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현궁의 봄 3
제18장
흥선의 이런 난행을 당시의 명문거족들은 모두 흥미 있게 보고 비웃고 있을 동안 흥선의 난행의 위에 경계의 눈을 붓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훈련대장 영어 김병국이었다.
영어는 일찍 소년 시대부터 흥선을 알았다. 열다섯 살에 흥선부정(興宣副正), 스물두 살에 흥선정(興宣正), 스물네 살에 흥선군―이렇게 봉군(封君)이 되어 스물일곱 살에는 정일품 현록대부로 되고, 종친부 유사당상(宗親府有司堂上)이며, 오위도총부 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官) 등을 역임할 동안의 흥선은, 결코 오늘과 같은 술주정군의 흥선이 아니었다. 작다란 몸집의 어디서 그런 큰 소리가 나는지, 흥선이 한 번 호령을 할 때는 부하 관리들은 모두 몸서리치고 하였다. 일 처리에 밝고 염치에 밝고 사리에 밝던 흥선이었다. 종친부며 도총부가 설치된 이래, 흥선이 재임했을 때만큼 일이 민첩히 신속히 명쾌히 처리된 적이 없었다. 위(威)와 은(恩)을 갖추어 상관으로서 부하 관리들에게 위포와 애경을 받고 있던 것이었다.
부산 장죽 길게 물고 호활한 음성으로 담소를 하던 당년의 흥선을 회상하건대, 그 사람이 후년 거리의 부랑자로 영락되리라고는 짐작도 못 할 일이었다. 당시의 많은 명문 공자들이 모두 그 몸차림이며 언어, 행동, 동작을 흥선을 본뜨려고 얼마나 거울을 들여다보며 애썼던가? 초헌에 높이 올라서 구종 별배를 전후좌우로 거느리고 커다란 상투를 춤을 추이면서 길을 지나갈 때에는, 행객들도 모두 발을 멈추고 이 고귀한 공자에게 멀리서 경의를 표하지 않았던가?
그 흥선이 관직을 내버리고 은퇴할 때에, 세상은 처음은 다만 기이하게 여기었다. 그리고 은퇴한 이상에는 구름이나 희롱하고 학이나 벗하는 한 한가로운 귀인이 되려니 이렇게 알았다. 속세의 관직을 달갑게 생각각지 않아서 은퇴하는 것이어니 이렇게 알았다. 그리고 또한 그렇게 믿을 수밖에는 없을 이만큼 당년의 흥선은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거늘 그 흥선이 관직을 물러나서 은퇴한 뒤에는 어떻게 되었다. 한 번 떨어지면서 속세에 나왔다. 두 번 떨어지면서 속인과 사귀었다. 세 번 떨어지면서는 무뢰한이 되었다. 일찍이 종실 공자의 여기(餘技)로서 배운 난초는, 후년의 타락된 흥선이 기생집 바람벽에 휘호하는 그림이 되었다. 날이 가고 달이 가고 해가 가는 동안, 이 관계에서 은퇴한 공자는 차차 속세에 발전하였다.
왕가의 친척이기 때문에 정계(政界)에 진출할 수 없는 흥선의 집안은 재산이 없었다. 재산이 없는 흥선이 직업도 없이 속세에 나다니노라니, 집안은 차차 꼴이 될 리가 없었다. 조상 전래의 보물도 하나 둘 차차 없어졌다. 마지막에는 이전에 타던 수레며 몸을 장식하던 관자며 갓끈이며, 집안에 남아돌아가는 상이며, 항아리 나부랑이까지도 차차 팔아 없이하게 되었다.
일찍이 종실의 공자로서 행세하던 시대에 한성의 많은 명문 공자들과 사귀어 두었던지라, 어느덧 흥선은 당년의 친구들을 찾아다니며 구걸까지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그 구걸을 들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도 한두 번이지 도가 넘치게 되매 차차 눈살을 찌푸렸다. 구걸을 완곡히 거절하던 한때가 있었다. 그때가 지나서는 구걸을 노골적으로 물리치는 시대까지 이르렀다. 구걸을 거절을 받으면 누구나 창피한 일이다. 그러나 흥선은 그 창피도 몰랐다. 창피를 모르는 것을 세상은 다만 이것이 흥선의 인격이거니 하였다. 왕년의 흥선과 대조하여 보려 하지 않았다. 왕년의 흥선은 벌써 잊은 것이었다.
처음에 차차 흥선이 타락되어 들어가는 것을 볼 때에, 사람들은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왕족으로서 너무 잘난 체하다가는 그 화가 몸에 미치는 고로, 그것을 미연 중에 피하고자, 혹은 흥선이 부러 타락하는 것이 아닌가―고. 그러나 차차 타락의 돗수가 넘어서 과하게 된 때에는, 모두 흥선을 내버리고 만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흥선과 가까이 사귀던 영어 김병국도, 다른 사람의 예에 빠지지 않고, 흥선의 은퇴를 단지 벼슬에 마음이 없어서하는 일이거니 하였다.
은퇴한 흥선이 차차 타락할 때에는 처음에는 경이의 눈으로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흥선과 가까이 사귀고 흥선의 사람됨을 아는 영어는, 흥선이 유혹에 이기지 못하여 타락될 인물은 결코 아님을 넉넉히 알았다. 그러는 동안에 김씨 일문에서는 늘 서로 수군수군 의논해 가면서 왕족 중의 좀 똑똑한 인물을 점고하여 처치하고 하였다. 역시 김씨의 한 사람으로 그 수군거림에 참가하고 한 영어는, 비로소 흥선의 타락의 원인을 알았다. 똑똑히 굴다가 화를 보느니, 못나게 굴어서 목숨을 보전하려는 심경을 알았다.
이전에 흥선의 인물을 잘 알던 영어니만큼 흥선의 타락이 눈물겨웠다. 그만큼 잘나고 의지가 굳고 억세던 흥선으로 하여금, 타락을 가식하지 않으면 목숨을 보전치 못할 지금의 세태를 밉게 보았다. 흥선이 일부러 타락을 가식하는지라, 구태여 그것을 깨뜨릴 필요는 없었다. 자기의 모든 친척들이 흥선을 웃고 경멸하고 놀릴 동안도, 영어는 결코 그런 야비한 희롱에 참가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같이 지낸 친구로 끝끝내 대접하였다. 가난하고 타락된 흥선에게 대하여, 그래도 호의를 보여주는 사람은 영어 형제뿐이었다. 이제는 거리의 무뢰한 밖에는 찾는 사람이 없는 흥선 댁을, 영어는 일부러 간간 찾았다. 흥선이 영어의 집에 찾아오면, 지나간 시절에 같이 놀던 친구로 여전히 대접하였다.
이제는 가난하기 짝이 없는 흥선―가난하나 또한 구걸할 곳도 없는 흥선의 곤경을 짐작하고, 때때로 적지 않은 금전을 보내기도 하였다. 흥선 댁 도령을 위하여서도 "연줄 값"이라는 명목으로 백 냥 이백 냥씩 보내고 하였다. 흥선 댁 작은 도령이 이 "사동 아저씨"를 찾아오기라도 하면, 친조카나 다름없이 귀애하고 하였다. 당당한 왕손으로서 단지 그 목숨을 보전하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타락된 행동을 하며, 뜻에 없는 비루한 언사를 하며, 가는 곳마다 수모를 받으며 다니는 흥선이 영어에게는 눈물겨웠다.
"상갓집 개!"
"흥설군!"
"먹걸리 대감!"
자기네의 일족이 흥선에게 대하여 이런 이름을 지어 주고 기뻐할 때에, 역시 그런 이름으로 부르며 웃기는 하지만, 내심으로는 흥선에게 대한 동정을 그냥 계속하고 있었다. 그런지라, 흥선도 그것을 짐작하고, 갑자기 어디 갈 일이라도 있으면, 영어에게 행차 하인을 빌어 가기도 하고, 가난한 흥선의 초라한 생일놀이나마, 놀이가 있을 때에는 영어를 반드시 청하고 하였다. 흥선의 작은아들 재황 소년도 영어에게만은 격의가 없이 놀러 다니고 아저씨 아저씨 하며 따랐다.
이 명철하던 공자가 오늘날같이 타락되지 않으면 안 될―그 심경에 영어는 끝없는 동정을 한 것이다. 그 뿐―그 이상 한 걸음 더 들어가서 흥선이 어떤 원대한 음모 아래 표면 타락을 가식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까지는 생각이 및지 못하였다. 소위 이하전 역모 사건으로 김씨 일문이 모여서 의논을 하다가, 지금 남은 종친 중에 똑똑한 인물이 이제는 없는가고 일일이 점고할 적에 흥선의 이름도 그 때 올랐다.
흥선의 이름이 나오매 그 때 모두들 무릎을 두드리며 웃었다. 흥선 따위는 사람으로 여기지도 않은 것이었다. 그 때 영어는 속으로 커다랗게 수긍하였다. 만약 흥선으로서 내로라고 그냥 접접거리며 다녔으면, 이 날 반드시 흥선의 이름 위에 흑표가 찍혔을 것이다. 눈물겨운 타락 생활을 계속하였기에 그 점고에서 패스한 것이다. 그런 일이 있은 며칠 뒤에 영어는 기괴한 일을 당하였다.
흥선에게서 예에 의지하여 행차를 좀 빌어 달라는 편지가 왔다. 여러 번째 보는 일이라 영어도 행차를 갖추어 흥선에게 보냈다. 행차를 보낸 것은 오정이 좀 지날까 말까 하여서였는데, 그 행차는 저녁 어두워서야 돌아왔다. 돌아온 하인의 말을 듣건대, 그 날 흥선은 대궐에 들어갔었다 한다. 배행으로는, 조성하가 있었다 한다. 정일품 현록대부의 정장을 하였다 한다.
영어는 먼저 머리를 기울였다. 기괴한 일이었다. 흥선이 대궐에 들어갈 일이 없다. 어명으로 부르셨다 하면 영어 자기가 모를 까닭이 없다. 어명이 아닐진대 정장으로 대궐에 들어갈 필요가 없는 흥선이었다. 이튿날 영어도 입궐한 기회에 내관에게 물어서, 흥선이 조 대비께 뵈옵고 장시간 무슨 밀의를 하였다는 것을 알고, 영어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을 듯이 놀랐다. 대궐 안의 규율로서 흥선이 제 아무리 종친이기로, 흥선의 뜻으로 대비께까지 가까이 가지 못했을 것은 정한 이치다. 대비의 권병으로서 대비가 흥선을 부르기 전에는, 흥선이 백주 공공연히 대비께 가까이 가지 못할 것이다. 그 날 집으로 돌아온 영어는 가슴이 송구하였다.
"조 대비와 흥선의 접근"
때가 때였다. 조 대비를 꺼리기 때문에 이하전이를 없이한 꼭 이 때, 흥선이 조 대비의 부름으로 입궐한 것이었다. 단지 한 개의 우합(偶合)적 사실로 볼까? 그렇게 볼 수는 도저히 없었다. 조 대비는 혹은 종친의 한 사람으로서의 흥선의 이름은 기억할지 모르나, 대궐로까지 부를 만큼 친히 알 까닭이 없었다. 만약 친히 안다하면 이전에는 부른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우합적 사실이 아니다. 더구나 그 날(가난에 쪼들리어 변변한 도포 한 벌도 없는 흥선이) 새로 지은 관복을 차리고 위의 당당히 입궐하였다 하는 것도 결코 무의미한 일이 아닐 것이다.
흥선의 인물됨을 잘 알고, 겸하여 흥선의 지금의 가식적 인격을 간파하는 영어에게 있어서는, 이번의 조 대비와 흥선과의 회견이라 하는 것을 결코 무의미하게 볼 수가 없었다. 여기서 영어는 몸을 떨었다. 아직껏은 흥선이 단지 목숨을 도모하기 위하여, 마음에 없는 난행을 하거나 하고 그것을 동정하였지만, 지금 생각하면 한층 더 깊이 세상의 눈을 감쪽같이 속이어 나아가면서, 그 이면으로는 궁중의 어른 조 대비와 결탁하고 놀라운 음모를 꾀하던 것을 명료히 직각하였다.
대궐에 조 대비를 뵙고 나온 뒤로부터는 흥선의 난행이 예전보다 십 곱 이십 곱 더 하여 가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살을 찌푸릴 때에, 영어는 그 의의를 알고 더욱 두렵게 생각하였다. 여기서 영어의 취할 길이 두 갈래로 갈라졌다. 하나는 자기네의 일족에게 흥선의 가면을 폭로시켜서, 흥선을 또한 이하전과 같이 처치하여 버릴까 하는 길이었다. 또 하나는 모든 것을 눈감아 버리고, 끊임없이 그냥 흥선과의 교제를 계속하여서, 이 후 세상이 바뀌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흥선에게 신임을 받을 준비를 해 둘까 하는 길이었다.
몸집이 큰 사람은 어리석다 하나, 영어는 몸집이 큰 비례로 비교적 영리한 사람이었다. 영어는 첫째 길의 위태로움을 알았다. 며칠 전에도 그 이야기가 났었지만, 이제 영어가 자기네의 일족에게 대하여,
"흥선은 당신네들이 생각하는 바와 같이 사실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외다. 흥선은 무서운 배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외다."
하고 말한댔자, 일족은 용이히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백 걸음을 물러서서 일족이 그 말을 믿게 된다 할지라도, 흥선은 이하전과 같이 손쉽게 처치하기가 매우 곤란한 사람이었다. 이하전을 처치한 데 대해서는 지금 민간에서 말이 꽤 많다. 공공연히 이하전의 원죄를 역설하는 사람도 차차 생겨났다. 그런 위에 이제 또한 흥선을 "역모"라 하여 처치하여 버리면, 세상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흥선은 세상이 다 아는 판박이 무뢰한, 이 무뢰한을 역모라 하여도 세상이 믿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김가들이 왕족을 모조리 차례로 없이하려는 행동이다."
당연히 이렇게 볼 것이지, 흥선 같은 인물이 역모를 하리라고는 삼척동자라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매 흥선의 정체를 들어서 일족에게 호소를 한다는 일의 십중팔구는 남의 웃음이나 사는 행동에 지나지 못할 것이다.
영어는 둘째 길을 밟기로 하였다. 아직껏 자기네의 일족 전부가 흥선을 웃고 수모하고 멸시하고 할 동안도, 영어 형제뿐은 흥선을 그렇게 대접치 않았다. 그런 허튼방이의 생활이 단지 자기의 생명을 유지하려는 고육책인 줄 알고 그 심정에 동정하여, 모든 거만무쌍한 일족과 달리 그냥 우의를 계속한 것은 흥선도 알아 줄 것이다. 그 때는 단지 동정의 염으로서 교제를 계속하였지만, 이제부터는 장래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더욱 친밀히 흥선과 지내야겠다. 비록 일이 흥선의 마음대로 되지 못하여, 흥선이 끝끝내 일개의 무뢰한이라는 가면 아래 그의 일생을 마친다 할지라도 특별히 손해는 없는 일이요, 만약 장래에 마음대로 되어서 이 잠자는 호랑이가 포함성을 지르며 일어나는 일이 있다 하면, 지금의 크지 않은 동정은 그 날 놀라운 열매를 맺어, 영어 자기에게도 돌아올 것이다. 이리하여 영어는 모든 일을 알고도 모른 채, 보고도 못 본 체하고, 난행을 하는 흥선과 그냥 따뜻한 우의를 계속하기로 작정하였다. 흥선의 둘째아들 재황 소년에게 대하여 아직껏 무심히(단지 순전한 동정으로) 써 오던 호의가, 장래 어떤 결과로서 자기에게로 돌아올는지, 영어는 그것을 고요히 기다리기로 하였다.
이 놀라운 사건(장래 이 일족의 운명을 좌우할)을 일족에게 피력하지 않고 혼자 알아 둔 또 한 가지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권세의 대립"이라는 것이었다. 김좌근, 김병기 부자의 권세와 김병학, 김병국 형제의 권세가 차차 대립되어 첨예화하고, 그 때문에 일족의 사이가 좀 벌어진 것도 이 사건을 병국이 혼자서 알아 두고 다른 데 말하지 않은 커다란 이유의 하나였다.
"단언은 할 수가 없읍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의 점으로 보아서 혹은 그렇지 않나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영어였다. 그의 형 영초는 묵묵히 앉아 있었다. 영어가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형님도 짐작하시겠지요? 젊었을 때의 흥선군이 얼마나 사람이 분명하고 강직했었는지―그런데 아무런들 사람이 그렇게까지야 갑자기 변하겠습니까?"
이 때야 영초는 비로소 입을 열었다.
"혹은 자네 말이 옳을지도 몰라. 잘못 생각했는지도 몰라. 옳고 글코를 막론하고, 군가(君家)에 대해서 상당한 대접은 해야느니. 우리 문내에서 모두 흥선군을 수모하고 멸시해도, 나는 아직껏 그래 본 적이 없네. 우리의 이해관계를 둘째로 두고, 우리가 이 나라에 태어난 이상, 이 나라 임금의 친척 되는 이를 어떻게 멸시하겠나? 흥선군이 잘났건 못났건, 나는 상당히 늘 대접하네. 한 때 철없는 때는 내 세도를 자세삼아 수모도 했고 멸시도 했지만, 내가 철 든 이래로는 푸대접을 해 본 일이 없네."
"네, 저도 무론 전에 흥선군에게 푸대접을 하거나 한 일은 없었읍니다. 오죽하면 그 이가 그런 난행을 할까 하고 기회 있을 적마다 생활상의 조력도 하고, 나 보다 앞에서 다른 사람이 흥선군을 욕을 뵈려면 감싸 주기도 했읍니다.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단지 동정심으로만 아니라, 자위책으로라도 소홀히는 대접지 못할까 합니다."
동생의 말을 듣고 있던 영초는 머리를 들어 동생을 고요히 바라보았다.
"흥선군의 작은 도령이 무슨 생인가?"
"금년 열 살인 줄 생각합니다."
"재……?"
"재황이."
영초는 또 말을 끊었다. 잠시 있다가야 말하였다.
"여보게,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네……"
"만약―만약 말일세, 자네 추측대로 흥선군의 그 사이의 난행이 오로지 자기의 인물을 감추려는 가면이요, 그 가면 아래서 무서운 꿈을 도모하고 있었다면 장래에는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너 나 할 것 없이, 큰 코 다칠 무서운 세상이 나타나리. 만약 흥선군이 이전 오위도총관 시대의 그 지력이 그냥 있고, 흥선군이 권력을 잡는 날이면, 필연코 무서운 세상이 나타날 것일세. 나도 짐작이 가는 바이지만, 이전 도총관 시대에, 뜰의 먼지 하나, 추녀의 거미줄 하나, 그 양반의 눈에 벗어난 것이 없었네. 만약 그 양반이 나라의 권리라는 것을 잡기만 하면, 남으로는 제주로부터 북으로는 백두산까지, 어느 소나무 한 그루, 어느 우물 하나, 그 양반의 손이 가 닿지 않을 것이 없을 것일세. 가로 뻗은 쓸데없는 가지는 잘라 버릴게고, 맑지 못한 우물은 메워 버릴 게고……찬찬하고 끈끈하고도 왈왈한 성미―자네 말과 같은 세상이 온다면 무서운 세상이 될 걸세."
"그러면?"
"그러면 무얼, 별다른 일이야 있겠나?"
"그러면 우리 일문은?"
"김가 이가 할 것 있겠나? 전에 제조(提調) 시대에도 본 바여니와, 인재를 알아보는 눈은 무서울 겔세. 그 사람이 인재일 것 같으면 상놈 양반 구별하지 않고 쓰고, 무능할 것 같으면 아무런 좋은 배경을 가졌을지라도 내 던지고말고……그 때문에 그 때도 말썽이 많았던 것은 자네도 기억하겠네 그려."
영어도 몸을 떨었다. 인재 무능의 문제가 아니었다. 김씨 일문은 당연히 흥선의 눈으로 보자면 원수일 것이다. 그 원수 일문에 대한 처치를, 만약 그런 날이 온다하면 흥선은 어떻게 하려는가?
"병기는 멋없어 교만하게만 굴어서 흥선군을 망신 준 일이 여러 번 있지 않습니까?"
"있지."
"형님!"
"?"
"언제 흥선군을 한 번 아니 찾아보시렵니까?"
"?"
"그 마음을 한 번 떠보면 좋을 듯해서……"
"그 사이 이십 년 간을 그런 수모 멸시를 받으면서도 한 번도 안색을 변한 일이 없는 흥선군이 그렇게 쉽게 넘어갈 듯싶은가? 이러고저러고 할 게 없이, 우리는 우리 일만 충실히 보세나. 만약 자네 눈이 글러서 흥선군은 사실 한 개의 치인이라면 말할 것이 없거니와, 그렇지 않고 마음에 무서운 패력을 감춘 사람이라면, 소위 지금의 당파 문제 같은 걸로 유혈의 참극까지는 내지 않을 것일세. 그러니깐 두고 보세. 자네도 흥선군에게 개인적으로 미움을 사지 않았을 것이고,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원수가 없어. 장래의 일이 어떻게 되리라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흥선군이 권세를 잡는 일이 온다 하더라도 우리 형제게까지야 및겠나?"
형의 말을 들으면서 영어도 생각하여 보았다. 만약 자기와 자기의 형의 추측이 옳다 할진대, 장래 과연 무서운 세상은 현출이 될 것이다. 어떤 세상이냐고 누가 묻는다 하면 거기는 대답하기가 매우 힘들겠지만, 지금의 상식으로 추측하기 힘든 별다른 세상이 현출될 듯하였다.
"대궐에 원자(元子)만 탄생되면 문제가 없겠구만―"
"그러면야 문제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도리어 흥선군이 권세를 잡는 날이, 사실 한 번 와 봤으면 좋을 듯이 생각하네."
"왜요?"
"지금 세상은 너무 타락됐어. 우선 나부터 그런 짓을 하지만, 나라 회계에 문서가 없고, 모든 사무가 혼돈천지고―그 위에 같은 김문이라 해도 근(根)자 세도가 있고 병(炳)자 세도가 있어서 서로 경쟁하고, 병자 가운데도 교동(김병기) 세도가 있고 사동(병학 형제) 세도가 있어서 서로 경쟁하면서, 벼슬을 팔고 학정을 하니 이런 놈의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누구든지 힘 있는 이가 하나 생겨나서 위에서 꾹 눌러 놓아야지, 그렇지 않았다가는 망하네, 망해. 남이 하는 노릇이니 우리도 따라하기는 하지만 속으로 부끄럽기가 짝이 없어. 우리가 망할지도 한 번 세상이 뒤집혀지면 속이 시원하겠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는 종친이 정치에 간섭지 못하고 또 산 대원군이 없지 않습니까?"
"그게야 꾸미면 될 것이지. 법령이란 내기 탓이 아닌가? 종친이 정사에 간섭지 못한다 해도 세조 대왕께서 잠저시에 영의정을 지내신 일도 있고, 선례(先例)가 없는 바도 아니니깐……좌우간 흥선군이 지금 치인의 행동을 하는 것이 가면이라 하면, 장래에 그맛 고생도 예상하지 않겠나? 무슨 수단을 죄 꾸미고 있을 것일세."
"대왕대비마마를 인연해서 흥선군이 일어선다 하면 조성하, 조 영하 등 조씨의 세도할 날이 오겠지요?"
"글쎄, 흥선군이 조씨를 중용(重用)할지? 인물이 잘났으면여니와, 그렇지 못하면 경이원지해 버릴걸. 이전부터 벌족(閥族)의 세력을 몹시 미워했으니까―"
"어명으로 하는 일에 대비인들 어떻게 할 수 없지."
그 날이 분명히 올지 안 올지는 확언을 할 수가 없으나, 지금의 타락된 환경에 앉아 있는 이 형제(그다지 마음이 꾀어 박히지 않은)는 일종의 공포와 호기심이 섞인 마음으로 그 날을 기다렸다. 혹은 자기네 일족이 잔멸할지도 모르는 그 날을―
제 19 장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맺어진 밀약―그것은 어떤 것이었던가? 김씨 일문에게 인손이를 잃고 거기 대한 복수의 염 때문에 눈이 어두운 조 대비는, 목적을 위하여서는 수단을 가릴 줄을 몰랐다.
"종실 공자 중에 한 영특한 소년을 신이 추천하리까?"
하면서 흥선이 자기의 둘째아들 재황이를 조 대비께 추천할 때에, 조 대비는 그 소년의 학식이 어떤지 인재가 어떤지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흥선이 추천하는 그 소년을 받는다 안 받는다의 말이 없이 제 이단의 문제로 들어갔다. 즉―상감께서 후사가 없이 천추만세하는 날에, 그 다음으로 보위에 오르는 사람은 승하한 상감의 후사가 아니요, 당신의 지아버님되는 익종의 후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것을 말하였다. 당신의 아드님 헌종이 순조 대왕의 대를 잇고, 그 뒤에 현 상감조차 순조 대왕의 대를 이어서 그만 절사(絶嗣)가 된 그 아버님의 대를 조 대비는 어떻게 하여서든지 부활시키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 의견에 대하여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이제 새로 들어오는 승계자는 조 대비를 양어머니로 삼고 들어오는 것이 당연하다고 맞장구를 쳤다. 새로운 상감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는 김씨의 세력을 뚝 잘라 버리고, 김씨 일문을 잔멸시켜야 하리라고 이런 의견을 제출할 때에도 흥선은 찬성하였다. 너무도 뻗은 그 세력을 꺾어 버리고, 조 대비를 배경으로 한 조씨 일파와 흥선 자신의 친구들로써 내각을 조직하여 권세를 휘둘러야 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인정과 기지에 밝은 흥선이 고귀한 노부인의 마음을 꿰어 보고 잡아당기기는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조 대비의 김씨 일문에게 대한 노염이 몹시 큰 것을 보기 때문에, 흥선은 침이 마르고 혀가 닳도록 김씨들을 욕을 하였다. 그리고 만약 자기가 김씨 일문의 유에 올라설 날이 오기만 하면, 김씨 일문은 종자도 남기지 않고 잔멸시킬 듯이 말하였다.
이 날 조 대비와 흥선의 사이에 성립된 밀약은 무론 "확실한 계획"이랄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만약 장래 여차한 세상이 이르면, 여차한 수단을 써서 여차한 정책을 베풀겠다는 막연한 의논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러나 비록 막연한 의논이나마 이후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조대비는 다른 모든 왕족을 젖혀 놓고 흥선을 부르고, 그때 불리기만 하면 흥선은 조 대비를 위하여 견마의 힘을 다하겠노라는 밀약이 성립되었다. 하늘이 상감께 후사를 주려고 중궁이나 어귀상궁의 몸에서 원자가 탄생할지는 모를 일이나, 왕실 공자 가운데서 동궁을 간택한다는 문제가 생기면 그것은(대왕대비이며 종실의 어른인) 조 대비의 권병으로서 눌러 버려서, 상감 재세(在世)할 동안은 다른 곳에서는 절대로 동궁을 간택하지 않겠다는 밀약도 성립되었다.
"대감만 믿으오."
"대비전마마만 믿사옵니다."
이리하여 이 날 흥선이 성하의 인도로 입궐하여 조 대비께 뵙는 몇 시간 동안에, 커다란 사건 하나는 여기서 빚어진 것이다. 후사가 없이 상감이 천추만세하는 날에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이재황이가 영립되어, 익종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육대의 조선 국왕이 되리라는 놀랍고도 커다란 사건 하나이, 그것은 마치 지금부터 십여 년 전, 헌종 대왕의 황후가 위중할 때에, 그 때의 대왕대비이던 김씨와 김 대비의 오라비되는 김좌근이가 헌종 승하한 뒤에는 "강화 도령"을 모시어다가 순조의 대를 이어서 제 이십 오대의 조선 국왕을 만들자고 의논한 것과 마찬가지로―
표면 모든 흥분과 긴장된 감정을 감추고, 그 날 흥선은 천연한 낯으로 조성하와 함께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감추기에는 너무나 큰 긴장과 흥분이었다. 시정에 영락되어 타락 생활을 거듭한 지도 십 수 년, 웬만한 감정은 모두 감추어 버리고 그런 기색도 나타내지 않는 흥선이었다. 그러나 이 날의 흥분뿐은 감추려야 감추려야 끝끝내 감출 수가 없었다.
그사이 갖은 수모를 다 받으며 갖은 욕을 다 먹으며, 그래도 그 모든 일을 참고, 귀찮고 쓴 세상을 그냥 살아온 것은, 장래 어떤 때 오늘 같은 날이 혹은 이르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가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것을 막연히 기다리긴 하였지만, 구체적으로 그 날이 올 줄은 뜻도 안 하였던 바였다. 혹은 올지도 알 수 없는 바라 하는 막연한 희망으로, 모는 쓴 일을 쓰다 하지 않고 받아 오던 것에 지나지 못한다. 돌아보아야 튼튼하고 뿌리박힌 김문의 세상에서, 언제 자기의 위에 꽃필 날이 올 듯하지도 않았다. 어서 길을 뚫고 어떻게 나아가야 될는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막연히 바라며 구체적으로는 스스로도 코웃음 치며 기다리던 날이, 이제 돌연히 그의 위에 떨어지게 된 것이다, 복은 누워서 기다린다는 속담도 있기는 하지만, 지금의 이 복은 흥선에게 있어서도 너무도 급속적이었다. 너무도 의외였다. 바라면서도 또한 스스로 부인하던 이 복이 홀연히 자기의 위에 떨어지기 때문에, 흥선은 아무리 감추려야 자기의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는 성하를 돌려보냈다. 어떤 일이 생겼는지를 알고자 웃목에 읍하고 서 있는 성하에게, 아무 말도 알리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 성하를 돌려보낸 다음에 흥선은 비로소 옷을 모두 편복으로 갈아입었다. 앉아 있으려면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는 흥분이었다. 그러나 일어서니 또한 어떻게 할 바를 알 수 없는 흥분이었다. 큰 소리로 외쳐서 자기의 이 흥분을 남에게 알리고 싶은 충동이 연하여 일어났다. 그러나 큰 소리는커녕 작은 소리로라도 남에게는 절대 알릴 수가 없는 흥분이었다. 한 번 남에게 알리어서 그 소문이 퍼지기만 하였다가는 자기의 위에 어떤 박해가 미칠지는 잘 아는 바였다.
흥선은 앉았다가는 일어섰다. 일어섰다가는 앉았다. 방안을 거닐다가는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러나 담배가 타기 전에 도로 내어던지고 하였다. 자기로도 자기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분간을 하지 못하였다. 어떤 시골 처녀가 내일이면 시집을 가는 그 전 날, 너무도 기뻐서 자기 집에 기르는 개를 붙들고 "개야, 나는 내일 시집간단다" 하였다는 심리를 이 때 흥선은 맛보았다. 오래 벼르고 기다리던 일―그러나 또한 당분간은 남에게 절대로 알릴 수 없는 비밀한 이 일에 흥분된 흥선은, 자기의 몸을 바로잡지를 못하고 마음이 들떠서 일어났다 앉았다 안돈되지 못한 행동을 계속하고 있었다. 만약 마음이 이렇게 들떠서 돌아갈 때에 누가 흥선을 찾아 왔다면 흥선은 그 때는 그 사람을 붙들고,
"여보게, 대비마마와 밀약이 성립됐네. 나는 멀지 않아서 대원군이 되네."
하고 자랑을 하였을는지도 알 수 없다. 흥선이 이 놀라운 소식을 자기의 부인에게 알 게 한 것은, 그 날 밤도 깊어서 집안 하인들도 모두 꿈의 나라에 헤매는 삼경쯤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흥선도 극도의 흥분은 좀 삭아져 있었다.
흥선이 오늘 대궐에 들어가서 조 대비를 뵙고, 거기서 의논한 의논이며, 겸하여 그 사이 십 수 년 간을 마음속에 깊이 감추어 두었던 자기의 심경을 처음으로 자기의 부인에게 피력할 때에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어떤 사건, 어떤 일이라도 이 부인을 놀라게 하지 못한다. 정유년(丁酉年) 겨울 그의 일생을 끝내기까지의 팔십 년 간의 짧지 않은 생애에, 어떤 놀라운 일이 돌발할지라도, 이 착하고 어진 부인은 고요히 그 사건을 맞은 것이었다.
이 날의 이 광희할 만한 흥선의 보고를 듣고도 부인은 놀라지 않았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한 뒤에 고요히 손을 들어서 이미 잠든 작은아들 재황이를 가리켰다.
"낮에 장난이 심하더니 곤히 잡니다."
흥선도 그 아들을 보았다. 지금 철모르고 곤히 자는 이 소년―일의 진행에 그다지 착오만 안 생기면, 장래에는 아들이라는 명칭으로는 도저히 부를 수도 없는 수년이었다. 낮에 장난이 심했기 때문에 얼굴이 모두 덜민 소년은, 무슨 꿈이라도 꾸는지 간간 입을 뻥싯거리며 깊이 잠들어 있다. 흥선이 자기의 아들의 위에 부었던 눈을 부인의 편으로 돌릴 때에 부인은 말을 계속하였다.
"그 일이 장래 이 애에게 행복되겠습니까?"
그리고 거기 미처 흥선이 대답을 못할 때에 부인의 말이 뒤를 좇았다.
"지금도 아무 불만이 없이 잘 지내는데요."
만약 장래 그 일이 행복이 못 된다 하면, 왕위조차 부럽지 않다는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아니, 이 애의 행복 문제가 아니라, 온 국민의 행복 문제외다. 학정, 토색, 외척 득세, 어지럽고 어지러운 세상에……"
"대감, 모르는 바가 아니지만, 그런 개혁은 모두 대감이 하실 일이지요? 어머니된 자의 마음은 그렇지 않읍니다. 천 사람이 망하고 만 사람이 망할지라도 내 자식 하나만 편안하면 그뿐이지, 남을 잘 살게 하자고 내 자식을 내놓기는 어미의 마음으로는 힘든 일이외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로서 대감 하시는 일에 이렇다 저렇다 말씀은 안 하리다마는, 제 생각뿐으로는 그저 이대로,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으며 지내는 편이 제일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외다. 그렇지만 이 애는 부인에게만 아니라 내게도 자식 되는 애―낸들 왜 좋지 않은 일에 넣고 싶겠소? 이 뒤에 그런 날이 온다 해도, 책임질 힘든 일은 내가 질 게고, 영예 돌아올 일은 이 애에게 돌리고―그래서 거대하고 부귀한 나라의……"
대군주가 되면 오죽이나 좋지 않겠느냐는 말을 흥선은 채 맺지를 않았다. 지금 이 자리에 앉아서 생각하기에는, 너무도 공상적이요 너무도 허황한 그 말은 차마 입 밖에 나오지를 않았다.
부인도 아들의 얼굴을 굽어보았다. 자기의 신상에 어떤 일이 진행되는지, 또는 지금 자기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기를 위하여 어떤 의논을 하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는, 연하여 무엇이 어떻다고 일을 벙싯거리며 곤하게 잠자고 있었다. 한참을 아들의 얼굴을 들여다보고 있다가야 부인은 머리를 지아버니에게로 돌렸다.
"마음대로 하세요. 대감의 의향에 계시기만 하면 어떤 일이든지 탓하지 않으리다. 아무것도 모르는 여편네가 무슨 참견을 하리까?―마는 이 애의 행불행은 대감께 책임을 맡깁니다. 불행하는 날에는 저도 몇 마디의 불평을 말하겠읍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을 들어서 귀여운 듯이 잠든 소년의 윤기 있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뒤로부터는 흥선은 자기의 난행의 방법을 고쳤다. 이하전이 죽은 뒤부터는 가슴이 송구하여 더욱 난행을 심하게 하기는 하였지만, 대비와의 밀약이 성립된 뒤로부터는 한 가지의 행동을 더 가하였다. 이전에는 어떤 수모를 받고 어떤 눈물 나는 일을 당할지라도, 자기의 모든 감정을 죽여 버리고 참기를 위주 하였지만, 흥선은 그것은 부족하게 생각하였다. 너무도 용히 참기 때문에 도리어 저쪽의 의심을 살는지도 알 수가 없으므로, 흥선은 차차 성낼 만한 일에는 성을 내었다. 저편 쪽에서 무슨 불쾌한 일을 하면 불끈 성을 내며 혼자서 중얼거리며 자리를 피하고 하였다.
지금 자기의 몸은 귀하기가 짝이 없는 몸이었다. 이전에 막연히 기대할 때와 달라서, 지금은 정작으로 그것을 기다릴 지위에 서게 되었다. 대비와는 굳은 밀약이 성립되었다. 이러한 자기의 몸은 지금은 만금으로도 바꿀 수 없는 귀한 몸이다. 그런지라, 어떤 추태를 연출하면서라도 당분간은 속여 나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전, 막연히 기다릴 때는 김문의 교태가 성도 나고 김문의 수모가 역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모든 일이 내정된 지금에 있어서는, 그 교태 그 수모가 흥선에게는 도리어 코웃음밖에는 나지 않았다. 너희의 세도도 며칠이 남지 않았으니, 그 동안 마음껏 놀아 보라는 생각이 늘 들고 하였다. 이 코웃음 나는 일을 흥선은 노염으로 대하고, 혼자서 중얼중얼 불평을 말하며 돌아가는 것이었다. 표면 이전보다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 이면으로는 흥선은 "그 날"을 위한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시정에 영락되어 돌아다니는 몇 해―이 공자는 고귀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시민들의 불평불만이며, 그 성격이며, 생활 상태며 심리 등을 다 알았다. 그리고 그 원인이며 동기며 경로 등을 다 알고 있었다. 고귀한 집안에 태어나서 그냥 귀한 공자로서 길러난 사람들은 짐작도 하지 못하는 모든 제도상의 결함이며 제도 운행상의 결함을 다 잘 알고 있었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당연한 일로 알고 행하며, 또 이론상으로 보아서는 당연한 일이 그 실행된 뒤에는 아랫사람들에게 어떤 결과를 미치게 되는지―이것은 위엣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아랫사람으로도 모르는 바요, 다만 위와 아래를 골고루 다녀 본 사람이라야 처음으로 알 일이다. 고귀한 가문에 태어나서 영락된 무리들과 섞이어 논 흥선은 위엣일과 아랫일에 모두 짐작이 갔다. 그리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하였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났을 것을, 그러지 않고 이렇게 하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는 것은 모두 짐작이 되었다.
누가 매관 매작을 한다. 마음이 착하던 사람도 매관 매작을 할 지위에 서기만 하면 반드시 매관 매작을 한다. 그러면 그는 왜 이렇게 갑자기 변하지 않을 수가 없었는가? 아주 현명하다는 일컬음을 듣던 누가 어떤 곳 수령으로 가게 되면, 거기서는 반드시 명목 없는 세납을 받아 올린다, 많고 적음에 차이는 있을망정,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사람은 하나도 없다. 그러면 그 현명하다던 사람은 왜 갑자기 그렇게 변하였나?
여기 제도상의 결함이 있었다. 학정을 하지 않고는 안 되는 그 원인은 "제도"에 있었다. 제도의 결함 때문에 그들은 자기네들도 자기네의 하는 일이 부끄러운 일인줄 알면서도, 그 부끄러운 일을 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제도의 결함"이라는 것을 모르는 백성들은 그 관원을 원망하는 것이었다.
"자, 이것 보게."
흥선은 자기 앞에 놓인 대전통편(大典通編)을 펴 보였다. 성하는 흥선의 가리키는 곳을 보았다.
一, 정一품…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
二, 종一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三, 정二품…쌀 두 섬 두 말, 콩 한 섬 닷 말
四, 종二품…쌀 한 섬 열 한 말, 콩 한 섬 닷 말
五, 정三품…쌀 한 섬 아홉 말, 콩 한 섬 두 말
六, 종三품…쌀 한 섬 닷 말, 콩 한 섬 두 말
七, 정四품 종四품…쌀 한 섬 두 말, 콩 열 서 말
八, 정五품 종五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九, 정六품 종六품…쌀 한 섬 한 말, 콩 열 말
十, 정七품 종七품…쌀 열 서 말, 콩 여섯 말
十一, 정八품 종八품…쌀 열 두 말, 콩 닷 말
十二, 정九품 종九품…쌀 열 말, 콩 닷 말
(대군―大君에게는 봄 석 달에 섬을 더 줌)
(흉년에는 더 감할 경우도 있음)
그것은 당시 정일품(正一品부터 종구품(從九品)까지 열여덟 계급의 녹봉이었다.
"여보게 성하, 이것 보게. 소위 국록이라 하면 얼마나 많은 듯이 생각되겠지만 이게 아닌가? 나도 정일품 현록대부라는 덕에 나라에서 한 달에 쌀 두 섬 여덟 말과 콩 한 섬 닷 말씩을 타 먹겠지. 자네도 자네 품계에 따라서 타 먹을 게야. 그렇지만 이 봉록으로 자네 생활이 유지되나?"
녹봉이 이런 것은 흥선이 지적하지 않을지라도 성하도 아는 바였다. 그러나 그것으로써 생활이 유지되느냐는 질문은 성하에게 있어서는 기이한 질문이었다.
"하옥 김좌근―하지, "정일품 보국 송록대부 김좌근"일세그려. 이름은 좋지―그렇지만 나라에서 내어 주는 녹봉은 쌀 두 섬 여덟 말, 콩 한 섬 닷 말밖에는 약간한 직봉(職俸)밖에 없어. 그러나 김좌근 하면 그 집안의 식구가 얼마나 되나? 청지기가 이십여 명, 별배가 이십 여명, 구종도 또 그만하지. 게다가 그놈들의 여편네 자식 모두 있다. 사랑 친솔만 말일세. 내실에는 또 얼마나 하인 비복들이 많은지 몰라. 적어도 영의정의 집에 달려서 먹는 생명이 백 명이 썩 넘을 걸세. 그 백여 명의 식솔을 거느리고 있는 주인 대감의 녹봉이 얼마냐 하면, 겨우 쌀 두 섬 몇 말 콩 한 섬 몇 말, 여기 현직에 대한 녹봉 약간―말하자면 영상 집 고양이 새끼 한 마리도 먹다 부족할 것밖에는 못되네그려……"
당시의 제도상 무슨 벼슬이든 하면, 종구품의 말직에 지나지 못한다 할지라도 백주에 보행(步行)으로 길을 못 간다. 하다못해 나귀 한 마리, 마부 하나, 하인 하나, 이만한 하인이라도 있어야지, 그렇지 못하고는 길을 나가지를 못한다. 신분이 초헌(?軒)을 타게 되면, 적어도 초헌이러라는데 부축할 별배 여덟 명 이상과 구종 여덟 명 이상은 가져야 한다.
"재상이 죽은 뒤에 그 장례비용이 없는 것을 자랑했다는 것은 옛날 일―지금은 한 번 행차에도 그만한 위엄을 보이지 않을 수가 없게―제도가 그렇게 된 이상―그리고 녹봉이 또한 그렇듯 박힌 이상, 매관 매작을 하지 않고서 어떻게 살아가겠나? 제도부터가 벌써 매관 매작이나 학정을 하지 않고는 배겨나지 못하게 되었으니깐, 그 사람들만 잘못했다고 책할 것이 아니라네."
거대한 생활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제도를 꾸며 놓고 그 위에 적은 녹봉을 내어 주는 것은, 배면으로 매관 매작을 장려하는 일로 볼 수도 있었다. 아직껏은, 그저 당연히 그런 일이거니 하여 두었던 일에 대하여, 흥선의 지적을 듣고 성하는 미소로 경이의 눈을 떴다. 그리고 흥선의 얼굴을 뚫어져라 하고 쳐다보았다. 흥선은 알아 듣겠느냐는 듯이 머리를 기울여서 성하를 들여다보았다.
외척의 발호라 하는 것이 또한 커다란 문제였다. 이전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이 마주 앉아 밀약을 할 때에, 이제 김씨 일문의 세력을 깨뜨리고, 그 대신 다른 세력을 세움에는 조 대비를 배경으로 삼은 조씨 세력을 주장하마 하는 것이 한 개의 커다란 조건이었다. 그리고 또한 조 대비가 지금 암암리에 활동을 하면서 일변 흥선을 불러들이며 하는 것은, 결코 이 조선이라는 땅 위에 좋은 정치를 펴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바가 아니요, 오로지 흥선군의 아들을 보위에 올리면 그 연조로 조씨의 세도가 생길 것이며, 오늘날의 김씨들의 차지한 모든 귀한 자리가 조씨들의 손으로 들어오리라는 야욕 때문이었다.
그러한 조 대비에게 대하여 그 때 흥선은 맞장구를 치기는 하였지만, 이것은 흥선은 꿈도 안 꾸고 있는 일이었다. 김씨를 없이하고 조씨를 끌어들이면 무엇하랴? 그것은 이리를 내쫓고 호랑이를 끌어들이는 데 지나지 못하는 일이다.
아직까지 왕이 갈리는 때마다 선왕의 신하들은 신왕에게 모두 몰락을 당하였다. 그리고 또, 지금 신왕의 총신이라 할지라도, 신왕의 현중궁이 승하하고 다른 비를 맞아들이기라도 하면 모두 또한 몰락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단지 왕비의 친척이기 때문에 조정의 귀한 자리를 차지한 허수아비들은, 자기네가 시재 차지한 귀한 자리를 자손 자손이 누려 먹기 위하여는, 자연히 왕실에 대하여 별별 음모를 다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자기네의 누이 혹은 딸 되는 왕비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되고, 그 왕자가 동궁으로 책립이 되면, 그들도 따라서 다음 왕의 대에까지도 세도를 할 수가 있다. 그러나 불행히 자기네의 누이나 딸 되는 왕비가 왕자를 탄생하지 못하면, 그 때는 그들은 자기네의 지위를 보전하기 위하여, 종실에 대하여 별별 음모를 다하지 않으면 안 된다.
별 어중이떠중이가 모두 누이(혹은 딸)를 잘 두었기 때문에 금관 조복으로 만민의 위에 서서 된 짓 안 된 짓을 다 한다. 그뿐 아니라, 한 번 왕이 천추만세하는 날에는, 뒤 왕을 자기네의 권력 아래서 택하여 내기 위하여 온갖 더러운 짓, 외람된 짓, 창피한 짓을 다 한다. 이것이 모두 외척 발호 때문에 생겨나는 폐단이다. 만약 이 뒤 언제 흥선의 손에 정권이 오는 날이 있을지면, 단연히 외척이라는 것을 눌러 버리는 것이 흥선의 본시부터의 마음이었다.
그 날 대비가, 그 뒤 조씨 세도의 날을 말할 때에 흥선은 맞장구는 쳤지만 속으로는 이 뒤 흥선 자기의 손에 정권이 돌아오기만 하는 날이면 김씨, 조씨, 민씨, 할 것 없이, 인재(人材)가 아닌 사람에게는 한 개의 벼슬도 주지 않으리라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그 일을 단행하기 위하여는 그 때 조 대비와 정면으로 충돌을 하게 될는지도 알 수 없지만, 정면 충돌을 하여서라도 조 대비를 눌러 버리고 조 대비가 지금 꿈꾸는 "조씨 세도의 날"은 현출시키지 않으리라 마음을 먹었다.
지금 자기와 함께 때때로 일을 의논하는 조성하―조 대비의 조카 되는 성하는 흥선의 권세 잡는 날에는 자기도 한 몫 잘 볼 것으로 꿈꾸고 있다. 그러나 흥선의 눈에 비친 성하는 너무도 어렸다. 재간은 있고 지혜도 있고 마음보다 그만하였으면 그다지 나무랄 데가 없지만, 아직 지배력이 부족하였다. 남의 위에 올라설 수양이 부족하였다. 남의 아래서는 다시없는 보조자로되, 위에 서서 사람을 지배하고 통괄할 역량이 없다. 만약 성하로서 조 대비의 조카라는 자기의 지벌만 자랑하는 인물일 것 같으면, 아무리 조 대비라는 배경이 있을지라도 흥선은 그를 녹사 하나도 시키지 않을 것이었다.
서원의 횡포―이것이 또한 허수로이 볼 문제가 아니었다. 본시는 옛날 거룩한 사람들을 존경하고 그들의 언행을 본뜨자는 뜻에서 시작된 서원이나, 그것이 타락되고 타락되는 동안, 지금은 위아래 할 것 없이, 사면으로 해독을 끼치는 커다란 암종이 되었다.
옛날 성현들을 존경하자는 뜻으로 그들에게 준 특권을 그들은 악용하여 온갖 횡포한 것을 다 한다. 유교 사상에 젖고 또 젖은 이 땅에서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버린다 하는 것은 적지 않는 문제이다. 이것은 국왕으로 도저히 행하지 못할 일이다. 국왕의 몸으로서 서원을 철폐시켰다가는 국왕의 지위에 반드시 흔들림이 생길 것이다. 국왕보다도 더욱 큰 권위를 잡은 사람―그리고 또한 국왕이 아닌 사람이 아니고는 도저히 행하지 못할 노릇이다. 만약 장래에 자기에게 정권이 돌아오는 날에는, 이 수많은 서원을 모두 철폐하여 버리기로 흥선은 작정하였다.
장래 이 나라의 정권을 잡을 사람으로 내정된 흥선은, 그 날을 위하여 그의 활달한 눈을 온갖 곳에 붓고 비판하여 보았다. 보는 때마다 그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폐궁 경복궁의 개축 문제―
경복궁뿐 아니라 그 사이 돌보는 사람이 없으므로 무너지고 기울어진 조선 팔도 각 곳의 정자 누각 청사들의 수리 문제―
국고(國庫)와 권문의 사고(私庫)와의 구별이 확연하지 않기 때문에 어지럽고 어지러운 재정 문제―
관리 등용의 방법이 확립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섭게 횡행하는 매관 매작 문제―
조세(租稅)에 대해 상세한 법률이 없기 때문에 지방 수령들이 함부로 받아 벗겨 먹는 조세 문제―
무(武)를 너무도 낮추 보기 때문에 지금 근심하게 된 군대 문제―
거처와 활동에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의복 문제―
필요 없이 긴 담뱃대며 필요 없이 큰 봉투 등으로 국민 생활의 쓸데없는 비용이 많이 나가는 점―
일일이 세자면 끝이 없는 이 많고 많은 문제를 모두 일시에 꺾어 버리고 다시 새로운 제도를 세우기 위하여 흥선은 그 방책을 세우기에 노력하였다. 이런 일을 모두 서서히 개량하자면 몇 대의 왕, 몇 백 년의 날짜를 가지고도 하지 못할 것이다. 썩어 들어가는 곳은 당연히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많은 불평이 있고 많은 반대가 있을 것이나, 쇠뿔은 단김에 뽑지 않으면 안 된다. 흥선 자기로도 짐작이 안 가는 바가 아니거니와, 자기와 같은 사람이 조선 정계에 언제 다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생겨난 이 기회에 모든 폐단을 단연히 잘라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돌아보건대, 태조 건국한 때부터 벌써 움이 트기 시작한 왕위 계쟁 문제가, 지금 구르고 또 굴러서 자기의 아들의 앞에까지 이르렀지만, 이번 이 기회를 타서 그 문제까지도 철저히 해결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국왕이라 하는 것은 결코 종실의 가장뿐이 아니다. 종실의 가장이면서 또한 이 나라 삼백여 주의 주인이다. 그런 국왕을 종실의 연로자(年老者) 한 사람뿐의 의견으로 좌우한다는 이 제도부터가 글러먹은 제도다. 그 제도의 덕에 자기의 위에도 지금 바야흐로 영광이 떨어지려 하지만, 제도는 결코 옳은 제도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어지럽고 시끄럽고도 많은 문제이다. 이 많고 어지러운 문제를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하여 흥선은 그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어느 날 자기가 손을 써야 할 날이 이르기만 하면, 맹렬히 일어서고 그 굳센 주먹을 휘두르기 위하여 그 날의 준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것은 몹시 긴장되고도 또한 명랑한 생활이었다. 조 대비와 자기의 사이에는 물론 단단한 묵계가 맺어졌다. 상감 승하하기만 하는 날에는 지금부터 십여 년 전에 강화(江華)로 굴러 내려갔던 어보가 이번 자기의 손으로 들어오게 약속은 되었다. 그러나 또한 생각하면 맹랑한 문제였다. 국왕의 승하를 기다리는 불충한 일과 다름이 없었다.
김씨 일문의 의심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더욱 난행을 거듭하면서도, 자기를 돌아보고 스스로 고소를 금치 못할 때도 흔히 있었다. 그 어떤 날 흥선이 여전히 잔뜩 취하여 김병기의 집을 찾은 일이 있었다. 그 때 병기의 문갑 위에 선원보(璿源譜)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때는 그것을 무심히 보았다. 선원보가 한 권 놓여 있거니 이만큼 보아 두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김좌근의 집을 찾으매 좌근의 정침에도 선원보가 있었다. 여기서 흥선은 이상히 생각하였다. 그리고 속으로 흥흥 코웃음쳤다.
무른 그럴 것이다. 건국 근 오백 년, 처음에는 한 분에게서 퍼진 자손이나 지금은 적지 않은 수효로서, 이 적잖은 왕족은 선원보를 뒤적여 보지 않고는 상고할 수가 없다. 그만큼 왕족들의 존재는 미약하였던 것이다.
표면 태평을 노래하는 그들이었지만, 내심 갈팡질팡하는 꼴이 역연히 보였다. 자기네의 일당의 한 사람인 김문근의 따님(왕비)의 몸에서 왕자가 탄생하기만 하면 이 이상의 안심되는 일이 없지만, 그렇지 못하면 김씨 일문은 과연 앞길이 막혔다. 왕자가 탄생하지 못할 줄을 미리 짐작이라도 하였지만, 다른 왕족 중에라도 그럴 듯한 사람을 어름어름하여 두었을 것이어늘,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왕족이라는 왕족에게는 모두 고약하게 대접을 하여서 서로 원수와 같이 되어 있는 지금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래도 자기네 일족에게 그다지 악감을 가지지 않은 왕족이 행여 어디 있지나 않은가 하고 그들은 "선원보"를 상고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선원보를 상고하여 거기서 요행 김씨 일문에게 악감을 가진 듯한 왕족을 발견한다 할지라도, 그 사람을 동궁에 책립하기에는 조 대비의 응낙이 있어야 한다. 이미 흥선과 밀약이 성립된 조 대비는 김씨 일문의 의견을 응낙을 할 까닭이 없다. 골라내어도 없을 것이고, 비록 있다 할지라도 조 대비가 응낙하지 않을 일을, 그래도 행여나 하고 선원보를 상고하는 그들의 꼴이 흥선에게는 가여웠다.
"화무십일홍이요 달도 차면 기우나니―"
선원보를 곁눈으로 보면서 얼근한 소리로 이렇게 읊고 있는 흥선의 속마음을 김씨 일문은 알 리가 없었다. 더구나 흥선이 이렇게 찾아다니는 것이 밑구멍으로 호박씨를 까는 행동으로는 추측도 할 수가 없었다. 흥선과 그들은 온전히 딴 나라의 사람이었다.
그 해 가을, 가을바람이 몹시 산산한 어떤 날 민치록(閔致祿)이 드디어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이 고해를 한 번 다녀 간 기념으로 금년 열 한 살 나는 어린 딸 하나를 남겨 놓은 뿐 쓰러지는 고목과 같이 거꾸러졌다.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없는 그의 임종을 보아 준 사람은, 그의 양아들로 들어온 민승호와 승호의 누님 되는 흥선 부인과 그의 어린 민 소저뿐이었다.
"조카님. 부탁이오. 이 천애의 고아―돌보아 줄 사람이 없는 가련한 애를 가꾸고 길러 주시오. 이것이 마음에 걸려 눈이 감기지를 않는구려."
야윈 얼굴에 두 줄기의 눈물이 흘렀다. 이 당부를 한 뒤에 얼굴의 주름살을 펴지도 못하고 다시 돌아올 기약이 없는 길을 떠났다. 초라한 그의 장례를 따른 사람은 흥선 내외와 민승호의 오누이뿐이었다. 이것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떡을 앞에 놓고 죽기까지 서로 맹렬한 투쟁을 계속한 흥선 대원군과 민 중전의 그 첫 대면이었다. 흥선은 민 소저를 보았다. 숭굴숭굴 얽기는 하였지만 영특하게 생긴 소녀였다.
"몇 살이냐?"
"열한 살이올씨다."
"열한 살, 열한 살에 오늘부터 집안 주인노릇을 해야겠구나. 애처러워라! 승호야. 네 책임이 크다. 고인의 유탁이려니와 네 친누이보다도 더욱 마음을 써야 한다."
흥선은 흰 댕기를 늘인 소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승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그 날부터 소녀는 팔 걷고 나서서 이 집안을 다스렸다. 이 날을 상속한 자는 민승호며, 따라서 민승호의 아내야말로 이 집안의 주부이거늘, 소녀는 이 집안을 자기의 집으로 여기고 몸소 모든 것을 지휘하고 다스렸다. 이 소녀의 너무도 영리하고 민첩함은 간혹 그 도를 넘어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하는 일까지 흔히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또한 모르는 바도 아니지만 소녀는 스스로 이 집안을 다스렸다.
"작은 아주머니!"
이 소녀가 너무도 간섭이 심하기 때문에, 집안 계집하인들은 소녀에게 이런 별명을 바쳤다. 그리고 뒤에서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그것은 기괴한 환경이었다. 소녀는 이 집안에서의 자기의 입장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이 집안은 무론 자기의 친아버지의 집안이로되, 지금은 딴 집에서 들어온 민승호의 아내(올케)가 이 집의 주인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소녀에게는 자기의 입장이 불쾌하였다. 불쾌하기 때문에 소녀는 자기가 가지지 못한 권리를 감행하여,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소녀가 즐겨서 읽는 책은 "좌씨전(左氏傳)"이었다. 온갖 현부전(賢婦傳)이며 수신서를 피하고 소녀는 어렸을 적부터 권모술수(權謀術數)를 연구하였다. 여자로서는―더구나 소녀로서는 당치 않은 "좌씨전"을 읽노라고, 자기가 참견할 가사에도 참견을 못하는 때까지 있었다.
이때의 이 소녀의 환경과 입장과 읽는 책과 경험한 경력이, 후일 대원군의 간택을 받아서 왕비로 책립된 뒤에 그가 사용한, 그 놀랄 만한 권모술수적 정치―정치라기보다 오히려 술책―을 낳은 것이었다.
"작은 아주머니―"
세상이 모르는 삼청동 한편 구석에서는 한 개의 작은 아주머니가 차차 장성하며, 그의 놀라운 지혜와 술모(術謀)를 기르고 있었다. 그의 양오빠 민승호는 소녀에게는 좋은 친구요, 동지요, 고문이었다.
가을도 가고 겨울도 갔다. 신유년이라 하는 해는 고요히 과거장으로 감기어 들어갔다. 표면 역시 아무 변화가 없이 지난 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적지 않은 변동이 있었다. 이하전이가 역모로 몰려서 죽었다. 왕자가 탄생되지 못하고 상감 승하하는 날에는, 이하전이가 제 이십 오대의 임금이 될 것으로 내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하전이가 죽은 뒤에는 당연히 거기 얽힌 문제가 생겨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조 대비와 흥선군 사이에는 밀약이 성립되었다. 이러는 가운데서도 상감의 건강은 나날이 좋지 못하여 갔다. 뇌빈혈을 일으키는 돗수가 더욱 잦았다. 용안이 종잇장과 같이 창백하게 되고 늘 수족이 떨리었다. 수라를 진어하는 양도 나날이 줄었다. 뿐만 아니라, 갑자기 아무 까닭도 없이 눈물을 소나기같이 흘리며 혼자서 체읍하는 일도 차차 많아졌다. 원자(元子)를 아직 못 보고 건강이 나날이 쇠해 가기 때문에, 김씨 일문에서는 갈팡질팡하였다. 아직껏 그 세가 너무도 컸는지라, 사면에서 미움만 사고 있는 김문은, 용상의 밑에 숨어서 그 지위를 그냥 보전하는 있었거늘, 이제 여차하는 날에는 그 일족을 잔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표면 무사 태평히 지나는 듯이 보이면서도 이 커다란 문제 때문에 그 일족은 갈팡질팡하였다. 어떻게 이 국면을 타개하려고 모이면 수군수군 의논하였다. 그러나 묘책이 나지 않았다. 수군거리면 수군거리느니만큼 근심만 더욱 커 갈 뿐이었다.
이러한 동안에도 그들은 더욱 급속히 더욱 맹렬히 매관 매작이라, 토색이라, 학정이라 온갖 못된 일을 더 발전시켰다. 어떻게 되면 정권을 잃을지도 알 수가 없는지라, 자기네가 정권을 잡고 있는 동안에 단 한 푼이라도 더 긁어 들이기 위하여 자기네 일족 안에서도 서로 경쟁을 하여 가면서 갖은 악행을 하였다.
흥선은 또 흥선으로서, 김씨 일문의 눈을 속이기 위하여 밤낮을 가릴 것이 없이 허튼 생활을 계속하며,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 일을 따라다니며 하였다. 남의 침뱉을만한 일은 반드시 행하고야 마는 흥선이었다. 이 모든 일을 하여 놓고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는 흥선이었다.
표면 특별한 대사건이 없이 지났다. 역사에 기록될 만한 일로는 겨우 이하전 역모 사건이라는 일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서는 흥선의 둘째도령의 운명이 작정된 해였다. 조선이라 하는 나라의 운명이 작정된 해였다. 김씨 일문의 잔멸의 원인이 생겨난 해였다.
아무런 악정(惡政) 아래서도 반항이라는 것을 할 줄을 모르는 이 어질고 착하고 기운 없는 백성과, 선정(善政)은 베풀고 싶지만 대신들의 낯이 어려워서 행하지 못하는 상감과, "선정"이라는 말과 "악정"이라는 말의 의의(意義)도 모르는 위정자(爲政者)들과, "의식(儀式)"이라는 것을 인생의 최대 중요사로 여기고 있는 선비들―이런 사람들의 모임인 조선이라는 나라에 신유년(辛酉年)이 고요히 타고 넘어갔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불려는지 예측할 수 없는 임술년(壬戌年)이 이르렀다.
임술년에 들어서면서부터 이 고요한 삼천리의 강토에 조금씩 풍파의 그림자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반항"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 백성에서 조금씩 반항의 움이 돋기 시작하였다.
제 20 장
신유년에서 임술년에 걸쳐서 정치의 타락은 극도에 달하였다. 태조 건국한 이래 근 오백 년 간, 이때만큼 정치적으로 타락해 본 적이 없었다. 당시에 권도를 잡은 김씨 일문은, 자기네의 세력을 그냥 유지하기 위하여 갈팡질팡하였다. 자기네들의 지금 권세의 근원되는 상감께 후사가 아직 없고, 그 위에 건강은 나날이 쇠약하여 가는지라, 언제 세상이 뒤집힐지 알 수 없으므로, 뒤집히기 전에 넉넉히 준비하여, 뒤집힌 뒤에도 낭패가 없게 하려고 전력을 다하였다. 세상은 어수룩하였다. 세상은 그들의 내막을 똑똑히 알지 못하였다. 그들의 세력이 천만 년이나 가려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온갖 일을 그들에게 힘입으려 하였다.
김병기는 날래고 꾀 많은 사람이었다. 병기의 집에 드나드는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원모(元某)라 하는 사람이 있었다. 병기는 특별히 그 사람을 사랑하였다. 원모는 사람됨이 착하고 꾀 없는 사람이었다. 꾀만 있는 사람이면 병기에게 그만큼 총애도 받는지라, 벌써 누만의 재산과 권력을 얻어 잡았을 것이로되, 직하고 꾀없기 때문에 매일매일 구차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병기로서 마음에만 있으면 원모를 어떤 고을의 수령쯤으로나 보내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병기는 원모의 인물됨을 잘 아는지라, 수령으로 보낼지라도 역시 꾀 없고 직한 원모는, 구차히 멋적게 지내기나 헐 것을 짐작하므로 그냥 버려두었다. 어떤 날, 병기의 집에 무슨 연회가 있어 사람들이 가득히 모여 있을 때였다. 병기는 갑자기 큰 소리로,
"원 아무개, 원 아무개!"
불렀다. 그리고 들어온 원모를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쳤다. 원모는 가까이 이르렀다. 중인이 보는 앞에서 병기에게 친히 불리어서 가까이 가는 것만 해도 여간한 우대가 아니었다. 그런데 병기는 원모의 귀를 끌어다가 소곤소곤 귓속말을 하였다.
"여보게, 내 오늘 밤 자네 자당 찾아가네."
음담이었다. 마음이 직한 원모는 벌컥 성을 냈다.
"대감, 그게 무슨 말씀이오? 철없는 소리를……"
얼굴을 검붉게 하여 가지고 원모는 소매를 떨치고 그만 제 집으로 돌아갔다. 원모가 돌아간 뒤에 병기는 입맛을 쩍쩍 다시며, 하인을 연하여 원모의 집에 보내서 노염을 끄고 오라고 하였다. 그러나 원모는 끝내 오지 않았다. 그 소문이 퍼졌다.
―병기가 많은 사람 앞에서 원모를 가까이 불러서 귓속말로 무슨 부탁을 하였다. 그러매 원모는 그것을 거절하고 돌아갔다. 돌아간 원모를 병기는 연하여 하인을 보내어 달랬다. 그러나 원모는 종내 듣지 않았다. ―이런 소문이었다.
그 다음부터 가난하고 직한 원모의 집에는 매일 "청대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무슨 일인지는 알 수 없으나 병기의 청을 거절하고, 또한 거절당한 병기가 도리어 미안해하는 것을 보매, 원모는 병기에게 여간 존경받는 인물이 아니라―이런 견해 아래서 원모의 집은 "청하러 오는 사람"들 때문에 장마당같이 되었다. 이리하여 김병기는 귓속말 한 번으로, 고지식하고 돈벌 줄 모르는 원모를 저절로 앉아서 돈이 생기게 하여 주었다. 이것은 병기의 슬기로운 성격을 말하는 이야기인 동시에, 또한 당시 병기―뿐만 아니라, 김씨 일문의 세도가 얼마나 당당하였는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김씨 일문의 일거일동의 반향은 이만하였다. 진실로 밝은 하늘조차 흐리게 할 만한 세도였다.
당시의 정계(政界)가 얼마나 타락하였는지, 여기 몇 개의 에피소우드로써 그 상황을 말하여 보겠다. 함경도 사람 홍순필―서울 올라와서 물을 지고 있었다. 순필이의 동생도 역시 형과 같이 물을 져서 입에 풀칠을 하고 있었다. 동생은 나이가 스물, 얼굴이 예쁘장스럽게 생겼다. 그 동생이 우물에서 늘 물을 긷는 동안에, 어느덧 나주 합하 양씨(영의정 김좌근의 애첩) 집 하인과 사귀게 되었다. 사귀게 되자 그 집 행랑에도 놀러 다니게 되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음탕한 양씨의 총애까지 사게 되었다. 동생이 양씨의 총애를 사게 된 얼마 뒤에 형 되는 홍순필은 함경도 어떤 고을의 수령을 배수하게 되었다.
―이리하여 어젯날까지의 물장수는 당당한 현령이 되어, 양씨의 주인 하옥 김좌근에게 이끌리어 상감께 사은숙배를 하러 입궐을 하였다. 몸에 어울리지 않는 관복을 입기는 하였다. 양씨며 하옥에게 말을 많이 들었거니, 꼴은 되었건 안 되었건 곡배(曲拜)를 드리기는 하였다. 그러나 그 다음이 장관이었다.
"노형이 나랏님이오? 처음 뵙습니다. 나로 말하자면 함경도 아무 데 사는 홍순필이라는 사람이오."
이 현령은 상감과 통성명을 한 것이었다. 어진 상감이었다. 그 위에 전생을 초라히 지난 상감이었다. 상감은 이 무지를 관대히 보았다. 그리고 쓴웃음만을 웃었다. 당신의 전생을 생각하여 순필의 어리석음을 탓하지 않았다.
그러나 당면의 책임자인 영의정 하옥 김좌근이 가만히 볼 수가 없었다. 유사 이래로 고금동서를 무론하고, 국왕과 통성명을 한 유일인인 홍순필을 하옥은 황황히 끌고 도로 나왔다. 임지(任地)에 부임을 함에 임하여, 이 현령은 다시 상감께 하직을 고하러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두 번째 들어갈 때는 이전의 망신을 미루어, 하옥은 끈끈히 홍에게 말을 주의시켰다. 임금께는 상감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자기를 가리켜서는 신이라 하여야 하는 것이며, 온갖 말에 지극히 존경하는 말을 써야 한다고 누누이 일러 주었다. 이리하여 다시 입궐한 때였다. 얼마 전에 창피를 당한 이 현령은, 이번은 그 날의 실패까지 모두 회복하려고 잔뜩 마음을 벼르고 들어가는 참, 하옥이 절하기 전에 먼저 덥썩 절을 하고 주저앉았다.
"여봅쇼 상감, 며칠 전에는 진실로 안 됐사와요. 그 때 내―아니―저……"
말이 막혔다. "신"을 잊었다. 그, 저, 한참을 어물거렸다. 무슨 발에 신는 것임에는 틀림이 없었으나, 미투린지 갖신인지 버선인지를 잊었다. 그래서 한참 어름거리다가,
"버선이 그만 알지를 못 했사와요."
하여 버렸다. 상감도 알아 듣지 못하였다. 하옥도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그 장면은 어름어름 지났다. 이리하여 무사히 하직을 고하였다. 이 현령이 대궐에서 나와서 자기의 동생에게 한 술회―
"임금에게는 저를 기껏 낮추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나"라지를 않고 "버선"이라고 기껏 낮추 한단 말이로다."
이러한 조제남조의 방백 수령들이 팔도 삼백 주로 퍼져 나갔다. 그들에게 선정(善政)이 있을 까닭이 없다. 이 땅의 옛 말의 대부분이 무지한 원님의 넌센스한 정사를 비웃음에 있음이 그 근원이 여기 있다. 진실로 전무후무한 수령 조제남조의 시대였다.
강생(姜生)이라는 사람과 옥생(玉生)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두 사람이 다 같은 고을에서 같이 배우며 자란 젊은이었다. 얼마만큼 배운 뒤에 이제는 배움을 중지하고 벼슬이라도 하기로 하였다.
"난 내 고을 수령 노릇을 하겠네."
"나도 내 고을서 하겠네."
같은 고을서 자란 두 사람이 제각기 제 고을의 수령을 별렀다. 그들이 경쟁을 하다시피 벼르기만큼, 그들의 자란 고을은 부읍(富邑)이었다. 이리하여 두 사람은 꼭 같은 목적을 가지고 묏산자 보따리를 하여 지고 함께 서울로 올라왔다. 한 사마이 앞에 돈 만 냥씩 지녀 가지고―
"누가 먼저 성공하나 어디 봄세."
이렇듯 경쟁이 시작되었다.
강생은 어떻게 어떻게 하여 김병기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얻었다. 그 동안에 옥생은 역시 어떻게 어떻게 하여 김여기의 아버지의 애첩 나합 양씨에게 가까이할 기회를 얻었다. 병기에게 가까이한 강생은 병기에게 드나들 동안 병기의 인물을 알았다. 교만하고 혈기 있고 뽐내기를 즐겨하고 체면을 매우 지키면서도, 또한 아첨을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는 병기의 인물을 알아본 강생은, 병기가 알 듯 모를 듯이 뇌물을 드리며 알 듯 모를 듯이 아첨을 하며, 이리하여 얼마를 지내는 동안, 병기에게 사랑을 받게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이러한 얼마 뒤에 강생은 목적하였던 바와 같이 자기의 고향의 군수를 벌었다.
이러는 동안, 옥생도 또한 목적하였던 바와 같이 양씨의 마음까지 사게 되었다. 옥생이 양씨의 마음을 산 지 얼마 뒤부터, 양씨는 하옥 대신에게 밤마다 옥생을 모군 군수로 시켜 달라고 졸랐다. 양씨의 청이면 아무 것이라도 듣는 호인 하옥 대신은, 양씨의 엉덩이를 두드려 주며 그러마고 승낙을 하였다. 이리하여 양씨에게 승낙을 한 하옥은 자기의 아들 병기를 불렀다. 그리고 옥생을 모군 군수로 임명되도록 주선을 하라고 명하였다.
병기는 딱하였다. 강생을 모군 군수로 임명시킨 지 불과 사오 일인데, 이제 또 다른 사람을 주선하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러나 아버지의 명을 거역할 수가 없는 병기는, 유유낙낙하고 물러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모군에는 현재 군수가 있다. 그런데 병기는 강생을 보내기 위하여 그 군수를 "수령이 심하여 민원이 크다"는 구실로써 파면하도록 죄상을 하여 그렇게 꾸민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 또한 옥생을 어떻게 임명하도록 운동하나? 수단은 한 가지밖에는 없었다. 이제 취소는 못할 노릇―강생을 또한 파면하고 옥생을 임명하도록 할 밖에는 도리가 없었다.
"모군 군수 강모는 수령이 심하와 민심이 동요되옵고, 그대로 방치하였다가는 불상사가 생길 줄로 아뢰옵니다."
예궐을 하여 이렇게 상감께 아뢸 때는, 병기의 등에서도 식은땀이 흘렀다. 이리하여 강생은 파면이 되었다. 돈 만 냥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서 병기를 알아 가지고 운동한 강생은, 원하던 바대로 군수를 얻어 하기는 하였지만, 하여금 씨에게 운동한 옥생에게 밀려서 닷새 만에 파면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때는 벌써 강생은 임지(任地)를 향하여 출발을 한 뒤였다. 군수에 임명이 되기가 바쁘게 어서 금의환향을 하고자, 강생은 이튿날로 고향을 향하여 출발한 것이었다. 자기의 직이 파면된 것은 알지도 못하고―
서울서 이미 파면된 강생은, 그런 줄도 모르고 호호탕탕이 여행을 계속하였다. 하루 바삐 금의로 환향을 하여 뽐내 보고도 싶었다. 그러나 또한 내려가는 길에 거드럭거리며 산천 유람도 하고 싶었다. 이리하여 강생은 이 고을 정자에서 하루, 저 고을 누각에서 이틀, 놀아 가며 고향으로 내려갔다. 고향에 거의 다달았다. 한 놈의 사령은 길을 앞서서 신관 사또의 부임을 보하러 달려갔다.
그러나 달려갔던 사령은 부시시 도로 돌아왔다. 신관이 벌써 어제 부임을 하였다는 것이었다. 강생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구관이 아직 있다면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자기 이외에 신관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강생은 이렇게 생각하였다. 어떤 협잡배놈이 자기 이름을 도적해 가지고 못된 일을 하는 것이어니 그리고 또 이렇게 밖에는 해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호령 호령해서 배행하는 하인 놈들을 모두 먼저 보내서, 남의 이름을 도용하는 흉한을 잡아 가두라고 한 뒤에, 가마를 몰아서 고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는 사실 벌써 신관이 부임을 한 것이었다. 강생이 멋이 들어서 산천 유람을 하면서 천천히 내려오는 동안, 옥생은 길을 채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생은 임지에 도착도 하기 전에 벌써 구관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사태를 짐작하는 옥생은, 머리 관속에서 분부를 하여 구관 사또를 영문에 맞았다.
"구관 사또 행차요―"
위세 좋게 영문으로 달려 들어오던 강생의 행차가 이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을까? 옥생이 벙글벙글 웃으며 강생을 동헌에 맞았다. 먼저 부임한 신관이 지금 부임하러 오는 구관을 맞는 것이었다. 신관이자 또는 구관인 강생을 환영 겸 송별하는 성대한 연회가 그 고을 강변 누각에 열렸다. 마지못하여 거기 출석한 강생의 얼굴에는, 연하여 싱거운 미소가 스치고 지나갔다.
"강형, 미안할세!"
"아니, 그럴 것 없지!"
자기도 역시 구관을 몰아 보내고 이곳으로 온 강생인지라, 옥생뿐을 나무랄 수가 없었다. 강생은 깨달은 바 있었다. 벼슬의 욕망이 앞설 때에는 돌아볼 여유를 잃었거니와, 지금 이렇게 되고 보매, 현재의 벼슬의 허황함이 절실히 느껴졌다. 강생은 그 고을을 떠나서 산골로 이사 갔다. 자기의 발잔등을 밟고 앞서 온 옥생이 또한 며칠이나 군수 노릇을 하다가 남에게 자리를 앗기울지, 그것을 생각해 보매, 지금 좋다고 덤비어 대는 옥생이 도리어 가련해 보였다. 이리하여 수령 방백들의 채변이 무상하였다.
조제남조의 방백!
지위의 보장이 없는 수령!
조세 남조의 수령 방백이라 할지라도 한 군데 오래 머물러 있으면, 그 곳 지리 풍속에 익어져서, 혹은 후일에는 명관이 될는지도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사흘이 멀다 하고 갈아 내는지라, 명관도 생기지 않을뿐더러, 명관이 있다 하더라도 명관으로서의 재능을 발휘할 도리가 없다.
그런지라, 많은 돈을 써서 수령의 자리를 산 그들은, 자기가 부임하여 있는 (언제 갈릴지 모르는) 짧은 기간 안에 자기의 밑전을 뽑고, 그 위에 얼마간 더 벌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인부를 차고 부임하는 수령 방백들은, 부임하기가 무섭게 벌써 돈 긁어 올릴 방법을 도모한다. 천 년 묵은 여우와 같은 관속들은 이런 수령들의 고문으로는 또한 능한 인물이었다. 이리하여 별별 기괴한 학정은 전개되어 나아가는 것이었다.
이러한 조제남조의 방백 수령들이, 도임해 있는 짧은 기간 안에 자기의 밑천을 뽑기 위하여는, 어떤 수단을 취하며 어떤 방법을 취하나? 무론 그 수단 방법에 있어서는 일정하지 않다. 여기 그 한두 가지의 이야기를 적어 보자. 평안도 어떤 촌에 돈냥이나 가지고 있는 과부가 하나 있었다. 혈혈단신의 과부였다. 다만 그의 남편이 적지 않은 재산을 남기고 죽었으므로 그것으로 생활만은 부족 없이 지내는 사람이었다.
그 집에는 개를 한 마리 치고 있었다. 집 지키기 겸, 가족 겸, 동무 겸 하여, 꽤 종자도 좋은 개 한 마리를 치던 것이다. 그 개는 몸집은 희고 발은 누러므로 황발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애지중지하였다. 그 까닭으로 그 동리에서는 그 집을 가리켜 황발이네 집이라고 하였다. 사내 주인이 없고 다른 일가가 없는지라 흔히 있는 예대로 그 집에 기르는 개의 이름을 따서 그 집을 황발이네 집이라 일렀다.
재산이 넉넉하여 그 근처에 토지도 많은지라, 그 집은 그 근처에서는 꽤 유명한 집이었다. "황발이네 집, 황발이네 집"하여 소문난 집안이었다. 황발이네 집이 돈냥이나 있다는 소문이 그 고을 원님에게 들어갔다. 읍내의 부민을 샅샅이 고르던 원님은, 이 황발이네 집을 놓칠 까닭이 없었다. 그리고 곧 나라에 상계하였다.
"소관의 관내에 황발이라 하는 한 기특한 백성이 있사와 여사여사하고 여사여사한 일을 하여 표창할 만하오니, 황발이에게 선공감 가감역(繕工監假監役)을 제수합시면 성은(聖恩)이 이 위에 없겠나이다."
하는 상계였다. 이리하여 모군 모동에 사는 황 발(黃潑)이에게 선공감 가감역을 시킨다는 직첩이 내리게 되었다.
한 개의 희극은 전개되었다. 군속들이 나라의 직첩을 받들고 풍악이 자지러지게 황발이의 집으로 왔다. 그리고 황발이의 기특한 행동이 위에까지 달하여, 선공감 가감역을 시키라는 분부가 내렸다는 말을 전하였다. 불러 보니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고 한 마리의 개였다. 일이 난처하게 되었다. 이제 "황발이는 사람이 아니요 개"라고 도로 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군속들은 연지구지하였다. 그런 뒤에 한 가지의 방책을 안출하였다.
황발이의 집에 언젠가 도적이 든 일이 있는데, 그 때 황발이가 몹시 짖어서 도적은 목적을 달하지 못하고 달아났다. 군속들은 이 소문을 캐내어 가지고, 이것을 구실삼아 어리석은 과부를 속였다. 이 황발이의 기특한 소문이 나라까지 올라가서 성은(聖恩)이 금수에까지 미쳤다는 기괴한 결론을 빚어 낸 것이다. 이러한 기괴한 말은 과부를 몹시 기쁘게 하였다. 재산은 있으나 미천하던 자기의 집안이, 이제는 개의 덕으로 이 근린의 당당한 명문이 되려니 하였다. 그래서 흔연히 벼슬을 받기로 하였다.
상납전(上納錢) 팔천 냥, 중비(中費) 삼천 냥을 지출하였다. 그리고 황발이는 가감역이 되었다. 그 뒤부터는 과부는 개에게 비단 옷을 지어 입히어 가지고 자랑스러이 늘 나다녔다. 그 뒤부터는 그 집을 뉘라서 감히 황발이네 집이라 부르는 사람이 없었다. 당당한 "황 감역(黃監役)의 댁"이었다. 이 양반 개는, 그 뒤 몇 해를 더 살다가 늙어 죽었다. 개는 죽은 뒤에도 그 집은 역시 "황 감역의 댁"이라 불렀다. 성은이 금수에게까지 미친 것이었다.
××감사 모는 재임 일곱 달 동안에 수십만의 재산을 만든 사람이었다.
당시의 방백들이 행한 온갖 일을 다한 뿐 아니라, 지혜 많은 그는 그의 독창적 취재법까지 발명한 것이었다. 관내의 부민들을 모두 긁어 먹는데, 혹은 벼슬을 갖다 씌워 주고 상납전을 벗겨 먹고 중비를 받아먹으며, 혹은 명목 없는 죄를 씌워 가지고 잡아다 옥에 가두고 뒤를 두드려서 뇌물을 받아먹고, 혹은 한협으로 받아먹고―이런 별별 짓을 다 하여 벗겨 먹을 대로 벗겨 먹기는 하였는데 아직도 먹지 못한 부민들이 많았다. 너무도 자꾸 벼슬을 시키거나 잡아다 가두기도 어색한 노릇이었다. 그래서 연구한 끝에 한 가지의 묘책을 안출하였다.
가사는 어떤 날 한 부민(富民)을 불렀다. 그리하여 첫째로는 그 백성이 덕이 많음을 칭찬하고, 그런 뒤에 이런 말을 하였다.
나라에서는 이즈음 재정도 곤핍하고 강기도 매우 퇴폐되었으므로, 그 진흥책으로 각 곳에 덕 있고 재간 있는 재산 있는 사람들을 모두 골라서 벼슬을 시키기로 하여, 그 가운데는 당신도 끼었으니, 치하 드리노라―이런 뜻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좀 상세히 변역하자면, "나라에서는 재정이 곤핍하여 지금 재산 있는 백성들에게 벼슬을 팔려는데, 당신도 그 축에 끼었다."하는 뜻이었다.
벼슬을 하나 하자면 상납전이라 중비라 하여ㅡ적어도 이삼만 냥은 걸린다. 그래서 백성은 감사에게 재쳐서 얼마쯤이나 들겠느냐고 물어보았다. 감사는 미리 조사한 바 그 백성의 재산이 합계 삼만 냥쯤 되는 줄을 짐작하면,
"아마 못해도 이만 오천 냥은 걸리겠소."
대답하였다.
부민에게는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만 오천 냥을 내고라도 어떤 고을 수령이라도 되면 밑천 뽑을 길도 있겠지만, 감사의 말하는 벼슬은 명예직에 지나지 못하는 것으로서, 그 벼슬을 한달사 혹은 뽐내기는 할 수가 있을지 모르지만 생활은 파멸이 되고 말 것이다.
백성은 제 집으로 돌아가서부터는 식음을 전폐하고 자리에 누웠다. 나라에서 벼슬을 주신다는 것은 감사하지만, 그 벼슬을 하면 이튿날부터는 굶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나라에서 주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 이리하여 누워 있는데 어떤 날 호방(戶房)이 이 백성을 찾아왔다. 여기서 상의(商議)는 거듭되었다. 백성은 자기의 진심을 토로하였다. 벼슬은 고맙지만 벼슬을 하면 그 날부터 굶어야 할 지경이니, 이 딱한 사정을 어찌하리까고 사정하였다. 호방도 매우 동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호방도 머리를 수그리고 한참 생각한 뒤에, 이 난경을 모면할 묘책을 하나 강구하였다. 즉, 지금 사또는 나라에서도 매우 세가로서, 사또가 잘 주선하면, 혹은 그 벼슬을 모면 할 수가 있을는지도 모르겠다고―
며칠 뒤에, 이 백성은 호방에게 삼천 냥의 뇌물과 감사에게 만 냥의 뇌물을 바치고, 그 벼슬을 모면하기로 하였다. 그 뒤부터 감사는 관내의 부민들을 차례로 불러서 이 "말 벼슬"을 시켰다. 그리고 벼슬 모면비로서 그 백성의 재산의 약 절반쯤 씩을 거두어 올렸다.
마달잇벼슬―
"이제는 마달이가 없느냐?"
벼슬을 마달 사람―즉 "마달이"였다. 이 마달이를 차례로 들추어 내서 이 감사가 긁어 올린 재산이, 재임 일 곱 달 동안에 육십여 만 냥이었다. 눈 뜬 사람의 코를 베는 것과 다름이 없는 교묘한 정책이었다.
군포(軍布)라 하는 것이 있었다. 첨정(簽丁―지금 이름으로 微兵)은 상민들의 의무제였다. 상민으로 태어난 이상에는 첨정에 뽑힐 의무가 있었다. 먼저 군적(軍籍)에 등록이 된다. 그런 뒤에는 붙들리어 가서 병대에 복역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한 집안에 장정이 첨정에 나가게 되면, 그 뒤는 그 집안은 호구지책이 없게 된다. 그래서 이것을 모면하는 방책으로 일정한 세반을 관가에 바치고 피하는 것―말하자면 첨정 모면비가 "군포"였다.
군포는, 베 두 필이든가, 돈 넉 냥이든가, 쌀 열 두 말이든가, 이러한 것이 원 제도였다. 그러나 첨정의 제도에 일생에 한 번이라든가 일 년에 한 번이라든가 하는 제한이 없었다. 이 점을 악관들은 악용하였다. 그 집안이 돈냥이나 있는 백성이면, 일 년에 두 번 세 번 첨정에 넣었다.
뿐만 아니었다. 처음에는 일정한 액수를 작정하여 제정한 바이지만, 차차 흐리게 되어서, 되는 대로 그 집안의 재물을 압수하여 가게 되었다. 소고 말이고, 반닫이고 무엇이고를 막론하고 쓸만한 물건이 있으면 거두어 갔다. 그 위에 첨정에는 나이의 제한이 없었다. 이것 역시 악관들의 이용하는 바가 되었다. 늙은이, 어린애를 막론하고 돈냥이나 있는 집안에 사내라고 생긴 것이 있기만 하면 군포를 징수하였다.
무론, 억지로라도 피하려면 피하지 못할 것은 아니다. 어린애게 무슨 군포냐고 억지로 거절하려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것을 거절하였다가는 이 뒤에 반드시 무슨 다른 벌이 그 집에 내렸다. 그리고 그 때 내리는 벌은 군포 징수의 몇 곱이 되는 혹독한 종류의 것이다. 그런지라, 뒤가 무서워서 할 수 없이 이를 악물고 이 악제도에 복종하는 것이다. "불알이 원수"라는 유명한 속담이 이 때 생겨난 말이었다. 그것 있기 때문에 이 곤경을 겪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는 할 수 있는 대로 그 집에 사내가 나면 그것을 관가에는 감추어 두었다.
놀라운 악정이었다. 상납미(上納米)를 벗겨 먹는다. 환곡미(還穀米)를 속여 먹는다. 경주인(京主人), 영주인(營主人)이 가운데서 잘라 먹는다. 그 고을에 좀 낡은 정자나 누각이라도 있으면, 그것을 수리한다는 핑계로 각호에 얼마씩 거두어서 벗겨 먹는다. 이런 핑계 저런 핑계, 핑계를 만들어 내어 가지고는 벗겨 먹는다.
당시에 있어서 가장 업적(業績)이 많았다는 수령 방백은, 가장 많이 벗겨 먹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한 상관이 벗겨 먹노라면 그 수하에 달린 많고 많은 속관들이 또한 그만큼 벗겨 먹는 것이었다. 한 상관이 십만 냥을 벌었다 하면, 속관들이 먹은 것까지 합하면 이십만 냥은 넘을 것으로서 백성의 곤란은 그만큼 컸다.
이렇게 오중 육중 칠중 팔중으로 벗기우는 백성들은, 이 학정 아래서 허덕허덕 그들의 삶을 계속하였다. 한 마디로 크게 고함도 치지 못하였다. 고함을 칠지라도 들어 줄 위(上)가 없는 가련한 백성들이었다. 위로는 삼공육경으로부터 아래로는 말청의 천리(賤吏)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백성을 좋은 봉(鳳)으로 여기고 벗겨 먹기만 위주하지, 굽어보고 보호하여 주려는 어진 상관을 못 가진 이 가련한 백성들은, 숨 한 번 못 쉬며 숨이 박혀서, 가들의 가늘고 참혹한 생활을 계속하는 것이었다.
이 나라의 백성의 위에는 아직껏 인군(仁君)이 임하여 본 적이 적었다. 여러 분의 명군은 있었다. 그러나 참으로 백성을 사랑할 줄 아는 임금은 진실로 드물었다. 놀랄 만한 문치(文治)의 업적을 남긴 세종이며, 국토 확장에 그 거둠이 적지 않은 세조며, 모두 현군이며 명군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런 분들의 큰 업적까지라도 겨우 향대부의 위에까지 미쳤지, 그 이하의 백성에게까지 미친 적이 적었다. 그런지라, 이 나라의 백성들이 자기네의 통치자에게 가지는 바 관념은 지극히 모호하고 약한 것이었다.
옛날 단종이 선위를 하고 세조가 등극할 때에도, 눈 한번 까딱하지 않고 이 방계(傍系)의 임금―좀더 혹심하게 말하자면 탈위한 새 임금을 묵묵히 맞고 그 아래 공손히 복종한 백성이었다. 그로부터 세 대 더 내려와서 제 구대의 임금 성종이 승하하고 연산군(燕山君)이 오른 뒤의 일이었다.
연산군은 무론 많은 선비를 죽였으며 음탕한 일을 많이 한 임금이었다. 그러나 이씨 수백 년 간에 연산군보다 더 많이 선비를 죽이고 더 많이 황음하였던 임금이 없는 바가 아니다. 더구나 연산군의 그 모든 정도에 어그러진 행동은, 어떻게 보자면, 횡사한 당신의 어머니의 원수를 갚는 행동으로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만약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어, 연산군의 아드님이 그 다음의 위를 잇고―이리하여 전면히 내려왔으면, 연산군은 지금은 연산군이 아니라 무슨 종(宗)이든가 무슨 조(祖)로서 역사상에 뚜렷이 여러 가지의 업적이 특필되었을 것이다. 왜? 연산군은 정당한 왕통이거니, 연산군을 배반하는 사람은 당연히 역적일 것이다.
그러나 일이 순조로이 진행되지 못하였다. 연산군 제위 십이 년 뒤에 성희안(成希顔), 박원종(朴元宗) 등이 의논을 하고 임금을 폐하기를 도모하였다. 말하자면 다시 생각할 여지가 없는 역모였다. 그리고 그 일이 성공이 되어 진성군(晋城君)이 영립되어 신왕이 되었다. 소위 중종(中宗)의 반정이었다.
일이 성공이 되었기에 무론 "반정"이라 하는 빛 좋은 명색이 붙었다. 만약 실패로 돌아가기만 하였더면 역모로 모두 함몰했을 것이다. 이 놀랄 만한 역모의 성공에 대하여서도, 이 백성은 눈 까딱 아니 하고 방관하였다. 역모가 실패로 돌아갔을지라도 이 백성은 역시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왕위는 왕족이 잇(繼)는 것―
이런 평범한 생각으로서 백성은 이 변동을 본 것이다. 그러나 이때의 이 사건도(역사의 이면이 증명하는 바에 의지하건대) 결코 연산군의 실정을 들추어 낸 것이 아니고, 단지 재상들의 권력 다툼에 연산군이며 중종 대왕이며는 그 한 역할을 맡은 바에 지나지 못하였다. 그로부터 몇 대 더 내려와서 또한 광해군(光海君)의 사건이다.
광해군은 연산군과 같이 황음하지도 않았다. 단지 신하들을 지배하기에는 시대가 험악했기 때문에, 그의 재위 십오 년간은 대북(大北)과 서인(西人)의 굉장한 당쟁(黨爭)으로 종시하다가, 이 당쟁의 결말로서 소위 "인조(仁祖)의 반정"이 생기게 되었다. 말하자면 몇 대 전의 "중종의 반정"과 꼭 마찬가지로, 놀라운 역모 사건이 여기서 또 다시 성공이 된 것이었다. 선왕을 위하여 떨구어 군(君)으로 강봉하고, 종친 중의 한 사람이 위에 오른 것―말하자면 왕위 찬탈이었다. 그러니 이때의 왕위 찬탈에 있어서도, 이 나라의 백성은 역시 이전 연산군의 때와 꼭 마찬가지로 아주 냉담한 태도로 나왔다.
인조의 반정은 곧 뒤를 이어서 또한 이괄(李适)의 난이 있었다. 인조의 반정에 그 일등공은 이 괄에게 있었는데, 그는 논공행상(論功行賞) 때에 일등 공에 들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서 거기 불평을 품었었는데, 그 가운데는 또한 이간하는 무리까지 있어서, 이 괄이 반란을 도모한다고 나라에 등장을 들었으므로, 그 때문에 나라에서는 이 괄을 토벌하기로 하였다. 여기서 이 괄은 비로소 자유행동을 취하였다. 그리고 군사를 몰아 가지고 일사천리의 세로 서울을 짓부쉈다.
신왕 인조는 놀라서 신하들을 거느리고 공주로 피하고 서울은 이 괄의 세력 범위 아래 들어갔다. 서울에 입성을 한 이괄은 선조의 열째 아드님이요 선왕 광해군의 동생 되는 흥안군(興安君)을 모셔서 왕으로 추대를 하고 새 정부를 조직하였다. 이리하여 일이 여기서 그쳤으면 무슨 "흥안군의 반정"이라 하고, 인조는 그 이름조차 역사상에 올라 보지 못했을 것이다.
이 이괄의 반정(혹은 반란)에 대하여도 이 나라의 백성은 아주 무관심한 태도를 취했다. 또 임금을 추대하게 되거니 이쯤 생각하고 열심히 신왕 환영의 준비만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공주로 난을 피한 인조의 신하들이 군사를 몰아 가지고 다시 왕위 회복의 난리를 일으켰다. 이 난리에 있어서 이 괄 일파가 이겼으면 "인조의 반란"이라 일컫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행인지 불행인지, 이 괄이 참패를 하여 서울을 내어 버리고 달아나다가, 이천(利川)에서 자기의 부하에게 죽은 바 되고 다시 인조 복위의 세상이 되었다. 이리하여 이 괄의 것은 "반정"이 아니고 "반란"으로 끝나게 된 것이다. 이렇듯 머리가 어지럽도록 왕위가 변동될 동안도, 이 나라의 백성은 아주 무관심히 이를 보았다.
―웃사람은 웃사람.
―우리는 우리.
이렇게 갈라 붙이고 거기 대하여 참견을 하든가 간섭을 하든가 할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오로지 자기네의 조반과 저녁에 분주하였다.
이 백성의 의견을 듣자면, 웃사람은 웃사람이요, 자기네는 아랫사람이거니, 무엇이든 명령을 하면 복종할 것이요, 또한 웃사람대로 존경을 하면 그뿐이지, 서로 아무 유기적 연락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껏 자기네들을 사랑해 주는 인군(仁君)을 가져 보지 못한 이 백성에게는 웃사람에게 대하여는 당연히 바쳐야 할 존경의 염밖에는, 친애라든가 애모라든가 하는 관념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자기네 집 광의 쌀 항아리와 아무 관련이 없는(뿐만 아니라 도리어 자기네들의 쌀 항아리들을 긁어 가는) 웃사람에게 대하여 친애의 염이 생겨날 까닭이 없었다.
그런지라, 이 백성에게 있어서는 웃사람의 심부름꾼인 수령 방백들에게 대한 관념도 아주 담박한 것이었다. 웃사람의 심부름꾼이라 하는 노릇이거니 한다. 이 이상 별다른 관념을 가져보지 못하였다. 따라서 "유유복종"―이것이 이 백성의 유일의 모토였다. 하라는 대로 하고―하기 싫으면 몰래 피하고―그뿐이지, 소위 거역을 하여 보지 않았다.
이 순하고 근하고 직하고 온화한 국민은, 몸이 비록 역경(逆境)에 있을지라도, 모든 것을 단지 팔자로 돌려 버리고, 웃사람에게 대하여서는 절대 복종으로 종시하였다. 지금의 이 놀라운 학정의 아래서도 이 백성들은 연하여 자기의 팔자를 혀를 차며 조반과 저녁에 분주하였다. 누구를 원망하든가 불복을 한다든가 거역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알지도 못하는 순량한 백성이다.
그러나 온순함에도 한도가 있는 것이다. 웬만한 곤란은 모두 팔자소관으로 단념하여 버리는 이 백성이로되, 참을 수 없게까지 곤란이 심해질 때는 드디어 들고 일어서는 것이었다.
임술년(壬戌年) 이월에는 진주에서 드디어 민요가 일어났다. 백성들은 모두 몽치와 대창을 가지고 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진주 이방을 박살하고 병사 백낙신(白樂辛)을 잡아내려고 돌아다녔다. 백낙신의 횡포가 너무도 심하여, 이 온량한 백성으로도 참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이 보도가 조정에까지 이르른 때, 조정에서는 망지소조하였다. 아무런 짓을 하더라도 그냥 참는 이 백성의 이번의 봉기는, 궁중만 놀라게 하였을 뿐 아니라, 대신들도 어쩔 줄을 모르도록 놀랐다. 부호군 박규수(副護軍朴珪壽)를 안핵사(按覈使)로 파견하여 사실을 조사시켰다.
그런데 이 안핵사가 조정에 들어오기 전에 사월에 전라도 익산에서도 또 민요가 일어났다. 수천의 군중은 군청으로 달려가서 군수 박희순(朴希淳)을 찾아내려다가 찾지 못하고, 그 대신 박의 어머니를 찾았다. 박의 어머니를 찾아 낸 군중은 옷을 모두 찢어서 벌거벗기고 물과 비(?)를 가지고 박의 어머니의 하문(下門)을 닦으면서,
"이 구멍이 못되어서 못된 자식을 낳았다."
고 야단들을 하였다.
이 보도가 조종에까지 들어온 때는 어진 상감도 종래 당신의 노염을 감추지 못하였다. 재상들 앞에서도 하고 싶은 말씀도 못하고 어릿어릿하기만 하던 상감도, 이 때 뿐은 영의정 김좌근을 힐책하였다.
"수상, 이게 웬일이오니까? 어제는 진주, 오늘은 익산 백성에게 죄가 있는지, 방백 수령에게 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게 무슨 일이오니까? 모두 내가 불민한 탓일까?"
여기 대하여 좌근은 아무 말도 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부호군 이정현(副護軍李正鉉)을 안핵사로 즉시 파견을 하였다.
그런데 그 사월달에 또 경상도 개령(開寧)에 민요가 일어났다. 개령과 때를 같이하여 전라도 함평(咸平)서도 또한 민요가 일어났다. 연달아 일어나는 이 민요에 조정에서도 어찌하여야 할지 그 방책을 강구하지 못하였다. 진주 사건은 병사 백낙신을 고금도(古今島)에 정배를 보내어 이렁저렁 결말을 짓고, 익산 사건은 군수 박희순을 벌을 하여 이렁저렁 결말을 짓기는 지었다. 그런데 그 해 동짓달에 함경도 함흥에도 또 사건이 생겼다. 민요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으나, 문제가 적지 않게 벌어져서 안핵사로 호군 이참현(李參鉉)을 파견하였다.
그로부터 두 달이 지나서 계해년 정월에는 제주도(濟州島)에서 또 민요가 일어났다. 일 년이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여섯 번의 사건이 생겨난 것이었다. 위에서 어떤 일을 하든지 간에 다만 유유복종하던 이 온화하고 순한 백성의 속에도, 정도가 넘는 학정에 대하여는 맹렬히 반항하는 끊는 피가 있었던 것이다. 존경하면서도 또한 반항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네들의 기괴한 운명과 환경을 탄식하면서도, 이 백성들은 분수가 넘는 학정에 대하여는 드디어 반항을 하였다.
반항할 줄을 모르는 백성이 아니었다. 오직 착하고 어질고 순하기 때문에 웬만한 일에 대하여는 눈을 꾹 감고 참아 두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참다 참다 못하여 정 참을 수가 없게 되는 때에야 비로소 반항을 시험하여 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 순간 반항하여 본 뒤에는 또 다시 방관자의 태도로 돌아서고 마는 백성들―
이 일 년이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여섯 군데서나 분요가 일어난 일 때문에 당시의 정부의 주인인 김씨 일문은 쩔쩔매었다. 백성과 집권자의 사이의 의가 이렇듯 좋지 못하니 이것이 웬일이냐고, 상감은 연하여 김좌근에게 꾸중을 하였다.
그것은 전대 미문의 일이었다. 어떻게 하다가 한 곳에서 민요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 책임이 적지 않거늘, 여섯 군데서나 일어난 것은 정치가 얼마나 퇴폐하였는가를 여실히 증명하는 바로서, 그의 전 책임은 정부의 요로자가 지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더구나 팔도 삼백여 주에 내보낸 방백 수령들은 모두 김씨 일문의 세력 아래서 나갔는지라, 그 책임 문제는 더욱 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김씨네들은 연하여 머리를 모으고 회의를 하였다. 자기네들에게도 짐작이 안 가는 바가 아니어서, 이대로 버려두었다가는 삼백여 주가 한 군데도 떼지 이러고 모두 한 번씩 들고 일어설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지금 그렇지 않아도 자기네들의 세력에 흔들림이 기지 않을까 하여 내심 공황 중에 있던 그들이라, 이 민요 문제는 어떡허든 삭여 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리하여 회의를 거듭한 결과 그들은 한 가지의 방책을 얻어 내었다.
백성들이 분요를 일으킴은 오랫동안 한 사람의 학정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학정이 그냥 계속된다 치더라도 학정 하는 사람만 연하여 바꾸어서, 오늘은 이 사람의 학정, 내일은 저 사람의 학정, 모레는 또 다른 사람의 학정―이렇듯 학정 하는 인물만 갈아 대면, 백성들은 누구에게 반항을 하여야 할지 분간하지를 못할 것이다. 즉, 갑 군수의 학정에 견디지 못하여 반항을 하여 보려고 서로 수군거릴 동안에, 갑 군수를 벌써 갈려서 다른 곳으로 가고 을 군수가 오게 되며, 또 병 군수로 갈리듯―이렇게 끊임없이 군수를 갈아 대기만 하면, 반항의 상대자를 얻지 못하여 백성들은 분요를 일으키지 못하리라, 이런 방책을 세우기로 하였다. 선정하는 사람을 보내서 어지러운 세태를 정돈시키려 하지 않고, 어지러움은 어지러움대로 두고 백성들이 들고 일어설 기회만 없게 하도록 방책을 세운 것이었다.
가뜩이나 잦던 수령들의 체변이 더욱 잦게 되었다. 조선 역사에 있어서 그 때만큼 지방관의 변동이 많은 때가 과거에 없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나서 고종 황제 때에, 민 중전을 배경으로 민씨 일파의 매관 매작 때에 또한 그 때와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과거에 있어서는 그 때같이 변동이 잦던 때가 없었다. 이틀이 멀다 하고 갈아 대었다. 신관의 환영연을 준비할 동안은 벌써 그 뒤에 다른 신관이 부임을 하여, 환영 준비를 하던 신관은 벌써 구관이 되어 버리고―그 새 신관도 또한 그렇고, 이렇듯 눈이 뒤집힐 지경으로 체변되었다.
그런지라, 많은 밑천을 들여서 수령 자리를 산 그들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므로 최대 스피이드로 긁어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부임하러 내려가는 도중에서부터 벌써 착수를 하여, 부임하는 그 날부터 긁어 올리기를 시작하고 하였다.
녹아나는 자는 백성들뿐이었다. 그러나 김씨들의 예측과 같이 분요는 일으킬 겨를이 없었다. 일으키려면 벌써 다른 수령이 부임하게 되므로, 행여 이번이나 이번이나 하면서 이 놀라운 학정을 감수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연달아서 일어나는 각 곳의 민요는 이리하여 좀 머츰하여졌다.
제 21 장
"최 찬시, 상감마마께옵서 불러 계시오."
계해년 십이월 초 여드렛날, 내관(內官)방에서 동관들과 한담을 하고 있던 내시 최만서는, 나인의 전령으로 황급히 옷깃을 바로잡고 대조전(大造殿) 동온돌(東溫突)로 가서 읍하여 영을 기다렸다.
"만서냐? 좀―좀……"
섣달 초순부터 상감은 환후가 심상하지 못하여, 모두 경계들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그런데 부름으로 말미암아 만서가 등대했을 때는, 상감은 든든히 모는 의대를 차리고 금침 위에 일어나 앉아 있었다.
"상감마마, 등대하왔삽니다."
"응, 만서냐? 좀 부액할 내관을 몇 불러라."
"어디 납시오니까?"
"뜰이라도―너무 적적해서……"
만서는 내시청에 연한 전령줄을 흔들어 불렀다. 그리고 몇 사람의 내시가 협력을 하여 상감을 부액하여 뜰로 산보를 나섰다.
혹혹 쏘는 바람이 추녀 끝에서 노래를 하는 겨울날이었다. 댓돌에 나서는 참, 상감은 찬바람에 혹 하니 느끼었다.
"상감마마, 바람이 차옵니다."
"응, 차다."
"도로 듭시면……"
그러나 상감은 뜰을 향하여 발을 옮겼다. 환후가 중하여 누워 있던 상감이라, 허공을 짚는 것과 같은 걸음으로 내관들의 부축을 받은 채, 왼편 익각을 끼고 돌아서 차차 중희당 앞으로 돌아갔다. 중희당 앞에까지 이르러서 상감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았다. 선왕 헌종이 승하한 전각이었다. 잠시 중희당을 바라보다가 부액한 내관을 돌아다보았다.
"내 나이 서른 셋, 의롭고 괴롭게 삼십여 년을 보냈구나!"
"상감마마, 무슨 하교시오니까?"
"……"
상감은 다시 용안을 들었다. 그리고 고목이 울창한 비원 쪽을 한참 뜻 없이 바라보았다. 자유로운 강화도의 초동 생활에서 궁으로 들어와서, 그 이래 괴롭고 구애 많은 십사 년간의 생활을 추억하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비원만 바라보다가 용안을 만서에게로 조금 돌렸다. 십사 년간을 한결같이 상감께 등후한 만서는, 용안에 나타난 표정으로 어의를 짐작하였다.
"상감마마, 매화틀(便器)을 묘오리까?"
상감은 고요히 머리를 끄덕이었다. 한 사람의 내관이 매화틀과 뒷목을 가지러 내조전 쪽으로 달려갔다. 그 달려가는 내관의 뒷모양을 바라보다가, 상감은 차차 차차 몸을 그 자리에 종그리었다. 다음 순간 상감은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은 채 그 자리에 쓰러졌다.
"상감마마! 상감마마!"
"내가 임! 임……"
"상감마마!"
"임종이로다!"
"상감마마!"
"대조전……으로, 그리고 정승(정원용)을 불러라."
이것이 상감에게서 나온 최후의 말이었다.
내관들이 망지소조하여 상감을 쓰러 안아다가 대조전 동온돌에 모신 때는, 상감은 벌써 그 의식을 잃은 뒤였다. 누구 손 쓸 틈이 없었다. 중하던 환후가 오늘 약간 차도가 있는 듯하여, 내관들에게 부액을 받아서 뜰로 나섰다가 거기서 승하를 하였는지라, 남기고 싶은 말씀 한 마디 남길 기회가 없었다. 급보로 입궐하였던 대신들이 내전으로 달려 들어온 때는, 상감은 아직 맥은 약간 동하였지만 모든 의식을 잃은 뒤였다.
승후방에 있다가 상감의 승하한 것을 안 조성하는, 가슴이 덜컥하여 어찌하여야 할지 두서를 잡을 수가 없었다. 성하는 승후방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금호문으로 향하여 달음질쳤다. 그러나 금호문까지 채 미치지 못하여 발을 돌이켰다. 처음에는 이 흉보에 겸한 길보를 흥선군에게 먼저 알리려 한 것이었다. 그러나 순서로 조 대비께 먼저 가서 대비께 알리고 그 분부를 받아야 할 것이므로, 발을 대비전으로 돌이킨 것이었다.
"대비마마, 상감마마께옵서 승하하옵셨읍니다."
성하가 숨을 허덕이며 달려 들어와서 이렇게 아뢸 때 대비는 안색까지 변하며,
"그게 무슨 말이냐?"
고 재쳐 물었다.
청천의 벽력이었다. 그 사이 환후가 좋지 못하였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로되, 본시 약한 상감인지라, 이렇게 급변하리라고는 뜻도 안 하였던 일이었다. 오늘날이 언제 있을 줄을 예기하고, 흥선과 밀약을 맺은 지도 벌써 이 년 반, 밀약은 맺었지만 천명이 아닌 이상에는 어쩔 수 없는 오늘을 대비는 마음 조급히 기다리고 있던 것이었다.
성하가 자기의 아는 껏 비교적 상세히 아뢸 동안, 대비는 눈을 힘 있게 감고 말없이 듣고 있었다. 그 동안에 승전빛(承傳色)도 달려와서 방금 대조전에서 생긴 크나큰 비극을 대비께 아뢰고, 어서 바삐 대조전으로 출어하기를 재촉하였다. 상감 승하한 이 날에 있어서도, 임시로나마 이 종실의 권세를 잡고, 안으로는 사직을 받들고 밖으로는 임금을 대리하여, 대신들에게 명령하고 지휘할 사람은 이 종실의 가장 어른 되는 조 대비 한 사람 밖에는 없었다. 아직 침의대도 갈아입지 못했으니, 갈아입고 대조전으로 나간다고 승전빛을 돌려보내고 고요히 눈을 뜰 때는 대비의 꽤 주름살이 잡힌 눈에도 나란히 광채가 섰다.
"성하야!"
"네?"
"얼른 흥선 댁에 다녀오너라."
"네……"
"가서 잠깐 내전까지 들어와 주십사고……"
"네."
이리하여 성하를 내보낸 뒤에, 대비는 최씨를 불렀다. 그리고 갈아입을 의대를 가져오라 분부하였다. 최씨는 분부에 의하여 즉시 옷을 가져왔다. 그러나 대비는 곧 갈아입으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조급한 지금이었지만, 오늘 일을 위하여 의논하여 둔 흥선의 지혜를, 대비는 지금 힘입지 않을 수가 없었다. 너무도 갑자기 다닥친 일이거니,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하며 어떻게 사건을 진행을 시켜야 할지, 흥선과 한마디의 의논을 하고 싶었다. 그 때문에 시간을 보내려 부러 옷도 곧 갈아입지 않고 꿈질거리고 있었다.
승전빛은 연하여 대비전으로 달려왔다. 갑자기 당한 이 일에, 재상들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종실의 어른 되는 대비의 처단을 받들고자, 승전빛을 들여보내서 대비의 출어를 재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방책이 아직 서지 못한 대비는, 이제 나간다 이제 나간다 하여 승전빛을 모두 그냥 돌려 내보내고 하였다. 귀를 기울이면, 겨울바람 소리에 섞여서 궁인들의 애곡성도 벌써 여기까지 들려온다. 그것을 들으면서 대비는 천천히 옷을 갈아입으며, 어서 흥선이 이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이 종실의 최고 권위인 대비―공공히 흥선을 불러서 계획을 세울지라도, 뉘라서 머리를 가로 저을 사람이 없는 신분이었다.
가마를 몰아 가지고 흥선 댁으로 달려 간 성하는, 누구를 부르지도 않고 대짜로 흥선의 정침으로 뛰쳐 들어갔다.
"대감!"
"어?"
흥선으로는 희귀한 일―무슨 책을 들여다보고 있던 흥선은 이 침입한에게 눈을 크게 하였다.
"대감! 국상 났읍니다. 어서 납세요."
흥선은 눈을 성하에게로 굴렸다.
"그게 무슨 말인가?"
오히려 온화한 음성이었다.
"전하께서 대조전서 승하하셨읍니다. 어서 대비마마께 들어가 뵙고……"
흥선은 알아 들었다. 한 순간 몸을 흠칫하였다. 그런 뒤에 자기의 흥분을 삭이렴인지 눈을 감았다. 눈을 감고 잠시 앉아 있다가. 흥선은 고요히 몸을 일으켜서 북쪽을 향하여 네 번 절하였다.
"그래서 대비마마께서 나를 부르시던가?"
"네, 어서 잠시 들어오십사고……"
"알았네. 나는 안 들어가는 편이 낫겠지. 공연한 오해를 살 필요가 없으니깐―대비마마께 들어가서 어보(御寶)를 얼른 간수하시라고―다른 손이 닿기 전에 어서 간수하시라고―나는 내일이고 모레고 조용히 들어가 뵙겠네."
성하는 눈을 들어서 흥선을 보았다. 그러나 들던 눈을 도로 곧 아래로 떨어뜨렸다. 아랫목에 단정히 앉아 있는 그 인물―그것은 그 사이 늘 성하와 함께 술을 먹고 색항에 출입을 하던 그 흥선이 아니었다. 거대한 충동이 그의 마음에 생겼을 지금에 있어서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는 이 인물―지금 마음속에는 어떤 배포를 꾸미고 있길래, 이런 비상한 경우에 다른 사람 같으면 순간을 유예하지 않고 대비께 달려갈 이 때에, 자기는 내일이나 모레쯤 들어갈 테니, 어서 다른 것은 그만두고 어보나 간수하기를 부탁하고 있나?
성하가 흥선의 집에서 나와서 다시 대궐로 들어가려고 몸을 가마에 실을 때에, 저 편에서 한 무리의 소년들이 연을 날리고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보매, 그 가운데는 흥선의 둘째아들 재황 소년도 바야흐로 자기의 다홍치마를 올리려고 얼레를 어르고 있는 즈음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소년―지금 연을 올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그 소년의 위에, 이제 수삼 일 내로 떨어질 거대한 운명의 그림자를 생각할 때에, 성하는 멀리서나마 뜻하지 않고 그 소년에게 허리를 굽혔다.
―올리십시오. 하늘 끝까지 올리십시오. 지금 바야흐로 올라가려는 당신의 운명과 같이, 높이 높이 하늘 닿은 곳으로!
다시 대궐로 쏜살같이 달려가는 가마에 몸을 싣고 성하는 몸을 틀어 가면서, 소년들의 노는 양을 돌아보면서 속으로 축수하고 축수하였다.
다시 금호문 밖에서 가마를 버리고 대궐 안으로 들어서매, 대조전이며 그 익각에서는 남녀의 곡성이 은은히 들려왔다. 대조전 댓돌 위에는 변을 듣고 달려 온 재상들의 신발이 어지러이 놓여 있고, 내관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것을 곁눈으로 보면서 단숨에 대비전까지 들어가 보매, 대비는 성하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못하여 벌써 대조전으로 나간 뒤였다. 성하는 대조전으로 돌아서 나왔다. 승후관인 자기로도 들어갈 기회가 없을까 하고 어지러운 마음을 누르면서 대조전을 두고 빙빙 돌고 있었다.
수심과 슬픔으로 찬 대조전에 대비의 임어―재상들이 좌우편으로 갈라 앉은 가운뎃길로 대비는 여관 몇 명을 거느리고 고요히 걸어서 영해의 침두에 가서 앉았다. 준비하였던 발이 대비의 앞에 늘이어졌다.
대비의 임어와 동시에 한 바탕의 곡성이 다시 울렸다. 대비도 영해의 앞에 꿇어앉았다. 그리고 여관과 함께 대행왕의 천추를 곡하였다. 이윽고 대신들을 향하여 앉은 때에는 대비의 얼굴에는 약간 흥분의 빛이 나돌았다. 전내는 다시 조용하여졌다. 뒤에서 이전에 총애를 받은 많은 비빈들의 느끼는 소리만 은연히 들렸다. 이러한 가운데서 대비의 말이 고요히 울렸다.
"망국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소이다. 그러나 망극하다고 그저 가만히 있지 못할 일이니, 일의 처리를 차비하여야겠소. 정 돈녕(정원용) 대감은 선왕 헌종께서 승하하옵신 때에도 원상(院相―임금 승하한 뒤에 임시로 대소 정사를 맡아 보는 벼슬)으로서 일을 처리한 경험이 있으니 이번도 일을 보아 주시오."
발을 통하여 보이는 늙은 재상 정원용은 영을 복종한다는 뜻으로 머리를 땅에 대었다.
"그리고……"
거대한 씨름이었다. 지금부터 십사 년 전 대비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이 승하한 때에 대비 당신이 경험한 쓰디쓴 일을 바야흐로 김씨 일문에게 내려 씌우려는 대비는, 당신의 마음을 누르고 또 눌렀지만, 마음에 일어나는 흥분을 더 감추기는 힘들었다.
"어보(御寶)는 내가 임시 맡아 둡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 어보를 맡는 달사 무엇에 쓰리마는, 어보는 하루도 버려 둘 수 없으니 내가 맡아 둡시다."
대비는 여관을 돌아보았다.
"어보를 모셔라."
여관이 가져다 바치는 어보를 손으로 더듬어 받으면서, 대비는 발을 통하여 김씨 일문의 동정을 내다보았다. 임금의 승하를 곡하고자 들어왔던 김씨 일문은, 대비에게서 어보의 한 마디가 나올 때에, 분명히 대비의 예기한 이상으로 놀라는 모양이었다. 공손히 머리를 수그리고 있던 그들이, 그 순간 겁먹은 듯한 눈으로 발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대비는 더듬어서 어보를 양 손으로 받들었다. 그런 뒤에 무릎 앞에 놓았다. 김문을 대표하는 영의정 김좌근이 드디어 한 마디 하여 보지 않고는 못 견디었다.
"대비전마마!"
"?"
"나라에는 하루도 상감 안 계실 수 없사오니, 거기 대한 하교 계오시기를 바라옵니다."
"너무도 창황 중의 일이라, 나도 미리 생각한 바가 없고 대신들도 역시 그럴 터이니, 닷새 동안을 잘 생각해서 닷새 뒤에 의논을 하도록 합시다. 그 동안은 무식하나마 이 노파가 대리를 보리다."
무법한 하교였다. 그러나 지금에 있어서 이 나라를 대표하는 국모(國母)의 한 마디―뉘라서 감히 반대할 수가 없었다.
"그러면 원상, 전후의 일을 착오 없도록 수고하시오."
이 한 마디를 남기고, 대비는 여관에게 눈짓하여 어보를 받들어 앞세우고, 다른 여관들의 부축을 받아 당신의 처소로 돌아갔다. 어보를 받들고 돌아가는 이 대비의 양을 김씨 일가들은 모두 닭 쫓던 개 모양으로, 눈이 퀭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임금의 붕어를 통곡할 줄도 잊어버리고, 마치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이리하여 국왕의 권위를 자랑하는 옥새는 대왕대비 조씨의 손으로 들어갔다. 즉일로 국상은 반포되었다. 비록 재위 중에 후세에 남길 만한 특별한 시경은 없었으나, 십사 년간을 삼천리 강토에 군림하였던 임금의 붕어에 대하여, 온 국민은 흰 갓과 흰 옷과 흰 신으로 조의를 나타내었다.
그 날 밤 차디찬 동북풍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흥선도 백립을 마련해 쓰고 대비께 뵈려고 대궐로 향하였다. 금호문까지 이르러서 거기서 나오는 김병기의 행차와 마주쳐서, 얼른 외면을 하고 그저 지나가 버렸다. 아직 장래가 어떻게 될는지 알 수 없는 찰나에, 대궐 문에서 병기를 만났다가는, 약빠른 병기에게 기수를 채이고, 기수를 채이면 일이 어떻게 뒤집힐는지 알 수 없으므로 피하여 버린 것이었다. 혹혹 쏘는 찬바람에 팔짱을 깊이 찌르고, 금호문을 지나서 대궐 담을 끼고 거의 사원전 앞에까지 갔다가 다시 금호문 쪽으로 돌아서서 왔다. 그러나 흥선이 바야흐로 궐 안에 들어가려 할 때에, 궐에서는 또한 무리의 사람이 밀려 나왔다. 비껴 서면서 보니 왕비의 오라버니되는 병필이었다.
"음, 재수 없군!"
두 번이나 들어가려다가 들어가지 못한 흥선은 드디어 발을 돌이켰다. 재수 없는 이 밤은 그냥 지나고, 밝은 날 다시 틈을 얻어서 들어가서, 천천히 대비와 선후책을 강구하기로 하고 집으로 발을 돌이켰다. 거대한 운명의 열매는 지금 자기의 눈 앞 삼 척 되는 거리에 늘어져 있다. 이제는 손만 한 번 내밀면 넉넉히 딸 수가 있다.
제 속 가진 사람으로는 능히 참을 수 없는 온갖 수모요 멸시를 쓰다 하지 않고 받아 오면서, 얼굴에 나타나지 않는 비굴한 웃음을 억지로 웃어 가면서 지난 십 여 년의 날짜의 기억이, 벌꺽벌꺽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본시 어버이에게 받아서 타고난 조급한 성미, 노염 많은 성미―이것을 모두 감쪽같이 감추고, 자기의 인격을 가식하느라고 쓴 그 애는 얼마나 컸던가? 지금 이 노력의 열매는 바야흐로 익었다. 자기의 일거수면 넉넉히 따서 주머니에 넣을 수가 있다. 아직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김병기에게 참을 수 없는 수모를 받고도, 억지의 웃음으로 자기의 감정을 속이지 않을 수 없던 과거―생각하면 얼굴에 피가 솟아오르는 노릇이었다. 불끈 쥐어지는 주먹을 슬며시 도로 펼 때마다, 남 모르는 피눈물을 얼마나 속으로 흘렸던가? 그러나 그 때에 용하게 참은 덕택으로 자기의 생명을 곱게 보전하여, 이제 영광스런 열매를 눈앞에 보는 오늘을 맞게 되었다. 이런 일을 생각하면서 어두운 거리를 걸을 때에 흥선은 추위도 감각하지 못하였다. 습관상 팔짱은 깊이 찔렀으나, 쏘는 바람도 그의 속까지 침범하지 못하였다. 눈을 들어서 둘러 보매, 새까만 밤의 장막에 감추인 고요한 장안―지금 한 임금을 잃고 새 임금(누구인지 지금은 짐작도 가지 않는)을 맞으려는 장안―그 아래는 무수한 창생이 겨울의 아랫목을 즐기고 있을 것이다.
"그들의 위에 복을 주고 그들을 위해 안락을 줄 자는……"
아아! 어제까지도 자기의 술친구요 투전 동무이던 이 시민들―수백 년 간의 악정 때문에 머리를 들 기운도 없는 이 백성들―이 친구, 이 시민, 이 백성들에게 복을 주고 안락을 줄 자는, 그들의 이해자요 또한 가까운 장래에(십상 팔구) 이 나라의 왕의 왕이 될 자기 밖에는 없다. 겨울의 혹독한 바람을 받고 그 때문에 찡그러지려던 흥선의 얼굴은 도리어 이때에 빙긋이 미소가 떠올랐다. 어디선가 멀리서 헛개 짖는 소리가 났다.
조 대비와 흥선의 밀의―
대비는 흥선의 내어 놓은 종이를 받아 들고 묵묵히 보고 있었다.
"대비전마마, 아드님을 두시고도 절사(絶嗣)가 되오신 익종 대왕의 대를 이번 기회에 부활시키도록 하시옵소서."
대비의 지아버님 익종의 대를 부활시키자는 데 대하여 대비에게 이의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흥선이 내어놓은 계통표를 묵묵히 보고 있지만 대비에게도 적이 희색이 나돌았다.
"마음을 굳게 잡수십시오. 무론 김문에서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반대로 적지 않는 반대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지만 대비마마의 하교는 지금에 있어서는 국명―뉘라서 끝까지 거역은 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대비의 입이 비로소 열렸다.
"나도 무론 내 힘껏은 하겠지만, 대감도 든든히 준비하시고 장사(壯士)라도 몇 십 명 마련했다가, 여차하는 날에는 틀림이 없도록 하시오."
흥선은 반대하였다.
"아니옵니다. 장사의 힘을 빌어서야 될 일이면 신은 본시부터 마음도 내지 않겠읍니다. 마마께옵서만 마음을 강하게 잡수시면 평온리에 넉넉히 될 일―왜 구태여 그런 준비까지 하겠읍니까?"
"그래도 김가들이 그냥 반대를 하면?"
"아니옵니다. 다른 분을 추대한다면 혹은 김씨들은 굉장히 반대하올지도 모르지만, 신은 김씨들에게 수모는 받았을지언정 김씨들이 신을 무서워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깐 종실의 다른 분을 추대하는 것보다는 신을 오히려 쉽게 볼 테니깐 극력 반대는 안 하오리다."
이 날에 있어서 이 말 한 마디를 장담하기 위해서 그 사이 받은 비웃음과 수모―그 모든 것을 여기서 한 마디 펴 놓을 때는, 흥선은 마치 체기가 내려가는 것같이 가슴이 시원함을 느꼈다. 여인의 몸으로서 지금 이 나라의 온 권세를 한 손에 잡은 대비는, 흥선의 코치에 그저 머리를 끄덕일 뿐이었다. 이리하여 모든 일은 흥선의 의견대로 진행되었다. 그 사이 십여 년 간을 몽상과 같이 닦고 또 닦았던 흥선의 계획은 차차 실현되기 비롯하였다.
대궐에서 조 대비와 흥선의 밀의를 거듭할 때에, 김씨 문중에서도 또한 김씨로서 회의가 열렸다. 살아 있었으면 당연히 이 회의의 어른이 될 영은 부원군 김문근(金汶根)은 불행히 작년에 별세를 하여 그 자리에 못 오고, 영의정 김좌근, 그 아들 김병기, 조카 병학, 병국, 병필, 병덕, 일족 김흥근 등이 모인 이 좌석에는 김좌근이 좌장이 되어 회의라 열렸다.
일가붙이의 막다른 골목―지금 자기네들의 발아래 뚫린 커다란 구렁텅이를 들여다보며 그들은 전전긍긍히 의논하였다. 이런 경우에 임하여 언제든 기묘한 꾀를 내어서 난국을 타개하는 재간을 가진 김병기도 이 날뿐은 아무 의견도 내지를 못하였다.
"자, 말들을 하게. 어떻게 했으면 좋은가?"
김좌근이 허연 머리를 들면서 이렇게 의견을 물었지만 거기 응하는 사람이 없었다. 누구? 그 사이에 자기네의 세도를 자제삼아, 종친이라도 종친에게는 모두 원한을 진 자기네의 일이었다. 대행왕에게 아드님이라도 있으면이어니와, 그렇지 못한 지금에 있어서 어느 종친 한 사람, 자기네 일족에게 호의를 가진 사람이 있을 까닭이 없다. 혹은 생질이 되며, 혹은 외손자가 되는 정당한 왕자가 없고, 종친 가운데서 누구를 모셔 오지 않으면 안 될 지금에 있어서는, 그들은 자기네의 입으로 지정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가지지를 못하였다. 서로 묵묵히 다른 사람의 입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그들은 자기네 일족의 몰락을 분명히 직각하였다. 순조 대왕의 대로부터 지금까지 삼 대째 보름달과 같이 빛나는 영화에 취하여 있던 그들은, 지금 자기네의 앞에 이른 몰락의 구렁텅이를 보았다.
"아버님!"
드디어 병기가 입을 열었다.
"결과를 기다릴 밖에는 도리가 없겠읍니다. 대왕대비전의 일존에 달린 것이매, 여기서 이렇다 저렇다 하면 무얼 하겠습니까? 결과를 보아서 어떡허든 선후책을 강구하여야지 그밖에는 도리가 없겠읍니다."
"만약 대비마마께서 어느 분을 추천하느냐는 하문이 계시면?"
"그 때는 누구든 종실 중 왕자의 덕을 가진 분을 한 분 추천할 따름이올씨다."
"그게 누구냐 말이다?"
"생각하고 연구해 보겠읍니다."
이렇게 대답은 하였다. 그러나 이 좌석에서 가장 이번의 일에 마음 태우는 사람은 병기였다. 김문 중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리고 또한 어린 만큼 교하고 혈기 많은 병기는, 따라서 가장 종친들에게 미움 살 일을 많이 한 사람이었다.
그 날의 회의는 아무 결론도 얻지 못하고 흐지부지 산회를 하게 되었다. 누구 그럴 듯한 종친을 한 사람씩 마음에 먹어 두었다가, 이제 열 사흗날 대비의 앞에서 회의가 열릴 때에 추천을 하기로 작정을 하고 제각기 헤어졌다. 나올 때에 병기가 병학을 붙들었다.
"형님!"
"?"
"더 생각할 여지도 없읍니다. 몰락이올씨다. 요행 생명이 부지되면, 시골로 피해서 학이나 희롱하며 여생을 보냈지, 더 생각하고 연구할 나위가 없읍니다."
거기 대하여 병학도 탄식하였다.
"잘 생각했네. 그렇지만 생명이 부지될지 어떨지 그것부터 알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천명―인력으로는 무가내하올씨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병학을 버려두고 자기의 행차로 달려갔다.
"재황이 좀 불러 오시오."
흥선이 부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부인은 종에게 분부하였다. 잠시 뒤에 한길에서 연을 날리고 있던 재황 소년은, 얼굴과 손등이 새빨갛게 되어 가지고 연과 얼레를 든 채 들어왔다.
"부르셨에요?"
"오냐, 거기 앉아라."
소년은 아버지가 지시하는 자리에 앉았다. 자기가 지시한 자리에 앉은 소년을 흥선은 한참 동안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님, 왜 부르셨에요?"
그러나 흥선은 역시 말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지금 이 소년의 위에 바야흐로 떨어지려는 커다란 운명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기쁘다기보다도 놀랍다기보다도 오히려 송구하였다.
"부인!"
"네?"
말하여 주고 싶었다. 말은 목젖에까지 와서 돌아왔다.
―얘는 내일 모레면 삼천리 강토의 지배자가 될 애 외다.
목젖까지 나와 도는 이 말을 흥선은 꿀꺽 삼켰다.
"얘게 맞게 천담포, 복건, 모두 지어 두었겠지요?"
"네, 지어는 두었읍니다."
지어는 두었지만 언제 쓸 것이오니까 하는 뜻이었다. 흥선은 의아하여하는 부인을 버려두고 이번엔 소년에게 향하였다.
"야!"
"네?"
"한 마디 묻는다."
"네."
"내가 네게 무엇이 되느냐?"
"아버님이올씨다."
흥선은 이번은 손을 들어서 부인을 가르켰다.
"저이는?"
"어머님."
아아! 이 소년의 입에서 아버님 소리를 들을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이 소년에게 향하여 오냐를 할 날도 이제 며칠이나 남았나? 가까운 장래에는 "하시오"로도 당하지 못할 귀한 몸이 될 소년이었다. 이것을 생각할 때에 흥선은 그 영화를 축복하면서도 또한 한편으로는 마음에 일어나는 적막감을 누를 수가 없었다.
"야, 나는 너의 아버지, 저이는 너의 어머니지만, 아버지고도 아버지가 안 되고 어머니고도 어머니가 못 되는 수도 있다. 알아 두어라."
소년은 무슨 뜻인지 알아 듣지 못하였다. 의아한 듯이 아버지를 우러러보았다. 그 소년의 눈을 피하면서 흥선은 담뱃대를 끌어당겨서 담배를 담았다. 영특한 소년은 무릎걸음으로 뛰어 나와서 화로에 성냥을 그어 대었다. 아들이 그어 대는 담배를 힘 있게 빨면서, 연기 틈으로 아들의 고치와 같은 타원형의 예쁘장스런 얼굴을 볼 때에, 흥선의 마음에는 더욱 적적함이 더하였다.
그 날, 아이들이 다 잠들기를 기다려서 흥선은 다시 내실로 들어가서 부인에게 자기의 지금 계획하는 커다란 음모(?)를 말하였다. 부인은 깜짝 놀랐다. 반신반의하였다. 너무도 의외의 말인지라, 부인으로서는 얼른 믿어지지 않는 말이었다. 그 말이 과히 엉터리없는 말이 아닌 줄 짐작이 갈 때에, 부인은 기뻐하기 전에 먼저 탄식하였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착하고 어진 부인은 이런 경우에 임하여서도 자식의 위에 임한 영화보다도 먼저 자식의 안위를 근심하는 것이었다.
종가의 며느리로 들어온 부인은, 아직껏 역사상에 왕위 때문에 흘린 많고 많은 피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는 것이었다. 불행한 왕위보다는 안온한 빈공자(貧公子)의 생활이 자식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마음에는 더욱 달가왔다.
국상이 반포된 이래 조성하는 여간 분주하지 않았다. 벼슬이 승후관에 있으며 임금 없는 지금은 좀 한가할 것이로되, 별다른 임무를 진 성하는 잠시도 엉덩이를 붙일 겨를이 없었다. 하루에도 두 번, 세 번씩 흥선 댁에서 대비께로, 대비께서 흥선 댁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그러는 동안, 차차 성하는 흥선을 알았다. 그 기괴한 인격과 기괴한 성격을 보고, 이런 가운데도 흥선 본래의 면목이 따로 있나 하고 반의로 지내던 성하는, 이번에 비로소 흥선 본래의 면목을 보았다. 아직껏 권문들에게 대하여 그렇듯 비굴한 웃음을 웃어가면서 부회하던 흥선이, 사건이 한 번 뒤집히게 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어떠한 권력, 어떠한 세도도 모두 초개같이 보았다.
"대비께 이렇게 가서 여쭈게. 그리고 또 이렇게 이렇게 합시사고 여쭈게."
각각으로 변하여 가는 동태에, 새로 새 지휘를 연하여 하며, 거기 대하여 만약 성하의 입에서 시의 권문들을 꺼리는 말이라도 나오면,
"천작이 막여일봉(千雀莫如一鳳)이라, 내게 심산이 있으니 아무 걱정 말게."
하고 퉁겨 버렸다. 일변 대비께로, 혹은 원상 정원용에게로, 또는 좌의정 조두순(趙斗淳)에게로 흥선의 전갈을 받아 가지고 갔다 올 때마다 성하는 흥선의 심산(心算), 흥선의 궁리가 놀랍게도 정확히 들어가 맞는 데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슨 편지인지는 모르지만, 흥선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좌의정 조두순을 찾을 때, 성하는 무론 조두순에게서 좋은 대답이 있을 줄은 뜻도 안 하였다. 근엄하기 짝이 없고 흥선 같은 영락된 인물은 사람으로도 여기지 않을 두순인지라, 흥선의 편지를 받을지라도 내버리지 않고 펴 보기나 하면 상의 상이거니 이만큼 생각하고 갔더니, 조두순은 펴 볼 뿐 아니라 두 번, 세 번을 다시 보고 그리고 한참을 머리를 숙이고 생각한 뒤에,
"대감께 가거든 염려 맙시사고 여쭈오."
하고 흔연히 승낙하였다. 이렇게 자기의 사랑에 들여 박혀 성하를 내세워서 좌우편으로 운동해 나아가는 일이로되, 일호의 착오도 없이 순조로이 진행되는 것을 볼 때에, 성하는 흥선의 놀라운 통찰력과 지력에 경복하였다. 성하는 여기서 잠든 사자의 일어남을 보았다. 비로소 앞다리를 뻗치며 기지개를 하는 것을 보았다. 이 사자가 한 번 포함성을 지르며 일어날 때에, 쇠잔한 이 삼천리강토는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이었다. 그것은 빛나는 나라일 것이다. 부강한 백성일 것이다. 가멸은 강토일 것이다. 그리고 위와 아래가 서로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는 평화의 왕국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장래의 빛나는 나라와, 그 때 이 잠에서 깨어난 사자 아래서 활동을 할 자기를 생각해 볼 때에, 젊은 성하의 마음은 누르려야 떠오르는 흥분을 온전히 눌러 버릴 수가 없었다. 흥선 댁에서 대궐로, 대궐에서 원로들의 댁으로, 엉덩이를 붙일 겨를이 없도록 돌아다니는 성하로되, 그는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어서 날이 지나서 정식으로 신왕이 결정되고, 그뒤에 또한 전무(前無)한 제도―국왕의 사친(私親)의 섭정(攝政)의 날이 나타나기를 마음 조이며 기다렸다.
이리하여 꿈결같이 닷새가 지나고 드디어 열 사흗날이 이르렀다. 대비의 앞에서 새 왕을 결정할 중대한 회의를 여는 날이었다.
창덕궁 희정당―대왕대비 어전 회의―
발 뒤에는 오늘의 절대 권리자 조 대비가 여관 여섯 명을 거느리고 임하였다. 순원왕후와 대행왕비의 두 분 김씨의 일문을 대표하는 김좌근, 김흥근, 김병기, 김병덕, 김병필, 김병학, 김병국의 모든 김족이며, 헌종비 홍씨를 대표하는 홍순복이며, 원로로 정원용, 조두순 등, 그밖에 홍안 소년 한 사람이 끼어 있는 것이 이채였다. 조 대비의 조카 성하였다. 몸은 한 개의 승후관에 지나지 못하나, 오늘의 최고 권위자인 조 대비의 조카며, 흥선과 대비에게 중대한 역할을 맡은 성하는, 대비 임어와 함께 대비의 뒤를 따라서 들어온 것이었다. 같은 외척이요, 헌종의 외사촌 동생이요, 종실의 어른 조 대비의 조카로되, 김씨 일문의 세력에 눌려서 겨우 승후관 한 자리로써 명맥을 보전하여 오던 성하는, 오늘은 조 대비의 일족을 대표하는 당당한 척신의 한 사람으로서 이 자리에 임한 것이었다.
"대왕대비전마마, 막중막대한 일이옵니다. 마음에 계오신 대로 하교해 주시기를 바라옵나이다."
원상 정원용이 끓어 엎디어 아뢰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먼저 원로대신들의 의견을 들읍시다."
냉정한 대비의 말이었다. 오십까지 시어머님 대왕대비 김씨를 섬기며 자기의 온갖 감정을 감쪽같이 감추기에 단련된 조 대비는, 이런 때에 임하여서도 냉정한 한 마디를 먼저 던져 보았다. 그러나 거기 대하여 대신들의 의향은 즉시 나오지 않았다. 무론 어떠한 의향은 있을 것이로되, 국면이 어떻게 전환될지 예측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덜컥 자기의 의견을 먼저 말하기를 꺼리었다. 다른 사람에게서 무슨 말이 나오면 거기 반대를 하든가, 찬성을 하든가 하여 비로소 자기의 의향을 말할 예산으로, 모두 묵묵히 남의 입만 바라보았다. 이번엔 조두순이 아뢰었다.
"대왕대비전마마, 이 일은 신 등의 의향뿐으로 결정하지 못한 중대한 일이옵니다. 마마의 심중에 곕신 대로 하교해 주시옵기 바라옵니다."
잠시 말이 끊어졌다. 잠시 있다가 겨우 입을 연 때는, 오십이 훨씬 넘은 대비의 얼굴에도 약간 붉은 흥분이 돌았다. 이제는 수속 상 대신들의 의향을 물었는지라, 남은 것은 대비 당신의 의향을 말할 과정이었다. 말을 꺼낼 때는 대비는 음성조차 약간 떨렸다.
"대신들의 의향이 그러니, 그럼 내 뜻을 말하리다. 국정이 어지럽고 조정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지금, 한 때도 국왕 없이는 지내지 못할 테니,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아들 재황이를 익성군(翼成君)으로 봉해서, 이미 절사된 익종 대왕의 대통을 부활하게 하도록 하시오."
청천의 벼락이었다. 순서를 따지자면 대신들이 의향을 내고, 대비는 단지 그 결정만 할 것이어늘, 여기서 대비는 나아가서 그 승통자를 지정한 것이었다. 더구나 그 지정이 다른 사람도 아니요, 종실 친척 중 가장 영락되어 사람의 대접을 받지도 못하는 흥선군의 아들이었다.
대신들 가운데 감정의 동요가 분명히 일어났다. 그것을 대표하여 김좌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대왕대비전마마, 흥선군은 대행왕 전하의 육촌 백씨로서 그다지 먼 종친은 아닙지만, 그 집안이 너무도 영락돼서 임금의 친가로서는 혹은 좀 부적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이 말에 대하여 대비가 대답하기 전에 가로 뚫고 나선 것은 조성하였다. 격식으로 말하자면 대신들의 의논에 어디 뛰어들 자격이 못 되지만, 오늘의 중대한 역할을 맡은 성하는 격식을 무시하고 뛰쳐들었다.
"영상 합하!"
어디 감히 부르지도 못할 명사를 부르면서 성하는 한 무릎 앞으로 나왔다.
"재산이 없으면 가정이 영락되는 것은 정한 이치―영락되었다고 그 사람의 본질까지 더럽는 바가 아니올씨다. 대행왕 전하께서도 본시는 강화서 한미한 생활을 합신 일은 대감도 모르시는 바가 아니겠읍니다. 흥선군의 둘째 도령으로 만약 왕자의 그릇이 못 된다 하면 모르거니와, 생활이 영락되었으니 좋지 못하다는 것은 일국의 수상의 말씀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대담한 말에 얼굴까지 검붉게 하고 성하를 노려 본 것은 하옥 김좌근의 아들 병기였다.
"여보!"
"이놈"이라 부르지 않은 것은 병기의 최대 관용이었다.
"당신은 웬 사람이기에 이 좌석이 무슨 좌석이라고 외람되이 주둥이를 놀리오?"
"나 말씀이오?"
이때의 성하는 벌써 "소인"이 아니었다.
"나도 대감네들과 마찬가지로 외척의 한 사람―"
"외척? 외척이라도 이 좌석은 대비전마마와 재상들이 중대한 의논을 하는 좌석―잡인이 섞이지 못할 좌석이니 냉큼 나가오."
그러나 성하는 대척하지 않았다.
"나도 대비전마마의 분부로써 오늘 이 좌석에서 한 마디의 의견을 말할 권리를 가진 사람이오."
차차 격론으로 되어 가려는 것을 발 안의 대비가 말렸다.
"성하, 잠시 조용해라. 김찬성도 조용하고……자, 수상의 의향을 들었으니 이번은 원상의 의향을 들어 봅시다."
사 대의 임금을 먼저 보내고 지금 오 대째의 임금을 맞으려는 백발 재상 정원용은 공손히 머리를 숙였다.
"대왕대비전마마의 하교에 대하여 신이야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분부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
"그럼 좌상의 의견은?"
"신도 어찌 다른 의견이 있사오리까? 대왕대비전마마의 하비(下批)는 신으로서는 용훼(容喙)하지 못하는 법이오니 처분대로 거행할 따름이옵니다."
흥선의 편지로써 벌써 마음이 돌아선 조두순은, 대비의 말에 이의를 제출하는 김좌근을 도리어 잘못하였다는 뜻으로 이렇게 말하였다.
"이번은 어디 좌찬성의 의견을……"
"신은 반대하옵니다. 우리나라에 본시 생존한 대원군이 없었사온데, 흥선군의 둘째도령을 영립하오면 흥선군의 대우를 어떻게 하겠읍니까? 왕 이상의 존위는 없는 바오매, 왕도 아니며 신하도 아닌 흥선을 마련할 자리가 어떻게 되겠읍니까? 더구나 흥선군은 허튼 바탕에 드나들고 허튼 사람들과 교제를 하와, 명문답지 못한 언행이 많으와 왕친으로서의 재목이 못 되는 인물이옵니다."
사활의 분기선이었다. 만약 흥선의 둘째도령을 영립하고 흥선으로서 권세를 잡게 하였다가는, 자기의 지위는커녕 생명까지 위태로운 병기는 악을 써 가면서 반대를 하였다. 김문의 군자(君子)인 유관 대신 김흥근(遊觀大臣金興根)이며, 그 아들 병덕이며, 흥선과 비교적 가까이 사귄 병학, 병국의 형제는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차례로 의견을 다 물은 뒤에 대비는 고요히 입을 열었다.
"여러 원로대신들과 의견은 다 들었소이다. 혹은 가하다 하고 혹은 부하다 해서 대신들의 의견은 일치하지 못하나, 의견을 물은 것은 단지 참고하고자 물은 뿐, 승통에 대해서는 내 이미 마음으로 작정한 바이니 그리 아시오.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도령 재황을 익성군으로 봉해서 익종 대왕의 대통을 잇도록!"
최후의 거탈은 드디어 던져졌다. 재상들에게 그 가부를 묻는다면 이어니와, 이미 대비가 스스로 작정하였다 하는 이상에는 움직일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이 거탄은 김문의 권세로써도 어찌하지 못할 종류의 거탄이었다.
정원용이 한 무릎 앞으로 다가 앉았다.
"대왕대비전마마, 분부는 받자왔읍니다. 그러나 구전뿐으로는 후일의 증빙이 되지 못하니, 언교(諺敎―한글교서)를 내려 줍시기로 아뢰옵니다."
대비는 여관을 돌아보았다. 한 사람의 여관이 조금 발을 들었다. 언교를 싼 붉은 보를 받들고 있다. 다른 여관이 발 아래로 그것을 내밀었다. 미리 준비되었던 것이었다. 도승지(都承旨) 민 치상(閔致庠)이 무릎걸음으로 나아가서 언교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을 원상 정원용에게 바쳤다.
"흥선군의 둘째아들을 익성군으로 봉하여 익종의 대통을 잇게 하라."
재상들이 차례로 언교를 본 뒤에, 도승지 민 치상이 그것을 한문으로 번역하여 읽었다.
"대비전마마, 틀림이 없사옵니까?"
"없소이다."
잠시 침묵이 계속되었다. 언교는 이미 내리고, 그 언교가 도승지의 손으로 넘어간 이상에는 이젠 움직일 수 없는 일이었다.
"원상!"
발 안의 대비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대령하왔읍니다."
"이젠 대통도 결정되었소이다. 용상 맡으실 분을 어서 모셔 오도록 그 차비를 대시오."
"즉시 거행하겠사옵니다."
이젠 대사가 결정된 자리에 앉아서, 조성하는 눈을 굴려서 전내를 살펴보았다. 정원용, 조두순 등 원로대신은 단지 어명을 복종한다는 엄숙한 표정만 나타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조금 눈을 더 굴려서 영의정 김좌근을 보매, 백두의 이 재상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검붉게 하고 묵묵히 방바닥만 굽어보고 있었다. 병기는 나이가 젊으니만큼 분명히 그의 얼굴에서 흥분과 절망의 그림자를 감추지 못하였다. 연하여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머리를 가만히 두지 못하는 품이 마음에 커다란 불안이 있는 것이 분명하였다. 일찍이 이런 중대한 회의에 참여하여 보지 못한 성하는, 적지 않은 흥분과 호기심으로써 둘러보았다.
―당신네들의 몰락이외다. 당신네들의 세도가 한 천 년 갈 줄로 믿었읍니까? 여름 날 한 떨기의 꽃, 시들 날이 있을 줄을 몰랐읍니까?
이윽고 대비는 여관들을 거느리고 내전으로 들어갔다. 대비가 돌아간 뒤에는 재상들은 한참을 아무 말도 못하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다만 도승지 민 치상의 지휘로 사관(史官)이 오늘의 경과를 기록하느라고 분주히 붓을 놀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영상!"
침묵을 깨뜨린 사람은 정원용이었다.
"네?"
좌근이 흠칫하여 대답하였다.
"자, 봉영의 차비를 댑시다. 대감이 민 승지를 데리고 흥선군 댁에 가셔서, 익성군을 모셔 오십시오."
"네……"
대답은 하였으나 기운 없는 대답이었다.
"민 승지! 영감은 수상을 모시고 흥선군 댁으로 가도록 차비하게."
그리고 이번은 훈련대장 김병국을 돌아보았다.
"대장! 대장은 어서 나가서 익성군을 봉영할 의장병을 준비하도록 마련하시오."
금년에 나이 여든 하나―그 육십여 년을 벼슬을 산 늙은 재상 정원용은, 이런 경우를 당하여 일호의 착오 없이 지휘를 하여 원상인 자기의 직책을 다하였다. 이리하여 신왕을 맞을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제 22 장
"아, 아! 지붕에 걸리련다. 옳다! 넘어섰다."
겨울바람이 꽤 강하게 부는 날이었다.
재황 소년은 사랑뜰에서 연을 올리고 있었다. 그의 곁에 형 재면이 서서 올라간 연을 우러러보고 있었다. 소년의 뺨과 손등은 찬바람 때문에 새빨갛게 되었다. 그러나 연줄을 통하여 손에 감각되는 탄력에 온 정신을 붓고 일심불란 올라가는 연을 어르고 있었다.
"어디 튀김을 주어 보아라."
빙긋이 웃으면서 형 재면이 이렇게 말하였다. 그 말에 응하여 소년이 튀김을 주니, 벌써 지붕 위 꽤 높이 올랐던 연은 춤을 추면서 아래로 거꾸로 내려왔다.
"어타! 어타!"
"어디 나 좀!"
"좀 있다가요."
손을 내미는 형을 피하면서 소년은 줄을 더욱 풀어 주었다. 거기 따라서 연은 하늘로 향하여 춤을 추며 올라갔다. 문득 밖에서 꽤 많은 인마의 두선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인마는 분명히 흥선 댁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년들은 그다지 관심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오는 사람이 고귀한 사람일 것 같으면 당연히 벽제의 소리가 있을 것이어늘, 그렇지도 않고 숙숙히 이 집으로 들어오는 인마거니, 그다지 소년들의 흥미도 끌지 못하였다.
중문이 조심스레 열렸다. 하늘에 높이 오른 연만 바라보던 소년은, 한 순간 중문 편으로 눈을 돌렸다가 그리로 들어오는 꽤 점잖은 사람 하나를 흘낏 보고는 도로 눈을 연으로 돌렸다. 소년에게 있어서는 지금 하늘 끝닿은 데로 오른 연밖에는 다른 것은 관심되는 것이 없었다.
중문으로 앞서서 들어온 것은 도승지 민 치상이었다. 도승지의 인도로 뒤를 따라 들어온 것은 영의정 김좌근이었다. 한 걸음의 길을 갈 때라도 반드시 평교자에 몸을 싣고 다니던 김좌근이지만, 오늘 신왕을 봉영하러 옴에 그는 도보로써 지팡이도 짚지 않고 온 것이었다. 인마가 들어오는 기수에 정침 안에 있던 흥선이 쪽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그리고 지금 들어오는 인물을 보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민 치상이 댓돌 위에 올라서서 청지기를 부르려 할 때에는 흥선은 벌써 손을 맞으러 대청에 나선 때였다.
"영감 어떻게 오시오."
여전한 깨어진 갓, 군데군데 꿰맨 도포였다. 그러나 그 얼굴과 태도에는 어젯날의 때는 벌써 씻은 듯이 없어졌다. 흥선의 물음에 응한 사람은 민 치상이 아니고 김좌근이었다. 좌근은 댓돌 아래로 가까이 와서 손을 읍하고 허리를 굽히며, 공손한 어조로 말하였다.
"오늘 대왕대비전마마의 어명으로써 대감의 둘째도령님을 익성군(翼成君)으로 봉군을 하옵고, 익종 대왕의 대통을 승계하시와 대위에 오르시게, 영의정 김좌근이 봉영차로 왔읍니다."
흥선은 눈을 감았다. 안 감으려야 안 감을 수가 없었다. 떠오르는 감정의 격발―튀어나려는 통곡―이 모든 것을 감추기 위하여 눈을 힘 있게 감았다. 하옥도 자기의 할 말만 한 뒤에는 입을 봉하고, 머리를 수그리고 가만히 있었다. 이전에는 초개만큼도 아니 여기던 흥선의 앞에(일찌기 상감의 앞에서도 이렇듯 굽혀 본 일이 없는) 허리를 굽히고서―
한참 뒤에 흥선이 비로소 눈을 떴다. 동시에 입도 열었다.
"수고허오."
위연히 내어던진 한 마디의 대답이었다. 그런 뒤에 발을 그 자리에서 떼었다.
"자, 어머님께 들어가서 하직을 고합시다."
벌써 오냐를 할 수 없는 존귀한 아드님의 손목을 이끌고 흥선은 내실로 들어갔다. 아직 무슨 영문인지 알지 못하는 소년은, 아버지의 명으로 걷어 놓은 연을 아까운 듯이 힐끗힐끗 보며 손목을 잡혀서 안으로 들어갔다.
"부인, 지존께 절을 하시오. 오늘부터는 팔도 삼백여 주인의 지존이시외다."
부인은 눈을 들었다. 그 비슷한 말을 일찍부터 흥선에게 못 들은 바는 아니었지만, 이런 일이 이르리라고는 뜻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에 있어서도 오히려 의심스러운 얼굴로 지아버니를 우러러보았다.
"영상이 봉영차로 와서 사랑에서 기다리고 있소이다. 어서 의대를……"
"대감!"
이 지아버니를 우러러보는 부인의 눈에는 그득히 눈물이 괴었다. 그것은 환희의 절정의 눈물일까? 그렇지 않으면 애석의 눈물일까? 일찍이 종가에 시집을 와서 조선 왕실의 많고 많은 비극을 다 아는 부인이매, 사랑하는 아들의 장래의 운명을 근심하는 눈물일까?
"야 명복아! 이리 온."
그리고 가까이 이른 소년을 부인은 힘을 다하여 쓰러안았다.
"야, 명복아!"
"왜 그러세요, 어머님!"
"어머님……어머님……재황아! 너한테 어머님 소리를 듣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로구나. 다시 한 번 불러 다고."
소년은 손을 들었다. 어머니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만져 보았다.
"어머님, 왜 우세요?"
"아니로다. 우는 것이 아니로다. 너는 오늘부터는 나라의 나랏님! 네가 그렇게 되니 너무도 기뻐서 눈물이 저절로 나오는구나."
나라님? 나라님은 대궐에 계신 분이다. 소년에게 있어서는 어머니의 말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미리 준비하였던 새 옷을 바꾸어 입고 복건을 쓰고 천담포를 입은 이 소년은, 영문을 모르면서도 부모께 하직을 고하였다.
그 때는 벌써 흥선군의 둘째도령이 신왕이 된다는 소문이 퍼지기 때문에, 흥선의 집 근처에는 백립 백의의 무리가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소년이 흥선에게 인도되어 안에서 나올 때는, 신왕을 모실 연(輦)은 벌써 안문 밖에 등대되어 있었다.
신왕의 보련―영의정 김좌근이 도보(徒步)로서 딱 곁에 붙어 서고, 도승지 민 치상이 그 뒤에 달리고, 시위 장사며 관원들에게 호위된 이 연은, 소년의 생장한 경운동 흥선 댁을 뒤로 하고 창덕궁으로 향하여 떠났다. 해지고 덜민 옷을 갈아입지도 않은 흥선과 흥선 부인은, 자기네들의 아드님이요, 또한 지금은 이 나라의 지존이 된 소년의 연을 중문 밖까지 전송하였다.
"하늘이여, 신왕의 위에 복을 내려 주십사. 영원하도록 복을 내려 주십사."
고요히 고요히 축수하는 이 중로(中老)의 부부의 눈가에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흥선 댁에서 돈화문까지―그 길 가에는 벌써, 새 임금을 맞으려는 무리가 하얗게 늘어섰다.
어린 임금을 모신 보련 곁에는, 백발의 영의정 김좌근이 딱 붙어 서서 길을 인도하고 있었다. 일찍이 "개똥이"라는 소년으로의 이 신왕과 만날 같이 연을 올리며 돈치기를 하던 동리의 소년들은, 펄펄 뛰면서 연하여,
"개똥아!"
"명복아!"
"재황아!"
부르면서 행차를 어지럽게 하였다. 많은 백의군들은 신왕의 용안을 절하고자 서로 앞을 다투어 헌화하였다. 멀지 않은 거리였다. 그러나 좌우편에 구름같이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빨리 갈 수가 없었다. 의장병사들은 뭉치와 막대를 휘두르면서 길을 방해하는 무리들을 헤치고 있었다. 문득 한 소년이 구경군들 중에서 뛰쳐나왔다. 그리고 보련을 향하여 달려왔다. 보매 그것은 연 동무였다.
"웬 놈이냐? 비켜라!"
달려오는 소년에게 향하여 의장병사의 뭉치가 한 번 날아갔다. 동시에 소년은 이마에 피를 흘리면서 그 자리에 거꾸러졌다.
"가만!"
늠연히 울린 신왕의 음성에 보련은 그 자리에 섰다. 곁에 붙어서 가던 좌근이 보련 쪽으로 돌아섰다.
"무슨 하교가 계시오니까?"
"저 애 이마에서 피가 흐릅니다."
"네, 길을 어지럽게 하는 소년이길래……"
신왕은 용안을 들었다. 어리지만 영특함과 자애심이 사무친 용안이었다.
"나는 오늘부터 이 나라의 상감이라지요?"
"네……"
"왕은 그 백성을 사랑해야 한다고 옛날 성현이 가르쳤읍니다. 저 애를 일으켜 주십시오. 그리고 또 병사들에게 일러 주시오. 다른 사람들도 몽치로 쫓지 않도록 일러 주십시오."
이 너무도 숙성한 하교에 좌근은 뜻하지 않고 용안을 우러러보았다. 그런 뒤에 배행하는 도승지 민 치상을 불렀다.
"배관하는 서인들에게 난폭한 일을 하지 말라는 분부가 계시오니, 그대로 전하게."
이 뜻을 민 치상이 큰 소리로 외칠 때에,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와 하니 함성을 지르며 신왕의 자비심을 찬동하였다. 이로부터 길은 더욱 더디게 되었다. 신왕을 맞으려는 군중은 이 신왕의 고마운 전교를 듣고, 모두 함성을 지르며 길 가운데로 어지러이 들어와서, 용안을 절하고자 우러렀다.
"우리 나라님!"
"우리 상감님!"
이 소년 왕께 대하여 모두 "우리"라는 관사를 붙여 가지고, 환희의 함성을 지르며 따라를 왔다. 돈화문까지 이르매, 뭇 종친들이며 원로대신들은 모두 예복을 갖추고 제 이십 육대의 임금을 맞으러 돈화문 밖에 열을 지어 서 있었다. 보련은 이 맞이하는 종친들이며 대신들의 절을 받으며 돈화문으로 들어가서 인정전을 왼편으로 끼고 돌아서 빈전(殯殿)인 대조전으로 들어갔다. 대조전 서온돌에는 벌써 대왕대비 조씨며, 왕대비 홍씨며, 대행왕비 김씨가, 새로 된 상감을 맞으려고 기다리고 있었다. 뭇 여관들은 새 임금을 절하러 모두 문을 방싯이 열고 겹겹이 둘러서서 그 틈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소년 신왕은 마주 나온 재상 정원용의 앞잡이로 대행 군주의 재궁(梓宮)을 모신 동온돌로 들었다. 그리고 이십 육대의 군주로서, 선행 대왕의 영해에 절하였다. 환영의 기쁨과 선왕께 대한 애통으로 뒤섞인 대궐―그 안에서 궁인들은 분주히 왔다 갔다 하였다.
"아기씨마마!"
신왕이 당신께 와서 절할 때에, 조 대비는 늙은 얼굴에 명랑한 미소를 띄었다.
"자, 이리로 가까이 와서 앉읍시오."
신왕은 대비의 지시하는 자리에 가 앉았다. 조 대비는 손을 내밀어서 소년왕의 수장(手掌)을 잡았다.
"마마, 무슨 생입시오?"
"금년에 열두 살이옵니다."
소년왕은 그 영특한 안정을 치뜨며 이렇게 대답하였다.
"참 영특도 합시오. 마마, 이제부터는 나를 어머니라 부릅시오. 나는 오늘부터는 마마의 어머니가 되는 사람이외다."
그의 사랑하는 아드님 헌종이 임종 시에 두어 번 불러 본 이외, 어머니라는 말을 들어 보지 못하고 오십여 년의 생애를 보낸 조 대비에게 있어서는, "어머니"란 말은 꿈과 같이 즐겁고도 눈물겨운 말이었다.
"원상!"
대비는 발 밖에 대령하고 있는 정원용을 불렀다.
"여기 대령하왔읍니다."
"흥선군을 대원군(왕의 私親)의 친호으로 하고 흥선군 부인을 낙랑부대부인(樂浪府大夫人)으로 봉하고―그 수속은 다 하셨겠지요?"
"하비대로 하왔읍니다."
"흥선군 사택은 운현궁(雲峴宮)으로 궁호를 내리고……"
"네……"
"그밖에 또 무슨 의견이 없읍니까?"
"대비전마마, 한 가지 계청하올 말씀이 있읍니다."
"무엇이오니까?"
"다름이 아니오라, 우리나라에는 아직껏 생존한 대원군이 없사와, 그 선례 고빙할 바가 없사오니, 지금 주상전하의 생친 되시는 흥선 대원군을 어떤 형식으로 대우하여야 하올지, 거기 대한 하교가 계시오기를 바라옵니다."
이야말로 어려운 문제였다. 조성하가 사이에 나서서 흥선군과 대비의 사이에 왕래한 결과, 이 문제의 해결책도 다 내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것이 과연 대신들에게 무사히 통과가 될는지 의문이었다. 아직껏 역사상에 생존한 대원군이 없었는지라, 지금 여기 갑자기 생겨난 생존한 대원군의 격식 문제는 난문제 중의 난문제였다.
"거기 대해서는 내일 원로대신들이 다시 희정당에 모여서 좋도록 의논을 하기로 합시다."
"또 한 가지, 주상 전하는 아직 연치가 유충하시매, 선례에 의지해서 대비전마마께오서 수렴청정을 하시올지, 혹은 어떤 다른 방식을 취하올지, 거기 대한 하교도 계시오기를 바라옵니다."
"거기 대해서도 내일 함께 의논을 하도록 합시다."
"즉위의 어절차는 어떻게 하오리까?"
"그것은 선례에 의지해서 하기로 합시다."
이리하여 대략은 모두 내일로 미루기로 작정하였다.
그 날 밤, 자리에는 들어갔지만 조 대비는 머리에서 일고 잦는 수 없는 망상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제는 흥선의 도령을 영립하였다. 몸은 비록 대왕대비로서 이 종실의 어른의 지위에 있었으나, 이전부터 삼 대째 내려온 뻗고 또 뻗은 김씨들의 세력에 눌려서, 마음에 있는 일 한 가지도 뜻대로 해보지 못하고, 당신의 사랑하는 조카 성하조차, 겨우 승후관이라는 변변치 못한 지위에 머물러 두었는데, 이제 바야흐로 그 모든 김씨의 세력을 꺾어 버리고, 당신의 새 세력을 뻗칠 것을 생각하매, 야심만만한 조 대비는 그 망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한 때 세도가 너무도 크더니, 너희들도 꺾일 날이 있구나."
이전 이하전 때의 겪은 억분까지 한꺼번에 떠올라서, 김씨 일문에 대한 증오 때문에 대비의 마음은 새삼스러이 어지러웠다.
김문에서도 이 밤 또 다시 중대한 회의가 열렸다. 이미 흥선 댁 도령이 보위에 오른 이상에는, 거기 대한 대책을 강구하고자 다시 긴급한 회의가 열린 것이었다.
"한 가지 있읍니다."
무거운 눈을 치뜨며 이렇게 말한 사람은 김병기였다.
"아직 한 가지의 길―나라에는 두 임금을 둘 수가 없으니까 흥선군은 당연히 신위(臣位)에 두지 않을 수가 없겠읍니다. 지금 보건대 만조백관이며 자사 녹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흥선군에게 심복을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읍니다. 그러니깐 흥선군을 신위에만 두게 될 것 같으면 그다지 무서울 일도 없을 줄로 생각합니다."
병기는 어디까지든지 흥선을 멀리 하기를 주장하였다. 여기 대하여 병학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였다.
"흥선은 본시 현문과의 교제가 적고 매일 사귄다는 친구가 대개는 시정의 부랑자들이매, 흥선군이 어떤 권세를 잡는다 해도 그 권세를 그냥 보전하기 위해서, 혹은 우리 일문의 편으로 가담하지는 않을는지요? 더구나 대왕대비전께서는 가까운 친척이라고는 조성하, 조영하, 그 밖 한두 사람밖에는 없으니깐, 이제부터라도 흥선군과 사귀기만 하면 혹은 흥선군은 우리들의 사람이 될지도 알 수 없읍니다."
의논은 여러 가지로 일어났다. 어떤 사람은 흥선과 다시 결탁을 하자고 주장하였다. 어떤 사람은 흥선으로 하여금 단지 임금의 생친으로서의 위의를 보전할 만한 명목을 주고, 운현궁에는 홍마목(紅馬木)을 세워서 그 출입의 자유를 금하고, 일체로 정사에는 간섭하지 못하도록 하자고 주장하였다. 이런 몇 가지의 의견을 묵묵히 듣고 앉았는 하옥은 머리로는 아까 낮에 신왕을 봉영하러 흥선 댁을 찾은 때의 일을 다시 회상하였다. 영의정인 하옥 자기가 허리를 굽히고 국왕의 생친으로서의 흥선에게 경의를 표할 때에, 흥선은 의연히 다만 한마디,
"수고하오."
할 뿐이었다. 그 말투 그 태도는 웃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대하여 하는 태도에 틀림이 없었다. 뿐더러, 그 때 흥선의 미간(眉間)에 나타나 있던―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기색―아직껏은 흥선으로 미루어서 하옥이 그 때 그 말을 전하면 허둥지둥 두서를 차리지 못할 줄만 알았더니, 흥선의 그 때의 태도는 가장 당연한 일을 만난 듯이, 조금도 낭패하는 기색이 없이 소년을 부르러 뜰로 내려섰다.
이때부터 하옥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한 가지의 문제가 생겼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흥선의 이중인격이었다. 아직껏 비굴한 웃음을 얼굴에 띄워 가지고 기신기신 권문을 찾아다니던 것은 단지 흥선의 호신책이 아니었던가? 이번에 흥선 댁에 떨어진 행운은 그것이 우연한 일이 아니요, 그 사이 십여 년 간을 세밀한 주의 아래 계획하고 진행시켜 온 일의 오늘날의 성공이 아닐까? 더구나 이하전 역모 사건이라 하는 것도 무론 구체적으로 빚어내기는 자기네 일문에서 한 노릇이지만, 그로부터 사오 일 전에 흥선이 하옥을 찾아서 이런 말 저런 말을 하다가,
"전하 천추하시는 날에는 아마 대개 이 도정이 보위에 오르게 되겠지요?"
이런 한 마디를 던져서, 그것 때문에 위협을 느끼고 자기네는 부랴부랴 이하전 역모 사건이라는 것을 빚어내었다. 그것이 우연한 암합이면 모르지만, 그것 역시 흥선의 세밀한 계획의 일단이라 할진대, 그 추단력, 그 지력, 그 통찰력은 사람으로서 능히 추측하기 힘들도록 놀라운 인물이다.
대원군을 불신례(不臣禮)로 대우할 것.
운현궁에는 홍마목을 세워서 궁에 입하려면 대궐의 허락을 맡도록 할 것.
대원군의 지위의 임금의 아래, 대신의 위에―대군(大君―王嫡子)과 동렬에 두고, 그 출입에는 삼군의 군사로 호위하게 할 것.
기린흉배(麒麟胸背)에 옥대(玉帶)를 정복으로 할 것.
일체 정치에 간섭하지 않게 하고, 단지 임금의 생친으로서 존경하게 할 것.
―흥선 대원군의 금후 대우에 대하여 이렇게 작정하기로 의논을 하였다. 이리하여 이 밤의 회의를 끝내었다. 그리고 원상 정원용과 좌상 조두순에게 미리 양해를 구해서, 내일 대비 어전 회의 때에 틀림없이 이대로 결정을 짓기 위하여, 이미 밤도 깊었으나 하옥이 몸소 정원용과 조두순을 찾기로 하고 그 밤은 헤어졌다.
길의 순서에 의해서 하옥의 탄 평탄자가 바야흐로 조두순 댁 솟을대문 앞에 놓이려 할 때에, 대문이 삐그덕하니 열렸다. 그리고 그리고는 웬 사람이 하인에게 좌초롱을 들리고 나왔다. 조 대비의 조카 조성하였다. 하옥은 가슴이 뜨끔하였다. 벌써 흥선의 손이 조두순에게 펴진 것을 직각하였다.
"대감, 어떻게? 밤도 깊었는데……"
근엄하기 짝이 없는 조두순의 책상 앞에 자리를 잡으면서 하옥을 맞았다.
"밤도 깊었지만 내일 희정당에서 열릴 중대한 어전 회의 때문에 그 의논을 좀 하러 왔읍니다."
두순은 눈을 굴려서 좌근을 쳐다보았다.
"어떠한 의논이오니까?"
"다름이 아니라, 내일 일에 대해서 대감의 의견을 좀 알아보고서……"
"의견……우리에게 무슨 의견이 있겠습니까? 대왕대비전마마의 하교가 계오신 대로 시행할 따름이지, 신자(臣子)가 외람되이 무슨 의견을……"
당찮은 말이라는 뜻이었다. 하옥은 말머리를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럼 대감 홀로의 의향은 어떠시오니까?"
두순은 머리를 숙였다. 한참을 생각한 뒤에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끊어서 똑똑히 대답하였다.
"방금도 대비전마마께오서 승후관 조성하를 보냅셔서 물으시기에 이렇게 붕답했읍니다. 흥선 대원군은 주상전하의 생친이시매, 허수로이 대접은 못할 것이로되, 또한 나라에는 두 임금을 둘 수가 없으니, 좋도록 처분이 겝시사고……"
"그밖에는?"
"그밖에는……"
말을 끊고 두순은 다시 생각하였다. 한참 생각한 뒤에 두순의 입에서 나온 말은 하옥의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었다.
"대감은 흥선 대원군을 어떻게 보십니까?"
"?"
"무서운 지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내 혼자의 생각으로는 내일 어전 회의에서 대비전마마께 흥선 대원군의 섭정을 간원하려고 합니다."
하옥은 입을 딱 벌렸다. 흥선의 손은 벌써 이 근엄 착실한 조두순까지 긁어 잡은 것이었다. 어느 틈에? 그것은 알 수 없으나, 하옥은 여기서 맹연히 일어서는 거인의 그림자를 분명히 직각하였다. 눈을 감은 때는 천하가 요동을 할지라도 아는 체도 안 하지만, 한 번 눈을 뜰 때는 좌충우돌 천하를 위복시키는 무서운 위력을 보았다.
조두순에게서 달가운 대답을 듣지 못하고 하옥이 다시 평교자를 달려서 원상 정원용의 집으로 가매, 하옥보다 먼저 정원용을 찾고 지금 방금 돌아가려는 조성하가 하인을 앞세우고 원용의 집에서 나오는 즈음이었다. 좌근은 원용을 찾지 않고 교자를 돌이켰다. 성하가 먼저 다녀간 뒤에 이제 원용을 찾는대야 쓸데없는 것은 아까 좌상에게 미루어 경험한 바였다. 만월을 우러러보며 자기 집으로 평교자를 달리는 동안, 이 노상의 입에서는 연하게 장탄식이 나왔다.
이튿날 흥선 대원군의 위계에 대한 중대한 회의를 앞하여, 흥선은 직접 대궐에 들어가서 한참을 조 대비와 밀의한 바가 있었다.
낮쯤하여 희정당에서 회의가 열렸다.
"대원군의 의주에 대해서 대신들의 의견이 있으면 어디 말씀해 보시오."
발 뒤에서 대비가 대신들을 내다보며 이렇게 말하였다.
"글쎄올시다. 아직껏 우리나라에 생존한 대원군이 없었사오매 전거할 바를 알지 못하겠읍니다."
정원용의 대답이었다. 원용의 말을 이어서 좌근이 아뢰었다.
"신의 의향을 계상하겠읍니다. 나라에는 두 임금이 있을 수 없으매, 아무리 전하의 생친이시라 하지만, 역시 신하의 반열에 들 밖에는 없을까 하옵니다. 그러나 또한 부자의 의라 하는 것은 인륜의 본의오매, 어버이되는 사람으로서 아드님께 북면해서 절하라 하는 것도 인륜에 어그러진 일이 아니올까 하옵니다. 그러니깐 대원군은 임금은 아니요, 신하도 아니므로서, 운현궁 안에 모시옵고 홍마목을 세워서 이를 대접하옵고, 임금의 사친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내수사(內需司)에서 조도품을 운현궁에 조달하옵고, 주상 전하께서는 매달 한 번씩 운현궁에 납셔서, 사친께 대한 효성을 표하옵고, 그 계제는 대군(大君)과 같이 하옵고, 주상 전하의 사친으로 하여금 일체 정치 문제에 간섭하지 않게 하오면, 첫째로는 인자로서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사올 것이오며, 둘째로는 나라에 두 임금을 두지 않게 될 것으로서, 신의 의향으로는 이렇게 하는 것이 제일이 아닐까 하옵니다."
"좌상의 의향은?"
"영상의 의향도 그럴 듯하옵니다마는 요컨대 대원군은 임금이냐 신하냐 하는 한 가지의 문제밖에는 없을 줄로 아옵니다. 주상 전하께오서 이미 익종 대왕께 출사를 오신 이상에는, 아무리 사친이라 하여도 벌써 그 인연은 끊어졌사오매, 역시 신하의 예로 대우하지 않으면 안 될까 하옵니다. 인자의 도리로서 생친께 추배를 받을 수 없사오니, 단지 추배하지 않고 칭명하지 않고, 위계는 삼공의 위에 두어서 명분을 밝히는 것이 지당하지 않을까 하옵니다."
조두순의 의견은 좌근의 의견을 반대하는 것인지 찬성하는 것인지, 아주 막연하여 잘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대신들께 다른 의향은 없소이까?"
대비가 다시 물을 때에, 아무도 대답이 없었다. 김씨 일문의 의견은 좌근이 이미 대표하여 말하였으며, 다른 의견은 조두순이 말하였는지라, 별다른 의견이 있을 까닭이 없었다. 더구나 어느 편으로 기울어질지 장래를 예측할 수 없는 이 자리에서 섣불리 자기의 의견을 말하기를 모두 꺼리었다. 잠시 침묵이 계속 된 뒤에 대비가 다시 입을 열었다.
"두 가지의 의견을 들었소이다. 두 가지의 의견이 다 일리가 있는 것으로서, 어느 편을 취하고 어느 편을 버리기가 어려운 일이외다. 그러니 그 두 의견을 잘 절충해서 이렇게 하도록 하면 좋을 줄 생각합니다. 대원군은 주상 전하의 사친이매, 북면해서 신하로서 섬길 수는 인륜상 힘든 일이니, 추배하지 않고 칭명하지 않고 신사(臣仕)하게 하자는 좌상의 의견을 채용하고, 대원군이 아무리 신렬(臣列)에 있다 하되 주상 전하의 시친임에는 틀림이 없으니, 임금의 사친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그 출입에는 삼군영의 병사를 두어서 시위하게 하며, 운현궁장(雲峴宮庄)을 마련토록 하고, 쌍초선을 받고 대궐 출입에는 남여를 타고 내관이 부액을 해서 전에 오르고, 그 위계는 대군의 위에 두고, 그 복제는 기린 흉배에 옥대를 쓰게 하고, 이것은 영상의 의견을 좆기로 합시다."
조참(朝參)에는 대원군의 자리를 대신의 위에 따로 정할 것. 임금의 사친에 대한 예로서 운현궁 밖에는 하마비(下馬碑)를 세울 것.
삼공 이외에는 영내(楹內)에 같이 앉지 못할 것―등등 대원군의 의주에 관하여는 대략 결정이 되었다.
의주는 결정이 되었다. 그러나 대원군의 자격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은 커녕 말도 나지 않았다. 이 자격 문제야말로 그 사이 흥선이 온갖 수단을 다 써 가면서 전후좌우로 운동한 것이다.
은인(隱忍) 십여 년, 이제 바야흐로 떨어지려는 복덩어리를 온전히 붙들기 위하여는, 대원군의 자격 문제가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다. 만약 흥선으로서 단지 왕친이라 하는 허명이나 탐하고, 일신상의 영화만을 꾀하려면 지금 여기서 결정된 그 의주는 그의 그런 야심뿐은 넉넉히 만족하게 하고 오히려 남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야심이 단지 자기의 일신상의 안일에 있지 않고, 자기의 커다란 손을 이 나라의 국정상에 펴려는 야욕을 가지고 있는 흥선에게 있어서는, 허영은 오히려 우스운 것이었다.
"왕의 생친의 섭정"
아직껏 전례가 없는 이러한 명목을 붙들고자, 일변으로 정원용, 조두순 등 원로대신을 달래고, 위로는 이 결정권을 잡은 조 대비께 유리한 조건을 제공하기로 약속하고 승낙을 얻은 것이었다.
대원군의 의주에 관해서는 대략 결정이 된 후에 이 전각 안은 잠시 고요하여졌다. 대원군의 의주가 너무도 어마어마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그 발안자(發案者)인 조두순도 오히려 경이의 눈을 던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라에는 두 임금을 두지 못한다 하나, 지금 결정된 의주로 보자면, 대원군의 대우도 또한 임금께 그다지 지지 않았다.
"아, 참 또 한 가지……"
잠시 침묵에 잠겨 있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이렇게 말하는 조 대비의 낯에는 분명히 흥분의 기색이 있었다. 무슨 의외의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려는 것에 틀림이 없다.
"주상 전하가 유충합실 때에는 옛날 예로 말하자면 대비가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격식이지만,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무식한 노파―국사 다난(國事多難)한 이때에, 나같은 무식한 노파가 청정을 하느니보다는, 전하의 생친 대원군이 섭정을 하는 것이 어느 편으로 보든간 상책일 테니깐 그렇게 하도록 마련하시오."
드디어 터져 나왔다. 대비의 입에서 한 마디가 나오면 나오느니만큼 더욱 높아 가는 대원군의 지위였다. 이 전대미문의 하교에, 원로대신들은 미처 대답도 못하고 멍하니 발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김좌근이 먼저 정신을 가다듬었다. 지금 좌일보 우일보로서 그의 사활이 작정되는 위급한 마당이매, 생명을 걸어서라도 반대하려고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이때는 벌써 때가 늦었다. 한 마디의 거탄을 내어 던진 뒤에 대비는 재쳐,
"별다른 이의(異議)가 없는 모양이니 그렇게 작정하도록 하시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노파, 내전에서 주상전하의 어장성이나 보고 즐기고 있겠소이다."
말을 채 맺지도 않고 여관들을 거느리고 내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야말로 전광석화였다. 어느 누가 반대를 한다든가 이의를 제출할 틈도 없이 혼자서 방안하고 혼자서 작정한 뒤에, 전광석화와 같이 내전으로 몸을 피하여 버렸다.
"몰락이다! 몰락이다!"
대비가 내전으로 들어간 뒤에 좌근은 혼자서 중얼중얼 소리까지 내고 있었다.
제 23 장
"이게 무슨 술 따르기냐?"
탁! 기생이 들어 바치는 술잔을 병기는 쳐 버렸다. 술은 좌우편으로 헤치며, 잔은 웃목으로 달아났다. 일족의 몰락, 눈앞에 걸린 무서운 문제 때문에, 병기는 술을 먹어도 취하지를 않았다. 흥선 댁 도령의 승통―뒤이어 결정된 대원군의 의주―그 뒤를 따라서 대원군의 섭정 결정―전광석화와 같이, 그러나 또한 명쾌한 솜씨로 처리된 이번의 사건 뒤에 숨은 흥선군의 위력이라 하는 것을 병기는 비로소 알았다. 한 가지가 진행되고 두 가지가 진행될 동안 처음에는 단지 우연한 행복이 흥선에게로 떨어지거니 이만큼 보았지만, 지금에 있어서는 그 뒤에서 움직인 흥선의 거대한 손을 병기도 알았다. 김문 가운데서도 병기는 가장 노골적으로 흥선을 모욕하던 사람이었다. 자기의 모욕에 참다 참다 못해서 돌아서서 흔히 눈물을 짜 내던 과거의 흥선을 생각한 때에, 병기는 자기의 일족―적어도 자기뿐은 흥선이 권세를 잡기만 하는 날이면 당장에 그 보복을 받을 것을 예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감, 약주 안 드시고 무슨 생각을 하세요?"
기생이 다시 술을 부어서 권할 때에, 병기는 이번에는 나무람이 없이 받아 마셨다.
"자, 또 부어라!"
"네……"
또 한 잔―
"자, 또 부어라! 열 번만 연거푸 부어라!"
연하여 따르는 술을 연하여 열 번을 받아 마셨다.
"야 옥주야!"
"네?"
"흥선군이 대원군이 되었다."
"네? 대언군? 대언군이 뭐오니까?"
"상감의 아버님―흥선군의 작은 도령이 나라님이 되셨다."
"네? 참말이세요? 그럼 계월이한테 한 턱 잘 받아야겠구만요?"
―한 턱 아니고 백 턱이라도 받아라. 이 거대한 변화를 너희들은 단지 한 턱 받을 사람쯤으로 아느냐? 이 가련한 동물아―
―그렇다! 내일 운현궁을 찾아 가 보자. 어차피 몰락할 신분이거니, 내일 운현궁을 찾아서 대원군의 심중을 한 번 진맥해 보자. 아직 상감의 즉위식도 들지 못하고, 따라서 정식으로 섭정의 지위에도 서기 전에 이편에서 먼저 그를 찾아서, 그 의향을 진맥해 보고, 그가 손을 쓰기 전에 먼저 내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자.
진퇴의 길, 여기 대하여 병기는 자진하여 흥선 대원군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어젯밤까지도 발아래로도 보지 않던 흥선이로되, 오늘날은 이 나라의 생살여탈권을 한 손에 잡은 권위의 정이었다. 저 편에서 무슨 행동을 취하기 전에 먼저 이편에서 찾아서, 그 때의 경우를 보아서, 만약 머리를 수그릴 필요가 있으면 숙일 것이고, 숙인대야 쓸 데가 없으면 고요히 자기의 운명에 복종할 것이고―이렇게 마음먹고 병기는 이 위급한 마당에 흥선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옥주야!"
"네?"
"너도 이제부터는 흥선군께 수청을 들어야겠구나?"
어제까지 총애하던 기생들조차 내일부터는 자기를 버리고(전날 그렇게 눈 아래로 깔보던) 흥선에게로 달려갈 것을 생각할 때에는, 병기는 질투 비슷한 감정조차 일어나는 것을 금할 수가 없었다.
영창에 달빛이 비치었다. 만월의 밝은 빛―그것은 마치 장차 빛나려는 흥선의 빛을 예언하듯이 교교한 빛을 영창 위에 던지고 있다.
흥선 댁―운현궁에 병기의 방문, 이것은 과연 의외의 일이었다. 병기가 운현궁에 흥선을 찾은 때는 흥선은 의복을 정제하고 단연히 아랫목 보료 위에 앉아 있을 때였다.
"아, 대감이 이런 누추한 집에를 어떻게 행차하시오?"
벌써 말투도 이전과 달랐다.
"이번의 경사를 축하하러 왔읍니다."
"감사하외다. 우연히 굴러온 복―흥선에게는 너무 과하외다. 자, 날이 추운데 이리 내려와 앉으시오."
흥선과 병기는 대좌하였다. 병기는 푹 머리를 수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흥선 역시 아무 말도 없었다. 천려만사, 가슴에 복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렴인지 눈까지 굳게 감고 있었다. 드디어 흥선이 눈을 떴다. 얼굴에 미소가 나타났다. 몸을 틀어서 문갑 서랍을 열었다.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꺼내었다.
"대감!"
"불러 계십니까?"
"이것을 대감께 선사하리까?"
명랑한 웃음 아래서 흥선은 문갑에서 꺼낸 물건을 병기에게 내밀었다.
"그게 무엇이오니까?"
"호박갓끈!―사 년―오 년 전인가, 대신 생신연에 내가 대감께 빌러 들어갔을 때에, 대감은 내게 안 빌려 주셨지만 오늘은 내가 하나 대감께 선사하리까?"
병기는 가슴이 뜨끔하였다. 그러나 이런 막다른 곳에 임하여 병기는 자기의 호담한 성격을 회복하였다. 병기는 여기서 한 번 너털웃음을 웃었다.
"허허허허! 만약 대감께 오늘날이 있을 줄 그 때 알았더면, 천 백 개의 갓끈이라도 드렸을 것을, 병기 불민해서 선견의 명이 없기 때문에 오늘 대감께 이런 조롱을 받습니다."
이 대답에 흥선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도리어 병기의 이 대답을 장쾌하게 여기는 듯이 병기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병기가 말을 이었다.
"대감! 오늘은 나 같은 몰락인은 대감의 처분만 기다립니다. 주시는 갓끈을 감사히 받겠읍니다."
흥선의 얼굴에서 차차 미소가 사라졌다. 그리고 그 대신 엄숙한 기분이 나돌기 시작하였다. 흥선이 입을 열었다.
"대감!"
"네?"
"사사 감정으로 일국의 정사를 좌우해서는 안 될 일―내가 대감께 대해서 품은 사혐이 적지 않을 줄은 대감도 짐작하시겠지요?"
"처분만 기다리옵니다."
"안심하십시오. 사혐으로 정사를 좌우할 흥선이 아니외다. 지금 조야를 둘러보아야, 국가 다난하고 인재 부족한 이때에, 대감 같은 인물을 거저 버려 둘 수 없으니, 아무 근심 말고 기다리시오. 무재 무력한 흥선이 이제 장차 국사를 조리할 때에는 대감 같은 인재의 협력이 없어야 어찌 다하리까? 아무 염려 마시고 하회 있기만 기다리시오."
의외의 말에 병기는 눈을 들어 흥선을 쳐다보았다. 온화하고도 엄숙한 표정―아직껏의 전례로서 한 개의 세력이 서게 되면 먼젓번의 세력은 반드시 박멸을 시키는 것이어늘, 자기의 맞은편에 단연히 앉아 있는 이 인물(어제까지도 한 개의 비루한 인물로 밖에는 보지 않던)은, 어떤 심산을 가졌길래 적지 않은 위협을 진 자기에게 대하여 이런 관대한 처분을 내리나? 이 집 문안에 들어설 때까지도, 역시 별다른 감정을 가지지 않았던 병기지만, 갑자기 자기의 마음에서 생겨나서 자라는 흥선에게 대한 위포와 존경의 염을 병기는 스스로 금할 수가 없었다.
"대감!"
이윽고 병기가 눈을 흥선에게로 굴릴 때에는, 병기의 얼굴에는 공손의 표정이 뚜렷이 나타났다.
"무엇이라 올릴 말씀이 없읍니다. 그러나 대감께서는 그렇듯 관대히 마음을 잡수시지만, 대비전마마께서 어떤 처분을 내리실지 알 수 없읍니다."
당연한 걱정이었다. 그 사이 권력을 천단하고 조 대비께까지 감히 하지 못할 짓을 함부로 한 그들인지라, 대비가 자기네의 일족에게 대하여 극도의 증오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잘 알았다. 흥선이 빙긋이 웃었다.
"대감도 꽤 소심하시오."
그렇게 소심하면 어떻게 이전과 같은 대담한 일을 하였느냐는 풍자였다.
"대감, 생각해 보시오. 섭정은 이 나 흥선이외다. 아무리 대비전마마라도 섭정을 넘어서서 처분을 내리시지 못하실 줄은 대감도 짐작하실 바, 무슨 별다른 걱정을 하시오?"
"그렇지만……"
대비에게서 명령이 내릴 때에도, 능히 거기 거역하고 자기네를 보호하여 줄 수 에 있겠느냐는 물음이었다.
"아무 근심 말고 흥선을 믿으시오. 든든한 배를 탄 것같이 마음을 턱 놓고 흥선만 믿으시오. 아직껏은, 대감네들은 흥선을 어떻게 보셨는지 모르지만, 흥선은 대감네들이 생각하시는 바와는 좀 달라서, 인정의 움직임을 볼 줄 아는 사람이외다. 행하지 못할 일을 장담할 경박한 사람이 아니외다. 흥선이 한 번 장담한 이상에는, 그럴 만한 자신이 있기에 하는 일이니깐 대감의 운명을 내게 맡기고 얼마만 더 기다리시오."
무슨 자신이 있는 것과 같이 이렇게 장담하는 흥선을, 여기는 거의 하늘을 우러르는 마음으로 우러러보았다.
좀 있다가 대궐에 들어가서 대비께 뵙고 병기의 사건을 주선하기를 흥선은 병기에게 약속하였다. 그 대신으로 병기가 돈 십만 냥만 희생하여 용동궁(龍洞宮―조 대비 사무궁―본시는 동궁 사무궁)에 부치라는 것을 권고할 때에, 병기는 혼연히 이를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무겁고도 증오와 반감으로 찬 마음으로 흥선의 집을 찾았던 병기는, 거기서 나올 때는 그 불쾌한 기분을 다 삭였다, 그리고 가볍게, 흥선에게 대한 존경과 애모의 염을 가득히 품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왔다.
병기는 여기서 아직껏 자기네들의 상식으로는 짐작도 할 수 없는, 온전히 타입이 다른 인물을 보았다. 동시에 그 인물이 바야흐로 펴려는 커다란 손을 보았다. 사람의 감정으로 말하는, 아직껏의 전례로 말하든, 당연히 원심을 품고 자기네를 박멸하기에 온 힘을 다 하여야 할 흥선이, 그와는 단연 반대로 도리어 나아가서 대비께 알선까지 하여 자기네들을 구원해 주려는 것을 볼 때에, 병기는 거기서 단순히 "관대심"이라든가 "동정심"이라든기 "온정주의"라든가 하는 것 밖에,
"사사로운 위혐보다는 더욱 큰 사업이 이 세상에 있으며, 그 사업을 위하여서는 구구한 사혐은 잊어버려야 한다."는 위대한 마음을 보았다. 그 흥선의 큰마음을 보고, 돌이켜서 아직껏의 자기네들의 단지 사욕 채움을 위한 암투며 살육이며 책동 등을 생각할 때에, 병기는 스스로 얼굴이 훅훅 다는 것을 금치 못하였다. 본시 어리석지 않은 병기―어리석지 않기에 또한 흥선은 그 인물을 아끼어 사혐을 모두 잊고 병기의 조명(助命)을 대비전에 품하려 하는 것이다―는, 이제 바야흐로 펴려는 흥선의 거대한 날개를 오히려 많은 호기심과 존경의 염으로 바라보고, 흥선으로서 병기를 부르기만 하면, 부족하나마 한 팔의 힘을 돕기를 아끼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병기와의 약속을 이행하고자, 오후에 흥선은 대궐에 들어갔다. 지금의 회견은 가난한 종친과 대비와의 회견이 아니었다. 섭정 국태공 대원군 저하(邸下)와 대왕대비전하 조 씨의 회견이었다.
"대감, 김가들을 어떻게 처치하시렵니까?"
벽두에 대비께서 김씨에 대한 말이 나왔다. 대비에게 있어서도 원한 사무친 김씨 일문, "김씨"도 아니요, "김가"였다.
"네, 거기 대해서도 어떤 하교가 계시올지 듣잡고자 입내하였읍니다."
대비는 한 순간 말을 끊었다. 준비하였던 말을 꺼내려는 예비 행동이었다.
"한 가지 길―대감, 그 사이 김가들한테 수모를 받은 생각을 하면 치가 떨립니다. 왕실의 계통이 얼마나 존엄한 것이관대, 외람되이 김수근, 김좌근배(金洙根金左根輩)가 주둥이를 디밀어서……"
십사 년 전, 인손이를 제해 버리고 대행왕을 강화에서 모셔 온 일에 대한 노염이었다. 흥선은 황공히 머리를 조았다.
"황공하옵니다."
"또 이하전 옥사에, 소위 대비(헌종 홍씨)가 몸소 금부에 옥초를 보았다니, 이런 해괴한 일이 어디 있겠소이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담이 서늘해집니다."
"황공하옵니다."
"이런 흉적을 대감께서 잘 처분하셔야겠소이다. 고 혜당 김수근(故惠堂金洙根)은 관을 꺼내어 참시(斬屍)를 하고 병학, 병국은 절도에 원배를 보낼 것이고, 하옥 김좌근은 선마마(선조비 김씨)의 동기이니 삭관이나 하고 생명은 그냥 두지만, 병기는 파양 원배(破養遠配) 후에 사사(賜死)를 하는 것이 지당할 줄 생각합니다."
당연한 처분이었다. 이전과 같으면 이러한 처분은 당연한 것으로서, 지금 김씨 일문들도 그만한 각오는 하고 있을 것이었다. 듣기를 끝내고 흥선은 한참 있다가야 머리를 들었다.
"대비전마마!"
흥선의 눈에는 눈물이 그득히 괴었다.
"지당하신 처분이옵니다. 마마의 흉중도 모르는 바가 아니옵니다. 신도 김씨들에게 대해서 마마께 지지 않는 원심을 품고 있는 사람이옵니다. 그러나 마마……"
눈에 그득히 눈물을 머금고 한 마디씩 한 마디씩 뚝뚝한 어조로 말하는 흥선의 말에는 진심미가 있었다.
"김씨 일문을 극형에 한달사, 대비마마 생존 중에는 태산과 같이 동요가 없겠읍지만, 마마 천세 후의 일을 생각할 때에는 신은 가슴이 저리옵니다. 지금 궁중 부중을 막론하고 모두가 김씨들에게 신세진 자들…천 명이고 만 명이고 그 종자를 잔멸시키자면 여니와, 그렇지 못하면 불행히 마마 천세하오신 후에는 누가 김씨의 남은 뿌리를 대적하리까? 주상 전하도 전하려니와, 마마의 애질(愛姪) 성하, 영하(寧夏)는 그 때 누구를 힘입으오리까. 마마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닙지만, 후일의 성하, 영하를 생각합셔서 관대한 처분 계시오기를 바라옵니다."
반박할 수 없는 이론이었다.
"그러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을 흥선이 다시 가로막았다.
"마마, 흥선은 자기의 힘을 아옵니다. 흥선의 앞에선 김씨들은, 봄날의 눈과 같이 자멸의 길을 취할 밖에는 다른 길이 없사옵니다. 관대한 처분이 계실지라도 김씨 일문은 스스로 몰락이 될 것이옵니다. 마마께서 흥선을 믿읍시고 흥선에게 대권을 주신 이상에는, 흥선의 말씀을 좇으시와 관대한 처분이 계시오면, 한 편으로는 마마의 덕을 김씨에게 내리심이 되오며, 또 한 편으로는 후일의 덕행의 표본이 될 것이오매, 잠시 노염을 잊읍시고 놔대한 처분 줍시기를 바라옵니다."
이 이치 정연한 흥선의 의견에는 대비도 더 반대할 수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대비가 말하였다.
"그럼 김가에게 대해서 대감은 어떤 처분을 주실 의향이외까?"
"신의 소견으론 이렇게 했으면 좋을까 하옵니다. 신 본시 낙척 시대에 병학, 병국 형제의 신세를 적지 않게 졌읍니다. 금수도 또한 은혜를 알거든 만물의 영장이 어찌 잊으오리까? 신의 면을 보셔서 병학, 병국 형제를 그냥 관에 머물러 두는 것을 허락해 주십사. 하옥 김좌근은 아무리 순원왕후마마의 동기로되 무능한 노물에 지나지 못하옵고, 그 위에 하옥의 배후에는 독부 양씨가 있사오니, 실직(實職)을 깎으시고 원로의 열(元老列)에나 그냥 두는 편이 좋을까 생각하옵니다. 또 혜당은 이미 죽은 사람을 참시나 해서 무얼 하리까? 막론하시옵소서. 또 병기는……"
흥선의 얼굴에는 빙긋이 미소가 돌았다.
"신, 병기에게 대해서는 잊지 못할 원혐이 있읍니다. 병기의 재간으로 보자면 공위(公位)에 두어도 부족이 없는 인물이로되 신의 사혐 또한 잊기 어려우오니, 당분간은 관을 깎고 고향 여주로 내려가 있게 하였다가, 기회를 보아서 중경(개성)이나 강화(江華)나 광주(廣州)나 어느 중요한 곳의 유수(留守)쯤으로 보내오면, 덕은 덕대로 베풀고, 인물은 인물대로 쓰고, 원혐은 원혐대로 갚는 최상지책이 아닐까 하옵니다."
예사로이 하는 말이로되, 음성이 굵은 흥선의 말인지라 전각이 드렁드렁 울리었다.
"대감 좋으실 대로 헙시오."
대비는 이렇게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직 정식으로 취임을 안 하였지만, 이미 작정된 섭정 국태공―흥선의 의견은 이젠 대비의 권병으로도 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대감 맏도령도, 무슨 요긴한 자리를 하나 마련하셔야겠구료."
"네, 승후관 한 자리나 마련되면 다행일까 하옵니다."
이것은 대비에게는 의외의 대답이었다.
"승후관이란? 그래도 그럴 듯한 자리를 하나……"
"그 애 본시 명민하지 못하와, 높은 자리에 두면 도리어 자리를 더럽힐 근심이 있읍니다. 전하의 동기라고 자격이 없는 높은 지위를 맡기는 것은 정사를 흐리게 하는 일―흥선이 섭정으로 있는 동안은 일호도 사사의 정의로써 사람을 좌우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고―이것은 벌써 옛날부터 생각한 바옵니다. 만약 그 애가 마마의 애질 성하만큼만 명민할 것 같으면, 자식에게 대한 어버이의 마음이 왜 높이 등용하고 싶지 않겠습니까?"
이것은 이후 대비가 무리하게 사람을 추천할 때가 있으면 그 때에 대한 방비선인 동시에, 또한 재래의 관습을 깨뜨려 버리고 인재를 등용하겠다는 자기의 정견을 대비께 내어 비침이었다. 대비의 조카 성하를 상당한 자위에 등용하겠다는 것을 약속하여, 흥선은 대비의 마음을 얼마만큼 흡족하게 하였다. 김좌근, 병학, 병기, 병필 등 김족의 지금의 거대한 재산은 모두 학정에서 얻은 것이니, 속죄하는 뜻으로 매명에 몇 십만 냥씩 거두어 상납하게 할 터이니, 용동궁에 붙여서 대비의 사용에 쓰라고 하여, 대비의 마음을 물질적으로도 흡족하게 하였다.
대비께 하직을 하고 창덕궁에서 나올 때에, 흥선은 지금 바야흐로 커 가는 자기의 위력을 새삼스러이 통절히 느꼈다. 그 사이의 빈곤 때문에 영양 불량으로 장작개비같이 빼빼 마른 자기의 손을 관복 소매 밖으로 내밀어 물끄러미 굽어 볼 때에, 흥선은 이제 이 장작개비 같은 손아귀의 안으로 들어올 거대한 그 무엇을 생각하고 빙긋이 웃었다.
대궐에서 돌아오는 길에 흥선은 영초 김병학의 집을 찾았다. 흥선에게 대하여 그다지 혹독한 일은 한 일이 없으나, 역시 김족의 한 사람으로 전전긍긍히 처분만 기다리고 있던 영초는 망지소조하여 버선발로 뛰어나와서 맞았다.
"대감! 이전 대감의 은혜를 갚을 날이 오늘에야 왔소이다."
흥선이 영초에게 허리를 굽히며 이렇게 말할 때에 영초는 땅에 머리를 조았다. 이전과 같은 "상갓집 개"가 아니요, 지금 웃사람의 지위로서 이 집을 찾을 때에 흥선은 감개무량하였다.
"대감! 이젠 어느 설 때 보내 주신 세찬―그 날의 은혜는 흥선 죽을지라도 잊을 수가 없소이다."
내일 모레면 섣달그믐이라 대목께, 팽경장의 집에서 참지 못할 수모를 받고 쫓겨 나와서, 갈 데가 없어서 바람 찬 종로의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지나가던 영초에게 발견이 되어 영초의 집으로 끌려가서 적지 않은 대접도 받았거니와, 더구나 많은 전곡을 보내 주어서 무사히 과세를 하게 한 그 날의 고마움은 흥선의 마음에 아로새겨져서 잊지 못할 일이었다.
"원한은 기억할 필요가 없으나, 은혜는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외다. 그 날의 은혜 이제 갚을 날이 있으리라."
흥선은 감연히 이렇게 말할 때에, 영초는 황공하여 감히 머리도 들지 못하였다. 여기서 흥선은 영초에게, 김문에 대한 조 대비의 처분을 말하여 주었다.
―조 대비는 김문에게 대한 노염이 매우 커서 모두 극형을 엄명하였지만, 겨우 주선을 하여서―
一, 김좌근은 영의정을 사퇴하고 단지 상신에 머물러 있을 것.
一, 병기는 당분간 근신하는 뜻으로 시골이라도 내려가 있으면 장차 다시 부를 기회가 있을 것.
一, 병필은 실직을 사퇴할 일.
등등으로 낙착이 된 것을 말하고, 병학, 병국의 형제는 이전의 은혜도 있으니, 조정에 머물러서 흥선 자기를 협찬해 줄 것을 아울러 부탁하였다. 전대미문의 은전(恩典)이었다. 이런 관대한 처분을 뜻도 하지 않고 있던 병학은, 혼연히 이 은전을 자기네의 일족에게 알게 하여, 대감의 주선이 덕을 보답하기로 약속하고, 아울러 우둔하지만 대감의 앞에서는 견마의 노를 아끼지 않기를 맹세하였다. 길까지 따라 나오면서 전송하는 영초와 작별을 하고 흥선은 다시 교군에게 명하여 조두순의 집으로 갔다.
"이번 주상 전하 영립에 대하여 많이 노력하심을 감사하러 왔읍니다."
이렇게 흥선이 인사할 때에, 근엄한 조두순은 자리를 물러 앉아 절하며 국태공 흥선군에게 경의를 표하였다. 대비의 어의로 영의정 김좌근은 퇴직을 하고 그 뒤를 조두순이 올라서서 영상의 직을 받기로 내정되었으니, 그만큼 알아 두고 그 준비를 하여 두라고 부탁하였다. 모든 일은 이제 명년(갑자년) 정월 주상 전하의 즉위식이 지난 다음에야 구체적으로 결정이 될 서이지만, 지금 내정된 것으로 그만큼 되었으니 그렇게 알아 두라는 것이었다.
조두순의 집에서 나와서는 정원용의 집에도 잠시 들렀다. 그리고 거기서도 주상 전하 영립의 공로를 감사하고 정원용의 아들 기세(基世)는 대비의 분부로 병조판서로 내정이 되었으니 그만큼 알아 두라고 당부하였다. 흥선이 원용의 집에서 운현궁으로 돌아온 때는, 겨울의 짧은 해가 다 가고 꽤 어두운 때였다. 불안(不安)의 계해년 섣달이었다. 상감이 갑자기 승하였다. 그 후사가 없었다. 누구? 누가 될까? 모두들 이러한 마음으로 하회를 기다릴 동안, 의외 천만으로 흥선의 아드님이 이십 육대의 조선 군주로 옹립이 되었다. 이 의외의 일에 딱 벌렸던 입이 닫히기도 전에 뒤따라 더욱 놀랄 만한 일이 생겼다. 흥선이 섭정이었다. 그 족보로 따지자면 당당한 종실의 공자지만, 영락되고 영락되어, 기생집 아랫목이나 지키고 투전판이나 찾아다니던 흥선이었다. 그 흥선이 한 번 뛰어서 국태공이 되고 두 번 뛰어서는 왕의 왕이 되었다. 그 너무도 급속한 변화에 누구 한 사람 크게 반대하여 볼 겨를이 없었다. 너무도 의외의 변화에 반대성을 올리려고 할 때에는, 벌써 한 걸음 더 뛰어 올라가서, 반대성이 이르지도 못할 높은 자리에서 위연히 굽어보는 흥선이었다. 한 번 뛰고 두 번 뛰어서, 이런 높은 지위에 올라갔거니, 그 첫 행정으로서 원한 많은 김씨 일문을 잔멸시키려니, 누구든 이렇게 믿었다. 그러나 흥선의 김씨 일문에게 대하여 한 손가락도 대지 않았다. 이것은 무슨 까닭? 지금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은 장래의 일격을 준비하는 예비 행동인가? 혹은 섭정공의 세력으로도 김문의 힘은 능히 꺾지 못함인가? 무거운 기분에 잠긴 계해년 섣달이었다.
아직 국왕의 즉위식도 들지 못하였다. 따라서 흥선도 정식으로 섭정의 자리에 서지 못하였다. 흥선은 일체로 침묵을 지켰다. 그런지라, 다만 불안에 싸일 뿐, 누구라 장래를 예측할 수가 없었다. 흥선으로서 만약 이제도 보통인의 생활을 했으면, 그 생활로 미루어서 장래를 추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에 너무도 변화 많은 생활을 보낸 사람이라, 그 마음에 어떤 생각을 품고 있는지는 하늘밖에는 알 이가 없었다. 김문뿐 아니라 정부의 백관은 모두 전전긍긍하였다. 이제 이 해가 지나고 새 해, 흥선이 섭정의 위에 정식으로 앉게만 되면, 어떻게 세상이 뒤집힐지 알 수가 없으므로 마음을 놓을 사람이 없었다. 위로는 의정부 삼공에서부터 아래로는 자사차역에 이르기까지 한 사람도 인사 변동이 없었다.
전례로 따져 보자면, 한 개의 세력이 꺾이고 다른 세력이 들어설 때에는, 한 번 뒤집어 놓은 듯이 모두 변하였는지라, 지금 한 사람의 이동도 없는 것이 더욱 무시무시하였다. 단지 승후관 조성하가 정삼품 통정대부 우승지(正三品通政大夫右承旨)로 승차하고, 상감의 백형 재면이 새로이 승후관으로 임명된 뿐, 영의정 김좌근 이하 한사람도 아직 이동이 없었다. 이 무시무시한 "안정" 때문에 모두 모이면 수군수군하였다. 돌아가는 말로서는, 이제 상감이 등극하고 대원군이 정식으로 취임하게만 되면 당일로 김씨 일문의 수령 삼십여 명을 한꺼번에 참하라는 밀령을 대비에게서 받고, 흥선은 극비밀리에 그 준비를 하고 있다 하여, 가이나 불안한 공기를 더욱 불안하게 하였다. 어제까지는 한 개의 거리의 부랑자에 지나지 못하던 흥선의 지금 일동일정 일거수일투족은 온 조야의 주의의 표적이 되었다.
이러한 가운데서 흥선은 흥선으로서 아무 의견도 입 밖에 내지 않고 다만 정관하고 있었다. 섭정 태공의 자리를 정식으로 잡는 날을 고요히 기다리며―흥선 댁―아니 지금은 운현궁―에는 차차 사람의 출입이 빈번하여 갔다. 이전의 술친구, 기생집 동무, 투전 친구들도 모두 새 옷을 구해서 떨쳐입고 운현궁을 찾아와서 하의(賀意)를 올렸다. 원로대신들도 남녀도 연하여 운현궁 문에 드나들었다. 이전에는 한낱 부랑자로 인정하고 자기 집으로 찾아올 지라도 들이지 않던(지벌과 가품을 자랑하는) 명문거족들도, 모두 서로 앞을 다투어 운현궁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처하여 그들을 응대하는 흥선의 태도―그것은 과연 보는 사람의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폐의 파립―얼굴에는 늘 비굴한 웃음을 흘리며 먹을 것을 만나면 앞뒤를 헤아리지 않고 달려들던 흥선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지금 그들의 눈앞에 나타난 흥선은 어떤 사람인가?
"하하하하! 내가 무얼 하오?"
호기롭게 그가 소리쳐 웃을 때는, 그 웃음소리는 능히 만인의 머리를 숙어지게 하였다. 야위고 창백한 얼굴이지만, 한 번 그 눈을 크게 뜰 때는 등골로는 소름이 쭉 끼쳤다. 천연히 구비된 위풍―일조 일석에 배우거나 스스로 짓지 못할, 그것은 왕자의 위엄이었다. 눈을 고요히 감고, 고요한 말로 하는 한 마디의 명령이라도, 앞에 있는 사람은 마음이 송구하여져서 저절로 시행하지 않을 수 없게 하는 그 위풍―그것은 결코 배우거나 연습하여서 될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본시 그런 천품을 타고 나서야 비로소 가질 수 있는 위엄이었다. 대사가 결정된 이후에는 한 번 흥선을 찾은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진심으로 흥선에게 복종하기를 맹세하였다. 이 패기, 이 위력, 이 압력, 이 지배력, 이 통찰력 이래 반항을 하거나 대항을 할 만한 용기를 가져 본 사람이 없었다. 흥선의 이 위력과 압력을 봄에 따라서, 현하의 정계의 암류(暗流)는 더욱 불안하고 무시무시하였다. 한 번 손을 들 때에는 어떤 일이든 결행할 만한 흥선의 위력과 담력을 차차 이해함에 따라서, 장래에 생겨날 참극을 생각하고 모두 전전긍긍하였다.
조성하는 만날 운현궁을 떠나지 않고 흥선을 모셨다. 흥선의 도령이 보위에 오르기만 하면, 좀 더 높은 자리를 예상하고 있던 성하가, 겨우 정삼품에 머문 것은 약간 불만하기는 하였지만, 흥선의 인물을 이미 안 성하는 표면에까지 그 불평을 나타내지 않았다. 장래 자기의 수완만 있으면 얼마라도 올라갈 길이 남아 있으며, 더구나 흥선이 자기의 맏아들도 겨우 승후관의 지위에 갖다놓고, 서자 재선(庶子 載先)은 그냥 야(野)에 머물러 두게 함에 비추어서 자기의 정삼품이라 하는 지위에 불평을 말할 수가 없었다. 성하도 고요히 기다렸다. 어서 이 며칠 남지 않은 계해년이 다 가고, 새 해가 이르러서 눈을 뜬 사자의 포함성을 들어 보고자―
어떤 포함성이 나오나, 그 사이 십 수 년간을 은인하고 은인하여 가면서, 닦고 라고 궁리하고 세운 이 사자의 계획은 어떤 것인가고―그 때의 빛나는 우렁찬 날을 생각할 때에, 젊은 성하는 가슴이 들먹거리는 것을 금하지를 못하였다. 그리고 자기도 또한 그 우렁찬 날에 한 개의 역할을 맡아서 할 사람임을 생각할 때에, 희열과 만족감과 긍지를 금할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계해년은 고요히 고요히 저물어 흘러갔다. 그 며칠 사이에 소위 "속죄(贖罪)하기 위한 상납"이라는 명목으로서 김씨 일문에서 내어 놓아서, 흥선의 손을 통하여 용동궁에 갖다가 붙인 금액이 합계 구십여 만 냥이었다.
그 어떤 날 흥선은 갑자기 하옥 김좌근을 찾았다.
"대원군 전하께서 행차하셨읍니다."
하인이 이렇게 아뢸 때는, 하옥은 양씨의 집 내실에서 양씨와 마주 앉아서 시골로 내려갈 의논을 하고 있던 때였다. 하옥은 허둥지둥 일어섰다.
"무얼 하러 왔을까?"
이전 같으면 흥선 따위는 올지라도 눈 하나 거들떠보지도 않을 하옥이로되, 지금은 몸을 벌벌 떨면서 황황히 일어나서, 양씨에게는 눈짓을 하고 사랑으로 뛰쳐나왔다.
"대감께 주상 전하 옹립에 대한 감사를 드리러 왔읍니다."
이렇게 말할 때에 흥선의 얼굴에 나타난 것은 너무나 명랑한 미소였는지라, 호인 하옥은 이것을 조소(嘲笑)로 알지 못하였다.
"천만에, 대감 어떻게 이런 누추한 집에를 왕림하셨읍니까?"
"네, 대비전마마의 하교가 곕셔서……"
하옥은 눈을 들어서 흥선의 얼굴을 우러러보았다.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은 심정으로―
"어떤 하교오니까?"
여기 대해서 흥선은 즉시 대답치 않았다. 머리를 수그리고 말하기가 매우 거북한 듯이 두어 번 코를 울렸다. 그런 뒤에야 입을 열었다.
"대비전마마꼡서, 대감 작은마마(양씨)를 불러 곕시는데요."
의외의 말이었다. 하옥은 낭패하였다. 머리를 들었다가 도로 수그렸다. 수그렸다가 도로 들었다.
"왜 부릅시는지 알 수 없겠읍니까?"
"글쎄올씨다―한데 대감 이상한 말을 묻습니다마는, 대감 댁 작은마마가 그―저……"
말하기가 매우 거북한 모양이었다.
"언제, 그…저…그 대감께 폭행을 한 일이 있습니까?"
하옥은 번쩍 머리를 들었다. 대답은 못하였다. 망지소조하여 들었던 머리를 좌우로 휘둘렀다. 대답은 못 지하였지만, 그런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하였다.
"순원왕후 전하의 동기되시는 귀인께 외람되이 하향 전비가 폭행을 했다고, 대비전마마의 노염이 여간 크지 않습니다."
엉뚱한 거짓말을 지어서 하옥을 위협하는 흥선이거니, 속으로 하옥의 낭패하여 어쩔 줄을 모르는 꼴이 우습기가 짝이 없었다.
"대감, 살려 줍시오."
몇 마디의 위협을 더 받은 뒤에 하옥의 입에서는 드디어 탄원성이 나왔다.
"대감만 믿습니다. 대비전마마께 잘 말씀드려서, 모면하도록 해 줍시사. 대감만 믿습니다. 아무런 노릇이라도 대감 처분대로 할게―"
이리하여 여기서는 한 개의 상의(商議)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그 상의는 하옥이 십만 냥, 양씨가 이십만 냥을 용동궁에 상납을 하고, 그 대신 벌을 모면시키도록 주선하기로 낙착이 되었다.
"대비전마마! 하옥 김좌근이 용동궁에 삼십만 냥을 상납하겠다 하옵니다. 김가의 행실을 보자면 괘씸하기 짝이 없으되, 훗날을 생각합셔서 이것으로 좌근의 죄는 용서해 줍시기를 바라옵니다."
흥선이 삼십만 냥의 어음을 대비의 앞에 내어놓고 이렇게 빌 때에, 대비도 명랑히 웃으면서 이를 승낙하였다. 피비린내 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흥선은 이편저편으로 돌아다니며 알선하였다. 만약 흥선의 알선만 없었더면, 김씨들은 모두 참몰을 면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그 동안 조두순, 김병학 형제 등은 자주 운현궁에 왔다. 그리고 조두순이나 김병학이 온 때는 흥선은 조성하까지 멀리 하고 밀실에서 의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런 결과로 정부 대신들도 대략 작정이 되었다.
영의정 조두순(領議政 趙斗淳)
우의정 김병학(右議政 金炳學)
좌의정 결원(左議政 缺員)
삼공은 이러하였다. 그 아래로는 또한 이와 같았다.
이조 판서 김병학 겸섭(吏曹判書 金炳學 兼攝)
―후에 이의익(李宜翼)이 정식으로 맡음.
호조판서 김병국(戶曹判書 金炳國)
병조판서 정기세(兵曹判書 鄭基世)
선혜당상 이승보(宣惠堂上 李升輔)
좌포도대장 이여하(左捕盜大將 李景夏)
우포도대장 신명순(右捕盜大將 申命純)
금위대장 이장렴(禁衛大將 李?濂)
어영대장 이경우(御營大將 李景宇)
총융사 이방현(總戎使 李邦玄)
그밖에 각조의 참판 이하로는 남인과 북인과 소론을 많이 기용하기로 하였다. 아직껏 정부의 요로에 선 사람은 모두 노론파(老論派)로서, 소론 · 남민 · 북인은 모두 낙척하여 겨우 그 날 그 날의 생명이나 유지해 가던 것이었다. 흥선은 이 실의(失意)의 남인 · 북인 가운데서 인재를 추려 내어서 당연히 정부의 요직에 가져다 놓기로 하였다.
"주상 전하 즉위의 예가 지난 뒤에 발표할 것이지. 그 전까지는 대감의 마음에 깊이 잡수시고 발설하지 마시오."
흥선은 조두순에게 이렇게 당부하여 두었다. 남인 · 북인뿐 아니라 정부의 요직에는 절대로 오를 자격이 없던 중인, 관속들도 많이 등용하기로 내정하였다. 소론이며 남인, 북인은 역시 양반의 꼭지인지라 별 말이 없었지만, 중인, 관속들을 등용하는 데 대해서는 격식을 존중히 여기는 두순은 반대의 뜻을 표하였다. 그러나 두순의 반대쯤으로 굽힐 흥선이 아니었다.
"인재면 상놈일지라도 높이 쓸 것이고, 무능하면 임금의 형일지라도 승후관 이상은 주지 않는 것이 내 주장이외다."
얼굴에 미소를 띄고 이렇게 말할 때는 조두순도 승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하여 모든 준비는 암암리에 진행되었다. 화살은 이미 메어졌다. 줄도 당겼다. 이제는 손을 놓아 준다는 과정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하, 어떤가? 옷이란 무서운 것―폐의 파립 때의 흥선과 금옥탕창의 흥선과 보기에도 좀 다르지?"
하하하하 웃으면서 이런 농담을 던지는 흥선의 양 눈썹 사이에는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있어서, 앞에 있는 자로 하여금 저절로 위압감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다.
천희연, 하정일, 장순규, 안필주―소위 천하장안의 네 사람은 벌써 일찍이 흥선의 영을 받고 시골로 제각기 헤어져서 내려갔다. 각 방백 수령들의 행장을 비밀리에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이전 낙척 시대에는 기생방 친구―권세를 잡은 지금에 있어서는 심복 궁리였다. 이리하여 장래의 일격을 준비함에 추호도 미비함이 없도록 만반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폭풍우를 준비하는 여름날 저녁과 같이 고요하고도 움직임이 없는 외양이었지만, 그 속에서는 장래 세상을 놀라게 할 무서운 폭풍우가 가장 규칙적으로, 가장 계획적으로, 가장 정세하게 착착 진행이 되고 있었다.
제 24 장
낡은 것은 다 물러가고 새로 잡히는 갑자년 정월 초이튿날―
이전 같으면 비록 정월이라 할지라도 몇 사람의 종친이나 술친구밖에 찾는 사람도 없던 흥선의 집이로되, 이제는 섭정 태공의 거궁으로서 초하룻날 이른 아침부터 이튿날 저녁인 이때까지, 문안 오는 무리가 뒤를 따라 이르렀다.
그것을 대충 치르고, 흥선은 내실로 들어갔다. 흥선이 내로 들어설 때에, 마침 웬 처녀가 하나 와 있다가 황급히 발치로 물러앉았다. 흥선은 아랫목에 자리를 잡으면서 처녀를 바라보았다. 낯익은 처녀였다.
"저 애가 누구더라."
부대부인이 거기 대하여 대답하려 할 때에, 흥선은 자기의 기억 가운데서 그 처녀의 정체를 찾아내었다.
"오오, 민 생원 댁 처자로구나! 그렇지?"
"네."
부대부인과 처녀가 동시에 대답하였다.
처녀는 민 치록의 딸―얽은 소녀였다.
"음, 너 몇 살이더라?"
"새해에 열네 살이 잡힙니다."
"천애의 고아―적적하지 않느냐?"
소녀는 적적한 미소를 얼굴에 띄었다.
"어떠냐? 너의 오빠(양오라비 민승호―부대부인의 동생)와의 사이의 의는 좋으냐?"
"네, 퍽 귀여워해 주십니다."
"그러려니!"
흥선은 잠시 말을 끊고, 이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영특한 소녀의 눈찌―비록 한두 점의 얽은 자리는 있으나, 얌전하고 슬기롭고 영리한 얼굴이었다.
"글도 배우느냐?"
"네, 오빠한테 소학도 다 떼고……"
"그리고?"
"이즈음 "좌씨전(左氏傳)"을 조금씩 읽습니다."
"좌전을 읽는다? 그래 알아보겠더냐?"
"모를 것이 너무 많아서, 오빠께 꾸중을 늘 듣습니다."
흥선은 담뱃대를 끌어다가 담배를 피워 물었다. 한 모금 뻐근하니 빨고, 그 푸른 연기와 얼굴 앞에 어리는 가운데로 흥선의 말이 새어 나왔다.
"계집이란 첫째도 둘째도 세째도 온순해야 하느니라. 승호를 양오빠로 여기지 말고 친동기로 섬겨라. 천애의 고아 승호―한 사람밖에는 의지할 사람이 없지 않으냐? 어 참, 계집으로 태어난 이 아깝군!"
부대부인이 흥선의 말에 응하였다.
"집안을 얘기 통 혼자 도맡아 살핀답니다그려. 아직 다른 집 계집애 같으면 각시놀이나 하고 있을 나이에……"
"영특하게 생겼소."
"기박하고 가련한 팔자를 타고났지. 양가로는 친척도 있지만 친편으로는 제일 가깝대야 육촌 칠촌이지, 가까운 일가도 없이 불쌍한 아이외다."
"응, 자주 오빠와 함께 집에 놀러 오너라."
그러나 입으로는 이런 말을 하나, 흥선은 속으로는 이 소녀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가까운 일가도 없다. 참 가엷어라!"
혼잣말 비슷이 이렇게 한 번 더 중얼거리고 다시 생각난 듯이 담배를 빨았다. 그 소녀는 밤에야 양오라비 승호와 함께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부대부인은 소녀가 타고 갈 가마까지 빌려 주었다.
흥선의 둘째도령―지금은 감히 그 휘(諱)조차 부를 수가 없는 지존은, 어렸을 적에 벌써 김병문(金炳聞)의 딸과 혼약을 맺었다. 흥선의 불우한 시대에 혼약을 한 것이었다. 즉, 김병문의 딸은 장래의 흥선의 며느리요 재황의 아내가 될 처녀였다. 그러나 지금 지위가 변하여서, 흥선은 대원군이 되고 재황은 지존이 된 오늘에 있어서는, 좀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문제였다. 조선의 아직껏의 큰 폐단의 하나는 왕비의 친척의 방자였다. 더구나 흥선과 사돈한 집안은 그렇지 않아도 몇 대를 내려오면서 집안의 딸을 대내로 들여보내고, 그 세력이 이미 하늘을 찌를 듯한 김족의 한 사람이다.
내심으로 이 문제에 머리를 앓고 있던 흥선은 여기서 한 얌전한 처녀를 발견하였다. 집안은 부끄럽지 않는 양반의 집안이었다. 영특하고 슬기롭게 생긴 처녀였다. 학문에 있어서도 벌써 "좌씨전"을 읽는다 하니, 여인으로서는 과하면 과하지 부족함이 없었다. 그 위에 가장 두통거리되는 "가까운 일가"가 없는 처녀였다.
밤에 흥선은 그 소녀의 일신상에 대하여 부대부인에게 끈끈히 물었다. 그 묻는 태도가 너무도 끈끈하므로, 부인이 이상히 생각하고 왜 그렇게 묻느냐고 반문을 하매, 흥선은 다만 웃어서 스러져 버리고 말았지만, 한참 뒤에 흥선은 스스로 다시 그 문제를 내었다.
"그 규수를 중전(中殿)으로 삼도록 하면 어떨까?"
여기 대해서 부대부인의 의아하다는 눈치를 흥선은 위에 던졌다.
"벌써 사돈한 댁이 있지 않습니까?"
"김병문 말이오?"
"네."
"있기는 있지만……"
시원하지 않은 대답이었다.
"있기는 있지만―김―김씨가―김문이―김가가―불길해……"
"불길해도 할 수 없지요. 사세가 그런 것이야……"
그러나 흥선은 부인같이 간단히 단념하지를 못하는 모양으로 연하여 머리만 기웃거리다가,
"좌우간 부인!"
하고 찾았다.
"네?"
"그 규수를 간간 놀러 오라시오. 그리고 그 인품이며 사람됨을 좀 유심히 보아 두시오."
한 뒤에 말을 끊으려다가 다시 이어서,
"그 규수가 아니라도 김가는 좋지 못해. 있는 김가들도 꺾어야 할 판에, 새로 새 김가를 들여다 놓으면 마찬가지지. 김가 세상이 또 되게……"
―이리하여 후일 국태공과 민 중전의 악연은 여기서 그 실마리가 맺어졌다.
가까운 일가가 없다고 안심하고 모셔 들였던 이 소녀는 후일 시아버님 국태공의 세력을 꺾기 위하여 동성동본이면 모두 일가라 하고 끌어들였다. 영특하고 슬기로운 성격은 단지 대궐 안의 여주인으로 만족하지 않고, 그의 섬세하고도 날카로운 손을 길게 펴서 여자다운 능란한 외교술을 농락하여, 그의 위대한 시아버님을 거꾸러뜨린―민 중전과 국태공과의 악연은 여기서 이렇게 맺어졌다. 흥선의 활달하고 밝은 눈으로도 여자의 세 치 마음속은 능히 꿰어 보지 못하여, 천추에 원한을 남긴 서투른 짓을 하였다. "일가가 없는 양반 집 딸"이라 하는 미끼가 흥선의 눈을 어둡게 한 것이다.
제 25 장
일양내복―
다사다난한 계해년이 지나고, 갑자년 춘정월―유난히도 명랑한 날씨―한 조각의 바람도 없고 겨울날이라 해도 따스한 볕이 골고루 내려 비치고 있었다. 두어 조각 분홍빛 구름이 백악(白岳) 위에 걸쳐서 이 명랑한 날씨를 더욱 곱게 장식하고 있었다. 갑자기 따스로와진 일기 때문에 집집마다 처녀에서는 눈 녹은 물이 땅을 적시고 있었다.
이 날 조선 팔도 방방곡곡에는 모두 축하의 기분이 넘쳐 있었다. 제 이십 육대 조선 국왕―새해에 열 세 살 되는 소년 왕이 등극하는 날이었다. 종로를 장식하던 공랑이며 육주비전 이하 온 상점은 모두 철전을 하였다. 그리고 시민들은 이 날의 경사를 축하하기 위하여 모두 새 옷을 바꾸어 입고 거리로 몰려나왔다.
이 날 아침부터 거리에는 정일품으로부터 종구품에 이르기까지 높고 낮은 관원들이 모두 자기의 품에 적당한 조복(朝服)으로 몸을 장건하고 뒤를 이어서 금호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 뒤를 연하여 대궐로 들어가는 높고 낮은 관원들의 행차 때문에, 중인 이하 상놈들은 길복판 한가운데는 나설 기회도 없었다.
"에익, 이놈들, 물리거라, 비켜라!"
행차의 앞에서 왔다 갔다 하면서 위세 좋게 울리는 경필의 소리에, 혹은 초헌, 혹은 사인남여에 몸을 실을 높은 재상이며, 아래로는 나귀 한 마리에 마부와 하인 겨우 한두 명을 단 아랫관원들의 행차에 이르기까지, 불안과 희망을 아울러 품고서 금호문 안으로 금호문 안으로 그 그림자를 감추는 것이었다.
대궐 담 밖에는 이 날의 경사를 음향으로나마 엿보려고 모여든 무리들 때문에, 벌써 송곳 세울 여지도 없게 되었다. 이윽고 국태공 흥선 대원군의 행차가 돈화문 앞에 이르렀다. 기린흉배에 옥대를 띠고, 단연히 앉아서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주위의 시민들을 둘러보는 이 귀인―누가 이를 어젯날 한길에서 갈지 자 걸음으로 난행을 하던 하응으로 볼 것이냐? 시종이 받든 조산 그늘에서, 피곤한 듯한 눈을 굴려서 흥선은 좌우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 전후좌우를 시위하는 가마와 도보의 병사들은 늠름히 날뛰고 있었다.
오늘의 주인의 생친(生親)을 맞기 위하여 돈화문이 넓게 열렸다. 삼공이라도 걸어서가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대궐 안(재상은 견여(肩輿)로써 입궐하던 것을 신유년 삼월에 금함)을 흥선의 남녀는 위세 좋게 들어갔다. 흥선의 남여가 문 안으로 그림자를 감춘 다음에는 돈화문은 다시 고요히 닫혔다. 그 뒤로도 관원들의 행차는 연하여 금호문으로 하여 대궐로 들어갔다. 기쁨에 넘친 날이었다. 하늘조차 이 날을 축하하는 듯이 근래에 보기 드문 명랑한 날이었다.
"저 분이 대원군이시지?"
"그럼!"
"본시 흥선군이라지?"
"그래!"
단아한 공자, 위엄성 있는 귀인, 그러면서도 친애할 수 있는 동무―시민들은 여기서 자기네들을 지배할 무서운 권력자를 보기보다, 오히려 친애하고 서로 무릎을 겯고 의논할 수 있는 온화하고도 믿음성 있는 웃사람을 발견하였다.
문득 대궐 안에서는 부드러운 아악 소리가 울리어 나왔다. 제 이십 육대의 임금의 즉위 예식은 바야흐로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 대궐 밖의 시민들은 모두 일제히 허리를 굽혀서 이 경사에 축하와 경의를 표하였다. 인정전에서의 즉위의 예식과 아울러 국태공 섭정의 취임식은 무사히 성대히 끝이 났다. 신왕은 대왕대비 조씨의 인도와 섭정 국태공의 배행으로서 종료에 거동하여, 열성(列聖)의 영전에 이 사직 받듦을 봉고하였다.
이튿날은, 처음 조회를 보는 날이었다. 인정전 용상에는 새로이 삼천리의 강토에 군림한 소년 상감이 좌어하였다. 그 곁에는, 섭정 태공이 모시고 있었다.
국궁!
바이!
흥!
평신!
북향하여 네 번의 숙배도 끝이 났다.
숙배가 끝이 난 뒤에, 흥선―지금은 변하여 태공―은 내관의 부액을 받고 고요한 걸음으로 인정전 전각 밖으로 나섰다. 월대(月臺)에까지 나선 태공은 눈을 들어서 아래 품반품서(品班品序)를 따라서 숙연히 서 있는 문무백관을 굽어보았다. 문득 태공이 입을 열었다.
"이 사람은 흥선 대원군, 주상 전하의 사친이오."
놀라운 성량(聲量)―그 넓은 뜰에 태공의 말은 우렁차게 울리어 나갔다.
"대왕대비전하의 어명으로 오늘부터 유충하신 주상 전하를 협찬해서 이 사람이 대정(大政)을 보기로 합니다. 국정이 극도로 피폐한 오늘, 대소 백관들의 협력을 바라오."
취임사(就任辭)였다. 만정의 백관들은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몇 마디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의 뜻은 태산보다 무거웠다.
"전 책임을 내가 지고 전 의무를 내가 갖겠다."
태공의 말은 이 뜻에 틀림이 없었다. 다시 돌아서서 전각 안으로 들어올 때는, 태공 흥선의 입에서는 길다란 한숨이 나왔다.
"아아, 커다란 씨름을 치렀다!"
하염없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그것은 커다란 안심에서 저절로 솟아오르려는 눈물이었다.
"상감마마를 편전으로 모셔라!"
내관에게 명하고 내관의 부액으로써 편전으로 드는 상감의 뒤를 따라서 태공은 내전으로 들었다.
"전하, 곤하시지 않소이까?"
태공이 자애에 가득 찬 눈으로 아드님을 굽어보며 이렇게 여쭐 때에, 면류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은 상감은 용안을 적이 들고 생친을 우러러보았다.
"곤하지는 않습니다."
"곤합니다. 곤합니다. 몸이 곤하기보다 마음이 곤합니다. 천만의 백성을 헤아리시기, 삼천리의 강토를 다스리시기―몸보다도 마음이 곤합니다. 영화스러우나 괴롭고 고단하신 자립니다."
"아직은 곤한 줄을 모르겠읍니다."
상감의 탄 연에 딱 붙어 서서 이 아버지는 존귀한 아드님께 임금의 자리의 고단함을 설명하였다.
편전으로 돌아와서 편의(便衣)로 바꾸어 입는 것을 본 뒤에 태공은 아드님께 하직하였다.
"나는 운현궁으로 돌아갑니다. 부디 일찍이 침전에 듭시고 수라를 많이 진어합시오."
편전 앞까지 남녀를 불러 대어 남녀에 몸을 싣고 돈화문으로 향하여 나아가는 도중에서 태공은 문득 하옥 김좌근을 만났다. 하옥은 황급히 길을 비키며 국태공에게 인사를 드렸다. 그러나 태공은 그 하옥의 인사에 대하여 가볍게 머리를 끄덕일 뿐, 다시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리고 의장 병사를 불러 거느리고 운현궁으로……
눈 좌우로 하염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가묘(家廟)에 들어서, 선고 남연군(先考南延君)의 영전에 가문의 길보를 봉고할 때에는, 태공의 눈 좌우로는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기뻐하십시오. 영락되고 영락돼서 영전을 뵈올 면목도 없던 가문, 지금 다시 일어서렵니다. 일찍이 소자를 보실 때에, 선인(仙人)이 한 아이를 맡기시더라던 꿈―지금 바야흐로 실현되려 하옵니다. 소자 무력하와, 미처 당하지 못하는 일이 있삽거든 부디 가르치셔서, 이 나라와 이 사직의 만세 태평을 주시옵기를 바라옵니다."
꿇어앉아서 술을 붓고 절할 동안, 끊임없이 태공의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진실로 거대한 야욕의 공전절후의 성공이었다. 항상 계획을 하며 진행을 시키면서도 일변으로는 스스로 코웃음 치고 싶던 이 야욕이 오늘날 성공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그사이 십수 년간을 시정에 배회하며 시민들과 무릎을 마주 겯고 사귀면서 보고 들은 지식에 의지하여, 그들에게서 고통과 중하(重荷)를 제하고, 이 나라로 하여금 굳센 나라가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하여금 가멸한 백성이 되게 하고, 이 강토로 하여금 기름진 강토가 되게 하고, 이 사직으로 하여금 아직껏의 더럽고 추잡한 구태를 벗고 명랑하고 화기 찬 사직으로 만들어 놓는다는 도정이다. 태공은 자기의 역량을 믿었다. 하늘로서 태공 자기에게 넉넉히 수(壽)만 주실 것 같으면, 이상대로 이 나라를 만들어 놓을 심산과 자신이 있었다.
가묘에 예배를 끝내고 사랑으로 나오매, 하객(賀客)들은 구름과 같이 대청에 모여서 태공의 출어를 기다리고 있다가 일제히 일어나서 절하였다. 그 가운데를 태공은 무거운 발걸음을 천천히 아래로 향하여 옮겼다.
"후우!"
태공은 기다란 한숨과 함께 몸을 곤한 듯이 보려 위에 내어 던졌다.
이튿날 섭정 대원군의 명의로서 정부 관리의 이동이 발표되었다. 이 발표를 보고 모두 눈을 둥그렇게 하였다. 양반은 양반이로되 아직껏 무세하던 소론, 남인, 북인이 많이 요로에 서게 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중인, 상놈까지 파격의 등용을 한 것도 그들을 놀라게 하였다. 흥선군 시대의 친구들이 비교적 적게 등용된 것도 그들의 의외였다. 그러나 그런 모든 것보다도 더욱 의외로 느낀 것은 김씨 일문에게 대한 관대한 처분이었다.
김좌근은 실직은 떠났으나 그냥 상부(相府)에 머물게 되고, 그 양자 병기가 단 한 사람 삭관된 뿐, 병학도 선왕 때보다 위가 올라서 공렬(公列)에 서게 되고, 병국도 훈련대장에서 호조판서로 오르게 되고―이것이 가장 눈을 크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가벼우면 원배(遠配), 그렇지 않으면 사사(賜死)거나 참(斬)을 할 것이어니 하고 있었는지라, 이 처분은 과연 보는 사람을 놀라게 하였다. 이러한 관대한 처분 때문에 국태공으로서의 흥선의 광채는 찬연히 그들의 머리 위에서 빛났다.
이제는 대비도 없었다. 상감의 그림자까지 태공 뒤에 감추어졌다. 그들의 앞에 커다랗게 나타나서 빛나는 것은 국태공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광채뿐이었다. 그 광채의 아래 만조백관들은 공손하는 뜻으로 허리를 굽혔다. 잠들었던 사자는 드디어 기지개를 하였다. 그리고 첫 포함성을 질렀다. 산림이 울리어 나가는 그 포함성―그 아래에서 잠 깬 사자는 그의 운동을 시작하였다. 쇠퇴한 국운, 피폐한 국정, 실추된 국권―이 모든 무거운 짐을 한 몸에 뭉쳐지고, 거인은 드디어 그 조리(調理)를 시작하였다.
오랫동안 시정에 배회하여 이 시민의 사정과 고통을 속속들이 다 아는 이 거인은, 시민들을 도의 쓰라림에서 건져 올리고자 그의 커다란 손을 내어 밀었다. 정확히 통찰하는 그의 눈과 든든한 그의 손은, 오랜 학정에 피폐해서 마지막 힘까지 다 사라져 가려는 시민의 위에, 새로운 청량제를 부어 주려고 준비하였다.
이 사자가 출현하기 전에 삼림 속에서 제 세상이로라고 횡행하던 시랑들은 사자의 포함성에 질겁을 하여 그림자를 감추어 버렸다. 이 사자의 구태여 그들을 쫓아가서 필요 없는 살육을 행할 필요가 없이, 시랑들은 스스로 숨어 버렸다. 아직껏 소인들의 장난에 시달리고 시달린 삼천리의 강토는 이 거인의 출현을 혼연히 맞았다. 운현궁은 정치의 중심지며 따라서 이 나라의 중심지로 되었다. 이전에는 비루먹은 개 한 마리 찾지 않던 흥선댁이나, 지금은 팔도강산에서 매일 찾아 드는 수 없는 시민의 무리 때문에, 수십 명의 궁리도 그 응대를 당하지 못하게 되었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 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