 꺾쇠가 회벽에 박혀 있었고 그것에 소들을 매어 두었다. 이 소들은 창문을 통해서 닭들이 뛰어 돌아다니고 있는 성의 공원을 멍하니 내다보고 있었다. 프란츠는 말했다.

"이렇게 텅 빈 것은 나를 매료시켜요. 제단들, 입상들, 의자 및 안락의자들, 양탄자들, 책들을 쌓이도록 들여놓지요. 그러면 이런 모든 것을 식탁에서 빵부스러기를 쓸어내듯 깨끗이 쓸어버리는 즐거운 경쾌의 순간이 오는 거요. 이 성당을 깨끗이 쓸어버린 헤라클레스의 비를 상상할 수 있어?"

사비나는 목조 밀실을 가리켰다.

"가난한 사람들은 서 있어야만 했고 돈 많은 사람들에게는 밀실이 있었어요. 그러나 은행가를 가련한 가난뱅이와 결합시켜 주는 것이 있었어요. 그것은 아름다움에 대한 혐오였어요."

"그런데 무엇이 아름다움이지?"

하고 프란츠는 물었다. 그의 눈앞에는 얼마 전에 있었던 그림시사회가 떠올랐다. 그는 자기 부인 곁에서 이 시사회를 참고 견디어야 했었다. 한없이 허황된 말과 말들, 문화의 허황, 예술의 허황. 대학에서 공부할 때 그녀는 청년건설단에서 일했었다. 끊임없이 확성기에서 울려 나온 경쾌한 행진곡 음악의 해독이 그녀의 영혼 속에 박혔다. 어느 일요일 그녀는 모터사이클을 타고 멀리 숲속으로 갔다.

그녀는 산 중턱에 있는 알지 못하는 작은 동리에서 멈추었다. 모터사이클을 교회 벽에 기대어놓고 그녀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마침 미사가 낭송되었다. 그 당시 종교는 공산정권에 의해 박해받았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회를 둘러싸고 큰 궁형을 이루었다.

교회 안 의자에는 다만 나이 많은 남자들과 여자들만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당시의 정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만 죽음을 두려워했다. 신부가 노래하는 목소리로 한 문장을 선창했다. 그러면 교구의 사람들이 그것을 합창으로 반복했다. 그것은 신부와 신도들이 번갈아 올리는 연도였다. 동일한 말들이 끊이지 않고 계속 반복되었다. 마치 순례자가 풍경에서 시선을 뗄 수 없을 때와 같았고, 인간이 삶에서 작별을 할 수 없을 때와도 같았다. 그녀는 뒤쪽 벤치에 앉아서 잠시 동안 눈을 감고 음악에 귀를 기울이다가 다시 눈을 떴다. 그녀는 머리 위에 커다란 금빛 별들이 있는, 파랗게 그려진 둥근 천장을 보았다.

그녀는 완전히 매혹되는 듯했었다. 그녀가 이 교회에서 예기치 않게 찾았던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아룸다움이었다. 이 교회, 이 연도 자체가 아름다웠던 것이 아닐. 그녀가 음악의 소음 속에서 나날을 보내야 했던 건설단에서와 비교해서 아름다웠다는 것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미사는 그녀에게 예기치 않게 은밀히, 마치 누설된 세계처럼 나타났기 때문에 아름다웠다. 그때 이후 그녀는 아름다움이란 누설된 세계라는 것을 알고 있다. 아름다움의 박해자들이 잘못해서 이 아름다움을 어디에선가 잊고 빠뜨릴 때만 우리는 이 아름다움과 마주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5,1절 행진 무대의 측벽 뒤에 숨어 있다. 아름다움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이 측벽을 찢어버려야 한다.

"교회가 나를 매료시키기는 이것이 처음이오."

하고 프란츠가 말했다. 개신교도, 금욕도 그의 마음속에 이 같은 열광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이것은 그가 사비나 앞에서 감히 말할 수 없었던 극히 다른 개인적인 것이었다.

마리-클로드의 시사회, 마리-안네의 가수, 회의와 심포지엄, 공허한 말들과 공허한 단어들을 그의 삶에서 싹 쓸어내기 위해 헤라클레스의 비를 잡으라고 그에게 경고하는 목소리를 그는 듣는 것 같았다. 크고 텅 빈 암스테르담 성당의 홀은 그에게 그 자신의 해방상으로 나타났다. 힘 그들이 사랑을 불태웠던 여러 호텔 중 어느 한 호텔 방 침대에서 사비나는 프란츠의 팔을 가지고 장난했다.

"믿을 수가 없어요. 당신이 이런 근육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프란츠는 이 칭찬에 기뻐했다. 그는 침대에서 내려와 무거운 떡갈나무 의자 발밑 쪽을 잡고 천천히 높이 들어 올렸다.

"당신은 아무것도 겁낼 필요가 없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어떤 상황에서도 보호할 수가 있어요. 전에 난 유도 시합까지 했었어."

실제 그는 무거운 의자를 든 팔을 머리 위 높이 쭉 펼 수가 있었다. 그러자 사비나는 말했다.

"당신이 그렇게 힘이 세다는 것을 알아두기를 잘했어요."

그러나 혼잣말로 그녀는 덧붙였다. 프란츠는 힘이 세! 하지만 그의 힘은 다만 외부로만 향하고 있어. 그가 함께 살고 그가 좋아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약해. 그의 약함은 친절을 말하지. 프란츠는 사비나에게 절대 무엇을 명령하지 못할 거야. 그는 언젠가 큰 거울을 바닥에 놓고 발가벗고 그 위에서 왔다 갔다 하라고 사비나에게 명령했던 토마스처럼 하지 못할 거야. 그러기 위한 육감성이 그에게 없다는 말은 아니야. 그에게는 명령하는 힘이 없어. 폭력을 토해서만 이룩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법이야. 육체적 사랑은 폭력 없인 생각할 수 없어. 사비나는 프란츠가 의자를 높이 든 채 방안을 가로질러 오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그녀에게는 그로테스크하게 여겨졌다. 일종의 서글픔이 그녀의 마음을 채웠다. 프란츠는 의자를 내려놓고 그 위에 앉아 사비나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 힘이 있다는 게 불만스러운 것은 아니오."하고 그는 말했다.

"그런데 제네바에서 그러한 근육이 무엇에 필요하겠어? 난 그러한 근육을 마치 장신구같이 달고 다니는 꼴이오. 칠면조가 그의 혀려한 깃털을 달고 다니듯 말이오. 난 평생 한 번도 누구와 붙들고 싸운 적이 없어요."

사비나는 그녀의 우울한 생각을 계속했다. 그런데 지금 그녀에게 명령을 내릴 남자가 있다면? 그녀를 지배하려고 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녀는 얼마 동안 그를 참고 견딜 수 있었을까? 5분도 못 견딜 거야! 결국 그녀에게 맞을 남자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 드러난다.

힘이 세든 약하든 하나도. 그녀는 말했다.

"그런데 왜 당신은 그 힘을 종종 내게 쓰지 않나요?"

"사랑은 힘을 포기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오."

하고 프란츠가 나지막하게 대답했다.

 

8

사비나에게 두 가지 사실이 확실해졌다

첫째, 방금 프란츠가 말한 이 문장은 참되고 아름답다는 것. 둘째, 바로 이 문장은 그녀의 에로틱한 삶에서 프란츠를 격하시켰다는 것이 그것이다. 진실에서 산다 이 말은 카프카가 그의 일기장인가 아니면 편지에서 사용했던 표현이다. 프란츠는 어디에서였는지 정확히 기억할 수가 없다. 이 표현은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진실에서 산다>라는 말은 무엇을 말하는가? 부정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쉽다. 그것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자신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 아무것도 비밀로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사비나와 쉰 이래 프란츠는 거짓에서 살고 있다. 그는 자기 부인에게 전혀 개최된 바 없었던 암스테르담에서의 호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마드리드 대학에서의 강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비나와 함께 제네바 거리를 산보하는 것이 그에게는 두렵다. 거짓말하고, 자신을 숨기고 하는 것이 그를 재미있게 한다. 왜냐하면 그는 평소 그렇게 해본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이다. 그는 그런 짓을 할 때 유쾌하게 흥분한다. 마치 드디어 한번 학교수업을 빼먹겠다고 결심하는 반 수석학생처럼 흥분한다. 사비나에게는 <진실에서 산다>는 것, 자기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거짓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관객 없이 산다는 것을 전제하고서야 가능하다. 어느 누가 우리들의 행위를 바라보는 순간부터 우리는 잘하건 못하건 간에 우리를 관찰하는 눈에 우리 자신을 맞춘다. 그러면 우리가 행하는 모든 것은 참되지 않게 된다. 관객을 갖는다는 것, 관객을 생각한다는 것은 거짓에 사는 것을 말한다. 사비나는 작가가 자신과 자신의 친구에 대한 모든 은밀성을 배반하는 문학을 멸시한다. 자신의 은밀성을 상실한 사람은 모든 것을 상실한 것이라고 사비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괴물이다. 그 때문에 사비 나는 자기의 사랑을 비밀로 해야 한다는 데 대해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녀는 그렇게 함으로써 한 <진실에서 살 수 있다> 그와는 반대로 프란츠는 삶을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구분하는데 모든 거짓의 원천이 놓여 있음을 확신한다. 인간은 사적 생활에서는 공적 생활과 는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진실에서 산다>는 것은 그에게는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 간의 담을 허물어버리는 것을 말한다. <전혀 비밀이 없고 모든 시선에 활짝 열려 있는 유리집에> 살았으면 좋았을 거라는 내용을 담고 있는 앙드 레브르통의 문장을 인용하기를 그는 좋아한다.

"이 장식은 흉측해!"라고 자기의 부인이 사비나에게 말하는 것을 그가 들었을 때 그에게는 자기가 더 이상 거짓 속에서 살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다. 왜냐하면 그 순간 그는 사비나 편을 들었어야 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그렇게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비밀로 하고 있는 그들의 사랑이 누설될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칵테일 파티가 끝난 다음 날 그는 사비나와 함께 이틀 동안 로마로 여행하려 했다. 머릿속에서 그는 계속 "이 장식은 보기 흉해"라는 문장을 들었다. 그는 자기 부인을 갑자기 지금까지 살아온 삶과는 다른 눈으로 보았다. 그녀의 확고한, 목소리 큰 정력적인 공격성이 그가 23년의 결혼생활 동안 참고 꾸준히 지고 왔던 친절의 짐에서 그를 해방시켰다. 그는 암스테르담 성당의 크나큰 내면 공간을 회상하고, 다시금 그 텅 빈 공간이 그의 마음속에 불러일으켜 주었던 독특하며 이해할 수 없는 그 열광을 느꼈다. 마리-클로드가 방에 들어왔을 때 그는 트렁크에 짐을 꾸리고 있었다. 그녀는 전날 저녁의 손님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기에서 주워들은 견해들 중 몇몇에는 동의했고 다른 것들은 야유적인 어조로 비난했다. 프란츠는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고 나서 말했다.

"로마에서는 회의가 없어요."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왜 가지요?"

그는 대답했다.

"내게는 9개월 전부터 애인이 있어요. 제네바에서 그녀와 함께 있고 싶지 않소. 그 때문에 나는 그토록 자주 여행하오. 당신이 그것을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하오."

처음 몇 마디를 말하고서 그는 갑자기 놀랐다. 처음 가졌던 용기가 그에게서 떠나갔다. 그는 마리-클로드의 얼굴에서 절망을 보지 않으려고 시선을 돌렸다. 그는 자기가 한 말이 그녀에게 절망을 불러일으켰을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잠시 침묵이 있은 뒤, "내가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말을 그는 들었다. 이 목소리는 확고했다. 프란츠는 눈을 들었다. 마리-클로드에게는 조금도 충격받은 기색이 없었다. 그녀는 여전히 전날 저녁 큰 소리로 "이 장식은 보기 흉해!" 하고 말했던 여자와 다를 바 없었다. 그녀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9개월 전부터 나를 속여왔다고 내게 말할 용기를 이미 당신이 가졌다면 누구와 그랬는지 내게 밝힐 수 없나요?‘

 

9

마리-클로드 속에 있는 여자를 존중하기 위해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늘 말해 왔다. 그러나 마리-클로드 속에 있는 이 여자는 어떻게 되었는가? 달리 말하면. 그가 자기 부인의 상과 결합시킨 자기 어머니의 상은 어떻게 되었는가? 발에 짝짝이 신을 신은, 상처받은 슬픈 그의 어머니, 그녀는 마리-클로드를 떠났던 것이다. 어쩌면 떠났다고 말할 수 없는지도 모른다. 한 번도 마리-클로드 속에 있지 않았으니까. 갑작스런 혐오의 발작에서 그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을 당신에게 입 다물 이유가 없소"하고 그는 말했다. 에서 사라지기 전 그녀는 헤라클레스의 비를 그의 손에 쥐어줄 시간을 내었다. 그것은 그가 원하지 아니한 것은 모두 그의 삶에서 이 비로 깨끗이 쓸어 버리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예기치 않았던 이 행복, 이 만족감, 자유와 새로운 삶에 대한 이 기쁨, 이것들은 그녀가 그에게 남기고 떠난 선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늘 비현실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에 우선했다. 그는 시위행진을 할 때가"말했다시피 이것은 연극 및 꿈에 불과한 것이다" 그가 강의를 하는 연단 위에 서 있을 때보다 더 좋았던 것처럼, 꼭 마찬가지로 그는 보이지 않는 여신으로 변화된 사비나와 있는 것이, 자기와 함께 세상을 돌아다녔으며 또한 그로 하여금 그녀의 사랑을 구하도록 계속 마음 졸이게 했던 사비나와 함께 있을 때보다 더 행복했다. 그녀는 그에게 뜻밖에도 혼자 사는 남자의 자유를 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유혹자의 매력을 선사했다. 그는 여자들에게 매력 있게 되었다. 그에게서 공부하는 여대생 한 명이 그에게 반했다. 그의 삶의 무대장치는 아주 짧은 시간에 완전히 변했다. 바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는 부르주아적인 큰 집에서 시녀를 거느리고 딸과 부인과 함께 살았다. 이제 그는 구시가지의 작은 집에서 산다. 그리고 그의 젊은 애인은 거의 매일 그의 집에서 동침한다. 이 여학생은 까다롭지가 않았다. 특별히 예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는 프란츠에게 경탄했다. 마치 프란츠가 얼마 전 사비나를 그랬던 것처럼. 그것은 그에게 불쾌하지 않았다. 비록 그가 사비나를 안경 쓴 이 여대생과 교체한 것을 어쩌면 약간의 하강으로 간주할 수 있겠지만. 그의 다정한 마음은 그가 새로운 이 애인을 기쁨으로 받아들이고 그녀를 위해 아버지 같은 사랑을 느끼도록 작용했다. 마리-안네가 딸처럼 행동하지 않고 제2의 마리-클로드처럼 행동했기 때문에 그는 그와 같은 아버지다운 사랑을 한 번도 베풀 수가 없었다.

어느 날 그는 자기 부인을 찾아가 자기는 기꺼이 재혼하겠노라고 말했다. 마리-클로드는 머리를 저었다.

"우리가 이혼한다고 해도 변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손해 보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전 재산을 당신에게 남겨두겠소"

"재산은 내게 문제 되지 않아요"

하고 그녀는 말했다.

"그럼 무엇이 문제요?"

"사랑이 문제예요"

"사랑이라고?"

하고 그는 놀라 물었다.

"사랑은 싸움이에요"

하고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난 오래오래 싸울 거에요. 끝까지"

"사랑이 싸움이라고? 그러나 내겐 싸우고 싶은 생각이 조금도 없소."

하고 프란츠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떠났다.

 

10

제네바에서 4년을 보낸 뒤 사비나는 파리에 거주지를 정했다. 그녀는 그녀의 우울한 마음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누가 물었다고 하더라도 그녀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인생의 드라마는 언제나 무게의 메타포로 표현될 수 있다. 어떤 짐이 누구의 어깨 위에 떨어졌다고들 말한다. 사람은 그 짐을 지고 갈 수 있기도 하고 혹은 지고 갈 수 없기도 하다. 짐의 무게에 쓰러지고, 그것에 대항해서 싸우고, 지거나 이기거나 한다. 그런데 사비나에게 정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아무 일도. 그녀는 한 남자를 떠났다. 그를 떠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를 박해했던가? 그가 보복을 했던가? 아니. 그녀의 드라마는 무거움의 드라마가 아니라 가벼움의 드라마다. 사비나의 어깨 위에 떨어진 것은 짐이 아니라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다. 지금까지 배반의 순간들은 그녀를 흥분으로 충만시켰으며, 또 그녀 앞에 새로운 길이 열려 있고, 이 길의 끝에는 배반의 새로운 모험이 있다는 데 대한 기쁨으로 충만시켰다. 그런데 이 길이 언젠가 끝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양친을, 남편을, 사랑을, 고향을 배반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양친도, 남편도, 사랑도, 고향 도 없다면 배반할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사비나는 자기 주위가 텅 빈 것을 느꼈다. 그런데 지금 바로 이 공허가 그녀의 모든 배반의 목적이었다면? 지금까지 그녀는 그것을 의식 못 했다. 이것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사람이 추적하는 목적은 언제나 베일에 가려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에 대해 꿈꾸는 젊은 처녀는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꿈꾼다. 명예를 좇는 젊은이는 명예가 무엇인지 모른다. 우리들 행운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언제나 전혀 미지의 것이다. 사비나 또한 어떤 목적이 배반에 대한 그녀의 욕구 뒤에 숨어 있는가를 알지 못한다.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그것이 목적인가? 제네바에서 떠난 후 그녀는 이 가벼움에 많이 접근했다.

사비나가 보헤미아 지방에서 편지 한 장을 받았을 때는 그녀가 파리에서 이미 3년을 지낸 후였다. 이 편지는 토마스의 아들로부터 왔다. 그는 어떻게 해서 사비나에 대해 들었고, 그녀의 주소를 알아내 자기 아버지가 제일 좋아한 애인인 그녀에게 편지를 썼다. 그는 그녀에게 토마스와 테레사의 사망 통보를 했다. 그들은 최근 수년 동안 어떤 마을에 살았으며, 토마스는 그곳에서 그들은 소박한 호텔에 묵었다고 했다. 길은 가파랐고 꼬불꼬불한 사행길이었는데 그들의 트럭이 산언덕에 굴러떨어졌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의 육신은 완전히 으스러졌으며, 후에 경찰은 브레이크 장치가 아주 형편없는 상태였음을 확인했다고 했다. 그녀는 이 비보에서 거의 회복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과거와 결합시켰던 최후의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 옛날 습관에 따라 그녀는 공동묘지를 산책함으로써 마음을 진정시키고자 했다. 몽파르나스 공동묘지가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다. 무덤 위에는 아주 작은 집들, 소형 예배당들이 세어져 있었다. 왜 죽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궁전 모방물을 자기 위에 갖고자 하는지를 사비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공동묘지는 돌이 된 허영 그것이었다. 죽은 뒤 이성을 갖는 대신, 공동묘지 주민들은 생전보다 더 어리석었다. 들들은 자기들의 중요성을 기념비에 과시했다.

여기 고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들, 형제들, 할머니들이 아니라 고위 관직자들과 공직자들, 타이 틀, 학위 및 계급, 표장 및 훈장의 소지자들이었다. 하물며 우체국 관리까지도 자기의 계급과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과시했다-자기의 지위를. 공동묘지의 홀을 지나갈 때 그녀는 길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장례식이 거행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장례 의전관이 두 손 가득히 꽃을 들고 유족들에게 나누어주고 있었다. 그는 사비나에게도 꽃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그녀는 장례 행렬에 합류했다. 그들은 석판의 뚜껑이 열려 있는 무덤에 이르기 위해서 여러 무덤을 돌아서 가야 했다. 사비나는 몸을 앞으로 굽혔다. 무덤 속은 한없이 깊었다. 사비나는 손에 든 꽃을 그 속에 떨어뜨렸다. 원형의 작은 동작을 그리며 꽃은 관 위에 떨어졌다. 이같이 깊은 무덤은 보헤미아에는 없었다. 파리에는 무덤들이 집 건물 높이만큼이나 깊었다. 그녀의 시선은 무덤 옆에 놓인 석판에 떨어졌다. 그녀는 놀라움에 사로잡혀 서둘러 집으로 갔다. 그녀는 온종일 이 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그것이 그토록 그녀를 놀라게 했는가? 그녀는 대답했다. 무덤이 돌로 덮어져 있다면 죽은 사람은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고. 하지만 죽은 자는 그러지 않아도 다시는 나올 수가 없다! 죽은 자가 흙 밑에 누워 있건 아니면 돌 밑에 누워 있건 마찬가지가 아닌가? 아니, 그것은 마찬가지가 아니다. 무덤을 돌로 덮을 경우 죽은 자가 되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 된다. 무거운 돌은 죽은 자에게 말한다.

"네가 있는 곳에 있어!"

사비나는 그녀 아버지의 무덤을 회상한다. 그의 관 위에는 흙이 놓여 있다. 이 흙에서 꽃이 자라난다. 그리고 단풍나무 한 그루가 뿌리를 관 있는 밑 쪽으로 뻗는다. 그래서 죽은 사람이 이 뿌리의 꽃을 통해 올라온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로 덮여 있다면 그녀는 그가 죽은 뒤 결코 그와 말할 수 없었을 것이며, 그녀를 용서한 그의 목소리를 나무 꼭지에서 결코 듣지 못했을 것이다. 테레사와 토마스가 잠들고 있는 공동묘지는 어떤 모습일까? 다시 그녀의 생각은 이 두 사람에게로 돌아왔다. 그들은 자주 이웃 도시로 나가 호텔에서 묵었다. 편지의 이 부분은 그녀를 아주 감동시켰다. 그녀는 그들이 행복했었다고 풀이했다. 다시금 그녀의 눈앞에 토마스가 마치 그녀 그림들 중 하나인 것처럼 떠올랐다. 전면에는 순진한 화가가 그린, 마치 무대화 같은 돈 후 안이, 그러나 이 장식의 틈을 통해 트리스탄이 보인다. 그는 트리스탄으로 죽었지 돈 후안으로 죽지는 않았다. 사비나의 양친은 같은 주에 돌아갔다. 토마스와 테레사는 같은 순간에 죽었다. 갑자기 그녀에게는 프란츠에 대한 그리움이 솟았다. 그녀가 공동묘지를 배회한 데 대해 언젠가 프란츠에게 이야기해 주었을 때 그는 무서워 몸을 떨었다. 그는 공동묘지를 뼈와 돌을 버리는 쓰레기장이라 했었다. 그 순간 그들 간에는 몰이해의 심연이 벌어졌었다. 오늘에야 비로소, 몽파르 나스의 공동묘지에서 그녀는 그가 말했던 것을 이해했다. 그녀는 자기가 참을성이 없었다는 것을 후회했다. 그들이 보다 더 오랫동안 함께 있었더라면 그들은 서로가 했던 말들을 아마도 이해했을 것이다. 마치 수줍어하는 두 연인들처럼 한쪽 편의 어휘가 부끄러워하면서 서서히 다른 편의 어휘에 접근했을 것이다. 그리고 한쪽 편의 음악이 다른 편 음악에 동화되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젠 너무 늦었다. 그렇다 너무 늦었다. 사비나는 자기가 파리에 머물지 않고 떠나갈 것임을, 또 한 더 멀리 떠나갈 것임을 알고 있다. 그녀가 여기서 죽는다면 그녀는 돌뚜껑 밑에 매장되어 갇힐 것이다. 어디에서도 안정을 찾을 수 없는 여자에게 그녀의 도주에 영원히 종지부가 찍히게 된다는 생각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11

프란츠의 친구들은 모두 마리-클로드에 대해 알고 있었고, 또한 큰 안경을 낀 그의 여대생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사비나에 대해서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기 부인이 그녀의 친구들에게 사비나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프란츠가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었다. 사비나는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리고 마리-클로드는 누가 그들의 얼굴을 비교하는 것을 싫어했다. 그는 들통이 날까 두려워했기 때문에 사비나의 그림 하나, 스케치 하나도 갖지 않았다. 그녀의 사진 한 장까지도 그는 갖지 않았다. 그녀는 흔적도 없이 그의 삶에서 사라진 셈이다. 그가 자기 삶의 가장 아름다운 세월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는 데 대한 뚜렷한 증거가 그에겐 전혀 없었다. 그 때문에 더욱더 그는 사비나에게 충실한 존재가 되고자 한다.

그들이 단둘이서 방에 있을 때에는 그의 젊은 애인은 종종 읽고 있던 책에서 눈을 들어 살피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 무엇을 생각하고 있어요? "

프란츠는 두 눈을 천장에 두고 안락의자에 앉아 있다. 그가 그녀에게 무슨 대답을 하든 그가 사비나를 생각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그가 전문잡지에 논문을 발표하면 그의 여대생은 자기 논문의 첫 번째 독자로서 그것에 대해 그와 토론하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비나가 이글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한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을 그는 사비나를 위해 한다. 그것도 그것이 그녀의 마음에 들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매우 순진한 부정으로서, 안경 쓴 그의 젊은 애인의 마음을 결코 아프게 할 수 없는 프란츠에게 꼭 맞는 태도다. 그의 사비나에 대한 숭배는 사람에서라기보다 오히려 종교심에서 연유한다. 그의 젊은 애인을 사비나가 그에게 보냈다고 그가 믿는 것은 그의 종교 신학에서 나온 것이다. 그의 세속적 사랑과 그의 초세속적 사랑은 완전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초세속적 사랑은 필연적으로 "초세속적이기 때문에" 해명할 수 없고 이해될 수 없는 부분을 "오해들을 길게 나열한이해되지 아니한 목록을 회상해 보자" 많이 내포한다. 그것에 반해 그의 세속적 사랑은 다른 사람을 확실히 이해하는데 근거한다. 그의 여대생은 사비나보다 훨씬 젊다. 그녀의 삶의 작곡은 초안도 거의 되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그녀는 그녀가 프란츠로부터 남겨 받은 모티브들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녀의 작곡에 짜 넣는다. 프란츠의 대장정 또한 그녀의 신앙고백이다. 음악은 그녀에게 그에게와 꼭 마찬가지로 디오니소스적인 도취다. 종종 그들은 춤추러 간다. 그들은 진실 속으로 살며 다른 사람들 앞에 비밀이 없다. 그들은 친구, 동료, 대학생,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찾고 그들과 함께 앉아서 마시고 잡담하기를 좋아한다. 종종 그들은 알프스 산으로 도보여행의 방랑을 즐긴다. 프란츠가 몸을 앞으로 굽히면 그의 애인은 그의 등에 뛰어오른다. 그는 그녀와 함께 초원을 달린다. 그리고 그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그에게 가르쳐주었던 긴 독일 시를 그는 소리 높여 낭송한다. 처녀는 웃고 그의 목에 매달려 그의 발, 그의 발, 그의 어깨, 그의 폐를 경탄한다. 다만 러시아제국의 굴레 밑에 고생하는 모든 나라에 대한 프란츠의 특이한 동감만은 그녀에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러시아 침공일에 제네바에 있는 체코인 협회는 기념 행사를 가졌다. 홀에는 얼마 되지 않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연사는 회색의 곱슬머리를 하고 있다. 그는 긴 연설을 한다. 그의 연설을 들으러 온 마지막 영광자들까지도 지루하게 하는 긴 연설이다. 그는 완전한 불어로 말한다. 하지만 악센트가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 자기의 생각을 강조하기 위해 계속 반복해서 그는 홀에 있는 청중을 위협하려는 듯 집게손가락을 든다. 안경 쓴 처녀는 프란츠 앞에 앉아 하품을 참는다. 그러나 프란츠는 행복스런 미소를 짓는다. 그는 회색 머리의 연사를 바라본다. 그는 그 기이한 집게손가락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을 좋게 본다. 이 남자가 그에게는 그와 그의 여신"사비나" 간의 연결을 지속시켜 주는 밀사로, 천사로 보인다. 그는 두 눈을 감고 꿈꾸기 시작한다. 유럽의 15개 호텔과 미국의 한 호텔에서 그가 사비나의 육체 위에서 눈을 감았던 것처럼 그는 눈을 감는다.

 

 

 

4부 육체와 영혼

 

1

테레사는 밤 1시 반경 집에 왔다. 욕실에 들어가 파자마를 입고 토마스의 곁에 누웠다. 토마스는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의 얼굴 위로 몸을 기울인다. 그의 얼굴에 키스를 했을 때 그녀는 그의 머리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다. 그녀는 코를 실룩거리며 냄새를 몇 번이고 맡았다. 마치 개처럼 그녀는 그의 머리를 사방으로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다. 그녀는 알아냈다. 그것이 여자의 음부 냄새라는 것을. 6시에 자명종이 울렸다. 카레닌의 시간이었다. 그놈은 언제나 그들 둘보다 훨씬 일찍 잠을 깼다. 그러나 감히 그들의 잠을 방해하지는 못했다. 못 참겠다는 듯 그놈의 따라랑 소리가 울리기만 기다렸다.

이것은 그놈이 침대에 뛰어올라 그들의 몸을 밟으며 주둥이로 쿡쿡 찔러대는 것을 허락한다는 소리였다. 오래전 그들은 침대에 올라온 개를 밑으로 던짐으로써 개의 이 버릇을 없애려고 했다. 하지만 개는 그들보다 더 고집이 세었다. 결국 그것은 자기의 권리를 쟁취하고 말았다.

테레사는 얼마 전에야 비로소 새로운 날의 시작에 카레닌으로부터 인사받는 것이 불쾌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다. 개에게는 잠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완전히 행복의 순간이었다. 순진하고 어리석게도 세상에 다시금 있게 된 것을 놀라운 것으로 여겼고 솔직하게 기뻐했다. 그것에 반해 테레사는 마지못해 일어났다. 그녀는 밤이 연장되고 눈을 뜨지 않기를 바랐다. 이제 카레닌은 현관에 서서 목끈과 줄이 걸려 있는 옷걸이를 쳐다보았다. 테레사는 그놈의 목끈을 매어주고 함께 가게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우유, , 버터를 샀다. 그리고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개를 위해 뿔 모양의 과자인 크라상 하나를 샀다. 집으로 돌아올 때 개는 과자를 입에 물고 종종걸음으로 그녀 옆을 따랐다. 자랑스럽게 사방을 둘러보기도 했다. 누가 자기를 주의해서 보고 손가락으로 가리킬 때면 개는 매우 기분 좋아했다. 집에 도착하면 개는 입에 과자를 문 채 문지방에 앉아 토마스가 자기를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엎드려 으르렁거리기 시작하고, 토마스가 자기에게서 크라상을 뺏으려고나 하는 것처럼 행동했다. 이것은 매일 아침 반복되었다. 적어도 5분간은 그들은 온 집안을 사냥하듯 했다. 결국 카레닌은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 그의 뿔과자를 다 먹어치운다. 그런데 이번에 카레닌은 그와 같은 아침의례를 기다렸으나 헛되었다. 토마스가 책상에 앉아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앞에 두고 긴장해서 경청하고 있었다.

 

2

라디오에서는 체코인의 망명에 관한 소식이 방송되었다. 도청된 사적인 이야기를 몽타주 한 것이었다. 망명자들 속에 침투한 체코 스파이가 녹크했다. 그는 도청녹음을 가지고 의기양양하게 다시 체코로 돌아왔던 것이다. 별 중요하지 않은 집단들이었다. 이따금 고국에 있는 점령군에 대한 날카로운 말들이 들어 있었다. 또한 망명자들이 서로 바보, 사기꾼하며 욕하는 문장도 있었다. 바로 이런 대목이 이 보도에서 특별히 강조되었다. 그것은 이 사람들이 소련연방에 대해서만 나쁘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이것은 아무도 화나게 하지 않는다" 또한 그들끼리 서로 모함하고 욕한다는 것을 증명하도록 한 것이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다. 사람들은 이른 아침부터 늦게까지 험악한 말을 마구 한다. 그러나 라디오에서 어떤 잘 알려진 존경받는 사람이 문장이 끝날 때마다 빌어먹을하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여하튼 실망하게 된다.

"이것은 모두가 프록사스카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야"하고 토마스는 말했다.

그리고 그는 계속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얀 프록사스카는 체코의 작가다. 그는 40의 나이에 황소 같은 활력을 지녔다. 그는 벌써 1968년 이전에 사회상황을 소리 높이 비판하기 시작했다. 그는 프라하의 봄, 현기증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저 공산주의 자유화 때 체코인들의 총애를 받았던 인사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러시아군 침공으로 그 공산주의 자유화는 끝났다. 침공이 있은 직후 모든 신문들은 그를 반대하는 선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신문들이 그런 선동을 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욱더 그를 좋아했다. 이런 이유에서 방송국은"1970" 프록사스카가 이보다 2년 전에"1968년 봄" 어느 대학 교수와 가졌던 사적인 대화를 연속해서 방송하기 시작했다. 그때 이 두 사람들 중 누구도 교수의 집안에 도청장치가 마련되어 있었고, 그들을 이미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프록사스카는 그의 친구들을 언제나 과장과 어처구니없는 말로 즐겁게 했다. 그런데 이제 이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방송해서 연속으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편집했던 비밀경찰은 이 작가가 자기 친구들, 예컨대 두브체크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대목을 고의적으로 강조했다. 모든 세상 사람들이 어떤 기회에서나 친구를 헐뜯는다고 하지만 사람들은 그들이 미워한 비밀경찰에 대해서보다 그들이 좋아했던 프록사스카에 대해 더 격분했다. 토마스는 라디오를 끄고 말했다.

"비밀경찰은 세상 어디에나 있지. 그러나 그들이 녹음한 녹음테이프를 라디오로 공개적으로 방송한다는 것. 그것은 오직 우리 체코에만 있지! 이건 정말 용서할 수 없어!"

"아니, 그렇지 않아요"

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내가 열네 살이었을 때 나는 몰래 일기를 썼어요. 나는 누가 그것을 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몸이 떨렸어요. 그래서 그것을 천장 위에 감추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가 이것을 뒤져서 찾아냈어요. 어느 날 점심때 가족 모두가 수프 쟁반 위에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어머니가 일기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 말했어요. 모두들 잘 들으라고요. 그녀는 그것을 읽었고 문장이 끝날 때마다 배를 잡고 웃었어요. 다른 사람도 모두 함께 웃었고 전혀 식사를 할 수 없었어요"

 

3

그는 늘 테레사를 설득해서 자기 혼자 조반을 하게끔 하고 계속 잠자도록 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토마스는 아침 7시에서 오후 4시까지 일했고 그녀는 오후 4시부터 자정까지 일했다. 그녀가 그와 함께 아침 식사를 하지 않았다면 그들은 오직 일요일에만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와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가 일하러 가버리면 그녀는 다시 잠자리에 들어 계속 잠을 잤다. 그러나 이날 그녀는 다시 잠들까 봐 걱정했다. 10시에 소피 섬에 있는 목욕탕 사우나에 가려 했기 때문이다. 이 사우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많은데 자리는 적었다. 그래서 실은 오직 아는 연줄을 통해서만 입장할 수 있었다. 다행히도 출납계가 대학에서 쫓겨난 어느 교수의 부인이었다. 이 교수는 토마스의 옛날 환자의 친구였다. 토마스는 이 옛 환자에게 부탁했고, 이 환자는 교수에게 교수는 자기 부인에게 부탁한 것이다. 테레사는 일주일에 한 번 사우나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녀는 걸어서 갔다. 그녀는 언제나 만원인 전차를 싫어했다. 전차 속에서 승객들은 징그럽게 서로 껴안고 몸을 맞대어 밀치며, 서로 발을 밟고, 외튀 단추를 떨어지게 하고, 서로 모욕적인 말을 얼굴에 대고 내뱉는다. 이슬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했고, 우산들을 펼쳤다. 그러나 갑자기 보도 위도 사람들로 혼잡을 이루었다.

펼친 우산이 서로 부딪쳤다. 남자들은 공손해서 그들의 우산을 높이 치켜들어 테레사를 지나가게 했다. 그러나 여자들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다. 그들은 양보하지 않고 앞만 보고 있었다. 각자 다른 여자가 보다 약한 자로서 양보해 줄 것을 기대했다. 우산이 서로 마주치는 것은 누가 힘이 센가 겨루는 시험이었다. 처음에 테레사는 양보했다. 그러나 그녀의 공손함이 전혀 보답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는 그녀도 다른 여자들과 꼭 마찬가지로 그녀의 우산을 손에 꽉 쥐었다. 몇 번 그녀는 옆 우산에 심하게 부딪혔다. 하지만 아무도 "미안해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경우 한마디 말도 없다. 두세 번 그녀는 "병신!""망할 년!"하는 소리를 들었다. 우산으로 무장을 한 여자들 중에도 나이 든 여자들과 젊은 여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제일 격렬하게 싸움을 거는 여자들은 젊은 여자들 중에 있었다. 소련 침공 때를 되돌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처녀들이 국기를 단 깃대를 들고 돌아다녔다. 그것은 수년 동안 저속한 금욕생활을 해야 했던 러시아 군인들에 대한 성적 저격행위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마치 공상과학 작가가 창작해 낸 어떤 혹성 위에 와 있는 듯 생각되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것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우아한 여인들의 혹성으로, 이 여인들은 전 러시아에서 오백 년 육백 년 동안 한 번도 보지 못한 아름다운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감으로써 그들의 멸시를 표현했었다. 그때 테레사는 탱크를 배경으로 한 이 젊은 여자들 사진을 많이 찍었다. 그녀는 얼마나 그들을 경탄했던가! 그런데 이제 똑같은 바로 그 여자들이 뻔뻔스럽고 악의에 찬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국기 대신 그들은 손에 우산을 들고 있었다. 그들은 그때와 똑같이 완강한 태도로 그들의 길을 가로막는 우산에 대해 마치 다른 나라 군대를 대하듯 투쟁할 각오를 하고 있었다.

 

4

그녀는 불규칙한 사각형으로 광장을 빙 둘러 건립한 바로크 양식의 집들과 엄격한 테인 교회가 있는 구시가지 구역에 다다랐다. 14세기에 건축물이었던 시청은 옛날에는 이 광장 끝까지 길게 차지했었으나, 이젠 이미 27년 동안이나 폐허로 놓여 있었다. 바르샤바, 드레스텐, 베를린, 쾰른, 부다페스트 - 이들 도시는 모두가 지난 세계대전 때 비참하게 파괴되었다.

그러나 그곳에 사는 주민들은 이들 도시를 재건했다. 대부분의 경우 오래된 역사적 유적 지역은 세심한 신경을 써서 수리했다. 프라하 주민들은 이들 도시에 대해 열등감을 지니고 있었다. 전쟁이 파괴시킨 유일한 유명한 건물이 구시가지의 시청이었다. 주민들은 폴란드인이나 독일인들이 자기들이 충분한 고통을 겪지 않았다고 비난하지 않도록, 이 시청의 폐허를 경고의 표시로서 그대로 방치해두기로 결의했다.

영원히 전쟁을 고발하도록 한 이 유명한 폐허더미 위에 금속 파이프로 조립한 연단이 세워졌다. 이것은 프라하 주민들의 성명 장소가 되었다. 공산당이 주민들을 박해했기 때문이었다. 내일도 주민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고 그들은 성명을 할 것이다. 테레사는 파괴된 시청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어머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신의 볼품없는 꼴을 보이려는, 절단된 자기 팔의 남은 둥치를 노출 시켜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강제로 그것을 보도록 하는 이 변태 욕구 때문이었다. 최근에는 모든 것이 그녀에게 어머니를 회상시켰다. 그녀에게는 마치 10년 전에 그녀가 탈출했던 어머니의 세계가 다시 되돌아와 그녀를 포위하여 사방으로부터 차단하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 때문에 그녀는 그날 아침, 웃고 있는 가족 앞에서 어머니가 그녀의 일기장을 읽어주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면서 주고받은 사적인 대화가 공개적으로 라디오에서 방송된다면 그것은 세상이 강제노동수용소로 변해 버린 것과 다를 바가 무엇인가? 테레사는 그녀의 가족 속에서 삶이 그녀에게 어떻게 생각되었는가를 표현하기 위해 그녀가 젊었을 때부터 이미 이 단어를 사용했다. 강제노동수용소란 인간이 계속 가축처럼 우리 안에 가두어져 밤이고 낮이고 살아야 하는 세계이다. 잔인함과 폭행은 다만 부차적인"절대 필 연적인 것은 아니다" 특징에 불과하다.

강제노동수용소는 사적인 것의 제거를 의미한다. 한 잔의 포도주를 마시며 친밀하게 자기 친구와 환담조로 나눌 수 없는 프록사스카는 "치명적인 착각이었던 것을 전혀 모르고" 강제노동수용소에서 살았던 것인다. 테레사가 어머니와 살았을 때, 그녀는 강제노동수용소에 살았던 것이다. 그 후 그녀는 강제노동수용소가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이 놀라야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은 어떤 주어진 것이며 기초적인 것으로서 사람들은 그 속에 태어나게 되고 대단한 노력을 해야 그곳에서 탈출할 수가 있다.

 

5

층계식으로 놓인 세 개의 장의자에 여자들이 서로 몸이 닿도록 빽빽이 앉아 있었다. 테레사 옆에 얼굴이 매우 예쁜, 30세쯤 돼 보이는 여자가 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녀의 어깨 사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두 젖통이 달려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출렁거렸다. 그 여자가 일어났다. 테레사는 그녀의 엉덩이가 두 개의 큰 배낭과 같아서 그녀의 예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여자 또한 종종 거울 앞에 서서 그녀의 육체를 바라보며, 테레사가 어릴 때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녀의 육체를 관통해서 그녀의 영혼을 보려고 했는지 모른다. 틀림없이 그녀 또한 어리석게도 육체가 영혼의 간판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영혼이 네 개의 자루를 걸어놓은 옷걸이 같은 그녀의 육체와 같다면 얼마나 기형적인 영혼이었겠는가? 테레사는 일어나 샤워를 했다. 그리고서 그녀는 밖으로 나갔다. 아직도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좁은 판자 다리 위에 섰다. 밑에는 몰다우강이 흐르고 있었다. 판자막이가 도시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이 여자들을 보호해 주었다. 그녀가 밑을 내려다보았을 때, 물속으로 그녀가 방금 생각했었던 그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그 여자는 테레사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코는 섬세했고 갈색의 큰 눈은 순진한 시선을 지니고 있었다. 그 여자는 계단을 올라갔다. 그 부드러운 얼굴 밑에 다시금 두 배낭이 나타났다. 두 배낭은 아래위로 흔들흔들거렸고 차가운 물방울을 퉁겼다.

 

6

그녀는 옷을 입고 큰 거울 앞에 섰다. 아니, 그녀의 육체에는 기형적인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두 어깨 아래쪽에는 작은 두 젖이 있었지 자루는 없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것을 놀려댔다. 그녀의 젖은 충분히 크지 못해 정상이 못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에 대해 그녀는 콤플렉스를 가졌었다. 토마스가 비로소 그녀를 이 콤플렉스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 그녀는 지금 그녀의 작은 젖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젖꼭지 둘레의 너무나도 큰 그리고 너무나도 검은 마당이 그녀의 마음에 거슬렸다. 그녀가 스스로 자기의 육체를 설계할 수 있었다면 그녀는 눈에 띄지 않는 부드러운 젖꼭지를 가졌을 것이다. 아주 살짝 젖통에서 떨어져 있고, 색깔도 잘 알아볼 수 있게 여타의 피부와 구분 안 되는 젖꼭지를 가졌을 것이다.

이렇게 크고 검붉은 "젖꼭지 둘레의" 테는, 궁한 사람들을 위해 에로틱한 예술을 그리고자 한 어느 시골 화가가 붓질해 놓은 것처럼 그녀에게 생각되었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코가 매일 1밀리미터 길어진 것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명 날이 지나면 그녀의 얼굴이 몰라보게 될 것인가? 만약 육체의 여러 부분들이 커지거나 작아지기 시작해서 그녀가 자신과 유사성을 완전히 상실했다면, 그래도 그녀는 그녀 자신일까, 그녀는 여전히 테레사일까? 물론이다. 테레사가 전혀 테레사와 같지 않게 될 때도 그녀의 내면에 있는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같은 영혼일 것이며, 다만 그녀의 육체에 일어났던 것을 아연실색해서 바라볼 뿐일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테레사와 그녀의 육체 간의 관계는 어떻게 나타날까? 그녀의 육체가 도대체 테레사라는 이름에 대한 요구권이 있을까? 만약 없다면, 그녀의 이름은 무엇과 관련될까? 비육체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과 관련될까? "이것은 테레사로 하여금 어릴 때부터 열중케 한 질문들이었다. 정말 진지한 질문은 오직 아이까지도 할 수 있는 질문들뿐이다. 오직 극히 순진한 질문들만이 정말 진지한 것이다. 답이 없는 질문은 넘어갈 수 없는 횡목이다. 달리 표현하면, 대답이 없는 질문을 통해 인간의 가능성이 한계 지워지며 인간 존재의 경계선이 그어진다." 테레사는 마법에 걸린 듯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육체를, 마치 다른 사람의 것인 양 바라보고 있다. 낯설기는 하지만 마음에 드는 육체 같았다. 그녀는 토마스의 삶에서 유일한 육체가 될 수 있는 힘을 지니지 못한 이 육체에 대해 혐오감을 느낀다.

이 육체는 그녀를 실망시켰고 그녀를 배반했다. 밤새도록 그녀는 그의 머리에서 낯선 음부의 냄새를 들이마셔야만 했었다. 그녀에게는 갑자기 그녀의 육체를 마치 식모처럼 해고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오직 영혼으로서만 토마스와 함께 있고, 육체를 바깥세상으로 쫓아버려 그곳에서 다른 여자들의 육체가 남자들의 육체와 행동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테레사의 육체가 토마스에게 유일무이한 육체가 되도록 하지 못했고 또 그녀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싸움에서 패배했기 때문에 그것은 가야 한다. 이 육체는!

 

7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부엌에서 선 채로 먹고 싶지도 않은 점심을 먹었다. 3시 반에 그녀는 카레닌을 줄에 매고 그녀가 일하고 있는 프라하 시외에 있는 호텔로 갔다"늘 그랬던 것처럼 도보로". 그녀는 주간지 잡지사에서 일하다 쫓겨난 뒤 바의 마담이 되었다. 그것은 그녀가 취리히에서 돌아온 몇 달 뒤였다. 그것은 그녀가 취리히에서 돌아온 몇 달 뒤였다. 그녀가 7일 동안 러시아군 탱크를 사진 찍었던 사실을 사람들은 용서할 수 없었다.

친구들의 소개로 그녀는 바에서 일자리를 찾았다. 같은 시기에 일자리를 잃었던 다른 사람들도 그곳에서 피난처를 구했다. 그곳에서 회계는 전직 신학 교수가 했고, 수납에는 전직 대사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다시금 그녀의 다리 때문에 겁이 났다. 그녀가 옛날 작은 도시 식당에서 일했을 때, 그녀는 동료 여자들의 장딴지에 솟은 정맥류를 아연실색해서 바라보곤 했다. 그것은 자신들의 삶을 두 팔에 무겁게 든 채 걷고, 달리고, 서서 보내야 하는 여급들의 병이다. 지금 그녀의 일은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때 지방에서보다는 편했다. 실은 근무 시작 전에 무거운 맥주 박스와 음료 박스를 끌어들여야만 했다. 그러나 나머지의 시간은 카운터 뒤에서 보내며 손님들에게 술을 따라 주었고, 중간중간에 판매대 옆에 있는 작은 싱크대에서 잔들을 씻었다. 카레닌은 그녀가 일하는 시간 내내 참을성 있게 그녀의 발 언저리에 엎드려 있었다.

그녀가 계산을 끝내고 호텔 사장에게 돈을 가져다줄 때는 이미 자정이 훨씬 지난 후다. 그런 다음 그녀는 밤일을 하는 전직 대사와 작별을 했다. 길다란 수납 계산대 뒤에는 작은 방으로 문이 하나 나 있었고, 방에는 잠시 눈을 붙일 수 있는 좁다란 목제 간이침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침대 위쪽에는 틀에 넣은 사진 들이 걸려 있었다. 사진에는 번번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 대사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들은 사진기를 향해 미소지었고, 그와 악수하고 있었고, 혹은 그의 옆 책상에 앉아서 무엇인가를 서명하고 있었다. 몇몇 사진에는 사진사 친필의 증정 사인이 기재되어 있었다. 특별히 눈에 잘 띄는 곳에 걸려 있는 사진에는 대사의 머리 옆으로 미소짓고 있는 J. F. 케네디의 얼굴이 보였다. 이날 밤엔 대사가 미국 대통령과 환담한 것이 아니고 알지 못하는 60대의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 남자는 테레사를 보자 입을 다물었다.

"이분은 나와 친한 여자야"하고 대사는 말했다.

"걱정 말고 계속 이야기해도 돼"

그런 다음 그는 테레사를 향해 말했다.

"바로 오늘 그의 아들이 5년형을 선고받았어요."

그녀가 알지 못하는 이 남자의 아들은 친구들과 함께, 러시아 침공이 있던 처음 며칠 동안 러시아군 특수부대가 진을 쳤던 건물의 입구를 감시했었다. 이 건물에서 나오는 체코인들이 러시아 군부대에 근무하는 첩보원들이라는 것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들을 추적하고 이들의 자동차 표지를 확인하여 이 정보를 체코 비밀방송국에 전해 주었다. 그러면 방송국은 주민들에게 이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하는 방송을 했다. 이들 중 한 사람을 그는 자기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구타했었다. 모르는 남자는 말했다.

"이 사진이 유일한 증거였소 그는 이 사진이 그의 앞에 제시되던 순간까지 모든 것을 부인했었소"

그는 웃옷 안주머니에서 오려낸 신문 쪽지 하나를 끄집어내었다.

"이것은 1968년 가을 타임스지에 났었소"

사진에는 다른 사람의 멱살을 잡고 있는 한 젊은이를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진 밑에는 <적에 협력한 자의 벌>을 읽을 수 있었다. 테레사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아니야. 사진은 그녀가 찍은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서 그녀는 카레닌과 함께 프라하의 밤거리를 통해 집으로 갔다. 그녀는 탱크를 사진 찍었던 그날들을 회상했다. 조국을 위해 자기들의 목숨을 건다고 믿었던 그들 모두는 얼마나 바보였던가! 그들은 부지불식간에 러시아 경찰을 위해 일했던 것이다. 그녀는 밤 1시 반에 집에 왔다. 토마스는 벌써 잠들어 있었다. 그의 머리털에서는 여자의 음부 냄새가 났다.

 

8

교태란 무엇인가? 성적 접근이 가능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하게끔 해주지만, 그 강성이 확실한 것으로 나타나게끔 하지 않는 태도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교태란 성교의 약속이다. 보장 없는 약속이다. 테레사는 스탠드바 뒤에 서 있다. 그녀가 술을 따라 주는 손님들은 그녀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비위 맞추는 말들, 이중적인 말들, 재담, 갖가지 신청들, 미소, 시선들의 무한한 이 홍수가 그녀에게 불쾌한가? 그녀는 자기의 육체"그녀가 세상 밖으로 내쫓고자 했던 그녀의 낯선 육체"를 해안의 부서지는 파도에 내맡기고 싶은, 억제할 수 없는 욕구를 느낀다. 토마스는 사랑과 성행위는 상이한 별개의 것이라고 그녀에게 확신시키려 번번이 애썼다.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자신이 조금도 호감을 갖지 않는 남자들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과 동침하면 어떨까? 그녀는 그것을 시도해 보려 한다. 적어도 교태라고 일컫는, 보장 없는 약속의 형태로 시도해 보려 한다.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말해 둔다. 그녀가 토마스에게 다소라도 보복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녀는 미로에서의 출구를 찾으려는 것이다. 그녀는 자기가 토마스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녀는 일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며 모든 것이 비극이 되게 한다. 그녀는 육체적 사랑의 가벼움을, 책임을 지우지 않는 육체적 사랑의 오락성을 이해할 수가 없다. 이 가벼움을 그녀는 배우고 싶어 한다! 누군가 그녀에게 더 이상 시대착오적이 되지 않도록 가르쳐주기를 그녀는 원한다! 교태가 다른 여자들에게는 제2의 천성, 내용 없는 숙련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테레사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연구 분야가 되었다. 여기서는 자기가 무엇에 능력이 있는가를 찾아내려고 한다.

그러나 교태가 그녀에게는 그토록 중요하고 진지하다는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그것이 모든 가벼움을 상실했다. 그것은 부자연스럽고, 과장되고 의도적으로 나타난다. 약속과 결여된 보장 간의 균형"바로 이 균형에 교태의 참된 노련성이 근거한다!"이 파괴되어 있다. 그녀는 약속의 보장이 없다는 것을 충분히, 명백하게 표현하지 못하고 너무나 열심히 약속한다. 다른 말로 하면, 그녀는 누구에게나 너무나도 사귀기가 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남자들이 자기들에게 소위 약속되었던 바를 이행해 줄 것을 그녀에게 요구하면 그들은 그녀의 심한 반발에 부딪히게 된다. 그들은 테레사가 약고 심술궂음에 틀림없다는 것 외에는 달리 그러한 반발을 해석할 수가 없다.

 

9

열여섯 살쯤 돼 보이는 젊은이가 스탠드바 앞의 의자에 앉았다. 그는 몇 마디 도전적인 문장을 말했다. 이것들은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 멈추어 서버린 격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림 그릴 때 잘못된 선과 같은 것으로, 이 선을 살릴 수도 지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당신은 멋진 다리를 가졌어요" 하고 그는 말했다.

그녀는 그의 말을 가로챘다.

"이 목조 벽을 뚫어볼 수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는군!"

"나는 당신을 알아요. 당신을 자주 길에서 보거든요."하고 그는 해명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그로부터 몸을 돌려 다른 손님을 보살폈다. 소년은 꼬냑 한 잔을 주문했다. 그녀는 그것을 못 주갰다고 했다.

"난 이미 열여덟이요."하고 그는 항의했다.

"그러면 내게 신분증을 보여주겠소?"

"그렇게는 못 해요"

"그렇다면 레몬수나 마셔요"

이 젊은이는 말없이 스탠드바 의자에서 일어나 사라졌다. 반 시간이 지난 뒤 그는 되돌아와 다시금 훌쩍 스탠드바에 앉았다. 그는 3미터 거리에서도 알코올 냄새를 풍겼다.

"레몬수 한 컵!"하고 그는 명령했다.

"당신은 취했어요!"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젊은이는 테레사 뒤쪽 벽에 붙은 인쇄된 지시문을 가리킨다.

<18세 이하의 청소년들에게 알코올 음료를 파는 것은 금지되어 있음.>

"당신은 내게 알코올을 팔 수 없어요."하고 그는 말했다.

그리고는 위협적인 동작으로 테레사를 가리켰다.

"그러나 내가 술 취해서는 안 된다는 말은 아무 데도 씌어 있지 않아요!"

"어디에서 그렇게 술을 마셨소?"하고 테레사가 물었다.

"건너편 술집에서요"하고 그는 웃고 다시 한번 레몬수를 요구했다.

"그런데 왜 거기 머물지 않았나요?"

"당신을 보려고요"하고 젊은이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

이 말을 할 때 그의 얼굴은 이상하게 일그러졌었다. 테레사는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익살을 부렸던가? 교태를 부렸던가? 농담을 했던가? 아니면 그는 술이 취했기 때문에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했던가? 그녀는 레몬수 한잔을 그의 앞에 놓았다. 그리고는 다시 다른 손님들을 보살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해요!"라는 문장은 젊은이의 힘을 고갈시킨 것같이 보였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말없이 카운터에 돈을 놓고는 사라졌다. 테레사는 그가 사라지는 것도 보지 못했다. 그가 떠나자마자 곧 땅딸막한 대머리 남자 한 사람이 그녀에게 말했다.

"마담,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당신은 알고 있겠죠"

그는 이미 앞서 세 잔의 보드카를 마셨었다.

"그에게 술을 주지 않았소! 레몬수를 주었는데요!"

"난 당신이 그의 레몬수에 무엇을 흔들어 넣었는지를 정확히 보았소!"

"정말 어처구니없는 말씀을 하는구려!"하고 테레사는 외쳤다.

"보드카 한 잔 더!"하고 대머리는 명령하고 덧붙여 말했다.

"나는 벌써 상당히 오래전부터 당신을 관찰하고 있소!"

"그렇다면 당신이 미녀를 바라볼 수 있다는 데 만족하고 입 좀 다무시오!"하고 얼마 전 바 카운터에 서서 이 장면을 모두 지켜보았던 키 큰 남자의 목소리가 울렸다.

"참견 마시오! 당산과는 상관없는 일이오!"하고 대머리는 소리쳤다.

"그렇다면 이것이 당신과는 어떤 상관이 있는지 내게 설명해 줄 수 있겠소?"하고 키 큰 남자가 물었다.

테레사는 대머리에게 그가 주문한 보드카를 따라 주었다. 그는 그것을 단숨에 들이켜고는 돈을 놓고 나가버렸다.

"손님, 감사해요."하고 테레사는 키 큰 남자에게 말했다.

"천만에요"하고 그는 대답하고 역시 가버렸다.

 

10

며칠 뒤 그가 다시 스탠드바에 나타났다. 그를 보자 그녀는 마치 애인을 대하듯 다정한 미소를 지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리겠어요. 그 대머리는 종종 나타나요. 몹시 불쾌한 타입이지요."

"그를 잊으시오"

"왜 그가 나를 공격했지요?"

"그자는 술주정뱅이일 뿐이오.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어요. 마담께 다시 한번 부탁하겠소. 그를 잊으시오."

"손님께서 그렇게 부탁하시니, 그를 기꺼이 잊겠어요."

키 큰 이 남자는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게 약속해 주어야겠소!"

"약속드리죠!"

"마담이 내게 무엇을 약속하는 것을 마담 입을 통해 직접 듣는다니 아주 기분 좋은데요"하고 이 남자는 말하고 여전히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교태가 들어 있었다. 성적 접근이 가능하지만 동시에 이 가능성은 보장된 것이 아니며 순전히 이론적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태도가 거기에 있었다.

"프라하시의 모든 구역 중에서 제일 형편없는 구역에서 당신과 같은 여자를 만나다니 놀라운 일이오."

"그런데 당신은요? 프라하시의 제일 형편없는 이 구역에서 당신은 무엇을 하죠?"

그는 그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으며, 직업은 엔지니어이고, 최근 아주 우연히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던 중 이곳을 들러 보았노라고 그녀에게 말했다.

 

11

그녀는 토마스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녀의 시선은 그의 눈을 향해 있지 않고 눈보다 10센티미터 위쪽, 그의 머리를 향하고 있었다. 낯선 여자의 음부 냄새가 났던 머리털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토마스, 난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난 불평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나 때문에 프라하로 돌아온 이후 나는 질투를 나 자신에게 금했어요. 더 이상 질투를 안 하려고 해요. 하지만 질투심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나는 강하지 못해요. 제발, 나를 도와줘요!"

그는 그녀의 팔을 잡고 수년 전 그들이 자주 산책했던 공원으로 그녀를 데려갔다. 거기에는 벤치들이 있었다. 푸른, 노란, 붉은 벤치들이. 그들은 벤치에 앉았고 토마스는 말했다.

"당신이 아주 위쪽까지 올라가면 모든 것을 이해할 거요."

그녀는 도대체 올라갈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녀의 육체는 너무나도 허약해져 벤치에서 일어날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토마스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애써 겨우 일어났다. 그녀는 뒤돌아보았다. 그는 여전히 벤치 위에 앉아 있었고 몹시 기쁜 듯 그녀에게 미소지었다. 그는 손을 흔들었는데 그 동작이 마치 떠나가는 그녀를 격려라도 하는 것 같았다.

 

12

그녀가 라우렌치산 기슭에, 프라하 한복판에 있는 이 푸른 산의 기슭에 이르렀을 때 그녀는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이상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보통은 프라하 시민들이 무리를 지어 이 가로수 도로를 산책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마음엔 불안이 솟았다. 그러나 산은 무척 조용했고, 이 정적은 그토록 마음을 진정시켜 주었으므로 그녀는 더 이상 거부감을 갖지 않고 이 산의 포옹에 몸을 맡겼다. 그녀는 산을 올라갔다.

때때로 발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 그녀의 아래쪽에는 수많은 탑들과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성인상들이 굳은 돌 눈을 구름으로 향하고, 주먹으로 위협하고 있었다. 그것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도시였다.

그녀는 정상에 도착했다. 아이스크림, 그림엽서, 과자를 파는 가게들"이곳에는 한 사람의 판매원도 보이지 않았다" 뒤쪽에는 한없이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었다. 잔디밭에는 드문드문 몇 그루의 나무들이 서 있었다. 그녀는 그곳에 몇몇 남자들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그녀의 발걸음은 더욱더 느려졌다. 여섯 사람의 남자들이었다. 그들은 단순히 그곳에 서 있거나 천천히 돌아다녔다. 그들은 마치 골프장에서 지형을 탐색하고, 손에 든 골프채를 흔들어보고 공을 치기 직전에 정신집중을 하는 골프 경기자 같았다. 그녀는 그들에게로 아주 가까이 다가갔다. 여섯 명 중에서 세 사람은 여기에서 그녀 자신과 동일한 역을 해야 하는 자들임을 그녀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들 셋은 불안정했고, 마치 많은 질문을 하려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귀찮게 할까 봐 겁이 나 그들은 차라리 입을 다물었고, 다만 묻고 싶어 하는 시선들을 주위에 던졌다. 다른 세 남자는 의젓한 친절함을 풍겼다. 그들 중 한 사람은 손에 총을 쥐고 있었다. 그는 테레사를 보자 테레사에게 미소를 보내면서 손짓했다.

"그래요, 당신은 여기 올바르게 왔어요."

그녀는 인사조로 머리를 끄덕였다.

그녀는 겁이 나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러자 이 남자는 말을 덧붙였다.

"오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서요. 이것은 당신의 소망에 따른 것이지요?"

아니오, 아니오, 이건 제 소망이 아니에요!’하고 말하는 것이 훨씬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토마스를 실망시키는 것은 그녀에겐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그녀가 집으로 돌아간다면 무슨 핑계로 그에게 용서받을 수가 있겠는가? 그 때문에 그녀는 말했다.

", 그럼요, 제 소망에 따른 것이에요."

총을 든 남자는 말을 계속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묻는가를 당신이 이해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오. 우리는 우리에게로 오는 사람들이 스스로 죽기를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가질 때만 일을 집행하오. 우리는 그들에게 다만 봉사를 할 따름이오"

그는 탐색하는 눈초리로 테레사를 살펴보았다. 그래서 테레사는 그에게 다시 한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신은 의구심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이것은 저의 소망이에요."

"당신은 첫 번째 차례가 되기를 원하오?"하고 그가 물었다.

그녀는 처형을 적어도 조금은 연장하고자 했다. 그래서 말했다.

"아니오, 그렇게 하지 말아줘요. 가능하다면 마지막 차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뜻대로 하시오."하고 그는 말하고서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되돌아갔다.

그의 두 조수는 무기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죽으러 온 사람들을 시중들기 위해 있을 뿐이었다. 그들은 이들의 팔을 잡고 잔디밭으로 나갔다. 풀 덮인 초지가 눈 닿는 한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죽음의 후보들은 자기들의 나무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들은 서서 사방을 둘러보았고, 오랫동안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그들 중 두 사람은 결국 플라타너스 나무를 선택했으나 세 번째 사람은 계속 더 걸어갔다. 어떤 나무도 그의 죽음을 위해 적절하지 못한 듯 보였다. 그의 팔을 살짝 잡은 조수는 참을성 있게 그를 동반했다. 결국 그 남자는 계속 갈 용기를 잃고 넓게 퍼진 단풍나무 앞에 서고 말았다. 그러자 조수들은 수건으로 세 사람 모두의 눈을 동여매었다. 그래서 이 무한한 잔디밭에는 세 남자가 세 그루의 나무에 기대어 서 있었다. 각자 수건으로 눈을 가린 채 머리는 하늘을 향해 있었다. 총 든 남자가 조준을 하고 발포했다. 새들의 노랫소리 외에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총은 소음 장치가 되어 있었다. 오직 단풍나무에 기대어 있던 남자가 꼬꾸라지는 것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있던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총을 든 남자는 다른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플라타너스 나무에 기대어 있던 남자도 꼭 마찬가지로 더없이 조용히 꼬꾸라졌다. 잠시 후 "총 든 남자가 다시 한번 방향을 좀 바꾸었다" 세 번째로 처형된 사람이 잔디밭에 쓰러졌다.

 

13

조수 중 한 사람이 말없이 테레사에게 다가왔다. 그는 손에 진 청색 수건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자기 눈을 가려 묶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머리를 젓고 말했다.

"묶지 말아요. 나는 모든 것을 보겠어요"

그러나 그 말은 그녀가 묶기를 거부한 본래의 이유가 아니었다. 사살 명령을 의연한 태도로 직시하리라 확고하게 결심한 여장부다운 면이 그녀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다만 죽음을 연장하려 했을 뿐이다. 그녀에겐 눈을 가림으로써 이미 더 이상 삶으로 되돌아갈 수 없는 죽음의 대합실에 들어와 있는 듯 여겨졌다. 그 남자는 그녀를 독촉하려 하지 않고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넓은 잔디밭을 걸어갔다. 테레사는 나무를 결정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러나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꽃이 활짝 피고 있는 밤나무를 눈앞에서 보자, 그녀는 발을 멈추었다. 그녀는 등을 나무둥치에 기대어 위쪽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햇빛을 담뿍 머금은 초록을 보았고, 멀리에서 마치 수천의 바이올린 소리가 울리는 듯한 도시의 소음소리가 부드럽고 감미롭게 들려왔다.

남자는 총을 어깨에 대고 조준했다. 테레사는 용기가 그녀에게서 떠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의 허약함에 절망했다. 그러나 이 허약함을 극복할 수가 없어 말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의 소망이 아니에요"

그 순간 그 남자는 총신을 내리고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이 당신의 소망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어요. 그렇게 할 권리가 우리에겐 없어요."

그의 목소리는 친절했다. 마치 그녀 자신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를 사살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그가 그녀에게 용서라도 빌기나 하려는 듯 친절했다. 이 친절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녀는 얼굴을 나무껍질 쪽으로 돌려 울기 시작했다.

 

14

그녀의 온몸이 울음으로 인해 떨렸다. 그녀는 나무둥치를 껴안았다. 마치 그것이 나무가 아니라 그녀가 상실한 아버지인 듯, 그녀가 전혀 알지 못한 할아버지인 듯, 아니면 선조인 듯, 선조의 선조인 듯, 아니 거친 나무껍질의 모습으로 그녀에게 자신의 얼굴을 향하기 위해 멀고 먼 시간의 심연에서 온 무한히 늙은 어떤 사람인 듯.

그런 다음 그녀는 몸을 돌렸다. 세 남자는 이미 멀리 떠나가 있었다. 그들은 골프 경기자들처럼 잔디밭 위를 성큼성큼 걸어서 돌아다녔다. 한 남자의 손에 쥐어진 총은 실제 골프채처럼 보였다. 그녀는 라우렌치산을 내려갔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그녀를 쏘아 죽였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아니한 그 남자에 대한 애수에 찬 동경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녀는 그에게 가까이 있기를 바랐다. 누구든 그녀를 도울 수 있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토마스는 그녀를 돕지 않았다. 토마스는 그녀를 죽음 속으로 보냈다. 다른 어떤 사람만이 그녀를 도울 수 있었다. 도시에 가까이 오면 올수록 그 남자에 대한 그녀의 동경은 더욱 더 강해졌고 토마스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더 커졌다. 그녀가 약속을 지키지 아니한 것을 토마스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충분히 용감하지 못해 그를 배반한 것을 그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벌써 그들이 살고 있는 거리에 왔다. 다음 순간 곧 그를 보게 될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것에 그녀는 그토록 겁이 나 속이 메스꺼워졌다. 그녀는 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믿었다.

 

15

엔지니어 남자는 테레사를 자기 집으로 초청했었다. 그녀는 두 번이나 그의 초청을 거절했다. 이제 그녀는 수락했다.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그녀는 서서 점심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집을 나갔다. 아직 1시가 못 되었다.

그녀는 그가 살고 있는 집에 가까이 왔다. 그러자 그녀는 발걸음이 그녀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저절로 느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녀를 그에게로 보낸 사람은 근본적으로는 토마스라는 것을 그녀는 숙고했다.

아닌 게 아니라 사랑과 섹스는 별개의 것이라고 그녀에게 누차 해명한 것은 토마스였다. 그녀는 그의 말이 맞는가의 여부를 보려고 할 뿐이었다. 그녀는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 당신을 이해해. 난 당신이 무엇을 바라는가를 알고 있어. 그래서 모든 준비를 해두었소. 당신, 지금 위에까지 올라가오. 그러면 당신은 모든 것을 이해할 거요. 그렇다. 그녀는 토마스의 명령 수행 이외에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동안만 엔지니어 남자에게서 머물고자 했을 뿐이다. 부정의 경계에까지 간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알 수 있도록, 그녀는 커피 한 잔 마실 시간만 그에게 머물고자 했을 뿐이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이 경계에 닿도록 해서, 마치 항쇄하여 기둥에 매놓은 듯 그곳에 한동안 세워두고자 했다. 그런 다음 그 기사가 그녀를 포옹하려 할 땐 그녀는 라우렌치산의 총 든 사나이에게 말했듯 그에게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 소망이 아니에요."

그러면 그 남자는 총신을 내릴 것이고 친절한 목소리로 말할 것이다.

"이것 이 당신의 소망이 아니라면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할 권리가 내겐 없어요."

그녀는 나무둥치로 몸을 돌려 울기 시작할 것이다.

 

16

프라하 교외 노동자들이 사는 곳에 있는, 세기 전환기에 지은 임대연립주택이었다. 그녀는 건물 현관에 들어섰다. 현관 벽들은 회칠을 했고 더럽혀져 있었다. 철제 난간이 달린, 닳아서 패인 돌계단이 2층으로 나 있었다. 그녀는 2층 왼쪽으로 향해 두 번째 문 앞에 섰다. 이름패도 초인종도 없었다. 그녀는 노크했다. 그가 문을 열었다. 그가 사는 집은 단칸방으로 되어 있었다. 현관문 뒤로 1미터 거리에 커튼을 쳐 이 방은 양분되었다. 이로 인해 이 집에 없는 대기실을 위한 일종의 대치 공간이 마련되었다. 여기에는 취사용 전열기를 올려놓은 탁자 하나와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더 들어가자 그녀는 좁고 길게 뻗은 방의 끝에 수직 장방형의 창문을 보았고, 다른 쪽에는 책꽂이가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벽 쪽에는 취침용 소파 하나와 안락의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내 집은 너무나 초라해요"하고 기사는 말했다.

"당신에게 아무렇지 않기를 바라오"

"괜찮아요, 전혀 아무렇지 않아요"하고 테레사는 전체가 서가로 덮여 있는 벽을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제대로 된 책상 하나도 없었으나 수백 권의 책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것은 테레사의 마음에 들었다. 그녀가 여기 올 때 지녔던 조바심이 좀 가라앉았다. 어린 시절부터 그녀는 책을 내밀의 형제 관계를 위한 표지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와 같은 서재를 지닌 사람이라면 그녀에게 나쁜 짓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는 무엇을 대접할까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포도주를? 아니, 아니, 포도주는 마시고자 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을 마셔야 한다면 커피를 마시겠노라고 했다. 그는 커튼 뒤로 사라졌다. 그녀는 서가 앞으로 다가갔다. 한 권의 책이 즉시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 번역이었다. 이 책이 여기 꽂혀 있다니 얼마나 이상한가! 여러 해 전에 토마스는 그녀에게 이 책을 읽도록 간청하면서 선물했었다. 그때 그는 오랫동안 이 책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는 자기의 생각을 어느 신문을 위해 기록했었다. 그런데 바로 이 기사가 그들 둘의 삶을 완전히 뒤집어놓고 말았던 것이다. 그녀는 책 뒷면을 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마음이 진정되었다. 마치 토마스가 여기에 고의적으로 흔적을, 메시지를 남겨놓은 듯했다. , 그가 모든 것을 준비해 두었음을 말하는 메시지였다. 그녀는 이 책을 뽑아서 펼쳤다. 그 키 큰 남자가 돌아오면 그녀는 무엇 때문에 그가 이 책을 가지고 있는지, 그가 그것을 읽었는지, 그가 그 책을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그에게 묻게 될 것이다. 그녀는 이 술책을 통해 대화를 낯선 남자 집의 위험한 영역에서부터 토마스의 사고의 친숙한 세계 속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그녀는 어깨에 한 손이 얹히는 것을 느꼈다. 그 남자는 그녀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말없이 그것을 서가에 도로 꽂았다. 그리고는 그녀를 소파로 데려갔다. 다시금 그녀가 라우렌치산에서 그 형리에게 말했던 문장이 그녀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이제 이 문장을 소리높여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 소망이 아니에요"

그녀는 상황을 순간적으로 변화시키게 될 마법의 주문이 이 문장에 들어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그 방에서 이 말들은 마력을 상실했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 말이 남자를 더욱 강한 결단을 하도록 자극시켰다고 내겐 생각된다. 그는 테레사를 꽉 껴안고 한 손을 그녀의 가슴에 얹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 접촉이 갑자기 그녀를 그녀의 조바심에서 해방시켰다. 기사 남자는 이 접촉을 통해 그녀의 육체에 주의를 환기시켰다. 여기서 그녀가 "그녀의 영혼이" 문제 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녀의 육체가 문제 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의식하게 되었다. 그녀를 배반했던 이 육체가, 그녀가 바깥세상으로 추방해 다른 육체들에게로 가게 한 이 육체가 문제 된다고 의식했다.

 

17

그는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끄르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녀 스스로 계속해 줄 것을 암시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육체를 바깥세상으로 추방해 버렸다. 그러나 육체에 대한 책임을 지려 하지 않았다. 그녀는 반항하지 않았고 그를 도우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은 이러한 방식으로 지금 진행되고 있는 것에 동의하고 있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립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결심했다는 것을 이해하게끔 하려 했다. 그는 그녀의 옷을 벗겼다.

그때 그녀는 거의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가 그녀에게 키스했을 때 그녀의 입술은 그가 누르는 입술에 응답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갑자기 그녀의 음부가 축축해짐을 느끼고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흥분을 느꼈다. 그것은 그녀의 의지에 반해 나타난 것이었기에 더욱 더 강했다. 그녀의 영혼은 모름지기 이미 일어난 모든 것에 동의했다.

그녀는 강한 이 흥분이 지속되게 하자면 이 동의가 명백히 표명되지 않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만약 그녀가 그녀의 동의를 소리 높이 말하고 사랑의 장면을 자발적으로 함께 연기한다면 흥분은 가라앉을 것이다. 왜냐하면 육체가 자신의 의지에 반해 행동했던 탓으로, 또 육체가 영혼을 배반했고 영혼이 이 배반을 바라보았던 탓으로 영혼이 흥분했기 때문이다. 그런 다음 그는 그녀의 팬츠를 벗겼다. 그녀는 이제 알몸이었다. 그녀의 영혼은 낯선 남자의 포옹 속에 놓인 벌거벗은 육체를 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영혼에겐 마치 가까이에서 유성인 화성을 바라보는 듯 믿기지 않게 생각되었다. 이렇게 믿기지 않는 상태의 조명 아래에서 그녀의 육체는 처음으로 그것의 평범성을 상실했다. 처음으로 그녀는 자신의 육체를 마법에 홀린 듯 바라보았다. 이 육체에서 유일무이하고 도저히 모방할 수 없는 모든 것이 전면으로 나타났다. 그것은 더 이상 모든 육체들 중 가장 보편적인 것"지금까지 그녀가 보아왔던"이 아니라 가장 비상한 육체였다.

영혼은 그것의 시선을 이 둥근 갈색 점, 음모 바로 위쪽에 있는 모반으로부터 뗄 수가 없었다. 영혼에게는 마치 이 모반이 영혼이 육체에 찍어준 봉인인 것처럼 여겨졌고 또한 낯선 음경이 그토록 치욕스럽게 이 성스런 봉인 가까이에서 움직이고 있는 듯 여겨졌다.

그녀가 그의 얼굴을 보았을 때 그녀는 다시금, 영혼의 서명을 담은 육체가 그녀가 알지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식을 잃게 하는 증오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녀는 침을 모아 그것을 낯선 그 남자의 얼굴에 뱉고자 했다. 그들은 서로 상대를 동일한 욕구를 가지고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의 분노를 눈치챘다. 그녀 육체 위에서의 그의 동작은 더욱 빨라졌다. 테레사는 멀리에서 쾌감이 그녀에게로 다가옴을 느꼈다. 그녀는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안 돼, 안 돼, 안 돼!"

그녀는 일어나고 있는 쾌감을 저항했다. 그리고 그녀가 이렇게 저항했기 때문에 막혀진 쾌감은 출구 없는 그녀의 온몸 속으로 흘러 들어갔다. 쾌감은 그녀의 몸속에서 마치 혈관 속의 모르핀처럼 사방으로 번졌다. 테레사는 남자의 팔에 안겨 미친 듯 날뛰었고 닥치는 대로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18

현대식 욕실에는 변기가 마치 수련의 흰 꽃처럼 바닥에서 자라나 있는 듯 보인다. 건축가는 육체로 하여금 자신의 비참을 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한다. 물이 저수통에서 쏴 하며 변기통에 쏟아져 들어오면 냉장에서 쏟아놓은 오물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모른다. 하수간이 촉수를 가지고 우리들이 사는 집 안에까지 들어와 있는데도, 세심한 배려로 우리들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숨겨져 있다. 그래서 우리는 똥의 베니스를 볼 수 없으며 이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바로 이 보이지 않는 베니스 위에 우리의 욕실이, 우리의 침실이, 우리의 무도장이, 우리의 국회의사당이 설립되어 있음에도. 프라하 교외 노동자 주거구역에 있는 낡은 건물의 화장실은 보다 덜 엉큼했다. 화장실 바닥은 회색 타일로 깔려있었고 그 위에 변기통이 버림받은 듯 가엾게 돋아나 있었다. 변기의 형은 수련을 연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의 실재적 존재인 것으로 보였다. , 관의 확장된 끝으로 보였다. 앉는 나무테까지도 없었다. 테레사는 에나멜 칠을 한 차가운 변기에 앉아야 했다. 그것은 그녀의 몸을 오싹하게 했다. 그녀는 변기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갑자기 발생한, 그녀 내장에 든 것을 쏟아버리고 싶은 이 소망은 품위 저하의 마지막까지 가려는 소망이며, 가능한 한 강하게, 가능한 한 완전히 오로지 육체이고자 하는 소망이었다. 이 육체에 대해 그녀의 어머니는 말했다. 육체란 소화하고 배설하기 위해 있을 뿐이라고. 테레사는 무한한 서글픔과 외로움의 느낌을 갖고 그녀의 내장을 비웠다. 이렇게 하수관의 확장된 끝에 앉은 그녀의 벌거벗은 육체보다 더 비참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의 영혼은 관객의 호기심을, 심술과 자만을 상실했다. 그것은 다시 육체 속 깊숙이 내장의 제일 뒤쪽 구석으로 되돌아갔다. 그것은 누가 자기를 불러주지 않을까 하며 절망적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19

그녀는 변기에서 일어나 수세식 밸브의 끈을 당겼다. 그리고는 현관 대기실로 나왔다. 그녀의 영혼은 벌거벗고 버림받은 육체의 속에서 떨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도 뒤를 닦았던 종이가 뒤에 닿는 것을 느꼈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결코 잊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그가 있는 방으로 되돌 아가 자기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싶은 충동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그가 침착하고 저음의 목소리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던들 그녀의 영혼은 육체의 표면으로 다시금 나오는 것을 감행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울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녀는 꿈에 밤나무의 굵직한 둥치를 껴안았듯이 그를 포옹했을 것이다. 그녀는 대기실에 서서 그의 앞에서 눈물을 쏟고 싶은 무한한 충동을 억제하려 싸우고 있었다. 그녀가 이렇게 싸우지 않았던들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던 무슨 일이 일어날 것임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 그녀는 그에게 반했을 것이다. 이 순간 그의 목소리가 안쪽에 있는 방에서 들려왔다. 이 목소리를 듣고"훤칠하게 키 큰 이 엔지니어 남자의 모습을 동시에 직접 보지 않고" 그녀의 자못 놀랐다. 그 목소리는 가는 고음이었다.

어떻게 그녀가 이런 목소리를 알아보지 못할 수가 있었는가? 그녀가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바로 이 예기치 않게 불쾌하게 들린 그의 목소리 인상 덕분인지 모른다. 그녀는 그가 있는 방으로 돌아와 바닥에 널려 있는 옷을 집어 재빨리 입고 나갔다.

 

20

그녀는 입에 크라상 과자를 문 카레닌과 함께 시장을 보고 돌아왔다. 서리까지 약간 내린 차가운 아침이었다. 그녀는 집 건물 사이에 있는 넓은 공지를 작은 정원으로 바꾸어 놓은, 주민들이 사는 주거지역을 막 지나고 있었다. 갑자기 카레닌이 멈추어 서서 한 방향만 계속 노려보고 있었다. 그녀 또한 그곳을 바라보았지만 별다른 것을 보지 못했다. 카레닌이 줄을 당겼다. 그녀는 당기는 대로 따라갔다. 결국 그녀는 아무것도 심지 아니한 화단의 얼어붙은 흙 위에서 큰 부리를 한 검은 까마귀의 머리를 보았다. 육체 없는 이 작은 머리는 가볍게 움직였고 부리는 이따금 목쉰 소리를 슬프게 질렀다. 카레닌은 아주 흥분하여 물고 있던 크라상을 떨어뜨렸다. 테레사는 개를 나무에 꽉 매어 까마귀에게 아무것도 할 수 없도록 했다. 그런 다음 그녀는 무릎을 꿇고 산 채로 묻힌 이 새의 몸 주위의 다져진 흙을 파헤치려고 애썼다. 그것은 단순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톱을 부러뜨렸고 피가 났다. 이 순간 그녀가 있는 데서 멀지 않은 곳에 돌 하나가 땅에 떨어졌다. 그녀는 사방을 돌아보았다. 겨우 열 살 될까 하는 두 사내아이가 집 모퉁이 뒤에 있는 것을 그녀는 보았다. 그녀는 일어났다. 사내들은 그녀의 반응과 나무에 묶인 개를 보자 달아났다. 그녀는 다시 무릎을 꿇고 땅을 파헤쳤다. 결국 그녀는 까마귀를 무덤에서 해방시켰다. 그러나 새는 이미 마비되어 걸을 수도 날 수도 없었다. 그녀는 이 새를 목에 감고 있었던 그녀의 붉은 숄로 싸서 왼손으로 몸에 꽉 붙여 안았고, 오른손으로는 카레닌을 나무에서 풀었다. 그녀는 개를 제압하여 발 옆에 붙들어두기 위해 온 힘을 다해야 했다. 열쇠를 호주머니 속에서 찾을 빈손이 없기 때문에 그녀는 초인종을 울렸다. 토마스가 그녀에게 문을 열어주었다. 그녀는 그에게 카레닌의 줄을 내밀었다.

"개를 꽉 잡고 있어요!"하고 그녀는 명령하고 까마귀를 욕실로 가져갔다.

새를 세면대 밑바닥에 내려놓았다. 까마귀는 경련을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가 없었다. 진한 누런 액이 몸에서 흘러내렸다.테레사는 세면대 밑에 낡은 헌옷으로 둥우리를 만들어주어, 석판 바닥이 새에게 너무 차지 않도록 했다. 번번이 새는 마비된 나래를 움직이려 했다. 그의 부리는 마치 비난을 하듯 허공으로 향해 있었다.

 

21

그녀는 욕조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고, 죽어가는 까마귀로부터 눈을 돌릴 수가 없었다. 새의 버림받은 고독에서 그녀는 자신의 운명상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줄곧 말했다. 온통 넓은 세상에서 내겐 토마스 외엔 아무도 없어. 기사 남자와의 일이 사랑의 모험은 사랑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것을 그녀에게 가르쳐주었던가? 사랑의 모험이란 가볍고 아무런 무게도 없다는 것을 가르쳤던가? 그녀는 보다 조용하게 되었던가? 천만에. 한 장면이 그녀에게 전혀 마음의 안정을 주지 못했다. , 그녀가 화장실에서 나왔고 그녀의 육체가 대기실에서 벌거벗고 버림받아 서 있던 장면이다. 깜짝 놀란 그녀의 영혼이 내장 깊숙이에서 떨고 있었다. 방에 있던 그 남자가 그 순간 그녀의 영혼에 말을 걸었던들 그녀는 눈물을 쏟고 그의 팔에 안겼을 것이다. 그녀는 자기 대신에 토마스의 여자 친구들 중 한 여자가 화장실 옆 대기실 마루 위에 서 있었다면 하고 상상해 보았다. 그는 그 여자에게 단 한마디 말만 했다면 틀림없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여자는 울면서 그를 포옹했을 것이다. 테레사는 사랑이 탄생되는 순간이란 다음과 같은 상황임을 알고 있다. 여자는 자기의 놀란 영혼을 표면으로 불러내는 목소리에 반항할 수 없다. 남자는 여자의 영혼이 그의 목소리를 요구할 때, 이 여자에게 반항할 수 없다. 토마스는 사랑의 함정 앞에 전혀 안전하지 못하다. 그래서 테레사는 매시간, 매순간 그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녀가 무기로서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녀의 정절 외에 아무것도 없다. 처음 시작에서 즉시 그녀는 그에게 자신의 정절을 바쳤다. 첫날 즉시 그랬다. 마치 그녀가 그에게 바칠 것이라고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의식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그녀의 사랑은 독특하게도 불균형의 건축구조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궁전이 유일한 원주에 기초를 두고 있듯 테레사의 확고한 정절의 발판에 근거한다. 까마귀는 나래까지도 거의 움직이지 못했다. 다만 이따금 다치고 부러진 발만을 경련하며 움직였다. 테레사는 마치 죽어가는 여동생의 임종 병상을 지켜보듯 부엌으로 들어가 서둘러 저녁 식사를 했다. 그녀가 다시 돌아왔을 때 까마귀는 이미 죽어 있었다.

 

22

그들 사랑의 첫해에 테레사는 토마스와 사랑의 동침을 할 때 소리를 질렀다. 이 외침은 말했다시피 그녀의 감각을 눈멀고 귀먹게 하는 것이었다. 그 후 그녀는 아주 드물게 소리 질렀다. 그러나 그녀의 영혼은 여전히 사랑에 눈이 멀었고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가 기사 남자와 동침한 후에야 비로소 사랑의 결여가 그녀의 영혼으로 하여금 보도록 만들었다. 그녀는 다시금 사우나에 갔다. 그녀는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보며 그 엔지니어 남자의 집에서 있었던 사랑의 장면을 눈앞에 떠올려보았다. 그녀가 그것에서 기억에 간직했던 것은 그녀의 정부였던 그 남자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그를 묘사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그녀가 그가 발거벗은 모습을 보지조차 않았을 것이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은"그리고 지금 흥분해서 그녀가 거울 속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그녀 자신의 육체였다. 그녀의 국부와 바로 그 위에 있는 둥근 반점이었다. 그때까지 흔히 있는 미용상의 결함 외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겼던 이 반점이 그녀의 생각에 깊이 아로새겨졌다. 그녀는 그것을 계속 반복해서 낯선 남자의 성기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보고자 했다. 나는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그녀는 낯선 남자의 성기를 보고자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음부를 낯선 남근과 근접한 위치에서 보고자 했다. 그녀는 정부의 육체를 갈구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 자신의 육체, 갑자기 발견한 그녀 자신의 육체를, 모든 육체 중에서 그녀에게 가장 가까이에 놓여 있는 가장 낯선, 가장 자극적인 이 육체를 욕구했다. 그녀는 자신의 육체가 샤워를 한 탓으로 아직 피부에 묻어 있는 섬세한 물방울들로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그녀는 그 기사 남자가 가까운 시일 안에 다시금 바에 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가 와서 자기를 그에게 초청해 주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얼마나 소망했던가!

 

23

나날이 그녀는 그 엔지니어가 바에 나타나면 자신이 그의 초청을 거절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했다. 여러 날이 지나갔다. 그가 오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그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으로 바뀌었다. 한 달이 지났다. 그런데도 그 엔지니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것은 테레사에게 납득이 가지 않았다. 실망한 욕구는 뒷전으로 물러나고 불안이 몰려왔다. 무슨 이유로 그가 오지 않았는가? 그녀는 손님들에게 시중을 들었다. 미성년자에게 알코올을 팔았다고 그때 그녀를 비난했던 대머리 남자는 다시 왔었다. 그는 재미있는 음담을 소리 높이 이야기해 주었다. 그런 음담을 그녀는 작은 도시의 식당에서 손님들에게 맥주를 날라다 줄 때 술 취한 사람들로부터 이미 수없이 들었었다. 다시금 그녀 어머니의 세계가 그녀에게 되돌아온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그녀는 이 대머리의 이야기를 퉁명스럽게 중단시켰다. 그 남자는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당신은 내게 아무것도 명령 못 해요. 우리가 이렇게 바 스탠드 뒤에서 당신이 일하도록 하고 있는데 당신이 기뻐해야 할 거요"

"우리가 누구란 말에요? 그것이 누구요. 우리라는 자가?"

"우리지"하고 그 남자는 말하고 보드카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당신이 나를 모욕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시오!"

그런 다음 그는 값싼 진주목걸이를 하고 있는 테레사의 목을 가리켰다.

"도대체 당신의 이 목걸이는 어디에서 났소? 유리창 청소부인 당신 남편으로부터 그것을 받은 것은 틀림없이 아닐 거요! 당신 남편은 당신을 위해 그와 같은 선물을 지불할 수 없을 테니까! 손님들로부터 받았나요? 그렇지만 무슨 대가로?"

"즉시 주둥이 닥쳐요!"하고 테레사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남자는 목걸이를 손가락 사이에 넣어 잡으려고 했다.

"잘 들으시오. 우리 있는 데서는 매춘이 금지되어 있소!"

카레닌이 일어나 앞발을 바 스탠드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24

대사는 말했다.

"그자는 형사였소"

"형사라면 그토록 다른 사람들의 눈에 띄는 행동을 하지 않을 거예요."하고 테레사는 다시 한번 숙고하도록 했다.

"비밀을 포기해 버린 경찰이 무슨 비밀경찰이죠?"

대사는 양반다리를 하고 나무침대에 앉았다. 그는 이것을 요가 할 때 배웠었다. 그의 머리 위쪽에서는 케네디가 미소짓고 있었다. 이것은 그의 말에 각별한 위엄을 주었다.

"테레사 부인"하고 그는 아버지 같은 태도로 말했다.

"형사들은 여러 가지 기능을 갖고 있어요. 첫째 기능은 고전적인 것이오. 사람들이 서로 나누는 이야기를 함께 엿듣고 그것을 상관에게 보고하는 것이오. 둘째 기능은 겁주는 것이오. 그들은 자기들이 그 상대를 지배하는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시켜 주지요. 그들은 상대에게 겁을 불어넣어 주려고 하지요. 바로 이것을 당신의 그 대머리는 시도했던 것이오. 셋째 기능은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게 하는 상황의 연출에 있어요. 오늘날엔 우리에게 아무도 반국가적 행위의 죄를 뒤집어씌우는데 관심을 갖지 않아요.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더욱더 사람들의 동감을 사도록 해 줄 것이오. 그래서 그들은 차라리 우리들의 호주머니에서 마약을 찾아내려고 하거나, 아니면 우리가 열두 살 소녀를 강간했다는 것을 증명하려 할 것이오. 그렇게 증언할 소녀는 언제나 있으니까 말이오"

다시금 그 엔지니어가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 무엇 때문에 그가 더 이상 오지 않았던가? 대사는 말을 계속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자기들을 위해 일하도록 끌어들여, 이들의 도움을 빌려 다시금 다른 사람들에게 함정을 파놓으려고 사람들을 함정으로 유인하지 않으면 안 되지요. 그런 식으로 그들은 점차 온 국민을 형사의 통 일 체계가 되도록 만들지요."

테레사는 그 엔지니어가 경찰에 의해 자기에게 붙여졌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우스꽝스런 젊은이는 누구였던가? 건너편 술집에서 술이 취해 그녀에게 사랑의 고백을 했던 그 젊은이는? 그 젊은이 때문에 대머리의 그 형사는 그녀를 공격했고 그 엔지니어는 그녀를 방어했었다. 세 사람 모두 공모한 연극에서 각기 그들의 역을 했던 것이다. 이 연극의 목적은 그녀를 유혹하는 과제를 맡았던 그 남자에 대해 그녀의 애정을 일깨우는 것이었다. 어째서 이것이 앞서 그녀의 생각에 들지 않았던가? 그 집은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었다. 그것은 도대체가 그 엔지니어 남자에게 어울리지가 않았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멋진 옷차림을 한 엔지니어가 그토록 초라한 집에 살아야 한단 말인가? 도대체 그가 엔지니어였던가? 그럴 경우 어떻게 그가 오후 2시경에 시간이 있었을까? 그리고 언제부터 엔지니어들이 소포클레스의 작품을 읽었단 말인가? 아니다. 그것은 엔지니어의 서재가 아니었다! 그 방은 오히려 체포된, 돈 없는 인텔리의 차압당한 집처럼 보였다. 그녀가 열 살이었고 그녀의 아버지가 체포되었을 때도 꼭 마찬가지로 집이 전 서재와 함께 차압당했었다.

무슨 목적에 그때 그 집이 쓰여졌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제 무엇 때문에 그 엔지니어가 다시금 오지 않았던가 하는 것은 역시 명백하다. 그는 자기의 사명을 완수했다. 어떤 사명? 술 취한 그 형사는 그가 다음과 같이 말했을 때, 그의 뜻에 반해서 그녀에게 그것을 폭로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잘 들으시오. 우리 있는 데서는 매춘이 금지되어 있소!"

소위 그 엔지니어는 그녀가 자기와 동침하고 그 대가로 돈을 요구했노라고 진술할 것이다! 그는 그녀에게 스캔들을 일으키겠다고 협박하여 그녀의 바에서 술 취하는 사람들을 밀고하도록 강요할 것이다.

"당신의 그 일은 조금도 위험하지 않아요."하고 대사는 그녀를 안심시키려 했다.

"그럴 수 있겠죠."하고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하고 카레닌과 함께 프라하시의 밤거리로 나갔다.

 

25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미래로 도피한다. 그들은 시간의 진로에는 하나의 선이 있어, 이 선을 넘으면 현재의 고통이 중단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테레사는 자기 앞에 그러한 선을 보지 못했다. 오직 뒤돌아보는 것만이 그녀에게 위로를 줄 수 있었다. 다시 일요일이 찾아왔다. 그들은 프라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동차에 몸을 실었다. 토마스가 운전석에 앉았고, 옆에 테레사가 그리고 뒷자리에 카레닌이 탔다. 카레닌은 때때로 머리를 앞으로 내밀어 그들의 귀를 핥았다. 두 시간을 타고 간 뒤 그들은 어떤 작은 요양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그들은 약 6년 전에 함께 며칠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곳에서 숙박하려 했다. 그들은 시장 광장에 주차하고 차에서 내렸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맞은편에 그때 그들이 묵었던 호텔이 있었고, 그 앞에는 여전히 고목의 보리수가 서 있었다. 그 왼쪽으로 목조 주랑이 쭉 뻗어 있었고, 그 끝에는 대리석 수조에서 우물물이 솟고 있었다. 그때나 오늘이나 손에 물컵을 든 사람들이 우물물에 몸을 굽히고 있었다. 토마스는 호텔을 가리켰다. 무엇인가 그래도 좀 달라졌다. 전에는 이 호텔이 <그랜드 호텔>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팻말에 새겨진 글자에 의하면 <바이칼>이 라고 되어 있었다. 그들은 건물 모퉁이에 붙은 간판을 바라보았다. 모스크바 광장. 그들은 그들이 알았던 모든 거리를 다 돌아다녔다"카레닌은 끈도 매지 않고 혼자 따라다녔다". 그리고 그들은 거리 이름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았다.

스탈린그라드가, 레닌그라드가, 로스토브가, 노보시비르가, 키에브가, 오뎃사가가 있었고, 또 차이코프스키 요양소, 톨스토이 요양소, 림스키코르사코브 요양소가 있는가 하면 수보로브 호텔, 고리키 영화관, 푸시킨 다방도 있었다. 모든 이름이 러시아의 지리와 역사에서 따왔다.

테레사는 러시아 침공의 처음 날들을 회상했다. 모든 도시에서 사람들은 거리 이름을 적은 간판 및 도로표시판들을 떼어버렸다. 밤사이에 온 나라가 이름 없이 되어버렸다. 7일 동안을 러시아군은 그들이 어디에 와 있는가를 알지 못하고 사방을 헤매었다. 장교들은 신문편집실, 방송국, 텔레비전 방영 건물을 점령하려고 찾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이들은 다만 어깨만 으쓱하며 모른다는 제스처를 하거나 아니면 틀리는 이름이나 그 반대 방향을 말해주었다. 수년 뒤 이러한 익명성이 나라 자체를 위해서 위험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거리와 건물들은 그것들의 원래 이름을 다시금 가질 수 없게 했다. 그래서 보헤미아 지방의 한 요양지가 하루 사이에 작은 환상적인 러시아가 되어버렸다. 그들의 과거 발자취를 따라 이곳으로 왔던 테레사는 그들의 이 과거가 차압당하고 말았음을 확인했다. 그들은 그곳에서 도저히 밤을 지낼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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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그들은 차로 되돌아왔다. 모든 사물과 모든 인간들이 변장을 하고 나타났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보헤미아의 오래된 도시가 러시아의 이름들로 자신을 덮은 것이었다. 러시아 침공 때 사진을 찍었던 체코 사람들은 실제는 러시아 비밀경찰을 위해 일한 꼴이었다. 그녀를 죽음으로 보냈던 사람은 얼굴에 토마스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경찰은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엔지니어는 라우렌치산의 그 남자역을 하려 했다. 그의 집에 있었던 그 책의 표지는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그녀를 잘못된 길로 유인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녀가 그때 그곳에서 손에 들었던 그 책을 생각하자 갑자기 그녀의 얼굴을 붉히게 한 무엇이 생각났다. 그런데 그것이 어떻게 되었었지? 그 엔지니어는 커피를 끓이러 간다고 말했었다. 그녀는 그때 서재로가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를 서가에서 빼 손에 들었다. 그런 다음 그 엔지니어는 돌아왔다. 그러나 커피는 가지고 오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을 계속 되풀이해서 이 상황으로 되돌아왔다. 그가 커피를 끓이러 갔을 때 그는 얼마 동안 나가 있었던가? 적어도 1, 어쩌면 2, 아니면 3분 동안, 이 시간 동안에 그는 그 자그마한 대기실에서 무엇을 했던가? 화장실에 갔었던가? 테레사는 자기가 화장실 문을 닫는 소리를 들었는지, 혹은 화장실 물 내려가는 소리를 들었는지 기억하려 했다. 아니다. 그녀는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소리를 듣지 못했다는 것도 거의 확실했다. 그렇다면 대기실에서 그는 무엇을 했던가? 갑자기 그녀에게 모든 것이 너무나도 명백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녀를 함정에 빠뜨려 잡고자 했다면 기사 한 사람의 진술로는 충분하지가 않았던 것이다.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필요로 했다. 의심스럽도록 긴, 그가 떠나 있던 시간 동안 그는 대기실에 카메라를 설치했었다. 아니면 보다 더 개연성이 있는 것으로서, 그는 어떤 사람을 사진기를 가지고 들어오게 하여 커튼 뒤에 숨어서 사진을 찍도록 했을 것이다. 몇 주 전에만 해도 그녀는 프록사스카가 사적인 영역이 전혀 없는 일종의 강제노동수용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이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에 그를 야유했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녀가 어머니의 집을 떠났을 때 그녀는 어리석게도 자신이 이젠 단연코 사적인 삶의 안주인이 되었노라고 믿었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제국은 온 세상에 걸쳐 있었고 어디에서나 그녀에게 손을 뻗쳤다. 그 어떤 곳에 서도 테레사는 어머니의 제국에서 빠져나갈 수가 없을 것이다. 정원들 사이 계단을 내려가 그들은 시장 광장으로 갔다. 그곳에 차를 주차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당신 무슨 일이 있소?"하고 토마스가 물었다.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누가 토마스에게 인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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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50대의 남자였다. 그는 비바람과 햇살에 거칠어진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토마스가 옛날에 수술했던 시골 남자였다. 그때 수술한 뒤 그는 매년 요양을 위해 온천장으로 보내졌다. 그는 토마스와 테레사에게 포도주를 한 잔 대접하겠다고 초대했다. 개를 술집에 데려가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테레사는 카레닌을 자동차 속에 넣어두려 했다. 두 남자는 앞서 다방으로 들어갔다. 테레사가 그들에게로 돌아오자 시골 남자는 말했다.

"우리가 있는 곳은 안정이 되고 있어요. 뿐만 아니라 나는 2년 전 협동조합의 조합장으로 선출되었어요."

"축하해요."하고 토마스가 말했다.

"시골은 그런 곳입니다. 아시겠어요. 사람들이 떠나버려요. 저 위에 있는 양반들은 도대체가 아직까지 누가 남아 있다는데 기뻐해야 할 거요. 그들은 우리를 해고할 수가 없어요."

"그런 곳은 우리에게 이상적인 곳이겠어요."하고 테레사가 말했다.

"부인, 당신같이 젊으신 분은 그런 곳에서는 지루해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전혀 아무것도요."

테레사는 비바람과 햇살에 거칠어진 농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는 그녀에게 아주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 그토록 오래간만에 드디어 그녀에게 호감이 가는 사람이 나타났다! 그녀의 눈앞에는 시골의 목가적 풍경이 떠올랐다. 교회의 탑이 있는 마을, 들판, 숲들, 밭고랑을 통해 깡충깡충 뛰어가는 토끼, 초록의 펠트 모자를 쓴 사냥꾼, 그녀는 한 번도 시골에 살지 않았다. 이러한 목가적 상을 그녀는 다만 소설에서 알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책을 통해. 아니면 그러한 상을 그녀의 무의식에 아로새겨 주었던 것은 먼 옛날의 선조였는지 모른다. 여하튼 그러한 상은 가족 앨범 속의 선조 할머니의 사진처럼, 오래된 판화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선명하고 명백했다.

"아직도 불편하시나요?"하고 토마스가 물었다.

농부는 두개골과 척추가 서로 맞닿고 있는 목 지점을 가리켰다.

"여기가 아직도 이따금 아파요"

일어나지 않은 채 토마스는 그곳을 손가락으로 만져보고 그의 옛날 환자에게 몇 가지 질문을 했다. 그런 다음 그는 말했다.

"내겐 더 이상 처방할 권리가 없어요. 그러나 집에 가서 당신의 의사에게 당신이 나와 이야기를 했고 내가 이것을 추천하더라고 말해요"

그는 안쪽 호주머니에서 메모 노트를 꺼내 한 장을 찢었다. 대문자로 그는 약의 이름을 기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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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프라하로 돌아갔다. 테레사는 그녀의 나체가 그 기사의 품 안에 놓여 있는 사진을 생각했다. 그녀는 자위하려 애썼다. 그러한 사진이 실제 있다고 가정해도 그것을 토마스는 결코 보게 되지 못할 거야. 그 사진은 그자들에게는 그것을 수단으로 그녀를 협박 탈취할 수 있기 때문에 오직 관심의 대상이 되는 거야. 그들이 그것을 토마스에게 송부하는 순간 그것은 그러한 가치를 즉시 상실하고 말 거야. 그런데 만약 경찰이 테레사가 자기들에게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결정을 내린다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그 사진은 순전히 장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누군가 아마도 한낱 장난으로 그것을 봉투에 넣어 토마스의 주소를 적어 송부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토마스가 그와 같은 사진을 받을 경우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그녀를 쫓아내 버릴 것인가? 어쩌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거의 그렇게 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파괴되기 쉬운 그들 사랑의 구조물은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이다. 왜냐하면 이 구조물은 오직 그녀의 정절의 유일한 기둥에 기초하고, 사랑의 역사는 제국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의 역사의 기반이 되고 있는 사상이 몰락하면 이 사상과 함께 사랑의 역사 또한 몰락한다. 그녀의 눈앞에는 목가적 상이 어른거렸다. 밭고랑에서 깡충깡충 뛰고 있는 토 끼, 초록의 펠트 모자를 쓴 사냥꾼, 숲 위로 솟아오른 교회의 탑.

그녀는 토마스에게 함께 프라하로부터 이사 가자고 말하려 했다. 살아 있는 까마귀를 생매장하는 아이들로부터, 형사들로부터, 우산으로 무장한 처녀들로부터 떠나고 싶었다. 시골로 이사 가자고 토마스에게 말하려 했다. 이것만이 구제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하려 했다. 그녀는 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그러나 토마스는 말없이 계속 길만 내려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 사이에 조성된 침묵의 벽을 허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말할 용기를 잃었다. 그녀가 라우렌치산을 내려왔었던 그때처럼 그녀의 마음은 이상했다. 그녀는 속이 나빠지는 것을 느꼈다. 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여겼다.

그녀는 토마스가 무서웠다. 그는 그녀에게 너무 강했다. 그녀는 너무 약했다. 그는 그녀에게 이해 못 할 명령을 했다. 그녀는 명령을 이행하려 했다. 그러나 그녀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라우렌치산으로 되돌아가 총을 가진 그 남자에게 간청하려 했다. 자기의 눈을 가려 매어주고, 자기가 밤나무 둥치에 기대어 설 수 있게 해달라고 그에게 간청하려 했다. 그녀는 죽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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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잠이 깨었다. 자기 혼자 집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밖으로 나가 강이 있는 아래쪽으로 산보했다. 그녀는 몰다우강을 보고 강변에 서서 오랫동안 물살을 바라보려 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 마음을 안정시켜 주고 괴로움을 작게 해 주기 때문이다. 강물은 수백 년을 흘러간다. 사람들의 운명이 이 강변에서 펼쳐진다. 그것은 내일이면 벌써 망각되기 위해 펼쳐진다. 반면 강물은 내 일도 계속 흐른다. 그녀는 난간에 기대고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곳은 프라하시의 변두리 지역이었다. 몰다우강은 이미 프라하시를 관통했고 흐라췬 성과 교회들의 찬란한 모습을 뒤에 두었다. 몰다우강은 공연 후의 여배우처럼 지치고 시름에 잠겼다. 그것은 더러운 강둑 사이를 흘렀다. 그곳 울타리와 담벼락 뒤에는 공장들과 버려진 운동장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에서 오랫동안 그녀는 더욱더 황량하고 검게 나타난 강물 속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그녀는 강물 위에서 무엇인가 붉은 것을 보았다. 그것은 벤치였다. 프라하의 공원에 많이 있는 벤치였다. 느긋한 모습으로 그것은 몰다우강 한가운데서 둥둥 떠내려왔다. 그 뒤에 또 하나의 벤치가, 그리고 또 하나의 다른 벤치가 보였다

이제서야 비로소 테레사는 프라하 시의 공원에 놓은 벤치들이 물에 떠내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많은 의자들이었다. 계속 더 많은 의자가 보였다. 그것들은 마치 숲에서 강으로 떠내려온 가을 단풍잎처럼 물속에 둥둥 떠내려왔다. 그녀는 그것이 어떻게 된 셈이냐고 누구에게 묻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주위를 돌아보았다. 무엇 때문에 프라하의 공원에 있는 의자들이 떠내려왔던가? 그러나 사람들은 모두 무관심하게 그녀를 지나쳐갔다. 강이 이미 수백 년 동안 그들의 무상한 도시를 통해 흐른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관심 밖이었다. 그녀는 다시금 물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자기가 본 것이 하나의 작별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한없이 슬펐다. 거의 모든 의자들이 그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다만 아직도 뒤늦게 떠내려오는 몇몇 의자들만이 물에 떠올랐다. 노란 의자 또 하나의 의자, 파란 의자, 마지막 의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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