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1
여자의 일생
Guy de Maupassant
1
잔느는 짐을 다 꾸리고 나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비는 밤새껏 유리창과 지붕을 소리가 나도록 후려치며 내렸다. 물기를 가득 머금은 야트막한 하늘은 마치 구멍이 뚫린 듯 대지 위로 온통 쏟아져 내려 땅을 곤죽으로 만들고 설탕처럼 녹이려 드는 것 같았다. 후덥지근한 열기를 가득 머금은 질풍이 지나갔다. 콸콸 소리를 내며 넘쳐 흐르는 도랑물 소리가 인적이 드문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었다. 거리의 집들은 집안으로 스며드는 습기를 해면처럼 빨아들여 지하실에서부터 고미다락에 이르기까지 벽에서는 물기가 스며 나왔다. 어제 수녀원의 부속 여학교에서 나온 잔느는 마침내 영원히 자유의 몸이 되어 그녀가 오래전부터 꿈꾸어 왔던 인생의 모든 행복을 손에 쥘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날씨가 개지 않으면 아버지가 출발을 망설일까 걱정이 되어서 아침부터 먼 하늘을 수없이 살피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달력을 여행 가방 속에 넣는 것을 잊어버렸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그녀는 벽에서 달마다 넘기게 되어 있는 작은 달력을 떼어냈다. 거기에는 그림 한가운데에 1819년이라는 금년의 연도가 금박으로 찍혀 있었다. 그녀는 처음 네 칸을 연필로 지웠다. 성자의 이름을 하나씩 지워가다가 5월 2일까지 왔는데 그날은 수녀원의 부속 여학교를 나온 날이었다. 누군가가 문밖에서 "자네트!" 하고 불렀다. 잔느는 "들어오세요, 아빠" 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의 아버지가 모습을 나타냈다. 시몽 자크 르 페르튀 데 보 남작은 전세기의 귀족으로서 괴벽이 있으나 좋은 사람이었다. 장 자크 루소의 열렬한 신봉자인 그는 자연과 들판, 나무, 짐승들에 대해 연인과도 같은 애정을 지니고 있었다.
원래 귀족 출신이기 때문에 그는 본능적으로 1793년을 증오하였다. 그러나 기질적으로 낙천가요, 교육의 영향으로 자유주의자가 된 그는 악의는 없으나 과장된 증오심으로 전제정치에 대해 혐오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큰 힘이면서도 약점인 것은 선량하다는 것이었다. 애무하고 베풀고 포옹하는 데에는 팔이 몇 개 있어도 부족할 정도로 선량하였다. 어수선하면서도 저항력이 없는 창조자의 그것과도 같은 선량함, 마치 의지의 신경이 마비된 듯하고 정력에 결함이 있는 것 같은, 거의 악덕과도 비슷한 선량함이었다.
이론가인 그는 딸을 행복하고 착하게 행실이 곧고 상냥한 여자로 만들고 싶어서 딸을 위한 모든 교육 방침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열두 살까지는 집에 있었으나 그 후로는 어머니가 울면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성심 수도원의 기숙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버지는 딸을 그곳에 엄하게 가두어놓고 수도원 속에만 파묻혀 아무것도 모르게, 세상 돌아가는 일 같은 것은 알지 못하게 하였다. 그는 딸이 열일곱 살 때까지 순결하게 지내도록 하다가 자기 자신이 알맞은 시적 세계에 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다. 즉 들판을 뛰놀게 하면서 기름진 대지의 한복판에서 그녀의 영혼을 열게 하여 순수한 사랑과 동물에 대한 소박한 애정, 생의 고요한 법칙을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무지를 일깨워주고 싶었다.
이제 그녀는 기쁘고 생기에 넘쳐서 그리고 행복에 대한 갈망을 안고 수녀원의 학교를 나왔다. 나태했던 나날들, 긴 밤들 그리고 희망만이 떠돌던 고독 속에서 그녀의 마음이 먼저 엿본 온갖 기쁨과 온갖 즐거운 우연들을 맞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그녀는 베로네세의 초상화와도 같았다. 살갗에 그 빛깔이 옮아 물들 것 같이 빛나는 금발, 태양이 살짝 스칠 때에만 겨우 보이는, 창백한 우단같은 솜털이 가볍게 돋아 있는 장밋빛 살결은 귀족적이었다. 그녀의 눈은 홀란드의 사기 인형의 눈같이 불투명한 파란색이었다. 그녀의 왼쪽 콧방울에는 작은 애교점이 하나 있었고 오른쪽 턱 위에도 역시 점이 하나 있었다. 턱에는 거의 피부와 비슷하여 분간이 잘 안 되는 몇 개의 털이 꼬부라져 있었다. 그녀는 키가 컸고 가슴은 성숙했으며, 허리는 나긋나긋했다. 그녀의 또렷한 목소리는 이따금 너무 날카롭게 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순진한 웃음소리는 주위 사람을 기쁘게 했다. 이따금 자연스러운 몸짓으로 그녀는 머리칼을 매만지려는 것처럼 두 손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곤 하였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달려가서 그를 껴안고 키스했다. "우리 떠나는 거죠?" 하고 그녀가 말했다. 아버지는 미소를 띠우고 상당히 긴, 벌써 백발이 다 된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창문 쪽으로 손을 내밀면서 말했다. "이런 날씨에 어떻게 여행을 하겠다는 거냐?" 그러나 그녀는 어리광을 부리면서 상냥하게 애원했다. "아, 아빠, 떠나요, 제발. 오후에는 갤 거예요." "하지만 네 어머니가 절대로 승낙하지 않을 게다." "그러시겠죠. 그러나 약속할께요. 그건 제가 책임지겠어요." "네가 어머니만 설득시킬 수 있으면 난 아무래도 좋다." 그래서 그녀는 남작부인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출발하는 오늘은 애타게 기다려왔기 때문이다. 성심 수도원에 들어간 이후로 그녀는 루앙을 떠나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자기가 정한 나이가 되기 이전에는 어떠한 기분풀이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 두 번 2주일쯤 파리로 데려간 적이 있었으나 그곳 역시 도회지였다. 그녀가 동경하는 것은 오직 전원뿐이었다.
그녀는 지금 이포르 근처의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낡은 저택인 뢰 푀플의 별장에서 여름을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바닷가에서의 이 자유로운 생활에 대해 끝없는 즐거움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 데다가 그 저택은 그녀가 물려받은 것으로 그녀가 결혼할 때까지 언제나 그곳에서 살 생각이었다. 그러므로 어제저녁부터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는 그녀 생애의 최초의 커다란 슬픔이었다. 그러나 잠시 후에 그녀는 어머니의 방에서 뛰어나오면서 온 집안이 떠나갈 듯 소리쳤다. "아빠, 아빠! 엄마가 승낙했어요. 마차를 준비시키세요."
폭우는 조금도 멎지를 않았다. 사륜마차가 문앞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에는 비가 더욱 세차게 뿌리는 것 같았다. 남작부인이 한쪽은 남편의, 다른 한쪽은 젊은 남자처럼 힘세고 날씬한 키 큰 하녀의 부축을 받으면서 계단을 내려왔을 때 잔느는 마차에 오를 준비가 다 되어 있었다. 이 하녀는 코 지방의 노르망디 여자로서 기껏해야 열여덟 살이 될까 말까 한데 보기에는 적어도 스무 살은 되어 보였다. 가족들은 그녀를 딸처럼 대우했는데, 그것은 그녀가 잔느의 젖자매였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름은 로잘리였다.
그녀의 중요한 임무는 안주인의 보행을 도와주는 것이었다. 남작부인은 몇 년 전부터 심장비대증으로 무척 뚱뚱해져서 늘상 그것을 비관하였다. 남작부인은 몹시 숨을 헐떡이면서 낡은 저택의 층계에 이르렀다. 그리고 빗물이 넘쳐 흐르는 마당을 바라보며 "정말 정신이 나갔군요." 하고 중얼거렸다.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의 남편이 대답했다. "그러자고 한 것은 바로 당신이오, 아델라이드 부인" 그녀는 다델라이드라는 화려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남편은 다소 놀리는 듯한 존경심을 가지고 언제나 '부인'이라는 칭호를 붙이곤 했다. 그녀는 다시 걸음을 옮겨 간신히 마차에 올라탔다. 그러자 마차의 용수철이 모두 오그라졌다. 남작은 부인 곁에 앉고 잔느와 로잘리는 맞은편 좌석에 앉았다.
부엌 하녀인 루디빈느가 무릎을 덮을 망토를 몇 개 가지고 왔고, 바구니 두 개는 다리 밑에 넣었다. 그러고는 시몽 영감 곁의 마부석으로 기어 올라가 그녀를 완전히 덮어씌울 만큼 큼지막한 덮개로 온몸을 감쌌다. 문지기 부부가 와서 마차 문을 닫으면서 인사를 했다.
그들은 짐수레로 딸려 보낼 짐에 대해 마지막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마차는 떠났다. 마부 시몽 영감은 빗속에 머리를 숙이고 등을 구부린 채, 깃이 세 겹으로 된 외투 속에 몸을 숨겼다. 신음하는 듯한 광풍이 차창을 때리고 길은 침수 되었다.
두 마리의 말이 전속력으로 몰고 가는 사륜마차는 한결같은 기세로 부두로 내려가서 대형 선박들이 줄지어 서 있는 곳을 따라 내달렸다. 돛대와 활대와 밧줄이 헐벗은 나무처럼 빗발치는 하늘에 쓸쓸하게 솟아 있었다. 이어서 마차는 몽 리부데의 긴 대로로 접어들었다. 얼마 안 가서 평원을 가로질렀다. 이따금 비에 잠긴 버드나무가 버려진 시체처럼 가지를 늘어뜨린 모습이 물안개 저편으로 나타나곤 하였다. 말굽쇠는 철벅철벅 물을 튀기고 네 개의 마차 바퀴는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모두들 말이 없었다. 그들의 마음도 대지처럼 젖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몸을 젖히어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남작은 침울하게 비에 젖은 단조로운 들판을 바라보았다. 로잘리는 무릎 위에 봇짐을 얹어놓고 서민들의 그 특유한 동물적 몽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잔느는 이 후덥지근한 빗속에서 마치 갇혀 있던 식물이 방금 바람을 쐰 듯이 생기가 솟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느끼는 기쁨의 농도가 마치 나뭇잎처럼 그녀의 마음을 슬픔으로부터 가려주고 있었다. 그녀가 느끼는 기쁨의 농도가 마치 나뭇잎처럼 그녀의 마음을 슬픔으로부터 가려주고 있었다. 그녀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노래를 부르고 싶었고, 밖으로 손을 내밀어 쓸쓸한 풍경을 바라보며, 이 폭우 속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 즐거웠다.
억수같이 퍼붓는 빗속에서 두 마리의 말의 번들거리는 엉덩이에서는 뜨거운 김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남작부인은 차츰 숙여서 목덜미의 커다란 세 개의 주름살로 힘없이 받쳐져 있었다. 그 마지막 주름살은 가슴의 바다 한가운데로 사라졌다. 숨을 쉴 적마다 들먹여지는 머리는 다시 밑으로 떨구어졌다. 뺨은 부풀어 오르고, 또한 반쯤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코 고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남편은, 그녀에게 몸을 기울여 풍만한 배 위로 깍지를 낀 그녀의 두 손에 작은 가죽 지갑을 살며시 놓았다.
이 감촉은 그녀를 깨워 놓았다. 그녀는 선잠을 깬 사람의 그 몽롱한 상태로 흐리멍덩한 시선으로 사물을 바라보았다. 지갑이 떨어지면서 열렸다. 금화와 지폐가 마차 안에 흩어졌다. 그녀는 완전히 잠이 깼다. 그러자 딸의 즐거움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터져 나왔다. 남작은 돈을 주워 부인의 무릎 위에 놓으며 말했다. "여보, 이건 엘르토 농장에서 남은 전부요. 앞으로 우리가 자주 가서 지내게 될 뢰 푀플을 수리하려고 그걸 팔았던 거요."
부인은 6천 4백 프랑을 세어 보더니 조용히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 농장은 그들의 양친이 물려준 서른한 개의 농장 중에서 아홉 번째로 판 농장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토지에서 약 2만 리브르의 수입이 있었고 잘만 관리한다면 연간 3만 프랑은 쉽게 구입을 올릴 수도 있었다. 그들은 검소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만일 집안에 언제나 벌리고 있는 바닥 없는 구멍, 즉 선량이라는 구멍만 없었다면 이 소득으로 충분했을 것이다. 그 선량함은 마치 태양이 늪의 물을 말리듯이 그들 수중의 돈을 마르게 하였다. 돈이 흘러가고 도망가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어떻게? 아무도 그것을 알지는 못하였다. 언제나 둘 중의 한 사람이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어찌 된 일인지 모르겠군. 대단한 걸 산 것도 아닌데 오늘 백 프랑이나 썼단 말이야."
쉽게 주어버린다는 것은 어쨌든 그들의 삶에 있어서 커다란 행복 중의 하나였다. 그래서 그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훌륭하고도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태도로 서로 이해하고 있었다. 잔느가 물었다. "그래, 제 성관은 아름다운가요?" 남작이 기분 좋게 대답했다. "얘야, 보면 알게 된단다." 세차게 내리던 소나기가 차츰 약해져 갔다. 그러더니 이제는 안개 비슷한 아주 가느다란 이슬비로 흩날렸다. 먹구름에 덮힌 하늘이 놓아지고 희뿌연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보이지 않는 구멍을 통해서 긴 햇살이 비스듬이 초원을 내리비쳤다.
구름이 갈라지고 푸른 하늘의 속이 드러났다. 그러더니 갈라진 부분이 막이 열리듯이 점점 커져갔다. 그리고 깨끗하고도 오묘한 쪽빛의 아름답고 순수한 하늘이 세상 위에 펼쳐졌다. 서늘하면서도 부드러운 바람이 마치 대지의 행복한 탄식처럼 지나갔다. 들과 숲을 따라 달릴 때면 깃을 말리는 새의 활기찬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저녁이 되었다. 마차 안의 사람들은 잔느만 빼놓고는 모두 잠이 들었다. 두 번, 말의 숨을 돌리게 하고 물과 함께 귀리를 좀 주기 위해 여인숙에서 멈추었다.
해는 이미지고 멀리서 종소리가 울렸다. 어떤 작은 마을에서 램프에 불을 켰다. 하늘도 역시 총총한 별들로 빛나고 있었다. 불 켜진 집들이 한 점의 불처럼 어둠을 뚫고 여기저기에 나타났다. 갑자기 언덕 뒤에서 전나무 가지들 사이로 붉고 커다란 달이 잠에 취한 듯이 솟아올랐다. 날씨가 따뜻해서 유리 창문은 내린 채로 그냥 두었다. 공상에 지친 잔느는 행복한 환상에도 싫증이 나서 이제는 쉬고 있었다. 똑같은 자세로 오래 있었기 때문에 온몸이 저려와 가끔 눈을 떴다. 그럴 때마다 밖을 내다보면 불빛으로 가득한 어둠 속으로 농가의 나무들이 지나가는 것을 보거나 여기저기 들판에 누워 있는 소들이 머리를 쳐드는 것이 보였다. 그녀는 이리저리 자세를 가다듬고 나서 그리다 만 꿈을 다시 잡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끊임없이 굴러가는 마찻소리가 귀에 가득 차 생각을 방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정신도 몸같이 기진맥진해 있음을 느끼고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는 동안에 마차가 멈췄다. 하인과 하녀들이 손에 램프를 들고 마차문 앞에 서 있었다. 드디어 도착한 것이다. 갑자기 잠에서 깬 잔느는 재빨리 뛰어내렸다. 아버지와 로잘리는 한 농부가 비춰주는 등불을 받으면서, 완전히 기진맥진하여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또 쉴 새 없이 죽어가는 작은 소리로 "아이구, 제기랄! 얘들아!" 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는 남작부인을 거의 떠받들다시피 하고 있었다. 부인은 아무것도 마시려고도 먹으려고도 하지 않고 자리에 눕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 잔느와 남작은 마주 앉아서 밤참을 먹었다. 그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미소를 짓고 식탁 너머로 손을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모두 어린애 같은 기쁨에 사로잡혀서 수리한 저택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농장과 저택이 딸린 높고 넓은 노르망디 식 저택 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회색으로 변한 하얀 돌로 지어졌으며 일가친척들이 묵을 수 있을 만큼 넓었다.
넓은 현관이 집을 둘로 나누어 한쪽에서 한쪽으로 통하게 했으며 양쪽 정면에는 커다란 문이 열려 있었다. 이중으로 계단이 마치 그 입구에 걸쳐지듯이 놓여 있는데, 가운데는 허공으로 두고 다리처럼 두 개의 계단이 2층에서 만나고 있었다. 아래층 오른쪽으로는 굉장히 큰 객실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새들이 날아다니는 나뭇잎으로 무늬를 놓은 장식 융단이 걸려있었다. 촘촘하게 짜여진 융단으로 씌운 가구에는 모두 라 퐁텐느의 우화에 나오는 삽화가 그려져 있었다. 잔느는 그녀가 아주 어렸을 적에 좋아했던 여우와 황새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는 의자 하나를 발견하고는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었다.
객실 옆에는 고서가 가득한 서재와 사용하지 않는 방이 두 개 열려 있었다. 왼쪽으로는 새 판자로 꾸며진 식당과 식탁보나 냅킨 등을 넣어두는 방, 식품 저장실, 부엌 그리고 욕조가 붙어 있는 작은방 하나가 있었다. 복도가 이층을 완전히 반으로 가르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쑥 들어가면 잔느의 방이 있었다. 그들은 그리로 들어갔다. 남작은 그 방을 새로 꾸몄는데, 단지 벽지를 바르고 창고 속에 쓰지 않고 넣어둔 가구들을 갖다 놓았을 뿐이었다. 플랑드르 산의 아주 낡은 장식 융단들이 이상한 역할로 이 장소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침대를 발견하고는 그녀는 기쁨의 탄성을 질렀다. 네 귀퉁이에는 떡갈나무로 조각한, 새까맣고 밀랍을 칠해 번쩍거리는 네 마리의 커다란 새가 침상을 받치고 있어 마치 침상을 지키는 파수꾼처럼 보였다. 침대 양쪽에는 꽃과 과일을 조각한 두 개의 커다란 꽃장식이 치장되어 있었다. 가늘게 골이 진 네 개의 기둥에는 코린트식의 주두가 붙어 있었고, 장미와 큐핏이 감겨 있는 코니스(벽과 기둥 꼭대기에 얹힌, 쇠시리 있는 수평 돌출부)를 받치고 있었다.
침대는 기념물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로 거무스름해진 나무의 딱딱한 위엄에도 불구하고 아주 우아해 보였다. 장식용 침대보와 침대 닫집의 덮개가 마치 두 개의 하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들은 짙은 남색의 옛날 비단으로 만들어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커다란 백합꽃들이 군데군데 별을 박아놓은 것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잔느는 그것들을 보고 감탄을 하면서 등불을 쳐들고 그 소재를 이해하려고 융단을 살펴보았다. 녹색과 붉은색을 그리고 노란색으로 아주 이상하게 옷을 입은 젊은 영주와 젊은 귀부인이 하얀 열매가 달린 푸른 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같은 빛깔의 통통한 토끼 한 마리가 회색이 도는 풀을 조금 뜯어 먹고 있다. 그들의 바로 위쪽으로는, 흔히 그렇듯이, 원경에는 뾰족한 지붕을 한 다섯 채의 자그마하고 둥근 집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거의 하늘에는 새빨간 풍차가 있다.
꽃을 그린 커다란 꽃무늬가 이 모든 것들을 감싸 돌고 있다. 다른 두 개의 벽 장식도 처음 것과 아주 비슷했다. 다만 플랑드르식으로 옷을 입은 네 명의 작은 꼬마들이 집에서 나와서 몹시 놀라고 화가 난 몸짓으로 하늘을 향해 팔을 쳐들고 있는 것이 다를 뿐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벽 장식에는 비극이 그려져 있었다. 여전히 풀을 뜯어 먹고 있는 토끼 옆에 그 젊은이가 죽은 듯이 누워 있다. 젊은 귀부인은 그를 바라보면서 단검으로 자기의 가슴을 찌르고 있다. 나무의 열매들이 흑색으로 변해있다.
잔느는 그 내용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그만두었다. 그러고는 한구석에서 아주 작은 동물을 발견하였다. 그것은 만약에 토끼가 살아 있다면 풀의 어린싹인 줄 알고 먹어 버릴 수도 있을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한 마리의 사자였다.
그제서야 그녀는 피람과 티스베의 불행을 그린 그림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그림의 단순성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 사랑의 모험 속에 둘러싸인 것이 행복스럽게 느껴졌다. 이것은 끊임없는 자기의 생각에다 소중히 여기는 희망을 이야기해 주고 밤마다 자기의 꿈속에 이 전설적인 고대의 사랑을 맴돌게 할 것이다.
그 밖의 가구는 모두 각기 다른 양식들을 갖추고 있었다. 이 가구들은 대대로 집안에 내려오는 것들로서 낡은 집안을 마치 모든 것이 뒤섞인 일종의 박물관처럼 만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루이 14세 시대의 옷장은 번쩍거리는 구리 장식으로 되어 있었고, 그 곁에는 아직도 꽃다발 무늬가 있는 비단으로 싼 루이 15세식의 안락의자가 두 개 놓여 있었다. 장미목으로 만든 책장은 둥근 유리 뚜껑 속에 제정 시대의 좌종 시계가 놓여 있는 벽난로와 마주 보고 있었다.
이 시계는 황금색 꽃들이 피어 있는 정원 위로 네 개의 대리석 기둥에 매여 달린 청동의 벌집 모양으로 하고 있었다. 기다랗게 갈라진 틈새로 벌집에서 빠져나온 가느다란 추가 에나멜칠을 한 날개를 가진 작은 꿀벌을 이 화단 위로 영원히 날아다니게 하고 있었다. 숫자판은 채색한 사기로 되어 있었고 벌집 허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시계가 열한 시를 치기 시작했다. 남작은 딸에게 키스를 하고 그녀의 방에서 물러갔다. 그래서 잔느는 섭섭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웠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기의 방을 둘러보고 나서 촛불을 껐다. 그러나 침대는 머리 쪽만 붙어 있었고 왼편으로는 창문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으로 달빛이 물결처럼 흘러들어와 바닥에 빛의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달빛이 벽에 반사되었다. 그 창백한 빛살은 피람과 티스베의 움직이지 않는 사랑의 모습을 희미하게 어루만졌다. 발치에 있는 다른 창문으로 부드러운 달빛에 온통 잠겨있는 커다란 나무가 보였다. 그녀는 옆으로 돌아누워 눈을 감았다. 그러나 잠시후에 다시 눈을 떴다. 머릿속에는 마차 굴러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와서 그 요동으로 여전히 몸이 흔들리는 것같이 느껴졌다. 처음에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렇게 쉬면 마침내 잠이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마음의 초조함이 순식간에 온몸을 사로잡는 것이었다. 두 다리에 경련이 일어나고 열이 점점 높아갔다. 그래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맨팔과 맨발에 그녀는 유령같이 보이게 하는 긴 잠옷을 걸친 채 바닥에 쏟아져 있는 빛의 늪을 건너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밤은 대낮처럼 보일 정도로 환했다. 처녀는 옛날 어린 시절에 좋아했던 이 고장을 전부 알아보았다. 먼저 그녀 앞에는 달빛에 버터처럼 보이는 노랗고 너른 잔디밭이 있었다. 두 그루의 거대한 저택앞에 보초처럼 우뚝 서 있다. 북쪽에 있는 것은 플라타너스고 남쪽에 있는 것은 보리수였다. 넓은 풀밭 끝에는 작은 숲이 있었는데 그것은 이 영지의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언제나 미친 듯이 휘몰아치는 해풍으로 뒤틀리고 깎이고 부식 당하고 지붕처럼 경사가 지고 잘린 늙은 다섯 줄의 느릅나무가 태풍을 막아주고 있었다.
공원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터무니없이 큰 포플러나무가 심어진 두 줄의 긴 가로수 길로 해서 좌우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다. 노르망디에서는 '푀플'이라고 불리는 이 포플러 나무는 주인들의 저택과 거기에 인접해 있는 두 개의 농지를 가르고 있었다. 한 곳에는 쿠이야르 가족이 살고 다른 한 곳에는 마르탱의 가족이 살고 있었다. 이 푀플로 해서 저택에 이름이 붙게 되었다. 이 울타리 너머로는 가시양 골담초가 여기저기 돋아 있는 너르고 황폐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람이 밤낮으로 소리를 내며 빠르게 불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언덕은 백 미터쯤 되는 하얗게 깎아지는 듯한 낭떠러지로 꺾어져 있었으며, 그 발치는 파도 속에 잠겨있었다. 잔느는 멀리 별 아래에 잠들어 있는 듯한, 물결이 어른거리고 길고 긴 수면을 바라보았다.
태양이 없는 이 고요 속으로 대지의 모든 내음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창문 아래의 주위로 덩굴을 뻗고 있는 재스민은 돋아나기 시작하는 잎들에서 풍겨 나오는 아주 은은한 냄새와 섞여, 찌르는 듯한 입김을 쉬지 않고 뿜어대고 있었다. 느릿한 바람이 지나가면서 소금기를 머금은 바람과 끈적거리는 해초의 냄새를 실어다 주었다.
처녀는 처음에는 숨을 들이마시는 행복감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그러자 전원에서의 휴식이 시원한 목욕을 했을 때처럼 그녀의 기분을 가라앉혀주는 것이었다. 저녁때가 되면 잠에서 깨어나 밤의 고요 속에 그들의 보잘것없는 존재를 감추고 있는 모든 짐승들은 말 없는 동요로 희미한 어둠을 채우고 있었다. 울지 않는 커다란 새들이 흑점처럼, 그림자처럼 공중을 날아갔다. 그림자처럼 공중을 날아갔다. 보이지 않는 벌레들의 윙윙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쳐 갔다. 그리고 소리 없는 걸음이 이슬이 가득 맺힌 풀밭이나 인적이 드문 길에 깔린 모래를 가로질러 갔다. 단지 몇 마리의 침울한 두꺼비들만이 달을 향해 짧고 단조로운 울음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었다.
잔느는 자기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 같았다. 마치 이 환한 밤처럼 속삭임으로 가득하고, 그 떨림이 그녀를 감싸고 있는 이 밤 벌레와도 같이 떠도는 수많은 욕망이 갑자기 뒤끓는 것 같았다. 어떤 친화력이 그녀를 이 생동하는 시에 연결시켜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밤의 부드러운 흰 빛 속에서 그녀는 초인적인 전율이 흐르고,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가슴이 설레고, 행복의 입김과도 같은 그 무엇을 느꼈다. 그녀는 사랑을 동경하기 시작했다.
사랑! 2년 전부터 그것이 다가온다는 사실과 더불어 커져가는 불안이 그녀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제 그녀는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다. 다만 그를 만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를! 어떤 사람일까? 그녀는 정확하게 그를 알지 못했으며 그에 대해 생각해본 일조차 없다. 그는 그였다. 그뿐이었다. 그녀는 다만 온 마음으로 그를 열렬히 사랑하고, 그도 온 힘을 다해 그녀를 극진히 사랑해 주리라는 것만 알고 있었다. 그들은 오늘 같은 밤에는 별에서 떨어지는 빛나는 재를 받으며 산책을 할 것이다. 그들은 손을 잡고, 서로 몸을 꼭 붙이고, 서로의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들으면서, 서로의 어깨에서 체온을 느끼면서, 여름밤의 달콤한 맑음 속에 그들의 사랑을 섞으면서, 오직 그들의 애정이라는 유일한 힘으로 그들의 보다 은밀한 생각에까지 쉽사리 뚫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하나가 되어 걸어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평온 속에서 끝없이 계속될 것이다. 갑자기 그녀는 그를 거기에서, 바로 자기 곁에 있는 것같이 느꼈다. 그러자 갑자기 막연한 육감의 전율이 그녀의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흘렀다. 그녀는 마치 자기의 꿈을 포옹하려는 듯이 무의식적인 동작으로 두 팔로 가슴을 껴안았다. 그리고 그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을 향해 내민 입술 위로 거의 그녀를 실신시킬 정도의, 마치 몹의 입김이 그녀에게 사랑의 입맞춤을 한 것 같은 무엇인가가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저쪽 저택 뒷길에서 어둠 속을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라 두 방망이질을 치는 마음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든지, 신의 섭리에 의한 우연이라든지, 신의 예감이라든지, 운명의 소설적인 결합 같은 것을 믿으려는 흥분으로 그녀는 생각했다.
만약 그라면? 그녀는 걸어오는 사람의 규칙적인 발소리를 불안스럽게 듣고 있었다. 그는 틀림없이 철책 앞에 걸음을 멈추고 하룻밤의 잠자리를 청할 것이다.
그 사람이 그냥 지나쳐버리자 그녀는 마치 기만을 당한 것처럼 서글퍼졌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의 기대로 흥분되어 있음을 깨닫고 정신 나간 것 같은 짓에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약간 마음이 진정 되어서 그녀는 자기의 마음을 보다 합리적인 공상의 흐름에 띄우고, 미래를 꿰뚫어 보려고 애쓰면서 자기의 존재를 구상해 보려고 했다. 그 사람과 함께 그녀는 여기,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이 조용한 저택에서 살게 되리라. 그녀는 아마 두 명의 아이를 가질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아들을, 그녀를 위해서는 딸을, 그리고 그녀는 플라타너스와 보리수 사이의 풀밭을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더할 수 없이 기쁜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아이들의 머리 위로 사랑이 가득 담긴 서신을 교환할 것이다. 그녀는 이렇게 오래오래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있었다. 그러는 동안에 하늘을 가로질러 여행을 끝마친 달은 바닷속으로 사라지려 하고 있었다. 공기는 더욱 시원해졌다. 동쪽 수평선이 희끄무레해졌다. 오른쪽 농장에서 수탉 한 마리가 홰를 치자 다른 닭들이 왼쪽 농장에서 화답을 했다. 닭들의 쉬 울음소리는 닭장의 칸막이 너머 아주 멀리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다. 어느새 희붐해진 드넓은 하늘에는 별들이 자취를 감추고 있었다.
짤막한 새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려왔다. 처음에는 조심스러운 지저귐이 나뭇잎 사이에서 들려왔다. 그러다가 그 소리는 대담해져서 떨리는 듯한 즐거운 소리로 이 가지에서 저 가지로,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번져갔다. 잔느는 갑자기 자기가 환한 밝음 속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두 손으로 가리고 있던 머리를 들자 새벽의 광휘에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붉게 물든 구름의 산이 키 큰 포플러의 산책길 뒤에 한쪽이 가려져서, 잠이 깬 대지 위에 선혈 같은 빛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빛나는 구름을 헤치고 나무들과 평원과 대양과 온 수평선을 불로 구멍을 뚫으면서 타오르는 듯한 거대한 태양이 나타났다. 잔느는 행복으로 미칠 것 같았다. 만물의 눈부신 아름다움 앞에서 넘쳐 흐르는 즐거움과 무한한 감동이 그녀의 마음을 적시어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것은 그녀의 태양이었다. 그녀의 여명이었다. 그녀의 생의 시작이었다. 그녀의 희망의 눈뜸이었다! 태양을 포옹하고 싶은 욕망으로 그녀는 빛나는 우주를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그녀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이 하루의 탄생과 같이 숭고한 그 무엇인가를 외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무력한 감격 속에 마비가 된 듯 그래도 있었다. 그러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그녀는 눈에 눈물이 가득 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녀는 기분 좋게 울었다.
그녀가 다시 머리를 쳐들었을 때에는 태어나기 시작한 하루의 화려한 배경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녀는 오한이 나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이 가라앉고 약간 피로함을 느꼈다. 창문도 닫지 않고 그녀는 침대에 가서 누워 다시 얼마 동안 공상에 잠기다가 여덟 시에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도 듣지 못할 정도로 깊은 잠에 빠졌다. 그녀는 아버지가 방에 들어왔을 때에야 비로소 잠이 깨었다.
아버지는 성관이, '그녀의' 성관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다는 것을 그녀에게 보여주고 싶어 했다. 내지 쪽으로 나 있는 건물의 정면은 사과나무가 심어 있는 너른 뜰로 해서 길에서 떨어져 있었다. 시골길이라고 불리는 이 길은 농부들의 울타리 사이로 뻗어 나가다가 2킬로미터쯤 더 가서 르 아브르에서 페캉에 이르는 한길과 이어지고 있었다. 곧은 통로가 숲의 울타리에서부터 현관의 층계까지 나 있었다. 바닷가의 조약돌과 짚으로 지붕을 한 작은 부속 건물들은 두 농장의 도랑을 따라서 안뜰의 양쪽에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지붕은 새로 이어져 있었다. 모든 목조 부분은 다시 뜯어고쳤고 벽은 수리가 되었으며, 방들은 도배를 다시 하고 내부는 전부 새로 칠해져 있었다. 그리고 퇴색한 이 낡은 저택에 달려 있는 은백의 새 겉창과 회색을 띤 커다란 정면에 최근에 다시 바른 벽토는 마치 얼룩처럼 보였다. 또 다른 정면, 잔느의 창문 하나가 열려 있는 또 다른 정면은 작은 숲과 바람에 시달리는 느릅나무 벽 너머로 멀리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잔느와 남작은 서로 팔을 끼고 한구석도 빼놓지 않고 전부 둘러보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공원이라고 부르는 곳을 둘러싸고 있는 긴 포플러 길을 천천히 거닐었다. 풀은 나무들 밑에서 돋아나 녹색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었다. 맨 끝에 있는 작은 숲은 매혹적이었다. 그것은 나뭇잎의 칸막이로 갈라진 꼬불꼬불한 좁은 길을 뒤섞어 놓고 있었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튀어나와 처녀에게 겁을 주더니 비탈을 뛰어넘어 절벽 쪽 갈대 속으로 달아나 버렸다. 점심을 먹고 나서 아직도 기진맥진해 있는 아델라이드 부인이 쉬어야겠다고 말을 하자 남작은 이포르까지 내려가자고 제안을 했다. 그들은 떠났다. 우선 뢰 푀플이 있는 에투방의 촌락을 가로질렀다. 세 사람의 농부가 그들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들에게 인사를 하였다. 그들은 구불구불한 계곡을 따라서 바다까지 내려가는 비탈진 숲속으로 들어갔다. 이윽고 이포르의 마을이 나타났다. 문지방에 앉아 헌 옷가지를 깁고 있던 여자들이 그들이 지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집집마다 문 앞에 허섭스레기가 흩어져 쌓여 있는 비탈진 거리에서 붙어 있는 누르스름한 그물들을 누추한 집의 문 옆에다 말리고들 있었다. 그 집에서는 단칸방에서 우글거리는 많은 식구들의 냄새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비둘기 몇 마리가 개울가에서 먹이를 찾으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잔느는 극장의 무대 장치처럼 신기하고도 새로운 이 모든 것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갑자기 어떤 집의 담을 돌아가자 바다 보였다. 불투명하고도 매끄러운 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그들은 해변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았다. 새의 날개처럼 하얀 돛을 단 범선들이 난바다를 지나가고 있었다.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거대한 절벽이 우뚝 솟아 있었다. 곶처럼 튀어나온 것이 한쪽 시야를 가리고 있었고, 다른 쪽으로는 더 이상 알아볼 수 없는 하나의 선이 될 때까지 해안선이 무한히 펼쳐져 있었다. 항구와 집들이 근처 절벽의 갈라진 틈 사이로 보였다. 그리고 바다에 거품으로 술 달린 가장자리를 만들고 있는 잔물결이 가벼운 소리를 내며 조약돌 위로 굴러왔다.
둥근 조약돌로 언덕을 이룬 곳에 끌어올려져 있는 그 지방의 작은 배들은 콜타르를 칠한 둥그런 뱃전을 햇볕에 드러낸 채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몇몇 어부들이 저녁 밀물을 대비하여 배를 준비하고 있었다. 뱃사람 하나나 생선을 팔기 위해 다가왔다. 잔느는 손수 뢰 푀플로 가져가고 싶어서 가자미 한 마리를 샀다. 그러자 그 남자는 뱃놀이를 하실 테면 도와드리겠다고 제안을 하면서 자기 이름을 그들에게 기억시키려고 "라스티크, 조제팽 라스티크입니다."하고 거듭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남작은 그를 잊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그들은 성관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생선이 컸기 때문에 피곤해진 잔느는 아버지의 단장으로 생선의 아가미르 꿰어 둘이서 각기 한 끝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즐겁게 다시 해안을 올라갔다. 이마에 바람을 받고 눈을 반짝이면서 두 명의 어린아이처럼 지껄여댔다. 그러는 동안 점점 팔에 힘이 빠져서 가자미의 그 기름진 꼬리가 풀밭에 질질 끌렸다.
2
잔느에게는 즐겁고도 자유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고, 공상에 잠기고, 혼자서 가까운 곳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정신은 공상 속에 빼앗긴 채 길을 따라 느린 걸음으로 떠돌아다녔다. 또한 양쪽 산능성이가 황금빛의 법의처럼 갈대꽃의 털로 무성한 구불구불한 작은 골짜기를 깡총거리며 내려가기도 했다. 갈대꽃의 진하고도 기분 좋은 냄새는 더위 때문에 더욱 진해져서 마치 향기로운 포도주처럼 그녀를 취하게 했다. 그리고 해변으로 몰려드는 먼 파도 소리와 넘실거리는 파도는 그녀의 정신을 흔들어 놓곤 하였다. 이따금 그녀는 나른해져서 언덕의 무성한 풀밭에 드러눕기도 했다. 또한 이따금 갑자기 계곡의 굽이에서, 잔디밭의 움푹 패인 곳에서, 수평선에 돛단배가 하나 떠 있고 햇빛에 번쩍이는 세모꼴의 푸른 바다가 눈에 띌 때면 마치 그녀에게 감도는 행복이 신비롭게 다가오기라도 한 것처럼 걷잡을 수 없는 기쁨이 그녀에게 밀려오는 것이었다.
고독에 대한 사랑이 이 서늘한 고장의 부드러움과 둥그런 수평선의 고요 속에서 그녀에게 밀려들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꼭대기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작은 야생 토끼들이 그녀의 발치에서 깡총거리며 지나가기도 했다. 그녀는 물속의 고기가 공중의 제비들처럼 지칠 줄 모르고 움직일 수 있다는 오묘한 즐거움에 온몸을 떨며, 해안에서 불어오는 가벼운 바람을 맞으면서 종종 절벽 위로 달리곤 했다.
그녀는 땅에 씨앗을 던지듯이 곳곳에 추억을, 그 추억의 뿌리가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그러한 추억들을 뿌렸다. 그녀에게는 이 계곡의 모든 굽이굽이에다 자기의 마음을 조금씩 던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열심히 해수욕을 하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튼튼하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위험에 대한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한없이 헤엄쳐 나갔다. 그녀는 자기를 이리저리 흔들면서 떠받치고 있는 이 차고 맑은 푸른 물속에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해안에서 멀리 나가면 그녀는 반듯이 누워 가슴 위로 팔짱을 끼고 제비가 빠르게 지나가거나 갈매기의 흰 그림자가 설핏 스치는 하늘의 그 오묘한 푸른 빛을 정신없이 바라보았다.
조약돌에 부딪쳐 멀리 들려오는 물결의 속삭임과 아직도 물결치는 파도에 스치는 육지의 희미한 소음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어렴풋해서 거의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러자 잔느는 몸을 젖혀 미칠 듯한 기쁨에 두 손으로 물장구를 치면서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이따금 그녀가 위험을 무릅쓰고 너무 멀리 나가면 작은 배가 그녀를 찾으러 오곤 하였다. 그녀는 허기져서 얼굴은 창백했지만 경쾌하고도 재빠른 몸짓으로, 미소를 머금고 눈에는 행복을 가득 담은 채 성관으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남작은 남작은 남작대로 농업에 관한 커다란 계획을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시도를 해보고, 진행을 구체화하고, 새로운 기계를 시험해보고, 외국 품종을 이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하루의 한나절을 그가 구상하고 있는 것들이 의심쩍어서 머리를 젓고 있는 농부들과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보냈다. 또한 그는 자주 이포르의 뱃사공들과 함께 바다로 나가기도 했다. 주위의 동굴이나 샘 그리고 뾰족한 꼭대기를 찾아가면, 그는 한낱 어부가 되어 고기를 잡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미풍이 부는 날에 바람을 가득 안은 돛이 파도의 등 위로 작은 배의 통통한 몸체를 미끄러지게 하면, 각 뱃전에서는 바다 밑바닥에까지 고등어 떼를 추적하는 큰 줄을 풀어 길게 늘어뜨린다. 그는 불안에 떨리는 손으로 가느다란 줄을 쥐고 있었다. 그것에 걸린 고기가 몸부림치자마자 그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전날에 던져놓은 그물을 건져올리기 위해 환한 달빛을 받으며 떠났다. 그는 돛대가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기 좋아했고 휙휙 소리를 내는 시원한 밤바람을 들이마시는 것이 좋았다. 그러고는 바위의 돌출부나 종루의 지붕, 페캉의 등대를 따라 부표를 찾기 위해 한참 동안 지그재그로 항해를 한 후에 갑판 위에서 부채꼴 모양의 넓적한 가오리의 끈적거리는 등과 가자미의 기름진 배를 윤기 나게 하는, 떠오르는 아침의 첫 햇살을 받으면서 꼼짝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을 즐겼다.
식사때마다 그는 열광적으로 자기의 산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러면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자기가 포플러가 있는 큰 가로수 길을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었는가를 그에게 들려주는 것이었다. 그 길은 쿠이야르 농장의 맞은 편에 있는 오른쪽 길이었다. 다른 길은 햇빛이 많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라.'는 권고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는 열심히 걸었다. 밤의 서늘한 기운이 걷히자마자 그녀는 로잘리의 팔에 기대어 내려왔다. 온몸을 망토 하나와 두 개의 숄로 감싸고, 머리는 까만 밀짚모자로 덮어쓴 위에 또 빨간 편물 모자를 뒤집어썼다.
게다가 왼발을 끌어서 그쪽이 약간 무거워서 길을 따라 내려갈 때 하나, 돌아올 때 하나씩 시들어 죽어 있는 먼지 나는 길에 두 개의 자국이 이미 그어져 있었다. 그녀는 성관의 모퉁이에서부터 작은 숲의 첫 번째 관목이 있는 데까지 일직선으로 끝없는 여행을 언제까지나 되풀이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이 산책길의 코스가 끝나는 양쪽에 벤치를 놓아두도록 했다. 그리고, 5분마다 걸음을 멈추고는 자기를 부축하고 있는 참을성 많은 가련한 하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앉아, 얘야, 좀 피곤하구나." 그리고, 쉴 때마다 벤치 위에다 어떤 때에는 머리 위에 쓰고 있던 편물 망토를 벗어놓는 것이었다. 가로수 길의 양 끝에는 이렇게 해서 두 개의 커다란 옷보따리가 생기게 되는데, 점심을 먹으러 돌아올 때에는 로잘 리가 그것을 놀고 있는 다른 팔로 들고 오는 것이었다.
오후에는 더 기운 없는 걸음걸이로 남작 부인은 다시 시작하였다. 쉬는 시간도 더 길어지고, 때로는 그녀를 위해 밖에 내놓은 긴 의자에서 한 시간가량 졸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녀는 이것을 '나의 운동'이라고 했지만 마치 이것은 '나의 심장비대증'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숨이 가빠 고생을 했기 때문에 십 년 전에 진찰을 받았을 때 의사는 심장비대증이라고 말했었다. 그때부터 이 말은-그 의미를 잘 이해하지는 못했으나-그녀의 머리 속에 박혀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남작이나 잔느와 로잘리에게 끈덕지게 자기의 심장을 만져보도록 했으나 아무도 그것을 감지하지는 못했다. 그만큼 그것은 그녀의 불룩한 가슴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다른 병이 발견될까 봐 두려워서 다른 의사에게 진찰받는 것을 완강히 거절하였다. 그러고는 툭하면 '나의' 심장비대증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너무 자주 그랬기 때문에 이 병은 그녀에게만 특별한 것처럼 여겨졌고, 그녀에게만 있는 유일한 것으로써 다른 사람들은 아무 권리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남작과 잔느는 마치 '옷, 모자, 우산'을 말하는 것처럼, 남작은 '내 아내의 심장비대증'이라고 했고, 잔느는 '엄마의 심장비대증'이라고 말하였다. 그녀는 젊었을 때는 아주 예뻤고 갈대보다 더 날씬했었다. 제정 시대의 제복을 입은 많은 군인들의 팔에 안겨 왈츠를 추고 나서는, 그녀는 <코린느>를 읽고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지금도 여전히 이 책에 대해서 감명을 느끼고 있다.
허리가 굵어짐에 따라 그녀의 영혼은 더욱 시적인 충동에 사로잡혔다. 너무 뚱뚱해져서 안락의자에 못 박힌 듯이 앉아 있게 되었을 때에는 그녀의 생각은 달콤한 모험 사이를 떠돌아다니며 자신을 여주인공으로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마음에 드는 것이 있어서 핸들을 조정하면 끝없이 같은 곡을 반복하는 자동 주악기처럼 언제나 그것을 그녀의 꿈속에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자유를 빼앗긴 이들과 제비들에 대한 이야기인 번민하는 사랑의 노래는 언제나 그녀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였다. 그리고 또한 사랑의 아쉬움을 표현하고 있게 때문에 그녀는 베랑제의 외설스러운 가요까지 좋아하였다.
그녀는 종종 자신의 꿈속에 아스라이 빠져 몇 시간이고 꼼짝 않고 앉아 있기도 했다. 그리고 레 푀플에 거주하는 것은 그녀의 마음속 소설에 무대를 제공해 주기 때문에 한없이 그녀를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주위의 숲과 쓸쓸한 광야, 근처의 바다로써 그녀가 몇 달 전부터 읽고 있는 월터 스코트의 책을 연상하게 했기 때문이다.
비오는 날에는 방에 틀어박혀서 그녀가 '기념물'이라고 부르는 것을 들여다보면서 보냈다. 그것은 모두 옛날 편지들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편지들, 약혼 시절에 보낸 남작의 편지들 그리고 또 다른 편지들도 있었다. 그녀는 이 편지들을 구리로 만든 스핑크스가 귀퉁이에 달려 있는 마호가니 책상 속에 넣어두었다. 그래서 그녀는 특이한 목소리로 "로잘리, 얘야, 기념물이 들어있는 서랍을 가져오렴"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하녀는 책상을 열고 서랍을 빼내 안주인 곁에 있는 의자 위에 올려놓는다. 그러면 부인은 천천히 하나하나 그 편지들을 읽기 시작한다. 가끔 그 편지 위에 눈물을 떨구기도 하면서. 잔느는 가끔 로잘리를 대신해서 어머니를 부축하여 산책을 하기도 했는데, 그럴 때면 어머니는 잔느에게 어린 시절의 추억을 이야기해 주곤 하였다. 처녀는 그 옛날이야기 속에서 그들의 생각이 비슷하다는 것과 그들이 바라는 욕망이 같다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최초의 인간의 심장을 뛰게 하고 또한 최후의 남자와 최후의 여자의 심장을 고동치게 할 그 숱한 감동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먼저 자가의 심장이 떨린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느린 걸음걸이는 이야기의 느림과 보조를 맞추었다. 가끔 숨이 차서 이야기를 몇 초 동안 멈추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잔느의 생각은 막 시작한 사랑의 모험을 뛰어넘어 환희에 찬 미래를 향해 내달리고 희망 속으로 굴러가는 것이었다.
오후에 두 모녀가 안쪽의 벤치에 앉아 쉬고 있을 때, 그들은 갑자기 산책길 끝에서 그들을 향해 오고 있는 뚱뚱한 신부를 발견하였다. 그는 멀리서 미소 띈 얼굴로 인사를 했다. 세 걸음쯤 되는 거리에 와서 그는 다시 인사를 하며 소리쳤다. "아, 남작 부인, 안녕하십니까?" 그는 그 지방의 주임 사제였다.
어머니는 철학자들의 전성기에 태어나 혁명시대에 그다지 신앙심이 없는 아버지에 의해 키워졌기 때문에 여자가 갖는 일종의 종교적 본능에서 사제들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교회에는 거의 나가지 않았다. 그녀는 그곳의 주임 사제인 피코 신부를 완전히 잊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보자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는 자신이 먼저 찾아뵙지 못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호인인 사제는 조금도 그것에 마음을 상한 것 같지 않았다. 그는 잔느를 쳐다보고 훌륭한 용모를 가졌다고 칭찬을 하고 나서, 의자에 앉아 무릎 위에다 삼각모를 벗어놓고 이마의 땀을 닦았다. 지나치게 뚱뚱하고 얼굴이 몹시 빨간 사제는 비오듯 땀을 흘렸다. 그는 얼른 주머니에서 땀에 젖은 커다란 체크무늬 손수건을 꺼내 얼굴과 목을 닦았다. 그러나 축축한 손수건을 신부복의 깊숙한 주머니 속에 넣자마자 다시 땀방울이 살갗에 솟아 배가 불룩하게 나온 법의 위로 굴러떨어지면서 길가에 날아다니는 먼지를 동그랗고 조그만 얼룩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쾌활한 전형적인 시골 사제로 너그럽고 말이 많았으며 또한 친절한 사람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고, 이 지방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자기 교구에 속한 이 두 사람이 아직 미사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남작 부인은 자기의 확실치 않은 신앙심에 게으름을 일치시키고 있었고, 잔느는 경건한 의식을 실컷 맛본 수도원의 부속학교에서 해방된 것을 너무 행복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작이 나타났다. 그의 범신론적인 종교는 여러 가지 교리에 대해서 그를 무관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신부에 대해서는 친절하였고,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고 그를 붙들었다. 영혼을 다룬다는 것은 가장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운명의 요행으로 자기들과 비슷한 사람에 대해서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평범한 사람에게는 무의식적인 교활함을 지니게 하는데, 이 사제도 그러한 무의식적인 교활함의 덕택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줄 알았던 것이다. 남작 부인은 사제를 소중히 여겼는데 그것은 어쩌면 체질이 비슷한 사람을 접근시키는 그런 친화력에 끌렸는지도 모른다. 뚱뚱한 사제의 다혈질의 얼굴과 가쁜 숨소리는 지나치게 비대하여 숨을 헐떡이는 그녀의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디저트가 나올 무렵에는 사제는 얼근히 취해 신부다운 훌륭한 말솜씨를 발휘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즐거운 식사 끝에 나오는 허물없고 잰 체하지 않는 그러한 태도였다.
갑자기 흐뭇한 생각이 머릿속에 스치고 간 듯이 그가 소리쳤다. "이 교구에 새 신도가 한 사람 생겼는데 소개해 드려야겠군요. 드 라마르 자작입니다!"
이 지방의 모든 가문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남작 부인이 물었다. "그분은 외르의 드 라마르 집안이신가요?" 사제가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부인. 작년에 작고한 장 드 라마르의 아들입니다." 무엇보다도 귀족을 좋아하는 아델라이드 부인은 숱한 질문을 던진 끝에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아냈다. 부친의 부채를 갚고, 젊은이는 가문의 저택을 팔아 에투방의 마을에 소유하고 있는 세 농장 중의 하나에 잠시 머무르기 위해 작은 집을 세웠다. 그의 재산은 모두 연금 5, 6천 리브르에 상당한다. 그러나 자작은 검소한 데다가 현명한 성격이어서 그 조촐한 별채에서 2,3년 동안 수수하게 살며, 장차 사교계에 나설만한 재산을 모아서 빚을 지거나 농장을 저당 잡히는 일이 없이 유리한 결혼을 할 생각이라는 것이었다.
사제는 덧붙였다. "아주 호감이 가는 청년이지요. 아주 건실하고 조용하구요. 그렇지만 이 고장에서는 별로 즐겁지가 않은가 봅니다." 남작이 말했다. "그분을 우리 집으로 데려오세요, 신부님. 그분에게는 때로 기분 전환 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고는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바꿨다.
거실로 들어가서 커피를 마신 후에, 사제는 정원을 한 바퀴 돌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을 했다. 그는 식사 후에 운동을 조금 하는 버릇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작이 그와 동행을 했다. 그들은 저택의 하얀 정면을 따라서 느릿느릿 걸어갔다가는 다시 돌아왔다. 한 사람은 마르고 또 한 사람은 작고 뚱뚱한 데다가 버섯 모양의 모자를 쓴 그들의 그림자는, 달을 향해서 걸어갈 때와 달을 등지고 걸어가는 데 따라서 어느 때에는 그들 앞에서, 어떤 때에는 그들 뒤에서 왔다 갔다 하였다. 사제는 주머니에서 궐련 비슷한 것을 꺼내 우물우물 씹었다. 그는 담배의 효용을 시골 사람의 솔직한 말투로 설명하였다. "소화가 좀 안 되어서 트림이 나오게 하려고 그래요."
그러고는 갑자기 밝은 달이 떠가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이런 광경은 언제 보아도 싫증이 나지 않는군요." 그리고 그는 부인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3
다음 일요일 남작부인과 잔느는 사제에 대한 공경심의 미묘한 감정에 이끌려 미사에 참석했다. 두 사람은 미사가 끝난 후, 목요일 점심에 사제를 초대하기 위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제는 어떤 키가 크고 품위 있는 청년과 다정하게 팔을 끼고 제의실에서 나왔다.
사제는 두 여자를 알아보자 놀라고 기쁜 시늉을 하며 소리쳤다. "아, 마침 잘됐군요! 남작부인과 잔느 양, 여러분의 이웃인 드 라마르 자작님을 소개하겠습니다." 자작은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 나서 이미 오래전부터 부인들과 알게 되기를 바라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리고 잘 알고 있던 사람처럼 힘 안 들이고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는 모든 남자들에게 불쾌감을 주나 여자들이 꿈꾸는 그런 훌륭한 용모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곱슬거리는 검은 머리는 햇빛에 그을은 매끈한 이마에 그늘을 던져주고 있었다. 그린 듯이 고른 두 개의 굵은 눈썹은 흰자위가 약간 푸른 빛을 띠고 있는 것 같은 그의 어두운 눈을 깊고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촘촘하고도 긴 속눈썹은 그의 시선에, 살롱에서는 거만하고도 아름다운 부인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거리에서는 바구니를 끼고 헝겊 모자를 쓰고 가는 아가씨를 뒤돌아보게 하는 그런 정열적인 설득력을 주고 있었다.
번민하는 듯한 그 눈의 매력은 생각이 깊음을 믿게 해주고, 아무리 사소한 말에라도 중요성을 부여하였다. 무성하면서도 윤기가 도는 고운 수염은 약간 강하게 보이는 턱을 가려주고 있었다. 그들은 많은 인사말을 나눈 뒤에 헤어졌다. 드 라마르씨는 이틀 후에 첫 방문을 하였다. 그는 거실 창문 맞은편에 있는 커다란 플라타너스 아래에다 시골풍이 나는 벤치를 놓으려고 하는 바로 그날 아침에 찾아왔다. 남작은 짝을 맞추기 위해서 보리수 밑에 또 하나의 벤치를 갖다 놓고 싶어 했다. 그러나 조화를 반대하는 어머니는 그러고 싶어 하지 않았다. 의견을 묻자 자작은 남작 부인의 의견에 동의를 하였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지방에 대하여 이야기를 했는데 아주 '그림처럼 아름답다'고 말하면서, 혼자 산책하는 동안에 많은 아름다운 '지형들'을 발견했노라고도 했다. 간간이 그의 시선은 우연인 것처럼 잔느의 시선과 마주쳤다. 그녀는 얼른 딴 데로 돌리는 그 뜻밖의 시선에서 야릇한 감동을 느꼈다. 그 시선에는 애무하는 듯한 찬미와 눈뜨기 시작한 교감이 나타나 있었다.
작년에 죽은 드 라마르씨의 아버지는 마침 퀴르토씨의 친구 한 사람을 알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퀴르토씨의 딸이었다. 이렇게 아는 사람이 발견되자 인척 관계, 만난 날짜, 혈족 관계에 대해 끝없는 화제를 낳았다. 남작 부인은 기억력을 발휘해서 복잡한 족보의 미궁 속을 전혀 혼돈하는 일이 없이 돌면서 다른 가문의 조상이나 후예들을 밝혀냈다.
"자작은 소느와 드 바르플뢰르가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셨나요? 장남인 공트랑씨는 쿠르실가의 딸과 결혼을 했지요. 쿠르빌의 쿠르실 말입니다. 차남은 내 사촌 중의 하나인 로쉬 오베르양과 결혼을 했는데, 그녀는 크리상즈가와 친척이 되지요. 그런데 크리상즈씨는 아버님의 절친한 친구랍니다. 아마 댁의 선친과도 역시 아실 거예요." "네, 부인. 크리상즈씨는 망명하지 않으셨던가요, 그리고 그 아들은 파산하고요?"
"바로 그분이에요. 그분은 내 숙모에게 그의 남편인 에렉트릭 백작이 세상을 뜨자 혼담을 가져왔었지요. 그러자 그가 코담배를 즐겼기 때문에 응하지 않았어요. 그건 그렇고, 빌르와즈 집안이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그 집은 불운을 만나 오베르뉴에 정착하려고 1813년경에 투렌느를 떠났지요. 그 후 소식을 듣지 못했습니다." "제가 알기로는 부인. 늙은 후작은 말에서 떨어져 죽고, 영국인과 결혼한 딸과 밧솔이라던가 하는 상인과 결혼한 딸이 또 하나 있다는데요, 이 사람이 부자라서 여자를 유혹했다는 소문이더군요." 그러자 늙은 부모들의 이야기에서 어렸을 적부터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이름들이 생각났다. 이러한 동등한 가문들끼리의 결혼이란 그들의 생각으로는 커다란 공적인 사건 같은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한 번도 본 일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이야기를 하였다. 그 사람들은 다른 지방에서 똑같은 식으로 이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멀리에서 친근하게 거의 친구처럼, 친척처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같은 계급에 속해 있고 같은 가치를 지닌 혈통에 있다는 그 한 가지 사실만으로 말이다.
남작은 원래 비사교적인 성격에다 자기 사회의 신념이나 편견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주변의 가문들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작에게 그 가문들에 대하여 물었다. 드 라마르씨가 대답했다. "아! 이 고장에는 귀족이 많지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언덕에는 토끼가 별로 없다고 단언하는 것과 같은 어조였다. 그러고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였다. 아주 가까운 거리 안에는 귀족이 세 집안 밖에 없었다. 드 쿠트리에 후작, 그는 노르망디 귀족의 우두머리격이었다. 드 브리즈빌 자작 부처, 그들은 훌륭한 혈통의 사람들이지만 너무 고립되어 있었다. 끝으로 드 푸르빌르 백작, 그는 상심하고 있는 아내를 죽도록 못살게 군다는 소문이 나 있는 도깨비 같은 사람으로서 연못 위에 세운 브리에트의 저택에서 사냥을 하며 지내고 있었다.
자기들끼리 친교를 맺고 있는 몇몇 벼락부자들이 여기저기 땅들을 사들였다. 자작은 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는 작별 인사를 했다. 그의 마지막 시선은 잔느에게로 향했다. 그는 마음으로부터의 그리고 다정한 어떤 특별한 인사를 그녀에게 보내는 것 같았다.
남작 부인은 그를 호감이 가는 청년으로, 특히 아주 신사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확실히 예의 바른 청년이야." 다음 주일에는 그를 만찬에 초대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규칙적으로 찾아왔다. 그는 대개 오후 네 시경에 와서는 '그녀의 가로수 길'에서 어머니를 만나 '그녀의 운동'을 도와주기 위해 팔을 내밀어 주는 것이었다. 잔느가 외출하지 않을 때에는 그녀는 다른 쪽에서 남작 부인을 부축했고, 그러면 이들 세 사람은 곧은 큰길을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쉬지 않고 천천히 왔다 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는 젊은 아가씨에게는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그러나 까만 빌로도 같은 그의 눈은 푸른 마노와 같은 잔느의 눈과 자주 부딪쳤다. 여러 번 그들은 남작과 함께 이포르로 내려갔다. 어느 날 저녁 그들이 해변가에 있을 때 라스티크 영감이 다가와 파이프를 문 채-아마 파이프를 물지 않은 그를 본다는 것은 그의 코가 없어진 것을 보는 것과 더 놀라운 일일 것이다-이렇게 말했다. "이런 바람이라면 남작 나리, 내일은 에트르타까지 갔다가 문제없이 돌아올 수 있겠습니다."
잔느는 손뼉을 쳤다. "아! 아빠, 그러시는 거죠?" 남작은 드 라마르씨 쪽을 돌아다 보았다. "어떻소, 자작? 우리 그리로 가서 점심을 먹읍시다." 그렇게 해서 떠나는 일이 당장 결정되었다. 잔느는 새벽에 눈이 떠졌다. 그녀는 옷 입는 것이 더딘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슬을 밟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먼저 들판을 가로지르고 그다음에는 새들의 노래로 온통 떨고 있는 숲을 지나갔다. 자작과 라스티크 영감은 닻줄을 감아올리는 기계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두 사람의 다른 뱃사람이 출발을 거들어주었다. 남자들이 어깨를 뱃전에 대고 힘껏 밀어붙였다. 간신히 조약돌이 있는 평평한 곳으로 나아갔다. 라스티크는 용골 밑으로 기름칠한 나무 굴림대를 밀어 넣고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는 다른 사람들의 힘을 조절하는 듯이 "여엉차!" 하고 느리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끝없이 장단을 맞추었다. 그런데 경사진 곳에 다다르자 보트가 갑자기 움직이면서, 천이 찢어지는 듯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둥근 조약돌 위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배는 잔물결이 넘실거리는 거품 위에서 갑자기 멈춰섰다. 그러자 뭍에 남아 있던 두 뱃사람이 배를 물결 위로 밀어냈다. 난바다에서 계속 불어오는 가벼운 미풍이 수면을 스치면서 잔물결을 일게 했다. 돛이 올라가고 약간 부풀어지더니 배는 바다에 흔들리는 듯 마는 듯 조용하게 나아갔다.
우선 해안에서 멀리 나갔다. 수평선 쪽으로 낮게 드리운 하늘은 대양과 섞여 있었다. 육지 쪽으로 높게 깎아지는 절벽은 그 발치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햇빛이 가득한 잔디밭 언덕은 군데군데 초승달처럼 패어 있었다. 거기에서 뒤쪽으로는 누르스름한 돛들이 페캉의 흰 방파제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에트르타의 작은 문이었다.
잔느는 한 손으로 뱃전을 잡고 흔들리는 물결에 약간 현기증이 나서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천지 만물 가운데에서 정말로 아름다운 것은 오직 세 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빛과 공간과 물이었다.
아무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키의 손잡이와 돛줄을 잡고 있는 라스티크 영감은 의자 밑에 숨겨둔 술병을 간간이 꺼내 병째로 한 모금씩 마시고 있었다. 그러고는 영원히 꺼지지 않을 듯한 그의 분신 같은 파이프로 쉬지 않고 담배를 피워댔다. 그 파이프에서는 가는 실 같은 푸른 연기가 피어올랐다. 한편 그의 입술 한 귀퉁이에서도 그와 비슷한 연기가 새어 나왔다. 그리고 아무도 흑단보다 더 검은 흙으로 만든 담뱃대의 골통에 불을 다시 붙인다거나 담배를 채워넣는 뱃사공을 쳐다보지 않았다. 이따금 그는 한 손으로 파이프를 잡고 그것을 입술에서 떼고는, 연기가 나오고 있는 입으로 느르께한 침을 바다에 멀찍이 내뱉었다.
뱃머리에 앉아 있는 남작은 돛을 살피면서 한 사람의 임무를 해내고 있었다. 잔느와 자작은 나란히 앉아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약간 어쩔 줄 몰라 했다. 어떤 알 수 없는 힘이 그들의 시선을 마주치게 했다. 그것은 마치 어떤 친화력이 그들에게 알려주듯이 그들은 똑같은 순간에 눈을 들었던 것이다. 그들 사이에는, 남자가 못생기지 않고 여자가 아름다운 경우에 그 두 젊은이 사이에서 아주 빨리 일어나는 그런 미묘하고도 막연한 애정이 이미 떠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곁에 있는 것이 행복하게 여겨졌다. 아마도 그들은 서로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태양이 자기 밑에 펼쳐있는 너른 바다를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려는 듯이 솟아올랐다. 그러나 바다는 교태를 부리듯 엷은 안개로 몸을 감싸고 햇살을 가렸다. 그것은 투명하면서도 매우 낮게 드리운 황금빛 안개로서 아무것도 가리지는 못했으나 원경을 훨씬 부드럽게 만들어주었다. 태양은 그의 불꽃을 내쏘아 이 빛나는 구름을 녹이려고 하였다. 태양이 온 힘을 다해 내리비치자 엷은 안개는 증발하며 사라졌다. 그리고 거울처럼 매끄러운 바다는 햇빛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하였다.
잔느는 몹시 감동해서 중얼거렸다.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자작이 대답했다. "아, 네, 아름답군요!" 이 아침의 청명한 광명이 두 사람의 마음속에 메아리 같은 것을 일깨워놓은 것이다. 갑자기 에트르타의 커다란 홍예문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절벽의 두 다리와도 비슷하였고 배들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높은 아치 구실을 하기도 하였다. 한편 희고 뾰족한 바위의 첨봉이 첫 아치 앞에 서 있었다.
배가 해안에 닿았다. 남작이 제일 먼저 내려가 밧줄을 끌어당겨 배를 바닷가에 붙들어 놓는 동안, 자작은 잔느의 발이 물에 젖지 않도록 그녀를 두 팔로 안아 땅에 내려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 두 사람은 모두 이 짧은 포옹에 흥분이 되어서 단단한 자갈밭을 나란히 올라갔다. 그들은 갑자기 라스티크 영감이 남작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제 생각으로는 아름다운 한쌍이 곧 생겨날 것 같구먼요." 해변가에 있는 작은 여인숙에서의 점심은 즐거웠다. 대양은 목소리와 생각을 마비시켜 그들을 침묵하게 했으나, 식탁은 그들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마치 방학을 맞이한 학생들처럼. 아주 하찮은 것들이 그들에게 한없이 즐거움을 주었다. 라스티크 영감은 식탁에 앉으면서 아직도 연기가 나는 파이프를 조심스럽게 베레모 속에 감추었다. 그래서 모두들 웃었다. 어쩌면 그의 붉은 코에 끌렸을지도 모를 파리 한 마리가 몇 번이나 날아와서 그 위에 앉으려고 했다. 영감이 파리를 잡기에는 너무 느린 손짓으로 그것을 쫓아버리면 파리는 벌써 많은 그 동료들이 더러운 얼룩을 만들어놓은 모슬린 커튼으로 가서 앉곤 하였다. 파리는 뱃사공의 그 붉은 사자 코를 열심히 노리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거기에 앉으려고 곧 다시 날아왔기 때문이다. 파리가 날아올 적마다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간지럼이 귀찮아진 영감이 "그놈 지독히도 끈덕지군" 하고 중얼거리면, 잔느와 자작은 눈물이 날 정도로 재미있어서 몸을 비틀고 숨이 막혀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에다 냅킨을 갖다 대곤 하였다.
커피를 마시고 나자 잔느는 "우리 산책이나 해요" 하고 말했다. 자작은 자리에서 일어섰으나 남작은 조약돌 위에다 햇볕을 쬐는 것이 더 좋다고 하였다. "자네들이나 갔다 오게, 한 시간 후에 여기에서 다시 만나기도 하고." 그들은 그 고장에 있는 초가집 몇 채를 똑바로 가로질러 갔다. 그리고 커다란 농장과 비슷한 작은 성관을 지나 그들 앞에 길쭉하게 드러나 있는 계곡으로 들어갔다.
바다의 움직임은 그들을 나른하게 만들었고 평소의 균형을 흔들리게 하였으며, 소금기를 머금은 대기는 그들을 시장하게 만들었고, 그리고 점심은 그들을 멍청하게 만들었으며, 즐거움은 그들을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지금 들판을 미친 듯이 달리고 싶은 욕망에 자기들이 약간 머리가 돈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잔느는 새롭고도 빠른 감각에 완전히 감동되어서 자기 귀에서 윙윙 소리가 나는 것을 듣고 있었다. 이글거리는 태양이 그들 위에서 내리쬐고 있었다. 길 양쪽에는 잘 익은 농작물들이 더위에 고개를 숙이고 축 늘어져 있었다. 여기저기 돋아나는 풀싹처럼 수많은 메뚜기들이 밀밭에서, 보리밭에서, 해안의 갈대 속에서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는데, 그 소리는 가늘고 귀를 째는 듯하였다. 그 밖에는 어떤 다른 소리도 찌는 듯한 하늘 아래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눈부시게 반짝이는 푸른 하늘은 마치 벌겋게 단 숯불 가까이에 있는 금속처럼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오른쪽으로 멀리 작은 숲이 보여 그들은 그리로 갔다. 두 비탈 사이로 양쪽이 험한 좁다란 산책길이, 햇빛이 뚫고 들어갈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나무들 밑으로 나 있었다. 그곳으로 들어서자 곰팡내 나는 일종의 냉기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 습기는 살갗에 소름을 돋게 하고 폐까지 스며들었다. 햇빛과 공기의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에 풀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이끼가 땅을 덮고 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나아갔다. "자, 저기에 좀 앉을 수 있을 것 같군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두 그루의 고목이 죽어 있었다. 푸른 잎사귀들 사이로 벌어진 틈서리로 빛이 소나기처럼 거리로 쏟아져 들어와 땅을 덥혀 잔디와 민들레와 칡들의 싹을 트게 하고, 아지랑이처럼 가냘픈 작고 흰 꽃들과 불화살과도 비슷한 디기탈리스의 꽃을 피게 했다. 나비들, 벌들, 통통한 말벌들, 파리의 해골과도 같은 엄청나게 큰 모기들, 날아다니는 수많은 곤충들, 반점이 있는 장밋빛 무당벌레들, 초록빛이 반사되는 송장벌레들, 뿔이 달린 거무스름한 다른 벌레들이 묵직한 잎사귀들의 선뜩한 그늘 속에 움푹 팬, 빛으로 가득하고 따뜻한 이 우물 속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머리는 그늘 속에, 발은 햇빛에 드러낸 채 않았다. 그들은 한 줄기의 빛이 모습을 드러내게 한 우글거리는 작은 생명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느는 감동이 되어서 이런 말을 되풀이하였다. "얼마나 좋아요! 시골은 참 좋지요. 저는 가끔 꽃 속에 숨고 싶어서 벌이나 나비가 되었으면 할 때가 있어요."
그들은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속내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의 그런 나직하고도 친밀한 목소리로 자신들의 습관이나 취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이미 사교계에 싫증이 났으며 자기의 경박한 생활이 지긋지긋하다고 혼자 중얼거렸다. 그것은 언제나 똑같은 일이며 거기에는 진실한 것도 성실한 것도 전혀 만날 수 없노라고 했다. 사교계! 잔느는 그것이 어떤 것인지 정말 알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전원에 비길 만큼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가까워질수록 그들은 더욱더 '미슈'니 '마드무아젤'이니 하는 격식을 차려서 서로를 불렀다. 또한 그들의 시선에는 미소가 어리고 얽혀들었다. 그들에게는 어떤 새로운 호의가 그들 마음속에 스며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것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던 수많은 것에 대한 관심과 보다 아낌 없이 나누어 주고 싶은 애정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다시 돌아갔다. 그러나 남작은 걸어서 절벽 꼭대기에 걸려 있는 동굴인 '상브르오 드무아젤'까지 간 뒤였기 때문에 그들은 여인숙에서 남작이 오기를 기다렸다. 남작은 해안에서 긴 산책을 한 뒤에 저녁 5시가 되어서야 나타났다. 그들은 모두 다시 배에 올랐다. 배는 바람을 뒤로 받으며 부드럽게 나아갔다.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같이 보이지도 않았다. 미풍이 느리고도 훈훈한 숨결로 불어와 돛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가는 다시 놓아버려 축 늘어지게 해서 돛대에 달라붙게 했다. 불투명한 물결은 마치 죽은 듯이 보였다. 타는 듯한 더위로 지쳐버린 태양은 자기의 둥근 궤도를 따라서 아주 부드럽게 바다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의 무감각함이 다시 그들을 침묵하게 만들었다. 마침내 잔느가 입을 떼었다. "저는 여행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자작이 대답했다. "네, 하지만 혼자 여행하는 것은 쓸쓸하지요. 자기의 느낌을 전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사람은 있어야 합니다." 그녀는 곰곰이 생각하였다. "그건 그래요.....하지만 저는 혼자 산책하는 것을 좋아해요....혼자 공상에 잠겨 있을 때에는 참 기분이 좋거든요....."
자작은 그녀를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둘이서 공상할 수도 있지요." 그녀는 눈을 내리깔았다. 이것은 하나의 암시일까? 아마 그럴지도 모른다. 그녀는 좀더 먼 곳을 보려는 듯이 수평선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느린 목소리로 말했다. "이탈리아에 가보고 싶어요....그리고 그리스에도요....아, 그래요, 그리스에....그리고 코르시카! 그곳은 퍽 야성적이고 아름다울 거예요!" 자작은 목자들의 오두막과 호수들 때문에 스위스가 더 좋다고 했다. 잔느가 말했다. "전 그렇지 않아요. 코르시카처럼 아주 새로운 지방이나 그리스같이 유서 깊은 유적들이 많은 나라가 좋아요.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그 역사를 알고 있는 국민들의 발자취를 발견해 내고 위대한 업적을 이룩한 현장들을 본다는 것은 정말 기분 좋은 일일 거예요." 자작은 잔느처럼 흥분하지 않고 말했다. "저는 영국에 몹시 호감이 갑니다. 그곳은 매우 배울 것이 많은 나라거든요." 이렇게 그들은 세계를 편력했다. 극지에서부터 적도에 이르기까지 각 나라의 매력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상상 속의 풍경에 황홀해하며, 중국인이나 라포니아 사람 같은 어떤 민족의 믿기지 않는 풍속에 경탄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는 온화한 기후에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하며, 풍요로운 전원과 녹색 삼림, 고요히 흐르는 큰 강들과 아테네의 대세기 이래로 다른 어는 곳에서도 존재하지 않았던 미술에 대한 숭배가 있는 프랑스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입을 다물었다. 더욱 낮게 걸려있는 태양은 마치 피를 흘리고 있는 것과 같았다. 그리고 넓고 빛나는 자국이, 눈부신 한 줄기의 궤도가 대양의 경계에서부터 배의 항적에 이르기까지 수면 위를 달리고 있었다.
마지막 바람의 숨결이 가라앉았다. 잔물결도 일지 않았다. 그리고 움직이지 않는 돛은 붉게 물이 들었다. 무한한 평온이 우주를 마비시키고 이 우주 원소가 만나는 주위에 침묵을 형성하는 것 같았다. 한편 하늘 아래에서 빛나는 유동체인 자기의 복부를 활처럼 구부린 바다는 음흉한 약혼자처럼 자신을 향해 내려오는 불의 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양은 그들의 포옹에 대한 욕망으로 붉게 물들 듯이 일몰을 서두르고 있었다. 태양이 바다와 합쳤다. 그리고 조금씩 바다는 태양을 삼켜버렸다. 그때 수평선으로부터 서늘한 기운이 밀려왔다. 마치 삼켜진 태양이 세상에다 마음을 진정시키는 숨을 내쉬려는 듯이 한 줄기 오한이 흔들리는 바다의 가슴에 주름살을 지게 했다. 황혼은 짧았다. 별이 총총한 밤이 펼쳐졌다. 라스티크 영감은 노를 잡았다. 그러자 바다가 인광을 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잔느와 자작은 나란히 앉아서 배가 뒤에 남기는 움직이는 빛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거의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다만 감미로운 편안 속에서 저녁 공기를 마시면서 막연히 생각에 잠겨있는 것이었다. 잔느가 한 손을 걸상에 갖다 대고 있었기 때문에 우연이기라도 한 것처럼 옆 사람의 손가락 하나가 그녀의 살갗에 닿았다. 그녀는 이 가벼운 접촉에 놀라고 행복하고 당황해서 꼼짝도 하지 못했다. 저녁때 자기 방으로 들어가자, 그녀는 자기가 이상스럽게 들떠서 무엇을 보아도 울고 싶은 마음이 들 만큼 감동이 되어 있음을 느꼈다. 그녀는 좌종 시계를 쳐다보았다. 그 조그만 꿀벌이 심장처럼, 친구의 심장처럼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자신의 모든 생의 증인이 되어줄 것이고, 생생하고도 규칙적인 그 똑딱거리는 소리로 자기의 기쁨과 슬픔을 동반해 주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그 날개에 입 맞추기 위해서 금도금을 한 날벌레를 멈추게 했다. 그녀는 무엇에든지 입 맞춤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찾아서 무척 좋아하던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은 기쁨으로 인형을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그것을 가슴에 껴안고 짙게 화장을 한 인형의 뺨과 곱슬곱슬한 삼실 머리에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인형을 여전히 두 팔에 껴안은 채로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그분은 정말로 수많은 비밀의 음성으로 약속하고, 더할 나위 없이 선량하신 하느님이 자기의 길에 이렇게 던져주신 바로 그 남편일까? 그분은 자기를 위해 창조된 존재며 자기의 생애를 바치려고 하는 바로 그 사람일까? 자기들은 서로 합친 애정으로 서로를 포옹하고 떨어질 수 없이 얽혀들면서 사랑을 낳게 될 그런 숙명적으로 선택된 두 사람일까?
그녀는 아직도 자기 마음의 혼란스러운 충동과 미칠 듯한 황홀감, 자신이 열정이라고 믿고 있는 심오한 격동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자기가 그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같이 여겨졌다. 왜냐하면 그 사람을 생각하면 온통 기운이 빠지는 것 같은 기분을 가끔 느꼈기 때문이다. 그녀는 줄곧 그에 대한 생각을 했다. 그가 있으면 가슴이 뛰었다. 그의 시선과 부딪치면 얼굴이 붉어졌다. 창백해지고, 그의 목소리를 들으면 몸이 떨렸다.
그녀는 그날 밤에는 아주 조금밖에 자지 못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사랑하고 싶다는 유혹적인 욕망이 더욱더 그녀를 사로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보거나, 또는 데이지 꽃이나 구름 또는 동전을 공중에 던져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저녁, 아버지가 그녀에게 말했다. "내일 아침에는 아름답게 꾸미도록 해라." 그녀가 물었다. "왜요, 아빠?"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건 비밀이다." 다음날 환한 단장으로 아주 생기 있게 아래층으로 내려가자 거실의 테이블이 봉봉 과자 상자로 덮이고 의자 위에 커다란 꽃다발이 놓여 있는 것이 보였다.
마차 한 대가 뜰 안으로 들어왔다. 마차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페캉의 과자 제조인, 르라. 결혼 피로연' 루디빈느가 부엌에서 부리는 하인의 도움을 받아 작은 포장마차 뒤의 열리는 뚜껑 문에서 맛있는 냄새가 풍기는 평평한 큰 광주리를 수없이 꺼내고 있었다. 드 라마르 자작이 나타났다. 그의 긴 바지는 팽팽했고, 그의 발이 작다는 것을 보여주는 귀여운 칠피 장화 밑으로 고정시켜 놓았다. 허리에 꼭 끼는 그의 긴 프록코트는 가슴에 초승달 모양으로 도려낸 자리로 셔츠 앞의 장식 레이스를 드러내고 있었다. 몇 번씩 감은 날씬한 넥타이는무게 있는 품위를 나타내는 그의 아름다운 갈색 머리를 높이 쳐들게 하고 있었다. 그의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러한 치장은 그 얼굴에 저명한 인사 같은 그 무엇을 갑자기 부여하는 그러한 특별한 모습이었다. 잔느는 어리둥절해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을 보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더할 나위 없는 귀족, 대영주라고 생각했다. 자작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래, 대모님 준비는 되셨나요?" 잔느는 더듬거리며 말했다. "뭐라구요, 대체 무슨 일이지요?" "곧 알게 될 거다." 남작이 말했다. 수레를 단 마차가 다가왔다. 아델라이드 부인이 화려한 차림으로 로잘리의 팔에 의지하여 자기 방에서 내려왔다. 로잘리는 르 라마르씨의 우아한 차림에 넋을 잃은 듯이 보였기 때문에 아버지가 이렇게 속삭였다. "어떻소, 자작. 우리 하녀가 당신이 마음에 드는가 보오." 자작은 귀까지 빨개지면서 못 들은 척했다. 그러더니 커다란 꽃다발을 집어 들어 잔느에게 바쳤다. 잔느는 더욱더 놀라서 그것을 받았다. 네 사람은 모두 마차에 올랐다. 부엌 하녀 루디빈느가 남작 부인의 원기를 돋우어주기 위해 찬 수프를 가져다주며 말했다. "정말이지 마님, 마치 결혼식을 올리는 것 같군요." 이포르로 들어서자 마차에서 내려 걸어갔다. 마을을 지나감에 따라 구김살이 보이는 헌 옷을 깨끗이 차려입은 뱃사람들이 집에서 나와 인사를 하고 남작의 손을 잡으며 행렬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자작은 잔느에게 한 팔을 내주고 그녀와 함께 맨 앞에서 걸어갔다. 교회 앞에 이르러 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러자 커다란 은빛 십자가가 보였는데 성가대의 소년 하나가 그것을 똑바로 받쳐 들고 있었으며, 그뒤를 붉고 흰옷을 입은 다른 아이가 성수채를 담그는 성수 단지를 들고 따랐다. 이어서 세 사람의 늙은 성가대원이 지나갔는데 그중의 한 사람은 다리를 절었고 또 한 사람은 뱀 모양의 관악기를 든 악사, 그다음에는 불룩 나온 배 위로 접혀 있는 황금빛 영대를 받든 기도문을 외느라고 입술이 달싹이면서 코까지 내려오게 삼각 모자를 눌러 쓴 채, 백의를 입은 그의 막료들을 따라 바다를 향해 걸어갔다. 해변가에는 화환으로 장식한 새 배 주위에 한 떼의 사람들이 모여 기다리고 있었다. 그 배의 돛대와 돛과 밧줄은 긴 리본으로 덮혀 있었으며, 그것은 미풍에 휘날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잔느'라는 배의 이름이 황금빛 글자로 쓰여 있는 것이 보였다.
남작의 돈으로 지은 이 배의 선장인 라스티크 영감이 행렬 앞으로 나아갔다. 남자들은 모두 똑같은 동작으로 일제히 모자를 벗었다. 어깨에서부터 굵은 주름이 지는 풍성한 검은 수도복을 입고 두건을 쓴 일렬의 신자들이 십자가의 모습이 보이자 원을 그리며 꿇어앉았다.
사제는 성가대의 두 소년 사이에 끼여 배의 한쪽 끝으로 갔다. 한편 배의 다른 쪽 끝에서는 때가 묻은 흰옷을 입은 세 사람의 늙은 성가대원이 수염을 텁수룩한 턱으로 근엄한 표정을 지으며, 성가집에 눈길을 주고는 청명한 아침에 입을 크게 벌려 음정이 틀리는 노래를 부리고 있었다.
그들이 숨을 돌릴 때마다 악사는 혼자서 그 윙윙거리는 소리를 계속해댔다. 그리고 바람이 가득 들어간 그의 불룩한 뺨 속에 악사의 작은 회색 눈이 묻혀지곤 했다. 이마의 피부까지도 또 목의 피부까지도 살에서 벗겨지는 것 같았다. 그만큼 그는 입김을 내 불면서 자신을 부풀리고 있었다. 꼼짝도 하지 않는 투명한 바다는 명상에 잠겨 자기의 작은 배의 명명식에 참석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거의 파도는 일지 않았으며 손가락만한 높이의 작은 물결이 자갈에 가볍게 부딪히는 아주 작은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날개를 활짝 편 커다란 흰 갈매기들이 푸른 하늘에 곡선을 그리면서 멀리 날아갔다가는 마치 그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보려는 것처럼, 무릎을 꿇고 있는 군중들 위로 선회를 하면서 돌아왔다. 5분간 '아멘'을 외친 뒤에 성가는 멈추었다. 끈끈한 목소리로 사제는 몇 마디 라틴어를 웅얼거렸으나 울려 퍼지는 끝말밖에는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고 나서 사제는 성수를 뿌리면서 배를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갑판을 따라 손에 손을 잡고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대부와 대모 앞에 기도문을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젊은이는 미남다운 의젓한 얼굴을 하고 있었으나 아가씨는 갑작스러운 감동으로 숨이 막히고 기절할 같아서 이가 맞부딪칠 정도로 떨기 시작했다. 얼마 전부터 그녀의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던 꿈이 갑자기 일종의 환각 속에서 현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 것이었다. 사람들은 혼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사제는 여기에서 축복을 하고 있다. 그리고 흰옷을 입은 남자들은 기도를 읊조리고 있는데, 혼례를 올리고 있는 것은 바로 자신이 아닐까.
그녀의 손가락에 신경질적인 동요가 일었을까? 그녀의 마음의 집념이 혈맥을 따라 곁에 있는 사람의 마음에까지 전해졌을까? 그는 그것을 알았을까? 짐작했을까? 그녀는 그도 사랑의 도취 같은 것에 사로잡혀 있을까? 아니면 그는 단지 경험으로 어떤 여자도 자기에게는 저항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녀는 갑자기 그가 자기 손을 처음에는 부드럽게, 다음에는 좀더 세게, 더욱 세게, 으스러져라 하고 죄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눈치채지 않게 그는 말했다. 그렇다, 확실히, 아주 똑똑하게 그는 말했다. "아아, 잔느, 당신이 괜찮으시다면 이것은 우리들의 약혼식이 되는 겁니다." 그녀는 어쩌면 "네"라고 말하는 듯이 아주 천천히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아직도 성수를 뿌리고 있던 사제가 그들의 손가락에도 몇 방울 뿌려주었다.
의식이 끝났다. 여자들이 일어섰다. 돌아 갈 때에는 흩어져서 갔다. 복사의 손에 들려 있는 십자가는 그 존엄성을 잃어버렸다. 십자가는 좌우로 흔들리면서 또는 앞으로 숙여져 코 있는 데까지 떨어질 듯하면서 빨리 달려갔다. 사제는 이제 기도는 하지 않고 그 뒤를 달리듯이 쫓아갔다. 성가대원들과 악사는 서둘러 옷을 갈아입으려고 골목길로 사라졌다. 뱃사람들도 떼를 지어 서둘러 갔다. 요리 냄새와 같은, 그들 머릿속에 들어있는 똑같은 생각이 걸음을 재촉하고, 입에 침이 괴게 하고, 뱃속까지 내려가 창자가 노래를 부르도록 만들었다.
맛있는 식탁에 뜰에 있는 사과나무 밑에 차려져 있었다. 예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거기에 자리를 잡았다. 뱃사람과 농부들이었다. 남작 부인은 중앙에 앉았는데, 좌우에는 이포르의 사제와 뢰 포플의 사제가 자리했다. 그 맞은편에 앉은 남작 곁에는 촌장과 그의 부인이 앉았다. 그 부인은 벌써 노경에 접어든, 몸매가 마른 시골 여자였는데, 여기저기에 짤막한 인사를 보내고 있었다. 그녀는 갸름한 얼굴에 꼭끼는 커다란 노르망디 식 도가머리를 한 암탉의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코로 접시를 쪼듯 재빠른 동작으로 얼른얼른 음식을 먹어댔다.
잔느는 대부 곁에서, 행복함 속에서 여행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무것도 보지 않았고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기쁨으로 머리가 멍해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그에게 물었다. "그래, 당신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지요?" 그가 말했다. "줄리앙입니다. 모르셨던가요?" 그러나 그녀는 대답은 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이 이름은 얼마나 자주 부르게 될 것인가!'
식사가 끝나자, 앞뜰은 뱃사람들에게 양보하고 성관의 뒤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작 부인은 남작에게 기대어 두 사제의 전송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잔느와 줄리앙은 작은 숲이 있는 데까지 가서 우거진 작은 길로 들어섰다. 그러자 갑자기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말씀해 주십시오. 제 아내가 되어 주시겠습니까?" 그녀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가 "대답해 주세요, 제발!"하고 더듬거리며 말했을 때 그녀는 아주 부드럽게 그를 향해 눈을 들었다. 그는 그녀의 시선 속에서 그 대답을 읽었다.
4
남작이 어느 날 아침, 잔느가 일어나기도 전에 그녀의 방으로 들어와 침대 발치에 앉으면서 말했다. "드 라마르 자작이 우리에게 너와 결혼하게 해달라고 청하는구나." 그녀는 이불 속에 얼굴을 감추고 싶었다. 아버지가 다시 말했다. "대답은 나중으로 미루어 두었다." 그녀는 감동으로 숨이 막혀 새근거렸다. 잠시 후 남작이 미소를 지으며 덧붙였다. "네게 그것을 이야기하지 않고는 우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네 어머니와 나는 이 결혼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네게 강요할 생각은 없어. 너는 그 사람보다 훨씬 부자다. 그러나 인생의 행복에 있어서는 돈에 집착할 필요는 없지. 그는 부모도 없다. 그래서 네가 그 사람과 결혼하게 되면 그 사람은 우리 집안으로 들어와 아들이 되는 것이고, 반대로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네가, 우리 딸이 남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 청년은 우리 마음에 든다. 네 마음도 드는지.....넌 어떠냐?" 그녀는 머리끝까지 붉어지면서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도 좋아요, 아빠." 그러자 아버지는 딸의 눈 속을 들여다보면서 여전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나도 그러리라는 것을 조금은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아가씨."
그녀는 저녁때까지 얼떨떨하게 지냈다.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고, 기계적으로 이 물건을 집는다는 것이 다른 물건을 집어 들고, 걷지도 않았는데 다리가 아프고 피곤하고 기운이 없었다. 여섯 시경 그녀가 플라타너스 아래에서 어머니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자작이 나타났다. 잔느의 가슴은 미칠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젊은이는 별다른 감동도 나타내지 않고 다가왔다. 아주 가까이 왔을 때 그는 남작 부인의 손을 잡고 입을 맞춘 뒤, 이번에는 젊은 처녀의 떨리는 손을 들어 올려 자기의 입술에 갖다 대고 정답고도 감사에 찬 입맞춤을 했다. 이렇게 해서 빛나는 약혼 시절이 시작되었다. 그들은 거실의 구석이라든지 황량한 광야 앞에 있는 작은 숲속의 비탈진 곳에 앉아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때로는 그들은 어머니의 가로수 길을 산책하기도 했다. 그는 장래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그녀는 남작 부인의 그 먼지 나는 발자취를 내려다보며 그 길을 거닐었다. 일단 일이 결정되자 사람들은 결말을 서두르고 싶어 했다. 그래서 결혼식은 6주일 후인 8월 15일에 거행하기로 했고 신혼부부는 그 즉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합의를 보았다. 가 보고 싶은 나라가 어디냐고 질문을 받은 잔느는 이탈리아 도시보다 더욱 단둘이서 있게 될 것 같은 코르시카로 결정을 지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결합을 위해 정해진 순간을 그다지 몹시 애태우지 않고 기다렸다. 그러나 손가락을 꼭 쥔다든지, 또는 커다란 포옹에서 오는 어렴풋한 욕망에 막연히 괴로워하며 그들은 이러한 무의미한 애무의 미묘한 매력을 맛보면서 달콤한 애정 속에 사로잡혀 떠돌고 있었다.
결혼식에는 남작 부인의 동생인 리종 이모 이외에는 아무도 초대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 이모는 베르사이유의 어느 수도원에서 재원자로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남작 부인은 동생을 자기 집에 데리고 있고 싶어 했으나, 노처녀인 자기는 모든 사람을 거북하게 만들고, 쓸모없고 귀찮은 존재라고 생각에 사로잡혀서, 생활이 쓸쓸하고 고독한 사람들에게 방을 빌려주는 그러한 종교적인 기숙사 중의 하나에 은둔하고 말았다. 그녀는 이따금 찾아와서 한두 달 가족들과 함께 지냈다. 말수가 적고 체구가 작은이모는 언제나 남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해서 겨우 식사 때만 나타났다가 항상 자신을 가두고 있는 그녀의 방으로 곧 올라가곤 하였다.
그녀는 이제 겨우 마흔두 살밖에 안 되었는데도 노티가 나는 선량한 모습에 부드러우면서도 슬퍼 보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별 이유 없이, 가족 속에 끼어든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그녀는 귀엽지도, 소란을 피우지도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그녀를 안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구석진 곳에서 얌전하고 조용하게 있었다. 그 후부터 그녀는 언제나 무시당한 채 지냈다. 처녀 때에도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어떤 그림자처럼 혹은 낯익은 물건, 즉 매일 보아서 낯이 익기는 하나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살아있는 기구와도 같았다. 그녀의 언니는 아버지의 집에서 갖게 된 습관으로 그녀를 모자라는 존재, 아주 무의미한 존재로 여겼다. 사람들은 일종의 경멸적인 호의를 감추려고도 하지 않고 그녀를 허물없이 대했다. 그녀는 리즈라고 불렸는데 이 말쑥하고도 젊은 이름을 거북스러워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결혼하지 않고 어쩌면 절대로 결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람들은 리즈라는 이름을 리종이라고 불렀다. 잔느가 태어난 후로는 '리종이모'가 되었다. 그녀는 겸손한 친척으로 깔끔하고 지독히 수줍음을 탔는데, 심지어 그녀를 사랑하는 언니나 형부에게까지도 그러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관심한 애정, 무의식적인 연민, 타고난 호의와도 같은 어떤 막연한 애정이었다.
가끔 남작 부인이 아득한 젊은 시절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날짜를 꼬집어서 말하고자 할 때에는, "그것은 리종이 순간적인 감정으로 일을 저질렀던 때였어요."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이상의 것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순간적인 감정으로 저지른 짓'은 안개에 싸인 채로 남아 있었다. 어느 날 저녁, 리즈는 그때 스무 살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그 이유는 모르겠으나 물속에 몸을 던졌다. 그녀의 생활에서나 태도에서 이 미치광이 같은 짓을 예측할 수 있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반쯤 죽은 그녀를 건져냈다. 부모님들은 분개한 나머지 팔을 치켜들고 이 행동의 알 수 없는 원인을 찾아내는 대신에, '순간적인 감정으로 저지른 짓'에 대해 이야기를 원하는 것으로써 만족해하였다. 그들은 마치 조금 전에 수레바퀴 자국에 빠져 다리가 부러졌기 때문에 도살하지 않을 수 없었던 '꼬꼬'라는 말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 이후로 리즈는 곧 리종이 되었으며 아주 심한 정신박약자로 여겨졌다. 그녀의 가까운 친척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그 부드러운 멸시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도 천천히 스며들었다. 어린 진느조차도 어린애의 타고난 눈치로 그녀에게 조금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으며, 잘 때 키스하러 가지도 않았고 이모의 방에 절대로 들어가는 일도 없었다.
하녀 로잘리는 그 방에서 필요한 시중을 들고 있었는데, 그녀만이 그 방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리종 이모가 점심을 들러 식당에 들어서면 이 '꼬마'는 습관적으로 이모 곁으로 가서 그녀에게 이마를 내미는 것이었다. 그것이 전부였다. 누군가 그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으면 그녀는 부르러 하녀를 보냈다. 그런데 그녀가 거기에 없으면 결코 그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그녀에 대한 생각도 하지 않았으며 "아니, 오늘 아침에 리종을 보지 못했군"하고 걱정하거나 물어볼 생각조차 갖지 않는 것이었다.
그녀는 조금도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들의 가까운 친척들에게조차도 탐험되지 않은 미지의 것으로 머물러 있어서 그녀가 죽는다 해도 집안에 구멍도 빈틈도 나지 않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생존 속에도, 습관 속에도, 자기 가까이에 살고 있는 이들의 사랑 속에도 들어갈 줄 모르는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리종 이모'라고 말을 할 때도, 이 두 마디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말하자면 어떠한 애정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커피포트'나 '설탕 단지'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녀는 항상 조용하면서도 재빠른 종종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그녀는 절대로 소리를 내는 적이 없었고 그 어느 것에도 부딪치는 법이 없었다. 어떠한 소리도 내지 않는 특성을 물건에게까지 전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손은 솜 같은 것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나 생각될 만큼 그녀는 만지는 모든 것을 가볍게 그리고 섬세하게 다루었다. 그녀는 결혼이라는 관념에 깜짝 놀라서 7월 중순경에 도착했다. 그녀는 많은 선물을 가지고 왔으나 그것들은 그녀가 가지고 온 것이라고 해서 거의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로 있었다. 그녀가 온 다음 날부터 사람들은 벌써 그녀가 거기에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상한 감동이 술렁였으며 그녀의 눈길은 조금도 약혼자들에게서 떠날 줄을 몰랐다. 그녀는 이상한 정력으로, 열광적인 활동력으로, 아무도 자기를 보러 오지 않는 그녀의 방에서 일개 침모처럼 일을 하면서 혼수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가장자리를 감친 손수건이라든지, 글자를 수놓은 냅킨 같은 것을 남작 부인에게 내보일 적마다 이렇게 묻곤 하였다. "이렇게 하면 되나요, 아델라이드?" 그러면 어머니는 무관심하게 그것들을 살펴보면서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너무 그렇게 애쓰지 말아요, 리종." 어느 날 저녁, 그 달 말경에, 무더운 하루가 지나고 맑고 미지근한 밤에 달이 떠올랐다. 그것은 영혼 속에 숨겨져 있는 모든 시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듯이 마음을 흔들고 감동시키고 흥분시키는 그런 밤이었다. 들판에서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이 조용한 거실 안으로 들어왔다. 남작부인과 남편은 램프의 갓이 테이블 위에 그리는 둥근 빛 속에서 무료하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 리종 이모는 그들 사이에 앉아 뜨개질을 하고 있었고 두 젊은이는 열어놓은 창턱에 팔을 괴고 달빛이 가득한 정원을 내다보고 있었다. 보리수와 플라타너스는 그 그림자를 넓은 잔디밭 위로 던지고 있었는데 그 잔디밭은 창백하게 빛나면서 새까만 작은 숲이 있는 곳까지 뻗어 있었다. 이 밤의 부드러운 매력과 나무와 덤불의 이 어렴풋한 빛에 어쩔 수 없이 이끌린 잔느는 양친에게로 몸을 돌렸다. "아버지, 우리 저기, 성관 앞 풀밭을 한 바퀴 돌고 오겠어요." 남작은 놀이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갔다 오려무나, 얘들아" 하고 말하고는 다시 게임을 계속하였다.
그들은 밖으로 나와 하얗게 빛나는 넓은 잔디밭으로 해서 안쪽의 작은 숲이 있는 곳까지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도 그들은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작 부인은 피곤해서 자기 방으로 올라가고 싶어했다. "저 연인들을 불러야 해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남작은 홀낏 빛으로 가득한 너른 정원을 둘러보았다. 거기에는 두 개의 그림자가 조용히 거닐고 있었다. "내버려두구려" 하고 그가 말했다. "밖이 저렇게도 좋지 않소! 리종이 저 애들을 기다릴게요." 아버지는 남작 부인을 부축해 일으켰다. 그 자신도 낮의 무더위에 지쳐 있었다. "나도 자러 가야겠소" 하고 그가 말했다. 그는 부인과 함께 나갔다. 그러자 이번에는 리종 이모가 일어나 안락의자의 팔걸이에 하기 시작한 일감, 즉 털실과 긴 뜨개바늘을 놓고 창문으로 가서 팔꿈치를 괴고 이 매혹적인 밤을 내다보았다.
두 약혼자는 잔디밭을 가로질러 작은 숲에서 층계까지, 층계에서 숲까지 끊임없이 오고 갔다. 그들은 손을 꼭 쥐고 이제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마치 자신으로부터 벗어나 대지에서 내뿜는 눈에 보이는 시에 완전히 섞여 들어간 것 같았다. 잔느는 얼핏 창틀에서 램프의 불빛에 비치는 노처녀의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어머나, 리종 이모가 우리를 보고 있어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자작이 머리를 들고 생각 없이 말하는 그런 무관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군요. 리종 이모가 우리를 보고 있군요." 그들은 다시 몽상에 잠겨 천천히 걸으면서 서로 사랑을 계속 나누었다. 그러나 이슬이 풀밭 위에 내려 그들은 한기로 몸을 떨었다. "이젠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래서 그들은 돌아왔다. 그들이 거실로 들어섰을 때에는 리종 이모는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가느다란 손가락은 매우 피곤한 듯이 약간 떨리고 있었다. 잔느가 다가갔다. "이모, 이젠 가서 주무세요." 노처녀는 시선을 돌렸다. 그 눈은 마치 울기라도 한 것처럼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연인들은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젊은이는 처녀의 날씬한 구두가 이슬에 온통 젖에 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염려가 되어서 부드럽게 물었다. "소중한 당신의 작은 발이 시리지 않으세요?" 그러자 갑자기 이모의 손가락이 일감이 떨어질 만큼 그렇게 심하게 떨렸다. 털실 뭉치가 멀리 마룻바닥 위로 굴러갔다. 갑자기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그녀는 경련을 일으킬 듯한 오열로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두 약혼자는 깜짝 놀라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잔느가 갑자기 무릎을 꿇고, 그녀의 팔을 벌리면서 당황한 나머지 이렇게 거듭 물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아니, 왜 그러세요. 리종 이모?" 그러자 그 가엾은 여자는 눈물에 젖은 목소리로 슬픔으로 몸을 떨면서 더듬거리며 대답했다. "저 사람이 네게 물었을 때..... 시리지 않느냐고.....네 소중한 작은 발이.....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준 적없단다.....나에게.....한 번도.....한 번도....."
잔느는 놀랍고 측은한 생각도 들었으나 리종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는 연인을 생각하자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자작도 자기의 웃음을 감추려고 몸을 돌렸다. 그러나 이모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털실을 바닥에, 편물은 의자 위에 그냥 둔채로 등불도 없이 어두운 층계로 달아나 자기 방을 대강 어림치고 찾아갔다. 자기들만 남은 두 젊은이는 즐겁고 감동이 되어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잔느가 중얼거렸다. "가엾은 이모.....!" 줄리앙이 대답했다. "오늘 밤 좀 이상해지신 모양이에요." 그들은 헤어질 마음이 나지 않아서 서로 손을 잡고 있었다. 그러고는 부드럽게, 아주 부드럽게 리종 이모가 막 자리를 뜬 그 빈 의자 앞에서 그들의 첫 키스를 나누었다. 다음날, 그들은 노처녀의 눈물 같은 것은 이제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을 2주일 앞둔 잔느는 마치 부드러운 감정에 지친 것처럼 아주 평온하고 조용하게 지냈다. 그녀는 결정적인 날의 오전에도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의 살과 피와 뼈가 살갗 속에서 녹아 섞여버린 듯이 온몸에 커다란 공허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물건을 만지자 자기의 손가락이 심하게 떨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녀는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교회의 합창 속에서 겨우 자신을 되찾았다. 결혼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결혼하였다! 새벽부터 이루어진 일들이나 움직임, 사건의 연속이 그녀에게는 하나의 꿈, 정말 하나의 꿈처럼 여겨졌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달라져 보이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몸짓들마저도 어떤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시간까지도 평시의 운행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이 침착하지 못하고 특히 놀라워하고 있음을 느꼈다. 전날만 해도 자신의 존재 속에 변화된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다만 자기 생에 있어서 한결같이 지녀온 희망이 보다 더 가까이 거의 손으로 만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녀는 처녀로서 잠자리에 들었었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아내가 된 것이다.
이렇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기쁨과 꿈꾸어왔던 행복과 더불어 미래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은 이 울타리를 넘었던 것이다. 그녀는 자기 앞에 하나의 문이 열려져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던 것' 속으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의식이 끝났다. 모두 텅 빈 제의실로 건너갔다. 아무도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고 나서 그들은 다시 나왔다. 그들이 교회 문에 나타나자 굉장한 폭음이 신부를 펄쩍 뛰게 했고 남작 부인이 큰소리를 지르게 만들었다. 그것은 농부들이 쏜 축포였다. 뢰 푀플로 갈 때까지 그 폭음은 그치지 않았다.
간단한 식사가 가족들과 성주들의 사제, 이포르의 사제, 촌장 그리고 인근의 대농 가운데에서 뽑힌 증인들을 위해서 마련되었다. 그리고 점심 식사를 기다리기 위해서 사람들은 정원을 한 바퀴 돌았다. 남작, 남작 부인, 리종 이모, 촌장과 피코 신부는 어머니의 산책길을 걷기 시작했다. 한편 건너편의 가로수 길은 다른 신부가 큰 걸음걸이로 걸으면서 기도서를 읽고 있었다.
성관의 다른 쪽에서는 사과나무 아래에서 능금주를 마시고 있는 농부들의 즐겁고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들이옷을 입은 온 고을 사람들이 뜰을 가득 메웠다. 소년 소녀들이 술래잡기를 하고 있었다. 잔느와 줄리앙은 작은 숲을 가로질러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8월 중순인데도 날씨는 약간 서늘했다. 북풍이 불어왔다. 그리고 커다란 태양은 새파란 하늘에서 사정없이 내리비치고 있었다. 두 젊은이는 그늘을 찾기 위해서 오른쪽으로 돌아 들판을 가로질렀다. 이포르로 내려가는 구불구불하고 숲이 많은 골짜기로 가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덤불 숲에 이르자, 이제는 바람 한 점 스치지 않았다. 그들은 그의 허리로 천천히 미끄러져 감겨오는 팔의 감촉을 느꼈다.
그녀는 심장이 빠르게 뛰고 숨이 끊어질 듯이 헐떡여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낮게 쳐져 있는 나뭇가지가 그들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그들은 그 밑을 지나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그녀는 나뭇잎 하나를 땄다. 두 마리의 무당벌레가 연약한 빨간 조가비처럼 그 위에 몸을 바싹 붙이고 있었다. 그러자 순진한 그녀는 약간 안심이 되어 이렇게 말했다. "어머, 부부로군요." 줄리앙은 그녀의 귀에 가볍게 입을 대었다. "오늘 밤 당신은 내 아내가 되는 겁니다." 들에서 머무르는 동안 많은 것을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직도 사랑의 시만 꿈꾸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에 깜짝 놀랐다. 그의 아내라니? 이미 그렇게 된 것이 아닐까? 그러곤 그는 그녀의 관자놀이와 밑머리가 곱슬거리는 목덜미에 재빠르게 짧은 키스를 해대기 시작하였다. 그럴 때마다 전혀 익숙하지 않은 이런 남자의 키스에 놀라서 그녀는 이 애무를 피하려고 본능적으로 머리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면서도 이 애무는 그녀를 황홀하게 하였다. 그런데 그들은 어느새 숲 기슭에 와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멀리 온 것에 당황해서 걸음을 멈추었다.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는 그녀의 허리에 감았던 팔을 뺐다. 두 사람이 몸을 돌리자 그들은 마주 보게 되었다. 아주 가까워서 그들은 그들의 얼굴에서 서로의 숨결을 느꼈다. 그들은 서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두 영혼이 서로 섞여들 것 같은 그런 움직이지 않는, 날카로우면서도 꿰뚫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 속에서, 서로의 눈 뒤에서, 속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존재의 이 미지 속에서 서로를 찾고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집요한 질문 속에서 서로의 심중을 살피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이 함께 시작하는 이 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들은 서로 결혼이라는 이 취소할 수 없는 긴 대담에서 기쁨, 행복 또는 환멸을 간직하게 될 것인가? 그러자 두 사람은 서로 지금까지 본 적이 없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갑자기 줄리앙은 아내의 어깨 위에 두 손을 얹고 그녀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는 격렬한 키스를 그녀의 입술 가득히 퍼부었다. 그 키스는 밑으로 내려가서 그녀의 혈맥과 골수 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알 수 없는 어떤 충격을 받은 그녀는 두 팔로 줄리앙을 정신없이 떼밀어 하마터면 넘어질 뻔하였다. "가요, 돌아가요"하고 그녀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으나 자기 손에다 그녀의 손을 쥐고 있었다. 그들은 집에 올 때까지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남은 오후 시간은 길게 여겨졌다. 해 질 무렵에 사람들은 식탁에 앉았다.
저녁은 노르망디 식과는 반대로 간단하고 아주 짧았다. 거북스러움 같은 것이 회식자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 두 사람의 사제와 촌장 그리고 초대받은 네 명의 소작인들만이 혼인 잔치에 어울리는 그런 떠들썩한 즐거움을 약간 나타내 보였을 뿐이었다.
웃음소리가 활기를 잃은 듯싶었으나 촌장이 말 한마디가 그 웃음을 되살려 놓았다. 대략 아홉 시쯤 되었다. 곧 커피를 마실 것이다. 밖에서는, 앞뜰의 사과나무 아래에서는 전원 무도회가 시작되었다. 열려진 창문을 통해서 축제의 광경이 전부 보였다.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은 타다 남은 양초들이 나뭇잎에 녹청색 그림자를 던지고 있었다. 촌사람들이 무대같이 생긴 부엌의 큰 식탁 위에 높이 자리한 두 개의 바이올린과 한 개의 클라리넷의 가냘픈 반주에 맞추에 원시적인 무도곡을 큰소리로 부르면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뛰고 있었다. 농부들의 소란스러운 노래가 가끔 악기소리를 완전히 뒤덮어 버리곤 하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소리에 찢긴 가냘픈 음악은 어떤 흩어지는 음표의 작은 파편처럼 하늘에서 갈가리 찢겨 나가는 것 같았다. 타오르는 횃불에 둘러싸인 두 개의 커다란 통은 군중들에게 마실 것을 쏟아내고 있었다. 하녀 두 사람이 나무통 안에서 컵과 사발을 쉴 새 없이 헹구어내는 일을 맡고 있었는데, 그들은 아직 물기가 흐르는 그것들을 빨간 포도주 줄기가 말간 능금주의 노르스름한 줄기가 흘러내리는 꼭지 밑에다 들이대는 것이었다. 그러면 춤을 추다 목이 마른 사람들과 조용한 노인들, 땀을 흘리는 소녀들이 몰려와 자기 차례가 오면 팔을 내밀어 그중의 한 그릇을 잡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음료를 머리를 젖히고 목구멍 속으로 콸콸 들이붓는 것이었다.
식탁 위에는 빵과 버터와 치즈와 소시지가 있었다. 제각기 이따금 와서 한 입씩 먹었다. 조명으로 장식된 나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건전하고도 격렬한 축제는 홀이 있는 침울한 회식자들에게도 함께 춤을 추고 싶고, 버터를 바른 빵 한 조각과 날양파를 먹으면서 그 큰 술통의 불룩한 곳에서 술을 받아 마시고 싶은 욕망을 일게 했다. 나이프로 박자를 맞추고 있던 촌장이 소리쳤다. "저런! 잘들 노는군. 가나슈의 결혼 피로연 같군그래." 참는 듯한 웃음이 가늘게 새어나왔다. 그러나 피코 신부는 세속적인 권위와는 천부적인 적이라서 이렇게 즉각 응수했다. "'카나'라고 말씀하려고 하셨겠지요." 상대방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녜요 사제님, 내가 맞습니다. 내가 가나슈라고 했으면 가나슈예요." 모두들 일어나서 거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몇 사람은 즐거운 연회를 위해서 서민들과 섞이려는 듯 나가기도 했다. 이어서 초대받은 사람들은 자기를 떴다.
남작과 남작 부인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아델라이드 부인은 평소보다 더 숨 가빠 하면서 남편이 요구하는 것을 거절하는 듯이 보였다. 마침내 그녀가 거의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여보, 난 할 수 없어요. 그걸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그러자 아버지는 갑자기 부인 곁을 떠나 잔느에게로 다가왔다. "얘야, 나와 함께 산책하지 않겠니?" 아주 감동이 된 그녀가 대답했다. "좋으실 대로 하세요. 아빠." 그들은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문앞에 이르자 바다 쪽에서 건조한 미풍이 불어와 그들을 감쌌다. 그러한 여름의 서늘한 바람은 벌써 가을을 느끼게 하였다. 하늘에서는 구름이 빨리 지나가며 별들을 가렸다가 이내 다시 드러내었다. 남작은 딸의 손을 부드럽게 쥐면서 딸의 팔을 자기 몸에 가까이 댔다. 그들은 얼마 동안 걸었다. 그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당황해하는 것 같았다. 마침내 그가 결심을 하였다. "귀여운 내 딸아. 난 네 어머니가 해야 할 어려운 역할을 하려고 한단다. 네 어머니가 그걸 거절했기 때문에 내가 대신할 수밖에 없게 되었단다. 나는 네가 실제적인 일 중에서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겠구나. 자식들에게는, 특히 딸들에게는 조심스럽게 숨기고 있는 비밀들이 있단다. 딸들은 마음이 순결한 채로 있어야만 한다. 우리가 딸의 행복을 보살피게 될 남자의 팔에 그 애들을 내맡기는 그 시간까지 완전무결하게 순결해야만 한다. 인생의 감미로운 비밀 위에 걸쳐 있는 그 베일을 걷어 올리는 것은 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란다. 그러나 딸들은 지금까지 어떤 의혹도 스쳐 가지 않았기 때문에 꿈의 뒤에 숨어 있는 약간 동물적인 현실 앞에서 저항을 하게 된단다. 영혼뿐만 아니라 육체까지도 상처를 입은 딸들은 법칙이, 인간의 법칙과 자연의 법칙이 절대적인 권리로서 그에게 허용하는 것을 남편에게 거부하고도 하지. 얘야, 나는 그 이상은 더 말할 수가 없구나. 그러나 절대로 이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너는 완전히 네 남편에게 속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정확하게 그녀는 무엇을 알았을까? 그녀는 무엇을 짐작했을까? 그녀는 어떤 예감처럼 견딜 수 없이 고통스러운 우울에 짓눌려 떨기 시작했다. 그들은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뜻밖의 일이 거실문에서 그들을 멈추게 했다. 아델라이드 부인이 줄리앙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흐느껴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은, 대장간의 풀무처럼 밀어내고 있는 요란스러운 눈물은 코와 입과 눈에서 동시에 나오는 것 같았다. 젊은이는 당황하고 어색하게, 자기의 애지중지하게 귀여워하고 열렬히 사랑하는 딸을 그에게 부탁하기 위해서 자기 팔에 쓰러져 있는 뚱뚱한 부인을 받치고 있었다.
남작이 달려갔다. "아아! 이러지 말아요. 마음을 약하게 먹지 말아요, 제발." 그러고는 아내를 잡아 안락의자에 앉혔다. 그러는 동안에 그녀는 얼굴을 닦고 있었다. 남작은 잔느에게로 몸을 돌렸다. "자, 얘야, 빨리 네 어머니에게 키스하고 가서 자거라." 자기 역시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그녀는 양친에게 재빨리 키스를 하고 도망치듯 나갔다. 리종 이모는 벌써 자기 방으로 물러가 있었다. 남작과 부인만이 줄리앙과 함께 남아 있었다. 그들 세 사람은 모두 아주 거북스러워서 아무 말도 나누지 않았다. 야회복을 입은 두 남자는 초점 잃은 시선으로 서 있었고 아델라이드 부인은 의자에 쓰러져 아직도 목구멍 속으로 오열을 삼키고 있었다. 그들의 난처함이 견딜 수가 없게 되자, 남작은 두 젊은이가 며칠 후에 떠나게 될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잔느는 자기 방에서 샘물처럼 눈물을 흘리고 있는 로잘리의 손을 빌려 옷을 벗고 있었다. 그녀의 손이 헛손질을 하는 바람에 그녀는 이제 끈도 핀도 찾지 못했다. 그녀는 확실히 자기의 주인보다 더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잔느는 하녀의 눈물 같은 것은 거의 생각지도 않았다. 그녀는 자기가 다른 세계로 들어가 있는 것 같이 여겨졌다. 그녀가 알고 있는 모든 것, 그녀가 극진히 사랑하는 모든 것에서 떨어져 나와 어느 다른 땅으로 떠나는 것같이 여겨졌다. 자기의 생활이나 생각 속에서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된 것 같았다. 이런 이상한 생각까지 드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자 갑자기 잘 모르는 낯선 사람처럼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3개월 전만 해도 그녀는 그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도 전혀 알지 못했었는데 지금은 그의 아내인 것이다. 이것은 어떻게 된 일일까? 왜 발밑에 뚫려 있는 구멍 속으로 빠지듯 이렇게 빨리 결혼 속으로 빠져버린 것일까?
밤 단장을 마치자 그녀는 침대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약간 선뜩한 시트가 살갗에 소름을 돋게 하고, 두 시간 전부터 그녀의 영혼을 짓누르고 있던 차디찬 느낌, 고독, 슬픔의 감정을 더해 주었다. 로잘리는 여전히 흐느껴 울면서 도망치듯이 그 방을 나갔다. 잔느는 기다렸다. 그녀는 불안하고 떨리는 가슴으로 무언지 자기로서는 짐작할 수 없는 것, 아버지가 애매한 말로 알려준 것, 사랑의 가장 큰 비밀인 그 신비로운 계시를 기다렸다.
계단을 올라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누가 방문을 가볍게 세 번 두드렸다. 그녀는 몹시 떨려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다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이내 열쇠 따는 소리가 났다. 그녀는 마치 도둑이 자기 방에 들어오기라도 하는 것처럼 이불을 뒤집어썼다. 장화 소리가 부드럽게 마루를 울렸다. 그리고 갑자기 누군가 자기 침대에 손을 댔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펄쩍 뛰면서 작은 소리를 질렀다. 얼굴을 내미니 자기 앞에 줄리앙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 당신이 나를 겁주다니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가 대답했다. "그럼 당신은 나를 기다리지 않았소?"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정장을 하고 있었으며 미남다운 의젓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이토록 단정한 이 남자 앞에서 이렇게 자리에 누워 있다는 것이 몹시 부끄럽게 여겨졌다. 그들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온 생애의 본질적인 행복이 달려 있는 이 신중하고도 결정적인 시각에 그들은 감히 서로 바라보지도 못했다. 그는 이 싸움에 어떤 위험 같은 것이 내포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과 꿈속에서 자란 처녀의 영혼이 지니는 한없는 섬세함과 미묘한 수치심을 다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치밀한 자제와 꾀바른 애정이 어쩌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막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손을 잡고 키스했다. 그리고 마치 제단 앞에 무릎을 꿇듯이 침대 옆에 무릎을 꿇고 숨소리처럼 가느다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나를 사랑해 주시겠소?" 그녀는 갑자기 안심이 되어서, 레이스로 뒤덮인 머리를 베개에서 쳐들며 미소를 지었다. "전 당신을 이미 사랑하고 있는 걸요."
그는 아내의 가느다랗고 작은 손가락을 자기의 입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가락이 입을 가리는 바람에 달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겠소?" 그녀는 다시 당황해하며, 자기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아버지가 한 말을 생각하고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당신 거예요." 그는 그녀의 손목에 축축한 키스를 퍼부어댔다. 그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숨으려고 하는 그녀의 얼굴로 다가갔다. 갑자기 침대 위에서 한 팔을 뻗쳐 그는 시트 너머로 아내를 껴안고, 다른 팔은 베개 밑으로 집어넣어 머리를 쳐들어 올렸다. 그리고 가만히 아주 가만히 물었다. "그렇다면 당신 곁에 나를 위해 아주 작은 자리를 만들어 주시겠소?" 그녀는 두려웠다.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더듬거렸다. "아! 아직은 안 돼요. 부탁이에요." 그는 실망한 것 같았고 조금 기분이 상한 것도 같았다. 그는 여전히 애원하는 그러나 조금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어쨌든 우리가 결국 그렇게 될 터인데 왜 미루는 거요?" 그녀는 그 말을 원망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공손하게 참으려 그녀는 다시 한번 되풀이했다. "저는 당신 거예요." 그러자 그는 황급히 화장실 안으로 사라졌다. 그녀는 옷 벗는 소리, 주머니 속에서 나는 동전 소리, 한 짝씩 벗어 던지는 장화 소리 같은 그가 움직이는 소리를 똑똑히 들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팬츠와 양말만 신고 그는 재빨리 방을 가로질러 벽난로 위에다 시계를 놓으러 갔다. 그러고 나서는 뛰다시피 옆에 붙은 작은 방으로 돌아가 다시 얼마동안 움직거렸다. 잔느는 눈을 감고 얼른 돌아누웠다. 그러자 그가 돌아온 것을 알았다. 그녀는 자기 다리 곁에 차고 털투성이의 다른 하나가 재빨리 미끄러져 들어왔을 때 바닥에라도 뛰어 내려설 듯이 펄쩍 뛰었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제정신이 아닌 그녀는 두려움과 당황함으로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아 침대 깊숙이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그는 얼른 그녀를 껴안고, 그녀가 등을 돌리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목과 나이트캠의 물결치는 레이스와 수놓은 속옷의 깃에 탐욕스럽게 키스를 했다. 그녀는 자기의 팔꿈치로 가리고 있는 젖가슴을 더듬는 힘찬 손길을 느끼면서 무서운 불안에 몸이 뻣뻣해져 꼼짝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 난폭한 접촉에 깜짝 놀라서 숨을 헐떡거렸다. 무엇보다도 그녀는 도망치고 싶었다. 집 밖으로 달려나가서 어디든지 이 남자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 가서 들어앉고 싶었다. 그는 이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등에서 그의 체온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의 공포가 다시 가라앉았다. 그러고는 갑자기, 키스하면서 돌아누우면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그는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내 귀여운 아내가 되고 싶지 않다는 것이오?" 그녀는 손가락 사이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되지 않았나요?" 그는 기분 나쁜 투로 대답했다. "천만에, 여보, 자, 나를 놀리지 말아요."
그녀는 그의 불만스러워하는 어조에 매우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서 갑자기 그를 향해 돌아누웠다. 그는 그녀를 갈망하는 듯이 화가 나서 양팔로 그녀의 허리를 얼싸안았다. 그러고는 재빠른 키스를, 물어뜯는 키스를, 미칠 듯한 키스를 그녀의 온 얼굴과 가슴에 구석구석 퍼부었고 애무로 그녀를 얼빠지게 만들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린 채 그의 그런 행동에 맥없이 있으면서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그가 무엇을 하는지, 생각이 혼란스러워서 아무것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날카로운 고통이 갑자기 그녀를 쥐어뜯었다. 그녀는 그가 난폭하게 자신을 소유하고 있는 동안 그의 팔 안에서 몸을 비틀면서 신음을 하기 시작했다.
그다음에는 무슨 일이 있어났을까? 그녀는 거의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잃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가 그녀의 입술에 감사해하는 짧은 키스를 우박같이 퍼부었던 것 같은 생각이 들 뿐이다. 그러고 나서는 그가 그녀에게 말을 했을 것이고 그녀는 그에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 후에 그는 다른 시도를 해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공포 때문에 그것을 물리치곤 하였다. 그녀가 몸부림을 치는 바람에 이미 자기 다리에서 느꼈던 그 무성한 털이 이번에는 가슴에 닿아 얼른 물러섰다. 마침내 이루지 못한 간청에 지쳐서 그는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영혼 밑바닥까지 절망한 그녀는 그렇게도 다르게 꿈꾸어오던 도취, 파괴되어 버린 소중한 기대, 무너져버린 행복의 환멸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이것이 바로 그가 그의 아내가 되는 것이라고 하던 그것이로구나. 이것이! 이것이!"
그녀는 벽에 걸려있는 장식 융단들과 그의 방을 둘러싸고 있는 오래된 사랑의 전설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그렇게 오랫동안 슬픔에 잠겨있었다. 그러나 줄리앙이 이제는 말도 건네지 않고 움직이지도 않아서 그녀가 천천히 그에게로 시선을 돌려보니 그는 자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자기를 아무 여자처럼 취급한 그의 난폭한 짓보다도 이 잠에 더 모욕을 느껴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런 밤에 잠을 잘 수 있을까? 그들 사이에 일어났던 일이 그래 그에게는 조금도 놀랄 일이 아니란 말인가? 아아! 그녀는 차라리 격렬한 충격을 받는 것이, 폭행을 당하는 것이, 의식을 잃을 때까지 그 지긋지긋한 애무로 상처를 입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녀는 팔꿈치를 받치고 그에게로 몸을 기울여서 이따금 코 고는 소리를 내며 그이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가벼운 숨소리를 들으면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날이 밝았다. 처음에는 부옇게, 다음에는 환하게, 다음에는 장밋빛으로, 그다음에는 빛이 났다. 줄리앙은 눈을 뜨고 하품을 하고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아내를 바라보면서 미소를 짓고 물었다. "잘 잤어, 여보?" 그녀는 이제 그가 자기에게 공대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녀는 깜짝 놀라 대답했다. "그럼요, 당신은요?" 그가 말했다. "아아! 난 아주 잘 잤어." 그러고는 그녀에게로 몸을 돌려 키스했다. 그러고 나서는 조용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경제관념과 더불어 생활의 계획을 그녀에게 펼쳐 보였다. 여러 번 되풀이하는 이 말이 잔느를 놀라게 했다. 그녀는 그 말들의 의미를 알지도 못하면서 귀를 기울였고, 간신히 자기의 마음을 재빨리 스치고 지나가는 수많은 것을 생각하면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시계가 여덟 번 울렸다. "자, 일어납시다."하고 그가 말했다. "늦게까지 침대에 있으면 우습게 보일 테니까." 그러고는 그가 먼저 침대에서 내려갔다. 그는 자기의 몸치장을 끝내고 나서 아내의 몸치장을 아주 세세한 것까지도 도와주면서 로잘리를 부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그가 그녀를 세웠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사이는 이제 친근하게 말을 놓을 수가 있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아직은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후에는 아주 자연스러울 거요."
그녀는 점심때에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냈다. 그리고 그 하루는 아무런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통 때와 같이 그렇게 지나갔다. 다만 집안에 남자가 한 사람 더 있었을 뿐이다.
5
나흘 후에 그들을 마르세이유에 데려다줄 대형 사륜마차가 도착했다. 첫날밤의 번민을 겪고 난 후, 잔느는 이미 줄리앙과의 접촉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녀의 혐오감이 그들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할 정도로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그의 키스와 부드러운 애무에 익숙해졌던 것이다. 그녀는 그를 미남이라고 생각했고 또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행복해지고 즐거워 짐을 느꼈다. 이별은 짧고 슬프지도 않았다. 남작 부인만이 흥분해 있는 것 같았다. 마차가 떠나려 할 때 그녀는 딸의 손에 납덩이처럼 무거운 커다란 돈지갑을 쥐어주었다. "이것으로 신부에게 필요한 자질구레한 지출을 하려무나"하고 그녀가 말했다.
잔느는 그것을 주머니 속에 넣었다. 그리고 말들이 달리기 시작하였다. 저녁 무렵에 줄리앙이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 어머니가 그 지갑에 얼마를 넣어주셨소?" 그녀는 더 이상 지갑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있지를 않아서 그것을 무릎 위에 쏟아 놓았다. 많은 금화가 흩어졌다. 2천 프랑이었다. 그녀는 손뼉을 쳤다. "돈을 많이 쓸 수 있게 되었군요." 그리고 그녀는 돈을 다시 집어넣었다.
지독한 더위 속을 일주일 동안 달린 후 그들은 마르세이유에 도착했다. 다음날은 아작시오를 경유해서 나폴리로 가는 작은 여객선인 르와 루이호가 그들을 코르시카로 데려다주었다. 코르시카! 밀림지대! 비적들! 산들! 나폴레옹의 고향! 잔느에게는 자기가 아주 기분 좋게 꿈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현실에서 빠져나오는 것같이 여겨졌다. 갑판위에 나란히 서서 그들은 프로방스의 절벽들이 달리듯이 뒤로 스쳐 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으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강렬한 빛에 굳어진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짙은 쪽빛 바다는 지나칠 정도로 푸른 무한한 하늘 아래 펼쳐져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라스티크 영감의 배로 뱃놀이를 갔었던 것 생각나세요?" 대답 대신에 그는 재빨리 그녀의 귀에 키스를 했다.
기선의 바퀴가 바다의 깊은 잠을 흔들어 놓으면서 물을 때리고 있었다. 그리고 뒤로 거품이 이는 긴 흔적이, 출렁이는 물결이, 샴페인처럼 거품을 일게 하는 창백하고 크고 길게 퍼진 자국이 배의 똑바른 항적을 까마득히 보여주고 있었다. 갑자기 앞쪽에서, 불과 몇 발자국밖에 안 되는 곳에서 거대한 물고기 돌고래가 물 밖으로 솟구쳐 올랐다가 다시 곤두박질쳐 잠기더니 사라져버렸다. 무서움에 사로잡혀 잔느는 비명을 지르고 줄리앙의 가슴에 뛰어들었다. 그러자 그녀는 자기가 무서워한 것에 웃음이 나왔다. 그러면서도 그 물고기가 다시 나타나지 않을까 걱정을 하며 바라보았다. 잠시 후에 그 물고기는 거대한 기계 장난감처럼 다시 솟아올랐다. 그러다가 다시 떨어지더니 또다시 나왔다. 이번에는 두 마리가 되었다가 세 마리로, 다시 여섯 마리의 돌고래가 육중한 배 주위에서 뛰어오르면서 철 지느러미가 달린 나무 물고기인 괴물 같은 그들의 형제를 호위하는 것 같았다. 그들은 왼쪽으로 지나갔다가 배의 오른쪽으로 돌아왔고, 어떤 때에는 함께, 어떤 때에는 차례로 마치 장난을 치듯이 즐겁게 뒤꽁무니를 쫓기도 했다. 또 곡선을 그리면서 공중으로 껑충 뛰어올랐다가는 다시 일렬로 물속에 잠기는 것이었다.
잔느는 거대하면서도 유연한 이 헤엄치는 자들이 나타날 때마다 넋을 빼앗기고, 마음을 설레고, 손뼉을 쳤다. 그녀의 가슴도 그들처럼 어린애같이 미칠 듯한 기쁨으로 뛰었다. 갑자기 물고기들이 자취를 감추었다. 한 번 더, 아주 멀리, 난바다에서 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고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잔느는 잠시 물고기들이 사라진 것에 섭섭함을 느꼈다.
저녁이 왔다. 고요하고 빛나며 행복한 평화가 가득한 저녁이었다. 공중에도 물 위에도 한 가닥 미동도 없었다. 바다와 하늘의 이 무한한 휴식은 이제는 더 이상 전율조차 일어나지 않는 무감각해진 영혼까지 퍼져왔다.
커다란 태양이 저기 보이지 않는 아프리카를 향해 가라앉고 있었다. 아프리카, 벌써 불같은 뜨거운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 그 타는 듯한 대지. 그러나 서늘한 애무 같은 것이-그렇기는 하지만 미풍이라고는 할 수 없는-해가 졌을 때 얼굴을 가볍게 스쳐 갔다.
그들은 여객선의 온갖 지독한 냄새가 나는 선실로 다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 두 사람은 망토로 몸을 감고 허리를 맞대고 갑판 위에 길게 누웠다. 줄리앙은 곧 잠이 들었으나 잔느는 미지의 여행에 대한 흥분으로 눈을 뜨고 그대로 있었다. 타륜의 단조로운 소리가 그녀를 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자기 위에 마치 남극의 맑은 하늘에 젖은 듯이 반짝거리는, 아주 환하고 날카롭게 빛나는 별무리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 녘에는 그녀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소음과 사람들의 말소리에 잠이 깨었다. 수부들이 노래를 부르면서 배를 단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잠에 떨어져 꼼짝도 하지 않는 남편을 흔들었다. 그들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자기의 손가락 끝까지 밴 짭짜름한 안개의 맛을 마음껏 들이마셨다. 사방이 바다였다. 그러나 배 앞쪽의 여명 속에서는 아직은 어렴풋한 어떤 회색 나는 것이, 이상하고 뾰족하며 들쭉날쭉한 어떤 주름 덩어리 같은 것이 물결 위에 놓여 있는 듯싶었다.
그것은 점점 더 뚜렷하게 나타났다. 밝아진 하늘에 그 형상은 더욱 뚜렷해졌다. 뿔이 돋은 것 같은 이상한 산의 커다란 산맥이 솟아올랐다. 엷은 베일 같은 것으로 몸을 감싼 코르시카였다.
불쑥 튀어나온 모든 산봉우리들이 검은 그림자로서 윤곽이 드러나면서 뒤쪽에서 태양이 솟아올랐다. 그러자 모든 봉우리들은 환해지고, 섬의 나머지 부분은 안개에 싸여 흐릿한 채로 있었다. 소금기를 머금은 억센 바람에 구릿빛이 되고, 마르고, 작달막해지고, 굳어지고, 오므라든 늙고 작은 선장이 갑판 위에 나타나 30년간의 호령에 목이 쉬고, 질풍 속에서 소리를 질러왔기 때문에 지쳐버린 목소리로 잔느에게 말했다. "저것의 냄새를 아십니까?" 아닌 게 아니라 그녀는 어떤 강령하고도 이상한 식물의 냄새, 야생의 향기를 느끼고 있었다. 선장이 다시 말했다. "이렇게 향기를 풍기고 있는 것은 바로 코르시카랍니다. 부인. 저건 예쁜 여자에게서 나는 냄새지요. 20년 동안을 떠나 있다가도 5마일 밖의 바다까지 오면 저 냄새를 알아맞힌답니다. 그렇고 말고요. 그분도 저기 세인트헬레나에서 고국의 냄새에 대해 항상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분은 내 일가지요." 선장은 모자를 벗더니 코르시카를 향해 절을 하고, 저 멀리 대양을 건너 그의 일가인, 포로가 된 위대한 황제에게 절을 했다.
잔느는 너무도 감동이 되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러더니 이 뱃사람은 수평선을 향해 팔을 내밀었다. "상기네르입니다!"하고 그가 말했다. 줄리앙은 아내 곁에 서서 그녀의 허리를 안고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가리켰던 지점을 찾으려고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침내 피라미드의 모양을 한 몇 개의 바위를 알아보았다. 배는 곧 망막하고도 잔잔한 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우회를 하였다. 만은 많은 높은 봉우리들엑 둘러싸여 있었고 그 산의 낮은 경사는 이끼에 덮여있는 것 같았다. 선장은 그 초록빛을 가리켰다. "관목 지대지요." 앞으로 나아감에 따라 산들의 원형이 이따금 바닥이 보일 만큼 투명한 하늘빛 호수 속으로 천천히 나아가는 배 뒤로 오므라드는 것 같았다. 그러자 갑자기 새하얀 마을이 만 깊숙이, 파도치는 해안가, 산들의 발치에 나타났다.
자그마한 몇 척의 이탈리아 배들이 항구에 닻을 내리고 있었다. 너댓 척의 작은 배들은 르와 루이호의 주위로 왔다 갔다 하면서 승객을 찾고 있었다. 짐을 챙기고 있던 줄리앙이 낮은 소리로 아내에게 물었다. "보이한테 20수만 주면 충분하지 않을까?" 일주일 전부터 그는 줄곧 같은 질문을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녀는 괴로웠다. 그녀는 다소 참을성 없이 이렇게 대답했다. "충분하게 주는 것인지 어떤지 확신이 없을 때에는 넉넉하게 주세요."
쉴새없이 그는 호텔의 주인이나 보이들, 마차꾼들이나 아무 장사꾼들하고 말다툼을 벌였다. 그리고 궤변을 늘어놓은 덕택으로 얼마쯤 깎고 나서는 그는 두 손을 비비면서 잔느에게 말하는 것이었다. "난 빼앗기는 것이 싫거든." 계산서가 오는 것을 볼 적마다 그녀는 틀림없이 남편이 조목조목 따지고 들 잔소리를 미리부터 알고 있는 터라 몸이 떨렸다. 그렇게 값을 깎는 것이 창피스럽고, 손바닥에 충분하지 못한 팁을 받아쥐고 남편을 곁눈으로 쳐다보는 하인들의 경멸하는 듯한 시선을 머리끝까지 묽어지는 것이었다. 그는 또 그들을 육지에 내려놓은 뱃사공과 언쟁을 벌였다. 그녀가 본 맨 첫 번째 나무는 종려나무였다! 그들은 광장의 한 모퉁이에 있는 텅 비어 있는 커다란 호텔로 내려가 점심을 주문했다. 디저트를 끝내고 잔느가 마을을 돌아보려고 일어섰을 때, 줄리앙이 두팔로 그녀를 붙들고 그녀의 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 "좀 자지 않겠소, 여보?" 그녀는 깜짝 놀라 그대로 있었다. "자다니요? 하지만 난 피곤하지 않은걸요." 그가 그녀를 껴안았다. "난, 당신을 원해요. 이해하겠소? 거의 이틀이나.....!"
그녀는 수치스러움에 얼굴을 붉히고 더듬거렸다. "아아! 지금 말이에요! 하지만 남들이 뭐라고 하겠어요? 대낮에 어떻게 방을 빌리자고 할 수 있겠어요? 아아! 줄리앙, 제발." 그러나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난 호텔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고 어떻게 생각하든 조금도 상관하지 않아요. 당신은 내가 거북하게 생각하는지 어떤지 알게 될 것이오." 그리고 그는 초인종을 눌렀다. 그녀는 눈을 내리뜨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영혼이나 육체는 남편의 이 끊임없는 욕정 앞에서 언제나 반항하면서도 혐오감과 체념으로 그러나 모욕감을 느끼면서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어떤 짐승 같은 것,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 결국 불결 같은 것을 보게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관능은 아직도 잠자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이제 그녀도 자신의 격정을 나고 있는 것처럼 그녀를 다루고 있었다. 보이가 오자 줄리앙은 그에게 방으로 안내해 달라고 청했다. 눈 속에까지 털이 무성한 진짜 코르시카인인 그 남자는 알아듣지를 못하고 방은 밤에만 준비된다고 주장하였다. 초조해진 줄리앙이 설명을 했다 "아냐, 당장. 우리는 여행에 지쳐서 쉬고 싶은 거요." 그러자 보이는 수염 속으로 한 가닥 미소가 스쳐 지나갔다. 잔느는 달아나고 싶었다.
한 시간 후에 그들이 다시 내려왔을 때 그녀는 만나는 사람들 앞에 감히 지나갈 수가 없었다. 그들이 틀림없이 등 뒤에서 웃고 쑥덕거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녀는, 이러한 예만한 수치심이나 본능의 섬세함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고 그것을 이해하지도 못하는 줄리앙을 마음속으로 원망하였다. 그녀는 자기와 남편의 사이에 어떤 베일이나 장애물 같은 것을 느꼈다. 두 사람은 절대로 영혼까지는, 생각의 밑바닥까지는 뚫고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생각은 나란히 걸어가기도 하고 가끔 서로 얽히기도 하지만 결코 섞이지는 못한다는 것, 그리고 인간 각자의 정신적 존재는 삶에 있어서는 영원히 혼자인 채로 있으리라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들은 푸른 만 깊숙이에 숨겨져 있는 이 작은 마을, 산들이 장막처럼 둘러쳐져 있어서 거기까지는 바람이 좀처럼 불어오지 않는 큰 가마솥처럼 뜨거운 이 마을에서 사흘 동안 머물렀다. 그러고 나서 여행을 위한 여정이 정해졌다. 그들은 어떤 힘든 길에서도 물러서지 않도록 말을 빌리기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성미가 팔팔해 보이는 눈을 가진, 마르고 지칠 줄 모르는 두 마리의 작은 코르시카 산 종마를 빌려 어느 날 아침 해가 떠오르는 무렵에 길을 떠났다. 노새를 탄 안내인이 그들을 수행하면서 식료품을 날랐다. 이 미개한 고장에는 여인숙이 어디 있는지 몰랐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만을 따라 길을 가다가 큰 산 쪽으로 가는 그다지 깊숙하지 않은 계곡 속으로 들어갔다. 가끔 물이 거의 말라 있는 계곡을 가로지르기도 했으나 개울 같아 보이는 것이 돌 밑에 움직이고 있었고, 마치 숨어 있는 짐승처럼 조심스럽게 졸졸 소리를 내고 있었다. 황폐한 지방은 아주 벌거벗은 것처럼 보였다. 비탈진 산허리는 키 큰 풀로 덮여있었는데, 이 타는 듯한 계절에 그것은 노란색을 띠고 있었다. 이따금 산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그들은 걸어서 가기도 하고 작은 말을 타고 가기도 하며, 개처럼 큰 노새에 걸터앉아 가기도 했다. 모두들 등에 장전을 한 총을 메고 있었는데, 녹이 슨 구식 무기였지만 그들 손에 있으면 위험한 것이기도 했다.
섬을 덮고 있는 향기를 뿜어내는 식물들의 그 강렬한 냄새가 공기를 답답하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길은 산의 길게 주름진 한가운데로 완만하게 올라가고 있었다. 장밋빛이나 푸른 화강암의 산정은 광막한 풍경에 선경 같은 느낌을 주고 있었다. 더 낮은 경사에 있는 거대한 밤나무 숲은 녹색 수풀처럼 보였다. 이 지방에서는 그만큼 토지의 기복이 엄청나게 심했다. 이따금 안내인은 가파른 고지를 손으로 가리키면서 이름을 대었다. 잔느와 줄리앙이 쳐다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침내 산정에서 굴러떨어진 돌더미 같은 회색 나는 그 무엇을 발견하였다. 마을이었다. 작은 화강암의 촌락이 거기에 걸려 있었다. 진짜 새집처럼 단단히 달라붙어 있고 거대한 산 위에 있었기 때문에 거의 보이지 않았다. 보통 걸음으로 가는 이 긴 여행이 잔느를 짜증 나게 하였다. "좀 달려요." 하고 그녀가 말했다. 그러고는 자기 말에 박차를 가했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 곁에서 달리는 소리가 나지 않아 뒤를 돌아보고는 미칠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남편이 파랗게 질려서 말의 갈기에 매달려 이상스럽게 뛰어오르면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의 아름다움조차, 그의 '잘생긴 기사'의 얼굴이 그의 서투른 솜씨와 두려움을 더욱 우스꽝스럽게 보이게 했던 것이다.
그들은 기분 좋은 속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길은 이제 망토처럼 언덕을 온통 뒤덮고 있는 두 개의 끝없는 덤불 숲 사이로 뻗쳐 있었다. 이것이 관목지대, 들어갈 수 없는 관목지대였다. 푸른 떡갈나무, 노간주나무, 소귀나무, 유향나무, 갈매나무, 히드, 월계수, 도금양, 회양목 등으로 이루어지고, 그 사이로 얽히어 꼬인 참으아리, 괴물 같은 고사리, 인동덩굴, 시스트, 로즈마리, 라벤더, 찔레 등이 머리카락처럼 얽혀 연결되어 있었다. 산등성이에 풀 수 없는 머리칼을 내려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배가 고팠다. 안내인이 따라와서 매력적인 샘 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그런 샘은 가파른 지방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바위 속으로 나 있는 작은 구멍에서 흘러나오는 얼음 같은 찬 가느다랗고 둥근 물줄기가 지나가는 사람의 입에까지 그 가느다란 물줄기를 끌어오기 위해 가져다 놓은 밤나무 잎사귀 끝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잔느는 너무 행복스러웠으나 희열에 넘친 소리를 지르지 않으려고 간신히 참았다. 그들은 다시 길을 떠나 사고뉴만을 우회하면서 내려가기 시작했다. 저녁 무렵에는 카르제즈를 지나갔다. 그곳은 옛날에 고국에서 추방당한 망명객의 무리들이 세운 그리스의 마을이었다. 키가 큰 아름다운 처녀들이, 우아한 허리에 긴 팔을, 날씬하면서도 유난히도 맵시 있는 몸매의 처녀들이 우물곁에 떼를 지어 있었다. 줄리앙이 그들에게 "안녕하세요"하고 소리치자 처녀들은 버림받은 고국의 듣기 좋은 언어로써 노래하는 듯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피아나에 도착하자, 옛날에 외진 지방에서 그랬던 것처럼 하룻밤 잠자리를 청해야만 했다. 잔느는 줄리앙이 두드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면서 기쁨으로 몸을 떨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짜 여행이다! 탐험 되지 않은 길에 뜻밖의 일들이 모두 갖춰져 있는.
그들은 마침 젊은 부부를 만났다. 교주가 신으로부터 보내진 손님을 맞이들이듯 그들은 맞아 들여졌다. 그들은 옥수수 짚을 넣은 매트 위에서 잠을 잤다. 케케묵은 낡은 집이었다.
대들보를 파먹는 긴 좀조개 벌레가 돌아다녀 좀이 쏜 집의 온 뼈대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가 나고, 살아서 한숨을 짓는 것 같았다. 그들은 해가 떠오를 때 출발하여 이윽고 숲 앞에서, 자줏빛 화강암의 진짜 숲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뾰족한 산봉우리, 원주, 작은 종루들, 그리고 세월과 부식시키는 바람과 바다의 안개로 해서 만들어진 갖가지 이상한 모양의 화강암 숲이었다. 3백 미터나 되는 가느다란 것, 둥근 것, 꼬불꼬불한 것, 갈고리 모양으로 굽은 것, 기형의 것, 기상천외의 것, 환상적인 것, 이러한 기암괴석들이 나무들, 식물들, 짐승들, 기념물들, 사람들, 법의를 입은 수도승들, 뿔이 돋친 악마들, 엄청나게 큰 새들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온통 괴물 같은 무리, 어떤 엉뚱한 신의 의지로 화석이 된 악몽의 동물원 같았다.
잔느는 심장이 졸아드는 것 같아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줄리앙의 손을 잡았다. 이 온갖 것의 아름다움 앞에서 그녀는 사랑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 잡혔던 것이다. 그리고 갑자기 이 혼란에서 벗어나자, 그들은 붉은 화강암이 피를 흘리는 듯한 벽으로 온통 에워싼 새로운 만을 발견했다. 푸른 바닷속에는 그 진홍빛 바위들이 비치고 있었다.
잔느가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아! 줄리앙!"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감탄하고 감동이 되어서 목이 메고 눈에는 두 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남편은 그녀를 쳐다보며 깜짝 놀라 이렇게 물었다. "무슨 일이오, 여보?" 그녀는 뺨을 닦으면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것도 아녜요.....신경성이에요......모르겠어요......감동이 되었나봐요. 너무 행복해서 사소한 일에도 마음이 흔들려요." 그는 아내의 이러한 신경성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떤 감격이 재앙처럼 감동을 시키고 붙잡을 수 없는 어떤 감정이 얼빠지게 만들며, 기쁨과 절망에 괴로워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에 미칠 듯이 감격해하는 사람들의 동요를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한 눈물이 그에게는 우습게 보였다. 그래서 험한 길에 온 정신이 팔려 "당신 말에나 신경을 쓰는 게 좋겠소" 하고 말했다.
거의 통행이 불가능한 길로 해서 그들은 이 만 속으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오른쪽으로 돌아 오타의 컴컴한 계곡을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 그러나 오솔길은 몹시 험난해 보였다.
줄리앙이 제안했다. "걸어서 올라가는 것이 어떨까?" 그녀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조금 전의 감동을 맛본 후라 그녀는 그와 단둘이서만 걸어간다는 것이 몹시 기뻤다. 안내인은 노새와 말을 데리고 앞서 떠나고 그들은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꼭대기에서부터 낮은 곳까지 균열이 간 산이 좌우로 열려 있었다. 오솔길은 그 틈 사이로 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두 개의 경탄할 만한 벽 사이로 해서 밑바닥을 따라갔다. 그리고 거친 급류가 이 틈바구니로 흐르고 있었다. 공기는 차고 화강암은 검은색으로 보였으며, 그리고 그 높은 꼭대기로 보이는 푸른 하늘은 마음을 뒤흔들어 놓으며 현기증을 일게 했다. 갑자기 어떤 소리가 잔느를 움찔하게 만들었다. 눈을 들어 보니, 거대한 새 한 마리가 구멍 속에서 날아올랐다. 독수리였다. 그 펼쳐진 날개는 우물 같은 두 벽을 찾고 있는 듯이 보였다. 독수리는 하늘까지 올라 사라져버렸다.
더 깊이 들어갈수록 산의 균열이 이중으로 되어 있었다. 오솔길은 가파른 갈짓자 모양으로 두 협곡 사이로 기어 올라갔다. 경쾌하고 들뜬 잔느는 앞장서서 걸으면서 발치에 있는 조약돌을 굴려 내리기도 하고 대담하게 낭떠러지 위에서 몸을 굽혀 내려다보기도 했다. 줄리앙은 약간 헐떡이면서 현기증이 날까 두려워 땅만 보면서 그녀를 따라갔다.
갑자기 태양이 그들에게 쏟아 내렸다. 그래서 그들은 지옥에서 빠져나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목이 말랐다. 축축한 흔적을 따라 돌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는 곳을 지나, 염소지기들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움푹 팬 막대기 안으로 아주 가느다랗게 물길이 트인 샘이 있는 데까지 왔다. 양탄자 같은 이끼가 주위의 땅을 덮고 있었다. 잔느는 그 물을 마시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줄리앙도 그렇게 했다.
그녀가 물의 시원함을 천천히 맛보고 있으려니까 줄리앙이 그녀의 허리를 잡고 나무 수로 끝을 빼앗으려고 했다. 그녀는 빼앗기지 않으려고 맛섰다. 그래서 그들의 입술이 서로 싸움을 벌였고 서로 부딪치고 서로 밀어냈다. 싸움의 요행에 따라서 그들은 서로 가느다란 수도관의 끝을 잡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입을 물었다. 그래서 차가운 물줄기는 쉴 새없이 잡혔다가는 놓치고 끊겼다가는 다시 이어졌으며, 그 물줄기는 얼굴과 목과 옷과 손에 물을 튀겼다. 진주 같은 물방울들이 그들의 머리에서 반짝였다. 그리고 입맞춤이 물이 흐르는 속에서 흘렀다. 갑자기 잔느는 사랑의 영감을 느꼈다. 그녀는 맑은 물을 입에 가득 물고 두 뺨을 가죽 부대처럼 부풀려 입술로 그의 목을 축여주고 싶다는 것을 줄리앙에게 느끼도록 했다. 그는 웃으면서 머리를 젖히고 두 팔을 벌리고 목을 내밀었다. 그는 단숨에 이 살아있는 육체의 샘물에서 물을 마셨다. 그 샘물은 그의 창자 속으로 불타는 욕정을 들이부었다.
잔느는 여태까지 보이지 않던 애정으로 그에게 기댔다. 그녀의 심장이 고동쳤다.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그녀의 눈은 눈물에 젖어 부드러워진 것같이 보였다. 그녀는 아주 낮은 소리로 속삭였다. "줄리앙.....사랑해요! 그러고는 이번에는 자기가 남편을 끌어당기면서 몸을 뒤로 젖히고, 부끄러움으로 빨개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가렸다." 줄리앙은 그녀에게 덮쳐들어 격정적으로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흥분된 기대 속에서 헐떡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벼락에 맞은 듯이 그녀는 자기가 불러들인 관능에 얻어맞았던 것이다. 그들은 오래 걸려서 언덕길의 꼭대기에 닿았다. 그만큼 그녀의 가슴이 뛰고 기진맥진했던 것이다. 그들은 겨우 저녁때가 되어서야 에비자에, 안내인의 친척인 파올리 팔라브르티의 집에 도착했다. 그는 키가 크고 허리가 구부정했으며, 폐결핵 환자처럼 음울한 표정을 하고 있는 남자였다. 그는 그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장식이 없는 돌로 지은 음침한 방이었지만 우아한 것이 무시되고 있는 이 지방으로서는 아름다운 방이었다. 그 사람은 자기 말로, 프랑스말과 이탈리아말이 뒤섞인 코르시카 사투리로 그들을 맞아들이는 즐거움을 나타냈다. 그때 맑은 음성이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갈색 머리에 새카맣고 커다란 눈, 햇볕에 그을은 피부, 날씬한 허리, 계속 웃고 있어서 이가 줄곧 밖으로 드러나 보이는 자그마한 여자가 뛰어들어 잔느를 껴안고 줄리앙의 손을 흔들어대며 연거푸 말했다. "안녕하세요. 부인. 안녕하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 여자는 한쪽 팔로 두 사람의 모자와 숄을 받아들고 모든 것을 정돈했다. 다른 팔은 붕대를 감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는 남편에게 "저녁 식사 때까지 이분들을 안내해 드리세요." 하고 말하고는 일행을 밖으로 나가게 했다.
팔라브르티씨는 곧 그 말에 따라 두 젊은이 사이에 끼어들어 마을을 보여주었다. 그는 발걸음도 말소리도 질질 끌었다. 자주 기침을 하면서 그럴 때마다 이런 말을 되풀이했다. "계곡의 찬 공기가 가슴에 불어와서요." 그는 엄청나게 큰 밤나무 아래로 난 외진 오솔길로 그들을 안내했다.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단조로운 말투로 말했다. "바로 여기가 내 사촌인 장 리날디가 마티으 로리에서 살해당한 곳입니다. 자, 나는 여기 장의 아주 가까이에 있었는데, 그때 마티으가 우리에게서 열 발자국 되는 곳에 나타났습니다. '장, 알베르타체스에는 가지 말아라'하고 그가 소리쳤어요. '가지 말아라, 장. 그러지 않으며 난 너를 죽여버릴 테다. 그것을 네게 경고해 둔다.'나는 장의 팔을 잡았습니다. '가지 말게. 장. 그는 그렇게 할 거야.' 둘이 모두 따라다니던 폴리나 시나쿠피라는 계집애 때문이었지요. 그러나 장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난 갈 테다, 마티으, 넌 나를 막지 못해.' 그러자 마티으가 총을 내리더니, 내가 총을 겨눌 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습니다. 장은 줄 넘기를 하는 어린애처럼 두 발로 껑충 뛰어올랐습니다. 네, 선생님. 그러고는 제 몸 위로 떨어졌습니다. 그 바람에 내 총을 놓쳐 저기 있는 커다란 밤나무가 있는 데까지 굴러가고 말았어요. 장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었지만, 한마디도 하지 못했어요. 죽어버렸던 거예요."
두 젊은이는 놀라서 침착한 이 범죄의 증인을 바라보았다. 잔느가 물었다. "그럼 살인자는요?" 파올리 팔라브리티는 한참 동안 기침을 하고 나서 말을 계속했다. "그는 산으로 갔습니다. 그 다음해에 내 형이 그자를 죽였습니다. 아시겠지요, 내 형인 필립 팔라 브르티는 산적입니다." 잔느는 몸을 떨었다. "당신의 형이라고요? 산적이라고요?" 온화한 코르시카인의 눈에 어떤 긍지에 찬 빛이 번득였다. "네, 부인. 그는 유명한 사람이었지요. 여섯 명의 헌병을 쓰러뜨리기도 했어요. 니콜라 모랄리와 함께 죽었답니다. 그때 그들은 니올로에서 포위를 당하고 엿새 동안 싸운 뒤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렀었지요." 그러고 나서 그는 고통을 참는 듯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이 지방에서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요." 그 말투는 '골짜기의 바람은 차갑지요' 하고 말할 때와 똑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돌아왔다. 그 자그마한 코르시카 여자는 그들을 마치 20년 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대했다. 그러나 한 가닥 불안이 잔느를 괴롭혔다. 그녀가 샘터의 이끼 위에서 느꼈던 그 이상하고도 격렬한 관능의 동요를 줄리앙의 품 안에서 다시 느낄 수 있게 될 것인가? 방에 둘만이 있게 되자 그녀는 그의 키스를 받으면서 또 여전히 무감각한 채 있게 되지 않을까 하고 전전긍긍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곧 안심했다. 그것은 그녀의 사랑의 첫날밤이 되었던 것이다.
이튿날 출발할 시각에 그녀는 자기로서는 새로운 행복이 시작된 것처럼 여겨지는 이 보잘것없은 집을 떠날 마음이 나지 않았다. 그녀는 자그마한 이 집주인의 아내를 방으로 들어오게 해서, 그녀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밝히면서, 돌아가면 파리에서 그녀에게 기념품을 보내겠노라고 화까지 내면서 역설했다. 기념품, 거기에 그녀는 거의 미신적인 관념을 부여하고 있었다. 젊은 코르시카 여자는 받기 싫다고 오랫동안 맞섰다. 마지못해 그녀가 승낙했다. "그러시다면 작은 권총을 하나 보내주세요. 아주 작은 걸로요." 하고 말했다. 잔느는 눈을 크게 떴다. 그 여자는 아주 낮은 소리로 귀 가까이에 대고, 마치 달콤하고 은밀한 비밀을 고백하듯이 이렇게 더붙였다. "시동생을 죽이려고 그래요." 그러고는 웃으면서 전혀 쓰지 못하는 팔에 감겼던 붕대를 재빨리 풀고, 단도에 여기저기 찔렸으나 거의 상처가 아물어가는 포동포동하게 살찐 하얀 살을 보여주었다. "만일 내가 그자만큼 힘이 세지 않았더라면 그는 나를 죽였을 거예요."하고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질투하지 않아요.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거든요. 그리고 아시다시피 그는 병자예요. 그래서 피가 끓어오르지 않지요. 게다가 나는 정직한 여자랍니다. 부인. 그러나 시동생은 남들이 말하는 소리를 모두 믿습니다. 그는 내 남편을 위해 질투를 하는 거예요. 틀림없이 그는 다시 시작할 겁니다. 그래서 작은 권총을 하나 가지고 있으면 난 평온해질 거예요. 내게 복수를 할 것이 틀림없거든요." 잔느는 무기를 보내주겠노라고 약속을 하고, 자기의 새 친구를 다정하게 포옹하고 나서 다시 길을 떠났다. 나머지 여행은 꿈과 같았고, 끝없는 포옹, 애무의 도취였다.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풍경도 사람도 그녀가 멈추었던 장소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오직 줄리앙만 쳐다보았다. 그러자 사랑의 어리석음에 어린애같이 즐거운 친밀한 관계가 시작되었다. 바보 같고 달콤한 시시한 말들을 주고받고 두 사람의 입술이 서로 좋아하는 그들의 육체의 그 모든 굽이, 주위, 주름에 귀여운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일 같은 것이었다.
잔느는 오른쪽으로 누워 잠을 자기 때문에 잠에서 깨어보면 종종 왼쪽 유방이 밖으로 삐져나올 때가 있었다. 줄리앙은 그것을 눈여겨보았기 때문에 그쪽을 '외박하는 신사'라고 부르고, 다른 쪽은 '기둥서방'이라고 불렀다. 왜냐하면, 분홍빛 젖꼭지가 키스에 더 민감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두 유방 사이의 고랑은 '어머니의 산책길'이 되었다. 그가 쉴 새 없이 그곳을 더듬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은밀한 다른 길은 오타의 계곡을 연상해서 '다마스커스의 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바스티아에 도착하자 안내인에게 돈을 지불해야만 했다. 줄리앙이 주머니 속을 여기저기 뒤졌다. 필요한 돈을 찾지 못하자 잔느에게 말했다. "당신은 어머니에게서 받은 2천 프랑은 쓰지 않을 테니까 내가 가지고 있게 그걸 주구려. 내 허리띠 속에 넣으면 더욱 안전할 테고 또 나는 잔돈으로 바꾸는 수고도 덜 테니까."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지갑을 건네주었다. 그들은 리부르느에 도착하여 플로렌스와 제노바 그리고 코르니슈 전체를 구경하였다. 북서풍이 부는 어느 날 아침, 그들은 마르세이유로 돌아왔다. 뢰푀플을 떠난 지 두달이 흘렀다. 10월 15일이었다. 잔느는 저 멀리 노르망디로부터 불어오는 것 같은 찬바람에 붙잡혀 기분이 우울했다. 줄리앙은 얼마 전부터 피곤해하고 무관심해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녀는 햇빛이 좋은 이 지방을 떠날 결심이 서지 않아 돌아가는 여행을 나흘이나 늦추었다. 그녀는 행복의 일주를 막 끝마친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마침내 그곳을 출발했다. 그들은 레푀플에 결정적인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물건을 파리에서 사들이기로 했다. 잔느는 어머니가 주신 선물 덕분에 가지가지 놀란 만큼 훌륭한 것들을 가지고 갈 생각을 하니 즐거웠다. 그러나 그녀가 첫 번째로 생각한 물건은 에비자의 그 젊은 코르시카 여자에게 약속한 권총이었다. 도착한 이튿날, 그녀는 줄리앙에게 말했다. "여보, 물건들을 좀 사야겠는데 엄마의 돈을 돌려주시겠어요?" 그는 못마땅한 얼굴로 그녀 쪽을 돌아보았다. "얼마나 필요하오?" 그녀는 놀라 더듬거렸다. "저......얼마든지 좋아요." 그가 다시 말했다. "백 프랑 주겠소. 특히 낭비하지 말아요." 그녀는 놀라고 당황해서 무어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 마침내 그녀가 망설이면서 말했다. "하지만.....제가.....그 돈을 당신에게 맡긴 것은......."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래요. 그렇고 말고요. 당신 주머니에 있으나 내 주머니에 있으나 똑같은 지갑을 우리가 가지게 된 이상 상관없지 않소. 그걸 주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오. 그렇지 않소, 내가 백 프랑을 당신에게 주었으니 말이오." 그녀는 한마디 말도 보태지 못하고 금화 다섯 닢을 받았다. 그러나 감히 더 달라고 부탁할 용기도 없었다. 그래서 권총 이외에는 아무것도 사지 못했다. 일주일 후에 그들은 뢰푀플로 돌아가려고 출발했다.
6
벽돌 기둥이 세워져 있는 울타리 앞에서 가족과 하인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역마차가 멈추었다. 포옹은 오래 계속되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잔느도 마음이 뭉클해서 눈물을 닦았다. 아버지는 안절부절못하여 왔다 갔다 했다.
그러고 나서 짐을 내리는 동안에 거실의 벽난로 앞에서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숱한 이야기가 잔느의 입술에서 흘러나왔다. 반시간 동안, 이 허겁지겁 말한 이야기 속에서 잊어버린 몇 가지 사소한 것들만 제외하고는 아마 모든 이야기를 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젊은 부인은 짐을 풀러 갔다. 로잘리 역시 아주 흥분해서 잔느를 도왔다. 그 일이 끝나고 속옷과 옷들과 화장 도구들이 제자리에 놓여지자 하녀는 여주인의 곁에서 물러갔다. 잔는 약간 피곤하여 자리에 앉았다. 그녀는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고, 정신을 위한 일과 손을 위한 일을 찾아보았다. 그녀는 거실에서 졸고 있는 어머니 곁으로 다시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다. 산책을 할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들판은 창문으로 내다보기만 해도 마음속으로 어떤 묵직한 우울을 느낄 만큼 쓸쓸해 보였다.
그러자 그녀는 이제는 아무 할 일이 없다는 것, 영원히 할 일이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수녀원에서의 그녀의 청춘은 온통 미래에 열중해 있었고 공상하기에 바빴다. 그때는 희망에 대한 끊임없는 흥분으로 가득해서 시간이 가는 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자신의 그런 꿈들이 꽃피었던 그 엄격한 벽으로부터 나오자마자 사랑의 기대는 실현되었다. 불과 몇주일 동안에 바라던 남자를 만나고, 사랑하고, 결혼한 그 남자는 갑작스럽게 결정을 내려 결혼할 때에 그렇듯이, 그녀에게 아무런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그녀를 자기 품속으로 앗아가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신혼 초기의 달콤한 현실이, 끝없이 희망과 미지의 것에 대한 매혹적인 불안에 빗장을 지르려고 하는 일상적인 현실로 되려고 하고 있었다. 그렇다, 기다린다는 것은 끝이 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아무 할 일이 없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그녀는 막연히 이러한 모든 것, 어떤 환멸과 꿈이 허물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유리창에 이마를 갖다 댔다. 그러고는 한참동안 어두운 구름이 흘러가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밖으로 나가기로 했다. 이것은 5월의 그것과 똑같은 들판, 똑같은 풀, 똑같은 나물들일까?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나뭇잎들의 즐거움과, 민들레가 타오르고, 개양귀비가 핏빛으로 물들고, 데이지가 빛나고, 보이지 않는 실 끝에서처럼 노란 환상의 나비들이 팔락거리던 잔디밭의 그 녹색 시는 대체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고 생명과 향기와 번식력을 주는 원자로 가득했던 공기의 그 도취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계속해 내리는 가을 소낙비에 잠겨있는 한길은 두터운 낙엽 더미에 덮인 채, 거의 벌거벗어 파리하게 떨고 있는 포플러나무 밑으로 길게 뻗쳐 있었다. 가느다란 나뭇가지들은 바람에 떨며 공중으로 날아갈 것 같은 몇 개의 잎을 아직도 흔들어대고 있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하루 종일, 마치 눈물을 흘리게 하는 그치지 않고 내리는 구슬픈 비처럼, 이제는 온통 노랗게 물든 커다란 금화와도 같은 그 마지막 잎새들이 바람에 흩날려 뱅글뱅글 돌다가 떨어졌다. 그녀는 작은 숲이 있는 곳까지 갔다. 그곳은 죽어가는 사람의 방처럼 애처로웠다. 구불구불한 아름다운 길을 가르고 눈에 띄지 않게 숨겨주었던 그 녹색 벽은 허물어져 있었다. 고운 나무 레이스처럼 뒤엉켜 있는 소관목들은 서로 야윈 가지들을 부딪치고 있었다. 바람에 밀리고 굴러가고 군데군데 쌓여 있는 마른 낙엽들의 속삭임은 단말마의 괴로운 한숨처럼 여겨졌다. 아주 작은 새들은 숨을 곳을 찾으면서 추위를 타는 듯한 가냘픈 소리를 지르며 여기저기로 날아올랐다. 그러나 해풍을 막는 전위로서 심어진 느릅나무의 두툼한 장막으로 보호받은 보리수와 플라타너스는 아직도 여름 의상으로 덮여있어서 하나는 붉은 벨벳, 다른 하나는 오렌지빛의 비단을 입고 있는 듯이 보였다. 그들은 수액의 성질에 따라서 첫추위에 이렇게 물들어 있는 것이었다.
잔느는 쿠이야르네 농장을 따라서 어머니의 가로수 길을 느린 걸음으로 왔다 갔다 하였다. 막 시작된 단조로운 생활에서 오는 권태의 예감 같은 그 무엇이 그녀를 무겁게 내리눌렀다. 그녀는 줄리앙이 처음으로 사랑을 고백했던 그 비탈 위에 앉았다. 그녀는 무엇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질없는 공상에 잠겨 그대로 그렇게 있었다. 마음속까지 나른해졌고 오늘의 슬픔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워 잠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갑자기 그녀는 돌풍에 실려 하늘을 가로지르는 한 마리의 갈매기를 보았다. 그러자 먼 코르시카 오타의 어두운 계곡에서 보았던 그 독수리가 생각났다. 그녀는 행복한 그리고 이제는 끝나 버린 어떤 것의 추억이 주는 생생한 동요를 마음속에서 느꼈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는 그 야생의 향기, 오렌지와 시트론을 익게 하는 태양, 장밋빛 산정을 이고 있는 산들, 하늘빛 만들 그리고 급류가 흐르는 협곡에 있는 그 빛나는 섬을 다시 보았다. 그러자 나뭇잎들이 서글프게 떨어지고 잿빛 구름이 바람에 밀려가는, 그녀를 둘러싸고 있는 이런 축축하고 거친 풍경이 그녀를 짙은 슬픔으로 감쌌기 때문에 울지 않으려고 그녀는 집으로 들어갔다. 나날의 우울에 익숙해 있어서 이제는 그것을 느끼지도 못하고 감각조차 무디어진 어머니가 벽난로 앞에서 졸고 있었다. 아버지와 줄리앙은 그들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산책을 나간 뒤였다. 너른 거실에 우울한 그림자를 뿌리면서 밤이 왔다. 거실은 벽난로에서 반사되는 빛으로만 밝혀져 있었다. 창밖으로는, 연말의 이 보기 싫은 자연과 그 스스로 진흙으로 문질러 바른 것 같은 회색 하늘을 저물어가는 햇빛으로 분간할 수 있었다.
이윽고 남작이 나타났고 줄리앙도 따라 들어왔다. 남작은 어두운 방에 들어서자마자 초인종을 울리고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불을 켜라! 여긴 음산하군." 그러고는 벽난로 앞에 앉았다. 젖은 두 발이 불꽃 곁에서 김을 내고, 열기로 해서 마른 구두 바닥의 진흙이 떨어지는 동안에 그는 기분 좋게 두 손을 비볐다. "몸이 얼 것 같은데. 북쪽 하늘이 개고 있어. 그렇다면 오늘 밤은 만월이다. 오늘 밤은 매우 춥겠는걸" 하고 그가 말했다. 그러고는 딸 쪽을 돌아보며 "그래, 얘야. 네 고장, 네 집, 이 늙은이들 곁으로 돌아와 기쁘니?" 이 간단한 질문이 잔느를 흔들어 놓았다. 그녀는 눈물이 가득 괸 눈으로 아버지의 품속으로 뛰어들어 마치 용서를 빌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경질적으로 키스했다. 즐거워지려고 마음속으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부모님 곁으로 돌아오면서 기대했던 기쁨을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자기의 애정을 마비시키는 이 냉담함에 그녀는 놀라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고는 있으나 늘 만나는 습관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멀리서 몹시 생각하고 있었으면서도, 그들을 만나 공동생활의 관계가 다시 맺어질 때까지 애정의 정지 같은 것을 느끼는 것과도 같았다. 저녁 식사는 오래 걸렸다. 그러나 거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줄리앙은 아내를 잊어버린 것 같았다.
식사를 끝내고 거실에서 그녀는 완전히 잠들어버린 어머니 맞은편에서 불길에 나른해져 있었다. 그리고 논쟁을 벌이고 있는 두 남자의 목소리에 잠깐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면서 그녀는 자기도 역시 아무것도 중단시키지 못하는 습관의 이 활기 없는 나태에 사로잡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보았다. 벽난로의 불길은 낮에는 느른하고 불그스름했었는데, 지금은 강렬하고 환하며 탁탁 튀었다. 그 불길은 안락의자의 퇴색한 장식 융단 위에, 여우와 황새 위에, 우울한 왜가리 위에, 매미와 개미 위에 갑작스럽게 커다란 불빛을 던졌다.
남작이 다가와 미소를 지으면서 강렬한 깜부기불에 손가락을 쫙 펴고 내밀었다. "아! 오늘밤엔 잘 타는군. 춥구나. 얘야. 얼겠어." 하며 그는 잔느의 어깨 위에 손을 얹고 불을 가리켜 보였다. "봐라, 얘야, 이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거란다. 난로, 주위에 식구들이 모인 난로라는 것이 말이야.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지. 그러나 자러 가야지. 몹시 피곤하겠지, 너희들?" 자기 방으로 올라오자 젊은 부인은 자기가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한 이 똑같은 장소로 돌아왔는데 어떻게 이렇게도 다를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다. 어째서 그녀는 자신이 상처를 입은 것처럼 여겨지는가? 어째서 이 집, 이 사랑하는 고장, 지금까지 자기의 마음을 떨리게 했던 이 모든 것이 오늘은 이렇게도 가슴을 에는 것일까? 그러자 그녀는 눈길이 갑자기 추시계 위에 머물렀다. 그 조그만 벌은 여전히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리고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똑같은 동작으로 빠르고 쉴 새 없이 도금한 꽃 위를 날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잔느는 애정의 충동에 사로잡혀, 자기에게 시간을 노래해 주고 가슴처럼 고동치는 이 살아있는 듯한 작은 기계 앞에서 눈물이 나올 정도로 감동하였다.
확실히 그녀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키스를 하면서도 이같이 감동하지는 않는다. 인간의 마음이란 어떤 추리로써도 꿰뚫어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한 후 처음으로 그녀는 자기 침대에 혼자 있었다. 줄리앙은 피곤하다는 구실로 다른 방에 들어있었다. 게다가 각자 자기 방을 갖는다는 것에 그는 동의를 했었다. 그녀는 혼자 자는 버릇을 버린 데다가 자기 몸에 닿는 다른 사람의 감촉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이상스럽고, 또한 지붕에 사정없이 불어대는 심술궂은 북풍에 마음이 산란해서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아침에 침대를 붉게 물들이는 커다란 햇살에 잠이 깨었다. 서리가 잔뜩 낀 유리창은 지평선이 온통 불타는 듯이 붉었다. 커다란 실내복으로 몸을 감싸고 그녀는 창가로 달려가 문을 열었다. 얼음같이 차고 건강에 좋은 그리고 찌르는 듯한 바람이 방안으로 들이쳐, 눈물이 나올 정도로 매서운 추위가 그녀의 살갗을 때렸다. 붉게 물든 하늘 한복판으로는 주정쟁이의 얼굴처럼 부어 붉게 빛나는 커다란 태양이 나무들 뒤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지금은 단단하고 메마른 흰 서리로 뒤덮여 있는 대지는 농장 사람들의 발밑에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하룻밤 사이에 아직도 잎이 무성했던 포플러 나무의 가지들은 모두 벌거숭이가 되어버렸고, 황야의 뒤로는 흰 물결이 온통 점점이 흩어져 있는 바다의 그 커다란 녹색 선이 나타났다.
플라타너스와 보리수는 돌풍에 재빠르게 옷을 벗었다. 얼음 같은 찬바람이 지나갈 적마다 갑작스런 서리에 떨어진 나뭇잎들의 회오리가 새가 날아오르듯이 발람 속에 흩어졌다. 잔느는 옷을 입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 소작인들을 만나러 갔다. 마르탱가는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여주인은 잔느의 두뺨에 키스했다. 그리고 과일씨로 담근 술을 작은 잔에 부어 그녀에게 억지로 마시게 했다. 그녀는 다른 농장으로 갔다. 쿠이야르가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여주인은 잔느의 두 귀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그리고 까막까치 밥술을 작은 잔으로 한잔 마셔야 했다. 그러고 나서 그녀는 점심을 들기 위해 돌아갔다. 그날 하루는 전날과 같이 습한 대신에 차가운 날씨로 흘러갔다. 그 주일의 다른 날들도 이 이틀과 비슷했다. 그리고 그달의 모든 주일도 첫 주와 같았다. 그러나 차츰 먼 지방에 대한 미련은 가라앉아 갔다. 습관은 그녀의 생활에, 어떤 종류의 물이 물체 위에 남기는 석회의 앙금과도 비슷한 체념의 층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상생활의 대수롭지 않은 많은 것에 대한 일종의 흥미, 단순하고 평범하고 규칙적인 일에 대한 걱정이 그녀의 마음속에 다시 생겨났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일종의 명상적인 우울과 살아가는 것에 대한 막연한 환멸이 자라고 있었다. 그녀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무엇을 바라는 것일까? 그녀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어떠한 세속적인 욕구도 그녀를 사로잡지 못했다. 즉 쾌락에 대한 어떤 갈망도, 가능할 수도 있는 즐거움에 대한 어떤 충동조차도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던 것이다. 그 이상 무엇이 있을까? 세월에 의해 퇴색해 버린 거실의 낡은 안락의자처럼 모든 것이 그녀의 눈에는 천천히 생기를 잃어가고 눈에 띄지 않게 되었으며, 창백하고 침울한 색조를 띠게 되었다.
줄리앙과의 관계는 완전히 변해 버리고 말았다. 그는 자기의 역할을 끝마친 배우가 본래의 얼굴로 되돌아가듯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는 아주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이제 아내에 대해 관심이 없었고, 이야기조차 건네지 않았다. 모든 사랑의 흔적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가 아내의 방으로 들어오는 밤은 드물어졌다. 그는 재산과 집에 대해 관리를 했으며, 모든 임대차 계약을 검사하고, 소작인들을 들볶고, 지출을 줄였다. 그리고 그 자신도 귀족 농부 같은 옷을 입었기 때문에 약혼 시절의 겉치레나 우아함은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는 청년 시절의 자기 옷장에서 찾아낸, 구리 단추가 달린 낡은 벨벳 사냥복을 얼룩이 졌음에도 불구하고 늘 입고 다녔다. 그리고 누구의 마음에 들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진 남자들의 등한시하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면도를 하는 것도 그만두었기 때문에 다듬지 않은 긴 턱수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그를 추하게 만들었다. 손도 이제는 가꾸지 않았다. 그리고 식사 후에는 언제나 작은 잔으로 코냑을 너댓 잔 마셨다.
잔느가 몇 번 상냥하게 말리려고 애썼지만, 그는 "가만 놔두지 않겠어?"하고 너무도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기 때문에 그녀는 더 이상 감히 그에게 충고를 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이러한 태도의 변화에 대해서 자신도 놀랄 만큼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받아들였다. 그는 이제 그녀에게는 타인, 영혼도 마음도 닫혀진 채로 있는 타인이 되어버렸다. 그녀는 그것에 대해 종종 생각해보았다. 그렇게 만나 사랑하고 애정의 충동 속에서 결혼한 그들이 마치 나란히 누워 잠을 자본 적이 없는 것같이 갑자기 서로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처럼 된 것은 어찌 된 일인가 하고. 그리고 어째서 그의 버림이 더 한층 괴롭지 않은 것일까? 이런 것이 인생인가? 두 사람은 잘못 생각했던 것일까? 이제 미래 속에는 그녀를 위한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인가? 만일 줄리앙이 여전히 아름답고, 정성 들여 가꾸고, 우아하고, 매력적이라면 그녀는 지금보다 더 많이 괴로워했을까?
새해가 되면 신혼부부만 남고, 양친은 루앙의 집에서 몇 달 지내기 위해 돌아가기로 결정이 되었다. 일생을 보내게 될 이 장소에 정착하고, 익숙해지고, 마음에 들도록 하기 위해서 젊은이들은 이 겨울에는 레푀플을 한시도 떠나지 않기로 했다. 게다가 그들은 몇몇 이웃의 친구들 가지게 되었다. 줄리앙은 그들에게 아내를 소개했다. 그들은 브리즈빌, 쿠틀리에 그리고 푸르빌르의 집안이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때까지 마차의 가문을 바꿀 페인트공을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아직 방문할 수가 없었다. 남작은 사위에게 사실 낡은 가족 마차를 물려주었었는데, 줄리앙은 드 라마르가의 방패 꼴의 작은 가문이 르 페르튀 데 보의 그것과 같이 있지 않으면 결코 이웃 성관에 모습을 나타내는 것에 동의하려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지방에는 문장 장식을 하는 전문가가 단 한 사람밖에 없었다. 그는 볼베크의 칠장이로 바타이유라는 이름을 가졌는데, 마차의 문에 값진 장식을 박기 위해서 노르망디의 모든 작은 성에서는 차례로 그를 불러갔다. 마침내 11월의 어느 날 아침, 간식이 끝날 무렵에 어떤 사람이 울타리 문을 열고 곧은 길로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등에 상자 하나를 지고 있었다. 바타이유였다.
그를 거실로 들어오게 해서 그가 신사이기라도 한 것처럼 식사를 대접했다. 왜냐하면 그의 전문, 모든 지방 귀족들과의 끊임없는 관계, 가문과 공인된 용어, 상징도에 대한 그의 지식 등이 신사들이 악수를 청해 오는 일종의 인간 가문 노릇을 하게 했기 때문이다. 곧 연필과 종이를 가져오게 해서 그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남작과 줄리앙은 4등분한 방패 꼴의 작은 가문의 초벌 그림을 그렸다. 이런 일에 관해서는 매우 흥미로워하는 남작 부인이 자기 의견을 제시했다. 잔느 자신도 어떤 신비로운 관심이 갑자기 마음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의논에 참여하였다. 바타이유도 간식을 들면서 자기 의견을 제시하기도 하고 가끔 연필을 들고 설계도를 그리고도 했으며, 여러 가지 예를 들고, 그 지방의 모든 영주들의 마차에 대해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의 정신과 음성은 일종의 귀족적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는 회색 머리를 짧게 깎고 물감으로 더러워진 손에서는 휘발유 냄새가 나는 그런 자그마한 남자였다. 소문에 의하면 전에 품행이 좋지 못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는데 자위 있는 모든 가문들의 일반적인 존중이 오래전부터 그 오점을 씻어주었던 것이다.
그가 커피를 다 마시자 그를 차고로 안내하여 마차에 씌워놓은 방수천을 벗겼다. 바타이유는 마차를 살펴본 다음에 자기가 데생을 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치수에 대해서 신중하게 의견을 표시했다. 그러고 나서 새로운 의견을 교환한 후 일에 착수했다.
날씨가 추운데도 불구하고 남작 부인은 그가 일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 의자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발이 시리다고 발 난로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 그녀는 조용히 칠장이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기가 모르는 결혼이나 작고한 사람들 그리고 새로 태어난 이들에 대해 물어보면서, 그러한 정보로써 그녀가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계통수를 보충하는 것이었다.
줄리앙은 장모의 곁에서 의자에 말 타듯이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땅에다 침을 뱉었으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눈으로는 자기의 귀족 신분이 그림으로 되어가는 것을 좇고 있었다. 잠시 후에는 어깨에다 삽을 둘러메고 채소밭으로 가던 시몽 영감까지도 일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바타이유가 왔다는 것이 두 농장에 퍼졌기 때문에 금방 두 소작인의 아내가 나타났다. 두 여자는 남작 부인의 양쪽에 서서 황홀한 듯 넋을 잃고 되풀이 말했다. "저렇게 정성 들여 손질하려면 꽤 솜씨가 있어야 할 거야." 양쪽 문의 방패꼴의 작은 문장은 다음날 열한 시경에야 끝마칠 수 있었다. 사람들이 금방 모여들었다. 그리고 일이 잘되었는지 어떤지를 보기 위해서 마차를 밖으로 끌어냈다.
나무랄 데 없었다. 등에 상자를 짊어지고 다시 떠나는 바타이유에게 치하를 했다. 그리고 남작과 그의 부인, 잔느와 줄리앙은, 이 칠장이는 훌륭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고, 만약 사정이 허락했다면 틀림없이 마술가가 되었으리라는 점에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런데 줄리앙은 경제적인 면을 고려해서 여러 가지 개혁을 실시했는데, 그것은 새로운 수정을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자작 자신이 마치를 부리는 책임을 맡았기 때문에 늙은 마부는 정원사가 되었다. 그리고 마차를 끄는 큰 말들은 사료값을 절약하기 위해서 팔아버렸다.
그리고 주인들이 내릴 때 말을 붙들고 있을 사람이 필요했기 때문에 마리우스라고 부르는 어린 목동을 작인 하인으로 썼다. 마침내 말은 손에 넣기 위해서 자작은 쿠이야르와 마르탱의 임대차 계약 속에 두 소작인은 매월 하루, 그가 지정하는 날에 각자 말 한 필씩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을 강제하는 특별조항을 삽입시켰고 그 대신에 그들은 닭에 대해 정기적으로 지불해야 할 채무를 면제받게 되었다. 그래서 쿠이야르네는 털이 노란 커다란 노마를 끌고 왔고 마르탱네는 털이 긴 작은 백마를 끌고 와서 두 말은 나란히 마차에 매어졌다. 시몽 영감은 낡은 제복 속에 파묻힌 마리우스가 성관의 층계 앞으로 이 마차를 끌고 왔다.
깨끗이 몸단장을 하고 몸을 젖히고 있는 줄리앙은 예전의 우아한 모습을 약간 되찾았다. 그러나 그의 긴 턱수염은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를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게 했다. 그는 한쌍의 말과 마차 그리고 작은 하인을 살펴보고 만족하게 생각했다. 그에게는 다시 칠한 문장만이 중요성을 가지고 있었다. 남편의 팔에 의지하여 방에서 내려온 남작 부인이 간신히 올라타 등을 쿠션에 기대고 앉았다. 이번에는 잔느가 물었다. 그녀는 우선 말의 짝짓기를 보고 웃으면서 "흰 말은 노란 말의 손자군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마리우스를 보니 얼굴은 모포가 달린 모자 속에 덮여 가려 있고, 모자가 흘러내리는 것을 오로지 코가 받쳐주고 있었다. 두 손은 소매 속으로 사려져 버렸고 두 다리는 제복의 늘어진 옷자락 속에 불룩하니 들어있으며, 커다란 구두를 신은 그의 발은 이상스럽게 밑으로 삐쭉이 나와 있었다. 그리고 무엇을 보기 위해서 머리를 뒤로 젖히고,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 장님처럼 허둥대고, 헐렁한 옷 속에 가려져 완전히 보이지 않는 그를 보았을 때 잔느는 걷잡을 수 없는 웃음이, 끝없는 폭소가 터져 나왔다.
남작이 몸을 돌려 얼떨떨해하는 그 작은 남자를 바라보더니 곧 웃음이 전염되어 폭소를 터뜨렸다. 그리고 아내를 불렀으나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보, 보구려, 마, 마, 마리우스를! 얼마나 우습소! 어쩌면 저리도 우스울까!" 그러자 남작 부인이 문에 기대에 그를 바라보고 마차의 요동으로 쳐들리는 것처럼 마치 전체가 용수철 위에서 춤을 출 만큼 즐거움의 발작으로 몸을 흔들었다. 그러나 줄리앙은 창백해진 얼굴로 물었다. "무엇이 그렇게 우습지요? 모두 제정신이 아니군요."
잔느는 배가 아프고 경련이 일어나고, 도저히 진정할 수가 없어서 층계 위에 주저앉았다. 남작도 따라서 그렇게 했다. 그리고 마차 안에서는 경련을 일으킬 것 같은 재채기 소리, 계속해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남작 부인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마리우스의 긴 웃옷이 팔딱거리기 시작했다. 아마 그도 왜 웃는지 알았던 모양이다. 그 자신도 모자 속에서 있는 힘을 다해 웃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자 흥분한 줄리앙이 달려들었다. 따귀를 한 대 갈기자 소년의 머리에서 커다란 모자가 벗겨지더니 잔디밭 위로 날아갔다. 그러고는 장인 쪽으로 몸을 돌리고 화가 나서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제 생각으로는 장인어른께서 웃으실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재산을 낭비하지 않고 가진 것을 다 먹어치우지만 않았다면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만약에 파산하신다면 그건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겁니까?" 모든 즐거움은 얼어붙었고 갑자기 멎어버렸다. 아무도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는 울음이 나올 것 같은 잔느가 소리 없이 어머니 곁으로 올라갔다. 남작은 뜻밖의 기습에 놀라서 말없이 두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줄리앙은 뺨이 붓고 울먹거리는 아이를 자기 곁에 끌어올린 뒤에 마부석에 자리를 잡았다.
가는 길은 슬프고 길게 여겨졌다. 마차 속에서도 입을 열지 않았다. 세 사람은 모두 침울하고 거북해서 마음에 걱정되는 것을 조금도 털어놓으려 들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이 괴로운 생각이 그들의 머리에서 줄곧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가슴 아픈 화제를 건드리기보다는 슬프게 침묵하고 있는 것이 더 나았던 것이다.
두말의 보조가 맞지 않는 속보로 마차는 농가들의 마당을 따라서 달렸다. 깜짝 놀란 새카만 암탉들이 후닥닥 울타리 안으로 숨어 들어가 모습을 감추었다. 가끔 이리같이 생긴 개가 짖으면서 따라온 적도 있었으나 곧 털을 곤두세우고 제집으로 돌아가다가는 다시 마차를 돌아보며 짖ㅇ 댔다. 흙이 덕지덕지 묻은 나막신을 신은 소년이 긴 다리를 맥없이 끌면서 두 손을 주머니 속에 찔러넣고, 바람이 들어가 등이 불룩해진 푸른 웃옷을 입고 오다가 일행이 지나가도록 옆으로 비켜서면서 어색하게 모자를 벗는데 머리에 달라붙은 뻣뻣한 그의 머리털이 내보였다. 멀리 각 농가 사이에는 여기저기에 다른 농가와 더불어 들판이 다시 시작되었다.
마침내 길에 죽 심어져 있는 전나무의 큰길로 들어섰다. 움푹 팬 진흙투성이의 수레바퀴 자국에 마차가 기우뚱했기 때문에 어머니가 비명을 질렀다. 길 끝에 하얀 울타리가 닫혀져 있었다. 마리우스가 달려가 그것을 열고 둥그런 길로 해서 넓은 잔디밭을 돌아서, 덧문이 닫혀 있는 높고 널찍하고 음산한 건물 앞에 닿았다. 중간에 있는 문이 갑자기 열렸다. 그리고 검은 줄이 있는 빨간 조끼를 입고 그 위에 앞치마를 두른 중풍이 걸린 늙은 하인이 모로 걷는 잔걸음으로 현관의 계단을 내려왔다. 그는 방문객의 이름을 묻고는 널찍한 객실로 안내하고 언제나 닫아두었던 덧문을 힘들여 열었다. 가구들은 덮개로 씌워져 있었고 추시계와 큰 촛대는 흰 천으로 덮여있었다. 곰팡내 나고 차고 습하고 옛날 냄새가 나는 공기는 폐와 가슴과 살갗에 슬픔을 배어들게 하는 것 같았다. 모두들 앉아서 기다렸다. 위층 복도에서 들리는 발소리가 평소에 없었던 민첩함을 알려주고 있었다. 뜻밖에 놀란 별장 주인들이 재빨리 옷을 갈아입고 있는 것이었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초인종이 여러 번 울렸다. 다른 발소리가 계단을 내려오더니 다시 올라갔다.
남작 부인은 파고드는 추위에 사로잡혀서 연거푸 재채기를 하였다. 줄리앙은 방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렸다. 잔느는 침울하게 어머니 곁에 앉아 있었다. 남작은 벽난로의 대리석에 등을 기대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드디어 높다란 문 하나가 열리면서 드 브리즈빌 자작 부부가 나타났다. 두 사람은 다 작고 말랐으며 깡충깡충 뛰어서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는데, 격식을 차리면서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꽃무늬가 있는 비단옷을 입고 리본이 달린 작은 보닛을 쓴 부인이 째지는 듯한 목소리로 빠르게 말을 했다.
꼭 끼는 화려한 프록코트를 입은 남편은 무릎을 굽혀 인사를 했다. 그의 코, 눈, 잇몸이 드러나 보이는 이, 밀랍을 칠한 것 같은 머리카락 그리고 그의 좋은 옷은 정성을 다한 물건처럼 빛나고 있었다. 환영의 첫인사와 이웃으로서의 예절을 보이고 나서는 누구도 더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주인과 손님은 이유도 없이 서로 찬사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양쪽은 모두 이 훌륭한 교제가 계속되어지기를 바랐다. 일 년 내내 시골에서 살면 서로 만나는 것은 의지가 되는 것이다. 객실의 얼음같이 찬 공기가 뼛속까지 파고 들어와 목소리를 쉬게 했다. 남작 부인은 재채기가 다 끝나기도 전에 이번에는 기침을 했다. 그래서 남작은 출발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브리즈빌 부부는 "왜 그러세요? 이렇게 빨리? 좀더 있다 가세요." 하고 말렸다. 그러나 잔느는 방문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는 줄리앙의 신호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차를 앞으로 빼기위해 종을 울려서 하인을 부르려고 했다. 초인종이 울리지 않았다. 집주인이 달려나갔다. 그러고는 돌아와서 마구간에 말을 매어 놓았다고 알렸다. 기다려야만 했다. 저마다 할 말과 어떤 문구를 찾아보았다. 비가 많은 겨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잔느는 자기도 모르게 불안에 떨면서, 주인들께서는 두 분이서만 일 년 내내 무엇을 하시느냐고 물었다. 그러나 브리즈빌 부부는 이 질문을 이상하게 여겼다. 왜냐하면 그들은 쉴 새 없이 일을 했기 때문이다. 프랑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들의 귀족 친척들에게 편지를 쓴다는지, 극히 사소한 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든지, 남을 대하듯 서로 마주 앉아서 예의를 갖추고 아주 하찮은 일들을 위엄을 갖추어 이야기하면서 지내고 있었다.
모든 것을 천으로 싸놓은, 비어 있는 널따란 객실의 검고 높은 천장 아래에서 이처럼 작고, 이처럼 단정하고, 이처럼 예절 바른 남자와 여자가 잔느에게는 귀족의 통조림처럼 여겨졌다. 마침내 균형이 맞지 않는 두 마리의 조랑말이 끄는 마차가 창문 앞으로 지나갔다. 그러나 마리우스는 보이지 않았다. 저녁때까지는 자유로우리라고 생각하고 들판을 한 바퀴 돌아보려고 나간 모양이었다. 몹시 화가 난 줄리앙은 그를 걸려서 돌려보내 달라고 부탁했다. 양쪽이 많은 인사를 나눈 후에 뢰 푀플로 가는 길로 접어들었다. 그들이 마차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잔느와 아버지는 줄리앙의 난폭한 짓으로 해서 남아 있는 무거운 마음은 잠시 접어둔 채 브리즈빌 부부의 몸짓과 말투를 흉내 내면서 웃기 시작했다. 남작은 남편의 흉내를 냈고 잔느는 부인의 흉내를 냈으나 그들에 대한 존경심에서 약간 감정이 상한 남작 부인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렇게 빈정거리는 것은 잘못된 일이에요. 그분들은 훌륭한 분들이에요. 훌륭한 가문의 사람들이에요." 어머니의 기분을 조금이라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입을 다물었으나, 이따금 어떻게 해서든지 아버지와 잔느는 서로 쳐다보면서 다시 시작하는 것이었다. 남작은 예의를 갖추어 인사를 하고 엄숙한 어조로 말했다. "뢰푀플의 성관은 매우 추울 테죠, 부인? 온종일 바다에서 불어오는 강풍으로 해서 말입니다." 잔느는 새침한 태도를 하고 멱을 감고 있는 오리처럼 머리를 살래살래 내두르면서 애교를 부렸다. "아아! 이곳에서는 일 년 내내 일이 많답니다. 편지를 써야 할 친척들이 많거든요. 그리고 드 브리즈빌씨는 모든 것을 제게 맡기지요. 그는 펠르 신부와 함께 학문적인 연구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노르망디 종교사를 편찬하고 있답니다." 이번에는 남작 부인이 웃었다. 기분이 좋지 않으면서도 너그러워져서, "그렇게 우리와 같은 계급의 사람들을 조롱하는 건 좋지 않아요." 하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차가 멈추었다. 그러고는 줄리앙이 뒤에 있는 누군가를 소리쳐 불렀다. 그래서 잔느와 남작이 마차 문으로 몸을 내밀어 보니, 자기들을 향해서 굴러오는 듯한 어떤 이상한 물체가 눈에 띄었다. 헐렁한 제복의 아랫자락 속에서 다리는 부자연스럽고, 쉴 새 없이 흘러내리는 모자로 해서 눈이 안 보이는, 풍차의 날개처럼 소맷자락을 흔들면서 넓은 물구덩이를 정신없이 건너려고 흙탕물 속을 첨벙대며 길가에 있는 돌이란 돌에는 모두 채여 비틀거리고, 안절부절 못하여 뛰어오르면서 진흙투성이가 된 마리우스가 전속력으로 마차를 따라 달려오고 있었다.
그가 마차를 따라 미치자마자 줄리앙은 몸을 기울여 그의 목덜미를 움켜쥐고 자기 곁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고삐를 늦추면서 모자를 주먹으로 치기 시작했다. 모자는 북과 같은 소리를 내면서 소년의 어깨까지 푹석 가라앉았다. 소년은 그 속에서 울부짖으면서 도망쳐 마부석에서 뛰어내리려고 애썼으나, 그의 주인은 이제 한 손으로는 아이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여전히 때리고 있었다.
잔느는 어쩔 줄을 몰라서 더듬거렸다. "아버지.....아아! 아버지!" 그리고 남작 부인은 분개하여 남편의 팔을 꽉 잡았다. "저걸 못하게 하세요, 자크." 그러자 갑자기 남작은 앞의 유리를 내리고 사위의 소매를 움켜잡으면서 그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애를 때리는 것을 당장 그만두지 못하겠나!" 깜짝 놀란 줄리앙이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제복을 어떻게 만들어놓았는지 보지 못하셨습니까?" 깜짝 놀란 줄리앙이 돌아보았다. "이 녀석이 제복을 어떻게 만들어 놓았는지 보지 못하셨습니까?" 그러자 남작은 두 사람 사이로 머리를 내밀고 말았다. "그것이 무슨 대수인가! 그런 것에 난폭하게 굴지 말게." 줄리앙이 다시 화를 냈다. "제발 가만 놔두세요. 상관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는 다시 손을 쳐들었다. 그러나 장인이 갑자기 그 손을 잡아서 마부석의 나무에 부딪힐 만큼 힘껏 꺾어 내렸다. 그리고 난폭하게 소리쳤다. "그만두지 않으면 내가 내려가서 그만두도록 하겠어. 내가!" 자작은 갑자기 침착해지면서 대답도 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 올리고는 말에게 채찍을 가했다. 말은 무서운 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두 여인은 창백해져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남작 부인의 심장이 무겁게 뛰는 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저녁 식사 때 줄리앙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소보다 더 유쾌했다. 잔느와 아버지와 아델라이드 부인은 그들의 평온한 온정으로 빨리 그것을 잊어버리고, 줄리앙이 싹싹해진 것을 보고 감동이 되어서 회복기 환자가 갖는 편안한 기분으로 즐거워졌다. 그리고 잔느가 브리즈빌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남편 자신도 농담을 했으나 얼른 이렇게 덧붙였다. "어쨌든 그들은 훌륭한 데가 있어."
모두들 마리우스의 사건이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방문은 일절 하지 않았다. 다만 새해에 이웃들에게 카드를 보내고, 내년 이른 봄의 따뜻한 날씨를 기다려 그들을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크리스마스가 왔다. 사제와 촌장과 그의 부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새해에도 다시 그들을 초대했다. 그것이 매일매일의 단조로운 이어짐을 무너뜨리는 유일한 오락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1월 9일에 레 푀플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잔느는 부모님들을 붙들고 싶었으나 줄리앙은 그것에 그다지 응하려 들지 않았다. 남작은 점점 심해지는 사위의 냉담 앞에서 루앙으로부터 역마차를 보내도록 했다.
출발하는 전날, 짐들을 다 꾸리자 춥지만 맑은 날씨였기 때문에 잔느와 아버지는 이포르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코르시카에서 돌아온 이후로 그들은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은 잔느가 결혼하는 날, 영원히 그의 아내가 될 사람과 모든 것이 하나가 되어 거닐었던 그 숲을 가로질러 갔다. 그녀가 최초의 애무를 받고, 최초의 전율을 느끼고, 나중에 오타의 원시적인 작은 골짜기에서 물에 키스를 섞어서 마시던 샘물 곁에서 마침내 알게 된 그 관능적인 사랑을 예감했던 숲이었다.
이제는 나뭇잎도 없고 기어오르는 풀 덩굴도 없다. 다만 나뭇가지에 부딪는 소리, 겨울에 헐벗은 덤불 숲에서 나는 메마른 이 소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들은 작은 마을로 들어갔다. 인적이 없는 조용한 거리는 바다 냄새와 해초 냄새 그리고 생선 냄새를 간직하고 있었다. 황갈색의 커다란 그물이 문 앞에 걸려 있거나 자갈 위에 펼쳐진 여전히 물기를 말리고 있었다. 영원히 철썩이는 물거품과 함께 차디찬 회색의 바다는 물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서 페캉을 향한 절벽의 발치에 푸르스름한 바위를 드러내었다. 그리고 해변을 따라서 옆으로 쓰러져 있는 좌초한 커다란 배들은 죽어있는 넓적한 생선처럼 보였다. 저녁이 되었다. 어부들은 큼지막한 어부용 장화를 무겁게 끌며, 목에는 털목도리를 두르고, 한 손에 브랜디 한 병을, 다른 손에는 배의 램프를 들고 떼를 지어 방파제 쪽으로 오고 있었다. 한참 동안 그들은 기울어져 있는 소형 보트 주위를 맴돌았다. 그들은 노르망디의 특유한 느린 동작으로 그들의 그물, 부표, 큰 빵, 버터 항아리, 컵과 36도짜리 술병을 뱃전에 놓았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일으켜 세운 작은 배를 바다 쪽으로 밀었다. 배는 자갈밭 위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내려가, 물거품을 가르며 나아갔으며, 파도에 올라 잠깐동안 흔들거리더니 갈색 돛대 끝에 작은 등불을 단 채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자 키가 큰 어부의 아내들이 억세고 앙상한 몸을 얇은 옷 속으로 드러내면서 마지막 어부가 떠날 때까지 머물러 있다가 졸고 있는 마을로 돌아갔다. 그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어두운 거리의 무거운 잠을 흔들어 놓았다.
남작과 잔느는 꼼짝도 않고 이 남자들이 어둠 속으로 멀어져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렇게 굶지 않으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밤마다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을 만큼 그렇게 가난했다.
남작은 바다 앞에서 흥분하여 중얼거렸다. "바다는 무섭고도 아름답다. 어둠이 내리는 바다, 숱한 사람들이 위험에 빠지는 바다, 이 바다는 얼마나 눈부시게 아름다우랴! 안 그러냐, 자네트?" 그녀는 쌀쌀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대답했다. "지중해보다는 못해요." 그러자 아버지가 화를 냈다. "지중해라구! 기름, 설탕물, 잿물이 들어있는 함지박의 푸른 물에 지나지 않아. 거품이 이는 이 바다가 얼마나 무시무시한가! 이것을 보아라. 그리고 방금 떠나간, 이제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그 사람들을 모두 생각해보렴."
잔느는 한숨을 쉬며 아버지의 의견에 동의했다. "네, 그럴 거예요." 그러나 그녀의 입술에서 나온 '지중해'라는 그 말이 다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그녀의 꿈이 묻혀 있는 저 머나먼 나라로 그녀의 상념을 옮겨놓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아버지와 딸은 숲으로 해서 돌아가는 대신에 길로 나와서 느린 걸음으로 해안을 올라갔다. 그들은 가까워 오는 이별의 슬픔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따금 농장의 도랑을 따라서 가노라면 짓이긴 사과 냄새, 이 계절에 온 노르망디 들판에 떠도는 것 같은 신선한 능금주의 향기가 그들의 코를 찌르고, 또는 들판에 떠도는 것 같은 신선한 능금주의 향기가 그들의 코를 찌르고, 또는 외양간의 질척질척한 냄새, 소들의 거름에서 발산하는 구수하고도 뜨뜻한 냄새가 그들의 코를 찔렀다. 불이 켜진 어느 작은 창문이 뜰 안쪽에 사람이 사는 집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러자 잔느는 자기의 영혼이 넓어져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리고 들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그 작은 불빛들은 갑자기 그녀에게 모든 존재, 즉 자기들이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모든 것을 떼어 놓고 갈라지게 하며, 멀리 끌고 가는 존재들에 대한 강렬한 고독감을 안겨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체념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인생이란 언제나 즐겁지만은 않군요." 잠작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니? 얘야, 우리는 아무것도 손쓸 도리가 없는걸." 다음날 아버지와 어머니는 떠났고 잔느와 줄리앙만이 남게 되었다.
7
젊은 부부의 생활 속에 카드놀이가 끼어들었다. 매일 점심 식사가 끝나면 줄리앙은 담배를 태우고 예닐곱 잔의 코냑을 조금씩 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흘려 넣으면서 아내와 함께 여러 가지 코냑을 조금씩 조금씩 목구멍 속으로 흘려 넣으면서 아내와 함께 여러 가지 베지그 게임을 벌였다. 그러고 나면 그녀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창가에 앉아서 바람에 흔들리는 유리창에 비가 뿌리는 동안 꾸준히 스커트의 장식을 수놓았다. 이따금 피로해지면 그녀는 눈을 들어 멀리 흰 물결이 이는 침울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잠시동안 멍청한 시선을 보낸 후, 그녀는 다시 일감을 잡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 밖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줄리앙이 자기의 권위와 경제적인 욕구를 충분히 만족시키기 위해서 집안에 대한 모든 관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무섭게 절약하는 태도를 보였고 팁도 절대로 주지 않았으며 필수적인 식량도 줄였다. 잔느가 레 푀플로 온 이후로 그녀는 매일 아침 빵 가게에다 노르망디 식의 작은 빵과자를 만들게 했는데 줄리앙은 이 지출을 금하고 그녀에게 석쇠에다 굽는 보통 빵을 먹게 했다. 그녀는 변명이나 말다툼이나 싸움을 피하기 위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남편의 인색한 근성이 새로 나타날 적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돈을 대단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는 가정에서 자란 그녀에게는 그런 것이 저속하고 역겹게만 여겨졌다. "그러나 돈이란 쓰기 위해서 만들어진 거란다."하고 어머니가 하시던 말씀을 얼마나 자주 들어왔던가. 줄리앙은 이제 이렇게 되뇌인다. "당신은 돈을 아껴 쓰는 버릇을 가질 수 없소?" 그리고 그가 품삯을 계산서에서 몇 푼을 깎을 적마다 그는 주머니 속에 잔돈을 슬그머니 집어넣으면서 웃음을 띄우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지." 그러나 어떤 날에는, 잔느는 공상에 잠기기도 했다. 그녀는 일하던 것을 슬그머니 멈추고 두 손을 맥없이 늘어뜨리며 흐릿한 눈길로 즐거운 모험의 일부분인 자기의 처녀 시절의 소설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시몽 영감에게 명령을 내리는 줄리앙의 목소리가 몽상의 요람에서 그녀를 끌어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 모든 것이 이젠 끝나 버렸어.' 하고 생각하면서 자기의 끈질긴 일감을 다시 잡는 것이었다. 그리고 한 방울의 눈물이 바느질하고 있는 손가락 위에 떨어졌다.
로잘리 역시 전에는 그렇게도 명랑하고 언제나 노래를 흥얼거렸으나 지금은 변해 버렸다. 그녀의 포동포동하고 붉은 뺨은 혈색을 잃었고 이제는 거의 움푹 패이기까지 했으며, 때로는 흙을 바른 듯이 보이기도 했다. 잔느는 자주 "너 어디 아프니?" 하고 그녀에게 물었다. 그러나 하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다. "아뇨, 마님." 핏기가 조금 광대뼈로 올라왔으나 이내 황급히 달아나 버렸다.
예전처럼 뛰어가는 대신에 그녀는 괴로운 듯이 발을 끌었고 모양도 내지 않는 것같이 보였으며, 방물장수가 비단 리본이나 코르셋 또는 여러 가지 향수들을 그녀에게 보여주어도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사지 않았다.
큰집이 공동을 울리는 것 같고 아주 침울했으며, 집 벽은 내린 빗줄기가 길게 퍼진 회색 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다.
1월 말경에는 눈이 내렸다. 침울한 바다 위에 북쪽에서 오는 커다란 구름이 멀리 보였다. 그리고 하얀 눈송이가 내리기 시작하였다. 하룻밤 사이에 온 벌판이 덮였고 아침에는 나무들이 얼음의 거품을 걸친 것 같았다.
줄리앙은 목이 긴 장화를 신고 덥수룩한 모습으로 작은 숲속으로, 광야로 향해 있는 도랑 뒤에 몸을 숨기고 철새들을 노리면서 시간을 보냈다. 이따금 총소리가 들판의 얼어붙은 침묵을 깨뜨렸다. 그러면 질겁을 한 한 떼의 검은 까마귀들이 큰 나무를 빙빙 돌면서 날아갔다.
잔느는 권태에 짓눌려 이따금 현관 앞 층계로 내려갔다. 창백하고 침울한 이 널따란 표면의 움직이지 않는 고요 위로 아주 멀리서 생의 소음들이 반향되어 왔다. 그리고 그녀는 윙윙 울리는 것 같은 먼 곳의 물결 소리와 그리고 여전히 떨어지고 있는 차디찬 물보라의 희미하고도 끊임없는 낙하 소리 이외에는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그리고 눈의 층은 두껍고 가벼운 이 거품의 무한한 낙하 밑에서 쉴 새 없이 높아지고 있었다.
이런 창백한 어느 날 아침, 잔느가 꼼짝하지 않고 자기 방의 난로에 발을 쬐고 있는 동안 날로 더 변해 가는 로잘리는 천천히 침대를 정돈하고 있었다. 갑자기 그녀는 자기 뒤에서 괴로운 한숨 소리를 들었다. 고개도 돌리지 않고 그녀가 물었다. "아니, 무슨 일이 있는 거니?" 하녀는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에요. 마님"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꺼져 들어가는 것 같았다. 잔느는 벌써 다른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하녀가 움직이는 기척이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는 "로잘리!" 하고 불렀다. 아무런 움직임도 나지 않았다. 그러자 그녀가 소리 없이 나간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 크게 "로잘리!"하고 소리쳐 불렀다. 그러고는 초인종을 누르기 위해 팔을 뻗치려고 할 때, 그녀의 바로 곁에서 새어 나오는 깊은 신음소리에 그녀는 깜짝 놀라 떨면서 몸을 일으켰다. 하녀는 창백해지고 눈에는 핏발이 선 채 두 다리를 쭉 뻗고는 등을 침대 나무에 기대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잔느가 달려갔다. "무슨 일이야, 왜 그러는 거야?" 하녀는 한 마디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그녀는 실성한 듯한 시선으로 여주인을 뚫어지게 바라보고는 무서운 고통을 찢기듯 헐떡거렸다. 그러고는 갑자기 온몸에 힘을 주고는 악문 이 사이로 비통의 소리를 죽이면서 뒤로 미끄러졌다. 그러자 벌리고 있는 넓적다리에 착 달라붙은 옷 밑으로 무엇인가가 움직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곧 물이 찰랑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목이 눌려서 질식하는 듯한 숨소리 같기도 한 이상한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러고는 갑자기 긴 고양이 울음소리, 힘없는 그러나 이미 괴로워하는 탄식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세상에 나오는 어린애의 고통스러운 최초의 울음소리였다. 잔느는 갑자기 깨달았다. 그리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져서 층계로 달려가 "줄리앙, 줄리앙!" 하고 소리쳤다. 아래층에서 그가 대답했다. "왜, 그래?" 그녀는 간신히 말했다. "저.......로잘리가....."줄리앙이 계단을 두 개씩 뛰어 올라와 쏜살같이 방으로 들어와서는 대뜸 처녀의 옷을 들추고 벌거벗은 두 다리 사이에서 꼬물거리고 있는 주름살투성이의 우는 소리를 내며 부르르 떨고 있는, 온통 끈적거리고 눈 뜨고 볼 수 없는 작은 살덩어리를 찾아냈다.
그는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고약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내를 밖으로 밀어 내면서 "당신하고는 상관없는 일이야. 저리가. 루디빈느와 시몽영감을 보내줘."하고 말했다. 잔느는 와들와들 떨면서 부엌으로 내려갔으나 다시 올라갈 용기가 나지 않아, 양친이 떠난 후로는 불을 피우지 않는 거실로 들어가 불안스러운 마음으로 소식을 기다렸다. 얼마후 그녀는 하인이 뛰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5분쯤 지나 그는 그 고장의 산파인 당튀 과부와 함께 돌아왔다. 그러자 마치 부상 당한 사람을 들어내기라도 하는 듯이 계단에서 시끌법적한 움직임이 있었다. 그리고 줄리앙이 와서 잔느에게 방으로 올라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떤 불길한 사건을 방금 목격하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떨었다. 그녀는 다시 불 앞에서 앉아 물었다. "그 애는 어때요?" 줄리앙은 무엇인가에 정신이 팔려서 신경질적으로 방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왠지 화가 치밀에 오는 것 같았다. 처음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잠시 후 걸음을 멈추었다. "당신은 저 하녀 아이를 어떻게 할 생각이오?" 그녀는 말뜻을 이해할 수 없어서 남편을 쳐다보았다. "어떻게 하다니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모르겠어요. 전" 갑자기 그가 화가 난 듯이 소리쳤다. "그러나 집에다 사생아를 둘 수는 없소." 그러자 잔느는 몹시 난처하였다. 한참 동안 입을 다물고 있다가 "하지만, 여보. 그 애를 남의 집에 보내어 기를 수도 있잖아요?"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비용은 누가 대지? 물론 당신이겠지?" 그녀는 해결책을 찾아보면서 다시 한참동안 곰곰 생각하다가 마침내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건 아버지가 책임져야죠. 그 아이의 아버지가. 그리고 그가 로잘리와 결혼한다면 이려울 것이 뭐가 있겠어요?" 줄리앙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이 격렬하게 화를 내며 대꾸했다. "아버지라구!.....아버지라구!.....당신이 그를 아오?........그 아버지라는 그 사람을?........모를 테지, 안 그래? 그럼 어떻게 하지?" 잔느는 흥분해서 화를 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절대로 저 하녀를 저대로 그냥 놔두지는 않을 거예요. 그렇다면 비겁한 사람일 거예요! 우리가 그의 이름을 물어보고, 그를 찾아가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해요." 줄리앙은 침착해져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여보, 저 애는 말하려고 하지 않을 거요, 그 사내의 이름을. 나보다도 당신에게는 더 고백하려 들지 않을 거요.... 그리고 만일 그가 저 계집애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 작자가?......그렇다면 우린 사생아가 딸린 미혼모를 한 지붕 밑에 둬둘 수는 없소. 알겠소?" 잔느는 끈덕지게 되풀이했다. "그렇다면 비열한 인간이지요, 그 남자는 그러나 우린 그를 알아내야만 해요. 그렇게 되면 그는 우리와 해결하는 거죠." 줄리앙은 얼굴이 새빨개지면서 다시 화를 냈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까지는 어떻게 하겠소?"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그에게 물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그러자 마자 그는 자기 의견을 말했다. "아아! 나라면 그건 간단해. 돈 몇 푼 주어서 그 아이하고 아무 데나 가서 살라고 쫓아내 버리겠어." 그러나 젊은 아내는 화가 치밀어서 반항을 했다. "그렇게는 절대로 안 돼요. 그 아이는 내 젖동생이에요. 우리는 같이 자랐어요. 그 애는 잘못을 저질렀어요, 딱하게도. 그러나 난 그 일로 해서 그 애를 밖으로 내쫓을 수는 없어요. 만일 그래야 한다면, 내가 기르겠어요. 그 어린아이를." 그러자 줄리앙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럴듯한 평판을 얻게 되겠지. 바로 우리가 말이야. 우리의 명예와 연고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여기저기서 우리가 악덕을 두둔하고 있다고 말하겠지. 행실이 나쁜 계집애를 보호하고 있다고 말이오. 그러면 명망 높은 사람들은 이제 우리 집에 발걸음도 하지 않으려 할 거야. 정말이지 당신은 뭘 생각하고 있는 거요? 당신은 미쳤어!" 그녀는 여전히 침착했다. "나는 절대로 로잘리를 밖으로 내몰지는 않겠어요. 당신이 그 애를 두고 싶지 않다 해도 어머니가 다시 데려올 거예요. 우리는 그 애의 아버지 이름을 끝내 알아내야만 해요." 그러자 그는 몹시 화를 내며 나가면서 문을 손바닥으로 때리며 이렇게 고함을 질렀다. "여자들은 생각하는 것이 어리석단 말이야!"
잔느는 오후에 산모의 방으로 올라갔다. 하녀는 당튀 과부의 간호를 받으며 침대에서 눈을 뜬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러는 동안 산파는 갓난아기를 팔에 안고 흔들고 있었다. 여주인을 알아보자 로잘리는 얼굴을 홑이불로 가리고 절망에 몸부림치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잔느가 그녀를 포옹하려고 했으나 로잘리는 홑이불을 뒤집어쓰면서 저항했다. 그러자 산파가 끼어들어서 그녀의 가린 얼굴을 벗겼다. 그녀는 그대로 가만히 있었다. 여전히 울고는 있었으나 조용한 울음이었다.
벽난로에서는 시원찮은 불길이 타고 있었다. 추웠다. 어린애가 울었다. 잔느는 로잘리가 다른 발작을 일으킬까 두려워서 어린애에 대해서는 감히 이야기를 꺼내지 못했다. 그래서 하녀의 손을 잡고 기계적인 목소리로 되풀이했다. "괜찮아. 괜찮아." 가엾은 계집애는 산파 쪽을 흘끗 보고는 어린애의 울음소리에 몸을 떨었다. 그녀의 목을 매게 하는 한 가닥 목구멍 속에서 났다. 잔느는 다시 한번 그녀를 포옹하고 나서 아주 낮은 소리로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우리가 잘 돌봐줄게.자 얘야." 그러자 다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에 잔느는 빨리 도망쳐 나왔다. 날마다 잔느는 그곳에 갔고, 날마다 로잘리는 여주인을 보면서 흐느껴 울었다. 어린애는 아웃 집에 맡겨 기르기로 했다. 그러는 동안에 줄리앙은 아내에게 거의 말을 걸지 않았다. 하녀를 내보내는 것을 거절한 이후로 그는 그녀에 대해 크게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느 날 그는 이 문제를 다시 꺼냈으나 잔느는 로잘리를 레 푀플에 둘 수 없다면 그 애를 당장 보내라고 하는 남작 부인의 편지를 주머니에 꺼냈다. 줄리앙은 화를 내며 소리 질렀다. "당신 어머니도 당신처럼 미쳤군." 그러나 그는 더 이상 고집하지 않았다. 2주일 후, 산모는 벌써 일어나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잔느는 어느 날 아침, 그녀를 앉혀놓고 그녀의 두 손을 잡고, 뚫어지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자, 얘야, 모든 걸 내게 얘기하렴." 로잘리는 몸을 떨기 시작하면서 더듬거렸다. "뭘 말에요. 마님?" "누구 자식이니, 그 애는?" 그러자 하녀는 무시무시한 절망에 사로잡혔다. 그리고 얼굴을 가리려고 두 손을 빼내기 위해서 미친 듯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잔느는 그러는 그녀를 무시하고 껴안으면서 위로했다. "불행한 일이야. 어떻게 하겠니, 얘야? 네가 약해서 그랬는걸. 그러나 그건 다른 사람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야. 만일 그 애 아버지가 너와 결혼만 한다면 아무도 그 일에 대해 더는 생각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너와 함께 그 사람을 우리가 쓸 수가 있어." 로잘리는 학대받는 사람처럼 신음소리를 내었으며 이따금 몸을 빼어 도망치려고 몸부림을 쳤다. 잔느는 말을 이었다. "난 네가 부끄러워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그러나 넌 내가 화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해. 난 네게 부드럽게 말하고 있지 않니. 그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는 것은 진정으로 너를 위해서야. 그 남자가 너를 버리려 한다는 것을 네 슬픔에서 느끼고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그러지 못하게 하고 싶은 거야. 줄리앙이 그를 찾게 되면, 우린 그에게 너와 결혼하도록 강요할 참이야. 그리고 우린 너희 두 사람을 붙들어두고 그 사람이 너를 행복하게 해주도록 할 거야." 이번에는 로잘 리가 느닷없이 용을 써 여주인의 손에서 자기 손을 뽑아내더니 미친 여자처럼 달려나갔다. 그날 저녁, 저녁을 먹으면서 잔느는 줄리앙에게 말했다. "로잘리에게 자기를 유혹한 사람의 이름을 내게 털어놓으라고 했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니 이번에는 당신이 해보세요, 그 불쌍한 것을 그 남자와 억지로라도 결혼시켜야 하니까." 그러나 줄리앙은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화를 냈다. "아아! 그 얘기는 이젠 듣고 싶지도 않소. 당신이 그 계집애를 잡아두겠다고 했으니 두면 되지 않소. 그러니 그 문제로 날 더 이상 귀찮게 굴지 말아요." 그는 로잘리가 출산한 이후로 더욱더 신경질을 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는 언제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아내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습관이 붙어버렸다. 그러나 그와는 반대로 잔느는 모든 언쟁을 피하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고, 유순하고 타협적인 자세가 되었다. 그리고 이따금 밤이면 침대 속에서 그녀는 눈물을 흘리곤 하였다.
끊임없이 신경질을 내면서도 남편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이후로 잊고 있었던 사랑의 습관을 되찾았다. 부부의 문지방을 넘어서지 않고 연달아 사흘 밤을 보내는 일이 드물어졌다.
로잘리는 얼마 안 가서 완전히 회복되었고, 겁을 먹은 듯이 알 수 없는 어떤 두려움에 쫓기는 듯하기는 했으나 전보다 덜 침울해 보였다. 잔느는 두 번이나 다시 물어보려고 했으나 그녀는 달아나 버렸다. 줄리앙도 또한 갑자기 더욱 상냥해진 듯이 보였다. 그래서 젊은 아내는 막연한 희망에 매달려 쾌활함을 되찾았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그것을 말하지는 않았으나 이따금 이상한 거북스러움을 느끼고 괴로워할 때가 있었다. 해방은 오지 않았다. 거의 5주일 전부터 낮에는 푸른 수정처럼 하늘이 맑았고, 밤에는 빙화처럼 생각되는 별들이 총총한 하늘 - 그토록 넓은 공간이 모진 추위에 휩싸여 있었다. - 이 편편하고 단단하며 눈으로 반짝이는 식탁보 위에 펼쳐져 있었다.
서리로 분칠한 커다란 생울타리 뒤로 네모진 뜰에 외따로 서 있는 농가는 하얀 내의를 입고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사람도 짐승도 이제는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다만 초가집의 굴뚝만이, 차가운 공기 속으로 똑바로 올라가는 가느다란 실 같은 연기로 숨겨져 있는 삶을 드러내고 있었다.
벌판, 울타리, 울타리의 느릅나무, 이 모든 것이 추위로 해서 죽은 듯이 보였다. 이따금 나뭇가지가 그 껍질 속에서 부러지는 것처럼 나무들이 내는 탁탁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추위가 수액을 얼어붙게 하고 섬유질을 끊어놓아서 큰 가지가 꺾어져 떨어지기도 했다. 잔느는 자기의 마음에 스며드는 온갖 막연한 괴로움을 지독하게 추운 날씨 탓으로 돌리고 봄의 훈훈한 숨결이 돌아오기를 불안스럽게 기다렸다.
어떤 때에는 음식물만 봐도 구역질이 나서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때로는 맥박이 터무니없이 뛰고, 때로는 조금밖에 먹지 않은 식사가 체해서 구토를 일으키는 때도 있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긴장해 있고 떨고 있는 신경이 그녀를 꾸준하고도 견디기 어려운 동요 속에서 지내게 했다. 어느 날 저녁, 온도계가 다시 내려갔다. 줄리앙은 식탁에서 일어나서 몸을 덜덜 떨면서(거실이 알맞게 데워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만큼 그는 장작을 아꼈던 것이다.) 두 손을 비비며 속삭였다. "오늘 밤엔 둘이서 자는 것이 좋지 않겠소, 여보?" 그는 전의 그 착한 어린애 같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잔느는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은 마침 기분이 좋지 않았다. 너무도 마음이 괴롭고 이상하게도 신경질적이 되어서 그녀는 서너 마디로 자기의 병을 그에게 말했다. "부탁이에요, 여보. 정말이지 좋지가 않군요. 내일은 틀림없이 좋아질 거예요." 그는 고집을 부리지 않았다. "당신 좋을 대로 해요. 여보. 병이 났으면 몸조리를 잘해야지." 그러고는 다른 것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일찍 자리에 누웠다. 줄리앙은 놀랍게도 그의 독방을 불을 지피게 했다. "잘 타고 있습니다." 하고 하인이 그에게 알리자, 그는 아내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나갔다. 온 집안이 추위에 시달리는 것 같았다. 냉기가 스며든 벽에서는 마치 떠는 것 같은 가냘픈 소리가 났다. 침대 속에는 잔느는 오돌오돌 떨었다. 두 번이나 그녀는 난로에 장작을 집어넣기 위해 일어났다. 그리고 옷과 스커트와 헌 옷가지들을 찾아서 잠자리 위에 쌓아놓았다. 아무것도 그녀를 따뜻하게 해주지 못했다. 발은 곱아서 감각이 없어지고 장딴지와 넓적다리까지도 떨려서 그것이 그녀의 신경을 지나치게 날카롭게 하고 흥분시켜서 쉴 새 없이 몸을 뒤척이게 했다.
얼마 있자니 이가 딱딱 부딪치고 손이 떨렸다. 가슴은 죄어오고, 느린 심장은 크게 쿵쿵 뛰고 이따금 멈추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목구멍은 이제는 공기가 들어갈 수 없을 것처럼 헐떡거렸다.
견딜 수 없는 한기가 뼛속까지 스며드는 동시에 무서운 불안이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았다. 한 번도 그녀는 이런 것을 느껴보지 못했다. 그녀는 이렇게 생으로부터 버림받고 숨이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는 처음이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난 죽을 것이다......나는 죽는다....."갑작스러운 공포가 엄습해서 그녀는 침대 밖으로 뛰어나와 로잘리를 부르기 위해 초인종을 울리고 기다렸다. 다시 초인종을 누르고 꽁꽁 언 몸으로 떨면서도 또 기다렸다. 하녀는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 어떤 것으로도 깨울 수 없는, 세상 모르는 초저녁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그래서 잔느는 정신없이 맨발로 계단으로 달려갔다.
그녀는 소리 없이 더듬거리며 계단을 올라가 문을 찾아 열고 "로잘리!" 하고 불렀다. 무턱대고 앞으로 나아가다가 침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두 손으로 침대위를 더듬다가 침대가 비어 있음을 알았다. 침대는 비어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도 거기에서 자지 않은 것처럼 냉기가 돌았다. 뜻밖의 일이라 놀라서 그녀는 혼자 중얼거렸다. "아니! 이런 날씨에 밖으로 나가다니!" 그러자 갑자기 그녀의 심장이 혼란스러워지고, 펄떡펄떡 뛰고, 질식할 것 같았기 때문에 그녀는 줄리앙을 깨우기 위해 다리를 구부정하게 하고 계단을 내려갔다. 그녀는 자기가 곧 죽게 되리라는 확신과, 의식을 잃기 전에 줄리앙을 만나려는 욕망에 쫓겨서 남편의 방으로 맹렬하게 뛰어들었다. 사위에 가는 불빛에 그녀는 남편의 머리 곁에 베개를 베고 있는 로잘리의 머리를 알아보았다.
그녀가 지른 고함 소리에 그들은 둘 다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이 모습에 당황해서 잠시 꼼짝도 못 하고 서 있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도망쳐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당황한 줄리앙이 "잔느!"하고 불렀기 때문에 그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고, 변명하고 거짓말하는 소리를 듣고, 시선을 마주할 것을 생각하니 무서운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그녀는 지금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고, 돌에 채여 사지가 부러질 위험을 무릅쓰고 어둠 속을 달리고 있다. 그녀는 도망치고 싶고, 아무것도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고, 아무도 보고 싶지 않다는 절대적인 욕구에 밀려 달리고 있는 것이다.
아래로 내려오자 그녀는 여전히 내의에다 맨발인 채로 계단에 앉았다. 그녀는 넋을 놓고 거기에 그대로 있었다. 줄리앙이 침대에서 뛰쳐나와 서둘러 옷을 입었다. 잔느는 그에게서 달아나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벌써 그는 계단을 내려왔다. 그리고 "들어봐, 잔느!" 하고 소리쳤다. 아니다, 그녀는 듣고 싶지도 않았고 손가락 끝도 닿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자객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듯이 식당으로 뛰어들어갔다. 그녀는 출구나 숨을곳, 어두운 구석, 그를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그녀는 식탁 밑에 웅크렸다. 그러나 벌써 그가 문을 열었고, 손에 등불을 들고 여전히 "잔느!"하고 계속해서 불러댔다. 그녀는 토끼처럼 다시 그곳을 빠져나가 부엌으로 뛰어들어가서 궁지에 몰린 짐승처럼 그 안을 두 번 맴돌았다. 그가 다시 그녀를 따라왔기 때문에 그녀는 거칠게 정원으로 난 문을 열고 들판으로 내달렸다.
벌거벗은 다리가 이따금 무릎까지 파묻히는 차디찬 눈의 촉감이 그녀에게 갑자기 필사적인 힘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녀는 거의 옷을 입고 있지 않았는데도 춥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정신의 경련이 육체를 마비시킨 것이었다. 그녀는 땅과 같이 하얀 모습으로 달렸다.
그녀는 큰 가로수 길을 따라 작은 숲을 가로질렀으며 도랑을 건너뛰어 광야 한복판으로 달려갔다. 달도 없었다. 별들은 어두운 하늘에서 불똥을 뿌린 듯이 반짝이고 있었다. 그러나 벌판은 희미한 흰 빛으로, 움직이지 않는 부동 상태로, 끝없는 침묵으로 환하였다.
잔느는 숨을 쉬지도 않고, 의식하지도 못하고, 아무것도 생각하지도 않고 쏜살같이 달렸다. 그러자 갑자기 그녀는 절벽 끝에 와 있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모든 생각과 의지가 지쳐 버렸다. 그녀 앞에 있는 어두운 구멍 속에는 보이지 않는 말 없는 바다가, 조수가 빠진 해변에서 해초의 소금기 나는 냄새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거기에서 몸도 마음도 움직이지 않아 오랫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녀는 떨기 시작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돛처럼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팔과 손과 발이 어쩔 수 없는 힘에 의해 흔들려서 팔딱거리고, 숨 가쁘게 소스라쳐 놀라 떨렸다. 갑자기 폐부를 찌르는 듯한 맑은 의식이 살아났다.
이어서 오래전의 환영이 눈앞으로 지나갔다. 라스티크 영감의 배 안에서 그와 함께 했던 그 뱃놀이, 그들의 대화, 싹트던 사랑, 작의 배의 명명식, 그러고 나서 그녀의 환상은 더욱 아득하게, 레 푀플에 도착하던 날, 저 몽상에 몸을 맡겼던 그 밤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런데 지금은! 지금은! 아아! 그녀의 인생은 부서지고, 모든 기쁨은 끝이 나고, 모든 기대는 불가능해지고 말았다. 그리고 고통과 배반과 절망으로 가득한 무서운 미래가 그녀에게 나타났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그러면 당장에 끝내버리고 말리라.
그런데 어느 목소리가 멀리에서 소리쳤다. "여기다. 여기 발자국이 있어. 빨리, 빨리, 이쪽으로!" 그것은 그녀를 찾고 있는 줄리앙이었다. 아아! 그녀는 그를 다시 보고 싶지 않았다. 거기, 자기 앞에 있는 심연 속에서 그녀는 지금 작은 소리를, 바위 위로 미끄러지는 어렴풋한 물결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벌써 뛰어들려고 몸을 완전히 일으켰다. 절망한 사람들의 인사를 생에 던지려고, 그녀는 죽어가는 사람들의 마지막 말, 전쟁터에서 배에 총을 맞은 젊은 병사들이 내뱉는 최후의 말인 "어머니!"라는 말은 신음하듯 내뱉었다.
갑자기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스며들었다. 그녀는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물에 빠진 시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는 잠시 양친의 절망에 대해 고통스러움을 느꼈다. 그러자 그녀는 다시 눈 속에 무기력하게 쓰려졌다. 그녀는 줄리앙과 시몽 영감이 램프를 든 마리우스를 앞세우고 왔을 때에는 더 이상 달아나지 못했다. 그들은 그녀의 팔을 잡고 뒤로 끌어당겼다. 그만큼 그녀는 절벽 끝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마음대로 다루었다.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사람들이 자기를 옮겨다가 침대에 눕히고 뜨거운 수건으로 문지르는 것을 느꼈다. 그런 다음에는 모든 기억이 잊혀지고 모든 의식은 사라져버렸다. 그러고 나서는 악몽이-그것은 악몽이었을까? - 그녀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그녀는 자기 방에 누워 있었다. 날이 밝았으나 일어날 수가 없었다. 왜 그럴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그러자 마룻바닥에서 가냘픈 소리가 들렸다.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가볍게 스치는 소리 같기도 했다. 갑자기 새앙쥐 한 마리가, 자그마한 회색 새앙쥐가 재빨리 시트 위로 지나갔다. 그러자 곧 다른 것이 그 뒤를 따라갔고, 이번에는 세 번째 놈이 날쌘 종종걸음으로 잔느의 가슴 쪽으로 달려왔다. 잔느는 무섭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는 그 짐승을 잡으려고 손을 뻗쳤으나 닿지 못했다. 그러자 다른 새앙쥐들이, 열 마리, 스무 마리, 수백 마리, 수천 마리 쥐들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그것들은 기둥을 타고 기어오르고, 장식 융단 위로 달음박질을 하고, 잠자리를 온통 뒤덮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서는 이불 속으로 뚫고 들어왔다. 잔느는 그것들이 자기 살갗에 스치고, 다리를 간지럽히고, 몸을 따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느꼈다. 그녀는 그것들은 침대 발치에서 기어 올라와 자기 목구멍 속으로 뚫고 들어오려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몸부림을 쳤다. 한 마리를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으나 언제나 쥐고 보면 허공이었다. 그녀는 몹시 화가 났다. 도망치려고 소리를 질러보았다. 누군가가 그녀를 꼼짝 못 하게 하고 기운 센 팔이 그녀를 꽉 껴안고 있어서 힘을 쓸 수가 없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러나 아무도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시간관념이 전혀 없었다. 그것은 긴, 아주 긴 시간이었음이 분명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지치고 상처 입은 듯하게, 그러면서도 기분 좋게 잠에서 깼다. 그녀는 기운이 없음을 느꼈다. 눈을 떴다. 그리고 어머니가 전혀 모르는 어떤 뚱뚱한 남자와 함께 자기 방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자기는 몇 살일까? 그녀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자기가 아주 작은 소녀처럼 여겨졌다. 더구나 기억 같은 것은 나지 않았다. 그 뚱뚱한 남자가 말했다. "자 의식이 회복되었군요." 그러자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뚱뚱한 남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자 진정하십시오. 남작 부인. 이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그러나 따님에겐 아무 말도 하지 마십시오. 아무 말도. 자게 내버려 두십시오."
잔느에게는 생각하려고 하기만 하면 무거운 잠에 다시 잡혀서 아주 오랫동안 졸고 지낸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무슨 일이건 기억해 내려고 애쓰지 않았다. 마치 막연하게 자기 머릿속에 나타난 현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 번은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자, 그녀는 자기 곁에 혼자 앉아 있는 줄리앙을 보았다. 그러자 갑자기 지나간 생활을 가리고 있던 장막이 걷히듯이 모든 것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그녀는 마음에 무서운 고통을 느끼고 또다시 도망치고 싶어졌다. 그녀는 시트를 걷어 젖히고 바닥으로 뛰어내렸으나 다리가 지탱을 못 해 쓰러지고 말았다. 줄리앙이 그녀에게로 달려왔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녀는 몸을 비틀고 뒹굴었다. 문이 열렸다. 리종 이모가 당튀 과부와 함께 달려왔고, 뒤이어서 남작이, 끝으로 어머니가 정신없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그들은 잔느를 다시 눕혔다. 그녀는 곧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안히 생각하기 위해서 일부러 눈을 감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열심히 간호를 하면서 이렇게 물었다. "우리말이 들리니, 얘, 잔느야?" 그녀는 못 들은 체하고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하루가 끝났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밤이 왔다. 간호사가 그녀 곁에 앉아서 이따금 약을 마시게 했다. 그녀는 아무 말 하지 않고 마셨다. 그러나 이제는 자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기억 속에 구멍이 나 있고, 하얗게 비어 있는 커다란 장소가 몇 개씩 있어서 거기에는 사건들이 전혀 자국을 남기지 않은 것처럼 자기를 비껴간 것들을 찾으면서 애써 추론을 하고 있었다. 오랜 노력을 기울인 끝에 조금씩 모든 사실을 생각해 냈다. 그녀는 끈덕지게 생각했다. 어머니와 리종 이모 그리고 남작이 와 있는 것을 보면, 그녀는 매우 중태였던 모양이다. 그런데 줄리앙은?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될까? 한 가지 생각이 번개처럼 떠올랐다.-아버지와 어머니와 함께 예전처럼 루앙으로 돌아가는 거다. 과부가 되면 그뿐이다. 그러자 그녀는 주위에서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잘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체하고, 이성이 회복되는 것을 기뻐하면서 참을성 있고 꾀바르게 기다렸다. 그날 밤, 마침내 그녀는 남작부인과 단둘이서만 있게 되자 아주 낮은 소리로 "어머니!" 하고 불렀다. 그녀는 자신의 목소리에 놀랐다. 변한 것 같았다. 남작 부인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얘야, 귀여운 잔느! 내 딸아, 날 알아보겠니?" "네, 어머니. 하지만 우셔서는 안 돼요. 오래 이야기해요. 제가 왜 눈 속으로 달아났다고 줄리앙이 말하던가요?" "얘야, 넌 아주 위험하고 심한 열병에 걸렸었단다." "그게 아니에요, 엄마. 난 그 후에 열이 났던 거예요. 하지만 그 열이 난 원인이 어디에 있고, 왜 내가 달아났었는지 그이가 말했나요?" "아니, 얘야." "그것은 내가 그의 침대 속에서 로잘리를 발견했기 때문이에요." 남작 부인은 잔느가 아직도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딸을 어루만졌다. "자거라, 얘야. 진정하고 자도록 해라." 그러나 잔느는 고집을 피우며 말을 이었다. "이제는 정신이 말짱해요, 엄마. 요 며칠 동안은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헛소리를 하는 게 아니에요. 어느 날 밤 몸이 불편한 것 같아서 줄리앙을 찾아갔어요. 그런데 로잘 리가 그와 함께 자고 있는 거예요. 난 슬픔으로 정신을 잃고 절벽에 몸을 던지기 위해 눈 속으로 달려갔던 거에요." 그러나 남작 부인은 이 말만 되풀이했다. "그래, 얘야, 넌 아주 중병이었단다." "그게 아니라니까요, 엄마. 난 줄리앙의 침대 속에서 로잘리를 본 거예요. 난 그이와 함께 더 이상 남아 있고 싶지 않아요. 날 루앙으로 데려가 주세요, 예전처럼 말이에요." 무슨 일이든 잔느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말라는 의사의 충고를 받은 남작 부인은 "그러자꾸나, 얘야" 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환자는 초조해했다. "내 말을 믿지 못하신다는 걸 잘 알아요. 아버지를 불러다 주세요. 아버지는 내 말을 이해하시게 될 거예요." 그래서 어머니는 간신히 일어나 두 지팡이를 짚고, 발을 끌며 나갔다가 얼마후에 남작의 부축을 받으면서 돌아왔다. 그들이 침대 앞에 앉자마자 잔느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는 힘은 없으나 분명한 목소리로 모든 것을 차근차근히 말했다. 줄리앙의 괴상한 성격, 그의 냉혹함, 그의 인색함 그리고 마침내 그의 부정.
그녀가 말을 끝내자 남작은 딸이 헛소리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해결하고,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를 몰랐다.
그는 예전에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딸을 잠재웠을 때처럼 정답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들어보거라, 얘야, 신중하게 행동해야만 한다. 아무것도 서두르지 말자. 우리가 결정할 때까지는 네 남편을 참아내도록 해라........그걸 내게 약속해 주겠지?"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러겠어요. 하지만 몸이 회복되면 여기에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아주 낮은 소리로 그녀는 덧붙였다. "로잘리는 지금 어디에 있죠?" 남작이 대답했다. "그 애는 이제 만나지 마라." 그러나 그녀는 고집을 부렸다. "어디에 있나요? 알고 싶어요." 그래서 남작은 로잘 리가 아직 집을 나간 것은 아니라고 실토하였다. 그러나 곧 떠나게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환자의 방에서 나오면서 남작은 분노로 후끈 달고, 아버지로서의 마음에 상처를 입어 줄리앙을 만나러 갔다. 그리고 불쑥 이렇게 말했다. "여보게, 내 딸에 대한 자네의 행동에 해명을 요구하러 왔네. 자네는 하녀와 그 애를 배신했어. 그건 이중으로 비열한 짓이야."
그러나 줄리앙은 죄가 없는 척하고 열심히 부정하고 맹세했으며, 증인으로 신을 들먹이기까지 했다. 게다가 어떤 증거가 있는가, 잔느는 실성하지 않았는가? 그녀는 뇌염에 걸리지 않았었던가? 발병 초기에 정신착란의 발작으로 어느 날 밤, 달아났던 것이 아닌가? 그녀가 거의 벗은 상태로 집안을 뛰어다니고 남편의 침대에서 하녀를 보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로 그 발작 중에 있는 것이다.
줄리앙은 길길이 날뛰며 고소를 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맹렬하게 화를 냈다. 그래서 남작은 당황해서 변명을 하고 사과를 했다. 그리고 신의 손을 내밀었으나 줄리앙은 악수를 거절했다.
잔느가 남편의 답변을 들었을 때, 그녀는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대답했다. "그이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요, 아빠, 하지만 그것을 입증시키고 말 거에요." 그리고 이틀 동안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명상에 잠겨 곰곰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사흘째 되는 아침, 그녀는 로잘리를 보고 싶다고 했다. 남작은 하녀를 올라오게 하는 것을 거절하고, 이미 떠났노라고 분명히 말했다. 잔느는 조금도 굴하지 않고 되풀이 말했다. "그렇다면 그 애의 집으로 찾으러 가면 되겠군요."
의사가 들어왔을 때 그녀는 이미 화가 나 있었다. 의사의 의견을 알아보기 위해 모든 것을 그에게 말했다. 그러자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진 잔느가 울음을 터뜨리면서 거의 울부짖었다. "로잘리를 보고 싶어요. 그 애를 만나고 싶어요!" 그러자 의사는 그녀의 손을 잡고 낮은 소리로 말했다. "진정하세요, 부인. 모든 감정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부인은 임신 중이시니까요." 그녀는 한 대 얻어맞은 듯이 멍해졌다. 그리고 갑자기 그녀의 몸속에서 무엇인가가 움직이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남이 말하는 소리를 듣지도 않고 생각에 잠겨 잠자코 있었다. 그녀는 한 아이가 자기 뱃속에서 살고 있다는 새롭고도 이상한 생각에 놀라서 그날 밤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 애가 줄리앙의 자식이라는 것이 슬프고 불쾌했다. 아버지를 닮지 않을까 하는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날이 밝자 그녀는 남작을 불러오게 했다. "아버지, 저 결심했어요. 모든 걸 알고 싶어요. 특히 지금은요. 아시겠죠? 그러고 싶어요. 제가 처해 있는 상태에서 저를 거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버지는 아실 거예요. 잘 들어보세요. 아버지는 가서 사제님을 불러오세요. 로잘 리가 거짓말을 못 하게 하기 위해서는 그분이 필요해요. 그리고 사제님이 오시면 곧 그 애를 올라오게 하세요. 아버지는 어머니와 함께 여기에 남아 계셔야 해요. 특히 줄리앙이 눈치채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한 시간 후에 사제가 들어왔다. 여전히 뚱뚱하고 어머니보다 더 헐떡였다. 그는 어머니 곁의 안락의자에 앉았다. 배가 벌린 다리 사이로 축 늘어졌다. 그는 늘 하는 버릇대로 체크무늬의 손수건으로 이마를 닦으면서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작 부인, 우리는 마르지 않을 것 같군요. 제 생각으로는 우리는 썩 어울리는 한 쌍이에요." 그리고 환자의 침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 그래! 그래! 소문으로는 부인, 머잖아 새로운 명명식이 있을 것 같다구요. 하! 하! 하! 이번에는 배의 명명식이 아니겠지요." 그리고 그는 엄숙한 어조로 덧붙였다. "조국의 수호자일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잠시 생각한 후에 "그렇지 않으면 현모양처겠지요." 하고 말했다. 그러고는 남작 부인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말했다. "바로 당신 같은 부인." 그러자 안의 문이 열렸다. 로잘리는 미친 듯이 날뛰고, 눈물을 흘리면서 들어가지 않으려고 문틀에 매달렸으나 남작이 떼밀었다. 견디다 못한 남작이 그녀를 방안으로 단번에 밀어붙였다. 그러자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면서 서 있었다. 잔느는 그녀를 보자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시트보다 더 창백해져서 주저앉았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은 그 고동으로 살갗에 달라붙은 얇은 내의를 들썩이게 했다. 그녀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숨이 막혀 간신히 내쉬었다. 마침내 그녀는 감정이 복받쳐 끊어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난...너한테........물어볼........필요도 없다.내 앞에서........네가.......그렇게.......부끄러워하는 걸........보는 것만으로 충분해." 숨이 막혀 잠시 쉬었다가 그녀는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난 모든걸 알고싶다. 모든 걸.....죄다. 난 고해를 하는 것처럼 하기 위해서 사제님을 오시게 했다. 알겠니?"
로잘리는 꼼짝도 하지 않고 부르르 떠는 두 손 사이로 거의 고함을 질렀다. 남작은 화가 치밀어올라 그녀의 두 팔을 잡고 난폭하게 얼굴에서 떼어놓고는 침대 곁으로 집어 던져 무릎을 꿇게 했다. "자, 말해.......대답해 봐." 로잘리는 막달라 마리아를 그릴 때 취하게 하는 자세로 모자를 비스듬히 쓰고 앞치마는 마룻바닥에 떨어뜨린 채, 자유로워진 두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가렸다. 그러자 사제는 그녀에게 말했다. "자, 얘야, 네게 말하는 것을 잘 듣고 대답해라. 우리는 네에게 고통을 주고 싶지 않다. 그러나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는 알고 싶다."
잔느는 침대 가장자리에서 몸을 숙이고 로잘리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너희들을 기습했을 때, 너는 줄리앙의 침대 속에 있었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어." 로잘리는 손가락 사이로 신음하듯이 말했다. "네 그래요, 마님." 그러자 갑자기 남작 부인이 질식한 듯한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그의 발작적인 오열은 로잘리의 그것과 잘 어울렸다. 잔느는 하녀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물었다. "언제부터 그런 일이 계속되었지?" 로잘리가 우물거리면서 말했다. "그분이 오시고 나서부터지요." 잔느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분이 오시고부터라니.......그러면 언제부터.......봄부터란 말이냐?" "네, 마님." "그이가 이 집으로 들어와서부터란 말이니?" "네, 마님." 잔느는 많은 질문으로 가슴이 억눌린 듯이 조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기게 되었니? 그가 어떻게 네게 요구하던? 어떻게 너를 구슬리던? 네게 무슨 말을 했지? 언제 어떻게 너는 굴복했지? 어떻게 넌 그에게 너를 줄 수 있었니?"
로잘리는 이번에는 얼굴에서 손을 떼고, 말하고 싶은 흥분과 대답하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혔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여기에서 식사를 드시던 맨 첫날, 제 방으로 저를 찾아오셨어요. 고미다락에 숨어 계셨던 거예요. 저는 감히 말썽이 일어날까 봐 소리칠 수가 없었어요. 그분은 저와 함께 주무셨습니다. 그때는 제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분이 하시고 싶은 대로 하셨으니까요. 저는 그분이 잘 생긴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잔느가 소리 질렀다. "그럼........네.......네 아이도.......그이 얘냐?" 로잘 리가 흐느꼈다. "네, 마님." 그러고 나서 두 사람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로잘리와 남작 부인의 울음소리 이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지친 잔느는 이번에는 자기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소리없이 눈물방울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녀의 아이가 자기 아이와 똑같은 아버지를 갖다니! 분노가 스러졌다. 그녀는 지금 침울하고 굼뜨고 깊고 끝없는 절망으로 가득 차 있는 것같이 여겨졌다. 그녀는 마침내 달라진, 눈물에 젖은, 울고 있는 여자의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우리가 돌아와서.......거기에서.......여행에서.......언제 다시 시작했지?" 하녀는 갑자기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면서 더듬거렸다. "오.....오시던 첫날밤부터." 말 한마디가 잔느의 가슴에 쥐어짜는 듯한 고통을 주었다. 그래서 첫날밤, 레 푀플로 돌아온 날 밤 그는 이 계집애 때문에 자기 곁을 떠났던 것이다. 그녀를 혼자 자게 한 것은 바로 이 이유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이제 충분히 알았다.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소리 질렀다. "저리 가, 나갓!" 로잘 리가 꼼짝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기진맥진한 잔느는 아버지를 불렀다. "저 애를 데려가세요. 끌어내세요." 그러나 그때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던 사제는 설교를 한마디 할 때가 왔다고 판단했다. "네가 한 짓은 정말 나쁜 짓이다. 얘야, 나쁜 짓이야. 하느님도 얼른 용서하지 않으실 거다. 이제부터 품행을 단정하게 하지 않으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지옥이라는 것을 명심해라. 이제는 어린애도 있으니 얌전해져야만 한다. 남작 부인께서 널 위해 무엇인가를 틀림없이 해주실 거다. 우리는 너에게 남편을 구해 줄 것이고........" 사제는 더 길게 이야기했을지도 모르나, 남작은 다시 로잘리의 어깨를 잡고 일으켜 세우더니 문이 있는 데까지 끌고 가서 그녀를 마치 짐짝처럼 복도에 내동댕이쳤다.
딸보다도 더 창백해진 얼굴로 남작이 돌아오자, 사제는 다시 말을 계속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이 지방의 여자애들은 모두 저 모양입니다. 형편없지요. 그러나 어찌할 도리가 없어요. 인간 본성의 약점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관대해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임신을 하지 않고 결혼을 하는 여자애들은 결코 한 사람도 없어요, 부인." 그는 웃으면서 말을 덧붙였다. "지방풍습이라고나 할까요." 그러고는 다시 화가 치미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까지 그런 짓을 하려 들어요. 작년에, 교리 문답에 나오는 두 어린애, 사내애와 계집애를 묘지에서 내가 발견하지 않았겠습니까! 부모에게 기별을 했지요. 그런데 그 부모들이 내게 뭐라고 대답한 줄 아십니까! '어쩌겠습니까, 사제님. 그런 추잡한 짓을 그 애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우리가 아닌걸요.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댁의 하녀도 다른 사람들처럼 한 거예요, 선생님." 그러나 남작은 신경질적으로 몸을 떨면서 사제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녀요? 그건 상관없어요! 그러나 나를 분개시키는 자는 줄리앙이란 말입니다. 그가 저지른 짓은 수치스러운 일이오. 나는 딸을 데리고 가겠소." 남작은 여전히 흥분하고 격분해서 왔다 갔다 하였다. "내 딸을 이렇게 배신한 것은 파렴치한 일이오, 파렴치한! 그 사내는 악당이요, 불한당이요, 비열한 인간이오. 나는 그에게 이 말을 하겠소. 나는 그의 따귀를 때릴 것이오, 단장으로 때려죽이고 말겠소!" 그러나 사제는 눈물을 흘리고 있는 남작 부인 곁에서 천천히 담배 한 모금을 빨아들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는 자기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애쓰면서 말을 이었다. "자 남작님. 우리끼리 이야기지만, 그 사람은 다른 모든 사람과 똑같은 짓을 한 겁니다. 충실한 다른 남편들을 많이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사제는 착한 장난꾸러기같이 덧붙였다. "자, 내기를 걸어도 좋습니다만 당신 자신도 난봉을 피우셨겠지요. 자, 가슴에 손을 대고, 사실이죠?" 남작은 사제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사제는 말을 계속했다. "아아! 그렇군요. 당신도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셨군요. 당신이 가령 그 애 같은 어린 하녀에게 절대로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을 누가 알아주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든 그런 짓을 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당신 부인께서 덜 행복하고 덜 사랑받은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안 그래요?" 남작은 아연실색해서 더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정말 그렇다, 그도 그런 짓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다가 자주, 그럴 수 있을 때마다 모두. 그리고 부부가 사는 한 지붕 밑이라도 개의치 않았다. 예쁘기만 하면 아내의 하녀들 앞에서도 결코 주저한 적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는 비열한 인간일까? 자기 자신은 죄가 된다고 결코 생각한 적조차 없으면서 왜 줄리앙의 품행에 대해서는 그렇게 가혹하게 판단하는가?
아직도 흐느끼느라 헐떡이는 남작 부인이 남편의 젊었을 때의 엉뚱한 행위를 생각하고 입술에 미소의 그림자를 띄웠다. 왜냐하면 그녀는 사랑의 모험을 생활의 일부분으로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감상적이고, 빨리 감동되고, 관대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잔느는 의기소침하게 허공을 바라보면서 반듯이 누워 팔을 늘어뜨리고 고통스럽게 생각에 잠겼다. 로잘리의 한마디가 되살아나서 그녀의 영혼에 상처를 입히고 송곳처럼 그녀의 가슴을 꿰뚫었다. '저는, 그분이 잘생긴 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녀 역시 그를 잘생겼다고 생각했었다. 오직 그것 때문에 그녀는 몸을 맡기도, 평생을 묶었고, 다른 모든 희망과 막연하게 예상했던 모든 계획과 모든 미지의 사람을 단념했던 것이다. 그녀는 이 결혼 속에, 기어오를 가장자리도 없는 이 구멍 속에, 이 비참, 이 슬픔, 이 절망 속에 빠져버린 것이다. 로잘리처럼 자기도 그를 잘난 남자로 생각했기 때문에!
문이 우악스럽게 열리며 줄리앙이 사나운 표정으로 나타났다. 그는 계단에서 비명을 지르는 로잘리를 보고, 무엇인가를 꾸미고 있다는 것과 하녀가 틀림없이 말했을 거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확실한 것을 알기 위해 왔던 것이다. 사제를 보자 그는 그 자리에 못 박히듯 서버렸다. 그는 떨리면서도 침착한 음성으로 물었다. "뭐예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조금 전에 그렇게도 과격했던 남작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는 사제의 논증과 사위가 자신의 예를 방패로 제시할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어머니는 더욱 심하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잔느는 두 손으로 버티고 일어나 앉아서 숨을 헐떡이며, 자기에게 이처럼 잔인하게 고통을 남겨준 사람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우리는 이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 없어요. 당신의 비열한 짓을 모두 알고 있어요. 그때부터......당신이 이 집에 들어왔던 날부터.......그 하녀의 아이가 바로.......내 아이와 마찬가지로 당신의 아이라는 것도요.......그 애들은 형제예요......."그리고 그 생각에 미치자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그녀는 이불 속에 몸을 파묻고 격정적으로 울었다.
그는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이번에도 사제가 또 사이에 끼어들었다. "자, 자, 그렇게 너무 슬퍼하지 말아요, 젊은 부인. 이성을 차리세요." 그는 일어나 침대 곁으로 다가가서는 그의 미지근한 손을 이 절망하고 있는 여자의 이마에 얹었다. 이 단순한 접촉이 이상하게도 그녀를 누그러뜨렸다. 죄를 사해 주는 행동에, 용기를 돋우어주는 애무에 익숙해져 있는 이 시골 사람의 힘센 손이 닿자 신비하게도 마음이 가라앉는 것처럼 이내 나른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 선량한 사람은 여전히 선 채로 말을 이었다. "부인, 항상 용서해야만 합니다. 당신에게는 지금 커다란 불행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긍휼히 여기사 커다란 행복으로 보상해 주셨습니다. 당신은 곧 어머니가 되실 테니까요. 그 아이는 당신의 위안이 될 것입니다. 그 애의 이름으로 애원합니다만 줄리앙씨의 과실을 용서해 주시도록 간청드립니다. 두 분 사이의 새로운 끈이 될 것이고, 장차 남편의 성실에 증거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당신의 몸속에 아기를 갖게한 그 사람과 진정으로 헤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슬픔에 짓눌리고 가슴이 아프고 이제는 기진맥진해서 화를 내고 원한을 품을 힘조차 없었다. 그녀의 신경은 느슨해지고 슬며시 끊어져 버린 것 같았다. 그녀는 간신히 살아있는 듯싶었다.
원한을 지니고 있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마음에 오래 참는 노력을 도저히 해 낼 수는 없는 남작 부인은 중얼거렸다. "얘, 잔느야." 그러자 사제가 젊은이의 손을 잡고 침대 곁으로 끌어당겨 그것을 그의 아내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는 결정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맺어주려는 듯이 그 위를 손바닥으로 살짝 때렸다. 그리고 설교하는 직업적인 어조를 버리고 만족한 표정으로 말했다. "자, 됐어요. 날 믿어요. 그러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잠시 가까이 있던 두 손이 곧 떨어졌다. 줄리앙은 감히 잔느를 포옹할 용기가 나지 않아 장모의 이마에 키스를 하고 발뒤꿈치를 빙그르르 돌려 남작의 팔을 잡았다. 남작은 일이 이렇게 타결된 것이 내심으로는 다행이어서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우기 위해 함께 밖으로 나갔다. 그러자 기진맥진한 환자는 잠이 들고, 한편 사제와 어머니는 낮은 소리로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제는 자기 생각을 설명하고 펼치면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남작 부인은 언제나 그렇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했다. 그는 마침내 결말을 지으려고 이렇게 말했다. "그럼, 좋습니다. 그 애에게 바르빌르 농장을 주십시오. 그럼 내가 책임지고 그 애의 남편을, 얌전하고 충실한 청년을 찾아보겠습니다. 아! 2만 프랑의 재산만 있다면 얼마든지 희망자가 나설 겁니다. 오히려 선택하기가 곤란할 지경이겠지요." 남작 부인은 이제는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뺨 위에는 여전히 두줄기 눈물이 남아 있었으나 길고 축축하게 퍼진 자국은 이미 말라 있었다. 그녀는 강조했다. "좋아요. 바르빌르는 최소한으로 잡더라도 2만 프랑은 나갑니다. 하지만 재산은 어린애의 명의로 해놓겠어요. 그 애의 양친은 살아있는 동안 그 수익권을 가지게 되는 겁니다." 그리고 사제는 일어나서 어머니와 악수했다. "그대로 앉아 계십시오, 남작 부인. 그대로 앉아 계세요 한걸음이 얼마나 힘드는지 압니다." 그가 나가다가 환자를 보러 오는 리종 이모를 만났다. 그녀는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이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