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대지(Terre des hommes) 2
7. 사막 한가운데서
1)
지중해로 들어가면서 나는 낮게 뜬 구름을 만났다. 나는 고도 20미터까지 내려갔다. 소나기가 앞 유리창을 두드렸고, 또 기선 마스트를 들이받지 않으려고 무척 애를 썼다.
기관사 앙드레 쁘레보가 내게 담뱃불을 붙여준다.
"커피를 할까...."
그는 비행기 뒤쪽으로 사라졌다가 보온병을 들고 나온다.
나는 회전 속도 2천을 유지하기 위해 가끔 가스 핸들을 퉁겨 준다.
힐끗 계기반들을 훑어 본다. 내 신하들은 모두 공손하다. 바늘이 모두 제자리에 있다.
나는 바다를 한 번 내려다 본다. 바다는 빗발 아래서 끓는 커다란 대야 모양 김을 내뿜고 있다.
내가 만약 수상기를 타고 있었다면 바다가 그렇게 푹 패어있음을 애석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육상기를 타고 있다. 패어 있건 말건 내려앉을 수는 없다.
어째서인지는 모르나, 그것이 일종의 이치에 안맞는 안전감을 내게 주는 것이다.
바다는 내 것이 아닌 어떤 세계의 일부분의 이루고 있다.
여기서 사고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나와는 상관이 없고, 내게 위협을 주지도 못한다. 나는 바다에 대비해서 장비는 되어 있지 않으니까.
한 시간 반을 날자 비가 수그러진다.
구름은 여전히 낮게 드리웠지만, 이미 햇빛이 크나큰 미소처럼 뚫고 비친다.
나는 이 갠 날씨의 유유한 준비에 감탄한다.
나는 머리 위에 흰 솜의 켜가 덮여 있음을 짐작한다.
나는 돌풍을 피하기 위해 사행한다. 이제 그 복판을 가로지를 필요는 업다.
마침내 첫 하늘 조각이 드러난다.
나는 그것을 보기 전에 예감했었다. 왜냐하면 내 앞 바다 위에 초원의 빛을 띤 긴 띠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빛나는 진초록의 오아시스 같은 것으로서, 그것은 세네갈에서 3천 킬로미터의 사막을 넘어 남부 모로코에 다다랐을 때,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하던 저 보리밭 빛깔과도 흡사했다.
여기서도 나는 사람이 살 수 있는 고장에 접어든 느낌이 들어 가벼운 기쁨을 맛본다.
나는 쁘레뽀 쪽을 돌아본다.
"됐어. 잘 돼 간다!"
"네, 됐어요."
튀니스, 가솔린을 채우는 동안 나는 서류에 사인을 한다. 사무실을 나오는 순간, 다이빙할 때, 같은 '풍덩!' 하는 소리가 들린다. 울림이 없는 둔한 소리.
나는 그 순간에 전에도 이와 비슷한 소리를 들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는 차고가 폭발했었다. 그 목쉰 기침소리로 두 사람이 죽었었다.
나는 활주로를 끼고 길 쪽을 돌아다본다. 약간의 먼지가 피어올랐는데, 두 대의 고속으로 달리던 자동차가 충돌했던 것이다.
갑자기 얼음 속에 갇힌 것처럼 꼼짝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그쪽으로 달려가고 몇 사람은 우리에게로 달려온다.
"전화를 해... 의사를... 머리가...."
나는 심장이 죄어드는 것 같았다. 운명이 고요한 저녁 햇빛 속에서 기습에 성공한 것이다.
한 아름다움이, 아니면 한 지혜가, 한 생명이 짓이겨졌을 것이다.
비적들도 이렇게 사막 속을 걸어왔지만, 아무도 그 모래 위의 가벼운 발소리도 듣지 못했다. 주둔지 안에서 약탈하는 짧은 웅얼거림만이 들렸을 뿐이다.
그런 다음은 모든 것은 황금빛 침묵 속에 잠겨드는 것이다. 그것과 똑같은 평화, 똑같은 침묵....
내 옆에서 누군가가 두 개골이 깨어졌다는 말을 한다.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피투성이의 얼굴을 알고 싶지 않아 도로를 등지고 내 비행기 쪽으로 온다.
그러나 위협감은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조금 뒤에 그 소리를 다시 듣게 될 것이다.
시속 2백 70킬로로 시커먼 사구를 스쳐갈 때, 그와 똑같은 목쉰 소리, 약속 장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저 운명과도 같은, '콜록!'하는 소리를.
벤가지를 향해 출발!
2)
도중. 해가 지기까지는 아직도 2시간. 트리포리에 접어들었을 때 나는 벌써 검은 안경을 벗어버렸다. 그러자 모래가 금빛으로 물든다.
그런데 이 지구는 왜 이리도 적막할까?
나에게는 또다시 강물이며, 나무 그늘, 사람의 집들은 어떤 우연한 요행의 결함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바위와 모래의 영토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 나는 비행의 영역에 살고 있으니까. 나는 신전에 들어앉듯이 사람들은 본질적인 관례의 비밀에 의해 구원 없는 명상 속에 갇힌다.
이 속된 세상은 이미 희미해지고 곧 사라지려 하고 있다.
눈 아래 풍경이 아직은 불그레한 빛을 머금고 있지만, 무엇인지 벌써부터 거기에서 새어나가고 있다.
나는 이 시간만큼 값진 것을 아무것도 모른다. 정말 아무것도...
비행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사랑을 맛본 사람만이 나의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그러기에 나는 차츰차츰 태양은 포기한다.
사고가 났을 때 나를 받아 줄 드넓은 황금빛 표면도 나는 포기한다. 나를 안내해 줄 표적들도 포기한다. 나를 위해서 암초를 피하게 해 줄, 하늘에 솟아난 산들의 옆모습도 포기한다.
나는 깊은 밤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비행한다.
나를 위해 가진 것이라고는 별밖에 없다.
이 세계의 죽음은 천천히 이루어진다. 그래서 빛도 조금씩 내게서 없어져 가는 것이다.
땅과 하늘이 조금씩 섞여든다. 저 대지가 솟아올라 수증기처럼 퍼져나가는 것 같이 보인다. 첫 별들이 푸른 물속에서처럼 떨고 있다. 그것들이 단단한 다이아몬드로 변하기까지에는 아직도 오랫동안 기다려야 한다.
어떤 밤에는 날아가는 불꽃들이 하도 많아서 나는 별들 사이로 큰 바람이 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쁘레보가 고정 램프와 구급 램프를 시험해 본다. 우리는 빨간 종이로 전구들을 싼다.
"한 겹 더 쌀까...."
그는 한 겹 더 싸고는 스위치를 넣는다. 불빛이 아직도 너무 밝다.
그 빛은 사진관에서처럼 바깥 세상의 희미한 형상들을 지워 없앨 것이다. 그것은 종종 밤에 사물들에 붙어 있는 저 가벼운 무리를 망가뜨릴 것이다.
밤은 이제 이루어졌다.
그러나 아직 진짜 밤은 아니다. 초승달이 아직 남아 있다.
쁘레보가 뒤쪽으로 기어들어가 샌드위치를 갖고 나온다. 나는 포도 한 송이를 먹는다. 배가 고프지 않다.
시장기도 갈증도 느끼지 않는다. 나는 전혀 피로도 느끼지 않는다. 이대로 10년이라도 조종을 할 수 있은 것 같다.
달이 졌다.
벤가지가 캄캄한 밤 속에서 나타난다.
벤가지는 하도 깊은 어둠 속에 쉬고 있어서 아무런 무리로도 장식되어 있지 않다.
나는 거의 가깝게 다다라서야 도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비행장을 찾고 있으려니 붉은 표지등이 일제히 켜진다. 불빛들이 검은 장방형을 그려 놓는다.
나는 선회한다. 하늘로 향한 표지등 불빛이 화재의 분수처럼 곧바로 하늘로 치솟아 회전하면서 땅 위에 황금빛 길을 그린다.
나는 장애물을 잘 살피기 위해 여전히 선회를 계속한다.
이 공항의 야간 시설은 훌륭하다.
나는 속도를 늦추며 검은 물속인양 다이빙을 시작한다.
내가 착륙한 것은 현지 시간 23시였다.
나는 표지등 쪽으로 굴러간다.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장교와 사병들이 어둠 속에서 탐조등의 단단한 빛 속으로 나타나며 차례로 보였다 안보였다 한다.
사람들은 내 서류를 받고, 가솔린을 채우기 시작한다.
나의 통과 절차는 20분이면 완료 될 것이다.
"한 번 선회해서 우리 위를 지나가시오. 그렇지 않으면 이륙이 제대로 끝났는지 모르니까."
"출발!"
나는 장애물 없는 통로를 향해 이 금빛 길 위를 활주한다.
시문(사막의 열풍이라는 뜻)형인 내 비행기는 활주로에 충분한 여유를 남기고 무거운 기체를 떠올린다.
탐조등이 뒤따라와서 방향 선회의 방해가 된다.
마침내 그것은 나를 놓아준다. 그것이 나를 눈부시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나는 수직으로 반선회한다.
그때 탐조등이 다시 내 얼굴을 스친다.
그러나 닿자마자 내게서 달아나 그 긴 금빛 플롯을 딴 데로 돌린다. 이러한 조심성에서 나는 최대의 친절을 느낀다.
이제 나는 사막을 향해 다시 기수를 돌린다.
파리와 튀니지, 벤가지로부터의 기상 통보들은 시속 30-40 킬로미터의 뒷바람을 내게 알려준다.
나는 시속 3백 킬로 미터의 속도만을 믿는다.
알렉산드리아와 카이로를 맺는 직선의 한가운데로 기수를 돌린다.
이렇게 하면 나는 해안의 비행 금지구역을 피할 수 있을 것이고, 또 모르고 편류를 일으킬 경우에도 오른쪽이나 왼쪽에서 이들 두 도시 중 어느 하나의 등불을 만날 것이다.
바람이 그다지 바뀌지 않는 한 나는 3시간 20분 동안 비행할 것이다.
바람이 약해진다면 3시간 45분 동안을, 그래서 나는 1천 50킬로미터의 사막을 빨아들이기 시작한다.
달도 이미 없다.
별들이 있는 데까지 부풀어 오른 시커먼 타르. 나는 불빛 하나 볼 수 없을 것이고, 목표물 하나 도움을 받지 못할 것이다.
무전도 없으므로 나일강에 이르기 전까지는 사람이 보내는 신호도 받지 못할 것이다.
나는 이제 내 나침반과 '스뻬리' 이외에는 살펴볼 생각을 않는다.
계기의 어둠침침한 눈금판 위에서 완만한 호흡하고 있는 가는 라듐선 이외는 아무것에도 흥미가 없다.
쁘레보가 움직일 때마다 나는 가만히 중심의 변화를 수정한다.
나는 2천 미터로 상승한다. 그 높이이면 바람이 알맞을 것이라고 사람들이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가끔가다가 나는 전구를 켜본다.
계기 중에서 야광 장치가 없는 것을 관찰하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간을 나는 어둠 속에 깊이 갇혀 있다.
별들과 똑같은 광물성의 빛, 똑같이 쓸데없고 은연한 빛을 내며, 똑같은 언어로 말하는 내 작은 성좌 속에서.
나도 천문학자들처럼 하늘의 구조에 관한 책을 읽고 있다.
나도 또한 근면하고 청순하다고 느낀다.
외계에서는 모든 것이 꺼져 버렸다.
잘 견디어내던 쁘레보는 잠 속에 빠졌고, 그래서 나는 더욱 고독을 느낀다.
엔진의 부드러운 붕붕거림이 있고, 내 앞 계기반 위에는 이 모든 조용한 별들이 있다.
이럴 때면 나는 명상에 잠긴다.
우리는 이제 달의 혜택도 없고, 무전 연락도 없다.
우리가 나일강의 번쩍이는 물줄기에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에는 우리를 세계와 연결 지어 줄 어떠한 가느다란 끄나풀도 없다.
우리는 모든 것의 밖에 있으며, 우리의 엔진만이 타르 속에서 우리를 지탱하고 지속시켜 준다.
우리는 동화에 나오는 거대한 어둠의 골짜기, 시련의 골짜기를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서는 구조란 전혀 없다. 여기서는 과오에 대한 사면도 없다.
우리는 신의 자유의사에 맡겨져 있다.
배전반의 접촉점에서 광선이 새어나온다. 나는 쁘레보를 깨워 그것을 끄라고 한다.
쁘레보는 어둠 속에서 곰 모양 움직이더니 재채기를 하고 앞으로 나온다.
그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손수건과 검은 종이를 결합하기에 열중하고 있다.
나를 방해하던 그 광선은 사라졌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균열을 만들고 있었다.
그것은 계기 바늘의 라듐의 창백하고도 아득한 빛과는 전혀 다른 성질의 것이었다. 그것은 어두운 밤의 유흥장의 빛이었지 별의 빛은 아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그 빛은 내 눈은 부시게 하고, 다른 빛들을 지워버리는 것이었다.
비행 3시간.
강렬한 것 같은 빛이 오른쪽에서 솟아 오른다. 나는 지켜본다.
그때까지는 보이지 않던 기다란 비행기가 지나간 흔적 같은 것이 날개 끝의 등에 걸린다.
그것은 환해졌다 꺼졌다 하는 단속적인 빛이었다. 나는 구름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 구름이 내 램프에 반사되는 것이었다.
생각했던 것들에 다가온 지금 나는 맑게 갠 하늘을 원했었는데.
날개가 무리 아래서 반짝인다.
빛은 자리를 잡고, 고정되고, 번쩍이며, 또 날개 끝 쪽에서 장미빛 꽃다발을 이룬다.
커다란 소용돌이가 나를 뒤흔든다.
나는 두께를 모를 두터운 구름 덩이 한가운데를 날고 있는 것이다.
나는 2천 5백 미터까지 올라가 본다.
그러나 구름 위로 솟아나지 못한다.
1천 미터로 다시 내려간다.
꽃다발은 여전히 있어, 꼼짝도 않고 점점 더 번쩍인다.
그래, 좋다. 할 수 없지. 내게는 딴 생각이 있다.
빠져 나갈 때 똑똑히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저 불길한 여인숙의 등불 같은 빛이 싫다.
나는 어림해 본다.
'여기서는 야간 기체가 흔들린다. 이건 정상이다.
그런데 하늘이 맑고, 높이 날아 왔는데도 끊임없이 동요가 있었다. 바람이 조금도 자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나는 시속 3백 킬로 미터를 초과했던 셈인가.'
결국 나는 명확한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다.
구름에서 빠져 나가면 어떻게든 위치를 알아내도록 해야겠다.
이윽고 구름에서 빠져 나왔다.
그 꽃다발이 갑자기 사라졌다. 그렇게 사라진다는 것이 예삿일이 아니라는 예고다.
나는 앞을 주시한다. 그러자 일순간 하늘과 다음 구름 덩이 사이로 좁은 골짜기가 보인다.
꽃다발이 어느새 되살아났다.
나는 이제 이 끈끈이에서 단 몇 초 동안밖에는 벗어나지 못할 모양이다.
3시간 반 동안을 비행한 후에 이 끈끈이가 나를 불안에 몰아넣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한대로 전진하고 있다면 나일강이 가까워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재수가 좋으면 구름의 회랑 너머로 강을 볼 수 있겠지만 그러나 회랑은 그리 많지가 않다.
나는 감히 더 내려가지 못한다.
만약 내가 생각했던 만큼 속도가 빠르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도 고지 상공을 날고 있을 것이니까.
나는 여전히 다른 불안은 느끼지 않았으나 다만 시간을 허비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그러나 나는 나의 침착성에 4시간 50분의 비행이라는 한계를 긋는다.
이만한 시간이 지나면 설령 무풍 속을 날았다 하더라도 (무풍이란 있을 수도 없지만) 나는 벌써 나일 계곡을 넘어섰을 것이다.
구름의 가장자리에 이르자 그 꽃다발은 점점 더 자주 명멸하는 빛을 내더니 갑자기 꺼져 버린다.
나는 밤의 악마들과 하는 이런 암호 교신이 싫다.
파란 별 하나가 내 앞에 등대처럼 빛나며 나타난다.
별일까, 등대일까? 나는 이 불가사의한 빛, 마왕의 별, 이 위험한 초대도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쁘레보가 잠이 깨어 계기반에 점화한다. 나는 그와 그의 램프를 모두 밀어 젖힌다.
나는 방금 두 구름떼 사이의 단층에 접근한 것을 이용해서 아래를 관찰하려고 애썼다.
쁘레보는 다시 잠이 든다.
그러나 관찰할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다.
4시간 5분의 비행.
쁘레보가 내곁에 와서 않는다.
"카이로에 도착할 시간인데...."
"누가 아니래...."
"저건 별인가, 등대인가?"
나는 아까부터 엔진을 약간 죄었었는데, 그것이 아마 쁘레보를 깨운 모양이다.
그는 비행소리의 모든 변화에 민감하다.
나는 구름더미 아래로 빠져 나가기 위해 천천히 하강을 시작한다.
방금 나는 지도를 살펴보았다.
어쨌든 나는 표고 제로에 와 있을 것이었다.
나는 위험한 짓은 하지 않는다.
나는 강하를 계속하며 정북으로 진로를 바꾼다.
그러면 비행기의 창으로 도시의 불꽃들을 보게 될 것이다.
아마 그 도시를 지나쳤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은 왼쪽에 나타날 것이다.
지금 나는 적운 밑을 날고 있다.
그리고 나는 내 왼편으로 더 낮게 내려가고 있는 다른 구름을 스치며 날고 있다.
그 그물에 걸려들지 않으려고 기수를 북북동으로 향한다.
이 구름은 분명히 아래로 내려가서 내게서 지평선을 모두 가려버린다.
이제는 감히 더 고도를 낮출 수가 없다.
나의 고도계는 4백 미터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 기압을 알 도리가 없다.
쁘레보가 몸을 구부린다. 나는 그에게 소리친다.
"바다로 빠져나가 바다에 내려가 보세. 들이받지는 않게."
이미 항로를 벗어나 바다로 들어서지 않았다고 증명할 아무것도 없었다.
이 구름 밑의 어둠은 전혀 들여다 볼 수가 없다.
나는 창에 몸을 바짝 붙인다. 아래를 확인해 보려고 시도한다.
불빛이나 표적을 찾아내려고 애쓴다.
나는 재를 파헤치는 사람이다. 나는 아궁이 밑바닥에서 생명의 불씨를 찾아내려고 애쓰는 사람과 같다.
"등대다!"
우리 둘은 동시에 이 명멸하는 함정을 보았다.
얼마나 미친 짓인가! 이 유령 등대, 이 밤의 속임 꿈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더란 말인가?
왜냐하면 쁘레보와 내가 날개 밑 3백 미터쯤에서 그것을 다시 찾아내려고 몸을 숙인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앗!"
나는 다른 아무 말도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우리의 세계를 뿌리째 뒤흔드는 어마어마한 폭음밖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던 갓 같다.
시속 2백 70킬로미터로 우리는 땅을 들이받았던 것이다.
그 뒤에 온 1초의 백분의 1동안 우리는 우리 둘은 한 덩어리로 뭉쳐버릴 폭발의 커다란 진홍빛 별밖에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쁘레보도 나도 조그만 감동도 느끼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 속에 엉뚱한 기다림, 바로 그 순간에 우리가 그 속에서 사라져 버릴, 그 찬란한 별에 대한 기다림밖에는 인식하지 못했다.
그런데 진홍빛 별은 끝내 없었다.
있었던 것은, 유리창을 뜯어 내고, 철판을 1백 미터나 날려 보내고, 그 요란한 울림으로 우리 창자 속까지 꽉 채우고 조종실을 쑥밭으로 만든 일종의 지진 같은 것이었다.
기체는 멀리서 던져 단단한 나무에 꽂힌 칼처럼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 분노 때문에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1초, 2초.... 기체는 여전히 떨고 있었고, 나는 비행기가 간직한 에너지가 그것을 유탄처럼 폭발시키기를 무서운 초조감으로 기다렸다.
그런데 지하의 진동은 결정적인 분화에 이르지 않은 채 계속되었다.
나는 이 눈에 보이지 않는 작업에 대해서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진동도, 이 분노도, 이 끝없는 유예도 알 수가 없었다.... 5초, 6초.... 그러자 갑자기 우리는 회전하는 듯한 느낌을, 비행기 창으로 우리 담배를 내동댕이치고, 오른쪽 날개를 박살낸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어붙은 듯한 부동 외에는 아무것도, 나는 쁘레보에게 소리쳤다.
"뛰어 내려, 빨리!"
동시에 그도 소리쳤다.
"불이!"
순간, 우리는 이미 떨어져나간 창으로 곧두박질했었다.
우리는 20미터 떨어진 곳에 서 있었다.
나는 쁘레보에게 말했다.
"다친 덴 없나?"
그가 대답했다.
"다친 덴 없어요!"
그러나 그는 무릎팍을 문지르고 있었다.
그에게 말했다.
"만져보게. 움직여보구. 정말 다친 데가 없다고 내게 맹세해봐...."
그러나 그는 대답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나는 그가 머리에서 배꼽까지 갈라지면서 별안간 쓰러질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눈을 똑바로 뜬 채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구조 펌프였어...."
나는 생각했다. 미쳤구나, 이제 춤이라도 출 거다.
그런데 그는 화재를 면한 기체로부터 시선을 돌리고 나를 보면서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아무것도 아녜요. 구조 펌프가 무릎에 걸렸을 뿐예요."
3)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는 손에 회중 전등을 들고 땅 위의 비행기 자국을 더듬어 되올라간다.
정지 점에서 2백 50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미 우리는 비행기가 달리며 모래를 퉁겨 놓은 뒤틀어진 쇳조각이며 철판들을 발견한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어느 황막한 고원 꼭대기의 비스듬한 경사면을 거의 접선처럼 들이받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충돌 점에 생긴 모래 속의 구멍은 쟁기 보습으로 판 것과도 같았다.
기체는 곤두박질하지 않고 성난 길짐승이 꼬리를 휘두르듯이 배밀이를 하며 나갔던 것이다.
기체는 시속 2백 70킬로로 구르는 검은 돌들이 축받이 구슬 역할을 해주었던 덕택일 것이다.
쁘레보는 늦게나마 누전으로 인한 화재를 막기 위해 축전지의 접속을 끓어 놓았다.
나는 엔진에 기대어 생각해 본다.
고공에서 4시간 15분 동안을 시속 50 킬로 미터의 강풍을 계속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과연 진동이 있었다.
그런데 예보를 수신한 후에 변화가 있었다면 나로서는 바람의 방향을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니 나는 한 변의 길이 4백 킬로 미터의 정방형 안의 어딘가에 있을 것이었다.
쁘레보가 내 옆에 앉으면서 말한다.
"살아 있다는 게 이상하군요."
나는 목표를 찾기 위해 쁘레보에게 그의 전등을 켜 놓게 하고 내 회중 전등을 들고 똑바로 걸어 나간다.
주의 깊게 땅을 들여다본다.
천천히 나가면서 커다란 반원을 그리고, 여러 번 방향을 바꾼다. 마치 떨어뜨린 반지를 찾기라도 하듯이 여전히 땅을 들여다본다.
방금 나는 이렇게 해서 생각의 불씨를 찾았던 것이다.
나는 나의 전등이 비치는 흰 원반 위로 몸을 굽히며 여전히 어둠 속을 나아간다.
역시 그래, 역시 그렇군.... 나는 천천히 비행기 쪽으로 다시 올라간다.
나는 조종석 옆에 앉아서 생각에 잠긴다.
나는 희망적인 증거를 찾아보았으나 그것을 도무지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생명이 내보이는 어떤 표시를 찾았으나, 생명은 내게 아무런 표시도 해주지 않았다.
"쁘레보, 나는 풀 한 포기도 보지 못했어."
쁘레보는 잠자코 있어서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알 수가 없다.
날이 밝아 장막이 걷히면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자. 나는 단지 심한 피로를 느끼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사막 한가운데 4백 킬로미터 쯤 되는 곳!'
갑자기 나는 벌떡 일어섰다.
"물!"
가솔린 탱크도 오일 탱크도 터져 있었다. 물 저장고도 마찬가지였다. 모래가 전부 마셔버렸다.
우리는 박살이 난 보온병 밑바닥에서 반 리터의 커피와, 다른 병 밑바닥에서 4분의 1리터의 백포도주를 찾아냈다.
우리는 이 액체들을 걸러서 한데 섞었다.
우리는 또 약간의 포도와 오렌지를 한 개를 발견했다.
그러나 나는 속셈을 한다.
'사막에서, 햇빛 아래서 다섯 시간만 걸으면 이건 다 없어져 버릴 걸....'
날이 밝기를 기다리기 의해 우리는 조종실 안에 자리 잡는다.
나는 드러누워 잠을 청하려 한다.
나는 잠이 들면서 우리가 한 모험의 결산표를 만들어 본다.
우리는 우리의 위치를 도무지 모른다.
우리에게는 1리터의 음료도 없다.
만약 우리가 대략 항로의 직선 위에 놓여 있다면 1주 일 후라야 발견될 것이고, 그 이상은 바랄 수도 없고 또 그때는 이미 너무 늦다.
우리가 만일 옆으로 벗어나 있다면 여섯 달이나 걸려서야 발견될 것이다.
비행기에 의한 수색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를 3천 킬로미터나 되는 지역에서 찾아야 할 테니까.
"아아, 유감이다."
쁘레보가 내게 말한다.
"뭐가?"
"단번에 깨끗이 죽을 수 있었는데!"
그러나 그렇게 빨리 단념할 필요는 없다.
쁘레보와 나는 생각을 덜린다. 그것이 아무리 가냘픈 것일지라도 비행기에 의한 기적적인 구원의 찬스를 놓쳐서는 안 된다.
또한 한 자리에만 머물러 있어서 어쩌면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는 오아시스를 놓쳐서도 안된다.
날이 새면 오늘 하루 종일 걸어 가보자. 그리고 다시 비행기 있는 데로 돌아오자.
그리고 출발에 앞서 우리의 예정표를 모래 위에 큰 글자로 써두고 가자.
그래서 나는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워서 새벽까지 자야겠다. 잔다는 것이 나는 몹시 기쁘다. 피로가 수많은 영상들로 나를 에워 싸준다.
나는 사막 속에서도 고독하지 않다.
나의 어렴풋한 잠 속에는 갖가지 목소리와, 추억과, 속삭여진 속내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다.
나는 아직은 목마르지 않고 기분이 좋다.
나는 모험에 향하듯이 잠에 몸을 내맡긴다.
현실도 꿈 앞에서는 맥을 못춘다.
아아! 그런데 날이 밝았을 때 사정은 아주 딴 판이 아닌가!
4)
나는 사하라를 무척 사랑했다.
나는 여러 밤을 불귀순 지역에서 지낸 일이 있다.
나는 바람이 바다에서처럼 물이랑을 새겨 놓은 그 황금빛 벌판에서 잠을 깬 적도 있다.
나는 사막에서 비행기 날개 밑에 자면서 구조대가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완만한 구릉의 비탈진 면을 걸어간다.
땅은 반짝거리는 까만 조약돌이 한 켜 온통 뒤덮인 모래로 이루어져 있었다.
금속 비늘이라고나 할까. 우리를 둘러싼 은모래의 도움(둥근 지붕)들은 갑옷처럼 번쩍인다.
우리는 광물질의 세계 속에 떨어져 있었다. 우리는 쇠로 된 풍경 속에 갇혀 있었다.
첫 봉우리를 넘어서니, 그 앞에 또 비슷한 번쩍이는 검은 봉우리가 나타난다.
우리는 나중에 되돌아올 때의 표적으로 하기 위해 발로 땅을 긁으면서 걸어간다.
우리는 태양을 향해 전진한다.
내가 이렇게 정동 쪽으로 가기로 결심한 것은 모든 논리에 어긋나는 일이다.
왜냐하면 기상 통보도, 나의 비행시간도 모두 내가 나일강을 넘어섰다고 믿게 하고 있었으니까.
하기야 아는 서쪽으로 잠깐 동안 가보았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서쪽 방향은 내일로 미루었다.
나는 또 바다로 이끌어 주기는 할 북쪽 방향도 일단 희생시켰다.
사흘 뒤, 반 실신상태가 되어 우리가 결정적으로 비행기를 포기하고, 쓰러질 때까지 줄곧 바로 걸어가기로 결심하게 될 때에도 우리는 역시 동쪽으로 향했던 것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동북동 쪽이다.
그리고 이것 또한 모든 이론에도, 또 모든 희망에도 어긋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구조된 뒤에 우리는 다른 어떤 방향도 우리를 살아 돌아오게 하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알게 됐다.
왜냐하면 북쪽으로 향했더라면 너무나 지쳐서 바다에까지 이르지도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생각에도 이치에 닿지 않아 보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우리가 그 방향을 선택하게 할 아무런 표시도 없었으므로, 그때 내가 그 방향을 택한 유일한 이유는 안데스 산 속에서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던 내 친구 기요메를 구해 낸 것이 바로 그 방향이었다는 사실 때문이었던 것 같다.
이 방향이 내게는 막연하나마 생명의 방향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다섯 시간을 걸으니까 풍경이 바뀐다.
모래의 강이 골짜기를 흐르고 있는 것 같아 우리는 그 골짜기를 따라 가기로 했다.
우리는 큰 걸음으로 걷는다.
가능한 한 멀리 가야하고, 만약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면 밤이 되기 전에 되돌아가야 한다.
갑자기 나는 멈춰 섰다.
"쁘레보."
"왜요?"
"발자국을...."
얼마나 오랜 시간 전부터 우리는 발자국을 남기는 것을 잊고 있었던가? 만약 그것을 다시 찾아 내지 못한다면 그건 바로 죽음이다.
우리는 되돌아간다.
그러나 오른쪽으로 약간 비껴서, 우리가 꽤 멀리 오고 나서 처음 방향을 향해 직각으로 꺾여서 가면 우리가 잊기 전에 남겨 놓았던 발자국을 찾아낼 것이다.
그 금을 다시 이어놓고 우리는 다시 출발한다.
더위가 더 심해지고, 그와 더불어 신기루들이 생긴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초기적인 신기루 일 뿐이다.
커다란 호수들이 이루어지더니 우리가 전진하면 사라진다.
우리는 모래 골짜기를 넘어서서 가장 높은 봉우리에 올라가서 지평선을 살펴보기로 작정한다.
우리는 이미 여섯 시간을 걸었다.
우리는 큰 걸음으로 도합 25킬로 미터는 걸었을 것이다.
우리는 그 시커먼 산등이 꼭대기에 이르러 말없이 주저앉는다.
우리 발 밑에 있는 모래의 골짜기는 흰 빛이 우리 눈을 태우는 듯하다.
눈이 닿는 한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까마득한 지평선에는 빛의 장난으로 벌써 마음을 끄는 신기루를 만들고 있다.
요새며, 회교 사원의 첨탑이며, 직선으로 된 기하학적인 덩어리들. 나는 또 초목을 가장해 보이는 거대한 검은 반점도 발견한다.
그러나 그것은 낮이면 흩어졌다가 밤이면 다시 생겨나는 저 구름의 마지막 한 조각에 의해 덮여 있었다.
그것은 어느 적운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더 가봤자 소용이 없다. 이러한 시도는 아무 곳에도 이끌어 주지 않는다.
비행기로 되돌아가야 한다.
저 빨갛고 흰 표지가 어쩌면 동료들에게 발견됐을지도 모른다.
공중으로부터의 탐색에 조금도 희망을 걸고 있지는 않지만, 그것들이 내게는 유일한 구원의 기회같이 보이는 것이다.
더구나 무엇보다도 우리는 그곳에 마지막 몇 방울의 액체를 두고 왔으며, 벌써 우리는 그것을 꼭 마셔야 할 지경이다.
살기 위해서는 돌아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갈증이라는 한정된 자치권인 쇠우리에 갇힌 포로다.
그러나 생명을 향해 걷고 있을지도 모르는 때 되돌아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저 신기루 너머의 지평선에 진짜 도시며, 단물이 흐르는 운하들이며, 풀밭들이 꽉 들어차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발길을 돌라는 것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 무서운 방향 전환을 할 때 나는 파멸로 향한다는 느낌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비행기 옆에 누웠다.
우리는 60 킬로 미터 이상을 돌아다녔을 것이다.
액체도 다 마셔버렸다.
우리는 동쪽에서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고, 또 아무 동료도 이 지역 위를 비행하지 않았다.
얼마 동안 우리는 견디어 낼 수 있을까? 벌써 이렇게 목이 마른데...
우리는 박살이 난 날개의 파편을 주워 모아 커다란 분화대를 쌓아 올렸다.
가솔린과 강렬한 흰 빛을 내는 마그네슘 판자를 준비했다.
우리는 불을 붙이기 위해 밤이 아주 캄캄해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이제 불꽃이 솟는다.
경건한 마음으로 우리는 사막 속에 타오르는 신호들을 바라본다.
우리는 고요하게 빛나는 우리의 메시지가 밤하늘에 빛나는 것을 쳐다본다.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이 메시지가 비장한 호소를 싣고 가는 것이지만, 또한 그것은 많은 애정도 싣고 가는 것이라고.
우리는 물을 마시고 싶지만 또한 서로 통하고 싶기도 한 것이다.
다른 불이여, 이 밤 속에 켜져라.
사람만이 불을 갖고 있다. 사람이며, 우리에게 대담하라!
내게는 아내의 눈이 보인다.
내게는 그 눈 이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 눈이 묻는다. 수많은 시선들은 떼를 지어 나의 침묵을 나무란다. 대답하지! 대답한단 말야! 나는 온 힘을 다해서 대답한다.
밤하늘에 이 이상 더 빛나는 불꽃을 울릴 수는 없지 않은가!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다.
거의 마시지도 않고 60킬로 미터를 걸었다. 이제 우리는 더 마실 수도 없다.
더 오래는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잘못일까?
마실것만 있다면 우리는 얌전하게 물통이나 빨면서 여기에 그대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주석 컵의 바닥까지 들이마신 그 순간부터 하나의 시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마지막 한 방울을 내가 빨아들인 그 순간부터 나는 내리받이 길을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강물처럼 나를 싣고 간다손 치더라도 내가 어떻게 그것을 당해낼 수 있단 말인가?
쁘레보는 운다. 나는 그의 어깨를 두드린다. 그를 위로하기 위해 말한다.
"글렀으면 글렀지, 뭘 그래...."
그가 대답한다.
"내가 뭐 나 때문에 우는 줄 아나?"
그래! 정말 그렇다.
나는 이미 이 명백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견디지 못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더욱 명확히 알게 될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도 나는 절반밖에 믿지 않는다.
나는 벌써부터 이런 일을 생각했었다.
나는 한번은 조종실에 갇힌 채 빠져 죽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다지 괴로워하지 않았다.
나는 몇 번을 내 머리가 으깨진 줄로 생각된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조금도 튼 사건같이 여겨지지 않았다.
여기서도 지금 나는 별로 번민하지 않을 것이다.
내일이면 이 점에 대해서 더욱 이상한 것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큰 불을 오렸지만, 사실을 사람들에게 들어달라는 것은 이미 단념하고 있지 않았던가!
"나 때문에 우는 게 아니다."
그래. 그렇다. 바로 이것이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기다리고 있을 수많은 눈들이 보일 때마다 나는 불에 덴 것 같은 아픔을 느낀다.
당장 일어나서 앞으로 곧바로 달려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저기서 사람들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사람들이 난파당하고 있다!
이것은 실로 이상한 주객전도이지만,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해 왔었다.
다만 나는 완전한 확신을 얻기 위해 쁘레보가 필요했다.
그런데 쁘레보 역시 우리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저 죽음을 앞둔 번민을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도 견디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있고, 그것은 나도 마찬가지다.
아아, 나는 기꺼이 잠들 생각이다.
그것이 하룻밤 동안이건 여러 세기 동안이건 잠들 것이다.
잠이 들면 그 차이를 전혀 모른다. 그리고 얼마나 평화로운가!
그러나 저 멀리서 사람들이 외칠 그 부르짖음, 그 절망의 크나큰 불꽃들은... 생각만 해도 나는 견딜 수 없다.
이 난파선들은 눈앞에 두고 팔짱만 끼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침묵의 1초 1초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조금씩 학살해 간다.
격한 분노가 내 안에서 부글거린다.
어째서 이 사슬들은 침몰해 가는 사람들을 늦기 전에 구출해 내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일까?
왜 우리의 화롯불은 우리의 외침을 세계의 끝까지 전해주지 못하는 것일까?
참아라! 우리가 간다! 우리가 간다! 우리가 구조대다!
마그네슘은 다 타버렸고 우리의 불은 뻘개졌다.
이제 여기에는 우리가 그 위에 구부리고 몸을 쬘 한 더미의 잉걸불밖에는 없다.
우리의 빛의 커다란 메시지도 끝났다.
그것은 이 세계에서 무엇을 움직이기 시작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그렇다! 나는 그것이 아무것도 움직이게 하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안다.
결국 그것은 귀에 들려지지 못한 하나의 기도였던 것이다.
'좋다. 잠이나 자야겠다.'
5)
새벽녘에 우리는 헝겊으로 날개를 위로 훔쳐서 도료와 기름이 섞인 이슬을 컵 밑바닥에 깔린 만큼 모았다.
그것은 구역질나는 것이었으나 우리는 마셨다. 하는 수 없이 입술이나 조금 축인 것이다.
이 잔치가 끝나자 쁘레보가 내게 말한다.
"권총이 있는 게 다행이오."
나는 갑자기 울화가 치밀어 심술궂은 적의를 품고 그에게로 몸을 돌린다.
그러나 이 순간에는 센티멘털한 감정의 북받침밖에는 미워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것이다.
나는 지금 모든 것이 극히 단순하다고 보고 싶은 생각뿐이다.
태어난다는 것은 단순하다.
자라나는 것도 단순하다. 그리고 갈증으로 죽는다는 것도 단순하다.
나는 곁눈으로 쁘레보를 살펴본다.
그가 잠자코 있게 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모욕이라도 줄 작정을 하고. 그런데 쁘레보는 침착하게 내게 말했다.
그는 위생 문제를 논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 문제를 '손을 좀 씻어야겠는데' 하는 정도로 끄어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감이다.
나는 이미 가죽 주머니를 봤을 때 곰곰이 생각했었다.
그때의 나의 생각은 비장한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것이었다.
비장한 것은 사회문제뿐이다.
우리가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안심시켜 주지 못하는 우리의 무력함, 이것만이 비장한 것이다.
권총은 비장한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우리를 찾지 않는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사람들은 아마 딴 곳에서 우리를 찾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아라비아에서, 사실 우리는 그 이튿날 우리 비행기를 버린 후 까지 비행기 소리를 전혀 듣지 못했었다.
또한 그때 그렇게도 멀리에서의 단 한 번의 통과도 우리에게는 무관심했을 것이다.
사막 속의 몇 천 개의 검은 점 속에 섞여 있는 검은 점에 불과한 우리를 발견해달라고 우겨댈 수는 없다.
훗날에 이런 괴로움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내가 체험한 듯이 말하는 그런 생각은 하나도 정확하지 않다.
나는 아무 괴로움도 느끼지 않았다.
구조대들이 내게는 딴 세계에서 오가는 것으로밖에는 여겨지지 않았다.
사막에서 행방불명이 된 비행기를 찾아내려면, 3천 킬로미터의 거리로 보고 15일 동안은 찾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우리를 트리플리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사이에서 찾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이 가냘픈 행운에 기대를 걸고 있다. 다른 행운이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작전을 바꾸어 혼자 탐험에 나서기로 작정한다.
쁘레보는 화롯불을 준비해서 누가 찾아오면 불을 붙일 것이지만, 아무도 찾아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떠난다.
내가 되돌아올 기운이 있을지조차 모른다.
리비아 사막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기억이 떠오른다.
사하라에는 40퍼센트의 습도가 있는데 여기서는 18퍼센트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명이 수증기처럼 증발한다.
아랍 유목민이나 여행자, 식민지군의 장교들은 체험담으로 사람이 열 아홉 시간은 마시지 않고 견딘다고 말한다. 스무 시간이 지나면 눈은 빛으로 가득차고 종말이 시작된다. 갈증의 걸음은 번개 같다.
그러나 우리를 속이고, 모든 예측을 어기고 우리를 이 언덕 위에 못박아 놓은 이 야릇한 북동풍이 지금은 아마도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것도 동이 트기까지 얼마만한 유예를 우리에게 줄 것인지?
그래서 나는 떠난다. 그러나 마치 대양 위로 나아가는 느낌이다.
그렇긴 하지만 새벽의 덕택으로 이러한 광경이 좀 덜 슬퍼 보인다.
그래서 나는 우선 양손을 바지 주머니에 찌르고 밭 도둑처럼 걸어간다.
엊저녁에 우리는 그 근처의 어느 알 수 없는 굴 어구에 덫을 쳐 놓았었다.
지금 내 속에서는 밀렵자의 습성이 눈을 뜬다. 우선 나는 덫을 살펴보러 간다. 그것들은 텅 비어 있었다.
그러니 나는 피 한 방울도 마시지 못하게 됐다. 사실 나는 그것을 바라지도 않았었다.
나는 실망하기는커녕 그 반대로 호기심이 끌린다.
이 동물들은 사막 속에서 무엇으로 살아가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 '페네끄', 또는 모래 여우라는 토끼만 하고 귀가 큰 육식수일 것이다.
나는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어 그중 한 마리의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 발자국은 나를 좁은 모래 시내로 이끌어 간다.
그곳에는 발자국이 더욱 뚜렷이 찍혀 있다.
나는 세 발가락이 부채꼴로 된 종려 가지 모양의 예쁜 발자국을 감상한다.
나는 이 친구가 새벽녘에 사뿐사뿐 뛰어다니면서 돌 위의 이슬을 핥고 있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본다.
여기에서 발자국이 뜸해진다.
내 페네끄가 뛰어간 것이다.
여기서는 친구 하나가 끼여들어 함께 나란히 깡충거리며 달아났다.
나는 야릇한 기쁨을 느끼며 그들의 아침 산책을 구경한다.
나는 이들 생명의 표시들이 좋다.
그래서 나는 목이 타는 것도 잠시 잊어버린다.
마침내 나는 여우들의 식료품 저장실에 다다랐다.
이 근방에는 1백 미터쯤의 사이를 두고 수프 접시만한 메마른 작은 관목이 모래바닥에서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 줄기에는 조그마한 금빛 달팽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다.
페네끄는 새벽에 먹이를 먹으러 나온다.
나는 여기서 하나의 커다란 자연의 신비에 부닥친다.
이 페네끄는 나무마다 다 멈추는 것이 아니다.
달팽이가 잔뜩 붙어 있어도 거들떠보지 않는 나무가 있다.
분명히 그가 조심해서 패해 가는 나무도 있다.
또 접근은 하지만 마구 건드리지 않는 나무도 있다.
거기에서는 두세 마리의 달팽이만 따고 다른 레스토랑으로 바꾼다.
그는 아침 산책의 즐거움을 더 오래 갖기 위해 일부러 단번에 배를 불리지 않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이러한 장난은 필요 불가결한 전술과 너무나도 부합되기 때문이다.
만약 페네끄가 첫 번째 나무의 산물로 배를 채운다면, 두세 번의 식사로 그 나무의 산열매를 벗겨버리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한 나무 한 나무 그는 목축 농장을 전멸시키고 말 것이다.
그런데 페네끄는 파종하는 일을 망칠까봐 아주 조심하고 있다.
한 끼의 식사를 위해 그는 백도 넘는 갈색 덤불을 찾아갈 뿐만 아니라 한 가지에 나란히 붙은 두 달팽이를 따는 일은 결코 없다.
모든 일이, 마치 그가 그런 위험을 의식하고 있기나 한 것처럼 진행되고 있다.
그가 만약 조심성 없이 먹어댔더라면 이미 달팽이는 씨가 없어졌을 것이다.
달팽이가 없으면 페네끄도 없을 것이다.
그 발자국은 나를 굴로 인도한다.
안에 있는 페네끄는 내 발소리에 놀라며, 아마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말을 건다.
"나의 꼬마 여우야. 나는 아주 녹초가 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지경이 됐어도, 네 기질이 내겐 재미가 있구나."
그래서 나는 거기서 잠시 몽상에 잠긴다.
사람이란 아마도 무슨 일에도 적응할 수 있는 모양이다.
30년 후면 죽을 것이라 생각은 한 인간의 기쁨을 망가뜨리지는 않는다.
30년이건 사흘이건 그것은 단지 원근법상의 문제이다.
그러나 어떤 영상들은 잊어야 한다.
이제 나는 나의 길을 계속한다.
그런데 벌써 피로와 함께 무엇인가 나의 내부에서 변형되어 가고 있다.
신기루들이 거기 없는 것이라면 내가 그것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일까...
"어어이!"
나는 소리를 지르면서 두 팔을 쳐든다.
그런데 방금 몸짓을 하고 있던 그 사내는 시커먼 바위일 뿐이다.
모든 것이 벌써 사막에서 활기를 띠기 시작하고 있다.
나는 자고 있는 베두인(사막 지방의 아랍 유목민) 한 사람을 깨우려고 했는데 그는 검은 나무줄기로 변했다.
나무줄기라니? 그런 게 있다는 것이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몸을 굽혀서 본다. 부러진 나뭇가지를 주우려 한다. 그러나 그것은 대리석이었다!
몸을 일으켜 주위를 살펴본다. 다른 검은 대리석들이 보인다.
노아의 홍수 이전의 삼림이 그 부러진 줄기들을 땅 위에 흩뿌려 놓고 있다.
그 삼림은 10만 년 전에 창세기의 폭풍으로 대성당처럼 무너졌던 것이다.
그래서 여러 세기가 이 강철처럼 닦여지고, 화석이 되고, 유리처럼 된 먹빛깔의 거대한 기둥 파편을 내가 있는 데까지 굴려 보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가지에 있는 마디를 알아볼 수 있으며, 생명의 비틀림을 볼 수 있고, 줄기의 연륜을 셀 수 있다.
새들과 음악이 가득 찼던 이 숲은 신의 저주에 얻어맞아 소금으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내게는 이 광경이 적의를 품은 것처럼 느껴진다.
저 모래언덕의 철갑 옷보다도 검은 이 어마어마한 표착 물들이 나를 거부하고 있다.
살아 있는 내가 여기 이 변치 않는 대리석들 가운데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덧없는 나, 그 몸이 소멸해 버릴 내가, 여기 이 영원 속에서 할 일이 무엇인가?
어제 이후 나는 벌써 60킬로미터나 돌아다녔다.
나의 이 현기증은 아마 갈증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태양 때문일까.
태양은 기름으로 닦아 놓은 것 같은 이들 줄기 위에 내리쬐고 있다.
이 세계의 등껍질 위에 내리쬐고 있다.
이제 여기엔 모래도 여우도 없다. 다만 거대한 쇠모루가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 쇠모루 위를 걷는다.
그리고 머리속에는 태양이 울려 퍼지는 것을 느낀다. 아아! 저기에....
"어어이! 어어이!"
"저기엔 아무것도 없어. 덤비지 말아. 망상이다."
나는 이렇게 나 자신에게 타이른다. 왜냐하면 나는 내 이성에 호소해야 했으니까.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거부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다.
저기 걸어가고 있는 대상 쪽으로 달려가지 않는다는 것도 여간 힘들지 않다. 저기에... 저렇게 보이는데....
"바보야, 잘 알면서도. 그걸 만들어낸 것이 바로 너라는 걸...."
"그렇다면 이 세상엔 참된 것이라곤 하나도 없구나...."
그렇다. 저 언덕 위, 내게서 20킬로미터 앞에 있는 저 십자가 말고는 참된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저 십자가, 아니면 저 등대...
그런데 저것은 바다 쪽이 아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다.
어젯밤에 나는 밤새껏 지도 공부를 했다. 그러나 헛일이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위치를 알지 못하니까.
그럼에도 나는 사람의 존재를 표시해주는 온갖 기호들 위에 몸을 굽혀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지도의 한 부분에서 십자가 비슷한 것이 그 위에 솟아 있는 조그만 동그라미를 발견했다.
나는 범례를 참조했는데 거기에는 '종교 시설'이라고 씌어 있었다.
그 십자가 옆에 검은 점이 하나 있었다. 다시 범례를 참조했다. 그리고 보았다. '마르지 않는 우물'이라고 씌어 있는 것을.
나는 가슴에 큰 쇼크를 받았다. 그리고 나는 큰 소리로 되풀이해 읽었었다.
"마르지 않는 우물.... 마르지 않는 우물.... 마르지 않는 우물!"
알리바바와 그의 모든 보물인들 마르지 않는 우물 하나와 견줄 수 있겠는가?
조금 떨어진 곳에 나는 흰 동그라미 두 개를 보았다. 범례를 보고 읽었다. '마르는 우물' 이것은 벌써 덜 아름답다. 그리고 그 둘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그 종교 시설이 바로 저것이다! 난파 자들을 부르기 위해 수도승들이 언덕 위에 커다란 십자가를 세워 둔 것이다! 그러니 나는 저 십자가 쪽으로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저 도미니끄회 성직자들 쪽으로 달려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리비아에는 꼽트파의 수도원밖에 없을 텐데."
"...저 부지런한 도미니끄 성직자들 쪽으로 그들은 빨간 벽돌이 깔린 시원하고 아름다운 부엌을 가지고 있고, 안마당에는 녹이 슨 근사한 펌프도 있다. 그 녹슨 펌프 밑, 그 녹슨 펌프 밑에는, 벌써 짐작이 가셨겠지.... 그 녹슨 펌프 밑에는 바로 마르지 않는 우물이 있다. 아아! 내가 저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면, 내가 그 큰 종을 치면, 거기선 야단법석이 일어날 거다!"
"바보야. 전 지금 프로방스의 어떤 집을 그리고 있다 거기에 무슨 종이 있단 말인가."
내가 그 큰 종을 치면! 문지기가 두 팔을 쳐들고 소리칠 것이다. '당신은 주님의 사자십니다!' 그리고는 모든 수도승들을 부를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모두 달려나올 것이다. 그리고 나를 불쌍한 아이처럼 환영해 줄 거다. 나를 부엌 쪽으로 떠밀고 갈 거다. 그리고는 말할 거다.
"잠깐만, 잠깐만, 내 아들아, 마르지 않는 우물에 달려갔다 올 테니까...."
그러면 나는 행복감으로 온 몸이 떨릴 거다.
아니다. 결코. 나는 울고 싶지 않다. 저 언덕 위의 십자가가 없어졌다는 그까짓 이유로는...
서쪽이 주는 약속은 모두 거짓말뿐이다. 나는 정북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북쪽은 적어도 바다의 노래로 가득 차 있다.
아아! 이 등성이만 넘으면 지평선이 펼쳐진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다.
"넌 알고 있잖니, 저게 신기루라는 걸...."
저게 신기루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아무도 나를 속이지 못한다, 이 나를! 다만 내가 신기루 쪽으로 끌려 들어가고 싶어진다면? 만약 내가 그것을 바란다면? 내가 저 햇볕으로 장식된 총안이 있는 도시를 사랑하고 싶어진다면? 날렵한 발걸음으로 곧장 걸어가고 싶어진다면 어떻단 말인가.... 나는 이젠 피로도 느끼지 않고 또 행복하니까.... 쁘레보와 그 권총이라고? 웃기는구나! 나는 이 도취를 좋아한다. 나는 취해 있다. 나는 목이 말라 죽어간다!
황혼이 취기를 깨워 주었다.
너무나 멀리 온 것에 놀라 갑자기 멈춰섰다.
해질녘에는 신기루가 죽는다. 지평선은 그 펌프니, 궁전이니, 승복이 나를 벗어버렸다.
그것은 사막의 지평선이다.
"너는 너무 멀리 왔어! 밤이 너를 잡으려고 한다. 넌 날이 새기를 기다려야 하고, 내일이면 네 발자국은 지워진다. 그러면 넌 아무 곳에도 있지 않게 될 거다."
"그러니 다시 네 앞을 곧바로 걸어가야 해. 되돌아서봤자 무슨 소용인가! 어쩌면 내가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려는 이때, 아니 이미 벌리고 있을지도 모를 이때 방해받고 싶진 않다."
"어디서 바다를 봤단 말인가? 또 절대로 거기까지 가 닿지 못할 것이다. 아마 3백 킬로미터는 될 거다. 그리고 쁘레보는 '시문기'곁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가 어느 대상에게 발견됐을지도 모른다."
그렇다, 나는 되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우선 사람이나 불러보자.
"어어이!"
제기랄, 이 지구에는 주가 살고 있어야 할 게 아닌가...
"어어이! 인간들아!"
나는 목이 쉰다. 이제는 목소리도 나질 않는다. 이렇게 소리 지르는 나 자신이 우습게 느껴진다. 한 번 더 던져본다.
"인간들아!"
그것은 과장되고, 귀 거슬리는 소리로 되울려 온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선다.
2시간을 걷고 난 후 나는 쁘레보의 불꽃을 발견했다.
그것은 내가 길을 잃은 줄로만 알고 겁을 먹은 쁘레보가 하늘로 올린 불이었다.
아아! 나는 또 그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아직도 걷기를 1시간.... 아직도 5백 미터... 아직도 1백 미터. 아직도 5십 미터...
"아!"
나는 깜짝 놀라서 우뚝 섰다.
기쁨이 내 가슴에 넘쳐나려 해서 나는 그 격렬함을 간신히 억누른다.
화롯불에 비쳐진 쁘레보가 엔진에 등을 기대 선 두 아랍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아랍인과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는 아직도 나를 보지 못했다. 그는 자기 기쁨에만 마음이 쏠려 있다. 아아! 만일 내가 그처럼 기다리고 있었더라면... 나는 벌써 해방됐을 게 아닌가! 나는 반갑게 소리친다.
"어어이!"
두 유목인이 소스라쳐 나를 쳐다본다.
쁘레보가 그들을 떠나 혼자서 내게로 달려온다.
나는 팔을 벌린다. 쁘레보가 내 팔꿈치를 부축한다.
그럼 내가 쓰러지려 했던가? 나는 그에게 말한다.
"이젠 됐군"
"뭐가요?"
"아, 아랍인들이!"
"무슨 아랍인들이?"
"저기 아랍인들 말야. 자네하고 같이 있던...."
쁘레보가 이상한 얼굴로 나를 쳐다본다.
그래서 나는 그가 하는 수 없이 중대한 비밀을 털어놓으려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아랍인은 없어요."
정말이지, 이번엔 내가 우는 모양이다.
6)
물 없이 여기서 열아홉 시간은 살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엊저녁 이후 무엇을 마셨던가? 새벽에 이슬 몇 방울 뿐!
하기는 북동풍이 여전히 불어 우리의 증발을 약간 늦추어 준다.
이 바람막은 또한 구름의 높다란 건축물들을 하늘에 마련해 준다.
아아! 저 구름이 우리 있는 데까지 떠내려 올 수 있다면, 비가 올 수만 있다면! 그러나 사막에는 절대로 비가 오지 않는다.
"쁘레보, 낙하산을 삼각형으로 자르세. 그 덫을 돌멩이로 땅바닥에 매어놓자. 새벽에 바람만 바꾸지 않는다면 헝겊을 짜서 가솔린 탱크에 이슬을 받을 수 있을 거야."
우리는 별 아래에다 여섯 개의 흰 덫을 늘어놓았다.
쁘레보는 탱크 하나를 뜯어냈다. 이제 우리는 날이 새기만 기다릴 뿐이다.
쁘레보가 파편들 속에서 기적적인 오렌지 한 개를 발견했다.
우리는 그것을 분배한다. 나는 기뻐서 가슴이 막힐 것 같다.
그러나 20리터의 물이 필요한 판에 이것은 너무나 조금이다.
우리의 밤뿐. 옆에 드러누워 나는 이 빛나는 과일을 쳐다보며 혼잣말을 한다.
"사람들은 한 개의 오렌지가 어떤 것인지를 모른다."
나는 또 말한다.
"우리는 사형을 선고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도 또 확실한 사실이 내 기쁨을 앗아가지는 못한다. 내 손에 쥔 이 반쪽의 오랜지가 내 일생에서 가장 큰 기쁨의 하나를 가져다준다."
나는 반듯이 누워서 내 과일을 빤다.
나는 별똥별을 센다. 잠시 동안 나는 한없이 행복하다. 그래서 또 혼잣말을 한다.
"우리가 그 질서 속에서 살고 있는 이 세계란 것은 자기 자신이 그 속에 갇혀 보지 않고서는 헤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형수의 한 잔의 럼주와 한 대의 담배의 뜻을 이해한다.
나는 왜 그가 그런 하찮은 것을 받는지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숱한 기쁨을 맛보는 것이다. 그가 만약 미소라도 지으면 사람들은 그를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는 럼주를 마신다는 것에 미소 짓는 것이다. 사람들은 모른다. 그가 원근법을 바꾸어, 그 마지막 시간을 가지고 인간의 일생을 삼았다는 것을....
우리는 굉장한 양의 물을 받았다. 아마 2리터는 될 것이다.
갈증은 끝났다! 우리는 살아났다. 자아 마시자!
나는 주석 컵으로 탱크 속에서 물을 푼다.
그런데 이 물이란 게 고운 연두 빛이었는데, 첫 모금부터 지독한 맛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갈증에 이렇게 괴로워하면서도 첫 모금을 다 마시기 전에 일단 숨을 돌이켜 쉬어야만 했다.
흙탕물이라도 마실 것 같은데도, 이 독 섞인 금속의 맛만은 내 갈증보다 더 지독하다.
쁘레보 쪽을 보니, 그는 무엇을 열심히 찾기라도 하듯이 땅바닥에 눈길을 박은 채 빙빙 맴을 돌고 있다.
갑자기 엎어지더니 여전히 맴돌면서 토한다.
30초 후, 이번엔 내 차례다. 나는 너무나도 경련이 심해서 무릎을 꿇고, 손가락을 모래 속에 찔렀다.
우리는 말도 없이 15분 동안 이렇게 몸을 뒤틀고 있었다. 이제는 약간의 담즙밖엔 토해내지 못하면서...
겨우 끝났다. 이제는 은근한 구역질만 느낄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마지막 희망조차 잃어버렸다.
나는 이 실패가 낙하산의 도료 때문인지, 아니면 탱크에 끼인 탄소염화물 때문인지 알 수 없다.
다른 그릇이나 다른 천을 썼어야 했다.
자아, 그러면 서두르자! 곧 날이 샌다. 출발하자! 우리는 이 저주받은 언덕을 떠나 큰 걸음으로 똑바로 쓰러질 때까지 걸어갈 작정이다.
안데스 산맥 속에서의 기요메의 전례를 따르는 것이다.
어제부터 나는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들이 이제는 우리를 찾아오지 않으리라 단념하고, 비행기 잔해 곁에 있어야 한다는 엄중한 명령을 나는 어긴다.
다시 한 번 우리가 난파자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다.
난파자란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의 침묵에 위협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미 무서운 과실로 인해 비탄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 달려가지 않을 수 없다.
기요메도 안데스의 조난에서 돌아와서 내게 말했었다. 그가 난파 자들 쪽으로 달려온 것이라고.
이것은 하나의 세계적 진리이다.
"내가 만약 이 세상에 혼자였다면 그냥 누워버렸을 거네."
"쁘레보가 내게 한 말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북동을 향해 똑바로 걸어간다.
만약 우리가 나일강을 넘어서 있다면, 우리는 지금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숙히 아라비아 사막 안쪽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을 것이다.
이 하루에 대해서 더는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나는 것은 서둘렀다는 것뿐이다. 온갖 것에 대한 서두름, 내가 쓰러지는데 대한 서두름. 신기루에 진저리가 나서 땅바닥을 내려다보면서 걷던 것도 생각난다.
때때로 우리는 나침반으로 우리의 방향을 바로잡았다.
또 가끔 숨을 돌리기 위해 드러누웠다.
나는 또 밤에 대비해서 간직하고 있던 레인코우트를 어딘가에서 내버렸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모른다.
내 기억은 서늘한 저녁이 와서야 다시 이어진다.
나는 또한 모래와 같이 모든 것이 내 속에서 지워져 버렸다.
해가 지자 우리는 야영을 하기로 한다.
더 걸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물 없이 이 밤을 넘길 수는 없으니까. 그런데 우리는 낙하산 천의 덫을 가지고 왔다.
그 독이 도료에서 온 것이 아니라면 내일 아침이면 우리는 물을 마실 수가 있다.
한 번 더 별 아래에 이슬 잡는 덫을 펴놓아 보자.
그런데 북쪽 하늘에 오늘밤엔 구름이 없다. 게다가 바람의 맛이 달라 졌다.
바람의 방향도 바뀌었다.
벌써 사막의 뜨거운 입김이 우리 몸을 스친다.
이것은 맹수의 깨어남이다! 그것은 우리 손과 얼굴을 핥는 것을 나는 느낀다.
나는 더 이상 걷는댔자 10킬로미터도 못갈 것이다.
사흘 전부터 마시지도 않고 80킬로 이상을 걸어왔으니...
그런데 막 멈춰 서려는 순간이었다.
"저건 틀림없는 호수요!"
쁘레보가 말한다.
"자네 돌았군!"
"이 시간에, 이 황혼에도 신기루가 있단 말이오?"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나는 오래 전부터 내 눈을 믿기를 단념해 왔다.
저게 신기루가 아니라면 우리의 광기가 만들어 낸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쁘레보는 아직 그런 걸 믿는단 말인가?
쁘레보가 고집을 부린다.
"20분이면 돼요. 내가 가보겠어."
그 고집에 나는 화가 치민다.
"가보게나. 바람이나 쐬고 오게.... 건강에 좋을 거니까. 만일 자네의 호수가 있다 하더라도 짠물일 걸세. 그거나 알아두게. 짜든 안짜든 아주 먼 데 있을 걸. 그리고 도대체 그런 있을 수 없네."
쁘레모는 눈을 한 곳에 박고 벌써 멀어져 간다.
이런 지상의 유혹을 나는 알고 있다. 그것을 보며 나는 생각한다.
'하긴 기관차 밑으로 곧바로 뛰어드는 몽유병자도 있긴 하지.'
쁘레보가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이 공허한 현기증에 사로잡혀 다시는 되돌아설 수가 없으리라. 그래서 조금 더 먼 곳에서 쓰러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죽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모두가 얼마나 하찮은 일들인가!
나는 내게 생긴 이러한 무관심을 아주 좋지 않은 징조라고 느꼈다.
전에 물에 빠져 죽게 되었을 때도 나는 똑같은 평화로움을 느꼈다.
그런데 나는 이 조용한 기분을 이용해서 돌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유서를 쓰기로 했다.
내 글은 퍽 아름답다. 아주 품위가 있다. 나는 그 글에 지혜로운 충고들을 잔뜩 써넣는다.
나는 그것을 다시 읽어 보며, 막연한 자만의 기쁨을 느낀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정말 훌륭한 유서다.! 이런 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참 애석한 일이다!"
나는 또 내가 어느 지경에 다다랐는지 알고 싶다.
나는 입 속에 침을 모아보려고 애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을 나는 침을 뱉지 않았던가? 이미 침은 없다. 입을 다문 채 있노라면 끈적끈적한 것이 입술을 봉한다. 그것은 말라붙어 입밖에 단단한 덩어리를 만든다. 그러나 아직은 삼키려는 시도에 성공한다.
그리고 아직은 눈이 조금도 부시지 않는다. 보이는 것이 눈부시게 되면 내 목숨은 두 시간뿐이다.
밤이 되었다.
어젯밤보다 달이 커졌다.
쁘레보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드러누워 이 명백한 사실들을 곰곰 생각해 본다. 나는 내 속에서 어떤 오래된 인상을 발견해 낸다.
나는 그것이 어떤 것이었는지 밝혀 보려고 애쓴다.
나는 그때... 나는 그때... 나는 그때 배를 타고 있었다! 나는 남아메리카로 가는 중이었는데 이렇게 상갑판 위에 누워 있었다. 마스트 끝이 별들 가운데에서 느리게 가로 세로 흔들리고 있었다. 여기에는 마스트는 없지만, 나는 역시 배를 타고 가고 있다. 내 노력과는 상관없는 방향으로 가는 배를, 노예 상인들이 나를 묶어서 배 위에 던졌던 것이다.
나는 돌아오지 않는 쁘레보 생각을 한다.
나는 그가 단 한 번도 불평하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투덜거리는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쁘레보는 남자다.
아니! 내게서 5백 미터쯤 되는 곳에서 그가 등불을 흔들고 있지 않은가! 자기의 발자국을 잃어버린 모양이다! 나는 그에게 응답할 등불이 없다.
나는 일어나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나 그는 듣지 못한 것 같다.
두 번째 등불이 거기서 2백 미터쯤 떨어진 곳에 켜진다. 그리고 세 번째 등불이, 아아니, 이건 수색꾼이다. 나를 찾고 있는 것이다! 나는 소리 지른다.
"어어이!"
그러나 못들은 모양이다.
3개의 등불은 자꾸 부르는 신호를 한다.
나는 돌지 않았다.
오늘 저녁은 기분도 좋다. 마음도 평온하다.
나는 주의 깊게 바라본다.
역시 등불이 3개, 5백 미터 거리에 있다.
"어어이!"
그러나 여전히 듣지 못한 모양이다.
이때 나는 잠시 공포에 사로잡힌다.
내가 경험한 유일한 공포, 아! 나는 아직도 뛸 수가 있다. '기다려라...기다려....' 아, 그들이 돌아가려고 한다! 멀어져 간다, 딴 데를 찾으러. 나는 쓰러질 것 같다! 생명의 문턱에서 쓰러지려 한다.
나를 받아들여 줄 팔들이 바로 저기까지 와 있었는데!
"어어이! 어어이!"
"어어이!"
내 소리에 응답했다. 나는 숨이 막힌다. 숨이 막히는데도 나는 여전히 달린다. 소리 나는 쪽으로 달린다.
"어어이!"
쁘레보를 보자 나는 쓰러지고 만다.
"아아! 그 등불들을 봤을 땐!"
"무슨 등불을?"
그렇다, 그는 혼자다.
이번에는 아무런 절망도 느끼지 않았으나, 희미한 분노가 인다.
"그래 자네 호수는?"
"내가 가면 갈수록 멀어져 갔어요. 나는 30분 동안을 그쪽으로 걸어 갔지만, 더 멀어졌어요. 되돌아왔어요. 그러나 지금도 그것이 호수였다는 건 확실해요."
"자네 돌았군. 완전히 돌았어. 아! 왜 그런 짓을 했지. 왜?"
그가 무엇을 했단 말인가? 왜 그런 짓을 했단 말인가? 나는 분해서 울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왜 분해하는지 나는 모른다.
쁘레보가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설명한다.
"하도 마시고 싶어서...당신 입술도 이렇게 희잖아요.!"
아아! 내 분노가 사그라진다.
나는 잠에서 깬 것처럼 내 이마를 문지른다.
그리고 나는 슬퍼진다.
그래서 나는 조용 조용히 이야기한다.
"나는 보았네. 자네를 본 것처럼, 분명히 난 봤어. 틀림없이 등불 셋을...쁘레보, 난 그걸 봤었네!"
쁘레보는 우선 잠자코 있다가 마침내 이렇게 자백한다.
"그래요, 일은 더 안 돼 가는 모양이오."
수증기 없는 대기 아래서는 땅은 빨리 열을 발산한다.
벌써 몹시 춥다. 나는 일어서서 걷는다.
그러나 이내 참을 수없이 몸이 떨려온다.
수분이 빠진 내 피는 순환이 나빠져서 얼음 같은 추위가 뼈에까지 파고든다.
이것은 밤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턱이 딱딱 마주치고, 온몸이 경련하듯 흔들린다.
손이 하도 떨려서 이젠 회중전등을 쓸 수가 없다.
추위를 타지 않던 내가 얼어 죽을 것 같으니, 갈증의 결과란 참으로 이상하구나!
나는 더웠을 때 걸치고 있기가 귀찮아서 레인코트를 어딘가에 버리고 왔다.
그런데 바람이 점점 더 험악해진다.
사막에서는 전혀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사막은 대리석처럼 반들반들하다.
낮에는 그늘을 만들어 주지 않고, 밤에는 사람을 발가벗겨 바람에 내맡긴다.
몸을 의지할 나무 한 그루, 담장 하나, 돌멩이 하나도 없다.
바람은 광활한 벌판에서 기병대가 돌진하듯 나를 몰아친다.
그것을 피하느라고 뱅뱅 맴을 돈다.
나는 누웠다간 다시 일어난다.
누워 있든 일어나든 나는 얼음의 채찍에 휘감긴다.
나는 달릴 수도 없고, 기력도 지쳐 이 암살자로부터 도망칠 도리가 없다.
그래서 나는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두 손으로 감싼 머리를 모래 속에 파묻고!
얼마 뒤에야 나는 일어나서 여전히 떨면서 앞으로 곧장 걸어가고 있는 나를 의식한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 방금 떠났는데. 쁘레보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가 부르는 목소리가 나를 깨웠던 것이다.
나는 그가 있는 데로 돌아온다.
온몸이 떨리고 딸국질이 나서 여전히 몸을 비틀거리면서. 그리고 혼잣말을 한다.
"이건 추위가 아니다. 다른 것이다. 이젠 끝장이다."
나는 이미 수분을 너무 잃어버렸다.
그저께 하고 어제, 혼자 갔을 때 나는 너무 많이 걸었다.
추위로 죽는다는 것이 슬프다. 그 전에 마음속에 간직했던 신기루가 더 좋다.
그 십자가며, 아랍인이며, 등불들이.
언제부터인지 이런 것들이 더 관심거리가 되기 시작한다.
나는 노예처럼 채찍질을 당하기는 싫다.
나는 또다시 무릎을 꿇는다.
우리는 약간의 약품을 가져 왔었다.
순수 에테르 1백 그램과 90도 알코올 1백 그램, 그리고 옥도정기 한 병.
나는 순수 에테르를 두어 방울 마셔 본다. 마치 칼을 삼키는 것 같다.
다음엔 90도 알코올을 조금, 이건 목을 막히게 한다.
나는 모래에 구멍을 파고 거기 눕는다.
그리고 다시 모래를 덮는다. 얼굴만이 나와 있다.
쁘레보가 잔가지를 찾아내어 불을 붙었지만 금방 사위여 버린다.
쁘레보는 모래 속에 묻히기를 거부한다.
그는 발을 움직이는 편을 택한다. 그것은 잘못이다.
내 목구멍은 그냥 막혀 있다. 이것은 나쁜 징조다, 그러면서도 기분은 좀 낫다.
마음이 가라앉는다. 모든 희망을 넘어선 마음의 평정이다.
나는 별빛 아래, 노예 상인의 갑판 위에 묶여서 원치 않는 여행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몹시 불행한 것 같지는 않다.
이제는 근육만 움직이지 않으면 추위를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모래 속에 잠든 내 육체를 잊는다.
나는 이제 움직이지 않을 작정이다. 그러면 더는 고통을 느끼지 않을 거니까.
하기는 사람은 그리 많은 고통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이 모든 고통 뒤에는 피로와 망상이 교향악처럼 짜여져 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림책으로, 약간 잔인한 동화로 바뀐다.
조금 전에는 바람이 나를 몰아쳤고, 나는 그것을 피하기 위해 짐승처럼 맴을 돌았었다.
이어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마치 무릎팍이 가슴을 찍어 누르는 것 같았다. 어떤 무릎팍이.
나는 이 천사의 무게와 싸웠다.
사막에서 나는 한 번도 혼자 있어 본 적이 없다.
지금 나는 나를 에워싸고 있는 것들을 믿지 못해 내 자신 속에 파묻혀 두 눈을 감고 눈썹조차 움직이지 않는다.
수많은 영상의 강물이 나를 고요한 꿈 속으로 끌고 가는 것을 느낀다.
강물은 바다의 깊은 속에서는 고요해지는 법이다.
잘 있어라. 내가 사랑하던 그대들이여. 인간의 몸이 마시지 않고 사흘을 견뎌내지 못했다 해서 그게 내 잘못은 아니다.
나는 내가 이렇게도 샘물의 포로인 줄은 몰랐었다.
나는 이렇게 까지 밖에 허락되지 않는 줄은 생각도 못했다.
사람들은 인간이 자기 앞을 곧장 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인간은 자유롭다고 믿고 있다.
사람들은 인간을 우물에 붙들어 맨 밧줄, 탯줄처럼 인간을 대지의 배에 붙들어 맨 밧줄을 보지 못한다.
한 발자국만 더 내디디면 그는 죽는다.
당신들의 고통을 제외하고는 나에겐 아무 후회도 없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았다. 만일 내가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시작 할 것이다.
나는 살 필요를 느낀다.
도시에는 이미 인간의 생활이 없다.
여기서는 비행이 문제가 아니다. 비행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사람이 생명을 거는 것은 비행기를 위해서가 아니다.
농부가 땅을 가는 것이 쟁기를 위해서가 아님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비행기에 의해서 사람들은 도시와 그들의 회계원들을 떠나서 농부의 진리를 재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인간의 일을 함으로써 비로소 인간의 고뇌를 알게 된다.
사람은 바람과, 별들과, 밤과, 모래와, 바다와 접촉한다.
사람은 자연의 힘에 대항해서 꾀를 쓴다.
정원사가 봄을 기다리듯이 사람은 새벽을 기다린다.
사람은 약속의 땅인 양 착륙지를 기다리고, 별 속에서 자기의 진리를 찾는다.
나는 불평하지 않겠다.
나는 사흘 전부터 걸었었고, 목말랐었고, 모래 위에 발자취를 쫓았었고, 이슬로 내 희망을 삼았었다.
나는 땅 위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잊어버린 내 동료들과 만나려고 애써 찾았었다.
이 모든 것이 살아 있는 사람들이 해야 할 걱정이다.
나로서는 이것이 오늘 밤에 뮤직 홀을 선택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이제, 저 교외 열차를 탄 주민들, 자기들을 인간이라고 믿고 있지만, 그들이 느끼지 못하는 어떤 압력에 의해서, 마치 개미처럼 그 용도에 맞게 퇴화되어 버린 그 인간들을 이해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한가로울 때, 무엇으로 그들의 무의미하고 하찮은 일요일을 채우는 것일까?
한 번은 러시아에서, 어느 공장에서 모짜르트를 연주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썼었다.
나는 2백 통의 욕설이 담긴 편지를 받았다.
나는 싸구려 카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탓할 생각은 없다.
그들은 다른 노래를 모르는 것이다.
내가 미워하는 건 싸구려 카페의 경영자들이다.
나는 인간이 인간을 타락시키는 것을 차마 볼 수 없다.
나는 내 직업 속에서 행복하다.
나는 나 자신을 착륙지의 농부라고 생각한다.
교외 열차 안에서 나는 여기와는 아주 다른 고통을 느낀다.
생각해 보면 여기는 얼마나 사치스러운가!
나는 아무 후회도 없다.
나는 걸었었고, 잃어버렸다.
이것은 내 직업의 당연한 질서다.
어쨌거나 나는 상쾌한 바다 바람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한 번 이것을 맛본 사람은 이 양식을 잊지 못한다.
안그런가, 동료들이여? 문제는 결코 위험하게 산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공식은 과장된 것이다.
투우사들은 전혀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위험이 아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그것은 생명이다.
하늘이 희끔해지는 것 같다.
나는 모래 속에서 한 쪽 팔을 빼낸다.
손닿는 데 있는 헝겊 덫 하나를 더듬어 본다. 그러나 마른 그대로이다. 기다려 보자. 이슬은 새벽에 고이니까. 그러나 새벽은 우리 헝겊을 적셔주지 않고 밝아 온다.
그래서 내 생각은 약간 뒤얽힌다.
그리고 나는 내 말을 듣는다.
'여기 있는 것은 메마른 마음... 메마른 마음... 눈물도 통 지을 줄 모르는 메마른 마음!'
"떠나자, 쁘레보! 우리 목구멍이 아직은 막히지 않았다. 걸어야 한다."
7)
사람을 열아홉 시간이면 말려버리는 서풍이 분다.
내 식도는 아직 막혀버리지는 않았지만 딱딱하고 아프다.
거기서 무엇이 긁어대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 사람들이 말해주기도 했고, 기다리고 있기도 한 그 기침이 시작될 것이다.
혀가 걸치적거린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중대한 것은 벌써 눈에 어른거리는 반점들이다.
그것이 불꽃으로 변하게 되면 나는 드러누울 것이다.
우리는 급히 걷는다.
우리는 새벽의 시원함을 이용한다.
볕이 내리쬐기 시작하면, 사람들이 말하듯이 우리는 더는 걷지 못하리라는 것을 잘 안다. 대낮이 되면....
땀을 흘릴 권리도 우리에겐 없다. 기다릴 권리도 없다. 이 시원함은 습도 18퍼센트에 의한 시원함일 뿐이다.
이 부는 바람도 사막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거짓된 부드러운 애무 아래서 우리의 피는 증발돼 간다.
우리는 첫날에 포도를 몇 알 먹었다.
그리고는 사흘째 오렌지 반쪽과 스펀지 케이크 반 쪽뿐, 설령 먹을 것이 있다한들 무슨 침이 있어 씹겠는가?
그런데 전혀 배고프지가 않다. 그저 목이 마를 뿐이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갈증 자체보다도 갈증에서 오는 결과를 더 느끼게 될 것이다.
이 굳어버린 목구멍. 석고와도 같은 혀. 이 깎아내는 것 같은 기분과 지독히도 쓴 맛. 이러한 감각들은 내게는 새로운 것이다.
아마도 물이 이것들을 고쳐 주겠지만, 이 물이라는 약을 이러한 감각과 결부시켜 줄만한 기억이 내게는 전혀 없다.
갈증은 점점 더 욕망 이상으로 하나의 병이 되어 간다.
샘물과 과실들도 이미 내게는 그다지 애절한 영상을 주지 않는 것처럼 생각된다.
나는 오렌지의 그 광채를 잊었다.
마치 내가 다정스러운 것들을 잊어버리고 만 느낌이 들 듯이, 어쩌면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앉아 있다.
그러나 다시 떠나야 한다.
우리는 단숨에 먼 길을 걷기를 포기했다. 5백 미터를 걷고 나면 우리는 피로로 주저앉는다.
그리고 드러눕는데 크나큰 기쁨을 맛본다.
그러나 다시 떠나야만 한다.
풍경이 바뀐다.
돌들이 점점 드물어진다. 지금 우리는 모래 위를 걷고 있다.
우리 앞 2킬로미터쯤 되는 곳에 사구들이 있다.
그 사구들 뒤에 짤막한 식물의 얼룩점들이 있다.
강철의 갑옷보다는 나는 모래가 좋다.
이것은 황금빛 사막이다.
이것은 사하라다. 나는 그것을 알아 볼 수 있다.
이제는 2백 미터에서 기진맥진한다.
"어쨌든 걸어야 해. 적어도 저 소관목 있는 데까지는...."
그것은 엄청난 한계였다.
여드레 후에 우리가 '시문호'를 찾기 위해 자동차로 우리의 발자국을 되밟아 갔을 때 확인한 일인데, 이 마지막 시도가 80킬로미터나 됐다.
그러니까 이때 나는 2백 킬로 미터를 걸어갔던 셈이다. 어떻게 그 이상 걸을 수 있겠는가?
어제 나는 희망도 없이 걸었었다.
오늘은 그런 말조차 그 뜻을 잃어 버렸다.
오늘 우리는 걸으니까 걷고 있다.
아마 소들이 밭을 갈 때도 이럴 테지.
어제 나는 오렌지 숲의 낙원을 꿈꾸었었다. 그러나 오늘은 내게 이미 낙원은 없다.
나는 이제 오렌지가 있다는 것조차 믿지 않는다.
나는 이제 마음이 굉장히 말라 빠졌다는 느낌밖에는 내게서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다.
나는 당장 쓰러질 것 같고, 절망조차 모르겠다. 괴로움도 없다.
나는 그것이 유감이다.
고통이 내게는 물처럼 다정하게 여겨질 텐데. 사람은 자기 자신을 연민하고, 또 친구처럼 자신을 동정한다.
그러나 나는 이제 세상에 친구가 없다.
사람들이 두 눈이 바싹 타버린 나를 발견하면 아마 내가 굉장히 소리쳐 부르고, 몹시 고통을 느꼈을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발버둥도, 후회도, 애증의 고통도 아직은 재화이다.
그런데 내게는 이미 그런 재화도 없다.
순결한 소녀들은 첫사랑의 저녁에 괴로움을 알고 눈물짓는다.
이 괴로움은 생명의 떨림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내게는 이제 괴로움도 없다.
사막, 그것은 바로 나다.
나는 이제 침도 나오지 않지만, 또한 내가 그것을 향해 울부짖었을 그리운 영상들도 그려낼 수가 없다.
태양이 내 속에서 눈물의 샘을 말려버린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을 보았던가?
희망의 숨결이 바다 위의 돌풍처럼 내 위를 지나갔다.
내 의식을 두드리기 전에 이제 막 내 본능에 알려준 이 신호는 무엇일까?
아무것도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이 달라졌다.
이 모래의 식탁보며, 이 언덕들, 그리고 저 아련한 초록의 널빤지는 이미 풍경이 아니고 무대를 이룩한다.
아직은 텅 비어 있지만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는 무대, 나는 쁘레보를 쳐다본다.
그도 나와 똑같은 놀라움을 느끼고 있지만 그는 자기가 느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정녕 무엇이 일어나려 하는 게 틀림없다.
사막이 생기를 띠어가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정말이지 이 부채, 이 고요가 갑자기 광장의 소란함보다도 더 감동적이었다.
우리는 살아났다.
모래에 발자국들이 있지 않은가!
아아! 우리는 인류의 발자국을 잃어버리고, 부족들로부터 떨어져나와, 세계의 움직임으로부터도 잊혀져 이 세상에서 외톨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나, 이제야 우리는 모래에 찍혀진 인간의 기적적인 발자국을 발견한 것이다.
"여기서, 쁘레보. 두 사람이 갈라져 갔어."
"여기선 낙타가 꿇어앉아 있었구...."
"여기선...."
그런데 아직은 우리가 구조된 것이 아니다.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몇 시간만 지나면 사람들이 우리를 구해낼 수 없게 된다.
한 번 기침이 시작되기만 하면 갈증의 진행은 걷잡을 수 없이 빠르다. 그런데 우리의 목구멍이 더욱....
그러나 나는 이 대상을 믿는다. 사막의 어디쯤에서 어정대고 있을 이 대상을....
그래서 우리는 다시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나는 닭 우는 소리를 들었다.
기요메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마지막 판에 나는 안데스 산맥 속에서 수탉 울음소리를 들었어. 또 기차 소리도...."
닭이 운 바로 그 순간에 나는 그 말이 떠올랐다. 그래서 혼잣말을 한다.
"처음에 내 눈이 나를 속였다. 그것은 틀림없이 갈증 탓일 거다. 귀가 더 버티어 온 셈이지...."
그런데 쁘레보가 내 팔을 붙든다.
"들었어요?"
"뭘?"
"수탉 말이요!"
"그래 그렇다면...."
그렇다면 틀림없다. 이 바보야, 이젠 살았어...
나는 마지막 환각에 사로잡혔다.
서로 쫓고 쫓기는 3마리의 개를.
쁘레보도 쳐다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 아랍인 쪽으로 팔을 내민 것은 둘이 함께였다.
그쪽을 향해 모든 숨을 헐떡이고 있는 것도 우리 둘이였다.
이 기쁨에 웃고 있는 것도 우리 둘이였다!
그러나 우리의 목소리는 30미터도 채 못간다. 우리의 성대는 이미 말라붙었다.
우리는 서로 꺼져가는 소리로 말했고, 또 그것을 알아듣지도 못했다!
그런데 언덕 뒤에서 막 모습을 드러낸 저 아랍인과 낙타가 지금 천천히 멀어져 가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그는 혼자인지도 모른다.
잔인한 악마가 그의 모습만 보여주고 다시 끌고 가는 것인가.
그런데도 우리는 더 이상 달릴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아랍인의 옆얼굴이 그 사구 위에 나타난다.
우리는 울부짖는다. 그러나 너무나 낮은 소리다.
그래서 우리는 팔을 휘저었는데, 온 하늘이 거대한 신호들도 가득 차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아랍인은 여전히 오른쪽만 바라보고 있다.
마침내 그는 천천히 몸을 45도 가량 돌리기 시작한다.
그가 앞 얼굴을 보일 그 순간에 모든 것은 끝마쳐질 것이다.
그가 우리 쪽을 바라볼 그 순간에 그는 이미 우리에게서 목마름과, 죽음과, 온갖 환영을 지워 줄 것이다.
그는 45도를 돌기 시작했고, 그것은 벌써 세계를 바꾸어 놓는다.
그의 상반신의 움직임 하나, 그의 시선의 움직임 하나로 그는 생명을 창조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게는 신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이건 기적이다.
그는 바다 위를 걷는 신처럼 모래 위를 우리를 향해 걸어온다.
아랍인은 그저 우리를 바라보기만 한다.
그는 두 손으로 우리 어깨를 눌렀다.
그래서 우리는 복종했다.
우리는 누웠다.
여기에는 이미 종족도, 언어도, 차별도 없다.
우리 어깨에 천사장의 손을 얹은 이 초라한 유목민이 있을 뿐이다.
우리는 이마를 모래 속에 박고 기다렸다.
그리고 지금은 배를 깔고 엎드려 송아지처럼 냄비 속에 머리를 처박고 마시고 있다.
아랍인은 겁이 나서 번번이 우리를 중지시키려 든다.
그러나 그가 늦춰주기가 무섭게 우리는 다시 얼굴을 물속에 처박는 것이었다.
'아아, 물!'
물이여, 너는 맛도, 색깔도, 향기도 없어 너를 정의할 수도 없다.
사람들은 너를 알지도 못하면서 다만 마신다.
너는 생명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생명 그 자체다.
너는 감각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 준다.
너와 함께 우리가 단념했던 모든 힘이 되 돌아온다.
너의 은총으로 우리 가슴 속의 말라붙었던 모든 샘물이 다시 솟는다.
너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보물이며, 또 가장 섬세하여 대지의 뱃속에서 그렇게도 순결하다.
산화마그네슘이 섞인 샘물 위에서는 사람이 죽는 수가 있다.
짠 호수 바로 옆에서 죽는 수도 있다.
약간의 분리 염분을 함유한 2리터의 이슬만으로도 사람은 죽을 수가 있다.
너는 어떠한 혼합도 받아들이지 않으며, 어떠한 변질도 용납하지 않는 꽤 까다로운 여신이다.
그러나 너는 무한히 단순한 행복을 우리들에게 부어 준다.
우리를 구해준 그대 리비아의 유목민이여,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릴 것이다.
그 얼굴도 영영 생각나지 않게 되리라.
당신은 '인간'이다.
그래서 당신은 모든 사람들의 얼굴과 함께 내게 나타난다.
당신은 우리를 눈 여겨 바라본 적도 없었지만 벌써 우리를 알아보았다.
당신은 가장 사랑하는 형제다.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모든 사람들 속에서 당신을 알아볼 것이다.
당신은 숭고함과 친절에 싸여 있어, 내게는 물을 줄 권능을 가진 왕자로 보였다.
내 모든 친구와, 내 모든 적들이 당신을 통해서 내게로 걸어온다.
그러기에 이제 나는 이 세상에 단 한 사람의 적도 없어지고 만 것이다.
8. 인간들의 모순
1)
나는 또 한 번 하나의 진리에 접근했으면서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나는 모든 것이 파멸되어 절망의 밑바닥에 닿은 것으로 믿었는데, 일단 단념을 하고 나자 평화를 알게 됐다.
그런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고, 자기 자신의 유일한 친구가 되는 것 같다.
우리 속에서 우리 자신도 알지 못했던 그 어떤 본질적인 욕구를 채워주는 충만감보다 나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생각건대 바람을 쫓아가느라고 자신을 망가뜨렸던 보나프는 이런 고요한 편안함을 알았으리라.
기요메도 또한 눈 속에서 그것을 알았을 것이다.
나 자신도 어떻게 잊을 수 있으랴.
모래 속에 목까지 파묻히고, 서서히 갈증으로 목이 졸리면서, 그 별들의 외투 아래서 마음이 그다지도 포근했던 때의 일을.
우리 마음속의 이러한 일종의 해방감을 어떻게 하면 북돋아줄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있어서는 모든 것이 모순투성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사람에게 마음껏 창작할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 주면 그는 잠들고 만다.
승리를 거둔 정복자는 연약해지고, 인심 좋은 사람도 부자가 되면 수전노가 되고 만다.
인간을 행복하게 해주겠다고 주장하는 정치상의 주의라는 것도, 그것이 어떤 종류의 인간들을 행복하게 할 것인가를 우선 알지 않고서는 우리에게 무슨 중요성이 있겠는가?
누가 태어나려는가?
우리는 살만 찌우면 되는 가축이 아니며, 가난한 한 사람의 파스칼의 출현이 어느 이름 없는 부호의 출현보다 훨씬 값어치가 있다.
무엇이 본질적인 것인지 우리는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제각기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가장 흐뭇한 기쁨들을 맛보았다.
이러한 기쁨들이 우리에게 그다지도 사무치는 노스탤지어를 남겨 주었기에 우리의 비참함까지도 그리워하게 된다.
동료들과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모두가 쓰라린 추억들의 기쁨을 맛보았던 것이다.
우리를 윤택하게 해주는 미지의 조건이 있다는 것 이외에 우리가 무엇을 안단 말인가?
인간의 진실은 어디에 깃들이고 있는가?
진리란 증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 땅에서만 오렌지 나무들이 튼튼한 뿌리를 뻗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면 이 땅이 바로 오렌지 나무의 진리이다.
다른 어느 것이 아닌 이 종교가, 이 문화가, 이 가치의 기준이, 이 활동 형태가, 인간 속에 이러한 충만감을 주고, 그의 마음속에 알지 못하던 하나의 왕자를 해방시켜 주는 것이라면, 그것은 그 가치 기준, 그 문화, 그 활동 형태가 바로 인간의 진리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논리는? 논리가 인생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좀 더 고생을 겪어내어야 한다.
이 책에서 나는 내내 어떤 지상의 천성에 따라, 이를테면 다른 사람들이 수도원 택하듯이 사막이나 항공로를 택한 사람들 중의 몇 사람의 이야기를 해왔다.
그러나 내가 당신들에게 이 사람들을 찬양해야 할 것은 그들의 바탕이 되어 준 대지이다.
천품도 물론 어떤 작용을 한다.
어떤 사람들은 자기네 가게 안에 틀어박혀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필요한 방향을 향해 감연히 그들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우리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의 역사 속에서 그들의 운명을 설명해 줄 힘의 싹을 발견한다.
그런데 사후에 읽혀지는 역사는 눈을 석이는 법이다.
이러한 힘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찾아 볼 수 있다.
난파나 화재가 일어난 밤에 그들 자신 이상의 위대한 활동을 보인 상인들을 우리는 다들 알고 있다.
물론 그들은 자기네가 발휘한 푸진 힘의 특질에 대해 과대평가하지는 않는다.
이러한 화재는 그들의 생애에서 예외적인 하룻밤일 테니까.
다만 새로운 기화나, 알맞은 대지나, 또는 엄격한 종교가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이 간직한 위대함을 알지 못한 채 다시 잠이 들고 만다.
분명히 천성은 해방되고자 하는 인간들을 도와준다.
그러나 그러한 천성을 해방시키는 일도 똑같이 필요하다.
하늘에서의 밤들이며, 서막에서의 밤들... 이런 것도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드문 기회이다.
그러나 사태가 그들을 부추길 때, 그들은 모두 똑같은 욕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러한 것에 대해서 내게 많은 교훈을 준 스페인에서의 하룻밤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 주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 같다.
나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 대해서 너무 많이 이야기했으니, 이제는 보통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은 내가 통신원으로서 방문했던 마드리드 전선에서의 일이었다.
그날 밤 나는 지하 대피소 안에서 한 젊은 대위의 식탁에 앉아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2)
전화벨이 울렸을 때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긴 대화가 시작됐다.
사령부에 명령한 국지 공격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것은 이 교외의 노동자 거리에 있는 콘크리트 요새로 바뀐 몇 채의 건물을 점거하라는, 터무니없고 절망적인 공격 명령이었다.
대위는 어깨를 흠칫하고는 우리 있는 데로 돌아온다.
"우리 중에서 먼저 나갈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면서 거기 함께 있던 한 상자와 내게 꼬냑잔을 2개 내민다.
"자네 나하고 제1차 출발일세. 마시고 가서 자게."
상사에게 말한다.
상사는 자러 갔다.
이 식탁에 둘러앉은 우리 여남은 명은 불침번이다.
완전히 빛을 차단시켜서 어떠한 빛도 새지 않는 이 방에서 불빛이 너무 부셔 나는 눈을 깜박인다.
5분 전에 나는 총구로 밖을 내다보았다.
창구를 가린 헝겊을 제자리에 가렸을 때, 그것이 기름이 흐르듯이 달빛을 지워버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내 눈에는 암록색 요새의 영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 병사들은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수줍게 침묵을 지킨다.
이 돌격은 명령이다. 인간의 저장 속에서 퍼내는 것이다. 곡물 창고에서 퍼내는 것이다. 씨뿌리기 위해서 한줌의 낟알을 던지는 것이다.
우리는 꼬냑을 마신다.
내 오른쪽에서 장기를 두고 있다. 왼쪽에서는 농담들을 하고 있다.
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반쯤 취한 한 남자가 들어온다. 텁수룩한 수염을 쓰다듬으며 우리에게 정다운 시선을 굴린다.
그의 시선이 꼬냑 위로 미끄러졌다가는 돌리고서 다시 꼬냑으로 되돌아 와서 애원하듯 대위 위로 돌린다.
대위는 나지막하게 웃는다. 희망을 얻은 그 사나이도 웃는다. 가벼운 웃음이 구경꾼들 사이에 번진다.
대위가 술병을 슬며시 끌어당기자 사나이의 시선이 절망의 빛을 띠고, 이래서 어린애 같은 장난이 시작된다.
이 일종의 말없는 발레가 몽롱한 담배 연기와, 철야의 피로와, 임박한 공격 등과 어울려 마치 꿈속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밖에서는 바다의 파도 소리와 같은 폭발음이 심해져 가는데도 우리는 우리 배의 훈훈한 선창 속에 갇혀서 장난을 하고 있다.
이 사람들은 이제 곧 그들의 땀과, 알코올과 기다림에 찌든 때들을 전투의 밤의 왕수 속에서 씻게 될 것이다.
나는 이들이 정화될 시간이 임박했음을 느낀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정꾼과 술병의 발레를 출 수 있는 데까지는 아직도 추고 있다.
그들은 이 장기를 둘 수 있는 데까지는 두고 있다. 그들은 생명을 될 수 있는 데까지 끌어보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은 선반 위에 버티고 있는 자명종을 맞추어 놓았다.
그러니 그 종이 오래지 않아 울릴 것이다.
그러면 이 사람들은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고 혁대를 졸라맬 것이다.
그러면 대위는 걸린 권총을 벗길 것이다.
그땐 주정꾼도 술이 깰 것이다.
그러면 모두들 달빛으로 푸른 장방형을 이룬 입구까지 비스듬히 경사진 복도를 서두르지 않고 않고 올라 갈 것이다.
그들은 이런 하찮은 말들을 하리라. '빌어먹을 놈의 공격....'이라든지, '어유, 춥다!'느니 하는.
그리고 그들을 뛰어 들어갈 것이다.
시간이 되어 나는 상사가 잠을 깨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는 뒤죽박죽이 된 지하실에서 쇠침대 위에 뻗어 자고 있었다. 나는 그가 자는 모습을 들여다보았다.
불안하기는커녕 몹시도 행복스러운 그 잠의 맛을 나도 알 것 같았다.
그의 자고 있는 모습이 리비아에서 첫날의 생각을 나게 했다.
그날 쁘레보와 나는 물도 없이 조난당해 죽음의 선고를 받고서도 아주 심한 갈증을 겪기 전에 한 번, 꼭 한 번 2시간 동안을 잘 수 있었다.
그때 자면서 나는 현실 세계를 거부하는 놀라운 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맛보았었다.
그때, 아직은 평화로울 수 있는 몸의 소유자였던 나는, 얼굴을 팔에 파묻고 나니 그 밤을 행복한 밤과 구별 지을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와 같이 상사는 공처럼 뭉쳐서 사람 같지 않은 모양으로 잠자고 있었다.
깨우러 온 병사들이 촛불을 켜서 병에 꽂았을 때, 그 두루뭉수리의 덩어리에서 내가 처음 알아볼 수 있었던 것은 군화밖에 없었다.
징을 박고 편자를 낀 엄청나게 큰 군화, 날품팔이나 부두노동자들이 신는 군화였다.
이 사내는 자기의 작업 도구를 신고 있었고, 그의 몸에 있는 것은 연장이 아닌 것이 없었다.
탄약함도, 권총도, 가죽 멜빵도, 혁대도. 그는 길마니, 목띠니 하는 밭갈이 말의 마구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
모로코에서는 지하실 속에서 눈먼 말이 끄는 연자매를 흔히 볼 수 있다.
여기서는 흔들리고 불그스레한 촛불 속에서, 연자매를 끌리기 위해서 역시 눈먼 말을 깨우고 있는 것이다.
"이봐, 상시!"
그는 아직 잠에 취한 얼굴로 뭐라고 중얼거리며 꾸물거렸다.
그리고는 잠을 깰 생각은 통 하지 않고 벽 쪽으로 돌아눕는다.
포근한 엄마 뱃속인양, 깊은 잠 속으로 다시 빠져 들어가며, 깊은 물속에서처럼 오므렸다 폈다 하는 두 주먹으로 무언지 모를 시커먼 해초를 붙잡곤 하면서 그의 손가락들을 펴주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의 침대에 걸터앉아 한 사람이 그의 목 밑으로 팔을 살며시 넣고, 웃으면서 그 무거운 머리를 쳐들었다.
그것은 마치 훈훈한 외양간에서 서로 목을 비벼대는 말들의 다정함 같았다.
"이봐, 친구!"
나는 평생에 이보다 더 다정한 광경을 본 적이 없다.
상사는 행복한 잠 속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다이너마이트와, 피로와, 얼어붙은 밤으로 된 우리의 세계를 거부하려고 마지막 노력을 다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밖에서 오는 그 어떤 것이 그를 강요하는 것이었다.
일요일에 학교의 종도 이와 같이 벌 받은 아이를 슬며시 깨운다.
아이는 책상도, 칠판도 벌로 낸 숙제도 잊고 있었다.
그는 벌판에서 놀이하는 꿈은 꾸고 있었으나 헛일이었다.
종은 줄곧 울려 인간들의 부정 속으로 악착같이 그 아이를 다시 끌고 가는 것이다.
이 아이를 닮아 이 상사도 피로에 지쳐빠진 이 육체도, 그도 원치 않는 이 육체를 차츰차츰 의식하는 것이었다.
잠이 깰 때의 추위 속에서 이내 저 뼈 마디마디의 쓰라린 아픔을, 또 마구의 무게를, 또 저 무거운 달음박질을, 그리고는 죽음 알게 될 그 육체를.
죽음 자체보다도 몸을 일으키기 위해 손을 담그는 저 피의 끈끈이와, 그 힘든 호흡과, 그를 둘러싼 빙판, 죽음 자체보다도 죽어갈 때의 그 불편함.
그래서 나는 그를 쳐다보면서 줄 곧 생각에 잠기는 것이었다.
나 자신이 잠이 깨었을 때의 허전함과, 엄습해 오던 갈증과, 태양과, 사막과, 사람이 어쩌지 못할 꿈인 생명의 엄습 등을 생각하며.
그런데 상사는 일어나서 우리를 똑바로 쳐다본다.
"벌써 시간인가?"
역시 인간이 나타난다. 여기서 인간이 논리의 예측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상사는 웃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이 유혹은 무엇인가?
메르모즈와 내가 몇몇 친구들과 함께 축배를 들던 파리에서의 어느 밤이 생각난다.
무슨 기념일 이었는지는 모르나 우리는 너무 많이 지껄이고, 너무 많이 마시고, 공연히 피로해진 데 진저리가 나서 새벽녘에 어느 바의 문간에 서 있었다.
그런데 하늘이 벌써 희끔해져 있어, 갑자기 메르모즈가 내 팔을 움켜잡았다.
그것도 그의 손톱이 느껴질 정도로 억세게.
"이봐, 지금쯤 다까르에서는...."
그것은 정비공들이 눈들을 비비며 프로펠러의 커버를 벗기는 시각이며, 조종사가 기상 통보를 알아보러 갈 시각이며, 땅 위의 온통 동료들만으로 가득 찰 시각이었다.
벌써 하늘은 붉게 물들고, 벌써 사람들은 잔치를, 다른 사람들을 위한 잔치를 준비하고, 벌써 우리는 참석하지 못 할 연회의 식탁보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각자의 위험을 무릅쓰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긴 얼마나 불결한가...."
메르모즈가 말을 맺는다.
그런데 자네, 상사여, 자네는 죽음에 값할만한 어떤 연회에 초대를 받았던 말인가?
나는 이미 자네의 속내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다.
자네는 내게 신상 이야기를 해주었다.
자네는 바르셀로나 어느 곳의 보잘 것 없는 경리사원으로서 전에는 숫자를 늘어놓고 있었다. 자네 나라가 갈라져 있다는 것에는 그다지 관심도 없이, 그런데 한 동료가 지원 입대했다.
이어 또 한 사람, 그리고 또 한 사람.
그리하여 자네는 어리둥절해서 어떤 야릇한 변화를 받아들였다.
자네의 하는 일이 점점 시시하게 여겨졌다. 자네의 기쁨들도, 걱정들도, 하찮은 일상의 안락함도 모두가 옛 시대의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기에 있지 않았다.
마침내 자네 동료의 한 사람이 말라가 근처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이 왔다.
자네가 그 복수를 해주고 싶었을지도 모를 그 친구 하나가 문제가 아니었다.
정치란 것도 일찍이 자네의 마음을 어지럽힌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 죽음 소식이 바다의 돌풍처럼 자네 위를, 자네의 좁다란 운명 위를 스쳐 갔다.
그날 아침 한 동료가 자네를 쳐다보며 말했다.
"갈까?"
"가자."
그래서 자네들은 '갔던' 것이다.
자네가 말로 나타내지는 못했지만, 그 명백한 사실을 자네를 지배했던 그 진리를 설명해 줄 수 있는 몇 가지 일들이 내 머리에 떠올랐다.
이주기에 기러기가 날아갈 때, 그들이 굽어보는 지역 위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
그것은 집오리들이 그 거창한 삼각형의 날개에 끌리듯이 서투른 날개 짓을 시작하는 것이다.
야성의 부름 소리가 그들 속에 있는 무엇인지 모를 어떤 야성의 흔적을 잠 깨운 것이다.
즉, 농가의 오리들이 잠시 철새로 바뀐 것이다.
웅덩이니, 벌레니, 오리집이니 하는 하찮은 영상만이 내왕하던 그 작은 무딘 머리 속에, 대륙의 드넓음과, 큰 바닷바람의 맛과, 해양의 진리가 전개된 것이다.
이 짐은 제 골이 이렇듯 놀라운 것들을 간직할 수 있을 만큼 넓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 날개를 치고, 낟알과 벌레들을 깔보며, 오직 기러기가 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특히 내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내 영양들이다.
나는 쥐비에 있을 때 영양들을 길렀었다.
거기서는 모두들 영양을 길렀다.
우리는 그것들을 창살 달린 우리 속에 가두어 한데다 두었다.
영양에게는 유동하는 공기가 필요하고, 또 그들만큼 허약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붙잡혀서라도 자라고, 시림 손에서 풀을 먹게 된다.
쓰다듬어 주면 가만히 있고, 그 촉촉한 콧잔등을 손바닥에 파묻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놈들이 길이 든 줄로 안다.
사람들은 소리도 없이 영양의 씨를 없애고, 살그머니 그들을 죽이는 알지 못할 괴로움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 주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런데 그놈들이 조그만 뿔로 사막 쪽을 향해 울타리를 떠받는 것을 발견하는 날이 온다.
그놈들은 자석에 이끌린 것이다.
그놈들은 사람들에게서 도망친다는 것도 모른다.
조금 전에도 당신이 갖다 준 우유를 막 먹고 난 참이다.
그것들은 아직도 쓰다듬어 주면 가만히 있고, 콧잔등을 손바닥에 더 다정스레 파묻기도 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놓아주기가 무섭게 기뻐서 껑충거리는 듯이 보이다가는 다시 창살 있는 데로 돌아가는 것을 볼 것이다.
그리고 당신이 간섭하지 않으면, 그냥 거기 서서 울타리와 싸워볼 생각은 없어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작은 뿔로 죽어라 하고 울타리를 떠받는 것이다.
발정기라서 그런가? 아니면 숨이 차도록 뛰놀고 싶은 단순한 욕구 때문일까?
그놈들은 그것을 모른다. 사람들이 붙잡아 왔을 때는 아직 눈도 뜨지 않았었다.
그놈들은 수컷의 냄새를 모르듯이 사막에서의 자유도 전혀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 양들보다 더 영리하다.
그놈들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 그대들은 안다.
그것은 그놈들의 소원을 채워 줄 넓은 들판이다.
그놈들은 영양이 되어 저희들의 불꽃을 피하려는 듯이 갑작스런 도약을 섞어 가며, 시속 1백 30킬로 미터의 줄달음질을 맛보고 싶은 것이다.
두려움을 맛보는 것이 영양들의 진리이고, 그 두려움만이 그들에게 제 힘 이상을 해내게 하고, 가장 높은 재주를 끌어내게 하는 것이라면, 자칼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폭양 밑에서 맹수의 발톱에 찢겨 죽는 것이 영양들의 진리라면, 사자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그대들은 그들을 들여다보며 생각할 것이다.
그놈들이 향수에 사로잡혀 있다고 향수, 그것은 알지 못할 그 무엇인가에 대한 동경이다.
동경의 대상이 있기는 하다. 다만 그것을 표현할 말들이 없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무엇이 그립단 말인가?
상사여, 자네는 여기서 자네의 운명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는 결심을 할 만한 그 무엇을 발견했단 말인가?
어쩌면 그것은 자네의 잠든 머리를 쳐들어준 그 우애로운 팔이거나, 또는 동정은 아니나, 나누어주는 그 정다운 미소가 아닐까?
'이봐, 친구!' 동정한다는 것은 아직도 둘로 있다는 뜻이다. 아직도 갈라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감사도 연민도 똑같이 의미를 잃게 되는 인간 관계의 높이가 있다.
사람이 해방된 포로처럼 숨을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여기다.
2대의 비행편대로 아직 귀순하지 않은 리오 데 오로 지방을 날아 넘었을 때, 우리는 이러한 결합을 맛보았었다.
나는 조난자가 구조자에게 감사하는 말을 일찍이 들은 적이 없다.
오히려 흔히 우리는 이 비행기에서 저 비행기로 우편 행낭을 옮겨 싣느라고 애를 쓰는 동안에도 서로 욕지거리를 하곤 했었다.
"망할 자식! 내가 고장이 난 건 네 탓이야. 미쳤다고 그 역풍 속을 고도 2천으로 날아! 좀더 낮게 날따라 왔더라면 우린 벌써 뽀르 에띠엔에 가있을 게 아냐!"
그러면 목숨을 내맡기고 따라 왔던 상대편은 망할 자식이 된 부끄러움을 깨닫게 된다.
하기야 무엇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도 역시 우리 생명에 대한 감사를 할 수 있었겠는가?
그도 역시 우리 생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한 나무의 가지들이다.
그리고 나는 나를 구해준 자네가 자랑스러웠다!
상사여, 죽음을 위해 자네에게 준비를 시켜주던 그 병사가 왜 자네를 동정했겠는가? 자네들은 서로를 위해 이 위험을 택했던 것이다.
바로 그 순간에 사람들은 이미 언어가 필요치 않은 일치감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자네의 출발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자네가 바르셀로나에서 가난했고, 일이 끝난 후에는 외로웠고, 자네 몸을 편히 쉴 곳조차 없었을지 모르지만, 여기서는 자네 자신이 완성되는 느낌을 맛보게 되었고, 또 우주적인 작업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따돌림 받던 자네가 사랑으로써 맞아 들여졌던 것이다.
어쩌면 자네를 충동질했을지도 모르는 저 정치가들의 호언장담이 진정했고 안했고, 또 이치에 맞지 않고를 나는 알려고 하지 않는다.
씨앗들이 싹을 틔우듯이 그 말들이 자네를 붙들었다면, 그것은 그 말들이 자네의 욕구와 합치됐기 때문이다.
자네만이 심판관이다.
밀을 알아 볼 줄 아는 것은 대지이다.
3)
우리는 어떤 곳에 있으면서 우리에게 공통된 목적에 의해 형제들과 결합되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숨을 쉬는 것이며, 또한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함께 바라보는 것임을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그들이 같이 도달할 같은 봉우리를 향해 같은 로프에 묶여져 있지 않으면 동료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야 바로 이 안락한 세계에, 왜 사막 한가운데서 마지막 식량을 나누는 것에 그렇게도 넘치는 기쁨을 느끼겠는가?
이에 대한 사회학자들의 억측 따위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
우리들 중에서 사하라 사막에서의 그 구조작업의 큰 기쁨을 맛본 모든 사람에게는 다른 기쁨들이란 모두 하찮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가 우리 주위에서 와지끈거리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에서일지도 모른다.
누구나 자기에게 이러한 충만감을 약속해 주는 종교에 열광한다.
모순된 말들을 가지고, 우리 모두가 똑같은 정열을 표현하고 있다.
우리들은 제각기 이성의 열매인 방법에 있어서는 서로 다르지만 목적은 다르지 않다. 목적은 다 같은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놀라지 않는다.
자기 속에 잠자고 있는 미지의 것을 짐작조차 못했던 사람이, 바르셀로나의 어느 아나키스트들의 지하실에서 희생이니, 상호 원조니, 정의의 준엄한 영상이니 하는 것에 감동되어 단 한 번이라도 그것이 깨어나는 것을 느끼고 나면 ,그 사람은 이제 하나의 진리, 아나키스트의 진리밖에는 알지 못하게 되더라도 또 스페인의 수녀원에서 겁을 먹고 꿇어앉아 있는 어린 수녀들을 보호하기 위해 한번 보초를 선 사람은 끝내 그 교회를 위해 죽을 것이다.
가슴에 승리감을 안고 안데스 산맥의 칠레 쪽 비탈을 향해 빠져 들어가는 메르모즈더러 잘못이라고, 상인의 편지 한 장이 목숨을 걸만한 가치는 없을 것이라고 당신이 반대했다면, 메르모즈는 당신을 비웃었을 것이다.
안데스 산맥을 넘었을 때 그의 속에서 태어나던 인간, 그것이 바로 그의 진리인 것이다.
전쟁을 불사하는 사람에게 전쟁의 무서움을 납득시키려거든 그를 야만인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를 비판하기에 앞서 그를 이해하도록 힘써라.
리프 전쟁 당시, 두 불귀순 고지 사이의 쐐기 모양으로 설치된 전초 진지를 지휘하던 남방지구의 그 장교를 생각해 보라.
그는 어느 날 저녁, 서쪽 산악에서 내려온 군사들을 맞았다.
격식대로 함께 차를 들고 있는데 총격이 벌어졌다.
동쪽 산악 지대의 부족들이 이 초소를 공격해 온 것이다.
전투를 위해 물러갈 것을 요구하는 대위에게 적의 군사들은 이렇게 응답했다.
"오늘 우리는 귀관의 손님이오. 신은 귀관을 내버려 두고 떠나는 것은 허락지 않소...."
그래서 그들은 대위의 군대와 합세해서 그 진지를 구해주고는 그들의 독수리 집으로 다시 기어 올라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들이 이 진지를 습격할 준비를 하는 전 날, 그들은 대위에게 사자들을 보냈다.
"저번 밤에 우리는 귀관을 도왔다."
"그랬소."
"우리는 귀관을 위해 소총탄 3백을 쏘았다."
"그랬소."
"그것을 우리에게 돌려 줘야 옳지 않소?"
기품 있는 대위는 그네들의 고귀함에서 얻어낼 수 있었을 이익을 이용할 수가 없었다.
그는 자기들을 향해 쓰여질 소총탄을 돌려주었다.
인간의 진리란 자기를 하나의 인간으로 만들어 주는 것, 바로 그것이다.
그와 적군과의 이러한 관계의 어엿함, 승부에 있어서의 성실함, 목숨을 건 상호간의 경의의 주고받음을 이해한 그 대위가, 자기에게 주어진 이 고귀함을, 같은 아랍인에게 어깨를 툭 치며 자기의 우애를 보이고, 그들에게 아첨도 하나 동시에 창피하게도 하는 저 선동 정치가들의 비열한 친절과 비교할 때, 만일 당신이 그와 반대되는 의견을 늘어 놓는다면, 대위는 당신에 대하여 약간 멸시 섞인 연민밖에는 느끼지 못 할 것이다.
그런데 옳은 것은 바로 그다.
그러나 당신들이 전쟁을 증오하는 것도 일리는 있다.
인간과 그 갖가지 욕망을 이해하고, 그가 가진 본질적인 것 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려면, 당신들의 진리의 명백한 사실을 서로 대립시켜서는 안 된다. 그렇다.
당신들은 옳다. 당신들은 모두 옳다. 논리는 모든 것을 증명한다.
세계의 불행을 꼽추에게 전가시키는 자에게도 일리는 있다.
만약 우리가 꼽추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면, 우리는 이내 흥분할 이유를 찾아 낼 것이다. 우리는 꼽추들의 죄악에 보복하는 것이니까. 그리고 물론 꼽추들도 죄악을 범한다.
이 본질적인 것을 끌어내어 보려면, 잠시 이들의 차이를 잊어야만 한다.
차이란 한 번 인정받게 되면 온통 코란 한 권만큼의 요지부동의 진리와, 거기서 쏟아져 나오는 광신까지도 끌어오는 것이다.
물론 사람들을 좌익과 우익, 꼽추와 꼽추 아닌 사람, 파시스트와 민주주의자로 구분할 수 있고, 또 이러한 구분은 비난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진리란 여러분도 알다시피 세계를 단순화하는 것이지 혼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진리란 보편성을 끌어내는 언어이다.
뉴턴은 결코 퀴즈 풀이처럼 오랫동안 숨어 있던 법칙을 발견한 것은 아니다.
뉴턴은 하나의 창조적인 실험을 행한 것이다.
그는 풀밭에 사과가 떨어지는 것과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동시에 표시할 수 있는 인간의 언어를 창조했던 것이다. 진리란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단순화시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를 논쟁한들 무슨 소용인가?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것들을 또한 반증될 수 있으며, 이러한 논쟁은 인간의 구원을 절망으로 이끌 뿐이다.
그런데 인간은 우리 주위 어디서고 똑같은 요구를 드러내 보이고 있다.
우리는 해방되고 싶어 한다.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은 그 곡괭이질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형량을 선고 받은 사람을 모욕하는 수형자의 곡괭이질은 탐험가를 위대하게 하는 곡괭이가 박힌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행위 속에 추악이 있는 것이 아니다.
도형장은 의미를 갖지 않은 곡괭이가 박힌 곳, 그 사람을 인간의 공동체와 맺어 주지 않는 곡괭이가 박힌 곳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도형장을 탈출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현재 유럽에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않아 다시 태어나기를 원하는 2억의 인간이 있다.
공업이 그들을 농민으로서의 전통에서 끌어내어 시커먼 열차들로 혼잡한 역과도 같은 거대한 게토(유태인 지정 거주 지역) 속에 가두어 버렸다.
노동자 도시의 밑창에서 그들은 깨어나기를 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개척자의 기쁨도, 종교적인 기쁨도, 학자로서의 기쁨도 금지된 온갖 직업의 톱니바퀴 틈에 끼어 들어가 있다.
그들을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그들에게 옷을 입히고, 먹이고, 그들의 모든 욕망을 만족시켜 주기만 하면 된다고 사람들은 믿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츰 차츰 자기 속에 꾸르뜰린 같은 소시민이나, 촌뜨기 정치가, 내면 생활에 관심이 없는 기술자를 만들어 놓고 말았다.
그들에게 교육은 잘 시킨다 하더라도 정신을 북돋우어줄 생각은 이미 없다.
문화에 대해서도 정말 보잘 것 없는 의견을 갖게 되어, 그것이 단지 공식의 암기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라고 믿게 된다.
전문학교의 열등생이라도 자연이나 그 법칙에 관해서는 데카르트나 파스칼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정신에 있어서도 같은 걸음걸이가 가능할까?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막연히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해결 방법이 잘못되어 있다.
물론 사람들에게 군복을 입힘으로써 활기를 줄 수는 있다.
그러면 그들은 군가를 부르고 전우들과 더불어 빵을 뜯어 먹을 것이다.
그들은 또 자기들이 찾는 보편적인 것의 맛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주어진 빵으로 인해 그들은 죽어 가는 것이다.
땅 속에서 나무 우상을 파내어 그럭저럭 무엇을 증거 세운 신화를 부활시킬 수도 있고, 또 범게르만주의나 로마제국의 신비론자들을 부활시킬 수도 있다.
독일 사람들로 하여금, 독일 사람이며, 베토벤과 동국인이라는 도취감에 취하게 할 수도 있다.
그것으로 부두 노동자까지 만취시킬 수도 있다.
그것은 분명히 부두 노동자로부터 하나의 베토벤을 끌어내기보다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우상들은 사람 잡아먹는 우상들이다.
지식의 진보나 질병의 치유를 위해 죽는 사람은, 그가 죽는 것과 동시에 생명을 위해 이바지하는 것이다.
영토 확장을 위해 죽는 것도 갸륵한 일인지는 모르나, 오늘날의 전쟁은 그것이 조장시켜 준다고 주장하는 그것 자체를 파괴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민족 전체를 살리기 위해 약간의 피를 희생시킨다는 것도 문제가 안된다.
전쟁이 비행기와 이페리트가스를 쓰게 된 이래로 그것은 이제 피투성이 외과 수술에 지나지 않는다.
저마다 콘크리트 벽으로 된 방공호에 의지하고, 서로가 밤마다 비행 편대를 보내어 상대편의 오장육부를 폭격하여 그 치명적인 중심부를 파괴하고, 그 생산과 교역을 마비시킨다.
승리는 맨 나중에 썩는 자에게 돌아간다. 그런데 두 적수들은 대개 같이 썩어 가는 것이다.
무인지경이 된 세상에서 우리는 동료들을 찾느라고 목이 탔었다.
동료들과 나누어 먹는 빵 맛은 우리에게 전쟁의 가치를 인정하게 했다.
그러나 같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옆 사람들 어깨의 따스함을 찾기 위해 전쟁이 필요한 건 아니다.
전쟁은 우리를 속인다.
증오가 달음박질의 흥분에 보태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 우리는 증오하는가?
우리는 같은 떠돌이별을 타고 있는 한 배의 선원으로서 연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새로운 종합을 북돋우기 위해 문명들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들이 서로 잡아먹는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우리를 해방시키려면, 우리 서로를 맺어주는 하나의 목표를 인식하도록 도와주면 되는 것이니 만큼, 우리 모두를 결합시켜 주는 바로 거기에서 그것을 찾아야 할 일이다.
진찰하는 의사는 그 환자의 하소연을 듣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인간의 병을 고치고자 하는 것이다. 의사는 보편적인 언어를 말한다.
원자와 성운을 동시에 파악할 수 있는 거의 신과도 같은 방정식을 생각해낼 때의 물리학자도 마찬가지다.
순박한 양치기에 이르기까지 이와 같다.
왜냐하면 별 아래서 몇 마리의 양들을 조심성 있게 지키고 있는 그가 자기의 역할을 자각한다면, 자기가 한낱 종이 아님을 깨달을 테니까. 그는 보초인 것이다.
그리고 보초 하나하나는 나라 전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 양치기가 자기의 역할을 자각하고자 원하지 않는다고 당신은 생각하는가?
나는 마드리드 전선에서, 참호에서 5백 미터쯤 떨어진 언덕 위의 조그마한 돌담 뒤에 자리 잡은 학교를 찾아가본 일이 있다.
한 사람의 하사가 거기서 식물학을 가르치고 있었다.
손끝으로 개양귀비 꽃의 연약한 기관을 분해해 가면서 그는 수염 난 순례자들을 끌어 모으고 있었는데, 그들은 둘러싸여 있는 진창을 빠져 나와 포탄을 무릅쓰고 그가 있는 곳으로 순례하러 기어 올라가는 것이었다.
하사를 둘러싸고 그들은 책상다리를 하고 주먹으로 턱을 괴고 앉아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들은 눈썹을 찌푸리기도 하고, 이를 악물기도 했다.
그들은 수업에 대해서는 대단한 것을 알아듣지 못했으나 이런 말은 알아들었다.
"당신들은 짐승이다. 당신들은 이제 겨우 동굴에서 기어 나왔다. 인간성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따라잡으려고 무거운 발걸음을 서두르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무리 조그마한 것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비로소 행복할 수 있다.
그때라야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의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이란, 그것이 자연의 질서 안에 있을 때 지극히 다사로운 것이다.
가령 프로방스의 늙은 농부가 자기 대의 끝에 임박해서, 자기 몫의 염소와 올리브 나무들을 아들에게 물려주고, 그 아들들도 차례로 그 아들들에게 물려 줄 수 있게 하려는 그런 때 그러한 것이다.
농부의 가계에서는 사람은 반밖에 죽지 않는다.
각기의 생명은 자기 차례가 오면 깍지처럼 터져 씨앗을 넘겨주는 것이다.
나는 언젠가, 어머니의 임종의 자리에 임한 세 사람의 농부를 곁에서 본 일이 있다.
물론 그것은 비통한 일이었다. 두 번째로 그들의 탯줄이 끊어진 셈이다. 두 번째로 매듭이, 한 대와 다음 대를 잇는 매듭이 풀어진 것이다.
이 세 아들들은, 이제부터 모든 것을 새로 배워야 하고, 명절날 모여, 앉을 단란한 식탁도 없어지고, 의지해야 할 중심을 잃어버린 외로운 자신들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와 함께 이런 것도 발견했다.
이 끊어짐 속에서 또한 생명이 두 번째로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 아들들도 역시 차례가 되면 줄의 선두가 되고, 집합 점이 되고, 가장이 될 것이다.
그들이 그들의 차례가 와서, 지금 안마당에서 놀고 있는 저 한 배의 자식들에게 지휘권을 넘겨 줄 그때까지.
나는 그 어머니를 보고 있었다.
평화롭고도 굳은 얼굴에 입술을 꽉 다문 늙은 농사꾼 아낙네, 돌의 가면으로 바뀐 그 얼굴을, 나는 그 얼굴에서 아들들의 얼굴을 알아보았다.
이 가면은 그들의 얼굴을 찍어내는데 소용되었던 것이다.
그 몸은 그들의 몸, 그 아름다운 인간의 원형들을 찍어내는데 소용됐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 어머니는 찌그러져서, 열매를 꺼낸 깍지처럼 쉬고 있는 것이다.
아들과 딸들도 그들의 차례가 오면 자기들의 몸으로 작은 인간들을 찍어낼 것이다.
농가에서는 사람은 죽지 않는다.
어머니는 죽었다. 어머니 만세!
비통하기는 하다. 그렇다. 그러나 또한 얼마나 순박한가. 백발의 아름다운 껍질을 가는 길에 하나하나 버리면서, 자기의 변신을 통해서 알지 못할 진리를 향하여 나아가는 이 혈통의 모습은...
그러기에 그날 저녁, 그 시골 작은 마을의 죽음을 알리는 종소리가 절망이 아닌 조심스럽고도 다정한 기쁨을 실은 것처럼 내 귀에 들린 것도 이 때문이다.
장례와 세례를 한 목소리로 엄숙한 그 종소리는 또다시 한 세대가 다른 세대로 옮아감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가엾은 한 노파와 대지와의 약혼식 노래를 들으면서 크나큰 평화밖에는 느끼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한 그루의 나무의 성장처럼 유유한 걸음으로 전해져 가는 것은 생명이기도 하지만 또한 의식이기도 하다.
얼마나 신비스러운 올라감인가!
녹아 흐르는 용암에서, 별의 반죽에서 기적적으로 싹튼 생명 있는 세포에서 태어난 우리는, 차츰차츰 칸타타 노래를 쓰고, 은하수를 계측하는 데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 어머니는 결코 생명만을 전해준 것이 아니다.
아들에게 말을 가르쳐 주었고, 여러 세기에 걸쳐 차츰차츰 쌓여진 짐짝을, 자기가 맡아 왔던 정신적인 유산인, 뉴턴과 세익스피어를 동굴 속의 짐승들과 구별지어주는 전통과 개념과 신화 등의 조그만 몫을 그들에게 맡겨준 것이다.
우리가 배고플 때 느끼는 것, 저 스페인의 병사들을 포격을 무릅쓰고 식물학 수업으로 이끌어 가고, 메르모즈를 남대서양 쪽으로 몰아가고, 다른 사람들을 그들의 시로 본 그 굶주림에서 깨닫는 것은 천지의 생성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고, 또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하여 자각해야겠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어두운 밤에 타랍을 걸쳐 놓아야 한다.
자신들을 이기적인 것이라고 믿는 무관심으로써 자기들의 지혜로 삼는 자들만이 굶주림을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이러한 지혜와는 모순된다!
동료들, 나의 동료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증인으로 세운다. 그래, 어떤 때에 우리는 행복을 느꼈던가?
4)
이제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생각나는 것은, 조종사로서 지명된 행운을 얻어, 우리가 인간으로 탈피할 준비를 하고 있던 그때, 그 첫 우편 비행을 떠나던 새벽에 우리를 배웅해 주던 늙은 사무원들이다.
그들도 우리들과 같은 인간이기는 하나, 자기들이 굶주리고 있다는 것을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잠자게 내버려 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몇 해 전에 기 기차 여행 도중에, 나는 사흘 동안이나 그 바닷물에 굴리는 조약돌 같은 소리의 포로가 되어 갇혀 있던 기차의 이 진행 중인 고장이 보고 싶어서 몸을 일으켰었다.
새벽 1시경이었는데, 나는 열차 전부를 종단해서 걸어갔다.
침대차는 비어 있었다. 1등 찻간도 비어 있었다.
그런데 3등 차는, 프랑스에서 해고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는 수백 명의 폴란드 노동자들을 태우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을 타넘으면서 복도를 지나갔다.
나는 둘러보기 위해 발을 멈추었다.
희미한 등불 아래 서서, 나는 이 병영이나 유치장 같은 냄새를 풍기는 공동 숙사 비슷한 칸막이 없는 객차 안에서, 열차의 동요로 흔들리고 있는 혼잡한 군중을 보았다.
그것은 악몽 속에 파묻혀 그들의 비참함 속으로 되돌아가려는 군중의 모습 바로 그것이었다.
빡빡 깍은 카다란 머리들이 나무 걸상 위에서 뒹굴고 있었다.
남자들, 여자들,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가 그들의 망각 속에서 그들을 위협하는 이 모든 소음과 동요에 시달리듯이 좌우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단잠의 후대를 받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이들, 경제의 조류에 밀려 유럽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쫓겨 다니고, 내가 전에 폴란드 광부들의 창가에서 본 적이 있는 제라늄 화분 3개와 손바닥 만한 마당이 달린 그노르 지방(프랑스 북부지방)의 작은 집에서도 떨려 난 이 사람들은 인간의 자격도 태반은 잃어버린 것처럼 보였다.
엉성하게 묶어 탈장처럼 터진 봇짐 속에는 부엌세간과, 담요와, 커튼밖에는 챙겨 넣지 못했다.
그들이 쓰다듬고 귀여워하던 모든 것, 프랑스에서 지낸 4~5년 동안에 길들였던 모든 것들, 고양이며, 개며, 제라늄 따위는 단념해야만 했고, 이 부엌세간만을 가지고 가는 것이었다.
아기 하나가, 하도 지쳐서 잠든 것처럼 보이는 엄마의 젖을 빨고 있었다.
이 여행의 부조리와 무질서 속에서 생명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돌덩이처럼 무겁고 까까중인 머리통, 작업복 속에 갇혀 불편한 잠 속에 빠져 오그린 울퉁불퉁한 육체, 그는 마치 진흙덩어리 같았다.
밤이면 이와 닮은 이미 형체도 없는 표류물들이 시장의 벤치 위에 놓여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문제는 이 비참함 속에, 이 불결함 속에 이 추함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긴 커녕 바로 이 남자와 이 여자가 어느 날 서로 알게 되어, 아마도 남자 쪽에서 여자에게 미소를 던졌을 것이다.
그는 어쩌면 하루 일이 끝나면 그녀에게 꽃도 가져다주었겠지.
수줍고 서투른 그는 어쩌면 업신여김 당할까봐 떨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는 타고난 아양과 매력에 자신을 가지고 그를 골려주며 즐거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제는 곡괭이질이나 망치질을 하는 기계에 지나지 않게 된 이 남자는 마음 속에 달콤한 번민을 느꼈을 것이다.
이상한 것은 지금 그들이 진흙 덩어리로 변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어떤 지독한 거푸집을 거쳐 나왔기에 이처럼 판박이 기계에 눌린 것처럼 이렇게 찍혀졌단 말인가?
늙은 짐승도 아직 제 매력을 간직하는 법이다.
어째서 이 아름다운 인간의 진흙은 망가진 것일까?
나는 잠자리가 사창굴처럼 어지러운 군중들 사이에서 여행을 계속했다.
거친 코고는 소리와, 알아듣지 못할 한탄과, 어느 한편이 견딜 수 없어 다른 쪽으로 뒤채는 사람들이 바닥을 긁는 헌 구두 소리 등이 뒤범벅이 된 야릇한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
그리고 바닷물에 뒹구는 조약돌 소리 같은 그칠 줄 모르는 반주가 여전히 나지막이 들리고 있었다.
나는 어느 부부 맞은편에 앉는다.
그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어린 아이가 간신히 비집고 들어가 잠들고 있었다.
그런데 잠자면서 돌아 눕는 바람에 그 얼굴이 희미한 등불 밑에 드러났다.
오오! 얼마나 사랑스러운 얼굴인가! 이 부부에게서 일종의 황금 과실이 태어났던 것이다.
이 둔중한 암수 남,녀에게서 이 아름답고 매력 있는 걸작이 생겨나온 것이다.
나는 그 반듯한 이마, 그 귀엽게 내민 입술 위에 몸을 굽혀 들여다보며 생각했다.
이것이야말로 음악가의 얼굴, 어린 모짜르트, 생명의 아름다운 약속이다라고 전설 속의 어린 왕자인들이 아이와 다를 바 없다.
보호받고, 귀염 받고, 교양 받는다면 이 아이도 무엇인들 못될 것인가!
정원에 돌연변이로 새로운 장미꽃이 피어나면 정원사들은 모두 법석을 떤다.
그 꽃을 따로 옮겨 심고, 가꾸고 우대를 한다.
그런데 사람을 위한 정원사는 없다.
어린 모짜르트도 다른 아이들처럼 판박이 기계에 찍히게 될 것이다.
모짜르트는 카바레의 악취 속에서 썩어빠진 음악으로 자기의 가장 높은 기쁨으로 삼을 것이다.
모처럼의 모짜르트도 마지막이다.
나는 내 찻간으로 돌아왔다.
나는 생각했다.
그들은 자기의 운명을 조금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자비심이 아니다.
영원히 터지기를 계속하는 상처를 연민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상처를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상처를 입은 피해자는 개인이 아니고 인류라고나 할 그 무엇이다.
나는 연민을 믿지 않는다.
지금 나를 괴롭히는 것은 정원사의 관점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결코 이 비참함이 아니다.
비참함 속에서라면 인간은 나태 속에서 그렇듯이 그 속에 안주해 버릴 수도 있다.
유럽에 가까운 동방의 여러 나라 사람들은 대대로 신분이 낮은 천함 속에 살면서도 그것을 낙으로 삼아 왔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묽은 수프(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는 무료 급식)만으로는 고칠 수 없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그 울퉁불퉁함도 누추함도 아니다.
그것은 말하자면, 이 인간들 하나하나 속에서 학살당한 모짜르트인 것이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 위로 불어 넣었을 때에 비로소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