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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1

Bollnow 2024. 3. 9. 06:49

주홍글씨(The Scarlet Letter)

N. Hawthorne

 

1. 감옥 문

 

턱수염이 터무룩하고, 충충한 잿빛 옷에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쓴 남자들이 어느 목조 건물 앞에 모여 있었다. 그중에는 수건을 쓰거나 맨 머리로 나온 여자들도 있었다.

참나무로 된 튼튼한 문에는 커다란 쇠못이 줄줄이 박혀 있었다.

새 식민지 개척자들은 자신들의 나라가 인간적인 미덕과 행복에 넘친 유토피아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야생의 처녀지에 새로운 나라를 건립함에 있어, 처녀지의 일부를 공동묘지와 감옥터로 정하는 일은, 무엇보다 첫 단계로 하여야 할 실제적이고도 필요한 일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관례에 따라 보스턴의 선대들도 콘힐 가까이에 처음 감옥을 세웠고, 이를 앞뒤로 하여 아이작 존슨의 땅에 그의 묘를 중심으로 맨 처음 공동묘지를 만든 것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사실 존슨의 묘는 그 뒤 킹스 교회 옛 묘지에 몰려든 수많은 무덤들의 중심이 되었다. 보스턴 거리가 생긴 지 15년 혹은 20, 목조 건물로 된 감옥은 이미 비바람에 낡아 세월의 흔적을 뚜렷이 말해주고 있어, 그렇잖아도 잔뜩 찌푸린 듯 음산해 보이는 건물 정면을 더욱 침울하게 하고 있었다.

또한 참나무로 만든 문에 박힌 육중한 쇠붙이에 슨 녹은 신세계의 그 무엇보다도 고색창연한 빛을 띠고 있었다. 범죄와 관련된 모든 것이 그러하듯이, 이 문 또한 청춘 시대라고는 전혀 모르고 지낸 듯싶었다. 이 우중충한 건물 앞에서 큰길까지의 사이에는 풀이 우거져 있었는데, 우엉, 명아주, 나팔꽃, 그밖에도 볼썽사나운 것들뿐이었다. 이 잡초들은 일찍부터 문명사회에 검은 꽃을 피워 온 감옥이라는 것과 뭔가 통하는 데가 있는 듯했다. 그런데 감옥 문 한쪽 문지방 바로 옆에서 자라고 있는 한 그루의 찔레나무에는 때가 6월인 만큼 구슬을 뿌려놓은 듯 귀여운 꽃들이 함빡 피어 있었다. 감옥으로 들어가는 죄수나 형 집행을 받으러 가는 사형수에게 동정과 자비를 베푸는 대자연의 깊은 마음의 표시로써 그윽한 향기와 갸냘픈 아름다움을 풍기고 있는 것이리라.

이 찔레나무는 이상한 인연으로 역사상에 살아남게 되었다. 그러나 과연 이 찔레나무는, 본디 그 위에 그림자를 드리워 주던 거대한 소나무나 참나무가 쓰러져 버린 훨씬 뒤에까지도 이 황량한 옛 들판에 그대로 살아 남은데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성자라고 칭송되던 앤 허치슨이 이 감옥에 들어갈 때 밟은 자리에 돋아난 것인지(그렇게 믿을만한 근거는 충분하다 하더라도)는 여기서 논하지 말기로 하자. 어쨌든 그 불길한 그림자가 깃든 감옥 문에서부터 시작되려는 이 이야기의 첫머리에서 이 찔레꽃을 발견한 지은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그 찔레꽃 한 송이를 꺾어서 독자에게 바치는 정도일 것이니까.

아무튼 그 꽃이 이야기의 진행과 함께 떠오를 부드러운 미덕의 꽃을 상징해 주든가, 아니면 인간의 약함과 슬픔에 따르는 이 이야기의 암담한 결말을 조금이라도 누그러지게 해 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지은이의 마음 간절하다.

 

 

2. 광장

 

지금으로부터 200년 전 어느 여름날 아침, 감옥 거리에 있는 감옥 앞 풀밭에는 많은 보스턴 시민이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쇠 빗장을 지른 참나무 문에 일제히 쏠려 있었다. 다른 고장의 주민들이었거나, 뉴잉글랜드의 사람이었다고 하더라도 훨씬 뒷날의 일이었다면, 이 수염이 텁수룩하고 선량한 시민들의 얼굴이 이토록 냉혹하게 굳어 버린 것은 뭔가 굉장한 사건이 일어나고 있는 징조로 보였을는지 모른다. 누군가 악명 높은 죄수에 대해 예상되던 사형이 곧 집행될 것이며, 그것은 이미 일반 대중이 내리고 있던 판결을 법정의 판결로써 확인하는 데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초기 청교도들이 지녔던 엄격한 성격으로서는, 확신을 갖고 추측을 내릴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관리의 손에 넘겨진 게으름뱅이 하인이나 불효막심한 자식놈이 형장에서 곤장을 맞는 장면일 수도 있고, 신앙 지상주의자나 퀘이커교도 등의 이교도가 곤장을 맞고 시외로 추방되는 장면일 수도 있고, 떠돌아다니던 인디언이 백인들이 마시는 위스키를 마시고 거리로 뛰어나와 날뛰다가 매를 맞고 쫓겨 가는 장면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면 괴팍한 판사의 미망인이던 하빈스 부인 같은 마녀가 교수대의 이슬로 사라지려는 장면일는지도 모른다. 어느 경우건 구경꾼들의 얼굴에는 비슷한 표정이 나타나기 마련인데 그때의 표정은 조용하고도 엄숙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종교와 법률이 거의 동일시되던 시대였다. 따라서 그들의 의식에도 종교와 법률이 완전히 용해되어 있어서 공적인 처벌 행위는 모두 신성시되어 범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찮은 형벌도 그 무렵에는 사형에 못지않은 준엄한 위엄을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이야기가 시작되는 그 여름날 아침, 군중 틈에 끼어 있던 몇 명의 여인들이 머잖아 일어나려는 형벌(그것이 어떤 것이든 간에)에 대하여 이상할 만큼 흥미를 품고 있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그 당시는 예절이 그리 세련되지 못한 시대였으므로 페티코트나 파딩게일을 입은 여자들이 조심성 없이 함부로 공공장소에 나서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작지도 않은 몸뚱이를 처형대 가까이 모여선 군중들 틈으로 비집고 들이미는 일도 있었다, 영국 땅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그들 부인이나 처녀들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200여 년 뒤의 그들의 자손인 아름다운 여성들에 비하면 매우 거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후세대 여성들은 몇 대를 거쳐 내려오는 동안, 그녀들의 어머니로부터 힘과 의지력이 결여된 성격을 물려받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훨씬 부드러운 혈통과 보다 섬세하고 나약한 아름다움과 연약한 뼈대를 물려받았기 때문이다.

지금 그 감옥 문 둘레에 모여선 여자들은 저 남성 같은 엘리자베스 여왕이 여성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시대로부터 겨우 50여 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대의 사람들이다. 사실 엘리자베스 여왕과 같은 시대의 사람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며, 조국 영국의 쇠고기와 맥주, 그리고 그보다 조금도 더 나은 것 없는 정신의 양식이 그녀들의 기질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날 아침의 밝은 태양은 먼 섬나라에서 어엿한 한 사람의 여자로 자라나, 뉴잉글랜드의 거친 공기 속에서도 여위고 창백해진 일이 없는 그녀들의 넓은 어깨와 풍만한 가슴과 발그레한 볼을 비추고 있었다. 게다가 부인들로 보이는 그들이 주고받는 얘깃소리에는 그 내용이나 음량 면에서 오늘날의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대담성이 깃들어 있었다.

이것 보세요, 부인들. 위엄 있게 생긴 50대 여인이 입을 열었다. 내 얘기 좀 들어 보세요. 분별 있는 나이에다 뒷손가락질을 받을 만한 일도 없는 우리가 헤스터 프린과 같은 못된 여자를 처벌하는 것이 우리들을 위해서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네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저 못된 것이 여기 모여 있는 우리 다섯 사람 앞에 끌려나와 재판을 받는다면요. 판사님이 판결한 벌만 받고 끝날 것 같은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글쎄, 들리는 말이. . . . . .” 또 다른 여자가 말했다. “그 여자의 목사이신 딤스테일 목사님 말예요, 이런 추문이 자기 교구 내에서 발생한 것 때문에 몹시 가슴 아파하고 계신답니다.”

판사님들은 신앙심이 두터운 것은 사실이지만, 너무 인정이 많으세요. 정말이라니까.” 또 한 중년 부인이 끼어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헤스터 프린의 이마빡에다가 달군 쇠로 낙인 쯤은 찍어 줬어야 했다구요. 그랬더라면 헤스터도 뜨끔했을 거야. 하지만 그 여자는 행실이 나쁜 여자니까, 앞가슴에 뭘 붙여 줬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할 거예요! 두고 봐요. 분명 브로치나 이교도의 표시 같은 것으로 가리고는 여전히 뻔뻔스럽게 돌아다닐 테니!”

그렇지만. . . . . . 어린아이의 손목을 잡고 있던 젊은 여자가 좀 더 부드러운 어조로 말을 꺼냈다. 그 여자가 아무리 가슴의 표적을 가린다 해도, 가슴 속의 고통이야 어딜 가겠어요.”

앞가슴 위건 이마빡이건 낙인 따위가 무슨 소용이겠어요.” 하고 또 다른 여자가 큰 소리로 외쳤는데, 그녀는 재판관을 자처하고 나선 여자들 중에서도 가장 냉혹하고 못 생긴 여자였다. “그년은 우리 여자들 모두에게 창피를 주었으니까 죽어 마땅해요. 그런 것을 처벌할 법률이 없는 줄 아세요? 성서에도 있고 법률책에도 엄연히 있단 말에요. 그런데도 판사님들은 그 법률을 적용하려고 하지 않으니, 자기네 부인이나 딸자식들이 탈선한다 하더라도 아무런 할 말이 없을 거예요.”

그만하세요, 부인.” 사람들 틈에 끼어 있던 한 남자가 말했다. “여자들은 교수대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으면 정숙해질 수 없는 겁니까? 너무 지독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 이제 조용히들 하십시오. 감옥 문의 열쇠가 돌아가고 있어요. 문제의 프린 여사가 나오게 될 겁니다.”

감옥 문이 안으로부터 활짝 열렸다. 우선 어둠 속에서 햇빛 속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허리에 칼을 차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험상궂은 얼글을 한 형리의 엄숙한 모습이었다.

청교도의 가혹하고 엄격한 법률이 이 사나이의 모습에 잘 나타나 있었다. 그는 범법자에게 단호히 그 법을 적용하는 것이 맡은 바 임무였다. 왼손에 지팡이를 쳐들고 오른손으로는 젊은 여인의 어깨를 붙잡아 끌어내오고 있었다. 감옥 문 가까이 오자, 그 여인은 타고난 위엄과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라도 하듯 형리를 뿌리치고, 마치 제 자신의 의사에 따라 그렇게 하는 것처럼 바깥 세상으로 걸어 나왔다.

여인에게 안겨 있던 태어난 지 3개월쯤 된 아기는 너무 밝은 햇빛이 작은 얼굴에 닿자 눈을 깜박였다. 지금까지 어두컴컴한 지하 감방이나 침침한 방의 희미한 빛에만 익숙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젊은 여인은-그 아기의 어머니였지만-군중 앞에 완전히 모습을 나타낸 순간, 충동적으로 아기를 힘껏 가슴에 끌어안는 것같이 보였다. 그것은 모성애에서 나온 충동이라기보다는 가슴에 수 놓았거나, 꿰매 붙인 무슨 표시를 감추기 위함인 것 같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 치욕을 감춰봤자 또 하나의 치욕의 증거인 아이는 감출 수 없음을 깨달았는지 여인은 다시 아이를 팔에 내려 안았다. 그리고는 볼을 빨갛게 붉히면서도 오만한 미소를 띤 채, 거리낌 없는 시선으로 거리의 사람들과 모여선 군중들을 둘러보았다. 여인의 웃옷 가슴에는 깨끗한 빨간 붉은 금실로 섬세하게 수를 놓아 정교한 무의로 테를 두른 A자가 붙어 있었다. 그것은 아주 멋있고, 사치스러운 느낌마저 들었으며, 가히 예술적이라 할 만큼 훌륭한 솜씨로 만든 것이어서 마치 지금 입고 있는 옷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장식품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녀의 옷차림 또한 당시의 유행에 따른 것으로, 그즈음 식민지의 근검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를 훨씬 넘는 것이었다.

키도 몸집도 큰 이 젊은 여인은 나무랄 데 없이 아름다운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검고 숱이 많은 머리는 햇빛이 반사될 정도로 윤기가 흘렀다. 단아한 윤곽과 화사한 살결은 말할 것도 없고, 훤한 이마와 새까만 눈동자는 어딘지 모르게 사람을 끄는 데가 있었다. 또한 당시의 상류 여성다운 고상한 기품이 서려 있었다.

당시 상류 여성의 특징은 오늘날 여성들처럼 섬세하고 꺼져버릴 것 같은 우아함이 아니라 뭐라 말할 수 없는 위엄에 찬 것이었다. 따라서 지금 헤스터 프린이 감옥 문을 나서는 이 순간만큼 기품이 있어 보인 적은 없었다. 지금까지 헤스터를 알고 있던 사람들은 불길한 구름에 덮여 이제는 그 모습이 흐려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감싸고 있는 불행과 불명예가 오히려 후광처럼 그 아름다움을 빛나게 해 주는 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였다. 그러나 보다 예리한 눈을 지닌 사람에겐 그녀의 모습에서 어딘가 아픔의 구석이 엿보인 것도 사실이다. 그 옷은 이날 입기 위해 자신의 착상대로 직접 감옥 안에서 수를 놓아 만든 것이었는데, 그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특이성은 오히려 그녀의 정신상태, 즉 절망적이고 자포자기한 기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눈을 끌 정도로 그 옷을 입은 여인을 완전히 달라 보이게 한 것은-지금까지 헤스터 프린과 친하게 지내 오던 사람들까지도 그녀를 처음 대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게 되었는데-그 이상스러운 자수로 가슴을 장식한 주홍 글씨였다. 그 글씨는 주문과 같은 효과를 자아냈고, 헤스터를 평범한 인간관계에서 분리시켜 고립된 세계에 가두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저 여자 바느질 솜씨 하나만은 그만이야,” 구경꾼들 속에 섞여 있던 한 여자가 말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솜씨 자랑을 한 여자는 저 뻔뻔스러운 것이 처음이야! 정말이지 이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판사님들을 코앞에서 비웃어 대며 그 훌륭한 분들이 내린 형벌을 오히려 자랑으로 여긴다고 볼 수밖에 없지 뭐예요.”

그러게 말이야! 하고 모든 여자들 중에서 가장 매섭게 생긴 한 여인이 소리쳤다. 헤스터의 화려한 웃옷을 저 품위 있는 어깨로부터 벗겨 버려야 해. 저 괴상하게 수놓은 주홍 글씨를 떼어 버리고 그 자리에다 내 류머티즘에 쓰는 헝겊 조각을 대주면 썩 잘 어울릴 거야!”

좀 조용히들 하세요!” 가장 젊어 보이는 여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저 여자가 듣겠어요! 저 수놓은 글씨의 바늘 땀 하나하나가 저 여자의 가슴을 결코 편케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때 험상궂게 생긴 형리가 지팡이를 휘두르며 위엄있게 외쳤다.

, 여러분, 비키시오, 국왕의 명령이니 길을 터 주시오, 지금부터 낮 1시까지,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이 훌륭한 자수를 마음껏 볼 수 있도록 헤스터 프린을 세워 놓기로 하겠소, 어떤 죄악이든 백일하에 드러나게 마련인 정의의 고장, 매사추세츠 식민지에 축복이 있기를! , 헤스터, 앞으로 나와 그 주홍 글씨를 광장에 모인 여러분께 보이도록!”

구경꾼들 사이로 곧 길이 틔었다. 형리가 앞장서고 눈살을 찌푸린 남자들이며 매정한 표정의 여인들이 줄줄이 뒤따르는 가운데 헤스터 프린은 정해진 형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 일 때문에 거의 휴일이 되었다는 사실밖에 아무것도 모르는 장난꾸러기 아이들이 헤스터를 앞질러 뛰어가다가는 뒤돌아서서 이상한 듯이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눈을 깜박이며 양팔에 안긴 아기와 가슴에 붙어 있는 주홍 글씨를 쳐다보기도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감옥 문에서 광장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지만, 죄수의 심정으로 보자면 꽤 먼 거리로 여겨졌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비록 오만스러울 만큼 꼿꼿한 자세로 형장을 향해 걸어갔으나, 자기를 구경하려고 몰려드는 사람들의 발소리를 들을 때마다 그녀의 심장은 큰길에 내팽개쳐져 그들의 발길에 짓밟히는 듯한 아픔을 느꼈을 테니까.

그러나 고맙게도 신의 자비가 있어, 고통당하고 있는 자가 진정 그 고통의 심도를 깨닫게 되는 것은 결코 그 당장이 아니라 훨씬 뒤의 일이다. 때문에 헤스터 프린은 태연하다고 할 만큼 침착함을 잃지 않은 채 처형대에 다다를 수 있었다. 보스턴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의 처마 바로 밑에 세워져 있는 그 처형대는 마치 교회의 부속 건물처럼 보였다.

사실 이 처형대는 형구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현대인에게는 한낱 역사적이고 전설적인 유물이 되어 버렸지만, 이삼 세대 전만 하더라도 양민을 교육시키는데 있어 프랑스 혁명 당시의 테러 정치인들을 처단했던 단두대 못지않게 이 처형대가 효력을 발휘한다고 생각되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것은 형틀의 단으로써, 그 위에는 여러 사람의 눈에 띌 수 있도록 죄수가 목에 칼을 쓰고 서 있도록 만들어진 형틀이 놓여 있었다. 나무와 쇠로 된 이 장치는 마치 치욕의 그림으로 그려 놓은 듯이 뚜렷한 모양을 하고 있었다. 죄인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 이 형틀의 목적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잘못이야 어떻든 이보다 더 심하게 인간성을 모독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흔히 있는 일로써 헤스터 프린은 일정한 시간 동안 그 처형대 위에 서 있기만 하면 되었을 뿐, 수갑을 채운다든가 칼을 씌우는 형벌은 받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자기가 취할 바를 잘 알고 있던 그녀는 나무 계단을 올라갔다.

처형대는 사람들의 어깨 높이 정도였고 구경꾼들은 양 사방에서 그녀를 바라볼 수 있었다.

만일 이 청교도의 무리 속에 카톨릭 교도가 섞여 있었다면, 눈부신 복장과 가슴에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에서 성모 마리아상을 연상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연상에 불과했겠지만 수많은 저명한 화가들이 다투어 그리고자 한, 이 세상을 구제해 줄 아기를 낳으신 순결한 성모마리아의 모습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헤스터의 경우에는 인간 생명에서 가장 신성해야 할 미덕에까지도 씻을 수 없는 죄의 오점이 찍한 것이다. 즉 이 여자의 아름다움 때문에 세상은 더욱 어두워질 뿐만 아니라, 그 배를 아프게 한 아이로 인해 한층 타락한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따라서 이 장면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죄와 치욕으로 몸을 떠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보고서도, 두려움은커녕 웃어넘길 만큼 사회가 타락하지 않는 한, 그것은 이러한 떄 으레 외경감을 자아낸다. 헤스터 프린의 치욕을 목격하고 있던 사람들도 아직 이런 소박한 성품을 지니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설령 헤스터가 사형 판결을 받았다 하더라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그 잔혹함을 구경할 수 있는 그런 엄준한 사람들이었다. 사정이 다른 사회라면 이 같은 장면은 한낱 웃음거리에 불과했겠지만 이 사람들 중에는 누구도 그런 타락한 일면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아니, 만일 이런 사태를 웃어넘겨 버리려는 기분이 있었다 하더라도 엄숙하게 자리 잡고 있는 총독, 고문관들, 판사, 장군, 그리고 목사 들의 위엄있는 태도에 기가 질려 압도되고 말았을 것이다. 이들은 모두 교회당의 발코니 위에 서거나 앉아서 직책상의 위엄과 존엄성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관중의 일부를 이루고 있었는데, 법대로 선고된 형벌에는 거짓이 없고, 그 효력 또한 강하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따라서, 군중들은 심각하고 숙연한 분위기를 이루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의 냉혹한 시선이 자기에게 쏠려 자신의 가슴에 집중되고 있다는 사실에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이 불행한 여인은 가능한 한 있는 힘을 다하여 지탱하고 서 있었다. 정말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천성이 정열적이고 감정적인 헤스터는, 온갖 모욕적인 대중들의 태도가 바늘이나 독을 칠한 비수처럼 가슴을 찌를지라도 꾹 참고 견디겠다고 굳게 각오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엄숙한 태도는 그보다 더 한층 두려운 것이어서 모든 사람의 엄숙한 표정이 차라리 자기를 비웃는 비웃음으로 일그러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모든 남녀와 아이들까지 목청 높여 조소를 터뜨렸더라면, 헤스터 프린은 그들에게 오히려 멸시적인 냉소로 응수해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납덩어리처럼 무거운 침묵은 한층 더 그녀의 마음을 짓눌러 있는 힘을 다해 고함을 지르며 땅바닥으로 몸을 내던지거나 아니면, 그대로 미쳐 버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또 어느 순간엔 자기가 적나라한 구경거리가 되고 있는 이 광경 전체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같기도 하고, 형태가 뚜렷하지 않은 꿈이나 환상처럼 흐릿하게 어른거리기도 하였다. 머리의 움직임은, 특히 기억력은 이상하리만큼 활발해져서 이 서부 황부지 한구석에 있는 차갑고 거친 마을의 거리와는 다른 장면들이, 뾰족한 모자 밑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수많은 얼굴과는 다른 얼굴들이 그녀의 뇌리에 끊임없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과 학교 시절의 일들이며, 운동도 하고, 어린애다운 싸움질도 하던 일이며, 처녀 시절에 있었던 하찮은 집안 일 등등 보잘것없는 일들이 그녀의 생활에서 일어나 의마심장한 사건들과 뒤섞여 한꺼번에 되살아났다. 모든 기억들이 너무나 생생하여 모두 똑같이 중요한 뜻을 지닌 것 같기도 하고, 또 모든 것이 보잘것없는 연극 같기도 하였다. 이러한 과거의 갖가지 환상들을 머리 속에 그려 보게 됨은 현실의 잔인한 고통에서 벗어나고픈 본능적인 의식에서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처형대는 헤스터 프린에게 행복한 어린 시절 이후 그녀가 걸어온 인생의 모든 모습을 뚜렷이 전개시켜 보여 주는 일종의 전망대가 되었다. 이 비침흔 단 위에 서 있는 그녀의 눈앞에 그리운 영국의 고향 마을이며 그녀가 어린시절을 보냈던 집이 떠올랐다. 우중충한 잿빛 띤 낡은 집일망정 그 현관에는 유서깊은 가문의 표시인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이마가 벗겨진, 엘리자베스 왕조 시대의 구식 주름깃 위에 멋있게 흰 수염을 날리던 아버지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리고 어머니의 모습도 떠올랐다. 그 자상함과 깊은 애정에 넘치던 어머니의 얼굴은 그녀가 죽은 뒤에도 딸이 걷는 인생행로에 나타나 조용한 훈계의 말을 건네주곤 하였다. 여기에 또한 그녀 자신의 얼굴도 보였다. 아름답게 빛나던 소녀시절의 얼굴과 늘 들여다보던 흐릿한 거울 속까지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얼굴이 있었다. 나이를 꽤 먹은 남자의 얼굴, 수많은 책들을 읽느라고 램프의 불빛 때문에 눈이 거슴츠레해지고 얼굴이 파리하게 여윈 학자풍의 남자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 약한 시력도 인간의 마음을 꿰뚫어 보려고 할 때에는 불가사의한 통찰력을 지니는 것이었다. 서재에 파묻혀 은둔 생활을 하는 그 남자는 약간 불구의 몸인지라 왼쪽 어깨가 오른쪽 어깨보다 조금 올라간 듯했던 것을 헤스터 프린은 기억하고 있었다. 다음으로 회상의 화랑에 떠오른 것은 유럽 어느 도시의 비좁고 복잡한 거리, 높다란 잿빛집들, 훌륭한 사원, 구시대의 색다른 건축 양식의 공공 건물 등이었다. 거기에는 역시 그 불구의 학자와 관련된 새로운 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새로운 생활이라고는 하나 허물어져 가는 벽에 낀 푸른 이끼처럼 케케묵은 것에 의존해 사는 생활에 지나지 않았다.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이런 장면들 대신에 마지막으로 나타나 것은 청교도 식민지의 보잘것없는 광장이었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엄격한 시선으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가슴에 금실로 수놓은 주홍 글씨 A를 달고, 아이를 안은 채 처형대 위에 선 헤스터 프린, 바로 그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이것이 진정 현실이란 말인가! 이 아이와 이 치욕이 현실인가를 확인이라도 하듯, 아기를 가슴에 꼭 껴안자, 아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주홍 글씨를 내려다보며 손으로 만져 보기까지 했다. 역시 그러했다. 이 두 가지만이 현실이었다. 그 밖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3. 인지

 

이 주홍글씨의 여인은 군중 틈에서 불현듯 마음을 사러잡는 어떤 인물을 발견하자, 자기가 지금 비난에 찬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구경거리가 되고 있다는 의식으로부터 겨우 해방될 수 있었다. 그곳에는 인디언 한 사람이 독특한 복장을 하고 서 있었다. 인디언들이 영국 식민지를 방문하는 것은 벌로 이상한 일이 아니어서 한두 사람의 인디언이 군중 속에 섞여 있다 하더라도 헤스터 프린의 주의를 끌 리는 없었다. 그런데 이 인디언 옆에는 친구인 듯한 백인 한 사람이 문명인인지 야만안인지 분간할 수 없는 기묘한 옷차림을 하고 서 있었다.

이 백인은 자그마한 몸집에 얼굴에는 주름이 깊숙이 잡혀 있었지만 아직 노인이라고 할 만한 나이는 아니었다. 이목구비에는 놀랄 만한 지력이 엿보였다. 정신이 발달함으로 해서 육체 또한 저절로 그 영향을 받아 용모가 형성된 그런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그 사람은 색다른 복장으로 몸의 특징을 감추거나, 아니면 눈에 띄지 않도록 하고 있었지만 한쪽 어깨가 조금 높다는 것을 헤스터 프린은 식별할 수 있었다.

이 여윈 얼굴과 약간 불구의 몸을 본 순간, 헤스터 프린은 또 한 번 아기를 가슴에 끌어안았는데, 너무도 갑자기 안았기 때문에 가엾게도 아기는 아픈 듯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엄마는 그 울음 소리도 못 들은 것 같았다.

광장에 도착하여 헤스터가 그를 발견하기 전부터 이 사나이는 벌써 헤스터 프린을 주시하고 있었다. 인간의 내면을 꿰뚫어 보는 듯한 눈초리로 변했다. 번민하는 듯한 고통의 빛이 그 얼굴에 떠올랐다. 마치 한 마리의 뱀이 그의 얼굴 위를 잽싸게 지나가다가 잠시 멈춰 똬리를 트는 것처럼 그의 표정엔 몸이 비틀리는 듯한 공포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재빨리 의지력으로 억눌러 버렸다. 아주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는 곧 침착한 표정을 되찾았다. 다음 순간에도 이미 고뇌의 빛은 눈에 띄지 않았고 그것도 마침내 마음의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헤스터 프린의 눈이 자기 눈을 응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자, 그는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손가락을 올려 살짝 신호를 하더니 그 다음엔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서 그는 옆에 서 있는 마을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고 정중한 태도로 말을 걸었다.

실례합니다만, 도대체 저 여자는 누구입니까? 무슨 이유로 저렇게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겁니까?”

이 고장엔 처음 오시는 분인 게로군요. 하며 그 사람은 그와 함께 있는 인디언을 이상한 듯이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렇지 않다면, 헤스터 프린의 탈선 행위에 대한 소문은 이미 들어서 아실 텐데요. 저 여자는 딤스테일 목사님의 교회에서 아주 불미스러운 짓을 저질렀답니다.”

그랬었군요.” 그는 대답했다. “나는 이 고장이 처음이며, 본의 아닌 방랑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바다와 육지에서 비참한 재난을 만나 오랫동안 남쪽에서 인디언에게 붙잡혀 있었답니다. 이제야 겨우 몸값을 지불하기로 하고 여기 있는 인디언에게 끌려서 여기로 오는 길입니다. 그러니 헤스터 프린의-아마 그런 이름이었죠? 저 여자가 무슨 죄를 지었으며, 왜 저런 처형대에 서게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 해 드리죠. 마을 사람은 말했다. 황야에서 그렇게 고생하신 끝에, 부정을 저지른 자는 반드시 찾아내어 높은 분과 일반 시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처벌하는 이런 훌륭한 고장을 찾아오시게 되니 얼마나 기쁘십니까. 저 여자는 말입니다. 영국 태생으로 오랫동안 암스테르담에 살고 있었던 어느 학자의 부인이랍니다. 그 남편은 퍽 오래 전에 미국으로 건너와 우리 매사추세츠 식민지 사람들과 운명을 같이 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우선 부인을 먼저 보내고, 자기는 뒤처리를 위해 남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글세, 저 여자가 이 보스턴에서 두 해 가까이 살도록 그 프린 씨라는 학자로부터는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지 뭡니까. 그러자 혼자 살던 저 젊은 부인이 그만 잘못을 저지르게 된 거죠.”

, 그랬었군요.” 나그네는 쓰디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말씀대로 그 남자가 학자였다면, 그런 것도 책에서 배워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그런데 실례입니다만, 저 갓난아기 말인데요, 난 지 서너 달이나 외었을까요? 프린 부인이 안고 있는 아기 아버지는 누구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그 점이 분명치 않단 말입니다. 수수께끼를 풀어 줄 명판관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어요.” 하고 마을 사람은 대답했다. “재판관들도 노력을 했지만 헤스터가 도무지 입을 열지 않아 소용이 없었어요. 어쩌면 불의의 짓을 한 그 남자도 하느님만이 보고 계시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남몰래 이 슬픈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수수께끼를 풀려면 그 학자 선생님이 와야 되겠군요.”

나그네는 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그렇죠, 아직도 살아 있다면 말입니다.” 마을 사람은 대답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곳 매사추세츠의 재판관님들은 저 여자가 젊은 미인이라 타락의 유혹도 많았을 것이고, 게다가 십중팔구 남편은 바다 속에 빠져 죽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에 법률대로 엄정한 판결을 내리지 않았던 것이지요. 본디 그 죄에 대한 형벌은 사형입니다. 그러나 재판관님들의 자비심과 동정으로 프린은 처형대 위에 3시간 동안 서 있을 것과 그 다음은 죽을 때까지 가슴에 치욕의 표시를 달아야 한다는 판결을 받은 겁니다.”

훌륭한 판결입니다!” 나그네는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면 저 여자는 그 수치스러운 글자가 무덤의 비석에 새겨지는 날까지 죄 짓는 자에 대한 산 교훈이 되겠군요. 그러나 불륜의 정을 통한 상대자가 저 여자와 함께 처형대 위에 서지 않았다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군요, 하지만 그 남자도 머지않아 알게 될 겁니다. . . . . 알게 되고말고요!”

그는 이야기를 해 준 마을 사람에게 정중히 머리를 숙이고, 같이 온 인디언에게 몇 마디 말을 속삭이더니 군중 틈을 헤치고 사라졌다.

그동안에도 계속 헤스터 프린은 나그네 쪽으로 눈길을 못박은 채 처형대위에 서 있었다. 너무도 뚫어져라 쳐다보았으므로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오직 그와 그녀만이 남은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처럼 그와 단둘이 만난다는 것은, 지금 이렇게 뜨거운 한낮의 햇빛을 얼굴에 받으며 수치스러운 모습으로 만나는 것보다 훨씬 더 두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가슴에는 치욕의 표시인 주홍 글씨를 달고 팔에는 불륜의 씨를 안고 있다. 마치 축제 구경이라도 하러 나온 듯이 몰려나온 군중들에게, 조용한 나로 불빛 속에서, 행복한 가정의 그늘에서, 혹은 교회당 안에서 베일 밑으로나 볼 수 있는 얼굴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물론 그녀에게 지극히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많은 구경꾼들 사이에서 그녀는 일종의 도피처를 발견하였다. 그와 단둘이 정면으로 만나는 것보다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사이에 두고 대하는 것이 그녀로서는 훨씬 낫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그녀는 대중 앞에 자기 몸을 드러냄으로써 오히려 그로부터 자신을 감출 수 있었고, 이런 구원의 손길이 없어지는 순간이 두려웠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었으므로 뒤에서 군중 전체에게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자기 이름을 되풀이해서 부르는 것도 듣지 못하고 있었다.

듣거라, 헤스터 프린.” 하고 크고 엄숙한 목소리가 말했다.

앞서 말했듯이 헤스터 프린이 서 있는 처형대 바로 위에는 교회당에 붙은 발코니랄까, 지붕이 없는 관람석이 있었다. 당시에는 여러 가지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정관들이 이곳에 모여서 갖가지 공표문을 발표하곤 하였다. 바로 여기에 지금 우리가 얘기하고 있는 광경을 보기 위해 벨링햄 총독이 앉아 있었고, 그 둘레에는 네 명의 친위병이 의장대처럼 창을 들고 서 있었다. 총독은 모자에 검은 깃털을 꽂았고, 외투 단에는 수를 놓았으며 그 안에 검은 우단 웃옷을 입고 있었는데, 주름 잡힌 얼굴에는 대단한 경력이 엿보이는 나이 지긋한 신사였다. 이 새 식민지 사회의 대표자로서는 나무랄 데 없는 적임자였다. 왜냐하면 이 사회의 기원과 진보 그리고 오늘날의 발전은 젊은이의 충동적인 혈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엄하게 쌓아올린 성인의 정력과 노인의 평범한 생활의 지혜로 이룩된 것이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의 허황한 상상이나 기대가 최대 한도로 억제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큰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 통치자를 둘러싸고 있는 상류 명사들의 빼어나 점은, 권위있는 모습이 신의 세계의 숭고함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잘 어울리는 위엄있는 태도였다. 이 사람들이 공정하고 현명하며,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온 세상을 뒤져 봐도 지금 헤스터 프린이 얼굴을 돌린 발코니 쪽에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이 사람들보다 죄 지은 여인의 마음을 심판하고 선악의 얽힘을 풀어헤치는 일에 능력이 없는 인사를 찾아낸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주홍 글씨의 여인도 동정을 기대할 만한 곳이 있다면 오히려 그것은 관대하고 따뜻한 군중의 마음속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했다. 왜냐하면 눈길을 들어 발코니 쪽을 바라보았을 때, 이 불행한 여인은 더 한층 창백해진 얼굴로 떨고 있었던 것이다.

헤스터를 부른 것은 유명한 목사 존 윌슨이었다. 보스턴에서 가장 나이 많은 목사로서 그 무렵 성직에 있던 사람이 모두 그러했듯이 대학자인데다 또한 친절하고 온화한 성경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이 후자의 성격은 타고난 재능 만큼 주의깊게 계발된 성질은 아니어서, 사실상 그에게는 자랑거리라기보다는 오히려 수치거리였다.

그의 모자 밑으로는 반백의 머리카락이 엿보였고, 서재의 램프불에만 익숙해진 잿빛 눈은 헤스터가 안고 있는 아이처럼 직사 광선을 받아 껌벅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옛날 설교 책 첫머리에서 볼 수 있는 흐릿한 동판 초상화와 비슷했다. 그런 초상화의 인물이 인간을 심판할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듯, 목사 또한 이런 자리에 나서서 인간의 죄나 정열이나 고뇌의 문제에 간섭할 아무런 권리도 지니지 않은 인물이었다.

헤스터 프린이여.” 하고 목사는 말했다. “여기 있는 젊은 친구의 설교는 그대도 익히 들어 온 바이겠지만, 나는 이 젊은 목사와 지금껏 얘기를 했소.” 윌슨 목사는 곁에 있는 얼굴이 파리한 젊은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내가 이 신앙심 깊은 젊은이에게 하느님이 보시는 앞에서, 현명하고도 고결한 위정자들 앞에서,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듣고 있는 앞에서, 그대가 저지른 비열하고 무도한 죄에 대해 설교하도록 권유하였소. 이 젊은이는 나보다도 그대의 타고난 성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대의 완강한 고집을 꺾기 위해서 위협을 하든, 또는 부드럽게 달래든, 보다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고, 그대 또한 그대를 유혹하여 타락시킨 남자의 이름을 밝히고야 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이 젊은이는 내 의견에 반대하기를 나이보다는 현명한 사람임에는 틀림없으나, 역시 젊은 사람에게 흔히 있는 수줍음 탓이겠지만, 이런 대낮에 구경꾼이 많은 앞에서 여자의 비밀을 고백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여자의 본성을 손상시키는 일이라는 거요. 그러나 내가 이 젊은이를 납득시키려고 애쓴 바와 같이, 사람이 수치로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죄를 짓는 데 있는 것이지 그것을 사실대로 고백하는 데 있는 것은 아니오. , 당신 의견은 어떻소, 딤스테일 목사. 이 가련한 죄인의 영혼을 다룰 사람은 당신이라야 되겠소, 아니면 나라야 되겠소?”

발코니에 자리 잡은 위엄있는 사람들이 술렁거렸다. 벨링햄 총독은 젊은 목사에 대한 존경심에서 다소 부드럽기는 하였으나 고집스러운 목소리로 그 술렁거림을 대변했다.

딤스테일 목사! 이 여인의 영혼을 구하는 일은 당신에게 달려 있소. 따라서 이 여자를 설득하여 회개시키고, 또 회개한 증거로 고백을 시키는 것이 당신의 의무라고 생각하오.”

총독이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간청하는 소리를 듣자 군중들은 딤스테일 목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이 젊은 목사는 영국의 어느 유명한 대학을 졸업하고, 그 당시의 신학문을 이 미개의 황무지에 전하기 위해 건너온 사람이었다. 그의 웅변과 종교적인 정열은 이미 목사로서의 유망한 앞길을 약속받고 있었다. 또한 그의 용모는 남의 이목을 끌만큼 뛰어나게 수려하였다. 희고 훤한 이마와 우수에 잠긴 커다란 갈색 눈, 그리고 일부러 꼭 다물지 않으면 바르르 떨리기 쉬운 입술은 극도로 예민한 감수성과 강한 자제력을 나타내고 있었다. 타고난 비범한 재능과 학식에도 불구하고 이 젊은 목사는 인생의 바른 궤도를 벗어난 곳에서 방황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의 표정은 몹시 불안스러워 보였고, 근심과 공포에 사로잡혀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딘가 은신처에 묻혀 있어야만 비로소 침착해질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목사로서의 직책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그늘진 오솔길을 걸었으며, 언제나 소박한 어린이 같은 생활을 했다. 그러나 대중 앞에 나서서 설교를 할 때면 신선하고 향기 높은 이슬처럼 순결한 사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것은 여러 사람의 말대로 천사의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것이었다.

윌슨 목사와 총독은 이러한 젊은 목사를 앞으로 끌어내어 대중이 듣고 있는 가운데, 더렵혀지기는 했지만 역시 신성한 여성의 비밀을 고백시키도록 명령했다. 이 난처한 처지에 놓인 젊은이의 볼에는 핏기가 가시고, 입술은 극심하게 떨렸다.

저 여인에게 말을 거시오,” 하고 윌슨 목사는 말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저 여자의 영혼에 중대한 계기를 줄 뿐아니라, 총독 각하도 말씀한 바와 같이 저 여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는 당신 자신에게도 중대한 일이오. 진실을 고백하도록 저 여인을 타이르시오.”

딤스테일 목사는 기도를 올리듯 고개를 수그리더니 조금 앞으로 나섰다.

헤스터 프린이여. 그는 발코니에서 몸을 앞으로 내밀며 여인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당신도 여기 계신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을 테니까 나에게 주어진 책임을 잘 알고 있을 줄 아오. 당신의 마음이 편안해지고, 이 지상에서 받는 형벌이 당신의 영혼을 구제하는 데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과 함께 죄를 범하고 당신과 함께 괴로워하고 있는 그 사람의 이름을 말하기 바라오! 그 남자에 대한 그릇된 동정이나 친절한 마음에서 입을 다물어서는 안 되오. 알겠소? 헤스터! 그 남자가 높은 곳에서 내려와 지금 당신이 서 있는 그 수치의 단상 위에 함께 서야 하는 일이 있을지라도, 그 편이 차라리 평생을 두고 죄를 숨기는 것보다는 월씬 나을 테니까요. 당신이 침묵을 지키는 것이 그 남자에게 모슨 도움이 되겠소? 그 남자로 하여금 타락의 조를 저지른 위에 위선의 죄를 더하도록 강요하는 것밖에 더 되겠고. 하느님이 당신에게 여러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도록 한 것은 당신이 가슴 속의 죄악과 가슴 밖에 있는 비애를 공개적으로 회개할 수 잆도록 해 주신 것이오. 지금 당신의 입술 앞에 놓여진 그 술잔, 입에는 쓸지 모르나 영혼에는 이로운 술잔, 당신은 그것을 그 남자로부터 뺴앗고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오!”

젊은 목사의 떨리는 듯한 목소리는 상냥하면서도 우렁차고 엄숙했으나, 말이 막히는 듯했다. 말 하나하나에 대한 뜻보다는 오리려 그 감정이 뚜렷이 전달되었으므로 듣는 사람의 마음에 공감을 불러일으켜, 너나할것없이 한 마음 한 뜻으로 묶어 버렸다. 헤스터의 품에 안긴 아기까지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지금까지 멍하던 눈망울을 딤스테일 목사 쪽으로 돌리더니 기쁜지 슬픈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조그만 두 팔을 내밀었다. 목사의 말이 어찌나 힘차게 들렸던지 사람들은 헤스터 프린이 그 죄인의 이름을 밝히든가, 아니면 죄인 자신이 그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어쩔 수 없는 심정에 이끌려 스스로 처형대 위로 올라갈 것으로 생각했다.

헤스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자 윌슨 목사가 격한 목소리로 외쳤다. “여인이여, 하느님의 자비심도 한도가 있는 법이오. 그 갓난아기도 목청이 있기에 그대가 방금 들은 충고의 말을 뚜렷이 확인하고 있지 않소. 남자의 이름을 밝히시오! 말하고 회개한다면 그대의 가슴에서 주홍 글씨를 떼어낼 수도 있소.”

싫습니다!” 헤스터는 윌슨 목사가 아닌 젊은 목사의 고뇌에 찬 눈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이것은 가슴 싶이 찍힌 낙인이므로 떼어도 헛일입니다. 게다가 저는 제 고뇌 외에 그분의 고통까지도 참고 견디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말해라!” 또 하나의 목소리가 처형대를 둘러싼 군중 큼에서 냉혹하고도 날카롭게 들려 왔다. “말해라, 그 아이에게 아비를 찾아 줘라!”

못 하겠어요!” 헤스터는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지면서도 귀에 익은 그 남자의 목소리에 대답했다. “이 아이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야 합니다. 지상의 아버지는 몰라도 됩니다!”

저 여자는 말하지 않을 거요!” 손을 가슴에 얹은 채 발코니에서 몸을 내밀고 자신의 설득의 결과를 기다리고 있던 딤스테일 목사가 중얼거렸다. 그는 숨을 크게 내쉬며 자기 자리로 물러섰다. “여자의 마음은 이토록 강하고 넓은가! 저 여자는 입을 열 것 같지 않소!”

불쌍한 죄인의 고집스러운 심리 상태를 알아차리자, 윌슨 목사는 이런 일에 대비해 미리 준비했던 온갖 죄악에 대한 설교를 군중을 향해 시작했다. 그는 이 치욕스런 주홍 글씨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 한 시간 이상이나 열변을 토하였기 때문에 그 상징은 듣는 사람의 가슴속에 새로운 공포심을 싹타게 하여 마치 그 주홍색은 지옥의 업화에서 가져오기라도 한 것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헤스터 프린은 몹시 피곤하고 넋나간 듯안 모습으로 치욕의 단 위에 서 있었다.

이날 아침, 헤스터는 온 힘을 다하여 견디어 냈다. 그녀는 심한 고통을 받았을 때 쉽게 기절하여 그로부터 도피하는 그런 기질의 여자는 아니었으므로, 정신만이 돌처럼 무감각한 껍질 밑에 도피처를 찾았을 뿐 육체적인 기능은 여전히 작용하였다. 따라서 설교자의 목소리는 그녀의 귓전에서 윙윙 울려 왔으나, 그야말로 마이동풍에 지나지 않았다.

목사의 설교가 막바지에 이르렀을 즈음 아이의 울음소리가 찢어지는 듯 주위의 공기를 뒤흔들어 놓았으나, 헤스터는 기계적으로 달래려 했을 뿐 아이의 고통을 안스러워하는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이런 망연한 모습으로 헤스터는 군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감옥 문 안으로 다시 모습을 감췄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주홍 글씨가, 감옥으로 들어가는 어두운 복도에서 무시무시한 빛을 발하더라고 수군거리는 것이었다.

 

 

4. 만남

 

감옥으로 돌아온 뒤, 헤스터 프린의 신경은 극도로 흥분돼 있었다. 끊임없는 감시가 없다면 자기 몸을 헤치거나 불쌍한 갓난아기에게 미치광이처럼 난폭하게 굴었을지도 몰랐다. 해질 무렵이 되어 흥분은 더욱 심해져 아무리 꾸짖고 벌을 주겠다고 위협해도 전혀 명령을 따르려 하지 않았으므로 브래킷 간수장은 의사를 부르기로 했다. 그 의사는 현대의학에 정통할 뿐 아니라, 숲 속에서 나는 약초에 대해서도 원주민보다 잘 아는 그런 사람이었다. 사실 의사의 간호가 필요한 것은 헤스터 자신보다도 오히려 갓난아기로, 매우 위급한 상태였다. 엄마의 가슴에서 생명의 자양을 흡입하는 동안, 그녀의 온몸에 충만해 있는 혼란과 고뇌와 절망을 모조리 빨아들인 모양이었다. 고통의 발작으로 몸을 뒤틀고 있는 아기의 모습은 헤스터 프린이 종일 견디고 있던 마음의 고통을 그 어린 몸뚱이로 나타내고 있는 것 같았다.

간수장 뒤를 따라 어두컴컴한 감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군중 속에서 유별나게 주홍글씨 여인의 관심을 끌었던 그 이상한 모습의 남자였다. 그는 이 감옥에 머물게 되었다. 특별히 무슨 죄를 범해서가 아니라, 행정관들과 인디언 추장과의 사이에 벌어질 몸값에 대한 회담이 끝날 때까지 가장 편리하고 적당한 장소로써 당분간 이곳에 머물기로 한 것이다. 이 남자의 이름은 로저 칠링워드였다. 간수장은 그를 감방으로 안내하고 잠시 그곳에 머뭇거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감방이 아까보다도 조용해진 데 대해 놀라고 있었다. 갓난아기는 여전히 괴로워하고 있었으나, 헤스터 프린은 죽지 않았나 싶을 정도로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미안하지만 자리를 비켜 주지 않겠습니까?” 하고 의사가 말했다. “문제 없소, 간수 양반. 이제 곧 이 감옥을 조용히 해 드리리다. 프린 부인이 지금까지보다 말을 고분고분 잘 듣도록 해 드리겠소이다.”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야 선생님의 의술은 제가 보증해 드리죠!” 브래킷 간수장은 말했다. “정말로 이 여자는 신들린 사람 같습니다. 채찍으로 악마를 쫓아낼까 했으나 그럴 수도 없어서. . . . . .”

스스로 의사라고 청하는 이 기묘한 사나이는 감방에 들어올 때부터 의사다운 침착한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군중 속에서 그를 발견하고, 이 여인이 뚫어지게 바라보던 것으로 보아, 두사람 사이에는 어떤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 명백하였지만, 잠시 뒤 간수장이 나가고 단둘이 남았을 때에도 그의 태도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는 우선 아이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손수레 침대 위에서 몸을 뒤틀며 울고 있는 아이의 괴로움을 덜어 주는 일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일이었다. 그는 아이를 세밀히 진찰하더니, 옷 속에서 가죽 가방을 꺼내어 열었다. 그 가방에는 여러 종류의 의약품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를 물컵에 타면서 말했다.

연금술을 연구한데다 1년 이상이나 약초의 효험을 잘 아는 사람들 속에서 살았으므로 나는 의학의 대가라고 하는 사람들보다도 훨씬 용한 의사가 되어 버렸지. , 여기있소. 이 아이는 당신 아이지 나와는 아무런 인연이 없소. 목소리나 얼굴 생김새로 보더라도 나를 아비라고 생각지 않을 것이오. 이 물약을 당신 손으로 먹이시오.”

헤스터는 그가 내민 약을 물리치며 두려운 눈초리로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이 어린 것에게 앙갚음을 하시려는 건가요?”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의사의 대답은 냉담한 것 같기도 하고, 상대방을 달래는 것 같기도 했다. “이 불쌍한 아비 없는 자식을 못 살게 굴어 봤자 내게 무슨 소용이 있겠소? 이 약은 잘 듣소. 이 애가 내 아기라 할지라도---그렇소, 나와 당신 사이에 태어난 아기라 할지라도---역시 이것 이상의 약은 없을거요.”

여인은 사리를 분별한 만한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계속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자 의사는 아이를 두 팔로 안더니 물약을 먹여 주었다. 약은 곧 효력을 나타내어 의사의 말을 확실하게 입증해 주었다. 어린 환자의 신음 소리가 멎었다. 이어 괴로운 몸부림도 차차 가라앉았다. 불과 몇 분 안 되어, 고통이 없어진 아이들에게서 흔히 보듯이 아이는 조용히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의사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이 사나이는 이어서 어머니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조용히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서 맥을 짚고 나더니 상대방의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 시선은 퍽 낯익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먹서먹하고 냉혹하였기 때문에, 그녀는 심장이 움츠려드는 듯하였다. 마침내 진찰을 마친 그는 다른 물약을 조제하면서 말했다.

나는 레테도 네펜디도 모르지만, 황야에 있는 동안 여러 가지 새로운 비법을 배웠소. 이것도 그 중의 하나요. 패러셀서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내 학문과의 교환 조건으로 인디언이 가르쳐 준 처방이니까 마셔 보오. 깨끗한 양심보다 위로하는 힘은 덜하겠지만. 하기야 그런 양심은 나에게도 없소만, 하여간 이것을 마시면 날뛰는 파도에 뿌린 기름처럼 당신의 흥분된 격정이 가라앉을 것이오.”

그는 헤스터에게 컵을 내밀었고, 헤스터는 상대방의 얼굴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지켜보다가 받아들었다. 공포의 표정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도대체 이 사나이의 속셈은 무엇일까 하는 의혹에 찬 표정이었다. 헤스터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죽을 생각도 해 보았어요. 그냥 죽어 버릴까 하고 말이에요. 나 같은 여자가 기도를 했다는 것은 곧이들리지 않겠지만, 죽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답니다. 그렇지만 이 컵 안에 독이라도 들어 있다면 내가 마시기 전에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세요. , 보세요, 이렇게 입술을 댔습니다.”

그대로 마셔 두는 게 좋을 거요.” 그는 여전히 냉담하고 침착한 태도로 말했다. “뜻밖에도 나라는 사람을 잘 모르고 있군. 헤스터. 내가 하는 일이 늘 그렇게 얄팍한 것이던가? 비록 내가 복수를 회책하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을 생명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약을 주는 편이 훨씬 더 그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 아니겠소? 당신을 살려 두어야만 이 낙인 찍힌 치욕의 표시가 언제까지나 당신 가슴에서 불타고 있을 게 아니오?”

그러면서 그가 기다란 검지를 주홍색 글씨에 대자 그것은 갑자기 새빨갛게 불타올라서 그녀의 가슴속까지 타들어가는 듯하였다. 그는 헤스터가 자기도 모르게 움찔하는 것을 보자 싱긋이 웃었다.

그러니까 당신은 살아 있어야 하고, 언제까지나 업고를 치르며 살아야 하오. 뭇사람이 보는 앞에서, 당신이 한 때 남편이라 부른 일이 있던 남자 앞에서, 그리고 저 어린애가 보는 앞에서 말이오, . 당신이 오래 살 수 있도록 이 물약을 들어요.”

그 이상의 권고를 받을 필요는 없었다. 헤스터 프린은 물약을 쭉 들이키더니 의사의 지시대로 아이가 잠들어 있는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의사는 방안에 놓여 있는 오직 하나의 의자를 끌어당겨 그녀 옆으로 다가앚았는데, 이러한 그의 행동에 헤스터는 몸을 부르르 떨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면에서든, 원리원칙에서든, 아니면 세련된 가면을 뒤집어쓴 잔혹성에서든, 하여간 육체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 준 다음, 이번에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남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응대하려는 것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헤스터, 당신이 왜 이런 꼴이 되었는지, 아까 본 바대로 어쨰서 처형대위에 서게 되었는지 그 이유는 묻지 않겠소. 이 이유야 뻔한 노릇 아니겠소? 나의 어리석음과, 당신의 유약함 탓이니까. 나는. . . . 사색의 인간이었소. 수많은 큰 도서관의 책벌레였소. 끝도 없는 지식욕을 채우고자 좋은 세월을 다 보내고 이제 늙은 몸이 되었으니, 이런 내가 당신처럼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무슨 가치가 있겠소? 날 때부터 불구였던 내가 젊은 여자와 같이 하며 지적인 재능으로 그 모자라는 부분을 덮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은게 처음부터 잘못이었소. 남들은 나를 현명하다고 하오. 현명하다는 말이 자신의 일에 관해서도 적용된다면, 이번 일 역시 예측했어야 옳았던 거요. 어두운 숲 속을 벗어나 이 그리스도 교도의 식민지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이미 나는 확실히 알고 있었어야만 했소. 즉 내 눈앞에 가장 먼저 나타날 것은 사람들 앞에 치욕의 초상처럼 서 있는 당신이란 것을. 아니, 남편과 아내로서 교회의 돌층계를 내려오던 그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길에 봉화불처럼 빨갛게 타오르던 주홍 글씨가 보였어야 했던 거요.”

당신도 알고 있었을 거예요.” 헤스터가 입을 열었다. 몹시 참담한 심경이었지만 자신의 치욕의 표시에 대해 은근히 비꼬는 이 마지막 말은 차마 참고 들을 수가 없었다. “처음부터 내겐 당신에 대한 애정 같은 건 없었다는 것을, 또 그런 체한 일도 없었어요.”

옳은 말이오!” 그는 대답했다. “역시 내가 어리석었었소! 방금도 말했잖소. 그러나 그때까지의 나의 인생은 허송세월의 연속이었소. 세상에 즐거움이라곤 없었소! 나의 마음은 손님을 초대할 객실은 많았지만, 난로 하나 없는 쓸쓸하고 냉랭한 커다란 집이나 다름없었소. 나는 뭔가 거기에 불을 붙여 보고 싶었소. 그다지 허황된 꿈은 아닐 것 같았소. 늙은 데다 불구자인 주제에. . . . 세상 사람 누구나가 붙잡을 수 있게 온 천지에 흩어져 있는 소박한 행복을 지금부터라도 잡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꿈이었으니 말이오. 그래서 헤스터, 나는 당신을 내 마음 가장 깊숙한 곳에 맞아들여 당신이 그곳에 있으므로 해서 생기는 내 마음의 훈김으로 당신을 따뜻하게 해 주고 싶었던 거요!”

내가 당신을 배신했어요.” 헤스터는 중얼거렸다.

배신이야 서로 한 셈이지.” 그는 대답했다. “애초에 배신한 것은 바로 나요. 꽃봉오리처럼 젊은 당신을 속이고 늙은 나와 어색하고 거짓된 관계를 맺게 했으니 말이오. 지금까지의 사색이나 철학이 헛된 것은 아니었으니 당신에게 복수한다거나 흉계를 꾸민다거나 하는 일은 하지 않겠소. 우리는 아무에게도 서로 잘잘못이 없는 셈이오. 다만 헤스터, 우리에게 못할 짓을 한 그남자는 살아 있소! 그 사람이 대체 누구요?”

그건 말할 수 없어요!” 헤스터 프린은 단호한 태도로 대답하며 상대방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만은 말할 수 없어요!”

절대로 안 된다는 말이로군?” 그는 음울하고 자기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고! 이것 보오. 헤스터. 전심전력을 다해 한가지 비밀을 밝히기 위해 몰두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무슨 일이건 어느 한도까지는-외부의 일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세계의 일이든지간에 비밀은 반드시 밝혀지기 마련이오. 당신은 남의 일을 캐내기 좋아하는 군중으로부터라면 그 비밀을 지킬 수 있을는지 모르오. 목사나 재판관의 눈을 속일 수는 있을 것이오. 오늘 낮에 당신에게서 처형대에 나란히 서야 할 그 남자를 알아내려고 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니 말이오. 그러나 나는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를 찾을 것이오. 책에서 진리를 찾아낸 것처럼 그 남자도 꼭 찾아내고야 말 것이오. 그 남자를 만나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까닭도 없이 떨게 될 것이고, 나는 그를 의식할 수있을 것이오. 언젠가는 내 손으로 꼭 찾아낼 거요!”

주름진 학자의 눈이 불길처럼 번뜩였다. 헤스터 프린은 가슴속에 간직한 비밀을 혹 그가 알아챌까 두려워서 두 손으로 가슴을 끌어안았다.

당신은 끝내 그자의 이름을 못 대겠다는 거요? 아무래도 내가 알아내고 말 텐데.” 그는 마치 운명이 자기 편이 되기라도 한 듯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그자는 당신처럼 치욕의 표시를 가슴에 달고 있지 않을진 모르나 내게는 그 표시가 보일 것이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소! 내가 하느님께서 그자에게 내리는 처벌에 간섭하거나, 인간이 만든 법률의 손을 빌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마오. 그자의 생명을 해치려는 일을 꾸미리라는 생각도 하시오. 명예를 손상시키는 일도 없을 것이오. 필시 평판 높은 사람일 테지만, 살려둘 거요! 결코 죽일 필요는 없는 것이오. 명예의 껍데기 속에 숨어 살게 내버려두겠소. 그래도 필경에는 내 손아귀에 들어올 것이 틀림없으니까!”

당신의 행동은 자비러운 것 같지만. . . .” 하고 헤스터는 공포감에 사로잡혀 말했다. “당신 말을 듣고 있으니 당신은 정말 무서운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한 가지만, 나의 아내였던 당신에게 약속해 달랄 것이 있소.” 학자는 말을 계속했다. “당신이 사랑하는 남자의 비밀을 지키고 있듯이 내 비밀도 또한 지켜 주시오!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은 이 고장에 아무도 없소. 그러니 과거에 당신이 나를 남편이라 불렀다는 말을 절대로 입 밖에 내지 말아 달란 말이오! 이 황량한 지구의 끝에서 나는 살 작정이오. 어딜 가나 방랑객 신세, 모든 인간사로부터 고립된 내가 아니오? 그렇지만 이곳에는 나와 끊을래야 끊을 수 없는 한 사람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이가 있소. 사랑하건 미워하건, 옳건 그르건 그것은 문제가 아니오! 헤스터 프린 당신과, 당신에 관련된 모든 것은 나의 것이오. 내가 있는 곳은 당신과 그 남자가 있는 곳이기도 하오. 그러나 나의 정체만은 밝히지 말아 주기를 부탁하오!”

왜 그러기를 바라시지요?” 무슨 까닭인지는 몰랐으나, 헤스터는 이 비밀의 약속에 대해 주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당당히 정체를 밝힌 뒤, 나를 버리지 않는 거죠?”

그것은 아내에게 배신당한 남편이 받아야 할 수모를 피하기 위해서인지도 모르오. 아니면 다른 이유인지도 모르지. 어쨌든 남모르게 일생을 보내는 것이 나의 바람이오. 그러니까 당신 남편은 이미 저 세상에 가버렸는지 소식도 없다고 해 두면 되는 거요. 말로나 몸짓이나 표정 등으로 나를 아는체 마오! 특히 그자에게 비밀을 누설해선 안 되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가만 있지 않을 테니까! 그놈의 명성도, 지위도, 생명도 모두 내 손아귀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되오!”

그 사람의 비밀을 지키듯이 당신의 비밀 역시 지키겠어요.” 라고 헤스터는 말했다.

맹세하시오!” 하고 그는 다그쳤다. 헤스터는 맹세했다.

자 그럼, 프린 부인.” 로저 칠링워드 노인(앞으로는 이 이름으로 통하게 된다)은 말했다. “혼자 있게 해 주리다. 이 아이와 주홍 글씨만을 상대해야겠군! 어떻소, 헤스터. 당신이 받은 판결은 잘 떄도 그 표적을 달고 있어야 하오? 무서운 꿈을 꾸거나 가위에 눌릴 것이 두렵지 않소?” 그는 기묘한 웃음을 지으며 헤스터를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웃으면서 나를 보세요?” 헤스터는 그의 펴정에 당황하며 물었다. “당신은 이 마을 가까운 숲 속에 있다는 악마인가요? 나를 속여 내 영혼을 파멸시키자는 약속을 한게 아닌가요?”

당신 영혼은 아니오.” 그는 또 한 번 싱긋 웃었다. “아니오. 절대로 당신의 영혼은 아니오!”

 

 

5. 삯바느질하는 헤스터

 

헤스터 프린의 형기가 끝났다. 감옥 문이 열리고 햇빛 속에 발을 내디뎠을 때, 누구에게나 골고루 내리쬐고 있는 햇빛이건만 아프고 병든 그녀의 마음에는 마치 햇빛이 자신의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를 비추는 일만 목적으로 삼고 있는 것샅이 느껴졌다. 앞에서 말한 대로 숱한 사람들이 행렬을 지어 뒤따르고 너나 할 것 없이 몰려들어 손가락질하는 가운데 처형대의 수모를 겪었지만, 그때보다도 지금 이렇게 혼자 감옥 문을 걸어나오는 편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그때는 부자연스러운 긴장감과, 지지 않으려는 끈질긴 의지가 그녀의 마음을 지탱해 주었다. 그 덕분에 눈앞에 벌어진 괴로운 장면도 일종의 참혹한 승리로 바꿀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 일은 일생을 통해 한 번쯤 있을까말까 한, 다른 일과는 무관한 고립된 사건이었던만큼 그때는 앞날의 일은 생각할 수도 없이 오랜 세월을 평온하게 사는 데 소모될 강렬한 생명력을 동원하여 그 수모와 고통에 대결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헤스터를 처벌한 법률은 흡사 무서운 힘을 지닌 거인과도 같았으나, 그 무쇠 같은 팔에는 파멸시키는 힘뿐만 아니라 마음을 의지할 수 있는 힘도 내포되어 있어 오히려 그녀의 시련 기간동안 그녀를 지탱시켜 주었었다. 그러나 지금, 감옥 문을 혼자 걸어나오는 순간부터 그녀에겐 새로운 일상의 생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생활은 지극히 평범한 재기를 동원해 꾸려나가거나, 아니면 그 무서운 짐 밑에 깔려 버리거나, 둘 중의 어느 하나가 되는 것이다. 현재의 슬픔을 극복하기 위하여 미래의 힘을 빈다는 것은 이제는 불가능하였다. 내일은 끝도 없이 계속되리라. 나날이 새로운 시련이 닥쳐 올 것이며 그것은 처참하고 고통스럽게 겪고 있는 현재의 시련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먼 미래의 나날들은 그녀가 짊어져야 할 무거운 짐을 싣고 서서히 다가올 것이며, 언제까지나 그 짐을 팽개칠 수는 없을 것아디, 하루하루 날이 가고 해가 거듭됨에 따라, 그녀의 수치더미에는 그만큼의 비참함만이 더 높이 쌓이리라. 그리하여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헤스터 프린은 자신의 개성을 모조리 잃어버리고 설교가나 도덕가가 지탄하는 죄의 본보기가 될것이며, 여자의 약점이나 죄 많은 격정의 갖가지 이미지를 보여 주는 뚜렷한 존재가 외어 버리리라. 가슴에다 주홍 글씨를 불사르고 있는 헤스터, 훌륭한 집안의 자식으로 태어나 헤스터, 머잖아 어엿한 어머니가 될 헤스터, 한 때 청순하기만 했던 헤스터이건만 죄 많은 인간, 죄 많은 현실의 구체적이 표상으로써 바라보도록 순진한 젊은이들은 배울 것이고 마침내 그 무덤에는 끝까지 지고 가야 할 더럽혀진 이름만이 유일한 비석으로 남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여인이 자기를 마치 치욕의 전형처럼 생각하는 이 고장을 오직 하나의 마지막 거주지로 작정한 것은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눈앞에는 넓은 세상이 활짝 열려 있었다. 이처럼 멀고 보잘것없는 청교도의 식민지 내에서만 살아야 한다는 조항은 판결문에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유럽의 어느 나라에라도 가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자유로이 살 수도 있었다. 또 그녀를 처벌한 법률과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전혀 다른 생활 습관을 지닌 종족들이 살고 있는 깊고 신비로운 숲으로 들어가는 길이 그녀 앞에 틔어 있기도 했다. 그녀의 자유분방한 성격은 그들의 생활에 일치하여, 그들 속에서 그녀는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는 숙명이라는 것이 있게 마련이고, 운명의 힘에 이끌려 피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경우가 흔히 있는 법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특수한 큰 사건이 그들의 일생을 얼룩지게 한 고장 근처를 유령처럼 배회하며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더구나 그 인생을 슬프게 하는 색채가 어두우면 어두울수록 더욱더 피할 수 없는 힘이 가해지는 법이다. 헤스터의 죄, 헤스터의 치욕은 대지에 깊숙이 뻗어내린 뿌리와 같았다. 새로운 재생의 삶을 사는데 있어, 이 세상에 처음 태어났을 때보다도 더욱 강한 동화력을 가지게 되었으며, 다른 순례자나 나그네들조차 꺼려하는 숲 속의 황야가 헤스터 프린에게는 황량하고 쓸쓸하긴 하나 생애를 보내기에 적합한 고향이 된 듯 싶었다. 이에 비하면 이 세상의 다른 풍경은 모두 생소하게 느껴졌다. 고생을 모르던 소녀 시절이나 청순했던 처녀 시절이 마치 옛날에 벗어 던진 의복처럼 생소했고 아직도 어머니가 그곳에 살아 계신 것 같이

생각되는, 그 영국의 전원도 이미 한낱 타향에 불과했다. 이 쓸쓸한 고장에 그녀를 묶어 놓은 줄은 쇠사슬과 같아서 헤스터는 마음속 깊이 괴로워하면서도 도저히 그 사슬을 끊어 버릴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쩌면 이렇게도 숙명적인 산야와 오솔길 속에 헤스터를 가두어 놓은 것은 그녀의 또 다른 감정 떄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분명히 그러했다. 헤스터는 자신의 감정을 감추려 애썼으나, 그것이 마치 뱀이 구멍에서 기어 나오듯이 마음속에서 나오려고 할 때마다 그녀의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곤 했다. 그렇다. 이 고장이야말로 헤스터와 숙명적인 인연으로 굳게 맺어진 그 사람이 살고 있으며 거닐고 있는 곳이다. 그 인연은 지상에서는 비록 인정받을 수 없으나, 두 사람이 함께 서야 할 최후의 심판대, 그 자리를 결혼의 제단으로 삼아 끝없는 천벌의 업고를 함께 감내할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녀의 영혼을 유혹한 악마는 여러 차례 이런 생각을 헤스터에게 품게 하였다. 그리고는 그녀가 그 생각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가는 그것을 쫓아 버리려고 몸부림치는 모양을 지켜보며 재미나다는 듯 비웃는 것이었다. 헤스터는 이런 생각에 정면으로 부닥치는 일이 없도록 급히 서둘러 마음의 토굴 속에 그것을 가둬 버리는 것이었다. 헤스터가 자신에게 믿게 하려 했던 것은-뉴잉글랜드에서 살게 된 동기라고 할 수 있는 것은 - 반은 진실이었으나, 반은 자기 기만적인 것이었다. 나는 이 고장에서 죄를 지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받을 형벌은 이곳에서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하여 날마다 받아야 할 치욕의 고통이 언젠가는 나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 줄는지도 모르며, 잃어버린 순결과는 색다른 순결이 생겨나서 결국 고난 끝에는 좀 더 성녀같은 여자가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 그녀의 생각이었다.

이러한 까닭에서 헤스터 프린은 달아나지 않았다. 이 마을 변두리, 반도의 지역 안이긴 하지만 인가와 떨어진 곳에 조그마한 오두막집이 있었다. 이 집은 초기의 개척자가 세운 것이었으나 부근의 땅이 너무 메말라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데다 도심에서 거리가 멀고, 이미 이 주민들의 생활의 일부분이 된 사교 활동의 영역에서도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폐옥이 되어 있었다.

그것은 해변에 자리 잡은 서향집이었는데, 만 안쪽 저 멀리로 숲이 우거진 산들이 바라다보였다. 이 반도에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잡목 숲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이 집을 가려 주고 있었다. 아니, 가리고 있었다기보다 이 집이 그 숲 뒤에 숨어 버렸다는 편이 옳을지도 모른다. 또는, 당연히 숨겨 둬야 할 집이 있음을 그 잡목 숲이 나타내고 있는 듯이 보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아직도 성가시게 감시를 하고 있는 행정관들의 허가를 얻어 이 조그마한 외딴집에 가재도구를 옮겨와 아기와 함께 살게 되었다. 그러자 의혹의 그림자가 곧 이 장소에 뒤따르게 되었다. 이 여인이 왜 인간적인 자비로운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이것에 와 살게 되었는지 그 영문을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이 집 가까이 몰래 와서, 창가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문 앞에 우두커니 서 있거나, 조그마한 뜰에서 일을 하거나, 또는 마을로 통하는 오솔길을 걸어 나오는 그녀를 바라보곤 하였다.

그러나 가슴에 붙은 주홍 글씨가 눈에 띄면 까닭 모를 공포심에 사로잡혀 그들은 모두 와 하고 소리를 지르며 사방으로 도망치는 것이었다.

헤스터의 처지는 쓸쓸했고 누구 한 사람 찾아 주는 친구도 없었으나, 생활의 곤궁은 면할 수 있었다. 그녀에겐 몸에 익힌 기술이 있었기 때문이다. 언뜻 보기에는 그런 기술을 발휘할 만한 고장이 못 되어씾만, 한창 자라는 아이와 자기의 양식을 마련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그 기술이란 예나 지금이나 여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인 바느질이었다. 헤스터가 자신의 가슴에 붙이고 있는 주홍색 수 글씨는 그녀의 섬세하고도 상상력이 풍부한 재능을 충분히 나타내 주었다. 궁저에 사는 귀부인들이 그것을 보았다면 명주실과 금실로 짠 옷감에다 인간의 기교를 더한 풍요하고 정성 어린 장식을 가지고자 반색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이 고장의 여느 쳥교도들이 입는 옷은 상복처럼 수수한 것이 특징이라 헤스터의 수 주문이 여간해서 없었음은 사실이나, 그 당시는 정교한 수예품이 대단히 유행하던 풍조였다. 따라서 많은 풍습과 유행을 고향에 버리고 새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이 선조들 또한,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목사직의 임명식이라든가 행정관의 취임식, 또는 새로운 정부가 백성에게 보여 주는 행사에 위엄을 갖추는 일 등, 모든 공식적인 행사에는 위용과 장엄함이 돋보이도록 하는 것이 정책적으로 고려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깊이 주름 잡힌 옷깃, 정성 들여 만든 띠, 화려하게 수놓은 장갑 등은 모든 집권자의 공적인 정식 복장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반 시민에게는 근검이란 법령으로 이 같은 사치를 금지하고 있었으면서도 높은 신분의 사람이나, 부유한 사람에게는 예외적으로 허용되었다. 장례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시신에 입히는 수의며, 유가족의 슬픔을 나타내기 위한 검은 천이나 흰 삼베로 된 갖가지 모양의 상복 등, 헤스터 프린의 솜씨를 필요로 하는 일거리는 많았다. 갓난아기의 린네르 제품-그즈음에는 갓난아기에게도 훌륭한 예복을 입혔으므로 - 또한 돈 벌이 되는 일거리로 얻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조금씩, 제법 빠른 속도로 헤스터의 수예품은 요즘 말로 표현하면 유행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불쌍한 운명의 여인에 대한 동정심에서인지, 보잘것없는 물건에까지 터무니없는 가치를 부여하려는 병적인 호기심에서인지, 또는 예나 지금이나 뭔가 알 수 없는 사정으로 남이 구할 수 없었던 것이 선뜻 어느 일부 사람에겐 주어졌던지, 또는 헤스터가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방치해 둘 뻔한 불편이 그녀 덕분에 실제로 해결된 때문인지, 그 어떤 이유에서든지 그녀가 하루에 몇 시간이고 일을 하기만 하면 일거리는 얼마든지 있었고 품삯도 꽤 후한 편이었다. 허영심이 강한 사람들은 호화찬란한 의식을 위해 죄 많은 헤스터의 손으로 만들어진 옷을 몸에 걸침으로써 허영의 죄를 상쇄하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하여간에 헤스터의 수 솜씨는 총독의 주름깃에서도 볼 수 있었고, 아기들의 조그만 모자를 장식하기도 했고, 죽은 사람의 관속에 들어가 곰팡이가 피어 썩기도 했다. 그러나 청순한 신부의 부끄러움을 가려 줄 흰 면사포에 헤스터의 솜씨로 수를 놓은 예는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러한 사실은 헤스터의 죄에 대해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나를 여실히 말해주는 것이었다.

헤스터는 자기 자신을 위해 최소한도의 검소하고 금욕적인 생계비 이외에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그녀의 드레스는 칙칙한 빛깔의 가장 값싼 옷감이었고, 장식품이라고는 평생 달아야 할 운명의 주홍 글씨 하나뿐이었다. 이에 비해 어린아이의 옷에서는 상상을 초월한 기발함이 눈에 띄었는데, 이것은 일찍부터 이 어린 소녀에게 싹트고 있던 뭔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한 환상적인 매력을 한층 돋보이게 했다. 이 점에 대해선 뒤에 더 자세히 얘기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아이의 옷을 아름답게 꾸며 주는 데 드는 약간의 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돈을 헤스터는 모두 자선사업에 썼다. 처참하기로 따지자면 오히려 자기보다는 처지나 나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돈을 나눠주었지만 그들은 자기들을 위해 자선을 베풀어 주는 이 여자에게 자주 모욕을 주었다. 차라리 훌륭한 옷을 만드는 데 솜씨를 발휘했으면 더 보람이 있었을 꽤 많은 시간을 헤스터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을 만드는 데 솜씨를 발휘했으면 더 보람이 있었을 꽤 많은 시간을 헤스터는 가난한 사람들의 마구잡이 옷을 만드는 데 소비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에 힘을 기울이는 것으로 속죄를 할 작정이었는지도 모르며, 많은 시간 동안 이렇게 거친 일을 함으로써 자신의 모든 즐거움을 희생시키려고 하였는지도 모른다. 헤스터의 성품에는 어딘지 모르게 화려하고 요염한, 동양적인 기질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사치스럽고 아름다운 것에 대한 취미는 아름다운 의복을 만들어 내는 일 말고는 아무리 생활의 구석구석을 살펴봐도 그러한 점을 엿볼수 없었다. 여자들은 대개 섬세한 바느질을 통해 남자들은 이해할 수 없는 기쁨을 발견하곤 한다. 헤스터 프린에게 있어 바느질은 인생에 대한 정열을 발산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또한 그 정열을 진정시키는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의 모든 즐거움을 물리친 헤스터는 이러한 기쁨도 죄악시하여 두려워하였다. 이렇게 하찮은 일에까지도 그녀의 병적인 양심이 작용하는 것은 오로지 순수한 회한때문이라기보다 어딘가 의심스러운, 그녀의 내부 깊숙한 곳에 무언가 잘못된 것이 숨겨져 있는 증거였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이렇게 하여 헤스터 프린은 이 사회에서 한 역할을 맡게 되었다. 그녀의 열정적인 성격과 뛰어난 재능 탓에, 여인의 가슴에다 카인의 이마에 찍힌 낙인보다도 더 참기 어려운 표시를 달아준 세상도 이 여자를 완전히 고립시킬 수는 없었다. 그러나 사회와 어떠한 교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녀가 그 사화의 일원이라고 느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를 대하는 세상 사람들의 태도나 말씨, 심지어는 그 침묵까지도, 헤스터는 추방된 사람이며 어딘가 별천지에 살고 있는 사람이거나 여느 사람과는 다른 기관이나 감정을 가지고 살아가는 고독한 존재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으며, 때로는 그것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때도 있었다. 헤스터는 표면적으로는 인간적인 관심사에서 격리돼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바로 그 옆에 아주 가까이에 있었다. 그녀는 그리운 난롯가로 돌아와서도 이미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으며, 가족의 즐거움에 함께 웃을 수도 없고, 또는 가족의 슬픔에 눈물을 흘릴 수도 없는 망령과 같은 존재였다. 가령 금지된 동정을 표현해 본댔자 상대방으로 하여금 공포감이나 혐오감 그리고 심한 멸시만이 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헤스터가 차지한 유일한 자리였다. 헤스터는 자신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잊을 리도 없었지만, 사람들이 가장 아픈 곳을 인정사정 없이 건드릴 때마다 새로운 고통처럼 자신의 처지를 되새기곤 했다. 앞서도 말했듯이 헤스터가 도와주려고 찾아낸 가난한 사람들까지도 자선을 베풀려는 그녀의 손길에 침을 뱉는 경우가 많았다. 일거리 때문에 드나드는 상류 사회의 부인들도 헤스터의 마음에 언제나 고통이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여자들이란 일상생활의 하찮은 일에도 사람을 해치는 독약을 만들어 내며, 겉보기엔 태연한 듯하면서도 악의에 찬 감정의 연금술로 그녀를 괴롭히는 수가 있었다. 때로는 노골적인 악담이 곪은 상처에 가해지는 혹독한 일격처럼 아무런 방비도 없는 가슴에 날아와 헤스터를 괴롭히는 일도 있었다. 헤스터는 오랜 시일에 걸쳐 자신을 굳건하게 단련시켜 왔었다. 그러한 공격에 대한 그녀의 반응은 으레, 창백한 볼에 홍조가 가득히 번졌다가는 곧 가슴속 깊은 곳으로 가라앉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녀는 마치 순교자와도 같이 강한 인내심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는 없었다. 그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혹 아무리 참고 억눌러도 기도의 말이 저주의 말로 변할까 보아 두려웠기 때문이다.

헤스터는 끊임없이 그녀의 가슴을 후려치는 수많은 고뇌와 고통에 시달렸다. 그것은 청교도의 법정에서 안겨 준, 그 효력이 언제 다할지 알 수 없는 판결에 의해 교묘하게 만들어진 고통이었다. 길을 가다 그녀와 맞닥뜨린 목사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으면, 이 불쌍하고 죄 많은 여인의 둘레에는 구경꾼들이 모여들어 킥킥대며 웃기도 하고 얼굴을 찡그리기도 했다. 만인의 아버지이신 하느님의 미소를 한 번 보고싶어 안식일에 교회에 가면, 공교롭게도 자기 자신이 그날의 설교 주제가 되는 일이 가끔 있었다. 헤스터는 아이들이 무서워졌다. 그것은 아이들이, 언제나 딸 아이 하나만을 데리고 조용히 거리를 걸어가는 이 외로운 여인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그들의 부모로부터 암시받아 왔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선 헤스터 모녀를 지나가게 한 다음 위에서 왁자지껄 떠들어 대며 쫓아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마음에는 확실한 뜻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무심결에 함부로 지껄이는 말이 오히려 헤스터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녀의 치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 있는 증거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나뭇잎들이 그 어두운 이야기를 속삭이게 되고 여름철에 부는 산들바람이 그 이야기를 중얼거리고, 겨울철의 삭풍이 큰 소리로 외친다 하더라도 이처럼 가슴속 깊이 고통을 주지는 않았으리라! 또 한 가지 쓰라린 고통을 느끼는 때는 처음 만나는 사람이 호기심에 찬 누빛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였다. 낯선 사람이 주홍 글씨를 자세히 들여다보면-누구나 다 그러했지만-헤스터의 마음에는 새삼스레 그 글씨가 타들어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손으로 가슴의 표시를 가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늘 그 충동을 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주홍 글씨에 익숙한 사람들의 눈길 역시 그 나름대로의 괴로움을 안겨 주었다. 그들의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싸늘한 눈초리는 정녕 견디기 어려운 것이었다.

말하자면 헤스터 프린은 주홍 글씨에 쏟아지는 사람들의 눈길을 의식할 때마다, 언제나 몸서리나는 고통을 겪었다. 가슴에 단 표적 부분은 절대로 무감각해지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나날이 더해지는 고통으로 점점 더 민감해지는 듯하였다.

그러나 때로는 며칠에 한 번, 아니 몇 달에 한 번 정도 어떤 인간적인 눈길이 치욕의 낙인에 멈추어 위안을 주고, 그녀의 고뇌를 덜어 주는 것같이 느끼는 때가 있었다. 그러나 일순간 다시 모든 고통이 왈칵 되살아나 한층 더 심한 고통의 발작을 안겨 주었다. 왜냐하면 그 짧은 순간에 헤스터는 또 새로운 죄를 범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죄를 지은 것은 헤스터 혼자였을까?

이 여자의 상상력은 조금 기이한 데가 있었다. 정신적으로 도덕적으로 약한 기질의 소유자였다면 그것은 고독한 생활의 고통 때문에 좀 더 악화되었을지도 모른다. 표면적으로만 연결되어 있는 그녀의 좁다란 세상을 쓸쓸한 발걸음으로 이리저리 걸어다니는 동안에 때때로 헤스터의 머리에는 주홍 글씨 덕분에 자신에게 새로운 감각이 싹튼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것이 모두

공상에 불과한 것이라고 하기엔 거역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이 감각으로 인해 타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죄를 직관적으로 알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으나, 그렇게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드러나는 갖가지 사실은 헤스터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이었을까? 악마의 흉측한 속삭임일까? 악마는 아직 반밖에

자기의 희생물이 되지 않은 이 불행한 여인에게, 겉으로 순결한 체하는 것은 거짓이며 그녀 이외의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도 남모르게 주홍 글씨가 빨갛게 타오르고 있노라고 그녀를 부추기는 것일까? 아니면 이 암시를, 막연하긴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이 암시를 진실로써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헤스터가 겪은 모든 경험을 다 들추어내더라도 이런 의식만큼 무섭고 지긋지긋한 것은 없었다. 더구나 그와 같은 의식이 얼토당토 않은 때에 생생히 떠오르는 데에는 놀라울 뿐 아니라,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사람들로부터 천사와 친교라도 있는 사람처럼 우러름을 받던, 신앙과 정의의 귀감이라고 할 만큼 훌륭한 목사나 행정관의 옆을 지나갈 때에도 가끔 가슴의 빨간 치욕의 표시가 무엇에 공감한 듯한 아픔을 느끼게 하는 일이 있었다. 이렇게 생각하며 눈을 들면, 그 성인군자의 모습 이외에는 아무도 눈에 띄는 사람이 없었다! 또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가슴에 품고 있는 것은 오로지 희고 차가운 눈뿐이라는 어느 훌륭한 부인의 점잖기 이를 데 없는 찌푸린 얼굴을 대할 때에도, 그 부인과 자기 사이에는 어떤 유사점이 있지 않을까 하는 기묘한 의식이 끈덕지게 머리를 쳐들었던 것이다. 그 부인의 가슴 속에 있는 햇빛을 모르는 눈과, 헤스터 프린의 가슴 위에 치욕의 표시로 불타고 있는 주홍 글씨, 이 두 가지 사이에 공통된 것은 대체 무엇일까? 또 어떤 때는 자, 보아라, 헤스터. 여기 네 동료가 있다. 하는 소리에 오싹하는 전율을 느끼며 눈을 들면, 주홍 글씨를 곁눈질로 쳐다보던 처녀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마치 자신의 순결이 그것을 봄으로 해서 더럽혀지기라도 하는 듯이 볼에 홍조를 가득 띄우며 딴청을 부리는 것이었다. , 숙명의 주홍 글씨를 부적으로 삼고 있는 악마여, 너는 불쌍하고 죄 많은 여인이 존경할 만한 자를 남녀노소 중에서 한 사람이라도 보여 줄 수는 없는가? 이와 같은 신앙의 상실이야말로 죄악이 가져오는 가장 슬픈 결과의 하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스터 프린이 자기 만큼 죄를 많이 진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믿으려고 했던 사실은, 스스로의 약한 천성과 인간이 만든 엄한 법률에 희생된 이 불쌍한 여인의 마음이 실은 조금도 타락하지 않았다는 증거임을 우리는 받아들여주어야 하리라.

이 음울한 시대의 일반 대중을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모든 일에 기괴하리만큼 두려움을 느끼는 습성이 있었다. 이 주홍 글씨에 대해서도, 그들은 현대인이라면 쉽사리 무서운 전설로 꾸밀 수도 있을 그러한 해괴한 이야기를 꾸며댔다. 이 표적은 흔히 볼 수 있는 물감통에서 물들인 단순한 붉은 빛이 아니라 지옥의 겁화로 빨갛게 불타오르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어두운 한밤이라도 헤스터가 있는 곳은 언제나 환하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주홍 글씨는 헤스터의 가슴에 깊이 타 들어가고 있었으므로, 아무래도 어러한 소문에는 회의적인 현대인이 인정하려 들지 않을지라도, 일말의 진실이 내포되어 있으리라는 것을 여기서 밝혀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6.

 

헤스터의 아이에 대해서는 아직 거의 말한 바가 없다. 그 작고 티 없는 생명은 헤아릴 수 없는 신의 섭리에 의해 죄 많은 정열의 틈바구니에서 아름다운 불멸의 꽃으로 피어났다. 이 아이의 자라는 모습과, 나날이 빛을 더해 가는 아름다움, 그리고 작은 얼굴에 감도는 총기 등을 지켜보는 가엾은 여인에겐 그것이 얼마나 신기하게 여져졌겠는가! . . . . . . 헤스터는 그런 이름을 붙여 주었으나, 그 모습이 진주 같다고 해서 그렇게 붙인 것은 아니었다. 진주를 연상시키는, 온화하고 희고 은은한 광택 등은 조금도 없는 아이였다. 그러나 구태여 펄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고귀한 것, 즉 엄마의 모든 것을 바쳐 얻은 오직 하나의 보물이라는 뜻이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닌가! 세상은 이 여인의 죄를 나타내기 위해 그녀의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아 주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굳게 잠그는 힘을 지니고 있어, 이 여인과 마찬가지로 죄 지은 사람이 아니고는 그 누구의 동정심도 이 여인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없었다. 이처럼 세상에서 따돌림당한 죄악의 직접적인 결과로써 하느님은 헤스터에게 어여쁜 아이를 내려 주신 것이다. 영원히 지워 버릴 수 없는 치욕의 가슴에 안겨 있긴 하나 아이는 엄마를 영원히 인간 가족과 연결시키고, 마침내 천국에 가서 축복받는 영혼이 되게 하려함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면, 헤스터는 희망보다도 불안이 앞서 초조했다. 자신의 행위가 얼마나 큰 죄악이었는지 너무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 죄과가 호전되리라고는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날마다 헤스터는 자라나는 아이의 성질을 불안한 마음으로 살펴보았고, 이 아이를 낳게 된 죄에 합당한 어떤 어둡고 격렬한 특징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하고 가습을 졸였다.

확실히 신체적으로는 아무런 결함이 없었다. 나무랄 데 없는 용모와, 활발한 성격, 아직 제대로 단련되지도 않은 손발을 신기하리만큼 자유자재로 놀리는 모습 등을 보면 이 아이는 에덴동산에 태어났다 하여도 전혀 손색이 없을 듯하였다. 인류의 첫 번째 양친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뒤에도 낙원에 남아서 천사들과 어울려 논다 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아이에겐 완벽한 아름다움과 선천적인 품위가 갖추어져 있었으며, 아무리 수수한 옷을 입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옷으로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펄이 촌스러운 옷을 몸에 걸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이야기가 차차 진행되는 동안 알게 될 테지만 어머니는 아이에게 병적인 집착을 지니고 있었으므로 아이의 외출복을 위해 가능한 한 비단 옷감을 샀고 디자인과 장식에 최대한의 상상력을 발휘했다. 타고난 미모에다 이렇게 차려입은 펄의 조그마한 모습은 너무나 눈부셔 어두컴컴한 오두막집 마루는 그야말로 환한 빛이 둥그렇게 비치는 것 같았다. 어린아이답게 기운차게 뛰어놀아 찢어지고 더러워진 적갈색의 무명옷을 입었을 때도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답기만 했다. 펄의 얼굴은 무한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이 한 아이 속에 이를테면 여러 명의 아이가 들어 있는 셈이었으니, 농가의 어린아이에게서만 볼 수 있는 들꽃 같은 가련함으로부터 어린 공주님에게 볼 수 있는 아담한 화려함에 이르기까지 아주 변화무쌍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 정열적인 기질과 심오한 맛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러한 여러 가지 변화무쌍한 기질 중에 어느 하나라도 기운을 잃거나 빛이 바래거나 하면 이미 펄이 아닌 딴 존재가 되어 버렸을 것이다.

이런 외면적인 변화무쌍함은 내면적인 생명의 다양한 특성을 암시해 주는 것이었다. 또한 펄의 성질에는 그러한 다양성 뿐아니라 동시에 깊이가 있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자기가 태어나 이 세상과의 결합이나 순응성은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헤스터의 두려움은 기우에 불과하였을 것이다. 이 아이에겐 규칙을 따르게 할 수가 없었다. 펄이 태어나므로 해서 이미 큰 율법이 깨어졌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어린아이의 자질은 아름답고 화려하긴 하나 도무지 질서가 없었다. 나름대로의 독특한 질서를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변화와 조화의 구별을 지을 수 없는 것이었다. 헤스터가 이 아이의 성질에 대하여 설명할 수 있는 것은 펄이 자신의 영혼과 육신을 각각 정신계와 물질계에서 흡수하던 시기에 헤스터 자신의 모습을 돌이켜 생각해 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어머니의 흥분 상태가 그대로 뱃속의 아이의 정신생활에 여러 가지 빛 그림자를 던지는 매개체가 되었던 것이다. 본디는 희고도 맑았던 것이 중간에 낀 매개체 때문에 진홍색과 금빛, 이글거리는 듯한 광택, 검은 그림자, 게다가 더없이 강렬한 빛을 띠게 되었다. 특히 그 무렵의 헤스터의 정신적 갈등이 그대로 펄에게 전해진 것이다. 반항적이고 격렬한 기질, 그리고 마음속에 어둡게 자리 잡고 있던 음울함과 낙담하는 태도까지 그대로 펄에게서 발견되었다. 지금은 아이들다운 모습으로 마침 햇살처럼 빛나고 있지만, 마침내 지상의 생활을 독자적으로 영위할 날이 되면 휘몰아치는 선풍을 불러 일으킬지도 모를 일이다.

그 당시의 가정교육을 요즘보다 훨씬 엄격했다. 무서운 얼굴, 호된 꾸짖음, 성서의 권위가 명하는 대로 계속 가해지는 매질 등, 그런 것들은 단순히 실제로 저지른 잘못을 벌하는 것뿐 아니라 아리의 모든 미덕을 길러 주고 향상시키기 위한 소중한 정신 교육의 수단이기도 했다. 헤스터 또한 외동딸의 어머니로서 엄격한 태도를 취했다. 자신의 과실과 불행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으므로 자기 손에 맡겨진 아이의 앞날에 대해서 일찌감치 친절하고도 실수 없는 선도자의 역할을 하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도저히 헤스터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무서운 얼굴을 지어 보이기도 하고, 상냥하게 달래 보기도 하였으나 도무지 효력이 없다는 것을 알자 헤스터는 마침내 두 손을 들었으며 아이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물론 육체적으로 위협하거나 구속하는 동안은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의 지성이나 정서에 바탕을 둔, 다른 교육 방법은 그때그때 펄의 기분에 따라 효과가 있기도 하고 효과가 없기도 했다. 펄이 아직 어렸을 때 헤스터는 이 아이의 독특한 표정-어머니가 아무리 타이르고 설득을 하고 애원을 해도 결국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말하는 듯한-을 알아차렸다. 그 표정은 영특하면서 사나울 만큼 고집스럽고, 때로는 개망나니처럼 심술궂은 데도 있었으나 대체로 활기에 넘쳐 있었다. 헤스터는 도대체 펄이 사람의 자식이랄 수 있을까 하고 때때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오두막 마루 위에서 제멋대로 뛰어놀다가 어느 틈에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짓고 달아나 버리는 정체 모를 요정처럼 생각되었다. 그런 독특한 표정이 침착성을 잃은 아이의 새까맣게 빛나는 눈동자에 떠오를 때는 어딘지 모르게 손이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마치 공중에 떠서 언제 왔다 언제 사라지는지도 모르는 아지랑이처럼 덧없는 모습이었다. 그럴 때면 헤스터는 자기도 모르게 달려가서 늘 도망치고만 있는 요정을 붙잡아 가슴에 꼬옥 끌어안고 힘차게 키스해 주고 싶은 충동이

베면 피가 나오는 인간이란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어머니에게 붙잡힌 펄은 명랑한 음악 소리와도 같은 웃음소리를 냈으나, 전보다도 더 불안한 느낌을 안겨 주기만 했다.

헤스터에게 펄은 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은 둘도 없이 귀중한 보물이었으나, 이 펄과 자기와의 사이에 가끔 까닭을 알 수 없는 이런 불안감이 스며드는 데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이따금 서러움이 복받쳐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있었다. 눈살을 찌푸리고 그럴 때면 조그만 주먹을 불끈 쥐며 그 귀여운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어떤 때는 갑자기 더 한층 높은 소리로 웃어 대기도 하며 인간의 슬픔을 느끼지도 이해하지도 못하는 그런 아이처럼 보일 때도 있었다. 혹은 또 슬픔에 몸부림치며 어머니에 대한 애정을 띄엄띄엄 눈물섞인 말로 털어놓고, 눈물로써 자기에게도 인정이 있음을 증명하려는 듯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러나 헤스터는 이런 변덕스러운 애정을 마음놓고 믿을 수가 없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타났다가는 사라지는 애정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문제를 이것저것 곰곰이 생각하고 있노라면 어머니는 요정을 불러내기는 했지만 주문의 순서가 잘못되는 바람에 이 새롭고 불가사의한 존재를 제어시키는 주문을 찾아내지 못하게 된 사람과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로 안심할 수 있을 때는 아이가 곤하게 잠들어 있을 때였다. 그때만은 펄을 완전히 붙잡은 것 같았으며, 조용하고 달콤하면서도 슬픈 행복의 몇 시간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도 펄이 눈까풀 밑에 심술궂은 표정을 지으면서 깨어나기 전 잠깐동안의 일이다!

늘 미소진 얼굴로 얼러 주던 어머니의 품을 떠나, 펄이 제법 남과 사귈만한 나이에 이른 것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였다! 어쩌면 그렇게도 빨리 다가왔을까? 만일 떠들썩한 아이들 목소리에 섞여 새소리처럼 맑은 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장난에 몰두하고 있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소리에서 귀여운 딸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면, 헤스터 프린은 얼마나 행복했겠는가. 그러나 그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펄은 태어나면서부터 아이들 세계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다. 악마의 핏줄이며, 죄를 상징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세례를 받은 아이들의 동무가 될 자격이 없었다. 이 아이에게서 무엇보다도 놀라운 것은 뛰어나 직관력이었다. 자신의 고독한 처지라든가, 사방에 침범할 수 없는 진을 둘러치고 있는 숙명, 즉 여느 아이들하고는 다른 처지가 지니고있는 특이성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헤스터는 출옥한 이후로 남 앞에 나설 때 언제나 꼭 펄을 데리고 다녔다. 그녀가 거리를 걸을 땐 으레 펄도 함께였다. 처음에는 팔에 안겨 있었으나 마침내 소녀로 자라 어머니의 작은 동반자가 되었으며, 엄마의 집게손가락을 꼭 쥐고 헤스터가 한 발짝 걸으면 종종걸음으로 서너 걸음씩 걸어 쫓아가게 되었다. 펄의 눈에 띈 것은 풀이 우거진 길가나 집의 문지방 근처에서 청교도의 교육이 빚어낸 재미도 없는 놀이를 하고 있는 보스턴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교회놀이를 하거나, 퀘이커교도를 매질하는 놀이를 하거나, 머리 가죽을 벗겨 내는 인디언 놀이, 또는 마술을 쓰는 흉내를 내며 놀고 있었다. 펄은 우두커니 구경만 할 뿐 함께 어울려 놀려고는 하지 않았으며 말을 붙여도 모르는 척했다. 때로 아이들이 그녀 주위를 뻉 둘러서거나 하면 몹시 화를 냈고, 돌을 집어 단지며 날카로운 고함소리를 마구 질러 댔다. 그 고함소리에 어머니는 몸을 떨었는데, 그 소리에는 마치 마녀가 뇌까리는 알 수 없는 저주의 말과 같은 음조가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청교도의 아이들은 그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아량이 좁은 개구쟁이뿐이었다. 헤스터 모녀의 모습에 어딘가 색다르고 기분 나쁜, 보통사람과는 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으므로 두 사람을 경멸하고 때로는 노골적인 말투로 함부로 놀려 대는 일도 흔히 있었다. 펄은 아이들의 그런 마음의 움직임을 알아차리자, 도저히 아이의 마음에 도사리고 있으리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무서운 증오심을 갖고 응대하는 것이었다. 이런 격렬한 울분의 폭발은 어머니가 볼 때 의미심장하게 여겨졌고 마음의 위로가 되기도 하였다. 적어도 그럴 때의 펄의 태도에는 늘 엄마를 애타게 하던 변덕스러움 대신 뭔가 착실한 기분이 넘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헤스터 자신 속에 도사리고 있던 악의 그림자가 반영되어 있음을 알고는 소름이 끼쳤다. 펄을 그 거센 증오와 격정을 전적으로 뺴앗길 수 없는 특권으로써 어머니로부터 이어받았다. 모녀는 인간 사회에서 격리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같은 처지에 놓여 있었다. 펄의 성질에 스며 있는 그 불안정한 요소는 사실 펄을 낳기 전부터 헤스터를 괴롭혀 왔던 것으로, 그 뒤로는 줄곧 모성애 특유의 부드러운 마음으로 달래 왔던 것이다.

집에 있을 때의 펄은 집 안밖에 여러 가지 놀이 상대가 있었으므로 심심하지는 않았다. 잠시도 쉬지 않고 활동하는 이 아이의 정신으로부터 넘쳐나오는 생생한 마력은 수많은 사물들과 서로 사귀게 하였는데, 그 모습은 마치 횃불이 닿는 곳마다 불길이 솟는 것과 흡사했다. 막대기라든가 넝마뭉치라든가 한 송이의 풀포기 등, 상상외의 물건들이 펄의 마술에 걸리면 꼭두각시로 변하여, 아이의 마음속에 마련된 온갖 무대에서 전개되는 연극의 주인공과 완전히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펄의 어린 목소리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많은 가공인물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었다. 바람에 불려 신음소리를 내거나 침울한 소리를 내는 검고 장엄한 늙은 소나무가, 그 모습을 닮은 쳥교도의 장로역으로 등장한다. 몰골 사나운 뜰의 잡초들은 무자비하게 두들겨서 뿌리채 뽑아 버렸다. 청교도의 아이들 때문이다. 이 아이가 열중해서 생각해 낸 수많은 형상과 그 풍부한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이것들은 아무런 연결성이 없으면서도 언제나 초자연적인 활동 상태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가 하면 마침내는 너무도 격렬하게 넘쳐나는 생기에 기진하여 까부라지고 만다. 그러면 또 다른 야성적인 힘을 지닌 양상이 그 뒤를 쫓는다. 그것은 변화무쌍한 북극광 같았다. 그것은 상상력의 움직임이라든가 성장해 가는 마음의 놀이라는 점에선 재주가 뛰어난 다른 아이들의 경우와 별다른 차이가 없었는지도 모르나, 다만 펄은 동무가 없었기 때문에 자기가 만들어 낸 가공인물들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잦았다는 점이 달랐을 것이다. 또 한 가지 색다른 점은 이 아이가 자기 마음속이나 머릿속에 그려 낸 모든 것을 적대시했다는 사실이다. 결코 그들은 친구로 만들지 않았다. 용의 이빨(그리스 신화, 페니키아의 카트모스 왕자가 용의 이빨을 땅에 심었더니 거기에서 적병들이 나옴)을 심어 놓고 거기에서 적군이 뛰어나오면 그것을 향해 덤벼드는 식이었다. 이토록 어린 생명이 결국 언젠가는 부딪히고 말 적의에 찬 인간들과의 싸움을 끊임없이 의식하고 최후까지 버티어 나갈 힘을 기르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면 누구나, 그 원인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어머니의 마음에 깊은 슬픔이 새겨졌을지 넉넉히 짐작하리라.

펄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헤스터 프린은 손에 들고 있던 일감을 무릎 위에 떨어뜨리기 일쑤였고 아무리 억눌러도 솟아나는 괴로움이 말인지 신음소리인지 모를 울부짖음이 되어 터져 나오는 것이었다.

오 하늘에 계신 아버지. 당신이 아직도 저의 아버지시라면 대답해 주십시오, 저 아이는 도대체 무엇입니까?”

이런 때의 펄은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었는지 아니면 더 미묘한 방법을 통해 그녀의 쓰라린 고뇌를 알아차렸는지 그 생기있고 귀여운 얼굴을 어머니 쪽으로 돌려 요정 같은 그 영특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장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아이의 태도에서 뺴놓을 수 없는 또 한 가지 색다른 것이 있다. 펄이 태어나 처음으로 그의 눈에 띈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어머니의 미소였을까? 다른 아이라면 어머니의 미소에 답하여 작은 입가에 살짝 미소를 떠올렸을 것이다. 펄의 눈에 띈 최초의 것은 헤스터의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였다. 어느 날 어머니가 요람 위로 몸을 굽혔을 때 그 어린것의 눈길은 주홍 글씨를 둘러싼 금색 수의 빛나는 광채에 멈췄다. 좀 더 자라서는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어 그것을 잡으려 하였다. 헤스터 프린은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가슴의 불길한 표시를 잡아떼려 했다. 펄의 단풍잎 같은 손이 무엇을 알기나 하듯 주홍 글씨에 와 닿는 데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꼈다. 그러자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거동을 자기를 어르는 것으로 알았던지 펄은 엄마의 눈을 들여다보며 생긋 웃는 것이었다. 그 뒤로부터 헤스터는 아이가 잠든 때가 아니고는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잠시도 아이를 평안한 마음으로 귀여워해 줄 틈이 없었다. 여러 주일 동안 펄의 눈길이 한 번도 주홍 글씨에 집중되는 일 없이 무사히 지나가는 일도 있기는 했다. 그러나 또 마치 갑작스러운 죽음의 발작이 엄습하듯 뜻하지 않은 그녀의 눈길이 그 독특한 미소와 기묘한 표정을 띠며 엄습해 오는 것이었다.

언젠가 헤스터가 어머니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아이의 눈에 비친 자기 모습을 들여다보고 있을 때 변덕쟁이 천사와 같은 표정이 아이의 눈동자에 떠오른 일이 있었다. 그 순간 펄의 귀여운 검은 눈에 조그맣게 비친 것은 헤스터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 다른 사람의 얼굴 같았다. 그것은 악마처럼 음흉하게 웃고 있는 악의에 찬 얼굴이었다. 잘 아는 사람의 얼굴과 비슷한 듯했으나 그 사람은 악의는커녕 미소조차도 여간해서 짓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무튼 아이에게 옮아 온 악령이 그때 마침 장난삼아 얼굴을 내민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 뒤 몇 번이고 헤스터는 같은 망상으로 괴로움을 겪었지만, 처음만큼 선명하지는 않았다.

펄이 혼자 뛰어다니며 놀 만큼 자랐을 때였다. 어느 여름날 오후, 펄은 들꽃을 두 손에 잔뜩 꺾어 들고 어머니 가슴을 향해 하나씩 던졌는데, 주홍 글씨에 명중할 때마다 작은 요정처럼 깡충깡충 뛰면서 좋아했다. 헤스터는 처음엔 두 손을 모아 가슴을 가리려고 했다. 그러나 자존심에서인지 체념에서인지, 아니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 고통을 견디는 것도 회개의 하나라는 생각에서였던지, 죽은 사람처럼 창백해지면서도 펄의 기승스러운 눈을 슬프게 들여다본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들꽃의 공격은 그치지 않았고, 날아오는 꽃송이는 거의 다 주홍 글씨를 맞혔다. 그때 이승에선 물론 저승에서도 도저히 그 약을 구할 도리가 없는 그런 상처가 어머니의 온 가슴을 할퀴었다. 드디어 탄환이 떨어지자 펄은 우두커니 선 채로 헤스터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검은 눈동자의 심연 속에서 작은 악마의 웃는 얼굴이 내다보고 있었다. 정말로 내다보았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어머니는 그렇게 느꼈다.

, 넌 대체 누구냐?”

어머니가 소리쳤다.

참 엄마도, 엄마의 펄이지 누구야?”

아이는 대답했다.

그리고는 깔깔거리고 웃으며 그 근처를 팔짝팔짝 뛰어 돌아다녔는데 어린 요정같은 변덕스러운 몸짓은 금방이라도 굴뚝 위까지 뛰어오를 듯한 기세였다.

넌 정말 엄마의 아이냐?”

헤스터는 물었다.

실없는 질문이 아니라, 그때만은 다른 생각 없이 정색을 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펄이 뛰어나게 총명했으므로 그녀로서는 펄이, 제가 태어나게 된 비밀을 다 알고서 드디어 어두운 본성을 드러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니까. 난 펄이란 말야!”

아이는 여전히 익살맞은 몸짓을 되풀이했다.

넌 엄마의 딸이 아냐! 엄마의 펄이 아니란 말야!”

반 농담 삼아 어머니가 말했다. 헤스터는 고뇌에 차 있을 때도 가끔 농담을 하고 싶은 기분이 들 때가 있었다. “그런데 넌 누구니? 누가 널 이 세상으로 보냈지?”

엄마가 가르쳐 줘!” 아이는 정색을 하고 헤스터에게로 다가오더니 무릎위로 몸을 기대었다. “내가 누구인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보내셨어!”

헤스터는 대답했다.

그러나 이러할 때의 망설임은 아이의 예리한 눈길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저 늘 하듯 장난삼아 한 일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악마의 재촉을 받아서인지 펄은 검지를 내밀어 주홍 글씨를 만졌다.

아냐!” 펄은 똑똑히 말했다. “내게는 하늘의 아버지는 안 계셔!”

입 다물지 못해, ! 그런 말을 하면 못 써!” 어머니는 신음 소리를 억누르면서 말했다. “누구나 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가 이 세상으로 내려보내는 거야. 너의 엄마도 그렇고, 물론 너도 그래! 그렇지 않으면 넌 어디서 왔단 말이니? 정말 이상한 요물 같은 아이구나, .”

가르쳐 줘, 가르쳐 달란 말야!” 펄은 졸라 댔지만, 이젠 아까처럼 정색으로 묻는 게 아니라 웃으면서 마루 위를 뛰어 돌아다니고 있었다. “엄마가 말해 줘야지!”

그러나 의혹의 어둠 속에 파묻힌 미로를 헤매고 있는 헤스터 자신은 그 물음에 대답할 능력이 없었다. 우스운 것도 아니고 두려운 것도 아닌, 이상한 기분이 들면서 이웃 사람들의 말이 생각났다. 펄의 아버지를 알려고 애쓰던 사람들은 이 아이의 기묘한 성질을 보고서 펄이라는 아이는 악마의 자식임에 틀림없다고 떠들어 댔던 것이다. 먼 중세 때부터 말해지는 바로는 어머니의 죄로 인하여 어떤 흉악한 목적을 위해 쓰여지는 악마의 자식들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이다. 루터조차도 적인 수도사들의 중상모략에 따르면 같은 지옥 태생인 악귀의 대장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뉴잉글랜드의 청교도 안에도 그처럼 불길한 성품을 지닌 아이는 있는 법이고, 펄 하나만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7. 총독의 집 객실

 

어느 날 헤스터 프린은 벨링햄 총독의 저택으로 총독이 주문한, 가장자리에 수를 놓은 장갑을 전하러 갔다. 무슨 중대한 행사 때 착용할 것이었다. 그는 보통 선거에서 패배하는 바람에 최고 지위에서 두어 계단 물러난 전 총독이었지만 식민지의 관계에서는 여전히 명예와 권세를 지닌 인물이었다.

이 식민사회에서 이처럼 권력을 쥐고 활약하고 있는 사람에게 이날 헤스터가 면회를 요청하게 된 것은 수 놓은 장갑을 전하는 일 말고도 좀 더 중요한 용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고장의 원로들 사이에서 종교와 정치에 좀 더 엄한 원칙을 세우기 위해 헤스터 프린으로부터 아이를 빼앗으려는 계획이 논의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밀했듯이 그들은 펄이 악마의 핏줄을 이어받았다고 여기고 있었으므로, 선량한 그리스도 교도다운 관심으로, 그 어머니의 영혼을 위해서 그녀의 앞길을 막고 있는 아이를 그녀에게서 떼어 놓아야 한다고 논의한 일은 무리는 아니었다. 또 한편 아이가 도덕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언젠가는 구원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니고 있다면, 헤스터 프린보다도 훨씬 현명하고 훌륭한 사람에게 맡기는 편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하다는 것이 그들의 견해였다. 이런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벨링햄 총독이 가장 적극적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요즘 세상 같으면 행정위원 정도의 재량에 맡겨질 이런 일이 공적인 일로써 논의되고 저명한 정치가까지 찬반 양론에 나선다는 것은 기묘하고 우습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그때와 같이 모든 것이 단순하고 소박하던 시대에는 헤스터 모녀의 문제보다 공적인 흥미가 훨씬 적을 뿐 아니라 대수롭지 않은 여러 문제가 입법자의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고, 나라의 법령 속에 명시되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가 펼쳐지는 시대는 돼지 한 마리의 소유권을 둘러싼 논쟁이 식민지의 입법자들 사이에 어마어마한 대립을 불러일으켰을뿐더러 입법 조직 자체에까지 중대한 개혁을 단행케 한 그런 시대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시대였다.

그래서 헤스터 프린이 외딴 오두막을 나선 것인데, 근심으로 머리는 아팠으나 자신의 권리에는

확신이 있었으며, 한편으론 일반 대중과, 또 한편으론 자연의 정이 지지해 주는 고독한 여성과의 승부는 쌍방이 서로 55의 승산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펄은 어머니와 함께였다. 어머니 곁을 펄쩍펄쩍 뛰어다닐 만한 나이가 되어 아침부터 밤까지 뛰어다녔으므로 총독 저택까지의 거리쯤은 충분히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그래도 응석을 부리고 싶은 마음에서 곧잘 안아 달라고 조르는가 하면, 곧 또 내려 달라고 하고서는 헤스터를 앞질러 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냅다 줄달음질 치다가는 넘어지고 고꾸라지곤 했으나 다치지는 않았다. 펄의 빼어난 용모는 앞에서 말한 대로이다. 싱싱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혈색, 환한 살빛, 깊고도 강렬하게 빛나는 두 눈, 벌써부터 윤기가 흐르는 짙은 갈색 머리는 어른이 되면 새까만 색이 될 듯 하였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활기가 넘쳐 있어서 정열적인 순간에 예고 없이 낳은 사생아 같았다. 게다가 헤스터가 지은 아이의 옷 또한 그녀의 화려한 취향에 따라 마음껏 상상력을 발휘한 것이었다. 특색있는 스타일에 금실로 아름답고 화려한 수를 놓은 빨간 비로드 저고리를 입고 있었다. 얼굴빛이 나쁜 아이였다면 오히려 파리한 느낌을 주었을지도 모를 만큼 강렬한 색조가 펄의 아름다움에는 멋있게 어울려 마치 지금까지 지상에 나타난 일이 없는 불꽃덩어리 같았다.

그러나 옷차림뿐만 아니라 아이의 전체 모습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 특징은, 그 아이를 보는

주위 사람들로하여금 헤스터 프린의 가슴에 달린 표시를 연상케 하는 점이었다. 그것은 형태를 달리한 주홍 글씨였으며, 생명을 지닌 주홍 글씨이기도 했다. 헤스터 또한 빨간 치욕의 표시가 뇌리에 꽉 박혀 무엇을 생각하든 그 형태로 뒤바뀌기라도 하는 듯이 그녀가 만든 아이의 옷은 모두 주홍 글씨를 연상케 하는 바가 있었다. 몇 시간이나 병적일 만큼 궁리한 끝에 애저의 대상과 죄업의 표시 사이에 어떤 유사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상 펄은 애정의 대상인 동시에 죄업의 표적이기도 했으므로 이 동일성이 있으므로 해서 헤스터도 제 자식의 모습 속에 주홍 글씨를 이렇게 훌륭하게 재현할 수 있었다.

이 두 사람이 마을 구역 안으로 들어서자 청교도 아이들은 놀이를 멈추고 짓궂은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저것 봐, 저기 주홍 글씨를 단 여자가 간다. 게다가 옆에 따라가고 있는 아이도 주홍 글씨하고 똑같지? 그렇지? 우리 가서 진흙이라도 던져 주자!”

그러나 펄은 지기 싫어하는 아이였다. 얼굴을 찡그려 보이기도 하고, 두 발을 쾅쾅 구르기도 하고, 작은 주먹을 흔들어 위협하는 몸짓을 하더니 갑자기 적의 무리 속으로 뛰어들어 모두 쫓아 버렸다. 이렇게 상대방을 맹렬히 쫓아가는 모습은 어린아이들의 조를 벌하는 일을 직책으로 하는 아이들의 역신, 즉 성홍열 같은 그러한 천벌을 가져다 주는, 날개도 채 안 난 천사와 같았다. 펄은 무시무시하게 고함을 질러 댔으므로, 도망치는 아이들의 마음을 공포에 떨게 했을 것이다. 승리를 거두고 어머니 곁으로 돌아온 펄은 생글생글 웃으면서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 뒤로는 별일 없이 벨링햄 총독의 저택에 이르렀다. 큰 목조 건물인 이 집은, 이런 구조의 집은 지금도 미국의 오래된 도시에는 그 견본이 남아 있지만, 지금은 이끼가 끼고 다 허물어져가는 데다 어두운 방안에서 일어났다 사라진 사건과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거나 잊혀진 수많은 슬프고 즐거운 사건 때문에 완전히 음산한 집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당시 이 집의 모습엔 신선한 맛이 있었고, 죽음이 한 번도 찾아든 적이 없는 생활의 산뜻함이 햇볕 잘 드는 창문을 통해 비쳐 나오고 있었다. 참으로 즐거워 보이는 집이었다. 벽 전체에는 깨어진 유리 조각이 많이 섞인 회를 발랐기 때문에 태양광선이 건물 정면을 비껴 쬐면 마치 한 웅큼의 다이아몬드 가루를 잔뜩 뿌려 놓은 듯이 반짝였다. 그 광채로 이 집은 완미한 쳥교도의 노지배자 저택이라기보다는 알라딘 궁전이라고 하는 편이 더 어울릴 것 같았다. 게다가 그 등시의 괴상한 취미에 맞추어 벽면에는 보기에도 신비할 만큼 기묘한 무늬와 도형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런 그림들은 백회가 마르기 전에 그려 넣은 것이었는데 단단히 굳어져 후세 사람들이 구경하며 찬사를 보내게 된 것이다.

펄은 이렇게 휘황찬란한 집을 보자 기쁜 듯이 깡충깡충 뛰며 저택 전체에 비치고 있는 햇빛을 몰래 떼어서 장난감으로 만들어 달라고 졸라 댔다.

안돼요, !” 하고 어머니는 타일렀다. “너는 네가 햇빛을 모아야 해. 엄마는 네게 줄 햇빛이 없어!”

모녀가 다가선 현관은 아치형으로 되어 있었고, 그 양쪽에는 저택의 좁다란 탑이랄까, 튀어나온 부분이 마주 보고 있었으며, 어느 쪽에나 다 살창문이 달려 있었는데 필요에 따라 여닫을 수 있도록 나무로 만든 덧문에 대어져 있었다. 현관에 달려 있는 철제 해머를 들어 문을 두드리자 총독의 시종이 얼굴을 내밀었다.

이 사나이는 영국 태생의 자유민으로서 지금은 7년 기한의 노예 생활을 하고 있는 자였다. 이 기간 동안은 주인의 사유물과 같아서 소나 의자처럼 사고팔 수 있는 물건이었다. 이 노예가 입고 있는 푸른 웃옷은 그 당새만이 아니라, 영국에서는 아주 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귀족 문중에서 평상시에 하인들에게 입혔던 옷이다.

벨링햄 총독님은 계신가요?”

헤스터는 물었다.

, 계십니다.”

시종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신대륙에 온 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주홍 글씨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총독 각하께선 댁에 계십니다만, 목사님 두 분과 또 의사 선생님도 함께 계십니다. 지금 바로 만나 뵐 수는 없을 겁니다.”

그래도 들어가야겠어요.” 라고 말하는 헤스터 프린의 아주 단호한 태도와 가슴에 빛나는 주홍 글씨가, 헤스터를 이 나라의 귀부인이라고 여기게 했던지 시종은 막으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헤스터와 펄은 현관 안으로 들어섰다. 벨링햄 총독의 저택은 건축자재의 질이라든가, 기후의 차이, 그리고 사교생활 등을 고려해, 조국 영국에 있는 상류층 저택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그래서 현관 안 널찍한 객실은 천장도 높고 건물 안쪽까지 계속되어 있어 다른 모든 방과 직접 통할 수 있는 복도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 널따란 방 한쪽에는 현관 양쪽에 움푹 들어가서 작은 방을 이루고 있는 두 탑의 창문으로부터 광선이 비쳐들고 있었고, 그 일부가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다른 쪽의 창은 흔히 옛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궁형 창이었는데, 거기로부터는 더 강한 광선이 들어오고 있었다. 방에는 푹신한 쿠션이 깔린 의자가 준비되어 있었고 그 쿠션 위에는 <<영국의 연대기>>같은 이절판 크기의 목직해 보이는 문헌들이 놓여 있었다. 오늘날 사람들이 방문객들이 볼 수 있도록 방 한가운데 놓인 테이블 위에 금박을 입힌 책을 놓아 두는 것과 같은 식이었다. 객실의 가구류는 등받이에 참나무꽃의 화환을 정성껏 조각한 몇 개의 묵직한 의자와, 같은 취향의 테이블이 하나 있을 뿐이었으나, 이것들은 모두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의 것이든가 그 이저의 물건으로써 총독의 본집으로부터 가져온 대대로 물려오는 유물들이었다. 테이블에는 백랍의 큰 맥주 잔이 놓여 있어는데, 헤스터나 펄이 들여다보았더라면 그 잔 바닥에서 조금 전에 마시고 난 맥주의 거품을 보았을지도 모른다.

벽에는 벨링햄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은 조상 대대의 초상화들이 줄지어 걸려 있었다. 가슴에 흉갑을 두른 무인도 있었고, 주름깃에 위엄을 떨치고 있는 무인의 모습도 보였다. 모두가 하나같이 옛날 초상화의 특징인 냉엄한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초상들은 망령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속적인 향락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객실의 벽을 이루고 있는 참나무 널의 한가운데에는 갑옷 한 벌이 걸려 있었는데, 초상화에 나오는 선조의 유물이 아니라, 극히 최근에 만든 물건이었다. 벨링햄 총독이 뉴잉글랜드로 건너오던 해에 런던의 숙련된 무구사가 만든 것이었다. 강철로 만든 투구. 흉갑. 후갑. 경갑, 그 밑에 늘어진 장갑 한 켤레와 칼 한 자루-이 모든 거이 다 그러했지만, 특별히 투구와 흉갑은 광택이 날 정도로 잘 손질되어 있어 마룻바닥이 온통 번쩍이고 있었다. 이 눈부실 만큼 빛나는 갑옷은 한낱 장식품으로 놓아 둔 것이 아니라, 총독 자신이 엄숙한 열병식이나 연병자에서 여러 차례 입기도 하였으며, 피쿼드 전쟁에서는 이 갑옷을 입고 연대의 선두에 서서 활약한 일도 있었다. 법률가로 교육을 받았고, 베이컨, 코프, 노이, 핀치 들을 허물업싱 벗할 수 있던 총독이었으나, 이 새로운 나라의 긴박한 사태는 그를 정치가이면서 동시에 군인으로 만들었던 것이다.

펄은 빛나는 이 저택의 정면을 보았을 때 못지않게 번쩍이는 갑옷을 보고 몹시 기뻐했는데, 잠시 뒤에는 거울같이 닦은 흉갑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펄이 외쳤다.

엄마, 엄마가 여기 비쳐요. , 이리 와 봐요!”

헤스터는 아이를 즐겁게 해 줄 작정으로 하라는 대로 해 보였다. 그러자 그 볼록거울에 비친 주홍 글씨가 묘하게 크게 과장되어 나타나서 그녀의 외모 중에서도 가장 두드러진 부분처럼 보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헤스터의 모습은 주홍 글씨 뒤에 가려져 전혀 보이지 않게 되었다. 펄은 또 투구에 비친 그 비슷한 영상을 손가락질하면서 웃고 있었는데, 그 작은 얼굴에 자주 떠오르는 영리한, 요정 같은 표정이 나타나 있었다. 그 심술궂은 미소 역시 아주 그럴 듯하게 흉갑 거울에 비쳤으므로 헤스터 프린은 그게 자기 자식의 모습이라기보다 퍼의 모습을 닮으려고 애쓰는 작은 악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리 온 펄!” 하고 헤스터는 아이를 그곳으로부터 떼어 놓으려고 했다. “저 아름다운 정원을 구경하자. 꽃이 피어 있을지도 몰라. 숲에서 보는 것보다 더 고운 꽃들이 말야.”

마침내 펄은 객실 반대쪽에 있는 궁형 창 쪽으로 달려가더니 정원의 경치를 내다보았다. 그곳에는 짧게 깎은 잔디가 양탄자처럼 깔려 있었다. 그 양쪽으로 절반쯤 심은 채 손질이 안 된, 관목이 늘어선 산책길이 나 있었는데, 정원을 꾸미는데 영국식 취미는 아예 살릴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 저택 주인은 흙이 단단해서 식물이 자랄 것 같지 않은 이곳 대서양 쪽에서는 그것은 도저히 무리라고 단념한 모양이었다. 그대신 양배추가 보란 듯이 자라고 있었으며, 저만큼에 뿌리를 내린 호박이 벽면 가까이 덩굴을 뻗어 객실 창문 바로 아래에 커다란 호박을 하나 매달고 있었다. 이 황금빛의 호박이야말로 뉴잉글랜드의 토질이 줄 수 있는 가장 푸짐한 장식품이란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 대륙에 처음으로 건너온 블랙스턴 목사가 심은 나무의 후예로 보이는 장미 덩굴과 사과나무 몇 그루도 보였다. 블랙스턴 목사란 반신화적인 인물로서, 미국 초기 연대기 등을 보면 늘 황소 드에 올라타고 다녔다는 바로 그 사람이다.

펄은 장미 덩굴을 보더니 빨간 장미꽃을 꺾어 달라고 졸라 대며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조용히 해요, !” 어머니는 애원하듯이 말했다. “울지 마, ! 정원에 사람 소리가 나잖아. 총독님이 계신단 말야! 다른 분들도 함께!”

그때 산책길 저쪽으로부터 몇 명의 나자들이 저택을 향하여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펄은 어머니의 달래는 말은 아랑곳없이 악을 쓰며 울어 대다가 갑자기 울음을 뚝 그쳤다. 낯선 사람들이 나타나는 바람에 아이의 변덕스러운 호기심이 고개를 들었던 것이다.

 

 

8. 어린 마녀와 목사

 

헐렁한 상의에 가벼운 모자를 쓴 벨링햄 총독은 앞장서서 집터를 안내하며 집의 개조 계획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 왕조풍의 구식 옷이기는 했지만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주름깃이 반백이 된 턱수염을 둘러싸고 있어 큰 쟁반 위에 놓인 세례 요한의 목을 연상케 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세월의 서릿발을 맞은 것 같은 아주 완고하고 엄격한 그의 인상은, 있는 힘을 다하여 자기 주위에 잡아 두려고 한, 세속적인 즐거움을 위한 갖가지 설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근엄하고 충실한 우리의 선조들은 손을 내밀기만 하면 쉽게 잡을 수 있는 안락이나, 풍요를 거부하는 것이 양심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믿는다면 그건 큰 잘못이다. 이와 같은 신조는 지금 벨링햄 총독의 어깨 너머로, 흩날리는 눈발처럼 흰 턱수염을 나부끼고 있는 존 윌슨 노목사도 그런 설료는 한 적이 없었다. 이 흰 턱수염의 주인공은 그때 배나무와 복숭아나무가 뉴잉글랜드의 풍토에서도 자랄 수 있을지 모르며, 자색포도도 또한 햇볕 잘 드는 정원 앞 담장에서라면 무성하게 자랄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을 말하는 중이었다. 노목사는 영국 교회의 풍족한 품에서 자랐으므로 모든 쾌적하고 좋은 것에 대해서는 확고한 취미를 지니고 있었다. 설교단 위에 섰을 때나, 헤스터 프린이 저지른 것 같은 죄를 대중 앞에서 비나하거나 할 때는 매우 엄격해 보였지만, 사생활에서는 온정이 넘쳐흐르는 관대한 성격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그 무렵의 목사들 가운데서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애정을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었다.

총독과 윌슨 목사의 뒤에는 다 사람의 손님이 뒤따르고 있었다. 한 사람은 독자들도 기억하는, 헤스터 프린의 치욕적인 장면이 벌어졌을 때 과히 내키지 않는 역할을 맡았던 아더 딤스데일 목사였고, 그와 나란히 걷고 있는 사람은 요 이삼 년 동안 줄곧 보스턴에서 살고 있는 의술에 뛰어난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었다. 그는 젊은 목사의 주치의인 동시에 친구이기도 했다. 젊은 목사는 교회 관계의 일이나 자신의 의무에 너무 희생적인 봉사와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에 최근에 와서 건강이 눈에 띄게 나빠졌다는 소문이었다.

손님들 앞에 서서 계단을 하나 둘 딛고 올라온 총독이 객실의 커다란 창문을 양옆으로 활짝 열어젖히자 정면으로 펄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러나 헤스터 프린은 커튼 그늘에 가리어 잘 보이지 않았다.

이게 누구지?” 벨링햄 총독은 눈앞에 있는 아이의 새빨간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솔직히 말해서 이 같은 모습은 나의 화려했던 청춘 시절 이후 처음 보는 것이야! 궁정 가면무도회에 참가하는 것을 다시없는 영광으로 생각했던 옛날 제임스 왕 시절에는 축제 때가 되면 이런 어린 요정 같은 것들이 많아서 우리는 그 애들을 축연경 아이라고 불렀었지. 그런데 어떻게 이런 손님이 우리 객실엘 들어왔을까?”

그러게 말입니다!” 착한 윌슨 목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요 빨간 깃털을 단 새는 무슨 새일까요? 멋있게 채색된 창문으로 햇빛이 들어와 마룻바닥에 금색과 진홍색의 그림자가 비쳤을 때 이와 똑같은 모습을 본 것 같기도 하지만. 그러나 그것은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죠. 그런데 너의 이름은? 넌 그리스도 교도의 아이냐? 교리 문답은 아느냐? 아니면 천주교의 유물과 함께 메리 잉글랜드에 남겨 두고 온 장난꾸러기 요정의 친구란 말이냐?”

, 우리 엄마 딸이에요.” 주홍 색 요정이 대답했다. “내 이름은 펄이고요!”

펄이라고? 펄이 아니라 루비겠지, 그렇지 않으면 코럴인가? 아니 그 색깔로 보면 아무래도 빨간 장미라고 해야겠군!” 그렇게 말한 늙은 목사가 손으로 펄의 볼을 만지려고 하자 아이는 살짝 피해 버렸다.

그런데 네 엄마는 어디 있지? , 여기 계시군.” 목사는 벨링햄 총독 쪽을 보며 조그만 소리로 말했다. “이 애기 지금껏 우리가 의논했던 문제의 아이입니다. 그리고 저기 불행한 어머니 헤스터 프린도 와 있군요!”

불행한 어머니라고?” 총독은 큰 소리로 말했다. “아니, 이런 애 어머니라면 당연히 주홍 색의 여인 이고 바빌론 여인의 좋은 표본이라 해도 좋을 거요! 어쨌든 저 여자는 마침 좋은 때 와 줬군. 곧 그 문제를 의논하기로 합시다.”

객실로 들어온 벨링햄 총독을 뒤따라 나머지 세 사람도 들어왔다.

헤스터 프린!” 총독은 엄한 시선으로 주홍 글씨의 여인을 보며 말했다. “요즘 그대에 대해 말이 많았소이다. 요점인즉, 저 아이 속에 든 불멸의 영혼을 속세의 구렁텅이에 빠져 타락할 대로 타락한 그대에게 맡겨 둬도 과연 우리 당국자가 양심껏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 있느냐는 문제였소. 이 아이 어머니로서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그대 곁을 떠나서 제대로 된 옷을 입고 엄격한 교육에 의해 하늘과 땅의 진리를 배우는 것이 이 애의 현세와 내세의 행복을 위해 보다 나은 길이라고 생각지 않소? 이 점에 대하여 그대는 이 아이를 위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소?”

헤스터 프린은 주홍 글씨를 손가락질 하며 대답했다.

저는 이 글씨에서 배운 것을 펄에게 가르칠 수 있습니다!”

뭐라고, 그건 수치의 표시가 아니오!” 총독이 엄격하게 말했다. “우리가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려고 하는 것은 그 글씨가 나타내는 오점 때문이오.”

말씀은 그렇습니다만.” 안색은 창백했지만, 어머니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이 표시가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 - 매일,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은 나 자신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지만, 이 아이에게는 좀 더 슬기롭고 좀 더 좋은 아이가 될 수 있는 교훈입니다.”

신중히 생각한 뒤에 이 일을 처리합시다.” 벨링햄이 말했다. “윌슨, 이 아이를 좀 시험해 보십시오. 이 나이 또래에 알맞은 그리스도 교도로서의 교육이 되어 있는지 어떤지를 말입니다.”

늙은 목사는 안락의자에 앉더니 펄을 자기 앞으로 끌어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 이외의 사람이 손대 본 적이 없는 이 아이는 창문으로 뛰어나가 계단 있는 데까지 도망쳐 버렸다. 화려한 빛깔의 깃털을 단 열대 지방의 들새가 창공을 향하여 나는 듯한 모습이었다. 윌슨 목사는 펄의 이 돌연한 행동에 적이 당황했다. 그는 평소에 인자한 할아버지 같아서 아이들이 퍽 잘 따랐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이를 계속 시험해 보려 하였다.

!” 그는 엄숙한 말투로 물었다. “말 잘 들으면 진짜 펄(진주)을 가질 수 있어. 너는 누가 만들었지? 대답해 봐라.”

펄은 자기를 만든 것이 누구라는 것쯤은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신앙이 돈독한 가정의 딸이었던 헤스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얘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아무리 어린아이라도 열심히 재미있게 받아들일 수 있게끔 줄곧 가르쳐 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펄이 생후 3년 동안에 배운 것은 정말 대단한 양이어서 뉴잉글랜드 신앙 입문서나 웨스트민스터 교리문답집의 제1문쯤은 비록 그 유명한 책의 겉모양조차도 몰랐지만 쉽게 통과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아이들은 다소 심술궂은 구석이 있게 마련이고, 펄은 열 배나 더 심술궂었기 때문에 입을 꽉 다물어 버리거나 뚱딴지 같은 말을 지껄였다. 펄은 아주 기분 나쁜 듯 손가락을 입에 문 채 대답하기를 거절하다가 자기는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감옥 문 옆에 핀 찔레꽃 덤불에서 어머니가 주워 왔노라고 말했다. 이 어처구니없는 대답이 떠오른 것은 펄이 서 있는 총독 댁의 창문 밖에 빨간 장미가 피어 있었고, 오는 도중 감옥 앞에서 찔레꽃 덤불을 본 것을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로저 칠링워드 노인은 얼굴에 미소를 띠며 젊은 목사의 귀에다 뭐라고 속삭였다. 헤스터 프린은 이 의사를 쳐다보자, 자기 운명이 어떻게 변할는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달라진 노인의 얼굴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지내던 때에 비하면 너무도 흉한 얼굴이었다. 침울한 안색은 더욱 어두워 보였고, 몸은 전보다 더 불구가 된 것 같았다. 한순간 시선이 마주쳤지만, 헤스터는 다시 눈앞에 벌어진 사태에 주의를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야단났군!” 펄의 대답을 듣고 어이가 없어진 총독이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큰 소리로 말했다. “이 아이는 세 살이나 되었다는데 누가 자기를 만들었는 지도 모르다니! 자기의 영혼이라든가 현세에서의 타락이라든가 내세의 운명 등에 대해서도 역시 모르리라는 것은 뻔한 노릇이오! 어떻습니까, 여러분. 더 이상 시험해 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요.”

헤스터는 펄을 붙잡더니 두 팔로 꽉 끌어안으며 몹시 사나운 기세로 청교도의 늙은 총독을 쏘아보았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외로운 처지로 오직 하나의 보물인 딸애만을 보람으로 여기고 살아 온 헤스터로서는 온 세상 사람들이 덤빈다 해도, 이것만은 포기할 수 없는 권리였고, 죽어도 이것만은 지키겠다고 결심했다.

하느님이 이 아이를 내게 주셨습니다!” 헤스터는 외쳤다. “당신들이 내게서 모든 것을 빼앗아 갔기 때문에 그 대신 하느님이 아 아이를 주신 것입니다. 이 아이는 나의 행복입니다! 나의 가책이기도 합니다! 또 펄은 내게 벌을 주기도 합니다! 보지 못하십니까? 이 아이는 주홍 글씨입니다만, 사랑을 받기만 하는 주홍 글씨이기에 그만큼 나의 죄를 벌주는 힘이 백만 배나 더 큰 것입니다!”

가엾은 여자군.” 인정 많은 늙은 목사의 말이었다. “이 아이는 잘 돌봐질 것이오. 그대 이상으로.”

하느님이 이 아이를 제게 맡겨 주셨습니다.” 헤스터 프린은 되풀이했으나 그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이 아이를 내줄 순 없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는 발작이라도 하듯이 젊은 목사 딤스데일 씨 쪽을 돌아다보았다.

저를 위해 말씀 좀 해 주세요!” 헤스터는 외쳤다. “당신은 제 목사님이셨고 제 영혼을 책임지셨던 분이니까, 여기 계신 분들보다는 저를 더 잘 아실 거 아녜요. 이 아이만은 빼앗길 수 없습니다! 저를 좀 변호해 주세요! 당신은 제 마음을 알아주실 거예요. 이분들에게는 없는 동정심을 지니고 계시니까요. 제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어머니의 권리가 어떠한 것인지 당신은 알고 계실 겁니다! 부탁입니다! 이 아이를 빼앗길 순 없습니다! 부탁입니다!”

이 격하고 절박한 호소는 그녀가 금방이라도 미쳐 날뛰지 않을까 하는 염려를 자아냈다. 이 말에 젊은 목사는 곧 앞으로 나섰는데, 얼굴은 창백해지고 특히 그의 신경질적인 기질이 흥분할 때마다 하는 버릇대로 가슴에 손을 얹고 있었다. 목사는 헤스터가 군중 앞에서 욕을 당할 때 소개됐던 것보다 훨씬 더 초췌하고 수척해 보였다. 건강이 쇠약해진 탓인지, 아니면 다른 까닭이 있는 탓인지는 모르지만 크고 검은 그의 눈 깊숙한 곳에는 무한한 괴로음이 서려 있었다.

이 여인의 말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목사의 음성은 부드럽고 떨리는 듯 했으나, 넓은 방 안이 쩌렁쩌렁 울리어 속이 텅 빈 갑옷이 공명할 정도였다. “헤스터의 말에도, 또 그렇게 말하는 심정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하느님이 그녀에게 이 아이를 주신 것이고, 보기에 괴팍스럽게 생각되는 이 아이의 성질이나 요구를 본능적으로 이해할 힘도 아울러 주어졌을 테니 어느 누구도 이 여자만큼 이 아이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게다가 이 모녀 사이에는 뭔가 머리가 수그러질 만한 신성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뭐라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딤스데일 목사님?” 총독이 목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당연한 일이 아닙니까.” 목사는 말을 이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창조자이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종의 행위를 가볍게 보시고, 더러운 육욕과 신성한 애정과의 구별을 무시했다고 볼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아비와 죄와 어미의 수치 사이에서 태어난 이 아이는 그 어머니의 마음을 감화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손을 통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이고, 그래서 어머니 역시 저렇게 열심히, 또 저렇게까지 애타는 마음으로 이 아이를 보호할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축복, 그것도 이 여자의 생애에 있어서 단 하나의 축복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게다기 그 어머니 자신도 말한 바와 같이, 그녀의 죄를 벌하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이 아이는 그 어머니가 생각지도 않은 수간에 불현 듯 가슴을 찌르는 고통이며 괴로움 중에도 간혹 기쁨을 맛보는 때에 새삼스레 느끼는 가책이며, 늘 되살아나는 번민입니다! 그 흔적은 이 아이의 옷차림에 잘 나타나 있지 않습니까? 여인의 가슴에 낙인찍힌 저 붉은 표적을 뚜렷이 연상시키지 않습니까?”

참으로 좋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윌슨 목사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이 여인이 자기 아이를 협잡꾼으로 만들까 봐 걱정하고 있었죠.”

아니,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딤스데일 목사는 말을 이었다. “저 아이의 존재를 통해 하느님이 엄숙한 기적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이 여인이 깨닫고 있다는 것을 저는 보증합니다. 게다가 이 여인이 믿고 있는 것은 보다 암담한 구렁에 빠뜨리려고 꾀는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무엇보다도 자신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하느님께서 저 아이를 내리선 것으로 믿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불멸의 영혼을 지닌 아이, 영원한 기쁨과 또한 슬픔을 맛보게 하는 아이의 뒷바라지를 하는 일은 이 가엾은 죄 많은 여인을 위해 좋은 일입니다. 그녀는 이 아이를 통해 정의를 체험할 것이며, 자신의 타락을 되새겨 명심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그녀가 이 아이를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다면, 창조주의 신성한 약속에 의해 아이 또한 어머니를 천국으로 인도하리라는 것을 이 여인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점으로 보아 죄 많은 어머니 쪽이 죄 많은 아버지보다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니 헤스터 프린을 위해서나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나 이 불쌍한 아이를 위해서나 하느님의 섭리가 처리하신 대로 두 사람을 놔두도록 합시다!”

굉장히 열성적으로 말씀하시는 구요.”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뿐만 아니라 이 젊은 동료의 말씀에는 중대한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윌슨 목사가 덧붙였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벨링햄 총독님? 불쌍한 여인을 위하여 그가 훌륭히 변호해 주지 않았습니까?”

정말 그렇습니다.” 총독은 대답했다. “이 문제는 일단 보류하기로 합시다. 이 여인이 더 이상 추문을 퍼뜨리지 않는다는 조건부라면 하여간 선생이나 딤스데일 목사의 손을 빌든가 해서 이 아이를 위해 규칙대로의 교리문답 시험을 치르도록 해 주십시오. 그리고 적당한 시기가 되면 이 아이를 학교에도 보내고 교회의 모임에도 나갈 수 있도록 책임자들에게 일러둬야 할 것

같습니다.“

젊은 목사는 말을 마치자 사람들 앞에서 몇 발짝 물러서서 두터운 커튼자락 뒤에 반쯤 얼굴을 가린 채 서 있었다. 햇빛에 비치어 마룻바닥에 던져진 그의 그림자는 애소의 흥분 때문에 아직 떨리고 있었다. 사납고 변덕스러운 요정 펄은 살며시 목사 옆으로 다가가더니 자기의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아 자기 볼에다 갖다 댔다. 아주 상냥하고 자연스러운 애정의 표시였다. 이를 본 어머니는 저 아이가 정말 펄이란 말인가 하고 이상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헤스터도 이 아이의 마음에 애정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 격한 감정으로 나타내기가 일쑤여서, 이렇게 부드럽고 훈훈하게 표현된 적은 지금까지 거의 본 일이 없었던 것이다. 목사는 오랫동안 그가 동경해 오던 여인의 애정을 제외한다면, 이 어린아이의 애정만큼 감미로운 것은 없었다. 그는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잠시 주저하다가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펄의 그러한 부드럽고 다정한 기분은 오해 계속되지 않았다. 아이는 웃으면서 객실 저편으로 뛰어갔다. 그 모양이 어찌나 가볍고 경쾌한지, 늙은 윌슨 목사는 저 아이의 말끝이 대체 마룻바닥에 닿은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저 장난꾸러기는 아무리 봐도 요술을 알고 있는 것 같군요.” 하고 그는 딤스데일 목사에게

말했다. “저 아이라면 마귀할멈의 빗자루가 없이도 하늘을 날 수 있겠어요.”

, 이상한 아인데!”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말참견을 했다. “어머니를 닮은 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나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 아이의 성격을 분석해서 아버지를 추측해 보는 것은 학자의 연구 범위를 벗어난 일일까요?”

그렇지는 않겠습니다만, 이런 문제를 세상의 학문에 의뢰한다는 것은 죄가 되는 일입니다.” 윌슨 목사가 말했다. “단식하고 기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섭리로 저절로 밝혀지지 않는 이상, 비밀은 비밀대로 놓아두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모든 기독교인은 아버지 없는 이 불쌍한 아이에게 어버이와 같은 친절은 베풀 의무가 있습니다.”

일이 잘 해결되었으므로 헤스터 프린은 펄을 데리고 그 저택을 나왔다. 둘이 계단을 내려오고 있을 때 어떤 방의 격자 창문이 열리더니 벨링햄 총독의 심술궂은 누이동생 - 사오 년 뒤에 마녀로 처형된 - 히빈스 부인의 얼굴이 햇빛 속으로 불쑥 나타났다.

이것 보라고!” 하고 부르는 부인의 불길한 모습은 이 산뜻한 저택에 어두운 그림자를 던져 주는 듯했다. “당신들 오늘 밤에 나하고 같이 가지 않겠소? 숲 속에서 재미있는 모임이 있는데 아름다운 헤스터 프린도 같이 갈 것이라고 마왕에게 약속까지 했는데.”

나 대신 미안하다고 말이나 전해 주세요.” 헤스터는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집에서 펄을 돌봐 줘야 합니다. 이 아이를 빼앗겼다면 당신을 따라 숲 속에 들어가 마왕님의 장부에 내 피로 서명을 하겠소만!”

머잖아 꼭 데리고 갈 테야!”

마녀는 얼굴을 찡그리고 창문 안으로 모습을 감추었다. 이 히빈스 부인과 헤스터 프린과의 대면이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 있었던 일이라면, 이것만으로도 타락한 어머니와 또 그로부터 생겨난 아이와의 관계를 끊어서는 안 된다는 젊은 목사의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는 셈이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펄은 어머니를 악마의 손길로부터 구해 주었던 것이다.

 

 

9. 의사

 

로저 칠링워드라는 이름 뒤에는 본인이 다시는 남에게 알리지 않기로 결심한 본명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독자들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헤스터 프린이 수치를 당하던 광경을 목격하던 군중들 틈에 여행이 지친 한 노인이 서 있었다. 그는 따뜻하고 안락한 가정을 꿈꾸며 위험한 황야에서 빠져나왔지만, 그리던 그 여인이 죄악의 본보기로 뭇사람들 앞에서 전시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는 얘기도 이미 앞에서 말한 바 있다. 아내로서의 그녀의 면목은 숱한 사람들의 발밑에 여지없이 짓밟혔다. 불명예의 광장에 서 있던 이 여인을 둘러싸고 그녀에 대한 욕설이 빗발치듯했다. 이 소식을 친척들이나 순결하던 시절의 친구들이 듣는다면 그들도 이 불명예를 함께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불명예는 헤스터와의 관계가 친밀하고 순수한 사람일수록, 그가 받는 불명예의 정도는 크기 마련일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과거에 이 타락한 여자와 관계가 친밀하고 순수했던 사람이라도 이런 달갑지 않은 유산을 물려받겠다고 구태여 밝히고 나설 이유는 없는 것이다. 그 사나이는 여자와 함께 수치스러운 자리에 서지 않기로 결심했다. 헤스터 프린 말고는 아무도 자신의 비밀을 모를 것이며, 그녀의 입을 열게 할 자물쇠와 열쇠는 그가 쥐고 있었으므로 인명부에서 자기의 이름을 말살시켜 버리기로 한 것이다. 이미 오래 전에 바다 속에 매장되었으리라는 그에 관한 소문대로, 옛 인간관계나 이해관계는 자신의 인생으로부터 완전히 증발시키기로 그는 작정하였다. 이 목적이 일단 달성되기만 하면, 그에 따른 새로운 이해관계와 목적이 곧 모리를 쳐들게 될 것이다. 하기야 그건 죄라고까지 할 수는 없다 할지라도 음흉한 짓임엔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의 모든 능력을 쏟을 만큼 어떤 중요한 목적임이 확실했다.

어쨌든 이 결심을 실행하기 위해 그는 로저 칠링워드라는 이름을 가지고 비상한 학문과 지식을 지닌 사람이라는 사실 하나로써 청교도 거리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했던 연구 덕분에 그는 상당히 폭넓은 의학 지식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그는 의사라고 자칭하였고, 이곳 사람들로부터 진심으로 환영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이 식민지에서 내과와 외과 기술에 통달한 의사는 여간해서 만나기 힘들었다. 아마도 의사들은 다른 이민들처럼 대서양 횡단을 결심하게 한 종교적 정열이 없었던 모양이다. 인체의 연구를 거듭하는 그들의 미묘한 고도의 능력이 물질 본위로 되어 버리고, 생명의 전부를 내포하고 있다고 느껴질 정도로 복잡하고 섬세한 인체조직의 신비에 압도되어, 인간 존재에 대한 정신적인 관찰 능력을 상실케 되는 모양이다. 어쨌든 지금까지 보스턴 시민의 건강은 교회 집사 겸 약제사인 한 노인이 감독 아래 놓여 있었는데, 이 사나이의 돈독한 신앙심과 훌륭한 태도는 의사의 면허장 이상으로 그 자격을 보증하는 증명서가 되고 있었다. 또 이 도시에 하나밖에 없는 외과 의사는 이따금 외과 의사로서의 훌륭한 기술을 발휘하곤 했지만, 평상시에는 면도질을 하는 것이 그의 본업이었다. 이러한 의업계에 나타난 로저 칠링워드는 실로 혜성과 같은 존재였다. 고대 의학에 능통한 숙련의라는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그는 어떤 경우에든 다종다양한 성분을 골고루 섞어서 너무도 정성껏 조제했기 때문에 불로장생의 약을 만드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될 정도였다. 더구나 그는 인디언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야생 목초의 약효에 대한 많은 지식을 얻었다. 이 의사가 자신의 환자들에게 서슴없이 말한 바에 의하면, 무지몽매한 야만인에겐 하늘의 혜택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흔해빠진 약초는 수많은 명의들이 몇 백 년이나 걸려 정제한 유럽의 약제나 다름없이 믿을 만하다는 것이었다.

이 기묘한 학자는 적어도 외면적인 종교생활에 관한 한 흠잡을 데가 없었다. 보스턴에 닿은 바로 뒤부터 그는 딤스데일 목사를 그이 정신적인 지도자로 모셨다. 이 젊은 종교가는 아직도 옥스퍼드 대학에서는 학자로서의 명성이 남아 있었다. 열렬한 숭배자들은 그를 하느님이 보낸 사도로 여겼으며, 그가 요절하지만 않는다면 과거의 교부들이 초기 기독교 교회를 위해 이룩한 것만큼 위대한 업적을 아직 기반이 약한 뉴잉글랜드 교회를 위해 수행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즈음 딤스데일 목사의 건강 상태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갔다. 평소에 목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젊은 목사의 볼이 창백해지는 것은 그가 지나치게 연구에 몰두하고 교구의 일을 너무 양심적으로 처리하는 데다 특히 세속의 추악함으로 인해 정신적 등불이 흐려지거나 꺼지지 않도록 자주 단식이라든가 철야 기도를 실행하기 따문이라는 것이었다. 만약 딤스데일 목사가 죽게 된다면, 그것은 이 세상이 그의 발을 디딜 가치조차 없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이에 대하여 본인은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그것은 자기가 지상에서 조그만 사명조차 이행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목사가 쇠약해지는 원인에 대해서는 이처럼 의견이 구구했지만, 그의 건강이 점차 나빠지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의 몸은 몹시 수척했다. 목소리는 아직도 쟁쟁하고 부드러웠으나 거기엔 쇠퇴에 대한 음울한 예언 같은 것이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잘 놀랐으며, 뭔가 뜻밖의 일이 생기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하며 고통스러운 듯 가슴에 손을 얹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젊은 목사의 건강 상태가 이같이 악화되어 여명 같은 그 생명의 빛이 경각에 달렸다고 여겨질 무렵 로저 칠링워드가 이 도시에 나타났던 것이다. 대체 그가 하늘에서 떨어졌는지 땅에서 솟아났는지,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이 사나이의 등장은 신비스러운 것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모두 기적이라고 하였다. 그는 이제 유능한 의사로 세상에 알려졌는데, 여느 사람의 눈에는 아무 값어치도 없어 보이는 약초나 들꽃을 수집하거나, 숲 속에서 나무뿌리를 캐거나, 나뭇가지를 꺾어 그 속에 숨어 있는 효험을 추출해 내는 비상한 재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과학상의 업적이 신의 조화에 가깝다고 한 케넬름 다그비 같은 유명한 사람과도 서신 연락이며 교제가 있었다는 말을 들은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학계에서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이 왜 이런 황량한 땅으로 왔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해 답변이라도 하듯 점차로 퍼져가던 소문은 하느님이 훌륭한 기적을 내리시어 독일의 어느 대학으로부터 저 유명한 의학박사를 고스란히 공중으로 옮겨다 딤스데일 목사의 서재 문 앞에 내려놓았다는 것이었다. 사실 하느님은 소위 기적적 중개라는 방법에 의하지 않고서도 능히 그 목적을 수행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 가장 현명한 사람들까지도 로저 칠링워드가 적절한 시기에 등장한 사실에는 하느님의 섭리를 결부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의사가 젊은 목사에게 강한 관심을 나타낸 일로 더 뚜렷한 뒷받침이 되었다. 그는 교구민의 한 사람으로서 목사에게 다가갔고, 이 소극적이고 다감한 경격의 소유자로부터 친구로서의 호의와 신뢰를 얻으려고 노력했다. 의사는 목사의 건강 상태에 몹시 놀랐으나, 열심히 치료하고 빨리 서두르면 회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딤스데일 목사의 교구에 속해 있는 장로나 집사, 또는 부인네들, 그리고 젊고 아름다운 미혼 여성 등 누구나가 의사의 솜씨를 시험할 겸 한 번 약을 써보라고 귀찮을 정도로 권유했다. 그러면 딤스데일 목사는 조용하게 그 간청을 무리치고 내게는 약 같은 게 필요 없소. 하고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매주 안식일이 올 때마다 그의 볼은 창백하게 여위어 가고 음성은 전보다도 더 떨리게 되었다. 가슴에다 손을 얹는 일이 이젠 우연한 몸짓이라기보다 하나의 습관으로 변해 버렸는데, 어째서 목사는 그런 말을 하는 걸까? 목사의 직분에 싫증이 났단 말인가? 죽기를 원한단 말인가? 보스턴의 선배 목사나 교회 집사들은 이러한 의문을 딤스데일 목사에게 진지한 태도로 물었고, 하느님이 베푸시는 이렇게 뚜렷한 구원의 손길을 거절한다는 것은 죄라고까지 하였다. 잠자코 듣고만 있던 목사는 마침내 의사에게 의논해 보겠노라고 그들에게 약속했다.

이 약속을 이행하기 위해 로저 칠링워드 노인에게 의사로서의 조언을 구하면서 딤스데일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라면 나의 일이나, 슬픔이나, 죄의 고통이 곧 내 죽음과 더불어 끝난다 해도 나는 만족할 것입니다. 당신의 의술을 굳이 시험해 보지 않아도 세속적인 것은 묘에 묻힐 것이고, 정신적인 것은 나와 함께 내세에 가게 될 테니까요.”

.” 로저 칠링워드는 일부러 그러는지 아니면 천성이 그런지 그의 언동은 언제나 조용했다. “젊은 목사시니까 그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죠. 젊은 분은 뿌리를 깊게 박지 않았기 때문에 인생을 손쉽게 단념합니다! 이 지상을 하느님과 함께 걷고 게신 성자는 기쁘게 이 세상을 떠나 천상의 예루살렘에서 황금의 보도를 하느님과 함께 걷고 싶을 테지요.”

천만에 말씀입니다.” 그렇게 말하고 가슴에 손을 얹은 젊은 목사의 이마에는 고통의 빛이 얼른 스쳐 지나갔다. “설령 내가 그러한 곳에서 산책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차라리 이 세상에서 땀 흘리고 일하는 것에 만족할 것입니다.”

훌륭한 분들은 언제나 그렇게 자기 자신을 과소평가하는 법입니다.” 하고 의사는 말했다.

이렇게 하여 의문의 인물 로저 칠링워드 노인은 딤스데일 목사의 주치의가 되었다. 의사는 병의 증세에 흥미를 가졌을 뿐 아니라, 환자의 성격이나 특성도 연구해 보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꼈으므로 연령적으로 차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차차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목사의 건강을 위해, 또한 의사가 병에 쓸 약초를 채집하기 위해, 두 사람은 해안이나 숲 속을 오랫동안 산책하곤 했다. 때로는 파도가 속삭이며 부서지는 곳을, 때로는 나뭇가지 끝에서 바람이 엄숙한 찬미가를 부르는 곳을, 그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으며, 남의 이목을 피한 서로의 면학의 장소를 방문하기도 했다. 이 과학자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에 목사가 매력을 느낀 것은 그의 범상치 않게 깊고 넓은 지적 교양뿐만 아니라, 동료 목사 사이에선 찾아볼 수 없는 폭넓은 사상의 자유로움을 상대방에게서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러한 특징을 의사에게서 발견했을 때 거의 충격적인 만큼 놀라움을 느꼈다. 딤스데일은 진정한 목사요, 진정한 죵교가였고, 신을 섬기는 마음이 열렬하고, 신앙의 길을 꿋꿋하게 걸으며, 시일이 가면 갈수록, 그 길을 보다 깊이 파고드는 그런 정신의 소유자였다. 어떠한 사회 상태에서도 그는 소위 자유주의적인 사상을 지닐 수는 없었을 것이다. 자기를 지탱해 줌과 아울러 무쇠 틀 속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신앙의 무게를 신변에 느끼고 있는 것이 그의 평화를 위해선 절대로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상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지성의 소유자는 통하여 이 우주를 바라보는 즐거움은, 두서없는 기쁨일망정 때때로 목사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갑자기 창문이 활짝 열리고, 지금까지 램프 불빛이나, 잘 들지 않는 광선 아래서, 책에서 풍겨 나오는 곰팡내에 섞이어 생명을 소모시키고만 있던 좁고 숨이 막힐 것 같은 방 안으로 자유로운 공기가 한꺼번에 흘러들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 공기는 너무도 신선하고 싸늘하여 오랫동안 그 속에서 편히 숨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목사는 교회에서 정통이라고 공인하는 범위 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로저 칠링워드는 환자를 세밀히 관찰했다. 일상적으로 친숙해진 사상이 영역 내에서 낯익은 길을 걷고 있을 때뿐 아니라, 색다른 정신 풍토 속에 던져졌을 때의 환자의 상태도 유심히 관찰하였다. 어쩌면 후자의 경우, 그의 내부에 숨어 있는 뭔가 새로운 것이 그의 성격 표면에 떠오를지도 몰랐다.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선 우선 그 사람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 한다고 로저 칠링워드는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인간의 감성과 지성은 그 육신의 병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이다. 아더 딤스데일의 경우, 감수성과 상상력이 몹시 예민하고 또한 강렬했기 때문에, 그의 육신의 병은 그 감수성과 상상력 속에 원인이 있는 듯하였다. 그래서 로저 칠링워드는 마치 어두운 동굴 속에서 보물을 찾는 사람처럼 환자의 가슴 깊숙이 파고들어 그의 사상을 음미하고, 기억을 들여다보고, 모든 것을 조심스러운 손으로 더듬었다. 이와 같은 탐색을 행할 기회와 자유가 있고, 더구나 그것을 규명해 낼만한 기술을 몸에 지닌 탐구자의 눈을 피할 수 있는 비밀이란 거의 없을 것이다. 깊은 비밀을 간작하고 있는 사람은 이런 의사와 각별히 친숙해지는 것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 가령 두뇌가 명석하고, 뭐라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것이 갖추어져 있는 의사가 있다고 하자. 눈에 거슬리는 독선이나 불쾌하리만큼 눈에 띄는 버릇을 갖고 있지 않으며, 환자의 마음과 자기 마음을 완전히 일치시켜 환자가 머릿속으로 생각했었다고 기억하는 정도의 일조차 부지불식간에 털어놓게 할 수 있는 선천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또 무슨 말을 들어도 놀라거나, 동정의 말을 하기보다는 침묵을 지키며 숨소리나 짤막한 응수로써 모든 것을 알아들었다는 듯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음밀한 천성에 덧붙여 공인된 의사로서 역할이 가지는 이점까지 있다고 하면,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비밀로 얼어붙은 환자의 마음도 투명한 물처럼 흘러내려 모든 비밀을 백일하에 쏟아 놓게 되고 만다.

로저 칠링워드는 앞에서 말한 특징을 모두라고는 할 수 없어도 거의 대부분 갖춘 의사였다.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듯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두 뛰어난 정신 사이에는 일종의 친밀한 관계가 생겨났다. 그래서 이 두 지성은 인간의 사상과 학문의 모든 영역에 걸쳐 서로 교류하였다. 그들은 공적인 문제에 관해 논의하였고,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의사가 틀림없이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비밀이 목사의 마음속에서 흘러나와 상대방의 귀에 들어가는 일은 끝내 일어나지 않았다. 의사는 딤스데일 목사가 자신의 병의 실체에 대해 제대로 말해 주지 않았다는 의혹에 사로잡혔다. 참으로 이상한 침묵이 아닌가!

그러나 얼마 뒤, 로저 칠링워드의 제안에 따라 딤스데일 목사 친구들의 주선으로 이 두 사람은 한 집에서 기거하게 되었다. 생명의 조류가 금세 밀려 들었다 밀려가는 것 같은 목사의 건강 상태를 염려와 우정 어린 의사의 눈길이 늘 지켜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이 바람직한 일이 이루어지자 마을 전체가 기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젊은 목사의 건강뿐 아니라 기회 있을 때마다, 권유한 대로 그의 영혼을 음모하는 꽃 같은 처녀들 중에서 한 사람 골라 아내로 삼는다면 그것은 더욱 바람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아더 딤스데일을 설득하여도 이 일은 적어도 현재로서는 전혀 실현될 가망이 없었다. 목사는 마치 독신 생활이 교회의 계율인 양 이런 권유는 모조리 거절해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딤스데일 목사는 맛없는 남의 밥을 얻어 먹고, 남의 집 난롯가에서 몸을 녹이길 원하는 사람에게 따르게 마련인 춥고 고생스러운 생활을 평생 자진해서 참고 살아가기로 결심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학식과 경험이 풍부하고 마음씨가 인자한 노의사는 젊은 목사에 대해 부성애와 경애의 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으므로, 목사 곁에서 늘 돌보아 줄 인물로서는 가장 적임자로 생각되었다.

두 사람이 함께 기거하게 된 새 집은 사회적으로 매우 명망 있고 신앙심도 깊은 어떤 미망인의 집이었는데, 그 집은 현재 유서 깊은 킹스 교회 건물이 서 있는 대지를 거의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한 쪽에는 본디 아이작 존슨의 땅이었던 묘지가 있어, 목사와 의사의 직업을 가진 두 사람에게는 진지한 사색에 잠기기에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이었다. 딤스데일 목사에게는 어머니와도 같은 훌륭한 미망인의 배려로 양지바른 바깥 방이 주어졌는데, 그 방엔 낮에도 햇볕을 가릴 수 있게끔 두터운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벽에는 고블랭 지조라고 하는 벽걸이가 걸려 있었는데, 그 진위는 그만두고라도 그 벽걸이에는 다윗과 밧세바와 예언자 나단에 대한 성성 이야기가 그림으로 그려져 있었다. 그 그림들은 아직 색이 바래지 않았고 아름다운 여인 밧세바의 모습은 예언자 나단 못지않게 훌륭하였다. 창백한 안색의 목사는 이 방에다 자신의 장서들을 쌓아 올렸다 양피지로 장정한 초기 교회 교부들의 2절판 책들이 있었다.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은 이런 종류의 저술가들을 신랄하게 비난하면서도 자주 이용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이 방의 반대편 방에는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서재 겸 실험실을 차렸다. 현대 과학자들이 생각하기엔 몹시 빈약한 것이었지만, 증류 장치 하나와 약제 및 화학약품을 조제하는 기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연금술에 능한 그는 이런 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이처럼 훌륭한 환경에서 각 방에 자리 잡은 두 학자는 허물없이 상대방의 방을 드나들면서 호기심에 찬 눈으로 서로의 일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딤스데일 목사의 통찰력이 예리한 친구들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 모든 일은 젊은 목사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해 하느님의 손길이 이루어 놓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말해 둬야 할 것은, 최근에 보스턴 시민의 일부에서는 딤스데일 목사와 기묘한 의사의 관계에 대하여 전혀 별개의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무식한 대중이 자기 눈으로만 사물을 보려 할 경우 대개는 잘못 보기 쉬운 법이다. 그러나 이 역시 대중이 곧잘 하듯, 그들이 아주 따뜻한 마음의 직관에서 판단을 내릴 때에는 참으로 심오하고 그릇됨 없는 결론을 얻게 되며, 그것은 신기에 의해 명백해진 진리와 같은 성격을 띠는 일이 흔히 있는 법이다. 지금 화제가 되고 있는 로저 칠링워드에 대한 일만 하더라도 그들 대중은 나름대로의 견해를 심중에 품고 있었으나 진지하게 반박할 만한 사실과 논리로 뒷받침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30년쯤 전 토머스 오보베리 경의 살해 사건이 일어났던 무렵 런던에서 살았었다는 한 수직공 노인의 증언에 따르면, 지금은 생각이 잘 안 나지만 어쨌든 이 노의사가 다른 이름으로, 오보베리 사건에 관련한 유명한 마술사 포먼 박사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일이 있다고 한다. 또 이 의사가 인디언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마술로 기적적인 치료를 한다고 알려진 야만인 기도사에게 힘입어 의학상의 지식을 길렀다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또 많은 사람들은 로저 칠링워드의 얼굴은 그가 보스턴에 살면서 부터, 특히 딤스데일 목사와 동거하게 된 이후부터 놀랄 만큼 변모했다고 했다. 처음에는 조용하고 명상적이어서 그야말로 학자다운 풍모를 지니고 있었으나, 지금은 젠엔 없던 추악한 표정이 얼굴에 엿보이며, 그것은 보면 볼수록 더욱 뚜렷하게 눈에 띈다는 것이었다. 또 일편의 무지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의사의 실험실 불은 땅 속에서 가져온, 지옥의 연료를 때는 거이어서, 의사의 얼굴이 연기에 그을려 검뿌예진다는 것이다.

요컨대, 어는 시대의 기독교 세계든 특히 신성한 인물들에게 흔히 있는 일로써, 로저 칠링워드 노인의 모습으로 변신한 악마나 악마의 사자가 아더 딤스데일 목사에게 따라다닌다는 소문이 세상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악마의 사자는 하느님의 허락을 얻어 잠시 동안 그와 친분을 맺고 그의 영혼 속으로 파고들어 그를 파멸시키려 한다는 것이있다. 그러나 분별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승리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를 의심하지 않았으므로 사람들은 목사가 이 악마와의 싸움에서 틀림없이 이겨 결국은 영광에 휩싸인 신성한 모습으로 거듭나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승리하기까지 겪어야 할 목사의 치명적인 고뇌를 생각하면 슬프기도 했다.

아아! 가엾은 목사의 눈 속에 깃든 공포의 검은 그림자는 그 싸움이 치열한 것임을 말해 주는 듯했고, 승리의 행방도 또한 모호함을 암시해 주는 듯했다.

 

 

10. 의사와 환자

 

로저 칠링워드 노인은 평생을 통해 비록 그 성질이 온화하고 따뜻하지는 않았으나 친절하였고, 세상과의 교섭에 있어서도 항상 순수하고 정직한 남자였다. 그런 그가 탐색에 착수한 것이다. 본인도 믿고 있듯이 오직 진실만을 탐구해 가는 그의 태도는 재판관처럼 엄정하고 중립적인 성실함을 지니고 있어 마치 인간적인 정열이나 자기에게 가해진 피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공간에 그린 선이나 도형 같은 기하학의 문제를 다루는 것 같았다. 그러나 차차 깊이 파고들어감에 따라 조용하면서도 맹렬한 어떤 필연성이 무서운 매력을 가지고 노인을 사로잡고 말았기 때문에, 그는 그것이 명하는 바를 달성할 때까지는 자유로운 몸이 될 수 없었다. 그래서 노인은 노다지를 찾는 탐광자처럼 이 불쌍한 목사의 가슴속을 파헤쳤다. 시체의 가슴에 달린 보석을 찾으려고 무덤을 파헤쳤으나 다만 썩어가는 주검만을 발견할 뿐인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의 모습과 흡사했다는 것이 더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노인이 찾고 있던 것이 그와 같은 것이었다면 아아, 그 영혼이야말로 불쌍하다 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이따금 의사의 눈이 광채를 발하는 때가 있었다. 그 파랗고 불길하게 타오르는 눈빛은 용광로에서 반사하는 불빛 같기도 했고, 어떻게 보면 번연히 그림 속에 나오는 산중턱에 있는 무서운 문으로부터 터져 나와 순례자들의 얼굴을 비친 그 기분 나쁜 불빛과도 비슷했다. 이 음험한 광부가 파헤치고 있던 땅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어떤 조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때면 의사는 혼자 중얼거렸다.

이 사람은 남이 보기에는 순수하고 정신적인 인간으로 보이지만, 아버지나 어머니 중 어느 한 사람으로부터 강렬한 동물적 기질을 물려받았어. 이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하자!”

이처럼 의사는 목사의 어두운 내면을 오랫동안 탐색했지만, 그가 파헤친 수많은 귀중한 자료는 인류의 행복에 대한 높은 이상이나 따뜻한 인간에, 순수한 감정과 타고난 신앙심 등 사색과 연구에 의해 강화되고 계시의 빛을 받아 빛나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값비싼 황금도 이 추적자에게는 한낱 쓰레기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실망하고 돌아서서 또 다른 방향으로 조사를 시작했다. 그는 발소리를 죽이고 주의를 살피면서 살그머니 더듬어 갔다. 마치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보물을 훔치려고 주인이 잠들어 있는, 아니 어쩌면 완전히 깨어 있는지도 모르는 방으로 몰래 들어가는 도둑과 같은 꼴이었다.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마루청이 삐걱대고 가까이 가서는 안 될 곳까지 다가섰기 때문에 그의 그림자가 상대방의 얼굴 위를 가리기도 했다. 다시 말하자면 과민한 신경의 소유자인 딤스데일 목사는 정신적 직관에 의해, 막연하나마 무언가 자기의 평화를 깨뜨리는 적의를 품은 존재가 무리하게 자기 쪽으로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로저 칠링워드도 직관적인 지각력을 갖고 있었으므로 목사가 깜짝 놀란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면 의사는 사려 깊고 동정심은 많으나 결코 간섭하는 일 없는 친구와 같이 친절하고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태연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 흔히 나타나듯이 늘 모든 인간에 대해 의심을 품는 일만 없었더라면, 딤스데일 목사는 이 의사의 성격을 좀 더 완전히 간파할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무도 친구로서 믿지 않았기에 막상 실제로 적이 나타났을 떄도 그것이 적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래서 목사는 여전히 늙은 의사와 친교를 계속하였고, 매일처럼 서재로 그를 불러들이기도 하고 상대방의 실험실을 방문하여, 잡초가 효력 있는 약으로 변하는 과정을 구경하며 기분전환을 하기도 했다.

어느 날 목사는 묘지가 내다보이는 활짝 열린 창문턱에 팔꿈치를 댄 채 손으로 이마를 짚은 자세로 로저 칠링워드와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노인은 지저분한 풀다발을 조사하고 있었다.

선생님.” 목사는 그 풀을 곁눈질하며 물었다. 근래에는 사람이고 물건이고 정면으로 보지 않는 것이 목사의 버릇처럼 되어 버렸다. “어디서 이렇게 검고 축 늘어진 약초를 수집하셨습니까?”

바로 저 묘지에서 뜯었습니다.” 의사는 일손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다. “나도 처음 보는 풀입니다. 비석도, 죽은 자에 대한 기록도, 아무것도 없는 무덤 위에 나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 흉측한 잡초만이 죽은 자를 기념하듯 나 있더군요. 그 죽은 자의 심장에서 돋아난 것일 겝니다. 살아 있는 동안 고백했더라면 좋았을 어떤 무서운 비밀을 숨긴 채 묻혔기 때문에 그 비밀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르죠.”

그 사람도 고백하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였지만, 할 수 없었던 게죠.” 하고 목사는 말했다.

왜 그럴까요?” 의사가 반문했다. “왜 고백을 하지 않았을까요? 모든 죄의 고백을 요구하는 자연의 힘은 아주 대단한 것이어서, 보다시피 파묻힌 사람의 심장에서 검은 잡초가 돋아 나와, 말없이 죽은 고인의 죄를 나타내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건 선생님의 공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목사는 대답했다. “내 생각이 잘못되었는지 모르지만, 사람의 마음속에 묻힌 비밀을 말이나 상징 등으로 폭로하는 힘은 하느님의 자비심밖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밀을 간직하고 있는 마음은 이 세상 속에 숨겨진 모든 것이 폭로되는 날까지 계속 비밀을 지키려고 고집할 것입니다. 내가 성경을 읽거나 해석한 바로는, 설령 그날이 되어 인간의 생각이나 행동이 폭로되더라도 그것이 인과응보의 결과라고 이해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생각은 아무래도 천박한 생각이죠. 이렇게 비밀이 밝혀지는 것은 이 세상의 어두운 문제가 명백해지는 것을 보고자 기다리던 지적인 사람들에게 지적인 만족을 주기 위하여 마련된 것에 불과하다고 해도 그리 잘못된 말은 아닐 것입니다. 이 문제를 완전무결하게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이해일 것입니다. 지금 선생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비참한 비밀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인간은 그 최후의 심판의 날에는 주저하기는커녕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안고 그 비밀을 고백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왜 이 세상에서 그 비밀을 털어 놓지 못할까요?” 로저 칠링워드는 목사를 넌지시 곁눈질하며 물었다. “왜 죄인은 그 말할 수 없는 기쁨을 좀 더 빨리 자기 것으로 하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목사는 물리칠 수 없는 고통의 발작으로 괴로운 듯 가슴을 움켜쥐고 있었다. “실은 많은 불쌍한 영혼 등이 임종의 자리에서뿐 아니라, 원기왕성하고 명성을 떨치고 있는 시절에도 내게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고백하고 난 다음 죄지은 그들이 얼마나 안도의 표정을 짓는지 모릅니다! 자기 자신의 부패한 숨결에 질식할 것 같다가 자유로운 공기를 마시게 된 것 같은 표정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가령 살인을 범한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도 마음속에 시체를 묻어 두기보다 당장에 밖으로 내던져 우주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은 당연한 노릇이겠죠!”

그러나 비밀을 가슴속에 그대로 묻어 두려는 사람도 있지요.” 의사는 조용하게 말했다.

하긴 그런 사람들도 있습니다.” 딤스데일 목사는 대답했다. “그러나 좀 더 명백한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타고난 성질 때문에 침묵을 지키는지도 모릅니다. 또 어쩌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죄는 비록 졌지만 하느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아 사람들 앞에서 추악하고 흉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꺼리는 것이 아닐까요? 그렇게 되면 선행을 할 수도 없게 되고, 보다 현실적인 봉사를 함으로써 과거의 악행을 속죄할 수도 없게 되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마치 흰 눈처럼 순결한 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은 마음속에는 좀처럼 지울 수 없는 죄악이 시커멓게 얼룩져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로저 칠링워드의 말은 여느 때와 달리 힘차게 들렸다. 그는 집게손가락을 가볍게 움직이며 말을 계속했다. “그런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치욕을 마주 대하는 일이 두려운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든가, 하느님에게 봉사하는 열성이라든가 - 그런 깨끗한 충동과, 한 번 범한 죄가 문을 열고 불러들인 나쁜 종자를 번식시키는 사악한 충동이 그자들의 마음속에 공존하는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만. 그러나 그자들이 아무리 하느님을 찬양하고 싶다 하더라도 그 더러운 손을 천국 쪽으로 쳐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동포에게 봉사를 하고 싶다고 한다면 우선 겸손한 태도로 죄를 회개함으로써, 양심의 힘과 존재를 명백하게 하는 일부터 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참으로 현명하고 경건한 당신이지만, 설마 기만과 허위가 하느님의 진리보다도 더 훌륭하고, 또한 그것이 하느님의 영광이나 인간의 행복을 위한 일이라는 것을 나에게 믿게 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그런 자들은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렇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죠.” 젊은 목사는 무슨 당치 않은 얘기를 가로막듯 무뚝뚝한 어조로 대답했다. 목사는 지나치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자기 성격을 자극하는 그런 화제를 잘 회피하는 재주가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나의 쇠약해진 몸이 선생의 친절한 간호로 부슨 효험이라도 보았다고 생각하십니까?”

로저 칠링워드가 채 대답도 하기 전에 어린아이의 맑고 자지러지는 듯한 웃음소리가 이웃 묘지 근처에서 들려왔다. 열어젖힌 창문으로 - 여름철이 되었다 - 목사가 무심코 내다보니 헤스터 프린과 딸 펄이 묘지를 가로지른 오솔길을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펄은 눈부신 태양처럼 아름다웠으나 그 심술궂으면서도 쾌활한 기분에 넘쳐 있었다. 이런 때의 펄은 동정이라든가 인간적인 접촉이 있는 세계로부터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때 마침 그 아이는 무엄하게도 이 무덤에서 저 무덤으로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위인의 무덤으로 보이는 넓고 평평한 가문이 박혀 있는 묘석이 있는 곳에 이르자, 그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좀 더 얌전하게 굴라고 타이르는 어머니의 말에 펄은 춤을 멈추었지만, 그 대신 그 무덤 옆에 있는 커다란 우방초에서 뾰족한 가시를 따 모으기 시작했다. 손에 잔뜩 모아지자 펄은 그것을 어머니의 가슴에 붙어 있는 주홍 글씨의 선을 따라 붙였는데 그 가시는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헤스터도 굳이 떼려고 하지 않았다.

로저 칠링워드는 창가로 와서 침울한 웃음을 띠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법률이나, 권위에 대한 존경심도,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인간의 관습이나 의견에 대한 관심도 저 아이의 성질에는 하나도 섞여 있는 것이 없단 말이야.” 의사는 혼잣말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하는 말도 아닌 투로 말했다. “요전에는 저애가 스프링레인의 가축용 물통이 있는 곳에서 총독 각하에게 물을 끼얹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 아이는 도대체 무엇일까요? 저 애도 애정이라는 걸 지녔을까요? 저 애 속에 뭔가 뚜렷한 존재 원칙이라도 갖추어져 있을까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있는 것은 법을 파괴한 뒤에 오는 자유뿐입니다.” 딤스데일 목사의 대답은 조용했다. “이 문제를 줄곧 생각해 온 것 같은 태도였다. 선행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펄은 두 사람의 말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심술궂긴 했으나, 명랑함과 총명함이 가득한 미소를 띠고 창문 쪽을 올려다보더니 딤스데일 목사를 향해 가시를 하나 집어 던졌다. 예민한 목사는 깜짝 놀라 날아오는 가시를 피했다. 이렇게 당황하는 목사의 모습을 보자 펄은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헤스터 프린도 무의식중에 눈을 들었다. 이 네 명의 남녀노소는 잠자코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침내 아이가 큰 소리로 웃으면서 소리쳤다.

도망가야 해, 엄마! 도망가지 않으면 저기 있는 악마에게 붙잡혀! 벌써 목사님은 붙잡혔단 말이야. 도망가, 엄마. 붙잡힌단 말이야! 하지만 난 문제없어!”

이렇게 말하면서 펄은 어머니의 손을 잡아 끌고 갔다. 무덤 사이를 뛰고 춤추며 깡총거리면서 가는 모습은 거기 묻혀 있는 과거의 세대와는 아무런 공통성이나 유사성을 가지지 않은 아이 같았다. 보통 사람과는 다른 색다른 요소로 만들어진 아이여서 제멋대로 살아가도록 놓아 둘 수밖에 없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칙일 수밖에 없으며, 그녀의 괴팍한 성격도 죄악으로 간주되지 않는 그런 아이 같았다.

잠시 뒤에 로저 칠링워드가 말했다.

저기 가는 저 여자는 그 죄과가 어떤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방금 전 목사님께서 큰 고통이라고 말씀하신 그런 숨은 죄악의 비밀은 전혀 없을 겝니다. 헤스터 프린의 불행은 가슴에 주홍 글씨를 달고 있는 것으로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으리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믿습니다.” 하고 목사는 대답했다. “그러나 저 여자의 입장이 되어 보지 않고는 뭐라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여자의 얼굴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의 고통의 빛이 엿보였으니까요. 그러나 죄를 숨기고 괴로워하는 인간보다는 저 불쌍한 헤스터처럼 그 고통을 나타내는 편이 훨씬 나으리라 생각됩니다.”

또 잠시 말이 끊어졌다. 의사는 수집해 온 약초를 다시 조사하고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까 당신의 건강에 대한 진단을 물으셨지요.”

마침내 의사가 입을 열었다.

.” 하고 목사는 대답했다. “꼭 알고 싶습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솔직히 말씀해 주십시오. 죽든 살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의사는 여전히 약초를 뒤적이는 반면, 유심히 목사를 살피며 말했다. “목사님 병은 좀 이상한 병입니다. 적어도 내가 관찰한 증세로 본다면, 그 병 자체나 또는 겉으로 봐서는 대단한 것이 못됩니다. 벌써 여러 달 동안 목사님을 모시고 매일 진찰하며 증세를 주의하여 보살펴 왔습니다. 목사님이 중병환자인 것은 분명하지만 경험 많고 조심성 많은 의사라면 불치의 병이라고 포기할 만큼 중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뭐라고 할까요? 알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병입니다.”

수수께끼 같은 말씀이군요.”

창백한 목사는 창밖을 내다보며 말했다.

그럼 더 솔직히 말씀드리지요.” 의사는 말을 이었다. “솔직히 한 가지 묻겠습니다. 혹 실례가 된다면 용서를 바랍니다. 친구로서 - 하느님의 뜻을 받아 목사님의 생명과 건강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묻겠는데, 목사님은 병환의 모든 중세를 숨기기 않고 나에게 말해 주신 겁니까?”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목사는 말했다. “어린아이 장난도 아닌데 의사를 청해 놓고 병사를 청해 놓고 병 증세를 숨기다니요.”

그럼 내게 모든 것을 다 말씀했다는 건가요?” 로저 칠링워드는 강렬하고 지성이 집중된 번쩍이는 눈으로 목사를 응시하면서 말했다. “그렇다고 해 둡시다! 그러나 말입니다. 외면적인 증세를 말해 보았댔자 의사는 고쳐야 할 병의 중요한 증세를 반밖에 모르기 쉽습니다. 육체의 병이 병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만, 사실 정신적 병의 한 증세에 불과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말이 조금이라도 목사님의 비위에 그슬린다면 용서를 빌겠습니다. 목사님은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 누구보다도, 정신의 도구라고 할 수 있는 육체가 그 정신과 밀접하게 결부되어, 소위 몸과 마음이 혼연 일체가 되어 있는 분이십니다.”

그 이상 물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목사는 이렇게 말하고 조금 당황하듯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선생은 영혼을 고치기 위한 약의 전문가는 아니니까요.”

로저 칠링워드도 일어났다. 작달막하고 보기 흉한 불구의 몸으로, 볼까지 창백해진 목사와 마주 서더니 상대방이 말을 가로막은 일에는 조금도 개의치 않고 전과 같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 . . 정신에 어떤 병이 생기면 삽시간에 육체에 상응한 형태가 나타나는 겁니다. 육체의 병을 의사가 고쳐 주기를 바라신다면 그때는 우선 의사에게 영혼 속의 상처나 괴로움을 털어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의사로서는 손 쓸 도리가 없으니까요.”

거절합니다, 당신에겐! 이 지상의 의사에게는 거절합니다!” 딤스데일 목사는 격렬하게 외치며, 이글거리는 눈을 부릅뜨고 로저 칠링워드 노인을 노려보았다. “당신에게는 싫습니다! 만일 내 병이 영혼의 병이라면 나는 영혼을 고쳐 줄 단 한 분의 의사에게 몸을 맡기겠습니다! 고치든 죽이든 따르겠습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이 문제에 참견을 하다니! 죄로 괴로워하는 사람과 하느님 사이에 끼어들다니!”

미친 듯한 기세로 목사는 방을 뛰쳐나갔다.

야릇한 미소를 띠고 목사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로저 칠링워드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렇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된 일이야. 아무것도 잘못된 일은 없어! 곧 화해하게 되겠지. 그러니까 저 사람은 격정에 사로잡히면 본심을 털어놓는 모양이로군! 그렇다면 다른 일에도 똑같은 격정적인 행동을 했을 게 아닌가! 저 경건한 목사인 체하는 딤스데일 선생도 마음의 열정에 사로잡혀 한때 부당한 짓을 저지른 것일 게다.

두 사람 사이에 전과 같은 우정을 되살리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목사는 몇 시간 혼자 있는 동안에 자신이 그토록 몰골 사납게 흥분한 것은 신경이 어떻게 된 탓인지, 의사의 말에는 그토록 흥분시킬 만한 아무런 구실도 이유도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의사로선 당연할 뿐 아니라 목사의 청에 의해 충고를 말했을 뿐인데, 그 친절한 노인을 그렇게 심하게 물리치다니 자신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후회를 하게 된 목사는 곧 의사에게 사과를 했고, 건강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오늘날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준 방법대로 치료를 계속해 주기를 부탁했다. 로저 칠링워드는 이를 쾌히 응낙했다. 그는 성심성의껏 돌보기는 했으나, 진찰이 끝나 환자 방을 나올 때는 늘 입가에 까닭 모를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 표정은 딤스데일 목사 앞에서는 볼 수 없었으나 의사가 문지방을 넘어서는 순간부터 확실히 눈에 띄게 나타났다.

참 이상한 병이군!” 의사는 중얼거렸다. “좀 더 깊이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 . . . 정신과 육체 사이에 기묘한 연결이 있어! 의학을 위해서도 이병은 철저히 규명해 봐야겠군!”

앞서 말한 사건이 있은 지 얼마 안 되어 딤스데일 목사는 대낮에 의자에 앉은 채로 자기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테이블 위에 펴놓은 커다란 고딕 활자의 책은 문학 작품으로선 독자에게 잠을 오게 하는 그런 부류의 대작이었던 모양이다. 목사는 여느 때에 늘 나뭇가지 위를 뛰어 다니는 작은 새처럼 가볍고 침착성이 없어 금방 놀라 도망칠 것 같은 선잠을 잤으므로 이처럼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은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그리고 정신이 전에 없이 자기 껍질 속에 깊숙이 틀어박혀 있었으므로, 로저 칠링워드 노인이 별로 조심하는 일 없이 방으로 들어갔는데도 의자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곧장 환자 앞으로 가서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여태까지 의사에게도 보인 일이 없는 앞가슴의 옷을 풀어 젖혀 버렸다.

이때 딤스데일 목사는 몸을 떨며 조금 움직였다.

의사는 잠시 멈칫하였으나 곧 방을 나갔다.

방문을 나서는 순간 로저 칠링워드의 표정은 놀라움과 기쁨으로 거칠게 일그러졌다. 그 미친 듯이 기뻐 날뛰는 모습은 눈과 입으로만 다 표현할 수 없다는 듯이 강렬하게, 그 흉측한 몸 전체로부터 터져 나왔다. 힘껏 천장을 향하여 팔을 휘두르기도 하고, 마룻바닥을 발로 구르기도 하며 환희의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렇게 기쁨으로 날뛰는 순간에 로저 칠링워드 노인을 본 이가 있었다면, 고귀한 인간의 영혼이 천국에서 쫓겨나 지옥으로 끌려들어 갔을 때 악마가 어떠한 표정을 짓는 지 물어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악마의 광희와 다른 점은 의사의 광희 속에 놀라움과 호기심의 요소가 있었다는 것이다.

 

 

11. 마음속

 

앞에서 말한 사건 이후 목사와 의사의 관계는 겉으로 보기엔 변함이 없었으나, 실은 그 성격이 전과 달라졌다. 로저 칠링워드의 지력은 뚜렷한 진로를 발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가 가고자 계획했던 길은 아니었다. 아주 조용하고 온순한, 격정과는 인연이 먼 듯이 보이는 이 불행한 노인에게 지금까지 줄곧 잠재해 오던 악의가 바야흐로 활동을 시작해, 어쩌면 과거의 어느 누구도 원수에게 그런 앙갚음을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강렬한 복수를 생각게 하였다. 공포, 양심의 가책, 고뇌, 무익한 후회, 물리쳐도 되돌아오는 죄 많은 생각들, 이 모든 것을 털어놓게 할 수 있는 오직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되는 것이 최상이 복수인 것이다. 무엇이나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 주는 큰마음을 지닌 세상으로부터도 감추어진 죄 많은 슬픔을 냉혹하고 용서를 모르는 사나이 앞에 털어놓게 하는 것이다! 복수라는 부채가 이보다 더 적절하게 지불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의 고민을 그에게 주게 될 것이다!

이 계획은 목사의 소극적이고 민감한 태도 때문에 잘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나 로저 칠링워드는 하느님 - 복수자도 희생자도 다같이 자신의 목적을 위해 사용하시면서 벌해야만 할 때에 용서하시기도 하는 하느님-이 자신의 사악한 수단 대신에 내려 주신 이와 같은 사태에 결코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하나의 계시를 받았다고 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계시가 천국에서 온 것이든 다른 어떤 세계에서 온 것이든 자신의 목적을 이행하는 데에는 별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그 계시의 도움으로 의사는 딤스데일 목사와의 모든 관계에 있어 목사의 외양뿐만 아니라, 영혼의 내부까지도 눈앞에 환히 드러나 그의 모든 움직임을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이후부터 노인은 목사의 세계에 관찰자일 뿐 아니라, 그 세계의 주역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마음대로 목사를 조종할 수 있었다. 목사에게 심각한 고민을 주어 흥분시키고 싶으면, 희생자는 언제나 고문대 위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므로 고문대를 조종하는 손잡이가 어디 있는지를 알고 있기만 하면 되었다. -의사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 갑자기 목사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싶으면, 마술사가 지팡이를 휘두르는 대로 나타나는 기분 나쁜 환영들처럼 죽음의 환영, 치욕의 환영 등 수많은 환영이 나타나 목사 주위에 떼 지어 몰려들어 그의 가슴을 손가락질하는 것이었다!

비록 목사는 어떤 사악한 힘이 자기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그리고 막연하게 느끼곤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은 완벽하리만큼 교묘한 수법으로 시행되었기 때문에 그것의 정체가 도대체 무엇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었다. 노의사의 불구의 모습을 의심스럽게, 또 어떤 때는 두려운 마음으로 바라본 것은 사실이다. 그 사람의 몸짓, 걸음걸이, 반백의 턱수염, 무관심한 듯한 사소한 거동, 심지어 걸치고 있는 의복의 모양까지도 목사의 눈에는 거슬려 보였다. 그것은 목사의 가슴속에 스스로도 깨닫지 못할 정도로 깊은 의사에 대한 반감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은연중에 나타내는 증거였다. 이러한 불신과 혐오의 원인을 발견할 수 없었던 딤스데일 목사는 신체의 어느 한 부분이라도 앓는 곳이 있으면 그 독소가 온 마음을 잠식하여 악영향을 준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자신의 예감에 그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목사는 로저 칠링워드 노인에 대해 나쁜 감정을 뿌리 뽑으려고 온 힘을 다했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자신의 생활 원칙에 따라서 계속 노인과 교제를 하였으므로 그는 이 노인으로 하여금 그의 목적을 달성케 하는 기회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셈이었다. 고독하고 불쌍한 인간이며, 희생자보다도 더 비참한 복수자인 로저 칠링워드는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목표에 전력하고 있었다.

이처럼 육신은 병에 시달리고, 영혼은 암담한 고뇌에 들볶여 흉학한 적의간계에 농락당하면서도 딤스데일 목사는 목사로서 빛나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아니, 그 명성의 태반은 그 슬픔에 의해서 얻어진 것이었다. 타고난 재능과 정신적인 통찰력, 또 정서를 경험하고 전달하는 능력 등 그 모든 것은 그의 일상생활의 찌르는 듯한 고통으로 생겨난 초자연적인 활동 상태 속에 간직되어 있었다. 아직 그의 명성은 오르막길에 있긴 했지만, 그의 명성 때문에 다른 명망 있는 성직자들의 평판은 완전히 빛을 잃었다. 그들 중에는 딤스데일 목사가 태어나기 전부터 성직과 관련된 심오한 학무의 습득에 오랜 세월을 보냈기 때문에 이 젊은 목사보다 더욱 견실하고 해박한 학식을 지닌 학자도 있었다. 또 딤스데일 목사보다 굳건하고 예리한 정신과 무쇠나 대리석처럼 굳은 이해력을 지닌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와 같은 이해력에 교리를 적당히 배합하게 되면 상당히 훌륭하고 유능하긴 하나 뭐라 말할 수 없는 딱딱하고 틀에 박힌 부류의 목사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또 책 속에 파묻혀 꾸준히 공부하고, 참을성 있게 사색하여 이룩한 재능과 천계와의 정신적인 교류로 단련된 진실로 영적이고 성자다운 목사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청렴한 생활로 말미암아 인간 세계의 옷을 걸친 채 천국으로 인도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하지 않을 성자의 모습이었다. 다만, 이들이 갖추지 못한 재능은 성령 강림절에 선택된 사도들에게 내려진 불의 혀뿐이었다.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방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난 마음의 언어로 전 인류 동포에게 말하는 힘을 뜻하는 것이었다. 다른 면에 있어서는 사도에 뒤지지 않는 목사들이었으나, 하느님이 그 역할에 대하여 내리신 증빙의 표시로써 가장 희귀하고 최종의 것인 불의 혀만은 갖추지 못하였던 것이다. 아마 그들로서는 이 지상의 동포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밀접한 언어나 비유로써, 최고의 진리를 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리를 말하는 그들의 목소리는 그들이 늘 머물러 있는 고원한 세계로부터 어렴풋이 들려 올 뿐이었다.

그런 여러 가지 성격사의 특징으로 보아 딤스데일 목사는 이 마지막 부류에 속해 있다고 볼 수도 있다. 죄악과 고뇌의 무거운 짐이 그를 가로막지 않았다면 그는 이미 이 신성의 산봉우리에 도달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무거운 짐을 지고 비틀대며 걸어야 하는 것이 그의 운명이었으며, 그것은 그를 가장 낮은 수준의 사람들이 있는 곳까지 끌어내렸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찬사들도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대답했을 정도로 명료한 자질을 가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바로 이 무거운 짐 때문에 그는 죄를 범한 인류 형제들에 대해 참으로 친밀한 동정심이 우러나게 된 것이다. 그의 마음은 죄지은 형제들과 공명하여 떨렸으며, 죄지은 자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슬프고도 설득력이 풍부한 웅변을 통해 자기 자신의 고민을 무수한 사람들 가슴속에 전달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제나 그의 설교는 설득력이 있었지만, 때로는 무서울 때도 있었다!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자신들을 감동시키는 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젊은 목사야말로 성스러운 기적의 결과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지혜와 힐책과 애정이 담긴 하느님의 말을 대변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끔 되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목사가 밟는 땅조차도 신성한 것으로 생각되었다. 교회 처녀들은 그의 옆에 서면 안색이 창백해졌는데 종교적인 정열에 익숙한 그녀들은 자신의 흰 가슴속에 있는 정열을 신에 대한 사랑인 줄 알고 제단에 바칠 가장 적당한 제물로 생각하였다. 나이 많은 신자들은 딤스데일 목사의 허약한 몸을 보면 그가 먼저 천국에 가리라 믿었는지, 죽거든 뼈를 저 젊은 목사의 신성한 무덤 가까이 묻어 달라고 자손들에게 유언했다. 불쌍한 딤스데일 목사는 요즈음 자기무덤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는데, 저주받은 자가 묻히는 묘에도 과연 풀이 날까 하고 스스로 의문을 갖는 것이었다!

이 일반 대중이 그에게 바치는 존경이 목사에게 준 고뇌는 상상도 못 할 만큼 컸다! 진리를 동경하고, 생명 속의 생명으로써 신성한 실체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모두 그림자와 같은 것이며, 일체의 무게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그의 진심이었다.

그렇다면 그 자신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실체가 있는 것인가? 혹은 그림자 중에서도 가장 희미한 그림자란 말인가? 그는 설교단 위에서 목청을 돋우어 자기의 본성을 고백하고 싶었다.

지금 여러분이 보고 계시는 검은 목사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나는, 일상생활에 있어서도 에녹과 같이 신성하다고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나는, 내가 이 땅 위를 걸으면 그 발자취가 빛나서 뒤를 따르는 순례자들이 축복받은 자들의 나라로 인도되리라고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나는, 여러분들의 자제에게 세례를 베풀고 여러분들의 친구들이 임종할 때 막 하직하고 온 세계로부터 희미하게 울려오는 아멘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작별의 기도를 올린 일도 있는 나는, 여러분의 존경을 받고 있는 목사로서의 나는, 사실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 찬 타락한 인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런 말을 하기 전에는 결코 내려오지 않으리라고 결심을 하고 설교단에 오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헛기침을 하고, 길게 심호흡을 하고 이번 숨을 뿜어낼 때는 영혼의 어두운 비밀이 묻어나오겠지 하고 생각하였다. 분명히 입 밖에 내어 말했었다. 그러나 도대체 어떤 말을 했을까? 자기는 정말 비열한 사람일뿐더러 가장 비열한 사람 중에서도 더 비열한 작자이고, 극악인, 혐오의 존재, 상상할 수도 없는 악의 화신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하느님의 불같은 노여움으로 이 더러운 육체가 그 자리에서 불타 버리지 않는 것이 이상할 정도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보다 명백한 말이 또 있을까? 그러면 사람들은 충동적으로 일제히 의자를 차고 일어나 설교단을 더럽힌 자를 끌어내리려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목사의 말을 다 듣고도 사람들은 점점 더 그를 존경할 뿐이었다. 목사의 자책하는 말 속에 얼마나 무서운 뜻이 내포되어 있는지 그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던 것이다.

나이도 젊은데, 하느님 같은 분이다! 라고 사람들은 말했다. 지상의 성자이시다! 목사님은 자신의 순결한 영혼 속에서도 그런 죄악을 인정하는데 더구나 우리의 영혼 속에서는 얼마나 무서운 죄악을 발견하실까!

목사는 그 애매한 고백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것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죄지은 마음을 폭로함으로써 자신의 양심을 기만하려고 하였으나, 그로부터 위안은 조금도 얻지 못한 채 또 새로운 죄와 스스로 치욕을 인정하는 고통을 얻었을 뿐이었다. 그는 분명 진실을 말했건만 그럴싸한 거짓으로 바꾸어 놓은 셈이 되었다. 그러나 사실 그는 누구보다도 진실을 사랑하고 거짓을 미워했다. 그러기에 세상이 무엇보다도 비참한 자기 자신의 모습이 혐오스럽게 느껴졌다!

목사는 마음의 괴로움 때문에 그가 태어나고 자라나 교회의 훌륭한 계명보다도 타락한 옛 모마의 신앙과 합치하는 습벽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 꼭 잠궈 놓은 딤스데일 목사의 비밀 장 속에는 피 묻은 채찍이 있었다. 청교도이자 신교도인 목사는 때때로 이 채찍으로 자신의 어깨를 치며 쓰디쓴 웃음을 터뜨렸는데 그 웃음 때문에 더욱 더 사정없이 채찍질을 하곤 했다. 신앙심이 깊은 많은 청교도들과 마찬가지로 단식을 하는 것도 목사의 습관이었다. - 그러나 다른 사람처럼 하늘의 묵시를 받는 매체가 되기 위해 몸을 깨끗이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고행으로써 무릎의 힘이 빠져나갈 때까지 행하는 엄격한 단식이었다. 또 목사는 거의 매일 밤 캄캄한 어둠 속이나 희미한 램프 불 밑에서 철야 기도를 올렸다. 때로는 강렬한 불빛 아래서 거울 속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면 밤을 새우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끊임없는 자기 성찰이 목사의 일과가 되었지만, 육체를 괴롭힐 수는 있었을망정 정화할 수는 없었다. 장시간에 걸친 철야 기도로 머리는 자주 몽롱해지고 갖가지 환영이 눈앞에 어른거리기도 하였다. 그 환영들은 어두컴컴한 방 한구석에 희미하게 나타나 어슴푸레 떠오르는 일도 있었고, 그의 옆 가까이 몸거울에 비쳐 선명하게 보일 때도 있었다. 창백해진 목사를 비웃고 놀려 대며 함께 가지 않겠느냐고 손짓하는 악마의 무리가 되기도 하고 또는 슬픔에 짓눌려 간신히 하늘 위로 날아가는 천사의 무리가 되기도 하였다. 어떤 때에는 운명을 달리한 청년시절의 친구들이나 성자처럼 얼굴을 찡그리고 흰 턱수염이 난 아버지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외면하고 지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유령 - 참으로 덧없는 환영일 뿐이었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동정의 시선쯤은 던져 줘도 좋으련만! 마지막에는 이 환영들 때문에 황량해진 방안을 주홍 색 옷을 입은 펄의 손목을 잡은 헤스터 프린이 살며시 지나갔는데, 먼저 자기 가슴 위에 있는 주홍 글씨를 손가락질 하고, 다음에는 목사의 가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이러한 환영들에게 그는 한 번도 속은 일은 없었다. 어느 때나 의지력을 발휘함으로써 목사는 실체가 없는 안개와 같은 환영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들이 저만치 있는 조각한 참나무 테이블이나, 가죽으로 장정하고 놋쇠 고리로 죄어진 커다란 신학 서적처럼 실질적인 물체가 아니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환영들은 어떤 의미로써는 불쌍한 목사가 접촉하는 것 중에서 가장 진실하고 가장 실체를 갖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목사와 같이 허위에 찬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이 큰 불행은, 우리 인간 주위에 있는 현실에서 하느님이 정신의 기쁨과 양식으로 삼으라고 주신 진수와 실체를 빼앗겨 버리는 것이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온 우주가 허위요, 실체가 없는 것이며 잡으면 곧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은 허위의 빛 속에 머물러 있는 그 자신도 한낱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며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결과가 된다. 딤스데일 목사를 이 세상에 계속 존재시키고 있는 유일한 진실은 그의 영혼 속에 들어 있는 깊은 고뇌와, 그 얼굴 위에 역력히 나타나는 고뇌의 흔적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미소를 짓거나 명랑한 표정을 짓는 힘이 발견되는 날이면, 이미 딤스데일 목사라는 인물은 없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 불길한 환영들이 잇따라 나타나던 어느 날 밤, 목사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새로운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순간이나마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는 여러 사람 앞에서 예배를 볼 때와 똑같은 옷차림으로 조심스럽게 차려 입고 발소리를 죽여 계단을 내려가 밖으로 나갔다.

 

 

12. 철야기도

 

꿈속을 걷는 것처럼 그리고 사실상 일종의 몽유병에 걸린 사람처럼 걸어서 딤스데일 목사가 찾아간 곳은 훨씬 이전에 헤스터 프린이 자신의 수치를 처음으로 대중 앞에 드러내 놓았던 장소였다.

그 처형대는 7년이란 긴 세월 동안 비바람과 폭양에 낡았고, 그 동안 무수히 그곳에 올라선 죄인들에게 밟혀서 닳기는 했지만 여전히 예배당의 발코니 밑에 옛 모습대로 서 있었다. 목사는 계단을 올라갔다.

5월 초순의 어두운 밤이었다. 먹장 같은 검은 구름이 온 하늘과 지평선 끝까지 뒤덮여 있었다. 헤스터 프린의 형벌을 목격했던 군중들을 지금 이곳에 불러낸다 해도 한밤중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는 단 위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은 고사하고 그림자조차도 분별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거리는 모두 잠들어 있었다. 남의 눈에 띌 염려는 없었다. 새벽녘 동이 훤히 뜰 때까지 여기 서 있는다 하더라도, 습하고 차가운 밤공기가 목사의 몸속으로 스며들어 관절염을 고통을 주든가 감기와 기침으로 목이 막히든가 하여 다음날의 예배와 설교를 고대하고 있는 신자들을 실망케 하는 일 이외는 아무런 위험도 없었다. 목사가 밀실에서 피묻은 채찍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지켜 본,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그러면 목사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곳에 왔을까? 회개의 흉내를 내기 위한 것일까? 목사는 자신의 영혼을 스스로 희롱하고 있었다. 천사들이 얼굴을 붉히고 울며, 악마들이 비웃고 기뻐할 회개의 흉내에 불과했다. 목사를 이곳으로 인도한 것은 어딜 가나 그의 뒤를 따라 다니는 그 양심의 가책 이란 충동이었으나, 이 충동 때문에 고백의 일보 직전까지 쫓겨 가곤 했지만 그 순간 양심의 가책 의 자매이기도 하고 꼭 붙어 다니는 친구이기도 한 겁쟁이 가 떨리는 힘으로 붙잡아서 뒤로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가엾고도 비참한 사나이였다! 이렇게 마음 약한 사람이 어떻게 죄악이란 짐을 질 수 있을 것인가? 죄악이란 무쇠와 같은 신경을 지닌 사람만이 저지를 수 있는 일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죄악의 무거운 짐을 참을 수 있든지 혹은 너무도 무겁게 느껴질 때는 과단성 있게 용기를 발휘하여 그 자리에서 죄악을 내동댕이쳐 버리든지, 둘 중 마음대로 택할 수 있는 인간이다. 그러나 나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목사는 그 어느 것도 행할 힘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이것저것 시도해 봄으로써 결국 하늘에 반항하는 죄와 보람 없는 회개와 고뇌를 한데 엮어 풀 수 없는 매듭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기에 처형대에 서서 부질없는 속죄의 행위를 하고 있을 때, 딤스데일 목사는 우주 전체가 자신의 심장 위의 주홍 색 표적에 집중되는 것 같은 공포심에 사로잡혔다. 사실 그의 심장에는 오래 전부터 독이빨에 물어 뜯기는 듯한 육체적인 고통이 있었다. 억제할 힘도 없이, 또한 그런 의지의 노력도 없이 목사는 큰 소리로 고함을 쳤다. 이 고함 소리는 밤의 어둠 속을 꿰뚫고 퍼져나가 집집마다 메아리쳐 뒤언덕에서 산울림이 되어 돌아왔는데, 그 메아리는 마치 한 떼의 악마들이 그 고함 소리에서 비참함과 공포의 냄새를 맡고 그것을 이리저리 집어 던지며 장난삼아 가지고 노는 것 같았다.

이제 됐어! 목사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모든 사람들이 잠을 깨고 달려 나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 서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그 고함 소리는 겁에 질린 목사의 귀에 들린 것처럼 그렇게 큰 것은 아니었다. 거리는 잠이 깨지 않았다. 설령 깨있다 하더라도, 잠에 취한 그들은 고함 소리를 꿈속의 무슨 무서운 소리로 잘못 들었든가, 마녀들의 소리로 착각했을 것이다. 그 무렵에는 이런 식민지나 호젓한 오두막 위를 마녀들이 악마와 함께 날아가며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으므로 목사는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벨링햄 총독의 저택 창문을 통해 램프 불을 손에 들고, 머리에는 흰 나이트캡을 쓰고, 길고 흰 가운을 걸친 노총독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은 아니 밤중에 무덤으로부터 초혼되어 나온 유령 같았다. 분명 고함 소리에 잠이 깬 모양이었다. 또 그 집 다른 창문에는 총독의 누이동생인 히빈스 부인의 모습이 나타났는데, 그녀 또한 램프 불을 들고 있었다. 상당히 떨어져 있는데도 기분 나쁜 듯 찡그린 얼굴이 뚜렷이 보였다. 부인 격자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불안한 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딤스데일 목사의 고함 소리를 들은 늙은 마녀는, 그 소리가 메아리쳐 울려퍼지는 것으로 보아 자신이 늘 함께 숲 속을 거닌다고 소문이 난 악마나 마녀가 피우는 소음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벨링햄 총독이 들고 있는 불빛을 보자 부인은 곧 자기 등불로 꺼버렸으므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구름 속으로 자기 등불은 꺼버렸으므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구름 속으로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목사의 눈에는 더 이상 부인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 총독은 어둠 속을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더니, 캄캄한 어둠이 있을 뿐 별다른 일이 없음을 알자 창문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목사는 약간 진정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처음에는 멀리 보이다가 차차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는 가물거리는 등불이 눈에 띄었다. 그 불빛에 비쳐 기둥, 울타리, 격자창의 유리, 물이 가득 찬 물통이 있는 펌프, 아치형의 참나무 문, 무쇠로 된 노크 장치, 계단을 이루고 있는 통나무 등이 차례차례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딤스데일 목사는 이러한 것들을 유심히 보았다. 동시에 지금 점점 가까이 오는 발소리는 이 세상에서 자신의 최후의 날이 다가오는 소리이며, 이윽고 림프 불빛이 자기 모습을 비치게 되면 오랫동안 숨겨 온 비밀이 폭로될 것이라는 각오를 하고 있었다. 등불이 더 가까이 다가오자 그 환한 불빛 속에 동료 목사의 모습이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직업상 아버지나 다름없이 마음속으로부터 있는 친구, 윌슨 목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마 어떤 죽어가는 사람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돌아오는 길인 모양이라고 딤스데일 목사는 생각했다. 사실 그러했다. 이 늙은 목사는 바로 이 시각에 천국으로 떠난 윈드롭 총독의 임종을 보고 오는 길이었다. 이 목사는 마치 옛날 성자들이 찬란한 후광에 휩싸인 것처럼 죄 많은 밤의 어둠 속에서 뚜렷이 돋보였다. 세상을 떠난 총독으로부터 영광의 유산을 물려 받았는지, 순례자인 총독이 득의만면해서 천국의 문을 들어서는 것을 돌봐 주다 목사 자신이 먼저 천국의 영광을 몸에 지니게 되었는지 - 아무튼 지금 윌슨 목사는 램프 불로 발밑을 비치면서 집을 향해 발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그 등불을 보고 딤스데일 복사는 후광이 비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나, 슬며시 웃음이 나왔다. - 아니, 오히려 비웃고 싶은 기분이 들어, 자신이 정말 머리가 이상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윌슨 목사가 한쪽 손으로 설교용의 긴 옷을 감싸 쥐고 한 손으로는 가슴 앞에 램프 불을 든 채 처형대 옆을 지나갈 때, 딤스데일 목사는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참지 못했다.

안녕하십니까, 윌슨 목사님. 이리 올라오셔서 저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않으시렵니까!”

웬일일까! 딤스데일 목사는 정말 그런 말을 했단 말인가? 한순간 그는 그가 그 말을 실제로 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목사의 상상 속에서 말한 것일 뿐이었다. 윌슨 목사는 조심스럽게 발밑의 진흙길을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발을 옮겨 디딜 뿐 한 번도 불길한 처형대 쪽을 쳐다보지 않았다. 가물거리는 램프 불빛이 완전히 사라지자 목사는 갑자기 현기증을 느끼고, 지금까지의 불과 몇 분 동안이 참으로 아슬아슬한 위기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처참한 장난으로써 잠시나마 마음의 통증을 가라앉혀 보려고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애쓰긴 했지만.

잠시 뒤 음산한 장난기가 또다시 그의 엄숙한 환상 속으로 살짝 스며들었다. 목사는 익숙하지 않은 밤의 찬 공기에 손발이 뻣뻣해짐을 느끼며, 처형대의 계단을 내려갈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졌다. 아침이 찾아와도 이대로 이곳에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일찍 일어난 사람이 새벽 어스름을 타고 나와 처형대 위에 희미하게 보이는 사람의 모습을 발견한다. 놀라움과 호기심에 미친 듯이 집집으로 뛰어다니며 누군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죽은 죄인의 유령을 구경하라고 사람들을 불러낼 것이다. 어스름 속에 이 소란은 이 집에서 저 집으로 홰를 칠 것이다. 이윽고 아침 햇살이 점차 뚜렷해짐에 따라 나이 많은 가장들이 플란넬 가운 차림으로 허둥지둥 일어나 뛰어나오고, 뚱뚱한 부인들은 잠옷을 여유 있게 갈아입을 틈도 없을 것이다. 여태껏 머리카락 하나 흐트리고 나와 본 일이 없는 예의바른 사람들도 모조리 악몽에 시달린 듯한 얼굴로 그의 앞에 나타날 것이다. 벨링햄 노총독은 제임스 왕조풍의 주름깃을 비딱하게 단 채 심각한 얼굴로 나오고, 히빈스 노부인은 스커트에 숲 속의 나뭇가지를 매단 채, 밤하늘을 쏘다니느라 한잠도 못 잤을 테니 매우 언짢은 얼굴일 것이다. 윌슨 목사도 임종을 보느라 밤중까지 있다가 이제 영광된 성자의 꿈을 꾸는 중인데, 이렇게 일찍 깨어나게 되니 몹시 못마땅한 표정일 것이다. 딤스데일 목사 교회의 장로들과 집사들도 몰려올 것이고 목사를 우상처럼 여기고 흰 가슴속에 목사를 위한 신전을 만들고 있던 처녀들도 그 흰 가슴을 목도리로 가릴 사이도 없이 허겁지겁 달려 나올 것이다. 요컨대 너나할 것 없이 문지방에 걸려 고꾸라질 뻔하면서 처형대로 몰려들어 놀라움과 공포에 질린 얼굴로 올려다볼 것이다. 처형대 위에서 붉은 아치 햇살을 이마에 받으며 서 있는 것은 도대체 누구일까? 다름 아닌 아더 딤스데일 목사가, 치욕에 떨며 전에 헤스터 프린이 서있던 장소에 동사 직전의 모습으로 서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려본 기괴하고도 처참한 이런 광경에 넋이 나간 목사는 자기도 모르게 큰 소리로 껄껄 웃어 대고는, 그 웃음소리에 스스로가 깜짝 놀랐다. 이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펄의 것이란 것을 안 목사는 가슴이 짜릿해 옴을 느꼈는데, 그것이 고통인지 기쁨인지는 알 수 없었다.

! 펄이지!” 잠시 뒤 목사는 외치고 나서 곧 조그맣게 말했다. “헤스터! 헤스터 프린! 당신도 있는 거지?”

, 헤스터 프린이에요!” 놀란 듯한 대답이었다. 목사는 그녀가 걸어가던 길 쪽으로부터 자신 쪽으로 다가오는 그녀의 발소리를 들었다. “저하고 펄이에요.”

어딜 갔었소, 헤스터?” 목사는 물었다. “왜 여길 왔소?”

임종하신 분 곁에 있었어요.” 헤스터 프린이 대답했다. “윈드롭 총독이 돌아가셔서 수의 치수를 재 가지고 지금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에요.”

이리 와요, 헤스터.” 펄을 데리고. 딤스데일 목사는 말했다. “당신과 펄은 전에 이곳에 서 본 일이 있지만, 그때 나는 함께 서지 못했소. 다시 한 번 올라와요. 셋이 함께 서 봅시다!”

헤스터 프린은 펄의 손을 잡더니 말없이 계단을 올라와 처형대 위에 섰다. 목사는 그 아이의 다른 한 손을 더듬어 잡았다. 그 순간, 자기 이외의 또 하나의 생명이 세차게 그의 가슴속으로 흘러들어 그의 혈맥을 따라 도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거의 마비된 듯한 그의 기관 속에 모녀의 따듯한 생기가 전달되어 멈추었던 생명의 운동을 부화시키는 듯하였다. 세 사람은 전류가 통하는 연결동체가 된 것이다.

목사님!”

펄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왜 그래, ?”

목사는 물었다.

내일 낮에 엄마하고 나하고 함께 여기 서 주시겠어요?”

펄이 말했다.

그건 안 돼, . 순간 새로운 기력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줄곧 고민거리였던, 대중 앞에 폭로된다는 공포심이 새삼 그를 엄습했다. 지금 이렇게 셋이 함께 하게 된 것에 한편으론 기묘한 기쁨을 맛보면서도 한편으로 두려웠다. ”그건 안 돼. 착한 아이지. 내일은 안 되지만, 반드시 언젠가는 엄마와 너와 같이 이곳에 서 주마!“

펄은 웃으면서 잡힌 손을 뿌리치려 했다. 그러나 목사는 꼭 잡은 채 놓지 않았다.

잠깐만 더 이대로 있자, 착하지.”

목사는 말했다.

그럼, 내일 낮에 내 손하고 엄마 손을 잡아 주겠다고 약속해 주시겠어요?” 하고 펄은 다시 물었다.

내일 낮엔 안 돼, ! 다른 날 꼭 잡아 줄게!”

다른 날이라니, 그게 언제야?”

아이는 끈질기게 물었다.

위대한 최후의 심판 날이야!” 목사는 조그맣게 대답했다. - 진리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날의 심판을 받는 자리에선 우리 셋이 함께 서야 한단다! 하지만 이 세상에 빛이 빛나고 있을 때는 셋이 함께 만날 수 없어!”

펄은 또 웃었다.

그러나 딤스데일 목사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검은 구름에 뒤덮인 하늘에 한 줄기의 빛이 드넓게 비쳤다. 틀림없이 유성에 의해 생기는 빛이었다. 밤하늘을 종종 쳐다보는 사람들이 볼 수 있듯이 망망한 허공에서 타 없어지는 유성이었다. 그 빛은 너무도 강렬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두껍게 드리워진 구름층까지도 선명하게 비추었다. 천공이 거대한 램프 갓처럼 빛났다. 눈에 익은 거리의 풍경도 대낮처럼 환하게 비쳤지만, 유별난 빛이 낯익은 물체들을 무시무시하게 보이도록 했다. 불쑥 튀어나온 2층의 발코니와 기묘한 박공 끝이 달려 있는 목조 가옥, 둘레에 벌써 풀이 돋아난 계단과 문턱, 새로 갈아엎어 흙이 거무스름한 채마 밭, 장터 한가운데이건만 광장 근처까지 양쪽에 풀이 돋아 있는 마차길 - 이러한 모든 것들을 세세히 비춰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새롭고 이상한 양상을 띠고 있었으며, 온 세상 만물에게 지금까지와는 다른 도덕적 해석을 내려 주는 것 같았다. 목사는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서 있었다. 헤스터 프린의 가슴엔 꿰매 붙인 주홍 글씨가 빛나고 있었다. 펄은 하나의 상징으로 두 사람을 연결시키는 고리의 구실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기묘하리만큼 엄숙한 빛으로 대낮처럼 밝은 광채 속에 세 사람은 나란히 서 있었다. 그 광채는 모든 비밀을 드러내는 빛이며, 인연 있는 사람들을 서로 결합시키는 여명과도 같았다.

아까부터 펄은 어떤 진지한 분위기를 알아챈 듯 입을 굳게 다물고, 목사에게 손을 잡힌 채 서 있었다. 그러나 그 아이의 눈엔 어떤 마력이 깃들어 있었고, 목사를 쳐다보는 눈엔 요정 같은, 장난기 어린 미소가 넘쳐 있었다. 펄은 목사에게 잡힌 손을 빼어, 거리 맞은쪽을 향해 손가락질했다. 그러나 목사는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쥔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무렵에는 유성의 출현을 비롯해 태양이나 달의 출몰처럼 규칙적으로 일어나지 않는 자연 현상은 거의 초자연적인 근원으로부터 오는 계시라고 해석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밤하늘에 불붙는 창이나 불꽃의 칼, 또 활이나 화살의 전동등이 나타나면 인디언과의 전쟁이 생긴다는 징조였다. 역병이 유행할 징조는 진홍색의 불빛이 비 오듯 하는 것이었다. 길흉을 막론하고 식민지 시대로부터 독립 전쟁 시대에 이르기까지 뉴잉글랜드에 발생한 중요한 사건치고 이러한 자연 현상이 미리 경고하지 않은 사건이란 하나도 없었다. 대부분의 경우 수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광경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단 한 사람의 목격자에 의한 증언으로 그 사실을 믿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목격자들은 그런 신비스러운 광경을 상상력이라는 윤색되고 확대되고 왜곡된 매개체를 통해 바라보는 것이며, 그 신기한 현상이 사라지고 난 뒤에는 마음대로 보충하여 하나의 뚜렷한 형태를 꾸미게 마련이다. 나라의 운명이 온 하늘 가득히 훌륭한 상형문자로 나타난다는 것은 참으로 장엄한 생각이다. 이처럼 거대한 두루마리 같은 하늘이지만 하느님이 국민의 운세를 그 위에 쓰시기에 그다지 넓은 것은 아니라고 우리의 선조들은 생각했다. 그들은 밤하늘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빛의 형상들이나 불가해한 초자연적인 현상들은, 새로 세워진 자신들의 나라가 하느님의 특별한 친밀감과 엄격함에 넘친 보호를 받고 있는 것의 증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인 그와 같은 두루마리 위에 나타난 계시를 보고 자기 혼자에게만 주어진 계시라고 생각했다면, 도대체 우리는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그와 같은 경우는 극도로 혼란한 그 사람의 정신 상태를 말하는 하나의 징후에 불과할 것이다. 오랫동안 시달린 심한 비밀의 고통 때문에 병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게 된 사람이 자아 중심적인 태도를 자연의 전역에까지 미친 결과 천공자체가 자기 영혼의 역사와 운명을 기록하는 종이쪽지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게끔 된 것이다.

따라서 하늘을 올려다본 목사가 그곳에 붉은 선으로 거대하게 그려진 A라는 글자를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모두 목사의 병든 마음에서 연유한 망상 탓이리라. 그러나 그때 구름층을 뚫고 불타는 유성이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심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목사의 상상력이 생각해 낸 것과 같은 모양은 아니었을 것이고, 만일 다른 죄인이 보았더라면 다른 상징으로 보였을지도 모를 정도의 막연한 형태였을 것이다.

이때 딤스데일 목사의 심리상태를 특징짓는 기묘한 사정이 또 하나 있었다. 목사는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는 동안에도 펄이 처형대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고셍 서 있는 로저 칠링워드 노인을 손가락질해 보이는 것을 확실히 의식하고 있었다. 목사는 기적의 글자를 찾아냈던 바로 그 시선으로 칠링워드 노인을 바라보았다. 유선의 빛은 이 사람의 얼굴에도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표정을 주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다른 때와 달리 의사는 목사를 바라볼 때의 악의를 조심스럽게 감추려들지 않았다고 함이 옳을지도 모른다. 유성의 빛을 받아 으시시하게 보이는 만물의 형상에 압도되어 헤스터와 목사가 최후의 심판일을 생각케 되었다면, 로저 칠링워드의 모습은 이 두 사람에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며 음흉한 웃음을 띠고 서 있는 악마의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표정이 그 만큼 선명했다고 할까, 아니면 목사의 눈에 비친 느낌이 그렇게 선명했다고 할까, 어쨌든 유성과 함께 거리나 그 밖의 모든 것이 한꺼번에 사라져 버린 뒤에도 의사의 표정은 그대로 어둠 속에 그려 놓은 듯이 남아 있었다.

헤스터, 저 사람은 누구요?” 딤스데일 목사는 공포에 질려 숨가쁘게 물었다. “저 사람만 보면 소름이 끼친다오. 헤스터는 저 사람을 아오? 헤스터, 나는 저 사람이 싫소!”

헤스터는 로저 칠링워드와의 약속을 떠올리며 잠자코 있었다. “저 사람을 보면 내 혼은 떨리는구려.” 목사는 또 중얼거렸다. “저 사람이 누구요, 도대체? 어떻게 좀 해 줄 수 없소? 왜 그런지 난 저 사람이 두렵소!”

목사님, 저 사람이 누군지 말해 드릴게요!”

펄이 말했다.

그래, 빨리 말해 다오!” 목사는 자기 귀를 어린아이의 입에 갖다 대었다. “빨리!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작은 소리로.“

펄은 목사의 귀에 대고 뭐라고 소곤거렸다. 사람의 말처럼 들리기는 했지만, 아이들이 곧잘 뜻도 모르는 소리를 지껄이면서 혼자 노는 것과 같이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는 그런 옹알거림에 불과했다. 로저 칠링워드 노인에 관한 비밀 정보였다 하더라도 박학한 목사조차도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었으므로, 그의 정신적 혼란을 더욱 가중시킬 뿐이었다. 마침내 요정 같은 아이는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나를 조롱하는 거니?”

목사가 말했다.

목사님은 겁쟁이야! 거짓말쟁이야!” 아이가 대답했다. “내일 낮에 우리의 손을 잡아 준다는 약속을 안 했잖아요!”

그때 처형대 밑으로 다가온 의사가 말했다.

목사님, 딤스데일 목사님! 역시 목사님이셨군요! 우리 학자들은 늘 머리가 책에만 팔려 있으니까 착실한 보호를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눈을 뻔히 뜨고도 꿈을 꾸고 잠을 자면서도 걸어 다니기가 일쑤니까요. , 목사님. 제가 댁으로 모셔다 드리죠!”

내가 여기 있는 줄 어떻게 아셨습니까?”

목사는 몸을 떨면서 물었다.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나는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로저 칠링워드는 대답했다. “오늘 밤에는 줄곧 윈드롭 총독 각하 댁에 있었습니다. 그분을 좀 편안하게 해 드릴까 하고 있는 힘을 다했답니다. 이제 그분은 천당에 가셨으니 나도 집으로 돌아오던 길인데 그 이상한 광채가 비친 거지요. 자 갑시다, 목사님. 안 가시면 내일 주일 예배에 지장이 있을 겝니다. , 알았습니다. - 책이로군요, 목사님의 머리를 괴롭히고 있는 것은! 공부는 이제 좀 그만하시고, 편히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런 밤중의 공상이 버릇이 된단 말입니다!”

선생과 함께 집에 가리다.”

목사는 말했다.

악몽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완전히 기력을 잃고 축 늘어져 있었으므로 목사는 의사가 시키는 대고 끌려갔다.

다음날은 안식일이었으므로 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설교를 하였다. 지금까지 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온 설교 가운데 가장 내용이 풍부하고, 박력이 있고, 영감이 넘친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그 설교의 힘으로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달았으며, 그들은 평생토록 딤스데일 목사에 대하여 신성한 감사의 마음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목사가 설교단의 계단을 내려오자 흰 수염을 기른 교회당지기가 검은 장갑 한 짝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것은 그의 장갑이었다.

오늘 아침에 죄인들이 올라가 망신당하는 처형대 위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사탄이 목사님한테 무엄한 장난을 하려던 것이 분명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사탄은 바보짓을 했습죠. 깨끗한 손이야 장갑으로 가릴 필요가 있나요!”

고맙소.” 목사는 침착하게 대답했으나 내심 뜨끔하였다. 기억이 산란해져 지난밤의 일이 모두 꿈이나 환상처럼 여겨졌다. “정말 내 장갑같이 보이는군요!”

사탄이 장갑을 훔치려고 했으니 앞으로는 장갑을 벗고 다니셔야겠습니다.” 늙은 교회당지기는 근심스러운 얼굴을 하고 웃었다. “그런데 목사님, 어젯밤에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 들으셨습니까? 하늘에 나타난 커다란 주홍 글씨라는데요 - A자이므로 천사(Angel)A를 나타낸 것으로 생각하고들 있습니다. 그 훌륭한 윈드롭 총독님이 어젯밤 천사가 되셨을 테니 그만한 전조가 있음 직도 하지 않습니까!

아니.” 하고 목사는 대답했다. “난 아무 얘기도 못 들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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