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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든(Walden) 3

Bollnow 2024. 3. 8. 05:34

11장 보다 높은 법칙들

 

고기 잡은 것을 줄에 꿰어 들고 낚싯대를 끌면서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올 때는 꽤 어두워졌을 때였다. 이때 우드척 한 마리가 내 앞길을 살짝 가로질러 지나갔다. 나는 야만적인 기쁨의 야릇한 전율과 함께 그 놈을 잡아 날것으로 먹고 싶은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배가 고파서가 아니었다. 그 우드척이 나타내는 야성적인 것에 식욕을 느낀 것이다.

나는 호숫가에 사는 동안 한두 차례 굶주린 사냥개처럼 어떤 야생 동물이라도 있으면 잡아먹으려고 이상스러운 무아의 경지에서 숲속을 헤맨 적이 있다. 그 때 같으면 어떤 종류의 고기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장 야성적인 광경도 왜 그런지 낯설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 자신 속에 보다 높은, 소위 정신적인 삶을 추구하는 본능과 원시적이고 상스럽고 야만적인 삶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본능을 발견하고 있다. 이 두 가지를 나는 다 존중한다. 나는 야성을 선 못지 않게 사랑한다. 낚시질에는 야성과 모험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낚시질에 매력을 느끼고 있다. 어떤 때 나는 삶의 야성적인 면에 빠져들어 하루하루를 좀 더 야생 동물처럼 보내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어렸을 때 내가 자연과 친하게 된 것은 아마 낚시와 사냥 덕택이었던 것 같다. 낚시와 사냥은 일찌감치부터 우리를 자연의 경관에게 소개해 주고 그 안에 머물도록 해준다. 그렇지 않으면 그 나이엔 자연과 별다른 친교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것이다. 어부와 사냥꾼과 나무꾼 같은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들이나 숲속에서 보내기 때문에 어떤 의미로는 자연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그들은 생업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연에게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접근하는 철학자나 시인보다도 자연을 관찰하는 데 더 나은 위치에 처하는 적이 많다. 자연은 이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대초원을 여행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사냥꾼이 되며, 미주리 강과 컬럼비아 강의 상류를 여행하는 사람은 덫사냥꾼이 되며, 세인트메리 폭포를 여행하는 사람은 어부가 된다. 단순히 여행만을 하는 사람은 사물의 반쪽만을 간접적으로 배우기 때문에 정말로 무엇을 알아 가지고 왔다고 할 수 없다. 사냥꾼 같은 사람들이 이미 실제적으로나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을 과학이 보고할 때 우리는 가장 큰 흥미를 느낀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진정한 '인문 과학', 즉 인간 경험의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은 영국인처럼 많은 공휴일을 갖고 있지 않으며 어른들과 아이들이 영국에서처럼 많은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에게는 오락이 별로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는 사냥이나 낚시 같은, 보다 원시적이고 개인적인 오락이 버티고 있어 다른 놀이에 자리를 양보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나이 또래의 거의 모든 뉴잉글랜드 사람들은 열 살에서 열네 살 사이의 소년시절에 엽총을 메고 사냥을 다닌 경험을 갖고 있다. 그들의 사냥터와 낚시터는 영국 귀족의 전용 수렵지구처럼 한정되어 있지 않았으며 미개인들의 사냥터 이상으로 광활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무슨 운동 경기를 하려고 공설 광장 같은 데에 비교적 자주 머물지 않은 것은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미 어떤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그것은 자비심의 증가 때문이 아니고 사냥감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냥꾼은 사냥 대상이 되는 동물들의 가장 좋은 친구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동물학대 방지협회를 포함해서 하는 이야기이다.

호숫가에 살 때 나는 변화를 줄 겸해서 식단에 물고기를 추가할 때가 있었다. 사실 나는 인류 최초의 어부들과 똑같은 필요성에서 물고기를 잡았다. 내가 낚시에 대하여 어떤 인도적 차원의 반대론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며, 나의 감정보다는 나의 철학에 더 관계된 것이다. 여기서 나는 단지 낚시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 새 사냥에 대해서는 오래전부터 다른 견해를 갖고 있어 숲속에 들어오기 전에 엽총을 팔아버렸다. 낚시에 대해선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자비심이 덜해서가 아니라 그에 대해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물고기나 지렁이에 대해서는 가엾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습관적으로 그러했다.

엽총을 마지막으로 메고 다니던 최근 몇 년 동안에 대한 나의 변명은 조류학을 연구하는 데 총이 필요하며, 처음 보는 새나 흔치 않은 새 외에는 잡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조류학을 연구하는 데 총을 쓰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방법은 새들의 습성을 면밀히 관찰해야 하므로 그 이유 하나만으로도 나는 기꺼이 엽총을 포기했다.

그러나 인도적 견지에 입각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사냥을 대신할 만한 좋은 스포츠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의 몇몇 친구들이 아들 녀석에게 사냥을 시킬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 나에게 자문을 구할 때 나는 사냥을 시키도록 하라고 대답한다. 나는 사냥이 내가 받은 교육의 가장 귀중한 부분의 하나였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그래, 그 아이들을 사냥꾼으로 만들게나. 처음에는 운동 삼아 하겠지만, 가능하다면 나중에는 큰 사냥꾼으로 키워 보게나. 그래서 이곳이나 또는 그 어떤 황야라도 그가 사냥할 만한 동물을 발견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사냥꾼 말일세. 다시 말해서 인간을 잡는 사냥꾼, 인간을 낚는 낚시꾼으로 만들어 보게나."

여기까지 나는 초서(제프리 초서(1340?~1400) : 영국의 대시인. 대표작으로 <캔터베리 이야기>가 있다. 다음에 나오는 시구도 거기서 인용한 것이다)의 작품에 나오는 여승과 의견이 같다.

"사냥꾼은 성인이 아니라는 구절에 대해서

털 뽑은 닭 한 마리보다도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앨곤퀸족 인디언들이 말하듯, 사냥꾼이 '가장 훌륭한 인간'이던 시절이 인류의 역사에 있었던 것처럼 개인의 역사에도 그런 시절이 있다. 우리는 엽총을 한 번도 쏘아 보지 않은 소년을 가엾게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소년이 인정이 더 많은 것은 아니며 오히려 그의 교육이 등한시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말한 것이 사냥에 빠진 청소년들에 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 아이들이 머지 않아 사냥을 벗어나게 되리라는 나의 믿음에 토대를 두고 있다. 인간의 탈을 쓴 사람이라면 철없는 소년시절을 지나고서도 자기와 똑같은 조건으로 생을 살아가는 뭇 동물들을 무분별하게 죽이지는 못할 것이다.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 산토끼는 어린아이처럼 운다고 한다. 세상의 어머니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나의 동정심은 흔히 그렇듯 인간과 동물을 차별하는 종류의 동정심이 아니라는 것이다.

젊은이가 숲과 친해지고 또 자신의 가장 독창적인 부분과 친숙해져 가는 경로는 대략 그러한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사냥꾼이나 낚시꾼으로서 그곳에 간다. 그러나 그가 자신의 몸 안에 보다 훌륭한 삶의 씨앗을 지닌 사람이라면, 시인으로서든 박물학자로서든 자신의 진정한 목표를 찾게 되어 총과 낚싯대를 버리게 된다. 이 점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소년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아마 영구히 그러할 것이다. 몇몇 나라에서는 사냥을 취미로 갖고 있는 목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꽤 쓸만한 양치기 개 노릇은 할지 모르나 진정한 목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내가 알기로, 나무를 베러나 얼음을 잘라내는 일 말고 애 어른을 막론하고 우리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월든 호수에 와서 한나절의 시간을 보내도록 만드는 유일한 용무는 낚시질뿐이라는 것을 생각하고 놀란 적이 있다. 대체로 그들은 긴 줄에 꿸 만큼 많은 물고기를 낚지 않으면 운이 없거나 시간 낭비만 했다고 생각한다. 그 동안 내내 호수를 바라볼 기회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낚시질의 불순물이 가라앉고 그 목적이 순수해지기까지 그들은 아마 천 번쯤은 낚시질을 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정화 작업은 끝없이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주지사와 주의회 의원들도 소년시절에 낚시질을 갔으므로 어렴풋이나마 호수를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나이가 들고 점잖아져서 낚시질 가기가 어려워졌으므로 호수하고는 영원히 남남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 양반들도 죽으면 천국에는 갈 생각들을 하고 있을리라. 만약 주 의회가 이 호수에 관심을 갖는다면 그것은 주로 이곳에서 사용되는 낚시 바늘의 수를 규정하자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주의회를 미끼로 써서 호수 자체를 낚는 낚시질 중의 낚시질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이처럼 문명사회에서도 배아기의 인간은 수렵이라는 발전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최근 들어 나는 낚시를 할 때마다 나 자신에 대한 존경심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깨닫고 있다. 나는 낚시를 꽤 많이 해본 사람이다. 낚시질에 제법 솜씨가 있다고 생각하며, 많은 내 또래의 친구들처럼 그것에 대해 타고난 본능을 가지고 있고 그 본능이 가끔씩 살아나는 것을 느낀다. 그러나 요즘 들어 나는 낚시를 하고 나면 차라리 하지 말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반드시 한다. 내가 어떤 착각에 빠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하나의 어렴풋한 계시이다. 그러나 새벽의 첫 빛살도 어렴풋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나에게는 분명 하등 동물에 해당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자비심이 더 많아지거나 더 현명해진 것도 아닌데 해가 갈수록 낚시질을 적게 해왔다. 이제 나는 거의 낚시질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황야에 살아야 한다면 다시 본격적인 사냥꾼이나 낚시꾼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낚시에 대해 또 하나 거리끼는 점은 물고리를 먹는 것에는 다른 육류를 먹는 것처럼 근본적으로 깨끗지 못한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제 나는 어디서 집안 일이 시작되며, 매일 깔끔하고 보기 좋은 외관을 내세우고 집안을 깨끗이 하여 온갖 나쁜 냄새와 흉한 꼴을 내쫓으려는, 비용이 많이 드는 노력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를 알게 되었다. 나 자신이 푸줏간 주인인 동시에 요리사이며, 설거지꾼인 동시에 밥상을 받는 신사였으므로 나는 흔치 않은 완벽한 체험에서 이야기하는 것이다.

내 경우에 육식을 반대하는 실질적 이유는 그것의 깨끗지 않음에 있었다. 그리고 물고기를 잡아서 내장을 제거하고 요리를 해서 먹은 다음에도 왠지 배가 채워진 것 같지 않았다. 불충분하고 불필요한 짓이었으며, 들어간 수고에 비해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약간의 빵이나 감자 몇 개를 먹더라도 그 정도는 배가 불렀을 것이며, 수고와 더러움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내 나이 또래의 많은 사람들처럼 나 역시 최근 몇 년 동안 육류 및 차와 커피에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그것들이 건강에 무슨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을 알아내서가 아니라 어쩐지 마음에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육식에 대한 거부감은 경험의 결과가 아니고 일종의 본능인 것이다. 검소한 생활을 하고 검소한 식사를 하는 것이 여러 가지 점에서 더 아름답게 생각되었다. 완벽하게 해낸 것은 아니지만 나는 나의 상상력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나름대로 할 만큼은 했다. 자기의 고매한 능력, 시적인 능력을 진정 최고의 상태로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은 육식을 특히 삼가하고 어떤 음식이든 많이 먹는 것을 피하는 경향이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곤충학자들이 논한 다음과 같은 사실은 의미 심장하다고 하겠다. 커비와 스펜스(커비와 스펜스 : <곤충학 입문>이란 책을 쓴 19세기의 두 생물학자)는 자신들의 저서에서 "완전한 상태에 있는 어떤 곤충들은 소화 기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관을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규정짓기를, "일반적으로 이 상태에 놓인 거의 모든 곤충들은 유충 상태에 있을 때보다 훨씬 적은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식욕이 왕성한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고, 식욕이 왕성한 구더기가 파리가 되어서는" 한두 방울의 꿀이나 그 밖의 단물로 만족한다는 것이었다.

나비의 날개 밑에 붙어 있는 배 부분은 과거에 유충이었던 때를 나타낸다. 이 맛있는 부분 때문에 그는 언젠가는 누구에게 잡혀 먹힐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대식가는 유충 상태에 있는 인간이다. 국민 전체가 그런 상태에 놓인 국가들도 있는데 그런 국민들은 공상력이나 상상력이 빈곤하기 마련이다. 이런 국가들은 그들이 가진 커다란 배를 보면 바로 그 정체를 알 수 있다. 우리의 상상력을 거스르지 않을 소박하고 깨끗한 음식을 마련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체에게 먹을 것을 줄 때 상상력에게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 둘은 함께 같은 식탁에 앉아야 한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 아니다. 과일을 적당하게 먹을 때 우리는 식욕을 부끄럽게 여길 필요가 없으며 우리가 추구하는 고매한 작업이 방해 받는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음식에 과다한 양념을 치면 그것은 바로 독이 된다. 진수 성찬을 먹으면서 지내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이 자기에게 매일 해주는 그 똑같은 음식을, 그것이 육식이든 채식이든 스스로 마련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인다면 수치심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이 바뀌기 전까지는 우리는 문명인이라 할 수 없으며, 신사 숙녀일지는 몰라도 진정한 남자와 여자라고 할 수는 없다. 이것은 확실히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를 알려주고 있다.

왜 상상력이 고기나 기름기와는 조화가 되지 않는지 의문을 제기해도 헛일일 것이다. 나는 그 대답을 모르며, 내가 아는 것은 단지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그 사실뿐이다. 인간이 육식동물이란 것은 실은 부끄러운 일이 아닌가? 사실 인간은 주로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으면서 살아갈 수도 있고, 또 현재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비참한 일이다. 토끼를 덫을 놓아 잡아본 사람이나 양을 도살해 본 사람은 그것을 알 것이다.

인간에게 보다 깨끗하고 건전한 식사만을 하도록 가르쳐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인류의 은인으로 대접받을 것이다. 나의 식사 취향과 관계없이 인류가 점점 발전함에 따라 육식의 습관을 결국엔 버리게 될 것이 인류의 운명이라는 것을 나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것은 야만족들이 비교적 개화된 민족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서로를 잡아먹는 식인 습관을 버린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이다.

만약 사람이 자신의 천재성의 희미하지만 끊임없는 진실된 제안에 귀를 기울인다면, 처음에는 이것이 어떤 극단이나 심지어는 미친 짓으로 이끌어 갈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점점 결심과 신념이 굳어짐에 따라 자기가 걸어야 할 길이 그 쪽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어떤 건전한 인간이 느끼는 확고한 반대는 처음에는 미약할망정 결국에는 인류의 주장과 관습을 극복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천재성에 충실히 따르는 사람은 잘못된 길에 빠지지는 않는다. 육식을 그만둔 결과로 체력의 감퇴가 초래된다 할지라도 그 때문에 낙심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이것은 보다 높은 원칙에 부합된 삶을 사는 것이니까.

만약 우리의 낮과 밤이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는 그런 것이라면, 우리의 인생이 꽃이나 방향초처럼 향기가 난다면, 또 우리의 인생이 보다 탄력적이 되며, 보다 별처럼 빛나고, 보다 불멸에 가까운 것이 된다면 우리는 크게 성공한 것이다. 그 때 자연 전체가 우리를 축하할 것이며 우리는 스스로를 시시각각으로 축복할 이유를 갖는다.

가장 커다란 소득과 가치는 제대로 평가되는 일이 가장 드물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정말 존재하는지 곧잘 의심한다. 우리는 그것들을 쉽사리 잊어버린다. 그러나 그것들이야말로 최고의 실체인 것이다. 가장 놀랍고도 가장 진실된 여러 가지 사실들은 사람으로부터 사람에게는 결코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거두어들이는 참다운 수확은 아침이나 저녁의 빛깔처럼 만질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내 손에 잡힌 작은 별 가루이며 무지개의 한 조각인 것이다.

나의 식성은 유별나게 까다롭지는 않다.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려야 한다면 튀긴 쥐라도 맛있게 먹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음료수로 물만을 마셔온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것은 아편 중독자가 느끼는 황홀한 천국보다는 자연스러운 하늘이 내게는 더 좋은 이유와 똑같은 것이다. 나는 언제나 취하는 일 없이 지내고 싶다. 취기에는 그 정도가 한이 없다. 물이야말로 현명한 사람들을 위한 유일한 음료라고 생각한다. 술은 그다지 고상한 음료가 아니다. 아침의 희망을 한잔의 뜨거운 커피로 꺼버리고, 저녁의 희망을 한 잔의 뜨거운 차로 꺼버리는 것을 생각해 보라! 이런 음료들의 유혹을 받을 때 스스로가 얼마나 천박하게 느껴졌던가!

음악마저도 도취적인 요소가 있다. 보기에는 사소한 그런 원인들이 그리스와 로마를 멸망시켰으며, 영국과 미국을 멸망시킬 것이다. 모든 취기 중에서 자기가 마시는 공기에 의하여 취해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내가 거친 노동을 오랫동안 지속하는 데에 대해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런 노동을 하고 나서는 거칠게 먹고 마셔대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나는 나 자신이 이런 면에서 지금은 예전처럼 까다롭지는 않음을 느끼고 있다. 이제 나는 종교적이라고 할 정도로 식사에 엄격했던 점이 누그러졌으며, 그것으로부터 어떠한 은총도 바라지 않고 있다. 그 까닭은 내가 더 현명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유감스럽게도 세월이 지나면서 스스로가 투박하고 무감각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 이런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시에 대해 그렇게 느끼듯이 젊은 시절에만 문제로 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의 실천은 어디론지 가버려 종적이 없고 나의 의견만 남아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내 자신이 저 베다 경전이 말하는 특권 받은 사람이라고는 결코 생각지 않는다. 베다 경전은 말하기를, "우주의 지고의 존재를 진심으로 믿는 사람은 존재하는 것은 아무 것이나 먹을 수 있다."고 했다. , 음식이 무엇이며 누가 마련했는지를 물어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런 경우에도 한 인도인 주석자가 말했듯이, 이 특권은 '위급한 시기'에 국한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식욕과 상관 없는 식사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을 때로는 느껴보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나는 정신적인 지각이 천박한 미각에 힘입고 잇다는 점, 내가 미각을 통하여 영감을 얻어왔다는 점, 그리고 언덕에서 따먹은 산딸기가 나의 천재성을 키워왔다는 점을 생각하면 전율을 느낀다. 공자는 "마음이 자체를 거느리지 못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고 말했다. (<대학> 72)

음식의 참다운 맛을 아는 사람은 폭식가가 될 수 없으며, 그 맛을 모르는 사람은 폭식가임을 면할 길이 없다.

시의원 나리가 바다거북 요리를 대할 때 갖는 탐욕스러운 식욕은 한 청교도가 통밀빵을 대하는 자세에서도 발견될지 모른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사람을 천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먹을 때의 탐욕스러운 식욕이 그를 천하게 하는 것이다. 음식의 양이나 질이 문제가 아니고 감각적인 풍미에 빠지는 자세가 문제이다. 먹는 음식이 우리의 동물적 생명을 유지하는 양식, 우리의 정신적인 삶을 고무하는 양식이 되지 못하고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벌레들의 양식이 될 때 문제가 되는 것이다.

사냥꾼이 자라나 사향쥐나 다른 야만스런 짐승 고기를 좋아하고, 귀부인이 송아지의 족발로 만든 젤리나 바다 건너에서 온 정어리를 좋아한다면 이 두 사람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가 사냥감을 잡으러 물가로 가는 데 비하여 그녀는 먹을 것을 찾아 저장실로 가는 것이 다를 뿐이다. 문제는 그 두 사람이 그리고 여러분이나 내가 어떻게 이처럼 먹고 마시면서 세월을 보내는, 더럽고 천박한 생활을 해나갈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놀라울 만큼 도덕적이다. 덕과 악덕 사이에는 한 순간의 휴전도 없이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선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투자이다. 온 세상에 울려 퍼지는 하프의 소리 속에서 우리에게 특별히 감명을 주는 것은 이 선에 대한 강조인 것이다. 이 하프는 우주의 법칙을 선전하고 돌아다니는 '우주보험 주식회사'의 출장 세일즈맨이다. 그리고 우리의 조그만 선행은 우리가 지불하는 유일한 보험료이다. 젊은이는 나이가 들면 무감각해지지만 우주의 법칙은 결코 무감각해지는 일이 없으며 영원히 민감한 사람의 편에 선다. 미풍에 귀 기울여 그 나무라는 소리를 들어 보라. 그 소리는 틀림없이 거기에 있으며, 그것을 듣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다. 현을 만지거나 손가락으로 누를 때마다 매력적인 도덕의 선율이 우리를 사로잡는다. 귀에 거슬리는 여러 가지 잡음도 멀리 떨어져서 들으면 우리의 천박한 생활을 풍자하는 아름다운 음악 소리로 들린다.

우리는 우리 몸 안에 동물이 들어 있는 것을 의식한다. 그 동물은 우리의 보다 높은 본성이 잠자고 있는 정도에 따라 깨어 있게 된다. 그것은 파충류적이고 관능적이며, 아마도 완전히 축출해 낼 수 없는 것일지 모른다. 마치 우리가 살아서 건강할 때에도 우리 몸 안에 들어 있는 기생충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물러설 수는 있으나 그것의 본성을 바꿀 수는 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 나름대로의 어떤 건강마저 즐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건강하되 순수하지는 못할 수가 있는 것이다.

며칠 전 나는 돼지의 아래턱뼈를 주웠는데, 그 하얗고 건강한 치아는 정신적인 것과는 다른 동물적인 건강과 활력이 존재함을 암새했다. 이 돼지는 절제와 순결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삶을 성공적으로 누렸던 것이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은 극히 사소하다. 서민은 그것을 곧 잃어버리나 군자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간직한다. (<맹자> 이루장구하 제18)

 

만약 우리가 순수함을 얻을 때 어떤 종류의 삶을 살게 될지 그 누가 알 것인가? 나에게 순수함을 가르쳐줄 만큼 현명한 사람이 그 어딘가에 있다면 나는 지금이라도 당장 그를 찾아 나설 생각이다. "정욕을 억제하고 육신의 외부적 감각을 억제하는 힘과 선행, 이 두 가지야말로 인간의 마음이 신에 접근하는 데 필요 불가결한 것"임을 베다는 선언하고 있다. 정신은 한정된 시간이나마 육신의 모든 부분과 기능을 전반에 걸쳐 장악하여 겉보기에 천박스럽기 짝이 없는 관능을 순결과 헌신으로 변형시킬 수 있다.

생식력은 우리가 해이해 있을 때는 우리를 방탕케 하고 불순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절제할 때는 우리에게 기력을 주고 영감을 준다. 정결은 인간의 꽃이다. 소위 천재나 영웅적인 행위나 성스러움이라는 것들은 정결의 꽃이 맺은 여러 가지의 열매에 지나지 않는다. 순결의 수로가 트일 때 인간은 곧장 신에게로 연결이 된다. 순결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고, 비순결은 우리를 낙담케 한다.

자기 내부에서 동물적인 요소가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신적인 면이 확립되어 가는 것을 확신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기와 결연되어 있는 저급한 동물적인 기질로 말미암아 부끄러워 할 이유를 갖지 않은 사람은 아마 한 사람도 없으리라. 우리는 '파우누스''사티로스' ('파우누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반인 반수의 숲의 신이다. 그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티로스'와 동일시되고 있다)같은 신이나 반신이며, 수성과 신성이 결합된 존재이며, 온갖 욕구로 가득 찬 피조물이다. 그리하여 어떤 면에서는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치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그는 얼마나 행복한가! 적당한 장소를

마음 속의 짐승들에게 주어, 마음 속의 숲을 개척해 놓은 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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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 염소, 늑대 및 뭇 짐승을 부리되

제 자신은 딴 짐승들에게 나귀가 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으면 그는 돼지치기일 뿐 아니라,

돼지들을 격분시켜 더 흉하게 만든 악마들이다."

모든 관능은 비록 여러 가지 모습을 하고 있더라도 하나인 것이다. 모든 순결도 한가지이다. 한 사람의 관능적인 행동은 그가 음식을 먹든, 음료수를 마시든, 누구와 동침을 하든, 또는 잠을 자든 똑같은 것이다. 그것들은 실은 한가지의 욕망인 것이다. 그러니 어떤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관능주의자인가를 알려면 우리는 그가 그것들 중의 어떤 한 가지를 하는 것을 보기만 하면 된다. 순결치 못한 사람은 서거나 앉는 동작에도 순결성이 결여되어 있다. 파충류는 자신의 굴의 한쪽 입구를 공격당하면 또 다른 입구에 머리를 내민다.

정결하게 되고 싶으면 여러분은 절제를 해야 한다. 정결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스스로가 정결한지를 어떻게 아는가? 그는 그것을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이 미덕에 대하여 듣고는 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들은 소문에 따라서 이러쿵저러쿵 말할 따름이다. 몸을 부지런히 놀리는 데서 지혜와 순결이 온다. 나태로부터는 무지와 관능이 온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관능은 마음의 게으른 습성이다. 깨끗지 못한 사람은 열이면 열 게으른 사람이며, 난로 옆에 웅크리고 있는 사람이며, 해가 떠 있는데도 누워 있는 사람이며, 피곤하지도 않은데 휴식을 취하는 사람이다.

깨끗지 않음과 온갖 죄악을 피하려거든 외양간의 청소라도 좋으니 부지런히 일을 하도록 하라. 천성은 극복하기 힘드나 극복되어야만 한다. 당신이 기독교도일지라도 이교도보다 더 순결하지 못하고, 이교도보다 자신을 더 극복하지 못하고, 이교도보다 더 종교적이 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우리가 이교로 보고 있는 종교 체제 가운데는 그 교리가 신자들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깨닫게 하여 비록 의식의 수행에 지나지 않더라도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열의를 갖도록 독려해 마지않는 여러 종교 체제가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나는 여기서 말문을 열기를 주저한다. 그것은 이야기의 주제 때문이 아니고(왜냐하면 나는 상스러운 얘기라도 관계치 않고 하는 사람이므로), 얘기를 하다 보면 나 자신의 순결하지 못함이 폭로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관능에 대해서는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이야기하나 다른 형태의 관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몰락한 나머지 신체의 필요한 기능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게 되었다. 일찍이 몇몇 나라에서는 모든 신체기능이 경건하게 논의되었고 법으로 규정되었다. 현대인의 취향에는 거슬릴지 모르나 인도의 입법가에게는 그 어떤 일도 사소하게 취급되는 경우란 없었다. 그는 먹고 마시는 행위, 다른 사람과 동침하는 행위, 대소변을 누는 행위 등등 비천한 것들을 승화시켜 그것들을 온당하게 치르는 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쳤으며, 이러한 것들을 하찮은 일이라고 부름으로써 거짓되게 빠져나가려고 하지 않았다.

각개의 인간은 육체라고 불리는 신전의 건축가이다. 이 신전은 자기 나름대로의 양식에 의거해 건축되고 있으며 자기가 숭배하는 신에게 바치어진다. 이 육체 대신에 대리석 신전을 지음으로써 빠져나갈 수는 없다.우리는 모두 조각가인 동시에 화가이며, 우리 자신의 피와 살과 뼈를 작품의 재료로 쓴다. 어떤 사람의 내부의 고귀성은 즉각적으로 그의 겉모습을 정교하게 만들기 시작하며, 비열함이나 관능은 그를 짐승처럼 추하게 보이도록 한다.

9월의 어느 날 저녁, 존 파머는 하루의 힘든 일을 마치고 자기 집 문간에 앉아 있었다. 그의 마음은 아직도 오늘 한 일을 되새겨 보고 있었다. 목욕을 끝냈으므로 그는 자신의 지적인 인간을 재현시켜 보려고 하면서 그곳에 앉아 있었다. 저녁 날씨는 조금 쌀쌀한 편이었고 이웃 사람들 중에는 서리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가 잠시 동안 자기의 생각을 좇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피리를 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피리소리는 그의 기분과 잘 맞았다. 그래도 그는 그의 일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러나 자기 뜻에 반하여 그 일을 계획하고 궁리했지만 그 일이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줄곧 벗겨지는 피부의 비듬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피리 소리는 그가 일하고 있는 세계와는 다른 세계에서 그의 귀에 절실하게 들려와서는 그의 내부에서 잠자고 있는 어느 기능들이 해야 할 일을 제시하고 있었다. 그 피리 소리는 그가 살고 있는 거리와 마을과 국가를 조용히 벗겨가 버렸다. 어떤 목소리가 그에게 속삭였다. "그대는 어째서 이곳에 머물면서 이런 천하고 힘든 생활을 하는가? 그대에게 영광스러운 삶이 가능한데도 말이다. 저 하늘에 있는 별들은 여기 말고도 다른 들판 위에서도 빛나고 있느니라." 그러나 어떻게 이 환경을 벗어나 실제로 그리로 이주할 것인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새로운 금욕 생활을 실천하며, 그의 정신으로 하여금 그의 육체 속으로 내려가 육체를 구원하며, 점점 커지는 존경심으로 스스로를 대한다는 것이었다.

 

 

 

12장 이웃의 동물들

 

나에게는 간혹 낚시질을 함께 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는 시의 반대편에서 마을을 지나 나의 집으로 왔는데, 그런 때는 저녁거리로 물고기를 잡는 것은 식사 그 자체만큼이나 사교적 행사가 되었다.

은자(여기서 은자는 소로우 자신을, 시인은 친구인 윌리엄 채닝을 가리킨다)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구나. 지난 세 시간 동안 소귀나무의 관목 위에 메뚜기 한 마리 나는 소리도 듣지 못했어. 산비둘기들도 둥지 위에서 죄다 잠들었나 보군. 날개 치는 소리가 들리지 않으니 말이야. 지금 막 숲 너머로 들려온 것은 농부의 정오 나팔소리인가? 일꾼들은 삶은 쇠고기에 사과즙과 옥수수빵을 곁들인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가고 있겠지. 왜 사람들은 그처럼 걱정을 하는 것일까? 먹지 않는다면 일할 필요가 없는 건데. 오늘은 수확을 얼마나 거두어들였을까?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사색을 할 수 없는 곳에 누가 살고 싶어 할 것인가? 게다가 집안 살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야. 오늘같이 화창한 날에도 그놈의 문 손잡이를 윤이 나게 닦고 통들을 청소해야 하겠지. 집이 없는 편이 차라리 나아. 속이 빈 나무 속에서 사는 것도 괜찮을 거야. 아침에 찾아오는 사람도 저녁 만찬 파티도 없을 거고 오직 딱따구리만이 나무를 두드리겠지. 마을에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햇빛도 그곳은 너무 따갑지. 그 사람들의 생활은 내게는 맞지 않아. 샘에서 길어온 물과 선반에 놓인 저 통밀빵 한 덩이 외에는 바랄 것이 없어. 아니,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리잖아? 배고픈 마을의 개가 사냥을 나온 것일까? 아니면 도망쳤다는 돼지가 숲에 들어온 것일까? 그놈 발자국을 비 온 다음에 본 적이 있었지.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군. 옻나무와 들장미 넝쿨이 흔들리잖아? 어이, 시인 양반, 당신이었군 그래! 세상이 오늘은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시인 : 저 구름들이 떠 있는 모습을 보게. 오늘 내가 본 중에서 제일 멋있는 광경이지. 저런 것은 옛날 그림에도 없고 외국에도 없다네. 스페인 해안은 제외하고 말일세. 그러고 보니 저 하늘이야말로 진짜 지중해 같은 하늘이군. 오늘 아직 밥 한 끼 먹지 않았다네. 끼닛거리라도 마련할 겸 낚시나 갈까 하네. 시인에게 걸맞는 일거리며 내가 배운 유일한 재주이지. 어때 함께 가지 않겠나?

은자 : 거절하기 힘든 얘기군. 내 통밀빵도 거의 다 떨어져 가고 있다네 기꺼이 같이 가겠네만, 지금 중요한 명상을 거의 끝마치고 있다네. 지금 거의 끝 단계에 와 있어. 그러니 잠시만 나를 혼자 있게 해주게. 그러나 출발이 늦어지지 않도록 그동안 자네는 미끼를 파고 있게나. 지렁이는 흙에 거름이 들어 있지 않은 이곳에서는 흔치 않아. 거의 멸종했다고 보아도 되지. 배가 고프지 않을 때는 미끼를 파는 재미도 낚시질하는 재미에 못지 않아. 오늘은 그 재미를 자네 혼자서 차지하게나. 저기 감자콩 넝쿨 사이를 삽질해 보게. 저기 물레나물이 물결치고 있는 게 보이는 곳 말일세. 김을 매듯이 풀뿌리 사이를 잘 살피게. 그러면 풀뿌리 세 포기마다 지렁이 한 마리는 틀림없이 찾아낼 테니. 아니면 조금 더 멀리 가 보아도 나쁘지 않을 거야. 좋은 낚싯밥은 거리의 제곱에 비례하여 증가한다는 것을 발견했거든.

은자 : (혼잣말로), 아까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던가? 아참,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지. , 세계는 바로 이 각도에 놓여 있었다고. 천국으로 갈 것인가, 낚시질을 갈 것인가? 이 명상을 여기서 끝낸다면 그처럼 멋진 기회가 다시 올 것인가? 나는 여지껏 사물의 본질 속에 이 정도까지 용해되어본 적이 없었어. 나의 사념들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두려워지는군. 휘파람을 불어서 그 사념들을 불러올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사념들이 어떤 제안을 해올 때, '생각 좀 해 보지.'하고 말하는 게 현명한 일일까? 나의 사념들은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고 나는 다시 길을 찾을 수가 없구나.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더라? 오늘은 안개가 자욱한 날이었어. 공자의 다음 말씀을 읊어 보면 어떨까? 그 말씀들이 나를 원래의 상태로 데려다줄지도 모르니까. 내가 그때 극도의 우울 상태였는지 또는 황홀감에 빠져 있었는지 알 도리가 없군. 메모-기회는 단한 번뿐임.

시인 : 이제는 어떤가, 은자 양반? 내가 너무 빨리 돌아왔나? 통통한 지렁이 열세 마리하고 작은 놈 몇 마리를 잡았다네. 이거라면 작은 물고기들은 낚을 수 있을거야. 낚싯바늘을 완전히 싸감지는 않겠지만. 마을의 지렁이는 실은 너무 커. 피라미가 낚싯바늘을 건드리지 않고도 배불리 떼어먹을 수 있거든.

은자 : 그럼 떠나세. 콩코드 강으로 가볼까? 물이 너무 불지 않았으면 낚시질하기 괜찮을 거야.

 

왜 세상은 우리가 보는 이런 대상들로 이루어졌을까? 왜 사람은 이런 동물들을 그의 이웃으로 가지고 있을까? 가령 이 갈라진 틈에는 왜 생쥐만이 살 수 있는 것일까? 옛날의 우화 작가들은 동물들을 잘 이용했던 것 같다. 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어떤 의미에선 모두 짐을 나르는 짐승들로서 사람들 생각의 어떤 부분을 지어 나르도록 되어 있다.

내 집을 드나드는 생쥐들은 구대륙에서 건너왔다고 하는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마을에서는 볼 수 없는 야생의 토착종이었다. 나는 생쥐 한 마리를 저명한 박물학자에게 보냈는데 그는 그것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내가 집을 지으려 할 때 그중 한 마리가 집터 밑에 보금자리를 갖고 있었다. 그 생쥐는 내가 마루를 놓고 대팻밥을 쓸어낼 무렵에는 점심때가 되면 꼬박꼬박 나와서 내 발밑에 떨어진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사람이라고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그는 나와 곧 친숙해져서 내 구두 위와 옷 위를 달음질치기도 했다. 녀석은 동작이 다람쥐 같아서 짧고 잽싼 동작으로 집안의 벽을 쉽게 기어올랐다.

어느 날 내가 긴 의자 위에 팔꿈치를 대고 기대어 앉아 있노라니 그 생쥐가 내 옷 위를 타고 올라온 다음 다시 옷소매를 따라 기어 와서는 내 손에 든 종이에 싼 점심을 노리는 게 아닌가? 나는 점심을 싼 종이를 꽉 쥐고 녀석을 피하면서 숨바꼭질 놀이를 했다. 마침내 내가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치즈 한 조각을 쥐고 가만히 있자, 녀석은 내 손바닥 위에 올라오더니 거기에 앉은 채로 치즈를 갉아먹었다. 그리고는 파리처럼 자기 얼굴과 앞발을 깨끗이 하고는 사라져버렸다.

머지않아 딱새 한 마리가 헛간에 집을 지었고, 개똥지빠귀는 내 집의 벽에 기대듯이 자라고 있던 소나무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6월이 되자 천성이 수줍은 새인 들꿩 한 마리가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뒷숲에서 나와 창문 앞을 지나 집 앞쪽으로 가는 모습이 보였다. 암탉처럼 꾸꾸 소리로 새끼들을 부르면서 앞장서 가는 모습이 영락없는 숲속의 암탉이었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어미의 신호를 받은 들꿩 새끼들은 마치 회오리바람에 불린 듯 순식간에 흩어지는데, 그 모습이 마른 잎사귀나 나뭇가지와 너무나도 닮았기 때문에 길 가는 사람은 그 새끼들 한가운데 발을 딛고 서 있으면서도 그것들이 자기 근처에 있다는 것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때 어미새는 갑자기 날아오르며 요란한 날갯소리를 내거나 불안에 가득 찬 이상한 울음소리를 내기도 하고, 또는 날개를 땅에 질질 끄는 모습을 보여 그 사람의 주의를 끌기 때문이다.

어미 들꿩은 어떤 때는 털을 풀어 헤친 모습으로 길 가는 사람 앞에서 뱅뱅 돌거나 몸을 구르기 때문에 그것이 무슨 짐승인지 일순간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새끼들은 나뭇잎 밑에 고개를 처박고 전혀 움직이지 않은 채 웅크리고 있으면서 멀리에 있는 어미로부터 지시만을 기다리며,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도 달아나거나 자신의 몸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서 심지어 그 사람은 새끼 한 마리를 밟거나 한 1분 동안이나 그 새끼들을 바라보면서도 그것들을 알아보지 못한다.

언젠가 한 번 나는 들꿩 새끼들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적이 있었는데, 어미와 본능에 충실한 새끼들은 두려워하거나 떠는 일 없이 가만히 쪼그리고 있는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었다. 이 본능은 너무나도 철저하여 한번은 내가 새끼들을 집었다가 다시 나뭇잎 위에 내려놓는 과정에서 한 마리가 잘못해서 옆으로 눕혀졌는데, 10분 후에 다시 보니 이놈을 포함한 모든 새끼들이 내가 놓은 자세 그대로 있는 것이었다.

들꿩 새끼는 다른 새들의 새끼와는 달리 털이 제대로 나 있으며, 병아리보다 빨리 어른이 된다. 새끼들의 맑은 눈동자에 담긴 어른스러우면서도 천진난만한 표정을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다. 모든 것을 아는 영특함이 그 눈에 비쳐져 있다. 그 눈은 유아기의 순수성뿐만 아니라 경험에 의하여 맑아진 지혜를 담은 듯하다. 그런 눈은 들꿩이 태어났을 때 생겨난 것이 아니고, 그 눈에 비쳐진 하늘과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와 같은 보석은 숲에서 다시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처럼 맑은 샘을 나그네가 들여다볼 기회는 흔치 않다.

무지하고 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냥꾼이 이런 시기의 어미들꿩을 종종 쏘아 죽이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 새끼들은 떠돌아다니는 짐승이나 새의 먹이가 되거나, 자신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은 썩은 잎사귀들과 결국에는 섞여버리게 된다. 암탉에 의해 부화된 들꿩 새끼들은 무엇에 놀라 흩어지는 경우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것은 자기들을 부르는 어미새의 소리를 영원히 듣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들꿩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암탉과 병아리들인 것이다.

얼마나 많은 동물들이 마을 근처에서 먹을 것을 구하되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은 가운데 숲속에서 자유롭고 활기차게 살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생활을 조금이라도 눈치챈 사람은 사냥꾼들밖에 없다. 이 근처에 사는 수달 한 마리는 정말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 4피트 정도 크기의 조그만 소년만한 이 수달을 먼 발치에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리라. 나는 전에 내 집 뒤의 숲속에서 너구리를 본 적이 있는데 밤에는 가끔 그 놈이 우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씨를 뿌린 다음에는 대개 샘터의 그늘에서 한두 시간을 보내면서 점심을 먹고 책도 읽었다. 그 샘은 내 밭에서 반 마일 떨어진 부리스터 언덕 아래로 스며 나오는데, 자그만 늪과 개울의 근원이 된다. 샘으로 가는 길은 어린 리기다소나무가 빽빽하게 자라는, 풀이 무성한 작은 골짜기들을 따라 내려가다가는 늪 근처의 비교적 큰 숲으로 들어간다. 그 샘터에는 가지가 넓게 퍼진 한 그루의 백송나무 아래에 그늘진 외진 곳이 있었고 사람이 앉을 만한 깨끗하고 편편한 작은 풀밭이 있었다. 나는 샘을 더 파서 맑은 우물처럼 만들어 물을 휘젓지 않고도 한 통쯤은 떠낼 수 있도록 해놓았다. 호수물이 시원하지 않은 한여름에는 거의 매일 물을 길러 샘으로 갔다.

샘가에는 도요새 한 마리가 진흙 속에서 벌레를 찾기 위하여 새끼들을 데리고 찾아오곤 했다. 어미 도요새가 둑을 따라 1피트 정도의 높이로 날면서 오고 새끼들은 그 아래서 떼를 지어 종종걸음을 치면서 따라오는 것이었다. 마침내 나를 발견한 어미새는 새끼들을 버려두고 내 주위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4, 5피트까지 가까이 날아온 그 새는 날개와 다리가 부러진 척하며 나의 주위를 끌어서 나를 새끼들로부터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새끼들은 어미새의 지시에 따라 '피피'하고 가냘프게 울면서 늪 쪽을 향해 일렬 종대로 이미 퇴각 행군을 시작한 터였다. 어떤 때는 새끼들만 '피피'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샘터에는 멧비둘기도 날아와 내 머리 위의 백송나무에 앉거나 또는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날갯소리를 내며 옮겨 다니기도 했다. 어떤 때는 붉은다람쥐 한 마리가 가까운 나뭇가지를 타고 내려와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여기저기 기웃거렸는데 그 모습이 여간 친근감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숲속의 어떤 아늑한 곳에 자리를 잡고 어느 정도 오래 앉아 있다 보면 거기에 사는 온갖 동물들이 차례차례 찾아와 자신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나는 결코 평화롭지 못한 사건을 목격한 적도 있다. 어느 날 장작을 쌓아놓은 더미, 아니 나무 그루터기를 쌓아놓은 더미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두 마리의 큰 개미가 무섭게 싸우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마리는 붉은개미였고 또 한 마리는 그보다 훨씬 큰, 아마 반 인치 정도는 될 검은개미였다. 한번 엉겨 붙은 두 개미는 나무더미 위에서 달라붙은 채로 끝없이 힘겨루기를 하면서 싸우고 뒹구는 것이었다.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자 놀랍게도 나무더미 전체가 그런 개미들의 전사로 덮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은 두 마리만의 결투가 아니라 하나의 전쟁, 즉 종족이 다른 두 개미 떼 사이의 전쟁이었다. 붉은개미는 반드시 검은개미와 엉켜 있었으며 붉은개미 두 마리가 검은개미 한 마리와 엉켜 있는 경우도 많았다. 이 개미들의 대군은 나무더미의 모든 숲과 계곡을 덮었으며, 그 옆의 땅은 이미 쌍방의 전사자들과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이것은 내가 직접 목격한 유일한 전투였으며,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에 발을 디뎌본 유일한 싸움터였다. 한편은 붉은색의 공화주의자들, 다른 편은 검은색의 제국주의자들이 벌이는 대규모의 전쟁이었다. 사방에서 필사적인 전투를 벌이고 있었지만 내 귀에 들려오는 소리는 전혀 없었다. 인간 병사들도 그처럼 단호한 각오로 싸운 적은 없었으리라.

나는 나무더미 사이의 햇빛이 잘 드는 자그만 계곡에서 서로 엉겨 붙어 떨어지지 않은 채 싸우고 있는 한 쌍의 개미를 지켜 보았다. 지금은 대낮이지만 해가 질 때까지, 아니 목숨이 끊어질 때까지 싸울 각오인 것 같았다. 몸집이 작은 붉은 개미는 적의 가슴팍에 바이스처럼 꼭 달라붙어 상대방의 더듬이를 뿌리 근처에서 꽉 물고는 그처럼 싸우느라 뒹구는 동안 단 한 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것이었다. 다른 한쪽의 더듬이는 이미 잘려서 떨어져 나가고 없었다. 힘이 더 센 검은개미는 적을 좌우로 막 흔들어댔는데, 조금 더 가까이 가서 보니 이미 적의 수족을 몇 개나 잘라 놓고 있었다. 이 두 개미는 불독보다 더 끈질기게 싸웠다. 어느 편이나 물러날 기색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전쟁 구호는 '승리! 아니면 차라리 죽음을 달라!'임이 분명했다.

그러는 동안 또 다른 붉은개미 한 마리가 자기 편 계곡의 언덕을 내려와서는 흥분을 억제하지 못한 채 이쪽으로 오고 있었는데, 그 개미는 자기가 맡은 적을 이미 해치웠거나 아니면 아직 전투에 참가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의 수족이 멀쩡한 것을 보면 아마도 후자였으리라. 그의 어머니는 그더러 방패를 들고 나가 싸워 이겨서 돌아오든가, 아니면 전사해서 방패에 실려 돌아오라고 훈계한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는 개미족의 아킬레스로서 홀로 떨어져 분노를 삭이고 있다가 친구인 패트로클로스를 구하거나 그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하여 나타난 것이리라.

그는 멀리서 이 불공평한 싸움(왜냐하면 검은개미의 크기는 붉은개미의 거의 두 배에 가까웠으니까)을 보고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서는 두 전사로부터 반 인치쯤 되는 거리에서 전투 태세를 갖추었다. 그리고는 기회를 엿보다가 검은개미에게 달려들어 그의 오른쪽 앞다리를 뿌리 근처에서 물고 늘어졌다. 동시에 그는 적으로 하여금 자기의 수족 가운데 하나를 골라잡을 기회를 주었다. 그리하여 이 세 마리의 개미는 평생 떨어지지 않을 것처럼 엉겨 붙었는데, 그 모습은 모든 자물쇠와 시멘트를 능가하는 어떤 새로운 결합체라도 발명된 것 같았다. 이때쯤 되어서는 양쪽의 개미 진영이 나무더미 높은 곳에 군악대를 배치해 두고 각기의 애국가를 연주시켜 겁먹은 병사들의 용기를 북돋우고 부상병들을 격려하는 것을 보았다 하더라도 나는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을 것이다. 나 자신, 그들이 사람들이기리도 한 것처럼 꽤 흥분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생각하면 할수록 양자의 차이는 적어진다. 미국 역사라면 몰라도 적어도 콩코드 역사에서는 전투 인원으로나 싸움터에서 발휘된 애국심과 영웅적 행위 면에서나 이 개미들의 전투에 비길 만한 전투는 분명히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참가 인원이나 피비린내 나는 살육 행위 면에서 이 개미들의 전투는 분명 아우스텔리츠(아우스텔리츠와 드레스덴은 나폴레옹이 승리를 거두었던 두 싸움터의 이름이다)나 드레스덴 전투에 맞먹는다고 하겠다. 콩코드 전투 (콩코드 전투 : 1775419일에 아메리카 식민지 주민들과 영국군 사이에 벌어졌던 최초의 싸움으로 미국 독립 운동의 시초가 되었다)라고! 독립군 편에서 두 사람이 전사하고 루터 블린챠드가 다쳤던 그 싸움 말인가! 그러나 이곳에서는 모든 개미가 버트릭 (버트릭 : 콩코드 전투에서 식민지군을 지휘한 소령)과 같았으며, "사격! 제발 사격!" 하고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수천 마리의 개미가 콩코드 전투 때 전사한 데이비스와 하스머와 같은 운명을 맞았던 것이다. 또 이곳에서는 단 한 명의 용병도 없었다. 이 개미들은 우리의 조상들처럼 신념을 위해 싸웠으며 3페니의 찻세를 면하기 위해 싸운 것이 아니었음을 나는 의심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싸움의 결과는 적어도 벙커 힐 전투 (벙커 힐 전투 : 1775617일에 벌어진, 미국 독립 전쟁의 또 하나의 유명한 전투)만큼이나 관련된 모든 자들에게 중요하고 기억에 남을 만한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내가 자세하게 묘사한 세 마리의 개미가 싸우고 있는 나무토막을 들어서 집안으로 가지고 들어가 창문턱 위에 올려 놓고 그 위에 커다란 유리잔을 씌워 놓았다. 나는 싸움의 최종 결과가 알고 싶었던 것이다. 현미경을 들고 맨 처음의 붉은개미를 들여다보니 그 놈은 검은개미의 하나 남은 더듬이마저 잘라버리고 지금은 그의 앞다리 하나를 물어뜯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러나 붉은개미 자신의 가슴팍은 산산이 찢겨서 내장은 검은개미의 사나운 입의 공격 앞에 무방비 상태로 있었다. 검은개미의 가슴팍은 너무 단단해서 붉은개미로서는 찢을 수가 없는 게 분명했다.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붉은개미의 검은 홍옥 같은 눈은 전쟁만이 자아낼 수 있는 살기로 가득했다.

개미들은 유리잔 밑에서 반 시간을 더 싸웠으며, 내가 다시 쳐다보았을 때는 검은개미는 두 적의 목을 이미 잘라놓은 상태였다. 아직도 살아 꿈틀거리는 머리들은 그의 양 옆구리를 꽉 물은 채로 매달려 있었는데, 그 모습은 안장테에 묶어 놓은 흉칙한 전리품 같았다. 검은개미는 잘려 나간 두 더듬이와 한 개밖에 남지 않은 다리, 그리고 그 외에도 내가 모를 많은 상처를 입은 몸으로 아직도 달라붙어 있는 적의 머리를 떼어 내려고 힘없이 버둥대고 있었다. 드디어 반 시간이 지난 다음 그는 그 일을 이루어내고 말았다. 내가 유리잔을 들어올리자 그는 불구가 된 몸으로 창문턱을 넘어 밖으로 나갔다.

그가 전투에 살아남아 '오텔 데 쟁발리데'(오텔 데 쟁발리데(Hotel des Invalides) : 프랑스 파리에 있는 상이군인 요양원 나폴레옹의 무덤이 그곳에 있다)같은 상이군인 요양원에서 여생을 보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의 용맹도 이후로는 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느 편이 슬이를 거두었으며 전쟁의 원인이 무었이었는지 끝내 알지 못했다. 그러나 마치 내 집 문 앞에서 인간 전쟁의 투쟁과 살기와 처참한 살육을 목격이나 한 것처럼 흥분감과 더불어 처절한 감정을 그날 내내 벗어날 수 없었다.

곤충학자 커비와 스펜스에 의하면 개미들의 싸움은 옛날부터 잘 알려져 있으며 그 연대도 기록되어 있으나, 현대의 저자로서 그들의 싸움을 목격한 사람은 박물학자 후버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저술가이며 나중에 교황이 되었던 이니어스 실비어스는 배나무 줄기에서 큰 개미들과 작은 개미들 사이에 벌어진 무던히도 끈질긴 싸움을 자세히 기록한 다음, 이 싸움은 교황 유게니어스 4세 시절 유명한 법률가인 니콜라스 피스토리엔시스가 직접 목격한 것인데 그는 자기에게 이 싸움의 전모를 아주 세밀하게 이야기해 주었다고 말했다. 큰 개미들과 작은 개미들 사이에 벌어진 또 하나의 비슷한 싸움에 대해서 스웨덴의 신부였던 올라우스 마그누스가 기록한 바가 있는데, 승리를 거둔 작은 개미들은 같은 편의 시체를 매장했으나 몸집이 더 컸던 적군의 시체는 새들의 먹이가 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폭군 크리스찬 2세가 스웨덴에서 축출되기 전에 발생했다." 내가 목격한 개미들의 싸움은 미국의 포크 대통령의 재임 시절, 웹스터의 도망 노예법이 통과하기 5년 전에 벌어진 것이다.

식량을 저장하는 지하실에서 자라나 쫓기에 알맞은 마을의 여러 개들이 주인 몰래 그 묵직한 몸을 끌고 숲속에 나타나서는 별 성과도 없이 오래된 여우굴이나 우드척의 구멍을 뒤지고 다녔다. 이들의 안내역을 맡은 것은 몸집이 작은 들개였는데, 이놈은 잽싸게 숲을 누비고 다니면서 숲의 동물들에게 공포심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안내자의 훨씬 뒤에 쳐져 있는 마을의 개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이들을 구경하고 있던 조그만 다람쥐 한 마리를 보고 황소 같은 모습으로 짖어댔다. 그러다가 제딴에는 길 잃은 날쥐를 뒤쫓는다고 생각하며 육중한 몸으로 풀들을 쓰러뜨리며 달리기도 했다.

언젠가 나는 돌 많은 월든 호숫가를 고양이 한 마리가 거닐고 있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고양이는 인가에서 그처럼 멀리 떨어진 곳을 돌아다니는 일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놀란 것은 고양이 쪽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그러나 항상 양탄자 위에 엎드려 세월을 보내는 잘 길들여진 고양이라도 일단 숲에 들어오면 마치 제 집에 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보이며, 그 교활하고 비밀스런 거동으로 인하여 숲에 항상 사는 동물들보다 더 토착적일 면모를 보여준다. 한번은 산딸기를 따러 숲속에 들어갔다가 새끼들을 거느린 어미 고양이를 만난 적이 있다. 그들은 이미 꽤 야성화가 되어 있어 어미나 새끼들이나 등을 움츠리고 내게 무섭게 으르렁거리는 것이었다.

내가 숲으로 들어와 살기 2, 3년 전에, 링컨 마을 사람 중 호수에 가장 가까이 사는 길리안 베이커씨의 농가에 '날개 달린 고양이'라는 것이 있었다. 18426월 내가 그놈의 생긴 모습을 보려고 그 집을 방문했을 때 고양이는 평소의 습관대로 사냥을 나가고 없었다. 안주인의 말에 의하면 1년여 전인 그 전해 4월에 그 고양이가 집 근처에 처음 모습을 나타냈는데 결국에는 이 집 식구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털은 진한 갈색이며, 목덜미에 하얀 점이 있고, 발은 희며, 여우처럼 더부룩한 꼬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겨울에는 털이 무성하게 자라 몸 양쪽으로 넓게 펼쳐지는데, 길이 10인치 넓이 2인치 반의 띠들로 되어 있다고 한다. 턱밑에는 술 같은 것이 자라나는데, 술의 위쪽은 느슨하지만 아래쪽은 펠트처럼 짜여져 있으며, 이 모든 가외의 털이 봄이 되면 전부 떨어져 나간다는 것이다.

그 집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 털, '날개' 한 쌍을 나에게 주었는데 나는 아직도 그것을 보관하고 있다. 그 날개에는 피막 같은 것은 없다. 어떤 사람은 이 고양이가 날다람쥐나 또 다른 야생 동물의 특기라고 생각하는데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다. 왜냐하면 박물학자들에 의하며 담비와 집고양이를 교접시켜서 여러 가지 잡종이 나왔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고양이를 기른다면 이런 고양이를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시인은 날개 달린 말과 더불어 날개 달린 고양이를 키우는 게 제격이 아니겠는가?

가을이 되자 여느 해나 마찬가지로 월든 호수에서 털갈이도 하고 헤엄도 칠 겸 해서 되강오리가 찾아왔다. 그는 내가 채 일어나기도 전에 그 특유의 미친 듯이 웃는 듯한 울음소리로 온 숲을 뒤흔들어 놓았다. 되강오리가 왔다는 소문이 퍼지면 마을의 사냥꾼들은 일제히 비상 사태에 들어간다. 그들은 최신형 엽총과 원추형 탄환과 망원경으로 무장한 다음 두 사람씩 또는 세 사람씩 짝을 지어 마차를 타거나 걸어서 출정에 오른다. 사냥꾼들은 가을의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며 숲속을 전진해 오는데 되강오리 한 마리에 열 사람꼴의 비율이다. 어떤 사람들은 호수 이쪽에 진을 치고 또 다른 사람들은 호수 건너편에 진을 친다. 그 불쌍한 새가 모든 곳에 있을 수는 없겠지만 호수 이쪽에서 잠수하면 반대편으로는 반드시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자비로운 10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나무 잎사귀를 살랑거리게 하고 호수의 수면에 잔물결을 일게 한다. 그리하여 되강오리의 적들이 망원경으로 호수를 샅샅이 훑고 총소리가 숲을 울려도 되강오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물결이 물새들의 편을 들어 분연히 일어나 성난 듯이 쳐대므로 사냥꾼들은 마을로, 가게로, 또는 하다 만 일거리로 후퇴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성공하는 때도 적지 않았다.

내가 아침에 물 한 통을 길러 호숫가에 나가면 이 당당한 새가 불과 10미터 앞에서 내 집 쪽의 물가를 떠나 호수 한가운데로 헤엄쳐 나가는 것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 새가 어떻게 하나 보려고 보트를 타고 뒤쫓으면 그는 물 속으로 들어가 행방을 감추어 버린다. 그래서 어떤 때는 그날 오후 늦게까지도 그를 다시 보지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물 위에선 되강오리는 나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비가 올 때면 되강오리는 호수에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다.

어느 몹시 고요한 10월 오후, 나는 호수의 북쪽 물가에서 보트를 젓고 있었다. 이런 날에는 되강오리들은 박주가리의 갓털처럼 하얗게 호수 표면에 떠 있기 마련인데 호수 위를 아무리 살펴보아도 단 한 마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되강오리 한 마리가 물가에서 호수 가운데로 헤엄쳐 나왔다. 그리고는 내 앞의 불과 10여 미터 지점에서 그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어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것이었다. 내가 노를 저어 뒤를 쫓자 그는 물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나, 다시 물 밖에 나왔을 때는 나는 훨씬 가까이 다가가 있었다. 그는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물 속에서 헤엄쳐 가리라는 방향을 잘못 짚어 거리를 벌려놓았기 때문에 그가 다시 나왔을 때는 250미터쯤 사이가 벌어지고 말았다. 되강오리는 오랫동안 큰소리로 웃어댔는데 그 어느 때보다 웃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의 행동은 너무 교활해서 나는 2, 30미터 이내의 거리로 접근할 수가 없었다. 물 밖에 나올 때마다 그는 머리를 사방으로 돌려 침착하게 호수와 육지를 둘러보고, 수면이 가장 넓고 보트와는 가장 먼 거리가 되는 곳에 나올 수 있도록 잠영 방향을 정하는 것 같았다. 그가 재빨리 결심을 하여 실행에 옮기는 모습은 놀라운 것이었다. 되강오리는 곧 나를 호수의 가장 넓은 부분으로 유인해 갔는데 나는 그를 그곳에서 몰아낼 방법이 없었다. 그가 머릿속에 무엇인가를 궁리하면 나는 그의 생각이 무엇인가를 나의 머리로 알아내려고 했다. 그것은 잔잔한 호수의 수면에서 벌어지는 인간 대 되강오리의 멋진 한 판의 게임이었다. 상대방의 말이 갑자기 장기판 아래로 사라진다. 문제는 이 때 나의 말을 상대방의 말이 다시 나타나리라고 생각되는 지점 가장 가까이에 갖다 놓는 일이었다.

되강오리는 때로는 반대쪽에서 갑자기 나타나기도 했는데 내 보트 밑을 똑바로 헤엄쳐 지나갔던 것이 분명했다. 그는 숨이 매우 길었고 쉽사리 지치지도 않아 물 속에서 헤엄을 오래 쳤을 때도 곧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런 때는 이 잔잔하기는 하지만 깊기 짝이 없는 호수의 어느 곳을 그가 고기처럼 재빠르게 헤엄치고 있는지 알아낼 재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호수의 가장 깊은 밑바닥까지 헤엄쳐 내려갈 수 있는 수영 능력과 숨의 여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뉴욕 주의 호수에서는 송어를 잡으려고 수면 밑 80피트에 장치해 놓은 낚싯바늘에 되강오리들이 걸렸다고 한다. 물론 월든 호수는 그보다는 더 깊다. 이 꼴사나운 외계의 방문객들이 자기들 틈에서 헤엄치는 것을 보고 물고기들은 얼마나 놀랐을까!

그는 물 위에서나 마찬가지로 물밑에서도 나아갈 진로를 확실히 알고 있었으며, 물 밑에서 오히려 더 빨리 헤엄을 쳤다. 한두 번인가 나는 되강오리가 수면으로 나오려고 하는 곳에 잔물결이 이는 것을 보았는데 그는 머리만을 내밀어 주위를 살피고는 곧바로 물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가 어디에 다시 나타날지 알아내려고 애쓰느니 차라리 노젓기를 멈추고 그냥 기다리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가 두 눈을 부릅뜨고 수면의 한 방향을 지켜보고 있을 때 갑자기 등 뒤에서 나는 되강오리의 괴상한 웃음소리에 깜짝 놀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찌하여 되강오리는 교활하기 짝이 없이 행동해 오다가도 물 위로 나올 때는 큰 웃음소리를 내서 자신의 정체를 어김없이 드러내는 것일까? 자신의 그 하얀 가슴 때문에 이미 쉽게 모습이 드러나는 편이 아니었던가? 어리석기 짝이 없는 되강오리 같으니라고 하고 나는 생각했다. 그가 수면에 나올 때 내는 물 튀기는 소리를 듣고도 그의 위치를 아는 때도 많았다. 되강오리는 이런 식으로 한 시간을 보낸 다음에도 전혀 지친 기색이 없었으며, 또다시 물속으로 들어가서는 처음보다 더 멀리 잠영을 했다. 그가 물 밖에 나와 있을 때, 물갈퀴가 달린 발로 모든 동작을 하면서 가슴의 털을 조금도 흐트러뜨리지 않고 유유히 헤엄쳐 가는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되강오리가 보통 내는 울음소리는 그 특유의 악마 같은 웃음소리였지만 그래도 다소는 물새다운 데가 있었다. 그러나 간혹 그가 나를 아주 멋지게 골탕을 먹였을 때나 대단히 먼 거리를 잠영하고 나왔을 때는 길게 늘여 빼는 괴상한 울음소리를 냈는데, 그것은 새의 소리라기보다는 차라리 늑대의 울부짖음에 가까운 것이었다. 마치 어떤 짐승이 주둥이를 땅에 대고 길게 울부짖는 것 같았다. 이 숲속에 넓고 길게 울려 퍼지는 되강오리의 울음소리야말로 내가 월든 호숫가에서 들은 소리 중 가장 괴이한 소리였다. 나는 그 소리는 되강오리가 자신의 능력을 믿고 나의 시도를 비웃는 웃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늘은 구름이 가득 끼었으나 호수는 너무나 잔잔하여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도 그가 어디서 물 밖으로 나왔는지를 볼 수 있었다. 그의 하얀 가슴, 바람 한 점 없는 날씨, 그리고 잔잔한 수면이 모두 그에게 불리하게 작용했다. 마침내 그는 200여 미터 떨어진 수면에 올라와서는 마치 되강오리들의 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하는 듯 그 길다란 울부짖는 소리를 냈다. 그러자 즉시 동쪽으로부터 바람이 불기 시작하여 수면에 잔물결을 일으켰으며 사방에 안개 같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되강오리의 기원이 이루어져 그의 신이 나에게 분노를 표시하고 있는 것이라는 느낌을 내게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거칠어진 수면 위로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그냥 바라다보기만 했다.

가을에 나는 물오리들이 영특하게도 사냥꾼들을 멀리 피하여 호수 가운데서 지그자그로 헤엄치며 노는 모습을 몇 시간이고 지켜보았다. 남쪽 루이지아나의 늪 지대에 가게 되면 그런 재주는 써먹지 않아도 되리라. 공중으로 날아 올라야 하는 경우 어떤 때는 호수 위를 뱅뱅 돌면서 하늘 높이 올라간다. 높은 하늘에 검은 점처럼 떠 있게 되면 다른 호수들이나 강을 쉽게 바라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오리들이 이미 그곳으로 가버렸으려니 생각하고 있노라면 그들은 4분의 1마일의 높이에서 급경사로 날아 내려와 아무도 없는 호수의 먼 곳에 앉곤 했다. 그들이 월든 호수 한 가운데에서 즐겨 헤엄치는 이유가 그곳이 안전하다는 이유 이외에 다른 어떤 이유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모른다. 어쩌면 나와 똑같은 이유로 이 물오리들도 월든 호수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13장 집에 불 때기

 

10월이 되자 나는 강변의 풀밭으로 포도를 따러 갔다. 그리고는 식품으로보다는 그 아름다움과 향기로 해서 더 귀중한 포도송이를 잔뜩 따왔다. 그곳에서 나는 넌출월귤의 열매도 보았지만, 따지는 않고 그저 바라보면서 그 아름다움을 즐겼다. 빨간색의 진주와도 같은 이 열매들은 왕포아풀에 주렁주렁 장식처럼 매달려 있었다.

농부는 이것들을 무지막지하게 생긴 갈퀴로 마구 훑어 모으는데, 그 와중에 아름다운 풀밭은 엉망이 되고 만다. 농부는 별생각 없이 이 풀밭의 수확물을 그저 몇 부셸이나 몇 불어치로 계산해서는 보스턴이나 뉴욕에 내다 판다. 그곳에서 이 열매들은 잼으로 만들어져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맛을 돋우어줄 것이다. 이와 똑같은 방법으로 도살업자들은 대초원의 풀밭에서 들소의 혀를 긁어모으는데, 그 와중에 꺾여 시들어가는 나무와 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매발톱나무의 아름다운 열매 역시 나에게는 눈요기만을 위한 식품이었다. 그러나 땅 임자나 길 가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고 지나쳐버린 야생 사과들은 잼을 만들기 위해 얼마 가량을 챙겨 두었다. 밤이 영글자 나는 겨울에 먹기 위하여 반 부셸 정도를 저장해 놓았다. 가을철에 링컨 마을 근처의 끝없이 넓은 밤나무숲(이 나무들은 지금은 철로의 침목으로서 영원한 잠을 자고 있다)을 돌아다니는 것은 너무나도 유쾌한 일이었다. 서리가 내릴 무렵까지 기다릴 수 없었던 나는 어깨에 부대를 메고 밤송이를 깔 막대기를 손에 들고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붉은다람쥐들과 어치들이 큰 소리로 꾸지람하는 것을 들으면서 밤나무 사이를 돌아다녔다. 때때로 나는 다람쥐나 어치가 반쯤 먹다 남긴 밤송이들을 훔치기도 했다. 그놈들이 고른 밤송이 안에는 꼭 성한 알밤들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때는 내가 직접 나무 위에 올라가 흔들기도 했다.

밤나무들은 내 집 뒤꼍에도 있었는데, 그중 한 그루는 집을 뒤덮을 만큼 컸다. 꽃피는 계절이 오면 이 나무는 온 사방에 향기를 뿌리는 꽃다발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밤 열매는 다람쥐와 어치가 거의 다 차지해 버렸다. 특히 어치들은 이른 아침부터 떼지어 날아와서는 밤송이에서 밤이 떨어져 나오기 전에 쪼아먹곤 했다. 나는 집 근처의 밤나무들은 아예 이들에게 맡겨버리고 온통 밤나무로 된 보다 먼 숲을 찾아갔다. 밤은 제법 훌륭한 빵의 대용 식품이 되었다. 주위를 살피면 이 밖에도 많은 대용 식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미끼로 쓸 지렁이를 파내다가 넝쿨에 달린 감자콩을 발견했다. 이것은 원주민의 감자라고 할 수 있는 일종의 전설적인 열매인데, 앞에서도 얘기한 것처럼 어렸을 때 그것을 캐어 먹은 적이 있지만 과연 그런 일이 있었을까 할 정도로 거의 잊고 있었었다. 나는 전에도 간혹 그 주름 잡힌 비로드 모양의 빨간 꽃들이 다른 식물의 줄기에 떠받혀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으나 그것이 바로 감자콩이라는 것은 깨닫지 못했었다.

사람들이 땅을 개간하면서 감자콩은 거의 멸종 상태에 이르렀다. 서리 맞은 감자와 비슷한 단맛이 있으며, 내 경험으로는 구운 것보다 삶은 것이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이 감자콩의 덩이줄기는 자연의 여신이 미래의 언젠가에 이곳에서 자신의 아이들을 검소하게 먹여서 키우겠다는 희미한 약속처럼 느껴졌다. 오늘날처럼 살찐 소와 물결치는 곡물의 밭이 판치는 시대에는 한때는 인디언 부족의 자연 숭배의 대상이었던 이 소박한 식물은 완전히 잊혀졌거나 또는 꽃이 핀 그 넝쿨에 의해서만 기억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야성의 자연이 다시 이 땅을 지배하는 날이 오면, 연하고 사치스러운 영국의 곡물들은 무수한 적들 앞에서 맥을 쓰지 못하고 쓰러질 것이다. 옥수수 역시 사람의 보호를 받지 않게 되면 까마귀는 그 최후의 한 톨마저 인디언의 신이 다스리는 남서부의 광활한 옥수수밭으로 도로 가져가 버릴 것이다. 옥수수는 원래 까마귀가 그곳에서 날라 왔다고들 하니 말이다.

그 때 가서는 지금은 거의 멸종되다시피 한 감자콩이 서리와 거칠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나 번창할 것이며, 자신이야말로 이 땅의 토박이라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그것은 수렵 민족의 주식으로서 예전에 가졌던 중요성과 품위를 다시 찾게 될 것이다. 이 식물을 창조해서 인디언들에게 기증한 것은 그들의 곡물의 신 아니면 지혜의 여신이었던 것이 틀림없다. 이 땅에서의 지배가 시작되면 감자콩의 잎사귀와 열매들이 우리들의 예술 잘품 위에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이다.

호수 건너편의 뾰족 나온 지점에는 세 그루의 사시나무의 하얀 밑둥이 제각기 갈라져 나가는 곳이 있으며, 그 바로 밑의 물가에는 두세 그루의 단풍나무들이 서 있다. 그런데 91일이 채 되기도 전에 그 단풍나무들이 이미 빨갛게 물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아아, 그 빛깔은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그 때부터 한 주일 한 주일이 지날 때마다 나무들은 제각기의 특색을 드러내 보이며 거울 같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는 것이었다. 매일 아침 이 화랑의 관리인은 벽에 걸린 낡은 그림을 떼어버리고 보다 멋있고 보다 색채의 조화를 이룬 새로운 그림을 내거는 것이었다.

10월이 되자 수많은 말벌들이 겨울을 날 장소를 찾은 양 내 집으로 몰려왔다. 그들은 창의 안쪽과 머리 위의 벽에 자리를 잡고는 때때로 방문객들이 집안에 들어오는 것을 방해하기도 했다. 매일 아침 말벌들이 추위에 마비되어 움직이지 못하고 있으면 나는 몇 마리씩 밖으로 쓸어내곤 했지만 그들을 굳이 내쫓으려고 애쓰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집을 쓸 만한 피신처라고 여기는 것에 대해서 싫지 않은 기분까지 들었다. 밤에는 침대를 같이 쓰기도 했지만 나를 진정으로 괴롭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겨울과 혹독한 추위를 피해 차츰 어딘가의 틈바구니로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말벌들이 따듯한 곳을 찾던 것처럼 나도 정작 11월이 되어 겨우살이에 들어가기 전에 월든의 북동쪽 호숫가를 자주 찾아가곤 했다. 그곳은 리기다소나무 숲과 돌이 많은 기슭에 의해 태양열이 반사되어 마치 월든 호수의 난롯가처럼 된 곳이다. 가능한 한 오랫동안 사람이 피운 불보다는 태양의 열을 받아 몸을 녹이는 것이 훨씬 상쾌하기도 하고 건강에도 좋다. 이와 같이 나는 숲을 떠난 사냥꾼처럼 여름이 남겨놓고 간 타다 남은 등걸불로 내 몸을 따듯하게 했다.

 

굴뚝을 쌓게 되자 나는 석공 기술을 배웠다. 나의 벽돌은 그 전에 사용한 적이 있는 헌 벽돌이었으므로 흙으로 깨끗이 할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벽돌이나 흙손의 성질에 대하여 보통 이상으로 알게 되었다. 벽돌에 붙어 있는 회는 50년이나 된 것인데, 어떤 사람은 이 회가 지금도 더 단단해지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들이 진위 여부를 가려내지 않고서 남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따라서 하는 이야기들 중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한 이야기들 자체가 해가 지남에 따라서 한층 더 굳어지고 단단히 들어붙기 때문에 엉터리 식자에게서 그런 잘못된 생각을 떼어내려면 흙손으로 수없이 두드려야 할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방의 많은 마을들은 바빌론의 폐허에서 얻어진 질이 매우 좋은 벽돌로 되어 있다고 한다. 거기에 붙은 시멘트는 보다 오랜 데다가 더 단단하기까지 할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흙손의 경우 나는 그처럼 무수한 타격을 받고도 닳아지지 않는 강철 특유의 강인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나의 벽돌은 느부갓네살 대왕(느부갓네살 대왕(?~562 B.C) : 옛날 메소포타미아 지방(지금의 이라크 지역)에 자리잡고 있던 바빌론 왕국의 전성 시절의 통치자)의 이름이 새겨있지는 않았으나 그 전에 굴뚝으로 사용되었으므로 나는 될 수 있는 대로 벽난로에 쓸 벽돌을 많이 추려내어 시간과 노력을 덜기로 했다. 그리고 벽난로 주위의 벽돌과 벽돌 사이는 호숫가에서 가져온 돌로 메꾸고, 또 같은 곳에서 가져온 흰 모래로 회반죽을 만들었다.

나는 벽난로가 집의 핵심 부분이라고 생각했으므로 그곳에 가장 많은 수공을 들였다. 사실 너무 공을 들여가며 꼼꼼히 일했기 때문에 아침에 바닥에서 시작하여 밤이 되어서도 바닥으로부터 불과 몇 인치 높이의 단 한 층의 벽돌밖에 쌓지 못했다. 그날 밤은 이 벽돌을 베개 삼아 잠을 잤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내 목이 굳어진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목이 굳어진 것은 꽤 오래된 얘기이다. 그 무렵 나는 시인 한 사람을 손님으로 맞아 두 주일간을 같이 지냈는데 집이 비좁아 다소 고생을 했다. 그는 자신의 칼을 가져왔는데, 나도 내 것을 두 자루 가지고 있어서 우리는 그 칼들을 흙 속에 쑤셔 넣어 갈았다. 그는 내가 밥 짓는 것을 거들기도 했다.

벽난로 작업이 점점 진척되어 한 단계 한 단계 네모반듯하고 튼튼하게 쌓여 올라가는 것을 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었다. 일이 오래 걸리면 걸릴수록 그만큼 오래 견딜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굴뚝은 지면에 기초를 두고 집을 뚫고 하늘로 솟아오르는 어느 정도는 독립적인 구조물이다. 집이 타버려도 굴뚝은 여전히 남아 서 있기도 하니 그것의 중요성과 독립성은 명백한 것이다. 이상은 여름이 끝나갈 무렵의 이야기이며 이제 11월이 되었다.

북풍은 이미 호수에 냉기를 불어넣기 시작했다. 그러나 호수를 완전히 차갑게 하려면 적어도 몇 주일간은 쉬지 않고 불어대야 할 것이다. 월든 호수는 그렇게 깊다. 저녁에 불을 처음으로 지필 무렵에는 굴뚝은 연기를 아주 잘 뽑아냈다. 왜냐하면 집의 회벽칠을 하기 전이라서 판자와 판자 사이에 무수한 구멍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서늘하고 바람이 잘 통하는 집에서 여러 날의 즐거운 저녁을 보냈다. 옹이가 많이 박힌 거칠은 판자들로 된 벽이 나를 둘러싸고, 껍질이 덜 벗겨진 대들보가 머리 위에 높게 자리잡고 있는 그런 집에서 말이다.

회벽칠을 하고 나니 집은 훨씬 포근해지기는 했으나 그 전만큼 흔쾌한 느낌은 주지 않았다. 사람들이 사는 모든 집은 모름지기 천정이 높직해서 그곳에 어두컴컴한 곳이 형성되어 저녁이 되면 불빛에 흔들리는 그림자들이 대들보 주위에 춤을 추게끔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한 형상이 벽화라든지 다른 값비싼 가구보다는 공상이나 상상의 날개를 펼치는 데에 더 적합할 것이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내 집에 들어와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은 집이 숙소로서뿐만 아니라 추위를 피하기 위한 곳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는 땔나무를 바닥으로부터 격리시켜 놓으려고 한 쌍의 낡은 장작받침쇠를 구입해 놓았었다. 내가 쌓아놓은 굴뚝 뒤쪽에 그을음이 생긴 것을 보니 왠지 느긋한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마음 놓고 불을 쑤석거릴 수 있는 권리라도 획득한 기분이었다.

내 집은 자그마했으므로 그 안에서 메아리 소리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방 한 칸으로 된 집이고 이웃집과도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한결 더 커 보였다. 주택의 모든 편의 시설들이 모두 방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것은 부엌이자 침실이었고, 거실이자 안방이었다. 어른이나 아이, 주인이나 하인이 집에 거주함으로써 얻게 되는 온갖 만족감을 나는 실컷 즐기고 있었다.

로마의 원로 카토는 한 집안의 가장은 그의 시골집에 "유류와 술이 저장된 지하실과, 식료품이 담긴 많은 통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러면 어려운 시기가 와도 마음이 든든할 것이다. 그것들은 그의 이익이 되고 힘이 되고 영광이 될 것이다." 하고 말했다. 나는 내 지하 저장실에 감자가 들어 있는 작은 통 하나와 바구미가 섞인 완두콩 두 되 정도를 가지고 있으며, 선반에는 약간의 쌀과 한 병의 당밀 그리고 각각 한 말가량 되는 호밀 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때때로 더 크고 사람도 많이 사는 어떤 집 한 채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때는 태평성대이다. 집은 탄탄한 재료로 지어졌으며 겉치레만 번드르한 장식은 일절 없다. 전체가 방 하나로만 되어 있는데, 넓고 소박하며, 견고하고 원시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큰 방이다. 천장도 없고 회벽칠도 되어 있지 않고 단지 대들보와 서까래가 사람의 머리 위에 작은 하늘을 떠받치고 있어서 비와 눈을 막아주고 있다. 방문객이 문지방을 넘어 옛 왕조의 농업의 신의 와상에게 경의를 표하고 나면 왕대공과 쌍대공의 기둥들이 인사를 받으려고 서 있다.

동굴같이 큰 집이어서 지붕 밑을 보려면 장대 끝에 횃불을 매달아 쳐들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사람들은 벽난로 주변에서 살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은 창이 움푹 들어가 있는 데서 살며 또 다른 사람들은 긴 의자에서 살기도 한다. 어떤 사람들은 방의 한쪽 구석에서 사는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그 맞은편 구석에서 살며, 원하는 사람들은 대들보 위에서 거미들과 함께 살기도 한다.

바깥문을 열면 벌써 집안에 들어가 있으니 더 이상의 예의는 필요치 않다. 지친 나그네는 발걸음을 더 옮길 필요가 없이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는 바로 잠자리에 들 수가 있다. 비바람이 부는 밤에 묵고 가기에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는 집이며, 집으로서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추고 있되 집안 정리하느라고 힘이 드는 요소는 하나도 없다. 집안의 모든 보물은 모두 한눈에 둘러볼 수 있고 사람이 사용할 모든 도구는 하나하나 못에 다 걸려 있다. 부엌, 식료품실, 사랑방, 안방, 창고, 다락방, 이 모두가 하나로 겸해져 있다. 큰 통이나 사다리 같은 필요한 물건이나 붙박이장 같은 편리한 것들도 갖추어져 있다.

남비가 끓는 소리가 들리는가 하면, 저녁식사를 짓는 불이나 빵을 굽는 오븐에게 다가가서 직접 경의를 표할 수도 있다. 필요한 가구들과 살림 도구들이 집안의 주요 장식품 역할을 하고 있다. 빨래거리도 불도 안주인도 모두 내보내지 않는다. 그리고 지하실로 내려갈 일이 있는 요리사로부터 뚜껑문에서 비켜달라는 요청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바닥을 발로 쿵쿵 구르지 않고도 그것이 굳은 땅인지 아니면 밑에 지하실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집의 내부가 새둥지처럼 탁 트여서 일목 요연하기 때문에 앞문으로 들어와서 뒷문으로 바로 나가더라도 집 안에 사는 사람들 중 몇 사람 정도는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집의 손님이 된다는 것은 그 집을 마음대로 돌아다닐 자유를 부여받는 것이며, 어느 한 방에 갇혀서 집의 8분의 7로부터는 주의 깊게 격리되어 고독한 유폐 속에 부디 편히 쉬시라는 말을 듣는 것이 아니다. 요즈음에 와서는 주인이 손님을 그의 벽난롯가로 초대하지 않는다. 집안의 한쪽 구석 어딘가의 손님방에 석공을 시켜 벽난로 하나를 설치해 놓을 뿐이다. 손님 대접의 예우는 손님을 최대한 멀리 떼어놓는 기술이 되어 버렸다. 주인이 손님을 독살하려고 노리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요리는 비밀스럽게 준비된다.

나는 많은 사람들의 소유지에 들어가서 법률상 퇴거를 명령받을지도 모르는 입장에 놓였던 일은 기억하지만, 정말로 어떤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것은 몇 번 되지 않는다. 내가 방금 묘사한 바와 같은 집에 소박하게 사는 왕과 왕비가 있고 또 내가 마침 그쪽으로 가는 길이라면, 평상시 입는 옷을 입고 한번 찾아볼 생각은 있다. 그러나 현대식 궁전이라면 우연히 그곳에 발을 디디게 되더라도 어떻게든지 빠져 나올 궁리만을 할 것이다.

우리의 응접실에서 쓰는 말 자체가 모든 활력을 잃고 별 의미 없는 수다로 완전히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처럼 우리의 생활은 그 상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을 지나고 있고, 그 은유와 비유는 요리운반기 같은 것에 의해 억지로 먼 곳에서 끌어온 것 같다. 다시 말하면 응접실은 부엌이나 일터에서 그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식사도 흔히 식사의 우화에 불과하다. 자연과 진실에 아주 가까이 살고 있어서 거기서 비유를 끌어낼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야만인뿐인 것 같다. 멀리 북서부 속령 지역이나 맨 섬에 살고 있는 학자가 부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나의 손님들 가운데는 오직 한두 사람만이 좀 더 오래 머물러 있다가 '즉석 푸딩'을 얻어 먹을 정도로 용감했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식사 시간이라는 위기가 가까워 오면 허둥지둥 퇴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마치 소찬이라도 나누어 먹다가는 내 집이 뿌리째 흔들리기라도 할 듯이 말이다. 하지만 내 집은 제법 많은 '즉석 푸딩'을 차려내고도 끄떡 없었다.

얼음이 얼 정도의 추운 날씨가 닥치고서야 나는 집의 회벽칠을 시작했다. 그것 때문에 호수 건너편으로 가서 희고 고운 모래를 배로 실어서 날라 왔다. 이 수송 방법은 필요하다면 배를 한없이 저어 나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한다. 그동안에 나의 집은 사면이 바닥까지 널빤지로 이어졌다. 욋가지를 붙일 때는 망치질 한 번에 못이 제대로 탁탁 들어가 박히니 나 자신의 솜씨에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의 야망은 이제 회반죽한 것을 어떻게 하면 산뜻하고 재빠르게 벽으로 옮겨 바를 수 있느냐로 그 초점이 모아졌다. 나는 어느 우쭐대기 좋아했던 녀석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는 멋진 옷을 입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일꾼들이 하는 일에 참견하는 버릇이 있었다. 하루는 말로만이 아니라 실지 행동으로 시범을 보이기로 마음먹은 그는 소매를 걷어붙이고는 미장이의 흙받기를 잡아 들었다. 무난히 흙손에 진흙을 옮겨 담고는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머리 위의 욋가지를 향하여 겁 없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주름잡아 모양을 낸 그의 가슴으로 흙손에 담겼던 진흙이 통째로 쏟아져 내리는 망신스러운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나는 새삼스럽게 회벽칠이 얼마나 경제적이고 편리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회벽은 효과적으로 추위를 막아내고 집을 멋있게 단장해 준다. 또 미장이가 범하기 쉬운 여러 가지 실수가 어떤 것인가도 알게 되었다. 내가 놀란 것은 벽돌이 물을 잘 빨아들이기 때문에 내가 채 회를 고르게 손질하기도 전에 회의 수분을 다 빨아먹는다는 것과 그리하여 새로 벽난로를 쌓는 데에는 여러 통의 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전해의 겨울에 실험 삼아 콩코드 강에서 나는 조개의 껍질을 태워서 소량의 석회를 만든 적이 있어서 그 원료가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고 있었다 마음만 먹는다면 1, 2마일 떨어진 곳에서 좋은 품질의 석회석을 입수하여 내 힘으로 석회를 구어낼 수도 있었다.

그동안 호수의 가장 그늘지거나 가장 얕은 작은 만들은 살얼음이 얼었다. 그것은 호수가 전반적으로 얼기 며칠 전 아니 몇 주일 전의 일이었다. 최초의 얼음은 완벽한 것이어서 각별한 흥미를 자아낸다. 그것은 단단하고, 어두운 색을 띠면서도 투명하기 때문에 얕은 곳에서는 바닥을 조사하는 데 절호의 기회를 마련해 준다. 수면 위에 떠 있는 소금쟁이처럼 불과 1인치 두께의 얼음 위에 쭉 뻗고 엎드려서 물 밑 바닥을 마음놓고 구경하는 것이다. 물은 아주 잔잔하고 바닥은 2, 3인치밖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치 유리를 끼워놓은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바닥의 모래에는 무슨 동물이 기어갔다가 다시 돌아온 자리가 패여서 생긴 고랑들이 무수히 있다. 그리고 잔해로서는 흰 석영의 잘디잔 알맹이로 되어 있는 날도래의 유충의 집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이 벌레의 집들이 고랑 속에 여러 개 있는 것을 보니 아마 그들이 고랑을 팠는가 보다. 허나 그렇다고 하기에는 고랑이 꽤 넓고 깊다.

그러나 가장 흥미있는 대상은 역시 얼음 그 자체이다. 그것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최초의 기회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얼음이 언 다음날 아침 자세히 들여다보면, 처음에는 얼음속에 있는 것 같던 대부분의 공기방울들이 실은 얼음 밑 쪽에 붙어 있다는 것과 그리고 다른 공기방울들이 끊임없이 바닥에서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얼음이 아직 비교적 단단하고 거무스레한 동안에는 얼음을 통해서 물이 보인다. 이들 공기방울은 지름이 1인치의 1/80부터 1/8까지의 여러 크기이고, 매우 맑고 아름다우며, 얼음을 통해서 들여다보는 사람의 얼굴이 비친다. 얼음 1평방인치에 이런 공기방울이 3, 40개는 될 것이다.

또 이미 얼음의 내부에도 수직으로 서 있는 긴 공기방울들이 생겨 나 있는데, 길이가 약 반 인치쯤 되며, 꼭지점을 위로 한 날카로운 원추형 모양이다. 얼음이 언 지 얼마 되지 않으면 아주 자그만 공 모양의 공기방울들이 염주알처엄 위아래로 죽 매달려 있는 적이 많다. 그러나 이러한 얼음의 내부에 있는 공기방울들은 얼음 밑에 있는 것들만큼 수효가 많지 않으며 눈에 잘 띄지도 않는다.

나는 때때로 얼음이 얼마나 단단히 얼었나를 시험하기 위하여 돌을 던져 보았다. 그런데 얼음을 깨고 들어간 돌은 공기를 함께 끌고 들어가 그 공기는 매우 크고 뚜렷한 공기방울들이 되어 얼음 밑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어느 날 48시간 후에 같은 장소에 가보았더니 얼음이 1인치쯤 더 두꺼워지기는 했으나 그 큰 공기방울들은 아직도 완벽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음이 더 두꺼워졌다는 것은 얼음 덩어리가 깨졌다가 다시 붙은 자리를 보고서 분명히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이틀 공안은 날씨가 봄날처럼 따듯했으므로 얼음은 짙은 초록빛의 물과 호수 바닥을 보여주던 투명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얼음은 불투명해진 데다가 색깔도 희끄무레한 색 내지 회색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두께가 두 배 정도로 두꺼워졌으나 강도는 전보다 더한 것 같지 않았다. 왜냐하면 얼음 속에 있던 공기 방울들이 따듯한 기온 때문에 크게 팽창해서 서로 맞붙게 되어 그 규칙적인 형상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공기 방울들은 이제 더 이상 위아래로 줄줄이 연결된 모습이 아니라 자루에서 쏟아진 은화처럼 포개져 있거나 좁은 틈 속에 끼어 있는 듯 엷은 조각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얼음의 아름다움은 이미 간 곳이 없고, 호수 밑바닥을 살펴볼 시기도 지나가 버렸다.

앞서 말한 큰 공기 방울들이 새 얼음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알고 싶은 호기심이 발동한 나는 중간 정도 크기의 공기 방울을 품고 있는 얼음덩어리를 꺼내어서 뒤집어 보았다. 공기 방울 주위와 밑에 새 얼음이 얼었으므로 그것은 두 얼음 사이에 끼어 있었다. 공기 방울은 완전히 아래쪽 얼음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으나 위쪽 얼음에 딱 달라붙어 있었고, 모양은 납작한 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렌즈 모양에 가까웠다. 가장자리는 둥그렀고 두께는 1/4인치, 지름은 4인치였다.

내가 놀란 것은 공기 방울 바로 밑의 얼음은 받침 접시를 엎어놓은 모양으로 아주 규칙적으로 녹아 있었다는 것이다. 그 받침 접시 모양의 중심부는 높이가 5/8인치 정도였으므로 공기 방울과 물 사이는 1/8인치도 될까 말까 하는 엷은 칸막이벽만이 남겨져 있었다. 이 칸막이의 작은 공기 방울 중 여러 개는 밑이 터져 있었다. 지름이 1피트쯤 되는 큰 공기 방울들 밑에는 아마도 얼음이 없었던 것 같다. 내가 맨 처음에 본 얼음 밑에 무수히 매달려 있던 작은 공기 방울들 역시 지금쯤은 얼음 속에 갇혀 있으며, 각자 그 크기에 따라 집열 렌즈같이 아래에 있는 얼음을 녹이고 침식해 들어가는 작용을 했을 것이다. 그것들이야말로 얼음을 쨍하고 금이 가게 하는 작은 공기층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회벽칠을 끝내자마자 드디어 겨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바람은 기다리고나 있었던 것처럼 집 주위를 휘몰아치면서 무섭게 울부짖었다. 땅이 눈으로 덮인 다음에도 밤이면 밤마다 기러기들이 날갯소리와 요란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어둠 속을 날아와서는, 일부는 월든 호수에 내려앉고 일부는 숲 위를 나지막히 스치며 페어헤이븐 호수 쪽으로 건너갔다. 이들의 최종 행선지는 남쪽 멕시코이다. 밤 열 시나 열한 시쯤 마을에서 돌아올 때 나는 여러 번 집 뒤편의 조그만 못 옆에 있는 숲속에서 한 떼의 기러기나 물오리가 가랑잎을 밟으며 먹이를 주워 먹는 소리와 곧이어 선도자의 울음소리에 따라 이들이 황급하게 떠나가는 소리를 들었다.

1845년에 월든 호수는 1222일 밤에야 전면적으로 얼음이 얼었다. 플린트 호수와 기타 물이 덜 깊은 다른 호수들 그리고 콩코드 강은 열흘 또는 그 이전부터 얼어 있었다. 1849년에는 1231일경에, 1850년에는 1227일경에, 1852년에는 15일에, 1853년에는 1231일에 얼음이 얼었다. 눈은 이미 1125일부터 지상을 뒤덮었으며, 나를 갑자기 겨울의 경치로 둘러싸 버렸다. 나는 나의 껍질 속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가 앉았으며, 집안에도 나의 가슴 속에도 밝은 불을 지펴 그것이 계속 활활 타오르게 했다.

이제 내가 밖에 나가서 할 일은 숲에 들어가 마른 나무를 모아서는 가슴에 안거나 어깨에 메거나 해서 헛간까지 나르는 일이었다. 어떤 때는 소나무 고목 하나씩을 양쪽 겨드랑이에 끼고 질질 끌고 온 적도 있었다. 한때는 제 몫을 했던 숲의 헌 울타리가 내게는 큰 횡재였다. 더 이상 '경계의 신'을 모시지 못하는 이 울타리를 나는 '불의 신'에게 희생의 제물로 바쳤다. 밥 지을 땔감을 눈 속을 돌아다니면서 구해온, 아니 훔쳐온 사람의 저녁식사는 얼마나 맛있는가! 그의 빵과 고기는 바로 진미 그것이었다.

여러 마을 근처의 숲속에는 많은 가정의 땔감으로 충분한 온갖 종류의 삭정이들과 죽은 나무들이 널려 있지만 대부분 활용되지 않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들이 어린 나무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고까지 생각한다. 그 밖에 호수 위를 떠다니는 유목이 있다. 여름 동안에 나는 철로 공사가 한창일 때 아일랜드인 노동자들이 엮어놓은 뗏목을 발견했었다. 그 뗏목은 아직도 나무 껍질이 채 벗겨지지 않은 리기다소나무들로 엮여 있었는데 나는 그것을 기슭에 반쯤 끌어올려 놓았었다. 2년 동안을 물에 떠 있다가 6개월 동안 육지에 놓여 있던 이 뗏목은 아무리 해도 마르지 않을 정도로 물이 배어 있긴 했지만 목재의 상태는 극히 양호했다.

나는 뗏목을 풀어 통나무 상태로 만들어서는 약 반 마일 거리의 호수 위를 미끄러뜨리며 운반했다. 15피트 길이의 통나무를 한쪽은 내 어깨에 메고 다른 한쪽은 얼음 위에 내려놓은 채 밀고 가기도 하고, 몇 개의 통나무를 자작나무의 나긋나긋한 가지로 묶은 다음 고리가 달린 길죽한 자작나무나 오리나무를 거기에 꿰어서 끌기도 했다. 이 통나무들은 온통 물이 배어서 거의 납처럼 무거웠지만 오랫동안 탔을 뿐만 아니라 불길이 세기까지 했다. 아니, 물이 배어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잘 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송진이 물에 갇혀 있기 때문에 램프 속에서 더 오래 타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으리라.

저술가 길핀은 영국의 숲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 대한 기술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들이 숲을 무단 출입하거나, 개인의 주택이나 울타리가 숲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은 옛 삼림법에서는 중대한 불법 행위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행위는 새와 짐승을 놀라게 하고 삼림을 해칠 우려가 있으므로 불법 삼림 침해라는 죄명으로 엄한 처벌을 받았다."

그러나 나는 사냥꾼이나 나무꾼보다는 물론이고, 내 자신이 삼림청 장관이기라도 한 것처럼 야생 동물이나 초목의 보존에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리고 숲의 일부가 불에 타기라도 하면(실은 나도 실수로 불을 한 번 낸 적이 있지만) 그 숲의 주인보다 내가 더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했다. 아니, 주인 자신이 나무들을 잘라낼 때도 속이 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고대 로마인들이 신성한 숲을 솎아내어 빛을 넣어주려 할 때 느꼈던 외경의 감정을 그 일부만이라도 우리 농부들도 숲을 벌채할 때 느껴주었으면 하고 나는 바라고 있다. , 숲은 그 어떤 신에게 바쳐진 신성한 존재라는 것을 농부들이 깨닫기를 나는 바라는 것이다. 로마인들은 벌채를 할 때, 속죄의 제물을 바치고 "어느 분인지 알 수는 없사오나 이 숲에 계시는 남신이나 여신께옵서는 부디 저와 제 가족, 제 아이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옵소서." 운운하며 기도를 드렸던 것이다.

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나라에서 어떠한 가치가 아직도 목재에 부여되고 있으며, 그 가치는 황금의 가치보다도 더 항구적이고 보편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우리 시대에 이루어진 온갖 발견과 발명에도 불구하고 어느 누구도 나무 한 단 쌓아놓은 것을 그냥 지나치지는 않는다. 나무는 우리의 조상인 색슨 민족이나 노르만 민족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소중하다. 그들이 나무로 활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총의 개머리판을 만든다.

프랑스의 식물학자 미쇼는 30여 년 전에 이렇게 말했다. "뉴욕과 필라델피아에서의 연료로서의 나무의 값은 파리에서의 최고급의 목재 값과 거의 같거나 때로는 비싸기까지 하다. 이 광대한 수도 파리는 해마다 30만 코드 이상의 나무를 필요로 하고, 300마일이나 멀리까지 경작된 평야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말이다."

우리 마을에서도 장작값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이며, 문제될 것이 있다면 올해는 작년보다 얼마나 더 오르느냐는 것뿐이다. 다른 볼일이 없는데도 숲을 찾아오는 직공들이나 장사꾼들은 반드시 목재의 경매를 참관하고, 벌목꾼이 숲의 나무들을 베고 남은 부스러기를 모으는 권리에 대하여 비싼 값을 치르기도 한다. 사람들이 땔감과 각종 공예 재료를 숲에 의지하게 된 지도 오랜 세월이 흘렀다. 뉴잉글랜드 사람들이나 호주 사람들, 파리 시민이나 켈트인들, 농부와 로빈 후드,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길, (구디 블레이크와 해리 길 : 19세기 영국의 시인 워즈워스의 시에 나오는, 장작 때문에 싸우는 여자와 남자의 이름)그리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왕후든 농사꾼이든, 배운 사람이든 무식쟁이든, 모두가 마찬가지로 몸을 따듯하게 하고 밥을 짓기 위해서는 숲에서 가져온 한 다발의 나무를 필요로 하는 것이다. 나 역시 그것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장작더미를 일종의 애정을 가지고 바라본다. 나는 장작더미를 창문 밖에 쌓아놓았는데, 장작더미가 높으면 높을수록 나무를 할 때의 즐거운 시간들이 더 잘 회상되었다. 나는 주인 없는 헌 도끼를 한 자루 가지고 있었다. 겨울에는 종종 양지바른 곳에서 내가 콩밭에서 캐낸 나무 그루터기에 그 도끼를 휘두르면서 시간을 보냈다. 밭에서 처음 쟁기질을 할 때 소를 몰던 사람이 예언했던 대로 이 그루터기들은 나를 두 번 따듯하게 해주었다. , 한 번은 내가 그것들을 쪼개느라고 도끼질을 할 때였고 다른 한 번은 그것을 땔감으로 썼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나무 그루터기만큼 많은 열을 제공하는 땔감이란 흔치 않은 것 같다. 도끼는 마을의 대장간에 가서 날을 갈라는 충고도 있었지만 나는 대장장이를 제쳐두고 숲에서 잘라 온 호두나무로 자루를 박아서 그런대로 쓸 수 있게 만들었다. 날은 좀 무딜지 몰라도 자루는 제대로 박힌 도끼인 것이다.

송진이 잔뜩 들어 있는 소나무 토막들은 진정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얼마나 많은 이런 땔감들이 아직도 땅 속에 감춰져 있는가를 생각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지나간 몇 년 동안 나는 과거에 리기다소나무의 숲이 서 있었으나 지금은 헐벗은 언덕 비탈을 여러 차례 '탐사'하면서 송진이 잔뜩 박힌 소나무 뿌리들을 캐내곤 했다. 이 뿌리들은 거의 썩지 않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겉의 백목질은 모두 부식토가 되어 있었는데, 그것은 중심에서 4, 5인치 떨어진 두꺼운 껍질층이 지면과 같은 높이에서 환상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아서도 알 수 있었다. 도끼와 삽으로 이 광산을 파들어가서는 소의 기름처럼 누런 그 심지 부분을 캐내는데, 그런 때는 마치 금 광맥이라도 찾아낸 기분이었다.

나는 대개 마른 나뭇잎으로 불쏘시개를 했다. 이것은 눈이 내리기 전에 숲속에 들어가 긁어와서는 헛간에다 쌓아놓았던 것들이었다. 나무꾼들은 숲에서 야영을 할 때 가늘게 쪼갠 호두나무를 불쏘시개로 사용한다. 나도 이따금 그것을 쓸 때가 있었다. 지평선 너머에서 마을 사람들이 불을 때고 있을 때면, 나 역시 굴뚝으로 긴 연기를 내보내 월든 골짜기의 여러 야생의 주민들에게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렸다.

가벼운 날개 달린 연기여,

날아오르며 자신의 날개를 녹이는

이카로스를 닮은 새여,

노래 없는 종달새여, 새벽의 사자여,

마치 마을이 그대의 보금자리인 양 그 위를 떠도는구나.

혹시 떠나가는 꿈인가, 치맛자락 여미는

한밤의 환상의 어렴풋한 모습인가.

밤에는 별을 가리고, 낮에는

빛을 어둡게 하며 해를 덮는구나.

, 이제 이 불 가에서 위로 솟거라, 나의 향이여!

가서 제신들에게 이 밝은 불을 용서하라고 청해다오.

갓 잘라낸 단단한 생나무는 땔감으로 가장 좋았으나 이것을 사용한 적은 거의 없었다. 겨울날의 오후에 산책을 나갈 때 나는 잘 피워놓은 불을 때로는 그대로 남겨놓은 채 집을 나섰다. 서너 시간 후에 돌아와서 보면 불은 여전히 잘 타고 있었다. 내가 나가 있을 때라도 집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마치 쾌활한 가정부라도 한 사람 고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불은 한 집안에 사는 동거인인 셈이었다.

대체로 나의 가정부는 믿을 만했다. 그러나 하루는 밖에서 장작을 패고 있었는데 집에 혹시 불이 나지 않았나 창문으로 들여다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기억에 불 때문에 왠지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단 한 번의 경우였다. 집안을 들여다보니 불꽃이 침대에 튀어 불이 붙어 있었다. 나는 얼른 달려 들어가 손바닥만한 크기로 타고 있던 불을 껐다. 그러나 나의 집은 양지바르고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는 곳에 위치한 데다 지붕이 낮았으므로 겨울에도 한낮에는 불을 끄고 지낼 수 있었다.

내 지하 저장실에는 두더지들이 집을 짓고, 감자를 3분의 1 정도나 갉아먹고 있었다. 이놈들은 회벽칠할 때 쓰고 남은 털과 갈색 종이로 포근한 잠자리마저 만들어 놓았다. 가장 야성적인 동물이라 하더라도 편안함과 따뜻함을 좋아하는 것은 사람과 다를 바 없다. 그것을 얻으려고 충분한 노력을 하기 때문에 그들은 겨울을 살아서 넘기는 것이다. 나의 친구들 중 몇몇은 내가 마치 얼어 죽기 위해서 숲속에 들어온 것처럼 말을 했다. 동물은 단지 은폐된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체온으로 따뜻하게 할 뿐이다. 그러나 인간은 불을 발견하였기에 넓은 방에 공기를 가두어 두고 그 공기를 덥게 하여 그것을 자기의 보금자리로 만든다. 그는 그 속에서 거북스러운 의복을 입지 않고 돌아다닐 수 있으며, 한겨울에도 일종의 여름과 같은 상태를 유지한다. 게다가 창문이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빛을 들어오게 하고, 램프를 써서 낮의 길이를 늘이기도 한다. 그리하여 인간은 본능의 범위를 한두 걸음 뛰어넘고 있으며, 예술을 위해서 어느 정도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밖에서 몹시 차가운 강풍에 장시간 노출되어 온 몸이 무감각해졌을 때라도 내 집의 따듯한 분위기 속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몸의 기능을 되찾고 생명을 연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가장 호화스러운 집에 사는 사람이라도 이 점에 관해서라면 그리 내세울 것이 없으며, 인류가 결국에는 어떻게 멸망할 것인가에 대하여 구구하게 추측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북쪽에서 좀 더 모진 바람이 불어오기만 하면 인간 목숨의 실은 언제라도 간단히 끊길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추웠던 금요일'이니 '대폭설의 날'이니 하면서 그런 날을 기준으로 곧잘 날짜를 세어가지만, 조금 더 추운 금요일이나 조금 더 심한 폭설이 내리기만 하면 지구상의 인간의 존재에는 종지부가 찍힐 것이다.

내가 숲을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다음 해의 겨울에는 나무를 절약하기 위하여 조그만 요리용 스토브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것은 열려있는 벽난로만큼 불을 잘 유지하지 못했다. 이제 밥을 짓는 것은 더 이상 시적인 작업이 아니고 단순한 화학적인 작업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같이 스토브를 주로 쓰는 시대에는 과거에 우리가 감자를 구울 때 인디언처럼 재 속에 묻어서 구웠다는 사실은 곧 잊혀지고 말 것이다. 스토브는 자리를 차지하고 집안에 냄새를 피우는 데다 불을 볼 수가 없으므로 나는 마치 친한 친구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불을 피우면 그 속에는 항상 어떤 얼굴이 보인다. 노동자는 저녁에 그 불을 바라다보며 낮 동안에 쌓인 찌꺼기와 먼지를 자기의 생각으로부터 씻어낸다. 그러나 이제 나는 가만히 앉아 불을 들여다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자 어떤 시인이 불에 관하여 읊은 적절한 시구가 새로운 힘을 가지고 내게 되살아났다.

"밝은 불꽃이여! 너의 다정한, 인생을 비추는

친숙한 공감이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희망 외에 그 무엇이 그처럼 밝게 타올랐으랴?

나의 운 외에 그 무엇이 그처럼 한밤중에 꺼져 갔으랴?

 

어째서 너는 우리의 노변과 대청에서 쫓겨났는가?

우리가 모두 그처럼 환영하고 사랑했던 너였거늘.

단조롭기만 한 우리 인생의 평범한 빛으로는

너의 존재가 너무나 환상적이었더냐?

너의 휘황한 빛은 우리 마음 속의 영혼과

신비스런 교제를, 너무도 대담한 비밀을 주고받은 것이냐?

 

이제 우리는 벽난로 옆에 앉아 안전하고 탄탄하지만,

이곳에선 컴컴한 그림자가 흔들리지도 않으며,

신명을 돋구거나 슬픔을 주는 것이 도무지 없으며,

오직 불 하나가 있어 손발을 녹이는 것으로 만족할 뿐이다.

이 난로의 실용적인 자그만 덩지 옆에

현재의 시간은 앉아서 졸 수도 있으리라.

어두운 과거에서 걸어나와 흔들리는 옛 장작불 곁에서

우리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유령을

이제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14장 전에 살았던 사람들, 그리고 겨울의 방문객들

 

여러 차례의 눈보라를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맞았다. 밖에는 눈이 미친 듯이 휘날리고 올빼미의 울음소리마저 멈춰버렸지만 벽난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는 마냥 즐거운 겨울밤이었다. 몇 주일 동안이나 내가 숲을 산책하는 길에 만난 사람이라고는 이따금씩 숲에 와서 나무를 베어 썰매로 마을에 실어 나르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자연은 나를 유인하여 숲속에 쌓인 깊은 눈 속에 길을 내게 만들었다. 내가 한번 눈을 밟고 지나가면 내 발자국 속으로 떡갈나무 잎들이 바람에 불려 들어가 자리를 잡았으며, 이 잎들은 햇빛을 흡수하여 눈을 녹여서는 걸어 다니기에 알맞은 마른 자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또 밤에는 이 발자국들이 검은 선처럼 보여 내가 길을 가는 데 안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사람 만나기가 힘들어진 나는 이제 예전에 이 숲에서 살던 사람들을 머릿속에 떠올려 그들을 교제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내 집 근처를 지나는 길을 갈 때 이 숲에 사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리고길 옆의 숲속에 그들의 작은 집과 화단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던 때를 기억하는 마을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 당시에는 길 양옆의 숲은 지금보다 훨씬 더 울창했다고 한다. 내 자신의 기억에도 몇 군데에서는 길 가는 이륜마차를 길 양쪽의 소나무들이 동시에 스치는 곳도 있었고, 이 길을 따라 혼자서 링컨 마을까지 가야 했던 여자들이나 아이들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길을 걸었으며 대부분의 거리를 뛰어가다시피 했었다.

이 길은 사람들이 이웃 마을에 가거나 벌목꾼들이 수레를 몰고 다니는 데에나 쓰던 보잘것없는 길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여러 가지 다양한 점이 있어 길 가는 나그네는 결코 심심치가 않았으며, 따라서 그들의 추억에도 오래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은 굳은 땅으로 된 넓은 밭이 마을에서 숲까지 뻗쳐 있지만 그 때는 단풍나무들이 자라는 늪 지대를 가로질러 통나무를 깐 길이 나 있었다. 스트래튼 농장(지금의 구빈원 농장)에서 브리스터 언덕에 이르는 먼지 많은 큰길 밑에는 지금도 분명 그 통나무 길의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내 콩밭의 동쪽 편으로 길 너머에는 카토 잉그램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그는 콩코드 마을의 유지였던 던캔 잉그램씨의 노예였었는데 주인은 그를 위해 월든 숲속에 집 한 채를 지어주고 거기서 살도록 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유명했던 우티카의 카토와 이름이 같은 이 콩코드의 카토는 어떤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서아프리카의 기니아에서 잡혀온 흑인 노예였다고 한다.

호두나무 숲 가운데에 있던 그의 작은 밭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아직도 몇 사람은 있다. 카토는 그 호두나무들을 길러 늙었을 때의 생계 수단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호두나무 숲은 결국에는 좀 더 젊고 피부가 하얀 투기꾼의 손으로 넘어 가버렸다. 하지만 이 사람 역시 지금은 카토나 마찬가지로 한 조각의 작은 땅을 차지하고 잠들어 있다.

카토의 지하 저장실은 반쯤 땅 속에 묻힌 채로 지금도 남아 있는데, 몇 그루의 소나무로 인해 길 가는 사람에게는 가려져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그것은 매끄러운 옻나무 덩굴로 뒤덮여 있으며 가장 일찍 꽃이 피는 종류의 미역취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카토의 집에서 조금 더 마을에 가까운 쪽인 내 콩밭의 한쪽 구석에 질파라는 흑인 여자의 작은 집이 서 있었다. 그녀는 린네르를 짜서 마을 사람들에게 팔아 생활을 했는데, 크고 특이한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노래를 하면 숲이 쩡쩡 울리곤 했다. 1812년의 영국과의 전쟁때 그녀가 집을 비운 사이에, 가석방되어 풀려난 영국인 전쟁포로들이 그녀의 집에 불을 질러 고양이와 개와 닭들을 죄다 태워 죽이고 말았다.

그녀는 비인간적이라고 할 만큼 어려운 생활을 꾸려 나갔다. 그 당시 숲에 자주 드나들던 어떤 사람의 얘기에 의하면 하루는 그 집 옆을 지나는데 팔팔 끓는 냄비를 보면서 그녀가 "모두 뼈뿐이군, 뼈뿐이야!" 하고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는 것이다. 떡갈나무의 작은 숲속에 있던 그녀의 집터에는 이제 벽돌만 몇 개 남아 있다.

길을 더 내려가서 오른편 쪽에 위치한 브리스터 언덕 위에는 브리스터 프리맨이라는 사람이 살았었다. 그는 지방 유지였던 커밍스씨의 노예였다가 자유의 몸이 된 사람으로 '솜씨가 좋은 흑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곳에는 브리스터가 심어서 가꾸던 사과나무들이 이제는 커다란 늙은 나무들이 되어 아직도 서 있는데 사과 맛은 야생 사과에 가까운 신맛이었다. 얼마 전에 링컨 마을의 오래된 공동묘지에 갔다가 브리스터의 묘비명을 읽은 일이 있다. 콩코드 전투에서 후퇴하다가 전사한 영국의 척탄병들이 묻혀 있는 무명의 묘에 가깝게 묘지 한구석에 자리 잡은 그의 묘의 비명에는 '시피오 브리스터, 유색인'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그를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 기원전 2세기경의 로마의 장군.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멸망시켰기 때문에 '아프리카누스'라는 이름이 붙었다)라고 부를 수는 있었겠지만 '유색인'이라고 굳이 한 것은 이제 그가 죽었기 때문에 색깔이 빠져 '무색인'이라도 되었다는 뜻일까? 또 이 묘비명은 그가 죽은 날짜를 강조해서 기록하고 있는데 그것은 나에게 이 사람이 한때는 살아 숨 쉬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말해줄 뿐이다. 브리스터는 펜다라는 이름을 가진 상냥한 성품의 아내와 함께 살았다. 그녀는 사람들의 점을 쳐주었지만 그들의 기분을 언짢게 하는 적은 없었다. 그녀는 몸집이 크고 통통했으며, 피부는 까맸는데 어떤 밤의 아이들보다 더 까맸다. 그처럼 검은 둥근 달은 그전에도 그 후에도 콩코드의 하늘에 뜬 적이 없었다.

브리스터 언덕을 더 내려가서 숲속의 옛 도로 왼쪽에 보면 스트래턴 일가의 농장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다. 그들의 과수원은 한때는 브리스터 언덕의 모든 비탈을 덮고 있었으나 오래전에 리기다소나무들에게 압도되어 이제는 약간의 그루터기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부지런한 마을사람들은 꽤 많은 과일나무의 묘목을 이곳에서 가져간다.

조금 더 마을 가까이로 가서 길 건너편 숲 언저리에 브리드의 오두막집이 서 있던 집터가 있다. 이곳은 옛 신화에도 그 이름이 분명히 나와있지 않은 어떤 마귀의 장난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 마귀는 이곳 뉴잉글랜드의 생활에서도 놀랍고도 두드러진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신화에 나오는 어떤 인물에 못지않게 그의 내력은 기록해 둘 만한 가치가 있다. 이자는 처음에는 친구나 일꾼으로 위장하고 와서는 그 집식구 전부를 약탈하고 살해한다. 이 마귀의 이름은 다름 아닌 '뉴잉글랜드 럼주'이다.

그러나 이 집에서 술 때문에 빚어진 비극을 자세하게 기록할 단계는 아직 아닌 것 같다. 좀 더 시간이 흐르도록 해서 그 비극이 완화되고 하늘색을 띠도록 내버려 두자. 이곳에 한때 주막이 서 있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정말 그랬을지는 의심스럽다. 이곳의 우물은 나그네의 물통에 신선한 물을 제공하였으며 그의 말의 기운을 북돋아 주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서로 인사를 나누고 소식을 주고받았으며 그리고는 자기의 갈 길을 갔던 것이다.

브리드의 오두막집은 오랫동안 사는 사람이 없었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 있었다. 내 기억이 틀림없다면 마을의 개구쟁이들이 그 집에 불을 지른 것은 어느 선거일 밤이었다. 나는 그 당시 마을의 변두리에 살고 있었는데 영국의 시인 대브난트의 작품인 <곤디버어트>를 읽는데 몰두해 있던 참이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일종의 무기력증으로 시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어떤 유전에 의한 병인지(왜냐하면 나의 숙부는 면도를 하다가 잠이 들기도 하고 안식일을 깨어서 지키기 위해 일요일에 지하실로 감자의 눈을 따러 내려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또는 차머스의 <영시선집>을 빼놓지 않고 읽으려는 내 욕심의 결과인지 알 수 없었다. 그 병 때문에 나는 거의 꼼짝을 않고 있었다.

내가 책에 얼굴을 박고 있는데 불이 난 것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소방차가 그쪽으로 급히 달려갔으며 그 앞을 이미 한 떼의 어른들과 아이들이 달리고 있었다. 나는 개천을 뛰어넘어 지름길로 갔기 때문에 선두 그룹에 낄 수 있었다. 우리는 불이 난 위치가 숲 너머 훨씬 남쪽일 거라고 생각했다. 불이라면 우리는 단골손님이었다. 창고든 상점이든 가정집이든, 아니면 이 모든 것이 함께 타든 우리는 개의치 않았다. "베이커 농장의 창고다." 하고 누군가가 소리쳤다. "카드맨씨네 집이 틀림없어."하고 다른 사람이 단정하듯 말했다.

바로 그때 지붕이 내려앉기라도 하는 듯 새로운 불길이 숲 위로 솟아올랐다. "콩코드 시민들이여, 불 끄러 갑시다!" 하고 모두들 소리쳤다. 마차들이 부서질 듯이 사람들을 가득 싣고 무서운 속도로 지나갔다. 그중에는 아마 아무리 먼 곳이라도 현장에 가보아야 하는 보험회사 대리인도 타고 있었을 것이다. 그 뒤를 이따금 종을 울리면서 천천히 그리고 침착하게 소방차가 달려갔다. 그리고 맨 뒤에는-사람들이 나중에 쑤군댄 이야기에 따르면-자기들이 불을 지르고는 불난 소식을 마을에 알린 녀석들이 쫓아갔다고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참다운 이상주의자들처럼 감각의 증언을 무시한 채 계속 달렸다. 길모퉁이를 돌자 불꽃이 탁탁 튀는 소리가 들리면서 담 너머로 불의 열기를 실지로 우리 몸에 느낄 수 있었다. , 드디어 현장에 도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불타는 현장에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우리들의 열의는 식지 않았다. 처음에 우리는 개구리 연못의 물을 통째로 퍼부으려고 했다. 그러나 불길을 잡기에는 이미 늦은 데다 집의 가치도 대단치 않기 때문에 그냥 타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밀치락달치락 할 정도로 소방차 주변에 빽빽이 모여 선 우리는 손나팔로 우리의 느낌을 외치기도 하고 또 나지막한 목소리로 배스콤 상점의 하재를 포함하여 세계가 목격한 큰 화재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 그리고 소방차가 조금만 더 일찍 도착하고 근처의 개구리 연못에 물이 가득했더라면 이 최신의 화재를 또 하나의 홍수로 바꾸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우리들만의 생각을 쑤군거렸다. 마침내 우리는 아무런 나쁜 짓도 저지르지 않고 현장을 물러나 각자의 잠자리로 또는 <곤디버어트>로 되돌아갔다. <곤디버어트>에 대해 한마디 하자면, "기지는 영혼의 화약" 운운하는 서문의 글에서 "인류의 대부분은 기지와는 무관한 사람들이다. 마치 인디언들이 화약과는 무관한 것처럼."이라는 구절은 인용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하겠다.

우연히도 그다음날 저녁 거의 같은 시간에 들판을 지나 산책을 하다가 브리드의 불탄 집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곳에서 낮은 신음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어둠 속에 다가가 보니, 브리드 집안 사람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그 집 아들이 배를 땅에 깔고 엎드려서는 지하실 벽 너머 저 밑에서 아직도 타고 있는 불의 잔재를 바라보면서 늘 하는 버릇대로 혼자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는 것이었다. 브리드 집안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물려받은 그는 이번 화재와 이해 관계가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하루 종일 꽤 멀리에 있는 강변의 풀밭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자유 시간을 얻자마자 자기 조상들의 집이며 자기가 어린 시절을 보낸 옛집을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몸을 움직여가며 사방 여러 각도에서, 그러나 한결같이 바짝 엎드린 자세로 그 지하실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의 기억에는 돌들 사이에 어떤 보물이라도 감추어져 있기라도 하다는 것 같았으나 거기에는 벽돌과 잿더미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집이 타버리고 없으니 그곳에 남아 있는 것이라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는 내가 거기에 머물러 있음으로써 암시된 동정심에 위안을 받은 듯했으며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우물이 가려져 있는 위치를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다행히도 우물이라는 것은 결코 불에 탈 수가 없는 것이다. 그는 벽을 더듬어 그의 부친이 나무를 잘라서 만들어놓은 지레식 우물의 지주를 찾아냈다 그리고 무거운 쪽 끝에 무겟돌을 연결시켜 놓은 쇠갈고리를 더듬어 찾아내서는-이 쇠갈고리야말로 이제 그가 매달릴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는데-그것이 보통의 갈고리가 아니라는 것을 나에게 납득시키려고 했다. 나는 그것을 만져보았다. 지금도 거의 매일 나가는 산보 도중에 그 집터 옆을 지날 때는 그 쇠갈고리를 유심히 바라보곤 한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한 집안의 역사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 조금 더 가다 왼쪽으로 브리드 집터의 우물과 그 담 옆의 라일락 관목이 보이는 공터에는 예전에 너팅이란 사람과 르 그로스라는 사람의 집이 있었다. 그러면 이제 링컨 마을 쪽으로 돌아가 보자.

앞에 열거한 여러 집들 중 그 어떤 집보다도 숲속 깊은 곳에 그리고 길이 호수에 가장 가깝게 지나는 곳에 와이맨이라는 옹기장이가 살았다. 그는 도기 그릇을 만들어 마을 사람들에게 팔았고 자식들에게도 그 직업을 물려주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족하지 못했으며 거주하는 땅도 소유주의 묵인하에 이용하고 있었다. 간혹 세무 관리가 세금을 걷으러 왔으나 헛탕을 치고 갔다. 차압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므로 그는 형식적으로나마 '딱지를 붙였다'고 세무 보고서에 써넣은 것을 내가 나중에 읽은 적이 있다.

한여름의 어느 날 내가 김을 매고 있노라니 도기 그릇을 수레에 가득 싣고 가던 어떤 사람이 내 밭 옆에 말을 세우고는 젊은 와이맨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다. 그 사람은 오래전에 와이맨으로부터 도기제조용의 녹로를 샀는데 지금은 그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나는 성서에서 도공의 점토와 녹로에 대해서 읽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서 쓰는 도기 그릇들이 성서 시대부터 대물림해서 내려왔던가 혹은 박처럼 무슨 나무에 열리는 것으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 나는 한때나마 우리 마을 근처에서 이러한 도기 제조를 생업으로 삼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기쁜 마음이 들었다.

나에 앞서 이 숲에 마지막으로 거주한 사람은 아일랜드 사람인 휴 코일이었다. 와이맨의 집을 차지하고 살았던 그를 사람들은 '코일 대령'이라고 불렀다. 소문에 의할 것 같으면 그는 워털루 전투에 군인으로 참전했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가 아직도 살아있다면 그가 참가한 여러 전투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가 이곳에서 가진 직업은 도랑파는 일이었다.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쫓겨가고 코일은 월든 숲으로 온 것이다.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모조리 비극적인 것이었다. 그는 세상 경험이 많은 사람답게 예의가 바랐고, 조금 지나치다고 할 정도의 점잖은 언사를 구사할 수도 있었다. 그는 알콜 중독에 의한 섬망증에 걸려 있었기 때문에 한여름에도 외투를 입고 다녔으며 얼굴은 짙은 붉은 색이었다. 그는 내가 숲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브리스터 언덕 기슭의 길가에서 죽었다. 그래서 이웃으로서의 그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 편이다.

그를 아는 사람들이 흉가라고 부르며 피하던 그의 집이 헐리기 전에 나는 거기에 가본 일이 있다. 나무침대 위에는 그의 헌 옷이 마치 그를 대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구겨진 채 놓여 있었다. 성서에서 얘기하듯 주발이 샘가에 깨져 있는 대신 그의 파이프가 벽난로 위에 깨어진 채 놓여 있었다. 샘가에 깨져 있는 주발이 그의 죽음의 상징이 될 수는 없었으리라. 왜냐하면 내게 말했으니 말이다. 마룻바닥에는 다이아몬드와 스페이드와 하트의 킹 등 때묻은 카드들이 흩어져 있었다.

옆방에는 사후 처리인도 잡을 수 없었던 닭 한 마리가 밤을 나기 위하여 돌아와 있었다. 야밤처럼 검은 이 닭은 꼬꼬거리지도 않고 아주 조용히 있었는데 마치 우화 속의 여우라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집 뒤에는 윤곽이 분명치 않은 채소밭이 하나 있었다. 씨는 뿌려 놓았지만 무섭게 떠는 수전증 때문에 집주인은 수확기가 되도록 단 한 번도 김을 맨 적이 없었던 것이 분명했다. 채소밭은 로마쑥과 도깨비바늘풀로 뒤덮여 있었는데 도깨비바늘풀의 씨가 내 옷에 잔뜩 달라붙었다. 집 뒷벽에는 그의 마지막 전투의 전리품인 우드척의 가죽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털모자나 벙어리장갑이 필요 없게 되었다.

이들 버려진 집터에는 이제 땅이 파인 자국만이 남아서, 흙 속에 묻혀버린 지하저장실과 더불어 그곳에 한때 집이 있었음을 표시해 주고 있다. 이들 집터의 양지바른 풀밭에는 딸기, 나무딸기, 검은딸기, 개암나무의 관목과 옻나무가 자라고 있다. 굴뚝이 있던 구석에는 리기다소나무나 옹이투성이의 떡갈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으며, 문간의 섬돌이 있던 곳에는 향기로운 검정자작나무가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샘물이 흘러나오던 곳에서는 때때로 우물의 흔적이 보이기도 하는데, 이제 거기에는 눈물 없는 풀들이 물기 없이 자라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 않으면 집안의 마지막 사람들이 떠나갈 때 훗날에야 발견이 되도록 우물 위에 편편한 돌을 덮고 그 위에 뗏장을 씌워서 깊숙이 감춰놓은 곳도 있다. 우물을 덮는다는 것, 세상에 그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우물을 덮을 때 아마 그 집 사람들의 눈에서는 눈물의 샘이 터졌으리라.

이 버려진 여우굴 같은 지하 저장실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곳에 한때는 사람들이 시끌벅적하게 떠들며 바쁘게 생활을 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집안사람들은 "운명""자유 의지""절대적인 선견지명"(밀턴의 <실락원>)이라는 주제 하나하나에 대하여 어떤 형태로든지 또 어떤 말투로든지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내린 결론에 대하여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단지 "카토와 브리스터는 속였다"는 것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좀 더 유명한 철학 사상만큼이나 가르쳐 주는 바가 크다.

문과 문지방과 상방이 모두 없어지고 나서 한 세대가 지난 후에도 라일락은 활기차게 자라나 봄마다 향기로운 꽃을 피우며, 생각에 잠긴 나그네의 손은 무심히 그것을 꺾고 있다. 라일락은 그 집 아이들이 집 앞의 빈터에 직접 심어서 가꾼 것인데 이제는 외진 풀밭에 덩그렇게 남은 벽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되었고, 무성하게 자라는 어린 나무들에게 자리를 계속 양보하고 있었다. 그 나무는 마지막으로 남은 이 집안의 유일한 생존자인 것이다.

햇빛에 까무잡잡하게 탄 그 집 아이들은 자기들이 집 앞 그늘진 곳에 심어서 매일 물을 준, 눈이 둘밖에 안 달린 라일락의 어린 가지가 강인하게 뿌리를 뻗어서는 자신들과 그늘을 제공한 집과 그 옆의 화단과 과수원보다 더 오래 살아남으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은 자신들이 성장하여 죽은 후 반세기가 지난 다음에도 그 나무가 첫 번째 봄에 못지않게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어떤 외로운 방랑자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어렴풋이 들려주리라는 것을 결코 알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부드럽고 점잖으면서도 명랑한 라일락꽃의 색깔에 다시 한번 눈길을 준다.

그런데 콩코드 마을은 그 터전을 굳건히 지키고 있는데 반해 그 이상의 무엇으로 자라날 소지를 가지고 있던 이 작은 마을은 어찌하여 종말을 맞고 말았을까? 그곳에는 자연이 주는 이점, 특히 물의 이점이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 저 깊은 월든 호수와 저 차가운 브리스터의 샘가에서 건강에 좋은 물을 실컷 마실 수 있는 특전을 이 사람들은 최대한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기껏 자신들의 술잔을 희석시키는 데나 이용했던 것이다. 그들은 한결같이 술을 너무 좋아했다.

바구니 짜기, 빗자루 만들기, 옥수수 볶기, 린네르 짜기 그리고 도기 제조업 등이 이곳에서 번창하여 이 황야를 장미꽃처럼 활짝 피게 하며, 수많은 자손들이 그들의 조상의 땅을 물려받도록 할 수는 없었던 것인가? 땅이 척박하기 때문에 최소한 저지대에서와 같은 타락이 이곳에서는 발을 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예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을 회상하는 일이 이 아름다운 경치에 아무런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마 자연은 나를 최초의 입주자로, 그리고 지난봄에 세운 나의 집을 최초의 집으로 해서 새로운 작은 마을을 건설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내 집이 차지하고 있는 땅에 과거 어느 때에라도 집이 세워진 적이 있는지 여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고대의 도시 자리에 다시 세워진 도시에서는 결코 살고 싶지 않다. 그곳에서는 건축 자재는 폐허에서 뜯어오는 것일 것이며 정원은 묘지 자리일 테니까 말이다. 그런 곳은 하얗게 바랜 저주받은 땅이며, 그러한 일이 불가피해지기 전에 지구는 멸망할 것이다.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는 다시 숲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게 했고 그렇게 나 자신을 달래는 가운데 꿈나라로 빠져들어 갔다.

 

한겨울에는 찾아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눈이 깊이 쌓였을 때는 한두 주일 내내 그 누구도 내 집 근처까지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그곳에서 풀밭의 생쥐처럼 포근하게 살았다. 또는 눈보라에 파묻혀 먹을 것이 없어도 오랫동안 견뎠다는 어느 사람의 소와 닭들처럼 살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아니면 서튼 마을의 초기 개척자 가족처럼 살았다고도 할 수도 있으리라. 1717년의 큰 눈이 내렸을 때 그 집의 가장은 마침 집을 비우고 있었고 오두막집은 완전히 눈으로 덮여버렸는데, 굴뚝에서 나오는 연기로 인해서 생긴 구멍을 보고 어떤 인디언이 가서 그 가족을 구해냈다고 하지 않던가!

큰 눈. 이 얼마나 유쾌한 말인가! 그때는 농부들은 말을 끌고 숲이나 늪에 갈 수 없으므로 부득이 자기 집 앞의 그늘나무를 베어서 쓰지 않으면 안 되며, 다음 해 봄 무렵(그러나 아직 눈이 단단할 때) 늪의 나무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대로 지상 10피트의 높이에서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눈이 많이 쌓였을 때 큰길에서 내 집에 이르는 반 마일 정도의 질은 나 자신의 발자국 때문에 사이가 좀 넓은 점들이 무수히 박힌 구불구불한 선으로 표현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온한 날씨가 계속되던 어느 1주일동안 나는 일부러 눈 위에 맨 처음 난 내 자신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아가며 이 길을 오가곤 했다. 콤파스와 같은 정확성을 가지고, 똑같은 걸음 수와 보폭으로(겨울날의 단조로움은 사람으로 하여금 별의 별 장난을 다 치게 한다). 이 발자국들에는 하늘의 푸른 색이 반영되어 가득 비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어떻나 험한 날씨도 나의 산책이나 외출을 막지는 못했다. 나는 어느 너도밤나무나 노랑 자작나무 또는 예전부터 잘 알고 지내는 어느 소나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깊은 눈 속을 헤치며 8마일을 걸은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이런 날에는 얼음과 눈의 무게 때문에 나뭇가지들이 축 늘어지고 그 꼭대기는 날카로운 모습이 되어 소나무들이 전나무들처럼 보인다. 거의 2피트의 깊이로 쌓인 눈을 헤치며 높은 언덕의 꼭대기를 오르노라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머리 위에 이는 눈보라를 털어내야 했다. 어떤 때는 손발로 기어오르기도 하고 그러다가 눈 속에 나뒹굴기도 했다. 그런 날은 사냥꾼들도 집에 틀어박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오후 줄무늬올빼미 한 마리가 아직 대낮인데도 백송나무의 아래쪽의 죽은 가지 위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장난을 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때 5미터 내의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는데, 내가 발로 눈을 밟아 뽀드득 소리를 내면 올빼미는 그 소리를 듣기는 하지만 나를 보지는 못하는 것이 분명했다. 내가 조금 더 큰 소리를 내자 그는 목을 내뽑으며 털을 곤두세우고는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곧 눈꺼풀을 내리고 졸기 시작했다.

그가 고양이처럼(올빼미는 고양이의 날개 달린 사촌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눈을 반쯤 감고 앉아 있는 모습을 한 30분 지켜보고 있노라니 내 자신이 졸음이 왔다. 실같이 뜬 눈을 통해서 올빼미는 나와의 관계를 완전히 차단치 않고 있었다. 그는 이처럼 반쯤 감긴 눈으로 꿈나라에서 밖을 쳐다보면서 그의 환상을 방해하고 있는 희미한 물체인(어쩌면 티눈 같기도 한) 나의 정체를 밝히려고 애쓰고 있었다. 내가 좀 더 큰 소리를 내거나 앞으로 더 가까이 가면 그는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앉은 자리에서 천천히 몸을 뒤척였다. 마치 꿈을 꾸는 데 방해받는 것이 싫다는 것 같았다.

마침내 올빼미는 몸을 날려 소나무들 사이로 날아올랐다. 그 활짝 편 날개의 넓이는 예상을 초월하는 것이었고 날개 치는 동작에서는 아무런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시력 대신 미묘한 감각의 인도를 받으며, 그 예민한 날개로 황혼의 길을 더듬어 올빼미는 소나무 가지에 새로이 앉을 자리를 찾아냈다. 그곳에서 그는 어느 누구로부터도 방해를 받지 않고 자신의 날이 밝아오기를 기다리려는 것이었다.

넓은 풀밭을 가로질러 뻗어 있는 철로 옆의 긴 둑길을 걸어서 마을에 가노라면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만나기가 일쑤였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바람을 막아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냉기가 내 한쪽 뺨을 때리면 나는 기독교 신자는 아니지만 다른 쪽 뺨도 내밀었다. 그러나 브리스터 언덕 옆으로 난 마차 길로 가더라도 사정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 넓은 들판의 눈이 월든 길의 담 사이에 죄다 쌓이고 반 시간이면 앞에 지나간 사람의 발자국이 지워지는 그런 날에는 나도 우호적인 인디언처럼 마을로 내려갔다.

돌아오는 길에는 북서풍이 길가의 모서리진 곳에 가루눈을 휘몰아쳐 놓아 새로운 눈더미들이 생겨나 있어 그것을 헤치면서 앞으로 나가려면 애깨나 먹는 것이었다. 사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산토끼의 발자국이나 조금 더 작은 활자로 나 있는 들쥐의 발자국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겨울에도 따뜻한 샘물이 나오는 늪 한쪽에는 앉은부채나 그 밖의 다른 풀들이 파릇파릇하게 자라는 것을 언제나 볼 수 있었다. 어떤 때는 그 풀들 옆에 강인한 새 한 마리가 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는 적도 있었다.

눈이 온 날, 때로는 외출을 나갔다가 저녁때 집에 돌아오느라면 내 집 문 앞에서부터 시작된 나무꾼의 깊은 발자국을 만나는 적이 있다. 집안에 들어가 보면 벽난로 옆에는 그가 나무로 깎아 무엇을 만들다 생긴 부스러기가 수북이 쌓여 있고 집안이 그의 파이프 담배 냄새로 가득 찬 것을 발견한다.

어느 일요일 오후에 마침 집에 있노라니 학자 기질이 있는 한 농부가 눈을 밟으며 찾아왔다. 그는 멀리서 숲을 지나 사교적인 잡담을 하기 위해 내 집을 찾아왔는데 농부들 중에서는 드물게 '자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다. 교수의 가운 대신 노동복을 입은 그는 뒷마당에서 한 짐의 퇴비를 끌어내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교회나 국가에서 교훈을 끌어내는 데도 능숙하였다. 우리들은 추워서 정신이 번쩍 드는 날씨에 사람들이 밖에 큰 불을 피워놓고 맑은 정신으로 둘러앉아 있던 더 소박하고 단순했던 시절에 대해 이야기했다. 다과가 떨어지면 우리는 영리한 다람쥐들이 오래전에 포기한 호두를 여러 개 깨물어 보았다. 그러나 껍질이 두꺼운 호두는 대개 속이 비어 있는 법이었다.

가장 험한 눈보라를 무릅쓰고 가장 멀리서 내 집을 찾아온 사람은 한 시인(친구인 윌리엄 채닝을 가리킨다)이었다. 농부, 사냥꾼, 군인, 신문기자, 심지어는 철학자마저 겁을 집어먹을 수 있겠지만 시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의 행동의 동기는 순수한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가 오고 가는 것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그 고유한 업무 때문에 종잡을 수 없는 시간에 밖으로 불려 나가며 심지어는 의사들이 잠을 자는 시간에도 그러한 것이다.

우리는 이 작은 집을 떠들썩한 웃음소리로 쩡쩡 울리게 하기도 하고 장시간의 진지한 이야기로 집안을 가득 차게 해서 월든 골짜기에 깃들여 온 오랜 침묵에 대한 보상을 했다. 내 집의 분위기에 비하면 브로드웨이 거리는 차라리 조용하고 적적하다고 할 수 있었으리라. 적당한 간격을 두고 규칙적으로 우리는 웃음의 예포를 터뜨렸는데 그 웃음이 바로 전에 한 농담에 대한 것이든 또는 앞으로 나올 농담에 대한 것이든 상관이 없었다. 우리는 묽은 죽 한 그릇을 나누어 먹으면서 인생에 대한 '아주 새로운' 이론을 수없이 만들어냈다 죽을 나누어 먹는 행위는 우정어린 분위기와 더불어 철학이 요구하는 맑은 정신을 제공한다는 두 가지 장점을 겸비하고 있다.

내가 호숫가에서 보맨 마지막 겨울에 또 한 사람의 반가운 방문객(소로우가 극찬한 방문객의 이름은 브론슨 올코트(1799~1888)로서 초절론자인 동시에 교육과 사회의 혁신 운동가였다. <작은 아씨들>을 쓴 루이자 올코트는 그의 딸이다)이 있었던 것을 잊어서는 안 되겠다. 그는 마을을 지나 눈과 비와 어둠을 무릅쓰고 나무들 사이에 비치는 내 집의 등불을 볼 때까지 숲을 걸어와서는 긴 겨울 저녁을 여러 번 나와 함께 보내곤 했다.

그는 마지막 남은 철학자 중의 한 사람이며, 그의 출생지인 코네티컷 주가 이 세상에 보낸 선물과도 같은 인물이었다. 사실 그의 말에 의하면 처음에 그는 코네티컷주의 생산품을 다른 주에 파는 사업을 했고, 다음에는 자신의 두뇌를 파는 사업을 해왔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신을 자극하고 인간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며 이 사업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 결실로 자신의 두뇌만을 맺고 있을 뿐이다. 마치 호두가 그 속 알맹이를 자신의 결실로 맺듯 말이다.

나는 그가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 중 가장 굳은 신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의 말과 태도는 다른 사람이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사태를 항상 가정하고 있다. 그는 세상 사태가 돌아가는 것 때문에 실망하는 일이 결코 없다. 그의 관심은 지금 당장의 현재에 있지 않다. 지금 그는 비교적 무시되고 있으나 그의 때가 오면 사람들이 현재 생각지도 못하는 법령들이 제정되어 실시될 것이며, 집안의 가장들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그에게 와서 조언을 구할 것이다.

"평온을 보지 못하는 자는 눈이 멀었나니."

그는 인간의 진실한 친구이며, 인간 발전의 거의 유일한 친구이기도 하다. 그는 낡은 비석을 손보며 닦아주고 다니던 옛 소설에 나오는 사람과도 같다. 왜냐하면 그 역시 인간의 몸에 새겨진 신의 마모된 영상을 불굴의 신념과 끈기를 가지고 꾸준히 닦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친절한 지성으로 아이들과 거지, 미친 사람과 학자들을 포용하며,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고 거기에 폭과 정확성을 덧붙인다. 나는 그가 세계의 큰길에 모든 나라의 철학자들이 머물 수 있는 큰 여관을 경영했으면 하고 바라고 있다. 입구의 간판에는 "인간을 환영함. 단 짐승 동반은 사절. 여유 있는 평온한 마음으로 바른 길을 진지하게 찾는 사람들은 들어오시요."라고 쓰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는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변덕이 적은 사람일 것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그는 한결같으며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두 사람이 숲을 거닐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세를 완전히 벗어난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왜냐하면 그는 어떤 제도에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느 쪽으로 걸음을 옮기든 하늘과 땅은 서로 만나는 것 같이 보였다. 그만큼 그는 자연의 경관에 아름다움을 더해 주었던 것이다. 이 푸른 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그의 평온함을 반영하는 하늘만이 가장 알맞은 지붕이 될 수 있으리라. 나는 그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연은 그가 없이는 견딜 수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사상의 널빤지들을 잘 말려서는 그것을 깎으면서 우리의 칼을 시험했으며, 호박 소나무의 흠 없는 노란색의 결에 감탄하기도 했다. 우리는 조심스럽게 물속을 디디면서 솜씨 있게 낚싯줄을 당겼기 때문에 사상의 고기들은 개울에서 놀라서 달아나거나 둑의 낚시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 고기들은 서쪽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처럼, 또는 때때로 그곳에 형성되었다가 흩어지는 자개구름의 떼처럼 유유자적하며 오가곤 했다. 우리는 신화를 수정하기도 하고 우화를 여기저기 다듬기도 했으며, 지상에 그 토대를 마련할 수 없는 성들을 공중에다 지었다.

그는 위대한 관찰자이며 위대한 예견자였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천일야화>에 필적하는 뉴잉글랜드의 야화라고도 할 수 있었다. 아아,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우리는 나누었던거! 은자와 철학자와 그 전에 말한 적이 있는 옛 개척자-이렇게 세 사람이 나누는 이야기로 나의 집은 부풀어서 판자가 휠 정도다. 1인치의 원 위에 기압 이외에 몇 파운드의 압력이 있었는지 밝힐 수는 없다. 아무튼 집이 너무 부풀어서 틈이 벌어져 생긴 구멍을 막기 위해 그 후 많은 권태감을 느끼며 메꾸는 작업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뱃밥은 이미 충분히 마련해 놓고 있었다.

오래 기억할 만한 충실한 내용의 대화를 나눈 또 한 사람 (랄프 윌도 에머슨(1803~1882)을 가리킨다. 시인이며 초절론의 대표적 사상가였던 그는 콩코드에 살면서 초기의 소로우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이 있다. 내가 주로 마을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지만 그도 간혹 내 집을 찾아왔다. 이상이 내가 호반의 집에서 가졌던 교우 관계의 전부이다.

어디서나 마찬가지지만 그곳에서 나는 결코 오지 않는 어떤 방문객을 기다리는 때가 있었다. 인도의 성전 <비슈누 프라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집주인은 저녁때엔 자기 집 뜰에 머물면서 암소의 젖을 짜는 동안이나 그보다 더 오랫동안 손님의 도착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때때로 이 손님 접대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한 마리가 아니라 한 떼의 소의 젖을 넉넉히 짤 만한 시간을 기다렸으나 마을 쪽에서 가까이 다가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15장 겨울의 동물들

 

호수들이 완전히 얼어붙자 호숫가의 여러 지점에 이르는 새로운 지름길이 생겼다. 그뿐 아니라 호수 주위의 낯익은 경치도 얼음 위에서 보면 새롭게만 보이는 것이었다. 플린트 호수는 내가 자주 배를 젓고 스케이트를 탄 곳이다. 하지만 눈으로 덮였을 때 그곳을 가로질러 걷노라니 너무 넓고 낯선 느낌이 들어 북극해의 광활한 배핀 만이 연상될 뿐이었다. 이 눈 덮인 평원의 끝에는 링컨 마을 주위의 산들이 솟아 있는 모습이 보였는데 내가 과연 전에 이 지점에 선 일이 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음 위라서 거리를 제대로 측정하기 힘든 위치에 있는 낚시꾼들은 늑대처럼 생긴 개들을 데리고 어스렁거리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이 물개 사냥꾼이나 에스키모같이 보였으며, 안개라도 조금 낀 날에는 무슨 옛이야기에 나오는 이상한 사람들처럼 보였는데, 그들이 거인인지 난쟁이인지는 구별할 길이 없었다.

밤에 링컨 마을에 강연이라도 할 일이 있을 때는 플린트 호수를 가로질러서 갔는데, 내 오두막과 마을회관 사이의 거리를 어떤 길이나 집들을 지나지 않고도 오갈 수 있었다. 그 마을에 가는 도중에 있는 구스 호수에는 한 떼의 사향쥐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얼음 위에 집을 지어놓고 살았는데 내가 지나갈 때 밖에 나와 있는 놈은 하나도 없었다.

월든 호수는 다른 호수와 마찬가지로 눈이 와도 대체로 잘 쌓이지 않거나 엷은 눈이 산발적으로 쌓이기 때문에 내게는 앞마당과도 같았다. 사방 천지에 2피트 정도의 눈이 쌓여 있고 마을 사람들도 길만을 겨우 이용하고 있을 때 나는 호수 위를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었다. 마을의 거리들과 그 위를 달리는 눈썰매들의 방울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진 이 호수 위에서 나는 썰매를 타거나 스케이트를 타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사슴들이 숲속에 눈을 밟아 만든다는 '사슴 운동장'의 초대형이라고 할 수 있는 이 호수의 주위에는 떡갈나무들과 근엄한 소나무들이 눈의 무게로 가지가 휘어 있거나 고드름이 잔뜩 매달려 있었다.

겨울에는 밤은 물론이고 때로는 낮에도 거리를 가늠할 수 없는 곳에서 우는 올빼미의 외로우면서도 구성진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올빼미 우는 소리는 꽁꽁 얼어붙은 지구를 악기 삼아 적당한 활로 연주하면 날 것 같은 소리이며, 월든 숲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대표적인 일상어이다. 이제는 귀에 익은 소리이지만 올빼미가 우는 현장을 목격한 적은 없다. 겨울 저녁에는 문을 열기만 하면 거의 언제나 그 낭낭한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어떤 때는 "안녕 우엉, 안녕 우엉" 하며 인사라도 건네는 것처럼 들리기도 하고 다른 때는 그냥 "우엉 우엉" 하는 것으로 들리기도 한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으로 호수가 완전히 얼기 전이었던 어느 날 밤 아홉 시경, 나는 기러기 한 마리의 커다란 울음소리에 깜짝 놀라 문간으로 달려갔다. 수많은 기러기들이 숲에 몰아닥친 폭풍우와도 같은 날갯소리를 내면서 내 집 위를 낮게 날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호수 너머 페어헤이븐 쪽으로 향하고 있었는데, 내 집에서 비치는 불빛 때문에 월든 호수에 내려앉으려던 생각을 버린 것 같았다. 그러는 동안 내내 대장 기러기는 규칙적으로 끼룩 소리를 내서 기러기 떼의 움직임을 지휘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내 집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서 올빼미 한 마리가 내가 들어본 이 숲에 사는 새들의 울음소리 중 가장 크고 날카로운 소리로 대장 기러기의 울음소리에 규칙적인 간격으로 응답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마치 허드슨만으로부터 날아온 이 침입자에게, 토착민의 울음소리가 더 넓은 음역과 더 큰 성량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 창피를 주어서 콩코드 경계 밖으로 쫓아내려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 올빼미에게 바쳐진 이 신성한 밤 시간에 너희 놈들이 왜 숲을 시끄럽게 한단 말이냐? 내가 이런 시간에 잠이나 자고 있을 것 같으며 내 목청이 너보다 못할 것 같으냐? 꺼져라 우엉! 사라져라 우엉! 우엉 우엉! 그 울음소리는 내가 그때까지 들어본 중 가장 오싹하는 불협화음이었다. 그러나 분별력 있는 귀로 잘 들어보면 그 속에는 이 근처에서 보고 듣지 못하던 어떤 협화음의 요소들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또 이 근처에서 나와 절친한 내 밤 친구인 호수의 얼음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얼음은 잠자리에 들었지만 편히 잠들지 못하고 몸을 뒤척이는 것이 속이 좋지 않거나 나쁜 꿈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어떤 때는 냉기에 의해 땅이 갈라지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 소리는 누가 소 떼를 몰아내 집 문을 부수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나가보면 길이 1/4마일 폭 1/3인치 정도로 땅이 갈라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또 여우들이 달밝은 밤에 들꿩이나 다른 야생 동물을 찾아 눈덮인 땅을 돌아다니며, 숲속의 개라도 된 양 악마처럼 흉하게 짖는 소리를 들었다. 여우들의 그런 모습은 무슨 불안감에 쫓기거나 표현하고 싶은 것이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은 빛을 찾아 헤매며, 차라리 개가 되어 길거리를 마음대로 달리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사실 우리가 긴 세월을 놓고 보면 인간들 사이에서 그러하듯 짐승들 사이에서도 어떤 문명의 진화 과정이 진행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는 여우들이 방어의 자세로 굴 속에서 살면서 인간으로의 변신을 기다리는 원초적인 인간들처럼 여겨졌다. 이따금 여우 한 마리가 내 집의 불에 이끌려 창문 앞까지 왔다가 나를 보고 깽깽 짖고는 숲속으로 사라지는 때도 있었다.

대개 나는 이른 아침에 붉은다람쥐들 때문에 잠을 깼다. 이 놈들은 지붕 위와 벽 위아래를 달음질치며 돌아다녔는데, 나를 깨우려고 일부러 누가 숲속에서 보낸 것만 같았다. 겨울에 나는 종종 문 밖의 눈 위에 덜 여문 채로 거두어들인 옥수수를 반 부셸쯤 던져놓고 그것에 유혹되어 다가오는 여러 동물들의 동작을 지켜보며 재미있는 한때를 보냈다. 해질 무렵과 밤에는 토끼들이 항상 와서 옥수수를 배불리 먹고 갔다. 붉은다람쥐들은 하루 종일 오가며 매우 흥미 있는 수법으로 옥수수를 공략했다.

처음에 다람쥐는 떡갈나무 관목들이 있는 데로부터 조심스럽게 접근해 오다가 옥수수들이 놓여 있는 눈 근처에 와서는 바람에 불리는 나뭇잎처럼 팔짝팔짝 뛰어오는데 이쪽으로 몇 걸음 저쪽으로 몇 걸음 마치 내기라도 건 듯 놀라울 정도로 빨리 뒷다리를 움직여 달리지만 한꺼번에 2미터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는 않는다. 그러다가는 갑자기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이유 없는 재주 넘기를 한 번 하면서 그 자리에 딱 멈추는데 마치 온 세상의 눈이 자기에게 집중되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 같았다. (사실 가장 깊은 산 속에서도 다람쥐의 동작은 어떤 무희의 동작만큼이나 관객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전 거리를 걷는 데(다람쥐가 걷는 것을 본적은 없지만) 드는 시간보다 머뭇거리고 경계하는 데 보내는 시간이 더 긴 것이다. 그러다가 다람쥐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어린 리기다소나무의 꼭대기로 올라가서는 시계 태엽을 감는 듯한 소리를 내면서 모든 가상의 관중들을 꾸짖기 시작했다. 그는 혼잣말을 하기도 하고 온 세상을 상대로 말하기도 하면서 꾸지람을 했지만 그래야만 할 특별한 사유는 없었다.

마침내 다람쥐는 옥수수가 있는 데로 가서 알맞는 옥수수 하나를 골랐다. 그리고는 아까와 같이 사람을 헷갈리게 하는 삼각전진 방법으로 왔다갔다 하더니 창문 앞에 있는 나뭇단의 꼭대기로 올라갔다. 녀석은 창문을 통해서 나를 한번 힐끔 쳐다보더니 그 자리에 앉아서 몇 시간동안 옥수수를 먹기 시작했다. 때때로 새 옥수수를 가져왔는데 처음에는 열심히 먹지만 반쯤 남으면 그냥 버리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입맛이 까다로워졌는지 속 알갱이만 파먹기도 하고 옥수수를 가지고 장난을 치기도 했다.

그런데 나뭇조각 위에 놓고 한 발로 균형을 잡고 있던 옥수수가 방심하는 바람에 빠져 나가면서 땅으로 떨어져 버렸다. 그러자 이 녀석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그 떨어진 옥수수를 쳐다보았는데 그것이 혹시 살아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는 것 같았다. 녀석은 내려가서 그것을 다시 집어 올 것인지, 아니면 새 옥수수를 다시 하나 가져올 것인지, 아니면 아예 집으로 돌아갈 것인지 결심을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순간에는 옥수수를 생각하다가도 다음 순간에는 바람결에 어떤 풍문이 들려오는지 귀를 쫑긋하고 들으려 했다. 이런 식으로 이 건방진 꼬마는 오후 한때에 수많은 옥수수를 낭비하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는 자기 몸보다 큰 길고 통통한 옥수수 하나를 골라 능숙한 솜씨로 균형을 잡고는 숲속으로 운반하기 시작했다. 마치 들소를 채가는 호랑이처럼 지그재그형으로 가다가 자주 쉬기도 했다. 녀석은 옥수수가 너무 무거운 듯 그것을 끌고 갔는데 수직이나 수평이 아닌 그 중간의 대각선 모양으로 옥수수를 세워 땅에 끌고 갔다. 여러 번 넘어지기도 했지만 악착같이 그것을 끌고 가는 것이었다. 정말 변덕스럽고 종잡을 수 없는 녀석이었다. 결국 녀석은 그 옥수수를 2, 3백 미터나 떨어진 숲속의 나무 꼭대기에 있는 제 집까지 끌고 간 모양이었다. 나중에 나는 숲속 여러 군데에 옥수수 속대가 흩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드디어 어치들이 도착했다. 이 새들의 귀에 거슬리는 울음소리는 아까부터 들려 왔었는데 그들은 8분의 1마일 밖에서부터 조심스럽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어치들은 남의 눈을 피하듯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 날며 살그머니 다가와서는 다람쥐들이 떨어뜨린 옥수수 알갱이들을 채 간다. 그리고는 리기다소나무의 가지에 앉아서 옥수수 알갱이를 통째로 급히 삼키려고 하지만 너무 커서 목구멍에 그만 걸리고 만다. 온갖 고생 끝에 알갱이를 목구멍에서 빼낸 어치는 한 시간 동안쯤 주둥이로 그것을 쪼아서 잘게 부순다. 어치들은 분명히 도둑새들이므로 나는 이들에게 별로 호감이 가지 않는다. 그러나 다람쥐들은 처음에는 수줍어하지만 곧 옥수수가 자기네 것인 양 거리낌없이 행동하는 것이다.

한편 박새들도 떼를 지어 날아와서는 다람쥐들이 떨어뜨린 알갱이들을 물고는 가까운 나뭇가지 위로 날아가 자리를 잡았다. 알갱이를 발톱으로 꽉 잡고 그것이 마치 나무껍질 속에 들은 벌레인양 주둥이로 쪼아대서는 그들의 작은 목구멍에 들어갈 만큼 잘게 부순다. 박새는 매일 몇 마리씩 날아와서는 나뭇단을 쌓아놓은 데서 먹을 것을 찾거나 문간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었다. 박새의 울음소리는 풀섶에 맺힌 고드름들이 서로 부딪칠 때 나는 희미한 짤랑 소리 같다. 그러나 어떤 때는 기운차게 "데 데 데" 하고 울기도 하고, 날씨가 봄날처럼 따뜻할 때는 여름에 그렇듯이 "피피 피피" 하고 우는 소리가 숲 근처에서 들려오기도 했다.

낯이 제법 익자 드디어 어느 날에는 박새 한 마리가 내가 손에 한 아름 안고 가던 장작 위에 겁 없이 내려앉아 나뭇조각을 쪼기까지 했다. 예전에도 내가 마을의 채소밭에서 김을 매고 있을 때 참새 한 마리가 내 어깨에 잠시 내려앉은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나에게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영광스럽게 느껴졌었다. 다람쥐들 역시 나중에는 꽤 친숙해져서 앞으로 나아갈 때 내 발이 막고 있으면 돌아가지 않고 내 구두를 밟고 그 위로 넘어가곤 했다.

눈이 아직 많이 내리지 않은 초겨울에 그리고 겨울 막바지에 내 집 근처의 남쪽 언덕 비탈과 나뭇단 주위의 얼음이 녹으면 들꿩들이 숲에서 나와 거기서 먹이를 찾았다. 숲속을 거닐다 보면 갑자기 들꿩이 날개를 급히 치며 도망치는 적이 흔히 있는데 그때 주위의 나뭇가지와 잎사귀에 쌓인 눈이 마치 체로 쳐낸 황금의 가루처럼 햇빛 속에 쏟아져 내렸다. 이 용감한 새는 겨울을 무서워하지 않는 것 같다. 들꿩은 가끔 스스로 눈에 묻히기도 하고 "어떤 때는 깊숙이 쌓인 부드러운 눈 속에 내려앉아 그 속에서 하루 이틀을 숨어 지내기도 한다."고 한다.

나는 해질 무렵 숲속에서 나와 들판에 있는 야생사과나무의 순을 따먹으려고 하는 들꿩을 놀라게 한 적이 여러 번 있다. 교활한 사냥꾼들은 대개 이런 데서 들꿩을 잡으려고 기다린다. 숲 근처에 있는 과수원들은 들꿩의 피해를 적지 않게 입는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해서라도 이 새가 먹을 것을 구할 수 있는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왜냐하면 새순과 맑은 물을 먹고 사는 들꿩은 자연의 여신의 귀염둥이 새이기 때문이다.

어두운 겨울날 아침에 또는 해가 짧은 겨울날 오후에 때때로 나는 한 떼의 사냥개들이 본능을 억제하지 못하는 듯 요란스럽게 짖으며 온 숲을 누비는 소리를 듣곤 했다. 사람이 그 뒤를 따르는 듯 적당한 간격마다 사냥나팔 부는 소리가 들려 왔다. 숲이 다시 울리지만 호숫가의 공터에는 여우도, 그 뒤를 따르는 사냥개들도 뛰쳐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저녁때쯤에는 사냥꾼들이 여우 꼬리 한 개를 사냥 기념으로 썰매에 매달고 여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게 된다.

그들은 나에게 말하기를, 만약 여우가 눈 속에 그냥 숨어 있었다면 별일이 없었을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일직선으로만 계속 달아났더라도 사냥개들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추적자들을 멀리 따돌린 여우는 걸음을 멈추고 쉬면서 귀를 기울이는데, 사냥개들이 따라잡으면 이번에는 방향을 180도 바꾸어 보금자리가 있는 쪽으로 달린다. 하지만 그곳에는 사냥꾼들이 대기하고 있는 것이다.

여우는 어떤 때는 상당히 긴 담 위에 올라가 그 위를 달리다가 멀리 뛰어내려 추격을 피한다. 또 물 속에 들어가면 사냥개들이 자기의 냄새를 추적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 같다. 어떤 사냥꾼 한 사람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 언젠가 그는 사냥개들에게 쫓기는 여우 한 마리가 월든 호수로 뛰어드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호수는 얼음이 녹기 시작할 때라 물이 군데군데 고여 있었다고 한다. 여우는 호수를 조금 건너가다가 다시 같은 호숫가로 되돌아왔다. 얼마 후에 사냥개들이 몰려왔으나 그곳에서 여우의 냄새를 잃어버리고는 더 이상 추적을 못하더라는 것이었다.

어떤 때인가는 사람들 없이 자기들끼리 사냥에 나선 한 떼의 사냥개들이 내 집 문간까지 와서는 내 집을 돌면서 미친 듯이 짖어댔는데 나를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것이었다. 그 개들은 일종의 광기에 사로잡힌 것 같았으며 그 어떤 것도 이들의 추적을 멈추게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냥개들은 여우의 냄새를 다시 찾아낼 때까지 계속 한 지점을 빙빙 도는데 영리한 사냥개는 이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한다.

어느 날 렉싱턴에 사는 어떤 사람이 그의 사냥개의 행방을 찾기 위해 내 집에 찾아온 적이 있다. 그 개는 일주일 전에 집을 나가 혼자서 사냥을 다니고 있는데 사방에 그 발자국이 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가 그 개의 행방을 말해주었어도 그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 그의 질문에 대답하려고 할 때마다 그는 내 말문을 막고는, "댁은 여기서 뭘 하쇼?" 하고 물어보는 것이었다. 그는 개 한 마리를 잃었으나 사람 하나를 찾아냈던 것이다.

호수의 물이 제일 따뜻할 때쯤 해서 일년에 한 번 월든 호수로 목욕을 오는 늙은 사냥꾼이 있었다. 그 때마다 그는 나를 찾아보는데 내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오래전 어느 오후 그는 엽총을 가지고 월든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 그가 웨이랜드 마을로 가는 길을 걷고 있노라니 사냥개들의 짖는 소리가 들리면서 점점 그 소리가 가까워졌다. 머지않아 여우 한 마리가 담을 뛰어넘어 길로 뛰어들었다. 그는 급히 총을 겨누어 쏘았으나 여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맞은편 담을 넘어 숲속으로 사라졌다. 잠시 후에 어미 사냥개 한 마리가 새끼 셋을 데리고 뒤쫓아왔다. 그들은 주인의 지시 없이 자기들끼리 사냥에 나섰던 것이었는데 곧 다시 숲속으로 사라졌다.

그날 오후 늦게 그가 월든 호수 남쪽 숲이 무성한 곳에서 쉬고 있노라니 멀리 페어헤이븐 호수 쪽에서 사냥개들이 짖는 소리가 들려 왔다. 그 개들은 아직도 그 여우를 쫓고 있는 모양이었다. 개 짖는 소리는 온 숲을 진동하면서 점점 더 가까이 왔는데 어떤 때는 웰메도우 쪽에서, 어떤 때는 베이커 농장 쪽에서 들리는 것이었다. 한참 동안을 그는 가만히 서서 사냥개 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 소리만큼 사냥꾼의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소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풀섶을 가볍게 헤치고 여우가 나타났다. 나뭇잎들의 동정적인 살랑거림이 그가 풀을 헤치며 달리는 소리를 감추어 주었던 것이다. 조용히 그리고 재빠르게 도망쳐 온 그는 이제 추적자들을 꽤 멀리 떼어놓은 것이다.

여우는 나무 사이에 있는 바위로 뛰어오르더니 가만히 서서는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바로 뒤에 사냥꾼이 있다는 것은 알지 못하고 말이다. 잠시 연민의 감정이 사냥꾼의 팔목을 붙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순간의 기분이었으며 그는 재빨리 엽총을 들어 겨냥을 했다. ! 소리가 나면서 여우는 바위 옆으로 굴러 땅에 나둥그라졌다. 사냥꾼은 그 자리에 계속 서서 사냥개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들려왔으며 이제 주위의 숲은 그들이 악마같이 짖는 소리로 진동하고 있었다.

드디어 어미 사냥개가 코로 땅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마귀에 씌운 듯 허공을 물어뜯기도 하며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그 개는 곧바로 바위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여우가 죽은 것을 보자 갑자기 모든 사냥 동작을 멈추었는데 너무나도 놀라 벙어리라도 된 것 같았다. 사냥개는 침묵 속에 여우의 주위를 몇 번이나 돌았다. 그러는 동안 새끼들도 차례차례 도착했는데 어미나 마찬가지로 이 알 수 없는 일에 충격을 받은 듯 침묵만을 지키는 것이었다. 사냥꾼은 앞으로 나가 사냥개들에게 다가갔다. 수수께끼는 이제 풀렸다. 그가 여우의 껍질을 베끼는 동안 개들은 조용히 옆에 앉아 있었다. 그가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자 그들은 잠시 동안 그의 뒤를 따르더니 숲속으로 다시 사라져 버렸다.

그나 저녁 웨스턴 마을의 유지 한 사람이 이 콩코드 사냥꾼의 집에 찾아와서는 자기 사냥개들의 행방을 혹시 아느냐고 물었다. 그 개들은 웨스턴 근처의 숲에서 시작하여 벌써 1주일째 자기들끼리 사냥을 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콩코드의 사냥꾼은 자기가 아는 바랄 이야기해 주고 여우 가죽을 그 유지가 갖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 제의를 사양하고 사냥꾼의 집을 떠났다. 그는 그날 저녁 자기 사냥개들을 찾지는 못했지만 다음 날에는 그들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 그 개들은 전날 콩코드 강을 건너서 어느 농가에 들려 먹을 것을 배불리 얻어먹고는 다음 날 아침 일찍이 그 집을 떠났다는 것이었다.

앞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준 사냥꾼은 샘 너팅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 너팅은 페어헤이븐 산에서 곰을 사냥해서는 그 가죽을 콩코드 마을에서 럼 주와 바꾸기도 했는데 그 산에서 무스 사슴을 본 적이 있다고 그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너팅은 버고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유명한 여우 사냥개를 한 마리 가지고 있었으며 내가 아는 그 사냥꾼에게도 이 개를 때때로 빌려주기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 이 마을에는 모피 상인이 한 사람 살았었다. 그는 전직 군인 대위였으며 마을의 서기 및 법정 대리인을 겸하고 있었다. 그의 장부를 들쳐 보면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1742~3118, "존 멜빈, 회색 여우 한 마리, 2실링 3펜스." 회색 여우는 이제 이 지방에서는 구경할 수가 없다. 174327일자의 장부에는 헤스키야 스트래턴으로부터 "고양이 가죽, 1실링 4 1/2펜스" 어치를 사들였다고 했다. 여기서 고양이는 들고양이를 말하는 것이리라. 왜냐하면 스트래턴이라는 사람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쟁에 중사로 참전한 사람인데 고양이 따위를 잡아서 팔았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사슴 가죽을 사들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그 당시에는 거의 매일 사슴 가죽을 사고팔았다고 한다.

마을의 어떤 사람은 이 지방에서 마지막으로 잡힌 사슴의 뿔을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또 한 사람은 그 마지막 사슴 사냥에 자기 아저씨도 끼였었다고 하며 그 사냥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예전의 이 지방의 사냥꾼들은 그 수도 많았을 뿐만 아니라 무척 재미있는 부류였었다. 아직도 나는 몸이 유난히 말랐던 한 사냥꾼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길가의 나뭇잎을 따서 그것으로 곧잘 피리를 불곤 했는데 그 소리는 그 어떤 사냥 나팔보다도 구성지고 흥겨웠던 것으로 기억된다.

때때로 달이 뜬 한밤중에 숲을 걷다 보면 사냥개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만나는 적이 있다. 이들은 마치 내가 두려운 듯이 길 옆으로 비켜나, 내가 지나갈 때까지 수풀 속에 조용히 서 있는 것이었다.

다람쥐와 야생의 생쥐들은 내가 보관해 둔 호두를 서로 먹으려고 다투었다. 내 집 주위에는 지름이 1인치에서 4인치까지의 리기다소나무들이 20여 그루 서 있는데 지난겨울에 생쥐들이 그 나무들을 상당히 갉아 먹었다. 지난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린 데다가 오랫동안 녹지 않고 쌓여 있어서 노르웨이의 겨울만큼이나 이들에게는 힘든 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생쥐들은 소나무 껍질이라도 많이 갉아먹어 다른 식량을 보충해야만 했으리라.

이 리기다소나무들은 밑둥 근처의 껍질을 빙 둘러가며 갉아 먹혔지만 한여름까지만 하더라도 싱싱했었고 그들 중 대부분은 1피트 정도나 더 키가 자랐었다. 그러나 이번 겨울에 또 한 번 그런 일을 당한 나무들은 열이면 열 다 죽고 말았다. 조그만 생쥐 한 마리가 커다란 소나무를 위아래로 갉아먹지 않고 한 곳을 빙 둘러 갉아먹어 쓰러뜨리도록 자연이 허용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리기다소나무의 강한 번식력을 이런 식으로라도 제어하여 솎아주는 일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산토끼들도 이제는 매우 낯이 익었다. 한 녀석은 내 집의 마루 밑에 집을 지어 겨울 내내 살고 있었다. 내가 매일 아침 일어나 거동을 시작하면 그 토끼는 급히 밖으로 나가려다 머리를 마루의 판자에 쾅쾅 찧는 바람에 나를 깜짝 놀라게 하곤 했다.

산토끼들은 내가 버린 감자 껍질을 먹으려고 어둑어둑할 때면 내 집 문 앞으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색깔이 땅 색깔과 너무 흡사해서 가만히 있으면 거의 구분을 할 수가 없었다. 황혼 무렵의 어떤 때에 내 창 밑에 움직이지 않고 앉아 있는 토끼 한 마리를 보고 있노라면 한순간에는 보이다가 다음 순간에는 보이지 않곤 했다. 저녁에 내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면 이놈들은 끽끽 소리를 내며 튀어 달아났다. 토끼를 가까이서 보면 오직 연민의 감정만 들었다.

어느 날 저녁 내가 문밖으로 나갔을 때 토끼 한 마리가 미처 달아나지 못하고 내 바로 앞에서 무서움에 떨면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가련하기 짝이 없는 작은 동물은 깡마른 몸집에 길다란 귀와 뾰죽한 코, 짧은 꼬리에 가느다란 앞발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 자연은 보다 고귀하고 우람한 동물들을 다 잃어버리고 갈 데까지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산토끼의 커다른 두 눈은 어리디 어리게 보였으며 수종에라도 걸린 것 같은 병약한 인상을 주었다.

그러나 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아가자 산토끼는 싹하고 용수철처럼 튀며 몸을 우아하게 쭉 뻗어 눈더미를 넘어서는 숲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자유로운 야생동물이 자신의 힘과 품위를 과시하는 순간이었다. 산토끼의 몸매가 날씬한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경쾌함이 그의 천성인 것이다. (토끼는 라틴어로 '레푸스'인데 그 어원이 '경쾌한 발'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있다)

산토끼나 들꿩이 없는 시골도 시골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 둘은 가장 순박하고 토속적인 동물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예나 지금이나 잘 알려진 오래되고 존경받는 동물 가계에 속한다. 산토끼와 들꿩은 자연 자체의 색깔과 천성을 가지고 있으며 나뭇잎이나 땅하고 가장 가까운 유대 관계를 갖고 있다. 그들은 또 서로간에도 유대 관계를 갖고 있는데, 단지 하나는 날개가 달리고 다른 하나는 네 다리를 가진 것이 다를 뿐이다.

숲길을 가다 보면 산토끼나 들꿩이 갑자기 달아날 때가 있다. 그 때 당신은 어떤 야생 동물을 본 것이 아니라 살랑거리는 나뭇잎과 같이 당연히 있음직한 가장 자연스러운 동물을 본 것 뿐이다. 지구상에 어떤 변동이 오더라도 땅의 진정한 토박이로서 들꿩과 산토끼는 틀림없이 살아남아 번성할 것이다. 숲이 잘려 나가더라도 그곳에 움트는 싹들과 수풀은 이들을 감추어줄 것이며 이들은 더욱더 그 수가 증가할 것이다. 산토끼 한 마리 먹여 살리지 못하는 들판은 정말 척박한 땅일 것이다. 소몰이 아이들이 설치한 덫과 함정들이 도사리고 있지만 숲에는 산토끼와 들꿩들이 번성하고 있으며, 어느 늪에나 들꿩이나 산토끼가 평화롭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가 있다.

 

 

 

16장 겨울의 호수

 

고요한 겨울밤이 지나고 아침에 깨었을 때 나는 잠 속에서 어떤 질문을 받고 그에 대한 대답을 하려고 헛되이 애쓰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질문은 무엇이-어떻게-언제-어디서와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모든 생물의 보금자리인 대자연이 동트고 있었으며 그녀는 조용하고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의 넓은 창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는 아무런 질문도 나타나 있지 않았다. 질문은 이미 해답을 찾고서는 대자연 및 햇빛과 더불어, 잠에서 깬 나를 맞았다.

한창때의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자라고 있는 땅 위에 깊이 쌓인 눈과, 내 집이 자리 잡고 있는 언덕 비탈은 ', 앞으로 나가시오!' 하고 나를 부추기는 것 같았다. 자연은 아무런 질문 하지 않으며 우리 인간이 묻는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는다. 자연은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던 것이다. "오 군주여! 우리의 눈은 이 우주의 놀라운 여러가지 광경을 탄복하여 바라보며 영혼에 전달합니다. 밤은 물론 이 영광스러운 창조물의 일부를 장막으로 가립니다. 그러나 낮이 와서 지구로부터 하늘의 들판에 이르는 이 위대한 작품을 우리에게 드러내 보입니다." (고대 인도의 시집 <하리반사>)

 

이제 나는 아침 일에 착수했다. 먼저 도끼와 물통을 들고 물을 찾아 나섰다 눈이 내린 추운 밤의 다음날에는 물을 찾으려면 탐지막대라도 있어야 했다. 공기의 조그만 움직임에 그처럼 민감하고 모든 빛과 그늘을 반영하던 호수의 유동적인 수면은 겨울만 되면 1피트나 1피트 반 두께로 얼어서 우람한 소 몇 마리쯤의 무게로는 끄떡고 않는다. 게다가 눈이 얼음 두께 정도로 내려 쌓이기라도 하면 호수는 다른 들판과 구별할 길이 없다. 주위의 산에 살고 있는 마르모트처럼 호수는 그 눈꺼풀을 내리고 3개월 또는 그 이상을 동면에 들어간다. 이 눈 덮인 들판에 서니 마치 언덕으로 둘러싸인 풀밭에라도 선 기분이 든다. 나는 먼저 1피트 깊이의 눈을 치운 다음 다시 1피트 두께의 얼음을 깨서 발아래 호수의 창문을 연다. 그리고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며 물고기들의 조용한 거실을 내려다본다. 호수 속은 마치 불투명한 유리창을 통해 들어온 것 같은 부드러운 광선이 사방에 퍼져 있으며, 바닥은 여름이나 마찬가지로 밝은 모래가 깔려 있다. 호박색의 저녁노을이 질 때와 같은 영원한 물결 없는 고요가 이곳을 다스리고 있다. 그 고요는 이곳에 사는 거주자들의 침착하고 평온한 기질에도 상응하는 것이리라. 천국은 머리 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발밑에도 있다.

아침 일찍 온 세상이 강추위로 뻣뻣해 있을 때 낚싯대와 간단한 점심을 들고 호수를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눈 덮인 호수 위에 자리 잡고 앉아 가느다란 줄을 내려뜨려 강꼬치고기와 퍼치를 낚으려고 한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유행을 좇으며 그들과는 다른 권위를 신봉하는 야성의 인간들이다. 어쩌면 끊겨버릴 수도 있는 여러 마을 간의 유대를 일부를 이들이 오고 감으로써 이어주고 있다.

그들은 두꺼운 모직 외투를 걸치고 호숫가의 마른 떡갈나무 잎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마을 사람들이 인공의 지식에 밝다면 그들은 자연의 지식에 밝다. 그들은 결코 책에 의존하지 않으며 자신들이 알고 말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해낸다. 그들이 하는 일 중에는 마을 사람들이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일들도 있다. 여기에 다 자란 퍼치를 미끼로 강꼬치고기를 낚고 있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의 통을 들여다보고 마치 여름 호수를 들여다본 듯 경탄을 금치 못한다. 마치 그가 여름을 자기 집에 가두어 두었거나 여름이 물러가 있는 곳을 아는 것 같기만 하다. 아니, 한겨울에 이런 물고기들을 어떻게 잡았을까? 그야 땅이 얼어붙었으니 썩은 통나무 속의 벌레를 잡아 그것을 미끼로 이 물고기들을 잡은 것이다. 그는 생활 자체가 박물학자의 연구보다도 더 깊이 자연 속으로 뚫고 들어가 있다. 그 자신이 박물학자의 연구 대상이 될 만도 하다. 박물학자는 주머니칼로 이끼와 나무껍질을 가만히 치켜올려 곤충을 찾는다. 그러나 낚시꾼은 도끼로 통나무를 그 속까지 찍어 이끼와 나무껍질을 사방으로 튀게 만든다. 그는 나무껍질을 벗겨 생계를 꾸린다. 그런 사람은 물고기를 잡을 권리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하겠다. 그를 통해서 자연의 섭리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퍼치는 유충을 삼키고, 강꼬치고기는 퍼치를 삼키며, 낚시꾼은 강꼬치고기를 삼킨다. 이리하여 자연의 각 단계 사이에 있는 틈이 메워지는 것이다.

안개 낀 날 호수 주위를 거닐다가 일부 소박한 낚시꾼들이 쓰고 있는 원시적인 낚시 방법을 보면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낚시꾼은 얼음에 구멍을 뚫고 그 위에 구멍보다 큰 오리나무 가지를 걸쳐 두는데, 낚싯줄이 끌려 달아나지 않도록 줄의 끝을 오리나무에 묶어 놓는다. 그리고 낚싯줄의 느슨한 부분은 얼음 위 1피트 또는 그 이상의 높이에 있는 오리나무의 작은 가지에 걸쳐 놓는다. 똑 그 줄에 마른 떡갈나무 잎을 하나 매달아 놓았으므로 그것이 아래로 끌려가면 고기가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낚시 구멍들은 호숫가로부터 2, 30미터에서 시작하여 연달아 있었는데 그 간격 역시 2, 30미터 정도였다. 그래서 호수 주위를 반바퀴 정도 도노라면 안개 속에 오리나무 가지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 있는 모습을 어렴풋이 볼 수 있었다.

, 월든의 강꼬치고기들! 이 강꼬치고기들이 얼음 위에나, 낚시꾼들이 얼음 위에 작은 웅덩이를 파서 물을 담아놓은 곳에 누워 있는 모습을 보면 그 보기 드문 아름다움에 나는 항상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마치 전설에나 나오는 고기들 같다. 마치 아라비아가 콩코드에 먼 이국이듯 강꼬치고기들은 거리로부터, 아니 심지어 숲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이국적인 인상을 주는 고기들이다. 그들은 너무나 눈부신 초월적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그에 비하면 거리에서 떠들어대는 대구는 저 밑에 쳐져 차라리 송장 같은 인상을 줄 뿐이다.

강꼬치고기의 색깔은 소나무처럼 청색도 아니고 돌처럼 회색도 아니며 하늘처럼 청색도 아니다. 내 눈에 이 물고기의 색깔은 꽃이나 보석처럼 진기한 색깔로 보인다. 그들은 진주와도 같으며, 월든 호수 물의 동물화된 핵심, 즉 결정인 것이다. 강꼬치고기는 겉이나 속이나 철저하게 월든 체질이며, 그 자신이 동물의 왕국에서의 작은 월든 호수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물고기가 여기서 잡힌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마차와 가축들이 덜거덕거리며 지나고 썰매가 딸랑대며 지나는 월든 길 옆의 이 깊고도 넓은 샘물 속에 이 커다란 황금색과 에메랄드색의 고기들이 헤엄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나는 시장에서 강꼬치고기 종류를 본 적이 없다. 만약 시장에 팔려 나왔더라면 모든 눈의 감탄의 대상이 되었을 것이다. 물 밖으로 잡혀 나온 강꼬치고기는 마치 천명을 다하지 못하고 하늘의 엷은 공기로 옮겨가는 인간처럼 몇 번 몸부림 치고는 물 속에서의 삶을 단념해버린다.

 

오랫동안 잃어버린 채로 있는 월든 호수의 바닥을 되찾을 생각을 갖고 있던 나는 1846년 초 얼음이 녹기 전에 나침반과 쇠사슬과 측심줄을 가지고 호수 바닥을 세밀히 측정했다. 월든 호수의 바닥에 대하여 바닥이 있느니 없느니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전해져왔으나 거기에 대한 믿을 만한 근거는 없었다. 사람들이 바닥을 재는 수고를 해보지도 않고 어떤 호수가 바닥이 없다고 오랫동안 믿는 것을 보면 그저 놀라울 뿐이다. 나는 콩코드 주변으로 한나절 산책을 나갔다가 바닥이 없다는 호수를 두 군데나 들르고 온 적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월든 호수가 지구 반대편으로 뚫려 있다고 믿어 왔다. 어떤 사람들은 호수의 얼음 위에 오랫동안 엎드려 이러한 착각을 일으키는 매체를 통하여 물기 어린 눈으로 내려다보다가 감기라도 들까 두려운 나머지 다음과 같은 성급한 결론을 내렸다. , 그들은 "한 수레분의 건초라도 넣을 수 있는"-만약 그것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말이다-거대한 구멍을 보았던 것이다. 그 구멍은 저승의 강인 스틱스강의 원천이며 이 근처에서 황천으로 가는 입구라고 보아도 좋으리라.

다른 사람들은 마을에서 '56파운드 추'1인치 지름의 줄을 한 수레분이나 가지고 갔으나 호수 바닥을 찾는 데는 역시 실패했다. 왜냐하면 '56파운드 추'가 이미 바닥에 닿아 있는데도 그들은 쓸데없이 줄을 풀어 넣으면서 경이로운 것을 무한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신들의 능력을 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월든 호수는 깊이가 대단하기는 하지만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며 또 비교적 단단한 바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는 독자들에게 확언하는 바이다.

나는 대구잡이 낚싯줄과 1파운드 반 정도 무게의 돌을 사용하여 호수 바닥을 쉽게 측정했다. 일단 바닥에 닿아 있던 돌을 다시 끌어올릴 때, 돌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순간에는 훨씬 세게 당겨야 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가장 깊은 곳은 꼭 102피트였다. 그 후 물이 5피트 불었으니 그곳의 깊이는 이 107피트가 될 것이다. 면적이 이처럼 작은 곳으로서는 놀라운 깊이인 것이다. 하지만 어떤 상상에 의하여 단 1인치라도 에누리할 수는 없다.

만약 모든 호수의 깊이가 얕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 어떤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인가? 월든 호수가 깊고 맑게 만들어져서 하나의 상징을 이루고 있는 것이 고마울 뿐이다. 인간이 무한을 믿고 있는 한, 바닥이 없는 호수들은 계속 존재할 것이다.

어떤 공장 주인은 내가 잰 호수 깊이에 대한 얘기를 듣고는 그럴 리가 없다고 했다. , 자기가 댐에 대하여 아는 지식으로 판단한다면 모래가 그처럼 급격한 경사로 놓일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장 깊은 호수들도 면적에 비하면 흔히 상상하는 것만큼 깊지는 않으며, 만약 물을 다 퍼낸다면 대단한 골짜기가 드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 호수들은 산과 산 사이에 낀 잔 같은 것은 아니다. 그 면적에 비해 보통 이상으로 깊은 이 호수도 그 중심을 통하는 수직 단면으로 보면 얕은 접시 모양과 흡사할 것이며 그보다 더 깊지는 않을 것이다. 대부분의 호수들은 물을 다 퍼내면 우리가 흔히 보는 초지보다 더 움푹 패여 있지는 않을 것이다.

풍경의 묘사에서 유려한 문체와 정확성을 구사하는 영국의 저술가 윌리엄 길핀은 스코틀랜드의 파인 호수의 유입구에 서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먼저 그는 그 호수가 깊이 6, 70, 4마일, 길이 약 50마일의 염수만으로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고 묘사한 다음 아래와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만약 홍적기의 지층 함몰 직후나 그것을 초래케 한 자연의 변동 직후에, 그리고 물이 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 전에 그것을 볼 수 있었다면 그것은 얼마나 무서운 심연으로 보였을 것인가!

돌출한 산들이 높이 솟아 있듯이

공허한 바닥은 넓고도 깊게 푹 꺼져 있다.

광활한 물바다를 이루면서."

그러나 파인 호수 표면의 가장 짧은 지름을 사용하여 그 호수의 크기를 비율에 맞추어 월든 호수에 적용해 본다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수직 단면이 얕은 접시 같은 월든 호수에 비해서 파인 호수는 그 4분의 1정도의 깊이밖에 갖지 않은 것으로 보일 것이다. 파인 호수의 물이 다 빠졌을 때에 드러날 그 무서운 협곡에 대해서는 이만 해두는 것이 좋겠다. 미소 짓는 수많은 계곡과 그사이에 펼쳐져 있는 옥수수밭들이 바로 물이 빠져나간 '무서운 협곡'과 다를 리가 없건만 생각 없는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납득시키기 위해서는 지질학자의 통찰력과 원대한 시계가 필요한 것이다.

탐구적인 눈을 가진 사람은 낮은 지평선의 언덕이 원시시대의 호숫가였음을 흔히 알아낼 수가 있는데, 들판이 그 후에 융기가 되지 않았더라도 호수의 내력은 쉽게 감추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큰길에서 도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잘 알듯이 소나기가 온 뒤에 생긴 물웅덩이를 보고서 땅이 패여 들어간 곳을 찾기가 가장 쉬운 것이다. 내 말의 요지는, 상상력은 약간의 틈을 주면 자연보다 깊이 잠수하고 자연보다 더 높이 난다는 점이다. 큰 바다의 깊이도 아마 그 넓이에 비하면 대단치 않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나는 얼음을 뚫고 호수의 깊이를 쟀으므로 얼지 않는 항구를 측량하는 것보다 훨씬 정확하게 그 바닥의 형태를 측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닥이 대체로 고르게 되어 있는데 놀랐다. 가장 깊은 곳에서는 수 에이커에 달하는 면적이, 태양과 바람과 쟁기의 영향을 받기 마련인 대부분의 밭보다 더 평평한 것이다. 한 예를 들면, 임의로 선택한 어느 선 위의 여러 지점의 깊이를 재보았는데 150미터 이내에서는 1피트 이상의 차이가 없었다. 대체로 호수의 중심 근처에서는 어느 방향으로나 매 100피트에 대해 3, 4인치 이내에서 그 깊이의 변화를 예측할 수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처럼 모래 바닥으로 된 고요한 호수에서도 깊고 위험한 구멍이 있다고 흔히 얘기하지만 이런 사정 아래에서는 물의 작용으로 인해 온갖 기복이 평평해지는 것이다. 호수 바닥은 대단히 고르며 또 그 바닥의 형태가 호숫가와 그 근처의 산들의 형세와 완전하게 일치하기 때문에 먼 갑은 맞은편 호숫가의 깊이에 영향을 주며, 그 방향도 대안을 관찰함으로써 측정할 수 있었다. 갑은 사주와 모래톱이 되고, 계곡과 협곡은 깊은 구멍과 수로가 된다.

나는 50미터를 1인치로 축소하여 호수의 지도를 작성하고 백 군데 이상 되는 곳의 깊이를 잰 것을 모두 기입해 넣었다. 그러자 다음과 같은 놀라운 일치를 발견하게 되었다. , 가장 깊은 곳을 가리키는 숫자가 분명히 지도의 한가운데에 있는 것을 보고는 지도 위에 자를 가로와 세로로 놓아 보았는데, 놀랍게도 가장 긴 가로선과 가장 긴 세로선이 가장 깊은 지점에서 정확하게 서로 교차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이것이 암시하는 바를 따르면 호수나 못은 물론 큰 바다의 가장 깊은 곳도 찾아낼 수 있지 않겠는가? 이것은 계곡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산악의 높이에도 통하는 규칙이 아니겠는가?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산의 가장 높은 곳은 산기슭의 넓이가 가장 좁은 곳에 있지는 않은 것이다.

다섯 개의 작은 만 중 세 개는 내가 그 깊이를 측정해 보았는데, 그 입구를 넘어서 안쪽으로 모래톱이 있었으며 그 안의 물은 보다 더 깊다는 것을 관찰로써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작은 만은 수평뿐만 아니라 수직으로도 육지 내부로 뻗은 물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일종의 내포나 독립적인 호수를 이루는 경향이 있었으며 두 갑의 방향이 모래톱의 뻗은 방향을 나타내고 있었다. 해안가에 있는 모든 항만도 그 입구에는 모래톱이 있다 작은 만의 입구가 그 길이에 비해 넓으면 넓은 만큼 모래톱 밖의 물은 내포의 물보다 더 깊었다. 작은 만의 길이와 넓이 그리고 그 주위의 호숫가의 특징을 알게 되면 어떠한 경우에 대해서나 하나의 공식을 세울 만한 거의 모든 자료를 갖게 되는 것이다.

나는 월든 호수에서의 이러한 경험을 살려서 어떤 호수의 수면의 윤곽과 그 호숫가의 특징을 관찰함으로써 그 호수의 가장 깊은 곳을 얼마나 정확하게 맞힐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화이트 호수의 도면을 만들어 보았다. 이 호수의 면적은 약 41에이커에 달하는데, 월든 호수와 마찬가지로 그 안에는 섬이 없으며, 눈에 보이는 어떠한 유입구나 유출구가 없다. 그런데 가장 긴 세로선은 두 개의 마주 보는 갑이 서로 접근하고 그리고 두 개의 마주 보는 만이 쑥 들어가 있는 곳에서 가장 짧은 세로선에 가까이 지나기 때문에 나는 짧은 가로선에서 조금 떨어진 데로서 가장 긴 가로선상에 가장 깊은 곳이라고 대담하게 표시해 보았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가장 깊은 곳은 내가 표시한 곳에서 백 피트 이내에 있는 것이 판명되었다. 그것도 내가 애초에 쏠린 방향에 있었으며, 깊이도 1피트밖에 더 깊지 않은 60피트였다. 물론 물속에 조류가 흐른다든지 호수 안에 섬이 있다면 문제는 훨씬 복잡해질 것이다.

우리가 자연의 법칙을 모두 다 안다면, 단 하나의 사실이나 혹은 단 하나의 실제적 현상의 기술만 있으면 그 시점에서의 모든 구체적인 결과를 추리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로서 우리는 단지 몇 가지의 법칙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추리해낸 결과는 무효가 되는데, 그것은 자연의 어떤 혼란이나 변칙 때문이 아니라 계산하는 데 꼭 필요한 요소를 우리가 모르기 때문이다. 법칙과 조화에 대한 우리의 개념은 대개 우리가 탐지해낸 경우들에게로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가 탐지해내지 못했으며 그래서 보기에는 모순된 것 같으나 실제로는 합치되고 있는 무수히 많은 법칙들로부터 유래하고 있는 조화는 너무나도 멋진 것이다. 개개의 법칙은 우리가 사물을 보는 시각과도 같다고 하겠다. , 길 가는 나그네가 한 걸음 한 걸음 전진할 때마다 산의 모습이 달라지듯이 그것은 절대적으로 하나의 형태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무한한 측면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산은 쪼개거나 구멍을 뚫어보더라도 그 전체가 파악되지는 않는다.

내가 호수에 관하여 관찰한 것은 인간의 심성에도 똑같이 통용된다고 하겠다. 그것은 평균의 법칙인 것이다. 두 개의 지름을 이용한 그러한 규칙은 우리를 태양계 안의 태양으로 인도하고 사람 몸 안의 심장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한 사람의 매일매일의 행동 총체와 그의 삶의 물결을 뚫고 그의 작은 만과 내포에 이르는 데까지 종횡으로 선을 그을 것이며, 두 선이 만나는 곳에 그의 심성의 가장 높은 부분과 깊은 부분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의 마음의 깊이와 감추어진 바닥을 알기 위해서는 그의 마음의 호숫가가 어떻게 기울고 있으며, 그 인접 지역이나 환경이 어떠한지를 알기만 해도 될 것이다. 만약 그의 호수가 고산 준봉과 아킬레스의 고향처럼 험준한 기슭에 둘러싸여 있으며, 그 산봉우리들이 그의 가슴 위에 우뚝 서서 그의 가슴에 모습을 비추고 있다면, 그것은 그의 내부에도 이에 상응하는 깊이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낮고 평평한 기슭은 그가 그 면에서 깊지 않음을 나타낸다고 하겠다. 우리의 신체에서도 대담하게 불쑥 나온 이마는 그것에 상응하는 생각의 깊이를 표시한다. 우리 내부에 있는 각기의 작은 만들, 즉 각개의 성향의 입구에는 모래톱이 하나씩 있다. 그 모래톱은 어느 기간 동안에는 우리의 항구 역할을 하며, 우리는 그 속에 갇히게 되고 부분적으로 물과 차단이 된다.

이러한 성향은 대체로 어떤 변덕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그 형태와 크기와 방향은 고대로부터의 융기의 축인 갑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 모래톱이 폭풍과 조류와 해류에 의해서 점차로 크기가 커지거나 혹은 물이 줄어들어 모래톱이 물의 표면에 닿게 되면, 하나의 사상이 정박하고 있던 기슭의 성향에 지나지 않던 것이 이제는 독립된 호수가 된다. 이 호수는 바다와 단절되며, 그 안에서 사상은 독자성을 확보하게 된다. 그것은 염수에서 담수로 바뀔 수도 있다. 그것은 물맛이 좋은 담수해가 되는가 하면 사해나 늪이 되기도 한다.

각 개인이 성인으로 세상에 나갈 무렵이면 그러한 모래톱이 어디선가 수면에 도달했을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는가? 사실이지 우리의 항해 기술은 서툴기 짝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상은 흔히 항구가 없는 해안가에서 방황하거나 시라는 이름의 얕은 만에서 배회하기가 일쑤인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람들에게 개방된 항구로 입항해서는 과학이라는 이름의 건선거에 들어가 세속에 맞도록 배를 다시 고치고 마는데, 그곳에는 그들을 개성화할 수 있도록 도와줄 자연의 조류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월든 호수의 유입구와 유출구로 나는 비와 눈과 증발 이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온도계와 낚싯줄만 가지고도 그러한 장소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물이 호수로 흘러드는 곳은 여름에는 가장 차며 겨울에는 가장 따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얼음을 잘라내는 인부들이 이곳에서 작업을 하던 1846~7년의 겨울 어느 날, 호숫가로 운반된 얼음덩이들의 일부가 두께가 얇기 때문에 다른 얼음들과 함께 놓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곳에서 얼음을 쌓는 작업을 하던 사람들에 의해서 불량품 처리가 된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채빙 인부들은 호수의 어느 조그만 지역의 얼음은 다른 데의 얼음보다 2, 3인치가 더 얇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그곳에 유입구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얼음덩어리에 태워서는 호숫물이 '새는 구멍'이라고 생각되는 또 다른 곳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그들은 호숫물이 이 구멍으로 스며들어 언덕 밑으로 해서 근처에 있는 저습지로 빠져나간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수면 아래 약 10피트에 있는 작은 구멍이었다. 그러나 장담하는 바이지만 이보다 더 심하게 새는 구멍이 발견되지 않는 한 이 호수를 땜질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새는 구멍'이 발견되면 그곳이 저습지와 연결되어 있는가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 그 구멍의 입구에다 색깔이 있는 가루나 톱밥을 넣은 다음 저습지에 있는 샘물에 체를 설치해 두면 물줄기를 타고 운반되어 온 가루가 그 체에 걸리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호수에서 측량을 하고 있노라면 두께가 16인치나 되는 얼음이 사소한 바람에도 물결처럼 파동을 일으켰다. 잘 알다시피 수준기는 얼음 위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호숫가에서 5미터 떨어진 지점에 있는 얼음의 최대의 부동은 육지에 장치한 수준기를 얼음 위에 세워둔 눈금을 매긴 막대기 쪽으로 향하게 해서 측량을 해 보니 3/4인치였다. 얼음이 호숫가에 단단하게 붙어 있는 것같이 보였는데도 그런 수치가 나왔다. 아마 호수의 중심 부분은 부동이 더 심했을 것이다. 만약 우리의 측정 기구가 보다 더 정밀하다면 지각의 부동도 탐지해낼 수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수준기의 두 다리를 물가에 두고 세번째 다리를 얼음 위에 두고서 수준기의 가늠자를 그 다리 쪽으로 향하게 하여 관측해 보니 얼음의 극히 미세한 상하 부동이 호수 건너편의 나무에는 수 피트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내가 호수의 깊이를 재기 위하여 얼음에 구멍들을 뚫기 시작했을 때 얼음을 덮고 있던 두터운 눈 밑에는 3, 4인치 깊이의 물이 고여 있었다. 이 물은 내가 판 구멍들 속으로 즉시 흘러 들어가기 시작했으며, 깊은 수로가 되어 이틀 동안이나 게속 흘렀다. 이것은 사방의 얼음을 갉아먹는 작용을 했으며 호수의 표면을 말리는 데 실질적인 이바지를 했다. 왜냐하면 물이 호수로 흘러 들어가서 얼음을 치켜올려 뜨게 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물을 빼내기 위하여 배 밑에 구멍을 뚫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구멍들이 다시 얼고 이어서 비가 온 다음, 마지막으로 새로운 얼음이 전체를 매끈하게 덮으면 그 속에는 아름다운 검은 무늬들이 생긴다. 그 모양은 거미줄과 다소 비슷하며 얼음의 장미꽃 무늬라고도 할 수 있으리라. 이것은 사방에서 하나의 중심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로 인하여 패인 수로들 때문에 생긴 것이다. 얼음 위에 얕은 물웅덩이들이 있을 때 때로는 나 자신의 그림자가 이중으로 비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림자 하나는 다른 그림자의 머리 위에서 있었는데 첫 번째 그림자는 얼음 위에, 두 번 째 것은 나무 위나 산비탈에 서 있는 모습이었다.

아직 추운 정월이고 눈과 얼음이 두껍고 단단한데, 알뜰한 지주는 여름철에 음료를 식히는데 쓸 얼음을 채취하려고 마을에서 온다. 지금은 정월인데 7월에 있을 더위와 갈증을 내다보고서 두꺼운 외투와 장갑을 끼고 대비책을 강구하다니! 그 현명함에 깊은 인상을 받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측은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미래를 위해 준비되지 못한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그는 내세에서 마실 여름 음료를 식혀줄 보물을 현세에서 쌓아두지는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고체가 된 호수를 자르고 톱질하여 고기들의 집의 지붕을 들어낸다. 고기들의 활동 영역이며 숨쉬는 공기를 마치 장작이라도 되는 것처럼 쇠사슬과 말뚝으로 묶어 마차에 실은 다음, 흔쾌한 겨울 공기 속을 지나 겨울의 지하실로 운반해서는 그곳에서 여름을 나게 하려는 것이다. 호수의 얼음이 마을의 길 위에 운반되는 것을 멀리서 보면 마치 고체가 된 하늘빛을 보는 것 같다. 지주를 위해 얼음을 자르는 인부들은 쾌활한 사람들로 농담 잘하고 놀기 좋아하는 부류이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면 그들은 곧잘 나더러 밑에 서라고 하고는 '구멍식 톱질'에 한몫 끼게 하는 것이었다.

1846~7년의 겨울 어느 날 아침, 북극지방 출신의 남자 백 명이 갑자기 월든 호수에 나타났다. 그들은 보기 흉한 농기구들과 썰매, 쟁기, 씨앗 뿌리는 수레, 잔디 깎는 칼, 삽 톱, 갈퀴 등을 여러 대의 수레에 잔뜩 싣고 왔다. 각 사람은 내가 <뉴잉글랜드 농민>이나 <경작인> 같은 농업 잡지에서도 본 적이 없는 두 개의 뾰죽한 끝이 달린 작대기로 무장하고 있었다. 그들이 겨울 호밀의 씨를 뿌리러 왔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비료가 눈에 띄지 않았으므로 나는 그들이 땅이 걸고 오래 묵혀두었다고 생각하여 나처럼 지력을 이용하여 농사를 지으려나 보다고 생각했다.

인부들의 말에 의하면 이 사업의 실질적인 책임자는 이미 50만 불가량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 신사 농업가인데, 그는 이 사업을 통해 자기 재산을 두 배로 늘릴 계획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달러 한 장마다 또 다른 한 장으로 이불을 만들어 주기 위해 그는 이 추운 겨울에 월든 호수의 유일한 외투, 아니 피부 그 자체를 벗기고 있는 것이었다. 인부들은 마치 이 호수를 모범 농장으로 만들려는 것처럼 일에 착수하였으며 놀랄 만큼 질서정연하게 쟁기질과 써레질을 하여 고랑을 파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종류의 씨앗을 고랑에 뿌릴 것인지 주의 깊게 보고 있었는데, 내 바로 옆에 있던 한 패의 인부들이 갑자기 갈고리를 특유한 동작으로 모래 속, 아니 물속까지 푹 집어넣어 그 처녀 토양을, 그 단단한 땅 전부를 끌어올려 썰매에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이 늪에서 이탄을 캐는가 보다고 생각했다. 이들 인부들은 기관차의 특이한 기적소리와 더불어 한 떼의 흰멧새들처럼 북극의 어느 지점이라고 생각되는 곳으로부터 이곳 월든 호수까지 매일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때때로 전설에 나오는 인디언 노파 월든이 복수를 하는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인부 한 사람이 말 수레 뒤를 따라가다가 땅의 틈바구니에 빠져 황천 방향으로 떨어질 뻔한 적이 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용감하기 짝이 없던 이 사람은 갑자기 9분의 1 정도의 남자로 줄어 버렸다. 자신의 동물적 열기를 거의 잃은 그 사람은 내 집에 피신하게 된 것을 기뻐했을 뿐만 아니라 난로에도 장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했다. 어떤 때는 얼어붙은 땅에 쟁기 끝의 쇳조각이 부러지기도 하고 또는 쟁기가 고랑에 박혀 파내지 않으면 안 되는 적도 있었다.

앞의 이야기를 좀 더 평이하게 말한다면, 백 명의 아일랜드 사람들이 미국인의 감독관들과 함께 얼음을 채취하러 매일 케임브리지에서 왔다. 그들은 설명이 필요 없을 만큼 잘 알려진 방법으로 얼음을 여러 덩어리로 잘라서는 썰매에 실어 물가로 운반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얼음 저장 축대로 운반해서는 말의 힘으로 움직이는 쇠갈고리와 도르래 장치를 써서 마치 밀가루 통이라도 되는 것처럼 나란히 그리고 층층으로 차근차근 쌓았다. 그 모습은 구름을 뚫고 솟아오를 방첨탑의 견고한 토대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들은 내게 말하기를 순조로운 날에는 1천 톤의 얼음을 캘 수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약 1에이커의 면적에서 나오는 양이었다. 썰매들이 이미 자국이 난 데를 계속 통과하기 때문에 마치 육지에서처럼 얼음 위에 깊은 바퀴 자국이 났다. 말들은 한결같이 얼음덩이에 물통처럼 구멍을 파 놓은 데에 담긴 귀리를 먹었다. 인부들은 야외의 공터에 밑면의 한 변의 길이가 30 내지 35미터, 높이가 35피트가 되도록 얼음을 쌓았다. 그리고 맨 바깥쪽에 쌓은 얼음의 층 사이에는 공기를 차단하기 위하여 건초를 끼어 놓았다. 그것은 그리 차지 않은 바람이 통로를 발견하게 되면 얼음 사이에 큰 구멍들을 만들어 여기저기에 약한 기둥들을 남겨놓게 되며, 결국에는 얼음 쌓아놓은 것을 쓰러뜨릴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것은 거대한 푸른 요새나 '발할라의 전당'처럼 보인다. 그러나 인부들이 얼음 사이의 틈에 풀밭에서 베어 온 거치른 마른 풀을 끼우기 시작하고 이 풀들이 서리와 고드름으로 뒤덮이자 그것은 하늘빛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이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이끼도 끼고 해서 제법 그럴싸하게 보이는 폐허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그것은 달력에서 보는 '겨울 영감'의 처소와 같았으며 그 영감이 우리와 함께 여름을 보내려고 지은 오막살이와도 같이 보였다.

그 사람들은 이 얼음 중의 25퍼센트도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할 것이며 2, 3퍼센트는 열차 속에서 소실될 것이라고 계산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얼음 더미의 더 많은 부분이 처음 의도와는 다른 운명을 맞았다. 그것은 이 얼음이 보통 때보다 더 많은 공기가 들어가 있었든지 아니면 무슨 다른 이유 때문에, 기대했던 만큼 잘 보존이 되지 않아 끝내 팔려 나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1846~1847년의 겨울에 쌓아놓은 이 얼음 더미는 약 1만 톤가량으로 추정되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건초와 판자로 덮이게 되었다. 그해 7월에 지붕을 걷고 그 일부를 운반해 갔지만 나머지는 태양에 그 모습을 드러내놓은 채로 그해 여름과 다음 겨울을 견뎌냈다. 18489월이 되어서야 얼음은 완전히 녹아버렸다. 이리하여 호수는 잃었던 물의 대부분을 되찾게 되었다.

월든 호수의 물처럼 얼음도 가까이에서 보면 녹색빛을 띠지만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청색이다. 그래서 4분의 1마일 정도의 거리에서 보더라도 콩코드 강의 하얀 얼음이나 다른 호수들의 단순한 초록색 얼음과는 쉽게 구별이 된다. 채빙 인부들의 썰매가 마을의 거리를 지날 때 때때로 커다란 얼음덩이 하나가 미끄러져 떨어져서는 한 주일 동안이나 그 자리에 녹지 않고 놓여 있는 일이 발생하는데, 그 모습이 커다란 에메랄드와도 같아서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의 흥미 거리가 되기도 했다.

내가 살펴본 바에 의하면, 월든 호수의 어떤 부분의 물은 액체일 때에는 녹색이었던 것이 일단 얼면 같은 지점에서 보아도 흔히 청색으로 보이는 것이었다. 그래서 겨울의 어떤 때에는 호수 근처의 움푹 패인 곳들이 호숫물과 같은 초록빛의 물이 고여 있다가도 다음날에는 청색으로 얼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아마도 물과 얼음의 청색은 그 안에 품고 있는 빛과 공기 때문이겠는데 가장 투명한 것이 가장 짙은 청색을 띠고 있다.

얼음은 흥미로운 명상의 대상이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프레쉬 호수 옆의 얼음 창고에는 5년이나 된 얼음이 있었다고 하는데 갓 잘라냈을 때와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어찌하여 한 통의 물은 금새 물맛이 변하는데 일단 얼면 언제까지나 싱싱한 것일까? 흔히 하는 말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애정과 지성의 차이점이라고 한다.

이처럼 나는 16일 동안이나 내 집의 창문가에 서서 백 명의 인부들이 바쁜 농사꾼들처럼 말과 수레와 기타 온갖 농기구를 써가면서 일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것은 달력의 첫 장에서 보는 것같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 밖을 내다볼 때마다 나는 종달새와 추수하는 사람의 우화와 씨앗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제 그 사람들은 모두 가버렸고 30일만 더 지나면 바로 이 창문에서 바다처럼 초록빛을 띤 깨끗한 월든 호수를 바라보게 되리라. 수면에는 구름과 나무들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을 것이며, 호수는 고독한 가운데 수증기를 하늘로 올려보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호수 위에 서 있었다는 흔적은 하나도 볼 수 없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백 명의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일하던 바로 그곳에 되강오리 한 마리가 물 속에 들어가 깃털을 가다듬으며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를 듣게 되리라. 혹은 그곳에 외로운 낚시꾼이 떠다니는 나뭇잎과도 같은 배에 몸을 싣고는 잔물결 속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것을 바라보는 광경을 보게 되리라.

이리하여 찰스턴과 뉴올리언스, 그리고 마드라스와 봄베이와 캘커타에서 더위에 고생하는 시민들이 나의 샘에서 길어 간 물을 마시게 될 가능성이 생겼다. 아침마다 나는 <바가바드 기타> (<바가바드 기타> : 바라문교의 성전으로 소로우가 가장 애독하던 책 중의 하나)의 경이로운 우주 생성적인 철학에 나의 지성을 목욕시킨다. 이 책이 쓰여진 후 신들의 시대는 갔으며, 이것에 비하면 우리의 현대세계와 그 문학은 왜소하고 보잘것없다. 그 철학의 숭고함이 우리의 개념과는 너무나도 멀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우리의 전생에 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책을 내려놓고 샘으로 물을 길러 간다.

아니 그런데 그곳에서 누구를 만났겠는가? 바로 바라문의 하인을 만난 것이다. 브라마와 비슈누와 인드라 신 (브라마, 비슈누, 인드라는 바라문교의 최고의 세 신이다)의 승려인 바라문은 갠지스 강변에 있는 자신의 사원에 가만히 앉아 베다 경전을 읽고 있거나 빵 껍질과 물병만을 가지고 나무 밑에 살고 있다. 나는 그의 하인이 자신의 상전을 위해 물을 길러 온 것을 만난 것이며, 우리의 물통은 같은 우물 안에서 숙명적으로 부딪친 것이다. 월든 호수의 맑은 물은 이제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과 섞이게 되었다. 월든 호수의 물은 순풍을 만나면 전설적인 아틀란티스 섬 (아틀란티스 : 대서양 해저로 침몰했다고 플라톤이 말한 전설상의 섬)과 헤스퍼라이드섬(헤스퍼라이드 : 세계의 서쪽 끝에 있다는 전설상의 섬)을 지나 대항해가 한노가 들렸던 바다를 다시 돌 것이다. 그리고는 테르나테섬과 티도레섬(테르나테섬과 티도레섬 : 태평양의 멜라네시아에 있는 두 섬으로, 밀톤의 <실락원>에서도 언급되어 있다)과 페르시아 만 입구를 지나 인도양의 열대의 강풍에 녹을 것이며, 알렉산더 대왕도 이름만 들어본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17장 봄

 

채빙 인부들이 넓은 면적의 얼음을 잘라내면 호수는 대체로 예년보다 빨리 얼음이 녹는다. 왜냐하면 추운 날에도 호숫물은 바람 때문에 출렁거리며 주위의 얼음을 갉아먹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해 월든 호수에는 이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낡은 외투 대신 새 외투를 입듯 호수에는 곧 두터운 얼음이 새롭게 얼었던 것이다.

이 호수는 깊은 데다 얼음을 녹이거나 갉아먹는 물의 흐름이 없기 때문에 근처의 다른 호수들처럼 빨리 얼음이 녹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월든 호수는 겨울 중에 녹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그것은 여러 호수들에게 그처럼 심한 시련을 준 1852~3년의 겨울도 예외는 아니었다. 월든 호수는 대개 플린트 호수나 페어헤이븐 호수보다 1주일이나 열흘쯤 늦게 4월 초하루경에 녹기 시작하며, 얼음이 맨 처음 얼었던 북쪽 물가와 얕은 곳부터 해빙이 시작된다. 이 호수는 기온의 일시적 변화에 영향을 가장 적게 받기 때문에 이 근처의 어느 호수나 강보다 계절의 절대적인 진행을 잘 나타낸다. 3우러에 들어 심한 추위가 2, 3일만 계속되어도 다른 호수들의 해빙은 심히 늦어지기 마련이지만 월든 호수의 수온은 지속적으로 상승한다.

184736일에 월든 호수의 한가운데에 집어넣은 온도계는 화씨 32, 즉 빙점을 가리켰다. 물가 근처에서는 33도였다. 같은 날 플린트 호수의 한가운데는 32도 반이었으며, 물가에서 60미터 안쪽으로 1피트 두께의 얼음 밑의 얕은 물속의 온도는 36도였다. 플린트 호수의 깊은 곳과 얕은 곳의 온도의 차가 이처럼 3도 반이나 되는 점 그리고 그 호수의 대부분이 비교적 얕다는 사실이 그 호수가 월든 호수보다 훨씬 발리 해빙되는 이유를 제시해 준다. 이 무렵 가장 얕은 곳의 얼음은 호수 가운데보다 몇 인치가 얇았다.

그러나 한겨울에는 한가운데가 가장 온도가 높았고 그곳의 얼음이 가장 얇았었다. 여름에 호숫가 근처의 물 속에 들어가 본 사람이면 누구나 아다시피 3, 4인치 깊이밖에 안 되는 물가 근처의 물의 온도는 그보다 조금 안쪽의 물의 온도보다 훨씬 높으며, 깊은 곳에서는 수면이 호수 바닥보다 온도가 훨씬 더 높다. 봄에는 태양이 공기와 대지의 온도를 높여 영향을 끼칠 뿐만 아니라 태양의 열은 1피트 혹은 그 이상의 두께의 얼음을 통과해서 얕은 곳에서는 바닥으로부터 반사되어 물을 덥게 하고 얼음의 아래쪽을 녹인다. 그와 동시에 태양의 열은 얼음을 위에서 직접 녹여 얼음을 울퉁불퉁하게 만들며, 얼음 속에 들어있는 공기 방울을 위아래로 팽창하게 해서 얼음을 벌집 모양으로 만든다. 그 위에 단 한 번의 봄비만 내려도 얼음은 갑자기 사라져 버린다.

얼음에도 나무처럼 결이 있어서 얼음덩이가 허물어지거나 벌집 모양이 되기 시작하면, 그 위치가 어떠하건 그 안의 기포들은 수면이었던 부분하고 직각을 이룬다. 바위나 통나무가 수면 가까이 올라와 있는 곳에서는 그 위의 얼음은 훨씬 얇으며, 반사된 열에 의하여 거의 녹아버리다시피 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케임브리지에서는 나무로 된 얕은 연못에서 물을 얼리려는 실험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찬 공기를 물 밑에 순환시켰으므로 위아래로 찬 공기와 접촉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닥으로부터 반사된 태양열은 이 이점을 상쇄하고도 남았다고 한다.

한겨울에 내린 따뜻한 비가 월든 호수의 눈과 얼음을 녹이고 호수 가운데에 검은색 아니면 투명한 단단한 얼음을 남겨놓을 때, 호숫가에 있는 5미터 내지 그 이상의 넓이의 흰색의 얼음은 이 반사열 때문에 비교적 두꺼우면서도 잘 부서지는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내가 그전에도 얘기했듯이 얼음 속에 들어있는 공기 방울들은 집열 렌즈처럼 얼음을 녹이는 작용을 하는 것이다.

일 년 중에 발생하는 여러 가지 현상들이 매일 작은 규모로 호수 안에서 일어난다. 대체로 볼 때 얕은 곳의 물은 아침에는 깊은 곳의 물보다 빠른 속도로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하며, 저녁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는 역시 빠른 속도로 온도가 내려간다. 하루는 일년의 축소판이다. 밤은 겨울이며, 아침과 저녁은 봄과 가을이며, 낮은 여름이다. 얼음이 울리거나 깨지는 듯한 소리를 내는 것은 온도의 변화를 나타낸다.

185024, 추운 밤을 보내고 상쾌한 아침을 맞은 나는 플린트 호수에서 하루를 보내기 위하여 그곳으로 갔다. 그런데 내가 도끼 머리로 얼음을 치자 얼음은 마치 내가 징이라도 친 것처럼 혹은 팽팽한 북을 친 것처럼 사방 몇십 미터에 울려 퍼져서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해가 뜬 지 한 시간 후 언덕 너머로 비스듬히 비치는 태양 광선의 영향을 받으면서 호수는 울리는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호수는 마치 잠을 깬 사람처럼 기지개를 켜고 하품을 하면서 점점 더 시끄러운 소리를 냈으며 이런 상태가 서너 시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나 정오 무렵에는 낮잠이라도 자는 듯 잠시 조용해졌다가 태양이 그 영향력을 거두어들이는 저녁 무렵에는 다시금 울리는 소리를 냈다. 기후가 알맞을 때는 호수는 아주 규칙적으로 저녁 예포를 쏘곤 한다. 그러나 대낮에는 깨지는 듯한 소리로 시끄러운 데다 공기 또한 탄력이 적기 때문에 호수는 완전히 그 울림을 잃고 만다. 그러므로 아마 얼음 위를 치더라도 물고기와 사향쥐들이 그 진동소리에 의해 정신을 잃을 정도로 놀라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낚시꾼들의 말에 의하면 '호수의 천둥소리'는 고기들을 놀라게 해서 미끼를 물지 않게 한다고 한다. 호수가 저녁마다 천둥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또 언제 그 소리를 낼지 예측할 수도 없다. 그러나 날씨에 특별한 변화가 없는데도 호수는 돌연 천둥소리를 낸다. 이처럼 덩지가 크고 차가우며 두꺼운 피부를 가진 것이 그토록 민감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는가? 그러나 봄이 오면 반드시 새싹이 트듯이 호수는 그 자신의 어떤 법칙에 순종하여 천둥소리를 내야 할 시점엔 반드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대지는 살아 있으며 예민한 돌기로 덮여 있다. 아무리 큰 호수라도 대기의 변화에 대해서는 시험관 속의 수은처럼 민감한 것이다.

 

숲에 들어와 사는 생활의 한 가지 큰 매력은 봄이 오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여유와 기회를 갖게 된 점이었다. 호수의 얼음은 마침내 벌집 모양이 되기 시작했으며, 내가 그 위를 걷노라면 구두 굽의 자국이 났다. 안개와 비와 따뜻해져 가는 태양이 눈을 계속 녹이고 있다. 매일매일 낮이 피부로 느낄 만큼 길어지고 있다. 나무를 더 해오지 않더라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큰 불은 피우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봄이 오는 첫 징조를 나는 주의 깊게 살펴본다. 혹시 다시 돌아온 어느 새의 노랫소리나 줄무늬다람쥐의 찍찍거리는 소리라도 들려오지 않나 귀를 기울여본다. 다람쥐도 지금쯤은 겨울 식량이 다 떨어졌으리라. 우드척도 겨울의 보금자리에서 나올 때가 되었다.

313, 이미 유리울새와 노래참새와 티티새의 울음소리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호수의 얼음은 아직도 거의 1피트의 두께를 유지하고 있었다. 날씨가 계속 따뜻해지고 있어도 얼음은 눈에 띄게 물에 녹거나 강에서처럼 쪼개져서 떠내려가거나 하지 않았다. 호숫가의 얼음은 2, 3미터의 폭으로 완전히 녹아 있었지만 가운데의 얼음은 단지 벌집 모양으로 되어 물이 질퍽할 뿐이었다. 6인치 정도의 두께로서 발을 디디면 쑥쑥 들어갔다.

그러나 따뜻한 비가 내린 다음 안개라도 낀다면 얼음은 다음날 저녁까지는 완전히 종적을 감출 것이다. 안개와 더불어 마치 귀신에 홀려 가기라도 한 듯이 말이다. 어느 해던가 나는 얼음이 완전히 녹기 불과 5일 전에 호수 중심부의 얼음을 건너간 적이 있었다. 1845년 월든 호수는 41일에 완전히 해빙이 되었다. 1846년은 325일에, 1847년은 48일에, 1851년은 47일에 얼음이 완전히 녹았다.

강과 호수의 얼음이 녹는 것이나 따뜻한 날씨가 오는 것과 관계된 모든 작은 사건들은 계절의 차이가 심한 곳에 사는 우리에게는 깊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따뜻한 봄날이 다가오면서 강가에 사는 사람들은 한밤중에 얼음이 대포 소리와도 같이 깜짝 놀랄 만큼 큰 소리를 내며 깨지는 소리를 듣는다. 마치 강을 얽어매고 있던 얼음의 쇠사슬이 산산조각이 나는 것 같다. 그 후 며칠 안에 얼음은 빠른 속도로 녹아버린다. 이와 마찬가지로 악어도 대지의 진동과 함께 진흙 속으로부터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내가 아는 사람으로 평생 자연을 면밀히 관찰해 왔고 자연의 모든 활동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혹시 그의 소년시절에 자연이라는 배가 건조될 때 그 용골을 놓든 데 조수 노릇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노인이 한 사람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가 지긋했으며 설혹 무드셀라 (무드셀라 :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969세까지 살았다고 한다)만큼 장수하더라도 자연에 관한 지식을 그 이상 얻을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러한 그가 자연의 활동에 대하여 경이로움을 표시할 때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 노인과 자연 사이에는 아무런 비밀이 없으려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노인은 나에게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다.

어느 봄날 그는 엽총과 보트를 갖고 오리 사냥이나 해보리라고 생각했다. 강 옆의 저습지에는 아직 얼음이 남아 있었으나 강의 얼음은 다 녹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사는 서드베리에서 페어헤이븐 호수 (페어헤이븐 호수는 실은 호수가 아니고, 콩코드 강이 갑자기 넓어져 호수처럼 된 곳이다)까지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강물을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페어헤이븐 호수는 그 대부분이 단단한 얼음판으로 덮여 있었다. 그날은 따뜻한 날이었기 때문에 그처럼 큰 얼음덩이가 남아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오리가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는 보트를 호수 안에 있는 섬의 뒤쪽, 즉 북쪽에 감추어두고 자신은 섬의 남쪽의 덤불 속에 몸을 숨기고 오리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섬 주위는 얼음이 15미터 내지 20미터 가량의 폭으로 녹아 있어서 따뜻하고 잔잔한 물이 보였으며 바닥은 진흙이었다. 이러한 곳들은 바로 오리들이 좋아하는 바였기 때문에 그는 이제 곧 오리들이 날아오려니 생각했다.

그곳에 한 시간쯤 엎드려 있을 때 그는 멀리서 들려오는 것 같은 낮은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그가 여태껏 들어본 적이 없는 이상스럽게도 장엄하고 인상적인 소리였다. 그 소리는 마치 기억에 남을 만한 어떤 굉장한 끝맺음을 갖게 될 것처럼 점점 부풀고 커져갔다. ''하는 음침한 소리는 엄청난 새떼가 한꺼번에 몰려와 내려앉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흥분한 나머지 급히 총을 들고 일어섰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가 거기에 엎드려 있는 동안 호수의 큰 얼음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하여 섬의 기슭으로 밀려왔으며, 그가 들은 소리는 얼음덩이의 끝 부분이 기슭에 부딪쳐 긁히는 소리였다는 것을 그는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가만가만히 부서져 떨어져 나갔으나 나중에는 강하게 밀려 상당한 높이까지 올라와서 섬 주위에 부스러기를 떨어뜨리고는 멎었던 것이다.

마침내 햇빛은 알맞는 각도를 얻게 되었고 따뜻한 바람은 안개와 비를 몰고 와서 눈 덮인 둑을 녹인다. 안개를 흩어버리는 태양은, 향을 피우듯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적갈색과 흰색이 교차된 풍경 위에서 미소짓고 있다. 졸졸 흐르는 수많은 실개천과 개울의 음악에 흥이 겨운 나그네는 이 섬에서 저 섬으로 뛰어 건너며 이 풍경 속의 길을 간다. 개울들의 혈관에는 겨울의 피가 가득 차서 떠내려가고 있다.

내가 마을에 가노라면 철로를 놓기 위해 산허리를 깊이 깎아놓은 곳을 지나게 된다. 그런데 봄이 되면 얼었던 모래와 진흙이 녹으면서 그 깎은 곳의 양쪽으로 흘러내리는데, 그 때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형태보다 더 관찰하기에 흥미로운 현상도 없을 것이다. 적당한 재질로 이루어진, 생생하게 노출된 둑의 수효는 철도가 발명되고 나서 엄청나게 증가했지만 이처럼 큰 규모의 현상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둑을 이루고 있는 재질은 그 굵기와 색깔이 다양한 온갖 종류의 모래이며 대개는 약간의 진흙이 섞여 있다. 봄에 언 땅이 녹을 때나 심지어 겨울에도 몹시 따뜻한 날에는, 모래가 용암처럼 비탈을 흘러내리기 시작하며 때로는 눈을 뚫고 쏟아져 나와 전에 모래가 보이지 않았던 곳이 온통 모래 천지가 되기도 한다. 무수한 작은 흐름이 서로 겹치고 뒤엉켜 반은 흐름의 법칙을 따르고 반은 식물의 법칙을 따르는 일종의 잡종적 생산물의 양상을 띈다. 그것은 흘러내리면서 수분이 많은 잎이나 덩굴의 형태를 취하며, 1피트 내지 그 이상의 깊이의 펄프처럼 걸죽한 가지들의 더미를 이룬다.

그리고 위에서 내려다보면 무슨 나무이끼의 톱니 모양이나 열편 모양, 또는 비늘 모양의 엽상체처럼 보이기도 한다. 혹은 산호나 표범의 발톱, 새의 발, 뇌나 폐나 내장, 또는 각종 배설물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그것은 참으로 기괴한 식물로서 그 형태나 색깔이 청동의 주조물 속에 모방된 것을 우리는 볼 수가 있다. 그것은 건축상의 장식에 흔히 이용되는 아칸더스 잎이나 꽃상치, 포도나무나 담쟁이덩굴, 기타 어떤 식물의 잎보다도 오랜 역사를 가진 전형적인 건축용 잎사귀인 것이다. 그것은 사정에 따라서는 미래의 지질학자들에게 수수께끼가 될 수도 있는 운명을 지녔다고 하겠다.

산허리를 깎아낸 이곳은 마치 어떤 종유석의 동굴을 햇빛에 통째로 드러내놓은 것 같은 인상을 나에게 주었다. 여러 가지 색깔의 모래는 독특하고 보기좋은 윤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갈색, 회색, 누런색과 불그스름한 색 등 여러 가지 철분의 색깔을 함유하고 있었다. 흘러내리는 덩어리가 둑 기슭의 고랑에 도달하면 그것은 좀 더 납작한 몇 개의 가닥으로 퍼져 나간다. 각기의 흐름은 반 원통형의 모습을 잃고 점점 납작하고 넓어지며, 수분이 많아짐에 따라 함께 흘러내려서 거의 평평한 모래처럼 되어 버린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도 여러 가지 아름다운 색깔을 지니고 있으며, 그 속에 원래의 식물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드디어 도랑의 물 속에 들어가게 되면 마치 강 어구에 형성되는 것과 같은 모래톱이 되며, 식물의 형상은 바닥에 생기는 물결무늬의 자국 속에 없어지고 만다.

20피트 내지 40피트 높이의 둑 전체가 때때로 단 하루의 봄날의 생산물인 이런 잎사귀 무늬의 모래 분출로 뒤덮이는데, 이 현상은 한쪽 또는 양쪽 둑을 따라 1/4마일까지 펼쳐진다. 무엇보다 신기한 것은 이 잎사귀 무늬의 모래 덩어리가 어느 날 갑자기 터져 나온다는 점이다. 한쪽 둑은 아무렇지 않은데 맞은편 둑은 단 한 시간만에 그처럼 잎들이 무성한 것을 보면(왜냐하면 태양은 한쪽 둑에 먼저 작용하지까) 나는 세계와 나를 창조한 그 위대한 예술가의 작업실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갖는다.

, 그 예술가가 아직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으며 이 둑에 장난을 치기도 하면서 남아 돌아가는 정력으로 새로운 디자인을 사방에 뿌리고 다니는 현장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또 지구의 내장에 상당히 가까이 있다는 느낌도 든다. 왜냐하면 이 모래의 흘러 넘침은 동물의 내장과도 같은 잎사귀 형상의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모래 속에서도 식물의 잎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것과 같은 기대감을 발견한다.

대지가 그 자신을 외부에 표현할 때 나뭇잎으로 나타내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대지는 내부적으로 그러한 관념을 품고 진통을 하기 때문이다. 원자들은 이미 이 법칙을 배웠으며 그 법칙에 의해 수태를 했다. 우리 머리 위에 매달려 있는 나뭇잎은 바로 여기에 그 원형이 있다. 그 잎이 지구의 내부이든 동물체의 내부이든, 내부에 있을 때 그것은 수분이 많은 두터운 잎이며, 이 말은 특히 간, 폐 그리고 지방엽에 적용할 수 있다. 이 잎의 어원인 그리스어 leibo는 아래로 흘러내리거나 미끄러져 내리는 것을 의미하며 거기서 파생된 말에는 lobo(), globe(지구), lap(싸다, 겹치다), flap(나부끼다)과 같은 많은 단어들이 있다.

외부적인 의미에서 그것은 마르고 얇은 잎(leaf)인데, fvb가 압축되고 마른 것이다. lobe()의 어근은 lb인데, 뒤에 있는 l음이 부드러운 b음을 앞으로 밀어내고 있다. globe(지구)의 경우 어근은 glb인데, 후음인 g가 단어의 의미에 목구멍의 능력을 보태고 있다.

새의 깃털과 날개는 한층 더 마르고 엷은 잎이다. 이렇게 해서 땅 속에 있는 퉁퉁한 유충은 공중을 훨훨 나는 나비로 변신한다. 지구 자체도 끊임없이 자신을 초월하고 변화시켜 자기의 궤도를 날고 있다. 얼음조차도 섬세한 수정과 같은 잎으로 시작한다. 얼음은 마치 수초의 잎이 물의 거울 위에 눌려 만들어진 틀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것 같지 않은가? 나무도 그 전체가 하나의 잎에 지나지 않는다. 하천은 좀 더 커다란 잎으로서 그 육질 부분은 사이에 끼어든 육지이며, 마을과 두시들은 잎겨드랑이에 자리잡은 곤충의 알인 것이다.

해가 지면 모래도 흐름을 멈춘다. 그러나 아침이 되면 흐름은 다시 시작되며, 갈라지고 또 갈라져 수많은 흐름으로 나뉜다. 혈관의 형성 과정도 아마 이와 비슷한 것이리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보면 얼었던 거대한 모래 덩어리가 녹으면서 물방울과 같은 끝을 가진 부드러운 모래의 흐름이 마치 손가락 끝으로 밀 듯 앞을 밀어내면서 천천히 그리고 맹목적으로 길을 더듬어 아래로 내려오는 것을 볼 수 있다. 해가 더 높이 올라감에 따라 열과 수분이 증가하면 가장 유동적인 부분은 자연의 법칙에 따라 가장 완만한 부분과 갈라져서 그 내부에 꾸불꾸불한 수로 내지는 동맥을 형성한다. 그 안에는 작은 은빛 흐름이, 한 단계의 육질이 많은 잎이나 가지에서 다음 단계로 번개처럼 흘러가다가 이따금씩 모래 속에 파묻혀 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모래가 그 수로의 날카로운 끝부분을 형성하기 위하여 자체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재료를 사용하면서 얼마나 빨리 그리고 완벽하게 자신의 흐름을 정비하는가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강의 근원도 바로 그러한 것이리라. 물속에 가라앉은 규산질의 물질 속에 아마 골격 조직이 있을 것이며, 보다 섬세한 토양과 유기물질 속에 육질 섬유와 세포 조직이 있을 것이다.

인간이란 것이 얼었다가 녹고 있는 진흙의 덩어리가 아니라면 무엇이겠는가? 사람의 손가락 끝은 진흙의 방울이 응결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얼었다가 녹고 있는 육신의 덩지에서 그 한계점까지 흘러나간 것이 바로 손가락과 발가락이다. 보다 온화한 환경 아래에서는 인간의 육체가 어디까지 확장되어 흘러갈지 그 누가 알겠는가? 손은 열편과 엽맥을 가진 종려나무 잎이 아닌가? 귀는 상상의 날개를 편다면 귓불 또는 방울을 가지고 있으면서 머리 옆에 붙어 있는 나무 이끼라고 할 수 있으리라. 입술은 동굴 같은 입의 위아래로 비어져 나와 처져 있다.

코는 분명히 응결된 진흙의 방울이나 종유석이다. 턱은 좀 더 커다란 진흙의 방울이며, 얼굴 전체에서 흘러내린 것이 만난 곳이다. 뺨은 이마에서 얼굴의 골짜기로 미끄러져 내려오다 광대뼈에 부딪쳐 퍼진 것이다. 나뭇잎이나 풀잎의 둥그런 열편도 크든 작든 잠시 망서리고 있는 두툼한 방울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열편들은 잎의 손가락들이다. 열편의 수효만큼 잎은 여러 방향으로 흐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온도가 더 높았거나 보다 쾌적한 환경이었다면 잎은 더 멀리 뻗어나갔으리라.

이리하여 이 언덕 비탈 하나가 대자연의 모든 움직임의 원칙을 보여주는 것같은 생각이 들었다. 이 지구의 창조자는 단지 잎사귀 하나에 대한 특허권을 따놓았을 뿐이다. 어떤 샹폴리옹(장 프랑소와 샹폴리옹(1790~1832) : 프랑스의 이집트학 학자. 로제타돌의 비명을 처음으로 해독하여 고대 이집트의 상형 문자를 이해하는 길을 텄다) 같은 사람이 다시 나와 이 상형 문자를 해독해서는 드디어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잎, 새로운 장을 열게 할 것인가? 이 언덕 비탈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우거진 포도 농원의 풍요보다도 더 나를 들뜨게 하고 있다.

사실, 그것은 약간은 배설물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지구의 안팎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간과 폐와 내장이 무더기로 쌓여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대자연이 내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결국 대자연이 우리 인류의 어머니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것은 땅속에 웅크리고 있던 얼음이 빠져나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봄이다. 이것이 있은 다음에야 꽃 피는 푸른 봄이 뒤따르게 된다. 마치 신화가 있은 다음에 순수한 시가 뒤따르듯이. 겨울의 노기와 소화불량을 씻어내는 데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이 있을 성싶지 않다.

이것은 대지가 아직도 기저귀를 차고 있으며 갓난아기의 손가락을 사방에 뻗치고 있다는 생각을 나로 하여금 갖게 한다. 민둥민둥한 이마에서 신선한 고수머리가 자라나는 모습과도 같다고 할까. 거기에는 무기물적인 요소는 전혀 없다. 이 잎사귀 같은 더미들은 용광로의 쇠 찌꺼기처럼 둑 위에 놓여서는 자연이 대지의 내부에서 한창 불을 때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지구는 책장처럼 차곡차곡 층층으로 쌓여 주로 지질학자와 고고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나 되는 단순한 죽은 역사의 조각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시이며 꽃과 열매에 앞서 피어나는 나무의 잎 같은 것이다.

지구는 화석의 대지가 아니고 살아 있는 대지이다. 지구 내부의 위대한 생명에 비하면 온갖 동식물의 생명은 단지 기생적인 것일 뿐이다. 대지가 진통을 하면 인간이 벗어놓은 껍질들은 그 무덤으로부터 팽개쳐질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금과 은을 녹인 다음 가장 아름다운 틀에 부어넣어 아름답기 그지없는 물건을 만들어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대지가 녹아서 흘러 나와 만든 이 형태만큼 나를 흥분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대지뿐만 아니라 지구상의 어떠한 제도들도 도공의 손에 놓인 진흙처럼 그 형태가 항구적인 것은 아니다.

 

머지 않아 이 둑뿐만 아니라 모든 언덕과 들판, 그리고 모든 구멍 속에 웅크리고 있던 얼음은 마치 굴속에서 겨울잠을 자던 짐승처럼 땅속에서 기어 나와서는 졸졸거리는 노랫소리와 함께 바다를 찾아가거나 구름이 되어 다른 지방으로 이주를 간다. 점잖은 설득력을 가진 '해동'이 망치를 든 '우뢰의 신' 토르보다 힘이 더 세다. 전자는 살살 녹이지만 후자는 산산조각으로 부숴버릴 뿐이다.

땅 위를 덮었던 눈이 부분적으로 녹고 며칠간의 따뜻한 날씨가 땅 표면의 물기를 훔치어 놓으면, 새로운 해가 시작되었다는 최초의 부드러운 징조인 새싹들이 살그머니 그 모습을 나타낸다. 이 어린 새싹들과 즐거운 비교가 되는 것들은 겨울을 견뎌내느라고 초췌해지긴 했지만 자신의 당당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는 몇몇 잡초들이었다. 보릿대국화, 미역취 그리고 쥐손이풀 같은 우아한 야생의 풀들은 지난여름보다 더 눈에 잘 띄고 보는 이의 관심을 끈다. 마치 그때는 아직 그들의 아름다움이 채 무르익지 않았던 것처럼. 그 밖에 황새풀, 부들, 우단현삼, 물레나물, 조팝나무, 그리고 피리풀 같은 강인한 식물들의 모습도 눈에 띄는데, 이들의 씨는 봄이 채 되기도 전에 이곳을 찾은 새들에게 귀한 양식이 되고 있다. 이들 기품있는 식물들은 과부가 된 자연의 여신의 얼굴을 베일처럼 가려준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윗대가 다발처럼 되어 있고 줄기가 휘어져 있는 등심초의 모습이었다. 겨울을 나는 우리들에게 여름의 추억을 불러다 주는 이 풀은 예술가가 즐겨 모방하는 형상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별자리가 인간의 마음 속에 이미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유형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면, 그와 같은 관계를 식물의 세계에서 누리고 있는 것이 바로 등심초이다. 이 풀의 유형은 그리스나 이집트의 유형보다 더 역사가 깊다. 겨울에 벌어지는 여러 가지 현상들은 동장군에게도 형언할 수 없는 부드러움과 깨지기 쉬운 섬세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흔히 사람들은 그를 난폭스럽고 시끄러운 폭군으로 묘사하고 있으나 그는 연인과도 같이 다정하게 여름 아가씨의 머리털을 치장해 준다.

봄이 다가오면서 붉은다람쥐 두 마리가 한꺼번에 내 집 마루 밑으로 들어왔다. 내가 책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노라면 이놈들은 내 바로 밑에서 이 때까지 들어본 것 중 가장 이상한 낄낄거리는 소리와 짹짹거리는 소리, 그리고 혀를 급회전하는 듯한 소리와 꾸르르하고 목을 울리는 소리를 내곤 했다. 내가 발로 마룻장을 쾅쾅 구르면 그들은 오히려 더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것이었다. 다람쥐들은 장난의 재미에 빠져 인간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완전히 잃어버린 듯 나에게 도전해 왔다. 해볼테면 해봅시다, 찍찍짹짹, 찍찍짹짹. 그들은 조용히 하라는 나의 요구가 전혀 귀에 들리지 않거나 그 속에 담긴 힘을 깨닫지 못하는 듯 나에게 욕설만을 퍼부어댔다.

봄의 첫 참새! 그 어느 해보다 파릇파릇한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는 새로운 해! 반쯤 헐벗은 축축한 들판에 어렴풋이 들리는 유리 울새와 노래 참새와 티티새의 은방울 같은 노랫소리는 겨울의 마지막 눈송이들이 떨어지면서 내는 짤랑거리는 소리 같기만 하다. 이런 때에 역사와 연대기, 전통과 모든 기록된 계시 같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냇물은 흐르면서 봄에게 기쁨의 찬가를 바친다. 어느새인가 강 옆의 풀밭 위를 빙빙 도는 개구리매는 겨울잠에서 깨어 나오는 첫 개구리를 찾고 있다. 눈이 녹아 흘러내리는 소리가 모든 계곡에서 들리고, 여러 호수의 얼음도 하루가 다르게 빨리 녹고 있다.

"봄비의 부름을 받고 풀들은 처음으로 싹튼다." 하고 어느 옛사람은 말했지만, 언덕마다 풀들이 봄 불처럼 타오르는 모습이 마치 대지가 돌아오는 태양을 맞기 위해 내부의 열을 발산하는 것만 같다. 그 불길의 색깔은 붉은색이 아니고 초록색이다. 영원한 청춘의 상징인 풀잎은 흙에서 솟아올라 길다란 푸른 리본처럼 여름 속으로 환히 피어나지만 겨울 추위의 제지를 받고는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봄이 다시 오면 뿌리 속에 간직한 싱싱한 생명의 힘으로 지난해의 마른 잎의 끝을 치켜들며 또다시 뻗어 오르는 것이다.

땅속에서 스며 나와 흐르는 시냇물처럼 차분하게 풀잎은 자란다. 사실 풀잎과 시냇물은 거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6월의 한창때에 시냇물이 마르면 풀잎이 물을 공급하는 수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축들은 이 영원한 푸른 시내에서 물을 마시며, 풀 베는 사람들은 여기서 일찌감치 그들의 겨울 채비를 해놓는다. 사람의 생명도 풀잎과 다름없다. 목숨 자체는 시들어 버리지만 뿌리는 살아남아 그 푸른 잎을 영원을 향하여 내뻗는 것이다.

월든은 이제 빨리 녹고 있다. 북쪽과 서쪽 물가는 10미터 폭으로 얼음이 녹았으며, 동쪽 물가는 그보다도 더 넓게 얼음이 녹았다. 그리고 운동장만 한 얼음이 본체로부터 갈라져 나가 있었다. 호숫가의 덤불 속에서 노래 참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린다. 올릿 올릿 올릿, 칩칩칩, 윗 윗 윗, 노래 참새도 얼음을 깨는 데 한몫을 거들고 있다.

물가의 선을 따라 굽이치는 저 얼음 가장자리의 매끄러운 곡선은 얼마나 보기 좋은가! 호수의 얼음은 때아닌 강추위 때문에 아직도 꽤 단단하며 물에 촉촉이 젖어 있다. 물결무늬를 띤 모습이 마치 궁전의 마루와도 같이 보인다. 그 불투명한 표면 위로 동풍이 불어 지나가지만 얼음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러나 그 너머는 살아 있는 물의 표면이다. 이 리본처럼 길게 뻗어 있는 호숫물이 햇빛 속에서 반짝이는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답다.

베일을 벗은 호수의 얼굴은 기쁨과 젊음에 가득 차 있으며, 마치 그 속에 사는 물고기들과 호숫가의 모래들의 기쁨을 노래하는 것 같다. 잉어의 비늘처럼 은빛으로 번뜩이는 모습이 한 마리의 커다란 물고기가 살아서 움직이고 있는 것만 같다. 겨울과 봄은 이처럼 엄청난 차이가 있다. 죽었던 월든 호수가 이제 다시 소생하고 있다. 그러나 아까도 얘기했지만 이번 봄에는 해빙하는 데 다소 시간이 걸리고 있다.

눈보라 치는 겨울날이 화창한 봄날로 바뀌며 음침하고 무기력했던 시간이 밝고 탄력 있는 시간들로 바뀌는 과정은 산천초목이 그 변화를 선언하는 중대한 전기이다. 그러나 그 변화는 일순간에 일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초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하늘에는 아직도 겨울 구름이 끼어 있었고 처마에서는 진눈깨비가 섞인 빗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는데 갑자기 밖에서 들어온 빛으로 집안이 꽉 채워지는 것이었다. 나는 창문 밖을 내다보았다. 아아, 어제까지만 해도 차가운 회색 얼음이 있던 곳에 투명한 호수가 여름 저녁처럼 평온하고 희망에 가득 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여름이 아닌데도 그 가슴 속에 여름의 저녁 하늘을 비추고 있는 것이 마치 먼 지평선과 교신이라도 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멀리서 개똥지빠귀의 노랫소리가 들려 왔다. 예나 다름없이 아름답고 힘찬 그 노랫소리가 몇천 년 만에 처음으로 듣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몇천 년이 지나더라도 그 노랫소리를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뉴잉글랜드의 여름날이 저물 무렵의 개똥지빠귀! 그 새가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말은 개똥지빠귀를 말이다. 아니, 그 나뭇가지를 말이다. 오랫동안 축 늘어져 있던 내 집 주위의 리기다소나무들과 떡갈나무 관목들이 갑자기 자신의 본래의 특성을 되찾은 듯 빛깔이 보다 선명해지고 푸르러졌으며, 보다 꼿꼿해지고 생기가 흘러넘쳤다. 마치 비에 씻기어 건강을 되찾은 것 같았다. 이제 비는 더 이상 내리지 않을 것임을 나는 깨달았다.

숲속의 나뭇가지 하나를 보아도, 아니 집 옆의 장작더미를 보기만 해도 겨울이 지난 것인지 아닌지 바로 알 수가 있다. 사방이 어두워졌을 때 나는 숲 위를 나지막이 날으는 기러기들의 울음소리에 깜짝 놀랐다. 먼 남쪽 호수로부터 날아온 이들은 피곤한 나그네들처럼 늦은 시각에 쉴 곳을 찾고 있었는데, 이제는 마음놓고 불평을 터뜨리는가 하면 서로를 위안해주기도 했다. 문 앞에 서 있던 나는 이들의 날갯소리까지 들을 수 있었다. 기러기들은 내 집 가까이까지 날아오다가 갑자기 불빛을 보고는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낮추더니 방향을 바꾸어서 호수에 내려앉았다. 나도 집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숲속에서의 최초의 봄날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문간에 서서 엷은 안개 너머로 기러기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250미터쯤 떨어진 호수 한가운데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는데 그 수가 무척 많은 데다 시끌벅적했기 때문에 마치 월든 호수가 기러기들의 놀이터로 만들어진 인공 호수라도 되는 듯싶었다. 그러나 내가 호숫가로 다가가자 이들은 대장 기러기의 신호에 따라 커다란 날갯소리를 내며 일제히 날아올랐다. 대열을 정비하자 이들은 내 머리 위를 한 바퀴 돌았는데, 수를 세어보니 모두 스물아홉 마리였다. 그들은 대장 기러기가 일정한 간격으로 내는 울음소리에 따라 캐나다 쪽을 향하여 똑바로 날아갔다. 아침 식사는 이 호수보다 흐린 어떤 연못에서 할 생각인 것 같았다. 바로 그때 호수에 있던 물오리 떼가 날아올랐다. 이들도 시끄러운 사촌들의 뒤를 따라 북쪽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한 주일 동안 나는 어떤 외로운 기러기가 아침 안개 속을 빙빙 돌면서 자기 짝을 찾아 헤매며 우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숲이 지탱할 수 없는 커다란 생명의 소리로 숲을 가득 채웠다. 4월에는 작은 떼를 지어 급히 날아가는 산비둘기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머지않아 제비들이 내 개간지 위를 날며 지저귀는 소리를 들었다. 나에게까지 차례가 돌아올 정도로 마을에 제비들이 많은 것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다. 이들은 백인이 이 땅에 오기 전에는 속이 빈 나무 속에 살던 옛 종족에 속하는 제비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거북이와 개구리는 봄의 선구자이며 전령이다. 새들이 노래하면서 날개를 번득이며 날으고, 초목이 싹 트고 꽃이 피며, 바람이 부는 것은 지구 양극의 미미한 진동을 바로잡아 자연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각 계절은 그때마다 우리에게는 가장 좋은 계절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리하여 봄이 온 것이 마치 혼돈에서 우주가 창조되고 황금시대가 실현된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했다.

"동풍은 물러섰다, 오로라와 나바대 왕국과

페르시아로, 그리고 아침 빛 받는 상등성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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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탄생했다. 보다 나은 세계의 근원인

조물주가 그를 신의 종자로 만들었는지,

또는 드높은 창공에서 최근에 갈라져 나온 대지가

동족인 하늘의 종자를 간직했는지."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들>)

부드러운 이슬비가 한번 내리면 풀밭은 한층 더 푸르러진다. 우리 역시 보다 훌륭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우리의 전망도 훨씬 밝아지리라. 우리가 항상 현재에서 살면서 자신의 몸 위에 떨어진 한 방울의 작은 이슬도 놓치지 않고 받아들여 커가는 풀잎처럼 우리에게 생기는 모든 일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그리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 애통해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면 우리는 정말 복받은 존재가 될 것이다.

지금 밖에는 봄이 와 있는데 우리는 겨울 안에서 머무적거리고 있다. 흔쾌한 봄날 아침 인간의 모든 죄는 용서를 받는다. 그런 날은 모든 악덕에 대한 일시 휴전의 날이다. 그러한 태양이 내려비치는 동안은 가장 사악한 죄인도 다시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순수함을 되찾는다면 우리 이웃 안에도 순수함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어제까지만 해도 우리는 이웃 사람 하나를 도둑, 주정뱅이 또는 오입쟁이로 알고 있었으며, 그 사람을 동정하거나 경멸하고 세상 사태를 개탄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햇빛이 화사하게 내리쬐어 만물을 회생시키는 이 최초의 봄날 아침 우리는 그가 차분하게 어떤 일을 하고 있는 현장에 마주친다. 그리고 그의 방탕에 지친 핏줄이 고요한 기쁨으로 부풀어 오르고, 그가 새로운 날을 축복하며 어린아이의 순수함으로 봄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을 볼 때 그의 모든 허물은 잊혀지고 마는 것이다.

그의 몸 주위에는 선의의 분위기가 감돌 뿐만 아니라 갓 태어난 본능처럼 어떤 성스러운 기미마저 맹목적이고 비효과적이나마 표출되려고 애쓰고 있다. 그리하여 잠시 동안이나마 이 남쪽 언덕 비탈에서는 천박한 농담은 자취를 감추고 만다. 그의 오잉투성이의 껍질에서는 깨끗하고 순수한 싹이 터져 나와 마치 어린나무처럼 여리고 신선한 모습으로 새로운 해의 삶을 시도하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이제 그와 같은 사람마저도 자신의 주의 기쁨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어찌하여 교도소장은 감옥의 문을 열어놓지 않으며, 판사는 그의 사건을 기각하지 않는가? 그 이유는, 이들이 신이 내리는 계시를 듣지 않고 그가 만인에게 아낌없이 베푸는 용서를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다.

"날마다 고요하고 자비로운 아침 공기 속에서 피어난 선으로 복귀하고 싶은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덕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점에 있어 인간의 본성에 보다 가까워지게 한다. 그것은 잘라낸 숲에서 어린 싹이 터서 자라는 것과 같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루 동안에 자행한 악은 다시 싹트기 시작한 덕의 배아를 자라나게 하지 못하게 하며 이를 망치게 한다."

"이와 같이 덕의 배아가 어러 차례 발육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받으면, 저녁의 자비로운 공기도 그 배아를 보존하지 못한다. 밤의 공기가 그것을 더 이상 보존하지 못하게 되면, 사람의 본성은 금수의 그것과 차이가 없게 된다. 사람들은 이 사람의 본성이 짐승의 그것과 같은 것을 보고 그가 인간 고유의 이성의 기능을 소유한 적이 없다고 여기나, 과연 그것이 어찌 사람의 본래의 성정이겠는가?"(<맹자> 고자편 고자장구상 제8)

"황금시대가 처음 이루어졌을 때 응징자가 없었고,

법이 없었지만 성실과 공정을 소중히 여겼다.

형벌과 두려움이 없었고 위협적인 말이, 매달린

놋쇠 위에 읽혀지지도 않았다. 애원하는 군중이

법관의 말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응징자 없이도 태평하였다.

산에서 잘려진 소나무가 바다 물결에 굴러 떨어져

낯선 세상을 보는 일도 없었고,

사람들은 제 나라 해안밖에 몰랐다.

..................................................................

거기에는 영원한 봄이 있었고, 부드러운 미풍은

따스히 불어서 씨 없이 태어난 꽃들을 달랬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들>)

429일 나는 '나인 에이커 코너'의 다리 근처의 강둑에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내가 서 있던 곳은 은방울꽃들이 자라고 버드나무의 뿌리가 드러나 있는 곳으로 근처에는 사향쥐들이 서식하고 있었다. 갑자기 나는 이상한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것은 아이들이 손가락으로 가지고 노는 나뭇조각 장난감에서 나는 소리와 비슷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니 몸집이 작고 우아한 매 한 마리가 밤매가 흔히 그러듯이 물결처럼 하늘로 치솟았다가는 5미터 내지 10미터를 일직선으로 떨어져 내려왔으며, 그 동작을 여러 차례 반복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날으는 과정에 매의 날개 속이 드러나 공단 리본처럼, 아니 조개 속에 든 진주처럼 햇빛 속에 번득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매 사냥이 생각났으며, 왜 매 사냥을 고귀하고 시적인 운동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것 같았다. 나는 이 새가 쇠황조롱이라고 부르는 매의 일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름 같은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것은 내가 그때까지 본 중 가장 영묘한 비상이었다. 이새는 나비처럼 단순히 훨훨 날지도 않았고, 좀 더 큰 매처럼 공중을 솟구치지도 않았다. 그는 공기의 흐름에 자만스럽게 몸을 맡기고는 그 이상스러운 울음소리와 함께 하늘로 올라가서는 자유롭고 아름답게 떨어져 내려왔는데 그러는 도중 연처럼 몸을 여러 차례 회전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상당한 거리를 떨어져 내려오다가는 방향을 바꾸곤 했는데 마치 지상에는 한 번도 내려앉은 적이 없는 것 같았다.

하늘에서 그처럼 홀로 노는 모습을 보면 이 새는 천지간에 벗이라곤 없는 것 같았고, 또 자신이 날고 있는 창공과 아침 공기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벗이 필요 없는 듯했다. 그는 외로운 것 같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아래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이 외롭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그를 낳아준 부모와 형제는 하늘 어디에 있단 말인가? 하늘의 거주자인 이 새는 그 언젠가 험한 바위틈에서 알에서 깼다는 것 말고는 지구와 인연이 없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그가 태어난 둥지마저 구름의 한구석에 있었으며, 그 둥지는 무지개의 부스러기와 저녁노을로 엮어져 한여름의 부드러운 아지랑이로 단을 댄 것이었단 말인가? 이제 그가 사는 곳은 낭떠러지 같은 어떤 구름이란 말인가?

매 구경 말고도 나는 금색과 은색과 빛나는 구리색의 귀한 물고기를 한 줄이나 낚았다. 이 고기들은 마치 보석들을 줄에 꿰어놓은 것 같았다. 얼마나 많은 첫 봄날 아침에 나는 강변에 가서 풀덤불에서 풀덤불로, 버드나무 뿌리에서 버드나무 뿌리로 뛰어 건너곤 했던가! 그때 야성의 강 계곡과 숲은 너무나도 깨끗하고 밝은 빛에 충만해 있었기 때문에 죽은 사람들이라도 깨어날 것 같았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듯 죽은 사람들이 정말 죽은 것이 아니고 단지 무덤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라면 말이다. 그러나 인간의 불멸성에 대하여 이런 빛 이상의 다른 증거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만물이 모두 그런 빛 속에서 살 수만 있다면! 오 죽음이여, 그대의 가시가 어디에 있었으며, 오 무덤이여, 그대의 승리가 어디에 있는가?

만약 우리의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드문 숲과 강변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지극히 단조로울 것이다. 우리는 야성의 강장제를 필요로 한다. 때때로 우리는 뜸부기와 해오라기가 숨어 사는 늪 속을 무릎까지 빠지며 건너보거나 도요새의 날개짓 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야성의 외토리 새만이 둥지를 틀며 족제비가 배를 땅 가까이에 대고 기어 다니는 곳에 가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골풀의 냄새를 맡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한편으로 모든 것을 알아내고 탐색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모든 것이 신비에 싸인 채 탐색되지 않기를 바라며, 육지와 바다가 무한의 야성을 지니고 미개척으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우리가 자연을 아무리 받아들이더라도 결코 그 도가 지나치는 법은 없을 것이다. 우리는 자연의 무진장한 힘, 웅대한 지세, 난파선의 잔해가 깔린 해안, 살아 있는 나무와 썩어가고 있는 나무들이 뒤엉킨 황무지, 천둥을 품은 구름, 3주간이나 계속되어 홍수를 낸 폭우 등을 목격할 때마다 자연에 대한 안목을 새로이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을 목격하며, 우리가 결코 가지 않는 곳에 어떤 생명이 자유로이 풀을 뜯는 것을 목격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동물이 죽어 썩어가는 것을 보면 메스껍고 언짢아하지만, 독수리가 그 시체를 뜯어먹으며 힘을 얻는 것을 보면 차라리 잘되었다는 생각을 한다. 내 집에 이르는 길옆의 패인 곳에는 말 한 마리가 죽어 넘어져 있었는데, 이 때문에 나는 때때로 길을 돌아가야만 했고 밤이 되어 냄새가 심하게 풍길 때는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자연의 왕성한 식욕과 침범할 수 없는 건강을 나에게 확인시켰으며 나는 그로부터 어떤 위안을 받았다. 대자연이 생명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상당수가 희생되거나 서로를 잡아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는 것이 차라리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연약한 생명체가 펄프처럼 짓눌려 없어지더라도, 예를 들면 왜가리가 올챙이를 통째로 삼킨다든지, 길 위에 거북이와 두꺼비들이 마차에 치어 때로는 즐비하게 죽어 넘어지더라도, 자연은 그것을 허용할 여유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사고를 당할 위험을 안고 있지만 거기에 대한 해명은 불충분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현명한 사람이 여기서 받는 인상은 보편적인 결백이다. 독이란 것도 알고 보면 유독한 것이 아니며, 어떤 상처도 치명적인 것은 없다. 연민이란 지지할 수 없는 감정이다. 그것은 임시변통적인 감정임에 틀림없다. 그에 대한 변명을 고정 관념화할 수는 없을 것이다.

5월 초가 되자 호수 주위의 소나무들 사이에 끼어 있던 떡갈나무, 호두나무, 단풍나무와 그 밖의 나무들이 새싹을 냈다. 이 새싹들은 주위의 경치에 햇빛과도 같은 밝음을 가져다주었는데 특히 구름이라도 낀 날에는 더욱 그러했다. 마치 태양이 안개를 뚫고 여기저기 산허리를 아련하게 비치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53일인가 4일에는 호수에서 되강오리 한 마리를 보았으며, 그달 첫 주일 동안에 쏙독새, 지빠귀, 갈색지빠귀, 딱새, 되새와 다른 여러 새들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숲개똥지빠귀의 울음소리를 들은 것은 그보다도 한참 전이었다.

피비새도 어느새 다시 찾아와 앞문과 창문으로 집안을 들여다보며 과연 들어가 살 만한 곳인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피비새는 마치 공기를 움켜잡고 매달려 있는 듯, 발톱을 웅크리고 날개를 쳐서 몸무게를 유지하면서 내 집 일대를 조사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리기다소나무의 유황과 같은 꽃가루가 호수와 그 주위의 돌들과 썩은 나무들 위를 누렇게 덮었다. 쓸어 담으면 한 통쯤은 쉽게 담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유황 소나기'인 것이다. 인도의 시인 칼리다사가 지은 희곡 <샤쿤딜라>에도 "연꽃의 황금색 꽃가루로 인해 노랗게 물들은 시냇물"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리하여 점점 키가 커지는 풀 속을 거니는 동안 계절은 여름으로 접어들어 갔다.

이렇게 해서 나의 숲 생활의 첫 번째 해는 끝이 났다. 그다음 해도 첫해와 큰 차이는 없었다. 184796일 나는 드디어 월든을 떠났다.

 

 

 

18장 맺는말

 

아픈 사람에게 의사는 현명하게도 공기와 장소를 바꾸어 볼 것을 권한다. 여기 이곳만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니 천만 다행한 일이 아닌가? 칠엽수는 뉴잉글랜드에서는 자라지 않고, 흉내지빠귀의 울음소리를 이곳에서는 거의 들을 수 없다. 기러기는 인간들보다 더 세계인에 가깝다. 그는 캐나다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점심은 오하이오 강에서 먹으며, 밤에는 남부 지방의 늪에서 날개를 가다듬고 잠자리에 든다. 들소마저도 어느 정도는 계절과 보조를 맞추고 있다. 그가 콜로라도 강변의 초원에서 풀을 뜯는 것은 옐로우스톤 강변의 풀이 좀 더 푸르러지고 먹음직스럽게 되어 그를 기다릴 때까지 만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농장의 나무울타리를 헐고 돌담이라도 쌓으면 그 후로는 우리의 인생에 한계가 그어지고 운명이 결정된 것으로 생각한다. 만약 당신이 마을의 이장으로 선출된다면 당신은 이번 여름에 띠에라 델 후에고 섬 (띠에라 델 후에고 섬 : 남미 대륙 최남단의 섬으로 아르헨티나에 속해 있다. 스페인어로 "불의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에 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으로 단정해버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지옥의 불의 나라에는 가게 될는지 모른다. 우주는 우리들이 보기보다는 광대한 것이다.

우리는 호기심 많은 선객처럼 우리가 탄 배의 난간 너머로 자주 밖을 내다보아야 할 것이며, 뱃밥만을 만들고 있는 우둔한 선원처럼 항해를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지구의 반대편은 우리가 서신을 주고받는 사람의 고향일 뿐이다. 우리의 항해는 단지 대권 항해(대권 항해 : 지구의 중심점을 통과하는 원을 이용하는 항해법으로 출발점과 도착점 사이의 최단 거리를 항해한다)에 지나지 않으며, 의사는 단지 피부병에 대한 약처방을 해줄 뿐이다. 어떤 사람은 기린을 사냥하러 남아프리카로 달려가지만, 분명 그것은 그가 쫓아야 할 사냥감은 아닌 것이다. 정말이지 그렇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얼마 동안이나 기린을 쫓아다닐 것인가? 꺅도요나 멧도요도 좋은 사냥 거리이긴 하겠지만, 자기 자신을 사냥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좀 더 고귀한 스포츠가 아니겠는가?

"그대의 눈을 안으로 돌려 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여지껏 발견 못 하던 천 개의 지역을 찾아내리라.

그곳을 답사하라, 그리고

자기 자신이라는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라."

아프리카는 그리고 서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들 자신의 내부는 해도 위에 하얀 공백으로 남아 있지 않는가? 하기야 우리의 내부도 발견하고 나면 해안 지방처럼 까맣다는 것이 드러날는지 모르지만. 우리가 발견하려고 하는 것이 나일강과 니제르강과 미시시피강의 수원이거나 미국 대륙의 서북 항로란 말인가?(소로우가 살았던 19세기는 온갖 종류의 탐험 활동이 왕성했던 시기였다)

이런 것이 인류에게 가장 중대한 문제란 말인가? 행방 불명이 되어 그의 아내가 애타게 찾고 있는 것이 과연 프랭클린 (존 프랭클린(1786~1847) : 영국의 탐험가로 북극에서 행방불명되었다)

한 사람뿐인가? 그린넬(헨리 그린넬 : 프랭클린을 찾기 위하여 수색대를 보냈던 미국인) 씨는 지금 자기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가?

차라리 당신 내부에 있는 강과 대양을 탐색하는 멍고 파크, 루이스와 클라크, 또는 프로비셔(멍고 파크, 루이스와 클라크, 그리고 프로비셔는 각각 서아프리카의 니제르강 탐사, 미국의 서부 개척과 북미 대륙의 서북 항로 개척으로 유명한 탐험가들이다) 같은 사람이 되도록 하라. 당신 내부에 있는, 보다 위도가 높은 지역을 탐험하도록 하라. 필요하다면 식량으로 고기 통조림을 배에 가득 싣고 가도록 하며, 빈 깡통은 표지용으로 높이 쌓아 올리도록 하라. 고기 통조림이 단지 고기를 보존하기 위하여 발명된 것인가?

진실로 바라건대 당신 내부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되라. 그리하여 무역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각자는 하나의 왕국의 주인이며, 그에 비하면 러시아 황제의 대제국은 보잘것없는 작은 나라, 얼음에 의해 남겨진 풀더미에 불과하다. 그러나 자기 자신에 대하여 아무런 존경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애국심에는 불타서 소를 위해 대를 희생시키는 일이 있다. 그들은 자기의 무덤이 될 땅은 사랑하지만, 지금 당장 자신의 육신에 활력을 줄 정신에 대해서는 아무런 공감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런 사람들에게 애국심은 그들의 머리를 파먹고 있는 구더기라고 할 수 있으리라.

어마어마한 행사를 벌이고 엄청난 비용을 들여 떠나 보낸 저 남해 탐험대(남해 탐험대 : 미국의 해군장교 윌크스의 지휘 아래 1838~1842년에 남태평양과 남극 대륙을 탐색했던 탐험대)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것은 정신세계에도 대륙들과 바다들이 있으며 각 개인은 여기에 연결된 지협이자 작은 만이지만 아직 자신에 의해 탐색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각 개인의 바다, 각자의 내부에 있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탐험하는 것보다는 정부가 제공한 배를 타고 500명의 대원들을 지휘하면서 추위와 폭풍우와 식인종과 싸우며 수천 마일을 항해하는 편이 더 쉽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나마 시인하는 것이다.

"그들이 떠돌아다니다 저 이국적인 호주인을

구경하고 싶으면 하라고 내버려 두라.

나는 신에 속한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고

그들은 길에 속한 것을 더 많이 가지고 있으니."

아프리카의 잔지바르 지방의 고양이의 수효를 세기 위하여 세계 일주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달리 더 좋은 일이 생길 때까지는 그것이라도 하는 편이 나으며, 그러는 도중 당신은 지구의 내부로 통하는 '심스의 구멍' (심스의 구멍 : 19세기 초에 미국인 심스는 지구의 양극에 구멍이 있다는 설을 주장했다)을 발견할는지도 모른다. 영국과 프랑스, 스페인과 포르투갈, 황금 해안과 노예 해안은 모두 이 개인의 바다에 접해 있다. 그러나 그 어떤 배도 감히 이 개인의 바다를 향하여 육지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항해한 적이 없다. 분명히 그것이 인도로 직접 통하는 길인데도 말이다.

만약 당신이 모든 나라의 말을 하고 모든 나라의 습관을 배우고자 한다면, 그리고 그 어떤 여행가보다 더 멀리 여행하고 모든 풍토에 익숙해지며, 스핑크스(스핑크스 :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로서 여행자에게 수수께끼를 내서 맞추지 못하면 목을 졸라 죽였다. 오이디푸스가 수수께끼를 풀자 스핑크스는 바위에 머리를 부딪쳐 죽었다)의 수수께끼를 풀어서 그로 하여금 자신의 머리를 바위에 부딪쳐 죽게 만들려고 한다면 옛 철인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당신 자신을 탐험하라. 여기에는 맑은 눈과 굳건한 용기가 필요하다. 패배한 자, 자신의 의무를 버리는 자들만이 전쟁터에 간다. 그들은 도망쳐서 군대에 몸을 맡기는 겁쟁이들이다.

지금 당장 가장 먼 서쪽 길을 향해 떠나라. 그 길은 미시시피강이나 태평양 해안에서 멈추지 않으며, 케케묵은 중국이나 일본에 가는 것도 아니며, 당신의 세계와 직접적인 접선을 이루며 당신을 그리로 인도해 줄 것이다. 여름에도 겨울에도, 낮에도 밤에도, 해가 지고 달이 지고 마침내 지구마저 지더라도 말이다.

미라보(오노레 미라보(1749~1791) : 프랑스의 정치가. 모험과 방탕의 젊은 시절을 보낸 뒤 프랑스 혁명 중 정치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사회의 가장 신성한 규범에 공공연히 대적하는 일에 가담하려면 어느 정도의 결의가 필요한지를 확인하기 위하여" 노상에서 강도질을 했다고 한다. 그는 "대열 속에서 싸우는 병사는 노상강도의 반만큼의 용기도 필요 없다."고 단언했다. 그는 또 "충분히 생각해 본 끝에 어떤 굳은 결심을 하게 되면 명예나 종교의 구애를 받지 않고 그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보면 그의 말은 남자다운 데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포자기는 아닐지라도 한가롭기 짝이 없는 말이다. 생각이 제대로 박힌 사람은 보다 신성한 법칙을 따르는 과정에, 소위 "사회의 가장 신성한 규범""공공연히 저항하는" 위치에 놓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적이 한두 번이 아닐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미라보처럼 탈선적인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결의를 시험할 기회를 얻게 되는 것이다.

사회에 대해 무조건 저항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한 인간의 의무는 아니다. 자신의 내부의 법칙을 따라는 과정에서 자신이 취하게 되는 태도를, 그것이 어떠한 것이건 간에 견지하는 것이 그의 의무이다. 그리고 그 자세는 올바른 정부-만약 그러한 정부를 맞이할 수 있다면-에 대해서는 결코 반항적인 자세가 아닐 것이다.

나는 숲에 들어갈 때나 마찬가지로 어떤 중요한 이유 때문에 숲을 떠났다. 내게는 살아야 할 또 다른 몇 개의 인생이 남아 있는 것처럼 느꼈으며, 그리하여 숲 생활에는 더 이상의 시간을 할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우리가 자신도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얼마나 쉽게 어떤 특정한 길을 밟게 되고 스스로를 위하여 다져진 길을 만들게 되는지는 놀라운 일이다. 내가 숲속에 산 지 1주일이 채 안 되어 내 집 문간에서 호수까지는 내 발자국으로 인해 길이 났다. 내가 그 길을 사용하지 않은 지 5,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그 길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그 길을 밟아 길로서 유지되게 했나 보다.

땅의 표면은 부드러워서 사람의 발에 의해 표가 나도록 되어 있다. 마음의 길도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큰길은 얼마나 밟혀서 닳고 먼지투성이일 것이며, 전통과 타협의 바퀴 자국은 얼마나 깊이 패였겠는가! 나는 선실에 편히 묵으면서 손님으로 항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인생의 돛대 앞에, 갑판 위에 있기를 원했다. 그곳에서는 산과 산 사이의 달빛을 좀 더 잘 볼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배 밑으로 내려갈 생각은 없다.

나는 경험에 의하여 적어도 다음과 같은 것을 배웠다. , 사람이 자기의 꿈의 방향으로 자신 있게 나아가며, 자기가 그리던 바의 생활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 때는 생각지도 못한 성공을 맞게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 때 그는 과거를 뒤로 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경계선을 넘을 것이다. 새롭고 보편적이며 보다 자유스러운 법칙이 그의 주변과 그의 내부에 확립되기 시작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묵은 법칙이 확대되고 더욱 자유로운 의미에서 그에게 유리하도록 해석되어서 그는 존재의 보다 높은 질서의 허가를 받아 살게 될 것이다. 그가 자신의 생활을 소박한 것으로 만들면 만들수록 우주의 법칙은 더욱더 명료해질 것이다. 이제 고독은 고독이 아니고 빈곤도 빈곤이 아니며 연약함도 연약함이 아닐 것이다. 만약 당신이 공중에 누각을 쌓았더라도 그것은 헛된 일이 아니다. 누각은 원래 공중에 있어야 하니까. 이제 그 밑에 토대만 쌓으면 된다.

영국인이나 미국인들은 그들이 당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당신이 말을 평이하게 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스꽝스러운 요구이다. 사람이든 버섯이든 그런 식으로 자라지는 않는다. 마치 그들이 당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며, 그들 이외에는 당신을 이해할 사람이 없다는 듯한 태도이다. 마치 대자연이 한 가지의 이해 방법만을 지지한다는 듯한 태도이며, 또 대자연이 제발 짐승과 동시에 새들을, 땅을 기는 생물들과 동시에 하늘을 나는 생물들을 먹여 살리지 못한다는 듯한 태도이다. 그것은 소가 알아듣는 "이러"""가 가장 훌륭한 말이라고 생각하는 태도이다. 그것은 또한 안전이라는 것은 우둔 속에만 있다는 듯한 태도이다.

그러나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나의 표현이 충분히 '상궤를 벗어난' 것이 되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내가 확신하고 있는 진리를 알맞게 표현할 수 있도록 나의 일상적인 경험의 좁은 한계를 벗어나 멀리 나아가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다. '상궤를 벗어난다는 것.' 그것은 당신이 어떤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새로운 풀밭을 찾아 다른 위도로 옮겨 가는 들소는 젖짤 시간에 통을 차서 둘러엎고 울타리를 뛰어넘어 제 새끼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는 암소만큼이나 상궤를 벗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어디선가 제한 없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망을 느낀다. 잠에서 깨어나는 사람이 잠에서 깨어나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듯 말이다. 왜냐하면 진실된 표현의 기초만이라도 마련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과장을 하더라도 충분치 않다는 것을 나는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가락의 음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상궤를 벗어난 투로 이야기하는 것을 그 후로는 결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미래를 생각할 때, 또 앞으로 가능한 일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앞쪽 방면으로는 어느 정도 느슨하게, 선을 그어 놓지 말고 살아야 할 것이다. 그쪽의 우리의 윤곽을 희미하고 막연한 것으로 남겨두어야 할 것이다. 마치 우리의 그림자가 태양을 향해서 눈에 보이지 않게 땀을 흘리듯이 말이다. 우리들의 어휘들이 지닌 휘발성의 진실은 잔재적인 표현의 부적당함을 끊임없이 폭로해야 한다. 진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전달이 되고 자의뿐인 기념비만이 뒤에 남는다. 우리들의 믿음과 경건함을 표현하는 말은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탁월한 성향을 지닌 사람들에게 그 말들은 의의가 깊으며 유향과도 같은 향기를 지니는 것이다.

왜 우리는 항상 자신의 수준을 가장 둔한 통찰력에 내려 맞추고는 그것을 상식이라고 찬양하는가? 가장 평범한 상식은 잠자고 있는 사람들의 상식이며, 그들은 그것을 코 고는 소리로 표현한다. 우리는 보통 사람의 한 배 반쯤의 지적 능력을 가진 사람을 반편으로 흔히 치부해 버리는데, 그것은 우리가 그런 사람의 지적 능력을 3분의 1밖에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기야 어떤 사람들은 빨간 아침노을에 대해서도 흠을 잡으려들 것이다. 그 사람들이 아침 일찍 일어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인도의 신비주의자 카비르의 시는 네 가지의 다른 의의, 즉 환상, 기백, 지성과 바라문교의 심오한 교리를 담고 있는 것으로 사람들은 이해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지구의 이쪽에서는 어떤 사람이 쓴 글이 한 가지 이상의 해석을 허용하면 그것은 비판의 대상이 될 근거가 있다고 여긴다. 영국에서는 지금 감자 썩는 병의 치료법을 알아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하는다. 그보다 훨씬 위험하고 더 널리 퍼져 있는 머리 썩는 병에 대한 치료법은 그 누가 알아낼 것인가?

나는 나의 글이 애매모호한 경지에 이르렀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글 가운데서 월든 호수의 얼음에 대해 사람들이 트집 잡는 이상의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하겠다. 남부에서 얼음을 사가는 사람들은 얼음이 순수하다는 증거인 청색을 흐린 것으로 생각해서 월든의 얼음 대신, 희긴 희지만 수초의 맛이 도는 케임브리지의 얼음을 택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순수성이란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안개 같은 것이지 그 안개 위에 있는 창공의 정기 같은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 미국인들 그리고 일반적으로 현대인들은, 고대인들은 물론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의 사람들과 비교해서도 지적인 소인배들에 지나지 않는다고 귀가 아프게 떠들어댄다. 그러나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살아 있는 개는 죽은 사자보다 나은 것이다. 자기가 왜소한 피그미족에 속했다고 해서 가장 큰 피그미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고, 가서 목을 매야 한단 말인가? 각자는 자기 자신의 일에 열중하며, 타고난 천성에 따라 고유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왜 우리는 성공하려고 그처럼 필사적으로 서두르며, 그처럼 무모하게 일을 추진하는 것일까? 어떤 사람이 자기의 또래들과 보조를 맞추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 그가 그들과는 다른 고수의 북소리를 듣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듣는 음악에 맞추어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라. 그 북소리의 음률이 어떻든, 또 그 소리가 얼마나 먼 곳에서 들리든 말이다. 그가 꼭 사과나무나 떡갈나무와 같은 속도로 성숙해야 한다는 법칙은 없다. 그가 남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봄을 여름으로 바꾸어야 한단 말인가? 우리의 천성에 맞는 여러 여건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았다면 대신 끌어다 댈 수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우리는 헛된 현실이라는 암초에 우리의 배를 난파시켜서는 안 되겠다. 우리가 애를 써서 머리 위에 청색 유리로 된 하늘을 만들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것이 완성된다 하더라도 우리는 분명 그런 것은 없다는 듯이 그 훨씬 너머로 정기에 가득 찬 진짜 하늘을 바라볼 것인데.

쿠우루 시에 완전을 갈구하던 한 장인이 있었다. 어느 날 그는 지팡이를 만들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완전한 일에는 시간이 한 요소가 되겠으나 완전한 일에는 시간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비록 한평생 딴 일은 아무것도 못 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든 점에서 완벽한 지팡이를 만들리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했다. 부적당한 재료를 써서는 안 되겠다고 결심했으므로 그는 재목을 구하러 즉시 숲으로 떠났다. 그가 쓸 만한 나무 하나하나를 살피다가 퇴짜를 놓는 사이에 그의 친구들은 점차로 그의 옆을 떠났으니, 그들은 각자의 일을 하다 늙어서 죽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조금도 늙어가지를 않았다. 한 가지 목표를 추구하는 그의 결심과 숭고한 믿음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에게 영원한 젊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는 시간과 어떠한 타협도 하지 않았으므로 시간은 그의 길에서 비켜나 그를 굴복시키지 못한 것을 한탄하며 멀리서 한숨만 지을 뿐이었다. 그가 모든 점에서 알맞은 재목을 찾아냈을 때는 쿠우루 시는 폐허가 된 지 이미 오래였다. 그는 그 폐허의 어느 흙 둔덕에 앉아 지팡이를 깎기 시작했다.

지팡이의 모양이 채 갖추어지기도 전에 칸다하르 왕조가 망했다. 그는 지팡이의 끝으로 모래 위에 그 왕조의 마지막 왕의 이름을 쓰고는 다시 일을 계속했다. 그가 지팡이를 매끄럽게 다듬어 놓았을 때 칼파 (칼파 : 브라마 신의 하루로서 우리의 시간으로는 4,354,560,000년에 해당한다고 한다)는 이미 북극성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가 지팡이 끝에 쇠붙이를 달고 보석으로 장식된 지팡이의 손잡이 부분을 달았을 때는 브라마 신은 수없이 잠이 들었다 깼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그의 작품에 마지막 손길이 가해지자 지팡이는 깜짝 놀라는 장인의 눈앞에서 브라마 신의 창조물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승화되어 갔다. 그는 지팡이를 만드는 가운데 새로운 체계, 충실하고도 균형잡힌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옛 도시들과 왕조들은 사라졌지만 그보다도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도시와 왕조들이 그 안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는 발밑에 수북이 쌓여 있는 나무 깎은 부스러기를 내려다보았는데, 그것들이 아직도 생생한 것을 보고 이제까지의 시간의 경과는 단지 하나의 환각에 지나지 않았으며, 브라마 신의 두뇌에서 나온 한 섬광이 인간의 두뇌의 부싯깃에 떨어져서 불붙은 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재료가 순수했고 그의 기술도 순수했으니 그 결과가 경이로운 것 외에 어떤 것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어떤 사물에 부여하는 어떠한 표면도 진실만큼 우리에게 도움이 되지는 못한다. 오직 진실만이 모든 것을 견디어 낸다. 대체로 우리는 우리가 있어야 할 곳에 있지를 않고 거짓된 입장에 있다. 천성의 어떤 약함 때문에 우리는 하나의 사정을 지레짐작하고 우리를 그 속에 맞추어 넣어 버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동시에 두 가지의 사전에 처해 있으며, 거기서 빠져 나오기란 두 배나 어려운 것이다.

정신이 온전할 때 우리는 사실만을, 즉 실지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응시한다. 당신이 의무감으로 느끼는 것을 말하지 말고 진실로 내부에서 느끼는 것을 말하라. 어떤 진실도 거짓보다는 낫다. 땜장이 탐 하이드는 교수대에 섰을 때 무슨 할 말이 있느냐고 질문을 받았다. 그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재봉사들에게 최초의 한 바늘을 꿰매기 전에 실 끝을 매듭지게 하는 것을 잊지 말라고 전해주시오." 그 옆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던 그의 동료의 기도의 말은 전해져 있지 않다.

당신의 인생이 아무리 비천하더라도 그것을 똑바로 맞이해서 살아나가라. 그것을 피한다든가 욕하지는 말라. 그것은 당신 자신만큼 나쁘지는 않다. 당신이 가장 부유할 때 당신의 삶은 가장 빈곤하게 보인다. 흠을 잡는 사람은 천국에서도 흠을 잡을 것이다. 당신의 인생이 빈곤하더라도 그것을 사랑하라. 당신이 비록 구빈원의 신세를 지고 있더라도 그곳에서 유쾌하고 고무적이며 멋진 시간들을 가질 수 있다. 지는 해는 부자의 저택이나 마찬가지로 양로원의 창에도 밝게 비친다. 봄이 오면 양로원 문 앞의 눈도 역시 녹는다. 인생을 차분하게 바라보는 사람은 그런 곳에 살더라도 마치 궁전에 사는 것처럼 만족한 마음과 유쾌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때때로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쩌면 그들은 기분을 상하지 않고 남의 도움을 받아들일 만큼 마음이 넓은 것인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마을사람들은 자신들이 마을의 경제적 도움을 받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중 여러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어 생활하고 있으며, 그것은 훨씬 불명예스러운 일인 것이다.

사르비아 같은 약초를 가꾸듯 가난을 가꾸어라. 옷이든 친구이든 새로운 것을 얻으려고 너무 애쓰지 마라. 헌옷은 뒤집어서 다시 짓고 옛 친구들에게로 돌아가라. 사물은 변하지 않는다. 변하는 것은 우리들이다.

옷은 팔더라도 생각은 그대로 간직하라. 신은 당신이 외롭지 않도록 보살펴줄 것이다. 만약 내가 날마다 온종일을 거미처럼 다락방의 한구석에 갇혀 있더라도 나의 생각만을 잃지 않는다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좁아진 것으로 생각되지 않을 것이다. 철학자 (공자를 가리킨다. 인용된 글은 <논어> 925절이다)는 말했다. "3군으로 된 큰 군대라도 그 우두머리를 사로잡으면 무너뜨릴 수 있으나, 필부일지라도 그의 지조를 빼앗을 수는 없다.". 자신을 개발하기 위하여 서두른 나머지 수많은 영향력에 자신을 내맡기지 마라. 그것도 일종의 무절제이다. 겸손은 어둠처럼 천상의 빛을 드러나게 한다. 가난과 옹색함의 그림자는 우리 주위에 드리워 있지만, "그런데 보라! 창조는 우리 시야에서 전개되어 간다."

부자로 유명했던 크로이소스 왕의 재산을 우리가 물려받는다 하더라도 우리의 목적은 전과 다름없을 것이며 우리의 수단 역시 본질적으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가난하기 때문에 활동 범위에 제한을 받더라도, 예를 들어 책이나 신문을 살 수 없는 형편이 되더라도 당신은 가장 의미 있고 중요한 경험만을 갖도록 제한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신은 가장 많은 당분과 가장 많은 전분을 내는 재료만을 다루도록 강요를 받게 된 것이다. 뼈 가까이에 있는 살이 맛있듯이 뼈 가까이의 검소한 생활도 멋진 것이다. 어떤 사람도 높은 수준의 정신생활을 하는 것으로 인해 낮은 차원에서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남아돌아 가는 부는 쓸모없는 것들밖에 살 수 없다. 영혼에게 필요한 단 한 가지의 필수품을 사는 데는 돈이 필요 없다.

내 집 벽은 한쪽이 납으로 되어 있는데, 그 성분에는 종을 만드는 합금이 조금 섞여 있다. 낮에 잠시 쉬고 있노라면 때때로 그 벽을 통하여 바깥 세계로부터 시끄러운 소리가 내 귀에 들려온다. 그 소리는 나와 같은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이다. 내 이웃들은 자기들이 유명하신 신사 숙녀들과 어떤 일을 겪었으며 저녁 만찬에서 어떤 고관들을 만났는지를 내게 알려준다.

그러나 나는 그런 얘기에는 신문 기사의 내용만큼이나 흥미가 없다. 그들의 관심과 대화 내용은 주로 유행하는 의상과 시대 풍속에 관한 것이다. 그러나 거위는 아무리 멋있게 꾸며논들 거위에 지나지 않는다. 그들은 내게 캘리포니아나 텍사스의 얘기, 영국과 서인도 제도의 얘기, 조지아 주인지 매사추세츠 주인지의 모 고관 얘기 등을 하지만, 그 모두가 일시적이고 덧없는 얘기들뿐이라서 나는 곧 어느 '마므룩'(마므룩 : 중세 회교국, 특히 이집트에 있었던 노예 출신의 장교들. 그들은 오랫동안 막강한 권력을 누렸으나 1811, 이집트의 실권자가 된 무하메드 알리에 의해 잔치 자리에서 전멸을 당한다. 이때 마므룩 한 사람이 말을 탄 채 성벽을 뛰어넘어 달아나 목숨을 구했다는 고사가 있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정원에서 뛰어 달아날 생각을 하게 된다.

나는 내 자신의 본연의 자세에 돌아와서야 마음이 편해지는 사람이다. 나는 남의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화려하게 과시하며 돌아다니기보다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우주를 창조한 분과 함께 거닐어보고 싶다. 그리고 이 들떠 있고 신경질적이며 어수선하고 천박한 19세기에 사는 것보다는 이 시대가 지나가는 동안 서 있거나 앉아서 생각에 잠기고 싶다.

사람들은 무엇을 축하하고 있는 것인가? 그들은 모두 준비위원회의 자리 하나씩을 차지하고서는 매 시간마다 누군가가 연설하기를 기다리고 있다. 하느님도 당일의 사회자에 불과하며, 연설은 웹스터 (다니엘 웹스터(1782~1852) : 명연설가로 유명했던 미국의 정치가)가 하게 되어 있다.

나는 저울대에 매달려 자신의 무게를 달면서 균형을 잡다가 나를 가장 강하게 그리고 가장 정당하게 끌어당기는 것에게 인력에 의해 끌려가고 싶다. 저울대에 매달려 몸무게가 절게 나가려고 발버둥치고 싶지 않다. 어떤 사정을 지레짐작하는 것이 아니라 실지로 존재하는 사정만을 받아들이고 싶다. 나는 내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길, 그 위에서는 그 어떤 권력도 나를 막을 수 없는 길을 가고 싶다. 단단한 토대를 쌓기도 전에 아치를 세우는 따위의 짓은 나에게는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 살얼음판에서 벌이는 아이들 장난은 그만두도록 하자. 어느 곳이든지 단단한 밑바닥은 있다.

어떤 나그네가 한 소년에게 자기 앞에 있는 늪의 밑바닥이 단단한지 아닌지를 물어보았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소년은 밑바닥이 단단하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고 앞으로 나간 나그네의 말은 이내 복대끈까지 빠져들어 갔다. 나그네는 소년에게 물었다. "너 이 늪의 밑바닥이 단단하다고 하지 않았느냐?" 소년은 대답했다. "밑바닥은 정말 단단해요. 하지만 아저씨는 아직 절반도 못 들어가셨어요."

사회의 늪과 유사도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을 알게 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어떤 생각, 말 또는 행동은 아주 드문 경우에만 가치를 갖는다. 외와 횟벽에 그냥 못을 박는 어리석은 짓은 하고 싶지 않다. 그런 짓을 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것이다. 내게 망치를 주고 나로 하여금 벽의 세로 홈을 더듬어 볼 수 있게 해달라. 접합제에만 의존해서는 안된다. 못을 완전히 다 박고 그 끝을 성심껏 구부려 밤중에 혹시 잠을 깨더라도 자기가 한 일에 대하여 만족스러운 마음으로 되돌아볼 수 있도록 하라. 그 일을 위해 시신을 불러도 부끄럽지 않도록 말이다. 그 일에, 오직 그런 일에 신은 당신을 도울 것이다. 당신이 주체가 되어 일을 해 나가되, 박는 못 하나하나가 우주라는 기계의 구조를 단단하게 하는 대갈못이 되도록 하라.

사랑보다도, 돈보다도, 명예보다도 나는 진실을 원한다. 나는 산해진미와 맛좋은 술이 넘치고 하인들이 아부하듯 시중드는 잔칫상에 앉아 있었지만, 성실과 진실을 찾아볼 수 없었기에 그 냉랭한 식탁에서 배고픔을 안고 떠났다. 손님 접대는 얼음처럼 차가웠다. 음식을 차갑게 하기 위하여 구태여 얼음이 필요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포도주가 몇 년 묵은 것이며 제조년도가 얼마나 유명한 해인가에 대해 나에게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그들이 얻을 수도 살 수도 없는 또 다른 술에 대하여 생각했다. 그 술은 더 오래되었으면서도 더 새롭고 더 순수하고 더 훌륭한 연도에 제조된 술이었다. 집과 뜰의 양식이나 '접대' 같은 것은 내게는 아무래도 좋다. 나는 어느 왕을 방문했는데, 그는 나를 홀에서 기다리게 하는 등 손님을 맞이할 능력이 없는 사람처럼 행동하는 것이었다. 내 집 근처에는 나무에 파인 구멍 속에 사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태도에는 참으로 왕자다운 데가 있었다. 차라리 그를 찾아갔더라면 이보다 나은 대접을 받았으리라.

언제까지 우리는 현관에 앉아서 어떤 일이건간에 일을 해보면 당장 그 부적절함이 드러날 부질없고 케케묵은 미덕을 실천하고 있을 것인가? 그것은 참을성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해서 자기의 감자밭의 김을 맬 일꾼을 하나 산 다음에 오후에는 미리 생각해둔 바의 선심을 발동하여 기독교인다운 온화함과 자선심을 행사하는 것과 같다.

인류의 중국적인 자존심과 침체한 자기 도취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오늘날의 세대는 스스로를 빛나는 계보의 후예라고 생각하며 자만에 빠지는 경향이 꽤 있다. 그리고 보스턴과 런던, 파리와 로마 같은 도시에서 자신들의 오랜 전통을 상기하면서 만족스러운 어조로 예술과 과학과 문학에서의 발전을 이야기한다. 각종 학회들의 보고서들과 '위대한 인물들'의 공적을 찬양하는 글들도 있다. 이것은 선량한 아담이 자신의 착함에 스스로 감격을 하고 있는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래, 우리는 위대한 일을 해냈고 거룩한 노래를 불렀어. 그것들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들이야."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그것들을 잊지 않고 있는 한 그렇다는 이야기이리라. 고대의 강국이었던 앗시리아의 각종 학술협회들과 위대한 사람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우리는 참으로 젊기 짝이 없는 철학도들이며 실험가들이 아닌가?

독자 여러분들 가운데는 단 한 사람도 인간의 한평생을 다 살고 난 사람은 없다. 지금은 인류의 역사에서 봄의 게절에 불과한지 모른다. 우리들 가운데는 '7년 가는 옴' 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있을지 모르나 아직 콩코드에서 '17년 사는 매미'(매미의 유충은 종류에 따라 1년에서 17년까지를 땅속에서 보낸다. 소로우는 1843년 뉴욕을 방문했을 때 17년 사는 매미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를 본 사람은 없다. 우리들은 우리가 사는 지구의 극히 얇은 겉껍질에 대해서만 알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면에서 6피트의 깊이를 파본 적도 없고, 공중으로 6피트를 뛰어올라 본 적도 없다. 우리는 지금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 더구나 우리는 하루의 거의 반절에 가까운 시간을 깊은 잠을 자며 보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여기고 있으며, 지구의 표면에 하나의 질서를 확립했다. 정말이지 우리 인간들은 심오한 사상가며 야심 만만한 존재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숲에는 땅 위에 깔린 솔잎들 사이로 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면서 나의 시야에서 숨으려 하고 있다. 나는 왜 이 벌레가 그처럼 좁은 소견을 품고서 어쩌면 자기의 은인이 될 수도 있고 벌레의 족속에게 좋은 소식을 가져다줄지도 모르는 나로부터 자신의 머리를 감추려 드는가 하고 나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나라는 인간 벌레 위에 서 있는 더 큰 '은인', 더 큰 '지성'을 가진 어떤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는 신기한 일이 끝없이 일어나고 있는데도 우리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루함을 견뎌내고 있다. 가장 개화된 나라들에서 어떤 종류의 설교가 경청되고 있는가를 지적하기만 해도 그 지루함의 정도를 알 수가 있다. 기쁨이라든가 슬픔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들은 코먹은 소리로 부르는 찬송가의 후렴에 불과하며, 우리가 진정으로 신봉하는 것은 흔해 빠지고 천박한 것들이다. 우리는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은 의복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람들은 대영제국은 훌륭한 대국이며 미합중국은 일류의 강국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각 개인의 뒤에는 그가 마음만 먹으면 대영제국쯤 나뭇조각처럼 띄워버릴 수 있는 조류가 밀려들었다가는 빠져나가고 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지 못한다. 어떤 종류의 '17년 사는 매미'가 다음에 땅 속에서 나올 것인지 그 누가 예측할 수 있을 것인가? 내가 사는 세상의 정부는 영국 정부처럼 만찬 뒤에 술 한잔 마시며 담소하는 가운데 구성된 정부는 아닌 것이다.

우리 안의 생명은 강의 물과도 같다. 올해 이 생명의 물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수위가 높아져서는 고지대의 마른 땅을 물바다로 만들지 모른다. 올해가 바로 기억에 남을 해, 물이 넘쳐 강변에 사는 사향쥐들이 모두 익사하는 그런 해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지금 사는 곳은 항상 마른 땅은 아니었다. 나는 과학자들이 홍수를 기록하기 전에 강물이 범람했던 흔적이 있는 둑을 저 멀리 내륙 지방에서 본다. 뉴잉글랜드에 사는 사람이면 누구나 사람들 사이에 퍼진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것이다.

, 처음에는 코네티컷주, 다음에는 매사추세츠주의 어느 농가의 부엌에 60년 동안이나 놓여 있던 사과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된 식탁의 마른 판자에서 아름답고 생명력이 넘치는 곤충이 나왔다는 이야기 말이다. 그 곤충이 자리 잡고 있던 곳의 바깥쪽으로 겹쳐 있는 나이테의 수를 세어 본 즉, 그보다도 여러 해 전 그 나무가 살아 있을 때에 깐 알에서 나온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마 커피 주전자가 끓는 열에 의해 부화되었겠지만 그 곤충이 밖으로 나오려고 판자를 갉아 먹는 소리가 여러 주일 전부터 들렸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부활과 불멸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새로워지는 것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떤 날개 달린 아름다운 생명이 처음에는 푸른 생나무의 백목질 속에 알로 태어났으나, 그 나무가 차츰 잘 마른 관처럼 되는 바람에 오랜 세월을 사회의 죽은 듯 건조한 생활 속에서 목질의 공심적인 나이테 속에 묻혀 있다가(아마 지난 수년 동안, 일가족이 즐겁게 식탁에 둘러앉아 있을 때 밖으로 나오려고 갉는 소리를 내서 모두를 놀라게 한 적도 여러 번 있었으리라), 어느 날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흔한 가구 속에서 튀어나와 마침내 찬란한 여름 생활을 즐기게 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나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이 이런 이야기를 다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것이 단순한 시간의 경과만 가지고는 결코 동트게 할 수 없는 저 아침의 성격인 것이다. 우리의 눈을 감기는 빛은 우리에겐 어두움에 불과하다. 우리가 깨어 기다리는 날만이 동이 트는 것이다. 동이 틀 날은 또 있다. 태양은 단지 아침에 뜨는 별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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