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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4-2

Bollnow 2024. 3. 8. 16:52

4권 의형제편 2장 곽오주

 

금교역말은 강음현 땅이니 금교역말서 우봉현 홍의역말로 가려면 반드시 탈미

골을 지나가고 탑거리로 나오면 청석골을 오게 된다. 탈미골도 도적의 소굴이요,

청석골도 도적의 소굴이라 말하자면 금교역말은 도적 소굴 두 틈에 끼여 있는

셈이었다.

금교역말 장날 장꾼들이 탈미골이나 청석골을 지나갈 사람이면 다다 일찍이들

나가는 까닭에 금교역말 장은 어느 때든지 중장만 지나면 다른 장터 파장머리와

같이 흩어져 가는 장꾼이 많았다. 금교역말 장날이다. 벌써 중장이 지나서 장꾼

이 많이 풀렸을 때 우락부락하게 생긴 거무무트름한 총각 하나가 쌀자루를 걸머

지고 탑거리 편에서 장으로 들어와서 바로 시겟전을 찾아왔다. 말감고가 쌀을

보고 "이거 산따다기로군. 액미가 너무 많은걸." 하고 쌀을 타박하니 그 총각은

대번에 눈방울을 굴리며 "당신이 살 테요?" 하고 말감고에게 대들었다."액미

많은 것을 많다는데 무슨 잔소리야! " "어떤 놈이 잔소리하우?" "쌀 내러 오지

않구 시비하러 왔나." "내가 미쳤소? 시비하러 다니게." "그렇거든 말씨나 좀

곱게 하게." "사내 말이 고와서 무어 하우." 이때 마침 상목을 가지고 쌀을 바

꾸어 가려고 온 사람이 있어서 감고는 말 시비를 그치고 쌀금을 놓고 말질을 하

는데 심사로 말질에 농간을 하고 나중에 한 되가 넉넉히 되는 것을 되수리로 치

고 차지하려고 하였다. 그 총각은 뿌루퉁하여 가지고 "고만두우. 쌀을 도루 가지

구 갈 테요." 하고 쌀을 자루에 쓸어담아서 걸머지고 돌아섰다. 그 총각이 시겟

전에서 얼마 아니 오다가 아는 장꾼 하나를 만났다."총각 늦게 왔네그려." "

은 주인이 같이 오자구 식전부터 맞추더니 해가 한나절이나 되어서 나더러 혼자

가라겠지. 지금 온 지 얼마 안 되우." "걸머진 것이 쌀인가?" "내 쌀 팔러 왔

." "자네 쌀을 팔러 왔어?" "내 새경 받은 벼를 조금 찧어 봤소." "그럼 어

서 시겟전에 가서 내구 가게." "닷 말이 넘는 쌀을 강구 도둑놈이 커 말루 되는

구먼. 그래 안팔구 도루 가지구 가우." "청석골 지나가는 장꾼들은 벌써 다 나

갔을걸." "나을 때 벌써들 나갑디다. 당신 지금 집으루 나갈라우?" 그 장꾼이

붉은 산자 흰 산자를 지푸라기로 동여서 한 손에 들었는데 그 손을 내밀어서 총

각을 보이면서 말하였다."오늘이 우리 아버지 젯날이라 제사 흥정하러 들어왔

." "그럼 탑거피까지 동행했소." "우리게까지는 오밤중에 나가두 관계없지만

청석골은 지나가기가 좀 늦었어." "청석골도 관계없소." "늦게 가다간 오가를

만나기 쉬우니까 말이지." "나두 청석골을 많이 다녔지만 이때껏 오가는 낯빠닥

이두 구경못했소." "탈미골 강가나 청석골 오가는 만나기만 하면 탈일세." "

가 그놈들 만나면 버릇을 가르쳐 놀 테요." "여보게 횐소리 말게. 봉변한 사람

들이 모두 자네만 못해서 봉변한 줄 아나." "제기, 다 우스꽝스럽소." "저러다

가 자네가 언제든지 한번 큰코다치네." "그럴 때까지 사우." 탑거리까지 나

와서 그 장꾼이 자기 집으로 들어가며 "조심해 가게." 하고 당부하니 총각이 "

오가 보거든 안부해 주리까?" 하고 픽 웃고 곧 탑고개 편으로 내려왔다.

이때는 잎을 가을이라 저녁때 바람이 제법 차건마는 아직까지 겹것도 입지 않

고 무명 흩고의적삼을 입은 그 총각이 으스스한 모양도 없이 걸음을 성큼성큼

메놓아서 길에 깔린 낙엽을 버석버석 밟아가며 탑고개를 올라왔다. 그 총각은

고개 마루턱에 서서 무엇을 찾는 것같이 한동안 이편 저편을 휘휘 돌아보다가

등에 진 쌀 자루를 한쭈 번 추썩거리고 고개를 내려가려고 하는데 왼손편 언덕

위에 사람 하나가 쑥 나섰다. 손에 칼 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사람이 예사 사

람이 아니고 도적인 것은 대번에 알 수 있었다."네가 오가냐?" 총각은 도적

을 치어다보고 "걸머진 것이 무엇이냐?" 도적은 총각을 내려다보았다."내 말

먼저 대답해라. 네가 오가지?" "그렇다." "내가 걸머진 것 쌀 닷 말이다." "

말이구 너 말이구 거기 벗어놔라." "네가 이리 내려오너라." "내 선성까지 들어

아는 놈이 무슨 잔소리냐! 얼른 벗어놓구 가거라." "못 벗어놓겠다." "이놈 봐

." 도적이 언덕 위에서 우르르 쫓아내려오며 칼등으로 총각의 골통을 내리쳤

. 다른 사람 같으면 그만 앞으로 고꾸라질 것인데 총각은 데시근하게도 여기

지 않고 꿋뭇이 서 있었다. 도적이 피묻은 칼을 다시 둘러메려고 할 때 총각이

와락 앞으로 대들어서 바른손으로 칼 쥔 팔을 치켜들었다. 도적이 놀리는 손으

로 총각의 바른 손을 잡아 뿌리치려고 하니 총각이 왼손으로 그 팔마저 붙들었

. 총각은 도적의 두 팔을 잡아서 위로 치켜들고 머리로 그 가슴을 떠받아서

터진 머리에서 나온 피가 도적의 겹저고리 앞설을 칠감하여 놓았다. 도적이 두

팔을 치어들린 채 한동안 뺑뺑이를 돌다가 나중에는 꼼짝 못하고 뒤로 밀리기

시작하였는데, 뺑뺑이 도는 틈에 총각은 언덕 편으로 서고 도적은 언덕 없는 편

으로 서서 밀려나가기 더욱 좋았다. 한 걸음 밀리고 두 걸음 밀려서 길가 낭떠

러지 가까이 밀려내려왔다."에라 이놈아, 팔 놓구 밀지 마라." 총각은 뜸베질하

는 황소처럼 식식거리기만하고 말이 없었다."쌀두 뺏지 않을 테니 어서 놔라.

잘못하면 낭에서 떨어진다." 도적이 고개를 돌이켜서 치어들린 팔 밑으로 뒤를

돌아볼 때 벌써 낭떠러지까지 다 밀려나왔었다."떨어진다, 이놈아 놔라! " 도적

은 아직까지 말을 뻣뻣이 하고 뒤로 더 나가지 아니하려고

용을 느다가 용이 소용 없으니까 갑자기 고분고분하게 "여게 총각 고만 놓게.

가 칼두 내던짐세." 하고 곧 칼 쥔 손을펴서 칼을 땅에 떨어뜨리었다. 총각이

더 내밀지 아니하고 머리를 들고 두 팔을 뻗치고 서니 도적은 총각이 말을 듣는

줄로 지레짐작하고 "내가 자네 골통을 한번 친 대신에 자네가 내 팔을 치켜들구

학춤을 추인 셈 아닌가. 잔채질을 못해서 부족한가. 늙은 사람을 대접한 셈 잡게

그려. 옴니암니 따질 것이 없이 피장파장해 버리세. , 고만 팔을 놓게." 잠깐

동안 기다리다가 도적은 다시 말을 이어서 "자네가 힘센 줄을 잘 알았네. 힘센

사람이 잔뜩 쥐었으니 낫살 먹은 사람의 팔이 아프지 않겠나. 팔뿐이 아닐세.

깨까지 뻐근해 못 견디겠네. 어서 팔을 놓구 이야기하세." 하고 너스레를 놓는

데 총각은 두 눈만 끄먹끄먹하고 듣고 있다가 잡은 팔을 놓는 결로 도적을 뒤로

벌컥 떠다밀었다. 도적은 입에서 나오는 "쇠새끼." 소리 한마디를 뒤에 남기고

낭떠러지 밑에 내려가 떨어졌다. 그대로 곱게 떨어지면 엎어지지 않고 자빠질

것이건만 떨어지는 동안에 곤두를 쳤든지 죽은 개구리같이 사지를 펴고 엎어졌

. 총각이 위에 서서 굽어보다가 퉤하고 침을 한번 뱉고 돌아서서 그제야 머리

터진 자리를 손바닥으로 비비었다. 그 총각은 탑고개서 내려와서 한참 동안 큰

길로 오다가 남쪽으로 뚫린 샛길로 들어갔다. 이날 해 질 때 오가의 집에서는

오가의 마누라가 영감이 늦게까지 아니 온다고 혼자 고시랑거리다가 수양딸 사

위 유복이를 보고 사정하려고 안방에서 아랫방으로 내려왔다."장내긴지 무어하

러 가서는 이렇게 늦은 적이 전에 없었는데. 이때까지 아니 오니 필연 무슨 연

고가 있는 게야." "글쎄, 좀 늦구먼요. 그렇지만 무슨 일이야 있겠소." "생화가

생화인 것만치 조금만 늦어도 집에 있는 사람이 맘이 조여 살 수가 있어야지.

박서방, 어렵지만 좀 가서 찾아보려나?" "그래 보지요. 어디루 가셨을까요?" "

오늘이 금교역말 장날이니까 탑고개 가서 목을 지켰겠지." "탑고개까지 나가보

구 오리다." 유복이가 집에서 나서서 탑고개로 나오는데 거의 탑고개를 다 나와

서 십 리에 한 걸음, 오 리에 한 걸음씩 그나마 비슬비슬 걸어 오는 오가를 만

났다."이거 웬일이오?" "박서방인가? 사람 죽겠네." "어디를 다쳤소?" "

할 근력두 없어. 날 좀 붙들어주게." 유복이가 처음에 오가를 부축하고 오는데

오가가 발을 잘 디디지 못하고 몸을 유복이에게 실리어서 유복이까지 걸음을 걷

기가 거북하여 나중에는 "이럴 것 없이 내게 업히시우." 하고 엄장 큰 오가

를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가의 얼굴 꼴이 사람 같지 않고 귀신 같았다.

이마에는 큰 혹이 돋히었고 두 눈 자위는 흉악하게 검푸르고 코는 으스러지다시

피 깨어졌고 입술은 도야지 주두리같이 되었고 뺨과 턱은 갈리고 벗겨졌었다.

 

오가의 마누라가 놀란 마음이 가라앉은 뒤에 물초 되고 게다가 피투성이 된 영

감의 의복을 새로 갈아입히고 영감을 업고 오느라고 옷이 젖고 피 묻은 유복이

에게까지 새 옷을 한 벌 주었다. 오가가 얼굴에 밀타승을 투겁하다시피 바르고

뜨듯한 안방 아랫목에 드러누운 뒤부터 팔이 아프다, 어깨가 쑤신다, 가슴이 결

린다, 또 발목이 시다, 갖은 소리를 다하여 가며 문질러라 주물러라 하고 어린아

이 보채듯 하여 그 마누라와 부리는 계집애는 말할 것 없고 유복이 안해까지 밤

중까지 잠을 자지 못하였다. 그 뒤 며칠 동안 지나서 오가가 일어 앉아 수저를

들게 될 때 안방 식구와 아랫방 식구가 한데 모이거 아침밥을 먹는데, 오가가

총각에게 당한 일을 자세히 이야기하고 "내가 죽을 곡경을 당한 일두 한두 번이

아니지만 이번같이 얼뜨게 죽을 뻔하기는 생외 처음일세." 하고 숟가락을 내흔

들면서 "처음 떨어져서 기절한 채 깨어나지 못했더면 이것하구 영 작별인데 아

직두 연분이 남아 있어." 하고 너털거리다가 부은 입술이 아프든지 값자기 손바

닥으로 입을 눌렀다."그놈의 총각이 어디 산답디까?" 하고 그 마누라가 영감

을 바라보니 영감이 손바닥을 입에서 떼고 "낸들 아나. 탑고개를 지나서 금교장

보러 다닐 제는 이 근방에 있는 놈이겠지. 그 쇠새끼가 힘이 장사야. 다신 만날

까 보아 지레 겁이 나네." 하고 마누라 말에 대답하고 "자네 내 원수 좀 갚아줄

라나?" 하고 뉴복이를 바라보았다. 유복이는 희한한 차력약을 두 제나 얻어먹고

대차꾼 소리를 들은 사람이라 힘센 사람을 만나서 힘겨룸 해보고 싶은 생각이

없지 아니한 까닭에 "그래 볼까요?" 하고 반허락하였다.

그 뒤 한 보름 넘어 지나서 오가의 상처 딱정이가 많이 떨어진 때부터 금교역

말 장날은 오가와 유복이가 그 총각을 만나려고 탑고개 가서 목을 지켰는데,

너 장째 허행하고 돌아와서 유복이가 오가를 보고 "그 총각이 근방 사람이 아닌

게요." 하고 더 가지 아니할 의향을 보이니 오가가 "여게 내 말 듣게. 우리 장

인이 계양산 괴수루 유명짜하던 것은 자네두 들어 알지. 그가 심심하면 우리더

러 거미를 배워라, 왕거미 떡거미가 너의 선생이다 말씀하시더니, 거미아 첫째

탐심이 많구 둘째 줄을 잘 늘이구 셋째 흉물스럽두룩 참을성 많은 것이 우리네

배을 것이란 말씀이라네. 자네두 거미를 좀 배우게. 요담 장날 또 같이 가세."

하고 웃었다.

닷새가 언뜻 지나서 금교역말 장날이 또 왔다. 오가와 유복이가 점심까지 싸

가지고 탑고개를 나와서 언덕 위 구석진. 곳에 몸들을 숨기고 앉아서 장으로 들

버가는 장꾼부터 내다보고 있었다. 육장 청석골 같은 도적 나는 곳을 다녀보아

서 미립이 난 장꾼들은 도적이 뒤에 오는 사람을 꺼리어서 앞서 가는 사람을 치

지 못하고, 또 앞서 간 사람을 꺼리어서 뒤에 오는 사람을 치지 못하도록 작반

하는 사람들이 각각 멀찍멀찍이 떨어져서 지나가고 아직 그런 미립이 나지 못한

장꾼들은 작반하는 대로 한데 몰리어서 공연히 떠들썩하게 지껄이며 지나갔다.

오가와 유복이가 장꾼들의 수를 혜어서 스물이 넘고 그중에 총각도 대여섯 지나

갔건마는 정작 기다리는 총각은 오지 아니하였다. 장꾼 가는 것이 뜸하여졌을

"오늘두 또 헛걸음이오." 하고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니 "글쎄 ." 하고 오

가도 고개를 끄덕이었다. 유복이가 무슨 다른 말을 하려고 막 입을 벌리다가 멀

리 장꾼 하나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저기 오는 것두 총각이오." 하고 손으로

가리켰다. 그 장꾼이 머리를 수건으로 동여서 머리 꽁지 있는 것도 보이지 않고

귀밑머리 땋은 것도 보이지 아니하나 정수리 위에 뾰쪽하게 일어선 것 없는 것

이 총각이 분명하였다."가만 있게, 허우대하며 걸름걸이가 그 쇠새끼 같아 보이

." 하고 오가가 눈이 뚫어지게 바라보다가 "왔네 왔네." 하고 유복이를 돌아

보았다. 과연 거무무트름한 총각이 몸에 무명 겹바지 저고리를 입고 등에 무명

댓 필을 걸머지고 오는데 앞뒤에는 장꾼이 끊어졌다. "이 앞에 오거든 먼저 나

서서 말을 붙이시오." "장에 가는 놈이 돌아오지 않을 리 없으니 이따 장보구

올 때 걷어치우면 어떨까." "지금 마침 좋소. 이따 여러 장꾼들과 같이 오면 도

리어 성가시지 않소?" "그것두 그래." 그 총각이 언덕 아래까지 왔을 때 오가

가 먼저 나서서 "이놈의 쇠새끼야! " 하고 큰소리를 지르니 총각이 우뚝 서서 몸

을 반쯤 틀고 물끄러미 언덕 위를 치어다보다가 코방귀를 한번 뀌고 그대로 지

나가려고 하였다."무명삠을 게 벗어놔라." 총각이 그제는 바로 서서 치어다보

"이놈아 내려오너라. 이번에는 아주 모가지를 빼놀 테다." 하고 눈알을 부라

리었다. 이때 유복이가 뒤에서 썩 나서며 "이놈아, 되지 못하게 거센 체마라."

하고 꾸짖으니 총각이 "저놈은 또 웬 놈이야." 하고 아랫입술을 삐죽이 빼물다

"너는 탈미골 강가냐?" 하고 물었다."어째 하필 강가냐. 강가가 무서우냐?

오가 녀석이 혼이 나구 너를 불러왔지." 총각은 저의 마음대로 유복이를 탈

미골 강가로 잡고 "너희 두놈 한데서 잘만났다. 두 놈다 내려와서 버릇을 배워

." 하고 소리를 치고 "강아지 새끼 깨갱깨갱하는 것을 구경 좀 하자." 하고

가장 재미있는 말을 한 것처럼 콧방울을 벌름거리며 웃었다. 유복이가 오가와

같이 공각의 말하는 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

다가 웃으면서 말하였다."이놈아, 내 성은 박가다." "강가가 아니냐?" 총각이

강아지 소리 흉내내던 흥이 빠져서 고개를 흔들며 "그래, 네가 탈미골서 온 놈이

아니냐?" 유복이에게 말을 묻는데 "탈미골서 오기커녕 네 할미골서두 오지 않

았다." 오가가 유복이 대신 말대답하였다. 총각이 오가의 욕은 탄하지도 아니하

고 유복이더러 "강아지 아니구 박아지라두 좋다. 박아지는 개울물에 엎어놓구 박

장구치지 걱정이냐." 말하고 다시 흥이 나서 웃었다.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여기서 구경만 하시오. 말하고 혼자 내려오니 총각이 "두 놈 다 한꺼번에 내

려와두 좋다." 하고 횐목을 썼다. 유복이가 언덕 위에서 내려와서 총각과 마주

섰다. "네가 떼밀기를 잘한다지. 나두 떼밀겠느냐?" "너는 별놈이냐? 막이

도둑놈이지." "아무더러나 함부루 도둑놈이라구, 그래 이놈아." "도둑놈의 앙갚

음해 주러 온 놈두 도둑놈이겠지." "도둑놈이건 말건 그건 고만두구 한번 나하

구 떼밀기 내기하자." "어떻게 하잔 말이여?" "요전에 두 팔을 치켜들구 떼밀

었다지, 그 시늉을 내보자꾸나. 너차구 나하구 번갈아가며 떼밀어서 많이 밀려가

는 사람이 지기루하자." "그래 내기는 뭐냐?" 유복이는 다르내재서 도적놈들이

무명을 빼앗으려고 할 때 무명 가지고 내기하던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라서 "

는 무명을 날 주구."말하고 총각이 "너는 무엇을 날 주구?" 묻는데 "나는 줄

것이 없으니 네 무명짐을 장까지 져다주마." 하고 말하니 송각이 머리를 흔들

면서 "내가 등창이 났드냐, 너더러 져다 달라게. 그건 싫다. 너두 저기 앉았는 오

가처럼 골탕이나 먹여주마." "아무리나 네 맘대루 해." "대가리루 떠받아두

좋으냐?" "떼밀기만 하자." "내가 먼저 떠밀 테다." ", 떼밀어라." 유복이

가 두 팔을 위로 치어들었다. 총각이 유복이를 우습게 보고 한번만 힘써 떠다밀

면 곧 뒤로 자빠지려니 생각하였던 모양이라 등에 걸머진 무명도 내려놓지 않고

두 손으로 유복이의 팔을 잡으며 곧 왈칵 떠다밀고 얼른 손을 놓았다. 그 자리

에 그대로 서서 있는 유복이를 따라보고는 "제법이다." 하고 총각이 그제야 무

명짐을 벗어서 길가에 갖다놓고 대어들어서 유복이의 양편 견대팔을 붙잡고 머

리를 숙이고 떠밀기 시작하였다. 떠미는 총각은 눈이 부릅떠지고 떠밀리는 유복

이는 입이 악물리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도 처음과 다른 것이 없고 총각은 연해

씨근거리고 또 유복이는 간간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

유복이가 "네까짓 기운으루 떼밀릴 내가 아닌 줄을 알았지?" "제기 누구는 떼

밀릴 줄 아나? , 떼밀어봐." 하고 총각이 유복이의 팔을 놓고 물러서서 두 팔

을 위로 쭉 뻗치고 가슴을 딱 벌리었다.

 

유복이가 총각 하던 대로 견대팔을 쥐

고 떠미는데 총각의 팔이 돌덩이 같았다. 총각이 한동안 뻑쓰더니 그 이마에 진

땀이 솟았다. 총각의 몸이 뒤로 젖히어지는 듯하며 발이 뜨기 시작하여 뒤로 몇

걸음 밀려나갔을 때 총각의 입에서 '애개개' 소리가 나왔다. 그 소리가 우스워서

유복이가 머리를 들고 볼 즈음에 총각이 펄썩 주저앉아서 유복이는 앞으로 고꾸

라질 뻔하였다."이놈아, 왜 주저앉니? 너 졌지?" "지기는 왜 져." "이놈, 염체

봐라. 앙탈두 못 하두룩 떠다박질러 줄 테니 어서 일어서라." "내가 똥이 마려

우니 똥 좀 누구." 총각이 두 팔을 뒤로 짚고 얼굴을 젖혀들고 두 눈을 찌끗째

끗하며 유복이를 치어다보니 유복이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하였다."그럼 어서 가

서 누구 오너라." "가기는 어디루 가. 여기서 누지." 총각이 그 자리에 쭈그리

고 앉으며 곧 바지를 까뭉겼다."이놈아, 사람 앞에서 무슨 짓이냐! " "개 앞에서

나 누는 법인가. 여기 개가 있어야지." "무명 놓은 저 길가에 가서 못 누어?"

괜히 낭떠러지루 떠다밀게."그렇게 겁이 나거든 언덕 밑에 가서 누려무나."

저기 앉은 오가가 내려와서 덮치기 좋으라구."그 자식 의심은 되우 많네."

총각이 끙끙 소리를 지르느라고 말대꾸가 없었다."어 구리다." 하고 유복이가

뒤로 물러나서니 총각은 예사로 "누는 사람두 있을라구." 하고 한 자리 옆으로

옮겨앉았다."쇠새끼 쇠똥 누는 것 구경하구 있지 말구 이리 올라오게." 하고

오가가 소리쳐서 유복이가 언덕 위로 가려고 할 제 총각이 "나는 내기 고만두구

갈 테다." 하고 낙엽을 집어 밑을 닦고 일어섰다. 유복이가 돌쳐서며 "이놈아,

어디를 가. 네 맘대루 가?" 하고 총각의 앞으로 나왔다."우리 주인이 무명 주

구 소를 바꿔 오랬어. 장 늦기 전에 얼른 가야지." "저 무명은 내 게다. 네가 못

가지구 간다." "애개개." "애개개가 네 단골 소리로구나." "내일 내가 사경

받은 베 한 섬을 지구 와서 정말 내기하지." "어떤 것은 거짓말 내기드냐?" "

주인의 무명을 가지구 어떻게 정말 내기를 해. 거짓말 내기나하지." "그럼 내기

못하겠다구 진작 말하지." "내가 이길 줄 알았지. 보기엔 그렇지 않은데 오가버

덤 빡빡하구먼." "네 성명이 무어냐?" "그건 알아 무어하게." "그럼 네 주인은

누구냐?" "정 첨지여." "어디 사는 정첨지냐?" "개래동 정첨지여." "개래동

정첨지 집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네 성명을 알겠구나." "공연히 주인을 가르쳐

주었네." "주인의 것이든지 네 것이든지 그 무명은 못 가지구 간다." "참말?"

그럼 너같이 거짓말할까."제기, 막 주먹다짐으루 욱여줄까 부다." "좋지,

디 한번 주먹다짐 해보자." "그럴 것 없이 우리 한번 씨름을 해볼까?" "나는

씨름할 줄 모른다." "떼밀기는 내가 재미없어 못하겠어. 씨름 같으면 해주지만.

그럼 어디 네 소원대루 씨름을 한번 해보자." 유복이는 아이 적에 초군 아이

들과 장난 씨름을 더러 해보았지만, 정작 씨름판은 구경도 못한 사쌈이라 힘만

믿고 해보자고 한 것이다. 유복이와 총각이 고갯길 편편한 곳을 골라와서 네굽

씨름을 하게 되었는데 언덕 위에 있던 오가도 아래로 내려왔다. 총각이 오가를

바라보며 "씨름하는 동안에 무명 가지구 내뺄라구." 하고 무명을 가지러 가려고

하니 "염려 마라." 하고 유복이는 총각을 붙들고 "무명이 욕심나면 이때까지 가

만 있어. 그 자식이 정말 쇠새낄세." 하고 오가는 길가 한옆에 와서 앉았다.

복이와 총각이 마주 구부리고 앉았다가 일어서서 한편 손은 서로 허리 뒤를 잡

고 또 한편 손은 각각 놀리면서 어르는 중에, 총각은 유복이의 몸이 저만큼 굵

지 못한 것을 넘보아서 대번에 안지기로 안고 넘기려고 하니 유복이도 그렇게

만만히 넘어 박힐 사람이 아니라 총각을 찍어눌러서 허리를 펴지 못하게 하였

. 안지기가 안된 뒤에 총각은 처음에 덧걸이를 감으려다가 유복이가 총각을

끌고 뒤로 물러서서 덧걸이를 잘 감지 못하고 다시 속걸이를 넣으려고 하다가

유복이가 총각을 떠밀고 앞으로 나가서 속걸이도 잘 넣지 못하였다. 총각은 연

해 칠 방법을 궁리하고 유복이는 오직 막을 생각밖에 못하는데 총각이 유복이를

한참 어르다가 유복이가 잠간 마음을 놓는 틈에 눈결에 몸을 옆으로 돌리며 슬

쩍 모듬걸이를 써서 유복이는 쿵 하고 넘어졌다. 유복이가 미처 일어나기도 전

에 오가가 나오면서 "나하구 한번 하자." 하고 곧 총각에게 대어드니 총각이 "

늙은 놈이 씨름은 다 뭐야!

하고 코방귀를 뀌다가 일어나는 유복이를 보고 말하였다. 얼른 저리 가. 이놈

을 한번 단단히 메꼬질 테야." 유복이는 한옆에 비켜서고 오가와 총각이 씨름을

시작하였다. 오가는 상씨름꾼으로 씨름판에 많이 나가본 사람이라 총각이 대번

에 박살을 뜨려고 덤비는 것을 총각의 상꼭뒤를 짚으려고 하고 총각이 다리걸이

를 하려는 것을 뒤쪽으로 팔걸이를 하려고 하였다. 총각이 "이놈은 씨름 좀 해보

았군." 하고 어르다가 얼른 허리를 펴고 일어서서 씨름 수단과 배의 힘 반반으

로 반들임을 하여 오가를 자빠뜨리었다. 오가가 일어 앉아서 "거 총각마구리

새앙장사 노릇 많이 해보았구나." 하고 말하니 총각이 오가의 말은 대꾸 아니하

"인제는 무명 가지고 가겠다." 하고 무명 있는 데로 우르르 갔다. 오가가 유

복이를 돌아보며 "저놈 놔보내지 말게." 하고 말하는데 유복이는 "내버려 둡시

." 하고 총각이 무명짐 지고 가는 것을 서서 보고 있었다. 그 총각이 간 뒤에

오가가 우두머니 섰는 유복이를 보고 "이 사람아, 그래 그 자식을 일건 만나가

지구 그렇게 싱겁게 보낸단 말인가. 내 분풀이해 준다는 것이 헛말 된 건 고사

하구 자네까지 봉변한 셈 아닌가. 자네가 힘으로 못 당할 것 같으면 표창으루

행실낼 수 있지 않은가. 재주를 두었다 무엇에 쓰나." 하고 길게 사설하니 유복

이가 발명같이 "힘으루 당치 못할 듯하면 벌써 표창을 끝냈지요." 하고 말하였

."그러기 말이지. 그런 재주두 부릴 것까지 없는데 왜 그대루 놔 보냈나?"

오가가 말끝을 잡아가지고 다시 사컬하니 유복이는 한동안 말이 없이 잠자코 있

다가 "그 총각이 밉지가 않구먼요." 하고 총각의 똥 무더기를 바라보며 새삼스

럽게 웃었다."인제 어떻게 할라나. 들어갈라나?" "글쎄, 어떻게 하실라우?" "

나는 이왕 나온 길이니 벌이나 하구 갈라네." 유복이는 본래 오가의 분풀이보다

총각과 힘겨룸해 볼 생각이 많았던 터에 총각의 힘이 아무리 동뜨다고 하여도

자기보다 못한 것을 짐작하였고, 또 총각의 말하는 것과 짓하는 것이 밉지 않아

서 총각을 그대로 곱게 보냈는데 오가에게 사설을 듣고 보니 자기가 오가를 속

인 것도 같아 속으로 미안한 마음이 없지 아니하였다. 미안한 마음에 벌이를 도

와줄 생각이 나서 "나두 같이 있어 보지요." 하고 유복이가 말하니 오가는 좋아

하며 "그럼 언덕 위루 올라가세."

하고 말하여 오가와 유복이가 먼저 은신하였던 곳에 와서 붙어 앉았다. 총각이

온 뒤에는 장에 들어가는 장꾼도 이내 끊어지고 다른 행인도 별로 없었다. 그럭

저럭 해가 한낮이 지난 뒤에 오가와 유복이가 싸가지고 온 찬밥으로 점심을 먹

는 중에 고갯길에서 말 워낭 소리가 들리었다."이크, 좋은 뜨내기가 생기는가베.

" 오가가 숟갈을 던지고 일어서니 유복이도 밥그릇들을 치워놓고 일어섰다. 어떤

양반 하나가 부담말을 타고 탑거리 쪽에서 오는데 앞에 선 견마잡이는 수저집이

겉에 달린 찬합과 병 하나를 함께 동여 걸머졌고, 뒤에 따르는 하인 하나는 큼

직한 궤 위에 요강망태를 매어달아 걸머졌다. 이놈들, 게 섰거라! "" 오가의 큰소"

리가 언덕 위에서 내려가니 견마잡이는 대번에 아이구머니 하고 고삐 쥔 채 주

저앉고, 양반은 무엇아 무엇아 하고 하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를 돌아보고 그

하인은 언덕 위를 치어다보며 일변 양반에게 녜녜 대답하였다."이놈들, 부담 내

려놓구 짐들 벗어놓구 가거라! " 오가가 다시 고성을 지르며 몇 걸음 아래로 내

려가니 그 하인이 견마잡이에게 가서 귀를 끄들어 일으켜세우며 "이 사람 정신

차려! 앞서 뫼시구 가게. 뒤는 다 내가 담당할게." 큰소리로 말하고 등에 진

궤를 길 옆에 벗어놓고 꽁무니에서 자그만 쇠몽치를 꺼내어 손에 들고 나서서 "

이놈들, 내려오너라! " 하고 고함을 쳤다. 오가가 하인의 기세에 기운이 눌리든

지 걸음을 멈추고 유복이를 돌아보기 유복이가 댓가지로 만든 표창 네댓 개를

주머니에서 꺼내들고 내치기 시작하였다.

 

첫번에 하인의 몽치든 손을 맞히고 바

로 뒤미처 하인의 미간을 맞히어서 하인은 몽치를 떨어뜨리며 곧 뒤로 벌렁 자

빠지고, 그 다음의 한 개는 걸어가는 견마잡이 관자놀이에 들어가 맞아서 견마

잡이가 또다시 주저앉

았다. 오가가 유복이에세 손짓하여 같이 내려와서 하인은 유복이게 맡기고 오가

는 말탄 양반에게로 갔다. 오가가 우선 견마잡이 짐을 벗기고 나서 발길로 내질

러 고꾸라뜨리고 그 다음에 양반을 말께서 잡아내리니 양반이 떨리어 나오는 목

소리로 "물건은 다 드리겠으니 목숨만 살려주시오." 하고 비는 것을 역시 발길

로 차서 고꾸라뜨린 뒤에 북두끈믈 끄르고 부담을 떼어내렸다. 오가가 유복이를

불러가지고 다련과 부담상자와 짐들을 같이 들어 날라서 언덕 위에 갖다 놓고

나중에 다시 살펴보는 중에 양반이 몸에 좋은 옷 입은 것을 보고 오가가 대들어

옷까지 벗기어서 알몸을 만들었는데, 유복이가 소매 달린 옷은 소용 없는 것이

니 주어두라고 권하여 웃옷 한 가지로 그 알몸을 가리게 하였다."이놈들, 인제

가거라! " 오가의 호령 한번에 일행이 송도길로 내려가는데 웃옷으로 몸을 휩싼

양반이 맨 앞에 서고 손바닥으로 미간을 비비는 하인이 양반

뒤를 따르고 견마잡이는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고 또 한 손으로 말고삐를

쥐고 하인 뒤에 따라가며 뒤를 돌아보느라고 고개를 비틀어서 흡사 목비뚤이 병

신 같았다. 오가와 유복이는 양반 입었던 옷가지와 하인 가졌던 쇠몽치와 말의

북두끈과 짐의 걸빵들을 모두 거두어가지고 언덕 위로 올라왔다."오늘은 벌이가

좋았네." "부담에 무엇이 들었을까요?" "궁금하거든 끌러보세그려." 오가와

유복이가 부담 상자의 농삼장을 같이 끌렀다. 한 상자를 열고 보니 옷가지와 피

륙이 차곡차곡 땀겨 있고, 또 한 상자를 열고 보니 민어, 광어, 상어, 전복, 홍합

등속 마른 어물이 가득히 담겨 있었다. 다련에는 누비이불이 들었고 궤에는 육

초가 들었었다. 병은 마개 빼고 맡아 보니 술인데 반 병이 착실하고 찬합은 층

층히 들어 보니 장산적 천리찬 북어무침 고추장볶이가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수저는 광친쇠요, 요강은 맞춤 물건이었다."어느 골에 가서 얻어가지구 오는 것

일세." "어물 보면 해변 골인가 보오." "전복 한 개 썰어 먹세." "전복은 단단

하니 집에 가서 불려 먹구 홍합이나 먹읍시다." "홍합 좋지." 하고 오가가 껄

껄 웃으니 "왜 웃소?" 하고 유복이가 물었다."자네 홍합 가지구 과거 보러 간

이야기 못 들었나?" "못 들었소. 이야기 좀 하오." "옛날 어느 시골에 한 선비

가 있었는데 그 선비가 안해를 못 잊어서 과거를 못 보러 가니까 그 안해가 꾀

를 내서 몸에서 한 가지를 떼어줄께 가지구 갔다 도루 가지구 오라구 말하구 홍

합 한 개를 주었더라네. 그 선비가 그것을 받아 주머니에 넣구 과거길을 떠났는

데 서울 오구 과거 보구 하는 동안, 틈틈이 남몰래 주머니에서 꺼내 보구 싱글

벙글 웃는 것을 다른 선비가 한번 눈결에 보구 수상히 여겨서 그 선비 자는 틈

에 주머니 세간을 뒤지다가 홍합이 한 개 나오니까 냉큼 먹어버렸더라네. 이튿

날 방이 나서 그 선비는 급제가 되었는데 새 급제가 주머니를 샅샅이 뒤지더니

급제는 했어두 아내는 병신을 만들었다구 낙심하더라네. 이야기는 고만일세.

것 좀 끄내놓게, 같이 먹세." 하고 오가는 쀼복이와 같이 웃었다. 오가와 유복이

가 찬합 반찬으로 먹다 둔 밥을 마저 먹고 물 대신 병의 술을 조금씩 따라 마시

고 짐을 묶는데, 부담 상자는 유복이가 지려고 둘을 포개서 함께 묶고 그 나머

지 물건은 오가가 지려고 모두 모아서 함께 묶었다. 짐들을 묶어놓고 돌아오는

장꾼을 내다보는 중에 총각이 암소 한 마리를 앞세우고 고래로 내려왔다."여게

총각, 인제 가나?" 유복이가 나서서 말을 붙이니 "이때까지 날 기다리구 있었

? 소 가지구두 내기 못해." 총각이 걸어가며 대답하였다."여게 자네 술 먹을

줄 아나?" "사내자식이 술 못 먹을까." "그럼 한잔 먹으려나?" "주면 먹지."

총각은 쇠고삐를 쥐고 걸음을 멈추고 유복이는 술병과 홍합을 손에 들고 내려왔

. 총각이 남은 울을 병으로 들이켜고 홍합 서너 개를 한꺼번에 입에 넣고 꺼

귀꺼귀 먹었다. 유복이는 총각이 무식하게 먹는 것을 서서 보다가 흘저에 오가

의 이야기가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왜 웃소?" "그까지 웃는 곡절은 말할 것

없구 인사나 하세. 나는 박서방이란 사람일세." "나는 곽도령이란 사람이오." "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오?" "내 이름은 유복일세." "

내 이름은 오주요." "고향이 어딘가?" "황해도 강령 이오." "나두 고향이 강령

일세." "거짓말 마우. 말이 틀리우." "나는 유복자루 타향에서 나서 자랐지만

우리 부모는 강령 사람이l." 이때 뒤에 오는 장꾼이 보이었다."내일 점심때

이리 올라나?" "?" "한고향 사람이 만나 이야기나 좀 하세그려." "그럽시다.

그럼 내일 점심때 만나세." 유복이는 총총히 총각과 작별하고 언덕 위로 올

라갔다.

이튿날 유복이가 곽오주를 만나서 같이 먹으려고 탁주 한 병과 마른 어물 몇

쪽을 가지고 탑고개를 나왔다. 이때 해가 한낮이 못 되어서 오주는 아직 오지

아니하였는데 난데없는 금도군관 하나가 군사 칠팔 명을 거느리고 고갯길에 나

타났다. '어제 양반자가 송도 들거가서 말한 것이구나. 이런 일이 있을 줄은 생

각 못하고 오주를 이리 만나자고 했으니 지금 어떻게 하면 좋을까. ' 유복이가

생각하는 중에 앞잡이 군사가 벌써 언덕 아래까지 왔다. 일이 다급하여 유복이

가 곧 앉았던 자리에서 일어서니 언덕 위를 살펴보던 군사가 이것을 보고 "

웬놈이냐! 이리 내려오너라." 하고 호령하였다. 유복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으로 도망하니 그 군사가 "도둑놈 여기 있다! " 하고 외친 뒤에 언덕 위로 올

라와서 유복이의 뒤를 쫓았다. 그 군관이 "너희들은 이리 가서 뒤를 쫓아라."

너희들은 저리 가서 앞을 질러라. 하고 손가락질하며 지휘하여 군사들이 이리

저리 갈리어 뒤쫓고 앞질렀다. 유복이가 뒤에서 나는 아우성에 쫓기어서 뛸 수

있는 대로 뛰는데 술병이 주체궂어서 내버릴까 하는 중에 앞을 지른 군사 하나

"이놈아, 어딜 가! " 하고 몽치를 두르며 달려들었다. 유복이는 딱 서서 그 군

사가 대어들기를 기다리다가 그 군사의 면상을 노리고 술병을 내쳤다. 술병이

깨어지며 군사는 탁주를 뒤집어쓰고 뒤로 나가자빠졌다. 유복이가 군사의 나자

빠지는 것을 보고 얼른 주머니에서 댓가지들을 꺼내서 손에 들었다. 이 동안에

뒤에 쫓는 아우성이 차차 가까이 들리는데 유복이는 몇 걸음을 앞으로 나가다가

곧 돌쳐서서 뛰어 온 길을 천천히 도로 걸어왔다. 뒤쫓던 군사들이 이것을 바라

보고 서로 돌아보며 수군거리다가 사오 명 군사 중에 한 군사가 앞으로 나서며

이놈, 항거할 생각 말구 곱게 줄 받아라! 하고 소리를 질렀다. 유복이가 잠간

발을 멈추고 "날 잡으려면 너희들 백 명 이백 명이 와두 소용없다. 애초 잡을 생

각 말구 곱게들 가거라. 만일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너희들을 낱낱이 병신 맨

들어 보낼 테다! " 하고 통통이 호령하고 여전히 앞으로 걸어나왔다."이놈, 큰소

리 마라! " "본보기를 내야 너희들이 내 말을 믿을 게다. 너희들 다 보아라. 지금

소리지르는 놈 바른편 눈을 멀려 줄 테다." 유복이의 손에서 댓가지 하나가 날

아나가더니 그 댓가지가 위로 올라가지도 않고 아래로 처지지도 않고 꼭 소리지

르던 군사의 바른편 눈에 들어가 박히었다."아이구! " 그 군사가 눈을 부등켜

쥐려다가 댓가지가 손에 가로 거치니 입을 악물고 댓가지를 뽑아버렸자. 다른

군사들이 이것을 보고는 당황한 기색으로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놈들, 모주

리 병신이 되구야 갈 테냐! " 유복이 호령 한마디에 모두 돌아서 뛰어가는데 애

꾸 된 군사는 아픈 눈을 손으로 누르며 여러 군사 뒤에 뛰어갔다.

 

유복이가 앞

으로 걸어오는 중에 뒤에서 발짝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얼른 돌쳐섰다. 군사

이삼 명이 알금살금 뒤를 밟아오다기 유복이가 돌아서는 것을 보고 일시에 악

소리를 지르며 뛰어들어 왔다. 유복이가 앞서 들어오는 군사 하나를 발길로 차

서 자빠뜨리고 그 몽치를 빼앗아 들고 이놈 치고 저놈 치고 하였다. 이통에 우

복이도 머리를 몽치에 맞아서 머리가 터지고 허리를 발길에 차여서 허리가 아팠

. 유복이가 머리를 만지고 허리를 주무르고 주머니 속에서 쇠끝 두어 개 꺼내

서 댓가지들과 함께 손에 쥔 뒤 어제 은신하였던 자리에 와서 아래를 내려다보

니 길 중간에 군관이 서 있고 그 앞에 군사들이 늘어서서 무엇들을 한참 지껄이

는 중이었다."이놈들, 그저 안 갔구나. 이 산 위에 쓰러진 놈들이 있으니 너희들

이 가서 끌구 가거라." 군관이 군사를 헤치고 앞으로 나서서 칼을 빼어들고 언

덕 위로 올라오려고 하니 "네놈은 칼을 믿구 올라오느냐? 칼을 쓰지 못할 테니

자 보아라! " 유복이가 쇠표창 한 개로 군관의 칼 든 손을 맞히어서 군관은 손

에서 칼을 떨어뜨리고 발을 멈추었다."너희들 인제는 내 재주를 알았겠지. 쇠끝

한 개루 목숨 하나를 끊을 수 있다. 너희들을 구태어 죽이기까지 할 것이 없기

데 지금 내 재주만 보인 것이니 이 담에 너희가 혹시 날 만나드라두 아예 덤빌

생각 마라. 그러면 나두 너희를 건드리지 않을 테다." 유복이는 재주를 자랑하

"큰소리하는 네 아가리를 찢어놓을 날이 있을 테니 두구 봐라." 군관은 이를

갈았다. 그 군관이 쫓겨내려온 군사들을 세워놓고 도적놈 하나에게 여럿이 쫓겨

왔다고 개 꾸짖듯 하던 끝이라 도적을 눈앞에 보면서 잡지 못하고 가기는 우선

군사들 보기에도 꼴이 사납고, 도적이 재주를 가져서 섣불리 잡으려다가는 도적

의 말과 같이 목숨까지도 위태할 모양이라 잡으러 올라가지는 못하고 면무료하

느라고 손등에서 뽑은 쇠끝을 들고 군사를 돌아보며 "별놈의 재

주가 다 많다." 하고 쇠끝 박히었던 손을 폈나 쥐었다 하였다. 영리한 군사 하

나가 군관 가까이 와서 "칼 쓰시기가 거북하시겠습니다." 나직이 말하고 나서

동무 군사들을 돌아보며 "저 도둑놈을 잡자면 좋은 수가 있겠네. 우리가 부중에

들어가서 갑옷 입구 투구 쓰구 나오면 염려 없지 않겠나." 하고 말하였다. 군관

"미친 놈 미친 소리 말구 저 칼이나 이리 집어 다우." 하고 말하여 드 군사

가 언덕 위를 치어다보며 앞으로 나와서 땅에 떨어진 칼을 군관에게 집어다 바

치면서 넌지시 "삼십육계를 생각해 봅시오." 하고 달아나자고까지 말하는덴 군

관은 검다 쓰단 말이 없었다. 이 때 술병 맞고 자빠졌던 군사와 몽치 맞고 쓰러

졌던 군사들이 서로 붙들고 산에서 고개 밑으로 내려왔다. 군사 하나가 이것을

바라보고 "저것들 저기 내려오네." 하고 말하니 "저런 병신의 자식들. 그 자식

들의 꼬락서니가 어떤가 우리 가서 보자." 하고 고개 밑을 향하고 서다가 다시

몸을 돌이켜서 언덕 위에 섰는 유복이를 치어다보며 "네놈의 목숨이 얼마나 오

래 가나 어디 두고 보자." 악증풀이하듯 말하고 곧 군사들을 데리고 고개 밑으

로 내려갔다. 유복이가 그제야 앉아서 두 다리를 뻗고 머리를 젖히어 들고 해를

치어다보니 벌써 한낮이 훨씬 기울었다."오주가 올 때가 지났는데 혹시 오다가

군사들 섰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구 의심이 나서 도루 갔나. 허허실수루 조금만

더 기다려 볼까." 유복이는 혼자 말하고 조금조금 기다리는 중에 곽오주가 터덜

거리고 고개 위로 올라왔다."자네 인제 오나?" 유복이가 언덕 위에 일어서니 "

많이 기다렸소?" 오주가 언덕 아래서 치어다보았다."어서 이리 올라오게."

복이는 오주가 올라오기를 기다려서 같이 나란히 앉았다."자네 오다가 포도군사

들을 만났나?" "군산지 깨묵인지 복색 다른 것들이 많이 갑디다. 그놈들 어떤

놈한테 가서 경을 흠씬 치구 가는 거야. 그렇기에 골통이 터진 놈두 있구 얼굴

바닥이 깨진 놈두 있구 한짝 눈이 깨물어긴 놈까지 있지." "그놈들이 자네보구

실랑이 않든가?" "어디 사느냐구 묻구 어디 가느냐구 묻습디다." "그래 어딜

간다구 대답했나?" "묻는 것이 수상하기에 금교 뒷장 보러 간다구 했소." "

네두 거짓말할 줄 아네그려." "나를 거짓말두 못하는 밥병신으로 알았소." "

네 같은 사람은 거짓말 아니하려니 생각했네." "거짓말할 줄 아는 사람이 어디

따루 있소." "그래 뒷장 보러 간다니까 다른 말 없이 놔보내든가?" "댓가지

가진 도둑놈이 있다구 가지 말랍디다. 나는 도둑놈이 무섭지 않다구 그대루 와

버렸소." "그놈들 말하는 도둑놈이 날세." 하고 유복이가 군사들과 싸우던 것

을 일장 다 이야기하니 오주가 듣고 나서 "그런 줄 몰랐더니 흉악한 대적놈이구

." 하고 껄껄 웃었다. 유복이가 오주의 말을 듣고 역시 웃으면서 "좀도둑도

채 되기 전에 벌써 흉악한 대적이 된 모양일세. 내가 오늘날 이렇게 된 일생 경

력을 이야기할께 들어보려나?" 하고 오주의 말을 기다리니 "사내자식이 도둑질

한다면 대적놈이 되지 좀도둑놈이 되어서 쓰겠소." 오주가 먼저 도둑에 대한 소

견부터 말하고 그 다음에 "왜 도둑놈이 되었나 이야기 좀 하우. 들읍시다."

복이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였다."자초지종 이야기를 하자면 이야기가 길어."

듣다가 듣기 싫으면 고만두라고 말하리다. 유복이가 오주의 솔직한 말을 듣고

한번 웃은 뒤에 자기 아버지가 남의 모함에 죽은 일부터 이야기하기 시작하여

자기가 서울 행랑에서 나서 자라던 일과 맹산 두메서 병으로 고생하던 일과 강

령 큰골서 원수 갚던 일을 모두 이야기하고, 또 덕물산 장군당에서 장군 마누라

를 가로 차지하고 맹산으로 가는 길에 우연히 오가의 집에 들어가서 같이 있게

된 곡절까지 속임없이 다 이야기하였다. 유복이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 오주는

줄곧 유복이의 입을 바라 보고 있었는데, 부모의 원수를 못 갚고 앉을뱅이로 고

생하는 토막에는 닭의 똥 같은 눈물을 떨어뜨리고 원수의 목을 잘라가지고 부

모 무덤에 오는 토막에는 곤댓짓을 하며 싱글거리고 또 귀신의 마누라를 가로채

는 토막에는 너털웃음을 내놓았다."군사 녀석들 때문에 막걸리 한 사발을 못 먹

게 되어서 분하구려." "배가 고픈가? 안주루 아지구 온 것은 여기 있으니 먹으

려나?" 유복이가 품에서 어물쪽을 내놓으니 "속시원한 이야기를 들은 끝에 술

한 사발을 들이키었으면 좋겠단 말이오." 오주는 그 어물쪽을 돌아다도 보지 아

니하였다."인제 자네 이야기 좀 듣세." "나는 이야기할 것 없소. 그럭저럭 나

이만 스물네 살 먹었소." "자네 나이 한 삼십 된 줄 았았더니 겨우 스물뎃밖에

안 되었어?" "박서방은 몇 살 먹었소?" "서른넷일세." "서른넷이면 내게

십 년 맏아니오?" "그렇지." "우리 둘째 형하구 한 나이구려." 이 말저 말묻

는중에 유복이는오주의 신세 이야기를 대강 듣게 되었다.

오주는 강령 향나뭇골 농민의 아들인데 오형제 중 막내아들로 부모의 귀염을

받아서 어렸을 때는 별로 고생을 몰랐고, 여섯 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아홉 살에

아버지를 마저 여읜 뒤로 맏형수에게 눈칫밥을 얻어먹게 되어 고생맛을 알기 시

작하였었다. 맏형수가 위인이 좋지 못하여 없는 말 있는 말을 맏형에게 지껄이

면 안해 말을 잘 듣는 맏형이 오주를 못살게 굴었었다. 오주는 맏형도 밉거니와

맏형수가 더욱 괘씸하여 버룻을 가르치고 싶은 생각이 있는 터에, 어느 날 형수

가 부엌에서 불을 때면서 나무 아니 해온다고 잔소리하는 것을 오주가 뺨을 치

고 머리채를 끄들르고, 그날 저녁때 맏형 내외에게 죽도록 얻어맞고 따로 살림

나서 사는 둘째 형에게로 갔더니 간 지 며칠 못 되어서 벌써 둘째 형수도 눈치

가 좋지 못하여 그래서 아버지 죽던 이듬해부터 남의집살이하는 것이 오늘날까

지인데, 열다섯 살에 해주로 나와서 한 집에서 한 삼 년 살고 그 뒤에 연안으로

나와서 이 집 저 집 옮아다니며 대여섯 해 살고 연안 있을 때 자라을 사람 하나

를 친하여 그 연분으로 자라 서울에 들어와서 일 년 지내고 개래동 정첨지 집에

와서 머슴살이한지는 일 년이 채 못 되었었다. 오주의 맏형 일주는 향나뭇골에

눌러앉아서 농사짓오 둘째형 이주는 등산곶으로 이사 가서 어부 노릇하고 셋째

형 삼주와 넷째형 사주는 장가도 들지 못하고 죽었었다. 맏형, 둘째형이 살아 있

지만, 서로 연신을 끊고 지내는 까닭에 지금 오주에게는 형제가 없느니나 진배

없는 터이었다.

 

유복이와 오주가 서로 사귄 뒤에 유복이가 오주를 사랑할 뿐 아니라 오주도

유복이를 좋아하쳐 한 장도막에 한두 번씩 자리를 맞추고 만나게 되었다, 처음

만난 뒤로부터 두어 장 지난 때다. 유복이가 오주를 만나서 "나는 아우 없는 사

람이구 자네는 형들이 있지만 실상 없느니나 다름없다니 우리 둘이 의형제를 모

으구 지내보려나?" 하고 오주의 의향을 물으니 오주는 대번에 일어서서 "형님,

절 받으시우." 하고 너푼 절을 하였다."우리가 인제부터는 각성바지 형제다."

"각성바지 할 것 없소. 내 성을 박가루 고치든지 형님 성을 곽가루 고치든지 맘

대루 고치구서 참말 형제루 합시다그려.""성이야 고칠 수 있나. 지내기만 우애 "

있는 참말 형제같이 지내세." "아무리나 형님 말대루 합시다. 그렇지만 그까지

성은 아주 떼버려두 아깝지 않은데 다른 성으루 고치지 못할 거 무어 있소." "

성이 뗀다구 떨어지구 고친다구 고쳐지나, 또 우리 부모가 각각 다른 바에 한

성을 가진다구 피차간 피가 같아지나." "피가 다른 거야 누가 모른다우? 성이나

같이 하잔 말이지." "피가 달라서 성이 다른 것을 억지루 어떻게 하나." "

이 피에 붙은 것이오?" "붙은 셈이지." "그럼 우리가 아버지 어머니 피를 다

받았으니까 성을 둘씩 가져야 하지 않소. 하필 아버지 성만 가질 것 무어 있소.

아버지 성 갖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법이야." "도둑질은 하라는 법 어디

있소? 하라는 법이 없어두 하면 되는 것 아니오. 아따 이렇구 저렇구 그까지 성

은 박가 곽가루 내버려둡시다."

유복이와 오주는 형제의를 맺은 뒤 오주가 새로 생긴 형수인 유복이의 안해를

같이 가서 상면하겠다고 말하여 유복이는 오주를 데리고 산속에 있는 오가 집으

로 들어오게 되었다. 유복이가 오주를 대문 밖에 세우고 먼저 집에 들어와서 오

가 내외와 자기 안해를 보고 오주 데리고 온 사연을 말하니 오가는 "자네가 처

음부터 그 총각을 사랑하더니 그예 아우를 만들었네그려. 이왕 데리구까지 왔으

니 불러들이게." 하고 선선히 말하나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 남편을 골탕먹인 것

이 종시 마음에 맺혀서 "쇠새끼 같다는 위인을 만나러 다니는 것도 부질없는 일

인데 형제의를 맺은 것은 생각 덜한 짓일세." 미타하게 말하고 유복이 안해는

자기가 도망꾼이라 외인을 만나는 것이 마음에 좋지 아니하여 "요전에 내 말 했

다는 것도 시원치 못한 일인데 같이 오잔다고 쭈르르 끌고 온단 말이오? 다음날

로 미루고 집에 와서 공론한 뒤에 데리고 오든지 말든지 하지." 사리로 나무

랐다. 오가가 "그 총각이 하두 우악스럽구 무식스러워서 내가 쇠새끼라구 별명까

지 지었지만 위인이 취할 점이 많아. 우리 사위가 일을 어디 지망지망히 하는

사람인가. 어련히 생각하구 형제의를 맺었을까." 하고 그 마누라를 누르고 "

말은 유리한 말이다. 그렇지만 활발한 사내 생각과 좀스러운 여자 생각이 어디

같은가. 여자들은 사내 하는 일을 소흘한 것처럼 말하지만 여자같이 좀스럽다구

조밀한 것이 아니야. 여자들은 소견이 빽빽해서 일을 분간할 줄 모르거든. 우선

여자들이 장기루 생각하는 조밀한 것 하나만 가지구 말하더라두 조밀한 것이 일

하기 전에 소용 있지, 일한 뒤에는 소용 없는 것인데 여자들은 흔히 성복 후 약

방문으로 잔소리를 퍼부어서 사내를 골치만 뗑하게 만들지그려. 네가 지금 문밖

에 온 사람을 두구 공론한 뒤에 데리구 오지 않았다구 사살하니 그것두 역시 쓸

데없는 잔소리 아니냐. 너는 여자루 소견이 제법이건만 종시 여자라 할 수 없구

." 하고 그 수양딸의 말문을 막았다. 오가가 이와같이 만판 너스레로 유복이

를 거드는 중에 대문 밖에서 "형님, 나 들어갈라우." 하고 무뚝뚝한 말소리가

들리며 곧 오주가 안마당으로 들어왔다. 유복이가 마루 앞에 서 있다가 들어오

는 오주에게로 마주 나가서 "저기 있는 내 방으루 가자." 하고 아랫방으로 데리

고 왔다. 오가가 먼저 안방에서 내려와서 "뜻밖의 손님일세. 잘 왔네." 인사하고

방안에 들어앉은 뒤에 유복이가 안해를 내려오라고 부르는데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을 가까이 구경하려고 수앙딸과 같이 내려왔다. 유복이의 안해가 방안에 들

어서니 오주가 "아주머니 보입시다." 하고 절하고 인사하고 끝으로 방문 밖에

섰는 오가의 마누라를 유복이가 "들어오시지요." 말하여 방안으로 들어온 뒤 오

주더러 인사하라는 눈치로 "저 어른이 우리 장모다." 하고 가르쳐 주었건만 오

주는 한번 머리를 끄덕거리고 씁쓸하니

앉아 있었다. 오가의 마누라는 겸연쩍어서 얼굴이 붉어지고 유복이의 안해는

미안스러워서 역시 얼굴이 붉어지는데 오주는 태연스러웠다. 오가가 네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한번 허허 웃고 "여게 총각?" 하고 오주를 불렀다."왜 그러우?

내가 자네에게 골탕을 먹은 뒤에 자네를 쇠새끼라구 별명 지었네." "낭에서

떨어질 때 쇠새끼라구 하는 소리 나두 들었소." "지금 인사할 줄 모르는 것만

보더라두 자네가 그 별명을 들어

싸지." "무슨 인사를 할 줄 모른단 말이오?" "딸에게는 절하구 어머니에게는

절 않는 것이 인사할 줄 모르는 것 아닌가. 수양 어머니두 어머니는 어머니거든.

딸은 내게 아주머니니까 절하지만 어머니야 내게 무엇 되우?" "절하게."

형수의 어머니가 사돈 어른 아니겠나, 사돈 어른보구 어째 절을 아니하나."

절을 해야 하우?" "해야 하구말구." "그럼, 사돈어른 절 받으시우." 하고 오

주가 일어나서 오가의 마누라에게 절하고 다시 앉으려고 할 때 오자가 점잔을

떨면서 "사돈 어른으루 말하면 밭사돈어른이 더 소중한 법이야. 늦었지만 내게까

지 절하구 앉게." 말하고 웃으니 오주는 "나를 꾀여서 절 받을라구." 하고 유

복이의 눈치를 보았다."이왕 하는 길이니 한번 더 하려무나." "형님두 나를 절

시키구 웃을라구 그러지." 오가가 유복이 대신 "아우를 웃을 리가 있나. 해야

하는 것이지." 하고 말하니 오주는 "해야 하더라두 이담버텀 하구 이번은 고만

둡시다." 하고 펄썩 주저앉았다."그리하게, 이번은 고만두게. 그렇지만 단단히

잊지 말게. 절 한 번 맡았느니." "절을 맡아두면 이담 할 때 한꺼번에 두 번 하

란 말이오?" "그렇지." "성가시어 안 맡겠소. , 받아가우." 하고 오주가 또다

시 일어나서 오가에게 절을 하니 방안 사람이 모두 웃고 오주는 열쩍어서 "

." 하고 자리에 주주물러앉았다. 오가가 "우리 사위는 아우 얻은 턱이 있구

우리 딸은 시동생 얻은 턱이 있구 또 우리는 사돈 총각에게 억지 절 받은 턱이

있으니 술 한상 잘 차려내게." 하고 마누라를 돌아보리 그 마누라가 웃으면서 "

술상을 잘 차려낼께 이 다음에는 사돈어른을 낭떠러지에 떠다박질르지나 마오."

오주보고 말하고 수양딸과 같이 안방으로 올라갔다.

아랫방에 세 사람이 남아 앉아서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 하며 한동안 지난

뒤에 유복이의 안해가 내려와서 술상이 다 되었다고 내려올까 물으니 오가가 "

술을 많이 먹을 터인데 이루 날라오기 귀찮으니 우리들이 안방으루 올라가세."

하고 유복이를 돌아보았다. 유복이는 "아무시나 합시다." 오가더러 말하고 오주

"형님 방에서 먹읍시다." 유복이더러 말하는데 오가가 오주더러 "사돈어른클

기신 방이 넓으니 그리루 올라가세." 말하고 곧 뒤를 이어 "절에 간 색시는 중

하자는 대루 하는 것이야." 말하며 웃었다.

 

오가의 집 안방에 술판이 벌어졌다. 오가와 유복이도 술을 잘 먹지만 오주는

사발이 돌아오기 무섭레 한숨에 죽죽 들이키었다. 처음 한 동이 술이 다 끝나고

새 동이가 들어왔을 때 오주가 한 사발을 떠서 오가 마누라에게로 불쑥 내밀면

"사돈어른, 한 사발 잡수시우." 하고 별미쩍게 권하니 오가의 마누라는 웃고

받아서 지우고 마시고, 또 오주가 새로 한 사발을 떠서 들고 "아주머니두 좀 잡

수시우." 하고 유복이 안해에게 내어미니 "나는 술 먹을 줄 몰라요." 하고 유

복이의 안해는 사발을 받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앞으로 나앉아서 "새루 생긴 시

동생이 드리니 받으시우." 하고 사발을 턱밑까지 들이밀어서 유복이의 안해는

옆으로 비켜 앉으며 "먹을 줄 모르는 걸 어떻게 먹어요." 하고 눈살을 찌푸리다

"너무 사양 말구 장모처럼 지우구 먹게그려." 하고 유복이가 말쓸 이른 뒤에

오주의 주는 사발을 받아서 "당신이나 내 대신 잡수시우."

하고 유복이를 주었다. 안해의 술 대신 먹는 유복이를 오주가 바라보며 "아주머

니가 기생 같소." 하고 어둔 밤의 홍두깨 같은 말을 내놓아서 다른 사람은 고사

하고 유복이까지 대답할 말을 몰라서 잠자코 있으니 오주가 다시 "내가 기생 구

경 못한 줄 아우. 전에 해주 있을 때 감사가 영해루에서 잔치할 때 기생들이 영

해루루 가는 것을 길가에서 가까이 본 일이 있소. 아주머니 얼굴이 그때 보던

기생들버덤 더 고웁소." 하고 전에 본 기생과 비교하여 의형수의 자색을 칭찬하

였다. 다른 사람들은 그저 웃을 따름이요, 유복이의 안해는 술 한 사발 먹은이나

진배없이 얼굴이 붉어졌다."여보 형님, 이번 최장군 마누라는 내가 가서 삣어올

?" 오주의 하는 말이 점점 더 듣기 괴란하여 유복이의 안해가 자리에서 일어

나려고 몸을 움직일 때 오가가 일부러 지어 하는 말 같지 않게 얼없이 술상에

놓인 마른 어물쪽을 가리키며 "나는 이가 아파 이대로 못 먹겠으니 따루 몇 쪽

만 머루마치루 팡꽝 뚜들겨서 갖다 다우." 하고 말하여 "." 대답하고 밖으

로 나갔다. 오가가 술상에서 홍합을 집어서 오주를 주며 "총각, 흥합 좋아하나?

" 하고 의미 있게 웃어서 오주가 "왜 웃소?" 하고 웃는 까닭을 물으니 오가

는 웃음을 거두고 시침 떼고 앉아서 "총각 장가들고 싶은가? 장가는 마구 들 것

아닐세, 하루 화근은 식전 취한 술이요, 일 년 화근은 발에 끼는 갖신이요, 일생

화근은 성품 고약한 안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장군당에 갈 공론 고만두구 술이

나 먹세." 하고 술사발을 돌리었다. 어느덧 한 동이가 다 들나서 또 새 동이를

가져오게 되었을 때 오가의 마누라가 "총각 같은 손님이 날마다 오면 하루 술

한 독씩 들나겠네." 하고 면박주듯 말하는데 오주는 "난생 처음으루 오늘 술을

잘 먹소." 하고 치사하듯 대답하였다. 나중 들어온 한 동이는 오가와 유복이가

번갈아가며 오주와 대작하여 오주는 오가와 유복이보다 몇 사발을 더 먹고 해질

물에 돌아가려고 일어섰다. 유복이가 오주를 큰길까지 데려다 주려고 오주와 같

이 나오면서 길 없는 산속에 목표들을 모두 가르쳐 주고 "틈이 있거든 자주 놀

러오너라." 하고 이르니 "형님이 보구 싶어두 오구 술이 먹구 싶어두 올 테

니 염려 마우." 하고 오주는 대답하였다.

2

금교역이 앞으로 나가고 그 뒤에 청석진이 생기고 청석진에 첨사가 있다가 없

어지고 그 자리에 대흥산성 중군이 나와 앉았던 것은 모두 후세 일이지만,

미골에 금도군영이 설치되었던 것은 오가가 청석골 자리를 잡기 전 일이다.

미골에는 일시 도적이 둔치고 있어서 행인이 통히 내왕하지 못한 까닭에 군영이

설치되고 금도군관들이 군사들을 거느리고 나와 있게 된 것이었다. 탈미골 강가

는 젊은 사람이라 도적질 나선 것이 오가보다 뒤진 까닭에 청석골 같은 거침새

없는 좋은 자리를 오가에게 먼저 빼앗기었을 뿐 아니라, 강가의 아비가 탈미골

에 둔치고 있던 적당 한 사람으로 적당이 흩어질 때 갈려울로 들어와서 파묻혀

사는 중에 낳은 아들이라 그 늙은 아비의 지난 자취에 마음이 끌리어서 탈미골

에서 도적질하게 되었었다. 강가가 사람이 표독하고 민첩하여 도적으로 나선 지

불과 수 년에 십 년 구닥다리 청석골 오가와 이름이 아울러 높았으나, 군영이

턱밑에 있어서 일에 방해가 적지 아니한 까닭에 실상 벌잇속은 오가를 따르지

못하였다. 송도 군관이 댓가지 도적에게 봉변한 데 불집이 나서 송도 군관들은

오가를 잡으려고 하고 탈미골 군관들은 강가를 잡으려고 하는데, 정작 불난 자

리 청석골에는 송도 군관들이 나오는 번수는 잦으나 건정으로 휘돌아다니다가

들어갈 뿐 이지만, 불똥이 튀어온 탈미골에는 군관들의 기찰이 전보다 버쩍 심

하여 강가의 여간 벌이는 내통하여 주는 군사 입 씻기기에 다 들어갔다. 어느

날 강가가 벌이하려고 큰고개 근처에 나가서 돌아 다니다가 군사들이 개 싸다니

듯 하여 군사들의 눈을 피하느라고 정작 벌이는 하지도 못하고 다 저녁때 빈손

으로 갈려울 집에 돌아와서 그 늙은 아비를 보고 자리 옮길 것을 의논하니,

아비 말이 조선 공사 사흘이라고 며칠만 지나면 기찰이 눅어질 터이니 기다려보

는 것이 좋다고 말하였다. 며칠 지난 뒤 그 아비의 말이 뒤쪽 으로 맞았다. 해주

감영에서 수단 있는 군관이 감사의 분부를 물어가지고 새로 왔는데 감사의 분부

가 서슬이 푸르렀다. 강가란 도적을 그예 잡아서 감영으로 올리되 만일 잡지 못

하면 전부터 있는 군관이나 새로 온 군관이나 일체로 중책을 면치 못한다는 것

이었다. 군관들이 머리를 모으고 공론을 하는 말이 새어나와서 강가의 귀에 들

어왔다. 강가가 밖에 나와서 소문을 듣고 집에 돌아오니 "군영 동정이 어떻더냐,

차차 눅어지는 모양이더냐?" 하고 그 아비가 물었다."눅어지는 게 다 무어요?

잘못하면 우리 집은 고사하고 우리 동네가 쑥밭이 될 모양이오." "어째서?"

"해주 감영에서 새루 군관이 왔는데 그예 날 잡아야지 잡지 못 하면 큰 탈을 당

한다구 그전 있던 군관과 쑥덕공론하더라우. 아무 래두 얼른 자리를 옮기는 것

이 우물고누 첫수일까 보우.""그러면 집안 식구까지 다 옳겨야 할 모양이니 갑"

자기 어디루 가나?" "탐나는 자리자 가까이 한 군데 있는데 먼저 차지하구 있

는 놈을 집어치워야 해요." "청석골 말이냐? 청석골 오가의 집이 두석산 속에

있다지만 누가 길을 알아야지." "두석산 동편 날가지 속이랍디다. 연전에 매부

가 사냥 갔다 들어가 보구 와서 이야기 아니합디까." "그랬던가. 내가 정신이

사나우니까 들었어두 잊었지. 이애 그 사람을 집어치울 생각 말구 같이 있자구

그 사람하구 의논해 보면 어떻겠니?" "면분두 없이 지내던 터에 같이 있자고

의논하면 되겠소. 그러구 내가 가서 그 늙은 것의 수하 노릇을 한단 말이오?

어치우는 것이 제일이지." "집어치우기가 어디 용이한가." "오가 하나만 같으면

우리 남매만 가두 넉넉하지만 댓가지 도적이라구 떠드는 놈이 혹시 오가하구 함

께 있으면 단단히 차리는 것이 좋으니까 외사촌 형제까지 다 데리구 가볼까 생

각하우." "가자면 낮에 가야지 밤에 가면 길두 모르는데 헛고생한다." "새벽에

사냥 가는 체하구 가지요. 산속에 들어선 뒤에야 대낮 이면 상관 있소." "오가

가 어디 나가지 말란 법이 있나?" "오가가 나갔으면 더 좋지요. 식구버텀 요정

내구 기다리구 있다가 들어오는 걸 해내지요." 강가 부자의 공론이 끝난 뒤에

강가는 곧 매부와 외사촌들을 찾아보러 나갔다.

 

이튿날 새벽에 사냥꾼 복색한 젊은 사람 넷이 갈려울서 두석산 편으로 내려오

는데 활을 팔에 걸고 전동을 어깨에 엇메고 앞에 오는 사람은 강가의 매부요,

허리에 환도를 차고 손에 창을 가지고 중간에 오는 사람은 강가요, 뒤에 오는

두 아람은 강가의 외종들 이니 창들만 들었었다. 네 사람이 금교역말 못미쳐서

큰길을 건너소로로 내려오다가 두석산 뒤를 돌아 동편 날가지 속에 들어설 때해

는 벌써 한낮이 다 되었었다. 이때 오가의 집에서는 오가의 마누라가 몸살로 앓

아서 안방에 누워 있고 오가와 유복이는 안방에 있다가 마침 오주가 놀러와서

아랫방으로 내려가고 유복이의 안해는 부리는 계집아이를 데리 고 마루에서 술

을 거르고 있었다. 한눈파는 버릇이 있는 계집아이가 술 거르는 시중을 들다가

흘저에 깜짝 놀라며 "아이구, 저기 사람 좀 보세요! "하고 마루에서 마주보이는

산 위를 가리켰다. 유복이의 안해가 손에 체를 쥔 채 계집아이 손가락 가는 곳

을 바라보니 과연 산 위에자람이 섰는데 하나도 아니요 여럿이다. 체를 내던지

다시피 놓고 일어서서 발에 신을 꿰며 말며 아랫방으로 쫓아내려와서 사람들이

앞산 위에 나섰다고 말하였다. 오가는 "사람이야?" 하고 먼저 일어나 나오고

유복이는 오주를 향하여 "잠깐 혼자 앉아 있거라." 하고 그 뒤를 따라나왔다."

사람이 셋이지?" "셋 같지 않소. 넷인가 보우." "손에 무엇들을 든 사람이 셋

아니야?" "사냥꾼들인가 보우." "요즈막 송도 군관이 자주 나오더니 냄새를 맡

구 밟아 들어온겔세." "수상하우." "큰일났네." "어떻게 할라우?" "도망질치

지 별수 있나." 오가와 유복이가 마루에 서서 서로 수작하며 바라보는 중에 산

위에 있는 사람들이 아래로 내려섰다."저것 보게, 이리 내려오네. 참말 넷일세.

넷뿐이로군." "앞선 놈은 활 가졌소." "이번 오는 것들을 쫓아버리든지 죽여버

리든지 하구 서서히 도망질할 준비를 차렸으면 좋겠는데 우리 둘이 될 수 있을

?" "오주더러 집에 좀 있으라구 하구 우리 둘이 나갑시다." "이 사람아, 어디

를 나가잔 말인가. 활 가진 놈까지 있는데 나갔다간 봉패하네. 대문 닫구 집안에

들어앉아서 막아낼 도리를 생각 하세." "그럼 오주는 보냅시다." "자네 맘대

루 하게." 유복이는 아랫방으로 내려가고 오가는 안방에 들어와 보니 앓아 누웠

던 사람이 어느 틈에 일어나고 수양딸과 계집아이가 그 옆에 붙어 앉았는데 세

얼굴이 다같이 새파랗게 질리었었다."미리 질겁들 내지 말구 정신 차려. 범에게

물려가두 정신을 차려야 사는 법이야." 오가가 꾸지람하듯 큰소리로 말하니 "

떻게 하기로 작정했소." 오가의 마누라가 입안 소리로 말을 물으며 섰는 오가를

치어다 보았다."바깥은 내다볼 생각두 말구 방안에들 가만히 앉았어." "가만히

앉았다가 죽으란 말이오?" "방안에 있는 사람이 죽으면 밖에 있는 사람은 사

?" "그러니 얼른 함께들 도망하는 게 좋지 않소." "지금 도망하다가는 멀리

가두 못하구 화살 맞아 꺼꾸러지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좋소?" "가만히 방

안에들 앉았어, 잔소리 말구." 오가가 벽장에서 칼을 꺼내가지고 나가려고 할

때 유복이가 방 문을 열었다."오주 갔나?" "아니 간다우." "?" "이런 일이

있는 줄 알면 일부러라두 올 텐데 가는 게 다 무어냐구 머리를 내흔들구 내가

저더러 가란다구 곧 시비를 할라구 하는 구려." "오주까지 있으면 되었네.

놈쯤은 당할 수 있겠지." "당해 내기루 말하면 나 혼자두 염려 없소." "만사가

튼튼한 것이 좋지 않은가." 오가는 다시 안식구들을 돌아보며 "바깥은 내다볼

생각두 말구 가만히들 있어." 하고 말을 이르고 유복이와 같이 나왔다. 오가는

대문을 닫아 걸러 문간으로 나가고 유복이는 아랫방으로 내려와서 오주와 같이

봉당에 걸터앉았다."쫓아나가 보지 않구 대문 닫구 들어앉았을 모양이오?"

주가 두덜거리는 것을 "늙은이 하는 대루 두구 보자." 유복이가 타이른 뒤에 "

너는 맨주먹으루 있을 테냐? 짜른 환도 하나를 내다 줄께 손에 들라느냐?"

고 유복이가 묻고 "나는 맨주먹두 좋소. 잘 쓰지두 못하는 환도 손에 들면 거추

장만스럽소. 고만두우." 하고 오주가 대답할 때 오가가 와서 말끝만 듣고 "무얼

고만두란 말인가?" 하고 역시 걸터앉으며 손에 들었던 칼을 옆에 놓았다."형님

이 환도 하나 주랴구 묻기에 고만두랬소." "?" "이것이 있으니까." 오주가

주먹을 불끈 쥐어서 오가의 눈앞에 내밀었다."철퇴 같은 주먹으루 강정 같은 대

가리를 아싹아싹 부시려나? 그렇지만 맨주먹으루 연장을 당하겠나. 무엇이든지

손에 들어야 하고 오가가 일어나서 부엌으로 가더니 재 치는 넉가래와 나무 패

는 도끼와 다 타 모지라진 부지깽이를 주워들고 와서 오주의 발 앞에 벌여놓으

"환도는 고만두더라두 이 중에서 하나

골라잡아 보게나." 하고 웃으니 "예 여보." 하고 오주는 아랫입술을 빼물고 "

난할 경황이 있으니 무던하우." 하고 유복이는 빙글거리었다. 기왓장 깨어지는

소리가 나며 안채 지붕에 화살 한 개가 떨어졌다."이크 선진이 왔군." 오가가

봉당에 놓인 칼을 집어들었다. 한동안 지난 뒤에 담 밖에서 사람의 발짝 소리가

나는 듯하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대문을 박차는 소리가 들리었다. 오가가 유복

이와 오주를 돌아보며 "내가 먼저 말을 좀 물어보구 올 것이니 잠깐들 기다리게.

" 하고 곧 대문간으로 나왔다. 환도 차고 창 든 사람 하나와 창만 든 사람 하나

는 바로 대문 앞에 있고, 활 든 사람 하나와 창 든 사람 하나는 망보는 것같이

멀찍이 떨어져 있다. 오가가 문틈으로 내다 보며 남의 집에 와서 문을 박차는 "

놈들이 누구냐?" 하고 소리지르니 환도 찬 사람이 "네가 오가냐? 잔말 말구 대

문 열어라." 하고 맞소리 질렀다."너눔들이 대체 어디서 왔느냐?" "어디서 온

걸 알아야 문을 열 테냐? 탈미골서 왔다." "탈미골?" "내가 탈미골 강서방이

. 너두 내 선성은 들어 뫼셨겠지." 오가는 어이가 없어 말이 안 나왔다."이런

좋은 자리를 너 같은 놈 주어 두는 것이 아까워서 자리를 차지하러왔다. 네가

고분고분히 집을 내놓구 다른 데루 간다면 너까지두 죽이지 않겠다만." 하고 창

자루 끝으로 대문짝을 꽝 치고 "우리가 이 대문을 깨치구 들어가게 되는 때는

네 집의 개새끼 하나두 살려두지 않을 테니 알아 해라! " 강가가 통통이 호령하

였다."조런 발칙한 놈이 있나! 요놈아, 입에서 아직 젖비린내 나는 놈이 무엇이

어째! 조놈을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이." 오가는 입가에 게밥을 지으면서 하늘이

얕다고 뛰다가 안으로 들어와서 유복이와 오주에게 분통 터지는 사연뜰 대강 말

하였다. 유복이와 오주가 대문 열고 쫓아나가자고 말들 하는 것을 오가는 "아니.

하고 머리를 가로 흔든 뒤 먼저 유복이를 향하여 활 가진 놈만 조처하면 뒤

는 걱정이 없으니 자네가 담에 사다 리를 기대 놓구 올라서서 표창으루 활 가진

놈을 해내겠나?" 하고 물으니 "활 가진 놈이 가까이만 오면 어려을 것 없지요.

유복이는 선뜻 대답하고 다음에 오주를 향하여 자네는 마당 한중간에 서서

두루두루 살펴보다가 앞뒷담 넘어 오는 놈이 있거든 주먹으로 때려누이겠나?"

하고 물으니 "당신은 어떻게 할라우?" 오주는 오가더러 되물었다."나는 칼을

들구 대문 뒤에 가서 붙어서 있다가 문을 깨뜨리구 들어오는 놈을 쳐죽일 작정

일세." 오가의 말에 "아무리나 합시다." 오주가 대답하여 약속이 정하여졌다.

오가의 집 대문간 바른편에는 아랫방이 있고 왼편에는 광이 있다. 유복이는 사

다리 놓여 있는 곳에서 가까운 광 옆담에 사다리를 기대 놓고 올라서서 담 밖을

내다보고, 오주는 유복이의 표창질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담 넘어오는 놈은 살필

생각 아니하고 유복이를 바라보고 있고, 오가는 대문 뒤에 서서 대문짝에 발길

질하는 놈들을 꾸짖고 있을 때 강가가 아랫방 옆담을 넘어들어왔다. 마당에 섰

는 오주가 가로막을 사이도 없이 강가는 칼을 들고 쏜살같이 대문간으로 들어갔

. 오가의 칼과 강가의 칼이 대번 서로 어우러졌다. 그러나 대문간이 자리가 좁

아서 두 칼이 다 잘 놀지 못하였다. 오가는 한편 벽에 등을 대고 슬금슬금 옆걸

음을 쳐서 마당 편으로 나오는데, 강가는 이리 띄고 저리 뛰고 하며 오가와 뒤

쪽으로 대문 뒤로 더 들어갔다. 강가가 대문 뒤에까지 들어가서는 옆으로 서서

한 손으로 칼을 내두르며 다른 손으로 대문 빗장을 더듬었다. 오가가 이것을 보

고야 강가가 훼방을 받으면서 빗장을 빼고 고리까지 벗기려고 할 때 오가의 칼

에 바른편 허벅지를 찔리었다. 강가가 독살이 나서 돌쳐서며 곧 오가의 아랫배

를 향하고 칼을 내질렀다. 그 기세가 매서워서 오가는 일변 칼로 막으며 일변

뒤로 뛰어나가니 강가가 이를 악물고 쫓아나오며 연거푸 내질렀다. 오가가 강가

의 칼을 피하느라고 쩔쩔매면서 마당까지 쫓겨나와서 몸을 옆으로 비키어 광을

뒤에 지고 칼을 휘휘 둘렀다. 강가의 칼이 점점 오가를 핍박하여 오가의 몸에

진땀이 나게 되었을 때 두 도적이 싸우는 것을 보고 섰던 오주가 아랫방 앞으로

달려가서 도끼를 들고 슬금슬금 강가의 뒤로 걸어왔다. 도끼잡이가 뒤에 오는

것을 강가가 짐작하고 번개같이 몸을 빼어 다시 대문간으로 뛰어가서 고리를 벗

기는데 고리가 뻑뻑하든지 얼른 벗겨지지 아니하여 배목 박힌 문짝을 발길로 내

지르며 벗기어서 대문을 열자마자, 이놈 소리가 나며 무거운 도끼가 뒤통수에

떨어졌다. 대가리 하나가 두 쪽에 빠개지니 강가가 죽기 싫은들 할 수 있으랴.

한번 고꾸라진 채 다시 일어나지 못하였다. 인제 대문이 열리었으니 밖에 있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옴직하건만 의외에 대문 안에 발 들여

놓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이 동안에 오가도 오고 유복이도 왔다."세 놈은

어데루 갔을까?" 오가가 먼저 입을 열고 ""괴수가 죽었으니까 도망들 한 게

." 유복이가 오가의 뒤를 잇고 "나가 봅시다." 오주가 또 유복이의 뒤를

이어서 차례로 한 마디씩 말한 뒤에 오주 다음에 오가, 오가 다음에 유복이로

세 사람이 줄로 서서 대문 밖으로 나왔다. 아랫방 모퉁이 담 옆에 세 사람이 몰

려가 있는데 한 사람은 눈을 부둥키고 주저앉았고 두 사람은 각각 손목들을 주

무르며 서 있었다. 여기 세 사람이 대문 밖에 나서는 것을 보고 섰던 사람들은

앞서 달아나고 앉았던 사람은 뒤에 달아났다. 뒤의 한 사람은 얼마 못 가서 오

가의 칼에 꺼구러지고 앞의 두 사람은 유복이와 오주에게 쫓겼다. 유복이가 얼

마 쫓아가다가 "너희 두 놈은 살아가거라." 하고 걸음을 멈추고 오주는 "

두 놈도 살려보내지 맙시다." 하고 더 쫓아가려고 하는 것을 유복이가 붙들고

"그까짓놈들 내빼게 내버려두자." 하고 곧 오주와 같이 돌아섰다.

 

유복이가 표창 세 개를 던져서 활 가진 사람은 한편 눈을 멀리고 창 가진 사

람들은 손목만 상해 놓았는데, 눈먼 사람은 칼 맞아 꺼꾸러졌고 손목 상한 사람

들은 살아 내뺀 것이었다. 유복이가 오주와 오가에게 이야기하며 들어와서 셋이

벗어붙이고 일을 하여 두 송장을 한 구덩이에 끌어 묻고 대문간의 피 자취까지

없이 한 뒤에 오가는 안식구들을 데리고 작은 잔치 준비를 차리었다. 이날 저녁

때부터 오가의 집 안방에 술판이 벌어졌는데 벽에는 환도 한 자루와 활 한채가

걸려 있고 마루 구석에는 창세 자루가서 있었다.

강가 처남 매부 두 사람은 이 세상을 영결하고 강가의 외사촌 두 사람은 오금

아 살려라 하는 격으로 장달음을 쳐서 오가의 집에서 멀리 나왔으나, 길을 몰라

서 이리저리 헤매다가 두석산 속에서 해를 거의 다 보내고 무진 애를 쓴 끝에

간신히 산속에서 나오게 되었다. 날은 어둡고 길은 험하고 배는 고프니 업친데

덥친 셈이라 죽을 고생 다하고 한밤중이 지난 뒤에 갈여울로 돌아왔다."형님,

바루 집으루 갑시다." "그럼 집으루 가지 어디루 가." "고모부 아저씨 집에 들

어가지 말잔 말이오." "네나 내나 이야기할 기운이나 있어야지 들러 가지." "

렇기에 말이오." "지금쯤 다 자겠지?" 형제가 다같이 드문드문 풀기 없는 말을

주고 받으며 동네 안으로 들어오는데 동네 개가 컹컹 짓더니 들러 가지 말자고

공론하던 강가의 집 삽작 밖에 여편네들이 나와 섰다. 하나는 강가의 안해요,

하나는 강가의 누이다. 그 누이가 먼저 "누구야?" 하고 앞으로 내닫고 강가의

안해가 "어째 형제분만 오시오?" 하고 뒤쫓아 나왔다. 형제가 다 대답이 없는

것을 보고 강가의 누이가 "우선 집으로 들어가지." 하고 말하여 형제는 잠깐 동

안 주저주저하다가 두 여편네와 같이 들어왔다. 강가의 늙은 아비가 방문을 열

고 내다보다가 아들과 사 위는 돌아오지 않고 돌아온 처조카 형제는 죽을 상이

다 된 것을 보고 말도 묻지 않고 눈만 휘둥그렇게 뜨고 있었다."우리를 어디 좀

눕게 해주우." 그 형이 내종사촌 누이에게 청하여 형제가 같이 사랑방으로 나

오는데 강가의 누이와 강가의 안해가 이야기나 들을까 하고 뒤를 따라나왔다.

사랑방은 곧 머슴방이라 머슴아이가 아랫목에 누워 자는 것을 강가의 누이가 끄

들어 일으키고 외사촌 형제를 눕게 하였다. 형제가 각기 냉수를 달래서 한 그릇

씩 들이켜고 자리에 쓰러지려고 할 때 늙은 강가가 쫓아나왔다. 방에 들버와서

펄썩 주저앉으며 곧 딸과 며느리를 향하여 나가라고 손짓하니 딸이 아비의 의사

를 알려고 "왜 그러세요?" 하고 물었다."너희들은 안방에 가 있거라." 늙은

강가가 소리를 꽥 질러서 딸과 며느리가 방에서 나간 뒤에 비로소 처조카 형제

를 바라보며 말을 물었다. "대관절 죽었니 살았니?" "죽었기에 오지 아니했

." 대답을 기다리고 처조카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다시 "말 좀 해라. 남매

가 다 죽었니?" 하고 물으니 형제가 다같이 말은 없이 고개들을 끄덕이었다.

은 강가는 한동안 넋 잃은 사람같이 앉아 있다가 방고래가 꺼지도록 한숨을 쉬

고 일어서서 비슬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밤 동트기 전에 강가의 집에 불

이 났다. 동네 사람들이 "불이야, 불이야! "바고 소리를 지르며 불 잡으러 모여들

었을 때, 불길은 벌써 안팎채를 쉽싸고 용솟음쳐서 사람이 가까이 갈 수 없는

까닭에 걸낫 같은 연장은 쓰지 못하고 멀리서 물들만 끼어얹었다. 물길이 가깝

고 또 바람이 잔 덕으로 불이 이웃에 번지지는 못하였으나 강가의 집은 안팎채

가 통히 다 타고 말았다. 강가의 집에서 살아나온 사 람은 머슴아이 하나뿐이라

동네 사람들이 불 잡은 뒤에 그 아이를 둘러싸고 이 사람 한마디 저 사람 한마

디 말들을 물어서 강가가 매부와 외사촌 형제를 데리고 새벽 사냥 나간 이야기

와 외사촌 형제만 밤중에 똘아왔는데 강가의 아비가 아들과 사위는 죽었느냐고

다져 묻고 낙심하던 이야기를 들었고, 또 안채에 불이 붙어서 한 참 활활 탈 때

늙은 강가가 딸과 며느리를 불 속에 떠다박지르고 미친 사람같이 뛰어다닌 것과

강가의 외사촌 형제가 죽은 사람같이 곤히 자다가 그대로 타죽은 것을 알게 되

었다."사냥 갔다가 어째서 죽었을까?""큰 짐생에게 물려죽은 게지." "급살을

맞았는지 누가 아나." "강첨지가 실성해서 집에 불을 지른 게군." "타죽을 작정

으로 불을 놓은 게지." "아무리 눈이 뒤집혔기루 어떻게 딸이나 며느리를 불 속

에 떠다박지를까?" 동네 사람들이 지껄이며 흩어져가기 시작할 때 강가의 외가

식구들이 뒤늦게 알고 근두박질하여 쫓아왔다. 강가의 외가는 성이 변가니 갈려

울의 대성이라 일가는 많으나 강가 외삼촌대까지 사오대 독자로 내려와서 강근

지친은 없고 죽은 사람 형데 중에 형만은 아들 둘이 있으나 아직 다 어리고,

우는 통히 소생이 없는 까닭에 집에 남아 있는 형제의 식구가 두 여편네와 두

어린애 뿐이었다. 두 여편네는 사내들이 예사 사냥질하 러 간 줄로만 여기고

해 질 무렵부터 돌아오기를 기다리기 시작하였다. 해가 져 땅거미가 되고 땅거

미가 지나 밤이 된 때 골집 사나 운 큰동서가 "나는 잘라네. 자네도 고만 기다리

고 가서 자게." 하고 볼멘 소리로 말하는데 작은동서가 새촘하고 있으니 다시 "

무슨 놈의 사냥을 밤중까지 하겠나. 벌써들 왔지. 노루 마리나

잡아가지고 아랫말 와서 술들 먹는 게지." 하고 얼굴을 휘번덕거리며 말하였다.

그럴까요? 그러기나 하면 좋겠어요."좋기는 무에 좋은가. 사람이 기다리느라

고 눈시 빠지는 건 생 각 않고 배가 맹꽁이같이 되도록 처먹고 있는 꼴을 생각

해 보게." "우리는 어디 술이나 먹어요?" "아랫말 아재에게 쥐어지내는 위인들

이니까 술 먹는 사람이나 술 안 먹는 사람이나 다같이 붙잡힌 게지." "다른 일

이나 없을까요?" "무슨 다른 일? 호랑이에게 깨물려들 갔을까." "아랫말 좀 안

가 보실라오?" "턱찌끼 얻어먹으러." "참말 왔나 가보잔 말이지요." "자네나

가보고 오게." "캄캄한데 나 혼자 어떻게 가요." "그럼, 이 밤중에 애들을 치켜

업고 가잔 말인가? 나는 못 가겠네."이때 젖먹이 어린아이가 울었다."자네도

고만두게. 있다들 오거든 한바탕 해낼 생각이나 하게. 사람이 너무 고와도 못써.

" 큰 동서는 작은 동서를 가르치듯이 말하고 곧 우는 아이를 끼고 눕고 작은동

처는 한참이나 그대로 앉아 있다가 말없이 일어나서 딴채에 있는 자기 방으로

내려왔다. 전날 밤에 사내가 자기를 보고 내일 새벽에는 우리 형제가 아랫말 형"

님 남매하구 같이 사냥을 나갈 텐데." 하고 말을 하다가 갑자기 "고만두어라."

하고 말을 끊었다. 자기가 "무어요?" 하고 물은즉 "애를 좀 태워주려다가 불쌍

해서 고만두어." 하고 실없은 장난으로 자기의 말을 막아서 다시 채쳐 묻지 못

하고 고만둔 일이 있었다. 사내가 '나갈 텐데' 하고 그 끝에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았던가 채쳐 묻지 못한 것이 못내 분하였다. 약한 여편네가 끝없이 나오는 염

려스러운 생각을 억제하지 못하고 골치를 앓기 시작하여 옷 입은 채 자리에 쓰

러져서 앓는 것도 아니고 자는 것도 아닌 또양으로 밤을 지낸 끝에 "여보게,

뱃골댁." 큰 동서의 부르는 소리를 귓결에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나서 방문을 열

어보니 큰동서가 마당에 나와 서 있었다."아랫말에 불이 났네, 내가 가보고 올

테니 자네 안방에 좀 을라와 있게." 전 같으면 선뜻 녜 하고 대답할 것인데 어

째 혼자 남아 있기가 마음에 싫어서 작은 동서는 "형님, 나도 가볼 테요." 하고

마당으로 쫓아나왔다."어린것들만 내버려두고 같이 가잔 말인가?" "형님, 집에

기시오." "자네 같은 약한 사람은 불 잡는 데 가루거치기만 해. 잔말 말고 집에

있게." "싫어요." 큰 동서가 골이 나서 방으로 쭈르르 들어갔다. 작은동서는 아

랫말에도 내려가지 않고 또 아랫방에도 들어가지 않고 큰 동서가 듣거라 하고

꾸짖는 뒷말을 귀 밖으로 들으면서 마당에서 서성거리었다. 멀리 보이던 환한

불빛이 없어진 뒤 일가집 젊은 사람 하나가 숨이 턱에 닿게 뛰어와서 남편 형제

가 고모부 집에서 자다가 불에 타죽은 사연을 말하여 주었다. 큰동서가 이 말을

듣고 "애구, 그게 무슨 소리야?" "애구, 이걸 어떻게 하나! " 하고 곧 아랫말로

뛰어내려오는데 작은 동서는 정신없이 그 뒤를 따라서 엎드러지며 고꾸라지며

쫓아왔다. 큰동서는 여러 사람들 있는데 와서 펄썩 땅에 주저앉아서 손바닥으로

땅바닥을 치면서 "애구지구." 하고 통곡하는데 작은 동서는 쓰러지는 몸을 가누

려고 애를 쓰다가 쓰러지며 곧 기함하여 화재 뒤치다꺼리를 지휘하던 동네 소임

이 남아 있던 여편네들을 시켜서 기함한 사람을 구호하게 하였다.

 

추운 새벽 찬

땅에 쓰러진 기질 약한 여편네가 잘 펴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여러 여편네들이

의논하고 가까운 집으로 들어다가 따뜻한 방에 눕힌 뒤에 손발도 주무르고 백비

탕도 입에 흘려넣었다."사람이 워낙 약하게 생겼어." "살이 이렇게 희고 보드

라우니 약하지 않겠소." "조개 속에 게같이 생겼다는 것이 이런 사람 말인 거

." "사내들은 약한 여편네를 좋아한다네." "사내 나름이겠지. 설마 세상 사내

가 다 약한 여편네만 좋아할라구." "아래윗말 사내 코빼기치구는 신뱃골댁을 칭

찬 않는 사람이 없

든걸." "칭찬을 하면 여간들 하나. 입에 침이 없이 하지." "한 사내 사랑이 제

일이지, 열 사내 칭찬이 소용 있소." "남의 일이라도 가엾고 불쌍하오." "혼자

되어서 불쌍하단 말이지? 얼마나 혼자 살라구 기껏해야

삼 년이지." "이 댁네 나이 올에 스물 몇인가요?" "스물댓 되었을 게요." "

물댓이 무어요? 스물 일곱인가 여덟이오." "그렇게 나이를 먹었나?" "그런데

이때까지 애 하나를 못 났어?" "애를 두어 번 지웠지. 우선 작년에도 애 지운

끝에 죽네 사네하지 않았어." "참 그랬든가?" "여편네가 사내를 너무 밝히면

애를 잘 못 낳는답디다." "별소리가 다 많소." "이 집 주인도 남부럽지 않게 내

외 의초가 좋지만 돌 지나기가

무섭게 아이가 생기니 어떻게 해." "약한 사람은 애도 잘 못 나요." "팔자에

탠 자식이면 약하다고 못 낳겠소." 종작없는 여편네들이 수다스럽게 지껄이는

동안에 기함하였던 사람이 막힌 기운이 트이어서 감았던 눈을 뜨게 되고 다시

한동안 지난 뒤에는 완구히 생기가 돌아서 일어 앉게까지 되었다. 일어 앉으며

곧 다시 불탄 자리로 나가려고 하는 것을 능청스러운 여편네 하나가 "거기는 다

시 가서 무엇할라우? 시체들은 벌써 다 찾아내서 옮겨갔는데 바로 집으로나 가

보오." 하고 거짓말로 속이어서 얼마 뒤에 윗말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인정 있는

여편네 두어 사람이 붙들어주며 데리고 왔다. 집에 와서 보니 그 동안에 큰동서

는 먼저 와서 동네 사내들 있는 앞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서 넋두리하며 울고

있었다. 작은동서가 안방에 들어서는 것을 보더니 큰동서는 "아이구 이 사람아,

그 망한 놈의 늙은이가 일부러 불을 놓았다네. 아이구, 그놈의 늙은이가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나. 죽을라면 제나 죽지 왜 남을 태죽이나. 아이구 이 사람, 우리

가 인제 어떻게 사나. 저까진 어린것들 있어야 귀찮기나 하지. 아이구 아이구.

" 하고 두 다리를 문지르며 통곡하는데 작은동서는 남이 괴상히 보도록 눈물

한 방을 아니 내고 입술만 깨물고 서 있었다. 그 얼굴빛이 곧 다시 기색될 사람

같이 보이어서 같이 온 여편네들이 "아랫방에 가서 좀 눕시다." 하고 붙들고 안

방 문밖을 나서자

"아이." 하고 상을 찡그리며 곧 입으로 피를 토하는데 봉당 바닥이 벌겋게 되

도록 토하였다. 작은 변가의 안해가 몸져 누워 있는 동안에 동네 공의로 여러

송장을 한날 파묻는데 변가 형제의 장사만은 일가의 덕으로 그중에 가장 장사같

이 지내었다. 장삿날 두 동서의 친정에서 사람들이 왔는데, 신뱃골 작은동서의

친정에서는 그 어머니 되는 이가 아들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의 아버지는 이미

죽었고 그의 동기는 손 아래 사내동생 하나뿐이라 모자 온 것이 곧 전식구가 온

것이었다. 장삿날까지 온사흘 동안 곡기를 끊었던 작은 변가의 안해가 그 어머

니의 강권으로 미음을 몇 모금씩 마시기 시작하여 기운을 조금조금 차리게 되었

으나, 그 뒤로는 자리에 떨어지는 눈물이 마를 사이가 없었다. 그 어머니가 딸이

불쌍해서 얼른 가지 못하고 삼사 일 묵는 동안에 벌써 그 동서의 토심과 구박이

조금씩 보이었다. 그 어머니는 딸을 두고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서 집으로 같이

가자고 말하나 그 딸은 남편의 상청을 버리고 가기가 싫어서 어머니의 말을 듣

지 아니하였다. 그 어머니가 떠나기 작정한 날 새벽에 모녀가 다 일찍 잠이 깨

서 어머니는 같이 가자고 다시 타이르고 딸은 안 간다고 여전히 고집 세우는 중

에 동네가 홀저에 요란스러워졌다.

이날 첫새벽에 탈미골 군영에 있는 금도 군사들이 갈려울을 들이쳤다. 강가의

집이 폭망하여 식구 하나 남지 않은 것을 알고도 강가의 결찌와 동류를 잡는다

고 집뒤짐을 시작하여 산수털벙거지가 아래윗말에 흩어졌다. 아우성 소리, 호령

소리, 아이가 놀라서 우는 소리, 개가 자지러져 가며 짖는 소리, 문짝이 부서지

는 소리, 도깨그릇이 깨어지는 소리, 모든 소란스러운 소리가 새벽 동네에 가득

하였다, 변가 집 아랫방에 누워 이야기하던 모녀는 다같이 벌떡 일어 앉았다."

어머니, 난이가 났는가 보오." "무슨 난리가 소문도 없이 날라구." "여름에 전

라도에 난리가 났다더니 그 난린 게지." "그 난리는 벌써 평정되었단다." "

, 이게 무슨 야단일까?" "글쎄 모르겠다. 내가 잠깐 밖에 나가 보고 오마."

하고 그 어머니가 일어서서 치마를 몸에 두르니 "나가지 마오, 어머니." 하고

딸이 치맛자락을 붙들었다."삽작 밖에까지만 나가 보보 올 테니 이거 놓아라."

하고 어머니가 치맛자락을 흔들 때 마침 안방문을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었다."

동서가 밖에 나오는가 보오. 고만두고 앉으시오." 하고 딸이 말하여 어머니는

도로 앉았다.바삐 끄는 신발 소리가 삽작문 편으로 나가더니 얼마 아니 있다가 "

아이구머니! " 큰동서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고 뒤미처 "이년, 게 섰거라! " 어떤

사내의 호령 소리가 들리었다."아무 죄없는 과부들만 사는 집이올시다." "이년,

도둑놈의 기집년이 죄가 없어! " "죽은 사내가 도둑놈이라도 과부 된 기집사람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더구나 사내가 살아서 도둑질한 일이 없습니다." "도둑놈

강가의 사촌인 줄 다 알았다. 이년, 잔말 마라." 큰동서가 징징 우는 소리로 무

어라고 하소연하더니 부서너 차례 뺨 치는 소리가 나고서는 하소연이 들어가고

우는 소리만 남아 들

리 었다."어머니! " 하고 딸이 발발 떨면서 어머니의 손을 쥐니 어머니는 "하늘

이 무너져도 솟아나는 구녁이 있단다. 너무 겁내지 마라." 하고 딸의 손을 맞쥐

었다.

두서너 사람이 집안으로 들어오는 모양이더니 그중에 하나가 저벅저벅 아랫방

을 향하고 와러 방문을 왈칵 열어젖혔다. 이때까지 곤히 잠든 아이까지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너희가 다 누구냐! 이리들 나오너라." 산수털벙거지의 호령이

떨어지자, 어머니가 선뜻 일어서서 딸을 가리키며 "이 딸자식이 지금 앓아 죽게

되어서 걸음도 잘 걷지 못합니다." 하고 사정하여 보았다.

이때 날이 이미 환하게 밝아서 방안에 있는 얼굴들이 방 밖에서 도 보이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았던 딸이 그 어머니 말끝에 고개를 들고 밖을 바라보는데

해쓱한 얼굴이 소복에 얼빠져 보이기도 하고 더 돋보이기도 하였다. 겁을 먹고

떠는 양이 흡사 배꽃 한 가지가 몹쓸 비바람에 부대껴 떠는 것과 같아서 누가

보든지 애처로운 생각이 날 만하였다. 그 군사가 한동안 바라보다가 그 어머니

를 향하여 말을 묻기 시작하였다."네 딸이 작은 변가의 계집이냐?" "그렇습니

." "저 아이놈은 누구냐?" "자식 이올시다." "너의 모자가 다 이 집에서 같

이 사느냐?" "아니올시다. 딸이 죽는다고 해서 병구원 왔습니다." "너의 집은

어디냐?" "신뱃골이올시다." "남편의 성이 무어냐?" "조가올시다." 마당에

섰던 군사 하나가 동무 군사의 지체하는 덧을 보고 "이 사람 무어하나? 얼른 잡

아 내세우게." 하고 재촉하니 아랫방 앞에 섰던 군사가 "지금 앓아 죽을 지경이

라네." 하고 마당편을 돌아다보았다."앙탈일세. 어서 끌어내게." "얼굴에 병색

이 좀 있어." "이 사람 인정 쓸라나. 어디 좀 보세." 하고 그 군사가 큰 변가의

계집을 묶어 앉히고 우르르 쫓아와서 방안을 들여다보더니 ", 이거 웬일이오?

" 하고 신뱃골 마누라를 보고 물었다.

그 금도 군사는 해주 감영에서 도적 잘 잡기로 이름이 나서 군관이 새로 올

때 데리고 온 사람인데 신뱃골 마누라의 친정 외사촌동생의 남편이다. 그 안해

의 안부를 전하여 주려고 전위하여 신뱃골을 찾아나와 본 일이 있는 까닭에 마

누라를 알아보고 먼저 알은 체한 것이었다."아이구, 이게 누구요! " 마누라는 지

옥에서 부처나 만난 듯이 반겨하였다. 마누라가 딸을 돌아다보며 "저 어른이 네

게 아저씨 뻘 되는 어른이시다. 해주 아주머니 말을 너 전에 들었지? 그 아주머

니의 남편이시다." 하고 가르쳐 주어서 딸이 일어서려는 듯이 몸을 움직이니 그

어머니가 "네가 어떻게 일어서려고 그러니. 이 담에나 아저씨께 뵈입지." 하고

딸에게 말하고 곧 그 군사를 향하여 자기 딸이 병으로 운신을 잘 못한다고 하소

연하였다."병 있는 사람이 왜 일어 앉았소?" "지금 억지로 끄들어 일으켰어요.

무슨 병인가요?" "피를 자꾸 토한답니다." "그거 안되었군. 그래서 얼굴이

저렇게 핼쓱하구먼요." 하고 그 군사는 고개를 길게 내밀고 젊은 과부의 얼굴을

들여다 보았다."자네하구 어떻게 얼큼하게 되는 모양일세그려." 하고 동무 군

사가 어깨를 치니 그 군사가 돌아다보며 "우리 마누라의 조카 뻘이 되는가베.

하고 말하였다. 도둑놈의 외사촌 안해가 무슨 큰 죄 있나. 인정 쓸라거든 쓰

구가.""대관절 병이 있어 운신을 못한다니 할 수 있나." 그 군사는 고개를 돌

이켜서 마누라를 보고 "앓는 사람은 이불 씌워서 눕혀놓구 방안에 가만히 들어

앉아 기시오. 섣불리 다른 사람에게 들리면 탈이오." 하고 방문까지 닫아주었다.

 

군사들이 안방에 올라가서 세간 나부랑이를 들뒤지고 나와서 묶어 앉힌 큰 변

가의 과부를 끌고 가는 동안아랫방에서는 기침 한번 아니하고 쥐죽은 듯이 있었

. 군사들이 나간 것을 안 뒤에 마누라가 안방에 가서 우는 아이들을 아랫방으

로 날라 내려다가 큰 아이는 말로 달래고 작은아이는 안아서 달래었다. 군사들

은 아랫 말 군관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에 어느 집 앞에 와서 앞선 군사가 발

을 멈추고 그 집을 가리키며 뒤에 오는 군사를 돌아보고 눈을 끔적이었다.

집이 겉으로 보기에도 포실하게 사는 집 같았다. 끌고 오던 변가의 과부는 삽작

밖에 앉혀놓고 두 군사가 함께 삽작 안으로 들어갔다. 그 집 주인은 동네 풍파

에 겁이 나서 온집안 식구를 한방에 모아놓고 숨들도 크게 쉬지 못하게 하는 중

인데 뜻밖에 군사가 방문을 열어젖히고 "주인이 누구냐?" 하고 소리를 지르니

주인이 초풍하여 벌떡 일어섰다."네가 주인이냐?" "." "네 성이 무어냐?

" "강가올시다." "네가 아랫말 강가의 일가로구나." "아니올시다. 강가라두 그

강가와 일가는 아니올시다." "이놈아, 같은 강가루 일가가 아니면 무어냐! "

고 군사들은 그 주인을 끌어내서 방망이찜질로 초다듬이하여 놓고 그 집에 분탕

질을 놓은 뒤에 그 주인을 아랫말 군관 있는 곳까지 끌고 갔다.

처음에 군관 앞에까지 잡혀온 사람은 오륙십 명이나 되었으나 그중에서 탈미

촐 군영에까지 잡혀가게 된 사람은 십여 명밖에 안 되었는데, 그 사랑들은 대개

강가와 무슨 친척 관계가 있거나 그렇지 아니하면 강가와 친분이 자별하던 사람

이었다. 갈려울이 거의 패동이 되고 갈려울 사람이 두서넛 귀양 가게 된 뒤에

강가의 동티가 끌이 났다. 큰 변가의 과부는 군영까지 잡혀 갔었는데 사내더면

쩍어도 몇 달 갇혀 있을 것을 계집사람인 덕을 보아서 십여 일 만께 무사히 돌

아왔다. 그 동안 작은동서 모녀가 집안을 그나마 잘 수습하고 어린아이들도 알

뜰히 거두어 주었건만 고맙단 말 한마디 없고 사돈마누라가 자기까지 빼놓아 주

지 않았다고 원망을 내늘았다. 큰동서가 갈려울서 살기 싫다고 작은동서에게 의

논 한마디 없이 파산하리로 작정하고 자기는 어린것들을 데리고 친정으로 갈터

이니 작은동서도 가서 친정살이를 하든지 또는 후살이를 가든지 마믐음대로 하

라고 하여 작은 변가의 과부는 하는 수 없이 그 어머니를 따라 신뱃골로 가게되

었다.

풍경이 있으면 맑은 소리 울려나고 궁노루가 있으면 향냄새가 풍기는 법이라

얼굴 고운 젊은 과부가 있고 소문이 안 날 리 없다. 변가의 집 작은 과부가 그

어머니를 따라서 친정에 온 뒤에 신뱃골에 얌전한 과부 있다는 소문이 가근방에

높이 났다. 그 동네 머슴 사는 노총각들이 제각기 침을 삼키는 중에 약빠른 사

람은 그 흘어머니 마누라 듣기 좋도록 말까지 들여보내 보았으나 그 어머니부터

신신한 대답이 없었다. 평산읍내 어떤 늙은 양간이 손이 없어서 첩을 구하단던

중에 소문을 듣고 일부러 사람을 보내서 넌지시 선까지 보아 가고 뒤미처 또 사

람을 놓아서 그 어머니에게 딸을 달라고 말을 붙이는데, 딸만주면 온집안 먹고

살 것이 염려 없다고 하는 까닭에 그 그 어머니가 마음이 솔깃하여 비로소 딸의

의향을 물어보았다. 어머니가 이리저리 물어야 딸은 한마이 대답이 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나중에 어머니가 슬그머니 증이 나서 "싫다든지 좋다든지 말을

해라. 어미가 하치않으냐. 왜 묻는 말에 대답이 없니?" 하고 나무라서 말하니

딸은 "무어라고 말하란 말이에요?" 하고 고개를 드는데 두 눈에 눈물이 듣거

니 맺거니 하였다. 어머니가 이것을 보고 갑자기 불쌍한 마음이 가슴에 가득가

여져서 더 말을 묻지 못하고 마침내 평산 양반에게서 온 말을 거절해 보내게 되

었다. 이 뒤에 불과 며칠 안 지나서 또 한 군데서 통혼이 들어왔는데, 이것은 금

교역말 큰 송방 젊은 주인이 후취로 달라는 것이었다. 그 어머니는 아주 마음에

합당하나 전날과 같이 딸의 눈물이나 자아내고 말게 될까 겁이 나서 조용히 딸

을 데리고 앉아서 여러 가지 말로 달래보았다. 말말 하다가 통흔 들어온 것까지

말하고 "너같이 나이 젊은 것이 게다가 자식새끼 하나 없는 것이 왜 청승스럽게

과부로 몸을 마치려느냐. 내 생각 같아서는 좋은 자리 놓치지 말고 몸을 굳히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요전에 말 있던 평산

혼처로 말하면 문벌이 양반이고 형세가 굶지 않는 것은 좋으나 큰 마누라가 있

고 영감이 나이 늙은 것이 좋지 않았지만 이번 금교역말 혼처로 말하면 내 맘에

는 흠이 없이 좋은 것 같은데 네 맘에는 어떠냐? 네가 그리 가기만 하면 나도

늙게 고생 아니하고 네 동생도 성취를 잘 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네게 달

린 일이니 잘 생각해 보아라." 하고 입이 닳도록 말하니 딸은 잠자코 듣다가 "

삼 년이나 나도록 가만두어 주셔요." 하고 빌듯이 말하였다."삼 년 후에 그런

좋은 자리가 또 있을지 누가 아니?" "삼 년 난 뒤에는 내가 어머니 하라는 대

로 할 것이니 그 동안에는 당초에 말을 내지 마셔요." 딸의 고집을 어머니가 이

기지 못하여 송방 젊은 주인의 통혼도 거절하게 되었다. 혼인 거절한 말이 밖에

나간 뒤에 칭찬하는 사람도 많고 비웃는 사람도 적지 않아서 신뱃골 젊은 과부

의 소문이 점점 더 널리 퍼졌다.

곽오주의 젊은 주인 개래동 정첨지의 외아들은 신수는 멀끔하게 생겼으나 계

, , 노름에 아비의 모아놓은 천량을 보람없이 없애는 위인이라 신뱃골 젊은

과부 얼굴 이쁘다는 소문을 듣고 욕심이 불같이 일어났다. 그러나 들음들음이

자기 같은 사람의 작은 마누라로는 잘 올 것 같지 않아서 동여올 생각을 먹었

. 정윌도 보름이 가까웠을 때다. 정첨지의 아들이 자기의 집에 윷판을 벌리고

동네 젊은 사람을 모아서 윷을 노는 중에 실없은 젊은 사람 하나가 곽오주를 놀

리느라고 "여게 오주, 자네는 총각으루 늙을라나? 신뱃골 이쁜 과부에게 장가가

지 않을라나. 자네가 간다면 내가 중신재 줌세." 하고 웃음의 소리 한 것이 고

동이 되어서 저녁때 윷꾼이 흩어질 즈음에 정첨지의 아들이 장난꾼 너덧을 붙들

어 가지고 신뱃골 과부를 동이러 가자고 꼬이었다. 장난꾼에게는 노름 밑천을

주마 하고 오주에게는 술 한번 싫도록 먹여 주마 하여 허락들을 얻었다. 승교바

탕을 가지고 가자는 사람도 있었으나 거추장스럽다오 그만 두고 싸서 업어을 작

정으로 튼튼한 흩이불 한 채만 준비하였다. 이른 저녁 먹은 뒤에 정첨지의 아들

이 아비에게는 동네로 윷놀러 간다고 거짓말하고 오주까지 다섯 사람을 데리고

개래동을 나섰다. 청석골을 지나고 금교역말을 지나서 사십 리나 되는 길을 와

서 보니 밤이 벌써 이윽하였다. 과부의 집이 어디 있는 것은 정첨지의 아들이

미리 다 알고 있는 까닭에 그 집 근처에 가서 집안 동정을 살핀 뒤에 화적떼와

같이 뛰어들어갔다. 달빛이 있어서 대번에 소복한 젊은 과부를 붙들었다. 괴부집

세 식구가 변변히 소리도 지를 사이 없이 오주가 과부를 흩이불에 싸서 들쳐업

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도망질을 쳤다.

과부의 어머니가 처음에는 혼이 나가서 소리도 별로 못 지르다가 딸을 업어가

는 놈들이 삽작 밖을 나간 뒤부터 쫓아나오며 우는 소리로 악을 쓰고 아들아이

도 어머니 뒤를 따라나오며 목을 놓고 엉엉 울었다, 동네 머슴방에서 윷놀던 젊

은 군들이 아닌밤중에 여편네 악쓰는 소리를 듣고 놀라서 한달음에 뛰어들 왔

. 난뎃놈 대여섯이 동네 와서 과부 업어간 것을 알도 십여 명이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쫓아가서 도로 빼앗아 온다고 장담들 하고 곧 떼를 지어 뒤쫓아갔다.

업혀가는 과부가 흩이불에 싸여서 손발을 마음대로 놀리지 못하는데다 업고 가

는 오주가 황소같이 센 사람이라 과부가 죽을 힘을 다 들여서 몸을 드놓아도 조

금도 끄떡이 없었다. 그러나 뒤에 쫓아오는 패가 있는 줄을 안 뒤에코 뒤쫓는

패와 같이 장달음을 치지 못하여서 금교역말 가는 큰길까지 채 다 가지 못하고

붙들리게 되었다. 오주가 업었던 과부를 내려서 정첨지 아들에게 맡기고 쫓아오

는 패를 가로막고 나섰다. 쫓아오는 패가 와하고 오주에게 달려드니 오주가 손

닿는 대로 집어쳤다. 십여 명 사람에 힘꼴 쓰는 장정도 없지 않았지만 오주 하

나늘 당할 잡이가 없었다. 오주의 손에 걸리는 대로 넘어지고 자빠져서 빙판 위

에 즐비하게 쓰러졌다. 오주가 땀을 씻으며 돌아설 때 정첨지의 아들이 몇 걸음

앞으로 나서며 "오주 하나만 같이 왔어도 넉넉할 뻔했네." 하고 고마워하는 눈

치로 말하니 오주는 픽 웃으며 "좀 치웁드니 땀이 나서 좋소." 하고 곧 다시 과

부를 들쳐업었다.

 

먼데 닭이 연해 울고 산속 달이 다 넘어갈 때 과부 업어오는 군들이 빙고산

옆을 돌아나왔다. 개래동은 산 앞에 있는 동네라 동네까지 일 마장이 채 못 되

었다."인제 다 왔네." 하고 한 사람이 입을 떼니 "치워 죽겠네. 어서 가세."

고 또 한 사람이 운을 달았다. 정첨지의 아들이 "나는 한걸음 앞서 가야겠네.

네들 뒤에 차차 오게." 하고 먼저 가려고 벌음을 재게 놓으니 어서 가자던 사람

"왜 먼저 갈라나? 같이 가세." 하고 역시 빨리 걸었다."나는 우리 아주머니

집에 가서 선통을 좀 해야겠네." "왜 자네 고모님 집으루 들어갈라나?" "그럼

바루 집으루 들어가면 야단나네." "바가지 긁을까봐 무서운 걸세그려." "쨍쨍거

리는 여편네는 방망이찜질두 할 수 있지만 극성 떠는 늙은이는 어떻게 알 수가

없어." "자네 집 고불이가 여간 사람이 아니니까." "여간 사람이 아닌 덕에 사

람이 못 살겠네." "자네 고모님 집에 갖다 숨겨둔다구 며칠이나 숨기겠나. 숫제

바루 들어가서 사정을 토파하게." "아니야, 늙은이 성정은 내가 잘 아니까 바루

끌구 못 들어가네." 며칠 뜸을 들이는 동안 아주머니 집에 맡겨둘 작정일세."

자네 집 고불이가 자네 말은 잘 듣는다데그려."말을 듣두룩 삶자면 집안 망

할 자식이란 욕을 골백번 들어야하네." "나는 우리 아버지가 노름 밑천만 잘 대

주면 그런 말은 약과루 알구 듣겠네."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느라고 걸음이 줄

었네. 자네두 뒤에 오는 사람들하구 같이 우리 아주머니 집 앞으루 오게. 나는

먼저 가네." 하고 정첨지의 아들은 다리에 자개바람이 날 만큼 빨리 걸어 먼저

가고 그 사람은 다른 일행과 같이 뒤떨어졌다.

정첨지의 아들은 어미 없이 자란 자식이다, 정첨지의 마누라가 노산으로 해산

하고 산후더침으로 죽은 까닭에 흘로 되어서 오라비에게 와서 얹혀 있던 정첨지

의 누이가 핏덩이 조카를 받아서 지성을 다하여 길러놓았었다. 정첨지의 아들도

고모의 은공츨 잊지 못하여 하지만, 그 늙은 고모는 조카를 친아들같이 사랑하

여 조카의 말이라면 소금섬을 물로라도 끄는 터이었다. 늙은 고모가 조카의 부

르는 소리에 잠이 깨어 일어나서 조카의 간청하는 사연을 듣고 부지런히 자던

자리를 치우는 중에 뒤떨어진 일행이 들어왔다. 정첨지의 아들이 오주의 등에서

과부를 받아서 방에 들여 놓는데 손을 놓으며 곧 툭 쓰러지는 것이 괴상하여 급

히 흩이불을 벗기고 보니 다 죽은 사람이다. 얼굴빛이 새파랗고 수족이 얼음 같

고 실낱같은 숨이 있는듯 만듯하였다. "흩이불루 너무 꼭 싸서 숨이 막힌 겔

." "잠시 기절한 것이니까 곧 펴나겠지." "우리는 들어앉을 데두 없는데 고만

가세." 하고 같이 갔다 온 장난꾼들이 그대로 흩어져 가려고 할 때 정첨지 아들

이 밖에 나와서 "치운데 술이나 한 사발씩 먹구 헤어졌으면 좋을걸 안되었네."

하고 빈인사하니 "아닌게아니라 어한 좀 했으면 좋겠네." 하고 이 사람 한마디

나는 우선 배가 고파 못견디겠네. 하고 저 사람 한마디 귀따갑게 지껄였다.

정첨지 아들이 곽오주를 돌아보며 "여게, 자네가 내 대신 저 사람들 데리두 집에

가서 슬그머니 술

을 퍼내다 먹게." "내가 어떻게 슬그머니 퍼다 먹어." "술독 있는 데 알지 않

?" "그러지 말구 우리와 같이 가서 술을 내다 주구 다시 오지." 오주의 말

에 여러 사람이 뒤쫓아서 "여게, 그래 보세." "자네는 곧 일어서게그려." "기절

한 사람 가만히 두면 절루 펴나네. 염려 말게." "자네 고모님이 어련히 잘 보아

주시겠나." 중구난방브로 조르는 바람에 정첨지 아들은 기절한 과부를 그 고모

에게 부탁하고 곧 여러 사람을 몰고 자기 집으로 왔다. 여러 사람을 머슴방에

들여앉히고 정첨지 아들이 안에 들어가서 안해를 깨웠다."인제 왔소? 지금이 어

느 때요?" "샐 때 다 되었어. 고만 일어나게." "아랫목 자리 내주리까?" "

잔소리 말구 어서 일어나." "일어나고 싶으면 어련히 일어날까. 별 성화가 다

많아." 안해의 말씨가 곱지 않아지니 "윷놀구 인제 왔어. 춥기두 하구 시장두

하니 술 한잔 따뜻하게 데워 주게. 여보게 좀 일어나게." 사내가 너스레를 놓았

. 그 안해가 마지못해 일어나서 불씨 묻은 화로에 뜬숯을 얹어서 피워놓고 술

을 뜨러 가려고 할 때 사내가 "여게." 하고 불렀다."왜 그러오?" "술을 얼마

나 데우려구 묻두 않구 뜨러 가나?" "아까 한잔 달라지 않았소?" "이왕 여

남은 주발 걸러 주게." "그건 다 무어 할라오?" "밖에 같이 온 사람이 있어.

" "노름꾼들을 끌고 온 게구려." "당치 않은 소리 말아." "처음에는 혼자 먹을

듯기 한잔만 달라더니 꼭두새벽에 술타령들 할 작정이오. 잠도 안 자고 무슨 지

랄들이람." 안해의 버릇없는 말에 사내는 곧 한바랑 야단 벼락을 내리고 싶었으

나 꿀꺽 참고 "지금 내가 자네하구 아귀다툼할 경황이 없네. 어서 빨리 술이

나 갖다 걸러주게." 하고 재촉하였다. 안해가 술을 걸러놓기가 무섭게 머슴방으

로 들어 나르고 나중에 술 떠먹을 그릇과 술안주를 들고 나가서 오주를 불러 주

고 방에 들어가지도 않고 곧 다시 고모의 집으로 가려다가 한 순만 같이 먹고

가자는 여러 사람의 권에 못이겨서 방으로 들어갔다. 한 순이 두 순이 되고 두

순이 또 세 순이 되었다. 정첨지의 아들은 술동이 둘이 밑이 드러나기까지 여러

사람과 같이 먹고 그대로 곯아 떨어져서 이튿날 해가 높이 뜨도록 정신 모르고

잠을 잤다. 정첨지의 아들이 눈을 뜨고 기지개 켤 때 오주가 밖에서 들어왔다."

늦었나?" "아침 먹구서 동네 한바탕 돌구 왔어." "우리 아주머니 집에 가보았

?" "가보았지." "어떻게 되었던가?" "살았어." "일어 앉았던가?" "

." "가만히 누워 있든가?" "몸부림을 해서 붙들구 날치더군." "아이구,

가 얼른 가보아야겠네." 하고 정첨지의 아들은 벌떡 일어나서 건정건정 소세하

고 아침밥은 먹지 못하겠다고 아니 먹고 고모 집으로 뛰어갔다.

먼동이 틀 때 와부는 정신이 돌았었다. 정신이 돌은 뒤부터 울고불고 몸부림

을 쳐서 늙은 할머니가 붙들고 달래느라고 죽을 고생 다하였다. 정첨지의 아들

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려고 하니 그 고모는 들어오지 말라고 손짓하고 곧 밖으

로 쫓아나왔다."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우?" "인제 간신히 좀 진정되었다.

아직 덧들이지 말고 가만두어라." "누차 덧들여요?" "네가 가까이 가면 가만

있겠니? 아까 오주가 방문만 열고 들여다보는 데도 더 죽으려고 날뛰더라." "

어 좀 먹이셨소?" "무얼 먹어. 새벽에 더운물은 정신 모르고 받아먹었지만

그 뒤엔 물 한 모금 안 먹었다. 아침에 미음을 좀 권했더니 미음 그룻 든 손을

떠다밀어서 이것 좀 보아라." 하고 그 고모는 저고리 앞설과 치마 앞폭의 젖은

흔적을 들어 보이었다."그래두 무얼 좀 먹여야지요." "먹지 않는 걸 어떻게 억

지로 먹이니. 하루 이틀 지나 결이 삭으면 자연 먹는다." "내가 좀 권해 보리

?" "당치 않은 소리 하지도 마라. 네가 권해 먹을 게냐." "어디 좀 권해 보

지요." "아서라, 몸부림만 받는다." "몸부림 받아두 좋지요. 설마 약한 여편네

하나 못 당하리까." 정첨지의 아들이 그예 그 고모에게 미음을 달래서 미음 그

릇을 손에 들고 방으로 들어왔다. 이불을 쓰고 누웠던 과부가 방문 여닫는 소리

에 이불을 젖히고 흘끗 바라보더니 대번에 입술을 악물고 도끼눈을 뜨는데 그

눈에 독살이 가득하였다. 정첨지의 아들이 미음 그릇을 손에 든 채 한동안 서서

내려다보다가 "미음 좀 자시오. 나중에 대판 시비를 하더라두 우선 먹구 기운을

차려야 하지 않소. , 미음 좀 자시오." 하고 미음 그릇을 과부 옆에 가까이 놓

고 멀찍이 떨어져 앉아서 동정을 보았다. 몸부림을 하거나 적어도 미음 그릇을

밀쳐버릴 듯한 과부가 두 눈을 스르르 감고 가만히 누워 있는데 눈귀에 흘러 내

리는 눈물만 없으면 곱게 잠든 사람과 흡사하였다."미음이 다 식겠소." 한동안

있다가 "한 모금 마시시오." 다시 한동안 있다가 "일어 앉혀주리까?" 정첨지

의 아들이 말을 마치자 벽을 안고 누웠던 과부가 홀저에 앞으로 돌아누우며 손

을 내밀어 미음 그릇을 잡아당기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좋아서 "옳지, 옳지."

고 입을 벌리고 있는 사이에 과부는 고개만 들고 미음 한 그릇을 다 마시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가까치 들어앉아서 인불 밖에 내놓은 손을 잡으려고 하니 과부

는 얼른 그 손을 끌어들이며 곧 이불을 얼굴까지 뒤어썼다. 정첨지의 아들이 싱

글싱글 웃으며 더 가까이 들어앉아서 이불 위로 과부의 몸을 어루딴지니 과부는

몸을 한 줌만큼 오그리고 벌벌 떠는데 무거운 솜이불이 떨리도록 떨었다. 정첨

지의 아들이 허허 웃고 일어나떠 빈 그릇을 들고 밖에 나가서 고모를 보이니 고

모가 "그 미음을 다 먹었니? 수단이 참말 용하다." 하고 조카의 등을 뚜덕뚜덕

하였다.

 

이날은 과부가 종일 누워 있었으나 주는 미음을 검다 쓰다 말없이 잘 받아먹

었고 이튿날은 과부가 아침에 일어 앉아서 자기 손으로 머리까지 쓰다듬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급한 마음에 과부가 더 소성되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그날 밤으

로 신방을 차려달라고 고모를 졸랐다. 그 고모가 자기 방을 신방으로 내주려고

방안에 있는 물건을 대강 윗간으로 치우는데 무거운 다듬잇돌을 들고 좁은 지겟

문으로 나가다가 허리에 담이 들어서 한동안 쩔쩔매었다. 늙은 할머니가 쩔쩔매

는 것을 과부는 차마 가만히 보고 앉았을 수 없다는 듯 슬며시 일어나서 흥두깨

도 들어주고 방망이도 집어주었다.

이날은 대보름날이라 저녁에 정첨지의 아들이 동네 사람들과 같이 달마중하러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로 고모의 집에 와서 아주 삽작까지 닫아걸고 들어

왔다. 과부는 오도마니 앉아 있는데 고모는 누워서 앓는 소리 하다가 조카를 보

고 일어나서 잘들 자라고 인사하고 곧 윗간으로 내려갔다. 정첨지의 아들이 깔

아놓은 자리 위에 앉아서 과부를 바라보니 어여쁘기 짝이 없었다. 불같이 일어

나는 욕심을 걷잡지 못하여 "오늘은 옷을 벗겨 주어야지." 하고 과부에게 달려

드니 과부는 죽어가는 소리로 "먼저 가 누워요." 하고 뒤로 떠다밀었다."그러

." 하고 정첨지의 아들이 자리 위에 와서 번듯이 자빠지는 동안 과부는 살그

머니 치마 뒤에서 방망이 한 짝을 꺼내 쥐고 눈결에 누운 사람 머리맡으로 가며

곧 앞이마를 내리쳤다."아이쿠머니! " 벌떡 일어 앉은 정첨지 아들은 잠간 동

안 정신이 아뜩하였다. 어깨바디 등줄기가 뜨끔뜨끔하고 뒤통수가 화끈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부지중에 "이년, 사람 죽인다! " 큰소리를 지르코 곧 누가 잡아

일으키는 것같이 일어섰다. 과부가 방망이를 두 손으로 잡고 소경 매질하듯 함

부로 치려 대드는 것을 정첨지의 아들이 발길로 냅다 차서 방문 앞에 가서 궁등

방아를 찧고 주저앉았다. 아래윗방 사이에 있는 지겟문이 왈칵 열리며 늙은 고

모가 조카 앞에 와서 섰다."이게 웬일이냐? 이마에 피 좀 봐라. 아이구 이게 웬

일야." 가슴을 부등켜안고 주저앉았는 과부 옆에 방망이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조년이 방자이로 때렸구나. 조런 박살할 년. 남의 귀한 조카를 죽일라고."

하고 과부를 꾸짖고 곧 "이애, 얼마나 다쳤나 어디 보자. 고개 좀 숙여라." 하고

조카의 손을 잡아당기었다."아이구 이것 봐, 아주 으스러졌구나. 요년 어디 보

. 네 대가리는 마아놓고 찰 테니, 이애 피나 좀 씻어주마." 하고 고모가 조카

의 손을 놓은 뒤 솜조각을 갖다가 조카 얼굴에 흐른 피를 껏어주는데 과부가 어

느 틈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고만두시오. 저년 붙잡게."

제가 내빼면 어디 가겠니?" 당장 분풀이하기가 급해요." "누가 보더라도 너

무 흉칙하니 대강이라도 씻어주마." 그 고모가 솜조각즈로 피 씻어주는 것을 정

첨지의 아들은 "고만 고만." 하고 재촉하다가 부리나케 방 밖에 나와서 이리저

리 둘러보다가 곧 삽작 밖으로 쫓아나왔다. 달빛이 대낮 같아서 땅에 기어가는

개미도 눈에 보일 만하였다. 과부가 천방지축하고 내빼는 것을 멀찍이 바라보고

달음질쳐서 그 뒤를 쫓아갔다. 예사 말소리가 들릴만큼 동안이 가카워졌다."

, 네가 가면 어디루 갈 테냐, 이년." 꾸짖는 말이 끝나자마자 앞에 있는 동네

사잇길에서 젊은 사람들이 웃고 지껄이며 몰려나왔다. 정첨지 아들이 그 앞을

피해 가

려고 논틀밭틀로 겅정겅정 뛰어가는데 짓궂은 젊은 사람 하나가 쫓아와서 붙들

었다. 그 사람은 신뱃골 같이 갔던 장난꾼의 한 사람이다."누군가 했더니 자델

세그려. 지금 자네가 이년 이년 하며 쫓아 가는 여편네가 신뱃골인가? 어쩌다가

놓치구 야단인가." "저거 멀리 내빼네. 어서 놓게." "신뱃골까지 안 가구 붙잡

을 걸 왜 이렇게 야단인가." "내 손 좀 놓게." "자네 이마에 생채기가 났으니

웬일인가?" "할아버지 할께 제발 좀 놓게." "이 사람이 실성했나." 그 사람

이 웃는 동안에 정첨지의 아들은 붙든 손을 뿌리치고 두주먹을 쥐고 다시 과부

뒤를 쫓아갔다. 동네 어귀에까지 쫓아나와서 과부를 거의 붙잡게 되었을 때 과

부는 길 옆에 있는 우물가에 가서 잠간 굽어보고 곧 우물로 뛰어들어갔다.

우물은 동네 사람이 깊은 우물이라고 부르는 우물이다. 정첨지 아들이 근두박질

하여 우물에 와서 전을 짚고 밑을 내려다보니 한 길이 섬는 우물 속이 침침은

하나 과부가 머리를 우물 벽에 기대고 주저앉았는데 물이 입에 찰랑찰랑하는 것

이 분명히 보이었다. 정첨지 아들이 어찌 할 줄 모르고 공연히 사방을 돌아보는

중에 이리 향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을 것을 보고 "사람이 우물에 빠졌네! "

고 고성을 쳤다. 길에서 만난 젊은 사람들이 반이나 넘어 뒤따라오던 중레 정첨

지 아들의 고성 치는 소리를 듣고 한달음에 뛰어들 왔다. 그러나 급기야 와서는

여러 사람이 다 찬물에 들어가기 싫어서 "동아줄이 있어야지." "홰두 있었으면

좋겠네." "오주같이 힘센 사람을 불러오는 것이 제일 좋겠네." 하고 떠들기만

할 때 오주가 마침 멀리서 어슬렁거리고 오는 것을 보고 얼른 오라고 여러 사람

이 소리를 쳤가. 오주가 뛰어와서 과부가 우물에 빠진 것을 알고 우물가에 가서

한번 내려다보더니 위아랫도리를 훌떡 벗고 과부 머리 없는 편에 가서 우물전에

걸터앉아서 팔을 뒤로 짚으며 곧 우물 속으로 내려갔다. 여러 사람이 우물가

에 삥 둘러서서 우물 속을 굽어볼 때 윗도리만 물 밖에 나온 오주가 과부를 가

슴에 끌어안고 위를 치어다보며 "동아줄을 하나 내려보내 줘야겠소." 하고 소리

를 질렀다. 정첨지의 아들이 여러 사람 중의 한 사람을 와서 붙들고 말하여 그

사람이 가서 동아줄을 가져와서 한 끝은 정첨지의 아들이 손에 쥐고 다른 끝은

우물 속으로 내려보냈다. 잡아당기라고 오주는 소리치는데 정첨지의 아들이 혼

자 끌어올릴

수가 없어서 여러 사람에게 고력하여 달라고 청하였다."어차 어차! " 하고 여러

사람이 동아줄을 잡아당기는 중에 동아줄을 잡은 오주의 북두갈구리 같은 손이

우물전을 옳겨 잡게 되자, 오주의 몸이 불끈 위로 솟는데 한편 겨드랑이 밑에

과부를 끼워들었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과부를 받아서 우물 앞 편편한 곳에 갖

다가 눕혀놓고 얼굴을 들여다보고 코 밑에 손을 대보고 하는 동안에 오주는 우

물 밖에 나와서 벗어놓은 옷을 주워 입은 뒤 정첨지 아들을 와서 보고 "어떻게

할 작정이오?" 하고 물었다."어떻게 하다니, 들어가야지." "그럼, 어서 업구

들어가지." "자네가 또 좀 업구 가세." "물독에 빠진 생쥐 같은 것을 누구더러

업으래? 자기가 업지." "옷 버릴까봐 그러나. 새 옷 한 벌 해줌세." "설빔옷이

다 드러웠는데 새 옷 해준다니 업어다 줄까." 사지가 늘어진 과부를 오주가 업

고 오는데 정첨지 아들과 젊은 사람 하나가 양옆에 붙어오며 부축하였다. 다른

젊은 사람들은 뒤따라오다가 많이 중간에서 흩어져 가고 더러는 정첨지 누이집

에 와서 과부가 소생하는 것까지 보고 돌아갔다.

 

 

정첨지 아들의 과부 동여온 소문이 나서 동네 사람들이 수군수군하던 차에 이

런 일이 생겨서 이튿날 식전에 서로 만나는 사람들이 인사 제치고 이 일을 이야

기하게 되었으니 정첨지와 정첨지 며느리 귀에 소문이 안 들어갈 리 없었다.

튿날 아침때다. 정첨지의 아들이 고모의 집에서 고모와 같이 아침밥을 먹는 중

에 별안간 방문이 열리며 그 안해의 독난 얼굴이 방문 밖에 나타팠다. 정첨지

아들도 그 고모나 못지 않게 놀랐으나 과부를 윗방에 뉘어 두어서 안해 눈앞에

뜨이지 않은 것을 다행하게 여기었다."왜 왔나?" "과부가 얼마나 이쁜가 보러

왔소." "과부가 어디 있어?" "생청으로 잡아떼면 제일인가." 내외간에 말이

오고가기 시작할 때 늙은 정첨지가 지팡이를 드던지며 삽작 안으로 들어왔다."

아버지 오신다! " 하고 고모가 놀라 일어서니 "야단났구려." 하고 조카도 따라

일어섰다. 정첨지가 봉당에 올라설 때 방에 있는 숙질이 밖으로 마주 나왔다.

첨지는 얼굴에 핏대가 서고 입가에 살이 실룩거리었다. 늙은이가 가쁜 숨을 돌

리는 동안 아들을 잡아먹을 것같이 노려보다가 입을 벌리며 곧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서 야단을 쳤다."이 자식, 집만을 망치더라두 조신하게 망쳐라. 너 죽구 나

죽는 꼴을 봐야 속이 시원하겠느냐! 이 자식, 네가 기집이 없느냐? 남의 집 과부

를 갖다가 무엇할 테냐. 벼락 맞아 뒤어지구 싶으냐? 이놈, 네가 남의 집 과부를

빼다가 작은기집으로 데리구 살아!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엔 틀렸다 이놈! "

정첨지가 지팡이로 봉당 바닥을 두들기다가 지당이가 부러지니 손에 쥔 지팡이

동강으로 아들을 두들겼다. 그 고모가 가로막고 나서서 "꾸중을 하시더라도 방에

들어가 하시오. 동네 사람들 부끄럽소." 하고 삽작 안과 늘 밖에 웅긋중긋 와

서 섰는 이웃 사람들을 가리켰다."부끄러운 것 잘 안다. 너는 나이를 헛 처먹었

. 낫살 먹은 것이 저거하고 부동해서 집안 망할 짓을 한단 말이냐? 그건 부끄

럽지 않으냐. 네 방엔 들어가기두 싫다. 과부 어디 있니? 이리 데려 내오너라! "

정첨지가 호되게 야단치는 바람에 그 누이는 두말 못하고 윗방에 들어가서 과부

를 붙들고 나왔다. 정첨지가 며느리를 돌아보며 "네가 여기 있어 무어 하니.

여편네 데리구 집으루 가자." 말하고 곧 며느리와 과부를 앞세우고 나서는데,

과부가 걸음을 걷지 못하는 것을 보고 구경하던 동네 여편네 두엇을 불러서 부

축시켜 데리고 갔다.

과부가 정첨지 집에 와서 몸져 눕는 길로 곧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앓았다.

정첨지는 며느리 시켜 구호를 극진히 하게 하고 과부 누운 아랫방에 여편네 한

둘은 밤낮 떠나지 않도록 하고 사내는 누구든지 범접 못하게 하였다. 정첨지의

며느리가 정첨지보고 "앞으로 과부를 어떻게 하실랍니까?" 하고 의향을 물으니

정첨지는 자기 마음에 작정한 대로 "병만 낫거든 곧 저의 집으루 보내줄 테다."

하고 말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이 말을 전청으로 듣고 몸이 달아서 구변 있는

동네 늙은이 하나를 중간에 놓고 아비 의향을 돌리려고 애를 썼다. 정첨지 아들

의 청을 받은 늙은씨가 정첨지 집에 와서 겉으로는 그저 놀러온 체하고 정첨지

와 같이 담화하는 끝에 과부 말을 끄집어냈다."그 과부가 병이 났다더니 대단치

나 않은가?" "웬걸, 대단해. 아직까지두 인사 정신을 모른다네." "병이 나은

뒤에 또 풍파가 없을까?" "저의 집으루 보내버리면 고만이지 무슨 풍파가 있

." "업어온 과부를 돌려보내는 법이 어디 있나? 자뻬 며느리 안 삼을라거든

내나 주게. 내 며느리 삼아보세." "이 사람이 뉘 지기를 떠보는 셈인가?" "

없은 소릴세, 골내지 말게. 그렇지만 과부를 업어왔다 도추 보내면 그 집에 재앙

이 있다데. 빈말이라두 좋을 것 없지 않은가?" "그런 말이 어디 있나. 나는 듣

지 못했네." "그런 말이 있어. 자네가 못 들었지. 다른 사람을 내주더라두 도루

보내진 말게." "내 딸인가, 내 맘대루 내주게." "그러구 과부를 업어오거나 동

여오는 것이 흔한 일 아닌가. 큰 변고처럼 여길 것 무어 있나." "누가 큰 변고

라든가?" "자네가 큰 변고처럼 집안에서 야단을 친다며?" "자식이 집안 망할

짓을 하면 누가 야단 안 치겠나." "집안 망할 짓까지는 과한 말일세. 젊은 사람

들의 일시 장난이지." "장난이 다 무언가. 제 기집이 새파랗게 젊은데 왜 남의

집 과부를 업어오나." "여보게, 우리들 젊었을 때는 그만 장난 아니했나. 우리

늙은 사람들이 젊은 축에게 너무 까다롭게 굴 것 아니니." "이 사람, 남의 집

외아들이 제 명에 죽지 못하는 것을 보구 싶은가. 에이 사람." 하고 정첨지가

증을 벌컥 내서 그 늙은이는 다시 말 못하고 얼마 동안 무료하게 앉았다가 일어

섰다. 그 늙은이가 정첨지 집에서 나가는 길에 정첨지 아들이 곽오주와 같이 고

샅길에 나와 섰다가 보고 쫓아들 왔다."좋은 소식이 있습니까?" "자네 귀에

좋은 소식 들려주려다가 공연히 내 코만 떼구 가네." 정첨지 아들이 대번에 오

만상을 찡그렸다. 오주가 "좋은 소식이 무슨 소식이오?" 하고 늙은이보고 물으

"자네가 찬물 속테 들어가서 인명을 구한 상급으루 자네 주인이

이쁜 안해 하나 구해 준다는 소식이 있네. 이것은 좋은 소식이 아닌가." 하고

늙은이는 껄껄 웃었다. 오주가 "예끼" 하고 늙은이에게 삿대질하고서 어서 가자

고 젊은 주인의 손을 끌었다.

정첨지 아들이 오주와 같이 오는 길에 그 과부를 도로 보낼 바엔 차라리 오주

를 내주어 보고 싶은 맘이 생겼다. 과부를 가까이 두고 얼굴이라도 보고 싶은

생각과 과부가 밉살스러워서 욕보이고 싶은 생각과 귓속에 남아 있는 늙은이의

실없은 말이 한테 얼기설기한 중에 이 마음이 생기게 된 것이었다."여보게 오

, 과부를 자네 줄 테니 어떤가?" "나더러 데리구 살란 말이지." "그래." "

안해가 있으면 살림할 집이 있어야지." "그건 염려 말게." "집이나 살림 제구는

내가 다 주선해 줌세." "그러면 좋지. 싫을 것 무어 있어. 그렇지만 주인 영감이

나를 줄라구?" "영감쟁이가 내 생각엔 자네는 줄 것 같애. 하여간 지금 가서

말을 비쳐보세." 정첨지의 아들이 집에 와서 아비를 보고 과부를 오주 내주자는

의취로 말을 비쳤다. 정첨지는 과부를 돌려보내면 집에 재앙 있단 말을 꼭 곧이

들은 것은 아니나, 마음에 꺼림칙하여 하던 터이라 곧 오주를 불러 세워놓고 "

부가 병 나은 뒤에는 너를 내줄 테니 네가 도루 업어다 주거나 차지를 하거나

맘대루 해라." 하고 말하여 오주는 선뜻 "." 하고 대답하였다.

일시 위중하던 과부의 병이 며칠 뒤에 대세는 돌렸으나 정신기가 나며부터 죽

기를 기쓰고 약이나 미음을 받아먹지 아니자였다. 과부가 자몽하여 자는 것같이

누워 있을 때 정첨지 며느리가 미음을 가지고 와서 가만가만 몸을 흔드니 과부

는 눈을 잠깐 떠보고 곧 도로 감았다."여보, 미음 좀 마시오." "그렇게 안 먹으

면 병이 낫지 않소." "우리 시아버지 말씀이 임자가 병이 나으면 곧 집으로 보

내주신다는데 얼른 병이 나아야 집에를 가지 않소. 집에를 가고 싶기 않소.

아니 먹소." 과부가 눈을 다시 뜨고 정첨지 며느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가 미음을 달래서 마시었다.

과부의 병이 나날이 나아갔다. 대세를 돌린 지 사오 일 만에 머리를 들고 일

어나서 소세까지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정첨지 며느리를 붙들고 집에 가게 하여

달라고 졸랐다."신뱃골이 여기서 삼십 리라도 사십 리나 된다는데 지금 걸어가

려면 갈 수 있겠소? 조금 소복된 뒤에 보내주신다니 아무 소리 말고 보내주실

때까지 기다리오." 과부가 이 말을 믿고 잠자코 다시 수일 지나는 동안 날마다

방안에서 서성거리며 다리에 힘을 올리었다."인제는 사십 리 아니라 팔십 리라

도 걸어갈 것 같으니 내일쯤 집에 가도록 해주시오." "내가 이따 말씀해 보리

." 정첨지 며느리가 과부의 청하는 뜻을 정첨지에게 말하여 허락을 받았다.

과부가 내일은 자기 집에 가게 될 줄 믿고 초저녁부터 밤 가기를 졸이고 앉았

을 때 밤에 와서 같이 자는 동네 여편네가 빙글빙글 웃으며 들어와서 "잠동무도

고만이요그려." 하고 말하니 과부는 자기가 내일 가게 된 것을 말하는 것이거니

짐작하고 "글쎄, 섭섭하오." 하고 인사 치레로 대답하였다.

 

 

그 여편네가 다시 무슨 말을 하려고 할 즈음에 정첨지의 며느리가 와서 정첨

지의 말을 전하였다. 그 말은 다른 말이 아니라 같이 데리고 갈 사람을 한 사람

부탁해 놓았으니 그 사람의 집에 가서 그 사람을 만나보라는 말이었다."그 사람

이 같은 여편넨가요?" "모르겠소. 가보면 아실 테지." 정첨지가 부탁했으면

그만이지 자기더러 가서 만나보랄 것이 무엇인가. 의심이 더럭 나나 지낸 곡경

보다 무슨 더 큰 곡경이 앞에 있으랴 생각하고 과부는 여러 말 않고 곧 "하라시

는 대로 하지요." 하고 대답하였다."그럼 지금 나하구 같이 갑시다." 앉아 있

던 동네 여편네가 일어서니 과부는 정첨지 며느리에게 곧 다녀오리다 인사하고

동네 여편베의 뒤를 따라나섰다. 정첨지 집에서 멀지 아니한 곳에 있는 오두막

집이다, 집안은 괴괴하고 방안의 불빛은 희미하였다. 동네 여편네가 과부를 데리

고 와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말하였다. 방안에 사람도 없고 물건도 없었다.

아랫목 편에 놓인 헌 이불 한 채와 벽에 걸린 등잔거리곧만 없으면 알뜰한 빈방

이었다."사람이 없으니 웬일이오?" "오겠지요." "다른 데서 온단 말이오?"

있을 줄 알았더니 어디 잠간 나간 게요."밖에서 기다립시다." "치운데 어떻

게 밖에 서서 기다리나요? 나두 들어갈 테니 들어 갑시다."

이 방에 들어가는데 무슨 곡절이 붙은 줄은 과부가 확실히 짐작하였으나 하회

를 두고 볼 작정으로 그 여편네와 같이 방안에 들어 왔다. 정첨지 아들놈이 무

슨 흉계를 꾸며서 자기를 함정에 몰아넣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하면 그 아비

는 모르지만 그 계집까지 한통이 될 리 있을까, 그 계집은 속아서 모르는가,

런 생각이 과부의 머릿속에 떠올라서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앉았을 때 방문이

벌컥 열리며 시커먼 쇠도둑놈 같은 사내가 방안에 들어섰다. 동네 여편네가 그

사내를 보고 "곽도령이 어느 틈에 곽서방이 되었어?" 하고 웃으니 그 사내는

오늘 아무렇게나 끌어올렸소. 하고 역시 웃었다. 그 여편네가 과부를 보고 "

이 사람이 같이 가실 사람이오." 말하고 곧 나가려고 일어서는데 과부가 여편네

보다 앞질러 나가려고 하는 것을 그 사내가 덥석 끌어안아서 나가지 못하게 하

였다. 과부는 소리개에 채인 병아리밭이 꼼짝 못하고 발발 떨었다.

오주가 과부를 방 한중간에 앉히고 자기는 등으로 방문을 가로 막고 앉았다.

오주는 숫기 좋은 사람이건만 평생 처음으로 젊은 여편네와 단둘이 한방에 들어

앉으니 어째 겸연쩍은 생각이 나서 꿀 먹은 벙어리같이 앉아 있고, 과부는 숨만

쌔근쌔근하고 돌로 새긴 사람같이 앉아 있었다. 오주가 처음 상투 올리는 날 행

세로

빌어 쓴 망건이 머리에 테를 메운 것 같아서 훌떡 벗어버리고 머리 뒤를 긁적긁

적하였다. 오주가 우선 과부와 성명이나 통하려고 무거운 입을 열었다. 말은 하

게를 안 쓰고 끝 없는 반말을 썼다. 오주는 총각 대접으로 하게하는 사람들에게

일쑤 반말질하여 반말을 잘하는 터이었다."나는 성은 곽가구 이름은 도주구 나

이는 스물다섯이구 고향은 강령인데 정첨지 집에서 머슴을 살아. 임자는 성은

무어구 이름은 무어구 나이는 얼마여?" 말을 한마디 한마디 줍듯이 말하며 오

주가 연해 과부의 얼굴을 바라보니, 묻는 말에 대답은 고사하고 하는 말을 듣지

도 않는 것 같았다."우리 주인이 나더러 임자하구 같이 살라는데 내 맘엔 좋지

만 임자 감에 어떤지, 임자가 나하구 같이 살기 싫다면 나두 굳이 같이 살자지

않을 테니 싫거든 싫다구 말해." 오주가 과부의 말을 들으려고 한동안 기다리었

."나는 아직두 총각이구 임자는 젊은 과부니까 같이 살기 싫을

것 없겠지. 또 같이 살다가두 언제든지 싫다기만 하면 내가 두말 않구 갈라설

테니 그때 임자가 신뱃골 가서 도루 과부 노릇하면 고만 아니여." 오주가 또다

시 한동안 기다리었으나 과부는 입을 겹겹이 봉한 사람같이 말 한마디 아니하였

. 오주가 선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켜더니 혼잣말하듯 "고만 자보까." 하고 일

어나 아랫목에 가서 흩이불 쪽을 펼치었다. 그림같이 앉았던 과부가 번개같이

일어나서 방문을 박차고 뛰어나가려다가 한 발도 채 내미디기 전에 오주 손에

붙잡혔다, 오주가 한 손으로 열린 방문을 닫은 뒤에 "누구를 또 찬물에 들어가게

할라구." 하고 껄껄 웃으면서 과부를 어린아이같이 번쩍 안아 들고 아랫목 자리

로 왔다. 과부는 손이 있어도 손을 놀리지 못하고 발이 있어도 발을 놀리지 못

하고 등신이나 다름이 없이 되었다.

남자는 잠이 들며 곧 코를 고는데 여자는 눈만 감고 있었지 잠이 들지 아니하

였다. 무서움과 슬픔과 분함이 모두 작이 넘었다. 남자 잠자는 틈에 방문 열고

도망할 생각이 들지 못할 뿐 아니라 손끝 하나 꼼짝하고 싶지 않았다.

여자가 닭을 여러 홰 울린 뒤에 잠 같지도 않게 잠이 잠깐 들었다가 꿈 같지

도 않게 꿈을 하나 꾸었다.

어디를 가는지도 모르고 험악한 산길을 걸서가는데 뜻밖에 어린아이 우는 소

리가 귀에 들렸다. 소리가 어디서 나나 하고 둘레둘레 돌아보니 커다란 굴 속에

갓난아이 하나가 누워 있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굴 속으로 쫓아들어가서 그 아

이를 안고 보니 이때까지 사람의 아이던 것이 곰의 새끼로 변하였다. 깜짝 놀라

서 내던 지고 한번 살펴보니 여전히 사람의 아이라 다시 안아보려고 할 즈음에

난데없는 시커먼 곰 한 마리가 와서 아이를 빼앗아 안고 굴 밖으로 뛰어나갔다.

곰이 무서워서 얼른 나가지 못하고 굴 속에 서 있는 중에 굴 안이 털썩 무너져

서 꼼짝 못하게 되었다. 여자가 잠이 깨었는데도 가슴이 답답하여 눈을 뜨고 보

니 꿈에 보던 곰의 다리와 같은 남자의 팔이 가슴 위에 와서 얹혀 있었다.

팔에 손을 대고 싶지 않아서 들어 내려놓지 않고 몸을 비키어 이불 밖으로 나가

려고 하는데 팔이 움직이는 바람에 팔 임자가 잠이 깨어서 이불 밖에 나간 몸을

그 팔로 끌어들였다. 날이 새며 남자는 곧 일어나고 여자는 머리를 싸고 누워서

일어나지 아니하였다. 이날부터 사흘 되는 날까지는 여자가 먹도 않고 줄곧 누

워 있었고, 카흘 되는 날부터는 오주가 주인의 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우격다

짐으로 먹여서 할 수 없이 조금조금 먹고 잠간잠간 일어 앉기 시작하였고, 십여

일 지난 뒤에는 부엌에 내려가서 둘이 먹을 밥을 짓게까지 되었다. 동네 사람들

이 이것을 보고 여자를 비웃어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으나, 연분은 할 수 없

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았었다.

오주가 유복이와 형제를 맺은 뒤로 거의 한 장도막 한 번씩 청석골 산속을 들

어다니는데 처음에 오주 오는 것을 진덥지 않게 알던 오가의 식구들도 강가의

풍파를 같이 치른 뒤부터 모두 한집안 식구같이 정다워져서 오주가 올 때쯤 되

면 유복이가 말하지 아니하여도 오가의 식구들이 음식까지 유렴하여 놓고 기다

리었다. 새해 된 뒤에는 오주가 정초에 와서 하룻밤 묵어가며 술을 먹고 가고

또 보름 전에 와서 하루 종일 놀다 가고 유복이가 양주 꺽정이 집에 가서 칠팔

일 있다 오는 동안에 한 번 와서 다녀갔었다. 그때 와서 말이 계집 하나 생기게

되었으니 생기거든 데리고 오마 하고 갔는데 그 뒤 벌써 두 장도막이 지나도록

다시 오지 아니하렸다. 유복이가 날마다 식전이면 "오늘은 이 자식이 오려나."

하고 종일 고대하고 저녁때면 "이거 웬일일까. 오늘두 아니 오네." 하고 성사삼

아 말하였다. 유복이가 몇몇번 개래동으로 찾아가려다 "며칠만 더 기다려 보게.

오늘 내일간 올 겔세." 오가의 말을 듣고 그만두고 그만두고 하여 사오 일

지낸 끝이

. 이날도 한나절까지 오주 오기을 기다리다가 유복이가 오가를 보고 "이 자식

이 무슨 병이 난 거요. 그렇기에 이렇게 오래 안 오지. 내가 아무래두 개래동을

가보구 와야 속이 시원하겠소." 하고 말하니 오가는 "가보려거든 가보게만 내

생각엔 병나서 못 오는 게 아니구 노총각 녀석이 계집맛에 반해서 헤나지 못하

는 것 같애." 하고 웃었다."그렇기만 하면 좋겠소." "그럼 내 말이 틀리나 두

구 보게, 차부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나." "장사는 병이 나지 말란 법

어디 있소? 하여튼 내가 가보구 오리다."

 

유복이가해 질 무렵에나 온다고 가더니 보리밥 한 솥 짓기가 못 되어서 오는

데 뒤에 오주가 따라왔다. 마당에서 돌아다니던 오가가 먼저 보고 나서서 유복

이를 보고 "길에서 만났네그려. 큰길까지두 채 옷 나갔지?" 하고 말한 뒤에 곧

오주를 향하여 "어째 그렇게 오래 아니 왔나. 어디 앓았나?" 하고 물었다."

기는 왜?" "그럼 왜 아니 왔나? 자네 말투루 계집이 생겼나?" "생겼어." "

내 말이 어떤가. 맞지 않았나?" 하고 오가가 유복이를 돌아보며 웃으니 유복

이는 오주에게 "네가 여편네에게 반해서 안 온다구 말씀하더라. 참말 반했니?"

하고 말하며 웃었다. 안방에 들어앉았던 식구들이 어느 틈에 마루 끝에 나섰다.

어서 올라들 와요. 하고 오가의 마누라가 재촉하여 유복이와 오가가 오주를

중간에 끼고 마루로 올라왔다. 오가의 마누라와 유복이의 안해가 분분히 오주를

향하여 치하 인사를 마친 뒤에 여러 사람이 모두 안방으로 들어왔다. 자리에 앉

으며부터 여러 사람이 오주의 장가 든 이야기 를 듣고자 하여 구변 없는 오주가

과부 차지하게 된 곡절을 뒤죽 박죽 이야기하고 또 오가에게 졸려서 첫날밤 광

경까지 대강 이야기하였다."지금은 찬 샘물에 뛰어들어갈 염려가 없겠니?"

복이 묻는 말에 "이젠 그런 염려 없소." 대답하고 "얼른 좀 만나보았으면 좋겠

어요." 유복이 안해 말에 "그러지 않아두 같이 오려구 했더니 오기 싫다구 합디

." 대답하고 "소문난 과부면 얼굴이 이쁘겠소?" 오가 마누라 말에 "이쁘구

말구. 튼튼했더면 더 좋을 뻔했소." 대답하느라고 오주가 이 사람 돌아보고 저

사람 돌아보고 할 때 이때까지 싱글싱글 웃고만 있던 오가가 "여게, 오주?"

고 불러놓고 "자네는 지금 여편네 맛이 단 줄루 알 테지만 그것이 본맛이 아닐

, 여편네는 오미 구존한 것일세. 내 말할께 들어보려나. 혼인 갓해서 여편네는

달기가 꿀이지. 그렇지만 차차 살림 재미가 나기

시작하면 여편네가 장아찌 무쪽같이 짭잘해지네. 그 대신 단맛은 가시지. 이 짭

잘한 맛이 조금만 쇠면 여편네는 시금털털 개살구루 변하느니. 맛이 시어질 고

비부터 가끔 매운 맛이 나는데 고추 당추 맵다 하나 여편네 매운 맛을 당하겠

. 그러나 이 매운 맛이 없어지게 되면 쓰기만 하니." 하고 오가가 너덜거리는

데 오가의 마누라까지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웃었다.

오주가 오래간만에 올 뿐 아니라 장가 들고 처음 왔다고 오가는 그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말을 일러서 특별히 안주 장만하여 술대접을 하였다. 술상이

들어와서 순배가 도는 사이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고 "내가 이번에 양주 가서 술

을 많이 먹구 왔다." 하고 말하니 오주가 "형님 술에 많이 먹으면 얼마나 먹었

겠소." 하고 웃었다."사람 셋이 사흘 안에 술 한 독을 다 들냈으니 무던히 먹

지 않았니." "형님이 혼자 다 먹었다면 무던하까, 게다가 형님은 제일 적게 먹

었겠지." "적게 먹은 게 다 무어냐. 아마 제일 많이 적었을 게다. 꺽정이 언니는

술이 고래지만 친환 핑계하구 몸을 사리구, 천왕동이는 술이 나만 못하니까 내

가 자연 많이 먹게 될 것 아니냐." "나두 장 꺽정이란 이가 보구 싶은데 형님

왜 날안데리구가우. 이 담갈때는 꼭 같이 갑시다." 유복이가 대답하기 전에 오

가가 말참례하고 나섰다."양주 술을 먹어보구 싶은가?" "양주 술은 별난 술이

?" "술 먹은 이야기 끝에 양주를 가구 싶다니 말일세." "왜 내가 전엔 가구

싶단 말 아니했나? 지난번 형님 갈 때두 내가 알았더면 따라갔을 텐데." "아닌

게아니라 꺽정이 봉학이 말은 박서방에게 하두 귀따갑게 들어서 나두 보구 싶

. 이 담 자네들 갈 때에 나두 한몫 보세." 오가의 말끝에 유복이가 오주를 보

"꺽정이 언니가 너 잘 있느냐구 묻더라." 하고 안부를 전하였다."내가 보구

싶어한단 말두 했소?" "했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네 말이 많이 났었으니까."

"형님, 대체 꺽정이란 이가 내 맘에 들겠소 어떻겠소? 나는 보구 싶어두 보구 나

서 맘에 안 들까봐 걱정이오.""그건 만나봐야 알지. 그렇지만 맘에 들구 안 들"

구 그 앞에선 고개가 절루 숙을게다." "형님의 형님이니까 고개 좀 숙여줘두 좋

지 뭐." "그가 이번에 나하구 같이 오려구 하다가 그 아버지 병이 더쳐서 병이

조금 낫는 걸 보구 한번 놀러온다구 했다." "언제쯤 온다구 했소?" "오게 되

면 그믐 초생 온다구 했다." "두어 장도막만 더 있으면 오겠구려. 오거든 곧 내

게 알려주우." "오기만 하면 알려주다뿐이냐." "그가 여기 길을 알까?" "탑고

개서 들어오는 길을 자세히 말하두 목표까지 다 가르쳐 주었으니까 오려면 찾아

을 수 있겠지." 유복이가 오주와 수작하던 것을 그치고 오가를 돌아보며 "이번

술 해넣을 때는 좀 나우 해넣는 것이 좋지 않겠소?" 하고 말하니 "자네의 약

삭빠른 장모가 자네 말을 기다리겠나. 벌써 며칠 전에 청주 술밑까지 해넣었다

." 하고 오가가 웃으며 대답하였다."오지 아니하면 낭패로구려." "무슨 낭패

? 우리가 두구 먹지." 두 사람씩 서로 수작하는 중에도 가끔 세 사람이 함께 어

울려 말할 때가 없지 않았지만, 술기운들이 돈 뒤에는 세 사람이 서로 앞을 다

투어가며 지껄이어서 방안이 떠들썩하였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 술상이 끝이 났

. 전 같으면 오주가 저녁까지 눌러 먹을 것인데 저녁을 먹지 않고 간다고 일

어서니 "이왕 늦었는데 저녁 먹구 가려무나." 하고 유복이는 붙들고 "집에 가서

두 내외 재미있게 같이 먹게." 하고 오가는 조롱하였다. 오가의 마누라가 "여보

게 박서방, 나 좀 보게." 하고 유복이를 밖으로 불러내서 몇 마디 소곤소곤 말

하더니 유복이가 빙그레 웃으며 방으로 들어와서 "저녁은 안 먹드래두 잠간 더

앉았거라." 하고 오주에데 말하였다."왜 그러우?" "우리 장모가 너를 주어

보낼 게 있다신다." "무어요?" "네가 새 살림에 장건건이두 군조러울 것이라

구 간장 된장을 좀 준다신다." "그거 참 고맙소." 오가의 마누라는 자기의 인

정도 인정이려니와 유복이의 뜻을 살펴서 간장 장군과 된장 동이 이외에도 조금

조금한 살림제구까지 주어서 오주는 한 짐 꿈어지고 돌아왔다.

정첨지가 부모 산에 소나무를 가꾸기 겸 숯을 묻으려고 소나무 사이에 선 참

나무를 작벌시키었다. 정첨지 아들은 발매터에 나오는 것이 아비의 눈가림이라

공연히 빙빙 돌다가 꾀죄로 빠져 들어 가고 정첨지는 아들과 달라서 소나무 다

치지 않게 해라, 우죽 허실 안 되게 해라, 잔소리가 심하지만 칠십 넘은 늙은이

라 줄곧 서서 돌아다니지 못하므로 오주가 저의 일을 해가며 틈틈이 남의 일까

지 간검하느라고 분주하였다. 저녁때가 되어서 다른 일꾼들이 일을 마치고 각기

돌아간 뒤에도 오주는 떨어져서 한 바퀴 돌아보고 오는 까닭에 해 진 뒤에야 돌

아오게 되었다. 발매 시작되던 이튿날 저녁때 오주가 발매터에서 돌아와 보니

유복이가 정첨지 집 머슴방에 들어앉아 있었다."형님 오셨구려. 언제 오셨소?

" "온 제 한참 되었다. 얼른 저녁 먹구 나하구 같이 가자." "무슨 일이 생겼

?" "우리 언니가 오늘 왔다." "같이 갑시다. 그렇지만 나는 내일 새벽 도루

와야겠소." "왜 내일 새벽에 무슨 일이 있니?" "주인집에서 엊그제부터 발매

를 시작했는데 와서 봐줘야지." "주인더러 말하구 가자꾸나. 우리 언니두 바쁜

일이 있어서 모레는 간다니 내일 하루 같이 놀다 헤어지면 좋지 않겠니." "그렇

게 속히 간다우? 내가 주인더러 말하구 나오리다." 오주가 곧 안으로 들어가서

저녁밥 먹는 정첨지의 부자를 보고 "내가 의형님한테 갈 일이 생겨서 내일 하루

일 못하겠소. 내일

못 하는 오력으루 모레 와서 동값하리다." 하고 말하니 정점지는 대뜸에 "자네

가 없으면 일이 되나?" 하고 상을 찡그렸다."젊은 주인이 하루만 잘 돌아보면

되지 않소." 정첨지가 말하기 전에 그 아들이 선뜻 "그렇게 하게." 하고 허락

하였다."내가 가봐서 내일 밤에 오거나 모레 식전 오리다." "어둔 밤에 올 거

무어 있나. 모레 오게 그려." "그러면 더욱 좋소." 정첨지는 아들을 홀겨보며 "

그 자식, 장이 선선하다." 하고 나무라는데 오주는 "이런 때는 우리 젊은 주인

같이 좋은 사람이 없어." 하고 껄쩔 웃고 곧 부엌에 가서 저의 밥을 찾아들고

밖으로 나왔다."인제 우리 집에 가서 밥 한술 떠먹고 갑시다." "나는 시장하지

않지만 잠깐 가서 인사나 하구 갈까." ", 인사두 해야지." 오주는 유복이를

끌고 저의 집으로 와서 큰소리로 "여게, 우리 형님 오셨네." 하고 방문을 왈칵

열었다. 오주의 안해가 누워 있다가 깜빡 놀라서 일어나며 나직한 목소리로 "

디 형님이 오셨소?" 하고 물으니 "어디 형님이 무어여? 늘 말하던 우리 의형

님이지." 하고 오주는 곧 뒤를 돌아보며 "들어 갑시다." 하고 유복이와 같이

방으로 들어왔다. 오주의 안해가 유복이에게 절인사를 마친 뒤에 곧 밖으로 나

가려고 하니 오주가 "어디를 갈라나?" 하고 물었다."밥을 지어야지요." "

밥 남은 거 없나?" "찬밥은 있소." "그러면 지금 내가 가지구 온 더운밥은 형

님 드리구 우리는 찬밥 먹세." "장찌개두 없는데 어떻게 하오?" "있는 대루

먹지, 얼른 먹구 가야겠네." "어디를 갈라오?" "형님하구 같이 갈 테여. 내일

모레나 오겠네." 오주의 안해는 방구석에 덮어놓았던 반찬 그룻과 찬밥 그릇을

내놓은 뒤에 부엌으로 물 뜨러 나갔다."네겐 과하두룩 얌전하다." "나는 얌전

한 계집 데리구 살면 못쓰우?" "누가 못쓴다나. 그렇지만 네게 대면 너무 약해

보인다." "그래 약해서 탈이오." 물까지 떠다 놓고 밥들을 먹게 되었는데 오주

의 안해는 오주가 "같이 먹세." 하고 숟갈을 집어 줄 뿐 아니라 유복이까지 "

는 조금 먹을 테니 더운밥을 같이 먹읍시다." 하고 권하였건만 나중에 먹는다고

같이 먹지 아니하였다.

 

캄캄한 어두운 밤이나 발에 익은 길이라 오주와 유복이는 거침 없이 걸어서

초경이 지나기 전에 청석골을 들어왔다. 오가의 집마당에는 화톳불이요, 마루 끝

에는 등롱이요, 안방에는 대심박이 촛불이 밝아서 한다하는 부자집에서 밤잔치

하는 것 같았다. 오가의 마누라는 마루에서 유복이의 안해와 계집아이년을 데리

고 주식을 준비하고, 오가는 안방에서 꺽정이와 천왕동이를 대하여 경력을 이야

기하는 중이었다. 오가의 마누라가 유복이와 오주가 대문 안에 들어서는 것을

보고 곧 고개를 방 편으로 돌리며 "인제들 오는구먼요." 하고 소리쳐서 선통하

니 오가가 아랫목 위쪽 바라지문을 열고 머리를 내어밀며 "어째 이렇게들 늦었

?"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유복이가 오가의 말에 대답하는 동안 오주는 오

가 마누라와 유복이 안해에게 인삿말을 마치고 유복이와 같이 윗목 지겟문으로

안방에를 들어왔다. 지겟문 편을 향하고 앉은 총각은 얼굴이 해사하고 아랫목에

오가와 느런히 앉은 사람은 얼굴이 영특하고 수염이 숱하였다."저 털보가 꺽정

이란 이요?" 하고 오주가 유복이를 돌아보니 "버룻 못 배운 사람이란 할 수

없네. 처음 뵈입는 터수에 면대해서 이름 부르구 게다가 별명까지 짓는단 말인

." 하고 오가가 웃으면서 오주를 책망하였다.", 오주의 절을 받으시우."

하고 오주가 너푼 절 한번 한 뒤 바라지 앞에 모꺾어 앉은 유복이 옆에 자리에

와서 앉았다. 유복이가 맞은편 앉은 총각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황천왕동이다.

인사해라." 하고 오주를 돌아보니 오주가 천왕동이를 바라보며 "자네가 걸음을

잘 걷는다지?" 하고 말을 붙였다."내게두 절이나 한번 하게. 나두 나이 자네

버덤 많아." 하고 천왕동이는 나이를 자세하고 "나는 인제 어른이야." 하고 오

주는 어른을 내세우다가 나이와 어른을 비겨버리고 두 사람은 곧 서로 너나들이

를 하였다."요전에 들으니까 너두 총각이라더니 언제 상투를 끌어올렸니? 그건

박서방처럼 외자나 아니냐?" "오죽하니 외자상투를 올릴까?" "어떤 팔자 험

한 여편네가 저런 쇠도둑놈 손에 잡혔을까." 오주가 천왕동이 말을 대꾸하기 전

에 오가가 "아닌게아니라 오주 안해가 팔자 험한 사람이야." 하고 말자루를 차

지하고 나서서 오주의 안해 얻은 곡절을 한바탕 늘어지게 이야기하였다. 오가의

이야기가 끝난 뒤에 유복이가 "참말루 얌전합디다." 하고 오주 안해를 칭찬하니

오가는 "저 사람하구 같이 앉았는 것이 백로가 까마귀하구 짝지은 것 같든가."

하고 웃고 오가의 말끝에 천왕동이는 "횐 비둘기하구 시커먼 곰 새끼하구 같이

앉은 것 같을 테지." 하고 웃었다. 오가와 천왕동이가 받고채기로 오주를 시달

리는 판에 꺽정이가 "모처럼 서로 만나서 실없은 소리로 밤을 보낼 테야." 하고

말하여 천왕동이는 고사하고 오가까지 움찔하여 입을 다물었다. 오주가 꺽정이

를 바라보며 "우리 형님이 형님이라니까 나두 형님이라구 하우." 하고 싱글벙글

웃고 나서 "형님, 작년에 전장에 갔었다지요?" 하고 물었다."그래." "전장

이야기 좀 들읍시다." "나는 구변이 없어서 이야기를 잘 못하네. 이 담 이봉학

이란 이를 만나게 되거든 이야기를 듣게." "활 잘 쏘는 이 말이오? 그래 지금

어디 있소?" "전라도 전주 감영에 있네." "감영이라니 감사 있는 데지요?

기서 무엇 하우?" "벼슬 산다네." "감사 노룻 하우?" "감사 아래 있는 비장

이라네." "난리 친 공으루 그런 벼슬 했소?" "그런 셈이지." "형님은 왜 벼슬

안 했소?" "그런 벼슬은 주어두 싫다." 이때 오가가 꺽정이를 돌아보며 "술들

자시며 이야기합시다." 하고 곧 바라지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며 술상을 재촉하

였다.

술상이 굉장하였다. 집에서 잡은 도야지고기와 사냥해온 노루 고기와 벌이해

온 어물로 만든 진안주, 마른안주는 상 둘에 가득 놓이고 새로 뜬 독한 청주는

큰 양푼에 가득하였다. 갱지미 하나가 술잔으로 놓였는데 깊은 술잔 두어 곱절

이 넉넉히 들건마는 큰 그릇으로 마시기 좋아하는 오주 눈에는 너무 작아 보이

었다. 술이 첫순이 끝난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대접 하나 가져오라시

." 하고 말하여 계칩아이가 놋대접 하나를 가져오니 오주가 먼저 받아들고 "

이것으루 술을 먹었으면 좋겠소." 하고 그 대접을 꺽정이 앞에 놓으려고 하였

."거기 놓지 말구 술을 뜨게." ", 받으시우." "자네 먼저 먹게." 오주가

사양 않고 들어 마신 뒤에 다시 떠서 꺽정이를 주니 꺽정이가 한 대접 술을 한

숨에 쭉 들이키었다. 오주가 물끄러미 이것을 바라보더니 "형님 술먹는 것이 내

비위에 꼭 들어맞소." 하고 좋아하였다. 뒤바뀐 순이 다시 차례로 도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는 갱지미가 돌고 꺽정이와 오주 앞에만 대접이 돌았다. 술 양푼을

연해 갈아 들이는 동안 한 방에 가득한 술김은 무지개가 되고 여러 입에서 나오

는 이야기는 꽃이 피었다. 밤이 이슥하여 안식구가 아랫방에 가서 잠들 잔 뒤에

도 안방의 웃고 떠드는 소리는 그칠 줄을 몰랐다.

강가의 풍파 이야기가 났던 끝에 오가가 흔감을 떨며 청석골 자리를 자랑한

까닭에 이튿날 아침 뒤에 꺽정이가 오가를 보고 자랑하는 자리를 한번 돌아다니

며 구경하자고 청하니, 오가가 두말 않고 허락하고 곧 유복이를 돌아보며 산에

가서 먹게 술병이나 가지고 가자고 말하였다."산에 갈 바에는 아주 사냥질을 나

갑시다." 유복이의 말이 입에서 떨어지자 "좋지, 사냥질 좋지." 천왕동이는 손

뼉을 치며 좋아하고 사냥질을 즐기지 않는 오가와 오주도 싫단 말은 아니하여

곧 사냥질 준비를 차리는데 오가가 자기 집에 본래 있던 환도들과 강가 패에게

빼앗은 병장기들을 모두 끄집어 내왔다. 꺽정이는 환소를 골라잡고 오가와 천왕

동이는 창

들을 나눠 잡고 유복이와 오주는 아무것도 잡지 아니하였다. 유복이는 표창이

있지만 오주만은 맨주먹이다. 오주를 시달리기 좋아하는 천왕동이가 가만히 보

고 있지 아니하였다."너는 주먹으루 사냥할 테냐?" "나는 몰이꾼 노릇 하마.

너 같은 것이 몰아주기를 바라다가 짐생 다 놓치게." "싫거든 고만둬라." "

맨주먹 가지구 흔들흔들 따라오기 열쩍겠다." "술하구 밥을 짊어지구 갈 테다,

이 자식." "너두 사람 값에 갈라거든 재주 한 가지 배워라." "나는 왜 재주가

없드냐?" "무슨 재주냐? 밥먹는 재주냐, 기집 끼구 자는 재주냐." "이 자식이

되지 못하게 사람만 만만히 보네." 오주의 눈방울이 구를 때 꺽정이가 "오주.

" 하고 부르며 천왕동이 앞을 막고 나섰다."자네가 남버덤 낫거니 생각하는 재

주가 무엇인가?" 오주가 머리 뒤를 긁적거리다가 "씨름 재주." 하고 무뚝뚝하

게 대답하였다."?" "나무에 오르는 재주." "?" "인제 없소." "무슨 연

장은 남버덤 잘 쓰는 거 없나?" "도끼." "?" "도리깨. 도리깨질은 나만큼

잘하는 사람 별루 없소."

꺽정이와 오주가 수작을 그친 뒤에 유복이가 사냥 가기를 재촉하여 여러 사람

들이 각기 사냥 제구를 들고 나서는데 오주는 점심함통이와 술 두루미를 지게에

지고 나섰다.

사냥 나선 일행 다섯 사람이 한동안 앞뒷산으로 돌아다니고 나서 짐승을 잡으

러 두석산 상봉 밑으로 들어왔다. 이 근처에 짐승 붙는 골을 잘 아는 유복이가

앞을 서서 샅샅이 뒤졌건만, 짐승 그림자 하나 구경하지 못하였다. 오가가 헛쫓

아다니기에 싫증이 나서 "오늘이 짐생의 대공망일일세. 점심이나 먹구 들어가세.

하고 잔디밭에 주제앉으니 유복이도 발을 멈추고 서서 오늘같이 토끼 새끼

하라 구경 못하는 날두 드물께요." 하고 표창을 만지작거리었라. 여러 사람이

다 앉아 쉬는데 천왕동이만 꾸즌히 짐승 발자취를 찾아다니다가 여러 사람이 한

곳에 앉고 세고 한 것을 보고 늘정늘정 걸며왔다."백두산 일등 사냥꾼이 나오신

다구 짐생들에게 선통이 있었든거야. 그렇기에 이렇게 피신들을 단단히 했지."

하고 오가가 웃으니 다른 샤람은 교사하고 꺽정이까지도 빙그레 웃었다. 신명이

풀리지 아니한 천왕돋이는 입맛만 쩍쩍 다시다가 유복이를 보고 "사냥 고만둘라

, 어떻게 할라우?" 하고 의향을 물었다."공론대루 하세." "어디 다른 데 가

볼 만한 데 없소?" "가볼 말한 데야 있지. 우선 제석산 줄기를 밟아 들어가면

큰 짐생두 잡을는지 모르네." "큰 짐생이라니, 호랑이 말이지? 그런 데를 두구

왜 이레 왔소. 그리들 갑시다." 하고 천왕동이가 여러 사람을 돌아보니 오가는

가드라두 여기셔 쉬어가지구 아주 점심을 먹구 가세. 하고 드러눕고 유복이는

이왕 갈 테면 얼른 갑시다. 점심때 아직 멀었소. 하고 해를 치며다보고 꺽정

이는 "여럿이 나왔다가 빈손으루 들어가기 챙피하니 가봅새다." 하고 오가를 돌

아보고 오주는 말이 없었다. 천왕동이가 오주 옆에 와서 "너부터 일어나거라."

하고 일어서기를 재촉하였다."저 누운 이부터 일으켜세워라." "네가 점심짐을

짊어지구 나서면 가기 싫어든 따라온다." "그래 보까." 오주가 읏으메 일어나

서 여러 사람을 돌아보며 "이애가 몸달았소. 우리 가줍시다." 하고 곧 지게를

졌다."독불장군이로군." 오가가 일어나서 창을 집어들고 유복이와 둘이 길라잡

이로 앞을 서서 일행을 끌고 북으로 들어갔다. 제석산 높은 봉이 눈앞에 가까이

보이게 되었을 때 "우리가 서루 흩어지드라두 모일 데를 미리 하나 정해둡시다.

유복이가 오가를 돌아보며 이 아래 있는 노송나무 밑을 점심 먹구 모이구 할

자리루 정하세. 노송나무가 멀리서 목표두 되구 좋지 않은가."

 

 

오가는 잔솔밭 옆에 우뚝 섰는 큰 소라무 하나를 가리키고 곧 여러 사람을 끌

고 소나무 밑으로 내려왔다. 해도 한낮이 거의 다 되었으니 아주 점심을 먹어

치우자는 공론이 나서 호주는 두루미와 함통이를 재게에서 내려놓고 오가는 옷

고름에 차고 온 종구락을 놓았다. 술은 돌아갈 때 먹을 양으로 한 종구락씩 먹

고 남겨두고 밥들을 먹었다. 천왕동이와 유복이가 밥을 먼저 먹고 샘을 찾아가

서 물을 먹을 때 샘물에서 멀지 아니한 양달에 노루 한 마기가 엎드렸다가 인기

척에 놀라 일어났라. 창을 놓고 간 천왕동이가 한달음에 소나무 밑으로 뛰어와

"노루, 노루." 하며 황망히 창을 집어들었다. 망아지만한 놈이 꽁무니에 달

린 목화송이를 너털거리며 겅충껑충 건너편 비탈 위로 뤽어올라가는데 천왕동이

가 비호같이 뒤쫓아갔다. 유복이는 처음에 노루 뒤를 쫓아가 나중에 천왕동이

쫓는 노루의 가는 목을 앞질러 막아보려고 비탈을 가로질러 뛰어가는 중에 자그

만 멧돝 한 마리가 앞에 달아 나는 것을 보고 노루목을 버리고 멧돝 뒤를 쫓아

가고, 오가는 물 먹고 양치까지 하고 나서 창을 들고 잔솔밭에 올라가서 이리저

리 돌아다니다가 토끼 하나를 튀겨놓고 토끼 뒤를 쫓아갔다. 오주는 남은 안줏

감과 종구락과 숟가락들을 거두어서 빈 함퉁에 넣어서 술 두루미와 함께 한옆에

치우고, 앉아 있는 꺽정이 앞에 와서 "형님은 왜 안 가우?" 하고 물었다."

이 자위두 돌기 전에 쫓아다닐 맛 있나." "나두 흔자 있기 심심한데 나하구 이

야기나 합시나." "나더러 자네 심심풀이 해주고 있으란 말인가?" "아니 그런

말은 아니오." "아따, 발명은 고만두구 이리 와 앉게." 꺽정이와 오주 두 사람

은 소나무 밑에 느런히 퍼더버리고 앉았다.

꺽정이와 오주가 다같이 말수 적은 사람이라 별로 이야기도 없이 한동안 지났

."이 사람들이 멀리 갔나 부다." "갈 때는 이리들 와서 같이 가겠지." "그래

우리는 갈 때까지 이렇게 짬짬하네 앉았잔 말인가?" "형님 심심하우? 나하구

씨름이나 한번 해볼라우?" "싫어." "형님이 아무리 천하 장사라둑 씨름 묘득을

모르면 내거 지우." "내가 씨름을 할 줄 모르기루 설마 자네에게 지겠나." "

한번 헤봅시라." "싫어." "형님애 질 듯하니까 싫다지 뭐." "그예 한번 해보

군 싶은가?" "심심풀이룩 좋지 않소." "그럼 한번 해보세." "옳다, 형님을 메

꽃아보자." 오주가 껑청 뛰어 일에냐며 꺽정이도 일어섰다. 오주와 꺽정이가 서

로 바지 뒤 괴춤을 잡고 마주 구부리고 섰다. 오주가 발을 이리저리 떼어놓뜨며

꺽정이를 어르는데, 꺽정이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별안간 허리를 펴고 서며 괴

춤 잡은 팔을 위로 치켜들었다. 오주의 발이 땅에서 떨어지자, 오주의 입에서 애

개개 소리가 나왔다. 오주의 육중한 몸을 꺽정이가 위로 치어들었다갸 도로 땅

에 내려놓으며 "왜 무거문 걸." 하고 웃으니 오주는 열쩍어하며 "씨름을 법대로

해야지, 그렇게 해서 씨름이 되우?" 하고 머리를 내둘렀다."그만두세." "싱겁

기가 짝이 없소." "나를 한번 메꽃아야 재미나겠나?" 오주가 픽 웃으며 주저

앉으니 꺽정이도 다시 앉았다. 두 사람이 한동안 잠자코 있던 끝에 오주가 "

?"하고 부르니 꺽정이가 말없이 돌아보았다."술 먹구 싶지 않소?" "

?" "저 술을 우리 먹어버립시다." "이따는 어떡하구?" "이따는 이따

지 우리 먹읍시다." 오주가 일어나서 두루미와 종구락과 안줏감을 가져왔다.

둘이 권커니잣거니 먹어서 두루미가 거의 다 들나게 되었을 때 "이따 와서들

보면 기막히겠네."하고 꺽정이가 껄껄 웃으니 오주도 싱글벙글 웃으면서 "이따

들 묻거든 형님이 먹자구 했다구 합시다."하고 한눈을 찌긋이 감았다."왜 나

더러 여러 사람의 지청구를 받으란 말인가?" "형님을 지청구할 사람이 없으

니까 말이지." "자네가 대단 의뭉스러워." 술이 끝난 뒤 오주는 거나하게 취

하여 꾸벅꾸벅 졸기 시작하였다. 걱정이가 이것을 보고 "어젯밤에 잠을 못 자

서 졸린 게군. 드러누워 자게. 나는 그 동안에 산으루 돌아다니다 옴세."하고 곧

환도를 가지고 건너편 비탈로 건너갔다. 오주가 한번 드러누우며 곧 잠이 들어

서 한숨 곤히 자는 중에 얼굴에 물이 떨어지는 것 같아서 눈을 뜨고 보니 얼룩

얼룩한 짐승의 꽁지가 도닥도닥 두드리는데 그 꽁지가 처끈처끈하였다. 호랑이

가 술취해 자는 사람을 깨울 때 의사스럽게 꽁지에 물을 축여다가 얼굴을 도닥

거리는 것은 두메 장꾼들이 혹간 당하는 일이다. 오주가 곁눈으로 보니 중송아

지만한 호랑이가 뒤로 돌아서 있다. 오주는 잠과 술이 일시에 다 깨었다. 손을

홱 내밀어서 두 뒷다리를 붙잡으며 곧 펄떡 뛰어 일어났다. 호랑이도 뜻밖에 놀

란 모양이라 대가리를 돌이키며 어흥 소리를 지르고 나서 뒷다리를 가지고 내흔

들기도 하고 뿌리 차기도 하고 또 앞으로 끌어당기기도 하였다. 뒷다리를 제 맘

대로 놀리지 못할 줄 안 뒤에는 도닥거리던 꽁지로 연해 후려쳤다. 오주가 그

후려치는 꽁지를 막을 수가 없어서 고개를 잔뜩 숙이고 호랑이의 뒷다리를 치켜

들고 날쳤다. 호랑이가 용쓰는 대로 기운을 쓰고 호랑이가 뺑뺑 도는 대로 따라

돌았다. 오주 생각에 호랑이를 이대로 붙잡고 날치기만 하다간 기운만 점점 빠

질 것 같아서 뒷다리를 비틀기 시작하였다.

오주가 호랑이 뒷다리를 바른편으로 비틀면 호랑이의 몸이 바른 편으로 돌고

왼편으로 돌았다. 호랑이가 늘어지게 어흥 어흥 하지 못하고 입을 딱딱 벌리며

앙앙 하는데 앙 소리에도 산골이 울리었다. 호랑이가 앞발로 땅을 후벼파고 흙

에 턱을 들비비었다. 오주가 여러 차례 한 편씩 번갈아 비틀어보았으나 다리가

잘 퉁겨지지 아니하여 마침내 양편을 한꺼번에 비틀려고 두팔에 다같이 힘을 올

렸다. 오주가 응 소리를 한번 되게 지르며 두팔을 밖으로 바짝 내어틀었다. 우지

끈 하고 두 다리가 일시에 퉁겨지며 호랑이는 묽은 똥을 확 내깔렸다. 오주가

장정 십여 명의 힘을 겸치어 가진 사람인데 이 사람이 죽을 힘을 다 들여서 비

틀었으니 호랑이 다리가 살과 뼈가 아니고 무쇳덩이라고 하더라도 성할 수 없는

일이라 호랑이는 고만 병신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오주도 힘을 과도하게 쓴 뒤

에 전신의 맥이 갑자기 풀려서 퉁겨진 호랑이 뒷다리를 놓는 줄도 모르고 손에

서 놓았다. 호랑이가 몇번 데굴데굴 굴다가 곧 주홍 같은 아가리를 벌리고 성한

앞다리로 뛰어서 오주에게 대어들었다. 오주가 새 정신이 번쩍 나서 얼른 몸을

한옆으로 피하였다. 엉겁결에 피한 것이 술 두루미 놓인 곳이라 오주는 두루미

를 두 손으로 집어들었다가 뒷다리를 끌며 쫓아오는 호랑이 낯바닥에 내던졌다.

질그릇이 요란스럽게 깨어지며 호랑이는 눈을 감고 대가리를 흔들었다. 이 틈에

오주는 소나무 뒤로 뛰어가서 곧 나무 위로 올라갔다. 땅에서 서너 길이 넘는

가지 위에 오주가 올라앉게 되었을 때, 호랑이는 나무 밑에 와 엎드려서 사람을

치어다보며 으르렁거리었다.

오가가 토끼를 뒤쫓아가는데 토끼가 곧 잘힐 듯 잡힐 듯하여 정신없이 쫓아가

다가 마침내 토끼를 잡지 못하고 놓쳐버리고 나서 분하기도 하려니와 남보다 부

끄러울 생각이 나서 다른 토끼라도 한 마리 잡아가지고 가려고 사방으로 헤매었

. 헤매는 중에 토끼는 다시 구경 못하고 여우 한 마리를 튀겼으니 여우를 뒤

쫓아갈 가망이 없어서 얼마 쫓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목이 컬컬하여지며 술 한

종구락 먹고 싶은 생각이 긴하여서 그대로 돌아서서 차츰차츰 오는 중에 장등에

서 소나무 밑을 내려다보니 사람은 하나도 없고 호랑이 한 마리가 엎드려 있었

. 가만히 생각하여 보니 꺽정이까지 사냥하러 가고 오주 혼자 있다가 호랑이

를 만난 모양인데 맨주먹밖에 없는 오주가 어찌 되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감히

내려가 볼 생각은 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찾아갈 생각이 났다. 오가는 호랑이

눈에 보이지 않도록 장등 너머로 내려가서 천왕동이가 노루 쫓아가던 편을 향하

고 가며 좌우쪽을 살펴보았다. 산마루 소나무 사이로 사람 하나가 내려오는 것

을 보고 마주 가며 소리를 쳤다. 꺽정이가 짐승 발자국을 살펴보고 다니다가 호

랑이 소리가 멀리서 나는 것을 듣고 호랑이를 찾아오는 중이었다. 오가가 꺽정

이를 만나서 소나무 밑에 호랑이가 있고 오주가 없더라고 말하니 꺽정이는 깜짝

놀라며 "그래 오주가 죽었단 말이오?"하고 물었다."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

겠소." 오가의 말을 꺽정이가 듣자마자 곧 장달음을 놓았다. 소나무 밑에 가까

이 오며 자세히 살펴보다가 호랑이가 가끔 나무 위를 치어다보며 으르렁거리는

것을 수상해서 나무 위를 바라보니 높은 가지 사이에 흰옷이 보이었다. 꺽정이

가 환도를 빼어들고 호랑이에게 쫓아들어오며 "오주, 나 여기 왔네." 하고 소

리를 질렀다. 호랑이가 꺽정이 오는 것을 보고 뛰어나오는데 앞다리만 가지고

뛰는 것이라 병신성스럽기 짝이 없었다."이눔의 호랑이가 다리 병신이로구나.

"내가 뒷다리를 퉁겨놓았소. 오주가 나무 위에서 꺽정이 말에 대답하였다.

 

 

꺽정이가 한 칼에 호랑이를 요정내지 않고 하는 꼴을 두고 보았다. 호랑이가 뛰

면 따라 뛰고 호랑이가 가만히 있으면 같이 가만있고 또 호랑이가 대어들면 피

하다가 호랑이가 피하면 대어들었다. 호랑이가 내빼는 것을 장사로 생각하였던

지 산으로 도망질치려고 뒷다리를 끌며 뛰어가니 꺽정이가 얼른 앞질러 막아서

서 서리 같은 칼날을 내둘렀다. 호랑이가 오도가도 못하고 한곳에 주저앉는데

뒷몸을 눕히고 앞몸만 세우고 아주 죽이라는 듯이 눈을 딱감았다. 이 동안에 오

주가 나무에서 내려와서 반 함통이를 들어다가 호랑이 대가리에 들씌워서 호랑

이가 함통이를 쓰고 한 바탕 곤두를 돌았다. 꺽정이가 이 꼴을 보더니 "아서라

불쌍하다. 얼른 죽여버리자. 아무리 짐생이라두 산중에서 제로라 하는 것을 개새

끼같이 놀리는 것이 우리의 잘못이다." 하고 곧 칼을 높이 들고 있다가 호랑이

가 함통이를 벗어버릴 때 대가리를 겨누고 번개같이 내리쳤다. 호랑이가 앙 소

리도 한번 못지르고 땅에 쓰러져서 앞다리만 몇번 버둥거리었다. 꺽정이가 오주

를 바라보며 "자네는 상한 데나 없나?" 하고 묻다가 머리 동인 수건에 무슨

칠갑한 것을 보고 "머리수건에 그게 다 무언가?" 하고 물었다. 오주가 수건을

끌러 들고 "호랑이놈이 물찌똥을 내깔겼소."하고 손으로 떨려고 하니 꺽정이가

"물에 빨게. 상투 끝에도 묻었네. 씻어 주께 이리 오게."하고 오주를 불러서 수

건의 정한 끝으로 상투와 머리에 묻은 것을 씻어주며 오주의 이야기를 들을 때

"오주가 죽지 않았네그려."하고 오가가 떠들며 와서 먼저 오주를 보고 "얼마

나 혼이 났나?"하고 인사하고 다음에 꺽정이더러 "씻어주는 게 무어요?"하고

물었다. 꺽정이가 고개를 돌이키며 "오주버덤 호랑이가 혼이 났다오. 이것 좀

보우."하고 수건을 오가의 코밑에 들이미니 오가가 "호랑이똥 아니오?"하고

뒤로 물러서서 "여게 오주, 자네가 호랑이 밑으로 나왔네그려."하고 한번 웃고

"두구두구 할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네. 무섭구두 드러운 이야기 희한하지

않은가."하고 다시 웃었다. 오주가 호랑이와 싸우던 것을 대강 이야기한 뒤 두

루미 깨어진 쪽을 집어치우는데 오가가 "남의 아까운 두루미를 깼으니 두루미

값 물어놓아야 하네."말하고 곧 자기 말에 대답하듯이 "호피 한 장이 두루미

값은 되겠지."하고 말하였다. 꺽정이가 수건을 오주 주고 나서서 "뱃심이 무던

하구려."하고 오가에게 말하니 "그렇기에 도둑놈 아니오."하고 점잖게 대답하

는데 그 대답보다도 대답하는 모양이 우스워서 꺽정이와 오주가 다같이 껄껄 웃

었다. 오주가 샘으로 수건 빨려 간 동안에 천왕동이가 죽은 노루를 끌고 돌아왔

. 천왕동이는 노루 잡은 이야기를 늘어놓다가 호랑이 잡아 놓

은 것을 보고 뛰어가서 들여다보며 "이거 누가 잡았소? 형님이 잡았구려."하고

꺽정이를 돌아보니 "오주가 가만히 앉아서 큰 사냥을 했다네."하고 오가가 대

답하였다."거짓말 마우, 대가리에 칼을 맞았는데 누가 속겠소." "오주가 초벌

잡아놓은 것을 자네 형님이 재벌 칼질하셨다네."하고 오주가 곧 오주와 호랑이

가 싸운 것을 이야기하여 들리었다."오주 지금 어디 갔소?" "똥수건 빨러

갔네." 오주가 수건을 빨아 널고 돌아온 때 천왕둥이는 오주더러 호랑이 똥

먹었다고 조롱하고 한바탕 웃고 떠들었다.

얼마 뒤에 유복이가 멧돝은 놓치고 여우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와서 사냥들을

마치고 해 져서 땅거미 될 때 일행이 청석골로 돌아왔다. 이날 밤도 술타령으로

새우다시피 하고 이튿날 식전에 오주가 꺽정이 천왕동이와 함께 청석골을 떠나

서 같이 오다가 양짓말 앞에서 두 사람을 작별하고 개래동으로 들어왔다. 동네

어귀에서 오주가 젊은 사람 하나를 만났는데 "이 사람, 이쁜 안해를 혼자 두구

어디 가서 이틀씩이나 돌아다니나. 어서 집에 가보게." 하고 그 사람의 웃는 것

이 오주 눈에도 수상히 보이어서 오주는 정첨지 집에도 가보지 않고 바로 자기

집으로 들어왔다.

정첨지 아들이 과부를 오주에게 내준 뒤에 죽네 사네 야단치던 과부가 말썽없

이 사는 것을 보고 오주 듣지 않는 데서는 "그년이 오주의 코 큰 것을 좋아하

는 거야." "멀쩡한 잡년이 수절이나 할 것같이 사람을 속였지." "화냥년이

별년인가." 하고 갖은 욕설을 다하였다. 그러나 밉살스럽고 괘씸한 반면에 끌리

는 마음이 끈히 있어서 오주에게서 도로 뺏고 싶은 생각까지 날 때가 없지 아니

하였다. 오주가 청석골 가던 날 정첨지 아들은 오주 가는 것을 보고 혼자 속으

로 별 생각을 다하였다.

이년을 한번 욕이라두 잔생이 보여야 속이 시원할 텐데, 나중에 오주가 알

면 어떻게 할까. 계집의 맘이 과부로 있을 때와는 딴판 다를 것이니까 잘하면

오주가 알게까지 되지 않을 터이지. 설혹 알게 되더라도 주객간이고 더구나 내

가 준 계집이니까 설마 무슨 말썽이 있을까. 오주가 우악스럽기는 하지만 비위

만 맞춰주면 뒤가 없이 풀리는 사람이니까 별 염려 없겠지.’

생각을 제게 유리하도록 돌린 뒤에 정첨지 아들은 이년 오늘 밤에 좀 견뎌

봐라.’ 하고 속으로 벼르면서 밤 되기를 기다리었다.

이날 밤에 정첨지 아들이 오주의 안해 혼자 자는 방에 뛰어들어 갔다. 오주의

안해는 치마도 벗지 않고 동그마니 누워서 잠을 설자던 중이라 방문이 열릴 때

벌써 벌떡 일어나 앉았다. 오주의 안해가 오주에게는 몸을 버린 길이라 죽지 못

하고 그대로 같이 살지만, 이 사내 저 사내 볼 난잡한 여자가 아니라 다른 사내

라도 말을 들을 리 없는데 더구나 속에 원수 치부하고 있는 정첨지의 아들이랴.

정첨지 아들이 방에 들어설 때 "도적이야 도적이야!" 소리지르고 정첨지 아들

이 몸에 손을 댈 때 "살인이야, 살인이야!" 소리질러서 여편네의 새된 목소리

가 고요한 밤에 높이 울렸다. 정첨지 아들이 눈이 뒤집혔다."살인? 옳지, 이년

죽어봐라." 하고 식식거리며 덤비었다. 여편네가 죽을 힘을 다 들여서 막지마는

정첨지 아들이 전과 달라 조금도 사정없이 미친 것같이 날치는 판이라 여편네의

막는 것이 새발의 피 같았다. 정천지 아들이 여편네 입은 치마폭을 갈가리 찢어

서 우선 여편네가 소리 못 지르도록 아갈잡이하여 놓고, 그 다음 여편네가 치마

밑에 입은 옷은 바지 한 가지뿐이라 정첨지 아들이 그 바지에 손을 대면 여편네

가 몸을 이리 뒤치고 저리 뒤치고 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여편네를 발가벗기려

고 할 때 닫혀놓은 방문이 펄떡 열리며 저의 안해가 방문 앞에 와섰다. 정첨지

아들은 놀라서 일어서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다가 골이 나서 안해를 흘겨보

고 비위를 팔았다." 왔어?""왜 왔어? 그래도 뻔뻔하게 말이 입에서 나와!"

"어서 집으루 가." "누구더러 가래, 누구더러 가래?" "가라면 가지 무슨 잔

말이야!" "개새끼 행실하는 꼴을 보지 않고 어딜 가." "이년이 미쳤나!" "

누가 미쳐? 미친 눈깔에는 성한 사람도 미쳐 보이남." "죽지 못해 성화냐!"

"그래, 어서 죽여봐!" "이년아, 악쓰지 마라. 남 듣는다." "밖을 좀 내다보

고 말해. 남 듣는다고 말할 나위가 있나."

아닌밤중에 도적이야소리와 살인이야소리에 이웃 사람들이 잠이 깨

어서 정첨지의 아들이 오주 안해 방에 뛰어들어간 것을 정첨지 며느리까지 알게

된 것이라, 정첨지 며느리가 분김에 뛰어올때 동네 사람 여편네 사내 오륙명이

구경하러 따라와서 마당 안에 들어섰었다. 정첨지의 아들이 다른 사람들이 섰는

것을 보고는 안해를 떠다박지르고 튀어나와서 머리를 싸안고 여러 사람 사이로

뛰어나갔다.

정첨지 며느리가 오주의 안해를 보호하느니보다 자기의 사내를 금지하려고 동

네 여편네 두어 사람을 얻어다가 오주의 안해와 같이 있게 하여 이튿날부터는

오주의 집에 밤낮으로 사람이 떠나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저의 집에 돌아와서

방문을 열어보니 저의 안해는 누워 있고 그 옆에 동네 여편네가 앉아 있었다.

그 여편네가 "곽서방 지금 왔소. 나는 인제 갈라오." 하고 곧 일어서 나오니

오주가 길을 비켜주고 나서 방안에 들어섰다. 안해가 그 동안 일어나 앉았는데

머리는 쑥바구니 같고 면상에는 큰 생채기가 났고 눈에는 눈물이 듣거니맺거니

하였다.

 

 

오주가 안해 앞에 와서 펄썩 주주물러앉으며 "나 없는 새 무슨 야난을 냈어.

공연히 울지 말고 말을 해!"

삿대질하고 대드는 품이 곧 조련질할 사람 같으니 오주의 안해가 어이없어서

눈물을 거두고 오주의 얼굴만 빤히 보고 있었다."왜 말을 못해!" "무슨 소리

를 어떻게 듣고 왔소?" "무슨 소리를 들어." "그럼 왜 내게 골을 내오?" "

그럼 골이 안 나. 머리는 왜 저 모양이구 얼굴에 생채기는 왜 났어?" "그러니

어째서 내게 골을 내오?" "국으로 가만히 못 있구 동네가 왁자하게 할 것이

무엇이야?" "아니 여보, 날 화냥질시켜 먹고 살 작정이오? 난 죽어도 못하겠

. 진작 죽어야 할걸 웬수의 목숨이 모질어서 죽지 못하고 살자니까 별 망칙스

러운 소리를 듣겠소." "누가 화냥년 노릇 하래? 공연히 죽네 사네 할 까닭이

무어냐 말이지." "죽네 사네 안하고 순순히 말을 들을 걸 잘못했단 말이오?

닌 밤중에 사내놈이 여편네 혼자 자는 방에 뛰어들어온 건 잘한 일이고, 죽네

사네 해서 동네 사람 알게 한 건 잘못한 일이란 말이오? 나는 말귀를 못 알아듣

겠소. 똑똑히 말 좀 하오." "죽네 사네 하니까 사내가 자는 방에 들어왔지."

"누가 그럽디까, 그놈이 그럽디까?" "그눔이 누구야?" "그럼 뉘게 말을 들

었소?" "무슨 말을 뉘게 들어. 내생각에 자네가 또 공연히 죽으려구 나없는

틈에 샘에나 들어갔나 해서 말인데." "집에 있을때는 내가 샘에 나갈 틈이 없

어서 못 들어간 줄 아오? 부끄러움을 샘물로 씻을 수 있다면 하루 백 번이라도

들어가겠소." "그럼 방에서 목을 맸는가?" "누가 목을 매어. 사람 귓구멍이

막혀 죽겠네." "그럼 왜 사내눔이 밤중에 방에 들어온담." "왜 들어왔겠나

생각해 보오. 당치 않은 생각은 잘하면서 그런 생각은 왜 못하오?" "아니 겁

탈하러 들어왔어, 어떤 눔이?" "그러나까 죽네 사네 야단을 쳤지, 미쳤다구 공

연히 죽네 사네한단 말이오?" "그눔이 누구야, 그눔이?" "날 이 꼴 맨든 놈

이 누구요?" "주인의 아들이야?" "그럼 그놈 아니고 누굴 듯싶소." "!"

하고 오주가 눈방울을 굴리더니 두말 없이 뻘떡 일어섰다."어디갈라오? 내 이

야기나 듣고 가오." 하고 안해가 붙잡으니 "이야기는 두었다 들어두 좋아.

장가서 그눔을 찬아리를 터놔야지."하고 오주는 안해의 붙잡는 손을 뿌리치고

나와서 한달움에 정첨지 집으로 뛰어왔다. 정첨지가 마침 바깥마당에 나섰다가

오주 오는 것을 보고 "인제 오나?" 하고 인사하니 오주는 인사 대답도 없이

"아들 어디 있소?" 하고 불쾌스럽게 물었다. 정첨지도 그 아들의 한 짓을 들

어 아는터라 오주의 눈치를 알아채었지만 짐짓 모르는 체하고 "왜 그러나?"

하고 도로 물으니 오주가 서슴치 않고 "그 집안 망할 자식 없애버립시다."

고 말하였다."없애다니?" "내가 창아리를 터쳐놓을 테요." "사람을 죽이면

죽인 사람은 성할까?" "자식 원수 갚을 생각이 있으면 나중에 내 목숨을 영감

께 내주리다." "여개, 안으루 들어가세." "그 자식이 집에 있소?" "글쎄,

들어가서 이야기 좀 하세." "이야기는 듣기 싫소. 그 작식만 내주우." "내줄

께 들어가세." 하고 정첨지가 오주의 손목을 잡고 들어와서 자기 거처하는 방

으로 들어가려고 하니 "방에 들어갈 거 없소." 하고 오주는 잡힌 손을 빼어가

지고 물러섰다."내가 내 자식을 불러주께 염려말구 방으루 들어가세." "그럼

일꾼 방에 가서 기다릴 테요." "아니 내 방에 들어가서 내 말 한마디만 들어

주게." "할 말 있거든 여기서 말하구려." "조용히 할 말이니 잠깐만 들러가

." 하고 정첨지는 다시 오주의 손목을 잡고 방으로 들어왔다. 정첨지가 방에

들어와서 앉힌 뒤에 오주 앞에 마주 앉아서 "내가 사정할 말이 있으니 좀 들어

주게." 하고 말을 붙이니 "아들 두던하는 말이면 나는 듣지 않겠소." 하고

오주는 머리를 설레설레 흔들었다."그까지 자식의 두던이 아니라 이 늙은 사

람의 사정일세." "말하우." "늙은 사람의 말이 혹 귀성스러워서 듣기 싫드래

두 주객간 정리를 생각해서 끝까지 들어주게." 하고 정첨지는 오주의 눈치를

살피고 "그러우. 어서말하오." 하고 오주는 정첨지의 입을 바라보았다. "

안 망할 자식 하나 까닭에 내가 맘이 편한 날이 없는 것은 자네두 잘 알지.

가 자식더러 진작 죽어버리라구 야단칠 때두 많지만 실상 속으루는 혹시 죽을까

봐 겁을 내네. 자네 생각해 보게. 그 자식 하나 휘뚝하면 다른 식구두 살 수 없

지만 우선 이 늙은사람이 의지가 없어 살 수 있겠나. 그 자식이 더구나 비명에

죽는다면 나는 곧 그날이 죽는 날일세. 어미 없는 핏덩이를 외톨루 길러내서 의

지삼아 살다가 그 꼴을 보구 어떻게 살겠나." 정첨지가 숨을 돌리느라고 말을

한끈에 잇대지는 못하나마 오주말할 틈 없이 혼자 말하다가 끝에 와서 목이 메

었다."그러니 나더러 고만두란 말이오?" "아닐세." "

럼 어떻게 하란 말이오?" "그 자식이 죽으면 여러 초상이 날 테니까 나를 자

식 대신 죽여주게." "당치 않은 말두 다하우." "내가 자식을 잘못 두었으니

까 죽어두 원통할 것 없네." "고만두우. 듣기 싫소." "듣기 싫으래두 끝까지

들어주마구 하지 않았나." "왜 두던 않는다구 하구 두던하우?" "자식 두던

인가 내 사정이지." 오주가 입맛을 쩍쩍 다시는 것을 보고 정첨지는 말을 고쳤

."달초에 어째 자네같이 직실한 사람이 그 자식하고 부동해서 남의 과부를

업어왔나? 나는 지금두 자네를 원망하는 맘이 아주 없지 않아." 오주가 슬쩍

외면하려는 것을 보고 말을 한번 더 고쳤다."그 자식이 겁탈하러 방에 들어

가긴 했지만 겁탈하지는 못했으니까 그것두 분간이 있지 않겠나. 자네두 들어서

알겠지만 내 며느리가 진둥한둥 쫓아가서 그 자식을 붙들어낸 까닭에 자네 안해

가 욕을 보지 않았다네." 오주가 고개를 돌이켜서 정첨지를 바라보면서 "이러

구 저러구 내가 고만둘 테요"하고 말하니 "자네가 말썽없이 덮어둔다면 작히

고맙겠나. 여보게 고마워"하고 정첨지가 오주 앞으로 들어앉으며 오주의 손을

잡았다."나는 오늘 영감 집을 하직하구 다른 데루 갈 테요"하고 오주가 곧

일어서려고 하니 정첨지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잠깐만 더 앉아 이야기하세"

하고 붙들었다.

"말을 다 들었는데 무슨 이야기가 또 있소?", "우리 그대루 같이 지내지

다른 데 갈 것 무어 있나? 내가 그 자식을 단속해서 이 담에는 그런 일이 없을

게니 염려 말구 같이 지내세."하고 정첨지는 오주를 달래었다. 오주가 위인이

만만치 않아서 휘어부리기가 어려울 뿐이지 힘이 많은데다가 일에 몸을 아끼지

아니하여 오주 하나면 장정 일꾼 몇 사람 폭을 당하는 까닭에 이런 머슴을 놓치

지 않으려고 정첨지는 중언부언 만류하여 놓고 나서 "내가 지금 그 자식을 불

러다가 자네 앞에서 사과시키구 또 장래 그런 일 못하두록 맹세시킴세."하고

곧 안에 와 있는 동네 여편네 하나를 불러다가 발매터에 나가서 아들을 데리고

오라고 일었다. 오주가 한동안 더 정첨지 방에 앉아 있다가 "난 고만 집에 가

보겠소."하고 일어서니 "그 자식이 오거든 자네를 부르러 보낼 게니 곧 오게

"하고 정첨지는 더 붙잡지 아니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사과를 받고 일을 씻서 덮었다. 오주의 안해가 태기가

있어서 그 뒤에 입덧이 났는데, 오주는 처음에 놀란 끝에 병이 났거니 여기다가

나중에 태기인 줄을 알고 남의 없는 일같이 좋아하였다.

 

 

꽃 피고 꽃 떨어지고 잎 피고 잎 떨어지는 동안에 세월이 물같이 흘러서 오주

의 안해의 산삭이 다 되었다. 가냘픈 몸에 배가 유착히 불러서 굼닐기가 가쁜

까닭에 오주의 안해는 만삭 되기 전부터 많이 누워 지내었다. 어느 날 저녁때

오주가 밖에 있다가 들어와서 부엌이 쓸쓸한 것을 보고 "오늘두 저녁 안 해먹

구 누워 있나?"하고 중얼거리며 닫힌 방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안해는 누워 있

지 않고 아랫배를 부둥켜 쥐고 앉아 있었다."왜 그래?"하고 오주가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의 머리를 만져보려고 하니 안해는 머리를 오주 가슴에 대고 앓는

소리를 하였다."어디가 아픈가?" 몇 번 물어야 대답이 없던 안해가 한동안

머리를 들고 "아이고 죽겠소."하고 이마의 진땀을 씻었다."대체 어디가 아

파 그래?", "배가 아파요", "아침밥이 체했나?", "아니오", "그럼 왜 아

? 옳지 옳지, 애 날 때 배가 아프지. 애를 곧 날 것 같은가?"

안해가 대답 대신 고개 끄덕이는 것을 보고 오주는 한번 허허 웃고 나서 "

만히 누워 있어야 애기가 잘 나오겠지."하고 안해를 붙들어 눕히고 곧 윗목

벽에 매인 실겅 위에서 쌀과 미역을 내리었다. 산미와 산곽은 달 초생에 유복이

가 갖다 주고 간 것이었다. 오주가 쌀 한 바가지, 미역 한 오리를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안해가 누워서 "그건 어디로 가지고 가오?"하고 물으니 오주

는 서서 "주인집에 가서 밥 짓구 국 끓여달랄 테야"하고 대답하였다."애도

낳기 전에 무슨 국밥이오?", "국 끓이구 밥 짓는 동안에 애 낳겠지 뭐", "

제 날지 누가 아오?", "곧 날 듯하다며 그래", "그건 거기 놓아 두구 얼른

가서 저녁이나 먹구 오", "나두 첫국밥 같이 먹을라네", "제발 말 좀 들으

. 첫국밥은 언제 먹게 될지 모르니 어서 가서 저녁 먹으우", "그럼 밥을 갖

다 같이 먹세", "난 못 먹겠소", "하라는 대루 하까"하고 오주는 쌀과 미역

을 방구석에 놓아두고 정첨지 집에 가서 저녁밥을 먹고 왔다.

오주는 저녁 먹을 동안에도 안해가 곧 아이를 낳았을 것 같아서 한 그릇 밥을

너댓 술에 다 떠먹고 부리나케 쫓아왔는데 안해는 배가 아프다고 자반 뒤집기할

뿐이라 안해가 조금 진정되기를 기다려서 오주가 "왜 얼른 낳지 않구 고생이

."하고 나무라듯 말하니 안해는 "나와야 낳지."하고 톡 쏘아 말대답하였

."왜 얼른 나오지 않을까. 그놈이 따듯한 데 들어앉아서 나오기가 싫은 게로

."하고 오주가 웃으니 "놈인지 년인지 어찌 알고 놈이래."하고 안해도 웃

다가 곧 "아이구 배야."하고 상을 찡그렸다.

그날 밤새도록 오주의 안해는 아이를 비릊기만 하고 낳지 못하여 오주까지 밤

을 해뜩 새웠다. 동이 터서 밖이 환할 때 기운이 빠져서 늘어진 안해가 목안 소

리로 "여보 나 죽겠소. 우리 어머니께 좀 갔다와 주."하고 청하니 오주는 "

그래 내 가서 뫼시구 오지. 그러나 나 없는 동안에 혼자 어떻게 있나?"하고 걱

정하다가 "걱정 말고 지금 곧 좀 갔다오."하고 안해가 재촉하는 바람에 "

래 그래."하고 대답하며 곧 일어섰다.

오주의 안해가 본집과 연신 있어 지낸지 오래다. 오주의 안해는 남의 이목이

부끄럽다고 신뱃골 간 일이 없지마는 오주의 장모는 불쌍한 딸이 못 잊혀서 개

래동을 한두 번 왔다 가기까지 하였다. 오주가 새벽 나서서 신뱃골로 장모를 데

리러 가는 갈 때는 줄달음을 치다시피 하여 아침 전에 들어가고 올 때도 늙은

장모를 업고 다리 힘 자라는 대로 빨리 온 까닭에 점심때 조금 지나 돌아왔다.

오주가 집에 들어오며 "장모 뫼셔 왔네." 하고 소리지르고 방문을 열어서 장모

를 앞서 들여보내는데 그 장모가 "아이구머니." 하고 방문턱에 주저앉으니 "

왜 그러우?" 하고 오주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오주의

안해가 눈을 홉뜨고 누워 있는데 그 눈이 숨지는 사람의 눈과 같았다. 오주가

장모를 떠밀다시피 하고 방으로 들어와서 안해 옆에 가서 펄썩 주저앉으며 곧

어깨를 쥐고 흔들었다."여보게, 정신 차리게." "여보게, 장모님 오셨네." "

장모님 오셨어." 오주가 연거푸 큰소리를 질러도 오주의 안해는 대답이 없었다.

장모가 이것을 보고 눈자위를 붉히면서 "저리 좀 비켜나게. 나 좀 보세." 하고

오주의 비켜주는 자리에 들어앉아서 입을 딸의 귀에 대다시피 하고 "이애 이애

정신 좀 차려라. 이애 이애." 하고 목멘 소리로 부르니 대답은 여전히 없으나

바로 섰던 눈동자가 돌기 시작하며 걷어들렸던 눈꺼풀이 내려덮였다. 오주의 안

해가 참없이 잦치르는 아픔을 배기다 못하여 까물치듯이 정신을 잃었다가 귀에

익은 어머니 목소리에 정신이 돌아서 거북스럽게 눈을 뜨고 "어머니!" 하고

손을 잡으려고 더듬었다."옳지, 인제 정신이 았구나." 하고 어머니가 딸의 손

을 쥐고 "살아났군 살아났어." 하고 오주의 안해의 얼굴을 들여다볼 때 오주의

안해는 "아이구머니 아이구머니." 하고 앓는 소리 하다가 "어머니 물 좀 주.

" 하고 마른 입속을 벌려 보이었다."더운물이 있겠나?" "찬물은 먹여 못 쓰

?" "찬물 못 먹네. 오주가 장모의 말을 듣고 부엌으로 물 데우러 나가는데 "

장모는 방바닥에 손을 대어 보며 "방이 차니 불 좀 나우 넣게." 하고 부탁하였

. 오주가 물을 한 솥을 붓고 때는 중에 장모가 나와서 "물이 그저 안 더웠

?" 하고 솥을 열어보더니 "무슨 물을 이렇게 많이 부었나. 에 사람두."

고 간신히 거냉된 물을 사발에 조그만치 떠가지고 들어가며 "어서 불이나 많이

때게." 하고 오주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불을 더 때는 중에 안해의 앓는 소리가

높아져서 오주가 가서 방문을 열고 "왜 더 아프다우?" 하고 방으로 들어가려

고 하니 장모가 손을 내저으며 "얼른 문 닫히게. 그러구 자네는 들어오라기 전

엔 들어올 것 없네." 하고 말을 일러서 오주는 다시 부엌에 와서 잎나무를 아궁

이에 그러넣고 앉아 있었다. 한동안 뒤에 안해의 낑낑 애쓰는 소리와 장모의 어

차어차 힘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여 오주는 궁둥이에 좀이 쑤시어서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여러 차례 방문 밖에 가서 기웃기웃하였다. 해가 거의 다 져

갈 때 방안에서 "으아 으아" 갓난애의 소리가 났다. 부엌에서 잎나무를 깔고

퍼더버리고 앉았던 오주가 펄쩍 뛰어 일어났다. 방문 밖에 가서는 고지식하게

방문을 열지 않고 방안에 있는 장모에게 말을 물었다."났지요?" "났네." "

무어요?" "딸일세. 섭섭한가?" "딸이라두 낳았으니 좋지만 딸이 아들만 하

겠소." "그렇지." 장모의 웃는 소리를 듣고 오주가 "왜 웃소?" 하고 물으니

장모는 그저 "아닐세." 하고 대답하면서도 역시 웃었다."인제 좀 들어갑시다.

"조금 더 기다리게. 오주가 장모의 들어오란 말을 기다리다 못하여 나중에

"고만 들어갈라우." 하고 곧 방문을 버썩 여니 "얼른 들어오구 문 닫게."

고 장모는 바람을 막느라고 갓난애 모자를 몸으로 가리었다. 오주가 황망히 문

을 닫고 들어서서 눈감고 누워 있는 안해를 내려다보다가 장모 옆에 와 앉아서

홑옷가지로 싸 동여놓은 갓난아이를 들여다보았다. 아이가 얼굴이 보기 싫게 생

겨서 이쁜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데가 없어 보이었다."못두 생겼소." "자네

닮았는데." "기집애가 날 닮아 쓰겠소." "기집애로 못 쓰겠거든 사내로 쓰게

." 오주는 장모가 실없은 말 하거니 생각하였다. 말하는 장모와 듣는 오주가

다같이 웃을때 오주의 안해가 영채 없는 눈을 뜨고 보았다."어머니." "?"

"참말 기집애요?" "기집애면 섭섭하겠니?" "아니." 안해가 기운 없는 말을

그치고 다시 눈을 감을 때 오주가 아이 싸놓은 것을 밑으로 걷어치고 들여다보

"자지 달렸네, 멀쩡한 사낼세." 하고 소리쳐서 안해를 알려주고 곧 장모를

돌아보며 "왜 속였소?" 하고 책망하듯 말하니 "그러면 명이 길다네."하고 장

모는 웃었다. 오주의 안해는 얼굴에 별로

기쁜 빛이 없었지만 오주는 입이 절로 벌어졌다. 장모가 방구석에 있는 미역과

쌀을 가지고 나가서 국 끓이고 밥 짓는 동안에도 오주는 줄곧 그대로 앉아서 모

자를 번갈아 보며 싱글벙글 좋아하였다. 장모가 국밥을 퍼가지고 들어온 뒤 오

주가 안해를 일으켜 앉히려고 하니 장모가 가만히 뉘어두라고 말리었다."

그러우?" "아직 앉지 못하네.""앉을 기운이 없으면 장모님이나 내나 안구 앉

읍시다.""아니야. 아파서 못앉아. 아이가 저렇게 크니 어미가 성할 수 있나."

"어디가 아파서 앉지를 못하우? 앉혀 봅시다.""고만두고 얼른 이거나 받게."

장모가 집어주는 국그릇 밥그릇을 오주가 누운 아내 앞에 받아놓고 장모와 같이

권하였다. 정작 아이 어머니는 국 한 모금 마시다 말고 오주가 첫국밥을 달게

먹었다.

 

후산하고 삼 나가고 아이 어머니가 국밥을 조금씩 먹은 뒤에 오주의 장

모는 신뱃골로 돌아갔다. 해산에 지위진 오주의 안해가 조금씩 갱생하여 가다가

한이레가 지난 뒤부터 새삼스럽게 부기가 생기고 신열이 생기더니 불과 며칠 안

에 수족까지 똥똥 붓고 밤이면 열에 뜨이어서 헛소리까지 하게 되었다."여보,

나하고 같이 가잔 말이오?""저놈의 늙은이 왜 데리고 왔소?""고모부가 다

무어요, 원수지."이런 똑똑한 말보다 똑똑치않은 소리가 더 많았다. 밤새도록 신

열이 오르고 내리지 않다가 식전이면 조금씩 내리는데 하루 식전에는 오주의 안

해가 정신기가 훨씬 낫게 돌아서 오주를 보고 평일과 같이 수작하였다."나 때

문에 여러 날 잠을 못자서 눈이 부숙부숙하오. 낮잠이라도 좀 자오.""내 걱정

마라.""주인집 일이나 밀리지 않았소?""그까지 일은 밀려두 상관없네. 자네

병이나 얼른 낫게.""나는 아무래도 죽을까 보오. 눈만 감으면 죽은 사람들이

보이오.""나는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죽은 위에 가끔 꿈에 보여두 고뿔 한번

아니 아니 앓네.""예사때 꿈과 달라요. 내야 죽어도 아까울 것 없지만 핏덩이

가 불쌍하오."하고 말할 때 마침 어린아이가 울기 시작하니 오주의 안해는 곧

우는 아이를 앞으로 끌어다가 젖을 물리고 알아듣는 것에게 말하듯이 말하였다.

"어미 죽기 전에 어미 젖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아모쪼록 병없이 잘 자라서

수명 장수 오래 살고 불쌍한 어미 생각해라. 어미가 세상에 났던 표적이 너 하

나뿐이다. 어미 명이 남은 것 있으면 너게 이어주마. 죄없는 어린것이 어미 없이

도 잘 자라도록 도와 줍소사. 어미가 죽어 혼만 남더라도 신명께 축수하마. 어미

대신 오래오래 살아라. 그러나 너 같은 없는 사람의 자식을 누가 젖을 먹여주랴.

네가 밥 먹게 되기까지 살다 죽었으면 한이 없겠다만 젖 한번 배불리 못먹여보

니 어미 맘이 어떠하랴. 어미가 죄 많아서 너를 핏덩이로 두고 죽는다." 오주의

안해가 나중에는 목이 메어 말은 못하고 눈물만 흘리었다. 의약 없는 두메 형세

없는 집에 약한 몸에 중한 병이 들면 죽을 사람으로 칠 수밖에 없다. 오주의 한

해가 약 한 첩 못 얻어 먹고 앓는 중에 정신 좋던 날 낮 후부터 신열이 훨씬 더

하여서 정신 잃은 채 며칠 동안 고통하다가 나중에 고통이 가라앉는 듯 신열이

갑자기 내리고 신열이 내리며 숨이 따라 그치었다. 아들 낳은 뒤 세이레가 겨우

지나고 오주와 같이 산 뒤 일 년이 채 못 되어서 오주의 안해는 박명한 미인으

로 일생을 마치었다. 초상 때 동네 인심도 있거니와 정첨지가 도와주고 유복이

가 힘을 써서 오주 안해의 초종 범절은 과히 마련 없지 아니하였다. 유복이 안

해와 오가 마누라까지 초종중에 한 번씩 넌지시 왔다갔는데 오주의 장모는 장삿

날까지 한번 오지 아니하였다. 신뱃골에 마마가 들어서 오주의 처남 아이가 걸

린 까닭에 오주의 장모는 아들마마시키느라고 딸의 초종을 와서 보지 못한 것이

었다. 오주가 급히 장모보고 할 말이 있어서 바로 장사 이튿날 신뱃골로 장모를

보러 갔다. 오주가 장모의 잡 삽작 안에 들어서려고 할 때 봉당 정화수 상 앞에

앉았던 장모가 등겁하여 들어오지 말라고 손짓하였다. 오주가 영문을 목라서 주

춤하고 서자, 장모가 쫓아내려와서 삽작 밖으로 같이 나왔다. 부정하다고 집안에

못 들어서게 한 것을 안 뒤에 오주는 밖에 서서 이야기하는데 일기 좋아 장사

잘 지낸 것부터 대강 이야기하고 나서 "어린것 말 좀 할라구 급히 왔소."하고

장모를 바라보니 "어린것이 어미의 한세상 났던 표적인데."하고 장모는 손등으

로 눈을 이리 씻고 저리 씻고 하였다."죽기 전에 그런 말 합디다. 그런 말이

없더라도 잘 길러야 할텐데 어떻게 했으면 좋겠소?""자네가 형세가 있으니 유

모를 대나, 어떻게 하나?""아무리 생각해두 장모가 좀 길러주어야겠소.""

가 젖도 없이 어떻게 기르나?""젖을 얻어먹여서라두 길러주시우. 내가 버는

일 년 사경은 모두의 젖값으로 데밀 테요.""

차 의논해서 좋도록 하세.""차차가 다 무어요? 지금 참젖으루 연명을 시키는데

하루가 급하우." "이 동네 마마가 끝난 뒤에 내가 데려옴세.""언제 마마 끝

나기를 기다리구 있소. 곧 좀 데려와야겠소.""집의 마마 배송이나 내야지.""

언제 배송내우?""댓새 후에는 내게 되겠네""그럼 댓새 뒤에 내가 어린것을

데리고 오겠소.""지금 자네가 데리고 있나?""어디 맡길 데 있소. 그럼 댓새

뒤에 오리다."하고 오주는 총총히 장모를 작별하고 돌아섰다. 오주는 안해 죽은

설움보다 어린애 살릴 걱정이 더 많았다. 낮에는 어린애를 폭 싸서 가로 안고

젖 있는 여편네를 찾아다니는네, 한 차례 가고 두 차례 가면 벌써 토심들이 없

지 아니하여 오주는 성정을 참고 비위를 부리었다. 낮은 오히려도 낫지만 밤이

큰 일이었다. 밤에 어린애가 배고파 울면 오주는 안절부절을 못하였다. 오주가

신뱃골 갔다온 후 사흘 되던 날 밤중에 어린애가 자다 깨어서 울기 시작하여 오

주는 어린애를 끼고 누워서 북두갈고리 같은 손으로 뚜덕뚜덕 달래도 어린애가

울음을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일어나서 가로 안고 둥둥이를 쳤다. 어린애가

울음을 그칠 듯하다가 그치지 아니하여 오주는 가로 안은 채 방안으로 돌아다니

며 우애우애 하고 얼러보았다. 전에는 엔간하면 그치던 어린애 울음이 도리어

점점 더 쇠었다. 오주는 젖을 얻어먹이러 나가 볼까 하고 생각하다가 이 밤중에

누가 일어나서 젖을 주랴 돌쳐 생각하고 어린애를 다시 눕혀놓고 숭늉 떠다 둔

것을 조금씩 입에 흘려넣었다. 어린애가 사레가 들려서 캑캑하다가 다시 울음을

내놓으니 오주는 상을 찡그리면서 숭늉 뜨던 숟갈을 내던지고 손가락 하나를 입

에 대어주었다. 어린애가 손가락을 빨아보느라고 잠깐 동안 그쳤다가 또다시 울

음을 내놓는데, 불에 데인 것같이 울어서 오주는 다시 가로 안고 일어서서 정신

없이 들까불었다. 어린애는 악패듯이 울고 오주는 미친 사람같이 중얼거리었다.

오주의 이마에 진땀이 솟았다. 오주의 상호가 험하여졌다. 오주의 입에어 제에기

소리가 한마디 나오자마자 어린애가 방바닥에 떨어졌다. 깩 소리 한번에 어린애

울음이 그치었다. 이튿날 식전 해가 높이 뜬 뒤까지 오주가 집에서 나오지 아니

하였다. 정첨지가 아침밥을 먹을 때 며느리를 보고 "오늘 식전에 오주를 볼 수

없으니 웬일이냐? 밥을 가져갔느냐?" 하고 물어서 며느리가 "아니오." 하고 대

답한 뒤 "요즈막같이 나무 한 짐 안 해오군 남의 밥 먹기 염체없겠지." 하고 혼

자 말하니 "그 사람이 그런 염체나 차릴 줄 아나." 하고 정첨지 아들이 안해의

말 뒤를 이었다."요새는 어린애 젖 얻어먹이러 다니는 게 일인 모양이야." "

린 목숨이 불쌍해서 젖모금 먹여주는 사람도 한두 번 말이지 누가 번번이 먹여

준답디까." "그러니까 왼동네를 다 돌아다니게 되지." "남에게 간구한 소리

하는 사람이 고분고분이나 해야지요. 아까 돌쇠 어머니가 와서 말하는데 곽서방

이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을 먹여달라는데 한두 번은 장 먹여주었지만 어제 저

녁때 세번째라나 네번째 왔더래. 그래서 곽서방네 유모요? 내 자식 먹일 젖도

없소 하고 소리를 좀 질렀드래요. 그랬더니 버쩍 앞으로 대어들며 안 먹여 줄

테요? 유모 아니래두 좀 먹여주 하고 어린애를 막 갖다 안기더라오. 안 받으면

곧 주먹다짐을 할 것 같아서 받기는 받아가지고 돌쇠 동생 작은쇠에게 막 다 빨

리고 난 빈 젖꼭지를 한동안 빨려서 돌려보냈다고 하고 웃습디다." "빈 젖인

지 부른 젖인지 젖통만 보면 대번 알 테지만 오주같이 데면데면한 군이야 빈 젖

꼭지라두 오래만 물려 두면 젖을 많이 먹이는 줄루 알구 좋아했을걸." 하고 내

외가 받고채어 가며 지껄일 때 정첨지가 "어린애는 일간 외가에 갖다 맡긴다더

. 어린애만 맡기구 오면 그 동안 일 못한 오력을 낸다구 말하더라." 하고 오

주에게 들은 말을 옮긴 뒤에 "오늘 이때까지 꿈쩍 아니하면 혹 병이 나서 누웠

는지두 모르니 밥 먹구 좀 가봐라." 하고 아들에게 말을 일렀다."황소 같은

사람이 무슨 병이 나겠소?" "너무 상심되어서 병이 났는지 누가 아니? 잠깐

가봐라." ",가보지요." 정첨지 아들이 밥 먹은 뒤에 오주의 집에 와서 방문

을 열고 보니 어린애를 방 한중간에 눕혀놓고 오주가 그 앞에 앉아서 울지도 않

는 것을 뚜덕거리고 있는데 머리는 상투가 풀려서 범벅이 되었었다.

 

정첨지 아

들이 방문 앞에 서서 "일어나 앉았네그려." 하고 소리치며 곧 "왜 밥 안 먹

?" 하고 물으니 오주가 대답도 없이 흘끗 돌아보는데 눈알이 허공에 달린 것

같았다."왜 밥 안 먹어? 배고프지 않은가?"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묻는 말은

대답 않고 별안간 어린애를 끌어안고 일어서며 "옳지 옳지, 배고프지. 젖 먹으

러 가자. 울지 마라. 젖 먹으러 가자." 하고 방문 앞에 와

서 정첨지 아들이 문 막고 섰는 것을 보도 말도 없이 발길로 동가슴을 내질었

. 정첨지 아들이 마당에 나가자빠진 것을 오주는 본 체 아니하고 휘황스럽게

걸음을 걸어서 밖으로 나갔다. 정첨지 아들이 어이없는 중에 오주의 행동을 수

상히 생각하여 오주의 방을 한번 자세히 둘러보니 어린애 덮개, 오주의 머릿수

, 숭늉 그릇, 숟갈 들이 어질더분하게 널려 있는데 오주 앉았던 자리 앞에는

뜯어놓은 머리털이 수북히 쌓여 있었다. 정첨지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그 아비

에게 이야기할 때 돌쇠 누이 열댓살 먹은 계집애가 뛰어와서 정첨지를 보고 "

영감님 우리 집에 큰일났어요." 하고 우는 소리를 하였다."왜그러느냐?" "

곽서방이 죽은 어린애를 안고 와서 젖 먹여 달라고 야단치는데 우리 어머니 머

리채 드는 걸 보구 왔어요. 그 동안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어요. 영감님 좀 가

서 말려주세요." "너의 아버지는 어디 갔느냐?" "새벽에 나무 갔어요." "

오냐, 너 먼저 가거라." "같이 좀 가셔요." 하고 계집애가 졸라서 정첨지가

계집애를 앞세우고 돌쇠 집으로 가는데 정첨지 아들도 아비 뒤를 따라갔다.

리를 풀어 흩뜨린 돌쇠 어머니는 앞서 도망하여 오고 어린애를 한 팔로 끼어안

은 오주는 뒤를 쫓아오는 중이었다. 돌쇠 어머니가 "미친 사람, 미친 사람."

하고 정첨지 품으로 대어드는데 오주보다도 돌쇠 어머니가 더 미친 사람같이 보

이었다. 정첨지가 돌쇠 어머니를 한옆에 비켜세우고 앞으로 나서서 "오주, 이거

웬일인가?" 하고 소리를 지르니 우뚝 서서 물끄러미 정첨지를 보면서 "어린것

젖 좀 얻어먹일라구 나왔소." 하고 대답하는데 하는 말은 모르겠으되 보는 눈

은 성한 사람 같지 아니하였다."우리 집으루 가세." 하고 정첨지가 부드럽게

말하며 오주의 손을 끌려고 하니 오주가 손을 뿌리치고 곧 돌쇠 어머니에게로

가까이 가면서 "안 먹여 줄 테야!" 하고 눈알을 부라렸다. 돌쇠 어머니는 간신

히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걷어서 틀어얹는 중에 오주 오는 것을 보고 질색하여

정첨지 아들의 뒤로 몸을 피하였다. 오주가 정첨지 아들의 앞으로 대어들며 비

켜 세우려고하니 정첨지 아들이 "이 사람이 참말 미쳤나?" 하고 두 손으로 오

주를 벌컥 떠밀었다. 오주가 황소 영각 켜는 소리를 하고 정첨지 아들에게 덤비

어서 한손으로 멱살을 쥐고 흔들었다. 정첨지 아들이 머리를 송충이 대가리같이

흔들다가 나중에는 숨이 막혀 캑캑하였다. 정첨지가 보다가 못하여 "여보게,

주 고만 놓게." 하고 말리니 오주가 정첨지를 보며 한번 싱끗 웃고 두어 번 고

개를 끄덕끄덕하고 멱살 쥐었던 손을 탁 놓았다. 정첨지가 이것을 보고 곧 "

, 인제 우리 집으루 가세. 젖을 먹이더라두 길에서야 먹이는 수 있나. 돌쇠 어

머니하구 같이 우리 집으루 가세." 하고 오주의 눈치를 살피고 "잠깐만 우리

집으루 같이 갑시다." 하고 돌쇠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오주가 정첨지의 말을

거역하지 아니하고 정첨지 집으로 올 때 어머니는 치마꼬리에 달라붙어 섰는 딸

을 작은쇠 보아주라고 집으로 보내고 정첨지 뒤를 따라왔다.

오주가 공연히 혼자 중얼중얼하며 정첨지 집을 향하고 오다가 홀저에 돌아서

서 뒤에 오는 정첨지를 보고 "이 애가 어디 병이 났나 보아주시우." 하고 어린

애를 앞으로 내밀었다. 정첨지가 어린애를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오주를 덧들

이지 아니하려고 "우리 집에 가서 보세." 하고 달래어서 집에까지 데리고 왔

.

오주가 어린애를 돌쇠 어머니에게 안겨주려고 하는데 정첨지가 가로 나서서

"거기 놓게. 무슨 병이 났나 어디 좀 보세." 하고 말하여 오주가 곱게 내려놓

는 어린애를 구부리고 들여다보는체하다가 "어린애 병이 급한 병일세. 지금 시

각이 위태한걸." 하고 섰는 오주를 치어다보았다. 오주가 말을 뇌듯이 "급한

병 급한 병." 하고 중얼거리며 어린애 옆에 주저앉았다가 별안간 정첨지의 소매

를 잡고 매어달리며 "영감, 내 아들 살려주시우." 하고 전신을 불불불 떨었다.

정첨지가 한동안 미간에 주름을 잡고 생각하다가 "오주, 나 하라는 대루 할 텐

? 그러면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줌세." 하고 말하니 오주는 정첨지의 얼굴을

뻔히 치어다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리였다."지금부터 자네 아들을 내게 맡기구

자네는 다시 아랑곳 말게. 내가 자네 아들을 살려서 이 돌쇠 어머니더러 신뱃골

외조모에게 데려다 두라구 할 텔세. 어떤가? 그렇게 할 텐가? 여기 있는 동안

자네가 보자든지 외조모에게 보낼 때 자네가 같이 가자든지 하면 자네 아들을

살릴 수 없네." 하고 정첨지가 소리를 꽥꽥 질러 말하니 오주는 멍하고 있었다.

정첨지가 "내 말대루 할 테면 어린애는 여기 두구 자네는 저 방에 들어가있게.

"하고 일변 오주에게 말하며 일변 옆에 섰는 자기 아들에게 눈짓하였다. 정첨지

아들이 오주를 앞세우고 머슴방에 들어가서 슬슬 달래어 쓰러 눕히고 나온 뒤에

정첨지는 급히 사람을 불러서 죽은 어린애를 갖다 묻게 하고, 또 늙은이의 다심

으로 오주 장모에게 사람을 보내서 어린애 죽고 오주 상성한 것을 자세히 기별

하고 이 다음 혹시 오주가 가서 어린애를 보자고 하더라도 말을 잘 꾸며서 속이

라고 부탁하여 두었다.

오주가 병이 났다. 물 한 모금 입에 넣지 않고 인사 정신을 못차리고 앓는 중

"우네."아이고 또 우네."" 하고 가끔 앞을 더듬을 뿐 아니라 "자꾸 우네."

젖 얻어먹이러 가야겠다." 하고 여러 차례 뛰어 일어나기까지 하였다. 십여 일

동안 오주가 되게 앓고 머리를 들고 일어난 뒤에도 오주의 귓속에는 가끔 어린

애 울음소리가 징하게 울려서 남이 보기 괴상하도록 오만상을 찡그렸다. 다른

사람은 이것을 보고 오주의 병이 아직 다 낫지 아니했거니 생각하였다. 그러나

오주는 병 후에 본정신이 완구히 돌아서 정첨지보고 어린애 말을 묻지 않을뿐더

러 신뱃골 장모를 보로가서도 어린애 이야기는 입밖에도 내지 아니하였다. 오주

의 언어와 동작은 성한 사람이 다 되었으나 전에 없던 성미가 한 가지 새로 생

겨서 어린애를 좋아 아니하고 더욱이 우는 어린애를 싫어하였다. 어린애 우는

소리가 멀리 들릴 때는 상을 찡그리고 귀를 막을 뿐이지만, 어린애 우는 것을

눈앞에 볼 때는 곧 상열이 되어 가지고 눈이 뒤집혔다. 어린애를 태기치려고 팔

이 절로 움직움직하였다. 오주 자기도 흉악한 일로 알고 억제하려고 맘을 먹건

만 어린애 우는 소리가 귀에 들리기만 해도 맘이 수상스러워지는데 더구나 우는

상호가 눈앞에 보이기까지 하면 오주의 먹은 마음은 홍로점설같이 사라지고 미

친 마음이 왈칵 나왔다. 오주는 우는 어린애를 멀찍이서 보면 휘황스럽게 달음

박질을 쳐서 다른데로 피하였다.

어느 날 다 저녁때 오주가 산더미 같은 나뭇짐을 지고 정첨지 집 못미처 있는

우물 옆을 지나오는데 물동이를 내려놓고 섰는 여편네들과 쌀을 씻고 앉았는 여

편네들이 참새같이 지저굴거리던 중에 여편네 하나가 내달아서 "곽서방 마침

잘 오는구려. 여보 나뭇짐 버티어놓고 두루박 좀 건져주오." 하고 오주를 붙잡

았다."여보 귀찮소." "이녁 주인네 집 두루박을 내가 얻어가지고 왔다가 우

물에 빠뜨렸소. 좀 건져내오." "빠뜨린 사람이 건지구려." "내가 건져낼 수

있으면 이렇게 청할라구. 여보, 그러지 말고 좀 건져주구려." "성가시어 못살겠

. 내가 나뭇짐 갖다 두구 바지랑대 가지구 오리다." "바지랑대 저기 있소."

오주가 그 여편네에게 붙잡혀서 나뭇짐을 버티어놓고 바지랑대로 두레박줄을

건지는 중에 우물 가까이 사는 동네 소임의 안해가 돌전 어린애를 업고 물을 길

러 나왔다. 여러 여편네 중에 체신 없는 젊은 여편네 하나가 어린애를 귀애한답

시고 하다가 도리어 울려놓았다. 오주는 우물 속을 들여다보며 두레박줄을 끌어

올리느라고 애 업은 여편네가 온 줄을 몰랐다가 뜻밖에 애 우는 소리를 듣고 깜

짝 놀라서 거의 손에 잡히게 되었던 두레박줄을 도로 떨어뜨리게 되었다. 오주

가 바지랑대를 내던지고 돌쳐서서 소임의 안해를 흘겨보다가 우르르 쫓아가서

옆에 섰는 다른 여편네들을 잡아제치고 우는 애를 어머니 등에서 빼앗으러 들었

. 애어머니는 질겁하여 새된 소리를 지르고 여러 여편네들은 혹은 덩달아서

소리를 지르고 혹은 오주를 붙잡고 날치었다. 오주가 제미 소리를 지르며 곧 애

어머니를 우는 애 업은 채 번쩍 들고 우물에 가서 텀벙 집어넣고 속이 시원한

듯이 껄껄 웃고 나뭇짐도 내던지고 정첨지 집으로 뛰어갔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와서 우물 속의 여편네를 건져냈다. 물이 깊지 않고 빠질

때 별로 다친 데가 없어서 다행히 애 어른 다 목숨은 보전하였느나, 그 여편네

의 친정과 시집에서 오주를 때려죽인다고 들고 나섰다. 정첨지가 동네의 유력한

사람이라 소임을 불러다가 오주의 미친 병을 말하고 "병이 죄지 사람이 무슨

죈가? 천행으루 이왕 모자가 다 무사했으니 요란스럽게 굴지들 말게. 오주를 섣

불리 건드리면 여러 인명을 상할 테니 동네에 큰일일세. 나두 오주를 집에 두었

다가 무슨 누를 받을는지 모르니까 차차 봐가며 내보낼 작정일세."하고 타일러

서 오주의 저지른 일을 무사 타첩시키었다.

 

오주가 앓고 나서 신뱃골 갈 때 청석골을 들렀지만 유복이가 꺽정이와 같이

칠장사 선생에게 새해 세배하러 가고 집에 있지 아니하여 서로 만나보지 못하였

었다. 소임의 떨거지의 말썽이 끝이 나서 오주가 소임과 화해하던 날 저녁때 정

첨지 아들이 밖에 있다 안으로 들어오는 길에 쇠죽 쑤는 오주를 보고 "여게 오

, 자네가 형님이라구 하는 사람 밖에 왔네."하고 일러주었다. 오주가 쇠죽을

쑤다 말고 뛰어나와서 삽작 밖을 둘러보다가 아무도 없는 것을 보고"형님 어디

있소?"하고 큰소리를 질러서 찾으니 "나 여기 들어앉았다."하고 유복이가 머

슴방 문을 열고 머리를 내밀었다. 오주가 한달음에 방문 앞에까지 뛰어와서 "

형님 오래 못 봤소, 벌써 왔소?"하고 유복이를 들여다보니 유복이는 벌써 왔다

는 대답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들어오너라."하고 문길을 비키어 주었다.

오주가 방안에 들어와서 유복이와 마주 앉으면서 "죽산 갔다 언제 왔소?"하고

물으니 유복이가 "어제 왔다." 대답하고 곧 "너 그 동안 몹시 않았다지?"

고 물었다."그랬소." "집에 와서 네가 앓았단 말은 들었지만 무슨 병으로 앓

았는지 몰랐더니 지금 너의 젊은 주인에게 말을 들어보니 병이 괴상하구나." "

지금 다 나았으니까 괜찮소." "아직두 다 낫지 않았다며?" "아니 다 나았소.

" "병이 다 나은 사람이 공연히 남의 집 여편네나 어린애를 우물에다 집어넣는

단 말이냐?" "내가 앓구 난 뒤부터는 당초에 어린애가 보기 싫소. 더구나 우

는 애는 박살을 내놓구 싶소. 남의 집 어린애를 우물에 집어넣은 것이 잘못한

일인 줄 알지만 이 담에 다시 그런 일을 안 하게 될지 내 일이라두 내가 장담

못하겠소."병 꼬투리가 남아 있어 그런 것 아니냐?" "그런지 모르겠소."" "

"너 이 집 머슴살이 고만두구 내게 가서 같이 있자." "산중에 어린애가 없어

좋기는 하지만 이 집 첨지 영감이 잘 들어줄는지 모르겠소." "아까 그 아들의

말 눈치는 그럴 것 같지 않더라. 또 설혹 붙잡더래두 네가 떼치구 가면 고만 아

니냐." "그는 그렇지요. 그러나 내가 청석골에 가서 무어 하우?" "무어 하다

. 나하구 사냥이나 다니자꾸나. 꺽정이 언니가 너준다구 굵은 쇠도리깨를 일부

러 만들었더라. 이번에 내가 갖다 집에 두었다. 그 도리깨 가지구 사냥질 다니면

좋지 않겠니?" "그렇게 하겠소." "그럼, 속히 머슴살이 고만두두룩 해라."

"오늘 고만두구 같이 갑시다." "여러 해포 있던 집을 그렇게 졸창간에 떠날

수 있겠니?" "간다구 말하구 사경이나 찾으면 고만 아니오. 잠깐만 여기서 기

다리시우."

오주가 곧 안에 들어가서 정첨지 식구에게 머슴살이 고만두고 나갈 뜻을 말하

니 정첨지의 아들과 며느리는 말할 것도 없고 정첨지까지 힘지게 만류하지 아니

하였다. 오주는 그날로 정첨지 집을 하직하고 유복이를 따라가서 청석골 오가의

집의 한식구가 되었다.

수삭 지난 뒤부터 탑고개에 쇠도리깨 가진 도적이 나타나기 시작하여 흉악하

기로 소문이 났다. 댓가지 도적이 나온 뒤에 오가가 여차가 되고 쇠도리깨 도적

이 나온 뒤에 댓가지 도적이 여차가 되었다. 댓가지 도적은 물건이나 빼앗고 말

지마는 쇠도리깨 도적은 사람의 팔뚝이나 정강이를 장난삼아 분질렀다. 그래도

어른은 대개 목숨을 보전하여 보내지만 어린애는 보기만 하면 곧 박살하여 죽이

었다. 쇠도리깨 도적이 다른 사람이 아니고 개래동 정첨지 집에서 머슴 살던 곽

오주인 것은 다시 말할 것 없고 곽오주가 청석골 두령 한 사람으로 화적질할 때

각처에서 어린애들을 무지스럽게 죽여서 "곽오주 온다." 소리 한마디가 우는

어린애의 울음을 그치게 하도록 무서운 사람이 된 것은 뒷날 이야기다. 오늘날

까지도 지각없는 부녀자들이 우는 어린애를 혼동할 때 "곽쥐 온다, 곽쥐 온다.

"하는 것을 보면 곽오주 이름이 당시에 어떻게 무서웠던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망우당 곽재우의 아버지 곽월이가 오형제인데 그 오형제 이름이 모두 달아날

주 변이라 곽쥐란 말이 곽월 오형제로부터 났단 말이 있으나 이것은 억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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