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덴의 동쪽(East of Eden) 5
제31장
1
아담은 오전 내내 집안을 서성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리이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는 퇴비를 주어 검어진 야채밭을 갈아 당근, 근대, 무, 콩, 양배추와 같은 봄 채소를 심고 있었다. 팽팽하게 맨 줄을 따라 채소 이랑이 쪽 고르게 되어 있었으며, 이랑 끝에는 말뚝을 박아 채소 이랑을 알 수 있도록 씨봉지를 매어 놓았다. 채소밭 끝에 있는 묘포에는 토마토와 벨 페퍼와 캐비지 모종이 이삭 될 준비를 갖추고 위험한 서리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담이 말했다. "내가 어리석었던가 봐."
리이는 삼지창 삽에 몸을 기대고 그를 조용히 쳐다보았다. "언제 가시렵니까?"
"2시 40분 차를 타고 갔다가 여덟 시 차로 돌아오겠어."
"편지로 사연을 전하시지요." 리이가 말했다.
"그런 생각도 했지. 자네 같으면 편지를 쓰겠나?"
"아니오. 당신이 옳습니다. 그 점에 대해선 제가 잘못 생각했지요. 편지론 안 되겠군요."
"가야겠네." 아담이 말했다. "여러 모로 생각을 해봤으나 가죽끈에 매달린 사람처럼 항상 되돌아오지."
리이가 말했다. "다른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는 정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 점에 있어서는 정직할 수밖에 없지요. 행운을 빕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을 했는가를 들으면 재미있겠습니다."
"마차를 타고 가겠어. 킹 시티의 보관소에 맡겨야지. 혼자서 포드를 몰면 신경이 쓰여서."
아담이 케이트 집의 흔들거리는 계단을 올라 폭우에 시달린 문을 두드렸을 때는 4시 15분이었다. 전과는 다른 사람이 문을 열었다. 그는 얼굴이 네모진 필란드 사람으로 샤쓰와 바지 차림이었다. 넓은 소매에 빨간 비단 팔 밴드를 두르고 있었다. 그는 아담을 현관에 세워 놓은 채 안으로 들어갔다가는 잠시 후에 돌아와서 식당으로 안내했다.
장식을 하지 않은 큰 방이었다. 벽과 나무 벽관은 하얗게 칠해져 있었다. 길고 네모진 테이블이 방 가운데 있고 하얀 유포 위에는 접시와 컵 받침 접시가 있었다. 컵은 받침 접시 위에 거꾸로 놓여 있었다.
케이트는 자기 앞에 장부를 펼쳐 놓고 테이블 머리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옷은 수수했다. 그녀는 보안용 눈가리개를 쓰고 노란 연필을 불안한 듯 손가락 안에서 돌리고 있었다. 그녀는 문간에 서 있는 아담을 차갑게 쳐다보았다.
"이번엔 무슨 용무죠?"
필란드 남자가 아담 뒤에 서 있었다.
아담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테이블로 걸어가서 그녀 앞에 있는 장부 끝에 편지를 내밀었다.
"이건 뭐예요?" 그녀는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편지를 재빨리 읽어나갔다.
"문을 닫고 나가요." 그녀는 필란드 사람에게 명령했다.
아담은 그녀 옆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 그는 접시를 밀어내고 모자를 놓았다.
문이 닫히자 케이트가 말했다. "이건 농담이에요? 아니지. 당신은 농담을 한 일이 없지."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당신 동생이 농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죠. 정말 죽었어요?"
"편지만을 받았을 뿐이오."
"이걸 나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아담은 어깨를 움츠렸다. 케이트가 말했다. "나더러 서명을 하라고 한다면 시간 낭비밖에 안 될 거예요.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아담은 모자 테의 까만 리본 주위를 천천히 만졌다. "법률 사무소로 넘어간 거요. 거기에 쓰여 있는 대로요."
"추신을 쓴 사람은 당신의 친구 같은데, 그에게 무어라고 편지를 썼어요?"
"아직 회답을 쓰지 않았어."
"무어라 회답을 쓸 작정이에요?"
"똑같은 말을, 당신은 다른 마을에 산다고."
"이혼을 했다고 쓸 수는 없어요. 이혼을 하진 않았으니까요."
"이혼을 했다고 쓸 생각은 없소."
"나를 매수하는 데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알겠어요? 현금으로 4만 5천 달러를 받겠어요."
"안 되오."
"아니라니 무슨 말이에요? 깎을 수는 없어요."
"값을 깎는 것이 아니야. 당신이 편지를 갖고 있으니, 나만큼 당신도 알고 있어. 당신 마음대로 하시오."
"어떻게 해서 그렇게 뽐내게 됐지요?"
"안도감을 갖고 있으니까."
"그녀의 투명한 녹색 눈가리개 밑으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짧은 그녀의 곱슬머리가 노란색 지붕에 매달려 있는 덩굴처럼 코위에 늘어져 있었다.
"아담, 당신은 바보예요. 당신만 입을 다물고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나도 알고 있소."
"알고 있어요? 내가 돈 요구를 하기가 두려울 거라고 생각했던가요? 그렇게 생각했다면 참 지독한 바보군요."
아담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 "나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상관하지 않아."
그녀는 비꼬듯이 그에게 미소를 지었다. "상관하지 않는다고요?" 쳇! 먼저의 보안관이 남겨 놓은 영구 지령이 보안관 사무실에 있는데, 그것은 만일 내가 당신의 이름을 쓴다든지, 또는 내가 당신의 부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경우, 나는 이 군에서 뿐만아니라 이주에서 쫓겨나게 된다는 것이에요. 어때요. 당신을 유혹할 만한가요?"
"내가 무슨 짓을 하도록 유혹한단 말이오?"
"나를 쫓겨나게 하고는 돈을 전부 가로채는?"
"내가 편지를 들고 왔어." 아담은 참을성 있게 말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은 거예요."
아담이 말했다. "당신이 무엇을 생각하든지 또는 당신이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지 나는 관심 없소. 찰스가 유언으로 그 돈을 당신에게 남겨 놓았어. 찰스는 아무 조건도 제시하지 않았어. 내가 그 유서를 보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그 돈을 갖도록 되어 있소."
"당신은 5만 달러를 가지고 아슬아슬한 놀음을 하고 있으면서도 결판을 내버리려고 하지 않는구먼요. 속셈이 무엇인지 모르겠군요. 알아내겠어요." 그녀는 계속해서 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당신은 별로 영리하지 못한데. 누가 충고를 하고 있어요?"
"아무도 없어."
"중국 사람은 어때요? 영리한데."
"그도 아무 충고를 하지 않았어." 아담은 자신이 전혀 무감정한 데 재미가 났다. 자기가 여기에 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그가 그녀를 흘낏 보았을 때 그녀의 얼굴에는 전에는 전혀 보지 못했던 어떤 감정의 표시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놀랐다. 케이트는 두려워 했다. 그가 두려웠다. 그러나 이유는?
그녀는 얼굴 표정을 억제하여 두려움을 쫓아냈다. "당신은 정직하기 때문에 이렇게 한다는 거죠? 당신은 설탕처럼 너무 달콤하여 이 세상에서 살 수 없을 지경이군요."
"그런 걸 생각해 본 적도 없어. 이것은 당신의 돈이야. 그리고 나는 도둑놈이 아니야. 당신이 그것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든 나에겐 상관없어."
케이트는 눈가리개를 머리 위로 젖혔다. "당신이 이 돈을 내 무릎 위에 떨어뜨리고 있다고 내가 생각하기를 바라고 있죠. 무슨 꾀를 부리고 있는지 알아내고 말 거예요. 내가 이런 어리석은 미끼에 걸려들 거라고 생각했던가요?"
"당신의 우편 주소는 어디요?" 그가 참을성 있게 물었다.
"당신에게 무슨 소용이에요?"
"당신과 접촉할 수 있는 주소를 변호사에게 알릴 작정이오."
"그런 짓 말아요!" 그녀는 회계장부 속에 편지를 넣고 표지를 덮었다. "이것은 내가 보관하겠어요. 법률적 조언을 받겠어요. 내가 안 하리라고 생각지 말아요. 이제 그 순진한 모습은 집어치워요."
"당신이 좀 순진해 봐요." 아담이 말했다. "당신 것은 당신이 가져요. 찰스가 그 돈을 당신에게 유언으로 남긴 거야. 내 것이 아니야."
"내, 기어코 속임수를 찾아내고 말 걸."
아담이 말했다. "당신은 이해를 못 하는구먼. 난 상관없어. 나는 많은 일들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어떻게 나를 쏘았는지. 어떻게 자식들을 버렸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단 말야. 어떻게 이런 꼴로 살아가는지도 이해 못 하겠소." 그는 손을 저어 그 집을 가리켰다.
"누가 당신 보고 이해하랬어요?"
아담은 일어서서 테이블에서 모자를 집어 들었다. "그 얘긴 끝난 것 같군. 잘 있소." 그는 문 쪽으로 걸어갔다.
그녀가 뒤에서 소리쳤다. "꽁생원님, 많이 변했네요. 드디어 여자가 생긴 모양이죠?"
아담은 멈춰 서서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눈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아깐 미처 생각을 못 했는데." 그는 위에서 내려다봐야 할 정도로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는 고개를 젖히고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소."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제야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생각나는군."
"꽁생원님, 내가 뭘 이해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당신은 인간의 추악한 면을 알고 있소. 나에게 그 사진들을 보여주기도 했고, 당신은 인간이 가진 서글픈 모든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지."
"누구나 다 - "
아담은 말을 이으면서도 자신의 생각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당신은 - 그렇지, 맞아 - 당신은 나머지 것을 모르고 있어. 내가 당신의 돈을 탐내지 않고 편지를 손수 들고 왔다는 것을 당신은 믿지 않소. 당신은 내가 당신을 사랑했었다는 것을 믿지 않아. 추악한 것을 찾아 여기에 찾아드는 사람들, 사진에 나타나 있는 이 사람에게도 착한 면과 아름다운 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아, 당신은 일면만을 보고서 그것이 전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조롱하듯 깔깔 웃었다. "멋대로 비난을 해봐요. 꽁생원님은 정말 달콤한 공상가이시군! 꽁생원님, 설교를 해보시죠."
"아지, 그만두겠어. 당신은 어딘지 모자라는 면이 있는 듯하니까. 녹색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네들이 못본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하는 수도 있지. 당신도 그런 사람인 것 같군. 그런건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지. 내가 이상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주위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당신이 느낀 적이 있는가 하는 거야. 만일 주위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면 정말 무서운 일이지. 무서운 일이고 말고."
케이트는 의자를 밀어젖히고 일어섰다. 양 허리에 두 주먹을 불끈 쥐고는 스커트 주름 뒤에 숨겼다. 그녀는 자기 목소리 속으로 기어드는 째지는 소리를 억제하느라고 애썼다.
"우리 꽁생원님은 철학자시네. 그런데 다른 일에도 그렇지만 철학엔 신통치 않네요. 환각이라는 말 들어봤어요? 만일 내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병든 당신 마음속에서 만들어낸 꿈일 것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천만에, 당신이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 그는 문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케이트는 앉아서 닫힌 문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기가 주먹으로 하얀 유포 위를 가만히 내려치고 있는 것도 알지 못했다. 그러나 네모진 하얀 문이 눈물 속에서 뒤틀려 보이고 자신의 몸이 분노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무엇 때문에 떨리고 있다는 것만은 깨닫고 있었다.
2
아담은 케이트의 집을 나온 후, 두 시간 이상이나 기다려서 킹시티로 가는 기차를 탔다. 그는 어떤 충동에 못이겨 메인 스트리트를 벗어나 중앙로를 걸어서 130번지의 높고 하얀 어니스트 스타인벡의 집으로 향했다. 꽤 장엄하지만 허식이 없는 깨끗하고 정다운 집이었다. 하얀 담장 안에 자리잡은 그 집은 말끔한 잔디에 둘러싸여 있었고, 장미와 카터니아스가 하얀 담을 뒤덮고 있었다.
아담은 넓은 베란다의 계단을 올라가 초인종을 눌렀다. 올리브가 문으로 나와 문을 빠끔히 열었다. 메리와 존이 그녀의 양곁에서 내려다 보고 있었다.
아담이 모자를 벗었다. "저를 모르시겠지만, 아담 트래스크라는 사람입니다. 선친의 친구였죠. 해밀튼 부인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의 집 쌍둥이 애들을 보살펴 주셨죠."
"아, 그렇구먼요." 올리브는 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잠깐만 기다리세요. 어머니에게 거처방을 따로 만들어 드렸지요."
그녀는 넓은 앞 복도에서 떨어져 있는 방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어미니! 손님 오셨어요."
그녀는 문을 열고 라이저가 거처하는 밝은 방으로 아담을 안내했다. "전 이만 실례하겠어요." 그녀가 아담에게 말했다. "카트리나가 닭찜을 하고 있어서 돌봐줘야겠어요. 존! 메리! 가자. 가자!"
라이저는 전보다도 더 작아 보였다. 그녀는 고리버들로 만들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정말 늙어 있었다. 검정색 알ㅍ로 만든 넓은 스커트를 입고 있었으며 목에는 "어머니" 라고 쓰여진 금으로 된 핀을 달고 있었다.
아늑한 침실 겸용 방에는 사진들, 화장품 병, 레이스 바늘꽃이, 솔, 빗, 수많은 생일과 크리스마스 때 받은 도자기와 은제품들이 꽉차 있었다.
벽에는 음영이 잘 나타낸 새뮤얼의 커다란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 사진에는 생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차고 소원한 위엄 - 깨끗하게 정장을 하여 나타나는 소원함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사진에는 그의 얼굴에서 반짝이던 빛도, 탐구하는 희열도 있었다. 두툼한 금박 틀에 들어 있는 사진의 눈초리가 방 어디에 있거나 뒤쫓아 온다고 어린아이들은 대경실색하였다.
라이저 옆에 있는 고리버들 테이블 위에는 앵무새 새장이 있었는데, 톰이 어떤 선원에게서 사 온 앵무새가 그 안에 있었다. 쉰 살이나 되었다고 하는 그 늙은 앵무새는 야비한 생활을 하는 선원들의 야비한 말들을 알고 있었다. 라이저는 그놈이 어렸을 때 배운 우스꽝스러운 말 대신에 시편을 가르치려고 애를 썼으나 헛일이었다. 폴리라는 그 앵무새는 머리를 갸우뚱대면서 아담을 살피다가 주둥이 밑의 털을 조심스럽게 앞발로 긁었다. "고만둬, 바보야." 폴리는 아무 감정도 없이 말했다.
라이저가 새를 보고 얼굴을 찡그렸다. "폴리." 그녀가 엄하게 말했다. "점잖지 못해."
"더러운 바보!" 폴리가 지껄였다.
라이저는 저속한 말을 무시했다. 그녀는 작은 손을 내밀었다. "트래스크 씨, 만나봐어 반갑습니다. 앉으세요."
"지나가다가 조의를 표하고 싶어서요."
"꽃은 받았습니다." 라이저는 이렇세 세월이 흘렀어도 보내온 화환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아담은 시들지 않은 좋은 꽃다발을 보냈었다.
"생활을 재정리하시는 데 어려움이 많았겠습니다."
라이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그녀는 약한 마음을 감추려고 작은 입을 꼭 다물었다.
아담이 말했다. "아픈 마음을 되새기시게 해드린 것 같습니다만. 나는 그분이 그립습니다."
라이저는 고개를 돌렸다.
"그곳은 사정이 어떻습니까?"
"올해는 좋습니다. 비가 많이 왔지요. 목초가 이미 많이 자랐습니다."
"톰의 편지에도 그랬더군요."
"입 닥져." 앵무새가 말했다. 라이저는 자식들이 버릇없이 굴 때 하듯이 그녀는 앵무새를 노려보았다.
"샐리너스에 무슨 일로 오셨는지요. 트래스크씨."
"일이 좀 있어서요." 그가 앉아 있는 의자가 몸무게를 받아 삐걱 소리를 냈다. "이리 이사를 올까 합니다. 자식들에게 좋을 것 같아서요. 농장에서는 외로워하죠."
"우리가 농장에 있을 때는 외롭지 않았어요." 그녀가 거칠게 말했다.
"여기의 학교가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쌍둥이에게 도움이 될지도 몰라서."
"우리 딸 올리브가 피치트리와 플레이토와 더 빅서 등의 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었지요."
그녀의 말투로 보아 그 학교보다 더 좋은 학교는 없다는 것이 명백했다.
"그저 그런 생각을 해봤을 뿐입니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훨씬 더 좋습니다." 이것은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이것을 자기 아들로써 증명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자세히 쳐다보았다. "샐리너스에서 집을 구할 작정이세요?"
"글세, 그럴까 합니다."
"우리 딸, 데시를 만나 보세요. 그 앤 농장으로 되돌아가서 톰과 같이 살 속셈이지요. 레이노드 베이커리 다음 골목에 아담한 집을 갖고 있지요."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담이 말했다. "그럼 가볼까 합니다. 이렇게 잘 지내시는 것을 보니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나는 편안해요." 그녀가 말했다. 아담이 문 쪽을 향해 일어섰을 때 그녀가 말했다. "트래스크씨, 톰을 만나보셨어요?"
"못 봤습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집을 떠나본 적이 없어서요."
"한 번 그 애를 만나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 애는 외로워요." 그녀는 이런 말을 터놓은 데 대하여 놀란 듯이 입을 다물었다.
"꼭 그렇게 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그가 문을 닫을 때 앵무새가 지껄이는 소리가 들렸다. "입 닥쳐, 형편없는 바보야!" 라이저가 야단을 쳤다. "폴리야, 말조심하지 않으면 때려줄 테다."
아담은 집을 나와 메인 스트리트를 향해 저녁 길을 걸어갔다. 레이노드 프렌치 베이커리 옆 골목에서 아담한 정원 안에 자리 잡은 데시의 집을 발견했다. 마당에는 쥐똥나무가 하도 무성하여 집이 보이지 않았다. 말끔하게 페인트 칠을 한 간판이 앞문에 걸려 있었다. 간판에는 "의상실 데시 해밀튼"이라고 쓰여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간이 식당은 메인 스트리트와 센트럴스트리트 모퉁이에 있었다. 그 양쪽에 창문이 나 있었다. 아담은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윌 해밀튼이 구석 테이블에 앉아 스테이크를 먹고 있었다. "이리 오세요." 그가 아담에게 소리쳤다. "일이 있어 오셨어요?"
"응" 아담이 말했다. "자네 어머니를 만나 뵙고 오는 길이네."
윌은 포크를 내려놓았다. "나는 여기 한 시간 정도 머무르고 있어요. 어머니가 흥분하실까 봐 만나 뵈러 가지 않았어요. 올리브 우니 역시 내가 가면 특별식을 준비한다고 야단을 떨기 때문에 가지 않았지요. 게다가 곧 돌아가야 하기도 하고요. 스티이크를 주문하세요. 잘합니다. 어머니는 어떠세요?"
"용기가 대단하시더군. 만날 때마다 더 존경심을 갖게 된다니까."
"어머니는 그러세요. 자식들과 남편에 대해서 대단한 분별력을 가지고 대하셨죠."
"스테이크를 중간치로 해주게." 아담이 웨이터에게 말했다.
"감자는요?"
"프렌치 프라이드로 하지. 자네 어머니는 톰 걱정을 하고 계시던데, 그는 어떤가?"
윌은 스테이크에서 기름을 잘라내 접시 옆으로 밀어냈다. "걱정하실 이유가 있지요. 톰에게 문제가 있어요. 그는 마치 기념물처럼 배회하고 다니죠."
"내 생각에 그는 아버지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거 같다."
"지나칠 정도로 그랬죠." 윌이 말했다. "거기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톰은 덩치 큰 어린애죠."
"가서 그를 만나 보겠네. 어머니 말씀이 데시가 농장으로 돌아 가려고 한다지?"
윌은 나이프와 포크를 내려놓고 아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할 수 없지요. 그렇게 못하게 하겠어요."
"왜 안 되나?"
윌은 내심을 감추었다. "글쎄요, 그앤 여기서 좋은 직업을 갖고 또 잘살고 있지요. 그것을 집어치운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는 다시 나이프와 포크를 집어 들고 고기를 잘라 입에 넣었다.
"나는 여덟 시 기차로 돌아갈 생각이네."
"나도 그래요." 윌은 더 이상 이야기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제32장
1
데시는 가족들의 사랑을 독차지했었다. 귀여운 말괄량이 몰리, 마음이 단단한 올리브, 몽상가 우나 등도 사랑을 받았지만, 데시는 따뜻한 사랑을 받았다. 그녀의 반짝이는 눈빛, 널리 쾌활한 웃음은 수두처럼 번져 갔으며 쾌활한 성격은 하루를 즐겁게 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도 파급되어 그들도 그녀의 쾌활을 몸에 지니고 돌아갔다.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샐리너스, 처치 스트리트 122번지에 애그니스 모리슨이란 부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녀에게는 세 자녀와 포목상을 하는 남편이 있었다. 아침 식사 때 가끔씩 애그니스 모리슨은 "식사 후에 데시 해밀튼 의상실로 가봉을 하러 가야지." 이렇게 말하곤 했다.
어린아이들은 기뻐서 동전 같은 발부리로 테이블 다리를 걷어차다가 주의를 들었다. 모리슨 씨는 그날 도부 장수라도 찾아오기를 기대하면서 손을 비비고 가게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도부장수가 찾아와서 많은 주문을 했다. 어린애들과 모리슨씨는 왜 그리 운 좋은 날인가를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모리슨 부인은 두 시에 레이노드 베이커리 옆집에 갔다가 네 시에 돌아왔다. 돌아올 때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빨갛게 된 코에서는 콧물이 흘렀다. 돌아오면서 그녀는 콧물을 닦고, 눈물을 닦고, 웃음을 지었다. 대시가 한 일은 그저 쿠션에 까만 바늘 몇 개를 꼽아 침례교 목사처럼 보이게 하고, 그 바늘 걸레로 하여금 무미건조한 짧은 설교를 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데시가 테일러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 할아버지는 고옥을 여러 채 사서 그가 소유하고 있는 공지에 옮겼는데 하도 집이 많이 들어서서 그 땅이 마치 육지의 해초섬처럼 보였다는 이야기였다. 아니면 (수다장이) 라는 잡지에서 시 한 편을 몸짓을 하며 읽었는지도 모른다. 어떤 일이든 그것은 상관없었다. 그녀의 그러한 것들은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 사람들을 매혹시킬만큼 우스웠다.
학교에서 돌아온 모리슨 씨 댁 어린아이들에게는 어디 아픈데도 잔소리도 두통도 없었다. 떠들어도 더러운 얼굴을 해도 아무 주의도 듣지 않았다. 킬킬대고 웃으면 어머니도 따라서 웃었다.
귀가한 모리슨 씨는 그날의 일을 가족들로 하여금 듣게 하고, 도부장수의 이야기를 했다 - 적어도 몇 건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저녁 식사 맛은 일품이었다 - 오믈렛은 조금도 풀어지지 않았고 케이크는 가볍게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고 비스킷은 바삭바삭 보풀이 있었고 애그니스 모리슨이 만든 스튜는 누구도 따를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식사 후에 아이들이 낄낄대고 웃다가 잠들고 나면 모리슨 씨는 오래된 사랑의 표시로 애그니스 어깨에 손을 얹고 침실로 들어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해했다. "데시를 방문했던 기분은 이틀 동안 더 계속되다가 점점 사그라지고 열은 두통이 되돌아오고 사업은 작년만큼 좋지 않게 되었다. 이것이 데시의 모습이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녀는 새뮤얼처럼 팔에 흥분을 안고 다녔다. 그녀는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데시는 예쁘다고 할 수 없었지만, 남자들로 하여금 여자들을 따라다니게 만드는 마음의 훈훈함을 갖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첫사랑의 상처를 이겨내고 다른 사랑을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 생각도 하겠지만 실제로 그녀는 그러지 못했다. 해밀튼 가족은 비록 다재다능했지만 사랑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러지 못했다. 누구 하나 가볍고 변하기 쉬운 사랑을 할 수 있을 성싶지 않았다.
데시는 단지 손을 들고 포기하고 있는 것만이 아니었다. 그 이상으로 비참했다. 그녀는 하던 일을 계속하고 옛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 그러나 훈훈함은 없었다. 그녀를 사랑하던 사람들은 그녀가 실의를 이겨내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괴로워했다. 그리고 그녀를 위하여 여러 면으로 마음을 써 주었다.
데시의 친구들은 선량하고 의리가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이라 즐거운 기분을 느끼기 좋아하고 슬픈 기분을 느끼기 싫어하기 마련이었다. 얼마 후, 모리슨 부인은 어쩔 수 없는 몇 가지 이유를 발견하고 나서 데시의 아담한 집에 발길을 끊었다. 그들이 불성실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행복하게 되고 싶은 만큼 슬퍼지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논리적이고 도덕적인 이유를 찾아내기란 쉬웠다.
데시의 사업은 기울기 시작했다. 옷을 맞춰 입고 싶던 여자들은 행복하고 싶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세대가 바뀌면서 기성복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기성복을 입는다는 것은 이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모리슨 씨가 기성복을 쌓아놓고 있을 때 애그니스 모리슨이 기성복을 입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가족들은 데시를 걱정했지만, 그녀 자신이 자기에게 잘못된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다. 그녀는 옆구리에 심한 통증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 통증은 잠시 동안 지속되다가는 간헐적으로 나타났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새뮤얼이 세상을 떠나자 세상은 산산이 부서졌다. 그의 자녀들과 친구들은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모아 어떤 종류의 세계를 맞추어 만들려고 애를 썼다.
데시는 가게를 팔고 농장으로 돌아가 톰과 함께 살기로 결심했다. 팔 만한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라이저도 이 결심을 알고 있었다. 올리브도 데시도 톰에게 편지를 냈다. 샌프란시스코 간이 식당에게 얼굴을 찌푸리고 앉아 있던 윌은 이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 윌은 속으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냅킨을 뚤뚤 말고 있었다. "잊어버린 것이 있군요." 그는 아담에게 말했다. "기차에서 만나 뵙죠."
그는 반 블록쯤 걸어 데시의 집에 도착했다. 나무가 높이 자란 정원을 가로질러 데시 방의 벨을 눌렀다.
그녀는 혼자 저녁을 먹고 있다가 냅킨을 손에 듣 채 문을 열었다. "아이, 윌 오빠군요." 그녀는 핑크빛 뺨을 내밀어 그가 키스를 하게 했다. "언제 왔어요?"
"사업 관계로 다음 기차 시간까지만 여기 있겠어. 그리고 이야기를 할 게 있다."
그녀는 부엌 겸 식당으로 쓰는 방으로 안내했다. 꽃무늬 벽지를 바른 아늑한 방이었다. 그녀는 기계적으로 커피를 끓여서 설탕 단자와 크림 병과 함께 그의 앞에 갖다 놓았다.
"어머니를 만나 뵈었어요?" 그녀가 물었다.
"다음 기차 시간까지만 여기 있는 거라니까." 그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농장으로 되돌아간다는 것이 사실이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난 네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지 않아."
그녀는 애매하게 미소를 지엇다. "왜, 안 돼요? 그게 왜 잘못이에요? 톰 혼자 외롭잖아요."
"여기선 사업도 잘되지 않니?"
"사업이랄게 뭐 있어요. 오빠도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난 네가 돌아가는 길 바라지 않는다." 그는 무뚝뚝하게 반복했다.
그녀의 미소에는 회심의 빛이 있었으나 자기 태도에 조롱하는 빛을 띠려고 최선을 다했다.
"큰오빠는 주인행세를 하고 있네. 안되는 이유를 말해 봐요."
"거기는 외로워."
"둘이 있으면 외롭지 않을 거예요."
윌은 화가 나서 입술을 오므렸다. 그는 부자중에 불쑥 말했다. "톰은 제정신이 아니야. 그애하고 같이 있어서는 안돼."
"그 애는 잘 있지 않아요? 도움을 필요로 하나요?"
윌이 말했다.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만 - 아버지의 상을 이겨내지 못한 것 같아. 그 애는 이상해."
그녀가 상냥하게 미소 지었다. "그가 이상하다고 오빠는 늘 생각했어요. 그가 사업을 싫어할 때도 이상하다고 오빠는 생각했어요."
"그것과는 달라. 그 애는 지금 사색에 잠겨 잇어. 말도 하지 않고 밤이면 언덕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그 애를 만나러 갔었는데, 시를 쓰고 있더라. 여러 페이지를 써서 책상 위에 늘어 놓고 있더라."
"오빠는 시를 써본 적이 없지요?"
"없지."
"나는 써 봤어요." 데시가 말했다. "여러 페이지를 써 봤지요."
"어쨌든 네가 가는 것을 해주세요."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나는 무엇인가를 잃고 있어요. 그것을 되찾고 싶어요."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구나."
그녀는 테이블을 돌아가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오빠, 제발 저에게 맡겨 주세요."
그는 화가 난 채 집을 나와 가까스로 기차를 탔다.
2
톰은 킹시티 역으로 데시를 마중 나갔다. 그녀는 객차를 세어가며 자기를 찾고 있는 톰을 차량 너머로 보았다. 그의 온몸이 번쩍이고 있었다. 면도를 철저하게 해서 까만 살결이 닦아 놓은 나무처럼 빛나고 있었다. 붉은 콧수염은 잘 다듬어져 있었다. 납작한 새 스텟슨 모자를 쓰고 파란 조개로 된 벨트 버클이 다린 황갈색 자켓을 입고 있었다. 구두는 대낮의 햇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기차가 도착하기 직전에 손수건으로 구두를 닦았음이 틀림없었다. 빳빳한 칼라가 튼튼한 목덜미를 받치고 있었다. 연푸른색의 넥타이에 편자 모양의 핀을 꽂고 있었다. 그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거친 갈색 손을 몸 앞에 마주 잡고 있었다. 기차가 그의 곁을 지날 때 덜커덕거리는 기차 바퀴 때문에 들리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차창 밖으로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여기, 있어요. 톰, 여기."
"그녀가 난간을 내려섰을 때 반대편으로 열심히 두리번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면서 그의 뒤로 걸어갔다."
"실례합니다." 그녀가 가만히 물었다. "거기 계시는 게 톰 해밀튼씨에요?"
그는 홱 돌아섰다. 그는 기쁜 소리를 지르면서 그녀를 덥썩 껴안고는 빙빙 돌며 춤을 추었다. 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안고 다른 손으로 엉덩이를 쳤다. 그는 껄껄한 콧수염으로 그녀의 뺨을 비볐다. 그러고는 그녀의 어깨를 젖히고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고개를 서로 젖히고 큰 소리로 웃었다.
역원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까만 소매 씌우개를 낀 팔꿈치를 창틀에 올려놓았다. 그는 어깨 너머로 전산원에게 소리쳤다. "저 해밀튼 남매 좀 보시게!"
톰과 데시는 손을 마주잡고 우아한 힐 앤드 토우 스텝을 밟으며 그가 두들 두들 두 하고 노래를 부르면 데시가 디들 디들 디하고 맞받았다.
톰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댁이 데시 해밀튼이죠? 기억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많이 변했네. 변발은 어디 갔어요?"
그가 짐표를 받아 호주머니 속에 넣었다가 이리저리 다시 찾느라고 시간이 꽤 걸렸다. 드디어 그는 짐을 찾아 사륜마차 뒤에 실었다. 두필의 적갈색 말이 단단한 땅에 앞발을 내디디고 고개를 뒤로 젖히자 번쩍이던 수레채가 뛰어오르고 횡목이 삐걱 소리를 냈다. 마구는 반들반들하고 놋쇠 장신구는 황금처럼 번쩍였다. 말채찍 중간에 빨간색 나비 모양의 리본이 매어져 있었고, 갈기와 꼬리에도 빨간색 리본이 매어져 있었다.
톰이 말했다. "킹 시티로 모실까요? 아름다운 곳이죠."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건 나도 알아." 그는 왼쪽으로 돌아 남쪽으로 향하고는 고삐를 잡아채서 빨리 달리게 했다.
데시가 말했다. "윌 오빠는 어디 있지?"
"몰라." 그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너에게 말하던?"
"응. 누나가 여기 와서는 안 된다는 거야."
"그런 얘기를 나에게도 했지." 데시가 말했다. "오빠는 조지를 시켜서 나에게 편지를 쓰게 했단다."
"누나가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지 왜 못 와?" 톰은 화가 났다. "형이 무슨 상관있어?"
그녀는 그의 팔을 잡았다. "네가 미쳤다는 거야. 시를 쓴다고."
톰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가 없을 때 형이 집에 왔다 간 것이 틀림없어. 도대체 형은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 형이라도 내 시를 볼 권리는 없는 거야."
"말을 부드럽게 해라." 데시가 말했다.
"윌 오빤 네 형이야. 그걸 잊지마."
"형은 내가 형의 편지를 보는 거 좋아하겠어?"
톰은 재차 물었다.
"보지 못하게 하겠지." 데시는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금고 속에라도 넣어둘 것. 화를 내서 하루를 망치지 않도록 하자."
"좋아요. 빌어먹을, 좋아! 하지만 형은 나를 화나게 만든단 말야. 내가 형과 같은 생활을 안 한다고 나보고 미쳤다고."
데시는 화제를 바꾸었다. 억지로 바꾸었다. 나중엔 "내가 아주 혼났지." 그녀가 말했다.
"어머니가 오시겠다는 거야. 너, 어머니가 우시는 것, 본 일이 있니?"
"아니, 기억이 안 나는데. 어머니는 우는 사람이 아니잖아."
"그런데 어머니가 우셨어. 대단한 것도 아니지만 어머니에게는 대단한 것처럼 생각된 거야. 처음엔 목이 막히더니, 두 번 훌쩍훌쩍하시고는 코를 닦고 안경을 닦았어. 그러고는 입을 꽉 다물었어."
톰이 말했다. "아, 누나가 돌아와서 참 좋은데! 참 좋아! 병에서 회복된 것 같아."
말이 국도를 따라 달리고 있었다. 톰이 말했다. "트래스크 씨가 포드 차를 샀어. 윌 형이 그에게 팔았다고 말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지."
"포드 얘기는 몰랐는데. 그 사람이 내 집을 사겠다는구나. 값을 넉넉히 주고." 그녀가 웃었다.
"집값을 높이 불렀지 뭐니. 애기를 하다가 깎아 주려고, 그런데 부르는 가격대로 주겠다고 나오지 않니. 내가 곤란했어."
"그래서 어떻게 했수?"
"값이 너무 비싸다고 말하면 깎아줄 생각이었다고 말할 수밖에. 그런데도 그 사람 어느 쪽도 상관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
톰이 말했다. "그 얘기는 윌 형에게 제발 하지 말아요. 누나를 가둬버릴걸."
"하지만 그 집은 내가 부른 값만큼 안 나가는걸!"
"윌 형은 내가 말한 대로야. 아담은 그 집을 어떻게 한 대요?"
"그리로 이사할 작정이래. 쌍둥이를 샐리너스에 있는 학교에 보내고 싶대."
"농장은 어떻게 하고?"
"몰라.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어."
톰이 말했다. "만일 아버지께서 이 황폐한 땅 대신 그런 농장을 갖고 계셨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우리 땅도 그다지 나쁜 땅이 아니야."
"먹고 사는 것 빼놓고는 다 좋지." 데시가 진지하게 말했다. "우리보다 더 재미있게 살아온 가족이지 땅이 아니지요."
"톰, 제가 제니와 벨 윌리엄즈를 소파에 앉혀 태우고 피치트리댄스 파티에 갔던 때를 기억하니?"
"어머니가 가끔씩 이야기를 해줘서 잊지 않고 있지. 어때요. 제니와 벨을 초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올 거야." 데시가 말했다. "그렇게 하자."
그들이 국도를 벗어났을 때 그녀가 말했다. "약간 달라졌는데."
"전엔 더 메마른 땅이었단 말이죠."
"그랬던 것 같아. 지금은 풀이 무성하구나."
"풀이 좋아서 소를 스무 마리 사려고 해요."
"부자구나."
"아니야. 기후가 좋으면 소 값이 폭락할 거야. 윌 형 같으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어요. 형은 희귀파지요. 언젠가 이야기 하는데 항상 희귀한 것을 거래하라 하더군. 윌 형은 똑똑하지."
바퀴자국이 더 깊고, 둥근 돌이 더 불쑥 튀어나온 것을 제외하고는 길은 별로 변해 있지 않았다.
데시가 말했다. "저 소나무 숲에 걸려 있는 카드는 뭐냐?"
그 옆을 지날 때 그녀는 한 장을 뽑아 들었다. "귀향 환영"이라고 적혀 있었다.
"톰, 네가 했지!"
"안 했는데, 누가 와 있는 모양이군."
50야드마다 카드가 나무에 붙어 있거나 마드론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거나 칠엽나무 둥지에 압핀으로 꽂혀 있었는데, 모두가 "귀향 환영" 이라고 적혀 있었다. 데시는 카드를 볼 적마다 환호성을 질렀다. 그들이 해밀튼 동장의 작은 계곡의 고개 위에 올랐을 때, 톰은 마차를 멈추고 그녀로 하여금 조망을 즐기도록 했다. 계곡을 가로질러 있는 언덕 위의 하얀 돌 위에는 커다란 글씨로 "데시의 귀향을 환영"이라고 쓰여 있었다. 그녀는 머리를 톰의 옷깃에 파묻고 웃다가 울음을 터뜨렸다.
톰은 엄숙하게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누가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 이젠 집을 비울 수가 없군 그래."
새벽이면 데시는 가끔씩 찾아드는 고통스런 오한으로 잠을 깼다. 그것은 살살 찾아드는 통증의 위협이었다. 옆구리에서 복부로 움직이는 꼬집는 듯 날카로운 아픔이 다가오다가는 쥐어 잡는 듯하고 그러다가는 꼭 잡아채는 듯하고 나중에는 마치 커다란 손이 꼬집어 뜯어내는 듯 격렬한 통증이 왔다. 통증이 풀리면 타박상 같이 쓰라렸다. 오래 계속되지는 않았지만 진통이 계속되는 동안에는 외부 세계는 말살되고 그녀는 오직 가지 몸 안에서의 투쟁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는 성싶었다.
통증이 가지고 쓰라림만이 남아 있을 때, 그녀는 창문에 은빛 먼동이 터오는 것을 보았다. 기분 좋은 아침 바람이 커튼을 살랑거리면서 풀과 나무뿌리와 축축한 대지의 향기를 몰고 오는 냄새 맡았다. 그러고 나면 갖가지의 소리들이 들려왔다 - 서로 다투는 듯한 참새들, 배고파 우는 송아지를 단조롭게 꾸짖는 어미 소, 흥분한 듯 울어대는 여치, 보호 임무를 띠고 있는 숫메추라기의 날카로운 소리, 무성한 풀숲 어디에선가 응담하는 암메추라기의 속삭임 등이 들려왔다. 닭장에서는 알을 낳은 흥분이 뒤끓고 4파운드나 되는 커다란 암탉 로우드 아일란드 레드는 한번 날개를 치면 날아갈지도 모를 비쩍 마른 수탉이 자기를 땅바닥에 음탕스럽게 짓눌렀다고 수선스럽게 항의하고 있었다.
비둘기들이 구구하고 우는 소리가 들리자, 거미줄처럼 기억이 되살아났다. 아버지가 테이블 머리에 앉아 하시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내가 개비트에게 몇 마리의 흰 비둘기를 키우겠노라고 말했더니 무어라고 했는지 아느냐?" 이러는 거야. "흰 비둘기는 키우지 마세요." "흰 비둘기는 왜 안 돼?" 하고 내가 물으니까 그의 대답이 "그놈들이야말로 제일 나쁜 불행을 가져다주죠. 흰 비둘기를 키우면 슬픔과 죽음을 가져 줄 거예요. 회색 비둘기를 키우세요." 하는 거야. "나는 흰 비둘기가 좋아" "아니에요. 회색 비둘기를 키우세요" 하는 거야. "그러나 어떤 일이 있어도 나는 흰 비둘기를 키우겠어."
그러자 라이저가 참을성 있게 말했다. "당신은 왜 항상 시험을 해보려는 거예요. 새뮤얼? 회색 비둘기, 맛도 좋고 크기도 크잖아요."
"나는 그 보잘것없는 옛이야기에 밀려나지 않을걸." 새뮤얼이 말했다.
그러자 라이저는 자신의 대단한 단순성을 들고 나왔다. "당신은 이미 자신의 논쟁을 좋아하는 마음에 밀려나고 있는 거예요. 당신은 논쟁의 고집쟁이에요!"
"누군가가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오." 그는 실쭉하여 말했다. "하지 않으면 운명은 결코 놀림을 당하지 않을 것이며 인류는 계속 나무 꼭대기에 매달려 살게 될 거요."
물론 그는 흰 비둘기를 사고 나서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 슬픔과 죽음을 잔인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그 비둘기들의 증손자뻘 되는 비둘기들이 아침이면 구구 소리를 내며 휘날리는 하얀 스카프 자락처럼 주위를 날고 있었던 것이다.
데시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동안, 데시의 귀에는 말소리가 들리고 집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었다. 그녀는 슬픔과 죽음을 생각했다. 슬픔과 죽음, 그것은 쓰라림에 대항하여 뱃속에서 꼬집어 뜯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노라면 그것은 찾아오고 말 것이다.
그녀는 대장간에 있는 커다란 풀무 속으로 바람이 말려 들어가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모루 위에 헤머를 연습 삼아 쳐보는 소리가 들렸다. 라이저가 오븐을 여는 소리, 그리고 밀가루를 반죽한 덩어리가 반죽대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조오가 어디엔가 벗어둔 신발을 찾아 돌아다니다가 침대 밑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모습이 보였다.
몰리가 곱고 높은 목소리로 아침 성경을 읽는 소리가 들리고, 우나가 목구멍에서 나오는 투명한 목소리로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상상이지만 톰이 주머니칼로 몰리의 혀를 도려내고 자기의 만용을 깨닫고는 실의에 빠지는 모습이.
"아, 톰."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입술을 움직였다.
위인들도 그러했겠지만 톰의 소심함은 용기만큼이나 대단했다. 그의 난폭성은 유연성과 맞먹을 정도였다. 톰 자신이야말로 자신의 갖고 있는 여러 가지 힘의 얼룩진 전쟁터였다. 그는 이제 마음이 혼란되어 있었다. 그러나 데시는 마치 조련사가 순혈종 말에 훈련을 시키든 톰을 제재하고 방향을 제시할 수 있었다.
데시가 맞은 고통 속에서 반은 잠 속에서 헤매고 있는 동안 아핌 햇살이 창문을 비추었다 그녀는 다시 독립 기념일에 몰리와 주 상원의원인 히리 포비스가 대 무도회를 주도하기로 했던 일이 생각났다. 그런데도 데시는 몰리의 드레스에 장식을 달아 놓지 못했었다. 그녀는 일어 나려고 애를 썼다. 많은 장식을 달아야 했는데도 그녀는 거기 누위 졸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소리쳤다. "곧 끝내겠어요. 몰리, 곧 돼요."
그녀가 침대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해밀튼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는 집 안을 맨발로 걸었다. 홀에 가보니 그들은 침실로 가고 아무도 없었다. 가지런하게 침대가 놓여 있는 침실로 가보니 모두 부엌으로 가고 없었다. 또 부엌으로 가보니 모두 흩어지고 아무도 없었다. 슬픔과 죽음, 회상의 물결은 물러가고 그녀만이 말똥말똥 잠이 깨어 있었다. 집안은 말끔하게 청소되어 있었다. 커튼을 말아서 깨끗하고 창문은 닦아서 투명했다. 그러나 모두가 남자의 손길로 된 것이었다 - 다리미질을 한 커튼은 똑바로 걸려 있지 않았고, 창문에는 줄무늬가 있고 테이블에는 책을 치우니 네모진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토브에서는 불이 타고 있었으나 오렌지색 불이 뚜껑 주위로 새어 나오고, 열어 놓은 바람구멍 밖으로 일어나는 불꽃의 부드러운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부엌 시계는 그 밑에 달려있는 유리 안에서 추를 번쩍이고 있었고 마치 빈 나무 상자를 때리는 작은 나무망치처럼 똑딱이고 있었다.
밖에서 갈대처럼 거칠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높고 이상한 소리였다. 휘파람은 황량한 멜로디를 퍼뜨렸다. 현관에서 톰의 발소리가 들렷다. 그는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참나무 장작을 한아름 안고 들어왔다. 그는 나무상자에 장작을 쏟았다.
"일어났수? 잠을 깨 주려고 휘파람을 불었지." 그의 얼굴은 기쁨이 차 있었다. "오늘 아침은 솜털같이 날아갈 듯한 아침이야. 게으름을 피울 때가 아니에요."
"아버지 말씀 같구나." 데시가 말했다. 그들은 함께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기쁨은 격렬하게 되었다. "그럼." 그는 큰 소리로 말했다. "여기에 그때를 되살려 놓을 거야. 나는 그동안 등뼈가 부러진 뱀처럼 비참하게 질질 생활을 끌어왔어. 윌 형이 내가 돌았다고 생각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어. 그러나 이제 누나도 돌아왔으니 내가 보여주지. 생기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을 거야. 알겠어요? 이 집은 생기를 되찾을 거예요."
"내가 오길 잘했구나." 그러나 지금 톰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우며, 그리고 자기가 그를 어떻게 보호해 줄 것인가 하고 그녀는 쓸쓸하게 생각했다.
"집을 이렇게 청결하게 하느라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게 틀림없구나."
"아니야." 톰이 말했다. "손가락이 좀 아팠을 뿐이야."
"그 아픔을 나는 알아. 양동이와 걸레를 동원하고 무릎을 꿇고 했을 거야. 닭의 힘이나 바람의 힘을 이용하는 무슨 방법을 고안해내지 않았다면 말이야."
"고안이라 - 내가 시간이 없는 이유도 그 때문이야. 빳빳한 칼라 속에서도 넥타이가 자유롭게 움직이도록 하는 작은 구멍을 고안했지."
"너는 빳빳한 칼라 옷을 입지 않잖니?"
"어제는 입었잖수. 어제 고안한 거야. 그리고 수백 만 마리의 병아리를 사육할 계획이야 - 농장 일대에 작은 계사를 많이 짓고 그 지붕위에 둥근 우리를 만들어서 닭을 석회수 탱크에 담가 살충시킬 거야. 그리고 달걀은 작은 운반 밸트에 실려 나오도록 하겠어 - 여기 와요! 그림을 그려 보여줄게."
"나는 아침 식사 그림이나 그리고 싶다." 데시가 말했다. "계란 프라이의 모양은 어떠냐? 베이컨의 색은 어떻게 하겠니?"
"제가 해드리죠." 그는 스토브 뚜껑을 열고 손의 톨이 그슬릴 때까지 부젓가락으로 불을 휘저었다. 그는 나무를 넣고는 휘파람을 높게 불기 시작했다.
데시가 말했다. "너는 그리스 언덕에서 보리 피리를 불고 있는 목양신 같은데."
"내가 무엇 같다고 생각한다구?" 그가 소리쳤다.
데시는 마음이 쓰라렸다. 그의 이 기분이 사실이라면 왜 나의 마음은 가볍게 될 수 없을까? 왜 나는 이 우울한 잿빛 누더기 더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까? 나도 헤어나와야지. 그녀는 마음속으로 소리쳤다. "그가 할 수 있으니 - 나도 해야지."
그녀가 말했다. "톰?"
"왜요?"
"나는 자주빛 달걀이 먹고 싶어."
제33장
1
언덕의 푸르름은 6월까지 계속되다가 풀잎이 노랗게 변했다. 야생 귀라는 씨알이 하도 많이 열려서 줄기가 부러질 지경이었다. 작은 샘에서는 여름 늦게까지 물이 졸졸 흘렀다. 산기슭에서 자란 소들은 너무 살이 쪄서 비틀거리고 가죽은 건강색으로 번들거렸다. 샐리너스 사람들은 가문 해가 있었다는 것조차 잊어버린 그런 풍년의 해였다. 농부들은 힘에 겨우리만큼 땅을 더 구입하고는 장부에 이윤을 계산하고 있었다.
톰 해밀튼은 힘센 팔과 단단한 손으로 뿐만 아니라, 그러한 마음과 정신을 가지고 거인처럼 일했다. 대장간에서는 다시 모루 소리가 들렸다. 그는 고옥에 하얀 페인트 칠을 하고 하얀 벽토를 새로 발랐다. 그는 킹 시티에 가서 수세식 변소를 조사해 가지고 와서는 교묘하게 양철을 꾸부리고 나무를 깎아서 신식 변소를 만들었다. 샘에서는 물이 하도 더디게 솟았기 때문에 그는 집 옆에 삼나무 물탱크를 만들고, 미풍에도 돌아가는 풍차를 손수 만들어 물을 거기에 길어 올렸다. 그리고 고안한 두 가지 모델을 철과 나무로 만들어 그것을 가을에는 특허국에 보낼 예정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유머러스하고 쾌활하게 일했다. 데시는 집안일을 톰이 해치우기 전에 먼저 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 그녀는 그의 커다란 붉은 행복을 지켜보았다. 새뮤얼의 행복처럼 그렇게 가벼운 행복이 아니었다. 그의 내심에서 솟아올라 떠다니는 행복이 아니었다. 그는 알고 있는 한 교묘한 방법으로 행복을 제조하여 그 모양을 다듬었다.
데시는 계곡의 온 마을의 누구보다도 많은 친구를 갖고 있었지만 믿을 만한 사람은 없었다.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누구에게 말하지 않았다. 고통은 마음속의 비밀이었다.
그녀가 쥐어짜는 듯한 아픔 때문에 몸이 굳어지는 것을 보고 톰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니, 무슨 일이에요?" 그녀는 얼굴 표정을 억제하고 말했다. "사소한 결연이야. 지금은 괜찮아." 잠시 후에 그들은 웃음을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을 안심시키기나 하듯이 많이 웃었다. 데시는 단지 잠자리에 들었을 때만 쓸쓸하고 견딜 수 없는 실의에 휩싸였다. 그리고 톰은 어린아이처럼 어리둥절하여 어두운 방에 누워있었다. 심장이 뛸 때면 작은 소리가 들렸다. 그의 마음은 사색을 떠나 안전을 얻기 위해 작은 계획이나 디자인이니 기계니 하는 것에 집착하게 되었다.
그들은 여름날 저녁이면 가끔씩 언덕에 올라 서산에 걸리는 저녁노을도 보고 낮의 더운 상승기류에 의해 미풍이 계곡 쪽으로 밀려 오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그들은 보통 아무 말이 없이 잠시동안 서 있으면서 마음 편안하게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셨다. 둘이 다 계면쩍어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서로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톰, 너는 왜 결혼 안 하지?" 데시가 이렇게 말을 꺼냈을 때, 두 사람이 다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그녀를 쳐다보고는 눈길을 돌렸다. "누가 나한테 시집오겠어?"
"농담이니, 진담이니?"
"누가 나한테 시집오겠느냐 말이야?" 그는 다시 말했다. "나 같은 놈에게."
"진심으로 하는 말처럼 들리는구나." 그녀는 불문율을 깨뜨렸다. "사랑을 해본 적이 있니?"
"없어." 그는 짧게 대답했다.
"알고 싶구나." 그녀는 마치 대답을 못 들은 것처럼 말했다.
톰은 함께 언덕을 걸어 내려오면서 다시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현관에서 불쑥 말했다. "누나는 여기가 외롭지? 있고 싶지 않은 거지?" 그는 잠시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대답해봐. 사실이지?" "나는 어느 곳보다도 여기에 있고 싶어." 그리고 다시 그녀가 물었다.
"너 여자한테 가본 적 있니?"
"응."
"너에게 그게 이롭던?"
"별로."
"너는 무엇을 할 작정이지?"
"모르겠어."
그들은 아무 말 없이 안으로 들어갔다. 톰은 거실 안에 있는 램프에 불을 당겼다. 그가 고쳐 놓은 말털 소파는 벽을 등지고 굽은 등을 치켜올리고 있었고, 문과 문 사이의 녹색 카핏에는 발길에 엷게 닳은 통로가 있었다. 톰은 가운데 있는 둥근 ㅌ이블 옆에 있었다. 데시는 소파에 앉았다. 그는 자기가 나중에 인정한 말 때문에 아직도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녀는 그가 참으로 순수하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그보다도 더 많이 알고 있는 이 세상에 얼마나 부적합하고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아버지가 계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는 톰에게서 위대한 점을 느꼈었다. 아버지 같으면 그 위대함을 어둠 속에서 꺼내어 자유스럽게 날아가 돌고 하는 방법을 알고 계실 성싶었다.
그녀는 그의 마음속에 어떤 불꽃을 일으킬 수 있는 지글 알아보기 위해 다른 꾀를 썼다. "우리들 자신에 대해 애기할 때, 우리가 보고 들은 전 세계란 이 계곡과 샌프란시스코에 몇 번 여행한 것뿐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 있니? 그리고 샌루이스 오비스포보다 더 남쪽으로 가본 적이 있니? 나는 한 번도 없는데."
"나도 없어." 톰이 말했다.
"그거 바보스럽지 않니?"
"많은 사람들도 그렇지."
"그러나 그런 법률이 어디 있겠니? 우리는 파리와 로마와 예루살렘에도 갈 수 있어. 나는 정말 로마의 원형 경기장을 보고 싶어."
그는 어떤 종류의 농담을 기대하면서 그녀를 의심쩍게 쳐다보았다. "어떻게 가지?" 그가 물었다. "돈이 많이 들 텐데."
"나는 그렇게 많이 든다고 생각지 않아. 멋진 곳에서만 먹고 잘 필요는 없어. 제일 싼 배를 타고 제일 싼 객실에 들면 돼. 아버지도 아일랜드에서 그렇게 오셨어. 그리고 우리는 아일랜드에도 갈 수 있어."
아직도 그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눈에는 불타는 듯한 표정이 일기 시작했다.
데시는 말을 이었다. "우리 1년 동안 열심히 일을 하면서 돈을 저축하자꾸나. 나는 킹 시티에서 바느질감을 맡아올 수도 있어. 윌 오빠가 도와줄 거야. 내년 여름에는 가축을 몽땅 팔고 떠나자. 못하라는 법은 없잖니?"
톰은 일어서서 밖으로 나갔다. 그는 여름 하늘의 별을 바라다보았다. 금성은 파랗게 빛나고 화성은 빨갛게 빛났다. 그는 팔을 굽혔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그는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데시는 꼼짝 않고 앉아 있었다.
"누나, 가고 싶어?"
"응, 무엇보다도 가고 싶어."
"그러면 우리는 가는 거야!"
"너도 가고 싶으니?"
"응, 무엇보다도." 그가 말했다. "이집트 - 누나가 이집트를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아테네."
"콘스탄티노플."
"베들레헴!"
"그렇지. 베들레헴."
불쑥 그가 말했다. "이젠 그만 자. 우린 1년 동안 일을 해야돼. 1년이야. 휴식을 취해야 돼. 나는 윌 형한테서 돈을 빌려 돼지 새끼를 백여 마리 살까 하는데."
"무엇을 먹이려고?"
"도토리. 도토리 줍는 기계를 만들겠어."
그가 자기 방으로 돌아간 뒤, 몸을 뒤척이면서 나지막하게 혼자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데시는 창밖으로 돌아간 뒤, 몸을 뒤척이면서 나지막하게 혼자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데시는 창밖으로 별빛이 비치는 밤하늘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그러나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은지, 그리고 톰도 정말 가고 싶은 건지 의심쩍게 생각했다. 그녀가 의심쩍어하고 있을 때 통증이 옆구리에서 서서히 일어났다.
데시가 아침에 일어났을 때 톰은 이미 주먹으로 이마를 치기도 하고 으르렁대기도 하면서 제도대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데시가 그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았다. "도토리 줍는 기계냐?"
"쓰기 쉬워야겠는데. 그러나 막대기와 둘을 어떻게 주워서 밖으로 내게 한다지?"
"네가 발명가인 것은 내가 알고 있어. 그러나 나는 이미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토리 줍는 기계를 발명했어. 당장 쓸 수 있어."
"무슨 소리야?"
"아이들이야." 그녀가 말했다. "항상 움직이는 손 말이야."
"하려고 하지 않을 걸, 돈을 준다고 해도."
"상을 준다면 할 거야. 모든 아이에게 상을 하나씩 주고 1등을 한 아이에게는 큰 선물을 주지 - 백 달러 상당의 상을. 그러면 계곡을 말끔히 쓸어낼 거야. 내가 한번 해볼까?"
그는 머리를 긁었다. "왜 아니야? 그러나 어떻게 도토리를 모으지?"
"아이들이 가져올 거야" 데시가 말했다. "내가 해볼 테니까. 챙겨놓을 장소는 많지."
"어린아이들을 착취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확실히 그렇겠지." 데시도 동감을 표시했다. "내가 양장점을 차리고 있을 때에도 바느질을 배우고 싶어 하는 처녀들을 착취했는데. 그리고 그들도 나를 착취하고. '몬터리 군 대 도토리 줍기 경연대회'라고 부를까 해. 누구나 참여하도록 하지는 않겠어. 상품으로는 자전거를 줄까 해. 너 같으면 자전거를 타려는 기대에서 도토리를 줍지 않겠니?"
"물론 나는 하지. 그러나 삯을 줄 수는 없나?"
"돈 가지고는 안돼." 데시가 말했다. "그렇게 돼면 노동이 돼버려. 아이들은 할 수만 있으면 노동은 하지 않으려고 해. 나는 그래."
톰은 제도에서 등을 펴며 웃었다. "나도 그래." 그가 말했다. "좋아요. 누나는 도토리 책임을 지고 나는 돼지 책임을 지는 거야."
데시가 말했다. "우리가 돈을 벌면 우습지 않을까?"
"누나는 샐리너스에서 돈을 벌었잖아."
"약간 - 많지는 않지만. 계산상으로는 부자였지. 계산서의 돈을 다 받았다면 돼지도 필요 없었겠지. 내일이라도 파리로 떠날 수 있었어."
"나는 윌 형한테 가서 부탁해 볼 거야." 그는 제도대에서 의자를 끌어당겼다. "같이 가겠어?"
"아니. 나는 여기서 계획을 짤 거야, 내일 대 도토리줍기 대회를 시작할 거야."
2
오후 늦게 마차를 타고 종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톰은 기가 죽고 슬픔에 싸여 있었다. 늘 그러했듯이 윌은 그의 정열을 뭉게버렸던 것이다. 윌은 입술을 내밀고 눈썹을 문지르고 코를 비비고 안경을 닦고 시가를 잘라 불을 붙였다. 돼지 계획은 허점투성이었다. 윌은 그 허점 속에 손가락이라도 집어넣을 수 있었다.
도토리 줍기가 왜 안될지에 대해서 그는 명확한 설명은 안 했지만 도토리 경연대회는 될 것 같지 않았다. 특히 이런 때에는 그일 전부가 불안했다. 윌이 할 수 있었던 최선의 일은 생각해 보겠노라고 동의한 것뿐이었다.
이야기 도중에 톰은 유럽 여행에 관해서 윌에게 이야기를 할까 하고도 생각했었으나 어떤 직감에서 그만두었다. 좋은 증권에 투자라도 해놓고 은퇴를 하고 있지 않은 이상, 유럽 여행을 하겠다는 생각은 돼지 계획도 그러했듯이 미친 생각처럼 윌에게 보였을 것이다. 톰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톰은 결과적으로 돼지와 도토리에 반대하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윌로 하여금 생각을 해보도록 하고 돌아왔다.
잘 얼버무리는 것이 사업가의 창조적 기쁨이라는 것을 불쌍한 톰은 알지도 못하고 배울 수도 없었다. 사실 윌은 그것을 생각해 보려고 했다. 그 계획은 부분적으로는 그의 마음을 끌었다. 톰은 우연히 아주 재미있는 일을 생각해 냈다. 만일 돼지 새끼를 외상으로 사서 거의 돈이 안드는 사료를 먹여 살찌게 한 다음 팔아서 외상을 갚고도 이윤을 얻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윌은 동생의 이윤을 가로챌 생각은 없었다. 단지 그는 이윤에 한몫 끼고 싶었다. 그러나 윌은 공상가인 톰에게 이 그럴듯한 계획을 맡길 수는 없었다. 예를 들면 톰은 돼지의 가격조차도 모르고 앞으로의 추세도 몰랐다. 만일 일이 잘되면 윌은 톰에게 실질적인 선물, 포드 차 한 대라도 줄 수 있었다. 도토리 줍기의 1등 상으로 포드 차는 어떨까? 그러면 이 계곡의 모든 사람이 도토리 줍기에 참가할 것이다.
해밀튼 길을 마차로 달리면서 톰은 자기들 계획이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를 데시에게 어떻게 꺼낼까 하고 걱정했다. 최선의 방법은 그 대신 다른 계획을 세우는 것일 거다. 1년 동안에 유럽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돈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을까? 그는 갑자기 그들이 얼마의 돈을 필요로 하는지조차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배삯도 모르고 있었다. 계산을 하는데 온 저녁을 보내야 할지도 몰랐다.
그는 마차를 몰면서 데시가 뛰어나와 마중이라도 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얼굴 표정을 짓고 농담이라도 던질 심사였다. 그러나 데시는 뛰어나오지 않았다. 낮잠을 자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말에 물을 먹이고 마구간에 메고 여물통에 건초를 던져 주었다.
톰이 들어갔을 때 데시는 거위 목 모양의 소파에 누워있었다. "낮잠을 자는 거야?" 그가 물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의 얼굴색을 보았다. "왜 그래?"
그녀는 고통을 참으면서 정신을 차렸다. "복통이야, 꽤 심한 복통이긴 하지만."
톰이 말했다. "깜짝 놀랐어요. 복통이면 내가 고쳐주지." 그는 부엌으로 가서 진줏빛 액체가 든 유리컵을 들고 와서 건네주었다.
"무엇이니?"
"전통적으로 효험이 있는 소금이야. 조금 아플지도 모르지만 효험이 있을 거야."
그녀는 그것을 순순히 마시고 나서 얼굴을 찡그렸다. "그 맛이 생각나는군. 풋사과 냄새가 나지만 테중에 쓰는 어머니의 약이야."
"이제 가만히 누워있어요. 서둘러서 저녁을 준비할게."
부엌에서 덜거덕 소리가 났다. 통증이 절정에 달하자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약물이 불타는 듯 살을 에이면서 위 속으로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얼마 후에 그녀는 몸을 질질 끌고 집에서 만든 수세식 변소로 가서 토해내려고 했다. 이마에서 땀이 비 오듯 내려 앞이 보이지 않았다. 허리를 펴려 하자 배의 근육이 굳어졌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얼마 후에 톰이 풀어서 볶은 계란을 갖고 왔다. 그녀는 고개를 서서히 저었다. "못 먹겠어."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자야 할까 봐요."
"소금 효험이 곧 나타날 거요." 톰이 그녀를 안심시켰다. "그러면 괜찮을 거야." 그는 그녀를 부축하여 침실로 갔다. "무엇을 먹어서 그런 것 같아요."
데시는 침실에 누워 고통을 의지로 버티고 있었다. 저녁 10시쯤 그녀의 의지는 싸움에서 지기 시작했다. 그녀가 불렀다. "톰! 톰!"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세계 연감을 들고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미안하다. 하지만 무지무지하게 아파. 못 참겠어."
그는 어스름 속에서 그녀의 침대가에 앉았다. "배앓이가 대단해?"
"응 지독해."
"지금 변소에 갈 수 있어?"
"지금 안돼."
"램프를 들고 옆에 앉아 있을게. 잠을 자봐요. 아침이면 나아질 테니, 소금 효험이 날 거야."
그녀는 의지가 다시 회복되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동안 톰은 그녀의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연감의 일부를 읽어 주었다. 그녀가 잠들었다고 생각될 때 그는 읽기를 그치고 램프 옆에 있는 의자에서 졸았다.
어렴풋한 비명 소리에 그는 잠을 깼다. 그는 몸부림치는 침구 옆으로 갔다. 데시의 눈은 미친 말의 눈처럼 젖빛이 되고 미친 듯했다. 입가에서는 짙은 거품이 나오고 얼굴은 불타는 듯했다. 톰이 침구 밑에 손을 넣어보니 근육이 쇠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다가 몸부림 멈추더니 고개가 뒤로 떨어졌다. 반쯤 감은 눈에서 빛이 반짝였다.
톰은 말에 고삐만을 채우고 맨 등에 올라탔다. 그는 허리띠를 풀어 놀란 말에 채찍질을 하며 마차 바퀴 자국이 난 돌투성이 길을 내달렸다.
국도 가에 있는 2층집 위층에서 자고 있던 던컨 가족들은 문 두드리는 소리는 듣지 못했으나 앞문이 자물쇠와 돌찌귀째로 와장창 넘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레드 던컨이 엽총을 들고 아래층에 내려왔을 때에는 톰은 이미 벽에 걸려 있는 전화통에 대고 킹시티의 중앙 우체국을 부르고 있었다. "틸슨 의사! 틸슨을 불러줘요! 내가 알게 뭐야. 그를 불러줘요! 빌어먹을, 빨리, 빨리." 레드 던컨은 잠결에도 총을 그에게 겨누고 있었다.
틸슨 의사가 말했다. "응! 알았어. 들려. 톰 해밀튼이지. 누나가 어떻게 됐다는 거야? 배가 빳빳하다고? 자네가 어떻게 했는데? 소금! 천하에 바보 같으니라구!"
의사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억제했다. "톰, 정신을 차리게. 돌아가서 찬 수건으로 맛사지를 하게. 될 수 있으면 찬 것이 좋아. 얼음은 없겠지. 수건을 계속 갈게. 곧 갈게. 들려? 톰, 들려?"
틸슨 의사는 전화를 끊고 옷을 입었다. 그는 화가 나고 지쳐 있으면서도 캐비닛을 열어 수술용 칼과 집게와 스펀지와 튜브와 봉합선을 가방에 챙겼다. 그는 가솔린 램프를 흔들어 가득 차 있는가를 확인하고 에테를 통과 마스크를 책상 위 가방 옆에 놓았다. 실내용 모자와 나이트가운을 입은 그의 아내가 들여다보고 있었다. 틸슨 의사가 말했다. "나는 차고까지 걸어가겠소. 윌 해밀튼을 전화로 불러 그 댁 부친의 농장까지 나를 차로 태워다 달라고 전해요. 무어라고 하면, 여동생이 죽어간다고 해요."
3
데시의 장례를 치른 지 1주일 만에 톰은 열병하는 기병처럼 어깨를 펴고 턱을 당기고 고고하게 말을 타고 농장으로 돌아왔다. 톰은 모든 일을 천천히, 그리고 완전하게 했다. 그의 말은 깨끗하게 빗질되어 있었고, 그의 머리 위에 네모반듯한 스탯슨 모자가 얹혀 있었다. 새뮤얼조차도 집으로 돌아올 때 톰만큼 의젓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매 한 마리가 발톱을 굽히고 병아리를 잡으려 내려 꽂히고 있었으나 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헛간에서 내린 다음 말에 물을 먹이고 고삐를 잡은 채 문간에 잠깐 섰다가 말에 굴레를 씌우고 여물통 옆에 있는 상자에 납작보리를 넣었다. 그는 안장을 벗기고 마르도록 모포를 뒤집어 놓았다. 말이 보리를 다 먹자, 그는 암갈색 말을 밖으로 끌고 나와 울타리 없는 들에서 풀을 뜯도록 풀어 놓았다.
집안에서는 가구와 의자와 스토브가 그에게서 움츠리고 멀리 하는 듯 보였다. 거실로 들어가자 등없는 의자가 그를 피했다. 성냥이 눅눅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사죄하는 기분으로 부엌에 가서 더 가지고 왔다. 거실에 있는 램프는 아름답게 의롭게 보였다. 콤이 성냥불을 켜 로체스타 심지에 불을 붙이자 재빨리 불이 옮겨 붙어, 노란 불꽃이 1인치나 피어 올랐다.
톰은 컴컴한 방에 앉아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은 말털소파를 피했다. 부엌에서 생쥐의 작은 소리가 들렸기 때문에 몸을 돌리자 벽에 모자를 쓴 자신의 모습이 비쳤다. 그는 모자를 벗어 옆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았다.
그는 램프 밑에 앉아서 자기변호의 생각을 이리저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호명이 되면 재판관인 자신과 배심원인 자신의 죄목들과 함께 재판관석 앞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귀가 찢어지게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다. 그의 마음은 법정으로 들어가 고소인들과 대면했다. 옷차림이 더럽고 천하다고 논고한 "허영". 톤을 밀어 넣어주며 갈보를 찾아가게 하는 "욕정". 갖고 있지도 않으면서 재능과 사상을 갖고 있는 척 꾸미게 하는 "부정직." 그리고 "나태" 와 "탐욕"이 팔짱을 끼고 나타났다. 톰은 이것들에 의하여 위로를 받고 있는 듯 느꼈다. 이들이 뒷좌석에 앉아 기다리고 있는 "회색"을 가려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회색의 무서운 죄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소한 일을 주워 모으고 자신을 구제하기 위해 작은 죄들을 덛목처럼 사용하고 있었다. 윌의 돈에 대한 "탐욕". 모친의 신에 대한 "반역" 시간과 희망의 "절도". 사랑의 병든 "거부" 들도 있었다.
새뮤얼이 부드럽게 말했으나 그의 목소리는 방 안에 가득했다. "선량해라, 순수해라, 위대하라, 톰 해밀튼이 되어라."
톰은 부친의 말을 무시하고 말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인사하기가 바쁩니다." 그는 "무례"와 "추악"과 "불효"와 "불결한 손톱"에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허영"에게 인사하기 시작했다. "회색의 인간"은 어깨를 세우고 나섰다. 작은 죄를 가지고 속이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이 "회색"은 "살인"이었다.
톰은 유리컵의 냉기를 손으로 느꼈고 결정테가 뒹굴며 녹고 있고 거품이 번쩍이며 일고 있는 진주빛 액체를 보았다. 그는 공허한 방에다 대고 소리쳤다. "효험이 있을 거요. 아침까지만 기다리면 기분이 좋아질 거요." 그때 울려 퍼졌던 소리가 바로 이 소리였었다. 벽과 의자와 램프가 이 소리를 들었었다. 이것들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톰 해밀튼이 살 수 있는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것은 노력의 부족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가능성을 점쳐 봤다. 런던? 아니다! 이집트 - 이집트의 피라밋, 그리고 스핑크스? 아니다! 파리? 아니! 가만있자 - 이런 곳에서는 죄가 더 성행한다. 아니다! 너의 잠깐 비켜 서 있거라. 다시 생각해 볼지도 모르니까. 베들레헴? 아니고. 아니다! 그곳에서는 낯선 사람은 외롭게 될 거다.
그러자 거기에 잇달아 생각이 떠올랐다 - 죽은 방법이나 시기를 생각해 내기란 어려운 것이다. 치켜올라간 눈썹 또는 신음 이것도 죽는 방법일 수 있다. 아니면 섬광이 터져 얼럭덜럭 하게 되는 밤, 탄알이 화약에 말려 비밀을 찾아내고 피를 흘리게 하는 것도 그 하나다.
이제 톰 해밀튼이 죽은 것은 사실이다.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몇 가지의 온당한 일을 하기만 하면 된다.
소파가 불평하듯 삐걱거렸다. 톰은 소파를 보았고, 또 소파가 알려준 램프를 보았다. 그을음이 나고 있었다. "고맙다." 그는 소파에게 말했다. "내가 미처 못 봤구나." 그는 심지를 낮추어 그을음이 멎게 했다.
그의 마음은 졸고 있었다. "살인"이 그를 때려 깨웠다. 이제 "붉은 톰", "사기꾼 톰"은 너무 지쳐서 자살을 할 수 없었다. 그러자면 약간의 손이 갈거다. 어쩌면 고통과 지옥이 따를 것이다.
어머니가 자살을 아주 싫어하고 있다는 생각이 났다. 그 이외에도 아주 싫어하는 것이 세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버릇없는 행실과 비겁과 죄였다. 이런 것들은 간통이나 도둑만큼이나 나쁜 것이었다.
새뮤얼 같으면 그것을 어렵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부친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피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어찌 할 수가 없어요. 아버지는 저를 과대평가하셨어요. 아버지의 잘못이에요. 아버지가 저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과 자랑을 정당화 할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아버지는 탈출구를 생각해 낼 수도 있을지 모르겠어요. 그러나 나는 할 수 없어요. 나는 살 수 없습니다. 나는 데시 누나를 죽였으니 잠들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없는 아버지를 대신하여 그의 마음이 대답했다. "네 처지를 이해하겠다. 출생에서 다시 출생으로 되돌아가는 호에는 선택할 방법을 생각해 보자. 너는 왜 그리 참을성이 없느냐?"
"참을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어요."
"너는 기다릴 수 있다. 사랑하는 내 아들아. 내가 알기론 너는 내가 머리라고 부르는 순무를 사용하도록 해라."
톰이 서랍을 열자 크레인의 고급 편지지철과 편지지 정도의 봉투와 씹어서 못쓰게 된 연필 두 자루와 먼지 낀 뒷구석에 우표 몇 장이 되었다. 그는 편지지 철을 꺼내고 주머니칼로 연필을 깎았다.
그는 편지를 썼다.
"어머니, 별일 없으시리라고 믿습니다.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싶습니다. 올리브 누나가 추수감사일에 오라고 했으니 그때 가겠어요. 아름다운 올리브 누나는 칠면조 요리를 어머니만큼 잘 하지요. 하기야 어머니는 그렇게 생각지 않을 겁니다. 나는 아주 운이 좋았어요. 15달러를 주고 말 한 필을 샀어요 - 거세한 말이죠. 순종같이 보여요. 그놈이 사람을 싫어한다고 해서 싸게 산 거죠. 먼저 주인은 말 잔등에 타고 있는 것보다는 떨어져 땅에 나자빠져 있을 때가 더 많았죠. 그러나 꽤 예민한 놈이에요. 그놈은 나를 두 번씩이나 내동댕이를 쳤지만 기어코 타겠어요. 내가 그놈의 기를 꺾을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말을 갖는 것이죠. 한겨울이 다 걸린다고 하더라도 틀림없이 그놈의 기를 꺾어 놓고 말겠어요.
내가 왜 말 이야기만 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먼젓번 주인이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그놈은 하두 심술 궂어서 등에 타고 있는 사람도 삼켜버린다는 거예요. 우리가 토끼 사냥을 갔을 때 아버지께서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기억이 나세요? 싸움에 이겨 방패를 갖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죽어서 방패에 엊혀 오라 하시던 말씀이에요. 추수감사절 날에 뵙겠습니다. 아들 톰 올림."
그는 글이 잘 됐는지 의심쩍었지만 너무 피로하여 다시 쓸 수가 없었다. 그는 추신을 썼다. "추신. 폴리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더군요. 그 녀석이 내 낯을 붉히게 합니다."
그는 또 다른 편지를 한 장 썼다. "윌 형에게. 형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발 나를 도와줘요. 또 어머니를 위해서 제발. 나는 말에 채여 죽었어요. 말에서 떨어져 머리를 채였어요 제발! 동생 톰으로부터."
그는 우표를 붙인 다음 편지를 호주머니에 넣고 새뮤얼에게 물었다. "이 정도면 됐습니까?"
침실에서 그는 새 탄알 상자를 뜯고 한 알을 기름이 잘 칠해진 스미드 앤드 웨슨 33구경 총의 탄창에 넣었다.
그리고 탄창을 격침 왼쪽에 끼었다. 울타리 근처에서 졸고 있던 말이 그의 휘파람 소리를 듣고 왔다. 말은 그가 안장을 얹는 동안 졸고 있었다. 그가 킹 시티에서 두 통의 편지를 부치고 말머리를 남쪽으로 돌려 그리운 해밀튼 농장의 불모지를 향해 떠났을 때는 새벽 3시였다.
그는 사내다운 신사였다.
제4부
제34장
1
"세상 이야기란 어떤 것이죠?" 하고 아이들은 물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른들도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요? 결말은 어떻게 나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이야기란 어떤 것이지요?" 이렇게 의아해할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유일한 그 이야기가 우리를 항상 무섭게 만들고 충돌하기 때문에 우리는 연백 속에서 사색과 회의를 계속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란 생활과 사색, 기아와 야심, 허욕과 잔인, 그리고 친절과 관용 속에서도 선악의 그물에 잡혀 있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야기이며 이것은 모든 지정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선과 악은 우리가 세상을 처음 출생하여 인식한 씨줄과 날줄이며 또한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인식하게 될 직물이다. 세상 물정이 어떻게 변한다, 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이 이외에 다른 이야기는 없다. 인간은 일생 동안의 잔재를 다 떨어버리고 난 후에도 어렵고도 단순한 한 가지 의문만은 안게 될 것이다. "일생이 선했나, 악했나, 나는 일생을 잘 살았나 - 아니면 나쁘게 살았나?"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는 페르샤 전쟁을 서술하면서 그 당시에 가장 많고 뭇사람들의 총애를 받고 있던 크리이서스가 아테네의 현인 솔론에게 유도 질문을 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사람이 누구인가?" 하고 그가 질문했다. 그는 확인을 받고 싶었던 것이 틀림없다. 솔론은 옛날에는 행복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아뢰었다. 그러나 크로이서스의 귀에는 이 이야기가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자기 이야기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솔론이 그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자 왕은 할 수 없이 직접적인 질문을 했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지 않는가?" 솔론은 서슴지 않고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아직도 생존해 계신데."
그의 행복이 부와 왕국과 함께 사라졌을 때, 이 대답은 크로이서스의 뇌리에서 침울하게 떠나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고 그는 화형을 받을 때에도 이 현답을 생각했었을 것이고, 어쩌면 그때 그런 질문을 하지 않았고 그런 대답을 듣지 않았었기를 바랬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사람이 죽을 때 - 질시의 대상이 도는 부와 권력과 의장을 그가 갖고 있었다면 생존한 사람들이 그의 재산과 공과를 자세히 조사하고 난 후에라도 이와 똑같은 의문은 있게 마련이다. "그의 생애는 선했나, 악했나?" - 이 말은 크로이서스의 질문을 다르게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 만일 질시가 사라졌다고 한다면 기준은 어떻게 된다. "그는 사람들의 경애의 대상이었던가, 증오의 대상이었던가? 그의 죽음이 아깝게 생각되는가, 시원하다고 생각되는가?"
나는 세 사람의 죽음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중에 하나는, 사람들의 영혼과 육체를 짓밟고 세기의 보호가 됐던 사람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으려고 여러 해를 노력한 끝에 세상에 많은 공헌을 했다. 입신중에 저지른 죄과를 보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나는 그가 죽었을 때 같은 배를 타고 있었다. 게시판에 부음이 붙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의 부음을 듣고 기뻐했다. "고맙게도 개새끼가 죽었군." 하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다음에는 악마처럼 영리한 사람이 있었다. 인간의 위신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인간의 약점과 사악한 모든 면만을 알고 있던 그는 사람을 왜곡하고 매수하고 뇌물을 주고 위협하고 유혹하는 그의 재주를 활용하여 커다란 권좌에 오르게 되었다. 그는 덕이라는 이름으로 그의 동기를 감쌌다. 자애심이 없는 어떤 선물도 사람의 사랑은 매수할 수 없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뇌물을 준 사람을 증오하게 만들 뿐이다. 이 사람이 죽었을 때 온 국민이 그를 찬양해 마지 않았지만, 그 밑바닥에는 죽음을 기뻐하는 마음이 깔려 있었다.
셋째 번 사람은 실행 과정에서 많은 과오를 범했지만 사람들이 가난하고 두려움을 느낄 때, 그리고 추악한 세력이 사람들이 두려움을 악용하고 있을 때 그들을 용감하고 위엄 있고 선량하게 만드는 데 그의 생애를 바쳤다. 이 사람은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증오를 받았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사람들은 길에서도 눈물을 터뜨리고 마음속으로 울부짖었다. "우리들은 이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가 없는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인간이란 표면으로는 연약하지만 선량하게 되고 싶어 하고, 사람을 받고 싶어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대부분의 인간의 악은 사랑에 이르는 지름길로서 시도된다. 재능이나 지위나 자질이 어떠하든 사람이 사랑을 받지 못하고 죽는다면 그것은 실패요, 싸늘한 두려움이다. 여러분이나 나나 사색과 행동. 두 가지 길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여야만 하는 경우,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고 우리가 죽음으로써 세상 사람들을 즐겁게 하지 않도록 살아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한 가지 이야기밖에 없다. 모든 소설과 시는 선악의 끊임없는 투쟁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이다. 악은 계속 알을 까야만 하지만, 선은, 다시 말해 덕은 불멸한 것이다. 악은 항상 새롭고 싱싱한 모습을 갖지만 덕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존엄한 것이다.
제35장
1
리이는 아담과 쌍둥이가 샐리너스로 이사 가는 것을 도와주었다. 도와주었다기보다는 도맡아 했다. 짐을 꾸리고 기차에 탁송하고 포드 차 뒤에 짐을 싣고 샐리너스에 도착하여 풀고 아담한 데시의 집에 가족들이 안주하는 것을 보살폈다. 리이는 그들을 편안하게 하는 일, 필요치 않은 많은 일, 그리고 그 이상의 일을 하면서 미루어오다가 어느 날 저녁 쌍둥이가 잠을 자러 간 후 형식적으로 아담의 뒤치다꺼리를 해주고 있었다. 리이의 냉정하고 형식적인 태도로 보아 아담은 그의 의도를 간파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담이 말했다. "좋아, 예상하고 있었어. 말해 봐."
아담의 말에 리이는 그에게 말하려고 기억해 두었던 말을 잊어 버렸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제 능력껏 모셔왔습니다. 이제 내 생각엔 -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연기해 왔습니다. 작별 인사도 준비해 놓았습니다. 듣고 싶으세요?"
"하고 싶은가?'
"아니요. 하지만 멋있는 작별 인사죠."
"언제 떠나려나?"
"가능하면 빨리 떠날까 합니다. 곧 떠나지 않으면 흐지부지될까 봐 걱정되니까요. 다른 사람이 올 때까지 제가 기다리기를 바라십니까?"
"그럴 생각은 없네. 알다시피 나는 느려요. 시간이 꽤 걸릴지도 모르지. 영영 못 얻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내일 떠나겠습니다."
"아이들이 실망할걸.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겠어. 자네는 몰래 떠나게. 그러면 다음에 내가 이야기해 주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지."
"내가 보기엔 아이들은 항상 우리를 놀라게 하지요." 리이가 말했다.
"그랬지."
다음 날 아침 식사 때 아담이 말했다. "얘들아, 리이 아저씨가 떠난단다."
"그래요?" 카알이 말했다. "오늘 밤에 농구 시합이 있는데, 10센트래요. 가도 돼요?"
"좋다. 그런데 너희들은 아빠가 한 말을 들었니?"
"그러믄요." 아론이 말했다. "리이 아저씨가 떠난다고 말씀하셨죠."
"리이는 다시 돌아오지 않아."
카알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데요?'
"샌프란시스코로."
"아!" 아론이 말했다. "메인 스트리트 길거리에 한 남자가 있는데 그는 작은 스토브에 소시지를 구워 과자빵에다 넣어 팔아요. 5센트래요. 겨자는 달라는 대로 주고요."
리이는 부엌문에 서서 아담에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쌍둥이들이 책을 챙기자 리이가 말했다. "얘들아, 잘 있어."
그들은 "안녕히 가세요." 하고 소리치고는 집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담은 커피잔을 들여다보면서 사과했다. "괘씸한 놈들이군! 10년이 넘도록 돌봐준 보답이 그거란 말이야."
"그것이 더 좋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슬픈 척한다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이지요.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는 거죠. 가끔씩 내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 속으로 말입니다. 애들이 슬퍼하기를 바라지 않아요. 그들이 섭섭하게 생각한다고 좋아할 만큼 난 속이 좁지는 않죠."
그는 50센트를 테이블 위에 놓고 말했다. "오늘 밤 농구 시함 구경을 갈 때, 이 돈을 내가 주더라고 전해 주세요. 그리고 소시지 빵도 사먹으라고 하세요. 제 작별 선물은 프토마인 중독에 걸려 있는지도 모르죠."
아담은 리이가 식당으로 들고 들어온 망원경 같은 종다래끼를 쳐다보았다. "이것이 짐 전부인가?"
"책 말고는 전부입니다. 책은 지하실에 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안정된 다음에 사람을 보내든지, 내가 오든지 해서 가져가겠습니다."
"그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자네가 그리워질걸세. 정말 서점을 차릴 계획인가?"
"그럴 생각입니다."
"소식을 전하겠나?"
"모르겠습니다. 생각해봐야겠군요. 분명히 끊어 버리는 것이 제일 빨리 낫는 길이라고도 하더군요. 그저 우표로나 맺어지는 친교사처럼 서글픈 것은 없지요. 직접 보고 듣고 접촉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떠나가게 내버려 두는 것이 상책입니다."
아담은 테이블에서 일어섰다. "정거장까지 함께 가세."
"아닙니다!" 리이는 날카롭게 말했다. "아닙니다. 사양하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트래스크씨, 안녕히 계십시오, 아담." 그는 하도 빨리 집 밖으로 나갔기 때문에 아담의 작별 인사는 그가 계단 밑에 내려갔을 때에야 들렸고 "잊지 말고 편지하게." 하는 소리는 앞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들렸다.
2
그날 밤 농구 시합이 끝난 후 카알과 아론은 각각 소시지 빵을 다섯 개씩 먹었다. 그것으로 족했다. 아담이 저녁 식사 준비를 잊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들은 처음으로 리이 이야기를 했다.
"아저씨가 왜 갔는지 모르겠구나?" 카알이 뭉었다.
"떠나겠다고 전에도 말한 적이 있어."
"아저씬 우리들이 없는데 무슨 일을 할까?"
"모르겠어. 틀림없이 돌아올 거야." 아론이 말했다.
"무슨 말이야? 아버지가 그러시던데 아저씨는 서점을 차린데. 우스운 일이야. 중국인 책방이라."
"아저씬 돌아올 거야." 아론이 말했다. "아저씨는 우리들이 보고 싶을 거야. 두고 봐."
"안 그럴걸. 10센트 걸겠어."
"언제까지 안 그럴 거란 말야?"
"영원히."
"돌아온다니까, 나도 내기하겠다." 아론이 말했다.
아론은 한 달 동안 내기한 돈을 받을 수 없었으나 그다음 엿새 후에 내기 돈을 받고 말았다.
리이는 10시 40분 기차를 타고 와서 자기의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식당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아담이 부엌에서 프라이팬에 덕지덕지 앉은 까만 더깨를 깡통따개 끝으로 긁어내고 있는 것을 리이는 보았다.
리이는 종다래끼를 내려놓았다. "그것은 하룻밤만 물에 담가 놓으면 벗겨져요."
"그래? 요리할 때마다 태워 먹었어. 마당에 근데 소스팬이 있어. 냄새가 하도 지독해서 집 안에 둘 수가 있어야지. 불에 탄 근대 냄새란 지독해 - 리이!"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소리쳤다. "어떻게 된 것인가?"
리이는 그에게서 까만 프라이팬을 받아 싱크대에 놓고 물을 부었다. "새 가스스토브만 있으면 2, 3분 안에 커피를 끓일 수 있을 텐데요. 불을 피우는 것이 좋겠군요."
"스토브는 타지 않겠지?"
리이는 뚜껑을 열었다. "재를 치웠던가요?"
"재라니?"
"다른 방에 가서 계십시오. 커피를 끓여 드릴테니까요."
아담은 식당에서 기다리기가 힘들었으나 리이의 말을 따랐다. 드디어 리이가 커피 두 잔을 들고 와서 테이블 위에 놓았다. "냄비에 끓였어요. 훨씬 빠르죠." 그는 종다래끼 위로 몸을 굽히고 꼭 잡아맸던 끈을 풀었다. 그리고는 돌 주전자를 꺼냈다. "중국산 입상주에요. 오가피주는 10년 이상은 갈지도 모르죠. 나 대신 누구를 고용하셨는지 여쭈어보는 것을 잊었군요."
"넌지시 말하는구먼." 아담이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직언을 하여 결말을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임도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판탄 놀음에 돈을 잃었구먼."
"아닙니다. 그렇기라도 했으면 좋지요. 돈은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놈의 코르크가 부러졌네요 - 병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이 좋겠군요." 그는 새까만 술을 자기 커피에 따랐다. "이렇게 마시기는 처음입니다. 향기가 좋군요."
"썩은 사과 냄새가 나지." 아담이 말했다.
"그렇죠. 샘 해밀튼이 잘 썩은 사과 냄새 같다고 말씀하신 생각이 납니다."
아담이 말했다. "자네에게 일어난 일은 언제나 말하겠나?"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리이가 말했다. "외로웠어요. 그것이 전부입니다. 이 말로는 충분치 않습니까?"
"책방은 어떻게 됐니?"
"책방은 차리고 싶지 않아요. 기차를 타기 전에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이렇게 시간이 걸린 것이죠."
"그러면 마지막 꿈도 사라졌구먼."
"잘 없어졌지요." 리이는 히스테리를 일으킬 성싶었다.
"트래스키씨, 이 중국인도 술에 취하고 싶군요."
아담이 깜짝 놀랐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리이는 술병을 입에 대고 독한 술을 크게 한 모금 마셨다. 타는 듯한 목구멍에서 향내가 났다.
"아담, 나는 집에 돌아와서 어떻게 비교할 수 없어. 믿을 수 없이, 압도적으로 기쁩니다. 내 생애에서 그토록 외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제36장
1
샐리너스에는 초등학교가 두 개 있었는데, 두 학교가 다 높다란 창이 달린 노란 건물로 되어 있었다. 창은 사악스럽고 문은 미소도 짓지 않는 듯했다. 학교 이름은 동부교와 서부교였다. 동부교는 마을을 가로질러 멀리 떨어져 있어서 메인 스트리트 동쪽에 살고 하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언급하지 않았다.
큰 2층 건물로 된 서부교의 앞면에는 마디투성이의 포플라나무가 서 있어서 운동장은 소녀장, 소년장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학교 뒤에는 높다란 관자 울타리가 있어서 소녀장과 소년장을 나누고 있었다. 운동장 뒤에는 웅덩이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커다란 튤나무와 카테일 풀까지 자라고 있었다. 서부교에는 3학년에서부터 8학년까지 있었다. 1학년과 2학년 학생은 좀 떨어져 있는 유아학교로 옮겨 갔다.
서부교에는 학년마다 교실이 하나씩 있었는데, 3, 4, 5학년은 아래층에, 그리고 6, 7, 8학년은 2층에 있었다. 교실마다 참나무로 된 평평한 책상들과 교단과 교탁과 세트 토마스 벽시계와 그림 한 장이 있었다. 라파엘 전파의 영향이 두드러졌다. 갑옷을 차려입은 원탁 기사 갤라하드가 3학년 학생들의 진로를 가르치고 있었다. 그리스 신화의 걸음 빠른 미인 아탈란타의 행보가 4학년 학생들을 재촉하고 있었고 바실의 화분 그림이 5학년 학생들을 어리둥절하게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아가다가 캐터라인의 탄핵 그림이 8학년 학생들에게 높은 시민 도덕심을 심어주며 상급학교로 보내주고 있었다.
카알과 아론은 나이 때문에 제7학년에 편입되었다. 그들은 그림의 모든 음영을 알고 있었다 - 전신이 뱀에 휘감긴 라오콘의 그림이었다.
교실 하나밖에 없던 시골 학교에 다녔던 두 소년은 크고 장엄한 서부교에 어리둥절했다. 호사스럽게도 학년마다 선생이 따로 있는 것도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건 낭비처럼 보였다.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듯이 그들은 첫날엔 어리둥절해하더니 둘째 날에는 찬사를 보내고 셋째 날에는 다른 학교에 다녔었다는 것조차 똑똑히 기억할 수 없었다.
선생님은 피부가 검고 예뻤다. 쌍둥이들은 재치 있게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하여 걱정을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카알은 이 방법을 재빨리 생각해 내고는 아론에게 설명했다. "다른 아이들을 봐. 답을 알면 손을 들고, 모르면 책상 밑으로 기어들어 가듯이 몸을 숙이고 있지 않아. 우리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겠지?"
"모르겠는데, 어떻게?"
"선생님은 항상 손을 들고 있는 아이들을 시키는 것은 아니야. 다른 아이들에게도 몰아붙이는데 그들은 답을 모른단 말이야."
"그런데?" 아론이 말했다.
"첫째 주일에는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가 손을 들지 않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를 부를 것이고 우리는 척척 대답을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선생님을 곯려주는 거야. 둘째 주일에는 우리는 공부를 하지 않고 와서 손을 드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를 안 부를걸. 셋째 주인에는 그저 앉아 있는 거야. 그러면 선생님은 우리가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 없을 거란 말이야. 곧 선생님은 우리를 내버려 둘 거야. 선생님은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을 호명하여 시간 낭비를 하지 않을 거야."
카알의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얼마 안 가서 쌍둥이들은 간섭을 받지 않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머리가 좋다는 평판을 얻게 되었다. 사실은 카알의 방법이란 시간의 낭비였다. 두 형제는 아주 쉽게 학교 생활을 해나갔기 때문이다.
카알은 구슬치기를 잘해서 학교 운동장에서 백묵이니, 구슬이니, 유리알이니, 취김돌을 전부 거둬들이게 되었다. 카알은 구슬치기 유행이 지나면 그것을 팽이와 바꾸었다. 그는 모양이 없고 두툼한 납작팽이로부터 축이 바늘처럼 가늘고 얄상하고 위험한 팽이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형태와 색깔의 쉰다섯 개의 팽이를 갖고 그것들을 법화처럼 사용하던 때도 있었다.
쌍둥이를 본 사람은 누구나 서로 다른 점을 보고는 어리둥절해 보는 듯했다. 카알은 자라면서 피부색이 검어지고 머리칼도 까맣게 되었다. 그는 재빠르고 틀림없었지만 비밀스러운 면이 있었다. 어른들은 그가 조숙하게 보인다는 인상을 받고 다소 놀라워했다. 카알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그를 두려워했고 두렵기때문에 내세우기도 했다. 친구다운 친구라고는 하나도 없었으나, 추종하는 친구들도 없지 않아서 운동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대장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가 교묘한 재간을 나타내지 않고 있었다면 마음의 상처도 드러나지 않았었을 것이다. 그는 무신경하고 둔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 잔인한 사람으로 생각되었다.
아론은 모든 사람에게서 사랑을 받았다. 그는 수줍고 섬세한 소년처럼 보였다. 발그레한 살결, 금발, 미간이 넓은 파란 눈 등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운동장에서는 그의 귀여운 점이 다소 어려움을 야기하기는 했지만, 시험해 보는 아이들에 의해 아론은 고집이 세고 끈덕지고 전혀 두려움을 모르는 투쟁자라는 것, 특히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러했다는 것이 발견되고 나서부터는 이 모든 것이 해소되었다. 이런 말이 들자 새로 들어온 학생을 곯려 먹는 아이들도 그를 내버려 두게 되었다. 아론은 자기의 기질을 숨기려 하지 않았다. 다만 그의 외모가 그 기질과는 동떨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을 뿐이었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그는 절대로 변경하는 일이 없었다. 그는 단면적이었고 융통성이 별로 없었다. 그는 단면적이었고 융통성이 별로 없었다. 그의 마음이 교묘한 것에 대하여 무감각했던 만큼이나 그의 육체는 고통에 무감각했다.
카알은 아론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균형을 깨뜨림으로서 그를 다룰 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어느 정도까지만 작용을 했을 뿐이다. 카알은 언제 옆으로 비켜서야 하고 언제 도망쳐야 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이 변하면 아론은 혼란을 느꼈지만 다른 것에는 전혀 혼란되는 일이 없었다. 그는 자기 길을 설정해 놓고 묵묵히 그 길을 따를 뿐 한눈을 팔지도 않고 다른 것엔 관심도 두지 않았다. 그의 감정은 폭이 좁고 묵직했다. 천사 같은 얼굴에 의하여 그의 정체는 감추어져 있었다. 그는 새끼 사슴의 가죽에 난 얼룩점에 대하여 관심이나 책임을 지지 않듯이 자신의 용모에 대하여 관심도 책임도 지지 않았다.
2
아론은 처음 등교하는 휴게시간을 목마르게 기다렸다. 그는 에이브라에게 말을 건네기 위하여 소녀 정으로 갔다. 소녀들이 떼를 지어 소리를 질렀으나 그를 몰아낼 수는 없었다. 나이 든 선생님이 와서 그를 소년정으로 밀어내야만 했다.
아론은 점심때에도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그 애의 아버지가 멋있는 사륜마차를 타고 와서 점심을 먹이기 위해 집으로 데려갔기 때문이다. 아론은 수업이 끝난 후 교문 밖에서 그 애를 기다렸다.
그 애는 다른 소녀들에 둘러싸여 나왔다. 그 애의 얼굴은 침착했고 그를 애기했다는 표정은 전혀 없었다. 그 애는 학교에서도 제일 예쁜 소녀였다. 아론이 그것을 알아차렸었는지 모르겠다.
소녀들은 구름처럼 그녀에게 매달렸다. 소녀들이 어깨 너머로 그 애에게 가시 돋친 모욕적 언사를 내뱉았지만 그는 끈덕지게 당황하지 않고 서너 발짝 뒤에서 그들을 따라갔다. 점점 소녀들은 자기 집으로 흩어지고 에이브라가 하얀 대문이 달린 자기 집에 도착하여 안으로 들어갔을 때에는 세 소녀만이 남았다. 세 소녀들은 잠시 동안 그를 쳐다보다가 낄낄거리며 제각기 흩어졌다.
아론은 보도 끝에 앉았다. 잠시 후에 빗장이 올려지더니 문이 열렸다. 그 애는 보도를 가로질러 그에게 왔다. "무슨 일이니?"
아론의 커다란 눈이 그 애를 쳐다보았다. "너, 다른 사람하고 약혼하지 않았니?"
"바보 같은 소리." 그녀가 말했다.
그는 애써 일어났다. "우리는 오래 있어야 결혼할 수 있을 거야."
"누가 결혼하고 싶대?"
아론은 대답하지 않았다. 듣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나란히 걸었다.
에이브라는 앞을 바라보고 또박또박 걸어갔다. 그녀의 표정에는 현명함과 사랑스러움이 있었다. 그녀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 아론은 나란히 걸으면서 그녀의 얼굴을 계속 쳐다보았다. 그의 관심은 단단한 밧줄로 그녀의 얼굴에 매어져 있는 듯했다.
그들은 유아 학교를 아무 말 없이 걸어 지나쳤다. 거기에서 포장된 길이 끊겼다. 에이브라는 오른쪽으로 돌아 여름 건초밭 그루터기 사이로 앞서 걸어갔다. 까만 아도브 조각이 발밑에서 부서졌다.
건초 밭 끝에 작은 수원 오두막이 있었고 한 그루의 버드나무가 펌프에서 넘쳐나오는 물을 받아 그 옆에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기다란 버드나무 가지가 스커드 자락처럼 땅에까지 늘어져 있었다.
에이브라는 땅에 앉았다. 앉았다기보다는 떨어져 내리는 듯했다. 스커트가 파도처럼 넓게 퍼졌다. 그녀는 기도나 올리는 것처럼 무릎 위에 두 손을 모았다.
아론은 그녀 곁에 앉았다. "우리는 오래 있어야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 그는 다시 말했다.
"그렇게 오래는 아닐 거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지금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아론이 물었다. "네 아버지가 허락해 줄까?"
그녀에겐 새로운 생각이었다. 그녀는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버지한테는 말 안 할지도 몰라."
"너의 어머니는?"
"부모네들을 괴롭히지 말자. 우리의 결혼이 우습다거나 아니면 좋지 않다고 생각하실 거야. 이걸 비밀로 할 수 있니?"
"물론이지. 나는 누구보다도 비밀을 지킬 수 있어. 몇 개의 비밀을 갖고 있기도 하고."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 비밀 속에 이것도 끼워 두려므나."
아론은 나뭇가지 하나를 집어 들고 시꺼먼 땅 위에 금을 그었다.
"에이브라, 어린애를 어떻게 낳는지 아니?"
"알지." 그녀가 말했다. "누가 말해줬니?"
"리이 아저씨가 말해줬어. 전부 설명해 준 걸. 우리들은 오랫동안 아기를 가질 수 없을 거야."
에이브라의 입 끝이 겸손하게 치켜 올라갔다. "그렇게 오래지는 않을 거야."
"우리도 언젠가는 집을 갖게 되겠지." 아론이 생각에 잠겨 말했다. "집에 들어가서 문을 닫으면 멋있을 거야. 그러나 한참 있어야 될 거야."
에이브라는 손을 내밀어 아론의 팔을 잡았다. "시간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 여기도 일종의 집이야. 기다리는 동안 여기를 집으로 삼으면 돼. 너는 남편이 되고 나를 아내라고 부르면 돼."
그는 입속으로 중얼대다가 크게 불러 보았다. "여보!"
"연습하는 것 같은데."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론이 갑작스럽게 말했다. "연습하는 동안 다른 것도 해볼 수 있을지 몰라."
"무엇인데?"
"너는 싫어할지도 몰라."
"무언데?"
"네가 내 엄마 노릇을 하는 거야."
"그건 쉽지."
"싫으냐?"
"아니, 좋아. 지금 시작하고 싶니?"
"그래, 어떻게 하지?"
"아, 내가 가르쳐 주지." 에이브라가 달래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가야. 이리 온 엄마 무릎을 베거라. 엄마가 안아줄게." 그녀가 아론의 머리를 끌어 눕히자, 아론은 느닷없이 울기 시작했다. 끊일 줄 몰랐다. 그는 조용히 울었다. 에이브라는 아론의 뺨을 쓰다듬고 흐르는 눈물을 스커트 자락으로 닦아 주었다.
해는 샐리너스 강 너머로 기울고 새는 황금빛 들녘에서 아름답게 지저귀기 시작했다. 버드나무 자기 밑의 장면은 이 세상 어느 것 보다도 아름다웠다.
아론은 천천히 울음을 멈췄다. 기분이 흡족했다.
"착한 아기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엄마가 머리를 빗겨줄게."
아론은 일어나 앉아 거의 화난 듯이 말했다. "나는 화가 나지 않고는 거의 운 일이 없는데, 내가 왜 울었는지 모르겠어."
에이브라가 물었다. "넌 어머니를 기억하니?"
"못해, 아주 어렸을 때 돌아가신 걸."
"사진이라도 봤을 것 아니야?"
"못 봤어. 사진이 없어. 리이 아저씨에게 물어봤는데 없다는 거야. 아니야, 카알이 불어본 것 같아."
"언제 돌아가셨는데?"
"카알과 나를 낳고 바로."
"이름이 무엇인데?"
"아저씨가 그러는데 캐시래. 왜 그렇게 묻니?"
에이브라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얼굴색은?"
"뭐라고?"
"머리색이 엷으나 까맣냐 말이야?"
"몰라."
"아버지가 말 안 해주셨니?"
"물어본 적이 없는데."
에이브라는 말이 없었다. 잠시 후에 아론이 물었다. "왜 그래? 왜 말을 안 하니?"
에이브라는 넘어가는 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론은 불안한 듯 물었다. "화났어?" 그는 시험적으로 말해 보았다. "여보?"
"아니야, 화 안 났어. 생각 중이야."
"무엇을?"
"그 무엇을 대해서." 에이브라는 얼굴을 붉히며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생각을 억제했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떨까?"
"모르겠어. 그저 그런 거지 뭐."
"너는 다른 점을 모르고 있는 모양이구나?"
"알고 있어. 네가 터놓고 말해 봐. 너는 블리틴 잡지의 수수께끼 같아."
에이브라는 침착하게 마음을 집중시키고 말했다. "너는 어머니를 갖고 싶니?"
"미친 소릴 하는구나. 그야 물론이지. 누구나 다 그렇지 않아. 내 감정을 상하게 하려는 것은 아니지? 카알은 가끔씩 마음을 상하게 해놓고는 씩 웃어버리지."
에이브라는 지는 해에서 눈길을 돌렸다. 햇빛이 누에 자주빛 반점을 남겨 놓아 잘 보이지 않았다.
"너는 조금 전에 비밀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지?"
"그렇지."
"너는 목에 칼이 들어가도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갖고 있니?"
"물론 갖고 있지."
에이브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걸 나한테 말해봐, 아론?" 그녀는 이름을 애무하듯 불렀다.
"무엇을 이야기하려고?"
"네가 제일 깊숙이 감추고 있는 비밀을 말해 보란 말이야."
아론은 깜짝 놀라 그녀에게서 물러섰다. "안 하겠어. 나한테 그걸 요구할 권리가 있니?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을 거야."
"이리 와, 내 애기야 - 엄마한테 말해 봐라." 그녀는 달래듯 말했다.
아론은 다시 눈물이 솟구쳤다. 그러나 이번에는 분노의 눈물이었다. "나, 너하고 결혼을 할지도 의심스럽게 되었어. 지금 집으로 갈래."
에이브라는 그의 손목을 잡고 매달렸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아양을 떠는 빛이 없었다. "너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야. 너는 비밀을 잘 지키는구나."
"왜 그랬어? 나 화났단 말이야. 기분 나빠."
"너한테 비밀을 말하려고 해."
"하!" 그는 조롱하듯 말했다. "이제 누가 비밀을 지키지 못하는 거야?"
"결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너에게 좋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 애길 너에게 말하려는 거야. 너를 기쁘게 할지도 몰라."
"이야기하지 말라고 누가 말했어?"
"아무도 안 했어. 나 혼자 생각했던 거지."
"그러면 사정이 다르지. 비밀이 뭐야?"
빨간 해가 블랑코 가에 잇는 톨로트 집 지붕에 걸려 잇었다. 톨로트 집 굴뚝이 해를 등지고 까만 엄지손가락 솟아 있었다.
에이브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우리가 너의 집에 갔던 때를 기억하지?"
"물론이지!"
"사륜마차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어. 그런데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그걸 모르고 말을 하던데, 네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거야. 도망갔대. 좋지 않은 일이 네 어머니에게 일어나서 도망갔대."
아론이 탁한 목소리로 말했다. "죽었어."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지 않았으면 좋지 않겠니?"
"아버지가 그러시는데 어머니는 돌아가셨대. 아버지는 거짓말쟁이 가 아니야."
"어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르지."
"아버지는 알고 계실 걸." 그의 말소리에는 자신감이 없었다.
에이브라가 말했다. "우리가 그분을 찾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니? 기억력을 상실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어. 우리가 그분을 찾아내면 기억이 되살아날 지도 모르지." 영광된 로맨스가 그녀를 커다란 물결에 태우고 떠내려가게 했다.
아론이 말했다. "아버지한테 물어봐야지."
"아론, 내가 얘기한 것은 비밀이야." 그녀는 엄격하게 말했다.
"누가 그래?"
"내가 말하는 거야. 자, 나를 따라 해. 누설하면 독약을 먹고 목을 자른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따라서 했다. "누설하면 독약을 먹고 목을 자른다."
그녀가 말했다. "손바닥에 침을 뱉어 - 이렇게 - 됐어. 이번엔 손을 내놔 - 알겠니? 침을 뭉개. 머리에다 비벼." 두 아이들은 공식대로 했다. 그러고 나서 에이브라가 엄숙하게 말했다. "이 비밀을 누설할 테면 해봐. 난 이렇게 선서를 하고도 비밀을 누설한 아이가 헛간에 불이 나서 타죽은 것을 알고 있으니."
해는 톨로트 집 너머로 넘어갔고 금빛도 사라졌다. 저녁 별이 토르산 위에서 가물거렸다.
에이브가가 말했다. "산 채로 가죽을 벗기겠다. 가자, 빨리! 아버지가 나를 찾을 거야. 매 맞겠다."
아론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녀를 쳐다보았다. "매를 맞다니! 때리기야 하겠어?"
"정말이야."
아론이 열을 올리며 말했다. "때릴 테면 때려 보라지. 때리면 내가 죽이겠단다고 말해." 미간이 넓은 파란 눈이 좁혀지면서 빛났다. "내 아내를 때릴 사람은 아무도 없어."
에이브라는 버드나무 및 어스름 속에서 그의 목에 팔을 감고 열린 입에 키스를 했다. "사랑해요, 여보."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는 스커트를 무릎까지 치켜올리고 쏜살같이 집으로 달렸다. 레이스를 단 하얀 속바지가 보였다.
3
아론은 버드나무로 되돌아가 줄기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았다. 마음은 회색빛이고 기분은 아픔 투성이었다. 그는 통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감정을 사고와 그림 속으로 정리하려고 애를 썼으나 쉽지 않았다. 천천히 사고하는 그의 마음은 그 많은 생각과 감정을 한꺼번에 수용할 수는 없었다. 사고의 문을 꽉 닫고 육체적 고통만을 받아들였다. 잠시 후에 문이 조금 열리더니 한 번에 하나씩 들어오게 하여 결국은 다 수용되었다. 닫힌 미음 밖에서는 커다란 것이 들어오겠다고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아론은 그것을 마지막까지 밀어냈다.
먼저 에이브라를 들어오게 하고는 그녀의 옷, 얼굴, 뺨에 닿던 손의 감촉, 밀크 같기도 하고 자른 유리 같기도 한 그녀의 향기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를 다시 보고 느끼고 듣고 향내를 맡았다. 그녀가 손이며, 손톱이며, 모든 것이 얼마나 청결한가를, 그리고 교정에서 낄낄대던 다른 소녀들과는 천양지차가 있게 얼마나 솔직한가를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순서대로 그는 그녀가 머리를 껴안던 일, 어린애같이 울던 일을 생각했다. 무엇인가를 그리워하다가 그것을 손에 넣은 감격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이었다. 그것을 얻게 되어서 울음을 떠트렸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음으로 그녀가 자기를 시험해 보던 일을 생각했다. 만일 자기가 비밀을 털어놓았다면 그녀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비밀을 이야기하려고 했었다면 무슨 비밀을 털어놓았을까? 지금 현재 그의 마음속으로 들어오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비밀 이외에는 다른 비밀을 생각해 낼 수 없었다.
그녀는 아주 예리한 질문을 했었다. "어머니가 없으면 어떤 기분일까?" 하던 이야기가 그의 마음속으로 슬쩍 들어왓다. 어떤 기분이었을까? 다른 것과는 별개의 기분이었다. 다른 아이들의 어머니들이 크리스마스나 졸업식에 참석했을 때 교실에서 흐느껴 울며 느끼는 무언의 그리움이 바로 어머니가 없을 때 느끼는 기분이었을까?
샐리너스 주위에는 습지와 튤립이 무성한 연못이 많았다. 어떤 연못에서나 수천 마리의 개구리가 서식했다. 저녁이 되면 온통 개구리 소리가 뒤덮여 일종의 포효 속의 고요를 이루었다. 그것이 일종의 배일이며 배경이었다. 그 소리가 갑자기 사라지면, 마치 우레가 지난 후처럼 충격적인 일도 생각되었다. 만일 한밤중에 개구리 소리가 멈춘다면 샐리너스의 사람들은 누구나 큰 소음이라도 일어난 생각에서 잠을 깼을 것이다. 수백 만의 개구리 노래 소리에는 리듬과 억양이 있는 듯했다. 눈의 작용으로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귀의 작용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이제 버드나무 밑은 아주 어두웠다. 아론이 그 커다란 문제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어물대고 있는 사이에 그 문제는 마음속으로 슬쩍 들어왔다.
그의 어머니는 살아 있었다. 어머니가 꼼짝 않고 싸늘하고 썩지 않고 지하에 누워있는 그림을 마음속에 그린 적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이 어머니는 그렇지 않았다. 어디에선가 어머니는 돌아다니고 말을 하고 손도 움직이고 눈도 열려 있었다. 밀려오는 기쁨 가운데도 한가닥 슬픔이 그에게 몰려왔다. 무서운 상실감이었다. 아론은 어리둥절했다. 그는 뽀얀 슬픔을 들여다보았다. 어머니가 살아 있다면 아버지는 거짓말쟁이였다. 한 사람이 살아있으면 다른 사람은 죽어 있었다. 아론은 나무 밑에서 크게 소리쳤다.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동부 어디엔가 묻혀 계시다!"
어둠 속에서 리이의 얼굴이 나타나더니 부드럽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논리정연했다. 진실에 대하여 존경에 가까운 애착을 느끼고 있던 그는 자연히 그 반대, 다시 말하면 거짓에 대해선 역시 혐오를 받을 만한 것이었다.
리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친절한 의미에서 거짓말을 사용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러나 친절하게 작용하는 일이 없아. 진실의 고통은 곧 사라질 수 있지만 서서히 좀먹어가는 거짓의 고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달리는 아픔이라고 할 수 있다." 리이는 참을성 있게 서서히 작용하여 아담을 진실의 중심, 기초, 핵심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아론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저었다. 믿지 못하겠기에 세게 도리질을 했다. "아버지가 거짓말쟁이 라면 아저씨도 거짓말쟁이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가 물어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카알도 거짓말쟁이였다. 그러나 리이의 생각에 따르면 카알은 재치 있는 거짓말쟁이였다. 무엇인가 죽어야 한다고 아론은 느꼈다 - 어머니가 아니면 그의 세계가 죽어야만 했다.
해결책이 갑자기 떠올랐다. 에이브라는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고 그녀의 부모들도 들은 이야기를 했을 뿐이었다. 그는 일어서서 어머니를 죽음 속으로 밀어놓고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는 저녁 식사에 늦었다. "에이브라와 같이 있었다. "그가 설명했다.
저녁 식사 후 아담이 새로 사 온 안락의자에 앉아 "샐리너스 인텍스"를 읽고 있을 때 누가 어깨를 건드리는 것을 느끼고 쳐다보았다. "아론, 무슨 일이니?" 그가 물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론이 인사했다.
제37장
1
샐리너스의 2월은 축축하고 춥고 비참한 일들이 많았다. 비가 제일 많이 오고 강물이 부는 것도 모두 이 달의 일이었다. 1915년 2월은 비가 많이 온 해였다.
트래스크 가족은 샐리너스에 안주했다. 리이는 일단 책방을 차리겠다던 꿈을 포기하자 레이노드 베이커리 옆집에 자신을 위한 새 거처를 마련했다. 농장에서는 그의 재산을 한 번도 풀은 적이 없었다. 다른 곳으로 늘 옮길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처음으로 안락하고 영속적인 자신의 거처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는 길가에 있는 큰 침실을 쓰게 되었다. 리이는 저축한 돈을 꺼냈다. 전에는 필요하지 않은 데에는 일전 한푼 쓰지 않았었다. 돈을 모아 책방을 차릴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작고 딱딱한 침대와 책상을 샀다. 책 선반을 만들어 책을 꽂고 부드러운 융단을 사들이고 벽에는 관화를 걸었다. 가장 좋은 독서 램프를 사고 깊숙하고 안락한 모리스 의자를 사서 그 밑에 놓았다. 마지막으로 그는 타자기를 사서 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파르타식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그는 트래스크 가정을 새로 꾸몄다. 아담은 이에 반대하지 않았다. 가스스토브가 들어오고 전기가 가설되고 전화를 놓았다. 그는 아담의 돈을 아낌없이 썼다 - 새 가구, 새 카펫, 가스히터,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샀다. 얼마 안 돼서 그의 집은 샐리너스에서 제일 가구를 잘 갖춘 집이 되었다. 리이는 이러한 자신을 아담에게 변호했다.
"당신은 돈이 많으시지요. 그것을 쓰지 않는다면 수치스러운 일일 겁니다."
"내가 뭐라고 하나?" 아담은 항의하듯 말했다. "나도 무언가 사고 싶네. 무엇을 하면 좋을까?"
"로건 음악사에 가서 새 축음기를 들어보면 어때요?"
"그래야 되겠군." 아담은 고딕풍의 커다란 빅토 축음기를 사고 어떤 새 판이 들어 왔나를 보러 정기적으로 나갔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담은 내적 껍질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그는 월간 "아틀랜틱" 과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구독했다. 메이슨 복지회에도 가입하여 얼크스 자선회도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는 아이스박스에 매혹되었다. 냉동 서적을 구입하여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실, 아담은 일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는 오랜 잠에서 깨어나 일을 필요로 했다.
"나는 사업에 투신할 생각이야." 그는 리이에게 말했다.
"사업을 벌일 필요는 없지 않아요. 살 만한 돈이 충분한데요."
"하지만 무엇인가 하고 싶은 걸."
"그렇다면 이야기는 다르죠. 무슨 일을 하고 싶으세요? 당신이 사업에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왜 없어?"
"생각이 그렇다는 거죠."
"리이, 신문 기사를 보여주고 싶네. 시베리아에서 커다란 코끼리가 발견되었다는 거야. 수천 년 동안 얼음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 고기를 아직도 먹을 수 있다는 거야."
리이가 그에게 웃음을 지었다. "별난 생각을 하고 계시군요. 아이스박스 속의 작은 그릇에 무엇을 넣으시겠다는 거예요?"
"여러 가지 물건을 넣지."
"그것이 사업인가요? 그릇 몇 개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나겠군요."
"아이디어가 그렇다는 거야. 나는 그 아이디어 생각뿐이야. 물건을 차게만 보관할 수 있다면 얼마나 보관할 수 있다는 생각이야."
"아이스박스에 코끼리 고기는 넣지 않도록 합시다." 리이가 말했다.
만일 아담이 샘 해밀튼 처럼 수천 가지의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다면 모두가 사라졌을지도 모르지만, 그는 오직 한 가지 아이디어만을 갖고 있었다. 얼어붙은 코끼리의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떠나지 않았다. 작은 그릇에 담은 과일이나 푸딩이나 요리된 고기와 생고기 등이 아이스박스 안에 계속 있었다. 그는 박테리아에 관한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은 모두 가고, 알기 쉽게 과학적으로 쓴 잡지를 주문하기도 했다. 한가지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사람이 보통 그렇듯이 그도 그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샐리너스에 자그마한 제빙 공장이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아이스박스가 있는 집과 아이스크림 집에 얼음을 공급하기에는 충분했다. 말이 끄는 얼음 마차가 매일 정기적으로 다녔다.
아담은 이 제빙 공장을 방문하기 시작했고 얼마 안 있어서 냉동실로 작은 그릇을 직접 들고 왔다. 그는 샘 해밀튼이 있어서 이 냉동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하고 절실히 바랬다.
샘이면 이 분야를 아주 재빠르게 해결했으리라고 그는 생각했다.
아담은 어떤 비오는 오후 샘 해밀튼을 생각하며 제빙 공장에서 돌아오다가 윌 해민튼이 애보트 술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를 따라 들어가 바아에 기대고 앉았다. "한번 놀러 와서 저녁 식사라도 같이하지 그래?"
"그렇게 하지요. 해결할 거래건이 있어요. 끝나면 가죠.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요?"
"별로 중요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생각하는 것이 있어서 충고를 받고 싶어."
그 군의 거의 모든 사업이 조만간 윌 해밀턴의 관심사가 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는 아담이 부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면 사양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디어는 별개지만 일단 재정적 뒷받침이 되면 사정은 달랐다. "농장을 상당한 값으로 내놓겠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글세 아이들이, 특히 카알이 말일세. 거기를 좋아해서 내놓고 싶지는 않아요."
"그것이라면 팔아드릴 수도 있지요."
"아니야, 세를 주었어. 세금은 그것으로 물을 수 있어. 그대로 갖고 있겠어."
"지금 저녁 식사를 하러 갈 수는 없으니 다음에 들르지요." 윌이 말했다.
윌 해밀튼은 대단히 실제적인 사업가였다. 그가 얼마나 많은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그가 재간 있고 비교적 돈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사업상의 거래가 실제적으로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늘 바삐 뛰어다니는 것은 그의 정책의 일부였다.
그는 에보트의 집에서 혼자 식사를 한 수 한참 있다가 샌트럴 애비튜 모퉁이를 돌아 아담 트래스크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없었다. 리이는 바느질 바구니를 옆에 놓고 앉아 쌍둥이들이 학교갈 때 신는 길고 까만 스타킹을 꿰매고 있었다. 아담은 "사이언티픽 아메리탄" 잡지를 읽고 있었다. 그는 윌을 맞아들이고 의자를 권했다.
윌은 의자에 앉더니 두툼하고 까만 시가를 꺼내 불을 붙였다. 그는 아담이 입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분 전환하기에 좋은 날씨야. 어머니는 어떠신가?"
"좋으십니다. 매일 젊어지시는 것 같아요. 아드님도 많이 겄지요?"
"컸지. 카알은 연극에 나갈 거라네. 훌륭한 배우야. 아론은 모범생이고, 카알은 농사일을 하고 싶어 하지."
"농사일도 잘만 하면 나쁠 것이 없지요. 국가도 앞을 내다보는 농부를 환영할 거예요." 윌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는 아담의 재산이 과대 평가되고 있지 않은가 생각했다. 아담이 돈을 벌 계획을 하고 잇는 것은 아닌가? 그는 트래스크 농장에 얼만큼 돈을 빌려줄 수 있고 또 그가 얼마나 벌어 쓸 수 있는지를 재빨리 계산해 보았다. 숫자도 이자도 똑같지 않았다. 그때까지 아담은 그의 제의를 내놓지 않았다. 윌은 조바심이 났다. "나도 오래 있을 수는 없어요. 오늘 밤늦게 누구를 만나기로 약속이 돼 있어요."
"커피 한 잔 더 하겠나?"
"아닙니다. 잠이 안 오는걸요. 저를 만나고 싶으셨던 일은?"
"나는 자네 부친을 생각하고 해밀튼 집안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거네."
윌은 의자에 다소 편안하게 앉았다. "얘기를 좋아하셨던 분이죠."
"어쨌든 그분은 사람을 실제보다도 더 좋게 만들어 놓으셨지." 아담이 말했다.
리이가 양말을 꿰매다 얼굴을 쳐들고 보았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말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제일 말을 잘하는 사람인지도 모르죠."
윌이 말했다.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니 이상하게 들리는군. 전에는 틀림없이 중국식 영어를 했었는데."
"전엔 그랬죠." 리이가 말했다. 그것은 허영이었어요." 그는 아담에게 미소 짓고 윌에게 말했다. "시베리아 코끼리가 얼음 속에서 발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수만 년이나 되었는데도 고기가 싱싱했대요."
"코끼리가?"
"네 오래전에 살고 있던 코끼리래요."
"고기는 아직도 싱싱했고?"
리이가 말했다. "돼지고기처럼 맛이 있대요." 그는 무릎이 떨어진 스타킹에 나무 받침대를 밀어 넣었다.
"그거 아주 재미있는데." 윌이 말했다.
아담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러다간 리이한테 한 대 얻어맞겠는데. 너무 빙빙 돌았으니까 말이야. 내가 가만히 앉아 있기가 지루해서 일의 발단이 생긴 것이야. 시간을 보낼 일을 갖고 싶단 말이야."
"농장 일을 하시지 그러세요?"
"아니야, 거기에 흥미가 없어요. 난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사람과는 달라요. 일 자체를 찾고 있는 거야.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야."
윌은 경계심을 풀었다. "그러면 내가 할 일은 무엇이죠?"
"내가 아이디어를 하나 말해 줄 테니 자네의 의견을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자네는 사업가니까."
"물론이죠." 윌이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면야."
"나는 냉동에 대해서 조사를 해왔네.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는데 그것을 지워버릴 수가 없어. 잠을 자도 그 생각이 나는 거야. 이렇게 나를 괴롭힌 것은 여지껏 아무것도 없었네. 이것은 대단한 아이디어야. 하기야 허점도 많겠지만."
윌은 포갰던 다리를 내려놓고는 바짓가랑이를 올라가지 않는 데까지 잡아 올렸다. "말씀을 하세요 - 빨리빨리요. 담배 같아요?"
아담은 듣지 못했고 들었다 하더라도 뜻을 알지 못했다. "나라가 온통 변해가고 있지 않나." 아담이 말했다. "이제 사람들은 옛날 방식으로 살아가려 하지 않네. 겨울에 제일 큰 오렌지 시장이 어디 있는지 아나?"
"모르겠는데요. 어딥니까?"
"뉴욕시에 있지. 책에서 읽었네. 그런데 추운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겨울에도 상하기 쉬운 것 예를 들면 완두콩이나 상치니 꽃양배추 같은 것을 먹고 싶어 하지 않을까? 이러한 것들을 여러 달 동안 맛볼 수 없는 곳이 많지. 그런데 여기 샐리너스 계곡에서는 사시사철 그 재배가 가능하단 말이야."
"여기와 거기는 다르니까요." 윌이 말했다. "아이디어가 무엇이에요?"
"리이가 커다란 아이스박스를 사왔지. 그런데 내가 흥미를 갖게 됐어. 거기에 여러 가지 야채를 집어넣었지. 여러 가지 방법을 써봤어. 얼음을 잘게 잘라 그 속에 상치를 넣고 비닐에 싸서 3주일을 뒀다가 꺼내도 신선하고 좋단 말야."
"계속하세요." 윌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자네가 알다시피 철도회사에서는 과일 운반차를 만들었지 않나. 직접 가서 봤는데 멋지드먼. 한겨울에도 상치를 동부 해안으로 수송할 수 있다고 생각지 않니?"
윌이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겁니까?"
"여기 샐리너스의 제빙 공장을 사서 물건을 운반해 보겠다는 거야."
"거금이 들 겁니다."
"돈이 많이 있어요." 아담이 말했다.
윌 해밀튼은 화가 나서 입을 오므렸다. "내가 여길 왜 왔는지 모르겠군요. 내가 더 잘 알지요."
"무슨 뜻인가?"
"이것 보세요. 어떤 사람이 나에게 어떤 아이디어에 관하여 조언을 받으러 오는 경우, 실제로는 조언을 받고 싶어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어요. 내가 동의하기를 바랄 뿐이죠. 그와 우정을 유지하려면 그의 아이디어가 훌륭하니 밀고 나가라고 말할 거예요. 그러나 나는 당신을 좋아하고 또 우리 가족과 친분이 있으니 솔직히 말씀드리겠습니다."
리이는 바느질을 멈추고 바느질 바구니를 옮겨 놓고 안경을 바꿔 썼다.
아담은 나무라듯 말했다. "무엇 때문에 자네는 화가 났나?"
"나는 빌어먹을 놈의 발명가 집안 출신이죠." 윌이 말했다. "우리들은 아침 식사 대신 아이디어를 먹고 살았죠. 우리들은 너무도 많은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반찬거리 살 돈 마련까지 잊고 있었죠. 돈이 좀 모이면 아버지나 톰은 특허를 내는 데 썼지요. 아이디어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머니를 제외하는 경우 유일하게 나뿐이었지요. 톰은 사람들을 돕기 위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죠. 그중 몇몇 아이디어는 사회주의와도 흡사한 것이었죠. 돈벌이를 할 생각은 없다고 말씀하신다면 이 커피잔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말겠어요."
"이윤은 별로 관심이 없다니까."
"그만두세요. 솔직히 말씀드리겠어요. 4만 내지 5만 달러를 잃어도 괜찮다면 해보세요. 그러나 말씀드리건대 그 빌어먹을 놈의 아이디어는 땅속에 묻어버리세요."
"무엇이 잘못됐단 말인가?"
"모든 것이 잘못됐어요. 동부 사람들은 겨울의 야채에 익숙해 있지 않아요. 그러나 사지 않을 거예요. 당신의 화물차는 철도 대피선에 쳐박혀 있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적재화물을 잃게 될 거예요. 시장은 제한돼 있어요. 빌어먹을! 아무것도 모르는 분이 아이디어 하나를 갖고 사업에 뛰어들겠다니 미치겠군요."
아담이 한숨을 쉬었다. "자네 말을 들으니 샘 해밀튼이 죄인이 었던 것처럼 들리는군."
"그분은 나의 부친이었고 나는 그분을 사랑했지요. 그러나 그분이 아이디어를 집어치웠으면 하고 나는 바랬어요." 윌은 아담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의 눈에 놀라는 표정이 생기는 것을 보고 윌은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나는 우리 집 가족들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습니다. 좋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내가 말씀드린 충고는 바꿀 수가 없어요. 냉동은 집어치우세요."
아담은 천천히 고개를 리이에게 돌렸다. "저녁에 먹던 레몬 파이가 좀 남았던가?"
"없어요." 리이가 말했다. "부엌에서 새앙쥐 소리가 들렸죠? 아이들 베개에 달걀 흰자위가 묻었는지 모르겠네요. 위스키는 좀 있지요."
"그걸 좀 할까?"
"나는 흥분해 있습니다." 윌은 자조하려고 했다. "한잔하면 좋을지도 모르죠." 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고 목소리는 긴장되어 있었다. "나는 너무 뚱뚱해져 가는군요."
그러나 나는 두 잔을 마시자 긴장이 풀렸다. 그는 편안하게 앉아 아담에게 조언했다. "어떤 것들은 그 가치 결코 변하지 않지요. 투자를 하려면 세상을 둘러봐야 해요. 유럽에서의 전쟁은 오래갈 것 같아요. 전쟁이 있으면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죠. 지금 그렇다는 것이 아니에요. 그렇게 될 거란 말이에요. 나는 윌슨 대통령을 믿지 않아요 - 이름만 내세우고 큰소리만 하죠. 기아가 생기는 경우 사하지 않는 곡물에 투자를 하면 거부가 될 거예요. 얼음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쌀과 옥수수와 보리와 콩을 심으세요. 그걸 저축해 놓으면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살 수 있어요. 그 넓은 땅에 콩을 심어 비축을 해놓으면 자식들은 앞날을 걱정할 것이 없을 거예요. 콩이 지금은 3센트밖에 안 하지만 우리가 전쟁에 끼어드는 경우 틀림없이 10센트까지는 오를 거예요. 재미를 보고 싶으시면 콩을 심으세요."
그는 기분 좋게 집을 나왔다. 그에게 밀어닥쳤던 부끄러움은 사라지고, 그는 좋은 조언을 했다고 생각했다.
윌이 가고 난 후 리이는 레몬 파이를 3분의 1쯤 가지고 왔다. "그는 너무 뚱뚱해져 가서요."
아담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고 싶다는 말을 했을 뿐이야."
"제빙공장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살까 해."
"콩도 심을 수 있지요." 리이가 말했다.
2
그해 늦게 아담은 대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 지방에서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커다란 센세이션이었다. 그가 준비를 완료하자 사업가들은 그를 안목이 있고, 예견이 있고, 전진적 정신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평했다. 여섯 차량에 실은 얼음 상치의 출발은 마을 전체의 행사 같았다. 모든 차량에는 "샐리너스 계곡의 상치"라는 커다란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 사업에 투자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담은 자기가 상상하지 못했던 경력을 쏟았다. 상치를 모으고 다듬고 상자에 넣고 얼음에 채우고 차에 싣는다는 것은 큰일이었다. 모든 것이 즉석에서 이루어져야만 했다. 많은 일손을 고용해야 했고 작업 방법을 가르쳐야 했다. 모든 사람들이 충고는 했으나 도와주지는 않았다. 아담이 거액을 썼다고 추정되었으나 얼마의 돈을 썼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담도 몰랐다. 오직 리이 만이 알았다.
아이디어는 좋았다. 상치는 꽤 비싼 가격으로 뉴욕에 있는 위탁 판매인에게 위탁되기로 되어 있었다. 드디어 기차는 떠나고 모든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가 기다리고 있었다. 만일 성공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투자를 하려 했을 것이다. 윌 해밀튼마저도 충고에서 잘못된 것이 없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무엇이나 할 수 있고 용서할 줄 모르는 적이 일련의 사건을 계획했다 하더라도 더 효과적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기차가 세크라멘토우에 왔을 때 눈사태가 일어나서 이틀 동안이나 시에라 산이 막혀서 여섯 차량은 얼음을 녹이면서 대피선에 서 있어야 했다. 3일째 되는 날 화차가 산맥을 통과는 했지만 중서부에는 때아닌 더운 날씨가 지속되었다. 시카고에서는 주문의 혼란이 일어났다.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그저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였다. 아담의 여섯 차량은 5일 이상이나 역 구내에 서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했다. 자세하게 설명을 붙일 필요가 없었다. 뉴욕에 도착한 것은 치우는 데도 막대한 돈이 드는 여섯 차량의 쓰레기뿐이었다.
아담은 위탁 판매소로부터 전보를 받아 읽고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이상한 미소가 계속 떠오르고 있었다.
리이는 아담 자신이 마음을 가다듬도록 내버려 두었다. 아이들은 샐리너스에서는 반을 들었다. 아담은 바보였다. 모든 것을 아는 체하는 공상가들은 항상 문제 속에 빠져들어 갔다. 사업가들은 그 일에 손을 대지 않은 자신들의 예견에 기뻐했다. 사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경험이 필요했다.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항상 문제에 빠졌다. 증거를 보고 싶으면 아담이 농장을 어떻게 운영해 왔는가를 보면 된다. 바보와 돈은 곧 헤어졌다. 이일이 그에게 교훈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제빙 공장의 생산을 곱으로 했었다.
윌 해밀튼은 자기가 그 계획에 반대를 했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가도 자세하게 말해주었다는 것을 회상했다. 그가 기쁨을 느꼈던 것은 아니지만 건전한 사업가의 충고를 듣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윌은 무책임한 아이디어에 대해선 많은 경험을 갖고 있었다. 간접적으로 샘 해밀튼도 바보였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아이디어에 미쳐 있으니까.
충분한 시간이 지났다고 느꼈을 때 리이는 넌지시 말하지 않고, 아담의 주의를 끌고 지속시키기 위해 그의 옆에 똑바로 앉았다.
"기분이 어떠세요?"
"좋아."
"이제는 자신의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 가시지 않겠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나?"
"전의 안색을 회복하셨으니까, 그리고 그 몽유병자의 빛이 눈에 어려 있어요. 이렇게 말씀드리면 기분이 나쁘실까요?"
"아니야, 이제 내가 무일푼이 되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9천 달러와 농장이 남았죠."
"쓰레기 처분에 2천 달러의 청구서가 왔었지."
"지불되었어요."
"새 제빙공장에 빚도 좀 지고 있고."
"지불되었어요."
"9천 달러가 남았다고?"
"농장하고요. 제빙 공장은 처분할 수 있을지도 모르죠."
아담의 얼굴이 굳어지고 몽롱했던 미소가 사라졌다. "일이 잘될 거라고 나는 아직도 믿고 있네. 이번 일은 사고 투성이였으니까. 제빙 공장은 그대로 둘 생각이야. 차게 하면 물건을 오래 보존하게 하니까 말일세. 게다가 제빙 공장은 약간의 돈도 벌지. 무엇인가 생각해 낼 수 있을 거야."
"돈 드는 일은 생각해 내지 마세요." 리이가 말했다. "내 가스스토브까지 버리고 싶지는 않으니까요."
3
쌍둥이들은 아담의 실패로 깊은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이제 열다섯 살이 되었고 자기네들은 부자집 아이들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해왔기 때문에 그 충격을 잊기가 힘들었다. 축제와 같은 분위기만 없었더라도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화차에 달렸던 플래카드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쳤다. 사업가들이 아담을 놀려 대고 있었지만 그보다도 고등학교 학생들은 더욱 잔인했다. 하룻밤 사이에 쌍둥이들을 "아론과 카알 상치" 아니면 간단하게 "상치 대가리"라고 불렀다.
아론은 이 문제를 에이브라와 상의했다. "커다란 변화가 올 것 같아." 아론이 그녀에게 말했다. 허세나 비밀을 가지고 그의 수줍음을 감추려 할 수도 있다. 소년이 한번 거절을 당하면 실제로 거절을 받지 않아도 거절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고 더욱 나쁜 것은 그러리라고 예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거절을 유인하게 될 수도 있다.
카알의 경우, 이 과정이 하도 길고 느려서 이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자기를 보호하는데 충분히 튼튼한 자만심이라는 벽을 자기 둘레에 쌓아놓았다. 이 벽에 약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론과 리이에, 그리고 특히 아담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전혀 무관심했었기 때문에 카알이 안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모른다.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주목을 받는 것보다도 더 나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카알은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었다. 만일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만히 가서 아버지 무릎에 가볍게 기대면, 아담의 손은 자동적으로 카알의 어깨를 쓰다듬곤 했다. 아담은 자기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애무는 소년에게 대단한 감정적 용솟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특별한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때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의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것은 확고한 동경을 나타내는 의식적 상징이었다.
장소가 변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카알은 킹 시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샐리너스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권위와 다소 칭찬을 받고는 있었지만 친구다운 친구는 없었다. 그는 혼자 지내고 혼자 다녔다.
에이브라는 이제 아름다운 소녀로 성장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젖가슴은 부풀어 올랐고 얼굴은 차분하고 온후한 미모가 되었다. 예쁠 때는 지났다. 강인하고 착실하고 여성다웁게 되었다. 그녀는 그의 걱정스러운 얼굴을 보며 물었다. "무슨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래?"
"한 가지, 우리가 가난하다는 거야."
"어쨌든 공부를 해야 될 거 아냐?"
"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
"지금도 할 수 있지. 나도 도와줄 거고, 너의 아버지는 재산을 탕진했다던?"
"모르겠어. 사람들이 그러더군."
"사람들이라니?" 에이브라가 물었다.
"모든 사람이, 그리고 네 부모들은 네가 나와 결혼하는 것을 반대하실지도 모르지 않니?"
"그러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을 거야."
"너는 조금도 상관없단 말이지?"
"그럼." 그녀가 말했다.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아. 키스해 주겠어?"
"여기서? 길에서?"
"왜 못해?"
"다들 보는데."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 에이브라가 말했다.
아론이 말했다. "아니야, 나는 일을 그렇게 세상에 알리고 싶지 않아."
그녀는 몸을 돌려 그의 앞에 섰다. "이것 보세요. 지금 키스를 해요."
"왜?"
그녀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야 내가 상치 대가리의 아내라는 것을 사람들이 알 게 아냐?"
그는 당혹하여 재빨리 입을 맞추고 강제로 그의 옆에 세웠다. "어쩌면 내 자신이 약속을 취소해야 할지도 몰라."
"무슨 소리야?"
"이제 나는 너에게 적합하지 않단 말이야. 나는 전혀 별다른 가난한 아이에 불과해. 너의 아버지가 달라진 것을 내가 못 본 줄 아니?"
"너 정말 돌았구나." 에이브라는 약간 얼굴을 찡그렸다. 그녀도 아버지가 달라진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벨의 과자집에 들어가 테이블에 앉았다. 그해에는 샐러리 음료가 대유행이었다. 그 전 해에는 루트비어 아이스크림 소다수가 유행이었다.
에이브라는 빨대로 거품을 부드럽게 저으면서 그 상치 사업 실패 후에 아버지가 어떻게 달라졌나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 일이 있다. "기분을 바꾸기 위해 다른 사람과 사귀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아론하고 약혼을 했어요."
"약혼이라니!" 그는 그녀에게 호통을 쳤다. "언제부터 어린애들이 약혼을 해? 주위를 좀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바다에는 다른 고기도 많다."
최근에는 가족들이 적합성에 관한 언급도 있었고, 사람이란 스캔들을 영원히 감출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암시도 있었다는 기억이 났다. 이런 일은 아담이 전 재산을 잃고 난 후에 일어났었다.
그녀는 테이블 위로 몸을 굽혔다. "우리가 정말 할 수 있는 일은 아주 간단해서 너는 웃음이 나올 거야."
"무엇인데?"
"우리가 너의 아버지의 농장을 경영하는 거야. 아버지가 그러는데 아름다운 농토라고 하시더라."
"안돼." 아론이 재빨리 말했다.
"왜 안돼?"
"나는 농부가 되고 싶지도 않고, 또 너를 농부의 아내로 만들고 싶지도 않아."
"네 직업이 무엇이면 어때? 아론의 아내가 되는 건데."
"대학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아론이 말했다.
"내가 도와줄게." 에이브라가 다시 말했다.
"돈은 어디서 마련하고?"
"훔치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이 마을을 떠나고 싶어. 모든 사람이 나를 비웃고 있어. 그것을 참을 수가 없어."
"사람들은 그걸 잊어버릴 거야."
"아니야. 잊지 않을 거야. 고등학교를 마치기 위해 2년을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아론, 너는 나에게서 떠나고 싶니?"
"아니야, 빌어먹을. 아버지는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해서 망쳐버릴게 뭐야."
에이브라가 그를 꾸짖었다. "아버지를 나무라지 마. 만일 일이 잘됐다면 모든 사람들이 그분에게 와서 고개를 숙였을 거야."
"일이 안 됐잖아. 아버지 때문에 나는 곤란하게 됐단 말이야. 고개를 들 수 없어. 나는 아버지를 증오해."
에이브라는 엄격하게 말했다. "아론! 그렇게 말하지 마!"
"어머니에 대해서도 그렇지. 아버지가 거짓말을 안 했다는 것을 네가 어떻게 알아?"
에이브라의 얼굴은 분노로 달아올랐다. "너는 매를 맞아야 해. 사람들 앞만 아니라면 나라도 때렸어." 그녀는 분노와 갈등으로 뒤틀린 그의 말끔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갑자기 전력을 바꾸었다. "어머니에 대해서 왜 못 물어보니? 지금 당장 가서 아버지에게 물어봐라."
"안돼. 나는 너하고 약속했으니까."
"내가 이야기한 것을 말하지 않기로 약속한 것 뿐이야."
"물어보면 어디서 들었느냐 캐실 거야."
"좋아." 그녀가 소리쳤다. "너는 정말 버릇없는 아이야! 약속을 취소하자. 당상 가서 물어봐."
"물어봐야 할지. 그만둬야 할지 모르겠어."
"너를 죽이고 싶을 때가 가끔 있어." 그녀가 말했다. "그러나 아론 - 나는 너를 그만큼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만큼 사랑해."
소다수대 앞 의자에서 껄껄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기 때문에 사람들이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아론의 얼굴은 빨개지고 분노의 눈물이 솟았다. 그는 가게를 뛰쳐나와 거리를 달려 올라갔다.
에이브라는 침착하게 백을 집어 들고 일어나 스커트를 매만지고 손으로 먼지를 털었다. 침착하게 밸 주인에게 가서 샐러리 토닐 값을 치렀다. 그녀는 문으로 나오는 도중에 낄낄대던 사람들 옆에 가서 쌀쌀하게 말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아요." 그녀가 걸어 나올 때 그들이 흉내 내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아론, 나는 그만큼 너를 사랑하는 거야."
그녀는 거리에 나와서 아론을 뒤쫓으려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전화를 걸었다. 아론은 아직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고 리이가 대답했다. 그러나 아론은 침실에 들어가 울분에 싸여 있었다 - 리이는 그가 방으로 살그머니 들어가 문 잠그는 것을 보았다.
에이브라는 그를 찾을 수 있을까 하는 희망에서 샐리너스 거리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했다. 그에 대해 화가 나 있었으나 한편 어쩔 수 없이 외로웠다. 아론이 그녀에게서 도망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에이브라는 혼자 있는 힘을 잃고 있었다.
카알은 외로움을 익혀야만 했다. 얼마 동안 그는 에이브라와 아론 사이에 끼어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카알을 원치 않았다. 카알은 시기심이 나서 그녀를 자기에게 끌어들이려고 했었으나 실패하고 말았다.
그는 학교 공부가 쉽다고는 생각했지만 대단히 흥미롭지는 못했다. 이해를 하게 되면 대단한 성취감을 느꼈다. 그는 이해의 질과는 어울리지 않게 공부에 대한 존중심을 갖게 되었다. 카알은 여기저기 쏘나녔다. 그는 학교 운동장이나 과외 활동에 대해서 대단한 관심을 갖지 않았다. 점점 불안하게 되면서 밤에 밖으로 나갔다. 그는 키가 크고 손발이 길쭉하게 자랐다. 그리고 그에게는 항상 어두움이 있었다.
제38장
1
첫 기억을 더듬어 볼 때 카알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온정과 애정을 갈망하고 있었다. 만일 그가 외아들이었던지 아론이 다른 형태의 형이었다면 카알도 정상적이고 쉽게 대인 괸계를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사람들은 단정한 용모와 순진 때문에 아론에게 매혹되었다. 카알은 자연히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과 애정을 얻기 위해 경쟁을 벌였다. 다시 말하면 아론은 흉내 내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솔직담백한 금발의 아론이 하면 매혹적인 것이 되는 것도 얼굴이 검고 눈이 가느다란 카알이 하면 의심쩍고 불유쾌하게 보였다. 그리고 그는 모방을 하기 때문에 그의 행위는 설득력이 없었다. 아론이 인정을 받을 때에도 카알이 아주 똑같은 행동을 하고 , 똑같은 말을 하면 거절되곤 했다.
강아지도 콧등을 몇 번 얻어 맛으면 수줍어 하게 되듯이, 소년도 거절을 몇 번 당하면 완전히 수줍어진다. 그러나 강아지 같으면 굽실굽실 물러서거나 드러누워 뒹굴기라도 하겠지만 어린 소년은 무관심이나 허세나 비밀을 가지고 그의 수줍음을 감추려 할 수도 있다. 소년이 한번 거절을 당하면 실제로 거절을 받지 않아도 거절될 것으로 생각할지도 모르고 더욱 나쁜 것은 그러리라고 예상함으로써 사람들에게서 거절을 유인하게 될 수도 있다.
카알의 경우, 이 과정이 하도 길고 느려서 이상한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그는 세상에 대해 자기를 보호하는데 충분히 튼튼한 자만심이라는 벽을 자기 둘레에 쌓아놓았다. 이 벽에 약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은 아론과 리이에, 그리고 특히 아담에 가장 가까이에 있는 것이었을 것이다. 아버지가 전혀 무관심했었기 때문에 카알이 안전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전혀 주목되지 않는다는 것은 반대로 주목을 받는 것보다도 더 나았었다.
아주 어렸을 때 카알은 하나의 비밀을 발견했었다. 만일 아버지가 앉아 있는 곳으로 가만히 가서 아버지 무릎에 가볍게 기대면, 아담의 손은 자동적으로 카알의 어깨를 쓰다듬곤 했다. 아담은 자기가 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지만 이 애무는 소년에게 대단한 감정적 용솟음을 일으켰기 때문에 이 특별한 기쁨을 간직하고 있다가 필요한 때에만 사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의존할 수 있는 일종의 마술이었다. 이것은 확고한 동경을 나타내는 의식적 상징이었다.
장소가 변한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카알은 킹 시티에서와 마찬가지로 샐리너스에서도 친구가 없었다.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고 권위와 다소 칭찬을 받고는 있었지만 친구다운 친구는 없었다. 그는 혼자 지내고 혼자 다녔다.
2
카알이 밤에 집을 나가 늦게 돌아온다는 것을 리이는 알고 있었지만 어떻게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아는 체하지 않았다. 야간 순찰 순경은 그가 혼자 걷는 것을 가끔씩 보았다. 경찰서장 하이저만은 학생 지도과에 이를 통보하곤 했지만 지도과는 카알이 결석을 한 사실이 없을 뿐만 아니라 대단히 훌륭한 학생이라는 대답을 했다. 물론 경찰서장은 아담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카알은 창문을 깨뜨린 일도 없고 소동을 피운 일도 없기 때문에 서장은 순경들에게 그를 눈여겨보기는 하되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한 내버려 두라고 지시했다.
어느 날 밤 톰 윌슨은 카알을 뒤쫓아가서 물었다. "너는 밤중에 왜 그렇게 쏘다니니?" "나는 아무도 괴롭히지 않아요." 카알은 방어하듯 말했다. "나도 알고 있어. 그러나 집에서 잠을 자야지." "졸립지가 않은걸요." 일생 동안 졸립지 않았던 때가 생각나지 않는 올드 톰은 이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소년은 차이나타운에서 판탄 놀음 구경은 했으나 끼어들지는 않았다. 그것은 신비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당시 아주 간단한 일도 신비하게 보였던 톰 윌슨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 두었다.
카알은 배회하면서 농장에서 들은 리이와 아담의 대화를 가끔 회상했다. 그는 사실을 캐내고 싶었다. 거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당구장에서 조롱도 듣고 하여 그의 생각은 서서히 축적되어 갔다. 아론이 여러 가지 단편적인 이야기를 들었다면 그는 주목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카알은 단편적 이야기를 수집했다. 그는 어머니가 죽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먼저 들은 대화나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 보아 어머니를 찾아도 아론은 기뻐하지 않을 것을 그는 또한 알고 있었다.
어느 날 밤 카알은 래비트 홀먼을 우연히 만났다. 그는 샌 아도에서 반년 만에 술을 먹으러 올라온 것이었다. 시골 사람이 낯선 지방에서 아는 사람에게 늘 그러하듯, 래비트는 카알에 정이 넘쳐흐르게 인사를 했다. 래비트는 애보트 집 뒷골목에서 한 파운드들이 술을 마시고 카알에게 자기가 들은 이야기를 모두 털어놓았다. 그는 자기 땅을 꽤 비싼 값에 팔고는 이를 자축하기 위해 샐리너스에 왔던 것이다. 자축이란 술타령을 뜻했다. 그는 뒷골목으로 내려가 진정한 남자가 할 수 있는 것을 창녀에게 보여줄 생각이었다.
카알은 그 옆에 가만히 앉아 이야기만 듣고 있었다. 래비트의 술병이 거의 비게 되자 카알은 살짝 빠져나가 루이스 슈나이더 가게로 가서 술병을 사 들고 왔다. 래비트는 빈 병을 내려 놓고 다시 술병을 찾아 손을 뻗었을 때는 술이 가득한 병이 손에 잡혔다.
"이상한데." 그가 말했다. "술이 한 병뿐인데. 어쨌든 재수 좋은 착오구먼." 둘째 병이 반쯤 비게 되자 래비트는 카알이 누구라는 것뿐만 아니라 그의 나이조차도 잊고 있었다. 그는 같이 있는 사람이 그의 가장 친한 옛친구인 것으로 잘못 기억하게 되었다.
"이것 봐, 조오지." 그가 말했다. "흥을 돋우는 술을 여기서 좀 더 마시고 우리 뒷골목으로 가세. 돈이 없다고 말할 필요는 없어. 창녀집의 부담은 내가 질게. 40에이커의 땅을 팔았다고 내가 말했던가? 좋지도 않은 땅 말일세."
그리고 그는 말을 이었다. "헤리, 우리가 할 일을 말해주지. 다른 두 창녀 집엘 가지 말고 케이트의 집으로 가세. 비싸기는 하지. 10달러니까. 그러나 굉장하지! 거기선 서커스를 해. 헤리, 서커스를 본 일이 있나? 아주 어려운 서커스야. 케이트야말로 제대로 할 줄 아는 여자지. 조오지. 케이트가 누군지 기억하지? 아담 트레스크의 마누라 있지 않나? 그 빌어먹을 놈의 쌍둥이 어미 말야. 놀랐어! 그 여자가 아담을 쏘고 도망친 때를 나는 결코 잊을 수가 없어. 어깨를 쏘고 도망쳤지. 마누라로서는 형편없지만 창녀로서는 대단하지. 재미있는 일이지만 창녀는 좋은 아내가 된다고 하지 않는가? 실험을 해볼 것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렇겠지. 헤리, 좀 도와주지 않겠나?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서커스 이야기." 카알이 조그맣게 말했다. "아, 그랬지 케이트의 서커스를 보면 눈알이 나올 거야.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카알은 래비트가 눈치채지 못하게 약간 뒤에서 쫓아갔다. 래비트는 거기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가 그를 불쾌하게 만들지는 않았다. 그런 짓이 카알에게는 바보처럼 보였다. 문제는 관람을 하는 남자들이었다. 가로등에 비치는 래비트의 얼굴을 보고, 카알은 서커스를 보는 사람들이 어떻게 보일까 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숲이 우거진 앞마당을 지나 페인트칠이 안 된 현관으로 들어갔다. 문지기는 그를 자세히 살피지 않았다. 신비스럽게 램프 신지를 낮게 켜놓은 어슴푸레한 방과 초조하게 기다리는 남자들 때문에 그의 존재는 눈에 띄지 않았다.
3
카알은 눈에 띄고 들리는 모든 것을 마음속에 모아, 불명료한 도구처럼 언젠가 유용하게 될지도 모를 물건들의 창고로 만들려고 전에는 항상 원했다. 그러나 케이트의 집을 방문하고 나서부터는 그는 도움이 절대로 필요한 것을 느꼈다.
어느 날 밤 리이가 타자기를 두드리고 있을 때 가볍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카알이 들어왔다. 카알은 침대 끝에 와서 앉았다. 리이는 가느다란 몸을 모리스 의자에 파묻듯 기대고 앉았다. 의자가 아주 안락한 기분을 주었기 때문에 그는 기뻤다. 리이는 마치 중국옷을 입은 듯이 두 손을 배 위에 포개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카알은 바로 리이의 머리 위 허공에 있는 한 접을 응시하고 있었다. 카알은 부드럽지만 빠르게 말했다. "나는 어머니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요. 어머니를 봤어요." 리이는 마음속으로 갈 길을 비는 발작적인 기도를 드렸다. "무엇을 알고 싶으냐?" 그는 부드럽게 물었다. "아직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사실을 말해주겠어요?" "물론이지."
갖가지의 의문이 카알의 머릿속에서 세차게 소용돌이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애를 써서 하나만 꺼냈다. "아버지는 알고 계세요?" "알고 계시지." "아버지는 왜 어머니가 죽었다고 하셨죠?" "너를 고통에서 구하기 위해." 카알은 생각했다. "아버지가 어떻게 하셨길래 어머니가 나가셨나요?" "아버지는 몸과 마음을 다하여 어머니를 사랑하셨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주셨지." "어머니가 아버지한테 총을 쐈나요?" "그랬지." "왜요?" "어머니를 나가지 못하게 하셨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있었나요?" "내가 아는 한 그렇지 않다.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 분이 아니셨다." "아저씨, 어머니는 왜 그런 짓을 했을까?" "나는 모르겠어." "모르는 거예요, 말하지 않는 거예요?" "몰라."
카알이 너무나 오랫동안 잠자코 있어서 손목을 잡고 있던 리이의 손가락이 조금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카알이 다시 말을 할 때에야 마음이 놓였다. 카알의 어조는 달라져 있었다. 호소하는 듯했다. "아저씨, 당신은 어머니를 알죠? 어땠어요?" 리이는 한숨을 쉬고 손을 풀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을 말할 수 있을 뿐이야. 내가 틀릴 수도 있어." "어떻게 생각했어요?" "카알, 정말 여러 시간 동안 생각을 해봤지만 나는 아직도 모르겠어. 그 여자는 일조의 신비야. 다른 사람과 같지 않은 것처럼 보여. 그 여자에겐 결핍되어있는 것이 있어. 친밀감이라고 할까, 양심이라고 할까, 마음속으로 사람을 느낄 수 있어야 그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인데 나는 그여자를 느낄 수 없어. 내가 그 여자에 대하여 생각을 시작하는 순간에 나의 감정은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그 여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또는 무엇을 추구하는지 나는 모르겠어. 그 여자는 증오로 가득차 있어. 그러나 이유와 그 배경을 나는 모르겠어. 그것은 일종의 신비야. 그 여자의 증오심은 평범한 것이 아니야. 분노도 아니야. 냉혹한 것이었어. 이렇게 너한테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다만."
"나는 알 필요가 있어요." "왜? 알기 전이 기분이 더 좋았지 않을까?" "그랬죠. 그러나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요." "그야 그렇지." 리이가 말했다. "첫 순진성이 사라졌을 때 위선자나 바보가 아닌 이상 물러나 주저앉을 수는 없다." 카알이 말했다. "그러면 아버지에 대해서 말해주세요." "그건 내가 할 수 있지." 그는 말을 멈췄다가 이었다. "우리 이야기를 누가 들을지도 모르니 조그맣게 말해." "아버지에 대해 말해줘요." 카알이 말했다.
"내 생각에 네 아버지는 부인이 갖고 있지 않은 것을 확대하여 갖고 있어. 그가 갖고 있는 친절이나 양심은 너무나 크기 때문에 거의 결점이 되고 있어. 아버지는 그것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방해를 받고 있어." "어머니가 도망갔을 때 아버지는 어땠어요?" "죽은 사람과 같았지. 주위를 서성거리고 다니기는 했지만 죽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주 최근에 와서야 반쯤은 생기를 되찾았지." 리이는 카알의 얼굴에 이상하고 새로운 표정이 이는 것을 보았다. 두 눈은 휘둥그레졌고 보통 때면 꼭 다물고 있던 입은 긴장이 풀렸다. 리이는 처음으로 그의 얼굴에서 색깔은 다르지만 아론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카알의 어깨는 너무 오래 긴장하고 있었던 것처럼 흔들렸다.
"왜 그래, 카알?" 리이가 물었다. "나는 아버지를 사랑해요." "나도 그를 사랑해." 리이가 말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여기에 이렇게 오래 머물러 있지는 못했을 거야. 그는 세속적인 의미로 영리하지는 못하지만 선령한 사람이야. 내가 알고 있는 사람 중에서 제일 선량한 분인지도 몰라." 카알은 갑자기 일어서서 인사를 했다. "안녕히." "잠깐만 기다려. 누구한테 이야기했니?" "아니, 아무에게도." "아론에게도 하지 않았겠지 물론 하지 않았겠지." "그도 알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러면 네가 대기하고 있다가 도와주어야 할 거야. 아직 나가지 말아. 네가 이 방을 나가면 우린 다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을지도 모르는 거야. 네가 사실을 알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고 해서 나를 미워할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말해봐, 어머니를 미워하나?" "미워해요." 카알이 말했다. "어떨까 하고 생각했지." 리이가 말했다. "네 아버지는 어머니를 미워했다고 생각지 않아. 단지 슬퍼했지."
카알은 천천히, 그리고 가만히 문을 향해 발을 옮겼다. 그는 호주머니에 주먹을 깊이 찔렀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 같은데, 나는 어머니를 미워해요. 어머니가 도망을 갔기 때문이야. 나는 알 수 있어요. 나는 마음속으로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를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그는 고개를 숙이고 목소리는 비통에 젖어 있었다.
리이가 벌떡 일어났다. "그런 꼴은 집어치워!" 그가 날카롭게 말했다. "내 얘기가 들리니? 그런 꼴을 짓지 말란 말야. 물론 너는 그런 꼴을 지을 수도 있지. 모든 사람이 그런 양상을 갖고 있으니까. 그러나 다른 모습도 가질 수 있는 거야. 쳐다봐! 나를 쳐다보란 말이야." 카알은 얼굴을 쳐들고 지친 듯이 말했다. "무슨 말이에요!" "너는 다른 일면도 갖고 있단 말이야. 내말을 들어! 네가 그런 면을 갖고 있지 않다면 이상히 여기지도 않을 거야. 그 나약한 모습을 짓지 말아. 부모 때문이라고 변명하기란 쉬운 일이야. 그런 꼴을 다시는 내 눈에 띄게 하지 말아! 기억에 남도록 나를 자세히 쳐다봐.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네가 하는 짓이지. 네 어머니가 하는 것이 아니야." "리이 아저씨,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확신해. 너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아. 그렇지 않으면 대갈통을 깨버릴 테니까."
카알이 나간 후에 리이는 의자에 다시 와서 앉았다. 그는 슬프게 생각했다. '나의 동양적 침착성에 무슨 이변이 일어난 거지?'
4
카알에게 있어서 어머니의 발견은 새로운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확인이었다. 오랫동안 그는 자세히는 몰랐지만 무엇인가 석연치 않은 일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반응은 복합적이었다. 그는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즐거움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다. 그리고 사람들의 행위나 표정을 평가할 수 있었고 어렴풋한 언급을 풀이할 수 있었고 과거를 캐내어 재조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알게 됨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고통을 보상할 수는 없었다.
그의 몸은 어른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사춘기의 변덕스러운 바람에 흔들렸다. 경건하고 순수하고 헌신적이다가도 더러운 일에 빠졌다. 그러다가는 수치감을 느끼고 다시 경건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발견은 그의 모든 감정을 날카롭게 만들었다. 이러한 혈통을 갖고 있기에 자기는 유별나다고 생각했다. 리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을 수도 없었으며 다른 아이들과 이와 똑같은 일을 경험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케이트 집에서의 서어커스는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어떤 때에는 그 기억이 그의 몸과 마음에 사춘기의 불을 질러 놓았고 그런 다음에는 반발과 혐오로 욕지기가 나게 했다.
그는 아버지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고, 어쩌면 사실보다도 더한 슬픔과 갈등을 아버지에게서 보았는지도 모른다. 카알의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정열적인 사랑과 그를 보호하고 지금까지 겪은 고통에 보상이라도 해주고 싶은 소망이 싹텄다. 민감하게 된 카알의 마음속에는 그 고통이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아담이 목욕을 하고 있는 동안 잘못 욕실로 들어갔다 보기 흉한 탄혼을 보고는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아버지 무슨 흉터예요?"
아담의 손이 흉터를 감추기라도 하려는 듯이 위로 올라갔다. "오래된 흉터야. 인디안 토벌 때의 흉터야. 다음에 이야기해 줄게."
아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을 때 카알은 아버지의 마음이 거짓말을 찾아 과거로 뛰어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카알은 거짓말을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거짓말을 해야 되는 필요성을 싫어했다. 카알은 여러 가지의 덕을 보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그러나 거짓말을 하도록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처럼 보였다. 그는 소리치고 싶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돼서 거짓말을 하게 되었는지 알고 있어요. 그건 좋아요.' 그러나 물론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그 이야기 듣고 싶어요." 그는 이렇게 말했다.
아론 역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있었다. 그러나 그의 충동은 카알보다 완만했다. 그의 육체는 그렇게 날카롭게 소리치지는 않았다. 그의 정열은 종교적 방향으로 흘렀다. 그는 목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감리교회의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제일이면 꽃장식 일을 도왔고 많은 시간을 젊은 고수머리 목사 롤프와 보냈다. 아론의 제자 훈련은 경험이 전혀 없는 젊은 사람에게서 받았다. 그 때문에 그는 무경험자만이 가질 수 있는 개관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 아론은 감리교회에서 안수례를 받고 성가대의 대원이 되었다. 에이브라는 그의 뒤를 따랐다. 그녀의 여성다운 마음은 이러한 일들이 필요하긴 하지만 중요한 것이 못된다고 생각했다.
신앙심을 갖게 된 아론이 카알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당연했다. 처음에는 카알을 위해 조용히 기도를 드리다가 나중에는 직접 접근했다. 그는 카알의 불경을 비난하고 개심을 요구했다.
아론이 좀 더 영리했었다면 카알도 함께 따라가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론은 다른 사람들을 역하게 만들 정도의 정력적 순결벽에 도달해 있었다. 몇 번 설교를 듣고 카알은 형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자만심에 차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그에게 그렇다고 이야기했다. 아론이 카알을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도록 내버려두게 되자, 그것은 두 사람에게 다 마음이 편하게 해주었다.
아론의 종교는 어쩔 수 없이 성의 문제에 부딪혔다. 그는 에이브라에게 금욕의 필요성에 대해 말하고 독신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다. 에이브라는 지혜롭게 이러한 단계는 지나가 버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그의 말에 동의했다. 독신 생활이란 그녀가 알고 있는 유일한 상태였다.
그녀는 아론과 결혼하여 얼마든지 자식을 낳고 싶었지만 당분간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전에는 시기심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었으나 이제 그녀는 롤프 목사에 대하여 본능적이고 어쩌면 정당화된 증오심을 느끼기 시작했다.
카알은 아론 자신이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죄를 이겨내고 기뻐하는 것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고 아론이 이것을 어떻게 처리하나 보고 싶은 심술궂은 생각이 들었으나 곧 취소하고 말았다. 아론은 그것을 전혀 처리하지 못하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39장
1
심상치 않게 샐리너스 사람들은 온화한 정화운동을 치렀다. 정화운동이란 건 이것이 그것 같고, 그것이 이것 같아 비슷비슷했다. 설교단에서 시작될 때도 있었고 야심적인 새 여성회의 회장으로부터 시작될 때도 있었다. 한결같이 뿌리를 뽑아야 할 죄목으로도 도박이 등장했다. 도박을 공격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점이 있었는데, 매춘 행위는 그렇지 못하지만 도박은 공개 토론을 벌일 수 있었다. 이것은 명확한 약이며 대개의 노름은 중국인들이 벌이고 있었다. 그러니 친척들을 건드릴 위험은 거의 없었다.
교회와 클럽은 마을의 두 신문에 불을 붙였다. 사설들은 정화를 요구했다. 경찰도 동의했으나 손이 부족하다고 호소하고는 예산 증액을 시도했다. 가끔씩 성공하기도 했다.
사설에 오를 단계면 사람들은 일이 끝난 것으로 생각했다. 다음 일은 발레처럼 조심성 있게 무대에 올리면 됐다. 경찰도 준비되어 있고 노름 집도 준비되어 있었다. 신문들은 축하 사설을 미리 준비해 놓았다. 그러고 나면 용의주도한 검색이 벌어졌다. 파자로에서 수입된 20명 내외의 중국인, 몇 명의 주정뱅이, 그리고 낯선 사람들이기 때문에 예고를 받지 못한 행상인 7,8명이 경찰의 그물에 걸려 조서를 받고, 투옥되고, 아침이면 벌금형을 받고 석방되었다. 마을은 부패가 일소되었다고 안심하고, 도박장은 하루저녁 수입에다 벌금마저 보태어 손해를 보았다. 한가지 일을 알면서도 믿지 않는 것이 인간 승리의 하나이다.
1916년 가을 어느 날 밤, 카알은 소티 림의 집에서 판탄 놀음을 구경하다가 일제 검거에 붙잡혔다. 어두워서 그를 알아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찰서장이 아침에 유치장에서 그를 발견하고 당황하여 아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식사 중에 이 전화를 받았다. 아담은 시청까지 두 블록을 걸어가서 카알을 인계받고 길을 가로질러 우체국까지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리이는 아담을 위해 계란을 삶고 카알을 위해선 두 개의 계란을 프라이했다.
아론이 학교에 가는 길에 식당에 들렀다. "기다릴까?" 그가 카알에게 물었다. "아니야." 카알은 눈을 아래로 내리뜨고 계란을 먹었다.
아담은 시청에서 서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 후 "가지!" 하고 말을 한 후에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있었다.
카알은 아버지의 얼굴을 힐끔힐끔 쳐다보면서 먹고 싶지 않은 아침 식사를 삼켰다. 그는 아담의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당황과 분노와 사색과 슬픔이 뒤얽힌 것같이 보였다.
아담은 커피잔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침묵은 점점 커져서 그것을 밀쳐내기가 거북스럽게 억압적인 것이 되었다.
리이가 들여다보며 물었다. "커피요?"
아담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리이는 물러서서 부엌문을 닫았다.
시계만이 똑딱거리는 침묵 속에서 카알은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전에 알지 못했던 힘이 아버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을 그는 느꼈다. 발이 저려왔으나 움직여서 피가 통하게 하기 조차 두려웠다. 그는 포크를 접시에 부딪치게 하여 소리가 나게 했으나 그 소리도 삼켜져 버렸다. 시계는 천천히 아홉 시를 쳤으나 그 소리도 삼키듯 사라졌다.
두려움이 냉기로 변하자 반항심이 일어났다. 덫에 걸린 여우는 자기를 덫으로 몰고 온 앞발에 대하여 화를 낼 수도 있는 것이다. 갑자기 카알이 일어났다. 자기가 일어나는 것도 그는 모르고 있었다. 그는 소리를 쳤으나 말을 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아버지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하세요! 밀고 나가세요!" 그의 외침은 적막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담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카알은 전에 아버지의 눈 속을 들여다보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많은 사람ㄷ르이 자기 아버지의 눈을 들여다보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아담의 홍채는 연푸른색이었고 동공을 향해 까만 줄이 방사선으로 몰리고 있었다. 마치 두 사람의 카알이 자기를 바라보고 있듯이 두 개의 공동 깊숙이 자신의 얼굴이 반사되고 있는 것을 카알은 보았다.
아담이 천천히 말했다. "내가 너를 실망시켰지?"
그것은 야단치는 것보다 더 무서웠다. "무슨 말씀이시죠?" 카알은 더듬거렸다. "너는 도박장에서 붙잡혔어. 네가 어떻게 거길 갔는지. 무엇을 했는지. 왜 갔는지는 나는 모른다." 카알이 힘없이 앉아서 접시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노름하니?" "아뇨, 보고만 있었어요." "전에도 가 봤니?" "네 여러 번요." "왜 가지?" "나도 모르겠어요. 들고양이처럼 밤이면 불안해요." 케이트에 대한 생각과 힘없는 자기의 농담이 그에게 두려운 생각을 일으켰다. "잠이 안 올 때면 그저 싸돌아다닙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요."
아담은 자기가 한 말을 곰곰이 생각하고 한 마디 한 마디 또박또박 말했다. "네 형도 돌아다니니?" "아니에요. 그런 건 생각도 안 할 겁니다. 불안하지 않으니까요." "난 모르겠다. 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겠어." 아담이 말했다. 카알은 아버지 목에 팔을 감고 싶었다. 카알은 아버지를 안고 싶었고, 또 아버지가 껴안아 주었으면 했다. 동정과 사랑을 표현하고 싶은 거친 욕망을 느꼈다. 카알은 나무로 만든 냅킨 고리를 집고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물어보시면 대답하겠어요." 그가 낮게 말했다. "나는 질문하지 않았다. 묻지를 않았어! 나는 네 할아버지만큼이나 나쁜 아버지야." 카알은 아버지의 이런 어주를 들은 적이 없었다. 온정에 목메인 소리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자기가 할 말을 뒤지고 있었다. "내 아버지는 하나의 틀을 만들어 억지로 그 속에 나를 넣었었지." 아담이 말했다. "나는 잘못 만들어졌지만 다시 만들어질 수는 없었다. 누구도 재조직될 수는 없는 거야. 나는 잘못된 주조물로 남게 되었지."
카알이 말했다. "슬퍼하지 마세요. 아버진 너무나 많은 슬픔을 겪으셨으니까요." "그랬나? 그런지도 모르지. 그러나 그릇된 슬픔이었는지도 모르지. 나는 내 아들들을 모른다. 알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아시고 싶은 건 다 말씀해드리죠. 저에게 물어보세요." "어디서부터 시작할까? 처음에서부터 시작할까?" "내가 유치장에 갇혀 있었다고 해서 아버지는 슬프세요. 화가 나세요?"
놀라웁게도 아담이 웃었다. "너는 단지 거기 있었을 뿐이지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지 않니?" "거기에 있었던 것도 잘못이었는지도 모르죠." 카알은 스스로를 책망하고 싶었다.
"언젠가 나는 어떤 장소에 있었다는 이유 때문에, 1년 가까이 감옥생활을 한 적이 있지." 카알은 이 이단적인 생각을 흡수하려고 했다. "나는 믿지 않아요." 그가 말했다. "나도 가끔씩 믿지 않는다. 그러나 나도 도망칠 때 가게를 털고 옷을 훔쳤다." "나는 믿지 않아요." 카알은 약하게 말했으나 온정과 친밀감을 느끼며 아주 묘하게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온정이 흩어질까 봐 그는 가만히 숨을 쉬었다.
아담이 말했다. "너 새뮤얼 해밀톤을 기억하지. 틀림없이 기억할 거야. 네가 어렸을 때 그분이 말하길, 나더러 나쁜 아버지라고 했단다. 그것은 나에게 인식시키려고 나를 때려눕힌 적도 있지." "그 노인네가요?" "그는 힘이 센 노인이었지. 그의 의도를 이제 알겠어. 나는 네 할아버지와 같은 사람이야. 그분은 나를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지. 나도 내 아들을 사람으로 보지 않았어. 그것이 새뮤얼이 나에게 일깨워 주고 싶어 한 것이었어." 그는 카알의 눈 속을 들여다보고 미소 지었다. 카알은 아버지에 대한 애정으로 짜릿함을 느꼈다.
카알이 말했다. "우리는 아버지를 나쁜 사람으로 생각지 않아요." "불쌍한 것들 같으니라고. 너희들이 어떻게 아니? 다른 아버지를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전 유치장에 갔던 것이 기뻐요." "나도 그렇다. 나도 그래." 그는 웃었다. "우리 둘 다 유치장에 가 본 경험이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거야." 그는 점점 쾌활해졌다. "네가 어떤 아이인지 자신이 말할 수도 있지 않겠니?" "그렇죠." "말해 보겠니?" "그러죠." "말해봐라. 인간이 되는 데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야. 공간적 위치를 차지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너는 어떤 아이지?" "농담이 아니시죠?" 카알이 부끄러운 듯이 물었다. "농담이 아니지. 절대로 농담이 아니야. 너에 대한 이야기를 해봐. 하고 싶으면 말이다." 카알이 입을 열었다. "글세, 저는요..." 그는 말을 멈췄다가 다시 이었다. "하려 하니 쉽지 않군요."
"그렇겠지... 불가능한지도 모르지. 네 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봐라." "그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싶으세요?" "그에 대해서 네가 생각하는 것을, 네가 말할 수 있는 것을 말이야."
카알이 말했다. "형은 좋은 사람이에요. 나쁜 일을 하지 않죠. 나쁜 것은 생각지도 않구요." "이제 너에 관한 이야기를 해 봐라." "네?" "너는 나쁜 짓을 하고,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셈이니까." 카알의 뺨이 상기되었다. "글쎄요, 그렇죠." "아주 나쁜 짓을?" "네, 내가 이야기하기를 바라세요?" "아니다. 너는 이야기를 했다. 네 눈과 목소리로 보아 너는 자기 자신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거야. 그러나 창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창피스러워하니?" "형은 창피스러운 일을 하지 않아요." 아담은 몸을 앞으로 굽혔다. "확실하냐?" "아주 확실해요." "카알, 말해봐라. 너는 그를 보호하니?" "무슨 말씀이시죠?" "만일 네가 나쁘거나 잔인하거나 추잡한 이야기를 듣는 경우, 그 이야기를 그에게 해주니?" "그렇다고 생각해요." "네가 견딜 수 있는 일을 형은 이겨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는 선량해요. 참으로 선량해요. 누굴 해치는 일이 없어요. 남을 헐뜯는 일도 없어요. 치사하지도 않고 불평도 하지 않고, 또 용감하기도 하지요. 싸움을 좋아는 하지 않지만 싸울 용의는 갖고 있지요." "형을 좋아하니?" "네, 하지만 난 형에게 나쁜 짓을 합니다. 속이기도 하고 바보로 만들기도 하죠. 아무 이유도 없이 그를 가끔씩 마음 상하게 만들지요." "그러고 나면 비참한 생각이 드니?" "그래요." "아론도 비참한 적이 있니?" "모르겠어요. 내가 교회에 나가지 않았을 땐 기분 나빴어요. 언젠가 에이브라가 화를 내며 밉다고 말했을 때 아주 기분 나빠 하더군요. 열이 나고 아팠으니까. 기억 안 나세요? 리이 아저씨가 의사를 부르러 보냈었죠." 아담은 어리둥절하며 말했다. "나는 같이 살면서 그런 것들을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왜 에이브라가 화를 냈지?"
카알이 말했다. "말씀을 드려야 될지도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듣고 싶지 않다." "나쁜 것은 아니에요. 아시다시피 아론은 목사가 되려고 하지요. 롤프 씨는 고교회를 좋아하죠. 아론도 좋아하여 결혼도 하지 않고 은거 생활을 할 생각을 했죠." "수도사처럼?" "그렇죠." "에이브라가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던가?" "좋아하다니요? 무지무지하게 화를 냈지요. 가끔씩 화를 내죠. 아론의 만년필을 빼서 길바닥에 내던지고 밟아버렸어요. 아론 때문에 반평생을 허송했다고."
아담은 깔깔 웃었다. "에이브라가 몇 살이지?" "열 다섯 살 가까이 됐죠. 그러나 몇 가지 면에서는 조숙하죠." "그렇지. 아론은 어떻게 했니?" "가만히 있었지만 기분이 아주 나빴어요." 아담이 말했다. "그러면 네가 그 애를 잡아챌 수도 있었지 않니?" "에이브라는 아론의 애인인걸요." 아담은 카알의 눈 속을 깊이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리이를 불렀다. 대답이 없었다. 다시 불렀다. "나가는 소리를 못 들었는데. 산뜻한 커피를 마셨으면 좋겠구나." "내가 만들죠." 카알이 뛰어 일어났다.
아담이 말했다. "학교에 가야지." "가고 싶지 않아요." "가야한다. 아론은 갔다." "나는 행복해요. 아버지하고 있고 싶어요." 아담은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커피를 좀 만들어라." 그는 부드럽게 말했다. 계면쩍은 목소리였다.
카알이 부엌에 있는 동안 아담은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고 놀랐다. 신경이며 근육이 흥분된 갈증으로 고동치고 있었다. 손가락은 무엇인가를 잡으려고 했고, 다리는 달리고 싶어 했다. 눈은 탐욕스럽게 방 안을 둘러보았다. 의자와 그림과 카아핏의 장미도 새롭고 신선한 물건으로. 머릿속에는 미래의 강렬한 욕구가 생겨났다. 매분 매초가 틀림없이 기쁨을 가져올 것 같은 만족스럽고 따뜻한 예감이 들었다. 그에게 황금빛과 고요를 안고 밀어닥칠 아름다운 날, 그런 날을 기약하는 새벽의 감정을 그는 느꼈다. 그는 손가락을 머리에 얹고 두 발을 쭉 폈다.
부엌에서 카알은 커피포트의 물을 서둘러 끓였다. 그러나 그는 기다리는 것도 즐거웠다. 일단 알고 있는 기적은 이제 기적이 아니다. 카알은 아버지와의 금빛같은 관계에서 느꼈던 경외를 잊고 있었으나 기쁨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고독의 독기와 외롭지 않은 사람에 대한 뼈저린 선망은 이제 사라지고 그는 깨끗하고 달콤하게 되었다. 그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지난날의 증오심을 끌어내 보았으나 이미 없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아버지를 도와드리고 커다란 선물을 주고 아버지를 위해 커다란 일을 하고 싶었다.
커피 물이 끓어 넘쳐서 스토브를 닦는 데 몇 분이 걸렸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다. '어제만 해도 이런 일은 안 했을 텐데.'
카알이 김이 나는 주전자를 들고 들어왔을 때 아담은 그를 보고 웃었다. 아담은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나는 콘크리트 무덤 속에서라도 일깨울 수 있을 것 같은 냄새로구나." "끓어 넘쳤어요." "끓어 넘어야 맛이 좋은 거다. 리이가 어딜 갔는지 모르겠구나." "방에 있을지도 모르죠. 가볼까요?" "아니다. 있으면 대답했을 텐데." "아버지, 학교를 졸업하면 농장을 경영하게 해주실래요?" "계획을 일찍 짜고 있구나. 아론은 어떤가?" "대학에 진학하고 싶어 해요. 내가 말했다고 그러지 마세요. 형이 말하게 하세요. 아버지도 놀라게." "그것이 좋겠다. 너는 대학에 진학하고 싶지 않니?" "농장에서 돈을 벌겠어요. 아론의 대학 학비를 충분히 조달할 만큼."
아담이 커피를 홀짝 마셨다. "너그러운 생각이다. 이런 이야기를 너에게 해야 옳을지 모르겠지만, 아론이 어떤 아인가 하고 내가 물었을 때 네가 그를 변호하길래 그를 싫어하거나 증오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었지." "형을 증오한 적도 있지요." 카알은 열을 내며 말했다. "그의 기분을 상하게도 했고. 말씀드릴까요? 이제는 그를 미워하지 않아요. 다시는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누구도 미워하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마저도...." 그느 불쑥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마음은 얼어 붙어 긴장하고 무력하게 되었다.
아담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손바닥으로 앞이마를 문지르더니, 드디어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에 대하여 알고 있니?" 그건 질문이 아니었다. "네,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네." 아담은 의자에 몸을 기댔다. "아론도 아니?" "모릅니다. 형은 몰라요." "왜 그렇게 말하지?" "형에겐 감히 말을 못했어요." "왜 못해?" 카알은 띄엄띄엄 말했다. "그가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지 않았어요. 이겨낼 만큼 나쁜 점이 그에게는 없어요." 그는 이렇게 말을 잇고 싶었으나 그만두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아담의 얼굴은 지친 듯 보였다.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카알, 내 말을 듣거라. 아론이 모르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잘 생각해 보렴." 카알이 말했다. "그는 그런 장소엔 가까이 가지 않죠. 나와는 달라요." "누가 그에게 이야기해줬다고 생각해 봐라." "믿지 않을걸요. 그 사람이 누구든지 한 대 갈기고는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넌 거기 가봤니!" "네, 알아야 했으니까요." 카알은 흥분하여 말을 이었다. "만일 대학으로 떠나버리고 이 말에 다시 살지 않게 되면 형은 모를지도 모르죠." 아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러나 2년이나 더 남았는데." "혹시 내가 재촉하여 1년 만에 졸업을 시킬 수도 있죠. 형은 머리가 좋으니까요." "네가 더 좋지 않니?" "종류가 다르죠."
아담은 점점 커져서 방 한쪽을 꽉 메운 듯 보였다. 얼굴은 준엄하게 되고 파란 눈은 날카롭게 꿰뚫는 듯했다. "카알!" 그는 목쉰 소리로 불렀다. "네?" "나는 너를, 믿는다." 아담이 말했다.
2
카알은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게 되자 넘치는 행복감을 갖게 되었다. 그는 걸음걸이도 가벼워졌다. 찡그릴 때보다 웃는 때가 더 잦았다. 남모르는 어두움도 그에게서 거의 사라졌다. 그가 변한 것을 눈치챈 리이가 그에게 물었다. "여자 친구라도 생겼나?" "여자 친구라니요? 누가 그런 것 갖고 싶대요?"
리이는 아담에게 물어보았다. "카알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 에미에 대해 알고 있더군." "그래요?" 리이는 더 이상 이 문제에 끼어들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내가 말한 것을 기억하세요?" "난 말하지 않았어. 제가 알았지." "대단하군요!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공부를 하면서 콧노래를 부르거나 걸으면서 모자를 날리지는 않을 겁니다. 아론은 어때요?" "그것이 걱정이야. 그 애는 몰랐으면 좋겠어." "너무 늦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아론과 이야기를 해볼까도 해, 넌지시." 리이는 생각에 잠겼다. "당신한테도 무슨 일이 일어났군요." "그래? 그랬는지도 모르지."
콧노래를 부른다든지 모자를 날린다든지 공부를 빨리빨리 해치운다든지 하는 것은 카알에게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그는 새로운 기쁨 속에서 아버지의 행복의 보호자임을 자체했다. 어머니에 대해서 증오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고 말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지만 어머니가 아버지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수치스럽게 만든 장본인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었다. 어머니는 전에 할 수 있었던 일을 다시 저지를 수 있다고 카알은 추리했다. 그는 여자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은 모두 알아내자고 생각했다. 적을 알면 위험도 적어지고 놀라움도 줄일 수 있는 것이다.
밤이면 그는 철로 넘어 그 집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떤 때는 저녁나절, 길 건너 잡초 속에 숨어 그 집을 살피기도 했다. 여자들이 수수하게 옷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여자들은 항상 짝을 지어 나왔다. 카알은 그들의 뒤를 밟아 캐스트로빌 가 모퉁이까지 쫓아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왼쪽으로 돌아 메인스트리트로 향했다. 만일 그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를 모른다면 그 여자들의 신분을 알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러나 여자들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낮에 어머니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케이트가 매주 월요일 한 시 반에 나타나는 것을 그는 알았다.
카알은 매주 월요일 오후에 결석하는 것을 보충하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함으로써 학교 일을 정리해 놓았다. 아론이 이에 대하여 묻자 놀라운 일을 하고 있는데 누구에게도 말해서는 안되는 의무를 지니고 있다고 카알은 대답했다. 어쨌든 아론은 별 흥미가 없었다. 아론은 자기 일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것을 곧 잊었다.
카알은 케이트를 몇 번 뒤밟아 보고는 가는 길이 일정한 것을 알았다. 그 여자는 항상 똑같은 장소로 갔다. 먼저 몬테레이 국립은행으로 가서 금고를 막고 있는 번쩍거리는 창상 뒤로 들어가 15분 내지 20분쯤 있다가 나왔다. 그리고는 메인스트리트를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쇼윈도우를 구경했다. 포터나 어빈 가게로 들어가 옷도 구경하고 고무줄이나 안전핀이나 배일이나 장갑을 사기도 했다. 2시 15분쯤이면 미니 프랭킨 미장원에 들러 한 시간쯤 있다가 머리를 핀으로 단단히 치켜올리고 비단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 턱 밑에 매고 나왔다.
그녀는 3시 30분에 농업협동조합 위에 있는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 로슨 의사의 진찰실로 들어갔고, 병원에서 나와서는 벨스 과자점에 잠깐 들러 두 파운드의 갈색 초콜릿 상자를 샀다. 그녀는 길을 바꾸지 않았다. 벨스 과자점에서 곧바로 캐스트로빌 스트리트로 돌아와 집으로 향했다.
그녀의 옷차림에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었다. 샐리너스에 사는 부유한 부인이 월요일 오후 쇼핑을 나온 그런 옷차림이었다. 다만 샐리너스에서는 흔한 일이 아니었지만 그녀는 항상 장갑을 끼고 다녔다.
장갑 때문에 그녀의 손이 통통하게 보였다. 그녀는 마치 유리 상자에 둘러싸인 것처럼 걸었다. 이따금 어떤 남자가 몸을 돌려 그녀를 뒤돌아보다가 자기 일을 보러 총총히 지나갔다. 그러나 대부분 그녀는 보이지 않는 여자처럼 미끄러지듯 지나갔다.
여러 주일 동안 카알은 케이트 뒤를 밟았다. 그녀의 눈에 띄지 않게 조심했다. 케이트는 항상 앞만 보고 걸었기 때문에 그는 눈에 띄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케이트가 자기 마당으로 들어가면 카알은 우연히 지나게 된 것처럼 지나가 다른 길을 통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는 그 여자에 대해서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는 것 이외에 뒤를 밟을 이유를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가 뒤를 밟은 지 8주 되는 날, 그녀는 행각을 마치고 늘 그랬듯이 풀이 무성한 마당으로 들어갔다.
케이트는 되는 대로 크게 자란 쥐똥나무 뒤에 서 있었다. 그녀는 냉정하게 말했다. "무슨 일이지요?" 카알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는 거의 숨도 못 쉬고 시간 속에 정지해 있는 듯했다. 그는 어렸을 때 배운 것을 실행해 보기 시작했다. 주제를 벗어난 사소한 것들을 분류해 보는 것이었다. 남풍이 어떻게 쥐똥나무의 작은 잎들을 흔들고 있나를 보았다. 진흙투성이의 길이 많은 발길에 밟혀 까만 죽처럼 되어 있고 케이트는 진흙 옆으로 비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남태평양 역 구내에서는 조차하는 기차가 메마른 소리를 내며 수증기를 내뿜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뺨에 차가운 공기를 느꼈다. 그는 계속 케이트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녀도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과 머리의 모양과 색깔, 심지어는 움츠린 듯한 어깨의 모양에서도 아론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카알은 생각했다. 그러나 자신과 비슷한 그녀의 입과 작은 이빨과 넓은 광대뼈를 알아차릴 만큼 그는 자신의 얼굴을 잘 알고 있지 않았다. 남풍이 두 번 몰아치는 사이에 이들은 처음과 똑같이 서 있었다.
케이트가 말했다. "나를 미행한 것이 이번만은 아니지 않아. 무슨 일이지요?" 그는 고개를 떨구었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가 시켰어요?" 그녀가 다그쳤다. "아무도 안 시켰습니다. 부인." "말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구먼, 그렇죠?" 카알은 자기의 마음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말이 미쳐 막을 수도 없이 불쑥 튀어나왔던 것이다. "당신은 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가 보고 싶었어요." 그것은 정확한 사실이었다. 그것은 뱀의 습격처럼 튀어나왔던 것이다.
"무엇이라구? 너는 누구지?" "나는 카알 크레스크입니다." 시이소가 움직일 때처럼 미묘한 균형의 변화를 느꼈다. 그는 지금 시이소 위쪽에 타고 있는 듯했다.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녀가 방어 입장에 있다는 것을 카알은 알았다.
그녀는 그의 용모를 하나하나 뜯어 보았다. 어렴풋한 찰스의 모습이 그녀의 마음속에 떠올랐다. 갑자기 그녀가 말했다. "따라와!" 그녀는 돌아서서 진흙을 피해 옆길을 따라 걸어갔다.
카알은 잠시 주저하다가 그녀의 뒤를 따라 갔다. 침침하고 커다란 방은 생각났으나 나머지 것들은 그에게 생소했다. 케이트는 그의 앞에서 호올을 지나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부엌 입구를 지나면서 차 두 잔을 시켰다.
방에 들어오자 그녀는 그를 이미 잊고 있는 듯 보였다. 그녀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내키지 않는 듯 소맷자락을 당겨 토트를 벗었다. 그녀는 침대가 있는 방 끝 벽의 새 문 쪽으로 갔다.
그 문을 열고 새로 이어 지은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의자를 갖고 이리 들어와!" 그는 그녀를 따라 상자 같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창문도 없고 어떤 장식품도 없었다. 벽은 암회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바닥에 탄탄한 회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방 안의 유일한 가구란 회색 비단 쿠션이 있는 커다란 의자 하나와 경사진 독서 테이블과 깊게 갓을 씌운 램프뿐이었다. 케이트는 의수인 것처럼 장갑을 낀 손의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에 전등줄을 끼고 잡아당겼다.
"문을 닫아!" 케이트가 말했다. 불빛이 테이블 위에 동그랗게 비쳤고 회색의 방안에 희미하게 반사되었다. 회색 벽이 빛을 삼키고 부어놓는 듯했다. 케이트는 두꺼운 쿠션에 조심스럽게 앉은 다음 천천히 장갑을 벗었다. 양쪽 손의 손가락에 붕대가 감겨져 있었다.
케이트는 화를 냈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마. 관절염이야. 아, 보고 싶다고 그랬지?" 그녀는 기름이 묻은 듯한 붕대를 오른손 집게손가락에서 풀고 꾸부러진 손가락을 불빛 쪽으로 내밀었다. "이걸 봐. 관절염이야." 그녀는 허술하게 붕대를 다시 감으면서 아픔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냈다. "아이고, 장갑에 다쳤구먼! 앉아."
카알은 의자 끝에 쭈그리고 앉았다. "너도 이 병에 걸릴지도 몰라. 나의 큰 숙모도 이 병에 걸렸었고, 어머니도 이 병에 막 걸리기 시작...." 그녀는 말을 멈췄다. 방안은 아주 적막했다. 낮은 노크 소리가 들렸다. "조오야? 쟁반은 거기에 놔. 조오, 거기 있어?" 문틈으로 중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케이트는 건조하게 말했다. "현관이 어지러져 있어. 깨끗이 치워요. 앤은 자기 방 소제를 하지 않았더군. 한 번 더 경고를 해. 마지막 경고라고 말해. 에바는 간밤에 잘했어. 그 애는 내가 보살필 거야. 그리고 조오, 요리사에게 말해. 이번 주에도 홍당무 요리를 다시 하면 보따리를 싸라고 해. 내 소리 들려?" 중얼대는 소리가 문틈으로 다시 들렸다. "그것뿐이야! 더러운 돼지 새끼들 같으니라구!" 그녀가 중얼거렸다. "감시를 안 하면 썩어 문드러질 거야. 나가서 차 쟁반 좀 가져와요." 카알이 문을 열었을 때에는 침실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쟁반을 들고 들어와 경사진 독서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놓았다. 커다란 은쟁반이었다. 그 위에 백납 찻주전자와 종이같이 얇은 하얀 찻잔 두 개와 설탕과 크림과 열어 놓은 초콜릿 상자가 하나 있었다.
"차를 따라라. 나는 손이 아프니까." 그녀는 초콜릿 하나를 입에 넣었다. "네가 이 방을 둘러보는 것을 봤다." 그녀는 캔디를 삼키고 말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하는구나. 나는 여기서 휴식을 취하지." 그녀는 카알이 자기의 눈을 힐끔 쳐다보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한다니까." 그녀는 거칠게 말했다. "왜 그래? 차가 싫으냐?" "안 들겠어요. 차를 좋아하지 않아요."
그녀는 붕대를 감은 손가락으로 얇은 컵을 들었다. "그러면 뭘 먹을래?" "아무것도." "나를 보고만 싶었던가?" "네." "만족해?" "네." "내가 어떻게 보이지?" 그녀는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날카롭고 하얀 작은 이가 드러났다.
"좋습니다." "사실을 말하는 것은 아니겠지. 네 형은 어디 있니?" "학교에, 아니면 집이요." "당신을 더 닮았어요." "오, 그래? 나를 닮았다고?" "목사가 되고 싶어 하죠." 카알이 말했다. "그래야 할 거야. 나를 닮은 애가 교회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교회에선 파괴적인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법이야. 여기에 올때에는 경계를 해야 하지만 교회에선 사람이 개방적이지."
"그는 진심이에요." 그녀는 그에게 몸을 굽혔다. 얼굴이 호기심으로 생동했다. "내 잔을 좀 채워라. 네 형은 둔하냐?" "그는 훌륭해요." "둔하냐고 물었어." "아니오." 그녀는 뒤로 기대앉으면서 컵을 들었다. "아버지는 어떠시냐?" "아버지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요." "오, 그러면 그만둬라! 아버지를 좋아하니?" "사랑하고 있어요." 카알이 대답했다.
케이트는 그를 자세히 살폈다. 이상한 경련이 일어났다. 뒤틀리는 통증이 그녀의 가슴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그것을 속에 감추고 자제력이 되돌아왔다. "캔디 좀 먹을래?" "네. 그런데 왜 그런 짓을 했지요?" "내가 무슨 짓을?" "왜 아버지를 쏘고, 우리들에게서 도망쳤느냐구요?" "아버지가 이야기하던?" "아니에요. 아버지는 우리에게 말하지 않았어요." 그녀는 한 손을 다른 손에 대었다가 마치 데기라도 한 듯이 두손을 떼어 놓았다. 그녀가 물었다. "아버지가 젊은 여자들을 집으로 데리고 오던?"
"아니요." 카알이 다시 물었다. "왜 아버지를 쏘고 도망쳤지요?" 그녀의 뺨은 굳어지고 입은 일자가 되었다. 마치 그물 같은 근육이 자유자재로 감정을 억제하는 듯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눈은 냉혹하고 천박하게 되었다.
"나이보다 어른스럽게 말하는구나. 하지만 어른처럼 능숙하게 말하지는 못하는군. 가서 장난이나 하는 것이 낫겠다. 코를 닦고." "가끔씩 나는 형을 못살게 굴 때가 있지요. 그를 얼떨떨하게 만들기도 하고 울게도 만든 때가 있지요. 내가 하는 방법은 그는 몰라요. 그보다는 내 머리가 좋지요. 내가 왜 그러는지 나도 몰라요. 그러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지요."
케이트는 그것이 자기 말이었기나 했던 것처럼 말을 되받았다. "그들은 자기네들의 머리가 좋다고 생각했지. 나를 보고 나를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바보로 만들었던 거야. 나는 사람들을 하나같이 바보로 만들었어. 내가 어떻게 해야 된다고 그들이 말할 수 있었을 때에는... 오! 내가 그들을 제일 바보 취급했을 때야. 찰스, 나는 그때 그들을 정말 바보 취급했어." "내 이름은 케이트예요. 케이레브는 약속된 땅으로 갔어요. 리이 아저씨가 말해주더군요.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어요." "그 중국인 말이지." 그녀는 열심히 말을 이었다. "아담은 내가 자기 손아귀에 들었다고 생각했지. 내가 엉망이 되게 부상을 당했을 때 그는 나를 받아들이고 간호하고 밥을 먹여줬지. 그렇게 해서 나를 붙잡아 매려고 했던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식으로 하면 매이게 마련이야. 감사해하며 빚을 진 것처럼 생각하게 되지. 그것이 가장 무서운 수갑이야. 그러나 나를 붙잡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는 힘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뛰쳐나온 거야. 나에게 올가미를 씌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가 하고 있던 일을 나는 알고 있었어.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야."
고요한 회색 방에는 흥분하여 식식거리는 그녀의 숨소리만 들렸다. 카알이 물었다. "왜 아버지를 쏘았어요?" "나를 제지하려 했기 때문이지. 그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는 않았어. 나를 방해하지만 않게 해놓고 싶었을 뿐이야." "그대로 있었을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있나요?" "천만에! 어렸을 때에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고 할 수 있었어. 내가 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 사람들은 자기네들이 옳다고 항상 확신하고 있었지. 그래서 전혀 몰랐던 거야...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어." 어떤 종류의 인식이 그녀에게 떠올랐다. "맞아, 너는 나와 같은 사람이야. 똑같을지도 몰라. 틀림없지?"
카알은 일어서서 뒷짐을 졌다. "어렸을 때 말입니다." 그는 말을 멈추고 생각을 가다듬었다. "무엇인가 부족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나요? 가령 당신이 모르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알고 있다든가... 다른 사람들이 비밀을 말해주지 않는 것 같은? 그렇게 느낀 적이 없나요?"
그가 말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얼굴에는 그에 대하여 문을 닫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그리고 말을 마쳤을 때에는 문이 닫히고 두 사람 사이의 통로는 막혀 버렸다. 그녀가 말했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지? 어린애들한테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카알은 뒷주먹을 풀고 호주머니에 손을 찔렀다. "코흘리개한테 말을 하고 있으니 미친 게 틀림없구먼." 카알의 얼굴은 흥분으로 벌겋게 되었고 둥그레져 노려보았다. 케이트가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는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이마에는 땀방울이 빛나고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케이트는 항상 그랬듯이 날카롭되 무분별한 카알과 같은 잔인성을 불쑥 내밀었다.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너에게 재미있는 것 몇 가지를 물려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그녀는 꾸부러진 손을 치켜올렸다. "하지만 간질.... 말하자면 지랄병 같은 것이라면 내게서 물려받은 것이 아니야." 그녀는 카알이 이말에 충격을 받고 격정에 쌓이게 되리라고 미리 생각하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카알은 행복한 듯이 말했다. "가렵니다. 지금, 됐습니다. 리이 아저씨가 말한 것이 사실이군요." "리이가 무엇이라고 했는데?" 카알이 대답했다. "내 마음속에 당신이 있을까 봐 걱정했어요." "내가 있지." 케이트가 말했다. "아니에요, 없어요. 나는 나예요. 내가 당신이 될 이유가 없어요."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녀가 다그쳤다. "그저 알아요. 나는 전적으로 나예요. 내가 비겁하다면 그것은 나 자신의 비겁이에요." "그 중국인이 정말 잘 속여 놓았군. 그러면 나를 왜 그렇게 노려보지?"
카알이 말했다. "불빛이 당신의 눈을 헤치는 것이 아니에요. 겁을 먹고 있는 거예요." "나가!" 그녀가 소리쳤다. "빨리 나가!" "갑니다." 그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당신을 증오하지 않아요. 그러나 겁을 먹고 있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그녀는 '조오!'하고 소리치려 했으나 목소리는 탁해져서 목쉰 소리가 되었다.
카알은 문을 비틀어 열고 나와서 꽝 닫았다. 조오는 응접실에서 한 여자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가볍고 재빠른 발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그들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았을 때에는 질주하는 모습이 문에 다다랐을 때였다. 그는 문을 열고 살짝 빠져나갔기 때문에 묵직한 앞문 소리가 크게 났다. 현관에는 단지 한 발자국 소리만 들리더니 어느새 땅을 뛰어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저 애는 도대체 뭐야?" 그 여자가 물었다. "누가 알아." 조오가 대답했다. "가끔씩 나는 어떤 일을 보는 것 같아." "나도 그래요." 그 여자가 말했다. "클라라가 조바심하고 있다고 내가 말했나?" "마담이 바로 그림자라도 보고 초조해하는지도 몰라." 조오가 말했다. "사람이란 적게 알면 적게 알수록 잘 살 수 있는 것 같아." "당신 말이 맞아요." 그 여자가 동의했다.
제40장
1
케이트는 의자에 등을 대고 푹신한 쿠션에 앉았다. 두려움이 물결처럼 온몸을 돌면서 솜털을 곧추세우고 얼음 같은 고통을 일으켰다.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이제 안정을 해라. 마음을 가라앉혀라. 네가 얻어맞지 않도록 해라. 잠시동안 생각을 거두어라. 빌어먹을 코흘리개 같으니라구!'
그녀는 무서운 증오감을 느끼게 만들었던 유일한 사람을 생각했다. 턱수염이 하얗고 양 뺨이 불그레하고 그녀의 피부를 들어 올려 그 밑까지 들여다보는 미소짓는 눈의, 바로 새뮤얼 해밀튼이었다.
그녀는 붕대를 감은 집게손가락으로 목에 건 가느다란 쇠줄을 찾아내어 그 쇠줄 끝에 달린 물건을 조끼에서 꺼냈다. 쇠줄에는 두 개의 금고 열쇠와 불꽃 모양의 핀이 달린 금시계 하나와 동그란 링이 달린 작은 쇠 튜브가 달려 있었다. 그녀는 아주 조심스럽게 튜브 끝을 돌려 무릎을 벌리고는 아교로 된 캡슐을 흔들어 꺼냈다. 그녀는 캡슐을 불빛에 비추어 보았다. 결정체가 보였다. 충족한 한계량이 모르핀 여섯 알이었다. 그녀는 캡슐 튜브 속에 가만히 다시 넣고는 뚜껑을 덮고 쇠줄을 드레스 안에 집어넣었다.
카알의 마지막 말이 그녀의 마음속에서 맴돌았다. '두려워하는 것을 보니 기쁩니다.' 그녀는 그 말을 지워버릴 생각으로 혼자 크게 떠들었다. 올림은 멈췄으나 강력한 모습이 마음속에 떠올랐다. 그녀는 그 모습을 다시 조사하고 싶은 생각에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모습을 그대로 두었다.
2
방을 이어짓기 전이었다. 케이트는 찰스가 남긴 돈을 모았다.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었고 그 많은 현금은 모테레이 국립은행의 금고 속에 예치되어 있었다.
첫 통증이 일어나 손이 뒤틀리기 시작하던 무렵이었다. 이제 갖고 도망갈 돈도 충분했다. 문제는 집 밖으로 가지고 나갈 수 있는 만큼의 돈을 가지고 나가면 됐다. 그러나 몸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더 좋았다.
그녀는 다시 회복되지 않았다. 게다가 뉴욕은 춥고 거리가 멀었다. 에델이라고 쓴 편지 한 장이 날아왔다. 도대체 에델이 누구였던가? 누구이든 간에 돈을 요구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에델이라면 수백 명이나 있었다. 에델이라면 어딜 가나 있었다. 이 에델은 줄친 편지지에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휘갈겨 쓴 편지였다. 얼마 안 있다가 에델이 케이트를 만나러 왔다. 그녀를 거의 알아볼 수 없었다.
케이트는 주의 깊게 또 의심쩍어하면서도 자신 있게 책상에 앉아 있었다. "오래간만이네." 그녀가 말했다. 나이가 들어가지고 옛 조교를 만난 듯 그녀가 대답했다. "내가 어렵게 됐어." 온통 살이 부어 무겁게 되어 있었다. 옷은 너무 빨아서 초라하게 보였다. "지금 어디 있어?" 케이트는 이 늙은이가 언제 용건을 꺼낼지 걱정이 되었다. "남태평양 호텔에 방을 하나 얻어 있어." "그러면 지금은 일을 하고 있지 않구먼?" "새 출발을 할 수 없었어. 나를 내쫓지 말아야 했었어." 그녀는 무명 장갑 끝으로 주먹 같은 눈물을 닦았다. "일이 엉망이야." 그녀가 말했다. "일이 처음 꼬인 것은 우리가 그 새 판사를 만났을 때야. 90일 형이었어. 전과가 없었는데도 말야... 적어도 여기서는 없었어. 형을 치르고 나오자 이번엔 매독에 걸렸어. 난 걸렸는지도 몰랐어. 그걸 단골손님한테 옮긴 거지 뭐야... 철도 보선구에서 일하던 좋은 분이었는데, 그분이 화를 내면서 구타를 했어. 코에 상처를 입히고 이빨 네 개를 부러뜨렸어. 그러자 그 새 판사는 180일의 형을 또 내렸어. 180일 동안 아무 접촉도 없이 지내면, 사람들은 살아 있는지조차도 잊게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재출발을 할 수 없었어."
케이트는 냉정하고 얕은 동정을 느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에델이 본격적인 용무를 꺼내고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았다. 그 본격적인 이야기 직전에 그녀는 선수를 쳤다. 서랍에서 돈을 꺼내 에델 앞에 내놓았다. "나는 친구가 몰락되게 내버려둔 적은 한 번도 없어. 왜 새 마을로 옮겨 보지 그래? 새 출발을 하는 거야. 사정이 달라질지도 모르니까."
에델은 손가락으로 돈을 집지 않으려고 했다. 포커를 할 때처럼 지폐를 펼쳐 보았다. 달러 지폐 넉 장이었다. 에델은 감정에 북받쳐 입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델이 말했다. "40달러는 더 봐주리라고 기대했었는데." "무슨 말이지?" "내 편지 받았어?" "무슨 편지?" "오! 분실된 모양이구나! 편지를 소흘히 다루기는 하지. 아무튼 나는 네가 나를 돌봐 주리라고 생각했어. 한 번도 기분 좋은 적이 없었어. 몸이 뚱뚱해져서 창자를 짓누르고 있었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그녀가 하도 빨리 말을 해서, 케이트는 그것이 미리 연습을 한 말이라는 것을 알았다.
"글세, 너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가 얼마만 한 투시력을 갖고 있는지 알 거야." 에델이 말을 시작했다. "항상 예언하는 것은 들어맞는단 말야. 꿈에 항상 나타난다니까. 점장이 노릇을 하는 것이 좋다고 사람들이 그러지. 타고난 점장이라는 거야. 기억해?" "모르겠는데." 케이트는 말했다. "기억 안 나."
"기억 안 나? 알아차리지 못했던 모양이구나. 다른 사람들은 모두 눈치챘어. 다른 아이들에겐 많은 것을 말해줬는데 그것이 모두 실현된 거야." "무슨 말을 하려는 거지?" "나는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어. 날짜도 기억하고 있지. 페이가 죽던 바로 그날이었으니까." 그녀는 케이트의 냉정한 얼굴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는 짓궂게 말을 계속했다. "그날 밤엔 비가 왔지. 꿈속에서도 비가 왔어. 어쨌든 축축했었으니까. 네가 부엌문을 빠져 나가는 것을 꿈속에서 봤어. 칠흑같이 어둡지는 않았어. 달빛이 새어들고 있었으니까. 꿈은 너에 관한 꿈이었어. 네가 뒤뜰로 새어들고 있었으니까. 네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보이지 않았어. 그러고 나서 네가 기어들어 왔어."
"다음번에 보니 글쎄 페이가 죽었지 뭐야." 그녀는 말을 멈추고 케이트의 말을 기다렸다. 그러나 케이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에델은 기다려 보았으나 케이트가 말하려 않으려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조금 전에 말한 것처럼 나는 내 꿈을 항상 믿었어. 재미있는 일이야. 그런데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고, 단지 약병들과 고무로 된 안약 떨이가 산산이 부서져 있을 뿐이었어."
케이트가 천천히 말했다. "그래서 그걸 의사에게 가져갔단 말이지? 병안에 무엇이 있었다고 의사가 말했어?" "그렇게 안 했어." "했으면 좋았을 것을." 케이트가 말했다. "나는 누구도 곤란을 당하는 것을 보고싶지 않아. 나 자신이 곤란을 무지무지하게 겪고 있으니까. 나는 그 깨진 유리병을 봉투에 넣어 간직해 두었어." 케이트가 부드럽게 말했다. "그래서 의논을 하러 온 거야?" "맞아요." "내 생각을 이야기하지. 너는 너무 지친 늙은 매춘부야. 그리고 너무 여러 번 머리를 얻어맞았어."
"내가 멍충이라고 말하려는 거지?" "아니야. 네가 그렇지는 않겠지. 그러나 너는 지치고 병들어 있어. 나는 친구를 내버려 두지는 않을 거라고 말했어. 너는 여기에 다시 올 수도 있어. 손님을 받을 수는 없겠지만 이것저것 도와주고 청소도 하고 요리인을 도울 수도 있어. 그러면 침식이 해결될 거야. 그것은 어떻겠니? 돈도 좀 받고."
에델은 불안하게 몸을 움직였다. "싫어. 여기서 자는 것은 싫어요. 나는 그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지 않아. 친구에게 맡겨 놓았어."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 케이트가 물었다. "글세, 너 같으면 한 달에 백 달러씩은 나에게 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 그러면 어떻게 살아가면서 병도 고칠 수 있을지 모르지." "남태평양 호텔에 산다고 했지?" "응, 내 방은 안내원 데스크에서 호올로 통하는 바로 옆에 있어. 야근원이 내 친구야. 근무 중에 자는 일은 절대로 없어. 좋은 친구야."
케이트가 말했다. "에델, 걱정할 필요는 없어. 그 좋은 친구가 돈을 얼마나 낼 수 있는가만을 걱정하면 돼. 잠깐 기다려." 그녀는 서랍에서 10달러짜리 여섯 장을 더 꺼내 내밀었다. "이것을 매달 초에 주는 거니, 아니면 받으러 이리 와야 하니?" "보내줄게. 그리고 에델." 그녀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나는 그 병을 분석해 볼 것 같은 생각이 드는구나."
에델은 돈을 손에 꼭 쥐었다. 승리감이 넘쳐흘러 기분이 좋았다. 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기분이었다. "그럴 생각은 없어. 꼭 해야 될 필요가 없다면 말이야."
그녀가 간 후에 케이트는 뒤뜰로 나가 보았다. 여러 해가 지난 후이지만 울퉁불퉁한 것으로 보아 철저하게 파헤쳐졌던 것이 틀림없었다.
다음 날 아침 판사는 사소한 폭행과 밤 절도에 관한 평상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는 넷째 번 사건에는 귀를 기울이고 있지 않았다. 고발자의 간단한 증언을 듣고 나서 판사가 물었다. "당신은 얼마나 잃었소?" 까만 머리칼의 남자가 말했다. "백 달러 가까이 됩니다." 판사는 체포한 순경에게 몸을 돌려 물었다. "그 여자는 얼마를 갖고 있었나?" "96달러요. 저 여자는 오늘 아침 여섯 시에 야간 근무자에게서 위스키와 담배, 잡지를 샀어요."
에델이 소리쳤다. "내 평생 처음보는 남자예요." 판사는 보고서를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두 번의 매춘, 그러고 절도. 골치를 썩히는구먼. 정오까지 군 밖으로 나가요." 그는 순경에게 고개를 돌렸다. "보안관보고 이 여자를 군 경계선 밖으로 쫓아내라고 해." 그리고 에델에게 다시 말했다. "다시 돌아오면 군 당국에 최고형을 요청할 테니까. 그러면 형무소가 있는 샌퀸틴으로 가야 돼. 알겠어?"
에델이 말했다. "판사님, 조용히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왜?" "말씀드릴 것이 있어요. 이건 가짜예요." "세상만사가 다 가짜야." 판사가 말했다. "다음."
강 위에 걸려 있는 판자 다리 위 군 경계선까지 보안관 보가 그녀를 데리고 가는 동안, 고발자는 케이트의 집으로 향해 케스트로빌 거리를 서서히 걸어 내려오다가 마음을 바꾸어 머리를 깎으러 캐노스 이발관으로 들어갔다.
에델의 방문도 케이트를 그렇게 혼란시키지는 않았다. 원한을 품고 있는 창녀에게 어느 정도의 관심을 쏟아야 되는가는 그녀는 알고 있었으며 깨어진 병을 분석한다 하더라도 독성이 검출될 리가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페이를 거의 잊고 있었다. 억지로 회상해 보면 그 일은 단지 불쾌한 기억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그 일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서서히 인식하게 되었다. 식료품 청구서 세목을 검토하고 있던 어느 날 밤, 어떤 생각이 그녀의 마음속에 뛰어들어 유성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 생각은 순간적으로 왔다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녀는 하던 일을 멈추고 그것을 찾으려고 애를 써야만 했다. 그 생각에 찰스의 까만 얼굴이 끼어든 것은 어쩐 일인가? 그리고 샘 해밀톤의 어리둥절하면서도 두려운 전율을 느껴야 했을까?
그녀는 생각을 거두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찰스의 얼굴이 그녀의 어깨 너머로 바라보고 있었다.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불안하고 지루한 밤이었다. 목요일 밤이었다. 서커스를 벌일 만큼 손님도 많지 않았다.
여자들이 자기에 대해서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도 케이트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그녀를 지독하게 무서워했다. 그녀는 그들을 그렇게 다루었다. 그들이 그녀를 미워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그녀가 세워 놓은 규칙을 정확하게 지키면 케이트는 그들을 돌보아 주고 보호했다. 사랑이라든가 존경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그녀는 상을 주는 일은 없지만 규칙 위반에게는 두 번 벌을 주고 세 번 위반하면 내쫓았다. 그들은 아무 이유 없이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안전하게 생각했다.
케이트가 돌아다닐 때면 여자들은 애써 모르는 척했다. 케이트는 이것도 알고 있었고 또 기대했다. 그러나 이날 밤만은 혼자 있는 것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찰스가 옆에서 뒤에서 함께 걷는 성싶었다.
그녀는 식당을 통해 부엌으로 들어가 아이스박스를 열고 들여다보았다. 쓰레기통을 열어보고 낭비라도 하지 않는가 조사했다. 매일 밤 이렇게 했으나 오늘 밤에는 잔소리가 많았다.
그녀가 응접실을 떠나자 여자들은 서로 쳐다보면서 당혹하여 어깨를 치켜올렸다. 까만 머리의 조오에 이야기를 하던 엘로이스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나는 모르는 일이야. 왜?" "모르겠어. 마담이 신경질을 내고 있는 것 같은데." "글세, 싸움이라도 했나 보지." "뭐였었는데?" "잠깐 기다려!" 조오가 말했다.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일이야." "알겠어. 내 일이나 하란 말이지." "빌어먹게도 눈치 빠르네." 조오가 말했다. "내버려 두자." "나도 알고 싶지 않아." 엘로이스가 말했다. "그렇지."
케이트는 한 바퀴 돌고 왔다. "나는 자겠어." 그녀가 조오에게 말했다. "꼭 필요하지 않으면 부르지 말게." "지시할 일이라도?" "응, 차 좀 끓여. 엘로이스, 옷은 다렸나?" "네, 마담." "썩 잘 다리진 못했군." "네." 케이트는 불안했다. "그녀는 모든 서류를 서류 분류함에 말끔히 집어넣었다. 조오가 찻 쟁반을 들고 들어왔을 때 그녀는 그것을 침대 곁에 놓으라고 지시했다.
베개 속에 파묻혀 누워서 차를 홀짝이며 그녀는 자기 생각을 더듬었다. 찰스는 어땠던가? 그러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찰스는 현명했다. 좀 이상하기는 했지만 해밀튼도 현명했다. 이것은 두려움에 몰린 생각이었다. 현명한 사람들도 있었다. 샘과 찰스는 둘다 죽었지만 또다른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천천히 생각을 해나갔다.
'병을 캐낸 사람이 나였다고 생각해 보자. 무슨 생각을 하고 무슨 짓을 했을까? 두려운 생각이 가슴에 솟았다. 왜 병을 깨뜨려서 묻었을까? 독기가 없었으니까 그랬다. 그러면 왜 파묻었는가? 무엇 때문에 그 여자가 그렇게 했는가? 중앙로 도랑에 내던지든지, 아니면 쓰레기 통에 던져 버려야 했다. 와일드 의사는 죽었다. 그러나 어떤 기록을 남겨 놓았을까? 알 수가 없었다. 유리를 발견하고 내용을 알아냈다고 상상해 보자.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옻나무 기름을 어떤 사람에게 주었다고 가정해 보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소량씩 오랫동안 먹였다고 생각해 보자.' 그녀는 알았으리라. 누구도 알았으리라. '돈 많은 마담이 젊은 여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는 유언을 남겨 놓고는 죽었다는 것을 상상해 보자.' 케이트는 어떤 생각이 먼저 드는지를 잘 알고 있었다. 어떤 미친 생각 때문에 에델에게 돈을 주고 유리를 내놓도록 꾀를 부렸어야 했다. 유리는 지금 어디 있을까? 봉투에 넣었다고 했는데 어디 있을까? 어떻게 에델을 찾을 수 있을까?
에델은 결국 자기가 추방당하게 된 이유와 방법을 알게 될 것이다. 에델의 머리는 좋지 않지만 머리 좋은 사람에게 말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수다스럽게도 페이가 어떻게 아프게 되었고 안색이 어땠고 또 유서에 대하여 모조리 말할지도 모른다.
케이트는 숨이 가빠지고 찌르는 듯한 두려움이 전신에 퍼지기 시작했다. 뉴욕 같은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다.
집을 파는 데 고통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돈도 많았다. 그녀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만일 그녀가 도망을 가고 또 현명한 사람이 에델의 이야기를 들으며 오히려 의심을 사게 되지 않을까?
케이트는 침대에서 일어나 진정제를 먹었다. 그때부터 두려운 생각이 움츠리고 그녀 곁을 항상 따라다녔다. 손의 통증이 점점 더해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오히려 즐거워했다.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악마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마을에 자주 나간 적이 없었지만 이제는 전혀 나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자신이 누군가를 알고 몰래 뒷모습을 살펴보는 남자들이 있다는 것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그중 누구든 찰스 얼굴이나 새뮤얼의 눈을 갖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그녀는 일주일에 한 번씩 억질 외출했다.
그러다가 그녀는 방을 이어 짓고 회색칠을 했다. 불빛이 눈을 아프게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빛이 자기의 눈을 아프게 했다고 그녀는 서서히 믿기 시작했다. 마을에 한번 갔다 오면 눈이 아팠다. 그녀는 이 작은 방에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상반되는 두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데 케이트에게는 그것이 가능했다. 광선이 눈을 아프게 하고 또한 회색 방이 몸을 숨길 수 있는 동굴, 지하의 어두운 구멍, 사람의 눈을 피할 수 있는 장소라고 그녀는 믿고 있었다. 그러나 생각이라기보다는 어떤 직감에서 그 계획을 포기했다. 그렇게 해도 자신을 보호할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나갈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이 들어올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람은 집 밖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다가 밤이 되면 벽 가까이로 기어 와서는 가만히 일어나 창틈으로 들여다볼 수도 있었다. 케이트가 월요일 오후에 집을 나가는 데에는 더한 의지력이 필요했다.
카알이 그녀의 두를 쫓기 시작했을 때에는 두려운 생각이 점점 더 들었다. 그리고 그녀가 쥐똥나무 뒤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에는 공포에 가까운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부드러운 베개 속에 머리를 깊숙이 묻고 있는 지금, 그녀의 눈은 진정제의 효력이 가중되는 것을 느꼈다.
제41장
1
미국은 놀라기도 했지만 한편 끌리기도 하여 슬그머니 전쟁에 끼어들고 있었다. 거의 60년이 지나도록 사람들은 전쟁의 흥분을 느끼지 못했다. 스페인 전쟁은 전쟁이라기보다는 원정에 가까웠다. 윌슨씨는 전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11월에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나 강경책을 쓰도록 압력을 받고 있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전쟁을 뜻했다. 사업의 경기는 좋았고 물가는 오르기 시작했다. 영국 구매관들은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곡물과 천과 쇠와 화학품을 사들였다. 전국이 흥분의 도가니에 싸여 있었다. 사람들은 전쟁을 계획하면서도 전쟁을 정말로 믿지는 않았다. 샐리너스 계곡의 생활은 다름이 없었다.
2
카알은 아론과 함께 걸어서 학교로 갔다. "너 피곤해 보이는구나." 아론이 말했다. "그래?" "어젯밤에는 새벽 4시에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라. 그렇게 늦게까지 뭘했니?" "생각하면서 돌아다녔어. 학교를 그만두고 농장으로 들어가고 싶어." "무엇 때문에." "아버지를 위해 돈을 벌 수 있을 거야." "나는 대학에 진학하려고 해. 지금이라도 갈 수 있으면 좋겠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어. 마을을 떠나고 싶어." "미쳤구나." "나는 미치지 않았어. 내가 돈을 잃는 것은 아니야. 나는 그 미친 상치 생각도 하지 않았어. 그러나 내가 저지르기나 한 것처럼 사람들은 나를 비웃어. 내가 대학에 갈 돈이나 있는지 모르겠어."
"아버지가 일부로 돈을 잃은 것은 아니야." "그러나 잃었잖아." 카알이 말했다. "형은 금년하고 내년을 끝내야 대학에 갈 수 있어." "그걸 내가 모르는 줄 아니?" "형이 열심히만 공부하면 내년 여름 입학시험을 치르고 가을에는 진학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아론은 몸을 홱 돌렸다. "나는 할 수 없어." "내 생각엔 할 수 있을 것 같아. 교장 선생님한테 물어보지 그래? 롤프 목사도 틀림없이 도와줄 거야."
아론이 말했다. "나는 이 마을에서 도망치고 싶어. 다시는 여기를 돌아오고 싶지 않아. 사람들은 아직도 우리를 '상치 대가리'라고 부르고 있어.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고 있어." "에이브라는 어때?" "에이브라는 가장 좋은 길을 택할 거야." 카알이 물었다. "그녀는 형이 떠나는 것을 바랄까?" "에이브라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거야."
카알은 잠시 동안 생각에 잠겼다. "내가 이야기하지. 나는 돈을 벌겠어. 형이 열심히 공부해서 1년 앞당겨 시험에 통과하면 내가 도와 대학을 졸업하게 하겠어." "정말이야." "틀림없어." "그러면 지금 당장 교장 선생님을 찾아가 보겠어." 그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알이 불렀다. "아론, 잠깐 기다려! 내 이야기를 들어! 만일 교장 선생님이 허락해 주더라도, 이 사실을 아버지한테 말하진 마." "왜?" "'형이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말씀드리면 얼마나 멋있을까' 하고 생각했어."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데." "그래?" "마찬가지야. 그런 생각은 우스운 것 같아."
'나는 우리 엄마가 누구인지 알아. 형에게 보여줄 수 있어.' 카알은 이렇게 소리치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러면 이말은 아론의 폐부를 찌르리라.
카알은 수업 종이 울리기 전에 에이브라를 복도에서 만났다. "아론은 어떻게 된 거야?" 그는 물었다. "난 몰라." "너는 알지 않아?" "그는 공상에 잠겨 있어. 목사 때문이야." "아론은 집에 갈 때 같이가니?" "같이 가지. 나는 그를 꿰뚫어 알고 있어. 그는 공상에 잠겨 있는 거야." "그는 아직도 상치 일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어." "그렇다는 것을 나도 알고 있어."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 일을 잊어버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는 그 일을 즐기고 있는지도 몰라." "무슨 뜻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에이브라가 말했다.
그날 저녁 식사를 끝내고 나서 카알은 아버지에게 말했다. "금요일 오후 농장에 가보고 싶은데 괜찮아요?" 아담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돌렸다. "무엇하러?" "그저 보고 싶을 뿐이에요. 둘러보고 싶어요." "아론도 가고 싶어하니?" "아니에요. 나 혼자 갈래요." "가지 못할 이유야 없지. 리이. 자네 생각에 카알이 가지 못할 이유라도 있다고 생각하나?" "없지요." 리이가 이렇게 말하고 카알을 살폈다. "농사 짓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런지도 모르죠. 아버지, 그 땅을 나에게 넘겨 주시면 제가 하겠어요." "임대 기간이 1년이나 더 남았는데." 아담이 말했다.
"그 후엔 제가 농사를 지을 수 있어요?" "학교는 어떻게 하고?" "그때쯤에는 졸업을 하죠." "글세, 두고보자." 아담이 말했다. "진학하고 싶을지도 모르니." 카알이 현관문을 향해 일어섰을 때 리이가 뒤따라 왔다. "왜 농장에 가보려고 하는지 나에게 말해줄 수 있어?" "그저 둘러보고 싶을 뿐이에요." "좋아. 나는 제외된 것 같군." 리이는 돌아서서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카알을 불렀다. 카알이 발을 멈췄다. "걱정되는 일이라도 있어. 카알?" "아니." "필요한지 모르지만 내게 5천 달러 있지." "왜 그것이 필요하겠어요?" "나도 모르겠는데." 리이가 말했다.
3
윌 해밀튼은 차고 안에 등우리같이 유리로 만든 사무실을 좋아했다. 그는 자동차업 이외에도 많은 사업을 했으나 다른 사무실을 차리지 않았다. 그는 유리 사무실 밖에서 진행되는 활동을 좋아했다. 그리고 그는 차고의 소음을 방지하기 위해 이중 유리를 꼈다.
그는 커다란 빨간색 가죽 회전의자에 앉아 대부분의 생활을 즐겼다. 그의 동생 조오가 동부에서는 광고업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사람들이 하면 자기는 작은 연못의 큰 개구리라고 윌은 항상 말했다.
"나는 큰 도시로 진출하기가 두려워요. 나는 꼭 시골놈이니까요." 이렇게 말을 하고 나서 터지는 웃음소리를 그는 좋아했다. 이 웃음의 친구들이 자기의 커다란 재산을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토요일 아침, 카알이 윌을 만나러 왔다. 윌이 당황하는 표정을 보고 그는 자기 소개를 했다. "카알 트래스크입니다." "아, 그렇구먼. 많이 컸네. 아버지도 오셨나?" "아닙니다. 혼자 왔습니다." "앉게. 담배는 피우지 않지?" "가끔씩 피우죠." 윌이 뮤라드 담뱃갑을 책상 위로 내밀었다. 카알은 담배갑을 열었다가 닫았다. "지금은 피우지 않겠어요."
윌은 얼굴색이 검은 소년을 쳐다보았다. 그가 좋았다. 이 소년은 영리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곧 사업에 투신해야 되겠군." "네. 학교를 졸업하면 농장을 할 생각이에요." "농사일을 해서는 돈을 못 벌지. 농군은 돈을 벌지 못해. 농군한테서 물건을 사 가지고 판매하는 사람이 돈을 버는 거야. 농사일을 해가지고는 결코 돈을 못 벌 걸." 윌은 카알이 자기를 느끼고 검사하고 관찰하고 있는 것을 알았다. 그것이 그의 마음에 들었다.
카알은 무엇인가 결심을 하고 있었으나 먼저 인사말을 꺼냈다. "해밀튼 씨. 아직 어린애가 없으시죠?" "섭섭하지만 없니. 아주 섭섭하게 생각하는 일이야. 그런데 왜 묻나?" 카알은 그의 질문을 무시하고 물었다. "충고를 해주시겠어요?" 윌은 아주 기뻤다. "할 수 있으면야 기쁘지. 알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카알은 더욱 윌의 마음에 드는 짓을 했다. 그는 솔직을 무기로 사용했던 것이다. "거부가 되고 싶어요. 방법을 말씀해 주세요." 윌은 웃고 싶은 충동을 억제했다. 그의 말은 천진해 보였지만 카알이 천진하다고 생각지 않았다. "누구나 그러고 싶지. 거부의 뜻이 뭔가?" "2천 내지 3천 달러쯤 벌고 싶어요." "아, 그래!" 윌은 삐걱 소리를 내며 의자를 앞으로 끌고 왔다. 그리고 이번에는 웃었다. 그러나 조소는 아니었다. 카알은 윌을 따라 웃었다. 윌이 말했다. "그만한 돈을 벌겠다는 이유가 뭔가?" 카알은 뮤라드 담뱃갑을 열어 타원형의 필터가 달린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이유를 말씀드리지요."
윌은 재미있다는 듯이 의자를 뒤로 젖혔다. "아버지는 돈을 많이 버렸죠." "알고 있네. 상치의 대륙횡단 수송을 하지 말라고 내가 말씀드렸었지." "그러셨어요? 왜 그러셨어요?" "보증인이 아무도 없었어. 사업인은 자신을 보호해야 해. 사고가 일어나면 끝장이야. 그런데 사고가 났지. 말을 계속하게." "아버지가 읽은 돈만큼 벌어서 돌려드리려고 그래요." 윌은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왜?" "하고 싶어요." 윌이 물었다. "아버지를 좋아하니?" "네."
윌의 살찐 얼굴이 뒤틀렸다. 하나의 추억의 찬바람처럼 그에게 밀어닥친 것이다. 과거를 천천히 뒤진 것이 아니었다. 수 년간의 과거가 일순간에 나타났다. 하나의 그림이, 감정이, 절망이 마치 고속 카메라가 세계를 정지시킨 것처럼 정지해 있었다. 새벽처럼 아름답게 제비의 비상같은 멋진 모습을 하고 새뮤얼이 번쩍 나타났다. 찬란하고 사색적인 톰이 검은 불꽃처럼 방 안을 채우는 아름다운 조오지, 사랑스런 막내둥이 조오가 있었다. 누구 하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가족에 어떤 선물을 안겨 주었다.
누구나 비밀스러운 고통의 상자를 갖고 있으면서도 이를 아무와도 나누지 않았다. 윌도 자신의 샘은 감추고 너털웃음을 웃고 심술궂은 성질을 개발하고 시기심이 나타나지 않도록 애썼다. 그는 자신을 느리고 얼띠고 보수적이고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커다란 꿈에 부풀어 본 적도 없고 절망에 싸여 자신이 파멸에 빠진 적도 없었다. 그는 항상 주변에 맴돌면서 조심성과 사리와 응용력이라는 자신의 재능을 갖고 가족주의에 매달리며 애를 써왔다. 장부를 재고 변호사를 대고 장의사를 부르고 드디어는 돈을 지불한 사람도 그였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는 돈을 벌고 유지하는 재능을 갖고 있었다. 자신이 오직 한가지 능력밖에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해밀튼 가족이 경시했다는 것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는 끈덕지게 가족들을 사랑했었다. 그들이 실수를 저질렀을 때, 거기서 그들을 끌어내기 위해 항상 돈을 수중에 갖고 있었다. 가족들이 자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있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들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열심히 노력했다. 이 모든 것들이 휘몰아치는 얼음이 되어 그의 몸속에 있었다.
카알을 응시하는 윌의 부푼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카알이 물었다. "해밀튼 씨, 무슨 일이세요? 기분이 좋지 않습니까?" 윌은 자기 가족들을 느끼고는 있었으나 이해까지는 하지 못했다. 가족들은 그의 마음속에 이해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하고 그냥 그를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이 소년이 나타났던 것이다. 윌은 이 소년을 이해하고 느끼고 직감하고 인식할 수 있었다. 이 소년이야말로 그가 낳았어야 할 아들, 아니면 가져야 할 동생, 아니 아버지였다. 찬바람과 같은 추억이 카알에 대한 온정으로 변했다. 온정은 그의 배를 움켜쥐고 폐부까지 밀려왔다.
윌은 그의 관심을 유리 사무실 안으로 억지로 옮겼다. 카알은 의자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윌은 침묵이 얼마동안 흘렀는지 알지 못했다. "생각을 하고 있었어." 그는 띄엄띄엄 말했다. 그의 목소리는 엄숙했다. "자네가 나한테 부탁을 했지. 나는 사업가야. 물건을 가져 줄 수는 없어. 파는 사람이야."
"알고 있습니다." 카알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으나 윌 해밀튼이 자기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윌이 말했다. "알고 싶은 것이 있는데 사실을 말해주겠어?" "글쎄요." 카알이 대답했다. "그런 것을 내가 좋아해. 질문의 내용을 알 때까지야 무어라고 잘라 말할 수 있겠나? 그런 것이 좋아. 현명한 일이지... 정직하고. 내말을 들어봐. 자네에겐 형이 있지? 아버지는 자네보다도 형을 더 좋아하시는가?" "모든 사람이 그렇죠." 카알이 차분하게 말했다. "누구나 아론을 좋아하죠." "자네는?" "좋아하죠. 적어도... 그렇죠. 좋아해요." "적어도라니?" "그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 때가 있지만 그를 좋아해요." "아버지에 대해서는?" "좋아합니다." 카알이 대답했다. "아버지는 형을 더 좋아하고?" "모르겠어요." "아버지가 잃은 돈만큼을 아버지에게 돌려주고 싶다고 했는데, 왜 그래?" 보통 때에는 카알이 눈을 가느다랗고 조심성스러웠으나 이제는 아주 커서 주위를 둘러보고 윌을 꿰뚫어 보는 듯했다. 카알은 가능한 한 자신의 본심에 접근해 있었다.
"아버지는 좋은 분이에요. 그러나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버지에게 그것을 보상해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자네가 그렇게 하면 자네는 좋아지지 않겠나?" "아니에요. 그래도 나쁘죠."
이토록 솔직담백하게 말하는 사람을 윌은 대해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카알의 솔직성 때문에 거의 당황하게 되었다. 그의 솔직성 때문에 그가 얼마나 안전한가를 윌은 알고 있었다. "한가지만 더. 대답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 같으면 대답하지 않을 거야. 이런 질문이야. 자네가 그 돈을 얻어 아버지에게 전한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면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의 사랑을 매수하려 한다는 생각이 안드나?" "그렇죠. 그런 생각이 듭니다. 사실일 겁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은 그것뿐이야." 윌은 앞으로 굽히고, 펄떡펄떡 뛰며 땀이 흐르는 이마에 손을 얹었다. 그때처럼 그렇게 혼란해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그는 생각했다. 카알의 마음속에는 조심스러운 승리감이 용솟음쳤다. 카알은 자기가 승리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나타내지 않으려고 표정을 감췄다.
윌은 고개를 들고 안경을 벗어 물기를 닦았다. "우리 드라이브나 하자." 관만큼 기다란 덮개가 달려 있고 강력한 엔진 소리를 내는 커다란 윈튼 차를 그는 몰고 있었다. 그는 봄기운이 도는 대가를 뚫고 킹 시티 남쪽 국도를 따라 차를 몰았다. 종다리가 앞을 날라 철조망에 앉아 노래를 불렀다. 피코 블랑코 산이 머링 눈을 이고 서쪽을 등진 채 우뚝 솟아 있다. 계곡을 가로질러 서있는 바람맞이 유우칼나무가 새 은빛 잎사귀를 번쩍이고 있었다.
트래스크 농장 계곡으로 들어가는 옆길에 이르자 그는 길 옆에 차를 세웠다. 윈튼 차가 킹 시티를 떠나온 이래 그는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커다란 모터가 깊은 속삭임을 내면서 공정하게 있었다.
윌은 앞쪽을 똑바로 내다보면서 말했다. "카알, 나하고 동업자가 되고 싶지 않나?" "되고 싶습니다." "나는 돈 없는 동업자를 잡기는 싫어. 내가 돈을 빌려줄 수는 있지만 항상 문제가 따르지." "나는 돈을 구할 수 있어요." "얼마나?" "5천 달러요." "그래... 믿어지지 않는데." 카알은 대답하지 않았다. "믿겠어. 빌리는 건가?" "네." "이자는?" "무이자죠" "그것 참 대단한 묘수구먼. 어디서." "말하지 않겠어요." 윌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그는 아주 기뻤다. "내가 바보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자네를 믿겠어... 나는 바보가 아니지." 그는 모터를 빨리 돌리다가 다시 늦추었다. "내 얘기를 들어봐. 자네, 신문 읽나?" "읽습니다." "우리는 언제고 전쟁에 끼어들 거야." "그렇게 보이더먼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자네, 콩 시세를 아나? 샐리너스에서 콩 백 자루를 얼마에 팔 수 있다고 생각하나?" "확실치는 않지만 파운드 당 3센트 내지 3센트 반을 받을 수 있지요." "확실치 않다는 말은 무슨 말이야? 어떻게 그걸 알았지?" "농장을 내가 경영하겠다고 아버지에게 말씀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알겠어. 그러나 자네는 농사일은 못 할 거야. 자넨 너무 머리가 좋으니까. 자네 부친의 소작인은 란타니라는 스위스계 이탈리아인인데 훌륭한 농부야. 그는 약 5백 에이커를 경작하고 있어. 만일 그에게 1파운드 당 5센트를 보증해 주고 씨를 빌려주면 그는 콩을 심을 거야. 이 주위의 농부들도 누구나 심을 거야. 우리는 5천 에이커의 콩을 심는 계약을 할 수가 있어."
카알이 말했다. "시장 가격이 3센튼데 5센트짜리 콩을 어떻게 하겠다는 거예요? 아, 그렇지! 그러나 어떻게 보장하죠?" 윌이 말했다. "우리는 동업자지?" "그렇습니다." "그래, 윌이라고 해!" "네, 윌." "언제 5천 달러를 구할 수 있나?" "다음 수요일까지." "악수하세!" 건강한 남자와 얼굴이 까맣고 마른 소년이 엄숙하게 악수했다.
윌은 카알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리는 이제 동업자다. 나는 영국 구매소와 접촉이 있고 병참 본부에도 친구가 있어. 말린 콩이라면 파운드 당 10센트 이상에 팔 수 있어." "언제 팔 수 있나요?" "도장을 찍기 전에라도 팔 수 있어. 자, 지금 자네 옛 농장으로 가서 란타니에게 말하겠나?" "그러죠."
윌이 윈튼 차에 이중 클러치를 넣자 커다란 녹색 차는 덜커덩 거리며 옆길로 빠져들었다.